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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가섭지맥(부용·완)

가섭지맥 제1구간 음성궁도장에서 미타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5.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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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북도 음성의 가섭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5년 10월 18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맑고 화창하여 산행하기 좋았지만 산행 시작시간인 점심에는 약간 무더위를 느꼈던 날씨

산행온도 영상 12도에서 영상 21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활터 음성가섭정(음성 궁도장, 516번 2차선 지방도로)-음성 궁도장 주차장(부용산등산로안내도)-낙엽송 등로-전망바위-이정표(부용산

                 전망대 3.2 Km, 궁도장 0.5 Km, 숫고개 0.6 Km)-산불감시초소-496봉-부용지맥 마루금-가섭지맥 분기점-벌목지대-잡목 가시넝쿨지대-

                 안동김공묘지-밤나무 지대-사과과수원-시멘트 포장도로-봉주사-용산4리마을-숫고개(용광로, 516번 2차선 지방도로)-시멘트 포장도로-

                 도로공사장-비포장 임도-폐가-묘지지대-능선진입-잡목지대-주능선-선지봉(두호2봉) 이정표(수리봉 1.3 Km, 두호1봉 1.4 Km)-관리

                 사무소 갈림 삼거리 안부 이정표(수리봉 1.1 Km, 두호2봉 0.2 Km, 관리사무소 1.3 Km)-518봉-이정표(수리봉 0.5 Km, 두호2봉 0.8 Km)-

                 522봉-이정표(중계소 1.5 Km, 두호2봉 1.3 Km, 산림욕장 1.4 Km)-봉학산(수리봉, 578봉)-조망처-14번 송전탑-길마재

                 이정표(가섭산 0.9 Km, 수리봉 0.6 Km, 관리사무소 1.0 Km)-565봉-이정표(중계소 0.2 Km, 길마재 0.7 Km)-임도 갈림 삼거리

                 이정표(중계소 0.1 Km, 길마재 0.8 Km, 임도 0.7 Km)-군부대 철조망-가섭산(709.9봉 정상석) 무인산불감시카메라-방송국 철조망-가섭산

                 봉수대-가섭산 삼각점-조망처-나무계단-시멘트 포장도로-mbc와 kbs 가엽산 송신소-철조망과 콘크리트 옹벽-능선진입-원형벙커-

                 634봉-소나무 등로-592봉-로프구간-462 타이어봉-437 갈림봉-군부대 초소-군부대 철조망-능선진입-이장된 묘지-475봉-무명안부-

                 미타사 갈림 안부-비포장 임도-미타사-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0.71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잡목과 가시넝쿨 그리고 과수원을 우회하며 어렵게 진행하며 05시간 31 (12시 43부터 18시 15분까지)

교통편 : 애마와 대중교통 및 택시 이용

가섭지맥이란 ???

백두대간이 속리산의 천황봉(1057 미터)에서 한남금북정맥으로 분기하여 음성지방의 보현산(478 미터)에서 지맥을 이루어 부용산(644 미터)으로 향하던 중 493봉에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가섭산(709.9 미터), 어래산(393 미터), 고양봉(503 미터), 풍류산(485.2 미터)을 세우고 달천 하문리 하소마을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4 Km 정도 되는 산줄기를 가섭지맥이라 한다.

 

 

새로운 마루금에 올라 맥 잇기 산행의 어려움을 제대로 느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면서 조금은 나태해지고 홀로 긴 시간 맥 잇기 산행을 하면서 피곤함이 쌓이는지 요즈음 들어 산에 들기가 쉽지 않아 다시 마음 다잡기 위해 일요일 처갓집에서 올라오는 길에 잠시 진행하고자 준비를 했던 가섭지맥을 다녀오기로 한다.

옆지기와 큰 아이는 함께 서울 집으로 복귀하자고 하지만 집으로 올라가도 방바닥에 뒹굴고 있을 것이 뻔하기에 다시 마루금 산행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겼는지도 모를일이다.

어제 함께 산행을 즐기는 종주대 6명이 함께 팔공기맥 제4구간인 팔공산 구간을 산행 한 후 올라오며 이 산객만 대전에 내려 동서들과 탁배기 한잔 마시고 처갓집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들깨를 털고 올라가다 홀로 음성에 들려 새로운 가섭지맥 산행을 진행해 본다.

원래 계획은 다음에 새벽 일찍 내려 와 한번에 마무리를 하였으면 하였는데 산행거리가 애매해 오늘 조금이라도 걸어 놓은 후 남아 있는 거리는 다음에 내려와 마무리를 하기로 하고 진행을 해 보는 시간이다.

다만 산행 후 귀경편의 차량이 쉽지 않아 고생을 하였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잘 산행 후 귀가를 할 수 있어 다행이었던 시간이기도 하였다.  

 

산행 들머리인 음성 궁도장을 출발해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기온도 오르고 몸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어제의 팔공기맥 산행으로 인한 피로도가 밀려오며 산행속도가 전혀 나질 않는다.

쉬엄 쉬엄 천천히 오르니 따뜻한 등로에서 갑자기 튀어 오른 뱀 한마리로 인해 등줄기에 땀이 흥건히 맺힐쯤 등로 우측 바위가 보이고 잠시 그곳으로 가 살펴보니 방금 전 산행을 시작한 음성궁도장 건물이 살짝 보이고 그 아래 용산저수지 넘어 오늘 넘어야 할 가섭지맥의 주산인 가섭산이 정상에 수많은 인공 구조물을 이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눈에 들어 와 잠시 쉬어간다.

오래 전 일 때문에 음성을 들렸다 애마를 이용해 정상에 올라 가섭사를 둘러 보고 언젠가는 가섭지맥 산행을 하면서 꼭 다시 한번 올라 보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 되었다.

  

이곳 음성 궁도장은 이제 네번째 방문이 되었지만 가섭지맥 산행을 실지로 실시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다.

처음 한번은 들렸다 카메라를 잊고 와 포기했고 또 한번은 들렸다 무더위로 다음을 기약했고 최근에 문수지맥 산행 후 귀가중에 들려 짧게나마 산행을 하려고 찾았지만 이슬비가 내려 포기하고 귀가를 했던 기억이 생생한 곳이다.

