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강원도 원주시와 횡성군 및 영월군의 영월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7년 09월 17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하고 약간의 바람이 불었던 전형적인 가을날씨였지만 여전히 무더위가 남아 있어 많은 땀을 흘렸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15도에서 영상 27도
산행인원 : 총 4명(칠갑산과 강원도 산친구들, 동해바다, 강릉이쁜쑨, 나사)
산행코스 : 원주시 행구동 원주길카페촌-고둔치교-관음사 갈림삼거리 이정표(좌 관음사, 우 곧은재탐방로)-이정표(곧은재 2.2 Km)-곧은재 공원지킴터-
이정표(곧은재 1.6 Km, 곧은재탐방지원센터 0.6 Km)-이정표(곧은재 1.1 Km, 곧은재탐방지원센터 1.1 Km)-주막거리쉼터-
이정표(곧은재 0.6 Km, 곧은재탐방지원센터 1.6 Km)-돌탑들-이정표(곧은재 0.1 Km, 곧은재탐방지원센터 2.1 Km)-곧은재(곧은치, 영월지맥
마루금 접속) 이정표(상원사 5.7 Km, 비로봉 4.8 Km, 곧은재공원지킴터 2.2 Km, 부곡공원지킴터 4.1 Km)-헬기장-이정표(상원사 5.5 Km,
비로봉 5 Km)-이정표(상원사 5.1 Km, 비로봉 5.4 Km)-계단 공사지점-1022미터(보문사와 국향사 갈림삼거리 이정표-상원사 4.8 Km,
비로봉 5.7 Km, 보문사 1 Km)-향로봉(1043미터 정상석과 향로봉전망대데크) 이정표(비로봉 5.9 Km, 남대봉 3.9 Km와 상원사 4.6 Km 및
성남공원지킴터 10.1 Km)-1041 삼각점봉 돌탑-이정표(상원사 4.1 Km, 향로봉 0.5 Km와 비로봉 6.4 Km)-치악평전 헬기장(988미터)-
이정표(상원사 3.5 Km, 향로봉 1.1 Km)-1032 전망바위-철난간-이정표(상원사 3.0 Km, 향로봉 1.6 Km)-산죽지대-이정표(상원사 2.5 Km,
향로봉 2.1 Km)-이정표(남대봉1.3 Km, 향로봉 2.6 Km, 영원산성길과 영원사 1.9 Km)-계단과 전망-전망바위-계단과 종주능선 전망대-
이정표(남대봉 0.6 Km, 향로봉 3.3 Km)-남대봉 삼각점-남대봉(1181미터, 정상석과 헬기장 및 남대봉안전센터)-산죽등로-1111봉-대치안부-
942 무명봉-964.7 삼각점봉(303 복구, 77.7 건설부)-무명안부-성남리 갈림삼거리 안부-선바위 우회-철쭉 등로-선바위봉(999.1미터,
삼각점과 종이코팅 정상이정판)-길재안부-860 무명봉-바위 우회등로-잡목지대-응봉산(매봉산) 갈림삼거리-헬기장-응봉산(매봉산, 1095미터
정상석과 삼각점)-응봉산 갈림삼거리 복귀-794봉-무명묘지-무명안부-무명묘지-낙엽송등로-싸리치(육각정자와 싸리치 이정석)-석기동-
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1.73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 영월지맥 산행 약 15.53 Km (곧은치에서 싸리치까지)
- 접속구간 : 관음사와 곧은치 탐방안내소에서 곧은치까지 약 3.7 Km
응봉산 왕복 약 2.0 Km
싸리재에서 차량까지 약 0.5 Km
산행시간 : 전형적인 가을날씨에 아직은 무더위가 남아 많이 쉬면서 진행하여 08시간 47분 (06시 08분부터 14시 56분까지)
교통편 : 05:00 애마로 싸리치 직전 포장도로 공터까지 이동
05:10 강원도 산친구 애마로 싸리치에서 곧은치 탐방안내소까지 이동 후 아침식사
15:30 싸리치 지난 포장도로에서 애마를 이용해 국향사까지 이동해 강원도 산친구 애마 회수 후 원주시내에서 새워와 식사 후 귀경
영춘지맥의 유래 및 설명
영춘지맥이란 강원도 영월의 태화산에서 춘천의 봉화산에 이르는 272 Km의 산줄기를 말하는데 말이 지맥이지 남한의 9개 정맥 중 호남정맥(432 Km)과 낙동정맥(400 Km) 다음으로 긴 산줄기이다.
금북정맥이 266 Km이고 낙남정맥이 230 Km이며 나머지 정맥들은 170 Km 이하의 산줄기들이기 때문이다.
이 산줄기는 정확하게는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산줄기를 처음으로 답파한 신산경도 저자인
이 산줄기는 유역면적이 1000 Km2가 넘는 남한강과 북한강의 5대 지류 중 달천을 제외한 남한강의 평창강과 섬강 그리고 북한강의 소양강과 홍천강등 4개 강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즉 영월의 국지산에서부터 평창강의 서쪽 벽을 이루는 이 지맥은 치악산
이 지맥을 종주하면서 국지산에서 북릉을 타면 평창강의 끝에 이르고 치악산 남대봉에서 남릉을 타면 백운산을 거쳐 섬강의 끝에 이르며 대룡산에서 북서릉을 타면 봉의산을 거쳐 소양강의 끝에 이르고 봉화산 지나 춘성대교로 가다가 한치고개 지나서 남서릉을 타면 홍천강의 끝에 이르게 되어 한강기맥과 함께 이 산줄기를 종주하게 되면 한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백두대간의 오대산 두로봉에서 서쪽으로 북한강과 남한강의 수계를 이루며 두 강의 합수점인 두물머리 양수리로 뻗어간 산줄기를 한강기맥(한강정맥 또는 한중지맥)이라고 하는데 이 산줄기의 불발현과 구목령 부근에서 남북으로 뻗어가는 범상치 않은 산줄기를 볼 수 있다.
이 한강기맥줄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영월지맥이고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춘천지맥이다.
영월지맥은 한강기맥의 삼계봉분기점(1070봉)에서 남쪽으로 태기산-덕고산-봉화산-매화산-치악산-감악봉-왕박산-가창산-삼태산-국지산-태화산을 거쳐 남한강변의 각동리 중말로 맥을 다하는 134.5 Km의 산줄기를 말하며 춘천지맥은 한강기맥의 청량봉분기점(1052봉)에서 북쪽으로 응봉산-백암산-가마봉-매봉-가리산-대룡산-응봉-연엽산-꼬깔봉-봉화산-깃대봉을 거쳐 춘성대교가 있는 북한강으로 맥을 다하는 127.4 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따라서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을 편의상 하나의 영춘지맥으로 묶을 경우 한강기맥의 삼계봉 분기점에서 청량봉 분기점까지의 11 Km가 영춘지맥과 겹치거나 중복되게 되고 이는 전통적인 산줄기개념과도 맞지 않으며 이 겹침 산줄기의 처리가 문제가 된다(산경표상의 겹침 산줄기인 금남호남정맥과 한남금북정맥과는 다른 문제이다).
따라서 이 산객은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으로 구분하여 강원도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산줄기를 답사해보기로 한다.
이 지맥의 이름은
그러나 종주의 편의상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을 한꺼번에 잇는 산줄기라면 영춘지맥으로 불러도 무방하나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을 별개의 산줄기로 본다면 산줄기 이름에 문제가 있다.
이 산줄기를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으로 나누는 경우 한강기맥에서 뻗어가 맥을 다하는 끝 지점의 지명을 따른 것이 되는데 산 이름이나 강 이름이 아닌 지명으로 산줄기 이름을 짓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다.
대부분의 정맥과 기맥들의 이름은 산과 강을 염두에 두고 지어졌기에 영월지맥이 영월을 대표하는 산줄기도 아니고 춘천지맥을 춘천을 대표하는 산줄기로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산줄기가 맥을 다하는 끝 지점의 지명보다는 북한강과 남한강에서 맥을 다한다는 점에서 북한지맥과 남한지맥으로 부르는 것이 온당할 것 같고 그보다는 한강기맥에서 남북으로 뻗어간 산줄기의 대표적인 명산이 치악산과 가리산이므로(이 산들은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에도 들어 있다) 아예 영월지맥을 치악지맥으로 춘천지맥을 가리지맥으로 부르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도 든다.
