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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성치지맥(금남·완)

성치지맥 마지막제2구간 솔재(솔치)에서 봉황천 합수점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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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북도 진안군과 무주군 및 충청남도 금산군의 성치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9년 10월 25일 (금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흐리고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으며 여전히 더위를 약간 느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9도에서 영상 20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신정리 신정버스승강장-금산로 2차선 포장도로-솔재(금산정수장 정문, 임마누엘수양관입구, 13번 금산로와 안용로의 경계지점 2차선 포장도로)-276.1 수준점-칡넝쿨지대-성덕봉(깃대봉?, 475.7봉, 무주404 삼각점)-팔각정자(502.5봉)-갈미봉(565.8봉, 정상판)-구봉(용두봉?, 598.9봉, 정상판)-이정판(갈미봉 0.8 Km와 솔재 2.5 Km)-이정표(투구봉 1.0 Km, 원동과 신동 1.5 Km)-무명묘2기-비포장임도-목사리재(635 대홍로 2차선 포장도로)-무명묘지2-지독한 잡목구간-434.2 무명봉-소나무등로-479.1 삼각점봉-31번 송전탑-457.9 무명봉-460.4봉 조망-467.9 무명봉-34번 송전탑-두어기재-잣나무 군락지-아카시아 등로-인삼포-수확된 인삼포-인삼포-지독한 잡목등로-498.2봉-철봉터널-아카시아 등로-지독한 잡목지대-490.3 무명봉-476.9 무명묘지봉-557.6 삼각점봉(마하산, 두로봉, 이원26 삼각점)-덕기봉(542봉, 정상판)-활공장-시멘트 포장도로-452.7봉 우회-능선진입-429.9 무명봉-446.1봉-36번 송전탑-430.6 삼각점봉(이원452 삼각점)-벌목지-지독한 잡목지대-시멘트 포장도로-조림사업지대-303.9 무명봉-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지대-멧돼지 목욕탕-반남박씨 가족묘-시멘트 포장도로-인삼포-칡넝쿨 지대-비포장임도 안부-서낭당고개(37번 무금로 2차선 포장도로)-벌목지대-불난 흔적-묘지지대-태양광발전 공사장-순흥안씨묘지-인삼포-가시나무 등로-무명안부-지독한 잡목지대-비포장임도-지하통로(통영대전간 고속도로) 통과-능선진입-공사장-창평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예천임공 묘지들-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빈 축사-청평로 2차선 포장도로-양양소류지(낚시터)-경주김씨 가족묘지-묵밭경작지-묘지 조망-비포장임도-능선진입-비포장임도 안부-산초나무등로-묘지 조망-물폐기길 2차선 포장도로-잡목등로-묘지2기-시멘트 포장도로-아카시아 등로-밭 경작지-238.6 갈림삼거리봉-245.1 무명봉-아카시아 등로-밭 경작지-잡풀안부-256.5봉-조선종실이공 묘지지대-시멘트 포장도로 이정표(솔바람길, 소사봉, 생태체험장)-대문바위-소사봉(309.1봉, 이원309 삼각점, 정상판, 솔바람길 안내판)-통나무계단-돌고래바위-안부 이정표(솔바람길, 소사봉, 생태체험장)-280봉 솔바람길 안내판-금강솔바람길 안내판-282.9 삼각점봉(이원24 삼각점)-솔바람길 이정표(기러기봉 생태체험장)-봉황산 금강솔바람길 안내판-권충민공순절비-용화로 2차선 포장도로-제원대교-금강 둑방도로-봉황천 합수점-성치지맥 산행종료-봉황천 둑방도로-제원교-68번 금강로 2차선 포장도로-제원삼거리-제원 버스승강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7.81 Km (스마트 폰의 Oruxmaps와 트랭글 기준)

               지맥산행 : 약 23.87 Km (솔재 또는 솔치에서 봉황천 합수점까지)

               접속구간 : 약 03.94 Km (신정리 버스정류장에서 솔재 또는 솔치까지 약 02.19 Km와 봉황천 합수점에서 제원면 버스정류장까지 01.75 Km)

산행트랙

20191025 성치지맥 제2구간 솔치-봉황천 합수점.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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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시간 : 익어가는 가을을 느끼며 약간의 잡목과 가시나무들의 저항속에 대체적으로 무난한 등로를 따라 환상의 조망을 즐기며 여유있게 진행하여 11시간 35분 (06시 41부터 18시 16분까)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03:45 집에서 애마로 금산읍사무에 도착 후 도보로 금산버스터미널까지 이동

                               05:48 금산버스터미널 내 기사식당에서 아침식사 (6,000.-)

                               06:00 남일면 신정리가 종점인 군내버스를 타고 신정리 종점에서 하차

                               06:41 신정 버스종점에서 하차 후 산행준비하여 13번 도로따라 성치지맥 마지막 구간 산행시작

                       올때 - 17:55 봉황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성치지맥 산행 종료

                               18:16 봉황천 합수점에서 도보로 제원교 넘어 제원면 버스정류장 도착

                               18:52 예정된 시간표보다 약 7분 늦게 도착한 금산군내버스로 금산읍사무소 근처에서 하차 후 애마 회수

                               19:15 금산웰빙24시 불가마사우나에 투숙 후 근처 순대국밥식당에서 저녁 해결 후 숙박 (10,000.- + 11,000.-)
성치지맥이란 ??? 

금남정맥 육백고지 남쪽 769미터봉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하여 충남과 전북 도경계를 따라 선봉(694봉), 성치산(670.4봉), 봉화산(670.6봉), 성덕봉(498봉), 구봉(599봉), 두어기재를 지나 덕기봉(542봉)에서 금산군내로 들어서 서낭고개, 소사봉(309봉)을 지나 금산군 제원면  저곡리 봉황천이 금강에 드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0.9 Km되는 산줄기로 봉황천의 좌측 물막이가 된다.

 

 

중반 이후로 거칠어진 등로로 힘들었지만 대체적으로 좋은 등로에 환상의 조망을 즐기며 익어가는 가을을 몸으로 느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성치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전라북도 진안군과 충청남도 금산군의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와 네이버의 지식백과  및 다음의 백과사전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오늘 오후 늦은 시간에 금산에서 약속이 잡혀 내려가야 하는데 오후 시간이 할 일 없이 그대로 지나갈 것 같아 손님에게 양해를 구해 저녁 시간으로 약속을 변경하고 나니 하루가 온전히 내것이 되었다.

새벽 일찍 내려 가 남아 있는 성치지맥 제2구간 산행을 마무리하고 싶어 준비를 하는데 약속시간까지 산행이나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데 진행하다 시간이 빠듯하다 생각하면 중간에 하산 해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하면 될 것 같아 진행하기로 한다.

결과적으로 약속이 중간에 사라지며 마음 편히 여유롭게 산행을 마무리하고 그렇게 또 하나의 맥 잇기 산행을 완주할 수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금산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올라 온 시간이 되었다.

오늘 산행 후 주말과 휴일은 또 다른 산줄기 한곳을 오르려던 계획이 너무 무리가 될 것 같아 오래 전 진행하다 중단된 관암지맥 마지막 구간을 마무리하고 올라가려고 생각하니 이번 주말과 휴일은 체력적인 부담없이 그저 안전하게 즐기고 올라가는 것만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생각보다 뚜렷하고 잡목도 많지 않은 평이한 등로를 따라 짙어가는 가을빛에 취하다 보니 어느새 덕기봉 직전의 542봉에 도착을 하고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환상의 조망이 발목을 잡아 잠시 배낭 내리고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에 심취해 본다.

제일 먼저 등로 좌측 뒤 남쪽을 살펴보니 용담면과 봉황천 지나 지난 구간 걸어 내려왔던 성치지맥 봉화산 줄기 넘어 저 멀리 진안의 말귀를 닮아 있는 마이산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줌으로 당겨 살펴보니 확실한 모습으로 그 옛날 만들었던 소중한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마이산은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남쪽 약 3 Km 지점에 있는 두 암봉으로 된 산으로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있는 두 암봉은 각각 동봉(수마이산)과 서봉(암마이산)이라고 한다.

두 봉우리의 모양이 말의 귀처럼 생겼다 하여 마이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신라 때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 불렸고 조선시대부터 마이산이라 불리기 시작하였다.

높이는 서봉이 687.3미터이며 동봉은 678미터로서 남쪽 비탈면에서는 섬진강 수계가 시작되고 북쪽 비탈면에서는 금강 수계가 발원한다.
산 전체가 거대한 바위이기 때문에 나무는 그리 많지 않으나 군데군데 관목과 침엽수 및 활엽수가 자란다. 4월에는 3㎞에 걸쳐 벚꽃이 만발해 진안군에서 주최하는 벚꽃축제가 열라는데 아쉽게도 동봉은 오를 수 없다.

마이산은 계절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르는데 봄에는 안개 속에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수목 사이에서 드러난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 귀처럼 보인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이산탑(전북기념물 35), 마이산줄사철나무군락(천연기념물 380) 등의 문화재와 은수사, 금당사 등의 고찰이 있다.

경관이 아름답고 특이하며 수많은 풍화혈이 발달하여 학술적 가치가 크고 1979 10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3 8 24일 전북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었다가 2003 10 31일 명승 제12호로 변경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과 조망에 지도를 펴 놓고 조금 더 상세히 살펴보니 마이산 주변으로 금남호남정맥 상 부귀산과 덕태산 그리고 성수산 줄기가 환상으로 펼쳐져 있어 눈길을 돌릴 수가 없을 지경이다.

 

 

덕기봉에서 환상의 조망을 즐기고 다시 진행을 이어가니 처음 구간보다는 약간의 잡목들과 특히 산초 가시나무들이 날을 세우고 통증을 유발하기에 산행 시간이 자꾸만 느려지기 시작하는데 마침 저녁에 약속된 지인으로부터 오늘 약속 지키기가 어렵다며 다음주에 다시 날자를 잡자고 연락이 와 마음 편히 걸어 본다.

그렇게 진행하여 서낭당고개를 지나 태양광 발전단지 공사가 한창인 벌목지대로 오르니 진행 방향인 북쪽으로 공사장 지나 저 멀리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이 우뚝하고 올 봄에 힘들게 걸었던 장령지맥의 대성산과 우측 앞쪽으로 천태산이 아름다운 산줄기를 이어가며 이 산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충청남도에서 가장 높은 서대산은 충북 옥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서대산은 금산의 깊은 산중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것 같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초기 이전에 서대산에 3개의 서대사가 있어 꽤 알려졌던 모양이고 서대사의 서편 기슭에 있는 현재의 원흥사 터에 서대사가 있었으며 고려말의 고승 취운당의 부도 등 큼직한 청석부도가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국내의 여러 절에 옛날 서대사에서 출판한 화엄경이 많이 있음을 보아서도 서대사가 절도 크고 불사도 활발했었음을 알 수 있다.

산의 형태는 땅속에서 그대로 솟아 오른것처럼 보이고 비래산(산맥으로 이어지지 않고 따로 떨어져 독립된 산)에 가까우며 북쪽으로는 잿말재, 남쪽으로는 비들목재, 남서쪽으로 민재를 지나 산줄기가 이어지지만 그 재들이 낮은데다가 서대산 자체가 워낙 우람하고 높이 솟아있어 주위의 모든 산들을 압도한다.
산세는 원추형 암산으로 곳곳에 기암괴봉과 깍아지른 낭떠러지 암반들이 많고 경관이 좋고 용바위, 마당바위, 선바위, 남근바위, 구름다리, 사자굴, 살바위, 개덕사, 개덕폭포 등이 있으며 주릉에는 석문, 견우장연대, 북두칠성 바위에 얽힌 전설이 있다.

서대산 정상에 서면 민주지산, 덕유산, 대둔산, 계룡산 및 대전시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서대산의 산길은 모두 가파르지만 암릉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타고 넘고 돌아오르는 등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다.

