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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고흥지맥(호남·완)

고흥지맥 마지막 제4구간 먹국재에서 남해바다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7.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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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고흥군의 고흥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7년 12월 02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약간 찬바람이 불었지만 많이 춥지 않고 산행하기 좋았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하 01도에서 영상 11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먹국재(27번과 77번 2차선 및 4차선 포장도로)-지하통로-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능선진입-131 무명봉-133.7봉-시멘트 포장도로-

                 감나무 과수원-비포장 임도-밭 경작지-묘지1-파란 그물망-125 무명봉-대나무 군락지-갓점고개(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오르막

                 너덜등로-바위암릉 구간-345 무명바위봉-일출-354.7봉-무명안부-323 전망바위-349 전망바위(조계산 호형 갈림삼거리)-벌목지대-

                 미인치(비포장 임도)-천등산정상 3.1 Km 이정판-현위치 천등산 2.1 이정목-372 전망바위-391.3봉-현위치 천등산 2.2 이정목-384 무명봉-

                 이정표(천등산정상과 미인치재) 공터-326.3봉-현위치 천등산 1.2 이정목-감나무 바위봉-안지재-비포장 임도-현위치 천등산 1.3 이정목-

                 벼락산(431.1봉)-바위암릉 구간-산죽지대-바위암릉등로-장계지맥 분기점-544 암봉우회 등로-안전철봉지대-무명안부-안전철봉지대-552

                 바위암릉지대-천등산(554봉, 봉수대, 삼각점, 정상석) 이정표천등산 정상 555미터(사스막재 1.1 Km, 철쭉공원 0.9 Km)-천등산 1코스

                 이정판(정상 0.1 Km와 안지재 1.9 Km, 철쭉공원 1.1 Km)-금탑사 갈림삼거리 이정표(철쭉공원 1.8 Km, 천등산정상 0.2 Km, 금탑사 1.0 Km)-

                 헬기장 갈림삼거리 이정표(철쭉공원, 천등산정상, 헬기장 0.4 Km)-벤취 쉼터봉(448미터)-전망데크-나무계단-철쭉공원(공터 주차장, 사각 쉼터,

                 풍양 천등산 봉수대 설명판) 이정표(천등산봉수1길 천등산정상 0.9 Km, 사동마을 5.5 Km, 호덕마을 5.2 Km)-나무계단-전망데크와 이동통신탑-

                 안장바위 우회-481 무명봉-폐헬기장-501.7 전망바위봉-436 무명봉-소나무 바위봉-440.3봉(441봉)-401 바위 우회-편백나무 군락지-고흥

                 오치음성-무명안부-우마장산(344.5봉)-329 전망바위-337 바위봉-339 무명봉(오음치성과 이별)-길주의 구간(우측 잡목등로)-동백나무 등로-

                 지독한 잡목과 너덜 등로-171 무명봉-201.4봉-감나무 과수원-지등고개(77번 2차선 포장도로)-1차선 포장도로-비포장 임도-175 무명봉-

                 수레길 등로-녹슨 철조망-197 무명봉-210.9봉-비포장 임도 사거리-바위너덜길-독도 이경일님 응원판-바위너덜길-401.6봉-조망등로-

                 유주산 봉화대(414.4봉, 봉화대, 돌탑들)-가파른 내리막 등로-바위너덜구간-바위너덜길-지독한 잡목과 칡넝쿨 지대-묵은 수레길-억새능선-

                 상수도통-상동마을 밭 경작지-상동고개(2차선 포장도로)-육각정자-묘지들-비포장 임도-시멘트 포장도로-페기물 금지 경고판-비포장 임도-

                 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바위봉 우회-96 무명봉-지독한 칡넝쿨 지대-집터 흔적-108 무명봉-바위암릉 구간-138.6봉-함양조공 묘지들-

                 구암고개(시멘트포장도로와 비포장 임도 경계지점)-비포장 임도-무명묘지2기-너럭바위-바위암릉 전망대-128.6봉(125봉) 봉화대-109 삼각점-

                 94 무명봉-가인고개(855번 2차선 포장도로)-가인동 버스정류장-왕새우 단장수산-군부대 입구 1차선포장도로-무선이동통신탑과 군부대 후문-

                 군부대 철조망-군헬기장(136.4 삼각점은 손실)-파이프 능선-너럭바위-콘크리트 공터-콘크리트 포장도로-갈림삼거리-능선진입-비포장 임도-

                 폐가1-내촌고개(단장교회)-1차선 포장도로-시멘트 마을포장도로-바닷가 포장도로-81.3봉 능선진입-잡목으로 산행포기-비포장 임도(염전)-

                 민가들-방파제-다도해 조망-지죽도와 고흥지맥 날머리 조망-지맥 산행종료-시멘트 포장도로-855번 2차선 포장도로-지죽대교-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5.45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잡목과 좋은 등로가 번갈아 나타나며 발목을 잡았던 등로를 따라 꾸준하게 진행하여 11간 35 (05시 33부터 17시 08분까지)

산행트랙 : 20171202 고흥지맥 마지막제4구간 먹국재-남해바다.gpx

교통편 : 택시와 히치하이킹 및 대중교통 이용

             갈때-고흥공용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먹국재 앞 지하통로까지 이동(4,000.-원)

             올때-지죽대교 앞에서 트럭을 히치하이킹 해 고흥버스터미널까지 이동(지죽도에서 김 양식을 하는 젊은 아저씨에게 무한 감사를 드림니다)

                     고흥공용버스터미널에서 직행버스로 순천공용버스터미널까지 이동(6,300.-원)

                     고흥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순천역 앞 지오스파 찜질방까지 이동(3,300.-원)

                     순천역에서 KTX 기차로 용산역까지 이동(44,300.-원)

                     옆지기 도움으로 용산역에서 편안하게 귀가

고흥지맥이란 ???

고흥지맥은 호남정맥의 존재산(712봉) 남쪽 2 Km에 있는 적지봉(571봉)에서 분기하여 남동진하며 태봉(325.2봉), 가마봉(258봉), 장군봉(412.7봉), 삼봉(107.3봉), 혼백산(183봉), 천봉산(193.1봉), 소대방산(165봉), 운암산(484.2봉), 반월산(291.0봉), 수덕산(301봉), 오무산(356.3봉), 벼락산(431봉), 천등산(553.5봉), 우마장산(342.8봉), 유주산(416.6봉) 등을 일구고 지죽대교 앞 고흥반도 남단 남해바다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90.9 Km 되는 산줄기로 말한다.
고흥반도를 남북으로 온전하게 종단하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산이름이 아닌 지역이름을 따 고흥지맥이라 칭한다.

 


힘들고 고통스럽게 마무리한 고흥지맥 산행에서 살아있는 시골 인심에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저녁 늦은 시간에 운 좋게 문이 열려있는 식당을 만나 내장탕으로 맛난 식사를 한 후 찜질방으로 돌아 와 많지 않은 사람들과 잠에 방해를 주는 코를 고는 사람도 없이 피곤했던지 자리에 눕자마자 깊은 잠에 들었다 알람 소리에 눈을 떠 보니 새벽 4시를 넘어가고 천천히 일어나 샤워 후 이른 시간에 고흥공용버스터미널까지 걸어 이동을 하는데 어제보다는 춥지 않아 다행이다.

고흥공용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먹국재가는 버스를 확인하고 주위 식당을 둘러보니 문이 열려있는 식당이 없어 고민하고 있는데 나이 든 아저씨 한분이 자전거에 식재료를 실고 와 식당문을 열고 있어 식사가 가능하냐고 물으니 들어 오란다.

생각보다 맛있는 국에 밥 한그릇 말아 먹고 따뜻한 커피까지 얻어 마신 후 식장 주인장의 걱정스런 배웅을 받으며 나와 버스를 기다리려다 오늘 산행거리도 길고 등로도 확인이 되지 않았기에 조금 이른 시간에 산행을 시작하려고 터미널 앞에 정차되어 있는 택시를 이용해 먹국재에 도착을 하니 채 5시 30분도 되지 않은 시간이다.

약간의 금액을 깍아 준 택시 기사님의 걱정스런 배웅을 뒤로하고 산행 준비 후 먹국재 앞 지하통로를 통해 멀고도 긴 고흥지맥 마지막 산행을 출발해 보는 시간이 새벽 5시 33분을 지나고 있다.

오늘은 늦게라도 고흥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귀가해 내일 점심 약속에 참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서두르지만 어제 산행을 생각하면 바쁘다고 서둘러서 될 산행이 아니기에 발걸음은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마음만은 느긋하게 진행하려 노력해 본다.

 

어제 산행의 피로도 때문인지 아니면 오늘도 여전히 무겁고 큰 배낭 때문인지 생각보다 산행 속도가 나질 않아 많이 고생하며 걷다 보니 그래도 어제보다 좋은 등로 상태로 고흥지맥의 마지막 이름있는 유주산에 도착을 하는 시간이 오후 1시 30여분을 지나고 있어 게획보다 크게 늦지 않게 진행되고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곳에 오르니 사방팔방 시원하게 펼쳐진 풍경과 조망이 일품으로 바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 보내며 환상의 사진들을 많이도 남겨 본다.

그중에서도 제일 백미는 역시 남쪽으로 펼쳐진 고흥지맥 마지막 산줄기로서 이제부터 가파르게 걸어 내려가 만나야 할 하동과 상동마을이 아름답고 그 뒤로 다도해 사이로 길게 이어지는 마루금이 지죽도 앞 바다에서 그 소임을 다하고 바다에 맥을 내주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감동의 시간을 만들고 있다.

산줄기 잇기 산행을 하면서 늘 분기점에서 시작하여 그 맥이 물에 빠지는 지점에서 마무리를 하는 이유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산행을 마무리하면서 걸어 온 산줄기가 물을 만나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는 오늘같은 상황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이 남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다.

너무나 많이 봐 왔고 느꼈던 감정들이지만 오늘 역시 지금까지 보다 더 심한 감정 이입으로 이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두고 떠날 수 없어 마지막 간식까지 먹어가며 조금 더 머물러 있는 유주산 정상에서의 시간이었다.


고흥지맥이 다도해로 빠져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는 남쪽 풍경을 가슴 시리도록 살펴본 후 고개를 돌려 이제는 북쪽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산줄기를 살펴보니 그곳에도 또 다른 환상의 세계가 열려있고 그 환상속으로 잠시 여행을 떠나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좌측으로 빙 돌아 바로 앞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지등마을이 보이고 다시 올라 좌측으로 이어가면 저 멀리 나즈막한 우마장산 지나 암봉이 아름다운 천등산과 벼락산으로 이어지는 바위암릉이 인상적으로 남겨지는 사진이다.

그 좌측으로는 언젠가 한번 더 올라야 할 장계지맥의 암봉이 우뚝하고 우측으로는 오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던 조계산이 조만간 다시 조우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다.

그 우측 끝자락으로는 어제 올라 조망이 없어 아쉬움을 남겼던 운암산과 그 우측으로 깃대봉이 희미하게 멀어지며 이별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까지 눈에 들어 온다.

너무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과 조망에 갈 길 바쁜 시간이지만 자꾸만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겨보는 시간이다.


참으로 고단하고 힘들었던 고흥지맥 산행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그 끝자락이 남해 다도해에 빠져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한 지점을 확인하는 순간이 되니 지나 온 고흥지맥 산줄기에서의 모든 시간이 벌써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가슴속 깊숙히 쌓여가고 있다.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들도 그 마지막 순간이 되면 이처럼 아름다움만 남기고 추억이 되는 상황이 좋아 또 다시 새로운 산줄기를 찾아 떠나는지도 모를 일이다.

온 몸에 남긴 생채기로 인해 몸뚱아리는 고통이 극심하지만 마음만은 너무나 평온한 극락의 세계가 되어 또 하루를 마감하는 일몰을 바라보며 고흥에서의 시간들을 함께 마감해 본다.

다시 이곳 고흥에 들리게 되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이번에 놓쳤던 작고 소소한 것들을 찾아 느끼는 행복을 찾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햇수로 3년에 걸친 고흥지맥 산행의 대단원을 마무리 해 본다.


찜질방에 들어 생각보다 깊은 잠을 자고 나왔지만 평소 당일 산행보다 조금 더 나가는 배낭 무게와 커진 부피로 인해 고생을 하였는지 몸이 개운하질 못하다.

그래도 푹 잤기에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식수를 채운 후 어제 준비한 빵과 사과 한개 그리고 소시지와 음료수가 남아 있어 별도로 준비한 것 없이 택시를 타고 먹국재 앞 지하통로에 도착을 하니 4,300.-원이 나왔는데 4,000.-원만 받고 택시는 손살같이 고흥으로 되돌아 가 버린다.

간잔하게 산행 준비를 하는데 어제보다는 춥지 않아 방풍의를 벗어 배낭에 넣고 간단한 차림으로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새벽 5시 30여분을 지나고 있다.

