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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맥과 중요 지맥 산행(완료)/땅끝기맥(호남·완)

땅끝기맥 제6구간 오소재에서 닭골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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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해남군의 땅끝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5년 04월 04일과 05일 (토요 무박 일요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이슬비와 짙은 안개로 조망이 전혀 없었던 초 날씨

산행온도 영상 07도에서 영상 18도

산행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총 27명(땅끝기맥 종주대 총 20명과 두륜산 기획테마 산우님 7명 포함)

산행코스 : 오소재(827번 2차선 지방도로)-통합기준점(163.2미터)-무명묘지2기-무명묘지2기-무명묘지2기-222봉 이정판-산죽지대-바위너덜지대-암릉지대-법정등로 만나는 지점-나무계단-통천문-노승봉(685봉)-쇠사슬 로프 암릉구간-두륜산 노승봉 삼거리 안내판-노승봉 이정표(오심재 0.8 Km와 노승봉 0.1 Km, 두륜봉 1 Km와 가련봉 0.2 Km, 천년수 만일암터 0.4 Km)-쇠사슬 암릉구간-나무계단-가련봉(703봉)-안전로프 암릉구간-암봉 우회등로-나무데크 구간-내리막 나무계단-짧은 바위너덜 구간-만일재 헬기장-아침식사-만일암터천년수 입구 이정표(오심재 1.37 Km와 천년수 만일암터 0.17 Km 그리고 미륵암 0.77 Km, 가련봉 0.53 Km와 두륜봉 0.33 Km, 대웅전 2 Km)-만일재 이정표(오심재 1.5 Km와 가련봉 0.5 Km, 두륜봉 0.3 Km, 대웅전 2.35 Km와 천년수 0.2 Km)-나무계단-두륜봉 입구 두륜산도립공원안내판-이정표(만일재 0.3 Km, 두륜봉 구름다리 방향표시)-철계단-구름다리 통과-두륜봉 이정표(가련봉 0.8 Km, 두륜봉 0.1 Km, 대웅전 2.05 Km와 진불암 0.8 Km)-두륜봉(630봉)-두륜봉 갈림 삼거리 복귀-산죽지대-안전로프 직벽 암릉구간-주봉 갈림삼거리-안전로프 암릉구간 안부-암봉 로프구간-산죽과 잡목구간-공터-키큰 산죽지대-헬기장-키큰 산죽지대-508봉-띠밭재(태양광 산악위치표지판 두륜산 1번)-지독한 잡목과 산죽지대-암봉 우회등로-산죽과 암봉 혼재지대-도솔봉(672봉) 산불감시탑-산죽지대-암릉지대-산죽지대-방송국 철조망-철조망 우회등로-시멘트 임도-KBS 방송국-목포MBC 방송국-방송국 우회 비포장 임도-철조망 우회 등로-방송국 무인초소-대둔산(673봉)-암릉지대-안전로프 암봉-암릉지대-산죽과 잡목지대-암릉구간-산죽지대-짧은 암릉지대-산죽지대-진달래꽃 밭 지대-암봉 우회지대-준.희님 응원 이정판-동백나무 구간-암릉구간-진달래 등로-산죽지대-암릉구간-암봉 우회등로-짧은 바위너덜구간-410봉-산죽지대-동백나무 지대-암봉 우회등로-암봉 우회등로-299봉 우회등로-진달래 등로-125번 송전탑-무너진 돌담구간-235봉 소나무-소나무 식재구간-편백나무 식재구간-진달래꽃 구간-소나무와 편백나무 식재구간-호화묘지 1기-비포장 임도-능선진입-구산지 조망-잘 가꿔진 묘지2기-65번 송전탑-묘지지대-콘크리트 계단과 철조망-13번 4차선 지방도로-시멘트 포장도로-지하통로(13번 지방도로 통과)-닭골재-산행종료-해남읍 해남참숯불가마사우나에서 샤워-태현식당에서 매식 후 귀경

산행거리 : 약 13.18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하루종일 내린 이슬비와 짙은 안개로 힘들게 암봉을 넘어 진행하며  09시간 10분 (04시 57분부터 14시 07분까지)

교통편 : 땅끝기맥 40인승 전용 버스 이용 

땅끝기맥이란 ???

호남정맥의 바람봉 분기점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쳐 육지의 최남단인 땅끝까지 내려가는 도상거리 123 Km쯤 되는 산줄기다.
일부는 영산강의 남쪽 울타리가 되며 일부는 탐진강의 서쪽 울타리가 된다.
길이나 높이에 비해 월출산과 첨봉에서 오소재, 두륜산에서 달마산 지나 도솔봉등 암릉구간이많은 옹골찬 산줄기고 월출산, 두륜산, 달마산등 유명산을 지난다.
지나는 산은 계천산, 국사봉, 활성산, 월출산, 도갑산, 월각산, 별뫼산, 서기산, 첨봉, 두륜산, 대둔산, 달마산, 도솔봉등이다.

 

 

폭설과 빙판으로 중단되었던 땅끝기맥 산행에서 다시 하루종일 내리는 이슬비와 짙은 안개로 조망없이 많은 아쉬움만 남기고 안전산행으로 위안을 삼았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작년 2014년 12월 초에 계라리고개에서 오소재까지 진행하다 그동안 내렸던 폭설과 등로 위 암릉에 달라붙어 있는 빙판길로 인해 중단했던 땅끝기맥을 만 4개월 만에 다시 출발을 해 보지만 이번에는 봄비와 안개가 안타까움을 더하는 시간이 되었다.

산행 1주일 전부터 산행지의 날씨 정보를 확인해 보니 산행지에 비가 내리는데 하루 종일 내린다는 기상청 예보에 고민과 긴장의 나날을 보낸다.

전국 산행지 중 가장 아름다운 암릉 사이의 진달래꽃을 만날 수 있는 봄 산행지의 두륜산이지만 그 두륜산을 지나면 도솔봉에서 대둔산을 지나 닭골재까지 너무나 위험한 암봉과 암릉이 연이어 기다리며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는 등로이기에 내리는 비에 산행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수없이 해 보는 시간이다.

다행히 산행일이 가까워지면서 산행지의 빗줄기는 가늘어져 새벽에 1 mm 미만 내리고 낮부터는 개인다는 소식에 한숨을 놔 보지만 미끄럽고 위험하기는 매마찬가지이기에 안전 또 안전을 강조해 본다.

 

한식이라 지방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산행 참여인원도 많이 줄어들고 여유있는 좌석에 앉아 제법 막히는 도로를 따라 달려가다 두번의 휴식을 취하고 오소재에 도착을 하니 아직도 이슬비가 내리지만 생각보다 많은 양이 아니기에 비옷도 입지 않고 방수 옷을 걸치고 기획테마 산행에 참여한 산우님들을 오소재 수도가 있는 고갯마루 아래로 내려 보내고 정예화된 20명의 종주대와 함께 어둠을 뚫고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새벽 5시가 가까워진 시간이다.

예상 산행 시간은 오후 2시까지이지만 안개비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속에 진행을 해야 하기에 조금 늦어진다 해도 재촉은 하지 않고 순리대로 진행을 해 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긴장된 출발을 하는 시간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비는 많이 내리지 않아 다행이지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와 이슬비로 인해 조망이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그렇게 삼산면 및 북일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703미터이고 소백산 줄기의 남단에서 남해를 굽어보며 우뚝 솟아 있으며 이 산은 주봉인 가련봉(703미터)을 비롯하여아쉬움을 등로에 남기고 오르니 노승봉과 가련봉을 지나 만일재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비에 젖은 산죽과 암릉을 따라 걸어가니 목책으로 막아 놓은 두륜봉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해 우측 계단을 타고 구름다리를 구경한 후 두륜봉에 도착해 추억 하나 남겨 본다.

