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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운문지맥(낙동·완)

운문지맥 마지막 제2구간 신곡마을(오치고개)에서 엄남천 합수점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8.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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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남도 밀양시 및 청도군 일대의 운문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8년 01월 28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추위는 조금 풀렸지만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어제보다 더 추웠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하 08도에서 영상 2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신곡리 새마버스정류장-시멘트 포장도로-오치고개 임도(운문지맥 마루금 복귀)-473 간벌목 무명봉-무명묘지2기-487 무명봉-545.6봉-

                용전리(저전마을) 갈림삼거리-바위암릉-614미터 조망처-바위암릉-소나무 등로-석문-용암봉(684.7미터, 정상석, 삼각점)-바위암릉-

                시루바위 전망-나무다리-683.2봉-전망바위-퇴적암바위-바위암릉-652 무명봉-전망바위-백암봉(681.2미터, 정상판)-바위 로프구간-무명안부-

                548 무명봉-디실재 안부-558.2봉-밭 경작지 안부-우측 송전탑-635 무명봉 이정표(희곡리, 중산2 800m)-중산(649.1미터, 정상판)-무명안부-

                현위치번호 밀양 보두.6 이정목-601봉 조망처-612 무명봉-601 조망처-561.7봉-현위치번호 밀양 보두.5 이정목-바위암봉 조망-바위 로프구간-

                바위암릉 조망-560 바위암릉봉-바위암릉 로프구간-전망바위봉-안전로프-현위치번호 밀양 보두.4 이정목-무명묘지1기-바위암릉 구간-

                이정표(석이바위 200m, 구름동네와 중산1 1200m)-537 무명봉-현위치번호 밀양 보두.3 이정목-낙화산(625.7미터, 정상석)

                이정표(노산고개 500m)-안전로프-철조망 구간-현위치번호 밀양 보두.2 이정목-보담산(561.7미터, 정상판) 이정표(낙화산 680m)-547 무명봉-

                조망바위-로프구간-이정표(보담산 350m)-바위암릉구간-바위로프구간-조망바위-451.5 묘지봉-바위암릉 구간-바위암릉 로프구간-바위암릉

                로프구간-현위치번호 밀양 보두.1 이정목-묘지1기-묘지지대-255 무명봉-묘지 조망-통덕랑일지손공 묘지-비암고개 안부-255 억새봉-

                271.2 바위봉-소나무 등로-묘지들-묘지 무명안부-고정1터널(대구 부산간 중앙고속도로 통과)-통훈대부밀성박공 묘지-무명안부(비암고개

                이정판)-무명묘지1기-바위암릉구간-301.9봉(304 준.희님 정상판)-소나무 등로-무명안부-전망바위-298.3 묘지봉(302.5 준.희님 정상판)-

                무명안부-비학산(317 미터, 정상석) 김해김씨 묘지-소나무 등로-전망바위-묘지지대-묘지 위 조망-남기리 정문마을(1차선 포장도로,

                밀성손씨와 창녕장씨 정려각, 비학산 종주 등산로 안내판)-산외로 1차선 포장도로-금천교 앞-성원식당-밀양대로 4차선 지하통로-엄남천

                합수점-산행종료

산행거리 : 신곡리 새마버스정류장에서 단장천 합수점까지 약 16.03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운문지맥 - 오치고개 임도에서 단장천과 밀양강의 합수점까지 13.43 Km

                접속구간 - 신곡리 새마버스정류장에서 오치고개 임도까지 02.60 Km

산행시간 : 중간에 약간의 사고로 인해 약 25분간 치료하며 천천히 완주를 목표로 행하여 06간 34분 (07시 17부터 13 52분까)

산행트랙 : 2018-01-28 운문지맥제2구간 오치고개(신곡)-동막 합수점.gpx

교통편 : 갈때-06:30 밀양 군내버스터미널에서 신곡행 첫 버스 탑승 (1,200.-)

             올때-14:50 남기리 정문마을 앞에서 밀양시 군내버스로 밀양시 군내버스정류장까지 이동 (1,200.-)

                     16:20 밀양시 버스터미널 앞 버스정류장에서 군내버스로 밀양역까지 이동 (1,200.-)

                     17:06 밀양역에서 동대구역까지 무궁화호 이후 동대구역에서 환승하여 서울역까지 KTX 입석 탑승 (39,200.-)

                     20:00 서울역에서 1호선 지하철 탑승 후 신도림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여 귀가 (1,400.-)

             약국비용 : 마데카솔과 스킨 밴드 1통 (6,000.-)

             목욕비 : 밀양시 버스터미널 근처 황토찜질방 (6,000.-)

             식대와 음료수비 : 밀양역 근처 돼지국밥 식당에서 돼지국밥과 맥주1병 (11,000.-)

                                      음료수 1병 1,700.-

             총비용지출 (차비, 샤워비 및 식대) : 68,900.-

운문지맥이란 ???

운문지맥은 영남알프스의 최고봉인 낙동정맥의 가지산에서 분기하여 서쪽으로 운문산, 억산, 구만산, 용암봉, 중산, 낙화산, 보담산, 비학산을 거쳐 밀양 긴 늪의 정문마을에 이르는 도상거리 약 36.82 Km의 산줄기이다.

운문지맥은 낙동정맥이 가지산에서 가지를 쳐 남서쪽과 서북쪽,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금천리로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34 km의 산줄기로, 가지산에서 시작하여 금천리에서 그 맥을 밀양강에 넘겨주고 있다.

이 산줄기를 따라가면 가지산(1241m), 운문산(1195m), 범봉(962m), 억산(954m), 흰덤봉(690m), 육화산(674.9m), 용암봉(686.0m), 백암봉(679m), 중산(649m), 낙화산(626m), 보담산(562m), 비학산(317m) 등을 만날 수가 있다.

이 산줄기의 남쪽에는 동천, 원서천, 단장천이 흐르고, 이 산줄기의 북쪽과 서쪽에는 신원천, 운문천, 동창천, 밀양강이 흐른다.



홀로 오르는 산행의 어려움을 느끼며 일찍 완주한 후 화마로 슬품에 빠져 있던 밀양시와 닮아 있던 마음으로 가슴 아파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어젯 밤 예상보다 늦은 시간에 산행을 마치고 신곡리 새마버그정류장에서 마지막 버스에 올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밀양시로 나와 허름한 여관에 짐을 풀고 근처 식당에서 돼지국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피곤이 밀려오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어 곤한 잠을 청하고 다시 새벽 3시에 일어나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찾아 읽어보며 시간을 보내니 오늘 하루도 벌써 새벽 5시를 넘어가고 있다.

닐양버스터미널에서 신곡으로 출발하는 새벽 6시 30분 첫버스를 타야 하기에 조금 일찍 여관을 나와 밀양시내를 돌아 다니며 열린 식당을 찾아 보지만 결국 문이 열린 식당을 찾지 못하고 24시 편의점에 들어가 햇반 하나와 컵 라면 그리고 김치 한봉지를 사 아쉬운 아침식사를 대신해 본다.


식사 후 그 24시 편의점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새벽 6시 15분 쯤 밀양시 버스터미널로 나가니 벌써 몇명의 사람들이 TV 시청을 하면서 새벽 일찍 출발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어 그들속에 끼여 잠시 TV 시청을 하니 이곳 밀양에서 발생한 세종병원의 화재가 주요 뉴스로 다뤄지고 있다.

앞으로는 제발 이런 후진국형 인재로 인한 인명손상이 없기를 바라며 밀양버스 터미널로 들어 오는 신곡행 버스에 탑승하며 많은 마을들을 돌고 돌아 결국 아침 7시 15분쯤 이 산객 홀로 어젯밤 늦게 버스를 탑승했던 신곡리 새마버스 정류장에 도착을 해 산행 준비를 하는데 신곡행 타고 온 버스도 이곳에서의 출발 시간을 맞추는지 회차 후 출발하지 않고 잠시 더 정차를 하고 있다.

그렇게 산행 준비 후 새마버스정류장을 출발하는 시간이 정확히 아침 7시 17분을 넘어가고 있는데 벌써 주위 사물들이 보일 정도로 여명이 밝아져 있어 하루해가 많이도 길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신곡리에서 길게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운문지맥 마루금으로 오르니 어젯밤 시간에 쫒겨 보이지 않던 아름다운 풍경들이 자꾸만 가슴속으로 파고들며 고운 추억들을 만들고 있다.