먹국재(27번과 77번 구 2차선 포장도로와 신 4차선 포장도로)는 고흥군 고흥읍 등암리와 상림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22번과 77번 포장도로가 함께 달리는 곳이며 우측으로는 소록도와 녹동으로 이어지고 좌측으로는 고흥과 벌교를 이어주는 도로들이다.

몇 년 전 한동안 섬산행과 여행에 미쳤을 때 자주 찾았던 녹동이었는데 다시 맥 잇기 산행에 빠지면서 들리지 못한 햇수가 제법 늘어 난 시간들이기에 조만간 다시 들려 옛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기를 기대도 해 본다.


지하통로를 통해 4차선 포장도로를 안전하게 통과 후 우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눈 앞으로 잡목 능선이 나타나고 시멘트 포장도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어 마을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곳에서 산행 들머리를 찾아보지만 찾지 못하고 잠시 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는 좌측 아래로 내려가고 우측 위로는 비포장 임도가 보인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조금 걸어 들어가니 임도 우측 잡목 능선 방향으로 선답자들의 띠지가 보이고 그 띠지가 걸려있는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니 약간의 잡목과 동백나무들이 우거져 있지만 생각보다 등로는 뚜렷하게 나 있다.

한동안 그 잡목 능선을 타고 오르니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대체로 무난하게 첫 봉우리인 131 무명봉에 도착을 해 헤드렌턴 불빛을 비추며 주위 풍경을 살펴본다.


첫번째 봉우리인 131 무명봉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찾기가 쉽지 않아 조금 헤매고 어렵게 정상 등로를 찾아 걸어 진행을 하니 좁은 공터로 이뤄진 133.7봉에 도착을 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 본다.

다시 이어지는 동백나무 군락지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고 잠시 후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한 후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편안하게 걸어 본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조금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를 비포장 임도로 변하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커다란 입암저수지가 있다고 알았는데 헤드렌턴으로 비춰봐도 저수지는 보이지 않는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임도 우측 나무에 배전판 비슷한 것이 매달려 있는데 용도는 알 수가 없어 사진 한장 남기고 전진하니 갑자기 눈 앞에 감나무 과수원이 나타난다.


감나무 과수원 우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오르니 등로는 다시 잡풀이 자랐다 죽어 있는 묵은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한동안 그 잡풀지대를 따라 걸어 본다.

잠시 걸어 오르니 키 작은 편백나무와 동백나무들이 보이는 둔덕을 넘어 다시 비포장 임도와 만나 진행이 되고 있다.

잠시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생활쓰레기들이 널려있고 잠시 후 포크레인 한대도 방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 밭 경작지를 넘어 무명묘지 한기와 파란 그물망을 통과하여 짧은 절개지 앞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절개지를 타고 올라 능선으로 올라야 하는데 우측 절개 앞 능선을 따라 짧은 알바 후 되돌아 와 능선으로 올라 본다.

약간의 잡목들의 저항이 있지만 진행에 큰 어려움 없이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가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는 곳 정상부에 도착을 하는데 트랙을 확인하니 125 무명봉이다.


잠시 더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보만식계의 산길따라라는 띠지가 반갑게 등로를 안내하고 있어 고마운 인사 한번 드리고 다시 출발한다.

낙엽이 깔려있는 등로를 타고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여유롭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앞에 갑자기 대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대나무 밭을 통과하는데 그곳 대나무 밭에서 곤히 잠들었던 새들이 이 산객의 등장에 놀라 푸드덕 거리며 날아가기 바쁜 시간이기도 하다.

이 산객이 어릴 적 시골에서 대나무 밭에 그물망을 쳐 놓고 참새와 다른 새들을 잡았던 추억이 생각 나 홀로 피식 웃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그 대나무 밭을 빠져 나오는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 편안하게 걸어 우측 사면으로 진행을 하다 지도를 확인하니 등로는 비포장 임도가 아닌 좌측 위 능선으로 진행이 되고 있어 다시 능선으로 치고 올라 어렵게 정상 등로를 확인하고 걸어 본다.

다시 약간의 대나무들을 만나 통과하고 소나무와 측백나무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가니 조림된 듯한 키 작은 편백나무들이 보이더니 잡풀로 뒤덮힌 묵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 그 임도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해 본다.

잠시 억새풀을 헤치며 걸어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건너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보는데 바로 이곳이 지도 상 갓점마을이 옆에 있는 갓점고개이다.

갓점고개는 전남 고흥군 고흥읍 등암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이었는데 그 옛 이름은 사라지고 지금은 신전장전길로 바뀐 것을 보면 갓점마을이 신전과 장전마을로 바뀐 듯 보인다.

따라서 지명유래를 찾아보면 전혀 나타나지 않는데 갓점마을은 지도에도 나타나는 것을 보면 등암리의 마을로사 그 마을 위에 있던 고개를 의미했던 것으로 추측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갓점마을이 있던 등암리는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에 있는 리로서 남쪽으로 조계산이 있으며 조계산으로부터 흘러내려온 작은 하천인 수반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에는 등암, 백련, 신전, 장전이 있는데 등암은 삼거리라고도 불렸으며 큰 바위가 있어 붙은 이름이고 백련은 흰 연꽃이 피었던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신전은 200년 전 마을이 생길 당시 소반과 같이 생긴 넓은 밭이 있어 장전이라 불렀다.


갓점고개에서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등로는 다시 우측 잡풀들이 자라고 있는 방향의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터에 자라고 있는 억새들을 살펴보고 능선으로 들어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관리되지 않은 편백나무와 동백나무들이 우거져 잠시 힘들게 진행을 하고 곧이어 낙엽이 뒤덮혀 있는 바위너덜길을 타고 가파르게 올라본다.

생각보다 힘들고 까다로운 낙엽 덮힌 바위너덜길을 따라 이마와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니 드디어 저 멀리 하늘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더욱 가파라진 바위너덜길을 타고 오르는 시간은 참으로 고되고 힘든 산행의 연속이다.

몇번인가 뒤로 밀리면서도 꾸준하게 오르니 드디어 커다란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곳 옆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멈국재부터 오늘 걸어 온 마루금 넘어 어제 어둠속에 넘었던 어무산 그리고 그 우측 저 멀리 화적재 지나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했던 수덕산이 봉긋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오르기는 너무 힘들었지만 오른 후 바라보는 조망과 풍경은 가히 일품이었다.


눈 앞에 나타난 거대한 바위암봉을 돌아 오르니 등 뒤로는 여전히 아름다운 고흥지맥의 지나온 마루금이 길게 펼쳐져 있어 자꾸만 발걸음을 붙잡고 추억을 만들어 본다.

등로 좌측 득량만 지나 장흥쪽 천관산과 사자지맥 산줄기도 한번 더 살펴보고 거대한 바위암봉을 힘들게 오르니 이제 어무산과 수덕산 우측으로 고흥읍내와 그 뒤로 어제 어렵게 걸어 진행을 했던 고흥지맥의 주월산과 우마장산 그리고 천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벌써 고운 추억이 되어 아름답게 노래를 하고 있다.

온 몸이 잡목과 가시나무들로 인해 난도질 당하면서도 그 고통을 참고 견디니 이처럼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가 없으니 가족조차 왜 이런 산행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가파른 바위너덜길을 어렵게 올라 뒤돌아 보며 어제 걸었던 마루금을 살펴보는 호사를 누린 후 바위들이 솟아 있는 평이한 능선을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가 보인다.

그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커다란 바위 몇개가 보이는 345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 옆으로는 무한도전의 예쁜척하쥐님의 따끈한 최신 띠지가 걸려있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잠시 사진 몇장 남기는 사이 그 345 무명봉 바위 뒤로 아침 햇살이 솟아 오르기 시작하여 몇장을 사진에 담아 보지만 역시 똑딱이의 한계만 실감했던 시간이다.


이제 등로는 우측으로 약간 휘어져 내려가는데 갑자기 잡목이 심하게 태클을 걸기 시작하며 어재 생채기가 났던 부분에 충격을 주면서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시간이다.

어제 걸었던 지독한 잡목과 가시 등로를 떠 올리며 걱정을 하는데 한동안 걸어 전진을 해도 좋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아 오늘도 역시 계획된 산행이나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동안 잡목을 헤치고 새로운 생채기를 만들며 진행을 하니 작은 소나무 벌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354.7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이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휘돌아 진행이 되고 여전히 심한 태클을 걸어 오는 잡목을 헤치며 걸어 전진하다 보니 산행속도가 전혀 나질 않는다.

두 다리엔 다시 새로운 상처들이 생겼는지 타갑게 느껴지고 그렇게 조금 더 어렵게 걸어 진행을 하니 잡목이 사라지고 하늘거리는 억새꽃이 피어 반겨주고 있어 잠시 홀로 피식 웃어 보는 시간이다.

약간의 여유를 되찾아 부드러운 억새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참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무명안부를 통과하는데 등로에 쌓여 있는 수북한 낙엽이 이 산객이 걸어 지날때마다 바스락 거리면서 합창을 하듯 이 산객에게 멋진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무명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이제부터 제법 큰 바위암봉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잠시 후 첫번째 암봉이 눈 앞으로 다가온다.

바위암릉지대를 타고 조심하며 걸어 오르니 323 전망바위 정상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미인제 지나 율치리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율치리는 전라남도 고흥군 풍양면에 위치한 리로서 천등산 줄기 밑 구례골이라는 골짜기에 밤나무를 많이 심어 울창해진 곳에 자리잡은 마을이며 율치라는 지명 또한 여기서 유래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삼신, 사동, 내율이 있는데 삼신마을의 지명은 이 마을이 하천 두 개를 끼고 있어서 3개의 반으로 호수가 분산되었다는 데에서 유래되었고 내율마을은 마을 뒷산의 지형이 밤송이와 비슷하여 율촌지국이라고 하였는데 마을은 마치 밤송이 안에 있어 알밤과 같으므로 내율이라 불렀다고 하며 율치리의 안쪽 마을이라 하여 내율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첫번째 전망바위를 지나니 등로는 계속 바위암릉이 이어지고 있어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걸어 본다.

진행하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354.7봉 좌측이 절벽 바위로 구성되어 잇음도 살펴보고 우측 저 멀리 어제 넘어 온 어무산도 살펴보며 걸어 본다.

그 어무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우측으로는 고흥읍내가 시원스럽게 조망되고 그 뒤로 어제 너무나 힘들게 걸어 넘었던 고흥지맥 마루금들도 살펴본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나는 전망바위로 오르니 직진 방향으로 마루금에서 벗어 나 있는 조계산이 우뚝하고 그 조계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도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오늘은 몸에 무리가 생긱 것 같아 포기하고 이렇게 눈으로만 그 멋진 조계산을 살펴본다.

가능하면 다녀오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어제 너무 고생을 많이했고 오늘 등로도 어떻게 진행이 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기에 조계산 왕복은 포기하고 그 대신 자료를 찾아 보니 조계산(473미터)은 전라남도 고흥군의 고흥읍 호형리와 포두면 봉림리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473미터로서 해동여지도, 청구도, 1872년지방지도에는 조계산으로 동여도와 조선지형도에는 다른 한자인 조계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산의 모양이 조개를 닮아서 그렇게 불렀다고 하는데 사료마다 한자가 다르게 표기된 것은 음을 취한 한자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조계산 갈림삼거리 전망바위에서 멋진 조망과 풍경들을 즐긴 후 내려 오니 전망바위 오르기 직전 좌측 나뭇가지에 여영님이 붙여 놓은 조계산분기점, 조계산과 호형가는길이란 이정판이 보여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정판을 확인하고 다시 전망바위로 올라 이제는 등로 좌측인 동쪽을 살펴보니 대용제 지나 포도면 방향의 마을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인 남동쪽으로는 비봉산과 마복산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능선이 아침 햇살이 반짝 빛나고 있어 한번쯤 올라보고 싶다는 그리움이 커지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조계산 갈림삼거리 전망바위에 올라 주위 풍경을 조망한 후 내려 와 우측으로 크게 꺽어 간벌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 본다.

커다란 소나무에 하얀 억새꽃이 만발한 간벌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오랫만에 제대로 된 가을 정취를 느끼고 잠시 후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미인치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미인치(민재, 270미터)는 고흥군 풍양면 율치리와 봉림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옛날 어느 풍수가가 이 고개를 넘으면서 주위를 살펴보니 미인처럼 생겨 미인치라 불렀으며 또한 넘어가는 고개가 밋밋하다 하여 민재라고도 부르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자료를 어렵게 찾기는 하였지만 미인치와 미인제 모두 잘 이해는 되지 않는 지명이름이었다.


그 미인치 안부를 지나 여전히 간벌된 지역에 키 작은 편백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천등산까지 3.1 Km 남아 있다는 작은 이정판이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좋은 등로를 타고 오르니 커다란 바위암봉이 앞을 가로막아 좌측으로 우회하며 올라 본다.

잠시 후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뚜렷한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고 다시 천등산정상까지 2.9 Km 남아 있다는 이정판을 지나 천등산 2.1 현위치 이정목도 통과하니 372 조망처에 도착을 한다.

