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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후망지맥(금북·완)

후망지맥 마지막 제2구간 누리재에서 국가해양관측소 전망대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6.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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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남도 태안군의 후망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6년 01월 10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오전에는 흐리고 약간의 눈발이 날렸지만 점심 이후엔 맑고 화창했던 날씨

산행온도 영하 02도에서 영상 06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누리재(관리1리, 603번 2차선 포장도로)-비포장 임도-눈이재 이정표(후망산정상 화살표)-91.6 무명봉-사목마을 일출봉 이정판-후망산(145.3봉)

                 전망대인 육각정과 삼각점-나무계단-사목마을 운동공원 이정판-사목재 이정표와 벤취쉼터1-60.5 무명봉-지독한 잡목지대-사목고개(603번

                 2차선 포장도로)-사목공원캠핑장 이정판-화이트하우스-내리1리 버스정류장-벌목지대-98.3 무명봉-지독한 잡목지대-무명묘지지대-소나무

                 등로-73 잡목봉-지독한 잡목지대-88.8 웅덩이봉-소나무 식재지대-꾸지나무길 고개(1차선 포장도로)-널부러진 간벌나무 등로-일출-비포장

                 임도-이동통신탑-넓은 공터-산제산(109.4봉, 삼각점)-소나무 등로-벤취쉼터1-벤취쉼터1-소나무 등로-비포장 임도-널부러진 간벌나무지대-

                 96.5 무명봉-넓은 공터-지독한 잡목지대-남산골재 간벌나무-시멘트 포장도로-지독한 벌목지대-97.9 무명봉-비포장 임도-후망산 통신탑-

                 후망산(102.1봉, 삼각점)-지독한 잡목지대-93.2 무명봉-84 무명 잡목봉-소나무 간벌지대-시멘트 포장도로(솔향기길 용난굴 이정판)-45.8

                 시멘트 말뚝봉-무명 안부-44 무명봉-솔향기길-돌앙뎅이 사거리 안부-전망데크-불난흔적-69.8 콘크리트 사각봉-큰봉쉼터(76.2봉)-비포장

                 사거리 임도 이정판(마을 백화염전 0.3 Km)-무명묘지지대-노루금 이정판-칼바위 이정판-근욱골해변 한국수산 안부 이정판(만대항 3.2 Km,

                 꾸지나무골 7.0 Km, 마을 버스길 0.3 Km)-소나무 등로-샘너미 사거리 안부-헤먹쟁이 사거리 안부-만대마을 하산 갈림길-당봉(전망 육각정,

                 삼각점, 솔향기길 안내판) 전망대-태안절경천샘백리 1코스 이정표(만대항)-화장실과 쉼터벤취들-비포장 임도 이정판(마을 0.8 Km, 당봉

                 전망대 0.2 Km)-삼거리 안부-붉은앙뗑이(수인등표 등대와 장안여 안내판)-60.2 잡목봉-비포장 임도 사거리 이정표(만대항 1.5 Km,

                 꾸지나무골 8.5 Km와 당봉전망대 0.4 Km)-비포장 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군부대 정문-헬기장-군부대 철조망-바닷가-실시간 국가해양관측소-

                 후망지맥 산행종료-군부대정문-태안절경천삼백길 1코스 이정표 안부-공터-만대 해수욕장-민가-태안절경솔향기길 이정목-비포장 임도-시멘트

                 포장도로-솔향기길 만대염전 이정판-내2리 (만대기지입구) 버스 정류장-포토 소나무-내2리 만대항-행종료

산행거리 : 약 13.33m (후망지맥 산행 약 11.13 Km와 만대항까지 접속구간 02.20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막히는 도로 정체를 피하기 위해 잡목과 가시나무를 헤치며 조금은 빠르게 진행 해 05시간 08분 (06시 32부터 11시 40분까지)

교통편 : 옆지기 애마를 이용해 조금은 편안하게 진행하였음

산행횟수와 총 산행거리 : 2016-05, 56.30 Km

후망지맥이란 ???

후망지맥은 금북정맥이 태안의 퇴비산(165)을 지나 북서쪽으로 약 4.5 Km 떨어진 태안군 원북면 장대리 삼곳말 마을 서쪽 구정봉(107) 어깨에서 분기해 태안반도를 따라 북진하며 구정본(107), 철마산(213), 방공산(101), 통봉산(107), 승주산(146), 둥근봉(127), 바구니산(156.8), 가재산(178), 국사봉(205.6), 노인봉(165), 후망산(144.2), 산제곡(산제산, 109.4), 후망산(102.1)을 지나 태안군 이원면 내리 만대에서 맥을 다하고 서해로 흘러 드는 도상거리 약 31.5 Km에 달하는 산줄기를 말하는데 후망지맥 동쪽은 가로림만이 펼쳐져 있고 그 가로림만 건너 동쪽으로는 망일지맥이 나란히 지나고 있다.

 

 

 

태안에서의 멋진 추억을 가슴에 남기며 서해바다에서 또 하나의 맥 잇기 산행을 마무리 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지독한 잡목과 간벌 후 널부러진 나뭇가지들로 인해 참으로 힘들게 진행을 하였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일찍 첫 구간을 잘 마무리하고 옆지기와 만대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만대항에서 가까운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 일찍 일어나 어제 준비한 라면과 햇반으로 허기를 달랜다.

식사 후 밖으로 나오니 바람은 차가운데 온도는 생각보다 낮지 않아 큰 걱정 없이 어제 내려온 누리재로 달려가니 새벽 6시 30여분을 지나고 있다.

옆지기를 먼저 보내고 산행 준비 후 어제 봐뒀던 산행 들머리를 찾아 헤드렌턴을 켜고 오르니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볼을 스치며 상쾌함을 더해주는 시간이다.

오늘 하루도 큰 사고없이 무탈하게 남아 있는 후망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일찍 서울 집으로 복귀해 잠시 쉴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둠속에 어렵게 첫번째 후망산을 지나 다시 만나는 603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화이트하우스 있는 곳에서 벌목 능선으로 오르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조금은 멋진 조망을 즐기며 걸어 보는 시간이다.

다시 후망산을 지나 내려가니 꾸지나무길이란 1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간벌된 나뭇가지를 피해 어렵게 산제산으로 오르다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소나무 사이로 드디어 가로림만 넘어 저 멀리 망일지맥 마루금 위로두꺼운 구름을 뚫고 아침 일출이 떠 오르고 그 환상적인 풍경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가슴속 깊이 추억을 만들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늘 만나는 일출이지만 이렇게 어둠속에 마루금을 걷다 외롭게 만나는 일출은 어딘가 모르게 일상과 다른 아름다움과 멋으로 추억이 되는 것은 이 새벽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옆지기의 도움으로 조금은 편안하게 어제 내려온 603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누리재 정상에 도착을 하니 기온은 그렇게 낮지 않지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볼을 스치며 상쾌함과 동시에 추위가 엄습해 오는 시간이다.

태안군 이원면 관리와 내리를 이어주는 누리재에 대한 자료를 찾지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이렇게 후망지맥 마지막 구간 산행을 위해 올라온 누리재에서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어 뿌듯한 시간이기도 하다.

고갯마루 정상에서 관리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넓은 비포장 임도가 보이고 그 임도를 타고 천천히 오르며 후망지맥 마지막 구간 산행을 시작해 본다.

