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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영춘(한강·무·완)

영춘지맥 제2구간 상마암고개에서 전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7.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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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강원도 횡성군과 원주시 영월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7년 04월 22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약맑고 깨끗하였지만 무더위에 산행하기 힘들었던 날씨

산행온도 영상 07도에서 영상 21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마암리 상마암고개(봉덕로 2차선 포장도로)-안부-비포장임도-625.8봉-잣나무 안부-태기산 약초농장 출입금지 그물망-

                곧고개-585.3봉-넘은재(420번 2차선 포장도로)-620봉(태기산 조망)-비포장 임도-642.1봉 쇠말뚝-검두재-비포장 임도-

                 719.7 삼각점봉-721.4봉-꼬부랑재-681봉-호두봉(625.9봉)갈림 삼거리-신선봉(622.1봉)-느릅재(축사)-숫돌봉 전망대

                 700미터 이정판-둔방내리 민가마을-공터(폐헬기장)-614 삼각점봉-느릅재정상 이정판-8번 송전탑-강원도축산기술

                 연구소목초지-비포장 임도-칠송고개(현궁로 2차선 포장도로)-축사전기펜스-비포장 임도-벌목지 안부-강원도축산기술

                 연구소 철조망-NO 027삼각점(?)-602봉 산불감시초소-안부-황재(6번 2차선 포장도로)-약초농장 철조망-고들고개(비

                 포장 도로)-덕송로 2차선 포장도로-비닐하우스 비포장 임도-영동고속도로 옆 밭둑길-하수 지하통로(영동고속도로 통과)-

                 현천리 비포장 도로-능선진입-덕고산(705봉, 삼각점)-피나무재-덕송로 2차선 포장도로-봉화로소사7길 비포장

                 도로(우측에 영동고속도로)-원주 110 지하통로 통과-원주 108 지하통로 통과-능선진입-횡성휴게소 건물 뒷편 삼거리-

                 봉운사 진입1차선 포장도로(노인요양원 둥지마을 입간판)-능선진입-운동기구와 벤취 쉼터2개-봉화약수터와

                 시계(인연)바위 방향 표시판-봉화산(685봉, 삼각점과 봉화대 설명판)-봉화약수터 갈림 삼거리-소사리 농로도로-

                 시멘트 포장도로-지하통로(영동고속도로 통과)-봉화로2차선 포장도로-봉화로소사2길-횡성콩마당된장-비포장도로

                 갈림사거리-641봉-검정천 가림막-대법사 산책로 안내판-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682봉 산불감시초소-비포장

                 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낡은터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689.6봉(2개의 삼각점봉)-벌목지대-비포장 임도-

                 653봉(삼각점)-비포장임도-안흥1리 새터마을 성림건축-능선진입-642봉(양철봉)-이동통신탑-풍취산(697.2봉, 깨진

                 삼각점)-녹슨철조망-전재(540미터)-지맥 산행종료-안흥2리 버스정류장(시멘트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31.30 Km (영월지맥 산행 약 30.1 Km와 전재에서 안흥2리 버스정류장까지 접속구간 약 01.20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산들바람 속 더위에 많은 땀 흘리며 꾸준한 속도로 진행하여 10간 41분 (05시 49부터 16시 30분까)

교통편 : 애마와 히치하이킹으로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횡성에서 하룻밤 숙박

영월지맥이란 ???
영월지맥이란 한강기맥 상에 있는 삼계봉(1065봉)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태기산(1261봉), 덕고산(705봉), 봉화산(670봉), 풍취산(699봉), 매화산(1085봉), 치악산 비로봉(1288봉), 향로봉(1043봉), 남대봉(1182봉), 감악산(954봉), 감악봉(886봉), 석기암(906봉), 용두산(871봉), 왕박산(598봉), 가창산(820봉), 삼태산(876봉), 국지산(626봉), 영월의 태화산(1027봉)을 거쳐 남한강에서 가라 앉는 산줄기를 말하며 삼계봉(1065봉)은 홍천군, 평창군, 횡성군 등 3개 군이 만나고 홍천강, 평창강, 섬강 등 세 강이 갈리는 곳이나 이름이 없어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종주한 후 셋의 경계가 되는 봉우리란 뜻으로 삼계봉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는 설명이 보인다.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을 종주한 후 지맥이 갈리는 한강기맥의 청량봉에서 장곡현, 구목령, 삼계봉 구간 11 Km를 합하여 약 272여 Km를 영춘지맥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산객은 분기점에서 시작하여 강이나 바다로 그 맥이 다하는 방향으로 진행을 했기에 이 영춘지맥 산행도 춘천지맥과 영월지맥으로 분리하여 별도로 진행하도록 한다.
이 영춘지맥은 지맥중에서 가장 긴 지맥이다.

 

 

연두빛 초록으로 변해가는 자연을 음미하며 인생을 뒤돌아 본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주말에 가족 결혼이 있어 가야되지만 시작한 영월지맥이 눈 앞에 아른거려 옆지기에게 부탁하고 토요일 새벽 같이 횡성으로 내려가 지난 주 첫구간으로 마무리를 한 상마암고개에 도착을 하니 새벽 5시 30여분이 지나고 있다.

오늘은 애마를 6번 지방도로 상 넓은 공터에 잘 주차한 후 상마암 고개로 조금 걸어 올라 지난 구간 내려온 날머리와 오늘 올라야 할 들머리를 사진에 담다 보니 아직 6시도 되지 않았는데 날은 벌써 훤히 밝아 오고 있다.

헤드렌턴도 필요없이 상마암고개 좌측인 남쪽 사면을 치고 오르며 오늘도 장거리 산행에 무탈한 산행을 홀로 빌어 보는 시간이다.

 

하지만 거리 계산을 하지 않고 진행을 하다 봉화산 지나 영동고속도로를 통과한 이후 풍취산까지는 참으로 지루하고 어렵게 진행을 하였으며 산행거리가 25 Km를 넘어서니 두 다리에 전해지는 무게감은 완전히 다르게 전해지고 있어 조금은 무리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그래도 다행하게 전재까지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잘 진행 할 수 있어 다행이었던 구간이다.

무더위에 준비한 식수를 거의 다 마시고 많은 땀을 흘렸지만 가끔 불어오는 봄바람과 오랫만에 사라진 미세먼지로 인해 깨끗하고 시원한 조망을 볼 수 있어 어려웠지만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겨지는 시간이다.

 

더욱이 산행 종료 후 안흥2리 버스 정류장 직전에서 트럭에 태워 안흥면사무소까지 바래다 준 목장주 아저씨와 안흥초등학교에서 마암리까지 태워준 승용차 아저씨에게도 감사하는 마음 전해 드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덕분에 시간 단축하며 애마를 주차시킨 상마암리까지 쉽게 복귀할 수 있어 오랫동안 기억될 횡성에서의 하루였다.

 

그 동안 진행하다 중단되었던 맥 잇기 산행을 다시 준비하면서 지난 몇개월 동안 몸을 잘 만들었기에 큰 걱정은 없었지만 오늘 점심식사 이후 이곳 풍취산까지 오는 시간은 너무나 지루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사용하던 GPX자료에는 잘못된 지도가 입력되어 산행을 하면서 확인해야 할 봉우리와 안부가 전혀 소용이 없어 출력해 가지고 간 산행지도 한장에 의도해 진행하는 등로를 확인하다 보니 정확한 위치 확인에 어려움을 겪으며 더욱 힘든 산행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도 무탈하게 풍취산 정상에 도착을 해 남아 있는 빵과 과일 그리고 식수로 허기를 달랜 후 추억 한장 남기는 시간은 힘들었던 오늘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청령제 같은 준비물들이었다.

