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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맥과 중요 지맥 산행(완료)/팔공기맥(낙동·완)

팔공기맥 제3구간 수기령에서 갑령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5.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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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북도 영천시와 군위군의 팔공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5년 10월 02일과 03일 (금요 무박 토요일 산행)

산행날씨 : 맑고 화창한 전형적인 가을날씨에 오전에는 바람까지 불어 산행하기 좋았던 산행 날씨

산행온도 영상 10도에서 영상 23도

산행인원 : 총 7명 (칠갑산과 3450온누리 산악회 종주대 6명)

산행코스 : 수기령(908번 2차선 지방도로)-582봉-592.8봉-간벌지대-747봉(봉림산 갈림 삼거리봉)-널부러진 지독한 간벌지대-702봉-묘지지대-진돌봉(701.1봉)-683봉(진달래나무)-742봉(돌탑봉) 이정표(아미산 1.7 Km, 수기령 5.0 Km)-전망바위-방가산(755.8봉, 정상석) 이정표(자연휴양림 주차장 5.08 Km와 임도 1.0 Km)-나무계단-현위치 NO 8 이정목-현위치 NO 9 이정목과 묘지1기-장곡자연휴양림 갈림삼거리(벤취쉼터) 이정표(방가산 0.91 Km, 주차장 4.18 Km, 자연휴양림 주차장)-현위치 NO 10 이정목-544봉-현위치 NO 11 이정목-묘지지대-비포장 임도-603봉-현위치 NO 12 이정목-안전로프구간-이정표(주차장 2.89 Km, 방가산 2.19 Km)-나무게단-현위치 NO 13 이정목-방가산입구 이정표3 (괴산마을 4.9 Km, 휴양림관리사무소 2.6 Km, 방가산 2.5 Km)-낙동정맥 트레일 등산로이용안내판-690봉(경림산, 원형석축)-방가산입구 이정표4 (괴산마을 4.2 Km, 휴양림 관리사무소 3.3 Km)-675봉-방가산입구 이정표5 (괴산마을 3.6 Km, 방가산입구 1.3 Km)-나무계단-벤취3개 쉼터-방가산입구 이정표6 (괴산마을 3.3 Km, 방가산입구 1.6 Km)-나무계단-낙동정맥트레일 등산로이용안내판-613봉-바위지대-방가산입구 이정표7 (괴산마을 2.6 Km, 방가산입구 2.3 Km와 휴양림관리사무소 4.9 Km)-나무계단-살구재 이정표8 (괴산마을 3.3 Km, 방가산입구 2.7 Km)-벤취쉼터에서 아침식사-폐헬기장 시멘트 블록-살구재 안내판(준.희)-비포장 임도-좌측 능선진입-645.9봉 삼각점-641봉-627봉-비포장 임도-육군3사관학교장 경고판과 유격장 3 Km 할수 있다 안내판-충성로 빗돌과 충성문(화산 유격장)-좌측 능선진입-대구소방의회 조림기념비-깃대2개-삼각점봉(785봉과 삼각점)-억새지대-비포장 임도-임도 사거리-매복 전투사격장-828강의장 입구-828강의장-유격훈련시설물-바위지대-안전로프지대-화산(828.1봉 삼각점)-그물망-묵은 밭구간-비포장 임도-803봉-비포장 임도-시멘트 포장도로-갈림삼거리-시멘트 포장도로(과수원 우회도로)-비포장 임도-갈림삼거리(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조림지와 억새지대-705봉(과수원)-개망초와 억새능선-비포장 임도-사과과수원-시멘트 포장도로-폐농가-마을 시멘트 포장도로-화산 유격장 2.3 Km 이정판-폐교된 화산분교-감자골 시멘트 포장도로-적상추밭-비포장 임도-상추밭-양배추와 배추밭-시멘트 포장도로-밭 능선진입-상추밭과 무선 이동통신탑-722.9봉(녹슨 인공 구조물)-개망초 밭-배추밭-그물망-능선진입-무명묘지-벌초된 무명묘지-갑령-382.9봉-466.7봉 갈림 삼거리-476.9봉 갈림 삼거리-조망무명봉-시멘트 수로-화서교차로-갑령재-신녕면 목욕탕-산행종료

산행거리 : 맑고 화창한 가을 날씨에 오전에는 바람까지 불어 약간 쌀쌀함까지 느꼈던 산행하기 좋은 날씨에 즐기며 22.11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큰 어려움 없이 즐기며 진행하여 11시간 05분 (03시 24분에서 14시 29분까지)

교통편 : 종주대 차량 2대 이용

 

팔공기맥 또는 팔공지맥이란 ???

백두대간의 매봉산(태백)에서 시작한 낙동정맥은 주왕산과 통점재를 지나 가사령에 내려서기전 1.1 Km 지점에서 서쪽으로 큰 산줄기 하나를 가지치고 가사령으로 내려서 침곡산으로 간다.

서쪽으로 가지친 큰 산줄기는 베틀봉(934미터), 면봉산(1121미터), 보현산(1126미터)을 지나 석심산(750.6미터)에 이르러 다시 두갈래로 갈라진다(분기점에서 39.4 Km).

한줄기는 남서진하며 방가산(755.8미터)과 화산(828.1미터) 및 팔공산(1,192.8미터)을 지나고 가산(901.6미터)에서 북진하여 좌베틀산(369.2미터)와 청화산(700.7미터)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새띠마을에 이르는 길이120.7 Km되는 산줄기다.

석심산(750.6미터)에서 또한줄기는 북서진하며 어봉산(634.2미터), 갈비봉(672미터), 산두봉(719미터), 구무산(676.3미터), 푯대산천제봉(359미터), 삼표당(443.7미터), 해망산(400미터), 삿갓봉(290.7미터), 골두봉(314.8미터), 곤지산(330미터) 및 비봉산(579.3미터) 등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팔공산쪽으로 온 산줄기를 마주보며 끝을내는 길이 127.4 Km나 되는 산줄기다.

두 산줄기는 위천을 남과 북으로 애워싸고 서로 마주보고 달리다가 다시 위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위천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며 만나게 되는데 위천의 북쪽 울타리가 보현지맥이고 위천의 남쪽 울타리가 팔공기맥 또는 팔공지맥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팔공산줄기를 팔공기맥(지) 또는 낙동내륙기맥과 금호북기맥등으로 부르고 있는 모양인데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에는 이를 각각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서북쪽 산줄기 전체를 보현지맥으로 석심산에서 남서쪽 팔공산 줄기를 팔공지맥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나도 그렇게 부르는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산세로야 팔공산쪽이 더 크고 유명세도 있지만 우선은 길이가 단 6.7 Km이긴 하지만 긴쪽을 장자로 봐야 할 것 같고 석심산에서 북서쪽 산줄기만 따로 떼어내서 이름을 붙이자면 그쪽에서 제일 높은산인 산두봉(719미터)이름을 따야 할 텐데 이름없는 산이라 좀 어색하고 잘 알려진 보현산(1124.4미터)의 위상도 감안하여 가사령에서 석심산과 산두봉 줄기를 보현지맥으로 부르고 석심산에서 남서쪽 팔공산 줄기를 팔공지맥으로 부르는게 좋을 듯 싶다.

보현지맥 북쪽의 물은 용전천, 길안천, 미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보현지맥 남쪽의 물은 위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위천의 남쪽 울타리인 팔공지맥의 북쪽물은 위천으로 흘러들어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하고 팔공지맥의 남쪽물은 금호강으로 흘러들다 가산을 지나고부터는 낙동강에 직접 흘러든다.