두륜산은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과  두륜봉(630미터), 고계봉(638미터), 노승봉(능허대 685미터), 도솔봉(672미터), 혈망봉(379미터), 향로봉(469미터)과 연화봉(613미터) 등 8개의 봉우리로 능선을 이루며 1979년 12월 두륜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원래 두륜산은 대둔사의 이름을 따서 대둔산이라 칭하다가 대둔사가 대흥사로 바뀌자 대흥산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대둔산의 명칭은 산이란 뜻의 듬에 크다는 뜻의 관형어 한이 붙어 한듬에서 대듬으로 다시 대둔으로 변한 것으로 풀이되며 때문에 과거 대둔사는 한듬절로 불리기도 했다.

두륜의 뜻은 산 모양이 둥글게 사방으로 둘러서 솟은 둥근머리산 또는 날카로운 산정을 이루지 못하고 둥글넓적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연유한 것과 또한 대둔사지에 의하면 두륜산은 중국 곤륜산의 륜과 백두산의 두자를 딴 이름이라고도 한다.

 

 

버스 차창에 부딪히는 이슬방울을 바라보며 선잠을 자다 깨어보니 벌써 광주를 지나 해남으로 달려가고 잠시 후 작년에도 들리지도 못했던 오늘 산행 들머리인 오소재에 도착을 해 제일 먼저 버스밖으로 나가보니 생각보다 비는 멈춰있고 이슬비만 내리는데 비옷 없이 산행을 해도 큰 지장이 없을 정도이기에 큰 고민을 덜어 보는 시간이다.

이슬비로 인해 스트레칭도 못하고 산행 준비 후 기획테마팀에 합류한 7명의 산우님들을 올라온 고갯마루 밑 수돗가가 있는 산행 들머리로 내려 보내고 20명의 종주대가 잠시 인원 확인 후 주위 사진을 담고 곧바로 우측 오소재 쉼터란 이정석을 지나 공원을 통해 산행 들머리로 들어가며 어둠속에 기나긴 하루의 문을 열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곳 오소재(164미터)는 해남군 삼산면과 북일면을 가로 지르는 827번 2차선 지방도가 지나가며 예전에 오시미재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산적들의 행패가 하도 심해서 50명 이상의 사람들이 떼를 지어서 넘어야 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란 설과 함께 또 다른 설은 주작산의 암릉들이 까마귀의 집처럼 생겼다고 해서 오소재로 부른다고 하며 우측으로 오소재 약수터가 있고 좌측에는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오소재 쉼터가 있다.

이곳 약수터는 주말에 줄을 서서 물을 받을 정도로 물맛이 좋은 곳이라고 하며 이러한 명성 때문에 목포, 진도, 완도, 강진 사람들도 물을 받으러 온다고 한다.

공원으로 들어가니 수준점이 보이고 곧이어 비에 젖은 벤취가 보이는데 초장부터 산행 들머리 우측의 묘지로 오르는 등로를 따라 짧은 알바 후 다시 뒤돌아 내려 와 정상 마루금을 타고 제일 후미로 천천히 올라 본다.

 

 

제일 앞서 오르는데 선답자들의 띠지도 보이지 않고 트랙은 자꾸만 정상 등로를 벗어나 우측으로 진행을 하는데 잠시 후 잘 조성된 묘지와 만나니 등로는 끊기고 더 이상 진행 할 수 없다.

그러는 동안 뒤따르던 종주대는 좌측의 정상 등로를 찾아 등로 좌측에서 목소리가 들려 다시 오소재 공원으로 내려가 정상 등로를 따라 제일 후미로 천천히 올라간다.

잠시 오르니 무명묘지 2기가 나타나고 이제 이곳 남녘은 완연한 봄을 알리는 파란 잎이 어둠속에서도 빛나고 있다.

잠시 더 오르니 또 다른 무명묘지 2기를 지나 연이어 나타나는 무명묘지 2기를 다시 통과해 오르니 금새 222봉이란 이정판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해 심호흡 한번 해 본다.

 

 

살펴보니 이곳 남해안쪽으로는 어제 많은 비가 내렸는지 등로가 흥건히 젖어 있고 제법 많은 양의 물이 흐르고 있다.

그렇게 진행을 해 222봉을 지나 오르니 박달나무인지 단단해 보이는 활엽수 지역을 지나 키 작은 산죽밭을 따라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등로 우측으로 우렁찬 계곡 물소리가 가깝게 들리는데 그 물소리를 들으며 진행하니 커다란 바위가 등로에 나타나 그 바위를 통과한다.

다시 가파르게 오르니 새벽 5시가 다 되어 산행을 시작해서 그런지 금새 주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산죽과 큰 바위들이 간간히 혼재되어 있는 등로이다.

다시 후미로 처지는 종주대 한분을 모시고 산죽밭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이제 바위 너덜지대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 옆으로 비에 젖어 고개 떨구고 있는 분홍빛 진달래꽃을 만나 잠시 눈을 맞춰 본다.

 

 

그 진달래꽃을 카메라에 담은 후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거대한 암벽이 올려다 보이고 눈 앞으로는 큰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 바위 너덜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도착을 한다.

살펴보니 생각보다 길게 이어진 너덜길이 마치 설악산이나 무등산의 모습과 닮아 있고 비에 젖어 미끄럽기에 조심하며 오르니 이제 여명이 밝아 오는지 제법 멀리 희미한 풍경이 나타나는데 안타깝게도 짙은 안개로 인해 뚜렷한 모습이 아니다.

다만 일출은 보지 못한다 해도 진행하다 보면 안개가 걷히고 멋진 조망과 풍경을 볼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지고 너덜등로를 올라가 보는 시간이다.

 

 

길게 이어진 바위 너덜지대를 오르니 바로 앞서 진행하던 종주대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그곳에서 종주대 한명을 기다렸다 너덜지대 좌우측으로 나타나는 잡목가지에서 돋아나는 연두빛 생명을 담아 보기도 한다.

그렇게 다시 너덜구간을 따라 오르니 바로 눈앞에 거대한 암봉이 짙은 안개속에 올려다 보이고 등로는 이제 우측 짧은 직벽으로 이어지고 있다.

살펴보니 바로 좌측으로 올려다 보였던 암봉은 노승봉으로서 능허대라고 불려지는 봉우리였다.

 

 

짧은 직벽을 타고 오르니 전에 보지 못했던 나무계단이 잘 설치되어 있어 눈을 의심해 보는데 그 계단 좌측 위를 올려다 보니 옛날에 어렵게 지났던 통천문이 그곳에 올려다 보인다.

하늘로 통하는 문이란 뜻으로 전국 대부분의 유명한 산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는 통과해야 하는 문으로서 늘 힘들고 고달픈 산행의 마지막 구간을 이루고 있는 특징이 있는데 이곳 두륜산에도 역시 멋진 통천문이 있으며 이곳을 넘으면 노승봉이란 정상이 있음을 의미하니 즐거운 마음으로 그 통천문 우측의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 본다.

하지만 오래전 올랐을 때 너무나 힘들게 올랐던 기억을 가지고 내려온 이 산객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낯설은 풍경이기도 하다.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그 통천문을 좌측에 두고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니 더욱 짙어지는 안개속에 넓은 암반으로 이뤄진 노승봉 정상에 올라보지만 보이는 것이 없으니 아쉬움이 깊게 남는 시간이다.

예전에 올랐을 땐 저 정상석이 사라져 정상석 하나 없이 추억 한장 남겼었는데 새로 세워진 앙증맞은 정상석이 그나마 아쉬운 종주대의 마음을 달래주는 듯 하다.

