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맥산행(완료)/망일지맥(금북·완)

망일지맥 제1구간 분기점에서 환성1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6. 3. 28.
728x90

산행지 : 충청남도 서산시 망일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6년 03월 26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아침에 약간의 박무 후 맑고 약간 무더위를 느꼈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어 산행하기 좋았던 날씨

산행온도 영상 03도에서 영상 14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삼고개(634번 2차선 포장도로, 금학3리 버스정류장)-비포장 임도-나무 조림지-소나무와 대나무 등로-161.7 잡목봉-벌목지대-송전탑 21번-

                 시멘트 포장도로-절개지-망일지맥 분기점(금북정맥)-삼고개 복귀-시멘트 포장도로-시온감리교회-청풍김공 묘지지대-간벌지대-120.1봉-

                 무명묘지3기-비포장 임도-갈림사거리-무명안부-지독한 잡목과 간벌목 지대-경주최공과 부인합장묘-무명묘지1기-무명안부-138지독한잡목봉-

                 139 잡목봉-국가유공자 함평이공묘지-널부러진 간벌목과 검정천막지대-간벌목이 널부러진 등로-비포장 임도-갈림삼거리-엄나무지대-비포장

                 임도안부-지독한 잡목지대-152 엄나무봉-비포장 임도-갈림사거리-지독한 잡풀지대-송전탑-엄나무 등로-연화산 갈림삼거리(벤취쉼터1)-

                 234.6 삼각점봉-바위지대-연화산(236.3봉) 이정표(금학리, 화천리 1.4 Km, 등산로입구 1.8 Km)-연화산 갈림삼거리 복귀-232 벤취쉼터1봉-

                 갈림삼거리봉-화천리 갈림 이정표(화천리 0.4 Km, 정상 1.0 Km, 연화리)-198.4 소나무봉-신곡재(시멘트 포장도로) 이정표(성연오사리, 연화리,

                 화천리 2.0 Km)-벌목지와 비포장 임도-여영님의 응원판-소나무 등로-167.6 벤취봉(지도상 허봉산)-허봉산(140봉, 준.희님 정상판)-무명안부-

                 벌목지대-이정표(정상 2.4 Km, 화천리 1.0 Km, 화동)-소나무 등로-능선진입-송전탑-114.1봉 갈림삼거리 잡목봉-지독한 잡목지대-비포장

                 임도-29번 송전탑-무명 송전탑-비포장 소나무 임도-무명 송전탑-109 벤취쉼터1-갈림삼거리 우-장현1리 갈림삼거리 이정표(정상 3.0 Km,

                 화천리 0.6 Km, 장현1리)-송전탑-114.6 산불감시초소봉-무명안부-돌탑봉(돌탑1, 운동기구, 벤취)-공사장 절개지-번두고개(왕산이로 2차선

                 포장도로, 번두고개 버스정류장) 이정표(등산로입구 정상 3.4 Km, 화방산 등산로 안내판)-능선진입-대나무 밭-엄나무골-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폐축사와 과수원-묘지3기-밤나무지대-대나무와 고추밭-밭 경작지-시멘트포장도로-갈림사거리-마늘밭과 폐민가-대나무터널-51벌목봉-

                 벌목지대-밭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마늘밭과 비닐하우스-송전탑-밭 경작지-민가 옆 대나무임도-비포장 임도와 나무조림지-2차선 포장도로-

                 샘골입구 버스정류장-비포장 임도-갈림삼거리 좌-78.5 이동통신탑봉-잡목지대-밭 경작지-도성로(2차선 포장도로)-신성1리 버스정류장-산성리

                 갈림삼거리-능선진입-묘지지대-74.6 산불흔적봉-도성로(2차선 포장도로)-부성사입구 버스정류장-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잡목지대-

                 부성산(118.3봉, 삼각점, 넓은 공터)-지독한 잡목지대-비포장 임도-도성로(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 지대-밭 경작지-

                 78.5 잡목봉-지독한 가시나무지대-무명안부-가시나무지대-무명묘지3기-충주지공묘지-송전탑-국가유공자이종학묘지-자갈깔린 비포장 임도-

                 헤브론 수양관 철조망-갈림삼거리-능선진입-지적 경계점-녹슨 철사줄지대-시멘트 포장도로-소래개골길 도로표지판-갈림삼거리(화천감나무

                 골길)-능선진입-지독한 가시나무와 간벌된 고사목지대-53.8 잡목봉-시멘트 포장도로-갈림삼거리-능선진입-한양조공묘지-지독한 간벌목지대-

                 38 밤나무봉-지독한 벌목목지대-비포장 임도안부-벌목지대-1차선 포장도로-대요1리 경로당-갈림삼거리(진충사길과 대요한우물길)-대요

                 정미소-가랑비아모텔-29번과 77번 4차선 포장도로-환성1리 버스정류장(대성교회, 법룡사, 환성1리 이정석)-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8.27 Km (망일지맥 산행 약 17.03 Km와 삼고개에서 망일지맥 분기점까지 접속구간 01.24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 그리고 때로는 편안한 비포장 임도를 따라 어렵게 진행하여 06간 12분 (11시 32부터 17시 44분까)

교통편 : 대중교통을 이용해 무탈하게 진행하였음

             봉천역에서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을 이용해 남부터미널역

             남부버스터미널에서 9시 20분 발 서산행 버스로 서산도착 (8,000.-원)

             서산버스터미널에서 금학3리 버스정류장까지 택시 이용 (10,000.-원)

             환성1리 버스정류장에서 251번으로 서산버스터미널까지 이동

             서산버스터미널에서 19시 10분 발 버스로 서울남부버스터미널 도착

             남부터미널역에서 지하철 3호선과 2호선을 이용해 귀가

산행횟수와 총 산행거리 : 2016-16 291.83 Km

망일지맥이란 ???

망일지맥은 금북정맥이 서산의 성왕산(252.3봉)과 금강산(316.1봉)사이인 비룡산(292봉) 북봉에서  분기하여  북진하며 연화산(234.6봉), 허봉산(140봉), 화방산(114봉), 부성산(118.3봉), 망뫼산(119.6봉), 망일산(302봉), 몰니산(169.2봉), 자용산(150.6봉), 가당산(37봉), 원수당산(59봉), 벌천포해수욕장을 지나  오배산(45.8봉)에서 가로림만 건너로 후망지맥의 끝자락을 마주보며 서해바다에 드는  도상거리  35.8 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새로운 마루금에서 지독한 잡목과 편안한 임도를 교대로 만나 너무나 힘들게 걸었던 망일지맥에서의 추억을 생각하는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이번주에는 두어번의 설명회와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너무나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동서들로부터 전화가 와 번개 미팅을 요청하고 세가족이 모여 이슬이를 나누다 보니 제법 과음을 하였는가 보다.

그래도 토요일 조금 늦게 일어나 어렵게 준비한 배낭을 어깨에 메고 새로운 마루금을 찾아 서산행 버스에 몸을 실고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일어나니 벌써 서산이다.

편의점에 들려 시원한 음료수 한병 사서 마시고 택시를 불러 산행 들머리인 금학3리 버스정류장과 시온김리교회 입간판이 서 있는 634번 2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하니 오전 11시 30여분이 가까워져 오고 산행 준비 후 금학3리 버스정류장을 출발하니 비포장 임도 좌측의 밭 경작지에는 부부가 나와 거름을 펼치며 새로운 농사일을 준비하고 있다.

이곳 망일지맥도 오늘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올라갔다 다시 한번만 더 내려오면 완주가 될 것이기에 무탈하게 마무리한 후 금북정맥에 있는 지맥들을 하나 둘 올라보려 노력할 것이다.

다만 어제 마신 이슬이로 인해 계획된 산행이나 제대로 잘 하고 올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삼고개라 불려지는 금학3리에서 잠시 분기점에 올라 6년 전인 2010년 가을에 걸었던 금북정맥 마루금을 둘러보고 다시 내려 와 비산비야를 걸어 연화산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잠시 연화산을 다녀오며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저 멀리 금북정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오늘 올랐다 내려 온 망일지맥 분기점에서부터 이곳 연화산으로 이어져 온 망일지맥 마루금 역시 너무나 환상의 풍경을 이루며 가슴속에 남겨지는 시간이다.