 

잠시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는 생각보다 뚜렷하게 잘 정비되어 있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에 이정표가 서 있어 살펴보니 눈이재라는 글씨가 보이고 좌측 진행 방향으로 후망산 오르는 방향이 표기되어 있다.

분명 바로 아래 603번 2차선 포장도로에서는 누리재란 글씨를 봤는데 이곳에서는 눈이재란 이정표가 보이니 어느것이 맞는지 헷깔리기만 하는데 어짜피 도 단어 모두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아쉽기는 매마찬가지이다.

 

그 눈이재라는 이정표를 지나니 임도 양쪽으로는 빛바랜 억새들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흔들리고 그 풍경을 살피며 천천히 오르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첫번째 봉우리인 91.6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 무명 안부를 지나니 통나무가 가로막고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본다.

오늘까지 춥다는 예보가 있어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올랐는데 벌써 땀방울이 흐르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춥지는 않은 날씨인듯 보인다.

 

다시 바위가 보이는 무명봉을 넘고 잠시 더 걸어가니 사목마을 일출봉이란 안내판이 서 있어 주위를 살펴보지만 잡목과 소나무들로 인해 일출을 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장소처럼 보인다.

약간의 잡목과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육각정자가 올려다 보이고 그 정자 뒷쪽으로 돌아가니 서산 307이란 삼각점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후망산으로 해발고도는 145.3미터인데 아직도 어둠속에 걸어 만나는 정상이다 보니 조망을 즐길 수 없어 안타까운 시간이다.

후망산(145미터)은 충청남도 태안군의 근흥면 신진도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45미터로서 안흥 8경의 하나인 후봉낙조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872년지방지도에 표기되어 있다.
서산군지(1926)에 의하면 후망봉은 본면 신진도 동쪽 바다에서 솟아 나왔으며 속설에 전하기를 고려 때 명나라 사성이 후망땅을 왕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봉우리 서쪽에는 난행량 만호영 터가 있으며 그 지맥이 신진도 뒷산이 되고 그 북쪽 끝에는 능허대 유지가 있다.
기암절벽은 오르기 힘들며 풍경이 매우 아름다워 봄여름 사이에 시인 묵객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다라는 기록이 있어 이 내용을 통해서 이미 고려 시대에도 이 이름이 존재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정상부에 대청루를 짓고 오가는 중국 사신을 영접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후망산 정상에서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곧바로 출발하니 삼각점 지나자마자 사목마을 후망산전망대란 안내판이 서 있고 등로는 나무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잠시 그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 옆 우측에 벤취쉼터 하나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운동시설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잠시 후 이곳을 사목마을 운동공원이란 안내판을 보고 이곳이 공원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운동공원을 지나 넓은 소나무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사거리 안부가 나타나는데 좌측 옆으로 벤취쉼터 하나와 사목재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이곳이 바로 사목재로서 진행 방향을 나타내는 이정판도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땅바닥에 모세골이란 안내판 하나만 나뒹굴고 있다.

사목고개는 태안군 이원면 내리 사목마을 위에 있는 고개로서 옛부터 세가지 의미가 담긴 전설과 실화가 있어 이에 적합한 한자상의 표기는 사목, 까목 등 각기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태안군지에 의하면 태안군 이원면 내리1리와 관리2리에 1600년대에 입항한 순흥안씨가 현재 32가구가 살고 있다.

 

사목고개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에는 잡목과 억새가 조금씩 더 늘어가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생각보다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그렇게 첫번째 봉우리를 올라 잠시 한숨을 돌리고 다시 전진하니 등로에는 키 작은 소나무가 식재된 듯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그곳을 지나자마자 잡목이 우거지기 시작하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등로를 찾아 너무나 어렵게 걸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어렵게 60.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지나온 사목고개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

첫째로 사목은 한자와 우리말의 합성어로서 대자연의 형태를 상징함인데 이마을의 지형은 양쪽바다 서해와 가로림만 사이에 끼여있어 폭은 좁고 길어 태고적을 거슬러 연상해 볼때 100여미터에 불과한 장고목 같이 잘록지고 양쪽 바다가에는 모래가 쌓여 있다는 데서 붙여진 명칭이 전래된 것이라 하며 또한 지금은 오랜세월 해안이 퇴적되여 약 500미터 넓이의 농경지로 변형 되었으나 서해안에는 백사장이 형성되였는데 마을안의 흐르는 하천물이 이 백사장 한허리를 관통함으로서 자연이 모래 목이 되었으니 역시 사목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사목은 말의 방목장을 경영하던 관리소가 있던 곳이라 하여 역사적인 배경을 상징함인데 실제로 그럴사한 곳곳의 지명들이 입증하고 있다.
목장의 출입문이 있었다는 곳을 장문재 이곳 양옆으로 말의 탈주를 방비한 시설로서 양쪽 바다에 맏닿도록 산허리 700미터 거리를 깊이 파고 쌓아올린 구덩이가 원상에 가까울 정도로 역역히 남아 있으며 목장 감시초소가 있었다는 전망좋은 세곳에 후망재, 바람쟁이, 바람이재 목군들이 주둔 했다는 곳을 진둔재 활쏘던 터라 해서 진실부리와 관녁터 그리고 목장 총수가 기거한 곳이라 하여 두목목이 있으니 옛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실지로 부르고 있을뿐만 아니라 바로 이웃한 관리에 속하는 창말(마을)에 말벅이 곡초 1800속을 저장하는 창고(174번지) 4칸이 있었다는 서산군지, 대동여지승람 등의 문헌들이 뒷받침하고 있으니 명실상부 사목이라는 것이며
셋째로 사목은 144미터의 후망산을 등지고 있는 마을로 풍수설적으로 명당 자리라고 일러왔는데 400여년전 순흥안씨 낙향조 묘가 있는 그 자리가 바로 명당자리여서 후손이 번성하여 세칭 사목안씨라 할만큼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그 명당이란 긴뱀이 개구리를 물고있는 형국이라하는데 어쩌면 그 모양이 그렇게도 흡사한지 후망간 한줄기가 뱀처럼 구불구불 뻗어 내려와 개구리를 물고있는 양턱이며 뱀머리에는 조그마한 산 돌 6개가 드문드문 박혀있고 눈이 있어야할 바로 그 양쪽자리에는 벼가마니만한 산돌이 하나씩 박혀 있으니 이를 상징하여 사목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 새로운 뜻을 부여하는 사목이 근심스럽게 등장하는데 이는 예언적인 결과로서의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1989년 이곳 지방도로 확충포장공사로 장고목 같은 낮은 곳을 높다랗게 성토함으로서 윗마을과 아래마을의 농로소통이 단절되였던 것을 1991년 성토된 그곳을 굴처럼 파내여 지하도(굴다리)가 생겨 새로운 명물이 되었는데 이 지하도를 통하여 양쪽마을과 바다를 넘겨다 엿볼수 있는 눈과 같다하여 사목이란 뜻을 담긴 또하나의 이름을 붙여 볼만도 하다는 것이다.

 

지독한 잡목을 헤치고 어렵게 60.5봉을 넘으니 키 작은 잡목들은 여전히 발목을 붙잡고 놔주질 않는다.

그래도 한발 두발 어렵게 조심하며 내려가니 사항마을이 있는 603번 2차선 포장도로를 다시 만나 이제부터 그 603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한동안 걸어가게 된다.

지도를 보니 방금 전 지나온 사목고개는 사목재라 되어 있고 실제 사목고개는 603번 도로상에 표기가 되어 있어 헷깔리기만 한데 아무튼 옛날과 다르게 새로운 도로가 개설되면서 그 지명의 장소도 조금씩 변하는 듯 하다.

