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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맥과 중요 지맥 산행(완료)/팔공기맥(낙동·완)

팔공기맥 제6구간 오로고개에서 땅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5.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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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북도 군위군과 구미시의 팔공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5년 11월 20일과 21일(금요 무박 토요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흐리고 안개 후 점심때부터 이슬비가 내렸던 날씨

산행온도 영상 06도에서 영상 17도

산행인원 : 총 5명 (칠갑산과 3450온누리산악회 팔공기맥 종주대 4명)

산행코스 : 오로고개(930번 2차선 포장도로, 해피아일랜드 골프클럽)-236봉-안부-330봉-331봉-비포장 임도-장구먹 비포장 임도-묘지들-감나무

                과수원-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330봉-잣나무 조림지-304봉-잡목과 잣나무 조림지-347봉-304 바위봉-244봉-묘지지대-

                곰재(923번 2차선 포장도로, 곰재농장)-89/80번 송전탑-226.4봉-90/81번 송전탑-경운대학교 갈림 삼거리-91/82번 송전탑-바위와

                낙엽 등로-경운산 문수봉(341봉, 산불감시초소)-소나무 등로-임부암의 전설 설명판과 나무데크-나무계단-전설의 길 갈림 이정표(경운산

                정상 0.4 Km와 경운대주차장 3.4 Km, 산동참생태숲 1.2 Km와 인덕정 3.3 Km 및 경운대 주차장 4.0 Km, 전설의 길 0.7 Km)-안부-329봉

                우회 등로-간벌지대-나무 벤취 쉼터-돌탑-나무벤취 쉼터-시멘트 포장임도와 주차장-이정표(정상 문수봉 1.2 Km와 경운대생활관 4.1 Km,

                산동참생태숲 0.4 Km와 인덕정 2.4 Km)-시멘트 포장도로-비재(2차선 포장도로, 산동참생태숲 이정석)-안부-무명봉-안부-247봉 헬기장-

                인동장씨 묘지지대-우베틀산(305봉, 전망바위)-나무벤취 쉼터-뾰족봉(332봉, 벤취 쉼터)이정표(베틀산 0.7 Km, 동곡리 4.9 Km)-철계단-

                안전로프지대-도중리 갈림 비포장 임도 이정표(베틀산 300 m와 좌베틀산 1.2 Km, 우베틀산 300 m, 도중리 1.9 Km)-나무데크 쉼터-

                이정표(베틀산 100 m와 좌베틀산 1.0 Km, 우베틀산 400 m, 금산1리 900 m)-철계단-상어바위-이정표(베틀산 80 m와 좌베틀산 950 m,

                우베틀산 450 m, 금산1리 950 m 우회로 5번 합류)-안전목책과 로프구간-전망바위와 조망처-베틀산(324 바위봉)-안부 이정표(베틀산

                100 m와 우베틀산 700 m, 좌베틀산 800 m, 금산1리 800 m 우회로 3번 합류)-바위봉-이정표(베틀산 300 m와 우베틀산 800 m,

                좌베틀산 600 m, 금산1리 700 m)-안부-바위 등로-조망처-바위 등로-좌베틀산(369봉, 삼각점, 돌탑베틀산 등산로 안내판) 이정표(베틀산

                900 m와 우베틀산 1.4 Km, 상어굴 500 m)-바위통로와 통나무 계단-이정표(베틀산 950 m와 좌베틀산 50 m, 군위소보, 금산1리 1.5 Km)-

                거목 안부-군경계봉(332봉, 반석바위)-안부-326봉-안부-바위등로-334봉(너럭바위)-간벌지대-내밀재(927번 2차선 포장도로)-잡목구간-

                223봉(준.희님 응원판)-안부-밀양박공 묘지-안부-간벌지대-337봉-355 바위봉-남일재-409봉-묘지지대-성황당 안부-불난지역-바위

                낙엽지대-냉산 분기점(621미터)-610봉-비포장 임도-낙엽 능선-잣나무 등로-낙엽송 조림지-잡목지대-경작지-이동통신탑-벙커-

                땅재(68번 2차선 포장도로, 땅재 이정판, 소보 이정석)-산행종료

산행거리 : 안개와 흐린 날씨에 빨래판 등로를 따라 어렵게 진행해 25.76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깊은 낙엽속에 빨래판 처럼 오르내림이 심했던 등로를 어렵게 진행하여 12시간 15분 (03시 18분에서 15시 33분까지)

교통편 : 애마 1대 이용

팔공기맥(위천북 기맥) 또는 팔공지맥이란 ??? 

백두대간의 매봉산(태백)에서 시작한 낙동정맥은 주왕산과 통점재를 지나 가사령에 내려서기전 1.1 Km 지점에서 서쪽으로 큰 산줄기 하나를 가지치고 가사령으로 내려서 침곡산으로 간다.

서쪽으로 가지친 큰 산줄기는 베틀봉(934미터), 면봉산(1121미터), 보현산(1126미터)을 지나 석심산(750.6미터)에 이르러 다시 두갈래로 갈라진다(분기점에서 39.4 Km).

한줄기는 남서진하며 방가산(755.8미터)과 화산(828.1미터) 및 팔공산(1,192.8미터)을 지나고 가산(901.6미터)에서 북진하여 좌베틀산(369.2미터)와 청화산(700.7미터)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새띠마을에 이르는 길이120.7 Km되는 산줄기다.

석심산(750.6미터)에서 또한줄기는 북서진하며 어봉산(634.2미터), 갈비봉(672미터), 산두봉(719미터), 구무산(676.3미터), 푯대산천제봉(359미터), 삼표당(443.7미터), 해망산(400미터), 삿갓봉(290.7미터), 골두봉(314.8미터), 곤지산(330미터) 및 비봉산(579.3미터) 등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팔공산쪽으로 온 산줄기를 마주보며 끝을내는 길이 127.4 Km나 되는 산줄기다.

두 산줄기는 위천을 남과 북으로 애워싸고 서로 마주보고 달리다가 다시 위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위천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며 만나게 되는데 위천의 북쪽 울타리가 보현지맥이고 위천의 남쪽 울타리가 팔공기맥 또는 팔공지맥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팔공산줄기를 팔공기맥(지) 또는 낙동내륙기맥과 금호북기맥등으로 부르고 있는 모양인데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에는 이를 각각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서북쪽 산줄기 전체를 보현지맥으로 석심산에서 남서쪽 팔공산 줄기를 팔공지맥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나도 그렇게 부르는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산세로야 팔공산쪽이 더 크고 유명세도 있지만 우선은 길이가 단 6.7 Km이긴 하지만 긴쪽을 장자로 봐야 할 것 같고 석심산에서 북서쪽 산줄기만 따로 떼어내서 이름을 붙이자면 그쪽에서 제일 높은산인 산두봉(719미터)이름을 따야 할 텐데 이름없는 산이라 좀 어색하고 잘 알려진 보현산(1124.4미터)의 위상도 감안하여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산두봉 줄기를 보현지맥으로 부르고 석심산에서 남서쪽 팔공산 줄기를 팔공지맥으로 부르는게 좋을 듯 싶다.

보현지맥 북쪽의 물은 용전천, 길안천, 미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보현지맥 남쪽의 물은 위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위천의 남쪽 울타리인 팔공지맥의 북쪽물은 위천으로 흘러들어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하고 팔공지맥의 남쪽물은 금호강으로 흘러들다 가산을 지나고부터는 낙동강에 직접 흘러든다.

 

 

안개 낀 흐린 날씨에 빨래판 같은 오르내림이 심했던 등로를 따라 맥 잇기 산행에서는 해발고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회사와 가정 일로 인해 지난 2주간 산행다운 산행 한번 못하고 특히나 이번 중 일주일 내내 목감기로 고생한 후라 장거리 산행에 대한 부담감만 커져 오는데 그동안 함께 진행하던 종주대 중 2명이 개인일로 참석이 어려워 이번 구간에는 총 5명이 한대의 승용차를 이용해 다녀 오기로 한다.