이곳 음성궁도장은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있는 국궁 전수 시설로 음성궁도장은 음성군 궁도협회 산하의 사정인 가섭정을 의미한다.
사정이란 활을 쏘려고 세운 정자를 의미하며 사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궁도 단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음성궁도장은 1993년부터 음성군 궁도협회에서 위탁과 운영 및 관리를 하고 있으며 1995년 제34회 충청북도 도민체육대회 궁도 경기를 개최하고자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시행하여 약 660㎡ 규모의 현대식 건물로 증축하였다.
용산리 저수지가 음성궁도장 바로 앞에 있으며 옆 계곡에는 봉학골 산림공원이 있다.산행 준비 후 주차장을 출발하며 잠시 뒤돌아 보니 용산저수지와 그넘어 가섭산이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으로 다가오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이 쉽지는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에 마음을 다잡아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음성궁도장에서 용산저수지와 가섭산을 조망한 후 산행 준비 후 궁도장 주차장 제 일 윗쪽으로 올라가니 그곳에도 넓은 주차장이 보이는데 주차장 우측 뒷쪽에 커다란 부용산 등산로 안내도가 보인다.

처음에는 왜 가섭산이 아닌 부용산 등산로 안내도일까 궁금했었는데 살펴보니 부용산이 가섭산보다 훨씬 가깝기 때문임을 알게 된 것은 금새이다.

그곳 부용산 등산로 안내도를 사진에 담고 그 우측 능선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또 새로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시작해 보는 시간이다.

 

등로를 타고 능선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등로는 잘 발달되어 있어 진행에 큰 어려움은 없지만 밤 가시가 떨어져 미끄럽기 때문에 조금은 조심스러운 시간이다.

잠시 더 오르니 멋진 낙엽송 지대가 나타나고 등로는 더욱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변하는데 갑자기 등로 앞에서 빠른 움직임이 포착되어 살펴보니 길이 1미터쯤 되어 보이는 뱀 한마리가 등로에서 이 산객 방향으로 내려오다 갑자기 방향을 틀어 우측 숲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독이 있는 독사 종류는 아닌듯 하지만 너무나 갑작스런 상황에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릴 정도로 긴장을 하고 이제부터 등로를 살피며 걸어가는 시간이 파충류로 인해 더욱 조심스러운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올라 등로 우측에 있는 전망바위에서 용산저수지와 앞으로 진행해야 할 선지봉과 가섭산을 살펴본 후 다시 오르니 가팔랐던 등로를 올라 우측으로 숫고개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 삼거리에 서 있는 이정표를 만나 직진의 부용산전망대 방향으로 계속 걸어 오른다.

용산리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에 속하는 법정리로서 용추리의 용자와 중산리의 산자의 각 한 글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음성군 동도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현리, 월곡리, 중산리, 용추리, 사인동을 병합하여 용산리가 되었다가 1956년 7월 8일 음성면이 읍성읍으로 승격되었다.
북부에 선지봉(565봉)과 가섭산(710봉) 등의 높은 산이 있으며 이들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용산리 저수지를 이루고 유역에는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고 사정이고개, 중고개, 질마재, 기름고개, 장고개 등이 있다.
음성읍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한벌리와 서쪽은 감우리 및 사정리와 남쪽은 읍내리 그리고 북쪽은 충주시 신니면과 각각 접하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가섭사, 삼보사, 상봉악사지, 가섭산 봉수지가 있으며 이밖에도 박세화를 봉안한 충룡사와 봉학골에 산림공원이 있다.
자연 마을로는 거린내, 건지봉, 남산말, 뒤뜰, 봉화골, 사인동, 생골, 용추 등이 있다.

 

잠시 더 오르니 무명 공터봉이 나타나고 그 봉우리를 넘어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안부를 지나 멋진 소나무 등로를 만난다.

다시 무명봉 하나를 넘어 내려가 안부를 지나 오르니 갑자기 나뭇가지들로 인해 조망 하나 없는 무명봉에 비어있는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어 홀로 웃음을 참아 보는 시간이다.

전형적인 탁상 행정이 아닐까 생각되는 예로서 산불 감시를 위해서는 조망이 좋고 잘 보이는 곳 정상부에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내용인데 이곳은 산불 감시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이 이런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으니 웃음만 나오는 시간이다.

 

그 산불감시 초소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진행하니 나무 그늘 사이로 들어 오는 따스한 햇살이 오후의 산속을 그윽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갑자기 발 앞에 움직임이 포착되고 살펴보니 작은 독사 한마리가 이 산객을 노려보고 있다.

갑짝 놀라 살펴보니 올해 태어났는지 아니면 작년쯤 태어난 작은 독사로서 꼬리를 살짝 흔드는 것이 방울뱀을 연상시키고 있다.

스틱으로 건드려 보지만 숲속으로 들어갈 생각을 안하기에 스틱으로 숲속으로 밀어 넣은 후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니 496봉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공터에 도착을 한다.

 

그 496봉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직진 방향으로 진행을 하니 완만하게 내려가고 안부에 도착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삼성목장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어 깜짝 놀라 지도를 살펴보니 잠시 알바를 하고 있는 중이다.

다시 496봉 방향으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올라 그 496봉 도착하기 직전 좌측으로 가섭지맥 분기점이 보이고 하나의 띠지가 걸려있는데 확인하지 못하고 내려갔다 올라오며 짧은 알바를 경험하는 시간이다.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올 여름 고생하며 걸었던 부용지맥 마루금으로서 이제 부용지맥과 헤어져 가섭지맥 마루금을 타고 산행을 해야 하는 장소에 도착을 한 것이다.

부용지맥은 한남금북정맥 상의 보현산(483봉)에서 분기해서 사정고개, 부용산(644.3봉), 수레의산(678.8봉)을 지나며 북쪽으로 이어가다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승선고개, 매방채산(375봉), 자주산(483.6봉), 평풍산(395봉), 삼봉(276.6봉)을 지나 요도천이 남한강에 합수하면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3.1 Km의 산줄기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가섭지맥 마루금으로 들어 진행을 하니 처음부터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만나 내려가는데 활엽수림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등로에 수북히 쌓여 미끄럽기 때문에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잠시 내려가니 가뭄속에서도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을 만나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빼곡히 자라고 있는 관목을 헤치며 내려가니 등로에는 간벌된 나무들이 쓰러져 썩어가며 산행에 지장을 주고 있다.

