본문 바로가기
지맥산행(완료)/양각지맥(수도·완)

양각지맥 제1구간 심방마을에서 분기점인 시코봉 지나 살피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11. 12.
728x90

산행지 : 경상남도 거창군의 양각지맥 마루금 일대

행일자 : 2019년 11월 09일 (토요일 당일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맑고 찬바람이 불어 아침 저녁으로는 약간 추위를 느꼈으나 점심시간 전후로는 약간 무더위도 느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2도에서 영상 11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심방마을(경상남도 가북면 중촌리) 경로당 및 버스종점 이정표(수도산 5.2 Km, 양각산 2.4 Km)-수재마을-등산 안내판과 이정표(수도산 4.1 Km, 양각산 1.7 Km)-마지막 화장실-능선진입-묘지2기-묘지2기-비포장임도-능선입구 이정표(수도산 2.6 Km)-짧은 산죽지대-일출-전망바위-로프지대-1202.2봉-수도지맥 접속(수도산 갈림삼거리) 이정표(양각산 2.0 Km, 수도산 1.4 Km, 심방 3.8 Km)-양각지맥 분기점 시코봉(1236.5봉, 정상석) 이정표(양각산 1.6 Km, 수도산 1.4 Km, 우두령 3.4 Km)-양각지맥 분기점 이정판-1205.5 무명전망바위-1146 무명봉-1166봉-어인갈림 삼거리 이정표(양각산 0.4 Km, 수도산 3.1 Km, 어인 3.2 Km)-계단-양각산(1157.5봉, 정상석과 설명석) 이정표(흰대미산 1.9 Km, 수도산 3.5 Km)-바위암봉-절구통바위-안전목책과 로프구간-1107.1 무명봉-바위암봉 우회-로프구간-1019.5미터 띠지들-977.8 무명봉-바위암릉구간-심방갈림 삼거리 이정표(흰대미산 0.9 Km, 양각산 1.0 Km, 심방 1.4 Km)-묵은 헬기장-무명안부-흰대미산(휜덤이산, 백석산, 1018.5봉, 삼각점)-청도김공묘-갈림사거리 이정표(회남재 4.3 Km, 흰대미산 0.5 Km, 심방 1.0 Km, 우랑 1.9 Km)-소나무 등로-간벌지대-767.3미터의 무명안부-806.2 무명봉-지독한 잡목지대-널부러진 고사목 지대-무명안부-짧은 낙엽송지대-779.9 무명봉-비포장임도 안부-775.9 무명봉-777.1 무명봉-우측 철망지대-786 무명봉-827 산불초소봉-안부(시멘트 포장도로) 이정표(불령산 2.3 Km, 양각산 1.5 Km와 우랑 2.1 Km, 가북면 중촌과 신방 1 Km)-698 무명봉-묘지 무명안부-670.8 무명봉-회남령(보해길 2차선 포장도로) 이정표(보해산, 흰대미산)-나무계단-수원백공 묘지-694.3 무명봉-728.4봉-829.1 산행띠지봉-간벌목지대-이정표(보해산 4.5 Km, 회남령 1.0 Km, 원보광)-721.1 삼각점봉 갈림삼거리-721.1 무풍465 삼각점봉-갈림삼거리 복귀-지독한 잡목과 가시구간-남산2구 갈림삼거리 이정표(보해산 3.5 Km, 회남재 2.0 Km, 남산2구)-무명안부-686.2 무명봉-678.5 무명봉-우측 녹슨 철조망 지대-원남산 갈림삼거리 이정표(보해산 2.6 Km, 회남재 2.9 Km, 원남산 1.7 Km)-묵은 헬기장 아카시아나무 군락지-무명안부-671.7 무명봉-무명안부-바위암릉구간-719.9 무명봉-간벌된 잡목안부-거기마을 갈림삼거리 이정표(보해산 1.2 Km, 회남재 4.3 Km, 거기마을 2.5 Km)-751.7 무명봉-거대바위 우회구간-전망바위-로프구간-외장포 갈림삼거리 이정표(보해산 0.3 Km, 회남재 5.2 Km, 외장포 2.9 Km)-계단로프 구간-전망바위-보해산(911.5봉, 정상석, 무풍25 삼각점, 무인산불감시카메라 금귀봉과 보해산 등산안내판) 이정표(금귀봉 4.0 Km, 회남재 5.5 Km, 양암 1.6 Km)-무명안부-계단-바위암릉구간-857봉(산행 띠지들)-바위암릉구간-무명안부-나무계단-834.1 전망바위-나무계단-안전철봉과 로프구간-나무계단-일구암 갈림삼거리 이정표(일구암 5m)-고대마을 갈림삼거리 이정표(금귀봉 2.4 Km, 보해산 1.6 Km, 고대마을 1.7 Km)-정봉 갈림삼거리 이정표(금귀봉 2.1 Km, 보해산 1.9 Km, 정봉 1.6 Km)-이정표(금귀봉 2.0 Km, 보해산 2.0 Km)-터널위 이정표(금귀봉 1.3 Km, 보해산 2.7 Km, 정봉, 거기삼거리)-금귀봉 갈림삼거리 이정표(금귀봉 0.9 Km, 살피재 3.5 Km, 보해산 3.1 Km)-659.6(666)봉-무명안부-계단-금귀봉(838.6봉, 정상석, 2개의 산불감시초소) 이정표(보해산 4.0 Km, 당동 3.1 Km, 거기삼거리 4.1 Km)-금귀봉 갈림삼거리 복귀-비포장임도-575.7 무명봉-길주의 지점-합천이공묘-무명안부-465.3 무명봉-멧돼지 목욕탕-지독한 잡목지대-528.4봉(거창423 삼각점)-지독한 잡목지대-상수원보호구역 이정목-지독한 잡목지대-길주의 지점-485.8봉-살피재(1084번 가조가야로 2차선 포장도로)-양각지맥 산행종료-1084번 도로 타고 우측으로 도보진행-대촌버스 정류장에서 산행종료

산행거리 :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즐기며 조금은 길게 산행을 이어가 진행하여 27.76 Km (스마트폰의 Oruxmaps와 트랭글 기준)

             지맥산행 - 22.29 Km (양각지맥 분기점인 시코봉에서 살피재까지)

             접속구간 - 총 05.47 Km (04.20 Km 심방마을에서 분기점인 시코봉까지와 01.27 Km 살피재에서 대촌버스정류장까지)

산행트랙 :

20191109 양각지맥 제1구간 심방마을-분기점-살피재.gpx
0.18MB

 

산행시간 : 초반전에 황홀한 조망과 풍경에 취해 여유롭게 진행하다 막판에 버스 시간에 쫒겨 빠르게 진행하여 11시간 34분 (06시 31분부터 18시 06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2:50 애마로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송촌리 심방마을 버스 종점으로 출발

                            06:20 심방마을 마을회관 앞 버스 종점에 도착 후 산행 준비

                            06:31 심방마을에서 양각지맥 산행 시작

                    올때 - 17:57 살피재에서 양각지맥 제1구간 산행 종료

                            18:06 대촌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산행 종료

                            18:18 회차해 나가는 거창군내 버스에 탑승하며 심방마을까지 이동

                            18:55 중촌리 심방마을에 도착 해 애마 회수

                            19:30 거창읍내로 나와 목욕탕에서 샤워 및 환복 (6,000.-)

                            20:40 거창읍내 여관 투숙 (30,000.-, 찜질방이 영업 부진으로 영업 중단되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

                            21:00 여관에서 가까운 식당에서 소머리국밥으로 저녁해결 (7,000.-)

양각지맥이란 ???

수도지맥의 우두령에서 3.9 Km 지점인 시코봉이라 불리는 1237봉에서 분기하여 남쪽으로 거의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면서 동으로 가천천과 서로 계수천을 가르며 황강으로 빠지는 약 31 Km의 산줄기를 양각지맥이라 부른다.

88고속도로를 건너 일산봉을 지난 다음 산줄기는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신산경표에서는 남서쪽 감토산으로 지맥을 이었으나 남동쪽 가천천이 황강에 합류하는 가천교로 향하는 줄기도 있으며 이 산객은 가천천 합수점으로 진행을 하기로 한다.

산경표는 우두치와 수도산 그리고 가야산으로 지나가고 대동여지도에는 수도산 남쪽으로 금귀산과 박유산 이름들이 보이는데 둘 다 신산경표 양각지맥 마루금에서 살짝 벗어나 있지만 모두 올라가 보기로 한다.

 

 

 

환상의 조망과 풍경에 취해 맥 잇기 산행도 잊은 채 하루를 풍요롭게 채웠던 거창에서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또한 양각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상남도 거창군과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와 다음의 백과사전 그리고 산림청과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이번주에도 올라야 할 지맥 산행지를 살펴보는데 엊그제부터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인해 미세먼지와 안개로 인한 박무 현상도 사라질 것 같아 우리나라 산행지 중 조망과 풍경이 가장 뛰어난 양각지맥 산행을 급하게 생각해 보는데 다만 예전에 이용하던 찜질방이 사라져 숙박문제가 걸림돌이 되지만 여관에서 하룻밤 묵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준비한다.

하지만 서울에서 너무나 먼 거창이다 보니 편도 운전만 3시간 30여분이 걸려 고민하지만 어짜피 결정을 했으면 실천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 전날 산행 준비 후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2시 20여분에 일어 나 거창 중촌리 심방마을로 향한다.

아침 6시 50분에 거창버스터미널에서 심방으로 들어가는 첫 버스가 있지만 그 버스를 이용할 경우 살피재로 내려오는 하산 시간이 늦어 예측이 불가능하기에 애마를 몰고 심방으로 들어 가 버스 종점에 주차시킨 후 조금 이른 시간에 산행을 시작하면 저녁 6시에 거창을 출발해 대촌마을 앞에서 회차해 나가는 버스로 다시 심방으로 들어가 애마 회수가 가능할 것 같아 어둠을 피해 산행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출발하는 시간이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떤 풍경과 조망이 펼쳐져 있을 것인지 또 그 자연을 바라보며 어떤 추억을 남길 수 있을지 설레임 가득 안고 출발하지만 역시나 충분한 잠을 자지 못하고 어둠속에 하는 장거리 운전은 쉽지 않은 중노동이다.

 

서서히 어둠이 물러나며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간에 중촌리 심방마을을 출발하는데 생각보다 추운 바람이 옷깃을 스쳐 준비한 귀마개와 장갑으로 중무장을 하고 포장도로를 타고 으측의 수재마을을 향해 빠르게 걸어가니 도롯가에 남아 있는 붉은 사과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그렇게 마지막 화장실이 있는 곳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 가파르게 오르니 몸이 풀리면서 등줄기에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해 방풍의를 벗어 배낭에 넣고 산행을 이어간다.

드디어 수도지맥 마루금에 접속을 하고 좌측으로 걸어 양각지맥 분기점인 시코봉에서 생각보다 멋진 환상의 조망에 취해 한동안 머문 후 본격적인 지맥 마루금으로 들어가니 준희 선생님이 걸어 놓은 이정판을 만나고 곧이어 나타나는 전망바위에서 남쪽을 살펴보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황홀한 풍경들이 말문을 막고 그저 눈으로 가슴으로 느껴보라 알려준다.

이제부터 걸어 넘어야 할 양각산과 흼대미산이 바로 지척으로 다가와 있고 그 뒤 좌측 저 멀리 보해산과 금귀봉이 우뚝하며 그 좌측으로 송곣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는 박유산을 넘아 다시 우측으로 돌아가면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 앉은 가천천과 황강이 만나는 합수점이 있을 것이고 그 뒤 우츠 ㄱ 끝자락으로 지리산 천왕봉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연봉이 환상이다.

지리산 천왕벙 좌측으로는 필봉산과 왕산 그리고 웅석봉이 아스라히 보일듯 말듯 위치해 있고 그 좌측으로 철쭉이 유명한 황매산이 그 옛날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황매산 좌측 앞으로는 합천호쪽으로 안개가 드리워져 있고 그 좌측 라인으로는 오래 전 홀로 즐겼던 수도지맥의 산줄기들이 길게 펼쳐져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아름답고 환상적인 전망과 조망들 그리고 펼쳐진 풍경들로 여유롭게 진행하다 보니 너무 여유를 부렸는지 보해산 지나 뻥대를 통과하며 조금은 조급해지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살피재 옆 대촌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거창에서 저녁 6시에 출발한 버스를 타고 다시 심방마을로 들어 가 애마를 회수해야 되기 때문인데 이제부터 잠시 들렸다 내려 와야 할 금귀봉이 생각보다 높고 거칠어 마음의 조바심을 유발하고 있다.

그래도 바늘 허리에 실을 꿰 사용할 수 없듯이 한발 두발 빠르게 걸어 오르다 계단 상단에서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수도산 아래 시코봉부터 보해산과 뻥대 지나 이곳 금귀봉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산줄기가 길게 펼쳐지며 바쁜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 우측 뒤에는 머리만 살짝 내밀고 있는 합천 해인사를 품고 있는 가야산이 그 존재감을 알리고 있어 바쁜 발걸음이고 마음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망중한을 즐겨 본다.

바로 이런 풍경과 조망을 보기 위해 그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또 어둠을 뚫고 달려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 산하는 가을을 지나 겨울을 준비하고 다시 삭풍이 불어 오는 날 이곳에 서서 다르게 변해 있을 저 풍경을 바라볼 수 있기를 상상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아주 오래 전 산행이 무엇인지도 모를 시기에 이곳으로 와 시코봉과 양각산 지나 흰대미산을 걸었던 기억이 있지만 그 기억마저도 가물거리는 심방마을을 참으로 오랫만에 다시 들리게 된 감흥이 시ㅐ롭기만 하다.

높은 산지에 둘러 쌓인 이곳 심방마을은 생각보다 따뜻한 느낌인데 어둠이 가시기도 전에 민가에서는 아주머니 일찍 일어 나 빠쁜 손길로 집안일에 열중이다.

잠시 인사 드리고 주차해도 되는지 확인한 후 산행을 위해 출발한다고 하니 안전하게 잘 산행하고 내려오라고 응원까지 해 주시니 대도시의 인심과는 완전히 다른세상이다. 

