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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백하지맥(대간·완)

백하지맥 제1구간 천만산 분기점에서 압치고개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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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북도 영동군과 전라북도 무주군의 백하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9년 08월 31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하며 여전히 무더웠지만 약간의 산들바람이 불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16도에서 영상 30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조동리 불당골(49번 2차선포장도로)-불당골길 갈림삼거리-불당골길 시멘트 포장도로-마지막 자재창고-능선진입-묵은 시멘트 포장도로-계곡 잡목능선 진입-각호지맥 마루금 접속-천만산(960.1봉, 삼면봉, 백하지맥 분기점)-백하지맥 출발-906.8봉-892 무명소나무봉-무명안부-바위암릉지대 우회-878.1봉-879 무명잡목봉-882 무명잡목과 바위봉-천마령(925.2봉, 삼각점)-930 무명소나무봉-930 공터봉 길주의 구간-803 무명참나무봉-시멘트포장도로와 비포장임도 경계 정상(산막임도정상, 천마령 설명판) 이정표(조동리 3.7 Km, 산막임도삼거리 4.0 Km)-829 무명봉-벌목지-929 무명봉-906 무명봉-853 무명 고사목잡목봉-882 무명바위 조망-783 무명안부-808.7 바위봉-797 무명소나무봉-807 무명고사목봉-791 무명고사목버섯봉-800 무명소나무봉-856 무명잡목봉-너럭바위-성터자갈등로-871.8봉-성터 자갈들-823 무명잡목봉-796 묵은헬기장-820 삼면봉-701 무명바위봉-벌목된 잡목등로-묵은 비포장 임도-664.8봉-벌목지 묵은 비포장 임도 잡목등로-능선진입-567 길주의 지점(좌측)-463.2 삼각점봉(이원474 삼각점)-성황당 안부-608.5봉-이장된 묘지공터-도덕재(581번 2차선포장도로)-이동통신탑-송전탑-진삼령(안부)-571 산불감시초소-길주의 지점(우측 띠지)-545 무명봉-산불흔적-521.2봉-504 무명참나무봉-576.5봉-563 길주의 지점(좌측)-520 길주의 지점(좌측)-434 무명봉-425 무명봉-여의치(비포장임도)-470 묘지봉-627.8봉(공터)-바위암릉구간-백하산(백운산, 633.1봉, 이원28 삼각점, 묘지1기)-562 무명봉-불난흔적-바위전망-574.2봉-491.7봉-518 길주의 지점(좌측)-496 무명봉-검정천막-압치터널 위-압치고개(무학로 2차선 포장도로)-지맥산행 종료-봉소리압치마을회관-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7.11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조동리 불당골에서 봉소리 압치마을회관까지 진행)

              지맥산행-약 22.76 Km, 천만산 정상 분기기점에서 압치터널까지 산행

              접속구간-약 04.35 Km, (조동리 불당골에서 천만산 백하지맥 분기점까지 01.89 Km와

                                           압치고개서 압치마을회관까지 02.46 Km 도보 포함)

산행트랙

20190831 백하지맥제1구간 천만산 분기점-압치터널.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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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시간 :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해졌지만 여전히 무더운 날씨속에 많은 휴식을 취하며 길게 행하여 12시간 29분 

               (07시 10부터 19시 41분까)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02:50 애마로 집에서 출발

                               05:35 영동군 양강면 유점리 폐쇄된 미봉초등학교 앞 주차장에 도착 후 배낭 정리

                               06:16 영동읍에서 불당골로 운행되는 144번 군내버스 탑승

                               07:06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 조동리 불당골 종점에 도착하여 배낭 정리 후 곧바로 산행 시작

                       올때 - 19:06 압치터널 위 구 2차선 포장도로에서 지맥 산행 종료

                               19:35 충청북도 학산면 봉소리 압치마을회관까지 도보로 이동

                               19:43 무주에서 영동으로 운행하는 버스에 탑승하며 미봉초등학교에서 하차 후 애마 회수

                               20:30 영동읍 영동참숯불가마 찜질방에서 3초 삼겹살로 저녁식사 후 잠자리

백하지맥이란 ??? 

백하지맥은백두대간 삼도봉(1178봉, 충북과 전북 및 경북)에서 분기한 각호지맥이 석기산(1242봉), 민주지산(1242봉), 각호산(1202봉), 도마령을 건너 천만산(960.1봉)에서 각호지맥은 북쪽 삼봉산(930.4봉), 백마산(534.4봉)으로 올라가 영동군 심천면 용당리에서 금강과 초강을 만나며 끝나고 천만산(960.1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또 하나의 산줄기는 천마령(925.2봉), 백하산(633.1봉), 칠봉산(519.9봉), 성주산(622.5봉), 갈기산(585봉)을 지나 금강에 드는데 길이 37.2 Km되는 이산줄기를 백하지맥이라 칭한다. 

이 산줄기는 신산경표 개정증보판이 나오기 전에는  길이 30 Km이상되고 강유역면적이 200 Km2이상되는 147개 지맥에서 빠져 있었는데  그후  측정하여 기타 오류를 수정하여 강기준이 200 Km2 이상으로 분류되고 산줄기 길이가 30 Km이상으로 분류돼서 개정증보판이 나오면서 4개(백하, 사금, 무성, 칠보)의 산줄기가 지맥반열에 합류했는데 백하지맥도 그중의 하나로 지맥의 긑을 무주 남대천에서 성주산을 거쳐 금강에 이르는 산줄기로 수정됐다.

 

 


폭염은 지났지만 여전히 무더운 날씨속에 환상의 조망을 즐기며 새로운 산줄기와 인연을 맺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또한 백하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충청북도 영동군과 전라북도 무주군의 각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와 네이버의 지식백과  및 다음의 백과사전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할 수 있음도 알린다.


지난 2주 연속 이곳 영동쪽으로 내려 와 어려움은 있었지만 결국 각호지맥 산행을 3구간으로 나눠 완주할 수 있었지만 제2구간은 차후 기회되면 다시 한번 더 트랙과 카메라를 준비하여 오를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 각호지맥에서 분기한 백하지맥 산행을 위해 이번 주 다시 이곳 영동을 찾게 되었다.이번에 이곳 영동을 다녀가며 영동에 대해 조금 더 많은 내용을 알게 되었는데 그 중 제일은 이곳 영동이 과일의 고장이라는 것인데 이미 잘 알고 있던 감 뿐만 아니라 포도, 복숭아, 호두과자도 매우 유명하여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듯 보인다.특히 지금이 이곳 영동에서 포도 축제 기간이고 내일 9월 1일이 전국 마라톤대회가 열려 많은 인파들이 몰려 들기에 찜질방에서는 조금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렇기에 편안하게 새벽 된장국도 먹으며 편리한 부분도 있었음에 고마운 시간이기도 하였다.이제 이곳 백하지맥 산행을 내일까지 마무리하고 나면 언제 다시 이곳 영동에 들릴 기회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기에 조금 더 기억에 남고 추억될 수 있는 영동에서의 시간이길 바래 본다.

 

이 산객이 걷고 있는 이 산줄기의 이름을 부여한 백하산 정상에서 정상석 하나 없음에 아쉬움을 남기고 산행을 이어가니 약간의 암릉구간이 펼쳐지고 그 등로를 타고 걸어가며 등로 우측인 북쪽을 살펴보니 바로 앞 19번 도로와 학산천 넘어 동서로 길게 펼쳐진 좌측의 용소봉 줄기가 단독으로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좌측으로 내일 걸어야 할 성주산 지나 갈기산으로 이어지는 백하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시원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정 중앙 제알 뒷쪽으로는 충남의 최고봉이라는 서대산이 우뚝하고 그 바로 앞 뾰족하게 솟아 있는 천태산이 옛날 고운 단풍과 함께 만들었던 추억을 꺼내며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좌우측으로 돌아가며 제법 톱날 형태로 둘러 친 장령지맥과 서대산 우측으로 보이는 장령산이 지난 봄 흘린 땀방울에 대한 소설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 장령지맥 끝자락 앞쪽으로는 예전에 그곳으로 가면서 약간의 차량 접촉사고가 있었던 마니산과 그 뒤로 옥계폭포로 유명한 달이산 줄기가 제법 웅장한 모습으로 이 산객을 부르고 있어 내년 여름철 더위가 시작되면 잠시 들려 옛 추억을 이야기 할 기회도 있으리라 생각도 해 본다.

