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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영월지맥(한강·완)

영월지맥 제5구간 싸리치에서 삽고개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7.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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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강원도 원주시와 충청북도 제천시 영월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7년 10월 15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부터 아침까지 찬바람이 불며 추위를 느꼈지만 오전부터 맑고 화창해 약간 무더위를 느꼈던 전형적인 가을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06도에서 영상 19도

산행인원 : 총 4명(칠갑산과 강원도 산친구들, 동해바다, 강릉이쁜쑨, 나사)

산행코스 : 리치(이정석과 육각정자)-이동통신탑(성남기지국)-산불감시초소-약초재배지 원형 철조망-일출-바위로프등로-858봉 전망바위-819 와룡농원

                 입간판 무명봉-감악고개 이정표(천삼산, 감악산정상, 명암리, 창촌)-전망너럭바위-감악산 이정표(제천시 백련사, 계곡코스정상 0.6 Km, 능선코스

                 등산로입구 2.84 Km)와 감악산등산로 안내판-월출봉(936미터, 동자바위) 우회-이정표(감악산 0.2 Km, 황둔리, 천삼산)-통천문-바위 트래버스

                 안전로프-감악산 정상(945미터) 이정표(백련사 1.4 Km와 석기암 3.8 Km, 황둔리)-감악산 일출봉 정상석(945미터, 제천시)-감악산 정상

                 이정표-바위 트래버스와 안전로프-이정표-월출봉 우회-감악산 이정표와 감악산 등산로 안내판-안전철봉과 로프지대-감악산 제1봉(930미터,

                 원주시) 정상-감악산 정상(945미터) 이정표 복귀-감악산정상 우회 내리막 등로-백련사 갈림삼거리 이정표(용두산과 석기암 3.6 Km,

                 감악산정상 0.2 Km, 백련사 0.8 Km)-전망바위-바위와 고사목-878미터 119 구조안내 감악산 04지점판-바위로프구간-암봉우회 등로-886미터

                 감악봉(바위와 전망대 및 계단)-계단 내리막등로-766 바위봉-765 소나무와바위봉-칼바위능선-제사골재안부 이정표(석기암 2.5 Km,

                 감악산 1.3 Km, 재사등, 요부골 2.1 Km)-낙엽송지대-잣나무등로-824미터 119 구조안내 감악산 03지점판-이정표(용두산과 석기암 1.6 Km,

                 감악산 2.2 Km, 문바위 2.8 Km)-폐헬기장-906봉-이정표(용두산, 석기암, 감악산 3.6 Km)-석기암(906미터, 정상석과 삼각점)-암봉 우회등로-

                 이정표(용두산, 석기암 0.5 Km와 감악산 3.8 Km)-814미터 119 구조안내 감악산 02지점판-무명안부-119 구조안내 감악산 01지점판-

                 이정표(용두산 4.1 Km, 피재 1.3 Km, 감악산 5.9 Km)-피재점(784미터) 이정표(용두산 4.1 Km, 피재 1.3 Km, 감악산 5.6 Km)-728미터

                 이정표(용두산 3.2 Km, 산림욕장 1.0 Km, 피재점 0.8 Km)-작은 돌무덤-오미재(못재) 벤취쉼터와 이정표(용두산 2.9 Km, 피재점 1.1 Km, 점골

                 오미 1.5 Km, 산림욕장 1.3 Km)-고사목-813미터 깃대2개-모노레일-쉼터 전망대(119구조안내 용두산 01 지점판, 밴취쉼터들)

                 이정표(용두산 1.7 Km, 오미재 1.2 Km와 석기암 3.8 Km)-867봉-벤취쉼터2-119구조안내 용두산 02 지점판-영월신공묘지-무명안부-

                 송한재(용두산 등산안내도, 벤취쉼터, 공터안부) 이정표(용두산정상 0.8 Km, 피재점 3.2 Km, 물안이 1.9 Km, 송한리 4 Km)-계단-벤취쉼터-

                 계단-용두산(873 미터, 정상석과 삼각점, 헬기장, 전망대와 쉼터데크) 이정표(용단사 1.96 Km와 수련원 2.1 Km, 송한재 0.8 Km와

                 감악산 10 Km)-철 벤취쉼터 안부-678 안부(119구조안내 용두산 04 지점판, 철 벤취쉼터)-690 간벌송봉-일반등로-송전탑1-철 벤취쉼터-

                 송전탑2-이정표(제2의림지 비룡담 1 Km, 용두산정상 1.5 Km)-철 벤취쉼터-통나무 계단-잡목구간진입-녹슨철조망진입-잡목구간-녹슨철조망

                 탈출-지독한 잡목구간-묘지-11번 송전탑-12번 송전탑-도화로(민가 비포장 임도)-장어마을식당-동막고개(2차선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

                 비포장 임도-사과과수원-통덕랑경주이공묘지-무명안부1-무명안부2-모산재(시멘트 포장도로)-382 무명봉-402 무명봉-7번 송전탑-무명안부-

                 4번 송전탑-공원묘지능선-386 벌목봉-조림지 위 354 원형벙커-352 무명봉-공원묘지-시멘트 포장도로-제천변전소 우회등로-공원묘지

                 끝지점-잡목능선 통과-밭과 인삼포 경작지 임도-논둑 통과-6번 송전탑-인공수로통과-1차선 포장도로-거화 ENG-송학주천로1길-

                 다량고개(82번 2차선 포장도로, 제천변전소 버스정류장, 인바이오)-대진환경산업(주)진입 포장도로-금강레미콘-제천시쓰레기 매립장 미니

                 골프장-갈림삼거리 우측임도(좌측은 대진환경산업)-밭둑통과-사과과수원-송학로(과수원 민가)-능선진입(지독한 칡넝쿨지대)-잡목과 아카시아

                 가시나무-밭 경작지-비포장 임도-뱃재(38번 4차선 포장도로, 송학 진출입 도로표지판)-밭 경작지통과-비포장 임도-GMF(우리농산물

                 협력업체 간판)-능선진입-해평길공 가족묘지-잡목능선-323 무명봉-328 무명봉과 송전탑-49번 송전탑-344 무명봉-삽고개(삭고개,

                 2차선 포장도로, 형제농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3.71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새벽부터 아침까지 한기를 느끼고 오전부터 약간 무더위를 느끼며 꾸준하게 진행하여 10간 21분 (06시 40부터 17시 01분까)

산행트랙 : 20171015 영월지맥 제5구간 싸리치-삽고개.gpx (산행 후 약 25분간 1 Km는 산행트랙에서 누락되었음)

교통편 : 05:20 애마로 삽고개 공터까지 이동

             06:35 강원도 산친구 애마로 제천시내에서 아침식사 후 삽고개에서 싸리치까지 이동 산행시작

             18:40 애마로 제천시에서 저녁식사 후 싸리치까지 이동해 강원도 산친구들과 헤어져 귀가

영월지맥이란 ???
영월지맥이란 한강기맥 상에 있는 삼계봉(1065봉)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태기산(1261봉), 덕고산(705봉), 봉화산(670봉), 풍취산(699봉), 매화산(1085봉), 치악산 비로봉(1288봉), 향로봉(1043봉), 남대봉(1182봉), 감악산(954봉), 감악봉(886봉), 석기암(906봉), 용두산(871봉), 왕박산(598봉), 가창산(820봉), 삼태산(876봉), 국지산(626봉), 영월의 태화산(1027봉)을 거쳐 남한강에서 가라 앉는 산줄기를 말하며 삼계봉(1065봉)은 홍천군, 평창군, 횡성군 등 3개 군이 만나고 홍천강, 평창강, 섬강 등 세 강이 갈리는 곳이나 이름이 없어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종주한 후 셋의 경계가 되는 봉우리란 뜻으로 삼계봉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는 설명이 보인다.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을 종주한 후 지맥이 갈리는 한강기맥의 청량봉에서 장곡현, 구목령, 삼계봉 구간 11 Km를 합하여 약 272여 Km를 영춘지맥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산객은 분기점에서 시작하여 강이나 바다로 그 맥이 다하는 방향으로 진행을 했기에 이 영춘지맥 산행도 춘천지맥과 영월지맥으로 분리하여 별도로 진행하도록 한다.
이 영춘지맥은 지맥중에서 가장 긴 지맥이다.



새벽 추위에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며 멋진 조망과 함께 한 산친구들과 깊어가는 우정을 느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어제 대중교통을 이용해 왕재지맥 제2구간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귀가하여 자녁 식사 후 짧지만 깊은 수면을 취한 다음 새벽 2시 30분에 집을 나서니 생각보다 밤바람이 차가워 두 계절용 각기 다른 바람막이 점퍼와 얇은 패딩 그리고 장갑과 머리띠까지 준비하니 갑자기 가방이 빵빵해 진다.

새로 뚫린 도로를 따라 막힘없이 뻥 뚫린 제2영동고속도로를 달려 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산행 들머리는 아니지만 주차공간이 많을 것 같아 이곳에 주차하려고 약속을 하였는데 어둠속에 분간이 어려워 일단 실질적인 산행 들머리인 삽고개로 이동을 해 상황 파악후 최종 주차할 장소를 정하기로 한다.

잠시 후 강원도 산친구 3명도 시간 맞춰 도착을 하고 협의 후 실질적인 산행 날머리인 삽고개로 이동을 해 살펴보니 형제농원 들어가는 입구 옆에 작은 공터가 보여 그곳에 이 산객의 애마를 주차시키고 강원도 산친구의 애마를 이용해 제천시내로 아침식사를 위해 출발한다.


하지만 그 큰 제천시내에서 아침식사를 할 식당 찾기가 쉽지 않아 많은 곳을 돌아 다닌 후 어렵게 제천역 앞 해국집에서 콩나물국밥으로 아침식사를 하는데 맛이 없어 건데기만 건져 먹고 아쉬운 식사를 마치고 나와 신림터널을 지나 싸리치에 도착을 하니 벌써 새벽 6시 30여분이 지나면서 여명이 밝아 오고 있다.

방풍의를 삽고개에 주차시킨 애마에 두고 왔기에 아쉬운대로 입고 있던 패딩 차림으로 나오니 찬바람이 불며 한기를 느끼고 어제와는 또 다른 계절의 변화에 산행하기 전 준비물 확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시기임을 느끼는 시간이다.

간단히 주위 풍경과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오늘도 무탈한 산행 완주를 마음속으로 빌며 비포장 임도 좌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며 긴 하루를 시작해 본다.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에는 벌써 낙엽이 떨어져 사각거리기 시작하고 등로 옆 활엽수와 단풍나무엔 울긋불긋한 단풍들이 앞다퉈 지기 시작하며 다양한 색깔의 변화를 몸으로 느껴본다.

그렇게 한동안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바위지대를 지나 드디어 오늘 첫 정상석이 있는 제천 감악산 정상인 일출봉에 도착을 해 북쪽을 살펴보니 월출봉과 원주 감악산 정상인 제3봉 그리고 그 뒤로 제2봉과 제1봉도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정상부에는 아름다운 단풍이 물들기 시작해 또 다른 풍경으로 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한다.

그 뒤로 지난 구간 어렵게 걸어 온 마루금이 저 멀리 좌측의 남대봉에서 매봉산 갈림삼거리봉 그리고 제3봉 넘어 매봉산(응봉)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많은 추억을 남기며 사진을 담아 본다.


