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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고흥지맥(호남·완)

고흥지맥 제2구간 골안고개에서 당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6.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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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고흥군의 고흥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5년 12월 30일 (화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생각보다 춥지 않았던 겨울 날씨에 하루 종일 맑고 산행하기 좋았던 날씨

산행온도 영하 01도에서 영상 09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골안고개(17번 2차선 포장도로 갈림 삼거리)-시멘트 포장도로와 상와마을 이정석-태양광 발전판-밭 경작지-마늘밭-상와버스정류장(2차선

                 포장도로 갈림 삼거리)-비포장 임도와 마늘밭-감나무 과수원과 마늘밭-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김녕김공묘지-비포장 임도-밭 경작지-

                 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밀양박공묘지-밤나무 과수원과 밭 경작지-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밭 경작지-능선진입-

                 103.1봉-소나무 등로-전주이씨묘지-편백나무 등로-시멘트 포장도로-갈림삼거리-마늘밭-밭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밭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편백나무 등로-77봉-엄나무지대-비포장 임도-배나무 과수원-조립식 건물-비포장 임도-통제골고개(2차선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덕촌고개(콘테이너 건물과 과수원)-밭 경작지-함안조공묘지-태양열 발전판-시멘트 포장도로-장담태양광 빗돌-밭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능선진입-113봉-129봉(157봉과 월악산 갈림 삼거리)-128.4봉-장담고개 이정표(도천고인돌 1140m, 월악산

                 정상 1770m, 과역 월악마을, 남양장담)-나무 조림지-143봉-152.7봉(계룡산) 삼각점 이정표(도천고인돌 550m, 월악산정상 2360m)-벤취

                 쉼터1-일출-편백나무 등로-콘크리트 계단-월악육교(월악산 오솔길 안내도, 1차선 포장도로, 15번과 27번 및 77번 4차선 포장도로 통과)-

                 고흥 도천리 지석묘군-민가-상수원보호구역 안내판-69봉 벤취쉼터1-105.3봉-104 과역봉-잡목지대 안부-84봉-소나무 등로-석봉리

                 고개(18번 2차선 포장도로)-지독한 잡풀과 억새지대-민가와 나무 조림지대-84.5봉 삼각점(석봉)-시멘트 포장도로-지하통로(석봉교차로,

                 15, 27, 77번 4차로 포장도로) 통과-월송마을-비포장 임도-밭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석봉농원 빗돌-폐허된 석봉농원-나무 조림지-64봉

                 흥양이씨묘지-넓은 공터잔디-공터 목초지-잡목지대-감나무와 억새지대-65.9봉 쌍묘-간벌지대-나무 조림지-시멘트 포장도로-동백나무

                 등로-68봉(월송봉)-비포장 임도-간벌지대-133봉-150.3봉(인학1봉, 준.희님 응원판)-안부-181.3봉 갈림 삼거리-186봉(인학봉, 운동시설과

                 벤취쉼터)-간벌지대-124봉-출입금지 플랭카드-90봉-시멘트 포장도로-당치(33번 2차선 포장도로)-비포장임도-111.6봉-장학관 창원박공

                 묘지-비포장 임도-안부-개간지-1차선 포장도로(쓰레기 처리장)-소나무 등로-159.8봉 삼각점(모동봉)-145.5봉(평촌봉)-잡목안부-184봉-

                 152 바위봉-성황당 안부-145.5봉-소나무 등로-안부-186봉(성주봉)-성주고개(14번 2차선 포장도로, 성주마을 빗돌)-점암성대 기지국(무인

                 이동통신탑)-소나무 등로-147봉-간벌지대-158봉 삼각점(당재봉)-잡목안부-138봉-149봉-지독한 간벌지대-소나무 등로-당재(855번

                 2차선 포장도로, 일복레미콘과 채석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2.02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 등로를 따라 온 몸에 생채기를 내고 많은 사진 찍으며 09간 27 (05시 23부터 14시 50분까지)

교통편 : 애마와 택시 이용

고흥지맥이란 ???

고흥지맥은 호남정맥의 존재산(712봉) 남쪽 2 Km에 있는 적지봉(571봉)에서 분기하여 남동진하며 태봉(325.2봉), 가마봉(258봉), 장군봉(412.7봉), 삼봉(107.3봉), 혼백산(183봉), 천봉산(193.1봉), 소대방산(165봉), 운암산(484.2봉), 반월산(291.0봉), 수덕산(301봉), 오무산(356.3봉), 벼락산(431봉), 천등산(553.5봉), 우마장산(342.8봉), 유주산(416.6봉) 등을 일구고 지죽대교 앞 고흥반도 남단 남해바다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90.9 Km 되는 산줄기로 말한다.
고흥반도를 남북으로 온전하게 종단하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산이름이 아닌 지역이름을 따 고흥지맥이라 칭한다.

 

 

 

잡목으로 뒤덮힌 비산비야의 고흥 마루금을 걸으며 남도의 정취를 가슴으로 담았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고흥으로 돌아 와 최근에 건설된 깨끗한 썬모텔에서 가격도 저렴하게 하룻밤 묵고 그 앞 허름한 곰탕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너무나 많은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 줘 이슬이 한병을 마시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모텔로 돌아 와 일찍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피곤한 몸과는 달리 정신은 멀쩡해져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다 밤 11시를 넘겨 어렵게 잠이 들었다 새벽 3시를 넘겨 눈이 떠지고 산행 준비 후 모텔을 나와 고흥 읍내를 돌아 보지만 문을 연 식당 하나 찾지를 못해 결국 24시 편의점에 들려 햇반과 김치로 아쉬운 새벽 식사를 한 후 큰 햇반 하나를 데워 보온 도시락에 넣고 김치와 고기 반찬을 사 반찬통에 담은 후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준비해 산행 날머리인 당재로 출발을 한다.

 

어제 길게 산행을 한 여파 치고는 몸의 상태가 좋아 즐거운 마음으로 당재에 도착을 하니 새벽 4시 40여분을 지나고 택시 기사님과 연락해 택시 도착 시간에 맞춰 택시로 갈아 탄 후 어제 날머리였던 골안고개로 돌아가니 새벽 5시 20여분을 넘기고 있다.

걱정하는 택시 기사님을 보내고 사진 몇장 남긴 후 배낭 둘러메고 또 하루를 출발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춥지 않는 상쾌한 새벽을 열며 그렇게 고흥지맥 제2구간 산행을 시작해 보는 순간이다.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안전한 산행을 마음속으로 빌며 낡은 농협 창고를 떠나 17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걸어가며 험한 마루금 잇기 산행을 시작해 본다.

 

어둠속에 비산비야인 마을과 논밭을 지나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간에 오랫만에 능선으로 들어 가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월악산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어둠이 완전히 사라졌으면 그곳 월악산을 다녀오고 싶었지만 아직도 어둠이 남아 있고 오늘 오후부터 전국적으로 눈이나 비가 내린다는 예보로 인해 조금이라도 일찍 끝내고 서울로 복귀하기 위해 월악산을 포기하고 걸어가니 금새 삼각점과 이정표가 서 있는 152.7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선답자의 한분이 계룡산이란 종이 코팅지를 달아 놨다.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 좌측 잡목 사이로 너무나 아름다운 일출이 시작되는데 살펴보니 저 멀리 고흥의 진산인 팔영산 자락에서 둥근 아침 해가 떠 오르고 있다.

