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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고산지맥(금북·완)

고산지맥 제1구간 안국사지와 분기점에서 탑골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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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남도 당진시 고산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9년 03월 02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미세먼지로 조망이 없었으며 기온이 올라 초봄처럼 무척 무더위를 느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하 02도에서 영상 12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안국사지터-안국지-능선진입-시멘트포장도로-능선진입-내포문화숲길 이정표(봉화산 2.62 Km, 구은봉산 0.28 Km)-안전목책과 로프 계단-일출-은봉산(구은봉산, 266.1봉) 이정표(은봉산 1.3 Km, 서산시 여미리, 원당지 1.4 Km)-고산지맥 분기점 이정표(은봉산 0.89 Km, 구은봉산 0.38 Km)-비포장임도 이정표(은봉산 500 m, 구은봉산 800 m, 수당리, 덕삼리)-봉화산(은봉산, 300.8 봉, 벤취1)-293.1 사각정자봉-안국관찰대-황소고개(비포장 임도) 이정표(봉화산정상 0.6 Km, 은봉산정상 0.5 Km, 안국사 0.9 Km)-원당지 갈림삼거리 이정표(봉화대 100 m, 은봉산 900 m, 원당지 1.5 Km)-헬기장-봉화산 봉화대-봉화산솔바람길 이정표(사관정 1.9 Km, 봉화대 0.1 Km)-무명안부-벌목 후 편백나무 조림지-봉화산(206.9봉, 삼각점 당진436)-190.1 공터 무명봉-과수원 녹색철망-갈티고개(운정로 1차선 포장도로) 이정표(사관정 0.3 Km, 봉화대 1.8 Km)-사관정 갈림삼거리-사관정 육각정자 이정표(솔바람주차장 1.0 Km, 사관리 마을회관 1.5 Km) 이정표(솔바람길주차장 1.0 Km, 봉화대 2.1 Km)-감나무(?) 과수원-갈티길(2차선 포장도로)-벌목 후 편백나무 조림지-158.1 무명봉(지나온 마루금 조망)-122번 송전탑-은사시나무 군락지-갈골로(1차선 포장도로)-59번 송전탑-117.1 잡목 무명봉-독골고개(정미로 2차선 포장도로)-심팩메탈공장-대나무 숲-과수원 지대-156.8봉-7번 송전탑-118.1 무명봉-126.1 무명바위봉-송전탑-과수원과 농장지대-돌데미고개(몰데미고개, 천평로 1차선 포장도로)-벌목지-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102 공터무명봉-우측 벌목지-116.3봉(편백나무 조림지)-천의1지구공장지대-한국가스공사 당진지부 철망-발대기재(상구실로 2차선 포장도로, 일신케미칼)-비포장임도-지독한 잡목지대-156.6봉(송전탑)-채석장 절개지 등로-128 무명봉과 송전탑-성황당 안부-155.7봉-비포장임도-18번 송전탑-승황산(137.3봉)-갈림삼거리(길주의 구간)-156.8 벤취봉-이정표와 벤취쉼터2(정상, 팔각정자와 영랑사)-지독한 잡목지대-양파밭 경작지-성촌길(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밭 경작지-지독한 잡목지대-60.9 잡목무명봉-71 무명봉-정미로 2차선 포장도로(동진화학 CK&G, 서진기공, 당진솔담요양병원)-감나무 과수원-불남지역 무명봉(74.3봉)-벌목지대-밭 경작지-88봉-밤나무밭과 민가-함박골고개(당미로 1차선 포장도로)-65 무명봉-편백나무 조림지-구로2길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잡목지대-큰산(111.7봉)-지독한 잡목지대-88 무명봉-구로1길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118.3봉-운동로 1차선 포장도로(당진포3리마을)-군부대 원형철조망-고산봉(149.7봉, 군부대 내)-가짜 고산봉(123봉 깃대)-무명안부(군부대 경고판들)-125.1 삼각점봉(당진 21)-지독한 잡목지대-온동1길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효제요양원, 민가, 밭 경작지)-마을 상수도시설-절개지-85 무명봉-비포장 임도와 폐민가-이동통신탑-탑골재(고대로 2차선 포장도로, 당진포1리황토마을입구) 이정표(영전마을 1 Km, 황토권역센터 4.8 Km)-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3.09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접속구간 총 2.2 Km=안국사지에서 분기점까지 2.2 Km 포함)

산행트랙 :

20190302 고산지맥 제1구간 분기점-탑골재.gpx
0.14MB

산행시간 : 무더위와 모바일폰으로 사진을 찍다 보니 많은 시간 지체하며 여유롭게 진행하여 09간 39분 (06시 45부터 16시 23분까)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05:00 승용차로 집 출발

                               05:55 당진시 버스종합터미널 공영주차장 도착해 주차 (3,600.-)

                               06:10 당진시 종합버스터미널 근처 24시 김밥집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아침식사 (5,000.-)

                               06:40 택시로 안국사지입구까지 이동 (17,000.-)

                               06:45 고산지맥 산행 시작

                       올때 - 16: 23 고산지맥 제1구간 산행을 탑골재인 당진포1리 버스정류장에서 종료

                               17:00 탑골재 당진포1리 버스정류장에서 트럭 히치 하이킹

                               17:25 고대면 용두리차부슈퍼 앞 버스정류장에서 당진시내버스 10-4번 탑승 (1,350.-)

                               18:10 당진시 종합버스정류장에서 하차 후 자가용 회수 해 당진워터프리아 찜질방 투숙 (10,000.-)

                               19:30 엄니곰탕집에서 머리고기와 맥주로 저녁식사 (12,000.-)

                               20:00 당진워터프리아 복귀 후 취침 

고산지맥이란 ???

고산지맥은 금북정맥의 은봉산(282봉) 서쪽 0.4 Km 떨어진 무명봉에서 분기해 봉화산(305봉), 봉화산(205.9봉), 독골고개, 돌데미고개, 승황산(137봉), 큰산(112봉), 고산봉(153.8봉), 막고개, 국수봉(57봉), 삼봉산(66봉), 장승백이재, 석문산(80봉)을 지나 대호방조제 석문각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8.6 Km에 달하는 산줄기이다.

 

 

 

미세먼지로 조망이 없음을 아쉬워하였으나 나즈막한 등로에 불어오는 봄바람에 새로운 희망을 노래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주에는 금요일이 3.1절 휴일이기에 3일 연휴가 시작되고 원래 계획은 금요일과 토요일 산행 후 귀가해 일요일 하루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는데 3.1절인 금요일은 미세먼지가 전국적으로 경보 수준이고 또한 목요일 밤부터 갑자기 밀려드닌 업무로 인해 하루쯤 늦게 출발하기로 한다.

더욱이 옆지기가 장모님과 처제들과 함께 베트남 다낭 여행 후 귀국하는 날이기에 하루쯤 집에서 반가게 인사라도 나누고 출발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늦춘 일정일지도 모르겠다.

3.1절인 금요일 정신없이 남아 있는 잔무를 처리하고 산행 준비 후 잠자리에 드는데 새벽 일찍 일어나 산행 준비를 도와주는 옆지기의 도움을 받으며 나이들어 함께 한다는 것이 이런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읽어보면 대체로 무난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산같지 않은 산길을 진행하며 지독한 잡목과 가시로 고생하였기에 석문산 이후로는 별로 추천하지 않았지만 그곳까지 내려가 약간의 잡목과 가시로 인해 끝나는 석문각까지 가지 못하고 뒤돌아 내려오면 평생 후회가 될 것 같아 악착같이 그 끝자락까지 가기로 하였으나 결국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며 너무 힘들게 진행한 고산지맥 산행이 되고 말았다.

다만 일요일인 3월 3일에는 전국적으로 약간의 비 소식이 있었지만 비가 내리지 않고 봄이 온것 같은 무더위에 고생을 하였지만 무탈하게 완주 후 시내버스 시간이 잘 맞아 생각보다 일찍 귀가해 가족들과 저녁을 즐길 수 있어 다행이었던 시간이기도 하였다.