조심하며 잠시 더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우측으로 벌목된 장소가 나타나고 그 벌목된 곳을 통해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용산4리 마을과 숫고개 넘어 선지봉과 수리봉 지나 우측 저 끝자락에 가섭산까지 시원하게 조망이 되고 있어 발걸음 멈추고 잠시 풍경을 즐겨 본다.

 

아름다운 단풍나무에서는 화려한 단풍이 들면서 산객의 발걸음을 자꾸만 붙잡고 늘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잠시 더 그 벌목지대를 따라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며 키 큰 잡목과 잡풀 그리고 가시나무들이 등로를 가득 메우고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온몸에 생채기를 내며 힘들게 내려가니 마지막으로 칡넝쿨을 지나 안동김공 묘지를 만난다.

 

그 안동김공 묘지를 지나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임도 우측으로 밤나무가 보이고 곧이어 좌측으로 아름다운 사과과수원이 나타나는데 이곳에도 붉게 익어가는 사과가 나무마다 가득 매달려 있다.

지난 주 문수지맥 산행을 하면서 봉화에서도 많은 사과과수원을 만나 조심스럽게 산행을 했는데 이곳 음성도 역시 사과과수원이 자주 눈에 들어 온다.

조심하며 사진 몇장 남기고 걸어가니 곧이어 비포장 임도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도로 우측에 봉주사라는 절같지 않은 절이 나타난다.

 

그 봉주사를 지나 마을쪽으로 걸어 내려가니 이곳은 바로 용산4리 마을길로서 원 가섭지맥 마루금은 이 포장도로 좌측으로 이어지지만 많은 농작물들이 있는 밭과 민가쪽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이곳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숫고개로 내려가게 된다.

용산리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북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동쪽으로 가섭산이 있고 국도변 가섭산 아래에 용산리 저수지가 있다.
본래 음성군 동도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탄현리, 월곡리, 중산리, 용추리, 사인동을 합하여 용추리의 용자와 중산의 산자를 따서 용산리라 하고 음성면에 편입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생골, 큰골, 거리내(거황천), 죽말, 지검말, 건지봉, 외딴말, 뒤뜰, 목골, 용추, 무수막, 광벌, 샛터, 잣나무골 등이 있으며 용산리 목골 가섭산에는 가섭사가 있다.
고려 공민왕 때 창건하여 조선 인조 때 벽암대사가 중수했다고 전하는데 1938년 화재로 불탄 것을 1940년에 재건하였다.
용산4리 마을를 관통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인삼밭을 지나 이제부터 올라야 할 선지봉과 봉학산 그리고 우측 끝자락에 가섭산이 아름답게 올려다 보인다.

 

연곡사를 두고 계속 내려가니 도로 우측에 용산4리경로당 건물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나타나는 삼거리 갈림ㄱ실에서는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숫고개 방향으로 걸어본다.

그렇게 등로 좌측 방금 전 내려 온 방향으로 가섭지맥 분기봉을 올려다 보며 걸어가니 516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숫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한쪽에는 수많은 이동통신 안테나와 설비관련 자재들이 가득한 전봇대 하나도 보인다.

숫고개는 충청북도 음성군의 음성읍 용산리에서 충주시 신니면 광월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예전에 숯을 많이 구웠다 하여 숯고개라 하였다고 하며 한자로는 탄현 또는 탄치로 표시하였다.
숯고개는 옛 음성현과 충주목의 경계 지점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여지도서를 비롯한 여러 고지도에 표시되어 있으며 1872년지방지도에는 관아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고 이 길은 지금의 음성읍 용 산리 새터 부근에서 갈라져 한 길은 사정리로 이어지고 다른 한 길은 탄치를 거쳐 봉황산 넘어 충주로 가는 길이 된다.

이 숫고개에서 도로를 건너 용광로라는 도로 표지판이 가리키는 우측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농촌임을 알리는 트렉터 한대가 서 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에 인삼밭을 두고 올라가니 금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 갈림 삼거리에서는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 본다.

잠시 올라가니 앞으로 올라가야 할 선지봉 방향이 올려다 보이고 우측으로 넓은 채석장인지 아니면 공사를 하다 중단된 곳인지 모를 깊고 넓게 땅이 파헤어쳐진 곳을 지난다.

그곳을 지나 잠시 더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만났던 등로 좌측으로 이제 뼈대만 남아 있는 폐가가 된 기와집 한채가 보인다.

이곳에서부터는 밭 둑을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보는 시간이다.

 

그곳 폐가가 된 기와집을 지나니 들깨를 베어 말리고 있는 풍경이 보이고 그 들깨밭 둑으로 이어지는 등로에는 검정 천으로 막아 출입을 막고 있다.

어렵게 그 검정 천막을 지나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진행한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바로 발 아래에는 숫고개쪽 도로도 내려다 보인다.

이제 용산리 마을과 헤어져 능선으로 오르며 가섭산으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곳에 도착을 한 것이다.

 

밭 둑을 통해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이제 등로 좌측으로 몇기의 잘 가꿔진 묘지들이 보이고 그 묘지 뒷쪽으로는 멧돼지들의 출현을 막기 위한듯 검정 천으로 가림막을 설치해 놓은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 묘지있는 곳으로 올라 묘지 뒷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들어가 산행을 이어가니 한동안 잡목과 관목이 우거진 등로를 지나 주능선에 도착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잠시 절개지가 나타나며 시원한 조망이 펼쳐져 있다.

살펴보니 용산리 마을 지나 저 멀리 올 여름 어렵게 진행을 하였던 부용산과 부용지맥이 보여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다시 주등로로 복귀해 걸어가니 선지봉으로 가는 주등로와 만나 이제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올라간다.

소나무와 활엽수가 섞여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멋진 소나무들을 지나 바위 위에 좁은 공터가 있는 지도상에는 선지봉이지만 현지에는 두호2봉이라 적혀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한다.