그 망일지맥 분기점 우측으로는 금북정맥 상 금강산이 옛 추억을 말해주며 달콤한 속삭임도 전하는 시간이기에 잠시 더 머물며 가슴속 깊이 남겨졌던 추억을 꺼내 본 멋진 시간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도로 좌측에 있는 금학3리 버스정류장과 우측 시온감리교회 입간판을 다시 한번 둘러 본다.

이곳 산행 들머리는 망일지맥 상 마루금으로 진행 방향은 북쪽인 우측의 시온감리교회 방향으로 걸어가야 되지만 좌측 금학3리 버스정류장 방향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잠시 분기점까지 다녀와야 하기에 사진 몇장 남기고 산행 준비 후 버스정류장 우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또 새로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등로는 둔덕을 넘어 밭 경작지였다가 나무가 식재된 곳으로 이어지는데 그곳으로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바로 아래 밭 경작지에 경운기를 가지고 올라 와 거름을 펼치는 부부가 보이고 그곳 지나 623번 2차선 포장도로 지나 진행해야 할 시온감리교회와 무명봉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조만간 분기점을 다녀 와 내려오며 다시 만나야 할 풍경이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다시 분기점 방향으로 출발을 한다.


잠시 오르니 금새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직진의 능선이 아닌 우측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이어지는데 짧은 대나무 밭을 지나 평이한 낙엽 등로가 나타난다

그리고 다시 잡목과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을 넘어 짧은 벌목지대를 지나니 21번 송전탑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올라야 하지만 분기점을 다녀 와 내려오는 정상 산행에서 능선을 따라 진행하기로 하고 접속구간으로 오르는 등로는 이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올라 본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다 좌측 절개지로 오르니 정상 등로가 다시 나타나고 그 등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 완만하게 걸어가 본다.

잠시 걸어 진행을 하니 노란 생강꽃이 지천에 피어 이제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고 바위지대를 지나 조금 더 오르니 기억이 가물거리는 금북정맥 마루금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 한쪽에는 준.희님이 붙여 놓은 망일지맥 분기점 이정판이 보인다.

6년 전 홀로 금북정맥 산행을 할 땐 만나지 못했던 분기점 아정판을 그 사이 준.희님이 올라 새롭게 걸어 놨기에 그저 고개 숙여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곳 망일지맥 분기점에서 동쪽을 살펴보니 몇 년전 홀로 외롭게 걸었던 금북정맥 마루금이 또 다른 추억을 만들며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에는 조만간 올라야 할 고산지맥 마루금의 산들도 보이고 있다.

금북정맥 마루금 좌측으로는 높은 고층 아파트들이 보이고 마루금 우측으로는 서산시 갈산동 마을이 조용하게 내려다 보이는데 살펴보니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갈산동은 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마을로서 행정동인 부춘동 관할인데 서산시 도시지역의 서북쪽 끝에 있다.
동쪽으로 부춘동, 북쪽으로 성연면 일람리 및 고남리, 서쪽으로 팔봉면 금학리, 남쪽으로 인지면 성리와 접한다.
원래 서산군 인정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인정면 상갈리, 하갈리의 전지역과 산북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서산군 인지면 갈산리가 되었다가 1973년 서산읍에 편입되었으며 1989년 서산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갈산동으로 개칭되어 서산시의 행정동인 부춘동 관할의 법정동이 되었다.
마을 남쪽에 낚시터로서도 알려진 풍전저수지가 있으며 동쪽 부춘동과의 사이에 22번과 77번국도가 있으며 서산종합운동장, 서산농수축산물도매시장, 서산국민체육센터, 문화체육시설관리사업소가 있고 윗갈치, 아랫갈치, 큰말, 서루개, 양지말, 아랫말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그렇게 잠시 더 망일지맥 분기점에서 머문 후 다시 올랐던 등로를 따라 빠르게 삼고개 방향으로 뒤돌아 내려간다.

능선을 타고 내려가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고 21번 송전탑을 통과하니 161.7 잡목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내려가 본다.

많은 잡목과 간벌된 나뭇토막들이 널부러져 있는 그 161.7 무명봉을 넘어 내려가니 뚜렷한 멋진 등로가 열려있고 조금은 빠르게 내려가는 순간이다.


뚜렷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 위에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바로 아래 거대한 목장건물이 내려다 보이고 금학리 마을 넘어 서산 팔봉산이 우뚝 솟아 있다.

팔봉산은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362미터이고 금북정맥에 속하며 호산록에 따르면 산이름은 8개의 암봉이 줄지어 서 있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9개의 봉우리인데 가장 작은 봉을 제외하고 보통 8개 봉우리라 하는데 이 때문에 제외된 한 봉우리가 자기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하여 매년 12월 말이면 운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며 암봉이 많은 산이지만 철계단과 로프가 잘 설치되어 있다.
옛날 이 산에 이문이라는 도적이 많은 무리를 이끌고 와 살인을 일삼아 관군이 이들을 토벌하려고 삼면을 포위하였으나 뒤편의 절벽을 이용하여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또한 임오년과 을미년의 심한 한해 때 이 산에서 기우제를 지내자 비가 와서 위기를 면했다고 하며 그후로 한해가 심할 때마다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서산시에서 양길리행 버스를 타고  양길리 주유소에서 내려 길을 따라 정미소를 지나 마지막 민가를 지나 조금만 가면 산길이 시작된다.
2봉에는 통천문이 있는데 이곳은 너무 좁아 사람이 간신히 통과할 정도이며 이 문을 지나면 산 정상인 3봉에 다다르는데 4봉에서 6봉까지의 길은 평범한 능선길이다.
능선에 오르면 북쪽으로 가로림만의 오밀조밀한 해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서해안에 인접한 이 산은 바위에 노을이 물드는 저녁시간의 풍경이 특히 이채롭다.
커다란 바위가 포개어져 있는 정상에 서면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며 태안반도의 전망대 역할을 할 만큼 조망이 시원스럽다.
하산은 8봉에서 철탑 방향으로 내려서서 서태사를 거쳐 대문다리로 하는 것이 좋고 산행시간은 약 3시간이 걸리며 조금 긴 산행을 원한다면 8봉에서 산이고개를 지나 이웃한 금강산과 장군산으로 산행을 이어갈 수도 있다.


팔봉산 좌측으로는 금북정맥 상 금강산도 올려다 보이기에 잠시 옛 추억에 잠겨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그 묘지 위에서 멋진 조망을 즐긴 후 내려가니 다시 벌목지대와 대나무 지대를 지나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조림지에 도착을 한다.

앞으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을 살펴 본 후 내려가니 다시 비포장 임도를 만나고 그 임도에서 잠시 등로 좌측 뒤를 살펴보니 능선 뒤 저 멀리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망일지맥 분기점에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내려가니 다시 오늘 산행을 시작한 623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금학3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삼고개에 도착을 한다.

분기점을 다녀온 시간이 채 50여분을 넘기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곳은 삼고개라 불려지는 곳으로 삼고개(634번 2차선 포장도로, 금학3리 버스 정류장)는 충청남도 서산시의 성연면 고남리와 팔봉면 금학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여지도서의 성면면에 삼고개 리는 관문에서 북쪽으로 15리 지점에 있으며 편호 43호, 남자 53명, 여자 43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명은 고남리에서 외부로 통하는 3개의 고개가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지는데 하나는 고남리 1리에서 팔봉면 금학리로 넘어가는 고개이고 다른 하나는 삼고개 마을에서 윗갈티를 통하여 서산장으로 가는 고개이며 또 다른 하나는 쇠길이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지금도 삼고개 마을이 있으며 634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이다.


산행을 시작한 623번 2차선 도로가 지나는 삼고개로 다시 뒤돌아 내려 와 주위 풍경을 몇장 더 사진에 담고 도로 건너 시온감리교회 입간판이 서 있는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시멘트 포장도로는 비포장 임도로 변하고 눈 앞에 시온감리교회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시온교회 건물 좌측으로 등로가 열려잇고 그 뒤 능선 방향으로 뚜렷한 등로도 열려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와 그 방향으로 걸어 오른다.