생각보다 더 환상적인 조망과 풍경 그리고 최근에 올랐던 산줄기들이기에 이름을 불러 줄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한동안 발걸음 멈추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즐겨 본다.

 

 

정북 방향을 살펴보고 이제는 눈을 돌려 남쪽 방향인 좌측을 살펴보니 그곳에도 역시 좌측의 청량산과 백운산이 우측의 적상산으로 완벽한 쌍벽을 이루는 산줄기를 펼쳐보이고 그 한가운데 저 멀리에는 지난달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즐겁게 걸었던 덕유산 향적봉이 하늘 아래 솟구쳐 구름과 맞닿아 있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늘 자주 만났던 풍경이지만 보는 각도와 위치에 따라 늘 조금씩 변화된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니 바라보는 재미가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겨울철 눈이 내리면 다시 저 덕유산 자락에 들어 칼바람을 맞으며 황홀한 상고대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홀로 지방에 내려가 이틀 간 지맥 산행을 하다보니 교통편으로 늘 애를 먹게 되는데 이곳 백하지맥 역시 구간 나누기가 애매하여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참조하다 보니 육백님이 이미 폐쇄된 이곳 미봉초등학교에 애마를 주차시킨 후 새벽 이른 버스를 타고 불당골로 들어가 도마령에서 산행을 했다는 후기가 있어 참고를 해 보지만 역시나 산행 후 다시 한번 더 버스를 타고 와 애마를 회수해야 한다는 것이 약간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새벽 이른 시간인 5시 35분에 폐쇄된 미봉초등학교로 들어가는 출입구 옆 진입로에 애마를 잘 주차시킨 후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난 미봉초등학교 운동장과 교정을 사진에 담고 그 옆에 보이는 수준점도 확인해 본다.

사진 몇장 남기고 폐쇄된 미봉초등학교 앞에 자리한 미봉버스정류장으로 나가 배낭 정리하고 조금 더 기다리니 영동에서 6시 10분에 출발한 144번 버스가 도착을 하고 그 버스를 타고 돌고 돌아 조동리 불당골로 향하는데 오늘 산행 후 무탈하게 이곳으로 다시 와 차량 회수나 문제없이 가능한지 조금은 불안하기도 하다.

 

 

오래 전 두번이나 민주지산 산줄기를 찾아 올라왔던 도마령이지만 이렇게 산줄기 이어가기 산행을 위해 다시 들리다 보니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오르게 되었는데 2주전 처음 오를 땐 상촌과 황간쪽 고자리를 통해 올라 왔고 또 한번은 애마를 가지고 올라 와 도마령에서 삼도봉까지 왕복 산행을 하였으며 이번에는 용화쪽 조동리를 통해 불당골에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144번 버스에 거의 혼자 타고 이마을 저마을 돌고 돌아 조동리 불당골에 도착을 하니 생각보다 많이 늦지 않은 아침 7시를 넘기고 그곳에서 잠시 산행 준비 후 49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북동쪽인 도마령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오르며 오늘 산행을 시작한다.

옛날 불당이 있어 불당골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조동리는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에 있는 리로서 천만산과 각호산 자락에 있으며 용화천의 발원지이고 임야가 넓으며 밭농사를 주로 하는 산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새골(조동), 불당골(불당곡), 상촌, 평촌 등이 있는데 조동리는 마을이 민주산과 천마령 사이의 골짜기에 있어 새골 또는 조동이라 부른데서 유래한 이름이고 불당골은 옛날에 불당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상촌은 조동 위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평촌은 들이 넓어 평평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행정리는 조동1리와 조동2리로 나뉜다.

 

 

2주 전 고자리에서 오를 때와 거의 유사한 거리와 도로의 상태이기에 백하지맥 분기점인 천만산을 오를 수 있는 다른 루트는 없을까 하고 확인하다 보니 도마령까지 오르지 않고 큰고수골 직전 좌측으로 나 있는 불당골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른 선답자가 있어 그 트랙을 다운받아 시도해 보기로 한다.

그럴경우 도마령에서 천만산으로 오르는 등로보다는 불확실하지만 거리상으로는 반 이상 줄어 들 수 있으리란 판단 때문인데 많은 산객들이 다닌 곳이 아니고 또 일반적인 등산로가 아니기 때문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고생문이 열릴지는 진행하면 알게 될 것이다.

잠시 49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도마령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도로가 우측으로 휘돌아 올라가는 지점 좌측으로 불당골로라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뒤 저 멀리에 천만산과 백하지맥 산줄기에는 하얀 안개가 뒤덮고 있어 약간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시멘트 포장도로인 불당골로로 들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조동리 불당골 마을이 조용하지만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도로 주변으로는 천안에서 자주 봤던 호두나무가 호두를 주렁주렁 매단채 줄지어 서 있다.

첫번째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도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으로는 수획을 앞둔 복숭아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잠시 후 오미자작목반이라는 제법 큰 건물이 보이는데 작업 도구들만 보이고 사람의 인기척은 없다.

그 건물을 지나 계속 오르니 농사짓고 수확한 농산물이나 임산물을 임시 저장하는 창고로 이용하는지 또 다른 건물이 보이는데 이곳 역시 오늘은 비어 있어 그곳 한쪽에 마련된 탁자에서 최종 배낭을 정리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잠시 더 오르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이나고 잡풀과 잡목드리 우거진 묵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데 그 묵은 도로를 타고 어렵게 능선으로 진입하니 등로는 없지만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잠시 능선으로 오르니 희미한 족적이 보이고 그 족적을 따르다 보니 건계곡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 건계곡 쪽 능선으로 붙어 올라야만 정상적인 천만산 직전의 각호지맥 산줄기로 이어지는 것 같다.

이제부터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보이지 않는 등로를 만들어 오르다 보니 온 몸에선 벌써 굵은 땀방울이 샘처럼 쏱아지고 등산복은 흥건히 젖어 버린다.

산행 초반이라 그럭저럭 오르긴 하지만 경사도가 너무 심해 힘들게 진행하니 드디어 경사도가 완화되면서 약간의 잡목들과 바위들을 지나 2주전 걸었던 각호지맥 마루금에 도착을 해 약간 불어 오는 산들바람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시원한 얼음물 한모금으로 갈증을 달래 본다. 

 

 

제도권 등로인 각호지맥 마루금을 만나 편안하게 좌측으로 걸어 진행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두번째 만나는 백하지맥 분기점인 천만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보는데 힘은 들지만 산행 초반이라 그런지 아직은 생생해 보인다.

천만산(960.1, 삼면경계봉, 백하지맥 분기점, 묵은 헬기장)은 충청북도 영동군의 양강면 산막리와 용화면 조동리 및 상촌면 둔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960미터이다.

조선 후기 해동지도에 천마령과 함께 천마산으로 표기되어 처음 등장하고 여지도서에는 천마산은 현 남쪽 25리에 있으며 황간 황악산으로부터 천마산 주맥이 된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같은 문헌에 남일면 천만리가 기록되어 있다.

