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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가섭지맥(부용·완)

가섭지맥 제2구간 미타사에서 말구리고개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5.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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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북도 음성군, 충주시 및 괴산군의 가섭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5년 12월 25일 (금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오전엔 안개와 박무로 흐렸다가 오후부터 맑고 추웠던 날씨

산행온도 영하 02도에서 영상 07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미타사-가섭지맥 마루금 접속-철조망 구간-274봉 삼거리-군부대 철조망-215봉-자작나무 조림지-36번 4차선 지방도로-발전시설부지 조성 공사장-181 잡목봉-교통호-대추나무 과수원-오랫말 마을-시멘트 포장도로-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단양피씨 가족묘지-낙엽송 구간-안부-이정표(진입로 비산2리 0.8 Km, 뾰족산정상 1.7 Km, 대장리 0.9 Km)-벌목 후 자작나무 조림지-벤취 쉼터1-소나무 등로-소나무 조림지-벤취 쉼터1-사각나무계단-이정표(진입로 비산2리 1.8 Km, 뾰족산 정상 0.7 Km,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인삼특작부 0.6 Km)-311.4봉(운동기구 및 벤취 쉼터4)-소나무 등로-301갈림 삼거리-잡목지대-노란물통과 밤나무 과수원-밤나무 과수원 안부-간벌된 소나무 등로-220 바위봉-잡목지대-경주이씨 가족묘지-비포장 임도-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사과 과수원-잡목과 잡풀지대-사과 과수원-충북선 철도-후삼로(2차선 포장도로)-밤나무 과수원-묘지지대-평산신공 가족묘지-172 소나무봉-사과 과수원-잡풀지대-청도김씨묘지-지독한 가시나무 등로-절개지-지독한 잡목과 잡풀 안부-절개지-칼등 능선-안부-녹슨철조망 등로-267봉-바위 등로-철조망 등로-낙엽 안부-375 바위봉-안부-372 바위봉과 불난 흔적-안부와 바위 등로-웅덩이봉-비공개 동굴-동굴-로프 바위 등로-어래산(396봉)-성지사 갈림길 이정표(어래산 정상 10분, 성지사 10분, 노루목재 30분)-낙엽과 바위 등로-안전 로프구간-철 사다리 바위구간-바위 등로-안전 로프 구간-바위 암릉 우회 등로-안부-306 갈림 삼거리-안전로프 구간-안부-노루목재 이정표(어래산 40분, 모래봉 10분, 삼방리 10분, 미락골 10분)-벌목지대-어래산(393봉) 화살표 이정판과 통나무 벤취 쉼터2-모래봉 이정판(모래봉, 어래산 1.2 Km, 태양바위, 쇠실고개)-348봉-점심식사-쇠실고개(599번 2차선 포장도로)-벌목지대-276.4 바위봉-녹슨 철조망-작은쇠실고개 안부-낙엽송 등로-350.8봉-낙엽 안부-꽃자봉(302봉)-군 벙커-옛 쇠실고개 깊은 안부-바위 등로-372봉-382 바위봉-428봉-고사리봉(448.8봉, 단월 강명수)-437 바위봉-말벌집-잡목과 소나무 등로-갈림 삼거리-비포장 임도-414.7봉-간벌된 소나무 등로-바위 등로-갈림 삼거리-잡목과 잡풀지대-308 낙엽 안부-충주최공 묘지-낙엽 안부-349봉-바위봉-488봉-갈림 삼거리-442 바위봉-낙엽 안부-484.6 삼각점 봉-바위 등로-갈림 삼거리 바위봉-바위 등로-소나무 조림지-낙엽송 등로-묘지(채석장 조망)-지독한 잡목 등로-낙엽 안부-275봉-말구리고개(충주시와 괴산군 경계, 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9.54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잡목과 낙엽 및 바위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많은 사진 찍으며 08간 33 (09시 15부터 17시 49분까지)

교통편 : 대중교통 및 택시 이용

            서울남부버스터미널에서 06시 30분 발 음성행                                -  8900.-

            음성공용버스터미널에서 음성택시로 미타사                                  - 13000.-

            말구리고개에서 대소원면 택시로 충주시외버스터미널                   - 14000.-

            충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20시 05분 발 서울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        -  7800.-

가섭지맥이란 ???

백두대간이 속리산의 천황봉(1057 미터)에서 한남금북정맥으로 분기하여 음성지방의 보현산(478 미터)에서 지맥을 이루어 부용산(644 미터)으로 향하던 중 493봉에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가섭산(709.9 미터), 어래산(393 미터), 고양봉(503 미터), 풍류산(485.2 미터)을 세우고 달천 하문리 하소마을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4 Km 정도 되는 산줄기를 가섭지맥이라 한다.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 그리고 빨래판 능선으로 생각보다 힘들게 걸으며 많은 상념에 젖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 시작을 하였다가 취미생활이 되었고 이제는 그 마력에 빠져 산사람이라 자처하게 된 변화가 스스로에게도 믿기지 않을만큼 산행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마도 생활과 삶의 괘적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지만 어찌되었건 2주전에 진양기맥 산행을 마지막으로 1대간 9정맥 9기맥까지 산행을 완료하고 보니 이미 완료한 20여개의 지맥을 제외한 남아있는 140여개의 지맥 산행 때문에 고민에 빠진다.

맥 이어가는 산행이 어떤 의미이고 또 그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있기에 편안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한번 빠지면 그 끝을 봐야되는 성격으로 인해 모두 완주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하게 그 길 위에 있을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오르고 싶은 산을 기준으로 여유있는 발걸음을 생각해 보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음을 알기에 그저 마음이 결정해 주는대로 발길이 가는대로 천천히 올라 보려고 노력을 해 볼 것이다.

 

이제 진행하고 있던 지맥 산행 중 음성쪽에 있는 두번째 산줄기인 가섭지맥 산행을 위해 출발하지만 오늘은 아버님 제사가 있는 날이라 조금은 마음의 부담감으로 출발해 보는 시간이다.

그래도 연휴라 막힐 것으로 예상되는 도로를 타고 애마를 운전하기 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녀오기로 하니 마음만은 편안하게 탁배기 한잔 마시며 산행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던 시간이다.

진행하다 힘들면 그곳에서 멈추고 다시 한번 내려오면 될 것이기에 서두르지 않고 낙엽속에 조심하며 안전산행을 먼저 생각하는 시간이길 바래 본다.

 

 

어제까지 겨울날씨답지 않게 푸근한 기온으로 인해 안개와 박무가 심했는데 오늘부터 기온이 내려가며 추워진다고 하니 기대를 해 보지만 오늘 역시 박무가 심한 아침이다.

초반부엔 비산비야를 걸으며 파헤쳐진 마루금에 가슴 아파했지만 어래산 오르막 등로에선 산재되어 있는 많은 바위 사이로 떨어져 쌓여있는 낙엽으로 인해 너무나 어렵게 통과를 하고 노루목재를 지나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자작나무 조림지와 벌목지대를 지나 저 멀리 박무속에 지나온 어래산 능선이 너무나 아름답게 솟아 있다.

겨울인데도 깨끗한 조망이 아니라 아쉬움도 남지만 박무속에 희미한 산그리메가 더욱 애틋하게 가슴속으로 파고 들고 있어 그 잔영은 더 오랫동안 뚜렷히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난 10월 늦게 음성 궁도장에서 출발해 늦은 시간에 이곳 미타사에서 산행을 접고 올라간 이후 2개월이 더 지나 다시 찾게 되었다.

약간 축축한 이슬이 내려있는 도로를 타고 미타사에 도착을 하니 이곳은 여전히 공사가 진행중이고 그곳 넓은 주차장에 내려 간단히 산행 준비 후 미타사 우측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며 제2구간 산행을 시작해 본다.

미타사는 지난 구간 내려오며 잠시 들려 구경을 했기에 오늘은 들어가는 입구만 사진에 담고 출발하며 생각보다 유명한 미타사를 생각해 본다.

