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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운달지맥(대간·완)

운달지맥 제1구간 대미산에서 문경활공장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7.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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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북도 문경시의 운달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7년 07월 29일 (토요일 당일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짙은 안개로 인해 조망이 전혀 없었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21도에서 영상 30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여우목고개(901번 2차선 포장도로)-암릉구간-1043.1봉 공터-대미산(1115.1봉, 운달지맥 분기점)-여우목고개(901번 2차선 포장도로,

                 육각정과 넓은 공터)-산불감시초소-운달공덕분맥 갈림삼거리-912.5 삼각점봉(911.9봉)-운달공덕분맥 갈림삼거리 복귀-839.6봉-882 무명봉-

                 국사봉(943봉)-마전령(비포장 임도)-성황당-간벌지대-926봉-장구령 안부-963.7봉-지독한 잡목지대-장구목 이정표(운달산정상 1.1 Km,

                 장구령 1.0 Km, 김용사 3.0 Km)-무명안부-바위암릉 우회구간-사초지대-공터-운달산(1103.2봉, 정상석과 삼각점) 이정표(헬기장과 김용사,

                 석봉산 1.4 Km, 장구목과 김용사, 장구령 2.1 Km, 성주봉 2.1 Km)-바위암릉지대-헬기장 이정표(석봉산과 김용사 및 조항령, 운달산정상,

                 금천대와 화장암 및 대성암과 김용사)-바위와 사초지대-바위암릉구간-1002 무명봉-바위암릉구간-석봉산(985.7봉) 이정표(김용사 2.1 Km,

                 헬기장과 운달산정상 1.4 Km)와 문경대간 산행 안내도-바위절벽봉-855.5봉-바위너덜구간-조항령 임도와 팔각정-비포장임도-능선 된비알-

                 절개지 안부-석탄안부-802봉-바위 및 잡목지대-이정표(문경대간 등산로, 문경읍 고요리)-문경활공장 시멘트도로-운달지맥 산행종료-

                 고요리 활공장 입구 차량통제 바리게이트-문경새재리조트-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7.37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운달지맥 산행 약 14.50 Km와 여우목고개-대미산까지 02.87 Km)

                 문경활공장 시멘트임도에서 문경새재리조트까지 약 4.5 Km는 제외

산행트랙 20170729 운달지맥제1구간 대미산에서 문경활공장까지.gpx

산행시간 : 하루종일 내리는 비와 짙은 안개속에 꾸준하게 진행하여 09시간 56분 (05시 16분부터 15시 13분까지)

교통편 : 애마로 여우목고개 넓은공터까지 이동

             문경콜택시로 문경새재리조트에서 여우목고개까지 이동(24,000.-, 010-3533-2821)

             막히지 않은 도로를 타고 귀가해 인천에서 동서들과 오랫만의 번개 모임

운달지맥이란 ???

운달지맥은 백두대간 대미산(1145봉)에서 남으로 분기 되는 능선으로 여우목고개(해발 약618미터)를 지나 911.9미터봉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마전령(661.7봉)에서 지맥의 이름을 낳은 운달산(1097.2봉)으로 이어지고 운달산에서 계속 남진하는 운달지맥은 석봉산(983봉)을 지나면서 내려 앉았다

조항령을 지나 현재 활공장으로 변한 866.9미터봉을 살짝 들어올린 다음 남쪽 단산(956봉), 배나무산(813봉)과 월방산(360.1봉), 약천산(212.3봉)에서 천마산으로 이어진 다음 금천이 낙동강에 합수되는 삼강나루인 삼강교에서 맥을 다하는 약 48.8 Km의 산 줄기를 말한다.





하루종일 내리는 비와 짙은 안개로 인해 조망 한번 구경하지 못하고 중간에 중단했던 새로운 운달지맥에서의 아쉬웠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지난 주 갑자기 오르고 싶어 처음으로 찾았던 주흘산과 부봉에서 문경시내를 지나 바라보며 안개속 숨은 그림 찾기만 하다 돌아 온 운달산이 그리워 생각지도 못했던 운달지맥 산행을 시작해 보지만 역시나 장마철 내리는 빗방울이 많은 아쉬움을 남겼던 시간이다.

오르고 싶은 지맥들이 많아 고민하다 기상청에 들어 가 주말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지역을 검색하다 보니 문경지역은 흐리지만 비가 내릴 확률이 낮게 나와 있어 이틀간 진행할 산행 준비를 하여 주저없이 그쪽 문경지역으로 내려가지만 역시나 구라청임을 알게 된 것은 여우목고개에 도착하자 마자이다. 

여름 휴가펄 피크라는 단어와 관계없이 새벽 이른 시간에 집을 출발해 뻥 뚫린 도로를 따라 예장된 새벽 4시에 산행 들머리인 여우목고개에 도착을 하니 자욱한 안개속에 정처없이 비는 계속 내리고 있어 산행 준비를 하지 못하고 차안에서 약 한시간 정도를 더 잠에 들었다 일어나니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안개비로 변해있어 재빨리 산행 준비를 하고 대미산이라도 다녀오기로 해 본다.


하루종일 내리는 빗줄기를 맞으며 짙은 안개속에 눈 앞에 펼쳐진 등로만 바라보며 걷다보니 지루하기 그지없고 바람이 통하지 않는 비옷까지 입고 진행하니 온 몸이 쓸리며 생채기가 나 쓰라리기 시작한다.

더욱이 802봉에서 간식을 먹고 있는데 옆지기로부터 예상치 못한 전화가 걸려오는데 오늘 일찍 귀경을 하면 동서들과 처제들 함께 인천에서 긴급 번개 모임을 하자는 제안을 듣고 나니 더 이산 진행하고자 하는 의욕이 사라지고 가장 가까운 탈출로에서 탈출하기로 하고 문경활공장에서 미련없이 하산을 결정한다.

하지만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하산하며 오늘 처음으로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을 감상하며 다시 산행을 이어갈까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다음을 기약해 보는 시간이다.

바로 앞 문경 좌측인 남쪽으로 봉명산이 우뚝하고 그 뒤 우측 저 멀리에는 백두대간 상의 백화산과 황악산을 필두로 조령산과 신선암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정상부에는 아직도 하얀 구름인지 안개가 춤을 추고 있다.

