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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석문지맥(금북·완)

석문지맥 제1구간 남연군묘(상가리)와 분기점에서 성북리(구절로)고개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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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남도 예산군과 서산시 및 당진시의 석문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9년 03월 09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미세먼지 없이 너무 맑고 화창했으며 약간 기온이 올라 봄처럼 무더웠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01도에서 영상 14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상가리마을-남연군묘(가야사지 추정불전지와 남연군묘 제각)-이정표(옥양폭포 0.82 Km와 석문봉 2.08 Km, 옥양봉 1.51 Km, 주차장 1.52 Km)-

                이정표(옥양폭포 0.64 Km와 석문봉 1.86 Km, 주차장 1.34 Km)-능선진입-이정표(옥양폭포 0.39 Km와 석문봉 1.61 Km, 주차장 1.59 Km)-

                이정표(석문봉 1.22 Km, 주차장 1.98 Km)-옥양폭포 철계단-공터(집터?)-이정표(석문봉 0.64 Km, 주차장 2.56 Km)-안전철봉과 로프구간-

                샘물 이정표(석문봉 0.28 Km, 주차장 2.92 Km)-금북정맥 마루금 접속 이정표(석문봉 0.08 Km, 옥양봉 1.25 Km, 주차장 3.12 Km)-가야산

                석문봉(653봉, 두대의 정상석과 태극기 및 돌탑) 이정표(옥양봉 1.33 Km와 주차장 3.20 Km, 가야봉 1.48 Km, 일락사 2.74 Km)-석문지맥

                산행-안전목책과 로프구간-주차장 갈림삼거리 복귀-벤취쉼터 3개와 태양광 발전기-벤취쉼터2개-이정표(옥양봉 0.94 Km, 석문봉 0.39 Km)-

                안전철봉과 로프구간-안부 이정표(옥양봉 0.71 Km, 석문봉 0.62 Km, 주차장 2.70 Km)-557.7봉-이정표(옥양봉 0.51 Km, 석문봉 0.82 Km, 

                주차장 2.60 Km)-이정표(옥양봉 0.36 Km, 석문봉 0.97 Km)-신설계단-옥양봉(621.2봉, 정상석)-벤취쉼터5개-이정표(옥양봉 0.06 Km와

                석문봉 1.33 Km, 주차장 2.67 Km)-593.4봉(도상 옥양봉)-전망대 갈림삼거리-전망대-갈림삼거리 복귀-폐가1채-비포장 임도(내포문화숲길,

                원효깨달음길)-돌탑과 사각정자-서원산 갈림삼거리-서원산(473.2봉, 삼각점과 정상 이정표)-갈림삼거리 복귀-안부 이정표(시루봉 1.0 Km,

                서원산 1.0 Km, 서원저수지 1.6 Km)-이정표(시루봉 0.9 Km와 부엉이바위 0.7 Km, 서원산정상 1.0 Km)-이정표(시루봉 0.8 Km와

                서원저수지 1.7 Km, 서원산정상 1.2 Km)-이정표(부엉이바위 0.1 Km)-387.9봉 부엉이바위(서원팔경중육경)-이정표9부엉이바위 0.1 Km)-

                351.8봉-벌목지대-268.1봉-비포장 임도 갈림삼거리-수창봉(237.3봉, 삼각점과 벌목지대)-실터재(쉴터재, 609번 봉운로 2차선 포장도로-

                이동통신탑-잡목지대-비포장 임도-대추과수원-능선진입-222.8 무명봉-241.4봉-3번 송전탑-마늘밭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

                능선진입-잡목지대-비포장 임도-스테인레스 물탱크-민가-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비포장 임도-216.8봉-1차선 단군전길 포장도로(금치리)-

                능선진입(와우리)-잡목지대-69번 송전탑-190 잡목무명봉-1차선 금치길 포장도로(베다니 기도원)-잡풀과 송전탑 등로-민가와 과수원지대-

                불난지역-262.3봉-1차선 와우현1길 포장도로-조림지 농원-비포장 임도-오봉산 갈림삼거리 개 사육장-송전탑(10번과 11번)-225봉(절골산?)-

                오봉산(당진 314 삼각점, 11번과 12번 송전탑)-갈림삼거리 복귀-임도 갈림삼거리-191.8봉-비포장 임도-인삼포-대치리고개(장승고개, 2차선

                한티길 포장도로)-잡목지대-154 무명봉-잡목지대-웅산과 구룡산 갈림삼거리-송전탑-웅산(254.9봉, 당진313 삼각점) 이정표(구룡산 정상 150m,

                영탑사 4.0 Km, 원구룡전수지 1.3 Km)-구룡산(244봉) 이정표(구룡리 2.6 Km, 평안마을 1.4 Km)-웅산복귀-갈림삼거리 복귀-둥고리봉(225봉)-

                송전탑(20번과 21번)-송전탑(19번과 20번)-안전로프구간-207.1봉(상왕정 6각 정자, 211 산패)-안전로프구간-이정표(승전목 삼웅리와

                검암천 5.44 Km, 면천읍성 영탑사 2.26 Km, 승전목 웅산과 구룡산 7.16 Km)-1차선 삼웅1로 포장도로-삼웅육교(서해안고속도로 통과)-70번

                면천로 2차선 포장도로-면천삼거리(나무고개, 삼웅1리 버스정류장)-능선진입-산성리 산성터-지독한 잡목과 잡풀지대-무명안부-밤나무와

                호두나무 과수원-몽산성 망루 추정지 제 8망루-체험마당-제7망루-234.2봉-제6망루-성황당터-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 이정표(몽산

                등산로정상 0.5 Km와 아미산 2.1 Km, 몽산등산로종점 1.5 Km, 면천면사무소 2.2 Km)-비포장 임도-약수터(50 m) 갈림삼거리-안전목책과

                로프 및 계단-성곽 설명판과 전망대 (사각정) 이정표(아미산 1.5 Km, 면천면사무소 2.2 Km, 몽산등산로 1.9 Km)-몽산(299.4봉)

                이정표(군자정 1.2 Km, 아미산 1.8 Km, 삼웅리지방도 1.5 Km)-계단과 테뫼식 산성 설명판-비포장 임도-양유리공동묘지-시멘트 포장도로-

                무명안부 이정표(합덕제 구절산과 둔군봉 16.1 Km, 대덕산입구 아미산자작나무길 9.8 Km, 면천읍성 면천향교 2.2 Km)-무명안부 이정표(구절산과

                아미산)-비포장 임도-무명안부(벤취쉼터 2개)-구절산(238.9봉, 덕수이공 묘지)-82번 송전탑-비포장 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164 육각정자-

                성북리고개(구절로 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34.97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지맥산행 22.87 Km = 석문봉에서 성북리고개(구절로 2차선 포장도로)와

                                                                     접속구간 총 12.10 Km(총 3.20 Km = 상가리 남연군묘에서 석문봉까지와 

                                                                                                     총 2.30 Km = 서원산 갈림삼거리에서 서원산까지 왕복과

                                                                                                     총 2.90 Km = 오봉산 갈림삼거리에서 오봉산까지 왕복

                                                                                                     총 3.70 Km = 웅산과 구룡산 갈림삼거리에서 웅산과 구룡산 왕복 포함하여)

산행트랙 : 20190309 석문지맥 분기점-성북리(구절로)고개.gpx

산행시간 : 약간의 잡목구간과 대체적으로 양호했던 마루금을 타고 환상의 조망을 즐기며 진행하여 11간 46 (07시 01부터 18시 52분까)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04:00 기상

                                   05:00 집에서 애마로 출발(이틀동안 석문지맥 완주를 목표로 준비하여 내려감)

                                   06:45 상가리 남연군묘에서 주차장 찾아 10여분 간 돌아다닌 후 어렵게 폐가 앞마당에 주차

                                   07:01 폐가 주차장을 출발 해 남연군묘 둘러보며 석문지맥 제1구간 산행 시작

                         올때 - 18:52 성북리고개(구절로)에서 석문지맥 제1구간 산행종료 (순성면 택시를 불렀으나 도로명과 지번을 몰라 30여분 헛질-이해불가)

                                   19:35 순성면 성북리에서 당진 콜 택시를 부르니 5분만에 도착해 곧바로 남연군묘를 향해 출발(041-357-7000)

                                   20:03 남연군묘 도착 해 애마 회수 (33,000.-)

                                   20:05 남연군묘에서 배낭 챙겨 곧바로 출발

                                   21:45 막히지 않는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무탈하게 귀가

석문지맥이란 ???

석문지맥은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에서 충남 태안의 안흥진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이 충남서부의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 운산면등 3개면이 만나는 석문봉에서 북동쪽으로 가지를 쳐 당진군 신평면 매산리의 아산만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말한다.

도상거리는 약 48.3 Km에 이르고 석문봉(653봉), 옥양봉(621.4봉), 서원산(472.7봉), 오봉산(225.3봉), 몽산(290봉), 135.2미터봉, 국사봉(148봉), 오룡산(114봉), 철마산(91.8봉), 망객산(64봉), 아굴산(42.1봉), 석화산(46.4봉)등을 지난다.
산줄기 동쪽이나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덕산천, 효교천,대 천천, 남원천으로 흘러들어 결국삽교천에 합류하여 아산만에 이르고 북쪽이나 서쪽의 물은 대방들천, 백석천, 서원천이 되어 황해로 스며들거나 일부는 아산만으로 흐른다.



미세먼지가 사라진 마루금에서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만나 황홀한 산행을 즐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주 일요일에는 전국적인 비 예보가 있어 어느 지맥으로 갈지 조금은 고민을 하다 결국 금북지맥의 마지막 남아 있던 석문지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구간 나누기까지 애매하여 난감하기만 하다.

일단 제1구간 계획은 성북리와 봉소리를 이어주는 615번 지방도로까지 걷기로 하는데 다만 등로 주변에 보이는 몇개의 봉우리를 다녀오게 되면 예상대로 진행이나 가능할지 조금은 걱정도 앞서는 시간이다.

늘 하던대로 이번주에는 일단 석문지맥 완주를 목표로 이틀간 산행 준비를 하고 출발하는데 변수는 결국 일요일 전국적인 예보가 되어 있는 비가 석문지맥 완주에 가장 큰 변수가 되었다.


생각보다 춥지 않은 봄 같은 날씨에 격변기의 주인공이었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아버지인 이구의 묘로 알려진 남연군묘를 잠시 둘러보고 가파른 오르막 자갈 등로를 타고 힘들게 석문지맥의 분기점이자 그 이름을 낳게 한 가야산 석문봉에 도착을 하니 오랫만에 사라진 미세먼지와 조금 높아진 고도감으로 인해 생각보다 훨씬 아름답고 환상적인 조망과 풍경을 만나 한동안 그곳 정상에서 고운 추억을 남기며 세월을 낚았던 시간이다.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석분지맥의 옥양봉에서 서원산으로 이어진 능선 가운데 저 멀리 올망졸망 이어진 등로가 아름답고 그끝자락에 구름속에 떠 있는 듯한 풍경이 산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산행은 너무나 황홀한 풍경과 조망에 자꾸만 발걸음이 늦어지고 빨리 진행하여 내려간다고 해도 오늘 저멱에 별로 할일도 없어 마루금 주위에 있는 산들을 다녀로기로 하고 진행하다 보니 봉 따먹는 재미에 빠져 시간은 물 흐르듯 흐르고 있다.

서원산과 오봉산을 지나 이번에는 제법 거리감이 있는 웅산으로 향하는데 웅산에 거의 다 올라간 지점 좌측의 묘지지대에서 되돌아 보니 오늘 힘들게 걸어 진행을 한 가야산 정상부에서 석문봉과 옥양봉 그리고 서원산을 지나 좌측으로 돌고 돌아 송전탑 줄기를 따라 이곳으로 이어져 온 석문지맥 마루금이 환상의 모습으로 이 산객의 가슴속에 추억으로 남겨지는 시간이다.