두륜산 노승봉(685)에는 정상 표지석이 있고 넓은 평평한 암반으로 이뤄진 노승봉은 위가 넓어서 능허대라고도 하는데 능허는 허공을 가르다와 비상하다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절경에 위치한 정자나 누각 등에 많이 사용하던 관용어였는데 이곳 노승봉에 능허대란 이름이 붙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절경이었다는 뜻일 것이다.

정상에 서면 북쪽 방향 아래로 대흥사가 여덟 장 연꽃 잎 위에 얹힌 듯 평화롭게 자리 잡은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서쪽 방향으로는 가련봉으로 이어지는 봉우리가 연이어 보이며 건너편으로는 도솔봉과 연화봉 능선도 눈에 들어온다는데 오늘은 짙은 안개로 인해 마음속으로만 그 풍경을 내려다 보는 시간이 되었다.

남쪽 방향으로 완도와 해남 사이를 잇는 도암만과 넓은 평야가 펼쳐지고 동쪽 방향으로는 덕룡과 주작산 줄기가 저 아래로 이어져 있는데 그곳들 높이가 400에서 500미터 대라 그런지 상당히 아래로 보이기도 한다는데 이 역시 다음에 다시 올라 그 이름을 불러줘야 할 것 같.

 

 

그 노승봉 정상에서 후미를 기다려 추억 한장 남겨주고 다시 바위를 따라 내려가니 그 암릉 위에는 굵은 쇠사슬이 늘어져 있어 조심하며 내려가 본다.

오래전 기억에 이곳에서 바라본 주작덕룡과 도암만 그리고 대흥사쪽 풍경이 아름다웠다는 생각이며 지금부터 올라야 할 가련봉쪽 암릉과 병풍바위 같은 위풍당당한 풍경이 또한 황홀경이었다는 생각인데 오늘은 참으로 아쉬운 시간이다.

그래도 그렇게 짙은 안개속에 내려가다 보니 눈 앞으로 희미한 거대 암봉이 나타나고 살펴보니 우측 우회등로를 따라 진행해야 할 가련봉 전위봉 같은 무명봉이었다.

추억속에 만났던 오래전 빛바랜 사진처럼 그 모습을 기억해 보려고 노력해 본다.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암릉을 내려가니 안부가 나타나고 그 옆에는 떨어진 현위치 제7지점 두륜산 노승봉 삼거리란 이정판이 보이고 그 옆에는 노승봉이란 이정표가 서 있다.

가야 할 가련봉까지는 200미터 거리이고 우측으로는 만일암터 천년수까지 400미터 거리란 표시가 눈에 들어 오는데 천년수는 약수가 아닌 식물인 나무를 뜻한다.

만일암과 천년수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찾을 수 있어 정리해 본다.

만일암은 두륜산의 가련봉 아래에 있는 암자로 대둔사의 여러 암자 중에서 지세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옛날 기록과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만일암이 비록 암자에 속하지만 대둔사가 처음 시작된 곳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하여 다산은 만일암지에서 유송  정관존자가 창건하고 소량  선행대덕이 중건하였다고 기록하면서 이는 믿을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강희 14(1675) 융신선사가 중건하고 현기화상이 강희 말년에 중수하였으며 응명두타가 건륭년간(1736-1795) 중수하였다.

이후 가경 14(1809) 자암전평과 은봉두예이  다시 중건하였는데 이것은 믿을만한 사실로서 현재 암자는 무너져 없고  터만 남아 있다.

만일암에서는 만화원오연해광열금하우한, 금봉희영백화찬영지월정희 및 응성민훈 등의 여러 고승들이 머물렀으며 암자터 주변에는 오층석탑연자맷돌석등샘터 등이 남아 있다.

만일암지에는 7층석탑이 있으며  탑은 아육왕이 세웠기 때문에 아육왕탑이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고 현재 오층의 석탑은 석등의 옥개석을 상륜부에 올려놓은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7층탑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전설에 의하면 정관존자가 만일암을 창건할  암자보다 탑을 먼저 세웠다고 하며 탑을 완성한 후에 암자를 지으려니까 해가 서산 너머로 기울고 있어 그는 해가 지지 못하게 탑에 묶어 놓고 암자 세우는 작업을 계속했는데 암자를 완공 한 후에 암자명을 잡을 만자와 해일를 써서 만일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석탑 앞에 있는 샘터는 배수가 잘되지 않아서 물맛은 좋지 않은데 이 샘은 원래 음양의 조화를 고려하여  양수 샘을 만들었다고 한다.

암자터 아래쪽에  수의 괘목 나무가  있는데 이것을 고려하여  양수 샘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괘목나무가  그루였는데  그루는 죽고 나머지  그루만 남아 있는데 식물 학자들은  나무의 수령을 천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래서  나무를 천년수라 부른다.

어쩌면  나무의 나이테가  만일암의 역사라  것이다.

 

 

노승봉 이정표를 지나 좌측에 높은 암봉을 두고 우회하며 너덜길을 따라 걸어가니 다시 암릉에 철판 계단과 쇠사슬 로프가 달려있고 미끄럽기에 주의하며 오르니 이제 등로 우측으로 옛날 철판 계단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가련봉이 드높이 올려다 보인다.

조금 더 오르니 이곳에도 안전하게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안전하게 오르고 오르다 등로 좌측 저 멀리 바라보니 멋진 암봉이 짙은 안개속에 가물거린다.

그렇게 그 정상에 오르니 금새 바위 위에 703미터의 가련봉이란 정상 표시가 되어 있는데 제대로 된 정상석 하나 없어 가련하게 다가온다.

이 가련봉은 해발고도 703미터로서 두륜산에서 가장 높은 봉이면서도 정상 대접을 받지 못하고 두륜봉에게 그 정상을 넘겨 줬으니 이름마저 가련봉이라 지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곳 역시 짙은 안개속에 보이는 것이 없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암릉 위에 달려있는 철판 계단과 쇠사슬 로프를 따라 조심하며 내려가 본다.

  

 

두륜산의 최고봉이면서도 주봉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두륜봉에게 그 명성을 건네 줬기에 붙여진 이름인지 가련봉이란 봉우리 이름이 가련하게 보이지만 그 봉우리의 암릉은 전혀 가련봉과는 어울리지 않는 봉우리이다.

암릉을 넘어 진행하니 비에 젖은 암릉 위에는 로프가 달려있어 조심하며 그 암봉을 내려 온다.

가련봉 암릉을 내려오다 우측을 보니 예전에 오르고 내려갔던 쇠사슬의 로프와 철봉이 보여 잠시 옛날 추억에 젖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더 진행하니 안개속에 멋진 암봉이 흐릿한 실루엣으로 다가 오는데 그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이 산객에게는 큰 한숨만 나오게 만드는 안개이다.

 

 

진행해야 할 등로 좌측으로 솟아 있는 암릉이 아쉽고 안타까운 시간이지만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 조망이기에 다시 체념하고 맥 잇기 산행에 전념을 해 본다.

앞을 봐도 멋진 암봉이 솟아 있고 뒤를 돌아 봐도 아름다운 암봉이 우뚝 솟아 있지만 선명한 그림은 없이 그저 실루엣으로 다가오니 다시 한숨만 나온다.

그렇게 잠시 바위 너덜길을 따라 걸어가니 바로 앞에는 길게 이어진 가파른 나무 계단이 보인다.

몇 년 전에 왔을 땐 보지 못했던 나무계단이기에 살펴보니 예전 등로는 나무계단 안쪽으로 희미한 흔적만이 남아 있어 옛 추억을 더듬게 만든다.

 

 

그 긴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오니 등로 좌측으로 기묘한 바위들이 보이고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진행한 암봉들이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거대한 암봉의 벽면이 아름답게 다가오고 그렇게 조금 더 진행하니 나무계단이 끝나면서 완만한 오르막 등로에 짧은 바위 너덜길이 펼쳐져 있다.