일망무제로 펼쳐진 제천 감악산 정상에서 조망과 풍경을 즐기고 정상석 앞에서 산친구들과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내려가기 전 진행 방향인 남동쪽을 살펴보니 지금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석기암으로 이어진 능선 위로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그 뒤 저 멀리 용두산이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는데 그 뒤로 송학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도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송학산 우측으로 오늘 산행 날머리 방향을 살펴보지만 석기암 능선이 높고 삽고개로 이어지는 등로가 비산비야로 낮아져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용두산쯤 올라 바라보면 오늘 걸어야 할 마루금이 확실하게 내려다 보일 것이기에 아쉬운 마음은 잠시 담아두기로 한다.


제천 감악산 정상인 일출봉에 올랐다 내려오니 원주의 감악산 정상인 제3봉을 들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강원도 산친구가 잠시 다녀온다기에 이 산객도 함께 다시 뒤돌아 감악산 제3봉이자 원주 감악산으로 향한다.

바위 등로로 이뤄져 안전 철봉과 로프가 길게 이어진 등로를 따라 어렵게 오르니 이곳 원주 감악산 역시 일망무제의 조망과 풍경이 펼쳐져 있어 많은 사진들을 남겨 본다.

정상석 뒤로 들어 가 북서쪽을 살펴보니 낙엽진 활엽수 뒤 저 멀리 남대봉과 백운지맥 분기점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매봉산 갈림삼거리와 그 우측으로 매봉산도 보인다.

그 매봉산에서 싸리치로 내려왔던 지난 구간의 산줄기와 오늘 싸리치에서부터 걸어 올라 이곳 감악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또한 한눈에 보이면서 멋진 추억을 만들어 주고 있다.


다시 평이한 활엽수 등로를 타고 변해가는 가을빛을 만끽하다 보니 어느덧 석기암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 역시 동쪽에서 남쪽 그리고 서쪽으로 이어지는 조망이 압권이다.

앞으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을 확인하고 그 뒤로 우뚝 솟아 있는 송악산을 살펴본 후 고개를 남동쪽으로 돌리니 기대하지 않았던 백두대간의 소백산 주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으로 오르면서 태백산 줄기도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많은 사진을 남긴 후 다시 눈을 남쪽으로 돌리니 가까운 곳에 갑산지맥 마루금이 보이고 그 뒤로 금수지맥의 주산인 금수산이 우뚝하며 그 금수산 우측 하늘금과 맞닿아 있는 곳에는 그 특이한 모습이 이곳까지 확실히 전해져 오는 월악산이 그 존재감을 확실히 알려 온다.


드디어 용두산 정상에 올라 남동쪽을 살펴보니 제천시내와 의림지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낮아지는 산세를 따라 영월지맥 산줄기가 이어지더니 비산비야를 지나 공원묘지 뒤를 돌아 제천변전소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 또한 확실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오늘 산행 날머리인 삽고개도 찾아 보지만 확실한 위치는 나타나지 않아 조금은 아쉬운 시간이다.

그래도 그 뒤로 이어지는 영월지맥의 나머지 산군들이 제법 우람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어 그 끝자락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던 시간이기도 하다.

영월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태화산이 두리뭉실하지만 제법 높은 모습으로 이 산객을 부르고 있기도 하다.


드디어 공원묘지 뒤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를 타고 걸어가다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드넓은 제천의 공원묘지 뒤로 오늘 어렵게 올랐다 내려 온 용두산과 좌측 중간의 867봉 그리고 석기암이 아름다운 능선을 만들며 멀어지는 이 산객에게 이별의 아쉬움을 표하는 것 같다.

오를 땐 그 고통을 왜 사서하는지 늘 고민하면서 어렵게 오르지만 내려 와 올려다 보면 그 고통은 벌써 환희와 기쁨으로 변해있고 그 높은 봉우리를 넘어 왔음에 자신의 두 다리와 고통을 이겨낸 마음을 칭찬하기 바쁜 시간이다.

오늘 이 사간도 역시 마찬가지로 두 다리의 위대함과 인내를 이겨내고 뒤돌아 보는 아름다운 달콤함을 느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벌목 후 나무를 식재한 조림지 정상인 386봉에서 오늘 걸어야 할 마지막 삽고개로 이어지는 비산비야의 마루금을 살펴보는 시간은 참으로 난해하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숨은 그림찾기를 해 보는 순간이다.

거대한 공원묘지와 제천변전소로 인해 원 마루금은 사라지고 좌측으로 길게 우회하며 걸어야 할 산줄기가 아쉽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보니 그것 또한 산줄기 걷기의 일부인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되는 시간이다.

이제 그 날머리가 내려다 보이니 없던 힘까지 살아나며 다시 두 다리에 불끈 힘을 실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제천역 앞 24시간 해장국집에서 맛 없는 순대국밥과 콩나물국밥으로 넘어가지 않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지난 구간 내려 온 싸리치까지 오르니 찬바람이 불며 한기가 밀려오는데 앞으로는 제대로 된 겨울 산행 준비가 필수적임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산행 준비 후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비포장 임도 좌측으로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 6시 40여분을 넘기고 있는데 이제서야 여명이 밝아오며 주위 사물들이 보이기 시작하여 헤드렌턴 없이 산행을 시작해 본다.

싸리치(싸리재)는 성남에서 황둔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하는데 싸리나무가 많다 하여 싸리재, 싸리치재, 싸리고개라고 하며 신림터널이 생기고 난 후 싸리재는 거의 폐쇄되어 기존의 도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원주 싸리재는 단종이 귀양 가던 길에 넘었던 고개로 한양에서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으로 단종은 광나루를 건너 여주와 원주 부론를 거쳐 귀래, 신림(싸리재), 주천을 거쳐 유배지 청령포에 이르렀다.

싸리재 길은 말 그대로 고갯길인데 지금은 산 아래로 터널이 뚫려 산책로로 이용하지만 한때는 영월로 가는 차들이 다녔던 신작로였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만든 영월과 원주 간의 유일한 통로였고 그 이전에는 방랑시인 김삿갓과 궁예가 군사를 일으켜 동쪽으로 지났던 길이었다고 전한다.

산 아래로 터널이 뚫린 덕분에 싸리재는 옛길로 거듭나 운치를 자아내는 분위기 있는 길로 바뀌었다.

지난 구간 하산시에는 몇대의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하산 후 배낭을 정리하는 짧은 시간에도 제천에서 원주 방향으로 넘어가는 차량들을 많이 만났었는데 오늘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싸리치 공터가 비어있고 우리들 차량이 유일한 차량이었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오르니 눈 앞에 거대한 이동통신탑이 가로막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좌측 능선 방향으로 서 있는 전봇대 옆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숨가쁘게 올라 본다.

찬바람은 겨울을 연상시키듯 더욱 차갑게 불어 와 얼굴을 스치며 붉게 물들이고 곱아오는 손끝은 입김으로 호호 불며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약초를 재배하는지 군사지역보다 더 단단한 원형철조망이 쳐져 있어 조심스럽게 그 철조망 옆으로 오른다.

잠시 후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 공터에 올라 등로 우측으로 뒤돌아 보니 지난 구간 걸었던 남대봉이 우뚝하고 그 좌측으로 백운지맥 갈림점인 시명봉도 환히 올려다 보인다.

이미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그 땀방울을 닦아 내기 바빴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한기가 돌며 재빨리 발길을 돌려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걸어 본다.


등로 좌측 아래로는 신림면 신림리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는데 계절적으로는 아직 여름을 떨구지 못하고 푸르름을 가득 안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원형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걸어 오르니 첫번째 바위 구간을 넘어 등로 좌측 참나무 사이로 막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하는데 영월지맥 바로 옆 재사등 넘어 펼쳐진 700미터급 산줄기에 막혀 제대로 된 일출은 아쉽기만 하다.

다시 칼등 능선으로 이어지는 등로에는 제법 많은 낙엽들이 떨어져 쌓여가고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한겨울 산행과 흡사하다고 생각될 쯤 등로 우측 소나무 사이로 막 떠오른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백운산이 아침인사를 건넨다.

조만간 올라야 할 곳이기에 반갑게 인사 나누고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걸어 보는 시간은 생각만으로도 흐믓한 시간이다.


등로 좌측으로는 황둔리쪽 마을들도 내려다 보이고 그 뒤 강원도 영월땅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들도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다.

그렇게 조금씩 더 고도를 높여가다 보니 금새 싸리치에서 1 Km 를 진행해 왔다는 트랭글에서의 울림이 시작될 쯤 오룩스 맵에서는 무언으로 일관하고 있어 확인해 보니 산행 시작할 쯤 단체사진 찍으면서 시작 버튼을 누르지 못해 지금까지의 산행 기록이 빠져 버렸다.

재빨리 오룩스 맵을 가동시키고 조금 더 오르니 등로 주변으로 알록달록한 단풍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산객들의 발길을 붙잡기 시작한다.


하지만 추석 연휴기간 동안 적근지맥에서 만났던 단풍과는 달리 색이 선명하지 못하고 단풍이 들기도 전에 말라 죽은 잎새들이 많이 기대했던 단풍은 아니기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해발고도를 높힐수록 낙엽을 떨군 앙상한 잡목들이 살빛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이곳은 벌써 가을을 지나 겨울을 준비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올라 큰 소나무가 서 있는 785 무명봉을 지나 858미터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잠시 등로 좌측으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좌측 끝자락으로 남대봉과 가운데 잘록한 부분 뒷쪽으로 치악산 정상부인 비로봉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 우측으로는 지난 구간 올라 환상의 조망을 즐겼던 매봉산 갈림봉과 매봉산이 가깝게 올려다 보이고 바로 눈 앞으로는 오늘 싸리치에서 올라 온 능선이 약간의 가을 빛으로 변하는 모습으로 다가 와 있다.

 

그렇게 멋진 조망을 즐기며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커다란 바위에 안전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암릉 구간을 만나 통과하고 다시 등로 좌측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에 마음을 빼앗겨 진행하지 못하고 잠시 발걸음 멈춘 채 그 이름을 확인해 본다.

가까운 황둔리 마을에는 다시 채석장이 들어섰는지 야금야금 사자락 일부를 도려내고 있고 그 뒤 저 멀리에는 조만간 다시 올라야 할 백덕지맥 상 주봉인 백덕산이 양쪽으로 제법 높은 고봉들을 거느리고 봄으로도 당당하게 솟구쳐 있다.

몇 년 전 올랐던 곳으로 사자산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탈출하며 없는 등로를 찾아 고생을 했던 곳이기에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백덕산이다.


그곳 전망대에서 백덕지맥을 살펴본 후 다시 걸어가니 또 다른 바위 암릉이 펼쳐지고 이제는 등로 바로 좌측 가까운 곳으로 감악산 제1, 2, 3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저 우측 끝자락에 위치한 감악제3봉인 원주 감악산 정상을 들리지 못하고 진행하다 뒤돌아 와 오르는 촌극도 벌이게 되는 시간도 가져 본다.

이제 감악산 암봉 아래로는 제법 알록달록한 빛의 변화를 보여주며 계절리 바뀌고 있음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기에 쉽게 발걸음 옮기지 못하고 한동안 다시 많은 사진을 남긴 후 천천히 출발을 하는데 잠시 조망을 즐기는 시간에도 찬바람이 불며 추위를 느끼는 시간이다.


그 감악산 좌측 저 멀리에는 올 여름 무더위와 잡목들로 힘겹게 올랐던 두위지맥과 죽렴지맥의 영월쪽 산군들이 환상의 산그리메를 그리며 이 산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자세히 보니 곰봉과 계봉(닭이봉)이 보이고 백운산과 계족산 그리고 고고산도 보이는데 모두 만났던 산들이기에 더욱 반가움이 커지는 시간이다.

