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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관암지맥(금남·완)

관암지맥 마지막제3구간 반석역에서 부용2리 금강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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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대전광역시 유성구와 세종특별자치시의 관암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9년 10월 26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맑고 약간의 구름과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 땀이 마르면 한기를 느꼈던 산행 날씨

산행온도 영상 09도에서 영상 16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반석역 1번출구-북유성대로 8차선 포장도로-반석역 6번출구-반석역 5번출구-북유성대로316번길 1차선 포장도로-외삼로8번길 2차선 포장도로-지하도로(당진영덕간 고속도로 통과)-한화입구-능선진입 이정표(박산 0.48 Km)-녹색철망-나무계단-178.1 무명봉(인식불가 삼각점과 운동시설) 이정표(외삼동, 송림마을아파트 0.42 Km)-노은당(청강경주이공 가족묘지)-콘크리트 계단-유성터널(당진영덕간 고속도로) 통과-경주김공 묘지-한화 철망-파평윤씨 가족묘-시멘트 포장도로-새누리2교회-새미래농장-하이베리농장-밭경작지-능선진입-비포장임도-군부대 원형철조망-122 교통호봉-육군정보통신학교 2차선 포장도로-자운로97번길 4차선 포장도로-복지관 버스승강장-군인아파트 버스승강장-자운초등학교 버스승강장-자운대쇼핑타운-자운사 갈림삼거리-군인아파트노인정 버스승강장-공군대학아파트 266동-대전둘레길제7구간 안내도 이정표(금병산 0.8 Km와 용바위고개 3.6 Km)-메타세콰이어 등로-철계단-나무계단-금병산 노루봉(353봉, 설명판, 인식불가 삼각점과 제12창덕봉) 이정표(금병산 1.2Km, 공군대학아파트 1.52 Km, 거칠메기고개 5.7 Km)-11봉 대법봉-벤취쉼터1과 이정표(금병산 0.8 Km, 노루봉 0.4 Km, 공군대학아파트 0.8 Km)-9 감찰봉-안부 이정표(금병산 0.6 Km, 노루봉 0.9 Km)-수운교 갈림삼거리 이정표(금병산 0.4 Km, 노루봉 0.8 Km, 수운교 0.8 Km)-제8 출세봉-금병산372.7봉, 삼각점, 사각탁자와 벤취쉼터, 제7운수봉) 이정표(바람재 3.2 Km, 노루봉 1.5 Km)-제6연화봉-독도는 우리땅 이경일님의 응원판-제5옥당봉-383(잡목)봉 이정표(용바위고개 1.2 Km, 금병산 0.5 Km, 구룡동 3.6 Km)-제4도덕봉-347.1 삼각점봉-숭정대부 고공묘지-제3공덕봉-나무계단-용바위고개(설명판, 제2일광봉, 대전둘레산길제7구간 안내도) 이정표(보덕동 3.0 Km, 금병산 1.4 Km, 적오산 2.9 Km)-사각탁자와 이정표(보덕봉 2.7 Km, 용바위고개 0.3 Km)-벤취쉼터2-86번 송전탑-비포장임도 안부 이정표(보덕봉 1.5 Km, 금병산 2.7 Km)-사각탁자와 벤취쉼터1 이정표(보덕봉 1.7 Km, 용바위고개 1.3 Km, 구룡동)-198봉-벤취쉼터1과 이정표(보덕봉 1.1 Km, 용바위고개 1.9 Km)-벤취쉼터2-묘지지대-비포장임도 안부 이정표(보덕봉 0.4 Km, 용바위고개 2.6 Km)-벤취쉼터2와 이정표(보덕봉 0.3 Km, 용바위고개 2.7 Km)-안전목책과 로프구간-운동시설과 이정표(오봉산 2.0 Km, 용바위고개 3.0 Km, 약수터 1.1 Km와 송강중학교 1.2 Km)-보덕봉(264.9봉, 대전11 삼각점, 묘지1기, 무인산불감시카메라)-거대한 아카시아나무 등로-212.5 무명공터봉-9번 송전탑-녹슨철망-절개지-구룡고개(구룡달전로 2차선 포장도로는 공사중)-절개지-이정표(오봉산 0.6 Km, 구룡고개 0.1 Km)-이정표(오봉산 0.5 Km, 구룡고개 0.2 Km)-구즉초교 갈림삼거리 이정표(오봉산 0.3 Km, 구룡고개 0.4 Km, 구즉초등학교 1.0 Km)-갈림삼거리 나무계단-219 벤취 쉼터2봉-오봉산(241봉, 정상석, 오봉팔각정, 운동시설) 이정표(봉산동버스종점 1.9 Km, 구룡고개 0.7 Km)-15번 송전탑-벤취쉼터2-비포장임도 갈림사거리(벤취쉼터2, 세종과 유성과학길) 이정표(소문산성 8.0 Km, 오봉산 0.6 Km, 구룡동 1.1 Km, 봉산동버스종점 1.3 Km)-215 무인산불감시카메라봉-이정표(소문산성 7.1 Km, 봉산동버스종점 2.0 Km, 백운사 0.5 Km)-197봉-191.9 삼각점봉 갈림삼거리-191.9 대전411 삼각점봉-멧돼지 목욕탕-비포장임도 안부 이정표(백운사 0.20 Km와 오봉산 1.78 Km)-145봉-절개지-뱀골고개(공사중인 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창녕성공 묘지-131봉-밭경작지-과학벨트 신동지구 개발예정지-능선진입-무명안부-묘지들-지독한 소나무구간-무명묘지지대-지독한 잡목과 가시지대-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이정표(꾀꼬리봉 0.7 Km, 소문산성 0.6 Km, 박산리 0.8 Km)-안전목책과 나무계단-소문성(216봉) 나무데크와 벤취쉼터2 이정표(꾀꼬리봉 0.4 Km와 장군봉 0.7 Km, 박산리방향 0.3 Km와 봉명사 0.9 Km)-나무계단-이정표(꾀꼬리봉 0.1 Km와 장군봉 0.4 Km, 박산리방향 0.6 Km)-꾀꼬리봉(271.7봉, 정상석, 대전305 삼각점, 나무데크, 팔각정) 이정표(장군봉 0.3 Km와 부용주차장 1.2 Km, 박산리방향 0.7 Km, 봉정사 0.7 Km와 광덕사 1.2 Km)-벤취쉼터2-나무계단-사각정자 이정표(봉정사 0.4 Km와 광덕사 0.9 Km, 꾀꼬리봉 0.2 Km, 장군봉 0.5 Km, 부용주차장 계곡등산로 1.0 Km)-242봉 갈림삼거리 이정표(광덕사 0.7 Km, 봉정사 0.2 Km, 꾀꼬리봉 0.4 Km와 장군봉 0.7 Km)-242봉-벤취쉼터2-산악기상 관측장비-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 이정표(광덕사 0.4 Km, 봉정사 0.5 Km, 꾀꼬리봉 0.8 Km와 장군봉 1.1 Km)-시멘트포장도로 갈림삼거리 이정표(광덕사 0.4 Km, 봉정사 0.5 Km, 꾀꼬리봉 0.9 Km와 장군봉 1.2 Km)-능선진입-183봉-송전탑 안부-216.1 무명봉-송전탑-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금병로 2차선 포장도로(공사중)-비포장임도-벌목조림지-185.6봉(부용봉, 용나루가는길 이정판)-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복숭아과수원 철문-폐축사 공터-능선-폐축사 공터-잡목과 가시나무 능선-193.6봉-부용봉(226.1봉)-221.3 삼각점봉 갈림삼거리-221.3 청주316 삼각점봉-갈림삼거리 복귀-송전탑 안부-102.5봉-잣나무 군락지-부용2리 원부용-부용2리 마을회관-부용2리 금강종점-산행종료

산행거리 : 반석역부터 시작해 잡목 가시 구간은 우회하며 진행하여 약 29.17 Km (스마트 폰의 Oruxmaps와 트랭글 기준)

산행트랙 : 

20191026 관암지맥제3구간 반석역-금강.gpx
0.18MB

                표기되어 있어 무시하고 실제 진행된 트랙만 활용하면 문재는 없을 듯 함)

산행시간 : 대체적으로 좋은 등로를 따라 조금 빠르게 진행하였으나 중간 이후 산초가시나무와 공사 구간에서는 안전하고 여유롭게 진행하여 09시간 57분 (07시 57분에서 17시 55분까지)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05:20 금산웰빙24시 불가마사우나에 애마로 부용리 금강변으로 출발

                               06:30 금강 변 부용2리 원부용 마을회관 옆 공터에 애마 주차 후 군내버스 기다림

                               06:40 67번(세종버스터미널과 부용리 왕복 운행) 세종버스터미널 행 첫 버스 탑승 (1,250.-)

                               07:01 세종버스터미널에서 하차 후 990번(오송역과 반석역 왕복 운행) 광역버스로 반석여까지 이동

                               07:57 반석역 근처의 편의점레서 도시락과 컵라면으로 아침식사 후 필요 물품 후 관암지맥 마지막제3구간 산행 시작

                      올때 - 17:55 부용2리 금강변에 도착 해 관암지맥 마지막제3구간 산행 종료 후 산행 정리하고 애마로 출발

                              18:50 세종자치시의 옥토불가마찜질방에서 샤워

                              20:15 천안근처에서 특 짬뽕으로 저녁식사 후 출발해 21:40분 쯤 무탈하게 귀가

관암지맥이란 ???

대전권 산줄기인 금남정맥의 쌀개봉(829.5)에서 분기하는 산줄기를 말하며 천왕봉(582) 황적봉(665m)을 지나 관암산(527), 백운봉(536), 도덕봉(510), 갑하산(469), 우산봉(573.5), 수양산(315), 금병산(378), 보덕봉(263.2), 오봉산(240)에서 불무산(164.1)을 거쳐 갑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볼 수도 있고 미호천과 금강이 만나는 곳으로도 볼 수 있지만 꾀꼬리봉(270.7)과 부용봉(221)을 거쳐 충남 연기군 금남면 부용마을 금강변으로 뻗어간 힘찬 줄기를 우선이라 보고 부용리까지의 도상거리 42.2 Km(신산경표 박성태 저)를 따라 관암지맥이라 보았다.

관암지맥은 공주시와 계룡시 및 대전광역시 그리고 연기군을 지나는 지맥으로 금강과 그 우측으로 갑천으로 구분 짓는 산줄기이다.