다시 조금은 거칠어진 마루금을 따라 상쾌한 아침 공기를 폐부속 깊이 들어 마시며 여유롭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드디어 첫번째 바위암릉에 도착을 해 등뒤로 살짝 보이기 시작하는 지나온 운문지맥 마루금과 그 우측으로 밀양시 산내면의 마을들을 살펴보는 시간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다시 진행을 이어가니 용암봉과 시루바위 그리고 683.2봉을 넘어 백암봉 가기 직전 바위봉에서 뒤돌아 보는 산내면 들판과 민가들 그리고 그 마을을 좌측으로 병풍처럼 길게 둘러치며 이어져 온 운문지맥 마루금이 환상을 노래하며 갈길 바쁜 이 산객의 발목을 붙잡고 조금 더 쉬어가라 만류하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와 퇴적암인 역암으로 이뤄진 바위음릉을 번갈아 타며 꾸준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드디어 중산 넘어 바위암릉에 도착을 해 그곳에서 잠시 준비한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며 쉬어 가기로 하는데 그 바위암릉 좌측으로 이제부터 걸어 하산을 해야 할 운문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저 멀리 밀양 좌측의 밀양강을 향해 달려 내려가고 그 끝자락에 비학산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 산줄기 양쪽으로는 좁지만 길게 이어지는 골짜기를 따라 농경지와 민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그 우측 저 멀리에는 최근에 화마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여 슬품에 잠겨있는 밀양시의 모습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주로 산행을 위해 자주 들렸던 밀양이지만 이렇게 제 모습으로 밝은 대낮에 보는 것은 거의 처음인듯 낯설게만 다가오는데 큰 슬품까지 더해져 가슴 아픈 도시로 기억될 듯 싶다.

 

새벽 6시 30분 밀양시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신곡해 버스에 오르니 손님이라고는 달랑 이 산객 혼자 타고 이곳 저곳을 돌고 돌아 아침 7시 15분 쯤 어젯밤 늦게 도착한 버스 종점인 신곡리 새마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잠시 산행 준비를 하고 있으니 이 산객이 타고 온 버스도 회차를 하고 시간을 맞추는지 출발하지 않고 잠시 대기를 하고 있다.

신곡리는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에 있는 리로서 평야로 이루어진 농촌마을이며 남동쪽에는 낙화산이 있고 동쪽과 남쪽을 제외하고 밀양강이 둘러싸며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기러기등, 절골 마을이 있는데 기러기등 마을은 지형이 기러기와 같이 생긴 산등성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고 절골마을은 옛날에 큰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행 준비를 마치고 배낭 둘러메고 어젯 밤 어둠속에 내려온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운문지맥 마지막 제2구간 산행을 시작하니 이 어둠속에왠 산행을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이 산객을 한번 처다보고 신곡행 첫 버스도 신곡리를 출발해 휭하니 비어 버린다.


작은 개울을 좌측에 두고 걸어 오르니 등로는 그 개을울 건너 도로 좌측에 보이는 팔각정을 지나 민가들 사이로 나 있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지난 밤 어렵게 내려 온 오치고개쪽 임도를 향해 곧바로 치고 오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니 마지막 민가들이 보이는 곳을 지나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입고 출발했던 방풍의를 벗어 배낭에 넣고 홀가분한 몸으로 조금은 빠르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오늘 이 산객이 산행을 출발한 신곡리가 저 멀리 내려다 보이고 민가에서는 아침밥을 짓고 있는지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기 시작한다.

다만 무슨 이유인지 오르다 보니 지난 가을에 수확하지 못한 감들이 감나무에 그냥 매달려있어 썩어가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고 구불구불 왔다리 갔다리 하는 도로를 직등로 오르려고 없는 등로를 개척하며 오르다 보니 힘은 힘대로 들고 산행 속도는 전혀 개선이 되지 않아 후답자들은 그냥 편안하게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치고개 임도로 오를 것을 추천한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숨이 가쁠 정도로 빠르게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이젭퉈 걸어 올라야 할 마루금이라 생각되는 산줄기가 멋진 모습으로 올려다 보이고 잠시 후 전봇대가 서 있는 운문지맥 마루금에 도착을 해 어젯밤 어둠속에 사라진 기억을 더듬으며 몇 장의 사진들을 남겨 본다.

산행거리가 선답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최소 15 Km에서 최대 19 Km쯤으로 나와 있고 산행 시간은 최소 6시간 30분에서 9시간 30분까지 나와 있기에 그 중간쯤 계산하여 약 17 Km에 7시간 30분의 산행시간을 예상하며 운문지맥 마지막 산행을 시작해 보는 시간이 정확히 아침 8시를 막 지나고 있는 시간이었다.


우측 능선으로 올라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약간의 바위 위와 옆으로 간벌된 나뭇토막들이 널부러져 있는 473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는 계속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로 진행이 되고 있다.

소나무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소나무 사니에 뿌리를 내리고 힘들게 살아가는 소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잡는데 어찌 그리 기구한 운명으로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그토록 어렵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안쓰러운 시간이다.

그곳을 지나 낙엽을 덮고 있는 무명묘지 2기를 통과하고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들이 보이는 487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가파르게 이어지는 오르막 된비알을 따라 등줄기에 땀이 흐를 정도로 빠르게 걸어 오르니 545.6봉이라는 준.희님의 이정판이 반겨주는 실질적인 오늘 산행 중 첫 봉우리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약간의 공터 위에 간벌된 나무토막들이 보이는 545.6봉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빠르게 출발하니 지도 상 오치고개라고 다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오치고개는 어젯 밤 지나 온 임도 위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던 오치령이라 표기가 되어 있는 곳이 맞을 듯 싶으며 오늘 마루금과 접속한 곳을 신오치고개라 부르는 듯 한데 그곳을 신곡고개라 부르면 어떨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소나무 등로를 타고 582 무명봉을 넘고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안부를 지나 오르니 바위 암릉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조심하며 그 바위 우측으로 돌아 진행을 하니 소나무 위 나무 판자에 좌측 방향으로 용전리(저전마을) 하산 갈림 이정표가 붙어 있다.

용전리는 경상북도 밀양시 산내면에 있는 리로서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면서 용암과 저전 및 오치마을의 차례로 지대가 점차 높아지는 산중 마을이며 이 마을의 경작지는 주로 용암 마을 앞을 흐르고 있는 동천가에 있고 저전 마을과 오치 마을의 고지대에도 전답이 분포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용암, 저전동, 오태 마을이 있는데 용암 마을은 용이 사는 굴샘(굴천)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저전동 마을은 이 일대에 닥나무(저)가 많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오태 마을은 오태고개의 산봉우리 모양이 까마귀가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전리 저전마을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판을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하니 바로 눈 앞에 다시 거대한 바위암릉이 가로막아 좌측으로 돌아 바위암릉을 타고 조심스럽게 올라 본다.

힘들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밀양시 산내면의 좁지만 길게 펼쳐진 농경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가운데로 흐르는 동천을 따라 민가들이 펼쳐져 있는 풍경이 한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 좌측으로는 어제부터 걸어 온 구만산과 육화산에서 이어져 온 운문지맥 마루금이 길게 이어져 있는데 구만산쪽 봉우리는 엷은 안개속에 묻혀 잘 보여주지 않고 있다.

경상북도 밀양시 산내면은 동쪽으로 울산광역시, 서쪽으로 상동면과 산외면, 남쪽으로 산외면과 단장면, 북쪽으로 청도군에 접하는 마을로서 남서부의 일부가 개방되어 있을 뿐 동부는 백운산, 서부는 용암봉, 남부는 정각산과 억산 및 운문산 등의 산지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다.

이들 산지로부터 발원한 소지류에 의해서 형성된 산내천이 면의 중앙부를 관류하면서 하곡을 형성하고 있고 산지가 많기 때문에 경지가 적고 농산물은 주로 맥류와 두류 및 서류 등의 밭작물을 생산하며 사과가 유명하다.

양잠업이 성하며 소와 닭의 사육도 성하고 면의 중심부를 밀양 방면의 도로가 달리고 있다.

문화재로는 밀양 남명리의 얼음골(천연기념물 224), 탁삼재소장유물(경남유형문화재 289), 탁삼재(경남문화재자료 257), 효자 김유부 비, 송백리 고인돌, 봉의리 고분, 빙곡 석조여래좌상 등이 있다.

오래 전 비슬지맥 산행을 하면서도 많이 들었고 또 실질적으로 와 봤던 산내면이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생각보다 크고 아름다워 마음속 깊이 그 모습을 간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한동안 그 바위음릉 위에서 지나온 방향과 산내면 들판을 살펴본 후 다시 약간은 거추장스럽게 달라 붙는 잡목들을 헤치고 진행을 이어가니 또 다른 바위암릉이 앞을 가로막아 좌측으로 돌아 조심스럽게 그 바위암릉을 올라 본다.