보고 또 봐도 지루하지 않고 온 몸으로 흥분을 느낄 수 있는 조망에 이곳 웅산으로 향한 발걸음에 자축을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새벽 일찍 일어나 준비된 배낭과 이틀간 진행될 옷가지와 자료들을 챙겨 나왔는데도 약간의 해찰로 인해 늦어 아침식사도 못하고 서해안고속도로와 당진영덕간 고속도로를 번갈아 갈아탄 후 고덕에서 내려 덕산을 지나니 약간은 불안해 결국 다시 덕산으로 들어 가 24시 편의점에서 필요한 식수와 음료수 그리고 아침과 점심용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구매해 남연군묘에 도착을 한 후 주차장을 찾지 못해 두어바퀴 돌아 다니면서 어렵게 폐가 앞마당을 발견하곤 그곳에 잘 주차시키고 산행 준비후 출발하니 시간은 벌써 아침 7시를 넘어가고 있다.

예상은 새벽 6시 30여분 정도에 출발하면 좋게다고 생각을 했는데 약 30여분이 늦어진 시간이라 재빨리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남연군묘 방향으로 오르니 정면으로 옥양봉이 올려다 보이고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저 멀리 지금까지 몇번이가 올랐던 서산의 가야산이 머리에 많은 인공구조물을 이고 봄으로도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가야산을 지식백과에서 찾아보니 가야산(678.2)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운산면, 해미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충청남도 북부지방을 북과 남 방향으로 뻗어 있는 소규모 가야산맥에 속하며 규모는 작지만 주변에 많은 문화유적을 간직한 명산이다.

가야산은 주봉인 가야봉(678.2)을 중심으로 원효봉(605), 석문봉(653), 옥양봉(593) 등의 봉우리가 있으며 신라 때는 가야산사를 짓고 중사(나라에서 지내던 제사의 하나)로 제사를 지냈으며 조선시대까지도 덕산현감이 봄과 가을에 고을 관원을 시켜 제를 올렸던 곳으로 능선을 따라 피어있는 진달래와 억새풀 등 경치가 수려하다.

덕숭산(495)과 함께 1973 3월에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가야산의 명칭은 백제 때 상왕산이라 불렀는데 신라통일 후 이 산 밑에 가야사를 세운 뒤 가야산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가야산은 북쪽으로는 일락산(521미터)과 상왕산(307미터) 및 아미산(350미터)이 있고 남쪽으로는 삼준산(490미터)와 결봉산(202미터)에 이어지며 동사면을 흘러내리는 물길은 삽교천을 통하여 아산호로 배수되고 서사면의 것들은 천수만으로 흘러간다.

능선에서의 조망은 서해 쪽으로는 서산과 태안 및 천수만과 서해가 보이고 내륙 쪽으로는 예당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어 조망이 시원하다.

상왕산 서남쪽 계곡에는 백제시대 사찰인 보원사의 초석 등 유적이 남아 있었으나 1970년대에 추진된 대규모의 산지개발로 인하여 목장이 조성되었다.

가야산과 서원산(473미터) 사이인 덕산면 상가리에는 조선조 흥선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의 묘(충청남도기념물 제80)가 있는데 1868 5월 독일 상인 오페르트(Oppert,E.J.)가 아산만을 거쳐 구만포에 상륙하여 도굴을 시도한 일이 있었다.

가야산에는 백제시대 마애석불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국보 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보원사지, 개심사, 일락사 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또한 국보1, 보물6, 기타문화재 4점 등을 비롯한 각종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내포문화권의 핵심지역으로 유서 깊은 문화유적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경관을 찾아 매년 오십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남연군묘를 향해 걸어 들어가니 묘 하단부에 제일 먼저 가야사지 추정불전지와 남연군묘 제각이 보이고 자료를 읽어 본 후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보인다.

가야사지는 1998 12 24일 충청남도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되었으며 예산군과 서산시 경계에 있는 가야산 석문봉의 동쪽 아래 넓게 형성된 골짜기에 있는 절터이다.

이곳은 가야동이라고 불리는데 99개의 암자가 있었으며 절터의 중심지라고 전해지는 곳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아버지인 남연군묘가 자리잡고 있다.

가야사지는 지금 대부분 개간되어 논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사지의 가람을 추정할 만한 유구는 이미 파괴된 것으로 보이나 가야동 계곡의 논과 밭에 흩어져 있는 기와조각과 석재 및 자기편으로 보아 넓은 골짜기에 걸쳐 거대한 규모로 사찰이 조영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대원군이 남연군묘를 면례하기 위해 절을 소각하고 절 뒤에 있던 고려시대 나옹화상이 세운 금탑을 철거함으로써 폐사가 되었으며 이곳에 있던 금탑을 남연군묘 안에 부장했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상태로는 사지의 가람을 확인할 수 없으나 사찰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남연군묘 부근에는 기와조각과 초석으로 보이는 대형 석재가 흩어져 있다.

남연군묘의 제각시설은 남연군묘의 제례를 지내기 위한 시설로 남과 북 방향을 장축으로 조성한 장방형의 기초시설을 중심으로 ㅁ자 형태 암거(담장)로 보호되는 형태로 구성돼있고 상부에 기단 및 초석 시설은 일부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각시설은 남연군묘 산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가야산의 주봉인 석문봉과 남연군묘에 방향을 맞춰 배치돼 있다.

설명문들을 읽어 본 후 높은 둔덕을 올라 남연군묘로 향한다.


높은 둔덕으로 오르니 드디어 남연군묘가 나타나고 자세히 살펴보니 지세를 잘 모르는 이 산객에게도 이곳이 진짜 길지의 명당처럼 보일 정도로 멋진 장소였다.

정면 뒤로는 옥양봉의 바위암릉이 올려다 보이고 좌측으로는 석문봉과 가야산 정상부가 훤히 올려다 보인다.

남연군묘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무덤으로 1989 12 29일 충청남도기념물 제80호로 지정되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의 무덤으로 풍수지리설을 믿은 대원군 이하응이 한 풍수가에게 명당을 찾아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풍수가는 이 자리를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로 지목하였다고 한다.

이곳에는 원래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고 무덤자리에는 탑이 서 있었는데 1844(헌종 10) 대원군은 명당자리를 찾아 옛 가야사를 불지르고 탑을 부순 후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의 묘를 썼고 인근 골짜기에 절을 지어 보덕사라 이름 짓고 개운사 주지인 도문을 초대 주지로 삼은 후에 남연군묘 수호일품대승이라는 직책을 내려 묘를 돌보게 하였다.

그로부터 7년 후 대원군은 차남 재황을 얻었는데 이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1868년 독일인 에른스트 오페르트가 1866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 교섭에 실패한 뒤 대원군과 통상문제를 흥정하기 위하여 이 묘의 시체와 부장품을 도굴하려 다 미수에 그치기도 하였다.

이 사건으로 대외적으로는 서양인의 위신이 크게 떨어졌고 크게 노한 대원군은 통상수교거부정책(쇄국정책)을 강화하고 천주교탄압을 가중시켰다.

그렇게 잠시 그 남연군묘에서 시간을 보내며 몇장의 추억을 남기고 묘지 뒤로 돌아 올라가니 무슨 공사를 하는지 땅을 파헤쳐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곧바로 우측 절개지를 타고 내려가 다시 만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해 본다.


남연군묘에서 내려 와 상가리 마을 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상가저수지 뚝방 넘어 남서쪽으로 인공 구조물을 이고 있는 가야산이 우뚝 솟아 있어 자꾸 눈길을 잡는다.

그렇게 가야산을 살펴보며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금새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 중앙부 위로는 옥양봉의 바위암들이 막 떠오른 아침 햇살에 반짝이기 시작한다.

이곳에서는 좌측의 석문봉과 옥양봉으로 오를 수 있는 방향을 따라 진행한다.


잠시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상가리 주민들이 사유지라며 등산객들을 별로 반기지 않는 플랭카드들도 보이는데 약간의 마칠이 있는 듯 보였다.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드디어 낙엽진 활엽수가 발가벗고 아래에는 바위들이 보이는 계곡 옆으로 나 있는 능선으로 들어가며 걸어 본다.

간간히 서 있는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등로 좌측으로 보이는 바위 계곡에서 흐르는 작은 물소리를 들으며 걸어 오르니 벤취쉼터가 나타나 그곳에서 방풍의를 벗고 등산화를 다시 한번 정리한 후 걸어 오르니 금새 옥양폭포에 도착을 하는데 폭포같지 않은 바위 계곡 우측으로 철로 만든 계단과 전망대만이 이곳이 옥양폭포임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폭포같은 물줄기는 보이지 않는데 왜 이곳을 옥양폭포로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풍경을 보며 빠르게 통과를 해 본다.


약간은 더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예전에 집터인지 절터였을 것 같은 공터를 만나고 이제부터 나타나는 안전철봉과 로프를 따라 돌계단 같은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바위 밑에 물이 고여 있는 샘터에 도착을 하는데 물은 식수로 사용하기 부적합해 보인다.

다시 이어지는 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금북정맥 마루금에 도착을 하고 예전 홀로 걸었던 추억과 가야산 환종주를 하면서 지나갔던 생각에 잠시 지나 온 등로를 내려다 보니 저 멀리 가파르게 올라온 등로가 보인다.


그곳에서 잠시 사진 몇장 남기고 좌측으로 이어진 부드러운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이곳도 안전목책과 로프가 나타나더니 금새 석문지맥이란 이름을 만들고 그 시발점이 된 가야산 석문봉에 도착을 해 그 사이 새로 새워진 조금 더 커진 정상석과 태극기를 사진에 담고 그 정상석 여픙로 올라 주위 풍경과 조망을 살펴보니 생각보다 깨끗하게 환상의 풍경이 사방팔방으로 열려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겨 본다.

제일 먼저 남쪽을 보니 암릉을 지나 가야산 정상부의 인공구조물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원효봉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이어진 마루금이 예전 추억을 회상시킨다.

그 뒤로 구름인지 파도인지 분간도 되지 않을 황홀한 산그리메가 넘실거리며 지난 날 홀로 걸으며 많은 추억을 남겼던 사연을 들려주고 있어 잠시 귀도 귀울여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고개를 돌려 남서쪽을 살펴보니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에 자리잡고 있는 한서대학교 캠퍼스가 한눈에 들어 오고 그 바로 뒤로 연암산과 삼준산 줄기가 뾰족한 고봉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뒤로는 여전히 엷은 안개에 잠겨 있는 산그리메가 이 산객의 가슴을 흥분시키고 자세히 살펴보니 조만간 내려가 다시 올라야 할 서해바다 건너에 있는 안면도의 나즈막한 살줄기들로 보인다.


이제 눈을 서쪽으로 돌리니 산수저수지가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고 이곳 석문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끝자락에는 해미읍과 읍성이 아름답고 그 뒤 저 멀리에는 부석사를 품고 있는 도비산이 존재감을 확실하게 알리고 있다.

도비산(352미터)은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352미터이며 바다 가운데 날아가는() () 같다 해서 지어졌다는 설이 있고 또 매년 봄이면 산 전체에 복숭아꽃이 만발해 복숭아 도()와 살찔 비()를 써서 도비산(桃肥山)이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

이 산은 연암산(441미터)과 팔봉산에 이어 서산의 세번째 봉으로서 절 입구 농로로 가면 부석사인데 산정에 서면 서산농장 너머로 서해가 밀려온다.

부석사는 677(신라 문무왕 17) 의상이 동명의 영주 부석사를 세운 다음해에 창건하고 무학이 중건했다 하며 검은여의 뜬돌(부석) 전설과 두 절을 지은 의상과 선묘의 애틋한 사랑은 설화만이 아닌 듯하다.

그 밖에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삼존불상, 보원사지 5층석탑, 안견 기념관, 간월도 간월암, 정충신 사당 진충사, 정순왕후 생가 등 명소가 주변에 많다.

최근들어 늘 나즈막한 산줄기로 이뤄진 마루금을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진행하였고 늘 지독한 미세먼지로 인해 제대로 된 조망 한번 구경하지 못했는데 오늘 그 동안의 만나지 못한 풍경들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는 듯 황홀하기만 하다.


이제 눈을 북서쪽으로 돌리니 금북정맥과 팔봉산이 회색빛 고층 건물들을 감싸고 있는 서산시가 보이고 그 우측 저 멀리 나즈막하게 이어진 금북정맥과 성왕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앞으로 음암면의 비산비야를 이루는 드넓은 평야와 마을들 사이에도 엷은 박무가 드리워져 또 다른 환상의 풍경을 선물하고 있어 한동안 그 풍경에 빠져 본다.