기대도 하지 못했던 멋진 일출을 바라보는 시간은 또 다른 의미로 가슴속에 남겨지는데 아마도 연말연시이기에 더욱 다른 의미로 다가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택시를 타고 골안고개로 돌아 오는 길에 택시 기사님이 다시 왜 이런 산행을 하는지 또한 전국적으로 많은 유명한 산이 있는데 왜 하필 높은 산도 없는 이곳 고흥까지 내려 와 산행을 하는지 그리고 왜 홀로 어둠속에 산행을 하는지 등 많은 질문을 하면서 궁금해 하기에 그 궁금증을 풀어 드리려 노력해 보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다.

그렇게 골안고개에 도착을 해 택시를 보내고 춥지 않은 새벽에 갈림 삼거리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사진에 담고 우측에 낡은 농협 창고를 두고 17번 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걸어가며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해 본다.

이곳 골안고개는 고흥군 남양면 대곡리에 있는 고개로 직진을 하면 동강면으로 가고 우측으로 가면 고흥읍으로 이어지는 17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잠시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시멘트 갈림 도로가 보이고 그 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좌측에 상와마을 표지석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녹색 철조망 넘어 태양광 발전기들이 설치된 넓은 장소가 나타난다.

상와마을은 대곡리에 있는 마을로서 대곡리는 전라남도 고흥군 남양면에 있는 마을로서 남해 바다를 향한 곳에 있는 해안 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상와마을, 골안마을, 중와마을, 하와마을, 노송마을이 있는데 상와, 중와, 하와는 이 주변의 산 모양이 여러 갈래로 뻗어 내려 마치 바닥기와가 깔려있는 것처럼 생겼다 하여 와평이라 하였다가 셋으로 나뉘어진 것이다.
골안마을은 마을이 골짜기 안에 위치하여 있으므로 붙인 이름이고 노송마을은 오래된 소나무가 있으므로 노송이라 이름 붙였다.

잠시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제 우측으로 휘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밭둑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타고 걸어가며 고흥지맥 제2구간을 이어가 본다.

 

잠시 좌측으로 오르니 공터 밭이 나타나고 곧이어 파란 마늘 밭이 보이는데 그 마늘 밭을 걸어 통과하니 또 다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상와고개에 도착을 한다.

그곳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에 상와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곧이어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우측 도로를 버리고 좌측 도로를 따라 10여미터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우측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있다.

이곳 상와고개는 2차선 포장도로가 있는 갈림 삼거리로서 상와 버스 정류장과 배씨 효열비가 있고 이곳에서 마늘밭과 감나무 과수원이 있는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상와고개 갈림 삼거리에서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가 다시 도로 우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파란 마늘밭이 보이고 그 마늘 밭을 지나 걸어가니 다시 마늘 밭과 감나무 과수원이 함께하는 밭 둑을 타고 진행이 된다.

그 마늘밭과 감나무 과수원을 지나 걸어가니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고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갈어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오르니 그 시멘트 포장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지는 곳에서 포장도로를 보내고 우측 능선으로 들어가며 고흥지맥 산행을 어렵게 이어가 본다.

좌측 사면 등로처럼 나 있는 낙엽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이곳 등로 역시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임도로 이어지고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김녕김씨 묘지를 지나 또 다시 비포장 임도같은 능선을 따라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생각보다 춥지 않은 날씨에 입었던 방풍의를 벗어 배낭에 넣고 다시 그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무명묘지들을 만나고 억새지대도 지나 공터로 변해 버린 밭둑을 타고 걸어 본다.

그렇게 그 비어있는 밭둑을 타고 잠시 더 걸어가니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자 마자 등로는 우측 잡목지대로 이어지는데 그 능선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한동안 이리저리 등로를 찾아 어렵게 들어가 본다.

 

너무나 어렵게 잡목 등로를 찾아 능선으로 들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밀양박씨 묘지가 보이고 그곳 묘지 옆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며 진행이 된다.

잠시 더 걸어가니 나무들을 식재해 놓은 조림지를 지나 빈터로 남아 있는 밭을 지나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며 진행이 된다.

다시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무명묘지를 지나 밭둑으로 된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진행되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걸어가니 갈림 사거리인 옥천고개에 도착을 한다.

옥천고개는 옥천마을에 있는 고개로서 옥천마을은 본래 시목에 속하는 마을이었는데 1963년 전까지는 마을 앞이 바다였으나 그 후부터 해창만 간척지 공사가 시작되어 마을 앞이 답으로 조성되면서 가옥이 늘어남에 따라 해방 후 시목과 분리되어 마을이름을 옥천이라 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곳 옥천고개는 장남리에 속한 고개로서 장남리는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에 위치한 마을로서 팔영산 줄기 아래 서쪽 해창만 깊숙이 위치하며 시목과 굴막의 중간에서 천학제방에 의하여 포두면과 연결된다.
간척사업으로 인해 농토화된 마을이며 자연마을로는 장남, 시목, 옥천이 있는데 시목마을은 마을 뒷산의 지형이 돼지형이며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 시목이라는 지명이 붙게 되었다.
옥천마을은 본래 시목에 속하는 마을이었는데 1963년 전까지는 마을 앞이 바다였으나 그 후부터 해창만 간척지 공사가 시작되어 마을 앞이 답으로 조성되면서 가옥이 늘어남에 따라 해방 후 시목과 분리되어 마을이름을 옥천이라 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장남리 옥천고개가 있는 갈림 사거리에서 직진의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는 금새 비포장 임도로 변하고 좌측으로 휘어지는 임도를 따르니 몇기의 묘지들이 보인다.

그 묘지들을 지나 오르니 밭이 펼쳐져 있고 비어 있는 밭을 통해 걸어가니 비포장 임도를 지나 잡목과 잡풀이 자랐다 말라있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능선으로 오르니 키 작은 동백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커다란 편백나무가 서 있는 103.1봉에 도착을 해 긴 숨을 한번 내쉬어 본다.

 

그 편백나무가 서 있는 무명봉을 지나 멋진 내리막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고 묘지 한기를 통과한 후 편백나무를 지나니 억새 등로를 지나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난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잠시 걸어가니 갈림 삼거리가 있는 송정마을의 송정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송정은 마을에 소나무를 울창하게 심어 바위가 보이지 않게 하였으므로 지은 이름이다.
본시 마을이름은 거해라고 했는데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송정, 서거, 동거 등 3개 마을을 거해라 부르며 지형이 큰 계 형국이라 하여 송정을 웃 거해 또는 상거라 불리어오다가 1914년 왜정초기에 지방행정제도개혁령에 따라 마을 명을 송정으로 개칭하였고 마을 서쪽에 큰 바위가 마을에 보이면 해가 된다하여 소나무를 울창하게 심어 바위가 보이지 않게 하였으나 왜정말(대동극정때) 군용물질인 송탄유를 짜기 위하여 1942년 이를 벌목 했다는 구전이다.

 

송정마을에 있는 송정고개 갈림 삼거리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다시 마늘밭이 나타나고 그 마늘밭을 지나니 지독한 억새밭을 넘어 공터로 남아 있는 밭을 걸어 진행을 한다.

그 비어 있는 밭을 지나니 다시 비포장 임도를 만나 그 임도를 타고 걸어가고 비포장 임도를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난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무명묘지를 만나고 그 묘지를 지나니 묵밭을 지나 검정 비닐을 걷지 못한 밭을 타고 진행을 해 본다.

 

그 검정 비닐이 덮혀 있는 밭을 지나 걸어가니 어둠속에서도 수확하지 않은 콩밭을 지나고 그 밭을 지나니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 선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짧게 걸어가니 등로는 우측의 밭 좌측의 능선으로 오르며 이어지고 있다.