미타사는 신라 진덕여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문헌자료나 유물자료는 없고 현재는 전통사찰로 극락전, 삼성각, 선실, 요사채 및 3층 석탑 등이 있다.
음성 미타사 마애여래입상은 고려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미타사 마애여래입상은 미타사를 향하여 산을 오르다 보면 지장보살성지를 지나서 미타사에 다다르기 전 서쪽에 있는 바위벽에 동쪽을 향하여 조각된 마애불상이다.
이 마애불은 거대한 바위의 수직한 편편한 면에 마애불 주변을 깍아 냄으로써 입상을 부조하였는데 자연 암벽을 이용하여 불신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머리와 어깨 부분을 깊이 새겨 상반신의 입체감을 부각시켰다.
전체 높이 4.05미터이며 민머리 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높은 머리묶음, 부피있는 네모난 얼굴, 눈, 코, 입의 처리 등에서 형식화가 뚜렷이 진행되고 있다.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주름은 사선으로 흐르고 있으며 오른손은 밑으로 내렸고 왼손은 들어 가슴 앞에 댄 모습으로 당시 불상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평판적인 신체, 직선적인 윤곽, 여기에 얇게 빚은 듯한 계단식 옷주름과 옷자락 등에서 통일신라 후기 거구의 불상양식을 계승한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공사중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임도 좌측으로 미타사가 내려다 보이는데 기억을 되살려 보니 주차장에서 너무 많이 올라 왔다는 느낌이 들어 무조건 능선으로 들어가 사먄 등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잠시 후 가시가 달려 있는 엄나무 조림지를 지나 드디어 가섭지맥 마루금에 도착을 하고 등로 좌측 위에 지난 구간 내려오며 봤던 커다란 바위를 사진에 담고 등로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니 드디어 우측 미타사로 내려갈 수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해 이곳에서도 추억 한장 남긴 후 낙엽이 깔려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본격적인 제2구간 산행을 시작해 본다.

 

 

잠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우측에 녹슨 철조망이 따라 오고 있어 주의가 필요한 시간이다.

그렇게 앞으로 전진해 걸어가니 금새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깊게 쌓여있는 축축한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니 등로는 생각보다 잘 정비되어 있어 진행에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거목의 참나무가 자라고 있는 274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아무 생각없이 또렷한 등로를 타고 직진을 해 짧은 알바를 하고 뒤돌아 올라 와 이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완만하게 내려가는 정상 마루금을 어렵게 찾아 내려가 본다.

 

 

내려가는 마루금에는 간벌된 나무들이 널부러져 있어 주의가 필요하고 이리저리 그 간벌된 나뭇가지들을 피하며 내려가니 또 다시 깊게 떨어져 쌓여있는 낙엽 지대를 지나 잘 정비된 군부대 철보망을 만난다.

이곳에서도 철조망을 타고 좌측으로 돌아가야 할지 우측으로 돌아 가야할지 고민하다 좌측으로 돌아 한동안 진행한 후 다시 뒤돌아 내려 와 우측으로 돌아가며 그 군부대를 통과해 본다.

이곳에서도 그 철조망을 따라 좌측으로 돌아갔다 뒤돌아 오며 잠시 시간을 허비하고 만다.

 

 

2중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고 그 철조망 주위로는 잡목과 잡풀들이 제거되어 있어 진행에 큰 어려움이 없어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철조망 넘어 저 멀리 이제부터 올라야 할 215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빼꼼히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군부대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잠시 비포장 임도를 만나 따르고 좌측으로 90도 꺽이는 철조망을 따라 마루금도 꺽여 후문을 통과해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군부대 철조망을 좌측으로 보내고 마루금은 그 철조망과 헤어져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많은 낙엽이 깔려있는 축축한 낙엽을 밟으며 능선을 따르니 금개 정상에 웅덩이가 보이는 21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산행을 하다보니 이곳에도 많은 웅덩이들이 보이는데 아마도 6.25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한 장소는 아닐까 생각을 하면서 걸어 가 본다.

멋진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그 소나무 밑으로는 키 작은 관목들과 잡목들이 자라며 생각보다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다시 완만하게 올라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잡목들이 등로를 가로막아 헤치며 진행하는데 애를 먹는다.

 

 

그 잡목지대를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묘지들이 있는 장소를 지나 다시 잡목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걸어 본다.

등로 우측으로는 자작나무처럼 보이는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장소를 바라보며 걸어가니 짧은 멋진 등로를 지나 또 다른 묘지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묘지에서 살펴보니 바로 아래에는 절개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절개지 밑에는 4차선 지방도로가 지나고 그 도로 건너에는 드넓은 공사장 공터가 내려다 보인다.

그곳에서 절개지를 피해 우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그 4차선 지방도로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 본다.

자도를 보니 이곳 36번 4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곳을 오랫말재라 표기를 했는데 찾아 보니 자료를 찾을 수가 없는데 이곳 지명인 비산리에 오랫말마을이 있어 그 마을이름에서 유래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오랫말재는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오랫말마을에서 유래한 고갯마루라 생각되는 곳으로 오랫말은 마을에 오동나무가 있었다고 하는데 36번 4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내려가니 콘크리트 수로가 보이는데 그 수로 우측으로는 녹색 그물망이 쳐진 밭을 지나 생각보다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36번 4차선 지방도로를 만나 조심스럽게 무단횡단을 해 통과를 한다.

그 도로를 건너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오르니 공사장 한쪽에 음성군수가 허가해 준 발전시설부지조성 안내판이 보인다.

그 넓은 공사장 공터를 걸어 우측에 민가 한채를 두고 다시 절개지 방향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새마을과 오랫말 동네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오랫말이 있는 비산리는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에 있는 마을로서 소이면 북부의 가섭산 자락에 위치하며 마을 가운데로 개천이 흘러나가고 마을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본래 충주군 사이포면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비석동과 조도리, 돈산리를 병합하여 비석동과 돈산리에서 이름을 따 비산리라하고 음성군 소이면에 편입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돌미(돌뫼,돈산), 비선거리(비석동), 새말(신촌), 오랫말(조도) 등이 있으며 돌미는 돈산 아래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돈산이라고도 한다.
비선거리는 비산리의 중심마을로 동남쪽에 새로 된 마을은 새말이라고 부르고 오랫말은 마을에 오동나무가 있었다고 하며 비석동과 돈산의 이름을 따서 비산리라 하였다.
문화유적으로 고려 중엽에 창건된 미타사와 그 안에 미타사석조여래좌상과 미타사마애여래입상 등이 있다.

 

 

절개지를 올라 주능선을 만나고 이제 그 마루금을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박무속에 저 멀리 등로 우측으로 미타사의 지장보살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음성 미타사 지장보살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가섭산 미타사에 있는 보살로서 출토된 유물로 보았을 때 고려 중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미타사에 세워져 있는 것으로 동양 최대 지장보살로 손꼽히는 이것의 규모는 108척(41m) 정도이다.

모든 중생이 백팔참회를 통해 성불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곳에는 구중중생범종과 범종각이 건립되어 있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직접 만나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이렇게나마 만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다.

 

 

등로 우측에 공사장 절개지를 내려다 보며 걸어가니 다시 잡목이 발목을 잡고 어렵게 그 잡목을 헤치며 181봉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그 181봉을 넘어 낙엽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교통호 같은 수로가 보이고 곧이어 묘지지대를 지나 대추나무 과수원을 만난다.

그곳을 지나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 오랫말 마을을 통해 걸어가며 진행을 해 보는 시간이다.

오랫말은 마을에 오동나무가 있었다고 하며 비석동과 돈산의 이름을 따서 비산리라 하였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밭 가장자리를 걸어 내려가니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변하고 우측에는 민가를 좌측에는 인삼포를 두고 걸어 내려가니 2차선 지방도로와 만나 이제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 본다.

걸어가며 주위를 살펴보니 이곳 음성에도 제법 많은 민가들이 인삼포를 재배하고 있는지 많은 인삼포가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잠시 더 우측으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저 앞에 도로 표지판이 서 있는데 조금 더 걸어가면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직진 방향으로는 36번 청주가는 방향이 좌측으로는 514번 감물가는 방향이 표기되어 있는 도로 표지판이다.

그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 곳 좌측으로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비포장 임도가 나 있는 방향으로 꺽어 능선 방향으로 걸어가며 가섭지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능선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잡목과 짧은 절개지로 인해 능선으로 오르지 못하고 그 좌측으로 보이는 갈아 놓은 밭을 타고 오른다.

그렇게 잠시 더 올라 나즈막한 절개지에서 우측 능선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오랫말 마을이 아름답게 보인다.

