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울산시 울주군과 경주시의 호미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5년 02월 06일(금)-금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엔 춥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지만 일출 후부터 청명한 하늘에 산행하기 좋았던 날씨
산행온도 : 영하 06도에서 영상 04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당산고개(구미월평로 2차선 포장도로, 다종영농조합)-짧은 절개지-불났던 소나무 군락지-월성이공묘지-임도같은 넓은 등로-송전탑-묘지-묘목식재구간-송전탑-유인밀양박씨묘지-연속 무명묘지-준.희님의 응원 안내판-처사경주김공묘지-낙엽등로-이정표(당산마을 0.9 Km 36분, 상월평마을 2.0 Km 1시간 20분, 치술령정상 2.0 Km 1시간 20분)-목책 사면등로-벤취2개와 이정표(상월평마을 2.4 Km 1시간 36분, 외동 4.0 Km 2시간 40분, 당산마을 1.0 Km 40분, 반석갤러리, 치술령정상 1.6 Km 1시간 4분)-644봉-망부석과 전망데크 및 벤취들-이정표(참새미 0.1 Km)-이정표(망부석 0.1 Km, 서북능선 2.0 Km, 정상 0.3 Km)와 명품울주 걷기코스 안내판-억새지대-벤취2개-치술령정상(765봉 정상석과 삼각점 그리고 이정표)치술령 망부석-낙엽등로-석계 상동못과 약수터 갈림 이정표(정상, 치술령 종주길 봉계 명남 남산방면 제네리 6.2 Km, 약수터와 석계 상동못 3.5 Km)-바위봉-낙엽등로-억새등로-묵장산(781봉)-철쭉나무 군락지-폐헬기장과 악새지대-철쭉터널지대-억새지대-750봉 폐헬기장 이정표(명계 남산방향 제네리 3.5 Km, 치술령정상 2.5 Km, 석계자연농원 석계상동못 3.5 Km)-낙엽등로-억새등로-700봉 갈림봉-급경사 내리막 등로-전망바위-낙엽등로-잣나무 군락지-철쭉나무 군락지-잡목지대-서라벌 CC 포장도로-포장도로 사거리(우-서라벌 CC, 좌-관리건물)-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비포장 임도-능선진입-소나무 군락지-잣나무 군락지-무명묘지-420봉 월성이씨묘지-준.희님 응원 안내판-묘지지대-냉천공단 조망등로-묘지지대-서낭재(사일고개, 904번 2차선 포장도로)-대왕성 짬뽕 전문점에서 굴짬봉으로 점심식사 (9000원, 흥부휴게소와 SK 주유소 그리고 2개의 또 다른 식당들)-능선 진입 후 서낭재 입간판-무명 묘지들-전망바위-경주최씨 가족묘지-송전탑-329 바위봉-연속되는 바위와 암릉구간-5번 송전탑과 전망대-청경그린산업-월성이씨 부인묘지-청경그린산업 출입 포장도로-임도같은 능선 등로-능선진입-바위지대-폐헬기장-송전탑-바위 전망대-산죽지대-독점산(삼각점과 흩어진 바위들 그리고 나무 2그루)-바위지대와 전망대-소나무 등로-출입금지 밭-민가 옆 비포장 임도-포장도로-조릿개가 있는 밭 가장자리-묘지지대-잡목지대-마을 방송 마이크 시설-마을 포장도로-냉천지초길-민가 사이 시멘트 포장도로-우측에 거대축사-동해축산-2차선 포장도로-좌측 냉천지초길-제내1리 사거리-우측 한성목재-한성목재 좌측 능선진입-비포장 임도-능선진입-장구방이(마석산 등로 합류지점)-경주김공묘지-비포장 임도-묘지지대-잡목지대-출입금지 밭 가장자리-묘지지대-소나무 군락지 능선-단양우씨 가족묘지-이어지는 많은 묘지들-바위지대-195봉 삼각점과 산불감시초소-산죽지대-비포장 임도-불났던 소나무 지대-벌거숭이 민둥 능선-묘지봉-이어지는 묘지봉들-소나무 군락지-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동해남부선 철길-원고개(굿모닝휴게소, 4차선 7번 국도, 석거돈 식당, 충효마을 괘릉동 표지석)-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9.78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아팠던 몸을 점검하며 사진 찍고 꾸준하게 08시간 20분 (06시 34분부터 14시 54분까지)
교통편 : 애마와 택시 이용
호미기맥이란???
부산 몰운대에서 북진하는 낙동정맥이 영축산,가지산,고헌산,백운산을 지나 경주의 단석산으로 이어지며 북진해 올라간다.
단석산에 이르기전의 백운산은 붕우리가 4개 있는데 맨 아랫쪽의 892m봉이 주봉이고 그 북쪽으로 860m봉, 845m봉, 855m이 연이어 있는데
호미기맥은 그중 아래에서 세번째 봉인 845m봉에서 동쪽으로 가지를 쳐 천마산(620.5미터 봉)과 경부고속도로를 지나 치술령(766.9미터 봉)에서부터는 북동진하여 포항의 호미곶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호미기맥이라 부른다.
이 산줄기는 도상거리 약 98 Km나 되는 산줄기로 형산강의 남쪽 울타리 역할을 하여 일부에선 형남기맥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통상은 땅끝기맥과 같이 지역의 특수성을 살려 호미기맥이라 부른다.
이산줄기 북으로 흐르는 물은 형산강으로 들고 남쪽으로 흐르는물은 태화강으로 들며 일부는 장기천, 대화천으로 들어 동해바다로 들어간다.
약간 추운 날씨에 몸은 아직 정상이 아니었지만 숙제를 마친 마음만은 날아갈 듯 기분 좋았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원래 1월 31일인 토요일 서울을 출발해 2월 1일인 일요일 산행 후 귀경을 했어야 했는데 지난1월 중순부터 유럽 본사에서 동료들이 많이 내한을 하면서 정신없이 바쁜 시일을 보내다 보니 몸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는데도 어쩔 수 없이 무리를 하다 보니 1월 29일인 목요일 저녁부터 지독한 감기 몸살로 인해 3일 동안 병원 신세를 지다보니 몸도 마음도 너무나 아프고 추운 계절이 되었다.
몇 일 동안 정신없이 아픈 후 2월 4일인 수요일부터 조금씩 몸이 좋아지면서 2월 7일과 8일 진행 예정인 호미기맥 제3구간을 시작하기 전 제2구간을 완주하고픈 마음에 바쁘기만 하다.