 

 

미세먼지가 약간 걱정이 되지만 날씨도 많이 춥지 않고 등로도 초반부에는 좋아 속도를 내며 진행을 하니 생각보다 편안한 산행길이 되고 있었지만 결국 상구실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발대기재의 공장지대를 우회하며 지독한 잡목과 가시로 인해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고 이어지는 거대한 채석장 절개지 위를 아슬하게 걸어 넘으며 상처난 마루금에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무탈하게 진행을 해 솔담요양병원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고 벌목 후 편백나무 조림지를 만나 그 정상에서 되돌아 보니 나즈막한 산줄기이지만 오늘 이 산객이 두 다리로 걸어 이어진 그 명맥을 확인했던 고산지맥 산줄기가 미세먼지 속에서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가슴속 깊이 그 멋진 풍경들을 쌓아 본다.

바로 이런 풍경과 느낌이 그리워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면서도 또 그 길을 택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마도 평생의 취미로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오늘 이 산객이 어렵게 걷고 있는 고산지맥이란 이름을 탄생시킨 나즈막한 149.7미터의 고산봉은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고 튼튼한 콘크리트 벽과 원형철조망으로 보호되고 있기에 접근조차 못하고 먼 발치에서 이렇게 그 아쉬움을 달래 본다.

너무나 힘들게 군부대 담벼락과 원형철조망 옆을 타고 조금이나마 더 가까운 거리에서 그 정상부를 보고 싶어 진행을 하지만 결국 아쉬움만 남겼던 고산봉이기에 그곳을 통과 해 오늘 산행 날머리 가까운 85.1 무명봉에서 뒤돌아 보는 풍경이 아쉽고 안타까움만 더하고 있다.

언제나 아름다운 강산에 군부대 철책으로 막혀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종료가 될련지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 희망을 가져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새벽 어둠을 뚫고 옆지기가 준비해 준 산행 시 먹을 간단한 식재료를 배낭에 넣고 텅 빈 고속도로를 달려 당진시 종합버스터미널 옆 공영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이제 5시 50여분이 지나고 근처 김밥집에서 간단한 김밥 한줄과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며 오늘 산행을 생각해 본다.

식사 후 곧바로 택시에 올라 안국사지로 향하는데 다행스럽게도 택시 기사님이 안국사지를 잘 알고 계셔 편안하게 도착을 하고 인사 나눈 후 여명이 밝기를 기다렸다 주위에 있는 안국사지터를 잠시 둘러보고 출발하기로 한다.

안국사지로 오르면서 진행방향을 살펴보니 남쪽 저 멀리 이제부터 올라야 할 은봉산이 밝아오는 여명에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이곳 주민들은 저 은봉산을 구은봉산이라 부르고 봉화산을 은봉산이라 부르고 있다는데 왜 그런지 궁금하기만 하다.

 

 

택시에서 내린 바로 우측으로 안국사지터가 남아 있고 안국사는 사라졌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석조여래삼존입상과 석탑이 남아 있어 아쉬움을 달래 준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니 안국사지는 고려시대에 번창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안국사의 터로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은봉산 중턱에 있다.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의 은봉산(안국산) 중턱에 있는 절터로서 안국사터의 앞면에는 돌로 쌓은 축대가 있고 터 안에 장대석과 주춧돌 3개가 남아 있으며 터 한쪽으로는 작은 옹달샘이 있고 그 뒤쪽에 기와 조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해미현조에 안국산에 안국사가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사찰의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백제 말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번창한 대사찰이라고도 하고 절 안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하는데 언제 폐사되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에 폐사되었다가 1929년 승려 임용준이 주지가 되어 일으켜 세웠고 그 후 다시 폐사되었다고 한다.

안국사지에서 동북쪽으로 약 500미터 지점에 안국사지 석불입상(보물 제100)과 안국사지 석탑(보물 제101)이 서 있고 그 뒤로 배바위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에 명문이 새겨진 당진 안국사지 매향암각(충청남도기념물 제163)이 있다.

어떤 이유로 언제 안국사가 세워졌다가 사라졌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문화재만이라도 잘 보존하여 그 가치가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해 본다.

 

 

안국사지터를 둘러보고 내려 와 남쪽으로 이어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걸어 내려가니 도로는 다시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그 임도를 타고 한동안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 앞으로는 민가인지 펜션들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안국지라는 조그만 저수지가 보이는데 강태공들이 밤을 새워 물고기를 낚기 위해 텐트를 치고 이 새벽에도 여전히 낚시를 즐기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텐트 숫자가 최소 10여동이 넘는 것 같아 놀랐던 시간이다.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올려다 보니 안국지 넘어 은봉산(현지에서는 구은봉산)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안국지 뚝방을 타고 지나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직진 방향의 능선으로 오르고 잠시 걸어 오르니 금새 방금 전 헤어졌던 시멘트 포장도로와 다시 만나 좌측으로 가파르게 올라가 본다.

국가지점번호에 대한 설명판을 읽어 보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는 이제 시멘트 포장도로를 좌측으로 보내ㅔ고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어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있는 능선으로 오른다.

잠시 편안한 길을 따라 오르니 내포문화숲길 아래 원효깨달음길이란 안내판이 보이고 그것은 이곳에서 이정표로도 사용되는지 그 아래에 구은봉산(실제로는 은봉산)까지 0.28 Km 거리라는 안내글이 보인다.

그곳에서 방풍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고 편안 펀안한 등로를 따르니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계단이 나타나고 잠시 후 등로 좌측 뒤로 미세먼지를 뚫고 올라오는 찬란한 아침 햇살을 맞이한다.


내포문화숲길 가야산 주변의 4개시군(서산시, 당진시, 홍성군, 예산군)이 내포지역에 남아 있는 많은 불교성지들과 내포 천주교 성지, 내포 지역의동학, 역사인물 및 백제 부흥운동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지점들을 옛길과 마을길, 숲길과 임도, 들길, 하천길을 따라서 연결한 충청남도 최초이자 최대의 장거리 도보트레일로서 약 320 Km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
내포문화숲길은 내포지역이 지닌 역사, 문화, 생태적 가치를 바탕으로 지금의 우리네 삶을 천천히 되돌아 보고 내포지역에서 살고 있고 또 앞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해 나가기 위한 나눔과 성찰의 순례길이다.

그럼 내포란 무슨 의미일까 ?

내포란 사전적 의미로 바다나 호수가 육지로 휘어 들어간 부분 즉 내륙 깊숙이 바다와 연결되는 물길을 통하여 포구가 형성되어 있는 곳을 의미하는데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저서 택리지의 팔도총론에서는 내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은데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리 쯤에 가야산이 있으며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을 함께 내포라 한다.

지세가 한 모퉁이에 멀리 떨어져 있고 또 큰 길목이 아니므로 임진과 병자의 두 차례 난리에도 여기에는 미치지 않았고 땅이 기름지며 평평하고 또 생선과 소금이 매우 흔하므로 부자가 많고 여러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 집이 많다.

위에서 언급한 가야산 앞뒤의 열 개 고을은 태안, 서산, 홍주, 덕산, 예산, 신창, 대흥, 청양, 결성, 해미를 칭하는 것으로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서산시, 당진시, 예산군, 홍성군, 태안군과 보령시, 아산시, 청양군의 일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지역이 내포에 포함되지만 유독 홍성지역에서 이 내포란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선호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오랫만에 제대로 된 일출을 만나지만 역시나 미세먼지로 인해 지평선을 한참 올라온 하늘에서 만나게 되어 조금은 아쉬움도 남지만 이렇게 새벽을 열며 그 아름다운 일출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계속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등줄기와 이마에선 벌써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하고 그렇게 그 땀방울을 닦으며 조금 더 힘을 내니 금새 이정표와 벤취쉼터들이 보이는 은봉산 정상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은봉산(266.1미터)은 충청남도 당진군의 정미면과 서산시 음암면 및 운산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263미터로서 북쪽으로 봉화산과 서쪽으로 간대산으로 연결된다.

산의 북쪽 기슭에는 안국사지가 있는데 백제 말엽에 창건되어 고려 시대에 융성하였던 대사찰이었다고 하며 석불, 석탑, 석축, 하수구 등이 남아 있어 사찰이 있었음을 입증하고 있으며 석불입상(보물 제100)과 석탑(보물 제101)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해미)에 현 북쪽 38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안국산이라고도 부른다.

왜 이곳을 현지 주민들은 구은봉산이라 칭하고 봉화산 하나를 은봉산으로 부르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은봉산(현지에서는 구은봉산)에서 잠시 사진 몇장 남기고 주위 잡목들로 인해 조망이 없기에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낙엽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고산지맥 분기점 방향으로 걸어 내려간다.

