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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영월지맥(한강·완)

영월지맥 마지막 제7구간 해고개에서 각동리 남한강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7.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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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북도 단양군과 강원도 영월군 영월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7년 12월 17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영하권에 강한 바람이 불며 무척 추웠던 한겨울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하 17도에서 영하 2도

산행인원 : 총 3명(칠갑산과 강원도 산친구들, 동해바다, 강릉이쁜쑨)

산행코스 : 해고개(59번 2차선 포장도로)-430.1봉-375.5봉-벌목지-482 무명봉-빈집-비포장임도-연당조전로(비닐하우스)-잣나무 군락지-327 잣나무

                 군락지-전봇대안부-관음당고개(2차선 포장도로, 조전리와 지시골 표지석, 아침식사)-399 이동통신탑-전망바위-435.9 묘지봉-449.7 삼각점봉-

                 481 무명봉-잣나무등로-487 신선봉 갈림삼거리-484 헬기장-바위암릉등로-칼등등로-국지산(626.4미터, 정상석과 삼각점) 이정표(가내골

                 입구 2.6 Km, 버스정류장 2.6 Km)-전망바위-안전목책과 로프-국지산 등산안내도 안부-522.9봉-이정표(가내골입구 1.94 Km, 국지산

                 정상 0.66 Km)-조전고개(전봇대 안부, 성황당 흔적)-570.7봉-돌리네 지형-한재산(606.8미터, 삼각점)-철조망-무명안부-16번 송전탑-

                 비포장임도-563.7봉(산불감시초소)-비포장임도-흥지개고개(2차선 포장도로, 사각정자와 벤취쉼터)-능선진입-569 무명봉-566 당집-

                 흥교마을 밭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갈림삼거리(좌측)-민가 앞 비포장 임도-능선진입-바위암릉등로-소나무 조림지-1023.4봉 우회-흥교

                 갈림삼거리 이정표(태화산 등산로 정상까지 10분, 단양 영춘 5.1 Km, 영월 흥교 1.8 Km)-태화산(1027.5미터, 정상석2개, 삼각점)-벤취쉼터2-

                 이정표(큰골 2.80 Km, 정상 100 m)-바위 우회-이정표(큰골 2.4 Km, 태화산정상 0.4 Km)-안전목책과 로프-나무계단-큰골갈림삼거리

                 이정표(고씨굴 5.10 Km, 태화산정상 0.60 Km, 큰골 2.20 Km)-전망대(1030.9미터, 벤취쉼터2)-이정표(고씨굴 4.73 Km, 태화산정상 0.97 Km와

                 큰골 2.57 Km)-이정표(고씨굴 4.60 Km, 태화산정상 1.10 Km와 큰골 2.70 Km)-전망대-이정표(고씨굴 4.03 Km, 태화산정상 1.67 Km와

                 큰골 3.57 Km)-바위우회-헬기장-899 고사목봉-안부 이정표(고씨굴 3.36 Km, 태화산정상 2.34 Km와 큰골 3.94 Km)-태화산성과 팔괴리

                 갈림삼거리 이정표(고씨굴 3.30 Km, 태화산정상 2.40 Km와 큰골 4.00 Km, 태화산성 0.3 Km와 팔괴리 1.70 Km)-고씨굴 갈림삼거리

                 이정표(고씨굴 3.00 Km, 태화산정상 2.70 Km와 큰골 4.30 Km)-710 무명봉-Y형나무 안부-620.8 삼각점봉-급경사 내리막등로-무명묘지

                 조망처-무명묘지1-밭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밤나무 과수원-시멘트 포장도로-각동리 마을-김삿갓면 각동경로당과 각동마을-595번 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차량을 이용해 남한강 확인-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1.82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너무 추워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꾸준하게 진행하여 10간 05 (06시 17부터 16 22분까)

산행트랙 : 20171217 영월지맥 마지막 제7구간 해고개-남한강.gpx

교통편 : 06:00 상마암 마을 입구 삼거리까지 이동

              16:30 각동리마을회관에서 강원도 산친구 애마로 단양군 김삿갓면 북면 송어횟집까지 이동 후 저녁식사

              18:00 강원도 산친구 애마로 산행 들머리인 해고개까지 이동해 애마 회수 후 귀가

영월지맥이란 ???
영월지맥이란 한강기맥 상에 있는 삼계봉(1065봉)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태기산(1261봉), 덕고산(705봉), 봉화산(670봉), 풍취산(699봉), 매화산(1085봉), 치악산 비로봉(1288봉), 향로봉(1043봉), 남대봉(1182봉), 감악산(954봉), 감악봉(886봉), 석기암(906봉), 용두산(871봉), 왕박산(598봉), 가창산(820봉), 삼태산(876봉), 국지산(626봉), 영월의 태화산(1027봉)을 거쳐 남한강에서 가라 앉는 산줄기를 말하며 삼계봉(1065봉)은 홍천군, 평창군, 횡성군 등 3개 군이 만나고 홍천강, 평창강, 섬강 등 세 강이 갈리는 곳이나 이름이 없어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종주한 후 셋의 경계가 되는 봉우리란 뜻으로 삼계봉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는 설명이 보인다.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을 종주한 후 지맥이 갈리는 한강기맥의 청량봉에서 장곡현, 구목령, 삼계봉 구간 11 Km를 합하여 약 272여 Km를 영춘지맥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산객은 분기점에서 시작하여 강이나 바다로 그 맥이 다하는 방향으로 진행을 했기에 이 영춘지맥 산행도 춘천지맥과 영월지맥으로 분리하여 별도로 진행하도록 한다.
이 영춘지맥은 지맥중에서 가장 긴 지맥이다.



강추위속에 강원도 산친구들과 영월지맥 산줄기 이어가기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또 다른 산줄기 종주 산행을 위해 내년을 기약했던 소중한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영월지맥 마지막 산행의 처음 계획은 지난 11월초이었지만 각자 바쁜 일정들이 겹치고 그 이후에는 김장과 연말을 맞아 다른 모임들이 생기다 보니 서로가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힘들게 성사가 되었다.

강원도 산친구들과 산행 날자와 시간 그리고 각자 필요한 물품들에 대한 협의가 끝나고 산행을 기다리는데 남부지방에 폭설 경보가 발령되고 가장 춥다는 한파주의보가 발령이 되어 산행도 하기 전에 걱정과 고민이 시작되는 영월지맥 마지막 산행이 되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산행지에는 눈이 내리지 않고 추위도 약간 누그러져 계획대로 산행을 진행하는데 생각보다 강한 바람과 추위로 인해 무척 고생을 하였던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무탈하게 영월지맥 산행을 7구간으로 나눠 마무리할 수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걸었던 시간이었다.

특히나 산친구인 동해바다의 옆지기가 차로 함께 동행하면서 산행은 하지 않고 차량봉사와 그 추운 새벽에 관암당고개에서 준비해 준 따뜻한 아침식사로 인해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어 지면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 전해 드린다.

지난 11월 초에 잘 마무리가 되었으면 곧바로 춘천지맥으로 들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늦어져 한겨울 폭설이 자주 내리는 계절에 춘천지맥은 위험부담이 커 내년 봄 잔설이 녹는 계절에 다시 만나 즐기면서 진행하기로 하고 잠시 헤어지기로 하니 서운하지만 한여름철 지독한 잡목과 잡풀로 진행이 어려운 남도의 산줄기들을 찾다보면 겨울도 금새 지나갈 것이니 서운함을 묻어 두기로 한다.

 

추워도 너무 추운 날씨에 강풍까지 불어대니 잠시만 걸음을 멈춰도 온몸은 금새 얼어버리기에 꾸준하게 걸어 진행을 해 드디어 오늘 산행의 최고봉인 태화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오르막 등로를 오르다 보니 노출된 부분은 동상이 걸릴 정도로 차갑지만 등줄기와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려 방풍 자켓을 벗어 던지고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지금 시간이 오후 1시 23분으로 온도계를 보니 아직도 영하 8도를 가리키고 있어 정상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서 있기조차 어려운 추위와 바람이다.

미니 단체 사진까지 남기고 뼈속까지 전해져 오는 추위를 피해 다시 발목까지 빠지는 눈 속 등로를 타고 정상을 지나 바람이 잦아 든 장소를 찾아 빠르게 내려가며 진행하던 시간은 지금도 그 추위에 온몸이 바들거리는 기분을 지울수가 없다.

