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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흑석지맥(땅끝·완)

흑석지맥 제1구간 분기봉인 벌매산에서 오미재(819번 2차선 포장도로)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7.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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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영암군과 해남군의 흑석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7년 05월 17일 (수요일 당일산행)

산행날씨 : 간간히 강한 바람이 불어 줘 좋았지만 초여름같은 무더위와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14도에서 영상 25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밤재(2번 4차선 포장도로, S-Oil 우진주유소)-신화아스콘 공장 옆 능선진입-아스콘 원료보관소-22번 송전탑-안전로프구간-전망바위-전망바위

                 이정표(별뫼산 성산 0.2 Km, 땅끝기맥 밤재 0.5 Km)-별뫼산(465봉, 흑석지맥 분기봉) 이정표(가학산과 흑석산, 땅끝기맥 제안고개, 제전마을)-

                 질재-383봉-공터봉-키큰산죽지대-소나무바위봉-고사목봉-바위암릉등로-475.4봉 갈림삼거리-전망바위-공터안부-바위로프구간-

                 가학산(574.7봉) 이정표(흑석산기도원 0.6 Km, C동삼거리 3.2 Km와 흑석산정상 1.4 Km)-급경사로프바위등로-안부-삼거리

                 이정표(깃대봉 0.7 Km, 흑석산기도원 1.2 Km)-바위봉 우회등로-만제제 이정표(흑석산정상 0.7 Km, 가학산정상 0.7 Km,

                 흑석산기도원 1.3 Km)-호미동산 갈림삼거리-바위전망대-도상 만제제(638.3봉)-바위봉 우회-로프구간-흑석산(652.8봉)

                 이정표(가리재 1.9 Km와 바람재 0.6 Km, 가학산정상 1.4 Km)-안부-로프구간-흑석산 깃대봉(650.3봉, 대삼각점)-바람재

                 이정표(전망대 0.2 Km, 휴양림 1.5 Km, 가학산정상 2.0 Km와 흑석산정상 0.6 Km)-607.3봉-전망대 이정표(가리재 1.1 Km,

                 가학산정상 2.2 Km와 깃대봉 0.8 Km)-542.5봉-벌목공터-나무계단 하산등로-안전로프등로-나무계단-안전목책과 로프구간-가리재

                 이정표(두억봉 1.3 Km, 휴양림 1.0 Km, 깃대봉 1.9 Km와 전망대 1.1 Km)와 벤취 쉼터-돌계단-409.6봉(작은가리봉?)-이정표(두억봉,

                 가리재 0.76 Km, 미암면)-암릉로프구간-선돌-암릉로프구간-바위봉-두억봉 갈림삼거리-두억봉(527.8봉) 이정표(가학산저수지 1.8 Km,

                 깃대봉 3.2 Km와 가리재 1.3 Km)-지독한 잡목능선구간-산죽등로-433.4봉-바위전망대-안전로프와 사각나무계단-비포장임도-단풍나무

                 식재구간-안전목책과 로프구간-찬묏길 팔각정자와 비포장 임도 이정표(등산로, 미암생태숲, 임도)-219봉-안전목책과 로프구간-지독한

                 잡목과 널부러진 벌목들-삼각점-조릿대구간-시멘트 포장도로-2차선 포장도로(미촌마을 표지석)-미산교회-향양버스정류장-시멘트 포장도로-

                 밭 경작지-능선진입-75.5봉 헬기장-무명묘지-비포장 수레길-밭 경작지-비포장 임도-인공수로-시멘트 포장도로-뽕나무 밭과 48번 송전탑-

                 2차선 포장도로-밭 경작지-지독한 잡목능선-71봉 널부러진 간벌목들-선왕사 진입 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선황산 갈림삼거리-로프구간-

                 철계단-선황산(181.8봉, 정상석과 삼각점)-갈림삼거리 복귀-양계장-성터-채지저수지-시멘트 포장도로-유산장농원 입간판-오미재(819번

                 2차선 포장도로, 대천가든과 서영암농협 주유소 입간판)-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8.00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흑석지맥 산행 약 16.66 Km와 밤재에서 별뫼산까지 01.34 Km 및 선황산 왕복 포함)

산행트랙 : 2017-05-17 1033__20170517_1033[1].gpx

산행시간 : 암릉과 지독한 잡목 및 가시넝쿨 그리고 무더위로 무척 고생하며 09간 19분 (10시 33부터 19 53분까)

교통편 : 애마로 2번 4차선 지방도로 밤재의 S-OIL 우진주유소 도착

            산행 후 미암 택시로 밤재까지 (15,000.-)

             영암군 삼호읍 삼호 스파불가마사우나 24에서 숙박 (8,000.-)

흑석지맥이란???

호남정맥 바람재에서 분기한 땅끝기맥이란 산줄기가 땅끝을 향해 가다가 벌뫼산에서 기맥은 남쪽을 향하지만 이곳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쳐서 가학산과 흑석산을 지나는 산줄기가 흑석지맥으로 두억봉 어깨에서 자세를 한껏 낮추어 미촌마을에 내려서서 야산지대로 이어진 산줄기는 2번국도를 좌우로 넘나들며 세한대학교가 있는 호등산을 지나고 소아산과 대아산을 지나 용당부두 옆 77봉에서 목포 앞바다로 잠기는 도상거리가 42.03 Km로 비교적 짧은 산줄기다.

다만 직접 두발로 흑석지맥을 걸어보니 조은산님이 지적한 아래 내용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그 내용을 추가로 정리해 본다.

땅끝기맥 별뫼산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가학산, 흑석산, 두억산을 지나 소아산 대아산을 끝으로 영산강 하구로 떨어지는 41.1km의 산줄기로 목포 앞바다에서 영산기맥의 끝점과 마주본다. 

신산경표는 별뫼산에서 영산강 하구 용당리까지 흑석지맥을 표시했는데 현실적으로 영암군 삼호읍 산호리 세한대학교 앞에서 영암호 수로(연암제수문)가 산줄기를 잘라 버렸고 따라서 사실상 섬이 된 수로 건너편 산줄기가 15 Km 가량 되므로 여기서 마감할 경우는 26 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조선지형도(1918)를 보면 영암호 수로가 없고, 삼학도를 마주보는 용당리까지 원래의 산줄기는 이어진다.

그러나 2번국도 위로는 대불국가산업단지와 아래로는 영암F1경기장이 들어서면서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고 마지막의 소야산과 대야산은 군부대가 점령해 오를 수가 없으며 반도 끝지점의 목포공항 주변구역 역시 접근이 쉽지 않을듯 해 보이므로 두억봉 넘고 선황산까지 가게되면 사실상 산길은 끝인 셈이다.





일 때문에 무안으로 내려갔다 새로운 산줄기를 찾아 흑석지맥에 올랐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아직 경제적으로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처음 시작할 때 보다는 많이 좋아져 조금은 바쁜 시간들을 보내던 중 무안에 일이 생겨 내려가게 되었기에 고객과 협의하여 아침 일찍 만남을 갖기로 한다.

산행을 하기 전에는 특별한 시간 개념없이 지방을 다녀오면 하루를 모두 소비하였는데 산행에 취미를 가진 이후부터는 가능하면 오잔 일찍 일을 마치고 주위 산행이라도 한번 하고 귀경하려고 준비하다 보니 하루가 무척 길게 여겨지는 생활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30여분 간 준비한 후 어둠이 내려 앉은 시간에 집을 출발해 무안에 도착을 하니 아침 8시 40여분이 지나고 곧바로 미팅을 시작해 일을 마치니 채 10시가 되지 않았다.


고객 회사를 나와 이미 확인해 둔 밤재의 예전에는 SK 주유소였다가 바뀐 S-Oil 우진주유소로 달려가니 아침 10시 20여분이 지나고 간단하게 옷을 갈아 입은 후 주유소 주인에게 애마의 주차를 허락 받은 후 곧바로 2번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산행을 시작해 본다.

이곳 밤재는 군 생활을 완도에서 한 아들 면회를 위해 차량으로 몇번인가 지나쳤고 산행을 위해서는 2년 전 늦가을에 땅끝기맥 산행을 위해 새벽에 찾았다가 어둠속에 보이는 것 없이 어렵게 올라간 기억이 생생한 곳이다.

조금은 늦게 오르기 시작하지만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계획된 마루금을 따라 완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생각보다 무더운 기온에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에 산행을 시작하였고 또한 등로 역시 암릉과 잡목으로 막혀 있는 구간이 많아 많은 땀방울들을 등로에 뿌리며 진행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바위봉에 오르면 걱정했던 박무와 미세먼지가 적어 기대했던 풍경과 조망보다 훨씬 환상적인 그림이 펼쳐져 있어 진행에 조금은 여유를 가져 본다.

그렇게 벌매산을 지나 가학산을 넘으니 좌측으로 너무나 환상적인 호미동산을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이제 꽃잎들을 떨구는 철쭉지대를 지나 곧이어 이 산줄기의 이름을 갖게 해 준 흑석산 정상에 도착을 하지만 기대했던 정상석 하나 없이 그 명성을 잠시 후 만날 흑석산 깃대봉에게 빼앗긴 느낌이다.