북쪽으로 미인치 지나 지나온 고흥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고 북동쪽으로는 들리지 못한 조계산과 그 조계산으로 이어지는 멋진 마루금이 자꾸만 눈 앞에서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조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들렸다 진행했으면 좋았겠다라는 후회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였다.

 

그 들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는 조계산 우측 저 멀리에는 어제부터 늘 조망의 길라잡이 노릇을 해 주고 있던 팔영산이 멀어진 모습으로 눈에 들어 온다.

바로 발 아래로는 대용제와 상대리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사진 몇장 더 남기고 출발한다.

잠시 더 걸어가다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대용저수지와 상대리마을 우측인 남동쪽으로 비봉산과 저 멀리 한번쯤 꼭 오르고 싶었던 마복산 라인이 반짝이는 햇살 아래 빛나고 있다.

오늘 진행하다 천등산 직전 만나게 될 장계지맥 분기점과 연계하여 산행이 가능한지 확인하여 다음에 장계지맥 산행을 위해 내려오게 되면 꼭 한번 걸어보고 싶은 산줄기로 남겨 둔다.


진행방향으로는 이제 바로 앞 능선 뒤로 올라야 할 천등산 자락이 머리를 내밀고 그리 멀지 않다며 이 산객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는 듯 보인다.

조금 더 진행하니 각 0.2 Km 지점마다 천등산정상까지 남아 있는 이정판이 계속 나타나고 다시 눈 앞을 가로막는 바위암봉을 타고 올라 걸어 전진하니 이제부터는 천등산정상까지 남아 있는 거리를 매 0.1 Km 단위로 나눠 알리는 이정판을 세웠다.

계속 이어지는 바위암릉을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 우측 커다란 나뭇가지에 준.희님이 390봉이라는 이정판을 걸어 놨는데 이 산객이 가지고 있는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391.3미터봉이라 되어 있다.

잠시 들어 가 사진 한장 남기고 나와 정상적인 마루금을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해 본다.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는 등로를 타고 빠르게 전진해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고 다시 낙엽진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바위 하나를 통과한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수레길 같은 뚜렷한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현위치 천등산 2.2 이정목과 그 앞에 커다란 바위암봉이 보인다.

그 바위암봉을 넘어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평이한 흙산 등로로 변하고 잠시 후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 상 384 미터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생각보다 걷기 좋은 낙엽진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주위 사물들이 보이면서 제법 그럴듯한 가을 정취도 느껴보는 시간이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들어가는 그런 정취를 느끼며 오랫만에 여유를 가지고 걸어가니 등로 위에는 더욱 많은 넓은 활엽수 단풍들이 쌓여 있어 이 산객이 걸어 갈 때 마다 바스락 거리며 장단 맞춰 노래를 부르는 듯 들려 온다.

가을 정취를 느끼는 노래를 들으며 걸어 빠르게 진행을 하니 제법 넓은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공터 한쪽에는 천등산정상과 미인치재 방향 표시만 되어 있는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옆에는 천등산정상까지 1.8 Km 남아 있다는 작은 이정판도 서 있다.


그 공터를 지나 여전히 뚜렷한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등로 위에는 여전히 잎이 넓은 활엽수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더욱 큰 소리로 바스락 거리며 색다른 노래들을 들려 준다.

잠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커다란 바위들이 몇개 보이고 우측으로는 천등산정상까지 1.7 Km 남아 잇다는 작은 이정판이 서 있는 326.3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바위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326.3봉을 지나 여전히 부드러운 낙엽 등로를 따르니 금새 안부같지 않은 안지재에 도착을 하는데 그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안지재에 관한 자료를 찾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다만 이 안지재가 있는 율치리를 찾아보니 율치리는 전라남도 고흥군 풍양면에 위치한 리로서 천등산 줄기 밑 구례골이라는 골짜기에 밤나무를 많이 심어 울창해진 곳에 자리잡은 마을이며 율치라는 지명 또한 여기서 유래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삼신, 사동, 내율이 있는데 삼신마을의 지명은 이 마을이 하천 두 개를 끼고 있어서 3개의 반으로 호수가 분산되었다는 데에서 유래되었고 내율마을은 마을 뒷산의 지형이 밤송이와 비슷하여 율촌지국이라고 하였는데 마을은 마치 밤송이 안에 있어 알밤과 같으므로 내율이라 불렀다고 하며 율치리의 안쪽 마을이라 하여 내율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안지재를 지나 여전히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뚜렷한 마루금을 따라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바위 하나가 보이는 둔덕을 넘어 현위치 천등산 1.2 이정목을 만난다.

그 이정목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감나무가 보이는데 작은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있어 몇개 따 먹어 보지만 아직 완전히 익지를 않아 약간 떫다.

잘 익은 감을 따 두어개 더 먹고는 곧바로 그 감나무를 지나 계속 빠르게 전진을 해 본다.


잠시 후 눈 앞에 거대한 바위암봉이 나타나고 그 암봉을 좌측으로 조심스럽게 우회하며 통과하며 살펴보니 그 암봉 표면에도 수많은 부처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지금은 추위에 몸을 움추리고 있지만 날씨가 풀리는 봄이 오면 푸르른 색으로 변하며 새생명을 불어 넣을 것이다.

조금 더 깊이 쌓여 있는 활엽수 낙엽 등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천등산정상까지 1.1 Km 남아 있다는 작은 이정판을 지나 최근에 개설된 듯한 넓고 평탄한 비포장 임도가 좌측에서 이어져 오다 이곳 등로에서 멈춘 모양으로 남겨져 있다.

그 비포장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건넌 후 눈 앞에 나타난 돌계단을 타고 능선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능선으로 오르니 넓은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 좌우 양쪽으로는 잡목들이 자라면서 터널을 만들 듯 이어지고 있다.

조금씩 더 가파라지기 시작하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한동안 무심으로 걸어가니 현위치 천등산 1.3이란 이정목이 서 있고 그 이정목을 지나니 이번에는 등로 옆에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그 바위를 좌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한 후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정상부로 오르니 하늘기둥님이 이곳 정상을 432미터의 벼락산이란 이정판을 걸어 놨다.

하지만 이 산객이 가지고 있는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분명 432.1미터 봉으로 알고 있었다,


벼락산(431미터)은 이름이 특이해 자료를 어렵게 찾아 보니 산의 형상의 호랑이 상이라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 이 산의 상봉이 보이면 피해를 보았다고 하며 그래서 위에 있는 천등산보다 높은 산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여 벼락을 쳐서 산의 높이를 낮췄기 때문에 벼락산이 되었다는 설이 있는 산이다.

또한 두 남매가 장대를 들고 별을 따러 이 산에 올라 갔다가 벼락을 맞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공존하는 산이기도 하였다.

뱌락산을 지나서도 한동안 등로는 넓은 비포장 임도 수준으로 잘 정리가 되어 있어 빠르게 진행을 해 본다.

그렇게 한동안 멋진 활엽수들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 전진하니 나즈막한 둔덕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올려다 보니 천등산 정상부로 오르기 위한 바위암봉들이 하늘 아래 드높게만 올려다 보인다.

상당한 급경사 오르막 등로에 바위암릉들이 공존하고 있어 오르기도 전에 겁부터 먹고 시작하는 천등산 오름 산행이었다.


잠시 더 평이한 낙엽 깔린 등로를 타고 빠르게 천등산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눈 앞에 갑자기 커다란 바위들이 널려있는 짧은 바위너덜길이 나타난다.

조심하며 그 바위너덜길을 지나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고흥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천등산을 향해 올라 가 본다.

잠시 더 올라 바위가 있는 곳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사진 몇장 남기고 통과한 벼락산이 보이고 그 뒤로 미인치 지나 조계산 갈림삼거리 전망바위와 그 우측으로 길게 이어진 끝자락에 솟아 있는 바위산인 조계산 자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조계산 우측 저 멀리에는 머리만 내밀고 있는 어제 힘들게 넘었던 운암산 자락이 보이고 있어 다시 한번 살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지나온 방향인 북쪽으로 고흥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눈을 좌측인 북서쪽으로 돌리니 사동저수지가 바로 발 아래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율치리 지나 풍양면쪽 마을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으며 드넓은 논 경작지 넘어 득량만이 가물거린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으로 인해 한동안 진행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많은 사진을 남기는 시간은 참으로 소중하고 의미 깊은 시간으로 남았다.

그 뒤로 장흥의 천관산과 사자지맥 마루금을 찾아 보니 박무속에 희미하게 그 존재만 알려줄 뿐이기에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였다.


잠시 더 주위 조망을 즐기고 이제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 등로를 타고 코가 땅에 닿을 듯 올라 가 본다.

잠시 올라 등줄기가 땀방울이 맺힐쯤 거대한 바위벽에 나 있는 작은 굴을 살펴보고 다시 조심하며 그 바위벽 사이로 나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라 오르니 바위벽 지나 산죽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방금 전 오르며 머리위로 보였던 바위암봉은 이제 등로 우측으로 조금 비켜 나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계속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바위 등로를 따라 네발로 기어 오르는 시간이다.


힘들게 그 바위벽 등로를 지나 오르니 등로는 산죽 등로로 변하고 오랫만에 파릇한 잎새를 바라보며 서걱거리는 산죽소리를 들으며 오르니 드디어 조망이 터지는 주능선에 도착을 해 전망바위로 올라 본다.

지나 온 방향의 고흥지맥 마루금을 좌측에 두고 저 멀리 조계산과 그 우측 넘어 보이는 운암산을 살펴보고 우측 저 멀리 여전히 아름답게 솟아 있는 팔영산을 함께 사진에 담아 본다.

이렇게 북쪽의 고흥지맥 산줄기를 살펴보니 왜 이곳을 대한민국의 남녘에 있는 또 다른 반도라 했는지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다.

 

시원하게 펼쳐진 주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고 많은 사진을 남긴 후 이제부터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생각보다 우람한 바위 암릉들이 등로 위에 펼쳐져 있다.

그 진행 방향의 마루금 우측인 남서쪽으로는 거금도 방향으로 뻗어 내려간 능선 상 별학산 일명 깔딱봉이 보이고 그 넘어 거금도와 소록도도 보이기 시작한다.

오래 전 섬에 미쳐 돌아 다니면서 자주 찾았던 녹동과 소록도였는데 언제나 다시 그 시절로 돌아 가 저 녹동을 찾게 될련지 그립기만 한 시절이 되었다.


그 거금도 좌측인 정남 방향으로는 다도해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좌측으로 마지막에 돌아 넘어야 할 고흥지맥 마루금 상 무명봉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 뒤 저 멀리 바다 위에는 뱀처럼 길게 보이는 시산도가 아름답고 그 좌측으로 지죽도를 찾아 보지만 이곳에서는 천등산 바위벽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조망에 지맥 산행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조금씩 산행속도가 느려지고 있는 바위암릉 등로가 되었다.


천등산으로 가는 주능선은 좌우측으로 시원한 조망과 풍경이 펼쳐져 있어 어느 한곳에 오르지 않아도 모두 환상의 전망터이자 조망터 구실을 하고 있다.

이제 눈을 서쪽으로 돌리니 월각산 일명 딸깍산이 보이고 그 넘어 다도해를 지나면 거금도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해발고도 420미터인 월각산은 고흥읍에서 율치리를 지나 고개를 넘어 송정리로 들어서면 천등산과 별학산이 한눈에 든다.

천등산 정상부와 함께 겹쳐 보이는 바위산이 그 앞에 보이는데 이 산 이름은 딸각산으로 바위를 밟고 오르노라면 딸각딸각 소리가 난다해서 그렇게 부른다는 주민들의 설명과는 달리 옛 기록에는 월각산이라 기록하고 있으며 딸각이 달각으로 다시 달각이 월각으로 변한 것이다.

그 거금도 우측으로는 소록도가 보이는데 예전에 이 산객이 녹동항을 자주 찾던 시절엔 소록대교만 완성이 되었고 거금대교는 공사중이었는데 이제는 소록도를 거쳐 거금대교를 타고 거금도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듯 보인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들과 조망들로 인해 산행 속도가 다시 현저히 줄어 들고 있지만 시간 맞춰 진행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아 느긋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소록도와 거금대교도 줌으로 당겨 담아보고 풍양면쪽 마을과 풍남항도 내려다 보니 다시 바다와 섬이 그리워지는 순간이기도 하였지만 지금 진행하고 있는 맥 잇기 산행이 있으니 이 산행이 마무리되는 몇 년 후부터 다시 그리운 섬을 찾아 나서면 될 것이다.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바위암봉을 넘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장계지맥분기점 이정표가 눈에 들어 온다.

장계지맥이란 고흥지맥 천등산 북서쪽 0.3km에 위치한 약 530m의 봉우리에서 북서쪽으로 분기하면서 별학산과 팔봉산, 장계산, 비봉산을 지나서 도양읍 봉암리 동봉방파제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1 Km의 산줄기이다.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한번은 다시 내려 와 걸어야 할 마루금이기에 눈으로 가슴으로 그 산줄기를 채워 본다.


장계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을 지나 바위 암봉에 올라 언젠기는 걸어야 할 장계지맥 산줄기를 살펴본다.