마침 2월 6일 금요일에 그쪽에서 손님과 잠시 만남이 약속되어 마음 편히 새벽에 홀로 내려가 산행 후 사업 이야기를 나누고 밤 늦게 홀로 올라오는 시간은 몸도 마음도 병마롭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음을 확인했기에 더없이 즐겁고 마음 가볍게 올라온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는 조금 더 몸을 아끼고 조심하며 아프지 않고 즐겁게 산에 오를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새벽부터 시작한 산행이 생각보다 추운 기온으로 인해 어렵게 진행이 되고 그랟 등줄기에 약간의 땀방울을 흘리며 치술령 넘어 몸에 이상이 없기에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즐겁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치술령 지나 묵장산과 700봉까지는 큰 고도차이 없이 완만하게 이어지는 아름다운 등로이기에 힐링이 되는 기분으로 걸어 진행하다 700등자기 우측으로 크게 꺽여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더 내려가니 등로 좌측에 바위 전망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내려다 보는 서라벌 골프장과 그 넘어 올라야 할 420봉이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오기에 잠시 그 전망바위에 올라 휴식을 취하며 자연에 취해보는 시간이다.
새벽 2시에 집을 나서 애마를 몰고 여유있게 출발을 했는데 건천휴게소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났는데도 이제 새벽 4시 30여분을 조금 넘기고 있다.
애마속에서 잠시 눈을 붙여 잠을 청하고 일어나니 근 1시간 이상 잠을 잤는지 몸이 개운해지고 머리가 맑아 오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몸의 상태가 좋아 다시 애마를 끌고 경주 IC를 지나 뒷골지를 향해 시골 도로를 달리다 보니 새벽 6시 30여분에 드디어 지난 번 산행을 마무리한 당산고개에 도착을 해 영농조합 건물 입구 한쪽에 애말ㄹ 주차 시킨 후 산행 준비를 하며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지난 구간 마무리한 영농조합 건물 출입구에서 두동면 월평리 방향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고갯마루가 나타나고 도로 우측으로 영농조합 건물 뒷편으로 산행 들머리가 보인다.
28번 2차선 포장도로 옆 시멘트 옹벽을 넘어 가파른 오르막 절개지를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최근에 지어진 듯한 영농조합 건물이 보이고 등로는 넓은 고터를 지나 곧바로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능선으로 접어 들자마자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는데 거대한 소나무 밑에는 불에 탄듯한 흔적들이 보여 최근에 불이 났던 흔적은 아닐까 생각되는 자국들이다.
조금 더 오르니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반갑게 맞이하고 등줄기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식히며 잠시 쉬어 간다.
오늘 산행은 완주도 중요하지만 몸살 감기로 몇일 동안 병원 신세를 졌던 몸이기에 그 몸의 사태를 점검하며 무탈하게 완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너무 급하지 않게 여유롭게 진행을 하는 시간이다.
잠시 선답자들의 띠지들을 만나 인사 나누고 오르니 처사월성이씨 묘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데 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진행하니 금새 4번 송전탑이 나타난다.
그 송전탑을 지나 다시 무명 묘지를 만나고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최근에 식재된 듯한 소나무를 지나 등로 옆 송전탑을 다시 만난다.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밀양박씨 묘지를 지나 또 다시 나타나는 무명 묘지도 연속 2기를 만난다.
무명 묘지 2기를 지나 다시 나타나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를 반갑게 만나 인사 나누고 다시 묘지 2기가 있는 고세 도착을 하니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하며 주위 산군들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다시 그 묘지 지대를 지나 진행을 하니 이곳에도 역시 준.희님이 붙여 놓은 종주 응원판이 보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다시 만나는 처사경주김씨 묘지를 지나 낙엽이 깔린 푹신한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진행하니 드디어 여명이 밝아 오고 헤드렌턴 없이도 진행이 가능할 만큼 날이 밝아오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하다 등로 우측을 올려다 보니 잡목 가지 사이로 저 멀리 지금부터 올라야 할 치술령 정상부가 빼꼼히 올려다 보인다.
생각보다 멀게 느껴지며 높아 보이는 치술령 정상부로 인해 벌써 온몸의 힘이 빠지는 기분이지만 산행을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 보려 노력을 해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소나무와 낙엽이 떨어진 활엽수가 적당히 섞여 있는 나겹 깔린 등로를 타고 오르는 시간이 참으로 고즈넉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사면 등로를 타고 한동안 바스락 거리는 낙엽소리를 친구 삼아 오르니 드디어 오늘 산행 중 처음으로 이정표를 만난다.
당산마을과 상월평마을 그리고 치술령 정상의 방향과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로서 치술령 정상까지는 아직도 2.0 Km 거리를 1시간 20여분 더 걸어야 도착이 가능하다는 표시가 되어 있다.
이정표를 지나 다시 치술령 정상 방향으로 전진하니 등로는 눈 앞에 보이는 정상을 우측으로 우회하는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 등로에는 예쁜 안전목이 길게 박혀 있어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모습으로 이 산객의 눈에 들어 온다.
어느 유럽 국가의 호젓한 산책로를 걷는 기분으로 밝아 오는 하루의 아침을 그렇게 기분 좋게 맞이하는 시간은 참으로 뜻깊고 의미가 있는 시간으로 다가온다.
그 예쁜 안전 목책 등로를 따라 마음을 정화시키며 한동안 오르니 다시 벤취 2개가 서 있는 이정표 하나가 보이는 옛고개 쉼터 삼거리인 640미터 봉에 도착을 한다.
상월평마을과 당산마을 그리고 외동과 반석갤러리로 향하는 방향 표시와 함께 거리 표시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치술령정상까지 1.6 Km 거리에 산행 시간은 1시간 4분이 걸릴 예정이란 표시도 보인다.
사진 몇 장 남기고 다시 치술령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본다.
이정표를 지나 오르다 등로 좌측으로 보니 잡목 가지 사이로 치술령 지나 올라야 할 묵장산 지나 700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결코 쉽지 않은 산행임을 알려 주고 있다.
조금은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어렵게 오르니 무명봉에ㅔ 도착을 하고 낙엽 등로를 따라 조금 더 오르니 644봉에 도착을 한다.
이제 등로엔 말라 붙어 있는 키작은 회색빛 억새풀과 그 위로는 낙엽진 거대한 활엽수가 묘한 분위기를 이루며 또 다른 자연의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다시 무명봉으로 오르다 보니 등로 우측 잡목 사이로 늦은 아침 일출이 시작되고 그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오늘 하루의 행운을 빌어 보는 시간이다.
늦은 일출이고 나무가지 사이로 초라하게 맞이한 일출이렀지만 그래도 화루를 열어 주는 햇살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반기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른다.
아침 해살이 등로를 비추며 더욱 아름다운 마루금으로 변화시키는 시간에 잡목 사이로 올라야 할 치술령 정상이 저 높이 높아만 보인다.
그렇게 잠시 더 정신없이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큰 바위가 나타나 그곳으로 오르니 그 앞으로 나무전망데크가 보이고 망부석이란 안내판이 서 있는 울산시 기념물 1호인 망부석이다.
내용을 읽어 보니 신라 눌지왕 때 유명한 충신인 박제상과 그 부인에 얽힌 설화가 남아 있는 곳으로 그 바위의 형상은 새로 만들어진 나무전망데크로 인해 확인하기 어려워 아쉬움이 남는다.