따라서 이 산객은 앞으로 치악지맥과 가리지맥으로 이 산줄기를 구분하여 부르기로 한다.
여기서 기맥과 지맥이라는 이름도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편의상 대간이나 정맥에서 분기하는 산줄기로서 일정한 세력을 가진 산줄기를 기맥으로 대간과 정맥 또는 기맥이 아닌 것을 모두 지맥으로 분류한다면 영월지맥(치악지맥)이나 춘천지맥(가리지맥)으로 불러도 무방하나 한강기맥을 한강정맥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고 이 경우에는 영월기맥(치악기맥)이나 춘천기맥(가리기맥)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학계나 국토지리정보원 등에서 이 산줄기 이름을 공식적으로 명명하지 않고 있는 이상 산줄기 이름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영춘지맥이란 ?
한강기맥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춘천의 경강역 앞 북한강까지 가장 긴 지맥이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영월의 태화산 앞 남한강까지 가장 긴 지맥이 이어진다.
그 두 지맥과 함께 지맥이 갈리는 한강기맥의 청량봉-장곡치-구목령-삼계봉 구간을 합하여 가칭 영춘지맥이라고 부른다(공식적인 이름은 아니고 처음 그 산줄기를 진행하신
도상거리 약 270여 Km으로 춘천쪽 북쪽지맥은 새덕봉, 봉화산, 고깔봉, 대룡산, 연엽산, 가리산, 매봉, 소뿔산, 가마봉, 백암산, 응봉산 등 주로 강원 오지지역을 지나가고 영월쪽 남쪽지맥은 태기산, 치악산, 감악산, 용두산 등 유명한 산들도 있지만 덕고산, 봉화산, 풍치산, 가창산, 삼태산, 국지산 등 주로 야산을 지나 태화산에 이르게 된다.
이 산줄기는 남한강과 북한강의 5대지류중 달천을 제외한 남한강의 평창강 섬강 그리고 북한강 소양강 홍천강등 4대강의 경계를 이룬다.
즉 영월의 국지산에서부터 평창강의 서쪽벽을 이루는 이 지맥은 치악산
이 산줄기를 종주하게 되면 한강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산행하기 좋은 가을날씨에 강원도 산친구들과 오랫만에 영월지맥에 들어 환상의 조망을 즐기며 우정을 쌓았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몇 년 전 땅끝기맥 산행을 주관하면서 동해와 강릉에서 참석하는 두 명의 열정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에도 꾸준히 그 산친구들과 연락을 하고 지내다 지난 봄 우연한 기회에 육백지맥 산행을 같이 진행하면서 고생도 많이하고 생각지도 못하게 그 산친구 집에서 신세도 지다 보니 조금 더 많은 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또 이렇게 영월지맥과 춘천지맥까지 함께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마도 제3구간 산행을 마치고 곧은치탐방지원센터에서 공단직원에게 경방기간 산행에 단속만되지 않았다면 이미 혼자 길게 구간 나누기를 하여 마무리가 되었을 이곳 영월지맥도 예기치 못한 상황 전개로 인해 강원도 산친구들 3명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여유롭게 걸으며 주위 조망과 풍경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아 기대가 큰 산행이기도 하다.
함께 진행한 육백지맥 산행 후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약 4개월이 흐른 후 다시 그 산친구들과 남아 있는 영월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시간이 새벽 2시이다.
어제 왕재지맥 첫 구간을 가볍게 잘 다녀온 후 귀가하여 잠을 청하였지만 잠도 오지 않아 뒹굴다가 새벽 일찍 집을 나서는 시간이라 몸이 걱정 되지만 생각보다 큰 이상없이 좋은 상태이기에 게획된 시간에 맞춰 산행 날머리인 싸리치 아래 신림터널 앞 공터에서 도착을 해 잠시 잠을 청하고 있으니 강원도에서 산친구 3명이 약속된 새벽 5시에 도착을 했다는 연락이 오고 함께 만나 싸리치로 오르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 공터에 애마를 주차 시키고 친구 차를 이용해 산행 들머리 근처인 관음사 앞 공터에서 준비한 아침식사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벌써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강원도 산친구들 3명은 지난 구간 산행을 국향사에서 마쳤기에 이 산객 홀로 곧은치탐방센터를 통해 곧은치로 오르고 나머지 3명은 자리 정리 후 국향사에서 산행을 시작해 보문사갈림삼거리나 치악산 향로봉 정상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잠시 헤어지는 시간이다.
치악산은 지금까지 몇번인가 들려 종주 산행을 즐겼고 마지막으로 들린 시점 역시 2014년 12월 말이니 이제 거의 3년이 다 되어가는데 오를 때마다 안개와 비 그리고 눈 때문에 제대로 된 조망 한번 만나지 못하다가 지난 4월 영월지맥이란 이름으로 맥 잇기 산행을 하면서부터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만나 치악산을 제대로 즐겨 보는 시간이다.
오늘도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간에 곧은치를 지나 관음사 갈림 삼거리에서 곧바로 향로봉에 오르니 전에 보지 못했던 향로봉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그곳에서 서쪽으로 원주시내와 그 뒤로 끊어질듯 이어지는 성지지맥 넘어 한강기맥의 용문산과 백운봉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가슴속 깊이 차곡 차곡 쌓이며 또 다른 추억을 만들고 있다.
그 용문산 좌측으로는 앵자지맥의 양자산과 앵자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들이 보이면서 옛날 홀로 걸으며 쌓았던 추억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2014년 겨울에도 보이지 않던 수많은 계단들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따라 정상부에 도착을 하여 계단 좌측을 돌아 보니 저 멀리 지난 4월에 제3구간으로 올랐던 치악산 주봉인 비로봉이 우측 끝자락으로 보이고 그 좌측으로 길게 이어진 아름다운 치악 주능선이 이곳 향로봉 넘어로까지 이어지는 풍경이 한눈에 보인다.
그 뒤로 한강기맥 마루금과 다음에 영월지맥이 마무리되면 다시 올라야 할 춘천지맥의 산군들도 보일듯 말듯 길게 펼쳐져 있다.
선명하지 못해 그 이름 하나 하나 모두를 불러 줄수는 없지만 저곳에 어떤 산줄기가 있는지는 알 수 있기에 그 그리움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눈을 남서쪽으로 돌리니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남대봉이 좌측 끝자락에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백운지맥이 이어지며 우측 끝자락에 솟아 있는 백운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말도 많고 논란도 뜨거운 영월지맥과 백운지맥이기에 하루 빨리 걸어 진행하면서 어떤 주장과 논리가 맞는지 직접 확인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마루금이기도 하다.
그 백운산 뒷쪽으로는 진행하다 중단된 천등지맥 산줄기의 십자봉도 보일듯 말듯 솟아 있어 이 산객의 마음을 조금은 급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남대봉과 백운산 자락 중간 저 멀리에는 몇 년 전 어렵게 완성한 가섭과 부용 그리고 오갑지맥의 산줄기들도 보일듯 말듯 높은 봉우리들의 얼굴들만 보이고 있다.
지난 3년 전 겨울에는 만나지 못했던 종주능선 전망대에 도착을 해 주위 조망과 풍경을 살펴 본 후 눈을 동쪽으 로 돌리니 바로 발 아래로 부곡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아래로 부곡리 마을이 황금빛 물결로 변해가는 모습도 내려다 보인다.
그 뒤로 백덕지맥 끝자락과 얼마전 첫 구간을 다녀 온 멋진 마루금이 펼쳐진 주왕지맥의 산군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 가장 높게 하늘을 향해 군계의 학처럼 솟아 있는 가리왕산이 환상이다.
그 뒷쪽으로는 조만간 다시 홀로 외롭게 걸어야 할 황병지맥의 고봉들도 고개를 내밀고 반가운 인사를 하고 있어 기쁨의 미소로 답을 해 주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백두대간의 두타청옥도 살펴보지만 제일 뒷라인이 맞을 듯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아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선바위봉 지나 나사님도 단둘이 조금은 빠르게 걸어 온 몸에 굵은 땀방울로 흠뻑 적시고 진행하니 치악매봉산 갈림삼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후미를 기다리는 동안 조금은 멀지만 치악매봉산을 잠시 다녀 오기로 하고 갈림삼거리에 배낭을 벗어 놓고 달리듯 올라간다.