그래도 그곳 정상의 이정표 옆에서 추억 한장 남기는 시간은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시간으로 남아 있다.


산행 준비 후 배낭을 둘러메고 출발하려는데 이제부터 올라야 할 벌매산 방향의 산줄기가 마치 누워있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 사진에 담아 본다.

2년 6개월 전 땅끝기맥 산행을 위해 들렸던 시간은 새벽 어둠속에 올랐기에 그 형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보니 마치 대미산 악어봉을 오르며 바라 본 월악산의 임신한 여성이 누워있는 형상과 너무나 닮아 있어 홀로 웃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으로 즐겁게 출발하는 시간이다.


2번 4차선 포장도로 옆으로는 새로운 남해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밤재터널이 생겨 이곳 밤재 고갯마루도 예전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오늘 이 산객처럼 산행을 하기 위한 목적이나 가끔 옛 추억이 그리워 찾아 오는 몇 명의 길손들이 전부이다 보니 주유소도 경영난을 겪고 있는 듯 보였다.

밤재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학산면 묵동리와 강진군 성전면 월평리 사이에 위치하는 밤재는 월출산국립공원과 별뫼산 사이의 고개로 목포와 광양간 고속도로와 2번 국도가 지나가며 밤재터널이 있다.

밤재는 한자화하여 율치, 율현으로 사료에 기록되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영암)에 율현은 영암군의 서남쪽 25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었다.

대동지지에는 율치로 수록되어 있으며 호남지도에 가학치 동쪽의 고개로 율치가 묘사되어 있는 것을 비롯하여 1872년지방지도 등에 율치, 해동지도와 해동여지도 등에는 율현으로 나타난다.

가끔 빠르게 통행하는 자동차를 피해 재빠르게 2번 4차선 포장도로를 횡단하여 산행 들머리 방향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2년 6개월전에 성화대학교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던 자리에는 이제는 2017년도 답사1번지 강진방문의해라는 같은 크기의 입간판으로 변해 있는 것이 눈에 들어 온다.


시멘트 포장도로 위로 오르니 산행 들머리 좌측으로 밤에 보지 못했던 공장 건물이 보여 살펴보니 신화라는 채석장인지 아니면 아스콘을 만드는 회사의 간판이 보인다.

그곳 신화 우측 전봇대 옆으로 오르니 아스콘 원료로 쓰이는 작은 자갈들이 쌓여 있고 좌측 공장 공터 뒤로는 누워있는 사람의 얼굴 형상이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잠시 능선으로 올라 나무 그늘속을 걸어 오르며 땀방울을 흘리다 보니 22번 송전탑을 지나 산죽지대와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 설치된 로프를 통과해 전망바위에 도착을 해 지나온 방향을 잠시 내려다 보니 거대한 아스콘 공장들과 2번 지방도로 건너 우진주유소가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월각산 넘어 월출산 자락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다시 그 전망바위를 내려 와 나무 그늘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니 지나 온 방향 저 멀리 북쪽으로 땅끝기맥의 월각산과 월출산이 다가와 있고 그 우측 아래로는 월평제가 이 가뭄에도 푸른 물을 가득 담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으며 바로 눈 앞으로는 밤재에서 올려다 봤을 때 누워있는 사람의 머리 모양을 한 386 암봉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그 386 암봉 뒤로는 월평리 넘어 성전면 마을이 멋진 모습으로 농사 준비에 바쁘게 돌아가는 듯 보인다.

2년 전 어둠속에 보지 못한 풍경과 조망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고 지나갔던 땅끝기맥의 미련을 시원하게 모두 떨쳐 버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바위 전망대에서 잠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내려 오니 밤재에서 500미터 올라 왔고 벌매산(성산)까지 2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반기는데 이 이정표는 기억이 생생하다.

이곳 남녘은 이제 봄이 완전히 사라졌고 녹음이 짙어가는 성하의 계절로 들어섰음을 등로에 자라고 있는 자연이 그대로 알려주고 있다.

나무 그늘과 산죽지대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금새 땅끝기맥과 흑석지맥이 갈리는 분기봉인 벌매산(465봉)에 도착을 해 ㅇㅅ 추억을 더듬으며 주위 조망을 즐겨 본다.

별매산(성산, 465)은 기암들이 서로 업히고 덮친 모양새가 멀리서 볼 때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별매산이라 부르는 산으로 단단한 화강암 덩어리가 줄지어 얹힌 능선 곳곳에는 소나무들이 억세게 뿌리를 박고 있다.

다만 이 벌매산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름들이 보이는데 별매산, 별뫼산, 벌뫼산 그리고 벌매산 등이며 하루 빨리 정확한 이름을 확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 산객은 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이름인 벌매산을 정식 이름으로 사용하고자 하며 그 벌매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진행 방향인 서쪽의 가학산과 흑석산 그리고 좌측으로 흐르는 호미동산이 한폭의 그림을 그려 놓은 듯 너무나 환상의 등로를 만들고 있어 많은 사진들을 남겨 본다.

푸른 나뭇잎으로 덮혀 있어 부드러워 보이는 등로이지만 실제로 걸어 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암릉과 바위가 산재되어 있고 또 어느곳은 키 큰 산죽들이 등로를 막아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도 있는 마루금이었다.

우측으로 475.4봉 갈림점까지는 그래도 부드럽게 이어지던 마루금이 가학산으로 다가가면서 거칠어지며 근육질 남성미를 자랑하기 시작하고 호미동산과 흑석산으로 이어지며 더욱 그 기세를 높이고 있음이 사진으로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북쪽으로 지나온 등로를 살펴보니 여전히 아스콘 공장들이 보이고 그 아로 아래 밤재와 터널 그리고 주유소 건물들이 펼쳐져 있으며 그 뒤로 지난 2년 6개월 전 늦가을 비바람에 고생하며 넘었던 월각산과 월출산이 다시 부르고 있다.

오늘 뉴스에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많이 제한 받을 것이라 예상을 하였는데 이곳 남쪽까지는 그 미세먼지가 내려오지 못했는지 생각보다 좋은 조망과 풍경에 마음속으로 환희의 환호성을 질러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등로 남쪽으로는 성전면 지나 조만간 다시 내려 와 걸어야 할 화원지맥 마루금이 서쪽을 행해 흑석지맥과 동일하게 달려가고 잇고 그 뒤 저 멀리 희미하게 땅끝기맥 마루금이 남쪽으로 흐르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한동안 그곳 벌매산 정상에서 조망을 즐긴 후 가야 할 거리가 멀기에 다시 베낭 둘러메고 출발하니 부드러운 나무 그늘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소나무가 정상을 지키고 잇는 무명봉을 넘는다.

다시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올랐다 내려가니 좌우측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전혀 없는 질재에 도착을 하는데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묵동리와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인 질재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아쉬운 시간이다.

활엽수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간혹 소나무들도 보이지만 많지 않고 산죽들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길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부드러운 활엽수 그늘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잠시 들려 살펴보니 율치제가 아름답게 파른 물을 가득 담고 그 뒤로 넓지 않은 학산면의 들판과 마을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학산마을 지나 우뚝 솟아 있는 상은적산이 인상적이지만 언제 한번 오를 수 있는 기회나 있을련지 모르겠다.

다시 시작되는 산죽과 관목 등로를 따르니 생각보다 등로는 잘 정비되었는지 아니면 생각보다 이곳을 오르는 산님들이 많은지 뚜렷해 진행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을 하니 완만하게 올라 관목들이 자라고 있는 383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그곳 383봉을 지나니 지금과는 확연히 달라진 키 큰 산죽들이 등로를 가득 메우기 시작하고 잠시 어렵게 걸어 진행을 하니 좁은 공터의 무명봉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이제 산행 후 얼마 지나지도 않있는데 등산복은 모두 흥건하게 젖어 버렸을 정도로 무더운 날씨이다.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앞이 보이지 않는 산죽밭이 앞을 가로막아 온 몸을 숙이고 어렵게 그 산죽밭을 통과한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키 큰 조릿대 지대를 어렵게 통과하여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좁은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올라 살펴보니 진행 방행인 서쪽으로 뾰족한 가학산이 압권으로 그 우측으로는 흑석산 줄기가 그리고 그 남쪽인 좌측으로는 호미동산이 아직은 그 대단한 뾰족봉의 위용을 잠시 감추고 있다.

남쪽으로는 계곡면 마을 지나 땅끝기맥의 서기산이 제법 우람한 모습으로 옛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다시 잠시 더 진행한 후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 조망을 즐겼던 흑석지맥 분기점인 벌매산까지의 능선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다시 등로 좌측 앞쪽으로 살펴보니 암릉을 지나 우측으로 475.4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이고 그 뒤 좌측으로 길게 이어진 흑석지맥의 가학산이 뾰족한 암봉으로 산객을 압도하고 그 뒤로 유순한 듯 거칠게 이어진 흑석산과 좌측으로 호미동산 줄기가 참으로 환상이다.