그 우측 끝자락에는 지난 주 올랐다 내려 온 주흘산과 부봉 능선이 하얀 암봉을 드러내며 다시 한번 더 만나자고 약속을 종용하고 있는 듯 하다.


새벽 4시에 도착한 901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여우목고개에 도착을 하니 아직도 어둠속에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있어 쉽게 산행 여부를 판단하지 못하고 차안에서 약 한시간 정도 더 달콤한 잠에 빠졌다 일어나니 새벽 5시를 넘어가는데 빗줄기가 많이 가늘어져 안개비로 변해있어 재빨리 산행 준비 후 산행이 어려우면 운달지맥 분기봉인 백두대간 상의 대미산만이라도 다녀오기로 하고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여우목고개는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 동로면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서 높이는 해발 620미터이고 지방도 제901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이다.

북쪽으로는 출입금지지역으로 묶여있다가 최근에 풀린 백두대간 상의 대미산과 남쪽으로 국사봉 산행 들머리에 위치하고 있어 이 산들을 산행하려는 등산객이 많이 찾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산줄기를 이어 걷는 지맥 산행이 늘면서 운달지맥 산행을 위해 찾는 등산객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 고개를 넘어가는 길목에 여우목 성지가 위치하고 있는데 여우목 성지는 1866년에 발생한 병인박해 때 이 곳에서 살던 30여명의 천주교신자가 체포되어 참수당해 순교하였는데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때 순교한 신자들을 성인으로 시성하면서 이 곳이 성지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산행 출발에 앞서 동로면쪽 도로와 풍경을 사진에 담고 비에 젖어 축축한 잡목 숲으로 들어가며 새로운 운달지맥 산행을 시작하는 순간이다.


산행 들머리에 서 있는 출입금지 안내판을 살펴보니 2008년부터 묶여있다가 최근에 풀렸는데 근처에 산양을 방류한 장소가 있어 다시 그 출입금지 기간을 연장한 듯 보인다.

그곳 출입금지 안내판 뒷쪽으로는 무인감시 카메라까지 설치해 철저하게 단속을 하고 잇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 어렵게 목책을 넘어 그 CCTV가 보이지 않는 곳을 통해 능선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정상 등로를 찾아 오르니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는 바위들이 보이고 바람마저 불지 않아 금새 온 몸이 완전히 젖어 버린다.

그래도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니 바위암릉 구간을 우회해 안개가 자욱한 1043.1봉에 도착을 하는데 보이는 것은 그 정상부에 피어 있는 야생화가 전부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그곳 1043.1봉을 지나 진행하니 생각지도 못한 사초가 등로에 자라며 색다른 풍경을 선사하고 별 특징 없는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 본다.

그렇게 진행하니 잠시 후 등로가 가파라지고 금새 운달지맥 분기점인 백두대간 상 대미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 대미산 정상의 출입금지 안내판에는 여전히 2017년 2월에 그 출입금지가 풀렸다는 안내글이 보인다.

그곳에서 비옷을 벗고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은 후 추억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해 올라 온 여우목고개 방향으로 되돌아 내려가 본다.

대미산은 경ㅇ상북도 문경시의 문경읍 중평리와 동로면 생달리 및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115미터이다.

대미라는 지명은 여지도서의 문경편에 대미산은 현 동북 30리에 있는데 동쪽의 풍기 소백산으로부터 와서 본 현 여러 산들의 주맥이 되었다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산 정상부에 눈썹만큼의 봉우리가 돋아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는 이 산 바로 아래의 여우목과 하늘재(계립령)는 문경새재가 있기 전 한양으로 통하는 주요 길목이었다고 한다.

청구도에 대미산이 계립산 위쪽에 1872년지방지도에는 현재와 다른 한자 표기의 대미산이 지도 상단에 높은 산지의 대지와도 같이 표시되어 있으며 조선환여승람에는 이황 선생이 대미산으로 명명했다고 하여 또 다른 한자 표기가 나타난다.

문경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산인 대미산은 백두대간이 설악산, 오대산, 소백산을 지나서 죽령을 만들고 도솔봉(1314)을 지나 벌재를 만들고 다시 황장산(1077)을 일으키며 달려와 이 산을 지나서 하늘재, 문경새재, 이화령을 두고 희양산, 속리산을 지나 멀리 지리산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곳에 아주 점잖고 편안하게 앉아 있는 산이다.

원시림과 함께 족두리풀, 천마, 향유, 산부추, 삽주, 병풍쌈 등 특이식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개자비나무 군락이 유명하여 식물학자들이 자주 찾는 산이기도 하다.

산행은 문경시내에서 택시나 버스를 이용, 중평리 여우목 마을이나 박마을에서 시작할 수 있는데 숲이 우거지고 등산로가 잘 보이지 않아 독도 능력과 안내자가 필요하며 일반적으로 여우목 마을에서 시작하면 가장 빨리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여우목 마을에 내리면 천주교 성지라는 간판과 흰 십자가와 함께 마을에 5호 정도의 농가가 있는데 마을 중간에 있는 샘에서 물을 준비하도록 한다. 맨 위의 오른쪽 농가 옆을 지나면 오른편에 큰 감나무가 있어 이것이 이정표 역할을 한다. 감나무 밑을 지나 올라서면 바로 산행기점이 되고 이곳에는 리본이 많이 붙어 있어 길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1시간 가량 오르면 정상에서 여우목고개 쪽으로 뻗은 지능선 상에 오르게 되는데 약간 공터 지대인 동로면 생달리 돼지골의 최상부인데 숲 밑의 풀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경사가 급하지 않은 길을 따라 40여 분을 오르고 다시 5분 정도 급한 경사를 오르면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은 억새 밭이어서 시원한 전망과 부드러운 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으며 소백산부터 주흘산, 조령산, 백화산, 희양산, 속리산까지의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겨울에도 위험한 구간은 없으므로 누구나 산행을 즐길 수 있고 약 5시간이면 마칠 수 있으며 돼지골, 심마골 등 수량이 풍부한 용하구곡이 잘 알려져 있다.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두어번 지난 추억이 있는 곳인데 워낙 오래된 세월이다 보니 기억도 가물거리고 있다.


다시 대미산 정상을 사진에 담고 본격적인 운달지맥 산행이란 이름으로 내려가니 등로에는 사초가 깔려있어 파란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부드럽고 잠시 후 오를 땐 잘 보지 못했던 많은 버섯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대부분이 식용인 달걀버섯과 독버섯의 일종인 광대버섯이 대부분이다.