산행 중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경관이 좋고 아름다워 산타는 멋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장령지맥 산행을 하면서 오르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두번 올랐던 서대산이기에 다음에 다시 한번 더 올라 이곳을 살펴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름다운 서대산과 장령지맥 그리고 천태산 줄기를 살펴보고 통영대전간 고속도로를 통과해 비산비야의 마을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능선으로 올라 등로 좌측 북서쪽을 살펴보니 금산읍내를 지나 저 멀리 톱날같은 대둔산이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고 그 앞 라인으로 인대산과 월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도 선명하게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대둔산은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과 논산시 벌곡면 및 전북 완주군 운주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879.1 미터이며 부근의 오대산과 월성봉 및 천등산 등과 함께 노령산맥의 북부 잔구군을 형성하며 수십 개의 봉우리가 6 Km에 걸쳐 솟아 있다.

이 산은 북쪽으로 흐르는 유등천, 서쪽으로 흐르는 장선천, 남쪽으로 흐르는 벌곡천 등 금강의 여러 지류에 의하여 화강암반이 동남북의 3면에서 오랜 두부침식을 받아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다.

즉 동쪽과 남쪽은 배치재를 분수령으로 하는 유등천과 장선천이 비교적 깊은 협곡을 이루고 이 골짜기를 전주와 대전 간 국도가 지난다.

대둔산에는 태고사, 안심사, 신고운사 등의 사찰이 있었으나 6.25전쟁으로 소실되었고 최고봉인 마천대, 낙조대, 월성고지, 매봉, 철모, 깃대봉 등의 경승지가 있으며 충청남도 대둔산도립공원, 전북 대둔산도립공원 등으로 나뉘어 지정되어 있다.

동쪽 산기슭에는 옛 고을인 진산 있고 산중에는 산장과 구름다리와 케이블카 등의 관광시설이 있다.

그 대둔산 좌측 아래에는 금산의 진산인 진악산도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지만 워낙 유명하고 많이 알려진 산들이 많다 보니 진악산은 별도의 소개로 알아 보기로 한다.

 

 

집에서 약간 늦잠을 잤는지 아니면 게으름을 피웠는지 새벽 시간에 맞춰 일어 났는데 금산읍사무소까지 도착 시간을 보니 아침 6시까지 빠듯 해 조금은 빨리 달리다 보니 아침 5시 40여분에 무탈하게 애마를 주차시키고 5분 거리에 있는 금산버스터미널로 가니 터미널 내 기사식당이 문을 열어 급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신정리행 첫차에 탑승한다.

금산 버스터미널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한 버스는 이곳 저곳 마을들을 들렸다 종점인 신정리로 가는데 가는 도중 보이는 신동저수지에서 지난 주 용담댐에서 만났던 환상의 물안개를 찾아 보니 오늘은 마음속에서만 만나는 시간이라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신동리는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에 있는 리로서 봉화산 골짜기 안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북쪽을 제외한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북쪽으로 신동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사구시, 새말, 수천 마을 등이 있는데 사구시 마을은 조선시대에 사기를 굽던 사기소가 있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새말 마을은 마을이 새로 생겼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수천 마을은 마을 한가운데에 약수로 통하는 샘이 있어 사람들이 장수한다 하여 수천 마을이라 불린다.

그래도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간에 신동저수지를 흔들리는 버스 차창을 통해 사진 한장 남기니 좋은 추억이 되었다.

 

 

많은 마을들을 들렸지만 생각보다 이른 시간인 6시 40여분에 버스 종점인 신정리 버스승강장에 도착을 하고 배낭 정리하고 곧바로 13번 2차선 금남로를 타고 지난 구간 산행을 마무리했던 금산정수장과 임마누엘수양관 입구 입간판이 서 있던 솔재 일명 솔치로 향한다.

신정리는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대를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동쪽에 산이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에 큰골 소류지가 자리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원동, 신정, 홍도 마을 등이 있는데 원동 마을은 조선시대 길을 안내하는 금남원이라고 부르는 관집이 있었던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고 신정 마을은 큰 정자나무가 새로 단장을 했다 해서 신정이라 부르며 홍도 마을은 복숭아 나무가 많았다는 의미에서 명명되었다.

도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하며 몸의 열기를 올리니 생각보다 춥지 않아 상쾌한 기분으로 출발하는 새벽이다.

 

 

도로를 따라 솔재로 걸어 오르며 히치 하이킹을 시도해 보지만 지나다니는 차량도 많지 않고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자신도 절박하지 않으니 솔재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 자량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20여분이 걸려 지난 번 애마를 주차시키고 어둠속에 내려왔던 솔재에 도착을 하고 산행 준비 후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은 후 곧바로 도로를 건너 수준점이 보이는 곳 밭 가장자리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솔치는 13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전북 진안군 용담면과 충남 금산군 남일면 신정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서 북쪽을 봤을 때 솔치 오른편 능선에는 성치지맥을 이루는 성덕봉, 갈미봉, 구봉 등이 연이어 이어지고 해동지도와 1872년지방지도에 모두 송치라고 기재되어 있어 이 지명이 후에 솔재라는 한글 지명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임마누엘수양관 안에서 키우는 백구 한마리가 격한 환영을 하는데 그 소리가 시끄러워 배낭 둘러메고 곧바로 솔재를 출발하는 시간이 아침 7시 10여분을 지나고 있다.

 

솔재에서 배낭을 챙겨 둘러메고 임미누엘 수양관 입구라는 커다란 입간판 우측인 남쪽의 밭 경작지 가장자리로 가니 해발 276.1미터를 표기한 수준점이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기며 올려다 보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성덕봉이 중앙으로 솟아 있고 그 좌측 위로 도상 갈미봉의 팔각정자가 나무 사이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밭 가장자리의 잡풀 등로로 들어서니 지난 밤 내린 이슬이 잡풀에 내려 앉아 등산화를 촉촉히 적시고 있어 스틱으로 물방울을 제거하며 시작하지만 그것이 부질없음을 알기에 금새 체념하고 진행을 한다.

 

수준점을 지나 밭 가장자리를 타고 오르니 지독한 칡넝쿨 지대가 드넓게 펼쳐져 있어 난감해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 있고 그곳을 타고 몇발자국 옮기니 생각보다 진행에 어려움이 없어 조심하며 이슬을 털어내며 걸어가니 진행할만 하다.

그렇게 한동안 그 칡넝쿨 지대를 걸어 벗어나니 작물들을 수확한 묵은 밭 끝자락으로 오르고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 온 13번 도로와 금산정수장 건물이 바로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지난 구간 어둠속에 어렵게 내려 온 성치지맥 능선에는 벌써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그 사이로 엷게 드리워진 안개가 또 다른 환상을 노래하고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추억 몇장 남겨 본다.

 

생각보다 아름다운 풍경들을 살펴보고 이제 능선으로 올라 약간의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산으로 박흥섭님의 대한산경표 띠지가 보이는데 여전히 열정적인 산행을 진행하고 있는지 최근에 새로운 띠지를 자주 만나게 된다.

산자분수령에 근거해 새로운 학설인 합수점으로 이어지는 지맥 산줄기를 설파하고 있는데 신산경표가 워낙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어 쉽지 않은 듯 보인다.

그렇게 잠시 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남양주 금곡님 띠지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무주404이란 삼각점이 박혀 있는 475.7미터의 성덕봉에 도착을 한다.

성덕봉(475.7미터, 무주404 삼각점)은 지도상에 성덕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으나 서울의 어느 산악회에서 이곳에 깃대봉이란 표지판을 걸어 놓았는데 오늘 산행에서는 국토지리원에 없는 산 이름을 틀리게 적어놓은 곳도 있고 봉우리 위치를 잘못 표기를 한 곳들도 있어 앞으로는 정확한 표기가 필요해 보인다.

성덕봉에 대한 자료는 찾지 못하였기에 이 성덕봉이 있는 송풍리 자료를 찾아 보니 송풍리는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대부분이 300미터에서 500미터의 험준한 산지를 이루고 있고 주자천이 서부를 가로질러 금강으로 흘러 든다.

자연마을로는 왕두골, 옥수, 회룡1, 회룡2, 문화, 방화, 중앙, 노온, 새마을, 감동마을이 있는데 방화마을은 도공 기술을 지닌 사람이 가마를 찾아와 마을이 이루어졌다 하고 처음에 8가구가 정착하여 점촌이라 불렀으나 토기공들이 양반출신이 아니라 해서 인근 주민들이 방하실이라 불렀으며 회룡마을은 마을 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앞에 흐르는 금강의 깊은 물과 합류되는 곳에서 이무기가 용으로 회생하여 등천하였다 하여 마을 명칭을 회룡이라 불렀다.

감동마을은 마을에 감나무 등 유실수가 많아지자 마을 명칭을 감동이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며 이 마을은 자연부락으로서는 제일 작은 마을이며 감나무가 많아 곶감 고지라고도 부른다.

다만 성덕봉 정상은 나뭇가지들로 주위가 막혀 조망이나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기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성덕봉을 지나니 짧은 바위암릉이 나타나며 등로 우측으로 환상의 풍경들이 펼쳐져 있는데 살펴보니 용담면과 용담호에서 생성된 이슬이 엷게 머물고 있어 더욱 몽환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용담면은 전라북도 진안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의 동부는 무주군과, 동남부는 안천면과, 남부와 서부는 정천면과 접한다.

면내에는 매봉산, 봉화산, 용강산 등이 있고 주자천이 흐르며 하천 유역에는 좁은 분지가 발달해 주요 산업은 농업이었으나 용담댐 건설로 농경지가 대부분 수몰되었다.

면 소재지인 송풍리를 비롯하여 수천리와 와룡리 등 6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용담 지명은 사료의 기록으로 보아 유래가 매우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삼국사기지리지에 백제 시대의 물거현을 신라 시대에 용담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용담)에 현의 동남쪽 두 물이 서로 모이는 사이에 용담이 있어 현의 이름으로 취한 것이다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말 역사에 물()은 수()이며 물거(勿居)는 청()으로 물이 맑다라는 뜻이다 라고 한 것으로 보아 물이 많은 고장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용담면의 진산인 용강산의 맥이 흘러와 명당판을 형성시켜 놓았고 이곳에 동헌이 있었으며 면사무소가 있던 자리가 옛 용담현의 동헌 자리였다.

태고정이 자리한 곳은 용강산의 맥이 닭모산을 거쳐 우백호를 형성시켰고 그 우백호 자리를 보강하기 위해 천혜의 절경에 정자를 세우고 인위적으로 숲을 형성시켜 놓고 있으며 예전에 수백 그루의 소나무가 에워싸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 용담군의 소재지이므로 군내면이라 하다가 1914년 일북면의 송풍리 지역을 병합하여 용담면이라 해서 진안군에 편입되었다.

용담댐이 건설되면서 대부분 지역이 용담댐으로 수몰되고 송풍리만 남아 옥거리에 있던 면 소재지를 이곳으로 옮겼다.

오래 전 홀로 힘들게 걸었던 금남호남정맥 상 진안과 장수쪽 산줄기들이 이름 맞추기를 하자며 발목을 붙잡는데 갈길이 멀기에 진행하다 다시 나타나면 그 때 잠시 발걸음 멈추고 이름을 불러 주기로 한다.

 

그렇게 짧은 바위암릉을 타고 환상적인 풍경들이 펼쳐져 있는 등로 우측의 진안군 용담마을과 용담호를 내려다 보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지난 구간 어둠속에 걸어 내려 온 봉화산에서 송전탑이 보이는 631.1봉 지나 463.1봉과 433.2봉이 시원하게 보인다.

그렇게 시원하게 펼쳐진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며 천천히 걸어 오르니 금새 지도 상 502.5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는 육각정이 보이는데 입구에는 출입금지 띠지가 걸려있고 건물은 낡아 있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보인다.

잠시 들려 시원한 바람 맞으며 식수라도 한모금 마시고 가고 싶지만 너무 낡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니 참고 눈으로만 구경하고 지나친다.

 

그 육각정을 지나 진행 방향을 올려다 보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565.8봉의 갈미봉이 좌측 뒤로 보이고 598.9미터의 구봉 정상부가 우측 앞으로 가깝게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가을이 짙어가는 능선을 살펴보며 조금 더 걸어 등로 우측 앞을 보니 지소산과 자장산 라인이 바로 엎으로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올 여름 걸었던 덕유지맥의 봉화산과 그 우측 뒤로 덕유라인도 보일듯 말듯 펼쳐져 있다.

