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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석문지맥(금북·완)

석문지맥 마지막 제2구간 봉소리고개에서 삽교천 아산만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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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남도 당진시의 석문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9년 03월 17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미세먼지 없이 너무 맑고 화창했으며 약간 기온이 올라 봄처럼 무더웠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03도에서 영상 14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봉소리고개(구절로 1차선 포장도로)-차나물(조림지)-밭 경작지-면산(142)-89번 송전탑-119.5봉-615번 2차선 포장도로(하나이엔지)-91번

                송전탑-오봉산 갈림삼거리(밀양손공 묘지들)-오봉산(135.2, 당진426 삼각점봉)-삼거리 복귀-무명안부-지독한 잡풀지대-130.1 무명 묘지봉-

                119.5 무명 묘지봉-밭 경작지와 폐가옥-국사봉(147.1, 육각정과 운동기구) 이정표(가교리, 성북리)-안전목책과 로프구간-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송전탑-비포장 임도-98번 송전탑-갈산육교(서해안 고속도로 통과)-시멘트 포장도로-99번 송전탑-능선진입-133.7

                당진307 삼각점봉-비포장 임도 갈림삼거리-신암사-101번 송전탑-비포장 임도(정원수 농장)-35번 송전탑-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가교1

                이정석)-가교길 도로표지판(갈림삼거리)-오리골길과 가교1길 도로표지판(갈림삼거리)-송악2배수지-1차선 포장도로-기지시리 육교(32 4차선

                포장도로 통과)-성황당 버스정류장-기지시1길과 툴모시로 갈림사거리-기지시리치안센터-송악농협 기지시지점-기지시우체국-619

                반촌 로터리(기지시리 시외버스정류장)-육교(신흥동길 4차선 통과)-도고머리길(1차선 포장도로)-비포장 임도-반촌육교(633번 4차선

                포장도로 통과)-비포장 임도-이정표(서원사입구, 등산로입구)-105.1 벤취 무명봉(사라진 응원판)-5번과 114번 송전탑-밭 경작지-

                이정표(서원사 110 m, 등산로입구)-팔각정자-101.6봉-오룡산(113.4봉, 팔각정자)-6번과 115번 송전탑-벌목지-영금절골길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시멘트 포장도로-지하통로(서해안고속도로 통과)-능선과 묘지지대-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국일철강공장-독암고개(신평

                농공단지교차로, 32 2차선 구포장도로)-신평산업단지(324차선 포장도로)-거산교차로 도로표지판-인공수로통과-성신프라스틱-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철마산(91.7봉, 당진421 삼각점)-성신프라스틱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 복귀-인공수로 통과-비닐 하우스 밭 경작지-

                갈림사거리(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와 인삼포-인공수로 통과-58 무명봉-올리고전통문화체험관-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초대1, 2리

                이정석 갈림삼거리 이정표(마을입구 2.4 Km와 송악 IC 10 Km, 올리고체험관 400 m, 은석도예 도예체험학습관 2.3 Km)-1차선 포장도로-밭골길

                도로표지판-관곡길 도로표지판-부곡길 도로표지판-보안들길 도로표지판-거산육교(34 4차선 포장도로)-거산리 시내와 시외버스정류장-

                신평중고교-선인농장-솔안말길 도로표지판-만동포1길 도로표지판-만동포1길과 솔안말길 도로표지판-형제1농장-뱃골길 도로표지판-고무레길

                도로표지판-만동포로 2차선 포장도로(도로 갈림 삼거리, 쉐어펠리체)-흥국농원-일흥목장과(서울축협시범농장)-흥국사(수미어린이집)-

                새한대학교-남산육교(34 4차선 포장도로)-신평농협오거리(622 4차선 포장도로, 34 2차선 포장도로)-신평길 2차선 포장도로-농협주유소-

                망객정 궁도장 이정석-능선진입-69.9 인식불가 삼각점봉-망객정(체육시설과 조망)-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벌목지와 묘지지대-망객산(63.6봉,

                체육시설)-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삼표레미콘-신평길 2차선 포장도로-한선기업 레미콘-청림스틸-신흥 버스정류장-파나시아 골프장-경수제철-

                자강산업-도성사거리 버스정류장(34 4차선 포장도로)-신당교차로-셋터길 2차선포장도로-능선진입-야굴산(42.1, 배미산, 아산 311 삼각점)-

                주택단지와 밭 경작지-샛터로 1차선 포장도로-도성리 마을회관-한정리 갈림삼거리-한정초교-고려소재-한정 보건진료소-한솔스틸-한정리

                보건지소 버스정류장-매산리 이정석-한정교차로(샛터로와 매산로)-샛터로 1차선 포장도로-매산로 지하통로(38번 4차선 포장도로 통과, 법석이

                교차로)-독우물길 1차로 포장도로-맷돌포길 이정표(석화봉 0.45 Km)-밭 경작지-석화산(46.4봉, 석화정)-전원주택단지-맷돌포나루터(안성천과

                삽교천의 합수점인 아산만)-아산만(서해)-삽교호 함상공원-삽교호버스터미널-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33.52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맷돌포나루터로 진행 후 삽교호 함상공원까지 진행)

산행트랙 : 20190317 석문지맥 봉소리고개-아산만.gpx

산행시간 : 약간의 잡목구간과 대부분 도로를 타고 빠르게 진행하여 08간 28 (08시 20부터 16시 48분까)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05:50 집에서 출발해 2호선 지하철 탑승

                                   06:40 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당진행 버스 탑승(7,000.-)

                                   08:05 당진종합버스터미널 도착 후 식수 구매하여 택시로 봉소리고개까지 이동(12,000.-)

                         올때 - 16:00 맷돌포 선착장(나루터) 도착

                                   16:48 삽교호 버스터미널 도착 후 서울 남부터미널 행 버스표 구매(6,700.-)

                                   17:00 근처 칼국수집에서 바지막칼국수로 저녁식사

                                   17:45 서울 남부터미널 행 버스로 서울 복귀

                                   19:40 지하철 3호선과 2호선으로 환승 후 무탈하게 귀가

석문지맥이란 ???

석문지맥은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에서 충남 태안의 안흥진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이 충남서부의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 운산면등 3개면이 만나는 석문봉에서 북동쪽으로 가지를 쳐 당진군 신평면 매산리의 아산만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말한다.

도상거리는 약 48.3 Km에 이르고 석문봉(653봉), 옥양봉(621.4봉), 서원산(472.7봉), 오봉산(225.3봉), 몽산(290봉), 135.2미터봉, 국사봉(148봉), 오룡산(114봉), 철마산(91.8봉), 망객산(64봉), 아굴산(42.1봉), 석화산(46.4봉)등을 지난다.
산줄기 동쪽이나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덕산천, 효교천,대 천천, 남원천으로 흘러들어 결국삽교천에 합류하여 아산만에 이르고 북쪽이나 서쪽의 물은 대방들천, 백석천, 서원천이 되어 황해로 스며들거나 일부는 아산만으로 흐른다.



지루한 도로를 타고 봄바람을 맞으며 또 하나의 지맥 산행을 마무리 했던 즐거웠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원래 지난 주 일요일 이곳 석문지맥 마지막 제2구간도 마무리하고 기분 좋게 올라가려고 준비했었는데 제1구간 산행 후 일기예보를 보니 3월 10일 일요일은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고 이곳 당진시의 비 확률도 자꾸만 높아져 60% 이상이면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10-15 mm의 비 예보가 있어 일요일 산행을 포기하고 귀가를 하였는데 다음날 당진시는 비가 내리지 않아 또 다시 구라청에게 속고 말았다.

하루 집에서 편안하게 쉬면서 전날 길게 걸었던 석문지맥 산행후기를 정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고 이번주 토요일에는 이 산객이 속해있는 3450온누리산악회의 시산제가 예정되어 있어 오랫만에 산친구들과 쉬며 놀며 올 한해 무탈한 산행을 기원 드리고 탁배기 몇잔을 기울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남아 있던 이곳 석문지맥 제2구간 산행 때문에 조금 일찍 귀가를 하였다.

조금 더 마음 편히 쉬면서 놀다 오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지만 식욕이 강한 자신을 알기에 한번 발동이 걸리면 주체하지 못하고 즐긴 후 일요일 산행은 쉽지 않을 것 같아 도둑고양이가 도망치듯 몰래 빠져 나와 내일을 기약했던 토요일 시산제였다. 


당진가는 첫 버스를 타고 한시간 30여분이 걸려 도착 후 편의점에 들려 식수만 구입해 택시를 이용해 산행 들머리인 성북리와 봉소리 경계인 봉소리고개에 도착을 하니 아침 8시 18분을 넘기고 산행 준비 후 곧바로 능선으로 들며 길고도 먼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해 본다.

지난주와는 또 달리 산행 시작전부터 장갑과 귀마개 없이 방풍의도 벗어 배낭에 넣은 후 능선으로 오르니 비오듯 굵은 땀방울이 흐르며 벌써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하는 시간이다.

높은 산도 없이 비산비야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니 생각보다 빨리 오룡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아무 표식도 없이 잡목들만 우거져 있고 그 아래 멋진 팔각정만 덩그런히 놓여있다.

그곳 오룡산 정상에서 팔각정을 내려다 보니 그 넘어 저 멀리 가운데 뾰족한 아미산을 중심으로 그 좌측으로 몽산과 구절산이 펼쳐져 있고 그 앞쪽으로 나즈막한 국사봉도 보인다.

아미산과 국사봉 앞쪽으로는 시원하게 뚫려있는 서해안고속도로가 햇살에 빛나고 그 우측 앞으로는 나뭇가지 뒤로 135.4봉도 우측으로 많은 송전탑들을 거느리고 당당하게 솟아 있다.


다시 당진시의 각 읍과 면 단위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와 시가지를 따라 도보를 하듯 빠르게 진행하니 발바닥에서는 불이 난 듯 따가워오고 물집이 잡히면서 고통이 조금씩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진행하며 드디어 가장 힘들게 생각했던 철마산도 무탈하게 다녀 와 산행을 이어가니 왜 정상을 다녀오지 않았을까 궁금증만 더한 망객산 가기 직전 망객정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 앞을 살펴보니 그동안 선답자의 산행후기에서는 보지 못했던 삼표레미콘 우측의 골프장과 작은 연못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오늘 산행의 종착점인 맷돌포선착장과 야굴산 그리고 아산만 넘어 영인산과 입안산 및 좌측으로 안성천도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잠시 미세먼지가 사라진 날 이곳에 와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에 발바닥은 불이나고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복 받은 하루를 즐기는 시간이다.


