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전라남도 해남군의 땅끝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5년 04월 18일과 19일 (토요 무박 일요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가랑비와 짙은 안개로 조망이 전혀 없었던 아쉬운 산행 날씨
산행온도 : 영상 05도에서 영상 15도
산행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총 28명(땅끝기맥 종주대 총 17명과 달마산 기획테마 산우님 11명 포함)
산행코스 : 닭골재(13번 4차선 지방도로 옆 2차선 포장도로)-철조망 통해 능선진입-묘지2기-139봉-무명묘지1기-벌목지대-무명묘지1기-비포장 임도-드릅나무군락지-출입금지 안내판-제주부공랑 김해김공 묘지-무명묘지1기-비닐하우스-비포장임도-작은닭골재-콘크리트임도-입산통제 안내판-비포장임도-갈림삼거리-헬기장-무명묘지1기-비포장임도-바람재 이정표(북평면이진리 1.45 Km, 달마산정상 2.45 Km, 송촌1제 1.95 Km)-바위너덜길-관음봉 우회등로(227봉)-이정표(북평면이진리 1.90 Km, 달마산정상 2.00 Km, 송촌1제 2.10 Km)-바위너덜길-바위 암릉 로프구간-432.5 바위봉 암릉등로-산죽등로-470 돌탑봉-바위너덜길-암봉 우회등로-산죽 진달래 등로-달마산 달마봉(498.8봉) 돌탑과 정상석 및 안내판-달마산정상 이정표(송촌1제 4.10 Km, 대밭삼거리 2.60 Km와 도솔봉주차장 5.90 Km, 미황사 1.40 Km)-아침식사-안전로프 암릉구간-나무계단-현위치문바위중간 이정판(문바위 0.1 Km, 달마봉 0.2 Km)-이정표(도솔봉, 불썬봉, 미황사 문바위 방향표시)-안전로프 암릉구간-문바위 우회등로-현위치작은금샘정상 이정판(문바위 0.33 Km, 도솔봉 4.5 Km)-이정표(달마산정상 0.50 Km, 도솔봉주차장 5.40 Km, 미황사 1.00 Km)-바위 암릉구간-이정표(달마산정상 0.60 Km, 도솔봉 주차장 5.30 Km, 미황사 1.10 Km)-바위 너덜길-작은금샘 이정표(대밭삼거리 0.75 Km와 도솔암 4.35 Km, 서흥마을 1.50 Km, 미황사 1.05 Km)-바위 암릉 너덜길-칼바위 능선-바위너덜길-산죽지대-대밭삼거리 이정표(달마산정상 1.60 Km, 부도전 0.70 Km)-산죽지대-귀래봉(471.1봉) 우회등로-안전로프 암릉등로-나무계단-459.3봉 암릉바위-칼바위 능선-키작은 산죽등로-하숙골재 이정표(북평면평암리 1.10 Km, 달마산정상 2.80 Km, 도솔봉주차장 3.10 Km)-칼바위 능선-말바위-떡봉(421.9봉) 이정표(도솔암 1.7 Km, 불선봉 3.4 Km와 미황사 3.5 Km)-무명봉-억새능선-바위 전망봉-산죽등로-391.5봉-바위너덜길-이정판(미황사와 송촌, 도솔암주차장과 마봉약수터 및 땅끝전망대, 북평면 평암리와 영전리, 도솔암 방향표시)-땅끝 천년숲 옛길 이정ㅍ참과 이정표(미황사 4.3 Km, 달마산정상 3.9 Km, 도솔암주차장 0.7 Km)-도솔암 왕복-삼거리 산자락길 이정표(도솔암 1.0 Km, 도솔봉주차장 0.6 Km, 달마산정상 4.1 Km)-땅끝천년숲옛길 이정목-헬기장-암봉-도솔봉(404.1봉)-군부대 통신탑 삼각점(418.6봉)-군부대 철조망-암봉 사이 등로-달마산등산안내도-시멘트 포장도로-도솔봉주차장 이정표(달마산정상 5.4 Km, 도솔암 0.7 Km)-땅끝 천년 숲 옛길 이정표(도솔암 0.7 Km, 달마산 정상 4.3 Km, 미황사 4.7 Km)-산자락길 이정표(땅끝전망대 10.6 Km, 땅끝마을 11.3 Km, 군부대 방향표시, 도솔암 1.0 Km)-능선진입-도솔봉정상석(417봉)-잡목등로-짧은 바위너덜길-시멘트포장도로-도솔봉등산로와 이정표(도솔암 1.3 Km, 해남땅끝 8.9 Km, 달마산정상 5.2 Km와 미황사 5.6 Km)-돌계단-산자락길 이정표(도솔암 1.8 Km, 땅끝전망대 8.2 Km와 땅끝마을 10.2 Km, 통호저수지)-이정표(도솔암 1.50 Km, 해남땅끝 8.62 Km)-263.1봉-땅끝마을 10 Km 이정목-천년숲길 이정표(도솔암 2.01 Km, 해남땅끝 8.11 Km)-산자락길 이정표(도솔봉주차장 2.3 Km, 땅끝전망대 7.7 Km, 땅끝마을 9.7 Km)-바위 암릉길-산죽등로-238.4봉 삼각점-해남땅끝 8 Km 이정목-천년숲길 이정표(해남땅끝 7.62 Km, 도솔암 2.50 Km)-이정표(해남땅끝호텔 4.4 Km, 도솔암 3.7 Km, 전망대 5.9 Km, 미황사 8.1 Km)-248.6봉-이정표(도솔암 3.61 Km, 해남땅끝 6.51 Km)-바위 암릉등로-무명묘지2기-이정표(도솔암 3.61 Km, 해남땅끝 6.11 Km)-가족납골묘지-헬기장-시멘트 포장도로-이정표(도솔암 4.41 Km, 해남땅끝 5.71 Km)-비포장 임도로 능선진입-242.6봉-헬기장과 김해김공 호화묘지-이정표(도솔암 4.80 Km, 해남땅끝 5.32 Km)-230.7봉-바위봉-해남땅끝 5 Km 이정목-비포장임도-이정표(해남땅끝 4.21 Km, 도솔암 5.91 Km)-묘지지대-이정표(해남땅끝 2.78 Km, 도솔암 7.34 Km)-자갈너덜길-가족 납골묘-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임도 이정표(해남땅끝 1.21 Km, 도솔암 8.91 Km)-이정표(해남땅끝 0.42 Km, 도솔암 9.70 Km)-개재봉(156.7봉)-갈두재(나무데크아치로 갈두재의 77번 2차선 포장도로 통과)-해남땅끝호텔-비포장임도-김해김공 호화묘지-육각정자 갈림 삼거리-땅끝마을 2 Km 이정목-호텔삼거리 이정표(오토캠핑리조트, 전망대, 달마산등산로 천년숲길)-나무계단-비포장 임도-운동시설-나무계단-팔각정봉-나무계단-벤취 쉼터-나무계단-이정표(전망대 0.7 Km, 해남땅끝호텔 0.8 Km, 땅끝탑 1.2 Km, 도솔암 8.9 Km)-비포장임도-땅끝탐방로와 이정표(전망대 0.4 Km, 해남땅끝호텔 1.1 Km와 도솔암 9.2 Km, 땅끝탑 1.3 Km)-화장실과 나무계단-땅끝 주차장-계단-땅끝전망대와 땅끝유래석-나무계단-땅끝탑-땅끝마을 500미터 이정표-나무계단-안전목책과 로프구간-나무계단-비포장임도-땅끝주차장-땅끝주차장 입구-산행종료-완도 군외활어회센터에서 땅끝기맥 마지막 매식-귀경
산행거리 : 약 21.80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하루종일 내리는 가랑비와 짙은 안개로 조망없이 그저 걷기에만 충실하며 진행해 10시간 40분 (04시 09분부터 14시 49분까지)
교통편 : 땅끝기맥 넓은 25인승 전용 버스 이용
땅끝기맥이란 ???
호남정맥의 바람봉 분기점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쳐 육지의 최남단인 땅끝까지 내려가는 도상거리 123 Km쯤 되는 산줄기다.
일부는 영산강의 남쪽 울타리가 되며 일부는 탐진강의 서쪽 울타리가 된다.
길이나 높이에 비해 월출산과 첨봉에서 오소재, 두륜산에서 달마산 지나 도솔봉등 암릉구간이많은 옹골찬 산줄기고 월출산, 두륜산, 달마산등 유명산을 지난다.
지나는 산은 계천산, 국사봉, 활성산, 월출산, 도갑산, 월각산, 별뫼산, 서기산, 첨봉, 두륜산, 대둔산, 달마산, 도솔봉등이다.
마지막을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생각하며 가랑비속에 아쉬운 달마산 산행으로 땅끝기맥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참으로 험난하고 힘들었던 땅끝기맥 산행도 이제 추억속의 한페이지를 만들며 이렇게 많은 아쉬움속에 그 대단원의 마무리를 해 보는 시간이다.
지난 주 덕룡산과 주작산을 지나 오소재까지의 환상적인 암릉구간을 무탈하고 즐겁게 산행한 후 귀경하여 땅끝기맥 마지막 구간을 준비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봄비 소식이 전해오기 시작하고 또 마음 졸이며 일주일을 보낸다.
참으로 사연도 많고 아쉬운 추억도 많이 남겼던 땅끝기맥 산행인데 이렇게 마지막 구간의 산행까지 우중산행에 암릉을 넘어야 한다니 참으로 마음 고생이 심한 시간이 되었다.
혼자 간다면 마음 편히 연기한 후 좋은 날씨에 다시 오르면 되겠지만 30여명의 종주대와 함께 대형버스를 타고 진행하기에 쉽게 산행 취소도 어려운 시간이 되었다.
최대한 기획테마 산행으로 대체를 하고 종주대는 조심하며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안전 산행에 대한 당부로 진행을 하지만 역시나 내리는 빗속에 진행해야 하는 달마산 산행은 두고 두고 아쉽고 안타까운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특히나 산행 마지막에 생각지도 못한 버스 기사로부터 황당한 차비 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화가 나고 울화통이 터지던지 앞으로는 다시 그런 관광화사와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마음 고생이 심했던 시간으로도 기억될 듯 싶다.