선답자들의 후기와는 달리 커다란 정상석이 서 있고 그곳에는 매봉산 1095 미터라는 높이가 표기되어 있고 그 정상석 우측 옆으로는 삼각점도 박혀 있는데 정상에 서자 너무나 환상적인 풍경과 조망이 펼쳐져 있어 시간 가는줄 모르게 즐겨 본다.
제일 먼저 북동쪽을 살펴보니 저 멀리 반야봉을 닮아 있는 백덕산과 사자산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오고 그 좌우측으로 백덕지맥의 산군들도 줄지어 늘어 선 모습이 아름답다.
그 뒷편으로는 첫 구간 진행하다 중단된 주왕지맥의 고봉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조만간 산친구와 다시 만날 재회의 기쁨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북쪽으로는 지난 봄 영월지맥 제3구간 산행으로 다녀 온 우측의 매화산부터 좌측의 치악산 비로봉으로 이어져 온 마루금이 황홀하기까지 하다.
바로 앞으로는 방금 전 어렵게 걸어 넘어 온 선바위봉이 보이고 비로봉 좌측으로는 향로봉과 남대봉을 지나 이곳으로 이어져 온 영월지맥이 펼쳐져 있겠지만 정상 바로 밑 바위에서는 바로 앞에 펼쳐진 능선으로 영월지맥 치악산 구간을 전부 볼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생각보다 훨씬 환상적이고 일망무제로 펼쳐진 황홀한 조망과 풍경에 오르지 않았다면 후회할 뻔한 치악매봉산이 되었다.
아마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멋진 산그리메를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내려온 산으로 기억될 것이다.
남서쪽으로는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백운지맥과 그 좌측으로 이어지는 진행하다 중단된 천등지맥이 보이고 그 좌측 끝자락으로는 올 봄 어렵게 일 때문에 내려갔다 올라 본 구학산이 솟아 있다.
모두 올라 본 산들이기에 그 이름을 불러 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저 산줄기를 타고 넘으며 오늘을 추억하며 이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다만 너무나 많은 땀을 흘리다 보니 카메라 렌즈에 물기가 있는 것을 모르고 사진만 찍다 보니 사진 좌측 하단이 조금 불편하게 다가 와 그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원주 매봉산을 왕복한 후 싸리치에 도착하기 전 산친구들을 만나 함께 하산할 수 있어 조금은 미안함을 덜 수 있어 다행이었다.
새벽 5시에 약속된 신림터널 앞 싸리치 입구에서 강원도 산친구 3명을 만나 싸리치로 올라가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 공터에 애마를 잘 주차시킨 후 산친구의 차량으로 갈아 타고 산행 들머리인 행구동 원주카페촌 끝자락에 있는 공터에서 산친구들이 준비한 순대 국밥을 따뜻하게 데워 김치와 함께 든든하게 먹고 산행 준비 후 이 산객 먼저 출발을 하는 시간이 막 6시를 넘기고 있다.
이 산객은 이곳 곧은치탐방지원센터에서 올라 진행을 하고 강원도 산친구 3명은 국향사에서 마무리를 하였기에 이 산객을 먼저 보내고 국향사로 가 진행한 후 국향사 갈림 삼거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출발하는 시간이다.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좌측으로 치악산 관음사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치악산 곧은치 공원지킴이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금새 카페 펜션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고든치교가 보인다.
그 고든치교를 건너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또 다시 관음사 갈림삼거리에 이정표가 서 있는데 그곳에서 좌측 관음사 가는 도로를 버리고 우측 곧은재탐방로 가는 도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한다.
칡넝쿨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좁은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우측으로 멋진 펜션 건물 하나를 지나 곧은재 2.2 KM라는 이정표를 바라보며 돌담 옆 좁은 비포장 등로를 따라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해 본다.
잠시 후 곧은재탐방로 문을 통과하고 곧이어 곧은재탐방지원센터에 도착을 하는데 5개월 전 봄철 경방기간에 내려오다 공원 직원에게 붙잡혀 한동안 시간을 보내며 일장 연설을 들어 더 이상 계속 진행하지 못하고 경방기간 이후로 연기했다 강원도 산친구와 의기 투합되어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산행이 되었기에 피식 웃음이 나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5개월 전 추억을 뒤로하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다 보니 산행 전 느꼈던 추위는 모두 사라지고 온 몸에선 굵은 땀방울이 흐르며 오늘 산행도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임을 알려주는 듯 하다.
곧은재공원지킴센터를 지나 잠시 돌계단을 타고 오르니 다리가 보이고 다리를 건너 계속 이어진 돌계단을 따르니 곧은재까지 1.6 kM 남아있다는 이정표가 반긴다.
낙석주의 경고판이 있고 어지럽게 안전 로프 가 설치된 곳을 지나 다시 나타나는 계단을 통과하니 다시 곧은재까지 1.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다시 만난다.
그곳을 지나 다시 다리를 건너니 등로 좌측으로 주막거리 쉼터가 보인다.
안내판을 읽어 보니 과거 주막거리가 있었던 이곳에 쉼터를 설치하였으니 깨끗하게 잘 관리하기를 바란다는 안내글이었다.
주막거리 쉼터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자갈 너덜길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곧은재까지 0.6 Km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고 그곳부터 조금 더 가파르게 이어지는 돌 계단을 따라 숨가쁘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몇개의 돌탑들이 보이는데 아마도 오고가는 등산객들이 안전과 건강을 빌며 하나 둘 쌓다 보니 이렇듯 제대로 된 모습의 돌탑들이 생긴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5개월 전 하산하며 걸었던 길이기에 기억은 뚜렷하게 남아 있지만 그 때 보다는 조금 더 수원하게 오른다는 느낌이다.
돌탑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돌계단 등로를 타고 오르니 온 몸에선 굵은 땀방울이 흘러 등산복이 흥건이 젖어 온다.
잠시 후 통나무 계단을 오르고 사면 등로를 따르니 V자 계곡을 넘어 곧은재까지 1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다시 만나는 V 계곡으로 오르니 나무계단을 설치하기 위한 재료들이 쌓여 있고 잠시 후 영월지맥 마루금인 곧은재 즉 곧은치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잠시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아 본다.
곧은재(곧은치, 860미터)는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과 횡성군 강림면 부곡리를 잇는 고개로 부곡리쪽은 완만한 등로이지만 행구쪽은 상당히 급경사이다.
지명의 유래는 옛날 강림면 부곡리 사람들이 치악산을 넘어 원주로 장보러 다닐 때 무거운 짐을 지고 험한길을 돌아가지 않고 편한길을 다녔는데 그 중 가장 편한길이 이곳이라 사람이 다니기 쉬운길이라 하여 그렇게 지명을 붙인 모양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강림면 부곡리에 태종대가 있는데 흔히 태종대하면 부산 태종대를 떠올리지만 이곳 부곡리에서 역사의 얼이 깃든 태종대가 있다.
태종대는 조선 태종과 운곡 원천석과 관계되는 유적으로 문화재자료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원천석은 고려 때 좌명공신 금자광록대부 문하시중평장사를 역임한 원경의 19대 손이며 충숙왕 17년에 종부사령을 지낸 윤적의 둘째 아들로 원주 원씨의 중시조이다.
고려의 멸망과 조선조 태조의 왕가 형제간의 살육을 통탄하며 분노를 느낀 나머지 관직을 거부하고 개성을 떠나 이곳 강림리에 은거하였고 려왕정 복고를 위하여 반기를 든 두문동 72인의 한 사람이며 이양소, 남을진, 서견과 더불어 고려 사처사중 한사람으로 유명하다.
원주시 행구동 석경촌에 그의 묘소가 있고 칠봉서원에 배향되었다.