사진 속 얼굴도 이미 붉게 변하면서 동상이나 입지 않을까 많은 걱정을 하였는데 다행히도 동상은 걸리지 않았지만 피부는 좋지 못한 상태이다. 


따스한 햇살이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시간인 오후 4시 22분에 각동리 마을회관 앞 도로에 도착을 해 산행을 마무리하고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탑승해 차량편으로 잠시 남한강을 다녀 오기로 한다.

좁은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차량 통제용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어 그곳에서 내려 남한강으로 가 사진 몇장 남기며 고운 추억을 만드는데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며 다시 한기가 밀려오고 그렇게 영월지맥 산행의 마지막 구간은 추위와의 싸움으로 끝이 난 시간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130여 Km 를 걸어 산친구들과 진행하며 큰 사고없이 무탈하게 함께 즐겼던 시간이었기에 오늘 추위는 금새 잊고 이 한장의 사진을 보며 우리들의 우정과 산행은 더욱 깊고 길게 이어질 것이다.

저 얼어있는 남한강의 물줄기가 녹아 도도히 흐르는 계절에 함께했던 산친구들과 가벼운 등산복 차림으로 다시 다른 산줄기의 끝자락이 마무리되는 한강변에서 웃는 날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래 본다.

 

오늘 해지기 전에 영월지맥 마지막 구간을 마무리하기 위해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조금 일찍 만나 인사 나누고 산행 준비를 하는데 강한 바람이 불면서 자동차에 표시된 외부 온도가 벌써 영하 15도를 넘기고 있다.

해고개에는 애마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에 상마암 버스정류장 지나 해고개를 넘어 단양 방향으로 200여미터 내려간 곳 갈림삼거리에 애마를 잘 주차시키고 출발에 앞서 동행한 강원도 산친구 옆지기에게 부탁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나사님이 참석을 해 총 4명이 진행을 하였는데 연말이다 보니 술자리가 늦어져 나사님은 참석하지 못하고 3명이서 오붓하게 출발하는 시간이 새벽 6시 10여분을 넘기고 있다.

다시 도로를 따라 해고개로 올라 우측 높은 돌담을 지나 낮은 콘크리트 옹벽이 있는 곳으로 오르며 지난 10월 말 어렵게 내려 온 방향을 살펴보지만 어둠속에 잘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등로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인삼포를 보며 눈 앞으로 다가 온 시멘트 수로를 타고 절개지 중앙부로 오르니 등로에 말라 버린 잡풀 위로 성애와 잔설들로 인해 여간 미끄럽지 않다.

이곳 해고개는 해발고도 330미터이고 충북 단양군 영춘면 유암리와 사이곡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59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며 이 지역 사람들은 해현 또는 갈고개라 부르며 지명의 유래는 지대가 높아서 해 뜨는 것을 제일 먼저 본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예전에는 높은 지대였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도로가 개설되면서 그렇게 높게 보이지 않는 평범한 고갯마루로 남겨진 곳이기도 하다.


절개지 중앙부로 올라 좌측 능선으로 진행을 하니 약간의 눈이 쌓여있는데 진행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이다.

다만 그 눈들과 낙엽이 떨어져 쌓이면서 등로의 식별을 어렵게 만드는데 오늘 진행에 앞서 두명 정도가 먼저 지나간듯 보이지만 발자국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능선으로 들어 진행을 하니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등로는 초반부터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변하고 새벽 추위에 중무장을 하고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오르니 등줄기와 이마에선 벌써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잠시 후 바위에 올라 입었던 방풍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고 올라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그 주능선을 타고 우측으로 걸어 전진하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나풀거리는 지도상 430.1봉에 도착을 해 불어오는 차가운 새벽 공기에 흐르는 땀방을들을 식혀 본다.


하지만 기온이 많이 내려가 있고 바람마저 강하게 불어오니 잠시 배낭 내려 흐르는 땀방울을 식히는 사이 몸이 얼면서 한기가 돋기 시작한다.

재빨리 배낭 둘러메고 평이한 능선 등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약간의 잡목들이 방해를 하고 있지만 2주전 고흥지맥 등로와 비교를 해 보면 고속도로 수준이라 등로에 대한 걱정은 날려 보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 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어둠의 빛이 엷어지기 시작하고 잠시 후 사철나무와 작은 관목들이 보이는 375.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는데 입김이 나오면서 안개가 자욱하게 낀것처럼 사진이 보여 장갑까지 벗어가며 어렵게 담아 본다.

잠시 장갑을 벗고 사진 한장 남기니 손끝이 얼어오며 쓰라림 강도가 장난이 아니다.


그 375.5봉을 지나 다시 나타나는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고 잘려진 작은 소나무 등걸이 보이는 무명봉을 넘어 완만하게 오르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등로 우측으로 벌목지대와 그 벌목지대 아래로 펼쳐진 경작지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 벌목지 경계를 타고 오르니 어둠이 사라지고 여명이 밝아 오는데 등로 우측 발목된 사이곡리 지역 넘어로는 골짜기 마다 하얀 눈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아름다운 사하가 서서히 두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보며 완만하게 올라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주능선을 따라 좌측으로 걸어가니 금새 48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남동쪽으로 이어지던 등로가 이곳 482 무명봉에서 급격하게 꺽여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진행하도록 되어 있어 이제는 등로 좌측으로 지나 온 마루금을 바라보며 진행하게 된다.


이제 날은 완전히 밝아져 후레쉬 없이도 사진 촬영이 가능하게 되어 등로를 확인해 보니 발목까지 덮히는 낙엽 위에 하얀 눈이 살포시 내려 앉아 여간 미끄럽지 않기에 조심하며 걸어 본다.

잠시 후 커다란 소나무들이 보이는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집 한채가 보여 잠시 내려가 살펴보니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그 비어있는 민가를 지나 다시 올라 그 민가를 좌측에 두고 우측 능선을 따라 내려가니 약간의 잡목들이 발목을 잡기 시작하지만 그리 큰 어려움이 있지는 않다.


비어있는 민가를 둘러보고 올라 와 정상적인 마루금을 찾아 내려가다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방금 전 걸어 올라 왔던 등로가 작은 골짜기 넘어 지척으로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지난 구간 너무나 어렵게 올랐던 누에머리봉과 삼태산 그리고 817봉이 비어있는 속살에 하얀 눈을 가득 채우고 봄으로도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온다.

오를 땐 너무나 힘들게 올랐는데 지나고 보니 이토록 아름답다니 역시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함을 다시 한번 실감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직선 능선 하나 없이 돌고 돌아 이어지는 마루금이 새삼 신기하면서도 진행에 얼마나 큰 고민을 안겨주고 있는지 확인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약간의 잡목과 눈이 덮혀 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하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이제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비닐하우스 사이로 나 있는 연당조전로라는 마루금이다.

혹시나 하고 비닐하우스를 살펴보니 예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있지만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빈 비닐하우스이다.

다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조전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사진 한장 남기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멋진 잣나무 군락지가 반겨주고 그 잣나무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찾아 걸어 본다.

하지만 불어오는 찬바람이 얼굴을 때리며 외부에 노출된 모든 부위가 얼어 붙는 듯 따갑게 느껴지기 시작해 어쩔 수 없이 얼굴 마스크를 꺼내 착용하고 진행을 해 본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이어지는 잣나무 군락지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327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멋진 잣나무들이 줄지어 반겨주고 있다.


그 멋진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진행되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전봇대 2개가 서 있는 오르막 등로를 통과하니 등로 우측으로 눈에 덮혀 있는 논 경작지가 좁은 골짜기 사이로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다시 이어지는 내리막 낙엽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절개지 상부에 도착을 하는데 내려다 보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관암당고개로서 절개지로 내려갈 수가 없어 우측으로 길게 우회하며 2차선 포장도로쪽으로 걸어 내려가 본다.


절개지 상부에서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열려있고 그 등로를 따르니 저 멀리 관암동고개 한쪽으로 아침에 만났던 강원도 산친구의 SUV 차량이 내려다 보이는데 산친구 옆지기가 아침식사를 준비해 놓고 반갑게 맞이해 주고 있다.