능선 넘어 오르니 묘지들이 보이고 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방금 전 헤어진 49번 2차선 포장도로가 마루금과 평행하게 지나고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 낙엽 깔린 능선으로 오르니 촉촉하게 젖어있는 낙엽이 너무나 아름답게 눈 앞에 펼쳐져 있어 무상무념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낙엽 등로를 타고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으니 멋진 낙엽송 지대가 짧게 나타나고 잠시 더 그렇게 걸어가니 음달말 마을을 가로지르는 이름없는 안부가 깊게 파여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안부에 대한 자료는 없고 이곳이 그저 음달말 마을이라는 표시만 눈에 보인다.

그 안부를 지나 오르며 음달말을 갈펴보니 잡목사이로 민가들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한다.

음달말은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에 있는 마을로서 음지에 해당한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으로 이제 비산리를 통과해 충도리로 넘어가며 맥 산행이 이어지고 있다.

 

    

 

그 충도리의 음달말 안부를 지나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는 점점 더 잡목의 저항이 심해지고 금새 소나무와 잡목이 섞여있는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축사 건물들 몇동이 내려다 보이는데 무슨 목장인지는 보이질 않는다.

잠시 후 다시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옆에 갑자기 이정표가 보이고 살펴보니 올라온 방향으로는 대장리가 좌측으로는 비산2리 내려가는 등로가 그리고 우측으로는 가섭지맥을 이어주는 뾰족산 정상 방향이 표기되어 있는데 정작 뾰족산은 만나지도 못하고 진행을 하게 된다.

 

 

이정표에서 비산2리 방향 하산 등로가 표기된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뾰족산 정상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멋진 리끼다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등로에 떨어진 솔갈비가 부드럽게 다가오는 마루금을 타고 걸어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등로 우측으로는 벌목 후 나무들을 식재한 조림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우측에는 나무 조림지를 두고 좌측으로는 소나무 등로를 바라보며 걸어 오르니 등로 옆에 벤취 쉼터 한개가 눈에 들어 와 살펴보니 여름날에는 동네 주민들이 제법 올라 오는 산책로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그 벤취 쉼터를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는 이제 소이지방산업단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많은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오늘은 박무가 있어 뚜렷하지 못함이 아쉽기만 하다.

소이지방산업단지는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대장리와 후미리 일대에 조성된 지방 산업 단지로서 1994년에 완공되었으며 1996년에 소이지방산업단지로 전환되었는데 음성군청 공업경제과에서 소이지방산업단지라는 명칭을 부여하였고 음성군수가 관리하고 있다.

소이지방산업단지는 음성군에서 충청북도 음성군 개발의 지역적 불균등을 없애고 음성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음성군 소이면 대장리와 후미리 일대의 90만 9천m2 부지에 사업비 540억 원을 투입하여 5개 업체를 입주시킬 목적으로 1990년에 착공하였다.

등로 우측으로 그 소이지방산업단지를 내려다 보며 걸어가니 너무나 뚜렷하고 부드러운 솔갈비를 밟으며 오르니 무명봉을 지나 여전히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를 따른다.

 

 

이런 등로로만 이뤄져 있다면 오늘 가섭지맥 산행도 마무리가 가능할 것 같다는 희망적인 생각으로 걸어 보는 시간은 참으로 꿈결같은 시간이다.

오랫만에 맛보는 부드러운 소나무 등로에 솔갈비를 밟는 기분이 참으로 상쾌하고 즐겁기만 하다.

등로가 지나는 이곳은 대장리로서 대장리는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에 있는 마을로서 평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가운데로 음성천 지류가 흐른다.
소이면의 면소재지로 농촌 경관과 더불어 읍내 경관이 나타나는데 본래 충주군 사이포면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장막리, 대평리, 금정리 일부와 소파면의 후미3리 일부를 병합하고 대평과 장막리에서 이름을 따 대장리라 하여 음성군 소이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나맥이, 산직말, 소이역, 장막산이(장막), 한들(대평,한평) 등이 있는데 산직말은 조선시대 중엽에 강원 관찰사 김진중의 묘를 지키던 산지기가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이역은 소이역이 있는 마을이고 장막산이는 전에 진을 쳤던 곳으로 동쪽에 장막저수지가 있으며 한들은 대장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남쪽으로 평평한 들이 펼쳐져 있다.
문화유적으로 신유효자문이 있고 행정리는 대장1리와 2리로 나뉜다.그렇게 한동안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등로 좌측에 벤취 쉼터 하나가 놓여있어 사진에 담고 곧바로 다시 출발해 보는 시간이다.

 

 

그 벤취 쉼터를 지나 오르니 갑자기 등로가 가파르게 오르고 그곳에는 사각나무 계단이 길게 이어져 있다.

잠시 더 그 사각나무 계단을 타고 오르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는 또 다른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어 살펴보니 지나온 방향으로 진입로 비산2리 방향이 좌측으로는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인삼특작부가 그리고 우측 진행 방향으로는 뾰족산 정상 방향이 보인다.

이제 뾰족산 정상까지는 7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따라 그쪽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진행을 한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국민적 가치공유를 통한 원예특작산업의 지속적 발전과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설립된 농촌진흥청 소속 국립연구기관으로 1948년 부산시 동래구에서 발족한 재단법인 한국농업과학연구소가 모태이다.

1953년 중앙원예기술원으로 개칭되었으며 우장춘 박사가 초대 원장으로 취임하였고 이후 1957년 농사원 원예시험장으로 1962년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으로 개칭되었고 1967년 1월 수원시 이목동으로 이전하였다.

1994년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로 바뀌었다가 2008년 10월 국립원예특작과학원으로 직제 개편되었고 2010년 도시농업팀이 2013년 저장이용팀이 신설되었으며 2015년 2월 수원에서 전라북도 완주군으로 이전하였다.
시장 및 수요자 중심의 연구 수행과 홍보 시스템 구축을 통한 핵심 원예특작기술 개발 및 보급, 성과 중심의 기관 운영, 인사 조직 및 예산 관리의 효율성 향상 등이 조직의 운영 목표이다.
주요 임무로 원예와 특용작물의 품종 개량 및 유전육종법의 개발과 연구, 원예와 특용작물의 안정성 및 기능성 향상과 재배방법 개선에 관한 연구, 생산성 증대와 품질 향상 및 생산비 절감에 관한 연구, 병충해와 바이러스의 진단과 생태 및 방제에 관한 연구, 시비법 개선과 토양 및 양분과 수분 관리에 관한 연구, 시설재배와 환경 및 품질 보전에 관한 연구, 생명공학기술에 의한 원예와 특용작물의 개발에 관한 연구, 기술 지원과 홍보 등이 있다.
조직은 2부(원예작물부, 인산특작부), 11과(채소과, 과수과, 화훼과, 도시농업과, 인삼과, 약용작물과, 버섯과, 기획조정과, 운영지원과, 원예특작환경과, 기술지원과), 2팀(저장유통연구팀, 인삼특작이용팀), 5연구소(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시설원예연구소, 사과연구소, 배연구소, 감귤연구소), 1출장소(남해출장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015년 현재 총 329명이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 뾰족산 정상 방향으로 오르니 여전히 등로는 멋진 소나무와 부드러운 솔갈비로 이뤄져 있다.

잠시 더 그렇게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운동기구들과 벤취 쉼터들이 산재되어 있는 제법 넓어 보이는 공터봉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311.4봉이다.

그곳 벤취 쉼터에 앉아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곧바로 그 311.4봉을 출발하니 등로는 부드러운 능선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 운동기구와 벤취 쉼터가 있는 311.4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여전히 소나무가 등로를 호위하고 있는 풍경이다.

그렇게 멋진 등로를 타고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 안부를 지나니 다시 등로가 완만하게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그곳 301봉 정상부에서 가섭지맥 마루금은 뚜렷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우측 잡목이 우거진 방향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잠시 헷깔려 그곳 갈림 삼거리에서 왔다리 갔다리 헤매다가 어렵게 내려가는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다시 등로가 선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뚜렷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골짜기 깊은 낙엽이 쌓여 있는 곳으로 이어지고 미끄럽기에 조심하며 전진하니 예전에 비포장 임도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잡목과 잡풀이 자라면서 이제는 진행에 무척 어려움이 있는 등로를 만나 어렵게 걸어 진행을 한다.