그 바위암릉을 지나니 등로는 환상의 소나무 등로로 바뀌고 잠시 힐링하듯 그렇게 무심으로 걸어가니 눈 앞에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자주 봤던 석문이 나타난다.

바로 뒤가 용암봉으로서 오늘 산행중 가장 높은 봉우리이기에 그 봉우리를 오르기 위해 통과해야 할 의식처럼 그 석문 사운데를 통해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그 석문을 통과하고 잠시 더 걸어 오르니 금새 동곡 334라는 번호가 새겨진 삼각점과 정상석이 서 있는 684.7미터의 용암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에 있는 용암봉은 해발고도가 686미터로서 육화산(615미터), 비학산과 철마산(630미터) 및 화악산(932미터) 등과 함께 경상북도 청도군과의 경계 지역에 솟아 있으며 신곡리 마을을 동남쪽에서 둘러싸고 있는 산세이다.
산행은 버스정류소에서 10분 거리인 매화리마을회관에서 시작하여 솔숲이 많은 소천봉 정상을 지나 억새밭이 있는 정상의 미군헬기장에 도착하고 하산길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왼쪽으로 6개의 암봉을 넘고 밥상 모양의 바위능선 네 곳을 지나 또 다른 미군헬기장으로 나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멀리 용전리마을을 왼쪽으로 바라보며 급경사를 따라 밤나무 농장 아래 괴곡새마을회관으로 내려가는 길로서 총산행 시간은 6시간 정도 걸린다.

넓은 공터로 이뤄진 용암봉 정상은 주위에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어 조망은 전혀 없기에 사진 몇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해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용암봉을 지나 진행을 이어가니 소나무 등로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그 소나무 등로를 타고 뭏상무념으로 걸어가니 다시 눈 앞에 거대한 바위 하나가 나타나는데 표면에는 솔갈비들이 떨어져 쌓이면서 마치 바위손들이 자라는 듯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 바위를 좌측으로 우회하며 살펴보니 봉긋한 바위 하나라고 보였던 곳이 바위 암릉으로 이어져 있고 이곳 역시 퇴적암의 일종인 역암의 모양으로 마치 시루떡이나 책장을 쌓아 올린듯 그런 모습으로 보인다.

다시 그 바위 사이로 설치되어 있는 로프를 타고 조심스럽게 오르니 드디어 바위 위에 도착을 하는데 그 한쪽 소나무 가지에 지나온 방향으로 용암봉을 그리고 진행해야 할 방향으로 문바위를 표시한 시루바위란 이정판이 보인다.

그곳에서 잠시 지나 온 방향의 운문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어제 걸어 온 육화산과 구만산 그리고 그 우측 저 멀리 하얀 안개속에 묻혀있는 북암산과 사자봉 그리고 억산 방향의 운문지맥 마루금이 환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곳 전망바위에서 한동안 많은 사진을 담은 후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나무 위에 시루바위라는 나무이정판을 만나고 그곳을 통과하니 굵지 않은 나무로 바위 사이를 이어 놓은 나무 다리가 놓여 있는데 약해 보여 조금은 위험부담을 안고 조심하며 그 다리를 건너 본다.

앞으로 진행해야 할 후답자들은 이 나무 다릐의 사용을 조심해야 될 것처럼 보이는데 다리르 건너지 않고 직접 두 바위 사이를 건너 뛰는 것도 부담으로 다가 와 고민이 되는 지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다리 나무를 지나 별 특징 없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금새 다시 683.2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준.희님이 이정판을 달아 놔 싶게 구분이 되는 봉우리였다.

이 봉우리 역시 소나무들이 정상 주위에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조망하나 볼 수 없기에 곧바로 출발하니 정상을 지나 내려가자 마자 많은 재선충 억제 및 방지를 위한 무덤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훈증을 하기 위해 약품 처리를 하였는지 오래 묵은 묵은지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코를 심하게 자극하는 구간으로 남았다.


많은 재선충 무덤들을 지나 다시 펼쳐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그 소나무 등로 아래에는 약간의 잡목들이 자라며 신경을 쓰게 만드는데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등로이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들을 우회하며 조금은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이번에는 등로 우측으로 상동면의 좁은 들판과 마을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마을 좌측 저 멀리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중산에서 낙화산과 보두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아래 송전탑이 나란히 이어지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상동면은 경상남도 밀양시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면으로 북쪽으로 청도읍과 접하고 있으며 면의 동서쪽은 용암봉과 옥교산으로 둘러싸인 산지이고 가운데는 밀양강이 흐르는 평야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8개의 법정리와 31개의 자연 마을이 있으며 면의 지명은 조선 초기 밀양도호부 시대부터 줄곧 사용되어 온 것으로 그 위치가 북동쪽(상동)이라고 한데서 연유하였다.

1884년(고종 21)에 행정구역을 정비할 때에도 그대로 상동면이라고 했으며 1912년 면 경계조정으로 사촌동은 경북 청도군에 청도군 용문동(현 고정리)은 상동면에 편입하였다.

신구대조(밀양)에는 옥산리와 고정리 등 8개 리를 포함한 상동면이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지형도(밀양)에도 낙동강 인근에 위치한 상동면이 나타난다.

잠시 진행해야 할 마루금을 살펴보고 몇 장의 사진에 담은 후 다시 빠르게 그 전망바위를 지나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더 살펴보고 출발하려는데 상동면 들판과 밀양강 넘어 저 멀리 청도의 옥교산에서 화악산과 남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주 가갑게 다가와 있고 특히 그 한가운데 일자로 높게 솟아 있는 화악산이 몇 년전 비슬지맥 산행을 하면서 나눴던 추억을 공유하자며 달려오고 있다.

그렇게 조망과 풍경을 조망한 후 다시 진행을 이어가니 다시 등로 앞에 거대한 역암이 가로막고 그 바위암릉을 자세히 살펴보니 철원의 금학산 오름길에 만났던 독수리 바위를 닮아 있는 듯 보이기도 하는 바위이다.

그 바위를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우회하며 걸어가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한동안 그렇게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거대한 역암들이 줄줄이 서 있는 거대한 바위암릉 구간과 만나 그 바위암릉을 좌측에 두고 우측의 우회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통과를 해 본다.


그 바위암릉을 지나 다시 만나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잠시 힐링하듯 걸어보고 잡목들이 보이는 65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지도를 살펴보고 출발한다.

잠시 후 다시 만나는 바위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산내면 들판과 가옥들 그리고 동천이 내려다 보이고 그 마을 좌측을 병풍처럼 둘러친 모습으로 어제부터 걸었던 운문지맥의 억산부터 이곳 마루금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너무나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이어져 오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한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이름을 불러주고 많은 사진으로 남겨 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억산 우측으로 운문산을 찾아 보지만 그 우측 앞으로 흐르는 산줄기에 막히고 그 운문산 방향으로 엷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어 그곳까지의 조망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소나무와 바위들을 지나니 금새 넓은 공터 위 소나무에 준.희님이 걸어 놓은 681.2미터의 백암봉이라는 정상판이 반겨준다.

백암봉에 관한 자세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는데 산외면 자료에 잠시 보여 올려 본다.

실혜산(가지산)의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내려와 백암산, 중산, 보두산에 이르고 산외면의 동쪽은 백암산의 정상인 백암봉을 중심으로 하여 산내면과, 서쪽으로는 보두산에서 내려온 비학산의 능선을 사이에 두고 상동면과, 남쪽으로는 단장천을 경계로 해서 단장면과 밀양시, 북쪽으로는 백암동, 중산, 보두산의 능선을 경계로 하여 각각 면계를 이루고 있다.

산외면의 뒤쪽으로는 큰 산이 둘러 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으며 산내면의 동천과 단장면에서 내려오는 단장천이 합류되어 단장천을 이루면서 산외면을 통과하여 의천강으로 흐른다.

이곳 역시 주위 나무들로 인해 막혀 있어 보이는 것이 없기에 정상부의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백암봉을 출발하자마자 등로는 바위절벽 아래로 이어지고 그곳에 설치된 로프를 잡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바위 아래에도 급경사 내리막 등로가 한동안 이어져 아주 힘들게 내려가는 시간이다.

잠시 후 바위너덜 등로도 만나 짧게 통과하고 잠시 참나무와 바위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지나 지나온 방향의 바위를 좌측으로 올려다 보니 거대한 바위들이 층층히 쌓여 있어 직선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우측으로 빙 돌아 내려오는 그런 형상의 등로였다.

잠시 후 재선충 무덤들이 보이는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고 다시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또 다른 무명안부를 지나 548 무명봉도 넘는다.