잠시 후 드디어 금북정맥 상 고산지맥 분기점에 도착을 하고 선답자들 산행후기에서 봤던 준희님의 고산지맥 분기점이라는 산패를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아 안타깝고 아쉬운 시간이다.

분기점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이정판에서 지나온 정상이 구은봉산이고 진행 방향으로 첫번째 만나는 봉화산이 은봉산임을 알 수 있었는데 왜 지도와는 다른 표기와 장소를 가리키고 있는지 궁금하다.

금북정맥 산행후기를 살펴보니 이곳을 2010년 10월 31일 날 지나면서 은봉산을 큰산(구은봉산)이라 적어 놨고 고산지맥 분기점은 언급조차 없는 것을 봐서 그때만 해도 이렇게 지맥 산행까지 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그 해 지독한 곤파스란 태풍이 불어 이곳 서해안 지방에도 많은 피혜가 있었으며 등로가 사라져 지자체에서 쓰러진 나뭇가지를 정리하며 잡목들을 일부 제거해 줘 고맙다는 인사를 한 것으로 봐 어렵게 진행하였던 금북정맥 산행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고산지맥 분기점 산패가 사라져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잡목 사이로 잠시 후 올라야 할 봉화산(현지에서는 은봉산)이 바로 지척으로 다가오고 어둠이 사라지며 조금은 제 본모습으로 돌아 오지만 여전히 미세먼지로 인해 깨끗한 조망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커다란 장승들 몇개가 보이고 등로 좌우측으로 덕삼리와 수당리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사거리가 보이는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

살펴보니 우측 수당리 방향으로는 방금 전 산행 들머리쪽에서 만났던 원당지가 있는 곳으로 그 원당지를 가운데 두고 남쪽으로 반바퀴 이상을 빙돌아 내려온 시간이었다.

 

 

그 임도 사거리를 통과한 후 조금 더 걸어가니 임도는 좌측으로 도망가고 등로는 직진의 긴 사각나무 계단으로 이어지는데 한동안 길게 이어지고 있다.

다시 등줄기에서 굵은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할 쯤 지도 상 200.8봉인 봉화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아무 표식도 없이 자연적인 바위 옆으로 벤취쉼터 하나만이 둥그렇게 놓여 있다.

이곳이 비로 현지인들이 은봉산이라 부르는 곳으로 왜 지도 상 봉화산을 은봉산으로 개명하였을까 알고 싶어 아쉬운 시간이다.

 

 

아무 표식도 없고 이정판도 없는 300.8미터의 봉화산(현지인들은 은봉산)에서 벤취쉼터만 남아있는 정상부를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사각정자가 보이고 그 바로 뒤로 벤취쉼터 하나가 보이는 293미터봉에 도착을 해 잠시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본다.

그곳을 지나 평이하게 이어지는 좋은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사각정자처럼 생긴 안국관찰대에 도착을 하는데 궁금해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안국관찰대는 조선시대에 맞은편 봉화산의 봉화대 봉화를 관찰하던 곳이라 한다.
안국관찰대는 안국사지를 지나 은봉산 정상으로 가는 중턱에 있는 정자로 주변 경관이 빼어나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고 안국관찰대의 현판은 채규선(신평면 거산2) 씨가 정자 준공 당시 휘호했다는 자료가 보인다.

안국관찰대라고 이름 붙인 것은 1999년 설치 할 당시 인근의 안국사(지)와 봉화산 봉화대의 유래를 살려 안국관찰대로 명명하였다라는 설명판도 보인다.

 

 

안국관찰대에서 내려가다 나뭇가지 사이로 잠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잠시 후 올라야 할 봉화산 봉화대가 저 건너편 봉우리에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고는 곧바로 내려가 본다.

그렇게 한동안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운동기구들과 이정표 및 현위치 안내판이 보이는 비포장 임도 갈림길인 황소고개에 도착을 한다.

황소고개는 251 미터봉과 지도상 봉화산 사이의 안국지와 돼지밭골지와 연결하는 고개를 황소고개라 하는데 황소바람이 불어 붙여진 이름인지 모르겠지만 왜 이곳을 황소고개라 불려지는지 자료가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오늘은 더욱이 바람도 없으니 이곳이 정말 황소바람이 넘나드는 황소고개가 맞는지 확인도 불가능하니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대신하고 출발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비포장 임도 갈림길인 황소고개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오르막 등로를 타고 숨가쁘게 걸어 오르니 생각보다 미세먼지가 심한지 다시 목구멍에서 기침이 시작되고 약간은 따갑기 시작하여 걱정이 되지만 심하게 감기가 걸릴 정도는 아니기에 참고 걸어 본다.

우측으로 원당지 하산 갈림 이정판을 지나 계속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헬기장이 나타나고 바로 그 뒤에 봉화산봉화대가 나타난다.

봉화산 봉화대는 조선시대 봉(횃불)과 수(연기)로 변방의 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하던 통신수단으로 봉화군은 2명 또는 3명이 교대근무를 하였는데 적의 침공 시 낮에는 연기로 통신하고 밤에는 불빛으로 통신하던 곳이다.

정미면 봉화산의 봉화대는 서산 옥녀봉 봉화대의 신호를 받아 당진 고산 봉화대로 전달되어 최종적으로는 서울 남산의 봉화대로 전달되었다고 전해진다.

미세먼지만 없었다면 시원하게 펼쳐진 환상의 조망을 즐기고 싶은 곳이지만 오늘은 희미하게 보이는 제한된 실루엣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알려 와 아쉬움만 남기는 봉화대가 되었다.

 

 

아무리 바빠도 잠시 봉화대 위로 올라 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위 풍경을 살펴보지만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조망과 풍경은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지나 온 남쪽으로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온 지도 상 봉화산이자 지역민들이 은봉산이라 부르는 봉우리가 바로 지척으로 우뚝하고 그 뒤 저 멀리 좌측으로 돌아가며 고산지맥 분기점과 은봉산(현지인들은 구은봉산으로 부름)이 미세먼지 속에 실루엣으로 다가 온다.

사진 몇 장 더 남기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짙은 박무와 미세먼지 속에 자모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도 어렴풋이 눈에 들어 온다.

아직 미답지로 남아 있는 자모산은 충청남도 당진군의 서부 대호지면 마중리와 정미면 산성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256미터로서 근처에서는 가장 높아 이곳에서도 이렇게 그 존재감을 과시하는 듯 보인다..

성산성, 성산, 산성, 감투봉, 재미산 등 여러 이름을 갖고 있는데 봄이면 산벚꽃이 뭉게구름처럼 장관을 이루는 이 지역 명산이라 하며 크고 작은 봉우리 둘이 나란히 있어서 마치 어미가 아들을 데리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조선지형도(당진)에는 당진읍치 남서쪽에 자모산이 확인된다.

산벗꽃이 피는 계절에 올라 모자처럼 보이는지 살펴볼 수 있기를 희망도 해 본다.

 

 

아쉬움 뒤로 하고 그 봉화산 봉화대를 내려 와 봉화산에 대한 설명판을 읽어 보고 이어지는 가파른 나무계단을 통해 내려가니 이정표도 보이고 곧이어 설명판에 쓰여진 시들도 보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 참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편백나무 조림지를 따라 오르니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만 덩그런히 박혀 있는 206.9봉인 또 다른 봉화산에 도착을 한다.

다만 너무 낮은 산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제대로 고지가 되지 않은 산이라서 그런지 이곳 고산지맥에 딸려 있는 산들에 대한 자료는 찾기가 너무나 어려우니 이 또한 다른 지맥 산줄기와는 확연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사진 한장 남기고 우측으로 편백나무 조림지를 두고 걸어 진행하다 우측을 살펴보니 방금 전 지나 온 마루금이 보이고 저 멀리 봉화산 봉화대가 우뚝 솟아 있는 풍경으로 가슴속에 남겨진다.

미세먼지 없이 날씨가 좋아 멋진 조망이었으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쉬어가며 환상적인 사진 몇장 남겨도 좋았을 것을 오늘은 이렇게 실루엣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하니 좋은 것만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운 시간이다.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고 무명안부를 통과하여 다시 오르니 좁은 공터가 보이는 190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그 무명봉을 넘어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드넓은 농장지대가 펼쳐지고 녹색철망이 쳐져 있어 그 철망을 타고 걸어 본다.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유실수 같기는 한데 이름을 알 수 없는 과수들이 식재되어 있고 분재형 소나무들도 보이는 곳을 지나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걸어 내려간다.