다시 계속 진행해 바위 암릉을 만나고 그곳을 지나 낙엽이 지는 참나무 등로를 걸어가니 등로 우측 방향으로 와룡농원(가나안농군학교)가는 방향으로 화살표 표시와 함께 커다란 안내판이 보인다.

다시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는 등로를 따르니 넓은 공터가 보이는 감악고개에 도착을 해 이정표를 사진에 담아 본다.

가막재(감악고개)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재사동에서 남서쪽 충북 제천시 봉양읍으로 넘어가는 감악산 줄기의 고개를 말하는데 감악현이라고도 한다 라는 자료가 있어 정리해 본다.


감악고개에서 우측의 명암리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천년고찰인 백년사가 있는데 백과사전에서 자료를 찾아보니 백련사는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감악산에 있는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662(신라 문무왕 2) 의상이 백련지 동쪽에 백련암이라는 작은 암자를 지었으나 지은 지 30년만인 692(효소왕 1) 큰 비가 내려 산사태로 매몰된 것을 819(헌덕왕 11) 무착이 옛터에 중창하였다. 이후의 연혁은 1588(조선 선조 21) 사명대사 유정이 쓴 치악산백련사중창기문에 자세히 전하는데 이에 따르면 1008년에서 1016년 사이에 연화암이라는 초가가 있었으며 1116(고려 예종 11) 하의라는 도인이 이 초가에서 수도하였다고 한다.

1358(고려 공민왕 7) 혜근이 여주 신륵사를 창건한 뒤 바로 이 절을 중수하였고 1552(조선 명종 7)에는 학륜이 이 절에 머물렀으며 1570년대 초반 벽운과 조당이 윤한필과 김유량 등과 함께 중창하고 1577(선조 10)에 자운이 그리고 1587(선조 20)에는 벽운이 각각 중수하였다.

1798(정조 22)에 처봉이 중수한 뒤 산 이름을 감악산이라 고치고 절 이름도 산 이름에 맞춰 감악사라 하였으며 1910년 유일이 중수하였으나 1916년 불에 타서 뒤에 윤인선이 지금의 위치로 옮겨 중창하고 이름을 백련사로 바꿨다.

1947년 태순이 중수하였고 1950 6.25전쟁으로 파손된 것을 1957년에 중건하였으며 1976년 수해로 대웅전이 무너지자 이듬해 돌로 축대를 쌓았고 1979년 일운이 법당을 중창하였다.

이후 1995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는데 한때는 산내 암자로 미륵사와 신흥사, 천수암, 은적암 및 청련암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 무염당 및 보응문 등이 있는데 대웅전은 정면 5칸과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79년 중건되었으며 내부에 석가모니불 좌상을 모시며 불상 뒤에는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가 걸려 있다.

불상은 조선시대 유물로 목조이며 높이 0.75 미터 어깨 너비 0.45 미터이며 이밖에 신중탱화와 나한을 그린 벽화 4점이 있고 삼성각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962년에 세워졌다.

유물로는 절 동남쪽 200미터 거리에 1기의 부도가 있으며 무착조사 무원석이라고 불리는 이 부도는 높이 1.5 미터로 4각의 화강암 기단 위에 석종 모양 탑신이 올려져 있어 무착의 부도라고 전하나 조성 양식을 보면 조선시대 유물로 추정된다.

절 뒤 석굴에 금수탕이 삼성각 밑에 은수탕이라는 약수가 있는데 전하는 말에 따르면 각각 물 속에 금가루와 은가루가 깔려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특히 은수탕은 효험이 많아 인근에서는 구세정이라고도 부른다.

감악고개를 뒤로 하고 오르니 다시 암릉지대가 나타나고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을 구경하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조망이 뛰어난 마당바위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 풍경을 살펴보며 쉬어간다.

좌측으로 방금 전 지나 온 825와 858봉 능선에 고운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그 우측 중간 저 멀리 치악산 주봉인 비로봉이 얼굴을 내밀고 세상 구경을 하고 있으며 우측 가까이에는 지난 구간 홀로 올라 일망무제로 펼쳐진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즐겼던 매봉산 줄기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등로 좌측으로 바라보면 매봉산 자락 우측 아래로는 신림면 황둔리 창촌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자료를 찾아보니 황둔리는 신림면 사무소로부터 동쪽으로 6 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동쪽으로는 송계리와 접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성남리와 남쪽으로는 감악봉과 석기암을 경계로 충북 제천시 봉양읍과 경계를 이루며 북쪽으로는 매봉산과 첫고개를 경계로 영월군 수주면과 접하고 있다.
원래는 원주군 구을파면 지역으로서 오리 또는 황둔이라고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물안골, 소야, 신목정, 재사동, 창골, 샘골, 청룡, 평촌을 병합하여 황둔리라고 하였다.
서쪽의 싸리치와 동쪽 송계리의 솔치가 있어 교통이 불편한 곳이었으나 지금은 싸리재에 신림터널이 뚫리고 신림 I.C가 생겨 교통이 편리해졌다.

매봉산과 감악봉이 있어 경관이 좋아 도로를 중심으로 음식점이나 휴게소가 들어서고 있으며 특히 감악봉과 백련사, 매봉산을 찾는 사람들이 창촌을 기점으로 하고 있어서 외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구경하고 조금은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이곳은 단풍이 조금 더 곱게 지고 있어 몇장의 사진으로 남겨 본다.

잠시 후 큰 자갈들이 깔려있는 성터 흔적이 있는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고 조금 더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감악산 제2봉과 3봉의 암봉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경고문을 지나 예전에는 멋진 돌탑 몇기가 서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무너져 내리고 흔적만 남아 있는 곳을 통과하니 거대한 암릉들이 올려다 보이는 갈림삼거리 이정표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등로 좌측으로 감악산 제3봉인 원주시 감악산을 다녀왔어야 했는데 진행에만 급급해 제천의 감악산인 일출봉에 올라서야 원주시 감악산 정상을 패스한 사실을 알고 다시 내려 와 원주 감악산을 다녀가는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감악산 이정표에서 좌측으로 표시가 되어 있는 600미터 거리의 계곡코스정상을 보고 다녀왔으면 좋았는데 쉽게 지나쳐 버리고 우측으로 진행을 해 제천 감악산 정상인 일출봉 먼저 오른 다음 이곳으로 다시 뒤돌아 와 이제서야 원주의 원주의 감악산 정상인 3봉으로 올라 본다.

위험 표시가 있는 능선으로 걸어가니 절벽이 앞을 가로막아 다시 뒤로 돌아 우측 사면 등로를 따르니 다시 안전 철봉과 로프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그곳을 지나 바위를 오르며 뒤돌아 보니 오르지 못하는 월출봉과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제천시 감악산 정상인 일출봉이 나란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능선에는 울긋불긋 색동옷을 입고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알려주고 있는 듯 하다.


이곳 원주의 감악산 정상부로 오르는 등로와 정상에서의 조망 역시 일품이었는데 그곳에 도착을 해 주위 조망과 풍경을 둘러본 후 고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이곳 감악산 역시 같은 봉우리를 두고 강원도 원주시와 충청북도 제천시가 서로 싸움을 하듯 정상석을 다른 봉우리에 별도로 설치를 해 놔 조금은 아쉬움이 남아 있다.

원주시 홈 페이지에 들어가 감악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니 감악산(945미터)은 충북제천시 봉양읍과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경계를 이루는 곳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보통 감악산으로 통하고 있지만 국립지리원 지도에는 감악봉으로 되어있다.

가족과 함께 여유있게 등산할 수 있어 예부터 계절에 관계없이 등산인들로부터 인기높은 등산코스이다.

아쉽게도 중앙고속도로가 비끼재와 명암리를 지나 개통되면서 감악산 산행의 백미였던 명암리에서 벽련사 구간이 최근에 등산코스로서의 가치가 줄었으나 오히려 시간이 바쁜 등산객은 산행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잇점이 있어 꾸준한 인기를 누르고 있다 라고 되어 있다.

또한 감악산 자락은 민간신앙, 천주교, 불교가 한데 자리할 만큼 성스러운 곳이다.

서쪽의 신림면은 신성한 숲이라는 이름의 마을이고 남쪽 봉양쪽에는 배론성지가 있는데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 시 천주교인들이 생활하던 곳을 성지화한 곳이다.

그리고 감악산 밑에는 신라 고찰 백련사가 자리잡고 있는데 백련사는 의상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창건 시 아래 연못에서 백련이 피어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감악산 산행 중 둘러보는 것도 좋고 산행을 마치고 앞쪽에 위치한 매봉산장, 치악산관광농원과 송계리에 서마니강이 있어 여름 휴양지로 각광을 받는 곳에 들를 수 있다.

하나의 지자체가 아닌 우리나라 전체를 보고 자치행정을 수행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는 시간이지만 이렇게라도 정상석 하나 세워놨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추억 사진 한장 남기고 그 정상석 뒤로 올라가 보니 작은 돌탑 넘어 그곳에도 환상의 조망과 풍경이 펼쳐져 있어 연신 감탄사를 연발해 본다.

좌측으로 가운데 윗쪽으로 남대봉과 상원사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 뾰족한 시면산이 보이는데 저곳은 백운지맥 산행을 위해 또 다시 올라야 할 곳들이기에 눈으로 그 모습을 잘 담아 본다.

우측으로는 매봉산 줄기가 아름답고 그 앞으로 싸리치로 떨어졌다 오늘 걸어 온 영월지맥 마루금이 이곳 감악산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또한 멋지게 펼쳐져 있다.


매봉산 자락 우측 아래로는 황둔리 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재사골재에서 하산할 수 있는 재사동 마을이 또한 멋진 풍경을 선사하며 조용히 앉아 있다.

그 재사동 마을 뒤 저 멀리에는 백덕지맥 산줄기의 백덕산과 사자산이 보이고 그 우측 아래로는 구봉대산도 보이는데 그 구봉대산 뒷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주왕지맥 산줄기들은 하늘금에 맞닿아 있는 실루엣으로만 보여주고 있어 조금안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그곳 원주시 감악산 정상인 제3봉을 다녀 와 이제는 제천의 감악산 정상인 일출봉을 향해 안전철봉과 로프를 잡고 조심하며 내려오니 낙엽 깔린 등로가 더욱 운치있게 다가온다.

앞쪽으로 계속 보이는 월출봉과 일출봉을 살펴보며 진행을 하니 제천 감악산 정상 우측으로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영월지맥 석기암으로 향하는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후 정상에서 300미터 내려온 지점 우측으로 백련사 옆 금수탕 과 직진의 창촌동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고 금새 감악산 이정표와 등산로 안내도가 서 있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직진의 제천시 감악산 정상인 일출봉 방향으로 진행을 하니 바로 우측으로 암봉으로 이뤄진 월출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오를 수가 없어 사진 한장 남기고 지나니 천삼산과 황둔리 갈림삼거리 이정표와 만나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곳을 지나 계속 산행을 이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자주 만났던 통천문도 만나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그 통천문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우측에 제천시의 감악산 정상인 일출봉을 두고 좌측으로 돌아 진행하도록 되어 있는데 크게 위험하지 않지만 바위를 돌아가는 곳에는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트래버스 하는 동안 도움을 받는다.

잠시 후 비박터를 지나 걸어가니 금새 선답자들의 많은 띠지들이 단풍나무에 매달려 있는 감악산 정상(945미터)이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 배낭 벗어 놓고 우측 바위 사이로 나 있는 바위 등로를 따라 제천시 감악산 정상부인 일출봉으로 향한다.


제천시 감악산 정상부인 일출봉에 오르니 이곳은 원주시의 감악산 정상부인 제3봉보다 더 멋진 조망과 풍경이 펼쳐진 전망대 역활을 하고 있다.