잠시 망부석 나무 전망데크 위로 올라 주위 풍경을 조망하며 산 이름을 불러 본다.
호미기맥 마루금 우측 저 멀리 삼태지맥의 삼태봉과 동대산들이 밝아 오는 여명의 하늘 아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고 그 좌측으로는 이제 걸어 진행해야 할 호미기맥 마루금도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에 어려움도 잊은 채 잠시 망중한을 즐겨 본다.
조망을 즐긴 후 나무 전망데크를 출발하려는데 그 바로 앞에 좌측으로 참새미까지 0.1 Km 거리라는 이정표가 보이는데 오늘 산행을 하면서 지금까지 물 한방울 마시지 않았기에 참새미는 포기하고 기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더 진행하니 정상까지 0.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자 마자 명품울주 걷기코스라는 안내도가 보이는데 이곳 주민들에게는 제법 사랑을 받고 있는 등로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 걷기코스 안내판을 지나니 잡목과 빛바랜 억새가 함께 어우러진 등로가 나타나고 급하지 않게 그 등로를 따르니 참으로 아름다운 등로가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잠시 더 그 아름다운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에 두개의 벤취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계속 진행을 하니 큰 바위 지대를 지나 넓은 공터에 정상석과 이정표 그리고 삼각점과 신모사지가 보이는 치술령 정상에 도착을 한다.
치술령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니 많은 자료들이 보이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해 본다.
신라 제19대 눌지 왕은 볼모로 보낸 두 동생 복호 미사혼을 구출하는데 지혜와 용맹을 떨쳤던 박제상 생각에 항상 잠겨 있었는데 어느 해 초겨울 나랏일을 마치고 막 잠을 청하려는 순간 갑자기 대왕의 귀전에 아기의 울음 소리가요란 서럽게 들려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왕은 가족을 깨우고 문무백관을 불러 밤중에 궁성은 발칵 뒤집히기 시작했으며 날이 밝아오도록 숙의를 거듭했으나 대책은 서질 않고 아기의 울음소리는 계속 되었다.
이틀이 가고 사흘이 가도 그칠 줄 모르는 아기 울음소리 때문에 잠도 나랏일(국사)도 수라(식사)도 들지 못하니 용안(얼굴)은 수척할 대로 수척해지고 온 성안이 들끓고 이름 모를 변고에 대한 추측은 천 갈래 만 갈래로 난무하여 민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아기 울음소리의 정체는 알 길이 없었으며 소문난 점술가도 영험 있는 의원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왕은 아기 울음소리를 찾아보기로 결심을 굳히고 길을 떠났다.
왕의 거동에 아기 울음소리는 한결 부드럽게 들렸는데 그 방향이 틀리면 이상하게도 곡소리가 들리고 다시 방향을 바르게 잡으면 온화한 웃음 섞인 아기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찾아 온 곳이 치술령의 중간쯤이었는데 그곳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뚝 그치고 말았다.
왕은 말에서 내려 주위를 살펴보니 흙을 뒤진 흔적과 금방 만든 것 같은 작은 무덤하나가 잡혔는데 그 무덤을 보는 순간 그쳤던 울음소리가 구슬프고 애절함을 더하여 흐느끼며 들려왔다.
왕은 신하들과 같이 손수 그 무덤을 파기 시작했고 잠시 파니 솜으로 된 아기 포대기가 나오고 그 속에는 금으로 된 불상이 나왔는데 불상은 흡사 살아 숨쉬는 아기와 똑 같았다.
왕이 그 불상을 가슴에 안으니 울음을 뚝 그치고 서러움에 못 이겨 치수리기 시작했기에 왕은 불상을 어루며 그래그래 내가 너의 한을 풀어주마 했더니 불상의 두 눈에 구슬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일행은 그 포대기와 불상을 안고 마을로 내려와 포대기 임자를 수소문하여 찾아냈는데 포대기 임자는 금슬 좋기로 소문난 젊은 부부였다.
사연은 부부는 눈이 멀고 귀가 절벽(전혀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세상의 소식에 어둡다)인 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아들 웅이가 태어났고 웅이는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줘 행복하기만 했다.
부부는 일터에 나가면 웅이는 할머니와 늘 함께 지냈는데 그 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 부부는 틈을 내어 온 산을 뒤지다 시피 하여 어머님 겨울 밥 반찬을 하기 위해 송이버섯을 땄다.
평소에도 미꾸라지 한 마리라도 들에서 잡으면 어머님 밥반찬을 해 드리는 지극한 효자 부부였가 가을 추수를 끝내고 초겨울에 접어들면서 송이버섯 말린 것을 볶기도 하고 조리기도 하여 어머님 밥상에 올리는데 어머니 당신은 하나도 드시질 않고 손주만 먹이신다.
눈이 어두워 보이지는 못하셔도 이손 저손 더듬어 손주의 입을 찾아 음식을 먹이곤 하시는데 부부는 딱하기만 했다.
하루 밤에는 부부가 의논했다.
우리는 아직 젊지 않느냐 자식은 또 낳으면 되지만 어머님은 한 번 잃으면 다시는 못 보니 우리 저 아이를 없애 버리자 하고 잠든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칠흑같이 어더운 밤에 산에 가서 땅을 파고 묻었다고 했다.
그 갸륵하고 눈물겨운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왕은 이렇게도 착한 백성이 있다는데 한없이 고마움을 느꼈고 부부는 이야기를 마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귀가 절벽이시고 앞을 분간 못하시는 어머님은 며느리가 우는 소리가 전달되었는지 방문을 열으시고 웅이 깼느냐하고 소리치신다.
아들과 며느리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어머님하고 불러 놓고 땅을 치며 통곡하는데 왕께서는 대신 예하고 대답해 놓고 금불상이 된 웅이를 어머님 무릎에 안겨주신다.
웅이를 받아 안은 어머님은 이리 둥글 저리 둥글 어루며 좋아라하고 어쩔 줄 모르시는데 웅이가 없어지는 날부터 어머님은 밥상을 받아 놓으시고 웅이를 찾으셨다.
그 때마다 아들 내외는 웅이가 아직 잔다고 했고 어머님은 웅이가 깨면 함께 먹으라마고 하셨는데 그러던 안타까운 세월이 닷새나 지나갔고 어머님은 물 한 모금 드시질 않으셨다.
그러다가 웅이를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워했겠는가?
어머님은 한참을 놀다가 자 우리 밥 먹자 하고 밥상을 찾는 순간 웅이를 안고 앞으로 쓰러진 후 어머님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시고 눈을 감으셨다.
왕은 너무나 순박한 서민들의 애환을 한눈에 보고 이 산을 치술령(산에 령자를 쓰는 것은 벼슬을 준다는 뜻임)이라 이름 지었는데 그 이름이 지금까지 불리어 지고 있다.