진행을 하면서 이 등로가 맞는지 지도를 자주 살펴보며 걸어 내려가니 맞는듯 하여 계속 내려가니 갑자기 눈 앞에 노란 물통이 보이고 이제부터는 잘 관리되고 있는 밤나무 과수원이 나타난다.

이제부터 밤나무 단지 좌측 위를 타고 조금은 수월하게 걸어가니 등로 우측 아래로 민가에서 커다란 음악이 흘러 나오고 그 넘어 저 멀리 소이지방산업단지의 공장 건물들도 희미한 박무속에 보이고 있다.

 

 

우측에 밤나무 과수원을 두고 걸어가다 등로 우측 뒤를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311.4봉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오고 눈 앞으로는 밤나무 단지 지나 올라야 할 220봉도 제법 고도를 높이며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부드러운 밤나무 과수원을 타고 편안하게 걸어가니 밤나무 단지 내 안부도 만나 건너 본다.

 

 

밤나무 과수원 안부를 건너 조금 더 진행을 하니 이제 밤나무 단지와 헤어져 리끼다 소나무 등로와 만나 걸어 본다.

간벌이 되어 있는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 오르니 잠시 후 바위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220봉에 도착을 하는데 좋은 날씨에 올랐다면 주위 조망이 좋았을 것을 오늘은 박무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기에 좌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는 마루금만 주의하며 찾아 내려가기 바쁜 시간이 되었다.

다만 등로 좌측 뒤로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311.4봉과 밤나무 그리고 그 밤나무 아래에 있는 민가만이 멋진 조망으로 산객의 눈에 들어 온다.

 

 

또한 등로 우측으로 소이지방산업단지도 내려다 본 후 바위를 내려 와 좌측으로 크게 꺽어 잡목이 우거진 희미한 등로를 찾아 어렵게 내려가니 잠시 후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만나고 그 임도를 가로 질러 내려가니 여전히 등로는 잡목과 가시나무에 막혀 진행이 무척 어렵다.

온 몸에 생채기를 내며 어렵게 내려가다 앞을 보니 앞으로 진행해야 할 후미리와 그 뒤로 어래산이 박무속에서도 제법 멋지게 조망된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드디어 잡목은 자라고 있지만 걸어 진행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비포장 임도를 만나 한동안 걸어 내려간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내려가다 지도를 살펴보니 정상 등로는 좌측 능선이라 생각되어 잠시 올르니 그곳에는 묘지들이 몇기 보이고 묘지 아래 잡목이 우거진 방향으로 마루금이 이어지는데 진행하려고 살펴보니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보여 다시 우측 아래의 비포장 임도로 내려와 편안하게 걸어 내려간다.

이제 대장리를 지나 후미리로 들어서서 진행을 하는데 후미리는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에 있는 마을로서 소이면의 동북부에 위치하는데 마을 앞으로 음성천이 흐르며 수박 ,고추, 포도를 주로 재배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본래 충주군 소파면에 속하였고 후미진 곳에 있다 하여 후미리라 불렸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후미1리, 후미2리, 후미3리 일부를 병합하고 후미리라 하여 음성군 소이면에 편입하였다.
자연마을로는 후미, 꿩말, 동양말(동촌,후미삼리), 막골(막동,신흥동), 새터(후미이리,고자골,신대), 양지말(양촌), 음턱골(음촌,음덕골), 장구실(후미일리) 등이 있다.
후미는 지형이 후미져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동양말은 후미 동쪽에 있는 마을이며 새터는 동양말 서남쪽에 새로 된 마을로 옛날에 장자라는 부호가 살았다고 한다.
양지말은 후미 양지쪽에, 음턱골은 음지쪽에 위치하고 장구실은 장구형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대골저수지가 있고 문화유적으로 이식후 이진도효자문과 후미리석탑이 있다.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밭 경작지가 보이고 바로 앞에는 작은 콘테이너 박스와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인다.

비포장 임도를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잠시 후 다시 갈림 삼거리가 보이고 그 곳을 지나자 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능선으로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올라 맥 잇기를 이어가 본다.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갈리는 갈림 삼거리에는 많은 생활 쓰레기가 널려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그곳을 지나자 마자 눈 앞에 보이는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부드러운 낙엽 등로를 지나 곧이어 넓은 사과 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사과나무에는 따지 못한 사과들도 보이는데 모두 얼었다 녹아 썩어가고 있다.

그 사과 과수원을 지나 커다란 공장 건물이 보이고 그 뒤로 올라야 할 어래산 능선이 드높게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과 과수원을 지나 잡풀이 우거졌다 말라 죽어 있는 장소를 지나 다시 나타나는 사과 과수원 중앙부를 통해 걸어가니 등로 좌측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공장 건물은 (주)동성진흥 건물인데 어래산 방향으로 걸어 오르다 보니 저 동성진흥 건물을 좌측 중앙에 두고 한동안 우측으로 돌아 진행을 하게 된다.

그 사과 과수원을 지나 진행을 하니 금새 충북선 철길이 나타나 그 철길을 건너 진행을 하게 된다.

충북선은 충청남도 연기군의 경부선 조치원역과 충청북도 제천시의 중앙선 봉양역을 연결하는 129.2킬로미터의 철도로 한국의 대표적인 간선철도인 중앙선과 경부선을 연결하는 노선이다.
1920년 3월 조선철도주식회사에서 조치원에서 청주 구간 노선공사에 착수하여 같은 해 11월 1일에 준공한 것을 시작으로 1923년 5월 1일에는 청주에서 청안 간 23.9킬로미터의 영업을 개시했고 1928년 12월 15일에는 청안에서 충주 간 47.4킬로미터의 영업을 개시했다.

충주에서 봉양 사이의 35.2킬로미터 구간은 해방 이후인 1955년 11월 17일에 공사에 착공해 1959년 1월 1일부터 영업을 개시했다.

이렇게 충북선이 완전 개통됨으로써 경부선과 중앙선이 연결되었으며 충북선의 수송 수요가 증대함에 따라 복선화 계획이 추진되어 1980년 10월 17일 복선화 사업이 완료되었고 1999년 6월에 전철화 공사가 시작되어 2004년 12월에는 전철화 사업이 완료되어 2005년 3월 30일에 개통되었다.
1920년대에는 사설 철도회사에 의해 간선 철도와 연결되는 지선 철도의 부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조선총독부의 부설면허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노선의 설계는 총독부가 주도했다.

철도 부설 당시에는 조치원, 청주, 충주 등 충북 내륙 지역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노선으로서 이 일대의 교통을 편리하게 하고 지역 개발은 물론이고 농산물 및 자원 유출을 원활히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해방 이후인 1955년에는 중앙선과의 연결이 이루어짐으로써 충북선은 중앙선과 경부선을 잇는 산업철도로서의 기능이 중시되었다.

충북선의 복선화 및 전철화 역시 여객 수송 보다는 화물 수송이 주요 목적이어서 충북 지역 자체로의 인력과 자본 유입을 촉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철도 연선인 충북 내륙 지역의 산업화나 도시화에 대한 충북선의 기여는 제한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충북선의 연장, 복선화, 전철화 과정에서 가장 격심한 변화를 겪은 곳은 청주인데 청주 도심을 통과하던 선로가 외곽으로 옮겨가면서 3곳의 역사가 폐쇄되었고 청주역 자체도 두 번이나 이동했으며 폐기된 선로는 대부분 간선도로로 활용되고 있다.

초창기 충북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극히 드물어 구 충주역에 남아있는 급수탑 정도가 그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충북선 철길에서 좌측을 살펴보니 (주)동성진흥이란 커다란 공장 건물이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 충북선을 지나 오르니 또 다른 2차선 포장도로가 보이는데 도로 표지판에는 후삼로라는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그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음성군 소이면이란 도로 표지판이 서 있는 곳 원형철조망을 건너 오르니 다시 묘지가 보이고 곧이어 밤나무 과수원이 이어지고 있다.

 

 

그 밤나무 과수원을 타고 한동안 걸어가니 등로에도 많은 밤들이 떨어져 있어 살펴보지만 역시나 모두 썩어 있거나 기온 변화로 인해 먹기에는 불가능한 밤들이다.

그 밤나무 과수원 가운데를 타고 걸어가다 보니 등로 우측 저 아래에는 또 다른 배 과수원이 보이는데 그곳에는 많은 인공 구조물들이 설치되어 있는 풍경도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또 다시 밤나무 과수원이 나타나고 그 밤나무 끝자락 좌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맥 산행을 이어간다.