점점 더 짙어지는 안개로 인해 가끔은 몽환적인 모습이 반갑지만 여전히 내리는 빗줄기로 인해 온 몸과 등산화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어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다시 1043.1봉을 지나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미끄러운 등로를 내려가니 무인감시카메라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 돌아 걸어가니 금새 여우목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빗줄기가 더욱 굵어져 국사봉 방향의 산행 들머리쪽에 설치되어 있는 육각정으로 가 잠시 옷을 벗어 물기를 짜내고 쉬면서 빗줄기가 가늘어 지기를 기다려 본다.


오늘 대미산을 다녀 오며 산행 들머리와 날머리로 이용하였던 901번 2차선 포장도로의 풍경이다.

이곳 여우목고개는 또한 여우목성지로 유명한 곳인데 여우목고개라는 이름도 여우목 성지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 되는 시간이다.

천주교 여우목 성지는 대미산 자락에 자리잡은 마을로서 여우목 마을은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와 문경읍 중평리를 이어주는 여우목 고갯길이 마을 앞으로 지나간다.

조선 말기 천주교 박해를 피해와 신자촌을 이루며 살았던 한국 천주교 신앙의 순교자 이윤일(요한) 성인이 살았던 마을로서 요한 성인은 충청도 홍주태생으로 언제부터 이곳에 살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병인 박해가 한창이던 1866 11 18일 이곳에서 30여명의 천주교신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상주감영으로 끌려간 후 대구 감영으로 이송된 요한성인은 1867 1 21일 관덕정에서 참수 순교하였다.

오늘 산행 후 귀가하면서 잠시 이곳 여우목성지 입구쪽 계곡물에 비와 땀에 쩔은 몸을 닦은 후 귀가하게 되었는데 그때 여우목성지 표지석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이곳 육각정에서 젖은 등산복과 속옷을 벗어 물기를 짜내고 비가 멈출 때까지 잠시 휴식을 취해 본다.

등산화도 약간의 물기가 스며들기 시작해 눅눅해지기 시작하여 이곳에서 산행을 계속 이어갈지 아니면 중단할지 결정을 해야 되는데 한시간 정도 기다렸다 빗줄기가 가늘어지면 진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서울로 복귀하려고 생각을 정리해 보는 시간이지만 결국 한시간을 다 채우지 못한 시간에 비가 가늘어져 우측 인삼밭 가장자리의 잡목지대를 따라 진행하다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조금 더 진행해 보기로 한다.


능선으로 오르니 비에 젖은 미끄러운 등로로 인해 여간 힘들게 오르는 시간이 아니다.

더욱이 바람 한점 통하지 않는 비옷 바지를 입고 오르는 등로이다 보니 물기를 짜낸 등산복과 속옷은 금새 다시 흥건히 젖어 와 빗물인지 땀방울이 소매 자락을 타고 등로에 떨어지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눈 앞에 갑자기 산불감시초소가 나타나는데 주위 잡목들로 인해 시야 확보도 안되는 등로 중간에 왜 이런 산불감시초소를 세웠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가파른 된비알 오르막 등로를 타고 많은 땀방울을 흘리는 시간이다.


그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힘들게 오르니 비에 젖은 미끄러운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그 바위지대를 지나니 진달래 나무 군락지가 펼쳐진다.

잠시 그곳을 지나니 조금 더 오르니 운달공덕분맥분기점이란 낡은 안내판이 나뭇가지에 걸려있어 눈길을 잡는다.

그곳 갈림삼거리에서 운달지맥 마루금은 우측으로 이어지지만 좌측의 912.5 삼각점봉을 잠시 다녀오기로 하는데 비와 안개로 인해 보이는 조망 하나 없기에 괜시리 헛걸음만 한것 같은 기분이다.

백두대간과 정맥 그리고 기맥과 지맥산행까지 마치고 이런 분맥까지 섭렵하고 있는 산객들이 생기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한 산꾼들이란 생각이다.


생각보다 많은 바위암릉들이 이어지고 날씨가 맑았다면 멋진 조망과 풍경들을 바라보며 걸었을 912.5봉 가는 등로이지만 오늘만은 짙은 안개로 인해 눈에 보이는 것 하나 없으니 그저 답답하고 지루한 바위암릉 구간이다.

그렇게 조심하며 한동안 걸어 진행하니 드디어 깨진 삼각점이 박혀있는 912.5봉에 도착을 하는데 준.희님은 이곳을 911.9봉이란 산패를 걸어 놨다.

이곳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뒤돌아 내려가는데 그곳에서 직진으로 계속 진행을 하면 공덕산을 지나 대하리천과 금천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는 산줄기로 이어질 것이다. 

공덕산은 경상북도 문셩시의 산북면 전두리와 동로면 노은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913미터인데 공덕이라는 지명은 세종실록지리지의 상주편에 명산은 사불산인데 산양현 북쪽에 있으며 혹은 공덕산이라고도 한다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공덕의 이명인 사불이란 지명은 삼국유사에 죽령 동쪽 100리 가량 되는 곳에 높이 솟은 산이 있는데 진평왕 9(587) 갑신에 홀연히 사면방장의 한 큰 돌에 사방여래를 새기고 홍사로 싼 것이 하늘에서 그 산정에 떨어졌다. (중략)

그 산을 역덕산이라 하고 혹은 사불산이라고도 한다라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상주편에 권근의 기에 대원의 고개가 지맥이 갈리어 동남쪽으로 둘러 갈라져 보주와 산양 두 고을 경계에 이르러 불룩하게 높이 일어났는데 산정에 큰 돌이 있어 뿌리가 떠서 서있고 사면에 모두 부처의 몸을 새겼으니 그 때문에 사불산이라 이름 하였다라고 하여 그 유래를 소개하고 있다.

해동지도나 1872년지방지도 등에서는 그 지명을 확인할 수 없고 청구도에 사불현이 표시되어 있다.

언젠가 한번쯤 들릴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 진행하고 있는 지맥 산행을 모두 마무리하고 나면 다시 그리워질 시간이 있지 않을까 생각도 잠시 해 본다.


다시 올랐던 바위암릉 등로를 따라 뒤돌아 내려 와 운달공덕분맥분기점으로 복귀해 사진 한장 남기고 이제 운달지맥 마루금을 타고 걸어 진행을 해 본다.