그때 왕이 말을 매었던 자리를 마등(마등은 옷밭 마을 위쪽 치술령 자락인 입구에 있음)이라 전하고 있고 웅이가 묻혔던 자리에 웅치사란 절을 지어 오래 동안 웅이의 넋을 위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절은 빈데가 너무 많이 생겨 사람이 살지 못하고 허물어졌으며 절터에는 깨어진 기와조각만이 말없이 뒹굴고 있다.
치술령 주위를 둘러보고 전설에 깃든 이야기도 생각해 본 후 남쪽으로 가 그 앞으로 펼쳐진 너무나 아름다운 마루금을 살펴 본다.
바로 앞으로 국수봉과 옥녀봉을 지나 울주쪽 산그리메가 멋지게 펼쳐져 있다.
그 우측 저 멀리에는 희미하게 낙동정맥의 영축산과 천성산 자락이 보일듯 말듯 이 산객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석계못이 햇살에 빛나고 울주쪽 마을이 고요함에서 깨어나기 시작을 했으며 그 넘어 저 멀리에는 하늘 마루금에 맞닿아 있는 삼태지맥의 마루금이 드높게 뻗어 있다.
이 새벽에 홀로 올라 와 이 아름다운 산그리메와 풍경을 즐기는 것이 못내 안타까운 시간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조망에 한동안 무상 무념으로 바라보고 있다.
치술령 정상 남쪽으로 나무 계단을 타고 잠시 내려가니 치술령 망부석이 있고 그곳에서의 조망 역시 환상적이기에 잠시 더 머물다 올라 온다.
치술령 망부석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니 다양한 전설들이 보이는데 아래 내용은 그 중 하나를 정리해 본 글이다.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동쪽에는 경남과 경북의 경계에 765m 높이의 위용을 자랑하는 치술령이 하늘 높이 솟아 있고 이 치술령 정상 근처에 망부석이 있다.
이 망부석에는 신라 충신 박제상과 그의 부인 김씨에 얽힌 충절과 정절의 이야기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한다.
울산읍지(1934년)에는 망부석은 치술령 산꼭대기에 있으며 박제상이 왜국에서 순국하였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부인 김씨가 슬픔과 원한을 이기지 못하다가 딸 셋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가서 왜국을 바라보고 통곡하며 낭군의 뒤를 따라 정절로써 죽으려 하자 딸 셋도 따라 죽으려고 하기에 둘째 딸 아영에게 이르기를 너는 살아 남아서 너의 동생 문랑(당시 6세)을 양육하여 아버지의 후대를 잇게 하여라 하였으며 큰 딸 아기와 막내 딸 아경은 부인 김씨를 따라 정절사하였다.
죽은 모녀 세 사람의 시신은 곧 돌이 되어 망부석이 되었다고 하며 넋은 새가 되어 망부석 남쪽 십여리에 있는 바위틈으로 날아가 숨었는데 그 바위를 속세에서 전하기를 은을암이라고 하였다.
살아남은 아영과 문랑은 마을로 내려 왔는데 나라에서 박제상의 충절과 부인 김씨의 정절을 높이 치하 평가하여 신모사를 세워 제사를 받들었으며 왜국에서 돌아온 미사흔과 아영을 결혼 케 하고 많은 포상을 하사하여 생활을 보장하였다.
그리고 박제상에게는 대아찬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결국 이 망부석은 울주군 두동면 월평리 치술령에서 동해를 바라보는 망부의 한과 남편을 죽인 왜국을 저주하는 설화가 얽힌 바위인 것이다.
이제부터 등로 좌측으로는 울산광역시를 두고 우측으로는 경상북도 경주시를두고 시 경계를 타고 진행하는 시간이 되었다.
치술령을 지나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하니 낙엽진 활엽수가 줄지어 늘어선 등록 아침 햇살에 그림자를 길게 늘어트리며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저 무심으로 그 아름다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큰 바위 지대를 지나 완만하게 내리막 등로에는 깊은 낙엽이 쌓여 있어 또 다른 아름다움이 묻어 난다.
그렇게 잠시 더 능선을 타고 걸어가니 우측으로 약수터와 석계 상동못 하산 갈림 이정표가 보인다.
참으로 멋진 등로를 타고 산책하듯 그렇게 걷다보니 새벽부터 힘들게 걸어 올라왔던 시간을 보상 받듯 그런 기분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다.
다시 간간히 보이는 바위 지대를 지나 낙엽 등로를 따르니 앞으로 올라야 할 묵장산 방향의 높은 봉우리가 잡목 사이로 희미하게 나타난다.
다시 그 평이한 낙엽 등로를 타고 걸어가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치술령 정상부가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다시 빛 바랜 억새풀이 등로 주위에 남아 있고 그 위로는 낙엽진 거대한 활엽수들이 줄지어 늘어 선 등로가 아침 산첵을 하듯 걸어가는 산객의 마음에 평안을 주고 있다.
세상을 살면서 어렵고 힘들며 고통스러웠던 모든 것을 잊고 그저 자연의 일부가 되어 무상무념으로 걸어가는 이 시간이 있기에 이렇게 미친듯 다시 산으로 들어 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즈막한 봉우리와 안부를 넘은듯 넘자 않은듯 그렇게 한동안 진행하니 다시 등로에는 푹신한 활엽 낙엽이 깊게 깔려 있다.
지나 온 치술령과 무명봉이 저 멀리 멀어지는 모습을 가끔 뒤돌아 보며 걸어가니 갑자기 낙엽 등로 주위에 많은 철쭉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철쭉꽃이 피는 봄철에 올라ㅗ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그 철쭉 군락지를 지나니 다시 억새가 하늘거리는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있지만 잡목들로 인해 주위 조망은 전혀 볼 수가 없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안부를 지나 다시 활엽수가 줄지어 늘어 선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너무나 호젓한 풍경이 마음에 안정을 주고 있다.
새벽부터 치술령 정상으로 오르던 등로와는 대비되는 너무나 아름답고 높낮이도 심하지 않은 등로이기에 아픈 몸을 추스리고 네려 와 걷고 있는 이 산객에게는 최고의 등로가 아닌가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약간의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구간을 지나 오르니 다시 빛 바랜 억새 구간이 나타나더니 금새 묵장산 정상에 도착을 하지만 이곳 역시 잡목들로 인해 조망은 전혀 없다.
울주군 두동면 월평리와 경북 경주시 외동읍에 걸쳐 있는 산으로 묵정산이라고도 한다.
이 산 아래 월평 지방을 먹장이라 불렀는데 그 지명에서 이 산 이름을 따왔다고 전해지는데 먹장의 장이 갓재이 또는 노름재이 및 점재이 등 천시되는 말로 전락하자 묵장산을 묵정산으로 바꿨다는 설이 전해져 오는 산이기도 하다.
묵장산을 지나 걸어가는 등로 역시 억새와 철쭉 나무 군락지가 묘한 조화를 이루며 멋진 등로를 열어 주고 있다.