드디어 석문지맥 산행도 무탈하게 마무리한 후 안성천과 삽교천이 만나 아산만을 이루는 맷돌포 선착장에 도착을 해 고귀한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삽교호함상공원으로 나오면서 지나온 맷돌포선착장 방향을 살펴보니 우측으로 길게 이어진 서해대교와 좌측의 우뚝한 석화산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아산만과 이어진 해변도로가 이곳 삽교호 함상공원으로 길게 이어진 풍경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이곳에서 석문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배낭 정리하며 많은 사진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보는 시간은 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더 이상 석문지맥이란 이름으로 진행하지 못함은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지난 주 내려 와 석문지맥 제1구간 산행을 하면서 마루금과 가깝게 위치한 산들을 모두 들렸다 진행하다 보니 시간이 지체되어 예상했던 615번 2차선 포장도로까지 진행을 이어가지 못하고 이곳 순성면 성북리와 봉소리의 경계인 구절로에서 산행을 마치게 되었는데 어둠속에 순성면 택시를 부르니 이곳 지리를 몰라 40여분간 헤매이다 당진시 콜 택시를 부르니 채 5분도 되지 않아 도착을 해 무탈하게 애마를 회수해 귀가를 했던 곳이기에 밝은 대낮에 살펴보는 풍경은 조금 더 새롭게 다가오는 고갯마루이다.

어둠속에 약간의 추위를 느끼며 지냈던 1주일 전을 생각하며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곧바로 능선으로 들며 또 다른 길고도 먼 하루를 시작해 본다.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찾아봐도 이곳에서 산행을 마무리하고 새로 시작한 선답자가 없었기에 봉소리고개 또는 성북리고개라 불러도 문제는 없을 듯 한데 가장 좋은 지명은 도로가 구절로이니 구절로고개라 부르면 될 듯 싶기도 하다.

도로 좌측으로는 일주일 전 어둠속에 정확한 주소를 확인하기 위해 들렸던 구절사라는 작은 암자가 보이고 그 좌측 위로는 창고 같은 건물도 보이고 있다.

  

능선으로 오르니 약간의 잡목들이 저항을 해 보지만 심하지 않아 조심하며 진행하니 생각보다 진행 속도가 빨라진다.

제법 굵은 소나무들을 바라보며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가건물 같은 건물이 보이고 그곳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는데 사람이 살고 있는 듯 보인다.

그곳을 바라보며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의 성북리와 우측의 봉소리를 이어주는 무명안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몇 년 전 식재된 듯한 나무들 조림지가 나타나는데 그 조림된 나무들이 자라면서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성북리 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제법 멋들어진 봉우리 하나가 올려다 보이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이름도 없는 무명봉이다.

다시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밭 경작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해 끝 가장자리로 오르니 등로는 다시 능선으로 이어진다.

능선을 따라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금새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걸려 있는 해발 142미터의 면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이 면산 정상임을 알리는 그 어떠한 표식도 없어 아쉽기만 하다.

산행 후 내려 와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 면산을 봉서산이라 하였는데 언제 왜 면산이 봉서산으로 변경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봉서산 일명 면산은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봉소리와 성북리 및 백석리 경계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42미터의 산으로 만대 영화지지의 명당이 있어서 예부터 면천군에서 유명한 산이며 순성면의 진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면천군 산천 조에는 봉서산()이 군의 동쪽 2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여지도서 면천 산천 조에는 봉서산()이 군의 동쪽 5리에 있고 몽산에서 뻗어 와서 되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충청도 읍지에는 봉서산이 군의 동쪽 5리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대동지지 면천 산수 조에 봉서산이 동쪽 2리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옛 기록에는 봉서산의 위치가 2리(0.785 Km), 5리(1.963 Km)로 다소 상이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봉서산의 한자가 에서 후세에 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봉서산은 산이 아홉 마디를 이루었다 하여 구절산() 또는 새가 깃들이는 형국이라 하여 봉서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봉서산은 소나무와 참나무 등이 많으며 잡목이 혼재되어 있다.

봉서산에서는 주민들이 현재 등산로로 이용하고 있으며 매년 새해 첫날 해맞이 축제를 정상에서 개최하며 예전에는 산 중턱에 구절암이 있었는데 현재는 아래 마을 입구로 이전하였다.

국토 지리 정보원의 지형도에는 면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면산 정상에 있는 선답자들의 띠지들을 살펴보니 최근에 지맥 산행을 하면서 가장 자주 접하는 띠지들은 거의 다 보이기에 인사 한번씩 나누고 사진 몇장 남긴 후 다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후 89번 송전탑을 지나 약간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어렵게 진행하니 다시 잡목들과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쌓여 썩어가고 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119.5봉이다.

이곳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도 보이지 않아 지도를 확인하지 못했으면 그대로 지나칠 수 있는 그런 봉우리였다.


그 119.5 잡목봉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공장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밭 가장자리를 타고 2차선 포장도로에 내려서는데 살펴보니 이곳이 지난 주 제1구간을 진행하며 마무리를 하고자 하였던 615번 2차선 포장도로이다.

도로 좌측으로는 하나이엔지라는 커다란 공장 입간판이 보이는데 방금 전 내려오면서 등로 좌측으로 봤던 공장 건물이 바로 이 하나이엔지 공장 건물인 듯 보였다.

이곳 역시 좌측의 성북리와 우측의 봉소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제대로 된 이름 하나 있을 듯 보였는데 무명 고갯마루이다.


공장 건물이 있는 615번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높은 콘크리트 옹벽이 끝나는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91번 송전탑을 지나고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공장 건물들을 내려다 보며 진행을 하니 잠시 후 등로는 그 건물을 바로 우측에 두고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약간의 잡목들을 헤치고 오르니 다시 잘 관리되고 있는 밀양손공 묘지들이 보이고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우측 오봉산으로 오를 수 있는 오봉산 갈림 삼거리이다.

그리 멀지 않으니 잠시 우측의 오봉산을 다녀 와 이곳으로 다시 내려오기로 하고 우측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봉산으로 향한다.


우측 오봉산으로 오르니 또 다른 가족 납골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 우측으로 나 있는 등로를 따르니 넓은 수렛길 같은 등로는 잠시 후 우측으로 휘어져 나가고 좌측 잡목들이 우거진 직등을 타고 가파르게 오르니 금새 삼각점이 박혀 있는 오봉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몇장 남겨 본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 오봉산은 충청남도 당진군의 중남부 면천면 율사리와 대치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35미터로서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어 불리게 된 지명이라 전한다.

1872년지방지도(면천)에서 오봉산이 남산 왼쪽에 선명한 다섯 봉우리로 묘사되어 있고 고종 때 외무대신 김윤식이 지은 운양집에는 오봉산()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옛날에는 여산()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지형도(해미)에는 면천읍치 남쪽에 오봉산이 확인된다고 되어 있어 이곳이 오봉산임을 알 수 있다.

이곳 역시 일반 등산객들은 거의 오르지 않는 듯 지맥을 오르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몇개만이 이곳을 다녀갔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잡목이 우거져 있다.


오봉산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그 가파른 잡목지대를 벗어나 묘지지대를 지나니 금새 밀양손공 묘지들이 있는 갈림삼거리로 복귀하고 이제부터는 진행 방향 우측으로 걸어가니 금새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열리는데 얼마 가지 않아 무명 안부를 통과한다.

무명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지난 여름 무성하게 우거졌던 잡풀들이 고개를 숙이고 죽어 있는 지독한 마루금을 지나 다시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는데 여름철 진행에는 어려움이 있음을 알려주는 풍경처럼 다가온다.


그 지독한 잡풀지대를 지나 오르니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 주변으로 멋진 소나무를 심어 놓은 무명봉에 도착을 해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비산비야를 지나 저 멀리 회색 빌딩들이 보이는 당진시쪽 풍경이 원경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또 다시 만나는 음택 우측 뒤로 돌아 진행하니 밭 경작지가 나타나는데 밭 가장자리에서는 농부가 나와 과실수를 심고 있어 아주 조심스럽게 갈아 놓은 밭 고랑을 타고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폐민가 한채를 바라보고 계속 이어지는 밭 경작지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오르니 완만하게 이어지는 밭 가장자리 위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지맥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한다.


밭 가장자리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잠시 잡목들이 태클을 걸고 그곳을 통과하니 등로는 다시 넓은 수렛길 같은 마루금으로 변하고 있어 편안하게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후 다시 그물망이 쳐진 작은 밭 경작지를 통과 해 잡목들을 헤치고 능선으로 오르니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는 계속 태클을 걸고있는 잡목 세상들이다.

그렇게 잠시 더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금새 운동기구들과 벤취쉼터들 그리고 중앙에는 육각정자가 설치되어 있는 국사봉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잠시 물 한모금 마셔 본다.

이곳 당진시 송악읍의 국사봉(148) 자료를 찾다 보니 기지시 줄다리기의 유래에 대한 전설과 관련된 국사봉 자료만 있을 뿐 국사봉 자체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어 일부 인용을 해 본다.

국사는 구시라는 영장을 뜻하는 데서 유래했으며 현대어인 굿의 이두어로서 이는 곧 국사봉이 신사를 올리는 산이고 국사당은 신사를 올리는 당임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토속 신앙에는 산신당, 당산, 성황당 등에서 주로 동재, 산신재, 당산재 등을 지냈는데 삼국시대부터 산신제 관련 기록이 나오고 있으며 조선 시대에도 산신제의 민속은 계속되어 사악신으로 지리산, 삼각산, 송악산, 비백산을 정했다.

민간인들도 각 부락의 진산에 산신당을 지어서 제사를 지내는 토속 신앙이 널리 퍼졌으며 당진시 석문면 장고항리, 송산면 동곡리, 명산리, 신평면 운정리 등에는 아직도 산제당이 남아 있다.

조선 태조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목면산인 남산에 국사당을 지어서 제사를 지냈는데 이후 백성들 사이에서 각 부락의 진산에 국사당이나 국사당을 널리 설치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런 국사당이 있는 산을 국사봉이라 부르게 되었고 후에 그 한자가 바뀌어서 국사봉(國師峰), 국사봉(國士峰), 국사봉(國賜峰), 국수봉(國守峰)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게 되었다.

국사봉 산정상 주변은 당목 이외에는 나무가 없으며 산록에는 소나무와 잡목이 혼재되어 있다.

