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경상북도 영천시와 대구시 및 군위군의 팔공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5년 10월 16일과 17일 (금요 무박 토요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에 약간의 안개 후 맑고 화창한 전형적인 가을날씨였으나 오후부터 약간 무더웠던 산행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2도에서 영상 22도
산행인원 : 총 6명 (칠갑산과 3450온누리 산악회 종주대 5명)
산행코스 : 갑령휴게소-갑령재(화서교차로, 28번 4차선 지방도로와 908번 2차선 지방도로 교차로)-성덕대학교입간판 및 해발고도 244미터 수준점-308봉-오림터널(중앙선)-298.8봉 삼각점-사기정고개(2차선 지방도로)-비포장 임도-밤나무단지-성황당-모과지대-335.9봉-380봉-388.2봉 삼각점-300봉 우회-의성김공 묘지들-자주고개(919번 2차선 지방도로)-모과지대-절개지-상주영천간고속도로공사구간-절개지-280봉-감나무과수원-비포장 임도-모과밭지대-억새밭지대-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소나무등로-371.6봉-집터 돌담-소나무 등로-도립공원콘크리트표석-501.3봉(밀양박공묘지)-소나무 등로-바위너덜구간-암봉우회-안부-암벽 로프구간-조망바위-너럭바위조망처-암벽로프구간-안부-로프 위험구간-시루봉(726봉) 전망대-아침식사-공산성 돌담-로프구간-바위 오르막구간-시루봉가는길 안내판-헬기장-1차선 포장도로-1001.5봉 우회-헬기장-대장부바위 조망대-억새지대-팔공산 원효구도의길 종합안내도와 이정표(팔공산 하늘정원 0.51 Km, 비로봉 1.58 Km, 동봉 1.99 Km, 서봉 2.32 Km)-나무계단-군부대 철조망과 비포장 임도-이정표(비로봉 1.05 Km, 동봉 1.48 Km, 서봉 1.81 Km)-전망대 갈림 삼거리 나무데크-군부대 철조망 옆 나무데크 등로-시멘트 포장도로-TBC팔공산송신소-KT 송신탑-이정표(비로봉 0.1 Km, 동봉 0.44 Km와 서봉 0.79 Km)-팔공산 제천단-팔공산 비로봉(1193봉, 정상석과 삼각점)-동봉 갈림삼거리-절터-철조망-오도재(수태골주차장 갈림 이정표, 서봉 0.4 Km, 동봉 0.7 Km, 수태골주차장 2.9 Km)-나무계단-현위치번호 093이정목-나무계단-전망바위-나무계단-조망처-헬기장-삼성봉 정상석-서봉(1150.2봉 정상석)-부인사 갈림 이정표(한티재 7.2 Km, 동봉 1.1 Km, 부인사 3.6 Km)-암릉 우회등로-바위 암릉우회구간-통나무계단-나무계단-창바위-백운대-바위 암릉지대-직벽암봉(현위치번호 113번)-1054봉-암릉 우회 로프구간-암벽 로프구간-전망바위-1053.9 소나무와 암봉-바위로프구간-로프구간-안부-대구올레 안내판-헬기장-979.2 바위봉-971 공터봉-배바위-(팔공산학생야영장 갈림 이정표(994봉)-파계봉(991.2봉 정상석과 삼각점) 이정표(파계사 1.1 Km, 서봉 4.0 Km)-973봉-현위치번호 138번 안부-파계재 안부 이정표(한티재 2.1 Km, 갓바위 13.5 Km, 파계사 1.3 Km와 제2석굴암 5.0 Km)-837.6봉(상전암 갈림 삼거리)-헬기장-대구 파계사 원당봉산표석-파계지구와 한티재 갈림 삼거리-공터-현위치번호 144번 이정표(한티재 1.7 Km, 파계야영장 3.1 Km, 파계재 0.4 Km)-안부-815.6봉 우측으로 우회-이정표(한티재 0.8 Km, 파계재 1.2 Km)-소나무 등로-730봉-한티재(79번 2차선 포장도로)-한티재휴게소-산행종료
산행거리 : 맑고 화창한 가을 날씨에 오전후에는 약간 무더위를 느꼈던 산행하기 좋은 날씨에 즐기며 22.38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암릉 구간을 로르고 내리며 어렵게 진행하여 12시간 11분 (03시 02분에서 15시 13분까지)
교통편 : 종주대 차량 1대 이용
팔공기맥 또는 팔공지맥이란 ???
백두대간의 매봉산(태백)에서 시작한 낙동정맥은 주왕산과 통점재를 지나 가사령에 내려서기전 1.1 Km 지점에서 서쪽으로 큰 산줄기 하나를 가지치고 가사령으로 내려서 침곡산으로 간다.
서쪽으로 가지친 큰 산줄기는 베틀봉(934미터), 면봉산(1121미터), 보현산(1126미터)을 지나 석심산(750.6미터)에 이르러 다시 두갈래로 갈라진다(분기점에서 39.4 Km).
한줄기는 남서진하며 방가산(755.8미터)과 화산(828.1미터) 및 팔공산(1,192.8미터)을 지나고 가산(901.6미터)에서 북진하여 좌베틀산(369.2미터)와 청화산(700.7미터)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새띠마을에 이르는 길이120.7 Km되는 산줄기다.
석심산(750.6미터)에서 또한줄기는 북서진하며 어봉산(634.2미터), 갈비봉(672미터), 산두봉(719미터), 구무산(676.3미터), 푯대산천제봉(359미터), 삼표당(443.7미터), 해망산(400미터), 삿갓봉(290.7미터), 골두봉(314.8미터), 곤지산(330미터) 및 비봉산(579.3미터) 등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팔공산쪽으로 온 산줄기를 마주보며 끝을내는 길이 127.4 Km나 되는 산줄기다.
두 산줄기는 위천을 남과 북으로 애워싸고 서로 마주보고 달리다가 다시 위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위천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며 만나게 되는데 위천의 북쪽 울타리가 보현지맥이고 위천의 남쪽 울타리가 팔공기맥 또는 팔공지맥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팔공산줄기를 팔공기맥(지) 또는 낙동내륙기맥과 금호북기맥등으로 부르고 있는 모양인데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에는 이를 각각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서북쪽 산줄기 전체를 보현지맥으로 석심산에서 남서쪽 팔공산 줄기를 팔공지맥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나도 그렇게 부르는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산세로야 팔공산쪽이 더 크고 유명세도 있지만 우선은 길이가 단 6.7 Km이긴 하지만 긴쪽을 장자로 봐야 할 것 같고 석심산에서 북서쪽 산줄기만 따로 떼어내서 이름을 붙이자면 그쪽에서 제일 높은산인 산두봉(719미터)이름을 따야 할 텐데 이름없는 산이라 좀 어색하고 잘 알려진 보현산(1124.4미터)의 위상도 감안하여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산두봉 줄기를 보현지맥으로 부르고 석심산에서 남서쪽 팔공산 줄기를 팔공지맥으로 부르는게 좋을 듯 싶다.
보현지맥 북쪽의 물은 용전천, 길안천, 미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보현지맥 남쪽의 물은 위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위천의 남쪽 울타리인 팔공지맥의 북쪽물은 위천으로 흘러들어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하고 팔공지맥의 남쪽물은 금호강으로 흘러들다 가산을 지나고부터는 낙동강에 직접 흘러든다.
막혀있던 팔공산 비로봉에 올라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즐기며 어렵게 이어간 맥 산행 이야기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이번 구간은 팔공기맥과 위천북기맥이라 불려지는 산줄기의 백미 구간으로 전국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팔공산을 오르는 시간이기에 설레임과 약간의 걱정도 되는 시간이다.
정상적으로 진행을 한다면 기맥 산행 공지와 함께 기획테마 산행을 겻들여 진행을 할 수 있다면 조금 더 많은 산친구들을 모시고 갈 수 있겠지만 마침 산악회의 정기산행 일과 겹쳐 기획테마 산행 공지를 올리기가 어려워 아쉽게도 단촐하게 다녀 오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두번 종주 산행을 올랐던 팔공산이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변해 팔공산 정상인 비로봉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소식에 설레임이 더 크게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만 산행일 직전에 함께 진행하던 산친구 한명이 회사일로 참석을 못하게 되어 SUV 차량만 제공을 해 준다고 하니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산행 후 귀경하는 길에 대전에 잠시 들려 이 산객은 처갓집에서 하룻밤 묵고 일요일에는 장모님 농사일을 도와 드리게 되어 있어 다른 산행일과는 많이 다른 산행 일정이 되어 버렸지만 무탈하게 산행 후 일까지 무탈하게 마치고 귀가를 하니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부자된 느낌으로 또 새로운 한주를 시작하는 순간이다.
너무나 황홀한 조망과 풍경을 즐기며 생각보다 쉽게 시루봉에 도착을 해 마음이 풀어졌는지 그때부터 산행 속도가 느려지고 그렇게 새로 단장된 팔공산 정상에 있는 군부대 철보망을 편안하게 통과해 드디어 비로봉과 첫 대면을 한다.