이방원이 조선조 3대 태종으로 등극하여 왕위에 오르기 전에 스승으로 섬겼던 운곡 원천석을 찾아 다시 관직에 앉히고 정사를 의논하고자 이곳을 찾았으나, 원천석은 태종이 이곳에 오는 것을 미리 알고 태종과의 만남을 꺼려 피신하여 치악산으로 들어가면서 개울에서 빨래하는 노파에게 자신의 행선지를 거짓으로 알리고 골짜기로 들어갔고 태종이 이곳에 도착하여 빨래하는 노파에게 운곡이 간 곳을 물었으나 노파는 원천석이 일러 준대로 거짓으로 가르쳐 주었다.
태종은 그곳으로 가서 스승을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이 바위에서 기다리다 스승이 자신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태종이 운곡을 기다리며 머물렀다 하여 뒤에 이곳을 태종대라 하였으며 주필대라는 비석을 세워 누각안에 보호하고 있다.
잠시 가쁜 숨을 진정시키고 시원한 물한모금으로 목마름을 달래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영월지맥 산행을 시작해 보는 시간이다.
곧은재 즉 곧은치에서 흐르는 굵은 땀방울을 닦아내고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신 후 우측으로 나 있는 고속도로 같은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계단 공사를 위해 실어다 놓은 사각 목재덤이들이 등로 옆에 쌓여 있어 조금은 아쉽기만 하다.
자꾸만 인공 구조물들을 설치하기 전에 탐방객의 안전과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을 먼저 강구해 주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앞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련지 ...
작은 공터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멋진 잣나무 군락지를 바라보며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헬기장에도 또 다른 나무목재가 한가득 쌓여 있다.
약간의 오르막으로 이뤄진 등로를 따르니 이제는 멧돼지들이 파헤친 식흔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고 잠시 후 상원사까지 5.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붉은 깃발 2기와 함께 나무 목재가 쌓여 있는 좁은 공터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본다.
다시 조금 더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바위 하나를 지나 상원사까지 5.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고 활엽수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걸어 오르다 보니 이곳은 나무계단을 만들기 위해 파헤쳐진 등로가 주말과 휴일을 맞아 그대로 방치된 구간이다.
그곳을 지나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나무계단이 보이는 보문사와 국향사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나사님은 벌써 올라 와 춥다며 뒤따르는 산친구들을 부르고 있다.
지맥 산행을 하면서 곧은재만큼이나 구간 나누기를 하면서 자주 이용하는 국향사이고 오늘 함께하는 강원도 산친구들도 이곳 국향사를 산행 들머리로 이용하였기에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보인다.
국향사는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치악산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
신라 경순왕 때 무착이 창건하여 고문암이라 하였는데 일설에는 고문암이 아니라 관음보살을 보신 보문암이었다고도 한다.
조선 초 태조는 이 절에 동악신을 봉안하고 동악단을 쌓았으며 매년 원주, 횡성, 영월, 평창, 정선 고을의 원들이 모여 제향을 올린 관계로 국향사라 하게 되었다.
일설에는 조선시대 정종의 둘째 딸인 희희공주가 늘 몸이 약해 병석에 누워 있었는데 어떤 약을 써도 치료되지 않자 이 절에 보내어 백일기도를 드리는 중 하루는 공주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병을 고쳐 주리라고 한 뒤 완쾌되었으므로 정종이 기뻐하여 절을 크게 확장하고 절이름도 고문암을 국향사로 고쳤다고도 한다.
1680년(숙종 6) 이후에 폐사가 되었던 것을 1907년에는 벽하와 응송이 중창하였으며 1945년에는 자항이 1974년에는 주지 전용호가 각각 중수 하였고 1980년에는 보영이 토단만 남아 있던 동악단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건물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관음전과 대방, 동악단, 요사채와 주방이 있고 문화재로는 보암당대선사영탑이라고 쓰여진 높이 약 1.6 미터의 부도와 그 바로 옆에 파괴된 부도 1기가 있으며 또한 관음전 북서쪽 100미터 지점에 동악단이 있다.
종교를 떠나 이렇게 산행을 이어가다 보면 자주 접할 수 없는 그 지역의 문화와 생활 등을 확인할 수 있기에 오늘도 국향사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본다.
이곳 보문사와 국향사 갈림삼거리에도 많은 목재 덤이가 쌓여 있어 조만간 계단 설치 공사가 이뤄질 것 같다는 느낌으로 후미를 기다리니 잠시 후 모두 도착을 하고 간단하게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향로봉을 향해 이제부터는 다 함께 출발해 본다.
식흔들이 보이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금새 사각나무 계단들이 나타나고 그곳을 오르니 치악산 향로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전에 보지 못했던 정상석과 원주 시내 방향으로 넓은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배낭 내려 조망도 즐기고 사진도 담은 후 출발하기로 한다.
치악산 향로봉(1043봉)은 원주시 판부면과 행구동 그리고 우측에는 횡성군 강림면에 걸쳐 있는 봉우리로 정상의 넓은 공터에는 이정표와 정상석 및 탐방로 안내판 그리고 향로봉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치악산의 한 봉우리를 이루며 치악산의 주봉인 비로봉(1288봉)에서 남쪽으로 약 6 Km 지점에 솟아 있으며 남쪽 능선에 있는 치악평전은 평탄한 분지형 골짜기로서 억새가 많으며 통일신라 경순왕 때 무착선사가 창건한 보문사가 있는데 이 절은 1872년지방지도에도 표기되어 있다.
새로 생긴 향로봉 전망대란 전망데크에서 오랫만에 내려다 보는 시원한 원주 시내를 살펴보며 그 뒤로 펼쳐진 산군들을 확인하다 보니 정중앙 끝자락 저 멀리에 한강기맥의 용문산과 그 좌측으로 솟아 오른 한국의 마테호른이라 불려지는 백운봉이 봉긋 인사를 건넨다.
그 좌측 앞으로 나즈막하게 흐르는 성지지맥 산줄기 뒤로 으로 흐르며 앵자지맥 상 앵자봉과 산수유로 유명한 천덕봉 및 원적산 줄기가 보이고 용문산 우측으로는 갈기산과 금물산 그리고 성지봉이 길게 이어지며 그 옛날 남겼던 고운 추억을 들추고 있다.
몇 번인가 올랐던 향로봉이지만 늘 비와 안개 그리고 눈으로 인해 제대로 된 조망과 풍경을 즐긴 기억이 없었는데 오늘 그 동안의 아쉬움을 한번에 날려주는 듯 일망무제의 환상적인 조망을 만들어 주고 있다.
그렇게 그곳 치악산 향로봉에서 한동안 쉬며 풍경을 즐기고 다시 출발하니 잡목 사이로 진행 방향의 남대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얼굴을 내밀고 사진 한장 남기고 계속 걸어 진행을 한다.
잠시 후 해발고도 1041미터에 박혀있는 삼각점을 확인하려는데 그 삼각점은 작은 자갈들로 거의 파묻혀 있어 확인이 불가능하다.
돌탑봉(1041봉)이 있는 이곳 좌측편으로는 강림면 부곡리 부석골로 내려가는 뚜렷한 등로가 보이지만 마루금은 우틀하여 진행하며 바로 아랫쪽으로 치악평전을 만날 수 있는 중간지점이다.
아쉬운 마음에 전체적인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맥 잇기 산행에 전념을 한다.
해발고도 1041미터의 삼각점봉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팔뚝만큼 자란 활엽수 아래 사초들이 자라면서 아름다운 마루금을 열어주고 있다.
다시 나타나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상원사까지 4.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고 잠시 후 넓은 공터의 치악평전에 도착을 하는데 공터인지 헬기장은 이미 잡풀들이 자라면서 그 기능을 상실한 듯 보인다.
예쁘게 피어있는 구절초를 사진에 담고 치악평전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치악평전(해발988미터)은 치악산 향로봉 조금 지난 지점인 공터에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곳을 치악평전 또는 금두고원이라 부르지만 지리평전이나 덕유평전에 비하면 너무 작아 초라해 보일 정도이다.
조금 넓은 평탄한 분지형 골짜기로서 원래는 억새가 자라고 있었으며 햇빛을 받으면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장관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헬기장에 억새와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제대로 된 치악평전의 느낌을 느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헬기장의 기능도 상당 부분 마비된 상태로 보인다.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고 치악평전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기 직전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치악산 향로봉이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네고 있다.