예전에 오를땐 이 정도의 바위 너덜길은 없었다는 기억인데 오늘은 왜 이리 바위 너덜길만 보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시간이기도 하다.

 

 

바위 너덜길 좌우측으로는 키 작은 산죽밭이 펼쳐져 있고 그곳에는 파란 잎새를 흔들며 산죽들이 펄럭이고 있다.

다시 주먹을 닮아 있는 바위를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금새 드넓은 공터인지 아니면 헬기장이 나타나고 저 끝자락에 서 있는 이정표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만일재이다.

만일재에서 우측 만일암터 천년수입구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 바람이 없는 장소에서 아침상을 펴고 허기를 달래 본다.

식사 후 나오니 그 바로 앞에는 만일암터 천년수입구란 이정표가 서 있는데 오심재까지 1.37 Km란 거리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만일암터 천년수입구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다시 넓은 헬기장으로 올라 와 우측으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니 그 공터가 끝나는 지점에 만일재란 이정표가 서 있고 이제 두륜봉까지는 300미터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이곳 만일재에서 올려다 보는 가련봉이 아름다웠고 그 좌측 저 멀리 내려다 보였던 다도해가 또한 환상이었다는 기억이 있는데 오늘은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짙은 안개 세상이니 안타까운 마음만 내려 놓고 출발을 해 본다.

 

 

만일재를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라 한동안 산죽밭을 걸어 본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는 이곳까지 진행하면서 수없이 만났던 바위와 암릉이 사라지고 그저 평이한 산죽 등로가 이어지니 어딘지 모르게 다른 등로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갑자기 등로는 나무 계단으로 바뀌고 그 계단을 따르니 계단 좌측으로 두륜봉입구란 이정판에 두륜산도립공원안내도가 서 있다.

이곳에서 땅끝기맥은 막아 놓은 목책을 지나 직진으로 진행하여야 하지만 우측 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 구름다리와 두륜봉을 다녀와야 하기에 우측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가 본다.

 

 

우측 나무계단을 따라 잠시 더 오르니 이제 나무계단은 철계단으로 바뀌면서 옛날 추억을 더듬어 보는 시간이다.

예전에 오를 땐 이 나무계단은 없었지만 철계단은 남아 구름다리로 오르는 길을 안내해 주고 있었는데 그 풍경만큼은 벗겨진 붉은 페인트 이외에는 동일하게 다가온다.

이곳 두륜산의 명물이 된 그 구름다리 밑을 지나 바위 암릉으로 오르면 우측에 멋진 암봉이 서 있고 직진의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능선을 따르면 그 봉우리 끝자락에 검은 정상석이 서 있는 두륜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함께 진행하는 종주대들과 함께 보이지 않는 조망을 아쉬워하며 두륜봉 정상에서 처음으로 미니 단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두륜산은 육산이자 골산으로 부드럽고 덕스러운 산이 바탕을 이룬 가운데 커다란 성채 같은 암봉들이 몇 개 솟아 있다.

이 암릉 등날을 따르며 만개한 연꽃 형상이라는 두륜산을 조망하는 멋은 아마추어 암릉 애호가들에겐 최상의 것이라 할 만하다.

등산로의 짜임새가 뛰어나고 전망이 트이는 지점이 많으며 산행 도중 운치 있는 암자가 곳곳에 자리해 산행 맛이 특히나 좋은 산이다.

참으로 멋진 풍경과 조망이 있는 두륜봉이지만 오늘은 허락하지 않으니 그저 함께하는 종주대와 함께 그 안타까움을 몸으로 표현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두륜봉에서 아쉬운 추억 한장씩 남기고 다시 구름다리 방향으로 뒤돌아 나오니 암릉 우측으로 철계단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거대한 바위 하나가 기묘한 형상으로 서 있다.

이곳에서 방금 전 올라 온 구름다리 밑으로 진행을 해야 되는데 우측 철계단으로 내려가니 잘 발달된 등로와 만나는데 우측으로는 대웅전과 진불암 하산 등로가 표시되어 있고 좌측으로는 두륜봉 구름다리 방향이 표기되어 있는 이정표를 만난다.

이제서야 잘못 내려왔음을 인지하고 좌측 두륜봉 방향으로 올라 결국 구름다위를 이루고 있는 바위 위를 타고 통과한 후 우측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내려 와 철계단을 따라 두륜봉 입구 삼거리 이정표와 등산로안내판이 서 있는 곳으로 내려온다.

 

 

그곳에서 목책이 가로막고 있는 산죽 등로로 발길을 돌려 진행하니 낙엽진 관목이 봄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도 보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낮은 무명봉에 오르고 그곳에서부터는 직벽에 걸려있는 로프를 타고 조심하며 젖어 있는 그 직벽을 내려가 본다.

그 직벽 암릉을 내려가니 여전히 바위 암릉 등로가 이어지고 그 바위를 지나 반대편 바위를 따라 오르다 뒤돌아 보니 함께하던 종주대들이 그 직벽에 걸려있는 로프를 타고 어렵게 내려오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생각보다 위험하게 생각되는 바위 등로를 지나 반대쪽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도 여전히 바위들이 줄지어 서 있다.

약간의 바위를 어렵게 올라 진행하니 진달래꽃과 산죽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가 나타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천길 낭떠러지 같은 직벽의 바위들이 서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약간의 이슬로 인해 젖어 있기에 조심하며 그 바위 등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진행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곳이 등로 좌측으로 주봉 갈림 등로가 있는 곳임을 알고 있기에 그 주봉방향을 내려다 보지만 안개로 인해 보여주질 않으니 더욱 큰 아쉬움이 남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에는 거대한 바위가 길을 막아 그 좌측 바위 등로를 따라 걸어가고 다시 이어지는 로프 바위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멋진 산죽 등로가 나타난다.

등산화와 등산바지를 적시는 산죽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금새 좁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처음에는 헬기장이 아닐까 생각해 살펴보니 그냥 일반적인 공터이다.

이곳에서도 조망이 참으로 좋을 것 같은데 짙은 안개로 인해 조망은 꿈도 꾸지 못한 채 그저 사고 없이 무탈하게 진행할 수 있기만을 빌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공터에서 뒤따르는 종주대를 기다리며 뒤돌아 보니 방금전 지나온 암봉은 이미 짙은 안개속에 숨어 가까이 있는 거리인데도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곳에서 후미가 무탈하게 진행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와 다시 앞으로 전진하니 등로 주위에는 여전히 멋진 바위들이 안개속에도 종주대의 눈길을 잡는다.

그 바위지대를 지나니 갑자기 키 큰 산죽지대가 나타나며 등로까지 완전히 덮어버려 보이는 것이라고는 파란 잎새귀를 한들거리는 산죽잎이 전부이다.

 

 

그 산죽지대를 지나니 산죽에 묻어있던 물방울들이 종주대의 등산복을 타고 흘러내려 등산화를 적시기 시작하며 산행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 산죽지대를 지나니 다시 등로는 잡목과 키 작은 산죽 등로로 바뀌며 완만하게 오르도록 되어 있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 암릉 구간을 조심히 넘으니 키 작은 산죽지대가 나타나고 좁은 공터 두군데를 지나 키 작은 소나무로 둘러쌓여 있는 헬기장에 도착을 한다.

 

 

헬기장을 지나 다시 관목과 산죽 그리고 그 사이에 곱게 피어난 진달래꽃을 구경하며 걸어가니 다시 키 큰 산죽들이 종주대의 진행에 큰 장애물로 다가오고 이제 굵은 물방울이 등산복을 적시며 등산화에도 악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온몸을 적시며 산죽밭을 걸어 오르니 바위 하나를 지나 다시 산죽밭을 진행하니 봉우리 같지 않은 평이한 등로에 508봉이란 이정판이 반겨 준다.