함께 모여 단체 사진도 남기고 내려오며 시간이 지체되어 동봉을 들리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멋진 조망을 선사 받았기에 즐기다 보니 오늘은 이 산객 홀로 앞서 내려가 갑령재에 주차시킨 차량을 회수하기 위해 빠르게 출발을 해 본다.
다시 나타나는 아름다운 조망을 즐기며 진행해 서봉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암릉을 타고 진행해 조망바위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어렵게 걸어 온 바위 암릉 지나 저 멀리 팔공산의 서봉과 비로봉 그리고 우측으로 동봉까지 시원하게 보이고 그 좌측 군부대 끝자락엔 새로 개방된 전망대도 보인다.
몇년 전 저곳 정상부는 근처에도 들리지 못하고 그 아래 9부 능선 우회 등로를 타고 걸었던 추억을 뒤돌아 보며 홀로 피식 웃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팔공기맥도 이제 중간 지점을 넘어 그 마지막 위천과 낙동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간이다.
단촐하게 6명의 종주대가 SUV 차량 1대에 올라 신갈과 안성에서 산친구를 태우고 복잡하지 않는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생각보다 이른 시간인 새벽 2시 50여분에 갑령재 위쪽에 있는 갑령휴게소에 도착을 하고 산행 준비 후 출발하는 시간이 정확히 새벽 3시를 막 넘기고 있다.
잠시 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오니 지난 구간 내려왔던 갑령재 날머리에 도착을 하고 어둠속에 화서교를 지나 성덕대학교와 부림요양병원이란 도로 표지판이 서 있는 우측 능선으로 오르며 또 한구간 산행을 시작해 본다.
갑령재(갑령)는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과 군위군 고로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갑령은 갑티재, 갑티, 갑치, 갑령재, 갑티고개, 갑령고개, 갑현 등 다양하게 불리는데 고개가 있는 산의 형태가 마치 장군이 갑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생겼다 하여 유래된 명칭이다.
실제로 갑령은 임진왜란과 6·25 전쟁 때의 격전지이기도 하였다.
갑령은 영천시 신녕면에 있으며 해발고도 288미터에 길이는 약 4 Km의 고개이며 팔공산맥을 횡단하는 고개로서 고위 평탄면을 이루는 화산과 함께 영천과 군위의 경계를 이루고 있고 고개 밑에는 갑현이라는 취락과 갑현제라는 못이 있다.
갑령의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각섬석 화강암과 유천충군의 중성 및 염기성 화산암으로 이루어졌고 갑령 인근에는 팔공산(1193봉)과 보현산(1124봉)이 갑령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서 있다.
고개는 과거에 교통로 또는 군사적 요충지로 이용되었고 갑령은 신녕면과 고로면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였으며 현재는 중앙선 철도와 의성에서 포항 간 국도 28호선이 지나고 갑령 아래에는 중앙선 역인 갑현역이 자리하고 있다.
그 산행 들머리엔 해발고도 244미터라는 수준점이 숨어 있다.
짧은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큰 나무가 없는 곳에는 이슬이 내려 벌써 축축해져 오지만 거목 속으로 들어가면 이슬은 사라지고 바싹 말라있는 낙엽이 바스락 소리를 내면서 어둠을 헤치고 땀방울을 흘리는 종주대를 격하게 반겨준다.
가파르게 오르니 오르막 등로가 조금은 유순해지고 금새 무명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290봉 무명봉에는 거대한 거목 하나가 지키고 있다.
생각보다 산행하기 좋은 기온에 조금은 더 속도를 내면서 걸어가니 다시 308봉 무명봉에 도착을 해 그곳에도 서 있는 거목 옆에 스틱을 세워두고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생각보다 뚜렷한 좋은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하니 약간의 높낮이는 있지만 진행하기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안부를 지나 아직은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다가오는 가을을 거부하고 있는 파란 잡목 숲을 헤치고 걸어가니 보이지 않는 중앙선 위에 뚫려있는 오림터널를 통과하는데 이곳이 터널인지 아닌지를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구간을 지나 갑자기 억새구간이 짧게 나타나더니 금새 298.8봉 삼각점에 도착을 한다.
등로 우측 앞으로는 팔공산 정상에서 환하게 빛나는 야경이 반짝이며 제법 고도를 높이는데 아직은 짙은 어둠속이다 보니 그 고도감도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다.
그 298.8봉을 지나 출발을 하는데 직진이 아닌 우측 뚜렷한 등로를 타고 선두가 빠르게 진행을 해 잠시 더 머물며 삼각점과 이정판을 사진에 담고 있는데 다시 선두가 뒤돌아 올라온다.
짧은 알바 후 뒤돌아 올라 와 이제는 직진 방향의 잡풀이 우거진 정상 등로를 찾아 다시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선두의 알바를 바라보며 잠시 피식 웃은 후 그들 선두를 따라 진행을 하니 소나무 등로를 지나 묘지 2기를 통과한다.
묘지들을 지나 302봉을 넘으니 등로 좌측 앞 저 멀리 발아래와 팔공산 정상부에서 밝게 빛나는 야경이 아름답다.
발 아래 빛나는 야경은 바로 영천시 신녕면 부산리 마을로서 부산리는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에 있는 법정리로서 부산리는 산이 많은 지역이므로 부산리라 하였다.
부산리는 본래 신녕군 치산면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신계동, 직동, 이동, 남원동 일부를 병합하여 부산동이라 해서 영천군 신녕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5월 3일 동을 리로 바꾸게 되어 부산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1일 영천시와 영천군 통합으로 새로운 영천시 신녕면 부산리로 개칭되었다.
부산리는 팔공산과 화산으로 둘러싸인 산촌 마을로 고개와 골짜기가 발달한 곳으로 부산리의 북쪽은 작은 모퉁이를 돌아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있으며 인근 산에서 발한 계천은 연중 마르지 않고 마을 앞을 지나 신녕천의 지류와 합해진다.
부산리는 신녕면 중부에 있으며 부산1리와 부산2리 두 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부산리의 자연 마을로는 배골마을, 샛터마을, 핏골마을, 신기마을, 남원마을, 신당마을이 있으며 지방도 919호선이 지난다.
부산리의 유적으로는 부산리 봉수가 있으며 부산리 뒷골에 거목으로 유명한 느티나무가 있다.
부산1리 핏골에서는 이 느티나무에서 음력 정월 14일 밤 12시경에 동제를 지내 오다가 10여 년 전부터는 더 이상 모시지 않게 되었다.
동제는 단절되었지만 부산리 마을 수호목인 느티나무는 여전히 신성시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무속인들이 느티나무의 신성함과 영험함을 받기 위해서 오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등로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고 한동안 그렇게 내려가니 드디어 904번과 919번 지방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사기정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철조망은 보이지만 그 어디에도 사기정고개라는 표식이 없어 잠시 고갯마루를 왔다리 갔다리하면서 찾아 보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사기정고개를 출발한다.
사기정고개는 경북 영천시 신령면 부산리와 화서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919번과 904번 지방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곳으로 이 아래에 있는 마을 이름이 사기정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부산리는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팔공산과 화산으로 둘러싸인 산촌마을로 고개와 골짜기가 발달한 곳으로 산이 많은 지역이므로 부산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부산, 남원리, 하남, 배골, 사기정, 주막걸마을 등이 있는데 부산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부산리의 그것과 같다.
남원리마을은 부산리에서 가장 중심되는 마을이고 하남마을은 남원리의 아래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배골마을은 남원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배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고 사기정마을은 사기점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주막걸마을은 주막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등로를 따라 걸어갈 땐 몰랐는데 이렇게 사기정고개에 도착을 하니 고도가 낮은곳에는 자욱한 안개가 껴있어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고 풀섶엔 많은 이슬방울들이 내려 앉아 산객이 지날때마다 이슬방울이 등산화를 적시고 있다.
자욱한 안개속에 사기정고개라는 이정판 하나 찾지 못하고 도로 건너 철조망 우측 아래에 있는 콘크리트 옹벽을 넘어 잡목이 우거진 비포장 임도를 타고 가파르게 올라 본다.
잠시 올라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하니 소나무 등로가 열리는가 싶더니 금새 등로에 밤나무 가시가 널려있는 밤나무 단지를 짧게 걸어본다.
밤나무 단지를 지나니 다시 잡목이 발목을 잡는 능선으로 들어가며 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잡목 등로를 지나니 소나무 등로가 다시 나타나고 잡풀이 우거진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내려가면 성황당 안부에 도착을 해 거목 한그루를 만난다.
전국의 산 어디를 가나 유명한 산에는 한군데쯤 성황당이 있는데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타난다.
성황당은 서낭당의 다른 말로 서낭신을 모신 당집이나 제단으로 지방에 따라 할미당, 천황당, 국사당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서낭신은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으로 최근까지 전국에 널리 퍼져 있었다.
서낭당은 보통 신수에 잡석을 쌓은 돌무더기나 신수에 당집이 복합되어 있는 형태로 고개 마루, 길옆, 부락입구, 사찰입구에 위치하고 있고 서낭당은 서낭신의 봉안처인 동시에 거소가 된다.