잠시 올라 상원사까지 3.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고 바위를 우회하여 오르니 첫 전망바위가 나타나는데 오룩스맵상으로는 1032미터이지만 지도에는 표기가 없는 전망바위이다.
전망바위에 올라 잠시 원주시내와 성지지맥 그리고 저 멀리 앵자지맥과 한강기맥 산줄기도 살펴본다.
그리고 등로 우측인 서쪽으로는 백운지맥의 주산인 백운산을 중심으로 천등지맥 일부분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본 후 다시 전망바위를 내려 와 출발한다.
전망바위에서 잠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내려 와 남대봉 방향으로 진행하니 철난간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한동안 그 철난간을 의지해 오르니 이제 상원사까지 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와 만난다.
다시 나타나는 무명봉을 넘고 산죽 등로를 따르니 나즈막한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도 역시 상원사까지 2.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다시 산죽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올라 1060미터라 생각되는 봉우리를 통과하니 등로 우측으로 영원사와 영원산성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어 잠시 영원사와 영원산성을 백과사전에서 확인해 본다.
영원사는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치악산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며 676년(문무왕 16)에 의상이 영원산성의 수호사찰로 창건하여 영원사라 하였으며 1664년(현종 5)에 중건하면서 지금의 절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 뒤의 사적은 불확실하지만 1939년에 계호가 중건하였으며 1964년에 주지 김병준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우로는 대웅전과 삼성각 및 요사채가 있고 오래된 석물이나 특별한 문화재는 없으나 법당 안의 후불탱화만은 오래된 것이다.
절의 동쪽 산위에는 10리에 걸쳐 영원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는 부근의 해미산성과 함께 임진왜란 때 왜병을 맞아 항전하던 전적지이다.
영원산성은 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포곡식 석축 산성으로 치악산 남서쪽에 있으며 지금은 대부분 무너진 상태로 돌무더기처럼 쌓여 있다.
대체적으로 상태가 좋은 동쪽 부분의 성벽 높이는 2미터 가량이며 비교적 가지런히 쌓았으며 축성연대에 대해서는 문무왕 때 쌓았다고 하는 견해가 있지만 892년(진성여왕 6)에 궁예가 치악산 석남사를 근거로 인근 고을을 공략하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궁예가 축조하고 근거한 성곽이 이 산성일 가능성이 많다.
산성의 당시 규모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둘레가 3749척이고 성 안에 우물 1개소와 샘 5개소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291년(충렬왕 17) 원나라 합단군이 침입해 왔을 때 원주의 향공진사 원충갑이 10여 차례에 걸쳐 적을 무찔러 이 성곽을 지킨 역사가 있으며 또 1592년(선조 25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에는 원주목사 김제갑이 왜군과 대적하여 일부 적군을 무찔렀으나 힘의 부족으로 산성이 함락되어 그의 부인 이씨와 아들 김시백과 함께 순절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에는 원주와 이웃 고을 주민들이 이 성에 들어와서 지키는 곳으로 근처 금대산성이나 해미성과 서로 의지하여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영원사와 영원산성 갈림삼거리를 지나 진행을 하니 전에 보지 못했던 게단들이 무수히 나타나고 길게 설치된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이 산객이 지나온 1060봉과 향로봉 지나 우측으로 치악산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영월지맥 치악산 주능선이 한눈에 펼쳐져 있고 그 1060봉 좌측으로는 멀어지는 원주 시내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지 약속이나 하자며 붙잡고 늘어진다.
그 1060봉 뒷쪽으로 가물거리는 용문산과 백운봉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다시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남아 있는 계단을 따라 어렵게 올라 본다.
그렇게 조금 더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는데 오룩스맵상으로는 1137미터를 나타내는 암봉이다.
그곳 전망바위에 올라 다시 한번 일망무제로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들을 마음 놓고 살펴본 후 내려가는데 동해에 살고 있는 동해바다 친구가 뒤따라 올라 와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친구 뒷쪽으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백운지맥이 보이고 백운산 지나 우측 뒤로 낮아지는 맥운지맥과 백운산 좌측으로 높은 산줄기로 이어지는 천등지맥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어서 빨리 진행하다 중단한 천등에서 만나자고 조르고 있다.
전망바위에서 잠시 더 조망을 구경하고 다시 나타나는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따라 힘겹게 오르니 전에 보지 못했던 넓은 종주능선 전망대라는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그곳에서 배낭 내리고 잠시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시며 다시 일망무제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들을 감상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제일 먼저 서쪽으로 빤히 보이는 백운지맥 산줄기를 따라가면 정중앙부에 우뚝 솟아 있는 백운산을 중심으로 우측으로는 산세를 낮춰 그 맥을 다하는 백운지맥의 산줄기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천등지맥이 아스라히 멀리 보이고 그 앞으로 구학산 줄기가 얼마전 새롭게 맺은 인연을 추억하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남대봉이 우뚝하고 그 좌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영월지맥의 산줄기들이 연봉을 이루며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영월지맥 지난 저 멀리 하늘금에 맞닿아 있는 산줄기들을 살펴보니 혹시 백두대간의 양백지간인 소백산과 태백산 줄기가 아닐까 생각이 들지만 워낙 먼 거리이다 보니 정확하지는 않아 이름을 불러주지는 못하였다.
남쪽에서는 태풍이 불어 와 동해안까지 비가 내린다는데 이곳은 아직까지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흐렸다 맑았다를 반복하며 산행하기에는 참으로 좋은 날씨를 만들어 주고 있어 이 또한 복받은 산행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등로 좌측인 동쪽으로는 부곡리 부곡저수지와 마을이 황금빛으로 물들며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얼마 전 걸었던 두위지맥과 죽렴지맥의 산군들과 백두대간의 함백산과 대덕산 줄기가 큰 산을 이루듯 넓게 분포되어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그 중간 우측 아래에는 영월의 산들이 끝없는 산그리메를 만들며 서로가 존재감을 자랑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타청옥도 찾아 보지만 약간의 구름과 그 백두대간 마루금 앞을 가로막고 길게 이어져 있는 노목지맥과 대덕지맥 산줄기에 막혀 아쉽게도 확인은 할 수 없었다.
억새가 한들거리는 계절에 노목지맥을 마무리하고 내년 봄쯤 대덕지맥에 올라 이곳을 살펴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종주능선 전망대라는 전망데크에서 잠시 배낭 내려 쉬면서 많은 사진을 남기고 길게 이어진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이제 남대봉까지 0.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고 다시 나타나는 계단을 타고 올라 평이한 산죽 등로를 걸어 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남대봉 헬기장 직전 삼각점이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기고 몇 발자국 걸어가니 금새 남대봉 안전센터와 남대봉 정상석 그리고 넓은 헬기장이 있는 남대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벌써 허기가 지기 시작하여 이곳에서 다시 배낭 내려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출발하기로 한다.
치악산 남대봉(1181봉)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과 판부면 및 횡성군 강림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남대봉 통제센터와 정상 석이 설치되어 있고 바로 옆으로는 헬기장이 있으며 약간 떨어진 곳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남대봉은 치악산의 주봉인 비로봉(1288봉)에 이어 2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시명봉이 치악산 2봉으로 남대봉보다 5미터 더 높으며 남대봉 아래에는 유서 깊은 고찰 상원사가 자리를 잡고 있으며 이곳까지는 치악산국립공원 지역이라 이정표와 등로가 잘 되어 있지만 이제부터는 이정표 하나 만나기 어려운 허락되지 않은 산길이다 보니 주의가 필요한 구간도 몇 군데 보인다.
남대봉 또는 남태봉이라고도 부르는데 정상석에는 한글로 남대봉이라 표기 해 놓았으며 이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시명봉(1187봉)을 남대봉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1187봉은 시명봉이고 이곳을 남대봉이라 부르는데 또다른 이름은 만경대도 있다.
치악산의 남대봉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시명봉이 치악산의 2봉으로 남대봉이라 불려야 하는데 아직까지 바뀌어 지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원주시 신림면과 판부면 그리고 횡성군 강림면이 만나는 삼면 경계봉으로 이곳부터 판부면과 작별을 하고 샤롭게 신림면으로 접어 드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치악산 상원사는 또한 꿩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는 곳으로 그 이야기는 치악산의 유래가 된 은혜 갚은 꿩의 이야기 전설이다.