 

어렵게 그 603번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서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그 여명의 빛을 받아 헤드렌턴을 배낭에 넣고 천천히 걸어가 본다.

잠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사항마을을 지나 사목공원켐핑장과 사목마을로 갈 수 있는 길이 나타난다.

살레시오 수련소 피정센터 가는 화살표도 만나 사진 한장 남기고 계속 걸어가니 이제 등로 좌측 사목마을이 여명의 빛을 받아 전체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사목은 지금은 해안이 오랜 세월 퇴적되어 넓은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서해안의 넓은 백사장이었는데 마을 안을 흐르는 하천 물이 이 백사장을 관통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모래목이 되었다 하여 이름이 모래사자를 써서 사목이 되었다.

 

그렇게 도로 좌측으로 내리 사목마을을 바라보며 계속 걸어가니 이제 도로 우측으로 가로림만에 떠 있는 많은 섬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 뒤로는 희미하게 망일지맥 마루금이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지만 아직은 어둠이 있는 시간이라 제대로 된 조망은 어려운 시간이다.

그 가로림만 가기 직전에는 좁고 긴 다랑이 논들이 펼쳐져 있어 어릴적 뛰어 놀던 고향의 시골 풍경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도로 좌우측을 살펴보며 이제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이제 저 멀리 진행 방향으로 마지막 민가가 보이고 그 뒤로 올라야 할 98봉도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도로 우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가로림만과 서산의 망일지맥을 살펴보며 조금 더 걸어 오루니 도로 우측으로 화이트하우스 펜션을 지나 마지막 민가가 바로 지척으로 다가와 있다.

그곳에서 아침 일찍 출발한 군내버스를 만나 살펴보고 조금 더 올라 마지막 민가를 지나 만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자마자 603번 지방도로를 우측으로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마지막 민가 뒤에서 603번 2차선 포장도로와 헤어져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벌목 후 나무를 식재한 민둥지대가 나타나는데 벌목 후 쌓아 놓은 나무 더미들로 인해 생각보다 오르기 어려운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등로 좌측 뒤 저 멀리에는 서해바다 건너 태안화력발전소가 아름다운 불빛을 반짝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등로 우측으로는 가로리만 지나 망일지맥 마루금이 박무속에 아름답게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며 오르니 벌목지대 정상부 가까이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마루금의 후망산과 603번 도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제 등로 우측 앞으로는 대산석유화학단지의 불빛이 아름답고 그 좌측으로 망일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황금산이 박무속에서도 그 존재감을 확실이 각인시키고 있다.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 삼거리에서 마루금은 우측 직진이지만 좌측의 98봉을 지나칠 수 없어 잠시 다녀오기로 하는데 최근에 간벌을 한듯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게 잠시 더 좌측으로 걸어 오르니 아무 표식도 없는 98.3봉에 도착을 해 소나무 사이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나온다.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나와 이제는 좌측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는 벌목지대가 펼쳐져 있다.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벌목지대를 지나 아름다운 가로림만과 섬들 그리고 망일지맥까지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기에 많은 사진으로 남기다 보니 시간 가는줄 모르게 즐기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걸어 진행을 하니 안부가 나타나는데 그 안부로 내려가는 길에 벌목된 나무토막들이 쌓여있어 진행에 너무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 쌓여있는 나무더미를 지나 안부를 통과하니 다시 잡목과 잡풀이 우거져 있고 어렵게 오르니 잡목 무명봉에 도착을 하지만 아무 표식도 없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출발해 능선을 따라 걸어가면 무명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 위를 걸어 통과하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다.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 안부를 지나고 다시 오르니 잡목과 밤나무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73봉에 도착을 한다.

 

그 73봉을 지나니 잡목으로 등로 찾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힘들게 걸어 전진하니 등로에는 더욱 우거진 잡목이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정상 등로 좌우측으로 벗어나 잡목이 덜한 곳을 찾아 힘들게 걸어가니 웅덩이가 있는 88.8봉에 도착을 하고 이곳도 역시 잡목만 보이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잠시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고 다시 잡목과 소나무가 섞여 있는 등로를 따르니 벌목 후 소나무를 식재해 놓은 벌목지에 도착을 해 잠시 편안하게 걸어 본다.

 

잠시 벌목 후 키 작은 소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내리교회가 있는 마을과 그 우측으로 장구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장구도는 이원면(이북면) 내리의 앞바다에 있는 마치 장구 모양의 조그마한 섬을 일컫는 것이다.
이 장구도의 유래에 대하여 살펴보면 조선조의 세조때에 순절한 충의공 김문기의 후손 김흥관의 영조때 중추부사의 자리에서 국록을 받고 있었는데 그는 정의에 민감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관리였다.
 마침 영조가 승하하고 정조대왕이 등극한 이후 흥국영의 세도가 날로 팽창해지자 이에 반기를 들고 관직을 버린채 조용한 시골로 낙향한 것이 바로 이원면 내리였다.
이렇게 낙향한 그는 우선 서식처를 구하기 위해 후망산에 올라 사방을 두루 살펴보니 앞바다에 마치 장구 모양의 조그마한 예쁜 섬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매우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섬 모양이 마치 장구같이 생기어서 더욱 그랬다.
장구란 본래 평화롭고 즐거울 때 사용하는 악기이므로 이 섬에 들어가살게 되면 흥국영의 세력이 제아무리 크다하더라도 이곳까지는 미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일신상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확인하고 이 섬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후 이 내리에는 김흥관을 중심으로 그의 측근자들이 많이살게되어 후손들이 번창하였다.
지금도 이 곳에는 그의 후손들이 50여 가호가 살아가고 있는데 이 장구도에 관한 이설이 있으며 이 장구도는 본래 장군도였다는 것이다.
이 섬을 장군도라 부르게 된 연유는 섬의 모양이 마치 장군같이 생겼다하여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인데 장군이란 물·술·간장 등을 담아 옮길 때 쓰는 오지 또는 나무로 만든 그릇을 말한다.
요즘은 장군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그 생김새를 알 수 없지만 참고로 민속박물관에 가면 그 실물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장군도가 긴 세월 오랫동안 내려오면서 장군의 군자에서 니은이 탈락되어 편의상 주민들이 장구도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우측으로 벌목된 사면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많은 펜션을 홍보하는 안내판들과 도로 위에 꾸지나무길이란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 꾸지나무골고개이다.

꾸지나무골은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면 내리, 태안반도 북쪽 끝자락에 있는 해변으로 생소한 이름만큼 일반인에게 다소 낯선 곳으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작고 아담한 백사장과 푸른 소나무숲이 어우러져 있으며 백사장 양 끝에는 갯바위가 있어 바다낚시터로 많이 이용된다.
이곳의 소나무숲은 숲 그늘이 짙어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이며 아직 피서객의 발길이 많지 않은 곳이라 주변에 편의시설이 적다.

 

꾸지나무골 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 역시 간벌된 구간인데 간벌된지 오래되었는지 잡목들이 자라나 진행에 더욱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특히나 간벌된 나무가지들이 등로에 널부러져 있어 참으로 힘들게 오르는 시간이다.

