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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흑석지맥(땅끝·완)

흑석지맥 마지막 제2구간 오미재(819번 2차선 포장도로)에서 해군제3함대 사령부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7.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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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영암군의 흑석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7년 05월 18일 (목요일 당일산행)

산행날씨 : 약간의 바람이 불었지만 한여름 같은 불볕 더위와 강렬한 햇살 그리고 약간의 미세먼지로 고생되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15도에서 영상 27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오미재(819번 2차선 포장도로, 대천가든과 서영암 주유소 입간판)-시멘트 포장도로-한양조씨 척강문-65.9봉(창녕조씨묘지)-비포장 수레길-

                 시멘트 포장도로-채지리 잿등마을-농장 옆 능선진입-파평윤공 묘지들-초지 밭-지독한 잡목지대-도로공사가 중단된 절개지-무명묘지와 축사-

                 100.9봉-널부러진 간벌목들-121 삼각점봉 갈림 삼거리-60.9봉-편백나무 조림지-밭 경작지-논둑 등로-무화과 과수원-비포장 임도-시멘트

                 포장도로-한정고개(곤미현로 2차선 포장도로, 화산목장 입간판)-밭과 무명묘지2기-김해김씨 콘크리트묘지들-48.2 삼각봉(해남 402)-천주교

                 신자묘지-비포장 수레길-비포장 임도-낙원묘역-오복로 2차선 포장도로-오복버스정류장-오복고개 우회-시멘트 포장도로-주안농장과

                 삼휘축산-이정표(등산로 1.5 Km, 망산마을)-망산길 2차선 포장도로-망산마을 우측 도로로 우회-권능교회-원망산 버스정류장-2번 4차선

                 포장도로-대불교(인공수로)-세한대학교 버스정류장-세한대학교 국제학사-능선진입-암릉 전망대-호등산(126.8봉, 무인산불감시카메라,

                 산불감시초소)-삼각점-길주의 좌측능선-참봉 밀성박공묘지-비포장 수레길-47.9봉 갈림삼거리-무화과 과수원-2번 6차선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인공수로-파주옥숯불갈비-무화과 과수원-2차선 포장도로-삼호읍소재지 문화복지타운-영암군 근로자 종합복지관-삼호고등학교-

                 삼호종합문화센터-삼호전천후게이트볼장-육각정자-능선진입-86번 송전탑-비포장 수레길-통나무 계단-두리봉 갈림 삼거리

                 이정표(삼호중학교 0.6 Km, 두리봉 0.8 Km, 신호정 0.4 Km)-사각정자와 운동기구-송전탑-솔대목산(앞산, 108.5봉, 운동기구)

                 이정표(두리봉 0.6 Km, 삼호중학교 0.9 Km)-두리봉 갈림삼거리 복귀-운동기구와 벤취쉼터들-안전목책과 로프 계단-비포장 임도-상촌 갈림

                 이정표(상촌 0.5 Km, 두리봉 1.3 Km)-안전목책과 로프구간-나무계단-삼호중학교-4차선 포장도로-삼호교회-삼호우체국-삼호읍용앙리교차로-

                 점심식사-삼호도서관-민가-49번 4차선 포장도로 절개지-지독한 잡목구간-49번 4차선 포장도로-시멘트 수로-68.6봉 헬기장-비포장 수레길-

                 비포장 임도-2차선 포장도로-1차선 포장도로-지하통로로 49번 4차선 포장도로 통과-저두 버스정류장(2차선 포장도로)-대불교차로(49번

                 4차선 포장도로)-난전 버스정류장-난대길 1차선 포장도로-난대마을-무화과 과수원-밭 경작지-23.4봉-무화과 과수원과 밭 경작지-무화과

                 과수원 비포장 임도-시멘트 포장도로(인공수로)-도움전 버스정류장(2차선 포장도로)-스파클목포대불총판점 건물-시멘트 포장도로-민가 앞-

                 밭 경작지-비포장 수레길-무화과 과수원-비포장 수레길-57.9 삼각점봉-비포장 임도-장전교회-시멘트 포장도로-검길마을 표지석-검길

                 버스정류장-엄포 버스정류장-유일3공장-삼호교차로-806번 4차선 포장도로-영암자동차경주장과 태양광 발전소 갈림 삼거리-삼포교차로-

                 한국펌프카-흙이야기-개발슈퍼-가내항 표지석-가내항 버스정류장-상촌교차로-그랑프리 현대주유소-상촌 버스정류장-시멘트 포장도로-

                 은진송씨세장묘-능선진입-소아산 산행포기-밭 경작지-806번 4차선 포장도로 복귀-아산마을 표지석-산음 버스정류장-아산 버스정류장-

                 아산마을 표지석-원용당 버스정류장-원용당 표지석-용당교차로-해군제3함대사령부 정문-한국석재와 해군제3함대사령부 후문-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6.89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해군제3함대 사령부에서 원용당 버스정류장 그리고 신기마을에서 오미재까지 도보 제외)

산행트랙 : 2017-05-18 0520__20170518_0520[1].gpx

산행시간 : 암릉과 지독한 잡목 및 가시넝쿨 그리고 무더위로 무척 고생하며 09간 41분 (05시 20부터 15 02분까)

교통편 : 애마로 819번 2차선 포장도로 옆 에미재 도착

            산행 후 원용당 버스정류장에서 300번 버스로 영암군 삼호읍 삼호농협 앞 하차

             영암군 삼호읍 삼호농협 앞에서 500번 버스로 신기마을 하차

             신기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오미재까지 약 3 Km 거리를 30여분 동안 도보로 이동 후 애마 회수

             영암군 학산면 선일보석사우나에서 샤워 후 귀경

흑석지맥이란???

호남정맥 바람재에서 분기한 땅끝기맥이란 산줄기가 땅끝을 향해 가다가 벌뫼산에서 기맥은 남쪽을 향하지만 이곳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쳐서 가학산과 흑석산을 지나는 산줄기가 흑석지맥으로 두억봉 어깨에서 자세를 한껏 낮추어 미촌마을에 내려서서 야산지대로 이어진 산줄기는 2번국도를 좌우로 넘나들며 세한대학교가 있는 호등산을 지나고 소아산과 대아산을 지나 용당부두 옆 77봉에서 목포 앞바다로 잠기는 도상거리가 42.03 Km로 비교적 짧은 산줄기다.

신산경표는 별뫼산에서 영산강 하구 용당리까지 흑석지맥을 표시했는데 현실적으로 영암군 삼호읍 산호리 세한대학교 앞에서 영암호 수로(연암제수문)가 산줄기를 잘라 버렸고 따라서 사실상 섬이 된 수로 건너편 산줄기가 15 Km 가량 되므로 여기서 마감할 경우는 26 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조선지형도(1918)를 보면 영암호 수로가 없고, 삼학도를 마주보는 용당리까지 원래의 산줄기는 이어진다.

그러나 2번국도 위로는 대불국가산업단지와 아래로는 영암F1경기장이 들어서면서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고 마지막의 소야산과 대야산은 군부대가 점령해 오를 수가 없으며 반도 끝지점의 목포공항 주변구역 역시 접근이 쉽지 않을듯 해 보이므로 두억봉 넘고 선황산까지 가게되면 사실상 산길은 끝인 셈이다.



지독한 잡목과 청다래넝쿨로 인해 지금까지의 산행 중 가장 힘들게 진행한 흑석지맥 마루금에서의 아쉬웠던 마지막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어제 흑석지맥 첫 구간을 진행하며 조금은 늦은 시간에 마무리를 하였기에 애마를 회수한 후 가장 가까운 영암군 삼호읍의 보석사우나찜질방에서 하룻밤 머물기로 하고 찾아 가 보니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많지 않고 내부도 깨끗 할 것 같아 샤워 후 외부로 나갔다 저녁식사하고 다시 들어 오는 조건으로 입장을 한다.

샤워 후 찜질방을 나와 아파트 단지 앞으로 가니 마침 순대국밥집이 있어 탁배기 한병과 순대국을 시켜 허기를 달랜 후 다시 찜질방으로 돌아 와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눈을 뜨니 이제 12시를 막 지나고 있다.

잠시 뒤척이다 어렵게 잠을 청하는데 약간의 추위가 밀려오고 자켓을 입은 후 다시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새벽 3시 20여분을 넘기고 있다.

모바일 폰으로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확인하며 어제 마지막 선황산 구간에서 잡목과 가시넝쿨로 너무나 고생을 했기에 오늘은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최선일지 생각해 보지만 어짜피 직접 몸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무명님이 올린 산행기를 보면 2번 국도로 내려 와 버스를 타고 세한대한교 앞까지 이동을 했다고 하며 소아산과 대아산은 오르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그곳 진행이 가장 문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과 특히나 여름철이 되면서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뒤엉켜 나즈막한 일반 등로에도 들어갈 수나 있을지 그것이 더 큰 고민거리로 대두되는 선답자들의 산행기이다.