 

 

 

4년의 기다림 끝에 끊어진 마루금을 어렵게 이어가며 또 하나의 산줄기 잇기 산행을 마무리했지만 합수점이 아니기에 또 다른 만남을 약속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관암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대전광역시와 세종자치시 및 주위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와 네이버의 지식백과  및 다음의 백과사전 그리고 산림청과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어제 성치지맥 제2구간을 봉황천이 금강과 만나는 합수점에서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금산에서 하룻밤 묵은 후 원래 계획은 양각지맥 한곳을 더 완주한 후 귀경하려고 하였지만 전날 생각보다 길게 걸어 연 3일 산행은 무리라는 생각에 오늘은 새벽 일찍 일어나 오래 전 진행하다 중단된 대전시 유성과 세종시에 걸쳐 있는 관암지맥 제3구간을 마무리하고 귀가하기로 한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어 새벽 1시쯤 일어 나 잠시 산행후기를 살펴보고 다시 잠자리에 들지만 새벽 2시 30여분이 지나면서 젊은 친구들 몇명이 술 한잔씩 하고 들어 왔는지 조금은 소란스럽더니 탱크가 지나가는 코골이로 인해 새벽 4시가 가까워질 때까지 잠들지 못하다가 어렵게 잠들어 일어나니 새벽 5시를 넘기고 있다.

바삐 서둘러 아침도 먹지 못하고 빠르게 애마를 몰고 오늘 관암지맥 마지막 구간의 산행 날머리인 세종시 금남면 부용2리 버스 승강장으로 달려가니 아침 6시 25분을 지나고 애마를 잘 주차시키고 산행 준비 후 버스 승강장으로 이동하니 6시 35분 쯤 첫차인 세종시 67번 버스가 들어 오고 잠시 기다렸다 6시 40분 정시에 출발해 세종고속시외버스터미널 옆 버스 정류장에서 오송역과 반석역을 운행하는 990번 버스로 환승해 반석역에 도착을 하니 아침 7시 30여분이 지나고 있다.

근처에 일찍 문을 여는 식당이 없기에 편의점으로 가 오늘 산행 중 필요한 식수와 빵을 구입하여 배낭에 챙겨 넣고 도시락 하나와 햇반으로 아침식사까지 마치고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정확히 아침 8시가 가까워진 시간이다.

오늘 하루도 아무 사고없이 무탈하고 안전하게 계획했던 산행을 완주한 후 서울 집으로 귀가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며 힘찬 발걸음을 시작한다.

 

처갓집이 대전이다 보니 대전으로 내려올 때마다 조금씩 진행하자고 시작한 관암지맥 산행도 마지막 한구간을 남겨 놓고 4년하고도 2개월이 지나서야 힘들게 다시 찾게 되니 인생사 마음 먹기라는데 산행 역시 아무리 가까워도 마음 먹기에 따라 진행이 달라질 수 있음을 절실하게 느껴 보는 시간이다.

대부분 우산봉에서 반석역으로 내려온 후 한화와 군부대로 인해 금병산 노루봉까지는 정상 마루금을 잇기 힘들기에 자운동 공군대학아파트266동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한 후 그곳에서 산행을 시작해 금병산 노루봉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고 있어 고민하다 이 산객은 정상 마루금은 아니지만 이어갈 수 있는 등로가 보이기에 반석역에서 시작해 부용2리 금강변에서 마무리하기로 한다.

비산비야에 밭 경작지 그리고 가끔 나타나는 잡목과 가시구간으로 인해 생각보다 힘들게 진행하여 제2일광봉과 용바위고개라는 357.9미터봉에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오늘 진행한 자운동 방향의 아파트 촌들이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 뒤로 군부대와 한화로 막혀 돌아 진행한 관암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으며 그 뒤로 우산봉에서 갑하산 지나 그 중앙 제일 뒤편으로 지맥 분기점인 계룡산 천왕봉의 천단과 쌀계봉도 한눈에 들어 와 말을 잇지 못하고 한동안 그 자리에 주저 앉아 그 환상적인 풍경과 풍광을 가슴속 깊이 남겨 보는 시간이다.

 

용바위고개이자 제2일광봉에서 그곳까지 이어진 관암지맥의 모든 산줄기를 한눈에 확인하고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진행해 보지만 구룡고개와 뱀골고개에서의 도로 공사로 인한 절개지를 통과하며 또 다시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너무나 힘들게 진행하는 관암지맥이 되었다.

꾀꼬리봉 가기 전 과학벨트 신동지구 개발지 공사로 인해 상전벽해로 변해가는 마루금을 찾아 어렵게 이어가니 드디어 부용봉 지나 221.3 삼각점봉에 오르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의 서쪽을 살펴보니 하루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가고 그 아래 아람찬교 밑 금강 물결이 붉게 물들어 가며 또 하나의 산줄기 잇기 산행도 그 종착점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려 준다.

그 아람찬교 바로 뒤에는 미호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이 보여 언젠가 시간이 되면 또 다른 산줄기를 따라 저 미호천 합수점으로 걸어 볼 예정으로 계획을 세워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홀로 지맥 산행을 하다 보면 늘 교통편이 문제인데 이번 관암지맥 마지막 구간도 산행 마무리 후 어떻게 부용2리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고민하다 결국 새벽 같이 애마를 몰아 부용2리 마을회관 근처의 공터에 주차 시키고 그곳에서 6시 40분에 세종시외버스터미널로 나오는 첫 버스를 이용해 반석역으로 나와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금산 찜질방에서 술에 취한 손님으로 제대로 된 잠도 자지 못하고 늦게 일어 나 불이 나게 주용2리로 달려가니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무탈하게 도착을 하고 애마를 잘 주차 시킨 후 산행 준비 후 버스를 기다리니 5분여를 남기고 도착을 해 기사님과 단 둘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세종시로 나오니 아침 7시를 막 넘기고 있다.

저 67번 버스도 세종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아침 6시에 출발하여 이곳 부용2리에 30여분에 도착해 대기하다 6시 40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첫 버스이다.

 

새롭게 개발되는 세종시 이곳저곳을 들려 세종시외버스터미널 옆 버스 승강장에 도착을 하니 아침 7시가 넘어가고 반석역으로 가는 직통 990번 버스 시간표를 보니 12분 후 도착이라 잠시 기다렸다 오송역에서 반석역을 오가는 버스로 편안하게 반석역에 도착을 하니 아침 7시 30여분을 넘어가고 있다.

아침 식사도 못하였기에 식당을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가까운 곳에 있는 편의점으로 가 식수와 음료수 그리고 빵을 구입해 배낭을 채우고 아침 도시락과 컵라면 하나로 든든하게 배도 채운 후 아침 8시가 가까워진 시간에 4년 2개월 전 내려왔던 반석역 1번 출구에서 산행을 시작해 북유성대로 8차선 도로를 건너 6번과 5번 출구를 지나 우측 소로로 들어가며 관암지맥 마지막 산행을 시작해 본다.

 

마지막 5번 출구를 지나며 사진에 담고 몇번인가 이용했던 대전 지하철을 다시 한번 더 살펴 본 후 우측 북유성대로 316번길을 따라 가을 빛을 느끼며 상쾌한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오늘 아침은 올해 들어 가장 춥다는 일기예보로 봄 가을용 등산바지를 입고 왔는데 생각보다 춥지 않아 오늘 산행을 하면서 또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릴지 걱정도 앞섰던 시간이었다.

반석역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반석동에 있는 대전 도시철도 1호선의 지하철역으로 현재 대전 도시철도 1호선의 종점이며 칠성대는 육군군수사령부의 별칭을 차용한 것이며 인근에 있는 외삼동에 외삼차량사업소가 있다.

 

반석역 5번 출구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좁은 1차선 포장도로가 분기되고 그 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도롯가 가로수가 예쁜 단풍으로 물들어가며 도로에 떨어져 있어 운치를 더해주면서도 조금은 쓸쓸함도 함께 느끼게 해 준다.

오랫만에 느껴보는 예쁜 단풍에 바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출발하니 공장 건물 앞에서는 주인장이 인도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내며 무심한 표정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녹녹치 않음을 표현하고 있어 조금은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하다.

 

도로 우측으로 성산수도원도 지나고 처음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우측 도로를 따라 오르니 언덕배기에 당진영덕간 고속도로가 지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그곳을 통과해 계속 더 오르니 드디어 마루금을 막고 서 있는 거대한 한화 진입로가 나타나고 그곳에도 직원들이 곱게 떨어진 단풍잎들을 쓸어 내기 바쁜 시간이다.

그 한화 입구에서 우측 박산까지 0.48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와 안전목책 및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우측 언덕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를 지나 오르니 드디어 능선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그 능선으로 들기 전 뒤돌아 보니 당진영덕간 고속도로 넘어 유성의 아파트 촌들과 그 뒤로 우산봉에서 갑하산으로 이어지는 관암지맥 산줄기가 막 떠오른 햇살을 받아 따뜻하게 줄지어 늘어선 풍경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지난 구간 걸었고 몇번인가 개인적으로 더 올랐던 갑하산과 우산봉 능선을 살펴보고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녹색 철망이 따라오고 잠시 후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다 보니 등로 우측 뒤로 방금 전 지하도로를 통해 통과한 당진영덕간 고속도로가 제대로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그 좌측 뒤로는 우산봉쪽 지맥 산줄기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잠시 뒤돌아 조망과 풍경을 감상하고 전진하니 나무계단이 길게 이어지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쯤 능선 등로에 도착을 해 조금은 편안하게 부드러운 등로를 걸어간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당진영덕간 고속도로의 유성터널을 넘어 인식을 할 수 없는 삼각점 지나 운동시설들이 보이는 178.1 무명봉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살펴보지만 보이는 사람 하나 없이 텅빈 정상이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쓸쓸함이 묻어 난다.

사진 한장 남기고 좌측으로 뚝 떨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는데 그 입구에는 송림마을아파트와 오삼동으로 하산할 수 있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운동시설이 있는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는 부드러운 솔잎 등로로 이어져 편안하게 걸어가고 잠시 후 노은당이라는 청강경주이공 납골묘를 지나 길게 이어지는 콘크리트 계단을 타고 당진영덕간 고속도로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는데 저 고속도로를 이번에는 터널 위를 통해 통과하는 듯 보인다.

잠시 후 그 유성터널 위를 통해 당진영덕간 고속도로를 통과하며 유성 분기점 방향으로 뻗어 이는 고속도로를 사진에 담고 산행을 이어간다.

 

유성터널 위를 통해 당진영덕간 고속도로를 통과하니 경주김공 묘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한화 철망이 드높게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 철망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진행하니 잡목들과 잡풀들로 인해 진행이 쉽지 않다.

어짜피 정상 등로가 아니고 우회하는 등로이기에 큰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맥 산행을 이어간다는 뜻에서 조금 더 철망에 가깝게 걸어 전진하니 드디어 우측 아래로 묘지들과 밭 경작지가 보이는 유성구 하기동으로 내려가며 한화 철망과 헤어지게 된다.

잠시 내려가니 파평윤씨 가족묘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하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우측으로 새누리2교회 지나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는 직진의 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하이베리농장 방향으로 진행한다.

 

잠시 밭 경작지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이번에는 좌측의 대림가든 가는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하이베리농장 방향으로 들어가니 열린 철대문도 보이는데 그 좌측 옆으로는 새미래농장이라는 커다란 이정석도 서 있다.