이제 산행 속도도 나지 않고 한발 두발 옮기며 오르는 것 조차 힘이 드는 등로를 타고 어렵게 오르니 등로 우측 가로림만 위로 두꺼운 구름을 뚫고 일출이 시작되고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다시 잡목을 뚫고 전진하니 등로는 좌측 사면 등로를 따라 진행되다 비포장 임도로 이어진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오르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좌측으로는 이동통신탑이 서 있다.

 

그곳 갈림 삼거리에서 앞에 보이는 능선 방향으로 올랐으면 좋았을 것을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좌측으로 나즈막한 봉우리를 우회하듯 지나쳐 다시 뚜렷한 등로와 만나 우측으로 진행된다.

그 우회한 무명봉이 그리워 찾아 올라보니 바로 눈 앞에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그곳 갈림 삼거리에서 올라오는 등로가 보인다.

다시 뒤돌아 산제산 방향으로 걸어가니 안부를 지나 넓은 공터봉에 도착을 하는데 북동쪽으로는 민가들과 가로림만에 떠 있는 피도삼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그 공터에서 가로림만과 피도 그리고 피도 우측 아래로 장구도를 살펴보고 저 멀리 보여야 할 망일지맥과 황금산쪽을 살펴보니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제 그 공터를 지나 좌측으로 조금 걸어가니 그곳 한쪽에 삼각점이 보이고 그 삼각점 지난 우측 나뭇가지에 109.4미터의 산제산이란 정상안내판이 붙어 있다.

지도에는 산제곡이라 적혀있는 이곳 산제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산제산을 지나니 뚜렷한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어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해 본다.

아직까지는 생각보다 좋은 산행 등로이지만 워낙 지독한 간벌지대가 이어진다고 알고 있기에 조금은 걱정을 하면서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에 벤취쉼터 하나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서해바다 건너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여전히 하얀 연기가 피어 나고 있다.

다시 편안한 소나무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가니 무명 안부를 지나 또 다른 벤취쉼터 하나를 만나 잠시 숨을 골라 본다.

 

그 벤취쉼터를 지나 더욱 멋진 소나무들이 등로를 지키는 마루금을 걸어가니 지루할 정도로 잘 정비된 등로의 연속이다.

다시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냐려가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데 그 비포장 임도 옆에는 산제산 등산로 가는 화살표 이정판이 서 있다.

그 비포장 임도를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등로 우측으로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갑자기 임도를 따라 고급승용차 한대가 다가와 깜짝 놀라는 시간도 가져 본다.

그렇게 한동안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임도가 직진으로 가다 좌측으로 휘어지는 곳 전방에서 우측 능선 방향으로 오르고 천천히 오르니 등로에는 간벌된 소나무 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애를 먹는다.

너무나 힘들게 간벌된 나뭇가지를 피해 오르니 정상에도 역시 아무 표식도 없이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사진 한장 남기기도 힘든 96.5봉이다.

 

지독한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96.5봉을 출발하니 내리막 등로에도 여전히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또 다른 무명봉을 넘으니 지독한 간벌된 나무들이 보이고 잠시 후 잡목과 잡풀까지 가세해 진행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조금 더 걸어가니 공터가 나타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우측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이곳 역시 잡목이 우거져 앞으로 진행하기도 쉽지 않다.

한동안 힘들게 그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벌목된 나무들이 지독하게 널부러져 있는 남산골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그 안부를 통과한다.

 

간벌된 소나무들이 지독하게 널부러진 등로를 헤치며 어렵게 걸어가니 가니 금새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가는데 아마도 산판도로로 애용되고 있는 도로처럼 보이는 시멘트 도로이다.

도로 좌측으로 수산종묘양식장으로 이어지는 도로인데 목섬고개와 황새바위로 갈 수 있는 603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날 수 있는 도로이다.

그 시멘트 도로를 건너 짧은 절개지를 타고 전봇대 옆으로 오르니 이곳 오르막 등로에도 여전히 간벌된 소나무들이 널부러져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너무나 힘들게 그 간벌된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오르니 이제는 잡목 등로가 이어지며 이 산객의 온 몸에 깊은 생채기를 만들고 있다.

간벌된 소나무들이 널부러져 있는 97.9 무명봉을 지나 전진하니 잠시 뚜렷한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 편안하게 걸어가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를 만나 그 뒤로 솟아 있는 무선이동통신탑을 만난다.

이제 그 무인이동통신탑을 보호하기 위한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우측 능선을 타고 오르니 큰 웅덩이가 나타나고 그 옆으로 102.1미터의 후망산 정상이 나타난다.

 

후망산 정상에는 커다란 웅덩이 하나가 보이는데 무슨 용도였는지 알 수가 없고 그 웅덩이 우측에 삼각점이 보인다.

다가가 보니 서산 11번의 삼각점으로서 그 삼각점 뒷쪽으로는 해발고도 102.1미터의 후망산이란 정상 이정판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 배낭 내려 오늘 처음으로 셀카 놀이를 하면서 어렵게 사진 한장으로 고운 추억을 남겨 본다.

기온은 해가 뜬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추워지는 느낌이기에 방풍의를 입고 출발을 한 다.

 

해발고도는 100여미터로 매우 낮지만 주위에 높은 산이 없으니 조망하기 좋은 봉우리로서 후망산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시 그 후망산을 지나 출발하니 지독한 잡목 등로가 이어지고 어렵게 무명봉을 넘어 전진하니 간벌 후 쌓아 놓은 소나무 더미가 또한 발목을 잡고 있다.

그래도 이리저리 피하며 전진하니 다시 잡목지대를 만나 통과하고 벌목지대를 만나는데 벌목된지 오래되었는지 그 벌목된 곳에도 잡목들이 자라나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참으로 어렵게 진행을 하니 간벌된 나뭇가지와 나무토막들이 널부러진 93.2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진행을 하니 다시 지독한 잡목지대가 이어지고 지독한 간벌된 나무들이 널부러진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84봉 정상에 도착을 하지만 이곳 정상 역시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지독한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다.

최근에 간벌된 듯한 나뭇가지들이 등로를 가득 메우는 마루금을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를 지나 도로 좌측으로 솔향기길(용난굴)가는 화살표시가 되어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이 용난골(용낭굴)이 있는 곳은 이원면 내리 2구의 속칭 만대라고 하는 중막굴에 있으며 이 중막굴에는 꾀깔(고깔의 와전)봉이 있고 이 꾀깔봉 앞에는 여섬이 덩그렇게 보이는데 바닷물이 빠져 나가면 육지와 연결되어 사람들이 자유로히 드나들 수 있게 되어있다.
용낭굴이란 말은 본래 용이 나온 굴에서 온 말로서 이 말이 줄어서 용난굴로 되었는데 이것이 다시 수 10년 내려오면서 발음의 편의상 용낭굴로 굳어져서 오늘에 와전되어 내려오는 것이다.
특히 이 용에 관한 전설이라든가 또한 용자가 들어가는 지명은 전국 각지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이곳 태안군도 예외가 아니어서 군내 각 지역에는 용에 대한 전설과 지명이 말이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용이 살고 있었다든가 혹은 용이 굴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 갔다든가 하는 등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동굴에 대해서만 우선 몇 군데 살펴보기로 한다.
이 중막굴에 있는 용낭굴은 산줄기가 벋어내리다 끊긴 해변가에 있는데 바닷물이 들어 왔을 때는 굴속까지 물이 들어가고 바닷물이 빠져 나가면 사람들이 굴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는 굴이다.
이 굴의 입구의 높이는 약 2미터 50센티이고 밑바닥의 너비가 약 1미터 60센티로 되어 있는 3각형이었다.
또한 이 용낭굴의 특징은 깊숙히 들어가면 양쪽으로 뚫려있다고 하는데 역시 모래로 막혀 있어 확인할 수가 없으며 따라서 용이 앉아 있었다는 자리의 흔적과 용이 먹던 샘까지 있었다는데 모두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동네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용이 이 굴에서 도를 닦고 무사히 승천하였는데 승천할 때 굴속에서 나와 산을 타고 올라갔기 때문에 지금도 그 흔적이 하얗게 남아 있다는 흥미있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 그럴 듯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입구의 바깥쪽 윗 부분이 암석의 벼랑으로 되어 있는데 그 길이가5.6미터에 달하고 있었으며 또한 입구 천정에서부터 바깥의 암석 중심부에 폭30센티 가량의 차돌이 뚜렷하게 산꼭대기를 향해 길게 박혀 있었다. 필자는 이 실상을 보고 과연 옛날에는 당연히 용이 올라간 흔적이 남아 있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실증물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6. 25동란 때만 하여도 굴속이 묻혀 있지 않아 동네 사람들이 피난처로 이용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5.6미터 밖에 남아있지 않다.