기지시리 국수봉에는 오래된 당목이 있으며 기지시 줄다리기 제를 지내기 위한 당집도 있으며 특히 송악읍 기지시리 국수봉에서는 국가 무형 문화재 제75호인 기지시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윤년 해 음력 2월 말에서 3월초 첫날에 당제를 지낸다.

덕이 있고 가장 정직한 제관이 국수봉에 올라가 유교, 불교, 굿의 세 가지 제사를 지내며 부락민이 섬기는 신이 모두 다르기에 3가지 제사를 지낸다고 하나 주된 내용은 국태민안, 농자 득풍, 직금 순조이다.


그곳 국사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내려가는데 이정표 상 가교리가 아닌 성북리로 내려가다 잠시 경제적 이득도 없는 알바를 하고 다시 정상으로 올라 와 정상적인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이다.

계속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다시 나타나는 안번목책과 로프 등로를 따라 금새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왜 이런 산중에 시멘트 도로가 포장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걸어가니 좌측으로 갈림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포장도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갈림삼거리에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우측에 드높은 송전탑이 보이는데 번호는 보이지 않는다.

그 송전탑을 지나니 등로는 이제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비포장 임도로 바뀌어 있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멋진 산이 올려다 보이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이름도 없는 무명봉처럼 보인다.

등로 바로 우측 아래로는 가교리가 보이는데 가교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리로서 구릉성 지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북쪽에는 간역 저수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에는 국사봉이 자리하고 있고 남동쪽으로는 장사래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가재울, 굴냇골, 뒷골 마을 등이 있는데 가재울 마을은 삼다리 북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며 굴냇골 마을은 긴 골짜기 안에 자리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지명이고 뒷골 마을은 신암 뒤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등로 좌측으로 높은 98번 송전탑을 지나 이동통신탑이 서 있다.갑자기 자동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소음이 귓전을 때리기 시작하고 잠시 더 그 이동통신탑을 지나 걸어 내려가니 갈산육교가 나타나고 그 위로 오르니 발 아래에는 바로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나는 갈산육교이다.

서해안고속도로는 2001년 개통된 고속도로로 서울 금천구 및 경기도 광명시를 시점으로 하여 당진, 군산, 보령, 장항 등을 거쳐 전라남도 무안에 이르는 고속화도로로서 육상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건설됨으로써 낙후된 서해안 지역을 개발하여 국토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서해안 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중국과의 교류가 편리하게 되어 대규모 공단이 서해안 부근에 입주하고 있으며 또한 경기도와 전라도를 연결함으로써 대규모 상업 단지가 조성되고 상업적인 밭농사와 목축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갈산육교를 통해 서해안고속도로를 통과하며 살펴보니 당진나들목을 지나 얼마 멀지 않은 지점이기에 다음부터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달리게 되면 이곳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지나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거어 오르니 99번 송전탑이 보이고 이제 등로는 다시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등로가 우측으로 휘어져 가는 지점 좌측 능선으로 등로는 이어지고 그 능선으로 들어가니 멋진 소나무와 정원수들이 자라고 있는 농장길 같은 곳에 도착을 한다.

그 멋진 농장을 타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133.7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는데 당진 307이라는 3등 삼각점이다.

한쪽 소나무 밑둥에는 준희님이 걸어 놓은 133.7봉이라는 산패가 나즈막하게 걸려있어 인사 한번 드리고 출발한다.


그 133.7 삼각점봉을 지나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최근에 새로운 나무들이 들어 왔는지 도로가 새로 개설된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잠시 내려가니 멋진 측백나무와 편백나무들 그리고 소나무들이 보이고 그 나무들을 구경하며 걸어 내려가니 다시 갈림삼거리를 만나 이제 좌측으로 그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른다.

잠시 후 지도에 나타나 있는 등로 우측의 신암사를 살펴보니 소나무 사이로 몇동의 작은 건물들이 보이는 아담한 암자처럼 보인다.

여전히 등로는 넓은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있어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넓은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진행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잠시 후 101 송전탑을 만나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좌측으로 휘어지고 그곳 등로 주위로는 멋진 정원수들이 즐비하게 식재되어 있어 눈호강을 하면서 걸어가지만 인공적인 조화로 인해 조금은 무거워지는 마음이기도 하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송악읍쪽 고층빌딩들이 조망도기 시작하고 그 주위로 제법 큰 규모의 송악읍 마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송악읍은 동쪽은 아산만을 건너 경기도 평택시, 서쪽은 송산면, 남쪽은 신평면, 북쪽은 아산만을 사이에 두고 경기도 평택시 및 화성시와 마주한다.

동쪽과 북쪽은 비교적 낮은 구릉지대와 간석지 및 평야지대를 이루고 서쪽과 남쪽은 송악산과 오룡산 및 철마산등의 구릉지로 되어 있어 동고서저의 지형을 이룬다.

농경지의 대부분이 남동쪽의 전대리와 도원리 일대에 집중되어 있고 남동쪽 간석지에는 광양염전과 송악염전 등이 있으며 주요 농산물은 쌀과 보리 외에 잎담배의 재배가 성하다.


그렇게 송악읍을 조망하며 계속 이어지는 예쁘게 꾸며진 정원수들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다시 35번 송전탑을 만나는데 오늘은 포장도로와 시멘트 포장도로 그리고 비포장 임도를 타고 송전탑 탑방을 하듯 자주 만나는 송전탑이다.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갑자기 공사를 진행중인 도로를 지나고 묘지지대를 통과하니 몇채의 민가들이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옆에는 앙증맞은 가교1리라 적혀 있는 이정석이 이곳이 바로 가교1리임을 알려주고 있다.

날씨가 풀리면서 농부들이 비닐하우스와 밭 경작지로 나와 일을 시작하는 것으로 봐 이제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었음을 느끼는 시간이다.


그 가교1리 마을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각 밭 경작지마다 그물망이 쳐져 있어 이곳 역시 고라니의 피해가 큰 듯 보인다.

하기사 오늘도 산행을 하면서 많은 고라니들을 만났으니 오죽했으면 저런 그물망을 쳐 산짐승들로부터 작물들을 보호하려고 했을까 생각하니 조금은 짐승의 숫자를 조잘해야 될 필요성도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이제부터 가교리의 각 마을 이름을 딴 도로표시판들이 갈림길마다 나타나는데 제일 먼저 만나는 이정판이 가교길이다.

가교길 삼거리를 지나 오리골길 갈림삼거리도 통과하니 도로 좌측으로 송악2배수지가 높은 철망을 쳐 사람들의 접근을 방지하며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송악2배수지 앞에는 당진3동 둘레길이라는 안내도가 보이는데 이곳 역시 둘레길로 개발이 되어 있는 듯 보인다.

시멘트 포장도로는 이제 일반 포장도로로 바뀌어 있고 그 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기지시리육교가 나타나는데 그 아래로는 32번 서해로 4차선 고속화도로가 지나고 있다.

우측인 동쪽으로는 당진힐스테이트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어 이곳이 서울 근교인지 시골의 작은 읍내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가지시리육교 좌측인 서쪽으로는 시곡리의 현대그린아파트와 당진종합병원이 보이고 있다.

그 육교를 지나 걸어가니 반촌로 4차선 도로와 만나고 그 도로를 건너 1차로 포장도로가 열려있는 기지시1길로 들어가 완만하게 오르며 진행을 이어가 본다.

예전 시골 동네에서 자주 보던 풍경같은 좁은 골목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기지시치안센터를 지나 송악농협과 기지시우체국들이 보이는 2차선 포장도로로 접속한다.

기지시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마을 북쪽에는 아랫들과 윗들이 펼쳐져 있으며 남쪽으로 하천이 흘러가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가지시, 도구머리, 밧틀모시 마을 등이 있는데 가지시 마을은 틀처럼 생긴 못이 있었다 해서 틀모시라 불리다가 후에 가지시 마을이라 개칭되었 도구머리 마을은 밧틀모시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돌로 된 산의 머리가 된다는 의미에서 명명되었으며 밧틀모시 마을은 틀모시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밧틀모시 마을이라 불린다.

이름이 범상치 않아 자료를 찾아보니 위와 같은 내용들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다시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표지판을 보니 드디어 삽교호로 갈 수 있는 방향 표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회전 교차로에 도착을 하니 당진 송악읍 가지시리 줄다리기 축제라고 ㄹ하는 커다란 홍보물이 그 회전로타리 중앙에 세워져 있어 자료를 찾아보니 제법 유명한 줄다리기 축제처럼 보인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인 기지시 줄다리기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기지시리에 전승되는 줄다리기로서 중요무형문화재 제75이고 기지시는 현지에서 틀무시(틀모시) 또는 틀못이라고 부른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은 풍수상으로 보아 옥녀가 베짜는 형국이어서 베를 마전(피륙을 바램)하는 시늉으로 줄다리기가 생겼다고 하기도 하고 또 기지시리의 지형이 지네형이어서 지네모양의 큰 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했다는 설도 있다.

기지시리의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에 마을 동편에 있는 국수봉의 국수당에서 행해지나 줄다리기는 윤년의 음력 3월 초에만 행해지며 따라서 줄다리기를 하는 해에는 3월에 당제를 지내고 이어서 줄다리기 행사로 들어간다.

합덕에서 기지시리를 거쳐 당진과 서산으로 가는 국도를 경계로 해서 국도의 남쪽은 물 위 즉 수상이라 하고 북쪽은 물 아래 즉 수하라고 부르는데 수하인 송악면 일부와 송산면, 우강면, 용대면, 석문면과 당진 일부, 신평면 일부 마을, 수상인 송악면 일부와 순성면 및 면천면과 합덕 일부, 당진 일부 마을이 서로 대결한다.

참가인원에는 제한이 없고 거주자는 남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므로 한쪽이 많을 수도 있으며 줄이 길기 때문에 긴 국도에서 만든다.

먼저 동아줄을 만들고 다시 세 개로 한 줄을 만드는데 큰 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 수 없어서 줄 꼬는 틀을 이용하며 다 만든 원 줄은 사람이 올라앉아 양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지름이 1미터쯤 된다.

원 줄의 작은 것은 아홉 가닥이고 큰 것은 열다섯 가닥이며 중 줄은 열두 가닥이고 길이는 60여 미터쯤 된다.

원 줄은 본부에서 만드나 곁 줄은 각 마을에서 제각기 만들어 와서 달며 수하인 물 아래가 암줄이고 수상인 물 위가 수줄이 되는데 암수 두 줄을 연결시키면 원줄이 100미터가 넘고 곁줄은 원줄보다 길기 때문에 줄의 전체 길이는 150미터가 훨씬 넘는다.