약속된 거래를 파기하고 산행에 임하는 산객에게 산행도 마치기 전에 버스비를 올려 달라는 이런 황당한 주장과 그 당당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시간을 한시간 앞당겨 출발을 했지만 내리는 빗줄기와 지욱해지는 안개속에 차량 속도가 늦어지며 산행지 도착이 벌써 새벽 4시를 넘기고 있다.그래도 생각보다 심하지 않은 가랑비를 맞으며 시작된 산행은 안타까운 산객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개속에 묻혀 보여주질 않고 그렇게 힘들게 마루금을 걷고 또 걸어 마지막 땅끝 전망대에 도착을 하니 이제 내리던 가랑비가 멈춰있고 많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반년이 다 되어 마무리가 되는 땅끝유래 이정석에서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자금까지 세번 들렸고 또 언젠가는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찾게 될 곳이지만 오늘 이 순간 느꼈던 이 마음과 기분으로 다시 이곳에 서 있을 수는 없음을 알기에 기쁘고 시원한 마음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허전함이 밀려오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 시간이다.
서울에서 밤 10시에 출발한 버스는 기흥에서 한번 정차한 후 달려 마지막 휴게소인 함평나비에서 매식을 위한 30여분 간 정차한 후 다시 닭골재로 향하니 내리지 않던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하고 살펴보니 도로가 흥건히 젖어 있다.
다만 생각했던 빗줄기보다 굵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으로 산행들머리인 닭골재에 도착을 하니 새벽 4시를 넘기고 잠시 산행 준비 후 좌측에 새로 생긴 13번 4차선 포장도로와 나란히 우측 구도로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며 땅끝기맥 마지막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새벽 4시 9분를 넘기고 있다.
2주전 짙은 안개속에 도착을 했던 닭골재는 전남 해남군 현산면과 북평면의 경계에 있는 13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로 지금은 이 고개 아래로 4차선 신 13번 국도가 지나가는 터널이 뚫리는 바람에 현재 이 고개는 새로 생긴 도로에 모든 영화를 빼앗겨 버리고 산꾼이나 다니는 잊혀진 고개로만 남아있다.
해남 지역지에 기록되어 있는 닭골재의 지명유래는 고개 아래에 있는 동네 지명이 딱골이라 하여 그 마을의 지명이 이 고개의 지명이 된 듯하며 딱골은 딱나무가 많은 동네라는 뜻으로 해남지지에는 저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원래 이 고개의 지명은 저동치인데 딱골재라 부르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지역민들이 닭골재라 부르면서 변음이 되어 그렇게 표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코 쉽게 허락하지 않는 땅끝기맥 마지막 산행임을 알려주고 있다.
기획테마팀으로 참가한 11명과 미황사에서 출발하는 종주대 4명을 버스에 남겨 놓고 정예화된 13명의 종주대가 출발하는 시간이 정확히 새벽 4시 9분을 넘기고 잠시 구 13번 2차선 도로를 따라 지하통로 반대 방향인 땅끝마을 방향으로 30여미터 걸어가니 도로 우측 능선방향으로 등로가 열려 있어 그 등로를 따라 다시 직진 방향으로 30여미터 걸어가니 도로 우측의 철조망 한곳이 열려 있어 그곳을 통해 어렵고도 힘든 마지막 구간 산행을 시작해 본다.
두번 올랐던 달마산이기에 그 황홀한 조망을 볼 수 없음에 아쉬움이 더욱 강하게 다가오지만 조망과 완주보다 늘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안전 산행이기에 오늘도 아무 사고 없이 무탈하게 완주할 수 있기만을 기원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능선으로 올라 짐시 진행을 하니 비석이 서 있고 잘 정돈된 묘지 2기를 지나 잡목속으로 전진하는데 내리는 가랑비와 높은 습도로 인해 벌써 가슴이 막히는 고통이 밀려온다.
거친 심호흡을 토해내며 한발 두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니 다시 무명 묘지 한기를 만나고 금새 잡목이 우거진 139봉을 지나지만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이곳이 봉우리인지도 모르게 통과되는 곳이다.
그 139봉을 지나니 등로에는 벌목되어 나뒹굴고 있는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다시 잠시 더 진행을 하니 무명묘지 한기를 더 통과한 후 비포장 임도를 만나는데 살펴보니 주위에는 가시가 박혀있는 드릅나무들이 군락이 이루고 있는 장소이다.
이곳에서 내리는 빗줄기와 어둠 그리고 잡목들로 인해 정상 등로를 찾지 못하고 잠시 헤매다 어렵게 잡목 사이로 나 있는 정상 등로를 찾아 오르며 드릅나무 가시에 몇번인가 찔리기도 한다.
약 1주일만 더 지나면 부드러운 드릅순이 나오면서 입맛 돋우는 봄 새싹으로 먹음직스런 음시이 될 것이지만 아직은 너무 어려 눈으로만 여겨 본다.
그곳 드릅인지 엄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는 해남군에서 재배하는 소득작목 재배지로서 출입금지란 경고판이 계속 눈에 들어 온다.
다시 잡목을 헤치며 어렵게 진행을 하니 제주부공랑과 배우자의 묘지를 지나고 다시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한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갈림 삼거리가 보이는데 그 좌측으로 무슨 용도인지 모를 비닐하우스가 설치되어 있다.
소득작목 재배하면서 임시 거쳐로 사용하던 비닐 하우스가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 비닐하우스를 지나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작은 닭골재인다.
땅끝기맥 마루금은 이 2차선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반대쪽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며 진행이 된다.
아마도 옛날에는 중요한 고갯마루로서 그 역활을 다했을 이곳도 주위에 넓은 도로가 생기면서 필요에 의해 적은 사람들만 이용하는 사라져 가는 고갯마루로 남겨진 듯 보인다.
다시 작은닭골재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매년 겨울철 입산을 통제한다는 입산통제 안내판이 서 있다.
입산통제 안내판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는 이제 직진으로 올라가는 이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잠시 그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트랙과 다른 등로임을 알려주고 있다.
짧은 알바 후 다시 뒤돌아 내려오며 임도 좌측을 유신히 살펴보니 내리는 빗속에 임도 좌측으로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주의하지 못하면 보지 못할 그런 구간이다.
정상적인 등로를 찾아 다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벌목이 되었는지 키 작은 관목들이 자라고 곧이어 능선에 도착을 하니 그곳에는 넓은 헬기장이 반겨 준다.
하지만 이곳에서 인원 파악을 하다보니 2명의 종주대가 보이지 않아 전화로 위치를 확인하다 보니 처음 시작할 때 닭골재에서 헤드렌턴 때문에 늦게 출발을 해 이제 작은 닭골재에 도착하여 진행하고 있다는 전언을 전해 듣고 출발한다.
후미에 두명의 종주대를 두고 기다리며 천천히 진행하다 보니 앞서 진행하던 종주대는 꼬리도 보여주지 않고 비와 안개속에 빠르게 자취를 감춰 버린다.
헬기장을 지나니 잡목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는데 진행하는 등로조차 희미하여 몇번인가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어렵게 정상 등로를 찾아 홀로 진행하는 시간이 되었다.
후미에 쳐진 두명의 종주대가 걱정이 되어 전화로 연락을 하면서 된비알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무명봉 정상에 어제 다녀간 송정님 띠지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다시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하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를 만나는데 이곳 비포장 임도에서는 임도를 건너 곧바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오르며 진행을 해야 한다.
이곳 비포장 임도를 바람재라고 하는 지도를 봤기에 살펴보지만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하고 진행을 하면서 바람재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본다.
바람재는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와 북평면 이진리를 연결하는 고개로서 트럭이 다닐 만큼 넓은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곳으로 작은 닭골재에서 이곳까지 시멘트 포장임도로 연결되기에 이 임도 등로를 따라 진행해도 무방하지만 산행 후 약간의 아쉬움이 남아 있기에 정상 마루금으로 진행을 한다.
그 임도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며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이제부터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며 주위 바위군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를 지나 오르니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더니 무명봉 넘어 산죽밭이 보이고 그 산죽밭 넘어 저 멀리에는 희미하게 멋진 암릉들이 눈 앞에 펼쳐지지만 안개와 비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고 있다 보니 아쉬움이 큰 시간이다.
다시 바위를 지나 평이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거대한 암릉들이 눈앞에 펼쳐지며 어렵게 비에 젖어 있는 그 암릉을 타고 오르는 선두가 보이기 시작한다.
거대한 암릉을 타고 오르니 다시 또 다른 암봉이 옆으로 직벽을 이루며 보이는데 그 직벽 사이에는 분홍색 진달래꽃이 피어 비에 젖은 모습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다.
어렵게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 암봉들이 바로 해발고도 227.2미터인 관음봉 암릉이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잠시 그 암릉을 지나 진행하니 바위 너덜길 한쪽에 바람재란 이정표가 나타나 사진에 담아 본다.
방금 전 비포장 임도가 바람재로 알고 있는데 이곳에 또 다른 바람재 이정표가 있어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암릉을 우회하여 안부로 내려서니 이정표에 또 다른 바람재를 만나는데 이곳은 다른 곳의 바람재라는 지명과 동일하게 바람이 상당히 세차게 불어 붙여진 이름이다.
우측으로 송촌마을로 내려가는 길이고 좌측은 이진리로 내려가는 길인데 달마산을 오르는 일반 등산객들은 주로
송촌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기에 그곳에도 많은 산악회 띠지들이 달려 있어 길주의 구간이기도 하다.
바람재 이정표를 지나 우측으로 암봉을 두고 좌측 바위 너덜길을 따라 임릉을 우회하니 그저 아쉽기만 하다.
너무나 아름다운 암릉과 수많은 달마상들이 반겨줘야 할 등로에 그저 안개만 자욱히 덮혀 보이는 것이 없으니 오늘은 그저 안전산행에 대한 생각만으로 진행을 해 본다.
우측에 암릉을 두고 바위너덜길을 지나니 다시 눈 앞에 거대한 암봉이 나타나고 그 가운데 등로에는 로프가 달려있다.
아마도 이곳까지도 관음봉 암릉이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보이는 것이 없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만 빗물에 녹아 들고 있다.
로프 구간을 지나 오르니 등로는 좌측 암릉 옆으로 이어지고 좁은 바위 등로를 따라 일렬로 줄을 서 가며 진행을 하니 산행속도는 기대하기 어려운 산행 조건이다.
큰 바위 등로를 조심하며 걸어 오르니 봉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희미한 진행방향을 살펴보니 거대한 연봉들이 우람한 남성미를 자랑하며 그곳에 서 있다.