지금 시간 외부 기온은 영하 16도까지 떨어져 잠시 서 있기조차 어려운 조건에서 이 산객들을 위해 따뜻한 아침식사를 준비해 준 친구 옆지기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준비한 비닐텐트속으로 들어가 오랫만에 느긋하게 온기를 느끼면서 아침식사 다운 식사를 즐겨본다

관음당재(해발 352미터, 관음당고개)는 영월군 남면 연당리 승당에서 조전리(진밭)의 상촌으로 넘어가는 험한 고개로 영월에서 충북 단양군 춘양면으로 통하는 2차선 도로가 지나가며 고개 정상에 조전리와 지시골이라는 표시석이 서 있는 조그만 소공원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고개이다

고려 인종의 아들인 충희대사가 태화산 서쪽의 흥교사에 있을 때 그 절에 봉안할 부처님(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이 고개에서 쉬었다가 넘어갔으므로 관음당재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이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산마루에 당을 세웠는데 지금도 관음당재로 오르는 당마루 밑의 마을을 오를 승자와 집 당자를 써서 승당에서 신댕이로 다시 신댈이라고 부른다.

식사 후 종주대는 산행 준비를 하고 산친구 옆지기가 다시 식기류를 정리하여 차량에 싣고 짧은 이별 인사를 나눈 후 도로 건너 반사경과 전봇대 사이로 나 있는 들머리를 찾아 산행을 이어가는데 산친구 옆지기에게 괜시리 미안한 마음에 코 끝이 찡해져 온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천천히 오르니 두 뺨에 전해지는 찬바람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몸을 자꾸만 빠르게 움직여 본다.

한동안 그렇게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경사도가 조금은 완만해지고 등로 좌측으로는 지난 구간 힘겹게 넘어 온 누에머리봉과 삼태산이 여전히 정상부에 하얀 눈이불을 뒤집어 쓴채 아름다운 자태로 멀어지는 이 산객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몇장 남기고 걸어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해발고도 399미터의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다가가 살펴보니 모든 이동통신사들의 통신탑이 설치되어 있다.

그곳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크게 휘어지며 이어지고 있다.


이동통신탑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낭떨어지가 나타나고 그 낭떨어지 앞으로 가 좌측 앞을 살펴보니 6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형성된 영월군 남면 연당리와 광천리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광천리는 강원도 영월군 남면에 있는 리로서 국지산 자락에 자리한 마을로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산수가 수려하여 옛부터 큰 인물이 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곳에 큰 쇠못을 박아 장수의 혈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윗다랭이골, 본골. 매화골, 무랑골, 국지골, 자작이골, 솔안이골 등의 자연부락이 있으며 연당리는 밭농사가 이뤄지고 있는 농촌마을로서 1914년 3월 1일에 시행한 행정구역 개편령 제 111호에 의해 양연과 승당에서 한 자씩을 따서 연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보안도 소속의 역촌인 양연역이 있었던 교통의 중심지였으며 또한 삼국와 고려시대에 걸처 수공업에 종사하며 키나 고리짝을 만들어 팔면서 생계를 유지했던 천민 집단 구역인 양등소가 있었다.

자연부락은 양연, 와룡, 돌고개, 새터, 도장골, 승당, 신배나무골 등이 있으며 담배, 고추, 마늘 등 밭농사를 위주로 생활하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어 잠시 더 내려다 보고 갈길이 멀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앞서 걷고 있는 산친구들을 따라 빠르게 걸어 본다.


절벽 위 전망대에서 등로 좌측 앞으로 펼쳐진 연당리와 광천리 방향을 조망한 후 앞서 걷고 있는 산친구들을 따라 빠르게 원 마루금으로 복귀하며 걸어가니 눈 앞에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나고 지도를 확인하니 435.9미터 봉우리이다.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자마자 선답자의 띠지 한장과 잡목들이 보이고 그곳에서 등로는 좌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듯 진행이 되는데 잠시 후 주능선으로 올라 이어지고 있다.


묘지봉을 지나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찾기가 조금은 애매한 부분이 자주 나타난다.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어렵게 정상 등로를 찾아 내려가 보지만 정상 등로라고 확신이 없어 트랙 상 방향만 보고 걸어 내려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트랙 역시 제각각으로 표기되어 있어 등로 찾기에 어려움이 있었던 구간임을 직감해 본다.

잠시 후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좌측의 449.7 삼각점으로 오르지 않고 우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잡목을 헤치고 잠시 정상부로 올라 마모된 449.7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내려가 본다.


마모된 삼각점이 박혀 있는 449.7봉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잡목과 억새가 반겨주고 잠시 후 평이한 소나무 등로를 만나 빠르게 걸어 본다.

한동안 차가운 겨울바람을 피해 사진 한장 담지도 못하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커다란 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 상 481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며 심호흡 한번 하고 출발한다.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약간의 잣나무들이 보이는 아주 뚜렷한 마루금으로 이어져 진행에 속도를 붙여 본다.

제법 멋진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갑자기 눈 앞에 웅덩이가 있는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가 나타나는데 처음에는 그냥 지나치려다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많이 걸려있어 다가가 확인해 보니 이곳이 바로 등로 좌측으로 있는 신선봉 갈림 삼거리이였다.

어느 선답자가 띠지에 단순하게 신선봉이라는 글자를 써 놔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귀가해 살펴보니 그곳 좌측으로 해발고도 443미터의 신선봉이 보인다.

진행하면서 알았으면 잠시 다녀와도 되는데 조금은 아쉬움이 남아 있는 영월의 신선봉이 되었다.


산행을 하면서는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신선봉이란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있던 신선봉 갈림삼거리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휘어져 이어지고 있고 좌측은 신선봉 가는 등로이다.

바위 사이로 떨어진 낙엽들이 채워져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금새 눈 덮힌 헬기장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진행 방향과 북동쪽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급경사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올라야 할 뾰족한 국지산이 우측으로 올려다 보이고 좌측으로 휘어지는 한편에는 576.3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영월지맥 마루금은 국지산에서 남동쪽으로 휘어져 이어지고 있어 좌측으로 보이는 576.3봉은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곳이 되었다.


헬기장을 지나 전진하니 바위너덜길이 이어지고 그 바위암릉 위에 떨어진 활엽수 낙엽들이 쌓여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된비알 오르막 참나무 등로 사이로 바위암릉이 산재되어 있고 그 바위암릉 등로는 국지산 정상부 가까이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어 스틱으로 낙엽을 헤치며 오른다.

힘들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칼등 능선에 도착을 하고 이제부터 그 칼등 능선을 따라 우측으로 걸어 진행을 이어가 본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국지산이라 생각하고 오르면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봉이 나타나기를 두어번 더 지나야 국지산 정상부를 만날 수 있으니 무심으로 걸어가며 추위를 이겨 본다.


무명봉에 올랐다 얼어 있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크게 심호흡 한번 하고 내려가니 지난 가을에 떨어진 참나무 낙엽이 발목까지 빠지며 주의를 주고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지나 다시 등줄기에 땀이 나도록 가파르게 오르니 버스정류장과 가내골입구라는 이정표가 나타나고 곧이어 영월군 특유의 삼각형 정상석과 삼각점이 박혀 있는 국지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국지산(626)은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와 조전리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626미터이다.

국화와 지치가 많아서 국지산이라고도 부르며 국지골은 매화동 입구에서 남향으로 길게 뻗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산자락에 자리한 광천리 마을은 산수가 수려하여 예로부터 큰 인물이 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곳에 큰 쇠못을 박아 장수의 혈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국지산은 1872년지방지도에 표시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에는 서면 팔계리에 소재하는 것으로 나온다.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힘들게 올라 온 보람도 없이 국지산 정상부는 잡목들로 가려있어 제대로 된 조망 한번 구경하기 힘든 곳이라 아쉬움이 남지만 조금만 더 진행하면 일망무제로 펼쳐진 풍경과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전망바위가 있으니 그곳으로 이동해 잠시 즐겨보는 시간도 좋을 것이다.


뒤따르는 산친구를 기다리며 몇장의 사진을 남기는 동안에도 찬바람이 강하게 불며 양볼을 얼게 만들고 있어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미니 단체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다시 출발한다.

출발하자마자 눈 덮힌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시 얼어 있는 손을 불며 주위 조망도 즐겨본 후 진행을 한다.

