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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맥과 중요 지맥 산행(완료)/땅끝기맥(호남·완)

땅끝기맥 제1구간 바람봉에서 오두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4.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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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화순군, 장흥군, 나주시와 영암군의 땅끝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4년 10월 04일(토)과 05일 (토요 무박 일요일 산행)

산행날씨 : 맑고 화창했지만 오후부터 약간 무더웠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5도에서 영상 28도

산행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회원 총 32명

산행코스 : 전남 화순군 장평면 병동리-시멘트 임도-운곡마을-황토펜션-비포장 임도-호남정맥 마루금 이정표(운곡마을과 곰치재 및 삼계봉)-땅끝기맥 분기봉인 바람봉(430봉)-산죽지대-바람재-463봉-화학산 갈림 삼거리-능선 삼거리 임도 이정표(바람재정상 0.8 Km, 각수바위 1.7 Km)-유치면 개바위등 이정표(화학산.능선삼거리 1.0 Km, 각수바위 0.7 Km)-편백나무 숲-조릿대 숲-각수바위정상 이정표(우치마을 1.7 Km, 각수바위정상 20 m, 유치재 0.9 Km)-각수바위 정상-각수바위정상 이정표로 복귀-묘지-암릉구간-산죽지대-유치재 임도(바람재)-461봉-450봉-아침식사-소반바위산(493봉)-문암재-조릿대 숲-수락재-450봉-선왕산 갈림 삼거리-큰재-비포장 임도-409봉-비포장 임도-철탑-행산재(덕룡재)-그물망지대-세류촌 시멘트 임도-좌측 시멘트 임도로 우회-안동권씨묘지-땅끝마루금 복귀-덕룡 임도 공사장-폐축사-편백나무 숲-371.5봉-400봉-자갈바위-기동재-산성터-칡넝쿨지대-계천산(406.1봉)-지독한 조릿대 숲-탐진강발원지 이정표-대나무 숲-칡넝쿨지대-잠시 우측 능선으로 알바 후 마루금으로 복귀-아크로 CC 골프장 시멘트 임도-오두재(아크로 CC 골프장 정문)-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1.61 Km (Mobile Phone의 GPX Track 기준)

산행시간 : 희미한 등로와 잡목 가시넝쿨로 어렵게 사진 담으며 진행해 11시간 32분 (04시 33분부터 16시 06분까지)

교통편 : 땅끝기맥 전용 40인승 대형 전용 버스 이용

땅끝기맥이란 ???

호남정맥의 바람봉 분기점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쳐 육지의 최남단인 땅끝까지 내려가는 도상거리 123 Km쯤 되는 산줄기다.
일부는 영산강의 남쪽 울타리가 되며 일부는 탐진강의 서쪽 울타리가 된다.
길이나 높이에 비해 월출산과 첨봉에서 오소재, 두륜산에서 달마산 지나 도솔봉등 암릉구간이많은 옹골찬 산줄기고 월출산, 두륜산, 달마산등 유명산을 지난다.
지나는 산은 계천산, 국사봉, 활성산, 월출산, 도갑산, 월각산, 별뫼산, 서기산, 첨봉, 두륜산, 대둔산, 달마산, 도솔봉등이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설레임으로 함께한 땅끝기맥 마루금에서 지독한 잡목과 사투를 벌이며 즐겼던 산행 시간들

 

 

늘 새로움과 조우한다는 것은 두려움과 설레임을 동시에 동반하는가 보다.

다시는 많은 산우님들 모시고 리딩하는 산행은 졸업을 한다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었는데 올 봄 예기치 않게 완도지맥을 다녀 온 후 많은 산친구들로부터 새로운 마루금 산행에 대한 지대한 열망을 전해 듣고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 왔던 미지의 땅끝기맥으로 발길을 돌린다.

개인적으로 땅끝기맥 마루금에 있는 거의 모든 산들은 올라 본 기억이 있기에 큰 어려움은 없겠지만 역시나 많은 산우님들을 모시고 진행하는 산행에서는 산행 자체보다도 산행을 진행하며 일어 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상황과 산행 전후로 산우님들의 불편함을 최소화 시킬 수 있는 샤워와 먹거리를 생각하고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에 조금은 망설여졌던 리딩이지만 일단 시작하면 그 끝자락을 만나고서야 그만두는 성격이다 보니 다시 약간의 스트레스와 함께 하나 둘 준비를 해 본다. 