지도를 살펴보니 지도에도 표기가 되어 있는 508봉이다.

 

 

508봉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산죽 등로를 따르니 온몸은 더욱 굵은 물방울로 젖어 흥건해진다.

앞도 보이지 않을만큼의 짙은 안개와 키 큰 산죽들로 인해 참으로 안타깝고 아쉬운 산행의 연속이지만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음을 실감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잠시 더 눈 앞에 펼쳐진 산죽을 헤치며 어렵게 진행을 하니 산불감시카메라가 서 있고 그 아래에는 119신고 시 두륜산-1번이란 안내판 그리고 우측으로 하산하는길 도로까지 400미터란 안내판도 보인다.

살펴보니 이곳이 지도상 띠밭재란 곳인데 왜 띠밭재가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띠밭재를 지나 계속 산죽 등로를 따라 오르니 작은 바우가 나타나고 곧이어 파란 산죽 등로가 사라지며 빛바랜 회색빛 억새 등로가 이어지는데 이곳에서는 제법 멋진 진달래꽃들이 반겨준다.

잠시 더 걸어가니 넓은 너럭바위가 나타나고 이곳에서 잠시 종주대를 기다리며 쉬어 본다.

여전히 짙은 안개는 걷힐 기미도 보이지 않아 오늘 하루 종일 조망을 보기는 힘이 들것 같다는 비관론이 강해지는 시간이다.

  

 

이제 우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다시 산죽 등로가 이어지는데 등산화는 완전히 젖어 한여름철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간간히 나타나는 너럭바위를 지나 오르니 잡목과 산죽이 더욱 심해지며 온몸을 때리고 있다.

너무나 큰 산죽들로 인해 그렇잖아도 안개로 조망이 없던 등로를 완전히 숨겨 제대로 진행하기도 힘이 드는 시간이다.

그렇게 힘들게 오르니 바위 등로가 나타나고 그 옆으로는 진분홍빛 진달래꽃이 화사하게 피어 반겨 주지만 그 모습조차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다.

 

 

잠시 다시 나타나는 바위 암릉 등로를 주의하며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암봉이 짙은 안개속에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도솔봉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는 시간으로서 날씨가 좋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르다 살펴보니 그 암봉 가까이 갈수록 광주의 무등산에 있는 입석대를 닮아 있는듯 보이기도 한다.

그 암봉을 두고 그 우측으로 나 있는 좁은 등로를 따라 힘들게 된비알을 올라 본다.

 

 

비에 젖어 미끄러운 등로를 따라 힘겹게 가파른 된비알을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웅장한 입석대를 닮아 있는 직벽의 바우들이 반갑게 반겨준다.

짙은 안개속에서도 이런 여유를 가져 보는 시간이 있어 여간 다행이 아니다.

몇장의 사진을 담고 오르니 좌측으로 거대한 암봉을 두고 우측의 바위 너덜길이 펼쳐져 있고 그 너덜길을 따라 오르니 다시 잡목과 빛바랜 회색의 억새 줄기가 등로를 채우고 있다.

그 잡목지대를 지나니 등로 앞 저 멀리 희미한 안개속에 거대한 암봉이 다시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짧게 따르니 산죽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남근석을 닮은듯 서 있는 바위를 살펴 본다.

 

 

그 남근석을 닮아 있는 등로를 지나니 다시 산죽밭이 이어지고 힘들게 그 산죽밭을 헤치고 올라 거대한 바위와 인공 구조물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도솔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정상석은 그 인공구조물을 지나 빙 돌아가며 그 반대편 바위 위에 서 있다.

도솔봉(:672)은 해남군 삼산면과 현산면 그리고 북평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도솔봉 정상은 여기서 조금 더가서 통신탑이 있는 곳인데 그곳은 갈 수 없으니 이곳에다가 정상석을 세워놨다

짙은 안개로 보이지 않는 우측으로는 연화봉과 혈망봉 및 향로봉으로 이어지고 기맥 등로는 통신탑이 있는 직진으로 이어진다

도솔이란 도솔천을 말하며 수미산 꼭대기에서 12만 유순(40리에 해당)이 되는 곳에 있는 천계로서 여기에는 칠보로 된 궁전이 있고 수많은 하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데 다음 구간인 달마산 구간에도 도솔봉이 있는데 이곳 정상의 의미와 같은 의미일지는 다시 올라 확인을 해 볼 일이다.

 

 

그 도솔봉에서 후미까지 기다렸다 추억 한장씩 남겨 주고 주위에 피어 난 진달래꽃도 사진에 담고 다시 빼곡히 자라난 산죽 등로를 타고 어렵게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는 천길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고 그곳으로 거대한 바위들도 보인다.

암봉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지만 보이지 않아 다시 산죽밭으로 내려와 정상 등로를 따르니 산죽으로 인해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 산죽지대를 지나니 넓은 바위가 나타나고 그 끝자락으로 가 보니 바위를 타고 내려가기가 쉽지 않아 주위 우회 등로를 찾아 본다.

 

 

 

하지만 그 바위 우측으로 우회 등로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해 어렵게 그 바위를 타고 내려가기로 한다.

조금은 난해한 바위이지만 함께 주의하며 내려가니 내려 갈만 하고 그 바위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바로 눈 앞에 거대한 방송 안테나가 나타나는데 그 앞에는 녹색 철조망이 쳐져 있어 직진으로 진행이 불가능하다.

그 녹색 철조망을 타고 좌측으로 돌아 진행하기로 하고 진행하니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그렇게 그 녹색 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좌측 등로를 따르니 금새 거대한 바위 낭떠러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조심하며 우측 방송 송신소 방향의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가 본다.

살펴보니 이곳이 대둔산 정상부근인데 이곳은 KBS와 MBC 그리고 KT 이동 통신사에서 세운 각종 송신소들이 거대한 탑을 이루며 정상을 다 차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대둔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직진으로 가질 못하고 녹슨 철조망을 따라 이 송신소를 거의 한바퀴 돌아 올라야 하니 안개속에서도 안타까움이 묻어 나는 시간이다.

 

 

 

KBS와 목포MBC 송신소 건물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그 송신소 정문이 나타나지만 철문이 굳게 닫혀 있기에 그 우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이제부터 대둔산 정상을 우측에서 좌측으로 녹슨 철조망을 따라 거의 한바퀴를 돌아 올라야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더니 그 임도가 사라지고 녹슨 철조망조차 쓰러진 잡목 구간을 헤치고 어렵게 진행을 하니 드디어 오르막 등로를 타고 원형 철조망을 넘으니 등로 좌측의 송신소 방향으로 초병이 사라진 낡은 초소가 보이더니 금새 그 대둔산 정상부 근처로 오른다.

그 정상부로 오르니 이제 등로는 좌측으로 녹슨 송신소 철조망을 보내고 직진의 잡목 구간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철조망 넘어 높게 솟아 보이는 송신소 때문에 대둔산 정상을 오르지 못함이 아쉽기만 하다.

이곳 두륜산 옆 대둔산(673.2)의 정상부는 여러 방송국과 이동통신 회사의 통신탑들이 점령하고 있다.

대둔산은 해남의 진산이라 할 수 있는 두륜산 자락에 자리한 아름다운 산으로 소백산줄기 남단에 솟아 있으며 능선이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대둔산까지 뻗어 있어 하나의 산맥을 이루고 있다.