능선으로 오르니 편백나무 숲이 이어지고 잠시 후 잡목으로 바뀐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편백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77봉에 도착을 한다.

 

그 77봉을 지나니 짧은 편백나무 지대를 지나 엄나무가 식재된 난해한 등로를 찾아 어렵게 내려가 본다.

이리 찔리고 저리 찟기며 그 엄나무 등로를 타고 어렵게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 좌측으로는 편백나무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그물망이 쳐진 감나무 과수원이 이어지고 있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는 좌측으로 휘어져 이어지고 잠시 후 강아지 두마리가 고요를 깨는 울부짖고 그 바로 옆으로 작은 공간의 건물이 보인다.

아마도 과수원의 과수를 키우고 수확할 때만 사용하는 건물이 아닐까 생각되는 그런 작은 건물이다.

그 건물 앞을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어둠이 많이 엷어지며 저 앞으로 희미한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건물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다 앞을 보니 저 멀리 고흥의 월악산이 여명의 빛을 받아 희미하게 다가온다.

카메라에 어렵게 그 풍경을 담고 계속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전봇대가 서 있는 곳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우측으로 보내고 등로는 좌측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조금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밭둑으로 이어지고 그 밭둑을 걸어가니 등로는 이제 18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통제골고개에 도착을 한다.

통제골 고개는 고흥군 남양면 장담리에서 과역면 석봉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18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곳이며 좌측에 있는 송정제를 국립지리원 지도에 통제골 고개로 표기되어 있어 통제골 고개로 부르는 듯 보인다.

 

    

그 통제골고개가 있는 18번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면 곧바로 비포장 임도가 보이고 그곳으로 들어가 걸어가면 짧게 능선으로 들었다가 또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도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도로 좌측으로 최근에 설치된 듯한 콘테이너 박스의 건물이 보이고 곧이어 과수원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게 되는데 그곳 과수나무들이 식재된 과수원을 지나니 공터가 되어 있는 밭 경작지가 나타나 그 밭을 타고 걸어 본다.

 

밭 경작지를 지나니 등로는 다시 좌측 나즈막한 능선 같은 잡풀지대로 이어지는데 그곳에는 함안조씨 묘지들이 많이 산재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는 태양광 발전판이 완전히 가로막아 도저히 진행이 어렵기에 우측 논둑으로 내려가 그 태양광 발전기 단지를 통과한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등로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고 그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도로 좌측에 장담태양광이란 커다란 빗돌이 보이고 곧이어 갈림 삼거리인 덕촌고개에 도착을 한다.

덕촌고개(덕촌재)는 고흥군 과역면 도천리에서  남양면 장담리 덕촌마을 넘어가는 고개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있고 장담 태양광 단지가 있는 고개인데 덕촌고개라는 이름은 이곳이 장담리 덕촌마을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기도 하다.
덕촌마을은 본래 고흥군 남양면 장담리에 속하여 이계사 하늘에 위치하여 다락산지맥이 병풍처럼 둘러 쌓여 마을의 형국이 마치 밤알을 안고 있는 밤송이와 같이 생겼다 하여 마을명을 밤방굴이라 불리어 왔으며 밤방굴을 한자로 음차하여 율동이라 칭하여 오다가 1956년 자연마을로 독립되면서 이는 해방된 덕이라는 뜻으로 덕촌이라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장담태양광 빗돌이 있는 덕촌고개를 지나 밭 둑으로 올라 걸어가니 또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가니 이제 너둠도 많이 엷어져 주위 사물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는 이제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그 임도를 타고 능선 방향으로 걸어가니 도로 옆 밭에서 얼어있는 파란 배추가 가슴으로 남겨진다.

 

이제 비산비야의 마을과 밭둑을 지나 능선으로 들어가니 능선 등로 역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열려있고 그 위에는 푹신한 양탄자같은 낙엽이 깔려 있어 진행에 큰 어려움은 없다.

한동안 그 낙엽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113봉에 도착을 해 잠시 쉬어 간다.

다시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157.6봉과 원악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잠시 고민을 하다가 오늘은 월악산을 포기하고 정상 등로를 타고 빠르게 진행을 하기로 한다.

월악산(254봉)은 전남 고흥군 과역면과 남양면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먼 옛날에 천상에 있는 선인이 이 산에 내려와 옥녀와 더불어 탄금하며  월하풍악을 즐겼다 하여 월악산 또는 달악산이라고 부렀다고 한다.
또한 월악산이 있는 월악마을은 원래 석봉리 지역에 속하며 옛날 월악산이 높이 솟은 마을 형국이 소쿠리형으로 생겨 해와 달이 떳다가 반나절 밖에되지 않는다고하여 마을이름을 다래기라 불리어 오다가 마을지형이 월체형으로서 마을뒤의 월악산이 오행상 선인무유가 있다하여 끝자를 악자로 마을명을 다시 월악으로 칭한 이후 변개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월악산을 잠시 다녀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지만 오후부터 전국적으로 비나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 서울로 복귀를 해야 하기에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려는 마음에 월악산을 다녀오지 못했는데 아쉽기만 하다.

 

다시 부드러운 낙엽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이곳의 등로 역시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등로로 이어져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 온다.

등로 좌측에 원악제가 있는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는 이제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곳에는 키 작은 파란 동백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등로로 기억되고 있다.

이제 어둠도 거의 사라지고 여명의 빛이 밝아 와 헤드렌턴은 배낭에 넣은 후 진행하니 금새 장담고개 이정표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장담고개는 고흥군 남양면 장담리이에서 과역면 월악리 넘어가는 고개로 그 앞으로는 벌목된 장소가 보이는데 유실수를 식재하기 위한 벌목지대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곳이다.
장담은 마을 모양이 긴 연못에 연꽃이 있는 모양이라 하여 붙은 이름으로 마을의 산세가 자형으로 되어 서쪽으로 유수하고 기중간지점(정자등과 사장등)이 마치 연꽃모양이라 3백여년전에 광산김씨가 입주설촌하면서 긴못에 연꽃이있다 하여 장담이라  불렀다고 한다.

 

도천 고인돌 방향으로 벌목지대를 우측에 두고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가파르게 오르니 등줄기에서는 오늘 처음으로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잠시 오르다 등로 우측을 보니 저 멀리 장담리와 장담2제가 내려다 보인다.

오르다 보니 등로 우측의 벌목지대엔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어 제법 자라고 있는 모습도 이제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올라 능선으로 들기 직전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다녀오지 못해 많이 아쉬운 월악산이 드높게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 나즈막한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152.7미터의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표와 계룡산이란 종이 코팅지가 보이고 진행 방향으로 벤취 쉼터 1개도 보인다.

계룡이란 단어는 왜 갑자기 나왔고 왜 이곳이 계룡산인지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정확한 고증을 통한 이정판이기를 바래 본다.

 

잠시 그곳 152.7봉에서 쉬면서 간식 하나 먹고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잡목가지 사이로 고흥의 진산인 팔영산의 암릉구간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렇게 한동안 그 봉우리에서 쉬고 도천 고인돌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벤취 쉼터가 보이는데 이곳 등로 역시 비포장 임도처럼 넓게 열려있고 잡목도 없어 진행하기에는 참으로 편안하기만 하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 잡목사이로 붉은 태양이 떠 오르고 잡목이 적은 곳을 찾아 찬란한 한해의 마지막 해를 만나 본다.