 

 

 

화창한 가을 날씨에 묵은 밭에 피어난 아름다운 개망초와 억새 능선을 걸으며 환상적인 풍경을 즐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이번 구간은 그리 높은 산도 없고 높낮이도 심하지 않으며 더욱이 개인적으로 추석 연휴 기간에 두번의 종주 산행을 하였기에 산행 자체에 대한 걱정은 없지만 역시나 오고 가는 차량 문제가 가장 큰 고민거리이다.

여전히 종주대 7명이 출발을 기다리고 산행일이 가까워지면서 일기예보와 날씨를 확인해 보니 산행지의 날씨는 좋지만 이제부터 무더위보다는 추위를 대비한 산행 준비가 필요로 하는 시간이 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게 팔공기맥 산행도 중간지점을 향해 함께하는 7명의 종주대와 함께 금요일 짙은 어둠을 뚫고 갑령재를 지나 지난 구간 산행 날머리였던 수기령으로 달려가 본다.

 

 

큰 고도차이도 없이 좋은 산행 날씨에 꾸준하게 걸어 드디어 화산정상에서 잠시 추억을 만들고 진행하니 과수원 지나 광활한 구릉 능선이 펼쳐지고 그 위에는 하얀 개망초와 하늘거리는 억새 넘어 감자골 상추밭이 계단을 이루며 너무나 황홀한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 개방초와 억새밭으로 들어가 잠시 종주산행도 잊은채 추억 몇장 남기다 보니 마음은 동심으로 돌아간 듯 날아갈 기분이다.

오랫만에 여유있게 즐기며 자연을 많이도 생각하며 걸었던 기맥 산행으로 인해 피곤함도 잊은채 환상에 젖어 봤던 시간이었다.

 

 

오늘도 역시 차량2대에 나눠 동승한 다음 고속도로의 마지막 휴게소인 와촌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늘 산행 날머리인 갑령재 휴게소에 차량 한대를 두고 나머지 한대에 모두 탑승해 산행 들머리이자 지난 구간 날머리였던 수기령에 도착을 하니 새벽 3시 20여분이 지나고 있다.

산행 준비 후 어둠속에 주위 풍경을 담은 후 미니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는 시간이 새벽 3시 24분으로 구간이 진행될수록 서울에서 조금 더 가깝게 접근을 하니 산행 출발시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곳 수기령은 학암리는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에 있는 학암리 마을에 있는 908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개로서 이곳 수기령이 있는 마을은 동부 또는 방학동이라고 하는 이 곳은 바우골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부터 이곳은 동쪽의 경계점이었으며 지금도 영천군과의 경계지점이다.
부락 뒷편 고개위에서 학을 놓아주 었다는 설에 따라 방학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군위군 고로면이라 적혀있는 커다란 빗돌 뒷편 능선으로 들어가며 팔공기맥 제3구간을 시작하는 시간은 벌써 쌀쌀함을 느끼는 시간이기에 방풍 자켓을 걸치고 시작을 하는 시간이다.

잠시 오르니 등로는 점점 더 거칠고 가파라지기 시작하고 미끄러운 잔자갈 마루금을 타고 희미한 등로를 찾아 오르는 시간은 생각보다 힘들고 고통이 수반되는 시간이기에 잠시 더 올라 걸쳤던 방풍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고 다시 올라 본다.

그렇게 한동안 전신없이 오르니 잠시 주능선에 오른듯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582봉에 도착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능선으로 불어 오는 바람이 벌써 가을이 다가왔음을 알리고 그렇게 산행하기 좋은 조건에서 조금은 빠르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큰 특징도 없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다보니 약간 흐르던 땀이 식으며 한기도 느껴보는 시간이기에 빨라도 너무나 빠른 세월의 흐름을 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평이하게 전진하니 금새 592.8봉에 도착을 해 이곳에서도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592.8봉을 지나서도 한동안 등로에는 큰 변화없이 평이하게 이어지기에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다시 등로가 가파라지기 시작을 하는데 그 등로에는 간벌된 나무들이 널부러져 있어 오르는 시간 내내 정상적인 등로를 찾아 너무나 힘들게 올라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동안 오르니 이제 747봉이 가까워졌는데 등로는 더욱 곧추 세우고 그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는 두 다리엔 무거운 무게감이 전해온다.

참으로 힘들게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오르니 드디어 봉림산가는 갈림 삼거리봉인 747봉에 도착을 해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보는 시간이다.

흐르는 땀을 닦고 살펴보니 정상 좌측으로는 봉림산 가는 방향이고 올라온 방향으로 잠깐 내려가 우측으로 가파르게 내려가면 팔공기맥 마루금이다.

봉림산(698봉)은 영천시 화북면 죽전리에서 화남면과의 경계에 위치하며 학서산이라고도 하는데 봉림산의 높이는 698미터이고 주변이 대부분 600미터 이상의 고도를 가진 지형이므로 큰 마을이 발달하지 못하였으며 산봉우리에 봉이 자주 날아와 앉았다 하여 봉림산이라 한다.
봉림산의 정상과 그 부근에서 발원한 하천은 남쪽의 봉림사 주변을 거쳐 봉림지로 흐르며 산 아래의 식수와 농업용수로 쓰이고 산의 북쪽에는 분지가 형성되어있다.
봉림산 주변에는 방가산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산이 양쪽으로 있는데 동쪽이 화북면 죽전리의 방가산(694봉)이고 서쪽이 화남면 용계리의 방가산(755.8봉)이다.
봉림산의 서쪽 산자락에는 질미재, 버드나무골, 이기재 등 소수의 취락지가 분포해 있으며 수계를 따라 논농사와 밭농사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봉림산의 중간부에는 봉림사가 있는데 인근 보현산의 법화사를 이곳으로 옮겨 절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개인적으로 올랐다면 당연히 봉림산을 다녀왔겠지만 오늘은 함께하는 산친구들도 있고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이기에 아쉬움을 달래고 포기한다.

 

 

봉림산 가는 삼거리봉에서 잠시 더 즐기며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뒤돌아 내려가 이제 좌측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가파르게 내려가 본다.

잠시 잡목이 발길을 붙잡더니 금새 그 잡목이 사라지고 평이한 등로가 열리는데 걷기 좋았던 등로에는 갑자기 바위지대가 보이기 시작하고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제멋대로 널부러져 있어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며 걸어가기에 너무나 어려운 시간이다.

한동안 지러운 나뭇가지들이 널려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완만하게 올라 702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해보고 출발한다.

 

 

계속되는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진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최근에 만들어진 듯한 묘지들이 보이고 하늘엔 엊그제 떠올랐던 슈퍼문은 아니지만 아직도 제법 둥근 보름달 모양을 하고 어둠을 헤치며 어렵게 산행을 이어가는 종주대 앞길에 빛을 밝혀주고 있다.

다시 잡목이 제법 자라고 있는 등로를 따라 701.1봉을 넘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 저 멀리 밝은 불빛들이 보여 살펴보니 영천쪽 불빛이 아름다운 띠를 형성하며 반겨주고 있다.

그 영천쪽 불빛들을 바라보며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잡목이 우거져 있는 683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 683봉을 지나니 키 큰 관목들이 등로에 자라고 조금 더 걸어가니 진달래 터널도 나타난다.

주능선을 타고 평이하게 이어지는 잡목 구간을 타고 전진하니 희미한 등로조차 찾기 힘들어지더니 등로는 코가 땅에 닿을 듯 무척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로 변한다.