산행 준비 후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면서 버스 종점에서 심방마을 경로당 건물과 그 뒤 저 멀리 잠시 후 올라야 할 양각산 쪽을 올려다 보니 그곳은 이미 햇살이 비치는지 따스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이곳 심방마을은 거창군 가북면 중촌리에 있는 자연마을이며 중촌리는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에 있는 리로서 흰대미산 중턱의 고지대에 있고 골짜기 중턱에 있기 때문에 대부분이 산악지형이며 중촌이란 지명도 골짜기의 중간에 있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심방(尋芳)마을은 고려 말 신방(申肪)이라는 사람이 은거하던 곳이라 것에서 이름이 시작되었으며 이후 주변 경치가 뛰어난 장소라는 의미로 심방소(尋芳所)라고도 불리었다.

자연마을로는 불석과 호박 마을이 있는데 불석은 수도산의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이곳에 부처가 있었는데 수도사로 옮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호박은 돌호박(돌확)을 캤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특산물로는 고랭지 채소와 청정 건고추 및 송이버섯 등이 있다.

이곳 양각산과 흰대미산은 겨울 눈 산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날 올라 바라보는 경치와 조망이 전국 최고의 산줄기로 기억되고 있는 곳이기에 오늘 불현듯 찾아 온 곳이기도 하다.

 

심방마을에서 수도산까지 5.2 Km거리라는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의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평이하게 걸어 들어가니 마을이 없을 것 같은 산골 분위기가 압도하는데 도롯가에 붉게 익어가는 사과만이 이곳에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밭 경작지임을 알려주고 있다.

잠시 그 사과밭을 지나 오르다 도로 우측을 살펴보니 저 멀박유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가 마치 송곳을 거꾸로 세워 놓은 듯 뾰족하게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도로 좌측 위로는 앞으로 올라 걸어야 할 양각지맥 마루금을 올려다 보며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르니 저 멀리 하나 둘 예쁜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도로 우측 옆으로 수재동천이란 커다란 이정석이 서 있다. 

수재마을은 수재골이라고도 하는데 천재가 살았다는 전설에 따라 이름하여 수잿골이라 한다.

수재마을이 있는 중촌리는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에 있는 리로서 흰대미산 중턱의 고지대에 있고 골짜기 중턱에 있기 때문에 대부분이 산악지형이며 중촌이란 지명도 골짜기의 중간에 있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다만 이곳 수재마을까지는 버스가 들어오지 못하므로 심방마을의 경로당 앞 버스 정류장까지 내려가 이용해야 한다.

 

 

수재마을임을 알리는 수재동천이란 커다란 이정석을 지나니 생각보다 많은 민가들이 보이는데 집들은 새로 개량을 하였는지 다른 지역의 시골집들보다는 조금 더 깨끗하고 아름다운 전원주택처럼 보이기도 하다.

잠시 후 갈림사거리 한 모퉁이 전못대 옆에 양각산 등산로 안내판과 이정표가 서 있는데 좌측으로 양각산까지 직등할 수 있는 갈림삼거리이지만 역시나 양각지맥 분기점인 시코봉을 올라야 하기에 우측의 수도산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계속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운동시설과 간이 화장실이 보이고 잠시 후 우측으로 그림같은 집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며 옛날 추억을 들려 준다.

잠시 후 높은 고도의 밭에는 붉게 익어가는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 일부러 수확을 않하는지 아니면 수확할 일손조차 없는지 안타까운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이어 민가들이 사라진 만산홍엽의 좁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조금 더 깊숙하게 들어가니 비포장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가 번갈아 나타나며 드디어 작은 개울 건너 아담한 화장실이 건너다 보이는 좌측 뒷쪽으로 플랭카드가 걸려있는 산행 들머리가 나타난다.

 

화장실 앞에서 잠시 배낭 정리하고 비움의 즐거움을 맛 본 후 스틱을 펴고 능선으로 오르며 본격적인 양각지맥 분기점으로 향하는데 늘 그랬듯 처음 오르막 등로가 쉽지 않다.

미끄러운 낙엽을 밟으며 힘들게 오르니 낙엽송 군락지가 나타나고 노란 침엽수 낙엽을 따라 잠시 걸어 오르니 비탈 사면에 묘지 2기가 보이고 그 묘지들을 지나 오르니 또 다른 묘지 2기가 보인다.

그 묘지들을 지나 바스락 거리는 활엽수 낙엽의 리듬감을 느끼며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힐쯤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 잠시 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오르니 우측 능선으로 진입하는 입구 소나무 가지 뒤에 이정표가 숨어 있는데 수도산까지 2.6 Km 거리라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반갑기만 하다.

수도가야 종주와 수도지맥 그리고 개인적으로 두어번 더 올랐던 수도산이고 조만간 금오지맥 산행을 위해 다시 한번 더 만나야 할 수도산이이게 오늘은 아쉽지만 먼 발치에서만 올려다 보고 인사를 나누고 남쪽인 양각지맥 산줄기로 내려갈 예정이다.

 

능선으로 들어가니 이곳 역시 관목의 참나무들이 줄을 지어 길게 이어지고 그 아래 펼쳐진 등로에는 낙엽이 깊게 쌓이면서 귓전을 즐겁게 해 주지만 미끄럽기에 조심하며 힘들게 올라보는 시간이다.

산행을 시작하면서 한기가 돌아 입었던 방풍의를 벗어 배낭에 넣고 귀마개도 제거한 후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짧은 산죽지대를 지나 다시 나타나는 참나무 군락지에서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떠 오르는 찬란한 햇살에 차가워진 몸뚱아리를 내 맞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뭇가지들로 아쉬운 일출을 맛 본 후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경사도가 조금은 완만해지며 올라야 할 1202.2봉이 참나무 가지들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이제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잠시 후 걸어 내려가야 할 양각지맥 마루금이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로 길게 뻗어 있고 그 뒤 저 멀리 덕유산 줄기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다시 오르니 이제는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 위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방금 전 떠 오른 태양이 단지봉 위에서 반짝이고 그 단지봉 좌측 옆으로 울퉁불퉁 머리만 내밀고 있는 합천 가야산이 오래 전 쌓았던 많은 추억들을 상기시키며 이 산객의 입가에 미소를 돌게 만든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역시 이곳으로 발길을 돌리길 잘 했다며 자평하는 사이 찬바람이 불며 잠시 흐르던 땀방울을 식혀주니 다시 한기가 돌기 시작해 발걸음을 서둘러 본다.

단지봉 우측 저 멀리 아래로는 오래 전 걸으며 고운 추억을 남겼던 수도지맥의 우두산과 비계산 줄기가 머리를 내밀며 존재감을 알려 오는데 저 산군들은 오늘과 내일까지 원없이 가슴속에 그 풍경들을 남기게 될 것이다.

조망을 즐기고 식어가는 땀을 데우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니 굵은 로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잡목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1202.2봉 정상에 도착을 해 잠시 한숨을 돌려 본다.

이제 양각지맥 분기점인 시코봉도 그리 멀지 않은 지점까지 가까워진 느낌이다.

 

잡목들이 무성한 1202.2봉을 지나자마자 등로 우측 위로 너무나 아름다운 수도산 정상부가 빤히 올려다보이는데 몇번의 고운 추억을 남겼던 곳이기에 그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시간이다.

산행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올랐다가 무작정 산친구들을 데리고 눈이 무름을 덮는 계절에 수도산에서 가야산까지 종주 산행을 하면서 황홀한 상고대에 취한 후 가야산 정상에서 공단직원들에게 비법정 등로를 걸었다며 단속을 당했던 기억이 뚜렷하고 홀로 무더운 계절에 수도지맥 산행을 위해 올랐다 마지막 체력적인 어려움으로 힘들게 지났던 기억 모두 이제는 고운 추억이 되어 가슴속 깊이 쌓여 있게 되었다.

수도산은 경상남도 거창군의 가북면 중촌리와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및 대덕면 대리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1317미터이다.

서쪽의 대덕산과 동쪽의 단지봉 등과 산줄기가 이어지고 산 남쪽에서 좌가천이 발원하며 산은 불령산(佛靈山), 선령산(仙靈山), 신선대, 수락산이라고도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거창)에 수도산(修道山)은 군 동북쪽 36리 지점에 있다 라고 하였으며 여지도서(거창)에도 수도산은 관아의 동북쪽 30리에 있고 곧 대덕산의 동쪽 줄기이다 라고 하였다. 팔도분도(영남)에 거창부 북서쪽으로 우두현 동쪽의 산으로 수도산이 묘사된 것을 비롯해 해동지도(거창)와 영남지도(거창) 등에 거창 북서쪽의 성주경계부에 수도산이 표기되어 있다.

한국의 산지에 의하면 이칭인 신선대와 수락산은 신선들이 노는 곳이라고 하여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산에는 수도암이 있는데 도선국사가 통일신라 때 창건한 후 앞으로 무수한 수행인이 나올 것이라고 하여 산과 도량을 각각 수도산과 수도암이라 칭했다고 한다.

수도암에는 삼층석탑(보물 제297) 등의 문화재가 있고 계곡에 용추라는 이름의 구혈이 있는데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계획하였다가 사드기지가 건설되며 다시 뒤로 미뤘던 금오지맥 산행을 올해는 꼭 올라보고 싶기에 조만간 다시 만나야 하는 수도산은 오늘은 여기까지이다.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진 수도산을 올려다 보고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수도지맥 마루금과 접속하는 무명봉이 바로 눈 앞으로 다가와 있어 사진에 담고 오르니 수도산과 양각산이 갈리는 수도지맥 마루금에 접속이 되어 잠시 옛 추억을 떠 올려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백두대간이 전북 무주군과 경북 김천군과 경남 거창군등 삼도가 만나는 대덕산(1290.9봉) 남쪽의  삼도봉(일명 초점산, 1250봉)에서 남쪽으로  300여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하여 남동쪽으로 가지를 쳐 내려가며 경상남도와 북도계를 따라 봉산(902봉), 수도산(1317봉), 단지봉(1326.7봉), 좌일곡령(1257.6봉)을 지나  가야산을 목전에 두고 두리봉(1133봉)에서 도계를 벗어나 남쪽으로 거창군과 합천군경계를 따라 남산(1113봉), 마령(1006.5봉), 우두산(의상봉, 1046.2봉), 비계산(1130봉), 88고속도로, 두무산(1038.4봉), 오도산(1120봉) 등 1000미터 이상의 장쾌한 능선이 60여Km 이어진다.
오도산에서 거창군과는 작별을하고 온전한 합천땅으로 들어서며 고도를 낮춰 토곡산(644봉)를 지나면 다시 경상남도와 북도계를 만나 고령군과 합천군계를 따라 만대산(688봉), 시리봉(408봉)을 지나 솜등산(271봉)에 올라선 도계능선과는 작별을하고 마지막 여력으로 필봉(330봉), 부수봉(317봉), 성산(205.7봉)을 내려서며 맥을 다한다. 

수도지맥 동북쪽으로 흐르는 감천은 길이 69 Km 유역면적 10만 Km2로 수도산 북쪽에서 발원하여 김천시의 지명을 낳게하고 김천시일대를 지나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수도지맥 동쪽내지 동남쪽으로 흐르는 회천은 길이 78 Km,유역면적 78000 Km2로  수도산 동쪽기슭에서 발원하여 대가천을 이루어 성주호에 들었다가 다시 동으로 흘러 고령읍에서 소가천 및 안림천과 합류하고 고령군 덕곡면 율지나루에서 낙동강에 흘러든다.

수도지맥 서쪽으로 흐르는 황강은 길이 111 Km,유역면적 13만 Km2로  남덕유산(1507봉)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합천호에 들었다가 합천군 청덕면 적포리 일대에서 낙동강에 흘러들며 맥을 다한다. 

수도지맥중 제일 높은산은 단지봉(1326.7봉)이지만 지맥의 이름을 수도지맥으로 한것은 아마도 수도산(1317.1봉)의 유명세일 듯 싶고
좌일곡령(1257.6봉)은 일부지도가 좌대곡령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壹(한일)자와 臺(돈대대)가 비슷하여 생긴 일은 듯하며 국토지리정보원의 25000지도는 좌일곡령으로  표기되고 있다.

홀로 외롭게 걸었던 수도지맥이지만 그곳에서 만난 고운 인연들도 있기에 이제는 웃으면서 추억하는 옛 산길이 되어 버린 등로이다.

언제 다시 이 등로를 타고 걸어 볼 기회나 있을련지 약속도 기약도 할 수 없는 등로가 되었기에 애잔한 마음으로 수도산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한번 더 살펴보고 좌측 시코봉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 본다.

 

이제 제법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는 수도지맥 마루금을 타고 좌측인 서쪽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가니 고도가 높아졌는지 불어 오는 바람이 차가워 다시 주머니에 넣었던 귀마개를 쓰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풍경들을 살펴보며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드디어 오늘 목표로 한 양각지맥 산줄기가 분기되는 시코봉에 도착을 해 몇 년 전 수도지맥 산행을 하면서 만들었던 소중한 인연을 꺼집어 내 본다.

시코봉(양각지맥 분기점, 1237)의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소의 코를 닮았다 해서 방언화 되어 시코봉으로 불리워졌지 않나 추측되며 그 근거로는 이곳 인근의 지명들이 모두 소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의 뿔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봉우리 이름이 양각산이고 산아래 고개인 우두령은 백두대간에서 동남쪽으로 수도산과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수도지맥의 능선에 있는 고개로서 지명유래는 산 능선의 생김새가 소머리와 비슷하여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정상에 서 있는 이정석을 보면 소와는 상관없이 포도 형상이 아닐까 생각 될 정도로 전혀 다른 형상을 하고 있어 더욱 궁금하기만 하다.

추억 한장 남기고 정상석 옆으로 올라 일망무제로 펼쳐진 아름다운 산하를 마음껏 가슴속에 담아보는 호사를 누리는 시간도 가져 본다.

 

제일 먼저 눈을 북서쪽으로 돌리니 오래 전 몇번인가 인연을 만들었던 백두대간 마루금 상 대덕산과 수도지맥 분기점인 초점산이 독립된 산처럼 우뚝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 보이는 1254미터의 삼봉산 사이에는 거칠봉과 청량산 및 백운산 라인이 보인다.