어제까지 내리던 가을비가 그치며 맑은 날을 예고하고 있으며 기온 역시 산행하기에 좋은 계절이기에 큰 걱정은 없지만 빨래판처럼 이어지는 오르내림이 심한 등로로 인해 무탈하게 완주나 가능할지 조금은 고민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산행 들머리까지의 거리가 짧아지며 서울에서의 출발시간을 한시간 늦춰 밤 12시에 출발을 하게 되고 공사로 인해 약간의 막힘은 있었지만 큰 어려움 없이 휴게소에서 한번 쉬었다가 여유있게 달려가니 지난 구간 홀로 외롭게 내려왔던 오로고개에 새벽 3시에 도착을 하는데 생각보다 짙게 내려 앉아 있는 안개로 인해 기온은 생각보다 춥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생각보다 좋은 산행 조건으로 큰 어려움 없이 좌베틀산까지 도착을 하지만 이곳 역시 정상석이나 정상 안내판 하나 볼 수 없어 아쉬움을 달래며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지금껏 많은 산행을 했지만 산행중 정상석이나 정상 안내판을 만나지 못했던 경험이 없기에 오늘은 아주 특별한 산행으로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좌베틀산을 내려 와 설치된 철계단 앞에서 지금부터 진행해야 할 마루금을 살펴 보니 바로 앞에 332봉 지나 올망졸망한 능선이 저 멀리 냉산으로 이어지고 박무로 인해 희미한 냉산 우측 뒤로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청화산이 우뚝 솟아 하늘과 맞닿아 있는 풍경이 산객을 마음을 흔들며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빨래판처럼 이어지는 능선이 출발하려는 산객의 두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새벽 3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도착한 오로고개에는 여전히 해피아일랜드 골프클럽을 알리는 커다란 이정석만이 외롭게 어둠속 안개에 묻혀있다.

이곳 오로고개는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수서리에서 구미시 장천면 오로리를 이어주는 67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로서 주위에는 중앙고속도로와 해피아일랜드 골프장이 있다.

산행 준비 후 출발하려는데 생각보다 짙은 안개가 밀려 와 순식간에 온 세상을 삼켜 버리고 텅빈 포장도로마져 그 존재감을 상실시키고 있다.

애마를 도로 한쪽 공터에 잘 주차시키고 고갯마루로 올라 가 우측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찾아 오르니 풀섶엔 이미 안개로 인해 맺힌 물방울들이 산객의 움직임에 비산하며 종주대의 온 몸을 살포시 적시고 있다.

 

잠시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잡목과 잡풀들이 자라며 임도로서의 기능이 상실된지 오래된 듯 보이고 곧이어 그 임도를 버리고 마루금은 우측 능선의 또 다른 잡목 사이로 이어지고 있다.

거친 잡목과 가시나무 지대를 지나 오르니 몇기의 묘지들이 조용히 잠들어 있는 곳을 지나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잃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 짧은 알바 후 뒤돌아 와 정상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아무 표식도 없는 첫번째 봉우리인 236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안개가 짙어 제대로 된 사진 한장 남기기 어려운 시간이다.

 

무명봉인 236봉을 지나 낙엽 깔린 등로를 따르니 이름없는 안부를 통과하고 잠시 후 평이한 소나무 등로를 따르게 된다.

등로 좌측으로는 안개속에 더욱 을씨년스럽게 다가오는 오로리 불빛들이 산객의 가슴속으로 파고들며 한기를 부채질 하고 있다.

오로리는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있는 마을로서 마을 뒤로 백마산 등이 솟아 있으며 위쪽으로는 감천이 아래로는 대망천이 흐르는데 들이 넓으며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오로(올고개,오을고개,오로촌), 가자골(가좌곡), 감천변(장대걸), 아름마, 양지뜸, 웃마, 음지뜸, 큰곡, 하만 등이 있는데 오로는 올고개 밑이 되므로 붙여진 이름인데 후에 화개동 일부를 병합하여 오로리가 되었으며 고려 때부터 조선조 중엽까지 오을고개원이 있었다.
가자골은 뒷 골짜기에 가재가 많이 있다고 하며 감천변은 감천(도산천) 곁에 있는 마을이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제법 큰 바위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참나무 가지에 여영님이 걸어 놓은 팔공기맥 330봉 안내판이 잠시 쉬어가라 권유를 하는듯 하다.

 

어둠이 짙게 내려 앉은 330봉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와 빛바랜 억새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지도상 표기가 되어 있는 시루바위는 느끼지도 못하고 곧바로 신선님이 달아 놓은 331봉 안내판에 도착을 해 또 다른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이곳은 이제 오로리에서 수서리로 넘어 온 능선으로 수서리는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에 있는 임야가 많고 서남쪽으로 동천이 흐르고 있는 마을로서 자연마을로는 바끗장수, 서군, 장수 등이 있다.
바끗장수는 장수 바깥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외장수라고도 하며 배로 건너다녔다 하여 배다리라고도 하고 서군은 수서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장수는 마을 앞에 물이 길게 흘러 장수라 이름 지었다 하는데 수서리는 서군과 장수의 이름을 따서 지은 지명이다.

그 331봉 안내판을 지나 내려가니 금새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잠시 그 임도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멧돼지들이 사용할만한 커다란 물웅덩이가 나타나고 곧이어 장구먹 갈림 삼거리 임도에 도착을 한다.

장구먹(장구미기)은 오로리에 있는 마을로서 오로리는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에 있는 대부분이 산지로 경지는 거의 없는 마을로서 자연마을로는 뚱절, 새마, 설곡, 오류실, 미륵당 등이 있다.
뚱절은 중평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부락이 커다란 밭뚝(밭둑)에 있고 뒷산이 절벽 같아 뚝절이라 부르던 것이 변음되어 뚱절로 불리고 있고 새마는 장구미기, 설골, 오로실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수하는 중간 평야에 있는 마을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며 중평이라고도 한다.
설곡은 중평의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임진왜란 전에 설씨가 중심을 이루고 살았던 곳이라 해서 설곡이라 불리게 되었고 일제강점기 때에 설곡으로 바뀌었다.
오류실은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오금리에서 살던 노은 박준이 이곳에 피난와서 살게 되면서 고향을 그리워하여 고향 동리명 첫 글자와 자신의 호 첫 글자를 따서 오로실이라고 동네 이름을 지었다.
선생의 현손 5형제가 동네 입구에 느티나무와 버드나무를 심었고 동구의 다섯 나무 때문에 동네 이름이 오류실이라 불린다.
미륵당은 마을 뒤에 미륵불이 있어서 생겨난 동명이며 지금도 경북문화재자료 332호로 지정된 미륵당 석조 미륵입상이 보존되고 있어 불당리 또는 신기라 부르기도 한다.

임도 삼거리에서 직진의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등로는 다시 좌측 능선으로 오르게 되는데 주의하지 못해 또 비포장 임도를 타고 고갯마루까지 올라 짧은 알바를 경험하게 된다.

 

     

잡목이 우거진 희미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우측으로 323.2봉으로 오를 수 있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이곳에서 우측 323.2봉 오르는 등로를 버리고 좌측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몇기으 묘지지대가 나타난다.

이슬이 내려 앉아 있는 풀섶을 지나 진행하니 우측으로 파란 그물망이 나타나고 곧이어 감나무 과수원이 짧게 펼쳐지는데 남아 있는 몇개의 감을 따서 맛을 보니 단감이 아니라서 떫은 맛이 남아 있다.

장구메기(장구미기, 장구먹)는 임도로 내려와 우측에 감나무밭이 있는 콘크리트 포장도로의 고갯마루로서 구미시 장천면 오로리에서 우측의 중앙고속도로의 군위I.C로 가는 고개인데 장구의 모가지처럼 잘룩하게 생겼다고 해서 장구메기(장구머기, 장구미기, 장구먹)라고 부른다.
이곳 능선 뒤의 마을이름이 장구먹이고 따라서 이 고개를 장구먹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곳 삼거리에서 원 정맥길은 우측 능선으로 올라서야 하나 소나무를 간벌한 곳으로 등로가 없어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한다.
그 감나무 과수원을 지나니 이제는 장구먹 마을에서 올라오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짧게 타고 올라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걸어 본다.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정상 등로는 이제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우측 잡목으로 우거진 능선으로 오르도록 되어 있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조만간 이 비포장 임도와 다시 만날 것으로 예상되어 그냥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한동안 그 ㅂ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방금 전 오르려고 했던 정상적인 마루금과 다시 만나는 갈림 삼거리 비포장 임도를 만나고 그곳에서 정상 마루금을 뒤돌아 본 후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한다.