잠시 산친구들과 추억 몇장 남긴 후 일망무제로 펼쳐진 황홀한 풍경과 조망을 마음껏 즐겨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감악산은 해발고도 954 미터의 바위산으로 원주시 신림면, 충북 제천시 봉양읍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치악산과 이웃하고 있어 빛을 보지 못하고 있으나 정상에는 능선코스를 따라 감악1, 2, 3, 월출봉이 이어지며 치악산 못지 않는 절경을 지니고 있다.

감악산 일대에는 남진하는 고구려와 북진하는 신라가 각축전을 벌였던 지역으로 감악산이 천연요새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천연암벽을 이용한 감악산 옛성터, 각 봉우리의 수려함과 빼어난 주변 조망, 신라의 고찰 백련사, 명암리의 마을 수호신 미륵불상 등이 유명하다.

계곡코스는 밧줄 및 암반산행이라 산행 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감악산은 또한 정상의 두 봉우리가 멀리서 보면 감색을 띠어서 감악산이라고 하나 근거가 없으며 전국에 감악산이라는 지명이 여럿 있는데 그 한자 표기도 각각인 것을 보면 우리말을 적당히 한자로 옮긴 것이며 그 뜻은 신과 관련 있는 듯 하다.

감악산 자락은 예로부터 성스러운 땅으로 여겨져서 민간 신앙, 천주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 활동이 이곳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는데 서쪽의 원주 신림은 말 그대로 신성한 숲이라는 뜻으로 감악산의 신성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명이다.

남쪽의 봉양은 천주교가 박해를 받던 시절에 천주교 신자가 모여 살던 곳으로 감악산 성지라 일컬어지며 또한 감악산에는 신라 고찰 백련사가 자리 잡고 있다.

감악산 정상인 일출봉과 월출봉이 완만한 능선에 우뚝 솟아 있고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감악3봉이 모산인 치악산으로 이어지며 그 동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석기암(905.7 미터)과 용두산(871 미터)을 형성한 후 의림지가 있는 제천분지로 낮아진다.

지질은 선캄브리아기 박달령 변성암인 화강암질 편마암으로 호상 화강암질 편마암과 흑운모 반화강암질 편마암이 분포한다.

일출봉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실낱처럼 가늘게 뻗어나간 고속국도 55호선과 그 건너 주론산과 구학산 및 백운산이 보이고 동남쪽으로는 파도치듯 이어진 석기암과 용두산이 눈에 들어온다.

산자락에 있는 신라 고찰 백련사에 은수탕 약수가 있으며 백련사에서 20분 정도 오르면 일출봉에 다다르는데 일출봉 오른쪽으로 돌아 조심스레 암벽을 올라가면 북쪽 산 아래에 솟아 있는 작은 바위 봉우리들이 마치 소금강을 연상케 한다.


제일 먼저 북서쪽을 살펴보니 잠시 들리지 못하고 지나 온 월출봉과 우측으로 원주시 감악산 정상인 제3봉이 단풍 옷으로 갈아 입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그 뒤 우측으로 지난 구간 잠시 다녀오며 환상의 조망에 홀로 웃음을 참지 못했던 매봉산 지나 좌측으로 시명산과 남대봉으로 이어지는 영월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우측으로 있어야 할 치악산 비로봉은 매봉산 산줄기에 먹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이곳으로 오르며 잠시 그 아름다운 얼굴을 만났기에 아쉬움은 덜 하다.

  

이제 눈을 남서쪽으로 돌리니 이곳을 내려가 걸어야 할 영월지맥 마루금이 저 멀리 석기암 지나 용두산으로 이어지고 그 용두산 좌측으로는 삼각형을 이루며 뾰족하게 솟아 있는 송학산이 또한 아름답다.

그 용두산 지나 저 멀리 희미하게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마루금들도 보이고 그 끝자락에 영월과 단양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태화산도 올려다 보이는데 이제 이 영월지맥 산행도 그 마무리가 되어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약간의 박무가 있지만 이렇게 큰 기대를 하지 못했던 환상의 산그리메를 만난 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한 웃음이 절로 나오는 시간이었다.


정상에 자라다 죽어가는 소나무 한그루와 그 옆으로 솟아 있는 바위가 참으로 묘한 조화를 이루며 이 산객의 눈길을 잡는다.

그 죽어가는 소나무 지나 저 멀리 올 봄 진눈개비가 내리던 날 홀로 오르며 고생을 했던 구학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 주론산이 보이면서 좌측 뒷줄로 사랑산 넘어 천등지맥의 주산인 천등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제천쪽으로 출장을 내려왔다 얼떨결에 강승갱이까지 진행하고 더 이상 발길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천등지맥이기에 그 그리움이 커지는 시간이다.

다만 그 뒤로 금수산과 월악산을 찾아 보지만 오늘은 약간의 박무 현상으로 이곳 감악산 정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이곳 제천시 감악산 정상인 일출봉에서 많은 시간 즐긴 후 다시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로 내려가니 동해바다 산친구가 사진을 보여주며 원주시에 있는 감악산 정상인 제3봉을 빼 먹었다며 잠시 다녀온다기에 따라 나서 결국 그 원주시 감악산 정상을 사진에 담고 내려 와 이곳 감악산 정상 이정표가 있는 안부로 되돌아 오니 약 20분에서 30여분이 소요된 듯 하다.

이제 제천시 감악산 정상 암봉을 우측에 두고 좌측 사면 우회 등로를 따라 가파르게 내려가니 등로 주변으로 화사한 단풍들이 곱게 물들면서 반갑게 맞이해 준다.

 

낙엽이 깔려 있는 내리막 등로이기에 조심하며 내려가니 감악산 정상에서 200미터 내려 온 지점 갈림삼거리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살펴보니 우측으로 백련사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이다.

백련사까지 800미터라는 거리 표시가 있어 들려볼까 고민하다 함께하는 산친구들이 있어 포기하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정상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국가지점번호와 119 도움 안내판인 감악산-05 지점을 지나 좌측으로 방금 전 내려 온 감악산 바위 절벽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바위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

 그 바위 암벽 사이로 물들어 가는 단풍이 인공미를 전혀 가미하지 않아도 자연의 조화로움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감악산 정상부를 좌측에 두고 우측을 살펴보니 좌측 끝자락의 백덕지맥의 주산인 백덕산이 높게 솟아 보이고 그 우측으로 구룡산과 구봉대산 뒤로 조만간 오르려고 준비중인 주왕지맥 산줄기 상 고봉들이 아름다운 하늘금에 맞닿아 흐르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 우측 아래로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석기암과 용두산 그리고 지맥 마루금에서 좌측으로 벗어나 있는 송학산을 살펴본 후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고 잠시 후 커다란 바위와 고사목이 있는 곳을 지나 약간의 바위지대를 통과한다.

다시 국가지점번호와 119 도움 안내판인 감악산-04번을 지나 886미터인 감악봉 정상에 도착을 하니 전망바위 사이로 조망이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감악봉(886미터)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봉양읍과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886미터로서 봉양읍 명암리와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에 걸쳐 있다.

감악산성이 있었으며 이 산성은 제천의 다른 산성들과 달리 강을 끼지 않은 산성이고 북쪽의 치악산에서 이어져 내려오며 남쪽으로 석기암산과 연결된다.

산 서쪽으로 중앙고속도로와 5번국도가 지나가며 정상 바로 밑에는 662(신라 문무왕 2) 의상대사가 창건한 백련사가 있고 절 뒤에는 동자 바위와 선녀 바위라는 두 개의 바위가 보인다.

감악산성터도 남아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제천)에 감암산이 현의 북쪽 40리에 있다라고 수록되어 있고 감암사가 감암산에 있다고 수록되어 있다.

감악산이 감암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와 같이 옛 문헌에는 대부분 감암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제천)에는 치악산의 동남쪽 줄기이고 관아의 북쪽 40리에 있으며 동쪽으로 뻗어 가서 용두산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제천현 북면의 북쪽에 감악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조선지지자료에는 제천군 봉양면과 원주군 신리면에 걸쳐 있는 감악봉으로 수록되어 있고 이를 볼 때 본래 감암산, 감암으로 표기되다가 후에 감악봉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느 선답자는 이곳이 아닌 계단이 시작되는 전망대가 설치된 곳을 감악봉이라 칭하고 있어 조금은 헷깔리는 지명과 장소이기도 하다.


그 감악봉 정상에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환상의 산그리메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데 그 이름을 한번 맞춰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제일 앞 라인은 우측의 석기암봉에서 가지를 친 능선으로 재사골 뒤로 흐르는 700미터급 산줄기가 선명하게 보이고 그 뒷줄에는 용두산 직전 867봉에서 가지를 친 산줄기라 생각되며 그 뒤로 백덕산 줄기가 보인다.

그 백덕지맥 마루금을 지나 주왕지맥 산줄기들이 중첩되어 있고 그 뒤로 가면 영월의 두위지맥과 죽렴지맥의 산군들이 끝없는 산그리메를 이루며 이 산객과의 인연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올 여름 무더위가 오기 직전 저 두위지맥과 죽렴지맥을 따라 원시림 같은 등로도 만나고 잡목도 헤치며 너무 뾰족한 봉우리 때문에 너무나 힘들게 올랐던 많은 추억들이 남아 있기에 잊을 수 없는 영월의 산들이 되어 있는 곳들이다.


북동쪽으로 황둔마을 지나 솟아 있는 백덕산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안전로프가 설치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또 다시 거대한 바위 암봉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그 암봉을 우측에 두고 좌측 우회 등로를 따라 급경사 낙엽 내리막 등로를 조심하며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갔다 다시 가파른 경사면을 치고 오르니 드디어 작은 전망대가 설치되어 잇고 내리막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소나무와 바위 암봉에 도착을 하는데 어느 산님들은 이곳을 감악봉이라 하였는데 높이는 방금 전 지나 온 바위 암봉과 거의 유사한 듯 보인다.

등로 좌측 앞 진행 방향으로 석기암 가는 능선을 살펴 보고 잠시 심호흡 하고 길게 이어진 내리막 계단을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보는 시간이다.


어느곳이 진짜 감악봉인지 헷깔리기만 하다.

이곳도 많은 산님들이 감악봉이라 칭하였는데 직전에는 좁은 나무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고 우측으로는 길게 이어진 나무계단이 보이는 바위봉이다.

또 다른 감악봉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감악봉(886미터)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과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치악산 남동쪽에 위치하며 주위에 용두산과 석기암 등이 있다.

사방이 급경사를 이루는 암석산지로서 북동쪽 기슭에는 수림이 울창하며 가나바위까지 급경사의 능선이 펼쳐지는데 특히 남쪽 계곡을 따라 요부골로 내려오는 기슭의 경관이 아름답다.

북쪽에 백련사가 있고 서남쪽 기슭에는 가나안 농군학교가 있으며 창촌에서 백련사를 거쳐 정상 지나 비끼재와 학산리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으나 가파르기 때문에 충분한 등산장비가 필요하다.

치악산국립공원과 인접해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산으로 숙박시설과 상가 등의 관광 편익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학산리 쪽으로 국도가 나 있으며 남서쪽 산록으로 지방도가 지나고 원주시에서 신림까지 그리고 신림에서 창촌까지 각각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지도를 살펴본 후 설치된 게단을 따라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생각보다 길게 이어진 내리막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가니 연이어 바위들이 보이는데 766 무명바위를 지나 소나무와 함께하는 765 무명바위도 통과한다.

다시 그 옛날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어린 소나무에 깊은 상처를 낸 자국이 있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제법 큰 바위들이 등로를 뒤덮고 있어 조심하며 그 바위 너덜 등로를 넘는다.