올 여름 무더운 날에 덕유지맥 산행을 위해 올랐다 많은 등산객들과 여행객들로 정상석에서 추억 하나 남기지 못한 덕유산 행적봉 뒤로 보여야 할 덕유지맥 마루금은 산세를 낮추며 덕유산 뒤에 숨어 보이지 않고 그 좌측 아래로 무룡산과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덕유라인이 하늘금에 맞닿아 있는 모습으로 이 산객의 가슴을 파고 든다.

올 겨울에는 저 덕유 능선을 따라 칼바람 맞으며 한번 더 걸어 볼 기회가 있기를 바래 보지만 맥 잇기 산행을 진행하다 보니 마음 뿐 실천이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희망 사항으로 남겨 본다.

바로 삼봉산 아래 좌측으로는 고제쪽 마을 위로 봉우산도 보이는데 그 골짜기 마다 고운 단풍이 절정을 이루며 온 산하를 울긋불긋 색동옷을 만들 듯 수를 놓고 있다.

 

눈을 서쪽으로 돌리니 봉우산 넘어 덕유산 향적봉이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주위 산군들을 품고 그 높은 산줄기를 좌측인 남쪽으로 길게 이어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첩첩히 쌓여 있는 산줄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그 끝자락에 하늘금에 맞닿을 정도로 고도를 높힌 덕유능선의 노란 원추리와 한여름의 녹음 그리고 가을의 고운 단풍을 지나 겨울의 순백이 그리워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많이도 올랐다고 생각을 했는데 오늘 이곳에서 바라보니 그 그리움만 더 커지는 것 같아 앞으로는 맥 잇기 산행을 즐기면서도 하고 싶고 오르고 싶은 산행도 간간히 함께 즐겨보자 다짐도 해 보는 시간이다.

 

서쪽으로 덕유라인을 둘러 보고 눈을 남쪽 방향으로 돌리니 기백산 국립공원 내 용추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함양의 산들을 지나 오늘과 내일까지 걸어가야 할 양각지맥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며 하얀 안개가 드리워진 부분으로 잠겨들고 그 뒤 우측 저 멀리에는 멀어도 그 존재감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지리산 천왕봉이 다시 이 산객을 부르는데 웅석지맥이란 이름으로는 또 언제 저 천왕봉을 오를 수 있을지 마음은 달려가고 있지만 몸이 따라 주지 못하니 안타까운 시간이다.

그 지리산 천왕봉 좌측으로는 몇 년 전 일 때문에 내려가 잠시 얼굴을 봤던 필봉산과 왕산을 지나 황매산이 또 다른 넉넉한 품으로 펼쳐져 있어 옆지기와 큰아이와 함께 만들었던 고운 추억도 꺼내 본다.

 

진행해야 할 양각지맥 산줄기를 살펴보고 그리웠던 지리산도 만난 후 눈을 좌측으로 돌리니 가부견으로 이어지는 마을 아래 드리워진 하얀 안개는 바로 앞 소나무 한그루에 막혀 보이지 않고 그 마을 좌측 위로 남성미를 자랑하며 하늘 높이 솟아 오른 수도지맥 상 우두산과 비계산 넘어 오도산 줄기가 끝도 없이 너울대는 산그리메를 이루며 마치 파도치듯 출렁이고 있다.

그 남성미 물씬 풍기는 수도지맥 산줄기 상 고봉들 좌측으로는 넉넉한 품을 자랑하며 굽어 보는 단지봉이 가야산과 수도지맥 산줄기를 분기하며 모두를 아우르듯 중심을 잡고 있다.

모두 한번 이상은 올랐던 산들이고 봉우리들이기에 그 추억을 꺼내며 시간 가는줄 모르게 순간을 즐겨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눈을 동쪽으로 돌리니 방금 전 걸어 올라 온 수더ㅗ지맥 접속 무명봉이 바로 눈 앞으로 서 있고 그 우측 아래로 1202.2봉도 보이는데 그 봉우리 넘어 저 멀리에는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단지봉이 넉넉한 품으로 주위 산군들을 어루만지듯 온화하게 서 있다.

수도산 갈림삼거리인 무명봉 좌측으로는 오르지 못한 수도산이 아쉬움을 달래며 조만간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고 그 수도산 가기 직전의 신선봉이 금오지맥 산행을 응원하고 있어 조만간 다시 내려 와 저 산줄기를 따라 값진 땀방울을 흘려야 될 것 같다는 사명감에 불탄다.

시코봉 바로 아래에 서 있는 이정표가 좌측 방향으로 우두령을 가리키는데 이 우두령은 백두대간의 우두령과 달리 이곳 수도지맥 상 우두령이다.

 

수도산과 지나온 마루금을 다시 한번 더 살펴보고 이제 양각지맥 분기점인 시코봉을 출발해 남쪽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낙엽진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가야 할 양각지맥의 소 뿔처럼 뾰족한 양각산과 그 좌측 아래로 흰대미산 그리고 보해산과 금귀봉 지나 좌측으로 유두처럼 뾰족한 박유산까지 거침이 없는 산그리메가 펼쳐져 있다.

그 뒤 중앙부에서 좌측으로 황매산이 우뚝하고 흰대미산 뒤 끝자락에 지리산 천왕봉부터 시작된 능선이 우측의 촛대봉과 반야봉 방향으로 달려가는 긴 산줄기를 만들며 이 산객의 마음을 동요시키고 있기도 하다.

황매산 좌측으로는 합천호에서 생성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그 좌측으로 숙성산과 미녀산 및 오도산으로 이어지는 수도지맥 마루금도 살짝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그저 황홀하고 환상적이란 단어 이외에는 생각나는 표현 방법이 없다.

 

등로 좌측인 동쪽으로는 수도산에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중간에 단지봉이 넓은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품으로 주위 산군들을 어루만져 주고 그 좌측으로 뾰족한 좌일곡령을 지나 톱날처럼 날카로운 가야산 암봉들이 얼굴을 내밀며 존재감을 알려 온다.

지나 온 1202.2봉과 수도지맥 접속봉 그리고 금오지맥 분기점인 신선봉과 수도산을 다시 한번 더 올려다 보고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 잡목 가지 사이에 준희님의 양각지맥 분기점 이정판이 달려 있어 추억으로 사진 한장 남기며 마음속으로 오늘도 무사히 안전 산행을 빌어 본다.

오랫만에 가슴이 뻥 뚤리는 끝도 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산그리메를 살펴보며 조금은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산에 오르는 이유를 알아가는 시간은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오는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으로 남겨 본다.

 

준희님의 분기점 이정판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벌써 시코봉은 저 멀리 지나간 추억이 되어 버리고 그 좌측인 북서 방향으로 수도산과 대덕산 사이에는 국사봉과 월매산 뒤로 백수리산에서 김천의 황학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서서히 그 보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 대덕산과 초점산 좌측으로는 봉산 지나 삼봉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사이에는 거칠봉과 청량산 줄기가 보이지만 그 넘어 저 멀리 보여야 할 서대산은 거리감 때문인지 아니면 앞에 있는 높은 산들에 막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제 그만 산행에 집중해 보려고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환상의 풍경들이 그냥 지나치기 아쉽다며 자꾸만 발길을 붙잡고 다시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서 진행 방향인 남쪽을 살펴보니 조금 더 뚜렷한 산줄기와 산봉우리들이 시야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바로 앞에 뾰족한 양각산이 보이고 그 좌측 바로 아래 숨어 있듯 머리만 내밀고 있는 흰대미산을 지나면 산불초소가 있는 827봉 지나 산세를 낮춘 회남령이 보이고 그 넘어 다시 솟아 오른 보해산과 뻥대 우측으로 제법 뾰족한 형상을 하고 있는 금귀봉이 보인다.

그 보해산 좌측 저 멀리에는 내일 잠시 들려야 할 박유산이 금귀봉 못지 않게 뾰족한 송곳처럼 솟아 있고 그 우측 뒤로 합천호 지나 황매산이 드넓게 분포하며 사진 정중앙 제일 뒷쪽으로 지리산 천왕봉이 우측으로 기나긴 지리 능선을 펼치며 환상의 모습으로 반겨 준다.

 

다시 몇발자국 내려가다 등로 좌측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1202.2봉과 수도지맥 접속점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단지봉 사이에 좌일곡령과 가야산이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다.

산행이 무엇이고 어떤 산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없이 그저 젊음 하나와 열정만 가지고 겁없이 달려 들었던 수도산에서 가야산까지의 종주 산행을 하면서 평생 잊지 못할 황홀한 상고대의 향연에 조금 더 산행에 빠져 들었고 종주 산행에 대한 어렴풋하지만 확실한 재미를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었는데 그때 함께 그 고난의 길을 걸었던 산친구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 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커다란 바위들이 나타나고 그 바위에 올라 다시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일망무제의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며 홀로 감탄사만 연발하는 시간이다.

우측의 대덕산과 삼봉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 지나 덕유산 향적봉과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덕유능선이 부르고 그 좌측 끝자락에는 함양의 용추계곡을 가운데 두고 둘러 싼 기백산과 금원산 및 거망산 그리고 황적산이 옛 추억을 꺼내 보여주고 그 좌측인 남쪽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내려가야 할 양각지맥의 양각산에서 흰대미산 지나 보해산과 박유산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산줄기가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게 만들며 그 뒤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아 있는 지리 주능선이 올라도 또 그리워지는 그 그리움을 더해주고 있다.

옆지기와 아이들에게 고운 추억을 남겨 줬던 황매산의 철쭉이 내년에 다시 만나자 약속을 강요하는 듯한 모습에서 피식 웃으며 몇장의 사진을 가족 톡방에 올려주니 모두 좋은 평가와 함께 아전 산행을 빌어 준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고 많은 사진과 비디오 촬영을 해 보지만 눈으로 현장에서 보는 것만큼의 실감과 현장감은 살릴 수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또 다시 스마트 폰을 꺼내 자꾸만 사진으로 남겨 보는 시간이다.

잠시 후 바위 전망대를 지나 걸어가니 다시 1205.5미터 높이의 바위암릉이 앞을 가로막고 그 바위암릉으로 조심하며 오르니 소나무 몇그루가 보이는 암릉 정상을 지나 겨울 풍경이 물씬 묻어나는 낙엽진 씁쓸한 참나무 등로가 길게 열려 있다.

 

이제 잠시 산행에 잡중하라며 등로 양쪽으로 관목 형태의 참나무들이 줄을 이어 시야를 방해하고 잠시 조망과 풍경을 잊은 채 아름답고 운치있는 낙엽진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펄럭이는 114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선답자들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그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는 곧바로 다시 오르고 잠시 뒤 등로 좌측으로 깨진 이정판 하나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데 살펴보니 166미터란 표식만 남아 있어 이곳이 1166미터봉임을 느낀다.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표기가 없는데 영진지도에는 표기가 되어 있는지 준희님의 이정판에 신뢰를 보내고 사진 한장 남긴 후 그 1166봉을 출발한다.

귓전과 볼때기를 때리던 차가운 삭풍이 햇살에 조금은 누그러지기 시작해 착용했던 장갑을 벗어 배낭에 넣고 편안한 복장으로 산행을 이어 간다.

 

그 1166봉을 지나 내려가니 관목의 참나무 등로 아래 자라났다 말라 죽어가는 억새와 미역줄기 나무들이 제법 까다롭게 보이지만 등로는 크게 침범하지 않아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저 또 계절이 바뀌어 가는 풍경을 느끼며 또 한해가 지나가고 있음을 자각할 쯤 등로 옆으로 어인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 사진에 담고 잠시 민초들이 살았을 어인마을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본다.

어인마을은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산포리에 있는 마을로서 어진 사람이 많이 날 것이다 하여 이름 되었고 어인골 마을은 강천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어인마을이 있는 산포리는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에 있는 리로서 봉우산 밑 부분에 자리잡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다.

마을 동부에는 용암 저수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과 남쪽을 빙 둘러가며 계수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 산포, 금갱이, 어인골 마을이 있는데 산포 마을은 사방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여서 붙여진 이름이금갱이 마을은 우랑동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어인골 마을은 강천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어인마을은 예전에 수도지맥 산행을 하면서 우두령을 지날 때 통과한 마을로서 그때도 잠시 자료를 찾아 시간을 보낸 기억이 생생한 마을이었다.

 

등로 우측으로 어인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참나무와 약간의 잡목들 및 잡풀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니 눈 앞으로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그곳으로 오르기 직전 뒤돌아 보니 수도산에서 신선봉 지나 양각지맥 분기점인 시코봉이 저 멀리 멀어져 있고 그곳에서 이곳으로 이어져 온 부드러운 능선이 환상의 풍경으로 다가 와 가슴속에 쌓인다.

그 수도산 우측으로는 단지봉 지나 좌일곡령과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종주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능선 뒷쪽으로는 독용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그 지나 온 양각지맥 마루금 좌우측으로 일망무제로 펼쳐진 풍광들을 살펴보고 그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진행 방향으로 양각산 정상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는 전망대로서 이곳에서도 한동안 머물며 많은 추억과 시진을 남기는 시간이다.

애마 회수하는 시간이 조금은 걱정과 고민이 되지만 진행하다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이용하자 마음 먹으니 조금 더 아름답고 멋진 환상의 풍경들이 자꾸만 더 눈에 들어 온다. 

 

지나 온 양각지맥 마루금을 두고 좌측인 북서쪽으로 눈을 돌리니 같은 풍경이지만 다른 느낌으로 살짝 변화된 조망이 눈에 들어 오고 살펴보니 수도산에서 흘러 내려온 월매산이 보이고 그 좌측 넘어로 수도지맥 마루금을 따라 국사봉도 보이는데 그 국사봉 바로 뒷쪽으로 수도지맥 분기점인 초점산과 대덕산이 생각보다 넓고 큰 품으로 솟아 있다.

그 대덕산 우측 뒤로는 백수리산에서 우측 저 멀리 직지사를 품고 있는 김천의 황학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또한 환상을 노래하고 그 뒷쪽으로는 얼마 전 어렵게 걸었던 각호지맥의 석기봉과 민주지산 지나 각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도 위풍당당히 한자리 차지하고 존재감을 알려준다.

 

이제 초점산과 대덕산 우측에서 좌측 라인을 살펴보니 바로 눈 앞에 봉우산이 또 다른 산군으로 가깝게 자리하고 그 봉우산 뒤로 삼봉산과 거칠봉 그리고 무주의 청량산 줄기가 보이고 그 뒤로 찾고 있는 서대산은 이곳에서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이다.