힘들게 그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오르며 많은 땀방울을 흘리니 드디어 앙증맞은 작은 돌탑 하나가 서 있고 그 옆으로 떨어져 나간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 돌탑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며 후미를 기다려 본다.

이곳이 742봉으로 이정표에는 돌탑봉으로 표기된 봉우리이다.

 

 

돌탑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그 돌탑봉을 출발하니 등로 우측에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오르니 등로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데 그 바위 우측 뒤로는 이제 여명이 밝아오며 너무나 아름다운 지나온 팔공기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다.

흔들린 사진이지만 이제 여명의 빛을 받아 후래쉬 없이 사진을 담을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다.

가까운 곳으로 683봉이 솟아 있고 그 뒤 저 멀리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던 702봉도 올려다 보인다.

 

 

전망바위를 내려 와 좌측 우회 등로를 타고 그 바위를 통과해 뒤돌아 보니 생각보다 거대한 전망바위가 서 있어 잠시 놀라는 시간이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밝음과 어둠의 경계에 있는 시간을 걸어가니 앙증맞은 작은 정상석과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앞으로 삼각점이 보이는 방가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방가산(755.8봉)은 영천시 화북면과 군위군 고로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755.8미터이며 방가산의 남서쪽은 화산이 북쪽은 마이산과 이어져 있고 서쪽은 화북댐에 의한 화북호가 있다.
방가산의 명칭은 산의 모양이 상제가 밖에 나갈 때 쓰던 방갓처럼 생겨서 붙여졌다고 하며 방가산 일대의 지질은 백악기의 중성 화산암류가 대부분인데 그 위로 반암류도 부분적으로 분포해 있다.
서북으로 위천이 동북과 남서로 고현천이 경계를 이루는데 위천으로 배수되는 지역에는 기암의 토어(차별된 풍화 작용을 받아 만들어진 독립성이 강한 암괴 미지형)들과 소규모 선상지(산지에서 흐르던 하천이 갑자기 완만한 평지를 만났을 때 곡구를 중심으로 유속이 느려지며 형성된 충적 지형)들이 나타난다.
방가산의 남사면은 주로 굴참나무 군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도 450미터 전후에는 전석지가 형성되어 있다.
방가산 일대는 사방으로 2차선 국도와 비포장 지방도에 의해 주변의 지역과 분리되어 있으며 정상부의 남쪽과 서쪽 산자락 아래에는 퉁재이·목동·분재골 등 소수의 가구들로 이루어진 취락지가 흩어져 있다.

 

 

방가산 정상에서 잠시 간식을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출발을 하자고 하지만 금새 일출이 시작될 것 같아 조금만 더 진행하다 쉬어 가기로 하고 조금은 빠르게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면서 일출을 볼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본다.

하지만 진행하면 할수록 일출을 볼 수 있는 반대 방향으로 나즈막하게 진행되기에 안타까운 마음만 한가득 안고 홀로 빠르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평이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한동안 걸어가니 이제부터 등로 옆으로 긴급구조 현위치 이정목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다시 한동안 걸어가니 무명묘지 지나 등로 우측으로 장곡자연휴양림 하산 갈림 삼거리 쉼터가 나타난다.

이곳에서도 여전히 조망이 없기에 나머지 종주대들을 쉬게하고 이 산객 홀로 먼저 출발해 일출을 기다려 보기로 한다.

장곡휴양림 갈림길(575미터) : 장곡휴양림은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장곡휴양림길 195에 있는 산림내 휴양공간을 조성하여 국민보건휴양 및 정서를 함양하고 산림의 다목적 경영으로 공익기능 증대와 지역개발 촉진을 도모키 위해 천연림으로 우거진 심산유곡에 조성한 휴양림으로서 가을철에는 도토리가 많이 생산되며 인각사에서 고로면 소재지로 7 Km 정도 들어가면 약 78만 3천평의 휴양림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야영장, 산책로, 산막, 산림욕장, 전망대, 숲속에 집 등 편의시설과 체력단련실, 어린이 놀이터 등이 있고 야외교실, 임간수련장, 자연관찰원, 전시관 등의 교육시설을 비롯해 각종 휴양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장곡자연휴양림 갈림 삼거리에서도 사진 한장 남기고 홀로 빠르게 걸어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 잡목과 키 큰 활엽수 사이로 이제 막 일출이 시작되려는 풍경이 좁게 나타난다.

그곳에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등로 좌측으로 들어 가 조금 더 잡목이 없는 일출이 보이는 장소를 찾아 오랫만에 멋진 일출을 기다려 보지만 아쉽게도 두꺼운 구름이 껴 있어 제대로 된 일출은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 아름다운 일출을 만날 수 있어 행운의 시간이었다.

한동안 그곳에서 일출을 감상한 후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해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장곡자연휴양림에서 쉬고 있던 나머지 종주대들도 천천히 뒤를 따라 내려오고 있다.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옆에 자라고 있던 싸리나뭇 잎들은 이제 노란 옷으로 갈아 입고 있는 중으로 조만간 완전한 가을 빛으로 변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나타나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봉우리 같지 않은 544봉에 도착을 한다.

이제 등로에는 한여름의 활기는 사라지고 가을빛이 선명해지는 변화되는 계절을 알려주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활엽수가 자라고 있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묘지 2기가 보이고 그곳으로 올라 살펴보니 바로 눈 앞에 비포장 임도를 지나 저 멀리 올라야 할 603봉이 올려다 보인다.

하지만 그 뒤로 보여야 할 653봉과 690봉은 바로 앞에 솟아 있는 603봉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묘지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시멘트 수로가 보이고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는 그 임도가 끊겨있고 우측으로는 장곡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이어지는 듯 보인다.

 

 

비포장 임도를 건너 다시 활엽수가 멋지게 자라고 있는 능선으로 올라 걸어가니 등로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오르니 바위 자갈 지대를 지나 위험하지 않은 등로에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구간을 통과해 무명봉을 넘어 나즈막한 안부를 지난다.

그 안부를 지나 바위 암릉 구간을 넘으니 방가산에서 2.19 Km 지났다는 이정표를 지나 한동안 타나나는 나무계단을 타고 무심으로 올라 본다.

그렇게 한동안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잡목이 조금 더 우거진 등로가 나타나더니 갑자기 오르막 등로 옆에 방가산입구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이곳에서 진행 방향은 직진의 휴양림관리사무소 방향의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여 진행되는 괴산마을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방가산입구 이정표를 지나 오르니 무명봉이 나타나고 좌측으로 휘어지는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옆에 낙동정맥 트레일 등산로 이용안내판이 서 있다.

그 안내판을 지나 잠시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나즈막한 석축이 나타나고 그 석축을 오르니 넓은 공터에 활엽수가 자라며 나무 한그루에 690봉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는데 그 위에 서래야님이 경림산이란 종이 코팅지도 붙여 놨다.

지도를 살펴보니 어느 지도에는 원형묘지가 또 어떤 묘지에는 원형석축이란 이름으로 적혀 있는 장소이다.

잠시 물 한모금 마신 후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간다.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완전히 키 큰 활엽수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제 괴산마을까지 4.2 Km 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평이하게 한동안 걸어가니 봉우리 같지도 않은 일반 평이한 등로 위에 675봉을 통과하면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등로에는 이제 제법 두껍게 깔려있는 낙엽을 밟으며 진행을 하는데 아직은 마르지 않아 기대했던 바스락 소리는 나지 않는다.

 

 

봉우리 같지도 않은 봉우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또 다시 진행방향으로 괴산마을까지 3.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난다.

그 이정표를 지나 한동안 나무계단을 따라 길게 내려가니 벤취 몇개서 설치되어 있는 쉼터도 지난다.