바위봉으로 이뤄진 별학산 넘어 또 다른 팔봉산을 지나면 좌측으로 산세를 낮추며 다도해를 향해 그 꼬리를 내주는 장계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그 끝자락에는 소록도도 보이고 소록대교도 희미하지만 그 옛날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우측 저 멀리에는 보성과 장흥 땅으로 흐르는 호남정맥 마루금이 박무속에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다.


한동안 장계지맥과 그 주변 풍경들을 살펴보고 눈 앞에 보이는 바위암봉을 넘으니 등로 우측 저 멀리 천등산에서 흘러 내려간 고흥지맥의 501.7봉과 유주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지만 걸어 진행해야 할 거리가 만만치 않게 남아 잇음도 알려주고 있다.

그 뒤로 펼쳐진 다도해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지만 햇살이 강해지며 약간의 박무가 있어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겨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조심하며 바위암릉을 타고 칼바위 능선을 지나니 544 암봉이 보이고 그 암봉을 우회해 통과하니 안전철봉이 설치되어 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한다.

추락주의라는 이정판을 지나 설치된 안전철봉을 따라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안전철봉이 설치된 바위암릉 등로를 따라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바위암봉이 우뚝 솟아있고 그 좌측 저 멀리 소록도와 소록대교가 다도해를 가로질러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조금 더 머물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다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바위암봉에 도착을 하는데 트랙으로는 552미터를 가리키는 바위봉우리이다.

이제 진행방향으로 천등산 정상부가 나즈막한 안부 지나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는 전망바위봉이기도 하다.

그 천등산 뒤로는 501.7봉과 유주산이 일렬로 줄을 서듯 차례로 줄지어 보이고 그 좌측으로 돌아 보여야 할 지죽도는 산줄기에 막혀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시간을 보니 이제 아침 9시 20여분을 지나고 있어 지금까지 진행해 온 등로처럼만 이어진다면 일몰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천등산으로 가기 위해 552봉을 내려가며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월각산 지나 다도해다 내려다 보이고 그 다도해를 지나니 곧바로 거대한 거금도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바위 등로가 보이고 곧이어 뚜렷한 흙산의 모습으로 변한 등로를 따라 힘을 내 오르니 봉수대로 이뤄진 천등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천등산(553.5미터)은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50미터로서 이름에 얽힌 전설로 봉우리가 하늘에 닿는다는 설과 옛날 승려들이 정상에 올라 천 개의 등불을 바쳤다는 설 그리고 금탑사 승려들이 도를 닦으려고 산에 올라 밤이면 수많은 등불이 켜졌다는 설 등이 전하는 산이기도 하다.

고흥반도 남쪽 끝에 있어 남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이 때문에 옛날에는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서 동쪽으로 마복산 봉수와 서쪽으로 장기산 봉수와 연결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이 있다.

동쪽 산비탈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금탑사가 있는데 금당인 극락전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절 아래에는 수령이 100여 년 되는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239)이 있다.

산행은 송정 마을에서 시작해 바위를 밟고 오르면 딸각딸각 소리가 난다는 딸각산 남쪽 능선의 가시나뭇재로 올라 다도해를 바라보며 능선을 오르는데 딸각산 정상에서 임도를 건너 능선을 타고 다도해를 바라보며 30분 정도 오르면 정상이 나온다.

정상에서는 금탑사와 멀리 해창만과 팔영산이 바라보이고 바로 밑에는 바둑판 모양의 너럭바위인 신선대가 있다.

하산은 북서쪽 바위능선으로 내려오다 갈림길에서 왼쪽 능선으로 계속되는 바위능선을 타고 임도를 통해 천등마을로 내려오면 된다.

찾아가려면 고흥읍에서 사동리와 송정리를 경유하는 풍남행 버스나 금탑사행 군내버스를 타면 되는데 고흥읍까지는 광주광역시의 광천동 종합터미널에서 녹동행 직행버스를 타거나 부산광역시의 서부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탄다.

천등산 정상에는 표식이 사라진 정상석과 삼각점 그리고 풍양 천등산 봉수대 설명판 및 이정표가 보인다.

정상 좌측 나뭇가지에는 준.희님이 달아 놓은 천등산 정상 이정판도 보인다.


이곳 천등산은 생각보다 잡목이 주위에 자라고 있어 조망은 좋지 못하다.

그래도 잠시 둘러보니 지나 온 방향으로 안전철봉이 설치되어 있는 552 암봉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그 뒤 저 멀리에는 다도해 넘어 장흥의 천관산이 박무속에서도 그 존재감을 알리고 있어 옛날 고운 추억을 남겼던 시간을 회상도 해 본다.

그렇게 그곳 천등산에서 많은 시간 보내며 정상부를 사진에 남긴 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고흥지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천등산 봉수대를 내려오니 발길이 멈추고 아쉬운 마음에 다시 한번 천등산 정상부를 사진에 남기고서야 천천히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다 진행 방향으로 앞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걸어 넘어야 할 고흥지맥 마지막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그 이름을 불러 본다.

바로 아래 안부로 철쭉동산이 움푹 들어가 잇고 그 뒤 능선을 타고 오르면 안장바위 지나 501.7봉이 우뚝 솟아 있다.

그 501.7봉 지나 좌측으로 흐르던 마루금이 지등고개 지나 우측으로 방향을 돌려 유주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멀어 보이지만 멋진 곡선을 그리며 이 산객을 부르고 있는 듯 하다.


해가 중천으로 떠 오르며 박무가 심해져 조금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도해를 살펴보며 걸어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기도 하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천등산1코스라는 이정판이 보이고 그 앞에 좌측으로 금탑사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보인다.

금탑사는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봉림리 천등산에 있는 절로서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천등산(山)(천등산)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인도의 가섭존자가 어머니를 위하여 천등 불사를 한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으며 절 이름은 창건 당시 금탑이 있어 그렇게 불렀다고 하는데 혹은 인도 아육왕의 금탑 건립 고사를 기리기 위하여 금탑사라 하였다고도 한다.

그 뒤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것을 1597년(선조 30)에 궁현과 옥순이 중건하여 수백인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하고 1644년(인조 22)무가와 계환이 극락전을 중수하였다.

그러나 1692년(숙종 18) 화재로 극락전을 제외한 전 당우가 소실되었고 1767년(영조 43)경징, 획심, 독일이 극락전을 중건하였으며 1834년(순조 34)해월이 다시 극락전을 중건하였다.

1861년(철종 12)유명이 중창하였으나 일제강점기 이후 급속히 쇠락하였다.

최근에는 다시 중건 불사가 이어져 1988년 무너진 산신각을 삼성각으로 고쳐지었고 1991년에는 요사를 1992년에는 극락전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된 극락전을 비롯 명부전, 삼성각,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정면 3칸과 측면 3칸의 건물이고 범종각에는 너비 1.3미터의 법고와 높이 1.7미터에 무게 900근의 범종이 보관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약 250여 년 전에 제작된 괘불이 보관되어 있고 1,000여 년 전에 그렸다는 원효와 의상의 영정이 있어 주목을 끌지만 그 연대에 대해서는 신빙성이 없다.

이 절 뒤에는 지상 약 5미터의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약수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마시기 위하여 찾아오며 또한 절 주변에는 비자나무숲과 독치성 등 유서 깊은 곳이 있다.

종교와는 무관하게 시간되면 한번 둘러봤으면 좋겟다는 생각도 해 보지만 오늘은 생각만으로 충분한 시간이다.


금탑사 갈림삼거리를 지나 계속 걸어 내려가니 등로 양쪽으로는 철쭉나무들이 낙엽을 떨군 채 다음 봄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또 다른 이정표가 서 있는데 확인해 보니 등로 우측 400미터 전방에 헬기장이 있다는 이정표이다.

그 이정표를 지나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이제 진행해야 할 철쭉동산이 바로 발 아래로 다가와 있고 그 넘어 능선을 타고 걸어 오르면 전망데크 지나 안장바위와 501.7봉이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 뒤 좌측으로 흐르던 마루금이 우측으로 돌았다 그 끝자락에서 다시 좌측으로 돌아가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오늘 걸어야 할 산줄기를 가늠해 보는 시간이다.


한동안 산행 속도를 줄이고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며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다도해 넘어 거금도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이 산객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철쭉나무와 하얀 억새가 한들거리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벤취 쉼터와 이정목이 서 있는 44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지나 온 천등산 방향을 올려다 보니 그곳 역시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다.


억새가 피어 있고 벤취 쉼터들이 설치되어 있는 뚜렷한 넓은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등 뒤로 천등산이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고 있다.

몇 발자국 진행하다 뒤돌아 보며 천등산을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이제 등로 좌측으로 비봉산이 우뚝하고 그 산줄기를 따라 우측 저 멀리 마복산이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비봉산 좌측 저 멀리에는 고흥지맥 산행 내내 조망의 길라잡이 노릇을 자처했던 팔영산이 톱날 능선을 자랑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증로 옆에 자라나 곱게 피어난 억새꽃이 오랫만에 맥 잇기 산행에 빠진 이 산객의 메마른 가슴을 풍요롭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조망과 풍경을 즐기며 내려가다 이제는 등로 우측으로 눈을 돌리니 월각산 산줄기 넘어 다도해와 거금도가 아름답고 그 우측 저 멀리 소록도와 이어주는 거금대교가 희미하게 드러나 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 전망데트 위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강동저수지가 아름답고 그 넘어 다도해와 거금도가 다음을 기약하며 이별의 아쉬움을 노래하고 있다.

거금도는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에 있는 섬으로 해안선 길이는 약 54 Km로서 고흥반도 도양읍에서 남쪽으로 2.3 Km 떨어진 해상에 있으며 소록도 바로 아래 위치한 섬이다.

조선시대에는 도양목장에 속한 마목장의 하나로 절리도라 하였다가 그후 강진군에 편입되었고 1897년 돌산군 금산면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고흥군 금산면이 되었는데 큰 금맥이 있어 거억금도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최고점은 적대봉(592미터)이며 400미터 내외의 산지가 많으나 서쪽과 북쪽은 경사가 완만한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고 해안은 사질해안이 많으나 돌출한 갑 일대는 암석해안을 이루고 있으며 해식애도 발달해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는데 농산물로는 쌀, 보리, 참깨, 고구마, 마늘 및 양파 등이 주로 생산되며 근해에서 장어, 감숭어, 전어 등이 잡히고 김, 미역 및 굴 등의 양식업도 활발하며 특히 김 양식은 대규모로 행해진다.

문화재로는 대흥리에 있는 조개더미가 대표적이며 그밖에도 송광암, 금산면성치, 상하촌고인돌군이 있다. 섬에는 버스가 운행되며 고흥반도와 거금도 간 정기여객선이 매일 수시로 운항되고 당산제, 월포농악 등 민속놀이가 잘 보존되어 있다.

조만간 시간 내 꼭 다시 한번 내려 와 저 거금도를 둘러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희망도 해 보는 시간이다.


나무 전망데크에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다시 그 전망데크를 출발하니 이제는 철쭉공원까지 길게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등산로 정비는 고맙지만 이곳에 투입된 예산의 1/10만 고흥지맥 마루금 정비에 투자했다면 좋았겠다 생각도 해 본다.

잠시 더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철쭉공원 주차장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다시 올라야 할 나무계단이 길게 이어지며 이동통신탑 옆 전망데크가 올려다 보인다.

그 우측으로는 안장바위가 보이고 그 뒤로 501.7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계속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철쭉공원 주차장에 도착을 하고 그 옆에 설치된 이정표를 살펴보니 우측으로 사동마을을 그리고 좌측으로는 호덕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 방향과 거리표시가 보인다.

그 이정표 옆으로는 다시 풍양 천등산 봉수대 설명판이 보이고 주차장 지나 건너편에는 사각정자 쉼터가 보인다.

몇장의 사진을 담고 다시 좌측 나무데크 위 계단을 따라 고흥지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계단을 타고 한동안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갔다 올라 온 철쭉공원 주차장이 보이고 그 뒤로 천등산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에는 나무계단이 길게 설치된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다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이동통신탑이 서 있고 그 옆으로는 나무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그곳에서 잠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본다.

등로 우측으로 거금도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월각산 암봉도 조망되며 그 능선 넘어로는 장계지맥 마루금이 이름답게 다도해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지나 온 방향으로는 천등산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아름답고 진행 방향으로는 안장바위 지나 좌측으로 돌아 501.7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이 산객을 기다리고 있다.


잠시 진행하다 멈춰 돌아보면 보이는 모든 풍경과 조망이 작품이 되고 예술이 되는 듯한 착각에 빠져 산행 속도를 전혀 낼 수가 없다.

다시 등로 좌측으로는 마북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멋지고 그렇게 한동안 풍경을 즐기고 전망데크를 출발하니 낙엽이 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는 철쭉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올라가며 이어진다.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안장바위를 우회해 통과하고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무명봉을 지나 오르니 폐헬기장 이였던 장소도 통과를 해 본다.