그 삼봉산 좌측으로는 올라보지 못한 흥덕산 지나 오자수굴 앞 백두대간 능선이 보이고 그 바로 뒤로 덕유산의 향적봉과 중봉 및 백암봉이 넓은 품으로 넉넉한 풍경을 선물하고 있다.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복받은 산행을 홀로 즐기는 시간이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워 할 정도로 일망무제로 펼쳐진 끝없는 산그리메가 오랫만에 가슴을 뻥 뚫어주는 시간이다.

 

이제 덕유산 향적봉 라인을 살펴보고 눈을 조금 더 돌려 남서쪽으로 돌리니 장수덕유라는 서봉과 남덕유산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할마봉과 육십령 지나 진양기맥으로 이어지는 월봉산과 금원산 그리고 기백산 줄기가 마치 하나의 끈으로 이어진 듯 하늘 아래 길게 펼쳐져 있다.

저 진양기맥을 진행하면서 인터넷에서 처음 만난 진주의 산꾼과 함께 둘이 처음 만나 진행하면서 월봉산 가기 직전 바위에서 많은 눈이 쌓여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우측 상남리로 탈출하며 얼마나 고생을 하였던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추억이 되었다.

큰 아이와 옆지기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귀가를 하였지만 조금은 무모한 도전의 결과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똑똑하게 경험을 하였기에 그 다음부터는 조금이나마 그런 위험성을 제거하려고 노력하지만 끝까지 이어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생겨 그것이 또한 문제인 듯 싶다.

진행 방향 바로 앞으로는 소의 뿔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자 이 산줄기의 이름을 부여 받게 해 준 뾰족한 양각산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어 많은 추억과 사진을 남기면서도 제법 많이 진행하여 왔음을 알려 주고 있는 시간이다.

 

이제 뾰족한 양각산을 두고 그 좌측인 남쪽을 살펴보니 그 양각산 바로 좌측 아래로 흰대미산이 내려다 보이고 그 산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제법 높게 솟구친 보해산과 뻥대들을 지나 우측으로 금귀봉이 또 다른 묘한 매력으로 솟아 있다.

그 정면 뒤로는 여전히 황매산이 아름답고 그 황매산과 지리산 천왕봉 사이에는 월여산과 감악산 그리고 그 뒤로 웅석봉이 보일듯 말듯 넘실거리고 있다.

그 산줄기 바로 앞으로는 합천호에서 만들어진 하얀 안개가 나즈막한 마을들을 휘돌아 감으며 또 다른 묘한 매력의 풍경을 선사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한동안 주위 산군들을 살펴 본 후 출발에 앞서 흰대미산에서 금귀봉으로 이어지는 양각지맥 마루금 과 지리산 천왕봉 사이에 분지같은 지형이 보여 줌으로 당겨 보니 오늘 밤 하루 묵어야 할 거창읍내의 풍경이 또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사방팔방 모두 산으로 둘러 쌓인 거창도 이곳에서 살펴보니 산골중의 산골인데 저곳에도 많은 민초들이 살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곳을 개간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실감이 나는 시간이다.

거창읍은 경상남도 거창군의 중앙에 위치한 읍으로 북쪽의 주상면, 동쪽의 남하면, 남쪽의 남사면, 서쪽의 마리면 등과 접해 있다.

과거 읍치가 있던 곳으로 해동지도(거창)에는 객사와 아사 등이 묘사되어 있고 여지도서와 해동지도를 비롯한 조선 후기 기록의 모곡면과 음석면, 갈지면, 동부면, 천내면, 천외면 일대에 해당한다.

여지도서에는 갈지면이 가을지면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1914년 모곡면, 음석면, 갈지면은 읍외면, 동부면과 천내면, 천외면은 읍내면으로 통합되었다.

신구대조(거창)에 읍내면과 읍외면이 있고 1937년 읍외면은 월천면이라고 하였으며 읍내면은 거창면이라고 하였다.

월천면은 그 일대의 중앙을 흐르는 하천인 월천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고 거창면은 과거 읍치였던 거창현이 있던 곳에서 유래하였다.

조선지지자료(거창)에는 모곡면과 음석면, 갈지면, 동부면, 천내면, 천외면 등 조선 후기의 행정구역이 기록되어 있고 조선지형도에는 거창면과 그 북쪽에 읍외면이 기록되어 있다.

호구총수에는 동면 동부, 동면 음석, 북면 모곡, 북면 갈지, 서면 천내, 남면 천외가 기록되어 있으며 1957년 거창면과 월천면을 합쳐 거창읍이라고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오늘 밤 저곳에서 머물다 보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거창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본다.

 

발길은 자꾸만 진행을 하자고 하는데 보이는 것이 많은 마음은 조금만 더 즐기고 가자고 만만디를 외치고 있다.

이제 진행해야 할 양각지맥 마루금 좌측을 살펴보니 수재마을과 심방마을에서 시작된 길게 이어진 1099번 도로를 따라 형성된 마을들이 이어지고 그 좌우측 뒤로는 끝도 모르게 이어진 환상의 산그리메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더 짙어지는 박무를 뿌리며 이 산객의 급한 마음을 흔들고 있다.

황매산 좌측으로는 울퉁불퉁 남성미를 자랑하는 수도지맥의 숙성산과 미녀봉 오도산 그리고 비계산과 우두산 줄기가 환상이고 그 좌측으로 제일남산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역시 추억을 노래하고 있다.

 

이제 눈을 돌려 다시 동쪽으로 향하니 아침에 떠 오른 태양은 벌써 중천으로 방향을 바꿔 달아나 있고 정면으로 넉넉한 품을 가진 단지봉과 그 좌측으로 좌일곡령 지나 가야산은 이제 머리카락만 보일 정도로 많이 숨어 들어 조금은 아쉬움을 남긴다.

좌측 수도산에서 부터 이어진 수도가야 능선이 또 다시 이 산객을 부르고 있지만 언제나 마음 편히 저 능선을 따라 다시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을지 나 자신도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그렇게 조망과 풍경을 즐기고 다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니 금새 양각산 정상 직전 나무계단 앞에 도착을 하고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니 정상석과 설명석이 보이고 이정표가 서 있는 양각산에 도착을 해 오늘 걸어가는 산줄기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양각산(1157.5)은 경상남도 거창군의 가북면 중촌리와 웅양면 산포리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1151미터로서 북쪽의 수도산과 남쪽의 흰대미산과 산줄기가 이어진다.

조선시대에는 금광산이라고 하였는데 여지도서(거창)에 용계사는 금광산(金光山)에 있다 라는 기록에 등장하며 이후 대동지지(거창)에는 북쪽 50리에 있는 산이라 하였으며 경상도읍지(거창)와 영남읍지(거창)에는 부의 동쪽 40리에 있는 산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17 3)에 지례와의 경계부에 금광산이 표기되어 있으며 동쪽으로 우두치와 수도산으로 산줄기가 이어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 밖에도 1872년지방지도(거창)와 청구요람(21 11) 등의 지도에 금광산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한편 조선지지자료(거창)의 웅양면에 금광리 뒤에 있는 산으로 양각산(兩角山)이 기재되어 있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양각산 지명이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양각산 지명과 관련해 화강암 지반을 갖고 높이 솟은 두 봉우리가 소뿔 형상이기 때문에 유래되었다고 하며 또한 옛 지명인 금광산 지명은 산 아래 금광마을에 금광사라는 절이 있었기 때문에 유래되었다는 설 및 산에 금이 많이 묻혀 있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그리고 산 사면의 암벽에 항상 물기가 남아 있어 이것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이 난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몇 번인가 들리고 싶었지만 이제서야 양각지맥 산행을 하기 위해 들려 그 소원을 풀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양각산 정상에 오르니 이곳 역시 환상의 조망과 풍경이 펼쳐져 있어 오늘 산행을 하면서 계속 봐 왔던 모습이지만 다시 한번 둘러 본다.

이제 지나 온 시코봉이 저 멀리 달아 나 있고 그 뒤로 보이는 금오지맥 분기점인 신선봉과 수도산은 걸어 내려 온 능선 뒤로 숨어 보일듯 말듯 숨박꼭질 하고 있다.

늘 하얀 눈이 내린 계절에 눈 산행으로 많이 찾는 이곳 양각산이지만 오늘을 보면 이 계절에도 전국에서 최고의 조망 산행지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의 황홀한 시간이자 풍광이다.

 

등로 좌측인 동쪽으로는 조금 더 변해 있는 단지봉과 좌일곡령 그리고 그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가야산이 환상이다.

그 아래 물들어 가는 능선의 나뭇잎들이 이제 올 한해 할일들을 모두 마치고 또 한 계절을 보낸 후 내년을 기약하는 모습에서 내 미래는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파란 빛에서 노란 빛으로 변해 가는 낙엽송 역시 올 한해 열심히 일을 했으니 다시 내년의 비약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중천으로 향하는 강렬한 햇살이 빛내림을 선사하며 짧아지는 하루의 낮 시간을 따스하게 비추고 그 햇살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찾아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가북에서 가조면으로 이어주는 도로를 타고 들어 선 민가들 좌우측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아 있는 산들이 끝도 보이지 않는 산그리메를 그리며 그 어떤 거장의 솜씨보다 더 아름답고 멋진 풍경화를 그려 놓고 있다.

단지봉에서 흘러 내린 산줄기를 따라가면 남산제일봉이자 작은 가야산이 보이고 그 앞으로 나즈막한 우두산 넘어 비계산이 우뚝하고 그 비계산 우측으로는 환상의 운해를 선물 받았던 두무산에서 오두산과 숙성산으로 이어지는 중간에 미녀산도 존재감을 알려오는데 수도지맥 산행을 하면서 바라 본 오두산과 미녀산 그리고 숙성산은 마치 임신한 여인이 누워 머리를 풀어 헤친 모습이었다고 기억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산들은 누워있는 임신한 여인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한동안 그렇게 양각산 정상에서 사방팔방 둘러보고 많은 추억과 사진을 남긴 후 출발하려니 이정표 뒤 저 멀리 거칠봉과 청량산 그리고 그 앞으로 백두대간의 삼봉산에서 덕유산 백암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환상을 노래한다.

그 좌측으로는 덕유산 향적봉이 드높게 올라 와 있고 그곳에서 만들었던 여름날의 고운 추억을 떠 올려 보기도 하며 미소를 지어 본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아쉬움을 남겨 둔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흰대미산으로 향한다.

 

그 양각산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안부같지 않은 안부를 지나 바위암릉으로 오르고 그 바위암릉을 지나자마자 바위 위에 절구통 구멍같이 생긴 구멍하나가 뚫려 있는 바위도 지난다.

고도 상 1149.2미터의 바위암릉 구간으로 아직도 1000미터 고지가 넘다보니 약간의 스치는 바람에도 흐르던 땀방울이 식으며 한기를 느껴보는 시간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무더위에 흐르는 땀방울을 주체하지 못하고 힘들게 산행을 하였는데 이제는 추위와의 전쟁이 시작된 느낌이다.

 

절구통 같은 구멍 바위를 지나 잠시 평이한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에 안전목책과 로프구간이 나타나고 살펴보니 바위 위에 설치된 안전시설들이다.

진행에는 큰 위험이 없지만 비나 눈이 내리면 미끄러워 사고가 날 확율이 있어 지자체에서 설치를 해 놓은 듯 보이는데 이는 안전을 위해 잘 관리되고 있는 듯 보인다.

안전목책을 타고 내려가다 앞을 보니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덕유능선이 아름답고 그 좌측 끝자락에는 용추폭포를 감싸고 있는 함양의 산군들이 자기 자랑을 늘어 놓으며 덕유산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 진행을 하지만 눈 앞에 평쳐진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들이 그냥 지나치질 못하게 발목을 잡고 다시 그곳에 멈춰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회남령으로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양각지맥 산줄기가 보해산과 금귀봉에서 불뚝 솟아 있고 좌측 박유산을 들어 올린 후 우측 박무가 드리워진 방향으로 그 산세를 가라 앉히고 있는 전체 줄거리가 한눈에 들어 온다.

저곳에서 이곳을 바라보며 그려진 풍경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 산줄기 넘어 가장 끝쪽으로는 군계일학인 지리산 천오아봉이 한가운데 위치하고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지리능선이 또한 바쁜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고 놔 주질 않는다.

 

잠시 더 머물며 많은 사진으로 남긴 후 다시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전진하니 능선 상 봉우리 같은 1107.1 무명봉을 지나고 나즈막한 안부 지나 나타나는 거대한 바위암릉은 좌측으로 우회하며 통과를 한다.

잠시 우회하며 올려다 보니 걸어 진행해도 될 듯 싶지만 홀로 진행하는 맥 잇기 산행이다 보니 가능하면 위험 요인을 제거하고 진행하기로 했기에 눈으로 보이는 1112.1 무명바위암릉은 우회하며 통과하는 것으로 한다.

 

그 바위암릉 지대를 우회하며 통과하니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웅양저수지가 처음으로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뒤 저 멀리 덕유산 주능선이 길게 병풍을 치듯 울타리를 만들고 있어 또 다른 풍경으로 다가 온다.

등로 우측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웅양저수지는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산포리에 있는 농업용 1종 저수지로서 저수지 하류부에 3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주변에 수변 복합 문화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저수지는 흐르는 물을 저장하여 물의 과다 혹은 과소를 조절하는 인공 시설로서 하천에서 용수 공급이 어려울 때 물을 확보할 수 있는 시설이다.

웅양 저수지는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축조한 농업용 저수지이며 1979년에 착공하여 1987년에 준공을 하였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굵은 로프 등로가 나타나고 조심하며 그 로프를 잡고 바위지대를 내려가 조금 더 걸어가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한곳에 걸려 있어 잠시 선답자들을 확인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그 띠지들이 걸려 있는 곳에서도 등로는 우측으로 우회하게 되는데 그 우회 등로를 따르며 우측을 보니 이제 제법 뚜렷한 웅양저수지의 모습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웅양저수지와 덕유산 능선을 살펴보며 진행하다 뒤를 돌아 보니 방금 전 걸어 내려 온 바위암릉 우회봉과 그 뒤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양각산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며 안전산행을 하라며 손을 흔들어 이별을 알린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만 보이는 덕유산 라인을 살펴보고 조금은 빠르게 이어지는 평이한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또 다시 길게 이어지는 바위암릉 등로가 시작되고 잠시 그 바위암릉을 따라 조심스럽게 통과하니 등로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곳 한쪽에 좌측으로 오늘 산행을 시작한 심방마을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심방마을까지 1.4 Km 거리라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갈림삼거리에서 진행 방향으로는 흰대미산이 0.9 Km 거리라는 글씨가 보여 힘을 내 걸어 본다.