 

솔향기길이 눈에 들어 와 찾아보니 태안반도 바닷가를 이어주는 산책로를 개설하여 붙여진 이름이 솔향기길이었다.

솔향기길은 태안반도의 세월과 절경을 간직한 채 유유히 이어지는데 바닷가 비탈 위로 연결된 태안반도의 끝 길을 걸으며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체험은 색다르다.
솔향기길의 태동은 2007년 기름유출사고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기름제거작업을 위해 이용하던 방제로와 군부대 순찰로, 임도, 오솔길들이 서로 연결돼 걷기 좋은 길이 만들어졌다.
천혜의 해안경관을 감상하고 솔향과 바다내음과 파도소리를 들으며 탐방하는 길은 북적이지 않아 더욱 정감이 가고 길 어느 곳에 멈추고 생각에 빠지면 혼자만의 정적이 동행한다.
만대항을 기점으로 태안반도의 끝자락에는 상념을 부추기는 조연들이 길목마다 모습을 드러내는데 삼형제바위, 새막금쉼터, 당봉전망대 등은 만대마을을 에워싸고 절경을 만들어 내고 특히 삼형제 바위는 일출을 맞기에 좋으며 해넘이는 새막금쉼터 인근이 최적의 포인트다.
만대마을에서 하룻밤을 청한다면 당봉 전망대에 올라 반도의 동서쪽 바다에서 펼쳐지는 태양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으며 만대마을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해변길은 바다와 어우러진 솔숲의 멋진 실루엣을 만들어낸다.
매년 1월 1일이면 당봉전망대에서는 새해맞이 행사도 열린다.

언젠가는 여유롭게 다시 태안으로 들어 와 이 솔향기길을 걸으며 더 많은 사색의 시간을 가져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좌측으로 솔향기길의 용난굴도 들려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오늘은 후망지맥 산행을 위해 내려 왔기에 그 지맥 마루금에 충실하기로 하고 아쉬운 마음은 다음에 다시 내려 와 여유를 가지고 솔향기길을 둘러 보기로 한다.

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오르자마자 지독한 잡목이 앞을 가로막고 참으로 어렵게 그 잡목을 헤치며 오르니 빛바랜 억새가 자랐다 말라가는 등로를 따른다.

잠시 멋진 억새 능선을 타고 오르니 갑자기 굵은 전깃줄이 보이고 그 옆으로 콘크리트 말뚝도 보이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45.8 무명봉이다.

 

이제 그 콘크리트 말뚝과 굵은 검정 전깃줄을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빛바랜 억새가 등로를 차지하고 있는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게 된다.

그렇게 잠시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간벌된 소나무들이 널부러져 있는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는데 보기와는 달리 진행에는 큰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소나무 사이로 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로 내려가니 등로는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제법 잘 정비된 비포장 임도같은 안부로 이동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우측 잡목이 우거진 능선을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다시 나타나는 콘크리트 말뚝과 굵은 전깃줄을 따라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그 위로는 멋진 키 큰 소나무들이 그늘을 만들며 멋진 등로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행하는 등로에는 우거진 잡목이 길을 막아 속도가 전혀 나질 않기 때문에 이리저리 간벌된 나무를 피해 어렵게 올라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어렵게 오르니 큰 소나무 옆에 간벌된 나무들을 쌓아 놓은 나무 더미가 보이고 지도를 살펴보니 44봉이다.

높지도 않고 큰 고도 차이도 없기에 조금은 빨리 끝날 것 같던 후망지맥 마지막 제2구간이 이렇게 간벌된 소나무 가지들로 인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

 

그 간벌된 소나무 더미가 있는 44봉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철조망이 보이고 그 넘어로는 반질거리는 뚜렷한 등로가 보인다.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는 그 반질거리는 등로와 합류되고 그 등로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 가니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고속도로 수준이다.

그렇게 조금 더 편안하게 걸어가니 다시 등로 우측으로 콘크리트 말뚝과 굵은 전깃줄이 보이고 그곳에는 수많은 선답자들의 띠지가 펄럭거려 가 보니 대부분이 후망지맥 보다는 태안절경천삼백리길 즉 솔향기길을 걸었던 선답자들의 띠지처럼 보인다.

 

그 많은 띠지들이 걸려있는 곳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갈림 사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내려가 보니 솔향기길 화장실 위치도와 현위치 돌앙뎅이라는 안내판이 나무에 걸려있다.

이름도 예쁜 돌앙뎅이를 찾아보니 앙뎅이는 절벽의 태안 사투리로서 돌앙뎅이는 결국 돌로 이뤄진 절벽이란 뜻이다.

그곳에서 등로 좌측 서해바다를 살펴보지만 아무리 찾아 봐도 돌 절벽은 볼 수가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출발해 좌측 바닷가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올라 본다.

 

돌앙뎅이 갈림 사거리를 지나 좌측 임도를 따라 오르니 저 멀리 나무데크 전망대가 보이고 잠시 그곳으로 올라 등로 좌측의 해안가를 살펴보니 왜 방금전에 돌앙뎅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바위 절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우측으로는 여섬이 내려다 보이는데 이 여섬은 이원방조제 간척지 안에 든 섬들은 모두 육지가 되었는데 유일하게 남은 섬으로 높이는 채 20여미터 밖에 안되는 작은 섬이다.

그 여섬 주변에서는 몇명의 여행객들이 조개를 잡는지 아니면 굴을 따는지 허리를 숙이고 바닥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다.

 

그 돌앙뎅이를 지나 보이는 나무데크 전망대에서 여섬과 돌절벽을 조망하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뚜렷한 임도를 타고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불난 흔적이 보여 안타까운 시간도 보낸다.

다시 뚜렷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저 멀리 안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안부를 통과한 후 오르니 이제부터는 다시 지독한 잡목과 잡풀지대가 이어지고 있다.

 

사거리 안부를 지나 이제 다시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오르니 가끔 가시나무도 섞여 있어 온 몸을 생채기 내기 시작한다.

그 잡목 위로는 멋진 소나무 등로가 이어져 있어 보기는 좋지만 그 잡목을 헤치고 오르는 시간은 참으로 고통스럽기만 하다.