동여도, 1872년지방지도, 조선지지자료에 천마산으로 표기된 반면에 대동여지도에는 천마산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지명은 비교적 최근에 사용된 이름으로 여겨지며 마을 지명인 천만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천마산과 그 다른 이름으로 천만산이 기록되어 있으며 천마령은 북동쪽에 있다고 언급되어 있는데 봉우리가 아주 뾰족하여 하늘을 만질 만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천만산 정상부의 좁은 공터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뒤돌아 나와 좌측 방향의 백하지맥 산줄기 방향으로 걸려 있는 분기점 이정판도 사진에 남기고 이틀간 무탈한 산행을 기원하는 마음의 소원의 빌어 본 후 곧바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생각보다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그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니 이곳 역시 수종은 참나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아래 등로에는 사초가 자라고 있어 약한 바람에도 이리저리 춤을 추며 이 산객을 반겨주는 듯 한 착각에 빠진다.

그렇게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바위 옆 커다란 소나무들이 보이고 그곳 한쪽에 준희님이 이곳이 906.8봉임을 알리는 이정판을 걸어 놔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사진 몇장 남긴 후 다시 출발한다.

이제는 수종이 참나무에서 참나무와 소나무의 혼재된 구간으로 이어지는 기분이다.

 

 

그 906.8봉을 좌측으로 조금 더 걸어 올랐다 우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참나무와 사초 등로로 변하면서 싱그러움이 더해간다.

잠시 후 완만하게 걸어 올라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내려 가 제법 그럴듯한 안부를 지나는데 지도상에도 아무 표식이 없고 실질적으로도 좌우측으로 발길이 끊긴 것처럼 보이는 무명안부를 지나 직진이 아닌 좌측의 우회 등로로 진행이 되고 있어 위쪽을 올려다 보니 거대한 바위가 참나무 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데 그 바위암릉 구간이기 때문에 좌측 등로로 우회하는 듯 보인다.

낙엽이 푹신한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이곳도 역시 멧돼지들이 많은지 벌써 낙엽을 헤집어 밭갈이처럼 해 놨기에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소리를 지르며 진행을 이어가 본다.

 

 

오르막 등로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 오르니 방금 전 무명안부에서 올려다 봤던 바위암릉구간이 등로 우측으로 보이고 그렇게 그 바위암릉구간을 통과 해 오르니 방금 전 우회했던 바위암릉 뒷쪽 위로 도착을 한다.

다시 편안한 사초 등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금새 참나무 위에 준희님의 878.1봉 이정판이 붙어 있는 봉우이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잠시 심호흡 한번 하고 출발한다.

오늘도 역시 무덥고 거리가 길기에 물을 조금 많은 3.5리터에 음료수 1리터 그리고 과일과 빵을 준비했기에 생각보다 두 어깨에 전해지는 무게감이 장난이 아니다.

 

 

그 봉우리를 지나 조금 더 능선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지난 주 걸었던 각호지맥의 각호산이 제법 뾰족한 모습으로 처음 얼굴을 알려주고 그 위로 떠 다니는 하얀 구름이 벗겨지며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오늘은 새로 구입한 삼성 스마트 폰 S10노트로 사진을 찍다 보니 색감과 느낌 모두 환상적이라 기대감도 커지는 시간이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잡목들이 보이는 879봉 뒷쪽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지나 온 백하지맥의 분기점인 천만산과 그 우측으로 도마령 지난 각호산이 뾰족하게 솟구친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 각호산 우측으로 보여야 할 민주지산과 석기봉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들은 모두 하얀 안개인지 구름이 뒤덮고 있어 얼굴을 보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게 무명의 잡목봉 뒤로 올라 멋진 조망을 살펴본 후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해 진행하니 작은 바위와 관목들이 보이는 무명의 882봉도 지나 활엽수가 아름다운 등로를 따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삼각점이 나타나고 그 위에는 맨발님이 이곳이 천마령으로서 해발고도는 925.2미터라는 이정판을 걸어 놨다.

왜 이 정상부를 고개를 부를 때 사용하는 천마령이라고 했을까 궁금해 하는데 진행하다 보니 아마도 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 임도가 만나는 안부가 천마령이 아닐까 추측도 해 본다.

이곳 천마령처럼 고개를 표시하는 령을 봉우리에 쓴 경우가 호미지맥 산행을 하면서 만났던 치술령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천마령(925.2m 삼각점)은 충청북도 영동군의 양강면 산막리 내천마동에서 용화면 조동리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한국지명총람에는 천마령(天摩嶺)이 기록되어 있으며 천만산(千萬山) 남서쪽에 천마령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지명 유래에 대하여 봉우리가 아주 뾰족하여 하늘을 만질 만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지명 유래는 천마령의 지명 표기자를 훈차 표기로 전제하여 풀이한 결과이다.

천마령은 조선 후기 해동지도에 천마산과 함께 천마령으로 표기되어 처음 등장하고 이후 천마령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고 다만 인접한 산 지명인 천마산이 여지도서, 대동여지도, 동여도, 1872년지방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 이르러 비로소 천마산과 함께 천마령은 남일면이 표기자 변화 없이 기록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고 현재 양강면 산막리의 천마령 북사면 골짜기에는 내천마동과 외천마동이 분포한다.

개인적으로 이곳의 이름이 필요하다면 이곳을 천마산으로 잠시 후 만나는 안부가 천마령으로 표기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본다.

 

천마령을 지나 다시 산행을 이어가니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930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평이하고 뚜렷한 등로를 타고 출발하니 약간의 공터로 이뤄진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 오르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ㅣ지가 걸려 있는데 특히 눈에 띄는 띠지 하나가 바로 산보님의 산행 띠지이다.오래 전 함께 관악산에 올랐고 제암산 철쭉 산행 시 잠시 만나 탁배기 한잔 나눴는데 그 이후 만나지 못하고 온라인 상으로 만 소식을 접하다 띠지를 보니 반갑기만 하다.그 무명봉을 지나 출발하니 철쭉나무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지고 잠시 후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가지가 많은 참나무가 보이는 80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시원한 물한모금 마시며 갈증을 달래 본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난 묘지 한기가 나타나는데 그 묘지 건너 저 멀리 잠시 후 올라야 할 829 무명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좌측은 비포장 임도와 우측은 시멘트 포잘도로가 만나는 산막임도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벌써 허기가 지기 시작해 잠시 자리 펴고 앉아 준비한 빵과 소시지로 늦은 아침을 먹으며 허기를 달래 본다.

하지만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며 빵을 먹는 동안 2대의 SUV와 트럭리 통과하며 이 산객을 살펴보는데 임산물을 채취하는 사람은 아닐까 궁금해 하는 눈치이다.

잠시 휴식 후 다시 출발하니 도로 좌측으로는 천마령에 관한 설명판이 서 있는데 이름으로 봐서는 삼각점이 있던 정상보다는 이곳이 천마령이 맞을 듯 싶다.

천마령은 충청북도 영동군 양강면 산막리 내천마동에서 용화면 조동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길이다.

한국지먕총람에는 천마산 남서쪽에 천마령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지명유래에 대하여 봉우리가 아주 뾰족하여 하늘을 만질만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라는 글이 보인다.

 

천마령 설명판이 서 있는 산막임도정상에서 임도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썩은 등걸이 보이는 829 무명소나무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등로 좌측으로 벌목 후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등로에 도착한다.

벌목지 우측 위로 진행해야 할 능선을 살펴보고 벌목지 경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전진하니 등로 좌측 아래로 오늘 산행을 시작한 조동리 상촌리 마을이 그림처럼 내려다 보인다.