 

 

밤나무 과수원을 지나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그 묘지를 타고 오르기 전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가섭지맥 마루금이 박무속에서도 시원하게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평산신씨 묘지들을 지나 오르니 소나무와 잡목들이 우거진 어려운 등로를 올라 172봉에 도착을 하지만 이곳 역시 잡목들이 우거져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 172봉을 넘어 진행을 하니 벌목된 지대를 지나 다시 사과 과수원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사과 과수원을 따라 걸어가니 과수원 좌측으로 민가가 보이고 그 민가 좌측 아래 저 멀리 오늘 자주 만났던 (주)동성진흥 건물도 이제 내려다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진행을 해 묘지와 잡목 그리고 가시나무들이 공존하는 오르막 등로로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172봉과 사과 과수원이 발 아래 펼쳐져 있다.

 

 

이제부터 벌목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너무나 힘든 산행 시간이 되고 있다.

잡풀이 우거졌다 시들어 죽은 등로와 잡목이 얼굴을 햘퀴는 마루금 그리고 산초 가시나무와 아카시아 가시나무들이 사정 없이 옷깃을 잡고 늘어져 그 짧은 오르막 등로를 오르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면서 온몸에 다시 심한 생채기를 만들고 있다.

그렇게 어렵게 올라 잠시 가시나무가 사라진 조망처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 온 사과 과수언과 172봉 그리고 도로와 충북선 우측으로 동성진흥 건물과 그 뒤 저 멀리 311.4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박무속에 멋지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지나 온 마루금을 살펴보고 다시 벌목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지독했던 칡넝쿨이 말라 죽은 등로를 지나 산초와 아카시아 나무의 가시가 사정 없이 앞길을 막아서는 마루금을 타고 너무나 힘겨운 산행을 이어가고 있다.

등산복이 찟기고 보풀이 일어나며 온 몸에서 붉은 피가 흐르며 따가워지는 시간을 보내며 왜 이런 산행을 고집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지만 늘 돌아 오는 답은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는 짜릿한 기분이란 답은 여전하다.

그렇게 올라 잡목과 잡풀이 무성했던 깊은 안부를 지나 가파른 절개지를 타고 칼바위 능선으로 오르니 이제서야 조금은 등로가 길을 열어 주고 있다.

 

 

그 칼바위 능선을 지나 걸어가니 다시 가파른 절벽이 나타나고 등로는 좌측 낙엽진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조심하며 낙엽을 헤쳐 본다.

발목 이상 빠지는 낙엽을 헤치고 걸어 진행을 하니 안부를 지나 다시 등로 우측으로 녹슨 철조망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제부터 그 녹슨 철조망을 좌우로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조금은 편안한 등로를 따라 전진한다.

약간의 바위가 나타나고 편안한 안부를 건너 다시 바위들이 널려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함몰지역이 내려다 보이고 등로 좌측 뒷쪽으로는 깊은 안부 지나 솟아 있는 또 다른 무명봉이 잡목 사이로 올려다 보인다.

 

 

생각보다 어려운 등로를 따라 바위도 넘고 가시나무 지대로 통과하며 깊은 낙엽지대를 지나니 이제는 등로 옆으로 함몰지대가 보인다.

함몰지대를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 무릎까지 빠지는 낙엽이 쌓여 있는 안부를 지나니 다시 녹슨 철조망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큰 활엽수 한그루가 자라고 있는 낙엽 깔린 안부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그 안부를 지나 오르니 이제는 제법 큰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등로와 만나는데 그 정상으로 오르니 이곳도 역시 바위들과 큰 활엽수가 함께 하고 있는 375봉 정상이다.

주위 잡목들과 여전히 남아 있는 박무로 인해 조망이 전혀 없기에 다시 그 375봉을 지나 내려가 낙엽 깔린 안부를 지나고 조금 더 걸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비석이 있는 묘지를 지난다.

오래된 비석이라 어느분의 묘지인지 분간도 힘들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다시 안부로 떨어졌다 바위들이 가득한 바위봉으로 오르는데 그 주위에 있는 소나무들은 모두 불에 탄 흔적들이 남아 있는 나무들이라 의아하게 바라본다.

 

 

지도를 살펴보니 어래산이 얼마남지 않은 거리에 있는 바위봉으로서 372미터이고 주위에는 얼마 전 산불이 났던 흔적들이 남아 있는 봉우리였다.

그 372 바위봉을 넘어 다시 안부로 떨어지고 낙엽 안부를 지나 칼바위 능선을 따르니 절개지 안부가 나타나 옆으로 돌아 어렵게 내려가니 거대한 함몰지대가 보인다.

그 함몰지대를 지나 다시 오르니 웅덩이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무명봉에 오르고 곧이어 등로 좌측으로 비공개동굴이 보인다.

충주시장이 세워 둔 문화재 보호법 관련 안내판에 비공개동굴이라는 설명이 되어 있는 동굴이다.

 

 

그 비공개동굴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거대한 암봉들이 앞을 가록막아 도저히 똑바로 진행하기가 어려워 그 바위를 좌측에 두고 우측 우회 등로를 타고 걸어가는데 그곳에도 역시 많은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고 그 산재된 바위 위에 많은 낙엽들이 쌓여 있어 진행에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해 완만하게 내려가니 그곳에도 많은 낙엽들이 입구를 막고 있는 또 다른 동굴 하나가 보이고 그 동굴을 지나자 마자 나타나는 큰 바위들을 어렵게 올라 본격적인 어래산 정상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그 동굴을 지나 바위를 오르니 바위 등로에는 얇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조심스럽게 그 로프를 잡고 오른다.

낙엽으로 무척 미끄러운 로프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396미터란 어래산 정상판이 평지에 서 있고 좌측 앞으로 큰 바위 위에 어래산 정상석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심하며 그 바위 위로 올라 드디어 너무나 힘들게 어래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만들어 본다.

어래산(393봉)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후미리에 있는 산으로 고려 말기에 조선의 개국공신 배극렴이 이곳에 와서 은거하였는 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세 번이나 찾아와 공사를 논의하고 출사를 간청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근의 음성군 불정면 삼방리와 충주시 주덕읍 삼방리 등은 이성계가 세 번이나 배극렴을 찾아 왔다는데서 유래한 마을 이름이다.
북쪽의 충주시 주덕면 신양리와 이류면 금곡리의 경계 부근에 국사봉이 있고 산 정상의 남부에는 동양말에서 불정면 사방리로 넘어가는 무너미고개가 있으며 막골에서 삼방리 안삼방으로 넘어가는 죽고개가 있다.
어래산 산정에 있는 바위굴을 베틀굴이라고 하는 데 옛날 배극렴의 부인이 이곳에서 베를 짰다는 전설이 있다.
어래산 서쪽에는 성지사라는 사찰이 있고 산 중턱에는 하늘에 제를 지내던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비석만 남아 있다.
어래산 정상의 남쪽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에는 유명한 어래광산이 있었으며 원삼방에서 두 갈래의 군도가 거의 남북 방향으로 관통하고 있고 원삼방에서 소이면 후미리로 통하는 군도도 있다.
그 후 이 고을 사람들은 이성계가 이곳을 세 번씩이나 찾아왔다고 해서 고을 이름을 삼방리라 하고 산의 이름을 어래산이라 부르며 배극렴이 땔나무를 하던 골짜기를 배나무골 그 부인이 베틀을 놓고 베를 짜던 굴을 베틀굴 이성계와 배극렴이 국사를 의논했던 산 정상을 국사봉이라 부른다.

강원도에 있는 어래산은 올랐던 기억이 있지만 이곳 충북의 어래산은 처음인데 이렇게 많은 역사적인 전설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시간이다.

 

 

그곳 어래산 정상도 역시 잡목들로 인해 보이는 조망이 전혀 없기에 추억 한장 남기고 곧바로 올랐던 등로를 타고 내려와 정상 이정판이 있는 곳 좌측으로 가 바위 끝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아직도 가야 할 높은 봉우리들이 연봉을 이루며 박무속에서도 긴 한숨만 나오게 만들고 있다.

너무나 힘들게 진행하는 어래산 등로이기에 약간의 걱정을 하면서 올랐던 로프를 잡고 낙엽진 일반 우회 등로까지 뒤돌아 내려 온다.