그 쉼터를 지나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닥시 완만하게 올라 바위봉도 통과한다.

이제 괴산마을까지 3.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또 다시 나타나는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낙동정맥 트레일 등산로 이용안내판이 서 있다.

그곳을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무명봉을 넘으니 또 다시 안부를 통과하고 613봉에 도착을 해 소나무 한그루를 살펴 본다.

 

 

그 613봉을 넘어 진행을 하니 또 다시 나타나는 안부를 지나 바위지대도 통과해 본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또 다시 바위 암릉지대가 짧게 펼쳐져 있어 우회하니 괴산마을까지 2.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도 지난다.

그 이정표를 지나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또 다시 나타나는 나무계단을 지나 한동안 평이한 등로를 따라 내려간다.

조금 더 내려가니 살구재라는 이정표 옆 벤취 쉼터에서 앞서 도착한 종주대들이 아침상을 펴 식사를 하고 있어 그곳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하지만 실제 살구재는 이곳이 아닌 조금 더 진행한 안부의 큰나무가 있는 곳이기에 살구재에 관한 설명은 그곳에서 하기로 한다.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과일까지 먹은 후 다시 추위를 이기려 출발을 해 본다.

출발 후 잠시 걸어가니 등로에는 시멘트 블록들이 흩어져 있는 폐헬기장 같은 공터를 지나고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에 거대한 활엽수 두 그루가 서 있는 곳에 준.희님이 살구재라는 안내판을 걸어 놨다.

살구재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와 군위군 고로면 괴산리 고로실 마을을 이어주는 고개로서 자세한 설명을 찾지 못했기에 구전리와 괴산리 마을의 설명으로 대신해 본다.
구전리는 조선조 황보 인의 후손들이 피난와서 이산중 골짜기에 정착했는데 옛부터 별곡 황보씨라고 인근에서 추앙받던 마을이다.
구전리의 지형을 보면 타원형의 평지를 중심으로 분지를 형성하고 주변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거북 형상의 산세로 볼 수 있어서 마을 지명은 마을의 지형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나 북쪽 산기슭에 새로운 생활 터전인 신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 생활 터전을 구전으로 불렀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구전리는 조선 시대 단종 때 세조에게 살해당한 지봉 황보인의 후손들이 피난하여 이 산중 골짜기에 정착하면서 만들어진 마을로 520여 년 전부터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처음 정착 이후 높은 산의 나무와 흙과 돌로 집을 짓고 땅을 파 우물을 만들며 들의 풀과 나무를 벌목하여 높은 곳은 밭으로 낮은 곳은 논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다.
또 소를 먹여 경작하고 닭을 길렀으며 서당을 지어 아이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학문의 기틀을 만들어 앞서 가는 마을을 형성하였으니 예부터 별곡(구전) 황보씨라고 인근에서 추앙을 받던 마을이다.
현재의 구전리는 1914년에 지곡면에 속하였고 1934년 4월 1일 화북면에 흡수되었다. 1986년 4월 1일 영천군 화남면에 속하였고 1995년 1월 1일자로 영천시·영천군이 통합해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구전리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로 험준한 산 속의 아담한 분지에 터를 잡은 마을로서 경림산에서 바로 남으로 급경사를 이룬 산의 맥이 그치는 곳과 파계와 목리에서 남으로 흐르는 급류가 약간 경사진 분지에 마을이 형성된 곳이 바로 구전 즉 별곡이다.
군위군 고로면으로 통하는 고개 살구재가 서쪽 산허리를 통하여 나 있다.
구전리 마을은 정조 때 효자인 황보성과 관련이 깊어 주로 이와 관련한 유적지가 많은데 황보성은 효성이 지극하여 인근으로부터 추앙을 받아오던 차 동몽교관의 직을 나라로부터 받았으며 어머니 영양 이씨(영천 이씨)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비가 오각 놀이공원의 바로 뒤에 있다.
그리고 황보성이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 달라며 하늘에 빈 곳인 함루대와 그의 정자인 영모정, 반백정이 있으며 황보양의 덕과 학문을 기린 귀남정사가 있다.
괴산리는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묜에 있는 마을로서 대부분이 산악지형으로 마을 사이로 약간의 들이 분포하고 있고 자연마을로는 고로실, 돌골, 동정, 새산, 화산동 등이 있다.

고로실은 고로곡, 고리실, 괴리곡, 환동이라고도 하며 괴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서 예전에 고로곡 부곡이 있었다 하여 고로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돌골은 석전이라고도 하며 마을에 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고 동정은 주위에 들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며 새산은 신산이라고도 하며 동정 북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화산동은 산천인 화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살구재를 지나자마자 등로에는 밤이 떨어져 종주대를 유혹하고 몇개를 주워 까 먹으니 쥐밤이라 그런지 달콤하니 먹을만 하다.

무명봉을 넘어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니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그 등로를 타고 오르니 갑자기 하늘이 보이며 비포장 임도와 만난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따라 완만하게 올라 잠시 후 다시 등로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는데 정상에 있는 645.9봉의 삼각점봉을 다녀오기 위한 목적이지만 많은 종주대들이 그 정상을 포기하고 비포장 임도로 진행을 하였는지 오를수록 등로 찾기가 쉽지 않다.

 

 

능선으로 들어 오르니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는데 등로는 잡목과 가시나무가 자라며 진행에 어려움을 가중 시킨다.

한동안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갑자기 등로가 희미해지고 보이지 않아 무조건 정상부로 향하는 오르막 등로를 만들어 올라가 본다.

잡목을 헤치고 오르니 잡목나무 터널도 만나고 옛날에 사약의 원료로 사용하였던 천남성도 만나며 그렇게 어렵게 오르니 드디어 삼각점이 박혀있고 잡목과 칡넝쿨이 우거져 있는 645.9봉에 도착을 해 어렵게 몇장의 사진을 남겨 본다.

 

 

무탈하게 645.9봉 정상을 사진에 담고 내려오다 나뭇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가시나무에 얼굴을 햟켜 큰 생채기를 내 보는 아찔한 시간도 가져 본다.

너무나 어렵게 잡목을 헤치며 내려가 641봉돠 627봉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군위군 고로면에 있는 군위호가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뾰족한 각시산이 보인다.

그 각시산 좌측으로있을 조림산을 찾아 보지만 능선에 가려 그 조림산은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기에 잠시 더 머물며 그 군위호쪽 풍경을 가슴에 남기고 조금은 빠르게 내려가 본다.

 

 

그렇게 잠시 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방금 전 헤어졌던 비포장 임도를 다시 만나 이제 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한동안 걸어 본다.

이 산객 홀로 645.9봉을 다녀왔고 나머지 종주대는 모두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하였기에 조금은 빠르게 그 종주대를 따라 걸어 보지만 한동안 종주대를 만나지 못하고 홀로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홀로 걸어 오르니 임도 좌우측에 육군3사관학교장의 경고판과 유격장까지 3 Km라는 안내판을 만나 통과를 하는데 그 임도 옆으로 몇개의 간이 화장실이 서 있어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진행을 한다.

 

 

안전운전이라는 빗돌도 지나 계속 홀로 조금은 빠르게 오르니 등로 좌우측으로 아름다운 구절초가 가득 피어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다 앞을 올려다 보니 비포장 임도 좌측 저 앞으로 화산유격장 내에 있는 785 삼각점봉과 그 뒤로 이어지는 봉우리가 멋지게 올려다 보인다.