오늘따라 더욱 붉고 찬란한 빛으로 온 세상을 밝히는 아침 태양이 더욱 소중한 의미로 가슴속에 남겨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멋지고 환상적인 일출을 만난 후 다시 파란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는 편안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완만한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그곳에는 제법 큰 편백나무 숲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편백나무 숲을 지나 계속 내려가니 시멘트 계단이 길게 보이고 그 끝자락에 1차선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는 월악육교 위에 도착을 해 잠시 가야 할 방향을 살펴 본다.

 

그 콘크리트 계단을 타고 내려가 1차선 포장도로에 내려서니 월악산 오솔길 안내도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15번과 27번 그리고 77번 4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월악육교가 보인다.

그 월악육교로 오르기 직전 좌측으로 15번과 27번 4차선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과역면의 석봉리 마을을 지나 고흥의 진산인 팔영산이 아름답게 보이는데 152.7봉에서 만났던 아침 해는 이곳으로 내려 오니 그 팔영산 자락으로 숨어 버렸다.

 

이제 그 월악육교를 건너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그 포장도로는 직진 우측으로 이어지고 등로는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로 이어지고 있다.

민가가 보이는 그곳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로 걸어 들어가니 좌측으로 꺽이는 도로 좌측에 고흥 도천리 지석묘군 안내판과 몇기의 지석묘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흥 도천리 지석묘군은 전라남도 고흥군 과역면 도천리 월악산 줄기에 분포하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무리로서 1995년 12월 26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97호로 지정되었다.
15호 국도변에 있는 과역리 민등마을에서 동쪽으로 난 월악마을 진입로를 따라 200미터 떨어진 고개마루 정상부에 해당하며 월악산 줄기가 남서로 뻗어 내리면서 낮은 구릉을 이루는데 이 구릉 위에 모두 4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
분포면적은 1375 ㎡이고 현재 소나무와 잡목 사이에 군집을 이루고 있어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다.
고인돌군은 두 개의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두 개의 군집 중에서 북쪽에 있는 것은 원래 13기였으나 지금은 8기만 남아 있고 이 고인돌군의 가장 북쪽에 비교적 큰 상석 1기가 있는데 이 상석의 크기는 길이 2.8 미터에 너비 2.35미터이고 두께는 2.15미터이며 공 모양이다.
이런 상석은 묘역을 상징하는 고인돌로 보이며 두 개의 군집 중에서 남쪽에 있는 것들은 길이 1에서 2미터의 비교적 크기가 작은 것들로 무질서하게 놓여 있으며 파괴된 것들도 있다.
고인돌군은 구릉 등선을 따라 대체로 4열로 늘어 서 있으며 크기가 큰 것들은 열의 가운데에 분포되어 있는데 고인돌의 크기는 3미터 이상이 2기이고 2에서 3미터가 17기로 크기가 작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두께에서도 1미터 이상이 5기 정도이고 0.7미터 미만이 주를 이루며 고인돌군은 땅에 착 달라붙어 있으나 받침돌이 드러난 것이 두께 0.7미터 이상의 고인돌 12기에서 확인되었다.

 

    

멋지게 자라고 있는 편백나무 사이에 산재되어 있는 도천리 지석묘군을 살펴보며 걸어 들어가니 도로 우측에 민가 한채가 보이고 그곳에서 강아지 세마리가 나와 이방인을 격하게 반겨주고 있다.

그 민가 건물이 있는 곳 좌측의 녹색 철조망이 보이는 입구에 서 있는 안내판이 있어 살펴보니 상수원보호구역 안내판이다.

그 상수원보호구역 좌측의 편백나무 등로를 따라 오르니 벤취 쉼터 1개가 보이는 69봉에 도착을 해 조금은 완만하게 변하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해 본다.

 

이제 편백나무와 낙엽진 활엽수가 섞여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푹신한 낟엽 등로가 걷기 좋은 마루금이다.

막 떠 오른 아침 햇살이 따뜻하게 비춰주는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걸어 진행을 하니 105.3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편안하게 오르니 104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오늘 처음으로 동네 주민인듯한 세명의 할머니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하지만 이곳 104봉에도 역시 과역봉이란 종이 코팅지가 붙어 있어 고개가 꺄우뚱 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104봉을 지나 뚜렷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잠시 후 등로는 뚜렷한 직진의 내리막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잡목이 자라고 있는 희미한 등로를 따라 어렵게 진행을 해야 하는 길주의 구간에 도착을 한다.

잡목을 헤치고 좌측 사면 등로같은 마루금을 타고 걸어가고 무명묘지가 보이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니 또 다른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난다.

그 묘지를 지나 안부를 통과하니 또 다른 무명묘지 한기를 만나고 곧이어 84미터의 무명봉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그 무명봉을 넘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와 만나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걸어가니 18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과역고개에 도착을 한다.

이곳 과역고개는 과역면에 있는 18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과역이란 지명은 인근 고흥군 남양면에 조선시대 벽사도 찰방 9역의 하나인 양강역이 있어 역을 지나왔다하여 과역이라고 한다.

 

18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과역고개를 건너 좌측으로 300미터 전방에 갈림 사거리가 있다는 도로 표지판이 서 있는 뒷쪽 잡풀이 우거졌던 곳을 통해 오르니 무명묘지2기가 보이고 그 뒤로는 키 큰 억새가 자랐다 죽어가는 드넓은 억새밭이 펼쳐져 있다.

그 억새밭을 지나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민가 지나 과역면의 마을이 보이고 등로 좌측으로는 석봉리 마을을 지나 저 뒤로 오늘 새벽에 지나온 월악산과 그 주위의 고흥지맥 마루금이 보인다.

과역면은 전라남도 고흥군 북부에 있는 면으로 북쪽으로 남양면, 남쪽으로 점암면에 접하고 동쪽으로 순천만에 서쪽으로 득량만에 면한다.
면의 대부분이 동서 해안의 간석지에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벼농사를 주로 하며 국도 연변에서는 비닐하우스 재배에 의한 원예농업이 활발하다.
그 밖에 특용작물인 잎담배를 재배하고 동서 해안의 간석지에서는 굴, 꼬막 양식이 활발하다.
순천만에 있는 진지도는 수심이 깊어 연안수역의 어류가 많이 모여들기 때문에 관광낚시터로 알려져 있고 국도가 면내를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서 벌교를 경유하여 광주광역시와 순천시로 연결되고 남으로는 고흥읍과 도양읍으로 연결된다.
문화재로는 고흥도천리 지석묘군(전남문화재자료 197), 고흥과역리 민등지석묘군(전남기념물 161), 선사유적, 이백남의사 기념비 등이 있다.

 

지나온 월악산 방향을 살펴보고 앞으로 진행을 하니 유실수가 심어져 있는 과수원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고 잠시 후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한다.

잠시 더 잡목을 헤치고 어렵게 오르니 84.5 삼각점 봉이 나타나는데 이곳 역시 선답자의 한분이 석봉이란 종이 코팅지를 걸어 놨는데 그 어디에서도 석봉이란 자료를 찾을 수 없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평이한 84.5봉을 출발해 잡목 구간을 어렵게 헤치며 통과한다.

 

봉우리 같지 않은 그 84.5봉을 지나 다시 잡목을 헤치고 전진하니 잠시 후 절개지 바로 직전 중앙부에 도착을 하는데 바로 아래를 살펴보니 15번과 27번 그리고 77번 4차선 도로가 지나는 도로의 석봉교차로라는 도로 표지판이 잡목 사이로 내려다 보인다.