바위를 좌측에 두고 우측 우회 등로를 타고 조심해 내려가니 안부가 나타나는데 그 안부에는 성지사 갈림길 안내판이 서 있다.

등로 좌측으로 성지사가 있는 듯 하며 그쪽 방향에서는 또 다른 벌목이 이뤄지는지 전기 톱날이 쉴새없이 돌아가는 기계음ㅡ 몇개가 규칙적으로 들려오기 시작한다.

 

 

성지사 갈림 삼거리에서 직진 방향으로는 거대한 암릉이 막고 있어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좌측 성지사 방향으로 설치된 로프를 타고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많은 낙엽들이 쌓여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지금까지 조금은 빠르게 진행되었던 가섭지맥 산행 속도를 이곳 어래산 오르면서 모두 까먹고 이제 일반 지맥 산행과 비슷한 산행속도로 진행하다 보니 오늘 가섭지맥을 마무리 하기는 이미 어렵다고 판단해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유있게 걸어 보기로 한다.

잠시 바위지대를 지나 낙엽 등로를 따르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고 조금은 편안해지는 듯한 등로를 지나 또 다른 바위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바위와 낙엽 등로를 번갈아 타며 내려가니 또 다른 로프지대를 지나 이제는 등로 우측으로 약간의 조망이 나타난다.

제법 높은 산들로 둘러쌓여 있는 삼방리 마을로서 많은 전설과 이야기를 품고 있는 마을이기에 자료를 찾아 본다.

삼방리는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에 있는 마을로서 본면의 북부에 위치한 농촌마을이다.
고려 말에 배극렴이 이곳에 은거하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세 번 찾아와서  정사를 의논하였으므로 삼방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갓돈, 내방, 돌방골, 동편말 등이 있는데 갓돈은 원삼방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유명한 사람이 많이 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돌방골은 바위가 많다하여 붙은 이름이고 동편말은 안촌 동쪽에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며 고적으로 석탑이 있다.
탑말 가운데에 있는 삼층 탑으로 고려 때의 유물이다.

삼방리 마을을 내려다 보고 조금 더 걸어가니 또 다른 거대한 암릉 등로가 앞을 가로막는데 누군가 그 바위 위에 알루미늄 사다리를 설치해 놔 조금은 편안하게 그 암릉을 넘는다.

감사한 마음으로 사다리를 설치한 분에게 인사를 드리고 그 암릉 구간을 안전하게 통과한다.

 

 

그 바위 암릉구간을 사다리를 이용해 조금은 편안하게 통과하니 다시 깊은 낙엽이 쌓여 있는 등로와 만나고 곧이어 등로 좌측으로 가파른 내리막 등로와 이어지는데 그곳에도 역시 안전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조심하며 천천히 걸어 내려간다.

어렵게 그 가파른 내리막 급경사 구간을 로프를 따라 내려 와 지나온 방향을 살펴보니 거대한 암봉이 가로막아 좌측 골짜기 등로를 타고 어렵게 우회하는 등로를 따랐던 것이다.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시끄러운 기계톱이 돌아가는 소음이 아주 가깝게 들려 온다.

 

 

이제 바위지대를 완전히 벗어나 조금은 편안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며 등로 우측에 있는 삼방리 마을에 전해지고 있는 유래를 생각해 본다.

삼방리 마을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해지는데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삼방리라고 부르게 된 것은 배극렴이 은거해 있을 때 이성계가 이곳을 세 번 찾았다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조선 초기 배극렴이 이곳 어래산에서 은거를 하고 있었을 때 이성계가 등극을 하고 나서 고려의 신하들을 찾던 중 배극렴이 은거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손수 이곳을 찾았으나 배극렴이 나타나지를 않아 만나지 못했다.
이후 이성계가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도 배극렴을 만나지 못했다가 이태조가 세 번째 찾은 끝에 배극렴을 만나 국사를 논하고 배극렴을 얻었다.
삼방리는 이성계가 배극렴을 얻기 위해 세 번 찾았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삼방리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배극렴을 세 번 찾은 이성계인데 삼방리 유래는 유비가 당대 최고의 인재인 제갈량을 얻기 위하여 삼고초려를 했다는 고사를 차용하여 이성계도 어래산에 은거하고 있는 조선 최고의 인재인 배극렴을 세 번이나 찾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인재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유비와 이성계를 동격으로 올려놓고 있으며 한편 이와 같은 맥락의 이야기로 산을 임금이 찾아왔다는 어래산 전설이 있다.
이는 산을 찾은 이성계의 지위가 임금이라는 점을 부각시켜서 산 이름을 지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멋진 새 한마리가 날아 오르는데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이 산객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날아 가지도 않아 사진에 담아 보는데 이름은 잘 모르겠다.

 

 

잠시 멋진 소나무 등로도 보이고 잡목이 섞여 있는 등로도 통과하며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 소나무에 나무로 만들어 붙여 놓은 이정판이 보이는데 시간이 지나 글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소나무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306봉을 지나 우측으로 내려가고 길게 이어진 로프를 타고 내려가니 안부에 노루목재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좌측으로는 미럭골 하산 등로가 우측으로는 삼방리 그리고 직진 방향으로는 모래봉까지 10분 거리라는 표시가 되어 있는 안부이다.

이곳 노루목재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좌측의 미럭골이 있는 삼청리를 찾아 본다.

삼청리는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에 있는 마을로서 공심앞들 등의 들가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마을 사이로 요도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능말, 먹벅골, 미나기, 배나무골, 뷩골이 있는데 능말은 옛날 능터로 잡혔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먹벅골은 마을에 옛날에 홍씨가 먹을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미나기는 옛날에 김자점이 이 곳에서 기생을 데리고 놀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배나무골은 마을에 배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뷩골은 마을이 부엉이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특산물로는 삼청사과가 있다.

 

 

노루목재를 지나 진행을 하니 무명 묘지를 지나 등로 우측으로는 벌목지대가 나타난다.

벌목지대 우측 아래로는 드넓은 비날 밭이 내려다 보이는데 요즈음 자라고 있을 작물은 마늘뿐이 없을 듯 한데 너무 멀어 자세히는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걸어 가 등로 우측 뒤를 살펴 보니 벌목지대와 마늘밭이라 생각되는 비닣 밭들 넘어 우측 저 멀리 올랐다 내려 온 어래산과 마루금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며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다시 나타나는 비석과 문인석이 있는 묘지를 지나는데 비석을 살펴 보지만 오래되어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

이 높은 곳에 있는 묘지인데 후손들이 잘 관리를 하는지 묘지는 잔디가 잘 자라고 있어 오늘 밤 아버님 제사를 지내야 하는 자식으로서 생각하는 것이 많아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완전히 잡목이 사라진 벌목지대에서 우측의 삼방리 마을쪽 비닐 밭과 그 우측 뒤로 보이는 어래산을 조망하고 다시 낙엽 깔린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어래산 393봉 화살표와 글자가 있응 안내판과 그 우측으로 썩어가는 통나무 쉼터 2개가 있는 어래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모래봉 갈림 삼거리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금새 모래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 직전에도 갈림 삼거리이다.

그 갈림 삼거리에 붙어 있는 안내판에는 방향 표시가 헷깔리게 되어 있어 잠시 갈등도 하고 왔다리 갔다리 해 보기도 하는데 쇠실고개는 가운데 태양바위 가는 등로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그곳에서 잠시 좌측으로 흐르는 산줄기를 살펴보니 그곳이 이곳 우측으로 흐르는 정상 가섭지맥 마루금보다 더 높은 마루금이라 생각될 정도로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지고 있어 더욱 헷깔렸던 곳이기도 하다.