다만 새롭게 유입되는 산우님들과 기존 산우님들 중 땅끝기맥 산행에 참여를 희망하는 산우님들이 늘어나며 경비에 대한 부담이 줄어 든 것은 감사한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전국에서 참여를 해 주신 많은 땅끝기맥 종주대와 함께 어둠을 뚫고 달리고 달려 도착한 병동리의 월곡마을과 운곡마을 경계의 커다란 느티나무 앞에서 하차해 잠시 인원 점검 후 우측의 운곡마을 방향으로 콘크리트 임도를 타고 긴 장도를 출발해 본다.

잠시 호남정맥 마루금과 만나 땅끝기맥 분기봉인 바람봉에서 종교와 관계없이 땅끝기맥 산행을 무탈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으로 산신제를 지내고 여명이 붉게물들어 오는 등로를 따라 거칠은 잡목을 헤치고 달려 벌목지대를 지나 450봉을 오르며 바라본 등로 좌측 저 멀리 호남정맥 마루금이 지난날의 추억을 꺼내 기억을 더듬고 그속에 빛나는 제암산을 찾아 내곤 얼마나 큰 기쁨에 들떴던지 알 수 없었던 희열이 지나간다.

힘들게 올라 걸었던 등로이기에 지금도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제암산의 철쭉을 가슴에 담으며 오늘부터 2015년 1월 초까지 이어질 땅끝기맥 산행의 추억 한자락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오랫만에 다시 산행 리더로서 장도를 떠나는 시간, 늘 투덜대면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해 주는 옆지기가 커다란 약식 케이크를 준비해 주고 산악회에서 만들어 준 플랭카드를 안성 휴게소에 걸어 놓고 단합된 모습으로 잠시 여유를 가져 보는 시간은 먹고 사는 일과는 달리 그 기쁨이 더욱 크게 가슴에 남겨 진다.

처음보는 많은 종주대의 얼굴과 그동안 수없이 만나 함께 거친 산을 달렸던 산우들 모두 한자리에 모여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이렇게 축하를 해 주니 땅끝기맥 산행 역시 순조롭게 진행을 알리고 무탈하게 즐거운 산행길이 되리란 느낌이다.

이 기분 이 열정 그대로 해남의 땅끝마을까지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다시 흔들리는 버스에 올라 쪽잠으로 피로를 잊어 보는 시간이다.

여기 모인 모든 산우님들과 종주대 모두에게도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달려 도착한 마지막 고속도로 휴게소인 백양사에서 잠시 휴식을 갖고 다시 출발해 병동리 마을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4시 30여분을 지나고 조금은 쌀쌀하게 느껴지는 바람에 방풍의를 입고 인원 점검 후 출발에 앞서 단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여기 모인 모든 종주대원들도 시간이 지나 먼 훗날 이 사진을 바라보며 오늘 이 시간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해 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곳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병동리는 다음과 같은 마을 유래가 전해지는 고장이지만 개인적으로 호남정맥 산행을 홀로 걸으며 화순의 택시들로 인해 다시는 방문하고 싶지 않은 고장중 하나로 인식되어 있는 화순이기도 하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그 노여워했던 마음도 많이 사라져 이제는 작은 조각의 파편처럼 그 아픈 기억이 남아 있으니 이것 역시 시간이 약이 아닐까 생각해 본 새벽이기도 하다.

 

병동리는 장평면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9 Km 지점에 위치한 해발 230미터의 산간마을이다.

월곡은 병동마을에서도 1 Km 정도 떨어진 해발 250미터에 위치하며 운곡은 1.3 Km 떨어진 해발 260미터에 위치하여 장평면에서도 가장 고지대에 속한다.

병동은 우산리를 경유하여 도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우산에서도 약 2 Km 쯤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월곡은 남으로 장고목재를 경계하여 유치면 암천리와 인접해 있고 운곡은 백토재를 경계로 화순군 청풍면 이목동과 인접해 있다.

마을의 서북쪽으로 삼계봉(504), 깃대봉(448)과 국사봉(490) 등의 높은 산이 둘러 있다.

월곡마을 앞에 병동저수지가 있어 앞들의 수리시설은 좋은 편이다.