치악산 기슭에 수행이 깊은 승려가 있었는데 어느 날 산길에서 큰 구렁이가 새끼를 품고 있는 꿩을 감아 죽이려는 것을 보고 지팡이로 구렁이를 쳐서 꿩을 구하였다.
그 날 저녁 여인 혼자 사는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그 여인은 죽은 구렁이의 아내로서 원수를 갚기 위해 사람으로 변신하여 그를 유인한 것이었다
한밤중에 승려는 가슴이 답답하여 눈을 떴는데 구렁이 한 마리가 자신의 몸을 친친 감고 노려보며 새벽이 되어 날이 밝기 전에 폐사가 된 상원사의 종을 세 번 울리게 하면 죽은 구렁이가 승천할 수 있으므로 그 승려에게 종을 세번 울리면 살려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시간상 도저히 산정까지 올라갈 수 없었으므로 포기한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종이 세 번 울려왔고 구렁이는 기뻐하면서 이것이 부처님의 뜻이므로 다시는 원한을 품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승려가 상원사로 올라가보니 종루 밑에는 어미 꿩이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었다.
이와 같이 꿩이 죽음으로 보은하였다고 해서 옛날 적악산으로 불리던 산이 현재의 치악산으로 변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산이다.
한동안 이곳 남대봉 정상에서 허기를 면하고 쉬면서 재충전을 한 다음 저 남대봉안전센터 뒤로 돌아 남들이 가지 않는 비법정 등로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은 왠지 모르게 서글퍼지기도 하는 시간으로 남겨진다.
또한 이곳에서 조금만 더 상원사 방향으로 내려가면 금대분소 갈림길 이정표(금대분소 4.9 Km, 영원사 2.5 Km, 남대봉 0.3 Km, 비로봉 1.1 Km)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말도 많고 의견도 분분한 백운지맥 갈림길이며 치악산 남대봉에서 시명봉과 벼락바위봉 및 백운산을 거쳐 서진하며 미륵산, 상봉산, 긴경산등을 지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 동매마을의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으로 내려앉는 약 47 Km의 산줄기를 백운지맥이라 부른다.
치악산의 남대봉은 지금의 남대봉이 아닌 시명봉이 치악산 남대봉으로 치악산에서 제2봉이 시명봉인데 왜 이곳을 남대봉으로 지칭 했는지 의문이 되는 봉우리이다.
조만간 다시 올라 저 백운지맥 산줄기를 타고 걸어보며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많은 의견들과 논쟁거리들을 직접 확인해 볼 예정이기에 기대가 큰 산줄기이기도 하다.
남대봉안전센터 뒤로 들어가니 키 작은 산죽 사이로 생각보다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따라 조금은 가파르게 내려간다.
곧은치에서 이곳 남대봉까지 잘 정비되었던 등로와는 완전히 다른 자연 그대로의 등로가 열려있어 폐부까지 깊숙히 맑은 공기를 들어 마셔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완만해지기 시작하지만 키작은 산죽은 여전히 등로를 메우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활엽수와 산죽 등로를 따라 조금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등로에는 산죽이 사라지며 사초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활엽수와 잡목에 가려 조망이 전혀 없는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걷다 보니 나즈막한 1110 무명봉에 오르는데 살펴보니 잘 알고 있는 향수 홍성원이라는 띠지가 눈에 들어 와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곳 영월지맥 마루금을 통과한지 얼마되지 않았다고 소식을 들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새로운 띠지도 제작해 후답자들을 위해 달아 놓고 다니고 있어 새롭게 다가오는 띠지이다.
다음에 만나면 탁배기 한잔 더 따라 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피식 웃어보고 출발한다.
무명 1110봉을 지나 1053미터의 웅덩이 봉을 넘은 후 1111미터봉에서 우측으로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 등로를 따라야 하는데 우측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짧은 알바를 하고 다시 정상 등로로 올라 와 진행하니 무명안부도 통과한다.
다시 큰 고도 차이도 없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하니 지금까지 보다는 조금 더 잡목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하는 등로로 바뀌고 있지만 진행에는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기에 빠르게 걸어 본다.
그렇게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나즈막한 봉우리를 넘어 작은 활엽수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 안부도 통과한다.
안부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진달래 등로를 따르니 다시 무명봉으로 올랐다 무명 안부로 내려가기를 반복하는데 지금까지와는 달리 잡목의 저항이 조금 더 강렬해지고 있지만 진행에는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약간 잡목의 방해를 받으며 걸어가니 보도 블럭들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예전에 넓은 공터였다가 이제는 잡목들이 자라면서 일반 등로처럼 보이는 곳이다.
그곳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자작나무들이 보이는 대치라는 안부를 통과하는데 대치는 상원골에서 샘골이나 작은무대치골을 거쳐 부곡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하며 고개 높이는 약 849미터로서 상원사 동쪽 줄기에 있다.
신경 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안부이기에 주의하며 대치에 포인트 하나를 찍어 놓고 통과한다.
대치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참나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869 무명봉에 오르고 잠시 내려 가 큰 안부에서 다시 배낭 내려 시원한 물 한모금과 과일을 먹으며 쉬었다 출발하기로 한다.
아침까지 흘렸던 땀이 식으면서 한기를 느꼈는데 해가 솟아 오르며 기온이 빠르게 올라 이제는 생각보다 많은 땀을 흘리며 무더위와의 사투가 시작되는 느낌이다.
다시 올라 박달나무가 자라고 있는 무명봉을 넘고 사초가 등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무명 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오르니 942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계속 활엽수의 저항을 받으며 걸어 진행을 하니 갑자기 등로에 건설부 삼각점이 나타나는데 지도에는 삼각점 표기없이 964.7봉이라 표기만 되어 있는 삼각점인데 분명 정확한 삼각점이란 느낌이다.
삼각점은 303 복구에 77.7 건설부라고 적혀 있는데 최근의 삼각점 표기와는 조금 형식이 다르지만 건설부의 공인 삼각점이니 공식 삼각점으로 인정을 해 본다.
삼각점봉을 지나 약간의 가을 정취가 묻어나는 등로를 타고 잡목속을 헤치며 빠르게 진행을 하니 다시 나즈막한 안부로 떨어지는데 그 안부에는 작은 활엽수 한그루가 자라고 있다.
지도를 보니 아무 표기가 없는 안부인데 등로 우측으로는 성남리로 하산할 수 있다는 표기가 되어 있어 살펴보지만 역시나 오랫동안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사라져 이제는 고갯마루 안부로서의 기능도 사라지고 있는 듯 보였다.
성남리는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에 있는 리로서 신림면의 북쪽에 있고 동쪽으로 매화산 줄기를 경계로 하여 황둔리와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금창리, 남쪽으로는 신림리, 북쪽으로는 남대봉을 경계로 하여 횡성군 강림면과 접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가둔지, 사동, 상원동, 전불 등이 있는데 성남리는 치악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산수가 수려하며 상원사와 성황림 등 많은 유적과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상원사는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로 오늘날까지도 치악산이란 산명이 있게 한 유서 깊은 사찰이며 은혜에 보답한 꿩과 뱀의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또 성황림은 고산식물에서부터 야산식물에 이르기까지 각종 초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숲으로 천연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안부를 지나 다시 무명봉으로 오르고 잡목과 잡풀들이 조금 더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등로를 따라 무명안부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오르막 등로에서 거대한 바위를 만나 좌측으로 우회하며 그 바위를 통과하는데 어떤 선답자가 이곳을 선바위를 하였는데 실제 선바위인지는 확인을 할 수 없었다.
자료를 찾아 보니 찾을 수 있는 자료도 없어 선바위를 확인하니 서있는 거대한 바위 또는 스님이 장삼을 입고 있는 듯한 모습 등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아마도 이곳 선바위는 첫번째 의미인 서 있는 거대한 바위의 뜻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다.
좌측으로 돌아 어렵게 그 선바위를 통과하니 등로는 다시 평이한 진달래 등로로 바뀌어 있다.