줄다리기가 시작되면 양편 주민들은 농악을 울려 기세를 올리며 줄 옆에 모여 선다.

중앙선에 기지시의 두레농기를 꽂고 좌우에 수상의 청기, 수하의 황기가 서며 양편은 대장이 지휘하는데 심판의 신호에 따라 첫번째 신호에 줄을 잡고 두번째 신호에 줄을 들어 끌어간 쪽이 이긴다.

수하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하는데 북쪽의 수하편이 매년 승리하며 지형은 북쪽이 약간 낮아서 수상이 불리하게 되어 있으나 수하가 이겨야 풍년이 들기 때문에 져도 불평은 없다.

자기편이 꼭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을 초월하여 다만 풍년이 들기를 염원하는 농경의식의 하나로 행하여지는 민속놀이이다.

줄다리기가 끝난 뒤 줄은 이긴 쪽 차지가 되는데 승부가 나는 순간 사람들이 다투어 줄을 끊어가며 특히 암줄과 수줄을 연결시켜 비녀목을 꽂은 부분의 줄은 불임증과 요통에 효과가 있다고 믿고 있다.

1982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이우영이 당제 및 줄다리기의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있다.

당진 기지시줄다리기는 2015 12 2일 유네스코 제10차 무형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우리나라의 기타 줄다리기 5(영산줄다리기, 삼척기줄다리기, 남해선구줄끗기, 감내게줄당기기, 의령큰줄땡기기) 및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줄다리기 종목 등과 더불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언제 기회되면 한번쯤 내려 와 줄다리기 축제를 보며 즐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당진시 송악읍 가지시리인데도 생각보다 번화한 거리 모습에 자못 놀라는 시간이다.

오늘 아침 시외버스를 타고 당진으로 가면서 부러워했던 기지시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회전로타리를 통과하여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다 도로 양쪽으로 고층 아파트들이 보이는 첫번째 갈림삼거리에서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90도 꺽어 걸어 들어가니 얼마되지 않아 육교를 만나는데 도고머리길로서 그 육교 아래로는 신흥동길 4차선 포장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육교 우측인 동쪽으로는 송악교차로 방향으로 쭉 뻗어 나간 신흥동 4차선 도로가 시원하다.


이제 1차선 포장도로인 도고머리길을 따라 계속 걸어 진행하니 시골 같은 모습의 민가들이 금새 끝이나고 커다란 비닐하우스 한동을 지나 밭 경작지와 이어진다.

이곳 역시 밭 가장자리마다 철조망과 철망을 쳐 산짐승들의 출입을 막고 있어 그 피해를 짐작하게 만든다.

잠시 후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뀐 도로를 따르니 또 다른 육교가 나타나고 그 위로 올라 아래를 살펴보니 633번 4차선 포장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어 잠시 사진 몇장 남기고 그 육교를 통과한다.

육교를 지나 밭 경작지와 능선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잠시 후 갈림삼거리와 만나는데 직진방향으로는 서원사 가는 길이 석문지맥 마루금은 우측 능선 방향으로 갈리는 삼거리이다.


우측 등산로입구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약간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쯤 나무벤취 수미터 하나가 활엽수 낙엽 위에 고즈넉하게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준희님의 응원판이 나뭇가지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누군가 잘라 버린 흔적이 보이는 곳으로 아쉬운 시간이다.

그곳을 지나 활엽수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 있는 등로를 따르니 다시 벤취 쉼터 하나가 보이는 안부를 지나 참나무들이 많이 보이는 등로 옆으로 송전탑 하나에 5번과 114번의 두개의 번호가 달려있는 곳을 지나 101.6봉에 도착을 한다.

하지만 이곳은 봉우리가 아닌 일반 능선같은 등로이기에 자세히 지도를 살피고 진행하지 못하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봉우리처럼 보인다.


참나무들이 많이 보이는 봉우리 같지 않은 101.6봉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그물망이 쳐진 밭 경작지가 다시 나타나고 그 밭이 끝나는 지점에 좌측으로 서원사 내려가는 이정표가 다시 나타난다.

그곳 안부를 지나 활엽수 낙엽이 쌓여 있어 푹신한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팔각정이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기고 조금 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잡목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그 우측 아래에 멋진 팔각정이 다시 세워져 있는 113.4미터의 오룡산에 도착을 한다.

오룡산(114)은 충청남도 당진군의 중북부 송악읍 가학리와 영천리 경계에 있는 다섯 봉우리로 되어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13미터로서 오룡은 다섯 봉우리가 여의주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오룡쟁주형의 명당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조선지지자료(면천)에 오룡산이 승선면 주동에 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오룡산을 중심으로 남과 동측에는 영천리 영금절과 산직말이 자리하고 그 너머 오룡산 북측으로 가학리 동쪽말이 자리하고 있다.

오룡산 남측 영천리 골짜기 위에 옛날 영금절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해서 그 이름을 따서 현재 마을 이름으로 되었다고 한다.

오룡산 북측으로 옛 대성사 절터에 조계종 서원사가 그리고 그 옆에 대성사라는 암자가 50여 년 전부터 터를 잡고 있다.

오룡산에서 잠시 쉬면서 준비한 약식과 과일로 점심을 해결하고 식수로 목마름도 달래며 지나온 등로를 살펴보니 저 멀리 아미산에서 몽산과 구절산으로 이어지는 제법 골격을 갖춘 당진의 산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룡산 팔각정에서 허기를 면하고 목마름을 달랜 후 다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옆으로 6번과 115번이 함께 있는 송전탑이 보이고 그 송전탑을 통과한다.

그림같은 넓은 오솔길을 타고 힐링하듯 걸어 전진하니 갑자기 눈 앞에 벌목지대가 펼쳐지고 그 벌목지를 따라 걸어 진행하며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반촌리의 조용한 마을 넘어 저 멀리 뾰족한 아미산을 중심으로 좌측으로는 몽산과 구절산 등 지난 구간 걸어 온 등로가 아름답게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등로 우측으로 아름다운 반촌리 마을과 지나 온 석문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며 그 벌목지를 따르니 다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우측으로는 영금절골길이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은 영천리와 반촌리의 경계로서 두 마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보인다.

영천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의 지대가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동쪽에 초대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서쪽에는 옥여봉이 위치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독쟁이, 새내, 영금절 마을 등이 있는데 독쟁이 마을은 조선시대 시대에 독점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새내 마을은 새내 가에 위치한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영금절 마을은 전에 영금절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명명되었다.

반촌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리로서 완만한 구릉성 지대가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북쪽에 옥여봉이 자리하고 있으며 남서쪽에 간역 저수지가 위치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가마못, 공장이, 대택골 마을 등이 있는데 가마못 마을은 전에 가마같이 생긴 못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공장이 마을은 공장이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대택골 마을은 가마못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같은 리 단위 마을이면서도 이 산객이 살았던 깡촌과는 달리 이곳은 구릉지대로 드넓은 들판에 공장들도 많아 완전히 다른 풍경의 농촌으로 각인되고 있다.


그 갈림삼거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잠시 후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그곳부터는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있다.

다시 시끄러운 자통차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조금은 거칠은 말라죽은 잡풀들과 잡목들이 짧은 구간 힘들게 만들더니 금새 서해안고속도로 옆으로 나 있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제법 많은 차량들이 고속도로를 바람처럼 달리고 있어 잠시 사진 몇장 남기고 그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가 지하통로를 통해 그 서해안 고속도로를 통과한다.

이제부터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던 철마산으로 이어지는 공장지대를 어떻게 우회 통과해야 할지 고민하며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하통로를 통해 서해안고속도로를 건너니 직진 방향으로 태성벤딩이라는 회사의 건물이 보이고 그곳으로는 등로가 막혀 있어 지하통로를 통과하자마자 좌측으로 오르니 무명묘지들이 나타난다.

그 묘지들을 좌측에 두고 걸어 올라 그 묘지 위 상단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하통로를 통해 통과한 서해안고속도로가 바로 지척으로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지나 온 마루금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묘지 위 능선으로 들어가니 약간의 잡목들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진행하니 다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지도를 보니 조비실길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로이다.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그 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져 가는 곳 좌측 짧은 절개지로 등로는 이어지고 있어 그곳으로 내려가니 공장 건물 옆 좁은 등로로 마루금이 이어지고 있다.

그 공장 건물 옆을 통해 마당으로 나가니 많은 철선들과 철강제품들이 보이는 국일철강산업 마당으로 이어지고 그 공장 정문으로 나가니 다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난다.


그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신평농공단지교차로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도로 좌측으로는 커다란 대우볼트라는 공장 건물들도 보인다.

신평산업단지라는 버스 정류장을 지나 걸어가니 눈 앞에 32번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신평산업단지교차로가 나타나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을 독암고개라 명명하였는데 아마도 이곳 지명 때문에 붙은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독암고개는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거산리와 당진시 송악읍 광명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서 독암고개는 국도 32번 선상에 위치한 당진시 신평면 거산리와 송악읍 광명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

마을 뒷산에 독처럼 생긴 독바위가 있어서 독암이라 했다고 전해지는데 독암고개가 있는 곳은 원래 면천군 손동면 도암리 지역으로서 갓골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서해안 고속 도로가 개통되기 전 당진 시내에서 서울로 가려면 독암고개를 통하는 길이 유일했다.

예전에는 독암고개를 통해 동쪽의 합덕, 예산, 온양, 천안을 거쳐 서울로 갈 수 있었으며 현재 신평면에서는 독암 고개를 통해서 서쪽의 송악읍, 당진 시청 쪽으로 접근할 수 있다.

독암고개에서 좌측으로 나 있는 1차선 접속도로를 따라 오르니 도로 좌측의 산수유 나무에서는 노란 산수유꽃이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고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드디어 32번 서해로 4차선 포장도로 위로 이어지며 그 도로 좌측으로는 신평산업단지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다.

 

그 신평산업단지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32번 서해로 4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눈 앞에 거산교차로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 곳 좌측으로 김영석 가구갤러리라는 건물이 보이고 그 건물을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바로 눈 앞에 인공수로가 머리 위로 지나가고 있다.

그 인공수로 넘어 저 멀리에는 성신프라스틱이라는 공장 건물과 다른 공장 건물들이 보이는데 그곳에서 잠시 착각을 해 그 성신프라스틱 건물방향으로 진행하다 뒤돌아 내려 와 인공수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한다.