이제 등로에는 갈색으로 변한 약간의 억새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묵은 헬기장에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듯한 공터를 통과하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진다.

한동안 뚜렷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안부를 지나 오르고 약간의 작은 돌들이 깔려 있는 오르막 마루금을 타고 어렵지 않게 전진하니 금새 아담한 정상석이 반겨 주는 흰대미산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석에는 흰덤이산이란 이름이 보인다.

흰대미산(1018.5)은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산포리와 가북면 중촌리의 경계를 이루는 능선부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018미터이고 명칭 유래를 보면 흰대미산이라는 이름은 무더기를 뜻하는 더미가 변하여 대미가 되고 봉우리의 바위가 희게 보인다고 하여 흰대미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거창군 동북쪽의 행정 구역인 가북면의 지세는 남쪽 가조면으로는 가천천이 흐르는 골짜기가 열려 있지만 나머지 동쪽과 서쪽 그리고 북쪽으로는 완전히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 중에서 서쪽으로 인접한 웅양면과의 경계는 북쪽으로 경상북도 김천시와의 경계를 이루는 수도산(1317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산지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수도산에서 흰대미산을 거쳐 보해산으로 이어지며 흰대미산과 보해산 사이의 능선부에는 회남령이라는 고개가 있는데 이 회남령을 통해서 동쪽의 거창군 가북면과 서쪽의 거창군 주상면이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흰대미산과 보해산으로 이어지는 산지의 능선 방향과 나란히 좌가천이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고 이 좌가천은 가북면의 면소재지에 이르러 가북면의 동북쪽 산지에서 발원한 석가천과 합류하여 가천천을 이루어 남쪽으로 흐른다.

좌가천과 석가천 모두 깊은 골짜기를 흐르는 하천으로 하천 양안으로 범람원의 발달이 미약하며 석가천 하천 유로의 중간에는 가북 저수지가 축조되어 있어 가북천 지역의 각종 생활용수와 농업용수의 공급원이 되고 있다.

이곳 흰대미산 역시 멋진 조망처이기에 정상석을 사진에 담고 잠시 머물며 주위 풍경들과 조망을 즐겨 본다.

 

흰대미산 정상에서 제일 먼저 북동쪽을 살펴보니 조금은 달리 올려다 보이는 단지봉이 울긋불긋 고운 단풍들을 계곡에 수놓으며 봄으로도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오늘 새벽부터 지금까지 봐 왔던 단지봉과는 사뭇 다른 모습과 풍경으로 다가 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완만하게 보이는 저 능선을 타고 마지막 단지봉 오름길이 왜 그리도 힘이 들었던지 그리고 드넓게 펼쳐진 단지봉 정상부에는 왜 그리 또 키 작은 잡목들이 많아 정상석 한번 만나기도 쉽지 않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기만 한다.

 

그 단지봉 좌측인 북쪽으로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양각지맥 마루금과 그 정점에 금오지맥 분기점인 신선봉과 수도산이 저 멀리 올려 다 보인다.

그 신선봉 아래로는 양각지맥 분기점이 시코봉 지나 하얀 바위가 사면을 덮고 있는 양각지맥 그리고 바위암릉으로 이뤄져 있어 우회를 해야 했던 능선이 한눈에 들어 오는데 저곳에서 내려다 볼 때만 해도 부드러운 갈색 능선이었는데 이곳에서 올려다 보는 마루금은 푸르름과 노란빛이 조화로운 남성의 근육질이 화가 나 있는 듯한 강렬한 능선으로 변해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웅양저수지 위로 알록달록 물들어 간 산하가 아름답고 그 뒤 저 멀리 하늘에 맞닿아 있는 덕유산 향적봉에서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이 또한 이 산객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으며 조만간 내려 가 올라 볼 것 같은 예감에 휩싸인다.

가까운 듯 벌어 보이는 덕유산 주능선까지의 사이에는 이름도 모를 많은 산줄기들이 솟아 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덕유산과의 연결 고리 역활을 하고 있다.

 

지나 온 수도산에서 양각산으로 이어지는 양각지맥 산줄기를 살펴보고 그 좌측으로 눈을 돌리니 초점산과 대덕산 우측 넘어 백수리산에서 황학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 중간에 삼도봉과 민주지산 지나 각호산으로 이어지는 각호지맥들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웅양저수지와 덕유산 라인을 살펴보고 눈을 남쪽으로 돌리니 양각지맥 마루금 우측으로 또 다른 산줄기 하나가 독립적으로 보이는데 그 산줄기 허리에는 깊게 패인 채석장의 상흔이 바라보는 마음까지 찬바람이 들게 만든다.

그 뒤 저 멀리 거창 땅을 지나 지리산 주능선이 황홀하고 그 우측 위쪽으로 보이는 진양기맥 상 금원산과 기백산 줄기가 또한 눈길을 사로 잡는다.

 

채석장이 보이는 산줄기 좌측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내려가야 할 양각지맥 마루금 상 보해산과 금귀봉이 저 멀리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황매산에서 지리연봉으로 이어자ㅣ는 산그리메들이 또한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슴속을 파고 든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바위 뒷쪽으로 무풍320 삼각점이 나타나고 살펴보니 흰대미산 정상의 1018.5미터에 있는 삼각점인데 정상석과는 조금 차이가 나게 박혀 있다.

 

삼각점을 지나도 여전히 주위 풍경이 아름다워 진행 속도가 전혀 나질 않는다.

등로 좌측 뒤로 단지봉과 수도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아름답고 그 아래에는 오늘 새벽 이 산객이 산행을 시작한 심방마을의 버스 종점과 경로당 건물이 내려다 보이는데 그 한쪽에 잘 주차되어 있는 애마도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돌로 담을 쌓아 만든 묘지가 나타나는데 관리가 되지 않아 잡목과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말라 죽어가는 모습이 보기 흉하고 잠시 후 등로 우측 앞으로 채석장과 지리산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빛나고 있어 지리산 천왕봉에서 우측의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줌으로 당겨 사진에 담아 보니 제법 근사한 장면 하나를 건지게 되었다.

 

지리산을 줌으로 당겨 사진에 담고 다시 조금 더 거ㅗㄹ어 내려가다 진행 방향을 정면 중앙에 두고 살펴보니 좌측 저 멀리 수도지맥 상 숙성산과 미녀산 및 오도산 그리고 두무산 줄기가 넘실거리며 오래 전 쌓았던 추억 보따리를 꺼낸다.

진행 방향 산줄기에는 보해산과 금귀봉이 여전히 드높은 높이를 자랑하며 꼿꼿하게 서 있고 그 보해산 좌측으로 제법 뾰족하게 보였던 박유산은 이제 하나의 점처럼 작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 뒷쪽으로는 황매산이 우뚝하고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는 지리산 천왕봉이 여전히 위력적인 모습으로 이 산객을 지켜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본다.

 

다시 등로 우측으로는 중촌리 마을 지나 단지봉이 보이고 그 단지봉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흰대미산 쪽에서 만났던 풍경과 조망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어 같은 산이라도 계절별로 그리고 다양한 루트를 통해 올라 만나 보는 것도 중요함을 다시 한번 더 절실히 느껴보는 시간이다.

겨울철 삭풍이 불고 기온이 내려가면 환상적인 상고대가 열리는 수도산에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다시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여전히 아름답게 펼쳐진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며 여유롭게 걸어 진행하니 이제 조망처를 지나 소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능선을 타고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학생청도김공 묘지를 지나고 잠시 후 비포장 임도와 같은 등로를 만나 그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커다란 소나무들이 쓰러져 있는 좁은 공터에 좌측의 심방과 우측의 우랑마을로 하산할 수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우랑마을은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산포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우랑(牛郞)이란 뒤에 있는 백암산(흰대미산)을 양각산이라 하고 풍수설에 쇠불알설이라 하여 우랑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우랑마을이 있는 산포리는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에 속하는 법정리로서 북쪽으로는 경상북도 김천시, 동쪽으로는 거창군 가북면에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웅양면 동호리, 서쪽으로는 웅양면 노현리와 군암리에 접해 있다.

산포리에는 산포 마을, 석정() 마을, 우랑() 마을, 강천() 마을, 금광() 마을, 어인() 마을이 있다.

산포리의 명칭유래는 산포() 마을에서 따온 것으로 산포 마을은 산과 물이 좋아서 산수동()이라 하다가 산포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전한다.

그 이정표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없는 평이한 소나무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 본다.

 

이제부터 한동안 조망도 없고 풍경도 보이지 않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보는데 등로에 피어 있는 철없는 진달래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기온이 내려가며 푸르던 나뭇잎들도 떨구며 겨울을 준비하는데 이제 피어 나 언제 결실을 맺고 또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수나 있을련지 걱정도 되며 내년에도 다시 이처럼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을지 의문점도 드는 순간이다.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큰 고도 차이가 없는 뚜렷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지금까지 황홀한 조망과 풍경에 취해 속도를 잃어 버린 시간을 조금은 벌충을 해 보지만 결국 태풍으로 쓰러진 거대한 소나무들이 제멋대로 잘려 나뒹굴고 있는 등로에 발목이 잡혀 다시 시간이란 개념을 잊고 안전하게 걸어 보는 순간이다.

 

거대한 소나무들이 쓰러져 등로를 완전히 막고 있기에 때로운 유격 훈련도 받고 또 대로는 포복으로 통과하며 어렵게 진행하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뚜렷한 등로를 내 준 소나무 마루금을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올라 본다.

잠시 후 두가닥의 가지를 가지고 있는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806.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 앞으로 미녀산과 두무산 뒤로 오도산이 보이고 그 우측 아래로 숙성산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어뜻 보면 코메부리 얼굴 같기도 하지만 예전 수도지맥 산행을 하면서 봤던 임신한 여인의 누워 있는 모습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큰 특징없이 간벌된 소나무들이 잘려져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는 조금은 난해한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지독한 잡목지대가 열리고 잠시 후 무명 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완만하게 오르게 되는데 그곳에도 지독한 잡목이 길을 막아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며 참으로 힘들게 진행을 하는 시간이다.

그래도 등로 좌측 뒤로 간간히 보여주는 단지봉 능선이 노란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며 조금은 위안을 주고 있다.

잠시 후 오래전 잘려진 고사목들이 쌓여 썩어가는 지점을 지나 한동안 잡목들을 헤치고 어렵게 전진하니 잠시 낙엽송 군락지가 나타나더니 또 다른 철없는 진달래 나무에선 몇송이의 꽃을 피우고 있어 안타까운 시선으로 살펴보고 출발한다.

 

철없는 진달래꽃이 피어 있는 등로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또 다시 쓰러진 거대한 소나무들이 등로를 완전히 가로막아 이리저리 군사 훈련을 받듯 어렵게 통과를 하고 노랗게 물들어 가는 낙엽송을 살펴보며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약간의 잡목지대를 지나 가지 두개가 V자를 그리고 있는 소나무가 인상적인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잠시 후 이제 소나무에서 참나무로 수종이 변경된 등로를 따르니 노란 단풍이 등로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779.9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며 잠시 쉬어 간다.

 

무명봉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와 참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만나 내려가고 곧이어 묵은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를 살펴보며 진행 방향을 잡아 본다.

생각보다 제법 깊은 안부의 모습이기에 지도를 보니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안부인데 이곳은 울긋불긋한 단풍이 제법 남아 있어 가을 정취가 묻어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비포장임도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여전히 잡목들이 발목을 잠고 가끔 나타나는 산초 가시가 온 몸을 휘감으며 이곳저곳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 시작한다.

비명을 지르며 힘들게 그 가시나무들을 헤치며 오르니 775.9 미터의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이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소나무 등로가 열리면서 잡목들이 많이 줄어 들고 있다.

잠시 후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777.1 무명봉에 도착을 해 띠지를 살펴보고 고사목을 피해 조심스럽게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견고한 철망이 따라오기 시작하는데 최근에 설치를 한 듯 신상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이제부터 한동안은 이 철망을 우측에 두고 그 철망을 타고 걸어가는 지맥 산행이다.

잠시 진행하며 오르다 등로 우측 뒤를 보니 방금 전 산행을 하면서 지나 온 수도산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양각지맥 산줄기가 빤히 올려다 보이고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철망을 따르니 약간의 잡목들과 잡풀들 그리고 잘려진 거대한 소나무 밑둥이 보이는 786 무명봉에 도착을 해 표식 하나 해 두고 진행을 이어간다.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고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빛바랜 억새가 활짝 펴 살짝 불어 오는 바람에도 흔들리며 가을 정취를 선물하고 있어 조금은 힘들지 않게 걸어 올라 본다.

한동안 무심으로 철망을 타고 점점 더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등로 좌측으로 사각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데 오래되었는지 깨지고 부서져 제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초소이고 그 우측 옆으로 커다란 소나무 가지에 이곳이 827미터봉임을 알리는 이정판을 산지킴이님이 걸어 놔 사진에 담고 출발한다.

 

계속 이어지는 철망을 따라 억새 능선을 내려가니 등로 좌측 앞으로 수도지맥 옆으로 흐르는 우두산과 비계산 지나 두무산과 오도산 그리고 미녀산과 숙성산들이 길게 톱날 능선을 이루며 그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철망과 헤어져야 할 지점이 다가오고 바로 발 아래로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조심하며 절개지를 타고 그 시멘트 포장도로롤 내려가니 등로 우측 저 멀리 834.8 삼각점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마음은 왕복을 하고 싶지만 금귀봉까지 다녀 온 후 대촌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오후 6시에 거창에서 출발하는 군내 버스에 탑승이나 가능할지 몰라 저 삼각점 봉은 포기하고 좌측으로 도로를 타고 조금 걸어 올라 다시 우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들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능선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는 불령산까지 2.3 Km거리이고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가면 가북면 중촌과 신방으로 갈 수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보인다.