이 신은 천신과 산신의 복합체로 보여지고 서낭신의 신앙에는 내세관이나 인간 정신세계의 이상 같은 것이 없고 현실적인 일상생활의 문제가 중심을 이룬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액, 질병, 재해, 호환 등을 막아주는 부락수호와 인간의 현실적인 생계문제 해결에 목적이 있으며 신수에는 아이들의 장수를 위해 걸어놓는 헝겊조각, 상인의 장사를 잘되게 해달라고 걸어놓는 짚신짝, 신랑신부가 새살림을 차릴 때 부모계의 가신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신부가 자기 옷을 찢어서 걸어놓는 색헝겊조각 등이 있다.
또 통행인이 길을 안전하게 가기 위해 돌을 주워서 돌무더기 위에 던지거나 침을 뱉는데 이는 길가에 배회하는 악령의 피해를 막기 위함이다.
이처럼 서낭당은 현실적인 문제를 기원하는 곳으로 정초에는 부인들이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가정의 평안을 빌기도 하며 동해안 별신굿이나 강릉단오제는 규모가 큰 서낭제의 일종이다.
성황당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멋진 소나무 등로로 바뀌고 곧이어 지도상의 335.9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 우측으로 갈리는 갈림 삼거리인 373봉을 지나 좌측 등로를 따르면 오르막 등로에 야생 모과가 떨어져 있어 살펴보니 제법 많은 수의 모과나무들이 등로를 타고 식재되어 있어 몇개의 모과를 주워 배낭에 넣고 올라 금새 388.2봉에 도착을 해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며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본다.
처음에는 약 1 Kg정도의 무게라 생각을 했는데 집에 도착해 무게를 재 보니 총무게가 약 3 Kg으로 그 무게감이 두 어깨에 느껴짐이 아직도 뻐근한 기분이다.
하지만 이곳 388.2봉에 보여야 할 삼각점이 없어 살펴보니 삼가점은 이정판 아래에 있지 않고 우측 능선을 타고 10여미터 더 들어 간 능선상에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뒤돌아 나와 진행을 해야 한다.
어렵게 388.2봉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다시 뒤돌아 나와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종주대는 벌써 불빛도 보이지 않을만큼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소나무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하고 다시 나타나는 무명묘지 2기를 지나니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며 진행이 된다.
잠시 오르니 300봉은 좌측 사면 등로로 우회를 하고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등로 좌측에 몇기의 묘비들이 서 있는 묘지지대를 만나 살펴보니 의성김공 묘지들이다.
그 의성김공 묘지지대를 지나 이슬이 등산화를 적시는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919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자주고개에 도착을 한다.
자주고개(230미터)는 경북 군위군 산성면 삼산리와 영천시 신령면 치산리를 이어주는 919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로 지도에는 자주고개로 되어 있지만 이곳 주민들은 자주고개보다 잦이고개라고 부른다고 전해지는 고개이다.
백학리는 경상북도 군위군 산성면에 있는 마을 사이로 흐르는 하천 주위로 평야가 발달하였으며 백학이 많이 깃들어 유래된 지명이다.
자연마을로는 소하동, 전거리 등이 있으며 소하동은 인가가 생기 전 소하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해서 윗마을을 소상으로 아랫마을을 소하라 한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전거리는 영천과 신녕에서 안동과 서울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온전히 돌아오라는 뜻으로 전귀리라고도 부르게 되었으며 아주 옛적부터 마을 어귀에 작은 못이 있어 마을 이름을 따서 전귀리못이라 불렀는데 다른 곳에서는 전부 구리로 만든 못이란 뜻으로 와전되어 불려지기도 했다.
도로를 건너 시멘트 옹벽을 오르니 그곳 나뭇가지에 자주고개라는 이정판이 붙어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칡넝쿨과 잡목이 우거진 능선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지만 잡목의 저항이 심해 뒤돌아 나와 919번 도로로 내려 와 진행방향 우측으로 조금 걸어가니 능선으로 옹벽 넘어 등로가 보인다.
그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 역시 모과나무들이 식재되어 있고 등로에는 몇개의 모과가 떨어져 나뒹굴고 있다.
하지만 잡풀과 모과밭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자 마자 절벽같은 절개지가 나타나고 직접 내려갈 수 없어 좌측으로 돌고 돌아 어렵게 그 절개지를 내려가 본다.
약간의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간이기에 살펴보니 이곳은 상주영천간고속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 공사장으로서 능선으로 오르지 말고 자주고개에서 919번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왔으면 쉽게 왔을 것을 괜시리 시간만 허비하고 말았다.
공사장에서 공사중인 도로를 건너 반대쪽 절개지를 타고 오르다 등로 뒤쪽을 살펴보니 방금 전 지나온 300봉 우측으로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며 하루가 밝아 오는 시간이다.
반대쪽 절개지 정상부로 올라 이제는 진행 방향 즉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상주영천간 고속도로 공사장 지나 저 멀리 위천쪽에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 오르고 그 뒤로 군위가 있을 것이지만 그곳은 나즈막한 산그리메만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이곳 고속도로도 조만간 완공이 되고나면 또 팔공기맥 즉 위천북기맥 산행은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도 되는 시간이다.
그렇게 여명이 밝아 오는 세상을 살펴본 후 절개지 정상부에서 좌측 잡목이 우거닞 능선으로 들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능선으로 들어가 잡목을 헤치고 진행을 하니 무명봉 넘어 무명묘지 2기를 지나고 등로 좌측 앞 저 멀리 팔공산 정살ㅇ부에서는 밝은 불빛이 반짝이고 있지만 약간의 안개로 인해 빛이 분산되며 흐릿하게 다가온다.
다시 나타나는 묘지2기를 지나고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또 다시 무명 묘지 한기를 넘는다.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등로를 따르니 또 다시 무명묘지2기를 지나 무명봉을 넘고 등로 좌측으로 올라야 할 팔공산과 그 좌측인 동쪽으로 흐르는 갓바위 방향 산줄기가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오래 전 종주 산행을 하면서 어렵게 넘었던 기억을 떠 올리며 그 때 함께 걸었던 산친구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에 팔공산 산줄기를 올려다 보고 다시 출발을 하니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는데 숲속에는 아직도 어둠이 짙게 내려 앉아 헤드렌턴 불빛에 의존을 하며 걸어 본다.
잠시 후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무명봉을 넘어 전진하니 이제 어둠이 조금 더 엷어지며 주위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드넓은 공터에 감나무를 식재한 과수원이 나타난다.
그 감나무과수원 넘어 저 멀리 이제 올라야 할 371.6봉과 그 좌측 저 멀리 힘 좀 쓰며 올라야 할 시루봉이 조금은 가깝게 다가와 있다.
그 감나무과수원 옆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임도 우측으로는 이제 또 다시 모과과수원이 나타나는데 모과는 모두 수확을 했는지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남아 있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조금 더 올라 잠시 배낭 내려놓고 쉬고 있으니 후미까지 도착을 하고 다시 걸어 올라 잡풀과 억새가 피어난 공터 옆에서 일출을 기다려 보기로 한다.
하지만 예상했던 일출 시간보다도 약 40여분 늦게 떠 오르는 일출을 감상하느라 시간을 허비했지만 근래 보기 어려웠던 환상의 일출에 빠져 보는 시간이었다.
모과과수원과 잡풀이 자라고 있는 공터 옆 비포장 임도에서 일출을 기다리며 주위 풍경을 살펴보니 해가 떠 오를 동쪽 방향으로 치산리와 부산리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신녕면 방향의 마을들이 아련하게 눈에 들어 온다.
치산리 바로 앞으로는 처녀 가슴처럼 봉긋 솟아 오른 두 봉우리 사이로 일출이 시작되려는듯 시간이 지나도 떠 오를 생각을 못하고 한참이나 지난 아침 7시가 가까워 져서야 어렵게 그 처녀 가슴 사이로 솟아 오르는 황홀한 아침 햇살을 만날 수 있었다.
같이 진행하던 4명의 종주대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출발을 했고 나머지 종주대 한명과 둘만이 그 아름다운 풍경을 가슴에 남긴 후 다시 배낭을 메고 출발을 해 본다.
잠시 출발하니 다시 그 앞가슴 사이로 떠 오른 일출이 더욱 강렬한 빛으로 온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다시 사진에 담아 본다.
그 봉우리 우측 저 멀리에는 팔공산 줄기가 갓바위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이루며 오래전 많은 산친구들과 어렵게 올랐던 추억 한자락을 꺼집어 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일출 좌측 저 멀리 치산리에는 나즈막하게 깔려있는 박무가 온 마을을 감싸며 몽환적인 풍경도 선사를 하고 있다.
치산리는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팔공산 끝자락에 자리한 산촌마을로 고개와 골짜기가 발달하였으며 작은 하천이 흐르는 곳으로 자연마을로는 치산, 감나뭇골, 원집터, 귀천, 불당골, 말봉마을 등이 있다.