 

이제 눈을 북쪽으로 돌리니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옥양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끊어질듯 이어지는 석문지맥 산줄기들이 춤을 추며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옥양봉 좌측으로는 금북정맥과 얼마 전 걸었던 고산지맥의 산군들도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강렬한 존재감을 알리고 있는데 이렇게 멀리 서 있는 산군들을 바라보며 그 이름을 찾아 보는 시간도 오랫만이라 감회가 새롭다.


이제 오늘 이 산객이 산행을 시작한 동쪽을 살펴보니 오늘 아침 떠 오른 햇살이 오랫만에 사라진 미세먼지로 깨끗한 파란 하늘에 떠 있고 그 아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스런 조망이 드넓게 펼쳐져 있어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가장 먼저 이 산객이 올라 온 상가리 마을이 길게 뻗어 있고 그 우측 끝자락에 커다란 옥계저수지가 군계일학으로 반짝이고 있다.

그 뒤로 안개속에 묻혀있는 예산의 마을들이 숨죽이고 저 멀리 하늘금에 맞닿아 있는 산군들을 살펴보니 천안의 광덕산과 그 우측 아래로 이어지는 금북정맥 마루금이 안개속에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이어지고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기고 있다.


한동안 정신없이 사방팔방 열려있는 방향으로 많은 사진을 남기고 비디오 필름까지 담은 후 주위를 살펴보니 일락사 방향에서 등산객 한분이 빠르게 올라 와 사진 한장 부탁해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잠시 오늘 환상적인 조망과 풍경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갈 길이 멀어 먼저 인사 드린 후 그 석문봉 정상을 출발한다.

석문봉은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과 덕산면, 서산시 운산면과 해미면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653미터이고 가야산 (678미터)을 중심으로 한 덕산도립공원에 속한 바위산으로 가야산의 주봉인 가야봉으로부터 북쪽으로 1.7 Km 떨어져 있고 일락산(521미터)과 이웃하여 있다.

석문봉을 정점으로 옥양봉과 일락산 사이로 길게 형성된 용현계곡에는 삼림욕장이 조성되어 있고 역내(역천)는 석문봉에서 발원하여 서산시를 지나 당진시의 고대면과 정미면 부근에서 퇴적평야를 이룬다.

전망이 매우 좋아 정상에서는 남쪽으로 가야봉과 옥양봉, 북서쪽으로 일락산이 내려다보이고 서쪽 해미쪽으로는 서해바다가 펼쳐지며 동쪽 아래 넓게 형성된 골짜기에는 절터인 예산 가야사지(충남기념물 150)가 있다.

이제 네번째 석문봉에 올랐으니 앞으로는 오를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는 아쉬운 마음으로 오랫동안 머물던 석문봉을 출발한다.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이정표와 가야산노선안내도가 서 있는 남연군묘 하산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더 남긴 후 그곳을 통과해 전진하니 벤취쉼터가 보이고 곧이어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정표를 보니 옥양봉까지 1.25 Km 거리이고 우측 오늘 아침 이 산객이 올라 온 방향으로는 주차장까지 3.12 Km 거리라는 표시가 반가운 이정표이다.

오늘 이 산객이 올라 온 방향을 다시 한번 더 살펴보고 곧바로 옥양봉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이어가 본다.


주차장 갈림 삼거리를 지나니 멋진 소나무 한그루와 태양광 발전기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다시 등로에는 벤취쉼터와 함께 소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이정표가 서 있고 이곳이 제도권임을 알리는 듯 너무 자주 이정표가 서 있다.

다시 안전철봉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안부가 나타나고 가야산노선안내도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주차장 하산 등로가 있는 이정표와 가야산노선안내도가 다시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한다.


그곳을 지나 완만히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에 가지가 두가닥 있는 557.7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곳을 지나 다시 진행을 이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주차장 가는 갈림삼거리가 다시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오르니 얼마가지 않아 또 다른 이정표 하나가 너무 자주 박혀 있다.

그 이정표를 지나 오르니 최근에 새로 생긴듯한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걸어 오르니 계단 좌측 뒤로 나즈막한 산줄기 하나 넘어 저 멀리 좌측으로 도비산과 우측의 서산시 넘어 금강산과 팔봉산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풍경이 가슴속에 남겨지는 시간이다.


그렇게 서산쪽 조망과 풍경에 취해 많은 사진을 담은 후 다시 이어지는 계단을 타고 올라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걸어 진행을 시작한 석문봉이 빤히 보이기 시작하고 그 좌측으로 정상이 인공구조물을 이고 있는 가야산 정상부도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좌측 뒤로는 원효봉과 우측 뒤로 금북정맥 마루금이 보일듯 말듯 이어지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상가저수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아래로 이어진 상가리 끝자락에 옥계저수지도 보인다.

상가리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가야봉과 성문봉 등의 산지로 둘러싸인 산촌마을로서 마을 앞으로 덕산천이 흘러 들고 마을에 상가리저수지가 축조되어 있으며 가야골 위쪽이 되므로 상가야 혹은 상가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가야골, 사기점골, 큰말, 오얏구시마을 등이 있는데 가야골마을은 상가리와 옥게리에 걸쳐 있는 마을로 가야산 밑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사기점골마을은 약 70년 전까지 사기점이 있었다 하여 남아있는 이름이다.

큰말 마을은 말 그대로 큰 규모의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오얏구시마을은 가야골 서쪽에 자리한 마을이며 상가리의 남연군의묘는 시도기념물 제80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우측 저 멀리에는 홍성의 응봉산과 수암산 줄기가 우뚝 솟아 있어 나즈막한 높이와는 관계없이 이곳의 주산임을 뽐내고 있다.


등로 우측 앞으로는 아산과 천안의 산들과 그 사이로 금북정맥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아름다운 자태에 빠져 다시 진행하던 발걸음 멈춰 한동안 살펴 본다.

또 다시 나타나는 계단을 타고 그 계단 끝까지 오르니 바위 위에 시멘트로 고정시킨 커다란 옥양봉 정상석이 서 있다.

옥양봉(621)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한 옥양봉과 석문봉은 가야산의 북쪽에 위치한 해발 600여미터의 나지막한 산으로 가야산 정상에는 중계탑이 가득하게 들어서 있어 산행의 맛을 반감시키지만 북쪽으로 이어지는 석문봉과 옥양봉은 그러한 반감을 상쇄시킬 만큼 훌륭한 바위봉들이다.

석문봉은 정상부가 바위 지대로 되어있고 전망이 훌륭하며 옥양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부드럽고 완만하여 금방이라도 달려갈 듯 하다.

옥양봉도 정상부가 바위 지대로 되어있고 아기자기한 맛이 좋으며 특히나 정상부 바위지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오늘 산행 들머리인 상가리 전망이 시원하다.

예전에 몇 번 올랐을 땐 옥양봉 정상에 정상석 대신 표지목의 표지판 하나가 이곳이 옥양봉임을 알려줬는데 오늘 올라보니 근래에 세웠는지 근사하고 큰 정상석 하나가 반겨준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정상석인데 설치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보인다.


옥양봉 옆에는 분재형 소나무 한그루가 잘 자라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많은 가지들이 잘린 상태로 서 있어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그래도 그 소나무 뒷쪽으로 가야산 전경이 보이고 그 가야산 줄기를 배경으로 다시 사진 한장 남기고 그 옥양봉 정상을 통과한다.

다시 등로 우측으로 보이는 풍경을 살펴보며 천천히 걸어가니 등로 옆으로 벤취쉼터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다시 주차장 하산 갈림삼거리 앞에 이정표가 서 있다.

다시 걸어 오르니 소나무가 서 있는 593.4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다시 출발하니 등로 우측으로 석문지맥 마루금이 보이지만 지도상 옥양봉이 바로 위에 있어 잠시 올라가 보니 작은 돌 하나가 보이는 평이한 작은 공터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우측으로 잠시 더 걸어가니 바위 전망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살펴보니 오늘 걸어 온 석문봉 방향의 산줄기와 가야산 그리고 그 좌측으로 원효봉이 죽 늘어선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다시 상가저수지와 상가리 그리고 옥계저수지 지나 용봉산과 수암봉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서원산이 바로 지척으로 서 있다.

하지만 저 서원산은 원래 석문지맥 상 우측으로 조금 비켜 서 있는 산이지만 그리 멀지 않기에 잠시 들려 인사 나누고 진행하기로 한다.

그 뒤 저 멀리에는 아산과 천안의 산들과 이어지는 금북정맥 산줄기가 그 옛날 고왔던 추억을 되살리며 이 산객의 가슴속에 남아 있던 추억속에 새로운 추억을 쌓는 시간이기도 하다.

 

바위전망대에서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본 후 다시 뒤돌아 나와 약간 내려가니 이제 진행 방향 좌측으로 석문지맥 등로가 열려있고 그곳을 통해 산줄기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참나무가 줄지어 자라고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하니 갑자기 눈 앞에 거대한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그 등로 좌측으로는 건계곡이 보인다.

잠시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폐가 한채가 보이고 그 앞에는 작업을 하다 중단한 포크레인 한대가 눈에 들어 오고 사진 한장 남기고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옆으로는 내포문화숲길 원효깨달음길이란 안내판이 서 있다.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 돌탑 하나와 사각정자가 나타나고 그쪽 방향으로 석문지맥 등로가 열려 있다.

그 등로 옆에는 작은 이정판 하나가 서 있는데 옆에는 백제의미소길이란 글도 보여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보인다.

마애삼존불에서 이름을 딴 백제의미소길은 주변에 예산과 서산의 내포신도시, 덕산온천, 해미읍성 등 다양한 문화유적이 모여 있어 명품 숲길로 손색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상가리에서 대문동 쉼터를 거쳐 가야산 수목원, 으름재 쉼터, 백제의 미소공원, 퉁퉁고개 쉼터, 소나무 쉼터와 보원사지를 거쳐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마애삼존불로 이어지는 6.5 Km를 말하는데 사업초기에는 도로로 개통하려는 계획으로 많은 반발과 저항이 있었지만 민관이 협의하고 합의하여 지금의 산책로를 조성하게 되었다.

곳곳에는 또 불교 및 백제문화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으며 가야산은 조선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내륙 깊숙한 하천을 이용해 보부상 등의 상거래와 문화 전파가 왕성했다고 한 내포 지방의 중심지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길이 되었다.

요즈음 산행을 하다보면 각 지자체마다 많은 산책길과 등로를 만드는데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고 건강과 관련된 내용이다 보니 조금 더 고증이 필요하고 정확한 내용으로 조성하면 어떨까 생각도 해 본다.


    

능선으로 들어가니 멋진 잣나무 군락지가 짧게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오르니 이장된 묘지터가 보이는데 그곳에서 등 뒤를 보니 저 멀리 가야산과 그 좌우측의 원효봉 그리고 석문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인다.

그 이장된 묘지터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에는 지난 가을에 수북히 떨어진 활엽수 낙엽이 쌓여 한발자국 오르만 또 한발자국 미끄러지길 반복하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음악처럼 경쾌하게 들려오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서원산 가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잠시의 고민도 없이 우측 오르막 등로를 타고 서원산으로 향한다.


 

우측으로 걸어 오르니 무명봉이 나타나고 좌측으로 걸어 오르니 특이할 것 없은 평이한 등로를 타고 금새 서원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하지만 그 정상에는 달랑 이정표 하나와 그 이정표에 이곳이 정상임을 알리는 글자 하나 그리고 그 아래 마모되어 인식도 되지 않은 삼각점 하나가 박혀 있을 뿐이다.

서원산은 충청남도 예산군의 서북부 봉산면 남서쪽에 위치한 산이며 해발고도는 473미터이고 덕산면과 봉산면의 경계가 되는 산이다.

산 아래에 사현서원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서원산 아래 상가리에 보덕사가 위치하고 있는데 보덕사는 조선 말기 왕실의 운명이 전설처럼 서려 있는 역사적인 사찰이다.