그 지독한 잡목지대를 뚫고 오르니 다시 콘크리트 말뚝과 굵은 전깃줄이 보이고 잠시 후 거대한 송전탑을 세웠던 한쪽의 사각 콘크리트 말뚝 같은 것이 보이는 69.8봉에 도착을 해 한숨을 크게 내쉬어 본다.

참으로 힘들게 진행하는 후망지맥 산행이 되고 있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멋진 송나무 등로가 이어지는데 그 아래 등로에는 간벌 후 널부러진 소나무 가지들과 잡목들로 인해 참으로 힘든 산행의 연속이다.

그곳을 지나 힘들게 걸어가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철조망과 뚜렷한 비포장 임도가 보이는데 살펴보니 솔향기길이다.

그 솔향기길로 나와 잠시 걸어가니 후망지맥 마루금은 다시 그 뚜렷한 솔향기길과 헤어져 소나무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 역시 잡목과 잡풀 그리고 간벌된 나무들이 널부러져 있어 좌측 솔향기길을 타고 진행하고픈 유혹에 빠지는 시간이지만 그럴 수 없어 잡목지대를 고집한다.

어렵게 오르니 더욱 우거진 널부러진 간벌된 나무들로 정상적인 산행이 어려울 정도로 느린 속도로 전진하니 소나무에 큰봉쉼터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고 그 아래에는 작은 웅덩이가 보인다.

 

큰봉쉼터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잡목과 잡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멋진 소나무가 인상적이고 잠시 후 뚜렷한 비포장 임도로 내려서서 편안하게 걸어 본다.

완만하게 내려가니 갈림 사거리가 보이고 그곳으로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마을(백화염전) 0.3 Km란 이정판이 나무에 붙어 있다.

백화염전 즉 염전은 바닷물을 모아서 막아 놓고 햇빛과 바람 등 자연의 힘으로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들어 내는 시설로서 우리나라의 염전은 저수지, 누테, 난치, 결정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수지에서 바닷물을 받아 누테와 난치에서 증발시킨다.
누테와 난치는 증발지(바닷물을 잡아 두고 졸이는 못)로 6단으로 만들어져 있어 1단씩 올라갈 때마다 조금씩 짜지는데 일반적으로 천일염은 비가 오는 횟수와 비의 양이 적고 대기가 건조하며 한 해의 평균 기온이 25℃ 내외를 유지하며 증발량이 3,000mm 이상이면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서해안 특히 강화만 지역의 군자, 남동, 소래에 넓은 염전이 있으며 태안에도 몇군데 염전이 있다.

만대항에서 민박집으로 오고가며 봤던 백화염전과 이화염전을 만날 수 있는 갈림 사거리였던 것이다.

 

잠시 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다 다시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간벌된 나무들이 보이고 우거지진 않았지만 제법 성가시게 구는 잡목과 잡풀을 지나 완만하게 올라 본다.

그렇게 무명봉을 지나 무명 묘지를 넘으니 다시 뚜렷한 솔향기길을 만나 편안하게 걸어 본다.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 옆 나무에 노루금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고 그 옆으로 칼바위 안내판이 붙어 있다.

 

그 칼바위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등로 좌측으로 서해바다를 살펴보니 바위들이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바닷물 속에 붉은 등대가 아름답지만 외롭게 서 있는다.

그 등대 우측 옆으로 바위섬도 보이고 그 바위섬 옆으로는 거대한 배가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는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이제 등로 좌측 앞으로 드넓은 서해해변이 드러나 있고 그 끝자락에 오늘 산행을 마무리해야 할 만대해변이 저 멀리 이어져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멋진 해안과 만대 끝자락을 살펴본 후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한국수산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작은 해수욕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한국수산이 보이는 안부로 내려가니 이곳이 근욱골해변으로 우측 진행 방향으로 만대항까지가 3.2 Km 그리고 지나온 방향으로 꾸지나무골까지는 7.0 Km라는 방향과 거리표시가 되어 있다.

우측 한국수산 방향으로는 마을 버스길까지 300미터 거리라는 안내판도 눈에 들어 온다.

 

근욱골해변 안부를 지나 다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오르니 33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봉우리같지 않은 그 봉우리를 넘어 능선을 따라 걸어가니 두어번 나즈막하게 오르락 내리락 한 후 다시 갈림 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샘너미라는 이정판이 나무에 붙어 있고 또 다른 이정판에는 샘너머라는 글자가 보인다.

아마도 솔향기길을 걷기 위해서는 이곳 지명들에 대한 자료를 찾아 들고 걷게되면 조금 더 가슴속에 오래토록 남겨지지 않을까 생각되는 곳이다.

 

등로 우측으로는 바다마을 이야기 펜션 안내판이 붙어 있는 안부 사거리인 샘너머를 지나 오르니 우측 우회등로를 타고 오르게 되고 그 정상부에서 다시 솔향기길과 만나 걸어가게 된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 앞으로 저 멀리 붉은 등대가 보이고 후망지맥 마지막 날머리 근처인 만대의 끝자락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 해변에 깔려있는 갯바위를 살펴보니 몇명의 여행객들인지 아니면 주민인지 모를 사람들이 수산물을 채취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만대마을이 보이고 몇채의 민가들이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도 내려다 보인다.

이곳은 이원반도의 끝자락으로서 이원반도는 가로림만을 사이에 두고 서산 벌천포와 마주한 곳이 태안의 만대포구이며 태안읍에서 603번 지방도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이원반도가 시작되는데 그 최북단에 만대포구가 자리잡고 있다.
태안읍에서부터 31㎞ 정도 떨어져 있는 일명 태안의 땅끝마을이고 포구에 기항하는 고깃배는 40여 척 정도이며 꾸지나무골이나 사목해변 등 이원반도내의 해수욕장을 찾는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횟감이며 매운탕거리를 사간다.
만대포구로 들어가기 직전 왼편 산등성이로 넘어가는 길이 하나 있으며 이 길을 따라가면 작은구매, 큰구매라고 하는 아늑한 모래 해변을 만날 수 있는데 작은구매에서 바로 앞바다에 떠 있는 삼형제바위까지는 썰물 때는 걸어갈 수 있으며 큰구매는 물이 빠졌을 때 만대포구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원북면 대기리를 지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학암포해수욕장이다.
학암포로 가는 길을 버리고 삼거리를 지나서 이원면 사창리, 관리, 내리 마을을 지나는 동안 오른쪽으로 가로림만의 잔잔한 물결이 언뜻언뜻 눈에 들어온다.
이따금씩 길 옆으로는 염전지대와 대하양식장 등이 펼쳐지기도 하며 만대포구에서 가로림만 바다건너 동쪽은 서산 벌천포와 대산산업단지로서 독곶리의 황금산(130미터)이 정면으로 바라보인다.
이원반도 내에서 가족단위로 찾아가기 좋은 해수욕장은 내리1구의 사목해수욕장인데 모래밭의 길이가 1㎞에 달하며 폭은 100m 정도이다.
대로변에서 700m 가량 서쪽 바다로 들어가면 해변이 나타나며 솔숲동산이 해변 가운데 있고 그 양편으로 백사장이 뻗어 있어 화려하진 않아도 인파에 시달리지 않고 조용히 해변 정경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어울리는 곳이다.
사목이라는 이름은 이곳 지형이 모래가 많은 곳이어서 뭍의 폭이 좁아 한자어로는 사항이라고 지어졌는데 주민들이 사목이라고 부르고 있다.
10년전 군부대가 철수하면서 해안이 일반에게 개방되었는데 만리포 같은 경우 해변에 그늘이 없지만 이곳은 솔숲이 워낙 좋아 텐트를 안 쳐도 시원하다고 한 민박집 주인은 자랑한다.
사목해수욕장 입구에서 북쪽으로 1.3㎞를 가면 나타나는 꾸지나무골해수욕장은 꾸지나무가 많았던 탓에 이같은 지명이 생겨났다.
꾸지나무는 큰 가시가 달린 뽕나무과의 수종으로 가을에 오디처럼 빨간색 열매가 달리는데 옛날 불을 때서 소금을 구워만들 적에 죄다 땔감으로 써버려 지금에 와서는 꾸지나무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잘 생긴 소나무가 방풍림처럼 빼곡하게 늘어선 백사장은 신비감마저 자아내는데 해변의 길이는 1㎞가 넘으며 폭도 50m에 달한다. 모래사장 가운데 바위지대가 있어 해변 풍경이 심심하지 않다.