제일 먼저 진행 방향인 남동쪽을 살펴보니 저 멀리 높아 보이지 않는 영월지맥의 마지막 고봉인 태화산이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모습으로 바짝 다가와 있다.

하지만 가깝게 다가 와 있는 조망과는 달리 우측으로 빙 돌아 올라야 하니 앞으로도 몇시간은 더 열심히 걸어 오르며 등줄기에 땀방울을 흘려야 만날 수 있는 태화산이 될 것이다.


눈을 북쪽으로 돌리니 눈에 익은 지명과 산들이 펼쳐져 있고 그 산들 한가운데에 많은 추억을 간직한 영월읍이 자리하고 있다.

영월의 회색 건물들이 보이고 그 바로 뒷쪽으로 천문대가 있는 봉래산이 정상에 인공구조물을 이고 선명하게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초여름에 오르며 고생한 두위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계족산과 응봉산 줄기가 제법 까다로운 자태로 여전히 위압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봉래산과 계족산 사이로는 힘들게 진행을 하였던 죽렴지맥의 고고산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있어 눈길 한번 건네본다.

봉래산 좌측 뒤로는 조만간 다시 이어 걸어야 할 주왕지맥의 접산과 마지막 산줄기가 보이고 있어 손이 곱는 것도 잊은채 한동안 그 아름다운 풍경을 가슴에 담아 본다.


눈을 남쪽으로 돌리니 강렬한 햇살을 받아 박무가 낀 것처럼 보이는 백두대간 상 소백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도 가깝게 다가와 있지만 잡목에 가려 선명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눈을 서쪽으로 돌리니 지난 구간부터 걸어 온 영월지맥의 누에머리봉과 삼태산에서 이곳 국지산으로 이어져 있는 마루금이 잡목속에서도 환상으로 다가와 있다.

한발 두발 걸어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먼 등로를 돌고 돌아 진행을 하였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동안 그 전망바위에서 풍경과 조망을 즐기는 사이 온 몸은 동태처럼 얼어버렸고 두 뺨은 냉동실에 보관중인 고기처럼 붉게 변하면서 내것이 아닌듯 다가온다.

강한 바람이 불어 오는 전망바위를 지나 로프가 달려있는 바위암뱍을 조심하며 내려가니 바람은 잦아 들었지만 등로가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며 한시도 방심을 허용하지 않는다.

바위직벽을 내려가니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조심하며 미끄러운 등로를 따라 내려가고 잠시 후 낙엽 깔린 평이한 등로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잠시 평이한 낙엽 등로를 타고 내려가 국지산등산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는 안부를 지나 다시 가파르고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와 잘려진 밑둥이 남아 있는 522.9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봉우리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올려다 보이는 태화산을 조망하며 빠르게 걸어가니 온 몸이 덥혀졌는지 추위가 조금은 덜한 기분이다.

잠시 커다란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멋진 등로도 만나 편안하게 걸어보고 국지산 정상에서 660미터 진행해 왔다는 이정표도 지나 걸어 전진하니 굵은 전선이 몇가닥 지나고 있는 전봇대가 서 있는 조전고개에 도착을 해 잠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올라 본다.

조전고개(해발 473미터)는 영월군 영월읍 흥월리에서 남면 조전리를 넘어가는 고개이며 조전리에서 영월읍내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고개로 이곳에 문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문고개라고 부르는 곳인데 지도상에서 이 고개 부락의 지명을 따서 조전고개라고 부른다.

조전고개 안부에는 민초들이 걸었던 희미한 능선과 돌 무덤의 흔적이 있는 성황당터가 보이지만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듯 보인다.


전봇대와 성황당 돌 무덤이 있는 안부의 조전고개를 지나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약간의 잡목들이 옷을 붙잡고 늘어진다.

빛바랜 억새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하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반겨주지만 역시나 차가운 겨울 바람이 강하게 불며 잠시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는다.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있는 무명 안부를 통과하고 완만하게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와 밑둥이 잘려있는 고사목이 보이는 570.7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하고 출발한다.


참나무 지대를 지나 평이하게 걸어 전진하니 소나무 등로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데 등로에는 얇은 눈이 살짝 깔려있어 걸어가는 종주대의 발자국을 남겨준다.

잠시 후 등로 옆으로 움푹 파인 굴들이 나타나는데 몇개의 굴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자세히 살펴보니 돌리네 현상처럼 보인다.

기반암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지역에서는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빗물에 녹으면서 와지를 형성하기도 하는데 이를 돌리네라고 하며 석회암 지대 중에서도 절리가 형성된 곳은 빗물이 잘 스며들어 용식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 돌리네가 잘 발달한다.

이곳 단양과 영월이 바로 돌리네가 잘 발달할 수 있는 지형을 가지고 있어 많은 돌리네를 볼 수 있다.

돌리네 지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갑자기 마모된 삼각점이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을 606.8미터의 한재산이라 되어 있는데 정작 정상에는 마모되어 인식이 전혀 되지 않는 삼각점 하나 이외에는 한재산을 표기한 어떤 정상판이나 안내판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마모된 삼각점과 콘크리트 말뚝 하나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한재산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철조망이 보이고 그 철조망을 옆에 두고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한재산 오름길에 만났던 돌리네가 다시 나타나고 그 모양이 뚜렷해 사진 한장 더 남겨 본다.

돌리네는 만들어진 원인에 따라 용식 돌리네와 함몰 돌리네로 구분할 수가 있는데 용식된다는 것은 곧 물에 녹는다는 의미로서 석회암이 물에 녹아서 돌리네가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렇게 형성된 돌리네를 용식 돌리네라고 하고 석회암이 지하수에 의해 용식되면 지반이 약해져서 땅이 함몰될 수도 있는데 이렇게 형성된 돌리네가 함몰 돌리네라 한다.

돌리네 지형은 이곳 단양과 영월쪽 산행을 하다보면 자주 만나는 현상이기에 이제는 조금 편안하게 사진 한장 남기며 진행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돌리네 지형을 지나 평이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전진하니 등로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진다.

그렇게 한동안 깊게 쌓여있는 활엽수 낙엽을 밟으며 걸어 내려가니 제법 뚜렷한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안부이다.

안부 좌측으로는 최근에 개설된 듯한 넓은 비포장 임도가 보이는데 최근에 벌목된 듯한 굵은 소나무들이 벌목되어 쌓여 있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올라가니 16번 송전탑을 만나 그 아래로 지나간다.


송전탑 번호 16번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넓은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곳에 도착을 해 지도를 살펴보지만 이무 표식도 없이 그저 비포장 임도 표시만 되어 있는 곳이다.

잠시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많은 선답자들이 능선으로 올라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563.7봉을 오르지 않고 방금 전 만난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563.7봉을 올랐다 내려 와 다시 만나는 비포장 임도와 합류한다.

하지만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할 수 없어 비포장 임도를 건너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능선 들머리를 타고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563.7봉을 위해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려 본다.


능선으로 오르니 특이하게도 가는 나뭇가지를 잘라 등로 우측에 안전 목책을 설치해 놨다

처음에는 짧은 구간이라 생각을 했는데 그 나무 목책을 따라 깊이 쌓여 있는 눈을 헤치며 오르니 그 나무 목책은 노란색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563.7봉까지 이어지고 있어 궁금증이 생기지만 그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10여분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니 예쁜 노란색 산불감시초소가 반겨주는데 이국적인 풍경에 사진 한장씩 남겨 본다.


그곳에서 진행 방향인 동쪽을 살펴보니 이제 바로 손에 잡힐 듯 다가온 태화산 줄기가 부드러운 능선들을 거느리고 내려다 보고 있다.

잠시 트랙을 보며 진행방향의 마루금을 살펴보고 우회하게 될 1023.4봉과 좌측의 태화산을 올려다 보며 걸어 올라야 할 등로도 한번 더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이곳 해발고도가 560미터쯤 되니 저 태화산까지 약 460미터의 고도 차이를 극복해야 하니 결코 쉽지 않은 산행이 될것임을 직감하지만 올려다 보는 풍경은 어머니품처럼 부드러워 희망을 가져 본다.