이제 온 산하는 초록초록을 넘어 완전한 성하로 접어 든 짙은 녹음의 계절이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이 시간에는 바람 한점이 없이 이마를 타고 목떨미로 흐르는 굵은 땀방울이 쉴새 없이 등산복을 적시고 있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몇 번인가 들렸고 2년 전 땅끝기맥 산행을 하면서 올랐던 월출산과 월각산이 그 우람한 남성미를 마음껏 뽐내고 그 좌측 아래로는 율치제의 푸른 물 넘어 학산면 마을이 누런 빛깔로 조용히 펼쳐져 있어 잠시 생각에 빠져 본다.

이 시절이면 온 산하가 모두 초록과 푸름인데 왜 저렇게 누런 빛깔일까 생각을 하다 보니 이곳은 황토의 땅으로 아마도 보리가 익어가는 풍경이 아닐까 생각을 하지만 아직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생각보다 미세먼지와 박무가 심하지 않아 이렇게나마 조망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바위 틈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 봉우리에서 많은 조망 사진과 풍경을 즐기고 다시 잡목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며 맥 잇기를 이어가 본다.

잠시 올라 뒤돌아 보니 이제 벌매산과 지나 온 능선이 제법 길게 이어지며 중단없이 걸어 진행하는 두 다리의 위대함을 알려주고 있다.

여전히 멋지게 펼쳐진 월출산과 가학산 그리고 호미동산이 눈에 들어오고 잠시 후 고사목이 정상을 지키는 무명봉을 넘는다.

그 고사목이 부러져 있는 무명봉을 지나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우측 끝자락으로 475.4봉으로 이어지는 좌측 암봉 갈림길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제 눈 앞으로 펼쳐지는 기기묘묘한 암봉과 바위들을 살펴보며 조금은 조심히 오르니 드디어 475.4봉 갈림 삼거리 직전 암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벌매산에서 이어져 걸어 온 흑석지맥 마루금이 푸른 초원을 이룬듯 아름답게 이어져 있고 그 좌측 아래로 밤재 지나 월각산과 월출산으로 이어지는 땅끝기맥 마루금이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조금은 무더운 날씨에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진행을 하지만 이어지는 환상의 조망과 풍경으로 인해 어려움도 모르게 진행하고 있는 시간이다.


잡목 가지에 수많은 선답자들과 산악회 띠지가 나풀거리는 갈림 삼거리를 지나 좌측의 흑석지맥 마루금을 타고 걸어가니 마지막 바위를 지나 다시 활엽수 그늘 등로로 들어간다.

다시 짧게 나타나는 산죽지대를 지나 고사목이 등로를 가로막고 있는 곳을 넘으니 갑자기 눈 앞이 열리면서 여성의 유두를 닮은 듯 뾰족하게 솟아 있는 가학산 정상부가 오르기도 전에 이 산객을 압도하듯 다가와 있다.


이제부터 나타나는 바위 등로를 조심하며 걸어가니 생각지도 못한 좁은 공터가 나타나고 잠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벌매산부터 이어져 온 흑석지맥 마루금이 이제 희미하게 멀어지고 있다.

잠시 더 올라 앞을 올려다 보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바위들이 푸른 나뭇잎 사이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첫번째 로프구간이 보인다.

첫번째 로프구간을 올라 거대한 바위를 좌측으로 우회하니 두번째 로프구간이 다시 나타나고 조심하며 오르니 거대한 바위 사이로 길게 이어진 세번째 로프구간이 앞을 가로막는다.

오랫만에 두 팔에 힘을 줘 가며 조심해 오르니 생각보다 오르기에는 어렵지 않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 사이의 등로를 타고 올라 바위봉에 도착을 하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이어지는 가학산 정상부로 걸어 오르니 네번째 로프 구간을 지나 마지막 다섯번째 로프를 넘으니 곧바로 약간의 공터로 이뤄진 가학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가학산(575)은 전라남도 영암군의 학산면 학계리와 해남군 계곡면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575미터이다.

월출산국립공원 남쪽의 별뫼산에서 서쪽으로 질재, 가학산, 흑석산으로 이어지면서 해남과 영암의 경계를 형성하며 산 북쪽에서 망월천이 발원해 영산호로 들어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영암)에 가학현은 영암군의 서쪽 3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그 이전부터 지명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대동지지(영암)에도 가학산은 남쪽 40리 해남과의 경계에 있다고 수록되어 있으며 산은 대부분의 해남 고지도에서 북쪽 영암과의 경계에 묘사되어 있다.

특히 대동여지도(19 5)에는 영암 월출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강진을 거쳐 해남 북서쪽에서 가학산을 이루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산 지명에 대해 학이 높이 날지 못하도록 멍에를 씌운 비보적 지명이라는 설과 산의 모습이 학이 날아오르는 것과 같아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아래에서 봤던 뾰족한 가학산 정상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좁은 공터에 큰 나무들이 없어 사방팔방으로 보이는 조망과 풍경이 인상적인 조망터로서의 정상이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 마신 후 제일 먼저 지나 온 동쪽의 흑석지맥과 땅끝기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환상의 마루금이 그곳에 펼쳐져 있다.

방금 전 지나 온 475.4봉과 갈림 삼거리 암봉이 보이고 그 우측 저 멀리 솟아 있는 벌매산이 멀어져 보이는데 그 좌측으로는 이제 밤재가 숨어 버렸고 월각산과 월출산이 뚜렷한 산그리메를 그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등로 서쪽인 가야 할 흑석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바로 눈 앞으로 좌측 호미동산 갈림 삼거리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 흑석산이 지척이며 그 흑석산을 지나면 곧바로 흑석산 깃대봉이 물흐르듯 흘러가고 있다.

그 흑석산으로 가기 위한 바로 눈 앞의 바위봉은 직벽으로 이뤄져 직접 진행하지 못하고 좌측 우회 등로를 통해 로프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해야 된다.

그 좌측으로는 언젠가 한번 꼭 들려보고 싶은 호미동산이 자꾸만 눈길을 붙잡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곳에서 보니 호미동산은 칼등 바위능선으로 이뤄진 듯 보이기도 하지만 흑석산 방향에서 살펴보면 또 다른 모습으로 송곳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가학산 정상에서 뒤돌아 보는 지나온 흑석지맥과 땅끝기맥 마루금이 또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뤄진 듯 그 울퉁불퉁한 암봉을 감추고 이어진 마루금이 아름답고 그 뒤로 이어지는 월각산과 월출산의 땅끝기맥 마루금이 또한 옛 추억을 꺼내며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다.

다음에 저곳에 오르면 오늘 이곳을 걸으며 가졌던 생각과 봤던 풍경이 또 다른 추억이 되어 다가올 것이라 기대된다.


등로 우측인 북쪽으로는 2번국도와 남해고속도로 사이에 있는 율치제와 그 좌측으로 산줄기 하나 넘어 가학제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황톳빛 학산면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학산면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영암군 남서부에 있는 면으로 월출산 줄기의 영향으로 동부와 남부는 주지봉(491봉), 월각산(456봉), 흑석산(650봉) 등의 험준한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부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매월리, 은곡리, 신덕리 등은 면 중심부에서 벗어나 북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주요 농산물은 쌀, 콩, 참깨, 토마토 등이다.

문화재로는 학계리 지석묘군(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99호)과 금계리 고분군(전라남도 기념물 제144호) 등이 있으며 남해고속도로 및 목포와 강진을 잇는 국도가 면내를 가로 지르고 행정구역은 독천리, 용산리, 상월리, 묵동리, 학계리, 용소리, 금계리, 신덕리, 은곡리,매월리 등 10개리가 있다.

오늘이나 내일중 한번은 들려 잠시 더워진 몸을 식히고 샤워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같은 학산면이다.


이제 허기가 지기 시작하고 그곳 가학산 정상에서 준비한 빵과 과일 그리고 음료수로 간단하게 이른 점심을 해결하고 출발하기에 앞서 다시 한번 저 멀리 반짝이는 월출산을 사진에 담아 본다.

몇 번인가 올랐던 월출산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억도 하나 둘 머릿속을 떠나는 시간이기에 조만간 다시 한번 올라 여유를 만끽해 보는 시간이길 바래 본다.

너무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조망과 풍경이기에 조금 더 머물고 싶지만 가야할 길이 멀기에 아쉬움을 남기고 발길을 돌려 본다.


가학산 정상에서 좌측 바위 옆으로 내려가니 우측 바위벽이 거대한 직벽으로 서 있고 내려가야 할 마루금에는 또 다른 직벽에 굵은 로프가 달려있어 그 로프를 잡고 조심하며 걸어 내려간다.

내려가 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로프 구간을 내려가고 곧이어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는데 무명봉에 올라 앞을 바라보니 만개했다 지기 시작한 철쭉들이 아직도 남아 봄이 가고 있음을 아쉬워하는 듯 하다.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흑석산 등로가 한눈에 올려다 보인다


다시 키 작은 관목들이 자라고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이곳은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듯 등로가 고속도로 수준으로 나 있다.

몇일 전 까지만 해도 붉은 철쭉이 만개해 오른 등산객들의 사랑을 독차지 햇을 법한 그런 등로를 따르니 아직 완전히 지지 못하고 피어난 수줍은 철쭉이 눈맞춤을 해 준다.

그 철쭉꽃 넘어 저 멀리 흑산산 줄기가 아름답다.