계속 이어지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 가 좌측의 건물들이 끝나는 지점 좌측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방향을 좌측으로 90도 꺽어 들어가니 이제 저 멀리 앞으로 올라야 할 철마산 정상부가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건물 지나 폐가로 변한 건물들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계속 걸어 전진하니 묘지지대를 지나 잡목들이 우거진 91.8미터의 삼각점이 박혀 있는 철마산 정상에 도착을 해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철마산(91.8)은 영천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로서 송악읍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3.5 Km 지점에 있대부분의 지대가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마을 동쪽에는 철마산과 초대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고 서쪽에는 오룡산이 위치하고 있다.

영천리는 영금리와 사천리에서 한 자씩 따서 영천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영금절, 조비실, 새내, 산직말, 독쟁이의 5개 자연 마을이 있다.

영금절(영금사)은 옛 면천군 초천면 영금리 지역으로 영금, 영금실, 영금사 등으로 불리고 조비실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오룡산에 영금사라는 절이 있었던 것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하며 현재도 오룡산 밑에 절터가 있반촌2구 경계에 있다.

조비실(조비곡)은 옛 면천군 초천면 조비리 지역으로 새내 서쪽에 있는 마을이 부락 지형이 각종 새가 날아드는 형국이라 하여 조비곡 또는 조비 등으로 불린다.새내(사천)는 옛 면천군 초천면 사천리 지역으로 마을 중간에 새내가 있기에 유래했윗새내라고도 부르며 영천리 동쪽 끝 신평면 초대리 경계에 있다.

산직말(산직촌)은 독쟁이 서쪽에 있는 마을로 덕수 이씨의 산지기가 살았다 하고 주위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어 산중말 또는 산죽말이라고도 하며 가학리 경계에 있으며 독쟁이는 조비실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독점이 있었다 하고 금곡리 경계에 있다.


개인적으로 오늘 산행 중 가장 난해하다고 생각했던 철마산에 올라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올랐던 등로를 타고 뒤돌아 내려오는 시간은 발걸음도 가볍게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공장 건물들 몊으로 나 있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이곳 철마산을 오르면서 만났던 인공수로가 다시 앞을 가로막고 그 아래 도로릍 따라 통과한 후 곧바로 좌측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으로는 KCC 당진 공장 건물이 계속 따라오고 있다.

잠시 그 인공수로 넘어로 올려다 보이는 철마산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아직도 멀게만 남아 있는 맷돌포 선착장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겨 보는 시간이다.

 

인공수로 옆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어느 순간 인공수로가 끝이나고 임도 좌우측으로는 드넓은 비닐 밭 경작지들이 나타나는데 무슨 농사를 짓기 위한 경작지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곳이 서산과 함께 마늘과 양파의 고장이지만 마늘은 지난 가을에 심어 벌써 파란 싹들이 올라와 있기에 더욱 궁금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잠시 더 밭 경작지를 살펴보며 걸어 진행하니 다시 좌우측으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영천리와 거산리 경계 지점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에는 이곳 도로를 독암골길이라 하였다. 

영천리에 있는 독암마을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되어 찾아 보니 영천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의 지대가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동쪽에 초대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서쪽에는 옥여봉이 위치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독쟁이, 새내, 영금절 마을 등이 있는데 독쟁이 마을은 조선시대 시대에 독점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새내 마을은 새내 가에 위치한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영금절 마을은 전에 영금절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명명되었다.

하지만 정작 영천리에는 독암마을이 보이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갈림사거리를 지나 진행하니 도로 우측으로 냉동 창고가 보이고 살펴보니 사업 상 자주 만나는 영예상사의 비비고라는 글씨가 보여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계속 이어지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전진하니 민가 한채가 보이고 그 민가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비닐하우스를 좌측에 두고 좌측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임도 우측으로는 다시 드넓은 인삼포가 펼쳐져 있어 농작물 재배지도 많이 변하고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다시 보이지 않던 인공수로가 나타나고 또 다른 물길을 만들고 있는 그 인공수로를 좌측에 두고 우측에는 인삼포를 두고 그 가운데로 나 있는 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더 진행하여 산모퉁이를 돌아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드넓은 개활지가 나타나는데 아마도 논 경작지를 평탄화시켜 다른 작물을 재배하려는지 아니면 공장을 지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 밭둑에서는 아낙이 나와 냉이를 캐는지 아니면 쑥을 뜯는지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도 보이면서 이곳 당진에도 봄이 오고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다.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 능선으로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나즈막한 5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곧이어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에 내려서는데 그 도로 좌측으로는 올리고전통문화체험관이라는 멋진 건물이 보이는데 굳게 닫혀 있는 문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모습이 전시행정의 결과는 아닐까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자료를 찾아 보니 신평면 올리고 마을에 세워진 체험관으로 도예체험, 황토염색, 대장간 체험, 정미기로 도정하기, 달구지 타고 마을전경 돌아보기, 단호박 인절미 떡메치기, 저수지 제방 산책 등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데 이제는 애물단지로 변모한 듯 보인다.


올리고전통문화체험관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드넓은 인삼포가 펼쳐져 있고 진행 방향 저 앞으로는 다시 인공수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몇 장의 사진을 남기고 걸어 전진하니 도로 좌측으로 민가가 보이는데 그곳도 역시 아낙이 나와 집 주위의 잡초를 제거하기 바쁜 손길을 올리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갈리ㅁ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한쪽에는 이정표와 함께 좌측으로 초대1, 2리로 갈 수 있는 방향 표시가 되어 있는 커다란 이정석도 보인다.

그곳에서 좌측 초대리 가는 도로를 버리고 우측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갈림삼거리를 지나 이제부터는 초대리의 각 마을로 이어지는 1차선 시멘트와 일반  포장도로를 타고 마을 여행을 하듯 걸어 보는 시간이다.

초대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마을 중앙에 초대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초대, 밭골, 새창머리 마을 등이 있는데 초대 마을은 새내 아래쪽에 새로 터를 잡아 이룩된 마을이라 해서 새터 또는 신대 마을이라 불리다 후에 초대 마을이라 개칭되었 밭골 마을은 전에는 논은 없고 밭만 있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지명이며 새창머리 마을은 옛날에 창고가 있었다 해서 새창머리 마을이라 불린다.

잠시 후 비닐를 씌운 밭 경작지를 타고 민가들이 보이는 마을로 진행하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비닐 밭들이 나타나고 과연 그곳에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일손이나 있는지 궁금하며 또 어떤 작물들을 재배하기 위한 밭들인지 신기하기만 하다.

밭골길을 지나 조금 ㅈ더 진행하다 도로 좌측의 인삼포를 살펴보니 그 인삼포 저 멀리 주탑이 희미하게 보이는 서해대교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석문지맥 산행도 막바지에 가깝게 다가서고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다.

 

다시 관곡길이라는 도로 표지판을 지나고 1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오랫만에 만나는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뭉게 구름이 깨끗한 공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민가들이 보이는 포장도로를 타고 조금은 지루하게 걸어가니 거산리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도로는 이제 부곡길로 바뀌고 있다.

잠시 후 도로가 보안들길로 바뀌는 갈림삼거리를 지나니 도로 좌우측으로는 나무 조림지와 과수원이 보이는데 그 넘어로는 거대한 아파트 빌딩들이 솟아 있어 묘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르니 드디어 발바닥에서 약간의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하고 물집이 잡히는지 고통이 따르기 시작하는데 진행에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기에 참고 걸어가 본다.

잠시 후 거산육교를 만나 그 육교를 통과하며 그 아래로 펼쳐져 있는 34번 서해로 4차선 포장도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다.

우측으로는 당진과 예산 방향으로 이어지고 좌측으로는 삽교대교 방향으로 이어지는 34번 도로이다.


거산육교를 지나니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고 생각보다 큰 거산리 시가지로 들어 서는데 저 멀리 삽교호와 서해안고속도로라 표기된 도로 표지판과 신평 중고등학교 입간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거산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중앙에 건자리들이 펼쳐져 있으며 북쪽에 초대 저수지가 위치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갓골, 독암, 서드물 마을 등이 있는데 갓골 마을은 거미 서북쪽 가에 있는 마을이며 독암 마을은 독처럼 생긴 바위가 많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서드물 마을은 지형이 마치 쥐가 물을 먹는 형국이라 해서 서드물 마을이라 불리며 문화재로 시도유형문화재 84호인 이만유장군유물이 있다.

이곳에서 약간의 허기를 느끼지만 참을만 하기에 물 한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계속 산행을 이어가 본다.


좌측으로 초대리 가는 도로 표지판을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 신평중고등학교 담벼락이 보이고 그 담 벼락이 있는 곳 우측으로 나 있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90도로 꺽어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가지만 여전히 산행이라기 보다는 도보 순례처럼 느껴지는 시간이다.

도로 좌측으로 신평중고등학교 담 벼락을 두고 그 담을 따라 걸어 내려가니 금새 좌측으로 정문이 나타나고 더러 주위로는 논과 밭 경작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우측 저 멀리 생각보다 높은 고층 아파트 밀집지대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민가들과 비닐로 덮혀 있는 밭 경작지들을 지나니 축사 단지들이 보이고 좌측으로 만동포1길 가는 갈림삼거리를 만나 좌측으로 산행을 이어가 본다.

 

도로 좌측 앞으로는 허름한 축사 건물들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고 우측으로는 논 경작지들이 나타나는데 봄이 온다고는 하지만 아직 논 농사를 짓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농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축사에서 풍기는 역겨운 분뇨 냄새가 코를 찌르고 조금 빨리 발걸음을 옮기니 우측으로 만동포1길과 좌측으로 솔안말길로 갈리는 갈림사거리를 통과한다.

잠시 전형적인 농촌 풍경을 감상하며 진행하니 다시 도로 양쪽으로 거대한 축사 건물들이 나타나고 조금은 역겨운 분뇨냄새를 맡으며 빠르게 그 도로를 벗어 나 본다.

   

축사 단지를 막 벗어난 지점에 우측으로 뱃골길 가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나즈막한 도로를 타고 언덕으로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고무레길 가는 도로 표지판을 지나 다시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제 그 만동포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본다.

이곳 남산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리로서 완만한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남쪽으로 하천이 흘러가고 있으며 중앙에는 지암말골, 닷밭골이 분포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감나뭇골, 기왓말, 뱃골 마을 등이 있는데 감나뭇골 마을은 감나무가 많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고 기왓말 마을은 전에 기와를 구웠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뱃골 마을은 지형이 배처럼 생겼다는 의미에서 명명되었다.