빛바랜 억새와 깊게 쌓인 낙엽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봉우리 같지 않은 339봉을 지나 잣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조림지에 도착을 한다.

 

잎이 떨어진 싸리나무와 빛바랜 억새가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임도 좌측으로는 짓나무 조림지가 여전히 따라 오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잣나무와 억새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이제 눈 앞 저 멀리 희미한 마루금이 나타나고 그 마루금 뒷편으로는 붉게 밝아오는 빛이 보인다.

처음에는 일출이 시작되려는 듯 보였지만 시간을 보니 일출이 너무 빠른 시간이라 살펴 보니 아마도 그곳 주위에 있는 골프장에서 나오는 빛이 아닐까 생각되는 밝음이다.

다시 진행을 해 304봉을 지나고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땀방울을 흘리니 잡목이 우거진 무명봉 능선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마루금은 좌측으로 크게 꺽이며 완만하게 내려가게 된다.

 

짙은 어둠속에 보이지 않는 등로를 찾아 완만하게 내려가니 이곳 역시 잡목이 자라면서 진행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어렵게 희미한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조금씩 등로가 좋아지면서 참나무 가지에 여영님이 달아 놓은 팔공기맥 347봉이란 안내판이 보인다.

이곳에서도 사진 한장으로 추억을 만들고 다시 우거진 잡목을 헤치고 어렵게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보는 시간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구간에서는 지금까지 자주 만났던 준.희님의 산패랄까 아니면 안내판 대신 여영님의 안내판이 자주 나타나 준.희님의 근황이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여영님의 347 안내판 옆으로는 남양주의 금곡님 띠지도 걸려있어 잠시 안부를 묻고 출발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내려가 무명봉을 넘고 평이한 낙엽 등로를 따르니 이제 등로는 잡목지대를 벗어나 활엽수 지대를 지나고 있다.

발 아래 쌓인 낙엽이 푹신하게 발목까지 덮는 등로를 타고 한동안 걸어 진행을 하니 닷 등로는 완만하게 올라 바위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304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을 한다.

 

바위봉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낙엽 등로를 따르니 이제는 활엽수오 소나무가 적당히 섞여 있는 등로가 보이고 곧이어 솔갈비가 푹신하게 깔려있는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등로는 우측에 무명봉을 두고 좌측으로 우회하며 진행이 되는데 우측 무명봉으로 올라보니 커다란 활엽수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244봉인데 이곳의 해발고도는 지도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표기가 없는 곳도 있는 봉우리이다.

 

그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고도가 낮아지며 등로네느 다시 짙은 안개가 밀려오기 시작하고 온몸에는 한기가 돌기 시작해 방풍의를 입고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묘지들이 나타나고 두껍게 깔려있는 활엽수에서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내려가니 923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곰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도 역시 짙은 안개가 덮혀있어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도로를 건너 송백로 329란 도로 표지판을 사진에 담고 살펴보니 들머리 우측 옆으로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자주 봤던 곰재농장이란 커다란 이정석에 서 있어 그곳에서 사진 한장씩 남겨 보지만 그 어디에도 이곳이 곰재라는 안내판이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곳 곰재는 경북 구미시 장천면과 산동면의 경계로 923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갯마루로서 장천면과 산동면 가르는 경계 지점이기도 하는데 고갯마루 옆에는 토종닭과 유정란 및 가시오가피와 헛개나무를 재배하는 곰재농장이 보인다.

 

곰재농장 이정석에서 추억을 남긴 후 도로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제법 넓은 등로가 열려있는데 살펴보니 그곳에는 작은 소나무들이 식재되어 있어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을 했는데 잠시 후 이 등로는 송전탑을 건설하기 위해 만들어진 등로로서 공사가 완료된 후 복구시키기 위해 나무들을 식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잠시 그 넓은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눈 앞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송전탑에서 불빛이 반짝이고 있다.

짧은 시간 능선으로 들어갔다 나오니 등로 좌측 아래로 구미골프장이 내려다 보이는데 아직도 어둠속이다 보니 조금은 아쉬운 조망이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방금 전 봤던 송전탑은 89/80번 송전탑으로 2개의 숫자를 가지고 있으며 그 송전탑을 지나자마자 작은 소나무가 식재된 등로 위에 226.4봉이 봉우리 같지 않은 풍경으로 남아 있다.

 

그 224.6봉을 지나 진행을 하니 이제 조금씩 어둠이 엷어지며 진행방향으로 줄지어 늘어 선 송전탑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송전탑 공사를 위해 개설되었다 작은 소나무를 식재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벌써 방금 전 만났던 송전탑 89/80번이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다시 등로 좌측으로 만나는 90/81번 송전탑을 지나 넓은 등로를 따르다 그 넓은 등로를 우측으로 보내고 직진의 능선으로 오르고 그곳에서 등로는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송전탑이 줄지어 서 있는 방향인 북서 방향으로 크게 꺽여 진행을 하게 된다.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앞서 진행하는 종주대를 따라 우측으로 크게 꺽어 완만하게 내려가며 앞에 보이는 높은 송전탑과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는 문수봉을 올려다 본다.

 

그렇게 넓은 송전탑 공사를 위해 개설되었던 키 작은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이제 등로 좌측으로 구미시 산동면의 경운대학교와 문수지 그리고 저 멀리 선산골프장이 아련히 안개속에 내려다 보인다.

다시 넓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91/82번 송전탑을 만나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으로 살펴보니 방금 전 진행해온 팔공기맥의 오로고개 방향으로 안개가 자욱한 마루금이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고 바로 옆으로는 구미골프장인지 아니면 다른곳의 높은 굴뚝인지 모를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안개속으로 뿜어져 나오는 풍경도 새롭게 다가온다.

지나온 팔공마루금 위로도 이제 하얀 안개가 밀려오며 온 세상을 하얀 세상으로 만들고 있는듯 보인다.

 

그렇게 멋진 운해를 살펴보고 진행을 하니 이제 등로는 너무나 황홀한 낙엽 등로로 변해있어 너무나 편안하게 걸어 본다.

오늘 산행이 종주산행인지 낙엽산행인지 모를 정도로 편안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완만하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다시 평이한 능선을 지나 바위와 낙엽들이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운치있게 걸어 본다.

조금은 굵은 땀방울이 맺힐쯤 1층과 2층의 2개의 산불감시초소가 설치되어 있는 경운산 문수봉에 도착을 해 2층 산불감시초소로 오르는 계단 끝으로 올라 너무나 황홀한 조망을 살펴 본다.

다만 이곳 경운산은 지도에는 표기가 되어 있지 않은 명칭으로 그 유래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있어 인용을 해 본다.

경운산(문수산, 341봉)은 경북 구미시 산동면 동곡리와 백현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 산아래 문수사란 절이 있어서 문수봉이라고 불렀는데 경운대학이 들어서서 산이름이 바뀌어 지금은 경운산으로 부르고 있다고 전해진다.
정상에는 별 특징도 없고  산불감시초소와 재난방송 시스템만 산을 지키고 있다.
경운산(341봉)은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과 장천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낙동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팔공지맥의 한줄기로  문수산으로 불리워지다가 경운대학교 뒤산이라 언제 지명이 바꿨는지 지금은  모든지도와 현지 산행안내도에 경운산으로  주봉 341봉을 문수봉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먼저 지금부터 진행해야 할 329봉 넘어 저 멀리 베틀산들과 올망졸망 올라 온 봉우리들 끝자락으로 냉산과 청화산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온다.

오늘 제법 많이 걸어 왔다고 생각을 했는데 저 멀리 잘 보이지도 않는 냉산 넘어 땅재까지 가야한다고 하니 가야 할 산줄기가 참으로 멀게만 느껴지는 시간이다.