 

지난 제1구간 때 무탈하게 산행 후 내려왔던 상마암고개 근처의 6번 지방도로 한쪽에 애마를 잘 주차시킨 후 잠시 걸어 들어 오니 지난 제1구간을 무탈하게 잘 마무리하였던 상마암고개가 나타나고 주위 사진 몇장 담는 사이 벌써 여명이 밝아오며 헤드렌턴도 필요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곳 마암리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 있는 리로서 서쪽으로 주천강이 흐르고 태기산 자락의 서쪽에 위치한 중산간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검두골, 뒷골, 하마암, 모중안, 버덩말 등이 있는데 검두골은 이 마을이 검두재 옆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하마암은 마암리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하마암이라 부르며 마암리는 옛날 이 곳에 말무덤이 있어서 말 무덤 또는 마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암리에 속한 이곳 상마암 고개(525.4미터)는 횡성군 둔내면 마암리 상마암에서 청일면 고시리로 넘어가는 2차선 포장도로(12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로 둔내면과 청일면의 면계 이정표가 서 있고 청리면쪽에는 횡성초원의집이란 요양병원이 있다.

   

도로 좌측인 남쪽 방향의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잣나무와 낙엽송 가지에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있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벌써 등줄기와 이마에선 땀방울이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이곳은 이제 분홍빛 진달래가 만개를 하여 힘들게 오르는 외로운 산객의 친구가 되어 주고 있다.

잠시 올라 무명봉을 넘으니 등로 우측으로 작은 건물이 내려다 보이는 안부를 지나 진달래가 만발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묘지가 보이는데 그 묘지 좌측 저 멀리 백덕지맥 마루금 위로 일출이 시작되려는지 두껍게 낀 구름 사이로 하늘이 불타오르고 있다.

 

잠시 더 그 묘지 위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출을 기다려 보지만 구름으로 인해 제대로 된 일출은 만나기 어려울 듯 해 곧바로 다시 출발한다.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625.8봉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를 둘러본 후 계속 진행해 묘지 위를 통과한다.

잠시 더 진행하니 오르막 등로 좌측으로 파란 그물망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일출이 시작되지만 똑딱이 카메라로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낙엽송 구간을 지나 묘지를 통과하고 잠시 잣나무 안부를 통과하는데 처음에는 이곳이 곧고개라 생각을 했지만 곧고개는 조금 더 진행한 곳에 위치한다.

다시 등로 좌측으로 파란 그물망을 만나 그 그물망을 따라 진행하니 잠시 후 좌측으로 민가도 내려다 보이고 금새 채소가 자라고 있는 그물망으로 둘러쳐져 있는 밭 경작지대를 지나간다.

 

그물망 옆에 안내판이 붙어 있어 읽어 보니 이곳이 태기산약초농장인 듯 주인장이 붙여 놓은 출입금지 안내판이다.

좌측으로 펼쳐진 밭 경작지를 따라 설치된 파란 그물망을 타고 진행을 하니 잣나무 군락지와 안부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축사가 내려다 보이는 곧고개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아침부터 고약한 가축 분뇨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다.

곧고개(해발561m)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마암리 하마암에서 청일면 갑천리로 연결되는 나즈막한 안부 고개로 하마암 쪽에는 민가와 밭이 있으며 다른 지형도에는 이곳을 갑천리의 절바우고개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곧고개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멋진 잣나무 군락지가 짧게 이어지고 곧이어 묘지 한기가 있는 585.3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 묘지 뒷쪽으로는 가지치기된 나뭇가지들이 말라가고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등로 좌측으로는 이제 하마암 마을이 우측으로는 갑천리 텃골 방향이 있을 것 같아 살펴보지만 나뭇가지들에 막혀 조망은 전혀 없다.

 

다시 평이한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무명봉 넘어 묘지 두기가 보이고 그 묘지 옆 등로를 타고 내려가 곧바로 420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넘은재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건너 우측으로는 노인전문요양원인 스마일카운티 건물이 보인다.

넘은재(해발 553m)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마암리 백정골에서 갑천면 갑천리 텃골 넘어가는 고개로 420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고개 좌측에는 스마일 노인 요양원이 있는데 하마암으로 가는 2차선 도로인데 이 지역 사람들은 넘은재라 부르지 않고 하마암 도로라고 부른다.

도로 건너 콘크리트 옹벽 옆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능선으로 올라 방금 전 건너 온 420번 도로와 갑천리 방향을 살펴보니 그곳에도 역시 비닐하우스 몇동이 내려다 보이는데 이곳 둔내와 청일면 쪽 농가에는 비닐하우스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닭게 된다.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좌측 저 멀리 지난 구간 어렵게 올랐던 태기산 풍력발전기가 태양 아래 밝게 빛나고 있다.

 

이제 곱게 피어난 분홍빛 진달래의 환영을 받으며 걸어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잣나무가 자라는 무명봉을 넘는다.

멋진 소나무와 잣나무가 등로를 호위하듯 자라고 있는 마루금을 타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갑자기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이제부터 잠시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 본다.

다시 그 비포장 임도를 건너 잠시 오르니 쇠말뚝이 박혀 있는 642.1봉에 도착을 해 잠시 휴식을 취한다.

 

쇠말뚝봉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니 눈 앞으로 잡목지대 지나 드넓은 밭 경작지가 나타난다.

연두빛 봄색깔로 변신을 하고 있는 등로를 살피며 조심해 내려가니 좌측 밭 경작지 바로 옆으로 깊은 안부가 나타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검두재이다.

검두재(해발590m)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둔방내리에서 갑천면 상대리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로 빨딱고개라고도 부르며 예전 상대리 마을명이 검대라고 하는 데서 붙여진 이름인데 고개를 경계로 고개를 넘으면 하대리이고 안쪽은 상대리이다

예전엔 상대리와 하대리를 합쳐서 검두마을이라고 불렀는데 마을지명을 칼 검에 머리 두를 써 살벌한 지명 때문인지 옛날에 큰 사건이 자주 발생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을의 원님이 마을 이름 때문이라고 하여 거문고 금자에 집 대자를 써 금대리로 바꾸라고 했는데 그 이후로 마을은 평온해 졌고 이 마을에 살기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강원도로부터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검두재를 지나 오르니 은사시나무 군락지가 펼쳐지고 잠시 후 말라죽은 은빛 갈대밭이 짧게 이어지고 있다.

그 갈대밭 상부쪽으로 걸어 올라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잘 정리된 밭 경작지 저 멀리 태기산 정상부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데 이제는 거리가 있어 그런지 제법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한구간만에 태기산도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질려고 하는 것이다.

 

갈대밭을 지나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밭 경작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그 등로에는 거대한 소나무가 한줄로 도열하듯 자라고 있다.

다시 조금 더 진행하니 평이한 등로를 지나 묘지 좌측 아래로 또 다른 민가가 내려다 보인다.

다시 나타나는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갑자기 짧은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좌측을 살펴보니 저 멀리 태기산을 중심으로 좌측으로는 한강기맥이 그리고 우측으로는 조만간 걸어야 할 백덕지맥 마루금이 넘실거린다.

 

생각보다 환상의 조망을 즐기며 그 벌목지대 경계를 걸어가니 소나무 등로 한가운데에 봉분이 사라져 가는 묘지를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지난다.