수많은 달마들이 모여있을 이곳 암릉을 그저 뿌연 안개속에 진행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깊게 묻어 나오는 순간이지만 어짜피 극복하지 못할 자연이기에 그저 즐겨 보자는 생각으로 걸어 본다.
바위 암봉에 올랐다 내리막 바위로 진행하며 뒤돌아 보니 제법 고도를 높여 걸어 온 암릉길이 안개속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다시 조심하며 앞으로 진행하니 거대한 칼바위 등로가 펼쳐져 있고 그 칼날바위 사이에는 어김없이 진달래꽃이 피어 있어 황량한 바위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다.
그 바위 암릉 구간을 조심하며 걸어 넘으니 억새가 자라고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안부에 이제 달마산까지 2.00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반가운 지점이다.
지도를 보니 이곳이 관음봉과 농바위 중간쯤 되는 임도로 나와 있는데 임도인지도 분간이 어려운 산행 조건이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능선으로 진행을 한다.
다시 빗줄기가 굵어지며 온 몸이 젖어드는 시간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곧바로 진행 방향으로 걸어 맥 잇기 산행을 해 본다.
거대 암릉을 좌측에 두고 우측 바위 너덜길을 따라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비에 젖어 고개숙인 진달래꽃이 수줍은듯 피어 있다.
앞으로 오르면 오를수록 안개가 더욱 심해지고 바로 앞서 진행하는 종주대 이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어 그저 무심으로 비를 맞으며 발걸음만 옮겨 본다.
날씨만 좋았으면 참으로 멋있는 암릉과 암봉이었을 것을 그저 종주대 뒷모습만 바라보며 걸어가는 시간이 안타깝기만 하다.
바위 너덜길을 따라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이제 등로 우측 저 높이 바위 위에 키 작은 식물과 진달래가 자라며 꽃을 피워 삶의 끈질김을 알려 준다.
그 바위 너덜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니 거대 바위가 나타나고 어렵게 그 바위를 타고 조심하며 올라 가 본다.
짧은 로프가 달려있는 미끄러운 바위를 조심하며 오르니 봉우리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무명봉인지 432.5봉인지 조차 분간이 안될 정도로 짙은 안개속이다.
잠시 평이한 등로와 산죽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하니 다시 눈 앞에 길게 늘어 선 칼바위 등로가 나타나고 그 칼바위 등로를 따라 힘들게 진행하고 있는 종주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수많은 달마들이 안개속에 숨어있다 나타나며 아쉬움을 달래주는데 다음에 좋은 날씨에 반드시 다시 올라 환상의 모습으로 다시 만날 것을 약속도 해 보는 시간이다.
그 바위 봉우리와 칼바위 능선을 지나니 봄비에 꽃잎을 떨어트리고 있는 산벗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다시 키 큰 산죽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오랫만에 만나는 평이한 등로에 아름답게 피어 있는 진달래꽃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비에 젖은 진달래꽃을 바라보며 평이한 등로를 걸어가니 다시 눈 앞에 거대한 암봉이 나타나는데 안개속에 갇혀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그 암봉을 자세히 살펴보니 수없이 많은 달마들이 그 짙은 안개를 헤치고 당장이라도 걸어 나올듯한 사실적인 모습에 경외로운 자연의 힘을 다시 한번 느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무엇인가 닮아 있는듯 멋진 이름이라도 지어주고 싶은데 갑자기 걸맞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애간장만 태우기도 해 본다.
다시 제한된 시야속에 암봉을 조망하며 산죽이 자라고 있는 바위 등로를 걸어가니 470봉 돌탑이 나타난다.
누군가 쌓아 놓은 돌탑인데 이 강한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음에 신기함마저 드는 시간이다.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읽어 보면 이곳에서의 조망 역시 너무나 아름답다고 되어 있는데 오늘은 보이는 것이 없으니 그저 눈 앞에 서 있는 이 작은 돌탑 하나 바라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 보는 시간이다.
다음에 다시 내려오게 되면 오늘의 이 아쉬움을 다 날려 버릴 수 있도록 여유를 가지고 그 속살까지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래 본다.
그 돌탑을 지나니 다시 바위 너덜길이 나타나고 우측에 거대한 암벽을 두고 좌측 바위 너덜길로 우회하며 걸어가 보는 시간이다.
진행하다 앞을 보니 등로 좌측으로 멋진 암봉이 보이고 진행 방향으로도 거대한 암릉이 희미하게 나타나는데 실루엣으로 바라만 볼 수 있기에 더욱 안타까운 시간이다.
수많은 달마와 기암괴석들이 마치 수석 전시장 같은 달마산이지만 오늘은 그 기회가 아니라며 보여주지 않으니 산객이 다시 찾을 수 밖에 없다.
바위 너덜길을 내려갔다 안부에서 다시 바위 너덜길을 따라 오르니 또 다른 거대 암벽이 나타난다.
이제 달마산 불썬봉이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느끼지만 안개속에 숨어 버린 등로이기에 그저 보이는 것을 따라 걸어가 본다.
잠시 바위 구간을 지나니 산죽과 잡목을 지나니 바위가 등로에 박혀 있는 마루금이 보이고 곧이어 선돌같은 바위가 서 있는 칼바위 능선을 통과한다.
그 선돌을 닮아 있는 바위를 지나니 갈고리를 닮아 있는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 앞에 수줍게 피어 있는 비에 젖은 진달래가 더욱 아름답게 다가온다.
카메라가 비에 젖어 작동이 되다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손으로 물기를 닦으며 어렵게 그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 본다.
그 바위를 지나자 마자 등로는 진달래꽃과 산벗꽃으로 교체되어 있고 잠시 무심으로 진행하니 등로에는 키 작은 산죽과 진달래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변하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둔덕같은 고개를 넘어 곧바로 달마산 불썬봉 정상의 돌탑과 다도해 및 미황사 안내판이 보인다.
몇 년 전 미황사로 올랐다 내려갔던 고운 추억이 남아 있는 달마산 정상이고 그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기에 오늘 보이지 않는 조망이 원망스럽기까지 한 시간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곳에 오를 수 있음에 그저 고마움을 남겨 보는 시간이다.
달마산 정상 봉수대(돌탑)는 조선시대까지 이곳에 봉수대가 있었다 하여 불을 써는(써다는 켜다의 전남 방언)봉이라 해서 불썬봉이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불썬봉 대신 이 지점에서 북쪽으로 470미터쯤 떨어진 곳에 달마산으로 오기했는데 극심한 가뭄이 오래 계속되면 산봉우리에서 기우제를 지내 비를 내리게 했다고 한다.
봉수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어느 학자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다고 하고 어느 학자는 12세기 중반인 고려시대부터 설치되었다고 주장한다
봉수대에선 밤이면 횃불이 낮에는 연기로 동서남북 사방팔방으로 긴급함을 알렸는데 이곳 달마산의 봉수대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완도의 숙승봉과 북일 좌일산으로 연결하던 봉수대다
그래서 달마산 정상의 봉우리가 불선봉 또는 불썬봉이라 불렀는데 이는 전라도 사투리로 불을 켜다란 의미나 불을 써다 라는 유래에서 따온 지명으로 봉수대와 관련된 지명인 듯 하다.
그 달마산 불썬봉 돌탑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내려가니 바로 밑에 달마산 달마봉 정상석과 이정표가 반겨 준다.
달마산은 옛날 영암의 송양현에 속했을 정도로 월출산과 가까운 산으로 바위들이 갖가지 형상을 하고 있어 마치 금강산을 길게 펼쳐 놓은 듯하다 하여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러왔다.
또 하나의 자랑은 산자락에 있는 미황사인데 미황사는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사찰로서 바닷길 불교 전래를 추측케 하는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한 천년 고찰이다.
달마산 종주산행을 하면 이 산자락에 숨겨져 있는 보물과 다도해를 운행 중 시종일관 볼 수 있으며 운이 좋으면 보길도 격자산 쪽으로 제주 한라산의 원경도 볼 수 있다.
북으로 두륜산이 접해 있고 삼면은 모두 바다와 닿아있는 산으로 송호리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무성하여 모두 백여 척이나 되는 것들이 치마를 두른 듯 서 있다.
그 위에 마주한 기암괴석들은 우뚝 솟은 깃발과 같으며 혹 사자가 찡그리고 하품하는 것 같고 또는 용과 범이 발톱과 이빨을 벌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멀리서 바라보면 하얗게 쌓인 눈이 공중에 한 발짝 다가서 서 있는 듯하다.
이곳에서도 모두 아쉬운 추억 한장씩 남기고 그 달마산 좌측의 공터로 내려가 가랑비가 내리는 시간에 허기를 달래며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 후 올라 와 다시 한번 달마산에 대한 자료를 생각해 본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소백산줄기의 두륜산을 지나 마지막으로 우뚝 솟은 산이 달마산(489봉)으로 해남군 현산면과 송지면 및 북평면에 걸쳐있고 천년고찰 미황사와 어우러져 경관이 빼어나다.
산 이름은 경전을 봉안한 산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는데 현대의 지형도에는 달마산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또 한편으로는 달마대사가 중국에 선을 전하고 해동의 달마산에 늘 머물러 있다고 하여 달마산이라 이름지었다고도 한다.
고려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중국 송나라의 높은 관리들이 찾아와 달마산을 찬탄하고 예경하였다고 전해진다.
산 능선은 마치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한 기암과 괴봉이 7 Km에 걸쳐 이어져 있으며 남해의 금강산으로 불리는데 손색이 없을 만큼 풍광이 수려하고 힘찬 기상과 장엄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달마산은 불상과 바위 그리고 석양빛 세 가지가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데 특히 산능선에서 바라보는 서해 낙조는 남도 제일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황홀하다.
아침 식사 후 다시 달마산 정상부로 올라 와 등로 우측 아래를 살펴 보지만 그곳에 아름답게 내려다 보여야 할 미황사가 안개속에 숨어 버렸다.
오래 전 담았던 사진을 꺼내 아름다운 미황사에 대한 추억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달마산 미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로서 1692년(숙종 18)에 세운 사적비에 의하면 749년(경덕왕 8)에 의조화상이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설화에 의하면 돌로 된 배가 사자포구에 이르렀는데 사람들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물러나면 가까이 다가오는 일이 계속되었다.
