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충청남도 당진시 고산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9년 03월 03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비 예보에 걱정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하루종일 미세먼지로 조망이 없었으며 기온이 올라 초봄처럼 무척 무더위를 느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1도에서 영상 13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탑골재(고대로 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79 무명봉-입산금지 경고판(개인사유지)-비닐하우스와 거대축사-밭 경작지-당진포리 성출재길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일출-시온교회와 성산2리마을회관-성산로 1차선 시멘트포장도로-비포장임도-녹색철망과 대나무 숲-71 이정표-81.8봉-69 무명봉-비포장임도-통정2길 1차선 시멘트포장도로-비포장임도-615번 4차선 포장도로-막고개(효자교차로, 버스정류장)-성산3리 이정석-석문교차로-웅포버스정류장(새원교차로직전)-능선진입-이동통신탑-삼봉1리 상수시설-국수봉(58봉, 삼각점 당진403)-삼봉산로 1차선 시멘트포장도로-좌 해양구지길-우 방죽골길-삼봉교회-능선진입(38번 북부산업로 지하통로 직전)-비포장임도-66 무명봉 조망-삼봉산(65.8봉)-과수원 그물망-63.4봉-입산금지 경고판-민가와 과수원-삼봉산로 1차선 시멘트포장도로-장승백이재(삼봉3리 이정석 대삼봉마을, 삼봉3리 버스정류장)-615번 2차선 대호만로-삼봉4리 이정석(갈림삼거리)-석문방조제로 2차선 포장도로-삼봉버스정류장 갈림삼거리-대호로 2차선 포장도로-삼봉초등학교-삼봉사거리-대호만로(615번 2차선 포장도로)-삼봉교회-비포장임도-개활지-54.9 삼각점봉-잡목지대-68.7봉-지독한 잡목과 은사시나무 군락지-74 무명봉-50.5봉(민가)-원광길(교로2리 이정판)-76.3봉-새터말길 1차선 시멘트포장도로-54.8봉-밤나무밭-폐허가 된 전원주택단지-석문해안로(2차선 포장도로)-왜목펜션-65번 송전탑-이동통신탑-42.9봉(근린공원조성하며 사라진 봉우리)-왜목길(2차선 포장도로)-능선 나무계단-석문산(80.2봉, 삼각점 소실)-송전탑-잡목지대-52.4 잡목봉-간벌지대-새골길(1차선 비포장임도)-송전탑과 지독한 간벌지대-한국동서발전 당진화력본부 철조망-한국동서발전 당진화력본부 정문-교로길-한국동서발전 당진화력본부 철조망-철조망과 잡목지대-간벌된 잡목지대-76봉(한국동서발전 당진화력본부 건설로 일부 사라진 봉우리)-이동통신탑-군부대 철조망-잡목지대 진입-석문체육공원퍼블릭골프장-55.5봉-석문각 공원-석문각-고산지맥 산행종료-능선진입-당진전력 내 2차선 포장도로-당진전력 문화홍보관 정문-수준점 6미터(대호방조제 갈림삼거리)-대호만로(2차선 포장도로)-도랭이하우스 버스정류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0.84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접속구간 총 1.37 Km=석문각에서 도랭이하우스 버스정류장까지 1.37 Km 포함)
산행트랙 :
산행시간 : 군데 군데 지독한 잡목구간과 도로 그리고 무더위로때론 빠르게 또 대론 어렵게 진행하여 06시간 51분 (06시 44분부터 13시 35분까지)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05:00 기상 (무더워 자다 깨다 몇번을 일어남)
05:30 당진워터프리아 찜질방 출발
05:35 찜질방 근처의 24시간 전주 콩나물 국밥집에서 아침식사 (4,500.-)
06:10 고대면 용두리차부슈퍼 앞에서 택시 호출하였으나 없어 자가용으로 탑골재로 출발
06:25 산행 들머리인 탑골재 도착 해 주차 후 차내에서 휴식
06:44 고산지맥 마지막 제2구간 산행 시작
올때 - 13:11 석문각에서 고산지맥 산행 완주
13:37 도랭이하우스 버스정류장 도착 후 배낭 정리하며 버스 기다림
13:41 당진시내버스 10-4번 도착 해 탑승 (1,350.-)
14:10 고대면 용두리차부슈퍼 도착 후 당진 콜택시
14:25 탑골재 도착 후 자가용 회수 (8,000.-)
15:50 서울 집 도착 후 휴식
고산지맥이란 ???
고산지맥은 금북정맥의 은봉산(282봉) 서쪽 0.4 Km 떨어진 무명봉에서 분기해 봉화산(305봉), 봉화산(205.9봉), 독골고개, 돌데미고개, 승황산(137봉), 큰산(112봉), 고산봉(153.8봉), 막고개, 국수봉(57봉), 삼봉산(66봉), 장승백이재, 석문산(80봉)을 지나 대호방조제 석문각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8.6 Km에 달하는 산줄기이다.
지독한 잡목속에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며 어렵게 완주한 고산지맥에서 봄이 오는 소식을 온 몸으로 느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오늘 산행은 극과 극의 대결처럼 느껴지는 등로를 타고 때로는 너무 편안하게 속도를 높혀 진행하다 또 어느 순간에는 잡목과 가시나무에 발목이 잡혀 온 몸을 난도질 당하면서 느림보 걸음걸이로 진행을 하다 보니 그래도 사람의 두 발이 무섭다고 결국 마지막 이름있는 봉우리인 석문산 정상에 도착을 하였다.
하지만 찾는 삼각점은 이미 소실되어 사라지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정상 우측의 왜목항쪽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살펴보니 저 멀리 도지섬과 국화도도 길게 자리를 편 형태로 자리하고 있고 그 우측 왜목항 방향으로는 많은 배들이 점점히 떠 있어 사라진 삼각점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 본다.
