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경상남도 의령군과 산청군 및 진주시의 진양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5년 12월 12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흐리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던 날씨
산행온도 : 영하 02도에서 영상 08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대의고개(머리재, 20번 2차선 포장도로, 대의고개쉼터와 망경휴게소)-느티나무 식재지-포장도로-KBS 진주 중계소-망룡산(망월산 441.6봉) 이동통신 기지국-시멘트 포장도로-사각정자-배과수원-387봉-잡목지대-362봉-불난지역-소나무 등로-비포장 임도안부-비포장 임도등로-일출-332봉 갈림 삼거리(108번 송전탑)-천황산(341봉) 이정표(덕촌마을 4.8 Km, 설매소공원 7.2 Km, 망왕산 2.0 Km)-안부-김해허씨 묘지-363 묘지봉(옛 산불감시초소봉)-9번 송전탑-소나무 등로-336 억새봉-소나무 등로-266 억새봉-용당재 안부-260 묘지봉(뾰족봉)-267.2 삼각점봉-소나무 등로-밤나무 과수원-208봉-소나무 등로-안부-밤나무 과수원-235봉-안부(어옥저수지)-잡목지대-210봉-소나무 식재구간과 밤나무과수원-비포장 잡목지대 임도-59번 송전탑-감나무 과수원-소나무 비포장 임도-202봉 산불감시초소-묘지지대-밭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밤나무 과수원-193봉-밤나무 과수원-벌목과 나무식재구간-감나무 과수원-160 잡목봉-밤나무 과수원-미천안간배수지-시멘트 포장도로-먹고개(오방고개, 1007번 2차선 포장도로, 폐쇄된 주유소와 매점)-밤나무 과수원-비포장 임도-파란물통-216봉-지독한 잡목지대-소나무 등로-250 웅덩이봉-234 묘지봉-소나무 등로-밤나무 과수원-소나무 등로-묘지지대-매화나무 식재지-19번 송전탑-밤나무 과수원 비포장 임도-묘지지대-두준농장과 송암농장 입간판-2차선 포장도로-재령이씨문중 만남의 동산 이정석-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가족 유골묘지-소나무 등로-밤나무 과수원-148봉-안부-밤나무 과수원-210봉 밤나무 과수원-시멘트 계단과 수로-시멘트 포장도로-진산로 도로 표지판-지하통로(33번 4차선 포장도로 통과)-이정판(월명사 2.4 Km)-내리실고개(내리실 버스 정류장)-비포장 임도-대나무 밭-이동통신탑(안간 기지국)-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삼거리 이정석(큰길로 내려 가는 길)-시멘트 포장도로와 대나무-갈림 삼거리(좌측 월명암)-삼거리 이정석(정수리로 내려가는 길)-집현산 동봉 이정판(월명암 0.1 Km와 응석사 1.3 Km, 집현산 동봉)-월명암-비포장 임도-소나무 등로-집현신 동봉 갈림 삼거리(집현산 7 이정목과 집현산 등산안내도)-집현산 동봉(장군봉, 539봉, 정상석과 돌담)-집현산 동봉 갈림 삼거리-이정표(장군봉, 응석사)-비포장 임도-헬기장-원형 벙커-이정표(집현산 50 m, 응석사 2.6 Km와 응석저수지 3.0 Km, 집현산 동봉 1.4 Km)-집현정 팔각정-진주 집현산(548봉, 정상석과 안내판들)-집현산 삼봉(사각정, 526봉)-오봉삼거리 안내판(정상 1.5 Km와 광제산 봉수대 7.0 Km, 부봉 0.3 Km, 명석각 3.0 Km와 홍지주차장 3.5 Km)-묘지지대-무너미재(집현산, 현동 3.5 Km, 까치봉과 장군봉, 부봉)-집현산 갈림 삼거리 돌탑과 안내판(광제봉수대 6 Km, 동전마을 4 Km, 집현산정상 0.5 Km)-집현산(578봉 정상석과 삼각점, 나무데크) 이정표(현동 2.3 Km, 대둔 3.59 Km)-집현산 갈림 삼거리-520봉-소나무 등로-가선대부 김해김공 묘소-이정판(광제봉수대 5 Km, 집현산정상 1 Km, 산청군 신안면)-로프 내리막 등로-나무 사다리계단-로프 구간-송전탑-청현재(광제봉수대 4 Km, 집현산정상 2 Km, 명석면 신기마을 2 Km, 산청군 신안면)-진양기맥 산행종료-비포장 임도-집현산가는길 이정표-저수지-경상남도 축산진흥연구소 축산시험장 후문-민가-청현소류지-경상남도 축산진흥연구소 축산시험장 정문-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많은 사진 찍으며 여유있게 진행하며 약 27.00 Km
산행시간 : 홀로 꾸준히 걸어 진행하며 10시간 51분 (06시 07분부터 16:59분까지)
교통편 : 애마와 택시 이용
- 대의택시(055-572-2400) : 12000.-원 경상남도 축산진흥연구소 축산시험장에서 대의고개까지
진양기맥이란 ??? 아직 공식명칭은 아니지만 신 산경표의 저자인 박성태님이 그 이름을 붙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독립된 기맥으로 부르고 있는 가칭 진양기맥은 백두대간의 남덕유산에서 남동쪽으로 가지를 쳐 월봉산, 금원산, 기백산, 망설봉, 갈전산, 바랑산, 소룡산, 황매산, 철마산, 금곡산,성현산, 산성산, 한우산, 자굴산, 망룡산, 천황산, 집현산, 광제봉을 일으키고 남강 유역인 진양호의 남강댐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159.1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진양기맥 산줄기는 주로 남강과 황강을 가르는 분수령으로 진양기맥의 서쪽 내지 남쪽의 물은 남강으로 흐르고 산줄기 동쪽의 물은 황강 내지 낙동강 본류로 흐른다.
남강과 황강을 가르는 산줄기로만 따진다면 한우산에서 좌굴산,집현산,광제봉,남강댐으로 가지 말고 한우산에서 응봉산,우봉산,돌문재쪽으로 가야 할 것이나 남강댐쪽이 거리도 25km쯤 더 길고 산세도 더 수려하며 진양호에서 맥을 다한다는 이유로 대부분 종주자들이 남강댐쪽으로 이어가고있다.
진양기맥은 하동을 제외한 서부 경남의 전지역인 함양,거창, 합천, 산청, 의령, 진주등 6개시군을 지난다.
오랫만에 다시 들린 진양기맥 마루금에서 옛추억을 더듬으며 잡목과 가시나무의 태클에 혼이 났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올 한해 남아 있던 기맥 산행에 집중을 하다보니 이제 8기맥 산행도 모두 마무리를 한 후 작년 봄 가족과 함께 내려가 노란 송화가루를 온몸에 뒤집어 쓰고 어렵게 마무리를 했던 대의고개 즉 머리재에서 다시 1년 8개월이 지난 겨울에 오늘 진양기맥 7구간과 내일 마지막 8구간을 마치면 멀고도 험했던 1대간 9정맥 9기맥 산행을 완주하고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산을 골라 진행하던 지맥 산행에 올라보리라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다.
갑자기 바빠진 회사일로 인해 늦게 귀가를 한 후 산행 준비를 하여 집을 나서는 시간이 밤 10시가 가까워진 밤인데 옆지기가 함께하면 좋겠지만 내일 토요일에 있는 조용필 콘서트가 예약이 되어 있어 오늘은 홀로 내려가는 시간이 되었다.
생각보다 막히지 않는 도로를 타고 옆지기의 애마를 몰아 내려가 지리산 산행을 위해 몇번인가 들렸던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에 있는 원지로 들어가 24시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새벽 밥을 먹고 햇반 하나와 김치 하나를 구매하여 배낭에 넣은 후 산행 들머리인 대의고개에 도착을 하지만 1년 8개월만에 많이도 변해버린 산행 들머리의 풍경에 많이 당황했던 시간이다.
작년 4월까지만 해도 영업을 하던 망경휴게소와 대의고개쉼터는 그 사이에 바로 대의고개 아래로 뚫린 다사터널로 인해 이제는 영업을 종료하고 어둠속에 잠겨 있는 풍경이 삶의 어려움을 알려주고 있는 듯 하다.
그 대의고개 한쪽에 주차를 시키고 잠시 쪽잠을 청하고 새벽 5시 50분에 일어 나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오는 고갯마루에서 산행 준비후 9기맥의 마지막 2구간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은 비장함마저 감도는 시간이 되었다.
어둠속에 진행하는 것이 싫어 조금 더 차안에서 휴식을 취한 후 새벽 6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사라진 산행 들머리를 버리고 어렵게 다른 산행 들머리를 찾아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망룡산에 오르니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고 너무나 황홀한 조망을 즐기며 잠시 더 쉬어 간다.
우측 배나무 과수원을 통해 능선으로 들어가 387봉을 지나고 잠시 소나무 등로를 지나니 잡목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362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제부터 타고 걸어가야 할 진양기맥 제7구간의 마루금이 저 아래 진주땅을 향해 올망졸망 이어지는 풍경이 환상적이다.
봉우리 하나 둘 이름을 살펴보지 않아도 이렇게 바라보는 마음속으로 그 많은 봉우리들이 모두 고운 추억으로 쌓이고 저 끝자락에 보이는 봉우리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면 지금 이사간을 추억하며 이 봉우리가 보일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한 시간이다.
바로 이런 아픔다운 풍경과 조망이 있고 스스로 힐링하는 시간이 있으니 어려워도 다시 산을 찾게 되는가 보다.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새벽 밥을 먹고 안개가 자욱한 도로를 타고 어렵게 산행 들머리인 대의고개에 도착을 하니 이제 새벽 4시를 넘기고 있어 알람을 5시 40분에 맞추고 잠시 쪽잠을 자 본다.
쪽잠을 자고 알람소리에 깨어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하는데 생각보다 기온은 낮지 않은 듯 한데 강하게 불어 오는 찬바람이 옷깃을 스치며 한기를 더욱 느끼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작년 12월에 이곳 대의고개 아래로 새로 뚫린 4차선 다사터널로 인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없어 이제 대의고개도 옛 추억의 고개로 변해가고 있음에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산행 준비 후 20번 2차선 포장도로릐 옛도로를 건너 주유소 방향으로 가 좌측의 망경휴게소 방향으로 걸어가니 주유소는 완전히 폐쇄되어 있고 그 주위에는 철보망이 쳐져 있는데 그곳에 몇마리의 투견들이 남아있어 여간 시끄럽게 짖지 않는다.