그 무명봉을 넘어 진행을 이어가니 약간의 잡목들과 커다란 참나무가 보이는 지도상 디실재에 도착을 하는데 주위를 살펴봐도 흔적이 남아 있는 고개처럼 보이지 않는 안부이다.

디실재는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도곡리 뒤실마을 뒷쪽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처럼 보이는데 마을 이름이 윗뒤실과 아래뒤실로 되어 있어 이곳 이름도 뒤실재가 아닐까 추측 되는 고개이기도 하다.

도곡리는 비교적 높은 지대에 자리잡은 산간 마을로서 북쪽으로는 소천봉와 동남쪽으로는 도덕봉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로 농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산촌이다.

자연마을로는 윗뒤실, 아래뒤실, 솔방 마을이 있는데 윗뒤실 마을은 아랫뒤실 동쪽에 있는 부락으로 용암봉 기슭에 있고 아래뒤실 마을은 윗뒤실의 서쪽이고 솔방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솔방은 송두리째라는 이 지방 사투리지만 이로 인하여 이 마을은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숨어 사는 곳으로 알려져 왔으며 솔방이 그대로 솔방마을이란 이름이 되었으며 특산물은 반시감이다.

이렇게 이곳을 지나는 등산객이나 종주대에 의해 한번씩 불려지는 것으로 그 고개 이름과 위치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흔적조차 사라져 우리의 고유 이름과 지명들이 모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으니 이 또한 시급하게 정비하고 보완해야 될 내용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디실재를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금새 다시 공터 위에 사초가 자랐다 말라 죽은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나뭇가지 위에는 준.희님이 이곳을 558.2봉이란 정상판을 걸어 놨다.

이곳 역시 사방이 소나무와 잡목들로 막혀 보이는 것 하나 없기에 정상부의 흔적만 사진에 남기고 곧바로 출발하니 갑자기 낙엽 깔리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쓰러진 커다란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상당한 방해를 받는 등로와 만난다.


뚜렷한 등로가 사라지고 낙엽이 깔리면서 길찾기에 어려움을 느끼며 방향만 보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낙엽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와 잡목들이 보이는 무명안부를 지나 눈 앞에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던 밭 경작지가 나타난다.

살펴보니 작년에도 밭 농사를 지었던 흔적들이 남아 있지만 잘 관리를 하지 않은 듯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밭 경작지로서의 역활이 끝난 묵은 밭 경작지처럼 보이는 곳이다.

등로는 그 묵은 밭 경작지로 내려가기 직전 우측 능선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이어가고 있다.


다시 만나는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잡목과 키가 큰 소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고 바위가 보이는 정상부로 오르니 등로 우측 아래 저 멀리 용암봉 근처에서 봤던 송전탑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송전탑을 살펴보며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낙엽 등로 우측 옆으로 송전탑을 설치할 때 사용하던 나무탁지인지 모를 썩어가는 나무탁자 하나가 보인다.

그곳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바위와 낙엽이 혼재되어 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변하면서 제법 거친 숨소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마와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숨가쁘게 오르니 등로는 조금 완만해지면서 자꾸만 직등이 아닌 좌측 사면 등로를 타고 진행하듯 올라가고 있고 그 사면 등로에는 많은 낙엽들이 쌓여 있어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도와 트랙을 계속 확인하며 맞는 등로인지 살피며 오르니 또 다시 등로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변하면서 깊은 낙엽이 쌓여 있어 두발자국 전진하면 한발자국 후퇴하기를 반복하는 등로로 변하고 있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어렵게 그 미끄러운 오르막 된비알 낙엽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드디어 공터가 나타나고 그 공터 한쪽에는 지나 온 방향으로 희곡리 그리고 진행해야 할 반대 방향으로 중산2까지 800미터 거리라는 이정표와 거리 표시가 보인다.

희곡리는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의 지대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뒤로는 백암산과 중산이 둘러 쳐져 있으며   동쪽으로는 백암산의 정상인 백암봉에서 한 줄기가 내려오고 있다.

서쪽으로는 중산에서 한 줄기가 동쪽으로 뻗어 내려와 용암산에 이르고 마을 앞으로는 동천이 흐르고 있으며 동천을 중심으로 양쪽에 들판이 형성되어 있고  동천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보라 마을이 있는데 보라 마을은 마을의 뒷산인 승학산이 비단처럼 둘러 싸고 있다고 하여 비단 나자를 써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등로는 중산2까지 800미터 거리라는 이정표의 화살표 반대 방향인 우측으로 180도 꺽어 진행되 듯 그렇게 진행되고 있으니 길주의 지점이기도 하다.


중산2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공터를 지나 우측으로 크게 휘어 진행을 이어가니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지만 약간의 잡목들이 등로를 침범해 방해를 하고 있다.

안부를 지나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그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빠르게 전진하니 금새 작은 자갈들이 정상에 나뒹굴고 있는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그 공터 우측의 커다란 소나무 가지에는 어김없이 준.희님이 이곳이 649.1미터의 중산이라는 정상 이정판을 걸어 놨다.

자료를 찾아봐도 제대로 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는데 대부분 중산이라 함은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산이라 불려지는 경우가 있어 이곳 역시 그런 연유로 불려지는 산 이름은 아닐까 추측도 해 본다.

이 중산은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도곡리에 있는 산으로 이곳 도곡리의 지명과는 관련이 없는 듯 보이기도 하다.


중산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잠시 살펴보니 등로 우측 앞인 북쪽으로 다녀오지 못한 소천봉이 보이고 그 산자락 중터까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 소천봉 좌측으로는 이제부터 올라야 할 낙화산이 높지는 않지만 제법 뾰족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그 뒤 저 멀리 청도의 비슬지맥 상 화악산과 그 우측 옆으로 이어지는 남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을 더 남겨 본다.

그렇게 조망을 하고 다시 그 중산을 출발해 완만하게 내려가니 커다란 참나무가 보이는 무명안부를 지나고 다시 낙엽이 수북히 깔려 있는 오르막 등로로 오르니 등로 옆으로 현위치 밀양 보두-6번 이라는 이정목이 서 있고 잠시 더 걸어 올라 전망바위 위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이제부터 걸어 내려가야 할 운문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저 아래 비학산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그 끝자락 우측으로 화마로 많은 인명 피해를 입은 밀양시내가 조용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뒤로는 종남산과 덕대산으로 이어지는 비슬지맥 산줄기가 그 옛날 추억을 들려주며 잠시 눈맞춤을 강요하고 있다.


등로 좌측 뒤로는 방금 전 지나 온 백암봉이 둥그런 넓은 품으로 아름답게 올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어제 하루 종일 그리움만 남겼던 실혜산과 영남알프스의 천황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진행 방향으로는 이제 낙화산이 바로 지척으로 다가와 있어 사진에 담아 보니 제법 뾰족한 형상으로 오르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듯 하다.

다시 진행 방향의 산줄기들을 살펴보고 지나온 산줄기 방향을 뒤돌아 보니 생각보다 첩첩 산중으로 이어지는 산그리메가 아름다운 운문지맥 마지막 산줄기의 풍경이다.


다시 커다란 소나무들이 칼등 능선 양쪽에 자라며 등로를 보호하듯 서 있는 아름다운 마루금을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뚜렷한 조망과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우측으로 보이는 조망처로 들어가 배낭 내리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감상하고 진행하기로 한다.

지나온 운문지맥 마루금을 우측에 두고 송전탑 아래 도곡리를 지나 바로 지척으로 올려다 보이는 소천봉이 가깝고 그 좌측으로 이름모를 산군들과 산줄기들이 끝없이 펼쳐지며 이곳 역시 오지중의 오지임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천봉 지나 저 멀리 어제 어렵게 걸어왔던 구만산과 육화산 자락이 보일듯 말듯 멀어지고 있어 그 그리움도 조금씩 커져만 가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동안 등로 우측의 601 조망처에서 소천봉과 어제 걸어 온 운문지맥 마루금을 확인하고 마루금으로 복귀해 잠시 걸어 가니 쓰러진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등로를 통과하고 다시 바위들이 보이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올라 가 본다.

잠시 후 커다란 소나무 위에 준.희님이 걸어 놓은 561.7봉이라는 이정판을 만나고 사진 몇장 남기고 출발하니 등로에는 제법 큰 바위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그 바위지대를 지나니 현위치 밀양 보두-5지점이라는 이정목이 서 있고 그곳을 지나 무명봉을 넘으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비학산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조망과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멋진 풍경들을 감상하고 출발하니 등로 옆으로 누군가 쌓아 올린 정성스런 작은 돌탑이 보이고 그 돌탑 위에 작은 돌맹이 하나를 올려 놓고 무탈한 산행을 빌어 봤지만 결국은 그 소원은 이뤄지지 못하고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던 아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작은 돌탑을 지나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고 다시 나타나는 바위암벽에 설치된 로프를 잡고 조심하며 내려가고 안부를 지나 다시 보이는 바위절벽에 설치된 로프를 타고 조심하며 그 바위 위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환상의 풍경이 다시 펼쳐져 있다.