우리나라에서 일출과 일몰 모두를 볼 수 있는 얼마되지 않는 지역인 왜목이다 보니 매년 초와 말에 무척이나 붐비고 많은 여행객들로 붐비는 고장이 되어 버린 왜목마을이기에 또 다른 느낌으로 내려다 본다.
드디어 고산지맥의 마지막 지점인 석문각을 살펴보고 좌측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계곡으로 사라진 등로를 만들어 어렵게 내려오니 드디어 출입이 금지된 당진화력발전소 내 서해바닷가에 도착을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닷가를 살펴보지만 보이는 섬은 하나도 없이 그저 공사장과 인공 구조물만이 이곳이 출입금지 시설임을 알려주고 있어 사진 몇장 남기고 도보로 그 당진화력발전소를 빠져 나가본다.
이렇게 또 하나의 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되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언제나처럼 가볍지만은 않은 것은 아마도 몸보다는 마음의 조급증과 욕심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자책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조금 더 세상을 여유롭게 살펴보고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래 본 시간이다.
약간 더위를 느꼈지만 생각보다 좋은 숙면을 취하고 일찍 일어나 찜질방을 빠져 나와 어젯밤 찜질방에서 알려준 24시 콩나물국밥집으로 가니 여전히 영업중이라 밥 한공기 더 국밥에 말아 이른 아침을 해결하고 어제 버스를 탔던 용두리차부슈퍼 앞으로 가니 이제 새벽 6시를 막 넘기고 있다.
애마를 이곳 주차장에 주차시키고 택시를 불러 탑골재로 이동하면 가장 좋겠는데 이곳 고대면의 택시번호도 모르고 택시번호를 찾으니 모두 당진시에서 오는 택시들 뿐이라 너무 이른 아침에 택시를 부르는 것을 포기하고 애마를 이용해 탑골재로 향한다.
탑골재에서 주차공간이 없어 고민하다 당진포1리 들어가는 도롯가에 약간의 공터가 보이고 그곳에 안전하게 주차를 한 후 산행을 시작하는데 어제 저녁에 확인한 산행 들머리는 이곳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란 표지석이 있는 뒷편으로 이어지기에 마음 편히 산행 준비를 해 본다.
차에서 내려 산행 준비를 하니 생각보다 춥지 않아 귀마개도 사용하지 않고 장갑도 왼손만 사용한 채 헤드렌턴의 사용이 필요없을 시간에 맞춰 마지막 고산지맥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새벽 6시 40분을 지나고 있다.
이곳 탑골재는 2차선 고대로가 지나는 도로로서 좌측의 당진포리와 우측의 장항리를 이어주는 경계지점으로 왜 탑골재가 되었는지 자료를 찾지는 못하였지만 아마도 마을이 통폐합 되기 전 어느 곳에 이 탑골이라는 마을이 있지 않아을까 추측을 해 보는 시간이다.
앞이 넓은 활엽수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희미한 등로를 찾아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금새 79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쓰러진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을 지나 입산금지라는 경고장이 보이는 등로에 진입한다.
개인사유지로서 약초와 산채등을 가꾸는 곳이라 출입을 금지시킨다는 내용으로 많은 경고장을 바라보며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또 다시 많은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방해를 받고 있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낙엽 등로를 따르니 금새 거대한 비닐하우스가 눈앞에 나타나고 그 좌측으로 거대한 축사 건물들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모두 한우를 사육하는 건물들이다.
이 산객이 살고 있는 시골에는 몇가구 살지 않는 동네에 세가구나 전문적인 한우 사육을 하고 있어 농가소득은 올랐지만 마을은 냄새와 벌레들로 인해 살기 어려운 시골이 되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장단점을 모두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잠시 후 좌측에 밭경작지를 두고 그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진행하니 금새 1차선 시멘트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이 도로의 이름은 당진포리 성출재길이다.
이제부터 한동안 그 1차선 포장도로인 성출재길을 따라 걷게 되는데 조금 더 걷다보니 도로 우측 저 멀리 일출이 시작되려는지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지만 미세먼지로 인해 붉은 태양은 일출 시간을 한참이나 넘겨 만날 수 있었다.
도로 우측 아래로는 송산면쪽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유난히 높은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니 드디어 도로 우측에서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오늘 하루도 비 소식없이 무탈하게 고산지맥 산행을 완주할 수 있도록 빌어보는 시간이다.
계속 이어지는 성출재길을 따르니 도로 우측으로는 마늘과 양파 재배 경작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어 이곳이 주산지임을 알려주는 듯 하다.
밭과 비닐하우스 그리고 나즈막한 야산을 타고 도로를 걸어가니 저 멀리 시온교회의 십자가가 보이기 시작하고 성산2리마을회관을 지나 갈림삼거리에 있는 성산2리 표지석도 만난다.
성산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있는 리로서 골짜기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으며 세부장골 아래에 있고 뒷 산에 옛 성터가 있으므로 성산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까치골, 너더리골, 동속사, 버시랭이, 속사 등이 있는데 까치골은 성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까치가 많이 모여 떼를 짓고 살았다 하고 동속사는 속사 남쪽에 있는 마을로 서속사는 장항리에 있으며 속사는 성산리와 장항리에 걸친 마을로 예전에 무당들이 모여 춤추고 활 쏘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좌측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다 나타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우측 도로를 타고 진행을 이어간다.
도로 우측 옆으로는 여전히 마늘과 양파 재배단지가 펼쳐져 있고 그 위로 조금 더 선명한 붉은 아침 태양이 밝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다시 도로 좌측으로 소 사료용으로 쌓아 둔 볏짚이 가득하고 우측 바로 아래에는 또 다른 거대한 한우 축사가 자리하고 있어 시골 특유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이제 도로명이 성출재길에서 성산로로 바뀌고 그렇게 이어지는 1차선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르니 민가가 보이는 갈림사거리도 통과한다.