그 우측 아래로는 용담마을과 용담호에서 만들어진 하얀 안개가 민초들이 살아가는 길목마다 뒤덮고 그 뒤 우측 끝자락에 말의 귀를 닮아 있는 마이산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금남호남정맥의 산줄기와 덕태산과 성수산 지나 백두대간 마루금도 희미하지만 존재감을 알려 온다.

생각지도 못한 너무나 환상적인 풍경과 조망에 넋을 잃고 살펴 본 후 잠시 정신을 차려 보이는 산 이름들을 불러 보는 호사도 누려 본다.

 

등로 좌측으로는 지난 구간 걸었던 선봉에서 성치산 지나 이곳으로 이어지는 성치지맥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으로 금남정맥 산줄기 따라 톱날같은 대둔산이 하늘금에 붙어 있으며 그 대둔산 우측으로는 인대산과 월봉산 지나 금산의 진산인 진악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는데 저 진악산은 오늘 산행 내내 그 우람한 체격으로 이 산객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다.

좌우측으로 펼쳐진 너무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과 조망을 살펴보고 즐기며 걸어 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걸어 오르니 노랑게 물들어 가는 등로가 마음의 평온을 찾아 준다.

 

아름답게 변해가는 단풍을 살펴보며 걸어 오르니 도상 565.8미터의 갈미봉에 도착을 하는데 준희 선생님이 걸어 놓은 정상판이 반겨 준줘 목례를 한다.

갈미봉(565.8미터봉)은 충청남도 금산군의 남일면 신정리와 전북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및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65.8미터이며 산의 모양이 마치 갈구리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 예전에 남자들이 머리에 쓰는 갓처럼 생겼다 하여 그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자료를 찾아 보니 갈구리 또는 갓처럼 생겼다는데 올라서 바라보니 모양이 맞는지 볼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사진 한장 남기고 가을빛을 가슴속 깊이 느끼고 다시 진행하니 구봉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 끝자락으로 멀지 않은 곳에 구봉이 있기에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갈미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원 등로는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우측 위로 구봉이 보여 잠시 다녀오기로 하고 올라 가니 금새 구봉 정상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준희 선생님은 맞는 이름의 정상판을 걸어 놨는데 서울의 오느 산악회는 이곳을 높이도 다른 용두봉이란 이정판을 걸어 놔 아쉬움을 남긴다. 

구봉(598.9미터봉)은 지맥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50여미터 거리이기에 왕복하기로 하는데 특별한 표식이나 특징이 없으며 조망도 없는 봉우리로서 영진지도의 조봉은 구()를 조()로 잘못 써서 생긴 오류 같아 보인다.

즉 원래 이름은 구봉이 맞으나 영진지도에는 조봉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구봉의 잘못된 표기처럼 보이니 바로 잡아야 할 것 같고 용두봉이란 이름과 높이는 전혀 맞지 않는 이름과 해발고도이니 앞으로는 정확한 고증을 거쳐 이정판을 걸어야 할 것 같다.

 

구봉 정상에서 고운 추억을 남기고 다시 올라갔던 오란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철없는 진달래 한그루에 몇송이의 꽃잎이 피어나 있어 사진에 담아 보는데 추워지는 이 계절에 꽃을 피워 어떻게 추위에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다.

세상이 어지러우니 식물들도 철없이 계절도 잊고 아무때나 피어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앞서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왕 피어났으니 추워지기 전까지 예쁜 꽃잎이나 잘 간직했다 지기를 바라면서 진행하던 등로를 따라 가을 속으로 들어 가 본다.

 

철없는 진달래 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짙은 노랑으로 변해가는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이다.

생각보다 뚜렷한 노란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옆으로 나즈막하고 작은 이정판이 서 있는데 갈미봉에서 0.8 Km지나왔고 솔재까지는 2.5 Km 거리라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되어 있다.

그 이정판을 지나 여전히 노란 등로를 타고 가을을 가슴속 깊이 추억으로 남기다 보니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정판 하나가 다시 보이는데 목사리재로 진행하는 좌측으로 투구봉 지나 원동과 신정으로 하산할 수 있다는 표시처럼 보인다.

그 이정판을 지나 내려가니 잡초에 묻혀있는 묘지 한기가 보이고 곧이어 진행하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을이 깊어가는 노란 등로가 앞을 가로막아 다시 몇장의 사진으로 남기며 천천히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자연스런 아름다움이 넘치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얼마 전 지나간 대전의 산지산인님이 걸어 놓은 따뜻한 신상 노란 띠지가 걸려있어 반갑게 인사하고 사진에 담은 후 산행을 이어가니 활엽수가 적어지며 소나무 등로가 열리는데 이제 노란 가을빛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잠시 후 무명 묘지2기를 지나 우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우측에 인삼포가 보이는 금산군 남일면 신정리와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의 경계이며 635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목사리재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살펴보며 추억 몇장 더 남겨 본다.

목사리재(635번 2차선 포장도로와 돌탑 2개 및 이동통신탑과 도로표지판)는 충남 금산군 남일면 신정리와 전북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의 경계로서 왜 목사리재인지에 대한 자료는 찾지를 못하였다.

 

 

다만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에 목사리재 능선이라는 지명 이름이 나와 찾아보니 대유리는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에 있는 리로서 서쪽의 구봉을 기점으로 남쪽은 진안군과 경계를 이루고 북쪽은 목사리재 능선을 따라 가면서 충청남도 금산군과 경계를 이루는 산악지형이다.

대티와 유동 등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대티마을에는 평당으로 넘나들던 큰 고개가 하나 있는데 한재, 한티재, 대티재 등으로 불렸으며 대티마을은 한티재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목사리재 도로를 건너 우측의 커다란 도로 표지판 앞으로 보이는 능선 들머리를 찾아 높은 콘크리트 옹벽을 넘으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콘크리트 옹벽 우측 철망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보이고 그 한쪽에는 준희님이 걸어 놓은 이곳이 목사리재이라는 이정판이 눈길을 붙잡는다.

 

목사리재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키 작은 소나무들이 보이는데 솔잎들도 모두 노란색으로 변색되며 등로에 떨어져 있어 마음속에 늘 푸르름으로 남아 있던 소나무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있어 안타까운 시간이다.

잠시 후 잡초가 무성한 무명 묘지2기를 지나 오르니 등로는 다시 알록달록 가을빛으로 빛나고 잠시 오르막 등로를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구봉과 갈미봉 능선이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그 봉우리 넘어 저 멀리에는 지난 구간 넘었던 봉화산과 631.1봉의 송전탑들이 파란 하늘 아래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살펴보고 오른다.

 

가파르게 오르니 키 작은 상수리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고 지독한 잡목을 헤치며 힘들게 진행하니 싸리나무봉을 통과한 후 붉은 단풍잎이 아름다운 404.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하고 다시 출발한다.

그 무명봉에서 등로 뒤를 살펴보니 지나 온 갈미봉과 구봉 능선이 더욱 뚜렷하고 그 넘어 저 멀리 송전탑을 머리에 이고 있는 봉화산 능선도 조금 더 뚜렷하게 다가온다.

등로 좌측으로는 482.4 암봉이 제법 우람한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한동안 주위 풍경을 살펴본 후 출발하니 434.2 고사목봉이 나타나고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전진하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린다.

조선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능선 등로를 따라 무심으로 걷다보니 일부 소나무들이 쓰러져 있는 429.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시원한 물한모금 마신 후 산행을 이어가 본다.

 

여전히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능선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마루금을 찾아 걸어가니 큰 고도 차이 없이 곧 437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에 담고 출발하니 커다란 소나무와 참나무가 보이는 479.1 삼각점봉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멀지 않기에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우측 능선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잡목들이 거추장스럽지만 진행에는 큰 어려움없이 금새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과 준희님이 걸어 놓은 정상판이 보이는 479.1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뒤돌아 나온다.

 

그 삼각점봉에서 뒤돌아 나와 이제 우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참나무에 많은 가지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이제 부드러운 참나무가 등로를 열어 주는 활엽수 등로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 본다.

바스락 거리는 활엽수 낙엽을 따라 걸어가니 금새 31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그 송전탑을 통과하니 올해 올라 온 태풍에 나뭇가지들이 잘리고 꺽여 쌓여 있는 457.9미터의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가다듬으며 물 한모금 마시고 진행을 이어간다.

 

그 무명봉을 지나 여전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보이지 않던 바위가 나타나고 곧이어 자주빛이 감도는 가지버섯들이 보여 잠시 먹을만큼만 채취해 배낭에 넣고 다시 산행을 이어가는데 올해는 유난히 가지버섯을 자주 만나 전골를 자주 맛보게 되었다.가지버섯은 깊은 산속에 자생하는 야생 버섯으로 햇볕을 받으면 자주색으로 되었다가 그렇지 않으면 흰색으로 변하는데 민자주방망이 버섯으로도 불려지는 이 가지버섯은 주로 가을철에 만날 수 있다.가지버섯은 식용으로 열량이 매우 낮고 섬유소와 수분이 풍부하여 쇠고기 섭취로 인한 혈중의 콜레스테롤을 없애는 작용을 해 쇠고기 전골에 많이 사용되고 간질환 환자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가지버섯은 대가 굵고 갓이 고르며 깨끗한 것을 고르는데 먹기 전 깨끗한 물에 씻어 데쳐서 하루 정도 물에 담가 우려낸 후 전골이나 볶음으로 먹을 수 있으며 장기간 보관시에는 비닐팩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하며 3개월 이내에 섭취가 가능하다.잠시 시간 내 가지버섯을 채취해 부서지지 않토록 잘 포장해 배낭에 넣고 다시 갈길 바쁜 발걸음을 옮겨 본다.

 

가지버섯을 한끼 먹을만큼만 채취한 후 다시 출발하니 진행 방향으로 알록달록한 단풍 넘어 460.4봉이 송전탑 넘어 보이기 시작하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성치지맥 마루금이 부드럽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등로 좌측 뒤로는 오늘 걸어 온 갈미봉과 구봉 능선 넘어 저 멀리 지난 주 걸었던 성치지맥의 산줄기 지나 호남알프스의 산줄기들도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다.

잠시 후 짧게 벌목된 벌목지에 도착을 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진행 방향의 460.4봉 지나 우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가늠해 보고 천천히 진행을 이어가 본다.

 

그 벌목지에서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금새 460.4봉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 좌측 뒤로 오늘 걸어 온 성치지맥 마루금이 아름다운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능선을 품고 멋진 모습으로 이 산객의 눈길을 붙잡고 그 능선 뒤 저 멀리에 송전탑만 보이는 봉화산 능선 지나 희미하게 호남알프스의 산군들도 고개를 내밀고 아쉬운 이별인사를 건네고 있다.

오래 전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던 시절에 홀로 내려가 길게 걸은 후 파김치가 되어 돌아 왔던 호남알프스에서의 고운 추억이 다시 생각 나 잠시 미소지으며 언제 다시 한번 더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고 다시 천천히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는 예전에 비포장 임도였다가 잡목들이 자라난 듯 보이는 등로가 이어지는데 복잡해 보이지만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고도가 낮아지며 이곳은 아직 단풍이 물들지 못하고 푸른 빛으로 남아 있는 등로를 따르니 낙엽이 푹신한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에 준희님이 걸어 놓은 띠지 하나가 외롭게 흔들리는 467.9 무명봉에 도착을 해 목례를 드리고 추억 한장 더 남겨 본다.

이번 주 주말에는 준희님 헌정 산행이 부산에서 있을 예정인데 참석하고 싶은데 시간이나 가능할지 고민되는 주말이다.

 

무명봉을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오동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이어지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오동나무가 보이던 무명봉을 지나서도 등로는 여전히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능선 마루금으로 이어져 조금은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34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그 아래를 통과하며 산행을 이어간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무심으로 걷다 보니 안부에 도착을 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준희님이 걸어 놓은 두어기재 이정판이 보이는데 이곳은 금산군과 무주군을 이어주는 고개인데 왜 두어기재란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두어기재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하고 곧이어 멋진 잣나무 군락지가 나타나는데 좌표에는 413.3미터를 알리는 무명봉으로서 그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며 진행이 되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잠시 걸어 내려가니 쓰러진 소나무 고사목 하나가 길을 막고 곧이어 제법 굵은 아카시아 나무들이 빼곡하게 보이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안부로 내려가 진행하니 약간의 잡목들을 지나 드넓은 인삼포가 펼쳐져 있다.