잠시 큰 바위 하나를 지나 낙엽진 철쭉 군락지를 지나니 잡목 사이로 지나 온 치술령에서 묵장산까지의 호미기맥 마루금이 너무나 황홀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가니 갑자기 억새풀이 무성했던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 헬기장을 지나자 마자 철쭉나무 군락지가 더욱 군집을 이뤄 진행에도 어려움을 겪을 정도이다.
헬기장을 지나 좁은 철쭉군락지의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또 다시 멋진 억새 군락지가 펼쳐져 있어 봄철이나 가을철에 올라와도 참으로 좋은 산행지 임을 알 수 있다.
큰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곳에는 폐헬기장인지 아니면 보도 블록을 박아 놓은 공터인지 모를 넓은 장소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자 마자 등로 우측으로 석계자연농원과 석계상동못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다.
살펴보니 치술령 정상에서 2.5 Km 지나온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그 이정표를 지나니 여전히 등로는 아름답고 걷기에도 아주 편안하기만 하다.
그림같은 풍경과 멋진 등로 그리고 강하게 비추는 아침 햇살이 어우러져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는 산객의 마음은 더욱 평온해진다.
그렇게 활엽수 등로와 억새 등로를 번갈아 가며 걷다보니 등로 우측 저 멀리 삼태지맥 상 고봉들이 일렬로 줄지어 늘어 선 풍경이 또한 이 산객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하니 700봉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686봉으로 표기된 장소이다.
이곳에서 시경계 능선을 좌측으로 보내고 호미기맥은 우측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시 경계 능선을 버리고 우측 서라벌 골프장이 잡목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우측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생각보다 경사가 심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조심하며 내려가니 금새 등로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전망바위들이 나타나고 잠시 그 전망바위로 올라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진행을 하기로 한다.
전망 바위로 오르니 누군가 쌓아 놓은 작은 돌탑이 먼저 눈에 들어 오고 암릉을 이루고 있는 전망바이에서 제일 전망이 좋은 바위를 찾아 그 정상으로 이동을 해 본다.
먼저 등로 좌측으로 경주시 외동읍 제내리 들판이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마석산이 보인다.
마석산으로 진행을 해야할지 이면 중앙의 독점산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지 마루금을 유심히 살펴 보지만 아직도 어느 산줄기가 정확한 산경표에 의거한 호미기맥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고민이 되지만 역시나 지난 주 다녀 간 호미기맥 종주대가 어느 방향으로 진행했느냐에 따라 그 방향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전망바위 바로 아래에는 서라벌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보이고 그 넘어로는 420봉이 보이며 그곳을 넘으면 사일고개 지나 독점산 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곳 지나 저 멀리에는 허리에 안개띠를 둘러 친 경주의 토함산 정상부가 우뚝 솟아 보인다.
다음 구간 호미기맥 종주대와 함께 다시 올라야 할 토함산이기에 가슴속에 그 풍경을 잘 담아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동안 그 전망바위에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내려 와 정상 등로를 찾아 보지만 찾기가 쉽지 않다.
다시 올랐다 등로 우측 바위 옆으로 나 있는 희미한 등로를 어렵게 찾아 내려가니 경사도가 더 심해지며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잠시 등로 우측 뒤 저 멀리에는 치술령에서 700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고 그렇게 한동안 가파른 등로를 내려가니 점점 더 낙엽의 깊이가 깊어지더니 이제 무릎까지 빠지는 등로로 변한다.
다시 그렇게 낙엽 등로를 타고 희미한 등로를 찾아 어렵게 내려가니 등로는 갈지자로 변하고 등로 우측으로는 짧은 잣나무 군락지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소나무가 드문 드문 서 있는 철쭉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한동안 더 내려가다 등로 좌측의 잡목이 사라진 곳에서 뒤돌아 보니 묵장산과 700봉에서 내려 온 마루금이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다시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드넓은 서라벌 골프장 전경이 한눈에 들어 오는데 오늘이 평일이라 그런지 골프를 즐기는 골퍼는 보이지 않는다.
그 등로를 타고 조금 더 내려가니 수로처럼 생긴 콘크리트 길을 따라 좌측으로 내려가고 우측에 서라벌 골프장을 두고 직진의 앞으로는 골프장 정문을 지나 올라야 할 420봉 오르는 등로가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참으로 좋은 곳이지만 골프장을 만든다고 이렇게 드넓은 자연이 파괴되어 사라져 버린 풍경에 아쉬움이 남지만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다 보니 최소화된 자연 파괴와 취미 생활이 될 수 있는 기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서라벌 골프장 전경이 잘 내려다 보이고 그렇게 몇 장의 사진을 더 담으며 내려가니 저 아래 골프장과 이어지는 포장도로도 내려다 보인다.
다시 잠시 더 주위 풍경을 즈리며 내려가다 등로 우측을 보니 지난 해 지어졌다고 생각되는 새집 하나가 눈에 들어 오고 그 앙증맞은 모습에 잠시 숲으로 들어 가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시골에서 살았던 이 산객에게는 소중한 추억을 생각나게 해 주는 소중한 새집이기에 이렇게 시간을 내 사진에 담아 보는지도 모를 일이다.
새집을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잡목들이 심하게 웃자라 있어 등로 찾기가 쉽지 않지만 금새 바로 아래에 서라벌 골프장의 포장도로가 보이기에 곧바로 내려간다.
내려 가 포장도로에서 좌측으로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사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으로는 서라벌 골프장 정문이고 직진은 호미기맥 마루금이다.
직진으로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는 골프장 관리동이 보이고 호미기맥 마루금은 직진의 능선방향으로 카트 포장도로가 나 있다.
좌측에는 골프장 관리 빌딩이 서 있고 우측으로는 서라벌 골프장이 보이는 그 사이로 카트가 지날 수 있는 포장도로가 나 있고 그 포장도로를 타고 능선 방향으로 올라가며 호미기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우측 아래로 서라벌 골프장을 내려다 보며 카트 포장도로를 타고 올라가니 호미기맥 등로는 포장도로 좌측으로 나 있다.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나풀거리는 그곳 좌측 능선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기맥 산행을 이어 간다.
능선으로 오르며 잠시 뒤돌아 보니 좌측으로 서라벌 골프장이 내려다 보이고 정면 방향으로는 서라벌 골프장 정문을 지나 700봉으로 이어지는 호미기맥 마루금과 그 좌측으로 묵장산과 치술령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내려 온 등로를 살펴 보니 생각보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이기에 아찔할 정도의 마루금임을 느낀다.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다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가로 질러 능선으로 오르니 소나무들이 나타나고 등로에는 스티로폼들이 흩어져 지저분하게 널려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무명봉을 지나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나타나고 한동안 그 멋진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잣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그 잣나무 군락지를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틀어 완만하게 오르니 무명 묘지를 지나 정상부에 잘 관리되지 않는 또 다른 묘지 하나가 보이고 그 묘지를 지나 살펴보니 비석도 잘 보이지 않아 단지 이씨 묘지임만을 확인한다.