이제 이 시멘트포장도로도 얼마 안가 끝이나고 능선으로 올라 진행해야 할 81.8봉으로 오르는 능선이 눈 앞으로 다가와 있고 잠시 그렇게 걸어가며 도로 좌측을 보니 성산리 마을이 여느 농촌마을과 별반 다르지 않게 조용히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주위 마을을 구경하며 이 산객이 살았던 시골과 비슷한 느낌으로 걸어가니 저 멀리 대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을 청한 많은 이름모를 산새들이 이방인의 출현에 이른 아침잠을 깨 푸드덕 거리며 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밭 가장자리와 대나무 군락지 사이에는 녹색 철망이 쳐져 있어 걱정을 하였지만 사람 하나 오를 수 있는 통로가 보여 그곳을 통해 대나무 밭을 오르니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잠시 후 썩은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는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고산지맥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산책하는 동네 주민들을 위한 안내판이었다.
그 이정판이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서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진행하니 멋진 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무명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오르는데 등로 좌측으로는 녹슨 철조망이 그 기능을 상실한 채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잠시 후 우측으로 돌아가는 우회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직등으로 낙엽을 헤치며 어렵게 걸어 오르니 잡목이 우거져 있고 정상에는 썩은 고사목들이 제멋대로 널부러져 있는 81.8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 닦으며 잠시 쉬어 간다.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81.8봉을 내려서니 등로 위에는 다시 다른 고사목들로 어지럽고 후박나무처럼 보이는 조림지를 지나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이 되고 있다.
잠시 후 눈 앞으로 개활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를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진행하니 금새 통정2길 1차선 시멘트포장도로를 만나 그 도로를 통과한 후 능선으로 이어간다.
비포장 임도로 이뤄진 넓은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공터봉이 나타나고 잠시 후 좌측으로 흐르는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진입하니 갑자기 널부러진 많은 고사목들이 흩어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도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짧게 걸으며 힐링도 해보고 여유롭게 전진하니 또 다시 비포장 임도를 만나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가끔 차량들의 통행소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눈 앞에 철망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615번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기에 좌측으로 돌아 내려간다.
효자교차로라는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우측에 615번 4차선 포장도로를 두고 좌측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르니 금새 615번 도로쪽으로 막고개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그 앞으로 효자교차로가 나타난다.
이곳 막고개는 고대면 성산리와 석문면 통정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현재는 새로운 도로가 뚫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된 듯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통정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와 완만한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며 마을 남쪽에 나매들이 펼쳐져 있고 북서쪽에는 국수봉이 솟아 있다.
자연마을로는 통정, 가장미, 곰개 마을 등이 있는데 통정 마을은 통못 가에 위치한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가장미 마을은 덕거리 동쪽 가에 있는 마을이다.
곰개 마을은 갯가에 곰 형국의 바위가 있어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삼봉리 곰개과 구별하기 위해 밧곰개라고도 불린다.
오룩스 맵을 이용한 지도와 실제 개발된 지도와는 많은 차이가 있어 진행하면서 현재 위치를 정확히 확인하며 진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막고개 버스 정류장을 지나 효자교차로를 통과하면서 오룩스 지도와 실제 도로와의 차이로 인해 잠시 헷깔리고 우왕좌왕 짧은 알바 후 다시 615번 4차선 포장도로를 계속 따라가니 좌측으로 성산3리 효도마을 가는 이정석이 서 있다.
성산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있는 리로서 골짜기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으며 세부장골 아래에 있고 뒷 산에 옛 성터가 있으므로 성산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까치골, 너더리골, 동속사, 버시랭이, 속사 등이 있는데 까치골은 성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까치가 많이 모여 떼를 짓고 살았다 하고 동속사는 속사 남쪽에 있는 마을로 서속사는 장항리에 있으며 속사는 성산리와 장항리에 걸친 마을로 예전에 무당들이 모여 춤추고 활 쏘던 곳이었다고 한다.
오늘 걷다보니 성산리가 꽤 넓게 펼쳐져 있다는 느낌으로 걸어 보는 산행이다.
성산3리 갈림 이정석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석문교차로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도 지도가 달라 잠시 헷깔리며 정상 도로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 산객이 걷고있는 615번 4차선 도로 하부에는 38번 4차선도로가 지나며 이 도로는 강원도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계속 이어지는 615번 도로를 타고 쭉 걸어가니 저 멀리 우측으로 서해제일교회 십자가가 올려다 보이고 이 앞으로 새원교차로도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는 그 새원교차로로 올라가기 직전 좌측의 웅포버스정류장에서 지금까지 걸어 온 615번 4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절개지를 타고 올라 이동통신탑 방향의 능선으로 향한다.
능선 방향으로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높은 이동통신탑이 서 있고 곧이어 삼봉1리 주민들을 위한 상수도시설물이 서 있다.
그곳을 지나 잠시 잡목을 헤치고 오르니 당진403번이라는 삼각점이 박혀 있는 58미터의 국수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보지만 이곳 역시 지도상에 나와 있는 국수봉에 대한 관리가 안되는지 아니면 너무 낮은 봉우리라서 자료가 없는지 아무리 찾아 봐도 이곳 국수봉에 대한 자료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사진 몇장 남기고 특별한 것이 없기에 그 58삼각점봉을 출발해 다시 낙엽 등로를 걸어 내려가 본다.
그 국수봉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묘지가 나타나고 지금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삼봉리 마을이 눈 앞에 펼쳐지지만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어 아쉽기만 하다.
다시 밭 경작지 가장자리를 타고 조심해 내려가니 금새 삼봉산로 1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이제부터 그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한동안 걸어본다.
좌우측으로 민가와 비닐하우스를 두고 계속 이어지는 삼봉산로를 따르니 도로 좌측으로 해양구지길로 가는 도로표지판이 보인다.