임도 옆으로 하얀게 피어 한들거리는 억새도 살펴보며 다시 조금은 빠르게 그 비포장 임도를 걸어 올라 보는데 그 비포장 임도의 이름이 충성로이란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니 종주대 몇명이 임도 주위에서 무엇인가를 줍고 있어 다가가 보니 떨어진 다래를 줍고 있다.

이 산객도 동참을 해 잠시 몇알 집어 먹어보니 너무나 달콤한 것이 목마름도 잊고 허기도 달래기에 좋은 것 같다.

그렇게 다래까지 주워 먹고 다시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다 임도 좌측 뒤를 살펴보니 오늘 지나온 마루금 모두가 저 멀리 아름다운 산그리메를 그리며 줄지어 서 있다.

약간의 박무가 있어 깨끗한 조망이 아니기에 조금은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이렇게나마 아름다운 조망을 즐길 수 있어 멋진 시간이다.

 

 

다시 모든 종주대를 만나 잠시 쉬었다 출발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등로 좌측으로 군위군 고로면 괴산리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박무로 인해 조금은 아쉽기만 하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방가산 지나 계속 보였던 괴산마을이기에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보인다.

괴산리는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에 있는 마을로서 자연마을로는 다음과 같은 여러마을들이 있다.

고로실은 괴리곡, 골실, 고로곡, 환동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신라시대 이지방을 고로부곡이라 칭하였던 마을도 있고 골마당은 동정, 동지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임진왜란때 이곳에 가장 먼저 피란온 사람은 김씨라 전해지고 있다.
돌골은 석전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신라시대부터 이곳은 부락 및 논밭 일대에 큰 바위와 돌이 많아 돌밭이라 하다가 석전이라 불리워졌고 새산은 신산이라고 부르는 이 곳은 돌골보다 좀 늦게 생겼 으며 산 아래에 새로 생긴 부락이라 하여 새산이라 불린다.
임도 뒷편으로는 고로면에 있는 너치레산이라 생각되는 산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렇게 주위 풍경을 구경하며 오르니 충성로라는 빗돌과 육군3사관학교장 경고판 그리고 우측으로 화산유격장 안내판 및 충성문이 보이는 화산유격장 정문에 도착을 한다.

 

 

 

이곳 화산유격장은 현재 사용되지 않는 유격장인듯 군인과 민간인 한명 구경하지 못하는 장소가 되어 있다.

육군3사관학교 화산유격장은 육군3사관학교가 창설 된 1968년부터 이곳을 사용하고 있는 화산유격대가 해발 828미터에 위치하고 있고 멧돼지 등 40여 종의 산짐승과 산삼 등 700여 종의 자연식물이 분포하고 있으며 조선 숙종 때 윤숙장군이 건립한 화산산성과 군수사 등이 있던 명소이다.
특히 경북 군위군 주민들은 화산유격장은 국내에서 천문관측이 잘 되는 곳 중 하나로 하늘의 기를 받고 있는 명당자리라고 말한다.

이곳은 특히 한 방송사에서 진짜사나이란 예능을 촬영한 곳으로 유명세를 탔던 곳이기도 하다.

충성문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해도 되지만 이 산객은 삼각점봉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좌측 능선을 타고 올라본다.

잡목을 헤치고 오르니 도중에 대구소방의회 조림기념비란 기념비를 지나 삼각점봉 정상 부근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군위군 고로면 일대의 작은 평원과 그 주위를 둘러 싼 산그리메가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등로 좌측의 고로면 방향의 조망과 풍경을 즐기고 조금 더 오르니 드디어 삼각점이 박혀있는 해발고도 785미터인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삼각점봉(785봉)은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과 영천시 화남면 및 신녕면의 3개면이 만나는 봉우리로서 육군2사관학교 화산유격장 위에 있는 봉우리이다.

잠시 삼각점봉 정상을 살펴보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종주대 한명이 뒤따라 올라오고 다시 사진 한장씩 남기고 직진의 억새밭을 향해 천천히 걸어 출발을 해 본다.

 

 

삼각점봉을 지나 진행을 하니 잠시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더니 금새 키 작은 억새가 능선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등로와 연결되어 있다.

생각보다 힘들게 그 키 작은 억새를 헤치며 걸어가니 다시 억새와 잡목이 어우러진 등로를 지나 힘들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 억새밭을 지나니 활엽수 등로와 억새능선이 번갈아 나타나고 금새 비포장 임도를 만나는데 그곳 임도에도 키 작은 억새가 가득 자라고 있고 그 한쪽에는 이동식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그 이동식 화장실이 있는 비포장 임도에서 주등로는 좌측 키 작은 억새능선을 타고 올라 능선으로 진행을 해야 되지만 특별한 것도 없고 그 억새 능선을 헤치고 오를 자신도 없어 그냥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본다.

그 키 작은 억새가 자라는 비포장 임도를 지나 걸어가니 한동안 다시 뚜렷한 걷기 편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 사거리에 도착을 해 주능선을 뒤돌아 본다.

이제 앞으로 걸어가야 할 비포장 임도도 살펴보고 이동식 화장실도 살펴 본 후 천천히 그 사거리를 출발해 본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임도 옆으로는 하얀 억새가 피어 작은 바람에도 한들거리고 그 옆으로는 하얀 구절초가 활짝 펴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삼각점봉을 들리지 않고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었던 앞선 종주대들이 그 비포장 임도에 누워 잠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곳에서 한동안 쉬면서 간식을 먹고 차량 회수 문제로 두명의 선두대는 이곳에서 먼저 출발을 하고 나머지 종주대는 여유있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다시 한동안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비포장 임도 우측으로 매복전투사격장 안내판이 보이고 곧이어 저 멀리 828강의장 안내판이 서 있다.

그곳에서 팔공기맥 마루금은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828강의장이 있는 방향의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해야 한다.

 

 

좌측 828강의장 방향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파란 강의장 의자들이 보여 잠시 들려보니 옛생각에 젖어 드는 시간이다.

벌써 몇십년전 일이니 이제는 먼 옛 추억이 되어 버린 군부대와 예비군 시절의 추억을 떠 올려 보는 시간이었다.

그 828강의장 좌측으로 나 있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무너지고 사라지는 유격장 시설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가끔 보이는 단풍잎을 지나 오르니 802봉 지나 용도를 알 수 없는 철도르레와 철사다리가 설치되어 있는 곳도 통과를 해 본다.

 

 

유격 시설을 지나 계속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이제부터 참나무 등로가 열리고 훈련소를 알리는 콘크리트 말뚝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잎을 바라보며 걸어가니 큰 나무에 철사가 박혀있는 가슴 아픈 현장을 바라보고 약간의 바위 구간을 넘으니 로프구간을 지나 금새 삼각점이 박혀있는 화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화산(828봉)은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과 군위군 고로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군위군 고로면을 둘러싸고 있는 산 가운데 가장 큰 산으로 화산의 정상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기복이 대체로 평탄하여 평지를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지형을 이용하여 자형의 산줄기를 따라 산성을 쌓은 것이 화산 산성이다.
화산 산성은 해발 828미터 지점에 둘레 200미터, 높이 4미터, 폭 5미터의 규모로 돌을 쌓아 만들어졌다.
화산은 고산준령의 산 가운데 하나로, 상부가 평탄하고, 그 위에 있는 연화봉과 상자치의 경치가 매우 화려하여 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화산은 산정부의 고위 평탄면이 잘 알려져 있으며 남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지며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각섬석 화강암과 유천충군의 중성 및 염기성 화산암으로 이루어지는데 중생대 백악기 각섬석화강암 지역은 완만한 고위 평탄면을 이루지만 유천충군의 중성 및 염기성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지역은 대체로 600미터 이상의 기복을 나타낸다.
화산 인근에 팔공산(1193봉)이 있고 신녕천이 곡류하면서 신양천(7.0 Km)과 용호천(7.0 Km)을 합류하여 금호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화산 북쪽 자락인 화북리에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이 마지막으로 머문 인각사가 위치하고 서쪽 자락 한광사에 보물 제675호인 영천 화남리 삼층 석탑과 보물 제676호인 영천 화남리 석조 여래 좌상이 위치한다.
또한 들머리에는 권응수 장군 유적이 있다.