그렇게 산행 들머리가 완전히 막혀 한동안 새로운 산행 들머리를 찾아 헤매다가 주유소 우측의 시멘트 벽 끝자락의 능선으로 들어 힘들게 가파른 절개지를 오르니 드디어 잡목이 자라고 있는 사라지는 비포장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주유소 뒤를 따라 걸어가니 정상 등로를 만나 우측으로 오르며 이틀간의 산행을 시작해 보는 시간이다.
이곳 대의고개(머리재, 한티재, 큰재, 대현)는 경상남도 의령군의 대의면 다사리와 의령군 칠곡면 산북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자굴산의 남동쪽 산기슭에 위치하고 남쪽으로 망룡산이 있는데 지명은 머리, 마루(산마루), 높다라는 뜻으로 험하고 가파르면서도 외진 고갯길이라 그 재를 넘다가 돈도 털리고 죽임을 당하는 일이 생기다보니 머리가 잘리기 쉬운 잿길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칠곡 사람들은 머리재, 대의 사람들은 한티재라고 부르는데 한티는 큰재, 높은 고개란 의미의 고유어이며 한자로 대현이라고 한다.
이 일대에 역참인 대현원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어느 지역인지 확인 할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현은 현 서쪽 30리에 있다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며 여지도서의 의령에 사굴산에서 뻗어 나온다라는 내용이 있으며 대동지지의 의령에는 대현은 서북 30리의 삼가 경계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지지에는 대현 한틔지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조선지형도에도 지명이 기재되어 있다.
정상 등로를 만나 오르니 생각보다 등로는 뚜렷하고 산행 조건도 나쁘지 않아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을 하는데 역시나 산행 들머리가 막혀 새로운 들머리를 찾느라 고생을 해서 그런지 등줄기와 이마에선 벌써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전봇대도 보이고 그곳을 지나 이제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철사줄이 보이고 그곳에는 선답자들의 띠지와 불꺼진 연꽃등이 보인다.
이곳 주위에 절이나 암자가 있다는 의미이기에 지도를 찾아 봐도 표식이 없어 궁금증을 가지고 오르니 곧바로 그 철사줄 좌측으로 나무들이 식재된 장소가 나타나는데 어둠속에 살펴보니 느티나무들이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그 가파른 느티나무 식재지를 타고 오르니 등로는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좌측 앞을 살펴보니 어둠속에서도 희미하게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을 하고 저 앞으로 망룡산의 인공 구조물들이 살포시 올려다 보인다.
이제 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오르니 그곳에는 KBS 지주 방송국의 송전탑이 녹색 철조망 안에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 잠시 입었던 방풍 자켓을 벗어 배낭속에 넣고 다시 그 철조망을 좌측으로 타고 올라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잘 발달되어 있지만 잎이 넓은 활엽수 낙엽이 깊게 깔려있어 여간 미끄럽지 않기에 조심스런 발걸음이다.
잠시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잡목이 사라지며 그 아래로 환한 불빛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여 지도를 살펴보니 의령군 칠곡면의 산곡리 마을의 야경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산북리는 경상남도 의령군 칠곡면에 있는 마을로서 망롱산과 자굴산자락으로 이루어진 침식분지 안에 위치하며 의룡천과 내조천 사이에 위치하는데 대부분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골짜기 북쪽이 되므로 산북 또는 산북동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운곡, 구기, 양촌, 죽공 등이 있는데 운곡은 죽공 동쪽에 있는 마을로 구름이 많이 낀다 하여 구름말 또는 굼말, 운곡이라 하고 구기는 죽공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오래 된 터라 하여 묵은터 또는 구기라 한다.
양촌은 죽공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양지에 위치한다 하여 양지촌 또는 양촌이라 하고 죽공은 산북리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대갱이라고도 하였다.
다시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한동안 걸어가니 잡목이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지나 드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에 낙엽이 아름답게 깔려있는 곳에 도착을 해 여명이 밝아 오는 주위를 살펴보는 시간이다.
어둠속에서도 너무나 아름다운 낙엽 깔린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자작나무인지 모를 나무들이 식재된 장소를 지나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고 눈 앞에는 거대한 인공 탑과 건물들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약간의 얼음과 물이 공존하는 물 웅덩이를 피해가며 오르니 임도 좌측으로 옛날 건물이 있었던 듯한 풍경이 눈에 들어 오고 곧이어 KT 의령산북 기지국이 드높게 서 있고 그 한쪽에는 해발고도 441.6미터라는 망룡산 정상 이정표가 붙어 있다.
망룡산(442봉)은 경상남도 진주시의 미천면 상미리 대곡마을과 의령군 칠곡면 산남리 산남마을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442미터이며 자굴산 줄기가 동남쪽으로 뻗어오다가 머릿재에 이르고 그 동남쪽 줄기에서 주봉이 형성되었다.
망룡산 주봉의 동남쪽에는 천황산(364봉)이 위치하고 있으며 천황산이 남쪽으로 이어져 집현산이 되고 집현산 줄기에서 진주의 진산 비봉산이 형성되었는데 주봉에는 한국방송공사 M/W중계소가 들어서 있다.
산의 동쪽은 의령군 칠곡면 산남리 산남마을이고 서쪽은 의령군 대의면 천곡리 천곡마을이며 남쪽은 망룡산과 천황산이 만들어 놓은 큰 골짜기이다.
망룡산에 관한 조선시대 사료는 보이지 않으나 조선지형도의 삼가에는 망룡산이 표기되어 있으며 망룡산 동쪽의 칠곡면 산남리 산남마을은 원래 용동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도 마을 어르신들은 행정 지명인 산남이 아닌 용동으로 부른다고 한다.
망룡산에는 지명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 오며 망룡산 자락에 미리섶이라는 천연샘이 있었는데 물이 맑고 수량도 풍부하여 산북 앞들의 논물로도 넉넉했다.
여기에 살던 큰 용이 어느 날 큰비가 내리자 솟구쳐 오르다가 잠시 망룡산에 머물렀는데 뇌성벽력과 함께 다시 승천하였다고 하는데 이후 샘물은 더 맑고 수량도 많아져서 식수만이 아니라 농경지 관개용수로 이용하였다고 전한다.
용천, 용동 지명이 생겨나고 그 미리섶도 미리샘으로 불렀다고 전해 온다.
망룡산이란 정상 안내판이 녹색 철조망에 걸쳐 있는 무인 통신탑을 지나니 도로 좌측으로 사용했다 폐쇄된 듯한 건물들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사각정자와 작업을 하다 중단한 포크레인도 보인다.
그곳에서 주위 풍경을 둘러보고 사진 몇장 남기다 보니 여명이 밝이오기 시작하고 동녘 하늘에선 하늘에 용트림이 일어나듯 붉게 변하고 있다.
그곳에서 앞으로 걸어가야 할 남서쪽으로 진양기맥 마지막 구간쪽을 살펴보니 그 산줄기 좌측 남쪽 방향 저 멀리 진주시내를 두고 우측으로 올망졸망한 산줄기가 이어지며 이 산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등로 좌측 넘어로는 지난 구간 환상의 조망을 즐기며 어렵게 넘어 온 자굴산과 한우산이 우뚝 솟아 있고 작년 봄 고운 추억을 남겼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생각보다 어렵게 넘었던 우측의 자굴산과 철쭉과 억새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좌측의 한우산이 이제 멀어지며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음이 안타까운 시간이다.
좌측의 한우산과 자굴산 그리고 우측의 진양기맥 마루금 그 사이에 의령쪽 산그리메가 또한 너무나 황홀한 아침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그 망룡산 정상 부근에서 환상의 여명과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걸어내려가니 사각정자와 둥근 철 탱크를 지나자 마자 우측으로 멋진 배나무 과수원이 보이고 그 과수원 우측 맨 위 등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간다.
조금 걸어가니 등로 우측에 의령여공의 묘지들이 보이고 그곳을지나 배 과수원이 끝나는 지점에 멋진 낙엽송 몇그루가 환상의 등로를 만들고 있다.
그 낙엽송을 타고 좌측으로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배 과수원을 두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 능선으로 진입을 하고 곧이어 넓은 소나무 등로를 따라 산행을 편안하게 이어가 본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잡목과 소나무가 섞여 있는 등로로 바뀌고 완만하게 올라 387봉에 도착을 한다.
선답자 한명이 띠지에 385.1미터라 적어 놓은 387봉에서 등로 우측 앞을 살펴보니 대의면 상미리와 천곡리쪽 마을마다 하얀 안개가 뒤덮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대의면은 조선시대에는 대곡과 모아로 나누어진 방리(지금의 읍면에 해당되는 행정구역)로서 대곡은 원래 한실로 모아는 모오골로 불러온 지역이었고 한자표기를 하면서 한실은 대곡으로 모오는 모아로 적게 되었는데 모아란 말이 창(독음)으로나 훈(뜻)으로도 좋지 않다해서 모의로 고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도 고종 43년(1906년 광무10년)칙령 제49호 지방구역정리건에 따라서 대곡과 모의가 독립된 행정구역이었으나 그 뒤 일제강점기인 1913년(대정 2년) 총독부령 제111호 도의 관할구역과 부군의 명칭 및 위치관할구역조정에 따라서 두 지역이 통합되고 명칭도 대곡의 대자와 모의의 의자를 따서 대의로 정하게 되었다.
그 뒤 1989년 1월 1일부로 합천군 삼가면 외토지역 일부 (25가구)가 대의면 관할구역에 편입되었는데 대의면은 북으로 합천과 서쪽으로는 산청과 그리고 남동으로는 진주 지역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대의면 마을 좌측으로는 앞으로 걸어 진행해야 할 진양기맥 마루금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등로 우측의 대의면쪽 조망과 풍경을 살펴본 후 정상으로 뒤돌아 올라 와 이제 다시 잡목을 헤치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잡목의 저항이 심하지만 가시나무가 적어 생각보다 잘 진행을 하고 조금 더 걸어가니 봉분이 없는 묘지 한기를 지난다.
다시 나타나는 잡목들을 헤치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방금 전 그리움을 남기고 뒤돌아 왔던 자굴산과 한우산이 조금 더 선명한 자태로 멀어지고 있다.
지나온 마루금도 뒤돌아 보고 등로 우측의 대의면 안개들도 내려다 보며 걸어 오르니 잡목으로 둘러쌓여 있는 362봉에 도착을 해 잡목 사이로 진행 방향을 살펴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약간의 잡목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심하지 않아 잘 진행되고 있지만 생각보다 오르내림이 심해 고도는 낮으나 진행이 만만치 않음을 벌써 느끼고 있다.