큰 어려움 없이 완만하게 올라 거대한 참나무들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911 무명봉에 오르고 조금 더 걸어 또 다른 918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커다란 참나무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앞을 가로막는 진달래 등로를 헤치고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고비 등로로 바뀌고 잠시 후 잡목들의 저항을 받으며 오르니 삼각점이 박혀 있는 999.1미터의 선바위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하지만 어느 지도에는 이곳 높이를 999.1미터가 아닌 1000.6미터로 표기를 하고 있어 조금은 헷깔리는 고도 표시가 되어 있는 봉우리이기도 하다.
선바위봉에서는 우측으로 내려가며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잡목을 헤치고 진행하니 눈 앞으로 멋진 낙엽송들이 펼쳐져 있다.
미역줄기 나무들이 커가고 있는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무명봉을 넘고 다시 등로에는 싸리나무가 등로를 숨기고 있다.
조금은 빠르게 걸어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평이하게 걸어가니 갑자기 몇그루의 거대한 고사목들이 보이고 곧이어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어느 선답자들이 길재라고 표기를 한 안부이다.
어느 지도에는 등로 우측으로 성남리와 성남공원지킴터 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는 표기가 되어 있는데 실제 길재라는 안부에서 살펴보니 지나다닌 흔적이 거의 없는 사라져 가는 고갯마루처럼 보였다.
길재라는 안부에서부터 혼자라도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응봉산 또는 매봉산을 다녀 오기로 하고 조금 더 속도를 내 빠르게 진행을 해 본다.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등로를 지나니 다시 등로는 뚜렷하게 고속도로처럼 나 있고 무명 안부로 내려갔다 오르니 무명봉을 지난다
등로는 다시 나즈막한 안부로 떨어지는데 우측으로는 희미하게 내려갈 수 있는 등로가 나 있는데 실제로 사람들이 내려갈 수 있는지는 확인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미미한 등로였다.
아마도 예전에는 상원사로 내려가는 등로로서 그 역활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너무 오랫동안 다닌 흔적이 사라지며 그 기능도 없어진 안부는 아닐까 추측도 해 본다.
이제 등로는 거대한 활엽수 아래 약간의 잡풀들만 자라고 있어 진행하기에는 아주 좋은 산행 조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
그렇게 평이하게 한동안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오르고 금새 작은 고사목 한그루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860 무명봉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며 가쁜 숨을 진정시켜 본다.
이제 나사님과 단 둘이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제대로 된 몸 풀기에 나서는데 오늘 처음 만났지만 키도 크고 배낭도 작게 필요한 것만 넣어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볍고 빠른 산친구이다.
다시 평이한 자목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앞으로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가 올려다 보이는데 처음에는 그 봉우리가 혹시나 매봉산일까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고 넘어가 본다.
살펴보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978봉으로 이어지는 지맥 마루금이다.
잠시 후 거대한 바위들을 만나 좌측으로 우회하며 조심해 통과를 하는데 앞서 진행하던 나사님이 바위 방향으로 진행하다 뒤돌아 내려 와 우회하다 보니 이 산객 뒤로 쳐지고 이제부터 홀로 빠르게 진행을 해 본다.
가파르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에서 숨을 고르며 조금은 여유롭게 진행을 하니 다시 나사님이 따라 붙는데 잠시 후 무명봉에서 잠시 쉬면서 후미를 기다렸다 함께 출발한다는 소식이다.
그곳에서 홀로 매봉산을 다녀온다는 소식을 남기고 홀로 빠르게 된비알 오르막 등로를 치고 오르니 온 몸에선 다시 굵은 땀방울이 등로를 흥건히 적시고 있다.
그렇게 많은 땀을 흘리며 어렵게 오르니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길게 이어지며 매봉산 갈림삼거리는 조금 더 올라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다.
다시 굵은 땀방울을 내 뿜으며 가파르게 오르니 드디어 우측 정상 등로 방향으로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는 매봉산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배낭 내려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신 후 배낭을 두고 스틱과 카메라와 핸드폰만 들고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매봉산으로 향한다.
지도상 이곳 응봉산 또는 매봉산을 다녀오기 위해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였고 또한 홀로 오르다 보니 다른 산친구들보다 많이 뒤쳐지만 안될 것 같아 빈몸이지만 뛰다시피 걷다보니 잡목에 약간의 생채기가 나고 생각보다 오르내림이 심하며 가끔 나타나는 바위들은 모두 우회해야 하니 생각보다 힘들고 멀게만 느껴지는 매봉산이다.
중간에 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상황도 있었지만 마음 다잡고 꾹 참으며 매봉산으로 향하니 거대한 바위지대를 지나 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하는데 헬기장 역시 잡풀들이 우거져 헬리포터 표시를 한 하얀 페인트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등로 우측으로 약간의 조망이 터지는데 일단 정상을 다녀오며 필요하면 사진으로 남기기로 하고 다시 곧바로 매봉산 정상으로 향한다.
잡목을 헤치고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어렵게 오르니 드디어 매봉산 정상인데 지금까지 지도상으로 알고 있던 응봉산이 아닌 매봉산이고 또한 정상석이 없었다고 알고 올랐는데 원주시에서 멋진 정상석 하나를 세워 뒀다.
그 정상석 우측으로는 삼각점도 박혀 이는데 이곳 매봉산 정상 역시 날파리들이 들끓어 사진 한장 남기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매봉산(응봉산, 1095봉)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과 영월군 수주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095미터이고 치악산국립공원의 동남쪽 끝자락에 솟아 있는데 남대봉에서 싸리재를 타고 내려온 능선에 솟은 봉우리이다.
늦가을 낙엽산행의 백미로도 꼽히는데 낙엽산행의 백미는 매봉산 정상에 오른 뒤 하산길에 있으며 매봉산이라는 명칭은 산 정상에서 매로 꿩과 토끼 등을 사냥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산행은 황둔리 창골마을 가게집을 지나 북쪽에서 시작되는데 대로를 따라 20분쯤 가면 왼편으로 용가매기골이고 오른편으로 밤나무골이 갈라지며 밤나무골로 접어들면 깊고 맑은 계곡이 나온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 인적이 드물고 한적한 등로를 따라 30분 가량 들어서면 60도가 넘는 급경사를 이룬 북쪽 지능선 길이 나타나고 여기서 20분 정도 올라가면 매봉산 정상이 보이는 876봉에 도착한다.
이 봉우리를 넘어서서 굴참나무로 뒤덮인 안부를 지나 30분 정도 오르면 정상이 훤히 보이는 990봉이 나오고 봉우리를 내려서서 10분쯤 가면 주능선길에 철쭉과 싸리나무가 우거져 있다.
평지를 지나 오솔길 몇 고개를 오르면 정상인데 정상에서는 북으로 당골계곡, 남으로 감악산, 동으로 사자산과 백덕산 등 주변 산악지대가 장관을 이루며 당골계곡 너머로 치악산 비로봉과 매화산이 단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하산은 서남쪽 헬기장을 경유해 남동쪽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데 이 구간은 참나무 등 활엽수들이 빽빽히 들어찬 수림지역이다.
헬기장을 지나 바위지대를 거쳐 40분쯤 내려가 맨 끝봉으로 하산하며 왼편 능선은 신림터널 쪽의 길, 오른편 능선은 수도사 길이다.
오른쪽 능선으로 숲속을 헤치고 내려가면 해발 700미터의 확 트인 지골분지에 외딴집이 하나 있고 여기서 송림군락지를 지나 치악산 상원사 입구로 들어가는 길목인 주포천에 이른다.
산행시간은 5시간이 소요되며 대중교통편은 원주에서 영월 행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황둔리에서 하차한다.
생각보다 환상적으로 펼쳐진 조망과 풍경으로 인해 올라오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 한 매봉산이 되었다.
제일 먼저 북동쪽으로 백덕지맥의 백덕산과 사자산을 우측에 두고 북쪽 산줄기들을 살펴보니 그 좌측 앞쪽으로 삿갓봉 넘어 백덕지맥의 청태산과 분기점인 태기산도 가물거리고 그 좌측으로는 태기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나간 한강기맥 줄기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방태산과 설악산을 찾아 보지만 워낙 고봉들이 즐비한 백덕지맥이다 보니 그곳 산줄기들은 가려 보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너무 환상적인 풍경과 조망에 그저 흐르는 땀방울을 닦을 생각을 못하고 많은 사진으로 남겨 보는 시간이다.