 

 

화산에서 잠시 등로 좌측으로 지나온 마루금과 고로면쪽 풍경을 살펴보지만 박무로 인해 아쉬운 시간이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다시 화산을 지나 출발을 하는데 정상 등로가 뚜렷하지 않아 어렵게 정상 등로를 찾아 진행을 하니 등로는 화산 정상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되고 있다.

잠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파란 그물망이 등로 좌측으로 보이고 곧이어 키 작은 억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묵밭을 가로질러 진행하며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저 멀리 이제부터 걸어야 할 803봉과 저멀리 감자골의 적상추 밭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키 작은 억새밭을 지나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갑자기 많은 물이 담겨져 있는 저수지가 나타나 약간의 의아한 마음으로 사진에 담아 본다.

살펴보니 방금 전 지났던 키 작은 억새밭에 키우던 작물들에 물을 대기 위한 목적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저수지로서 그 저수지에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호수들도 보인다.

 

 

그 물 저수지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가 좁아지고 곧이어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그곳에는 소나무 군락지들이 보인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녹슨 철망 가리막도 보이고 편안하게 나타나는 활엽수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웅덩이 속에 낙엽이 깊게 쌓여 있는 803봉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셔 본다.

 

 

그 웅덩이 봉우리를 지나 잘 발달된 등로를 따르니 한동안 활엽수 등로가 평이하게 이어진다.

그렇게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임도 좌측으로 식재된 밭이 나타나는 곳에서 비포장 임도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있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전봇대가 있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정상 등로는 함석 지붕으로 가려 놓은 과수원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데 들어 갈 수가 없어 그 과수원 우측 옆으로 이어진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먀 그 과수원을 통과해 본다.

 

 

그 과수원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또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 삼거리에서는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본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진입하며 가파른 짧은 오르막 등로를 빡세게 오르니 잡풀이 우거져 있는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장소에 도착을 한다.

살펴보니 과수원인지 아니면 돈이 되는 나무를 식재한 곳인데 잡풀 제거 작업을 안해 묵은 밭처럼 거대한 잡풀지대처럼 변해 버렸다.

 

 

어렵게 그 잡풀이 우거진 식재된 나무 구간을 타고 어렵게 오르니 다시 드넓은 평원에 나무가 식재된 장소로 이어지고 그곳으로 올라 잠시 뒤돌아 보니 잡풀을 헤치고 오르는 종주대 뒤 저 멀리 오늘 이 종주대가 걸어 온 화산과 유격장쪽 마루금이 기원하게 펼쳐져 있다.

조금 더 오르니 잡풀속에 거대한 개망초 꽃밭이 펼쳐져 있고 그 우측으로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잡풀들이 지독하게 우거진 식재된 과수원을 따라 어렵게 올라가니 잠시 그 지독했던 잡풀들이 사라지고 평이한 등로로 이어진다.

그 뚜렷하고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다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그곳에도 멋진 조망과 풍경이 펼쳐져 있어 잠시 구경하며 쉬어간다.

저 아래 호산산성이 보이고 그곳 지나 뾰족한 각시산(옥녀봉) 지나 저 멀리 선암지맥의 주봉인 선암산과 뱀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고로면과 영천시의 경계지역에 위치한 화산은 해발 828미터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로면의 산중에 크기가 가장 큰 산이다.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산이나 산정은 평탄한 분지로 울창한 숲이 있어서 산수가 좋기로 유명하며 이처럼 산세 수려한 화산이 개발되지 않은 것은 이곳이 군사 훈련장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정상에 올라보면 지방기념물 47호인 화산산성이 눈에 들어 오는데 1709년 (조선 숙종 35년) 병마절도사 윤숙 장군이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당시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지은 절 군수사지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또한 아름다운 반월형 홍례문과 수구문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산성 안에는 옥정영원이라는 샘물이 있는데 지름 5미터의 바위구멍에서 솟는 석간수이다.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으며 여름에도 10℃이하의 시원한 냉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언젠가는 한번쯤 올라보고 싶은 선암지맥이기에 그 산줄기도 눈과 가슴으로 담아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천천히 그 잡풀과 억새지대를 타고 식재된 나무지대를 오르니 드디어 705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그 등로 우측으로 커다란 느티나무 같은 나무 한그루가 그늘을 만들고 있어 그곳으로 가 잠시 쉬며 물 한모금 마셔본다.

다시 그곳 나무 그늘에서 나와 705봉 정상에서 이제 가야 할 방향의 마루금을 살펴보니 바로 아래에 화북리 감자골 마을이 아름답고 그 마을 넘어 위로 오르면 붉은 상추밭이 계단 논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바로 눈 앞에는 아름다운 개망초와 억새능선이 살짝 불어오는 가을바람에도 하늘거리며 환상의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그렇게 그 억새와 개망초 구간을 내려 와 너무나 아름다운 장소에서 잠시 머물며 몇장의 추억을 남겨보는 시간은 오늘 산행이 종주산행임을 완전히 잊고 그저 펼쳐진 자연을 즐겨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동안 그 개망초와 억새 능선을 타고 어렵게 내려가니 한동안 내려간 곳에는 이제 개망초와 억새가 사라지고 철조망 넘어 너무나 탐스럽게 익어가는 사과 과수원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주인이 있으면 돈을 주고라도 잘 익은 사과 하나 사먹고 싶었는데 주인장을 만날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사과 우측 잡풀밭을 타고 내려가 본다.

 

 

붉게 익어가는 많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사과 과수원 넘어 저 멀리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붉은 상추밭을 지나 인공구조물이 보이는 722.9봉도 보인다.

이제 그 사과 과수원 우측의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묵밭을 타고 내려가니 드디어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고 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내려가니 도로 주면으로는 몇채의 민가들이 보이는데 몇채의 민가는 폐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시 내려가 만나는 갈림 삼거리 옆에는 지나온 방향으로 화산유격장까지 2.3 Km라는 거리 표시가 있는 안내판이 서 있고 그곳에서 우측 도로를 버리고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파란 밀밭인지 아니면 보리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 보리밭 넘어 저 멀리 화산 방향에서 이곳으로 내려온 팔공기맥 마루금도 올려다 보인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는 토마토를 재배하고 있는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밀밭의 담벽을 쌓아 올린 거대한 바위담이 함께하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직진 방향으로는 화북4리에 있는 폐교가 된 화수초등학교의 화산분교가 보이는데 교육청과 주민들간의 분쟁이 있는지 경고판 같은 것이 도로 옆에 서 있다.

폐교가 된지 오래되었는지 운동장 한쪽에는 농사를 짓고 있는 풍경이 들어 오고 오래된 교실 건물은 이제 곰팡이와 이끼가 자라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폐교가 되어가는 화산분교를 둘러보고 나와 사거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화북4리의 화산마을을 둘러본다.

