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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맥과 중요 지맥 산행(완료)/호미기맥(낙동·완)

호미기맥 제3구간 원고개에서 성황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5.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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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북도 경주시와 포항시의 호미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5년 02월 07일(토)과 8일(일)-토요 무박 일요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강하고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어 추위에 꽁꽁 얼었지만 환상의 조망을 즐겼던 한겨울 날씨

산행온도 영하 01도에서 영하 09도

산행인원 : 3450 온누리산악회 호미기맥 종주대 8명과 함께

산행코스 : 원고개(7번 4차선 포장도로)-괘릉-괘릉길 시멘트 임도-괘릉동회관-저수지 가는길 이정표-능선진입-317봉-364봉-465봉-삼태지맥 분기봉-

                   시멘트 포장임도-토함산솔밭가든-945번 2차선 포장도로-토함정사 이정석-석굴암과 불국사 갈림 도로 표지판-석굴암과 감포 갈림 도로 표지판-

                   경주국립공원 안내판-석굴암 주차장 매표소 700미터 안내판-석굴암 주차장 이정판-석굴암 주차장-불국대종각-석굴암주차장 일주문-석굴암

                   매표소-이정표(토함산 1.3 Km, 불국사 2.3 Km, 석굴암 0.5 Km)-세계유산석굴암석굴 이정석-토함산 석굴암 일주문-토함산공원지킴터-

                   이정표(토함산 1.4 Km, 석굴암 주차장 50 m)-안전철봉과 로프 지대-이정표(토함산 1.2 Km, 석굴암주차장 0.2 Km와 불국사 2.4 Km)-

                   토함산 0.9 Km 이정목-이정표(성화채화지 50 m)-성화채화지-나무데크-추령갈림길 이정표(토함산 0.3 Km, 석굴암주차장 1.1 Km,

                   추령 2.7 Km)-헬기장-경주 토함산(745봉, 정상석과 삼각점 그리고 이정표)-안전목책과 로프-추령갈림길 이정표-이정표(추령 2.5 Km,

                   토함산 0.5 Km와 석굴암주차장 1.3 Km)-전망바위(일출)-이정표(추령 2.0 Km, 토함산 1.0 Km와 석굴암주차장 1.8 Km)-나무계단-478봉

                   이정표(추령 1.5 Km, 토함산 1.5 Km와 석굴암주차장 2.3 Km)-이정표(추령 1.3 Km, 토함산 1.7 Km와 석굴암주차장 2.5 Km)-안전로프-

                   안전목책-438봉 이정표(추령 1.0 Km, 토함산 2.0 Km와 석굴암주차장 2.8 Km)-안전목책과 로프지대-안전목책과 로프지대-추령 0.2 Km 이정목-

                   추령재 지상 공용 기지국 철탑-안전목책과 로프-나무계단-백년다원-주차장에서 아침식사-추령(4번 2차선 포장도로)-군벙커호-393봉 암봉-

                   삼각점-유인파평윤씨묘지-웅덩이봉-수랫재 이정표(용연폭포 2.5 Km, 모차골 1.4 Km)-바위 전망대-497 바위봉-507봉 폐헬기장-494.2봉

                   삼각점과 유인성주도씨묘지-459.2봉-530봉-549봉-함월산(584봉)-550봉-560봉-습지 갈림 삼거리-510봉-591.4봉-산사태지역-무명봉-

                   산사태지역-폐헬기장-481.9봉 헬기장-헬기장-바위 무명봉-64번 송전탑-바위 무명봉-48번 송전탑-비포장 임도-포항시 오천읍 기림로 도로

                   표지판-성황재 폐휴게소-영월로 이정석-성황재(14번 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6.44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잘 훈련된 호미기맥 종주대와 발 맞춰 강한 바람을 이겨내고 어렵게 09시간 13 (04시 04부터 13시 17분까지)

교통편 : 3450온누리산악회 호미기맥 전용 넓은 25인승 버스 이용

호미기맥이란???

부산 몰운대에서 북진하는 낙동정맥이 영축산,가지산,고헌산,백운산을 지나 경주의 단석산으로 이어지며 북진해 올라간다.

단석산에 이르기전의  백운산은 붕우리가 4개 있는데 맨 아랫쪽의 892m봉이 주봉이고  그 북쪽으로  860m봉, 845m봉, 855m이 연이어 있는데 호미기맥은 그중 아래에서 세번째 봉인 845m봉에서 동쪽으로 가지를 쳐 천마산(620.5미터 봉)과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치술령(766.9미터 봉)에서부터는 북동진하여 포항의 호미곶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호미기맥이라 부른다.

이 산줄기는 도상거리 약 98 Km나 되는 산줄기로 형산강의 남쪽 울타리 역할을 하여 일부에선 형남기맥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통상은 땅끝기맥과 같이 지역의 특수성을 살려 호미기맥이라 부른다.

이산줄기 북으로 흐르는 물은 형산강으로 들고 남쪽으로 흐르는물은 태화강으로 들며 일부는 장기천, 대화천으로 들어 동해바다로 들어간다.


 

갑자기 추워진 기온과 강렬한 바람을 이겨내고 멋진 조망을 친구 삼아 아름답게 이어간 호미기맥 산행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엊그제 홀로 내려 와 당산고개에서 원고개까지 산행 후 토요일 하루를 집에서 쉰 후 다시 내려 와 산행을 하는 기회이기ㅔ 몸과 마음의 부담이 약간 느껴지는 시간이다.

특히나 적은 인원인 8명이 참여 해 후미도 없이 막강한 종주대로 짜여 있기에 마음의 부담이 더욱 크면서도 차비조차 나오지 않는 산행 참여 인원으로 마음 고생마저 심하니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홀로 진행하면 마음 편히 즐기며 진행 할 수 있겠지만 외롭고 혹시 몰ㄹ 사고 시에는 걱정도 되기에 산행을 즐기는 종주대를 모집해 함께 진행하게 되었지만 또 이런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시작을 했으니 그 마무리는 깨끗하게 해야 될 산행이다.

 

토요일 밤 11시에 사당에서 만나 적은 인원인 7명을 태우고 죽전에서 마지막 종주대를 태운 후 기흥에서 잠시 정차 후 달려 건천휴게소에서 마지막 간식을 먹고 다시 출발 해 새벽 3시 50여분에 산행 들머리인 원고개에 도착을 한다.

생각보다 춥지도 않고 걱정을 했던 바람도 심하게 불지 않아 산행 준비 후 괘릉동 이정석 앞에서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시멘트 도로를 타고 마을길을 따라 제3구간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새벽 4시를 막 넘기고 있다.

 

원고개에서 토함산까지의 거리가 약 11 Km이고 일출 시간이 아침 7시 20여분 이기에 3시간만에 도착 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열심히 걸어 보자는 약속을 하고 출발을 한다.