조망은 좋지만 키 큰 나무들이 없는 관목 등로이다 보니 정오를 넘어 따갑게 내려 쬐는 태양빛이 더욱 무더위를 가중시키고 있어 이마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은 이제 분수처럼 솟구쳐 흐르고 있다.

계속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보지만 역부족이라 안경을 벗고 떨어지는 땀방울을 그저 바라만 보며 진행을 하는 시간이다.

등로 좌측으로 흑석산기도원 하산 갈림 이정표를 지나 남아 있는 철쭉의 환영을 받으며 바위봉을 우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니 오르막 언덕에 에상하지 못한 만제제 이정표가 서 있는데 지도를 보니 만제제는 조금 더 위에 있는 듯 보인다

만제제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어디에도 찾을 수 없어 아쉬운 시간이다.


만제제를 지나니 키 큰 나무들이 사라진 관목지대라서 조망이 일품이다.

방금 전 올라 한동안 풍경을 감상한 가학산이 저 멀리 드높게 올려다 보이고 그곳에서 이곳으로 이어져 온 마루금이 인상적이다.

이제 저 멀리 월출산에서 월각산 지나 벌매산과 가학산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 오는 풍경을 가슴에 담고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이제 철쭉 대신 병꽃이 등로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잠시 더 올라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칼바위 능선의 끝자락에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는 호미동산이 강렬하게 부르고 있지만 오늘은 아쉬움만 남긴채 다음을 기약해 본다.


호미동산을 자세히 올려다 보니 마치 유럽의 한 요새 위에 성을 쌓아 놓은 듯 그런 풍경이 생각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줌으로 당겨보니 바위 암봉으로 이뤄진 정상은 직벽으로 이뤄져 오를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우측의 흑석산 줄기 아래에 애벌래를 닮아 잇는 바위가 인상적이고 잠시 후 바위 전망대에 올라 뒤돌아 보니 이제 저 멀리 가학산이 멀어지며 조금은 유순한 모습으로 우측의 벌매산과 그 중간 저 멀리 월출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호미동산 우측 아래로는 방춘저수지와 방춘리 그리고 계곡면의 마을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계곡면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해남군 동북부에 있는 면으로 면의 동부와 북부에 흑석산(650봉), 두억봉(529봉), 서기봉(515봉) 등이 솟아 있으며 계곡천과 방춘천이 남부 해남만으로 흘러든다.

바다와 접해 있는 서부 연안은 간척사업으로 농경지화되어 주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정리 해남광산에서는 납석이 생산되었으나 현재는 폐광되었고 보리와 고구마를 비롯하여 밤호박, 양배추, 배추, 마늘 등의 작물과 과수 생산이 활발하다.

문화재로는 궁중 술 진양주(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5호)와 순천 김씨의 강학소 방춘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09호)이 있으며 해남, 영암, 강진 등지로 이어지는 국도와 지방도로가 면의 동부와 서부를 통과한다.

행정구역은 성진리, 법곡리, 강절리, 당산리, 장소리, 선진리, 반계리, 방춘리, 덕정리,여수리, 사정리, 가학리, 잠두리,신평리, 황죽리 등 15개리가 있다.

이곳 역시 지나온 마루금과 앞으로 올라야 할 마루금이 시원하게 조망되고 조금 더 높이 올라가니 이제서 만개한 철쭉들이 조금 더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철쭉꽃을 담아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이제 흑석산이 지척으로 다가와 있다.



지나 온 마루금이 다시 환상으로 다가 와 바쁜 발목을 잡고 늘어져 잠시 더 쉬어가 본다.

진행하다 계획된 곳까지 못가면 내일 조금 더 걸어보자 마음 먹으니 자꾸만 발걸음이 느려지고 있다.

그렇게 다시 발걸음을 옮겨 완만하게 오르니 흑석산 직전 바위 전망대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좌측 뒤의 호미동산이 환상이다.

지금 당장이라고 흑석지맥 산행을 포기하고 한번쯤 달려가 보고 싶어지는 호미동산이기에 조만간 다시 내려 와 꼭 한번 올라보고 싶은 위시리스트에 넣어 본다.


이제 그 호미동산 우측 뒤로는 박무로 잘 보이지 않던 땅끝기맥의 서기산이 제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잇는 풍경도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서기산 오를 땐 완만하게 가깝이 보이기에 쉽게 오를 줄 알았는데 우측에서 좌측으로 길게 돌고 돌아 올라야 되기에 생각보다 지루하게 오래 걸렸다는 기억이 생생하다.

그 우측 아랭=로는 여전히 많은 작은 저수지들과 그 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계곡면의 마을들이 평화롭게 내려다 보인다.

그 마을 뒷쪽으로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화원지맥이 또한 이 산객을 부르지만 잡목과 가시나무들로 인해 지금 계절이 아닌 겨울철에 오를 계획이다.


다시 완만하게 그 바위 전망대를 내려 와 진행하다 뒤돌아 보니 지나온 흑석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고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바위 전망대도 부드러운 듯 강렬한 모습으로 가슴에 와 남는다.

그렇게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바위벽 2개 사이로 계곡면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곧이어 산죽 등로를 따르니 눈 앞으로 흑석산 정상부의 이정표가 빤히 올려다 보인다.


다시 나타나는 로프 구간을 오르니 금새 흑석산 정상부에 도착을 하는데 흑석지맥이란 산줄기의 이름까지 낳게 한 흑석산 치고는 정상석 하나 없이 왠지 모르게 쓸쓸하기만 하다.

지나 온 마루금과 월출산이 아름답고 남동방향으로는 호미동산과 땅끝기맥 그리고 화원지맥 산줄기가 환상이다.

진행 방향으로는 흑석산 깃대봉이 저만치 올려다 보이는 이곳에서 잠시 배낭 내려 간식을 먹은 후 쉬어 간다.

흑석산(650)은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과 영암군 학산면 및 강진군 성전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서쪽의 두억봉, 동쪽의 가학산과 벌매산으로 이어져 산맥을 이루고 있다.

벌매산에서 바라보면 학이 알을 품은 형상을 하고 있는데 564미터봉과 577미터봉을 가르는 잘루목이에서 최근 일제가 설치한 쇠말뚝이 발견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가학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에서부터 흑석산으로 처음 표기되었는데 산 이름은 비가 온 후 물을 머금은 바위의 색깔이 유난히 검게 보이기 때문에 붙여졌다. 산행은 신거리에 있는 자연휴양림에서 시작하는데 정상으로 가는 오름길은 대체로 평평하지만 정상은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어 산악인들이 많이 찾는다.
산에는 은굴, 은샘, 용목골, 치마바위, 장군바위 등 많은 전설을 가진 바위들이 등산로 옆에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은을 발굴했다는 은굴은 6.25전쟁 때 중간을 폐쇄시켜 더 들어갈 수는 없지만 이중 삼중으로 굴이 연결되어 있으며 지금은 100미터 정도만 들어갈 수 있고 벽에 은가루가 반짝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산 정상에 서면 월출산과 수인산, 제암산을 조망할 수 있으며 맑은 날에는 남해바다도 볼 수 있고 이 산의 소사나무
군락은 특히 유명하며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억새가 만발한다.
1995
년부터 순수 민간단체인 계곡면 청년회에서 이 지역을 알리기 위한 철쭉 대제전을 매년 5월 둘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실시하고 있으며 경로잔치와 노래자랑, 불꽃놀이와 봉화식을 가지며 길닦이 풍물패와 정상에서의 산신제도 거행한다.
교통은 조금 불편한 편으로 해남읍에서 휴양림이 있는 신거리까지는 버스가 없으므로 해남버스터미널에서 성진리행 시내버스를 이용한 후 성진리에서 자연휴양림까지 택시를 이용한다.

이곳 흑석산 정상은 정상석 하나 없이 바로 옆에 있는 흑석산 깃대봉에 그 유명세를 조금 빼앗긴 것은 아닐까 생각되는 정상이다.


지금까지 진행하며 바라봤던 모든 풍경과 조망들이 이곳 흑석산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더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출발에 앞서 계곡면쪽 들판과 화원지맥 그리고 땅끝기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인해 다시 박무가 발생했는지 뚜렷하던 그림이 사라지고 안개속 뿌연 모습만아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하지만 그 계곡면 마을과 화원지맥 마루금 사이를 도도하게 흐르는 옥천천과 영암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등로 좌측 바위벽에 위태롭게 살아가는 소나무 한그루가 인생무상을 이야기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다시 그 흑석산 정상을 출발 해 나즈막한 안부를 지난다.

피었다 시들어 가는 철쭉과 병꽃을 살펴보며 관목지대를 지나니 다시 로프 구간이 나타나고 작은 자갈등로를 통과한 후 곧바로 정상석과 대삼각점이 있는 흑석산 깃대봉에 도착을 한다.

제법 넓은 공터로 이뤄진 깃대봉에서 배낭 내려 과일을 먹으며 쉰 후 주위를 둘러 보고 발길을 돌린다.


출발에 앞서 잠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암봉의 가학산이 눈길을 사로잡고 그 뒤로 보이는 벌매산과 월각산 그리고 월출산이 환상이다.