그 풍경들을 살펴보며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 뒤로 조망이 열리고 잠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파란 하늘 아래 민주지산에서 각호산으로 이어지는 각호지맥 등로가 펼쳐져 있고 그 좌측 앞으로는 천만산으로 이어지는 각호지맥 마루금과 그 천만산에서 산막임도정상을 지나 이곳으로 이어지는 백하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이어져 오고 있는 모습도 한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엊그제 걸었던 각호지맥과 오늘 걸었던 백하지맥 마루금을 살펴본 후 잡목과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벌목지대 경계선을 타고 전진하니 활엽수가 아름다운 무명안부로 이어지고 곧이어 다시 사초가 자라고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 주위에 잡목들이 무성하고 그 아래에는 독버섯이 피어난 929 무명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이제 등로는 우측 방향으로 크게 꺽어 진행이 되는데 이제 좌측으로 보였던 벌목지대를 벗어나 능선으로 진입하게 된다.

 

잠시 더 진행하니 으름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능선같지 않은 능선상에 906 무명봉을 통과한다.

그곳을 지나니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바위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오래되어 완전히 썩은 고사목과 잡목들이 우거진 853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그곳 바위 직전에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되지만 바위 우측 뒤로 돌아가면 조망이 열리기에 잠시 들어 가 주위를 살펴 보고 진행하기로 한다.

 

등로 우측 멋진 분재형 소나무 넘어 오늘 방금 전 걸었던 천마령과 그 좌측으로 천만산 줄기가 길게 이어지고 그 산줄기 넘어 저 멀리에는 도마령으로 내려 앉은 산줄기가 각호산으로 뾰족하게 솟구친 후 민주지산으로 이어지는 각호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기만 하다.

그곳에서 바위를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돌아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니 잠시 후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그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커다란 바위들이 보이는 808.7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며 추억을 남겨 본다.

그곳 바위로 이뤄진 808.7봉을 지나 등로는 이제 우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며 이어지고 있어 길주의 지점이다.

 

바위로 이뤄진 808.7봉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니 굵은 참나무들과 관목들이 시원한 등로를 만들어 산객을 유혹하고 잠시 불어 오는 산들바람에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 본다.

잠시 철쭉나무 숲을 뚫고 완만하게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가 정상을 지키는 797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참나무가 죽어 잘린 고사목이 보이는 807 무명봉에 도착을 해 이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이 되고 있다.

 

참나무 고사목이 있는 무명봉을 지나 좌측으로 틀어 내려가니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등로는 다시 오르고 잠시 후 썩어가는 고사목에 운지 버섯이 피어난 791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능선 등로를 타고 약간의 날파리들과 씨름을 하다 보니 참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통과해 커다란 소나무 두 가지가 함께 보이는 800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물 한모금 마시고 진행을 이어간다.

 

소나무 무명봉을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사초가 깔려 있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참나무가 식재된 듯하게 반듯이 줄서있는 멋진 등로도 만나 잠시 힐링하는 시간도 가져 본다.

참나무와 철쭉나무들이 적당히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이름모를 산새들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무심으로 걷다 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커다란 참나무가 보이는 854 무명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는데 수건도 이제 흥건하게 젖어 있어 조금만 짜도 물에 빠진듯 물기가 주르르 흘러 내리고 있다.

그 무명봉을 지나 다시 더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또 다른 무명봉을 통과하고 너럭바위 지대로 지난 후 곧이어 옛날 성터 흔적이 있는 바위를 넘어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붙어 있는 871.8봉에 도착을 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그 871.8봉에서 휴식을 취하며 간식으로 허기도 면하고 나니 다시 힘이 생기고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는데 출발하자마자 정상 주위로는 오를 때 만났던 석성 흔적의 작은 돌들이 층을 쌓아 흩어진 형태로 존재한다.

조심스럽게 그 성터 흔적의 돌들을 따라 내려가며 살펴보니 분명 성터 흔적인데 돌아 와 자료를 찾아 보니 자계리 산성에 관한 고고학사전 자료가 보여 잠시 확인해 본다.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 자계리와 양강면 산막리 사이 해발 878.1미터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동남쪽의 865.9미터 봉우리를 감싼 마안봉형의 석축산성이 바로 자계리1산성으로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상에 자계리산성2와 조동리산성이 위치하고 있으며 구백이 마을 남쪽으로 용화리산성이 마주보이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의 기록인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성명(성의 이름)은 알 수 없으며 용화면과 양강면 경계의 산정상부에 있는 석축 산성으로 주위 약 350간(1간은 636미터)으로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었으며 석괴덩어리가 쌓여있다고 하였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남북으로 긴 불규칙한 장타원형으로 정상부에서 능선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툭 튀어나온 형태이고 석축 성벽의 통과선을 따라 내환도의 흔적이 확인된다.

성벽은 남쪽과 북쪽에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성벽의 잔존높이는 약 1.5-2미터로 당초의 성벽 높이는 3.5-5미터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되고 석축은 채석된 부정형의 석재를 전면만 살짝 치석하여 석축하였으며 허튼층쌓기를 하여 성벽이 정연하지 못하다.

산성의 둘레는 약 600미터이며 문지와 유물은 확인되지 않으나 주변 산성의 배치 양상으로 보아 삼국시대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 자계리와 양강면 산막리 사이의 봉우리에 위치하는 자계리2산성은 자계리1산성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상에 위치하고 있는 토축산성으로 두 산성의 거리는 약 200미터에 불과하여 자계리1산성의 보루로 추정된다.
산성은 812.1미터 봉우리에서 서쪽과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상단부를 둘러싼 토축 산성으로 전체적인 평면형태는 삼각형 모양이고 남쪽의 능선을 따라서는 토루가 확인되고 북동쪽으로는 문지의 흔적 확인되고 있다고 되어 있다.

이곳은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했으며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으로 두 나라의 각축장이 되었던 곳으로 현재의 양산면을 통해 흐르는 금강 상류를 중심으로 한 양산이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으로 대왕산은 신라의 영토였고 비봉산의 조천성은 백제의 전초기지였기 때문에 많은 석성들이 남아 있지만 관리는 소홀하다.

 

마한시대의 석성을 지나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856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부터 철쭉터널을 통해 환상의 등로를 힐링하며 거늘어 본다.약간의 사면 등로에 수북히 쌓여 있는 낙엽 위에 아름다운 철쭉나무 터널이 만들어져 마치 천상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면 이런 모습은 아니였을까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의 편안함을 가져 본다.

그렇게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 일반 능선 등로를 따르니 논산의 바랑산님의 띠지가 걸려 있는 823 무명잡목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잡목봉을 지나니 참나무의 굵기가 더욱 얇아지고 관목 숲을 이루는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잡목들도 보이지만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잠시 후 커다란 고사목이 보이는 지점을 지나 조금 더 평이하게 걸어가니 저 멀리 크게 굵지 않은 자작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781봉이 보이고 그곳을 통과해 조금 더 전진하니 잡목들과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며 그 기능을 상실한 헬기장이 나타난다.

 

 

그 헬기장을 지나 계속 산행을 이어가니 커다란 참나무 두그루가 마치 위병을 서고 있는 듯 길목을 지키는 곳을 지나고 잠시 후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영동군 용화면과 학산면 및 양강면의 경계점인 삼면봉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는 이곳 정상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진행이 되고 있다.

둔덕을 올랐다 내려가 안부를 지나자마자 또 다시 둔덕이 나타나고 그 둔덕을 넘으니 또 다른 안부를 지나 정상적인 등로를 만나는데 그 둔덕과 안부가 교대로 나타나는 곳 직전 부근이 삼면봉이다.

잠시 낙엽과 사초 그리고 참나무들이 어우러진 멋진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약간의 바위들이 보이고 이후 한동안 능선의 참나무 등로를 따라 무심으로 자연을 즐기다 보니 마치 긴 겨울잠을 벗어 나 봄이 오는 길목의 연두빛 계절처럼 착각을 일으키는 등로와 만난다.

잠시 후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참나무와 바위가 함께 보이는 73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시간은 걸리지만 여유롭게 산행을 즐기는 시간이다.