다시 등로 좌측으로 깨끗하게 조망되는 자굴산과 한우산을 바라보며 그 362봉의 잡목을 내려가니 등로 우측 앞으로는 이제부터 한발 두발 걸어 내려가야 할 진양기맥 마루금이 환상의 풍경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멋진 등로를 따르니 금새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그곳에는 예전에 불난던 흔적이 소나무 밑둥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렇게 완만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고사목이 흩어져 산행을 약간 방해하고 곧이어 322봉에 도착을 해 잠시 숨을 고른다.
고사목의 소나무들이 흩어져 있는 322봉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낙엽이 깔린 무명 안부에 도착을 하고 그 비포장 임도 안부를 가로건너 넓게 펼쳐진 오르막 비포장 임도를 타고 다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경계표지판이 나무에 걸려있는 안부를 지나 송전탑 건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넓은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다 보니 그 비포장 임도에만 유독 파란 풀들이 아직도 살아남아 초원을 이루고 있다.
그렇게 오르막 임도를 따라 오르니 등로 좌측의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지 않을 듯 하던 일출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더니 금새 구름 사이로 사라져 버린다.
늘 만나는 일출이지만 9기맥을 마무리 짓기 위해 내려와 걸어가며 만나는 오늘 아침의 일출은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아쉬운 일출을 보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이곳 주변에는 선재충을 방지하기 위해 벌목된 나무들을 훈증하기 위한 풍경들이 자주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313봉에 오르고 다시 소나무가 너무나 아름답게 도열해 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앞으로 올라야 할 332봉이 안부 넘어 저 멀리 올려다 보인다.
재선충 방지를 위한 훈증 시설들을 있는 안부를 지나 오르니 다시 넓은 비포장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는 좌측인데 우측에 얼마 전 세운 것처럼 보이는 송전탑이 보여 다가 가 살펴보니 108번 송전탑이다.
그 108번 송전탑을 확인하고 다시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올라 와 이제는 진행 방향의 좌측 방행을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넓은 임도가 계속 이어지고 다시 안부를 지나 오르니 등로는 좌측 능선으로 진행되어애 할 것 같은데 선답자들의 띠지는 우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그 좌측 봉우리를 우회하며 통과하니 다시 좌측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등로가 보이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지도를 살펴보니 좌측 우회하며 통과한 봉우리에 천황산이 있는 것 같아 다시 좌측 등로를 타고 그 봉우리로 오른다.
오르니 그 정상부에 천황산 이정표가 서 있는데 망왕산(망룡산)까지 2 Km이고 덕촌마을과 설매소공원으로 갈 수 있는 갈림 삼거리이다.
천황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하고 천황산(341봉)이 있는 마을인 용암리에 대한 자료만 찾아 본다.
용암리는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있는 망룡산 남쪽 자락에 위치하여 대부분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은 천이 남쪽으로 흐르고 용암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용당, 부처골, 정자동 등이 있는데 용당은 용암 서쪽에 있는 땀으로 옛날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하여 용당, 용댕이라고 한다.
부처골은 옛날 부처가 나왔다고 하여 부처골이라 하며 정자동은 용암 동쪽에 위치하여 큰 정자나무가 있다 하여 정자동이라 한다.
약 450년전 느티나무 옛날 장사라는 힘센 김해김씨가 호랑이를 잡아 이 정자나무에다 달아 매었다고 한다.
다시 그 천황산을 둘러 보고 이정표를 사진에 담은 후 올라갔던 등로를 타고 내려가 갈림 삼거리를 지난다.
낙엽이 깔려있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가니 아침에 올라온 태양 빛이 빼곡히 자라고 있는 소나무 사이로 파고 들며 또 다른 황홀한 선물을 선사하고 있다.
더욱 깊은 낙엽이 깔려있는 안부를 지나 김해허씨 묘지를 통과하니 잡목과 억새가 무성했던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한쪽에는 무명묘지 한기와 멋진 소나무 두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363봉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에 옛날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제일 먼저 북동쪽으로 지나온 진양기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지난 구간 넘었던 한우산과 자굴산이 우뚝 솟아 있고 좌측 앞쪽으로는 인공 구조물이 서 있는 망룡산 정상도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대의면 상미리와 천곡리가 내려다 보이는데 그곳에는 아직도 하얀 안개가 자욱히 깔려있다.
상미리는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있는 미곡천 남쪽에 위치하여 대부분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마을로서 자연마을로는 항골, 아랫담, 우목골, 웃담, 터밭골 등이 있다.
항골은 상미리에서 으뜸 되는 마을로서 큰 골짜기에 위치하며 임란 때 농은 선생이 주민을 모아 왜병을 격멸하자고 결의하였다고 하며 이때부터 항골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아랫담은 한골의 아래쪽 마을이라 하여 아랫담이라 불리며 6백여년 된 보호수 느티나무가 있다.
우목골(우목동)은 한골 옆에 있는 마을이고 웃담은 한골의 윗마을이라 하여 웃담이라 불리며 터밭골은 기전동과 하미리의 대곡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천곡리는 경상남도 의령군 대의면에 있는 마을로서 대부분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은 천이 흐르고 천곡지가 있다.
좋은 샘이 있으므로 새미실 또는 천곡이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매골, 송림 등이 있다.
매골은 천곡 동쪽에 있는 마을 매화가 피었다고 하여 매골이라 하고 송림은 천곡 서쪽에 있는마을로 소나무 숲이 있었다 하여 송림이라 하며 천곡의 아래쪽이라 하여 아랫땀이라고도 한다.
천곡 중앙에는 고창 오씨의 재실인 원천정이 있다.
그곳 363봉에서 많은 풍경과 조망을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하니 약간의 잡목 구간을 지나 9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소나무 등로를 지나 억새가 우거진 336봉에 도착을 한다.
억새가 무성한 366봉을 출발해 다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또 다른 억새봉인 266봉이 나타나 잠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살펴보면 자연스런 억새봉은 아닌듯 싶고 아마도 예전에 묘지를 썼던 곳인데 이장된 곳이나 아니면 관리가 안되어 묘지란 개념이 사잘진 곳인듯 싶다.
그 억새봉을 지나 조금 더 완만하게 내려가니 큰 마무들이 있고 작은 돌무덤도 낙엽에 쌓여있는 용당재 일명 용당고개에 도착을 한다.
용당재(산지곡, 서남재)는 진주 미천면 상미리 한골 남쪽에서 진주시 대곡면 용암리 용당동으로 가는 고개로 용당은 용댕이와 용암 서쪽에 있는 땀으로 옛날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하여 용당 또는 용댕이라고 한다.
용당골은 용암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골 안에 채정승묘가 있으며 묘에 있던 석물을 없애버려 후손이 서울에서 말을 타고와서 묘를 찾지 못하고 그 밑에서 절만하고 돌아갔다고 하는 설화가 있는 곳이다.
용당고개는 용암에서 북쪽 미천면 상미리로 가는 고개로서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붓으로 쳐서 산이 갈라졌다고 한다.
실제로 이여송이 붓으로 쳐서 산이 갈라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전해지는 고개로서의 가치가 있는 곳이기에 오랫동안 지켜지길 바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산객처럼 기맥 산행을 하는 사람 이외에는 찾는이가 없을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용당재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생각보다 등로는 잘 나 있어 진행에 큰 어려움은 없다.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면 방금 전 용당재로 내려오던 등로가 아름답게 멀어지고 다음ㅇ네 다시 볼 수 있겠느냐며 물어 오지만 그럴 기회가 있을련지 모르겠다.
그렇게 여유있게 오르니 낮은 봉분을 하고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살펴보니 269미터의 무명봉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많은 묘지들을 만나는데 대부분 이 산객이 알고 있는 높은 봉분이 아닌 나즈막한 봉분들을 하고 있어 조금은 이채롭게 다가온다.
나즈막한 봉분을 하고 있는 269 묘지봉을 지나니 또 다른 2기의 묘지가 나타나는데 이곳 역시 봉분은 일반 바닥과 거의 비슷하게 아주 낮은 봉분이다.
그 묘지들을 지나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빛내림을 감상하며 전진하니 이 세상 모두를 가진듯한 멋진 아침이다.
다시 그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약간의 잡풀들과 억새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267.4미터의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잡풀을 헤치고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 267.4봉 오기전에 뾰족봉이라고 있다는 표기가 되어 있는데 아무리 살펴보며 걸어와도 이런 뾰족봉을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그 삼각점봉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그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이제 소나무와 밤나무가 섞여 있는 능선 등로로 바뀌면서 그림같은 등로를 만들어 놓고 있다.
잠시 그림같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하늘이 열리고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지난 구간 걸었던 진양기맥 마루금이 이제 작은 범으로 변하면서 멀엊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는 시간이다.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밤나무 과수원이 나타나고 그 밤나무 지대를 타고 오르니 생각보다 밤나무 단지가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금남정맥 산행을 하면서 공주시를 지날때 만났던 밤나무 단지를 연상시키는 그런 밤나무 과수원들이다.
드넓은 초원에 밤나무가 심어져 있는 듯한 밤나무 과수원을 통해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그곳 역시 그림같은 풍경들이 놓여 있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다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수많은 산들에 둘러쌓인 용암저수지가 살짝 고개를 내밀며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 저 멀리 집현산쪽 산군들도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고 지나온 등로 역시 멀어지는 아쉬움을 전해주고 있다.
높지는 않지만 올망졸망 끝없이 이어진 산그리메를 바라보며 걸어 진행을 하니 그림같은 등로를 지나 잡목과 밤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무명봉에 오른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밤나무 과수원 좌측 위 능선에는 이제 잡목들이 우거지기 시작을 하고 잠시 그 잡목을 헤치고 어렵게 넘으니 다시 부드러운 밤나무 단지가 이어지고 있다.
우측에 밤나무 과수원을 두고 그 경계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는 잠시 소나무 능선으로 이어지고 제선충 훈증막을 지나 소나무 등로를 지나니 또 다시 밤나무 과수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포장 임도같은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밤나무 단지를 타고 오르니 능선 정상부에 대나무 하나를 묶어 놓은 235봉에 도착을 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아직 알록달록 곱게 피어있는 단풍이 눈길을 붙잡고 주위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이 또한 산객의 발목을 붙잡는다.
지나 온 방향으로 천황산과 망룡산이 저 멀리 멀어져 있고 그 뒤로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한우산과 자굴산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여전히 중요한 지점 역활을 하고 있다.
잠시 더 조망을 즐긴 후 이어지는 밤나무 단지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는 좌측 소나무 등로로 들어가고 곧이어 2기의 묘지를 지나 그 묘지 위 능선으로 걸어간다.