개별적으로 몇 번인가 올랐던 월출산이지만 이렇게 땅끝기맥과 흑석지맥 산행을 하면서 이어진 산줄기와 그 산줄기를 가르는 물줄기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야말로 그 의미와 뜻이 더욱 깊은 듯 다가온다.

흑석지맥 우측 아래로 보이는 계곡면의 저수지들과 들판들 그리고 황금빛 풍경이 환상이다.


흑석산 깃대봉 남쪽으로는 가학제1저수지와 가학제2저수지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그 아래로 계곡면 마을이 황톳빛으로 물들어 가며 저 멀리 화원지맥 상의 금강산과 그 앞의 만대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희미하게나마 보였던 땅끝기맥의 주작덕룡과 두륜산은 박무로 인해 전혀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은 저 황톳빛 들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잠시 후 미암리로 내려가며 그 황금빛은 바로 익어가는 보리밭임을 알게 되었다.


잠시 출발하며 등로 좌측 뒤로 뻗어 있는 호미동산 등로가 아름답고 조만간 꼭 한번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더 해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관목 등로를 지나 분홍빛 철쭉이 피어있는 산죽 등로를 따르니 앞으로 진행해야 할 두억봉 능선이 멋지게 펼쳐져 있고 등 뒤로는 지나온 흑석지맥 마루금과 땅끝기맥의 월출산이 그 자리를 지키며 고운 추억을 말해주고 있다.

 

등로 우측인 북쪽으로는 영암군의 학산면과 독천면의 마을들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그 뒤 저 멀리 오를 수 있는 기회조차 가물거리는 은적산과 상은적산 줄기가 박무속에 희미하게 부르고 있다.

이제 진행 방향으로는 607.3봉의 암릉을 지나 542.5봉으로 이어지다 가리재로 낮춘 후 다시 솟구쳐 409.6봉과 두억봉을 드높게 들어 올린 마루금이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 후 급격하게 산세를 낮춰 들판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또한 다른 곳과 달리 인상적이다.


다시 잠시 더 걸어가니 많은 가지들이 함께 자라는 소나무를 지나 나즈막한 안부로 떨어져 평이하게 걸어 간다.

키 작은 관목들과 산죽들 그리고 분홍빛 철쭉이 시들어 가는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휴양림 하산 등로가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바람재이다.

이곳 바람재에 관한 자료는 찾지를 못해 아쉬웠는데 다른 곳의 바람재를 찾아 보면 그곳에 강한 바람이 많이 불어 붙여진 이름이 대부분이었다.

가학산자연휴양림은 계곡면의 진산이자 북풍을 막아주는 해남의 수문장이며 신선의 선풍을 지닌 명산 흑석산자락에 위치한 자연휴양림으로 매년 5월이면 아름다운 철쭉들이 흑석과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철쭉의 신비를 널리 알리기 위한 철쭉 대제전이 열린다.

또한 이곳의 소사나무 군락은 우리나라 최고를 자랑하는데 근처 계곡에는 두 개의 호수가 있어서 더욱 운치를 더해주며 2009년에 기존산막을 황토방으로 리모델링하였고 사방댐을 이용한 물놀이장은 여느 리조트 야외 수영장 못지않은 시설로 보완하였다.

그밖에 다목적광장 입구의 동물막사에는 조류학습장을 신설하였으며 한때 야생원숭이가 되어 사람들을 위협하며 TV에도 여러 차례 출연한 일본원숭이(해남이)가 가정을 꾸려 예쁜 원숭이 가족도 볼 수 있다.


가학산자연휴양림 갈림 삼거리인 바람재를 지나 앞으로 올려다 보이는 봉우리를 향해 걸어가니 바위봉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흑석산 깃대봉과 그 좌측 뒤 저 멀리 가학산의 암봉이 우뚝하다.

그곳을 지나 잠시 더 걸어가니 작은 바위들이 박혀있는 607.3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다시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깃대봉을 올려다 본 후 완만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금새 전망대 이정표가 나타나고 등로 좌측으로 넓은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은 이제 영암군에서 해남군으로 바뀐 지명으로 이정표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가야 할 가리재까지 1.1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를 확인하고 잠시 좌측 전망데크로 내려 가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보고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이제 542.5봉과 가리재 지나 두억봉을 넘으면 우측 저 멀리 급격하게 산세를 낮춰 들판으로 이어지는 흑석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그 마루금 넘어 끝자락에 오늘 마지막으로 올라야 할 선황산이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직도 갈길이 멀지만 여름해가 길어졌으니 무탈하게 그곳까지 진행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선황산으로 이어지는 흑석지맥 마루금을 다시 한번 가슴에 담은 후 고개를 돌려 좌측 남쪽을 바라보니 해남의 계곡면 들판과 영암호 그리고 화원지맥이 또한 가고 싶은 곳이 많은 마음을 흔들고 있다.

한참을 머물며 사진 몇장 더 남기고 그 전망데크를 떠나 이정표로 돌아 와 정상 등로를 타고 지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머물다 내려 온 전망데크가 있는 607.3봉의 남쪽은 완전히 병풍처럼 생긴 병풍바위 모습을 하고 있어 이채롭다.

잠시 더 걸어가니 두 갈래 등로로 갈라졌다 만나는 542.5봉 정상이다.


아름다운 암봉으로 이뤄진 607.3봉의 전망 병풍바위를 다시 한번 뒤돌아 본 후 잡목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벌목된 좁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꺽여 나무계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길게 이어진 나무계단을 내려가니 다시 길게 이어지는 안전로프 구간이 이어지고 곧이어 또 다른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그 나무계단을 지나니 다시 키 작은 관목들이 자라며 멋진 조망을 선사하는 장소에서 가야 할 마루금을 살펴본 후 바위봉에 오르니 바로 눈 앞으로 거대한 두억봉이 바짝 다가와 있다.

다시 나타나는 급경사 내리막 등로에 설치된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국가지정번호와 벤취쉼터 그리고 휴양림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 가리재에 도착을 한다.

원하는 자료를 찾지 못해 아쉽기만 하는데 그 옆으로는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 장치도 만들어져 있어 이채롭다.


가리재를 지나 수레길 같은 뚜렷한 넓은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하니 초반에는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돌계단이 나타나고 등로는 조금씩 가파르게 변하면서 숨소리도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다시 잠시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그 앞으로 올라야 할 바위봉이 바짝 다가서는데 잠시 후 다시 나타나는 돌게단을 지나 올라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 온 607.3봉과 542.5봉 줄기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역시 지나온 등로는 제아무리 험하고 힘들었더라도 늘 아름답게 추억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잠시 쉬며 등로 우측 뒤를 살펴보니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월치제 지나 월출산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우측 끝자락의 연실봉과 사자봉 그리고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을 지나 바람재와 구정봉 그리고 향로봉을 통과하고 따읕기맥 분기점인 미왕재를 넘어 도갑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또한 이어진 듯 떨어져 있는 주지봉 능선이 유혹하듯 다가와 있다.


다시 생각보다 뚜렷한 잡목 등로를 따르니 금새 평퍼짐한 봉우리에 도착을 하고 지도를 살펴보니 409.6봉 정상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려는데 오랫만에 다시 만나는 서래야 박건석님이 이곳을 작은가리봉(409.6미터)이란 종이 코팅지를 붙여 놨다.

그 고생스런 정성이야 감사하지만 늘 생각해 보는 것은 작은가리봉이란 족보도 없는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저 평이하게 봉 높이만 기재를 했다면 더욱 신뢰가 가겠는데 노력한 것에 비해 고맙다는 생각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다.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활엽수 지대를 지나 키 큰 산죽지대를 통과하니 이제부터는 활엽수와 산죽이 교대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에 미암면 하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보이는데 지나온 방향의 가리재에서 760미터 진행해 왔다는 거리 표시가 보인다.

미암면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영암군 남부에 있는 면으로 남쪽은 두억봉(529봉) 줄기로 가로막혀 있고 서쪽은 황해에 면해 있으며 100미터 이하의 저평한 산이 많다.

황해로 흘러드는 소 하천유역에 평야가 분포하며 이곳에서 쌀과 보리가 생산되는데 본래 신포리와 호포리 일대는 해안가였으나 영산강 농업개발 4단계 사업 이후 농경지로 변모되었다.

강진과 무안을 잇는 국도가 북부를 지나며 해남군 방면의 지방도가 면 중심부를 관통하며 행정구역은 춘동리, 두억리, 미암리, 선황리, 남산리, 채지리, 신한리, 신포리, 호포리 등 9개리가 있다.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에 거대한 암릉이 나타나고 그곳에는 로프와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보이기 시작한다.

로프를 타고 조심하여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매바위를 닮은 바위가 멋지게 서 있고 그 바위를 지나 오르니 드디어 두억봉 전위봉인 바위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잠시 지나온 등로를 살펴보니 409.6봉을 지나 가리재로 낮춘 산세가 다시 고도를 높혀 542.5봉과 607.3봉 그리고 우측 끝자락의 흑석산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산줄기를 그림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


잠시 더 그 바위 정상에서 머물며 두억봉 표시를 찾아 보지만 보이지 않아 지도를 보니 두억봉은 남쪽으로 조금 더 올랐다 내려와야 하기에 잠시 오르기로 한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좁은 공터로 이뤄진 두억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석과 이정표가 서 있다.