 

 

좌우측으로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황금 들판을 두고 가운데로 나 있는 시멘트 임도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운곡마을로 걸어가니 벌써 등줄기에서는 약간의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고 곧이어 운곡마을 입구를 지나 마을 한가운데 삼거리 도로에서 좌측으로 꺽어 들어가니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봤던 황토흙집이 나타나고 그 민가 바로 뒷쪽으로 나 있는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본다.

이곳에서 중간과 후미의 길잡이를 해 주고 다시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니 완만하게 이어지던 오르막 등로가 묘지를 지나면서 가파르게 변하고 능선으로 접어 든다.

그곳 묘지 앞에서 입었던 방풍의를 벗어 배낭에 넣고 상쾌한 기분으로 다시 출발해 보는데 저 아래 뒤따르는 산우님들의 헤드렌턴 불빛이 마치 반딧불이 불빛처럼 빛나고 있다.

이곳 병동리 운곡마을은 진주강씨 강서동이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하기 위하여 화순 청풍면 신석골에 거주하면서 유람삼아 운곡마을 고개에 오르던 중 눈 아래 안개구름이 길게 뻗은 계곡이 있어 길지라 생각하고 마을 이름을 운곡이라 하고 정착하게 되였다고 한다.

강씨는 화전을 일구며 살다가 자손이 없어 대가 끊기고 이후 죽산안씨와 평강채씨 등이 살고 있는 마을이 되였다. 

 

 

능선을 올랐다 내려가니 잡풀과 잡목들이 등로를 가득 메우고 발길을 붙잡지만 큰 어려움은 아니기에 걸어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논을 지나 다시 비포장 임도를 따라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진다.

그렇게 한동안 이마에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니 금새 호남정맥 마루금에 도착을 해 이정표 앞에서 잠시 옛 추억을 생각하며 뒤따르는 산우님들 사진을 담아 준다.

등로 우측으로는 곰치재로 가는 등로이고 좌측으로는 삼계봉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마루금인데 이곳에서 저 멀리 동해에서 참가한 동해바다님과 사진 한장 남기고 삼계봉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동해에서 1백두대간과 9정맥 산행을 완주하고 지난 달 한강기맥까지 완주한 숨어있는 고수로서 땅끝기맥이 무엇이길래 이 야심한 밤에 그 멀리에서 이곳 남녘까지 내려와 이렇게 걷고 있는지 그저 산길을 걸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상황과 시간이다.

부디 땅끝마을까지 어려운 조건 잘 극복하고 함께 걸어 갈 수 있기를 바래도 본 시간이었다.

 

 

이제부터 뚜렷한 호남정맥 마루금을 타고 잠시 더 오르니 저 멀리 종주대들의 불빛이 보이고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하더니 금새 땅끝기맥 분기봉인 바람봉 정상의 넓은 공터에 도착을 한다.

약 4년 만에 다시 들리는 바람봉이기에 감회가 새롭다.새벽 여명을 뚫고 풀잎 위에 내려 앉아 있는 이슬을 털며 어렵게 올랐던 시간이 벌써 4년이란 세월이 되어 가슴속 깊이 추억으로 남아 있으니 그 또한 인생의 한 단면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다.종주대들이 십시일반으로 준비한 제수 용품을 늘어 놓고 정성드려 산신령에게 땅끝기맥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제를 지내고 탁배기 한잔으로 멀고도 긴 장도의 출발을 고한다.

 

 

하지만 이곳 바람봉 정상석에는 목포 산악회 이름을 딴 노적봉이란 유래도 없고 기록도 없는 이름이 적혀 있어 산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데 정상석을 세우는 것까지야 누가 뭐라하겠냐만은 정식 이름도 아닌 산악회 이름을 이렇게 중요한 지점에 함부로 적어 세워놔도 되는지 안타까움이 더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노적봉이 아닌 바람봉으로 명명하고 그 유래를 찾아 보니 이곳은 

영산남기맥과 땅끝기맥이 분기하는 지점이다.

이곳은 장흥군 유치장평화순군 청풍 등 2 3면의 접경이다.

진짜 바람재는 북쪽으로 땅끝기맥을 따라 200내려간 안부에 있는 유치면과 청풍면을 잇는 고개로 북쪽이 막힘없이 트여서 바람이 세다하여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바람재 위에 있는 봉우리를 바람봉이라 한다는데 이정표에는 이 바람봉이 바람재로 표기되어 있고 노적봉이라는 안내표지석이 있다.