다시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도로 우측으로는 드넓은 인삼포가 펼쳐져 있어 이제는 인삼도 전국적인 재배 품목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본다.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저 멀리 분기점이 되는 삼봉교회의 십자가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도로 우측 앞을 살펴보니 삼봉리의 방죽길로 이어지는 황토빛 밭경작지 넘어 마을들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더 그 삼봉산길 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이번에는 도로 우측으로 방금 전 조망을 했던 방향으로 방죽골길이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좌측으로 멋진 민가 한채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작은 삼봉교회가 나타나고 그 교회를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바로 코 앞에 북부산업로인 38번 4차선 도로를 통과 할 수 있는 지하통로가 보이는 곳에서 지그마지 한동안 걸었던 삼봉산길을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삼봉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며 북쪽에 울강대들이, 서쪽에 수애기들이 펼쳐져 있고 마을 동쪽에 저수지가 조성되어 있어 수원은 풍부하다.
자연마을로는 삼봉, 고대, 곰개 마을 등이 있는데 삼봉 마을은 세 봉우리가 있어 삼봉이라 하였으며 고대 마을은 지형이 비탈지고 높고 험하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곰개 마을은 뒷산이 곰처럼 생기고 앞에 바다가 있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능선으로 오르니 지난 가을에 무성하게 자랐다 이제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억새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고 그 억새 군락지를 지나 계속 전진하니 잡풀지대도 통과한다.
한여름이었으면 고생이 되었을 등로가 이제는 진행에 큰 어려움이 없으니 이런 나즈막한 산줄기는 늘 겨울철 산행을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시 후 만나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다 다시 소나무가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가니 벌목된 66미터의 둔덕에 오르는데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꺽여지고 좌측 아래에는 방금 전 만났던 38번 4차선 북부산업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고 그 건너편으로 나즈막한 야산이 절개지를 드러낸 채 이곳을 응시하고 있다.
잠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살펴보지만 역시나 지독한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었기에 보이는 것이 없어 다시 잡목 능선으로 들어가니 진행속도가 상당히 느려지고 있다.
가시에 손가락이 찔려 붉은 피가 흐르고 얇은 나뭇가지에 얼굴을 맞아 육두문자를 내뺃으며 진행을 이어가니 드디어 오늘 처음 만나는 여영님의 삼봉산 66미터라는 산패를 만나 고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지도를 보니 65.8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 봉우리인데 아마도 삼봉리에 있는 산이라서 삼봉산인지 아니면 삼봉산이 있어 삼봉리라 불렸는지 모르겠지만 관련된 지명임은 분명해 보인다.
잡목이 가득한 삼봉산 정상부에서 허기를 느끼기에 준비한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일어서니 지독한 잡목들이 붙잡고 늘어지고 조심하며 그 삼봉산 정상부를 탈출하니 묘지지대가 나타난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드넓은 과수원이 나타나고 등로는 그 과수원 우측 상단의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짧은 조우 후 등로는 다시 과수원을 좌측 아래로 보내고 우측 직직의 묘지지대로 안내를 한다.
묘지를 좌측에 두고 우측 경계로 오르니 웅덩이 두개가 보이는 63.4봉에 도착을 하는데 주위에는 잡목만 보일 뿐 특이한 볼거리가 없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그 웅덩이봉을 내려가니 다시 나뭇가지에 산나물과 약초재배지역이니 들어오지 말라는 입산금지 경고판이 붙어 있고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는 하얀 가림막도 쳐져 있어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였던 지역처럼 보인다.
그 아얀 천막을 타고 내려가니 커다란 비닐하우스와 민가들이 보이고 과수원 가장자리를 따라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또 다시 1차선 시멘트포장도로와 만나는데 이곳 도로 역시 삼봉산로란 이름이 붙어 있다.
그 시멘트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전진하니 다시 615번 대호만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고 그곳 갈림삼거리에는 삼봉3리라는 커다란 이정석과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이곳에서 다시 615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잠시 후 갈림삼거리에서 615번 2차선 포장도로는 좌측의 대산 방향으로 빠지고 이 산객은 직진의 석문방조제와 장고항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계속 진행한다.
한동안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방금 전 만났던 도로표지판과 동일한 내용으로 서 있고 그 한가운데엔 삼봉4리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다.
그곳에서도 역시 좌측의 대산으로 향하는 615번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석문방조제와 장고항 방향의 직진 도로를 따라 걸어 본다.
별 특이할 것 없는 지방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하니 여전히 삼봉리 마을을 통해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생각해 보니 오늘 도로를 타고 진행하면서 삼봉리라는 마을을 꽤나 길게 진행을 하고 있는 느낌이라서 마치 백두대간 산행 시 상주시를 통과하는 느낌으로 갈어 본다.
잠시 후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이제 우측으로 647번 2차선 포장도로인 석문방조제로를 보내고 좌측의 2차선 포장도로인 대호로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좌측으로 틀어 조금 걸어가니 좌측으로 다시 삼봉초등학교 정문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시골의 작은 마을의 번화가라 생각되는 거리가 이어진다.
잠시 후 만나는 갈림사거리에서는 직진의 초락도와 대산석유화학단지 방향의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90도 꺽어 진행해야 하는 왜목마을과 대호방조제 그리고 당진화력본부 방향으로 틀어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른다.
음식점들이 보이는 2차선 포장도로인 대호만로를 다시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잠시 걸어 들어가니 눈 앞으로 또 다른 삼봉교회가 나타나는데 이번에도 등로는 그 삼봉교회 앞에서 우측으로 들어가 대호만로와 헤어지게 된다.