 

그 인삼포에서 인삼포 넘어 진행해야 할 498.2봉으로 이어지는 ㅎ산줄기를 살펴보고 인삼포 좌측의 절개지 사면을 통해 어렵게 인삼포를 통과하니 인삼을 수확한 인삼밭이 묵으면서 세웠던 나무 지지대와 잡풀들로 인해 진행에 애를 먹는다.

잠시 더 걸어 어렵게 진행하다 등로 우측 뒤를 살펴보니 저 멀리 무주쪽 조항산이 보이고 그 우측 뒤 끝자락에 덕유산 자락들도 희미하게 하늘금에 맞닿아 있는 풍경이 산객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덕유지맥 산줄기도 찾아 보지만 앞쪽에 있는 나즈막한 산줄기에 막혀 덕유지맥 산줄기는 보이지 않는다.

 

 

인삼포 끝자락에서 나즈막한 둔덕을 넘어야 하는데 들어 갈 수 있는 들머리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잡목들과 잡풀들이 지독해 우측 아래로 보이는 비포장 임도로 내려가 잠시 좌측으로 진행하다 커다란 잣나무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또 다른 인삼포가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이어지는 수확된 인삼포 넘어 올라야 할 498.2봉이 우람한 폼으로 이 산객을 맞이해 주고 있다.

인삼포를 우측에 두고 어렵게 통과하니 지독한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져 한동안 씨름을 하고 어렵게 정상 등로를 만나 오르니 소나무 등로 위로 465.3 무명봉이 나타난다.

그 무명봉을 지나 조금은 좋아지는 뚜렷한 등로를 따라 고도를 높이니 이제는 논산의 바랑산님이 걸어 놓은 498.2 정상판을 만나 목례를 하고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그 498.2봉에서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크게 휘어져 진행되고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있는 잡목지대를 통과하니 벌거벗은 묘지 두기가 보인다.

그 묘지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나타나더니 금새 용도를 알 수 없는 녹슨 쇠봉 터널이 보이는데 농작물을 재배하며 만들어 놓았다가 용도 폐기된 시설물은 아닐까 추측을 해 본다.

터널을 지나니 또 다시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잠시 넓고 뚜렷한 소나무 등로를 따라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데 그곳을 지나자마자 다시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들이 보이는 등로를 지나 지독한 잡목들과 잡풀들이 우거져 있는 무명안부를 너무나 힘들게 통과한다.

 

 

잡목들과 잡풀들이 우거진 무명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있는 490.3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 산행을 이어간다.잠시 편안한 소나무 등로를 따르고 잡풀들이 무성한 무명묘지봉을 넘으니 한동안 편안한 내리막 등로를 만나 황제 걸음걸이로 걸어 보고 무명안부를 넘어 다시 오르니 이원26이라는 삼각점이 박혀 있는 557.6 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 정상에는 이곳이 마하산임을 알리는 이정판과 띠지들도 상당히 보인다. 마하산(557.6, 이원 26 삼각점)충청남도 금산군의 남일면 덕천리와 상동리 및 홍도리, 부리면 불이리와 관천리, 전북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57.6미터로서 산의 형세가 말처럼 생겼다 하여 예전에는 마하산 또는 마산으로 불렸던 산이다.

덕기봉은 옛날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알려져 공을 들이면 덕을 본다 하여 유래한 지명이라고도 한다.

산 서쪽 덕천 마을에서 보면 풍수상 소가 누워 있는 형상(와우형)에 해당된다고 하는데 그로 인해 마을에서는 그 상봉격인 산제봉을 소의 머리로 보고 예전에는 그 언저리에 있는 산제목을 대상으로 매년 상달과 정월에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또한 덕기봉 자락에는 노인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잡는 어옹수조형의 명혈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실제 덕기봉 상봉에 영감바위(덤바위)라는 바위가 있고 그 바윗날 밑에는 잡힌 물고기가 사는 둠벙(연못)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영락없이 노인이 바위에 앉아서 낚시질을 하는 형국이 된다는 것이며 이 때문에 지금도 주변 마을에서는 덕기봉 자락을 어당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덕기봉은 이곳에서 조금 더 진행된 능선 끝자락이기에 이곳은 마하산 또는 557.6 삼각점이라 부르기로 한다.

 

 

마하산이라 이름 붙여진 557.6 삼각점봉을 지나 약간의 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소나무 가지가 잘려 말라있는 고사목이 보이는 515.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나즈막한 안부 지나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보이는 무명봉에 오른다.

그 무명봉을 지나 능선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등로 좌측 소나무 가지 사이로 봉황천이 내려다 보이면서 금새 덕기봉에 도착을 하는데 걸려있는 준희님의 정상판은 중간이 잘려져 있어 안타까운 순간이다.

지도를 보니 이곳의 고도가 542미터봉이고 실제 정상판이 달려있는 곳이 고도계로 528.4미터봉이니 아마도 준희 선생님이 걸어 놓은 523.1미터봉이란 해발고도 펴시가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덕기봉은 충청남도 금산군의 남일면 덕천리와 상동리 및 홍도리와 부리면 불이리와 관천리 그리고 전북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42미터로서 산의 형세가 말처럼 생겼다 하여 예전에는 마하산 또는 마산()으로 불렸던 산인데 이 덕기봉은 옛날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알려져 공을 들이면 덕을 본다 하여 유래한 지명이라고도 한다.

산 서쪽 덕천 마을에서 보면 풍수상 소가 누워 있는 형상(와우형)에 해당된다고 하는데 그로 인해 마을에서는 그 상봉격인 산제봉을 소의 머리로 보고 예전에는 그 언저리에 있는 산제목을 대상으로 매년 상달과 정월에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또한 덕기봉 자락에는 노인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잡는 어옹수조형의 명혈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실제 덕기봉 상봉에 영감바위(덤바위)라는 바위가 있고 그 바윗날 밑에는 잡힌 물고기가 사는 둠벙(연못)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영락없이 노인이 바위에 앉아서 낚시질을 하는 형국이 된다는 것으로 이 때문에 지금도 주변 마을에서는 덕기봉 자락을 어당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 덕기봉 좌측으로 환상의 조망이 펼쳐져 있기에 배낭 내려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시고 조망처로 가 한동안 잊지 못할 고운 추억을 남겨 본다.

 

 

제일 먼저 봉황천 넘어 남일면 덕천리와 음대리로 펼쳐진 황금빛 들판 뒤로 지난 구간 걸었던 성치지맥의 분기점에서 봉화산 지나 솔재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연석산에서 운장산과 구봉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알프스를 이루고 있는 산줄기가 또한 환상이며 그 좌측 끝자락에 말의 귀를 닮아있는 마이산이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어 말로 표현하기 힘든 황홀감을 맛 본다.

남일면은 충청남도 금산군의 남쪽에 위치한 면으로 현재 황풍리, 마장리, 초현리, 신천리 등 9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으며 읍치 바로 남쪽에 위치하여 지명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조선 시대 군의 남일면 지역으로 호구총수에서 마장리, 신천리, 초현리, 황풍정리 등의 지명이 확인되는데 1895년 지방관제 개편 때 공주부 금산군에 그리고 1896년 전라북도 금산군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남일면의 삼태리, 하동리, 수철리 등 19개 동리와 남이면 매곡리와 부서면 나천리 각 일부를 합쳐 남일면으로 하여 현재의 9개 동리를 관할하게 하였다가 1963년 군이 전라북도에서 충청남도로 이관됨에 따라 도의 금산군 남일면으로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덕천리는 마을이 동쪽의 덕기봉과 서쪽의 봉황천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 산과 물 그리고 들이 조화롭게 유지되는 마을이어서 예로부터 덕망 있는 사람이 많이 배출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마장리는 조선 시대 때 말을 먹이던 곳으로 마장이라 하던 것이 다른 의미의 한자인 마장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호구총수에는 마장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일설에는 마을 입구에 말 머리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상동리는 오동나무 숲 때문에 동수라 불린 마을 위쪽에 있어 웃동수와 상동수라 불리던 것이 줄어서 상동이 되었다 하고 신동리는 사기소 아래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해서 새말 또는 신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오늘 산행을 시작한 신정리는 마을에 있는 큰 정자나무가 새로 단장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신천리는 새내(신천)가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여지도서(금산)에는 현재의 봉황천 물줄기를 신천으로 표시하고 있어 하천 이름에서 동리명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음대리는 덕천리에 걸쳐 있는 대붓들(대부평) 응달쪽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 음달대부와 음대부라 불리던 것이 줄어서 음대가 되었다 하고 초현리는 사람을 기르고 푼다는 의미의 풀고개(초현) 또는 풍수상 운중반월형의 형국으로 지혜로운 선인이 머물며 화평한 세상을 기원한다는 구름고개(운현) 등으로 불리는 고개 아래 마을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황풍리는 고려 시대 원에 벼슬하여 요양행성참정에 올랐던 김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만리황풍이라 새긴 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일과 산행 때문에 자주 내려왔지만 오늘처럼 남일면에 대한 자료를 상세히 찾아 본 기억이 없기에 또 다른 매력의 금산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이제 눈을 북서쪽으로 돌리니 여전히 아름다운 봉황천 넘어 이제 남이면 마을이 비산비야를 이루고 그 뒤로 금산의 마이산과 우측으로 진악산이 우뚝하고 마이산 뒤 좌측으로는 백암산에서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금남호남정맥 산줄기가 또한 옛 이야기를 들려주며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진악산(732봉)은 충청남도 금산군의 남이면 성곡리와 석동리 및 상금리 그리고 하금리와 금산읍 음지리와 계진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732미터이며 신증동국여지승람(금산)에 서대산은 북방을 진수하고 진악산은 남방을 가리었다고 하고 동일 문헌에 진악산은 군의 남쪽 7리에 있고 동쪽 봉우리 아래에 석혈이 있는데 서너 걸음 들어가면 물소리가 요란하여 깊이를 알 수가 없으며 전하는 말로는 용이 사는 곳이라고 하는데 날이 가물 때 호랑이 머리를 집어넣으면 감응이 있다고 한다고 하여 관련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금산군지(1969)에서는 진악산의 정기는 바로 금산의 정기로 동일시되어 왔으며 (중략) 진악산은 금산의 수호신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고 1987년 금산군지에도 금산의 진산으로 금산의 정기를 대표하는 산이기도 하다라 하여 금산의 중심 산으로 진악산을 부각시키고 있으나 역사적으로 진악산이 금산의 진산 또는 주산으로 기록된 것은 확인되지 않고 여지도서(금산지도)에 진악산이 있는 남쪽이 지도의 상단에 표시된 경우는 있다.

보통 고지도의 표현에서 지도의 위쪽에는 지역의 진산 또는 주산이 위치한 경우가 많은데 금산의 경우 지금은 그 이름조차 사라진 읍치 북쪽의 소산(비비미)이 진산이자 주산으로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흥미로운 부분이다.

일설에는 진악이란 명칭이 즐거움이 크게 일어나는 산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는데 옛날 홍수가 났을 때 이 산만 지네만큼 남았다 하여 진악산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산에는 관음봉과 문필봉 및 노적봉 그리고 물금봉 등 여러 봉우리가 있는데 그중에서 관음봉은 강처사가 관음굴에서 어머니 병환을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여 산신령의 계시로 인삼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모두 한번 이상 올랐던 산들이다 보니 이제서야 조금씩 눈이 떠지면서 그 이름을 불러 줄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도 해 본다.

 

 

이제 조망처를 바꿔 조금 더 앞으로 전진하니 북쪽 방향으로 봉황천을 사이에 두고 좌측은 진악산이 우측으로는 금산읍 방향으로 나즈막한 산줄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 모습이 또한 눈길을 사로 잡는다.