앞으로는 정확하지 않은 봉우리 이름과 지명으로 인해 후답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지 않는 산꾼들이기를 간절히 바래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바람봉에서 간단하게나마 산신령님에게 땅끝기맥 산행의 안전을 빌었으니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바람봉 정상석 뒷편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고난의 산행을 시작해 본다.

약간의 내리막 등로가 열려 있고 그 등로 양옆으로는 키 작은 산죽과 사람 키 높이로 자라 있는 잡목들이 벌써 종주대의 앞길을 막으며 쉽지 않은 땅끝기맥 산행임을 알려 준다.

엉덩방아를 찧며 어렵게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역시 잡목이 우거진 안부에 도착해 어렵게 바람재임을 확인하고 사진 한장 남겨 보지만 오지의 산행답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곳이 바람재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마루금이다.

이곳 바람재는 장흥군 유치면 대천리에서 화순군 청풍면 이만리를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아래에 있는 우치리 소재 남쪽에는 고개로 북쪽이 트여서 바람이 세다하여 붙혀진 지명이란다.

그래도 앞서 진행했던 종주대가 있었는지 잡목 위에 미로의 길이 나 있어 생각보다는 걸을만한 등로라 생각하며 진행하는 시간이다

 

 

바람재를 지나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오르니 어둠속에 시작한 땅끝기맥 마루금에도 여명이 밝아 오지만 하늘엔 엷은 구름이 껴 있어 제대로 된 일출을 보기는 힘이 들듯 하다.

앞서 내달리는 종주대는 벌써 저 멀리 앞서 진행하고 뒤따르는 후미는 이제서 바람봉을 내려오기 시작한다는 무전기 소리에 한팀으로 함께 진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이기에 오늘은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지 판단하는 시간으로 남겨 본다.

잠시 능선으로 붙으니 등로 우측 이만리쪽으로 이름없는 사방댐 위에 안개가 피어 오르며 어렵게 시작한 땅끝기맥 산행에 위안을 주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풍경중 하나이기에 앞서 진행하는 종주대 뒤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보는 여유를 가져 보기도 한다.

 

 

이제 463봉으로 진행해야 될 것 같은 등로가 그 463봉 우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그 등로로 들어서니 예전에 비포장 넓은 임도였을 것 같은 곳에 지나다니는 사람과 동물이 없다 보니 잡목과 잡풀만이 무성하게 자라나 진행에 어려움을 가중 시킨다.

그래도 지독한 잡목을 헤치며 앞으로 전진하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시작한 땅끝기맥 분기봉인 바람봉을 우측에 두고 저 멀리 ㅗ남정맥 깃대봉과 국사봉 사이로 많은철쭉 사연을 남겼던 제암산의 암봉이 봉긋 솟아 있는 모습이 처음으로 이 산객의 시야에 들어 온다.

홀로 나즈막한 신음소리를 내며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지난날 저곳에 올라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던 홀대모의 산보님을 생각하는 시간도 가져 본다.

여명이 밝아 오며 엷은 안개가 드리워진 호남정맥 마루금이 다시 이 산객의 잠자는 산행 본능을 깨우는 아침이 되어 가고 있다.

 

 

완전히 밝아오는 등로를 따라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 옆에는 화사하게 피어난 구절초가 반기고 그 마루금의 잡목을 헤치며 전진하니 금새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이제부터 잡목없이 룰루랄라 산행을 맛본다.

만나는 임도에서 좌측 방향으로 틀어 걸어가니 나즈막한 봉우리 지나 다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이곳은 사람이 손질을 했는지 등로에는 잡목 하나 없이 잠시 즐기는 시간을 선물하는 듯한 기분이다.

이곳에서 무전기로 들려오는 선두의 발걸음은 벌써 각수바위 근처까지 진행하고 있다는 전언에 너무나 빠른 진행은 아닐까 조심스레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무심코 진행하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우측으로 화학산 갈림 삼거리가 아닐까 생각되어 지는 곳이기도 하다.

화학산을 화순군 자료에서 찾아 보니 이산은 전남 화순군 청풍면 청룡리와 이만리 그리고 도암면 우치리 일대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613.8 미터이다.