열심히 걷다 보니 석굴암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새벽 6시 30여분을 지나고 생각보다 너무 일찍 도착해 잠시 강해지는 바람을 피해 천천히 진행을 했는데도 토함산 정상에 도착을 하니 새벽 7시를 막 넘기고 있다.

20여분 기다렸다 일출을 보려고 노력했지만 동해 바다 위에 드리워진 두꺼운 구름으로 닝해 일출이 늦어지고 참다 못해 추위를 피해 추령으로 내려가니 금새 동해바다 위로 멋진 해가 떠 오르고 있다.

재빨리 전망바위로 달려 내려가 어렵게 멋진 일출을 담아 보는 시간은 그렇게 또 하루의 시작을 알리면서 멀고도 긴 산행의 서막을 알려 준다.

 

2일 전 홀로 내려 와 무탈하게 산행 후 산행을 마무리 했던 원고개에 도착을 하니 새벽 4시가 가까워진 시간으로 밖으로 나오니 생각보다 많이 춥지는 않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오늘부터 무척 추워지고 갑자기 몰아치는 한파로 인해 전국이 꽁꽁 얼어 붙는다고 알고 왔는데 확실히 경주가 남쪽이긴 남쪽인가 보다.


이곳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원고개를 찾아 보니 이 산객이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내용과 달라 정리해 보기로 한다.


신라 때 이름을 알 수 없는 두 노승이 불국사를 향해 이 곳을 지나가다가 마을사람들에게 웬 고개냐고 물은 것이 웬고개라는 지명이 되었고 여기애서 왼고개라는 말이 생겼으며 여기에서 변형하여 왼곡, 어인고개, 영곡이라는 별칭이 생기기도 했었다.

현지에서는 주로 웽고개라고 했었다.

원고개는 원래 웽고개로서 고개의 경우 7번 국도변 괘능리 입구에서 100여 미터 진입하여 자미산 산모롱이를 넘어 부락안으로 들어오는 산고개를 말하고 부락으로서의 웽고개는 7번국도 괘능리 입구에서 자미산 능선 북쪽 지역의 마을과 전답지역 그리고 지금의 토비스콘도 일원을 말한다.  

웽고개 서쪽으로는 7번 국도와 동해남부선이 관통하는데 이 동해남부선은 당시의 부산진역에서 동해남부 해안을 따라 포항역까지 이어지는 길이 145.8 Km의 철도로서 이름 그대로 동해남부 지역 즉 부산진역에서 출발하여 해운대, 기장, 좌천, 울산, 경주과 안강을 거쳐 포항까지 이어지는 철로이다.

웽고개를 대다수 지도에서는 원고개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표기라고 보는데 현지에서 주로 사용해 온 웽고개라는 명칭은 겨울철마다 세차게 몰아치는 북풍의 바람소리에서 연유한다는 말이 전해지고도 있다.

추운 경울 주민들이 이 고개를 넘어 내동면에 있던 불국장(오일장)이나 경주읍내에 갈 때 그리고 당시 영지초등학교(괘능초등학교는 개교되지 않았을 때임)에 재학하는 학생들이 등교할 때 이 고개를 넘어서면 세차게 몰아치는 북풍의 바람소리가 웽하는 소리를 낸다 해서 웽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곳 지명 이름인 괘릉리 역시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어 찾아 본다.

괘능리는 약 400년 전 이만동이라는 사람이 이 마을을 개척하면서 신라 제38대 원성왕릉이 위치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능말, 능지촌 또는 괘동이라 불렀다. 

괘동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계리의 상신, 하신, 영못안을 합하여 괘능리라 하게 되었다.


또한 이곳에 있는 원성왕릉을 찾아 보니 많은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 자료가 있어 찾아 본다.

원성왕릉은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에 있는 능으로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신라 38대 원성왕의 능으로 추정되는데 왕릉을 조성할 때 유해를 원래 이곳에 있던 연못의 수면 위에 걸어 안장하였다고 하여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형태는 원형의 봉토분으로 아랫부분에는 호석을 두르고 12지신상을 새겨 장식했으며 봉분의 지름은 약 23 m이며 높이는 약 6 m이다.

괘릉 입구에 있는 석상과 석주들이 조각수법이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어 보물 제1427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웽고개의 괘릉동 이정석 앞에서 새벽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찬바람을 가르며 멀고도 긴 제3구간 산행을 시작해 본다.


이곳 웽고개에서부터 수정봉 갈림길이 있는 주변까지 동네 시멘트 도로를 타고 걸어가야 하기에 생각보다 걸음걸이가 무척 빠르다.

잠시 걸어가니 청심사슴목장 입간판이 보이고 계속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괘릉길이란 도로 표지명이 보인다.

괘릉동회관 건물을 지나 청심사슴목장 1 Km 이정판이 보이는 전봇대를 지나 계속 포장도로를 걸어가니 어둠속에서도 도로 좌측으로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선두조는 오늘도 바람처럼 앞서 달려가고 이 산객은 제일 후미로 쳐져 걸어가지만 후미랄 것도 없기에 무척 빠른 속도로 걸어가는 시간이다.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포장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가니 갈림 삼거리길이 나타나고 이곳 역시 정상 마루금은 아니지만 원마루금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좌측 포장도로를 타고 많은 선답자들이 진행을 하였지만 요즈음 전국적으로 구제역이 창궐하고 있기에 민가와 축사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는 논 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기로 한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다시 좌측으로 민가가 있고 저 멀리 앞으로 콘테이너 박스 하나가 눈에 보이는 도로를 따라 걸어 본다.


다시 한동안 더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저수지 가는길이란 이정표가 보이고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좌측으로 감산사 가는 갈림길을 지나 곧이어 직진의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접어 드는 능선 진입로가 보인다.

그 능선으로 들어가니 처음에는 넓은 비포장 임도가 이어지고 곧이어 거목의 소나무들이 등로 주위에 자라고 있는 능선 마루금을 타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로 걸어 진행을 한다.

우측으로 멋진 낙엽송 숲이 보이는 갈림 삼거리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묘지 한기를 통과하고 오르락 내리락 하며 걸어가니 또 다른 묘지 한기와 만난다.

거목과 잡목이 함께하는 좁은 능선 등로를 따라 걸어가다 보니 낙엽이 살짝 깔려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지만 패딩을 입고 진행하는 산행에서 처음으로 패딩을 벗지 않고 계속 산행을 진행해 본다.


감산사는 719년(성덕왕 18) 2월 중아찬 김지성이 감산에 있는 장전을 희사하여 아버지 인장 일길간과 어머니 관초리 부인의 명복을 빌고 국왕과 그 일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창건 후 어머니를 위해서 미륵보살상 1구를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서 아미타불상 1구를 조성하여 봉안하였으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1915년 2구의 불상이 서울로 옮겨져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며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국보 제81호로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은 국보 제82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절터는 전답으로 변하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5호인 감산사지삼층석탑 1기 외에 별다른 유물은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작은 불당 2채만이 있다.