금산읍은 충청남도 금산군의 중앙에 위치한 읍으로 관내에 군청과 다락원 및 금산 인삼약초시장이 있으며 현재 신대리와 중도리 및 상옥리, 상리 그리고 아인리 등 9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금산이라는 지명은 세종실록지리지(금산)에 본래 백제의 진잉을군이었는데 신라 때 진례군으로 고쳤고 고려에서는 현령으로 강등하였다가 충렬왕 31년 을사(1305)에 고을 사람 김신이 원에 벼슬하여 요양행성참정이 되어 본국에 공이 있었으므로 지금주군사로 승격하였으며 본조 태종 13년 계사(1413)에 예에 의하여 금산군으로 고쳤다고 하여 처음 등장한다.

1413년(태종 13) 시행된 지방행정구역 명칭 변경의 내용은 각 도의 단부 고을을 도호부로, 감무를 현감으로 그리고 군과 현의 이름 가운데 주()자를 띤 것을 모두 산()자와 천()자로 고치는 것이었고 이에 금주()가 금산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조선 시대 군의 군일면과 군이면 지역이었다가 1895년 지방관제 개편 때 공주부 금산군에 그리고 1896년 전라북도 금산군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군일면에 속했던 상지리, 아인리, 박금리,  양지리 등 15개 동리와 군이면에 속했던 상녕리, 신대리, 탑선리, 중도리 등 20개 동리 그리고 남일면 삼태리와 군북면 어은리 일부를 합쳐 군의 이름을 따서 금산면으로 하여 현재의 9개 동리를 관할하게 하였다.

호구총수에서 군일면과 군이면에 속했던 계진리, 관상리, 중관리, 하관리등의 지명을 확인할 수 있고 이후 1940년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63년 군이 전라북도에서충청남도로 이관됨에 따라 군의 금산읍으로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금산읍 뒤로는 나즈막한 식장지맥과 장령지맥 산줄기들이 흩어졌다 이어지며 홀로 고운 추억을 쌓았던 시간들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

산행 때문에 참으로 자주 내려왔던 저 금산에서 오늘 밤 하루 더 머물러야 하기에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지만 역시나 거리감이 있어 거대한 도시형태 이외에는 분간하기 힘들다.

 

 

이제 완전한 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봉황천과 금산읍내를 좌측에 두고 그 금산읍 뒤 저 멀리 온전한 장령지맥 산줄기를 따라 우측으로 우뚝 솟아있는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이 압권으로 다가오고 그 앞으로 흐르는 장령지맥의 산줄기들 우측으로 보여야 할 천태산은 바로 앞 산줄기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올해 모두 걸었던 산줄기들이기에 아직도 그때의 기억과 추억이 생생하게 되살아 나며 그 산줄기를 이루고 있던 풀 한포기와 마무 한그루도 생각이 날만큼 또렷하게 되살아 나는 시간이다.

이제 산하는 푸르른 빛에서 다양한 단풍빛으로 변하면서 가을도 짙고 깊게 익어가는 풍경으로 바뀌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주위 풍경과 조망에 심취한 후 등로로 뒤돌아 올라 와 준비한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있는데 마침 저녁 약속을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고 오늘 급한 다른 일정 때문에 만남은 다음주로 연기하자는 내용이기에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마음 편히 산행에만 집중하며 이곳 덕기봉에서 조금 더 머물기로 한다.

허기를 달래고 다시 우측 조망처로 내려가 금산읍을 줌으로 당겨보니 조금 더 선명하게 금산 전체가 눈에 들어 오고 그 뒤로 펼쳐진 장령지맥 분기점인 금성산과 식장지맥의 만인산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한 후 전체적인 풍경들과 조망들을 사진에 담고 올라 온다.

 

 

그렇게 한동안 그 덕기봉 정상에서 오랫동안 잊지 못할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즐기고 조금은 가벼워진 배낭을 둘러메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노란 단풍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분봉이 사라진 무명묘지를 지나 소나무와 참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후 거대한 참나무 한그루를 지나 칡넝쿨이 보이는 등로를 빠져 나가니 화사하게 피어난 가을 야생화인 구절초가 반갑게 맞이해 주고 곧이어 민둥의 활공장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환상의 조망처이다.

제일 먼저 남서쪽을 살펴보니 우측 끝자락 저 멀리 덕유산이 보이고 그 좌측 뒤로 얼마전에 걸었던 각호지맥의 석기봉에서 민주지산 지나 각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선명하며 그 좌측 앞으로는 뱍하지맥의 백하산과 갈기산이 보여 또 다른 황홀감을 안겨 준다.

그 백하지맥 마루금 좌측으로는 영동의 천태산도 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며 그리워했던 거의 모든 산들에 대한 갈증을 풀어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진행해야 할 북북서쪽 방향으로는 나즈막한 성치지맥 산줄기가 이어지고 그 산줄기 넘어 저 멀리에는 가려진 천태산과 서대산 좌측으로 만인산과 장태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식장지맥 마루금이 환상의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파란 하늘에 흩뿌려 놓은 듯한 하얀 물감이 또한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알리고 그렇게 이곳 활공장에서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할 황홀한 자아도취에 빠져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다시 북서쪽으로는 봉황천을 사이에 두고 금산읍과 진악산이 마주하고 그 진악산 좌측으로는 금산의 마이산이 존재감을 알리지만 역시나 진악산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는 형상이다.

진악산과 마이산 중간 저 멀리에는 톱날 형상을 하고 있는 대둔산이 앞의 마이산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안평지맥으로 이어지는 우측 끝자락은 그래도 대둔산임을 알리고 있다.

이제 봉황천 주변으로 좁고 길게 이어진 황금 들판은 추수가 끝나가며 겨울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또 다른 세월을 말해 주고 있는 듯 내려다 보인다.

 

이제 눈을 돌려 남서쪽을 살펴보니 여전히 아름다운 성치지맥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며 2주전 걸었던 시간이 벌써 고운 추억으로 쌓이고 있다.

건강을 생각하며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찾게 된 백두대간 댓재에서 이기령까지의 산행이 이 산객의 인생과 산행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되어 어느새 깊고 깊은 산줄기를 찾아 맥 잇기 산행에 심취하게 되었으니 인생 역시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그토록 싫어하던 운동을 그것도 쉽지 않은 홀로 산행을 즐기는 시간까지 이르렀으니 참으로 오랫 시간 동안 흥미를 잃지 않기 위해 자료도 찾고 이렇게 산행후기도 정리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조금은 버거운 느낌도 지울 수 없으니 산행 후 자료 정리하는 시간과 노력을 줄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본다.

오래전 홀로 눈길을 걸으며 대견함을 느꼈던 호남알프스가 성치지맥 산줄기 넘어 빛나고 있다.

 

이제 활공장과 아쉬운 이별에 앞서 남쪽으로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마이산을 다시 한번 더 담아 본다.

많은 추억을 남겼던 마이산인데 오랫동안 맥 잇기 산행에 몰입하다 보니 만난지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시간이지만 오늘처럼 멀리서 바라보고 그리워하게 되었으니 조만간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있으리란 예상이다.

활공장 옆으로 피어난 억새가 미풍에도 살랑거리며 올 한해 임무를 마치는 홀가분한 기분을 알려주는 듯 다가온다.

 

이제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며 다시 능선으로 들기 직전 잠시 뒤돌아 보니 한동안 머물던 활공장 잔디가 눈에 밟히고 그 뒤로 이어진 덕기봉 능선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느냐며 말을 걸어 오지만 과연 앞으로 다시 더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기에 아쉬운 마음을 담아 사진 한장 더 남겨 본다.

그렇게 덕기봉과 이곳 활공장 정상에서 무한정으로 흐를 것 같은 시간을 보내며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황홀감에 취해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담고 다시 가시 잡목들이 기다리는 능선으로 들어가며 고달픈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활공장을 출발해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갑자기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활공장 정상까지 장비를 들고 올라 올 수 있도록 도로가 개설된 모습이다.

하지만 오늘은 평일이라 그런지 활공을 즐기는 사람도 없고 이곳으로 올라오는 사람도 없으니 이 시멘트 포장도로는 온전한 내것이 되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 좌측으로 고압선 주의라는 경고판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읽어 보니 이곳 근처에 특고압 전선이 지나가고 활공시 잘못 건드리면 큰 사고가 날 위험성이 있으니 활공을 즐기기 전 반드시 신고를 하라는 경고판이다.

그 경고판을 지나 등로는 좌측 능선으로 이어질 것 같은데 곧바로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와야 하기에 그,냥 편안하게 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간다.

 

잠시 후 나타나는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나즈막한 둔덕을 넘어 다시 진행하던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서서 걸어 내려가게 된다.

등로 우측으로는 통영대전간 고속도로의 부리면쪽 양곡교 교각들이 보이고 그 뒤로 펼쳐진 백하지맥의 성주산과 갈기산 지나 천태산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살펴보며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 절개지 위로 소나무 몇그루가 위태롭게 자라고 있는 452.7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도저히 올라 갈 방법이 없어 사진으로만 대신해 본다.

 

그 452.7봉을 도로 우측 위로 올려다 보고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이제 도로 좌측으로 봉황천 지나 금산의 진산인 진악산이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동안 아름다운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걸어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좌측 위로 산행 들머리가 나타나고 그 들머리를 타고 능선으로 올라가 본다.

잠시 걸어 오르니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검정천막이 펄럭이는 423.4봉에 올라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더 평이한 능선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소나무에 하얀 천을 두른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더 남기고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검정 차단막이 다시 올라 온 무명봉에 도착을 해 주위를 살펴 본다.

그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이곳 등로 역시 조선소나무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능선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자라는 433.3봉에 도착을 해 주위에 흩어져 있는 고사목들을 살펴보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환상의 소나무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이어지는 평이한 소나무 등로를 따라 무심으로 걷다 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등로에 나뒹굴고 있는 446.1봉에 도착을 해 떨어진 띠지를 주워 잘 걸어 둔다.

살펴보니 남양주 금곡님과 독도는 우리땅의 이경일님 띠지가 특히 눈을 사로 잡는다.

 

그 446.1봉을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36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곧이어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커다란 소나무가 태풍 때문인지 쓰러져 등로를 막고 있기 때문에 좌측으로 우회 등로가 개설된 듯 보인다.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잡목들이 보이는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이원452 삼각점이 박혀 있고 주변에는 독도는 우리땅님이 걸어 놓은 430.6미터봉임을 알리는 종이코팅지가 눈에 들어 온다.

이제 그 삼각점봉에서 우측으로 크게 휘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멋진 조선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한동안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진행하니 커다란 고사목 하나가 눈길을 끄는 지점을 지나 참나무와 소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바뀌고 있다.

그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에 벌목지가 펼쳐지고 진행 방향을 살펴보기 위해 지도를 확인하니 진행 방향의 성치지맥 산줄기와 그 뒤 저 멀리 백하지맥과 천태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그 벌목지를 타고 내려가니 키 큰 나무들은 모두 사라지고 지독한 잡풀들과 잡목들 그리고 특히 산초가시나무들이 자라면서 가시가 독종이 되어 이 산객이 움직일 때마다 피부를 뚫고 들어 와 극심한 통증을 늬기 시작한다.

돌아 갈 수 있는 등로가 있는지 찾아 보지만 쉽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어렵게 걸어 내려가니 눈 앞에 시멘트 포장도로 건너 올라 진행해야 할 벌목지 등로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잠시 숨고르기도 해 본다.

 

잡목에 치이고 산초가시에 찔리며 너무나 힘들게 잡목 하산 등로를 내려가니 방향이 엉뚱하게 진행되고 정상 등로를 찾기 위해 우측으로 트래버스 하듯 걸어가니 갑자기 벌목 후 쌓아 둔 나뭇더미들로 가득 채워진 골짜기가 또한 이 산객의 아품을 가중시키고 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 앞으로 태양열발전시설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우측 비포장 임도로 내려서는데 이곳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걸어 내려가니 곧바로 시멘트 포장도로 위에 안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며 온 몸의 생채기를 어루만져 본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가로 질러 다시 이어지는 벌목지 능선으로 오르니 금산군 부리면 관천리 2017년 추가 조림사업이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고 벌목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조림된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키 작은 소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다.

잠시 뜨거운 태양열을 받으며 그 벌목지 능선을 따라 오르니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지나온 등로를 뒤돌아 보니 지독한 산초가시로 고생하며 내려 온 벌목지 잡목지대가 보이고 그 아래 우측으로 아담한 민가 한채도 보이는데 아마 사람은 살지 않으면서 이곳으로 일을 할 때 사용하기 위한 건물은 아닐까 생각되는 집이다.