화학산의 유래는 산의 모습이 학이 날개를 펼친듯한 느낌을 주는 산세라 하여 화학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황화산이라고도 부른다.
화학산은 호남정맥이 화순의 최남단인 봉미산으로 이어진 후 서쪽으로 향하다가 삼계봉에 이르러 북쪽으로 치솟은 산중의 하나이다. 

주능선은 남북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고 산세가 밋밋하고 바위지대도 적어 그리 험하지 않은 육산으로 산기슭에는 문바위와 두개의 폭포와 각수바위가 볼거리이고 나주호의 풍경을 볼수 있다.
화학산은 험한 능선으로 이어진 산세와 장흥과 인접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동학혁명시에는 동학군이 이곳에 은거했고 많은 잔비들이 이곳에 주둔하였으며 주변에는 운주사, 개천사, 쌍봉사, 도곡온천, 장흥 보림사 등이 있고 특산품으로는 표고버섯과 더덕이 유명하다. 

 

 

이제 평이한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다 굴곡없는 마루금을 타고 걸어가니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더니 그 끝자락에 떨어져 바닥에 나뒹구는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장평면 바람재길과 바람재 정상 0.8 Km 란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방향 표시 이정표는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온전하게 남아 있는 이정표에는 각수바위까지 1.7 Km 남아 있다는 방향 표시가 되어 있다.

그 이종표 기둥에는 능성삼거리란 이름이 보이는데 지금까지 수많은 산행을 하면서 처음 들어 보는 생소한 이름이기에 혹시 능선삼거리의 오기는 아닐까 의심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능성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주위에 자라고 있는 키 작은 파란 산죽밭을 따라 걸어가니 금새 유치면 개바위등 이정표가 나타난다.

화학산, 능성삼거리에서 1.0 Km 지나왔고 각수바위까지 0.7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다만 이곳 유치면은 장흥군으로서 아무리 개바위등에 관한 자료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자료로 잘 관리되고 사람들에게 알려 그 뜻이라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 본다.

이곳 유치면 개바위등에서 우측 골짜기 같은 등로를 타고 진행했어야 하는데 정상 등로를 따라 직진하다 마루금이 사라져 결국 키 큰 조릿대 군락지를 막 지난 곳에서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해 진행할 수 있었음은 아쉬운 대목이었다.

 

 

선두조에서 우측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띠지 하나를 잘 걸어 놨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직진으로 진행하니 넓은 임도 좌측으로 멋진 편백나무 조림지가 나타나고 잠시 더 진행하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 주위에서 올려다 보니 저 멀리 각수바위의 암릉이 아름답게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언제 솟았는지도 모르게 아침 일출이 끝나고 온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비춰주는 햇살을 받으며 미로 같은 등로를 찾아 다시 전진하는 시간이다.

 

 

다시 희미해지는 등로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우측 넓은 공터로 내려가니 그곳이 바로 각수바위재라 생각되는 곳이다.

각수바위재는 장흥군 유치면과 화순군 청풍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서 잡목들과 잡풀들이 웃자라 너부러져 있기에 고개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다시 사면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오르니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앞에는 당산나무 같은 커다란 거목이 보이고 뒷쪽으로는 키 큰 조릿대가 터널을 이루는 모습이 보인다.

그곳에서 뚜렷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등줄기에 땀방울을 흘리니 드디어 각수바위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만나 잠시 심호흡을 해 본다.

각수바위정상이란 이정표가 서 있고 좌측 등로가 땅끝기맥 길이지만 우측으로 20미터만 올라가면 각수바위이기에 배낭 벗어 놓고 멋진 조망을 기대하며 각수바위쪽으로 이동한다.

 

 

잠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암릉들이 나타나고 갑자기 눈 앞에 거대한 암봉이 가로막는다.

조심해 그 암봉쪽으로 올라가니 암봉 바로 앞에 각수바위란 이정석이 서 있고 사진 한장 남기고 그 암봉으로 올라가 조심스럽게 주위 조망을 살펴 본다.

 

각수바위는 해발고도 515미터로서 화순군 도암면 우치리와 장흥군 유치면 대천리 경계 능선에 있는 암봉으로 두개의 봉우리가 뿔 모양이라 해서 각수바위라 부르기도 하고 새댁의 원혼이 서려있어  각시바위라 불렸다는 설도 있다.