잠시 후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티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우측으로는 가사농원 안내판이 보여 방금 전 지나 온 농원이 가사농원이었을 알게 된다.

이곳의 갈티고개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는데 정미면 수당리와 매방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그 뜻을 유추를 해 보면 갈자는 갈현, 갈치, 갈령, 갈마치, 갈고개 등이 있으며 여기서 갈자는 가르다에 어원을 둔 말로서 나누는 분(), 또는 기()의 뜻이고 칡(갈, )자는 음차 표기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고개가 갈라지거나 길이나 물길이 나누어지거나 합해지는 경우에 갈자가 사용된 예가 많으며 고개의 경우는 능선의 안부를 이루는 곳에 붙여진 예가 많은 것으로 봐 이곳도 예전에는 제법 사람들이 넘나들기 어려운 고개는 아니었을까 유추해 본다.

이곳 갈티고개 역시 처음에는 수당리라 생각을 했었는데 매방리를 찾아 보니 그곳에 갈틔마을이 있으며 이 갈틔마을은 갈티 밑에 위치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이라 하니 실제 갈티고개의 지명은 수당리가 아닌 매방리였던 것이다.

 

 

다시 사관정까지 0.3 Km 남아 있다는 봉화산 솔바람길이란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등로가 펼쳐지고 그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우측으로 사관정이 올려다 보이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리 멀지 않으니 사관정을 들렸다 내려오기로 한다.

봉화산 솔바람길을 찾아보니 전체적인 노선은 난코스가 없는 평이한 노선으로 등산로 구간인 3.9 Km는 울창한 솔숲과 주변 경관을 즐기는 편한 등산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좋을듯 하며 이후 구간은 안국사지와 원동저수지등 주변 농촌의 한적한 경관을 즐기는 산책의 개념이 복합된 노선이다.

출발점이 마을 중간에 위치하므로 자주 설치되어 있는 이정표를 참고하여 솔바람길 시점 주차장까지 이동하고 주차장에 설치된 종합안내판에 자세한 노선 정보를 참고하며 노선 중간에 식수공급이 어려우므로 출발전 음용수의 준비는 필수적이다.

노선중 운동시설을 이용가능하고 조선시대 봉화터 및 국가지정보물 안국사지 석탑 및 석조여래입상이 있어 볼거리가 풍부하며 이에 대한 문화해설을 안내판으로 자세히 설명하였으므로 어린이의 동반시 역사 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

이곳 사관정은 경치 좋은 곳에 설치된 육각정자로서 사관리에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처럼 보인다.

사관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있는 리로서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며 사락골, 안사락골, 비석말골 등이 분포해 있고 마을 동쪽으로 대방들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구수골, 짓갓골, 사내 마을 등이 있는데 구수골 마을은 사래골 북쪽에 있는 마을이며 짓갓골 마을은 봉화산 북쪽 기슭에 위치한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사내 마을은 사관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사관정에서도 역시 조망이 좋은 곳처럼 보이지만 오늘은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진행 방향으로 약간의 조망만 살펴보고 곧바로 갈림삼거리로 되돌아 내려온다.

등로 우측으로 과실수 과수원을 두고 능선으로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좌측 벌목지로 이어지고 곧이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정미면 매방리 갈티로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좌측 아래로는 민가가 보이고 그곳에서 키우는 강아지 두마리가 이방인을 격하게 환영해 주고 있다.

갈티는 역시 매방리의 갈티마을에서 유래된 듯 보이는 도로명으로서 원래 이름은 갈틔마을이니 갈틔로라 하였으면 더 좋았겠다 싶은 느낌이다.

 

 

그 2차선 갈티로에서 진행 방향을 보니 다시 거대한 벌목지가 펼쳐져 있고 그 벌목지에는 키 작은 편백나무가 조림되어 있어 시간이 지나면 이 등로가 또 아떻게 변해 있을까 궁금해 지는 시간이다.

길지는 않지만 가파른 절개지 오르막 등로를 타고 어렵게 오르니 등로 우측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진행했던 마루금이 미세먼지 속에서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추억을 담아 본다.

공주와 논산쪽은 대부분 벌목 후 밤나무를 조림하였는데 이곳은 살펴보니 벌목 후 대부분 편백나누를 조림해 놔 지역마다 확연한 차이를 이루고 있어 흥미롭다.

 

 

다시 우측으로 돌아 활엽수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 있는 넓은 수렛길 같은 등로를 따르니 금새 122번 송전탑을 통과하고 곧이어 하얀 빛깔이 눈부신 은사시나무 군락지도 지난다.

한동안 넓은 수레길 같은 편안한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금새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골로에 도착을 한다.

갈골로 고개는 좌측의 정미면 도산리와 우측의 신시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도산리의 갈골이라는 마을에서 차용된 이름처럼 보이는데 도산리의 자연마을로는 갈골, 벌, 도욕골 마을 등이 있으며 갈골 마을은 방장골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높은 산도 없고 특이하게 유명한 것도 없으니 이렇게 이곳 지명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이름의 유래를 찾아 보는 재미도 있는 시간이다.

 

 

갈골로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접어 드니 이곳부터는 약간의 잡목들과 키 작은 소나무들이 진행을 어렵게 만들고 조심하며 헤치며 전진하니 59번 송전탑이 나타난다.

송전탑을 지나 조금 더 난해한 잡목들을 헤치고 진행하니 벌목된 나뭇가지들이 쌓여있는 무명봉을 넘어 금새 647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독골고개에 도착을 한다.

이곳 독골고개는 좌측의 정미면 천의리와 우측의 신시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독골고개 역시 천의1리에 있는 6개의 마을 중 독골이라는 마을 이름을 차용해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유추해 본다.

 

 

독골고개에서 능선을 타고 올라야 하지만 도로 양쪽으로 높은 철망이 쳐져 있어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고 그 철망을 넘는다 해도 곧바로 나타나는 심팩메탈 당진공장이 있어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647번 도로를 타고 좌측 천의리 방향으로 조금 진행을 하니 심팩메탈 정문이 나타난다.

경비원이 먼지를 쓸어 내기 위함인지 도로에 물을 뿌리고 있어 조심스럽게 들어가며 등산을 하러 왔다고 하니 몇번의 경험이 있는지 등로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정문을 가기 직전 좌측으로 임시주차장 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열려있고 그곳으로 가니 작은 주차장 지나 정원수를 키우는 곳을 지나 대나뭇 숲으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 대나무 숲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그물망이 쳐져 있는 비포장 임도를 지나 과수원이 보이고 그 과수원을 통과하니 오늘 처음 만나는 지독한 잡목과 가시지대를 만나 온 몸에 영과의 상처를 만든 후 어렵게 그 잡목과 가시나무 지대를 통과하여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간다.

그렇게 힘들게 걸어 오르니 돌담으로 군초소를 만들었던 듯한 돌담 두개가 나타나고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156.8봉이다.

잠시 간식과 물 한모금으로 무더위와 갈증을 달래고 진행 방향이 애매하기에 길을 찾아 조심스럽게 진행하는 시간이다.

 

 

이곳 156.8봉부터 갑자기 등로가 희미하게 사라지고 쓰러진 고사목들이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애를 먹고 길찾기에 고생을 한다.

조심스럽게 정상적인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금새 7번 송전탑을 만나고 그 송전탑을 통과하니 솔갈비가 등로에 가득 쌓여 있는 소나무 등로가 열려 있어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본다.

이제부터 높지 않은 무명봉과 무명안부를 차례로 통과하며 걸어가니 약간의 바위와 벗나무가 보이는 12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 본다.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번호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송전탑이 다시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진행 방향으로 약간의 조망이 터진다.

다시 억새와 소나무가 보이는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농원같은 곳이 보이고 그쪽 방향으로는 녹슨 철조망이 쳐져 있다.

조심스럽게 그 과실수가 심어져 있고 멋진 소나무를 가꾸고 있는 잘 정돈된 농원 안으로 들어가 진행을 이어가니 등로는 다시 가파르게 내려가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천평로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에는 이곳을 돌데미고개라 하였다.