오느 선답자는 우측의 834.8삼각점봉을 불령산이라 했던데 어느것이 맞는지 조금은 헷깔리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불령산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비포장임도처럼 잘 발달되어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되고 잠시 후 나즈막한 안부 지나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간벌목들이 나뒹굴고 있는 무명봉을 통과해 묘지와 안부를 지나 칡넝쿨이 우거진 절개지를 타고 어렵게 내려가니 차량통행이 많지 않은 보해로 2차선 포장도로 위 회남령에 도착을 한다.

회남령(650미터, 2차선도로)은 우측 주상면과 좌측 가북면을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회남마을은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해평리의 자연마을로서 회남재 또는 희너미재 기슭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옛날에는 널무이 또는 판문동이라고도 불렀다는데 그 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회남령 또는 회남재라 불리게 되었다.

회남령이 있는 해평리는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의 9개 법정리 중 한 지역으로 해평리에는 회남리, 추동리, 해평리 등 3개 행정리가 있으며 행정리 회남리에 속하는 회남 마을, 행정리 추동리에 속하는 추동 마을, 연곡 마을, 행정리 해평리에 속하는 양암 마을, 월전 마을 등 5개 자연 마을이 있다.

이 회남령에 관한 자료는 별로 보이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이 마을에서 차용한 이름이기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 본다.

 

회남령에 있는 보해로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길게 이어지는 목계단이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 좁고 길게 설치되어 있어 그 목계단을 따라 올라 가 본다.

잠시 후 주능선에 오르고 등로 좌측 뒤로는 넉낙한 모습의 단지봉이 그 앞에 또 다른 산줄기 하나를 두고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수원백공 묘지를 지나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또 다시 철없는 진달래 꽃이 만발해 있고 사진에 담고 오르니 잡목들과 잘린 나무 밑둥이 보이는 728.4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이어지는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를 타고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평이하게 걸어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지맥 마루금이 저 멀리 수도산부터 보이기 시작하고 그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작은 나무 한그루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좁은 공터봉에 도착을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이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야 할 829.1미터의 길주의 지점이다.

잠시 정상적인 내리막 등로를 찾아 이리저리 해매고 어렵게 등로를 찾아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내려가니 간벌된 소나무 토막들이 등로에 어지럽게 나뒹굴고 이리저리 피하며 내려가다 보니 정상적인 등로 찾기도 쉽지 않다.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고 널부러진 나뭇토막들과 잔가지들을 피해 너무나 힘들게 진행하니 다시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어 내려가는데 내려가는 등로 중간에 커다란 소나무 옆으로 쓰러진 이정표가 보이고 살펴보니 등로 우측으로 원보광마을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삼거리이다.

원보광 마을이 있는 남산리는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북동쪽 끝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법정리로서 북쪽으로는 거창군 웅양면에 동쪽으로는 거창군 가북면에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주상면 거기리와 서쪽으로는 주상면 성기리에 접해 있다.

남산리 내에 원남산 마을, 덕동 마을, 포덕동 마을, 하보광 마을, 중보광 마을, 윗보광 마을이 있다.

남산리의 명칭은 남산리 내의 오래된 마을인 남산동과 관련되어 있으나 남산동의 정확한 명칭 유래는 알 수 없다.

남산리가 속한 지역은 조선 시대에 지상곡면 보광리 일대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서쪽의 주곡면과 합병하고 안의군 북하면 일부를 통합해 거창군 주상면 남산리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2006년 5월에는 마을 이름 되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남산 1구를 원남산, 남산 2구를 포덕동, 남산 3구를 보광으로 변경하고 동년 8월 14일 행정 동명도 변경해 남산 1구를 원남산, 남산 2구를 포덕동, 남산 3구를 보광으로 바꾸었다.

북쪽 산지의 가장 깊은 골짜기를 따라 윗보광(상보광), 중보광, 하보광 마을이 자리하고 있으며 중보광 마을에 보광 마을 회관이 있다.

북쪽 산지와 거기천 주변 평지가 맞닿는 남산리의 중간부에 포덕동 마을과 덕동 마을, 원남산 마을이 있고 포덕동 마을은 서쪽 산사면에, 원남산 마을은 동쪽 산사면에 있으며 덕동 마을은 거기천 하천변의 평지에 있다. 덕동 마을에는 보해 사과 작목반 집하장이 있다.
교통로는 거거천의 동편을 따라 조성된 보해길이 남산리를 남북으로 관통하며 회남령을 지나 가북면으로 이어진다.

사진에 담고 다시 찾기 어려운 등로를 찾아 어렵게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원보광으로 하산할 수 있는 이정표를 지나니 등로에 나뒹굴던 나뭇토막과 나뭇가지들은 많이 줄어 들었지만 이제는 잡목들과 가시나무들이 길을 막고 산객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이리저리 몸을 피해 통과해 보지만 억세가 익어가는 가시들이 얇은 등산복을 뚫고 들어 와 고통을 강하게 주고 혼자 육두문자를 내밷으며 어렵게 전진하니 잡목이 자라면서 뵤지인지도 모를 잡목 묘지봉도 지난다.

헷깔리는 등로를 찾아 주의하며 전진하니 다시 멋진 낙엽송과 소나무 등로가 활짝 열리고 즐거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니 갑자기 등로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어 잠시 휴식도 취할 겸 살펴보고 진행을 이어간다.

 

띠지가 걸려 있는 곳을 지나 계속 평이하게 진행하니 썩어가는 고사목들이 나뒹굴고 있는 721.1삼각점봉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배낭을 나무 뒤에 숨기고 내려가니 잠시 후 나무들이 간벌되어 나뒹굴고 있는 무풍465 삼각점이 박혀있는 721.1봉에 도착을 하는데 준희 선생님이 걸어 놓은 이정판은 간벌되면서 땅 바닥에 나뒹굴고 있어 잘 수습해 초입의 다른 소나무에 걸어 놓고 다시 갈림삼거리로 복귀한다.

 

갈림삼거리로 돌아 와 이제는 진행 방향 우측으로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더니 송이버섯이 있는 지역이니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경고판을 지나니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등로를 완전히 막고 그곳에서도 손에 많은 생채기를 만든 후 힘들게 빠져 나가니 소나무 등로가 열려 있다.

한동안 편안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공터같은 등로가 나타나고 그 한쪽에 이정표가 서 있는데 살펴보니 남산2구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이다.

남산리는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에 있는 리로서 조두산 밑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다.

면적의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어 농사는 거의 이루어 지지 않고 있으며 마을 동쪽으로 위천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 다귀, 여우골, 화류골 마을이 있는데 다귀 망르은 논밭이 귀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여우골 마을은 지형이 여우와 같이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화류골 마을은 버드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잠시 물 한모금 마시며 갈증을 달래고 다시 출발하니 버스 시간은 거의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부터 많은 여유는 부리기 어려워 보인다.

 

이정표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를 어렵게 헤치며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얇은 상의 등산복을 뚫고 강력한 산초 가시들이 박히면서 붉은 피가 맺히기 시작하는데 잠시 배낭 내려 살펴보니 손바닥 근처에서 팔꿈치쪽까지 길게 3가닥의 실선이 그어져 있다.

에구 왜 이런 산행을 이어가야 하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면서도 처음 시작한 산행이니 그 마지막 끝은 봐야겠다는 진념으로 다시 마음 가다듬고 출발한다.

내가 좋아 시작했고또 내가 좋아 밤잠 설치며 내려 와 걷고 있으니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지 않는가.

잠시 후 편안한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올라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686.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손목쪽을 치료하고 다시 출발한다.

 

이제부터는 착한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까 먹은 시간을 벌충이라도 하듯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다시 등줄기와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쉴새없이 등로를 적시고 있다.

V자형 참나무가 서 있는 무명봉을 넘고 글이 이해가 돠ㅣ지 않는 경고판을 지나 좌측 사면 등로를 따르니 다시 녹슨 철조망에 몇개의 녹슨 경고판들이 붙어 있는데 그 경고판을 이해하기가 난해하다.

그렇게 잠시 더 편안하게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원남산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만나고 사진에 담은 후 진행한다.

원보광 마을이 있는 남산리는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북동쪽 끝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법정리로서 북쪽으로는 거창군 웅양면에 동쪽으로는 거창군 가북면에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주상면 거기리와 서쪽으로는 주상면 성기리에 접해 있다.

남산리 내에 원남산 마을, 덕동 마을, 포덕동 마을, 하보광 마을, 중보광 마을, 윗보광 마을이 있다.

남산리의 명칭은 남산리 내의 오래된 마을인 남산동과 관련되어 있으나 남산동의 정확한 명칭 유래는 알 수 없다.

남산리가 속한 지역은 조선 시대에 지상곡면 보광리 일대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서쪽의 주곡면과 합병하고 안의군 북하면 일부를 통합해 거창군 주상면 남산리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2006년 5월에는 마을 이름 되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남산 1구를 원남산, 남산 2구를 포덕동, 남산 3구를 보광으로 변경하고 동년 8월 14일 행정 동명도 변경해 남산 1구를 원남산, 남산 2구를 포덕동, 남산 3구를 보광으로 바꾸었다.

북쪽 산지의 가장 깊은 골짜기를 따라 윗보광(상보광), 중보광, 하보광 마을이 자리하고 있으며 중보광 마을에 보광 마을 회관이 있다.

북쪽 산지와 거기천 주변 평지가 맞닿는 남산리의 중간부에 포덕동 마을과 덕동 마을, 원남산 마을이 있고 포덕동 마을은 서쪽 산사면에, 원남산 마을은 동쪽 산사면에 있으며 덕동 마을은 거기천 하천변의 평지에 있다. 덕동 마을에는 보해 사과 작목반 집하장이 있다.
교통로는 거거천의 동편을 따라 조성된 보해길이 남산리를 남북으로 관통하며 회남령을 지나 가북면으로 이어진다.

 

그 이정표를 지나 이어지는 착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소나무들이 사라지고 제법 굵은 아카시아 나무들이 보이는 군락지로 들어가는데 그곳은 특히나 제법 넓은 공터에 아카시아 나무들을 식재한 듯 보이는 그런 장소이다.

헬기장 같기도 한 아카시아 군락지를 빠져 나가니 다시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한동안 부드럽게 이어가니 꼬여 있는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671.7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걸어가다 등로 우측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양각지맥 마루금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하고 그 풍경을 살피며 내려가니 이제 등로 우측 저 멀리 수도지맥 마루금과 오도산과 숙성산쪽 톱날 등로가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이제부터 나타나는 키큰 싸리나무 군락지를 타고 싸리나무 낙엽을 온 몸으로 받아가며 진행하니 등로 우측 소나무 가지 밑으로 지나온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후 오르막 등로에는 보이지 않던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가시가 세개인 소나무가 서 있는 719.9 무명봉에 도착을 해 몸에 붙어 있는 낙엽들을 털어 낸 후 진행한다.

 

잠시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잡목들이 보이는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지독한 잡목들을 뚫고 나즈막한 무명봉을 올랐다 내려가니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안부에 거기마을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다.

거기마을은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거기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거기(걸터)마을은 성주 여씨가 이룬 마을이라 하고 옛날에는 돌이 많으므로 돌밭이라 하다가 개울이 마을을 끼고 흐르므로 걸터라 하였다.

이 거기리는 삼원석산과 보해산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농촌 마을로서 면적의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농사가 주로 행해지고 있고 마을 동쪽으로 계수천이 흐르고 있으며 미기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정표를 지나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와 바위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넘고 계속 이어지는 잡목등로를 따르니 등로의 고도가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하고 커다란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기 시작한다.

커다란 바위를 우회하며 어렵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보이고 그곳으로 가 잠시 지나 온 마루금 우측으로 펼쳐진 덕유능선을 살펴보는 행운도 가져 본다.

 

그 전망바위를 나와 다시 바위로 이뤄진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오르니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바위암릉이 길게 이어지고 조심하며 그 바위암릉을 따라 오르니 잠시 그 바위암릉이 사라지며 등로 좌측으로 또 다른 전망바위가 보여 잠시 들어 가 살펴보니 지나온 양각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 마루금 우측으로는 여전히 넉넉한 품을 자랑하고 있는 단지봉이 멋진 산세를 이루고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수도산 좌측 저 멀리에는 수도지맥 분기점이 있는 초점산과 대덕산ㅇ 여전히 높은 고도를 자랑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잠시 그 전망바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와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이정표가 서 이고 살펴보니 우측으로 와장포 하산갈림 삼거리 이정표이다. 

외장포마을은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거기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장포는 장승이 있었으므로 장성불 및 노루장자 장포라고도 하였고 임진왜란 때 옮겨온 유성근이 103세를 살고 그 아들도 93세를 살았으므로 장생동이라고도 하였다.

이곳에서 외장포로 하산하는 사람과 기회는 많지 않아 보이는데 아마도 예전에는 제법 등로가 나 있었나 보다.

 

외장포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커다란 바ㅣ위를 우회하며 어렵게 걸어 오르니 선답자들의 띠지가 우측 하산 등로로 달려 이고 정면 앞으로는 거대한 바위가 보이는데 그 앞으로 가 올라갈 수 있는지 확인하니 무리일 것 같아 미련없이 선답자들 띠지가 보이는 곳으로 가 우측으로 크게 우회하며 그 바위지대를 통과한다.

우측으로 한동안 돌아 로프와 계단을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조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살펴보니 우측 저 멀리 가야산이 다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고 그 좌측 사진 한가운데로 단지봉이 우뚝하며 좌측 끝자락으로는 수도산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도산에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종주 능선이 이제서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수도산과 가야산 종주 능선을 살펴보고 눈을 좌측인 북쪽으로 돌리니 저 멀리 수도산과 시코봉에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양각지맥 전 구간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 좌우측으로 가야산과 대덕산이 호위하듯 붙어 있어 또 다른 산행을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곳에서도 한동안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으르 남기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보해산 정상부로 향한다.

 

정상부로 향하다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덕유산 전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끝자락에는 대덕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도 이어지고 있다.

오랫만에 살펴보닌 남덕유산에서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덕유능선이 참으로 아름답고 저 능선을 따라 산행에 대한 꿈과 희망을 키웠던 시절이 문득 그리워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일에 지쳐 힘들때면 문득 배낭 둘러메고 달려갔던 덕유산이었는데 이제 언제 다시 그런 자유를 만끽하며 걸어 볼 수 일을련지 아니면 그런 기회라도 또 올 수 있을련지 아련하기만 하다.