이 각수바위 맞은편에는 화학산이 높게 솟아 있어 각수바위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 각수바위 아래에 있는 마을이 우치리인데 우치의 뜻은 원래 소재 즉 우치라 부르는 것을 한자로 소우 자와 고개치 자를 각각 취하여 우치라 한 것이다.

우치리에는 소재마을, 문바위마을, 각수바위마을과 가마터마을 등 4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120호가 거주하였으나 6.25 이후 마을의 소각과 함께 폐촌이 되다시피 되었고 이후 이농현상으로 문바위, 가마터, 각수바위 마을은 폐촌되고 현재는 소재마을만 남아 30여호가 살고 있다고 한다.

 

 

각수바위 암봉 정상으로 올라가니 앞쪽에 또 하나의 암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암봉 우측 저 멀리 호남정맥 마루금이 아스라히 펼쳐져 있다.

혹시나 하고 무등산을 찾아 보니 저 멀리 희미한 높은 산이 무등산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확실하지 못하니 아쉽기만 하다.

그 앞쪽으로 올망졸망한 호남정맥의 빨래판 능선이 지난날 어렵게 걸었던 추억을 꺼내며 이야기를 나누자 소근거린다.

그 건너편 바위 바로 아래에는 우치제라는 작은 저수지에 푸르른 물이 가득하고 바로 옆으로는 방금 전 지나온 갈림길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화학산도 가깝게 자리하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각수바위 암봉 좌측 저 멀리에는 화순군의 나즈막한 산그리메가 환상을 노래하며 어렵게 진행하는 땅끝기맥 종주대의 가슴에 잊지 못할 멋진 풍경을 선사하고있다.

 

 

그렇게 잠시 각수바위 정상에서 조망을 즐기며 함께 오른 종주대들의 사진들을 담아주고 다시 각수바위 정상석 아래로 내려오다 앞을 ㅏ라보니 저 앞 멀리 다음 구간 지나야 할 국사봉 넘어 암봉이 우뚝한 월출산이 어서오라 부르고 있다.

몇번인가 올랐던 월출산이지만 이쪽 방향에서 올려다 보는 풍경은 더욱 근육질의 우람한 체격에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모습이다.

이제다음 구간을 지나면 제3구간에 만나야 할 월출산이기에 잠시 더 그곳에 서서 가슴속 깊이 그 모습을 담아 본다.

그렇게 조망을 즐긴 후 다시 벗어 놓은 배낭으로 돌아 내려가 각수바위정상 이정표를 지나 이제 우측 등로를 타고 땅끝기맥 산행을 이어 가 본다.

 

 

다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금새 담양전씨 묘지와 비석이 나타나고 그 옆을 통과해 걸어가니 갑자기 다시 커다란 암봉이 앞을 가로막는데 등로는 그 암봉 좌측의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함께 진행하는 종주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암봉 사면 등로를 타고 내려가 크게 그 암봉을 우측에 두고 돌아 진행하는 형국이 되었다.

생각보다 잡목이 줄어 든 편안한 등로로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우측 평이하게 이어지고 있다.

 

 

바위들이 산재한 등로를 타고 암릉 구간을 지나니 다시 등로는 봉우리 좌측 사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끔 나타나는 선답자들의 띠지를 따라 걸어가니 거목들과 잡목들이 뒤섞인 마루금이 나타나고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진행하니 다시 등로는 잡목 터널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고 있다.

 

 

다시 잡목이 우거지기 시작하고 바위들이 보이는 마루금을 타고 걸어가니 활엽수가 아름다운 멋진 등로가 펼쳐져 있다.

백두대간 마루금의 어느 산길처럼 키 작은 잡목이 사라지고 철쭉나무가 터널을 이루듯 새로운 풍경의 땅끝기맥 등로이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키 작은 산죽이 등로를 가득 메우고 그 가운데로 나 있는 마루금을 찾아 호젓하게 자연을 즐기는 시간도 가져 본다.

 

 

잠시 더 편안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 안부를 지나니 다시 산죽이 등로를 완전히 막고 통행세라도 내야 보내줄 기세이다.

그렇게 다시 잠시 산죽밭을 어렵게 뚫고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펼쳐지고 살펴보니 깊은 골자기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높은 산줄기들이 햇빛조차 막아줄 기세로 당당하게 이어져 있다.

살펴보니 장흥군 유치면 운월리 마을이라 생각되는 풍경인데 그 아름다운 풍경과는 달리 오지중의 오지마을 같다는 느낌이다.