도로 좌측의 천의리와 우측의 신시리를 이어즌 고갯마루인 돌데미고개를 찾아 보니 천의리에 돌땜이라는 마을 이름이 보이고 이 돌댐마을은 돌이 담처럼 둘러 있다는 의미에서 명명되었다고 하니 발음이 변해서 돌댐이 돌데미고개로 변형된 고개처럼 보인다.

 

 

돌데미 고개 좌측 앞으로는 민가로 들어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곳으로 들어가도 되겠지만 강아지 한마리가 얼마나 이방인을 격하게 환영하고 있는지 도저히 그곳으로 갈 수가 없어 다시 발목된 우측 능선으로 힘들게 오르니 최근에 벌목하고 있는지 포크레인도 보이고 산은 전부 벌목되고 파헤쳐져 걸어 진행하기에 무척 힘이 든다.

그래도 그렇게 힘들게 걸어 올라 민가가 내려다 보이는 정중앙으로 가 천의리 방향을 살펴보니 벌목된 현장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좌측 능선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나즈막한 마루금이 길게 이어지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후 벌목된 지대를 우측 능선으로 벗어 나 잡목 사이로 들어가니 다시 가시에 찔려 온 몸이 따갑기 시작하고 손가락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 나오기 시작한다.

따끔한 아품에 육두문자를 내밷어 보지만 그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지가 좋아 진행하는 산행이니 남을 탓할 수도 없이 온전히 몸으로 받아 들이며 힘들게 진행을 이어가니 금새 이름없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고 원 등로는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우측 바로 옆으로 잘 닦아 놓은 비포장 임도가 같이 가고 있어 잠시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 본다.

묘지 지대를 지나 원 마루금과 만나는 지점을 통고하고 조금 더 진행하니 좁은 공터봉에 도착을 하는데 102 무명봉이다.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편안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금새 다시 잡목 등로로 바뀌고 잠시 벌목되어 널부러진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드넓은 벌목지가 펼쳐져 있고 그 아래로는 봉생리의 미을이 조용히 앉아 있다.

살펴보니 이곳 역시 벌목 후 편백나무 조림지로서 잠시 후 최고봉인 116.3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우측 벌목지와 봉생리를 조망하며 아무 생각없이 진행하다 소득도 없는 짧은 알바를 하고 되돌아 올라 온다.

봉생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와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동쪽으로 역천이 흐르고 있으며 북쪽에는 국사봉과 작은 국사봉이 위치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봉생, 말우리, 장재울 마을 등이 있는데 봉생 마을은 부엉담이 있어 부엉담이 또는 봉담이라 불리다가 후에 봉생 마을이라 개칭되었고 말우리 마을은 장재울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며 장재울 마을은 장자(부자)가 살았다 해서 장재울 마을이라 불린다.

 

 

벌목지와 편백나무 조림지 및 일반 잡목이 우거진 경계를 타고 진행하다 등로는 다시 좌측 잡목이 우거진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어 등로 찾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잠시 후 내려가니 평이한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고 묘지 몇기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공장건물들이 빼곡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오늘도 작업을 하고 있는지 기계음이 간헐적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지도를 살펴보니 천의1지구공장지대로서 생각보다 많은 공장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다.

잠시 후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이제는 등로 우측으로 드높은 철망 위로 원형철조망이 보이는데 그 아래에는 가스 시설들이 보여 아마도 당진의 가스안전공사나 가스저장 시설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그 천의공장단지와 가시시설로 가로막힌 그 중간의 좁은 철조망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진행을 해 보는 시간이다.

 

 

무명의 정상부 철망에서 계속 그 철망을 타고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공터가 나타나는데 오래 전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있는 작은 창고와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고 주소를 보니 상구실로이다.

그곳을 지나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뚜렷한 등로를 따라 가파르게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상구실로의 발대기재에 도착을 한다.

원 마루금은 앞에 보이는 높은 담으로 쳐진 일신케미칼 방향으로 진행을 하여야 하지만 공장이 마루금을 완전히 막고 있어 좌측이나 우측으로 돌아 진행을 해야 하고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보니 대부분 우측을 추천하기에 말이 필요없이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 좌측으로 나 있는 넓은 신설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라 생각보다 잘 진행을 하였다.

다만 이곳을 발대기고개 또는 발대기재라 하였는데 좌측 천의리와 우측 봉생리 어느곳에도 발대기라는 지명을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발대기재에서 상구실로를 타고 우측으로 약간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뚝배기 전문점 식당이 보이고 곧이어 커다란 현대모비스 입간판이 서 있다.

그곳에서 좌측 위를 보니 일신케미칼의 높은 담벽이 끝나고 우측 아래에는 자동차공업사처럼 보이는 건물과 작업장이 있는 곳에서 좌측 능선 방향을 보니 최근에 개설된 듯한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열려있고 일단 그곳으로 올라가니 일신케미칼을 좌측에 두고 정상 마루금으로 오르는 정상 등로를 잘 찾은 듯 싶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오르니 묘지들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약간의 잡목들이 우거진 능선으로 들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계단이 보이는데 아마도 일신케미칼을 이 산객처럼 우측이 아닌 좌측으로 돌아 오르면 오를 수 있는 계단처럼 보인다.

다시 지독한 잡목들과 가시나무가 등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곳을 조심하며 천천히 통과하니 드디어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일신케미칼 공장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건물 뒤쪽으로 가파른 절개지도 보이기 시작한다.

참으로 힘들게 걸어 진행하며 진행 방향으로 올려다 보니 저 멀리 156.6봉과 그 옆으로 높은 송전탑이 보이는데 지독한 잡목들로 인해 그곳까지 오르는 일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지독한 산초가시들이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고 가느다란 잡목 가지들이 작은 회초리가 되어 온몸으로 사정없이 날아들고 있어 진행하면서도 홀로 육두문자를 쓰면서 그 아품을 참아 본다.

잠시 후 묵은 임도를 지나 짧지만 가파른 절개지를 타고 오르는 두 다리엔 힘이 풀릴 정도로 어렵게 기어 오르니 드디어 소나무들이 보이는 평이한 등로와 만나 진행하니 벌목된 나무들과 잡목들 그리고 잡풀 더미들이 혼재되어 있는 156.6봉에 도착을 해 자리를 펴고 앉아 준비한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 본다.

벌써 온 몸을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로 등산복은 흥건히 젖어 들고 있어 앞으로의 산행이 더욱 걱정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 156.6봉에서 배낭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준비한 빵과 과일로 허기를 면한 후 다시 출발하니 등로 우측으로 천길 낭떨어지 같은 절개지가 나타나고 그 아래에는 흉물스러운 거대한 채석장이 입을 벌리며 먹이를 해 치우듯 그렇게 자리하고 있다.

주말인 오늘도 작업을 하고 있는지 거대한 트럭들이 쉴새없이 드나들고 비산하는 먼지를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낙엽깔린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다 앞을 보니 잘려진 마루금 좌측으로 새로운 절개지가 펼쳐져 있고 건너편에는 128미터의 무명봉과 그 우측으로 높은 송전탑이 아슬하게 남아 있는 모습이 애처롭게 다가온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조심하며 걸어 내려오니 여름철 무성하게 자랐다 이제는 계절에 순응하며 숨죽이고 있는 잡풀지대가 길게 이어지는데 새로 잡풀들이 자라면 진행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등로이다.

그 등로를 타고 걸어가며 등로 우측으로 절개지 아래 드넓게 펼쳐진 채석장을 살펴보는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산행을 하면서 가장 심한 훼손을 본 것이 육백지맥이었는데 그보다는 작은 규모이지만 이곳도 산 하나쯤 순식간에 사라졌을 수 있음을 알기에 채석이 끝난 후 복원이라도 잘 해 줄 것을 바랄 뿐이다.

 

 

그 말라있는 잡풀등로를 지나 다시 칼등 능선을 타고 곡예를 하듯 걸어가는 마음이 긴장 된다.

좌측은 지독한 잡목들이 자라면서 등로를 좁혀 놓고 우측으로는 천길 낭떨어지 모양을 하고 있는 채석장의 절개지가 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패여 있다.

그 사이로 난 좁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는 마음이 불안하고 잘못하여 한번 떨어지면 지옥으로 향하는 열차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다.