군위화산마을은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 4리에 있는 일명 화산마을이라 불리는 마을인데 이 마을이 화산(828미터) 자락에 자리해서 그리 부르게 되었다
군위의 특산품 중 최고로 꼽는 고랭지에서 재배한 채소들 중 800 고지에 자리한 이곳 화산마을에서 재배한 쌈배추와 상추도 있다.
화산마을의 자랑거리는 고랭지 채소와 함께 사진가들 사이에서 정읍의 옥정호와 강릉의 안반데기 등과 함께 운해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이곳 화산마을이 있기 때문인데 특히 일교차가 심해지는 계절이면 갓산을 에둘러 피어오르는 운해가 장관을 이룬다.
화산마을은 1962년 재건동 혹은 개간촌이라 불리던 마을로서 말 그대로 임야를 개간해 밭을 만들고 그 밭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초창기 정착민들은 정부로부터 6000평 정도의 임야를 무상으로 지급받고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하며 당시 많은 지역의 산간마을이 그렇게 만들어졌는데 화산마을도 그중 하나였던 셈이다.
개간촌이 형성될 당시에는 모두 네 개의 마을이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제법이었던 모양이지만 군부대가 들어오면서 세 개 마을은 인근 영천시의 감자골로 옮겨졌고 지금은 한 개 마을만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어 아무리 둘러봐도 민가라고는 산비탈에 띄엄띄엄 들어앉은 10여 채 뿐이다.
화산마을이 세간에 알려진 건 화산 산성(경상북도 기념물 제47호) 때문으로 화산산성은 화산마을 동쪽 끄트머리에 자리해 있는데 화수리에서 갑령을 잇는 28번 국도변에서 임도를 따라 7 Km 정도를 더 올라야 만날 수 있다.
북문과 수구문 터만 남아있는 화산산성은 숙종 35년 병마절도사였던 윤숙에 의해 건설되었으나 축성 당시 흉년이 크게 드는 바람에 성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화산마을은 고지대에 있는 만큼 시원스러운 풍광이 일품으로 그럴듯한 전망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을 어디에서든 탁 트인 풍경을 만날 수 있으며 가깝게는 갓산에서 멀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화산인 의성의 금성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주민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기에 잠시 진행 방향으로 올라 붉은 상추밭 옆 그늘에서 쉬기로 하고 다시 북서쪽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며 화산마을을 출발해 본다.

 

 

잠시 오르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비포장 임도로 바뀌면서 이제 그 임도 주위로는 붉은 적상추가 심어져 있는데 비닐하우스도 아닌 노지의 비닐포장에 한겨울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드넓게 펼쳐진 붉은 상추 밭을 지나 계속 구불구불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이제 제법 상추잎이 커다란 적상추 밭과 씨앗을 받기 위해 키우고 있는듯한 상추밭을 차례로 지나 정상부로 오른다.

화산마을을 지나 북서쪽 도로를 타고 정상부로 올라 뒤돌아 보니 반금 뒤따르는 종주대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오르다 쉬다를 반복하고 그 종주대 지나 저 멀리 드넓은 밀밭인지 보리밭과 사과 과수원 그리고 개망초와 억새능선을 지나 화산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그렇게 조망과 풍경을 즐기며 화산마을을 벗어나 정상 능선으로 오르니 임도 우측에 잘 벌초된 묘지 한기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자 능선 정상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나온 방향 뿐만 아니라 진행해야 할 북쪽 방향도 시원하게 조망되고 있다.

이곳은 화산마을과는 달리 양배추와 김장배추가 심어져 있어 또 다른 그림으로 다가오고 이제 올라야 할 통신탑 2개가 각기 다른 곳에 우뚝 솟아 있다.

계속 그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능선을 지나며 비포장 임도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 밭 위쪽에 솟아 있는 통신탑을 바라보며 걸어 올라 본다.

 

 

한동안 잘 정비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도로 우측에 양배추와 김장배추 밭을 바라보며 걸어가니 갈림 삼거리 지나 좌측으로 걸어가니 시멘트포장도로가 비포장으로 바뀌는 곳 우측으로 전기줄을 설치한 밭둑을 타고 올라 붉은 상추밭 가장자리를 타고 통신탑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밭 우측 위로 민가 한채가 나타나고 마루금은 그 민가 좌측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다 쓰러져 가는 산불감시초소와 접시 안테나가 서 있는 722.9봉에 도착을 한다.

하지만 너무 우거진 잡풀들로 인해 그곳에 있어야 할 삼각점은 찾지도 못하고 어렵게 주위 사진 몇장만 남긴채 내려가 개망초가 하얀 소금밭을 이루듯 피어 있는 능선에서 남아 있는 간식을 먹으며 잠시 더 쉬어가기로 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는 사이 등로 우측 앞을 살펴보니 바로 발 아래에 개망초와 잡풀들이 한여름 무성함을 지나 이제 겨울을 준비하고 있고 그 아래 저 멀리 뾰족하게 솟아 있는 각시산(옥녀봉이)과 그 뒤 저 멀리 선암지맥의 주봉인 선암산이 조망된다.

모두들 처음에는 저 뾰족한 각시봉을 오르느냐 오르지 않느냐가 주관심사였는데 통과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작은 희열을 느꼈던 시간이 웃음만 나오게 만든다.

그 각시산 주위로 화수리와 화북리의 좁은 황금들판이 또한 눈길을 잡는다.

그 각시산 좌측으로 온누리산악회에서 정산으로 다녀왔던 조림산을 찾아 보니 처음에는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한다고 잘못 판단했던 조림산이 바로 코 앞에 드높게 보인다.

 

 

뾰족하게 보이는 각시산과 저 멀리 멀게만 보이는 선암산을 살펴보고 눈을 좌측인 북서쪽으로 돌리니 바로 눈 앞에 거대하게 솟아 있는 조림산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와 있다.

조림산은 경상북도 군위군의 고로면 화수리와 산성면 화본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638미터이다.

조림산이란 지명은 1872년지방지도의 군위편조림산으로 현재의 표기자와 동일하게 표기되어 있으며 조선지지자료 의흥면의 신남면에는 조림산과 한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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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산이 병기되어 있고 상검동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고유지명인 새림산과 함께 산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이때 한자 지명 조림은 고유지명 새림의 훈차 혹은 훈음차 표기와 음차 표기로 구성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새림산(조림산)은 고로면 화수동과 산성면 화본동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새가 많다 함이라는 기록을 통해 이칭인 새림산과 지명 표기자를 뜻풀이한 지명 유래의 일설을 확인할 수 있다.

언젠가는 한번쯤 올라 오늘을 추억하며 웃어 볼 수 있기를 바래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곳 722.9봉 정상 부근에서 한동안 휴식을 취하며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지독하게 우거진 잡풀과 개망초 그리고 억새 능선을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드넓은 김장배추밭이 나타나고 그 배추밭 위 가장자리를 타고 좌측 가장자리로 가 그 가장자리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다 배추 밭 좌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하니 금새 그 비포장 임도가 끝이나고 등로는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소나무와 활엽수가 섞여 있는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고 한동안 그 내리막 등로를 따른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예전에 산불이 났던 흔적을 지나 무명묘지 한기와 잘 벌초가 된 무명묘지 또 한기를 지나 가파른 내리막 등로가 완만해지고 곧이어 옛 갑령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곳 옛 갑령은 경상북도 군위군의 고로면 화수리에서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지명은 대동여지도갑현으로 처음 등장하며 갑령의 표기자 일부를 으로 훈차 표기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갑티고개(갑령)은 여덕에서 영천군 신녕면 화남동 갑천으로 가는 고개라는 기록을 통해 이칭인 갑티고개와 함께 구체적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예전에야 매우 중요한 길목의 한곳으로 여겨졌던 옛 갑령도 새로 생긴 도로의 고갯마루에 그 이름을 전해주고 이제는 잊혀져 가는 기록으로만 남겨지는 고갯마루가 되어가고 있다.