그 도로를 지나 앞을 살펴보니 고흥지맥에서 좌측으로 살짝 비켜서 있는 팔영산과 그 우측으로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운암산과 조계산 줄기가 밝아 오는 햇살에 찬란히 빛나고 있다.

그렇게 그곳 절개지 정상에서 한동안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절개지를 곧바로 건널 수 없어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조심해 내려가기 시작한다.

 

절개지 정상에서 내려오기 직전 등로 우측 앞을 살펴보니 점암저수지 지나 고흥의 올망졸망한 산그리메가 가슴 한쪽에 남겨지는 시간이다.

잠시 소나무와 잡목을 헤치고 가파르게 절개지 우측 사면으로 내려가니 등로가 조금은 완만해지기 시작하고 곧이어 편백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등로로 내려선다.

그 편백나무 숲을 지나니 빛바랜 억새가 나타나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고 그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가며 방금 전 만났던 15번, 27번 그리고 77번의 4차선 포장도로를 지하통로를 통해 통과해 본다.

 

지하통로를 통해 4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해 걸어가니 사정리 주민 두명이 내려오다 홀로 걸어가는 이 산객을 보며 신기하게 생각을 하였는지 이것저것 물어 오고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인사를 드리고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른다.

이곳은 고흥군 과역면 석촌리 석촌마을로서 석촌마을은 원래 석봉리 지역에 속한 마을로서 옛날 마을앞에 큰 바위가 박혀있어 이 바위가 동쪽으로 비스듬이 누워있을 때 마을이 빈촌이었으나 어느 스님이 마을앞 큰 바위를 바로 세우면 마을이 번창할 것이라 하자 전 동민이 바위를 바로세웠으며 마을명을 바윗돌을 상징하여 돌배기라고 불리어오다가 1936년 일정때 마을명을 한자화할 당시 돌이 많은 마을이라는뜻으로 석촌이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니 전남 고흥군 점암면 사정리 월송부락에 있는 고개인 월송재에 도착을 한다.

도로 좌측으로는 석촌마을이 보이는 그곳에서 이제 시멘트 포장도로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으로 갈리는 또 다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그 포장도로는 이제 비포장 임도로 변하고 있다.

이제 월송마을이 보이는 밭 경작지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또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완만하게 올라 본다.

이곳 월송마을은 옛날 마을주변에 모시가 많이 재배되었으며 마을앞에 연못이 있어 그 곳에서 사시절 맑은 물이 하천으로 흐르므로 마을 이름을 모시내(못의 내)라고 불리어 오다가 1914년 일제초기에 지방행정구역 폐합시 풍수가 마을을 지나다가 지형이 달과 같이 아름답고 소나무가 무성하여 달 월자와 소나무 송자를 따서 월송이라 개칭한 후 변개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진행하다 잠시 뒤돌아 보니 산은 보이지 않고 밭 경작지와 민가들만이 마루금을 독차지 하고 있는 풍경이 이채롭기만 하다.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드넓은 마늘밭이 펼쳐져 있고 잠시 후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직진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려는데 그 도로 좌측에 석봉농원이란 커다란 빗돌이 서 있다.

하지만 그 빗돌을 지나 오르니 석봉농원은 오래전 폐업되어 사라진 듯 폐허로 변해 버렸다.

 

그 폐업된 석봉농원을 좌측에 두고 오르니 비포장 임도에도 잡목과 잡풀들이 자라나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고 잠시 후 유실수가 식재된 장소로 들어가는데 우거져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다.

이리저리 피하고 살피며 어렵게 그 조림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좌측에 폐허가 된 석봉농원의 건물들을 두고 반 바퀴 돌아 진행이 되고 있다.

다시 키 작은 동백나무를 지나 흥양이씨 묘지를 통과하니 넓은 잔디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늦은 아침 상을 펴고 여유있게 식사를 하면서 바로 발 아래 보이는 멋진 민가 한채와 비닐 하우스를 내려다 본다.

 

따뜻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커피까지 한잔 마시고 나니 다시 힘이 나고 방풍의를 벗어 배낭에 넣고 출발하니 등로는 그 멋진 민가를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빙 돌아 진행하듯 이어지고 있다.

억새와 잡풀이 자랐던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잔디 등로를 지나 등로 좌측 아래로 석봉리와 호덕리를 바라보며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큰 축사 건물 한채를 만나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조림지가 그리고 우측으로는 잡목이 우거진 그 경계를 타고 오르니 억새와 감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65.9봉에 도착을 하는데 아무 표식도 없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하지만 그곳 65.9봉을 지나 난해해진 등로를 찾아 한동안 왔다리 갔다리 헤맨 후 어렵게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진 등로를 찾아 걸어 본다.

하지만 금새 다시 올라 와 묘지 2기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68봉으로 뒤돌아 올라 와 사진 한장 남기고 참으로 어렵게 희미한 간벌 등로를 찾아 진행을 해 본다.

희미한 흔적이 보이다 사라지는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진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드디어 몇기의 묘지지대를 만나 어렵게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그 묘지들을 지나 내려가니 예전에 밭이었다가 나무들을 식재해 놓은 조림지를 만나 우측으로 진행을 하게 되는데 그곳에는 좌측에서 올라 온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시멘트 포장도로 반대방향인 우측의 키 작은 나무들이 식재돤 장소를 따라 한동안 걸어가니 이제는 우측에서 올라 온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등로는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올라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측에 밭 경작지를 두고 잠시 더 올라 능선으로 진입하니 등로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잡목과 가시나무 그리고 파란 키 작은 동백나무들이 함께 섞여 있는 색다른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동백나무 지대를 지나 오르니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고 일부는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혼재되어 있는 68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월송봉이란 종이 코팅지가 걸려 있다.

이곳이 월송이라는 마을이기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는데 정확하지 않은 봉우리 이름대신 해발고도만 적어 놨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그 월송봉이란 68봉을 지나 출발을 하니 다시 잡목이 발목을 잡고 어렵게 그 잡목지대를 지나니 파란 동백나무가 등로에 줄지어 자라고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있는 넓은 공터같은 안부를 지나 등로 옆에 밭 경작지를 두고 무명묘지를 통과하니 우측은 비포장 임도와 좌측의 시멘트 포장도로가 만나는 곳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는 석촌마을이 우측으로는 사리마을과 이어지는 고갯마루가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그 도로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등로를 막아 진행에 애를 먹고 어렵게 조금 더 오르니 또 다른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난다.

그 묘지 뒤로 오르니 이제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더욱 심하게 널부러져 한발 옮기기도 쉽지 않은 등로로 변하고 있다.

잠시 후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진 소나무 등로를 만나 여전히 힘들게 오르고 좌측으로 소대방산으로 오를 수 있는 갈림 삼거리인 130봉에 도착을 해 잠시 쉬어간다.

다시 소나무와 잡풀이 어우러진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금새 150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이어지고 있다.

종이코팅지에는 이곳을 인화1봉이라 적어 놨고 그 옆 한쪽에는 준.희님이 붙여 놓은 고흥지맥 종주자들에게 전하는 응원판이 걸려있다.