칼등 능선을 어렵게 지나 다시 나타나는 가파른 절개지를 오르니 비닐이 덮혀있는 128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지나 온 방향의 156.6봉과 송전탑을 살펴보니 그곳은 벌써 저 멀리 멀어져 있다.

 

 

오늘 산행 중 첫번째 거대한 난관을 극복하고 무탈하게 채석장 절개지를 통과하여 다시 능선으로 진입하니 잘려진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고 잡목들과 가시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나고 있어 등로 찾기도 어렵지만 진행에는 더욱 난감하다.

그래도 굿굿하게 그 잡목지대를 넘으니 조금은 온순한 등로가 열리면서 잠시 후 커다란 활엽수와 나즈막한 돌무덤이 보이는 성황당 흔적이 보이는 안부를 통과한다.

성황당은 민속신앙으로서 예전에는 매우 중요한 신앙이였지만 이제는 그 신앙을 믿는 사람조차 사라지고 있는데 서낭당의 다른 말로서 서낭신을 모신 당집이나 제단이며 지방에 따라 할미당, 천황당, 국사당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서낭신은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으로 최근까지 전국에 널리 퍼져 있었으며 서낭당은 보통 신수에 잡석을 쌓은 돌무더기나 신수에 당집이 복합되어 있는 형태로 고개 마루, 길옆, 부락입구, 사찰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서낭당은 서낭신의 봉안처인 동시에 거소가 되는데 이 신은 천신과 산신의 복합체로 보여진다.

서낭신의 신앙에는 내세관이나 인간 정신세계의 이상 같은 것이 없고 현실적인 일상생활의 문제가 중심을 이룬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액, 질병, 재해, 호환 등을 막아주는 부락 수호와 인간의 현실적인 생계문제 해결에 목적이 있으며 신수에는 아이들의 장수를 위해 걸어놓는 헝겊조각과 상인의 장사를 잘되게 해달라고 걸어놓는 짚신짝 및 신랑신부가 새살림을 차릴 때 부모계의 가신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신부가 자기 옷을 찢어서 걸어놓는 색헝겊조각 등이 있다.

또 통행인이 길을 안전하게 가기 위해 돌을 주워서 돌무더기 위에 던지거나 침을 뱉는데 이는 길가에 배회하는 악령의 피해를 막기 위함으로 이처럼 서낭당은 현실적인 문제를 기원하는 곳이다.

정초에는 부인들이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가정의 평안을 빌기도 하는데 동해안 별신굿이나 강릉단오제는 규모가 큰 서낭제의 일종이다.

이 산객이 어릴적에도 이런 성황당에서 굿을 하던 기억이 생각 나 잠시 웃어 보는 시간이지만 이제 함께했던 부모님은 모두 천국으로 떠나 외로운 시간이기도 하다.

 

 

성황당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금새 129 무명봉에 도착하고 잠시 커다란 참나무가 등로에 줄지어 늘어선 멋진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후 소나무들이 보이는 155.7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사진 몇장 더 남겨 보는 시간이다.

오늘 산행은 좋은 등로와 잡목 등로가 완전히 대비되며 산행 시간을 종잡을 수 없게 만들고 있어 오늘 산행 후 당진시로 되돌아 가는 버스편이 걱정되는 시간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그 155.7봉을 지나 진행을 이어가니 금새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편안한 등로를 만나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해 등로 위에 있는 18번 송전탑 밑을 통과하고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소나무 등로에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나풀거리는 137.3봉의 승황산에 도착을 하는데 아무 표식도 없어 조금은 서운한 시간이다.

승황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였는데 정상에 올라 보니 정상도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있으니 승황산이 맞기나 한지 궁금하다.

 

 

아무 표식도 없는 승황산이고 조망도 없기에 정상부만 사진에 담고 곧바로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 180도 되돌아 오듯 진행을 해야 하는 길주의 구간이다.

주의 깊게 살피며 내려가니 몇미터 아래에 소나무와 바위들이 보이고 그곳에서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크게 꺽어 잡목 등로로 들어가니 저 멀리 선답자의 띠지가 흔들리며 어서오라 손짓으로 알려 준다.

한동안 커다란 소나무와 키 작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르니 벤취쉼터 하나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156.8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없어 곧바로 내려간다.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잠시 내려가니 목책과 벤취쉼터 2개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배낭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등로를 확인해 보니 우측의 팔각정자와 영랑사 방향을 버리고 좌측의 희미한 등로를 찾아 잡목을 헤치며 어렵게 내려가 본다.

내려 가기 전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나즈막한 산줄기가 파도를 이루며 넘실거리고 있지만 역시나 미세먼지로 아쉬움이 남고 오르지 못한 마루금에 대한 미련만 남기는 시간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잡목이 발목을 잡고 늘어져 어렵게 내려가 본다.

잠시 후 키 작은 밤나무 밭이 펼쳐져 있고 그곳을 따라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하얀 그물망이 쳐져 있다.

그 그물망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우측으로 밭 경작지가 펼쳐져 있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성촌길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곳은 옥현리인데 옥현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있는 리로서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개건너골과 압골 사이에 있고 마을이 구슬고개 밑이 되므로 구슬고개 또는 옥현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구로지, 낙동, 삼동, 삼포, 성말, 신동 등이 있는데 구로지는 옥현리에 가장 큰 마을이고 예전에 아홉 노인이 모여 살던 곳이라 한다.

삼포는 삼동 남쪽에 있는 마을로 포구가 되고 성말은 삼포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성터가 있었다고 하며 신동은 새로 생긴 마을이다.

 

 

좌측으로는 민가가 보이고 그 앞 뜰에는 아낙이 나와 잡초를 뽑고 있어 이제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다.

눈 앞에 있는 거대한 비닐하우스 옆을 지나 밭 가장자리를 타고 오르니 다시 능선이 나타나고 잡목으로 우거진 능선따라 걸어 진행하니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묘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활엽수 낙엽이 깔려 있는 등로를 타고 사면으로 걸어 내려간다.잠시 내려가니 눈 앞에 거대한 CK&G 건물이 눈앞을 가로막고 그 건물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니 64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정미로에 도착을 한다.그곳에서 649번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서진기공이라는 건물이 보이고 도로 건너편에는 2층을 올리는 공사가 한창인 당진솔담요양병원 건물이 나타난다.
그 당진솔담요양병원 정문 직전 좌측으로 짧은 절개지가 나타나고 그 절개지를 타고 올라 솔담용양병원 건물을 우측에 두고 걸어 오르니 과수원과 과수원 용 노란 물통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불난 흔적이 있는 벌목된 74미터 공터봉이 나타난다.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눈 앞으로 다시 거대한 벌목지가 나타나고 그 좌측 위로 96.6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그 벌목지대 경계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능선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지나온 고산지맥 마루금이 미세먼지 속에서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벌목지 정상으로 올라 되돌아 보니 아름다운 고산지맥 마루금이 열려있고 그렇게 잠시 조망을 즐긴 후 난해한 벌목나무더미를 헤치며 어렵게 내려가니 다시 희미한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밭 경작지가 나타난다.

추수가 모두 끝났기에 그 밭 한가운데를 통해 걸어 진행하니 또 다른 밭 경작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해 걸어가니 저 멀리 묘지지대가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묘지를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오르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힐링을 하듯 그 소나무 등로속을 걸어가는 시간은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다시 무심으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솔갈비 풍성한 걸음을 하니 소나무 한그루가 멋지게 서 있는 88봉에 도착을 해 잠시 흐르느느 땀방울을 닦으며 쉬어간다.

 

 

그 88봉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에 밤나무 밭이 나타나고 그 아래 민가들이 보이는데 주말을 맞아 가족들이 모여 고기를 구워먹는 모습이 참으로 한가롭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재빨리 그 밤나무 밭을 내려가니 민가 옆으로 당미로라는 주소가 보이고 곧이어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당미로에 도착을 한다.

도로 양쪽으로는 함박골버스정류장이 보이는 나즈막한 고갯마루이다.

 

 

당미로 함박골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을 통해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 등로도 넓은 수레길 같은 등로가 열려있어 편안하게 걸어 오른다.

잠시 후 묘지지대를 지나 최근에 공사를 한듯한 흔적이 있는 곳을 지나니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65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등로 우측으로 가 보니 최근에 조성된 듯한 묘지가 보이는데 그 묘지를 만들며 새로운 길도 만든 듯 보였다.