아까 저 잡목지대를 타고 내려오며 내려다 봤던 태양열 발전시설도 저 건물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시설처럼 보인다.

 

 

그 무명봉에서 지나 온 성치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거대한 느티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사로잡고 그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이제 제법 뚜렷한 서대산과 장령지맥 산줄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벌목지 정상에 고사목이 서 있는 303.9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장령지맥 산줄기 지나 곧바로 충남의 제일봉이라는 서대산이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을 향해 치솟아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등로 좌측인 북쪽으로 서대산과 장령지맥 산줄기를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드디어 벌목지대가 끝이나며 잡목들과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난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생각보다 산초가시들이 많아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조금 더 진행하다 가시에 찔려 극심한 통증을 참으며 등로 우측 앞을 보니 이제 통영대전간 고속도로 교각들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얼마 전에 걸었던 백하지맥의 갈기산 줄기와 월영봉이 보이고 그 좌측 위로 천태산도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지독한 잡목과 잡풀들 그리고 산초가시가 발목을 잡지만 주위에 보여지는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들이 있어 외롭지 않게 진행하니 이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초가시나무와 싸리나무가 등로를 완전히 막아 터주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유격 훈련을 받듯 기어 통과하고 ㅟ어 넘어 지나가며 어렵게 그 지독한 잡목지대를 빠져 나오니 멧돼지 목욕탕과 몸을 문지른 소나무가 죽어가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한숨 돌린 후 다시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검정 천막이 따라오는 소나무 등로가 이어진다.

잠시 후 잘 관리되고 있는 반남박씨 묘지지대를 내려가니 진행 방향으로 지독한 칡넝쿨들이 길을 막아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 하기에 우측 아래로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 방향으로 내려가 우회하며 그 묘지지대를 통과한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인삼포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 능선 방향으로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성치지맥 마루금이 빼꼼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직진 방향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90도 꺽어 내려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인삼포가 보이고 그 도로 끝자락에서 무조건 잡목들을 헤치고 능선으로 오르니 거대한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242.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 무명봉을 지나 지독한 칡넝쿨 지대를 힘겹게 빠져 나가니 밀양박공 묘지가 나탄고 곧이어 등로 우측으로 채석된 공사장이 내려다 보이는데 그 공사장을 보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소나무들이 보이는 224.2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등로를 따라 안부로 내려가고 다시 오르다 좌측 비포장 묵은 임도 같은 등로를 따라 우회하며 걸어가니 또 다른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완만하게 걸어 올라 묘지가 보이는 무명봉을 넘어 우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라 서낭당고개로 내려선다.

서낭당고개(37번도로, 서낭댕이 또는 성황당고개)는 우측의 금산군 부리면과 좌측은 남일면을 이어주는 고개로서 서낭당 또는 성황당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지역에 따라 서낭댕이로 부르기도 하며 이 성황당의 유래 등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아래와 같이 정리가 가능하다.

우리나라에는 마을 어귀나 고개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와 신성한 대접을 받는 나무(신목)나 장승을 쉽게 볼 수 있고 이 곳을 지날 때는 돌무더기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신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 돌무더기를 서낭당(또는 성황당)이라고 한다.

성황당은 중국 북제시대에 출현하여 송대 크게 번창했고 성읍을 수호해주는 수호신앙으로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은 고려 문종 때라고 한다.

특히 민간에서의 서낭은 종교적 의미가 농후한 신앙으로 전래되었으며 이미 고려시대부터 각 주부현마다 서낭을 두고 극진히 위하였고 고려 고종 때는 몽고와의 격렬한 전투에서 이들을 물리치게 된 것은 서낭신의 도움 때문이라고 하여 서낭신에게 국가에서 신호를 가봉하기도 했다.

서낭신은 조선시대에서도 수호신으로 호국이라는 의미를 담아 국행서낭과 민간의 신앙 대상인 서낭으로 나누어지기도 하는데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여러 산천의 서낭에 제사 지냈으며 이 후 국난이나 가뭄이 있을 때 서낭제를 거행하여 국태민안을 기도하기도 했다.

때문에 서낭신앙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우리 고유신앙으로 중국에서 들어 온 성황신앙과 형태 등이 비슷해 쉽게 융화되어 전래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특히 서낭을 표기하기 위해서는 한자로 성황(城隍)으로 밖에 기록할 수 없어 양자는 더욱 쉽게 융화될 수 있었을 것으로 추론되고 본래 우리 고유 민간신앙인 서낭은 산신인 산왕(山王)으로 산이 음성모음화 등 발음의 변화를 거쳐 산왕에서 선낭 그리고 서낭의 전음과정을 거쳐 정착된 명칭이라고 한다.

이 산객이 어릴적 시골에서 살때에도 역시 어머님이 성황당에서 굿을 하고 그 굿이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집으로 곧장 가야한다고 해 뜀박질로 귀가를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이야 산행을 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서낭당이나 성황당 고개 또는 당산나무들을 만나지만 예전처럼 실제 굿을 하는 서낭당이나 성황당은 거의 없는 듯 보이며 그럴 사람들도 살지 않는 듯 보여 세상이 많이도 변해가고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다.

 

 

서낭당고개인 37번 무금로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무명 묘지3기가 나란히 보이고 그 묘지 뒤로 잡목을 헤치고 오르니 벌통 하나가 눈에 들어 오는데 날씨가 추워지고 관리도 되지 않는지 벌들이 거의 사라지고 몇마리 남지 않은 벌들도 그 입구에서 죽어가고 있다.

그 벌통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 지나 온 방향을 뒤돌아 보니 성치지맥 마루금은 바로 앞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고 남쪽 방향으로 부남면쪽 노고산과 조항산 그리고 지장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들이 쭉 늘어 선 모습으로 다가온다.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묘지를 지나 다시 나타나는 벌목지를 타고 걸어 진행하니 진행 방향 우측 저 멀리 우측 끝자락에 백하지맥의 갈기산과 월영산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금강 넘어 천태산이 우뚝하고 그 천태산 좌측으로는 장령지맥의 대성산과 그 좌측 끝으로 보이지 않는 서대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참으로 아름다벡 다가온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고 조망이기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을 남기고 다시 그 벌목지 경계를 따라 천천히 산행을 이어간다.

오늘 저녁 약속도 취소가 되어 시간 개념없이 진행해도 늦게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애마 회수가 가능하고 또 어짜피 오늘 밤 이곳 금산에서 묵기로 하였으니 서두를 이유가 사라져 버린 셈이다.

 

그렇게 벌목지 경계를 따라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갑자기 공사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그 벌목지 끝자락으로 이동하였을 쯤 진행 방향 앞으로 거대한 공사 현장이 나타나며 많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와 함께 중장비가 가동되는 소음도 함께 들리기 시작한다.

이제 그 공사장 우측 저 멀리 확실하게 서대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좌측으로는 식장지맥의 산줄기가 이어지고 앞에서 우측으로 돌아가는 장령지맥의 산줄기가 서대산을 감싸듯 돌아가는 모습도 한눈에 들어 온다.

그 장령지맥 우측 아래로는 천태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도 보이는데 그 장령지맥과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잠시 후 불이 났던 흔적이 있는 능선으로 잠시 들었다 나오니 바로 눈 앞으로 가대한 공사 현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조심하며 그 공사장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가며 유심히 살펴보니 거대한 태양광 발전시설을 건설중에 있으며 이제 막 공사를 시작했는지 터 다지기 공사가 끝나고 태양광 패널들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어렵게 그 태양광 발전시설들을 세우는 공사 현장을 지나 나주 정공 묘지를  통과하니 드디어 공사현장 끝자락에 올라서고 능선으로 들어가니 숙부인순흥안씨 묘지가 보인다.

그 묘지를 지나 묵은 비포장임도 같은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인삼포가 다시 나타나고 그 인삼포를 지나면서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로 인해 혼이 빠질 지경이다.

 

이제 고속도로가 가까운지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들의 소음이 지척으로 들리기 시작하고 그 소음을 들으며 진행을 이어가니 몇기의 묘지들을 지나 잡풀들과 잡목이 우거진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를 지나 오르니 아카시아 나무들이 보초를 서고 조심하며 무명 묘지 한기를 지나니 지독한 소나무 잡목들과 가시나무들이 앞을 가로막아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무조건 좌측 사면으로 치고 어렵게 빠져 나오니 드디어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데 밭으로 가기 위해 올라 오던 할머니 한분이 놀라면서 땀을 흘리며 왜 그렇게 돌아 다니느냐며 걱정스런 눈빛을 보낸다.

등산한다며 안심시켜 드리고 몇마디 이야기 나눈 후 인사 드리고 우측으로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우측 저 멀리 통영대전간 고속도로를 건널 수 있는 지하통로가 보인다.

 

그 지하통로를 통해 통영대전간 고속도로를 통과하니 10여미터 진행된 지점 바로 눈 앞으로 논 경작지가 보이는 곳 직전 우측 능선 방향으로 등로가 나 있고 그 능선으로 오르니 드넓은 공사 현장이 나타나는데 승용차 몇대와 포크레인이 보이지만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아 무슨 공사를 하고 있는지 감이 오지를 않는다.

그 공사장을 지나 차단막을 통과하니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저 앞으로 갈림사거리 지나 밭과 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알록달록한 지붕을 한 민가들이 보이는 마을도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예천임공 묘지를 지나고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가니 거대한 빈축사 옆을 통해 방앗간 옆 도로를 따른다.

이곳은 선원리 마을로서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에 있는 리이며 완만한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집넘어골, 안골, 도라실골, 분터골, 선왕당골, 오뎃골, 안무덤실골, 가지골, 되늠달골, 동산재골 등이 마을 주위에 분포해 있으며 북서쪽으로 봉황천이 흐르고 있다.

남동쪽으로도 압수천이 휘돌아 나가면서 흘러가고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선원 마을 등이 있는데 선원 마을은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선인등대의 형국이라 해서 선원 마을이라 불린다.

방앗간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창평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고 그 도로를 건너 드넓은 초목지대 옆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드넓은 초목들이 자라고 한쪽에는 인삼포가 보이는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임도 우측으로 자동차 한대가 주차되어 있어 지도를 보니 양양소류지란 저수지가 보여 잠시 들려 보니 강태공 2명이 낚시를 하고 있는데 오늘 하루 종일 10여 마리의 작은 붕어만 낚았다며 투덜대는데 싫지 않은 표정이다.

인사 나누고 다시 임도로 되돌아 와 우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잘 관리되고 있는 경주김씨 가족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 뒤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붙으니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묵은 밭 경작지로 이어진다.

한동안 올라 밭 경작지 끝자락에서 능선으로 오르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240.6 무명봉에 올라 사진 한장 남기고 좌측으로 돌아 가니 묘지들이 보이는데 그 묘지 위에서 북쪽을 살펴보니 여전히 서대산과 그 좌측으로 식장지맥 산줄기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그렇게 한동안 묘지 위에서 조망을 즐기고 다시 출발하니 또 다른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들을 지나니 묵은 비포장임도 같은 넓은 등로가 이어지고 있어 마음 편하게 걸어 본다.

또 다시 나타나는 묘지지대를 지나니 시멘트 포장도로 위로 떨어지고 그 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등로는 우측으로 그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좌측 능선으로 붙으면 될 듯 싶은데 너무 일찍 능선으로 올랐다 길이 막혀 다시 내려왔다 오르는 촌극도 벌인다.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몇발자국 진행하여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또 얼마 가지 못해 절개지 안부로 떨어지는데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우측 포장도로로 내려 와 진행하며 깊은 안부를 사진에 담아 본다.

그 안부를 지나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또 다시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넓은 묵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방금 전 봤던 채석장 절개지 같은 공사터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잡목지대를 뚫고 전진하니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지대를 지나 금산군 부리면 평촌리의 물폐기길 2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한다.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그 물폐기길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지독한 잡목 지대를 지나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 2기를 통과하고 또 다시 나타나는 묘지지대를 넘으니 등로 좌측인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태양 아래 아름다운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후 묘지 위로 올라 이제는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백하지맥 마지막 구간을 지나 금강으로 낮아졌던 산줄기가 천태산을 일으키고 그 좌측으로 돌아 오르며 장령지맥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아름답게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 묘지 위에서 멋진 조망을 즐기고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잡목들과 나무들로 인해 조망이 막혀 한동안 산행에만 집중을 해야 하는데 중간 중간 갈림삼거리들이 자주 나와 신경을 바짝 쓰고 알바하지 않토록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다.