 

그곳을 지나 잠시 더 잡목과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 앞으로 조망이 열리고 잠시 살펴보니 저 멀리 고흥의 팔영산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와 있고 예전에 저곳에 오르며 만들었던 고운 추억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봄날 가랑비가 내리다 잠시 멈췄던 시간에 옆지기는 능가사 주위에서 나물을 뜯고 이 산객 홀로 올라 환상의 운해와 풍경을 즐겼던 시간이 있었기에 그때의 풍경을 기억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팔영산을 조망하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에는 간벌된 나무들이 더욱 심하게 널부러져 있어 정상적인 등로를 찾아 진행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마음은 급한데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발걸음은 속도가 나지 않으니 서울로 복귀하는 시간이 걱정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잠시 더 어렵게 간벌된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제법 깊은 안부가 나타나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지도를 살펴 봐도 아무 이름도 없는 무명안부이다.

 

그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잡목구간이 나타나고 힘들게 오르니 우측으로 186봉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잠시 그 186봉을 다녀 오기로 한다.

계속 이어지는 잡목과 소나무 등로를 따라 오르니 벤취 쉼터 하나가 보이고 곧이어 운동기구들이 보인다.

그 정상 우측에 인학봉이란 종이코팅지가 보여 사진에 한장 남기고 배낭 내려 간식을 먹으며 허기를 달랜 후 주위 조망을 살펴 본다.

사정리는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에 있는 마을로서 사정리는 점암면의 가장 북쪽에 있으며 여산송씨의 성이 많고 마을 동쪽에는 산세가 연꽃과 비슷하다 하여 명명된 영화산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사리, 서정, 월송, 내동, 진교가 있는데 사리마을은 옛날 설촌 당시부터 사리골(사리)로 불려 오다가 사리(사리)가 되었으며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월송마을은 지형이 달과 같이 아름답고 소나무가 무성하여 달 월자와 소나무 송자를 따서 월송이라 이름 붙였고 내동마을은 마을의 지형이 기러기 모양으로 기러기 안자를 따서 마을이름을 안골이라 부르다가 일제시대에 안(내)자로 바꾸어 내동(내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정상 지나 남서쪽을 살펴보니 사정리와 대룡리 방향의 마을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다음 구간에 진행해야 할 고흥지맥 마루금이 휘돌아 지나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점암면은 전라남도 고흥군의 중앙부 동쪽에 위치한 면으로 북서쪽은 일부가 득량만과 연결되어 있고 동쪽에는 순천만이 있다.
면 전체에 관개를 위한 소규모 저수지가 많이 분포하는데 북서쪽의 점암저수지의 규모가 크다.
호구총수의 동리를 살펴볼 때 조선 시대에도 점암면에 해당하는 지역이었고 여지도서에 의하면 민호 790호이며 지명은 바위가 산재하는 지리적 환경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현재 면 소재지인 천학리를 비롯하여 11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으며 이들 중에서 여호리는 여도에서 유래하였다.
호구총수와 구한국행정구역일람에는 여도리, 조선지지자료에는 여도포가 기록되어 있는데 여호리는 1914년에 생겨났고 이곳에는 수군만호가 거주하였던 여도진이 있었다.
1872년지방지도에 의하면 그 여도진성은 성곽을 둘렀는데 남쪽과 서쪽에 문루가 있고 여도진성은 1491년(성종 22)에 축성되었으며 진성의 둘레는 1100자이다.
성안에는 네 개의 공공시설이 그려져 있는데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청구도에는 병사 1200명 곡물 2100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186봉에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간식으로 허기를 면한 후 다시 올랐던 등로를 타고 갈림 삼거리로 내려 와 이제는 진행 방향의 좌측 올라 온 마루금을 버리고 우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는데 이곳 등로는 멋진 소나무가 열려있어 조금은 수월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철없는 진달래 꽃이 활짝 피어 다가오는 한겨울 눈에 어떻게 지낼지 그리고 내년 봄이 오면 또 어떤 모습으로 이 진달래꽃 나무가 살아 있을지 걱정이 되는 시간이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진행이 어렵고 그렇게 조심하며 걸어 전진하니 산약초와 고사리 재배지역이기 때문에 출입을 금지한다는 커다란 플랭카드가 걸여 있다.

에구 간벌해 놓은 것은 고맙지만 나뭇가지들을 잘 정리해 놨으면 더 좋았을 것을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그 플랭카드를 지나 다시 간벌된 나뭇가지를 조심하며 걸어가니 90봉에 도착을 해 잠시 큰 숨한번 내쉬고 조금은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가니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한다.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간벌된 나무들이 사라지고 그곳에는 파란 동백나무들이 간간히 보여 색다른 등로를 만들고 있다.

안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고 잠시 그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가며 진행을 한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이동통신 시설이 있는 전봇대2개를 만나고 곧이어 33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당치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당치는 고흥군 점암면 사정리에서 화계리를 지나는 고개로 33번 2차선 지방도가 지나가며 이동통신탑이 있는데 이곳 당치마을은 전남 고흥군 점암면 화계리에 있는 마을로서 본래는 점암면 사동리에 속한 마을로써 마을 뒷산의 지형이 돼지형이며 마을의 터는 돼지 구유형으로 되어 있고 산허리 지점에 당이 있어 마을명을 당치라 불리어 왔는데 1914년 일제초기에 행정구역개편시 점암면 화계리 당치로 이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치의 2차선 지방도로를 건너 높은 콘크리트 옹벽을 넘어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다시 파란 키 작은 동백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걸어 본다.

그렇게 뚜렷한 등로를 타고 한동안 오르니 등로에 바위들이 산재된 장소가 나타나고 그 바위를 넘어 무명봉으로 오른다.

 

다시 키 작은 동백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10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곧이어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바위가 보이는 111.6봉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그 111.6봉 정상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이제 등로 우측으로 넓은 사정제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진행 방향으로는 저 멀리 희미하게 팔영산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며 내려가니 무명묘지를 지나 장학관창원박씨 묘지들을 만나 그곳에서 멋지게 펼쳐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니 등로 앞 우측으로 사정제 지나 앞으로 걸어야 할 고흥지맥 마루금과 그 좌측으로 팔영산도 살펴 본다.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이제 한동안 걸어 진행해야 할 고흥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넘실거리고 그 뒤 저 멀리 고흥의 진산인 팔영산이 강렬한 태양의 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지금부터 오늘 산행 날머리인 당재 가까이까지 저 팔영산과 가깝게 걸어 진행을 하고 147봉에서 저 팔영산과 멀어져 당재로 내려가게 될 것이다.

저 팔영산에 대한 자료는 조금 더 걸어 가까이 도착을 했을 때 다시 한번 살펴 보기로 한다.

 

이제 등로는 짧지만 너무나 잘 정비된 마루금을 타고 걸어 본다.

잠시 속도를 내 걸어가니 뚜렷한 등로는 우측으로 휘어져 나가고 그 임도를 버리고 직진인 좌측의 잡목속으로 들어가며 이어가는데 들어가자 마자 등로에는 키 작은 산죽이 나풀거리며 반겨주고 있다.

다시 나타나는 잡목을 어렵게 헤치며 전진하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는데 이곳이 당치1재로서 고흥군 점암면 화계리와 모룡리를 잇는 고개로 예전에는 민초들의 중요한 교통로로 이요되었겠지만 이제는 주위에 도로가 발달되어 있어 이 산객처럼 산행을 즐기는 사람 이외에는 들리는 사람 하나 없는 사라져 가는 고갯마루 처럼 보인다.

 

그 당치1재 안부를 지나 오르니 다시 잡목들이 간벌된 지역이 나타나는데 이곳 역시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등로 위에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조금 더 걸어 오르니 83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잡목 사이로 앞으로 올라야 할 159.1봉이 제법 높은 고도를 자랑하며 드높게 올려다 보인다.