그 봉우리 사이의 나즈막한 안부와 고개에는 하얀 안개가 밀려 와 운해를 이루고 있어 또 다른 모습으로 산객의 가슴속에 쌓이고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나온 방향 우측인 남쪽으로는 경운대학교와 문수지 그리고 저 멀리 선산골프클럽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는 모습도 뚜렷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눈을 좌측으로 조금 더 돌리니 방금 전 지나온 팔공기맥 위 송전탑 3개와 좌측으로 크게 돌아 이어진 능선이 하얀 안개와 함께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한발 두발 걸어 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이동해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기하기만 한 아침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동안 그 경운산 문수봉에서 조망을 즐기며 물 한모금 마시고 소나무가 멋진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간다.

잠시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내리막 소나무 등로에서 평이한 활엽수 등로로 변하면서 등로에는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다.

편안하게 그 낙엽을 밟으며 여유있게 걸어가니 바로 눈앞에 거대한 바위 암봉이 나타나고 나즈막한 봉우리를 넘으니 넓고 큰 바위 위에 임부암의 전설이란 설명판과 함께 나무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옛날 이곳 선산이 고향인 왕비가 태반이 약해 인신을 하면 낙태를 거듭하게 되었는데 전의가 그 치료 방법을 알려 줘 이곳에서 전라로 음기를 강하게 하여 건강한 왕자를 낳았다는 내용의 전설을 적어 놓은 안내판이 있는데 사실여부를 떠나 여행객들과 산행객들을 유혹하기에는 좋은 전설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그 임부암은 바로 건너편 지나온 등로 좌측 절벽에 임산부와 닮아 있는 바위가 보이는데 그 바위가 바로 임부암이란 설명이었다.

 

그렇게 나무데크 전망대에 설치된 임부암의 전설 안내판을 읽어 보고 그 임부암도 살펴 본 후 내려가니 그곳에는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최근에 조성된 듯한 산동참생태숲과 건물들이 내려다 보인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며 내려가니 깊이 쌓여있는 낙엽이 보이고 잠시 후 나즈막한 안부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좌측으로 전설의길이란 안내표시와 함께 700미터 거리라는 표시가 눈길을 잡는다.

찾아 보니 상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지만 산동참생태숲에 조성된 산책로의 ㅇ름중 한곳이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전설의 길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눈앞에 드높게 솟아 있는 329봉으로 오를것이라 예상하고 마음 단단히 먹고 출발을 하니 등로는 그 329봉으로 오르지 않고 좌측 낙엽이 쌓여있는 우회등로를 통해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우회 등로를 따라 걸어가다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그곳에 멋진 산동참생태숲과 경운대학교 그리고 문수지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구미시는 최근 여가시간 증가 및 웰빙 시대를 맞아 시민의 산림휴양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산동참생태숲을 쾌적한 산림휴식 및 산림문화  체험공간으로 탈바꿈 시켜 시민들에 개방했다고 한다.

박무가 있어 조금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이렇게 그 아름다운 풍경을 가슴에 담을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도 해 본다.

 

    

329봉을 우측 위에 두고 좌측 낙엽진 우회 등로를 통해 진행하며 위를 올려다 보니 그 329봉은 하나의 거대한 암봉으로 이뤄진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조심하며 그 329봉을 완전히 우회한 후 합류되는 지점에서 뒤돌아 보니 329봉을 타고 진행한다 해도 이곳으로 내려오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다시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니 운치있는 풍경이 하나 둘 가슴속에 쌓이고 있다.

이제 간벌된 소나무 등로를 타고 부드럽게 진행을 하니 나무벤취 쉼터가 반겨주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산동참생태숲을 내려다 보니 개장된지 얼마 안되었다는 것이 눈에 들어 온다.

 

조망을 즐기고 다시 천천히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옆에 작은 돌탑이 보이고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또 다른 벤취 쉼터 지나 절개지 넘어 콘크리트로 조성한 넓은 주차장이 나타난다.

조심하며 우측 등로를 타고 그 주차장 방향으로 내려가니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이곳에서 저 절개지를 타고 올라 주능선으로 진행을 해야 되겠지만 잡목도 심하고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비재로 가도 되기에 여기에서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비재로 진행하기로 한다.

 

한동안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인덕에서 백현 기점 1.0 Km 지점이라는 작은 콘크리트 말뚝도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를 넘어 걸어가니 도로 우측 아래에서 강아지 울음소리가 크게 들리고 살펴보니 커다란 축사 몇동이 보이는데 가축은 사육을 하지 않는 모습이다.

15붐 여를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드디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비재에 도착을 하는데 아무리 찾아 봐도 비재를 알리는 안내판은 찾을 수 없고 도로 한쪽에 서 있는 산동참생태숲이라 적혀있는 커다란 이정석만 눈에 들어 온다.

2010년에 개장한 산동참생태숲은 경북 구미시 산동면 인덕1길 240에 위치하고 있다.
구미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정도 소요되며 중앙고속도로와 25번 국도와 연접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생태숲과 연결된 경운산(해발341m) 7.4㎞의 등산로는 탐방과 등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쾌적하고 풍부한 녹색쉼터와 자연의 형상을 그대로 살린 다양한 작품들이 관리사무소와 산책로 주변 곳곳에 전시돼 있어 탐방객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과 더불어 목공예 작품 등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또 다른 볼거리 제공하고 있다.
자연친화적이고 특성화 된 자생식물단지와 소나무, 대나무, 이팝나무, 은행나무,자작나무, 계수나무 등 나뭇길이 조성되어져 좋아하는 숲길을 골라 걸을 수 있게 했으며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벤치나 정자는 물론 전통 담장과 옹기, 솟대, 장승들이 전시해 즐거움을 더해 주고 있다.
무료로 목공예체험장을 운영하고 있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자연물을 이용한 여러 가지 공작품을 만들 수 있어 아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산교육장로도 인기가 높다.
특히 숲속이야기길 끝자락에 자리한 소나무 숲길은 숨막히는 도심을 벗어나 자연의 품에 쏘옥 안길 수 있는 치유의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여기저기 마련된 마루에 앉아 휴식과 명상도 즐기며 바람과 구름, 하늘과 내가 하나되는 최고의 공간이다.
전통놀이체험으로는 윷놀이, 제기차기, 투호, 숲속문고, 장기, 고누놀이, 지게체험이 있으며 자생식물단지, 야생화단지, 관찰로(탐방로), 습지관찰원, 생태연못, 장승공원, 소나무숲길, 전설의 길, 목공예체험장 등이 있다.

 

     

비재는 경북 구미시 산동면 동곡리에서 백현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며 산동면에서 조성한 산동참생태숲으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보면 비재라는 이정판이 보였는데 오늘은 아무리 찾아 봐도 볼 수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산동참생태숲이란 커다란 이정석에서 단체사진 한장 남기고 도로를 건너 묘지가 있는 곳으로 오르니 금새 깊은 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를 지나 진행을 하니 또 다른 안부를 지나 멋진 소나무 등로가 나타난다.

그곳 넓은 곳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안부를 통과하니 빛바랜 억새가 소나무와 조화롭게 보이는 멋진 등로로 이어진다.

그렇게 편안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하는데 그 헬기장에도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잡풀들이 자랐다 말라죽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헬기장에서 물 한모금 마시고 가야 할 마루금을 조망한 후 다시 잡목들이 우거진 내리막 등로를 타고 천천히 걸어 진행을 한다.

잠시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특이하게 생긴 바위를 지나고 역암이라 생각되는 바위도 오르는데 이곳도 예전에 바다였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인동장씨 묘지들을 통과하고 무명봉에 도착을 하니 이제 낙엽 깔린 평이한 등로가 열리면서 힘들게 올라 온 시간을 쉬게 만든다.

낙엽이 깊게 떨어져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드넓은 산동농공단지를 새로 조성하는 듯 거대한 공사 현장이 내려다 보이는데 이 불경기에 공단이 성공적으로 분양이 될련지 조금은 걱정도 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살펴보며 오르니 금새 305봉인 우베틀산에 도착을 하지만 아무 표시도 없어 조금은 실망하고 좌측 전망바위로 내려가 앞으로 가야 할 베틀산과 팔공기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드디어 빨래판 능선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듯 오르내림이 장난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우베틀산(332봉)은 경북 구미시 산동면 도중리와 백현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베틀산 능선중에 산동면소재지에서 바라볼 때 가장 우측에 있는 봉우리라서 우베틀산이라고 부르는데 정상에는 휴게용 벤취가 2개나 놓여있고 산동면 소재지가 안개속에 희미하게 보인다는데 오늘은 아쉽게도 마음속으로만 상상을 해 볼 수 있는 날씨이다.