모래봉(386봉)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유천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모래봉은 산에 모래가 많다고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금왕읍 백야리와 맹동면 인곡리에 걸쳐 있는 소속리산(432미터)의 서사면에서 발원하는 삼선천과 동산천이 서류하여 유촌리와 삼봉리 간의 계곡을 지나 한천으로 유입되고 있다.
모래봉 앞의 유촌리 웃가래들의 남쪽에는 상촌저수지가 있고 동쪽에는 여우박골, 남쪽에는 척축박골, 동쪽에는 북당골, 북당골 남쪽에는 약산골 등의 골짜기가 있다.
그 외에도 절 터만 남아 있는 절골이 있으며 삼봉리의 가느실 동쪽에는 감자들이, 서쪽에는 봉계테, 음달말이, 남동쪽에는 사곽괭이 등의 들이 있고 가느실에서 인곡리로 넘어가는 곳에는 대구고개가 있다.
금왕읍의 유촌리 웃가래들 앞에 있는 산이며 또한 삼봉리 가느실(일명 세곡)의 앞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모래봉 앞의 유촌리 웃가래들은 유촌리의 으뜸 마을로서 조유안 효자정문이 있고 삼봉리의 능곡에는 여산군 민발 묘가 있다.
삼봉리 앞길 가에 있는 월금바위(월금암)는 조선 세조 때 민발 장군이 어려서 무예를 닦았다고 전해지는 곳인데 민발의 종이었던 월금의 이름을 따서 바위의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모래봉 정상에서도 헷깔리는 이정판 때문에 두어번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갈림 삼거리 이정판을 가로질러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를 타고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니 소나무와 활엽수가 섞여 있는 내리막 낙엽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그 낙엽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앞에 큰 바위 2개가 서 있는데 그 앞에서 저 멀리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쇠살고개로 낮아진 마루금이 다시 높아지며 저 멀리 고사리봉과 우측으로 희미하게 고양봉도 보이는듯 한데 박무로 인해 선명하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 잡목 사이로 금곡리의 마을과 저 멀리 광산지역도 보일듯 내려다 보인다.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낙엽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가끔 차량들이 통행하는 쇠실고개 바로 위 낙엽 공터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출발을 하기로 한다.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2시 40여분을 지나고 있는데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기에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해 보지만 체력적인 문제와 잡목으로 인해 말구리고개까지나 제대로 진행이 가능할지 고민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곳 쇠실고개(599번 2차선 지방도로)는 실제 쇠실고개는 아니고 새로운 도로가 개설되면서 붙여진 이름처럼 보인다.

실제 쇠실고개는 작은 쇠실고개를 넘어 한동안 더 진행한 후 깊은 안부가 지나는 곳이 실제 쇠실고개로 지도에 표기가 되어 있다.

아무튼 쇠실고개는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금곡리와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에 있는 고개로서 이 지역은 과거 신라시대 때부터 전국적 규모의 철 산지로 쇠실(금곡)이라 불리기도 하였는데 현재에도 위쇠실과 아랫쇠실이라는 마을이 있다.
해발고도 약 250미터 정도로서 어래산(396미터)과 고양봉(526미터)을 잇는 중간 지점에 있다.
서쪽 차령산지 부용산(644미터)에서 시작되어 가섭산(710미터)에서 어래산과 고양봉으로 연결되는 동서 지맥상에 있는 고개 중 하나이다.
동서 방향 산줄기를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자르고 있는 구조선을 따라 풍화된 곳이 낮아져 고개로 발달한 곳인데 주변의 다른 고개에 비해 고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금곡리에서 올라 불정면 삼방리로 내려가는 길은 약간의 경사를 지녔을 뿐 그리 험한 고개길은 아니며 오히려 고개에 올라서면 상당히 완만한 능선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변의 어래산과 모래봉 및 꽃지봉(250미터) 일대는 대체로 흑운모 석영편마암(계명산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낙엽수림이 많이 우거져 있다.
그러나 쇠실고개가 있는 곳은 국지적으로 화강암이 관입한 지점으로서 도로변에 깎인 노두를 보면 약간의 풍화층 아래 암반을 관찰할 수 있다.

 

 

쇠실고개라는 이정석과 이동통신탑이 있는 쇠실고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마루금 좌측으로 벌목된 등로가 나타나고 그렇게 잠시 더 가파르게 오르니 276.4 바위봉 직전의 조망처에서 지나온 방향을 살펴보니 저 멀리 모래봉이 올려다 보이고 바로 아래에는 쇠실고개의 599번 포장도로와 이동통신탑이 내려다 보인다.

그 마루금 우측으로는 한덕골의 큰 공장 건물 넘어 저 멀리 흉칙하게 파헤쳐진 채석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고 조금 더 올라 276.4봉인 바위봉에 도착을 해 그곳 정상으로 올라가 보지만 역시나 박무로 인해 뚜렷한 조망이 없기에 조심스럽게 내려 와 다시 마루금을 따라 출발을 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그 벌목지매 아래로는 커다란 공장 건물들이 잡목 사이로 보이고 그 뒤 우측으로는 이제부터 올라야 할 고사리봉이 저 멀리 올려다 보인다.

동지해가 가장 짧기에 오늘 말구리고개까지만이라도 헤드렌턴 불빛 없이 진행하기로 하고 조금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등로 좌측 벌목 지대 아래로는 금곡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방금 전 건너 온 599번 2차선 지방도로도 보인다.

금곡리는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에 있는 마을로서 국귀봉 아래에 자리잡은 농촌마을로 장고개터널이 지나는데 자연마을로는 봉화뚝, 쇠기정이 등이 있는데 봉화뚝은 봉화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쇠기정이는 옛날에 사기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특산물로는 사과순대가 있다.

다시 녹슨 철조망이 나타나는 낙엽 등로를 타고 그 철조망을 왔다리 갔다리 하며 걸어 진행을 하니 지도상 작은 쇠실고개라 생각되는 낙엽 깔린 깊은 안부를 통과한다.

 

 

그 작은 쇠실고개 안부를 건너 오르니 다시 낙엽송 지대가 짧게 이어지고 곧이어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이 시작되는데 높이는 높지 않지만 깊게 깔려 있는 낙엽으로 인해 여간 미끄럽지 않아 어렵게 오른다.

등줄기와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흐를쯤 어렵게 오르니 드디어 350.8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처럼 보이지 않는 능선상 봉우리로서 이곳 역시 잡목들의 저항이 있어 지도를 확인하지 않으면 350.8봉이란 느낌이 전혀 없는 곳이다.

그 350.8봉을 지나 안부를 통과한 후 다시 오르니 소나무가 있는 344봉을 지나 부드럽게 걸어 내려가고 잠시 올라야 할 고사리봉을 조망하며 전진하니 낙엽이 깊게 깔려있는 부드러운 등로가 이어진다.

 

 

부드러운 낙엽 등로를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니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타고 오르니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살펴보니 302봉인데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살펴보면 이곳 소나무에 꽃자봉이란 이정판이 걸려있었다는데 아무리 찾아 봐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누군가 그 안내판을 떼어 낸 듯 보이는데 지도를 살펴보면 꽃자봉은 이 봉우리가 아닌 우측으로 한참 내려간 250.4봉이 꽃자봉이기에 잘못된 이정판을 제거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그 꽃자봉 갈림봉을 지나 내려가다 앞을 살펴보니 저 멀리 부드럽게 올려다 보이는 고사리봉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계속 이어지는 부드러운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낙엽을 밟으며 내려가니 이제 낙엽이 완전히 말라 바스락 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등로 옆에 시멘트 벽돌로 만들어진 작은 벙커가 보이고 곧이어 가파른 내리막 안부로 내려가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진짜 쇠실고개로 표기가 된 안부이다.

이곳 쇠실고개는 충주시 대소원면 금곡리와 괴산군 불정면 외령리를 이어주는 고개인데 이제는 그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찾는 사람이 없으니 조만간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진짜 쇠실고개 안부를 통과한 후 다시 가파른 낙엽 등로를 타고 오르니 부드러운 등로가 이어지더니 금새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 안부를 건너고 오르니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372봉을 지나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382 바위봉에 도착을 한다.

등로 우측으로는 잡목 사이로 괴산군 불정면의 외령리가 내려다 보이는데 외령리는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에 있는 마을로서 불정면의 북부에 위치한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외릉, 영촌, 능현, 지통말 등이 있는데 능현은 외령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로 북쪽 산에 반릉이란 정인지의 묘가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지통말은 종이를 뜨는 지소가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외릉과 영촌의 이름을 따서 외령이라는 명칭이 생겼으며 특산물로 청결고추, 절임배추 등이 있다.

 

 

그 바위봉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산재된 바위 등로를 따르니 무명봉을 지나 낙엽 깔린 안부를 지나고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커다란 상수리 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448.8봉인 고사리봉에 도착을 한다.

이곳 괴산군에 있는 고사리봉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도 자료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이곳 고사리봉이 있는 외령리에 관한 자료를 찾아 봐도 고사리봉에 관한 자료가 보이지 않아 아쉬움만 남기고 출발을 한다.