계속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으로는 사과 과수원이 보이는데 오래되었는지 사과나무 밑둥은 모두 굵은데 가지는 위로 뻗지를 못하고 땅과 수평으로 펼쳐져 있어 기구한 삶을 보는 듯 하다. 


흥국농원이라는 사과 과수원을 지나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나즈막한 둔덕을 넘으니 다시 도로 우측으로 서울축협시범농장이라는 거대한 축사단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도로 좌측으로 흥국사 가는 표지판도 보인다.

잠시 더 걸어가며 도로 우측으로 보이는 건물들을 살펴보니 바로 새한대학교 당진캠퍼스가 드넓게 펼쳐져 있어 잠시 살펴보고 진행을 이어가 본다.

몇 년 전 흑석지맥을 진행하면서 대불대학교에서 개명한 세한대학교 건물 뒤로 이어진 등로를 타고 호등산을 올랐던 기억이 있어 잠시 어리둥절 했지만 이곳 당진에 제2캠퍼스를 조성하는 듯 보인다.

인구가 감소한다는데 대도시에 있는 대학교들도 정원 채우기가 쉽지 않은 세상에 이런 지방에서 두개의 캠퍼스를 운영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텐데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 더 진행하니 남산육교가 나타나는데 그 아래로는 34번 서해로 4차선 포장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차량 통행량도 제법 되어 보이는 그 34번 서해로 4차선 포장도로를 살펴보니 우측으로 방금 전 건물들을 살펴보며 통과한 세한대학교 건물들과 그 학교로 통하는 도로들이 저 멀리 보이고 있다.

도로 좌측으로는 신평교차로라는 도로 표지판이 34번 도롯가에 서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고 그렇게 구경하며 그 남산육교를 넘으니 곧바로 신평농협오거리가 나타난다.

신평면은 충청남도 당진시 동부에 있는 면으로서 대부분의 지역이 평탄한 구릉지를 이루며 동부는 아산만에 접하고 있고 남원천이 아산만에 흘러들며 초대리와 신송리 및 신당리 일대에 넓은 충적지가 발달했다.

구릉지를 이용한 과수재배와 감자, 호박, 배추, 무 등의 재배가 활발하다.

문화재로는 이만유 장군 유물(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4호)이 보존되어 있고 서해안고속도로와 예산과 서산, 당진과 아산을 잇는 국도가 나 있으며 삽교천 방조제가 축조되어 아산시와의 연결이 용이해졌다.

행정구역은 금천리, 초대리, 거산리, 상오리, 남산리, 신송리, 신흥리, 신당리, 운정리, 도성리, 부수리, 매산리, 한정리 등 13개리가 있으며 면사무소 소재지는 신평면 신평로 834이다.

지인의 고향이기에 자주 들어서 그런지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신평이라는 단어이다.


신평농협오거리를 지나 신평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좌측으로 망객정 궁도장이라는 멋진 이정석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좌측으로 녹슨 철문이 설치되어 있는 능선방향으로 오르며 망객정으로 향한다.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오르막 등로를 따라 금새 무명봉에 오르고 그 정상에서 완만하게 이어지는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 앞으로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그 우측 발 아래로 신평의 비산비야가 펼쳐져 있고 그 신평 지나 저 멀리 삽교호를 지나 인주면의 영인지맥 상 영인산과 입암산이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 영인지맥 마지막 합수점인 공세리성당 쪽 아산만도 보이기 시작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에 잠시 바쁜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겼던 시간이다.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신평면의 풍경들과 그 넘어 삽교천과 삽교호 그리고 영인지맥의 산줄기들을 살펴보며 제법 넓은 묘지지대를 통과하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힐링하듯 걸어 본다.

잠시 후 갑자기 등로 한가운데에 인식이 불가능한 깨진 삼각점이 나타나고 지도를 살펴보니 69.9 삼각점봉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바로 눈 앞에 2층의 망객정이 나타나는데 휴일을 맞아 외국인 2명이 올라 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이 산객과 마주치자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망객정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망객정은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금천리에 있는 국궁인 협의회으로 국궁은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가장 대중화된 무예이며 군자는 반드시 익혀야 하는 필수 과목 이었을 만큼 중요한 항목이었다.

현대에는 궁시도 현대화 되어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일반인들이 애용하는 운동이국궁은 무엇보다도 예를 중요시 하며 사법(활을 쏘는 방법)이 준엄하여 정서 함양과 인격수양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운동이다.

당진궁도협회는 회원들 간의 유대 강화와 친목을 도모하며 학유정 초기 설립 시 국궁에 대한 홍보 강화와 많은 국궁 동호인 모집 및 활성화를 위해 이 망객정을 설립되었다.

당진에는 타 도시에 비해 국궁장이 많으며 당진시 궁도 협회가 있어 예를 중시하는 우리 선조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국궁이 당진에서 활성화 되고 있으며 도민 체전을 비롯한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서로가 방행하기 싫어 인사만 나누고 잠시 그 망객정 팔각정자 2층으로 올라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보기로 한다.


망객정 팔각정 2층으로 올라 우측을 살펴보니 잠시 후 진행해야 할 삼표레미콘 공장의 건물들이 바로 지척으로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 듯 보이는 퍼블릭파나시아골프장의 연못도 보이며 그 뒤 저 멀리 삽교호와 영인지맥 산줄기가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북쪽으로는 가까운 지점이 있으면서도 선답자들이 다녀오지 않은 헐벗은 망객산이 지척으로 보이고 그 망객산 좌측 저 멀리 서해대교가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다.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확인해 봐도 왜 저 망객산은 다녀오지 않았을까 궁금해 잠시 저 벌거벗은 망객산을 다녀오기로 한다.


팔각정자인 망객정에서 선답자들의 루트는 우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 삼표레미콘 앞 도로로 내려서고 있는데 직진 방향으로 더 잘 발달된 등로가 나타나 그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 본다.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금새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고 우측에 삼표레미콘 당진공장을 두고 좌측으로 걸어 진행하니 곧바로 우측 망객산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생활 쓰레기와 건축물 쓰레기들이 뒤덮혀 있는 곳을 지나 오르니 계단은 오두 오석으로 되어 있어 조금은 신기했고 잠시 후 벌목된 지대를 지나 다시 나타나는 묘지지대 우측 능선을 따라 걸어 진행하다 등로 좌측 묘지 지대 넘어를 살펴보니 비산비야를 지나 저 멀리 군계일학으로 솟아 있는 송악산이 멋지고 그 좌측 아래 저 멀리에는 고층 아파트 단지들을 지나 아미산과 지난 구간 걸었던 몽산 그리고 구절산이 보일듯 말듯 그 봉우리들을 지평선에 올리고 있다.

송악산을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송악산(151미터)은 충청남도 당진군의 중북 송악면 석포리, 중흥리, 정곡리, 월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51미터이고 숭학사가 있어서 숭학산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숭악산(), 송악산()이 되었다고 하는데 일설에 의하면 1914년 일본인들이 행정구역을 개편할 당시 이름을 잘못 고치는 바람에 송악산이 되었다고도 한다.

해동지도에는 숭학산()으로 1872년지방지도에는 숭학산과 숭학사구지(址)로 묘사되어 있으나 조선지형도(당진)에는 기지시리 북동쪽에 송악산(山)으로 되어 있다.

현재 숭학사는 폐사되었고 중말 서북쪽에 있는 절터에는 주춧돌과 기와 등이 남아 있다고 하며 옛 숭학사 아래 마을을 절아래(사하-) 마을이라 했는데 지금도 송악면 중흥리 송악산 아래에 절아래 마을이 있다.
조선환여승람에 송악산이 군의 북쪽 40리에 있는데 옛날에 봉수대가 있었다 라고 적혀 있고 또한 송악산성이 동학농민운동 때에 흙을 갖다가 성을 축성하여 난을 피하였다고 쓰여 있지만 실제는 석성으로 둘레가 약 250미터의 산성이라고 한다.

송악산은 대개의 산들이 산맥을 이루며 연결되어 있는 것과 달리 혼자 솟아있어 고산(외로운 산)이라고도 불리었으며 석성과 토성의 혼합 형태로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곳에서 무려 3천여 명의 동학군들이 모여들어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송악산 중턱쯤에는 장수바위라는 큰 바위가 하나 있으며 이 바위엔 사람의 손과 발 모양 같은 자국이 나 있는데 옛날 힘센 장수가 이 바위를 짚고 일어서다 찍힌 자국이라는 전설이 있다.

이 바위 외에도 송악산엔 기암괴석이 많아 무속인들이 지성을 드리곤 했는데 1970년대 전대저수지를 만들 때 축대로 쓰이는 바람에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고 하며 주민들의 반대로 유일하게 장수바위 하나만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송악면과 송악초등학교 등에서 그 지명을 엿볼 수 있다.

언제 한번 저 송악산에 올라 이곳 석문지맥 마루금을 바라보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련지 궁금한 시간이다.


그렇게 등로 좌측을 조망하며 조금 더 걸어 묘지지대를 통과하니 소나무 등로 속에 갑자기 운동기구들이 보이는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옛날 지도에는 망객산이고 최근 다음지도에는 비천산이라 표기된 정상이다.

하지만 늘 만났던 선답자들의 띠지는 고사하고 그 흔한 산악회 산행 띠지 하나 만나지 못해 왜 이곳 망객산 정상부가 산객들에게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한 시간이었다.

망객산(64)은 충청남도 당진군의 동부 신평면 금천리, 한정리, 도성리, 신흥리, 남산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64미터이고 전하는 말에는 조선 선조 때 천인(賤人) 김복선(金福善)이 이 산에 숨어 사는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업신여기나 오직 율곡 이이와 토정 이지함이 그 높은 학식과 숨은 재주가 있는 것을 알고 가끔 찾아와서 세상일을 상의하다가 앞으로 있을 임진왜란의 일을 크게 걱정하였다고 한다.

그때 김복선이 토정과 율곡을 번갈아 보면서 인신년 상사에 왜 임진년 걱정을 하십니까 하며 서로 한탄하다가 작별하였다고 하는데 김복선이 이 산에 올라와서 두분이 돌아가는 것을 멀리 바라보았으므로 손바라기산 또는 망객산(望客山), 객망산(客望山)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고 전한다..

그 후 김복선의 말대로 토정 이지함은 무인년에, 율곡 이이는 갑신년에 죽었으므로 모두 임진란을 보지 못했다.