나무들로 인해 조망은 거의 없는데 지나온 방향으로는 두호1봉이 그리고 진행방향으로는 수리봉이란 글이 보인다.

선지봉과 두호2봉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잠시 그 선지봉인 두호2봉에서 사과 하나를 먹고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기 직전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부용산이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을 받아 박무속에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소나무들이 등로를 채우고 있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저 멀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내려가 살펴보니 등로 우측으로 관리사무소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 삼거리이다.

왜 자꾸만 관리사무소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 이정표가 서 있을까 궁금해 살펴보니 등로 우측으로 봉학골이 있는데 그곳에 산림욕장이 조성되어 있다.

봉학골 산림욕장의 휴양지란 편안히 쉬면서 몸과 마음을 보양하기에 알맞은 곳을 말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수려한 산세의 봉학산과 봉학골 골짜기의 봉학골천에 입지하고 있는 봉학골 산림공원은 휴양지로서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1996년 6월에 개장한 봉학골 산림욕장은 음성읍과 가까워 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근처에 용산저수지와 가섭산이 있는 천혜의 쉼 터이기도 하다.
음성군에서는 매년 봉학골 산림욕장의 시설을 보강하여 교육과 휴양, 문화, 생태 체험의 장으로 발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봉학골 산림공원이 깃들어 있는 봉학산은 질마재 서북쪽에 있는 산으로 풍수지리상 산의 형태가 백학이 짝을 지어 날고 있는 백학쌍비형의 형세를 지녔다고 알려진 곳이다.
봉학산 아래 봉학골 골짜기에는 길게 뻗은 잔등 모양이 방아다리 같다고 하여 붙어진 방아다리가 있고 골짜기의 모양이 삼태기 같다는 삼태미골이 있으며 또한 예전에 수리들이 많이 와서 집을 짓고 살았다는 수리덜미가 있다.
봉학산 아래 산림욕장 상단부에 있는 사방댐에서 시작하는 봉학골천은 산림욕장을 관통하여 골짜기를 흐르면서 주위의 울창한 숲과 어울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다가 산림욕장의 주차장 옆을 지나 용산저수지로 흘러 들어간다.
봉학골천은 1997년의 소하천 정비 공사와 2001년의 1,095m의 계류 공사 등으로 하폭은 좁아졌지만 비교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개울에는 낮은 수중보를 설치하여 평소에도 물이 고여 있는데, 수중보를 넘어 졸졸졸 흘러가는 물소리만 들어도 즐거운 느낌이 드는 곳이다.

 

봉학골 갈림 삼거리에 서 있는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무명봉이 나타나고 그 무명봉을 넘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다시 아름다운 단풍이 펼쳐져 있어 잠시 쉬어간다.

단풍을 지나 진행을 하니 간벌된 거목들을 잘라 놓은 나무토막들도 보이고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잘려진 나뭇토막들이 벤취처럼 널려있는 좁은 공터의 소나무봉에 도착을 한다.

나무들로 인해 조망이 없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그 518봉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올라본다.

 

다시 아름다운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섞어가는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곳을 지나 우측 아래로 우회하는 등로를 통과하고 작은 바위굴을 넘는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붙잡아 잠시 쉬어 간다.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을 하지만 역시 계절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듯 이제 적은 식수를 준비해도 충분할 정도로 물 마시는 횟수도 줄어 들고 있다.

 

다시 걸어가니 이정표 하나가 서 있고 그 이정표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른다.

멋진 소나무 등로도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작은 자갈들이 박혀있는 등로를 지나 잠시 더 쉬어 가기로 하며 식수 한모금 마셔본다.

잠시 후 다시 만나는 이정표를 보니 이제 가섭산 정상에 있는 중계소 방향이 나타나는데 선지봉인 두호2봉과 가섭산 정상의 중간쯤 되는 장소로 보이는 곳이다.

살펴보니 이곳이 수리봉이라 생각되는 장소인데 가섭산은 등로 좌측의 직진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우측으로도 넓은 공터가 있고 하얀 철판이 서 있어 가본다.

 

그 이정표를 지나 우측 하얀 철판이 서 있는 곳으로 들어가 보니 하얀 철판에는 578봉인 봉학산 아래 수리봉이라 적혀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색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

봉학산(수리봉, 578봉)은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선당리와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조선환여승람에서 봉학산은 충주에서 서쪽으로 50리 떨어진 지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전하며 산의 형태가 백학이 짝을 지어 날고 있는 백학쌍비형이라서 붙어진 이름이다.
봉학산은 높이 578미터이며 서북쪽에는 부용산(644미터)이 있고 동남쪽에는 가섭산(710미터)이 있으며 서쪽에는 숯고개(일명 숫고개)가 있다.
봉학산 북부에는 동북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선골이 있고 신니면 선당리 선당마을에는 1945년에 축조된 선당저수지가 있으며 저수지의 물은 신니면 원평리에서 요도천으로 유입되고 있다.
봉학산 남서쪽의 용산리쪽에는 봉학골, 중산골, 방아다리, 산태기골 등의 골짜기들이 있고 예전에 수리들이 살았다고 하는 수리덜미가 있다.
봉학산 서쪽에 있는 상봉악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조선시대에 빈대가 많아서 폐사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기와와 토기편이 발견되고 있으며 상봉악사에 유래되어 봉학골을 일명 봉악골이라고도 한다.
봉학산 동남쪽의 봉학골에서 용산리 잣나무골(일명 백동)로 흐르는 봉학천은 용산리삼림욕장의 사방댐 부근에서 삼림욕장을 관통하여 흐르는데 주위의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고 북서쪽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수와 함께 1973년에 축조된 용산저수지로 유입되고 있다.
충주시 신니면 선당리에서 음성군 용산리 잣나무골로 넘어가는 가섭산과 봉학산 안부에는 소 질마처럼 생긴 질마재가 위치하고 있는데 옛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신니면 선당리에는 선골(일명 선동), 너머선골 등의 자연부락에 발달되어 있고 용산리에는 잣나무골, 새터, 숫고개 등의 자연마을이 발달되어 있다.
용산리의 봉학골에 있는 봉학골삼림욕장(일명 용산리삼림욕장)에는 조각공원, 맨발숲길, 식물원, 산책로, 자연학습장, 삼림욕장 등의 다양한 위락시설과 정자, 간이수영시설, 텐트장 등의 편이시설 등이 있어 봄철이나 가을철에 많은 삼림욕객들이 찾는다.