특히 낙엽이 떨어져 쌓여 잇기에 여간 조심스러운 등로가 아니였다.

길게 이어지는 그 바위 너덜 등로를 지나니 등로는 완만하게 내려가는데 이제는 참나무 군락지로 변하고 있다.


낙엽송이 보이고 그 아래 노란 단풍빛으로 변해가는 등로를 타고 기분 좋게 걸어 내려가니 저 아래 안부가 보이는데 그 안부 한가운데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내려가 확인해 보니 이곳이 등로 좌측 재사등으로 하산할 수 있는 재사골이 시작되는 지점의 재사골재이다.

재사골재(석기재, 670 미터)는 원주시 신림면에 위치한 재사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하는데 재사골은 재사동에서 감악봉과 석기암 중간으로 이어지는 골짜기를 말하며 충북 제천시 봉양읍과 요부골 및 비끼재로 이어지는 골짜기이다.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 재사골에서 충북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 요부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석기암 아래에 있다고 해서 석기재라고도 부르는 고개 안부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지만 그 옛날처럼 먹고 살기 위한 길이 아닌 등산이나 임산물 채취를 위한 길처럼 보이는 고개였다.


재사골재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에는 굵은 낙엽송 지대가 펼쳐져 있고 잠시 후 주능선으로 오르니 짧은 잣나무 등로도 보인다.

그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 평이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낙엽송 지대가 열리고 잠시 후 커다란 바위를 지나 낙엽이 쌓여 있는 운치있는 우회 등로로 걸어 본다.

그렇게 한고비 치고 오르니 국가지점번호와 119 도움 안내판인 감악산-03 이정판이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계속 이어지는 커다란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간간히 굵은 소나무들도 섞여 있고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나즈막한 안부로 떨어지는데 그곳에는 우측으로 문바위로 향하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제 석기암까지 1.6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그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억새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폐헬기장도 통과를 한다.

이제 관리가 되지 않으면 금새 자연 상태로 회복되어 폐헬기장이 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 되는 듯 하다.


폐 헬기장을 지나 굵은 참나무 아래 노란색으로 단풍이 들기 시작한 싸리나무를 친구 삼아 빠르게 걸어가니 다시 단풍나무들이 섞여 있는 바위지대를 만나 우회하며 통과를 해 본다.

다시 키가 큰 소나무와 싸리나무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하니 소나무는 어느새 참나무로 수종이 변경되고 있다.

별 특징 없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간간히 굵은 바위들이 보이고 우회하며 전진하니 용두산과 석기암이 갈리는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만나 잠시 헬깔린다.

석기암을 지나야 용두산으로 갈 수 있는데 두 봉우리를 별도의 등로를 이용해 가라고 하니 어느 등로가 맞는지 헷깔리지만 일단 우측의 석기암 방향의 나즈막한 봉우리로 올라 가니 그곳이 석기암 정상이다.


석기암 정상으로 오르니 정상석이 보이고 그 뒤 바위에서 살펴보는 조망 역시 뛰어나 한동안 배낭 내려 쉬면서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보는 석기암이다.

이곳 석기암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두가지 다른 자료들이 보여 정리를 해 보니

석기암(903)은 충북 제천시 송학면 오미리와 봉양읍 명암리 및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의 경계에 있는 암봉으로 명칭이 특이하게 봉이 아닌 암으로 되어 있으며 정상은 그저 평범해 보이나 아랫쪽 뾰족한 암릉으로 상당히 산의 지세가 험하다

정상에는 이정표와 제천시에서 설치한 오석의 표시석에는 고도가 906미터 라고 되어 있지만 906봉은 바로 맞은편에 있는 봉우리이라 오기라 생각된다.

지명의 유래는 이 봉 아래에 있는 황둔리 물안골 서북쪽에 있는 석기동 마을에서 유래된 듯 하며 석씨 성을 가진 선비가 은둔하고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석기암산(906)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과 충북 제천시 봉양읍의 경계를 이루는 감악산(920) 동쪽에 솟아 있는 산으로 석기암산 입구에 이르는 길은 일단 감악산 입구인 창촌에서 약 2 Km 거리인 재사동으로 가야한다.

재사동에서 남쪽 논두렁을 지나 심하게 출렁거리는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100미터쯤 석기암산으로 들어서면 전형적인 농촌 풍경을 자아내는 요부골 입구인 여기서 약 1 Km 거리에 이르면 길이 오른쪽으로 꺾이면서 정면으로 감악산 전경이 앞을 가로막 듯 시야에 들어온다.

일출봉과 월출봉이 함께 보이는 감악산을 바라보며 5분 가량 들어서면 Y자로 잘라진 계곡이 합수되는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여기서 감악산이 바라보이는 계곡은 일출골로 석기암산은 남쪽 계류를 건너 협곡 안으로 들어서는 요부골로 올라서야 된다.

산행을 하다보면 산의 높이를 제각각 다르게 표기를 하고 있어 여간 헷깔리지 않는데 이곳 봉우리의 해발고도도 모두 다르게 표기가 되어 있어 헷깔리기만 하다.


석기암 정상에서 진행 방향으로 남서쪽을 살펴보니 잠시 후 만나야 할 피재점에서 우측 피재 방향으로 산줄기 하나를 보내고 마루금은 좌측으로 이어져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867봉과 용두산을 넘어야 한다.

그 용두산 좌측으로는 삼각형 모양으로 솟아 잇는 송학산이 아름답고 용두산 우측 저 멀리에는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영월지맥의 가창산과 삼태산 지나 마지막 봉우리인 태화산이 가물거린다.

그 가창산 가기 전 우측으로는 오늘 산행 남ㄹ머리인 삼고개가 있겟지만 여기에서는 보이지 않고 그 우측으로 제법 크게 펼쳐진 제천시내의 회색 빌딩들이 거대한 군락을 이루며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 영월지맥 마루금 뒤로는 하늘금과 맞닿아 있는 소백산의 연화봉 천문대도 희미하게 보이는데 살펴보니 그 라인 전체가 소백산이고 좌측 위로 올라 희미하게 보이는 곳이 태백산과 정선쪽 함백산 부근이다.


등로 남쪽으로는 오늘 하루 종일 찾아 해매였던 금수지맥의 금수산과 그 뒤 저 멀리 충주호 옆에 솟아 있는 월악산을 찾아 조망해 본다.

제천의 회색빛 빌딩 숲을 지나 우뚝 솟아 있는 금수산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오고 그 우측 저멀리 희미하게 월악산 영봉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데 박무로 인해 선명하지는 못하지만 그 모습만큼은 이곳에서도 확실하게 구분이 될 정도로 군계일학이다.

모두 몇 번씩인가 올랐던 산들이지만 맥 잇기 산행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한번 더 올라야 할 곳이기에 마음속 깊이 그 모습을 간직도 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멋진 조망과 풍경을 즐기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석기암을 출발하니 등로 앞에 거대한 바위가 가로막고 주의하며 안전로프에 의지하며 우회해 내려가니 금새 석기암에서 500미터 진행해 왔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이정표를 지나 커다란 참나무 아래 노란 싸리군락지가 펼쳐진 등로를 따르니 국가지점번호와 119 도움안내판인 감악산-02 이정판이 설치되어 있는 814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별 특징 없는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나즈막항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잡풀과 싸리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황금빛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걸어 간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우측 봉우리를 좌측 사면 등로로 통과하여 안부를 넘고 다시 좌측으로 우회하는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소나무가 송진을 채취했던 아픈 과거를 딛고 자라고 있는 장소에 도착을 한다.

잠시 후 국가지점번호와 119 도움 안내판에 감악산-01이라는 이정판을 지나 피재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만나는데 이곳에서도 잠시 등로를 잘못 파악해 헷깔렸던 지점이다.

분명 피재를 통과한다고 입력이 되어 있어 피재로 가야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용두산 방향과 달리 일단 눈에 보이는 좌측 봉우리로 올라 준비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우측 피재 방향으로 내려가자고 생각해 봉우리로 오르니 그곳이 비로 피재점으로 우측의 피재 방향이 아닌 좌측의 용두산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되기 때문에 아주 정상적으로 진행을 하게 되었다.

피재점(784미터)는 피재에서 올라가 만나는 봉우리로서 피재는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과 모산동에 있는 고개인데 일찍이 벼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 조상들의 주식이었던 조라는 곡식을 예전에는 피라고 하여 벼농사를 짓기 시작한 후 논의 잡초인 피와 발음이 같아 그 의미를 잃게 됐다.

피가 주곡이었던 만큼 마을 주변에는 피밭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고 피밭과 같이 피와 관련된 지명들이 아직도 많이 남게 되었으며 그 피재는 현재 직티라는 지명으로 불리며 제천시 모산동에서 봉양읍으로 넘어가는 9번 도로상에 있다.


피재점 정상에는 참나무를 잘라 만든 통나무 벤취가 있어 그곳에서 배낭 내려 준비한 간식으로 점심을 대신해 허기를 면하고 출발한다.

이정표를 보니 용두산까지 4.1 Km거리인데 진행 방향으로 용두산이라 생각되는 높은 봉우리가 너무 가깝게 보여 처음에는 거리 표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진행하다 보니 용두산 가기 전 867미터의 높은 전위봉이 하나 더 있어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약간의 단풍이 지고 있는 잡목과 잡풀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뚜렷해 지고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지나 다시 한동안 오르니 이제 우측으로 산림욕장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용두산까지의 거리가 3.2 Km로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정표를 지나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통과하니 예전에 통과한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는 제법 높은 높이의 돌탑 몇개가 있었던 장소를 통과하는데 이제는 모두 허물어져 그 흔적만 약간 남아 있는 곳도 지난다.

쓰러진 돌탑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금새 벤취 쉼터가 보이는 공터의 오미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오미재(못재, 해발 696미터)는 제천시 송학면 오미리에서 모산동 용두산 산림욕장으로 내려서는 고개로 오미리의 지명을 따서 오미재라 부르며  의림지 윗쪽의 고개라 하여 못제라고도 불린다.

오미리의 지명유래는  야생 오미자가 많이 자생해서 오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고 또 다섯 골의 물맛이 골마다 달라 다섯 가지 맛이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나랭이, 나막신골, 선바우, 소바우, 우암, 일오곡 등이 있다.

특산물로는 고추, 담배가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산림욕장으로 내려 갈 수 있는 하산길이고 좌측으로는 오미고개란 이름을 붙게한 점골(오미)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사거리 안부이다.


오미재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는 이제 커다란 소나무 등로가 아름답게 열려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걸어 오르니 소나무가 잡목 구간으로 변하는데 그 잡목들은 이미 낙엽을 모두 떨구고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커다란 고사목 하나가 눈에 들어 오고 곧이어 깃대2개와 커다란 참나무가 잘려 밑둥만 남겨진 813미터에 도착을 하는데 그 앞에는 최근에 설치된 듯한 모노레일이 깔려 있어 의아한 생각을 해 본다.

이곳에 올라 와 보니 지금 오르고 있는 산이 용두산이 아니고 전위봉임을 실감하게 되고 이제부터 이마와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리는 굵은 땀방울을 닦아내기 바쁜 시간이 되었다.

  

잠시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최근에 설치된 듯한 깨끗한 모노레일이 깔려 있고 그 모노레일을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가파른 능선으로 올라가는 끝지점에서 모노레일도 끝이난다.

모노레일의 용도가 궁금해 귀가 후 찾아 보니 MTB 모노레일로서 MTB자전거를 정상까지 운반하는 용도로 사용했다는 자료가 보인다.