가야산 동쪽 능선에 해당되는 옥양봉 남쪽 산록에는 가야사라는 고찰이 있었는데 그 절터가 왕손을 낳게 한다는 풍수설 때문에 흥선대원군은 종실의 보존을 위해 가야사를 불태우게 되고 이곳에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의 무덤을 썼는데 마침내 그 소원이 이루어져 둘째 아들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에 대원군은 고종의 즉위에 대해 은덕을 갚는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보덕사라 하였다고 하고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남연군묘가 있는데 이곳이 그 유명한 독일의 상인 오페르트가 도굴하려다가 실패한 곳이며 이 때문에 대원군은 쇄국정책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지형도(해미)에는 서원산(西院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카메라가 있었으면 셀카로 추억이나 한장 남겼을 것을 모바일 폰으로 찍다 보니 추억 한장 남기기도 어려운 현실이 아쉬울 뿐이다.


서원산 정상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올랐던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봉산면의 봉림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이 산객이 살던 시골 마을을 닮아 있어 잠시 상념에 잠긴 후 다시 진행을 이어가니 방금 전 헤어졌던 서원산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이제 좌측으로 옥양봉 가는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한다.

봉림리는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있는 리로서 봉명산 밑의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며 마을 남쪽에 봉림 저수지가 축조되어 있고 효교천이 흐른다.

서림리, 봉동, 제동 등을 병합하여 봉동과 서림의 이름을 따서 봉림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봉명골, 서림골, 승지, 회암골마을 등이 있는데 봉명골마을은 봉림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봉명산 밑이 된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서림골마을은 숲이 울창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서 승지마을은 성지봉 밑이 된다 하여 불리우게 된 이름이다.

회암골마을은 회암서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봉림리의 이의배신도비는 문화재자료 제186호로 지정되어 있다.

잠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서원저수지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의 무명안부에 도착을 한다.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주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이제 진행 방향으로 부엉이바위와 시루봉이라는 단어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이정표를 지나 진행한다.

다시 솔갈비 깔린 등로를 따르니 부엉이바위가 100미터 거리라는 이정표가 다시 보이고 참나무 군라지를 지나 진행하니 금새 서원팔경중 육경인 부엉이바위에 도착을 한다.

옛날에 회암골 부엉이바위에는 길조중의 길조라 생각된 수리부엉이가 살아 붙여진 이름이란 뜻이었다.

다시 그 부엉이바위에서 조망을 살펴보니 우측 뒤로 지나온 서원산과 가야산이 보이고 우측 앞으로는 아산과 천안의 산들이 너무 아름다운 풍경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부벙이바위에서 또 다시 멋진 조망과 풍경을 즐기고 돌아서 나와 바위 등로를 따르니 잠시 후 활엽수 낙엽이 푹신한 등로로 변하고 좁은 공터 위에 부엉이바위까지 100미터 거리라는 이정표를 만나 좌측으 로 크게 꺽어 산행을 이어가 본다.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바닥에 썩어가는 간벌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351.8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며 잠시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그 351.8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안부 지나 등로 좌측으로 벌목지대가 펼쳐져 있고 그 벌목지대 경계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올라 본다.

잠시 걸어 오르니 등로는 이제 키 작은 잡목과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곧이어 또 다시 벌목지대와 만나 그 벌목지대를 타고 진행한다.

걸어가며 등로 좌측을 보니 원평리 마을 뒤로 수정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렇게 조망을 즐기며 걸어가니 벌목봉 정상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구경하며 잠시 수정봉을 사진에 담아 본다.

수정봉(452.9봉) 정상에는 표지석 하나가 세워져 있는데 수정봉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고 해발 452.9미터란 글자와 그 아래 서산시에서 세웠다는 표시만 보인다.


  

잠시 그 벌목지대 능선을 타고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능선의 뚜렷한 등로로 이어지고 그렇게 잠시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우측의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이어진다.

이리저리 잡목들을 헤치고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썩어가는 고사목을 피해 어렵게 걸어 오르니 금새 268.1봉에 도착을 하는데 독도는 우리땅 이경일님과 남양주 금곡님 띠지가 반겨주고 그 띠지에는 이곳이 268.1봉임을 알려주고 있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곧이어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좌측 임도를 타고 진행한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다시 벌목지 정상에 도착을 하고 살펴보니 그곳에는 삼각점 하나가 박혀 있는데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으로 바로 지도상 표기된 237.3봉의 수창봉 정상이지만 그 어디에서도 자료는 찾을 수 없었던 정상이다.

수창봉 정상 북쪽으로는 원평리 마을이 아름답고 조용하게 펼쳐져 있고 잠시 후 실터재에서 만나는 609번과 618번 포장도로도 내려다 보인다.

원평리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이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조선시대 때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는 원집이 있었으므로 원벌 또는 원평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대문동, 새절, 어름재가 있는데 대문동은 가산문다래미 밑이 된다하여 생긴 이름이고 새절은 새로 생긴 절이 있다하여 생긴 이름이며 어름재는 어름재 밑에 있는 마을이다.

어름재는 산이 험해서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넘어 다닌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진행방향을 살펴보지만 우측으로 이어지는 석문지맥 마루금은 산봉우리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수창봉에서 주위 조망을 즐기고 벌목지대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조심스럽게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니 금새 좌측으로 민가와 사각정자가 보이고 눈 앞으로는 60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실티재에 도착을 한다.

실티재(쉴티재)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를 연결하는 고개로서 예로부터 예산과 서산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였다.

실티재는 한자 지명인 실치가 변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1:50000 지형도의 당진 도폭(국토지리정보원, 2017)에는 쉴티재로 표기되어 있다.

실티재는 높이 약 150미터의 구릉지이며 실티재 북쪽에는 높이 237.3미터의 구릉지가 있고 남쪽에는 높이 387.9미터의 구릉지가 있으며 북서쪽 운산면 원평리에는 수정봉(453.4미터)이 있다.

실티재 남서쪽 인근 지방도609호선 연변에는 실티마을과 중상골마을이 있으며 지방도609호선이 실티재의 우측에서 봉산면 봉림리와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를 연결하면서 북서와 남동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걸어 고갯마루를 지나니 예산군 봉산면이라는 도로표지판과 함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실티재 콘크리트 옹벽을 올라 능선으로 오르니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그곳을 피해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오르니 잡목들로 인해 등로가 오르막으로 오르지 못하고 좌측 사면 등로로 오르는 느낌이다.

잠시 후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금곡님의 띠지가 보이고 등로는 우측으로 이어지고 있어 그 등로를 따르니 뚜렷한 비포장 임도와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본다.

왜 이 산중에 이런 넓고 뚜렷한 비포장 임도가 개설이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은 금새 해소되었다.


잠시 후 SUV 차량 한대를 만나 조금은 이상한 기분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농부 한분이 일을 하러 올라와 있어 인사를 나누고 앞을 보니 드넓은 과수원이 보이는데 그 과수원 주위로는 파란 철망이 쳐져 있어 그 농부에게 물어 보니 이 과수언은 대추나무란다.

가끔 만났다면서 등산을 하러 왔느냐고 물어 그렇다고 하니 친절하게 등로를 알려주며 이제 내려간다면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SUV 차량을 이용해 그곳 과수원을 출발한다.


대추 과수원을 좌측에 두고 그 주위에 쳐진 그물망을 따라 진행하니 능선으로 올라 좌측으로 돌아가 그물망과 헤어지고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등로는 뚜렷한데 군데군데 잡목들이 자라면서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그래도 정상적인 등로를 찾아 솔갈비가 푹신하게 깔려 있는 마루금을 찾아 걸어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22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에는 이제 솔갈비대신 활엽수 낙엽이 발목까지 덮고 그 등로를 타고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장단을 맞춰 걸어가니 오랫만에 만나는 산새들의 합창이란 띠지를 만나 반가움을 표하고 약간의 잡목지대를 통과해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아주 멋지게 열려 있다.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가지만 이곳이 지맥 마루금임을 알려주려는듯 정상부로 오르니 잡목들이 우거져 있고 띠지들이 이곳저곳 흩어져 걸려있는 241.4봉에 도착을 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겨 보는 시간이다.


잡목봉을 지나 좌측으로 급격하게 휘어지며 내려가니 3번 송전탑이 서 있고 잠시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묘지지대가 보인다.

그 묘지지대를 우측에 두고 걸어 내려가니 드넓은 마늘밭에서 부부가 비료를 주며 비닐하우스를 열어주며 밭 경작지 관리를 하고 있어 방해되지 않토록 조심하며 밭 경작지 우측 가장자리로 쳐진 그물망을 타고 우측 위 능선 방향으로 걸어 올라 본다.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등로는 다시 넓은 수렛길 같은 뚜렷한 등로와 만나 편안하게 걸어 본다.

잠시 후 정상 등로는 보이는 묘지지대 좌측 무명봉으로 올랐다 내려와야 하지만 지도를 보니 특별한 봉우리도 아니기에 묘지 앞으로 나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그 무명봉을 우회하고 그 묘지지대를 지나니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올라와 있어 그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 올라 본다.

잠시 후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좌측 잡목 능선으로 올라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으니 등로는 다시 방금 전 해어졌던 비포장 임도와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오른다.


잠시 더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그 비포장 임도와 헤어져 좌측 능선으로 내려가게 되는데 그 능선 등로는 잡목이 우거져 진행에 약간의 방해를 받지만 길지 않아 곧 또 다른 비포장 임도를 만나 편안하게 진행한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진행하니 스테인레스 물통이 나타나고 그 물통을 우측으로 돌아 통과하니 등로는 철조망이 쳐져 있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잡목을 헤치며 어렵게 전진하니 바로 민가 앞 마당으로 내려선다.

마침 주인장이 없어 편안하게 그 민가 옆 마당을 지나 내려가며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와우리 마을이 많은 비닐하우스와 함께 조용히 펼쳐져 있다.

금치리에서 와우리로 진행 방향이 바뀌는 그 경계를 타고 진행이 되고 있다.


민가를 지나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인 단군전길이 나타나고 그 도로를 타고 짧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우측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있다.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들어가니 많은 묘지들이 보이는 묘지지대를 만나고 수레길 같은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오르니 잡목들이 우거진 216.8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은 좋은 등로 우측으로 몇미터 더 오른 곳에 있어 사진 한장 남기기 너무나 힘들게 잠시 다녀온다.

이곳에서 등로 역시 좌측으로 크게 휘어 진행이 되기에 정상 등로를 찾아 힘들게 잡목들을 헤쳐 나간 시간이다.


잡목봉에서 어렵게 이어지는 좌측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약간의 잡목들 저항을 뿌리치고 진행하니 마침 얼마 전 지나갔는지 홀대모의 기차산꾼님의 신상품처럼 보이는 띠지가 보여 인사 드리고 출발한다.

잠시 후 무명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도로명은 여전히 단군전길이다.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마늘밭이 보이는데 보니 파란 잎이 벌써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잠시 더 그 단군전길을 타고 걸어가니 저 멀리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우측에서 또 다른 시멘트 포장도로가 합류하는 합류지점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포장도로인 단군전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나무들을 키우고 있는 농원쪽으로 걸어 오르며 진행이 되고 있다.

좌측에 묘목과 우측에 묘지지대를 두고 걸어 오르니 멋진 소나무 두그루를 통고하고 다시 이어지는 잡목지대를 치고 오르니 등로는 뚜렷하게 나 있다.

잠ㅅ 후 69번 송전탑을 통과하고 뚜렷한 넓은 등로를 따르니 우측 아래에 묘지들이 보이고 그 묘지 반대쪽인 좌측으로 진행하니 뚜렷한 등로 정상부에 지독한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 190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잡목들이 우거진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어렵게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약간의 벗나무들이 보이면서 등로는 다시 뚜렷해지고 그렇게 진행하니 비포장 임도가 보이는데 갑자기 아주머니 세분이 산책을 나누듯 걸어 오며 이상한 눈으로 이 산객을 바라본다.

잠시 후 그 아주머니 뒤를 타고 우측으로 가니 1차선 금치로인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옆으로는 베다니기도원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그 좌측으로는 민가들이 보이는데 강아지들이 이방인의 출현을 격하게 반겨주고 있다.

  

좌측에 민가를 두고 우측 대나무 밭으로 오르니 지독한 잡목들로 인해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좌측 민가 뒷쪽으로 빠져 나와 말라죽어 있는 잡풀지대를 통해 오르니 송전탑이 줄줄이 나타나고 그 송전탑 아래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어렵게 오르는 시간이다.