치산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감나뭇골마을은 감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원집터마을은 조선 때 원집이 있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귀천마을은 구천서원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불당골마을은 불당이 있던 곳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말봉마을은 말처럼 생긴 산 앞이 된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그렇게 한동안 그곳 모과과수원 옆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아름다운 일출을 감상하고 출발하니 비포장 임도 우측의 모과과수원에는 남겨진 모과 몇개가 산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다시 모과를 사진에 담고 출발하니 갑자기 갈림 사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우측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시멘트 포장도로이다.
좌측은 치산리이고 우측은 백학리를 이어주는 나즈막한 고갯마루이다.
그 사거리를 지나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며 능선으로 들어가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능선으로 올라 진행하니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등로에 널부러져 있어 이리저리 피하며 오르다 보니 힘은 들지만 속도는 나질 않는다.
잠시 더 오르다 지도상에 나타나 있는 332.3봉 삼각점을 찾아 보지만 찾지를 못하고 오르는데 산행 후 찾아 보니 능선으로 오르기 직전 사거리를 지나자마자 있는듯 보였다.
계속 어지러운 간벌된 나뭇가지를 피해 오르니 등로는 좌측으로 휘어져 진행되는데 그곳 정상이 바로 371.6봉이다.
그곳부터는 넓은 소나무 등로를 따라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 사이로 빗들어옴이 환상적인 시간에 홀로 걸어가는 순간은 참으로 기분 좋은 아침이다.
힐링하듯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무념으로 걸어가니 더욱 강렬하게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강렬한 햇살이 더욱 산객의 가슴속을 흔들고 있다.
그렇게 무념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갑자기 등로 앞에 집터였던 듯한 나즈막한 돌담이 나타나고 살펴보니 누군가 살다 떠난지 오래된듯한 그런 풍경이다.
이 높은 곳까지 들어 와 살았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다시 우측으로 휘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느긋하게 걸어 보지만 앞서 진행하는 종주대를 따라가기 위해 발걸음은 바쁘기만 하다.
다시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김녕김씨 묘지를 지나고 계속되는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라 힐링하듯 걸어 본다.
잠시 더 걸어가니 좌측으로 보이는 무명봉은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우회하며 통과하고 한동안 완만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팔공산도립공원 표식을 한 콘크리트 말뚝을 만나 본격적인 팔공산 주능선으로 진입을 한다.
잘 발달된 넓은 소나무 등로를 타고 오르니 무명묘지 2기를 지나 밀양박공 묘지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505봉에 도착을 해 후미를 기다리며 잠시 쉬어간다.
밀양박공 묘지가 있는 505봉을 지나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 나타나는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니 이제 본격적인 시루봉 오르막 등로를 만나 굵은 땀방울을 흘려 보는 시간이다.
약간의 잡목과 너덜구간이 보이더니 등로는 더욱 가파르게 오르는 된비알로 이어지는데 오르다 잠시 잡목이 사라진 곳에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오늘 걸어 올라온 팔공기맥 마루금이 내려다 보이고 그 한가운데엔 상주영천간 고속도로 공사 현장과 좌측으로 조림산이 안개속에 우뚝 솟아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몇장의 사진을 더 담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시루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지나온 팔공기맥 마루금과 지난 구간 지났던 화산을 살펴본 후 오르니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 떨어져 쌓인 낙엽이 미끄러워 더욱 진행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지만 멈출수가 없으니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올라보는 시간이다.
갈지자로 왔다리 갔다리 이어지는 낙엽 등로를 타고 힘겹게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거대한 암봉이 나타나고 우측으로 돌아 우회하며 그 암릉을 오른다.
암릉 사이로 수북하게 쌓여있는 낙엽이 진행을 방해하지만 주의하며 오르니 바위 사이의 좁은 오르막 등로에 가느다란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그 로프를 잡고 오르니 등로 옆으로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이 예쁘고 잠시 사진 몇장에 담고 다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멋진 전망바위가 보여 들리니 환상의 조망과 풍경이 펼쳐져 있다.
제일 먼저 등로 우측으로 부계면쪽 동산계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팔공산으로 드높게 이어지며 정상부에 울긋불긋 고운 단풍을 수놓고 있고 그 아래로 부계면사무소 방향으로 산세를 낮추며 이어지고 있다.
남쪽으로는 방금 전 많은 땀방울 흘리며 올라온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 지나 부드럽게 이어지는 팔공기맥 마루금이 북쪽으로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으로는 군위군 산성면 백학리가 우측으로는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 마을이 마루금을 감싸듯 이어져 있다.
그곳 지나 자주고개와 상주영천간고속도로 공사형장을 지나면 우측으로 화산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조림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그 뒤로는 안개속에 선암지맥의 선암산과 그 산줄기들이 길게 펼쳐져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선암지맥 산줄기를 살펴보고 우측으로 조금 더 눈을 돌리니 치산리와 부산리 마을이 팔공기맥 우측으로 아름답게 자리하고 그 뒷쪽으로 지난 구간 이국적인 풍경을 즐기며 지나왔던 화산과 722봉이 벌써 멀어지고 있다.
그 치산리 우측으로는 오늘 아침 강렬한 햇살을 가슴에 품고 황홀하게 들어 올렸던 치산계곡 우측으로 400에서 500미터급 산줄기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그 치산계곡 제일 상단부에는 치산지 아래 치산캠핑장도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그 전망바위에서 주능선으로 나와 나타나는 바위를 잡고 힘들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다시 멋진 조망바위가 보여 그곳으로 가 조금 더 선명하게 팔공기맥 마루금을 살펴본다.
오늘 걸어 올라온 팔공기맥 우측 치산리와 부산리 지나 저 멀리 살펴보니 지난 구간 넘어 온 화산과 그 뒤 보현산 줄기가 보일듯 말듯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다.
치산리 우측으로 솟아 있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이곳 전망바위에서 고운 추억 몇장 남기는 시간은 그저 황홀하기만 하다.
그렇게 그곳 전망바위에서 한동안 멋진 추억을 남기고 다시 내려 와 정상 능선을 타고 진행을 하니 평이한 등로를 따라 잠시 걸어간 후 드디어 최고 난코스중 한곳인 직벽의 로프구간에 도착을 한다.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지만 까다로운 암벽으로 인해 조심하며 한명씩 내려가니 시간이 제법 걸린다.
그 로프 암벽을 내려가 안부를 지나니 다시 눈 앞에 거대한 암봉이 나타나는데 그 암봉은 우측 낙엽 쌓인 우회 등로를 따라 오르게 되어 있다.
낙엽을 따라 오르니 다시 등로는 좌우측에 거대한 암릉을 두고 그 사이로 나 있는 좁은 골짜기 등로에 설치되어 있는 가느다란 로프를 타고 오르게 되어 있다.
그 로프 오르막 된비알을 따라 오르니 다시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그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우측에 절벽을 두고 있는 시루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시루봉 정상에서 다시 지나온 팔공기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지난 구간 걸어 왔던 저 멀리 화산에서 이곳 시루봉까지 시원하게 조망되고 있다.
후미까지 모두 기다렸다 이곳 시루봉 정상 한쪽에 아침상을 펴고 허기를 달래보는 시간이다.
잠시 즐거운 아침 식사 후 시루봉 정상이정판에서 고운 추억 한장씩 남기고 저 멀리 드높게 올려다 보이는 팔공산을 향해 다시 출발을 해 본다.
이곳 시루봉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해 속해있는 치산리에 대한 자료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본다.
치산리는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치산리는 마을 주위의 지형이 마치 꿩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형상이라 하여 치산이라는 지명이 붙게 되었다.
치산리는 본래 신녕군 치산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동지동, 중리동, 내포동, 진곡동, 신암동, 남원동 일부를 병합하여 치산동라 해서 영천군 신녕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5월 3일에는 동을 이로 바꾸게 되어 영천군 신녕면 치산리가 되었고 1995년 1월 1일 영천시와 영천군 통합으로 새로운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로 개칭되었다.
치산리의 서쪽은 팔공산(1192.3미터)과 시루봉(726미터)의 급사면이며 계곡 사이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합류하여 치산 계곡으로 흐르면서 형성한 공산 폭포(치산 폭포)는 팔공산의 여러 폭포 중 가장 웅장하다고 알려져 있다.
공산 폭포는 영천시 신녕면과 군위군 부계면과 대구광역시 동구에 걸쳐 있는 팔공산에서 발원한 물길이 흐르는 폭포로 치산 폭포 또는 팔공 폭포로 잘 알려져 있다.
한편 치산지 주변은 관광지로 조성되어 있는데 치산지에서 남쪽은 공산 폭포를 거쳐 팔공산 정상까지의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고 북쪽 계곡의 하류부는 가파른 경사를 이용한 등고선식 경작지가 형성되어 있다.
치산리는 신녕면의 서부에 위치하며 치산1리·치산2리·치산3리 등 세 개의 행정리가 있고 자연 마을로는 신시암, 진곡, 중리, 양지말, 동지 마을이 있다.
치산리의 관광 명소로는 공산 폭포가 있고 역사적인 장소로는 치산성지(공산성)와 구천 서원과 어사영각이 있다.