그 포장도로를 따라 한동안 걸어 들어가니 하이베리농장 도로인듯 보이고 잠시 후 좌측 위로 새미래농장이 나타나는데 한우를 키우는 거대한 축사이다.

잠시 후 쇠파이프 터널을 지나 좌측으로 보이는 비포장 도로를 따르니 이제 임도 좌우측으로는 밭 경작지가 펼쳐지며 좌측 위 방향으로 진행해야 할 능선이 나즈막하게 올려다 보인다.

 

잠시 그 비포장임도를 타고 오르니 밭에서 일을 하고 계신 어르신 한분이 계셔 잠시 이야기 나누고 그곳에서 산으로 들려던 계획은 그물망으로 인해 포기하고 아주머니가 알려준 방향인 위쪽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밭 경작지가 끝나는 지점 우측 잡풀속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여 무조건 그 잡목속으로 들어가니 선답자들도 이곳으로 지나갔는지 희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완만한 잡목 등로를 따라 조금 걸어 오르니 드디어 능선 등로에 도착을 하고 뚜렷한 등로를 따라 한숨 가쁘게 오르니 잘 만들어진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 드디어 정상적인 산행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등로 역시 어쩔 수 없이 마루금을 가로막은 한화와 군부대를 우회하기 위한 등로이다 보니 마루금을 따라 걷는다는 것이 큰 의미는 없다.

 

잠시 그 비포장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 갈림삼거리 지점이 나타나고 좋은 비포장임도를 직진으로 보내고 좌측으로 크게 꺽어 소나무 등로가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무명안부를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원형철조망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이제 한화와는 완전히 헤어져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한동안 진행하게 되는 등로이다.

그래도 등로는 생각보다 잘 되어 있어 편안하게 걸어가고 그렇게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교통호 같은 수로와 원형 철조망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정상에 도착을 하고 지도를 보니 122봉이다.

그 122봉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원형철조망을 타고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니 가끔 지독한 잡목들과 가시나무들이 나타나고 커다란 물 웅덩이도 만난다.

 

어렵게 그곳을 빠져 나가니 갑자기 눈 앞에 드넓은 운동장 같은 곳이 펼쳐지고 살펴보니 드디어 군부대 내로 진입을 해 군 시설물들을 만나게 되었다.

육군정보통신학교의 군부대 주특기 훈련장으로서 그곳을 빠져 나가니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진행하며 어려운 등로를 통과한다.

자운대는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대한민국 국군의 3군 통합 군사 교육 및 훈련 시설이며 이름과는 달리 자운동에 위치하지 않는다.

1992 7월 대전직할시 서구 둔산동에 있던 육군통신학교(현 육군종합군수학교)가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군사교육기지 조성이 시작되었으며 이후 육해공군 대학 (현재는 합동군사대학교로 통합), 국군간호사관학교, 군의학교, 육군교육사령부 등이 차례로 이전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육군정보통신학교 내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드디어 자운동의 자운로97번길 4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산행을 이어가게 되는데 방금 전 걸어 나온 방향으로는 위성관제대대 500미터라는 도로 표지판과 통신훈련장이라는 이정석이 보인다.

자운로97번길을 타고 평이하게 걸어가니 도로가 우측으로 90도 꺽어 직선으로 이어지고 한동안 걸어가니 도로 좌우측으로는 여전히 군부대 지역으로 철망이 높게 쳐져 있다.

도로 좌우측으로 군인가족들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승강장들을 지나 도로 우측으로 자운레스텔 입간판도 보이는데 영내 숙박시설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대전과 유성을 그토록 자주 와 봤지만 이곳 자운동 쪽은 처음으로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는 풍경들이다.

 

계속 이어지는 자운로97번길을 따라 걸어가니 도로 포장공사도 진행 중이고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군인들도 보이면서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전방 같은 분위기는 어쩔 수 없다.아파트와 초 중학교를 지나 자운대쇼핑타운을 지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도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또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는 자운사 가는 도로이기에 이번에는 우측도로를 따라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갈림삼거리가 다시 나타나고 이번에는 아파트 단지를 우측에 두고 좌측 도로를 따르며 살펴보니 자운대아파트2단지 안내도가 보인다.

그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 오르니 드디어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봤던 아파트 266동이 보이고 그 앞으로 대전둘레산길7구간안내도와 금병산까지 0.8 Km 거리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산행 들머리에 도착을 한다.

226동 공군 아파트 뒤 금병산등산로종합안내도와 대전둘레산길잇기 제7구간 이정표가 있는 곳이 산행 들머리로서 이곳은 또한 대전둘레산길이기도 한 모양인데 대전둘레산길잇기는 대전시 둘레를 감싸고 있는 주요 산을 진행하는 등산 길이며 총 133 Km 에 달한다.

12구간으로 나뉘어 있으며 보문산을 기점과 종점으로 회귀하는 코스이며 이7구간은 봉산동 버스종점에서 시작하여 오봉산, 구룡고개, 보덕봉, 용바위고개, 금병산, 노루봉, ADD 철책길, 거칠메기고개, 안산동 버스종점까지를 말하며 도상거리 약 12.2 Km에 실거리는 약 16.6 Km 거리이다.

이 대전둘레산길제7구간은 상당 부분이 관암지맥과 겹쳐있어 산행을 진행하면서 자주 만나게 되는 이정판들이다.

 

드디어 도로를 벗어나 능선으로 오르니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는지 등로는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진행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도 걸려 있어 이제부터 본격적인 지맥 산행이 되고 있음을 알리고 그렇게 잠시 걸어 오르니 등로 주변으로 제법 굵은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명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잘 가꾸고 있는 중이다.

생각보다 아름답고 멋진 메타세콰이어 등로를 지나니 등로는 서서히 오르막 등로로 변하면서 좁은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짧은 철계단도 오르고 아직도 산에서 밤을 줍는 주민들도 만나며 오르니 점점 더 경사도가 심해지고 이제부터는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이 끝도 없이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등줄기와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흐를 쯤 드디어 정상적인 관암지맥 마루금을 만나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며 배낭 내려 잠시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시며 쉬어 가기로 한다.

노루봉(353, 12창덕봉, 삼각점, 벤치 그리고 안내판, 나뭇꾼과 노루 전설)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신봉동에는 노루봉이라 불리우는 산이 있는데 이 산에는 나무꾼과 노루에 얽힌 전설이 전하고 있으며 목숨을 구해준 나무꾼의 은혜를 갚기 위해 노루가 그에게 좋은 묏자리를 잡아 주었다는 내용의 전설로서 이 전설을 인용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조 숙종때 이야기로서 이곳에 사는 정재일이라는 사람이 나무를 하러 신봉동 뒷산에 올라갔는데 이 정재일이라는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으로서 하루에 몇 번씩 나무를 하였고 이날도 서너 번 나무를 하기 위해서 바삐 지게를 짊어지고 내려 오려는 데 어디선가 노루 한 마리가 상처를 입고 다리를 절며 자기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바라보고 있는데 그 노루는 몇 번이고 머리를 끄덕거리더니 자기가 막 지고 일어서려는 나뭇단 안으로 숨어 그는 이상한 일도 다 있구나 하고 망설이고 서 있었다.

그대 마침 숲을 헤치며 포수가 달려와서 여기에서 다리를 다쳐서 절뚝거리며 지나가는 노루를 못 봤느냐고 물어 그는 그 노루가 지금 막 이 앞으로 지나서 저쪽 산으로 도망가 더라고 말하자 포수는 노루를 잡을 욕심으로 그쪽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는 포수가 산을 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성거리다가 포수가 산을 넘어 보이지 않자 나뭇단을 헤쳐주니 그 노루가 나와서 고맙다고 몇 번이고 머리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는 이쪽으로 도망가라고 포수가 간 곳의 반대방향을 가르쳐 주자 노루는 또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이번엔 자꾸 주둥이로 산봉을 가리키며 발로 땅을 파는 시늉을 하고 몇 번이고 땅에 누웠다 일어났다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자 노루는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후 그는 죽기 전에 자식들에게 유언하기를 자기 산소는 그 노루가 가르쳐 준 산봉을 가리키며 거기에 써 달라고 해서 그 산봉에 썼다 하는데 지금도 그 산소가 산봉에 있으며 그후 여기를 노루가 산소를 잡아 주었다 하여 노루봉이라 부른다는 전설이다.

잠시 정상 주위를 들러보고 좌측 둔덕으로 오르니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과 12창덕봉이라는 종이 코팅지가 보이고 이곳까지 마루금을 가로막은 군부대 철망이 지척으로 보여 사진에 담고 다시 노루봉으로 뒤돌아 나온다.

 

금병산까지 1.2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를 확인하고 올라 온 방향 우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금새 11 대법봉이란 종이코팅지가 붙어 있고 그곳을 지나니 완만하게 내려가 무명안부도 통과한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공군대학아파트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표와 벤취쉼터가 보이는 지점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도 방금 전 지나 온 아파트 단지 방향으로 내려가는 등로가 있는 듯 보인다.

그 갈림삼거리를 지나 낙엽 깔린 부드러운 흙길을 걸으니 어제의 피로가 가시는 듯 사라지고 상쾌한 가을 바람이 콧구멍을 간지럽히고 있다.

잠시 후 9감찰봉이란 이정석과 종이코팅지를 다시 만나고 약간의 돌담이 보이는 무명봉을 넘어 내려가니 이곳 대전에도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나게 만들고 있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우측으로 수운교 하산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수운교를 찾아보니 다리가 아닌 종교로서 12봉부터 2봉까지 종이코팅지를 걸어 놓은 것도 모두 이 수운교에서 붙여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수운교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수운교는 한말 이상룡이 창시한 신흥종교로서 유, , 선의 무량대도를 현실세계에 널리 보급하여 사람을 지극히 섬기며 영세의 행복을 누리고 덕을 천하에 펼쳐 창생을 구제한다는 것을 교의로 삼고 있으며 교인은 경천, 배불, 주문, 청수, 공덕미의 치성을 잘 지켜야 한다.

이상룡은 출가한 중으로 금강산 유점사에서 도를 깨닫고 각지를 순례하던 중 충청남도 청양군에 머물 때 불교를 토대로 하고 수운 최재우를 부처의 후신이라 하여 그를 교조로 삼아 이 교를 세웠다.

한때 교세를 크게 떨쳐 1923년에는 본부를 서울에 두었으나 교조 문제로 천도교와 의견이 맞지 않아 대전광역시 중구 탄동면으로 옮겼다.이제서야 왜 이곳 금병산 등로에 그 많은 봉우리들 이름이 남겨졌는지 조금은 이해가 될 듯 싶기도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부분도 있다.

 

 

수운교에 대한 자료를 확인하고 이제 조금은 더 등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혀 진행하니 대전둘레길제7구간이라는 작은 이정판이 보이고 곧이어 제8출세봉이란 이정석도 만난다.