등로 좌측 개집에는 몇마리의 강아지들이 있고 이곳 강아지들 역시 이방인의 출현을 격하게 반기고 있다.

그렇게 잠시 걸어 오르니 등로는 좌측에 민가를 두고 짧은 절개지 위로 나 있는데 그 절개지 위 능선에는 잡목들이 자라며 그 나뭇가지로 인해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좌측 민가 뒷쪽으로 내려가 진행을 해 보는데 이곳 역시 주인장이 없는지 조용해 무탈하게 진행을 한다.

그 민가 좌측 아래에는 드넓은 과수원이 펼쳐져 있는데 무슨 과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민가와 과수원 우측 가장자리에는 내려갈 수 있는 비포장 임도가 나 있고 그곳을 지나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가시나무들이 자라면서 진행이 너무나 힘들다.

그 가시나무들을 헤치며 힘들게 진행하니 우거진 잡목 지대 앞으로 묘지가 보이고 그 묘지 위쪽으로는 얼마 전 불이 났었는지 커다란 나무들이 모두 죽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그 불난 지역을 통해 어렵게 이어가고 있는 산줄기 이어가는 시간이다.


이상하게도 커다란 소나무들은 모두 그을려 말라죽었는데 그 아래 자라고 있는 가시나무들은 무성한 모습으로 이 산객의 발목을 잡고 늘어져 아마도 작년 봄 이전에 불이 났던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해 본다.

잠시 후 묘지 한기를 지나 이어지는 불난 지역을 타고 가파르게 오르니 드디어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그 주능선 우측으로 262.3봉이 보이고 그곳으로 가 보니 선답자의 띠지 두장만 달랑 정상을 지키고 있다.


그곳 정상을 확인한 후 다시 조금 내려 와 평편한 장소에서 준비한 빵과 식수로 허기를 달래고 불어오는 봄 바람에 흐르는 땀방울을 말려 본다.

땀이 마르니 약간의 한기를 느끼고 다시 배낭 메고 출발하니 나즈막한 안부 지나 무명봉으로 오른다.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커다란 느티나무 보호수가 나타나고 그 느티나무를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를 만나 잠시 후 와우현1길이라는 1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와우리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이 산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누운고개 밑이 되므로 누운개 또는 와우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구시울, 모촌, 삽절이 있는데 구시울은 마을 지형이 구시(구유)처럼 생겼다하여 생긴 이름이고 모촌은 마을에 띠가 많다하여 생긴 이름이며 삽절은 전에 삽사라는 절이 있었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그 와우현1길 도로를 건너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시멘트 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우측으로 녹슨 철조망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조림지가 보인다.

그 가운데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산줄기 저 멀리 가야산과 석문봉 그리고 서원산이 올려다 보인다.

오늘은 산행하면서 내내 저 가야산과 서원산을 만나게 되는데 진행해오는 산줄기가 높지 않다보니 600미터급 산도 높아 산행 내내 보이는 것이다.


지나 온 등로를 조망한 후 계속 이어지는 조림지를 타고 오르니 조림지 한가운데에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분재형 소나무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 나타난 잡목지대를 뚫고 내려가니 금새 또 다른 비포장 임도를 만나 이제는 그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 진행한다.

임도 우측으로 멋진 소나무들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묘지들이 보이는 곳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걸어가니 벌써 봄이 온 듯 온 몸에선 굵은 땀방울이 비처럼 솟아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빠르게 걸어가니 임도 좌측으로 농장같은 케이지들이 보이고 처음에는 일반 축사라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접근을 하니 이곳은 개를 사육하고 있는 개사육장으로 그 개사육장 아래에는 한우를 키우는 한우 농장도 보인다.

그 개사육장을 지나 걸어가는데 각 케이지마다 개들이 보이는데 모두 이 산객을 보고 짖지를 않아 조금은 낯설게 다가온다.

그 개사육장 끝자락에 도착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오봉산 가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난다.

잠시 고민을 했지만 고민도 잠시 곧바로 우측 등로를 타고 오봉산으로 향한다.


우측 등로를 따르니 생각보다 넓은 수레길 같은 마루금이 열려있고 그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10번과 11번이 하나의 송전탑에 붙어 있는 곳을 지나 계속 걸어 간다.

활엽수 낙엽이 쌓여 있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나즈막한 둔덕을 오르니 벤취쉼터들이 보이는 곳 나뭇가지에 서래야 박건석님이 이곳을 225미터의 절골산이라 명하였는데 자료를 찾아 봐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안타까운 시간이다.

그저 225미터봉이라 했으면 더 좋았겠다 생각되는 그 이정판을 사진에 담고 계속 오봉산을 향해 빠른 발걸음을 옮겨 본다.


넓고 뚜렷한 등로를 따라 진행을 이어가니 잡목속에 숨어 있는 225.4미터의 오봉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삼각점을 살펴보니 당진314번인 3등 삼각점이다.

오봉산(225.3)은 충청남도 당진군의 중남부 면천면 율사리와 대치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35미터로서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어 불리게 된 지명이라 전한다.

1872년지방지도(면천)에서 오봉산이 남산 왼쪽에 선명한 다섯 봉우리로 묘사되어 있고 고종 때 외무대신 김윤식이 지은 운양집에는 오봉산(五鳳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는 여산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하며 조선지형도(해미)에는 면천읍치 남쪽에 오봉산이 확인된다.

사진을 담고 그 뒤를 보니 하나의 송전탑에 번호가 두개인 11번과 12번인 송전탑이 보인다.

잠시 주위를 살펴보지만 삼각점 이외에는 보이는 것과 특이한 것이 없어 사진만 조금 더 남기고 곧바로 되돌아 나와 갈림 삼거리인 개사육장으로 복귀한다.


오봉산 갈림삼거리인 개사육장으로 내려오니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번에는 개들이 난리를 치면서 울부짓는데 무슨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요란한 개들의 인사를 받으며 넓게 보이는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또 다른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현오권태화님의 띠지가 나풀거리고 있어 길 안내를 하고 있다.

우측으로 돌아 진행을 하니 묘지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썩어가는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191.8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긴다.


그 191.8봉을 지나서도 등로는 넓게 이어지고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등로를 헤치고 내려가니 묘지들이 보이는데 그 묘지에서 앞으로 보니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석문지맥의 마루금이 바로 눈앞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뚜렷히 나타난다.

그 산줄기 우측 끝자락을 보니 대치리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찾아 본다.

대치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있는 리로서 완만한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남쪽을 일락산의 산줄기가 내려와 감싸고 있으며 동쪽으로 하천이 유입해 들어오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강터, 곰실, 밧여름 마을 등이 있는데 강터 마을은 옛날 이곳에 강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곰실 마을은 옛날에 곰이 살았다 해서 곰실 마을이라 불린다.

밧여름 마을은 여름 바깥쪽에 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여름 마을은 한티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그렇게 진행 방향의 산줄기를 확인하고 그 묘지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등로는 여전히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는 뚜렷한 마루금이 이어지고 있어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활엽수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등로에는 다시 소나무 등로가 열려 있다.

다시 평지같은 등로를 따르니 무명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다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나뭇가지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진행 방향을 확인은 가능 할 정도이다.

대나무 지대를 지나 약간의 잡목을 헤치고 나가니 다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가니 좌측으로는 다시 작은 과수원이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등로에 푹신하게 깔린 활엽수 낙엽을 밟으며 진행하니 갑자기 벌목지대가 보이고 벌목된 나무더미를 어렵게 넘어가니 또 다른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그 임도 좌측으로는 엄청나게 넓은 인삼포가 펼쳐져 있어 재배 지역의 변화를 느끼는 시간이다.

다시 만난 비포장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금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한티길인 장승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왜 장승고개라 했는지는 모르겠다.

팔중리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이 산 밑에 자리잡고 있으며 앞으로는 평석들이 있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러 리가 병합되었는데 그 중 팔곡리와 중산리의 이름을 따서 팔중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당고랑, 중미가 있는데 당고랑은 마을에 신당이 있다하여 생긴 이름이 중미는 팔중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마을이 산 중허리에 있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이곳은 팔중리와 대치리를 이어주는 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로서 양쪽 리의 모든 마을을 확인해 봐도 장승고개와 관련된 지명을 찾을 수 없어 아쉽다.


장승고개라고 불리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한티길을 건너 들머리를 찾아 보지만 잡목들로 인해 찾기가 어려워 좌측을 보니 최근에 조성된 듯한 묘지가 보이고 그곳으로 오르니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나 있어 금새 정상 마루금과 접속된다.

묘지를 만들며 생긴 벌목된 나무더미를 넘어 오르니 또 다시 묘지가 보이고 그 묘지를 오르니 오늘 만나는 잡목 중 최고의 잡목지대를 지나는데 생각보다 가시나무는 많지 않아 통과할만 하다.

계속되는 잡목들을 헤치며 조심해 오르니 작은 공터에 돌 하나가 놓여있는 15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진행방향인 좌측을 보니 여전히 잡목들이 기다리며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잡목들을 헤치며 약간의 비명소리도 내면서 그렇게 오르니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있는 167 무명봉에 다시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잡목 사이로 보이는 올라야 할 마루금을 살펴보니 웅산 갈림삼거리와 좌우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밤나무 같은 활엽수가 빼곡히 자라고 있는 중앙으로 좁은 등로가 확실하게 나 있는 편안한 길이 보이고 그곳을 통해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다시 잡목들과 잡풀들이 무성했던 무명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기 시작한다.

무덤을 지나 계속 능선같은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금새 좌측으로 웅산가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잠시 고민을 해 보는 시간이다.

지금 시간 오후 3시 30여분이고 웅산을 다녀오면 최소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이지만 오늘 일찍 내려간다 해도 탁히 할 일이 없으니 일단 웅산을 다녀 오기로 한다.


처음 계획했던 615번 포장도로까지 진행하는 것이 어렵다면 중간 접근하기 좋은 곳에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고 내일 하루 더 걸으면 이른 시간에 마무리가 될 것 같아 운동을 조금 더 한다는 생각으로 출발한다.

좌측으로 좋은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가니 전주이공 납골묘지와 사각정자가 보이고 곧이어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곳 지나자마자 등로 좌측으로 묘지지대와 고산리 및 팔중리 넘어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산행을 시작한 가야산 석문봉부터 좌측으로 돌아 이곳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아름다운 추억 하나 더 남겨 보는 시간이다.

 

다시 발걸음 옮겨 빠르게 전진하니 등로 옆으로 여전히 내포문화숲길과 원효깨달음길이라는 안내판이 보이고 그렇게 한구비 올라 무명봉에 오르니 진행 방향으로 길게 줄지어 늘어선 송전탑들이 보이고 산줄기의 흐름도 한눈에 들어오는데 웅산까지 가야 할 등로는 아직도 길게만 느껴지고 있어 잠시 이곳에서 포기하고 되돌아갈까 하는 나약한 마음도 잠시 가졌던 곳이다.

하지만 그 산줄기의 흐름까지 봤으니 그냥 되돌아 갈 수는 없어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웅산으로 힘차게 전진해 본다.


뚜렷한 오솔길 같다가 다시 넓어지는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배낭을 숨기고 빈몸으로 진행하기에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넓은 수레길 같은 등로를 우측으로 보내고 나즈막한 둔덕을 넘어 좌측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위에는 남양주금곡님의 띠지가 길안내를 하고 있어 어렵지 않게 정상 등로를 찾을 수 있었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조금은 가파르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묘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또 다시 환상의 조망을 즐기고 오르니 금새 당진313이라는 삼각점과 이정표 그리고 서래야 박건석님이 종이코팅지에 이곳이 웅산임을 알리는 정상판이 붙어 있는 254.9봉의 웅상 정상에 도착을 한다.

웅산(254.9)충청남도 당진군의 중앙 당진읍 구룡리와 면천면 사기소리 및 서산시 운산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256미터인데 영웅산 또는 수미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수미를 한자화 하는 과정에서 수자를 수컷 웅으로 미를 산을 의미하는 뫼자로 보아 웅산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1872년지방지도(면천)에도 웅산이 묘사되어 있으며 웅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수미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서 상웅리와 중웅리 및 하웅리를 통합하면서 삼웅리로 바꾸어 불러지고 있다.