또한 농번기에 접어 들어 밭 경작지마다 농부들이 나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마루금 가까운 도로나 농로로 진행을 하지만 여의치 못할 경우 그냥 도로 따라 우회하는 경우도 생길 것 같다는 느낌이다.


새벽 4시에 간단하게 샤워 후 옷을 가라입고 찜질방을 나와 금호버스터미널로 가 보지만 문이 열려있는 식당을 찾지 못해 잠시 24시 편의점에서 식수만 구매하여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불을 밝히는 식당 하나가 있어 무조건 찾아가니 찬밥만 있다며 영업은 6시나 되야 가능하다고 한다.

사정을 말씀 드리니 고민하다 찬밥이라도 데워 주겠다며 응낙해 주시고 그곳 식당에서 생각지도 못한 맛 있는 아침식사를 잘 대접 받고 나와 기분 좋게 819번 2차선 지방도로 상 오미재로 향한다.

대천가든으로 들어가는 시멘트 포장도로 앞 조금은 넓은 공터에 다른 차량들의 통행에 지장이 없도록 잘 주차시킨 후 산행 준비를 하고 있으니 새벽 5시를 넘기면서 온 세상은 벌써 어둠을 벗겨내고 밝아오기 시작한다.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출발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늦은 5시 20여분으로 최대 10시간에서 12시간을 기준으로 오늘 흑석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자 출발해 본다.


가슴속에는 늘 같은 마음으로 오늘도 무탈하게 계획했던 해군제3함대사령부에서 바다 건너 목포의 유달산과 인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을 빌어 보는 시간이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도로를 따라 걷는 시간이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이다.

하지만 해발고도 100여 미터의 나즈막한 마루금으로 들어 가 앞도 보이지 않는 잡목과 온몸을 끌어 당기는 청다래넝쿨 및 가시나무와의 사투는 더욱 온 몸을 아프게 만들고 있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 버렸다는 느낌이다.

그래도 2번 국도로 내려와 마침 도착한 목포행 미니 마을버스에 올라 약 3 Km 거리를 달려 와 대불교를 건너고 세한대학교에서 하차하여 세한대학교 국제학부 건물 뒤로 올라 호등산 정상부 직전의 바위 암봉에서 살펴보는 지나온 마루금과 지금부터 걸어야 할 흑석지맥 마지막 구간의 비산비야를 확인하는 시간은 그래도 조금은 견딜만한 그런 시간이었다.

소야산과 대야산 들머리에서 우거진 잡목과 가시나무들로 인해 도저히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뒤로 후퇴해 49번 4차선 도로를 따라 진행하던 시간은 차라리 지맥 산행을 포기하고 서울로 조금이라도 빨리 복귀하고픈 마음이 간절해 아픈 몸보다 더 어렵고 힘들게 걸었던 사투의 시간이 되어 버렸다.

  

어제 저녁 땅거미가 지는 시간에 무탈하게 흑석지맥 제1구간을 이곳 81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오미재고개에 도착을 해 하루를 마감한 후 하룻밤이 지나 다시 밝아오는 새벽에 찾아오니 감회가 새롭다.

서영광농협 주유소란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는 앞쪽에 애마를 주차시킨 후 산행 준비 후 출발에 앞서 진행 방향의 시멘트 포장도로와 그 우측 저 멀리 올려다 보이는 65.9봉을 살펴보며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안전산행을 빌며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해 본다.

왜 이곳을 오미재 또는 오미령이라고 했는지 궁금해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원 뜻은 정확히 모르겠고 다만 몇가지 단서가 될만한 자료들이 잇어 정리를 해 본다.

오미령은 선황산 기슭에 자리잡은 고개로 오밋재를 통과하는 차량들이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지난 1991년부터 미암면 방범대 주관으로 제례를 준비하여 선황산 토지신들에게 제를 봉행해 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도로가 정비되어 도롯가에 있던 길안천이란 약수터도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대천가든이란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는 방향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들어가니 마루금이 있는 우측 방향으로 민가의 철문이 가로막아 진행하지 못하고 조금 더 걸어 들어가 우측 넓은 비포장 임도였다가 이제는 잡목과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는 곳을 찾아 들어가니 눈 앞에 갑자기 사당같은 건물 하나가 나타나고 으시시한 기운에 잠시 정신 차리고 살펴보니 건물 위에는 척강문이란 한자가 보인다.

그 척강문 좌측으로 돌아 오르니 한양조씨 묘지들이 나타나는데 지금까지 묘지 앞에 척강문을 세운 것은 처음이라 조금은 낮설게 느껴진다.


척강문 옆 한양조씨 묘역을 지나 오르니 이제부터 등로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잡목과 가시넝쿨들이 앞을 가로막아 진행이 불가능하다.

이리 저리 살펴보니 약간의 편백나무들이 자라는 곳으로 오를 수 있는 공간이 보이고 그곳을 통해 너무나 힘들게 오르니 다시 청주정공과 그 부인인 창녕조씨 묘지2기가 있는 65.9봉에 도착을 한다.

묘지 뒷쪽에도 여전히 잡목들이 우거져 사진 한장 남기고 이제부터 그 청주정공 묘지들을 쓸 때 만들어진 듯한 넓은 수레길을 따라 편안하게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곧이어 65.9봉 오르면서 헤어졌던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와 합류해 이제부터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진행을 한다.

잠시 진행을 하니 민가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갈림삼거리가 보이는데 그곳에서는 좌측 시멘트 도로를 따르는데 도로 우측으로는 농장 건물이 서 있다.

그 앞에는 목포와 삼호방향 및 해남과 미암 방향의 도로 방향이 표시된 도로 표지판이 서 있고 잠시 후 도로 우측에 있는 메추리 농장 건물의 사료 저장고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우측의 묘지로 이어지는 잡풀이 우거진 수레길을 타고 능선으로 오른다.


이곳에서 백구 한마리를 만나는데 오전 내내 그 백구와 함께 흑석지맥 산행을 동행하게 되어 외롭지 않게 진행하는 시간이 되었다.

풀섶에 내려 앉은 이슬을 털어내며 묘지 방향으로 오르니 파평윤씨 묘지들이 보이고 잠시 후 그 묘지를 지나 지독한 잡목을 헤치고 들어가니 넓은 밭에 초지들을 수확한 후 말리고 있는 풍경이 이채롭게 다가온다.

그 밭 경작지 좌측 가장자리를 타고 잠시 편안하게 걸어가니 앞서 걸어가는 백구가 길안내를 하듯 동행하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밭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우측 저 멀리 잡목 사이로 밝은 아침해가 떠오르고 발걸음 멈춘 후 그 멋진 일출을 담아 보지만 역시나 똑딱이의 한계만 느끼는 시간이다.

그래도 오랫만에 월출산 자락을 뚫고 올라오는 장엄한 일출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왠지 모르게 좋은 일들로 가득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밭 경작지가 끝나고 다시 이어지는 잡풀이 무성한 수레길을 따르니 등산화와 등산바지는 벌써 흥건하게 젖어 버렸다.

잠시 후 잡목과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고 다시 지독한 잡목과 넝쿨들을 뚫고 어렵게 진행하니 갑자기 등로 우측으로 높은 절개지가 나타나 난감하기만 하다.

어렵게 좌측으로 이어지는 그 절개지 능선을 따라 지독한 잡목을 뚫고 느리게 걸어 내려가니 도로 공사를 하며 절개된 산마루가 그대로 방치된 현장이 보인다.

절개지 주위에 자라고 있는 관목들과 잡풀들을 살펴보니 절개된 후 제법 오랜 시간 방치된 듯 관목들이 사람의 키만큼 자라고 있다.


그 절개지로 내려서서 반대쪽 절개지를 오르기 위해 진행하지만 도저히 그 절개지를 따라 오를 수 없기에 다시 뒤돌아 내려 와 그 절개지 좌측 저 멀리 능선을 통해 크게 우회하며 오른다.

제멋대로 자라는 잡목들과 소나무들로 인해 능선으로 오르는 것도 쉽지 않아 참으로 어렵게 오르니 숨이 목까지 차오르고 그곳에서 잠시 쉬며 물한모금 마시고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영암과 해남의 마을들 뒤로 땅끝기맥 마루금이 넘실거리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두륜산처럼 보인다.


어렵게 그 절개지 정상부로 올라 마루금을 찾아 걸어 진행하니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 한기를 만나고 곧이어 새롭게 조성된 묘지 한기도 만나는데 그 묘지를 지나니 다시 등로가 사라지며 지독한 잡목이 앞을 내주지 않는다.