동쪽 사면은 급경사이고 서쪽 사면은 완경사를 이루는데 본래 대둔사의 이름을 따서 대둔산이라 하였으나 이 절의 이름이 대흥사로 바뀌어 대흥산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동백나무 등 난대성 상록활엽수림과 사찰을 비롯한 많은 유적지의 경관이 뛰어나 이 일대가 1979 12월 두륜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그 대둔산 정상부에 솟아 있는 송신소 앞 철조망을 두고 단체 사진 몇장 남기고 직진의 잡목 구간을 헤치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직벽 낭떨어지가 펼쳐지는 바위 등로가 나타나고 조심하며 그 바위지대를 지나 이어지는 바위 구간을 넘으니 거대한 직벽의 바위 암릉구간이 긴장감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너무나 초라하고 얇은 로프가 달려있는데 그 로프마저 깎여 금새 끊어질듯 아슬하게 매달려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는데 특히나 비에 젖어 있어 천천히 주의하며 그 직벽을 내려가 본다.

 

 

 

무사히 그 직벽 암릉을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다시 출발하니 여전히 비끄러운 비에 젖은 바위 구간이 나타난다.

안개 때문에 보이는 것도 없이 비에 젖은 암릉으로 인해 산행 시간이 지체되고 힘겨운 산행 시간이지만 그래도 간간히 보여주는 기암괴석들로 인해 산행의 의미와 묘미를 맛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남근석에 그 주위 풍경까지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바위를 만나 홀로 피식 웃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 암릉을 따라 내려가니 짧은 직벽 바위 하나가 놓여 있는데 직접 내려가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은 바위이다.

 

홀로 진행한다면 큰 문제 없이 내려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함께 진행해야 하니 안전사고에 대한 걱정이 더욱 커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좌측으로 서 있는 거대 바위 옆을 살피며 혹시나 우회 등로가 있지 않을까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해 이곳에서 후미 선두와 기다렸다 산우님들이 모두 무탈하게 내려오는 것을 확인하고 출발 하기로 한다.

다행히도 내려가 등로 좌측을 살피니 우회 등로가 보여 후미는 안전하게 그 우회 등로로 유도해 가며 통과한다.

그 바위를 지나 다시 산죽 등로를 따르고 잠시 더 진행하니 또 다른 바위 암릉구간이 나타나 이곳에서도 조심하며 내려가니 한동안 좌우측에 거대 암릉을 두고 골짜기 같은 등로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까다로운 바위를 내려 가 다시 짧은 산죽지대를 지나고 조금 더 진행하니 우측으로 거대한 바위가 있는 좌측 바위 밑 우회 등로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해 거대 암봉을 통과해 본다.

다시 나타나는 잡목과 산죽지대를 따라 걸어가니 또 다시 짧은 암릉 등로가 나타나고 온 몸으로 그 바위를 껴 안으며 조심해 내려가니 이제서야 등로 주위에 곱게 피어난 진달래꽃 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바위 구간을 지나니 한동안 평이한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이제서야 등로 주위에 피어난 진달래꽃과 제비꽃들을 사진에 담아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허기가 지기 시작하고 약간 평평한 장소에서 후미까지 기다렸다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출발하기로 한다.

그런데 그 간식을 먹으며 등로 주위를 살펴보니 춘란이 보이고 그 춘란에는 예쁜꽃송이가 올라오기 시작을 하고 있다.

식물학자들은 꽃이 일찍 피기 때문에 보춘화라는 이름을 채택하고 있으나 일반사람들은 보통 춘란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 식물의 학명은 Cymbidium goeringii REICHB. fil.이다.

희고 옆으로 주름진 뿌리가 길게 사방으로 퍼지고 중앙에서 잎이 모여 나오는데 잎은 선형이며 길이 20에서 50 Cm이고 너비는 6에서 10 mm로서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까칠까칠한 톱니가 있으며 3맥이 뚜렷하다.

이른 봄에 뿌리목으로부터 잎보다 훨씬 짧은 한 개의 화경이 나와서 끝에 한 개 때로는 두 개의 꽃이 달리는데 화경은 길이 10에서 25 Cm이며 육질이고 막질의 엽초 같은 잎으로 둘러싸여 있다.

포(꽃대의 밑을 받치고 있는 비늘 모양의 잎)는 엽초(잎깍지)같이 생겼으나 엽초가 없고 피침형이며 길이는 3에서 4 Cm로서 끝이 뾰족하며 꽃은 지름이 4에서 5 Cm이고 연한 황녹색이며 다소 향기가 있다.

꽃받침은 거의 비슷하게 생기고 다소 육질이며 도피침형으로서 길이 3에서 3.5 Cm이며 끝이 둔하지만 갑자기 뾰족해지며 꽃잎은 서로 비슷하고 짧으며 난상피침형이다. 순판은 꽃받침잎보다 다소 짧고 흰빛이며 짙은 적자색 반점이 있고 안쪽은 울퉁불퉁하며 중앙에 홈이 있고 끝이 뚜렷하지 않게 세 개로 갈라지며 끝은 뒤로 말린다.

중앙열편은 크고 입술처럼 생겼으며 예주는 길이 15 mm 내외로서 열매는 길이 5 Cm 정도로서 곧추 서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가늘어져서 길이 5에서 6 Cm의 대로 된다.

많은 품종이 개발되어 있는데 우선 잎에 대한 변이로써 명명된 대표적인 종류로는 선반, 산반, 축입 등을 들고 있고 선반은 잎 끝에 짧은 선들이 모인 것이다.

따라서 잎 끝이 하얗게 보이며 녹색이 그 속으로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산반은 기부에서 잎 끝으로 무늬가 드는 것과는 반대로 잎 끝에서 아래쪽을 향하여 명주실같이 곱고 섬세한 짧은 선들이 들어가 있는 무늬를 말한다.

선반과는 달리 무늬가 길고 깊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고 축입은 굵고 짧은 선이 불규칙하게 잎 끝에서 밑을 향하여 넓게 퍼져 있는 무늬를 말한다.

꽃색의 변이에 의한 품종개발도 많이 이루어졌고 일본에서는 붉은 색과 황색이 중국에서는 담취색, 담황녹색, 담취녹색, 녹황색, 황녹색 등이 개발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주금색이 개발되었는데 이것은 일본에서도 개발된 것으로 붉은 빛이 도는 계통은 주색, 적색, 주금색 및 주황색 등으로 구분한다.

노랑꽃 계통으로 고정된 것은 레몬색, 카나리아색에 포함된 색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황화의 산채는 극히 드물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황색과 섞인 녹색이 너무 강하기 때문인지 황색소가 너무 강한 탓인지 알 수 없으나 양자의 분리에는 학문적인 규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한동안 평이한 등로 위에서 짙은 안개속에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출발하니 등로 주위에는 더욱 호사한 진달래꽃들이 피어 나 어려운 조건에서 진행하는 종주대에게 응원을 해 주는듯 하다.

다시 지독한 산죽이 앞을 가로막는 등로를 타고 어렵게 걸어가니 잠시 산죽이 사라지더니 바위 암릉을 지나 조금은 수월한 산죽 등로로 바뀌고 있다.

이제 진달래꽃이 등로를 완전히 채우고 있는 멋진 길을 따라 무상으로 걸어보니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암봉들이 올려다 보이고 짧은 바위 너덜지대를 건너 진달래밭을 따르니 갑자기 눈 앞에 준.희님의 응원 이정판이 힘을 주고 있다.

 

 

잠시 진달래꽃이 만발한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고 그렇게 진행하며 308봉 이정판을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하고 진행 해 너럭바위를 통과한다.

다시 조금씩 험해지는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하니 암봉 위에 살아가는 소나무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이제부터 후미 산우님들을 두고 조금은 빠르게 홀로 땀방울을 흘려보는 시간이다.

빠르게 진행하니 바위 능선이 나타나고 그 능선 주위로 피어난 진달래꽃을 바라보며 발걸음도 상쾌하게 걸어 보는 순간이다.