이곳에서 너무나 배가 고파 잠시 배낭 내려 놓고 준비한 떡 한덩이로 허기를 달래며 지도를 살펴 보니 이곳이 바로 420봉이고 묘비가 잘 보이지 않던 묘지는 월성이씨 묘지임을 확인한다.
잠시 더 휴식을 취하고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기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420봉의 월성이씨 묘지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내려가니 무명봉을 지나 준.희님의 응원 안내판이 보이고 봉분이 낮은 무명 묘지를 통과한 후 다시 2기의 묘지를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 냉천공단의 거대한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인다.
그곳을 지나 다시 3기의 묘지를 지나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사일고개에 도착을 한다.
사일고개란 이름은 영지에서 남서쪽으로 8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 위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일설에 의하면 한 선비가 홀로 이 곳 사일마을에 들어와 외딴집을 짓고 주경야독의 생활을 하면서 황무지를 개척해 나갔는데 그 후 이곳에 경주최씨가 들어와 살면서 그 선비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 사일이라고 불러왔다고 한다. 치술령으로 이어지는 사일고개는 형남기맥 즉 호미기맥이 통과하는 요로가 된다. 광복이 되면서부터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음은 같으나 뜻이 다른 사일을 많이 쓰고 있는데 주민들은 최씨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산행을 하기 전 이곳 사일고개에 식당이 있다는 소식을 알고 도시락도 없이 내려 왔기에 적당한 식당을 찾아 점심을 먹고 진행하기로 한다.
2차선 포장도로 좌측으로 내려가니 소담들이란 한정식 식당이 있고 그 바로 아래에는 SK 주유소와 흥부휴게소가 보이며 그 바로 아래에 대왕성 짬뽕전문점이 있기에 그곳에서 짬뽕으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한다.
도로 건너편에도 식당 하나가 보이는데 산객들이 식사하기에는 적당한 식당이 아닌듯 하여 들려 보지도 않았다.
서울에서 먹었던 짬뽕과는 달리 해물도 풍부하고 양도 많으며 맛도 좋아 조금은 무리하게 먹고나니 산행에 약간의 부담을 느낄 정도로 만족한 식사가 되었다.
다시 짬뽕으로 점심식사를 잘 하고 도로를 타고 조금 더 올라 와 콘크리트 옹벽이 있는 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그곳에 준.희님이 붙여 놓은 서낭재란 안내판이 보인다.
이곳 서낭재를 찾아보니 서낭재는 진전리 ㅡㄹ에 있는 고갯마루란 설명이 보인다.
이 진전리 마을에는 옛날에 묵은(오래된)밭이 많다고 하여 진전(베풀진이나 묵을진 또는 오래된진)이라 하였다고 하며 또는 진전산(만리봉)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진전이라 불렀다고도 전해진다.
오천읍의 최남단에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경주시 양북면 서쪽으로는 경주시와 경계를 이루면서 냉천의 발원지가 되는 만리봉(428m), 못재(538m), 갈미봉(331m)등 준봉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양지마을 과 음지마을의 자연부락이 있다.
양지마을은 음지마을 서쪽에 있는 마을로 해가돋을때 햇빛이 비치는 양지에 위치하고 서북쪽이 산으로 막혀 겨울에도 항상 따뜻하다고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음지마을은 마을 동쪽에 있는 수리등이라는 산등성이가 아침해를 가려 음지가 된다고 하여 음지마을 또는 음지촌이라고 불렸다.
이마을 남쪽에는 경주 지림사로 통하는 옛고개인 서낭재(성황현)가 있다.
이마을 북쪽 갈평리와 경계지점 에는 노루목이라는 작은 부락이 있었는데 1988년오천읍 상수도 수원지건설당시 수몰지역이 되었다.
서낭재 안내판을 지나 오르니 다시 무명 묘지가 보이고 소나무 등로를 지나니 또 다른 무명 묘지를 통과한다.
다시 멋진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무명 묘지 한기를 지나 저 멀리 송전탑이 서 있는 329봉(328.5봉)이 올려다 보인다.
잠시 더 그 송전탑을 보고 오르니 최근에 만들어진 듯한 가족 묘지들과 그 바로 위에 송전탑이 보인다.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냉천리쪽 냉천공단의 거대한 건물들이 보이고 그 뒤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마루금들도 보인다.
그곳에서 주위 조망을 즐긴 후 냉천리를 살펴본다.
냉천리는 조별방이라는 선비가 약 350년전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하여 개척당시 숲과 모래사이에서 찬물이 많이 솟아나와 냉천이라 칭하였다.
냉천에서 제일 큰 산 밑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하여 거산이라 칭하였으며 남쪽으로 0.7㎞ 떨어진 곳에 냉천이 자리잡고 있다.
냉천리를 구경하고 바로 위에 있는 송전탑으로 올라가 본다.
이곳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마석산과 독점산 갈림길로서 예전에는 독점산 방향으로 많이 진행을 하였지만 최근에는 좌측의 마석산 방향으로 더 많이 진행을 하는 듯 하다.
하지만 1주일 전 내려 왔던 온누리 종주대들은 독점산으로 진행을 하였기에 이 산객도 독점산으로 진행을 하고 다음에 다시 내려 와 마석산 방향을 걸은 후 괘릉에 들려 역사 공부를 하기로 해 본다.
송전탑 위 328.5봉 또는 329봉에 올랐다 다시 처사경주최씨세장묘지로 내려가 내려가는 방향 우측으로 진행하면 마석산으로 진행하는 마루금이고 이곳 328.5봉 또는 329봉을 넘어 직진으로 진행을 하면 독점산 방향으로 진행을 하게 된다.
329봉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거대한 바위가 정상을 차지한 실질적이 329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을 해 본다.
암봉 지대를 지나 능선을 타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제내리를 지나 마석산이 계속 아쉬움을 전해주고 있다.
그 마석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아래에도 공단지역이 들어서는지 잘려지고 파헤쳐져 훼손되는 장련의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 가슴 아픈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한동안 암릉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옆에 거대한 멋진 바위가 보이고 그곳으로 이동해 잠시 망중한도 즐겨 본다.
그 바위 뒷편 저 멀리 마석산이 그대로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그 바위를 지나 다시 천천히 진행하니 잡목과 소나무 사이로 저 멀리 올라야 할 독점산이 보이고 그 독점산을 가운데 두고 끊어질듯 이어지고 있는 호미기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독점산 끝자락 저 멀리에는 이번 주 다시 종주대들과 내려 와 올라야 할 경주의 토함산이 우뚝 솟아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그저 바라만 봐도 아름답고 멋진 호미기맥 마루금이 아닐 수 없다.
독점산 우측으로는 새로운 도로가 생기는지 직선으로 뻗어 있는 신설도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뒤 외동읍 넘어에는 삼태지맥 산줄기들이 병풍처럼 길게 둘러쳐져 바람막이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아쉬움을 남기고 있는 마석산이 드높아 보이고 조만간 다시 만나자고약속이라도 하는듯 다가와 있다.