 

 

옛 갑령을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382.9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평이하게 걸어가니 곧이어 멋진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며 안부를 지나 오르막 등로로 이어진다.

생각보다 가파른 마지막 봉우리를 향해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며 오르다 잠시 심호흡을 위해 쉬면서 뒤돌아 보니 잡목 나뭇가지 사이로 방금 전 지나온 722.9봉이 생각보다 높지 않은 평이한 봉우리 형태로 보인다.

오를 땐 그리도 어렵고 힘들게 올랐는데 지나고 보면 모두가 별 것 아니라는듯 무심히 서 있는 산봉우리에 피식 웃음만 나오는 시간이다.

 

 

그렇게 멋진 722.9봉을 살펴보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막판에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는 시간이다.

한동안 오르막 된비알을 따라 오르니 드디어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좌측으로 그 주능선을 타고 걸어가니 금새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등로 우측으로는 467봉 가는 등로가 열려있는데 특이한 것이 없기에 그 467봉을 포기하고 좌측의 팔공기맥 마루금을 따라 다시 출발을 해 본다.

 

 

잠시 그 467봉 갈림 삼거리를 지나니 또 다시 왕ㄴ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생각지도 못한 오르막 등로에 약간의 어려움을 느끼지만 금새 정상 등로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길주의 구간이다.

직진으로 조금 더 진행을 하면 479.6봉이 나타나는데 그곳을 다녀와 삼각점을 사진에 남기려 했다가 마침 그곳 갈림 삼거리에서 동네 아저씨 한분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삼각점을 다녀온다는 사실도 잊고 곧바로 우측으로 크게 꺽어 팔공기맥 주등로를 타고 가파르게 내려가 본다.

 

 

소나무 등로로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바위 암릉 구간이 나타나고 우회해 내려가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다.

그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하늘이 열리면서 드디어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팔공산이 박무속에 희미하게 그 대단한 존재감을 알려 온다.

잠시 더 조망을 즐기며 내려가니 이제는 등로 우측 앞으로 둔지연못과 908번 지방도로도 내려다 보인다.

다시 조망을 즐기며 내려가니 약간의 민둥 지역을 지나 마지막 조망봉에 도착을 해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영천시 신녕면쪽 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 능선을 타고 가팔환초의 초례산과 환성산 자락이 우측 드높게 솟아 있는 팔공산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눈에 아른 거린다.

 

 

이제 남서쪽으로는 초계산과 환성산을 지나 우측인 서쪽으로 거대한 산군을 이루는 팔공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가산을 향해 내려 앉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개인적으로 몇번 올랐고 한티재에서 시작해 갓바위로 내려가는 팔공산 종주를 두번이나 했기에 그 추억이 눈에 선하지만 이번에는 맥 잇기 산행이란 거대한 제목을 가지고 한티재로 거꾸로 내려가는 코스이다 보니 이전의 산행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걸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약간의 박무로 인해 조금은 아쉬움도 있지만 이렇게나마 그 모습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음구간이 기다려지는 순간이다.

 

 

이제 내려가야 할 마루금을 살펴보니 서쪽으로 완만한 마루금이 이어지고 그 끝자락에 화서교차로가 내려다 보이고 오늘 새벽 어둠속에 왔다리 갔다리 했던 화서육교도 빤히 내려다 보인다.

그 화서교차로 우측 위로는 28번 4차선 도로와 그 옆으로 화서저수지도 내려다 보인다.

그 뒤로 올망 졸망 이어지는 멋진 산그리메가 산객의 가슴속에 파고 들며 멋진 추억을 남기는 시간이다.

 

 

이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잠시 내려가며 살펴보니 이곳도 역시 산불이 났었는지 소나무 밑둥은 모두 검게 그을린 모습이다.

다시 조금은 빠르게 내려가니 화서교차로 남쪽으로 조망이 시원한 장소에 도착을 하고 이제는 화서교차로가 손에 잡힐듯 빤히 내려다 보이는 곳까지 내려 와 있다.

많은 사진을 남기고 내려가니 시멘트 수로가 나타나고 그 수로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니 수로 좌측으로 28번 4차선 도로와 2차선 옛 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그 교차로 한쪽에는 화서교차로라는 도로교통판도 내려다 보인다.

 

 

수로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화서됴차로에 도착을 하고 잠시 배낭을 정리하며 주위 풍경을 담아 본다.

이곳 화서교차로는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서리의 마을이 있는 곳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소규모로 평지가 분포하며 작은 하천이 흐른다.

화산의 서쪽에 있다 하여 화서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화서, 화정동, 꽃골, 조림굴마을 등이 있다.

화서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화서리의 그것과 같으며 화정동마을은 화서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뒷산에 꽃이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꽃골마을은 화정동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진달래꽃이 많은 곳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조림굴마을은 화정동에서 화남리로 가는 중앙선 기차의 굴 옆이 된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또한 이곳 화서 교차로는 갑령재로 알려져 있으며 갑령은 방금 전 설명했듯이 이곳이 아닌 722.9봉에서 내려 온 안부이지만 지금은 그 옛 갑령은 완전히 잊혀지고 이곳 새로운 28번 도로가 생긴 화서 교차로를 갑령재라 부르고 있다.

 

갑령재(갑령)은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과 군위군 고로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갑령은 갑티재, 갑티, 갑치, 갑령재, 갑티고개, 갑령고개, 갑현 등 다양하게 불리는데 고개가 있는 산의 형태가 마치 장군이 갑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생겼다 하여 유래된 명칭이다.
실제로 갑령은 임진왜란과 6·25 전쟁 때의 격전지이기도 하였다.
갑령은 영천시 신녕면에 있으며 해발고도 288미터에 길이는 약 4 Km의 고개이며 팔공산맥을 횡단하는 고개로서 고위 평탄면을 이루는 화산과 함께 영천과 군위의 경계를 이루고 있고 고개 밑에는 갑현이라는 취락과 갑현제라는 못이 있다.
갑령의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각섬석 화강암과 유천충군의 중성 및 염기성 화산암으로 이루어졌고 갑령 인근에는 팔공산(1193봉)과 보현산(1124봉)이 갑령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서 있다.
고개는 과거에 교통로 또는 군사적 요충지로 이용되었고 갑령은 신녕면과 고로면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였으며 현재는 중앙선 철도와 의성에서 포항 간 국도 28호선이 지나고 갑령 아래에는 중앙선 역인 갑현역이 자리하고 있다.

 

산행 종료 후 선두로 내려 온 두명의 선두가 수기령으로 가 차량을 회수해 돌아 오니 오후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고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신녕면 목욕탕으로 가 간단히 샤워 후 3명만 먼저 일이 있어 식사도 못하고 천안으로 출발하니 생각보다 막히지 않는 도로를 타고 오후 6시쯤 목적지인 천안역에 무탈하게 도착을 해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 하는 시간이다.

 

그곳 천안역에서 산친구들을 내려주고 기다리고 있던 옆지기와 아산의 옆지기 외숙모집으로 가 바베큐와 이슬이 몇잔으로 허기를 달래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집으로 돌아 오니 자정이 다 된 시간에 길고도 멀었던 하루의 산행과 잃을 마무리 해 본다.

 

다음 구간은 팔공기맥이란 이름을 낳게 한 팔공산을 오르기 때문에 벌써 기대가 큰 시간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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