제법 고도도 높고 조망도 좋아 자료가 있을줄 알았는데 이곳 두억봉에 관한 자료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흑석산의 5월 철죽꽃 밭은 가리재에서부터 시작되는데 특히 신록과 어우러져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능선 구간으로 흑석산은 철쭉 명산으로도 꼽힌다.

서쪽으로 두억봉(529봉)과 이어진 흑석산은 남해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도 거뜬히 막아낼 수 있을 만큼 힘차고 당당한 형상으로 솟아 있는 가운데 5월이면 산등성이는 철죽꽃으로 발갛게 물든다.

두억봉에서 서쪽으로 늘어진 날등으로는 사람이 다니지 않은 탓에 접근이 어려운데 나무와  잡목을 헤치고 나가기란 보통 힘이 드는곳이 아니기 때문에 두억봉에서 희미하지만 남능을 타고 자연휴양림으로 내려오는 길을 택해야 한다.
흑선산이나 두억봉이나 대등에 올라서서 저멀리 펼처지는 서해바다를 바라보고 간척지를 내려다 볼수 있으므로 마음이 확트인다.


두억봉에 올라 먼저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남아 있는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잠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본다.

제일 먼저 서쪽을 살펴보니 오후가 되며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살을 받은 영암호에 붉은 기운이 감돌고 그 우측 저 멀리 비산비야로 이뤄진 흑석지맥의 마지막 산줄기인 소야산과 대야산 자락이 가물거리고 그 뒷편으로 몇 번인가 올랐던 목포의 유달산이 아름답다.

영암호 주위로 흩어진 비산비야가 산객을 부르지만 오늘과 내일은 흑석지맥과 사랑을 나눠야 하기 때문에 한눈을 팔기 어려운 시간이다.


그 영암호 우측 방향으로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흑석지맥이 산객을 부르고 그 좌측 끝자락에 내일 사트를 벌여야 할 소야산과 대야산도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 흑석지맥 건너편에는 목포의 유달산에서 그 끝을 마감하는 영산기맥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며 지난날의 추억을 다시 들려주고 있다.

4, 5년 전 1대간 9정맥과 9기맥을 완주하고 가족들과 함께 목포로 내려 가 자축하려던 계획이 어머님과 아버님의 소천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이 산객 홀로 쓸쓸하게 마무리하고 옆지기와 큰 아이만 데리고 저녁 한끼 먹고 올라 왔던 가슴 아픈 사연이 잇는 영산기맥이기에 더욱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가을도 아닌데 황금빛으로 물든 영암 들판이 초록빛과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이제 떠나기 아쉬워 지나온 흑석산 방향을 살펴보니 같은듯 다른 풍경이 계속해 이 산객의 가슴에 쌓인다.

이렇게 고생하며 지도를 확인하고 걷다보니 시간이 지나도 이 산객의 가슴속에 남아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전망데크에서 바라볼 때만 해도 멀게만 느껴졌던 두억봉에서 되돌아 보는 풍경 역시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제 마음이 조금은 놓이면서 긴장이 풀리는데 사실은 이제부터가 진짜 흑석지맥 산행의 백미로서 잡목으로 길찾기도 어렵고 가시넝쿨에 갖혀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고서야 어렵게 빠져 나가는 고난의 연속이다.


땅끝기맥의 월출산 역시 환상의 풍경으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흑석지맥 마루금도 다시 한번 살펴 본 후 그 남쪽으로 이어지는 땅끝기맥의 서기산과 주작적룡을 살펴보니 그 앞으로 시기하듯 땅끝기맥 마루금을 숨기는 화원지맥이 부르고 있다.

멀지 않은 시기에 올라야 할 화원지맥을 가슴에 담는 것으로 두억봉에서의 추억을 마치고 다시 가벼워진 배낭을 둘러메고 바위 전위봉 방향으로 내려간다.


아무 생각없이 안부를 지나 바위봉까지 진행한 후 좌측으로 이어지는 흑석지맥 마루금을 살펴보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 트랙을 자세히 확인해 보니 등로는 안부 지나 두억봉으로 오르는 등로 우측으로 나 있다.

잠시 오르며 자세히 살펴보니 안부 지나 10여미터 오른 지점 우측으로 청다래 넝쿨이 가득하고 잡목들이 자라면서 등로를 완전히 막아버린 곳에 선답자의 띠지 하나가 이곳이 올바른 등로임을 알려주고 있다.

방향만 정확하게 확인한 후 그 청다래넝쿨과 잡목을 뚫고 고난의 시작을 알리는 시간이다.


지독한 청다래넝쿨과 잡목을 헤치고 온 몸에 생채기를 낸 다음에야 어렵게 진입하며 내려가니 등로는 보이지 않지만 키 큰 거목들로 인해 잡목은 현저히 줄어 들었다.

하지만 트랙이 자꾸만 우측 능선 방향으로 가리켜 제법 키가 큰 산죽밭을 헤치고 사면 등로를 따라 어렵게 걸어 진행을 하니 산죽 능선으로 희미한 족적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신경 쓰며 그 희미한 족적을 따라 내려가니 잠시 후 평이한 등로로 변하며 산행하기 견딜만 한 등로와 만난다.

멋진 소나무도 만나고 다시 나타나는 약간의 산죽 등로도 만나 통과하니 산세는 급격하게 낮아져 평이한 등로상의 433.4봉에 도착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계속 이어지는 평이하지만 완만하게 계속 이어지는 활엽수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이제 등로는 제법 뚜렷해지고 키 큰 활엽수와 만나 잡목도 현저히 줄어 든 좋은 등로를 따른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옆으로 전망바위가 보이고 그곳으로 올라 잠시 살펴보니 서쪽으로 흐르는 산줄기 끝자락에 광활한 영암호가 반짝이고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나즈막한 평야가 이곳이 얼마만큼 풍요로운 곳인지를 알려주는 듯 하다.


그 영암호 우측으로는 흑석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이어지고 그 건너편으로 목포의 유달산이 우뚝하다.

영암평야를 지난 저 멀리에는 여전히 월출산과 월각산 줄기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다시 한번 더 내려가야 할 흑석지맥과 그 건너 영산기맥을 살펴본 후 방향을 잡고 조금은 빠르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 산허리를 휘돌아 내려가는 산판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조금 더 선명한 마루금을 확인하고 내려가니 길게 이어지는 로프구간을 만나고 곧이어 사각나무 계단을 통과한다.

이제 등로는 넓은 수레길로 변하고 고속도로 같은 그 등로를 따라 조금은 여유를 가져 보는 시간이다.


넓은 수레길 같은 등로 양쪽으로는 커다란 소나무들이 자라고 그 중간에 단풍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내려가니 등로에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여전히 뚜렷하고 넓은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갑자기 눈 앞에 비포장 임도가 내려다 보이는데 그 한쪽에는 이정표와 팔각정이 세워져 있다.

내려가 확인해 보니 기찬묏길이란 이정표 위에 미암생태숲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 온다.

잠시 등산화에 들어 가 있는 잔나뭇가지와 가시들을 제거한 후 등산복을 새로 정리하고 곧바로 임도를 가로질러 반대쪽 능선으로 올라간다.


이곳 능선에도 여전히 넓고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고 등로 양쪽으로는 단풍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다.

어느 단풍나무에는 벌써 단풍이 든것처럼 붉은 단풍잎이 피어나고 있어 이채롭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진행을 하니 봉우리 같지 않은 곳에 219봉이 나타나고 사진 한장 남겨 보는데 단 한시간 차이로 고도가 400여미터나 낮아진 장소이다.


잠시 더 진행하다 비포장 수레길이 좌측으로 휘돌아 가는 곳 우측으로 흑석지맥 마루금이 이어지고 바위를 돌아 내려가니 이곳도 역시 같은 풍경의 같은 느낌으로 마루금이 이어지고 있다.

다시 한동안 걸어 내려가니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등로를 만나고 이제 그 넓은 비포장 임도가 끝이나며 지독한 잡목이 앞을 가로막는 능선으로 들어가며 고행의 시작을 알린다.

잠시 잡목을 헤치며 내려가니 간벌된 나뭇가지들을 치우지 않해 진행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지독하게 지저분한 등로와 만나 진퇴양난이다.

비오듯 땀방울을 흘리며 너무나 어렵게 벌목된 고사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온몸은 생채기로 아프다며 난리를 치고 있고 잠시 후 생각지도 못한 인식을 알 수 없는 삼각점을 만나 사진 한장 남긴다.


이제 제법 멋지게 뻗어 자라고 있는 소나무 아래 관목들이 자라는 등로를 만나 조금 전 보다는 양호한 느낌으로 내려가 본다.

잠시 후 지독한 키 큰 산죽터널을 만나 어렵게 통과하니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진행하니 임도 옆으로 무명 묘지 한기가 나타나 그곳으로 들어 가 풍욕을 즐기며 잠시 흐르는 땀방울들을 닦으며 쉬어 본다.