다시 능선을 따라 진행을 하니 공터가 나타나고 그 공터 옆에는 바위가 보인다.
바위 뒤로는 묘지 하나도 보이는데 이런 봉우리까지 올라와 묘지를 쓴 후손들의 정성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다시 5번의 송전탑을 지나 등로 우측을 보니 저 멀리 삼태지맥의 삼태산이 가물 거리며 언제 만날 수 있는지 기약조차 할 수 없음이 안타까운 시간이다.
다시 그 5번 송전탑에서 약간의 조망을 즐긴 후 진행하니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그 등로 옆으로 암릉지대도 다시 나타난다.
그곳 암릉에서 바라보는 독점산과 진행해야 할 호미기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토함산도 가슴속에 들어 온다.
여기까지 진행하면서 걱정을 했던 몸의 상태는 좋았기에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시간인데 생각보다 더 멋진 조망과 풍경으로 즐거운 선물까지 받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꿩먹고 알먹는 산행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그 암릉을 지나 진행하니 두갈래 등로가 나타나는데 오늘 이 산객은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를 타고 독점산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소나무와 잡목이 어우러진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잘 정돈된 묘지 하나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청경이란 거대한 회사 건물이 눈에 들어 온다.
그 청경 건물과 적재물이 쌓여 있는 우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그 청경 건물로 통하는 1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포장도로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전봇대 옆 능선을 타고 오르니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가 열려 있고 그 등로를 타고 한동안 완만하게 오르니 잠시 후 그 넓은 비포장 임도를 우측으로 보내고 호미기맥 등로는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등로 바로 좌측으로는 청경이라는 회사 건물이 내려다 보인다.
잠시 더 능선으로 오르니 로프가 달려있는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바위지대를 지나 폐헬기장 같은 넓은 공터를 만난다.
그 공터를 지나 평이한 등로 위에 자라고 있는 식재돤 소나무 사이를 걸어가니 다시 거대한 송전탑이 나타나고 등로 좌측으로는 절개지가 보인다.
그 절개지 지나 바위 암릉 구간을 넘으니 다시 눈 앞으로 거대한 송전탑이 나타나고 등로 우측으로는 또 다른 공단을 조성하려는지 거대한 토목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다시 눈 앞 우측 저 멀리 새로 신설되는 도로 넘어 삼태지맥 산줄기가 시원하고 그 마루금을 바라보며 천천히 호미기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송전탑을 지나 보이는 등로 좌측의 바위 위로 올라 뒤돌아 보니 송전탑 뒤 저 멀리 오늘 걸어 온 치술령과 묵장산 그리고 420봉이 아스라히 펼쳐져 있고 지나온 시간은 벌써 추억이 되어 과거속으로 쌓여만 간다.
그 바위 위에서 잠시 더 주위 풍경을 조망한 후 독점산 정상부를 살펴 보니 그 정상 아래쪽으로 멋진 바위들이 서 있어 줌으로 당겨 사진으로 남겨 본다.
새를 닮은듯 보이기도 하고 다른 어떤 형상을 닮은듯 보이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이 산객도 모를 일이다.
등로 우측으로 다시 멋지게 보이는 삼태지맥 산줄기를 바라보며 그 바위를 내려 와 정상 등로로 복귀를 한다.
지나 온 마루금을 살펴 보니 바로 발 아래 펼쳐진 청경 건물 위로 329봉이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묵장산과 치술령 등로가 강렬한 햇살아래 반짝이고 있다.
지나 온 마루금이 제법 멀게 느껴지며 늘 느끼는 감정이지만 오늘 역시 인간의 두 다리가 참으로 위대함을 가슴속으로 느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지나 온 호미기맥 마루금을 뒤돌아 보며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앞으로 진행하니 거대한 바위들이 눈 앞을 가로막고 그 바위를 돌아 옆으로 걸어가니 짧은 구간 커다란 산죽 지대를 지나 금새 바위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독점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다양한 바위들이 넓은 정상에 산재해 있고 북쪽 끝자락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다만 정상 이정표라도 찾아 보지만 그 어느곳에서도 찾을 수 없어 아쉬움만 남기는 독점산이 되었지만 삼각점 하나로 위안을 삼아 본다.
그 독점산 정상에서 다시 배낭 내려 놓고 주위 풍경을 가슴에 담아 본다.
남서쪽으로는 420봉 지나 묵장산과 치술령이 올려다 보이고 그곳에서 걸어 온 이 산객의 건강한 두다리가 참으로 대견스러운 시간이다.
이제 저 마루금을 타고 걸었던 시간들은 가슴속에 남아 고운 추억으로 쌓일 것이고 그 쌓인 추억은 가까운 미래에 다시 이 산객의 미래가 될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등로 좌측인 서쪽으로는 마석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마석산으로 이어지는 중간에는 제내리 마을과 공장들 그리고 들판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마석산은 경주 남산의 동남쪽에 위치하는 해발 531m의 산으로 경주시 외동읍 방어리와 제내리 및 북토리와 과거 경주군 내동면이었던 시동 그리고 내남면 명계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북으로는 남산을 벗하고 남으로는 치술령을 이웃하는 수더분한 고향의 뒷산같은 산이 바로 마석산이다.
산 정상의 바위도 제내리 등에서는 맷돌방구라고 하지만 방어리와 7번 국도 이동 마을에서는 뺏돌방구라고 부르고 있는 마을이 바로 제내리이다.
독점산 정상에서 한동안 주위 조망을 즐긴 후 소나무 두 그루가 있는 도쪼끝자락으로 가니 그곳에 큰 바위가 있고 그 바위 위에서 내려다 보니 지금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외동읍 호미기맥 마루금이 끊어질듯 이어지며 저 멀리 경주의 토함산ㅇ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맥 잇기 산행의 묘미와 함께 이어가는 산행이 얼마나 어럽게 이어지는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독점산 정상 동쪽 끝 좌측의 바위 옆으로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바위들이 보이고 등로 좌측 아래에 바위 전망대가 보인다
그 바위 전망대로 내려가 다시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정상 등로로 복귀해 내려가니 등로가 온순해 지더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린다.
한동안 그 넓은 비포장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갑자기 밭이 나타나고 바로 앞에는 민가가 보인다.
그 밭을 우측에 두고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민가 한채가 보인다.
그 민가를 우측에 두고 좌측 등로를 따르니 금새 포장도로가 지나는 사거리를 만나고 그 사거리를 건너 다시 밭으로 올라가며 맥 잇기를 이어가 본다.
밭으로 올라가니 추수가 끝난 밭이 펼쳐져 있고 그 밭 가장자리를 타고 진행하니 그 밭 끝자락에는 몇기의 묘지들이 줄지어 있다.