 

그 만대마을을 조망한 후 걸어가니 갈림 사거리 안부를 통과하고 그 옆을 살펴보니 해먹쟁이라는 지명이 나무에 붙어 있어 주위를 살펴보니 있어야 할 해먹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기온이 내려가는 추운 겨울에는 사용하지 않고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누워 있을 해먹을 설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잠시 그 안부를 지나 뒤돌아 보니 등로 옆으로 벤취쉼터2개가 보이고 다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출입금지 마을길 경고판을 지나 등로 좌측 해변가로 조망처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지나온 후망지맥 마루금 우측을 살펴보니 멋진 갯바위가 깔려있는 서해바다가 길게 펼쳐져 있다.

 

그 전망대에서 지나온 후망지맥과 그 마루금 우측의 드넓은 서해해변을 조망한 후 다시 앞으로 걸어 오르니 금새 육각정과 안내판들 그리고 공터 위에 박혀있는 삼각점이 있는 당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솔향기길 시문이 보이고 만대 갯바람 솔향기길에 대한 안내판 그리고 서산 401이란 삼각점이 흩어져 있다.

삼면의 바다가 보이고 일출뿐만 아니라 일몰까지 볼 수 있는 당봉전망대가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사진 몇장 남기고 넓은 공터에 있는 삼각점 부근으로 가 그곳 조망을 살펴 본다.

 

당봉에서 등로 우측의 풍경을 살펴보니 물이 빠진 가로림만 넘어 자용산과 벌말해수욕장 그리고 좌측 저 멀리 황금산이 보이는 서산의 망일지맥 마루금이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다.

조만간 걸어야 할 마루금이기에 조금 더 상세히 그 속살을 살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그 당봉정상에서 조망을 즐기고 남아 있는 음료수를 마신 후 다시 전망대를 지나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당봉 정상을 지나니 출발하려니 등로 우측 옆으로 대산석유화학단지와 황금산이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와 사진에 담고 출발을 한다.

잠시 편안한 등로를 타고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니 다시 등로 좌측 뒤로 지나온 후망지맥과 서해해변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잠시 후 태안절경천삼백길제1코스라는 이정표에 만대항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를 만난다.

등로 우측으로는 화장실과 몇개의 식탁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당봉전망대와 마을 이정표가 보이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드넓은 비포장 임도가 이어지고 잠시 후 넓은 공터를 만나는데 그곳 공터에는 두대의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다.

그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은 벌목된 나무들을 잘 정리해 나무더미로 만들어 놔 진행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렇게 오르니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뚜렷한 솔향기길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옆에 붉은앙뎅이라는 안내판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수인등표 등대와 장안여라는 설명판까지 서 있다.

잠시 그 설명판을 읽어 본 후 다시 출발을 해 본다.

 

그 설명판이 있는 곳에서 등로 좌측 저 멀리 살펴보니 수인등표 등대와 장안여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장안여는 육지에서 200여미터 떨어져 있는 바위섬으로 만조 때엔 물에 잠기는데 이 때문에 여객선이 침몰해 1998년 등대를 설치했으며 이 등대는 이원면 유일의 등대이다.

그 등대 좌우측으로는 거대한 배가 천천히 대산석유화학단지로 이동하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다시 뚜렷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잡목이 있는 무명봉이 보여 올라가 보니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봉으로 60.2미터 봉우리이다.

그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간벌된 통나무 토막들이 등로 양쪽으로 쌓여있고 잠시 더 내려가니 갈림 사거리가 나오는데 직진 방향으로는 넓은 공터도 보인다.

병력승차지점이라는 안내판도 보이고 임도 화살표도 붙어 있으며 솔향기길 복불복축제 진행방향 표시도 보인다.

이곳에도 역시 이정표가 서 있는데 공터 방향으로 진행하면 만대항까지 1.5 Km 거리라는 방향과 거리표시가 적혀있다.

이곳에서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내려가 본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군부대 정문이 나타나고 그 군부대 주변으로는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그 군부대 정문에서 좌측 언덕으로 오르니 넓은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어렵게 등로를 찾아 우측 군부대 철조망 옆 공간을 이용해 조금 더 걸어 본다.

조금 더 걸어가니 군부대 철조망과 절벽으로 인해 더 이상 직진으로 진행이 불가능해 좌측 서해바다 방향의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해변가로 내려가 본다.

 

서해바다로 내려가 갯바위 위에 도착을 하니 서해바다가 바로 눈앞에서 넘실거리고 갯바위 지나 우측 저 멀리 망일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황금산이 바다 건너 지척으로 다가와 있다.

옛날 부모님이 시골에 살아 계실 때 명절을 이용해 내려가다 가족들과 잠시 들려 좋은 추억을 남겼던 황금산이기에 그날의 추억을 꺼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조만간 다시 저곳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이제 군부대를 우측에 두고 좌측에 서해바다를 둔 그 사이의 갯바위를 타고 걸어가니 갯바위를 지나 저 멀리 마지막 바위봉이 보이고 그 위에는 알 수 없는 안테나인지 표식인지 모를 철봉이 드높게 올려다 보인다.

그 안테나가 있는 바위 밑까지 이동해 가니 우측으로 군부대 철조망이 끝나는 방향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그곳을 통해 올라 마지막 통신탑이 있는 곳으로 오르니 실시간 국가해양관측소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그곳에 올라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쉽게 태안의 후망지맥을 무탈하게 완주하는 기쁨을 맛본다.

 

그곳 마지막 봉우리인 실시간 국가해양관측소에서 바로 앞에 있는 마지막 바위봉과 그 바위봉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을 사진에 담는 것으로 마지막 의식을 마치고 다시 올라 왔던 등로를 타고 갯바위로 내려가 본다.

실시간 국가해양관측소는 읽어 보니 태안과 대산, 평택 그리고 인천항으로 진입하는 항로를 운항하는 선박들을 실시간으로 측정하여 각 선박들에게 전해주는 아주 중요한 역활을 하는 관측소였다.

 

다시 그곳 마지막 실시간 국가해양관측소를 내려 와 갯바위를 타고 뒤돌아 나와 군부대 철조망으로 오르고 넓은 헬기장을 지나 군부대 정문으로 나온다.

그곳 군부대 정문에서 비포장 임도를 타고 갈림 사거리로 뒤돌아 나와 태안절경천삼백리제1코스라는 이정표를 만나 이제는 좌측 넓은 공터가 있는 방향으로 진행하며 만대항으로 진행을 한다.