 

 

참나무와 바위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사초가 예쁘게 깔려 있는 690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이어지는 낙엽과 사초가 깔려 있는 능선 등로 양쪽에 멋진 참나무들이 도열해 이 산객을 맞이해 주는 듯한 마루금을 걸어가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최고의 힐링시간을 가진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진행하니 갑자기 커다란 나무들이 사라지며 뜨거운 햇살이 얼굴로 다가오는데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벌목 후 잡목들이 자라면서 어지럽게 펼쳐진 잡목 등로가 보이는 지점이다.

뜨거운 태양을 등지고 벌목지 경계에 자라고 있는 잡목들을 헤치며 어렵게 오르니 등로 주변에는 벌써 예쁜 억새들이 피어나 뜨겁고 무더운 계절에도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다.

잠시 후 능선으로 진입하기 직전 뒤돌아 보니 우측 저 멀리 성터 흔적이 있던 871.8봉부터 이곳으로 이어진 백하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보여 잠시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쉬어 간다.

 

 

이제 시간은 오후 1시가 가까워지며 더욱 열기를 내뿜는데 뜨거운 태양열을 가릴 수 있는 나무도 없는 벌목된 잡목 등로를 따르니 온 몸에선 다시 불이 붙기 시작하고 끝도 없이 흘러 내리는 굵은 땀방울이 등로를 흥건히 적실 수준이다.

힘들게 그 잡목 구간을 빠져 나오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비포장 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오르고 몇발자국 지나 우측의 지독한 잡목들과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능선으로 오르며 사투 아닌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래도 능선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지나 온 백화지맥 마루금이 파란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과 뭉게구름 아래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고 오른다.

낙엽진 잡목 등로를 오르니 드디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664.8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이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어렵게 추억 하나 남기고 그 664.8봉을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오니 눈 앞으로 멋진 풍경들이 조망되면서 잠시 힌들었던 발걸음을 멈추고 조망을 즐기며 쉬어 간다.

바로 눈 앞으로는 자계리쪽 무명 산줄기가 좌측으로 길게 이어지고 그 우측 저 멀리 뒷쪽으로는 백운산과 청량산이 좌우측으로 길게 이어진 모습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으며 그 우측으로 보여야 할 적상산과 청량산과 사이에 있을 덕유산은 우측 산자락에 가려 보여주질 않는다.

그 백운산과 청량산 좌측 저 멀리에는 백두대간 마루금과 덕유산 줄기인 빼재에서 올라간 능선이 하얀 뭉게 구름 아래 아름답게 이어져 있다.

 

 

그 백운산과 청량산 좌측 멀리에는 지나 온 백하지맥 마루금이 보이고 그 뒤로 지난 주 걸었던 각호지맥의 각호산부터 민주지산과 석기봉 지나 백두대간의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도 아련한 추억이 되어 다가온다.

그렇게 한동안 그곳에서 조망을 즐기고 조금 더 내려가니 방금 전 정상 봉우리로 오르며 잠시 헤어졌던 비포장 임도에 내려서는데 이곳 역시 관리가 되지 않아 잡목과 잡풀들이 뒤엉켜 한발자국 진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다시 잡목 사이로 지나온 마루금 넘어 각호지맥 산줄기를 살펴보며 어렵게 산행을 이어가니 등로는 이제 우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고 낙엽 깔린 커다란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한결 진행이 수월해진다.

멧돼지들의 식흔이 널려있는 낙엽지대를 지나 본봉이 사라진 무명묘지를 통과하니 이제 등로는 고속도로처럼 편안하고 또 다른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내려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567 무명봉에 도착을 해 이제는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조망들을 살펴 본다.

 

 

제일 먼저 이제부터 진행해 내려갔다 올라야 할 608.5봉이 제법 높은 고도를 자랑하며 우뚝 솟아 진행하는 산객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그 우측으로 드넓게 펼쳐진 조망과 풍경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데 그 이름을 모두 찾아 불러보기에는 한계를 느낀다.

오후에 올라야 할 백하산이 저 멀리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고 그 뒤로 보이는 내일 걸어야 할 성주산에서 갈기산으로 이어지는 백하지맥 마지막 산줄기도 시원하게 조망되고 있다.

그 백하지맥 산줄기 뒤로는 봄에 힘들게 걸었던 장령지맥과 천태산 그리고 그 끝자락에는 얼굴만 간신히 내밀고 있는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도 보이고 있어 잠시 더 머물며 많은 사진에 담아 본다.

 

 

멋진 조망과 풍경을 가슴에 담았으니 다시 천천히 출발하니 등로는 여전히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참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전진하니 드디어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낙엽 깔린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고 그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지독한 잡목들이 짧게 나타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463.2 삼각점이 숨어 있는 곳이다.

좌측으로 잘 나 있는 등로를 버리고 우측 잡목속으로 들어가니 표식을 알 수 없는 삼각점 옆에 안내판이 서 있어 살펴보니 이원474란 4등 삼각점이 박혀 있는 해발고도 464미터이지만 실제 지도에는 463.2미터로 표기된 곳이다.

 

 

어렵게 사진 한장 남기고 그 지독한 잡목들을 헤치고 진행을 이어가니 금새 돌무덤들과 당산나무들이 보이는 안부에 도착을 하고 지도를 확인해 보니 이곳이 성황당고개 안부라는 곳이다.

어릴적 시골에 살면서 이런 성황당 터에서 어머님이 무속인을 불러 치성을 드렸던 기억이 생생한 이 산객에게는 그저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고 있지만 상여집은 아직도 왜 그리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인지 모르겠다.

성황당은 서낭당의 다른 말로서 서낭신을 모신 당집이나 제단을 말하는데 지방에 따라 할미당, 천황당, 국사당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곳 성황당 안부처럼 당집이나 제단이 없어도 동네 고갯마루의 당산나무가 있고 제를 지내기 좋은 곳이면 어디서든 서낭당이라 불렀다.

서낭신은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으로 최근까지 전국에 널리 퍼져 있었으며 서낭당은 보통 신수에 잡석을 쌓은 돌무더기나 신수에 당집이 복합되어 있는 형태로 고개 마루, 길옆, 부락입구, 사찰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서낭당은 서낭신의 봉안처인 동시에 거소가 되고 이 신은 천신과 산신의 복합체로 보여지는데 서낭신의 신앙에는 내세관이나 인간 정신세계의 이상 같은 것이 없고 현실적인 일상생활의 문제가 중심을 이룬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액(), 질병, 재해, 호환() 등을 막아주는 부락수호와 인간의 현실적인 생계문제 해결에 목적이 있으며 신수에는 아이들의 장수를 위해 걸어놓는 헝겊조각, 상인의 장사를 잘되게 해달라고 걸어놓는 짚신짝, 신랑신부가 새살림을 차릴 때 부모계의 가신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신부가 자기 옷을 찢어서 걸어놓는 색헝겊조각 등이 있다.

또 통행인이 길을 안전하게 가기 위해 돌을 주워서 돌무더기 위에 던지거나 침을 뱉는데 이는 길가에 배회하는 악령의 피해를 막기 위함으로 이처럼 서낭당은 현실적인 문제를 기원하는 곳이다.

정초에는 부인들이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가정의 평안을 빌기도 하는데 큰 것을 보면 동해안 별신굿이나 강릉단오제는 규모가 큰 서낭제의 일종이다.

이곳도 예전에는 많은 민초들의 삶이 녹아 있던 서낭당이었겠지만 이제는 제는 물론 사람들의 왕래까지 끊긴 한적한 안부로 전락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 성황당 안부를 지나니 등로는 낙엽으ㅗ 쌓여 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말랐던 땀샘이 열리면서 온 몸이 샤워를 한듯 굵은 땀방울이 쉴새 없이 등로를 적시고 있다.