그 시온감리교회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살펴보니 청풍김공 묘지들이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 오르니 등로 옆 나뭇가지에는 외인출입입산금지라는 경고판이 달려있어 무심코 진행하다 다시 한번 더 살펴보는데 아마도 임산물을 식재해 놓은 장소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잠시 뚜렷한 등로를 타고 오루니 등로 우측으로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곧이어 잡목이 우거진 120.1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잡목이 우거진 120.1봉을 지나 진행을 하니 등로는 좌측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잘 가꿔진 드넓은 장소에 묘지3기가 보이는 곳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꺽여 이어지는데 등로 좌측으로는 벌목 후 나무들을 식재해 놓은 농장같은 장소가 나타나는데 앞으로 진행 방향인 북쪽으로는 뚜렷한 드넓은 비포장 임도가 보이고 그 뒤 저 멀리에는 송전탑이 서 있는 연화산과 갈림삼거리봉우리도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의 쇠골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쇠골은 쇠 또는 금이 많이 났다고 하여 쇠골(금곡)이라 하는 마을이다.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는 멋진 소나무가 아름답게 서 있고 좌측으로는 벌목 후 새로운 나무들을 식재한 조림지가 보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갈림사거리를 지나 등로 우측으로도 드넓은 장소에 벌목 후 새로운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고 잘 가꿔진 수목원 같은 풍경이 내려다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는 농원 같은 장소를 지나 팔봉산이 여전히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도 눈에 들어 오고 그렇게 주위 풍경을 살펴보며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를 지나 잡목이 나타나는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이곳에서 부터는 잡목이 우거지기 시작하고 그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또 다른 간벌 후 등로에 널부러진 나뭇가지들로 인해 진행에 너무나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게 어렵게 잡목과 널부러진 간벌된 마른 나무들을 헤치며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잘 관리되는 묘지 한기가 있는 곳에서 등로는 그 묘지 뒤인 우측으로 휘돌아 진행이 되고 있다.


그 묘지 한기를 지나 다시 나타나는 지독한 잡목지대를 헤치며 어렵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는 최근에 새로 조성된 듯한 커다란 묘지 한기가 나타나고 그 묘지 우측 뒤를 타고 걸어간다.

그 묘지를 지나니 서산 괜차뉴님의 띠지가 반갑게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이제부터는 조금 편안하게 넓은 수레길 같은 등로를 타고 걸어 본다.

안부 같지 않은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무명묘지를 지나 등로 우측으로 나무 조림지가 나타난다.

그 나무 조림지를 지나자마자 이름이 없는 무명안부가 나타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완만하게 오른다.



방금 전 지난 무명안부는 아직도 많은 통행량이 있는 듯 제법 뚜렷한 등로가 남아 있는데 좌측의 금학리와 우측의 고남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 안부이다.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진행되고 그곳 묘지 정상에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금북정맥의 금강산과 오늘 이 산객이 다녀 온 망일지맥 분기점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곧그 묘지를 지나 오르니 금새 잡목과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131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131 무명봉을 지나니 이제부터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고 그 뚜렷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약간의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지만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등로이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잡목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선답자들의 띠지가 나부끼는 133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약간 휘어 진행이 된다.


그 133 무명봉을 지나 약간의 잡목을 헤치고 걸어가니 갑자기 잡목이 사라지고 하늘이 열리는데 등로 좌측 옆으로는 국가유공자 함평이공 묘지와 비석이 보이는데 잘 관리가 되지 않는지 잡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죽은 풍경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곳을 지나 다시 뚜렷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는데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검정 태양 가림막이 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 오고 그곳에는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등로에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잡목과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을 지나 진행을 하니 잠시 잡목이 사라지고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다.

뚜렷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간벌된 나무들이 널부러져 있는 등로로 바뀌고 잠시 힘들게 걸어 진행을 해 보는 시간이다.

그곳을 통과하니 갑자ㅣ 드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데 최근에 만들어진 임도처럼 보이는 등로이다.

이제 조금은 편안하게 그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보는 시간이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양쪽으로 멋진 소나무들이 보이고 진행 할 방향으로는 이제부터 올라야 할 연화산 능선도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 갈림삼거리를 통과한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지나온 마루금이 소나무 위로 보이고 잠시 후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휘어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엄나무 가시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걸어 진행을 해 본다.


좌측으로 나 있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악마의 이빨처럼 날카롭게 가시를 드러 낸 엄나무들이 등로를 빼곡하게 채우며 자라고 있어 여간 조심스럽게 진행하지 않는다.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면서도 몇번인가 가시에 찔려 피가 날 정도로 크고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엄나무 가시이다.

어렵게 그 엄나무 가시를 피해 내려가니 다시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데 살펴보니 내려오기 전 헤어졌던 그 비포장 임도가 휘돌아 내려오는 듯 보였다.

이제 그 비포장 임도 좌우측으로 엄나무 가시를 바라보며 조금은 여유롭게 걸어 본다.


잠시 더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오른 후 뒤돌아 보니 그 비포장 임도 좌측 능선으로 원 지맥 마루금이 보이는데 그곳에는 엄나무가 빈 공간도 없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어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한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다시 나타나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지독한 잡목지대가 펼쳐지고 참으로 어렵게 그 잡목을 헤치며 오르니 옷가지가 잡목에 걸려 찢어지고 터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다시 147 엄나무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이제부터 올라야 할 연화산 오르막 등로와 연화산을 살펴 본다.


바로 앞쪽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면 뚜렷한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넘어 가파르게 오르면 높은 송전탑 하나가 서 있는 연화산 갈림 삼거리가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연화산 가는 등로도 보인다.

한동안 그 엄나무 봉에서 주위 풍경과 진행 방향의 조망을 구경한 후 그 엄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등로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다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데 그 임도 앞에는 차량 통행을 막는 바리케이트가 보인다.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다 등로 좌측 뒤를 보니 금북정맥의 금강산과 그 좌측으로 오늘 산행을 시작한 망일지맥 분기점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그 우측으로 있어야 할 서산 팔봉산은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제 그 바리게이트를 지나 비포장 임도를 건너 오르니 짧은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더니 곧이어 잡목이 우거진 오르막 등로로 변하고 있다.

잡목이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를 지나 오르니 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오사리 넘어 서산시 성연면 마을의 아파트들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오사리는 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있는 마을로서 마을이 산간 밑에 자리잡고 있는데 산골을 제외한 마을전체가 평야로 이루어져 있어 오지평이라 불린다.
전형적인 논농사 마을이었으나 최근에는 원예단지와 과수단지가 조성되었고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러 리가 병합되었는데 그 중 오지리와 사동리의 이름을 따서 오사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두내바지, 벌뚬, 사동, 산골, 생동이 있으며 두내바지는 마을앞에서 두 내가 합한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벌뜸은 마을이 벌판에 있다하여 생긴 이름이고 사동은 마을에 사기점이 있다하여 생긴 이름이며 산골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임진왜란 때 이 곳에서 피난했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생동은 큰 샘이 있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성연면은 충청남도 서산시의 중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의 대부분이 낮은 구릉지를 이루며 동남부를 흐르는 성연천 주변에 평야가 발달하여 있고 관내의 서쪽에 고남저수지가 있다.
현재 9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으며 면 지명은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성연부곡이라는 기록에서 처음 볼 수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본래 성연의 부곡이었는데 동쪽으로 처음은 15리 끝은 25리이다라고 나와 있다.
여지도서, 호구총수와 같은 지리지, 조선지도, 해동지도, 1872년지방지도와 같은 군현지도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호구총수에 의하면 16개 리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601가구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과 1914년에도 이름이 바뀌지 않고 지속되었다.
면 이름의 유래는 면의 왕정리 옥동샘 전설과 관련이 있는데 그 대강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옛적에 70세가 넘는 아들 없는 늙은 부부가 옥동샘 가까이에 살았는데 샘에 정성스럽게 기도를 드려 아들을 얻었고 그렇게 해서 낳은 옥동이는 총명해서 글을 잘 했으며 큰 벼슬을 할 사람이라는 소문이 났다.
이를 시기한 동네 아이들이 옥동이를 자루에 넣어서 샘에 빠뜨려 죽였는데 그때 폭풍과 함께 샘물이 솟구쳐 오르며 용이 승천하여 올라갔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예부터 이 샘을 신성시하여 왔다고 하며 일부에서는 용으로 승천한 옥동이가 성인이며 옥동이를 낳을 수 있도록 영험을 준 샘이 성연이라고 가설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1995년 도농통합으로 시에 속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리 지명은 대부분 1914년에 합성되어 만들어졌는데 그 중 평리는 그곳의 평평한 지형에서 유래하였으며 평리를 흐르던 성연천은 범상선이 드나드는 큰 하천이었다.
과거에는 5일장도 섰으나 1960년대 이후 육상교통의 발달과 인천항과 왕래하던 명천포구가 쇠퇴하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졌는데 명천포구는 명천리에 있다.
이 지명은 호구총수와 1872년지방지도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고려조와 조선조에 세곡을 수납하던 조창과 서산의 외항기능인 창촌으로 일찍부터 이름났던 곳이다.
해동지도나 조선지도, 대동여지도 등의 고지도에 명천창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해창이라고도 하였다.
서산군지(1926)에 의하면 해창은 15간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백성의 세금과 공과부담금을 징수 · 수납하던 곳이며 이 창고는 세미와 환미를 저장하여 두는 곳인데 명천리에 기와집으로 6평 9홉이고 초집건평이 15평 1홉 2작이었다.
1984년 대호방조제가 축조되면서 매립되어 하천의 교통기능이 없어졌지만 창말이나 포구 지명이 현대지도에 기재되어 있음을 통해서 과거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등로 우측으로 성연면 지나 조만간 다시 올라야 할 고산지맥 마루금이 아름답다.