추억 한장 남기고 이정표를 보니 진행 방향인 북쪽으로 150미터 거리에 구룡산정상이라는 글씨가 보여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잠시 그곳 구룡산 정상을 다녀오기로 한다.


웅산을 지나 구룡산 가는 등로도 역시 넓은 수레길 같은 등로이기에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금새 소나무들이 보이는 구룡산 정상인데 그곳에는 아무 표식도 없이 이정표 하나만 소나무 사이에 세워져 있어 살펴보니 구룡리와 평안마을 하산 등로와 방향만 표기가 되어 있다.

구룡리는 이제 당진시 구룡동으로 변경된 듯 보이고 이곳 웅산이나 구룡산 역시 뒷골산으로 변경된 듯 보이는데 이곳 지명이 바로 구룡동으로서 구룡산은 충청남도 당진시 구룡동에 있는 뒷산을 말하는데 뒷골산이라고도 불리는 듯 보이는 산으로 구룡동은 대부분의 지대가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 남쪽에는 비교적 고도가 낮은 산지가 분포해 있고 북동쪽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구룡, 뒷골, 사근절 마을 등이 있는데 구룡 마을은 지형이 구렁이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고 뒷골 마을은 구룡 뒤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사근절 마을은 전에 삭은 절이 있었다는 뜻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시간과 거리를 확인해 보니 웅산갈림삼거리에서 약 30여분이 소요되었고 거리로는 약 1.9 Km 정도의 거리이기에 다시 웅산으로 되돌아 나와 석문지맥 마루금으로 복귀를 서두른다.


웅산으로 되돌아 올라 와 다시 사진 한장 남기고 빠르게 내려가다 방금 전 웅산 오름길에 잠시 들려 멋진 조망을 즐겼던 묘지지대로 들어가니 역시나 지나온 석문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오는 환상의 조망처이기에 바쁜 산행중에도 잠시 발걸음 멈추고 황홀한 조망과 풍경을 감상하며 많은 사진으로 남겨 보는 시간이다.

가야산 주봉과 좌우측으로 원효봉과 석문봉 그리고 옥양봉과 서원산 지나 좌측으로 송전탑 능선을 따라 이곳 웅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으로 한눈에 들어 온다.


한참을 그 묘지 위 조망처에서 즐긴 후 다시 되돌아 빠르게 웅산갈림삼거리로 복귀를 하니 총거리 약 3.8 Km를 1시간 정도 걸려 웅산과 구룡산을 왕복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예정된 615번 포장도로까지 진행하려니 괜시리 마음만 바빠지는데 그 바쁜 마음을 진정시키며 진행하다 어두워지면 다음 구간 교통편이 너무 불편하지 않은 곳에서 마무리하자 생각하며 진행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여전히 뚜렷한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나즈막한 봉우리인 225봉에 도착을 하는데 박건석님이 이곳을 둥고리봉이란 종이 코팅지를 붙여 놔 지도를 살펴보니 삼웅리에 있는 산으로 명기가 된 지명이다.

삼웅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 동쪽에는 수예들이 펼쳐져 있으며 북쪽으로 하천이 유입해 들어오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삼웅, 각골, 밤골 마을 등이 있는데 삼웅 마을은 수미산 밑에 위치하고 있어 수미 또는 웅산이라고 불리다가 후에 삼웅이라 개칭되었 각골 마을은 중웅 옆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각골 마을이라 불리며 밤골 마을은 밤나무가 많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이다.


둥고리봉을 지나 평이하게 진행하니 다시 송전탑 하나에 번호가 20번과 21번의 두개를 가지고 있는 곳을 지나 소나무에 대한 설명판이 소나무에 걸려있어 잠시 읽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 아래 비닐하우스와 민가들이 보이는 대치리가 보인다.

대치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있는 리로서 완만한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남쪽을 일락산의 산줄기가 내려와 감싸고 있으며 동쪽으로 하천이 유입해 들어오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강터, 곰실, 밧여름 마을 등이 있는데 강터 마을은 옛날 이곳에 강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곰실 마을은 옛날에 곰이 살았다 해서 곰실 마을이라 불린다.

밧여름 마을은 여름 바깥쪽에 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여름 마을은 한티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곳 대치리는 방금 전 한티길을 통해 통과를 하 지역이지만 이곳 삼웅리를 걸으며 내려다 보는 재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다.


대치리 조망을 즐기며 진행하니 다시 19번과 20번의 두개의 번호가 붙어 있는 송전탑을 통과하고 등로 옆 나무에 안전로프가 설치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2017.1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상왕정이라는 6각정자와 옹기로 만든 작은 탑이 보인다.

6각정 좌측 아래 나뭇가지에는 준희님이 이곳을 211미터봉이라는 산패를 걸어 놓으셨다.

이곳 역시 북쪽의 삼웅리와 남쪽의 대치리가 지나는 경계지점으로 등로가 나 있다.


상왕정 6각정자가 있는 207.1봉을 내려가니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으로 잘 정비가 되어 있고 등로 주위로는 소나무들이 자주 보여 솔갈비가 폭신하게 깔려 있다.

잠시 내려가다 등로 우측을 보니 성하리의 절골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지금은 이름이 변경되어 시동저수지로 표기되고 있다.

이곳 역시 하산 내리막 등로에는 안전로프가 보이고 그렇게 그림같은 소나무 등로를 따라 힐링하듯 걸어가니 묘지 지나 갈림삼거리를 만나는데 그곳에는 승전목과 면천읍성 갈림 이정표가 서 있다.

승전목이라는 이름이 생소해 찾아보니 이곳은 일본군을 상대한 동학농민군이 승리를 쟁취한 곳으로 최근에 재조명되고 있는 곳이기에 자료를 인용해 본다.

승전목은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와 구룡동 일원에 걸쳐 있는 승전목은 이배산과 남쪽의 웅산 사이에 S자 모양으로 있는 좁은 협곡으로 이곳은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능선 사이에 가파른 계곡이 있어 병력이 쉽게 통하기 어려운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꼽혔다.
1894년 10월 지금의 서산시 운산면에 집결한 내포지역 동학농민군 1만 5000여 명은 면천을 공격하기에 앞서 이 승전목에 500여 명을 매복시켜 놓았으며 매복한 동학농민군들은 다음날 면천에서 출발한 일본군 소위 아키마쓰가 이끄는 90여 명의 일본군을 이곳에서 기습 공격해 큰 승리를 거뒀다.
동학농민운동사에서 이 승리가 주목 받는 이유는 동학농민군이 왜군을 상대로 거둔 첫 승리이자 마지막 승전지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곳에는 70번 지방도가 깔리고 이배산에 대규모 채취장이 들어섰으며, 웅산 남쪽도 대부분 평지로 개간돼 옛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면천면에 승전목 장승공원이 조성돼 있다.
아픈 역사속에서도 지역의 긍지를 심어줄 수 있는 이런 이야기들은 많이 발굴하여 잘 정리해 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또 다른 이정표에는 이곳을 동학길이라 했는데 승전목에 대한 자료를 찾은 후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은 또한 등로 우측으로 영탑사가 있어 그 영탑사를 찾으며 진행을 하는데 나무로 가려져 있어 영탑사는 직접 보지 못해 아쉬웠다.

영탑사는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하리 상왕산(207.1봉의 상왕정이 있는 봉우리가 아닐까 추측 됨)에 있는 절로서 대한북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이고 통일신라 말기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이 지금의 대방 앞에 오층석탑을 세우고 영탑사라 했다고 한다.

그 뒤 무학 자초가 지금의 법당 자리에 있던 천연 암석에 불상을 조각하고 절을 중건했으며 대방 앞 정원에 있던 오층석탑을 법당 뒤의 바위 위로 옮겼다.

1760(영조 36)에 편찬한 여지도서에 영탑사는 군의 서쪽 5리에 있다 라는 기록이 보임에 따라 조선 후기 절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며 1798년에는 연암당 지윤이 유리광전을 중수하였다가 1911년 신도들이 중수하고 1988년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유리광전과 산신각 및 요사채가 있는데 대적광전이라고도 부르는 대웅전 안에는 약사여래상(충남유형문화재 111)과 지장보살상 및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소형 범종이 있다.

이밖에 고려 중엽에 조성된 금동삼존불(보물 409)이 있었는데 지금은 도난 방지를 위해 면천면 지서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이 삼존불은 높이 51 Cm로 연꽃에서 출현한 삼존불이 나란히 연화대좌 위에 좌정하고 있는 특이한 양식을 지니고 있다.

유리광전 안에는 마애불과 1994년에 조성한 칠성탱화와 제석천룡도가 봉안되어 있는데 마애불은 높이가 1.8 미터이며 결가부좌한 형태로 얼굴이 몸체에 비해 크게 조성되어 비례감이 다소 떨어지는 고려 중엽 이후의 불상 양식을 보인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 말에 자초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던 중 갑자기 기암괴석이 나타나 그 상서로움을 신성하게 여겨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불상을 조성했다고 한다.

전각에 걸려 있는 편액은 8살짜리 어린아이의 글씨로 1835(헌종 1)에 면천면 대치리에 사는 이씨 부인이 마애불에 백일기도를 올린 후 낳은 아들이 썼다고 한다.

유리광전의 뒤쪽 암벽 위에는 칠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 216) 1기가 있으며 지대석을 따로 마련하지 않고 자연 암반 위에 조성하면서 탑신과 옥개석은 각각 별도의 석재를 썼는데 지눌이 조성했을 당시에는 오층탑이었으나 1911년 중수 때 2층을 더 올려 7층으로 했다고 한다.

계속 이어지는 동학길을 타고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의두암가는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판이 보이고 곧이어 삼웅1로라는 1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1차선 포장도로인 삼웅1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민가 한채가 보이고 그곳에 있는 강아지 몇마리가 격하게 반겨준다.

계속 그 민가를 지나 걸어가니 도로 좌측 앞 저 멀리 당진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진산인 다불산(좌)과 아미산(우)이 나란히 형제처럼 붙어 있는 모습이 조만간 저 두개의 산을 이어 진행하는 산행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미산(350.9)은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죽동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351미터로서 미인의 눈썹같이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이며 예전에는 소이산 또는 소미산으로도 불렀다.

당진시에서 제일 높은 산인데 남북으로 분수령을 이루며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다불산이 뻗어 있다.

예로부터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산으로 아미산 신인이 중병에 걸린 중국 승상의 아들을 구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남쪽 산자락에 면천읍성이 있고 주능선에는 면천읍성의 외성이었다는 몽산성터가 남아 있고 현재는 당진군(현 당진시)등산 1040미터를 개설하고 약수터, 쉼터, 취사장, 삼림욕장 시설을 비롯해 아미산에서 다불산을 연결하는 구름다리 등을 조성하였기 때문에 산행을 하기에 편리하1997년에는 정상에 2층으로 된 6각형 누각 아미정을 준공하였다.

산행은 아미산 입구인 아미원에서 등산로를 따라 1봉에서 3봉까지 일주하는 데 2시간 걸리며 정상에 바로 오르는 최단 코스는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정상의 아미정에서는 북쪽으로 서해, 북동쪽 멀리로 서해대교, 동쪽으로 낮은 산릉들이 보이고 남서쪽으로는 가야산과 석문봉 및 옥양봉과 일락산 등이 보이며 서쪽으로는 다불산 북서쪽으로는 서해안고속도가 보인다.

면천초등학교 운동장에는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의 딸 영낭이 집 뜰에 심었다는 수령 약 1100년 된 면천은행나무(충남기념물 82) 2그루가 있으며 은행나무 뒤편에는 안샘(내정 일명 꽃샘)이 있는데 영낭이 아미산에 핀 진달래꽃을 따서 안샘 물로 술을 빚어 아버지의 중병을 완쾌시켰다는 기록이 전해진다.서해안고속도로 개통으로 수도권에서 찾아가기가 쉬운데 당진에서 군도 1호선을 타고 면천면 방면으로 5 Km 진행하다 보면 왼쪽으로 이정표가 나오고 150미터 정도 더 가면 등산로 입구인 아미원이 나온다.