능선으로 들어가니 다시 나즈막한 무명봉을 지나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곳에도 역시 많은 소나무 자라고 있는 멋진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1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미곡리 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미곡리는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있는 마을로서 미곡천이 흐르며 대부분 평지와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부수골, 오목골, 중다말, 새몰 등이 있는데 부수골(부수동)은 오목골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오목골(오목동)은 미곡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오동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오목골이라 불리며 중다말(중촌)은 미곡 중앙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중다말로 불리고 새몰(신촌, 새마을)은 미곡 동북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새몰이라 불린다.
등로 좌측으로는 어옥저수지가 잡목 사이로 아주 가깝게 다가 와 있고 그렇게 멋진 소나무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묘지지대에 도착을 해 바로 아래에 있는 안부를 지나 올라야 할 나즈막한 봉우리들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이제 등로 우측 앞으로는 안간리와 산청의 효자리 마을을 넘어 저 멀리 집현산 줄기가 조금 더 가깝게 다가 온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묘지를 만들면서 생긴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어욱저수지로 갈 수 있는 갈림 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른다.
이곳은 우측에 미곡리 신촌마을이 있고 좌측으로는 어옥리가 있어 어옥고개 또는 신촌재라 불리는 고개로서 어옥고개는 경남 진주시 미천면 미곡리 신촌마을과 어옥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넓은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곳으로 이 지역 어옥리 사람들은 어옥고개라 부르고 있지만 미곡리 사람들은 신촌재라 부르는데 등산객들은 어옥고개라고 더 많이 부르고 있는 듯 보인다.
고갯마루 주위에는 성황당의 흔적인 듯한 돌멩이들과 거목 한 그루가 보이는데 성황당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제 약간의 잡목이 있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다시 소나무가 멋진 210봉에 도착을 해 잠시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210봉을 넘어 내려가니 그곳 내리막 등로에도 멋진 소나무 등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갑자기 벌목된 곳에 키 작은 소나무가 식재되어 있어 등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라고 있는 등로로 변하고 있다.
등로 우측 앞으로는 앞으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잡목 사이로 보이고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또 다시 밤나무 단지가 소나무와 경계를 이루며 이어지고 있다.
그 밤나무 단지를 지나자 마자 또 다시 키 작은 소나무가 빼곡히 자라며 등로를 숨기고 있어 등로를 찾아 진행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키 작은 소나무 등로를 조심하며 통과를 하니 봉분이 없어 보이는 묘지 한기를 지나 다시 잡목 지대가 이어지고 있다.
잡목을 헤치고 걸어 전진하니 다시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212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을 지나니 이제 제법 봉분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묘지 한기를 다시 지난다.
등로 앞으로는 가야 할 집현산 자락이 점점 더 다가오고 다시 나타나는 밤나무 과수원의 경계를 따라 걸어가니 철없는 진달래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어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다.
다시 나타나는 묘지 한기를 지나 잡목과 잡풀이 자라고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59번 송전탑을 지나 곧바로 감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잘 익은 감이 달려있어 몇개 따 먹어 보니 뒷맛이 약간 쓴맛이 남아 있어 다시 출발을 한다.
다시 잡목이 자라고 있는 넓고 뚜렷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양쪽으로 날카로운 가시를 내밀고 있는 탱자나무가 산객의 주의를 요하고 있다.
탱자는 보이지 않는 파란 색깔의 탱자나무를 조심하며 통과하니 다시 드넓은 감나무 과수원이 나타나는데 감나무마다 2리터 물통에 물이 가득 담긴 형태로 매달려 있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과수원으로 올라가 살펴보니 감나무 가지의 형태를 인공적으로 변화 시키기 위한 작업이었다.
등로 우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미곡리 마을을 내려다 보며 앞으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과 송전탑을 바라보며 걸어 오르니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감나무 몇그루가 눈에 보여 다가가 익은 감 몇개를 따 먹으니 목마름과 허기가 한번에 사라지는 느낌이다.
오늘은 산행 중 감나무를 자주 만나는데 수확하지 않은 감들이 많이 매달려 있어 준비한 과일은 하나도 먹지 못하고 감만 따먹다 보니 배낭의 무게도 전혀 줄지 않아 무겁게 지고 다닌 하루로 기억되고 있다.
그렇게 감나무에서 잘 익은 감 몇개를 따먹다 보니 허기도 사라지고 목마름도 달랠 수 있어 일석이조이지만 역시나 비우지 못하는 배낭의 무게가 아쉽기만 하다.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오방저수지와 진수쪽 나즈막한 산그리메를 살펴본 후 다시 그 감나무 과수원을 출발해 전진하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곧이어 지도에도 없는 벌목된 지대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210봉에 도착을 해 그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동네 주민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주위 조망을 살펴 본다.
제일 먼저 서쪽으로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진양기맥 마루금 방향을 살펴보니 나즈막하게 이어지는 마루금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돌아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집현산 동봉과 정상부의 산줄기가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 집현산 동봉 우측 아래에는 효자리 마을이 좁은 들판을 두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기도 하다.
효자리는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있는 마을로서 집현산의 북동쪽에 위치하여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효자소류지가 있는데 자연마을로는 무동, 아래동네, 모달, 장승백이, 정촌 등이 있다.
무동은 효잠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뒷산이 춤추는 사람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아래동네는 정촌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효자의 아래쪽이 된다 하여 아래동네라 불린다.
모달(지월, 양지땀)은 효잠 북쪽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며 산청군과 경계가 되며 옛날 여기에 큰 못이 있어 물에 비친 달빛이 좋았다고 하여 모달이라 불린다.
장승백이는 나드리 앞에 있는 마을에 장승이 세워져 있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며 정촌은 효자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고 정씨가 마을을 이뤘다 하여 정촌이라 부른다.
진양기맥 마루금 좌측으로는 올망졸망한 산그리메가 저 멀리 진주까지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좁은 들녘을 두고 산골마을들이 정겹게 펼쳐져 있다.
산불감시원에게 인사를 나누고 다시 벌목된 곳을 따라 내려가니 묘지가 나타나고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또 다른 묘지들이 나타나는데 등로는 그 묘지 뒷편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능선으로 오르니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니 잡목지대를 지나 밭 경작지가 보이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시멘트 포장도로 좌측의 오방리와 우측의 미곡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멋진 이름 하나쯤 있을 법 한데 아무리 찾아 봐도 이름조차 없는 무명 고갯마루이다.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전봇대가 보이는 쪽이 정상 마루금처럼 보이는데 잡목의 저항이 심해 우측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방향으로 오른다.
매화나무처럼 보이는 나무 식재지를 타고 오르니 이곳 역시 잡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 죽어 오르기가 만만치 않지만 그런대로 오를만 하다.
잠시 그 잡풀지대를 지나 오르니 또 다시 밤나무 과수원이 나타나고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땀을 흘리다 보니 밤나무 과수원을 지나 활엽수 몇그루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193봉에 도착을 해 잠시 긴 심호흡을 하고 다시 출발을 한다.
잠시 능선을 타고 편안하게 걸어가니 또 다시 등로 우측으로 밤나무 과수원이 나타나고 조금 더 걸어가 등로 우측 앞쪽을 살펴보니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온 집현산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다시 나타나는 잡목과 잡풀지대를 지나 또 다른 나무식재지를 지나 무명봉을 넘으니 이제 감나무 과수원이 보이고 그곳에도 많은 감들이 수확되지 않은채 달려있어 몇개를 따 먹는다
아침 식사 시간도 지난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허기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목마름도 없어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진행하다 보니 배낭의 무게감은 여전해 두다리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장난이 아니다.
감을 따 먹고 다시 잡목봉인 160봉을 넘으니 등로 우측 앞으로 효자리 지나 저 멀리 집현산으로 이어지는 멋진 마루금이 가깝게 다가온다.
등로 우측에 매화나무라 생각되는 과수원을 타고 걸어 진행을 하는데 그 과수원과 좌측의 소나무 숲과의 경계선에 잡목과 잡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죽어 진행에 여간 방해를 받고 있지 않다.
등로 좌측의 소나무 등로를 따르다 우측 과수원 방향으로 가깝게 붙어 걸어 내려가니 감나무 과수원의 경계를 따르게 된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미천안간 배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조금 더 그 풍경을 내려다 보며 걸어가니 배수지 앞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먹고개 또는 오방고개라는 도로가 지나는 안부와 그 옆으로 폐쇄된 주유소와 매점들이 보이고 그 먹고개 지나 다시 절개지를 타고 올라야 할 진양기맥 마루금이 올려다 보인다.
이제 구불구불 이어지는 낡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1007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먹고개 일명 오방고개에 도착을 한다.
먹고개 또는 오방고개는 경남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와 오방리를 연결하는 1007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개로서 현재는 폐업중인 주유소와 휴게소 건물이 보인다.
다만 지도마다 먹고개를 표시하는 장소가 다르게 표기되어 있는데 국립지리원 지도에는 이곳을 막고개로 표기했고 영진 지도는 방금 전 지났던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는 삼거리를 막고개로 적고 있어 어느곳 그리고 어떤 이름이 맞는지 헷깔리기만 하다.
이 도로의 주유소와 매점에도 예전에 영화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주위에 새로운 33번 4차선 도로가 생기면서 통행하는 차량도 줄고 손님도 줄다보니 이제는 폐쇄되어 황량한 고갯마루로 변해 버렸다.
그 먹고개가 있는 1007번 도로를 타고 주유소를 지나 우측의 벌목지대를 타고 가파르게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는데 선답자들은 매점이 있는 곳쪽으로 오른 흔적이 보이는데 그곳 역시 잡목과 잡풀들이 자랐다가 죽어 있어 진행에 어려울 것 같아 좌측으로 돌아 벌목지를 따라 올라 본다.
잠시 오르다 식재되어 있는 나무들이 보여 살펴보니 이곳에도 역시 밤나무들이 식재되어 있어 몇년이 지나면 등로 역시 상전벽해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한동안 오르니 우측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나 오르게 되고 잠시 더 오르니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해 파란 물통을 지난다.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 방향으로 오르니 간벌된 밤나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정상부에 도착을 해 뒤돌아 보니 저 멀리 한우산과 자굴산에서 부터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진양기맥 마루금이 한눈에 펼쳐져 있어 황홀하기만 하다.
다시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따라 어렵게 오르니 벌목지 위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곧이어 217봉 정상에 도착을 해 긴 호흡 한번 해 본다.
이제 앞으로 펼쳐진 마루금을 바라보며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생각지도 못한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 지대가 앞을 가로막고 길을 열어줄 생각을 않고 있어 참으로 어렵게 그 잡목지대를 통과해 본다.
온 몸은 이미 생채기가 심하게 나 따갑기 시작하고 약간씩 흐르는 붉은 피를 바라보며 왜 이런 산행을 해야하는지 회의가 들기도 하는 시간이다.