다시 거목이 등로를 호위하듯 서 있는 멋진 등로를 따르니 무명 묘지 한기가 보이고 좌측 무명봉을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또 다시 묘지 한기가 나타난다.

그 묘지를 지나 한동안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서서히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변하면서 거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무명봉이 나타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317미터 봉우리라 생각되는 곳이다.


그 317봉우리를 지나 잠시 완만하게 평이한 등로를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흔들리는 야경이 아름답게 빛나고 살펴보니 경주 시내이다.

어렵게 발걸음 멈춰 그 빛나는 경주시의 야경을 담아 보지만 삼각대가 없이 담다 보니 눈으로 보는 만큼은 아니지만 경주시내의 야경을 담았다는 것에 의미를 둬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경주시내 야경을 사진에 담고 다시 계속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등줄기에서 약간의 땀방울이 맺히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차가워지는 밤바람으로 인해 패딩을 벗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냥 진행을 해 본다.

잠시 잡목 등로를 따르니 묘지 2기가 보이고 곧이어 또 다른 2기의 묘지가 나타난다.

그 묘지를 지나 호젓한 등로를 걸어가니 1기의 무명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삼태지맥 분기점에 도착을 한다.


삼태지맥은 울산 태화강 제1지류인 동천강(東川江) 동쪽 울타리를 이루며 호미지맥 토함산 남쪽 5.9 Km지점에 위치한 토함산목장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경주 외동의 삼태봉(629.1봉), 울산의 동대산(443.9봉)과 무룡산(452.3봉)을 지나 31번 국도가 지나가는 가운데고개(무룡고개)로 내려앉았다가 다시 마골산(297봉), 당고개, 감포산(203봉)을 지나 봉화재에서 그 맥이 사라질 듯 하더니 망계산(85봉)을 지나며 산줄기는 사라지고 현대중공업 뒤로 근근히 맥을 이어가며 마침내 현대중공업 제2공장 화암문 안쪽 화암추 등대에서 38.9 Km의 맥을 마감하니 이를 가리켜 신산경표에서는 삼태지맥이라 칭한다.

언제 걸어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맥 잇기 산행을 지속적으로 진행을 하다보면 분명히 한번쯤 다시 내려 와 오늘을 추억하는 시간이 있으리라 생각을 해 보는 순간이다.


이제 시멘트 포장도로 우측으로 삼태지맥과 그 삼태지맥 위로 설치된 풍력발전기에서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으며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호미기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시멘트 도로 좌측으로 묘지지대가 보이고 우측으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지만 계속 직진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간다.

그렇게 내려가니 포장도로 우측으로는 출입금지 로프가 따라오고 잠시 더 내려가니 포장도로 좌측으로 멋진 낙엽송 가로수가 보이더니 토함산솔밭가든 식당 건물에서 불빛이 빛나고 있다.


그 토함산솔밭가든 정문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945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이제 그 945번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석굴암주차장까지 진행을 해야 한다.

웽고개에서 토함산 정상까지 약 11 Km이고 일출시간이 아침 7시 20여분이니 3시간 15분만에 토함산에 도착하는것은 불가능이라 생각을 하고 걸었는데 편안한 도로가 많아서 인지 발걸음 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생각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이곳에서의 진행 속도도 생각보다 빠르고 그렇게 잠시 진행을 하니 도로 좌측으로 몇기의 묘지들도 보인다.

그 묘지들을 지나 생활도자기를 전시도하고 판매도 하는 토함정사 이정석을 만나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을 하는데 이곳에서 좌측 능선을 타고 진행을 하여야만 하지만 잡목이 심하고 금새 다시 도로로 내려와야 되기에 그냥 편안하게 포장도로를 따라 걷기로 한다.


해와달이란 펜션 이정판을 지나 석굴암 도로 표지판 방향을 따라 계속 포장도로를 걸어가 본다.

그렇게 한동안 더 945번 지방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좌측으로 불국사 가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이곳에서 좌측 불국사 가는 2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석굴암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지금까지 몇번 들렸던 불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불국사는 경상 북도 경주시 동쪽 토함산에 있는 절로서 고려 시대에 만든 역사책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절은 신라 경덕왕 때인 751년에 김대성이 세웠다.

그러나 불국사의 내력을 적은 불국사 역대 고금 창기에 따르면 이 절은 528년에 세웠다고 전하는데 또 574년에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 부인이 절의 규모를 크게 늘렸고 문무왕 때인 670년에 무설전을 새로 지었으며 751년에 낡고 규모가 작았던 이 절을 당시의 재상 김대성이 크게 다시 지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자료를 참고로 할 때 불국사는 처음에 작은 규모로 세워졌던 것을 김대성이 크게 늘려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고쳐 지으면서 규모가 2000여 칸으로 커졌으나 임진왜란 때인 1593년에 왜군에 의하여 건물이 불타 버렸는데 그 때 금동 불상과 옥으로 만든 물건 그리고 돌로 된 다리와 탑만이 불에 타지 않았다.

왜군의 방화로 불타 버린 불국사의 목조 건물들은 광해군 때인 1612년에 경루, 남행랑, 범종각 등이 복구되었고 인조 때인 1630년에 자하문 1648년에 무설전이 다시 세워졌다.

이어서 1659년에 대웅전이 세워지는 등 순조 때인 1805년까지 40여 차례의 복원 공사가 계속되면서 안양문, 극락전, 비로전, 관음전, 나한전, 시왕전, 조사전 등이 다시 세워졌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 이르면서 나라의 힘이 약해지자 복원 공사도 중단되었고 이미 세워졌던 건물들도 낡고 파손된 상태로 방치되어 오다가 일제 침략기를 맞았고 1924년에 대규모의 보수 공사를 하면서 다보탑을 해체, 수리하였다.

그 때 탑 속에서 금동 불상, 사리 장치 등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으나 행방 불명되었고 관련된 기록 자료도 모두 없어져 버렸다.

그 후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하였고 이 때 그 때까지 옛 터로만 방치되어 오던 자리에 무설전, 경루, 관음전, 비로전, 화랑 등이 복원되고 대웅전, 극락전, 범영루, 자하문 등이 새롭게 단청되었다.

불국사 경내 면적은 38만 8570 Km2이며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내에 국보급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는데 그 중 잘 알려진 문화재로는 국보 제20호인 불국사 다보탑을 비롯해 국보 제21호인 불국사 삼층 석탑, 국보 제22호인 불국사 연화교 칠보교, 국보 제23호인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국보 제26호인 불국사 금동 비로자나불 좌상, 국보 제27호인 불국사 금동 아미타여래 좌상, 보물 제61호인 불국사 사리탑 등이 있다.

조만간 다시 한번 경주 남산을 오르며 이곳 천년고도인 경주를 둘러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불국사 갈림 삼거리를 지나 진행하니 다시 우측 감포에서 좌측 석굴암으로 이어지는 4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계속 석굴암 방향으로 걸어 간다.