 

 

그 바위 능선을 지나니 등로에는 평이하지만 비범하게도 파란 새싹들이 온 나뭇가지에서 피어나며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이제부터 자연동백나무와 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동백꽃과 친구가 되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동백나무를 지나니 다시 암벽이 앞에 나타나고 그 암벽을 어렵게 오르니 다시 멋진 동백나무 숲이 기다리고 있어 몇장의 동백꽃을 사진에 남겨 보는 시간이다.

동백나무가 다 자라면 6에서 9 미터에 이르는데 10월초부터 4월까지 꽃을 피우고 열매에는 세 쪽의 검은색 씨가 들어있다.

꽃은 대개 붉은색이나 흰색과 분홍색 꽃이 피기도 하며 술은 통 모양의 단체 수술이며 꽃밥은 황색이다.

잎은 윤기나는 단단한 타원형으로 잎 가장자리는 작은 톱니가 나있고 잎차례는 어긋나기로서 줄기는 회백색으로 단단하며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주로 산지와 해안 및 촌락 부근에서 자라며 한반도에서는 중부 이남에 분포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울릉도, 서쪽으로는 대청도까지 올라가는데 육지에서는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마량리의 것이 가장 북쪽이고 내륙에서는 지리산 산록에 위치한 화엄사 경내에서 자라는 것과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의 선운사 경내에서 자라는 것들이 가장 북쪽에 위치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북방한계선도 기상 변화와 함께 변화해 가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시대가 되고 있는 듯 하다.

 

 

아름다운 동백꽃을 친구삼아 진행하니 이제부터 가파른 암릉과 암봉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410봉까지 이어지는 듯 보인다.

보이는 것이 없어 아쉬움이 있지만 그만큼 무서움도 사라지기에 진행에 일장 일단이 있어 보이는 구간이기도 하다.

암봉을 좌측에 두고 진행하니 등로 옆으로 남근석을 닮아 있는 바위가 있어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해 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진행하니 암봉 정상부에 소나무 한그루가 자라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오를 수 있을까 바라보지만 쉽게 오를 수 있는 등로가 아니다.

그 옆으로 돌아 진행하니 이어지는 암릉 등로가 눈 앞을 가로막고 특히나 비에 젖어 미끄럽기에 여간 조심스럽게 진행되는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 바위 암릉을 지나니 또 다른 암봉 위에 홀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가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다양한 형태의 바위들과 암릉들이 연이어 나타나니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보이는 것 하나 없이 주위 사물들만 바라보며 걸어가야 하니 더욱 그 부담감이 커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거대한 암봉의 첨봉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잠시 그 바위들이 사라지더니 산죽과 진달래 등로를 지나 다시 눈 앞에 나타나는 거대한 암봉 바로 앞에는 붉게 피어난 진달래꽃이 너무나 아름답게 피어나 그 암봉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잠시 쉬어 가는 시간도 가져 본다.

 

 

짙은 안개속에 아름다운 진달래꽃과 암봉의 조화가 멋지고 그 암봉 정상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는 경외로움까지 전해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거대한 연봉이 이어지고 한동안 그 연봉들을 바라보며 진행하니 등로는 갑자기 우측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따라 그 암봉을 우회하도록 되어 있다.

한동안 내려가니 등로는 그 등로 좌측의 암봉 밑으로 바위 너덜길로 이어지고 그렇게 짙은 은개속에 미로를 헤매듯 진행을 해 본다.

 

 

아쉽고 안타까운 시간이다.

다음에 9기맥 완주 후 시간되면 꼭 한번 더 내려 와 걸어 보고 싶은 등로 중 하나로 남겨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진행에 어려움은 있지만 그만큼 스릴과 묘미가 있을 등로이지만 보이는 것이 없으니 그저 바위와 암릉 그리고 안개만 바라보고 걸어가야 하는 이 시간이 그저 야속하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그 어려움속에 아름다운 진달래꽃과 암릉의 조화가 산객의 마음을 사로 잡는 시간이다.

날씨가 좋아 남해바다와 완도까지 시원하게 조망되면 좋겠지만 오늘 이 같은 짙은 안개는 오늘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또 다른 자연의 모습이기에 이 모습 이대로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그저 호락하자 않는 산행을 억지로 만들어 진행을 할 수는 없기에 그저 마음만으로도 평온함을 찾으려 노력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그 우회 등로를 지나 오르니 삼형제 바위가 앞에 나타나는데 잠시 짧은 바위 너덜길이 나타난다.

그 바위 너덜길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그 삼형제 바위를 통과하고 통과한 후 뒤돌아 보니 그 삼형제 바위는 더욱 뚜렷하게 그 형체가 드러나고 있다.

그 삼형제 바위 사이에 껴 있는 바위 하나가 더욱 눈길을 사로 잡는 바위이기도 하다.

 

 

그 삼형제 바위를 지나 오르니 드디어 가장 힘들다는 420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조금은 실망스런 정상의 모습이다.

이곳 정상 역시 멋진 바위로 이뤄진 정상이란 생각을 했는데 살펴보니 잡목과 약간의 산죽들이 혼재되어 있는 그저 평범한 등로 같은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곳 410봉 정상에서 잠시 사진 몇장 더 남기고 평이하게 걸어가니 이곳이 정상 봉우리인지도 모를 정도의 그런 410봉이다.

 

 

많은 잡목과 산죽으로 뒤덮혀 있는 410봉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이제 등로는 주능선을 좌측에 두고 우측 우회 등로를 따르는데 이곳에도 역시 바위 너덜길이 펼쳐져 있다.

다시 잠시 바위 너덜길을 지나니 많은 산죽들이 등로를 덮어 버린 등로가 나타나고 완만하게 오르니 산죽이 사라지면서 화사한 진달래꽃이 반겨 준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다시 저 멀리 거대한 암릉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잠시 더 진행하니 등로는 낙엽진 평이한 활엽수 등로로 이어진다.

 

 

이제부터는 잡목들이 길을 막으며 저항하고 그 잡목 사이로 피어난 진달래꽃을 살피며 걸어보는 시간이다.

가끔 나타나는 바위들을 지나며 조심하니 등로 옆으로 거대한 바위들이 다시 나타난다.

지도를 살펴보지만 이곳이 어디쯤 되는지 이해하기도 힘든 산행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암봉을 좌측에 두고 우측 우회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다시 평이한 등로로 이어진다.

그 평이한 등로에 피어난 진달래꽃을 친구삼아 진행을 하니 낙엽 깔린 푹신한 등로가 짧게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다시 암릉이 시작되는 등로 앞에 예쁘게 피어난 진달래꽃이 더욱 애처로우면서도 예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렇게 다시 한동안 진행을 하니 기묘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등로 우측 아래에 보이고 그곳에서 등로는 좌측 거대 암봉을 두고 우측 우회 등로를 따라 걸어가게 된다.

한동안 걸어 우회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암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278봉이라 표기된 곳이다.

잠시 더 진행하면 등로 좌측으로 칠성사란 암자가 지도상에 보이는데 안개 때문에 그 암자를 내려다 보는 것은 불가능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 278봉 을 지나 계속 바위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갑자기 우측에 거대 암봉을 두고 좌측 우회 등로로 이어지는데 살펴보니 우회하는 암봉이 바로 299봉이다.

우회 등로에는 동백나무와 바위 너덜길이 펼쳐져 있고 잠시 더 진행을 하니 등로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며 299봉에서 내려오는 등로와 만나도록 이어지는 것 같다.

땀을 흘리며 오르니 드디어 우측 299봉에서 내려오는 희미한 등로오 만나는 주 능선에 도착을 한다.

 

 

그 주능선에 도착해 아쉬운 마음으로 뒤돌아 보며 299봉쪽 마루금을 살펴 본다.

바로 눈 앞에 펼쳐진 진달래꽃 저 멀리 짙은 안개속에 희미하게 그 존재감을 알리는 299봉이 멋지다.