약간의 바위가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곧이어 벤취 쉼터와 이정표 그리고 전망바위가 있는 857 미터에 도착을 하니 어르신 몇 분이 점심식사를 즐기고 있어 인사 드리고 우측 전망바위로 가 남쪽으로 제천시내 방향과 동쪽으로 진행 방향의 용두산을 조망해 본다.


먼저 진행해야 할 동쪽의 용두산 방향을 살펴보니 눈으로 보기에는 이곳 전망바위보다도 더 낮아 보이는데 저곳까지 갈려면 아직도 1.7 Km 나 더 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 다리에 힘을 빼 놓고 있다.

그 용두산 좌측으로 보이는 뾰족한 산은 오늘 하루 종일 보였던 제천의 송학산으로 산행을 진행하면서는 귀찮아 지도를 꺼내 확인하지 않아 그 이름을 알지 못하고 진행을 하였었다.


진행 방향의 용두산과 송학산을 살펴본 후 이제 눈을 돌려 우측 남쪽을 내려다 보니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공원묘지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 제천시내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우측 소나무 가지 사이로는 위쪽에 제2의림지와 그, 아래쪽으로 의림지도 보이기 시작한다.

의림지는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저수지로서 우리 나라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저수지로 손꼽힌다.

제천의 옛 이름인 내토, 대제, 내제가 모두 큰 둑이나 제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이 제방의 역사가 서력기원 전후의 시기까지 오르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으며 세종실록에는 의림제라고 표기하였다.

낮은 산줄기 사이를 흐르는 작은 계곡을 막은 제방은 길이가 530척이며 수위는 제방 밖의 농경지보다 매우 높아서 관개면적이 400결이나 되었으며 못의 둘레는 5805척이나 되고 수심은 너무 깊어서 잴 수 없다고 하였다.

상주의 공검지나 밀양의 수산제, 김제의 벽골제와 같은 시기의 것이지만 제방의 크기에 비해 몽리면적이 큰 것은 제방을 쌓은 위치의 수위가 높기 때문이다.

현재는 물의 주입부에서부터 토사가 쌓여 작아진 것으로 제방은 산줄기 사이의 낮은 위치에 자갈과 흙과 모래, 벌흙을 섞어서 층층으로 다지되 제방 외면이 크게 단을 이루도록 하였으며 단면이 이중의 사다리꼴을 이루고 외면은 석재로 보강하였다.

출수구는 본래의 자리가 원토인 석비레층으로 그 위에 축조되었던 것이나 지금은 원형이 사태로 말미암아 없어지고 패어 나간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제방은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처음 쌓았다고 하고 그 뒤 약 700여 년 뒤에 박의림이 쌓았다고 한다.

문헌에 기록된 바로는 세종 때 충청도관찰사였던 정인지가 수축하고 다시 1457(세조 3) 체찰사가 된 정인지가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의 단종복위운동에 대비하여 군사를 모으면서 호서, 영남, 관동지방의 병사 1500명을 동원해서 크게 보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뒤 1910년부터 5년 동안 3만여 명의 부역에 의해 보수하였던 것이 1972년의 큰 장마 때 둑이 무너지자 1973년에 다시 복구한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다.

현재의 의림지는 호반둘레가 약 2 Km 호수면적은 15 1470 m2, 저수량은 661 1891 m3, 수심은 8-13미터인데 현재의 몽리면적은 약 300정보에 이른다.

수리 관개 뿐만 아니라 유서 깊은 경승지로 이름이 있으며 충청도지방에 대한 별칭인 호서라는 말이 바로 이 저수지의 서쪽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제방과 호수주변에는 노송과 수양버들이 늘어섰고 1807(순조 7)에 세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가 있으며 이곳 특산물로는 빙어가 유명하다.


그렇게 그곳 벤취 쉼터에서 조망을 즐기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낸 후 다시 힘을 내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와 잡목들이 보이는 867미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지금까지 올라 오면서 이곳 867미터 무명봉을 용두산이라 착각하고 올랐으니 거리 표시가 모두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제 다시 송한재를 향해 가파르게 내려가야 한다.


잠시 평이한 등로가 열리고 등로 옆으로는 나무 벤취 쉼터 2개도 설치가 되어 있어 오르먀 힘들었던 두 다리를 쉴수 있게 만들어 놨다.

국가지점번호와 119 도움 안내판인 용두산-02 이정판을 지나니 단풍이 들기 시작한 등로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후 오대조영월신공 묘지 한기가 보인다.

그 묘지를 지나 무명 안부를 넘고 다시 나즈막한 무명봉을 통과하여 내려가니 벤취 쉼터와 용두산 등산 안내도 및 송한재 이정표가 서 있는 좁은 공터의 송한재에 도착을 한다.

송한재는 바로 아래에 있는 송한리라는 마을에서 유래된 고갯마루로 보인다.

송한리는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에 있는 리로서 용두산 북쪽에 있는 마을로 소나무 숲이 많이 우거져 있어 큰 가뭄이나 큰 수해가 없는 마을이라고 하며 석회암으로 형성된 고갯마루인 곱돌고개가 있다. 매끈매끈한 횟돌(곱돌)이 많았으므로 곱돌고개라 하는 송한리는 쇠가 났으므로 소난이, 솔안 또는 송한이라 하였다.

굴암리를 병합하여 송한리가 되었으며 자연마을로는 실곡, 굴바우, 굴암, 돌매기, 다랫양지, 진두득 등이 있고 특산물는 사과, 고추, 수박, 담배가 있다.

송한리의 지명유래는 송학면에서 가장 넓은 지역인 송한리에 있는 송학산의 명칭을 따서 지었으며 송한리에는 절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고려 고종 때 몽고군이 우리나라에 대거 침입하여 조정에서 강화도로 천도할 무렵 서울에서 난을 피하여 이곳에 온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는데 부인은 낮이고 밤이고 부처님 앞에 나가 불공을 드렸다.

그러던 중 절 근처에 살던 젊은 머슴이 이 아름다운 부인을 사모하게 되었으며 날마다 불공 드리는 부인을 멀리서 엿보며 가슴의 연정을 달래였다.
그러던 어느 달 밝은 밤 부인이 불공을 마치고 절 뒤편으로 잠시 나온 것을 보고 뒤를 따라가 부인에게 달려들어 부인을 숲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얼마 후 절로 돌아온 부인은 자기가 기거하는 방에 들어가 조용히 자진을 하였고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절은 갑자기 온데 간데없이 사람의 눈에서 사라졌고 부인이 기거하는 방이 있던 자리에서 바위가 하나 솟아 나왔다.

사람들은 부인의 한이 사무쳐 바위가 되었다고 하여 그 바위를 설통바위라고 불렀는데 부인의 화신이라고 믿었다.

공터를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제천 시민들이 올라 와 쉬고 잇기에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고 이정표와 등산 안내도만 사진에 담고 곧바로 용두산을 향해 출발한다.


좁은 공터의 송한재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는 다시 참나무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은 완만한 등로를 따라 오르니 용두산을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등로는 반질거리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등로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걸어 오르니 첫 번째 긴 오르막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힘겹게 올라 본다.

계단을 지나 먼지가 풀풀 나는 갈지자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으로 벤취 쉼터 하나가 나타나는데 역시나 많은 등산객들이 오르는 산이다 보니 안전과 휴식 시설들도 잘 설치가 되어 있다는 느낌으로 오른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오르니 송한재에서 만났던 등산객들을 다시 만나고 눈 앞에 보이는 나무계단을 따라 어렵게 걸어 오르니 벤취 쉼터들을 지나 금새 넓은 헬기장과 전망데크 그리고 정상석과 삼각점이 보이는 용두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용두산(871)은 충청북도 제천시의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높이는 871미터이다.

모산리와 송학면 도화리, 포전리 및 오미리에 걸쳐 있으며 제천의 진산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용두산이 현의 북쪽 20리에 있으며 진산이다라고 수록되어 있고 또한 동일 문헌에 성황사가 용두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제천)에는 용두산은 감암산의 줄기로서 현의 북쪽 12리에 있으며 산 정상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쪽으로 가라곡현, 이치, 삽현, 조을치가 되며 동남쪽으로 솟아나 오작산이 된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이외에도 여러 옛 지도에 용두산이 표시되어 있다.
용두산이라는 지명은 용 신앙을 산 이름에 붙인 상징적인 경우로서 전통적인 민속 신앙의 한 흐름인 용 신앙과 관련된 대표적인 지명으로, 산의 모양이 용의 머리 형상을 한 형국으로 보아서 산이 높은 만큼 용을 우러러 보는 용에 대한 외경을 드러낸 지명이라고 전해진다.

정상에 오르니 많은 등산객들이 제 각각 다른 모습으로 시간을 즐기고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제일 먼저 헬기장을 지나 전망데크에서 남쪽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걸어 내려가야 할 영월지맥 마루금이 산세를 급격하게 낮춰 비산비야로 이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저 아래 공원묘지도 내려다 보인다.

그 공원묘지 좌측으로 크게 우회하며 진행을 해야 하는 제천변전소도 보이고 그 앞으로 야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그 영월지맥 마루금 우측으로는 의림지 지나 제천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의림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지 많은 산님들이 의림지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제천시내 뒤로는 다음 구간에 만나게 될 갑산지맥 분기점에서 분기된 갑산지맥과 그 뒤로 금수지맥의 주산인 금수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영월지맥 마루금 좌측으로는 역시 제천의 진산이라 대접을 받고 있는 송학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아주 가깝게 다가 온다.

남쪽으로 흐릿하지만 금수산은 여전히 눈에 들어 오지만 그 우측 저 멀리 보여야 할 월악산은 박무가 심해지며 그 모습을 감추고 말았는데 눈으로만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그렇게 동쪽부터 남쪽 남서쪽 방향의 조망을 즐긴 후 북서쪽을 살펴보니 저 멀리 치악산 남대봉과 시명산이 보이고 그 좌측 끝자락을 따라 서쪽 방향으로 백운지맥과 천등지맥의 산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곳 용두산 방향으로는 영월지맥의 감악산과 석기암 그리고 방금 전 용두산이라 믿고 올랐던 용두산 전위봉인 867봉까지 중첩되는 산그리메로 다가오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더 머물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따라 영월지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길게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등로는 고속도로처럼 뚜렷하게 나 있는데 워낙 많은 등산객들이 다녔는지 등로가 패이고 잡목과 잡풀 하나 자라지 못하는 먼지만 풀풀 날리는 등로로 변해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조화롭게 자라고 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계속 내려가니 등로 옆으로 철로 만들어진 벤취 쉼터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면서도 등로는 크게 변함이 없이 계속 뚜렷한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등로는 완전히 굵은 소나무 등로로 바뀌고 조금은 힐링하듯 걸어 내려가지만 오르막 등로 없이 내려가기만 하니 발바닥과 발가락들이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내려가니 갈림길도 없어 길 잃을 염려도 없이 고속도로를 달려 다시 벤취 쉼터와 119구조안내 용두산 04 지점판이 있는 678미터의 안부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잠시 등로를 확인하며 우측으로 나 있는 뚜렷한 임도를 타고 걸어 내려가도 될듯 한데 원 마루금은 앞에 보이는 봉우리로 올라 우측으로 꺽여 진행되고 있어 다시 안부를 지나 우측으로 꺽이는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잡목 등로를 타고 올라 본다.


철 벤취 쉼터와 119 구조 안내 용두산-04 지점판이 있는 안부를 지나 잡목 등로로 오르니 간벌된 소나무 가지들이 말라 쌓여 있는 688미터의 무명봉에 올랐다 그곳 정상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 본다.