서남쪽에 흥국사(興國寺)가 있고 전에는 동쪽에 관사(官寺)가 있었다고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뒤돌아 나와 그 망객산을 내려오며 다시 등로 좌우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을 즐겨보는 시간이지만 날씨가 무더워지며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내려오다 등로 우측 앞을 살펴보니 묘지지대 지나 바로 앞에 신평면 버스터미널 쪽 고층 아파트들이 보이고 그 우측 저 멀리 당진시의 진산인 아미산 군계일학으로 우뚝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 망산과 구절산으로 이어지는 석문지맥 마루금도 아파트 촌 뒤로 보일듯 말듯 산객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오랫만에 만나는 파란 하늘 하래 지나 온 마루금과 당진의 진산을 살펴보는 시간은 참으로 꿀맛 같은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망객산 정상에서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약간의 시간을 투자해 그 망객산을 가고 오는 도중에 만난 조망과 풍경은 오랫동안 이 산객의 가슴속에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송악산과 아미산 그리고 지나 온 석문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다시 빠르게 벌목지를 타고 내려가니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고 그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가니 다시 우측 망객정으로 오르는 능선 분기점에 도착을 하는데 이제 그곳 갈림삼거리에서 망객정 오르는 능선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금새 삼표레미콘 당진공장 앞마당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마침 휴일이라 그런지 공장은 조용하게 침묵속에 잠겨 있다.

그 삼표레미콘 공장을 빠져 나오니 좌측으로 선진정공 입간판이 보이고 곧이어 신평길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그 도로 옆에는 신흥리 버스 정류장도 보인다.


신평길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는 파나시아골프장이 보이는데 몇 명의 골퍼들이 골프를 즐기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는데 걷고 있는 이 도로에도 골프공들이 보여 오비가 나면 조금 위험하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잠시 후 도로 우측으로 국제천망이라는 공장도 지나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빛바랜 호돌이 조형물과 문정공 휘가종 유사와 비석 그리고 문정사 사당이 보이지만 잘 관리가 되지 않아 잡풀속에 묻혀 있다.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청림스틸이라는 고물상 벽을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신흥이라는 버스 정류장을 지나고 도로 우측으로 서해안고속도로와 삽교호관광단지로 빠지는 도로 표지판을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파나시아 골프장 정문이 나타나면서 그 골프장과 이별을 한다.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서해특장과 경수제철이라는 공장 입간판을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 38번 북부산업로 4차선 포장도로가 가깝게 다가와 있고 진행 방향 저 멀리 자강산업과 제이케이머티리얼즈 건물 뒷편으로 나즈막한 야굴산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좌측으로 자강산업 입간판이 서 있는 곳에서 우측 38번 북부산업로 4차선 포장도로로 올라 그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 올라가니 도성사거리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곧이어 신당교차로 사거리 도로 표지판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 신당교차로에서 좌측 1차로 포장도로인 샛터로를 따라 들어가니 그 입구에는 도성리라는 커다란 이정석이 서 있고 도로 양쪽으로는 공사 자재들을 쌓아 놨는지 거대한 마대자루속에 물건들이 가득 담겨 있는 상태로 널려 있다.


잠시 후 도성리와 신당교차로 버스 정류장을 지나 도로 양쪽으로 드높게 쌓여 있는 마대자루들을 바라보며 걸어 들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인주와 아산가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 곳 좌측으로 인공수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며 야굴산으로 향한다.

이곳 도성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리로서 구릉성 지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개골논골, 짐때울골, 갓골, 새터골 등이 마을 곳곳에 분포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하천이 흘러가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도성, 관절, 양중이 마을 등이 있는데 도성 마을은 뒤에 망재산이 있어 뒤재라 하던 것이 변하여 도티라 불리다가 후에 도성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관절 마을은 전에 관절이라는 절이 있었다 해서 관절 마을이라 불리며 양중이 마을은 한정리 원머리와 신당리 신당머리와의 가운데가 된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이렇게 새로운 마을이 생기고 또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며 개발이 되어 끊기고 파헤쳐지면서도 그 줄기를 남겨 이렇게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능선으로 오르니 잡목들과 잘려진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이 있는데 아카시아 가시나무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잠시 후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잘려진 나뭇가지들로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돌고 돌아 어렵게 그 잡목지대를 빠져 나가니 등로는 좌측에 연립주택단지를 두고 절개지 상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심하며 걸어 진행하니 절개지 우측 잡목과 가시나무 속에 아산311이라는 삼각점이 박혀있는 42.1미터의 야굴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야굴산(배미산, 42.1)은 한정리는 마을 남쪽 아굴산(42.1미터)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북서류하면서 충적지를 형성면서 답작 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한정리 북쪽과 남쪽은 초대천 지천 주변에 형성된 답작 지대이다.

어렵게 그 야굴산을 사진에 담고 좌측 아래로 내려가니 연립주택단지 가장자리로 내려가는데 그곳에는 밭을 경작했던 흔적들이 보인다.


밭 경작지를 따라 내려가니 방금 전 등로 좌측으로 봤던 연립주택단지 앞 마당으로 이어지고 그 앞으로 지나는 1차선 포장도로인 샛터로의 도성리 버스정류장도 만나다.

이곳에서 잠시 고민을 하는데 대부분의 선답자들은 석화산을 들리지 않고 곧바로 삽교호 함상공원 방향으로 진행 해 산행을 끝마쳤기에 어느 방향으로 진행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다 시간도 충분하기에 이 산객은 우측 도로를 타고 석화산을 들려 맷돌포구에서 석문지맥 산행을 마치고 삽교호 버스터미널까지 제방 둑을 타고 걸어 진행하기로 한다.

그 샛터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도로 좌측 아래로 논 경작지들이 펼쳐져 있고 그 끝자락 저 멀리 서해대교도 주탑을 중심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까지도 자주 지나다녔고 앞으로도 많이 통행을 해야 하는 서해대교이기에 잠시 더 머물며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출발한다.


이제부터 샛터로 좌측에 인공수로를 두고 지루하게 그 도로를 따르니 도로 양쪽으로는 간간히 민가들이 보이고 대부분 밭과 논 경작지들이 펼쳐져 있다.

잠시 후 도로 우측으로 도성리 마을회관 건물이 독립된 민가처럼 보이고 도성리 마을회관 버스정류장을 지나니 도로 옆 산수유 나무에서는 노란 산수유 꽃이 막 피어나기 시작하며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잠시 후 제법 많은 민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로 들어서고 도로 우측을 살펴보니 저 멀리 오늘 산행 후 버스를 타야 하는 삽교호 버스터미널 쪽 놀이기구가 확실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잠시 후 Y자 갈림삼거리를 만나는데 그 한가운데엔 한정리라는 커다란 이정석이 서 있고 그곳에서 우측 도로를 버리고 좌측 한정초등학교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가 본다.


우측에 작고 아담한 한정초등학교를 살펴보니 이 산객이 다녔던 시골의 초등학교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 산객이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시골 학교에도 학생들이 가득 차 활기가 넘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학생들이 감소하면서 많은 초등학교가 합병되거나 부속학교로 전락하는 아품이 있었다.

그 한정초등학교를 우측에 두고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도로 좌측으로 거대한 고려소재 공장 건물이 보이고 잠시 후 한정보건소와 작은 건물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도로 주변으로는 대부분 마늘 농사를 짓고 있는 밭 경작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한솔스틸을 지나 한정리보건지소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배낭 내려 간단한 간식과 식수로 허기를 달랜 후 다시 출발한다.


허기를 달래고 다시 출발하니 갈림사거리가 나타나는데 도로 옆으로는 한정리와 매산리라는 커다란 이정석도 보인다.

그곳 한정교차로 갈림사거리에서 우측 맷돌포구 방향으로 꺽어 산행을 이어가 보는데 이제는 한정리에서 매산리로 마을이 바뀌고 있다.

한정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대를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평양들, 원안들이 마을 남부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 하천이 유입해 들어오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한정, 반월, 원머리 마을 등이 있는데 한정 마을은 찬 우물이 있어 찬우물이라 불리다가 후에 한정 마을이라 개칭되었고 반월 마을은 한정리 중앙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반월과 같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원머리 마을은 신원들의 머리쪽에 위치한다 해서 원머리 마을이라 불린다.

매산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대를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중앙에 너배기들이 펼쳐져 있으며 동쪽으로 서해와 인접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깔판, 새터, 음섬 마을 등이 있는데 깔판 마을은 법석이 동쪽에 있는 마을로 새로 석화산 기슭을 깍아서 마을을 만들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고 새터 마을은 범석이 남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는 뜻에서 명명되었으며 음섬 마을은 지형이 섬처럼 생겼다 해서 음섬 마을이라 불린다.

이제 매산로라는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도로 우측 밭 경작지 지나 저 멀리 삽교호 마을의 오락기구 뒤로 영인지맥의 영인산과 입압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잠시 후 다시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직진의 좌측 매산로 2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커다란 창고 건물처럼 보이는 1차선 포장도로인 샛터로를 타고 걸어 본다.

도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삽교호 함상공원 쪽 놀이기구와 그 뒤로 영인지맥 산줄기를 살펴보며 꾸준히 걸어가니 민가를 지나 창고 건물들이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하는데 눈 앞에는 법석이교차로라는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지도를 살펴보니 38번 북부산업로가 지나는 도로를 지하통로를 통해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그 지하통로를 통해 38번 북부산업로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산행을 이어간다.


지하통로를 통해 38번 4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하니 다시 갈림삼거리 교차로와 만나 이제는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간다.

도로는 이제 독우물길로 바뀌어 있고 그 도로를 따라 부수리 마을로 진행을 한다.

첫번째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걸어 오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있는 2차선 포장도로인 매산로와 만나는데 그 도로 한쪽에는 석화봉까지 0.45 Km 거리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곳에서 우측 도로를 타고 석문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석화산으로 향한다.


도로를 타고 여유롭게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도로 우측으로 갈리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은 공사중이라 포크레인이 땅을 정리하고 있어 조심스럽게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매산로 2차선 포장도로와 헤어진다.

잠시 걸어 오르니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 커다란 건물이 등로를 완전히 가로막아 좌측 밭으로 내려가 어렵게 이어가고 다시 좌측 민가가 보이는 곳까지 내려가 우측으로 이어지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인 맷돌포길을 따라 어렵게 산행을 이어가 본다.