지나온 마루금이 우측 뒷쪽으로 살짝 보이고 도곡리 넘어 소천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며 그 뒤 저 멀리 어제 넘어 온 육화산과 구만산 자락도 보일듯 말듯 멀어져 있다.

 

이제 등로 좌측 뒤를 살펴보니 방금 전 지나 온 중산부터 이곳으로 이어져 온 운문지맥 마루금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듯 큰 고도차이 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풍경이 환상적으로 다가온다.

그 마루금 위로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도 껴 있어 더욱 운치를 가미하는 시간에 시간을 보니 너무 일찍 하산할 것 같아 조금은 여유를 부리며 배낭 내려 많은 사진을 담고 지도를 꺼내 주위 산군들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한동안 그 바위암릉에서 주위 풍경을 살펴보고 이름도 찾아보니 허기가 지기 시작하고 준비한 빵과 과일 그리고 소시지로 허기를 달래며 등로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운문지맥의 마지막 산줄기와 밀양시내를 내려다 본다.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면서 방금 전 바위 암벽을 타고 내려갔다 다시 올라 와 만난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곳을 사진으로 남겨 본다.

이곳이 트랙상 560미터의 바위암릉으로 표기된 곳이다.


560미터의 바위암릉을 타고 조금 걸어가니 다시 바위절벽이 나타나고 그곳에 설치된 로프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 안부에 도착을 하니 눈 앞에 다시 오르막 바위절벽 위에 로프가 걸려 있어 그 로프를 타고 올라가 본다.

힘들게 오르니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낙화산 정상부가 어서오라 손짓하고 그 좌측으로 흐르는 운문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저 멀리 밀양강으로 달려가는 모습과 그 끝자락 우측으로 밀양시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는데 보이는 그림같은 풍경과는 달리 39명의 아까운 생명이 화마에 의해 희생된 아품을 간직한 도시가 되어 버렸다.


그 낙화산 좌측으로 흐르는 운문지맥의 마지막 산줄기가 비학산 방향으로 흐르는 풍경과 그 우측으로 밀양시 그리고 그 좌측 뒤로 올려다 보이는 비슬지맥 상 종남산이 옛 추억을 꺼내며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으로 다가 온다.

말이 필요 없는 조망과 풍경에 한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추억을 만든 후 그 운문지맥 마루금 좌측으로 산줄기를 따라 형성된 엄광리와 남기리 마을을 살펴보니 그곳 역시 한폭의 풍경화를 그려 놓은 듯 그렇게 이 산객의 두 눈과 마음을 완전히 빼앗아 버리고 말았다.

엄광리는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에 있는 리로서 삼면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농촌 마을이고 뒤로는 중산, 낙화산, 보두산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중산의 한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려와 꾀꼬리봉을 거쳐 화지산에 이른다.

서쪽으로는 보두산의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려와 비학산에 이르고 그 사이에 여러 산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여 엄남천을 이루어 남기리로 해서 응천강으로 흘러 간다.

자연마을로는 숲촌, 다촌 마을이 있는데 숲촌 마을은 마을 앞에 울창한 회나무숲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다촌 마을은 옛 엄광사의 다전이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이제부터 비학산으로 내려가며 계속 바라보며 진행을 해야 할 엄광리와 남기리이기에 마음속에 그 풍경을 넣어 두고 진행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바위암릉 위에서 지나온 방향을 살펴보니 중산갈림삼거리에서 중산을 지나 이곳으로 이어지는 운문지맥 마루금이 반원형을 그리며 너무나도 아름답게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다시 그곳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한동안 더 머물며 많은 사진 남기고 다시 천천히 출발하니 완만하게 이어지는 바위암릉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그 옆으로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로프를 잡고 조심해 내려가니 현위치 밀양 보루-4지점이라는 이정목이 보인다.

그 이정목을 지나 솔갈비를 뒤집어 쓰고 있는 납작한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고 다시 이어지는 바위암릉을 넘어가니 긍로 우측으로 구름동네와 진행 방향인 직진으로 석이바위까지 200미터 및 중산1까지 1200미터 거리라는 이정표를 만나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구름동네는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엄광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인 다촌마을 안당골을 밀양시에서는 안내판까지 세워가며 구름동내라고 표시하고 동내의 지대가 높아서 항상 구름에 가리워져 있다고 해서 구름동내로 표기한다고 홍보를 하고 있다.

노산재에서 상동면 도곡리로 옛날에는 넘나들었는데 요즘은 사람들이 안다니기 때문에 길이 없어져 도곡리로는 갈 수가 없고 안당골 마을로는 등산로가 있다.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눈 앞에 다시 거대한 바위봉 하나가 가로막아 우측으로 우회하며 통과를 해 본다.


거대한 바위봉을 우회해 통과하니 등로는 다시 그림같은 낙엽 등로로 변하고 그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바위와 소나무에 하얀색 페인트를 칠해 놓은 537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주위를 확인하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현위치 밀양 보두-3 지점이라는 이정목을 만나고 재선충 묘지들이 보이는 바위 등로를 따라 가파른 낙엽 등로를 따르니 금새 정상석과 이정표가 서 있는 해발고도 625.7미터인 낙화산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경상남도 밀양시의 산외면 엄광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626미터이고 밀양시의 상동면과 경계를 이루며 인근에 보담산과 중산 등 여러 봉우리들이 늘어서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이칭으로 낙화듬이 기록되어 있는데 산의 최고봉은 낙화암이며 임진왜란 당시 민씨 성을 가진 부인이 붉은 옷을 입고 산으로 피신했으나 끈질긴 왜군의 추적에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자 절벽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는데 그 모습이 한 송이 꽃봉오리가 떨어지는 듯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또 산의 형세가 떨어지는 꽃과 같다고 하여 부르는 지명이기도 하다.

왜 갑자기 부여에 있는 낙화암이 생각이 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추억 한장 남기고 방금 전 올라온 방향으로 조금 내려 가 살펴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운문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뒤 저 멀리 어제 걸었던 운문산과 가지산 줄기도 살짝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하여 한동안 그곳에 머물며 다시 산 이름을 찾아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한동안 그렇게 지나온 방향의 운문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다시 낙화산 정상으로 올라 와 이제 진행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니 진행 방향으로 보담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하고 그 운문지맥 산줄기 우측으로 밀양시 상동면 금산리와 가곡리 뒤로 밀양강이 보인다.

그 밀양강 뒷쪽으로는 옥교산이 올려다 보이는데 저 옥교산은 앞으로도 올라 볼 기회나 있을지 모르는 산이기에 그 모습을 가슴속에 남겨보는 시간이다.

이제 운문지맥 산행도 그 끝자락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밀양강 줄기이기에 조금 더 힘을 내 보는 시간이다.


잠시 살펴보고 출발하다 다시 한번 밀양강과 옥교산 넘어 제법 높게 올려다 보이는 멋진 산줄기가 있어 지도를 살펴보니 바로 화왕지맥과 열왕지맥 그리고 왕령지맥들이 이어지는 창녕쪽 산줄기로서 앞에 보이는 산줄기는 오래 전 화왕산 환종주를 하면서 영취산 산판도로에서 길을 잃어 어둠속에 부곡온천 근처까지 내려갔다 어렵게 민가를 찾아 택시로 탈출했던 곳이기에 이렇게 살펴보는 시간이 믿기지 않는 순간이다.

화왕산 억새밭에 불을 태우는 행사를 하다 매바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그 다음해에 지도 한장 달랑들고 5개산을 돌아 내려오는 환종주를 잘 그려 놓고 결국 마지막 영취산에서 어둠속에 올바른 등로를 찾지 못하고 산판도로의 유혹에 빠져 헤맸던 그 시절이 지금 생각해도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르지만 그 열정만큼은 누구도 말릴 수 없었던 좋은 시절이었다고 기억되는 시절이었다.

그렇게 오래된 추억을 더듬으며 저 화왕지맥과 열왕지맥 그리고 왕령지맥은 또 언제나 오를 수 있을지 아쉬움을 달래고 다시 이어지는 로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바위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내려가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이곳 역시 재선충 무덤들이 즐비하게 널려있고 잠시 더 오르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녹슨 철조망 두가닥이 보이고 그 철조망은 한동안 등로와 함께 진행을 하고 있다.