잡목지대를 지나 조심하며 내려가니 다시 넓은 뚜렷한 임도 등로와 만나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고 송전탑 하나를 통과하는데 번호는 보이지 않는다.

그 송전탑을 지나니 다시 철 벤취 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 또 다른 송전탑을 통과하는데 남쪽 방향으로 보이는 번호는 확인 할 수 없어 통과해 본다.

그 송전탑을 지나니 이제 용두산에서 벌써 1.5 Km 지나 왔다는 이정표를 만나 제2의림지인 비룡담 방향으로 계속 걸어 내려가 본다.


수레길 같은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산책 나온 등산객들도 만나고 잠시 후 다시 철 벤취 쉼터 하나가 설치되어 있는 곳도 통과를 해 본다.

잠시 후 짧은 통나무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는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고 마루금은 직진의 잡목 지대로 이어지고 잇는데 그 잡목지대로 들어가니 녹슨 철조망이 가로막는다.

작은 개구멍이 있어 그 개구멍으로 들어가 진행을 해 보지만 얼마 가지 못해 다시 2중 녹슨 철조망이 기다리고 있기에 이곳에서 그 녹슨 철조망 우측으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진행하는 덧이 더 수월할 것 처럼 보인다.


다시 나타나는 녹슨 2중 철조망을 어렵게 넘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잠시 지독한 잡목 구간이 나타나고 가시에 찔리며 힘들게 그 잡목 구간을 빠져 나가니 벌초되어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 위로 나가는데 그 우측으로는 밭 경작지가 보이고 저 멀리 민가들도 보인다.

제2의림지와 세명대학교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곳으로 이제 동막고개가 가까워졌음을 느끼는 시간이다.


묘지를 지나 밭 좌측 가장자리로 나 있는 바위 능선으로 들어가니 금새 11번 송전탑과 12번 송전탑을 연이어 통과하고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소나무 등로에서 배낭 내려 잠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출발하기로 한다.

약간의 잡풀들이 자라고 있지만 뚜렷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는데 내려가 확인해 보니 마루금 방향으로 새로운 민가들이 들어 오면서 마루금이 약간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최근에 새로 지어진 듯한 건물들과 민가들 사이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이제 조금은 편안하게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내려가다 건물에 붙어 있는 도로명을 보니 이곳은 도화로로 되어 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임도 우측으로 에스골 장어마을이라는 식당이 보이는데 장어를 굽는 냄새가 코를 찔러 진행에 어려움을 느껴도 본다.

그렇게 계속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한동안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다 좌측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능선으로 질러 내려가니 금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동막고개에 도착을 해 도로를 따라 좌측 고갯마루로 올라 간다.

동막고개는 제천시  고암동에서 송학면 도화리 넘어가는 고개로 2차선의 도로로 고개 좌측에는 세명대학교와 솔밭공원, 의림지가 있는 곳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에 있는 고개로 동쪽에 막을 친 것처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동막은 다른 지역에도 흔히 보이는 지명이므로 한자 지명에 맞춘 인위적 설명에 불과하다.

동막마을에 효자 박전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마을이다

효자 박전 이야기의 전반부는 효박전이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병환이 든 아버지를 살리고 후반부는 아버지가 음력 6월에 배를 드시고 싶다 하자 죽음을 무릅쓴 지극 정성으로 배가 든 작은 상자 궤짝을 구하여 드렸다는 효행담이다.

세명대학교에서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 고개를 넘으면 동막마을이 있고 이 마을을 지나는 길옆에 박전효자문이 위치하고 있다.

고갯마루로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영월지맥은 그곳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며 이어지고 있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산 모퉁이를 돌아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곧이어 사과 과수원이 나타나는데 아직 완전히 붉게 익지 않아 은박지를 깔아 색을 입히고 있는데 유독 두 그루에서는 사과가 붉게 물들어 가고 있어 사진 한 장 남겨 본다.

그 사과과수원 가운데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사과밭 주인들이 보여 인사를 나누고 혹시 인터넷을 통해 판매가 가능한지 확인해 보니 이곳 주인은 전부 다 협동조합을 통해 판매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 판매는 하지 않는다는 아쉬운 이야기를 듣는다.


향기로운 사과 냄새가 진동하는 사과과수원을 지나 능선으로 들어가니 통덕랑경주이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등로는 그 묘지 옆으로 이어지고 있다.

통덕랑 조선시대 문신 5 상계 품계명으로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 7 문산계가 제정될 5 상계는 통덕랑으로 하계는 통선랑으로 정하여져 경국대전에 그대로 법제화 되었으며 5품에 해당하는 관직에 오르면 통덕랑이라 불렀.

5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검상, 정랑, 교리, 직장 별좌, 문학 등이 있으며 이들이 5품으로 열거한 직책에 오르면 통덕랑이라 불렸던 것이.

현재의 직책으로 따지면 서기관이나 군수쯤 되는 직책이다.

그 통덕랑 묘지들을 지나니 깊은 안부로 내려가는데 처음에는 이곳이 모산재로 착각을 하였지만 모산재는 조금 더 진행한 후 만나는 시멘트 포장도로이고 이곳은 그저 깊이 패인 무명 안부이다.


무명 안부를 지나 나즈막한 능선으로 오르니 잡목이 우거진 소나무 등로로 이어지고 또 다시 깊이 패인 무명 안부를 만나 통과한다.

무명 안부를 지나 소나무 등로로 오르니 등로는 우측으로 빙 돌아 내려가고 곧이어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모산재에 도착을 한다.

모산재는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에서 고암동으로 통하는 조그만 고개인데 이곳은 예전에 모산동이었는데 행정개편으로 인해 고암동에 편입된 곳으로 모산재의 지명 유래는 의림지의 안쪽이라는 뜻에서 못안이라고 불리다가 발음하기 쉬운 모산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즉 모산은 못 안의 이두식 지명으로 마을로 이어지는 포장된 조그만 소로로 우측으로는 의림지로 통하는 마을 도로처럼 보이는 고개가 나오는데 이곳이 모산재이다.

모산재은 바로 아래에 있는 모산동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듯 하는데 모산동은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법정동으로서 행정동인 고암과 모산동 관할이다.

모산재는 도화리와 의림지를 이어주는 비포장과 포장도로가 혼재되어 지나는 고개이다.

모산동은 제천시 도시지역의 서북부에 있으며 동쪽과 북쪽으로 제천시 송학면 오미리와 포전리, 서쪽으로 봉양읍 명암리, 남쪽으로 신월동과 접한다.
원래 제천군 현좌면 지역이며 의림지 안쪽 마을이므로 못안이라 하다가 변하여 모산이라 하게 되었으며 안모산과 바깥모산으로 구별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북면 신담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제천군 읍내면 모산리가 되었다가 1917년 읍내면이 제천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40년 제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제천읍 관할이 되었다.

1980년 제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모산동으로 개칭되어 제천시 청전동 관할의 법정동이 되었으며 2003년 고암과 모산동 관할로 바뀌었다.
제천의 진산인 용두산(871)과 원삼국시대의 수리시설인 의림지(충북기념물 11)로 알려진 마을로서 대부분 농촌지역이다.

용두산에는 용두산자연송림 및 용두산산림욕장이 있고 그 골짜기에 큰 용담못이 있으며 용담못 주변에 노송군락을 잘 살려 조성한 솔밭공원이 있다.

의림지 동변에는 1807년에 건립한 영호정이 있고 서변에는 경호루가 있으며 또한 의림지 주변에 의림지전원테마파크가 있다.

제천소방서, 세명대학교, 세명고등학교, 세명대학교 한방병원, 민송도서관이 있으며 안모산, 바깥모산, 우륵동, 덕고래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모산재를 지나 가파른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다시 소나무 등로가 뚜렷하게 나 있어 편안하게 걸어 본다.

잠시 후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382 무명봉을 통과하고 곧이어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40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해 본다.


잠시 후 커다란 소나무 사이에 걸려 있는 통나무 벤취를 지나 잡목을 헤치며 전진하니 7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무명 묘지 한기를 통과한다.

다시 일반 잡목과 멋진 소나무가 조화를 이루는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가니 깊은 안부를 만나 통과하는데 지도를 살펴봐도 아무 이름이 없는 무명 안부이다.

안부를 지나니 또 다시 4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그 아래를 통해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송전탑을 지나니 드디어 등로 좌측으로 개나리공원묘지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잠시 그 공원묘지 뒷쪽 능선을 따라 걸어 진행하다 그 공원묘지 위를 올려다 보니 저 멀리 방금 전 지나 온 867봉과 용두산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며 이별을 아쉬워 한다.

잠시 발걸음 멈춰 용두산에서 내려 온 영월지맥 마루금을 살펴본 후 다시 천천히 공원묘지 뒷쪽 등로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 본다.


생각보다 넓은 개나리 공원묘지 뒷쪽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좌측 앞으로 지금까지 쭉 보였던 송학산이 우뚝 솟아 있다.

송학산(819미터)은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용석리,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819미터로서 수종이 거의 소나무로 이루어져 있학이 소나무에 둥지를 틀고 있다 하여 송학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천 쪽 송학산에는 강천사월명사 등의 사찰이 자리 잡고 있으며 삼층석탑만 남아 있는 소악사지가 있다.

산 정상에 서면 동북쪽으로 굽이쳐 흐르는 주천강이 내려다보이고 남쪽으로는 무등산왕박산, 가창산승리봉 등이 있고 서쪽으로는 용두산감악봉이 첩첩이 포개 져 있다.

서쪽 멀리는 원주 치악산도 보이며 산자락에는 한때 8개의 채석장이 있었는데 이 곳에서는 질 좋은 화강암이 생산되었다.

아직 오르지 못한 미답봉이기에 언제 한번 오를 기회가 있으리란 기대도 해보며 아쉬운 눈길을 접는다.


송학산을 조망한 후 걸어 진행을 하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그 소나무 등로를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 벌목된 벌목지대가 나타난다.

그 벌목지대를 타고 오르니 드디어 386봉에 도착을 해 앞으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을 살펴보며 어떻게 제천변전소를 통과해야 할지 고민도 해 본다.

벌목된 능선을 타고 걸어 전진한 후 개나리 공원묘지 끝자락으로 내려가 앞에 보이는 포장도로를 따라 제천변전소를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크게 돌아 다량고개로 진행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듯 한데 그곳에 도사리고 있는 다른 난관은 없는지 고민도 되는 시간이다.

이곳에서 남아 있는 과일로 목마름과 허기를 달래고 천천히 출발을 해 본다.


그 벌목봉 정상인 386봉에서 출발해 벌목 후 나무를 식재한 조림지를 따라 내려가며 눈 앞에 보이는 제천변전소를 살펴보니 생각보다 커 좌측으로 우회한다 해도 상당히 멀게 우회를 해야 될 것 같는 생각이다.

그 제천변전소 지나 새벽 어둡속에 잠시 해맸던 뱃재휴게소도 가늠해 보고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삽고개(삭고개)도 살펴보는데 삽고개는 나즈막한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가야 될 방향을 가늠해 가면서 조심해 잡목 등로를 내려가니 이제 송학산이 정면 앞 좌측으로 빤히 올려다 보인다.

잠시 후 무명 묘지 한기를 지나 잡목 등로를 따르니 원형 벙커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니 그곳에도 방금 전 만났던 원형 벙커가 보인다.

그곳에서 좌측 내리막 잡목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개나리 공원묘지 끝자락에 도착을 해 1차선 포장도로로 내려 선다.

그 포장도로를 따라 이제부터 길게 제천변전소를 좌측으로 우회하며 걸어 보는 시간이다.