또 공산 폭포에서 약 1.6 Km 하류부에는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원효대사가 수도한 천년 고찰 수도사에는 보물 제1271호인 수도사 노사나불 괘불탱이 있으며 폭포에서 약 2 Km 상류부에는 문종 때 혼수대사가 창건한 진불암이 있다.
시루봉에서 아침식사로 허기를 해결하고 배낭 메고 출발하려다 절벽 위에서 아쉬운 마음에 다시 한번 지나온 팔공기맥 마루금을 조망하고 출발을 한다.
시루봉 안내판을 지나 등로 우측으로 가 보니 잡목 사이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고 그 끝자락에 팔공산 정상부가 빼꼼히 올려다 보인다.
이제 정상부로 이어지는 마루금에는 알록달록 단풍이 절정을 지나 이제 겨울을 준비중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주능선으로 뒤돌아 와 여유있게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렇게 주위 조망과 풍경을 즐기고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얼마가지 못해 등로 옆에 나즈막한 돌담들을 만난다.
아마도 오래전 쌓은 성터처럼 보이는데 지금은 관리가 되질 않아 많이도 허물어지고 사라져 가는 광경이 아쉽기만 하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은 공산성으로 공산성은 경상북도 영천시 신령면 치산리 팔공산의 동봉과 서봉을 포함하는 곳에 있는 상성으로 공산성의 축조 시기와 경영 및 폐성 시점 등에 대해서는 기록이 부족하고 구체적인 학술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세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각축장을 벌였던 곳이라는 사실 등을 미루어 볼 때 통일 신라 시대 이전에 축성되었던 것으로 판단되는데 성지의 망루나 장대로 추정되는 동봉 주위로는 소량의 토기편과 와편 및 자기편들이 확인되며 형태는 지형으로 볼 때 산정부(산꼭대기)를 포함하는 테뫼식 산성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치산리성으로도 불리는 공산성은 팔공산의 동봉과 서봉을 포함하는 곳에 있으며 해발 고도가 높은 만큼 영천 신령 지역 뿐만 아니라 사방면의 모든 주변 지형이 한눈에 들어와 최상의 조망을 형성한다.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각축장을 벌였던 곳으로 팔공산의 동봉과 서봉을 포함하는 산성으로 추정된다. 성지의 망루나 장대로 추정되는 동봉 주위로는 소량의 토기편과 와편 및 자기편들이 확인되고 있으며 형태는 지형으로 볼 때 동봉과 서봉 그리고 현재 방송국 중계소가 위치하는 산정부를 포함하는 테뫼식 산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산성을 지나 진행하니 바위 넘어 저 멀리 팔공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아름다운 마루금을 살펴보며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두껍게 쌓여있는 낙엽으로 여간 마끄럽지 않다.
조심하며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생각보다 크고 작은 바위들과 암릉들이 이어지며 산행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가끔 나타나는 로프지대도 넘어 바위를 우회하며 어렵게 진행을 하다 보니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이 그 어려움을 달래주고 있다.
바위와 암릉을 타고 진행을 하지만 멋진 단풍으로 힐링을 받으며 걸어가니 시루봉가는길이란 안내판이 보이고 계속 이어지는 단풍을 즐기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콘크리트 교통호가 나타난다.
꽤 오래전부터 사용하지 않은듯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는 교통호를 지나 오르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눈 앞에 헬기장이 보이고 그 헬기장 좌측으로 포장도로가 지나고 있다.
이제 포장도로를 만나 그 포장도로를 타고 팔공산 정상부까지 올라가기로 하는데 선두로 간 3명의 종주대는 도로 좌측의 주능선을 따라 진행을 하면서 무척 고생을 한 듯 하다.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생각보다 많은 차량들이 오르고 내려간다.
그렇게 잠시 더 도로따라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1001.5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진입로가 보이지만 오늘은 그곳 주등로를 버리고 우측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기로 한다.
그렇게 한동안 도로를 따라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또 다른 헬기장이 보이고 그 헬기장 좌측으로는 대장부바위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헬기장 좌측으로 잠시 들어가니 골짜기 넘어 반대편 능선에 도포를 입고 서 있는듯한 부처같기도 한 대장부바위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대장부바위를 바라보며 자연의 오묘함에 전율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찌 이리 부처를 닮은 듯 대장부 바위를 만들어 놨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떡바위를 구경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이곳 대장부바위를 만나 떨쳐버리고 다시 포장도로로 뒤돌아 나와 완만하게 올라 본다.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이제 햇살은 머리 앞쪽으로 기울어 가기 시작하고 그 앞에 피어 있는 하얀 억새가 하늘거리며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 억새 넘어 저 멀리 팔공산 정상부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군부대 원통형 인공 구조물이 보이고 그 구조물을 바라보며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하얀 억새밭이 아름다워 들어가 추억 한장 남겨 본다.
하얀 억새밭을 지나 조금 더 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도 억새밭이 보이는데 그 억새밭 위 저 멀리 새로 조성된 나무계단이 정상부로 길게 이어진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도로를 타고 오르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가운데에는 팔공산 군부대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다.
원 팔공기맥 마루금은 군부대 철조망 좌측으로 올라 진행을 했는데 이제는 우측으로 새로운 등로가 조성되어 모든 산행객들이 새로 조성된 나무계단을 타고 진행을 하기에 오늘 후미 3명도 이곳 새로운 나무계단을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잠시 오르니 공터가 나타나고 팔공산하늘공원과 비로봉 그리고 동봉과 서봉으로가는 방향과 동산계곡 및 군위삼존석굴가는 방향의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옆으로 팔공산 원효구도의길 종합안내도가 서 있다.
그 안내판 옆으로 나 있는 나무계단을 타고 천천히 오르니 계단 좌우측으로 하얀 억새가 피어 한들거리는 풍경이 전형적인 가을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그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다 계단 우측으로 내려다 보니 저 멀리 너무나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북쪽으로 극동산과 왕제산이 보이고 그 뒤로 희미하게 선암지맥이 보이는데 그 뒤로 보여야 할 보현지맥은 비산비야로 이뤄지는 구간인지 박무로 인해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큰 시간이다.
그 북쪽 좌측인 북서쪽을 살펴보니 군위쪽 들판이 내려다 보이고 그 들판 좌우쪽으로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 뒤로 선암지맥을 찾아 보지만 보이지 않고 그 뒤로 지나는 보현지맥 역시 박무로 인해 전혀 보이질 않는다.
조금은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좋은 계절에 좋은 풍경을 살피며 걸어갈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한 시간이다.
좌측 끝자락을 살펴보니 그곳에는 다음구간에 올라야 할 팔공기맥 마루금이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다.
계단 좌측으로는 방금 전 지나온 억새밭과 공터가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 위쪽으로는 군부대로 이어지는 또 다른 도로가 철조망을 타고 이어지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계속 좌측으로 보이는 군부대 인공 구조물들과 건물을 바라보며 나무계단을 타고 그 끝자락으로 오르니 정면으로 철조망 위로 원형 철조망이 얹혀있는 모습이 보인다.
잘 조성된 공터의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팔공산하늘공원 이정표가 서 있는데 기맥은 좌측 비로봉과 동봉 및 서봉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하고 우측으로는 전망대 지나 동산계곡과 군위삼존석불가는 방향 표시와 함께 거리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그곳에서 좌측 비로봉 방향의 나무데크를 타고 걸어가니 하늘정원에서 우측 전망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끝자락에 전망대가 보이고 많은 등산객들이 모여 주위 조망을 즐기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나무데크 좌측으로는 부대쪽으로 드높은 철조망 위로 가시 달린 원형 철조망이 이중으로 쳐져 있고 우측으로는 철조망 위에 Y자 철조망이 얹혀져 있는 모습이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다 앞을 살펴보니 낙엽진 능선 위로 팔공산 정상부의 비로봉과 그 주위로 많은 안테나 및 인공 구조물들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에 지루함도 모르게 걸어 진행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무데크를 타고 우측 앞으로 팔공산 정상부를 조망하며 걸어가니 그 나무데크 등로가 끝이나고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도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드높은 철조망 위에 가시 달린 원형 철조망이 이중으로 쳐져 있어 일반인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니 바로 코 앞으로 팔공산 비로봉이 다가오고 그 비로봉 좌측인 동쪽으로 갓바위로 이어지는 울퉁불퉁한 암릉 구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도로가 좌측으로 180도 휘돌아 내려가는 곳에서 방금 전 지나온 군부대쪽 능선 위를 살펴보니 하얀 억새꽃 넘어 팔공산 군부대의 인공구조물이 올려다 보이는데 이제서야 앞서 진행하던 종주대 3명이 보이는 철조망 우측 길도 없는 곳을 타고 내려오며 힘들어 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곳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길도 없는 능선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갑자기 절개지가 나타나며 등로가 사라져 다시 도로쪽으로 뒤돌아 나온다.
이제는 도로를 타고 팔공산 비로봉 정상부로 진행하기로 한다.
잠시 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예전에는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팔공산 정상부가 모두에게 개방되어 많은 일반 등산객들도 그 비로봉 정상으로 오르고 있다.