부수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와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동쪽으로 서해와 인접해 있으며 마을 중앙에 밭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마을 북쪽에는 해물골, 독우물골 등이 분포해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고역, 독우물 마을 등이 있는데 고역 마을은 고려 때 역말 이었다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이며 독우물 마을은 독우물이 있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이제 석문지맥 산행도 그 마지막 산줄기가 보이는 시간임을 직감하니 다시 힘이 나기 시작한다.


다시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는 전원주택단지를 새로 꾸민듯한 그런 마을 풍경이다.

그렇게 힘들게 걸어 오르니 팔각정 2층 정자가 보이는 석문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46.4미터의 석화산에 무탈하게 도착을 해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목마름을 달래 본다.

석화산(46.4)과 석화정은 충청남도 당진군의 동부 신평면 매산리와 부수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6미터로서 돌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봉우리 모양이 매화가 땅에 떨어진 형국이라 붙여졌다고도 한다.

석화봉(石花峯), 화석봉(花石峯), 매산(梅山)이라고도 불리며 조선지형도(아산)에는 신평면 삽교천 가에 석화산이 확인된다.

하지만 그 2층 팔각정에 올라가 보니 잡목들로 가려 조망과 풍경이 좋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북쪽 저 멀리 서해안고속도로의 서해대교가 보이고 남동쪽으로는 아산만 지나 영인지맥 산줄기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것이 전부 다이다.


그 석화산 석화정에서 잠시 구경하고 내려 와 우측 민가 방향으로 내려가니 민가에서 주인이 정원을 가꾸다 잠시 바라보고 있어 미안하다고 인사 드리고 하산길을 물으니 올라왔던 길로 나가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면 맷돌포로 하산할 수 있다고 친절히 알려준다.

직진하여 만나는 매산로를 타고 진행하는 것이 더 좋았는데 괜시리 우측 민가쪽으로 내려가 고생을 하고 어렵게 맷돌포 앞 맷돌포길을 만나 바로 눈 앞에 보이는 맷돌포로 향한다.

몇 명의 낚씨꾼들이 낙시를 즐기고 휴일을 맞아 여행 온 여행객들도 보이는 그 맷돌포 선착장으로 내려가 여행객에게 어렵게 부탁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맷돌포는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 석화산 아래에 있는 해안 포구로서 아산만 변에 있는 고깃배가 정박하던 해안 포구였으며 예전에는 매포라고 불렸다.

준치, 황강달이(황색이), 숭어 새끼(동어)가 많이 잡히는 포구로 유명했으며 바다 앞에는 매산리에 소속된 유명한 행담도가 떠있어 행담도 주민들이 육지로 나왔다가 배를 타고 왕래하였다.

맷돌포는 1960년대 말까지 부리포에서 운정포, 맷돌포, 한진항과 인천항으로 항해하는 정기 여객선의 중간 기착지였으나 증기선이 직접 맷돌포에 기항하지 못했고 전마선이라는 쪽배를 타고 나가서 큰 배에 올라탔다.

음섬포구는 삽교천에서 현대제철소 방향으로 난 북부산업로를 따라가면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다.

1979년 완공된 삽교천 방조제의 완공으로 조수가 약해지고 담수의 회류가 안 되어서 바닷고기들의 먹이가 적어지자 어류들이 자취를 감추었으며 그 후 주민들은 백합 양식장에 전념했으나 삽교천 방조제에서 밀어닥친 폐수로 망치게 되자 더이상 할 수 없었다.

현재는 맷돌포구와 음섬포구 모두 한적한 포구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맷돌 포구 해안가에 전에는 목사 윤치성 선정비석이 있었는데 지금은 부수리 석화산 산정으로 옮겼으며 음섬포구는 망둥어가 잘 잡히는 곳이다.

당진시는 삽교호 관광지에서 맷돌포구를 거쳐 음성포구까지 바닷가에 난 길을 따라 약 7 Km에 이르는 바다사랑길을 조성하였으며 특히 삽교호 관광지에서 맷돌포구까지는 약 2.5 Km의 해안탐방로가 데크로 조성하였다.

또한 음섬포구에 바닷가와 서해 대교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길이 42.5미터의 전망 데크와 파고라, 벤치, 공중화장실 등 편의 시설을 설치해 관광객들이 해안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쉼터를 조성했다.

맷돌포 선착장 뒤로 아산만과 저 멀리 영인지맥 날머리 및 안성천도 보인다.


이로서 석문지맥 산행은 이틀에 걸쳐 이곳 맷돌포에서 마무리를 하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구경을 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포장도로를 많이 걸어서 그런지 발바닥에 물짐이 생겨 조금은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고 그렇게 배낭 정리하며 동쪽을 살펴보니 많은 배들이 떠 있는 아산만 넘어 영인지맥과 안성천이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다.

산행 후 바라보는 풍경은 모두 아름답지만 특히나 이 산객이 고생하며 완주한 산줄기의 끝자락을 살펴보는 오늘 같은 시간은 참으로 소중하고 고귀하게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안성천은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과 보개면 일대에서 발원하여 평택시를 지나 아산만으로 흘러 드는 하천으로 길이 76 에 유역면적 1722 Km2로서 옛날에는 안성남천이라 하였다.

하구 근처는 우리 나라에서 조차가 가장 큰 곳 중의 하나로 대조시 평균조차 8.5미터에 달하고 유역의 기반암은 선캄브리아기의 변성암류와 이에 관입한 화강편마암으로 반상결정편마암, 흑운모편마암, 각섬화강암이 대부분이다.

중요한 지류는 진위천, 입장천, 한천, 청룡천, 오산천, 도대천, 황구지천 등이고 안성천의 본류와 지류가 합류하는 곳 근처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이 하성퇴적평야를 안성평야라 하는데 안성평야는 대부분 충적토로 이루어진 평야로 예로부터 토질이 비옥하여 김포평야와 함께 경기미의 주산지를 이루고 있다.

안성천 하구에 방조제가 들어설 때까지는 하구로부터 16.5 Km 떨어진 평택시 팽성읍 신호리까지 조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고 이 방조제를 아산방조제라 하는데 방조제가 완공된 뒤 많은 간석지가 간척되어 농경지가 확대되었다.

안성천 상류인 안성군 금광면과 고삼면에는 1956년에 금광저수지가 1958년에 고삼저수지가 축조되었으며 이 저수지들은 본래 농업용으로 개발되었으나 현재는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지나기 아쉬워 북쪽을 살펴보니 저 멀리 가깝게 서해안고속도로의 서해대교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 끝자락에는 행담도휴게소도 보인다.

아산만은 경기 평택시와 충남 아산시와 당진시 사이에 있는 만으로 길이는 40 Km이고 너비는 2.2 Km로서 한국에서 조석의 차가 가장 커 평균 조차가 6.1미터이고 최대 9.6미터에 달한다.

만 안에는 간석지가 넓게 형성되어 안성평야와 예당평야가 펼쳐지고 만으로 흘러드는 안성천의 하구에는 아산만방조제와 삽교천의 하구에는 삽교천방조제가 각각 건설되었다.

내만에는 삽교호와 아산호가 건설되어 관광 및 휴양지로 이용되고 있다.

바다가 출렁이듯 약간의 물결이 보이는 아산만도 반가운 마음으로 잠시 더 살펴본다.


이제 오래 쉬었으니 그 맷돌포 선착장을 빠져 나와 좌측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타고 삽교호 함상공원 방향으로 걸어가려는데 방금 전 내려온 방향 우측으로 맷돌포라는 이정목이 서 있어 사진에 담고 삽교호 함상방향으로 출발한다.

삽교호해안탐방로라는 이름의 설명판도 살펴보고 이정표도 사진에 담은 후 서해대교 해설판도 읽어 보는 여유를 가져 본다.

삽교천은 충남 홍성군 장곡면에서 발원하여 아산만으로 흘러 드는 하천으로 길이는 58.60 Km에 유역면적은 1649.87 Km2로서 청양군 비봉면에서 발원하여 예당저수지를 거쳐 오는 무한천과 예산군 신암면 하평리에서 합류하고 다시 아산만으로 흘러 드는 하구 부근에서 천안시 광덕면에서 발원하는 곡교천과 합류한다.

예산평야와 아산평야 일대의 관개수원이 되며 하천 연안에 홍성읍과 삽교읍 등이 자리하며 하구에 삽교천 방조제가 있다.

그렇게 해안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하니 여전히 도로 좌측으로 펼쳐진 아산만과 영인지맥 그리고 좌측 끝자락의 서해대교와 그 우측 아래 서봉지맥 끝자락이 그 옛날 추억을 들려주고 있어 추억에 잠겨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걸어 드디어 삽교호 함상공원에 도착을 해 조형물이 있는 전망대로 가 지나온 방향을 살펴보니 저 멀리 서해대교 좌측으로 석화산이 보이고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해안도로도 길게 이어지며 이곳으로 연결된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물이 조금씩 빠지는지 갯벌도 드러나기 시작하고 그 갯벌에는 많은 갈매기들이 앉아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한가롭고 여유롭게 다가온다.


그렇게 삽교호 함상공원을 한바퀴 돌아 살펴보고 많은 여행객들로 붐비기에 시가지를 지나 버스 정류장으로 가니 4시대 버스가 방금 출발하여 오후 5시 45분 버스가 가장 빠른 버스이다.

버스표를 구매한 후 가까운 칼국수 음식점에 들려 칼국수 한그릇에 시원한 맥주 한병으로 또 하나의 지맥 산행인 석문지맥 완주를 자축해 본다.

마음속으로 조금은 부담스럽게 다가왔던 석문지맥을 마무리하고 나니 가슴까지 시원함을 느끼고 다음주에는 계획된 전월지맥을 완주한 후 진행하다 중단된 관암지맥 마지막 구간을 다녀올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생각보다 먼 거리를 빠르게 걸어 진행하다 보니 예상된 시간에 무탈하게 삽교호에 도착을 해 멋진 조망과 풍경을 사진에 담고 자축하며 삽교호와의 만난도 이별을 고한다.

예전에 참으로 자주 들렸었지만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로는 들릴 기회가 줄어 든 삽교호이였기에 옛날 추억도 더듬었던 시간이었다.

많이 막히지 않는 도로를 타고 남부버스터미널에 일찍 도착해 귀가하니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집에 도착을 해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또 다른 일요일 휴일을 보낸다.


오늘처럼 다음 지맥 산행도 무탈하게 완주 후 귀가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90317 석문지맥 봉소리고개-아산만.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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