 

게속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언덕을 넘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는 거대한 송전탑과 변전소 시설물들이 잡목 사이로 내려다 보인다.

잠시 더 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개나리 공원묘지 마지막 끝자락에 도착을 해 그곳에 있는 묘지를 넘어 잡목이 우거진 내리막 능선을 타고 골짜기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 본다.

골짜기쪽으로 조심해 내려가니 김장용 배추와 무우가 자라고 있는 밭이 나타나고 그 밭 가장자리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비포장 임도를 만나는데 그 임도 우측으로는 인삼포도 보인다.

이제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 민가와 비닐하우스가 나타나고 그 앞을 지나 벼베기가 끝난 우측 논둑을 타고 걸어가니 6번 송전탑이 나타난다.

그 송전탑을 지나 능선 옆 논둑을 타고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인공 수로를 건너고 다시 벼베기가 끝난 논을 따라 우측 앞으로 걸어가니 비닐이 씌여진 밭이 나타난다.

그 밭을 지나 나타나는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오르니 비닐하우스와 민가들 그리고 거화 ENG라는 건물을 좌측에 두고 걸어 오른다.


건물을 지나며 도로명을 살펴보니 이곳은 송학주천로1길로서 이제부터는 계속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다량고개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그렇게 계속 도로를 타고 오르니 드디어 82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다량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우측으로는 제천뱐전소 버스 정류장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인바이오(주) 공장 건물이 보인다.

다량고개는 제천시 고암동에서 송학면 도화리를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 정상에는 제천변전소 버스 정류장과 우측으로 농약 제조공장인 인바이오믹스()가 있다.

도화리는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있는 리로서 주변의 복숭아나무 군락지에 복사꽃이 만발하여 도화동이라 하였다.

옛날 금수산에서 한 선인이 내려와서 무릉도원이라 칭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수석이 기묘한 경치를 이루었던 곳이나 충주댐 건설로 옛 마을은 모두 수몰되어 예전의 경치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청풍호의 산수가 아름다워 현재에도 관광지로 유명한 마을이며 특산물는 고추, 참깨, 홍화, 황기가 있다.

이곳에서 82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잠시 걸어 간 후 도로를 건너 대진환경산업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바로 앞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며 영월지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82번 2차선 포장도로와 헤어져 우측으로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 아래 82번 도로변에 금강기사식당이 있는 휴게소가 내려다 보이고 잠시 후 금강레미콘 공장이 나타난다.

앞에 올려다 보이는 높은 송전탑을 보고 계속 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포장도로는 어느새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있다.

이제 임도 우측으로는 생각지도 못한 미니골프장이 보이는데 그 앞 철문 옆을 살펴보니 이곳은 원래 제천시쓰레기매립장이었는데 아마도 쓰레기를 모두 매운 후 골프장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추측을 해 본다.

서울의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으로 조성한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라 생각하며 걸어가니 다시 대진환경산업이라는 입간판 앞에 갈림삼거리가 보이고 그곳에서는 좌측의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90도 꺽어 내려가 본다.


좌측으로 내려가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원 지맥 마루금은 우측 미니골프장 담장 옆으로 진행을 해야 되지만 잡목과 잡풀들이 뒤엉켜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 하기에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며 이어가 본다.

잠시 내려가다 비닐하스가 씌워진 수확된 밭 고랑을 타고 걸어가니 갑자기 눈 앞에 사과 과수원이 보이고 그 과수원을 조심하며 통과하니 송학로라는 도로명이 보이는 사과과수원 창고 건물 앞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

 

그 사과과수원 창고를 지나 우측 둑을 걸어 오르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도 드넓은 사과과수원이 이어지고 있다.

시멘트 포장도로 우측 위에서 사과를 수확하고 있던 주인장이 우리를 보고 갑자기 화를 내며 욕지거리를 해대는데 얼마나 많은 종주대들에게 시달림을 받았으면 그럴까 이해가 되면서도 그런다고 무엇이 해결될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동막고개 지나 만나 사과과수원 주인은 무사히 잘 진행하라고 격려를 해 줬기에 기쁜 마음으로 조금 더 조심하며 진행을 하였는데 왜 그리 험한 말을 해대는지 아마도 그 사과과수원 주인은 자기 땅만 밝고 살아가는 아주 부자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찰을 피해 원마루금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사고과수원 좌측 끝으로가 우측으로 돌아 오르니 올라 온 방향의 거대한 건물은 붉은 칠이 되어 있는 창고처럼 보인다.

그곳에서 칡넝쿨이 우거지고 잡목과 가시가 산객을 잡아 채는 등로를 찾아 걸어가니 드디어 그 잡목구간을 지나 밭 경작지를 만나 진행이 되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를 만나 편안하게 걸어 진행을 하게 된다.

 

비포장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가니 임도 좌측 아래로는 고철 처리장이 보이고 잠시 후 백제 휴게소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미터 내려 온 송학 나들목 근처의 38번 4차선 포장도로 위에 무탈하게 도착을 한다.

생각보다 많은 차량들이 통행을 하고 있어 기다렸다 차량 통행이 뜸한 시간을 이용해 38번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진행을 한다.

뱃재는 제천시 고암동 고척마을에서 송학면 무도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38 4차선 국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고개 정상에는 오일뱅크 주유소가 자라 잡고 있다.

지명 유래는 여러가지 설로 전해내려 오는데 고개 형상이 배와 같이 생겼다고 뱃재 또는 배를 많이 팔았다고 배고개와 임진왜란 때 왜적에 패했다고 팻재 등 여러가지 유래가 전해진다.

그 중에서도 임진왜란에 관한 설이 가장 많은데 제천 지역의 신혼부부는 예전부터 신행길로 제천시 고암동에서 송학면 무도리로 가는 고개를 피했다.

임진왜란 중에 우리 관군과 의병이 이곳까지 쳐들어 온 왜군을 고개에서 맞아 일전을 벌였으나 관군과 의병은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말았으며 그래서 이 고개를 팻재 또는 패현이라 하였고 신혼부부는 불길한 장소라고 여겨서 이 길을 피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신혼부부는 인생의 새로운 출발이기에 실패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팻재를 금기로 하여 이 고개를 지나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새벽 어둠속에 고생을 한 뱃재 휴게소이기에 그 기억으로 대신하고 곧바로 38번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뱃재를 출발해 원 마루금으로 복귀를 서둘러 본다.


물이 말라 버린 작은 개울을 건너 밭 가장자리를 따라 우측 비포장 임도로 진행을 하고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한동안 걸어 본다.

원 마루금은 지금 걸어가고 있는 비포장 임도 우측으로 올려다 보이는 능선이지만 잠시 진행하다 군 훈련소인지 예비군 훈련소 건물들과 철조망이 가로막아 다시 내려와야 되기에 그냥 이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전진을 해 본다.

한동안 걸어가니 임도 좌측으로 유기농협력업체 GMF라는 입간판이 서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걸어 진행을 하는데 임도 좌측 아래로 보이는 밭은 오랫동안 경작을 하지 않았는지 잡풀이 우거져 묵 밭이 되어 버렸다.


그곳 입간판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전진하니 임도 우측으로 원 마루금에는 튼튼한 철조망 안에 붉은 건물들이 보여 어짜피 정상적으로 진행이 불가능 해 보인다.

임도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잡풀이 우거진 묵 밭을 아쉽게 살펴보며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돌아 썩어가ㅣ는 통나무 계단이 깔려 있는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해평길공 가족펴묘지들이 나타난다.


그 가족 묘지지대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잡목과 가시나무가 우거져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잠시 오르다 뒤돌아 보니 비산비야로 이뤄진 영월지맥 마루금이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에는 송학산이 벌써 멀어지며 이별의 인사를 하고 있다.

선답자들의 빛바랜 띠지를 확인하며 잡목을 헤치고 어렵게 오르니 32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이제 능선을 따라 좌측으로 진행을 해 본다.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지만 등로는 생각보다 뚜렷하게 나 있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계속 걸어 전진하니 328 무명봉을 지나고 곧이어 번호가 확인되지 않는 송전탑을 통과한다.

다시 이어지는 잡목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49번 송전탑이 보이고 그 송전탑을 통과하니 커다란 활엽수 2개가 서 있는 34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을 해 본다.

그 마지막 봉우리를 지나 진행하니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원마루금이 보이지만 아마도 포장도로를 타고 38번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널 수 있는 지하통로까지 걸어 진행이 되기에 큰 의미는 없는 산줄기이다.


마지막 봉우리인 344 무명봉을 지나 잡목과 칡넝쿨을 헤치고 전진하니 금새 벌초가 잘 되어 있는 묘지를 만나고 그 묘지로 올라 오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오늘 산행 날머리인 삽고개 일명 삭고개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 본다.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는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걸어 내려가니 높은 철망 옹벽이 나타나고 어렵게 그 옹벽을 타고 드디어 오늘 산행 날머리인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삽고개 일명 삭고개에 도착을 한다.

삭고개(삽고개)는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에 있는 고개로 삽고개라고 부르기도 하며 제천 송학면에서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옛지명은 서면)으로 가는 고개로 양 옆으로 토사를 방지하기 위해 철망으로 높은 담을 쌓아 놓았는데 그 높은 곳으로 건너야 한다

삭고개가 있는 무도리는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에 있는 리로서 동남쪽으로 왕박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서쪽으로 안산이 용의 모양으로 마을 입구까지 감싸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으로 제천 시내와 인접하여 교통이 편리한 무도리는 뭇두, 뭇도, 뭇도위, 무도, 무도위라 하였다.

만전리와 신문리를 병합하고 동면 송티리의 일부 지역을 편입하여 무도리가 되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하면서 이성계가 고려의 왕씨 일가를 처형하자 왕씨의 한 사람인 왕을규가 지금의 왕박산으로 피신하였고 성씨를 박씨로 고치고 숨어 살았는데 그때부터 왕씨가 박씨가 되었다고 하며 또 그 산은 왕박산이라 불리고 있다.

토착 성씨가 박씨이며 의홍 박씨가 제천, 단양 등지에 분포되어 살고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윈무도, 음만전, 음방학, 음지만지실, 기동 등이 있다.

삽고개(삭고개) 정상에서 도로를 따라 다음 구간 산행 들머리 옆에 주차시킨 애마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 본다.


드디어 애마가 주차되어 있는 다음 구간 산행 들머리인 형제농장 입간판이 서 있는 포장도로 앞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배낭 정리하고 후미를 기다렸다 단체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멀고도 길었던 영월지맥 제5구간 산행을 마무리한다.

애마를 몰아 제천시내로 들어가 맛집으로 소문 난 오디향이란 식당으로 가 다양한 비빔밥으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산행 들머리인 신림터널 위 싸리치에 도착을 하니 벌써 어둠이 내려 앉아 주위가 보이지 않는다.





그곳 싸리치에서 산친구 3명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샤워도 하지 못한 채 고속도로를 타고 빠르게 집으로 복귀를 하는데 제2영동고속도로에서 약간 정체가 있어 예상 시간보다 조금 늦은 밤 9시 30여분 경 무탈하게 귀가를 해 하루를 마감해 본다.

이제 이번 달 제4주차와 한주 더 남아 있는 5주차에 연속으로 산행을 강행하면 길었던 영월지맥 산행도 10월 달에 무탈하게 마무리가 되고 다음달 부터 춘천지맥으로 발길을 돌려 또 새로운 등로를 걸어갈 계획으로 진행을 해 본다.


강원도에서 달려 오는 산친구 3명과 함께 다음 구간부터는 따뜻한 국물이 필요해 식사를 해 먹으면서 진행하기로 했기에 배낭 무게에 조금 더 신중히 접근을 해야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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