잠시 더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이동전화 서비스를 위한 공중통신시설과 그 옆으로 TBC 팔공산중계소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그 안내판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녹슨 철계단이 보이는데 예전에는 사용되었던듯한 계단이지만 최근에는 오르는 사람이 없었던 듯 잡목이 우거져 있어 그 끝자락까지 포장도로를 타고 올라 거대한 KT 안테나를 바라보고 좌측으로 180도 휘돌아 다시 비로봉 정상부로 향한다.
등로 우측 저 멀리에는 전망대 아래로 거대한 암벽이 드러나 있고 그 우측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마루금이 펼쳐져 있다.
이제 지나온 군부대와 송신탑이 저 멀리 발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그렇게 풍경을 살피며 건물을 좌측에 두고 반바퀴 빙돌아 다시 비로봉 방향으로 향하니 비로봉 0.1 Km 이정표가 보이고 그 이정표 방향으로 오르니 팔공산 제천단이란 빗돌도 한쪽에 서 있다.
그 제천단 빗돌을 지나 오르니 드디어 삼각점 뒤로 큰 바위 위에 팔공산 비로봉 1193미터라 적혀있는 정상석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다만 이곳 팔공산 정상은 많은 이름으로 약간의 혼란을 겪고 있어 정상적인 정상석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기에 빠른 결론을 내 그럴듯한 정상석 하나 세워두길 바라는 마음이다.
팔공산은 대구광역시 동구와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및 군위군 부계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팔공산(1193미터)은 태백산맥의 보현산(1124미터)에서 서남쪽으로 연결된 산이다.
최고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봉과 서봉이 양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으로 솟아 있는데 팔공산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의 경계에 형성된 환상의 산지는 이른바 팔공산맥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대구분지의 북부를 병풍처럼 가리고 있다.
산맥은 남동쪽의 초례봉(648미터)에서 시작하여 환성산(811미터), 인봉(887미터), 팔공산을 거쳐 북서부의 가산(902미터)에 이르는데 인봉에서 가산까지는 팔공산맥의 주형으로 길이가 약 20 Km이다.
팔공산의 옛 이름은 공산 및 부악이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중악에 비겨 중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후삼국시대 견훤이 서라벌을 공략할 때에 고려 태조가 5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후백제군을 정벌하러 나섰다가공산 동수에서 견훤을 만나 포위를 당하였는데 그 때 신숭겸이 태조로 가장하여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함으로써 태조가 겨우 목숨을 구하였다고 하는데 당시에 신숭겸과 김락 등 8명의 장수가 모두 전사하여 팔공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팔공산은 전체 배열이 주변의 구릉지와는 달리 종상의 산형을 이루고 있으며 지질은 주변에 넓게 분포한 경상누층군에 불국사화강암이 관입하여 돔 지형을 형성하였다가 그 뒤 침식작용으로 상부의 퇴적암은 제거되고 그 밑의 화강암이 노출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을 띠게 되었다.
팔공산의 북쪽에는 위천의 상류인 남천과 여러 계류가 흐르고 동쪽에는 한천과 신령천 등이 흐르고 산의 남쪽은 완만하여 응해산(526미터), 응봉(456미터) 등의 구릉성 산지가 솟아 있고 그 사이사이에 하천이 남류하여 동화천에 모인 후 금호강으로 흘러든다.
팔공산에는 조류 24종, 포유류 14종, 식물 118과 464속 858종 4아종 193변종 25품종이 분포하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으며 팔공산은 계곡이 아름답고 산봉이 웅자하며 부근에 사적이 많아 1980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동화사, 은해사, 송림사 등 사찰이 많다.
대한불교 조계종제9교구의본사인 동화사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고찰로 임진왜란 때는 유정이 승군을 지휘하였던 곳이고 동화사입구마애불좌상(보물 제243호)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또 팔공산 등산로의 거점으로 사찰 가까이에 간장병에 효험이 있다는 구세약수가 있으며 영천 방면에 있는 은해사에는 국보 제14호인 거조암영산전을 비롯하여 2점의 보물이 있고 동화사의 말사인 칠곡 송림사에는 보물 제189호인 오층전탑이 있다.
이 밖에 고려대장경 판본을 한때 소장하였던 부인사를 비롯하여 파계사, 관암사 등이 있으며 또한 비로, 부도, 양진, 염불, 거조, 백흥, 운부, 묘봉, 중암, 내원 등의 암자가 곳곳에 분포한다.
이곳 팔공산 비로봉 정상에서 나머지 종주대를 기다렸다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내려가 동봉은 시간상 들리지 못하고 곧바로 서봉 방향으로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팔공산 비로봉 정상에서 멋진 추억을 남기고 다시 올라갔던 등로를 타고 내려가 등로 좌측의 동봉과 서봉 방향으로 내려간다.
잠시 더 내려가니 좌측은 동봉가는 길이고 우측은 서봉 가는 길인데 벌써 오전 11시 40여분을 넘기고 있기에 동봉은 포기하고 우측 서봉 방향으로 내려가며 힘들게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잠시 서봉으로 진행하다 암자터 였는지 넓은 공터를 지나며 등로 좌측 저 멀리 멀어지는 팔공산 동봉을 살펴보니 두번 올랐던 곳이지만 오늘 들리지 못하고 진행하는 것이 못내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이제 조금은 빠르게 우측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기괴하게 생긴 바위도 만나 사진에 담고 이제 좌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을 즐기며 진행하니 다시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암릉들이 보인다.
그 암릉 위로는 방금 전 지나갔던 건물과 송신탑들이 있는 등로가 올려다 보여 사진 한장에 담고 출발하는 시간이다.
벌써 팔공산 정상부가 멀어지며 다음을 약속하고 있다.
등로 우측 위로 팔공산 정상부를 살펴본 후 이제 등로 좌측 아래를 살펴보니 바로 아래 늘 다녔던 우회등로와 마애여래좌상 지나 저 아래로 깊은 계곡을 타고 삼성암과 부인사 방향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쪽으로 대구시 동구쪽 마을들도 박무속에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오늘은 만나지 못하지만 이곳 팔공산 비로봉 정상을 오르지 못하였던 시절 저 아래쪽 우회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만나는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대구 동구 용수동에 있는 통일신라의 불상으로 불상 높이는 약 1.82미터로서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로서 약사여래좌상으로 조각이 우수하고 구도도 안정감이 있지만 평면적인 신체의 구성이나 화려한 장식성으로 보아 조성시기는 통일신라 하대로 추정된다.
팔공산 동봉의 석불입상에서 서쪽에 솟아 있는 비로봉의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새겨져 있는 약사여래좌상이다.
이 불상은 연화대좌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고 두광(부처나 보상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과 신광(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 그리고 불꽃무늬의 거신광(부처나 보살의 온몸에서 나오는 빛)이 함께 갖추어진 완전한 불상이며 현재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대좌 부분에는 이끼가 가득하여 조식(잘 다듬어 꾸밈)을 잘 알아보기는 힘들다.
불상의 머리는 소발이고 큼직한 육계(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높게 솟아 있고 얼굴은 알맞게 살이 쪄 있으며 두 눈은 반개하였고 미간에는 백호(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가 없다.
코는 오뚝하며 인중은 뚜렷하고 입은 좀 작게 표현되었으며 엷은 미소를 띄고 있으며 두 귀는 어깨까지 닿을 듯 길게 표현되었고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어깨는 당당하나 경직되었고 가슴은 편평하여 양감이 표현되지 않았다.
법의(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는 우견 편단(오른쪽 어깨가 드러남)으로 옷주름이 유려하고도 규칙적이며 특히 왼쪽 어깨 위에서 반전되어 뒤로 넘어가는 옷깃의 표현은 통일신라시대의 우견 편단을 한 불좌상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경주남산 칠불암 마애삼존불의 본존상과 비교될 수도 있지만 이 불상에서는 보다 더 경직되고 도식화되었다.
오른손은 외장(손바닥을 바깥으로 함)한 채 곧게 내려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놓았고 손금이나 다섯 손가락 마디마디의 표현이 뚜렷하며 손목에도 2조의 음각선이 짙게 그어져 있다.
팔찌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손목 마디를 표현한 것으로 짐작되고 왼손은 배 앞에서 약호를 들고 있으며 손가락이 유난히 길게 표현되었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 그리고 거신광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 조각이 정교하고 화려하며 머리에는 큼직한 단판 육엽(여섯 잎의 홑꽃잎)의 연꽃무늬를 새기고 그 둘레에 2조의 테두리선을 돌렸고 그 바깥으로 다시 2조선을 돌렸다.
그 사이에는 덩굴무늬로 장식하였으며 신광 역시 두광과 같은 모습이고 두광과 신광 주위에는 대좌에서 두광 정상까지 불꽃무늬로 장식했다.
대좌는 앙련(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과 복련(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연화대좌이며 무릎 밑의 단판 앙련은 이중으로 겹쳐져 있고 그 밑으로 복련이 배치되어 있고 앙련 중앙의 큰 연꽃잎 안에는 귀꽃 모양의 문양을 새겨 넣어 장식성을 더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연화좌 밑으로 목은 길게 빼고 대좌를 받치고 있는 용의 형상이며 두 마리의 용은 서로의 몸을 엇갈려서 대좌를 떠받들고 있듯이 표현되었고 입을 딱 벌리고 있으며 눈은 부리부리하다.