그곳 좌측으로는 마암리 절터골쪽 밭 경작지와 민가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상대리 버텀말이 있겠지만 언덕이 가로막아 보이지 않는다.

이곳 안부 역시 농부가 올라와 농사를 짓고 있는 듯 파란 그물망이 쳐져 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비포장 임도 저편에 작은 물이 담겨 있는 물웅덩이가 보이는 그 임도를 가로질러 좌측으로 벌목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백덕지맥 마루금이 따라 오고 있다.

발 아래에는 마암리 마을이 산속에 묻혀 드문 드문 떨어져 있는 민가들이 눈에 들어 오는데 조금은 특이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여유있게 오르니 낡아 인식을 할 수 없는 깨진 삼각점이 박혀 있는 719.7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정상에는 아무 이정표나 이정판도 없기 때문에 물 한모금 마신 후 곧바로 출발한다.

 

다시 멋진 소나무와 진달래가 반겨주는 주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오늘 산행은 맥 잇기 산행보다는 제대로 된 힐링 산행처럼 느껴진다.

참으로 오랫만에 마음 놓고 걸어 보는 마루금에서 그 모진 풍파와 겨울을 이겨내고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어느덧 연두빛 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자연에서 나약한 인간의 삶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욕심을 조금만 놓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어찌 그리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지 안타깝고 아쉬운 순간이기도 하다.

금새 721.4봉을 넘어 편안하게 걸어 본다.

 

다시 예쁜 진달래가 만발한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걷다보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을 꼬부랑재라 되어 있다.

꼬부랑재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제천에 있는 꼬부랑재를 제외하고는 이곳 횡성의 꼬부랑재는 전혀 찾을 수 없는데 지명 이름의 꼬부랑재는 둔방내리로 나와 있기에 둔방내리도 찾아 보지만 역시나 꼬부랑재에 관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꼬부랑재(634m)가 있는 둔방내리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 있는 리로서 북쪽으로 석문천이 흐르고 서쪽에는 청태산이 있는 골짜기가 많은 중산간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안창말, 절터골, 창말, 넘은골 등이 있는데 안창말은 이 마을이 창말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절터골은 이 마을에 예전에 절이 있어서 절터골이라 부른다.

둔방내리는 조선시대 때 둔창이 있었으므로 둔방안, 또는 둔방내라 하였다고 한다.

 

지천으로 피어 있는 진달래도 따 먹으며 옛날 시골에서 어렸을 적 죽마고우들과 하교길에 참꽃을 따 먹던 추억에 잠시 잠겨 보기도 한다.

이제 모두 어였한 가장이 되어 전국 아니 전세게에 퍼져 잘 살고 있는 친구들이기에 가끔은 보고 싶은 얼굴들이기도 하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다 등로 좌측 앞을 살펴보니 저 앞으로 드높은 봉우리 하나가 솟아 잇는데 지도를 보니 아마도 쇠돌봉이 아닐까 생각되는 봉우리이다.

쇠돌봉(607.9봉)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에 있는 산으로 영월지맥 칠송고개 전 재봉 목장 우측능선상의 산으로  한전 철탑 건너편 능선상의 산인데 현천리 주민들은 629.9미터 삼각점(안흥306/1989복구)봉을 숫돌봉(607.9봉)으로 칭하는 듯하며 국립지리원지도에는 무명봉이나 영진지도와 네이버지도상에는 정상 숫돌봉으로 표기되었다

등로 좌측 아래로는 둔방내리 마을이 골짜기를 형성하며 저 아래 조용히 앉아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오는데 잠시 후 진달래 꽃길과 묘지를 지나 엄나무 순이 부드럽게 솟아 나오고 있는 681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수없이 많은 산행을 하면서 임산물에 대한 욕심은 없었는데 요즈음 들어 약간의 임산물 욕심이 생긴 듯 하다.

연두빛으로 솟아 오르는 엄나무 순을 보니 진행하다 한주먹 거리쯤 수확해서 맛이라도 보고 싶어져 조금 자란 것으로 채취를 해 본다.

다시 등로에는 낙엽진 커다란 활엽수 밑에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키 작은 소나무가 보이는 등로가 나타나고 활엽수 지대를 지나자 마자 등로 좌측으로 호두봉으로 갈 수 있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좌측 호두봉 가는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신선봉 가는 등로를 따른다.

호두봉(627봉)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둔방내리에 있는 산으로 영월지맥 영진지도상 신선봉(680.0봉)과 오록스앱이나 네이버지도상 신선봉(622.1봉) 사이의 능선에서 좌측으로  300미터 남동능선 안부지나 오름뒤에 위치의 산으로 호두봉(627봉)은 국립지리원지도상은 무명봉이나 영진지도와 오록스앱 그리고 네이버지도상으로는 정상 호두봉의 위치와 같다.

 

호두봉 갈림 삼거리를 지나 잠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신선봉에 도착을 하는데 신선봉이란 이정판 하나만 나뭇가지에 달랑 달려 있고 높이나 기타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신선봉(680봉)은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상대리에 있는 영월지맥상 봉우리로서 국립지리원지도에는 무명봉이나 영진지도상에는 680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어떤 지도와 오록스앱 또는  네이버지도는 느릎재 직전 622.1봉을 신선봉으로 표기하고 있다.

참고로 어느 산님들은 영진지도상 680봉을 신선봉으로 보기도 하는데 신선봉은 이처럼 맥을하는 산님들도 관심을 두지 않거나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산이기도 하나 오늘 이 산객은 이렇게 정상판 하나를 두고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신선봉을 지나 다시 평이한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의 둔방내리 방향으로 논과 밭 경작지와 드문 드문 보이는 민가들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후 등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좌측으로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한우 축사가 보이고 곳이어 안부를 지나는데 지도를 보니 느릅재라 표기된 곳으로 축사에서 풍기는 냄새가 시골스럽기만 하다.

느릅재(해발 592미터)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둔방내리에서 갑천면 상대리를 잇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전국에 있는 다른 느릅재를 찾아보면 느릅나무가 많아 지명 이름이 되었다는 유래가 많은 것을 봐 이곳도 그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느릅재는 다만 등로 우측의 횡성군 갑천면 상대리에 느릅재라는 장소가 있는 곳으로 봐 그곳의 지명 이름을 따서 지어진 유래가 아닐까도 싶다.

 

느릅재를 지나 다시 나타나는 멋진 잣나무 등로를 따라 오르니 솔갈비가 푹신한 등로를 만들어 오랫만에 맥 잇기 산행에 들어 잇는 이 산객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잠시 진달래꽃을 친구삼아 걸어 진행하니 갑자기 등로 옆에 숫돌봉 전망대까지 700미터 거리라는 이정판이 나타나는데 지나 온 방향으로 숫돌봉을 말하는 듯 하다.

이곳도 역시 분홍빛 진달래가 만개하여 피곤한 몸을 달래 주고 있다.

 

그 숫돌봉전망대까지 700미터 거리라는 이정판을 뒤로 하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최근에 새로 지은듯 한 민가들이 등로 좌측으로 가깝게 올라 와 있고 작은 건물 한채는 등로를 깍아 지어 놨다.

둔방내리의 전원주택 단지처럼 보이는데 사람들 구경하기가 어려우니 짐작만 하고 그 민가 지역을 빠르게 통과한다.

 

민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폐헬기장처럼 보이는 공터를 지나 환상의 잣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그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무명봉을 넘으니 614봉 삼각점이 나타난다.