 

 

 

다시 잡목들로 길찾기에 어려움을 느끼며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드넓은 비포장 임도에 내려선다.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바람재 또는 유치재라 불려지는 고갯마루이다.

땅끝기맥 마루금은 이 우치재 임도를 가로 질러 반대편 능선으로 오르며 이어지고 있다.

화순군 도암면 우치리와 장흥군 유치면 소양리를 잇는 임도로 우치재 또는 바람재라고도 부르며 지명은 우측 아래의 우치마을에서 유래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화순군 도암면 우치리는 총 4개의 부락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 이름은 우치, 신촌, 화정과 계동으로 이 우치재란 고개 이름을 만들어 낸 마을은 바로 우치리 우치라는 마을인 듯 하다.

우치리 우치마을은 함평이씨 함풍군 10대손 전라좌수사 이조판서 이춘수가 정착한 곳으로 춘수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큰 아들 긍는 기성군에 봉하여 사산사에 제향하고 둘째아들 접은 김종직과 김굉필 및 정여창에게 강마하였으며 효우선생이라 불렀다. 

효우공 이접의 자손이 이 마을에 40여 호 거주하고 있으며 군내에는 860여 호가 살고 있다.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는 상중치와 하중치 두 마을이 나와 있는데 마을의 지형이 산에 오르는 소와 같다 하여 우치(1914년 행정구역개편전)라고 했으며 훈만 따서 소재라 부르기도 한다. 

우치동은 불갑산맥이 내려와 매봉을 기봉으로 하여 남쪽으로 10리 밖 제당산 아래 와우형국으로 서출동류수하여 옛부터 부자는 없으나 인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방금 전 무전기에 흘러 나오는 이야기로는 선두조가 이곳 우치재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간다고 하였는데 아무도 없어 그냥 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약간의 허기를 느끼지만 홀로 남아 아침밥을 먹을 수도 없으니 다시 우치재 임도를 가로질러 반대쪽 능선으로 기맥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잡목이 점점 심해지더니 정상부로 오르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많은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달려있는 곳을 지나 오르니 칡넝쿨과 잡목이 심해 엎드려 지나갈 정도로 등로가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한동안 오르니 등로는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며 우측으로 꺽여지는데 그 비포장 임도가 이제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잡목이 우거지며 평이한 등로보다도 진행에 더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게 진행 해 어렵게 461봉에 도착해 아침상을 펼치니 선두는 벌써 도망가듯 떠나고 몇명의 중간 그룹만 남아 함께 여유를 즐겨 본다.

 

 

다시 우측 능선을 타고 진행하니 저 멀리 앞으로 61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그곳을 향해 잠시 내려갔다 오르니 예전에 벌목지대였는지 등로 좌측은 큰 나무들이 사라지고우거진 잡목이 옛날 임도를 가득 메워 진행에 여간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등로 좌측으로 조금씩 호남정맥 마루금이 조망되는가 싶더니 다시 잡목 한가운데를 통해 온몸에 생채기를 내며 진행하고 온몸이 굵은 땀방울로 흠뻑 젖어질쯤 앞의 조망이 터지며 선두조가 아침밥을 먹고 있다는 461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 잡목 구간을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옛날 벌목지대를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큰 나무들이 사라지며 저 멀리 시원하게 호남정맥 마루금이 드넓은 산그리메를 만들며 산객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있다.

아무리 허기가 진다해도 그 이름 하나쯤 불러주고 올라야 될 것 같아 잠시 등로에 서서 아는 이름을 찾아 보니 저 멀리 철쭉으로 유명한 제암산과 사자산이 눈에 들어 오고그 좌측 저 멀리 보여야 할 조계산을 찾아보지만 그 조계산은 삼그리메에 숨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혹시 존재산은 보일까 살펴보지만 보이는듯 보이지 않고 알듯 하면서도 정확하게 그 위치를 확인하기 어렵다.

 

그 461봉 오르는 벌목 잡목지대에서 정상을 향해 오르니 정상 부근에서 벌목지대는 사라지고 잡목속으로 들어가는데 그 잡목속으로 들어가기 직전 지나온 땅끝기맥 마루금을 뒤돌아 본다.