너무나 힘들게 그 잡목을 뚫고 들어가니 잠시 후 키 작은 소나무와 관목들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지나온 방향인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잡목 사이 저 멀리 어제 걸어 진행한 흑석지맥의 벌매산에서 가학산과 흑석산 그리고 두억봉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을 멈춰 살펴 본다.

남쪽으로는 아침 햇살을 받아 따뜻하게 빛나는 영암과 해남 들판을 내려다 보고 다시 출발해 간벌된 소나무들이 널부러진 잡목 등로를 타고 100봉을 지나 참으로 어렵게 진행하는 산행이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100.9봉을 지나 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지독한 잡목을 헤치고 오르니 우측으로 121 삼각점봉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 삼거리 소나무에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그곳 121봉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이곳도 역시 지독한 잡목들이 길을 막아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며 진행속도도 전혀 나질 않는다.

잠시 후 잘 관리되고 있는 몇기의 무명 묘지들을 만나 통과하고 짧은 편백나무 지대를 지나 무명 묘지 한기를 넘으니 또 다시 지독한 잡목들이 발목을 붙잡고 놔 주질 않는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게 그 잡목을 헤치고 나가니 온 몸에선 벌써 아프고 쓰라리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렇게 진행 해 봉우리 같지 않은 60.9봉을 넘어 좌측으로 걸어 잡목을 헤치며 완만하게 내려가니 여전히 백구가 이 산객 옆으로 따라오고 있다.

잠시 후 키 작은 편백나무들을 식재한 장소로 빠져 나와 서쪽 진행 방향으로 이어지는 흑석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며 긴 한숨을 내쉰다.


편백나무가 식재된 능선을 내려가니 등산화와 바지가 완전히 젖어 있고 곧바로 밭 가장자리로 내려가니 황토 흙이 달라 붙으며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밭 경작지를 내려가니 이제 모내기를 준비하는 물이 가득찬 논둑을 통해 산행을 어렵게 이어가고 잠시 후 무화과 과수원도 통과를 하는데 이른 새벽인데도 많은 농부들이 들에 나와 일을 하고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밀양박공 묘지들을 지나 비포장 임도와 만나 조금은 편안하게 진행을 하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농로를 만나 등산화에 달라 붙어 있는 흙들을 털어 본다.


한동안 같이 진행을 하여 조금은 친숙한 백구에게 말도 걸어보고 불러도 보니 처음보다는 거리가 많이 가깝게 다가온다.

원 마루금은 도로 우측의 나즈막한 산줄기로 이어지지만 들어 갈 수가 없어 그 바로 옆으로 나 있는 시멘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진행하기로 한다.

도로 우측 바로 옆으로 인공 수로가 흐르고 그 뒤로 원 마루금이라 생각되는 산줄기가 흐르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해 걸어가니 화산목장 입간판이 서 있는 2차선 포장도로인 현미곤로가 지나는 한정고개에 도착을 한다.

한정고개는 바로 아래에 있는 신한리 한정마을에서 따 온 이름처럼 보이는데 그 유래를 살펴보니 한정리는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있는 리로서

영암만에 위치하며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신한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주래, 한정, 신정, 만화 등이 있는데 주래는 신한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배가 마을 앞까지 들어왔었다 하여 주래라 하였고 한정은 주래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웃주래라 하였으며 신한리 서쪽 끝이 되며 신정은 주래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아랫주래라 하였으며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신정이라 한다.

만화는 웃주래와 아랫주래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가운데 주래라 하였고 아랫주래 남쪽에는 쩍(조개굴)이 많이 나는 쪽개가 있어 김을 많이 생산한다.

그곳 한정고개에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고갯마루를 넘어 다시 우측 능선 방향의 미암면 도로표지판이 서 있는 곳의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한정고개에서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무명 묘지 2기가 보이고 그 묘지 뒤로 오르니 이곳도 역시 지독한 간벌목들이 널부러져 썩어가고 그 사이로 자라기 시작하는 잡목들이 진행을 상당히 방해하고 있다.

잠시 후 식재된 듯한 소나무들이 열을 맞춰 자라고 있는 키 작은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다시 평이하게 진행되고 잠시 후 처음보는 시멘트 묘지들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저 멀리 어제 걸어 온 흑석지맥 마루금이 다시 한눈에 들어 와 잠시 사진 몇장 남기고 출발한다.


그 시멘트 묘지들을 지나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논과 밭들이 펼쳐져 있고 이제 농사철로 접어 들며 바쁜 농부들의 일손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지독한 잡목을 헤치고 어렵게 진행을 하니 해남 402라는 삼각점이 박혀있는 48.2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조만간 잡목이 우거져 오르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봉우리이다.


다시 나타나는 잡목을 뚫고 내려가니 갑자기 청다래넝쿨이 앞을 가로막아 진행도 어렵고 뒤로 물러서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에 빠진다.

온 몸에 많은 생채기를 내며 참으로 어렵게 그 청다래넝쿨을 뚫고 내려가니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비포장 수레길을 만나 긴 란숨을 토해낸다.

이런 등로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해야 되는지 회의가 들기 시작하기는 처음인듯 하다.

잠시 후 천주교신자 묘지2기가 있는 곳을 지나 비포장 임도 사거리 안부를 지나 이제부터 낙원묘역으로 들어서는데 같이 진행하는 백구는 여전히 이 산객의 친구가 되어 이제는 이 산객의 눈치를 보며 가야 할 마루금을 안내하듯 앞서 걸어간다.


낙원묘역을 좌측에 두고 그 우측의 넓은 등로를 따라 오르니 금새 그 정상부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낙원묘약 방향인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드넓은 미암면 해남만과 영암호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해남만은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면, 미암면과 해남군 산이면, 마산면 사이에 있는 만으로 만의 입구에 목포시가 자리잡고 있으며 또한 외달도, 달리도, 장좌도, 고하도 등이 만의 입구를 막고 있어 만의 입구는 좁으며 안쪽으로 깊숙이 만입되어 있다.

만내에는 금호도, 고마도, 황도, 증도, 달도, 민가도 등이 흩어져 있고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으로 해안선의 드나듦이 복잡하며 해안을 따라 간석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연안에서는 굴·낙지가 주로 잡히며 영암군 삼호면의 용당리·난전리 일대를 중심으로 천일제염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1996년 해남군 화원면 영호리에서 해남군 산이면 금호도와 달도를 거쳐 영암군 삼호면 황도에 이르는 총길이 4.32 Km의 영암금호 방조제가 건설되었다.


낙원묘역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곧바로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서는데 이제부터 그 도로를 따라 우측의 오복 방향으로 걸어 간다.

오복은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망산리에 있는 마을로서 망산리는 영산강 하구 망월천 서남쪽 아래에 위치하며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가는고지, 망우정, 오복, 장산, 화동 등이 있는데 가는고지 마을은 망우정 북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가는 곶으로 되었다 하여 가는고지라 하고 망우정은 망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앞산의 지형이 소처럼 되었다 하여 망산이라 한다.

오복은 망산 남쪽에 있는 마을이고 장산은 망산 동쪽에 있는 마을로 길게 뻗은 산등성이 밑이 된다 하여 장산이라 한다.

화동은 오복 동남쪽 등성이 밑에 있는 마을로 옹기점이 있었다 하여 점등이라고도 하였으며 문화재로는 영암 망산리 지석묘군이 있다.

백구는 이제 이 산객의 눈치를 살피며 진행하는 방향으로 갈림길이 나타나면 갈 방향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갈 방향을 알려주기까지 한다.


도로 우측으로는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그 뒤로 능선이 지나가는데 원 마루금은 그 능선이지만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이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도로 우측 가장자리로 소 먹이로 사용되는 볏짚들이 흰포장된 상태로 길게 이어지고 잠시 후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 중간에는 오복이라는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그곳에서 우측 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오복고개에서 좌측 마루금을 따라 진행을 해야 되지만 그 능선 좌측 바로 옆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 있어 그 도로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지금까지 잡목들과 청다래넝쿨 그리고 가시나무들로 인해 온 몸이 망신창이가 되어 있어 능선으로 진행하기가 참으로 무서워지고 이런 경험은 산행을 하면서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기 전에 우측의 2차선 포장도로 끝자락으로 올라가는 오복고개를 사진에 담아 본다.

오복고개는 이곳 망산리의 오복마을이 있어 그 이름을 따 온 것은 아닐까 생각이 되는 나즈막한 고갯마루이다.

또한 이 오복고개는 신한리와 서창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인데 지금은 2차선 포장도로가 생겨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고갯마루가 되었다.


오복 버스정류장을 지나 시멘트 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곧바로 우측으로 민가가 나타나고 잠시 후 이천서씨 유골묘가 나타난다.

그 이후 등로 우측 원 마루금 방향으로는 잡풀들이 자라고 있는 수많은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뒤로 잡목들이 우거진 마루금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계속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는 마루금이 그리고 좌측으로는 드넓은 평야지대를 지나 영암호가 빤히 내려다 보인다.