수건으로 닦아내도 그때 뿐이고 금새 다시 온 몸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주체하지 못하고 안경만 접어 안경집에 넣고 오르다 보니 날파리들이 습격으로 더욱 힘든 산행을 이어간다.

두 다리가 묵직해질 쯤 드디어 커다란 벗나무와 참나무들이 보이는 608.5봉에 어렵게 도착을 해 등산복을 벗어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시원한 얼음물로 갈증을 달래고 쏱아 낸 땀을 보충하니 조금은 살맛나는 시간이다.

 

 

약간의 더위를 식히고 흐르는 땀방울을 진정시킨 후 그 608.5봉을 출발하니 등로는 사초가 깔려 있는 등로 위에 관목들이 자라는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등로가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를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진행하니 낙엽 깔린 안부를 지나 이장된 묘지지대를 통과한 후 505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도덕재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옆에는 커다란 도덕재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진삼령(도덕재, 450m 505 2차선 포장도로, 학산면과 용화면 경계판)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도덕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인 도덕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도덕은 본래 진삼재 밑이 되어 도둑이 많았으므로 도적골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도덕이 된 것으로 더덕이 많이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진삼령 또는 도덕재가 지나는 도덕리는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 있는 리로서  학산면의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뒤로는 시항산(정산, 샘산)이 솟아 있고, 앞으로는 시항천이 발원하여 남대천으로 들어간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도덕(도적골,도덕골,도둑골), 말메골(마도, 마섬) 등이 있다. 도덕은 본래 진삼재 밑이 되어 도둑이 많았으므로 도적골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도덕이 된 것이다. 더덕이 많이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말메골은 옛날에 큰 못이 있었는데 메워지고 마을이 형성됐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너무 뜨겁고 무더워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용화면 도로표지판이 서 있는 옆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능선으로 진입하니 봄 가을 경방기간에 산불예방을 위해 입산금지를 한다는 경고판을 지나 잠시 지독한 칡넝쿨과 만나고 그곳을 빠져 오르니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 우측 옆으로 이동통신탑이 보인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방금 전 건너 통과한 505번 2차선 포장도로가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에는 백운산과 청량산이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약간은 평이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우측으로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을 지나 무명묘지 한기도 통과한다.

 

 

묘지를 지나 오르니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평이한 좁은 등로로 변하고 있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줄 줄지어 늘어 선 소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산불감시초소가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초소 주위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로 인해 조망이 전혀 없어 그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가는 산불감시초소이다.

 

 

그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니 등로는 다시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 있는 넓은 임도같은 등로로 변하는데 멧돼지들이 식사를 한 식흔들도 가끔 보이기 시작한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등로는 직진이 아닌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되는 길주의 지점으로 산행 띠지들을 확인하며 진행하니 이제 등로에는 잘 보이지 않던 바위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바위 등로를 타고 평이하지만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524 나무등걸이 보이는 무명봉을 넘고 조금 더 걸어 올라 557 참나무들이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이제 등로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수종으로 바뀌고 점점 잡목들이 사라지더니 금새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만 보이는 걷기 좋은 마루금으로 변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갑자기 매퀘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갑자기 등로 주위의 소나무들이 모두 말라죽었는데 그 밑둥에는 불에 타고 그을린 자국이 선명한 불난 흔적이 있는 등로로 바뀌고 있다.

등로 바닥에는 불에 탄 고사목들이 쓰러져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약간의 어려움을 주지만 큰 지장은 없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걸어 본다.

 

 

계속 이어지는 산불 흔적이 있고 말라죽은 소나무들이 등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마루금을 타고 거어 전진하다 보니 등로 주변 이외에는 전혀 산불 흔적이 없어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다.

아마도 누군가 정상부에서 불을 잘못 사용하여 능선부분만 산불이 났었는지 이해는 안되지만 다행이란 생각으로 걸어 오르니 오르면 오를수록 널부러진 고사목들이 점점 더 많아지며 진행에 지장을 주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니 불난 흔적이 있는 경계선 쯤에 521.2 미터라는 이정판이 보이고 살펴보니 이곳 정상부는 다행스럽게도 화마의 피해로부터 벗어난 지역이다.

 

 

불이 난 지역의 521.2봉을 지나 계속 산행을 이어가니 등로는 이제 우측 방햐의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싱그러운 참나무 등로가 활짝 열려있어 지금까지 짧은 구간이지만 불난 흔적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며 걷던 시간도 금새 잊어 본다.

평이한 등로에 약간의 잡풀들이 보이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좌측으로 묘지 한기를 지나고 가지가 2개인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555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참나무 등로가 아름답게 이어지고 그 바닥에는 파란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사초가 깔려있어 미풍에도 약간씩 흔들리며 기분마저 상쾌하게 만들고 있다.

잠시 후 커다란 자작나무가 보이고 작은 고사목이 쓰러져 있는 570 무명사초봉에 도착을 해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출발이다.

 

 

사초봉을 지나니 등로는 참나무에서 소나무로 변하고 등로 우측의 소나무에는 얇은 노끈이 설치되어 있는데 아마도 개인 산으로서 임산물이나 버섯 채취를 예방하기 위한 표시인듯 보인다.

우거진 조선소나무가 빼곡한 등로를 타고 조금은 여유롭게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참나무 사초봉으로 이어지고 그 정상부로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 위에 맨발님이 걸어 놓은 576.5미터란 이정판이 반겨준다.

 

 

그 576.5봉을 지나니 굴곡없는 평 능선 등로가 길게 열리는데 참나무와 소나무가 혼재된 등로 아래에는 파란 사초들이 자라면서 또 다른 묘미를 안겨준다.

이제 잘 보이지 않던 바위들도 사초 옆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조금 더 전진하니 고사목이 보이는 56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이제 좌측으로 꺽여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공터 같기도 하고 안부 같기도 한 난해한 등로를 만나는데 자세히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정상 증로는 제일 좌측의 비포장 임도처럼 넓게 보이는 곳으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소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434봉을 넘으니 456봉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올랐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며 걸어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에 두기의 묘지들을 차례로 통과한 후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여의티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여의티(여의치, 320m)는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 여의리에 있는 고개로서 여의리라는 마을 유래를 낳게 한 곳이기도 하다.

여의리는 본래 관성군 속현인 양산현 지역으로 1313년 옥천군에 편입되었고 조선에 이르러 옥천군양남이소면에 속하였다가 1906년 영동군에 편입되었다.

자자기 아래쪽이 되므로 아래자자기 또는 하자작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여의티의 이름을 따서 여의리라 하고 영동군 용화면에 편입하였으며 자연부락과 행정리명 모두 여의리이다.

여전히 제법 사람들의 왕래가 있어 보이고 차량 통행도 가능해 보이는 여의치이다.

 

 

비포장 임도인 여의치를 지나 잡풀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그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전진하니 앞으로 진행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빼곡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잠시 후 분봉이 거의 사라지고 사초들만 보이는 무명묘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인 남쪽 방향으로 백운산과 청량산 그리고 우측으로 적상산이 가깝게 보이는데 그 사이로 보여야 할 덕유산은 머리만 내민채 하늘과 맞닿아 있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멋진 조망과 풍경들을 감사하고 다시 진행을 이어가니 임산물 보호를 위해 입산을 금지한다는 플랭카드가 설치되어 있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독도는 우리땅 이경일님의 응원 종이코팅지도 나뭇가지에 걸여 있다.

그 응원판을 지나니 등로는 갑자기 바위암릉으로 변하면서 바위 등로가 이어지기 시작한다.

한동안 바위 등로를 따르니 날파리들의 습격이 절정에 다다르고 너무나 힘들게 그 날파리들을 쫒으며 오르니 627.8봉 정상에 도착을 해 잠시 휴식을 취해 본다.