다만 진행하던 시간에 봤던 모습보다는 더 나즈막하게 올려보이기에 그것이 조금은 만족스럽지 못한 사진으로 남겨져 있지만 말이다.

 

 

아쉬운 마음을 내려 놓고 그 299봉 지나 진행하니 직진의 등로에는 많은 진달래 나무들이 길을 막아 진행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살펴보니 땅끝기맥은 직진이 아닌 우측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빼곡히 자라난 진달래나무와 잡목으로 인해 진행에 어려움이 가중되지만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라 천천히 내려가니 다시 희미한 등로가 나타나고 이전보다는 훨씬 진행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 준다.

 

 

그렇게 힘들게 진행하며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금새 눈 앞에 거대한 송전탑 하나가 올려다 보이는데 살펴 보니 125번 송전탑이다.

그 송전탑 밑을 지나 바위 너덜길을 따르고 거대한 소나무를 지나니 무슨 성터였는지 아니면 예전에 사람들이 살던 집터였는지 알 수 없는 돌담들이 보이는데 세월지 흐르면서 무너져 내린 풍경이다.

그곳을 지나 자작나무 식재지처럼 보이는 등로를 지나니 눈 앞 저 멀리 소나무 건너 235봉이라 생각되는 바위 봉우리가 보인다.

 

 

약간의 바위 구간을 타고 걸어가니 잡목이 발목을 붙잡는 등로를 지나 등로 옆에 화사하게 피어난 붓꽃을 만나 잠시 어렵게 사진에 담아 본다.

붓꽃은 붓꽃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로서 키는 60 cm 가량이고 잎은 땅속줄기에서 가늘고 길게 나온다.

초여름이 되면 줄기 끝에 붓 모양의 꽃망울이 나와 자주색, 노란색, 흰색의 꽃이 핀다.

꽃잎은 6장으로, 겉에 3장의 큰 꽃잎과 안쪽에 3장의 작은 꽃잎이 있다.

관상용으로 널리 가꾸며 우리 나라와 일본 및 동부 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지도상의 235봉을 지나 붓꽃을 사진에 담은 후 진행을 이어가다 보니 키 작은 소나무들이 식재된 지역이 나타난다.

그 식재된 소나무 지대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갑자기 약간의 조망이 나타나고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조망을 살펴 본다.

살펴보니 남해바다와 완도로 들어가기 위해 제일 먼저 건너야 할 완도대교 전 남창교가 내려다 보인다.

멋진 조망이 없아 더욱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지만 이것도 삶의 일부이고 산행의 하나이니 어쩔 수 없음일 것이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남기고 천천히 발길을 옮기니 자꾸만 눈길은 등로 좣ㄱ의 남창 들판과 남해 바다 그리고 그 앞으로 보여야 할 완를 바라보지만 안개로 인해 너무나 제한적인 풍경으로 애간장만 타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식재 구간을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이제부터 넘어야 할 마지막 145봉쪽 봉우리가 올려다 보이고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마루금도 희미하게 실루엣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다시 한번 등로 좌측의 남창 들판과 남창교를 내려다 보니 지금까지 만났던 조망보다 훨씬 깨끗한 조망이 눈에 들어 와 잠시 더 발걸음 멈추고 쉬어 간다.

이제 닭골재로 이어지는 13번 4차선 도로를 내려다 보며 걸어 내려가니 안부를 만나고 그 안부에는 소나무 뿐만 아니라 편백나무 식재지도 보인다.

안부를 지나 다시 마지막 봉우리로 오르기 위해 완만하게 오르니 편백나무는 사라지고 다시 소나무가 식재된 등로가 나타나는데 화사하게 피어난 진달래꽃이 더욱 붉게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조금 더 오르니 뚜렷한 등로는 자꾸만 좌측의 주등로를 벗어 나 우측 사면 아래로 이어지고 살펴보니 이곳은 다른 용도로 나 있는 길이기에 잡목을 헤치고 좌측 주능선으로 오른다.

주능선으로 오르니 그곳에 땅끝기맥 주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진행 방향을 샆펴보니 이제 저 아래에 마지막 송전탑과 닭골재가 있는 13번 지방도로 그리고 그곳 넘어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마지막 산행 들머리가 환히 내려다 보인다.

 

 

그렇게 약간의 조망을 즐기며 내려가니 다시사라졌던 편백나무 조림지가 나타나고 이리저리 조심하며 내려가니 잘 가꿔진 묘지 한기가 있는 비포장 임도를 만났다가 곧바로 능선으로 들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약간의 잡목과 식재된 소나무 사이를 타고 걸어가니 잡목 사이로 등로 우측 아래에 있는 구산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또 다시 2기의 잘 가꿔진 묘지를 지나니 바로 코 앞으로 마지막 송전탑이 가깝게 다가와 있다.

 

 

계속 걸어가니 65번 송전탑이 보이고 그 송전탑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많은 묘지들이 보여 마치 미니 공동묘지처럼 보인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니 등로는 이제 세멘트 포장 계단이 나타나고 오늘 산행 날머리인 닭골재의 13번 4차선 퐂아도로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등로 우측으로는 파란 철종망이 따라오고 그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에는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는데 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13번 4차선 도로를 건널 수 있는 지하암거 즉 지하통로가 있을 것이다.

 

 

드디어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걸어 내려가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어렵게 내려온 마지막 묘지와 송전탑 봉우리가 올려다 보인다.

그 마루금 좌측으로는 민가가 보이는데 방금 전 잠시 만났던 묘지 있는 곳의 비포장 임도를 따라 내려오면 저 민가를 지나 이곳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도로 우측 밭에는 파란 마늘이 웃자라 이곳이 남쪽마을임을 알려주고 있는 듯 하다.

 

 

그렇게 내려가 지하통로를 건너니 우리들이 타고 온 버스가 대기하고 있고 그곳에서 잠시 배낭 정리 후 다음 구간 산행 들머리를 찾아 본다.

이것으로 오늘 땅끝기맥 제6구간인 오소재에서 닭골재까지의 산행을 마무리 해 본다.

닭골재(해발고도 58미터)는 해남군 현산면 구산리와 북평면 남창리를 잇는 고개로 새로 생긴 4차선의 도로가 시원스레 뚫려있고 그 옆에는 희미하게 사라지는 2차선 옛날 13번 국도가 나란히 지나고 있다.

해남지에 기록된 닭골재를 보면 고개 아래에 있는 딱골이란 지명에서 비롯된 듯 하며 딱골은 닥나무가 많은 동네라는 뜻으로 저동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 고개의 원래 지명은 저동치로서 다른 이름으로 딱골재인데 이것이 변음 되어 닭골재로 되지 않았을까 하는 설이 보인다.

이제 이 땅끝기맥 산행도 앞으로 연속 2주만 더 내려오면 마무리가 될 것이다.

 

참으로 어렵게 진행했던 기맥 산행인데 조망이 좋지 않아 아쉬움도 남지만 가장 위험한 구간을 아무 사고 없이 무탈하게 마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한 마음만 내려 놓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후미로 내려오던 종주대들이 약간의 알바를 하면서 너무 늦게 하산하여 곧바로 대흥사로 가 2명의 종주대를 더 태운 후 해남 시내에 있는 목욕탕에서 간단하게 샤워 후 늘 먹던 태현식당에서 늦은 매식 후 곧바로 서울로 출발하지만 역시나 한식으로 인해 도로가 막혀 밤 11시 30여분이 되어 사당에 도착해 종주대와 기획테마 산행에 참여한 산우님들에게 미안한 시간이 되었다.

 

모두 무탈하게 잘 귀가 하였으리라 생각하며 다음 주와 4월 셋째주에 반갑게 만나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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