계속 그 시멘트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농장 건물들이 보이고 잠시 그 건물 좌측 도로를 ㄸ라 오르니 주안농장과 삼휘축산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2차선 포장도로 우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우측 원 마루금에서 내려오는 방향으로 비포장 임도가 보이고 그 끝자락에는 나무로 된 이정표가 서 있는데 마루금 방향으로 등산로 1.2 Km와 진행 방향인 북쪽으로 망산마을이란 글자가 보이는 이정표이다.

그곳 이정표 앞에서 잠시 쉬면서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 본다.

잠시 허기를 달랜 후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가기 직전 이정표 앞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아래 망산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우측 저멀리 상은적산이 드높게 올려다 보인다.

어제 가학산과 흑석산 쪽에서 봤을 땐 저 멀리 그렇게도 멀어 보였던 상은적산이 이제 바로 눈 앞으로 다가온 느낌으로 서 있다.

조금씩 햇살이 중천으로 떠 오르며 도로의 열기도 올라 점점 더 굵은 땀방울이 쉴새 없이 흘러 내려 닦아내기 바쁜 시간이다.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잠시 망산바을 방향으로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는데 원 마루금은 그 방향으로 올라 능선을 따라 우측 망산마을로 진행을 해야 되지만 잡목과 가시넝쿨로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그냥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잠시 더 내려가니 무화과 과수원과 잘 정돈된 밭 경작지들이 나타나는데 마루금은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망산마을 가운데를 통해 진행해야 되지만 그 정리된 밭에 농부들이 나와 일을 하고 있어 방해가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망산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기로 한다.


다시 갈림 사거리를 직진 방향으로 진행하고 잠시 후 다시 나타나는 갈림 삼거리의 도로 표지판에서는 직진의 독천과 목포 방향으로 걸어 본다.

그렇게 진행하니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망산마을 주차장과 창고 그리고 민가들이 보이는 곳을 지나 농기구 창고도 통과를 한다.

그곳을 지나 ㄱ속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로 바로 옆 민가의 밭에 농부가 일을 하고 있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출발한다.

그렇게 진행하니 둔덕을 넘어 도로 좌측 앞으로 권농교회가 나타나고 계속 직진 방향의 2번 지방도로를 바라보며 진행을 한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바로 앞으로 2번 지방도로가 나타나는데 그 앞으로는 좌측으로 대불산단과 목포 방향이 우측으로는 독천과 영암 방향의 도로 표지판이 서 있다.

그곳으로 내려가 2번 4차선 포장도로의 원망산 버스정류장 앞 횡단보도를 통해 도로를 건너 또 다른 원망산 버스정류장에서 아주머니 한분과 함께 목포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려 본다.

원망산마을은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망산리에 속하는 마을로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화동리, 오복리, 망우정리, 장산리, 목우촌리 일부를 병합하면서 망우정리의 망자와 장산리의 산자를 따서 망산리라 했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종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망산리로 개설되었으며 1917년 곤일종면이 삼호면으로 개칭하면서 삼호면 망산리로 2003년 5월 1일 삼호면이 삼호읍으로 승격하면서 삼호읍 망산리가 되었다.

낮은 구릉이 망산리 중심에서 동서쪽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는 마을로 남쪽에는 1980년대 영산강 농업 개발 사업으로 인해 간척된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고 그 밑으로 영암호가 있다.

북쪽으로는 논과 밭이 섞여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은 서청 저수지와 맞닿아 있고 동역제와 목우촌제 등의 작은 제방들이 있다.

2012년 11월 기준으로 망산리의 면적은 12,757 Km2이며 동쪽은 서창리, 신한리, 서쪽은 서호리, 남쪽은 영암호, 북쪽은 동호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현재 행정 구역은 원망산 마을을 망산 1리, 오복 마을을 망산 2리로 운영하고 있으며 4개의 반이 있고 원망산 마을, 오복 마을, 화동 마을, 장산 마들 등의 자연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망산 마을의 입구에는 6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1994년 목포 대학교에서 발굴한 결과 돌살촉, 돌끌, 관옥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국도 2호선이 망산리 북쪽을 관통하고 있다.


산행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이곳 원망산부터 세한대학교까지는 약간의 우회도로와 마을을 통과는 하지만 대부분 이 2번 4차선 포장도로와 가깝게 진행이 되고 또한 상당 시간은 직접 이 2번 지방도로를 걸어야 하기에 오늘 처음으로 마을 버스를 타고 세한대학교까지 진행하기로 하는데 기분 좋게도 버스를 기다리며 아주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25인승 버스가 도착을 해 약 3 Km 거리를 편안하게 진행을 한다.

그렇게 대불대학교에서 세한대학교로 개명을 한 세한대학교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해 서쪽 방향으로 약간 걸어가 우측으로 높게 보이는 국제학부 건물 뒤로 올려다 보이는 호등산으로 향한다.

지금까지 산행을 하면서 지독한 잡목과 험난한 청다래가시넝쿨로 인해 가장 어렵고 힘들게 진행하는 맥 산행으로 기억되었고 또한 직접 두발로 걷지 못하고 대중교통까지 이용하는 참담한 경험까지 하게 돼 많은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안위도 해 보는 시간이다.


세한대학교 앞 대불교차로에서 2번 4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인 읍소재지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세한대학교와는 별도로 높은 국제학사 건물이 보이고 그 뒤로 숨어 있는 호등산이 존재한다.

도로 좌측으로는 영암호가 바짝 다가와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도로 우측의 세한대학교 국제학사 건물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 건물 바로 앞에서 좌측으로 틀어 걸어 본다.


세한대학교 국제학사 건물 앞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니 넓은 공터 우측 콘크리트 옹벽쪽으로 작은 철사다리가 놓여있고 그 위로 호등산으로 오르는 등로가 올려다 보여 좌측 능선으로 돌아 오르지 않고 그 사다리로 올라 본다.

어렵게 사다리와 짧은 절개지를 올라 넓은 등로와 만나는 곳에서 잠시 지나온 등로를 내려다 보니 2번 도로와 수중보 그리고 영암호가 바로 직척으로 보인다.

다시 통나무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가파른 된비알을 통해 호등산으로 올라 본다.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통해 호등산으로 오르니 이곳은 생각보다 등로가 잘 나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오르는데 잠시 후 큰 바위 암릉을 만나 그곳에서 심호흡을 하면서 지나온 등로를 내려다 본다.

방금 전 올라 온 세한대학교 국제학사 건물과 그 아래 영산강과 영암호를 연결하는 수로 위 공도2교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영암호가 아름다운 그림으로 다가온다.


그곳 바위 암릉에서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걸어 오르니 눈 앞에 조금 더 거대한 암릉이 보이고 그 암릉을 좌측으로 우회해 오른 후 암릉으로 뒤돌아 오르니 그곳 역시 멋진 전망대 역활를 하면서 일망무제 시원한 조망이 펼쳦져 있다.

등로 좌측인 서쪽 방향으로는 삼호읍이 내려다 보이고 그 한쪽에는 어젯밤 이 산객이 묵었던 찜질방 건물도 보인다.

그 삼호읍 지나 저 멀리 끊어질 듯 이어지며 그 맥을 다하는 흑석지맥 등로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한동안 그 암릉에서 멋진 조망을 즐긴 후 다시 뚜렷한 그늘 등로를 타고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무인산물감시카메라와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호등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하지만 그 정상에는 기대했던 정상석 하나 없이 그 어느곳에서도 이곳이 호등산임을 알리는 표식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사진 몇장 남기고 그 뜨거운 태양볕이 작렬하는 호등산을 출발해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진행하다 등로 우측으로 조망이 멋져 살펴보니 그곳에 어제부터 걸어 진행한 흑석지맥의 모든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바로 앞에 좌측의 영산강과 우측의 영암호를 이어주는 인공강물이 보이고 그 뒤로 비산비야를 달려 힘들게 이어져 있는 흑석지맥이 농경지와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파괴되어 있는 풍경도 보인다.

그 뒤 저 멀리에는 어제 멋진 조망을 즐기며 늦게 하산한 두억봉과 흑석산 그리고 가학산 줄기가 박무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어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흑석지맥 마루금 좌측으로는 처음으로 영산강이 내려다 보이고 그 영산강 넘어 저 멀리에는 목포의 유달산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영산기맥이 옛 추억을 들려주며 다음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멋진 조망을 즐긴 후 잠시 걸어가니 등로 우측 옆으로 아무 표식이 없는 삼각점이 박혀있고 그 옆 나뭇가지에는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매달려 있다.

호등산(126.8봉)은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앙리와 산호리 경계에 우뚝 솟은 뫼로 콧등이 홋등으로 다시 호등으로 변하여 현재의 이름으로 불려진다.