 

 

커다란 활엽수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고사리봉을 지나 좌측으로 걸어 전진하니 짧은 바위 지대를 지나 멋진 활엽 낙엽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잡목지대를 지나 소나무 등로가 보이고 이제부터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잡목이 자라고 있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앞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높은 연봉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이 산객의 마음을 고민스럽게 만들고 있다.

시간은 이제 오후 3시 50여분을 지나고 있어 조금 더 서둘러 보지만 쉽지 않고 그렇게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 소나무에 커다란 노봉방이 하나 달려있어 사진에 담아 본다.

약재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이 산객의 관심 밖이기에 사진만 한장 남기고 다시 빠르게 출발한다.

 

 

그 노봉방을 지나 걸어 내려가니 이제 억새와 잡목이 섞여있는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후 낙엽 깔린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등로를 타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간벌된 나무들이 널부러진 등로를 지나 참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가 우측으로 꺽여 진행되는데 등로 좌측으로는 거대한 공사 현장이 보이는데 또 다른 산업단지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뒤 저 멀리 보여야 할 부용지맥 마루금과 충주시는 박무로 인해 보이지 않음이 못내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 무명봉이 올려다 보이는 곳을 좌측 낙엽 깔린 우회 등로를 통해 한동안 돌아 걸어가니 등로 좌측의 붉게 드러난 공사 현장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와 있다.

계속 이어지는 낙엽 등로를 타고 바스락 거리는 추억의 소리를 듣다보니 등로 좌측에서 올라 온 비포장 임도가 끝나는 넓은 공터에 도착을 한다.

이제 지도를 살펴보니 방금 전 만났던 등로 좌측의 공사장 같은 곳은 아마도 대영베이스 골프장이 아니였나 생각되는 곳이다.

그 공터를 지나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붉게 보이는 장소가 조금 더 가깝게 보이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빛바랜 대영골프장의 그린이었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잠시 후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414.7봉에 도착을 한다.

 

 

소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414.7봉을 출발하니 이제부터는 멋진 소나무등로가 열려있다.

잠시 그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무명 바위봉을 만나 통과하고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지만 우측으로 휘어지는 잡목 등로를 찾지 못하고 뚜렷한 좋은 직진 등로를 타고 걸어가 짧은 알바를 경험한다.

다시 뒤돌아 와 어렵게 등로 우측의 등로를 찾아 들어가니 억새와 잡목이 우거진 곳을 지나 이장된 묘지를 통과한 후 나즈막한 낙엽 안부를 지난다.

 

 

그 안부를 지나 계속 낙엽진 등로를 타고 좌측 무명봉을 우측으로 우회하며 진행을 하니 충주최공 묘지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저 멀리 외령리 묵방이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 위로 동지의 짧은 겨울해가 힘겹게 걸려 있다.

이제 오후 4시 40여분을 지나고 있으니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말구리고개까지 진행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등로가 좋으면 진행에 큰 어려움이 없겠지만 잡목과 가시나무가 있으면 다시 머리에 헤드렌턴 불빛을 밝히며 내려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묘지에서 짧은 해가 서산으로 빠르게 기울어 가는 풍경을 살펴 본 후 낙엽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고 주능선에 올라 평이하게 걸어 보며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잠시 더 걸어가니 소나무와 바위들이 섞여 있는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거대한 소나무 한그루가 쓰러져 있는 349봉을 지난다.

 

 

다시 평이한 활엽수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눈 앞에 오늘 올라야 할 마지막 484.6 삼각점봉이 잡목 사이로 올려다 보이고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등로를 만난다.

그 바위를 피해 오르니 큰 활엽수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408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그림같은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 본다.

그 뚜렷한 등로를 따라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휘어지며 이어지는데 정상 등로를 찾아 진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렇게 희미한 등로를 찾아 진행을 하니 안부를 지나 또 다른 소나무와 바위들이 혼재되어 있는 442봉에 올라 이제 마지막 봉우리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는 시간이다.

 

 

그 바위 봉우리를 지나 다시 낙엽이 깔려 있는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빛바랜 억새가 한들거리는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바위들이 보이는 오늘 마지막 높은 봉우리인 485.5 삼각점 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곳 정상에서 등로 좌측으로 보여야 할 지난 여름 어렵게 걸었던 부용지맥을 살펴 보지만 보이지 않고 직진 방향의 다음 마지막 구간에 올라야 할 고양봉 방향도 살펴 보지만 보이는 것이 없어 바위 위에 올라갔다 다시 내려 와 곧바로 출발을 해 본다.

 

 

바위들을 지나 다시 나타나는 부드러운 낙엽 등로를 따르니 거대한 바위 2개가 등로 앞을 가로막는 곳에서 등로는 우측 가파른 바위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 등로를 잃어 버리고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따라 내려갔다 짧은 알바를 하고 우측 사면 등로를 따라 어렵게 정상 등로로 복귀를 한다.

하지만 그 정상 등로에는 다시 커다란 바위들이 연이어 이어지고 그 바위 위에 많은 낙엽들이 떨어져 쌓여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조심해 내려가니 등로 우측에 전망바위도 보이지만 별로 보이는 것이 없기에 다시 조심하며 바위를 타고 내려간다.

 

 

그렇게 그 바위 등로를 따라 어렵게 내려가니 갑자기 성의없이 식재된 짧은 소나무 조림지를 통과하고 이제부터는 등로 좌측으로 드넓은 채석장과 설비들이 잡목 사이로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내리막 낙엽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낙엽송 등로가 짧게 나타나고 곧이어 묘지가 있는 조망처에 도착을 해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고양봉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살펴 본다.

마음 같아서는 어둡더라도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하고 집으로 복귀하고 픈 마음 간절했지만 아버님 기일이기에 제사로 인해 아쉬운 마음 달래며 말구리고개에서 산행을 마무리 하자고 변경을 한다.

 

 

이제 등로 좌측으로는 에이치엠유라는 채석장이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 하늘엔 붉은 달이 벌써 떠올라 있다.

잠시 뚜렷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는 이제 잡목과 잡풀 그리고 가시나무가 완전히 뒤덮어 진행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고 이리저리 살피며 진행 가능한 등로를 찾다 보니 벌써 하루해가 저물어가며 뉘엿뉘엿 어둠이 밀려오고 있다.

어렵게 그 가시나무 지대를 지나 진행을 하니 지도에도 없는 안부를 지나 정말 마지막 나즈막한 봉우리로 향한다.

 

 

다시 낙엽이 깔려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관목과 잡목이 우거져 있는 마지막 275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이곳에서부터 등로는 여전히 관목과 잡목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내려가니 무명봉을 좌측에 두고 우측 사면 등로를 따라 이어지고 곧이어 절개지에서 우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오늘 산행 종착지인 6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말구리고개 직전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지나온 마루금을 살펴보니 저 멀리 어둠속에 485.5 삼각점봉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오는 말구리고개에 도착을 해 대소원면 택시를 부르고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고갯마루 정상부에 있는 말구리고개라는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그 유래를 찾아 보니 말구리고개(말구리재)는 충주시 대소원면과 괴산군 불정면을 이어주는 6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이다.
말구리재 좌측엔 말구리고개 표석과 우측엔 성황당지지 표석이 있는데 성황당지지는 옛날에 이곳에 성황당이 있었으나 도로개설로 성황당이 없어져 여기 모시던  혼령들이 안식처를 읽게 되어 그 혼령들을 위로하고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드리기위해 세운비란다.
지명은 큰 골짜기를 의미하는 말구리와 고개를 의미하는 재와 합성 지명으로 보고 있으며 또한 말의 허리처럼 생겼다 하여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는 말골이나 말구리의 말을 말로 해석한 것이다.

 

잠시 후 도착한 택시를 타고 충주로 들어가 간단히 샤워를 하고 고속버스를 이용해 서울로 복귀해 늦은 밤에 아버님 제사를 지내며 길었던 하루를 마감해 본다.

이제 가섭지맥도 한번만 더 내려오면 마무리가 되고 남아있는 오갑지맥만 마무리가 되면 음성으로 내려 올 기회는 많이 줄어 들겠지만 일이 있으니 그래도 가끔은 들리는 도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내년 2016년 1월 3일까지 10여일을 쉬기에 가능하면 남쪽으로 내려가 고흥지맥이나 여수지맥 중 한곳을 완주 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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