그 묘지들을 지나 나즈막한 능선을 타고 어렵게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묘지 4기를 지나 진행하면 또 다시 나타나는 묘지 1기를 지나고 곧이어 잡풀들이 무성했다 말라죽은 공터를 타고 동네 방송 시설 옆 밭둑으로 내려가 마을 도로인 시멘트 포장 임도 위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시멘트 도로를 타고 우측 민가쪽으로 걸어가며 민가에 붙어 있는 주소를 살펴보니 냉천지초길이란 글씨가 보인다.
보니 냉천리 지초마을이란 표식인듯 보이는 주소이다.
이제 한동안 그 시멘트 포장 도로를 타고 마을 민가 옆으로 진행을 하게 된다.
나타나는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 잘 나 있는 콘크리트 임도를 버리고 직진의 임도를 따라 민가 앞으로 진행을 하니 앞으로 직진의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논 사이로 이어져 있고 그 도로 우측으로는 거대한 축사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거대한 축사 한동을 지나 계속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도로 우측으로 동해축산이란 거대한 축사가 보이고 그 축사를 지나 걸어가니 냉천지초길이란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난다.
그 포장도로에서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우측에 제내1리란 거대한 이정석이 있는 사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 사거리에서 제내1리 이정석을 우측에 두고 우측 도로를 타고 한성목재 건물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포장도로를 타고 한성목재 건물 방향으로 돌아 들어가니 등로는 한성목재 좌측 뒷편으로 이어지는데 그 건물을 지나자마자 등로는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길을 타고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등로는 다시 임도를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 소나무 군락지 방향으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다시 한동안 그 능선을 타고 오르니 193.6봉을 넘어 드디어 마석산을 통해 진행되어 온 마루금과 만나는 장구방이에 도착을 한다.
죽동리 마을에 속하는 이곳 장구방이의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지도를 살펴보니 329봉에서 헤어졌던 마루금이 마석산을 돌아 이곳 장구방이에서 다시 만나 진행하도록 되어 있기에 아주 중요한 길목처럼 보이는데 그저 평이한 비포장 임도 삼거리가 전부이다.
장구방이에서 좌측 마석산 방향 임도를 버리고 우측 임도를 따르니 짧은 대나무 밭을 지나 경주김공 묘지가 나타난다.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 짧게 진행하니 산거리가 나타나고 이곳에서도 우측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한다.
오르니 몇기의 묘지들이 보이고 그 묘지지대를 지나니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 죽은 잡초지를 건너 좌측에 철망을 쳐 놓은 밭을 두고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한다.
그 비포장 임도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묘지들이 나타나고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이어지고 있다.
그 소나무 군라지를 지나니 다시 이어지는 묘지지대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잠시 후 호젓한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거대한 바위가 입을 벌리고 서 있는 등로도 지난다.
그 바위 지대를 지나 계속 완만하게 오르니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195봉에 도착을 해 그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와 잠시 대화를 나눈다.
그곳 195봉 산불감시초소에서 진행해야 할 방향을 살펴보니 저 멀리 괘릉리를 지나 이번 주 일요일 다시 내려 와 걸어야 할 경주의 토함산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와 있다.
제법 그 높이를 자랑하며 우뚝 솟아 있는 토함산 우측 능선으로는 길게 뻗어 내려간 삼태지맥이 언제 만날 수 있느냐며 자꾸만 어려운 질문을 하고 있기도 하다.
삼각점과 산불감시초소를 사진에 담고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눈 후 다시 호젓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마지막 원고개를 향해 출발을 한다.
잠시 진행하니 등로에는 키 작은 산죽지대가 나타나고 곧이어 안부 사거리를 통과한다.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한동안 즐겁게 걸어가니 넓은 공터인지 아니면 이장한 묘지가 있었던 곳이 나타나고 곧이어 빛바랜 억새와 소나무가 잘 어우러진 등로로 이어진다.
그 호젓한 등로를 타고 한동안 진행하니 금새 무명 묘지 한기가 있는 곳에 도착을 해 삼태지맥 산줄기를 살펴 본다.
삼태지맥 산줄기를 살펴 본 후 다시 호젓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월성이씨 묘지 한기를 지나 멋진 소나무와 무명 묘지를 또 통과한다.
다시 나타나는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걸어니니불에 탄듯한 소나무들이 나타나고 살펴보니 얼마전 산불이 났던 지역인듯 모든 나무 밑이 검게 그을린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그곳 산불 지역을 지나 진행니니무명 묘지 한기가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의 등로를 살펴 보니 민둥의 산줄기처럼 느껴진다.
햇살이 내려 쬐는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나주정씨 묘지가 나타나고 계속 이어지는 삼태지매긔 바람개비를 바라보며 여유를 찾아 본다.
다시 한동안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무명 묘지 옆에 작은 나뭇가지에 만흔 선답자들이 띠지를 붙여 놓은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이제 원고개도 거의 도착이 가까운 듯 짧은 거리가 남아 있지만 몸의 상태는 나쁘지 않아 큰 한숨으로 위안을 삼아 보는 시간이다.
다시 그 무명봉을 지나 삼태지맥과 토함산을 바라보며 걸어가니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고 잠시 잡목과 소나무가 조화로운 등로를 지나 묘지가 있는 무명봉에 오른다.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의 등로를 타고 걸어거니 넓은 공터같은 무명봉을 넘어 또 다른 무명 묘지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무명봉을 지난다.
또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 군락지와 무명 묘지가 있는 무명봉을 넘어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금새 원고개가 내려다 보이는 능선 끝자락에 도착을 한다.
그 등로를 내려 와 진행하니 억새지대를 지나 동해남부선 철도를 건넌다.
동해남부선은 대한민국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의 포항역과 부산광역시의 부산진역을 잇는 한국철도공사의 철도 노선이다.
과거 부산진역은 여객도 취급하였으나 KTX 운행 이후 부산진역의 여객 영업이 중단되고 화물전용역으로 전환되어 현재는 전 열차가 부전역에 종착한다.
대한민국의 동남쪽을 연결하며 일부 구간에서만 해안선에 근접하며 현재 복선 전철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보통 부산진역이 부산역과 가까운 역이여서 부산역까지 간다고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는 부산역에 정차를 하지 않는다.
동해남부선 철도를 건너 오르니 금새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7번 지방도로 위에 안착을 해 오늘 하루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도로를 건너면 우측에 굿모닝 휴게실이 있고 원성사 입간판이 있으며 좌측으로는 석거돈이란 거대한 식당이 보인다.
다음 구간 진행해야 할 진입로에는 충효마을 괘릉동이란 거대한 입석도 보인다.
괠ㅇ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몇일동안 몸도 가눌 수 없었던 아픈 몸을 이끌고 20여 Km의 거리를 산행하고 나니 온몸이 조금은 아파오기 시작하고 곧바로 택시를 불러 당산고개로 이동해 애마를 회수 해 손님을 만나고 서울로 복귀를 한다.
조만간 다시 한번 내려 와 마석산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산행 후 여유롭게 괘릉에 들려 이곳 역사도 배울 기회가 있으리란 생각이다.
남아 있는 구간도 무탈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진행 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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