등로는 여전히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져 산책로처럼 느껴지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정상석과 삼각점 및 사각탁자와 이정표들이 보이는 금병산 정상에 도착을 해 잠시 쉬어 간다.

 

금병산(372.7, 7 운수봉, 정상석, 인식불가 삼각점, 사각탁자, 이정표)은 대전광역시의 북쪽 유성구 추목동과 신봉동 그리고 충남 연기군 금남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372미터로서 산의 모양이 병풍을 두른 듯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산 남쪽에는 수운교 본부가 있으며 지명은 금으로 만든 병풍이 쳐져 있는 형국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병풍 모양의 이 산은 써레를 이 산의 앞산인 고깔봉은 소가 끄는 형상을 대전은 한밭을 각각 의미하여 한밭을 소가 갈고 써레질을 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금병산 아래 수운교 본산에서 세운 금병산 유래비에 의하면 신라시대에는 금평산으로 고려시대에는 만인산이라 불리다가 이태조(이성계)가 조선 창업의 뜻을 품고 팔도 명산 기도 중 비단 병풍을 갖추고 치성하라는 현몽에 이곳이 바로 비단 병풍 같은지라 금병산이라 이름하고 산천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금병산은 유성구 추목동에서 연기군 금남면(현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걸쳐 열두봉우리를 이루고 있는데 동쪽으로부터 옥련봉, 일광봉, 공덕봉, 도덕봉, 옥당봉, 연화봉, 운수봉, 출세봉, 감찰봉, 현덕봉, 대볍동, 창덕봉이다.

금병산 아래 숯골은 수운교 본산이 있다.이렇게 또 대전의 금병산을 알게 되어 맥 잇기 산행의 즐거움을 하나 더 챙기게 되었다.

 

금병산 정상 우측 앞으로는 약간의 공간이 보이고 그곳으로 내려다 보는 대전시내 방향이 아름답지만 벌써 약간의 박무가 드리워지며 아쉬움도 남긴다.

대전시 대덕구 방향의 도심이 내려다 보이고 우측으로 식장지맥의 산줄기를 이루는 계족산 방향의 높은 산들이 살짝 보이지만 이곳 대덕구 방향으로는 저 멀리 대청호를 향해 높은 산 하나 없이 비산비야를 이루며 드넓게 펼쳐진 풍경이 조금은 이색적이다.

 

한동안 그 금병산에서 고운 추억을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는 여전히 부드러운 흙기로 이어져 있어 산책하듯 걸어 본다.

잠시 후 보이지 않던 바위들이 나타나는데 그 바위 사이에 뿌리를 박고 힘들게 살아가는 벗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사로잡고 그 무명봉을 넘으니 6연화봉이란 종이코팅지가 붙어 있다.

등로 우측 아래에는 이정석도 보여 잠시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또 다시 바위암릉 지대가 나타나는데 그 바위 앞 참나무 위에는 독도는우리땅 이경일님의 응원판도 걸려 있어 목레를 한 후 통과한다.


바위지대를 지나 안부로 내려가니 국가지점번호판과 콘크리트 기둥으로 되어 있는 말뚝이 보이고 곧이어 5옥당봉이란 종이코팅지를 만난다.

이곳 역시 등로 우측 아래에 이정석이 서 있어 사진에 담고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짧게 걸어 오르니 잡목들이 자라는 무명묘지 한기가 방치되어 있는 도상 383봉 정상에 도착을 하고 살펴보니 옆으로 이정표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이제 구룡동까지 3.6 Km 남아 있고 지나온 금병산까지는 0.5 Km 거리라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잡목 무명묘지가 있는 383봉을 지나 내려가니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고 다시 오르니 4도덕봉이란 종이코팅지와 콘크리트 말뚝이 서 있는 지점을 통과한다.

여전히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으로 인식이 어려운 삼각점이 박혀 있는 347.1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출발하는데 살펴보니 그 삼각점 위 나뭇가지에는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어 살펴보니 독도는우리땅 이경일님과 남양주금곡님이 최근에 다녀갔는지 띠지도 신상으로 반짝이고 있다.


그 347.1미터의 삼각점봉을 지나 걸어가니 진행 방향으로 용바위고개 정상부가 올려다 보이고 사진에 담고 전진하니 드넓은 묘지가 나타나고 그 앞에 세워진 비석을 읽어 보니 숭정대부고공의 묘지이다.

그 묘지를 우측으로 돌아 통과하니 3공덕봉 종이코팅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가파른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 제2일광봉이자 용바위고개 설명판이 서 있는 트랙 상 357.9봉에 도착을 해 잠시 사진 몇장 남기며 쉬어 가기로 한다.

 

돌계단을 타고 오르니 보덕봉까지 0.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고 벤취쉼터2개도 보이는데 보덕봉 정상에서 휴식을 하기 위해 그냥 통과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 비포장 임도깥은 등로를 따라 진행 해 안전목책과 로프 구간도 지난다.

잠시 후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지점 좌측으로 가파른 오르막 능선이 올려다 보이고 잠시 고민하다 뚜렷하고 빙 돌아가는 우측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가파른 능선 등로를 보고 직등으로 오르기로 한다.

그렇게 올라가니 일가족 네명이 가을을 즐기고 그 틈을 이용해 우측의 이정표와 운동시설을 사진에 담고 다시 좌측으로 오르니 무인산불감시카메라와 묘지 한기가 보이는 보덕봉 일명 두루봉에 도착을 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기고 묘지 한쪽에 세워진 삼각점을 보니 대전11번으로 1등 삼각점이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무인산불감시카메라를 보호하기 위한 철망 위에 준희님이 걸어 놓은 265미터의 보덕봉 정상판이 보여 사진 한장 남기고 가족들 나들이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재빨리 그 보덕봉 정상부를 넘어 가파르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다만 그 어디에서도 이곳 보덕봉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왜 보덕봉일까 하는 궁금증과 왜 이곳을 보덕봉이라고도 부르는지 의문점을 남기며 떠나는 마음이 아쉽기만 하다.

 

잠시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며 산책로 수준이 되었고 특별한 어려움 없이 진행하니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 등로인 줄도 모르게 완만하게 오르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하며 등로 바닥을 확인하며 생각지도 못한 아카시아 잎들이 떨어져 쌓여 있어 확인해 보니 등로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은 모두 날카로운 가시를 가지고 있는 아카시아 나무들로서 꽤 높은 수령을 자랑하고 있는 듯 보인다.

조심하며 아카시아 나무 군락지를 통과하니 227.5미터의 무명공터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무명공터봉을 지나 거대한 참나무를 바라보며 걸어가니 다시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곧이어 9번 송전탑도 만난다.

잠시 후 국가지점버호판이 서 있는 무명봉을 지나 거대한 참나무가 다시 보이는 무명봉과 능선 상 벌거숭이 민둥 묘지 한기를 통과하니 갑자기 눈 앞에 진입금지 경고 안내판이 서 있어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이어가니 녹슨 철망을 지나 천길 낭떨어지 절개지 밑으로 도로 공사중인 구룡달전로가 내려다 보이는데 반대편 능선으로 진행하는 길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절개지 상단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절개지 좌측 능선을 타고 내려가니 여전히 가파른 절개지가 이어져 내려갈 수가 없다.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내려 갈 등로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태풍이 올라 왔을 때 생긴 물 고랑을 통해 조심스럽게 그 절개지를 빠져 나온다.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구룡고개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도로 건너 올라야 할 절개지를 살펴보니 이곳 역시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확인해 본다.

구룡고개는 구룡동과 봉산동을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구룡동과 관련이 있는 듯 싶어 자료를 찾아 보니 구룡동은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동으로서 동쪽으로는 봉산동과 송강동남쪽으로는 덕진동과 추목동서쪽으로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북쪽으로는 둔곡동과 접한다.

백제시대에는 우술군, 신라시대에는 비풍군, 고려 초기에는 공주부, 조선시대에는 공주군 구즉면, 1895(고종 32) 이후 회덕군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하평리와 청운리 및 용두리 일부를 합하여 구룡리라 하였으며 1935 11월 대덕군에 편입되었다가 대전시의 직할시 승격에 따라 1989 1월 대전직할시 유성구 구룡동이 되었고 1995년부터 대전광역시 유성구 구룡동이 되었다.

행정동은 구즉동이고 동 이름은 지세가 마치 구렁이 같다는 데서 유래한다.

구렁이(구룡이), 다리골, 둔터골, 점골, 사시미 등의 옛마을과 갈미봉과 보덕봉(두루봉, 264미터) 등의 야산, 사기점골과 재랫골 등의 골짜기와 쌀뚝바위가 있다.

쌀뚝바위에는 어느 스님이 바위 밑의 굴을 지팡이로 우연히 파보니 쌀이 나오자 욕심이 생겨 며칠 후 다시 지팡이로 쑤셨더니 쌀은 나오지 않고 피만 나왔다는 전설이 전한다.

언제나 도로 공사가 마무리되고 또 공사가 끝나면 이 구룡고개는 어떻게 변해 있을지 참으로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용바우라고 일컫는 제2봉인 일광봉(348미터)은 용이 살았던 전설 때문인지 용바우고개라는 해설판이 보이는데 청과 흑 및 청흑 세 마리의 이무기가 승천을 기다렸으나 서로 먼저 승천하려는 욕심으로 사이가 나빠져 서로 싸움만 하다가 승천 기회가 있었음에도 승천하지 못하였고 그 이후 이곳 용바위에서 싸움을 그쳐 지금도 금병산에 있는 세 군데의 굴에서 승천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전설의 내용이다.

대부분 고개라 함은 안부를 말하는데 이곳 용바위고개라는 이름은 왜 정상부에 사용되고 용바위고개 설명판 역시 왜 이곳 정상에 세워졌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일광봉이자 용바위고개란 이곳 정상에서 추억을 남기고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그곳으로 약간의 조망이 열리는데 오늘 이 산객이 금병산 노루봉으로 오르기 직전까지 도로를 타고 걸었던 자운동쪽 아파트 단지들과 그 뒤로 펼쳐진 관암지맥의 갑하산 능선이 아름답고 그 관암지맥 마루금 뒤로는 희미하게 계룡산 정상부가 하늘금에 맞닿아 있는 모습으로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다시 시원한 물 한모금으로 갈증을 풀어 낸 후 곧바로 출발이다.


그 용바위고개이자 일광봉을 지나니 등로에는 더욱 많은 낙엽들이 떨어져 있어 운치를 더해주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흙길은 동네를 산보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을 진행하게 만들고 있다.

안부를 지나 오르니 사각탁자와 우측으로 보덕봉까지 2.7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지점에 도착을 해 좌표를 보니 246.9 무명봉이다.

계속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칡넝쿨 지대가 나타나는데 등로는 열려 있어 어려움 없이 통과하여 잠시 후 벤취쉼터2개가 보이는 곳에서 심호흡 한번 가다듬고 다시 출발한다.


벤취쉼터 2개가 보이는 지점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86번 송전탑이 등로 우측으로 보이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 같은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아무 이름도 없다.