다시 소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 완만하게 내렸다가 오르니 거대한 벌목지에 편백나무를 조림한 장소가 나타나고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많은 땀을 흘리며 그 편백나무 조림지를 오른다.

 

 

잠시 오르며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옥현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잠시 전 살펴봤던 옥현리를 다시 한번 더 찾아 본다.

옥현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있는 리로서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개건너골과 압골 사이에 있고 마을이 구슬고개 밑이 되므로 구슬고개 또는 옥현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구로지, 낙동, 삼동, 삼포, 성말, 신동 등이 있는데 구로지는 옥현리에 가장 큰 마을이고 예전에 아홉 노인이 모여 살던 곳이라 한다.

삼포는 삼동 남쪽에 있는 마을로 포구가 되고 성말은 삼포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성터가 있었다고 하며 신동은 새로 생긴 마을이다.

고산지맥 산행이 아니라면 들릴 기회조차 없었을 옥현리를 바라보며 알게 된 것 만으로도 왜 산행에 오르는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등로 좌측으로 옥현리를 내려다 보고 우측으로 눈을 돌리니 진관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진관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중앙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동쪽에 들판이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진관, 계동, 관동 마을 등이 있는데 진관 마을은 백제 때 이곳이 당나라로 통하는 길이 되어서 행인을 도와주는 진관이 있었다 해서 진관 마을이라 불리고 계동 마을은 전에 큰 계수나무가 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관동 마을은 옛날 당나라 사신이 해상 왕래할 때 유숙하던 관 터가 있다는 의미에서 명명되었다.

문화재는 문화재자료 221호인 영랑사범종과 시도유형문화재 15호인 영랑사대웅전이 있다.

진관리 뒷편으로는 고대면 마을이 보일 것인데 오늘은 그곳조차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야속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 벌목된 편백나무 조림지를 따라 정상으로 오르니 소나무에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걸려있는 90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그 무명봉 넘어 산행을 이어가니 이제부터는 뚜렷한 소나무 등로가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어 잠시 힐링하듯 무심으로 걸어 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잡목들로 가득하고 어렵게 그 잡목들을 헤치고 내려가니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옥현리의 구로2길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안부인 구로2길의 시멘트 도로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벌목지대에 가시나무들이 자라면서 이 산객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기 시작하며 온 몸을 다시 난도질 하듯 조여 온다.

잠시 진행하다 등로 우측을 보니 저 멀리 고대면 마을이 보이는데 고대면은 충청남도 당진시 북서부에 있는 면으로 동쪽은 송산면, 북쪽은 석문면, 남쪽은 정미면, 서쪽은 남양만의 지만을 사이에 두고 대호지면과 접한다.

서부의 고산봉(164미터)을 중심으로 100미터 내외의 구릉이 있어 서고동저의 지형을 이루고 동부의 저지에는 논과 염전이 발달되어 있으며 북부의 석문면과 인접한 지역에도 간척에 의해 조성된 염전이 많고 논농사 외에 구릉지대에서는 잎담배를 비롯한 특용작물을 재배하나 농업은 미비하다.

문화재로는 영랑사 대웅전(충남유형문화재 15), 영랑사 범종(충남문화재자료 221), 대촌리 고분, 고산사지, 고산봉 봉수지, 진성지, 항곡리 성지 등이 있다.

잠시 후 잡목들이 보이는 102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잡목을 헤치며 힘겹게 걸어 전진하니 아무 표식도 없는 잡목이 보이는 111.7미터의 큰산에 도착을 한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보니 늘 만났던 준희님의 그 흔한 산패 하나 만나지 못하고 산행하기도 힘든데 오늘은 이곳까지 오면서 단 하나의 산패도 만나지 못하였으니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이곳 111.7봉인 큰산 역시 아무 표식도 없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다시 지독한 잡목 구간이 이어지고 힘겹게 그 잡목 구간을 빠져 나오니 밤나무들이 보이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한다.

다시 평이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고사목이 보이는 8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어 소나무와 잡목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라 참나무들이 보이는 93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그물망이 나타나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살펴보니 전선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구로1길에 도착을 한다.

이곳은 좌측으로 옥현리와 우측의 대촌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잠시 우측 도로를 타고 조금은 편안하게 진행을 하고자 하는 고민도 했지만 어짜피 일찍 내려간다 해도 특별히 할일이 없으니 시간 맞춰 내려가기 위해서라도 좌측 능선으로 올라 118.3봉을 통해 진행하기로 한다.

능선으로 오르니 납골묘가 나타나고 곧이어 이 고산지맥이라는 이름을 낳게 한 고산봉이 있는 군부대가 우측 앞으로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들어 가 확인할 수 없으니 저 군부대 철조망을 타고 또 얼마나 고생을 해야 통과가 될지 가늠조찰 할 수 없는 시간이다.

 

 

가까이 가 만나는 철조망과 군부대 담벼락이 아니라면 이토록 아름다운 고산봉이지만 역시나 보는 것과 만나는 것은 다름을 절실히 느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좌측에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또 다른 묘지를 지나 잡목속에 방치된 118.3봉에 도착을 하는데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닉을 사용하는 이경일님이 자신의 띠지에 이곳이 118.3봉임을 알리고 있다.

 

 

그 잡목으로 둘러 쌓인 118.3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우측으로 꺽어 이어지고 다시 잡목과 잡풀이 자랐다 말라있는 등로를 따르니 바로 눈 앞으로 군부대 내에 있는 고산봉이 손에 잡힐듯 다가와 있다.

다시 가시나무가 앞을 가로막는 어려운 등로를 헤치며 진행하니 대전차 방호벽 같은 것들이 보이는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온동로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좌측으로는 당진포리와 우측의 대촌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 역활을 하는 듯 보인다.

 

 

그곳에서 대전차 방호벽 같은 고갯마루를 지나 우측으로 넘어가니 도로 위에 이곳이 당진포3리마을이라는 글귀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좌측으로 보이는 비포장 임도같은 능선으로 올라 곧바로 희미한 등로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산행을 이어가 본다.

지독한 잡목과 잘려진 나뭇가지들이 발목을 잡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원형철조망이 가로막고 그 앞에는 과거지뢰지대라는 무시무시한 경고판이 붙어 있다.

드디어 오늘 이 산객이 걷고 있는 산줄기의 이름을 붙여 준 고산지맥 마루금의 고산봉을 오르지 못하고 옆으로 진행하며 안타까운 마음만 내려 놓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원형 철조망을 타고 좌측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잡목과 가시나무가 온 몸을 헤집고 그 고통에 몸부림을 치지만 어짜피 스스로 진행하지 못하면 갈 수 없는 길이기에 이를 악물고 진행을 이어가 본다.

원형 철조망을 넘었다 다시 넘기를 반복하며 드디어 우측 군부대 담장 곁으로 힘겹게 걸어 오르니 철조망 위 우 ㅓㄴ형 철조망 뒤로 군부대 건물과 그 우측 위로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고산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갈 수 없는 현실이 아프기만 하다.

고산봉(149.7) 정상(군부대 철조망)은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장항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49.7미터의산봉우리로 고산 또는 봉화산이라고 부른다.

세종실록지리지 당진 편에는 봉화 하나가 현의 북쪽 고산에 있는데 동쪽으로는 면천 창택산 봉수와 남쪽으로는 해미 안국산 봉수와 응한다 라고 적혀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당진 편에 고산이 현 서북쪽 22리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 당진 편에도 고산이 관아의 서쪽 20리에 있으며 덕산 가야산에서 왼쪽으로 떨어진 해미 봉생산에서 줄기가 뻗어 온다 라고 적혀 있다.

또한 봉수 조에 고산 봉수 동쪽으로 면천의 창택 봉수에서 신호를 전하며 남쪽으로 해미의 안국 봉수에서 신호를 받으며 서북쪽은 푸른 바다이고 관아의 서쪽 30리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해동 지도 당진 편에 고산면과 고산 봉대가 묘사되어 있고 1872년 지방 지도 당진 편에 고산봉이 묘사되어 있으며 충청도읍지와 대동지지에도 유사한 고산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옛 고산면의 지명도 바로 이 고산에서 유래했고 조선 지지 자료 당진 편에 고산이 고산면 고산동에 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명칭 유래를 보면 고산봉은 주변의 평야 지대에 비해서 높이 솟아 있어 고산이라고 불렀으며 옛 고산 봉수가 있어서 봉화산이라고도 불렀다.
자연환경으로 고산봉은 소나무와 잡목이 혼재되어 있다. 고산봉 정상에는 봉화대가 있었고 한국 전쟁 이후 미군 미사일 부대가 주둔하다가 1990년대에 철수하고 현재는 한국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접근이 금지되었다.