그러자 의조가 제자들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맞이하니 비로소 배가 포구에 도착할 수 있었고 배에 올라보니 금의인이 노를 잡고 있으며 큰 상자 안에 경전, 비로자나불상, 문수보살상, 보현보살상, 40성중, 53선지식, 16나한, 불화 등이 꽉 차 있고 배 안에 있던 바위를 깨니 검은 황소 1마리가 나왔다.
그날 밤 의조의 꿈에 금의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나는 인도 국왕으로 금강산에 봉안하고자 경전과 불상을 싣고 왔으나 금강산에 절이 가득해 새 절터가 없어 돌아가던 중인데 이 곳의 지형이 금강산과 비슷하므로 소 등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길을 떠났는데 한 곳에 이르러 소가 한 번 크게 울고 드러눕자 그곳에 통교사라는 절을 짓고 소가 다시 일어나 가다가 마지막으로 머문 곳에 지은 절이 바로 이 절인데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답고 금의인이 황금으로 번쩍거리던 것을 기리기 위해 미황사라고 했다고 한다.
미황사의 창건신화가 있어 적어 본다.
신라 경덕왕 8년(749)에 홀연히 돌배 한 척이 땅끝마을 사자포구에 와서 닿았는데 배 안에서 천악범패의 소리가 들려 어부가 살피고자 하였으나 배는 번번이 멀어져 갔다.
의조스님이 이를 듣고 장운과 장선 두 스님과 향도 백여명과 함께 목욕하고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자 비로소 돌배가 바닷가에 닿았는데 그 곳에는 주조한 금인이 노를 젓고 있었다.
배안을 살펴보니 화엄경 80권, 법화경 7권과 바로자나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40성중, 16나한, 탱화 등이 있고 금가락지와 검은 돌이 한 개씩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경전을 바닷가에 내려놓고 모실 장소를 의논할 때 검은 돌이 저절로 벌어지며 그 안에서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날밤 의조스님이 꿈을 꾸었는데 금의인이 말하기를 나는 본래 우전국(인도) 왕으로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경전과 부처님을 모실 곳을 구하고 있는데 이곳에 이르러 산정상을 바라보니 1만봉이 나타나므로 여기에 온 것이다.
소에 경전을 싣고 가다가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성상을 봉안하라고 일렀다.
이에 소 등에 경을 싣고 가는데 소가 한 번 눕더니 벌떡 일어나 다시 걸어갔고 산골짜기에 이르러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소가 처음 누운 자리에 통교사를 짓고 뒤에 일어나지 않은 자리에 미황사를 지어 불상과 경전을 모셨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에서 따왔고 황은 금의인의 황금빛을 따와 이름 붙였다.
1692년(숙종 18)에 민암이 지은 미황사사적비에 이런 기록이 나온다.
이 같은 미황사 창건설화는 불교가 중국을 거치지 않고 인도에서 바로 전래되었다는 남방전래설을 뒷받침하는 이야기여서 세삼 흥미롭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미황사는 대부분의 전각이 불에 타고 기록마저 없어졌다.
이후 조선후기 세 차례 걸쳐 대대적인 중창불사로 다시 번성했고 고승들이 주석하면서 승풍을 크게 떨쳤다는데 현재 경내에는 해남 미황사 대웅전(보물 제 947호), 해남 미황사 응진당(보물 제 1183호)), 미황사 괘불탱(보물 제 1342호) 등 국가지정 문화재 3점이 있다.
발굴조사 등 고증을 통해 옛 가람배치를 확인하고 정비계획에 따라 복원불사도 활발하다.
현재 이곳에 머무는 지운, 현공, 금강스님이 1989년에 퇴락한 미황사에 오게 되었고 흔적만 남아있던 명부전, 삼성각, 종각, 만하당, 달마전, 자하루, 백운당, 청운당, 감로당, 부도암 등을 복원하고 낡은 세심당과 염화실, 향적전을 증축하였다.
15년 넘게 이어진 중창 불사 결과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런 멋진 미황사를 내려다 보지도 못하고 진행해야 하는 마음이 참담하기만 하다.
예전에 만들었던 멋진 조망을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이제 아침식사를 마친 달마산 불썬봉을 출발해 본다.
진행하지 마자 등로 옆에 곱게 피어난 진달래가 비에 젖어 고개를 숙이며 암릉을 붙잡고 매달려 있는 모습이 애처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 옆에 선돌을 닮아 있는 바위 하나가 암벽 옆으로 솟아 있어 안개속에서도 종주대의 눈길을 사로 잡으며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잠시 그 선돌같은 바위를 바라보며 진행하니 다시 로프가 달려있는 내리막 암벽이 나타나 조심하며 그 암벽을 내려가 본다.
조심하며 암벽을 내려가니 새롭게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조금은 편안하게 내려가는데 내려갈수록 안개는 더욱 심해져 바로 코 앞으로 우뚝 솟아 있는 암릉조차 희미한 실루엣으로 다가온다.
조금 더 안부쪽으로 내려가 살펴보니 그 암봉 정상에 작은 나무가 자라고 예쁜 진달래꽃도 피어 있는듯 보이는데 짙은 안개로 인해 시야가 제한을 받으니 아쉽기만 하다.
그 나무계단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는 바로 앞에 보이던 암봉을 좌측에 두고 우측에는 문바위를 둔채 그 가운데 바위 너덜길로 이어지고 있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바위 너덜길을 걸어가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 동백나무 가지에 문바위중간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살펴보니 우측으로 가면 문바위 아래 통천문을 통과한 후 좌측 바위 너덜길로 이어지는 정상 등로로 진행이 될 것 같지만 오늘은 큰 의미가 없기에 좌측 바위 너덜길을 따라 그냥 진행하기로 한다.
문바위 통천문 문바위 아래에는 겨우 한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좁은 통천문이 있는데 오늘은 비가 내려 바위가 미끄럽기에 통천문 대신 그 좌측 우회 바위 너덜길을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날씨가 좋아 문바위 아래에 있는 통천문을 거쳐 즐기며 진행하는 시간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을 해 본다.
그 갈림 삼거리를 지나자 마자 등로 옆에는 문바위와 도솔봉 가는 이정표가 서 있고 다시 로프가 달려 있는 가파른 오르막 암벽을 타고 어렵게 산행을 이어가 본다.
살펴보니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문바위가 서 있는듯 보이는데 안개속에 가려있어 이곳이 문바위인지도 모르게 그저 이정표로 짐작만 할 뿐이다.
전국의 많은 산에 문바위란 이름이 있어 자료를 찾아 보지만 제대로 된 자료를 찾지 못하였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바위 위에 올라 달을 잘 볼 수 있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달빛이 잘 비추는 바위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다시 바위 위로 오르니 진행방향으로 안개속에 묻혀있는 멋진 암봉이 나타나는데 그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하니 안타까운 시간이다.
그곳을 지나 진행하니 금새 작은금샘정상이란 안내판이 보여 잠시 둘러 본다.
달마산에는 특이하게도 바위산임에도 불구하고 바위틈에 여러개의 샘이 존재하고 있는데 산의 신령함인지 아니면 달마산의 특이한 지질 탓인지 그것도 산의 정상부위에 샘이 있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듯싶다.
금샘을 비롯하여 용담은 대표적인 샘이고 금샘 또한 큰 금샘과 작은 금샘이 있으며 금샘이라는 이름처럼 금샘을 찾기란 싶지 않다.
달마산의 문바위재라 불리는 정상부근에는 작은 금샘이 있는데 바위와 바위틈 사이에 작은 구멍이 뚫린 것처럼 있기 때문에 더욱 찾기가 어렵기도 하다.
그래서 아는 사람의 안내를 받아야 바위투성이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듯 금샘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비라도 내리지 않았다면 작은금샘이라도 찾아 보겠지만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그 작은금샘 안내판 옆에는 문바위재라는 이정표가 서 있어 문바위로 가는 고갯마루라 이해를 하고 다시 진행한다.
잠시 산죽 등로가 나타나더니 금새 직벽의 암벽이 보이고 그 암벽을 타고 오르니 이번에는 등로 좌측에 암봉을 두고 우측 소로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
그곳을 지나 진행하니 이번에는 진행방향의 우측으로 거대한 병풍바위 같은 암릉군들이 나타나고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조망에 아쉬움이 큰 시간이다.
그 암릉을 바라보며 천천히 조심하며 바위를 건너 진행하니 도솔봉주차장까지 5.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그 이정표를 지나 지나온 암릉 등로를 뒤돌아 보니 수많은 달마들이 금방이라도 인간세계로 튀어 나올듯한 모습으로 이 산객을 내려다 보고 있다.
그 바위들과 암릉 구간을 지나니 거대한 바위 너덜길이 좌측 내리막 등로에 나타나고 그 바위를 타고 내려가기 전 지나온 등로쪽을 올려다 보니 저 멀리 바위벽 옆으로 이빨의 뿌리가 거꾸로 서 있는듯한 기묘한 바위가 눈길을 잡는다.
어떤 동물의 뿔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바위를 조망한 후 다시 갈길이 멀기에 그 거대한 바위 너덜길을 타고 미끄러지지 않토록 조심스럽게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내려가 진행을 하니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진 평이한 흙 등로가 나타나 잠시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걸어가니 이제는 작은금샘이란 이정표가 서 있고 좌측으로 서흥마을 하산 이정표가 보이는 갈림 삼거리 길이다.
그 이정표를 지나니 다시 거대한 바위 너덜길이 나타나는데 이제는 그 바위를 따라 오르막 등로로 올라가 본다.
조금은 미끄럽게 흔들리는 바위를 타고 아주 조심 조심 진행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산행이 되었다.
가파른 바위 너덜길을 따라 힘들게 오르니 잠시 파란 잎새귀를 흔들며 비를 피해주는 동백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다시 대포바위인지 코뿔소 바위처럼 생긴 바위군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내리는 빗속에 카메라까지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그냥 진행할 수가 없어 어렵게 사진에 담아 보지만 역시나 선명하지가 않다.
그 바위지대를 지나니 다시 유순하게 변하는 등로에는 키 작은 산죽들이 자라고 오랫만에 흙을 밟으며 속도를 내 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바위와 씨름을 해 보는 시간이다.
부드러운 흙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다시 눈 앞에 길게 늘어진 칼바위 능선이 나타나고 그 정상을 타고 강한 바람에 힘들게 진행하고 있는 종주대들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그 칼바위 능선 앞으로 가니 거대한 바위틈에 자라고 있는 키 작은 진달래 나무에는 진분홍빛 꽃이 활짝 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오지만 한편으로는 내리는 빗물을 머금어 가련한 모습도 보이는듯 하다.