이끼가 끼고 낡아 정확한 인식이 안되는 삼각점이었다.

 

그 삼각점을 지나니 다시 등로에는 느릅재정상이란 안내판이 서 있는데 지나온 방향으로 화살표 표시가 되어 있다.

밤나무와 소나무가 혼재된 등로에서 갑자기 잣나무 등로로 바뀌었다가 다시 일반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정상 등로 좌측으로 깊은 안부가 보이고 그 위로 송전탑 하나가 올려다 보이는데 등로는 바로 그 송전탑 뒤로 돌아 가기에 송전탑으로 올라 번호를 확인하니 8번 송전탑이다.

 

그 송전탑을 지나 능선을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는 비포장 임도가 가깝게 따라 오고 있고 등로 좌측으로는 벌써 파란 농작물인지 초지가 펼쳐져 있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부터가 바로 강원도축산기술연구소로서 아마도 이곳 횡성 한우도 이곳에서 개량되고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잠시 뒤 등로는 그 강원도축산기술연구소에서 기르고 있는 초지 옆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하도록 되어 있어 모처럼 눈이 호강을 하면서 걸어 보는 시간이다.

 

좌측에 강원도축산기술연구소에서 재배하고 있는 초지밭을 두고 우측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다시 차량통제 용 바리게이트가 보이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계속 드넓은 초지 옆을 걸어 간다.

한동안 걸어가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초지 뒤 저 멀리 능선 위에 방금 전 봤던 8번 송전탑도 멀어지고 있다.

잠시 뒤 현궁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우측 고갯마루로 오르니 그곳이 바로 칠송고개인데 등로는 그 칠송고개 정상 비로 못미친 좌측 초지밭 가장자리를 타고 진행이 된다.

칠송고개는 궁종리인데 활같이 생긴 꼬불꼬불하게 생긴 곳을 지나간다는 연유와 태기왕이 군사들을 훈련하던 활터로 사용한데서 연유되었다 하니 이 지역 전역에 태기왕의 전설이 묻어 있다.

칠송고개가 있는 궁종리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 있는 리로서 북쪽으로 죽림산이 동쪽으로 쇠돌봉이 있다.

산자락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로서 자연마을에는 아랫말, 앞산넘애, 웃말, 중간말, 활마루 등이 있는데 앞산넘애는 이 마을이 앞산 너머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고 웃말은 이 마을이 궁종리에서 위에 있다고 하여 웃말이라 부른다.

궁종리는 마을 지형이 활처럼 생겼다고 해서 활마루라 하였는데 후에 궁종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칠송고개를 사진에 담고 좌측 파란 초지밭 가장자리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전기펜스가 쳐져 있고 그 아래에는 거대한 축사동과 비닐하우스가 내려다 보인다.

강원도축산기술연구소는 청정환경 여건을 살린 강원한우를 전국 제일의 한우브랜드로 육성하기 위하여 한우육종개량사업 및 한우고급육생산, 사양기술연구사업 등을 추진하고 한우수정란 젖소이식사업 및 체세포복제 송아지 생산사업 등 첨단생명공학 기술의 개발로 축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주력하는 한편 멸종위기에 있는 토종 가축의 혈통을 보존 및 확대생산 보급으로 지역 특화사업 육성을 위한 칡소 및 재래 닭을 시험사육 하고 있는 기관이다.

 

우측에 전기펜스와 축사동을 두고 좌측으로는 드넓은 초지를 두고 걸어가는 시간은 참으로 꿈결 같다는 생각이다.

이 산객이 나이들어 꿈꾸는 자연속의 세상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 등로였기 때문이기에 언제일지 몰라도 꼭 그 꿈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잠시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오르니 전주이공과 부인인 원주원씨의 합장묘를 만나고 은사시나무 군락지를 따라 걸어 본다.

등로 우측으로 벌목지가 나타나더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좌측의 드넓은 초지 주위에 설치된 철조망을 따라 그 초지밭을 빙 둘러 진행을 하게 된다.

좌측 저 아래 드넓은 초지밭 한가운데에 또 다른 축사동이 보이는데 생각보다 드넓은 초지에 잠시 놀라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낙엽이 깊게 쌓인 수로같은 등로도 지나고 진달래꽃길도 걸으며 다시 평이한 능선 등로로 들어가니 분홍빛 진달래가 만개한 등로 한가운데에 이름을 알 수 없는 NO 027이란 삼각점이 박혀있다.

무슨 의미인지 ???

그래도 푹신한 낙엽 등로가 오랫만에 장거리 산행을 하고 잇는 이 산객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이름 모를 삼각점을 지나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602봉 산불감시초소에 도착을 하는데 약간의 허기를 느껴 이곳에서 준비한 김밥 한줄로 허기를 면해 본다.

하지만 식사 후 주위 조망을 살펴보니 잡목들로 가려 전혀 보이는 것이 없으니 다시 산불감시봉을 지나 빠르게 내려간다.

혹시나 하고 산불감시원이라도 있으면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었는데 아직까지 산행을 하면서 단 한명의 사람도 만날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잣나무로 이뤄진 멋진 내리막 ㄷ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내려가니 밤나무 안부를 통과하고 연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자연을 바라보며 새로 시작한 이 산객의 인생도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조금은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도전하기 위해 새로 일을 시작하였으나 계획대로 되지 않아 무척 고생은 하였지만 더 늦기 전에 좋은 경험을 하였으니 앞으로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래본다.

다시 묘지 한기를 지나 무명봉을 넘고 안부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6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황재에 도착을 한다.

황재(500m)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와 우천면 하궁리의 경계에 있는 2차선 6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로서 고갯길이 다른 곳보다 진한 황토을 띠어 황재라는 지명이 유래되었고 고개 우측 아래에는 현천리 마을이 있다.

횡성군 둔내면과 우천면을 가르는 황재에서는 도로 따라 좌측 둔내면 방향으로 잠시 내려가 도로 우측의 약초농장 철조망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 된다.

 

약초농장의 강력한 경고판이 철조망에 붙어 있는데 이곳을 지나는 산님들도 조심하고 농장 주인도 맥 잇기 산행을 하는 산님에게는 조금 더 유연하게 대해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철조망을 따라 잠시 더 진행을 하니 금새 그 철조망과 헤어지고 곧이어 묘지 몇기를 만나는데 그 묘지 한쪽에 많은 할미꽃 가족들이 봄맞이를 나온 듯 옹기종기 모여있다.

할미꽃은 다년생 초본으로 근경이나 종자로 번식하는데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이나 들의 양지쪽에서 자라며 뿌리는 굵고 흑갈색이며 윗부분에서 많은 잎이 나온다.

잎은 잎자루가 길고 5개의 소엽으로 구성된 우상복엽이며 전체에 긴 백색 털이 밀생하여 흰빛이 돌지만 표면은 짙은 녹색으로 털이 없으며 4~5월에 개화한다.

1개의 꽃이 밑을 향해 달리며 꽃받침 열편의 겉 부분은 털이 밀생하고 안쪽은 털이 없으며 적자색이고 수과는 길이 5mm 정도의 긴 난형으로 겉에 백색 털이 밀생하며 암술대는 길이 40mm 정도로 우상의 퍼진 털이 밀생한다.

분홍할미꽃과 달리 꽃이 붉은 자줏빛이고 관상용으로 많이 심으며 독성이 있어 먹으면 복통과 설사, 즙이 닿으면 수포 등 염증이 생기는데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할미꽃 종류는 가는잎할미꽃, 노랑할미꽃, 동강할미꽃, 분홍할미꽃, 산할미꽃, 할미꽃 등이 있으며 약용으로는 같이 쓰인다.