옷 정리 후 내려가니 드넓은 마늘밭이 ㅊ=펼쳐져 있고 아주머니 한분이 마늘쫑을 채취하고 있어 인사를 나누는데 가뭄으로 인해 씨알이 작다며 걱정을 하고 계신다.

잠시 후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짧게 따르고 곧이어 도로 우측으로는 비닐을 씌운 작물을 재배하는 밭 걍작지를 만난다.


잠시 후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도로 옆으로 미산마을이란 표지석이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해 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미촌마을은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있는 마암리의 마을로서 남쪽으로는 낮은 산지가 있으며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미암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노적, 미촌, 신곡, 산정, 향양, 흑암 등이 있는데 노적은 뒷산이 노적 또는 거북 꼬리처럼 생겼다 하여 노적, 귀메산, 귀미산으로 불렸다.

미촌은 미암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곤미현이 있었다 하여 곤미, 골미라 하였신곡리는 옛 마을이 폐동되고 다시 새로 되었다 하여 신곡이라 한다.

도로 따라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미산교회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방금 전 고생하며 내려 온 마루금이 이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계속 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기울어 가는 햇살을 받으며 걸어가니 농사철이 시작되며 많은 농부들을 만나는데 인사를 건네면 모두 반갑게 인사를 받으며 이 무더위에 왠 산행이냐며 걱정을 해 주신다.

그러면서 가뭄으로 고생한다며 푸념도 늘어 놓으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에전 부모님 생각에 먹먹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잠시 더 걸어가니 저 멀리 향양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이제 마루금은 좌측으로 돌아가는 2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직진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을 해야 한다.

향양마을은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있는 미암리의 마을로서 남쪽으로는 낮은 산지가 있으며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미암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노적, 미촌, 신곡, 산정, 향양, 흑암 등이 있는데 향양은 향양정이 있어서 향양동이라고도 하며 흑암은 뒷산에 검은 빛의 바위가 많았다 하여 흑암이라 한다.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한다는 것 역시 이렇게 다른 생활권으로 와 산행하는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향양 버스 정류장 우측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도로 좌측 옆으로 노랗게 익어가는 보리맡이 바람에 살랑이며 물결을 치고 있어 산행을 하면서 왜 들판이 누렇게 변해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해결되는 순간이다.

이 산객이 어렸을 때만 해도 농촌에서는 논에도 거의 모두 보리를 심어 그것이 일상이 되었는데 일손이 줄고 쌀과 보리의 소비량이 줄면서 보리 농사도 많이 줄었는데 이곳 남녘은 그래도 제법 보리밭이 보인다.

보리밭 넘어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걸어 내려 온 흑석지맥 마루금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다시 이어지는 넓은 비닐을 씌운 고구마 밭 옆 둑을 타고 능선 방향으로 걸어가다 뒤돌아 보니 저 멀리 가학산과 흑석산의 머리부분이 보이기 시작하고 방금 전 어렵게 내려 온 두억봉과 잡목 구간 그리고 수레길 마루금이 한눈에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능선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뚜렷한 등로가 열려 있고 한동안 그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갑자기 드넓은 헬기장이 나타나는데 75.5봉 헬기장이다.


헬기장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무명묘지 한기가 보이고 그곳을 통과해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곧이어 잡목 구간으로 변하더니 잠시 후 넓은 비포장 수레길과 만나 그 수레길을 타고 걸어 본다.

한동안 편안하게 그 수레길을 따라가니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난 밭 가장자리를 만나고 곧이어 드넓은 비닐을 씌운 고구마 밭을 만나 그 밭 둑을 따라 진행을 한다.

잠시 후 밭 둑을 걸어 진행하며 등로 좌측을 보니 저 멀리 오늘 걸어 온 흑석지맥 마루금이 한누에 들어오고 그 좌측 끝자락에 월출산이 여전히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잠시 후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고 그 도로를 건너 비닐을 씌운 밭을 통해 묘지를 지난다.

다시 만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서쪽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니 저 멀리 지금부터 사투를 벌이며 올라가야 할 나즈막한 봉우리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거대한 비닐하우스가 잇는 삼거리를 지나 선황리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좌측 앞으로 송전탑과 그 뒤 저 멀리 마루금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들이 지쳐가는 산객의 발걸음을 자꾸만 무겁게 만들고 있다.


잠시 더 걸어가니 작은 다리가 나타나고 그 아래로는 거대한 인공수로가 연결되어 물길이 흐르고 있다.

농사철을 맞아 물이 필요한 곳으로 이송시키는 수로였는데 산자분수령으로 보면 전혀 맞지 않지만 이곳은 자연 그대로의 수로가 아닌 인공으로 만들어서 인위적으로 마루금이 잘린 곳이다.

도로 옆으로 인공수로를 두고 한동안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아낙들이 뽕나무에서 오디를 따고 있어 한주먹 따 먹을 수 있기를 요청하니 마음 놓고 따 먹으라고 허락해 준다.

두어 주먹 따 먹으니 역시 가물어서 그런지 당도가 높아 갈증을 해소하고 감사한 인사를 드린 후 48번 송전탑을 사진에 담고 곧바로 출발한다.


이곳은 많은 밭이 비닐을 씌운 농작물들을 재배하는 곳으로 보여지고 대부분이 농기계를 이용하여 농사를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계속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고 그곳에서 잠시 지나 온 방향을 살펴보니 저 멀리 두억봉에서 이어져 온 마루금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생각보다 많이도 걸어 진행을 하였음을 실감해 보는 시간이다.


다시 그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나타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통해 걸어 진행하니 막 비닐을 씌운 밭과 그 위쪽으로 비닐을 씌워 버써 많이 큰 고추밭이 눈에 들어 온다.

등로는 그 고추밭 가장자리를 통해 선황산 방향으로 오르도록 되어 있기에 그곳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문의를 하니 그곳은 등로가 전혀 없어 진행이 불가능하니 우측 도로를 타고 들어 가 선왕사 절을 통해 올라야 한다고 알려주며 조금은 불편한 기색이기에 두말 없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출발한다.

도로를 타고 잠시 더 걸어 선왕사 가는 방향으로 가니 도로 좌측으로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들어가니 사유지에 개조심이라는 커다란 문구가 보이는데 사람과 개는 보이지 않아 잠시 들어가 보지만 잡목이 우거져 도저히 능선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래도 온몸에 생채기를 내며 어렵게 잡목을 뚫고 능선 방향으로 들어가니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많은 시간을 잡아 먹으며 그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진 등로를 타고 어렵게 진행하니 봉우리 같지 않은 곳에 71봉이 나타나고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니 등로는 여전히 보이지 않고 벌목 후 널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발길을 붙잡고 놔주질 않는다.

너무나 어렵게 그 벌목된 등로를 빠져 나오니 안부가 보이고 그 안부를 지나자마자 넓은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지도를 보니 이 도로는 바로 선왕사로 오르는 도로였다.


선왕사 방향으로 잠시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도로 좌측 능선 방향으로 지맥 등로가 열려 있고 선답자의 띠지 두장이 나풀거리고 있다.

능선으로 치고 오르니 편백나무들이 간간히 보이고 보이지 않는 등로를 타고 방향만 잡아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갑자기 등로 옆으로 정상가는 철로 만든 이정표가 보인다.

잠시 더 진행하니 얼마 진행하지 않아 다시 같은 이정판을 만나고 지도를 보니 정상 등로는 선황산을 거치지 않고 좌측으로 진행하도록 되어 있는데 어짜피 오늘 이곳에서 머물기로 했으니 멀지 않은 선황산에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하지만 선황산을 오르면서 얼마나 많은 후회를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고 두려운 생각이 들 정도이다.

잠시 오르다 배낭을 잡목 숲 속에 숨겨 놓고 카메라와 모바일 폰 그리고 스틱만 가지고 오르니 등로는 보이지 않고 잡목과 가시나무가 자라면서 캐클를 거는데 온 몸이 아프고 따가워오기 시작한다.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 몇번인가 포기하려다 어두워지는데 올라온 시간이 아까워 계속 오르고 이제는 바지까지 찢어져 피가 흐르기 시작하는데 굵은 로프가 보여 희망을 가져 본다.

하지만 그 로프도 관계없이 잡목이 자라 로프도 보이지 않고 그렇게 너무나 힘들게 오르니 묘지를 지나 거대 암봉을 만나면서 철계단을 오르니 드디어 선황산 정상도 도착을 해 긴 한숨을 토해 본다.

선황산(181.8)은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와 채지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선황산(182) 1789년 호구 총수에 기록된 곤일시면 당리에서 기원한다.

당리 마을 뒷산에 서낭당이 선황당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에 따라 마을 이름도 1914년 선황리로 변하였다.

한국 지명 총람에는 화산, 화봉산, 고봉산, 화암산이라는 별칭과 함께 코처럼 생긴 바위가 있으며 백제 고미현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황산은 가학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두억봉(528) 서쪽 423미터 고지에서 북쪽으로 내려서 미암면 미암리 미촌 마을을 거쳐 북서쪽으로 뻗어나가다 선황리 당리 마을과 채지리 화암 마을 사이에 솟아오른 산이다.