실거리로 약 35 Km의 거리를 약 14시간 정도에 완주를 하였으니 하루만에 걸어도 될 정도로 짧은 지맥이었다.

 

넓은 공터를 타고 우측 등로로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가로림만이 서해바다로 이어지는 바다를 지나 저 멀리 망일지맥의 아름다운 비산비야의 산줄기가 시원하게 조망되고 그 좌측으로 대산석유화학단지와 황금산이 어서오라 손짓을 하고 있다.

그 바다 건너기 직전 바로 발아래에는 김인지 아니면 굴 양식장이 드넓게 내려다 보이고 그렇게 멋진 조망을 즐기며 여유롭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내려가는 도중 내내 등로 좌측으로 가로림만고 망일지맥 마루금을 조망하며 완만하게 내려가니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거꾸로 올라오기 시작하고 인사 나눈 후 내려가니 아마도 솔향기길 제1구간 걷기를 위해 단체로 온 여행객들처럼 보였다.

다시 그 등로를 타고 내려 오니 드넓은 큰구매쉼터 작전 해변이 드러나 있고 그 해변을 타고 솔향기길을 걷기 위해 오르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서해해변을 좌측에 두고 비포장 임도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저 멀리 민가들이 보이고 그 민가로 가기 직전 언덕에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물 빠진 해안에 직은 배한척이 묶여있고 그 넘어 가로림만을 가로질러 망일지맥 산줄기와 대산석유화학단지 그리고 좌측으로 아름다운 황금산이 우뚝 솟아 있다.

황금산은 충청남도 서산시의 대산읍 독곶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52미터인데 지리적으로는 대산반도 북서쪽 끝에 위치하여 있으며 조선지형도에서 황금산을 볼 수 있다.
서산군지(1926)에 의하면 기은리 자지산에서 세 지맥으로 나뉘는데 한 지맥은 서쪽으로 뻗어 독곶리 황금산이 되어 바다 가운데 우뚝 솟아 나왔으며 크고 작은 용굴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원래 이름이 항금산이었고 산이 있는 전체를 총칭해서 항금이라 했었다고 전하는데 황금은 평범한 금이고 항금은 고귀한 금을 뜻하므로 마을의 옛 선비들은 고집스럽게 항금산으로 표기하였다고 하며 1872년지방지도에는 항금산으로 한자 표기가 다르다.
삼성종합화학이 생기면서 육지와 완전히 연결되었지만 그전에는 일부만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서 섬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산의 서쪽은 바위 절벽으로 깊은 바다와 접해 있으며 2개의 동굴이 있어 예부터 금을 캐던 굴로 알려져 있다.
관련 지명으로 황금목이 있고 산의 앞바다는 수심이 깊으며 간조 때에는 유속이 빠르고 파도가 높아서 황금목은 험한 뱃길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며 내려가니 드디어 민가 앞마당에 도착을 하고 배낭을 정리한 후 걸어가니 민가와 해안으로 등로 오는 비포장 임도 입구 옆에 태안절경솔향기길이란 커다란 이정목이 서 있다.

앞에서 설명을 했던 솔향기길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니 솔향기길은 태안반도의 세월과 절경을 간직한 채 유유히 이어지는데 바닷가 비탈 위로 연결된 태안반도의 끝 길을 걸으며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체험은 색다르다.
솔향기길의 태동은 2007년 기름유출사고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기름제거작업을 위해 이용하던 방제로와 군부대 순찰로, 임도, 오솔길들이 서로 연결돼 걷기 좋은 길이 만들어졌다.
천혜의 해안경관을 감상하고 솔향과 바다내음과 파도소리를 들으며 탐방하는 길은 북적이지 않아 더욱 정감이 가고 길 어느 곳에 멈추고 생각에 빠지면 혼자만의 정적이 동행한다.
만대항을 기점으로 태안반도의 끝자락에는 상념을 부추기는 조연들이 길목마다 모습을 드러내는데 삼형제바위, 새막금쉼터, 당봉전망대 등은 만대마을을 에워싸고 절경을 만들어 내고 특히 삼형제 바위는 일출을 맞기에 좋으며 해넘이는 새막금쉼터 인근이 최적의 포인트다.
만대마을에서 하룻밤을 청한다면 당봉 전망대에 올라 반도의 동서쪽 바다에서 펼쳐지는 태양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으며 만대마을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해변길은 바다와 어우러진 솔숲의 멋진 실루엣을 만들어낸다.
매년 1월 1일이면 당봉전망대에서는 새해맞이 행사도 열린다.

 

그곳에서 계속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나오니 연주현씨영묘원이 보이고 곧이어 갈림 삼거리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나온다.

계속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603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곳에 솔향기길 만대염전과 솔향기길 이정표가 보인다.

그 도로 우측으로는 내2리(만대기지입구)라는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내리는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면에 있는 마을로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내동리와 외동리 일부를 내리와 합병하여 그대로 내리가 되었으며 지명은 이 지역의 지형이 바다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 있으므로 안골 혹은 내동이라고 불리던 것에서 유래했는데 서해안의 해안 마을로 북쪽으로 상당히 튀어나온 반도부이다.
자연마을에는 안골(내동), 사목이 있으며 사목은 지금은 해안이 오랜 세월 퇴적되어 넓은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서해안의 넓은 백사장이었는데 마을 안을 흐르는 하천 물이 이 백사장을 관통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모래목이 되었다 하여 이름이 모래사자를 써서 사목이 되었다.

 

그곳 내2리 만대기지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603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 만대항 방향으로 진행을 하니 도로 좌측으로 멋진 소나무와 그 앞에 벤취쉼터가 놓여있는 포토존이 보여 잠시 들어가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 않는 옆지기가 왠일인지 그곳 소나무 앞으로 가 벤취쉼터에서 여러 포즈를 취하기에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다시 내려 와 만대항으로 애마를 몰아 들어 가 본다.

 

드디어 만대항에 도착을 해 마지막 사진 몇장 남겨 본다.

만대항은 이원반도의 땅 끝에 있는 한적한 포구로서 만대에 전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옛날 한 스님이 인가를 찾아 한참 걷는데 멀리 파란 물이 넘실거려 스님이 말하길 허참 아까는 분명히 땅이었는데라며 가다가다 말았다고 해 그곳을 만대라 불렀다는 이야기이다.

어제 오후에 두번이나 들려 이슬이 한잔과 저멱까지 먹었던 만대항이기에 오늘 점심도 이곳에서 해결하고 서울로 복귀하려고 하였으니 둘 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점심 식사에 관심이 없어 곧바로 애마를 몰아 서울로 복귀하기로 한다.

뻥 뚫린 도로를 타고 태안을 지나 서산으로 들어가 달리다 어제 옆지기가 이용했고 많은 산님들이 이용하고 있는 금강산보석사우나에 잠시 들려 샤워를 하고 그곳 서산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옆지기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해 다시 빠르게 애마를 몰아 화성휴게소에서 조금 늦은 점심으로 허기를 달래 본다.

 

그렇게 일찍 서울로 복귀해 휴식을 취하고 자료를 정리하고 나니 또 하루가 저물어 가고 연 이틀간 시원하게 태안의 후망지맥을 완주할 수 있어 뜻깊게 보낸 시간이 되었다.

 

다음에는 진행하다 중단한 문수지맥이나 고흥지맥으로 내려가 남아 있는 산행을 마무리하고 올라오거나 태안 옆 서산으로 내려가 망일지맥을 마무리하고 올라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