 

제대로 된 정상석 하나 세우기 어렵다면 제대로 된 정상이정표 하나만이라도 앞으로 걸어 놓기를 바라면서 낙엽 쌓인 등로를 타고 다시 출발을 해 본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수북히 쌓여있는 낙엽으로 인해 첫눈이 내려 쌓여있는 등로처럼 미끄러워 조심하며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미끄러운 낙엽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조심하며 오르니 바위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 벤취 쉼터가 있는 곳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또 다른 벤취 쉼터가 있고 베틀산까지 7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뾰족봉에 도착을 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공사중인 드넓은 산동농공단지 조성작업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넓이가 상상을 초월하기에 단체장의 과시용이 아닌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농공단지가 되길 바래 본다.

산동농공단지 공사현장이 있는 동곡리는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에 있는 구릉성 평지에 자리하였으며 낙동강 지류가 흐르는 농촌마을로서 산동 농공단지가 자리한다.
동촌리, 오리, 질곡리 등을 병합하면서 동촌과 질곡의 이름을 따 동곡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말읍, 지리실, 후조당터, 비재밑마을 등이 있다.
말읍마을은 동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고 지리실마을은 질그릇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후조당터마을은 효자 후조당 박영미의 집터가 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비재 밑 마을은 벼랑이 있는 고개 밑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조망을 즐기고 다시 송곡처럼 뾰족하게 보이는 뾰족봉을 출발해 베틀산으로 향한다.

 

    

뾰족봉을 지나 내려가니 생각지도 못한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편안하게 내려가는데 그 철계단을 타고 내려가다 앞을 살펴보니 지금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팔공기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지만 오르내림이 심해 체력적으로 조금은 주의가 필요해 보이는 풍경이다.

바로 아래 베틀재라는 비포장 임도를 지나 베틀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 뒤로 좌베틀산과 3면봉이 차례로 펼쳐져 보인다.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천천히 그러나 주의하며 그 철계단을 타고 내려가 본다.

 

길게 이어진 그 철계단을 내려가니 이제는 소나무 사이로 굵은 로프가 매달려 있고 조심하며 그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 본다.

멋진 소나무 사이에서 자란 활엽수가 많은 낙엽을 등로에 쌓아 여간 미끄럽지 않기에 주의하며 내려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베틀재에 도착을 하는데 임도 좌측으로는 도중리로 내려가는 이정표도 보인다.

낙동강 가의 평지에 위치하며, 마을 가운데로 도중천이 흐른다. 크고 작은 못이 매우 많은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구석마, 도리미(도리동), 아릿도리미(중평동), 웃도리미, 탑마(탑마을) 등이 있다. 구석마는 중평동 남동쪽 구석에 있는 마을이다. 도리미는 도중동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도리미 아래쪽에 있는 마을을 아릿도리미, 위쪽에 있는 마을을 윗도리미라 한다. 탑마는 예전에 탑이 있었는데 일본인이 가져갔다고 한다. 도리와 중평의 이름을 따서 도중리라 하였다.

이곳에서 홀로 먼저 출발해 차량을 회수해 오려고 하였지만 갑자기 모바일 폰의 USIM칩이 없다는 이상 증상이 나타나 종주대 중 다른 한명이 대신해 베틀산을 지나면서부터 먼저 출발하기로 한다.

 

비포장 임도로 이뤄진 베틀재를 지나 계단을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계속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등로 우측에 사각 탁자가 설치되어 있다.

넓은 소나무 등로가 위로 올라 갈수록 사라지고 잎이 넓은 활엽수 등로로 바뀌더니 등로엔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그렇게 오르니 금산1리 갈림 이정표를 지나 오르막 철계단을 타고 오르니 등로 좌우측으로 상어입을 닮아있는 바위들로 둘러쌓여 있어 또 다른 신기한 체험을 하면서 올라보는 시간이다.

상어굴 바위는 철 계단을 올라서니 바위가 마치 엄청나게 큰 상어가 이빨을 벌리고 있는 것처렴 보여서 이곳을 상어굴바위라고 부른다.
바위쪽으로 가보니 무속인들이 굿을 했는지 여러가지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데 옛날에 산의 형태를 보고 베틀을 만들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이곳이 속해있는 해평면은 그 옛날 바닷물이 가득 잠겨 있을때 뾰족이 섬같이 솟아 나온 봉우리가 있었는데 바닷물이 빠져 나가 뭍이 드러날때 평평한 땅은 해평이 되고 섬은 베틀산이 되었다는 유래가 내려오는데 그 증거로 오늘 이 상어굴의 흔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상어굴 바위를 따라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면 방금 전 지나온 뾰족봉과 우베틀산이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는 풍경이 절로 한숨을 짓게 만들고 있다.

 

또 다른 금산1리 갈림 이정표를 지나고 상어굴을 통과해 오르니 안전목책과 로프구간이 보이고 다시 바위 구간 등로로 이어진다.

그렇게 어렵게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멋진 전망바위와 조망처가 보이고 그곳으로 가 내려다 보니 금산리 마을과 동화사 그리고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박무속에서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금산리는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으로 습문천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데 소상골못, 도중지 등 크고 작은 못이 매우 많은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금산곡(쇠산곡,금삼곡,금삼동,소상골,소상곡), 아랫마, 어은곡(어은골), 웃마 등이 있는데 금산곡은 마을이 베틀산 밑이 되므로 쇠산골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된 것으로 후에 금산리가 되었다.
아랫마는 소상골 아래쪽에 웃마는 소상골 위쪽에 있는 마을이고 동화사 서쪽에 있는 팔바우에는 아들을 낳아 이 바위에 팔면 명이 길어진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나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이 산객이 나고 자랐던 시골 고향을 떠 올려보는 추억의 시간이 되었다.

 

한동안 남쪽과 남서쪽으로 구미시 해평면 들판과 공사장을 살펴본 후 이제는 자리를 옮겨 좌측 뒷쪽인 남동쪽으로 오늘 종주대가 지금까지 걸어 온 방향을 살펴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뾰족봉을 시작으로 우베틀산 지나 저 멀리 철탑까지 약간의 박무속에서도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이 가슴속으로 남겨지는 시간이다.

앞으로 진행을 하면서 바라보는 풍경은 미지에 대한 동경과 약간의 고통을 안겨주지만 이렇게 지나온 발자취를 뒤돌아 보면 종주대의 발걸음이 대단하고 위대함을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곳 전망바위와 조망처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며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뒤돌아 나와 바위를 타고 베틀산 정상부로 향한다.

 

전망바위에서 뒤돌아 내려오니 베틀봉 정상으로 향하는 길목에 거대한 암벽이 앞을 가로막고 우측으로 돌아 어렵게 그 암벽을 오르니 베틀산 정상인데 아무리 찾아 봐도 정상을 알리는 그 어떤 표식도 없어 아쉽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많은 봉우리를 오르고 내렸는데 지금까지 단 하나의 봉우리에서도 정상석이나 정상 안내판을 만나지 못했기에 이것도 기록이라면 기록으로 남겨질 산행처럼 느껴진다.

산행 중 띠지와 이정판으로 자주 만났던 한현우님이 붙여 놓은 작은 이정판 하나로 이곳이 베틀산 정상임을 알리고 그곳에 옹기종기 모여 단체사진 한장 남겨 본다.