잠시 후 현위치 밀양 보두-2 지점이라는 이정목을 지나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이정표 위에 561.7미터의 정상판이 보이는 보담산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이 바로 이정목 상 보였던 보두산 정상이다.

보두산(일명 보담산)은 경상남도 밀양시의 상동면 가곡리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562미터이고 산외면 엄광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비암고개 동북쪽으로 솟아 있는 산봉우리로 낙화산으로 이어지고 산아래에는 동천의 지류가 흐르면서 만들어진 인공수원지인 엄광소류지와 가곡저수지 등이 형성되어 있다.
이 산의 이름은 옛날에 보담 노장이라는 천문지리에 능통한 감여가의 전설에서 유래하며그 내용은 보담 노장은 옛날 중국 왕족이었는데 나라에 죄를 지어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하였다.

이 산에 산성을 쌓고 암자를 지어 평생을 고독하게 지내다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였고 따라서 이곳에는 보담 노장과 관련된 전설이 많이 남아 있으며 특히 가곡동에 있는 볼수바위에 큰 발자국터가 남아 있는데 이것이 보담노장의 것이라고 한다.

그가 걸음의 자국을 남길 때마다 북두별을 상징하는 두자를 함께 남겨서 이곳이 보두산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산의 정상에는 평평한 성채가 제법 길게 남아 있어 성터가 완연하고 성터 북쪽 등성이에 있는 바위가 문바위로서 이 바위 앞을 지나지 않으면 산을 오를 수 없다고 하여 문지기바위라고도 한다.

보두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 읽어 보니 문바위가 있었다는데 어느 바위를 말하는지 확인도 못하고 진행해 왔음이 아쉽기만 하다.


보두산 정상도 역시 나무들로 시야가 전혀 없기에 조망을 포기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하니 억새 능선에 커다란 참나무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다시 관목 등로에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547 무명봉인 바위봉을 지나니 진행 방향인 남쪽으로 운문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나뭇가지 사이로 아름답게 길게 이어져 있고 그 마루금 좌우측으로 좁지만 길게 이어지는 밭과 논 경작지들이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리며 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잠시 후 로프구간을 지나 보두산 정상에서 350미터 진행해 왔다는 이정표도 통과하고 걸어가니 거대한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주의하며 그 바위암릉으로 오르니 또 다시 바위절벽이 보인다.

그 바위절벽에 설치된 로프를 잡고 조심해 오르니 다시 그림같은 조망과 풍경들이 갈길 바쁜 이 산객의 발목을 붙잡고 잠시 쉬었다 가자고 조르고 있다.


등로 우측으로 상동면 마을과 밀양강 그리고 그 뒤로 화왕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그 좌측으로 눈을 돌리니 가곡저수지 지나 화마로 인해 많은 인명 피해를 입어 슬품에 잠겨 있는 밀양시가 보인다.

지나 온 방향을 살펴보니 방금 전 넘어 온 낙화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 돌아가며 중산으로 이어지는 운문지맥 마루금이 병풍을 두른 듯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 아래 엄광리 마을의 한가로운 풍경이 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며 어릴적 살았던 시골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그렇게 주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며 잠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발에 무엇인가 얇은 것이 걸리고 그것 때문에 앞으로 고꾸라지는데 바로 앞에는 뾰족한 바위와 그 뾰족한 바위 넘어 좁은 너럭바위가 보여 무의식적으로 얼굴이 바위에 부딪히는 그 사이로 장갑을 낀 왼손을 집어 넣어 일단 얼굴을 보호해 본다.

얼굴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잠시 그 작은 너럭바위 위에 앉아 있는데 오른쪽 정강이에 통증이 느껴지고 등산바지를 올려보니 뼈가 보일 정도로 깊게 패인 상처 위로 분수같은 붉은 피가 솟구치기 시작한다.

어렵게 그 상처를 눌러 피가 흐르는 것을 막고 20여분 기다리니 드디어 피가 멈추고 그곳에 밴드를 붙이니 피는 나지 않지만 진물이 흐르기 시작하며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는데 상처에 비해서는 통증이 심하지 않아 다행이다.

오랫동안 홀로 산행을 했지만 이렇게 어이없이 고꾸라진 것은 처음이고 그것도 바위 위에 위험하게 넘어져 살펴보니 가느다란 넝쿨식물의 덩쿨 한줄기가 발에 걸려 넘어지게 된 것이었다.

이런 상태로 산행이나 가능할지 또 오늘 산행은 완주나 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몸 상태를 확인해 보니 상처가 깊게 난 오른쪽 정강이 뼈 부근에 약간의 통증과 함께 부어 있지만 걸어 산행을 이어가는데엔 큰 무리가 없어 조심하며 천천히 다시 걸어 보니 스스로에게 한심하고 또 왜 이러고 다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피식 웃어 보는 시간이다.

바위암릉 구간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바위 아래 납작 묘지 한기가 보이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인 남쪽을 살펴보니 이제 비학산까지 이어지는 운문지맥 마루금이 일직선으로 길게 내려가는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다리에 큰 무리는 없지만 그래도 조심하며 속도를 늦춰 천천히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이제부터 가파른 내리막 바위 암릉이 이어지고 네발을 이용해 조심하며 천천히 바위를 잡고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갔다 바위를 타고 오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에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조심하며 내려가니 공깃돌 같은 커다란 바위 하나가 눈길을 끌고 그 우측의 바위암릉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니 바위 안부를 지나 다시 바위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등로를 따라 로프를 타고 올라가 본다.


로프를 잡고 올라 언덕을 넘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현위치 번호 밀양 보두-1 지점이라는 이정목을 만나고 드디어 지독한 바위암릉 지대를 벗어나 가파른 소나무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잘 관리되지 않는 납작 묘지 한기를 지나고 멋진 소나무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아 잇는 사면 등로를 타고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억새가 자랐다 말라죽은 묘지지대를 지나 무명안부를 넘어간다.

그 무명안부를 지나 255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내려가니 묘지가 다시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앞으로 올라야 할 비학산까지의 봉우리 세개가 일렬로 솟아 있어 내려가면서 빨래판 등로를 연상시켜 더욱 이 산객의 마음을 억누르기 시작한다.


제법 많이 걸어 내려 와 이제는 조금 편안하게 진행이 될줄 알았는데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바위암릉도 많고 등로도 오르고 내리는 빨래판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조금은 힘에 부치는 시간이 되고 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통덕랑일직손공 묘지가 보이는데 그 직책에 비해 묘지는 관리가 되지 않아 무너지고 있었다.

통덕랑이란 직책은 조선시대 문신 정5품 상계의 품계명으로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가 제정될 때 정5품 상계는 통덕랑, 하계는 통선랑으로 정하여져 경국대전에 그대로 법제화되었다.

정5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검상, 정랑, 지평, 사의, 헌납, 시독관, 교리, 직장, 기주관, 찬의, 별좌, 문학 등이 있고 일반적으로 통덕랑 이하는 낭품계로서 사라고도 불렀다.

통덕랑은 향리들의 한품으로서도 중요하며 향리의 호장들이 스스로 통덕랑이라 자처하였다는 것이나 토관계의 한품이 정5품이었던 것도 이것과 관계가 있다.

그 묘지를 지나니 약간의 잡목들과 커다란 활엽수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당산나무와 돌무덤이 보이는 비암고개 안부에 도착을 한다.

비암고개는 산외면 엄광리 숲촌에서 상동면 가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옛날 서낭당의 흔적이 보이는 고개이며 아직도 사람들의 왕래가 잇는 듯 보였다.


그 비암고개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가파른 오르막 마루금으로 변하고 그렇게 숨을 헐떡이며 오르다 보니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곳에서 잠시 심호흡 한번 내쉬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오며 위험한 바위암릉을 내려왔던 낙화산과 그 아래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조금 더 힘을 내 오르니 억새가 하늘거리고 그 옆으로 바위들이 보이는 255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지나온 마루금을 조망한 후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아주 가까운 거리에 바위봉이 올려다 보인다.

그 바위봉이 보이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 오르니 드디어 272미터 바위봉에 도착을 해 일망무제로 펼쳐진 조망과 풍경을 즐겨 본다.

그 271.2(272)봉 바위봉을 지나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낙화산과 우측으로 중산까지 이어지는 운문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많은 추억을 남겨 본다.


그렇게 지나온 방향을 올려다 보고 그 마루금 좌측을 살펴보니 대구 부산간 중앙고속도로 상 고정2터널 입구가 빤히 내려다 보인다.