감포음과 문무대왕릉 그리고 토함산자연휴양림 및 여러 마을의 입간판이 보이는 곳을 지나 진행을 하니 돌산령인 경주국립공원 입간판이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한다.


경주는 신라의 옛 도읍지로 낮은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자연 경관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신라 시대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 1968년에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로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세계적인 역사 공원으로 꼽힌다.

경주 국립 공원은 여러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많은 불교 유적이 흩어져 있는 남산 지구, 문무왕릉이 있는 해변의 대본 지구, 무열왕릉이 있는 서악 지구, 김유신 묘가 있는 화랑 지구, 백률사가 있는 금강산 일대의 소금강 지구, 화랑의 훈련장으로 사용되었다는 단석산 지구,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 지구, 동학의 성지인 구미산 지구로 나뉜다.

토함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불국사는 경주의 대표적인 문화재로 대웅전 앞에는 각각 국보로 지정된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다.

또 청운교, 백운교, 연화교, 칠보교가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토함산 동쪽의 석굴암은 전체적인 설계와 불상의 배치 등이 뛰어나며 토함산의 일출도 유명하다.

남산 지구에는 천룡사를 비롯한 절과 산성 터, 왕릉 그리고 수많은 불상이 계곡마다 흩어져 있어 산 전체가 하나의 유적지를 이룬다.

경주 국립 공원 지역은 고속 도로와 철도 등 교통이 편리하여 우리 나라에서 손꼽히는 관광지가 되었다.


이제 경주국립공원이란 이정판을 지나 진행하니 석굴암주차장 매표소까지 700미터 거리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잠시 더 오르막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석굴암주차장 입구에 도착을 한다.

우측은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도로이고 좌측으로는 주차장에서 내려오는 출구 도로이다.

이곳에서 우측 출입 도로를 타고 주차장으로 올라가 본다.


주차장 이용안내와 주차비가 적혀 있는 안내판을 지나 오르니 넓은 석굴암 주차장이 보이고 그 주차장을 가로 질러 걸어가니 불국대종각 건물이 서 있고 그 좌측으로 경주시내의 야경이 아름답게 빛난다.

강암 송성룡 선생이 직접 쓴 현판이라는데 무슨 의미로 불국대종각이란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다.


불국대종각 우측으로 가면 토함산 석굴암 임구 일주문 같은 건물이 보이는데 예전에 두어번 올랐던 기억이 있어 어렵게 그 기억을 더듬어 보고 있다.

문이 열려있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잠시 들려보고 싶지만 오늘은 새벽 시간이기에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피하며 이렇게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만족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석굴암은 경주 불국사 뒤의 토함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석굴 암자로서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석굴 암자로 국보 제24호이다.

석굴암은 신라 제35대 경덕왕 때에 김대성이 부모의 만수무강과 나라의 평안함을 위하여 세운 것인데 화강암을 석굴 모양으로 쌓아올려 그 위에 흙을 덮은 것으로 석굴의 길이는 14.8 m이다.

기본적인 구조는 앞면이 모나고 뒤쪽이 둥근 형태를 이루고 있고 네모진 전실과 둥근 주실로 나뉘어 있는데 주실에는 높이가 약 3.3 m인 본존상이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굴 안의 천장과 밑바닥 둘레는 전부 연꽃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둘레 벽면에는 여러 보살상이 돋을새김(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간단하고도 기묘한 모양과 조각의 아름다움은 세계 불교 예술품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세계유산석굴암석굴이란 커다란 이정석이 있는 그곳 주차장 한쪽에서 강하게 불어 오는 아침 바람을 피해 잠시 쉰 후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토함산 방향으로 걸어가니 토함산 정상까지 1.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임도 좌측으로는 안전 철봉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구간도 지난다.

다시 토함산까지 1.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멋진 활엽수 등로를 걸어 진행을 하니 토함산까지 0.9 Km 남아 있다는 이정목도 지난다.

그 이정목 지나 너무 강하게 불어 오는 아침 바람을 피해 잠시 등로 한쪽에서 더 쉬며 토함산 정상에서의 멋진 일출 시간을 맞춰보는 시간이다.


한동안 그 등로에서 쉰 후 다시 여유롭게 등로를 타고 오르니 좌측 능선 방향으로 성화채화지 50미터란 이정표가 보여 우측으 넓은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바위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성화채화지에 도착해 사진 몇장 남기고 주위 풍경을 살펴 본다.

성화채화지는 대부분 국가와 민족 발생과 관련이 깊은 곳으로 지정되는데 이곳 토함산 역시 그런 곳중의 하나로 남아 있어 큰 체육대회가 있을 때 무사 안녕과 성공적인 축제로 승화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체육대회가 열리는 기간동안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담는 것으로 유명한 의식이다.

 

성화채화지 좌측으로 경주시내의 야경이 빛나는데 이제 아침이 밝아 오려는지 여명의 빛을 받아 그 야경의 강도가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경주 시내의 야경을 담을 수 있다는 ㅅㅇ각은 하지도 못하였는데 이렇게 먼 남쪽 지역까지 내려 와 천년고도인 경주의 야경을 담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다.

이제 진행해 올라야 할 북쪽 방향으로는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간에 드높은 토함산 정상부가 흐미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성화채화지에서 잠시 더 시간을 보내며 여명의 빛을 받아 주위 풍경을 살펴 보지만 역시나 너무나 강하게 불어오는 새벽 찬바람에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토함산 정상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늘은 새벽보다는 아침이 아침보다는 점심때가 되어 더 강한 바람과 기온이 떨어지며 일반적인 겨울 날씨와는 정반대로 움직이니 추위에 대한 고통이 더욱 심한 하루가 되었다.

넓은 비포장 임도로 내려와 나무데크의 작은 다리를 건너 진행하니 이제 토함산까지 300미터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추령갈림길 이정표를 만난다.

호믹맥 마루금은 이곳에서 우측 추령 방향으로 짆ㅇ해야 되지만 좌측 직진으로 300미터 거리에 있는 경주 토함산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토함산으로 올라 본다.


그 추령갈림길 이정표를 지나 잠시 더 걸어 오르니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이곳에서 우측의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직진 임도를 타고 올라 본다.

잠시 걸어 능선으로 오르니 드넓은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 헬기장을 가로질러 능선을 오르니 금새 토함산 정상부가 빤히 올려다 보이는 억새 군락지에 도착을 한다.

그 능선에 오르니 빛바랜 억새 군락지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둥그런 보름달 같은 달이 산객의 가슴으로 떨어지며 멋진 추억을 남겨 본다.


달을 사진에 담고 북쪽을 올려다 보니 저 멀리 토함산 정상이 올려다 보이고 그곳에는 커다란 정상석과 작은 정상석 그리고 삼각점이 박혀 있다.

한쪽에는 천년고도 경주국립공원 안내판과 탐방로 안내도 그리고 이정표도 눈에 보인다.