처음 보는 산이름이지만 음성군에 들어가 자료를 찾아 보니 이런 설명이 있어 그 자료를 올려 본다.

 

칼날 등로가 있지만 조망이 전혀 없는 봉학산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나오는 방향 우측 아래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타고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다 등로 우측의 소나무 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가섭산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등로 우측에 전망처가 나타나고 잠시 올라 진행방향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가섭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한번 올랐던 가섭산이지만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올랐기에 이쪽에서 오르는 풍경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가섭산 우측으로 음성읍 방향과 그 뒤로 펼쳐진 멋진 한남금북정맥 마루금도 살펴본 후 다시 그 조망처를 내려가 정상 등로를 타고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등로 좌측에 14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그 송전탑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몇그루의 잣나무 군락지와 함께하는 길마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우측으로 봉학골 산림욕장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 이정표가 서 있다.

길마재는 충주시 신니면 선당리 사람들이 음성 장에 다닐 때 넘나들던 고갯마루로서 그 생김새가 마치 길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길마란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기 위하여 소나 말 따위의 등에 얹는 안장을 말한다.

 

길마재 안부에는 2개의 다른 이정표가 서 있어 모두 사진에 담고 그곳 길마재 안부를 출발해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한다.

잠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올라가니 이제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조망이 펼쳐지는데 살펴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산행을 시작한 용산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한남금북정맥 마루금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잠시 더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온 봉학산이란 수리봉이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고 그 우측 저 멀리 선지봉 즉 두호2봉도 올려다 보인다.

 

다시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용산저수지와 그 좌측으로 멋진 산그리메가 펼쳐져 있는데 지도를 펴 놓고 살펴보니 그쪽 방향에 한남금북정맥 마루금이 있는데 보이는 산줄기가 정맥 마루금인지는 확실치 않다.

용산리저수지 바로 뒤로는 도락골산이 보이고 그 뒤로는 저 멀리 소속리산에서부터 좌측 가까운 방향으로 보현산까지 펼쳐져 있다.

저 보현산은 바로 지난 여름에 올랐던 부용지맥 분기점으로서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며 홀로 웃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멋진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이제 완연하 가을 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을 하고 있다.

잠시 더 오르니 소나무 몇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무명봉을 지나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안부를 통과하여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른다.

그렇게 조금 더 오르니 등로 좌측에 국가지정번호와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다시 낙엽이 가득 깔려있는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금새 또 다른 이정표가 서 있는데 살펴보니 등로 우측으로 임도로 갈 수 있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이다.

이곳에서 잠시 헷깔려 임도방향으로 몇발자국 갔다가 뒤돌아 올라 직진 방향인 중계소 방향으로 걸어 올라 본다.

임도를 따라 올랐던 기회는 있었지만 이곳 주능선을 타고 가섭산 정상석으로 향하는 시간은 처음이기에 조금은 설레이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 임도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직진의 중계소 방향으로 오르니 금새 등로 우측으로 철조망이 나타나고 그 철조망에는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있다.

가파르게 오르니 철조망 우측으로 군부대 막사라 생각되는 건물이 보이고 곧이어 거대하고 높은 송전탑 하나가 눈길을 잡는다.

초병과 잠시 이야기 나눈 후 다시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녹슨 창고형 건물이 보이는데 주위는 모두 철조망으로 막아 놨지만 오래전부터 사용하지 않는듯 모두 녹이 슬어 있다.

그곳을 지나 오르니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있는 가섭산 정상에 도착을 해 정상석에서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가섭산(해발710m)은 음성군과 충주시 신나면을 경계로 짓고 북면과 남동을 축으로 좌우로 넓게 발달한 산세를 보이고 있는데 서쪽으로는 음성읍 용산리와 용산 저수지를 거쳐 숯고개에 이르러 부용산과 접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충주시 신나면 송암리의 저주시를 비롯하여 용원리, 마수리 및 화안리의 농경지역에 연결되면서 완만한 구름을 형성하고 있다.
산 정상에는 봉화대 설치되어 있어 충주 마산의 봉수와 통하고 북쪽으로는 삼성면 마이산 봉수와 통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통신시설이 설치되어 보이지 않는 무선통신시설들이 봉화대를 대신하고 있다.
가섭산을 오르다 보면 산마루터에 있는 가섭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절은 고려 공민왕때 창건된 절로 상당히 오래된 사찰로 추정되어 사찰을 구경한후 가섭사 돌사이에서 솟아나오는 차고 감미로운 물이 있는데 물맛이 너무좋아 감로정이라고 한다.
가섭산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처음 확인되는데 즉 봉화가 1곳이니 가섭산이며 남쪽으로 충주 임내 익안의 마산에 그리고 북쪽으로 충주 망이성에 응한다라고 적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찰 서가섭사 기록이 있으며 지금의 가섭사가 있는 자리가 바로 서가섭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두산백과사전에 의하면 가섭사는 1365년(고려 공민왕 14)에서 1376년(우왕 2) 사이에 나옹화상 혜근이 창건하였다고 하고 따라서 가섭산은 원래 이름이 따로 있다가 가섭사가 창건된 이후 절 이름을 따서 가섭산이라 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며 혹은 가섭사가 창건되면서 비로소 이름을 갖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해동지도에는 고을의 북서쪽에 가업산이 표시되어 있으며 가업산 봉대도 함께 표시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고을의 북쪽 가섭산과 가섭사가 같이 표시되어 있는데 가섭산은 관으로부터 15리 거리에 있으며 봉학산에 이어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섭산의 서쪽에 위치한 봉학산은 보현산에서 마곡산, 오두산, 증산, 백마산 등이 고을을 S자 모양으로 둘러싸며 이어져 고을 남서쪽의 청안계에 닿는다.