잠시 후 다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무명봉을 지나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에 내려서는데 등로 옆으로는 이곳도 역시 인삼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인삼의 고장답게 어디를 가던 인삼포가 지천에 깔려 있다는 표현이 맞을 듯 싶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아카시아 나무들이 보이고 조심 해 오르니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을 재배하는 밭 경작지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다시 능선으로 이어진다.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묘지를 지나 계속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238.6 갈림삼거리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리끼다 소나무 아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ㅣ르게 전진하니 279.5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무명 안부를 통과한다.

여전히 리끼다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생각보다 몸의 컨디션도 좋아지고 배낭이 가벼워지며 자꾸만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 진악산 위로 하루를 밝혔던 태양이 두꺼운 구름속에 갇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고 그 아래 우측으로 식장지맥과 장령지맥 분기점이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또한 이 산객의 마음을 끌어 당기고 있다.

이제 산행 날머리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데 짧은 하루해도 벌써 서산으로 기울며 그림자를 길게 만들고 있어 괜시리 마음만 바빠지는데 약속이 취소되면서 너무 여유를 부린 것은 아닌지 마음만 바쁜 시간이다.

 

다시 줌으로 당겨 보니 진악산 우측인 북서쪽으로 금산읍내가 가깝게 자리하고 그 읍내 뒤 저 멀리 톱날 형상을 하고 있는 대둔산과 그 중간으로 나즈막한 산줄기 하나가 지나가고 있는 모습이 뚜렷하게 다가온다.

다시 안부를 지나 독도 띠지가 걸려 있는 274.5 무명봉에 오르고 조금 더 전진하니 아카시아 나무 군락지가 보여 조심하며 그 구간을 통과한다.

다시 수확이 끝난 밭 가장자리를 타고 진행해 능선으로 들어가니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나타나는 잡풀 안부에서는 어렵게 그 잡풀들을 헤치며 안부를 넘는다.

 

지독한 잡풀들이 무성한 무명 안부를 통과하니 묘지지대가 나탄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올려다 보니 부드러운 256.5봉으로 이어지는 단풍 능선에 하루해가 기울어져 가며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그려 넣고 있다.

낙엽이 푹신한 낙엽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맨발님의 이정판이 걸려 있는 256.5봉에 도착을 해 사진에 담으며 그 고마움에 목례를 하고 출발한다.

 

그 256.5봉을 넘어 전진하니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지대가 길게 나타나는데 그 묘지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가다 살펴보니 이제부터 걸어가야 할 마지막 마루금이 보이고 그 마루금 넘어 저 멀리 천태산에서 서대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들이 기울어져 가는 햇살을 받아 더욱 빛나고 있다.

잠시 더 묘지를 타고 내려가다 비석을 보니 조선종실이공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지금까지 전국의 수많은 묘지들과 비석들을 만났지만 이처럼 조선종실이공이라는 묘비는 처음이기에 사진에 담아 본다.

그 묘지지대를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그 도로 한쪽에는 솔바람길이란 안내 이정표가 보이고 진행 방향으로 처음 소사봉이란 글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 임도는 제원면 명암리와 금성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술나미골이라고도 불리는 듯 보이는데 그 유래는 알지 못한다.

 

술나미골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양쪽으로 칡넝쿨이 우거져 있지만 산소를 가기 위해 정리를 하였는지 등로는 뚜렷하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멋진 조망이 열리고 살펴보니 금산읍 우측 저 멀리 톱날 형상을 하고 있는 대둔산이 정중앙 뒷편으로 보이고 그 앞 좌우측으로 금남정맥 산줄기가 펼쳐져 있어 잠시 살펴보고 걸어 올라 본다.

이제 하늘은 약간 먹구른이 몰려오며 오늘 하루해도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다.

 

멋진 조망을 살펴보고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생각보다 뚜렷하게 리끼다 소나무 등로로 이어지고 한동안 평이하게 걸어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바위가 보이는데 그 앞에 안내판이 보여 살펴보니 바위 이름을 지어달라는 안내판인데 그 안내판 좌측으로는 대문바위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전혀 대문처럼 보이지 않는 바위이지만 이야기를 잘 만들어 안내하면 이 바위도 대문바위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요즈음은 사실 스토리텔링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세상이니 말이다.

 

대문 바위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다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발 아래 금성리 지나 저 멀리 백하지맥의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 위로는 천태산 줄기가 환상이다.

백하지맥 산줄기 넘어 저 멀리에는 각호지맥 산줄기가 하늘금에 맞닿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그곳을 걸으며 이곳을 살펴보며 어느곳일까 궁금했던 의문이 해소되는 시간이다.

금성리는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에 있는 리로서 완만한 구릉성 지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중앙에는 마람들, 산정들, 팽나무거리들 등이 펼쳐져 있으며 그 주변에 오릿골, 텃골, 맞바우골 등이 위치해 있다.

마을 서쪽에는 금성 소류지가 있고 남쪽으로 주토천이 지나가고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못골, 학골 마을 등이 있는데 못골 마을은 못이 있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학골 마을은 예전에 학이 많이 날아들어왔다 하여 생긴 명칭이다.

 

그렇게 등로 우측의 동쪽 방향을 살펴보며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벌목지대가 펼쳐져 있고 그 경계 지점에 커다란 소나무가 일렬로 심어져 있는 형상이다.

다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도 조망이 열리기 시작하고 잠시 살펴보니 금산읍 좌측 아래 진악산 위로 오늘 하루 세상을 밝혔던 햇살이 두꺼운 구름속에 갇혀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잠시 후 솔바람길이란 커다란 안내판 아래 이곳이 소사봉이라는 이정판이 붙어 있는 소사봉 정상에 도착을 해 배낭 벗어 놓고 잠시 휴식 취하며 식수 한모금으로 길증을 풀어 본다.

준희님의 정상판도 붙어 있는 곳을 지나 몇발자국 더 걸어 오르니 이원309 삼각점이 박혀 있는데 삼각점은 너무 낡아 인식이 불가능한데 그 옆에 서 있는 안내판이 상세한 내용을 알려주고 있다.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다시 정상판이 붙어 있는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가며 정상부 사진을 남겨 본다.

소사봉(309.1미터봉, 이원309 깨진 삼각점)은 언제 지났는지도 모를 기러기봉을 뒤로하고 정상으로 향하다 보면 우측으로 환상의 풍경이 펼쳐지는 정상이다.

앞으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 방향에서 오르면서 보면 마을의 지형이 기러기처럼 생겼다고 하는 구레기 마을과 포평들 및 그 너머 천왕산천인봉국사봉서대산대성산 등 제원면의 들판과 금산군 동북부의 산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광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280전망대를 뒤로하고 소사봉을 향하자면 소사봉 북쪽 자락길로 길은 이어지고 그 자락길을 걷다 보면 제원면의 너른 들판과 어우러진 산지의 멋스러운 풍경이 곳곳에 숨어있어 자주 발길을 멈추게 한다.

자락길을 지나 이어지는 소사봉 가는 길은 솔바람길의 최고봉으로서의 이름값을 하는데 돌고래바위를 지나 봉우리 막바지에 다다르면 가파른 길을 내어놓는다.

그러나 긴장을 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 평이한 등로에 비해 비교적 가파르다는 것이지 여느 산에 비하면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는 애교스런 구간이라 할 수 있다.

 

 

소사봉에서 한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하다 보니 시간적으로 충분하지 못해 다시 배낭 메고 일어 나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깔려 있는 통나무 계단을 타고 걸어 내려가 본다.

그렇게 한동안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등로 옆으로 작은 바위가 보이고 그 옆에는 안내판이 서 있는데 살펴보니 돌고래바위라는 이름이 보인다.

위에서 내려갈 땐 잘 몰랐는데 지나 뒤돌아 보니 돌고래를 닮은 듯 보이기도 하지만 이름까지 붙여 주기엔 부족함이 있지만 역시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문제일 듯 싶다.

 

그 돌고래바위를 지나니 잡풀이 우거진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날머리쪽 풍경이 살짝 보이기 시작하고 다시 둔덕을 넘어 또 다른 깊은 무명안부를 지난다.

안부를 지나니 솔바람길 이정표가 보이는데 거리 표시는 없이 방향 표시만 되어 있는 이정표로서 방금 전 내려 온 소사봉과 우측으로 생태체험장이란 글자가 보인다.

그 이후 좁은 능선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두꺼운 구름속에 갇혀 하늘만 붉게 만드는 하루해가 서산으로 지고 있다.

잠시 280봉 솔바람길 안내판이 서 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빠르게 출발하니 등로 좌측으로 봉황천 합수점 건너 천내리쪽 아름답게 펼쳐진 암릉들이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다시 눈을 돌려 좌측 아래를 살펴보니 정확하게 우측의 금강과 좌측의 봉황천이 만나는 합수점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자지산과 천앙봉이 V 계곡을 그리며 환상으로 솟아 있고 그 뒤 저 멀리에는 서대산과 장령지맥 산줄기가 병풍처럼 길게 둘러쳐진 모습으로 하늘금에 맞닿아 있다.

천내리로 도리뱅뱅과 어죽을 먹으러 가서 자주 만났던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에 위치한 해발 400미터대의 자지산과 부엉산은 전체적으로 바위산으로 자지산은 산 정상부에 산성이 있어 성재산으로도 불리우는데 임진왜란때 중봉 조헌 선생이 주민과 의병을 데리고 싸웠다고해서 조헌 선생의 호를 따라 중봉산으로도 부르기도 하며 옛날 약초인 지치나 영지가 많아 자지산(紫芝山)이라고 불리운다.

풍수지리상 자지산은 남성의 성기모양이라 양이며 부엉산 남쪽 바위절벽에 여성의 성기 모양을 한 음굴이 있어 자지산과 부엉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양산이라 할 수 있다.

천태산 쪽에서 자지산을 보면 산줄기가 서쪽으로 뻗어나가다가 머리를 불끈 들어올린 듯 마치 남성이 성을 낸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언제 한번 기회되면 저 자지산을 부엉산과 연계하여 꼭 한번 올라 음양을 확인해 보고 싶은 산들이다.

 

그렇게 한동안 등로 좌측으로 합수점 부근을 확인하고 다시 등로 좌측으로 벌목된 경계를 따라 걸어가니 금강솔바람길이란 커다란 안내판과 벤취쉼터 하나가 눈에 들어 오고 잠시 글을 읽어 본 후 능선으로 들어가니 등로는 여전히 리끼다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다.

잠시 후 이원24 삼각점이 박혀 있는 282.9미터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제3코스로 나뉘어져 있는 솔바람길 안내도를 살펴보는데 그 아래 작은 이정판에 이곳이 기러기봉이란 글자가 보인다.

솔바람길은 금산군에서 2013년도에 개통한 둘레길로서 강과 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고 있는 금강변을조망할 수 있다.

금산의 봉황산은 웬만한 지도에는 나오지도 않는 작은 산으로 봉황산 줄기와 이어져 있는 소사봉(해발 309m)  정도만 외부에  알려져 있을 뿐이며 게다가 일부 지역은 개인 소유의 땅이라 그동안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등산로 역시  곳곳에 산재한 묘에 벌초를 하러 가기 위한 오솔길 정도만 희미하게 나 있었고 이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에 금강 솔바람길이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는데 세부적으로는 봉황술래길, 고향술래길, 솔바람길 등 모두 3코스로 구분되어 있다.

지맥 산행이 모두 마무리되면 시간 구애 받지 않고 이런 둘레길을 세월 나듯 걸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삼각점이 박혀 있는 282.9미터의 기러기봉 삼각점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가 우측으로 90도 꺽어져 이정표를 따라 진행되고 그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여전히 백하지맥과 천태산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산줄기가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다.