다시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또 다른 비포장 임도가 지나고 그 임도를 건너 오르니 잡목과 잡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 죽은 등로가 이어지는데 그 등로는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다.

다시 어렵게 걸어 오르니 번호가 사라진 송전탑을 만나고 그 송전탑 옆에서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망일지맥 마루금과 그 끝자락의 분기점 옆으로 금북정맥 상 금강산이 아름답게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 마루금 우측으로는 금학리 마을이 좁고 길에 이곳 연화산 바로 밑까지 올라 와 있다.

금학리는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있는 마을로서 마을 앞에 방길천이 흐르고 인근에 팔봉산이 있는 등 구릉지로 형성된 마을이며 마을 안에 있는 안산의 봉우리는 시루를 엎어놓은 형상으로 시루봉이라 한다.
자연마을로는 쇠이골, 쇠골, 추학마을 등이 있는데 쇠이골은 소에 이로운 마을이라서 쇠이골(우길리)이라 하고  쇠골은 쇠 또는 금이 많이 났다고 하여 쇠골(금곡)이라 한다.
그리고 추학마을은 마을에 학이 많이 날아와서 추학마을 이라고 하며 특산물로는 마늘, 생강, 감자, 양배추 등이 있다.


송전탑 옆에서 지나온 망일지맥 마루금과 금북정맥 마루금을 살펴 본 후 다시 잡목과 잡풀을 헤치고 오르니 엄나무 가시가 앞길을 막는 등로가 짧게 나타나더니 금새 연화산 갈림 삼거리의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그 앞에는 벤취쉼터 하나가 멋지게 설치되어 있다.

그 벤취쉼터에서 잠시 물 한모금 마신 후 등로 좌측의 연화산을 다녀 오기로 한다.


부드러운 비포장 임도가 이어지고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 앞으로 보이지 않던 서산 팔봉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는 금강산과 망일지맥 분기점도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그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비포장 임도는 좌측 직진으로 가고 연화산 정상부는 우측 잡목 사이로 이어지는데 그곳으로 오르니 발 밑에 산자고가 예쁘게 피어 있다.

산자고는 봄이면 원색적으로 화단을 장식하는 튜립 야생원종 중의 하나로서 튜립 야생종으로는 우리나라에 산자고 한 종만 있어 귀하게 대접받아야 할 토종 자생식물이다.
숲이나 언덕의 시원하고 물이 잘 빠지는 곳에서 흔히 자생하는데 이른 봄에 큰괭이밥 등과 비슷한 시기에 꽃이 피며 꽃대가 가늘어 오후가 되면 꽃 무게를 잘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구부러져 보는 사람을 애처롭게 한다.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이나 중국에도 자생한다.
튜립은 워낙 유명한 알뿌리식물로써 무수히 많은 원예품종들이 개량되어 있으며 야생원종만 해도 100종이 아시아, 중동, 유럽의 온대성 지역에 다양하게 분포한다.


산자고를 사진에 담고 다시 조금 더 오르니 금새 234.6미터인 삼각점 봉에 도착을 한다.

처음에는 이곳이 연화산이라 생각을 했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연화산 정상은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해야 만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서산 304라는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다시 일어나 연화산 정상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곳 삼각점봉에 준.희님이 234.6미터의 연화산이라 적어 놔 약간은 헷깔리는데 지도에는 분면 조금 더 진행한 후 236.3봉의 연화산 정상이 별도로 표기가 되어 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바위 등로가 나타나고 바위지대를 지나니 넓은 공터에 갈림거리 비포장 임도와 이정표 그리고 벤취쉼터들이 보인다.

올라 온 방향은 금학리이고 우측으로 화천리이며 좌측으로는 등산로 입구 표시가 되어 있다.

연화산(236.3봉)은 충청남도 서산시의 지곡면, 팔봉면, 성연면 사이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234.6미터이다.
호산록에서 연화산은 군 북쪽 20리에 있는데 그 산은 토품이 비옥하여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고 산 아래에 거주하는 민간인들이 매년마다 불을 놓고 곡식을 심음으로 이익이 평전보다 갑절이나 높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이 내용을 통해서 지명의 역사가 조선 중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데 한자가 연화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 한자는 비옥한 토양에 화전농업으로 인한 결실의 풍성함을 강조하고 있는 내용과 관련성이 있는 듯하다.
조선지도, 청구도, 동여도에는 연화산으로 1872년지방지도에는 또 다른 한자인 연화산으로 각각 기재되어 있어 비슷한 상황을 느낄 수 있는데 여지도서에 의하면 문현면 연화리는 읍치에서 서쪽으로 27리 지점에 있으며 편호 53호, 남자 81명, 여자 48명이다라고 한자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연화산은 풍수지리의 형국론에서 말하는 연화부수형이라고 전해지며 이런 점에서 어떤 한자의 지명이 먼저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말하기 어렵지만 조선 시대에는 서로 다른 한자 지명이 동시에 사용되었으며 현재의 연화산은 풍수지리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해석된다.


연화산 정상을 넘어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팔봉산과 금강산 그리고 오늘 산행을 시작한 망일지맥 분기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등로에는 잡목이 제거된 멋진 소나무가 펼쳐져 있고 그 등로 우측으로는 올망졸망한 산줄기 넘어 가로림만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 저 멀리에는 얼마 전 걸었던 태안의 후망지맥 마루금도 가물거리기 시작한다.

잠시 더 그 멋진 서해 바다와 후망지맥 그리고 발 아래 펼쳐진 올망졸망한 산자락들을 살펴 본 후 연화산 정상부의 이정표로 뒤돌아 올라 온다.


다시 그 연화산 이정표를 지나 바위 등로를 넘어 삼각점 봉으로 나와 셀카 놀이를 하면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내려가며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금북정맥과 망일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며 내려가니 발 아래에 다시 현호색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현호색은 산록의 약간 습기가 있는 근처에서 자라며 키가 20센티미터 정도 자라고 땅 속에 지름 약 2센티미터 정도의 괴경이 있는데 괴경은 속이 황색이고 다소 윗부분에 포같은 비늘모양의 조각이 1개 달렸다.
인편 잎겨드랑이에서 가지가 갈라졌고 잎은 2에서 3개가 어긋나고 입자루가 길며 잎은 3개씩 1에서 2회 갈라진다.
끝열편은 피침형 또는 좁은 도란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표면은 녹색이며 뒷면은 분백색이다.
꽃은 4월에 피고 홍자색이며 다섯개에서 열개가 정상 총상화서에 달리고 포는 쐐기형이며 길이 1 에서 1.8센티미터로서 손바닥 같이 갈라졌다.
꽃받침은 2개이며 일찍 떨어지는데 꽃은 한 쪽이 잎술처럼 벌어지고 한 쪽은 통같은 며느리발톱으로 되어 밑으로 굽었다.
수술은 6개가 2개로 합쳤으며 열매는 삭과로서 긴 타원형이며 6월과 7월에 익는데 우리 나라에서 알려진 현호색 18종 중에서 갈퀴현호색은 꽃받침이 특별이 커서 마치 갈퀴처럼 꽃통을 싸고 있다.
섬현호색은 울릉도에서 자라며 꽃이 진 다음 화서가 밑을 향하여 자라는 것이 특색이고 점현호색은 잎에 점이 있는 것이 특이한데 이것은 벌레에 의해 생긴 특색으로 추정된다.
난쟁이현호색은 새로 알려진 종이며 식물체가 작은 것이 특색이나 탐라현호색은 꽃자루에 털이 밀생한 특색이 있어 가려내기 쉽다.
현호색을 중국에서는 연호색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앞으로 자세한 검토가 필요한 종류의 하나이다.