등로는 뚜렷하고 약간의 사초가 깔려있어 걷기 좋은데 안개가 자욱하게 껴 있어 조금은 몽환적인 분위기이다.

등로에는 울긋불긋 식용버섯과 독버섯이 지천으로 자라고 그런 사초와 버섯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금새 봉우리 같지 않은 839.6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제법 예쁜 사초와 버섯들이 자라는 등로를 타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즐기다 보니 능선에는 강한 바람이 불어 잠ㅎ시 쉬는 시간에는 한기까지 느끼는 산상에서 홀로 쓴 웃음을 지어 본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데 조망과 풍경을 잃은 대신 무더위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 다행이었던 산행시간이었다.

키 큰 활엽수 사이로 짙은 안개의 춤사위가 이어지고 바위를 지나 무명 안부를 통과하여 88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시고 곧바로 출발하며 한기를 달래본다.


다시 철쭉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사초가 깔려 있는 아름답고 몽환적인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언제 올랐는지도 모르,게 금새 943미터 봉인 국사봉 정상에 도착을 해 종이코팅지 앞에서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이곳 국사봉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아 아쉬운 시간인데 문경에 워낙 좋고 유명한 산들이 많다 보니 이런 국사봉에까지 신경을 쓰지 못한 모양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자료를 찾아보니 전국적으로 수많은 국사봉과 국수봉이 있는데 국사봉이나 국수봉은 대개 마을 뒤쪽에 있는 높은 산으로 꼭대기에 마을을 수호하는 국사당이라는 신을 모시는 당이 있던 산이고 국사와 국수는 한자로 취음 표기된 문헌상 기록으로 특별한 뜻이 있지 않으며 어원은 구수봉이다.

구수는 향찰어로 구가 향찰어 음차 검과 신으로 읽었음과 수 향찰어 음차 마루로 읽어 순국어음으로 거북의 머리가 아니라 신 마루를 의미하며 따라서 국사봉과 국수봉은 당금과 당그미로 어미 -금 -그미는 짐, 검, 곰, 금 등 신을 가리키는 말로 지상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고 천신이 하강하는 신산마루라고 할 수 있다.
신산마루는 천상신이 하강한 태백산정, 가야국 시조가 강림한 가락구기의 구지봉, 신라 육촌장이 하강한 산정을 말하지만 전국에 걸쳐 믿어졌던 전통적인 마을 신앙의 한 갈래인 국사당은 점차 사라지고 일부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당은 국사당신을 직접 신체로 봉안하지는 않고 산꼭대기에 석반단을 가운데 두고 잡석을 쌓아 두른 돌담 안에 신수를 둔 형태이며 오늘날에는 특히 제단나 제당이 없이 국수봉이나 국사봉이라는 산 이름만 남아 있다.

이런 국사당은 현재는 대부분 사라져 중서부 해안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으며 영남과 호남 지역에서는 그 자취를 산 이름에서나 가끔 찾아볼 수 있다.

관북과 관서 지방에서는 국사당이 신수와 누석단 형태로 서낭당 신앙에 흡수되어 그 신당의 명칭만 남아 있는 형태로 이들 산에 전해오고 있다.


국사봉 정상에서 잠시 쉬고 있으니 다시 젖은 등산복으로 인해 한기가 돌고 다시 출발하는데 나뭇가지에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어 살펴보니 대부분 알고 있는 산꾼이나 산악회 띠지들이라 반갑기 그지 없다.

큰 바위를 지나 활엽수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좁은 공터가 나타나고 계속 이어지는 참나무 등로를 걸어 본다.

국수봉 정상에서 내려와 해발고도를 낮추니 비가 그치며 안개가 사라져 조금 더 뚜렷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며 조망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기만 한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는 멋진 잣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고 저 아래 깊은 안부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등로는 직진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우측 잣나무 군락지를 빙돌아 내려가는데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마전령이다.

마전령으로 내려오는 방향을 살펴보니 잡목이 우거지고 약간의 바위들이 있어 직진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빙 돌아 우회하며 마전령으로 내려왔음을 알게 되었다.

경북 문경시 동로면에서 문경읍으로 넘어가는 901번 지방도로 아래에는 아직 포장이 안 된 옛길 하나가 오롯이 숨어 있는데 이 옛길이 바로 마전령이다.

한자로는 마전령이고 우리 고유 이름으로는 말구리재라고 부르는 고개로서 예전에 이 고개를 넘던 말이 굴렀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고갯마루이기도 하다.

고갯마루 정상부로 오르니 임도 우측으로 선답자들의 띠지가 보이고 그곳으로 오르며 마전령을 출발해 본다.


비포장 임도인 마전령을 출발해 오르니 금새 또 다른 안부가 나타나고 그곳에는 치성을 드렸던 흔적이 있는 성황당 자리가 보인다.

그곳을 지나 오르니 등로는 간벌되어 있고 그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 진행에 상당한 도움을 받고 있다.

잠시 더 오르다 뒤돌아 보니 비가 그치고 안개가 사라지며 잡목 사이로 조망이 터지기 시작해 앞으로의 조망과 풍경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주는데 얼마안돼 그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변해 버렸다.

가파른 벌목지대를 타고 오르니 짙은 안개가 밀려와 더욱 앞을 보기가 어려워지고 그렇게 어렵게 오르니 926봉에 도착을 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쳤던 빗줄기가 다시 굵어지며 온 몸을 다시 적시기 시작한다.


너무나 짙게 밀려 온 안개로 인해 한치 앞도 보기가 어려운 등로를 따라 큰 고도차이 없이 진행하니 등로는 생각보다 뚜렷하게 큰 잡목 없이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 장구령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좌우측으로는 지나다닌 흔적들이 모두 사라져 고갯마루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가는 장구령처럼 보인다.

장구령은 산북면 호암리와 문경읍 용연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예전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다는데 이제는 흔적조차 사라지는 평범한 안부로 변해가고 있다.

다만 장구령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왜 이곳이 장구령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장구령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에는 이제 키 작은 잡풀들이 자라고 있고 잠시 후 철쭉나무 군락지로 이뤄진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고사목이 쓰러진 모습도 보인다.

그곳 무명봉을 지나니 다시 등로에는 키 작은 미역나무 줄기가 자라기 시작하지만 아직은 진행에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몇년이 지나면 진행이 불가능할 것 처럼 보인다.