우측 삼봉교회 방향으로 들어가니 교회 우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열려있고 그 임도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눈 앞으로 거대한 절개지가 나타나는데 등로는 그 절개지 우측 가장자리로 잘 나 있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 절개지 우측으로 붙어 나 있는 비포장 임도같은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비포장 임도는 우측 사면등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마루금은 직진방향으로 무명봉을 들렸다 내려오도록 되어 있는데 잠시 후 다시 만나기에 마음 편히 우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른다.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잠시 후 묘지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석문면 마을의 제법 높이를 자랑하는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하니 묘지 위 능선에 삼각점 하나만 박혀있는데 지도를 보니 54.9미터의 삼각점 봉이었다.
그 삼각점만 박혀있는 54.9봉을 지나 좌측으로 내려가니 소나무 아래 잡목들이 자라고 있지만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이 무탈하게 진행이 되고 있다.
잠시 후 편안한 수레길 같은 등로를 만나 전진하니 다시 묘지들이 보이고 약간의 잡목들 저항이 심해지는 등로를 따라 힘겹게 진행을 하니 역시 정상에도 잡목들만 우거져 있는 68.7봉에 도착을 해 정상에 붙어 있는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를 확인하며 존경스런 인사를 건넨다.
겨울이니 이 정도 생채기로 끝이 나지만 여름이나 가을철에 진행을 한다면 진행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등로이다.
지독한 잡목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그 68.7봉을 지나니 잡목의 저항은 더욱 거세지기 시작하고 그 잡목가지 마다 얼키고 설킨 청다래 넝쿨이 산객의 발목을 잡아 많은 시간 보내며 힘겹게 그 잡목지대를 빠져 나온다.
그 잡목지대를 빠져 나오니 이제는 껍질이 흰색인 은사시나무 군락지가 나타나는데 나무가 자라면서 곁가지들도 자라 진행하는 산객의 얼굴을 사정없이 휘갈기고 있다.
고통을 참으며 어렵게 다시 능선으로 오르고 잠시 편안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공터 무명봉이 나타나고 고도를 보니 74미터봉이다.
공터봉을 지나니 곧이어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을 지나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열리는 곳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 닦으며 드넓게 펼쳐진 교로리 쪽 조망을 살펴본다.
교로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에 있는 리로서 평야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서쪽으로 바로 서해와 접하고 있으며 간척사업으로 농경지가 넓은 면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다.
자연마을로는 교로, 강계원안과 됀섬 마을 등이 있는데 교로 마을은 지형이 다리처럼 생겼다 해서 다리길이라 불리다가 후에 교로 마을이라 개칭되었으며 강계원안 마을은 돈섬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됀섬마을은 북족에 돈처럼 생긴 섬이 있다는 의미에서 됀섬 마을이라 불린다.
등로 좌측으로 석문면 교로리 방향의 들판을 살펴보고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활엽수 낙엽이 깔려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고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에는 멋진 소나무들이 보인다.
짧은 과수지역을 지나 소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저 멀리 민가 지붕이 보이기 시작하고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50.5봉이었던 곳 일부가 절개되어 민가를 건축할 때 이용된 듯 보인다.
예전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사실인데 민가가 들어 선지 얼마되지 않아 보이는 현장이다.
민가를 좌측에 두고 우측 칼등 능선을 통해 진행하니 좌측으로 교로리 마을과 들판이 보이고 다시 우측 소나무와 잡풀들이 보이는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하니 소나무 밑둥이 보이는 47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금새 교로2리라는 이정판이 보이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인 원광길에 도착을 해 주위를 살펴 본다.
원광길을 가로질러 반대편 능선으로 오르니 상수시설이 보이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 완만하게 걸어 전진하니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펼쳐져 있어 힐링하듯 천천히 걸으며 생채기가 나 쓰라린 몸을 다독여 본다.
다시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약간의 잡목이 보이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가 서 있는 76.3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아무 표식도 없이 선답자들의 띠지만 걸려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이곳부터 어디선가 뱃고동소리가 거의 일정한 간격으로 들리기 시작하고 다시 거칠어지는 잡목 등로를 헤치고 조심스럽게 걸어 진행을 하니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위해 봉긋 솟아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렇게 진달래 꽃봉우리를 보며 걸어 진행하니 민가 마당으로 내려가고 그 마당을 지나 도로 우측 앞을 살펴보니 제법 높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뒤 저 멀리 오늘 걸어야 할 마지막 산줄기가 미세먼지 속에 본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민가 마당을 지나 나오면 곧바로 새터말길이라는 도로표지판이 보이는 1차선 시멘트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를 건너 녹색 철망이 쳐져 있는 묘지지대로 걸어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묘지 위로 올라 짐시 지나온 방향으로 조망을 살펴보고 다시 잡목이 보이는 능선으로 오르니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고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는 54.8봉에 도착을 한다.
그 54.8봉을 지나 내려가니 밤나무밭이 작게 나타나고 좌측으로는 검정 햇볕 차닥그늘막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 계속 진행을 이어가니 갑자기 눈 앞에 아담하게 생긴 목조 건물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이제는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듯 잡초들이 무성하고 거미줄이 빼곡하게 보이는 곳이다.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이런 목조 건물이 한채가 아니라 줄지어 나타나 예전에 휴양림이나 펜션단지로 사용하다 폐허가 된 그런 곳이 아닐까 의심이 되는 곳이다.
잠시 지독한 억새와 소나무 군락지를 빠져 나오니 드디어 우측의 왜목해수욕장 방향과 정면으로 석문산 오르는 조망이 모두 보이기 시작한다.
잡풀들이 자랐다 이제 말라죽은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다시 민가 앞마당으로 내려가는데 이 민가도 사용을 하지 않는지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그 민가 마당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석문해안로에 도착을 해 좌우측을 살펴보는 시간이다.
우측으로 가면 왜목마을과 왜목해수욕장을 만날 수 있는 해안가이기에 잠시 자료를 찾아 본다.
왜목마을은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왜목길에 있는 마을로서 해변이 남북으로 길게 뻗은 충청남도 서해의 땅끝 해안이 동쪽을 향해 툭 튀어 나와 일출과 일몰 및 월출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관광명소로 신년 해돋이 축제 때에는 10만여 명의 인파가 몰린다.