그렇게 등로 좌측 앞으로 다불산과 아미산을 조망하며 걸어가니 갑자기 차량들이 통행하는 소음들이 들리기 시작하고 이제 곧 서해안 고속도로가 가까워졌음을 인지한다.


잠시 후 삼웅육교를 통해 그 아래에 뚫려있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통과하며 목포 방향을 담아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당진과 면천으로 나갈 수 있는 IC표시가 보인다.

그곳 저 멀리에도 역시나 우측의 아미산과 좌측의 다불산이 형제처럼 바짝 붙어 있어 아름답게 다가오고 고속도로 좌측으로는 나도 빠질 수 없다며 이배산이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다불산(321.3)은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서북쪽 송학리와 사기소리 및 죽동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그 명칭유래를 보니 다불산(多佛山)은 예로부터 산에 부처()가 많아서() 다불산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내포 지역의 서해 쪽 관문인 서산과 당진 지역은 예부터 중국으로부터 불교의 백제 전파 경로에 있었기 때문에 불교와 관련된 유적과 지명이 많고 유물로는 국보 제84호인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을 비롯하여 보물 제100호인 당진 안국사지 석조 여래 삼존 입상 등의 불상이 많으며 특히 내포 지역은 미륵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는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충청도 읍지(1845) 면천군 산천 조에 다불산이 군 서쪽 10리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여지도서 면천 조에도 다불산은 관아의 서쪽 10리에 있고 소이산에서 뻗어 나온다 라고 수록되어 있다.

대동지지 면천 산수 조에도 다불산이 서북쪽 15리 지점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해동 지도와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도, 1872년 지방 지도 및 조선 지형도(면천)에 모두 다불산(多佛山)으로 표현되어 있다. 조선 지지 자료 면천 편에는 다불산이 송암면 송평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 조에 다불산에 보회사가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다불산이라는 지명은 적어도 500년 이상 된 것으로 실제로 다불산에는 보회사 터와 가까운 곳에 미륵암 터가 있으며 이 터에는 큰 주춧돌과 기와 및 자기 파편이 남아 있는데 옛날에 커다란 미륵이 서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다불산은 동쪽으로 아미산과 몽산 그리고 서쪽으로는 이배산과 연결된다.

다불산은 산봉우리가 잘려나간 듯 오목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전설이 있는데 먼 옛날 면천의 산줄기가 나뭇고개(면천 삼웅리에서 면천 시내로 넘어가는 고개)로부터 다불산으로 건너오는 동안 몽산은 여자로 변신하고 아미산과 다불산은 남자로 변신했다.

아미 남자와 다불 남자는 몽산 여자를 두고 서로 차지하려고 싸웠고 신령이 보기에 참으로 고약한 일이어서 두 남자를 불러다 호통을 치니 아미 남자는 진심으로 산이 되겠다고 맹세하고 아미산이 되었고, 다불 남자도 그러겠다고 맹세한 뒤 다불산이 되었다.

그 후로 아미 남자는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맹세한 바를 잘 지켜 나갔으나 다불 남자는 겉모양만 산이 되었지 여전히 흑심을 버리지 않았고 다불산의 그러한 속마음을 알아챈 신령은 크게 노해 무시무시한 천둥 번개를 일으켜 다불산의 목을 잘라 몽산 앞에 떨어뜨려 놓았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지금도 성상리 작골 마을에는 다불산의 잘린 목이 남아 있는데 작은 당재가 바로 그 목이라 전하며 일명 심술 당재라 불린다.

아미산부터 다불산 지나 이배산까지 걸어도 꽤 괜찮은 등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서해안고속도로를 건넌다.


계속 이어지는 삼웅1로를 따라 걸어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다시 민가가 보이고 그 민가 옆으로 내려가니 70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면천로와 만나 이제 그 면천로를 타고 우측으로 약간 더 진행을 한다.

우측으로 걸어가니 면천삼거리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도로 우측으로는 삼웅1리 버스정류장도 보이는데 이곳에서도 잠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해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져 보지만 어짜피 내일까지 석문지맥을 마무리하고 올라가기로 했고 아직까지 몸의 콘디션은 괜찮기에 계속 더 진행하기로 한다.

이곳은 나뭇고개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찾아보니 옛날 다불산 문헌에 면천 삼웅리에서 면천 시내로 넘어가는 고개라 나와있어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이제는 이곳을 나뭇고개로 부르는 사람은 없고 그저 도로 표지판처럼 면천삼거리로 부르고 있기에 그렇게 쓰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이곳에서 갈림삼거리까지 진행 후 도로를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 앞에 보이는 장승 두개가 보이는 짧은 절개지 방향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죽어 있는 짧은 절개지를 치고 오르니 그 위는 더욱 지독한 잡목과 잡풀들이 기다렸다는 듯 공세를 펼치는데 어짜피 통과해 진행을 해야 하기에 조심하며 걸어 본다.

잠시 후 등로 우측 앞 수풀속에 설명판이 보여 다가가 보니 성상리산성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는데 이제 아무도 관심없이 잡목과 잡풀속에 파묻혀 아쉬운 장면이다.

성상리 산성은 면천면 성상리와 삼웅리의 경계인 해발 119미터의 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성 내부의 경사면을 적절히 깎아 흙으로 축조한 산정식 산성으로 규모는 길이 약 400미터에 성벽 높이는 외벽이 약 4-5미터이고 내벽은 1-1.5미터이며 성벽 기저부는 약 5미터에 상단부는 1-2미터이다.

축조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마한 또는 백제시대의 통치영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면천관내에서 가장 오래된 양식의 산성으로 당진의 행정 및 군사 중심지였던 면천지역의 역사성을 밝힐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2004년 4월 10일 충청남도기념물 제162호로 지정되었다.

홍보를 하였으면 잘 관리하여 전시 행정이 되지 않토록 하였으면 좋겠다는 개인 생각이다.


그곳 성상리산성터에 대한 설명판을 읽어 보고 다시 진행을 하니 너무 지독한 잡목들과 가시나무 그리고 잡풀들로 인해 진행이 거의 불가능해 좌측 도로쪽으로 붙어 진행하니 아마도 선답자들이 지나간 길인듯한 희미한 등로가 열리고 그 등로를 따라 힘겹게 걸어 본다.

능선과 사면부를 교차하며 어렵게 그 잡목 가시지대를 지나니 갑자기 넓은 공터에 잡풀들이 자랐다 말라죽은 공터같은 장소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벌목된 공터도 보인다.

다시 능선으로 짧게 들었다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무명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삼웅리와 성상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처럼 보이는 곳이다.

 

비포장 임도같은 무명안부를 건너 오르니 짧은 밤나무 밭이 이어지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이제는 수종이 밤나무에서 호두나무로 바뀌고 있다.

그 호두나무 밭 끝자락까지 올라 능선으로 들어가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더니 금새 몽산성 망루 추정지 제8망루라는 안내판과 설명이 되어 있다.

몽산성은 내포문화숲길로 조성된 길 중 일부분으로 내포문화숲길은 내륙 깊숙이 발달한 하천을 이용한 상거래와 문화의 전파가 왕성했던 내포 문화권(서산시, 당진시, 홍성군, 예산군)의 자연경관과 생태자원 및 역사와 문화 유적을 잇는 327.3 Km 구간으로 충남에서 가장 길게 조성된 도보 길이다.

이 길은 원효깨달음길, 백제부흥군길, 내포천주교순례길, 내포역사인물동학길 등 4개의 테마와 24개 코스(311.3 Km) 2개 지선(16 Km)으로 이뤄진다.제부흥군길에 속하는 20코스는 대덕산 입구에서 아미산과 몽산을 거쳐 면천 읍성에 이르는 12.5 Km 구간으로 5시간 정도 소요된다.

백제 부흥 전쟁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던 몽산성의 방어와 감시 및 통신 그리고 지휘 등을 위해 구릉부에 설치한 망루 추정지로서 오늘 이 산객이 지나는 추정 망루는 8, 7, 6 망루의 총 3개이다.

바쁘지만 잠시 제8망루에 대한 설명판을 읽어 본 후 출발하는데 이 망루와 석축에 관한 자료는 잠시 후 몽산 정상부에서 다시 상세하게 보게 된다.


ㅈㅔ8망루 추정지를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석축이 짧게 보이고 무너진 성벽을 쌓아 볼 수 있는 체험마당이 나타나는데 이런 전시성 행정 대신 제대로 된 복원 작업이라도 하루 빨리 시행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누가 이곳 등로까지 올라 와 성벽 쌓는 체험을 하고 내려갈 수 있을지 한심하기만 하다.

다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오르니 제7망루 추정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234.2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는데 이제 해가 서산으로 기울며 그늘속으로는 빛이 부족한지 모바일 폰으로 찍는 사진이 흐릿하고 흔들림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일반 카메라가 아님을 알려주고 있어 안타까운 시간이다.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금새 제6망루 추정지를 지나고 이제부터 올라야 할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코 앞으로 몽산 정상부가 바싹 다가온 느낌으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소나무 아래 작은 돌무덤과 굿을 한 흔적이 보이는 성황당에 도착을 해 잠시 어릴적 시골에서 자라며 경험을 했던 굿에 대한 생각을 해 본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적 시골에 살면서 민간신앙을 참으로 많이도 믿고 의지하며 실천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어릴적 기억에 이런 성황당은 마을 어귀 가까운 산 안부에 있었으며 커다란 나무와 돌무덤은 필수였던 것 같았다는 느낌이다.

 

성황당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장승들이 보이고 금새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등로는 곧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 몽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곳 역시 뚜렷한 넓은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우측 50미터 전방에 약수터가 있다는데 아직 식수가 남아 있어 통과하여 오르니 안전목책과 로프구간을 지나 계단이 보인다.

그 계단을 오르니 많은 설명판들과 사각정자 그리고 운동기구들이 보이는데 해가 서산으로 기울며 사진이 참으로 어렵게 찍히기 시작한다.

이 몽산성 자료를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찾아 보니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몽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삼국 시대 산성으로 몽산성이 있는 몽산(299미터봉)은 충청남도 당진시의 중남부 면천면 성상리와 송학리 및 순성면 성북리와 백석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몽산성이라 불리기도 하며 조선 시대에는 면천군의 진산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면천 조에는 몽산이 군 북쪽 4리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여지도서 면천 조에도 몽산이 관아의 북쪽 4리에 있고 마산에서 뻗어 나와 고을의 주산이 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몽산성은 돌로 쌓았는데 주위가 1314척이고 안에 2개의 우물이 있는데 지금은 못쓰게 되었으며 면주이던 때에 이곳에 관아가 있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 기록으로 보아 당시에는 몽산성이 대부분 석축하여 산성의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몽산성은 몽산의 능선을 타고 흙을 다져 쌓은 퇴뫼식 산성으로 퇴뫼식 산성이란 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성곽이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해서 산의 7-8부 능선을 따라 거의 수평되게 한바퀴 둘러 쌓은 산성으로 단기간의 전투에 활용하기 위한 산성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성을 쌓기 시작한 초기의 형태이며 삼국 중에 특히 백제에 이러한 성곽 축조가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백제의 성곽이 공격보다는 방어에 목적을 두고 축조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몽산성은 백제 부흥 전쟁 당시 혜군의 치소로 쓰였던 산성으로 백제 풍왕은 주류성이 협소하고 주변에 피난 온 백성들이 먹고 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피성으로 왕도를 옮기게 된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피지산 또는 피성은 서쪽으로 고련단경수가 있어 적의 침입이 어렵고 남쪽으로 벽골의 늪이 있다고 했는데 고련단경수는 지금의 승전목이고 벽골은 합덕제를 뜻한다.

몽산성이 백제 혜군의 피성이었다는 것은 면천의 옛 지명인 혜성이 피성과 같은 지명이라는 점에서 분명한데 혜와 피는 고대 발음으로 같은 음이기 때문이다.