다시 사초가 깔려있는 철쭉나무 군락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963.7봉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온 몸이 젖어 있어 약간의 바람에도 쉬고 있으면 금새 한기가 밀려와 오랫동안 쉬지도 못하고 다시 출발을 해 본다.

잠시 진행을 하니 완만한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이제부터는 키 큰 싸리나무가 등로를 막아 진행에 약간의 지장을 받고 있다.

그 싸리나무 지대를 지나니 갑자기 키가 큰 미역나무 줄기가 등로를 완전히 막아 등로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어렵게 그 미역나무 줄기를 헤치며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온 몸이 흠뻑 젖고 이제 등산화에서도 철지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어렵게 그 미역나무 줄기지대를 헤치며 통과하니 등로는 이제 미역나무 줄기에서 싸리나무로 변하고 무명 안부로 이어진다.

키 큰 싸리나무 지대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싸리나무에 묻어있던 물방울들이 이 산객의 몸으로 비산하며 목욕하듯 물기가 흐르고 있다.

길게 이어지는 잡목 구간을 헤치며 완만하게 오르니 커다란 바위 하나가 눈길을 붙잡고 그 바위를 지나니 완만하게 내려가 장구목 안부에 도착을 해 이정표를 살펴 본다.

장구령에서 1 Km 진행을 하였고 운달산까지는 1.1 Km 가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이정표에는 이제부터 김룡사라는 단어가 눈길을 잡는다.

등로 좌측으로 뚜렷한 김룡사 하산 등로가 열려있어 많은 등산객들이 이곳에서 좌측 운달계곡 방향의 김룡사로 하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안부이기도 하다.

김룡사는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김룡리 운달산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서 588(진평왕 10) 조사 운달이 창건하여 운봉사라 하였으며 그 뒤 조선 중기까지의 사적은 전래되지 않고 있다.

1624(인조 2) 혜총이 중창하였으나 1642(인조 20)에 소실되어 1649(인조 27) 의윤과 무진 및 태휴 등이 중수하였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절 이름을 김룡사라 한 것은 옛날 문희(지금의 문경)부사로 김씨성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관에 죄를 짓고 도망쳐 이 산에 숨었다가 우연히 신녀를 만나 가정을 이루어 용이란 아들을 낳았고 가운이 또한 부유해져 사람들이 김씨 어른(김장자)이라 일컬었다.

하루는 큰 비 바람이 분 뒤 그 처자를 잃어버리게 되었으나 간 곳을 알 수 없었으며 지금 그 옛 터와 섬돌이 절의 서쪽에 남아있어 절 이름을 김룡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금선대의 금자와 용소폭포의 용자를 따서 금룡사라 하였다는 설도 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전국 31본사의 하나로서 50개의 말사를 거느린 큰 절이었으나 지금은 교통의 불편으로 옛 말사였던 직지사의 말사가 되었으며 1940년 요사와 종루를 개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김룡사 일원의 계곡을 운달계곡이라 하는데 맑은 물과 짙은 녹음이 어우러져 문경8경 가운데 하나로 손꼽는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여 극락전, 응진전, 금륜전, 명부전, 상원전, 영산전, 원통전, 첨성각, 범종각, 수월당, 만월당, 연하당, 일주문, 천왕문, 요사 등 전각 48동이 있다.

일주문에는 문 윗부분에 홍하문, 아랫부분에 운달산 김룡사라고 쓴 김규진의 글씨가 있고 대웅전에는 1644(인조 22) 조성된 천장, 지장, 지지 보살상을 묘사한 삼장탱화와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응진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다시 지은 건물로서 16나한상과 나한도가 모셔져 있으며 절 입구에서 보면 정면에 경흥강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건물이 있는데 이는 300인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의 온돌방으로서 자연 지층을 그대로 이용하여 건축한 것이다.

절의 규모에 비해 지정문화재는 없으나 시대를 알 수 없는 석조 약사여래입상과 조선 중기의 것으로 보이는 맷돌, 떡시루, 쇠북, 범종과 지옥의 염라왕청에서 죽은 이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업이 나타난다는 업경대 등이 사물로서 남아 있다.

부속 암자로는 대성암, 화장암, 양진암, 금선대, 토굴 등이 있는데 양진암은 1658(효종 9) 설잠이 창건하였으나 1664년에 불탄 뒤 1749(영조 25) 환월이 중건하였고 그 뒤 1769년 무영이 1825년 해운과 경봉이 1840년 정봉이 1929년 인택이 각각 중수 하였다.

대성암은 1800(정조 24) 영월이 청하당을 옮겨 창건하였고 1886년 혼성이 중수하였는데 현재는 여승들만의 수도처로서 이곳에는 고승의 진영이 담긴 영정과 동물 그림의 병풍 등 많은 현판들이 있다.

전래되는 대표적인 전설로는 산너머의 대승사에 불이 났을 때 일심으로 염불하면서 바가지에 시냇물을 퍼서 불을 끈 동승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장구목에서 주위 풍경을 살펴보고 출발하려는데 이정표에 문경대간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 와 문경대간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간다.

문경의 산꾼들과 문경시에서 문경의 산줄기를 이어 백두대간을 본 떠 문경대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들었던 기억이 생각은 나지만 정확하게 확인을 해 본 경험이 없어 이번에 확인이 필요할 듯 하다.

장구령을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작은 돌들이 산재되어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야생화가 만발한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다시 단풍나무가 보이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큰 바위가 등로를 막아 우측으로 우회하며 그 바위암릉 구간을 통과한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등로에는 제법 큰 바위암릉지대가 나타나고 그곳에는 생각지도 못한 가느다란 로프도 설치되어 있어 읅산으로 알고 오른 이 산객에게는 색다른 등로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거대한 바위암릉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돌아 우회하며 통과하니 등로는 다시 바위암릉지대를 가로질러 바위를 우측에 두고 좌측 우회 등로를 따른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지나 바위 암릉을 오르니 등로는 다시 바위암릉을 타고 직벽의 안부로 이어지고 있어 비에 젖은 미끄러운 바위암릉을 타고 조심하며 그 안부로 내려가 본다.

안부를 지나서도 계속 이어지는 바위암릉지대를 지나니 드디어 등로는 평이한 흙산의 모습으로 뒤돌아 오고 이곳에서부터는 부드러운 사초가 등로를 뒤덮어 마치 파란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부드럽게 진행을 해 본다.