동해의 일출이 정열적이라면 왜목마을의 일출은 서정적이라 할 수 있고 하지와 동지를 기준으로 국화도와 장고한 해안선 끝자락 산을 사이에 두고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수변데크가 설치되어 맨발로 해변을 산책할 수 있다.
해가 장고항의 노적봉(남근바위)에 걸리는 11월과 2월이 마치 한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다워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다.
왜목마을 해수욕장은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에 위치하며 땅의 모양이 가느다란 왜가리 목을 닮았다고 왜목마을이라고도 하고 누워있는 사람의 목을 뜻하는 와목에서 유래했다고도 전해진다.
왜목마을에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도 있고 왜목마을은 해돋이와 해넘이가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며 해양수산부 선정 아름다운 어촌 마을이기도 하다.
2차선 포장도로인 석문해안로를 가로 건너 1차선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왜목펜션이 보이고 등로는 그 펜션 뒷쪽의 잡풀이 무성했던 곳 절개지로 이어진다.
어렵게 잡풀들을 헤치며 오르니 1차선 폐시멘트 포장도로가 다시 나타나고 그 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키 작은 소나무들이 자라면서 몇 년이 지나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될 듯 하다.
65번 송전탑을 지나고 이동통신탑도 통과하니 거대한 공사장이 나타나고 42.9봉을 찾으니 그 봉우리도 벌써 일부분이 사라지고 없다.
공사 중 절개된 42.9봉을 아쉽게 바라보고 사진 한장 남기고 되돌아 내려오니 포크레인 기사가 설비를 점검하고 있어 물어보니 당신시 석문면 근린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이렇게 대규모 공사를 하고 있다는데 아쉽기만 하다.
그 공사장에 나 있는 도로를 타고 내려가며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건물들 지나 저 멀리 석문산이 올려다 보이는데 저 석문산은 잘 보존되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잠시 진행하다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드디어 서해바다의 왜목항과 왜목해수욕장이 보이기 시작하고 일출과 일몰 모두를 감상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장소이다 보니 유명세를 타고 있음에 다시 한번 더 눈길이 간다.
왜목항은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서 선박이 안전하게 접안 및 정박을 할 수 있는 설비가 된 항구로서 왜목 마을은 석문 해안 도로를 지나면 지방도 615호선과 만나는 곳에 있고 대호만 간척지가 확 트여 보이며 해가 뜨고 지는 왜목 마을이란 아치가 세워져 있다.
왜목항은 서해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며 일출과 일몰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해넘이와 해맞이의 전국 관광지로 유명하다.
지도를 보면 석문면이 서해에서 북쪽으로 반도처럼 돌출하여 있고 동쪽으로는 동해안과 같은 방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석문산(79m)의 정상에서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여행지이다.
왜목항은 해안가 작은 마을로 자연발생적인 필요에 의해 항구로 발전했으며 1990년대 왜목항은 석문면 교로리 최북단 대호 방조제 끝에 있는 작은 포구였다.
그 당시는 난지도를 오가는 연락선이 다니는 정도였으나 현재는 소형 어선들이 입출입하는 항구 기능보다는 왜목 마을 해돋이와 왜목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공사 차량들이 드나드는 입구로 걸어 내려가니 왜목길이라는 2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건너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이곳에도 많은 펜션들이 자리잡고 있다.
음식점과 펜션이 보이는 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며 본격적인 석문산으로 오르는데 높이라고 해 봐야 80.2 미터이니 아무리 급경사라 해도 금새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펜션 뒤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오르니 능선 입구부터 나무계단이 길게 이어지고 그 계단을 타고 걸어 오르다 보니 석문산 정상부까지 이어지는 듯 보인다.
너무 길게 이어진 나무계단이다 보니 중간에 두어번 쉬면서 어렵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민둥의 석문산 정상(80.2봉)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에 나와 있는 삼각점을 찾아 보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 삼각점은 보이지 않는다.
잠시 주위를 서성이며 삼각점을 찾다 포기하고 우측을 살펴보니 바로 아래 서해바다에 배들이 많이 떠 있고 그 배들 뒤 저 멀리 도지섬과 국화도가 내려다 보인다.
잠시 지나온 방향의 고산지맥 마루금도 살펴보고 왜목항 쪽 풍경도 돌아 본 후 삼각점을 찾지 못해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그 민둥의 석문산을 출발하니 곧바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데 아마도 주위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송전탑 공사를 하면서 만들어진 비포장 임도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그 비포장 임도를 건너 반대쪽 능선으로 오르니 그곳도 등로는 잘 정비되어 있어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우측으로 거대한 송전탑 2개를 만나고 계속 전진하니 잠시 부 드러운 등로가 열리는가 싶더니 다시 잡목이 우거진 등로로 바뀌면서 마지막까지 이 산객의 몸뚱아리를 그냥 놔 두질 않는다.
힘겹게 가시에 찔리면서 그 잡목과 가시나무 지대를 지나 오르니 정상 역시 잡목으로 우거진 52.4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사진 한장 남기고 잡목이 우거진 그 52.4봉을 내려가니 봄을 알리는 진달래꽃이 피기 시작하고 잠시 후 지독하 소나무 숲에 갇혀 무척 고생을 한 후 다시 평이한 등로를 만나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후 간벌된 등로를 만나는데 간벌된 나무들을 정리하지 않아 널부러져 있는 상태로 방치되어 있어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는데 애를 먹는다.
힘들게 그 간벌지대를 내려가니 좌측으로 민가가 보이는 비포장 임도로 내려서는데 트럭 2대가 그 임도를 따라 지나가고 있다.
지도를 보니 새골길이라는 도로로서 이곳도 조만간 포장도로로 새로 탄생될 듯 보이는 도로였다.