중앙고속도로는 한반도의 동부내륙을 가로지르는 총연장 280 Km의 4차선 고속도로로서 지난 1989년 시작해 12년만인 2001년 12월 14일 전구간이 개통됐다.
춘천에서 시작해 홍천 원주 제천 단양 영주 안동을 거쳐 대구에서 끝나는데 영동고속도로 83 Km 지점인 만종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와 교차하고 경부고속도로 288 Km 지점인 금호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와 만난다.
중앙고속도로는 지난 70년대 초반 국가기간 고속도로 건설계획의 일환으로 마산에서 원주에 이르는 노선을 구상했다가 1차로 대구에서 마산 간을 77년 개통하고 난 나머지 구간이 3단계로 나눠 추진됐다.
1단계 구간인 대구에서 안동(87.5 Km), 제천에서 원주(37.6 Km), 홍천에서 춘천(26.2 Km) 등 151.3 Km는 89년 10월 착공해 5년 10개월의 공사 끝에 95년 8월 왕복 2차로로 개통된 뒤 2000년 6월 또다시 4차로로 확장 개통됐다.
2단계 구간인 안동에서 영주(25.5 Km), 영주에서 제천(60 Km), 원주에서 홍천(43.2 Km) 등 128.7 Km는 94년 12월부터 구간별로 착공해 안동에서 풍기 구간이 99년, 원주에서 홍천구간이 2000년 각각 개통됐다.
마지막 3단계 구간은 풍기에서 제천 간 50.5 Km 구간으로 2001년 12월 14일 개통됐으며 중앙고속도로에는 특히 국내 최장인 죽령터널과 가장 높은 다리인 신단양대교가 건설됐다.
죽령고개를 관통하는 죽령터널은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에서 시작해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에서 끝나며 국내 최장(4520미터)의 도로터널이고 신단양대교는 교량 높이가 103미터로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 와단성면 하방리 사이 충주호를 가로질러 건설되었다.

이 중앙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내륙지방의 발전과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지나온 방향의 운문지맥 마루금과 좌측으로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중앙고속도로를 살펴본 후 이제 진행방향의 운문지맥 마루금 우측을 내려다 보니 가곡저수지가 바로 발 아래 펼쳐져 있고 그 아래로 가곡리의 비닐하우스와 밀양강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그 뒤로 옥교산 줄기가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어 잠시 더 살펴보고 그 좌측 저 멀리 비슬지맥의 종남산 줄기도 살펴 본다.

가곡리는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의 리로서 면적의 대부분이 평지인 전형적인 농촌마을이고 동북쪽으로 낙하산과 보두산이 있으며 서남쪽으로는 응천강 상류인 북천수가 흐르고 있는 배산임수의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내가곡과 새각단 마을이 있는데 내가곡 마을은 가곡리의 안쪽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새각단 마을은 내가곡 북쪽에 있는데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으며 특산물은 깻잎과 풋고추이다.

그 가곡리 역시 밀양강 주변의 다른 지역처럼 빼곡하게 자리한 비닐하우스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풍경이다.


한동안 그 272 바위봉에서 일망무제로 펼쳐진 주위 조망과 풍경을 즐기다 보니 이제 다시 진행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천천히 발길을 옮겨 본다.

걱종했던 다친 정강이 부분은 약간의 통증이 남아 있지만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 조심하는데 다만 진물이 계속 흘러 진행하면서 자주 확인하며 그 진물을 닦아 내고 밴드를 교체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렇게 진행 방향으로 몇 발자국 더 걸어 가니 다시 바위들이 나타고 그 바위 넘어 이제부터 걸어 넘어야 할 301.9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 뒤 저 멀리에는 비슬지맥의 종남산 줄기가 옛날 추억을 꺼내며 여전히 말을 걸어 오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옮겨 본다.


바위봉인 272봉을 지나 가파르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이곳 등로 역시 쉽지만은 않은 내리막 등로이다.

자갈들과 바위들이 연속으로 나타나고 그 위에 넓은 활엽수 낙엽이 뒤덮어 그렇잖아도 다쳐 조심스러운 발길을 더욱 조심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내려가 약간의 잡목지대를 지나고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납작한 묘지3기가 차례로 보이고 그 묘지지대를 통과하니 다시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지나 묘지들을 만난다.

그 묘지들 좌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안부에 도착하기 직전 통훈대부밀성박공 묘지가 보이는데 옛날 그 직위에 비하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의 평범한 묘지이다.

그 묘지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준.희님이 이곳을 비암고개라 적은 이정판을 나뭇가지에 걸어 놨다.

지도를 보니 이곳은 중앙고속도로 고정1터널 위로서 실제 비암고개는 이미 지난 지역의 안부에 표기를 해 놓았다.


비암고개라는 안부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제법 큰 봉분을 가지고 있는 묘지 한기를 지나 또 다른 묘지2기를 만나고 그 묘지 뒤로 오르니 거대한 바위들과 그 바위들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등로가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조심하며 그 바위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가파라지고 로프까지 설치되어 있다.

다시 조심하며 천천히 그 바위암릉 구간을 오르니 드디어 등로 좌측으로 지나온 좌측의 낙화산에서 우측의 중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병풍같은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아래 엄광리마을이 조용하고 한가롭게 그림처럼 다가온다.


잠시 지나온 방향의 운문지맥 마루금을 조망한 후 다시 완만해진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이곳 등로에는 쓰러져 썩어가는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약간의 방해를 받고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에는 제법 큰 바위들이 촘촘하게 박혀있는 304봉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지도에는 301.9미터 봉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 봉우리이다.

주위에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로 인해 조망이 전혀 없어 정상부만 사진에 담고 다시 그 정상부를 출발해 본다.


정상을 지나 진행을 이어가니 잠시 평이한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그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는 점점 더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 등로 옆으로는 소나무들도 덩달아 더 빼곡하게 자라고 있다.

올랐으니 오른만큼 내려가고 바위로 단을 쌓은 묘지 한기를 지나 빼곡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이곳 역시 가끔 재선충 묘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소나무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납작한 묘지 한기 위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고 곧이어 잡목들과 커다란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무명안부를 지난다.

이 안부로 내려오기 전에 신선바위가 표기되어 있어 찾아 보지만 어느것이 신선바위인지 찾을 수 없이 그저 소나무 내리막 등로만 타고 내려온 기억 밖에 바위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안부로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야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니 올라 본다.

걱정했던 오른쪽 정강이는 생각보다 통증이 심하지 않아 진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지만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는지 발걸음이 결코 빨라지지 않는다.

잠시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는 점점 더 가파라지고 잠시 후 바위 오르막 등로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지나 온 방향의 운문지맥 마루금이 다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엄광리 마을 뒷쪽 우측부터 중산과 병풍같은 등로 그리고 좌측으로 뾰족하게 올라간 낙화산을 지나면 등로는 좌측에서 남쪽인 직진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이 산객이 서 있는 일직선 방향으로 달려 내려오듯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지나온 마루금을 확인하고 다시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좌측으로 휘어져 이어지고 소나무 가지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그곳에서 등로 좌측으로 남기리마을과 들판 그리고 바로 발 아래 펼쳐진 거대한 채석장을 살펴본 후 진행 방향인 우측인 남쪽을 보니 저 멀리 올라야 할 마지막 비학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한참동안 그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소나무가 서 있는 바위절벽 위에서 주위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다시 우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납작한 봉분을 가지고 있는 묘지가 보이는데 비로 이곳이 지도 상 298.3미터 봉이기에 이정판을 찾아 보니 그 묘지 우측의 잡목과 소나무가 엉켜 있는 곳 소나무 위에 준.희님이 302.5미터 봉이라는 이정판을 걸어 놨다.

사진 한장 남기고 그 묘지봉을 지나 마지막 비학산을 향해 걸어가니 이곳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잡목지대로 이뤄져 있어 오른쪽 정강이 부분이 잡목에 찔리거나 걸리지 않토록 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잡목을 헤치고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관리가 되지 않는 묘지 한기를 통과하고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 중간에 잎이 떨어지지 않은 키작은 도토리 나무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등로를 타고 잠시 걸어 진행을 하니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 제법 큰 관목들이 묘지 봉분에 자라고 있는 곳을 지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마지막 무명안부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제 마지막 비학산 오르막 등로를 타고 그 비학산을 넘으면 오늘 산행도 마무리가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다.