영암군 신북면 호산과 마찬가지로 산의 모양이 호랑이와 같다고 하여 범 호자와 고개 등자를 써 호등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호등산은 소동산 또는 또 다른 한자의 소등산으로도 부르기도 하는데 산호리와 용앙리 사이의 길목을 범슬목이라 부른다.

호등산은 선황산에서 서쪽으로 10 Km 치달리는 구릉 능선에서 솟은 봉우리이다.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의 표층 지질은 중생대 경상계 유천층군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고 호등산 정상은 백악기 말에 분출한 안산암, 유문암, 응회암 등의 화산암류에 지역에 따라 퇴적암류가 혼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별뫼산에서 삼호읍 용당리까지를 흑석지맥이라 칭하지만, 세한 대학교 동편 영암호 수로(연암제 수문)가 산줄기를 잘라 호등산 서편 산줄기 15 Km 정도가 섬이 되었다.
호등산 동쪽 기슭에 세한 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고 북쪽은 영산호가 남쪽은 영암호인데 두 호수를 연결하는 수로가 호등산 동편에 나 있으며 호등산 남서쪽으로 국도 2호선인 녹색로가 통과하며 삼호읍 소재지가 펼쳐져 있다.


띠지들은 대부분 맥 잇기 산행을 하면서 만났던 띠지들이 대부분이다.


호등산 정상의 삼각점을 사진에 담은 후 다시 그 호등산을 출발하니 잡목들이 자라고 있지만 생각보다 등로는 뚜렷하게 나 있어 진행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잠시 뚜렷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마루금은 붉은 띠지가 소나무에 걸려 있는 곳에서 뚜렷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갈리는 등로를 따라 진행하게 되는데 상당히 길주의 구간처럼 보인다.


이곳 좌측으로 갈리는 마루금 역시 생각보다 뚜렷하게 나 있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 없이 내려간다.

잠시 내려가니 큰 비석들이 세워져 있는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내려가 살펴보니 참봉 밀양박공과 부인인 광산김씨 그리고 다른 여러 묘지들이 함께하는 묘지지대이다.

참봉은 조선시대 있었던 종9품 벼슬로서 조선시대의 원, 능전 및 사옹원, 내의원, 예빈시, 군기시, 군자감, 소격서 등 많은 관서에 속해 있었던 관직이며 최말단직의 품관이다.


그 참봉 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이제부터 넓은 비포장 수레길이 나타나고 오랫만에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내려가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직진 방향으로는 47.9봉 가는 수레길이고 이곳에서 마루금은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닌 수레길을 따른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영암군 삼호읍 용앙리의 무화과 과수원이 나타나고 좌측으로는 제법 높아 보이는 건물도 한동 서 있다.


다시 무화과 과수원과 민가 사이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잠시 헤어졌던 2번 6차선 포장도로와 다시 만나 그 도로를 건너 진행된다.

도로 우측 멀리에는 그쪽 방향으로 오늘 산행 날머리인 제3함대사령부라는 커다란 도로표지판이 걸려있어 오늘 산행 종착지도 멀지 않았음을 느끼는 시간이다.

다시 상가들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 그 2번 도로와 멀어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들어가니 1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인공수로를 건너는데 그 도로 좌측으로는 파주옥숯불갈비라는 식당이 보인다.

그 식당 앞에서 우측 무화과 과수원 사이로 나 있는 둑을 통해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는데 잠시 후 밭에서 일을 하고 계신 부부 농부와 인사 나누고 잠시 이야기도 나눈 후 출발한다.

무화과 과수원 우측 가장자리쪽에는 모텔이라 생각되는 큰 건물 2동이 서 있어 이런 농촌에 왠 저런 모텔이 필요한지 조금은 의아해지는 시간이다.


무화과 과수원 사이로 나 있는 마루금을 타고 걸어가니 금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간다.

잠시 걸어 가 만나는 갈림 삼거리에서는 우측 도로를 버리고 좌측 도로를 따라 걸어가고 곧이어 금호읍 문화복지타운 단지로 진입한다.

도로 좌측으로는 영암군 근로자 종합복지관과 삼호고등학교 건물들이 도로 좌측으로 연이어 나타난다.


금호읍 문화복지단지 안내도가 서 있는 사거리에서 우측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 저 멀리에는 삼호종합문화체육센터와 삼호전천후게이트볼장 건물들이 보인다.

그리 오래전 조성된 문화단지가 아닌듯 한데 건물과 공간에 비해 이용하는 시민들은 거의 없는 듯 보인다.


다시 만나는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 도로를 버리고 좌측 도로를 따르니 도로 좌측으로는 삼호전천후게이트볼장 건물을 통과한다.

그렇게 오르니 넓은 잔디밭 우측에 육각정자가 보여 잠시 그곳으로 가 물 한모금 마시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은 후 배낭과 등산복을 새로 고쳐 입고 다시 눈 앞으로 보이는 우거진 잡목을 헤치고 능선으로 올라 본다.


육각정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삼호읍문화복지단지 뒷쪽으로 나 있는 절개지의 수로를 타고 잠시 진행을 하지만 잡목들로 인해 진행이 불가능해 다시 내려 와 능선 진입로를 살펴보니 산 능선에 서 있는 높은 송전탑으로 오르는 희미한 등로가 보여 그곳으로 잡풀을 헤치고 오르니 생각보다 등로가 잘 나 있다.

한동안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니 86번 송전탑을 지나 넓은 수레길을 만나 이제부터 그 수레길을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통나무 계단 등로도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수레길을 타고 오랫만에 여유있게 걸어보는 시간은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 받듯 이어진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한쪽에는 이정표와 벤취 쉼터들 그리고 운동기구들이 보이는데 마루금은 좌측 삼호중학교 방향이지만 우측으로 가까운 곳에 솔대목산(앞산, 108.5봉)이 있기에 두리봉까지는 아니더라고 앞산까지만이라도 다녀오기로 한다.


잡목 숲속에 배낭을 숨겨 놓고 조금은 빠르게 오르니 가는 도중에 운동기구와 조망처들이 보이지만 그곳은 하산길에 들리기로 하고 빠르게 오르니 금새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솔대목산(앞산, 108.5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정상에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르게 많은 주민들이 올라 와 열심히 운동을 하고 계시기에 부탁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아무 표식도 없고 자료도 찾을 수 없지만 두리봉 소개글에 나타나는 솔대목산(앞산) 정상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잘 정리된 넓은 등로를 타고 다시 솔대목산을 출발해 갈림삼거리로 되돌아 내려가니 사각정자가 있는 좌측으로 조망처가 보이고 그곳으로 가 살펴보니 남동쪽으로 방금 전 어렵게 통과한 세한대학교 뒷편의 호등산이 제법 높은 높이를 자랑하며 가깝게 서 있다.

그 좌측 저 멀리로는 어제 진행한 첫구간의 산들도 아스라히 멀어져 있다.


다시 조금 더 내려 가 이번에는 등로 우측의 바위 암릉으로 오르니 앞으로 진행할 방향의 산줄기가 보이고 사진 몇장 남기고 내려가니 금새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이제는 진행 방향의 우측 운동기구와 벤취들이 설치되어 있는 금호중학교 방향으로 내려가 본다.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긴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다시 넓은 수레길이 보이고 곧이어 우측으로 상촌마을 하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만난다.

다시 나타나는 계단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금호중학교 건물들이 보이고 곧이어 그 금호중학교 정문으로 빠져 나간다.

 

금호중학교 앞으로 뻗어있는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도로 우측 아래를 살펴보니 많은 고층 아파트 단지 우측 옆으로 어젯밤 묵었던 금호보석사우나 건물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이곳으로 내려 와 다시 한번 묵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평일 밤 하루 잘 묵은 곳이다.

삼호교회 앞을 지나 1차선 어린이보호 구역을 통과하자 도로는 좌측으로 꺽여 진행되고 디파크 셀프세차장 건물을 끼고 우측으로 돌아가니 퀸스빌 아파트 앞 갈림사거리가 나타나는데 한쪽에는 커다란 중앙촌이란 이정석이 서 있다.

중앙에는 커다란 인공구조물도 서 있는 사거리 로타리에서 좌측으로 조금 돌아 보이는 바지락 칼국수집에 들어가 시원한 맥주 한병과 바지락 칼국수 한그릇으로 이른 점심식사를 하고 출발하는데 얼마나 목이 말랐는지 시원한 물 한통을 다 마시고도 맥주 한병 그리고 바지락 칼국수 국물까지 완전히 비우고 나서야 그 식당을 나올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오전 11시를 넘기면서 머리 위로 솟아지는 강렬한 태양 열기가 더욱 무더위를 가중시키는 시간에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오니 조금은 견딜만 하다.