고도를 높힐수록 안개가 더욱 짙어지며 한치 앞을 보기도 어렵게 느껴진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를 지나고 계속 이어지는 사초 등로를 따르니 등로 주위로는 동자꽃과 하늘나리 그리고 원추리가 예쁘게 피어있는데 내린 물기를 머금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사초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드디어 운달지맥 이름을 낳게 한 운달산 정상에 도착을 해 몇장의 사진들을 남겨 본다.

운달산은 경상북도 문경시의 문경읍 용연리와 당포리 및 산북면 김룡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103.2미터이고 운달이란 지명은 여지도서의 문경편에 용뇌산은 다른 이름으로 운달산이라 고도 하는데 관아의 동쪽 20리에 있으며 호항령에서 뻗어 나오고 기우제를 지내면 효험이 있다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신라시대 사찰인 김룡사를 창건했다고 하는 운달조사와 관련된 이름으로 보이고 해동지도와 청구도에는 신북면에 운달산이 표시되어 있으며 금선대를 비롯한 많은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고 있고 동남 기슭에 김룡사 외에 화장암, 양진암, 대성암 등의 고찰이 있다.

또한 운달산 동남쪽 김룡사 아래쪽으로는 물이 깨끗하고 수량이 풍부한 운달계곡이 있어 여름철 많은 사람들이 찾아 피서를 즐기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운달산 정상에는 작은 정상석과 문경대간 산행 안내도 및 삼각점 그리고 전망바위가 있는데 짙은 안개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으니 많이 아쉬운 시간이다.

날씨가 좋은 날 다시 한번 더 올라 멋진 조망을 즐겨보는 시간이길 바래 본다.



하지만 운달산 정상에는 각기 다른 높이의 이정판들이 붙어 있어 하루 빨리 정확한 높이의 안내판으로 통일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정상에서 잠시 머물며 사진을 담고 먼저 올라 점심식사를 즐기고 있는 등산객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한기가 돌아 인사하고 먼저 출발하는데 정상 우측으로 보이는 전망바위가 아쉽기만 하다.

사초가 깔려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갑자기 눈 앞에 거대한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그 바위를 좌측에 두고 우측 우회등로를 따르니 그곳에도 넓은 너럭바위가 눈에 들어 온다.


그 바위암릉 지대를 지나 잡목지대를 통과하니 갑자기 눈 앞에 시멘트 헬기장이 나타나고 좌측에는 이정표가 서 있어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화장암과 김용사 하산 갈림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이다.

짙은 안개와 주위에 자라난 키 큰 잡목들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좌측으로 몇 미터 알바하고 뒤돌아 올라 와 석봉산과 조항령 방향의 정상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한다.

 

헬기장을 지나 빗물 머금은 풀섶으로 들어가니 등로에는 다시 사초가 예쁘게 깔려있고 잠시 후 커다란 바위 하나를 통과한다.

계속 이어지는 사초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걷다보니 또 다시 바위암릉 지대가 앞을 가로막아 좌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고 그렇게 한동안 바위암릉과 씨름을 하다보니 봉우리 같지 않은 100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등산복을 벗어 물기를 짜내고 출발을 한다.

굵은 빗방울은 그쳤지만 아직도 이슬비가 내리고 안개는 더욱 짙어져 오늘 하루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순간이다.


카메라와 핸드폰에 물기가 들지 않토록 조심하며 진행을 하지만 키가 큰 잡목지대를 지나면서 어쩔 수 없이 약간의 물기들이 날아들고 있다.

물기를 닦아내며 평이한 흙길을 걸어 진행을 하니 갑자기 눈 앞에 요상한 바위와 나무 한그루가 공생하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참으로 기구한 인생처럼 다가온다.

쪼개진 바위틈에 나무가 자란 것인지 아니면 아무가 자라면서 바위가 쪼개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 함께 하였으니 앞으로도 사이좋게 오랫동안 함께 그 삶을 살아가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암릉지대를 우회하며 걸어 통과하니 또 다시 사초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키 작은 미역나무 줄기들이 등로에 자라면서 등로를 가로막고 있지만 아직은 진행에 큰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몇년이 흐르면 저 미역나무 줄기들로 인해 산행이 불가능 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도 앞서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등산객들 목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석봉산 정상에 도착을 해 먼저 자리를 깔고 식사를 즐기는 등산객들과 잠시 인사를 나눈다.

그곳에서 젖은 배낭을 내려 준비한 떡과 과일로 허기를 달랜 후 그 등산객들과 잠시 동행을 하면서 함께하는 시간도 가져 본다.

이곳 석봉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한데 어느 자료에는 운달산을 석봉산이라 하였다는 문헌도 보인다.


그곳 석봉산 정상 안내판 위에는 다시 문경대간 산행 안내도가 눈길을 끌어 자세히 살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보인다.

문경대간은 백두대간 상 대미산에서 시작하여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운달지맥 산줄기를 따라 국사봉과 운달산 그리고 석봉산을 통과한 후 조항령과 문경활공장 및 단산과 배너미산을 넘어 오정산과 광려산을 지나 토끼비리와 진남교반까지 연결시킨 산줄기로서 중요한 봉우리마다 이 문경대간 안내판을 설치해 홍보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즉 대부분 운달지맥 산줄기를 타고 진행하다 배너미산에서 운달지맥과 헤어져 부운령과 오정산을 거쳐 그 맥을 다하는 산줄기로서 모두가 문경시내를 통하는 산줄기를 이어 것으로 그 길이는 총 약 30여 Km 정도 될 듯 보인다.

최근 들어 산줄기를 이어 산행을 하려는 산객들이 늘면서 각 지자체나 또는 그곳 고향 사람들이 이렇게 산줄기를 이어 각자 이름을 부여하고 있는데 고향 산사랑은 이해를 하면서도 너무 남발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는 순간이었다.


석봉산에서 허기를 면한 후 다시 젖은 배낭을 둘러메고 젖은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앞서 출발한 등산객들이 보이고 그 등산객들을 추월해 다시 홀로 가는 시간이 되었다.

잡풀지대를 지나 쓰러진 고사목을 통과하니 바위들이 보이는데 등로는 직진의 바위지대가 아닌 우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위로 진행을 하니 잠시 후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곳에서 등로는 끊기고 바위절벽이 나타나 어렵게 우측 우회등로로 내려와 진행을 이어가 본다.