계속 이어지는 철쭉나무 군락지를 지나 오른 후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천등산 정상부의 암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월각산이 그리고 우측으로는 조계산이 아스라히 멀어지고 있다.

 

조계산 우측 저 멀리에는 운암산 자락이 보이고 그 우측 끝자락으로는 고흥읍의 드넓은 평야지대를 지나 톱날 능선을 자랑하는 팔영산이 우뚝하다.

이제 등로 좌측으로는 비봉산 넘어 팔영산을 살펴보고 다시 철쭉 군락지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오르니 501.7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넘어 온 안장바위쪽 바위봉과 481 잡목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생각보다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에 다시 발목이 잡혀 잠시 더 조망을 즐겨 보는 시간이다.


등로 우측으로 거금도를 다시 한번 더 살펴 본 후 앞으로 진행을 하니 이제부터 걸어가야 할 고흥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저 멀리 다도해로 빠지며 어서 오라 손짓을 하고 있다.

우측 저 멀리 유주산이 우뚝하고 그곳을 지나 좌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끝자락의 136.4봉의 군부대가 있는 봉우리를 끝으로 우측 지죽도에서 그 맥을 다하는 모습까지 모두 상상이 되는 그림이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산줄기이지만 그곳을 타고 실제로 걷게 되면 또 어떤 추억들이 숨어 있을지 기대도 되고 궁금증도 유발되는 시간이기에 사진 몇장 더 남기고 다시 출발해 본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좌측은 편안한 우회 등로이고 우측은 바위암릉을 타고 잡목을 헤치며 진행을 하는 원 마루금이라 생각되는 산줄기이다.

궁금하기에 우측 바위암릉 능선을 타고 걸어 오르니 비위봉에 소나무 두그루가 자라고 있는 43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커다란 바위암봉에 뿌리를 박고 힘들게 살아가는 소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잡는다.

하지만 그 고통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이제 그 생을 마감하려는 듯 물기가 마르고 뿌리가 드러나 있는 안쓰러운 모습에 마음이 짠하다.


계속 이어지는 바위암릉 등로를 따라 걸어 전진하니 잡목이 발목을 잡고 늘어져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어렵게 그 잡목 구간을 통과하니 커다란 바위 암벽이 앞을 가로막고 그 바위를 좌측으로 우회해 통과하니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잡목과 바위가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나타난다.

잠시 바위가 사라지고 잎 넓은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게 깔려 있는 멋진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다시 커다란 바위 앞에 큰 철쭉나무가 자라고 있는 440.3(441)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441봉을 지나 걸어 전진하니 이제 진행 방향으로 유주산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와 있고 그 좌측으로 고흥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시원하게 조망되기 시작한다.

좌측으로 흐르던 산줄기가 지등고개를 지나면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유주산으로 이어지고 그 유주산을 지나면서 등로는 다시 한번 우측으로 내려가다 좌측으로 흐르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걸어 진행을 하면서 계속 눈에 밟혀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또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아직도 걸어 진행해야 할 산줄기가 길게 남아 있지만 어제와는 달리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걷게 되는 이유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잠시 커다란 참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넓은 수레길 같은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등로는 하얀 억새가 한들거리는 등로로 변하면서 외롭게 걸어가는 이 산객에게 마지막 가을을 선물하고 있다.

잠시나마 가을을 느끼며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 위로 커다란 바위들과 잡목들이 보이는 401 무명봉이 나타나고 그 바위봉은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우회하며 통과해 본다.


바위 무명봉을 우회해 통과한 후 조금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멋진 편백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한동안 바위 없는 평이한 낙엽 등로를 타고 걸어 본다.

제법 큰 철쭉나무들도 만나 진행을 하고 참나무와 소나무들도 만나면서 걸어가니 갑자기 눈 앞에 쓰러진 성벽 같은 돌담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등로는 바로 그 무너진 성벽 위로 보이는 등로를 타고 걸어가도록 되어 있다.

이제부터 한동안 그 무너진 돌 성벽을 따라 고흥지맥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돌이 무너져 내린 성벽을 따라 잠시 더 걸어가니 무명 안부가 나타나고 처음에는 성벽이 끝나면서 보이는 안부라 생각을 했는데 성벽으로 이어지는 안부이다.

그 안부를 지나 오르니 활엽수가 너무나 아름답게 자라고 있는 터널 등로가 나타나는데 그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무너진 돌 성벽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 성벽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니 고흥 오치음성으로 오치음성은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와 포두면 봉림리 일대에 있는 돌을 쌓아 만든 산성으로 2002 11 27일 전라남도기념물 제210호로 지정되었는데 신호리 동백마을은 고려시대 도화현의 관청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데 오치음성 역시 도화현과 관련된 성으로 보인다.

천등산(555미터) 정상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 끝자락의 산마루(389.5미터)로부터 동쪽의 산중턱까지 쌓은 포곡식산성(하나 또는 여러 개의 계곡을 감싸며 쌓은 산성)으로 성의 총 둘레는 2.642 Km이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둘레 1200~1300(2,172~2,353미터)의 석축이며 성벽은 골짜기 유역을 둘러싸고 있는데 대부분 붕괴되었고 주민들은 성 안에 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기록에 따르면 오치음성은 고흥반도에 있는 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셈이다.

성의 평면형태는 사다리꼴에 가까운 방형으로 동쪽을 향하고 있고 성의 북서쪽 정상에서는 고흥 독치성(전라남도기념물 제208호’과‘고흥 백치성(전라남도기념물 제209호’이 관찰된다.

서쪽 성벽이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고 서쪽과 남쪽 및 동쪽 성벽에서 문지(성문이 있던 터)가 확인되었으며 우물의 흔적도 남아 있다.

성 안에서 수습된 유물은 토기류, 기와류, 분청사기 조각 등이며 성의 위치, 축조방법, 출토유물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산성으로 역사적 및 학술적 가치가 크다.

제법 뚜렷한 자료가 존재하는 이곳 오치음성을 왜 발굴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지 조금은 이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멋진 활엽수 등로를 지나니 성벽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며 이어지고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아름드리 편백나무 군락지들이 보인다.

무명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지나 온 등로 방향으로 조망이 약간 터지고 살펴보니 방금 전 환상의 등로를 타고 많은 시간을 보내며 내려 온 안장바위 암봉이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잠시 후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봉우리에 도착을 해 주위를 살펴보니 커다란 나뭇가지에 준.희님이 이곳을 342.8미터의 우마장산이란 이정판을 설치해 놨는데 이 산객이 가지고 있는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이곳 높이가 344.5미터로 표기된 우마장산이다.

우마장산(344.5미터)이란 이름이 신기해 자료를 찾아 보지만 우마장산에 관한 자료는 찾을 수 없고 그저 방금 전 걸어 지나 온 고흥 오치음성이 있는 산봉우리임만 알 수 있는 능선 상 밋밋한 봉우리처럼 보이는 산상이다.


우마장산을 지나서도 등로는 여전히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수준이라 조금 더 속도를 내 본다.

성벽 위 등로에 쌓여 있는 낙엽이 바스락 거리며 발걸음에 장단을 맞춰주는 소리에 더욱 힘을 얻어 걷고 있다는 기분으로 진행을 하니 다시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고 역시 성벽이 무너져 한쪽만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하루 빨리 복원되어 제대로 된 성곽을 돌아 보는 기회도 있기를 희망해 본다.


무명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소나무와 키 작은 관목들이 어우러진 멋진 등로가 나타나고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 오르니 눈 앞으로 커다란 소나무와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 전망바위 위로 올라가 보니 방금 전 걸어 지나 온 고흥지맥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는데 우마장산 뒤로 무명봉과 안장바위봉 그리고 그 뒤로 천등산 암봉도 얼굴을 보여주고 있어 몇장의 추억을 남겨 본다.


북쪽으로 지나온 고흥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우측으로 고개를 돌려 동쪽을 살펴보니 도화면의 호덕저수지 뒤로 신호리와 봉용리쪽 평야와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에 우뚝 솟아 있는 비봉산과 중군산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도화면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고흥군 남부에 있는 면으로서 면 전체가 남쪽 해안으로 돌출하여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과 남쪽에는 유주산(417미터)을 비롯하여 200에서 300미터의 산들이 솟아 있으며 그 중앙에는 소규모의 평야가 분포하고 앞바다에서는 갯장어와 갈치 등이 잡히며 취나물과 유자 등의 농산물도 생산된다.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던 내발성지리와 신호리성지리, 백치성지 등이 남아 있으며 내발리는 왜가리와 백로의 도래지이다.

죽도리와 지죽도를 비롯한 동남해안 일대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고 행정구역은 당오리, 가화리, 구암리, 사덕리, 내발리, 덕중리, 봉산리, 신호리, 봉룡리, 지죽리 등 10개리가 있다(법정리 기준, 행정리 기준 37개리).

산행 후 지죽대교에서 저 도화면 버스정류장까지 나가는 것이 문제였는데 귀인을 만나 편안하게 고흥버스터미널까지 나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전망바위에서 한동안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해 바위를 타고 오르니 이제 등로 우측으로 다도해 건너 거금도가 조금씩 멀어지며 그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거금도 좌측으로는 남동쪽으로 흐르던 고흥지맥 산줄기가 지등고개를 지나면서 우측인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힘들게 올라야 할 유주산이 제법 높은 고도를 자랑하며 이 산객을 부르고 있지만 체력적으로 힘든 시간이기에 또 저 유주산을 어떻게 올라야 할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유주산 좌측으로 이어지는 고흥지맥 마지막 산줄기도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는 시간이었다.


잠시 더 이어지는 바위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작은 돌탑도 보이고 무너진 성벽을 지나 다시 평이한 낙엽 등로로 진행이 이어지고 있다.

무상무념으로 발걸음을 빨리해 걸어가니 이제 한동안 성벽 위 넓은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진행해 온 성벽과 이별을 하고 무명봉을 우측에 두고 좌측 동백나무 숲 사이로 나 있는 사면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이제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이곳이 바로 길주의 구간으로 직진의 좋은 등로를 보내고 고흥지맥 마루금은 우측 동백나무 숲쪽으로 나 있는 미로같은 등로를 찾아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을 해야 한다.

마침 입구에는 이제 산행을 잠시 중단하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일에 바쁜 대동강님의 띠지 한장이 붙어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정상 등로를 찾아 진행을 하였지만 인지하지 못하면 길찾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장소이다.


난해한 우측 동백나무 숲으로 정상 등로를 찾아 잘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사라진 등로를 찾아 한동안 해매게 되었다.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잡목과 동백나무들이 우거져 앞도 보이지 않으니 그저 방향만 설정해 놓고 진행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곳 역시 잡목과 동백나무 위에 내려 앉았던 낙엽과 잔가시들 그리고 나뭇가지들이 옷속과 배낭 사이로 들어 와 등짝이 아프고 고통스럽기만 한데 잠시 배낭 내려 그것들을 제거할 장소도 마땅치 않아 그냥 사라진 등로를 업렵게 찾아 오르니 잡목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171 무명봉에 신경수님 최신 붉은 띠지가 붙어 있어 긴 한숨을 내쉬며 배낭 내려 낙엽과 나뭇가지들을 제거하고 출발한다.


정상 등로를 찾았다고는 하지만 역시 그곳도 잡목들이 우거져 한발자국 이동하기가 쉽지 않은 마루금이었다.

이리저리 헤집고 피하며 어렵게 앞으로 전진하니 커다란 소나무 앞에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 201.4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또 다른 신경수.송영희님 붉은 띠지가 반겨준다.

이어지는 잡목과 잡풀들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걸어가니 등로는 이제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눈 앞으로 잠시 잡목이 사라지며 내려가야 할 서오치재 넘어 저 멀리 다도해 조망과 풍경이 아름다운 유주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내리막 등로를 따라 어렵게 산행을 이어가니 눈 앞에 갑자기 억새밭에 감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한가운데를 통해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니 동백나무를 지나 77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그 도로 위에는 도화사동길이라는 도로표지판이 걸려있는 지등고개에 도착을 한다.

지등고개(77번 2차선 포장도로)는 고흥군 도화면 당오리 서오치마을과 가화리 지등마을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서 이름유래는 도화면의 서쪽 끝에 위치한 마을 중심지에 큰 못이 있어 이 못등에 거미줄처럼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못등이라 불리어 오다가 195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화리 지등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그 마을 이름을 따서 붙여진 고개 이름이다.

이 지등고개는 또한 도로 좌측의 당오리 서오치마을의 이름을 따와 서오치재라는 이름으로도 불려지는데 서오치재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당오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오치로 칭해왔으나 1934년 서쪽에 위치한다 하여 서오치라 불렀으며 또 맨 처음 생긴 마을로서 속칭 까박제돈부골이라 칭했으나 1963년 리와 동 행정구역 개편으로 단일 독립마을로 되어 2007년 오치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마을 위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서오치재가 있는 당오리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에 있는 리로서 도화면 면소재지이고 도화복지회관, 도화재래시장, 도화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 도화농협, 도화우체국, 도화버스 공용정류장, 도화푸른꿈 작은도서관, 도화교회 등이 위치하여 있다.