다시 나타나는 짧은 산죽지대를 지나 나타나는 진짜 칼바위 능선을 타고 조심하며 넘으니 등로는 다시 거대한 바위 너덜길로 변하고 있다.
큰 바위 너덜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눈 앞으로 큰 바위가 가로막고 그 바위를 좌측에 두고 우측 우회 등로를 따르니 바위 너덜길 옆으로 산죽과 진달래꽃 그리고 간간히 피어 있는 산벗이 내리는 빗물속에서도 아름답게 다가온다.
잠시 유순해진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석문이 보이고 곧이어 앞에 많은 등산객들이 모여 간식을 먹으며 쉬고 있고 그 한쪽에는 이정표가 서 있어 조용히 다가가 살펴보니 대밭삼거리로서 벤취와 이정표 그리고 좁은 공간의 공터가 있어 쉬어가기 좋은 곳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이곳 대밭삼거리에서 쉬고 있는 일행들이 우리 종주대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다른 등산객들이었다.
그렇게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대밭삼거리를 지나 출발하니 사람 중간 크기의 산죽밭이 나타나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걸어 보지만 금새 또 다른 암봉이 나타나며 눈 앞을 막고 있다.
그 암봉을 옆에 두고 우회 등로를 따라 통과한 후 살펴보니 그 암봉 정상부는 어느 예쁜 꽃봉우리를 닮아 있는듯 아름답게 피어 있다.
그 바위 암봉을 지나 진행하니 다시 큰 바위 너덜길이 나타나고 조심하며 그 너덜길을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천길 낭떨어지 같은 직벽이 나타나고 그 우측 바위 등로로 이어지는데 등로 우측으로는 진달래꽃이 반겨주고 있다.
나즈막한 봉우리에 올라 잠시 심호흡하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그 암봉은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다시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눈 앞에 작은 바위 몇개가 놓여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등로는 그 암봉 좌측 아래로 바위를 타고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안부가 나타나고 그곳에는 다시 오르막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 계단을 따라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낭떨어지이고 우측으로는 암릉길이 이어지고 있다.
봉우리 위로 오르니 그곳에는 매를 닮은듯한 바위 하나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471.1봉의 귀래봉이라 적혀 있는 봉우리처럼 보이는 곳이다.
어찌 이리도 신비한 모습으로 그 긴 세월 살아 남아 이 산객에게 보여주고 있는지 그저 자연의 힘에 감탄할 뿐이다.
다시 남아 있는 짧은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더욱 짙어진 안개로 인해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산행 조건이 되었다.
조망은 불구하고 정상적인 산행조차 하기 힘든 악조건이지만 서로 조심하며 진행하니 눈 앞에 뚜렷한 모습을 안개속에 감춘 채 거대한 바위로 이뤄졌다는 실루엣만 보여주는 암봉이 점점 다가 온다.
다가 가 살펴보니 그 봉우리는 암봉이 아니고 길게 이어지는 칼바위 능선으로서 등로는 그 칼바위 능선을 좌측에 두고 우측 우회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우회 등로를 따르니 다시 눈 앞에 큰 암봉 하나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그곳에도 많은 달마상들이 보인다.
지나온 칼바위 능선과 큰 암봉을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또 다른 칼바위 능선이 나타나고 그 칼바위 능선을 따라 넘어지지 않토록 조심하며 걸어 본다.
울퉁불퉁한 거대 바위를 밟으며 조심해 걸어가니 저 멀리 앞으로 종주대 한명이 걸어가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는데 사람이 아닌 바위처럼 보이는 실루엣이 전부이다.
바위 주위에는 키 작은 진달래와 산벗들이 피어있어 내리는 빗속에서도 종주대의 입가에 미소를 던져주고 있다.
그 칿자위 능선을 타고 조심해 통과하니 다시 푹신한 흙길이 열려 있고 봄이 오는 프른 빛깔을 살피며 잠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나즈막한 언덕을 넘어 다시 완만하게 내려간다.
잠시 내려가니 등로 우측에는 하숙골재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살펴보니 등로 우측으로는 북평면 평암리로 내려 갈 수 있는 하산 갈림 삼거리가 있는 곳이다.
북평면 평암리는 본래 영암군 북평종면의 지역인데 광무 10년(1906) 해남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금부리, 암정리와 안평리, 묵동리, 전용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안평과 암정의 이름을 따서 평암리라 하여 북평면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왜 이곳이 하숙골재인지는 자료를 찾아 봐도 나와 있는 자료가 없어 찾지 못함이 아쉽기만 하다.
아마도 이곳 아래 평암리의 큰하숙골과 작은하숙골이란 마을의 이름에서 얻어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흙길로 되어 있는 하숙골재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길을 재촉하니 곱게 피어 있는 진달래꽃 저 멀리 지나온 뒤로 거대한 암봉이 올려다 보인다.
다시 천천히 출발하니 바위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고 그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 앞으로 거대한 암릉군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예전에 산을 잘 모르고 오를때만 해도 이런 풍경 모두가 눈에 들어 오지 않고 그저 정상석과 주위 풍경을 살펴보는 것이 전부였는데 맥 잇기 산행을 하다 살펴보니 그 속살을 제대로 느끼며 걸어 볼 수 있어 더욱 가슴 시리게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암릉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휘어 돌아가는데 방금 전 봤던 좌측 앞으로 보였던 암릉이 좌측으로 휘어지며 등로를 우측으로 밀어 낸듯 보인다.
우측으로 돌아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바위 하나가 나타나는데 마치 독수리의 부리를 닮은듯 아니면 관악산 연주대 가는 길에 서 있는 말바위를 닮은 듯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이다.
그 말바위를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니 다시 등로 우측으로 바위들이 산재된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빗줄기가 조금 더 가늘어지고 안개도 그 농도가 약해지니 주위 사물들 보기가 한결 수월해 졌다.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양쪽으로 높게 서 있는 바위를 두고 그 가운데로 나 있는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걸어 본다.
앞서 걸어가는 종주대의 모습이 조금 더 선명하게 카메라에 잡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바위를 증로 양쪽에 두고 가운데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큰 암봉 하나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금새 널ㅈㅂ은 공터로 이뤄진 떡봉 정상이다.
주위에는 키 작은 진달래나무들이 산재되어 있고 공터 바닥에는 봄을 알리는 파른 잡풀들이 자라고 있는 풍경이 새롭다.
이제 도솔암까지 1.7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데 앞서 간 4명의 종주대와 기획테마산행 팀은 발써 도솔암에 도착해 잘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 온다.
이곳 역시 멋진 조망이 펼쳐진 곳임을 잘 알고 있기에 그냥 통과할 수 밖에 없음이 안타까운 시간이다.
떡봉 정상에서 바라 본 등로 좌측의 북평면 평암리 들판과 남해 바다 그리고 우측 저 멀리 완도가 시원하게 조망되는 곳이다.
평암저수지도 발 아래 보이고 비산비야로 이뤄진 평암리 들판이 참으로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떡봉이지만 오늘은 하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속 산행이니 다음에 꼭 다시 한번 이곳에 올라 예전에 다 보지 못한 그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기를 바래 본다.
또한 지난 겨울 저 남쪽 완도의 상황봉 능선을 걸으며 시원하게 조망하였던 이곳 달마산 능선을 생각하며 오늘 그 이름을 불러주지 못함이 그저 미안한 생각 뿐이다.
해발고도 421.9봉인 떡봉 정상에서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금새 짙은 안개가 밀려오고 이제 앞서 걸어가는 종주대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도 힘든 시간이다.
예전에 올라 바라 본 사진 한장 꺼내 이곳 떡봉 하산길에 바라 본 도솔봉 방향의 인공 구조물과 암릉 등로를 찾아 본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능선인데 오늘은 그저 상상만으로 진행해야 하니 그 답답함이야 말을 할 수 조차 없는 참담함이 있지만 이런 안개 낀 풍경 역시 오늘이 아니면 전혀 만날 수 없으니 이것만으로도 만족하려 노력해 보는 시간이다.
등로에 보이는 바위들을 타고 천천히 걸어가다 바람이 잦아 든 등로 한쪽에서 남아 있는 간식과 탁배기 한잔으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 비젖은 등로를 따른다.
이제 평이한 등로가 나타나고 바위 암릉구간 보다는 훨씬 빠른 산행속도로 진행하니 바위 암봉이 나타나는데 지도를 살펴봐도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봉이다.
선답자들의 띠지가 바람에 날리는 바위 암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또 다른 암봉이 나타나고 그곳 정상에 서 있는 강릉에서 참여한 산우님의 당당한 모습을 살짝 카메라에 담아 본다.
동해와 강릉에서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땅끝기맥 산행을 완주하는 두명의 종주대에게 경의를 표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바위 봉에서 잠시 쉬면서 긴 심호흡을 하고 주위 바위지대로 둘러 본 후 다시 등로를 따라 걸어 본다.
잠시 거대한 병풍바위 같은 암릉들이 펼쳐져 있고 바위가 박혀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큰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 봉우리를 넘어 키 큰 산죽들이 등로를 홍위하듯 자라고 있는 등로를 걸어 본다.
사진을 찍는데 빗물이 스며들며 카메라도 힘이 드는지 눈물이 흐르는 듯 한 모습이다.
그 산죽지대를 지나니 바위가 나타나 그 바위를 오른다.
바위를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른 후 짧은 바위 너덜길을 통과하고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도솔암 가는 갈림 사거리 이정판이 서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도솔암을 들려 살펴보고 진행하기로 하고 우측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땅끝천년숲옛길 이정표와 도솔암연혁 그리고 천년숲옛길 설명판이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조금 더 직진을 해 달마산의 명물로 자리하고 있는 도솔암을 둘러 보기로 한다.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서 사진 몇장 더 남기고 직진으로 걸어 들어가 돌 계단을 오르니 그곳에 신들만 살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암자인 도솔암이 나타난다.
이곳 달마산 도솔암은 달마산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이 미황사를 창건하기 전 수행정진을 했던 암자이다.
여러 스님들이 기도 정진하여 왔던 도솔암은 조선조 정유재란때 명랑 해전에서 패배한 왜구들이 해상퇴로가 막혀 달마산으로 퇴각 하던중 화마를 면치 못하였다고 한다.