이제 눈을 좌측의 매화산에서 우측의 백덕산 사이를 두고 저 멀리 한강기맥 마루금을 중심으로 살펴 본다.
희미하게 보이는 태기산을 기점으로 좌측으로는 영월지맥 산줄기가 흐르고 우측으로는 백덕지맥 산줄기를 보내면서 그 두 산줄기가 벌어지는 풍경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 온다.
그 뒤 저 멀리에는 한강기맥 마루금과 그 뒤로 조금 더 높은 높이를 자랑하는 춘천지맥의 산줄기들이 중첩되며 분간을 어렵게 만들고 있지만 방향으로 봐서는 확실한 듯 보인다.
이제 한강기맥 산줄기를 들러보고 눈을 북쪽으로 돌리니 우측 끝자락의 매화산을 기점으로 치악산 비로봉과 좌측으로 흐르며 이어져 온 영월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다만 좌측의 향로봉과 남대봉은 바로 앞쪽에 있는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고 다시 흘러 내려 와 바로 눈 앞에 솟아 있는 선바위봉이 치악산 비로봉 앞으로 솟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난 구간부터 참으로 많이도 걸어 왔음을 한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제 눈을 동쪽으로 돌리는 좌측 끝자락으로 높게 솟아 있는 사자산과 백덕산을 두고 우측 앞으로 영월의 구봉대산이 보인다.
몇 년 전 옆지기와 영월로 여행을 떠나 짓봉과 구봉대산을 오르고 영월 8경을 구경한 후 다하누촌에서 먹었던 한우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생생한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 우측으로 낮아지는 백덕지맥 산줄기 뒤로 조만간 걸어야 할 주왕지맥 산줄기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 제일 뒷쪽으로 백두대간의 두타청옥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저 환상이란 말은 이럴때 사용하라고 만든 단어는 아닐까 혼자 생각하며 웃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남쪽에서 동쪽을 거쳐 북쪽까지 돌아 본 후 작은 바위로 올라 어렵게 서쪽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눈 앞에 자라난 잡목으로 사진 한장 남기기도 쉽지 않다.
더욱이 손수건도 들고오지 못해 흐르는 땀방울이 카메라 렌즈에 떨어졌는지 어느 순간부터 사진 좌측 하단부가 흐릿하게 나오면서 조금은 아쉬운 시간이었다.
우측 끝자락에 백운산을 두고 바로 앞줄기에 오늘 이 산객이 걸었던 영월지맥 마루금이 지나고 그 뒤 저 멀리 백운산 지나 좌측으로 천등지맥의 십자봉과 좌측 끝자락의 높이 솟구친 천등산까지 황홀한 산그리메를 선사하고 있다.
진행하다 중단된 천등지맥이기에 조만간 저곳으로도 올라 이곳을 바라보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동안 그곳 매봉산 정상에서 많은 사진을 난기고 알 수 있는 산 이름을 불러 준 후 다시 올랐던 등로를 타고 빠르게 하산을 해 본다.
뒤따르던 산친구들이 먼저 진행하거나 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이 산객을 기다릴 것 같아 거의 뛰다 시피 그 등로를 타고 뒤돌아 내려오며 시간과 거리를 계산해 보니 거리는 왕복 약 2 Km가 조금 넘는 거리에 시간은 약 30여분이 채 걸리지 않은 듯 보인다.
그렇게 온 몸을 굵은 땀으로 완전히 적시며 매봉산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오니 아무도 보이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하며 배낭에서 새로운 수건을 꺼내 땀방울을 닦아내고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시며 갈즈을 달래고 있는데 산친구로부터 문자 하나가 도착을 하고 확인해 보니 천천히 싸리치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간단히 배낭 정리하고 다시 매봉산 갈림삼거리를 출발해 진행하니 등로는 잘 나 있지만 가파르게 내려가고 잠시 후 무명 안부를 통과한다.
커다란 참나무가 서 있는 무명 안부를 지나 조금 오르니 싸리나무들이 등로에 많이 보이고 잠시 후 등로는 계속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커다란 활엽수들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무명봉 직전에서 드디어 앞서 출발한 산친구들을 만나 편안한 마음으로 걸어 보지만 매봉산을 다녀오며 조금은 무리를 하였는지 체력적으로 힘이 들기 시작한다.
그래도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기에 산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니 다시 편안한 무명안부를 지나고 다시 커다란 참나무들이 자라는 등로를 지나 분봉에 잔디가 자라지 않는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한다.
지도를 보니 매봉산 갈림삼거리와 싸리치의 중간쯤 되는 곳으로 이제부터 등로는 좌측으로 휘어지며 싸리치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다시 나타나는 활엽수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완만하게 내려가는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한동안 내려가니 묘지 한기를 만나고 곧이어 무명 안부를 통과하는데 등로 좌측으로는 오늘 새벽에 올라 온 석기동 도로가 잡목 사이로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를 지나 잠시 편안하게 걸어가니 등로는 이제 참나무 대신 굵은 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세갈래 가지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이제 차량들이 통행하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사람들 목소리도 들리는 듯 하여 싸리치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난 등로를 따르니 다시 싸리나무들이 보이고 낙엽송 지대를 지나 참나무들이 즐비하게 자라고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약간 꺽어 가파르게 내려가니 드디어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싸리치에 도착을 해 육각정과 싸리치 이정석을 사진에 담은 후 배낭을 정리해 본다.
싸리재(싸리치)는 성남에서 황둔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하는데 싸리나무가 많다 하여 싸리재, 싸리치재, 싸리고개라고 하며 신림터널이 생기고 난 후 싸리재는 거의 폐쇄되어 기존의 도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원주 싸리재는 단종이 귀양 가던 길에 넘었던 고개로 한양에서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단종은 광나루를 건너 여주와 원주 부론를 거쳐 귀래, 신림(싸리재), 주천을 거쳐 유배지 청령포에 이르렀다.
싸리재 길은 말 그대로 고갯길인데 지금은 산 아래로 터널이 뚫려 산책로로 이용하지만 한때는 영월로 가는 차들이 다녔던 신작로였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만든 영월과 원주 간의 유일한 통로였고 그 이전에는 방랑시인 김삿갓과 궁예가 군사를 일으켜 동쪽으로 지났던 길이었다고 전한다.
산 아래로 터널이 뚫린 덕분에 싸리재는 옛길로 거듭나 운치를 자아내는 분위기 있는 길로 바뀌었다.
배낭 정리 후 사진 몇장 남기고 다음 구간 들머리도 확인한 후 좌측으로 임도를 따라 오늘 새벽 애마를 주차시킨 포장도로까지 걸어 내려가 본다.
한동안 내려가다 보니 오늘 새벽에 차량들로 가득했던 이곳 싸리재 오르는 도로와 임도는 이제 텅텅 비어있어 많은 사람들이 빠져 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한동안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싸리치 숲속랜드 펜션을 지나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애마를 회수하며 하루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후미 산친구까지 모두 내려 와 애마로 국향사로 이동을 하고 산친구 차량을 회수하여 원주 시내에 있는 목욕탕으로 이동해 깨끗하게 샤워한 후 신도시에 있는 대독장이란 김치찌개 전문점으로 가 맛난 식사를 하고 나니 벌써 하루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식사 후 밖으로 나와 연휴 둘째날인 10월 1일에 다시 만나 5구간 산행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져 조금은 막히는 도로를 타고 귀가하다 용인휴게소에서 한시간 정도 잠을 청한 후 집으로 돌아 오니 채 9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조금은 피곤하지만 휴게소에서 한시간 잠을 자서 그런지 잠도 오지 않아 사진 정리하고 하루를 마감하니 길고도 힘들었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조금 무리는 하였지만 매봉산을 다녀 온 것이 두고 두고 잘 했다고 생각되는 사진이고 생각이었다.
다음달 초에 다시 만날 기대를 하면서 영월지맥 제4구간 산행을 마무리 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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