남쪽으로 넓은 농경지가 있고 북쪽으로는 산지로 둘러 쌓여있는 당오리라는 이름은 당곤과 오치 두 마을의 이름을 합하여 지은 이름이며 도화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에는 당곤, 신오치, 동오치, 서오치가 있으며 과거에는 당곤과 오치라는 두 개의 마을이 있었는데 오치가 커지면서 동쪽은 동오치로 서쪽은 서오치가 되었으며 새로 마을이 생기면서 신오치가 되었다.


지등고개 또는 서오치재라 불리는 77번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보이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도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김녕김씨3자기념비가 서 있는데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곳 김녕김씨 3인에 대해 기념하기 위한 비가 아닐까 추측만 해 본다.

잠시 걸어 올라가니 도로 우측으로 능선이 보이고 원마루금은 그 능선을 따라 진행을 해야 하지만 잡목이 우거져 도저히 오를수가 없고 또한 잠시 둔덕을 넘어 이 포장도로와 다시 만나기에 잠시 동안 이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오르기로 해 본다.

조금 더 걸어 오른 후 뒤돌아 보니 방금 전 건너 올라 온 지등고개 일명 서오치재가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 넘어 능선에는 거대한 태양광 발전 시설물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며 한동안 오르니 포장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져 가는 곳 우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열려잇고 그 입구에는 무한도전 띠지 한장이 들머리임을 알려주고 있어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 본다.


잠시 오르니 등로 좌우측으로 키 작은 편백나무들이 식재된 듯 자라고 있고 그렇게 주능선에 올라 좌측으로 열려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빠르게 진행을 이어가 본다.

우측에 무명봉을 두고 좌측 사면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이곳이 남도임을 알려주려는 듯 파란 잎이 무성한 동백나무들이 등로 곳곳에 자라고 있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커다란 바위 하나와 그 옆으로 가지가 많은 벗나무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17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바위와 벗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다시 약간 거칠어지기 시작하는 잡목 등로를 따르니 추백 띠지가 길라잡이를 해주고 간벌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곳을 어렵게 넘어 잡목속을 뚫고 힘들게 갈어 본다.

잠시 후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낙엽 등로를 만나 즐겁게 걸어가니 파란 잎이 무성한 동백나무 군락지도 통과를 해 보는 시간이다.

한동안 평이한 동백나무 군락지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녹슨 철조망이 보이고 곧이어 작은 바위들이 깔려있는 너덜길을 만난 후 연이어 푹신한 낙엽 등로를 타고 커다란 동백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197 무명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이제 등로는 좋았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하며 갈길 바쁜 이 산객의 마음을 태우고 있다.


동백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계속되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르니 이곳도 역시 등로 좌우측으로는 동백나무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동백나무 군락지를 따라 걸어 가니 등로 위에는 다시 넓은 활엽수 낙엽이 발목까지 빠지며 바스락거리기 시작한다.

그 낙엽 아래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숨어 있기에 조심하며 진행을 하니 큰 소나무들이 보이는 210.9봉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고 조금씩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낸 후 다시 출발해 본다.


소나무가 보이는 210.9봉을 지나니 등로는 뿌리식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크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와 참나무를 타고 그 뿌리식물들이 올라간 모습들도 보인다.

열대림에서 느꼈던 느낌을 가지고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유순해지며 깊은 낙엽 등로로 변하고 있다.

한동안 빠르게 평이한 낙엽 등로를 타고 등줄기에 땀방울이 흐를 정도로 진행을 하니 사거리 안부를 지나 바위 너덜길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바위 위에 많은 낙엽들이 쌓여 있어 진행에 주의가 필요하다.


너덜길을 지나 평이하게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마루금을 타고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로 오르고 등로 좌우측으로는 키 작은 관목과 잡목들로 대체되고 있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에 짧은 바위너덜컹이 나타나고 조심하며 그 너덜컹을 통과하니 큰 소나무에 독도 이경일님의 종이코팅지에 응원 문자를 남겨 놨다.

지맥 산행을 하다보면 준.희님과 함께 가끔 보이는 독도 이경일님의 응원 이정판이기에 감사한 마음 전해드리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독도 이경일님의 응원판에 힘을 얻어 조금은 빠르게 걸어 오르니 다시 커다란 바위들이 깔려 있는 바위너덜길을 지나 잠시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고흥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잇지만 좌측 나뭇가지들로 인해 일부 약간 보이지 않는다.

다시 낙엽진 활엽수 등로를 타고 올라 다시 잡목이 잠시 사라진 곳에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천등산에서 안장바위가 있는 501.7봉 그리고 성터와 우마장산을 지나 지등고개로 이어지는 고흥지맥 산줄기가 아름답게 이어진 풍경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몇장의 추억 사진을 남기고 다시 오르니 다시 커다란 바위들이 등로에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키 작은 소나무들이 정상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401.6봉에 도착을 해 잠시 쉬어 간다.

이제부터 진행해야 할 고흥지맥 마루금 우측으로 다도해에 떠 있는 유리도와 형제도 그리고 저 멀리 커다란 뱀처럼 보이는 시산도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하지만 찾고 싶은 지죽도는 나뭇가지에 가려 아직 시야에 들어 오지 않고 았어 아쉬운 시간이었다.


잠시 쉬면서 사탕 하나 입에 물고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401.6봉을 출발해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커다란 활엽수와 잡목들이 등로 양쪽에 보이는 무명안부를 통과하여 다시 완만하게 오르기 시작한다.

등로에는 약간의 억새가 피었다 죽으면서 한들거리고 누군가 등로를 정비한 듯 모든 잡목들과 잡풀들을 낫으로 정리를 해 놔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전혀 없다.

그렇게 다시 주능선으로 오르니 잡목이 사라지며 등로 우측 앞으로 다도해에 떠 있는 수많은 섬들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우측 저 멀리 목포의 유달산이라 생각했는데 목포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떨어져 있고 설사 보인다 해도 너무 멀고 중간에 능선들로 막혀 제대로 된 유달산이 보일 것 같지 않아 지도를 확인해 보니  평일도와 생일도쪽  산줄기라 생각되는 곳들이었다.


이제 눈을 조금 더 남쪽으로 돌리니 유리도와 형제도가 바로 발 아래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커다란 뱀 형상을 하고 있는 시산도가 길게 뻗은 상태로 물속에 떠 있으며 좌측으로는 죽도와 묵도 지나 고흥지맥 마루금의 마지막 끝 지점인 지죽도 들어가는 앞의 지죽대교도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충주호로 빨려 들어가듯 달려가는 악어떼를 연상시키고 있어 홀로 웃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곳 다도해로 나가는 길목에는 구암리쪽 방파제와 작은 항구가 눈에 들어 오는데 지도를 찾아봐도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 항구인 듯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주위 풍경과 조망을 살펴보고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양쪽으로 하얀 억새가 피었다 죽으면서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흔들리고 있어 잠시 가을 정취를 느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그렇게 진행하다 눈을 등로 좌측으로 돌리니 다시 저 멀리 천등산에서부터 이곳으로 이어져 온 고흥지맥 산줄기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천등산과 우마장산을 지나 지등고개 일명 서오치재로 내려 앉았던 마루금이 다시 치솟아 오르며 유주산으로 가파르게 올라오는 모습이 인상적인 풍경이다.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다시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다도해에 떠 있는 많은 섬들과 악어떼가 남해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산줄기들이 인상적으로 남겨지는 풍경들이 자꾸만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사진에 남기며 계속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넓은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도 보이고 낙엽진 앙상한 가지만 남겨진 키 작은 활엽수 관목지대를 지나 드디어 사각 봉화대가 서 있는 유주선에 도착을 한다.

유주산(416.6미터)은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417미터이고 고흥지맥에 속하는 산으로 정상부는 좁고 가느다란 정상지대를 이룬다.

자연석을 다듬어 쌓은 석대가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봉수대가 있었으며 해안가에 자주 출몰하는 왜구를 감시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유주산봉수대와 마북산봉수대는 서로 연결되었다.

유주산 곳곳에는 너들지대가 많으며 산의 능선은 말발굽처럼 휘어져 있고 다도해와 거금도가 조망되며 남쪽 사면아래 상동마을과 하동마을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이순신 장군이 근무했던 고흥발포 만호성이 있다.


유주산 사각 봉수대를 우측으로 돌아 오르니 그곳에는 작은 돌탑 몇개가 세워져 있어 눈길을 잡는다.

돌로 쌓아 올린 사각 봉수대로 오르니 사방팔방 막힘없은 일망무제의 조망과 풍광이 매우 뛰어난 곳이었다.

제알 먼저 남서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고흥지맥 마지막 산줄기를 살펴보는 시간은 심장이 멈출 것 같은 흥분과 기쁨으로 주체를 하지 못하였던 시간이었다.

가파르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면 상동과 하동마을을 만나고 그곳을 지나 지루하게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르면 좌측으로 쭉 이어지다 마지막 산줄기가 이어지는 곳에서 크게 좌측으로 틀었다 우측 지죽도로 향하는 산줄기의 흐름이 한눈에 펼쳐져 보인다.

온 몸에 깊은 생채기를 만들며 2년여에 걸쳐 4일동안 걸어 결국 남해바다의 다도해에 그 발걸음이 멈추는 장도를 무탈하게 진행해 와음을 홀로 자축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걸어 진행해야 할 거리가 만만치 않게 남아 있기에 그 큰 기쁨을 다 표현하지는 못하고 마음속으로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유주산 사각 봉수대 우측인 남쪽으로 보이는 돌탑들을 배경으로 구암리 평야 지나 사덕리 하도와 그 넘어 다도해 그리고 그 다도해를 감싸 안고 있는 외나로도를 살펴보는 시간 역시 지난날의 추억을 기억하며 또 다른 추억으로 가슴에 담아 보는 시간이다.

오래 전 옆지기와 남도 여행을 하면서 잠시 들려 좋은 추억을 남겼던 곳이기에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나로도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로우주 발사대도 찾아 보지만 산줄기가 막았는지 아니면 박무로 인해 보이지 않는 것인지 눈으로 식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제 눈을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좌측인 육지 방향으로 돌리니 구암저수지 앞으로는 거대한 채석장이 내려다 보이는데 그곳도 산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고 있는 가슴 아픈 현장이다.

그 채석장 뒤로는 시루봉과 수덕산이 보이고 도하마을을 지나 한번쯤 오르고 싶어지는 해발 539미터의 마복산과 그 좌측 저 멀리 희미하게 팔영산이 조망되고 있어 또 다시 많은 사진에 남겨 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조만간 걸어야 할 여수지맥 마루금도 찾아 보지만 너무 먼 거리인지 아니면 박무로 인해 보이지 않는 것인지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한동안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에 몸은 많은 생채기를 만들었지만 마음만은 저 파란 다도해의 바닷물처럼 힐링이 되는 시간이다.


눈을 돌려 북쪽을 살펴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진행을 했던 고흥지맥의 산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우측에 단독으로 솟아 있는 고흥지맥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는 비봉산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오고 그 뒤 끝자락에 어제 걸었던 운암산이 보이는데 그 운암산은 이제 까마득히 멀어진 산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 좌측으로 오르지 못해 아쉬웠던 조계산이 보이고 좌측 제일 높은 천등산과 안장바위가 있는 501.7봉 그리고 성터와 우마장산을 지나 지등고개 일명 서오치재까지 거침없는 조망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살펴본다.

인간의 두발이 위대함을 다시 한번 마음으로 느끼며 아직도 갈길이 멀지만 조금 더 유주산 정상에 머물며 시간을 즐겨본다.


많은 시간 유주산에서 보내고 이제는 내려가야 할 시간이기에 그 아쉬움을 달래며 지나 온 방향의 좌측인 남서쪽을 살펴보니 구암나루터와 유리도 그리고 형제섬과 시산도가 너무나 황홀하게 다도해에 떠 있고 그 우측으로는 오늘 산행 내내 마주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거금도가 그 꼬리쪽만 보여주며 이별을 노래하고 있다.

아쉽지만 이제 이별 인사를 건네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유주산 봉수대를 출발해 본다.

유주산 봉수대(417미터)

전라남도 고흥군의 도화면 구암리 즉 고흥반도의 남쪽 끝에 솟아 있는 산으로 산 정상에서 거금도를 비롯한 다도해가 한눈에 조망되며 주위에 내발해수욕장과 백치성 등의 명소가 있다.

조선 시대에는 정상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왜구의 침입을 알리는 역할도 수행하였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현의 남쪽 4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여지도서에는 천등산 서남쪽 기슭에서 뻗어 나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많은 시간 조망과 풍경을 즐기고 유주산 정상인 사각 봉수대를 내려 와 돌탑들이 보이는 좌측으로 돌아 동쪽 방향으로 내려가니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걸려있고 잠시 후 잡목이 우거진 무명봉에서 등로는 우측인 남쪽 방향으로 90도 꺽어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다.