도로를 건너 반대쪽 영암삼호퀸즈빌 아파트 직전 좌측 포장도로를 타고 올라가니 그곳이 바로 금호도서관으로 도서관 우측 콘크리트 담을 올라 능선으로 오르며 어려운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것은 여전하지만 편백나무가 심어져 있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 조금은 빠르게 방향만 보고 오르니 갑자기 등로 우측 옆으로 민가가 보이고 조심하여 그 민가를 지나 잡목을 뚫고 걸어가니 갑자기 강렬한 차량 소음이 들리며 지독한 잡목 아래 직벽의 절개지 아래로 곧게 뻗어 있는 4차선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는데 그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어떻게 저 절개지 아래 4차선 포장도로로 내려갈 수 있을지 난감해 하며 좌측 잡목을 뚫고 천천히 내려가니 청다래넝쿨이 앞을 가로막으며 또 다시 온 몸에 깊은 생채기들을 만든다.


지독한 잡목 사이로 보이는 삼호벧엘교회 방향으로 틀어 내려가니 다시 지독한 칡넝쿨이 발목을 붙잡고 손등에 잔 생채기를 수없이 남긴 후에야 그 지독한 잡목과 청다래넝쿨 그리고 칡넝쿨을 통과해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콘크리트 옹벽 앞에 도착을 해 다시 그 옹벽을 타고 도로 위로 오른다.

개설된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4차선 도로로서 지도를 살펴보니 49번 지방도로이다.

그 도로를 조심하여 횡단한 다음 건물 하나가 있는 우측 절개지 방향의 잡목지대를 뚫고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나질 않아 포기하고 도로를 타고 걸어가는 방법을 강구해 보는데 그 능선 위 봉우리에 삼각점이 있다는 표시에 올라가 그 삼각점을 사진에 담기로 한다.


하지만 오르면서 너무나 지독한 잡목과 가시넝쿨들로 인해 올라오는 것을 무척 후회해 보지만 이미 늦어 진퇴양난이다.

잠시 큰 벗나무를 통해 오르니 콘크리트 수로가 보이고 그 수로를 통해 천천히 오르니 그 수로 방향으로 덩쿨식물과 가시나무들이 커가면서 넘어 와 중간 지대부터 수로를 타고 오르는 것도 불가능하다.

주위를 살피며 수로 우측 절개지 방향으로 올라 오르니 우측 직벽 같은 절개지가 위험스럽고 칡넝쿨과 가시덩쿨이 길을 막아 여간 험하지 않다.

머리 위로 솟아지는 강렬한 햇살이 더욱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고 그렇게 너무나 힘들게 오르니 방금 전 너무 고생을 하며 내려 왔던 49번 도로 건너편의 절개지 상단과 그 좌측으로 금호읍 방향의 아파트들 그리고 지나온 흑석지맥 마루금이 저 멀리 길게 이어져 온 풍경이 그나마 위안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산행을 하면서도 오늘같이 큰 회의에 빠졌던 기억이 없는데 오늘은 정말로 너무나 힘들고 온 몸이 아파 맥 잇기 산행을 중단하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그렇게 절개지를 지나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드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 있을 삼각점을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삼각점을 찾을 수 없어 허탈하기만 하다.

이곳 헬기장 정상은 68.6봉으로 조금은 아쉬움을 남긴채 물 한모금 마시고 보이지 않는 등로를 찾아 방향만 보고 출발한다.


희미하게 이어져 있는 등로를 찾아 어렵게 진행을 하니 잠시 후 등로에는 키 작은 소나무들과 잡목들이 자라며 진행에는 어느 정도 도움을 주지만 강렬한 햇볕을 막아 줄 그늘이 없어 온 몸은 다시 불덩이처럼 뜨거워지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 드넓은 들판이 보이고 그 직전 한쪽에는 난전저수지 지나 소림학교도 내려다 보인다.

이제 들판 끝자락으로는 드넓은 영암호가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고 그 넘어에는 해남의 산이면쪽 나즈막한 산줄기들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뜨겁지만 그렇게 멋진 조망을 즐기며 내려가니 비포장 수레길이 나타나고 이제서야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금은 여유를 찾아 본다.

온 몸의 생채기들과 땀방울들로 인해 따가워지고 아파오는 시간에 머리 위로 솟아지는 태양 열은 왜 그리 또 뜨겁던지 진행에 고민이 많은 시간이다.

잠시 쉬면서 물 한모금 더 마시고 수레길을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이제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등로 좌측 아래 저 멀리 밭 경작지를 지나 영암호와 그 넘어 해남의 산군들이 다가 와 있다.


앞으로 진행해야 할 방향을 바라보며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계속 뜨거워진 등로를 따르니 금새 2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지도를 펴 놓고 트랙을 확인하며 어떻게 진행해야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해 보니 원 마루금을 정상적으로 타고 진행하기 어려우면 지하통로를 통해 49번 도로를 통과하고 806번 도로를 따라 다시 49번 도로로 진행하는 것이 최선이란 결론에 도달을 한다.

하지만 그냥 도로를 따라 진행할 수가 없어 만난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반대쪽 능선으로 들어 가 보지만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57.3봉은 포기하고 계속 그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고갯마루로 오르니 갈림삼거리가 보이고 이제는 직진으로 가는 2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지하통로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 가 본다.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저 멀리 방금 전 지나 온 삼호읍 방향의 아파트 촌들과 어렵게 진행했던 흑석지맥 마루금이 보이고 잠시 후 49번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널 수 있는 지하통로가 보인다.

그 지하통로를 통해 49번 도로를 통과한 후 계속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열심히 걸어 본다.


그렇게 걸어가니 저두 버스정류장이 있는 806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이곳에서는 좌측의 삼호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저두마을은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난전리에 있는 마을로서 영산강 하구로 대부분 낮은 산지들과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윤덕, 도음전, 저두리, 매산리, 새벗, 오송동 등이 있는데 윤덕은 둔덕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눈덕이라 하였고 당두는 뒷산에서 당산제를 지냈다 하여 당머리, 당두라 하였으며 도음전은 난대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동그랗게 되었다 한다.

저두는 난전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돈머리, 돝머리라고도 하였고 매산리는 뒤묵굴 북서쪽 산 밑에 있는 마을로 매실방죽이 있으며 새벗 마을은 새로 만든 벗(소금 굽는 가마)이 있었다 하여 새벗이라 한다.

오송동은 두엄재 북쪽에 있는 마을로 솔 숲이 있었다 하여 오송골이라 하였으며 군경원호 단체에서 경영했던 염전과 난전리 지석묘군이 있다.

도로 옆으로는 소림학교와 F1자동차경기장 표지판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그곳 삼거리를 지나 걸어가니 잠시 후 다시 49번 4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그 넓은 도로가를 따라 걸어 본다.


뜨거워진 도로 위를 걷다 보니 도로만큼이나 지친 몸도 뜨거워지기 시작하며 또 다시 굵은 땀방울이 끊임없이 흘러 내린다.

잠시 후 대불교차로를 통과하고 49번과 806번 도로가 갈리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 난전리의 난전 버스정류장을 지나 직진으로 이어지는 49번 4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난대마을로 들어가며 어렵게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난대마을은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난전리의 마을로서 난전리는 본래 영암군 곤일종(삼호)읍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두리, 마산리, 난대리, 도음전, 윤덕리, 검길리, 당두리를 병합하여 난대와 도음전의 이름을 따서 난전리라 하였다.


난대마을 방향으로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들어가니 민가들 사이로 무화과 과수원들이 펼쳐져 있고 잠시 후 난대마을 중앙부를 지나는데 오래 전 이 산객이 살았던 고향 마을과 닮아 있는 듯 다른 마을이다.

그 민가 중앙부를 통과하니 다시 드넓은 무화과 과수원이 펼쳐져 있는데 정상 등로는 그 무화과 과수원 우측 중앙부의 붉은 송전탑 방향이지만 농부들이 일을 하고 있어 그 무화과 과수원 둑을 통해 진행한다.

그 무화과 과수원 끝자락 저 멀리 파란 물통 2개를 지나 능선속으로 23.4봉도 올려다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무 화과 과수원 둑을 따라 걸어가니 과수원에서 물을 주며 일을 하던 농부가 이 뜨거운 날씨에 무슨 산행이냐며 쉬어가라 하지만 쉴 수가 없어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과수원 가운데를 통해 진행하는 미안함을 전한다.

그렇게 그늘 하나 없는 무화과 과수원을 통해 2개의 파란 물통을 지나 능선으로 들어가니 그곳도 역시 잡목들이 자라며 진입에 어려움이 있지만 아직은 견딜만하여 들어 가 23.4봉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무화과 과수원 방향으로 나와 그 과수원 우측 상단부의 가장자리를 통해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잡목이 우거진 23.4봉을 들렸다 나와 다시 이어지는 무화과 과수원 우측 능선을 따라 걸어가니 등로 좌측 무화과 과수원 아래로는 난전리 마을이 아름답게 조용히 내려다 보인다.