북쪽으로 두위지맥 상 계족산과 영월읍 그리고 영월읍 바로 뒤에 솟아 있는 천문대가 있는 봉래산을 조망한 후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음지라서 제법 많은 눈들이 쌓여 있고 벌목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그렇게 한동안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짧은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 방금 전 헤어졌던 비포장 임도와 다시 만나 우측으로 그 임도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한다.

잠시 그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6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이제부터 잠시 그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올라 본다.

이곳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에는 사각정자와 벤취쉼터 및 흥교마을로 갈 수 있는 방향 표시판이 서 있다.


6번 2차선 포장도로로 나가니 진행 방향으로 흥교마을 이정표가 보이고 찾아보니 흥교마을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흥월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흥월리는 태화산 끝자락에 위치한 산간마을이며 마을의 지형이 반달모양이므로 월곡이라 했다는 얘기도 있으며 신라시대의 대사찰인 흥교사가 있었으므로 흥교라 하였다.

이 두 마을을 합하여 흥월이라 하였으며 자연부락으로는 큰골, 아랫말, 작은골, 뒷뒤실, 점골, 달골, 다릿말, 흥교 등이 있다.

흥교사는 681(신라 신문왕 1)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사찰로 고려시대에 대사찰로 번창하였는데 고려시대 또는 조선시대 전기에 폐사된 것으로 여겨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태화산 서쪽에 고려시대의 대사찰인 흥교사가 있었으며 이 절에 고려 인종의 아들인 충희의 비석이 있었는데 보문학각사이자 우사간이었던 최선이 임금의 뜻을 받들어 비석의 비문을 썼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는 세달사라는 절에서 중이 되었는데 삼국사기열전에 궁예는 세달사로 갔으니 지금의 흥교사가 있는 곳이다라는 기록이 있고 삼국유사 3권에 옛날 서라벌이 서울이었을 때 세달사(지금의 흥교사)의 장사가 명주 내리군에 있었고 내리군은 본래 내성군으로 지금의 영월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흥교사의 전신이 세달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흥교사의 절터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흥월리 흥교분교장(1999년 폐교) 자리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흥교분교장 운동장에서는 1984년 석가여래입상과 영월지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기와 등이 발견되었으며 마을 곳곳에서 고려청자와 석탑 파편들이 발견되었다.

흥월리의 흥교라는 지명도 바로 흥교사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흥교사는 아홉 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었고 공양미를 씻을 때 쌀뜨물이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지역까지 흘러갔다 한다.

또 절에 빈대가 많이 꼬여 결국 불을 질렀는데 보름 동안이나 탔을 만큼 큰 절이었다 한다.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올라가니 도로 좌측인 마루금 방향으로 높은 철조망이 쳐져 있어 오를 수가 없기에 마루금을 포기하고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한동안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보였던 철조망이 사라지며 좌측 능선 방향으로 간벌된 곳이 나타나 이 산객 홀로 그 능선으로 오르고 두명의 종주대는 계속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하기로 하여 이곳에서 나눠 진행을 한다.



능선으로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들이 보이고 그 소나무 사이를 헤집고 오르니 주능선에 도착을 하는데 잡목 사이로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그 희미한 등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잡목과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다시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서야 569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569 무명봉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휘어져 진행이 되는데 대부분의 종주객들이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였는지 이곳은 잡목들이 자라면서 등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는 여전히 커다란 소나무와 키 작은 관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이어지는데 관목들이 자라면서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밭 경작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밭 경작지 우측 옆으로는 방금 전 헤어진 두명의 종주대가 여전히 편안한 포장도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마음이 급해 빠르게 잡목을 헤치며 완만하게 내려가니 갑자기 잡목이 사라지며 낡은 작은 당집이 보이는데 오래되었는지 허술하게 보이고 있다.

당집은 민간신앙에서 신을 모셔놓고 위하는 장소 또는 집으로 전통적 농어촌사회에서 많은 영향력이 있었던 이런 동제당들은 지방마다 다양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그 개략적인 내용은 우선 명칭에 있어서 경기도·충청도지방에서는 산신당이나 산제당이라는 이름이 많이 쓰이고 서낭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강원도를 중심으로 하는 산악지대나 동해안일대에서는 서낭당이라는 이름이 제일 많이 쓰인다.

그 당집을 지나 조금은 좋아지는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본다.


잠시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우측의 전기철책이 설치되어 있는 밭 경작지 가장자리로 이어지는데 겨울철 하얀 눈이 쌓여 있어 전기도 통하지 않고 농작물도 모두 수확되어 비어 이기에 마음 편히 그 밭 가장자리를 타고 흥교마을의 시멘트 포장도로 방향으로 걸어 올라간다.

잠시 오르다 밭 가장자리에서 우측을 보니 멋진 민가 한채가 마치 유럽의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하듯 그렇게 그림처럼 서 있다.

 

밭 가장자리를 따라 흥교마을쪽으로 걸어 올라가니 밭 경작지 좌측의 민가쪽에서 기르고 있는 강아지 세마리가 목청껏 이방인의 출현에 경계심을 드러내며 강렬하게 짖고 있다.

어렵게 시멘트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해 진행 방향을 확인하고 눈에 덮혀있는 비어있는 밭 경작지를 타고 또 다른 시멘트 포장도로 방향으로 올라가니 방금 전 헤어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한 두명의 종주대가 이 산객 바로 뒤어서 뒤따르고 있다.

태화산으로 오를 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 민가가 올려다 보이는 방향으로 걸어 오르며 태화산을 찾아 보지만 나즈막한 구릉에 막혀 아직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부터 누군가 등산로라는 작은 안내판과 화살표를 설치해 놔 농사철에 밭 경작지를 넘어 진행하지 못하도록 기지를 발휘하고 있다.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 마지막 민가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등로는 다시 그 민간 앞 우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 민가에서도 기르고 이는 강아지 한마리가 사납게 울부짖고 있어 재빨리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잠시 후 등로는 우측 계곡쪽으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주능선으로 오르도록 되어 있다.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지금까지 보았던 눈보다 더 깊은 눈이 등로에 쌓여 있어 조심스럽게 진행을 하는데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태화산이다 보니 제법 많은 발자국도 함께 보이며 조금은 미끄러운 등로로 변해 버렸다.

조금은 지루할 정도로 키 작은 관목과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가 나타나더니 오를 수록 금새 또 수종이 변하면서 조림된 듯한 키 작은 소나무도 보인다.

그렇게 꾸준하게 걸어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바위암릉 등로가 나타나고 조심스럽게 그 바위암릉을 통과해 오르니 등로는 다시 굵고 가느다란 활엽수가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어 여유를 찾아 본다.


조금 더 가파라지는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몇번씩 미끄러지며 힘들게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 몇그루가 등로 옆에 보이고 등로는 조금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변하고 있어 그곳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이마에 흐르는 굵은 땀방울을 닦으며 쉬어 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오르기 시작하니 등로는 점점 더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로 변하고 있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키 작은 소나무들이 식재된 듯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며 상당한 높이를 체감하는데 이곳부터 불어오는 한겨울 찬바람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태풍급 바람이 불어 온다.


잠시 더 오르다 힘이 들어 발걸음 멈추고 등로 좌측 뒤를 살펴보니 벌목 후 키 작은 소나무를 조림한 장소 뒤 저 멀리 지난 구간 너무나 힘들게 올랐던 누에머리봉과 삼태산부터 이곳 태화산 직전 능선까지 이어져 온 영월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너무나 아름다워 잠시 더 머물며 사진 몇장 남겨 보지만 그 짧은 시간 장갑을 벗고 있는 동안에도 손끝이 아려 더 이상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방풍 자켓을 걸친 후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태화산 정상을 향해 마지막 힘을 짜 낸다.


다시 조금 더 깊어지는 하얀 눈이 쌓여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활엽수가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고 그 한가운데로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다.

잠시 후 우측으로 1023.4봉이 지도에 표기되어 있어 그곳으로 오르려고 살펴보니 오를 수 있는 등로가 보이지 않아 다른 선답자들처럼 좌측 우회 등로를 따라 태화산으로 직접 오르기로 한다.

더욱이 강한 바람이 불며 굉음이 귓전을 때리고 우측 1023.4봉 오르는 방향을 살펴보니 너무나 가파른 된비알 오르막이며 눈도 발목 이상 쌓여있어 오를 생각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잠시 좌측으로 돌아 우회하는 등로를 타고 걸어가다 우측 위로 보이는 1023.4봉 정상부를 사진에 담고 곧바로 태화산으로 걸어 진행을 이어가 본다.