그래도 그 지독한 잡목지대를 지나면 등로에 떨어져 있는 떨깔나무 낙엽이 햇살에 반짝이며 방금 전 지나온 잡목지대를 완전히 지우고 있다.
약간의 관목과 키 큰 소나무가 어우러진 멋진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한동안 소나무 등로를 지나 또 다시 지독한 잡목지대를 만나 이곳에서도 몇군데 더 깊은 생채기를 만든 후 어렵게 통과를 해 본다.
잡목이 우거진 217봉을 지나니 이제는 소나무와 편백나무가 혼재된 등로를 만나 조금은 여유를 찾아 보는 시간이다.
다시 평이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제선충 훈증시설이 있는 250봉을 지나 무명묘지가 있는 봉우리를 넘어 걸어 본다.
잠시 더 내리막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차량 소음이 들리기 시작을 하는데 살펴보니 33번 4차선 포장도로가 빼꼼히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빼곡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동향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곧이어 다시 밤나무 과수언을 만나 그 과수원 좌측 가장자리를 타고 천천히 걸어 가 본다.
우측에 밤나무 과수원을 두고 좌측의 능선 경계선을 따라 걸어가니 밤나무 단지 위 능선이 제법 길게 이어지고 등로 우측으로는 안간리 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안간리는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있는 마을로서 집현산 동쪽에 위치하여 대부분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인실, 새밭, 시장통, 거지골, 내동, 평촌말 등이 있는데 인실은 내인리 동쪽 건너 마을이고 안쪽에는 내인실이 있다.
새밭은 인실 서북쪽에 있는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새밭이라 불리며 시장통(시촌,시지,장터)은 안간리에서 으뜸 되는 마을로 안간장이 서는 곳이라 시장통이라 이름 붙여졌다.
거지골은 안간 서쪽에 있는 마을이고 내동은 시촌 남서쪽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동이라 불리며 평촌말은 안간 북쪽 평지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등로 우측으로 안간리와 효자리 넘어 집현산 줄기가 보이고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 뒷쪽으로는 동향저수지도 내려다 보인다.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밤나무 단지를 짧게 만나고 곧이어 묘지지대로 내려서는데 이제 동향저수지 넘어 지나온 마루금도 조금 얼굴을 내밀고 있다.
매실수를 심어 놓은 과수원을 지나 19번 송전탑을 통과하니 등로 우측 앞으로 33번 4차선 포장도로 넘어 집현산 줄기가 조금 더 선명하게 그리고 가깝게 다가와 있는 멋진 풍경도 펼쳐져 있다.
이제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허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아마도 나뭇가지에 남아 잇는 잘 익은 감을 많이 따 먹었기에 견딜 수 잇는 듯 싶다.
다시 밤나무 과수원을 타고 조금은 가파르게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를 만나고 그 밤나무 밭의 비포장 임도를 건너 계속 가파르게 내려가니 또 다시 감나무에 많은 감이 달려있어 몇개의 잘 익은 감을 따 먹고 내려가니 많은 묘지지대를 통과한다.
묘지들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 우측 앞 저 멀리 민가들과 도로가 보이는데 그 도로 위에는 좌측으로 집현과 진주로 우측으로는 미천과 합천으로 가는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우측으로 멋진 조망을 바라본 후 계속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그 도로 우측으로는 철문이 보이고 오늘은 열려있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두준농장과 송암농장 입간판이 보이고 곧이어 25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봐도 이름이 없는 무명 포장도로에 무명 고갯마루이다.
하지만 산행 후 귀가하여 찾아보니 이곳은 25번 지방도로로서 이곳은 동향고개란 이름이 남아 있었다
동향고개는 경남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와 향양리를 이어주는 25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가는 고개로서 차량통행은 거의 없는지 이 산객이 건너 진행을 하는 동안에도 한대의 차량도 만나지 못하였다.그곳에서 도로 좌측을 살펴보고 우측 아래로 조금 내려가니 도로 건너 좌측으로 재녕이씨문중 만남의동산이라는 빗돌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인다.
그곳 동향고개에서 독도를 잘못해 잠사 알바를 하면서 왔다리 갔다리를 하며 어렵게 정상 등로를 찾아 진행을 하게 된다.
만남의 동산이란 빗돌이 있는 방향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면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원 마루금은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해야 되는데 좌측 철대문이 닫혀있는 곳으로 가파르게 오르니 강아지 2마리와 양봉을 하는 지저분한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는데 주인장은 보이지 않는다.
그곳 콘테이너 박스에서 우측 능선 방향으로 오르다 보니 방향이 다른데 잘 살펴보니 그곳으로 올라도 될것은 같은데 혹시나 더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올랐던 도로로 다시 내려가 잘 살펴보니 등로는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이 아닌 우측의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야 하였다.
너무나 아름다운 소나무 임도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무척 넓은 비포장 임도로 이뤄진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에 가족 납골묘지가 보이고 그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크게 꺽어 오르니 그곳에도 역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려 있다.
약간의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 진행에 어려움이 있는 소나무 등로를 지나니 등로는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가 나타나고 우측으로는 밤나무 과수원이 좌측으로는 멋진 소나무의 경계를 타고 진행을 해 본다.
잠시 완만하게 걸어 올라 141봉을 지나 우측으로 33번 4차선 포장도로를 내려다 보며 조금 더 오르니 156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좌측으로는 멋진 거송이 자리하고 우측으로는 밤나무 단지를 지나 33번 4차선 포장도로를 내려다 보며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능선으로 진입하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또 다른 밤나무 단지를 걸어간다.
약간의 잡목과 억새지대를 지나 걸어가니 등로 우측 앞으로 집현산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와 있는데 우측 아래로 보이는 33번 4차선 포장도로는 언제나 통과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벌목된 능선을 타고 걸어가는데 밤나무 단지를 조성하며 생긴 등로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잡목들이 자라 조금은 진행에 방해를 주고 있다.
생각보다 잡목이 우거져 진행에 어려움이 있지만 우측으로 휘어져 흐르는 마루금을 올려다 보며 걸어 보는 시간이라 그런대로 참을만 하다.
그렇게 잠시 더 완만하게 오르니 우측에 밤나무 단지가 있는 203봉에 도착을 하고 이곳에서 넓게 펼쳐져 있는 밤나무 단지에 잠시 놀라기도 한다.
계속 이어지는 밤나무 과수원과 소나무 군락지의 경계를 따라 걸어가니 이제 등로 우측 뒷편으로 오늘 걸어 온 마루금이 저 멀리 길게 이어져 오고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절개지 아래로 33번 4차선 지방도로가 시원하게 달리는 풍경도 눈에 담으며 진행을 하니 드디어 그 절개지 정상에 도착을 해 이제부터 내려가야 할 내리실 마을과 도로 그리고 그 내리실고개를 지나 진행해야 할 마루금을 한동안 조망해 본다.
절개지 정상에서 좌측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시멘트 수로 옆으로 계단이 설치되어 잇고 그 계단을 타고 한동안 내려가니 33번 4차선 포장도로를 우측에 두고 좌측의 좁은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33번 지방도로를 살펴 본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지하통로가 있는 사거리에 도착을 하고 진산로라는 도로 표지판을 사진에 담고 우측의 지하통로를 이용해 바로 위를 달리는 33번 4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한다.
지하통로를 지나 오르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의 진주와 사천가는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향양리 마을 표시를 타고 잠시 올라 본다.
조금 더 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좌측으로 월명암까지 2.4 Km라는 안내판이 서 있고 그 바로 뒤어 내리실이라는 버스 정류장 표시도 보인다.
이곳이 바로 내리실 고개로서 내리실고개는 진주와 합천을 이어주는 33번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로서 내리실은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서 바로 그 안간리에서 집현면 정수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다.
정수리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속하는 법정리로서 지명유래는 진주군 모태곡면 검정동의 정자와 철수동의 수자를 따서 만든 지명이다.
검정동은 동리 입구에 정자가 있어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주변 산에 숯을 구운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철수동은 쇠의 녹물이 흐른 흔적과 제철소가 있어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을이 형성된 내용은 1914년 행정 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모태곡면 철수동과 검정동을 통합하여 형성되었다.
검정동과 철수동 마을에는 대밧골, 들말, 용디미, 은나무고개, 간들빙이, 갱제밧골, 검짓골못, 닷마지논, 딱밧골, 불매지골, 불뱅이, 아랫들, 아랫배미, 잘골, 정지골, 정패들, 지리터, 철수못 등이 산재해 있으며 용디미는 본래 응석사가 있었던 곳이나 지금은 정평으로 이전하였다.
이곳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월명암으로 진행을 하였으면 조금 더 일찍 그리고 조금 더 편안하게 진행을 하였을 것을 좌측 능선을 고집하다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생채기를 많이 당하였다.
이곳 내리실고개에서 민가 우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월명암으로 진행을 한다고 처음부터 갔으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을 민가를 우측에 두고 좌측의 희미한 비포장 임도를 타고 밭 경작지로 올라 앞에 펼쳐진 대나무 밭을 지나 오르면서 너무나 힘들게 진행을 하게 된다.
이곳 내리실 마을은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에 속한 마을로서 안간리를 찾아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안간리는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속하는 법정리로서 조선시대에 안간역이 있었다고 하여 안간 또는 역말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진주군 안간면 안간동, 미곡동, 효자동의 각 일부로서 안간리라 하였다.
안간리는 서쪽의 산청군 신안면 집현산(572미터)에서 이어지는 산지가 동쪽으로 이어지는 서고동저의 지세이며 남쪽과 북쪽은 산지로 그 가운데에 계곡선을 따라 안간소류지와 소규모 하천이 미곡리 방향인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동쪽은 미곡리와 서쪽는 산청군 신안면과 남쪽은 집현면 정수리와 그리고 북쪽은 효자리와 접하고 있으며 국도 33호선이 남북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안간리는 북동, 내인, 임곡의 3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북동과 내인은 국도 33호선 좌우에 위치하여 미천우체국와 중부농협 안간지소 등이 입지하고 있으며 임곡은 서쪽의 집현산 자락에 있다.
어렵게 대나무 밭을 지나 오르니 눈 앞에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그곳으로 가는 등로에는 수많은 가시나무와 잡목 그리고 잡풀이 자랐다 말라있어 여간 힘들지 않다.
어렵게 안간기지국을 지나 오르니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좋은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로 내려간다.
그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비포장 임도가 시멘트 임도로 바뀌면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는 직진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올라가 본다.
잠시 더 오르니 등로는 잡목 등로로 바뀌고 점점 등로가 사라져 어쩔 수 없이 그 잡목들을 헤치고 우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비포장 임도로 내려가니 그곳 임도가 좌측으로 저 멀리 월명암까지 이어지고 있다.