등로 좌측인 동쪽으로 채석장과 구암저수지 그리고 마복산과 팔영산을 다시 한번 더 조망하고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바위 너덜길 위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잠시 후 커다란 바위들이 깔려 있는 바위너덜 구간을 지나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을 해야 하는데 그 꺽이는 지점을 놓치고 커다란 편백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곳까지 짧은 알바 후 되돌아 올라 와 이제 좌측으로 크게 꺽어 정상 마루금을 찾아 보지만 쉽지 않다.

  

이리저리 찾아봐도 제대로 된 등로 찾기가 쉽지 않아 방향만 보고 새로운 등로를 만들어 전진하니 방굿돌이 몇개 보이고 곧이어 등로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그래도 잡목을 헤치고 어렵게 방향을 잡아 진행을 하니 거대한 바위 너덜길이 나타나고 그 너덜길을 지나 등로를 찾아 보지만 이제는 지독한 잡목지대 위로 자라났다 그 힘을 잃어가는 살인적인 칡넝쿨로 인해 오도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져 든다.


이곳에서 많은 시간 허비하며 어렵게 그 잡목과 칡넝쿨 지대를 빠져 나오니 칡넝쿨은 어느정도 사라졌지만 여전히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이 산객을 기다렸다는 듯 강렬하게 공격을 해 와 무참히 짓밟히는 시간이 되었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따가워 그 잡목 지대 위에 배낭 벗어 던지고 잠시 팔과 다리를 살펴보니 성한 곳이 한곳도 없이 피멍이 들고 붉은 선이 나도질 당한 듯 여러갈래 흩어져 있다.

낙엽과 나뭇가지를 털어내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방향을 보며 천천히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드디어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묵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긴 한숨부터 내쉬는 시간이다.


잠시 후 커다란 편백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비포장 임도를 만나는데 그곳도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는지 키 작은 관목들이 자라기 시작하고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사그러지고 있어 어렵게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내려가 본다.

계속 이어지는 지독한 잡풀지대를 통해 한동안 내려가니 옷가지에 도깨비풀 가시가 매달려 다시 시간 내 그 가시들을 털어내고 어렵게 걸어 진행을 하니 관리되지 않은 묘지 앞에 도착을 해 눈 앞에 펼쳐지는 다도해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배낭과 웃옷 속에 파고 든 낙엽과 나뭇가지들을 제거하고 진행한다.


오랫만에 활짝 핀 억새꽃 등로를 타고 걸어가며 가을 정취를 느끼다 보니 그동안 고통으로 힘겨웠던 시간은 모두 과거가 되어 버렸고 새로운 등로에 대한 기대감만 커지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전진하며 내려가니 약간의 잡풀들이 보이지만 크게 어려운 등로는 아니기에 잠시 심호흡 한번 하면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어렵게 내려 온 유주산 정상부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등로가 아름답게 올려다 보인다.

내려올 때 그렇게 심한 고통과 지독한 잡목지대를 뚫고 내려 온 등로라고는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풍경에 피식 웃음이 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도 만나 힐링도 해 본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상수도통도 만나고 우측으로는 식수가 흐르는데 아직도 배낭에 식수가 충분하고 먹거리도 조금 남아 이기에 눈 앞에 펼쳐진 밭 경작지 사이의 소로를 따라 상동고개로 내려가 본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다 진행방향의 마루금을 확인해 보니 상동고개 지나 육각정자 옆으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하면 될 것 같다는 예상 등로도 확인을 해 본다.


밭 경작지 사이로 나 있는 소로를 타고 내려가니 이동통신탑을 지나고 상동마을의 민가들도 통과한 후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상동고개에 도착을 한다.

이곳 상동고개(강선고개)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구암리에 있는 고개로서 1956년 리동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암리에서 분동된 상동마을은 구암리윗쪽에 위치한다 하여 상동이라고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 상동마을에서 이름이 유래된 듯 추측되는 고개이다.

특별할 것이 없기에 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이어지는 좁은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시멘트 소로를 타고 올라 육각정을 우측에 두고 진행을 하니 등로 옆으로 몇기의 묘지들이 보이는데 다른곳과 달리 이곳의 묘지들은 모두 돌로 기초를 쌓은 후 잔디를 입힌 모습이라 사진에 담아 본다.

그 묘지지대 위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통과한 상동고개 우측으로 생각보다 넓은 구암리의 상동과 하동마을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 지나 온 마루금 방향으로는 유주산이 부드러운 능선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그곳을 내려오는 등로는 최악이었는데 이렇게 지난 후 올려다 보는 마음은 그저 언제 그런 등로를 지났느냐며 평온하기만 하다.


다시 이어지는 묵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르니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둔덕을 넘는다.

그 둔덕을 넘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산객이라 생각되는 사람이 서서 무엇인가 마시고 있고 그 앞으로 진행해야 할 고흥지맥 산줄기가 펼쳐져 있어 가깝게 내려가 보니 등산이 아닌 약초를 캐기 위해 방문한 외지인이었다.

간단히 인사 나누고 내려가 앞에 보이는 좌측 무명봉을 올라야 하지만 잡목이 가로막고 있으면 그냥 새로 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내려가 안부에 도착을 하니 최근에 개설된 듯한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옆으로는 밭 경작지가 펼쳐져 있는데 채소를 덮은 검은 천막이 인상적인 풍경이다.

우측으로는 다도해가 내력다 보이고 좌측으로는 방금 전 통과한 구암리 상동과 하동마을과 이어지는 안부를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폐기물 투기행위에 대한 경고판이 보이고 곧이어 좌측 능선으로 마루금은 이어지지만 잡목들이 등로 입구를 막고 있어 그냥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한동안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좌측 무명봉을 통해 내려오는 정상 등로와 만나 이제는 시멘트 포장도로 우측느이 가시나무 능선으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우측 능선으로 들어가자 마자 버려진 의자 하나가 눈에 들어 오고 곧이어 가시나무들과 잡목이 앞을 가로막는다.

조심하며 걸어 들어가니 이번에는 커다란 바위가 앞을 막아 좌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니 주능선에 이르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 아래로 펼쳐진 다도해와 형제섬 그리고 유리섬들을 조망해 본다.

다도해와 맞닿아 있는 곳에는 커다란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여 지도를 검색해 보니 구암리에 있는 김생산어민연합회고흥군지회라는 지명이 나타난다.

오늘 산행 후 고마운 젊은 아저씨를 만나 트럭을 얻어 타고 고흥버스터미널까지 잘 나갔는데 그 아저씨도 지죽도에서 김 양식을 하고 있다고 들었기에 산행후기를 정리하는 이 시간이 되니 고흥의 김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다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마지막 고흥지맥 산행을 이어가니 등로 위에는 잡목과 커다란 바위들이 뒤엉켜 있어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가시나무를 밟고 또 때로는 고개를 숙여 통과하며 어렵게 전진하니 갑자기 제법 높은 절벽바위가 보이고 조심하며 그 바위를 넘으니 96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진행방향으로 잡목과 가시가 우거져 진행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마지막까지 산객의 남아 있는 진까지 완전히 소진을 시키고서야 그 마지막을 보여줄 예정인가 보다.


어쩔 수 없이 그 지독한 잡모과 가시나무를 뚫고 어렵게 통과하니 이번에는 가시 덩쿨식물들이 등로를 막고 자랐다 계절에 순응하며 내려 앉아 있는 곳을 지나는데 등산복을 뚫고 들어오는 가시들로 인해 장딴지에 전해지는 고통이 극심하다.

너무나 힘들게 그 잡목과 가시나무 덩쿨지대를 빠져 나오는 오래 전 집터였는지 돌로 쌓은 듯한 공터에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장소를 지나 아카시아 등로를 만난다.

조심하며 진행을 하니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사라진 등로를 찾아 힘겹게 전진하니 백두사랑산악회와 붉은 띠지가 반겨주는 108 무명봉에 도착을 해 등짝에 붙어 있는 나뭇가지들을 제거하고 진행을 이어가 본다.


무명봉을 지나니 이제 등로는 이어지는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그 암릉을 따라 진행을 하니 주위 풍경과 조망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지나온 방향으로 유주산을 살펴보고 다시 나타나는 암릉을 타고 조심하며 걸어 전진하여 전망바위에 오르니 이제 등로 좌측으로 구암리의 태성수산영어조합법인과 민가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앞으로 2차선 포장도로 지나 드넓은 논 경작지가 펼쳐져 있다.

그 우측으로는 짧은 방파제가 보이고 그 방파제 끝에는 사덕리 하도마을이 섬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 하도마을 뒤 저 멀리에는 나로도가 길게 다도해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한동안 더 많은 사진들을 남기고 계속 이어지는 바위암릉을 타고 걸어 전진하니 눈 앞에 거대한 바위암릉이 길게 이어지고 조심하며 그 바위암릉을 타고 정상부로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유주산에서 이곳으로 진행하며 걸어 온 고흥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들만 아니라면 많이 즐기고 좋은 추억을 남기며 진행되었을 등로가 오늘은 고통과 아품이 함께하는 산행으로 변해 버렸다.

그래도 지나온 산줄기를 살펴보는 시간은 참으로 멋진 조망과 느낌으로 색다른 시간이 되었다.

 

바위암봉 정상에서 지나온 유주산을 조망하고 다시 잡목 능선으로 오르니 무한도전 띠지가 걸여 있는 138.6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산행을 이어가니 잠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잡목이 우거진 등로와 만나 어렵게 진행이 되고 그렇게 조금 더 전진하니 함안조공 가족묘지를 만나 잠시 편안하게 걸어 내려가 본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 걸어 내려가니 시맨트 포장도로와 비포장 임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구암고개에 도착을 해 주위를 살펴 본다.

구암고개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구암리에 있는 고개로서 이곳 마을 이름인 구암리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듯 추측을 해보는데 구암리는 마을 뒷산에 거북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어 귀암이라 하였으나 아홉 구자를 사용해 구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해안가에 위치한 어촌 마을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인해 산업구조가 반농 반어로 바뀌었다. 자연마을로는 사동, 하동, 상동, 단장, 내촌이 있는데 사동은 과거에 모래가 인상적이었으므로 지어진 이름이고 하동과 상동은 각각 윗마을과 아랫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며 활개바위가 유명한데 해안 낚시터도 있다.


구암고개를 지나 비포장 임도를 따라 잠시 걸어 오르다 우측 능선 방향으로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 있는 곳에서 잡목을 헤치고 오르니 무명묘지 2기를 만나고 잠시 동백나무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 본다.

약간의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보이지만 지금까지의 등로보다는 좋은 산행 조건이기에 거침없이 전진하니 제법 넓은 너럭바위 위에 도착을 하고 조심하며 부처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바위를 지나 그곳 정상에서 잠시 지나온 유주산 방향의 산줄기를 살펴 본다.

이제 유주산도 점점 더 멀어지며 거리감을 만들고 그렇게 오늘 산행도 막바지를 향해 진행되고 있음을 느껴 보는 시간이다.


한동안 조망을 즐기고 다시 출발하니 바위너덜길이 나타나고 조심하며 그 바위를 지나 가파르게 오르니 봉화산 봉화대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 정상에는 준.희님이 붙여 놓은 125미터봉이란 이정판이 보인다.

하지만 이 산객이 가지고 있는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이곳의 높이를 128.6미터로 표기를 하고 있어 잠시 헷깔렸던 곳이기도 하다.

봉화산 봉화대(125미터)는 고흥군 도화면 구암리 가인동(봉화골)에 있는 봉화산 봉수지이지만 지도에는 아름 표기 없이 해발고도 125미터 봉으로만 표기가 되어 있는 봉수대 터이다.

추억 한장 남기고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을 즐기고 진행하기로 한다.

고흥반도의 서남쪽 도화면 구암리의 가인동 해안가, 속칭 봉화골로 부르는 봉화산(해발 125m)은 거금도와 지죽도사이 해로를 조망하는 장소로는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

3면이 바다로 입을 내밀듯 육지가 삐죽이 뻗어 있고 북쪽에는 유주산봉수가 내려다보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거금도와 마주보고 있고 동쪽은 외나로도가 빤히 보인다.
암반으로 형성된 봉화산은 중턱부터 봉우리까지 흙 한줌 보이지 않는다.

암반 높이가 100m 넘는데 깎아지른 절벽위에는 봉홧불을 올리던 석축 연대하나가 세워져 있다.

마치 전쟁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요새를 연상케 한다.
이곳 봉화산 정상에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가내포봉수대가 있다.

초기설치는 확실하지 않지만 고흥일대 조선 중기 연산군(1502년)때 신설된 간봉인 사화랑봉수가 설치될 당시로 추정된다.

가내포봉수는 서쪽 가화봉수에서 봉화를 받아 동쪽 소포봉수로 전달한 제5노선 간봉의 연변봉수다.

유사시에는 서쪽의 발포만호성으로 군사정보를 전달했다.


이곳에서 등로는 가까운 직진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크게 꺽어 돌아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는 136.4 삼각점 봉에서 다시 우측으로 크게 꺽어 마지막 81.3봉으로 이어지고 있는 풍경이 살펴진다.