다만 등로 좌측으로 증골고개라는 지명이 보여 찾아 보니 단지 유성구 구룡동에 있는 고개 정도로만 표기되어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다시 출발하려는데 능선 오르는 입구에 이제 보덕봉까지 진행 방향으로 1.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 와 사진 한장 남기고 오른다.


잠시 오르니 지독한 칡넝쿨들이 앞을 가로막아 잠시 주춤거리다 힘들게 그 칡넝쿨 지대를 빠져 나가고 다시 산책로처럼 이어지는 환상의 등로를 따라 무심으로 걷다 보니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아저씨 한분이 도토리와 밤을 줍다가 이 산객이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빠진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사각탁자와 벤취쉼터 및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곳의 이정표에는 보덕봉까지 1.7 Km 거리란 표기가 되어 있어 이미 지나 온 비포장 임도를 닮아 있던 안부에서의 거리보다 더 늘어나 있어 신뢰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사각탁자가 있었던 무명봉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여전히 뚜렷하고 잡목 하나 없이 동네 산책로를 걷는 기분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

잠시 더 걷다 보니 이 산객이 자주 들리는 동네 청룡산 둘레길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고 그렇게 여유롭게 전진하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지도상 198미터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봉우리가 아닌 능선상 198봉을 지나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르니 등로가 좌측으로 크게 휘어져 가는 봉우리에 벤취쉼터와 이정표가 서 있는데 어느 등산객이 쉬고 있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그 무명봉을 넘어 좌측으로 꺽어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묘지지대가 펼쳐져 있다.

아직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잘 진행되고 있어 생각보다 일찍 산행이 마무리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다시 나타나는 벤취쉼터 2개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눈 앞에 갑자기 길게 이어지는 묘지지대가 펼쳐지고 그 묘지지대 위 저 멀리 보덕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잠시 사진 몇장 더 남기고 전진한다.


묘지들을 우측에 두고 좌측 가장자리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 묘지 아래 공사 현장과 마을들을 지나 저 멀리 올해 마무리한 식장지맥 산줄기들이 어른거린다.

계족산도 보이고 그 주위로 이어지는 식장지맥 마루금인데 이 식장지맥 역시 시작은 오래 전 해 놓고 마무리는 올해 들어 어렵게 했으니 대전 근방의 산줄기 산행은 모두 시작과 마무리의 기간이 길게 늘어지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대전시내와 식장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걸어가니 드디어 묘지지대가 끝이나고 등로는 다시 능선으로 접어 드는데 진행하여 얼마 가지 않으니 곧바로 또 다른 비포장 임도 안부가 나타난다.

대전시 유성군 덕진동에 있는 고개로서 지도를 살펴봐도 아무 이름도 없는 무명안부이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참으로 힘들게 구룡달전로를 따라 고갯마루 정상으로 올라 와 다시 좌측으로 공사중인 포크레인 도로를 타고 절개지 방향으로 들어가니 경사도가 심해 몇번인가 왔다리 갔다리 해 보지만 도저히 올라 갈 방법이 없다.

혼자 씩씩거리며 그 높은 절개지 앞에서 갈팡질팡하며 투덜대니 구룡고개 정상부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인부들도 미안한지 못들은 척 외면하고 그렇게 10여분 고민하다 도저히 방법이 없어 고사장 절개지 가장 우측의 가시나무 경계면으로 가 어렵게 그 가시나무들을 이용해 올라 본다.

다시 나타나는 나즈막한 절개지를 타고 올라 공사장 절개지 상단부로 오르니 한쪽에 오봉산까지 0.6 Km 거리라는 이정표가 서 있고 지나온 방향으로는 구룡고개에서 0.1 Km 올라 왔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눈에 보인다.

그 정상부에서 지나 온 건너편 절개지와 공사중인 구룡고개 그리고 방금 전 너무나 힘들게 올라 온 이곳 절개지를 살펴보니 아찔하기만 한데 동물이동통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후답자들은 또 어떻게 이 구룡고개를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는 시간이었다.

 

참으로 힘들게 구룡달전로를 따라 고갯마루 정상으로 올라 와 다시 좌측으로 공사중인 포크레인 도로를 타고 절개지 방향으로 들어가니 경사도가 심해 몇번인가 왔다리 갔다리 해 보지만 도저히 올라 갈 방법이 없다.

혼자 씩씩거리며 그 높은 절개지 앞에서 갈팡질팡하며 투덜대니 구룡고개 정상부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인부들도 미안한지 못들은 척 외면하고 그렇게 10여분 고민하다 도저히 방법이 없어 고사장 절개지 가장 우측의 가시나무 경계면으로 가 어렵게 그 가시나무들을 이용해 올라 본다.

다시 나타나는 나즈막한 절개지를 타고 올라 공사장 절개지 상단부로 오르니 한쪽에 오봉산까지 0.6 Km 거리라는 이정표가 서 있고 지나온 방향으로는 구룡고개에서 0.1 Km 올라 왔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눈에 보인다.

그 정상부에서 지나 온 건너편 절개지와 공사중인 구룡고개 그리고 방금 전 너무나 힘들게 올라 온 이곳 절개지를 살펴보니 아찔하기만 한데 동물이동통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후답자들은 또 어떻게 이 구룡고개를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는 시간이었다.

 


공사중인 절개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다시 뚜렷해지고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져 진행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방금 전 만났던 절개지 정상부의 이정표에서 다시 0.1 Km 를 더 걸어 왔다는 이정표를 만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소나무 등로를 지나 진입금지 안내판과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등로 우측으로 구즉초등학교로 내려갈 수 있는 이정표이다.

구즉동은 대전광역시 유성구의 북쪽에 위치한 행정동으로서 대덕 테크노벨리와 대전위생매립장이 소재하며 관평동과 송강동 및 용산동 등 11개 법정동을 관할하는데 이 중 관평동의 동아울 뒷산에서는 백제 때의 유적이 발견되었고 배울에서는 삼국 시대 초기의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송강동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유적지가 발굴된 지역으로 용산동 검재들에는 고려 시대의 특수촌락인 금생소가 있었다고 전한다.

여지도서(공주)에는 덕진현(고려 시대에 현 유성구 덕진동 일대를 관할하던 행정구역)의 동쪽 7리 거리에 금생소가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모든 유적은 이 일대의 거주의 역사가 적어도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알 수 있으며 원래 조선 시대의 공주목 구즉면에 해당하였다.

여지도서(공주)에는 동화리와 백운동리 및 둔곡리 등 6개 마을이 편제되어 있으며 이 중 둔곡리는 둔곡동이라는 법정동으로 존속하고 있다.

호구총수(공주)의 구즉면에는 둔곡리와 용산리, 구룡리, 관평리 등의 지명이 확인되는데 이들은 현재 둔곡동과 용산동, 구룡동, 관평동이라는 법정동으로 남아 있으며 1895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회덕군 구즉면으로 편제되었다.

조선지지자료(회덕)에는 관할 내 주요 마을에 대한 우리말 지명이 확인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두노실(현 둔곡동), 관들(현 관평동), 탑선골(현 탑립동), 다리골(현 구룡동), 쇠일(현 금탄동) 등이다.

1914년 봉산리와 주성리, 송강리, 설목리의 각 일부와 탄동면의 안기리 일부를 병합하여 대전군 구즉면으로 재편되었고 1989년 대덕군 일대가 대전시에 편입되면서 대전직할시에 속하였다가 1995년 대전광역시 유성구 구즉동으로 되었다.

대전과 유성은 참으로 많이도 내려왔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곳 구즉동은 처음 접해보는 지명이름이라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듯 생소하기만 하다.

 

구즉초등학교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를 지나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우측 등로에는 오르막 나무계단이 길게 설치되어 있어 직감적으로 오봉산으로 향하는 등로로서 좌측 등로는 그 오봉산을 우회하는 등로처럼 보여 무조건 나무계단을 타고 정상부로 향한다.

잠시 후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전위봉으로 오르고 평이한 등로를 따라 아름다운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운동시설들과 팔각정자가 세워져 있는 오봉산 정상에 도착을 해 주위를 둘러보며 추억 몇장 남겨 본다. 

오봉산(241봉, 정상석, 운동시설과 평상, 희님 정상판과 이정표)은 대전광역시의 북쪽 유성구 봉산동과 구룡동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241미터로서 산봉우리가 다섯 개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조그만 봉우리까지 합하면 그보다 많다고 한다.

 

오봉산의 다섯 봉우리에는 가끔 다섯 선녀가 내려왔다 주위를 살펴보고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다.

오봉산(241)과 관련된 이야기가 이곳 오봉산이 있는 봉산동에 전해져 내려오는데 봉산동을 찾아보니 봉산동은 동쪽으로는 신탄진동, 서쪽으로는 구룡동, 남쪽으로는 송강동, 북쪽으로는 금고동과 접해 있으며 백제시대에는 우술군, 신라시대에는 비풍군, 고려시대에는 공주군, 조선시대에는 공주군 구즉면에 속하는 지역이었으며 1895년(고종 32) 회덕군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박산리와 신암리, 후파리, 봉암리, 작동 일부를 합하여 봉산리라 하고 대전군 구즉면에 속했다가 1935년 11월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함에 따라 대덕군 구즉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대전시의 직할시 승격과 함께 대전직할시 유성구 봉산동이 되었고 1995년부터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산동이 되었으며 행정동은 구즉동이고 동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봉암리와 오봉산의 글자을 따서 지은 것이다.

뒷바구니와 바구니 및 청계뜸 등의 옛마을과 긴 구렁이가 살았다는 진구렁, 부엉이가 살았다는 부엉바위, 신구교, 오봉산 등이 있고 보호수로 바구니마을에 수령 3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데 느티나무에서 돋아나는 잎을 보고 잎이 동시에 피면 풍년이 들고 여러 차례 나누어 피면 흉년이 든다고 하였으며 예전에는 이 나무를 신목으로 받들어 해마다 대보름 전날 목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오봉산은 산봉우리가 5개로서 자손대대로 영화를 누릴수 있는 명당이 있다고 하는데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매우 배고픈 사람이 밥상을 받는 형상으로 복이 생기는 곳이라고 한다.

진구렁 골짜기에는 6월이 되면 물맛이 좋은 샘이 솟았다고 하나 지금은 없어졌으며 교육기관으로는 1937년에 문을 연 구즉초등학교가 있다.

잠시 더 머물며 주위 풍경을 살펴보고 이제 오봉정 우측을 살펴보니 저 멀리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이 펼쳐져 있어 다시 눈과 마음을 빼앗겨 본다.

 

오봉산 우측인 동쪽으로 갑천이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 멀리 금강이 보이는데 그 갑천과 금강이 만나는 곳 우측으로 올 해 초 마무리를 했던 식장지맥 마지막 지점의 한국타이어 공장과 그 뒤로 우뚝 솟아 있는 금강엑슬루타워아파트 단지들이 눈에 확 들어 온다.