괜시리 능선을 고집하다가 고생만 많이하고 시간도 허비한 후 어쩔 수 없이 비포장 임도로 복귀해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보기로 한다.
한동안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월명암 방향으로 걸어가니 등로는 비포장 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가 번갈아 나타난다.
한동안 그렇게 걸어가다 뒤돌아 보니 효자리에서 안간리로 이어지는 좁고 길에 펼쳐진 들녘과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또한 등로 우측 앞으로는 지금부터 진행해야 할 방향의 집현산 동봉과 그 아래 월명암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도 한다.
그렇게 비포장 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20여분 걸어가니 저 멀리 갈림 삼거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다가가 보니 우측 아래에서 올라오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 갈림 삼거리이다.
그 삼거리 우측으로는 콘크리트 말뚝이 하나 서 있는데 이 산객이 걸어 온 방향으로 큰길로 내려가는 길이란 글귀와 함께 화살표가 보인다.
그곳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오르니 도로 양쪽으로는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대나무 숲이 인상적이다.
오늘 원래 시작을 할 때만 해도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용산치까지 갈 수 잇기를 바랬는데 너무 무리가 될 것 같아 일찍 포기하고 나니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양쪽으로 생각보다 많은 대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어 신기한 마음으로 오른다.
그렇게 한동안 오르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한가운데에 콘크리트 말뚝이 보이고 그곳에는 좌측 방향으로 월명선원이란 글귀와 함께 화살표가 보인다.
이곳에서 잘못 지도를 독도해 좌측이 아닌 우측으로 올라 잠시 알바로 임도 갈림 삼거리까지 올랐다 내려오게 된다.
우측 시매ㅔㄴ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대나무 숲이 도로를 완전히 덮어 터널을 만들기 직전이다.
아무 생각없이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그렇게 오르니 효자와 안간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이제서야 무엇이 잘못 되었음을 깨닭고 지도를 정독해 보니 알바를 하고 있다.
다시 월명선원이라 적어 놓은 콘크리트 말뚝이 있는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내려가 이제는 좌측 도로를 타고 오르니 이동통신탑 옆에 정수리로 내려가는 길이란 콘크리트 말뚝을 지나 또 다른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그 옆에 서 있는 이정표를 보니 우측 직진 방향으로 월명암 100미터 그리고 그리고 지나온 방향으로 응석사 가는 방향 표시가 되어 있다.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금새 월명암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고 곧바로 뒤돌아 내려 와 이제는 진행 방향의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양기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월명암은 작은 암자인데 그 암자에 보관중인 진주 월명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유명해 보인다.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산277 월명암에 있는 1612년에 제작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며 보물 제1686호인데 월명암 인법당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으로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 원문을 통해 1612년(만력40, 임자년) 조각승 현진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월명암 인법당의 주존불로서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원문에 대승암창립기흘무불상이구의임자개춘라고 기록되어 있어 원래는 대승암 창건 때에 봉안하기 위해 1612년에 조성된 불상으로 확인된다.
또한 상원 현진비구를 수화승으로 학문, 명은, 의능, 태훈 등이 함께 불상 제작에 참여하였음도 알 수 있으며 특히 임진왜란 당시 도총섭으로 승군을 지휘한 벽암각성비구가 복장 시주자로 등장하는 점이 흥미롭다.
복장 원문의 내용은 1612년 함양 상련대 목조관음보살좌상과 불상 제작시기와 날짜, 참여한 스님들의 명단과 역할이 같아 두 불상이 동시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복장원문은 다시 불상에 납입된 상태이며 불상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83호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보물로 승격 지정되었다.
아미타여래좌상은 넓은 어깨와 당당한 신체 비례, 긴 상반신, 안정적인 자세, 둥근 머리와 갸름한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의 이국적인 인상, 물결치듯 주름진 다리 사이의 대의 등이 특징이다.
손 모습은 오른손을 가슴 높이로 올리고 왼손은 오른발 위에 올려 자연스럽게 엄지와 중지를 맞댄 중품하생인이며 갸름하면서 이국적인 인상의 얼굴, 긴 상체 등은 조각승 현진의 1610년대 불상 작품에 나타나는 초기적 특징이다.
조각승 현진이 제작한 작품은 진주 월명암 불상을 비롯하여 1612년 함양 상련대 목조관세음보살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56호), 1614년 구례 천은사 목조관음대세지보살좌상, 17세기 진주 청곡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1626년 보은 법주사 대웅전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 제1360호), 1629년 창녕 관룡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1632년 청도 적천사 목조삼세불좌상, 1633년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제1565호) 등이 있다.
1612년에 조성된 월명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현진이 제작한 불상 중 가장 이른 시기 작품으로 현진은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일대에서 활동한 17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조각승이다.
월명암 아미타여래좌상은 17세기 전반기 불상양식의 편년자료로 중요한 가치가 있으며 조각승 현진의 양식변화를 알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월명암을 나와 우측으로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끝자락에서 길이 사라지며 앞으로는 방금 전 월명암 가기전에 헤어졌던 시멘트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여 그곳에서 우측 능선을 타고 소나무 등로를 오르니 등로 좌측에서 올라 오는 뚜렷한 등로와 만나 올라 본다.
집현산 동봉 오르는 등로는 너무나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는데 처음에는 부드럽게 완만한 오르막 드올로 이어지더니 오를수록 점점 더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소나무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갈어 본다.
이제 오후 2시를 넘기고 있고 조금씩 배고품을 느끼며 식사기 그리운 시간이지만 오르막 등로에서 먹기가 어려워 집현산 동봉까지 올라가 점심상을 차리기로 한다.
그렇게 한동안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등로 우측으로 집현산 동봉으로 오르는 동봉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곳 안내판을 살펴보니 응석저수지 바로 위에 보이는 응석사가 유명해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자료가 보인다.
응석사는 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응석로 435(정평리 741)에 있는 절인데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로 집현산(높이 572미터) 동남쪽 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554년(신라 진흥왕 15)에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 지공, 나옹, 무학스님 등이 머물렀다 하며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으로 유명한 사명당 유정(1544~1610)과 진묵 일옥(1562~1633)이 머물며 화엄도량으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당시에는 대웅전, 문수전, 극락전, 비로전, 영산전, 나한전, 팔상전 등의 전각과 무려 163개의 방이 있었던 대규모 사찰이었다 하며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관음전의 관음상 밑에서 승병들이 숨겨둔 무기를 발견한 후 모든 건물을 불태워버렸고 그 후부터 사찰의 규모가 줄어들었다 한다.
1736년(영조 12)과 1899년(광무 3)에 중수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 기록은 2003년 대웅전을 보수할 때 발견한 상량문에 적혀 있는 것이며 1950년에는 근대의 고승 구산 수련(1909~1983)스님이 머물며 수도한 바 있다.
응석사는 대웅전, 관음전, 나한전, 산성각, 독성각, 종루, 일주문 등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웅전과 나한전, 산신각, 독성각은 거의 한 축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1976년에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41호(응석사 대웅전)로 지정된 대웅전은 정면 3칸과 측면 2칸의 다포계건물으로 2003년 12월 보수하였는데 기둥과 일부부재는 그대로 사용되었다.
불단에는 2003년에 경상남도유형문화재 401호(진주 응석사 삼존여래좌상)로 지정된 삼존여래좌상이 모셔져 있으며 1643년(인조 21) 조성된 이 불상들은 목조이며 개금이 되어 있는 상태로 석가여래불을 주불로 하여 왼쪽에 아미타여래불이 오른쪽에 약사여래불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 앞으로는 1736년 대웅전을 중수할 때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괘불대 두 쌍이 있는데 한 쌍은 완전하고 다른 한 쌍 중 1기는 아랫부분만 남아 있는 상태로 괘불대란 괘불 즉 야외 법회 때 쓰는 의식용 불화를 고정시키는 장치를 말한다.
관음전은 정면 5칸과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불단에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모셨으며 나한전은 정면 3칸과 측면 2칸 규모로 조선 후기에 조성한 금동석가여래좌상과 16나한을 모셨다.
관음전 뒤에는 경상남도기념물 제70호(진양 정평리 무환자나무)로 지정된 수령 약 270년의 무환자나무가 있다.
집현산 동봉 갈림 삼거리에서 정상 등로는 좌측 등로이지만 이곳까지 와서 동봉을 지나칠 수 없어 우측 등로를 타고 집현산 동봉으로 행한다.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한번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집현산 동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거대한 소나무 한그루와 그 앞으로 응석사와 안내판이 서 있고 그 좌측 앞 공터에 나즈막한 돌담 안으로 장군봉과 집현산동봉이라는 두개의 다른 정상석이 서 있고 그 정상석 사이에는 남근석을 닮아 있는 바위를 세워 놓고 치성을 드린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이곳에서 사진을 남기고 돌담 옆에 앉아 준비한 식사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니 이제서야 이세상 모두가 이 산객의 것이 된 느낌이다.
그렇게 추억을 남기고 다시 집현산 동봉을 출발해 갈림 삼거리를 지나고 조금 더 걸어가니 나즈막한 언덕에 선답자들의 띠지가 많이 걸려 있다.
작은 활엽수 낙엽이 깊게 깔려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진주 집현산 과 우측으로 산청 집현산이 잡목 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여유있게 걸어가니 집현산정상으로 향하는 안내판이 보이고 곧이어 억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헬기장 이정표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도 역시 응석사로 하산할 수 있는 등로가 보이는 헬기장이다.
그 이정표가 서 있는 억새지대를 지나 진행을 하니 넓은 비포장 임도가 열리고 부드러운 그 등로를 따라 무리하지 않게 걸어 본다.
오늘은 산행 후 여유있게 쉰 후 내일 새벽부터 마지막 구간 산행이 예정되어 있기에 여간 조심스럽게 진행되는 산행이 아닐수 없다.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 잡목가지 사이로 드디어 도리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부드러운 넓은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잘 관리되고 있는 헬기장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헬기장을 지나 오르니 둥근 벙커도 보이고 조금 더 오르니 응석사와 응석저수지로 하산할 수 있는 등로가 있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팔각정을 통과한 후 진주의 집현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커다란 정상석과 작은 정상석 하나가 서 있고 정상 주위에는 많은 안내판들이 세워져 있다.
등산객 3명과 만나 잠시 환담을 나누고 과일을 나눠 먹고 사진 한장 남기고 주위 풍경을 살펴 본다.
집현산에 대한 자료를 부산의 국제신문 자료중에서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보인다.