다시 무화과 과수원을 지나 진행을 하니 잘 가꿔진 비닐밭에 고구마가 심어져 있고 그 옆으로는 콩들이 잘 자라고 있는 고랑 사이를 타고 진행하며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조심해 그 고구마 밭을 지나니 다시 무화과 과수원이 나타나고 이번에는 그 과수원 가운데를 따라 조심하며 걸어 가 민가 방향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임도 좌우측으로는 무화과 과수원과 모내기를 위해 물을 가둬 놓은 논이 보이고 그 가운데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민가들이 나타난다.

민가를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니 이곳도 역시 도로 옆으로는 인공수로가 지나고 그곳에는 많은 물이 흐르고 있다.

그 인공수로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금새 2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 옆으로는 도움전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당두와 난대 사이의 도움전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도움전 역시 전라남도 영암군 난전리의 마을로서 난전리는 본래 영암군 곤일종(삼호)읍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두리, 마산리, 난대리, 도음전, 윤덕리, 검길리, 당두리를 병합하여 난대와 도음전의 이름을 따서 난전리라 하였다.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조금 걸어가다 도로 좌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 방향으로 따라 들어가니 스파클목포대불총판점 건물이 나타나고 그 건물을 끼고 돌아 오르니 갑자기 민가 앞마당으로 이어져 잠시 고민하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그 마당을 가로질러 능선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마당 직전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진행해온 과수원과 밭 그리고 민가들이 여유롭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난전리의 난대마을과 도움전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민가 마당을 지나 능선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잡목과 벌목된 나무들이 벽을 만들어 통과하기가 무척 까다롭고 어렵게 그 벽을 넘어가니 잘 정비된 고사리 밭과 고추밭이 펼쳐져 있다.


   

고사리와 고추밭을 지나 걸어가니 장 정비된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후 민가 뒷편의 대나무 밭을 통과한다.

다시 나타나는 밭을 지나 능선으로 들어가니 이곳은 여전히 넓은 수레길이 이어지고 잠시 그 수레길을 따르니 또 다시 무화과 과수원이 보인다.

과수원을 지나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능선으로 들어가니 갑자기 임도가 끝이나며 잡목이 우거지기 시작하는데 곧바로 표식을 알 수 없는 57.9봉의 삼각점이 보인다.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능선에서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조금 더 진행하니 다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하니 밭 가장자리를 따라 마을쪽으로 완만하게 내려가 장전교회 앞을 지난다.

도로 좌측으로는 민가들과 각 방마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큰 건물 하나가 보이는데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다.

아직도 난전리 마을로 보이는 민가들이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또 다른 2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옆으로는 검길마을이란 이정석과 용당과 삼호 사이의 검길이라는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검길마을은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난전리의 마을로서 난전리는 본래 영암군 곤일종(삼호)읍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두리, 마산리, 난대리, 도음전, 윤덕리, 검길리, 당두리를 병합하여 난대와 도음전의 이름을 따서 난전리라 하였으며 현재는 검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지만 예전 검길리가 있어 검길마을이라 부르고 있는 듯 보였다.


이곳 검길마을에서도 도로를 건너 반대편 능선으로 올라 64.5봉을 다녀와야 하지만 농부들이 과수원에서 일을 하고 있어 능선 진입을 포기하고 등로 좌측으로 지나는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잠시 그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오늘 산행 후 원용당 버스정류장에서 타ㅣ고 와야 할 300번 버스가 바로 이 도로를 달리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잠시 후 삼호와 목포 사이의 엄포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마을을 한번 둘러 본다.

엄포마을은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의 마을로서 본래 영암군 곤일종(삼호)읍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삼봉리, 엄포리, 가내항, 영호정을 병합하여 삼봉과 엄포의 이름을 따서 삼포리라 하였으며 현재 공식적으로는 사용되지 않지만 예전에 엄포리가 있던 마을이라 지역 주민들은 그 이름을 계속 사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


원 지맥 마루금과 다시 만나는 엄포 버스정류장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직진방향으로는 806번 진도와 화원 방향이 좌측으로는 49번 독천과 영암방향의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도로 우측의 유일3공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49번 4차선 지방도로와 다시 만나는 삼호교차로 도로표지판을 만나 49번 도로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삼포교차로로 나가니 도로 좌측으로 49번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우측으로는 806번 2차선 포장도로가 별도로 지나가는데 그곳에서 우측 806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본다.

잠시 걸어 들어가며 도로 좌측을 살펴보니 거대한 태양열 발전소들이 보이는데 그 한가운데엔 과거 잠시 반짝 인기를 얻었던 F1 자동차전용경기장이 보이는데 포뮬러 경기를 유치하지 못한 이후 지역 경제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에도 큰 어려움을 안겼던 곳이다.

지금은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경기장 주변 모두를 거대한 태양광 발전소로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계속 걸어가니 도로 좌측 앞으로 삼포교차로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그곳에서 806번 2차선 포장도로는 직진의 49번 포장도로와 멀어지며 우측으로 휘어 이러지고 있다.

잠시 코너를 돌아가니 한국펌프카 건물이 보이고 진행 방향 저 멀리 산허리를 군사 철조망으로 잘라버린 소이산이 한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까지 저 소이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로를 찾아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진행이 가능하리란 희망을 가지고 걸어 보는 시간이지만 곧바로 큰 실망으로 다가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도로 좌측으로는 다시 49번 도로가 나란히 달리고 그렇게 잠시 더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흙이야기란 식당 건물이 있는 곳에서 갈림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으로는 삼포리로 가는 길이고 좌측 진행방향은 삼호선단 표시 방향이다.

이제 도로 옆으로는 목포라는 도로 표지판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더 진행해 삼호마을과 중촌마을 도로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앞으로 바짝 다가온 소이산을 사진에 담아 본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도로 우측 옆으로 개발슈퍼가 보이고 그곳으로 들어가 시원한 음료수 두병을 한번에 마셔 버리니 주인장이 잠시 바라보다 나와 이야기를 건넨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F1자동차경기장에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이곳까지 관중들이 몰려 길게 줄이 늘어서고 그곳 경기장 주변에 식당과 가게가 없어 먹거리와 마실것을 사기 위해 이곳 슈퍼까지 사람들이 몰려 와 대박을 터트렸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지만 이제는 지역 경제에 아쉬움을 남겼다는 전언도 하고 있다.

잠시 쉬면서 몸의 열기를 달랜 후 다시 슈퍼를 나와 진행하니 도로 옆으로 효의고장 가내항이란 커다란 이정석이 보이고 가내항 버스정류장을 지나 상촌교차로에 도착을 한다.

가내항마을은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의 마을로서 본래 영암군 곤일종(삼호)읍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삼봉리, 엄포리, 가내항, 영호정을 병합하여 삼봉과 엄포의 이름을 따서 삼포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상촌마을은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의 마을인데 삼포리는 본래 영암군 곤일종(삼호)읍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삼봉리, 엄포리, 가내항, 영호정을 병합하여 삼봉과 엄포의 이름을 따서 삼포리라 하였다는 상촌교차로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그랑프리 오일뱅크를 지나 상촌 버스정류장을 통과한다.

잠시 후 도로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오르며 소아산으로 진입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오르니 밭 경작지가 나타나고 그 좌측 가장자리를 통해 조심스럽게 통과하니 벌써 한여름 잡풀과 잡목이 우거지듯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 초원지대가 나타난다.

어렵게 그 잡풀들을 헤치며 진행을 하니 은진송씨세장묘가 나타나고 잘 가꾸지 못한 묘지지대로 올라 소아산 들머리를 찾아 보지만 우거진 잡목들로 인해 도저히 진입이 불가능해 잠시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진입을 시도하다 포기하고 좌측의 49번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절개지 상단부를 통해 가시나무를 헤치며 어렵게 걸어 본다.

 

너무나 어렵게 그 소이산 하단부의 잡목과 가시지대를 많은 생채기를 내며 통과하니 건초들을 벌써 수확한 초지지대와 무화과 과수원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아쉬워 올려다 보이는 소아산을 담아 본다.

옛 문서에는 소아산과 대아산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산으로 표기를 하였다가 일제 강점기에 나눠진 듯 한데 기록들을 살펴보니 대아산(182.5봉)은 전라남도 영암군의 삼호읍 삼포리와 용당리 일대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82.5미터이다.

산봉우리 2개가 도로를 두고 마주보고 있어 북쪽의 산을 대아산(182.5봉)으로 남쪽의 산을 소아산(172.6봉)이라고 하는데 산 동쪽에는 대불국가산업단지가 있으며 서쪽으로 2번 국도와 810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조선 시대 사료에는 산과 소아산을 구분하지 않고 아산 혹은 다른 이름인 엄산으로 기록하였으며 여지고에 사호강은 (중략) 덕진포를 지나 엄산을 경유하여 목포가 되어 서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19첩5면)에 주룡포 서쪽에 엄산이 묘사되어 있는 것을 비롯해 동여도(20첩5면), 청구도(23층16면) 등에도 엄산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는 아산으로 기재되어 있다.