빈터에 주춧돌과 기왓장만 남아 있었는데 여러차례 많은 스님들이 복원하고자 하였으나 인연이 되지 않아 불사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생불이라 불린
곡성 성륜사조실 청화 대종사가 한때 수행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 6월 8일 오대산 월정사에 계셨던 법조스님이 연속 3일간 선몽의 꿈을 꾸고 현세에 한번도 오지 않았던 이곳 도솔암 터를 보고 해몽하여 신도들과 더불어 목재와 1800장의 기와를 날라 32일만에 단청까지 마친 여법한 법당을 복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도솔암이 지어진 이 자리에는 이 동네 어느 집안의 무덤이 있었다고 하는데 가뭄이 들거나 동네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서 이 무덤탓이라며 곡괭이와 삽등으로 무덤을 훼손하는 수난을 당했다고 하며 그러한 사연을 가진 이 곳에 사흘 연속 꿈을 꾸신 스님께서 인연따라 와 암자를 짓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암자이다.
오르는 길이 험하다 보니 신도들과 하나 둘 자재를 나르게 되었는데 이 암자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동네의 교인들이 관계기관에 불법으로 건축을 하고 있다고 민원을 넣었다고 한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암자를 짓던 스님은 신도들이 연로하여 힘이들다보니 학생들의 힘을 빌려 기와를 나르다 급기야는 전문인력을 불러 기와와 자재들을 날라 공사를 계속하였다.
교회에서 민원이 자꾸 들어가니 관청공무원이 결국 조사를 나오게 되고 그 공무원이 현장에 나왔을 때는 32일간의 공사로 도솔암이 이미 완성이 되어 사람이 살고 있어 더 이상 제지하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암자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렇게 도솔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은 후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로 뒤돌아 나와 우측으로 나 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솔암을 거치지 않고 직접 오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이정표를 지나 잠시 진달래꽃과 산죽이 멋지게 어우러져 있는 등로를 타고 조금은 여유롭게 걸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 옆으로 다시 큰 바위들이 나타나고 나즈막한 고개를 넘어 봄이 오는 연두빛과 초록이 잘 어우러진 등로를 바라보며 미소도 지어 보는 시간이다.
다시 큰 바위 두어개가 더 있는 고갯마루를 지나 내려가니 해남땅끝까지 11 Km 남아 있다는 땅끝천년숲옛길이란 이정목이 서 있고 그곳에는 좌측 오르막 등로로 오를 수 있는 갈림 삼거리이다.
직진의 좋은 등로를 버리고 좌측 잡목 사이를 뚫고 오르니 다시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고 좌측으로 잠시 걸어 오르니 헬기장이 나타나는데 지도를 살펴봐도 표기가 없는 헬기장이다.
헬기장을 돌아 나와 삼거리에서 올라온 우측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잡목 구간으로 들어가니 키 큰 잡목들이 배낭끈을 붙잡고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약간의 진달래꽃을 구경하며 잡목을 헤치니 바위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진짜 도솔봉인 405봉에 도착을 하지만 아무 표식도 없어 쓸쓸함만 묻어나고 있다.
바로 앞에 있는 군부대로 인해 도솔봉 정상 대접도 받지 못하고 이렇게 방치된 이곳을 대신해 도솔봉주차장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이어진 봉우리에 도솔봉이란 정상석을 세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실질적ㅇ린 도솔봉 정상인 405봉을 지나 안부로 내려가니 등로에 자라고 있는 잡목의 저항은 더욱 심해지고 얼굴을 보호하며 조심해 바위를 지나 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가파르게 오르니 지도상 418.2봉의 암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아마도 군부대 안에 있는지 오르지 못하고 등로는 우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살펴보니 본격적인 군부대 철조망 근처를 지나고 있어 그 군부대 철조망을 타고 우회하는 등로로 보인다.
아쉬움을 남기고 올랐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한동안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는 계속 희미한 철조망이 따라 온다.
그 철조망 위 저 멀리 벌목된 지대가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군부대인 듯 보인다.
그렇게 란동안 진행을 하니 멀리 보이던 군부대 철조망이 우회 등로 가까이까지 내려와 있고 조금 더 걸어가니 녹슨 철조망 문도 보이는데 오랫동안 사용을 하지 않아 망가진 모습으로 방치되고 있다.
그 망가진 녹슨 철조망을 지나 진행하니 등로는 우측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더니 금새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암벽을 두고 우측으로는 멋진 암봉 2개를 두고 그 가운데로 나 있다.
약간은 희미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 아래로 멋진 선돌 같은 바위가 서 있어 사진에 담아 보며 내려가 본다.
살펴보니 내려가면 곧바로 도솔봉 주차장과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오는 듯 보이고 사람들의 목소리와 차량 소음도 들리는 듯 하다.
그 바위 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사진찌기 명소란 글씨와 달마산 도솔봉과 도솔암 일원이란 커다란 안내판이 서 있고 그 옆에는 달마산 등산안내도도 보인다.
그 우측으로는 도솔암 가는 방향 표시를 해 놓은 큰 안내판과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땅끝천년숲옛길이란 이정표에는 도솔암과 달마산정상 그리고 미황사 가는 방향 표시와 함께 거리표시도 함께 되어 있는 이정표 이다.
그 이정표 아래에는 땅끝천년숲옛길이 안전목책과 로프로 보호되며 잘 나 있고 잠시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니 산자락길이란 이정표가 다시 반겨 준다.
이제 시멘트 포장도로 옆에 세워진 진행방향인 땅끝전망대와 땅끝마을 방향을 확인하고 그 진행 방향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내려가자 마자 포장도로 우측으로 능선 진입 등로가 보이고 이곳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해도 되지만 이곳 정상에 서 있는 도솔봉 정상석을 두고 진행 할 수 없어 그 봉우리로 오른다.
오르다 보니 더욱 상큼하게 피어난 진달래꽃이 반겨 주지만 그곳에 눈길을 주기도 힘이 드는 산행 조건으로 인해 사진 한장 남기고 빨리 올라 본다.
등로 우측 위로 올려다 보이는 암봉이 혹시 도솔봉이 아닐까 생각하며 열심히 오르니 그 암봉 직전에서 등로는 암봉을 우측에 두고 좌측 잡목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잡목과 혼재된 진달래 능선을 타고 잠시 더 걸어가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그 공터 우측 바위 위에 앙증맞은 검은색 도솔봉 정상석이 서 있다.
그곳 도솔봉 정상에는 앞서 올라 온 두명의 종주대만이 자리를 지키고 추억을 남기고 있기에 함께 사진 두어장 남기고 곧바로 넓은 공터를 가로질러 관목들이 자라고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해 본다.
도솔봉(417봉)은 전남 해남군 송지면에 있으며 달마산 5봉중에 가장 마지막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은 군부대가 자라잡고 있어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는 봉우리로서 도솔봉의 지명은 소백산의 도솔봉과 불갑산의 도솔봉 등 우리나라 산봉우리 중에 꽤나 많이 등장하는 지명이다.
도솔은 도솔천에서 유래하면 범어 듀스타의 음역으로서 의역하여 지족천이라고 하는데 즉 이곳에 사는 무리들은 오욕을 만족하고 있음을 뜻하며 불교에서는 세계의 중심에 수미산이 있고 그 산의 꼭대기에서 12만 유순 위에 있는 욕계 6천 중 제4천인 도솔천이 있다고 한다.
도솔천은 내원과 외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외원은 수많은 천인들이 즐거움을 누리는 곳이고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로서 내원궁이라고 부른다.
이 내원궁은 석가모니가 인도에 태어나기 직전까지 머무르면서 중생교화를 위한 하생의 때를 기다렸던 곳이다. 미래불인 미륵보살은 현재 이 내원궁에서 설법하면서 남섬부주에 하생하여 성불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도솔천은 미륵보살 정토로서 정토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미륵보살 신앙은 우리나라 불교역사에서 삼국시대에 크게 융성하였다.
신라시대 원효는 도솔천에서 왕생할 수 있는 수행방법을 제시하였고 특히 백제 무왕은 미륵보살이 인간세상에 하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익산에 미륵사를 세웠다고 전한다.
실질적인 도솔봉 정상이 아닌 다른 정상에 세워진 정상석이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니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키 작은 관목들이 자라는 도솔봉 정상석이 있는 417봉을 내려가니 이제부터는 암봉과 암릉지대가 끝이나며 조금은 빠르게 진행이 가능하리란 생각이다.
잠시 더 내려가니 짧은 바위 너덜길을 통과해 다시 나타나는 잡목을 헤치니 등로 좌측으로 방금 전 도솔봉주차장에서 헤어졌던 시멘트 포장도로와 다시 만나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내려간다.
도솔봉주차장에서 헤어졌던 나머지 종주대들은 계속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 와 이곳에서 만나 이제 다시 한 그룹으로 진행을 한다.
잠시 더 내려가니 이제 직진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돌 계단을 타고 내려가 능선으로 진행해야 하는 능선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시간을 보니 벌써 10시 54분을 지나고 있어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기로 하고 돌 계단을 내려가니 아주 부드러운 등로가 열려 있어 지금까지 걸어 왔던 등로와는 전혀 다른 등로처럼 다가온다.부드러운 흙길을 타고 걸어가니 삼남길이란 이정목이 서 있고 바로 앞에는 산자락길 이정표가 서 있는데 땅끝전망대까지 8.2 Km와 땅끝마을까지 10.2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지도를 보니 이곳은 불골이재라 되어 있어 자료를 찾아보니 불골이재 보다는 삼남길에 대한 자료가 더 많이 보인다.
불골이재에는 삼남길이란 글이 보이는데 삼남길이란 해남 땅끝마을 해안에서 시작하여 강진, 나주, 광주, 장성 등 전남의 도시들을 지나 전북의 정읍,
완주, 익산 그리고 충남의 논산, 공주, 천안을 통과하여 경기의 평택, 수원을 거쳐 과천 남태령을 넘어 남대문까지 천리가 넘는 트레일 워킹 코스로
조선시대 10대 대로 중 우리나라에서 최장거리 도보코스이며 이 길을 통해서 관리들은 임지로 파견하고 진상품을 이동했으며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나
장사를 보부상들도 이 길을 걸었으며 또 제주도나 남도지방으로 유배를 왔던 선비들이 걷던 길이기도 하다.