 

 

그 627.8봉은 등로에서 좌측으로 약간 떨어져 있기에 올라갔던 등로를 따라 다시 내려오며 이번에는 갈림삼거리에서 좌측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진행 방향 쪽으로 잠시 후 올라야 할 백하산이 살짝 보이기 시작하고 그 백하산 우측 전방 저 멀리 살펴보니 고층 아파트촌들이 보이는 제법 큰 마을이 내려다 보여 찾아보니 영동으로서 그 영동 뒤로는 백화산이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전망바위에서 등로 우측을 살펴보고 영동읍내도 내려다 본 후 다시 출발하니 아름다운 참나무와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그렇게 조금 더 전진하니 이번에는 등로 좌측으로 아름다운 전망바위가 나타나 그곳으로 가 잠시 주위 풍경을 살펴 본다.

오늘 이 산객이 백하지맥이란 이름으로 걸었던 산줄기가 저 멀리 천만산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사진 정중앙 저 끝자락에는 지난 주 걸었던 각호지맥 첫구간인 각호산에서 민주지산과 석기봉을 지나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제부터 바위암릉 구간이 시작되며 백하산 정상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데 바위암릉으로 오를때마다 비명이 절로 나오는 환상의 조망들과 풍경들이 펼쳐져 있어 산행 속도가 전혀 나질 않는다.

등로 좌측으로 저 멀리 덕유산이 보이고 조금 가까운 곳으로 가을 단풍이 예쁜 적상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그 우측으로 돌아가며 지난 달 고운 추억을 남겼던 덕유지맥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한폭의 풍경화로 다가온다.

이제 제법 올랐던 산들이 많아지면서 불러 줘야 할 봉우리 이름도 늘어나니 시간은 걸리지만 그만큼 희열은 남다르게 커지는 느낌이다.

 

 

이제 산줄기에 막히고 덕유산 향적봉에 막혀 보이지 않던 덕유산 주능선도 길게 이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특히나 사진 좌측 제일 뒷쪽으로 장수덕유라 불리우는 서봉과 남덕유산이 쌍봉을 이루며 솟아 있는 모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 우측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산그리메가 너무나 환상적이기에 봉우리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잊은 채 그저 감탄사만 만발하다 살펴보니 장안산과 팔공산 그리고 덕태산 줄기로 이어지는 금남호남 산줄기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오래 전 한겨울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등로를 홀로 러쎌하며 힘들게 걸었지만 때묻지 않은 순수한 동심의 마음으로 걸었던 그 시절이 그리운 순간이기도 하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고 실증을 느끼지 못하는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다시 나타나는 바위암릉을 타고 조심하며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 뒷쪽으로는 여전히 각호지맥 첫구간과 백운산과 청량산 그리고 적상산 주변의 산군들이 드넓은 품을 벌리고 길게 이어진 모습으로 황홀함을 안겨 준다.

다시 발걸음 멈추고 조금 더 조망을 즐기고 오르니 잘 관리된 묘지 하나가 보이고 그 묘지 우측 뒤로 삼각점이 박혀있는 633.1미터의 백하산 일명 백운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오늘 이 산객이 걷고 있는 산줄기 이름을 부여한 산치고는 정상석 하나 없어 조금은 아쉽기만 하다.

백하산(633.1m, 이원28 삼각점)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과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634이며 산의 외부적인 형세는 평범하지만 산속 곳곳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많은데 산의 동쪽에는 여의치저수지가 있고 서쪽에는 봉황저수지가 있다.

등산코스는 3가지가 있는데 가장 짧은 코스는 내삼에서 정상에 올랐다가 철골로 하산하는 코스로서 내삼마을은 안삼마을이라고도 부르며 삼정마을 안에 있는 삼정이라는 뜻이다.마을 입구에는 도랑제를 모시는 반신 석상이 있고 명절 때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도랑제를 지내며 이곳에서 1시간 10여 분 오르면 주능선으로 적성산과 대덕산이 보인다.두어 개의 봉우리와 숲길을 지나 정상에 오르는데 정상에서는 여의치저수지의 시원한 경관이 한눈에 보이며 정상에서 북쪽으로 뻗은 암릉은 백하산에서 제일로 손꼽히는 곳이다.가파른 낭떠러지와 낙락장송이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다운데 이곳에서 철골로 하산하며 3시간 정도 걸린다.
주변에는 영국사와 강선대, 비봉산, 봉황대, 함벽정, 여의정, 자풍당 및 용암의 양산팔경 등의 관광지가 있다.
셀카를 이용해 추억 한장 남기고 잠시 휴식 취하며 허기도 달래고 목마름도 해소한 후 여유롭게 출발한다.

 

 

백하산 정상에서 묘지를 좌측에 두고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산행 후 잠시 머물며 버스를 이용해야 할 학산면 마을이 생각보다 드넓게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올 봄에 마무리를 한 장령지맥 산줄기가 길게 이어진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 암릉을 타고 조심스럽게 진행하니 다시 등로 우측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드넓게 펼쳐지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다시 봉우리 이름 맞추기를 해 본다.

바로 앞에 내일 마지막으로 올라야 할 갈기산과 월영봉이 멋진 산줄기를 이루며 길게 이어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식장지맥과 장령지맥의 산줄기들이 이어진 듯 보였는데 사진으로 보니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우측으로 올라가며 톱날 형상의 장령지맥 사이에는 천태산과 우측 제일 끝자락에 서대산도 보이는데 기온이 오르면서 박무 현상 때문인지 오전보다는 시야가 많이 좁아진 상태이다. 

 

 

이제 천태산과 서대산 우측으로 눈을 돌려보니 학산면의 들녁이 생각보다 아름답고 넓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서대산 쪽에서 흘러 내리는 장령지맥과 중앙 뒤쪽으로 독립된 산줄기로 보이는 월아산 그리고 그 우측으로 금강을 따라 펼쳐진 끝도 없이 이어진 산그리메가 또 다른 모습으로 이 산객의 심장을 뛰게 만든다.

모두 다 오를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 봉우리들만이라도 보고 그 이름을 불러 줄 수 있으면 족하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그렇게 칼등 바위암릉을 타고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며 급할 것 없이 시간 개념없이 진행하니 이제는 등로 좌측으로 숨었던 백운산과 청량산 그리고 가운데 저 멀리 멀어진 덕유산과 가까운 적상산이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많은 사진으로 남기며 진행하니 이곳에서도 갑자기 매쾌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살펴보니 등로 주변으로 불이 났던 흔적들이 보이면서 나무들이 죽어 있다.

오르면 오를수록 더 넓은 지역이 화마의 피해를 벗어나지 못하고 많은 소나무들이 고사목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아프게 다가오고 잠시 후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56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계속 이어지는 가슴 아픈 불난 지역을 따라 오르니 모두 고사목으로 변해 버린 등로에 새생명이 탄생하며 푸르름을 지키고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그 푸른 등로를 따라 걸어 본다.

잠시 더 걸어가니 칼등 등로가 이어지고 이제 또 등로 우측으로 환상의 조망이 펼쳐지는데 진행 방향 우측 앞으로는 서산으로 조금씩 기울어져 가는 햇살이 구름속에 머물며 오랫만에 붉은 하늘을 선사하고 있다.

진행 방향으로는 이제 오늘 산행 날머리도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내일 걸어야 할 백하지맥 산줄기도 전부 한눈에 들어 오는 곳에 발걸음을 멈추고 우측을 살펴보니 정 가운데 가장 먼쪽에 서대산이 머리만 내밀고 그 앞으로 은행나무로 유명한 천태산과 톱날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장령지맥 마루금이 황홀함을 선사하고 있어 많은 사진에 담아 본다.