몽산성은 고려 시대까지 면천군의 행정 치소 역할을 하였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왜구의 침략이 빈번했던 고려 말 이후 조선 초에 몽산성을 수리하여 대비하고자 했던 기록이 있으며 1437(세종 19) 6 2일 충청도 순무사 안순이 이르기를 산성이 너무 크고 백성이 적어 지키기가 어렵고 성의 수리는 마치지도 못했는데 백성들은 원치 아니하니 읍성으로 옮겨 쌓게 해 달라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면천읍성을 새로 세우기로 하여 1439(세종 21) 몽산성 아래 평지에 면천읍성이 건설되었고 이로써 면천 고성인 몽산성은 행정 치소의 기능을 잃고 자연스럽게 폐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몽산성의 위치는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있으며 면천면사무소 뒤로 몽산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현재의 몽산성 터는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토축하여 성을 쌓고 그 위에 석축으로 성을 쌓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지형과 토질에 따라 토축으로 쌓은 토성 지대와 돌로 쌓은 석축 성 지대가 명확히 구분된다.

이것은 원래 토성이었던 것을 후대에 석축하여 성을 쌓았다는 뜻이며 현재 남아 있는 구간은 산 정상부의 석축 성인데 그나마 성벽이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다.

성내 시설로는 동, , , 북문 터가 보이고 정상부에 세 군데의 망루터가 있으며 정상부를 중심으로 동쪽은 토성이 서쪽은 석축 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성의 길이는 3360미터지만 원래의 성은 4 Km가 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몽산성은 오랜 동안 백제 때 혜군에서부터 혜성군으로 다시 면천군으로 행정 지명이 변경되는 가운데 행정 치소로 기능을 하였던 산성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잠시 둘러보고 좌측 위에 있는 바위 전망대로 올라 보지만 조망이 좋지 않아 내려 와 사각정자에서 남아 있는 간식과 음료수로 허기를 달래고 진행하기로 한다.


사각정자가 있고 운동기구와 많은 설명판들이 있는 곳에서 허기를 면하고 다시 주위를 돌아가며 설명판들을 읽은 후 사각정자 우측으로 나 있는 넓은 임도를 따르니 금새 해발 299.4미터인 몽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아미산 안내도와 이정표 그리고 서울 어느 산악회에서 붙여 놓은 정상 이정판이 보인다.몽산(299.4)은 충청남도 당진군의 중남부 면천면 성상리와 송학리 및 순성면 성북리와 백석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299미터로서 몽산성이라 불리기도 한다.

조선 시대 면천군의 진산이었고 북쪽으로 아미산과 이어지며 북서쪽에 다불산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면천)에 몽산이 군 북쪽 4리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여지도서(면천)에도 몽산이 관아의 북쪽 4리에 있으며 마산에서 뻗어 나와 고을의 주산이 된다고 적고 있다.

또한 몽산성은 돌로 쌓았는데 주위가 1314척이고 안에 2개의 우물이 있는데 지금은 못쓰게 되었으며 면주이던 때에 이곳에 관아가 있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돌로 쌓은 성이 안팎에 있는데 내성은 산의 정상부에, 외성은 바깥 약 300미터 지점에 있으며 남쪽 기슭에는 면천향교가 있고 동쪽으로 남원천이 흐른다.청구도, 대동여지도(면천) 1872년지방지도(면천)에 몽산이 표현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면천)에 몽산이 읍내면 북문리에 있다고 적고 있다.

고적명소명에서 몽산성지가 읍내면 북문리 몽산에 있다는 내용도 확인되고 조선지형도(해미)에는 면천읍치 북쪽에 몽산이 확인된다.

몽산에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몽산의 산봉우리는 원래 뾰족하였으며 꽃이 피지 않았다고 하는데 몽산의 산봉우리가 뭉툭하게 변한 것은 전설에 의하면 옛날 옛적에 아미산에는 용이 살고 몽산에는 지네가 살았는데 지네는 황량한 몽산과 달리 꽃이 만발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아미산을 시기해 마을 주민들을 위협하기 시작했으며 이 소식을 접한 아미산 용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지네를 퇴치하기 위해 묘안을 짜내 몽산 쪽으로 지네가 싫어하는 두꺼비 진액과 약쑥을 태워 날리기로 계획을 세워 실행하니 이 계획이 적중하여 두꺼비 진액과 약쑥 향에 고통스러워하던 지네는 결국 괴성을 내며 죽었고 지네가 죽자 몽산 산봉우리가 뚝 떨어져 나갔다고 전한다.

따라서 산봉우리가 지금처럼 뭉툭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여 오늘 산행을 어디에서 마무리할까 고민하며 그 몽산 정상을 내려 가 본다.


가시나무와 치소에 대한 설명판도 읽어 본 후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석문지맥 마루금은 좌측으로 꺽어 진행되는데 꺽인 바로 아래 지점에 테뫼신산성에 대한 설명판이 있어 잠시 읽어 본 후 좌측으로 꺽어 진행한다.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양유리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는데 그 마을의 민가에서는 하나 둘 저녁 불빛이 켜지기 시작하고 하늘에선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석양이 비추면서 붉게 물들고 있다.

양유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마을이고 시가지가 발달해 있으며 마을 서쪽으로 당진천이 흘러가고 있고 동쪽에는 남산공원이 있어 녹지가 조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가재굴과 양뒤 마을 등이 있는데 가재굴 마을은 가재가 많이 있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양뒤 마을은 사랫굴 남쪽에 있는 마을로 앞 내 뚝에 버드나무가 많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계속 이어지는 양유리 조망을 즐기며 내려가니 등로 우측 아래로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잠시 후 이곳이 양유리공동묘지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내포문화숲길이라는 안내판에 이곳이 공동묘지라는 설명판이 보이고 이제서야 지도를 보니 이곳이 양유리공동묘지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잠시 후 비포장 임도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그곳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양유리공동묘지는 이제 도로 우측으로 바짝 붙어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갈림사거리가 나타나는데 면천읍성과 합덕제 그리고 대덕산입구의 방향과 거리를 표기해 둔 이정표가 반긴다.

그 갈림사거리를 지나 다시 오르니 도로 좌측에 커다란 내포문화숲길 종합안내도가 서 있고 그곳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좌측으로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접어 들며 오늘 마지막 봉우리인 구절산으로 향한다.


이제 저녁 6시 20여분이 지나면서 넓은 도로를 걸을 땐 몰랐는데 능선으로 오르니 빛이 적어 사진 찍기가 여간 불편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잠시 후 두번의 아미산과 구절산 방향만 보이는 이정표를 지나 구불구불 우회하듯 이어지는 넓은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높지 않은 둔덕을 넘어 다시 벤취쉼터들이 보이는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우측으로 작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넘어 조금은 가파라지는 계단 등로를 따르니 금새 구절산 설명판이 서 있는 238.9미터의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그 정상에는 덕영이공과 그 부인의 합장묘 한기가 차지하고 있어 제대로 된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고 마지막 구절산을 출발한다.

설명판에는 산세가 아홉마디를 이루고 있어 구절산이라 불려지고 봉황이 깃들어 있는 형국의 산이라 봉소산이라고도 부른다는데 사실은 아닌 듯 보인다.

구절산 (230)충남 당진시 순성면 양유리에 있는 산으로 자료를 찾아보니 보이는 자료는 없으니 그 구절산 자락에 있는 구절암을 소개하는 자료에서 일부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구절암은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봉소리에 있는 작은 암자로서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봉소2리 뒷편에 굽이굽이 마디지어 솟아 있는 산을 구절산이라 부른다.


이 구절산 안에 있는 절이라 하여 구절암이라 불려져 왔으며 구절산에는 옛부터 풍수지리설로 비룡 산천의 명당이 있어 그 곳에 묘를 쓰면 구대 정승을 낳는 터라 하여 전국의 유명한 지사들의 출입이 빈번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현재 까지도 묘연하다.


구절산에서는 묘지를 지나 우측의 넓고 반듯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약간은 흐릿한 등로를 따라야 정상적인 석문지맥 마루금으로서 길주의 지점이기도 하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82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진행을 이어가니 우측으로 묘지들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일부는 포장이 되었다가 일부는 다시 비포장 임도로 남아 있는 도로이다.

그곳에서 육각정 0.5 Km 라는 우측으로 도로를 타고 걸어가며 마지막 힘을 내 본다.


도로 양쪽으로 보이는 벗나무들을 살펴보며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가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그렇게 한동안 도로를 통해 진행을 하니 나즈막한 억덕에 육각정자가 보인다.

현재 고도가 164미터로서 그 정자를 사진에 담고 다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콘테이너 박스와 그 바로 옆으로 2층 전망대인지 모를 쉼터가 보이는데 이제 오늘 산행도 막바지에 도달을 한 기분이다.

 

그 콘테이너 박스를 지나자마자 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곳 정상에서 진행방향을 살펴보니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마루금이 길게 이어지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오지만 모바일 폰으로 담는 사진에는 한계만 노출되고 있다.

그 마루금 좌우측도 살펴보고 지도를 보니 바로 앞에 구절로가 나타나고 오늘 산행은 아쉽지만 그 구절로에서 마무리를 하기로 하고 택시를 찾아 보니 가까운 순성면에 택시가 있어 그 택시를 부르기로 한다.

지도를 보니 다음 구간 들머리로서 당진시에서 택시로 접근을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아 대중교통을 이용해 마무리를 해 보려고 한다.

 

그렇게 택시를 찾아 전화번호를 입력하며 천천히 그 시멘트 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금새 봉소리와 성북리를 이어주는 구절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어둠속에 완전히 파묻히기 전에 순성택시를 콜하니 금새 온다며 기다리라고 한다.

성북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의 지역이 완만한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바로 서쪽에 아미산이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당진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성북, 꽃밭미, 도당굴 마을 등이 있는데 성북 마을은 몽산성 뒤()쪽에 위치한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고 꽃밭미 마을은 산에 꽃이 많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도당굴 마을은 전에 도당이 있었다 해서 도당굴 마을이라 불린다.

봉소리(윗거문들)은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에 있는 리로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북동쪽에는 시청골 고개가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서쪽에 아미산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거문돌, 분둣골, 불무골 마을 등이 있는데 거문돌 마을은 검은 바위가 많이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이고 분둣골 마을은 덕머리 서쪽에 있는 마을이며 불무골 마을은 약 50년 전까지 대장간이 있었다 해서 불무골 마을이라 불린다.

산행은 무탈하게 잘 끝났는데 콜 한 순성면 택시는 감감무소식으로 땀이 식으면서 약간 한기를 느껴 방풍의를 입고 다시 한번 이곳 주소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에 보이는 불빛이 있는 집으로 가 본다.



확인해 보니 지번으로는 정확하게 순성면 성북리 333-4번지이고 도로명으로는 구절로 165번인데 이곳 순성면 택시가 이곳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가 있다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는다.

정확한 주소지를 다시 한번 알려주지만 다시 20여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전화를 엉뚱한 곳에 가 있다며 이 산객이 알려준대로 구절로 165를 네비에 치고 갔는데 왜 갑자기 고속도로를 알려주는지 알 수 없다며 횡설수설한다.

너무나 어이가 없어 한마디 해 주고 당진시 콜 택시에 전화를 하니 채 5분도 되지 않아 택시가 오고 그 택시를 타고 남연군묘로 되돌아 가며 내일 순성면 날씨를 보니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비가 올 확률이 60% 이상 높아져 있고 강수량도 5-10 mm로 되어 있어 내일 산행을 포기하고 오늘은 집으로 귀가하기로 결정한다.

남연군묘로 가면서 당진콜택시 아저씨에게 문의하니 당진에서 타도 택시비가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알려준다.





생각보다 늦지 않게 남연군묘 앞 폐가에서 애마를 회수 해 새벽에 내려갔던 도로를 거꾸로 타고 당진영덕 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귀가하니 정확히 저녁 9시 50여분을 넘기고 있어 생각보다 전혀 막히지 않고 잘 귀가를 하였다.

다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당진시에서 택시에 승차 해 화전소류지 옆 성북리 333-4번지를 찍고 가면 산행 들머리 찾기엔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또 하나의 지맥 산행을 완전히 마무리하지는 못했지만 길지 않게 남겼기에 편안하게 내려 와 짧게 산행 후 대중교통을 이용해 귀가하면 하루 산행지로는 좋을 듯 싶다.


하지만 다음날 순성면 지방에 비는 내리지 않고 흐린 날씨였다기에 아쉬움만 남기는데 구라청이란 오명은 언제나 벗을 수 있을련지 모르겠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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