오후 내내 보고 만났던 풍경들이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만으로 가슴속에 쌓이는 것은 그만큼 저 산줄기를 걸으며 내것이 되었다는 의미이니 좋은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조망을 즐기고 다시 가파르게 내려가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 2기를 지나니 커다란 참나무들이 등로를 지키는 평이한 등로로 바뀌고 있다.

다시 참나무와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칡넝쿨이 보이는 안부를 지나 부드러운 낙엽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어둠이 짙어지는 시간에 마음처럼 발걸음도 바빠지기 시작하고 그렇게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무명안부를 다시 통과하고 조금 더 전진하니 커다란 금강솔바람길이란 안내판이 서 있는 봉황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일반 지도에는 표기가 되어 있지 않지만 금산군에서 솔바람길을 개척하며 봉황천의 이름을 따 봉황산아란 이름을 붙힌 것은 아닐까 추측을 해 본다.

내용을 보니 이곳은 봉황이 동녘을 향하여 힘찬 날개짓하려 하는 봉황대라는 설명이 보인다.

 

봉황산을 지나 등로 우측으로 금강을 내려다 보며 사면 등로를 따르니 얼마 지나지 않아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그 날머리에는 권충민공순절비가 서 있어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권충민공순절비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되었는데 1592년 임진왜란 때 순절한 금산군수 권종의 유허비으로서 권종은 영동지방을 산으로 쳐들어오는 왜적을 막기 위하여 60세의 노구를 이끌고 출정하여 강을 건너오는 왜적을 막다가 중과부적으로 그의 아들 준과 함께 전사하였다.

비석은 제원대교 입구에서 서남으로 약 50미터 지점에 세워져 있는데 전면에 증정헌대부이조판서시충민공행금산군수안동권공휘종순절유허비라고 한자로 새겨져 있으며 이 순절비의 글은 이승보가 지었고 글씨는 11대손인 정현이 썼다.

1878년(고종 15) 금산 유림에서 비를 세웠으나 1941년 일제에 의해 비석의 비문이 뭉개진 것을 8·15광복 후 다시 세웠고 1974년 비각을 건립하였다.

사각형 비석과 옥개형의 비수를 갖추었으며 비신의 높이는 1.76미터에 너비 0.51미터이고 두께 0.4미터이며 옥개석은 높이 0.35미터에 길이는 1.07미터이고 너비는 0.86미터이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로 부터 칭송 받는 권종님이 되기를 바래본다.

 

 

그 권충민공순절비를 지나 우측으로 걸어 나오니 금새 601번 용화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고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나가니 도로 우측으로 제원대교가 보인다.

제원대교 건너 우측으로는 영동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 가면 금산을 지나 대전으로 가는 도로이다.

제원대교를 지나니 도로 우측 금강변에 이곳이 저곡2리 개티마을이라는 커다란 이정석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이곳이 금강임을 알리는 커다란 도로 표지판도 서 있다.

저곡리는 서쪽으로는 산 높이 309미터의 소사봉이 우뚝 서서 그 여맥으로 잔잔한 산악지대가 이루어지는가 하면 서쪽으로는 남동쪽에서 흘러오는 금강이 북쪽에서 서쪽으로부터 흘러가는 봉황천과 합류하는 지점에 넓은 들을 조성하여 산악지대 절반과 들이 절반인 비교적 완만한 농촌지대의 표본 같은 지역에 저곡리가 자리한다.

동쪽으로는 금강을 사이에 두고 천내리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제원리와 남쪽으로는 금성리와 제원리 남쪽으로는 금성리와 용화리 그리고 북쪽으로는 대산리와 경계를 나누는 지역이다.

인류의 정착은 선사시대로 보는데 백제 때는 이성현에 속했었고 고려 때는 처음에 부리현에 속했다가 19대 명종 5(1175)에는 감무가 다스리는 지역에 속했으며 제25대 충렬왕31(1305)에는 승격한 금주에 속했었다.

조선시대 초기 태종 13(1413)에는 금산군에 속했었으며 옛날부터 금강변에 위치한 저곡리는 남쪽에서 또는 북쪽에서 왕래하는 큰 길이 있어서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선조 때 일어난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이 진격해 오는 그 잔인한 발굽 아래 마을이 회생하는 비극을 초래하기도 하였고 또한 진격해오는 왜군을 무찌르기 위해서 닥실나루에서 또는 저곡산성에서 많은 의병과 관군이 끝내 저항하다가 전사하는 전쟁터가 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끝내는 금산군수 권종이 왜군을 막다가 순절하는 그 애국의 장소가 저곡리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금산군 부북면의 지역으로서 닥나무를 많이 심었으므로 닥실 또는 저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저곡리라 하고 전라북도 금산군 제원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 1 1일 행정구역 개편 때에 충청남도에 편입하여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저곡리가 되었다.

리의 면적은 2.14 Km2에 가호수는 96호이며 인구는 334명이다.

몇번 거쳐 지나갔던 기억이 있는 마을이기에 다시 한번 가슴속에 그 풍경을 담아 본다.

 

이제 제원대교를 지나 1차선 포장도로인 둑방길을 타고 봉황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 방향으로 걸어 간다.

어둠이 조금 더 짙어지며 발걸음을 서두르게 만들지만 이제 막바지에 도착을 하였기에 급할 것 없이 걸어가니 저 멀리 합수점 넘어 천아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 저 멀리에는 국사봉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압권으로 다가온다.

우측으로 흐르는 금강에 물줄기라도 보이면 좋겠지만 수중식물들이 자라면서 물길을 숨겨 놔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시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삼락원이라는 멋진 건물이 보여 살펴보니 인삼과 관련된 물건을 판매하고 인삼을 홍보하기 위한 건물처럼 보이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그 삼락원을 지나 조금 더 걸어 가니 드디어 좌측의 봉황천이 우측에서 흘러가는 금강을 만나 합수되는 합수점에 도착하여 두구간으로 나눠 진행했던 성치지맥 산행을 마무리하며 자축하는 셀카 한장 남겨 본다.

아무 사고 없이 무탈하게 마무리하였음에 감사하며 잠시 더 머물며 합수점과 주위 풍경과 조망을 살펴보고 이어지는 둑방길을 타고 제원교를 지나 제원면 버스 정류장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간다.

 

제원면을 살펴보며 우측에 봉황천을 두고 걸어가니 이제 세상은 완전한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하늘에선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으며 그 아래 펼쳐진 민초들의 거리에는 하나 둘 등불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봉황천은 충청남도 금산군의 남이면 상금리의 간운리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원상금 앞에서 궁동천을 합하고 하금리의 원하금 아래에서 역평천을 합한 후 흑암리에 이르러서는 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남일면의 북쪽을 지나다가 음대리 북쪽에서 신정천과 보석천을 차례로 합한 후 계속 북류하면서 관천과  금산천을 유입하고 참뱅이들 앞에서 동북 쪽으로 방향을 튼 후 제원면 명암리에서 기시천을 합해 대산리에서 금강에 유입되는 하천이다.

조선 시대 지리지나 지도에서는 신천으로 기록되어 왔는데 여지도서(금산)에 신천은 군 동쪽 8리에 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첨부된 지도에는 신천 상류를 금천(쇠내)으로 표시하고 있는데 현재 남이면 상금리와 하금리 지역을 흐르는 봉황천 상류 하천의 다른 이름으로 보인다.

봉황천이라는 이름은 봉황새가 많이 날아드는 하천이라 하여 후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봉황교에서 관련 지명이 엿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드디어 68번 금강로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걸어가니 제원교를 통해 제원면으로 들어간다.

 

 

드디어 제원면 버스 정류장에 도착을 하니 오후 6시가 넘어가고 버스 시간표를 보니 45분 쯤 이곳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두대 연속으로 있어 여유있게 배낭 정리하며 남아 있는 음료수와 과일로 허기를 달래 본다.

한동안 기다리다 오후 6시 25분이 지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히치 하이킹을 시도해 보지만 잠시 후 일반 군내 버스가 돌아 오고 목숨걸고 잡지 않으니 실패하고 마음 편히 조금 더 기다렸다 10여분 늦게 들어 오는 군내버스를 이용해 금산읍사무소에 도착을 해 애마를 이끌고 자주 이용했던 금산웰빙24시 불가마사우나로 들어가 샤워하고 나니 살것만 같다.

제원면은 충청남도 금산군의 동쪽에 위치한 면으로 동쪽의 천태산과 월앙봉을 경계로 충청북도 영동군과 접하고 남쪽의 소사봉과 금강을 경계로 부리면과 접하는데 면내를 통과하는 봉황천과 금강 유역에는 평지가 발달되어 있고 현재 제원리, 용화리, 저곡리, 천내리 등 13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제원이란 명칭은 현 제원초등학교 자리에 들어섰던 제원역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세종실록지리지(금산)에 역이 하나인데 제원이다라 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제원역은 군의 동쪽 5리에 있으며 승()이 있고 본도의 속역은 넷이니 소천, 달계, 단령, 옥포이며 승이 각 1명씩 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제원역은 무주와 용담, 진안, 고산 등 주변 지역에 있던 역을 관장하는 찰방역으로 해동지도와 1872년지방지도에도 그 건물의 규모와 배치가 강조되어 표현되고 있다.

본래 조선 시대 군의 부북면과 동일면 지역으로 호구총수에 대산리, 용화리, 금성동리, 명곡리 등 다수의 동리 명칭이 확인되고 1895년 지방관제 개편 때 공주부 금산군에 그리고 1896년 전라북도 금산군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부북면의 금성리, 수당리, 대산리 등 13개 동리와 동일면의 신안리, 구억리, 동곡리 등 12개 동리 그리고 군북면의 백운리 일부를 합쳐 제원면으로 하여 현재의 13개 동리를 관할하게 하였다.

1963년 군이 전라북도에서 충청남도로 이관됨에 따라 도의 금산군 제원면으로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몸 단장하고 사우나를 나와 다리를 건너 해장국집으로 가다보니 해장국집 바로 옆에 순대국집이 이어 그곳으로 들어가 특으로 시켜 밥 한공기 더 부탁하고 시원한 맥주 한병으로 성치지맥 완주를 자축하니 또 하루가 지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산행 후 먹는 음식 중 최고는 돼지국밥과 순대국 종류인데 이곳 금산에서도 그동안 찾지 못했던 맛난 순대국밥 식당을 찾았으나 이제 금산으로 내려 올 기회가 점점 줄어 드니 그것이 아쉬운 시간이다.

순대국밥은 돼지 뼈를 우려 만든 육수에 순대를 넣어 끓여먹는 국밥형태의 음식으로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순대를 포함하여 간과 염통과 같은 내장 부위와 머리고기도 조금씩 들어간다.

순대는 전국에서 즐겨먹는 대중 음식으로 지역마다 만드는 방법과 형태가 다르며 평안도와 함경도의 아바이순대, 강원도의 오징어순대 충청도의 병천순대 등이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종류들이며 가장 대중적인 순대는 당면과 찹쌀을 섞어 만든 찰순대이다.

순대국밥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일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저렴하고 간편하게 즐기면서 알려졌으며 순대국밥에 들어가는 순대는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보통 숙주, 배추, 두부, 선지, 간 돼지고기 등을 갖은 양념과 함께 치대 깨끗이 씻은 돼지 곱창에 넣어 만든 것을 사용한다.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특대를 시켜 시원한 맥주 한병에 밥 한공기를 더 시켜 먹었는데도 배부름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오늘 산행도 만족한 산행이 된 듯 싶은 시간이다.

 

원래 계획은 오늘 이곳 성치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양각지맥 산행을 두구간에 나눠 완주한 후 올라갈 계획이었지만 오늘 생각보다 길게 산행을 했고 내일 살펴 본 관암지맥 산행도 높이는 높지 않지만 반석역부터 시작하면 산행 거리가 만만치 않아 오늘은 이곳 금산에서 마음 편히 쉬고 내일 새벽 같이 일어나 금강변으로 가 첫차로 반석역까지 되돌아 나와 마음 편히 남아 있던 관암지맥 산행도 마무리하고 올라 가기로 한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몸은 좀 피곤하지만 환상적인 조망과 풍경에 취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좋은 추억을 남긴 성치지맥으로 기억할 것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91025 성치지맥 제2구간 솔치-봉황천 합수점.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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