처음 원고개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이곳 토함산에 올라 일출을 감상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모두 준족들이다 보니 뒤로 처지는 산객 한명 없이 모두 일출 시간보다 일찍 토함산에 올라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천천히 그 토함산 정상으로 올라 사진 한장 남기며 아름다운 추억 한장 담는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와 추위가 엄습하지만 10여분만 기다리며 환상의 일출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주위를 둘러 보며 종주대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수다를 떨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토함산은 경상북도 경주시 하동, 진현동, 덕동, 황용동, 양북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신라시대에는 5악 가운데 동악이라 하여 호국의 진산으로 신성시하였으며 중사를 거행하기도 한 산이다

토함산의 위치를 보면 산의 서쪽에는 불국사선상지가 전개되어 있고 북서쪽에는 추령, 남쪽으로는 동산령이 있고 경주에서 감포에 이르는 도로는 추령을 통과하며 특히 산세가 웅장하고 경치가 수려하다.

태백산맥의 한 줄기인 해안산맥 중의 한 산인데 해안산맥은 중앙산맥의 동쪽에 있어 해안을 따라 연속되는 구릉성 산맥으로 울산만에 이르고 그 해안산맥 중에서 토함산을 최고점으로 하며 경상북도 동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달리는 산맥을 토함산맥이라고도 부른다.

토함산의 유래를 보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탈해는 한편 토해라고도 하여 토해와 토함은 유사음으로 토함산이 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그 하나이다.

또 다른 견해는 토함산의 경관이 안개와 구름을 삼키고 동해의 습기와 바람이 워낙 변화가 심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사납게 굴다가도 안개와 바람이 걷히면 아름다운 소나무와 산 봉우리가 한 폭의 동양화 그림처럼 나타나게 되어 동해 바다의 잔잔한 수평선 위로 해가 가득 떠 오르고 붉은 태양이 토함산을 넘어 갈 때의 전경이 마치 토해낸다 할 정도로 그 변화가 심해 지명으로 삼았다는 설이다.


그렇게 토함산 정상에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일출을 기다리는데 원고개에서 출발을 할 때만 해도 하늘에 구름이 두껍게 드리워져 있어 일출은 불가능하리라 생각을 했는데 이곳 토함산 정상에 오르니 강한 바람으로 인해 구름은 모두 사라지고 추위에 머물기도 힘든 상황이다.

북쪽으로 살펴보니 저 아래 추령이 내려다 보이고 그 추령 넘어 아침식사 후 올라야 할 함월산 방향이 여명의 빛을 받아 서서히 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보기에는 제법 직선의 멋진 마루금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산행을 하다 보니 돌고 돌아 보이는 모든 봉우리를 넘어 진행을 해야 하니 빨래판 능선도 여간 복잡한 능선이 아니었다.


 남서쪽으로는 바로 발 아래 헬기장 지나 저 멀리 오늘 ㅜ리 종주대가 걸어 온 호미기맥 마루금이 희미하게 그 존재감을 알리고 그 좌측으로는 풍력발전기인 바람개비가 줄지어 서 있는 삼태지맥 능선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제 서서히 어둠이 사라지며 이렇게나마 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지만 조금 더 선명한 조망을 즐길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 시간이다.

이 시간쯤 종주대의 반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먼저 추령으로 내려가 아침식사를 한다는 소식이고 나머지 반만 이곳 토함산 정상에 남아 일출을 기다려 본다.


등로 좌측으로는 경주시내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천년고도인 이곳 경주시에도 제법 회색도시의 풍경도 보이는 듯 하다.

등로 동쪽으로는 백두산 지나 저 멀리 삿갓봉 위로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잠시 후면 멋진 일출이 금방이라도 솟아 오를듯 멋진 풍경이다.

하지만 이런 풍경을 만나고도 한참이 지난 후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더 이상 일출을 기다리지 못하고 토함산 정상을 출발 해 헬기장을 지나 다시 추령갈림길 이정표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 본다.


정상을 떠나기 아쉬워 다시 많은 사진 남기고 출발하니 등로 좌측으로 안전 철봉과 로프 구간이 나타나고 금새 추령갈림길에 도착을 해 다시 종주대 몇명의 사진을 담아 본다.

그 추령갈림길 이정표에서 이제 진행 방향의 좌측으로 90도 꺽어 내려가니 갈림 삼거리 같은 갈림길이 보이고 그곳에서 좌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추령까지 2.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도 만난다.

추령갈림길에서 200미터 내려 온 거리에 있는 이정표이다.

 

추령까지 2.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내려가니 등로 우측의 잡목 사이로 아침 햇살이 막 떠오를 듯 부풀어 오르고 이곳에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조망이 조금이라도 좋은 곳을 찾아 일출을 기다려 보며 많은 사진을 담아 본다.

함께 진행하던 종주대들도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일출을 기다리며 좋은 조망처를 차지하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


잡목 사이로 떠 오르는 일출을 기다리고 있는데 바로 아래 전망대로 먼저 내려간 종주대 한명이 소리를 치며 어서 내려오라고 한다.

뛰다시피 등로를 타고 내려가 그 전망대 바위에 오르니 방금 전 기다렸던 잡목 사이보다는 좋지만 역시 토함산에서 기다렸던 일출이 아쉬운 시간이다.

그래도 그곳 전망바위에서 동쪽 저 멀리 동해바다 위 두꺼운 구름을 뚫고 올라오는 밝은 햇살을 맞이하는 시간은 장엄하고도 신비한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무박산행을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일출을 전후한 고요한 시간이 너무나 좋기에 그 마력에 빠져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동안 그 멋진 전망바위에서 일출을 감상하고 추위에 온몸을 떨면서 전망바위를 내려오는데 저 멀리 방금 전 지나온 토함산 정상부를 따뜻하게 비추는 아침 햇살이 환상으로 다가온다.

그 토함산 정상석은 보이지 않지만 정상 좌측 능선 위에 남아 있는 보름달이 더욱 기묘한 풍경을 만들며 바쁜 이 산객의 발걸음을 더 잡고 늘어진다.


토함산 정상부를 올려다 본 후 그 우측으로 아침에 걸어야 할 호미기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제법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이 빨래판을 이루고 저 멀리 함월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등로이지만 목표지점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려야 가능할지 아직은 꿈도 못꾸고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정상 등로를 따라 다시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니 추령까지 2.0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고 다시 내리막 등로를 내려간다.

잠시 후 구불거리는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는 묘지 한기가 보인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고 급경사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무명봉에 도착해 방금 전 지나온 토함산을 올려다 보니 그 정상은 저 멀리 멀어지는데 그 정상 옆 능선에 걸려 있는 둥그런 달이 산객의 발길을 잡으며 잠시 더 쉬어가라 한다.

 

다시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추령까지 1.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안전로프가 설치된 무명봉을 넘으니 금새 무명봉을 좌측으로 우회하는 등로와 만나고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걸어 내려간다.