그렇게 오랫만에 봄꽃을 즐기며 천천히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금강산과 망일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힘들게 올라 온 연화산 갈림삼거리인 벤취쉼터 하나가 설치되어 있는 226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임도 양쪽으로는 여름철 우거졌다 말라죽은 잡풀들이 보이고 이제 앞으로 올라야 할 부드러운 능선이 펼쳐져 있다.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 앞으로는 여전히 지곡면의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다.

천천히 걸어가니 바람이 잦아든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허기가 지기 시작하고 잠시 그 안부에 앉아 준비한 떡과 과일로 허기를 달랜 후 출발을 한다.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마루금을 살펴보며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그곳은 제법 넓은 공터봉으로 이뤄져 있고 그 우측 경치 좋은 곳에 벤취쉼터 하나가 설치되어 있어 그 벤취와 함께 저 멀리 팔봉산과 금강산 그리고 망일지맥 마루금을 다시 한번 더 담아 본다.


잠시 사진 한장 남기고 그 무명봉을 출발하기 직전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방금 전 다녀 온 연화산과 연화산 갈림삼거리가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서산 팔봉산이 우뚝하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낙엽진 멋진 활엽수 등로가 열리고 편안하게 그 넓은 비포장 이도를 따라 진행을 하면 다시 갈림삼거리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는 좌측의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해야 한다.

 

그곳 갈림삼거리에서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는 이제 제법 가파른 내리막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아름다운 소나무 임도로 바뀌고 있다.

그 소나무 등로를 타고 한동안 편안하게 걸어가니 저 멀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살펴보니 등로 우측으로 화천리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표이다.

화천리는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있는 마을로서 대부분의 지대가 비교적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 외곽은 산지로 둘러 싸여 있고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감나뭇골, 건잿버, 벌뜸, 샘골 마을 등이 있는데 감나뭇골 마을은 감나무가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건잿벌 마을은 화동 동쪽 벌판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벌뜸 마을은 밤실 동쪽 벌판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불리워진 지명이며 샘골 마을은 샘이 있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그 화천리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완만하게 소나무 등로를 오르니 약간의 간벌된 소나무들이 널부러져 있는 198.4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내려가니 등로는 갑자기 또 다른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그 임도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등로 양쪽으로 커다란 소나무들이 도열하듯 서 있는 멋진 등로를 따른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신곡재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실제 신곡재는 이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내려간 장소이지만 이곳도 신곡재라 불리는 듯 하다.

신곡재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신곡재 안부에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우측으로는 화방산 지나 성연오거리 방향이 표기가 되어 있고 좌측으로는 연화리가 표기되어 있다.

능선인 진행 방향으로는 화천리 가는 방향이 표기가 되어 있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안부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그 벌목지대와 숲 경계에는 비포장 임도가 나 있어 다시 편안하게 걸어 본다.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그 비포장 임도 좌측 소나무 가지에 여영님의 응원판이 눈길을 잡는다.


여영님의 응원판을 지나 벌목지를 따라 오르니 소나무 등로가 아름답고 그 소나무 등로로 들어가기 전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온 망일지맥 마루금들이 멋지게 이어져 있다.

잠시 소나무 등로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가니 어느 지도에는 허봉산이라 불려지는 167.6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 정상에는 벤취쉼터 하나가 커다란 참나무 옆에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걸어가면 또 다른 140봉이 나타나는데 그곳 또한 허봉산이라 되어 있어 헷깔리기만 하다.


지도 상 허봉산인 167.6봉의 벤취쉼터에서 물 한모금 마신 후 다시 출발하니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 할 비산비야의 망일지맥 산줄기가 흐릿하게 펼쳐져 있고 그 마루금 우측 앞으로는 거대한 비닐 하우스인지 유리건물 같은 것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낙엽진 활엽수 등로를 내려가니 곧이어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안부같지 않은 안부를 지나 간벌된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그 정상 나뭇가지에는 준.희님이 달아 놓은 망일지맥 허봉산 140미터라는 정상 이정판이 붙어 있다.

허봉산에 관한 자료는 찾지 못하고 허봉산이 있는 장현리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니 장현리는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있는 마을로서 산아래 구릉지에 형성된 마을로 마을중간으로 어현천이 흐른다.
장이티, 독주골, 어현 등으로 불리다가 장이티와 어현의 한글자씩을 따서 장현리로 되었으며 특산물은 쌀, 고추, 생강, 마늘 등이 있다.

이곳 허봉산에서는 조금 더 깨끗한 진행 방향의 조망이 펼쳐져 있다.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끊어질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저 멀리 망일산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 우측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망일지맥이 잠시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고산지맥이 가물거리고 있다.

언제 오를지 모르겠지만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저 고산지맥에 올라 오늘 진행하고 있는 이 망일지맥도 살펴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시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노란 생강꽃이 반갑게 반겨주고 곧이어 멋진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 소나무 등로를 지나 걸어가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벌목지대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벌목지대를 따라 걸어가니 우측의 봉우리를 우회하여 좌측 사면 등로로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 벌목지대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장현리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나즈막한 안부같지 않은 안부를 지나 진행을 하니 화동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정상에서 2.4 Km 지나왔다는 거리 표시도 함께하고 있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지나 온 허봉산이란 봉우리 두개가 저 멀리 올려다 보인다.


다시 그 벌목지대를 지나니 잡목과 소나무가 섞여있는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는 묘지로 가는 길이고 등로는 좌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잡목이 보이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뚜렷한 등로는 좌측으로 보내고 이제부터는 잡목과 가시나무가 발목을 붙잡는 우측의 희미한 능선 방향으로 올라 본다.

잠시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 하나가 보이는 곳에 잡목과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 우측 옆으로는 114.1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인다.


우측 114.1봉을 다녀올까 생각도 했지만 특별한 것도 없고 잡목과 가시나무가 우거져 진행에 어려움이 있어 포기하고 좌측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르니 그곳에도 역시 지독한 잡목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어렵게 그 잡목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고 뚜렷한 등로를 만나 우측으로 진행이 되는데 잠시 후 29번 송전탑을 통과한다.

계속 이어지는 뚜렷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또 다른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 2개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벤취쉼터 하나가 설치되어 있는 등로가 보인다.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을 지나자마자 만나는 벤취쉼터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후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난다.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또 다른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좌측으로 장현1리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다.

지나온 방향으로는 정상에서 3.0 Km 지나왔고 진행 방향으로는 화천리가 그리고 좌측으로는 장현1리 하산 방향이 보인다.


장현1리 갈림삼거리를 지나 진행을 하니 금새 또 다른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 하나가 보이고 계속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다.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갑자기 저 멀리 산불감시초소가 올려다 보이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오르니 비어있는 초소이다.

지도를 보니 114.6봉으로서 2층 산불감시초소인데 올라가 봐도 잡목들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으니 다시 내려와 정상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계속 보였던 거대한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인터넷을 살펴보니 현대파텍스라는 공장 건물이다.

서산 일반산업단지내에 있는 공장 건물로서 산업단지 자체가 무척 넓다는 느낌이었다.

다시 이어지는 부드러운 소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안부 같지 않은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면 운동시설과 벤취쉼터 그리고 커다란 돌탑 하나가 서 있는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특별한 이름은 없는 장소이다.


그 돌탑봉을 지나 뚜렷하게 나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키가 큰 멋진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편안한 등로를 만나 걸어본다.

잠시 그렇게 즐겁게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눈 앞에 녹색 철망이 나타나고 그 앞으로는 절개지 넘어 드넓은 공사장이 내려다 보인다.