그 갑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은 불무산 자락에 가려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고 신탄진 지나 저 멀리 대청호 근처의 구룡산인지 청주의 샘봉산인지 모르는 봉우리 하나가 눈길을 붙잡는다.

생각지도 못한 조망과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오봉정 좌측의 이정표가 서 있는 곳으로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오봉산을 떠나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활엽수 낙엽이 등로에 깔려 더욱 푹신하게 만들고 곧이어 15번 송전탑을 통과한다.

등로는 여전히 뚜렷한 참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길주의 구간도 없이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니 묘지들을 지나 또 다시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지점에 도착을 하고 조금 더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세종에서 유성과학길이란 안내판과 벤취쉼터 그리고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사거리 비포장 임도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는 작업하고 버려진 생활 쓰레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 비포장임도 사거리에서 직진 방향으로 걸어 오르며 산행은 이어진다.

 

소문산성 방향으로 산행은 이어지는데 진행하다 보니 소문산성까지 진행은 되지 않고 그 중간에서 헤어져 맥 산줄기가 이어지고 궁금해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보인다.

소문산성은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테뫼식으로 축조된 석축 성곽과 산성 및 시도기념물 제23호로서 둘레는 약350미터에 유성구 신동과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박산리와 접경하고 있는 표고 200미터의 산위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성벽의 통과하는 지점은 내측에 5에서 10미터의 평탄지가 있고 성벽의 외고는 5미터 내외이며 곁으로는 석축인 것처럼 보이나 석축 하부에서는 토축이 확인되고 있어 토축 이후에 석축으로 개축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남문지의 너비는 약 4미터이고 동문지의 너비는 약 3미터 정도이며 3미터의 원형 우물터가 1개소 있고 성내 곳곳에서는 백제시대 토기편을 쉽게 수습할 수 있다.

성 아래에 금강이 흐르고 있어 삼국시대 수로를 이용해서 수송하는 것을 지킬 목적으로 축성한 듯하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축성하여 소문성이라고 전한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성 주변에는 군대가 주둔하였다고 하여 둔곡마을이 전해지고 군인들이 말을 달리고 훈련하였다고 하여 다릿골이라고 하는 지명이 전하고 있으며 군대가 크게 패하고 울고 넘었다하여 대곡터고개라고 하는 지명이 전하고 있어 이 성과 관련해서 흥미있는 지명이다.

소문산성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잠시 평이하게 걸어 진행하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 직진의 등로가 오르막 등로이고 지도에 215봉이란 표기가 보여 올라가 보니 높은 무인산불감시카메라만 외롭게 서 있는 잡풀 봉우리이다.

 

이곳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서 있는 215봉으로는 많이 올라오지 않은 듯 이후 등로가 사라져 좌측으로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그 215봉 오르기 직전 좌측으로 나 있던 뚜렷한 등로와 다시 만나 우측으로 이어가고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이곳도 역시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들이 보이고 있다.

다시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백운사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197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그 197봉을 지나 전진하니 뚜렷한 등로 위에 태풍의 영향인지 많은 잔가지들이 떨어져 진행에 어려움을 주고 조심하며 조금 더 걸어가니 썩어가는 소나무 고사목이 누워있는데 지도를 보니 진행 방향 우측으로 멀지 않은 곳에 191.9 삼각점 표시가 보여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등로를 따라 조금 빨리 걸어가니 등로에는 멧돼지들의 식흔이 어지럽게 널려있는데 어느곳은 아예 밭 경작지를 만들어 놓은 듯 보이는 곳도 있다.

잠시 후 대전411 삼각점이 박혀 있는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올랐던 등로를 뒤돌아 내려가 선답자들의 띠지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선답자들의 많은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191.9 삼각점 갈림삼거리로 복귀해 우측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멧돼지 목욕탕과 그 옆으로 몸을 문질러 껍질이 벗겨지며 죽어가는 소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붙잡고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내려 온 등로 쪽으로 백운사와 오봉산까지의 방향과 거리를 알리는 이정표도 서 있다.

크지 않은 백운사는 성몽정의 재실인 백운루가 있어 이름을 알리고 있는 곳으로 1900년대 초에 쓰여진 조선환여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백운루는 하산군 성몽정의 재실로 중종조에 세우기를 명하여 건립된 건물로 성몽정은 1506년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이 되었으며 대사헌, 한성부판윤,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조선초기의 문신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재실이 건립되기 이전에는 백운스님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창건한 백운사가 있었다고 하고 후에 창성 성씨 일족이 이곳에 거주하며 백운루라 칭하게 되었으며 이 누각은 당시 글을 가르치고 강론을 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는데 현재는 다시 백운사의 누각으로 이용되고 있다.

백운루는 여러 번의 수리를 거쳤으나 전체적인 형태나 부재의 결구 방식 등에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또한 2층 문루 형태의 강당 건축은 이 지역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사례중의 하나이다.

그 안부를 건너 다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능선으로 오르니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등로가 열리는데 등로 좌우측으로는 가끔 보이는 커다란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로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관목들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다.

잠시 후 우측 191.9봉에서 직접 내려 와 마루금에 접속하는 갈림삼거리를 지나 안부를 통과하고 멧돼지들이 밭 경작지를 만들어 놓은 식흔들을 지나 진행하니 몇 번 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 주의가 필요한 지점들이다.

짧은 알바를 하고 뒤로아 와 진행하니 갈림삼거리인 149.9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좌측 등로를 따르니 다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14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145봉을 지나 여전히 나타나는 갈림길에서 우측의 등로를 따르니 또 다시 나타나는 갈림삼거리봉에서도 우측 등로를 따르고 곧이어 공사 소음이 들리면서 깊은 골짜기 위 절개지 상단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이 뱀골고개로서 이전에는 평범한 비포장 임도의 안부였는데 이제 넓은 도로를 새로 개설하는지 거대한 공사가 벌어지고 아직 완공되지 않은 동물이동통로도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곳으로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절개지 상단 좌측 경계를 타고 조심하며 공사장 바닥으로 내려 가 본다. 

뱀골고개는 둔곡동과 신동을 이어주는 비포장 임도였는데 이제는 거대한 신설 도로 공사가 진행중이고 새로운 도로가 개설되면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뱀골고개에 대한 자료가 없어 이뱀골고개가 위치한 둔곡동의 자료를 찾아 보니 둔곡동은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동으로서 동쪽으로는 금고동, 남쪽으로는 구룡동, 북쪽으로는 신동, 서쪽으로는 세종특별시 금남면과 접한다.

백제시대에는 소비포현, 신라시대에는 적오현, 고려 초기에는 공주부에 속하였다가 조선 초기에는 공주군 구즉면에 속하는 지역이었으며 1895(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회덕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용두리와 공주군 명탄면 학봉리 일부를 합하여 둔곡리라 하고 대전군 구즉면에 속했다가 1935 11월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함에 함께 대덕군 구즉면에 편입되었으며 1989 1월 대전시가 직할시로 승격하자 대전직할시 유성구 둔곡동이 되었고 1995년부터 대전광역시 유성구 둔곡동이 되었다.

행정동은 구즉동이고 동 이름은 신라 문무왕 때 김인문이 이곳에 군사를 주둔시켰다는 데서 유래한다.

두니실, 덕진재, 새터골, 용머리, 증골 등의 옛마을과 도치골, 서산터, 쑥바위, 황새울 등의 골짜기, 숯구덩이, 신금터, 통매 등의 야산이 있다.

신동은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동으로서 동북쪽으로는 금고동과 금탄동, 남쪽으로는 둔곡동, 서쪽으로는 연기군 금남면, 북쪽으로는 충청북도 청원군과 접한다.

백제시대에는 우술군, 신라시대에는 비풍군, 고려시대에는 공주군, 1895(고종 32)부터는 공주군 명탄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대리, 녹동리, 신흥리가 합쳐져 신동리가 된 뒤 대전군 구즉면에 속했다가 1935 11월 대덕군 구즉면에 편입되었으며 1989 1월 대전시의 직할시 승격에 따라 대전직할시 유성구 신동이 되었고 1995년부터 대전광역시 유성구 신동이 되었다.

행정동은 구즉동이고 동 이름은 일제강점기의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신흥리와 녹동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가장골, 녹골, 산지뜸, 양지편, 제집말 등의 옛마을과 곽바위, 광새골, 꼽박골 등의 골짜기, 야산인 진둥날( 100미터), 등곡들, 멍미들, 바람실, 샛벽, 암솔 등의 옛들판이 있다.

 

곽바위에는 힘센 장사만이 열 수 있는 보물 곽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하고 문화재로는 소문산성(대전광역시기념물 16)이 있는데 고구려 보장왕 때 연개소문이 쌓아 소문산성이라 불렸다는 전설이 전한다.

뱀이 많이 나서 뱀골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여전히 궁금하기만 하다.
절개지 경계를 따라 설치된 좁고 길게 이어지는 시멘트 계단을 따라 조심하며 내려가니 드넓은 비포장 도로가 나타나고 조만간 포장하면 꽤 넓은 신설 포장도로가 개설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도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중장비와 사람들이 공사를 진행중이고 좌측으로는 둔곡교차로란 도로표지판 뒤로 구즉세종로의 둔곡교차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뱀골고개에서 변해가는 풍경들을 사진에 담고 공사중인 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이어지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다시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등 뒤로 따가운 햇살을 느끼며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가파르게 오르니 그 도로가 끝나는 지점 위로 창녕성공 묘지가 보이는데 이 묘지 역시 백운사와 중종반정과 관련이 있는 성몽정의 후손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묘지 위 잡목들을 헤치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리끼다 소나무들이 보이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131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담아 본다.

 

그 131봉을 지나 조금은 더 거칠어지는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커다란 잡풀속에 묻혀 있는 묘지를 통과하고 다시 나타나는 묘지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밭 경작지가 보이면서 저 멀리 드넓은 신동지구 공사현장이 펼쳐지는데 생각보다 드넓은 공사현장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신동은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동으로서 동북쪽으로는 금고동과 금탄동, 남쪽으로는 둔곡동, 서쪽으로는 연기군 금남면, 북쪽으로는 충청북도 청원군과 접하고 백제시대에는 우술군, 신라시대에는 비풍군, 고려시대에는 공주군, 1895년(고종 32)부터는 공주군 명탄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대리, 녹동리, 신흥리가 합쳐져 신동리가 된 뒤 대전군 구즉면에 속했다가 1935년 11월 대덕군 구즉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대전시의 직할시 승격에 따라 대전직할시 유성구 신동이 되었고 1995년부터 대전광역시 유성구 신동이 되었으며 행정동은 구즉동이고 동 이름은 일제강점기의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신흥리와 녹동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가장골과 녹골, 산지뜸, 양지편, 제집말 등의 옛마을과 곽바위와 광새골, 꼽박골 등의 골짜기 야산인 진둥날(약 100미터), 등곡들, 멍미들, 바람실, 샛벽, 암솔 등의 옛들판이 있다.