내려갔으니 다시 올라가야 할 시간이기에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굵은 소나무 사이로 제법 귀찮은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앙증맞은 정상석과 그 정상석 옆에 더 큰 비석이 세워져 있는 묘지가 함께 있는 317미터의 비학산 정상에 도착을 해 마지막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비학산은 경상남도 밀양시의 산외면 남기리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317미터이며 상동면 가곡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산 아래에는 밀양강의 지류가 흐르면서 만든 가곡저수지·남계소류지 등 인공저수지가 있고 신대구부산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보두산과 낙화산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산이고 산세가 마치 학이 나는 형상이라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이 산에 있는 묘소에는 무거운 석물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는 학의 날개에 무거운 짐을 실을 수 없다는 속설에서 나온 것이라고 전하며 정상에 굴던바위가 있는데 바위에 굴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비학산에 오르면서 굴던바위가 있다고 해 찾아 봤지만 역시 바위를 봤던 기억은 없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만 기억속에 남아 있어 아쉽기만 하다.


유인김해김씨 묘지도 돌아 본 후 운문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비학산 정상을 지나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이곳 역시 내리막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는데 군데 군데 재선충 묘지들도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가파른 소나무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바위 하나가 나타나고 그 바위 위에 올라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드디어 우측 밀양강과 좌측의 단장천이 합류되는 합수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넘어로는 추화산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저 추화산 넘어에는 밀양아리랑대공원이 있는데 추화산 자락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 우측 저 멀리 비슬지맥 마루금도 빤히 보이면서 지난날 홀로 걸었던 추억도 되살아 나는 시간이다.


그 전망바위에서 마지막 합수점을 살펴보고 비슬지맥 등로도 확인하면서 다시 천천히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 저 멀리 비슬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보일듯 말듯 멀어져 있다.

다시 소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점점 더 가파르게 이어지고 가끔 재선충 묘지들도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급경사 등로가 끝이나고 완만하게 이어지는데 그 앞으로 묘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 묘지 위로 올라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조금 더 가깝고 선명하게 밀양강과 단장천 합수점과 그 넘어 추화산이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묘지지대를 지나 키 작은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다시 조선소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가운데로 뚜렷한 등로가 나 있어 그 등로를 타고 걸어 본다.

한동안 그렇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우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또 다른 묘지지대를 만나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진행을 해 본다.

묘지지대를 지나 걸어 내려가니 키 작은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그 소나무 등로를 지나니 드디어 민가들이 보이고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남기리 정문마을에 도착을 한다.

남기리는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에 있는 리로서 동과 서 및 남쪽으로 들판이 펼쳐져 있는 농촌 마을이고 이 마을 주위로 산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또 도로를 따라 북천수 가에 긴 송림이 둘러 싸여 있다.

자연마을로는 장연과 남계 마을이 있는데 장연 마을은 옛날에 북천이 마을 앞으로 통과하여 금천리에서 동천과 만나서 응천강으로 흘러 갔다고 하며 오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래가 쌓여 마을 앞에는 긴늪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긴늪 혹은 장연이라고 하고 남계 마을은 마을의 뒷산인 부리미산의 봉우리 모습이 마치 보리섬을 쌓아 놓은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부분의 선답자들이 이곳 남기리 정문마을에서 산행을 끝마쳤기에 이 산객도 마치려고 하다가 지도를 확인해 보니 엄남천과 밀양강이 만나는 합수점까지 진행이 가능 할 것 같아 그 합수점까지 진행을 해 보기로 한다.

그 1차선 산외로라는 도로로 내려서서 도로 우측을 보니 밀성손씨와 창녕장씨 정려각이 보이고 사진에 남긴 후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조금 더 진행을 해 본다.


도로 따라 조금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지성난원가는 이정석이 서 있고 계속 민가 사이로 나 있는 도로를 따르니 금천교 앞에 도착을 하고 그 금천교 건너기 직전 우측으로 나 있는 남기5길을 따라 합수점 방향으로 걸어 가 본다.

이제 남기5길을 따라 좌측에 엄남천을 두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성원식당이 보인다.

엄남천은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엄광리의 산기슭에서 시작하여 남서방향으로 흘러 밀양강 좌안으로 유입되는 지방하천으로 낙동강 수계의 지방하천이며 낙동강의 제2지류이다.

하천연장은 4.2 Km에 유로연장 6.22 Km이며 유역면적 10.16 Km2인데 하천 북쪽으로 보두산과 낙화산 및 중산 등이 있으며 중류지역 서쪽으로 비학산이 있다.

하천의 재료는 주로 모래와 자갈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천의 경사도는 상류지역은 다소 급한 경사이며 하류부는 갈수록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보인다.

하천 발원지 북쪽으로 엄광 제1, 2 소류지와 다촌소류지가 있으며 하류지역 동쪽에는 남계저수지가 위치하고 하천 상류지역에는 55번 대구에서 부산 중앙고속도로가 밀양강 합류지점 인근에는 24번 국도가 하천을 가로지르며 지난다.

잠시 후 24번 4차로 밀양대로 아래 금천교를 통과하니 포장도로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그곳을 따라 걸어가니 도로가 끊기고 잡풀이 자라고 있는 공터가 나타난다.



그 공터를 지나니 엄남천 방향으로 산책로 다리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드디어 좌측의 엄남천과 우측의 밀양강이 만나는 합수점이 내려다 보인다.

지도상으로는 이 엄남천보다 좌측인 남쪽으로 훨씬 더 길고 강 유역도 넓은 단장천과 밀양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이 맞을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되면 비학산은 지나지 못하고 좌측으로 통과를 해야 되기에 최종 합수점을 잡기가 어려워 보인다.

아무튼 이곳 엄남천과 밀양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최종 운문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그곳 근처 바람이 잦아 든 곳에서 남아 있는 빵과 과일 그리고 음료수로 허기를 달래고 이틀간의 산행을 갈무리 한다.

밀양강은 경상남도 밀양시 일대를 관류하는 하천이며 시의 상동면 옥산리에서 청도천과 동창천이 합류한 후 밀양 시내를 지나 삼랑진읍 삼랑진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유역의 경관이 뛰어나 강변에 영남루와 아랑각 등 명소가 있으며 부분칭인 활용강은 밀양시에서 부르던 구간명칭의 하나이고 지금 내일동에 속한 활성동은 1914년 활용리와 인근 마을을 합하여 활성리가 되었다.

응천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는 응천이 청도의 운문산에서 나오고 밀양부의 성 남문을 지나 해양강으로 들어간다 라는 관련 기록이 있다.

해양강은 세종실록지리지(밀양) 등 여러 문헌에 나오는 이름이며 일명 뇌진이라 부른다고도 하고 해양강을 낙동강의 별칭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약간의 사고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큰 사고가 아니었기에 불행중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올 한해 액땜을 했다고 생각하니 견딜만 하다.

허기를 달랜 후 다시 걸어갔던 시멘트 포장도로와 포장도로를 타고 남기리 정문마을 앞으로 되돌아 와 한동안 기다렸다 밀양시내 버스를 타고 밀양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주위 약국을 찾아 보니 딱 한군데의 약구이 열려있어 그곳으로 가 마데카솔과 스킨 밴드를 사서 터미널 근처 황토 목욕탕으로 들어 치료를 한 후 샤워를 하고 나오니 이제서야 살 것 같다.

샤워 후 다시 마데카솔를 바르고 스킨 밴드를 붙이고 터미널 버스 정류장에서 밀양역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을 해 화마로 많은 희생자를 낸 세종병원을 멀리에서 바라보고 드디어 밀양역에 도착을 해 근처 돼지 국밥집에서 국밥 한그릇에 시원한 맥주 한병으로 운문지맥 완주를 자축한다.

참으로 자주 내려왔던 밀양역인데 앞으로 몇번이나 더 내려 와야 이 그리움과 산행에 대한 열정이 조금이나마 풀어볼 수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식사 후 입석 기차표를 끊어 동대구까지 이동을 하고 그곳에서 KTX로 환승하여 집으로 돌아 오니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귀가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동안 그리워했던 영남알프스와 관련되어 있는 영축지맥과 운문지맥을 2주간에 걸쳐 완주를 하면서 약간의 갈증을 풀어내고 다음주부터는 다시 진행하다 중단된 지맥과 남도의 지맥을 찾아 바빠지기 전까지 가능하면 많은 부분을 마무리해 보고 싶다는 희망도 가져 본다.

이제 일이 정상적으로 진행이 되면 산에 들 시간과 기회도 많이 줄어 들겠지만 그래도 전 지맥 완주를 목표로 걸어 온 산행들이기에 앞으로도 가능하면 게으름 피우지 않고 계속 이어가는 산줄기 종주 산행이 되기를 바래 본다.


아이들과 치맥 한잔으로 피로를 풀고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또 하루가 지나고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새벽으로 넘어간다.

다음주부터는 조금 더 일에 열중하는 시간이길 바라며 산행 후기를 정리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8-01-28 운문지맥제2구간 오치고개(신곡)-동막 합수점.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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