잠시 더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안전 목책과 로프 구간이 이어지고 곧이어 낙엽진 활엽수 등로를 따라 호젓하게 걸어 본다.

이제 추령까지 1.0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토함산 정상이 멀어지는 아쉬움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토함산 정상부를 조망하며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안전 목책과 로프 구간이 나타나고 호젓한 멋진 등로가 이어지더니 다시 안전 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추령까지 0.2 Km 남아 있다는 이정목을 지나 드높은 공용기지국 무선설비를 통과하니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낙엽 등로가 이어지고 나무 계단을 걸어간다.

나무계단을 지나니 백년다원이 좌측으로 나타나고 그 건물 옆을 통해 내려가니 금새 백년다원 정문이 있는 추령에 도착을 한다.


이곳 추령에 도착을 하니 먼저 내려 온 종주대가 백년다원 앞 넓은 공터 한쪽의 바람이 잔잔한 곳에서 아침상을 펴 식사를 하고 있어 같이 합류해 맛 있는 식사를 즐겨 본다.

잠시 식사를 즐기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고 햇살이 비출수록 얼마가 바람이 강하고 기온이 내려가던지 먼저 식사를 끝낸 종주대가 하나 둘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출발을 하고 제일 후미로 쳐져 천천히 그 추령을 출발해 본다.

예전에는 참으로 많은 차량들과 등산객들 그리고 여행객들로 붐볐다는 추령은 이제 그 아래로 4차선의 추령터널이 뚫리며 오늘 호미기맥 종주대들처럼 산행을 즐기는 산꾼들과 옛 추억이 그리워 찾는 여행객이 전부일 정도로 한가한 고갯마루가 된지 오래다.

추령 또는 추령재는 대한민국의 경상북도 경주시 황용동에서 양북면을 연결하는 고개로서 가내동재라고 하기도 한다.

고개의 해발고도는 약 310m로서 국도 4호선이 추령터널로 가로질러 지나가고 있다.

도로명은 추령재길로서 추령재는 경주에서 동해안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로 경사가 심한 토함산 자락에 있다.

추령재에 서면 토함산과 함월산의 경치를 볼 수 있고 토함산을 향하는 등산로의 초입이 되는 곳이다.

이곳 추령은 또한 옛날에는 신라왕들이 문무왕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감은사로 가려면 경주에서 황룡계곡을 따라 올라와 함월산을 넘어 기림사를 지나는 길 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에 길이 황룡계곡과 함월산으로 넘는 불편함 때문에 추령재로 새로이 개척되었고 추령재는 동해안에서 경주로 들어오는 길목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옛 4번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좌측 콘크리트 옹벽을 넘어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콘크리트 교통호같은 수로가 나타나고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다 등로 우측 뒤를 살펴보니 방금 전 출발한 추령의 2차선 포장도로와 백년다향 그리고 토함산 방향의 드높은 공용기지국 통신탑을 지나 저 멀리 부드럽게 펼쳐진 토함산 자락이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온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이곳에서 도 잠시 시간을 보내며 몇 장의 사진을 더 남겨 본다.


계속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하니 낙엽이 푹신한 마루금을 지나 계속 등로 뒷쪽으로 잡목 사이로 너무나 아름다운 토함산이 조망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393봉이라 생각되는 바위 암봉이 나타나고 그 우측 등로를 타고 우회하며 그 암봉을 통과한다.

그 암봉을 지나 다시 나타나는 암봉에 올라 잠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만호봉이라 생각되는 아름다운 산줄기가 펼쳐져 있다.


그 암봉에서 잠시 더 주위 조망을 즐긴 후 주위 산 이름을 찾아 보지만 쉽지 않아 다시 그 암봉을 내려 온다.

내려오니 의미를 알 수 없는 삼각점이 보이는데 왜 이런 삼각점이 이곳에 묻혀있는지 그리고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삼각점을 지나 호젓한 잡목 등로를 타고 추위를 이기기 위해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서두른다.


다시 호젓한 등로를 따라 무상무념으로 걸어가니 등로 옆에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무명봉을 지난다.

그 바위봉을 지나니 다시 잡목들이 등로를 호위하듯 줄지어 자라고 있는 호젓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고 잠시 후 묘지 한기를 지나 등 뒤로 멀어지는 아름다운 토함산을 살펴 본다.

다시 얼어있는 진달래 등로를 따라 평이하게 진행되고 한동안 호젓하게 걸어가니 완만하게 이어진 오르막 등로를 따라 497봉의 폐헬기장이라 생각되는 공터도 통과한다.


다시 멋진 낙엽진 활엽 등로를 따라 무상으로 걷다보니 무명봉을 지나고 다시 평이한 마루금으로 이어진다.

호젓한 마루금이 계속 이어지고 다시 무명봉을 넘으니 507봉의 폐헬기장이라 생각되는 공터가 나타나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갔다 오르니 갈림 삼거리인데 호미기맥 마루금은 우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고 좌측 등로에는 잘려진 나뭇가지로 막아놨다.

지도를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는 유인성주도씨 묘지가 있고 삼각점이 있는 492.2봉이기에 잠시 다녀오기로 한다.

어느 지도에는 492.2봉이라 되어 있고 또 어떤 지도에는 494.2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어 헷깔리는 이곳 삼각점은 표식을 알 수 없을 정도인데 선답자들의 후기를 살펴보니 불국사 456이라 적혀 있다고 되어 있다.

 

그 492.2봉의 삼각점과 묘지에서 정상 등로로 뒤돌아 나와 이제 진행 방향에서 좌측 등로를 타고 급하게 내려가 본다.

낙엽이 깔린 등로는 미끄럽지만 추위로 인해 정신없이 진행하니 다시 평이한 안부 등로로 바뀌고 다시 이장된 듯한 묘지를 통과한 후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459.2봉 폐헬기장은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그곳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금새 수레가 넘어다녔던 고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수랫재 갈림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한다.

우측으로 용연폭포 가는 등로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모차골 방향 등로도 보인다.


용연폭포는 문무왕이 만파식적 대나무와 옥대를 가지고 환궁 할 때 마중 나온 어린 태자의 예지로 옥대의 용 장식 하나를 떼어 시냇물에 담그니 진짜 용으로 변해 승천하고 시냇가는 깊이 패여 연못과 폭포가 생겼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용연폭포이다.

모차골이란 이름은 마차가 다닌다는 뜻의 마차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경주에 오면 경주 남산등 다양한 트래킹 및 산행 코스가 있는데 근래 들어서 알려지기 시작한 경주 왕의길에 이곳 모차골과 수렛재 그리고 기림사 용연폭포가 속해 있어 소개를 해 본다.