 

가섭산 정상석에서 추억을 몇장 남기고 이제 주위 조망을 살펴보는데 약간의 박무로 인해 시원한 조망과 풍경은 없지만 아쉬운대로 즐겨볼 수 있는 조건이다.

제일 먼저 북쪽으로 조만간 올라야 할 오갑지맥 상의 원동산과 그 우측으로 45번 지방도로를 건너 국망산과 보련산이 어서오라 손짓을 하고 있다.

그 앞으로 펼쳐진 신니면의 좁은 들판은 이제 완전한 황금들판으로 변해가고 있음도 내려다 보인다.

 

그 오갑지맥 마루근과 국망산 및 보련산 우측으로는 나즈막한 부용지맥의 자주봉산과 병풍산이 끊어질듯 이어지는 산줄기를 만들고 그 앞쪽으로 신니면의 황금 들판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신니면 마수리 마을로서 마수리는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가엽산 아래에 자리잡은 중산간마을로 신덕저수지와 요도천 및 선당소류지가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들둑개, 마제, 세말, 절말, 온수골이 있다.
들둑개는 옛날 이곳 하씨 문중의 장사가 큰 돌을 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마제는 마수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뒷산 모양이 말 발굽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세말은 근년에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절말은 마을에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온수골은 옛날에 옻샘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산물로는 참샘골 방울토마토, 신화배 등이 있다.

 

이제 가섭산 정상에서 남서쪽인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음성읍을 지나 저 멀리 음성의 산그리메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그속에 지난 날 어렵게 걸었던 한남금북정맥 산줄기도 찾아보니 부용지맥 분기점인 보현산과 큰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도 펼쳐져 있다.

모두 걸었던 산줄기들이지만 박무로 인해 선명하지 않으니 다녀온 등로라 하더라도 헷깔리는 시간이기에 아쉬움이 크다.

 

그렇게 한동안 그 가섭산 정상석이 있는 무인산불감시카메라에서 많은 시간 조망을 즐긴 후 봉수대 방향으로 걸어가니 하얗게 피어 있는 억새가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전선과 저 멀리 송신수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가니 이제 등로 우측인 서산으로 짧아진 하루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산행하기 좋은 날씨이지만 벌써 하루 해가 짧아져 산행 시간이 단축되는 것이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잡풀과 억새가 우거진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옆에 국사시설보호구역이란 콘크리트 말뚝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눈 앞에 가시가 달린 철조망이 가로 막고 있다.

그곳 철조망 앞에서 초병이 나와 접근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방법이 없으니 잠시 철조망을 따르다 멀어지겠다고 양해를 구하니 허락을 해 주고 좌측 철조망을 타고 한동안 진행을 하니 눈 앞에 다시 철조망이 보인다.

그 철조망 안에는 높은 이동통신 통신탑이 서 있어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그 우측 아래에 있는 헬기장과 오래 전 애마를 끌고 올라와 잠시 머물던 시멘트 포장도로 쪽을 살펴보니 저 멀리 한남금북정맥의 보현산 방향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그 한남금북정맥 좌측으로는 저 멀리 음성 지나 괴산쪽 산그리메가 펼쳐져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 역시 한남금북정맥 마루금으로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강렬한 햇살로 인해 개별 산 이름은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

오래 전 음성에서 일을 마치고 잠시 이곳 가섭산 정상부로 애마를 끌고 올라 와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가섭사에 들려 사진 몇장 남겼던 사진을 꺼내 살펴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렇게 가섭산 정상부의 수많은 송전탑과 무인산불감시카메라 그리고 수많은 철조망을 지나 주능선으로 들어가니 등로 한가운데에 옹기를 굽는듯한 굴뚝이 보여 살펴보니 그 봉수대 한쪽에 쓰러진 가섭산봉수대 안내판이 보인다.

가섭산봉수
충북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와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의 경계를 이루는 가섭산 정상부에 설치되어 있는 봉수대이다.
봉수는 말 그대로 밤에는 봉(횃불)으로 낮에는 수(연기)로 급보를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및 제도인데 고대부터 사용된 방법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속적으로 운영되다가 1894년 폐지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봉수 관련 유적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것으로 특히 조선 세종 때 봉수대 시설의 규칙과 전달 방법 및 노선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봉수는 연변 봉수, 내지 봉수, 경봉수로 구분되었으며 지방에서 운용된 권설봉수도 있었으며 노선으로는 국경 지역에서 도성에 이르는 5개의 직봉 노선과 직봉으로 합류하는 간봉 노선이 있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운영된 봉수로 음성의 진산인 가섭산 정상부에서 약간 북쪽으로 치우진 능선에 위치하는데 음성 읍내의 북쪽에 우뚝 솟아 있어 음성 일대와 충주 방면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문화유적총람,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여지도서 등의 고문헌과 지리지에 가섭산 봉수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이에 의하면 가섭산 봉수는 충주 익안 마산봉수에서 연락을 받아 망이산 봉수로 전달해주던 역할을 한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봉수에 배속된 군인은 봉수별장 1명, 감관 5명, 봉군 25명, 봉군보 75명이 있었으며, 고종 31년 (1894)에 팔로봉수가 폐지된 이후 봉수대를 지키던 군사들의 거처를 절(가섭사)로 개축했다고 한다.
봉수의 형태는 말각방형의 평면 형태를 띠고 있으며 높이 1m, 둘레 45m 정도의 토축으로 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봉수대의 유구는 정상부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가섭산 봉수대를 지나 오르니 등로에는 다시 삼각점이 박혀있는데 살펴보니 해발고도 710미터의 음성 22란 표식이 되어 있다.

그 삼각점 사진을 담은 후 다시 앞에 보이는 거대한 무인이동통신탑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 간다.

 

삼각점을 지나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눈 앞에 철조망이 가로막고 그 안에는 거대한 이동통신탑이 서 있다.

그 철조망 앞 공터에서 다시 일망무제로 펼쳐진 주위 조망을 즐겨보고 출발하기로 한다.

제일 먼저 이동통신탑 좌측인 동쪽으로는 충주시 신니면쪽 들판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지만 박무로 인해 뿌연하다.