더욱 지독한 잡목지대를 지나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드넓은 개간지가 나타나고 어렵게 다시 간벌된 나뭇가지를 헤치며 어렵게 전진하니 많은 묘지들을 지나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모동고개(모동치)에 도착을 하는데 모동고개는 고흥군 점암리 모룡리 모동마을에 있는 고개로 지형이 관복의 띠와 같다고 해서 띠골이라고 했으나, 외정때 띠자를 풀의 띠로 잘못 해석 띠모라고 하여 띠골 즉 모동이라고 하였다
지도상에는 사정재라고 나오는데 아무래도 사정 저수지가 있어 부르는 모양이다.

이곳 모동고개 우측으로는 묘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녹색 철조망이 쳐져 있고 그 옆으로 녹슬어 가는 콘테이너 박스가 서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쓰레기 처리장이 있어 냄새는 별로 썩 좋지 않아 빠르게 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른다.

 

그 포장도로를 건너 콘크리트 옹벽을 넘어 오르니 이곳 역시 잡목이 우거져 있지만 그 잡목 사이로 잘 식재된 듯한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지금까지의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던 등로보다는조금 수월하게 진행을 한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삼각점이 박혀있는 159.8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도 정체를 모를 모동봉이란 종이 코팅지가 걸려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는 여전히 잡목이 우거져 있지만 소나무가 아름답게 자라고 있는 마루금이기에 진행하기에는 그리 힘들지 않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산그리메가 펼쳐져 있어 발걸음 멈추고 지도를 꺼내 그 이름들을 찾아 본다.

바로 눈 앞에는 다음 구간 곧바로 올라 진행을 해야 할 ㅇ룬암산이 드높게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고흥지맥 마루금이 올망졸망 이어지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리고 그 뒤 저 멀리 아마도 마지막 구간에 올라야 할 남아있는 마루금에서 가장 높은 천등산과 그 옆으로 조계산 및 비봉산이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 온다.

이 사진만으로는 어느 첩첩산중 오지의 강원도라 해도 믿을만큼 그 산그리메가 아름다운 조망이다.

 

그렇게 멋진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니 잡목이 발목을 잡지만 진행에는 큰 지장이 없어 산행 속도를 조금 높여 본다.

그렇게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금새 눈 앞으로 잡목과 소나무가 사라지며 진행 방향의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바로 앞으로 올라야 할 196봉 넘어 조금 더 가깝게 팔영산이 다가와 있다.

저 멀리 보이는 팔영산 가까이 진행하였다 우측으로 돌아가야 오늘 산행을 마무리해야 하기에 아직도 걸어야 할 등로가 제법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다.

 

진행하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온 마루금이 아름답고 그렇게 주위 풍경을 즐기며 이제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145.5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도 평촌봉이란 종이 코팅지가 걸려 있다.

등로 우측으로 멋진 산그리메를 살펴보고 다시 한번 올라야 할 196봉을 바라본 후 진행하다 등로 우측을 내려보니 사정리 마을의 아름다운 민가들이 바로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이제 그 145.5봉을 지나 잠시 더 잡목지대를 따라 내려가니 바로 눈 앞에 드넓은 억새 안부가 나타나는데 그곳 안부로 내려가는 등로가 참으로 어렵기만 하다.

예전에 벌목되었던 지역이라 생각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잡목과 잡풀이 웃자라 이제는 걸어가기 조차 어려운 지대가 되어 버렸다.

우측 아래로 어렵게 내려가 안부가 보이는 곳에서 좌측으로 올라 안부로 오르니 그곳도 여전히 빛바랜 억새가 안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억새가 우거진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다시 잡목이 발목을 잡고 늘어져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점암면 성기리의 한산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여 잠시 그 풍경을 조망하고 오른다.

그렇게 오르다 보니 등로 좌측의 성기리 마을이 그림처럼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성기리는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에 있는 마을로서 강산리와 양사리와 함께 팔영산 아랫마을로 북쪽에 있고 유명한 능가사가 있고 조선시대 점암면의 사창이 있었으며 석도가 발굴되었다.
밤나무가 많은 것이 특징으로 자연마을로는 성주, 두지, 평촌, 한산, 한동이 있는데 성주마을은 옛날 마을 뒤에 성주골 샘이라는 우물이 있었고 마을이 팔영산 모이봉과 상접하므로 한 때 성주동이라 불렀으나 성주는 성상을 뜻하는데 촌명에 붙이는 것은 성상을 모독하는 것이라 하여 성주로 개칭한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두지마을은 조선시대에 점암면의 사창이 있던 곳인데 쌀을 말로 되어서 출하하였다 하여 마을명을 두지라 하였다.
한산마을은 마을 뒷산의 이름인 한산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그렇게 등로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성기리를 살펴보며 오르니 184봉에 도착을 하고 조금 더 오르니 사라졌던 잡목이 다시 나타나더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며 이어지고 있다.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앞에 거대한 바위들이 나타나는데 마당바위 형태를 하고 있어 그 위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이제 팔영산이 바로 지척으로 다가 와 있다.

팔영산(608봉)은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에 있는 산이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1998년 7월 30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팔영산은 고흥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중앙의 성주봉을 비롯해 유영봉, 팔응봉, 월출봉, 천주봉 등 8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세가 험하고 기암 괴석이 많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대마도까지 볼 수 있고 눈앞에 펼쳐지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절경이 일품이다.
팔영산의 본디 이름은 팔전산이었는데 중국 위왕의 세숫물에 8개의 봉우리가 비쳐 그 산세를 중국에까지 떨쳤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부터 팔영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예전에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 4대 사찰로 꼽히던 능가사를 비롯하여 경관이 빼어난 신선대와 강산폭포 등 명소가 많으며 남동쪽 능선 계곡에 팔영산자연휴양림이 잘 조성되어 있다.
북서쪽 기슭에 있는 능가사는 1천 5백여 년 전 아도가 세워 처음엔 보현사라 했던 것을 정현이 인도의 명산을 능가한다하여 능가사라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능가사에는 13세기 말에 조각했다는 사천왕상과 범종(전남유형문화재 69) 그리고 능가사적비(전남유형문화재 70)가 있으며 능가사 주변에는 용의 눈이 아홉개 들어 있다는 구룡정이 있다.
팔영산 가까이에 용바위, 남열해수욕장, 유청신피난굴, 여호 바다 및 강산호 낚시터 등이 있다.

 

예전ㅁ 옆지기와 멋진 추억을 남겼던 팔영산에서의 추억을 생각하며 조금 더 진행하니 152 바위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등로 좌측으로 팔영산과 앞으로 진행해야 할 고흥지맥 마루금을 조망하고 그 바위봉을 내려가 잡목지대를 걸어 본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장된 듯한 두기의 묘지 구간을 지나 잡목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안부에 나즈막한 돌무덤이 보이는 성황당 안부를 통과한다.

 

그 성황당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잡목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145.5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 145.5봉에 도착을 하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면서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등로에 널부러져 있는데 진행에는 지금까지 보다는 수월하다.

다시 평이하게 진행을 하니 선답자들의 띠지가 달려있는 118봉에 도착을 해 잠시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을 해 본다.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 저 멀리 이제부터 올라야 할 186봉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데 체력적인 어려움이 있는 이 산객에게는 무척이나 높아 보이는 봉우리이다.

한동안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조금은 수월하게 걸어 내려가니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고 조금 더 오르니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한다.