곽바위에는 힘센 장사만이 열 수 있는 보물 곽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하고 문화재로는 소문산성(대전광역시기념물 16)이 있는데 고구려 보장왕 때 연개소문이 쌓아 소문산성이라 불렸다는 전설이 전한다.

그 밭 경작지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공사현장 쪽으로 걸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진행한다.

 

농작물 수확을 끝내고 새로 갈아 놓은 밭 경작지 가장자리를 타고 진행하니 다시 밭이 끝나면서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지대를 넘어 밭 경작지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가니 드디어 공사 현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타고 공사가 한창인 곳으로 내려간다.

살펴보니 이곳은 대덕특구의 일부로서 세종시와의 접경지인 신동지구인데 과학벨트 조성 단지처럼 보인다.

이곳은 고래뜰이란 마을로서 고래실이라고도 하는데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박산리에 있는 마을이며 박산리는 꾀꼬리봉이 북쪽에 위치하여 낮은 산지를 이루고 있고 금강의 지류인 삼성천 연안의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고래실과 작약동이 있는데 고래실은 고랫들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작약동은 박산리의 본 마을로 뒷산의 모양이 작약과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에 속해 있다가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으로 편입되었다.

이 공사가 완공되어 수많은 건물들이 들어서면 이곳은 또 어떻게 변해있고 후답자들은 또 어떻게 통과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 공사현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드넓은 평지가 펼쳐지는데 그곳에는 토지 정지 작업만 해 놓고 공사가 진행되지 않아 잡풀들만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 죽어가는 풍경이 펼쳐져 있고 그 끝자락 저 멀리 전봇대가 서 있는 곳으로 이제부터 올라야 할 꾀꼬리봉 방향의 산행 들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공사가 진행되지 않아 편안하게 진행하지만 공사가 모두 끝나고 많은 건물들이 들어오면 또 어떤 도로와 등로를 타고 진행이 될련지 벌써 걱정과 궁금증이 생긴다.

 

잘 다져 놓은 공단 부지를 타고 능선 방향으로 걸어가니 공단 부지 가장자리로 건설된 1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곧바로 능선으로 진입을 하고 살펴보니 이곳 등로 역시 여전히 드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열려 있어 진행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좋은 비포장임도 같은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주변으로 잘 조성된 높은 위치의 사람이었는지 모두 널찍하고 잘 조성된 묘지들이 자주 나타나고 커다란 참나무가 서 있는 137.8미터의 안부도 지나며 진행이 되고 있다.

 

안부를 지나 오르니 잡목들과 관목의 참나무가 보이고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145.9미터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갈림삼거리인 그 무명봉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완만하게 휘어져 진행된다.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밤송이들이 많이 떨어져 있어 살펴보니 쥐밤들로서 대부분 수확되어 벌어진 밤송이들만 보인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3기가 나타나고 그곳 정상부에서 좌측을 살펴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관암지맥 마루금과 그 우측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우회한 군부대와 한화쪽 산줄기가 보인다.

조망을 살펴보고 눈 앞에 펼쳐진 소나무 밭으로 내려가니 가지치기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 진행이 불가능 하기에 그 소나무 밭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잡목과 가시나무들을 헤치고 너무나 힘들게 진행하니 잠시 후 묘지7개가 2열로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올라 마루금 우측을 살펴보니 세종시쪽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보인다.

 

다시 그 묘지지대를 넘어 무명봉으로 오르니 이곳 역시 지독한 잡목과 키 작은 소나무들이 우거져 진행에 상당한 고통을 느끼고 힘들게 그 잡목 구간을 빠져 나가니 다시 잡목과 잡풀들이 가득한 늪 지대 가운데로 거대한 아카시아 나무들이 쓰러져 있는 등로를 만나 너무나 어렵게 진행되는 시간이다.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이리저리 사라진 등로를 찾아 잡목과 가시나무들을 헤치며 그 늪지대를 빠져 나오니 눈 앞에 제법 곱게 피어 난 억새가 한들거리는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고 그곳을 치고 오르니 드디어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선답자의 띠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임도 우측으로 드넓은 인삼포가 펼쳐져 있는데 눈 앞으로 승용차 2대가 손살같이 달려 내려가기에 이상하게 생각하며 걸어가니 그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난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도로를 따르니 소문산성 방향에서 0.6 Km 지나왔고 꾀꼬리봉까지 0.7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박산리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소나무와 잡목들로 정상 마루금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마루금 좌측으로 약간 비켜 선 박산리쪽 비산비야를 타고 올라 온 방향이 눈에 들어 온다.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고갯마루로 내려가며 이제부터 올라야 할 나무계단과 그 옆으로 서 있는 안내도를 사진에 담고 그 박산리 고갯마루를 출발한다.

 

꾀꼬리봉까지 0.7 Km와 장군봉까지 1 Km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보고 계단을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또 다시 잘 가꿔진 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 뒤 저 멀리 이어지는 산줄기를 살펴보니 우측 저 멀리 용바위고개부터 도덕봉과 오봉산을 지나 191.9미터 삼각점봉과 상전벽해로 변해 버린 신동지구가 있는 고래뜰 도로가 시원스럽게 펼쳐진 풍경들도 눈에 들어 온다.

다시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가파르게 걸어 오르니 이정표와 나무데크 및 벤취쉼터가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하는데 서래야 박건석님은 이곳을 216미터의 소문성이라 했는데 지도를 보면 실제 소문성은 소문산성의 가장 높은 정상으로서 관암지맥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한참을 벗어난 지점에 있는데 왜 이곳을 소문성이라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생은 하지만 믿음이 가지 않으니 무시하고 그곳 벤취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식으로 허기를 면하고 다시 진행하기로 한다.

 

그 벤취쉼터가 있는 나무데크에서 한동안 쉬며 허기를 달래다 보니 땀이 식으면서 약간의 한기를 느끼고 방풍의를 입고 다시 출발하니 소나무 등로가 예쁘게 열려 있다.

잠시 소나무 능선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금강 넘어 세종 부강과 부용산업단지들이 내려다 보이고 등로 좌측으로는 대박리 들판 지나 호남선 KTX 철로가 보이고 그 뒤로 나즈막하게 펼쳐진 세종시의 괴화산에서 비학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전월지맥의 전월산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등로 좌우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들을 감상하며 뚜렷하게 나 있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가파른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곧이어 이정표를 만나는데 이제 꾀꼬리봉까지는 0.1 Km 가 남아 있다는 반가운 이정표이다.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이제 관목의 참나무 등로를 따라 평이하게 걸어 전진하니 나무데크와 팔각정자 및 대전305란 삼각점 그리고 커다란 정상석이 서 있는 271.7미터의 꾀꼬리봉에 도착을 해 배낭 내려 놓고 주위 풍경을 살펴보며 잠시 더 쉬어 가기로 한다.

하지만 이 꾀꼬리봉에 대한 어떠한 자료도 찾을 수 없어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팔각정자로 오르면서 살펴본 남쪽 방향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었던 관암지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고 그 우측 나뭇가지 뒤로 군부대와 한화공장 때문에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우회한 마루금도 살짝 보이는데 선명하지는 못하다.

그 산줄기 넘어 유성으로 이어지는 곳에 솟아 있는 아파트들도 보일듯 말듯 머리만 내밀고 있고 그 뒤 저 멀리 대전의 산줄기들은 이제 박무 현상으로 분간조차 하기가 쉽지 않다.

 

이제 팔각정자 정상에서 등로 우측인 북쪽 방향을 살펴보니 금강이 휘돌아 가는 모습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금호리 세종부강일반산업단지와 그 아래 세종부용농공단지가 펼쳐져 있으며 금강 좌측 넘어로는 오늘 마지막으로 올랐다 내려가 산행을 마무리해야 할 부용봉과 부용2리 마을이 금강변에 붙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기에 조금 더 머물며 조망을 즐기고 다시 나무데크로 내려 가 추억 몇장 더 남겨 본다.

 

잠시 더 머물다 아무 생각없이 정상석 옆으로 나 있는 장군봉 가는 뚜렷한 등로로 내려가다 이익도 없는 짧은 알바를 하고 뒤돌아 올라 와 나무데크를 타고 건너편으로 나 있는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고속도로같은 등로가 낙엽을 가득 뿌린 채 멋지게 뻗어 있다.

잠시 가파른 내리막 임도 같은 등로를 따르니 벤취쉼터 2개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니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이 깔려 있어 한동안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커다란 참나무들이 보이는 안부를 지나 사각정자와 이정표를 지나며 살펴보니 우측으로 부용주차장 갈림삼거리 이정표로서 진행 방향으로는 봉정사까지 0.4 Km란 거리표시가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임도같은 등로를 따르니 최근에 생긴 묘지를 만들기 위해 개설된 듯한 임도가 좌측에서 합류되는 갈림삼거리를 지나 242봉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는 좌측으로 90도 꺽어 진행 된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우측 직진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무명묘지가 있는 242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만 주렁주렁 달려있어 이곳이 242봉임을 알려주고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갈림삼거리로 내려 와 이제 우측으로 90도 꺽어 내려가니 벤취쉼터 2개를 지나 산악기상관측장비를 통과한 후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등로는 임도 건너 능선으로 이어질 것 같지만 우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되고 있다.

 

우측 봉정사 0.5 Km란 이정표 방향을 따라 비포장임도로 걸어 내려가니 다시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는 좌우측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인다.

그 포장도로 앞 전봇대 옆에 이정표가 서 있고 살펴보니 포장도로 따라 우측으로 봉정사까지 0.4 Km란 방향과 거리 표시가 보이고 지나온 방향으로는 꾀꼬리봉과 장군봉 그리고 광덕사 방향과 거리가 표기되어 있는 갈림삼거리이다.

이곳에서 직진의 짧지만 가파른 절개지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능선으로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221.6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이어지는 큰 굴곡없는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바위들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바위지대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잡목 사이로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에 가지가 둘인 183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사진 한장 남겨 보는데 스마트폰의 오룩스맵 고도와 실제 고도 차이가 무려 16미터나 차이가 있어 보정이 필요해 보인다.

 

183봉을 지나니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힘들게 자라고 있는 나무가 보이고 다시 이어가니 등로는 좁아져 있지만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뚜렷한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태풍의 영향인지 커다란 나무들이 쓰러져 등로를 가로막고 있어 구부리거나 뛰어 넘으며 곡예 산행을 하고 그렇게 조금 더 전진하니 이제부터 커다란 참나무 등로가 열리면서 편안하게 진행하는 시간이다.

다시 안부를 지나 둔덕으로 올랐다 내려가니 우측으로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이 보이고 곧이어 안부로 내려갔다 오르니 철봉을 지나 고사목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201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무명봉을 지나 날등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아카시아 나무 군락지를 지나 등로가 사라지는 잡목지대로 접어 든다.