처음에는 그곳 바위절벽이 있는 곳이 855.5봉이라 생각해 올랐는데 855.5봉은 조금 더 진행을 해야 만날 수 있을 듯 보인다.

 

바위절벽을 조심해 내려 와 우회 등로를 만나 빠르게 진행을 하니 우회 등로를 타고 내려온 등산객들이 가깝게 다가오고 다시 한팀처럼 진행하는 시간이 되었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잡목들과 활엽수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855.5봉에 무탈하게 도착을 하고 포인트를 잡기 위해 핸드폰을 작동시키지만 물기 때문인지 잠시 먹통이 되어 그것을 확인하는 동안 다시 헤어졌던 등산객들을 만나 함께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곳 855.5봉부터는 조금 빠르게 진행을 하니 등로에는 반점같은 무늬가 남아 있는 바위들이 등로에 깔려 있고 약간의 너덜컹이 보인다.

그 바위지대를 지나니 등로는 다시 평이한 흙산으로 변하고 비에 젖은 잡목들이 물기를 머금은 후 이 산객이 지나가면 비산하여 시원함을 전하고 있다.

그렇게 조금 더 빠르게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옆으로 팔각정이 보이고 그 밑으로 시멘트 포장 임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한쪽으로는 시멘트 포장임도가 다른 한쪽으로는 비포장 임도가 만나는 조항령 임도이다.

조항령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당포리에서 산북면 석봉리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고개로 단산과 운달산 사이에 있고 높이 675.5미터이며 새의 목처럼 잘록하다 하여 새목재라 하기도 한다.

석봉리에는 새목재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새모기 또는 조항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최근 문경시가 임도를 개설하여 부분적으로 시멘트 포장을 하고 고개 정상 부근에는 약수터와 팔각정 등 쉼터를 조성하여 지역 주민들의 통행이 편리해지고 경제적으로는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되었으며 김룡사와 대승사의 접근도 수월해져 관광객들의 발길도 잦아지게 되었다.

부근에 문경활공랜드 이륙장이 있으며 대간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산행기점으로 삼기도 한다.



조항령 임도에서 능선으로 올라 진행을 하면 좋은데 그 좌측으로 최근에 새로 개설된 넓은 비포장 임도가 보여 조금이라도 편하게(?) 진행해 보겠다고 그 임도를 따라 진행하였다가 급경사 사면 등로를 치고 오르면서 너무나 힘들게 진행하는 시간이 되었다.

역시 산줄기 이어가기 산행에서 조금 편하자고 꼼수를 쓰면 쓸수록 더욱 큰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기도 하다.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마루금과는 조금 멀어지지만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기에 그냥 걸어 들어가고 잠시 후 그 비포장 임도가 끝나면서 거대한 바위들이 널부러져 있다.

그 바위를 통해 우측 능선으로 접어들고 이제부터 가파른 급경사 된비알이 이어지는데 오르면 오를수록 등로는 우측으로 더 멀어지는 느낌이라 가깝게 붙기 위해 사력을 다해 미끄러운 오르막 등로를 치고 한동안 많은 땀방울 흘리다 보니 이제서야 정상 마루금에 도착을 해 큰 한숨을 내쉬어 본다.


무명봉에 올랐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잡목을 헤치며 진행을 하니 갑자기 깊게 패인 절개지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 우측 아래로는 수십길 낭떨어지 아래 거대한 바위들이 입을 벌린채 지나가는 산객을 위협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측 사면으로는 절개지가 비에 무너져 더욱 위험하게 다가오는 그 절개지 안부를 조심하며 통과하니 등줄기에선 땀방울이 맺힌 듯 흐르고 있다.


그 절개지 안부를 통과하고 둔덕을 넘어 진행하니 다시 깊은 안부 하나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검은 흙과 자갈들이 보이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석탄 같아 보이는 등로이다.

등로 양쪽으로 깊게 패인 안부를 두고 칼능선으로 이어진 마루금을 따라 조심하며 통과하니 잠시 후 바위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평이한 잡풀들과 잡목이 자라는 등로로 이어지는가 싶다가 금새 다시 안부로 뚝 떨어졌다 오르게 된다.

짙은 안개와 이슬비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으니 더욱 이런 안부에 관심을 두고 진행하게 되는데 이곳 절개ㅐ지와 서ㅏㄱ탄 안부를 통과할 땐 여간 조심스럽지 않아 보인다.


연이어 나타나는 세개의 안부를 통과한 후 좁은 칼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비는 그쳤지만 풀섶과 잡목에 내려 앉았던 빗방울들이 비산하며 젖어 있는 등산복을 더욱 흥건하게 만들고 있다.

소매에선 굵은 땀방울인지 빗방울이 떨어지고 머리부터 타고 흘러 내리는 물방울들이 쉴새 없이 등산바지를 따라 등산ㄹ화로 흘러들며 등산화의 무게를 늘려만 가고 있다.

그렇게 힘들게 걸어 오르니 잡목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802봉에 도착을 해 잠시 배낭 내려 허기를 달래본다.

이곳에서 다시 옆지기와 통화를 하는데 동서들과 처재들이 인천으로 온다는 소식에 더 이상 산행에 대한 의욕이 꺽이며 가장 가까운 탈출로에서 탈출을 결심하게 된다.

 

잠시 쉬는 동안 젖은 등산복으로 인해 한기가 엄습해 오고 몸을 데우기 위해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이제 제법 굵은 바위들과 잡풀들이 함께하는 벌목된 등로로 변하고 있다.

살펴보니 문경활공장 근처로서 오래 전 벌목된 듯 보이는 등로에는 잡풀들과 잡목들이 자라면서 야생화 천국으로 변해 있는 듯 보인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 문경활공장 정상까지 시멘트 도로가 잘 나 있어 문경콜택시에 전화를 해 상황 설명을 하니 곧바로 택시 한대를 배차해 준다.


그렇게 산행에 대한 의욕이 꺽이고 나니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해 그 벌목된 바위와 잡풀지대를 타고 내려가 문경활공장에서 산행을 접기로 한다.

잠시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 아래로 문경활공장으로 통하는 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잠시 후 등로 앞으로 나무로 된 화장실과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한다.