한편 조선지지자료(영암)에 소아산과 대아산으로 기록되었으며 한글로 자근엄산, 큰엄산이라고 병기되어 있으며 조선지형도(목포)에도 소아산과 대아산으로 나타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엄산에서 아산으로 표기가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호구총수와 고지도에 이 일대에 엄포가 기록되어 산지명과 관련된 것을 알 수 있으며 한국지명총람에 날이 가물 때 주민들이 무제(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고 믿어 영검한 산으로 유명함이라고 하여 이칭인 무제봉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오르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군사지역이라 어쩔 수 없다면 따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퍼진다.


사진으로만 소아산을 바라보고 밭과 무화과 과수원을 지나 다시 49번 4차선 포장도로로 내려오니 아산마을이란 커다란 이정석과 산음이라는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아산마을은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에 있는 마을로서 용당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원용당 마을의 이름을 따서 용당리라 했다.

원용당 마을 동쪽에 구태 못이 있어 사철 마르지 않아 주변 농토의 농업용수로 이용되었으며 이 못에 용이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용당이라 부르고 주변 마을 중 중심이 되는 마을이라 하여 원용당이라 하였다.

조선 시대에 곤일종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곤일종면 용당리로 개설되었다가 1917년 곤일종면이 삼호면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삼호면 용당리가 2003년 5월 1일 삼호면이 삼호읍으로 승격하면서 삼호읍 용당리가 되었다.

용당리는 삼호읍 서남부에 위치하며 마을 동쪽의 갈마산(113.3미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낮은 평지로 이루어졌는데 서쪽으로는 목포 내해가 펼쳐져 있고 현대 삼호 중공업이 있는 남쪽은 바다로 되어 있다.

마을 중앙에는 신촌 저수지가 있으며 영암군에 유일한 무인도인 등대섬이 목포 내해에 있다.

28개의 행정리와 64개의 반이 있으며 아산 마을, 원용당 마을, 산음 마을, 메밀항 마을, 신촌 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계속 이어지는 49번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아쉬워 도로 우측을 살펴보니 아산마을 뒷편으로 대아산 정상부의 군초소와 안테나가 올려다 보이고 그 대아산 7부 능선 주위로는 군철조망과 초소들이 설치되어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대아산(182.5봉)은 전라남도 영암군의 삼호읍 삼포리와 용당리 일대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82.5미터이다.

산봉우리 2개가 도로를 두고 마주보고 있어 북쪽의 산을 대아산(182.5봉)으로 남쪽의 산을 소아산(172.6봉)이라고 하는데 산 동쪽에는 대불국가산업단지가 있으며 서쪽으로 2번 국도와 810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조선 시대 사료에는 산과 소아산을 구분하지 않고 아산 혹은 다른 이름인 엄산으로 기록하였으며 여지고에 사호강은 (중략) 덕진포를 지나 엄산을 경유하여 목포가 되어 서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19첩5면)에 주룡포 서쪽에 엄산이 묘사되어 있는 것을 비롯해 동여도(20첩5면), 청구도(23층16면) 등에도 엄산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에는 아산으로 기재되어 있다.

한편 조선지지자료(영암)에 소아산과 대아산으로 기록되었으며 한글로 자근엄산, 큰엄산이라고 병기되어 있으며 조선지형도(목포)에도 소아산과 대아산으로 나타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엄산에서 아산으로 표기가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호구총수와 고지도에 이 일대에 엄포가 기록되어 산지명과 관련된 것을 알 수 있으며 한국지명총람에 날이 가물 때 주민들이 무제(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고 믿어 영검한 산으로 유명함이라고 하여 이칭인 무제봉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아산 버스정류장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또 다시 커다란 아산이라는 정상석이 서 있고 그 우측으로는 몇군데 식당들이 보이는데 마음 같아서는 들어가 시원한 탁배기 한병에 얼큰한 짬봉 국물 한그릇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계속 걸어가니 원용당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곧이어 원용당이란 커다란 이정석을 지나 용당교차로에 도착을 해 도로 건너 해군제3함대사령부 표지석을 사진에 담는다.

원용당마을은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에 있는 마을로서 용당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원용당 마을의 이름을 따서 용당리라 했다.

원용당 마을 동쪽에 구태 못이 있어 사철 마르지 않아 주변 농토의 농업용수로 이용되었으며 이 못에 용이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용당이라 부르고 주변 마을 중 중심이 되는 마을이라 하여 원용당이라 하였다.

조선 시대에 곤일종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곤일종면 용당리로 개설되었다가 1917년 곤일종면이 삼호면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삼호면 용당리가 2003년 5월 1일 삼호면이 삼호읍으로 승격하면서 삼호읍 용당리가 되었다.

용당리는 삼호읍 서남부에 위치하며 마을 동쪽의 갈마산(113.3미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낮은 평지로 이루어졌는데 서쪽으로는 목포 내해가 펼쳐져 있고 현대 삼호 중공업이 있는 남쪽은 바다로 되어 있다.

마을 중앙에는 신촌 저수지가 있으며 영암군에 유일한 무인도인 등대섬이 목포 내해에 있다.

28개의 행정리와 64개의 반이 있으며 아산 마을, 원용당 마을, 산음 마을, 메밀항 마을, 신촌 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이제 용당교차로를 지나 해군제3함대사령부 정문이 있는 직진 방향으로 계속 진행을 해 본다.


용당교차로를 지나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도로 좌측으로 제3함대사령부 방향이 그리고 직진 방향으로는 용당과 목포로 향하는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여유롭게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해군제3함대사령부 정문이 나타나고 위병소에 있는 장병에게 사진 한장 부탁하지만 사진 촬영금지구역이라기에 정상석만 사진에 담고 곧바로 영산강과 영암호가 합류하는 목포 유달산 방면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 본다.

잠시 후 저 멀리 영산강 넘어 유달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산객의 심금을 울리는 시간이다.

몇 번인가 올랐고 3년 전 영산기맥 산행을 위해 종주로 올랐던 유달산이기에 아직도 추억속에 고이 간직된 산이다.


해군제3함대사령부 정문을 지나자마자 도로 옆으로 커다란 이정석이 서 있어 사진에 담고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보인다.

제3함대는 해군의 함대급 부대로 1946년 9월 24일에 부산에서 창설되어 1986년에 3함대로 재편되었고 부산 감만동에서 용호동으로 2006년에 기지를 이전하였으며 그 후 2007년 11월 15일에 지은지 1년밖에 안 된 신청사를 작전사가 내려와 강탈해서 쫓아내는 바람에 전라남도 영암군의 구 목포해역방어사령부 자리로 이전했다.

함대 사령부가 설치되면서 그 곳에 있던 목방사는 해체되었으며 같은 해에 3함대 항공대대를 창설했다.

다만 이 산객에게는 이 해군제3함대사령부로 인해 흑석지맥 마지막 합수점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음이 아쉬운 시간이다.


도로 우측으로는 몇개의 석물공장들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높은 담벼락 위로 원형 철조망이 쳐진 제3함대사령부를 두고 계속 끝까지 걸어가 보지만 그 마지막 지점에도 역시 해군제3함대사령부 철조망이 가로막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흑석지맥 산행을 마무리 해 본다.

그 한쪽 옆에서 살짝 보이는 영산강과 그 뒤 목포의 유달산을 줌으로 당겨 담은 후 이틀간의 길고도 고난했던 흑석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해군제3함대사령부 정문을 지나 용당교차로를 통과한 후 원용당 버스정류장에서 300번 버스를 기다려 삼호농협까지 이동하고 다시 같은 버스정류장에서 500번 시외버스로 신기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약 3 Km 정도를 걸어 오늘 산행을 시작한 81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대천가든 입간판이 서 있는 오미재에 도착을 해 영암에서의 또 다른 하루를 마감해 본다.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 애마를 회수 한 후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 몸의 열기를 식히고 가장 가까운 목욕탕을 찾아 학산면으로 이동해 몸의 땀을 닦아 낸 후 여유를 가지고 집으로 복귀하니 어둠속에 긴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

옆지기와 시원한 탁배기 한잔으로 피로를 풀어 내고 이내 잠자리에 들어 행복한 꿈나라로 여행을 떠나 본다.


이번 흑석지맥 산행을 하면서 자신에 대한 많은 반성과 성찰을 하는 시간이 되었으며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새로운 의미도 찾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로 남겨 본다.


남아 있는 지맥들은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계절에 맞게 진행하였으면 하는 바램으로 또 하나의 산줄기 걷기 산행후기를 마무리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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