비포장 임도인 새골길을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그곳도 역시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가 열려 있어 잠시 편안하게 걸어 본다.
하지만 거대한 송전탑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지독한 잡목들이 차지하고 통행세를 받고 있는데 통행세는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다가 썩어 가면서 진행에 상당한 방해를 주고 있어 힘들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꺽여 지독한 잡목이 보이는 나즈막한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그곳으로 진행하지 않고 당진화력발전소 철망 옆을 따라 조금은 편안하게 진행하기로 한다.
우측으로 당진화력본부 철망을 따라 한동안 걸어가는데 이곳도 여름철이면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칡과 잡풀들이 뒤엉켜 등로 자체가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는 철망을 타고 그 끝자락까지 걸어가니 한국동서발전 당진화력본부라는 회사의 정문으로 이어지고 그 정문에서 근무를 하는 분들의 눈초리를 따갑게 받으며 석문산 이후로 의미없는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이제 이곳부터는 각종 건물들과 공장들 그리고 논 경작지들로 인해 제대로 된 마루금을 찾아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가능하면 마루금과 가깝게 걸어 보려 노력해 보는 등로였다.
정문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니 우측으로 좁은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니 오래전 당진화력본부에 근무하는 작업자들이 생활했던 기숙사처럼 보이는데 이제는 사용하지 않아 폐건물이 되어 버린 곳 앞을 통과한다.
다시 골목과 민가를 통해 어렵게 진행하니 교로길을 타고 우측에 나즈막한 야산을 두고 논 경작지와 경계에 생긴 수레길을 따라 마지막 힘을 내 본다. 논 지나 저 멀리 올라야 할 76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저 76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또 어떤 추억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제 조금 더 걸어가니 눈 앞으로 거대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살펴보니 한국동서발전의 당진화력본부 건물들로서 그 건물과 회사 때문에 고산지맥이 막혀 이렇게 길게 우회하며 고생하게 된 것이다.
잠시 더 걸어가니 임도 우측으로 녹슨 철조망이 보이고 그 안쪽으로 철조망과 원형철조망의 2중 철조망으로 막혀있다.
그 옆으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다시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에서 우측 이중 철조망 사이로 진행하였으면 더 좋았을 것을 녹슨 철조망 좌측 등로를 타고 진행하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능선으로 오르니 지독한 잡목 구간이 펼쳐지고 온 몸에 많은 생채기를 내며 너무나 힘들게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녹슨철조망이 조금 벌어진 틈이 보이고 그곳으로 통과해 이중 철보망 사이로 걸어 천천히 오른다.
등로는 다시 녹슨 철조망을 넘었다 복귀하기를 반복하며 지독한 잡목지대를 피해 어렵게 오르니 등로 우측 아래 지나온 방향으로 한국동서발전 당진화력본부의 거대한 건물과 시설물들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다시 당진화력본부 건물과 좌측에 잡목지대 사이로 만들어진 좁은 시멘트 도로를 타고 어렵게 걸어 오르니 다시 지독한 잡목이 가득 메우고 있는 절개지가 눈 앞에 펼쳐지고 그 절개지 정상부가 오늘 이 산객이 오르고 싶은 76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그곳까지 어떻게 올라야 하는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다.
지독한 잡목구간을 헤치며 어렵게 그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원형철조망이 땅에 떨어져 사라진 등로를 만들고 그곳으로 선답자들이 진행을 한듯 한데 이 산객은 이곳까지 올라 온 노력과 시간이 너무 아까워 우측의 76봉 쪽으로 걸어 올라 본다.
잠시 걸어 오르니 지독한 가시를 악마의 입을 벌리듯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는 엄나무 군락지를 이리저리 피하며 어누나 힘들게 오르니 공터 절개지에 빈 파이프 몇개가 박혀있는 76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도 벌써 정상 봉우리는 조금 사라진 뒤였다.
그 사라진 76봉 정상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엄나무 군락지를 통해 넘어진 원형 철조망 쪽으로 내려 와 무너진 그 원형 철조망을 넘어 잡목을 헤치며 걸어 진행을 하니 이동통신탑이 나타난다.
이동통신탑을 지나 다시 잡목들을 헤치며 걸어 오르니 높은 철조망 위에 원형 철조망이 쳐져 있는 군부대가 나타나고 그 철조망을 따라 우측으로 돌아 군부대를 우회 통과해 본다.
한동안 그 군부대 철조망을 끼고 우측으로 돌아가니 헬기장이 나타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다시 살짝 뒤돌아 나와 이제 진행 방향의 좌측 능선을 따라 내려가니 그곳 역시 잡목들이 우거져 있어 얼마나 사람들의 통행이 없었는지 알 수 있는 잡목 등로이다.
한동안 어렵게 잡목들을 헤치고 내려가니 최근에 세워진 듯한 건물들이 보이고 그 주위로는 잘 관리되고 있는 골프장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석문체육공원퍼블릭골프장처럼 보인다.
골프장에 몇명의 골퍼들이 골프를 즐기고 있기에 그 골프장을 우측에 두고 좌측 도로로 내려가 다시 우측으로 올라가니 철문이 나타난다.
그 철문을 지나자마자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잡목들이 우거져 있고 너무나 힘들고 어렵게 그 잡목들과 가시나무를 헤치며 천천히 걸어 오르니 드디어 주능선에 도착을 해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55.5봉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너무나 힘들어 잠시 쉬면서 남아 있는 음료수와 빵으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 그 55.5봉을 천천히 내려가 본다.
여전히 지독한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내려가니 금새 1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오르니 석문각 공원이라는 안내판 경고판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석문각 공원인데 현재는 한국동서발전의 당진화력본부 내부이고 이 한국동서발전은 국가주요 시설이다 보니 일반에게 개방되고 있지 않아 인터넷에서 찾아 봐도 나타나지 않는 장소로 되어 있다.