적용증상 및 효능을 살펴보니 참으로 많은 약효를 가지고 있는 듯 한데 이 산객의 눈에는 그저 아름다운 야생화의 하나일 뿐이다.

약효에는 건위, 경중양통, 경혈, 과민성대장증후군, 뇌암, 두창, 만성위염, 백독, 부종, 비암, 비출혈, 선기, 소영, 수렴, 심장통, 암, 양혈, 요슬풍통, 월경이상, 위장염, 음부소양, 익혈, 임파선염, 자궁경부암, 장염, 장위카타르, 장출혈, 적백리, 적취, 정혈, 지혈, 진통, 청혈해독, 치암, 치출혈, 타박상, 폐암, 풍양, 피부암, 하리, 학질, 한열왕래, 해독, 해열, 혈림, 혈전증, 활혈, 흉부냉증에 사용된다.

 

그렇게 할미꽃 가족들과 헤어져 잠시 더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드넓은 인산포가 펼쳐져 있어 잠시 놀란다.

에전에는 전혀 예상도 못했던 인삼을 이곳 강원도 산골에서까지 재배하고 있음에 식생 분포의 변화를 실감하는 시간이다.

나즈막한 능선을 넘어가니 다시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데 이곳이 바로 고들고개이다.

고들고개는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하궁1리 샘미둔지에서 현천리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로 둔내면 십교리를 개척했다는 안삽교가 원주에서 볼 일을 보고 현천으로 가는 길에 호랑이새끼를 고돌에 끼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 호랑이 새끼를 정패랭이골에 사는 정패랭이가 살려줬다고 하며 고지에는 고독현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 거꾸로 올라 오는 산객 한명을 만나 인사를 건넸지만 무안하게도 대꾸도 안하고 휭하니 가 버린다.

맥을 타는 산객인지 궁금하였는데 ...

 

고들고개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멋진 잣나무 군락지가 펼쳐지고 묘지가 보이더니 등로 좌측으로 민가들과 비닐하우스 그리고 비닐밭들이 드넓게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등로는 이곳에서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덕송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다 영동고속도로를 통과해야 덕고산을 오를 수 있다.

즉 영동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영월지맥 마루금도 잘려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약간 우회하며 진행을 하게 된 것이다.

민가 앞 비닐하우스를 돌아 내려오니 덕송리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고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약간 걸어가며 진행한다.

 

덕송로를 타고 잠시 걸어 내려가니 도로가 우측으로 약간 휘어지는 좌측으로 비닐하우스 가운데로 비포장 임도가 나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니 민가 2채가 서 있다.

그 민가 앞에서 우측으로 틀어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앞에 영동고속도로 옹벽이 가로막고 그 옹벽을 좌측에 두고 우측에는 비닐하우스를 두고 그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밭 둑을 타고 걸어간다.

잠시 더 걸어가니 안흥과 부채골 가는 도로표지판 직전 좌측으로 하수 지하통로가 보이고 물이 없기에 그곳을 통해 어렵게 영동고속도로를 통과한다.

 

영동고속도로를 통과한 후 둔내면 현천리 마을길을 타고 눈 앞에 올려다 보이는 덕고산으로 향한다.

현천리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 있는 리로서 남쪽으로 주천강이 흐르고 동쪽에는 신선봉, 쇠돌봉 등이 있으며 골짜기가 많은 중산간지역이다.

자연마을에는 가매봉, 물근네, 선락동, 황우촌 등이 있는데 가매봉은 마을에 가매봉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설에 의하면 옛날 강감찬 장군이 원주 치악산에서 태기산까지 건너뛰다가 이곳 가매봉에서 칡에 발이 걸려 넘어져 화가 난 장군은 부적을 써서 산에 붙이며 칡이 나지 말 것을 주문하였다고 한다. 이후 이 마을과 산에는 칡이 없다고 하며 이후 장군이 강릉 어느 곳에서 공부를 하는데 개구리가 몹시 울어 부적을 붙이니 개구리가 울지 않았으며 현재도 울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니 마을 주민들이 밭에서 배추 모종을 심고 있어 조심스럽게 그 위 밭둑을 통해 정상 등로로 접근하여 덕고산 오름 마루금과 만나 우측으로 진행을 한다.

 

정상 등로를 만나 잠시 걸어 올라가다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그곳에도 드넓은 인삼포가 펼쳐져 있어 생태변화의 심각성을 새삼 깨달아 본다.

인삼포 넘어 저 멀리에는 화장품 회사인 하나코스 기업부설 연구소 입간판이 빌딩 위에 서 있는 풍경도 보인다.

그렇게 소나무와 그 아래 만개한 진달래의 배웅을 받으며 흐르는 땀방울을 닦다 보니 어느덧 덕고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덕고산(해발705봉)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와 안흥면 소사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석 하나 없고 선답자의 띠지들과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전국적으로 덕고산은 많은데 특히 이곳 횡성군에도 똑같은 이름의 덕고산이 하나 더 있는데 청일면 한강기맥길에 있는 산으로 한강기맥 등로의 덕고산은 봉복사와 함께 있어 조금 더 유명하며 여름철 피서 산행지로 알려지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덕고산 정상 코팅지 옆에 붙어 있는 띠지들을 살펴보니 이 산객이 알고 있는 산악회나 블로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덕고산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더위를 느꼈기에 곧바로 우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여전히 소나무 등로 아래 진달래가 만개하여 산행에 즐거움이 가득하다.

잠시 소나무가 사라진 곳에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저 멀리 파란 초지가 펼쳐진 강원도축산기술연구소와 그 좌측 멀리 어답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 하나가 봉긋 올라 와 있다.

다시 잠시 더 내려가니 뚜렷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마루금은 좌측 잡목이 우거진 방향으로 틀어 내려가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피나무재에 도착을 한다.

피나무재에 관한 자료는 찾지 못하였고 피나무재가 속한 소사리를 찾아보니 소사리는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 있는 리로서 서쪽에는 봉화산이 있고 동쪽에는 덕고산이 있다.

산자락에 위치한 중산간마을로서 자연마을에는 동박골, 뒷말, 샛땀, 웃말, 태오지 등이 있다.

소사리는 원래 현감 정우주의 애민선정비를 세우고 그를 사모하는 뜻으로 소사비리라 하였는 데서 그 지명이 유래되었다.

소사리에는 영동고속도로 횡성휴게소가 있는데 예전엔 소사 휴게소로 불렸다.

옛날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사람들의 흔적이 사라져 사라지는 고갯마루가 되어가고 있다.

 

피나무재를 지나 벌목된 나무들을 쌓아 놓은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여전히 아름다운 소나무와 진달래 등로가 이어지고 등로 좌측으로는 등로 가까운 곳까지 밭 경작지가 들어 와 있다.

웅덩이가 있는 무명봉을 넘어 내려가니 둔내면과 안흥면을 이어주는 덕송로 2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한다.

오늘 산행 후 저 안흥으로 갔다가 다시 둔내로 들어가야 되기에 머릿속에 각인되는 지명 이름들이다.

혹시나 해서 지도를 살펴보지만 이곳은 아무 이름도 없는 무명 고갯마루이기에 또 다시 고개가 까웃거려지는 순간이다.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잠시 내려가다 좌측으로 녹색 철망이 쳐져 잇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들어가니 드디어 영동고속도로를 만나고 위에서 아래를 살펴보며 사진 몇 장 남겨 본다.