북쪽으로는 망월천 건너 독천 시가지가 남쪽으로는 미암면 소재지와 영암호로 유입하는 남산천이 보인다.

선황산 정상 주위로 무너진 성축이 200미터 정도 남아 있는데 1943년 조선 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 고적 조사 보고에서는 성산이라 칭하며 둘레 130간 정도의 석루 곳곳이 붕괴되어 있다고 하였다.
미암면 당리 마을은 풍수적으로는 선황산의 맥이 뻗어내려 마을을 이루고 동네 앞 북바위산 고인돌은 거문고 받침대이며 전선은 거문고 줄로 선녀가 북을 치면 옥녀는 거문고를 치는 형국이라고 본다.

가뭄이 심할 때 기우제를 지낸 선황산에는 옛날 호랑이가 살았다는 동굴도 있으며 주민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고, 유두가 되면 함께 음식을 준비해 모내기를 하였다.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 남악리에 있는 전라남도 청사는 풍수적으로 유불선을 이루는 삼각점의 중심이라고 하는데 유불선은 목포의 유달산, 무안의 승달산, 영암의 선황산을 가리킨다.

그래도 정상에는 앙증맞은 정상석과 에전에 사용하다 자금은 폐허가 된 운동기구들이 널부러져 있다.


그곳 선황산 정상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남쪽으로 가 지나온 마루금을 살펴보니 생각보다 더 멋지고 환상적인 흑석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좌측 저 멀리 벌매산부터 475.4봉 그리고 가학산과 흑석산은 물론이고 두억봉과 비산비야로 이뤄진 마루금이 길게 이어지며 이곳 선황산까지 연결되어 있어 고생한 보람을 찾아 본다.

너무나 아름다운 마루금에 어둠이 짙어지고 있음도 잠시 잊고 조금 더 머물며 많은 사진으로 남겨 본다.


다시 바위봉으로 나와 서산으로 기울어가는 햇살을 받아 붉게 물들어 가는 영암호와 그 주변들을 살펴보니 환상의 그림 한점이 그곳에 펼쳐져 있다.

그 영암호 우측 벌목 사이로는 이제 곧 서해바다로 떨어질 하루해가 길게 누워 그 힘을 잃고 잇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오랫만에 산상에서 느껴보는 일몰의 쓸쓸함이 외롭기 보다는 생활의 활력을 느끼는 힐링의 시간으로 다가오니 앞으로도 산행에 대한 미련은 저ㅏㄹ대로 잊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선황산 정상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다시 올라 왓던 거친 등로를 타고 배낭이 있는 갈림 삼거리로 빠르게 내려가 본다.


선황산 갈림 삼거리로 되돌아 내려 와 벗어 놓은 배낭을 회수하고 물 한모금 마신 후 잡목을 뚫고 내려가니 분뇨 냄새가 심하게 나기 시작하고 곧이어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양계장이 나타나는데 이방인의 출현에 놀란 닭들이 울어대며 이리저리 돌아 다닌다.

주인에게 미안해 재빨리 다시 능선으로 들어 가 보지만 잡목으로 인해 가지도 못하고 나오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가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온 몸에 다시 가시 생채기를 만든 후 어렵게 반대쪽 축사의 녹슨 철조망 앞으로 빠져 나온다.


그곳에서 임도를 타고 잠시 걸어 능선으로 들어 성터만 확인하고 더 이상 마루금을 고집하지 못하고 뒤로 후퇴하여 양계장으로 통하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오늘 산행 목적지인 81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오미재로 내려가기로 한다.

벌써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하고 땅거미가 밀려오기 직전이라 아쉬움을 달래고 약간의 우회 도로를 따르기로 한다.

성터 전망대 (성산 성터)는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성산에 있는 산성 터로서 영암군 미암면을 비롯하여 학산면, 서호면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고려 때까지 현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 때 고미현이었다가 통일 신라 757(경덕왕 16)에 곤미현으로 이름이 바뀌고 반남군에 속하였으며 1080(고려 문종 34) 이래 계속 영암군에 속하였다.

조선 후기에 곤일시면으로 개편되었고 1917년 미암면으로 이름이 바뀌어 2013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히 성산성이 들어서 있는 선황리 일대는 옛 고미현과 곤미현의 치소로 비정되고 있기 때문에 성산성은 그 중심부에 분포하고 있는 산성으로 주목되고 있다.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에 따르면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에는 선황산의 정상부에 위치한 선황산성과 선황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는 가지 능선에 위치한 성산성 등 두 개의 산성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성산성 터는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당리 마을 성산에 있으며 성산성이 자리한 곳은 북쪽의 선황산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말단 정상부에 해당한다.

성산성은 1986년에 목포 대학교 박물관의 지표 조사 때 존재가 확인되었고 1999년에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를 작성할 때 다시 확인되었다.

성산성에 대한 문헌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데다가 산성 내부에서도 유물이 확인되지 않고 있을 뿐더러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 및 배경은 알 수 없다.

성산성은 해발 125.9미터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그 남쪽을 타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테뫼식(봉우리를 둘러쌓아 성을 축조하는 방법) 산성이다.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에 따르면 성산이라 하며 둘레 약 130칸의 석루가 곳곳이 붕괴되어 있다고 성산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이를 근거로 복원한 성벽의 둘레는 약 235미터로서 소규모의 보루 형태임을 알 수 있으며 북쪽은 해발 181.8미터의 선황산이 있어 전망이 좋지 않지만 남쪽의 해남만을 비롯하여 서쪽과 동쪽의 삼면이 잘 조망되는 요충지를 이루고 있다.
성산성의 성벽은 대부분 무너진 상태로 남벽의 일부에서만 축조 기법을 살펴볼 수 있는데 남벽 구간 가운데 길이 5미터에 높이 1미터의 4-5단의 성벽 일부가 원래의 상태로 남아 있으며 나머지 약 2.3미터 구간은 높이 130미터에 너비 330미터 범위에 걸쳐 완전히 무너진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성벽은 할석재를 이용하여 내벽과 외벽을 모두 돌로 쌓은 협축식이고 산성 내부는 비교적 평탄한 상태이나 건물지의 흔적이나 기와 조각 등의 유물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성산성 내부에서는 유물이 전혀 수습되지 않고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나 사용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성산성이 백제 때 고미현, 통일 신라 때부터 고려 시대 때까지 곤미현의 치소로 비정되고 있는 선황리에 분포하고 있고 선황산 가지 능선의 남쪽 말단 정상부에 들어서 있는 점과 해남만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의 산이 반도에 백제 때 쌓은 산성 2개소가 분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백제 때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성산성은 영암군 삼호면, 미암면의 삼호 반도와 해남군 산이면, 마산면의 산이 반도 사이에 형성된 해남만 가장 안쪽 편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해남만을 오가는 해상 교통로를 감시와 통제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생각보다 중요하게 여겨졌던 성터로서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어 잘 보관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다.


양계장으로 통하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계속 걸어 내려가니 채지저수지가 보이고 그 둑을 타고 걸어가니 성터에서 만났던 시멘트 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내려왔으면 더 좋았겠다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잠시 후 819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그 옆으로는 양게장 들어가는 방향으로 유선장농원이란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다.

그곳에서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도로 우측으로 대천가든이란 간판이 보이고 잠시 후 그 대천가든 방향으로 들어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도 보인다.

그 바로 앞에는 서영암주유소라는 입간판이 서 잇는 그곳이 바로 내일 흑석지맥 마지막 구간의 산행 들머리임을 확인하고 오늘 산행은 땅거미가 지는 시간에 이곳 81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오미재(오미령)에서 산행을 마무리하고 미암택시를 부른다.


왜 이곳을 오미재 또는 오미령이라고 했는지 궁금해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원 뜻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몇가지 단서가 될만한 자료들이 잇어 정리를 해 본다.

오미령은 선황산 기슭에 자리잡은 고개로 오밋재를 통과하는 차량들이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지난 1991년부터 미암면 방범대 주관으로 제례를 준비하여 선황산 토지신들에게 제를 봉행해 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도로가 정비되어 도롯가에 잇던 길안천이란 약수터도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또한 예전에 도로가 정비되기 전 이곳 오미재에 잇던 길안천이란 약수터에 남아 있던 글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은데 이글로서 약간은 오미재에 대한 유래를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예부터 오미재를 넘나들던 많은 길손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목을 축이고 쉬어가던 곳이다.

독천에서 미암면사무소로 가는 지방도 819호선 왼쪽 선황산 기슭에 있는 길암천은 1959 5월경에 미암면 지서장인 유길종님께서 샘을 정비하여 그의 이름에서 길자와 미암면의 암자를 합하여 길암천이라 칭한다.  

이 곳은 물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사계절 마르지 않아 무병장수의 약수로 소문이 퍼져 인근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지금도 목포 등 먼 곳에서 물을 길어가고 있다.

면역기능 강화에 효과가 있는 게르마늄을 미량 함유하고 있으며 칼슘, 나트륨, 칼륨 등 미네랄이 풍부하여 영암군에서 약수터를 보전하고 이용객들 위해 등나무와 벤치로 쉼터를 마련하고 주변 환경을 산뜻하게 정비하여 약수터 이용자들이 편하게 쉬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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