공사장 절개지를 우측에 두고 좌측 수로를 타고 조심하며 걸어가니 지곡면이 시원하게 조망되고 곧이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왕산이로의 번두고개에 도착을 한다.

번두고개는 10번 2차선 포장도로인 왕산이로가 지나고 도로 옆으로는 번두고개라는 버스정류장이 서 있으며 그 옆으로는 화방산 등산로 안내도가 보이는데 화방산은 보이지 않고 연화산 정상만 보여 연화산을 화방산이라고도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도로 우측 저 멀리에는 서산시 지곡면사무소와 마을들이 보인다.


10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왕산이길을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대나무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없어 잡목과 가시나무 그리고 대나무로 인해 진행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어렵게 이리저리 헤치며 조심해 걸어 진행을 하니 금새 시멘트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는 갈림 삼거리이다.

그곳에서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며 걸어 보는 시간이다.


잠시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밭 경작지가 보이고 그 밭 지나자마자 오래 전 폐사된 목장 건물이 흉물스럽게 보인다.

도로 좌측으로는 벗나무를 심어 놓은 조림지가 나타나는데 그 사이로 나 있는 도로를 따르니 시멘트 포장도로는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있다.

잠시 지나온 등로와 시멘트 포장도로를 뒤돌아 본 후 폐축사를 지나니 숲과 조림지 사이로 계속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 조림지를 지나자마자 잘 가꿔진 3기의 묘지를 지나 잠시 잡목이 우거진 능선을 지나니 커다란 밤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밤나무 과수원을 통과한다.


그 밤나무 과수원을 지나니 대나무밭과 고추밭 사이로 등로가 열려있고 조심하며 걸어가니 진행 방향으로 거대한 비닐하우스 밭이 펼쳐져 있다.

이곳은 산성리로서 산성리는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로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산동, 내동, 부성동이 합해지면서 산동에서 산자와 부성동에서 성자를 따서 산성리가 되었는데 조선지지자료에 부셩동, 산동, 내동 등의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지곡면 이살리였으나 1895년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부성동, 산동, 내동으로 나뉘었다가 1914년에 시행된 행정 구역 개편으로 분리되었던 마을이 합쳐지면서 일부는 중리로 편입되었고 나머지는 서산군 지곡면 산성리가 되었다.
1995년 서산군과 서산시의 통합에 따라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가 되었다.
부성산 아래에 구릉지와 계곡이 형성되어 있으며 주변에 농지가 조성되어 있다.
산성리는 마한 50소국 중 하나인 치리국국의 대궐 터, 백제, 신라, 고려 시기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조선 선조 때 부성군 태수를 지낸 최치원을 모시는 사당이 있던 도충사는 산성2리의 부성산 남사면으로 옮기면서 부성사로 바뀌었으며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갈마실마을에 고려 시대 고분 2기의 유적이 있으나 도굴된 상태이며 장방형 석재가 남아 있어 고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동쪽은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 서쪽은 중왕리, 남쪽은 장현리, 북쪽은 부성산 줄기를 경계로 도성리와 접한다.
그 비닐 하우스 밭을 지나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가니 갈림사거리를 통과한 후 민가 뒷쪽 시누대로 된 담을 지나 도로 우측의 마늘밭을 넘어 폐가 좌측 대나무 밭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래 전 폐가가 된 민가 좌측 마늘 밭을 통해 걸어가니 대나무 터널을 통과한 후 실제 비닐하우스 한동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능선으로 오르니 멋진 소나무 지대를 지나 다시 벌목장소가 나타나는데 그 경계선에 나무토막들을 쌓아 놓고 비닐로 덮어 놓은 51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역시나 산성리 마을이 그림처럼 다가 오기에 잠시 더 머물며 그 아름다운 농촌마을을 조망해 본다.

왜 갑자기 이 산객이 어릴적 살던 시골 고향집이 그리워지는지 모르겠다.


그 벌목지대와 멋진 소나무 숲 사이의 경계를 타고 한동안 등로 좌측의 산성리를 조망하며 걷다보니 등로가 이탈된 것도 모르게 진행하다 뒤돌아 와 다시 우측의 소나무 숲을 지나 잡목이 우거진 희미한 등로를 찾아 어렵게 진행을 해 본다.

그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밭 경작지와 몇채의 민가들 그리고 거대한 비날하우스와 드넓은 마늘밭이 펼쳐져 있다.

아름답고 멋진 풍경과 조망들을 구경한 후 천천히 그 잡목 능선을 내려가 밭을 통해 시멘트 포장도로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만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비닐하우스 우측 마늘 밭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 오르니 거대한 마늘밭이 펼쳐져 있고 그 마늘밭을 타고 오르니 번호가 보이지 않는 송전탑이 서 있다.

마늘 밭 지나 잘 정리된 넓은 비어있는 밭 가장자리를 따라 앞에 보이는 민가 한채 방향으로 걸어가니 강아지 한마리가 격하게 환영하고 그 민가 우측 옆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나즈막한 능선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금새 2차선 포장도로가 보이는 방향으로 내려가며 이어진다.


벌목지대에 나무들을 심어 놓은 조림지를 지나니 도성로라는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고 그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갈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삼거리를 지나자마자 샘골입구라는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이곳 역시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로서 생각보다 산성리가 넓음을 알 수 있다.

그 샘골입구 버스정류장을 지나니 다시 도로 우측으로 갈림삼거리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가운데에는 나무들이 조림된 지대도 보인다.

그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도성로라는 2차선 포장도로와 헤어져 진행을 한다.


시멘트 포장도로는 능선으로 접어들며 비포장 임도로 변하고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좌측으로 또 다른 갈림삼거리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우측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이어진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금새 이동통신탑이 서 있는 78.5봉에 도착을 하는데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는지 철문도 열려져 있고 출입을 막아 놓은 철망 주위에도 잡목들과 잡풀들이 자라면서 폐 통신탑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해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니 잡목과 소나무가 섞여 있는 희미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내려가니 잡목과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어렵게 그 등로를 헤치며 내려가니 대나무 지대를 좌측으로 우회하여 밭 경작지로 내려 선다.

그 밭을 지나 내려가니 방금 전 헤어졌던 2차선 포장도로인 도성로에 다시 도착을 한다.

그 도성로 좌측으로는 산성1리(하행선)라는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그 도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이제는 도로 우측으로 산성1리라는 또 다른 버스정류장이 서 있다.


그 산성1리 버스정류장을 지나 계속 도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산성리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갈림삼거리를 지나니 도로 좌측 전봇대 옆으로 74.6봉 오르막 절개지가 나타난다.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많은 무명묘지들이 보이고 그 묘지지대를 통과해 능선으로 오르자 마자 소나무 밑둥에 불난 흔적이 있는 잡목이 우거진 74.6 무명봉에 도착을 해 흔적 한장 남겨 본다.

특별한 것이 없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그 묘지지대로 내려오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묘지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밭 경작지가 나타나고 그 밭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가니 다시 방금 전 헤어졌던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도성로와 만난다.

그 도성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오르니 고갯마루 오르기 직전 좌측으로 부성사입구라는 버스정류장 표시와 함께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인다.

이제 도성로와 헤어져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부성사 방향으로 오르며 진행을 한다.