왕의길은 경주 보문에서 동해 감포로 가는 추령터널에서 모차골을 거쳐 용연폭포를 거쳐 기림사까지 약 9.5 Km(추령터널에서 모차골까지 접속구간 2.5 Km, 모차골에서 기림사까지 신문왕 호국행차길 7 Km)의 트레킹 코스인데 중간 수렛재에서 기림사의 배산인 함월산을 오를수 있다.
이 왕의길은 신라의 때부터 조선후기까지 감포와 장기 그리고 장기와 경주를 이어주던 길로 왜구가 침략하던 주된 통로였는데  감은사지 석탑이 이들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용의 이빨이 된다는 풍수가 있다.  

그리고 용성국의 왕자인 석탈해가 신라로 잠입하던 길이며 신문왕이 용이되신 부왕인 문무왕에게 신라의 보배인 옥대와 만파식적을 얻기위해 행차했던 길인데 함월산에서 시작되는 작은 개울과 또한 기림사로 향하는 계곡이 산과 골을 넘나드는 때묻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누구나 걷기 좋은 길이 아닐까 싶다.


 수렛재 안부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봉분이 나즈막한 묘지 한기가 보이고 바위가 널려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걸어 오르니 다시 호젓한 활엽수 등로가 열린다.

그 등로를 지나 조금 더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 좌측 아래에 멋진 바위 전망대가 보이고 그곳으로 잠시 내려가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본다.

한티버든 지나 저 멀리 664봉과 무장사지3층석탑이 가까이 있는 오리온 목장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전망 바위 앞에서 그 전망바위와 저 멀리 664봉을 이루는 산줄기를 다시 한번 살펴 본다.

좌측 저 아래에는 절골의 황룡사지가 있다고 알고 있기에 살펴 보지만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한티버든은 민요보존회가 있는 곳이다.


그 전망대에서 올라 와 정상 등로를 타고 다시 진행을 하니 바위 암봉을 넘고 다시 낙엽이 쌓인 호젓한 등로를 따르니 묘지를 지나 잠시 후 함월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함월산은 해발고도 584미터의 산으로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에 있는 산이다.

남쪽은 추령을 지나 토함산과 북쪽은 운제산으로 이어지는데 정상 부근은 바위가 많아 험준하지만 대부분 완만한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망이 좋아 정상에 서면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적광전(보물 제833호), 건칠보살좌상(보물 제415호), 삼신불(보물 제958호), 복장유물(보물 제959호) 등이 소장된 신라의 유서 깊은 절 기림사와 암벽에 마애여래좌상(보물 제581호)을 새겨놓은 석굴사원 골굴사가 있다.

생각보다 주위 조망이 없어 사진 몇 장 남기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함월산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늪지대 갈림길을 지나 잡풀이 우거진 헬기장을 만난다.

지도를 살펴보니 전망바위를 지나 함월산 오르는 등로를 버리고 좌측 우회 등로를 따르면 평이한 등로를 지나 함월산을 오르지 않고 560봉 방향으로 진행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곳 헬기장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나무들이 질서를 잡고 호위하듯 산객을 반기는 멋진 등로를 만난다.


잠시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560봉이 우뚝 솟아 있어 얼마나 힘을 빼야 저 봉우리에 오를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며 걷다보니 등로는 560봉으로 오르지 않고 우측 사면 우회 등로를 따라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행복한 기분으로 낙엽진 멋진 등로를 타고 무상무념으로 걷다 보니 다시 올망졸망한 무명봉과 안부들을 지나 등로 좌측의 잡목 사이로 오리온목장을 조망하며 걸어 본다.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664봉에서 오리온목장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산줄기가 눈 앞으로 다가와 있다.


이제 습지지대를 지나 호미기맥에서 611봉을 지나 오리온목장이 있는 산줄기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그 등로가 참으로 환상적이다.

다시 멋진 등로를 타고 걸어가는데 정오로 가면 갈수록 더욱 추워지는 날씨와 기온으로 인해 종주대 모두 콧물을 흘리며 진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렇게 평이한 산행을 이어가다 보니 갑자기 등로에는 발목 위까지 빠지는 낙엽 등로가 이어지고 한동안 종주 산행도 잊은 채 낙엽 테마산행을 즐기며 외롭고 고통스런 시간을 견디고 있다.


멋진 낙엽 등로를 지나니 다시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등로 좌측으로 늪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느데 호미기맥 마루금은 좌측 늪지대를 버리고 우측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낙엽진 진달래 군락지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 앞 저 멀리 포항시내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잡목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가 멋지게 서 있는 좁은 조망처에서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오리온목장을 가깝게 조망해 본다.

그 오리온 목장 아래에는 축사 건물도 보이는데 자금은 폐축사가 되었는지 가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등로 좌측으로 611봉 지나 오리온목장으로 이어지는 갈림 삼거리를 지나 포항시내를 조망하며 걸어가니 금새 삼각점 불국사 435번과 나뭇가지에 호미지맥 591.4봉이란 이정표가 붙어 있는 정상에 도착을 한다.

잡목으로 인해 조망이 없기에 잠시 쉬며 얼어붙은 물한모금 어렵게 마신 후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얼마남지 않은 성황재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 내려간다.


잠시 내려가니 등로 좌측 잡목 사이로 성황재로 이어지는 14번 지방도로의 다리라 생각되는 교각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우측 저 앞으로는 다음 구간 올라야 할 호미기맥 제4구간의 마루금이 올망졸망한 산그리메를 그리며 펼쳐져 있다.

잠시 더 진행하니 등로 좌측 저 멀리 호미기맥 끝자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동해바다로 이어지며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잡목 사이로 앞으로 진행해야 할 방향의 좌우측으로 드높은 봉우리가 하늘 높이 솟아 있는데 우측보다는 좌측 봉우리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시 계속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산사태 지역이 나타나는데 산사태가 크게 났는지 이 산객이 걸어가는 등로 바로 좌측 옆까지 절개지로 변해 있다.

그 산사태 지역 지나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가 마지막 470봉의 헬기장이라 생각했는데 진행하다 보니 등로는 저 봉우리 우측으로 돌아 더 높은 봉우리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의 어려움을 제대로 인식 시켜 줬다.


산사태 지역을 지나 등로 좌측으로 430봉을 올려다 보며 진행을 하니 그 430봉 넘어 저 멀리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호미기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다 잡목이 사라진 등로에서 좌측 뒤를 바라보니 방금 전 올랐다 급하게 내려 온 591.4봉 산줄기가 급하지 않게 아름다운 풍경으로 이 산객과 멀어짐을 아쉬워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다시 관목과 멋진 소나무가 어우러진 호젓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이장된 묘지가 있었던 듯한 공터를 지나 잡목으로 가려진 평이한 마루금을 걸어간다.

한참을 더 걸어가니 낙엽 등로로 바뀌고 등로 좌측으로는 도로에 공사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휴게소가 있는지 알록달록한 건물이 내려다 보이고 곧이어 환상의 소나무 마루금이 펼쳐진다.