영동고속도로는 천광역시 남동구와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을 연결하는 한국의 고속국도 제50호로 1971년 개통되었다.

총 길이는 234.40 Km로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남부, 강원도의 주요 도시를 경유하며 일부 구간의 잦은 교통 정체를 완화하기 위해 2016년 개통된 광주원주고속도로와 경기도 광주시에서 연결된다.

예전에는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던 영동고속도로인데 복선화와 직선화 작업 및 제2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요즈음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생각보다 막히지 않는 고속도로가 되었다.

 

등로 우측에 영동고속도로를 두고 좌측의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좌측 저 멀리 삿갓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 하나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술래잡기를 하자고 졸라댄다.

잠시 더 걸어 출입금지라는 입간판이 서 잇는 곳 옆 지하통로를 통해 영동고속도로를 건너 걸어가니 목장이 나타나는데 그 목장 뒷산으로 진행했다 다시 내려와야 하기에 다시 지하통로를 통해 고속도로를 건넌 후 다음 지하통로까지 계속 걸어가기로 한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민가가 나타나는데 옆에 있는 강아지들이 귓청을 때리는 강렬한 울부짖음으로 이방인을 경계한다.

 

그 민가를 지나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 아래로 향하는 도로를 버리고 좌측 평이한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 아래로 민가가 보이고 그 뒤로 영동고속도로와 저 앞으로 고속도로의 횡성휴게소 입간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참으로 자주 이용했던 횡성휴게소인데 요즈음은 이렇게 산행을 위해 오는 길에 새벽에 잠시 들려 라면 한그릇 먹는 것이 전부이니 언제 다시 예전처럼 들릴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도로 우측으로 영동고속도로 위로 달리는 차량들을 바라보며 걸어가니 이제 도로 좌측 저 멀리 민족사관고등학교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민족사관고등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립고 형태로서 민사고를 설립한 최명재 회장이 설립한 저온살균법으로 생산하는 피스퇴르 유업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98년에 부도가 나 한국야쿠르트가 인수하였다가 또다시 롯데삼강이 인수하였고 지금은 법인이 소멸되고 브랜드만 남아있는 비운을 맞이했다.

처음 설립되었을 때만 해도 혁명적인 고등학교였는데 이제는 이 명성도 많이 퇴색된 듯 하다.

 

언듯 보면 왠만한 전문대학교나 대학교 보다 더 시설이 넓고 좋아 보이는 민족사관고등학교를 바라보며 계속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으로 지하통로가 나타나 그 지하통로를 통해 영동고속도로를 건너 봉화산으로 향한다.

오늘 참으로 많이도 영동고속도로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건너 보는 시간이다.

 

지하통로를 건너자 마자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 능선 방향으로 마루금이 열려 있어 그 능선으로 오르며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잡목이 앞을 막는가 싶더니 금새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나즈막한 무명봉을 지나 벌목지를 지나니 예쁜 진달래꽃 등로를 넘어 낙엽송 지대를 걷는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콘테이너 박스와 노인요양원 둥지마을 가는 이정판이 서 있는 횡성휴게소 서울 방향의 건물 뒷편에 도착을 한다.

먹거리도 충분하기에 건물만 사진에 담고 이제는 새로 포장된 봉운사 진입도로를 따라 걸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이곳 봉운사는 예전에는 자성사라는 이름의 암자였지만 지금은 봉운사로 이름이 변경된 듯 보였다.

 

벗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 봉운사 가는 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니 봉운사에서 들리는 불경소리가 참으로 평온하게 만들고 있다.

마을 축사가 보이는 곳 우측으로 능선 진입로가 보이고 그곳으로 들어가니 운동기구와 벤취들이 보이더니 금새 평이한 소나무 등로가 예쁘게 펼쳐져 있다.

봉화약수터와 시계(인연)바위 화살표 안내판을 보고 계속 오르니 전위봉을 지나 삼각점과 봉화대 안내판이 서 있는 봉화산에 도착을 해 잠시 쉬어 간다.

봉화산(685봉)은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소사리와 궁종리 및 상대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 685미터로서 조선 시대에 봉수대가 있었으며 지금도 와편이 나온다고 하고 봉호뚝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현재는 그 봉화대는 찾을 수 없으나 동서로 태기산과 치악산이 눈에 들어 와 예전부터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봉화를 올렸다고 한다.

 

그 봉화산에서 다시 빵과 과일로 허기를 면하고 추억 한장 남기고 내려가니 이곳도 역시 분홍빛 진달래 꽃 등로이다.

잠시 더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또 다른 인삼포가 넓게 보이고 봉운사에서 들려오는 불경소리는 더욱 산객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고 있다.

잠시 후 나무들을 쌓아 놓은 곳 옆으로 봉화약수터 가는 화살표가 되어 있는데 그리 멀지는 않아도 필요한 것이 없으니 곧바로 다시 출발한다.

 

약수터를 지나 평이한 산책로 같은 등로를 따르니 묘지들을 지나 밭과 논이 보이는 비포장 임도를 따른다.

잠시 더 진행하다 불경소리가 들리는 봉운사를 줌으로 당겨 보니 비닐하우스 넘어 저 멀리 봉운사 대웅전이 눈에 들어 온다.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따라 이제 다시 한번 더 지하통로를 통해 영동고속도로를 건너 본다.

 

영동고속도로를 건너자 마자 횡성콩마당된장 입간판이 보이고 그곳으로 오르니 갈림 사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으로는 2차선 포장도로가 영동고속도로와 나란히 지나고 있다.

그곳에서 도로 좌측으로소사리 태오지마을 방향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본다.

잠시 걸어 들어가니 횡성콩마당과 축사들이 보이고 그 뒤로 진행해야 할 영월지맥 마루금도 올려다 보인다.

 

다시 나타나는 갈림 삼거리에서는 좌측 도로를 버리고 우측 도로를 타고 걸어간다.

이곳은 비닐하우스가 없으면 비닐농사를 짓는 집들이 많은지 이곳에도 비닐 농사를 짓고 있다.

잠시 더 걸어가니 갈림 사거리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데 그 앞으로는 농부가 세워 둔 트랙터 한대가 이채롭다.

농촌이기에 가능한 트랙터 보관 방법일 것이다.

 

그곳 비포장 임도를 지나 능선으로 들어가니 솔갈비가 폭신한 소나무 등로가 반기고 고사목이 있는 무명봉을 넘어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소나무 등로를 따른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옆으로 검정 천막이 쳐진 등로와 만나 진행된다.

 

다시 소나무 안부를 지나 솔갈비가 깔려 있는 푹신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너무나 멋진 소나무가 반겨 준다.

등로 우측으로는 이제서야 내일 올라야 할 매화산과 치악산 줄기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모습에 지쳐가던 발걸음에 힘이 생겨 난다.

그 멋진 소나무 등로를 내려가니 철조망이 막혀있고 그 옆을 돌아 나가니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난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잠시 걸어 올라 소나무 한그루가 능선에 서 있는 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계속 걸어 본다.

지도를 보니 이곳이 아래태오지 임도로서 소사리에 속하는 마을인 듯 싶다.

 

능선으로 오르니 말라 죽은 회색빛 억새가 바람에 하늘 거리고 이제 우측 능선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는데 등로 좌측으로는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봉화산과 그 아래 봉운사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소사리에 속한 마을로서 이 산객이 어릴 적 살았던 고향 땅과 비슷한 풍경이라 이곳에서 잠시 더 발걸음을 멈춰 본다.