부성사는 신라 후기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최치원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최치원은 경무왕 8년(868) 12세의 어린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고 18세 때 급제하였으며 2년간 낙양을 유랑하며 시를 짓는데 몰두하였다.
중국에 머물면서 황소의 난 등을 직접 겪으며 귀국한 뒤 의욕을 가지고 이미 무너져가고 있던 신라 사회에 당에서 배운 경륜을 펴보려 하였으나 진골 중심의 귀족사회에서 6두품 출신이었던 최치원은 신분체계의 한계를 느껴 외직을 지원하였다.
대산군(지금의 전라북도 태인), 천령군(지금의 경상북도 함양), 부성군(지금의 충청남도 서산) 등지의 태수를 지냈으며 당시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려 시무 10조를 진성여왕에게 올리기도 했던 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의 전환기에 살았던 대표적 지식인이다.
조선선조 때 그의 영정을 모시고 그를 추모하는 유림들이 도충사란 이름으로 사당을 세웠다.
흥선대원군 때 훼손되었다가 순종 1년(1907)에 새단장 하였고 1913년 당시 서산군수가 태수로 지냈던 곳의 명칭을 따라 부성사라고 이름을 바꾸고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외삼문, 내삼문, 동재, 서재 등의 부속 건물이 있고 그가 직접 쓴 과선각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오현정은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누정으로 오현정(부성산오현정)은 고운 최치원과 연고가 깊은 부성산의 부성산성 내에 위치해 있다.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자리하는데 부성사 방향으로 도로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언덕을 넘어가기 전 좌측에 부성사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있고 이 표지판을 따라 가파른 소로로 들어가면 부성사로 내려가기 전 우측 능선에서 오현정을 만날 수 있다.
1600년(선조 33) 서산군수 김대덕이 서산과 관련 깊은 다섯 선현을 찬양하는 서령오현 영시를 지어 판각하였고 당시 서산군 아문인 관풍루에 달았는데 오랜 세월 풍마로 소실되어 후대에 최학순 등의 선비들이 건의하였다.
이에 1619년(광해군 11) 발간된 호산록의 기록문을 찾아 서산군수 서옥순이 1887년(고종 24) 재판하여 서산군 관아 동헌에 달았다.
1913년 최익순, 최민규, 참봉 최동연 등이 서산군수 권익채에게 건의하여 부성산성 내에 부성산 오현각을 건립하고 영시판을 옮겨 달았다.
서산군지 하권 50쪽 부성산조에서는 부성산 오현각에 대하여 1912년 산성리 사람 최동연이란 사람이 오현각을 부성산성에 세우고 오현 영시판을 게판하였으며 이것은 원래 김대덕이란 군수가 처음으로 오현 영시글 짓고 판을 만들어 게판하였고 뒤에 다시 서옥순 군수가 중수 게판하였었다가 뒤에 또 권익채 군수가 중수 게판한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성산 오현각은 1970년까지는 보존이 잘되었으나 후에는 돌보는 사람이 없어 퇴락하였다.
1993년 군 의원 김환욱의 건의를 받아 서산시에서 오현정으로 재건하였으며 내부에 걸려 있던 영시 판각은 부성사에서 오랫동안 보관 중이었는데 손상 부분을 보수하던 중 불의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후 영시 판각에 대한 원문을 찾아 1999년에 새로 판각하여 걸었다.
장대석 외벌대 기단을 널찍하게 쌓고 그 위에 다시 팔각으로 기단을 쌓아 시멘트 마감을 하였다.
팔각 장초석 위에 원기둥을 세웠으며 초익공 양식의 절병통을 올린 팔각지붕으로 익공과 부재에 단청을 그려 넣었다.
누각 정면에 전 국무총리 김종필의 친필로 오현정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오현정은 산을 등지고 남향하여 배치되어 있으며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 계단을 통해 진입할 수 있으며 주변에는 소나무 숲이 형성되어 있고 입구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옛터에 재건되었으나 본래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영시판은 4판각으로 되어 있는데 제1판각에는 서령오군영, 제2판각에는 오군영시판중게서, 제3판각에는 오군영시판중수서, 제4판각에는 오현정건축기가 기록되어 있다.
현재 주변으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어 안내판에 다가가기조차 어려운 실정으로 누각이 건립된 지 오래지 않아 기와가 탈락되고 상태가 양호하나 주변 정비가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오현정은 현재 건물에 대한 건축적 가치는 없으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의미가 있다 하겠으며 또한 건물 자체에 대한 역사적 가치보다는 편액에 대한 역사적 가치가 더 크다고 사료되고 향토사적으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그 시멘트 포장도로는 좌측 직진의 부성사 방향으로 이어지고 이곳에서 부성산 정상은 우측 능선의 잡목 방향으로 걸어 오른다.

여름철 우거졌을 잡목과 잡풀들이 말라죽은 오르막 등로를 헤치며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팔각정이 보이더니 금새 드넓은 잔디 공터가 나타나며 그 한쪽에는 삼각점이 또 다른 거목 위에는 부성산 118.3미터라는 준.희님의 정상 이정판이 걸려있다.

부성산(118.3봉)과 오현정은 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의 대치봉에서 뻗어나온 지맥이 지곡면 산성리에서 이룬 산으로 해발고도는 117.1미터이다.
산성리는 삼한시대에는 치리국국이라는 부족국가에 속하였고 신라시대에는 부성현으로 진성여왕 때 최치원이 부성태수로 부임하여 다스렸던 곳이다.
고려시대에 축성하였다고 전하는 석성의 고적이 남아 있는데 삼한시대에 부족국가가 있던 곳이라는 사실로 미루어 백제시대 이전에 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1912년 최치원, 정신보, 정인경, 유숙, 고경명 등 5명을 모신 오현각이 세워졌다.

주위 풍경과 조망이 좋아 잠시 배낭을 벗어 놓고 물 한모금 마신 후 조망을 즐겨 본다.


먼저 남동쪽으로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나즈막한 망일지맥이 비산비야를 이루는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 오고 그 뒤 저 멀리 거대한 공장 건물들이 모여있는 서산 일반산업단지와 지곡면 그리고 성연면의 마을들이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 뒤 저 멀리 금북정맥 상 성황산이라 생각되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이 산객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한동안 이곳 부성산 남쪽에서 지나온 망일지맥 마루금과 서산시 방향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을 즐긴 후 북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북쪽으로는 진행 방향으로 망일지맥이란 이름을 낳게한 망일산이 드높게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그 부성산 정상에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북쪽 소나무 옆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타고 힘들게 그 잡목을 헤치며 내려가 본다.

한여름철이라면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보이는 곳이지만 지금은 계절적인 요인으로 인해 말라 죽어 그나마 진행이 가능하다.

그렇게 어렵게 내려가니 좁은 계곡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와 만나 우측으로 걸어 진행하니 또 다시 2차선 포장도로가 자니난 도성로와 만난다.

그 도성로를 지나 콘크리트 옹벽 우측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어렵게 내려 온 부성산 등로가 한눈에 보인다.


이곳은 또한 부성산성으로 유명한 곳인데 부성산성은 다음과 같다.

부성산성은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표고 117.1미터의 부성산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 산성으로 부성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주변에 표고 80미터 이하의 나지막한 구릉들만 있어 산성에 오르면 주변 지역이 한눈에 들어오고 특히 서해가 펼쳐진 서쪽 전망이 좋아 바다를 통하여 침입하는 적을 감시하기 위하여 쌓은 성임을 알 수 있다.
동서 방향이 길쭉하고 남북 방향이 좁은 타원형의 산세를 따라 산성의 동쪽 부분은 정상부를 지나고 서쪽 부분은 산 중턱 가까이 내려와 능선을 가로질러 타원형을 이루며 둘레는 490미터이다.
성벽은 대부분 완전히 무너진 상태이나 잔존한 상태로 미루어 대체로 바깥쪽만 쌓는 편축식으로 축조한 것으로 보이는데 능선을 가로지르는 동벽과 서벽에는 외벽만 돌로 쌓고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채운 내탁식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처럼 구조가 다른 현상은 다른 지역의 백제 산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성문은 동문, 서문, 북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다.
성안에는 곳곳에 평탄면이 조성되어 있으며 약 3곳이 건물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안에서 유물이 많이 수습되었는데 대부분 백제시대의 토기조각과 기와조각들이었다.

넓은 공터지대를 지나 잡목과 가시나무가 혼재된 등로를 헤치며 조심해 걸어가니 다시 아카시아 나무가 앞을 가로 막는다.

그곳을 지나 잘 정리된 밭 경작지를 통과한 후 능선으로 오르니 소나무에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있는 78.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본다.


그 78.5 무명봉을 지나 어렵게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소나무 사이에 자라고 있는 카 작은 산초나무가 강한 가시를 내밀며 온몸에 생채기를 내 놓고 있다.

온 몸 이곳저곳에서 붉은 빗방울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따가움을 어렵게 참으며 진행을 하니 널부러진 간벌된 나뭇가지 지대를 지나 멋진 소나무 등로를 잠시 따른다.

그렇게 잠시 편안하게 걸어 내려가니 금새 무명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봐도 아무 이름이 없는 무명 안부이다.


그 안부를 지나 진행을 하니 이제 등로 좌측으로 희미하게 가로림만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비릿한 바닷내음을 음미하며 힘을 내 보는 시간이다.