베틀산(290봉)은 경북 구미시 해평면 금산리에 위치한 산으로서 과거에는 조계산으로 불리기도 했고 경상도 방언으로는 비틀산이라고도 하는데 현지 사람들에게는 조계산으로 더 잘 불려지는 듯 보인다.
3개의 베틀산 중에 가장 가운데 있는 산으로  중국에서 목화씨를 가져온 문 익점의 둘째 손자인 문영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으로 조선시대 태종 때 일선부사로 부임한 문영은 처가가 있는 선산현 해평면 월호동에 자리 잡는다.
화려한 벼슬보다 민생을 위한 산업발전에 힘을 기울이는데 보람을 가진 문영은 할아버지(문익점)의 뜻을 높이 받들여 베짜는 기계 만들기에 전념하여 오랜 연구끝에 조계산(해평면 금산리의 뒷산)의 모양과 공상다리(오상리 국도에 놓인 다리) 모양을 본따서 만든 베틀로 문영베(무명)를 짜는데 성공한다.
이 때부터 조계산을 베틀산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베틀산인 주봉인 좌베틀산과 우베틀산, 본베틀산 등으로 구분이 되며 높고 낮은 6개의 봉우리가 있다.
한편 어느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는데 산 위에서 여인의 베 짜는 소리가 들렸다는 전설과 임진왜란 때 많은 사람들이 피난하여 베를 짰다는 전설 등 다양한 설과 전설들이 전해져 내려오는 산이 되었다.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바위만 덩그런히 놓여있는 베틀산 정상을 떠나는 마음이 어딘지 모르게 씁쓸해지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베틀산 정상의 바위를 내려 와 낙엽 쌓인 능선으로 내려가니 그곳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지나온 우베틀산에서 500미터 거리이고 진행 방향으로 좌베틀산까지 900미터 거리라는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깊이 쌓여 있는 낙엽 등로를 조심하며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에 또 다른 이정표가 서 있고 좌측으로 금산1리 하산 등로임을 알리는 이정표인데 이런 이정표를 100미터 간격으로 세우지 말고 베틀산 정상에 제대로 된 정상석 하나 세워 놓는게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 이정표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이제부터 종주대 중 한명이 애마를 회수하기 위해 먼저 출발을 하고 나머지 4명의 종주대는 한팀이 되어 꾸준하게 걸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다시 미끄러운 낙엽을 밟으며 조심해 오르니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니 안부에는 또 다른 금산1리 하산 갈림 표시가 되어 있는 갈림 삼거리를 지난다.

안부를 지나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베틀산과 뾰족봉이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어 어떻게 올랐다 내려왔을까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느꼈던 시간이기도 하였다.

다시 바위가 널려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오르니 조망처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지척에 좌베틀산이 우뚝 솟아있고 그 뒤 저 멀리 오늘 마지막으로 올라야 할 냉산과 청화산이 박무속에 희미하게 보인다.

 

다시 한번 더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냉산과 청화산을 조망하고 등로 좌측 밑을 살펴보니 그곳에는 동화사와 그 아래로 금산리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그 금산리 우측 저 멀리에는 해평면의 마을들도 산재해 있으며 그 주위를 감싸는 산줄기가 비산비야를 이루며 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조망을 즐기고 낙엽진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바위지대를 지나 삼각점과 돌탑 그리고 이정표가 서 있는 좌베틀산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좌베틀산(369봉)은 베틀산의 실질적인 주봉으로 정상에는 돌탑봉과 2등 삼각점이 있으며 높이가 369미터로서 크게 높지는 않으나 산세가 아기자기하고 암릉과 풍화동굴 등이 산재하고 있어 쉽게 오를 수 없어 보이는 정상이다.
해평면 금산리에서 볼 때 가운데 베틀산을 중심으로 북쪽 방향의 왼쪽에 위치한 좌베틀산 (369봉)과 남동 방향의 오른쪽에 위치한 우베틀산(332봉)이 연봉을 형성하고 있으며 산 중턱 바위절벽 곳곳에는 역암과 사암의 풍화동굴이 널려 있고 동화사 부근에는 높이 6미터 정도의 마애불입상이 동쪽을 향해 새겨져 있다.
주봉인 좌베틀산  정상에서는 구미 지역의 대표적 산들인 금오산과 냉산(태조산) 및 청화산 등이 보이는 조망처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 올라가 살펴보니 정상 주위에 자라고 있는 잡목들로 인해 조망은 전혀 없는 봉우리였다.

 

   

오늘 산행 중 삼각점도 처음 만나다 보니 그저 반갑기만 하다.

그렇게 좌베틀산 정상에서 추억 몇장 남기고 다시 진행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눈 앞에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며 이 산객의 갈길 바쁜 발목을 붙잡고 있다.

바로 앞으로 300미터급의 봉우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그 끝자락에 드높게 솟아 있는 냉산과 청화산이 어서오라 손짓을 하고 있지만 그 풍경을 살펴보는 산객들에게는 고통의 시간이 되고 있다.

 

조망을 즐기고 내려가니 커다란 상수리나무 한그루가 서 있고 그 우측 바위 사이로 통나무 계단이 설치된 특이한 형태의 등로가 나타난다.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봤던 풍경과 계단이기에 이 산객도 사진 한장 남기고 길게 이어진 통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가 본다.

해발고도는 그리 높지 않은 베틀산 연봉이지만 산세만큼은 그 어느산 못지 않게 가파르고 바위 암릉들도 많아 산행의 묘미를 제법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약간의 위험 요소도 있기에 조심해야 될 등로처럼 다가온다.

 

바위 골짜기에 설치된 통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오니 다시 금산1리와 군위소보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고 그곳에서는 직진의 금산1리 방향의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군위소보 방향으로 가파른 내리막 낙엽 등로를 따라 천천히 주의하며 내려가 본다.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는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약간의 물기로 인해 미끄러지기 일쑤이고 주의하며 내려가니 이제 소나무 등로로 바뀌면서 약간의 솔갈비가 멋지다.

그곳을 지나 진행을 하니 다시 큰 활엽수 한그루가 서 있는 안부를 지나 미끄러운 낙엽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발목까지 덮는 낙엽 안부를 지나 오르니 이제 소나무 등로가 열리면서 부드러운 솔갈비가 반겨 준다.

몇개의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돌담 가운데에 또 다른 커다란 활엽수 한그루가 세월의 무상함을 알려주며 당당히 서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반석바위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332봉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우측으로 다릿재 가는 등로가 분기하는 곳으로 군경계봉이란 이름도 보인다.

그 군경계봉을 지나 등로 좌측으로 조망을 살핀 후 내려가니 다시 커다란 활엽수 몇그루가 자라고 있는 낙엽 깔린 안부를 지나게 된다.

 

그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다시 바위와 활엽수 낙엽이 혼재되어 진행에 약간의 어려움을 느끼고 그렇게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힘들게 오르니 봉우리 같지 않은 326봉 정상에 도착을 해 배낭 내려 물 한모금과 과일로 목마름을 달래 본다.

다시 그 326봉을 출발하니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등로 위에는 여전히 깊은 활엽수 낙엽이 깔려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내려가며 앞을 살펴보니 나즈막한 안부 지나 곧바로 334봉이 앞을 가로막고 조망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 오르막 등로를 타고 참으로 어렵게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좌베틀봉이 너무나 뾰족하게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그 뒤로 이어지는 연봉이 빨래판을 닮은듯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 어렵게 올라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상에 334봉이 존재한다.

 

평이한 334봉을 걸어 다시 나타나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등로 옆으로는 간벌된 후 썩어가는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데 산주인이 간벌을 했는지 뚜렷하고 좋은 등로가 이어져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약간의 빛바랜 억새도 보이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마음 편안하게 걸어가니 다시 낙엽이 깔린 활엽수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높은 절개지가 있는 정상부에 도착을 해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며 927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내밀재를 내려다 보며 걸어 내려가 본다.

 

절개지 우측 능선을 따라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잡목들로 인해 등로가 막혀있는데 등로 우측으로 묘지지대가 보이고 그 묘지있는 곳으로 들어가니 묘지를 다녀가기 위해 후손들이 정리한듯한 등로가 뚜렷하게 나 있어 그 등로를 타고 편안하게 내려간다.

내려가니 금새 구미시 해평면이란 도로표지판이 서 있는 927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내밀재에 도착을 한다.

어느 지도에는 이곳을 내밀재 또는 남일재라 표기가 되어 있지만 실제 남일재는 355봉과 409봉 사이의 안부를 말하고 이곳은 그저 도산리고개로 부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본다.

도산리는 경상북도 군위군 소보면에 있는 구릉성 평지에 자리하였으며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이 있어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죽산리와 도원리 및 칠봉리 등을 병합하면서 도원과 죽산의 이름을 따 도산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냄일, 망재, 불당골, 중간마, 원말마을 등이 있다. 냄일마을은 남일재라는 고개 밑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망재마을은 망을 보던 산인 망재봉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불당골마을은 불당이 있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중간마마을은 도산리의 중앙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원말마을은 조선 때 원집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도로를 건너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약간의 잡목들이 우거져 있지만 등로는 잘 정리가 되어 있어 진행에 큰 어려움이 없는 능선으로 올라 완만하게 오르니 간벌된 나무들이 등로에 흩어져 있어 오르기가 쉽지 않다.