언제나 이런 제약 없이 오고 싶을 때 와 즐기고 갈 수 있을지 아쉽기만 하다.
다시 주위에 잘 가ㅝ진 잔디를 바라보며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저 멀리 팔각정이 보이고 다가가 보니 팔각정 오르는 계단 우측 옆으로 석문각 설립 추지문이 보인다.
하지만 국가주요시설인 한국동서발전 내에 존재하기에 이곳에 들어오기도 어려워 이제는 설립 취지가 무색하게 변해 버린 석문각이 되어 버렸다.
고산지맥 마지막 지점인 이곳에서 대,소나지도와 도비도, 서산 대산단지와 서해바다 조망이 시원하다는데 오늘은 미세먼지로 시야가 제한되고 잡목들로 잘 보이지 않아 사진으로만 바라보고 내려온다.
내려오며 현판이 멋지게 달려있어 찾아 보니 김종필씨가 썼다고 하는데 글씨 하나는 명필인 듯 보였다.
석문각에서 주위 구경을 마치고 조금 더 내려 와 이제는 우측으로 보이는 계곡을 따라 등로를 만들며 어렵게 내려오니 드디어 당진화력본부의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바다를 살펴 본 후 좌측으로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당진화력본부 게이트나 나타나는데 위병을 서던 근부자가 일반인이 들어 왔다며 신원 확인을 요구해 와 약간의 실랑이를 한 후 신원 확인 없이 무탈하게 통과 해 제도권으로 재진입하게 되었다.
당진전력문화홍보관은 당진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동서발전(주)이 지역주민들에게 전력산업에 대해 홍보하고 문화교류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었다.
내부 전시시설은 에너지관, 환경관, 지구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류가 불을 발견할 때부터 전기를 이용하게 되기까지의 역사와 전기에너지 생성과정을 볼 수 있다.
지구 환경과 미래 대체에너지에 대해 설명하고, 축소 설계된 발전설비와 전기시설 등을 전시하는데 단순한 설명판 대신 영상매체와 게임과 퀴즈 등을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흥미롭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이곳의 특징이다.
손을 갖다 대면 전기가 반응하면서 움직이고, 전기장에 따라 움직이는 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등 전기 에너지를 오감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교육적인 청소년 체험학습장이다.
당진화력본부 정문을 지나 걸어가니 우측으로 수준점이 보이고 사진에 담고 그쪽 방향을 보니 저 멀리 길게 펼쳐진 대호방조제가 보이기 시작한다.
대호방조제 끝의 도비도유양지에서 유람선을 타 보면 도비도를 출발한 배는 비경도, 대산정유공단, 대난지도와 난지도해수욕장, 소난지도를 거쳐 1시간 만에 도비도로 돌아오며 출항 시각은 정해져 있지 않고 대개 오전 11시부터 관광객이 모이면 수시로 운행한다.
충청남도 서해안에는 리아스식 해안이 사라진 자리에 방조제가 많이 만들어져 있는데 당진시의 석문방조제(길이 10.6 Km)와 대호방조제(길이 7.8 Km)도 대표적인 사례다.
이 두 개의 방조제 중간에는 봄이면 실치회로 유명한 장고항과 서해안에서도 일출을 볼 수 있는 왜목마을이 자리 잡고 있으며 대호방조제 끝의 도비도휴양지에서는 유람선 관광을 즐길 수 있어 하루 일정의 드라이브를 즐겁게 해 준다.
거의 일직선에 가까운 석문방조제를 벗어나면 장고항마을이 반긴다. 하늘에서 보면 마을의 지형이 장고처럼 생겼다고 해서 장고항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마을은 실치회의 본고장으로 뱅어라고도 불리는 실치는 너무 작아서 물 위로 나오면 곧바로 죽어 버리는데 오래가야 한 시간이고 한나절 지나면 썩어버린다.
그래서 실치회는 장고항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미가 됐으며 이곳 횟집들은 봄이면 실치와 주꾸미, 여름에는 우럭과 놀래미, 가을에는 박하지와 꽃게, 겨울에는 양식 우럭과 광어를 별미로 내 놓는다.
장고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더 가면 왜목마을에 닿는데 바다 쪽에서 마을을 보면 사람의 목처럼 잘록하게 생겼다.
그래서 와목이라고 하다가 왜목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
서북쪽으로 길게 이어진 지형적 특성 때문에 서해안에서도 일출을 만날 수 있다.
왜목마을 해변에서는 아산만을 수놓은 국화도와 매박섬, 입화도 등이 보인다.
당진화력본부에서 나와 좌측 도로를 타고 잠시 걸어가니 저 멀리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다가가 살펴보니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봤던 도랭이하우스 버스정류장이다.
이곳에서 잠시 기다리며 배낭 정리하고 방풍의를 거내 입고 있으니 얼마 기다리지 않아 10-4번 버스가 정시에 도착을 해 그 버스를 타고 어제 산행을 마치고 당진으로 나갈 때 버스를 탔던 용두리차부슈퍼까지 이동을 한다.
그곳에서 택시를 불러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애마를 회수할 수 있었다.
애마를 회수하고 나니 이제 오후 3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어 샤워도 못하고 도로가 막힐것을 걱정해 집으로 곧장 귀가하기로 한다.
생각보다 막히지 않는 도로를 타고 오후 5시가 되지 않은 시간에 집에 도착을 해 세차하고 귀가하니 오후 6시를 넘어가고 있어 기족들과 즐거운 반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고 나니 아직도 시간적인 여유가 넘친다.
지난 이틀간 당진으로 내려가 고산지맥 산행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기분 좋은 일주일을 새로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었던 연휴이었다.
이제 남아 있는 석문지맥이나 전월지맥 산행을 생각해 보지만 갑자기 다른 산줄기가 그리우면 그곳으로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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