그 마루금을 타고 걸어가니 다시 활엽수 등로로 바뀌더니 등로는 좌측이 아닌 우측 남쪽 방향으로 크게 꺽여 햇살을 앞에 두고 진행을 한다.

잠시 더 진행하다 등로 좌측을 보니 처음에 오르고 싶어 했던 430봉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이 산객을 유혹하고 있다.


아름다운 산하를 조망하며 생각보다 급경사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랫만에 등줄기에 땀방울을 흘려 본다.

맥 산행의 묘미를 알려주듯 마지막 발걸음에 한발을 옮기기가 어려울 정도의 체력 고갈이 있는 시간에 급경사 오르막 등로를 따르는 시간은 참으로 고통스런 시간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다 힘겨워 잠시 발걸음 멈추고 좌측으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포항시내 전경이 아스라히 다가오고 제법 강렬한 회색 도시의 풍경으로 이 산객의 가슴속에 남겨진다.


다시 마지막 힘을 내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공터가 나타나고 처음에는 이곳이 정상인가 생각을 하는데 정상부는 조금 더 앞쪽으로 솟아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지나온 591.4봉 산줄기를 바라보며 조금 더 걸어가니 넓은 헬기장으로 되어 있는 481.9봉 정상에 드디어 도착을 해 큰 한숨을 지어 본다.

체력이 많이도 고갈된 시간에 마지막 큰 봉우리를 급하게 오르다 보니 맥 잇기 산행의 어려움을 온 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이다.


그 481.9봉 정상을 출발 해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소나무들이 자라는 칼바위 능선으로 변하고 곧이어 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한다.

헬기장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을 하니 간벌된 듯한 등로가 나타나고 아름답게 이어진 마루금을 타고 이제 마지막 힘을 짜내 본다.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는 간벌을 했는지 아니면 잡목을 벌목을 했는지 모를 잘려진 나뭇가지들이 보이고 등로는 호젓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이제 등로 좌측으로는 무슨 터널 공사를 하는지 커다란 구멍 2개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뒤 저 멀리 호미기맥 마루금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그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아 큰 고도차 없이 빠르게 진행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걸어 본다.

그렇게 진행하니 온순하던 등로는 다시 바위들이 많은 무명봉을 지나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봉우리들을 살펴 본다.


또 다시 나타나는 바위 무명봉에서 잠시 주위 조망을 즐겨 본다.

등로 좌측 저 멀리 포항시내가 가물거리고 그 회색빛 포항시내 우측으로 올망졸망한 호미기맥 마루금이 끝도 없이 펼쳐져 동해바다로 달려가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바로 눈 앞에는 도로 공사를 하면서 터널을 뚫고 있는 모습도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 바위 무명봉에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출발하니 또 다른 바위들이 박혀 있는 무명봉이 나타나고 곧이어 오늘 마지막으로 걸어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64번 송전탑이 보이고 잠시 키 작은 잡목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와 바위들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조망처에 도착을 한다.

아름다운 지나온 마루금을 뒤돌아 보고 등로 좌측으로 공사중인 터널과 길게 이어진 송전탑을 바라 본 후 조금 더 걸어가니 금새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 편안하게 걸어 본다.


넓은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임도 좌우측으로 나뭇가지에 여러가지 문구의 글들이 스여있고 잠시 읽으며 걸어 진행하니 우측 능선으로 나 있는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빠지는 임도를 따라 계속 걸어 가 본다.

금녕김씨 문희파 선영지를 지나 넓은 직선의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48번 송전탑을 지나 저 앞에 14번 2차선 지방도로 위 도로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측 14번 2차선 포장도로가 보이는 곳으로 가니 그 도로 쪽으로는 철조망이 쳐져 있어 도로로 나갈 수 없도록 막아 놨기에 그곳에서 도로와 다음 구간 들머리쪽을 사진에 담아 본다.

산자락을 잘라 만들어진 도로이다 보니 도로는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갈지자 도로로 이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마지막 힘을 내 우측에 14번 포장도로를 두고 철조망 옆을 따라 가니 저 앞으로 화장실이 보이고 곧이어 폐쇄된 성황재 휴게소가 보인다.

이곳에서 버스 기사에게 전화를 하니 기림사 근방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빨리 성황재 휴게소로 올라오라 이야기 한 후 성황재 휴게소로 빠져 나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식사도 하고 음료수도 마셨다는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읽었기에 약간의 기대를 하고 나갔지만 이곳 성황재 휴게소는 지금 완전히 폐쇄되어 황량한 한겨울 찬바람만 산객의 얼굴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성황재 휴게소에 도착을 하니 종주대 모두가 도착을 해 추위를 이기기 위해 수고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이곳 성황재가 속한 마을은 포항시 오천읍 진전리인데 유래를 찾아보니 오천읍의 최남단에 위치하는 마을로 남쪽으로는 경주군 양북면, 서쪽으로는 경주시와의 경계를 이루면서 북쪽으로는 흘러 영일만으로 빠지는 냉천의 발원지가 되는 만리봉(428봉), 못재(538봉), 갈미봉(331봉)등 여러 준봉들에 둘러싸인 깊은 골짜기에 위치한 산간오지 마을이다.

양지마을과 읍지마을 2개의 자연부락이 있으며 1988년 마을 북쪽 갈평리와의 경계지점에 오천읍 상수도 수원지용 저수지인 진전지가 건설됨으로서 주변의 자연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예전에 영일군 고현면 지역으로서 진전산(만리봉)이 있다하여 또는 옛날부터 이 지역에 묵밭이 많았으므로 한자로 표기하여 진전이라 하였다고 전해지는 마을이다.

 

폐쇄된 성황재휴게소에서 배낭 내려 놓고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버스를 기다려 본다.

다음 구간은 저 14번 도로를 타고 고갯마루로 올라 좌측 철조망이 끝나는 절개지에서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진행 될 것이다.

어둠속에 오르기 때문에 조금은 걱정도 되지만 모두가 GPX로 무장한 종주대원들이기에 큰 무리없이 정상적인 산행 들머리를 찾아 또 무탈하게 걸어 갈 것이다.


금새 버스가 도착을 하고 그 버스를 타고 땀도 흘리지 않았기에 목욕은 생략을 하고 경주 IC 부근에 있는 한정시당에서 맛난 점심을 먹고 곧바로 서울로 복귀해 생각보다 빠른 저녁 7시 30여분에 사당역에 도착을 해 또 어려운 한구간을 무탈하게 마무리 해 본다.


다음 구간은 2월 중순에 구정 연휴가 있기에 진행을 하지 못하고 3월 초가 되어야 다시 내려 와 진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구룡포의 문화역사탐방과 과메기 그리고 응암산과 말목장성을 연계한 기획.테마 산행을 병행하여 한명의 산우님이라도 더 모시고 내려 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춥고 길었던 등로를 타고 모두 무탈하게 완주하여 감사한 마음 전하며 다음 구간에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