산줄기 이름을 만들어 준 고산봉 정상을 알현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마음이 아프고 서운하지만 그것이 또한 세상 살아가는 이치이고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현실임을 알기에 아픈 마음 어루만지며 잡목이 우거진 군부대 담벼락을 따라 힘겹게 걸어가니 드디어 그 군부대 철보아과 헤어지고 소나무 등로를 타고 123 무명 깃대봉에 도착을 하는데 어느 선답자가 고산봉을 오르지 못함이 서운했는지 이곳을 고산봉(?)이란 산패를 걸어 놔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들고 있다.

아쉬워 다시 한번 뒤돌아 보며 오르지 못하고 올려다만 봤던 군부대 내 고산봉을 한없이 바라다 본다.

 

 

그 123 무명봉을 지나 잠시 걸어 내려가다 우측을 보니 고대면 장항리 마을이 드넓은 들판의 모습으로 가슴속에 남겨진다.

진행 방향으로 올라야 할 마루금도 살펴보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군부대에서 설치한 경고판들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우측으로는 비포장 임도가 보이는데 그 임도가 바로 군부대를 우측으로 돌아 진행하게 되면 만나는 합류지점처럼 보인다.

그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약간의 잡목지대를 지나 우측으로 125.1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는데 보기 드물게 2등 삼각점인 당진 21 삼각점이다.

 

 

그 이등삼각점이 있는 125.1봉에서 다시 뒤돌아 나와 소나무 등로를 지나고 약간의 잡목이 보이는 무명봉도 넘으니 대선배님이신 죽천님의 최신 띠지도 보여 반갑게 인사를 전한다.

다시 지독한 잡목 구간을 지나 오르락 내리락 걸어 진행하니 등로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좌우로 진행이 되고 있어 길주의 구간이다.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80 무명봉에 도착을 해 법광님의 띠지에 인사 드리고 다시 그 무명봉을 출발한다.

 

 

평이한 활엽수 낙엽이 깊게 깔려 있는 등로를 타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금새 밭 경작지와 민가가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갈리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을 온동길이라 하였다.

많은 선답자들이 구간 나누기를 할 때 이곳에서 끊었는데 이곳에서 마무리해도 되지만 우측으로 200여미터 걸어 내려가 효제용양원쪽으로 내려가야 하기에 오늘 이 산객은 조금 더 걸어 탑골재에서 버스를 이용해 당진종합버스터미널로 이동을 하기로 한다.

이곳은 좌측의 당진포리와 우측의 장항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장항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이 석문호수의 상류를 끼고 자리잡고 있으며 부락지형이 긴 목처럼 생겼다 하여 진목 또는 긴목 즉 장항리라고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배다리, 분나루, 세거리, 서속사, 쇠편이 등이 있는데 배다리는 진목 서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는 마을이 앞 뒤로 바다가 들어와서 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분나루는 선교 남쪽에 있는 마을로 또다른 배다리가 있었다 하고 세거리는 선교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세 갈레의 길이 있다고 하며 특산물로는 배추가 있다.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4시를 막 넘어가는 시간으로 탑골재까지 간다고 해도 시간적으로는 충분할 듯 하다.

민가있는 방향으로 들어가다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마을상수도 시설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절개지와 토목공사를 하고 있는 공사장이 보인다.

그 좌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절개지 좌측 봉우리로 오르니 남양주 금곡님도 이미 다녀가셨는지 85 무명봉에 띠지 하나가 걸려 있어 인사 드리고 잠시 쉬어 간다.

 

 

85 무명봉에서 등로 우측 뒤를 살펴보니 방금 전 오르며 봤던 절개지 아래 토목공사중인 토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무슨 공단을 만들려는지 모르겠다.

그 토목공사장 뒤 저 멀리에는 효제요양원 건물도 보이고 그 뒤로 고대면의 아기자기한 산줄기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산행 날머리가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였기에 바쁘지 않게 여유를 가지고 걸어보려 노력하지만 마음은 괜시리 바쁘게 이동하면서 빨리 가자고 보채고 있으니 아직도 수양을 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본다.

 

 

그 85 무명봉을 지나니 지독한 잡목 구간이 다시 펼쳐지고 어렵게 그 잡목 구간을 통과하니 다시 활엽수 낙엽이 깔려 있는 평이한 등로로 이어진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데 그 임도 우측으로는 무너진 콘크리트 건물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듯 무심하게 서 있다.

그곳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잠시 후 거대한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기계가 돌아가는 기계음도 들리기 시작한다.

 

 

그 이동통신탑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금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대로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는 당진포리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배낭 정리하고 도로 좌우측을 살펴보니 좌측 앞으로는 당진포1리황토마을이라는 글귀도 보인다.

내일 아침에 진행해야 할 산행 들머리도 확인하고 이곳에서 잠시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 시간도 없고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어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지루하기만 하다.

당진포리는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있는 리로서 고대면 소재지에서 최 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양면을 대호호수가 감싸고 있다.

백제 때 당나라로 왕래하던 나루터인 당진포가 있으므로 수군만호가 주둔해서 이 지방을 보호하고 당진포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고산동, 사동, 만길동, 온동, 탱주막섬, 해창 등이 있는데 고산동은 고산봉 밑에 있는 마을이고 사동은 온동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물이 잘 나는 샘이 있는데 그 속에 큰 뱀이 살았다 한다.

 

만길동은 온동 북쪽에 있는 마을로 물이 잘 나는 샘이 있는데 그 속에 큰 뱀이 살았다 하고 온동은 당진포리 중앙에 있는 마을로 지대가 따뜻하다고 한다. 탱주막섬은 만길동 북쪽에 있는 섬마을로 현재는 연륙되어 있고 예전에 해상상인들을 위한 주막이 있었으며 해창은 조선시대에 바닷가에 조세 공납을 하던 해창이 있던 마을이다.

 

 

 

천하대장군과 천하여장군이라는 이정석이 서 있는 뒷편으로 내일 진행해야 할 산행 들머리가 보이고 이곳에서 한동안 기다려도 버스가 쉽게 오지 않을 것 같아 히치 하이킹을 시도해 본다.

하지만 연휴에 토요일 오후이다 보니 대부분 가족 단위로 타고 있어 히치 하이킹이 쉽지 않아 주로 트럭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니 드디어 용달 트럭 아저씨가 세워주는데 이야기를 했더니 고맙게도 고대면 용두리차부슈퍼 앞에서 당진시 가는 버스가 자주 오니 타고가면 편리하고 내려 주신다.

인사 드리고 그곳 용두리 차부에서 잠시 기다리니 드디어 10-4번 당진시 버스가 도착을 해 그 버스를 타고 20여분 만에 당진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해 무탈하게 애마를 회수 할 수 있었다.

 

 

 

 

 

 

 

 

애마를 회수 해 사전에 알아 두웠던 당진워터프리아 찜질방으로 가니 생각보다 크고 시설도 좋아 편안하게 샤워 후 추천해 주는 곰탕집에서 시원한 맥주 한병에 머리고기로 저녁을 해결하고 조금 이른 시간에 찜질방으로 되돌아 와 편안하게 쉬면서 충전기와 모바일 폰을 충전하며 잠이 들지만 조금 더운지 두어 시간마다 깨어나 깊은 자은 이룰 수 없었다.

 

그래도 온 몸에 생채기를 냈지만 생각보다 견딜만 하고 올 들어 2개월 간 열심히 운동을 해서 그런지 몸도 좋아 내일 산행도 기대가 되는 시간이다.
내일은 전국적으로 비 예보가 있는데 이곳 당진 지방은 비가 올 확률이 30%도 되지 않아 비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지만 산행 시간이 늦어지면 서울로 올라가는 도로가 막혀 고생할 것 같아 조금 일찍 산행을 시작해 일찍 귀경하기로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90302 고산지맥 제1구간 분기점-탑골재.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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