 

 

다시 몇 걸음 걸어가다 등로 좌우측으로 펼쳐진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외면하지 못하고 발걸음 멈춰 사진으로 남기다 보니 속도는 이은지 오래고 이제는 첫 나들이를 하고 있는 스마트 폰 S10과 함께 작품 사진도 담아 본다.

아직 배울 것이 많고 조정도 필요하지만 일단 6년 전 구매해 오랫동안 사용했던 S4 와 비교했을 땐 똑딱이와 DSRL급 카메라처럼 많이 달라보이는 사진으로 인해 더 많은 사진을 남기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꾸만 시간만 늘어지고 있지만 신경 쓸 일이 없다.

잠시 후 능선으로 드니 나뭇가지에 맨발님의 이정판이 붙어 있는데 574.2봉을 가리키는 이정판이다.

 

 

맨발님은 아직 뵙지는 못하였는데 맥 잇기 산행을 하다 보면 자주 만났던 띠지와 이정판으로 닉이 아주 낯익은 이름이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다시 우측으로 출발하니 등로는 여전해 생각보다 뚜렷하게 잘 나 있고 낙엽 깔린 안부를 지나 소나무 등로를 타고 룰루랄라 콧노래도 불러보는 시간이다.

한동안 무심으로 걷다 보니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 상에 준희님이 491.7미터 봉우리임을 알리는 이정판을 붙여 놓은 곳에 도착을 해 남아 있는 간식과 과일로 체력을 보충하고 아직 남아 있는 얼음물로 갈증까지 해소하고 나니 서서히 강렬했던 하루해도 서산으로 기울어 가며 그 빛을 조금씩 잃고 있다.

 

 

다시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듯 모여 있고 옆에는 썩어가는 나무 등걸이 보이는 518 무명봉을 넘고 다시 돌로 사방을 둘러 싼 웅덩이가 있는 무명봉도 통과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다 보니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방금 전 지나 온 491.7봉과 574.2봉 그리고 우측 저 뒤로 백하산으로 이어지는 백하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지나 온 산줄기를 확인하고 뚜렷한 사초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496 무명봉이 나타나고 그봉우리를 넘어 전진하니 약간의 잡풀들이 보이는 등로 양쪽으로 도열하듯 늘어 선 소나무들이 아름다운 등로도 만난다.

무심으로 걷다 보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백운산과 청량산이 가깝게 조망되고 그 좌측 저 멀리 백두대간 마루금과 각호지맥 첫구간으로 올랐던 삼도봉에서 각호산 지나 이곳 백하지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환상을 노래하고 있어 잠시 그 아름다운 선율을 듣고 진행한다.

 

 

이제 진행 방향과 등로 우측으로는 오늘 산행 날머리인 압치고개로 이어지는 도로가 조금씩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칠봉산 넘어 안압재로 뚝 떨어지는 백하지맥 산줄기 저 넘어 금산쪽 산군들이 아름답고 그 위 구름속에 잠겨 있는 하루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며 빛을 잃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온다.

짧던 길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또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이니 늘 그 시작과 끝은 상상을 초월하는 어떤 힘과 의미가 있는 듯 보인다.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산길을 걸어 처음 목표한 거리를 걸어 왔음에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한동안 남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무심으로 걸어 본다.

완만하게 걸어 올라 무명봉을 넘으면 다시 등로 양쪽으로 길게 늘어 선 소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내려가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는 그런 등로가 연속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검정 차단막이 설치되어 있고 한동안 그 차단막을 타고 길게 이어가니 개인사유지이기에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판도 보인다.

잠시 더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드디어 검정 차단막이 사라지고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구친 낙엽송 군락지를 만나 진행한다.

 

낙엽송 지대를 지나니 금새 19번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압치터널을 지나 구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압치고개에 도착을 해 산행을 종료하고 내일 아침에 올라야 할 산행 들머리를 확인한 후 배낭을 정리한다.압치고개(압재 또는 학산재, 전북 무주읍과 충북 영동군 학산면 경계, 압치고개표석과 소공원)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에 있는 고개로서 명칭유래를 보면 오리 머리 같이 생긴 모습에서 압재라는 이름이 유래하였으며 압치 또는 학산재라고도 부른다.

압재(310m)는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를 연결하는 고갯길로 동쪽의 백하산(634m)과 서쪽의 칠봉산(521m)을 동서로 연결하는 산줄기의 낮은 부분이다.

동서로 놓여 있기 때문에 남쪽의 물은 남대천으로 북쪽의 물은 학산천으로 흐르게 되지만 같은 금강 수계에 속한다.무주군과 영동군을 연결하는 국도 제19호선이 지나며 2007년에 개통된 압치 터널로 연결된다. 

전라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 지점이면서 무주군과 영동군의 경계 지점이 되고 구도로가 신도로의 서쪽으로 지나고 있으며 정상에는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압치 터널은 해발 고도 280m 지점을 연결하는 길이 약 500m 4차선 도로이다.이곳 압치고개에는 충북의 마스코트인 바르미와 고드미 형상이 양쪽으로 세워져 있어 눈길을 붙잡고 그 조형물 옆으로는 커다란 압치고개 이정석도 세워져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배낭 정리 후 구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인 영동 학산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가 본다.

 

혹시 내려가는 차량이라도 있으면 히치 하이킹이라도 해 차량을 얻어 타고 봉소리 압치마을회관 앞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졌지만 결국 내려가는 2.6 Km 거리 동안 단 한대의 차도 만나지 못해 온전하게 걸어 내려가야 했다.

압치고개로 내려 선 후 우측인 북쪽의 학산면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모습이다.

계속 걸어 내려가니 우측 아래 내려다 보이는 새로 건설된 19번 4차선 도로에는 차량들이 무섭게 달리고 그 소음이 그대로 귓전으로 전해지며 그렇잖아도 힘들고 피곤한 몸이 더욱 아프고 고통으로 다가오는 듯 느껴진다.

 

 

그렇게 봉소리 압치마을회관 앞에 도착을 하니 저녁 7시 30여분을 지나고 수많은 대형 버스들이 무주에서 실시중인 밧딧불이 야간 축제장을 가기 위해 수시로 달려 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봉소리는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뒤로는 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학산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꾀꼬리, 독순징이, 무가(사락호), 바깥삼정(외삼정), 삼정골(삼정,안티), 새터(신기,새말), 안삼정골(내삼,내삼정), 안앞재(내압티), 앞재(앞티) 등이 있는데 꾀꼬리는 근처에 앵소유지형의 명당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삼정은 마을에 세그루의 느티나무 정자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새터는 새로 생긴 마을이며 앞재는 앞재 밑에 있는 마을이고 바깥삼정은 삼정골 바깥쪽에 안삼정골은 삼정골 안쪽 백화산 밑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곳 마을 주민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저녁 7시 41분에 무주에서 영동으로 가는 버스가 오고 그 버스에 올라 무탈하게 미봉초등학교 앞까지 이동해 애마를 회수 할 수 있었다.

 

 

 

 

 

 

 

 

애마를 회수한 후 지난 주 묵었던 영동숯불가마찜질방으로 가서 샤워도 못하고 허겁지겁 2인분의 삼겹살에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허기를 달래니 오늘 하루도 저물어 간다.

하지만 목욕탕이 없어 뜨거워진 몸과 다리를 식히기에 어려움이 있어 아쉽고 특히나 내일 이곳 영동 지방에서 전국적인 마라톤 대회가 열리면서 포도 축제 기간이라 지난주에 비해 찜질방 손님들이 많아 잠자리도 불편해 쉽게 잠들지 못하다 어렵게 잠이 들고 한번을 깼다가 다시 일어나니 새벽 4시 30여분을 지나고 있다.

내일 하루도 남아 있는 구간에서 또 색다른 추억과 옛 추억을 소환하며 즐겁게 완주 후 귀가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90831 백하지맥제1구간 천만산 분기점-압치터널.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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