이처럼 불상의 대좌에 용두를 조각한 것은 희귀한 예로서 기록상으로는 최치원의 사산비인 숭복사 비명에 2층 불전의 용으로 된 대좌위에 노사나불을 모셨다라는 대목이 있어 이러한 대좌가 숭복사 불상이 만들어진 9세기 이후에는 제작되어졌으리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조각이 우수하고 구도도 안정감이 있지만 평면적인 신체의 구성이나 화려한 장식성으로 미루어 조성시기는 통일신라 말기로 추정된다.
다시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예전에 팔공산 정상부로 향하던 등로를 막아 놨던 이중 철조망이 열려있는 곳에서 잠시 배낭 내려 간식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갑령휴게소에 주차시킨 차량 회수를 위해 홀로 먼저 출발하며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해 본다.
진행 방향으로 서봉 지나 저 멀리 파계봉쪽을 바라보며 걸어 내려가니 아름다운 단풍이 반겨주고 현위치구조 091번 이정목을 지나 곧이어 좌측으로 수태골주차장으로 하산할 수 있는 092번 현위치번호가 있는 오도재에 도착을 한다.
오도재는 자세한 자료는 찾아 볼 수 없지만 이 곳은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경북 군위군 부계면을 잇는 고개이다.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용수동은 원래는 대구부 해북촌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수대동, 상충동, 용천동이 용수동이 되어 달성군 공산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 대구시에 편입되었고 1981년 대구직할시 동구 용수동을 거쳐 1995년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이 되었는데 용수동은 법정동이고 행정동은 공산동이며 지명은 용천동과 수대동에서 1자씩 따온 것이다.
가르뱅이, 수태동, 태정 등의 자연마을과 며리청석, 장군메기 등의 산과 사기짐, 중신골, 지정골, 탑골 등의 골짜기와 부채바우 등의 지명이 전한다.
사기짐은 사기점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지정골은 지정사가 있었다고 해서 부채바우는 부채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정골 지정사 터와 농연서당 및 도요지 등의 유적과 수릉향탄금계표석(대구문화재자료 21), 용수동 당산(대구민속자료 4), 팔공산 동봉석조약사여래입상(대구유형문화재 20),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대구유형문화재 3) 등의 문화재가 전한다.
농연서당은 지은 해를 알 수 없으며 2칸 규모의 목조기와집으로 대청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온돌방이 있고 담장은 돌로 쌓았다.
선비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홍수로 파괴된 것을 1929년에 중건하였고 도요지는 신라 후기에 기와를 굽던 도요지로서 1968년 경북대학교에서 조사하여 동수미륵당이란 글이 새겨진 기와를 발굴하였다.
고택으로는 구경회주택이 있으며 1921년에 지은 목조기와집이며 정침 2칸, 행랑채 2칸의 남향집이다.
오도재를 지나 진행을 하니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니 잡목 사이로 지나온 팔공산 정상부가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너무 자주 보이는 현위치번호를 지나 바위 암봉을 우회하는 또 다른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그 계단 정상부에서 잡목이 사라진 곳에서 지나온 팔공산 정상부가 시원하게 조망되어 잠시 사진 몇장 남기고 출발을 해 본다.
우측 동봉 아래로는 제법 멋진 바위들이 점처럼 박혀있어 더욱 아름답게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팔공산 비로봉 정상부와 그 주변 풍경을 즐긴 후 우측 동봉 저 멀리 골프장과 밤에 빛나던 골프장 위 정상부를 조망하고 다시 갈길이 바빠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수태골이 내려다 보인다.
수태골은 대구시 동구 용수동의 자연부락으로 경주최씨들이 최초로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수태의 유래는 불임의 여자가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이곳에서 기도를 올린 끝에 임신에 성공했다고 해서 수태골로 이름 붙여졌다고 하고 항상 계곡에 물이 넘쳐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위해 찾는 계곡이다.
다시 나타나는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 일망무제로 펼쳐진 조망을 즐기며 걸어가니 헬기장 지나 금새 삼성봉이란 정상석을 만나고 곧이어 또 다른 봉우리에서 서봉 정상석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산객에게 부탁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이곳 팔공산 서봉의 옛 이름이 바로 삼성봉으로서 각기 다른 정상석이 서 있다는 소식이기에 삼성봉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보인다.
팔공산은 대구광역시의 중심에서 북동 방향으로 약 20 Km 지점에 태백산맥이 남으로 힘차게 내딛다가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곳에 우뚝 멈추어 장엄하게 솟은 산으로 해발 1192미터의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봉(일명 미타봉 1155미터)과 서봉(일명 삼성봉 1150미터)이 어깨를 나란히 웅자를 겨루고 있으며 행정구역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에 속하고 영천시, 경산시, 칠곡군, 등 4개 시와 군을 경계로 있는 산이다.
삼성봉인 팔공산 서봉에서의 조망 역시 일망무제이다.
지나 온 팔공산 정상에서 삼성봉까지의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저 멀리 지난 봄 힘들게 걸었던 비슬지맥 마루금이 하늘의 구름과 맞닿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1054봉과 파계봉 넘어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가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도 멋스럽게 펼쳐져 있다.
정상에서 조망을 구경하고 내려 와 정상 등로를 찾아 진행을 하니 이제 파계재까지 5.1 Km가 그리고 한티재까지 7.2 Km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반가운 시간이다.
이제 팔공산 서봉 즉 삼성봉을 출발 해 낙엽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거대한 암릉이 나타나고 그 암릉 우측 사면 등로를 통해 우회하며 통과를 한다.
한동안 우회 등로를 통해 암릉을 통과하니 등로에는 이제 단풍이 지기 시작하며 벌써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다시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암릉을 통과해 주능선을 타고 걸어가니 바위 등로를 타고 걸어가고 또 다시 나타나는 암릉은 우회하며 진행을 한다.
통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 바위 암릉을 넘으니 다시 내리막 나무계단이 나타나는데 그 계단 좌측으로 창바위가 나타나고 눈 앞으로는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알록달록 단풍으로 수놓으며 멋지게 펼쳐져 있다.
1005봉 넘어 파계봉은 아직도 저 멀리 존재감을 알려오기에 아무 생각없이 무심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무계단을 끝까지 내려가는 동안 진행방향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마루금이 펼쳐져 있어 많은 추억을 남겨본다.
그 끝까지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다시 거대한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 좌측 저 멀리 대구시 동구쪽 마을과 나즈막한 산그리메들 그리고 그 끝자락에 비슬지맥 마루금이 하늘에 맞닿아 있다.
다시 단풍 등로를 타고 걸어가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온 서봉 즉 삼성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등로 우측인 북쪽으로는 군위군 부계면쪽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동산계곡으로 내려가는 능선에는 아름다운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어 잠시 더 머무르며 많은 추억을 담아 본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낙엽 등로로 바뀌고 바스락 거리는 낙엽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또 다시 거대한 암릉 등로가 기다리고 있다.
바위를 넘어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바위 암릉이 나타나고 거대한 소나무 한그루를 넘으니 등로 우측으로 군위쪽 풍경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한동안 군위쪽 단풍과 산그리메를 구경한 후 전진하니 백운대 바위를 지나고 그 바위 정상에 오르니 지나온 팔공산 정상부에서 이곳 백운대로 이어져 온 마루금이 황홀한 풍경으로 펼쳐져 있다.
그 바위 정상에서 다시 일망무제로 펼쳐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니 산행을 중단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마냥 그 황홀한 풍경을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다시 바위를 지나 등산로란 안내판을 지나 좌측 바위를 우측 우회 등로를 타고 로프를 잡고 오르니 멋진 단풍이 반겨준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 정상에 올라 잠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팔공산 정상에서 바위 암릉구간을 지나 백운대 지난 이곳 바위 정상부로 이어지는 팔공기맥 마루금이 너무나 환상의 풍경으로 가슴속 깊이 쌓이는 시간이다.
앞으로 가야 할 방향으로는 파계봉 지나 다음 구간 올라야 할 가산산성과 가산 방향의 마루금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그렇게 즐긴 후 다시 그 1053.9봉 바위를 내려가 진행을 하니 바위 좌측으로 멋진 소나무 두그루가 멋지게 서 있는데 그 좌측으로는 대구시 동구쪽 마을과 산그리메가 아름다워 그곳 바위에 걸터 앉아 준비한 사과를 먹으며 잠시 쉬어 간다.
하지만 거꾸로 올라오는 수많은 등산객들이 소나무 앞에 서서 사진을 담느라 정신이 없어 살짝 자리를 피해 쉬어간다.
멋진 바위와 소나무가 있는 1053.9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을 하니 등로 좌측 앞쪽으로 중아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낙동강이 희미하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다시 로프 암릉지대를 지나 전진하니 단풍이 반겨주고 979.2봉 바위를 우회하며 로프를 잡고 통과하면 잠시 평이한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대구올레길 안내판이 서 있다.