마수리는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가엽산 아래에 자리잡은 중산간마을로 신덕저수지와 요도천 및 선당소류지가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들둑개, 마제, 세말, 절말, 온수골이 있다.
들둑개는 옛날 이곳 하씨 문중의 장사가 큰 돌을 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마제는 마수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뒷산 모양이 말 발굽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세말은 근년에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절말은 마을에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온수골은 옛날에 옻샘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산물로는 참샘골 방울토마토, 신화배 등이 있다.

 

그 남동쪽으로는 마수리와 화인리로 이어지는 들판과 그 넘어 비산비야로 이어진 산그리메가 희미하게 보이지만 박무로 인해 잘 보이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화안리는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가엽산 아래에 자리잡은 중산간마을로 신덕저수지와 요도천 및 선당소류지가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돌포기, 산직말, 섭돌, 화산이 있다.
산직말은 옛날에 산지기들이 많이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섭돌은 화안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옛날에 산림이 울창하였으며 큰 바위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마을이 산 안에 있다 하여 산안동이라고도 부른다. 특산물로는 참샘골 방울토마토, 신화배 등이 있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음성읍을 지나 수정산과 가막산이 보이고 그 뒤로 한남금북정맥의 오대산 줄기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온다.

음성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보면 음성의 옛 이름은 잉홀이었으나 통일신라로 들어오며 음성으로 바뀌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음성의 옛이름인 잉홀에서 홀이란 고구려 말로 성읍을 의미하므로 음성의 옛 이름이 잉홀로 불린 것은 고구려 및 백제와 관련하여 일찍부터 성을 가진 고을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음성의 이름이 생긴 것은 신라가 문무왕 8년(668)에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경덕왕 16년(757) 12월에 신라 전국에 9주를 두고 군현의 명칭을 고칠 때 잉홀을 음성으로 고쳤으며 이당시 전국의 땅이름이 순수한 우리말로 되어 있어 속되고 방언이 섞인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아름다운 이름으로 고치고자 한자음으로 표기하였다고 전한다.
그 과정을 유추해 보면 잉홀의 홀은 고을 또는 읍성(성안에 있는 고을)의 의미이므로 성으로 표기하고 잉은 한자의 음을 빌려 표기하는 가차의 방법(그 당시 널리 쓰인 방법)으로 음의 한어 발음이 잉이므로 잉과 소리가 같아 음을 택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같이 한자로 바꾸어 표기하는 과정에서 오랜 세월 변화를 거쳐 온 우리말 지명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경우에는 한자의 음만 빌려 쓰거나 훈으로 표기할 때 큰 혼란을 겪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942년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음성군의 산성으로 열 군데가 기록되어 있다.
성은 평상시 거주하는 읍성의 성격과 유사시 들어가 농성하는 산성으로 크게 구분하는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서는 음성의 성들을 대부분 산성으로 분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지금까지 음성 지역에서 조사와 발굴된 성터들은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거나 마을 이름을 따서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고구려 시대에 음성 지역에 읍성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 흔적은 음성읍 신천리에 있는 신천리 토성이 유력한데 신천리 토성은 음성의 중심부에 있는 네모꼴 토성으로 유일하게 평지에 있다.
역말의 남쪽에서 국도 37호선이 성터의 남쪽과 합류하며 점말이라 불리는 곳의 남쪽은 소여천의 동서로 들판을 이루어 성리뜰이라 불리고 있다.
신천리 토성은 이곳의 유응주택을 감싼 남북으로 긴 네모꼴의 토성으로 둘레 465미터에 높이 2.4미터로 있었으나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모두 파괴되었다.
당초 옛길인 돌명이(신천5리)와 찬샘들(신천3리)의 북쪽으로 동쪽의 오리정뜰을 거느린 중심부로 해발 140미터 내외의 구릉 선단부에 해당되었던 곳이므로 옛 고을이 있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다.

 

 

그렇게 주위조망과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머물다 이제는 이동통신탑 철조망 저 멀리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가섭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부드럽게 이어지는 가섭지맥 마루금에는 이제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가섭지맥 마루금을 살펴본 후 이제 서서히 그곳 전망대를 출발해 본다.

 

우측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도로 우측 옆으로 가섭산봉수 안내판과 MBC 충주문화방송 가섭산송신소 안내판이 붙어 있다.

오래 전 이곳까지 올라 사진으로 담았던 추억이 있는 고싱기에 다시 몇장의 사진으로 남기고 이제는 뒤돌아 좌측으로 송신탑과 철조망을 두고 그 철조망을 타고 어렵게 송신소를 통과한다.

어렵게 철조망을 통과한 후 뒤돌아 보니 콘크리트 벽과 철조망으로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는 풍경이 흡사 감옥 같다는 생각이다.

 

이제 그곳 철조망 끝자락에서 등로 우측 음성 옆을 내려다 보니 읍내리와 한벌리 지나 수정산을 가운데 두고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이어진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더 그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하고 이제 마지막 철조망을 통과하며 가섭산 정상과의 이별을 준비해 본다.

 

군사시설보호구역이란 콘크리트 말뚝을 지나 가섭산 송신소 후문을 만나 이제부터 가섭산 정상부와 헤어져 우측 능선으로 내려가니 짧은 바위 너덜길을 지나 낙엽이 깊게 쌓여 있는 미끄러운 등로가 이어진다.

조심하며 내려가니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듯한 원형 벙커에는 낙엽이 가득하고 등로는 그 원형 벙커 우측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욱 깊어지는 낙엽 등로를 밟으며 내려가니 바스락 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가 정겹게 다가온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거대한 채석장이 살짝 내려다 보이는데 살펴보니 청원물산 채석장으로 현재 폐장되었고 복원사업으로 주민들과 갈등을 빗고 있는 채석장이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나즈막한 무명봉으로 오르는데 지도상 634.2봉 쯤 되는 곳이다.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 양쪽에 바위들이 나즈막한 절벽을 만들고 있는 등로를 만나 내려가 본다.

그렇게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편안한 등로를 따르니 움푹 패인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지도를 살펴보니 591.9봉쯤 되어 보이는 무명봉이다.

 

그 움푹 패인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니 다시 군사시설보호구역이란 콘크리트 말뚝이 세워져 있고 작은 바위들 위에 쌓인 낙엽들을 밟으며 조심해 내려가 본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등로 옆 소나무에 얇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그 로프를 잡으며 내려가 본다.