 

그 억새 밭을 지나 오르니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올라가 있는 멋진 잣나무 등로가 열려 있다.

그 잣나무 등로를 지나니 다시 평이한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르다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진행을 이어간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682봉의 산불감시초소가 보이고 이곳에도 역시 산불감시원은 보이지 않는다.

관리가 되지 않아 잡목이 우거져 있고 주위 조망도 보이지 않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내려간다.

 

이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면서 부터 풍취산까지는 정말로 지루하고 고단한 산행이 되었다.

출발하기 전 충분한 거리와 시간을 확인했어야 되는데 그저 쉽게 생각해 얼마 지나지 않아 풍취산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을 했는데 앞으로도 두시간 이상 걸어가서야 어렵게 만났기 때문이다.

평이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살펴보니 이곳은 무명 임도이다.

 

시멘트 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곳 좌측으로 마루금이 이어지고 그곳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무명봉을 지나 입산금지 안내판을 통과하니 또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등로 우측으로는 멋진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금빛붓꽃이 지천에 깔려 있고 그곳을 지나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낡은터에 도착을 한다.

낡은터고개(1차선 포장도로)는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오원리 논골부락에서 안흥면 소사리 낡은터로 이어지는 고개로 절개지에 포장도로가 있으면 우측으로 소사리 낡은터라는 마을이 있다.

이 비포장 임도는 조금 더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는데 이 산객이 살았던 시골에도 낡은터라는 마을이 있어 다시 한번 마을 이름을 생각해 본다.

마을 아래에는 삼성목장이 있는 곳으로 이곳은 축사 냄새는 아직 나지 않는다.

 

또 다시 도랑같은 등로 양쪽으로 멋진 잣나무들이 자라고 그곳을 지나니 평이한 잡목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또 다시 잣나무가 식재된 듯한 등로를 지나 낙엽송 군락지를 통과하니 지독한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우측으로 크게 휘돌아 우회하며 걸어 힘들게 오른다.

한참을 휘돌아 오르니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이 흐를 쯤 삼각점 2개가 박혀있는 689.6봉에 도착을 해 잠시 풍욕도 즐겨 본다.

 

벌써 태양이 무서워 그늘을 찾게 되는 시간이 늘어만 가는 산행이 되었다.

잠시 평이하게 걸어가니 갑자기 눈 앞에 벌목지대가 펼쳐지고 이제 그 벌목지대를 타고 우측 경계능선으로 걸어 본다.

안흥면 송한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진행 방향으로는 이어지는 벌목지대 저 멀리 내일 올라야 할 매화산이 우뚝 솟아 있다.

송한리는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 있는 리로서 동쪽으로 주천강이 흐르고 서쪽에는 풍취산이 위치한다.

자연마을에는 아랫말, 양지말, 음지말, 장자터 등이 있는데 송한리는 산속 골짜기에 마을이 있으므로 속안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송한이 되었다고 하며 또 다른 유래로는 소나무가 많아서 송한리라 불렀다고도 전해진다.

이제 4월인데 벌써 무더위와 싸워야 하니 여름부터는 어떻게 산행을 이어가야 할지 벌써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다.

 

벌목지대의 경계선을 타고 걸어가니 예쁜 붓꽃이 청초하게 피어나 힘들게 걸어가는 이 산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진달래 꽃 길이 열려있고 다시 안부를 지나 무명봉에 오른다.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낙엽송이 서 있는 비포장 임도와 만나 잠시 편안하게 진행하다 잡목이 거칠게 자라는 평이한 등로로 들어간다.

지나 온 벌목지대와 등로도 아름다워 잠시 더 쉬면서 많은 사진을 남겨 본다.

 

미세먼지도 사라지고 박무도 사라진 날씨로 인해 너무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조망이 펼쳐져 있다.

안부를 지나 걸어가니 다시 사라졌던 발목지대가 나타나고 안부를 지나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몇개 봉우리는 올랐던 백덕지맥의 산들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너무나 환상의 조망을 선물하고 있다.

사자산과 백덕산 줄기가 보이고 그 앞으로는 표때봉과 삿갓봉 그리고 그 주위 산줄기들도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어우러져 최근 들어 가장 완벽한 조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즐기며 다시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지만 이제 20여 Km 이상을 진행하면서 발걸음도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하는데 기다리는 풍취산은 보일 기미도 없어 지루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밤나무 단지가 나타나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소나무 등로와 만나 걸어 본다.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걸어 보니 금새 삼각점 하나가 보이는 653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와 낙엽송 지대를 진행하니 몇기의 묘지들이 보이고 또 다시 낙엽송과 소나무 등로가 열린다.

등로 좌측으로 안흥리 마을이 보이더니 다시 낙엽송과 소나무 등로로 이어지고 분홍빛 진달래가 만개한 등로도 통과를 한다.

673봉을 지나 가지치기가 잘 되어 있는 잣나무 군락지를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곧이어 안흥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이곳에서 갑자기 두 다리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더욱 무거워져 성림건축 건물 앞에서 잠시 쉬어간다.

새터고개는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오원리와 안흥면 송한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민가와 농촌체험학교가 자리 잡고 있으며 새터고개는 행정구역상 안흥면에 속하는데 이제는 오원리 새터가 안흥리로 편입되어 그 의미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새터고개의 지명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마을이 새로 생기면서 그렇게 부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인데 풍취산 아래에 폭 파묻혀 있는 느낌이다.

 

안흥리 새터마을에서 한동안 쉬고 다시 힘을 내 출발하니 등로는 비포장으로 이뤄져 잇고 등로 좌측으로 파란 그물망이 쳐져 있다.

잠시 오르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좌측 파란 그물망이 쳐져 잇는 등로를 타고 올라 본다.

한동안 오르니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좌측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마루금은 우측 능선으로 이어진다.

능선으로 오르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려잇고 곧이어 양철 조각이 묻혀있는 642봉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셔 본다.

 

642봉을 지나 억새가 말라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오원리의 오원저수지와 마을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오원리는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에 있는 리로서 북취산의 북쪽, 덕어산의 서쪽에 있는 구릉성 지형으로 자연마을로는 논골, 개미재, 덕가래, 양지말, 줄봉 등이 있다.

오원리는 까마귀가 많이 날아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오원리에는 조선시대 때 오원역이 있었는데 이 때 강릉을 왕래하는 길손이 머무르던 역과 역밭의 흔적이 마을에 남아 있다.

잠시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이동통신탑이 서 있고 눈 앞으로는 이제 그토록 보고 싶었던 풍취산이 솟아 있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오르니 드디어 헬기장처럼 넓은 공터에 풍취산 정상 코팅지와 깨진 삼각점이 보인다.

풍취산(해발697.2봉)은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안흥리와 우천면 오원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은 넓은 공터로 이루어져 있고 정상석은

없지만 식별이 어려운 삼각지이 설치되어 있고 나무에는 정상을 알리는 종이 코팅지가 보인다.

지명을 바람풍과 불취자를 쓰는데 횡성군 우천면과 안흥면의 자료 어디에도 풍취산에 대한 자료는 보이질 않는다.

또다른 지명은 서북쪽이 탁 틔어서 바람이 늘 세게 불어 바람부리산 혹은 풍차산이라고 부른다.

 

 

풍취산에서 남아 있는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랜 후 이제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그 풍취산을 내려 온다.