이곳의 수종은 대부분 활엽수로서 사람의 장단지 굵기의 참나무부터 손가락만한 굵기의 나무들이 함께 혼재하며 자라고 있어 그 가운데로 나 있는 하얀 눈속의 등로가 그림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한동안 눈을 밟으며 진행을 이어가니 양지바른 곳에 도착을 해 눈은 사라지고 그 아래 숨어 있던 낙엽들이 수북하게 등로를 채우며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낙엽 등로를 지나 둔덕을 넘으니 갑자기 등로에 깊은 눈이 쌓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우측 1023.4봉 쪽에서 내려오는 길목인 갈림삼거리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어 살펴보니 이 산객이 어렵게 걸어 올라 온 방향으로 영월의 흥교방향이 우측 1023.4봉 방향으로는 단양군 영춘 방향이 그리고 좌측 방향으로는 태화산 등산로 표시와 함께 정상까지 10분이라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보인다.

이제 태화산 정상도 그리 멀지 않았음을 느끼는 시간이지만 아직도 무명봉 두개를 더 넘어야 태화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단양과 영월의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좌측 태화산 방향으로 눈을 가르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나즈막한 아눕를 지나 등로는 다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나타나는 무명봉을 넘고 내려가 안부를 지나 눈이 쌓여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영월과 단양에서 각기 세운 정상석 2개와 그 정상석 사이에 삼각점이 박혀있는 태화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씩 남겨 본다.

태화산(1027)은 강원도 영월군 남면과 하동면 및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1027미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대화산이라는 기록이 있고 영월 사람들은 화산이라고도 부르는데 강원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서 태백산맥의 줄기인 내지산맥에 속한다.

산세는 대체로 완만한 편이며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능선 끝에는 남한강이 U자형으로 곡류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군의 남쪽 16리에 있다고 쓰고 있고 영월군읍지에는 군의 남쪽 15리에 있으며 읍의 안산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반면 영월부읍지와 여지도서에는 부의 남서쪽 16리에 있고 원주 사자산 동쪽으로부터 뻗어 나온 읍치의 안산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태화산에는 고려 시대의 돌과 흙의 혼합축성법으로 쌓은 태화산성이 있는데 그곳에 전해져 오는 전설을 살펴보면 옛날 어느 집안에 남매 장수가 있었는데 그 어머니는 성 쌓는 내기를 시켜서 이기는 자식을 키우기로 하여 아들인 왕검에게는 정양리에 돌성을 쌓게 하고 딸은 태화산의 흙성을 쌓게 했는데 어머나가 보니 딸이 아들보다 먼저 완성할 것 같으므로 흙성을 무너뜨리자 딸은 흙더미에 깔려 죽고 말았다.

그래서 왕검성은 지금도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으나 태화산성은 무너졌다는 전설이 이 지방에 전해 온다.

해동지도, 여지도, 광여도, 지승에 태화산이 표시되어 있으며 산의 기슭에는 문짝처럼 생겼다 하여 문바위라 부르는 큰 바위가 있고 그 뒤에는 둥글고 넓은 너럭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대여섯 사람이 비를 피할 수 있는 방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잘바우라 하고 조선지지자료에는 안산으로 나오고 군내면 상송리에 있는 것으로 쓰고 있다.

각자 사진 한장씩 남기고 단체 사진 한장 더 남기고 나니 흐르던 땀방울이 마르고 한기가 밀려 와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곧바로 그 태화산 정상을 출발해 이제 발목 이상 빠지는 눈속을 헤치며 조심해 걸어 내려가 본다.


태화산 정상을 지나 걸어 내려가니 등로에 쌓여 있는 눈의 깊이가 점점 더 깊어져 간다.

더 이상 미루지 못하고 이곳에서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고 내려가니 정사에서 100미터 내려 온 지점에 큰골가는 이정표와 등로 우측으로 커다란 벤취쉼터 2개가 보인다.

날씨가 좋다면 잠시 쉬어가도 좋을 것 같은데 오늘은 기온이 너무 내려가 있고 바람도 강하게 불어 잠시 쉬지도 못하기에 그저 바라만 보고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대신하고 곧바로 출발한다.


다시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앞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앞을 가로막고 그 바위를 우측으로 돌아 우회하니 등로 좌측으로 큰골까지 2.4 Km 거리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직진으로 진행을 해야 되지만 앞에는 거대한 바위암봉이 잇어 곧바로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좌측으로 바위를 돌아 우회하며 진행을 하도록 되어 있다.

잠시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니 안전 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등로와 이어지고 있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안전목책과 로프에 의지하며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온순해지고 평이한 눈 내린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후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나무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넘어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큰골가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오늘 산행 중 처음으로 고씨굴까지 5.1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큰골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흥월리의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약물골을 통하여 태화산으로 갈 수 있는데 길옆에서 솟아나는 굴물은 차고 깨끗하여 옛날에는 나병 환자들이 많이 찾아 왔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 물을 이용하여 송어 부화를 하고 있고 흥월리 간이상수도의 수원지로 이용되고 있다.

혹시나 하고 등로 좌측의 큰골 방향을 살펴보지만 잡목과 활엽수들로 인해 제대로 된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등로 좌측으로 큰골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이제부터 등로 우측 잡목 사이로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물빛이 너무나 푸르고 아름다워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이다.

다시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해 바위가 깔려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1030.9미터인 전망대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는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고 등로 우측으로 남한강과 주위 산군들이 환상으로 펼쳐져 있다.


그 전망대에서 등로 우측 앞을 살펴보니 남한강이 구절양장으로 흐르며 산세를 가르고 그 남한강 좌측으로 오늘 종주대가 내려가야 할 595번 2차선 포장도로와 이어진 각동리 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각동리 우측으로 남한강 넘어로는 지난 초여름에 힘들게 걸었던 두위지맥의 산줄기들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완택산 지나 죽렴지맥 상 고고산도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한동안 걸어 진행을 하다보면 등로 우측으로 이런 풍경을 내려다 보며 저 각동리를 향해 내려갔다 오르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걸어 내려가게 될 것이다.


각동리 우측의 남한강과 산줄기들을 살펴보니 저 멀리 두위지맥 상 망경대산이 지난날의 추억을 들려주며 여유롭게 다시 한번 더 조우를 희망하고 있다.

남한강 좌측 위쪽으로는 너무나 힘들게 오르며 알바까지 했던 계족산이 잡목 사이에 숨어 보일듯 말듯 이 산객의 애간장을 녹이고 있기도 하다.

혹시나 하고 남동쪽을 살펴보며 마대산을 찾아 보지만 잡목에 가려 아쉬움만 커지는 시간이다.

참으로 많은 추억과 사연을 남겼던 김삿갓면과 미사리계곡 그리고 그 위로 내리계곡이 원시림의 추억을 꺼내 이 산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저 이렇게 내려다 보고 있기만 해도 황홀감에 취하는 시간이지만 식어가는 체온에 한기가 돌며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전망대인 1030.9봉에서 한동안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출발하니 태화산 정상에서 900미터 진행을 했다는 이정표가 보이고 잠시 후 다시 이제는 정상에서 970미터 진행해 왔다는 이정표와 만난다.

잠시 후 등로 우측 앞으로 하산 지점인 각동리와 남한강 그리고 그 뒤 저 멀리 두위지맥의 마지막 산줄기들을 살펴보며 조심하며 걸어 진행을 하니 태화산 정상에서 1100미터 하산 지점이라는 이정표를 다시 만난다.

그림같은 부드러운 참나무 등로 위에 살짝 흩뿌린 하얀 눈 위를 걸으며 상념에 잠기다 보니 등로 우측으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추락주의라는 안내판과 전망대라는 이정판이 붙어 있는 장소에 도착을 해 다시 한번 각동리와 남한강 그리고 두위지맥과 죽렴지맥의 산줄기들을 확인해 본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이지만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즐기다 보니 이제 그것도 흥미를 잃고 그저 강하게 불어 오는 찬바람에 추위를 이길 수 있는 방법만 생각하며 걸어 내려가는 시간이다.