진행 방향을 보니 94봉이 뾰족하게 올라 와 있고 가인동 도로가 보이며 그 우측 저 멀리 136.4 삼각점봉과 군부대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이제 고흥지맥 산행의 끝자락도 눈에 보이는 듯 다가온 시간이다.


남서쪽을 살펴보니 좌측으로 돌아 진행되는 마루금이 앞에 보이는 산줄기 넘어 지죽도 앞에서 그 맥이 다하는 풍경과 지죽도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지죽도 우측으로는 목도와 죽도도 보이기 시작하는데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그곳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또 많은 인내가 필요할 듯 보인다.

이틀간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와 한판 승부를 펼치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힘이 들고 정신적으로도 피곤하지만 막바지 산줄기를 살펴보니 다시 약간의 힘을 얻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한동안 그 125미터의 봉화산 봉화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내려 와 동쪽 방향으로 진행을 하니 상당히 거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잡목과 바위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진행을 하니 거대한 바위암릉이 펼쳐지고 그 암릉 위 능선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우측으로 멋진 조망이 펼쳐져 있다.

조망과 풍경을 즐기며 그 바위암릉을 통과하니 갑자기 등로 위에 삼각점 하나가 보이는데 삼각점 위 부분만 노출이 되어 있고 아래 표기가 된 부분은 땅속에 묻혀 있어 인식이 전혀 안되는 삼각점이다.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바위 능선을 따라 진행하며 앞을 보니 저 멀리 군부대로 이어지는 마지막 마루금이 시원하게 보인다.

잠시 후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9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가인고개 좌측으로 이어지는 바위 능선이 제법 까다롭게 다가와 그 마루금 우측 아래로 같이 이어지는 855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하기로 한다.

가능하면 원마루금을 고잡해 보지만 오늘은 체력적인 한계에 부딫히는 느낌이라 조금은 편법을 사용하기로 하지만 마음은 개운하질 못하다.


그 소나무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니 다시 바위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바위암릉을 지나고 잠시 후 855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가인고개에 도착을 한다.

이곳은 옛날 지도에 가인동에 있는 고개라 하여 가인고개라 부르지만 변경된 지역명을 살펴보면 구암리에 가인동이란 지명이름은 보이지 않아 헷깔리기만 한다.

구암리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뒷산에 거북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어 귀암이라 하였으나 아홉 구자를 사용해 구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해안가에 위치한 어촌 마을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인해 산업구조가 반농 반어로 바뀌었다.

자연마을로는 사동, 하동, 상동, 단장, 내촌이 있는데 사동은 과거에 모래가 인상적이었으므로 지어진 이름이고 하동과 상동은 각각 윗마을과 아랫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가인고개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가 보려고 살펴보니 마음은 이미 도로를 타고 걸어가자고 발길을 이끌고 있다.

능선으로 진행하는 코스를 포기하고 우측으로 나 있는 855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차량 통행에 놀라는 시간이었다.

잠시 걸어가니 가인동이라는 버스정류장도 보이는데 가인동에 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버스정류장을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 단장수산이라는 입간판이 보이는데 이곳 지명이 단장은 아닐까 생각되는 간판이다.


단장은 구암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가인동이 현재의 단장으로 보이며 마을 뒷산이 풍수지리상 옥녀 장대 형국임으로 마을명을 옥녀가 내려와 화장을 한다하여 단장이라 부르며 분동된 후 변개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내용이 보인다.

게속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져 가는 곳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 군사도로가 보이고 이제부터 그 군사도로를 따라 지루하게 군부대까지 걸어 본다.


잠시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민간인통제구역이라는 경고판이 보이고 잠시 후 좌측으로 많은 묘지들 넘어 다도해가 조망되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저 멀리 군부대 후문이 보이고 그 우측 앞으로는 이동통신탑도 서 있다.

군부대 앞에는 초병도 보이지 않아 큰 마찰없이 그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좌측으로 돌아 진행을 해 본다.


군부대 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돌아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잔여와 검등여가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나로도가 길게 이어져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돌아 올라 드디어 지도 상 136.4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는데 지난해 다녀 온 선답자의 사진과 달리 최근에 새로 헬기장을 보수했는지 조금 더 넓고 깨끗한 헬기장이 보인다.

그 헬기장 한쪽 가장자리 진디밭에 삼각점이 숨어 있다고 알고 있기에 찾아 보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져 삼각점도 찾지 못한채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군부대로 이어지는 하얀 수도관을 타고 내려가니 잡목의 저항이 있지만 그런대로 진행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한동안 잡목과 가시나무와 한판 승부를 벌이며 내려가니 넓은 너럭바위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마지막 81.3봉과 지죽대교 그리고 지죽도를 살펴보는 마음이 희열보다는 아쉬움이 커지는 시간이다.

아쉬움을 달래고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조심스럽게 내려가 보는 시간이 왜 그리 길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마지막 지죽도 방향을 조망하며 잡목을 헤치고 숟도관을 따라 내려가니 넓은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진행 방향으로는 시멘트 포장도로도 보인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 갈림삼거리를 지나 억새가 우거진 능선 방향으로 마지막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곳 갈림삼거리를 지나 묵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임도 좌측으로 폐가 한채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페가를 지나 이어지는 잡풀 임도를 따르니 묘지 한기를 지나 저 멀리 단장마을 교회와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원 등로는 저 단장교회 뒷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야 하지만 진행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기에 그 단장교회 앞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의 단장마을을 지나 좌측 뒤로 보이는 마지막 81.3봉으로 진행을 하기로 한다.


단장마을은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구안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인 단장마을 뒤에 있는 고개라서 붙은 이름으로 단장마을은 마을 뒷산이 풍수지리상 옥녀 장대 형국임으로 마을명을 옥녀가 내려와 화장을 한다 하여 단장이라 부르며 분동된 후 변개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는 마을이다.


단장 마을 앞길을 통해 걸어가니 도로 우측 위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분이 사시는 주택 앞에 도착을 해 잠시 시원한 물 한모금 얻어 마신 후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건강하시라 인사 드리고 나온다.

몇 년 전 하늘나라로 떠나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해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시고 이야기를 니누고 싶었는지도 모를일이다.

다시 계속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해 마지막 민가에서 좌측 계단을 타고 내려가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하다 좌측 81.3봉을 오르기 위해 묵은 밭 가장자리를 타고 오르지만 지독한 칡넝쿨과 잡목들이 진입로를 막아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보이기에 결국 마지막 81.3봉 오르는 것은 포기하고 다시 도로로 뒤돌아 내려가 본다.


조금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도로를 타고 방파제 방향으로 걸어 가니 비포장 도로 우측으로 염전처럼 보이는 넓은 장소가 보이는데 그곳에 있는 도구들이 생소해 궁금하기만 하다.

잠시 후 민가 한채와 콘테이너 박스를 지나 방파제 입구에 도착을 하니 도로 좌측으로 민가인지 공장 건물들이 보이고 그 뒤로 마지막 남해로 빠지는 고흥지맥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지만 포기하고 방파제로 진행을 결정한다.


방파제를 따라 걸어 나가며 조금은 아쉬움이 남아 있는 고흥지맥이 남해 다도해로 빠지는 종착점을 사진에 담아 본다.

그 우측으로는 지죽도가 우뚝 솟아 있고 그 지죽도를 육지와 이어주는 지죽대교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하루해가 저물어 가려는지 지죽도와 지죽대교 넘어 저 멀리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그렇게 힘들었던 고흥지맥 산행의 마무리와 함께 하루 일몰도 함께 시작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방파제를 걸어 나오며 고흥지맥 마지막 지점인 갯바위와 지죽도 그리고 지죽대교를 사진에 담으니 저 멀리 서쪽으로 기울어 가는 하루 해가 두꺼운 구름속에 갇혀 몸부림을 치고 있는 듯 다가온다.

지죽도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지죽리에 있는 섬으로 구암리 해안에서 남쪽으로 약 300 미터 지점에 있다. 지죽대교(지호대교)를 통해 고흥반도와 연결되고 부속도서인 대염도, 죽도, 목도 등과 함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지명은 섬 내에 있는 호수가의 지초라는 풀에서 풀이름 지자와 호수 호자를 따서 지호도라 불렀다고 하며 그 후 지호도 옆에 위치한 죽도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죽도가 되었다고 한다.

섬은 대체로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가 누워 있는 형태를 하고 있고 남쪽은 금강죽봉(203미터)에서 뻗은 산줄기 때문에 고도가 높지만 북쪽은 완경사지를 이룬다.

남동쪽 해안에는 해식애가 발달한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게 진행을 한 고흥지맥이기에 마무리가 되면 시원할 것 같았으나 막상 마무리를 하고 걸어 나가니 시원함 보다는 아쉬움이 더 커지고 있다.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등로였기에 더욱 아련하게 깊은 추억으로 남겨지는지도 모르는 시간이 되었다.


방파제를 지나 우측 농로를 타고 민가를 지나니 다시 855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고 그곳에서 좌측 지죽대교 방향으로 언덕을 넘어간다.

언덕 넘어 지죽대교 앞에서 도로 우측을 살펴보니 이제 대도와 죽도쪽 산자락 넘어 오늘 하루해가 저물어 가고 있지만 두꺼운 구름으로 인해 조금은 아쉬움을 남긴다.

사진 몇장 남기고 도로 따라 빠르게 걸어가니 드디어 지죽대교 이정석이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해 배낭을 정리해 본다.


이곳 지죽도와 육지를 이어주는 다리는 당연히 지죽대교로 알고 있었는데 이정석에는 지호대교라 되어 있어 잠시 헷깔린다.

어느 이름이 맞는지 ...

배낭 정리하고 어떻게 고흥읍으로 나갈지 걱정과 고민을 해 보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어 도화면 택시를 부르려고 전화를 돌리는 세대 모두 올 수 없다는 소식만 전하고 있다.

참으로 고민스러운 상황인데 지죽대교 아래 김 양식장에서 일을 하고 나오는 외국인 노동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니 저녁 6시 25분에 이곳에서 고흥읍으로 나가는 버스가 있다는데 한시간 이상 남아 있어 더욱 고민이다.

그렇게 약 30여분 지나고 추위에 떨고 있는데 마침 지죽도에서 트럭 한대가 나오고 도로를 점령하다시피 나가 손을 흔드니 젊은 아저씨가 차가 더럽다며 물건들을 치우고 태워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도화면에 잠시 일을 보고 고흥버스터미널 근처까지 나간다기에 얻어 타고 함께 가기로 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제 40대 후반으로 지죽도에서 김 양식을 하면서 부모님만 지죽도에 계시고 자기는 가족들과 함께 고흥읍에서 살고 있다고 알려준다.

혹시 김을 살 수 있는지 확인해 보니 생김을 수협에 위탁 판매를 하기 때문에 개별 판매는 하지 않아 아쉽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수입은 좋은 것 같아 즐겁게 이야기 꽃을 피우며 쉽게 고흥공용버스터미널까지 나온다.


고흥공용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저녁 6시가 넘어가고 이미 서울가는 버스편은 끊어져 일단 6시 27분 발 순천행 버스로 순천까지 나가 본다.

옆지기에게 전화를 해 고속버스편을 알아보니 저녁 8시 50분 버스가 있어 예매를 부탁하지만 쉽지 않아 순천역에서 출발하는 KTX편을 부탁하고 순천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7시 10여분이 지나가고 있다.

일단 샤워장을 확인해 보니 마침 순천역 근처에 찜질방이 보이고 옆지기에게 부탁해 순천역에서 8시 50분 출발하는 KTX를 예매한 후 택시를 이용 순천역 근처의 찜질방인 지오스파로 이동해 샤워 후 파이 두개와 음료수 2병을 구매 해 순천역에서 정시에 출발하는 KTX를 타고 무탈하게 서울로 향하였다.


 

 

 


밤 11시 30분에 용산역에 도착을 해 마중나온 옆지기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귀가하여 준비한 식사와 두루치기로 소맥 몇잔 나누고 몸을 확인해 보니 온 몸이 피멍이 든 생채기 투성이 이다.

양 팔과 다리 뿐만 아니라 고개와 등판 그리고 허벅지까지 성한 곳이 한군데도 없어 괜시리 미안해 하고 있는데 옆지기가 바라보더니 왜 그러고 다니냐며 핀잔을 준다.

핀잔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몸뚱아리를 바라보고 그저 피식 웃어 주는 것으로 마무리 해 본다.

그래도 가장 고통스럽게 완주한 고흥에서의 추억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또 하루를 마무리 한다.

시간당 채 2 Km를 걷지도 못할 정도로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로 고생은 하였지만 그렇기에 올 초여름에 올라 지독한 잡목으로 사투를 벌였던 육백지맥과 함께 이 고흥 땅에서의 산행은 더욱 기억에 남아 있을 산줄기로 남겨 본다.


이제 잠시 시간을 두고 여수지맥과 화원지맥 산행을 위해 다시 남도로 내려가는 시간은 이곳 고흥지맥보다는 좋은 산행 조건이 되어 있기를 희망도 해 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로 향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71202 고흥지맥 마지막제4구간 먹국재-남해바다.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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