그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이제 등로 주변에는 바위와 암릉 대신 예쁜 야생화가 비에 젖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잡풀들이 자라고 있는 무명봉을 넘어 진행하니 해남땅끝까지 8.62 Km남아 있다는 이정판이 나뭇가지 사이로 끼어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계속 오르막 등로를 오른다.
등로 주변의 멋진 붓꽃을 사진에 담고 가파르게 오르니 어제 다녀간 송정님이 정상 종이 코팅지를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263.1봉에 도착을 한다.
해발고도 263.1봉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 옆에 예쁜 야생화들이 피어나 잠시 카메라에 담고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키 큰 나무들과 잡목들 그리고 키 작은 들풀들이 잘 어우러진 등로에 안개가 밀려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몽환적인 등로를 만들고 있다.
얼마 진행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땅끝마을까지 10 Km 남아 있다는 이정목이 서 있어 의아한 생각을 해 본다.
높지 않은 무명봉을 지나 진행하니 100여미터 진행했다고 생각되는 곳에 이제 해남 땅끝까지 9 Km 남아 있다는 이정목에 실소를 금치 못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둔덕을 넘어 키 작은 이정표에 해남땅끝까지 8.1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있는 갈림 삼거리를 지나 땅끝전망대까지 7.7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에서 잠시 심호흡 한번 해 본다.
이정표를 지나 조금은 가늘어진 빗줄기로 인해 무더위가 밀려오고 땀방울을 흘리며 진행하니 등로 옆에 아름답게 피어난 붓꽃이 빗물을 머금은 청초한 모습으로 이 산객을 빤히 올려다 보고 있다.
잠시 몸을 숙여 사진에 남기고 붓꽃을 찾아 본다.
붓꽃은 붓꽃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로서 키는 60 Cm쯤이고 잎은 땅속줄기에서 가늘고 길게 나온다.
꽃은 5월에서 6월에 피는데 자주색이며 꽃줄기 끝에 2개에서 3개씩 달리고 잎처럼 생긴 포가 있으며 끝의 포는 녹색이며 뾰족하다.
관상용으로 널리 가꾸며 우리나라와 일본 및 동부 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참으로 곱고 예쁜 붓꽃을 카메라에 담고 더위를 느끼기에 입었던 비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조금은 가벼운 차림으로 진행을 해 본다.
잠시 붓꽃을 사진에 담고 오르니 이곳에도 바위 너덜길이 짧게 펼쳐지고 그 바위 무명봉을 넘어 연두빛 현호색을 사진으로 남긴 후 평이한 들풀 등로를 따라 평안하게 걸어가 본다.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바위 너덜길이 다시 나타나고 몽환적인 등로를 타고 한동안 걸어가니 낙엽진 나뭇가지들이 나무터널을 이루고 있는 산죽 지대를 걸어 넘어 본다.
참으로 아름다운 등로를 걸으며 조금은 아쉬움을 덜어 보는 시간이다.
산죽이 무성한 무명봉을 넘어 다시 내려가니 금새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른다.
산죽과 야생화가 피어 있는 등로를 따라 올랐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니 다시 몽환적인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 등로를 따라 아무 생각없이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약간 휘어지며 오르막 고개를 넘듯 지나간다.
그 고갯마루 같은 둔덕을 넘으니 다시 송정님이 달아 놓은 238.4봉 종이 코팅지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데 그 종이 코팅지 우측 옆으로 표식을 알 수 없는 삼각점 하나가 박혀 있다.
해발고도 238.4봉 삼각점을 내려가 몽환적인 안개 등로를 따르니 다시 짧은 구간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이곳 역시 짧게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제 해남땅끝까지 8 Km 남아 있다는 이정목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옆으로 비에 젖은 예쁜 철쭉이 피어 있어 사진에 담아 본다.
오늘 새벽 진행을 하면서 많이도 봤던 철쭉이었는데 바위 암릉구간에서 사라졌던 철쭉이 다시 평이한 등로를 진행하면서 나타나기 시작을 한 것이다.
철쭉은 진달래과에 딸린 낙엽 관목으로 진달래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진달래와는 달리 철쭉은 잎이 먼저 핀 다음인 5월에 꽃이 핀다.
철쭉은 우리 나라가 원산지로 전국 각지의 산에 많이 자라는데 산에 저절로 나는 것에도 철쭉나무와 산철쭉 등 종류가 많이 있다.
철쭉의 키는 2에서 5미터쯤이며 잎은 거꾸로 세운 달걀 모양이고 깔때기 모양의 꽃은 꽃잎의 끝이 다섯 갈래이고 분홍색, 노란색, 흰색, 빨간색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어서 참꽃이라고도 하나 철쭉은 독성이 있어서 먹을 수 없으므로 개꽃이라고도 한다.
산에 나는 철쭉의 줄기는 조각의 재료나 땔감으로 쓰이고 잎은 약재로 쓰이며 관상용으로 정원에 심기도 하고 온실에서 가꾸는 원예 품종도 많으며 우리 나라와 만주에 분포한다.
물에 젖어 있는 철쭉을 사진에 담고 진행을 하니 해남땅끝까지 7.62 Km남아 있다는 키 작은 이정표를 만나고 잡풀이 자라고 있는 평이한 등로를 지나 다시 몽환적인 등로를 한동안 걸어 본다.
흐리고 비내리는 날씨로 인해 멋진 조망은 구경을 못했지만 이렇게 몽환적인 등로를 걸어 볼 수 있으니 이것은 행운이라고나 할 수 있을 거이다.
다시 여름철처럼 무성한 잡목과 잡풀들을 지나 땅끝전망대까지 5.9 Km 남아 있다는 특이한 이정표도 지난다.
그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248.6봉 종이 코팅지가 나타나고 이제부터 조금 더 넓어진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걸어 본다.
짙은 안개가 내려 앉아 있는 멋진 등로를 걸어가다 보니 이제 산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높은 습도와 젖어 있는 등산복으로 인해 피부의 촉감은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잠시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주위에 하얀 철쭉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어 구경하고 내려가 평이한 안부에서 또 다른 이정표를 지나 오르니 바위 암릉 등로가 짧게 나타난다.
그 바위 암릉 등로를 따라 통과하니 묘지 한기가 나타나는데 특이하게도 그 묘지 주위에 자랐던 거대한 편백나무들이 지상에서 1미터 높이쯤에서 모두 잘려져 있다.
묘지를 쓰기 위해 잘려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 묘지를 지나 철판 이정판을 지나니 가족 납골묘가 등로 우측에 보이고 잠시 큰 소나무 두그루가 있는 등로를 통과하니 드넓은 헬기장 직전의 넓은 공터에 꽃이 폈다 진 후 수술만 남아 있는 할미꽃이 비를 맞아 아름답데 다가온다.
그 헬기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고 해남땅끝까지 5.71 Km 남아 있다는 철판 이정표와 이정목이 서 있는 마련고개에 도착을 한다.
마련고개는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와 통호리 넓골마을을 연결하는 고개로 임도는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으며 기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그곳 마련고개에서 이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한참을 오른 후 기맥 등로는 우측으로 휘어져 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있다.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들어가니 등로에는 또 다른 세상이 열려있는데 수많은 야생화와 식물들이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좌측 잡목이 우거진 곳에 242.6봉 종이 코팅지가 보이고 그곳을 넘어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는 좌측 주능선이 아닌 우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땅끝 전망대와 땅끝탑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해 보는 시간이다.
잡풀과 잡목이 혼재되어 있는 파란 등로를 따르니 짙은 안개가 묘한 조화를 이루는 몽환적인 등로가 다시 나타난다.
잠시 더 진행하니 키 큰 산벗 나무에는 하얀 꽃들이 피었다 비가 내리며 떨어져 하얀 꽃길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하니 방금 전 헤어졌던 시멘트 포장도로와 다시 만나고 그곳에는 드넓은 고관대작의 호화묘지 같은 묘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김해김공묘지를 둘러보고 나와 동백꽃도 사진으로 남기고 진행하니 더욱 무성해진 잡목과 잡풀들이 자라는 등로를 타고 걸어가 본다.
이제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 바위 너덜 등로가 짧게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가파르게 오르니 230.7봉 정상에 도착을 하지만 보이는 것이 없기에 종이 코팅지만 담고 곧바로 진행을 한다.
다시 평이하게 잡풀 등로를 따르니 큰 바위들이 너덜길을 만들어 놓은 등로를 타고 그 암릉을 넘어 본다.
아직도 짙은 안개가 남아 몽환적인 분위를 연출하는 것은 여전하다.
그 바위 암릉 등로를 지나니 다시 파란 초록의 등로가 눈을 맑게 만들고 한동안 그런 초록의 등로를 평이하게 걸어 본다.
다시 등로가 좌측으로 꺽여 진행되고 해남땅끝까지 5 Km 남아 있다는 이정목을 지나 한동안 평이하게 걸어 본다.
땅끝까지의 거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아 누군가 선답자가 이야기 했듯이 지루하기 그지 없는 등로처럼 느껴진다.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이제 등로는 넓은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한동안 그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이제 서서히 안개가 엷어지며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그 넓은 비포장 임도 한가운데에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가 달려 있다.
많은 띠지들이 온라인상에서 잘 알고 지냈던 선답자들이기에 반갑기 그지 없다.
모두들 잘 지내시고 계시면서 여전히 열정적인 산행을 이어가고 있겠지요
이제 해남땅끝까지 4.2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묯기의 묘지가 있는 장소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오랫만에 안개가 벗겨져 내려다 보이는 땅끝마을과 그 앞으로 펼쳐진 남해 바다를 조망해 본다.
그 땅끝마을 우측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정상에 하얀 안개를 덮고 조용히 서 있는데 보이는 거리와는 달리 저 능선을 타고 땅끝마을까지 도착하는데에도 아직 2시간 가까이가 남아 있는 거리이다.
그 묘지를 지나 진행하니 등로는 직진으로 내려가다 우측으로 꺽여 진달래꽃 능선으로 이어지고 한동안 평이하게 걸어가니 해남땅끝까지 2.78 Km 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 이정표를 지나 오르니 작은 자갈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그 자갈 사이로 피어난 예쁜 철쭉이 고운 등로도 지난다.
그곳을 지나 오르니 큰 바위들이 정상을 차지한 지도상 해발고도 225.4봉인 언제나봉인데 언제나봉의 유래나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언제나봉을 지나 완만하게 잡목 구간을 내려가니 잘 조성된 가족 납골묘가 보이고 그곳으로 이어진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잠시 후 포장도로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열려 있는 기맥 마루금이 나타난다.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해남땅끝까지 0.42 Km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땅에 떨어져 있는데 이 이정표는 아마도 기맥 등로가 아닌 좌측 등로를 타고 내려갈 수 있는 우회 등로처럼 보인다.