 

생각지도 못한 멋진 선물을 하아름 안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드디어 보해산 장상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잠시 배낭 내려 허기를 달래고 갈증을 풀면서 진행하기로 한다.

보해산(911.5)은 경상남도 거창군의 주상면 거기리와 가북면 해평리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912미터이고 북쪽 흰대미산에서 산줄기가 이어져 보해산을 지나 금귀산으로 연결되며 동쪽으로 가천천과 서쪽으로 거기천이 흐른다.

여지도서(거창)에 보해사는 보해산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라는 내용에서 지명이 등장하고 또한 경상도읍지(거창)와 영남읍지(거창)에 보해산은 부의 북쪽 30리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청구도(21층 11면)에 거창읍치 동쪽, 가조면창 북쪽의 산으로 보해산이 묘사되어 있고 그 서쪽으로 좌구산이 기재되어 있으며 한편 동여도(18첩 3면)에는 금귀산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에 보해사가 표기되어 있어 현재 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

보해산 지명은 과거 이 산에 있었던 보해사가 여러 암자를 거느리고 있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또한 아주 오래 전 임금님이 이 산에 순수()하다가 보물 금척을 잃어 버려 이 산을 보해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보해산 장상에서 잠시 추억을 남기고 좌측을 살펴보니 가조면 들판 넘어 작은가야산과 우두산 및 장군봉이 보이고 그 뒤로 비계산과 두무산 그리고 우측 저 멀리 우측 끝자락으로 오도산괴 미녀산 및 숙성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도로 건너 오두산 방향은 나뭇가지에 가ㅣ려 사진으로는 담지 못하였다.

수도지맥 산행을 하면서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가조 들녘을 살펴보며 걸었던 추억을 되살리는 시간이 참으로 먼 길을 돌아 온 듯 하다.

보고 또 봐도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우리나라의 산하가 아닐 수 없다.

 

등로 우측 위로는 가북의 좁은 들녘 지나 가야산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고 그 모습이 아름다워 줌으로 당겨 보니 오래 전 수도산에서 가야산 종주를 하면서 공단 직원과 약간의 실랑이를 했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너무나 환상적인 상고대를 사진으로 담으며 멋진 추억을 남겼는데 함께 땀흘리며 걸었던 산친구들이 그리운 시간이기도 한데 언제나 다시 한번 더 만나 옛 추억을 되살리며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멋진 가야산 풍경을 줌으로 당겨 사진에 담고 잠시 그늘에 앉아 남아 있는 빵과 과일로 허기를 면하고 시원한 물로 갈증까지 달랜 후 다시 출발하며 뒤돌아 보니 무인산불감시 카메라는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해 관리되는지 태양광 전열판이 설치되어 있다.

금귀봉과 보해산 등산로 안내판을 살펴보고 정상을 내려가니 커다란 바위가 있고 활엽수 낙엽이 발목까지 빠지는 무명안부를 지나 현위치 번호를 적어 놓은 이정목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잠시 후 커다란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바위암릉이 이어지고 잠시 그 바위암릉으로 올라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가조들녘과 그 뒤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비계산과 두무산 지나 미녀산과 숙성산이 보이고 우측 저 멀리 망일산과 월현산까지 보이지만 내일 올라야 할 박유산은 우측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자조들녘과 그 뒤로 둘러친 산줄기들을 살펴보고 다시 출발하니 이제부터 걸어 지나야 할 뻥대들과 그 뒤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금귀봉이 아직도 산행을 마무리하려면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함을 알려주고 있다.

초반전에 조망과 풍경이 너무 좋아 여유를 부렸더니 마지막 시간에 마음이 시간에 좇기기 시작하고 자꾸만 발걸음이 바빠진다.

그래도 생각보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에 취해 다시 많은 사진을 담다 보니 금귀봉 넘어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과 우측으로 이어지는 연봉들이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을 받아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생각보다 빠르게 걸어 진행해 보지만 바위암릉에 좌측으로는 천길 낭떨어지 절벽이라 조심스러워 속도가 나질 않는다.

뻥대 한곳을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고 다시 다른 바위암릉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뻥대가 생각보다 높은 절벽으로 이뤄져 있음에 놀라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 뻥대 우측 뒤로는 여전히 가조 들녘과 우두산에서 비계산으로 이어지는 바위암릉이 톱날처럼 날카로운 이빨를 드러내며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모습이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어지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 낙엽이 쌓인 평이한 등로를 타고 이정목이 보이는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며 뒤돌아 보니 환상의 뻥대가 그모습 그대로 드러나 있어 사진에 담고 진행한다.

 

뻥대 우측으로는 가북에서 가조로 이어지는 좁지만 기름져 보이는 들판 뒤로 우두산에서 비계산 지나 숙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다시 손짓으로 부르기 시작하고 답을 하면서 전진하니 등로에는 뾰족한 편바위들이 박혀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잠시 후 이제 등로 우측으로도 조망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살펴보니 남덕유산과 서봉이 보이고 그 좌측 아래로 진양기맥의 월봉산과 금원산 지나 기백산 줄기가 환상의 모습으로 바짝 다가와 있다.

그 남덕유산 우측 위로는 저 멀리 덕유산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덕유 주능선이 옛 추억을 더듬게 만들고 그 앞으로 넘실거리는 수많은 이름없는 산줄기들이 황홀한 산그리메를 만들어 바쁜 산객의 발걸음을 잡는다.

 

잠시 후 죽은 소나무가 잘려있는 바위암릉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작은 나뭇가지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857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주위를 살펴보니 우측 금귀산은 보이지 않고 오늘과 내일까지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양각지맥 주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잠시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그리 높지 않은 박유산이 그 뾰족한 형상으로 단연 돋보이고 그 우측으로 왔다리 갔다리 이어지는 산줄기가 결코 쉽지 않음도 알려주는 시간이다.

 

출발하면서 다시 한번 더 가조마을과 숙성산 그리고 박유산과 양각지맥 마루금을 살펴본다.

가조면은 경상남도 거창군의 동쪽에 위치한 면으로 동쪽과 남쪽은 합천과 닿아 있으며 북쪽은 가북면과 서쪽은 남하면과 접하였다.

분지지형이며 동쪽의 산지에서 발원한 하천은 가북면으로부터 남류하는 하천과 더해져 남하면으로 이어진다.

삼국시대에 가소현으로 통일신라 때 함음현이 되었다가 고려 때 다시 가소와 가조, 함흠, 거제, 제창 등으로 바뀌었으며 조선 후기 상가남면과 하가남면, 가동면 및 가서면의 4개 면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1914년 상가남면과 가동면을 더하여 가동면과 하가남면을 가서면을 더하여 가서면이라고 하였다가 1928년 가동면과 가서면을 합쳐 가조면이 되었다.

삼국사기에는 함음현이 원래 가소현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으로 지금은 옛 이름으로 회복되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거창)에 가조현은 본래 가소현인데 신라에서 감음으로 고쳐 거창군의 영현을 삼았으며 가 변하여 조가 된 것은 방언으로 서로 가깝기 때문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거창)에 가조현은 현 동쪽 15리 지점에 있다고 나타나고 여지도서와 해동지도(거창) 등 조선시대 지리지와 지도에는 가동면과 가서면, 가남면이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지지자료(거창)에는 가동면과 가서면, 상가남면 및 하가남면이 있다.

수도지맥 산행을 하면서는 등로 우측으로 내려다 보았던 가조들녘이 이곳 양각지맥 산행을 하면서는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니 두 지맥 산줄기 사이에 가조들녘이 존재함을 의미할 것이다.

 

멋진 가조마을과 그 마을을 둘러 싼 병풍같은 산줄기들을 살펴보고 다시 출발하니 여전히 등로 좌측으로는 천길 낭떨어지 절벽 바위가 존재하고 이제 등로는 잡목이 보이는 깊은 안부로 뚝 떨어진다.

무명안부로 내려갔다 좌측으로 보이는 뻥대와 뻥대 사이의 죽음의 계곡 같은 풍경을 살펴보고 다시 급하게 오르니 바위암릉 지대를 지나 계단을 타고 정상부로 향한다.

이곳 정상 역시 바위암릉으로 이뤄져 있고 그 바위들 사이로 키 작은 소나무들이 보이는데 지도에는 이곳을 834.1봉이라 되어 있다.

그 봉우리 좌측 뒤로는 여전히 가조 들녘 지나 우두산에서 숙성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들과 봉우리들이 시원하게 건너다 보이는데 임신한 여인의 누워있는 형상은 이곳에서는 보기 어려워 보인다.

 

키 작은 소나무들이 바위암릉 사이에 자라고 있는 그 834.1 바위암릉에서 주위 조망을 살피고 다시 바위를 지나 설치된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눈 앞으로 올라야 할 금귀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와 있지만 보기와는 달리 정상까지는 아직도 한시간 이상 더 진행을 해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제 시간은 오후 3시 35분을 지나고 있어 살피재에서 대촌마을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 가 거창에서 18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탑승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해 금귀봉을 패스하고 진행을 할까 하는 나약한 생각들이 자꾸만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다.

그 금귀봉 뒤로 펼쳐진 황매산과 지리산을 확인하며 길게 이어지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이곳 주위에는 아직 단풍이 든 것과 푸르름을 유지하는 것이 혼재되어 있다.

 

그렇게 그 나무계단을 따라 길게 내려가니 이제 계단이 끝이 나며 안전철봉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간다.

다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등로 좌측의 거대한 바위 아래로 일구암 가는 이정표 표시가 되어 있고 일구암까지는 5미터란 글씨도 보이지만 계단에서 확인하고 계속 산행을 이어간다.

연등들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바위암릉 구간이 끝나면서 이정목과 이정표가 서 있는데 우측 방향으로 고대마을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이다. 

고대마을은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거기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500여년 전 고대라는 사람이 마을을 열었다고 하는데 오래된 터라 고대와 느티나무가 있었다하여 괴대라고도 쓴다.

 

고대마을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니 이제 바위암릉 구간이 끝이 났는지 보이지 않고 멋진 조선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린다.

그 등로를 타고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나즈막한 둔덕같은 갈림삼거리에 이정표가 서 있는데 살펴보니 좌측 둔덕 넘어 정봉으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이다.

정봉마을이 있는 용산리는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에 속하는 법정리로서 용산 마을과 율리 마을의 2개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용산리는 용산 마을의 지명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는데 용산 마을은 가야산에서 마을 뒤까지 남서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용과 같은 형상이라 용산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옛날 중국의 맹가라는 사람이 9월 9일 낙모대에서 술을 마시며 풍류를 즐기던 곳이 용산인데 마을 근처에 낙모대가 있어 용산이라 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용산리의 율리 마을은 옛날 마을 앞 냇물에 배를 묶어 두던 곳이라 배속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주변에 밤나무가 많아 율리라고 한다는 설도 있으며 4~5세기 중국의 시인 도연명이 살았던 땅의 이름이 율리였으므로 훌륭한 문장가가 이곳에 살았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그 정봉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니 등로는 완전한 흙길로 된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조금은 여유를 되찾아 빠르게 걸어가니 보해산에서 2 Km 진행해 왔고 금귀봉까지도 아직 2 Km 가 더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보이면서 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올랐다 내려오려면 최소한 3 Km이기에 빈몸으로 오른다 해도 최소 1시간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라 판단되어 금귀봉으로 오를지 아니면 패스하고 그냥 진행을 해야할지 고민이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래도 등로가 좋아 최대한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터널 위 등로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금귀봉이 우측 옆으로 바짝 다가와 있다.

 

그 터널 위 길게 이어지는 흙길을 따라 걸어가니 그 터널이 끝나는 지점 우측으로 이정표가 보이는데 우측으로 거기삼거리 및 좌측으로 정봉 하산길이 있는 갈림사거리 이정표이다.

그곳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금귀봉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지점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우측으로 금귀산까지는 0.9 Km 거리이기에 왕복으로 1.8 Km이다.

최소 1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어 시간을 보니 현재시간 오후 4시 5분에 이곳에서 다시 살피재까지 3.5 Km 이나 ㅟ다시피 걸어 1시간을 예상하면 이제부터 쉴 여유도 없고 조망을 즐길 여유도 없이 뛰다 시피 진행을 해야 겨우 대촌마을에서 시간 맞춰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계산이 선다.

 

금귀봉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금귀봉쪽으로 조금 더 걸어 올라 커다란 나무 뒤에 배낭을 내려 놓고 스틱과 스마트 폰만 들고 빠르게 금귀봉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나즈막한 둔덕으로 오르자마자 이정목이 서 있고 그 뒤에 이곳이 666미터 봉이라는 산그리움이란 님의 이정판이 달려 있어 지도를 보니 지도상에는 659.6미터봉이란 표기가 보이는 지점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해 뛰다 시피 금귀봉으로 향한다.

 

초반부에는 오르지 않고 완만하게  내려가 무명 안부를 지나고 계단을 타고 올라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흙길을 타고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길게 이어지는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걸어 오르니 약간의 체력적인 문제가 야기되면서 뒤돌아 보게 된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 역시 일품이었는데 저 멀리 오늘 산행을 시작한 수도산 아래 시코봉부터 가까운 보해산과 뻥대를 지나 이곳으로 이어지는 양각지맥 전 구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뒤 저 멀리에는 수도산과 가야산을 이어주는 다리 역활을 하고 있는 단지봉이 넉넉한 품을 내보이며 올려다 보인다.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빠르게 오르니 갑자기 앞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인사를 하고 있어 보니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여자 아이 혼자 내려오고 있어 말을 해 보니 아빠하고 동생은 뒤에 내려 온다고 전해 줘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오르니 다시 젊은 아빠하고 꼬마 동생이 내려온다.

인사 나누고 다시 숨이 목구멍에 걸릴 정도로 빠르게 뛰다 시피 오르니 그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채 20분도 되지 않아 0.9 Km 를 걸어 금귀봉 정상에 도착을 해 헐떡이는 숨을 참아가며 사진들을 남겨 본다.

금귀산(838.6)은 경상남도 거창군의 거창읍 학리와 주상면 거기리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710미터이고 동쪽에 봉우재, 북쪽에 보해산 등의 산지로 이어지며 산 서편으로 황강과 그 지류인 거기천이 흐른다.