그 갈림길을 지나 오르니 넓은 마당재 헬기장이 나타나는데 수많은 등산객들로 가득차 있기에 곧바로 출발해 현위치번호 129번이 서 있는 971미터의 공터에 도착을 해 잠시 더 쉬어 간다.
971봉 공터를 지나 진행을 하니 약간의 바위들이 널려있지만 우회할 정도는 아니기에 주능선을 따라 걸어간다.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암봉이 나타나는데 그 우측으로 배를 닮은듯한 바위 하나가 가로로 누워 산객의 눈길을 잡는다.
다시 안부로 내려갔다 나즈막하게 올라 다시 내려가 안부를 통과하니 약간의 잡풀이 자라고 있는 좌측으로 팔공산학생야영장 방향으로 내려 갈 수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처음에는 그 팔공산학생야영장 하산 무명봉이 파계봉이라 생각을 했는데 이무 표식이 없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금새 서봉에서 4.0 Km 진행해 왔다는 이정표와 삼각점 그리고 정상석이 서 있는 파계봉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시며 셀카 놀이를 하면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파계봉(991.2봉)은 대구광역시 동구와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의 경계에 솟아 있는 팔공산의 봉우리중 하나로서 파계봉이란 정상석을 세워 놓았는데 자료를 찾아 봐도 찾을 수 없다.
어렵게 찾은 대구매일신문 자료에는 이곳 파계봉을 장꼬방봉으로 부르는데 이곳 주민들 역시 장꼬방 말랭이라 부른다고 전해진다.
장꼬방은 장독이란 의미이고 말랭이는 정상이라는 뜻이므로 장꼬방봉의 의미는 장독을 닮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상석을 세운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정확한 고증을 통해 올바른 지명이름과 정상석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파계봉에서 잠시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을 하니 바위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더 걸어가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넓은 바위들이 놓여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은 장소로 보인다.
이제 평이한 낙엽 등로를 타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거목 한그루가 자라고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처음에는 이곳이 파계재가 아닐까 생각을 했지만 파계재는 아직도 더 진행을 해야 되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그 안부를 출발한다.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이곳 등로는 푸르름을 유지한 채 깊어가는 가을이 펼쳐져 있다.
약간의 바위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을 넘어 칡넝쿨과 억새지대가 있는 헬기장을 지나니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드디어 안부인 파계재에 도착을 해 몇장의 사진을 담아 본다.
좌측으로 파계사 하산 등로가 열려있고 한티재까지 2.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 뒤에 우측으로 제2석굴암가는 화살표가 있는 이정석이 보인다.
파계재는 대구시 동구 신무동과 군위군 부계면을 연결하는 고개로 파계사 뒷쪽에 있는 고개라 파계재인데 파계라는 이름은 절의 좌우 계곡에 흐르는 9개의 물줄기를 모은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파계사는 대구시 동구 중대동의 팔공산 서쪽 기슭에 자리잡은 동화사의 말사로서 804년(애장왕 5) 심지가 창건하고 1605년(선조 38) 계관이 중창하였으며 1695년(숙종 21) 현응이 삼창하였다.
이 절에는 영조의 출생과 관계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숙종의 부탁을 받은 현응은 농산과 함께 백일기도를 하였고 기도가 끝나는 날 농산이 숙빈 최씨에게 현몽하였으며 이렇게 태어난 아들이 후일의 영조였다는 것이다.
숙종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파계사 주변 40리 이내의 조세를 받아 쓰라고 하였으나 현응은 이를 거절하고 선대의 위패를 모시기를 청하였는데 이는 지방 유림의 행패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1979년 관음보살상을 개금할 때 불상에서 나온 영조의 어의는 이 설화의 신빙성을 더해 주는 것이었다.
현존 당우로 2층누각인 진동루, 법당인 원통전, 적묵당 등이 있고 부속암자로 현니암, 성전암, 금당암 등이 있는데 성전암은 경북 3대 도량 중의 하나이다.
문화재로 보물 제1214호 파계사 영산회상도가 있다.
파계재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거대한 소나무 두그루가 자리하고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니 우측 한쪽에 동네 아주머니 몇분이 올라 와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다시 좌측으로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억새와 잡풀이 우거진 헬기장에 도착을 한다.
그 헬기장을 지나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파계봉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이제 편안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안부가 나타나는데 그 안부 우측으로 안내판이 보여 가 보니 대구 파계사 원당봉산표석이란 안내판과 표석이 서 있다.
대구 파계사 원당봉산표석은 사단법인 대구문화유산에 의하면 팔공산 파계사 원당봉산표석은 팔공산 파계재에서 한티재방향으로 약 400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당봉산은 원당과 봉산이란 두 단어를 조합한 것이다.
원당은 왕실의 안녕이나 명복을 빌던 장소를 뜻하며 봉산은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하게 금지한 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표석은 원당으로 지정된 사찰의 나무를 함부로 벌목하지 못하게 하고 주변 산림도 보호하고자 세운 것이다.
1806년 작성된 파계사원당사적에 따르면 파계사는 1696년(조선 숙종22년)세자(영조)의 탄진을 기원하기 위해 왕실의 원당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1696년 이후 파계사가 원당으로 지정되면서 세워진것으로 추정된다.
그 대구 파계사 원당봉산표석을 읽어 본 후 다시 주등로로 복귀해 출발하니 미어캣을 닮아 있는 바위들을 지나 곧이어 우측으로 팔공기맥 방향인 한티재와 좌측으로 파계지구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해 몇장의 사진을 남겨 본다.
이곳에서 좌측 파계지구 등로를 버리고 우측 한티재 방향의 오르막 등로를 타고 조금 빠르게 진행을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등로 좌측으로 파계야영장 하산 갈림 이정표와 한티재까지 이제 1.7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있는 이정표를 지나 뚜렷한 낙엽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으로 너무나 고운 단풍이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알리며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있다.
지금까지 바위 등로를 타고 진행하느라 고생했다며 보상이라도 해 주듯 너무나 좋은 등로를 따르니 이제 조금은 속도가 나는듯한 기분이기도 하다.
그 단풍 등로를 지나니 낙엽이 깔려 밟을 때마다 바스락 거리고 등로 반대쪽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아직도 제법 보이는 편안한 등로를 따른다.
멋진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 그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걸어보고 815.6봉은 우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니 등로 옆에 바위 의자들이 널부러져 있어 잠시 쉬어가기 편하게 되어 있다.
그 바위 의자를 지나 다시 편안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이제 한티재까지 8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 부계택시에 전화를 해 한티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멋진 바위 벤취 몇개가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셔 본다.
바위 벤취봉을 지나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한동안 평이하게 진행을 하니 내리막 안부에 도착을 한다.
이제 바위도 사라진 평이한 등로를 타고 나즈막하게 오르고 내리기를 몇번인가 반복하니 마지막 안부를 지나 등로 앞 좌측으로 이제 한티재 휴게소가 내려다 보인다.
잠시 더 걸어가니 마지막 봉우리에 도착을 해 몇명의 등산객들이 쉬고 있는 공터를 지나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마지막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마지막 나무계단을 내려가 주위에 있는 등산객에게 부탁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79번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한티재 휴게소로 들어가며 오늘 하루 산행을 마무리 하는 시간이다.
한티재 휴게소로 들어가 시원한 음료수 한병을 사 단번에 마시고 나니 조금은 갈증이 풀린다.
택시 기사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고 다음 산행 들머리를 확인해 보기로 한다.
이곳 한티재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동명면 득명리와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를 잇는 고개로서 팔공산과 가산 사이에 있으며 79번 2차선 지방도가 통과한다.
과거에는 칠곡과 군위를 왕래하는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였으나 현재는 팔공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며 팔공산의 경치와 굽이굽이 휘감아 도는 도로의 굴곡이 아름다워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한티재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으며 조선지지자료에 하북면 대현동에 있는 고개로 기록되어 있고 높고 큰 고개라고 한티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한자로는 대현이라고 표기하였다.
음료수 한병 마시고 그 한티재 휴소게 건물 좌측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화장실 옆으로 가니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고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마루금이 뚜렷하게 나 있다.
그렇게 다음 구간 산행 들머리까지 확인하고 다시 한티재 휴게소로 나오니 예약된 택시 기사로 부터 전화가 오고 그 택시를 타고 갑령휴게소로 가 차량을 회수해 다시 한티재로 돌아 오니 마지막 후미가 막 도착을 했다는 전언이다.
배낭 정리하고 차에 올라 부계면 방향으로 가다 백학호텔 사우나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부계면에 있는 밀양 돼지국밥 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 곧바로 고속도로를 타고 귀경을 하다 대전에 들려 다음날 농사일을 도와 드리기 위해 먼저 내리고 종주대를 보내며 길고도 멀었던 팔공기맥 제4구간 산행을 마무리 한다.
다음 구간은 도상거리 약 30여 Km로 가장 긴 구간이지만 고도가 높지 않고 날씨도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기에 무탈하게 완주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특히 회사일이 있어 다음 구간은 홀로 다녀 와야 하기에 조금 더 부담이 되지만 조금 일찍 다녀와 구간 나누기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려 종주대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보기도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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