 

다시 나즈막한 봉우리로 올랐다 내려가니 많은 가지를 가지고 있는 활엽수 한그루를 지나 평이한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다.

이제 빛바랜 억새와 소나무 등로를 따라 평이하게 걸어가니 파란 잎이 무성한 키 작은 동백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다시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14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좌측으로 크게 틀어 진행을 해 본다.

약간의 잡목이 있지만 생각보다 좋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등로는 완만하게 오르고 이제부터 지독한 잡목이 태클을 걸지만 잠시 헤치고 오르니 186봉에 무사히 도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성주봉이란 종이 코팅지가 걸려있는 186봉에서 잠시 쉰 후 다시 출발하니 등로 좌측으로 능가사 지나 팔영산이 뚜렷한 풍경으로 멀어지고 있다.

이제 등로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편백나무를 지나 내려가니 잡목이 우거진 가파른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내려가는 등로가 사라져 이리저리 마루금을 찾아 내려가니 등로는 우측 교통호 같은 골짜기를 통해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그곳에도 역시 잡목이 자라며 진행에 어려움이 있으나 진행에는 큰 지장이 없어 조심하며 내려가니 드디어 14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성주고개에 도착을 한다.

성주고개는 고흥군 점암면 성기리 성주마을에 있는 고개로 옛날 마을뒤에 성주골 샘이라는 우물이 있고 마을이 팔영산 모이봉과 상접하므로 한 때 성주동이라 하였으나 성주는 성상을 뜻하는데 촌명에 붙이는 것은 성상을 모독한다 하여 성주로 개칭한 후 변개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고개 정상에는 성주마을 표시석이 있고 14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가며 우측 성주마을 표지석이 있는 곳 우측으로 나 있는 포장도로를 타고 들어가다 우측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도로 우측으로는 팔영유기질비료공장이 있어 기분 나쁜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도로 좌측 저 멀리에는 오늘 하루 종일 조망하며 걸었던 팔영산이 이제 안녕하며 인사를 건네고 있다.

그 14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성주고개를 건너 성주마을 표지석이 있는 방향으로 나 있는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큰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곳으로 등로가 열려있어 그곳으로 오르니 등로는 무척 잘 나 있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렇게 한동안 편안하게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점암성대 기지국이란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의 멋진 소나무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날머리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며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잡목이 우거지기 시작하고 등로에는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그래도 다시 온 몸에 생채기를 내면서도 한발 두발 걸어 오르니 드디어 158미터의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당재봉이란 종이 코팅지가 걸려 있다.

 

당재봉이란 종이 코팅지가 걸려있는 158 삼각점봉을 지나 다시 출발하니 등로 좌측 잡목 사이로 거대한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곧이어 파란 잎을 많이 달고 있는 동백나무가 서 있는 무명 안부를 통과한다.

그 안부를 지나니 다시 잡목이 우거지기 시작하고 그에 비례해 멋진 소나무들도 보이기 시작하는데 진행 속도는 전혀 나질 않는다.

이제 잡목에 더해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등로를 뒤덮고 널부러져 있어 너무나 힘들게 걸어가고 그렇게 조심하며 진행을 하니 138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이제 날머리쪽에 있는 일복레미콘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음이 굉장히 크게 들리기 시작하고 그 공장 뒷쪽으로 잘려져 나간 채석장이 저 멀리 조망되기 시작한다.

 

이제 오늘 올라야 할 마지막 높은 봉우리까지 올랐기에 조금은 마음 편안하게 걸어 우측으로 진행을 하니 진행 방향으로 다음 구간 올라야 할 고흥지맥의 높은 산줄기들이 일복레미콘과 채석장 뒤를 돌아가며 아름답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곳으로 오르는 등로 역시 만만치 않아 보이고 그 아래 일복레미콘 공장에서 들리는 기계음이 장난이 아니기에 걱정도 되는 시간이다.

다시 나타나는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따라 참으로 어렵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어렵게 걸어 진행을 하니 잡목이 사라지고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면서 수월한 산행을 해 본다.

다시 나타나는 잡목과 청다래 가시넝쿨을 헤치며 어렵게 진행을 하니 실질적인 마지막 151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우측으로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 앞으로 일복레미콘과 그 뒤로 보이는 거대한 채석장의 모습이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거대한 레미콘과 채석장의 풍경으로 인해 가슴이 아파오지만 어쩔 수 없음을 알기에 모두 사용 후 잘 복원시켜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곳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다시 등로는 잡목과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며 너무나 힘든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작은 돌들이 구르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널부러진 나뭇가지를 피해 내려가니 드디어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그곳에는 소나무와 편백나무 등로가 펼쳐져 있다.

그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드디어 오늘 새벽 어둠속에 애마를 주차시켰던 855번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주위 사진을 담고 특히 도로 좌측의 일복레미콘 방향을 살펴본다.

다음 구간 올라야 할 산행 들머리를 확인하고 그곳 애마가 있는 당재에서 배낭 정리하고 곧바로 출발을 할 준비를 한다.

당재는 고흥군 점암면 모룡리에서 천학리로 연결되는  855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으로 고개 좌측 천학리 방향에는 엄청나게 큰 채석장이 있고 우측에는 주유소가 있다.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에 있는 마을로서 지시곡들, 앞들, 성기들 등이 넓게 펼쳐진 농촌지역으로 자연마을로는 상촌, 용산, 회계, 모동이 있다.

용산마을은 마을 뒤에 용산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회계마을은 마을 입구에 바위로 만든 다리가 있어 바구다리라고 부르던 것을 시냇가의 맑은 물이 마을을 곱게 둘러싸고 흐른다는 뜻의 회계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천학리는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에 위치한 마을로서 팔영산 밑에 자리잡은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구천, 가학이 있는데 구천마을은 마을 서쪽에 거북이 형의 샘이 많아 항상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구천 또는 귀천이라 하였으며 일제시대 귀천을 한자로 표기하기 어려워 간편하게 구천으로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가학마을은 옛날 풍수가 이 마을을 지나면서 뒷산의 지형이 학과 같다 하였으며 마을 양쪽 산이 학이 멍애를 메고 나르는 형태라 하여 그때부터 마을 이름을 가학이라 칭하였다.

구천마을에는 일제시대에 한 해가 들면 면민들이 기우제를 지냈다는 매봉이 있다.

 

오늘 저멱부터 전국적으로 비나 눈이 온다는 예보로 인해 조금 이른 시간인 오후 3시에 마무리를 하자마자 애마를 몰아 샤워도 하지 못한 채 서울로 복귀하니 천안 근방에서부터 진눈개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무척 막히는 도로를 타고 올라오다 잠이 쏫아지기 시작하고 잠시 휴게소에 들려 30여분 단잠을 자고 일어나니 다시 몸의 콘디션이 돌아와 막히는 도로를 타고 늦은 저녁 8시에 어렵게 집으로 복귀를 한다.

 

잠시 집에 들어 온 아들과 가족 모두 모여 준비된 고기로 이슬이 한잔 나누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2015년도 마무리가 가까워지고 그렇게 이틀간에 걸쳐 고흥지맥 두구간을 잘 마무리 해 본다.

이제 고흥으로 한번만 더 내려가 남아 있는 두구간을 마무리하면 될 것이기에 여유를 가지고 내려가 산행 후 고흥도 둘러보는 시간을 가벼 볼 수 있기를 바래 본다.

가족과 함께 내려가 즐기는 시간이 되면 더욱 좋겠다는 바램으로 길고도 멀었던 고흥지맥 산행 후기를 마감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