잠시 밤나무 과수원을 타고 걸어가는데 오래 관리가 되지 않았는지 잡목과 기시나무가 웃자라 생각보다 진행에 어려움이 있는 등로인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아카시아 가시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등로를 통과하고 무명묘지 3기를 넘으니 충주지공 묘지가 보인다.

그 묘지를 지나 편안한 등로가 이어지고 송전탑을 지나 푸른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국가유공자이종학묘지도 지나는데 오전에 만났던 유공자 묘지보다는 잘 관리가 되고 있는 듯 보인다.

그 묘지를 지나니 몇기의 묘지들이 더 나타나고 곧이어 최근에 개설된 듯한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진행을 한다.

 

작은 자갈들이 깔려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한동안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도성리를 지나 가로림만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임도 좌측 아래로 커다란 축사 건물 몇동도 내려다 보이고 잠시 후 넓은 공터를 지나 임도 좌측으로 간벌지대가 보이는데 그 간벌지대 방향으로는 임도 옆으로 철망이 쳐져 있어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헤브론 수양관이란 곳에서 설치했는지 CCTV까지 설치되어 있다는 안내판까지 보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제는 그 비포장 임도를 모두 버리고 임도 건너편의 철조망이 쳐져 있는 능선 방향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한동안 올라가니 등로 좌측으로 간벌지대가 나타나고 그 간벌된 나뭇가지 사이로 헤브론 수양관의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능선 정상으로 오르니 그 철조망을 넘어 우측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데 문도 없어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 하기에 어렵게 그 철망을 넘어 능선으로 진입하며 진행을 한다.

지적 경계점을 지나 녹슨 철사줄을 넘어 내려가니 소나무 등로에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조심스럽게 냐려가 좌측 마을에서 올라오는 1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걸어 본다.


이곳 역시 1차선 포장도로 옆으로는 마늘 밭과 비닐하우스 밭들이 보이고 잠시 후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좌측 포장도로를 타고 한동안 걸어 본다.

도로 우측으로 보이는 민가의 굴뚝에서는 어릴적 시골에서 봤던 연기가 뿜어져 올라오고 강아지 한마리가 격하게 환영을 해 준다.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저 멀리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도 모든 포장도로를 버리고 도로 반대쪽의 잡목이 우거진 능선을 타고 잠시 53.8봉을 다녀 오기로 한다.


불당골길이란 도로표지판이 붙어 있는 포장도로를 건너 지도를 살펴보며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오르니 잡목의 저항과 동시에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썩어 널부러져 짧은 거리를 오르는데 제법 많은 시간이 걸린다.

특히나 오르면서 잘 구분도 되지 않는 키 작은 산초나무의 가시들이 온몸의 연약한 살갗을 파고들며 홀로 비명을 지르는 횟수도 늘어만 가는데 너무나 힘들게 잡목으로 우거진 53.8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너무나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 그리고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진 등로를 진행할 때면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해야하는지 고민도 해 보지만 어짜피 고난의 산길을 택했으니 가능하면 원 마루금에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일 것이다.

내려오는 길 역시 만만치 않지만 조심하며 천천히 한발 두발 걸어 내려가니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 위에 무사히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갑자기 우측 무릎 뒤 정맥에 문제가 생겼는지 힘줄이 부풀어 오르고 잠시 약간의 통증을 느끼지만 큰 어려움이 아니기에 천천히 걸어가며 무릎쪽 정맥을 주시하는데 잠시 후 고통이 사라지며 튀어 나왔던 정맥도 사라졌지만 무릎 옆 튀어 나왔던 정맥 부위에는 검정 핏자국이 깊게 새겨져 있다.


오래 전부터 오른쪽 다리의 정맥이 조금 튀어 나와 부정맥과 유사 증세가 있었지만 큰 불편함이나 어려움이 없어 그냥 지냈는데 드디어 약간의 문제가 생겼나 보다.

다음주에는 병원에 들려 제대로 된 검사를 받아야 되겠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몇걸은 진행하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 민가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몇발자국 걸은 후 이제는 우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잡모고가 대나무 등로로 걸어 올라간다.


강아지 몇마리가 민가쪽 철망 속에서 격한 반응으로 환영을 해주는 그 능선을 타고 걸어 오르니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한양조공 묘지2기를 지나 간벌된 나뭇가지가 등로 위에 널부러져 있는 소나무 등로를 찾아 또 다시 어렵게 걸어 진행을 한다.

잠시 후 밤나무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있는 3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조금 더 걸어가니 또 다른 검정 천막이 등로 옆에 길게 펼쳐져 있다.

그곳을 지나 걸어가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데 그 임도 좌측으로는 민가 한채와 강아지 몇마리가 철망안에 갇혀 울부짖으며 격하게 이 산객을 환영해 준다.


능선으로 오르자 마자 드넓은 벌목지대가 펼쳐지고 그 벌목지대 위를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대요리마을이 녀다 보이는데 대요리는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있는 마을로서 국사봉과 같은 낮은 산지가 분포하며 마을 남쪽으로는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고 동쪽으로 원천이 흐르며 지곡저수지가 축조되어 있다.
고수동, 요동, 대조리를 병합하여 대조와 요동의 이름을 따서 대요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한우물, 무수점, 반계마을 등이 있다.
한우물마을은 대요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큰 우물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무수점마을은 한우물 북쪽에 있는 마을로, 무쇠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반계마을은 마을 앞 내에 반석이 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벌목지대가 끝이나고 뚜렷한 등로가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그 등로 옆으로는 고압송유관 매설지역이란 위험 안내판이 서 있다.

나즈막한 언덕을 넘어 가니 파란 물통을 지나 1차선 포장도로와 만난다.

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대요한우물길이란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대나무 밭이 보이고 곧이어 대요1리 경로당 건물도 통과한다.

대요1리 경로당을 지나니 육각정이 보이고 곧이어 갈림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 갈리는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걸어 오르면 도로 우측으로 대요정미소를 지난다.

그곳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도로 좌측 앞 저 멀리 가랑비아 모텔 건물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가랑비아 모텔로 들어가는 갈림 삼거리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옆에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남아 있는 떡과 과일로 허기를 달랜 후 배낭을 정리해 본다.

배낭을 정리한 후 걸어 출발하니 금새 가랑비아 모텔 입간판이 서 있는 29번 4차로 포장도로를 만나 이재부터 좌측으로 그 도로를 타고 걸어 보는데 생각보다 차량들의 통행량이 많아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한동안 그 29번 4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건너 우측 저 멀리 이조도시락과 통인 그리고 제이유통 건물들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 직선으로 뻗어 있는 29번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끝자락 저 멀리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망뫼산과 망일산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는데 마음 같아서는 저 망일산 정상까지 가고 싶지만 날이 저물어 가는 시간이기에 오늘은 아쉬움을 접기로 한다.


그 직진 도로를 타고 다시 한동안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가로림만 바다가 내려다 보이고 그 풍경을 살피며 걸어가니 금새 대성교회 입간판이 서 있는 환성1리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한다.

도로 건너편에는 환성1리라는 커다란 이정석이 서 있고 금박골마을이란 입간판도 서 있다.

그 도로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 위에는 법룡사라는 커다란 이정석도 보인다.

이곳에서 다시 한번 배낭 정리하고 등산복을 갈아 입은 후 지나가는 차량 몇대를 히치 하이킹을 해 보지만 토요일이라 가족들과 함께하는 차량들이 많기에 차량 한번 얻어 타기가 어렵다.


버스정류장으로 들어가 차량을 알아보니 현재시간 17시 50여분이고 이곳을 지나 서산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저녁 6시에 있다는 시간표가 보인다.

그곳에서 잠시 더 기다렸다 저녁 6시 10여분에 도착한 251번 버스를 타고 서산버스터미널로 이동을 해 간식하나 사 먹고 저녁 7시 10분 발 남부터미널행 버스에 몸을 실고 무탈하게 망일지맥 제1구간 산행을 마무리한다.


새벽까지 마신 이슬이로 인해 걱정을 했지만 생각보다 잘 진행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귀경을 하고 하룻밤 잘 자고 내일 일요일은 남아 있는 한남오두지맥 제2구간을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 조만간 다시 이곳 서산으로 내려 와 남아 있는 제2구간도 무탈하게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