사면길에 쌓여 있는 눈을 헤치며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태화산 정상에서 1670미터 내려왔다는 이정표가 보이고 약간의 바위암릉 구간을 지나 그림같은 참나무 등로를 통과해 본다.

짧았던 그림자가 서서히 길어지며 등로에 길게 누워가는 모습을 살피며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관목 나뭇잎들이 떨어지지 못하고 말라죽은 형태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고 그 가운데에는 잡초가 자랐다 죽어있는 헬기장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헬기장을 지나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위에 눈이 쌓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그 눈을 밟으며 빠르게 전진하니 작은 고사목이 서 있는 899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오후 2시 45분을 지나면서 다시 한겨울 칼바람이 강하게 불어대기 시작하고 바람에 노출된 두 뺨은 붉게 동상이 드는지 따갑기 시작해 와 잠시 배낭 내리고 얼굴 마스크를 쓴 채 산행을 이어가 본다.

이제 손끝과 발끝까지고 차갑게 식어오는 느낌을 느끼며 빠르게 걸어 체온을 올려보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은 순간이다.


고사목봉을 지나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다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그 무명안부에는 태화산정상에서 2.7 Km 내려왔고 고씨굴까지는 3.00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어 사진에 담고 곧바로 출발한다.

잠시 후 태화산성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그곳에 서 있는 이정표를 살펴보니 고씨동굴은 우측으로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해야 하고 좌측으로는 태화산성 지나 팔괴리로 하산할 수 있는 등로가 열려있다는 표시가 보인다.

태화산성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팔괴리 산1-2번지 태화산에 있는 토성으로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대야성, 정양산성, 영춘산성과 동일한 시기(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이다. 다른 산성들이 돌로 축조된 석성으로 실전용으로 사용된 반면 4개 산성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던 태화산성은 토성으로 적정을 감시하고 그 상황을 우군에게 전하는 사령탑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화산(1027.4) 정상에서 동북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해발고도 약 900미터의 봉우리에 자리 잡고 있다.

길이와 너비 약 400미터로 둘레는 약 1200미터의 포곡식산성(성 내부에 골짜기를 포용하고 있는 형태로 능선을 따라 성벽을 축조한 산성)이다.
성벽은 거의 허물어졌으며 부분적으로 여장(적의 화살이나 총알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낮게 쌓은 담장)과 망을 보는 망대의 흔적이 확인된다.

성 안에는 약 300 m2의 평지가 있으며 깊이 6미터에 폭은 4.2미터의 우물도 있었다.

이곳에서 좌측의 태화산성과 팔괴리 방향의 평이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 고씨굴까지 3.30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며 영월지맥 마지막 산행을 이어가 본다.


태화산성 갈림길을 지나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는 바위너덜길이 보이고 잠시 후 부드러운 참나무 등로 위에 낙엽과 하얀 눈이 섞여 있는 멋진 등로도 만나 여유도 부려 본다.

그렇게 강한 바람에 맞서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고씨굴까지 3.00 Km 거리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고 다시 멋진 참나무 등로와 만나 호젓한 산행을 느껴보려 노력해 보지만 잠시만 쉬거나 천천히 걸으면 느껴지는 한기로 인해 그저 부지런히 걷는 수밖에 할 것이 없는 시간도 가져 본다.

잠시 후 고씨굴 가는 갈림삼거리를 만나 고씨굴 가는 좌측의 평이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눈이 사라지며 푹신한 낙엽 등로가 열려있다.

고씨동굴은 1969 6 4일 천연기념물 219호로 지정된 면적 48 762 m2에 길이 약 6 Km의 동굴로서 임진왜란 당시 왜병과 싸운 고씨 가족들이 한때 그곳에 피신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굴 이름으로 되었다고 한다.
이 동굴
은 약 4억 년 전부터 형성된 것이라고 하는데 굴 안에는 4개의 호수를 비롯하여 3개의 폭포와 10개의 광장 등이 있으며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종유석, 석순, 석주들이 조화 있게 배치되어 장관을 이룬다.

동굴 안의 기온은 항상 16℃를 유지하며 박쥐, 흰새우, 흰지네 등 동굴동물이 서식하고 그 밖에 신속 1, 신종 7, 신아종 7의 동물이 새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참나무 낙엽 위에 하얀 눈이 내려 이제부터는 앞서 간 발자국 하나없이 온전히 우리 세사람의 종주대의 발자국을 찍으며 걸어 내려가는 시간이 되었다.

살펴보니 많은 등산객들이 태화산을 올랐다 대부분 고씨굴로 하산했다는 증거이기도 해 이곳 영월지맥 마루금에는 제대로 된 발자국 하나 남지 않았다.


이제 각동리까지 남아 있는 산행거리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쯤 이곳은 지맥 마루금임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올랐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며 종주대의 진을 다 빼 놓고 만다.

잠시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있는 710봉을 넘어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니 등로는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힐쯤 잡목들과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후미를 기다리며 잠시 심호흡을 해 본다.


잡목들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무명봉을 지나 다시 내려가고 참나무들이 멋지게 도열해 있는 낙엽 안부를 통과해 오르니 또 다시 높지 않은 무명봉에 도착을 해 가쁜 숨을 크게 내쉬어 본다.

잠시 심호흡 후 그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니 커다란 Y자 형태의 나무가 반겨주고 곧이어 참나무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안부를 지나는데 좌우측을 살펴봐도 너무나 급경사이기에 사람이나 동물들이 통행했을 고갯마루는 아닌듯 싶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 안부를 통과하여 다시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숨을 헐떡이며 오르니 잡목들에 둘러 쌓인 정상에 판독이 어려워 보이는 삼각점 하나가 박혀있는 620.8미터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며 잠시 쉬어 간다.

선답자가 달아 놓은 영춘지맥 620.8봉이라는 종이코팅지 이외에는 조망도 없고 표식도 없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해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본다.


표시가 인식되지 않는 620.8봉의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푹신한 참나무 낙엽을 밟으며 여유롭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점점 더 가파른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변하면서 미끄럽기에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갈지자를 그리며 왔다리 갔다리 하며 어렵게 그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참나무 내리막 등로가 끝이나며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나즈막한 마루금 우측으로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고운 추억을 남겼던 마대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한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그 무명묘지 위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남쪽 방향을 살펴보니 강렬한 태양빛 아래 소백산 주능선이 길게 펼쳐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잡목 사이로 사진 한장 남기고 내려가니 낙엽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또 다른 무명 묘지 한기를 통과하며 진행을 이어가 본다.

그 묘지를 지나 계속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마지막 무명묘지 위에 도착을 하는데 그 묘지 바로 아래로는 밭 경작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밭 경작지 넘어로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밤나무 과수원도 보인다.


마지막 무명묘지 위에서 간단히 배낭 정리하고 밭 경작지 가장자리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 시멘트 포장도로 위에서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도 되지만 도로 건너 능선으로 올라 밤나무 과수원을 넘으니 또 다시 밤나무 단지 안에 콘테이너 박스 하나가 보이고 그 좌측 앞으로 비포장 임도가 길게 이어지며 방금 전 헤어졌던 시멘트 포장도로와 연결되어 있다.

저 멀리 올려다 보이는 마대산을 조망하며 천천히 밤나무 과수언을 내려가 앞에 보이는 콘테이너 박스 좌측 비포장 임도를 따라 영월지맥 마지막 발걸음을 재촉한다.


콘테이너 박스 좌측의 비포장 임도를 따라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방금 전 헤어졌던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며 영월지맥의 마지막 산행을 이어가 본다.

내려가다 보니 두번의 갈림삼거리가 보이는데 모두 우측의 직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면 된다.

잠시 후 밭 경작지 사이의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서서히 각동리의 민가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저 멀리 강원도 산친구 옆지기도 짧게 올라 마지막 완주하기 위해 내려가는 세명의 종주대를 사진에 담아주고 있다.


오늘 산행 중 가장 고생하며 종주대의 무탈한 완주를 도와 준 강원도 산친구의 옆지기를 사진에 담아 본다.

지난 초여름날 육백지맥 산행을 하면서 많은 신세를 졌고 오늘도 역시 또 다른 신세를 졌던 인연이기에 조만간 편안하게 내려가 산행이 아닌 그저 즐거운 마음과 먹거리로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를 해 본다.