경남 진주시 명석, 집현, 미천면과 산청군 생비량, 신안면에 걸쳐 있는 집현산은 정상이 두 곳인 산으로 해발 고도가 같은 봉우리가 두 개가 아니라 엄연히 봉우리들의 높낮이가 다른데도 다른 지자체에서 다르게 표기된 정상이 두 곳이다
집현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 577미터로 산청에 있는데도 진주시는 관내에 있는 이보다 낮은 봉우리(548미터)를 정상이라고 주장하며 정상석까지 설치해 놓았다.
산청군은 이곳을 집현산 부봉이라 부르고 관내 577 고지에 따로 정상석을 세워놓은 데 이어 산행구간의 등산 안내도와 이정표에 이같이 표시해 뒀다.
이를 보고 산행하던 등산객이 두 개의 정상석을 발견하고 어떤 게 정상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면 진주시 정상에 올라 정상 등정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또 다른 정상을 만났으니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말이다.
자치단체의 행정구역은 지도상 경계 표시일 뿐이지 산을 무 자르듯 잘라 나눌 순 없으며 걸쳐 있다는 말 자체가 연속을 뜻한다.
백두산이 우리나라와 중국에 걸쳐 있듯 산은 국경과 행정경계를 넘어 지세가 뻗어나간 데까지 이어짐에도 지자체는 산을 자기 관내로만 범위를 한정해 정상을 정하니 어떻게 견강부회와 아전인수라는 비판을 비켜갈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사람의 편협한 구획 관리와 달리 산은 자연 그대로 의연하고 넉넉하여 산에서 차별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물에서 낙락장송에 이르기까지 뭇 생명은 하나하나가 의미를 지니며 각기 다른 음색의 생명들이 대자연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곳이 산이다.
어진 이들이 모인다는 뜻의 집현산은 인자요산이란 말을 실감케 하는 산으로 20미터가 넘는 늘씬한 소나무들이 군락하는 숲 사이로 난 낙엽 수북한 오솔길을 걷노라면 호젓한 아름다움에 젖는다.
어른 팔 길이로 한 아름이 훨씬 넘는 낙락장송도 있으며 솔숲을 지나 탁 트인 푸른 하늘을 만날 때면 소나무는 하늘이 파견한 푸름의 정령인 듯한 생각이 들기에솔숲 걷기는 영혼의 필터링으로 다가온다.
집현산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탈환을 위해 아군이 왜군과 격전을 벌인 곳이기도 한데 진양지에 집현산은 진주의 북쪽 40리에 있으며 덕유산의 일맥이 동쪽으로 달려와서 자굴산(897미터)이 되고 자굴산의 한 가닥이 서쪽으로 구부려 와서 이 산이 되었다라고 기록돼 있다.
산행은 대둔마을 입구에서 시작해 까치봉과 장군봉, 부봉, 정상을 거쳐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총길이는 약 12.5 Km이고 5시간 가량 소요된다.
집현산은 삼산은 하늘 밖에 반쯤 걸려 있고 진수와 회수 두 강은 백로주에서 갈라져 흐르네(삼산반락청천외 이수중분백로주)라는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구에 어울리는 명당이라고 하는데 이 시구의 삼산에 비견한 곳이 집현산과 자굴산 그리고 황매산이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비량이라는 도승이 집현산에 절을 지어 포교하며 선행을 베풀었다.
그 도승이 입적한 뒤 마을 사람들이 그의 덕이 살아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생자를 붙여 마을 이름을 생비량이라 불렀다고 하며 대둔마을 입구에 이 같은 내용을 적은 생비량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그곳 진주 집현산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일망무제로 펼쳐진 조망을 즐겨 본다.
먼저 팔각정 뒤로 잡목 가지 사이로 보이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진양기맥 제7구간을 살펴보니 저 멀리 한우산과 자굴산 앞에서 시작된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언제 저곳 집현산까지 갈 수 잇을까 걱정이 앞섰는데 한발 두발 걷다보이 이곳 집현산 정상에 서서 오늘 산행을 시작한 들머리쪽을 살펴보며 추억을 만들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다.
이제 우측에 집현산 정상을 두고 좌측인 서쪽으로 흘러 내리는 진양기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냐일 걸어야 할 올망졸망한 산그리메가 환상적이다.
그 마루금 좌측 저 멀리로 드디어 진주시가 희미하게 다가오고 있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시간이 되었다.
남강과 진양호를 찾아 보지만 산줄기로 막혀 아직은 보여주지 않지만 조만간 그 남강을 바라보며 걷게 되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북쪽으로는 소나무 넘어 이제부터 올라야 할 집현산 갈림 삼거리와 우측 끝자락의 집현산 정상이 아름다운 마루금을 그리며 이 산객을 부르고 있는듯 하다.
그 집현산 우측 끝자락으로는 산청군 생비량면쪽 마을들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생비량면은 경상남도 산청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서쪽으로는 신안면과 접하고 북쪽으로는 갈미봉을 경계로 신등면과 접하며 남쪽으로는 칠현산을 경계로 진주시와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의령군과 진주시 등과 연접한다.
면의 서편으로는 양천을 따라 평지를 이루었지만 동, 남, 북쪽으로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양천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면을 가로지르며 흐르다 북쪽에서 발원한 신등천과 만나 남강으로 합수한다.
여지도서의 보유의 단성에 생비량면은 관문에서 40리 거리에 있다라고 기재되었고 호구총수의 단성에 생비량면이 수록되었으며 대돈촌, 철점촌, 도내촌 등의 관할 마을이 기재되어 있다.
1914년에 옛 단성군의 생비량면과 도산면의 일부를 합병하였고 삼가군 아곡면 일부를 통합하여 생비량면이 되었다.
소재지를 가계리에 두었다가 1944년에 도리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관할 행정구역은 도전리·도리 등 5개 법정리와 18개 행정리로 이루어졌다.
한동안 그곳 진주시 집현산 정상에서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나머지 3명의 등산객들에게 인사하고 먼저 정상을 출발한다.
여전히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좋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고 그렇게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사각정자가 보인다.
어느 선답자가 집현산 삼봉이라 적어 놨는데 또 다른 곳에는 이곳을 집현산 부봉이라고도 하였다.
집현면(집현산 부봉)은 경상남도 진주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집현산(572미터) 줄기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봉황이 앉듯이 솟은 봉우리가 비봉산이고 그 중간의 크고 작은 골짜기에 집현의 마을이 위치한다.
조선 전기에 동물곡리, 비라곡리, 신당리, 모태곡리, 정곡리로 불렀다가 임진왜란 후에 신당리는 북쪽의 사죽리에 합해졌고 정곡리도 북쪽의 모태곡리에 합해졌다.
조선 후기에 동물곡리, 장재곡리, 모태곡리, 집현동리로 불렀다가 각각 면으로 개칭되었다가 1914년 동물곡면, 모태곡면, 집현동면 등을 집현면으로 통폐합하였다.
1938년 하촌리를 진주읍으로 편입하였다가 1987년 덕오리 일부를 금산면으로 편입하였으며 집현면은 봉강리, 장흥리 등 10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진주에 집현산은 주 북쪽 4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일 문헌 단성현 기록에 집현산은 현 동쪽 15리 지점에 있고 진주 경계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진양지에는 집현 지명이 진주목 북면의 동물곡리, 비라곡리, 신당리, 모태곡리, 정곡리와 그 속방에 나오지 않다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마을 지명으로 집현이 나오는데 여지도서의 진주에 모태곡리와 함께 집현동리가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볼 때 집현동은 집현산에서 지명이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사각정자가 있는 526봉을 지나 다시 출발을 하니 오봉삼거리 이정판이 보이고 명석각 하산 갈림 삼거리이다.
이곳 오봉삼거리 이정판을 니 방금 전 만났던 사각정자가 있는 526봉을 이곳에서는 부봉이라 적고 있어 이름에 대한 통일도 필요할 듯 하다.
무명봉에서 진행 방향의 집현산을 바라보고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를 지나 묘지지대를 통과하고 곧이어 현동하산 갈림길이 있는 무너미재에 도착을 한다.
무너미재는 진주시 명석면과 산청군 생비량면을 연결하는 고개로 이정표도 뚜렸하다.
대홍수 때 물이 솟아 고개를 넘어갔다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아래로만 흐르는 물이 아니라 위로도 넘어간다는 뜻으로 이런 종류의 지명은 무너미 외에도 무네미, 무니미, 무내미, 물냉기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곳 무넘이재의 또 다른 내용은 산청군 생비량면 한덤이(대둔리)에서 솔기로 넘어오는 높은 고개로서 옛날 이곳 사람들이 무넘이재를 넘나들며 진주를 왕래하였는데 전설에 의하면 천지개벽 시에 물이 넘나들었다고 한다.
무너미재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낙엽으로 인해 여간 미끄럽지 않아 조심하며 오른다.
이제 산행도 막바지에 도달을 하여 체력적으로 약간은 부담이 되는 시간인데 특히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진행하는 산행은 이렇게 산행 후반부가 문제가 되는 일이 자주 있는 듯 하다.
약간의 바위를 지나 조금은 가파르게 오르니 큰 돌탑 하나가 서 있는 갈림 삼거리인 집현산 갈림 삼거리이다.
집현산 정상까지 왕복 1 Km라는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우측 집현산으로 향한다.
부드러운 소나무 등로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저 멀리 바위 위에 나무데크가 보이고 좌측으로 그 데크를 돌아 집현산 정상으로 오르도록 되어 있다.
큰 정상석이 서 있고 그 앞에 삼각점에 대한 설명판이 서 있는데 정작 삼각점은 보이지 않는다.
집현산(572봉)은 진주시 관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해발 572미터 이며 시민들의 등산로로 애용되는 곳이며 도보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옛 고려시대의 한 선비가 본 면을 지나다가 산세가 험하고 웅장한 산세를 보고 혀를 끌끌 차며 내 이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요상한 산세를 본 일이 일찍이 없으며 용이 승천한 것이 틀림이 없다고 혼잣말로 지껄이며 지나가는데 마침 이곳은 가뭄과 수해 등으로 백성들은 찌들어 죽을 지경에 놓여 있던 차에 어린 꼬마가 선비가 지껄이는 말을 엿 듣고는 선비를 붙잡고 이 지역의 우환이 왜 이런지 가르쳐 달라고 통사정했으나 뿌리치며 이 지역의 백성들이 죄를 범하여 지금 벌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 후에도 계속하여 가뭄과 수해 등으로 농사는 안 되고 주민들은 병들어 그 수가 점차 줄어들었다.
계속적인 재난으로 고생을 하고 있던 차에 선비가 지나가던 시절의 어린 꼬마가 청년이 되어 그 선비가 말한 것을 회상하면서 손뼉을 치고 무엇인가를 마음속으로 읽으면서 바쁜 걸음으로 집현산으로 입산하였다.