이리저리 피하며 힘들게 오르니 멋진 솔갈비가 푹신하게 깔려 있는 소나무 등로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는 준.희님의 팔공기맥 종주대 응원판이 걸려있는 223.1봉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살펴보니 이제 간벌된 나뭇가지들도 없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그 등로에는 빛바랜 잡목들이 잠시 나타나더니 금새 깊은 안부로 떨어진다.

안부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이장을 공고하는 플랭카드들이 달려있고 곧이어 몇기의 묘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 진행하다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창림리인데 창림리는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있는 북쪽으로 태조산이 위치하며 대부분이 산지이며 자연마을로는 서원마을, 점마, 망월, 대밭마, 상촌 등이 있다.

서원마을은 1793년 경 충주 지씨가 개척하였다 하며 송산서원이 있었다 하여 서원머라 칭하고 점마는 서원마을 북동쪽 골짜기에 있으며 옹기 흙과 연료가 풍부하여 옹기를 구워 팔던 곳이다.

망월은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로 가는 오솔길로 주막이 있었던 곳으로 6.25전쟁 때에는 공산당 유격대가 출현하던 곳이고 대밭마는 마을 주변에 대나무가 무성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뒷산에서 무연탄을 발굴하였는데 현재는 폐광되었다.

상촌은 가장 웃마을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나 너무 오지여서 현재는 주민이 살지 않는다.

너무나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이기에 다시 이 산객이 나고 자랐던 시골 고향마을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창림리 마을을 조망한 후 다시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간벌된 지역이 나타나는데 간벌된 나뭇가지들은 등로 옆으로 잘 치워져 있어 진행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다시 솔갈비와 활엽수 낙엽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무명봉을 지나 너무나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다.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천천히 출발을 하니 등로는 완만하게 오르며 진행을 하고 334봉에 도착을 하지만 이곳이 334봉인지도 모르게 통과할 수 있는 봉우리이다.

그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둥그런 바위 하나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35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계속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다시 활엽수 낙엽 등로로 바뀌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는데 지도상으로는 이곳이 바로 남일재이다.

현재 봐서는 고개 같지도 않은 고개인데 이곳도 예전에는 민초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고개로서의 중요한 역활을 하였다니 잠시 발걸음 멈추고 주위 풍경을 살펴 본다.

남일재(내밀재, 냄밀재)는 경상북도 군위군의 소보면 도산리에서 구미시 해평면 도문리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지명은 조선시대의 고문헌과 고지도에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한국지명총람에 남일재(내미티, 남일티, 남일치)는 냄일에서 해평면 도문동과 습문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냄일(새마을)은 남일재 밑에 있는 마을이라는 기록, 같은 문헌의 선산군 해평면 도문동 기록에 내밀재(남일재)는 남일에서 산동면 도산동의 칠풍으로 넘어가는 재, 냄일이(남일, 남일리)는 습문동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내밀재 밑이 됨라는 기록이 있어 이칭인 내밀재, 남일티, 남일치, 냄일이 등을 확인할 수 있으며 고개 지명에서 파생된 촌락지명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이 고개도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맥 잇기 산행을 즐기는 산객들을 제외하면 찾는 사람들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남일재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솔갈비가 푹신한 등로가 펼쳐지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다시 열려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진행을 하니 다시 등로 위에는 활엽수 낙엽이 보이고 이제부터 한동안 무심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완만하게 오르니 드디어 409봉에 도착을 해 잠시 배낭 내려 간식을 먹으며 쉬어 간다.

하지만 쉬는 동안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을 하고 배낭 커버를 씌우고 다시 천천히 출발을 하는데 거리상으로는 땅재까지 그리 멀지 않지만 냉산 갈림길까지 250 고도 이상을 가파르게 치고 올라야 하기에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그 409봉을 지나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잡목가지 사이로 올라야 할 냉산과 청화산 자락이 박무속에 거대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묘지들이 보이고 다시 소나무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하니 성황당 같은 안부에 도착을 하고 이제 이곳부터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냉산 갈림길까지 치고 올라야 한다.

서낭당은 선왕당, 천왕당, 국수당, 국시당 등으로도 불리며 한자로는 성황당이라고 하는데 서낭당은 보통 마을 어귀나 고개마루에 원뿔 모양으로 쌓은 돌무더기와 마을에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형식은 5색 헝겊을 걸어놓은 서낭나무와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누석단이 결합된 것이 일반적이다.
서낭은 한국 전래의 천신과 산신이 복합된 것으로 여기에 중국에서 유입된 성황신앙이 융합된 것으로 보이며 마을수호, 액운퇴치, 소원성취 등을 기원하는 민간종교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서낭당에 올리는 제의에는 마을수호와 질병 예방을 위하여 마을굿의 형식으로 해마다 지내는 서낭제와 개인적 소망을 기원하는 개별 제의가 있고 서낭신은 무속에 수용되어 무신의 하나가 되었으며 서낭굿은 굿의 한 마당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서낭당 같은 안부를 지나 진행을 하니 등로는 더욱 깊은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고 등로는 된비알 등로로 바뀌면서 무척 힘든 산행이 이어지고 있다.

잠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는데 살펴보니 얼마 전 산불이 났었는지 모든 소나무 밑둥에는 검게 그을린 흔적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제 아무 생각없이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오르니 속도는 전혀 나질 않는다.

20여분 동안 어렵게 많은 땀방울을 흘리니 드디어 평이한 등로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휘어 완만하게 오르니 이제 등로 위에는 제법 굵은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을 한다.

 

멋진 소나무와 바위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냉산 갈림 삼거리가 얼마남지 않았는지 등로는 더욱 험악해지고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다.

어렵게 그 바위지대를 타고 넘으니 다시 바위가 사라지고 낙엽이 깊게 깔려있는 평이한 등로가 열리더니 완만하게 오른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드디어 활엽수 낙엽들이 덮혀있는 621봉인 냉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해 이정표나 이정판을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이곳에서 잠시 냉산을 다녀오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안개와 이슬비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고 또한 진행을 하면서 시간도 많이 지체되어 좌측의 냉산은 포기하고 우측의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 출발을 한다.

 

냉산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면 만날 수 있는 냉산 정상부의 풍경이다.

언젠가는 올라보고 싶은 산이기에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많은 정보들이 담겨있다.

냉산(692봉)은 경상북도 구미시의 도개면 다곡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692미터이며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선산에 냉산은 선산도호부의 동쪽 15리에 있다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다.
이후 표기자의 변화없이 여지도서의 선산, 대동여지도, 1872년지방지도의 선산에 냉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한편 조선지지자료의 선산의 산양면에는 냉산이 평송동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평송동에 냉산이 위치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지명총람의 냉산(냉산성, 배너미산, 태조산, 숭신산성)은 숭신산성이 있는데 고려 태조가 이곳에 웅거하면서 후백제 견훤과 싸웠음이라는 기록을 통해 냉산의 이칭인 배너미산, 태조산과 함께 냉산 정상에 냉산성 혹은 숭신산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살펴보니 이곳 냉산과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청화산을 연계해 오르는 산님들이 제법 있는 것 같아 시간이 되면 꼭 한번 내려와 걸어 볼 수 있기를 바래 본다.

 

  

냉산은 냉산 자체도 유명하지만 그 산 아래에 있는 도리사가 있기에 더욱 유명한 산이 되었다.