이제 저 언덕을 넘어 내려가면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각동리 마을회관과 경로당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드디어 각동리 마을회관과 경로당 건물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까지 내려 와 잠시 뒤돌아 보니 620.8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뒤 좌측으로 흐르는 영월지맥 마루금이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이제 영월지맥도 제7구간으로 나눠 진행을 하면서 그 종착지에 다다르게 되니 감회가 새롭고 그동안 진행을 하면서 만들었고 앞으로도 만들 많은 추억과 인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몇장의 사진으로 지나 온 영월지맥 마루금을 추억속에 묻고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드디어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각동리 마을회관과 경로당 건물 그리고 각동마을이라는 표지석을 사진에 담는다.

각동리는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에 있는 리로서 동강이 휘돌아 나가는 곳에 위치한 농촌이다.

()의 형국을 하고 있는 마을이며 자연부락으로는 진촌, 두름, 잿말, 오룡동, 중말, 골말, 새터, 괴목 등이 있으며 괴목 서쪽에서 돌널무덤이 발견되었는데 무덤은 두께 7-10 Cm되는 자연석으로 쌓았으며 너비 130 Cm, 길이 175 Cm의 덮개 돌로 덮여 있었다.

이 덮개석은 마을 공동 우물의 다리로 이용되었으나 새마을운동때 덮개 석 자체를 시멘트로 발라버렸다.

출토된 유물은 간돌 칼 1점과 간돌 화살촉 8점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새터는 광산 개발로 외지인들이 사택을 짓고 살았던 골말과 샘골 사이에 위치한 곳을 말하며 괴목(구암)마을은 큰 느티나무(괴목)이 있는 샘골과 새터 사이의 마을을 말한다.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595번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정차되어 있는 차량에 배낭을 벗어 던지고 마지막 의식을 위해 남한강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해 포기하고 차량을 이용해 잠시 다녀오기로 한다.


저 남한강 강가로 내려가 마지막 의식을 행하고 싶었지만 내려 갈 길이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사진 한장 남겨 보지만 많이 아쉬운 시간이다.

140여 Km를 달려 와 50여미터를 남겨두고 마지막 맥이 물로 빠지는 남한강을 갈 수 없음에 안타까워 하고 있는데 강원도 산친구가 봤는지 차량을 몰아 좁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남한강 변 가까이까지 가 준다.


드디어 영월지맥 종착지인 남한강 변에 도착을 해 많은 추억을 남기고 얼어있는 작은 배 한척을 배경 삼아 마지막 의식을 행해 본다.

남한강은 한강의 본류로 강원도 삼척시 대덕산에서 발원하여 충청북도 충주시와 경기도 남부를 흘러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드는 강으로 본래 명칭은 한강이나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므로 편의상 남한강이라고 부른다.

남한강은 강원도 삼척시 대덕산(1307미터)에서 발원하여 골지천과 동강을 따라 남서쪽으로 흐른 뒤 영월읍에서 평창강을 합치고 충청북도 단양군을 지나면서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제천시를 거쳐 충주호로 이어지고 충주호를 지나 탄금대에 이르면 달천을 합치고 북서쪽으로 급격히 유로를 바꾸어 경기도로 들어가게 된다.

충청북도와 경기도 경계에서 섬강을 합치고 이어서 청미천을 합류하여 북서쪽으로 길을 잡아 여주군을 꿰뚫어 흐르면서 양화천과 복하천 등을 받아들인 후 양평군으로 들어서면서 흑천과 만나 서쪽으로 유로를 돌려 북한강과 만나는 양서면 양수리에 이른다.

남한강이 지나는 충주는 험한 태백산지가 끝나고 저산성 산지와 평야, 분지로 진입하는 변환점이고 이는 충주에서 상류 쪽에 있는 단양, 영월, 정선 일대는 대부분 고생대 석회암 지대로서 넓은 평야나 산간 분지의 발달이 매우 미약하기 때문이다.

동강의 협곡 경치와 래프팅이 유명한 이유도 이러한 남한강 상류의 지형적 환경에 기인하는 반면 충주 지역은 충주시 목행동부터 탄금대를 지나 엄정면과 소태면에 이르기까지 쥐라기 화강암 지대가 분포하여 넓은 구릉과 분지를 이루고 있다.

이 구간을 침식하면서 흐르는 남한강 하곡은 하폭이 넓어지고 유량이 많아질 뿐 아니라 주변에 수많은 사력퇴(자갈톱)와 습지를 만들고 있으며 충주 남한강에 있는 용섬, 번늪, 여우섬, 비내늪, 조대늪 등이 그것이다.
강원도 정선군 북면 오대천 합류점을 기점으로 하천 연장은 376 Km이고 유로 연장은 724 Km이며 유역 면적은 28,538 Km2이다.

충주 지역을 지나는 남한강으로 인하여 충주댐을 기점으로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충주호가 형성되어 내륙 지역의 주요 관광지로 유명하며 하류 쪽은 충주 시내부터 중앙탑면 충주 장미산성 아래에 있는 충주조정지댐까지 탄금호가 형성되어 있다.

충주댐은 홍수 조절, 용수 공급, 발전 등의 목적으로 남한강에서는 최초로 건설되었으며 충주댐 건설로 도담삼봉, 옥순봉, 귀담봉 일부가 물에 잠기게 되었지만 국내 최대의 인공호인 충주호가 형성됨으로써 정부에서는 주변의 관광 자원과 충주호를 이용하여 이 지역을 주운관광권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충주호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계명산자연휴양림이 있으며 충주호를 내려다보며 드라이브하는 호반 길은 많은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충주댐에서 나온 남한강 물 흐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목계교에서 팔당호 상류인 양평에 이르는 강변길은 서울 근교에서 가장 호젓한 길로 손꼽힌다.

남한강에서 영월지맥 산행의 완주를 자축하고 다시 차량으로 돌아 와 이제는 단양군 영춘면 북벽펜션 및 식당에 예약을 해 둔 송어회를 먹으로 출발해 본다.


산행 날머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남한강 변 북벽 펜션 및 식당으로 이동해 준비된 송어회와 매운탕으로 비어 있는 속을 데우며 영월지맥 완주를 자축해 본다.

다만 식사 후 애마를 몰고 귀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이슬이를 마실 수 없어 아쉬움이 남지만 아무 사고 없이 무탈하게 함께하는 산친구들과 완주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겨울 눈이 많이 내리는 강원도의 춘천지맥은 봄이 오는 춘삼월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 그 사이 2개월 이상은 눈과 상관 없는 남쪽 지방으로 내려가 몇개의 긴 지맥과 여름철 진행이 어려운 지맥을 마무리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될 듯 싶다.

저녁 6시에 식당에서 나와 애마가 주차되어 있는 해고개로 돌아가 애마를 회수하고 강원도 산친구들과 헤어져 귀가하니 약간의 도로 정체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빠른 저녁 8시 20여분에 무사히 집에 도착해 샤워 후 맥주 한잔으로 마지막 완주에 대한 자축을 하는 것으로 영월지맥 산행을 마무리 한다.


 

 

 

지난 4월 중순에 찬바람과 어둠을 뚫고 홀로 시작한 영월지맥 산행도 강원도 산친구들을 만나 시간은 조금 지체되었지만 차량 회수의 고민없이 즐기면서 8개월만에 무사히 마무리를 하였다.

그동안 많은 사연과 추억을 남기고 걸었던 영월지맥에서의 시간들은 이제 과거속으로 묻어 두고 새로운 지맥 산행을 위해 또 다른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남쪽으로 내려가 여수와 화원 및 금오 그리고 진도지맥을 마무리하고 골프 시즌엔 진행이 어려운 쌍령지맥까지 마무리하고 나면 다시 강원도 산친구들과 만나 춘천지맥에 오르는 시기와 맞춰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 사이 진행하다 중단 된 수락, 관암과 서봉 및 식장 그리고 천등지맥까지 마무리가 되면 내녀부터는 주말마다 하나의 지맥 산행을 마무리하면서 속도를 내어도 되겠다는 계획이 세워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남아 있는 지맥 산행도 너무 무리하지 않게 꾸준히 진행하여 3년 이내에 전지맥을 완주할 수 있기를 기대도 해 보는 시간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71217 영월지맥 마지막 제7구간 해고개-남한강.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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