청년은 집현산 구석구석을 헤매다가 큰 바위 옆에서 그 때 그 선비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빌며 선비에게 본 면의 우환을 풀어주도록 울면서 호소하였다.
한동안을 계속 빌고 나니 밤이 되어 선비와 함께 바위 옆에서 잠자리도 같이 하게 되었으며 잠자리에 들어서도 계속 애걸하니 마침 선비가 입을 열어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인즉 내가 바로 승천한 용인데 한가지의 미비한 점이 있어 이승으로 하강하여 도를 닦고 있다고 말하자 청년은 계속 다그쳐 물었다.
그러자 선비는 승천 시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이 지역의 주민들이 나를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승천하는 용을 보라고 고함을 질렀기 때문에 나는 이승에서 고생을 하고 주민들은 벌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우측 산봉우리로 올라가 하늘을 향해 기도를 하고서는 굉장한 번개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청년은 맥이 빠진 채 집으로 돌아와 주민들을 모아 놓고 집현산 우측 꼭대기에서 일어난 일을 소상하게 이야기하고 매일 등산하여 천지 신에게 빌었다.
하루하루의 세월이 흘려 100일 이란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 청년도 지쳐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마을 주민들은 그 청년의 애절한 심정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뜻에서 계속 집현산에서 빌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번개가 치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나기가 대지를 적시자마자 병들은 농작물은 일시에 소생하고 병들은 주민은 회생하여 평온한 온기를 되찾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으며 지금도 마을 주민의 우환이나 걱정거리가 생기면 집현산 정상 소나무 밑에서 비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현동과 대둔으로 가는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셀카로 어렵게 추억 한장 남긴 후 곧바로 집현산 정상을 출발 해 다시 갈림 삼거리로 걸어 나온다.
이곳 집현산(572봉)은 진주지역 산악인들이 한나절 산행지로 자주 즐겨 찾는 산인데 많은 봉우리와 다른 이름처럼 역사적으로 동학혁명과 임진왜란의 아픔을 많이 간직한 산이기도 하다.
집현산 자락 청고개의 임진왜란 상황을 보면 임진년 10월 9일 김준민장군이 이끄는 500여 군사가 진주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진군하는 길에 이곳에 이르러 장사진을 이룬 군사가 이동하다 보니 뜻밖에 청현, 오동, 정태, 단성 일대에 왜적이 쫙 깔려서 마을마다 분탕질을 하는데 불을 질러서 연기가 하늘에 닿을 정도였다.
이에 김준민 장군이 앞장서 죽림 밖으로 뛰어나가 아래위로 적을 휩쓸었고 또한 군관 윤경남 등이 장수가 적중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외치면서 뛰어드니 500여군사가 일시에 함성을 지르고 내달아 돌진하였다.
적이 허물어져 죽림 속을 빠져 달아나다가 강을 건너서 대항하기에 이르렀는데 우리 군사와 강을 사이에 두고 격전을 벌이니 화살이 비오듯 나르고 포성이 진동하였다.
때마침 승군 의병장 신열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합세하자 군세가 떨치고 사기가 충천하였고 맹렬히 공격하자 적이 퇴각하여 청고개를 넘어서 달아나고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이어서 김준민장군은 단성 쪽으로 행하여 거기서 분탕질하는 적을 쫓고 창고에서 불타고 있는 곡식을 구하였는데 600여 석이었다.
적지골이란 이름에서도 그때가 연상되는 바 있고 지금은 이 광활한 골안에 경상남도 첨단양돈연구소가 83ha 넓이의 면적에 개설되어 이 지역 양축농가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청현마을에는 청곡서원이 있어 일신당 이천경을 향례하고 있고 유형문화재 제 240호 일신당문집 및 필첩책판이 보존되어 있다.
근년에 자포정사를 지어서 자포 이영을 채례하며 마을 위쪽의 고목 아래에 석단이 있고 청고개에는 누석단이 있어서 고풍을 지닌 마을임을 알 수 있다.
다시 갈림 삼거리로 나와 이제는 진행 방향의 좌측으로 내려가니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금새 520봉에 도착을 한다.
그 520봉을 지나자 마자 등로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낙엽이 깊게 쌓여 있어 내려가는데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등로 옆으로 설치된 얇은 로프에 의지하며 스틱으로 중심을 잡으며 내려가니 내려가는 시간이 더 걸릴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 등로이다.
바위와 묘지를 통과한 후 신안면 갈림 안내판도 지나고 로프를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내일 어둠속에 올라야 할 광제산이 서산으로 지는 햇살을 받아 박무속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계속 이어지는 로프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썩어 위험하게 보이는 짧은 나무계단이 보이고 그 계단을 지나서도 한동안 가파른 내리막 낙엽 등로를 따라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을 흘려 본다.
그렇게 한동안 더 내려가니 가파랐던 마루금도 조금은 편안해 지고 소나무 등로로 바뀌면서 이제 청현재도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소나무 등로를 타고 조금은 여유롭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송전탑이 서 있는데 그곳에서 내려다 보니 등로 우측 옆으로 오늘 내려가야 할 경상남도 축산진흥연구소 축산시험장이 내려다 보이고 그곳을 지나 청현리가 내려다 보인다.
청현리는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에 있는 마을로서 동쪽으로는 집현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양천강이 흘러 동쪽으로는 산지가 펼쳐져 있으며 서쪽으로 낮은 산지와 평지를 이루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음달, 양달마을이 있는데 음달마을은 청현 서족에 있는 응달쪽 마을이라 하여 음달이라 하였고 양달은 음달의 아래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양달이라 하였으며 청현소류지와 동지골소류지가 있다. 조선 숙종때 건립된 청곡서원이 있다.
그렇게 마지막 내리막 등로를 타고 청현재로 내려 가 본다.
다시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잠시 후 오늘 산행 날머리인 청현재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좌측 즉 신기리로 통하는 방향은 시멘트 포장이 된 도로인데 우측 청형리 방향으로는 비포장 임도가 남아 있다.
이곳에서 선답자들이 애용했던 대의택시를 콜하니 청현재 우측의 축산시험장만 잘 알고 있어 그곳에서 만나기로 하고 내일 새벽 올라야 할 산행 들머리를 사진에 담고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을 한다.
청현재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니 이곳 역시 진주시와 산청군에서 다른 설명이 되어 있어 두 자료 모두를 정리해 본다.
천고재(청현재, 진주시)는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에서 산청군 신안면 청현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일명 청현재라고도 하는데 예전에는 후미지고 산적들이 많아 천명이 모여야 왕래하였다고 한다.
청고개(청현재, 산청군)는 청현마을에서 명석면으로 넘어가는 집현산 능선을 넘어가는 고개를 청고개라 하는데 옛날에는 이곳이 진주로 가는 대로였으므로 하루에 천명이 넘는다하여 천고개라 하였다.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도로는 구불구불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내려가니 도로 우측에 집현산 가는길이란 이정표가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작은 저수지도 보이는데 이름을 찾아 봐도 무명 저수지이다.
그 저수지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경상남도 축산진흥연구소의 축산시험장 후문이 나타나는데 비포장 임도는 그 축산시험장 좌측의 철조망을 따라 나 있다.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내려 온 청현재가 잘룩한 고개로 남아 선명하게 올려다 보인다.
내일 새벽 오를 시간에는 어둠속에 숨어 잘 보이지도 않을 도로이기에 가슴속으로 그 도로를 남기며 걸어 내려간다.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임도 바로 좌측으로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잠시 후 그 개울 넘어 민가 한채가 보이는데 그곳의 강아지 한마리가 심하게 울부짖는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한동안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청현소류지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부른 택시가 축산시험장 정문에 도착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더 내려가니 드디어 경상남도 축산진흥연구소 축산시험장 정문에 도착을 해 산행을 마치며 배낭을 정리해 본다.
경상남도 축산진흥연구소의 축산시험장은 경상남도 진주시 초전동에 있는 축산진흥을 위해 설립된 연구기관으로 경상남도 도민들에게 안전하고 위생적인 축산물의 제공과 축산진흥을 위해 설립되었다.
1953년 4월 2일 경상남도 조례 제36호에 의거 부산시 보수동 1가에 경상남도 가축위생시험소로 설립되어 축산물 위생에 관한 업무를 시작하였다.
1955년 7월 8일 진주시 신안동으로 이전하였으며 1962년 5월 8일에는 경상남도 가축시험소로 개칭하였다. 1971년 12월 9일에 울산지소를 설치하였다가 1972년 1월 13일 동부지소로 개칭하였고 1981년 9월 18일에는 경상남도 가축위생시험소로 개칭하였으며 1983년 6월 1일에는 창원시 용호동에 중부지소를 1987년 6월 11일에는 합천군 합천읍 합천동에 북부지소를 각각 설치하였다.
1988년 11월 3일에는 진주시 초전동 423번지(초전북로 104)의 신축청사로 이전하였고 1990년 3월 14일에는 통영시 도산면 원산리에 남부지소를 설치하였다.
1996년 9월 19일에는 경상남도 가축위생시험소와 종축장을 통합하여 지금의 경상남도 축산진흥연구소로 개칭하였으며 2000년 7월 13일에는 울산에 있던 동부지소를 폐지하고 2001년 8월 9일에는 종축과를 폐지하였다.
경상남도 내 축산물의 위생검사와 가축의 질병 진단과 전염병 예방 등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젖소 유방염 방제사업, 도축 검사 및 관련시료 채취, 도축장 및 도계장 위생관리, 원유검사, 도축장 미생물 오염도 조사, 축산물 미생물 검사, 축산물 잔류물질 간이검사, HACCP작업장 미생물검사, 한우젖소고기 감별검사, 축산물 가공품 의뢰검사, 유통축산물 수거검사, 축산물 위생검사 관련 민원처리, 친환경 인증농가 지원, 식용란 검사 등의 세부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2011년 현재 소장 산하에 가축방역과(관리, 방역, 병리진단), 축산물위생과(축산물검사, 가공분석, 도축검사), 축산시험장(한우연구, 연구관리, 양돈연구, 기술지원), 중부지소(방역, 시험, 축산물검사), 북부지소(방역, 축산물검사), 남부지소(방역, 축산물검사)로 구성되어 있다. 102명 정원에 90명의 직원(일반직 44명, 연구직 24명, 기능직 19명, 계약직 3명)이 근무하고 있다.
배낭을 정리한 후 택시를 타고 대의고개로 뒤돌아 가 애마를 회수한 후 원지로 나가 샤워를 하고 모텔방을 예약한 후 근처 곰탕집에서 따뜻한 국물에 이슬이 한병을 마시고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며 하루를 마감해 본다.
내일 하루도 무탈하게 산행을 마무리 한 후 조금은 일찍 서울로 복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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