한동안 오르니 다시 등로 주위에 큰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잠시 후 큰 바위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개재봉에 도착을 한다.
어느 자료에도 나와 있지 않은 개재봉인데 3000산 오르기의 한현우님이 이곳을 개재봉이라 알려주고 있다.
그 개재봉을 지나 다시 완만히 내려가니 큰 소나무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차량 통행 소음이 들리는 나무데크 아치로 연결된 다리가 보인다.
살펴보니 해남땅끝을 이어주는 77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갈두재로서 예전에는 도로를 건넜는데 이제는 도로 건너에 해남땅끝호텔이 생기면서 이렇게 나무데크 다리가 생긴 듯 하다.
갈두재는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의 송호해수욕장과 갈두리 사이를 잇는 고개인데 송호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서 최남단의 해수욕장이고 갈두리가 우리나라 최남단의 마을이라고 보면 이 고개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남단의 고개라 해도 될 것 같다.
우리나라 최남단을 통과하는 77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가고 최근에 설치한 듯한 구름다리가 있으며 구름다리 건너 우측으로는 해남땅끝테마호텔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한번쯤 들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래본다.
나무데크 아치를 건너 진행하니 우측에 해남땅끝호텔를 두고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조성되어 있어 그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한다.
잠시 진행하다 살펴보니 등로 좌측 아래로 안개속에 땅끝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는데 그 멀리 있어야 할 완도와 보길도와 노화도 및 청산도는 안개속에 오리무중이다.
그래도 이 정도로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땅끝마을 우측으로는 오늘 산행 종착지가 가까운 땅끝전망대가 있는 사자봉인데 안개가 정상을 가리고 았어 아쉽기만 하다.
임도를 진행하며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조망을 즐기니 다시 드넓은 호화묘지 한기가 보이는데 이곳도 역시 김해김공 묘지이다.
그호화묘지를 지나니 우측으로 육각정자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땅끝마을로 하산 할 수 있는 갈림 사거리가 있는 암부를 지나는데 그 안부에는 땅끝마을까지 2 Km 남아 있다는 이정목이 서 있다.
호텔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오르니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잠시 후 운동시설이 설치된 장소를 지나 길게 이어진 나무계단이 다시 이어진다.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길게 이어진 나무 계단을 어렵게 오르니 팔각정자가 서 있는 해발고도 164.6봉인 망집봉 정상에 오른다.
하지만 좋아야 할 조망하나 없으니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길게 이어진 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가 본다.
망집봉(168봉)은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와 갈두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오르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되어 있으며 정상에는 멋있는 팔각정자가 설치되어 있고 지난 온 도솔봉과 가야할 땅끝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라는데 오늘은 안개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으니 긴 한숨을 토해내고 잠시 쉰 후 다시 나무계단을 타고 한동안 내려간다.
길게 이어진 나무 계단을 타고 한동안 내려가니 다시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는데 등로 좌측으로는 벤취 쉼터가 보인다.
그 벤취 쉼터를 지나니 다시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짧은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 전망대까지 7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이 이정표에는 여전히 땅끝천년숲옛길이란 글귀가 보인다.
해남땅끝천년숲옛길은 고산 윤선도와 추사 김정희 및 다산 정약용이 교류했던 전남 해남 땅끝길을 말하는데 송지면 땅끝마을 맴섬 선착장에서 미황사와 현산면 봉동계곡 및 대흥사를 거쳐 옥천면 탑동마을까지 52 Km의 옛길을 말한다.
땅끝길과 미황사 역사길 그리고 다산 및 초의 교류길 등 3가지 테마로 구분한 천년숲 옛길은 작은 오솔길을 활용해 자연스러운 숲길을 조성했으며 옛길을 걷는 동안 만나는 마을에는 장승과 안내판을 설치했다.
6곳에 설치한 스토리텔링형 안내판은 해남의 대표 관광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전체 구간 중에서도 땅끝 맴섬에서 도솔 코스는 달마산과 갈두산을 잇는 땅끝 기맥을 따라 걷는 곳으로 시야가 트여 아름답고 산행시간은 주로 평지인 옛길로 약 3시간에서 4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미황사에서 도솔암 구간 중간에 암반이 허물어져 위험한 150 미터는 그대로 방치되어 옥에 티가 되고 있다.
그 이정표를 지나 진행하니 비가 그치며 안개도 사라진 아름다운 초록의 봄 등로가 펼쳐져 있다.
넓은 등로를 타고 초록의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저 멀리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 옆으로는 테마가 있는 땅끝탐방로의 가거리갈림길이란 안내판이 서 있다.
그 안내판 옆에는 이제 전망대까지 400미터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이정표도 보인다.
그 공터를 지나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는 안전목책이 설치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화장실이 보이고 그 화장실 건물 우측으로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니 땅끝전망대 주차장이 나타난다.
그 주차장을 지나 다시 넓은 이도를 타고 전망대로 가는 초입에는 땅끝해남관광안내도와 한반도 촤남단 해남이란 안내판이 서 있고 그 우측으로 전망대와 땅끝탑으로 가는 방향 이정표가 서 있다.
그곳에서 잠시 사진 몇장 남기고 안전목책이 설치된 계단 등로를 따라 한동안 힘없이 걸어 오르니 드디어 땅끝전망대에 도착을 해 잠시 휴식을 취하며 후미를 기다려 본다.
이곳 땅끝 전망대가 있는 곳은 사자산(156.2봉)으로 전남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에 있는 산으로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하며 예전에는 칡이 많이 난다고 해서 갈두산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사자산으로 부르고 있으며 정상에는 땅끝 전망대가 자리잡고 있다.
산 전체가 공원화 되어 많은 여행객들이 찾고 있는 사자산이 되었고 특히 모노레일을 설치해 남녀노소 누구라도 쉽게 오를 수 있도록 해 놨다.
하지만 이곳에 도착을 하니 다시 안개가 심해져 땅끝전망대도 올려다 보기 힘이 들 정도이다.
한동안 후미를 기다리다 우회했다는 소식에 땅끝유래석에서 충ㄱ 사진 몇장 남기고 계단을 타고 그 땅끝 전망대를 출발한다.
그 땅끝 전망대를 출발해 계단을 내려오니 계단이 끝나는 지점 좌측으로 땅끝이란 조형물이 서 있다.
이곳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북위 34도 17분 21초의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땅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만국경위도에서는 우리나라 전도 남쪽 기점을 이곳 땅끝 해남현에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이고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3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였다.
오래 전 대륙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우리민족이 이곳에서 발을 멈추고 한겨레를 이루니 역사이래 이곳은 동아시아 3국 문화의 이동로이자 해양문화의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그 땅끝 전망대를 내려 와 진행하니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그 옆에 이정판이 서 있는데 살펴보니 좌측으로 땅끝마을과 갈두항 및 보길도 방향이 표기가 되어 잇고 우측으로는 생태산책로와 땅끝탑 방향이 표기되어 있다.
이제부터 나무계단을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 400여미터 떨어져 있는 땅끝탑으로 내려가 본다.
땅끝탑은 땅끝 끝자락 토말탑이 있는 바닷가 갯바위가 위도(북위 34도)상으로 한반도의 끝이다.
한반도의 최남단에 있는 사자봉 아래 바닷가에 있는 땅끝탑에서 더 이상 마루금을 이어 갈 수 없기에 이곳에서 땅끝기맥 산행을 마무리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만국 경도와 위도에서는 우리나라 전도 남쪽의 기점을 이곳 땅끝 해남현으로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 말하고 있다.
또한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이고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 이천리를 잡아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땅끝탐 아래를 살펴보니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잇고 그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바로 남해바다로 이어지고 있다.
그곳으로 내려가 남해바다에 손이라도 담그고 뒤돌아 올라오고 싶었는데 모든 종주대들이 버스에 도착을 했다는 소식에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곧바로 땅끝탑을 출발해 갈림 삼거리인 땅끝탑 130미터 그리고 땅끝마을 500미터 이정표로 뒤돌아 온다.
조금은 아쉬움이 남지만 다음에 여행으로 왔다가 다시 한번 더 들려 보기로 하고 곧바로 출발을 한다.
어렵게 계단을 타고 빠르게 진행해 뒤돌아 나오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땅끝마을 500미터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땅끝마을 방향으로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등로를 따른다.
다시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곧이어 땅끝 전망대와 땅끝탑 주차장이 보이는데 우리들 버스가 보이지 않아 잠시 헤매다 어렵게 주차장 입구에 서 있는 버스로 오른다.
이곳 맴섬은 다른 종주대가 담은 사진으로 대신해 보는데 몇 번인가 들렸던 곳이기에 그 추억도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땅끝마을 앞 바다에 있는 맴섬은 땅끝마을 앞 갈두항 옆에 있는 조그만 두개의 섬으로 한 쌍의 매미처럼 보인다고 해서 맴섬이라고 불린다는데 이곳의 일출은 애국가 제창 시 TV의 주화면으로 소개가 될 정도로 아름답고 환상적인 모습이다.
몇 번인가 들려 고운 추억을 남겼던 곳이기에 이미 고인이 되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땅끝전망대에서 부터 예기치 못한 버스기사와의 실갱이로 인해 기분 좋아야 할 땅끝기맥 마무리가 뒤죽박죽이되면서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
이곳 땅끝에서의 식사가 마땅치 않고 또 식사가 된다해도 샤워가 불가능하기에 완도대교를 지난 군외의 활어회 센타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그 거리는 해남으로 들어가는 거리보다도 가까운데 버스 기사가 최소한 십만원 이상을 더 요구를 해 황당하기만 하다.
작년 10월 산행을 시작하면서 버스 회사 대표와 7구간 약정된 금액으로 진행을 하기로 한 것인데 왜 마지막 구간에 갑자기 버스 기사가 이런 황당 무계한 요구를 그것도 당당히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수많은 인연중에 이 버스회사와의 인연도 중요한 인연이라 생각을 했는데 두번 다시 만날 기회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아쉽지만 즐거웠던 땅끝기맥 산행의 대단원을 마무리 한다.
그동안 함께해준 모든 종주대와 기획테마팀에 합류해 준 산우님들에게도 개인적으로 감사한 마음 전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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