문경대간 등산로와 문경읍 고요리 방향 이정표인데 원래 문경대간 등산로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가야 하지만 오늘은 문경읍 고요리 방향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며 운달지맥 첫구간 산행을 마무리 하려 한다.

하지만 잠시 후 걸려 온 택시 기사와의 통화에서 문경활공장 초입에 차랴ㅐㅇ 통제용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며 다시 뒤돌아 내려간다는 소식에 잠시 패닉 상태에 빠지지만 걸어 내려가지 않으면 방법이 없기에 무상무념으로 그 길에 이어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제 운달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문경활공장 입구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 꼬부랑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첫번째 갈림 삼거리를 만나고 좌측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간다.

한동안 내려가니 도로가 180도 휘어지는 곳 중간에 제1이륙장 700미터라는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이곳 문경활공장도 한곳이 아닌 몇군데의 이륙장이 있는 듯 보이며 자료를 찾아보니 문경시에서 거금을 들여 단산모노레일를 건설중으로 건설이 완공되면 해발 867미터인 문경활공장 전망대에서 조망과 페러글라이딩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한다는데 얼마나 효과가 잇을지 걱정도 되는 상황이다.

다음 제2차 산행을 위해 오르게 되면 새로 조성중인 단산모노레일과 문경활공장 전망대 그리고 그와 연관된 시설물들을 모두 만날 수 있으니 그때 다시 한번 확인해 보기로 한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한동안 내려가니 능선에서는 그렇게도 짙게 드리워졌던 안개들이 사라지고 안개비도 완전히 그쳐 지금까지 고생하며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리고 있다.

잠시 후 내려가는 방향인 서쪽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이 길게 이어지지만 그 정상부는 여전히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다양한 춤사위를 보여주고 있고 그 우측 넘어로는 지난 주 올랐던 부봉과 주흘산의 하얀 암봉들이 하얀 안개인지 구름을 하늘에 이고 넘실거리고 있다.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멋진 조망과 풍경에 잠시 내려가던 발걸음 멈추고 한동안 그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에 취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서쪽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백두대간 마루금을 살펴보며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문경활공장 입구에 도착을 하게되고 설치된 바리게이트를 열어 보니 충분히 열 수 있었는데 택시 기사가 왜 오르지 않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아무튼 이곳 문경활공장 입구 차량통제용 바리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다시 문경 콜택시로 전화를 해 택시 하나를 배정 받는데 문경시에서 이곳 활공장까지 오는 콜비도 포함하여 택시비를 요구하는데 황당하지만 방법이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25,000.-원에 여우목고개까지 흥정을 끝낸다.

처음에는 신북천 근처의 삼거리로 이해를 하였다며 20,000.-원에 합의를 하였지만 문경새재리조트까지 올라왔다며 무조건 25,000.-원이 아니라면 문경시내로 들어가 시내버스를 타고 여우목고개로 가라는 이야기에 조금은 화가 났지만 서로 양보를 해 24,000.-원에 합의하고 마음 편히 복귀하기로 한다.


한동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모녀 두분이 내려오고 있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곳 포장도로는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산책로로 이용된다며 모녀가 산책하러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함께 걸어 내려오다 이 산객 홀로 조금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도로 옆 계곡에서는 최근에 내린 비로 인해 맑은 계곡물이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며 흐르고 그렇게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문경새재리조트 앞까지 이동을 해 그곳에서 배낭 정리를 하면서 택시를 기다려 본다.

고요리는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에 있는 리로서 봉명산 기슭에 위치한 산간 오지 마을이며 자연마을로는 강선, 기성, 동우점 등이 있는데 강선은 조선시대에 넓고 큰 서당을 지어 학동을 가르쳤던 곳이라 하여 광원이라 하였던 곳이고 전주 이씨가 글방을 차려 강론하였다 하여 강선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또한 갈평과 평천쪽으로 흐르는 물이 이곳에서 합쳐져서 넓은 냇가를 이룬다고 해서 광수원이라고도 불렀다.

기성은 중국의 요순시대 사람과 같이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하여 고요성 또는 구성으로 불려지던 것이 변음된 이름으로 일설에 의하면 괴목이 울창하여 성을 이룬 것 같다고 하여 괴성이라고 불리던 것이 음이 변하여 기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동우점은 1500년 경 경주 김씨가 이곳에 들어와 마을 동쪽 운달산 기슭에서 옹기(동우)를 구워 이것을 팔기 위한 점방을 벌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또한 문경읍 가장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동녘의 해가 제일 처음으로 뜨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택시비 흥정이 잘 되어 그런지 처음과는 달리 택시 기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여우목고개로 돌아가던 중 내려오며 몸을 닦을 수 있는 계곡을 물으니 마침 여우목성지 가는 길목의 계곡물을 알려주며 친절하게 그곳 게곡 입구까지 돌아가며 알려주고 있다.

참으로 어렵게 애마를 회수 해 내려가다 방금 전 택시 기사가 알려 준 여우목성지 들어가는 넓은 비포장 임도로 몇 발자국 거어 들어가니 너무나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고 그곳에서 알탕을 즐기며 옷을 갈아 입고 막힘 없이 뻥 뚫린 도로를 타고 생각보다 이른 시간인 저녁 7시에 집에 도착을 해 동서들과 처재들이 기다리는 인천으로 이동하여 광란의 하룻밤을 지새우고 온다.


천주교 여우목 성지는 대미산 자락에 자리잡은 마을로서 여우목 마을은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와 문경읍 중평리를 이어주는 여우목 고갯길이 마을 앞으로 지나간다.

조선 말기 천주교 박해를 피해와 신자촌을 이루며 살았던 한국 천주교 신앙의 순교자 이윤일(요한) 성인이 살았던 마을로서 요한 성인은 충청도 홍주태생으로 언제부터 이곳에 살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병인 박해가 한창이던 1866 11 18일 이곳에서 30여명의 천주교신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상주감영으로 끌려간 후 대구 감영으로 이송된 요한성인은 1867 1 21일 관덕정에서 참수 순교하였다.


남아 있는 운달지맥 산행이 부담은 되지만 두번에 나눠 여유있게 진행을 하면 큰 무리없이 마무리가 될 것이다.

이번 주 단양에 내려가게 되면 청량산이나 이곳 운달지맥 산행에 들어 무탈한 마무리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70729 운달지맥제1구간 대미산에서 문경활공장까지.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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