도리사는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태조산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인데 아도가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서라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하여 있음을 보고 그곳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 하였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 절이 신라 최초의 사찰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처음의 절터는 태조산 기슭에 있는 옛 절터로 보고 있으며 지금의 절이 있는 곳은 금당암이 있었던 곳이다.
창건 이후 조선 후기까지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1677년(숙종 3)의 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건물이 불타 버린 뒤 1729년(영조 5) 대인이 아미타불상을 개금하여 금당암으로 옮겨 봉안하고 금당암을 도리사로 개칭하였다.
1807년(순조 7) 절을 중창하였고 1823년 조사전을 중수하였으며 1876년(고종 13) 극락전을 중건하였고 1922년 칠성각을 건립하였다.
1976년 6월 아도의 석상이 발견되었으며 1977년 4월 세존사리탑을 해체 후 복원하다가 금동육각탑 형태를 띤 사리구와 석가모니 진신사리 1과가 발견되었으며 이 사리구는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태조선원, 삼성각, 조사전, 요사채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극락전은 정면 3칸과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로 내부에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불상은 조선시대 양식을 띠고 있고 높이 1.29미터에 무릎너비 0.925미터로서 1731년과 1764년 및 1876년에 개금하였으며 조사전은 정면 3칸과 측면 1칸의 건물이며 창건주 아도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70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아도화상 석상, 세존사리탑, 아도화상 사적비, 조선 후기의 탱화 등이 있는데 이 중 아도화상 석상은 높이 0.97미터의 입상으로서 전면 너비가 좁아 기이한 감을 주나 조각의 윤곽이 뚜렷하다.
아도화상 사적비는 총 높이 2.96미터에 비신 높이는 1.97미터로 그 뒷면에 자운비가 음각되어 있으며 사적비는 1639년(인조 17)에 자운비는 1655년(효종 6)에 새긴 것이다.
특히 세존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는 무색투명하고 둥근 콩알 크기의 큰 사리로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사리로 평가되고 있다.
또 1876년에 그린 후불탱화를 비롯하여 1881년에 그린 신중탱화, 독성탱화, 칠성탱화 등이 있고 묘법연화경 판목 24매가 보관되어 있다.

산행이 아니더라도 이곳 도리사라도 들려 잠시 힐링하는 시간이라도 가져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래 본다.

 

     

이제 냉산 갈림 삼거리에서 내려 와 약간의 바위를 통과한 후 안부를 지나 오르니 610봉에 도착을 한다.

깊이 깔려있는 낙엽 위에 이슬비가 살짝 내려 여간 미끄럽지 않기에 조심하며 천천히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더 내려가니 활엽수 낙엽은 더욱 많이 쌓여 있어 미끄럽지만 다행이도 ㅂ포장 임도처럼 넓은 등로와 이어져 진행에는 큰 어려움은 없다.

한동안 그 넓은 낙엽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내리던 이슬비도 조금은 잦아드는 느낌이다.

 

그렇게 한동안 낙엽 등로를 타고 미끄럽게 걸어 내려가니 어느 순간에 그 넓은 비포장 임도를 우측 직진으로 보내고 팔공기맥 마루금은 좌측 가파른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욱 미끄러운 낙엽 등로를 조심하며 내려가니 등로는 점점 더 가파르게 이어지더니 이제 앞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 등로가 이어진다.

잠시 더 내려가니 낙엽진 앙상한 활엽수 지대에서 잣나무 지대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낙엽으로 인한 미끄러운 등로는 여전하다.

 

그렇게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잣나무 지대를 통과하니 갑자기 앞이 열리며 노란 앞이 아름다운 낙엽송 조림지가 나타나고 내려가야 할 땅재 지나 드높은 다음구간 올라야 할 팔공기맥 마루금이 하얀 안낵에 덮혀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고 그 좌측 저 멀리 청화산이 안개를 썼다 벗기를 반복하며 산객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쉽게 내려가지 못하고 한동안 그곳에 머물며 많은 사진을 남겨 본다.

이제 직진의 벌목된 등로를 버리고 우측 키 작은 낙엽송이 놓란 잎을 떨구고 있는 등로를 따라 땅재로 내려가 본다.

 

노란 잎이 아름다운 낙엽송과 가시나무 그리고 약간의 잡목이 우거진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잠시 내렸던 이슬비가 잡목에 남아 있다 산객들이 지날때마다 비산하며 등산복을 적시고 있다.

다시 나타나는 잡목과 잡풀을 헤치고 내려가니 드넓은 밭이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밤나무 과수원으로 키 작은 밤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다.

여유있게 천천히 내려가니 밤나무 과수원에는 예쁜 가을 야생화가 피어 막바지 세월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렇게 그 과수원을 타고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앞으로 보이는 높은 청화산 가는 등로 위에 하얀 안개가 밀려와 또 다른 세상을 알려주고 있는듯 하다.

 

그렇게 그 과수언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가니 밭 끝자락에 이동통신용 안테나가 보이고 그 안테나 우측 능선으로 내려가니 가파른 짧은 절개지를 지나 곧바로 68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땅재에 도착을 한다.

도로 옆에는 소보라는 거대한 이정석이 세워져 있어 그곳에서 마지막 추억의 사진 한장씩 남겨 본다.

소보면은 본래 군위군에 딸린 소소보부곡인데 조선조에 소소본면 또는 석본면이라 하여 대흥, 농암, 상소, 하소, 부황, 호암, 상량, 달천, 어의, 모로의 10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그 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석본면 또는 석을본면의 서경, 괘겸, 평지, 산법, 화계, 상원, 안령의 7개 동리와 화곡면의 위성, 사촌, 대량, 달목, 낭성, 백현, 보촌, 복성, 율리, 사지, 두개, 수철의 12개 동리와 구미시 산동면의 신흥, 상개, 오류의 동리를 병합하여 소보면이라 하고 서경, 평호, 신계, 산법, 송원, 대흥, 봉소, 봉황, 내의, 위성, 보현, 복성, 사리, 달산의 14개 동으로 개편 관할하였다.
1973년 3월 12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의하여 구미시 산동면의 도산동을 편입하였고 대흥동은 군위읍으로 재편되어 현재 14개동을 관할하고 있다.
위치는 군위군 서북부에 위치하여 동쪽은 군위읍과 의성군 봉양면, 남쪽은 구미시 장천면과 산동면, 서쪽은 구미시 해평면과 도개면, 북쪽은 의성군 비안면과 구천면과 경계를 이룬다.

기회가 되면 냉산과 청화산을 연계해 오를 수 있는 시간이올지 알수는 없지만 한번쯤 더 들려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소보라는 커다란 이정석에서 추억을 남기고 도로를 타고 고갯마루로 올라 다음구간 올라야 할 들머리를 살펴보니 그 들머리 우측 나뭇가지에 준.희님이 달아 놓은 땅재 이정판이 반겨 준다.

땅재는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와 구미시 도개면 다곡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조선시대 성종때  큰 고목, 서낭(돌무더기)과 당집(성황당)이 있어 당고개 또는 당현 및 당재라고 불렀으며 현재는 68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냉산과 청화산의 안부에 해당하는 고개로 이 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이름을 당현이라고 불렀다.
우리말로는 당재인데 세월이 흘러 당재라는 말이 변하여 땅재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땅재라 부르니 국립지리원에서 발간하는 지도에도 이 고개를 두고서 땅재라 하고 마을 이름을 당재라고 표기하고 있다.

또 다른 유래는 이 고개에 큰 고목과 서낭(돌무더기) 그리고 당집(성황당)이 있어서 당고개 또는 당재 및 당현이라 한다.

냉산과 청화산 사이의 안부에 해당하고, 군위군 소보면과 구미시 도개면의 경계지점이다.

옛날에는 사람이 걸어서 겨우 넘어갈 수 있는 고개였는데 지금은 많이 낮추고 선산 군위간 지방도로서 잘 정비되어 있다.

 

그렇게 땅재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있으니 마침 먼저 내려 온 종주대 한명이 애마를 회수해 도착을 하고 편안하게 배낭을 정리하여 애마에 실고 구미시 선산읍으로 들어가 선산터미널 호텔사우나에서 깨끗하게 샤워를 한 후 바로 앞에 있는 옥골돈우촌에서 맛난 고추장 불고기로 허기를 달래니 온세상이 우리 종주대의 세상으로 변하였다.

그렇게 여유있게 식사를 마치고 약간은 막히는 도로를 타고 귀경을 하니 생각보다 늦지 않은 시간에 무탈하게 집으로 복귀해 또 한구간을 마무리 하였다.

 

이제 마지막 한구간만 남겨 두고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그 마지막 구간도 아무 사고없이 안전하게 완주 후 칵배기 한잔으로 아쉬운 시간을 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