 

로프의 도움을 받아 가파른 내리막 낙엽 등로를 내려가니 등로에는 여전히 깊은 낙엽이 쌓여 여간 미끄럽지 않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이제부터 약간의 잡목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 잡목을 지나니 타이어들이 쌓여있는 타이어 봉에 도착을 한다.

잠시 물 한모금 마신 후 곧바로 그 타이어 봉을 출발해 본다.

 

그 타이어봉을 지나니 다시 잡목들이 우거지기 시작하고 그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내려가니 이제부터 등로에는 얇은 검은 삐삐줄이 등로와 함께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그 삐삐줄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나무 등걸로 막아 놓은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해 이제 나무 등걸로 막아 놓은 우측 등로를 버리고 희미하게 이어지는 좌측 가섭지맥 등로를 따라 내려가 본다.

 

그곳 갈림 삼거리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바로 눈 앞에 높은 군부대 초소가 올려다 보이는데 그 초소에는 두명의 병사가 보초를 서고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모든 군부대 초병들이 군부대 철조망 근처로 접근을 하면 접근금지라며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어렵고 조심스럽게 그 군부대 초소 앞으로 오르니 역시나 그 초병들이 접근하면 안된다며 떨어질 것을 요구하고 잠시 설명한 후 금새 철조망과 헤어진다고 하니 조심해서 잘 진행하라고 용기까지 준다.

 

그곳 군부대 초소 앞 능선에서 등로 좌측 위를 살펴보니 방금 전 오랫동안 머물며 많은 추억을 남겼던 가섭산 정상부가 빤히 올려다 보인다.

특별한 볼거리도 없고 유명한 산도 아니기에 다시 올 기회가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가섭산이기에 가슴속 깊이 그 풍경을 저장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이기에 조금은 빠른 발걸음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이곳 화안리 군부대는 1982년 율곡사업의 일환으로 충주시 신니면 화안리 산정과 산안마을을 폐쇄하여 군부대로 편입되었다.
그 군부대 초소의 초병들과 헤어져 짧게 철조망을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니 등로는 철조망과 헤어져 우측 능선으로 접어 들고 이장된 듯한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접어드니 잡목 가지 사이로 하루 해가 서산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제 오후 5시 40여분을 넘기고 있는데 벌써 일몰이 시작되고 있으니 하루 해가 무척 짧아졌음을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다.

 

일몰을 보고 다시 잡목을 헤치고 산행을 진행하니 475.2봉을 넘어 다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에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이 바쁜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아 다시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그 단풍나무를 지나니 잡목과 고나목들이 더욱 우거지기 시작하고 등로조차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희미해진다.

다시 잡목과 소나무가 섞여 있는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니 안부가 나타나 그 안부를 넘는다.

그 안부를 지나자마자 등로 좌측으로 커다란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을 한다.

 

그 큰 바위를 지나 잠시 더 내려가니 낙엽송이 나타나고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어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나타난다.

그 소나무 등로가 있는 곳에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우측 미타사 있는 방향으로 내려가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하기로 한다.

오후에 시작한 산행이라 조금은 아쉬움이 남지만 남아 있는 구간은 다음에 내려 와 하루에 완주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우측으로 잠시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내려가니 커다란 철대문이 열려있다.

그 철문을 지나 내려가니 임도 우측으로 미타사가 보이고 택시를 불러 놓고 잠시 그 미타사로 들어가 구경을 한다.

미타사는 충북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서 630년(신라 진덕여왕 8)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이를 고증할 만한 문헌이나 유물은 전하지 않으며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보아 고려 중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각성이 의병 3천여 명으로 적군을 물리치자 나라에서 그 공로를 인정하여 크게 중수하였으나 1742년(영조 18)에 불이 난 뒤 폐사가 되었다고 한다.
1964년 수덕사에 머물던 비구니 명안이 중창을 시작하여 이듬해 4월 8칸의 법당을 세웠는데 이 때 절터에서 고려시대 기와조각과 분청사기·백자 조각이 많이 수집되었다.
1973년에는 경내에서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금동불상이 출토되었고 1976년에는 대형 맷돌이 발굴되기도 하였고 1979년 극락전과 삼성각을 세운 후 1980년에 선방을 세워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전과 삼성각 및 선방이 있는데 이 중 극락전은 정면 3칸과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아미타삼존불과 극락후불탱화 및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다.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폐사된 절터에 버려져 있던 석조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1964년 충주시에 사는 한 무당이 이 석조불좌상에 대한 꿈을 꾸고는 석불을 가져가려고 산 밑까지 옮겼다가 갑자기 심신이 괴로워져서 운반을 포기하였다고 하며 그 뒤 산 아래 비산리 마을사람들의 꿈에 석불이 나타나 다시 절터로 옮겨달라고 하므로 마을사람들이 다시 원래의 위치로 옮겨놓았다는 이러한 사연을 들은 명안이 이 절에 머물며 석불을 모시게 된 것이다.
절에서 700미터에서 8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미타사마애불상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로 지정된 문화재로서 거대한 화강암 동쪽면에 새겨진 이 마애불은 얼굴과 어깨가 두드러지게 강조되었고 머리가 크며 관모를 썼다.
상호는 풍만하나 눈과 입의 표현이 간략하며 코도 납작한데 바위 높이는 5.35미터이고 불상 높이는 4.05미터이다.
이밖에 1976년 법당 앞 채소밭에서 발굴된 지름 1.70미터의 초대형 맷돌이 전하는데 아랫부분만 남은 것으로 고려 후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미타사를 둘러보고 넓은 주차장으로 나오니 허기가 지기 시작하고 준비한 사과 하나로 허기를 달래보며 물 한모금 마시고 있으니 부른 택시가 도착을 하고 그 택시를 타고 음성으로 들어가 또 새로운 가섭지맥 첫구간 산행을 무탈하게 마치고 간단히 샤워 후 서울로 복귀한다.

다음 구간은 언제 내려와 다시 이어갈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지만 조만간 좋은 날씨에 다시 내려 와 완주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