원 지맥 등로는 좌측의 지독한 잡목지대로 이어지지만 큰 의미가 없기에 우측 마을 방향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가니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과 밭 경작지를 지나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하고 그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진행 방향으로 멋진 민가들과 도로 공사중인 현장 넘어 185.6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임도 좌측에서 농부 한명이 콩 수확을 하고 있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콩도 얼마 열리지 않고 수확한다 해도 돈도 얼마 되지 않아 농사를 그만 둬야 하지만 묵힐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짓는다는 한숨에 안타까움이 묻어 난다.

다시 인사를 건네고 진행을 이어가니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도로 좌측으로는 수확이 끝난 복숭아 과수원이 보이고 곧이어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올라 한창 도로 공사중인 금병로2차선으로 올라 도로를 건너 우측 아래로 보이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산행을 계속 이어간다.

 

확장 공사중인 금병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니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들어가며 뒤돌아 보니 잡목이 우거져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한 원마루금과 농부를 만났던 밭 경작지 그리고 이 산객이 우회한 송전탑 등로가 한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비포장 임도를 따라 올라가니 벌목 후 호두나무를 식재한  벌거숭이 능선이 나타나고 그 가운데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계속 오르니 그 정상부 바로 아래 물통에서 쏫아져 나오는 시원한 물줄기가 보여 잠시 세수도 하고 몸도 닦아 내며 쉬었다 오르니 드디어 조림지 끝자락에 도착을 해 능선으로 오른다.

주능선에 올라 좌측으로 이어지는 아카시아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과 준희님이 걸어 놓은 부용봉과 용나무가는길이란 이정판이 보이는 185.6봉에 도착을 한다.

 

그 185.6봉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돌아가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안부를 건너 시멘트 포장도로에 안착을 하는데 도로 우측 아래로는 민가 한채가 내려다 보인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오르니 도로 좌우측으로 그물망이 쳐져 있고 조금 더 전진하니 도로 한가운데를 높은 철망으로 가로막아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다.

이리저리 둘러보다 어쩔 수 없이 도로 좌측의 그물망을 넘어 과수원으로 오르며 어렵게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과수원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높은 철망이 따라오고 한동안 원등로를 우측에 두고 그 철망을 따라 좌측으로 크게 돌아 능선 끝자락으로 오르니 그곳까지 철망이 쳐져 있는데 위쪽에는 수확이 끝난 복숭아 과수원이다.정상부에서 드디어 과수원 철망은 우측으로 사라지고 벌목지를 타고 능선을 넘으니 진행 방향으로 드넓은 목초지가 펼쳐지는데 그 좌측으로 비어있는 거대한 축사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그 비어있는 축사 앞으로 나 있는 잡풀밭을 따라 걸어가며 등로 우측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이 길게 이어지고 그 우측 저 편으로 오늘 하루의 짧아지는 해가 기울어 가고 있다.

 

그 축사 건물 앞을 통해 둔덕으로 오르니 또 다른 비어있는 창고 건물이 나타나고 그 앞에도 역시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데 관리가 되지 않으니 잡풀들만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 죽어가고 있다.

그 초원 넘어 저 아래에는 금강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그 금강 넘어로는 부강면의 안산과 용대이산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한동안 풍경을 즐기고 빈 축사인지 창고 건물을 우측에 두고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지독한 잡목들과 가시나무들이 발목을 붙잡고 사정없이 피부를 뚫고 들어오며 극심한 고통을 안겨준다.

 

너무나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 조금은 뚜렷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이제는 산초가시나무가 가을이 되면서 영글어 독한 가시로 변해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결국 약간의 피를 보며 힘겹게 걸어 오르니 죽은 나무들이 제멋대로 쓰러져 나뒹굴고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능선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보이지 않던 바위지대를 지나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193.6봉에 도착을 해 안도의 깊은 한숨을 내쉬어 본다.

 

그 193.6봉을 지나 내려가니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낙엽 깔린 등로를 잠시 더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마사토가 깔려 있는 미끄러운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바위들이 자주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동안 바위들을 타고 오르니 드디어 부용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서래야님과 다른 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빛바랜 종이코팅지만이 이곳이 226.1미터의 부용봉임을 알려주고 있다.

부용봉은 충청남도 연기군의 금남면 부용리(현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부용리)의 동쪽에 있는 봉우리로서 해발고도는 226.1미터이고 부용산이라고도 부른다.

이 산봉의 북쪽과 동쪽에는 금강이 흐르고 연꽃이 물에 뜬 연화정수형의 명당이 있다는 데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전하며 이 산봉 주위에 묘를 쓸 때는 비석 등의 석물을 하지 않는데 이는 이 산봉이 연꽃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산봉의 명당자리에 맞지 않는 사람이 묘를 쓸 경우 산봉 아래 마을에 불이 나므로 묘를 못 쓰게 했다고 한다.부용봉 정상은 나무들로 가려 생각보다 조망과 풍경은 썩 좋지 못한 편이다.

 

그래도 등로 좌측인 서쪽으로는 금강 위 아람찬교 지나 미호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 좌측 저 멀리 오늘 하루가 서산으로 기울며 두꺼운 구름속에서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등로 우측으로는 금강 넘어 부강면 쪽 마을들과 산줄기들이 조용하면서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이 산객의 마음을 안전시키고 있다.이제 오늘 산행도 서서히 찾아오는 어둠속에 마무리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부용봉을 지나 잠시 내려가니 커다란 참나무 두그루가 보이는 무명안부를 지나고 다시 오르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지도를 보니 마루금은 우측의 사면 등로로 이어지지만 직진의 오르막 능선 방향으로 멀지 않은 곳에 221.3미터의 삼각점봉이 있어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직진의 오르막 등로를 타고 빠르게 오르니 약간의 잡목들이 저항을 하지만 심하지 않아 무시하고 올라 청주316 삼각점이 박혀 있는 정상에 올라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그 221.3 삼각점봉에서 등로 좌측인 서쪽을 바라보니 금강 위 아람찬교와 그 뒤로 우측에서 좌측의 금강으로 합수하는 미호천이 서산으로 기울어가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그 뒤 저 멀리 하늘이 붉게 물들어 오는 아래 세종특별자치시의 원수산과 전월산 능선이 아름답게 빛나는데 저 전월산 역시 올해 전월지맥 산행을 하면서 막바지에 어렵게 올랐던 기억이 생생한 곳이다.

이렇게 고통과 힘든 산행은 오늘이 지나면 또 고운 추억이 되어 가슴속에 쌓였다가 언젠가 다시 소환하며 오늘을 기억하는 시간도 있을 거이다.

미호천 뒤로는 조치원쪽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부르지만 언제나 올라 볼 수 있을지 기약도 할 수 없고 아쉬움만 남긴다.

 

이제 그 221.3삼각점봉을 떠나 올라갔던 등로를 타고 빠르게 내려가니 등로 우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오늘 하루 앞길을 밝혀 줬던 햇살이 서산으로 기울며 붉은 빛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내려가며 우측 등로를 살펴 일몰이라도 한장 남기고 싶어 장소를 찾아 보지만 무성한 나뭇가지들이 허락하지 못해 이렇게 담은 것이 그나마 최선이었다.

하기사 스마트 폰으로 담는 사진이다 보니 이정도만 되도 감지덕지 해야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시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나와 이제 좌측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는 좌측으로 221.3삼각점봉을 두고 우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듯 진행된다.

키 작은 잣나무들이 보이는 안부를 지나 우측으로 빙돌아 가니 좌측으로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이 보이고 이제 평이한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가니 부용2리 원부용마을과 금강 그리고 부강면 마을들이 정면 방향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등로에도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하고 헤드렌턴 불빛 없이 진행하고자 조금 더 빠른 발걸음으로 걸어가니 내리막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 밭 경작지와 민가들이 보이는 부용2리 마을 뒤로 내려선다.

 

조심하며 밭 가장자리를 타고 민가 옆으로 내려가니 아직 수확하지 못한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내려가니 오늘 새벽에 주차시켜 놓은 애마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부용2리 마을회관 건물을 지나 부용2리 버스승강장이 보인다.

오늘 아침 버스를 탔던 추억을 잠시 떠 올린 후 포장도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드디어 금강 변에 도착을 해 오랜 시간 걸려 진행한 관암지맥 산행도 제3구간으로 무탈하게 마무리를 하는 시간이다.

 

오늘 아침에 애마를 잘 주차시키고 조금 기다렸단 67번 첫 버스를 타고 세종시로 나갔던 부용2리 버스승강장이다.부용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에 있는 리로서 금강 연안에 위치하여 평야가 형성되어 있고 부용봉이 위치하여 낮은 산지를 이루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새오개와 원부용이 있는데 새오개는 봉기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초오개 동쪽 밑에 위치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원부용은 부용리의 원 마을로 마을 뒤에 부용봉이 있어서 부용이라 칭하였으며 이곳에 연꽃이 물에 뜬 형국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에 속해 있다가 2012 7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으로 편입되었다.금강변에 들려 잠시 추억을 남기고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와 애마를 회수하게 될 것이다.

드디어 4년 6개월 이상 걸린 관암지맥 산행도 무탈하게 완주한 후 금강을 배경으로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금강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에서 발원하여 충청남북도를 거쳐 강경에서부터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도계를 이루면서 군산만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는 394.79 Km에 유역면적은 9912.15 Km2이다.

옥천 동쪽에서 보청천, 조치원 남부에서 미호천, 기타 초강과 갑천 등 크고 작은 20개의 지류가 합류하고 상류부에서는 감입곡류하면서 무주에서 무주구천동, 영동에서 양산팔경 등 계곡미를 이루며 하류의 부여에서는 백마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면서 부소산을 침식하여 백제 멸망사에 일화를 남긴 낙화암을 만들었다.

 

강경 부근에서 하구까지의 구간은 익곡을 이루어 군산과 강경 등 하항이 발달하였으며 종래 부강까지 작은 배가 소항하여 내륙수로로 크게 이용되어 왔으나 호남선의 개통과 자동차교통의 발달로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앞으로 얼마나 더 금강을 만나야 이 지맥 산행이 마무리가 될지 알수가 없지만 지금까지 만난 횟수도 적지 않으니 조만간 그 끝자락에도 도달을 할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걸어 본다.

원래 내려올 땐 양각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올라갈 예정이었는데 3일 연속 산행은 무리라는 판단으로 걷게 된 관암지맥 마지막 구간에서도 멋진 추억과 기억들을 남기고 기분 좋은 상태로 귀경하게 되었다.다음주에는 부산에서 준희님 헌정 산행이 있어 참석하고 싶은데 시간이 허락될지 몰라 아직도 신청을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시간만 흐르고 있다.이제부터 집에서 자꾸만 멀어지고 지독했던 잡목들과 잡풀들의 저항도 한풀 꺽이는 계절이 돌아 왔으니 남쪽으로 내려 가 계획했던 산행들을 진행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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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

 
20191026 관암지맥제3구간 반석역-금강.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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