잘 자라고 있는 활엽수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평이하게 변하고 낙엽송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좌측으로는 낙엽송이 우측으로는 굵은 소나무가 열병하듯 줄지어 늘어선 환상의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고도가 낮아질수록 앙상한 가지마다 연두빛 봄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렇게 환상의 소나무 등로를 지나 가지치기된 나무들이 말라잇는 마지막 647봉에 도착을 하니 등로는 이제 우측 사면 하산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갑자기 눈 앞에 녹슨 철조망이 보이고 잠시 후 전재터널 위 전재 정상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안흥면은 강원도 횡성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원래 실미원의 이름을 따서 실미면이라 하였고 그 후에 정곡의 이름을 따라 정곡면으로 고쳐서 10개 리를 관할하였으며 해동지도, 여지도, 광여도, 지승, 1872년지방지도에 정곡면이 표시되어 있다.

1916년 군면폐합에 의하여 산전리, 가좌리, 정금리, 궁종리, 대미원리 등 17개 리로 개편하고 1937년 안흥역의 이름을 따서 안흥면으로 고쳤으며 1953년 정금리에 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63년 영월군 수주면의 강림리, 부곡리, 월현리를 병합하고 그 중심지인 강림리에 출장소를 설치하였으며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정금출장소 관할 상대미원리, 중대미원리, 하대미원리, 상가좌곡리, 하가좌곡리, 상산전리, 하산전리, 정금리, 용둔리의 9개 리를 우천면에 궁종리가 둔내면에 편입되고 둔내면 영랑리의 일부인 양지말과 하영을 성산리로 개칭하여 안흥면에 편입하였다.1989년 우천면 오원리 일부인 새터가 안흥면 안흥2리로 편입되고 강림출장소가 강림면으로 승격하여 9개 리가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려 온 방향으로는 안흥면의 유래를 적어 놓은 이정석이 서 있다.

전재 정상은 이제 그 아래 새로 뚫린 왕복 4차선의 전재터널로 인해 오늘 이 산객처럼 산행을 위해 오르는 사람을 제외하면 찾는 사람 하나 없는 사라지는 고갯마루가 되었다.

전재(해발540m)는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안흥리와 우천면 오원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1917년 발행된 지형도에는 증치라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42번 구 지방도로가 있지만 고개마루에서 출입통제하여 바레게이트를 설치해 두었으며 전재에서 우측방향으로는 안흥면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는데 아래로 안흥찐빵으로 유명해진 안흥면 소재지가 있고 도로 좌측편에는 교통 표지판과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옛날에는 그 고개가 워낙 높고 험하여 지나가는 소장수를 노리는 산적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전재에서 좌측의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42번 4차선 포장도로 옆 안흥2리 버스정류장으로 걸어 내려간다.

장거리 산행에 뜨거운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는 시간은 참으로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42번 지방도로 근처에 도착을 하였을 때 전재에서 내려오는 트럭이 있어 손을 드니 태워주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안흥면에 도착을 해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안흥찐빵은 강원 횡성군 안흥면 소재지에서 만들던 빵으로서 현재 안흥면 소재지에는 찐빵 가게가 20곳 가량 되는데 일명 찐빵 마을로서 해마다 찐빵 축제도 연다.

안흥 찐빵이라는 이름의 찐빵은 이 마을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와 길거리 곳곳에서 이 안흥 찐빵을 볼 수 있는데 물론 그 중에 이 마을에서 만들어낸 찐빵은 많지 않을 것이지만 어디에서 만들어졌건 어떤 맛이 나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안흥 찐빵이기만 하면 잘 팔리기 때문에 신비로운 일이다.

왜 안흥찐빵인가

한국전쟁 이후 찐빵은 전국 어디에나 있는 음식으로 학교 앞 분식집에서, 주택가 길모퉁이 가게에서 시장의 노점에서 흔히 팔았던 이 흔하디 흔한 찐빵이 안흥이라는 조그만 산골에서 터졌다.

이 일을 두고 영동고속도로가 나기 전 안흥에 서울-강릉간 버스 터미널이 있어 왕래하는 사람이 많아 그 영향으로 유명해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안흥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의 찐빵 제조 비법이 있는 듯이도 말하나 그 당시 시골의 터미널 앞에는 으레 찐빵 가게가 한둘은 있었고  베이킹파우더 대신에 막걸리를 넣는다든지 하는 찐빵 제조 노하우는 공공의 정보였다.

안흥 찐빵이 유명해진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안흥은 후치악(치악산의 동쪽)으로 들어서는 길목으로 예부터 등산객이 자주 지나치는 곳인데 1990년대 중반 안흥의 찐빵 가게가 어느 등산 잡지와 신문에 조그맣게 기사로 났는데 그게 바로 심순녀 씨가 하는 찐빵 가게였다.

당시 안흥에는 찐빵 가게는 이곳 하나밖에 없었고 또 어느 구석에 다른 찐빵 가게가 있었다 하여도 중요한 일이 아니었는데 냄비 두어 개 내놓은 구멍가게였기 때문이다.

맛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열아홉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와 온갖 행상을 하다가 찐빵 가게를 차렸다는 심순녀 씨의 인생담이 더 눈길을 끌었는데 1997년 한국은 IMF 구제금융 시대를 맞아 기업은 도산하고 사람들은 직장을 잃었다.

1980년부터 승승장구하던 한국이 외채 구렁텅이에 빠져들었는데 이때에 가난의 시절에 먹었던 음식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였고 길거리마다 옛날 짜장면 간판이 즐비하였으며 이는 한국전쟁 이후 20~30년간의 가난을 생각하면 IMF 정도야 별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당시 언론들이 이런 음식을 집중 보도하게 되는데 여기에 안흥 찐빵이 대표로 걸려든 것으로 그렇게 하여 안흥 찐빵이 폭발한 것은 1998년이었는데  1~2년 만에 2011년 현재의 찐빵 가게 숫자가 되었다.

안흥 찐빵이 지금도 인기가 있다는 것은 한국 경제 사정이 여전히 좋지 않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이곳이 그 유명한 안흥찐빵으로 알려진 안흥면이었다. 

 

안흥면사무소가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둔내로 가는 버스편이 많지 않아 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어 안흥초등학교까지 걸어가는데 발바닥에 불이 나 죽을 지경이다.

그래도 참고 조금 더 걸어 힘을 내니 안흥초등학교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둔내 방향으로 서서 지나가는 차량에 손을 들어 히치 하이킹을 시더하니 금새 차량 한대가 서서 태워준다.

마침 둔내를 들리지 않고 지나가는 차량이기에 마침 이 산객이 주차해 놓은 애마가 있는 마암리까지 편안하게 돌아 갈 수 있었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며 애마를 회수 해 횡성으로 들어 가 제일 먼저 샤워를 하고 횡성 구 축협 앞 버스정류소에서 내일 아침 전재로 가는 첫차를 확인하니 2-2번 수동가는 7시 3분 차가 첫차이다.

다시 여관을 잡아 놓고 갈비집에 들어가 갈비탕 하나에 소주한병과 맥주 한병을 시켜 소맥으로 목마름을 달랜 후 갈비로 허기를 날래니 오늘 하루가 이 산객의 하루가 되었다.그렇게 거나한 저녁 식사를 즐기고 여관으로 돌아 가 곧바로 잠자리에 들어 새벽 5시까지 정신 놓고 잘 수 있었다.
내일도 무탈하게 치악산을 넘어 곧은치로 내려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