세종실록지리지(거창)에 금귀산 석성은 현 동쪽 12리에 있으며 (중략) 봉화가 1곳이니 금귀산이다 라는 기록이 있어 과거 이곳에 석성이 있었던 것과 봉대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신증동국여지승람(거창), 여지도서(거창) 등의 지리지에 금귀산, 금귀산 봉수, 금귀산 고성에 대한 기록이 있고 지승(거창)에 가서면의 산으로 나타나며 산에 봉대가 묘사되어 있는 것을 비롯해 대동여지도(17첩 3면), 해동지도(거창) 등 조선 후기 고지도에 읍치 북동쪽의 산으로 금귀산이 그려져 있다.

지명과 관련해 산형이 금계포란형이라서 금귀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거창군사에는 귀중한 산이라는 뜻에서 금귀산 또는 금귀봉이라고 하였다고 수록되어 있다.

그 밖에도 산은 모양새가 탕근 같다고 하여 탕근산, 거북이 형상과 같다고 하여 금구산 또는 구잠, 봉대가 있어 봉우산 또는 봉수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산의 동남쪽에 둔마리벽화고분(사적 제239호)이 있다.

 

제일 먼저 정상석을 지나 남서쪽을 살펴보니 거창읍이 좌측 능선 뒤로 살짝 보이고 그 우측 아래로 드넓은 들녘에 비닐하우스 단지들이 펼쳐져 있으며 그 뒤 저 멀리에는 좌측 끝자락의 지리산 천왕봉에서 우측의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지리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 오고 그 반야봉 우측 앞으로는 함양의 황석산과 기백산 그리고 금원산 줄기가 존재감을 알리고 있는데 그 위에 떠 있는 짧은 하루해는 벌써 서산으로 기울며 조만간 어둠이 내릴 것을 알려주고 있다.

 

지리산을 살펴보고 이제 눈을 북서쪽으로 돌리니 저 멀리 남덕유산과 서봉부터 우측으로 올라가며 덕유산 향적봉이 보이고 그 우측 앞으로 거칠봉과 흥덕산 그리고 그 우측 끝자락에 삼봉산과 초점산 및 대덕산이 아스라히 멀어진 모습으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슺이 눈에 들어 온다.

오늘 아침에는 저 봉우리들이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보였는데 나약한 두 다리를 이용해 하루 종일 걷고 난 이후 살펴보니 그 봉우리들과 산줄기들은 이미 아스라히 멀어져 가장 먼 거리처럼 느껴지고 있다.

 

올라오다 만났던 양각지맥 전 구간 역시 시원하게 보이고 다시 눈을 북동쪽으로 돌리니 이제 단지봉에서 남산과 작은가야산 지나 우두산과 비계산으로 이어지는 수도지맥 마루금 뒤로 합천의 가야산이 둥근 모자를 쓴 모습으로 삐쭉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가조 들녘은 소나무들에 막혀 보이지 않고 그 뒤로 흐르는 산줄기들만이 여전히 가조를 보호하고 있음을 알리며 바쁜 산객의 마음을 아는지 이제 빨리 내려가라 조언도 해주는 듯 보인다.

 

아무리 바빠도 그 가야산을 살펴보고 그 우측 아래인 남동쪽으로 펼져진 가조들녘과 비계산 및 두무산 그리고 숙성산과 그 아래쪽 봉우리들과 산줄기를 살펴보고 몇 장의 사진에 남긴 후 아쉬운 이별을 노래한다.

오늘 하루 원없이 살펴보고 사진으로 남긴 이 흔적들이 언젠가 다시 고운 추억이 되어 되살아 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금귀봉에서의 아쉬운 시간과 이별을 고한다.

 

배낭 둘러메고 뒷쪽으로 가 잠시 2개의 산물감시초소와 작은 돌탑을 사진에 남기고 금귀봉 정상석을 다시 추억으로 담은 후 내려가니 눈 앞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었던 모든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 와 다시 발걸음 멈추고 마지막으로 사진에 담아 본다.

우측 앞으로 금귀봉 갈림삼거리봉인 666봉이 보이고 중앙으로 보해산과 뻥대를 넘어 좌측 저 멀리 흰대미산과 양각산 지나 양각지맥 분기점이 시코봉과 금오지맥 분기점인 신선봉 그리고 수도산 정상부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그 보해산 우측으로는 수도지맥 산줄기인 단지봉에서 가야남산과 작은가야산 지나 가조를 감싸고 있는 산줄기가 다시 환상으로 넘실대지만 갈길 바쁜 산객은 애써 외면하고 이제 올랐던 등로를 타고 빠르게 뛰다 시피 내려가 본다.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중년의 아저씨 한분이 올라 오며 너무 가파르다며 투덜대시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고 인사 나누고 다시 내려가니 방금 전 오르며 만났던 꼬마들과 아빠는 벌써 보이지 않는다.

666봉을 지나 숨겨 놨던 배낭을 찾아 두 어깨에 메고 다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살피재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이제 우측 살피재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 내려간다.

잠시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등로 좌측으로는 방금 전 걸어 지나 온 보해산과 뻥대가 얼굴을 내밀며 잘가라고 인사를 건네고 있다.

잠시 후 사람들 소리가 들리는 비포장임도로 내려가니 승용차 한대가 올라 와 있고 부부가 인사를 건네는데 잠시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금귀봉을 사진에 남긴 후 능선으로 들며 마지막 속도를 내 본다.

 

등로는 여전히 아름다운 조선 소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예쁜 등로로 이어지고 그렇게 한동안 평이하게 달리다시피 걸어가니 고사목이 썩어가는 575.7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엉뚱하게도 우측으로 내려가는 등로로 잘못 내려가 짧은 알바를 하면서 등로 우측으로 금귀봉을 사진에 담는다.

분명 금귀봉은 조금 멀어져야 하는데 등로 우측 가까이에 있어 지도를 보니 아차 잘못 내려 왔는데 옛 선인들의 말씀에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춤에 실 못꿰매 사용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시간이다.

바쁠수록 잘 살피며 정도로 가야하는데 마음만 바빠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등로만 좇다가 알바를 하고 만 것이다.

다시 정상으로 복귀해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지점에 도착을 하고 살펴보니 등로는 직진의 잘 발달된 마루금을 버리고 우측의 희미한 등로를 찾아 진행해야 하는 길주의 지점이었다.

 

시간도 충분하지 못한데 한번의 짧은 알바를 경험했기 때문에 조금 더 세심하게 살피며 진행하니 등로 우측 저 멀리 내일 걸어 진행해야 할 박유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살짝 보이고 사진에 남긴 후 계속 전진하니 합천이공 묘지도 만난다.

이제부터 조금 더 거칠어지는 잡목들을 헤치며 진행을 이어가니 분봉이 많이 상해있는 무명묘지를 지나고 안부를 통과하여 거대한 소나무와 멧돼지 목욕탕이었던 무명봉으로 오른다.

다시 지독하게 발목을 잡아 끄는 잡목들을 헤치며 진행하다 보니 온 몸에 깊은 생채기들을 만들기 시작하고 잠시 후 거창423 삼각점이 박혀 있는 528.4봉에 도착을 해 준희님이 걸어 놓은 정상판에 목례를 하고 곧바로 출발한다.

 

이곳 황강인지 아니면 가천천인지 모르겠지만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묶였는지 상수원보호구역이란 사각 이정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번호를 확인하며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다시 지독한 잡목들과 가시나무들이 발목을 붙잡고 헤치며 진행하다 양쪽 손목에서 팔뚝까지 수많은 상처들을 만들고 쓰라린 고통을 참아내며 버스 시간에 맞춰 내려갈 산행만 생각하게 되었다.

연이어 이어지는 상수원보호구역 이정목들을 지나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이제 하루해는 서산으로 완전히 넘어가기 시작하고 등로 우측 저 멀리 해가 넘어간 나즈막한 산줄기 우측 위로 방금 전 어렵게 다녀 온 금귀봉이 뾰족한 커다란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어둠이 찾아들기 시작하며 마음은 더욱 바빠지기 시작하고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진행하면 좋을텐데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니 괜시리 발걸음만 짧은 알바로 고생을 한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다 뚜렷한 우측 등로를 버리고 희미하게 잘 보이지 않는 직진의 좌측 등로를 따라야 할 지점에서 무심코 진행하다 제법 긴 거리를 알바하고 다시 뒤돌아 올라 와 혼자 씩씩대며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아름다운 금귀봉 능선이 조금씩 멀어지며 어둠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잡목들과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485.8봉에 도착을 해 오늘 실질적인 마지막 봉임을 확인하고 시간을 보니 오후 5시 46분을 가리키고 있어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다.

 

마지막 485.8봉에서 어렵게 사진 한장 남기고 헤드렌턴 없이 그냥 진행하니 큰 어려움 없이 살피재 방향으로 내려가고 잠시 가조들녘 지나 수도지맥 마루금도 살펴 본 후 잠시 후 5시 56분에 드디어 오늘 산행 날머리로 정한 살피재 2차선 포장도로에 무사히 도착을 한다.

살피재(10842차선 포장도로)는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과 남하면 둔마리를 연결하는 고개로서 높이는 390미터이고 남하면 둔마리는 거창읍과 가조면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살피재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속설에는 살피재라는 명칭이 굽이가 12개나 되는 고개를 넘어야 하므로 잘 살펴가야 할 정도로 험하다는 의미로 붙여졌다고 한다.

거창군 거창읍과 가조면은 내륙 산간 지역임에도 침식 분지 중앙에 넓은 평야를 갖고 있어 다른 지역에 비해 규모가 큰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이고 이 두 마을 사이에는 교역을 위해서는 교통로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와 가조면 사이에는 금귀산을 비롯한 500미터 이상의 산지가 나타나는데 살피재는 이 산지 지대를 극복하기 위해서 둔마리 동쪽에서 높이가 가장 낮고 가조면으로 접근하기 좋은 안부(산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를 따라 형성되었다.

현재 살피재는 지방도 1084호선이 거창읍과 가조면을 잇고 있고 새롭게 개통한 광주와 대구간 고속 도로는 살피재 남쪽 산지를 터널로 지나고 있으며 살피재 정상은 가조면과 남하면의 경계가 된다.

이제 대촌마을 버스정류장까지 얼마나 걸리는 거리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뛰어 내려가니 도로는 구불구불 돌고 돌아 10여분 만인 6시 6분에 드디어 대촌마을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해 시간표를 확인한 후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배낭을 정리한다.

 

어렵게 대촌마을 앞 버스정류장에 시간보다 일찍 내려 와 여유를 되찾고 배낭을 정리하며 등산복 상의를 벗어 낙엽들을 털어 낸 후 방풍의를 입고 조금 더 기다리는 드디어 저녁 6시 17분쯤 거창에서 6시에 출발한 버스가 들어 오고 탑승하자마자 그 버스는 다시 되돌아 나가 구88고속도로를 따라 가조를 거쳤다 심방마을로 향하는데 가조를 지나니 이 산객 홀로 남아 운전기사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되돌아 갈 수 있었다.

대촌마을이 있는 둔마리는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에 있는 리로서 모든 면적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마을이고 남하면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는 도회 마을이며 마을 남서쪽으로 옥난간산과 감악산이 서있다.

자연마을로 안흥과 대촌 마을이 있는데 안흥 마을은 살피재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고 대촌 마을은 둔마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며 문화재로 사적 제 239호인  거창둔마리벽화고분가 있다.

 

심방마을에 도착을 하니 저녁 7시가 넘어가고 운전기사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내리니 또 다른 승객 한명이 버스를 전세 내 타고 곧바로 출발하고 이 산객은 배낭 정리하고 신발까지 갈아 신은 후 차내를 따뜻한게 데운 후 출발하니 거창 거의 다 도착하는 지점에서 앞서 출발한 버스를 만나게 되었다.

거창에 들어가 찜질방이 없기에 늦은 밤 9시까지 문을 연다는 갠지스목욕탕으로 가 샤워 후 몸을 달래고 환복한 후 여관촌으로 가 방을 알아 보니 최근에 새로 지은 많은 여관들은 벌써 만실이 되어 방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하며 조금은 오래된 여관으로 들어가 생각보다 저렴한 3만원에 흥정을 끝내고 근처 돼지국밥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하루를 마감해 본다.

돼지국밥은 돼지 뼈로 우려낸 육수에 돼지고기 편육과 밥을 넣어 먹는 국밥류의 요리로 부산광역시의 향토 음식이다.

돼지국밥의 유래에는 다양한 설이 있으나 전쟁 중에 피난길을 전전하던 이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돼지의 부속물로 끓인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며 본래 돼지국밥은 밀양과 부산 및 대구 지역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발전하여 오다가 현재는 그 세 가지 방식이 혼합된 형태에 이르렀다.

지역별 특성을 살펴보면 밀양의 돼지국밥은 소뼈로 육수를 내 국물 색이 진한 것이 특징적이며 대구의 돼지국밥은 내장과 같은 부속 부위를 다양하게 첨가한 점이 다르다.

부산식 돼지국밥은 돼지의 뼈로 우려내기 때문에 색이 탁하며 세 지역 중 돼지국밥이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얻게 된 곳이 부산이어서 돼지국밥은 부산의 향토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저녁을 먹으며 늘 마시던 맥주와 이슬이를 끊으라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저녁만 먹고 다시 여관방으로 들어 가 사진 정리하고 자료까지 챙기고 나니 벌써 밤 10시가 훌쩍 넘어가고 오늘은 다른 사람들 눈치 볼일 없이 마음 편히 새벽 4시 30분에 알람을 맞춰 놓고 편안하게 잠자리에 든다.

잠 들기 전 내일 산행을 위해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확인해 보니 산행 시간에 너무 큰 차이가 있고 또한 잡목과 가시나무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음을 알았기에 내일은 조금 이른 시간에 산행을 시작하려고 준비를 하는데 문제는 아침 6시 20분 거창에서 출발해 가조로 들어가는 버스가 과연 대촌마을을 거쳐 갈 수 있느냐가 문제일 듯 싶다.

아무튼 생각보다 깨끗하지는 않했지만 다른 사람들 눈치 볼 일 없이 마음 편히 잠자리에 들며 오늘 봐던 환상의 조망과 풍경들을 잠시 소환하고 내일도 무탈하게 아무 사고 없이 완주 후 귀가할 수 있기를 바라며 꿈나라로 향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하니다.

 

칠갑

 
20191109 양각지맥 제1구간 심방마을-분기점-살피재.gpx
0.18MB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