우치재에서 어렵게 올라 와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가 올려다 보이지만 우치재 직전 솟아 있던 398봉은 저 산줄기에 가려 전혀보여주질 않는다.

등로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작은 저수지와 아름다운 산그리메를 조망하며 힘겹게 조금 더 오르니 산우님들 목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461봉에 도착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늦은 아침상을 펼쳐 본다.

 

 

아침식사 후 평이한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전진하니 약간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잡목과 산죽이 어우러진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진행을 한다.

아침 식사 후부터는 완전 후미 산우님들을 모시고 진행하기에 조금은 더 여유를 찾고 있지만 산행 시간과 안전 문제로 인해 정신은 더욱 긴장하며 걸어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걷기 좋은 등로가 나타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잡목과 한판 승부를 펼쳐야 하는 등로와 마주한다.

 

 

다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올라 무명봉을 넘어 내려가니 등로 옆에 커다란 거목 하나가 반겨준다.

그 거목 주위에는 잡목이 사라져 잠시 여유로운 산행 시간이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온몸을 뜯기는 잡목과 가시로 인해 산행 속도는 전혀 나질 않는다.

거목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전진해 본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하며 내리막 등로에 가득 채워진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다 등로 우측을 보니 누렇게 변해가는 황금들녘 앞에 파란 물이 가득한 작은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지도를 살펴보니 황정재라는 저수지 이름이 보인다.

황금빛으로 변해 가는 들녘과 파란 저수지 물이 어우러져 너무나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수락재는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게 지난 후 우측 잡목 사이로 선왕산을 어렵게 조망하며 진행하니 다시 큰재를 지난다.

생각하지 못하고 진행하면 이곳이 큰재인지 아닌지도 모를 그런 고갯마루이지만 옛날에는 민초들에게 중요한 통행 길목으로 이용되었으리라

하지만 교통이 발달한 지금이야 이렇게 그 맥을 이으며 힘들게 걸어가는 산꾼들 빼고는 이곳이 큰재인지 아닌지 관심조차 없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그렇게 진행하다 잠시 등로 좌측으로 잡목이 사라진 곳에서 저 멀리 호남정맥 마루금을 담아 본다.

어느산인지 구분하기는 힘이 들지만 저 마루금도 지난 어느날인가 땀방울 흘리며 걸어 지났을 시간이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묻어 난다.

역시 홀로 이것 저것 챙기며 확인하며 걷다보면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겠지만 후미를 챙기며 단체로 진행하는 시간이기에 감수해야 할 아쉬움이다.

 

 

다시 잡목과 잡풀을 헤치며 조금은 지루하게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걸어 본다.

선두는 이미 저 멀리 아크로 골프장을 보며 진행한다는 무전기속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생각보다 많이 벌어진 거리와 시간으로 인해 앞으로 이 단체를 이끌고 또 어떻게 진행을 해야 하는지 고민도 깊어지는 시간이다.

그렇게 걸어 진행하니 저 멀리 송전탑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산행지도에는 표기가 되어 있지만 일반 지도에는 표기조차 없는 왕정재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임도를 지나고 곧이어 송전탑이 나타난다.

송전탑 번호는 확인도 못하고 그 밑을 통과해 진행하니 금새 행산재 또는 덕룡재라 지도에 적혀 있는 곳에 도착해 준.희님의 이정표를 반갑게 만난다.

그곳 좌측의 묘지에서 잠시 휴식 취하며 허기를 달래고 다시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찾아 맥 잇기를 이어가 본다.

덕룡재는 화순군 도암면 행산리에서 나주시 봉황면 덕룡를 넘는 고개로 행산재라고도 부르는데 화순군의 최서쪽 끝단이기도 하다.

먹었으니 다시 힘을 내 보는 시간이다.

 

 

덕룡재를 지나 지루하게 진행하니 무명봉을 넘어 선두가 달아 놓은 온누리산악회 띠지 하나를 발견하곤 얼마나 반갑던지 모른다.

그곳을 지나 계속 진행하니 등로 옆에 작은 꽃몽우리를 피우려고 움추러 들어 있는 동백꽃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파란 그물망이 있는 등로를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저 멀리 시멘트 임도가 내려다 보인다.

 

 

드디어 우측은 비포장 임도이고 좌측은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는 임도인 세류촌 임도에 도착해 후미를 기다려 본다.

원 기맥 등로는 시멘트 임도를 지나 철조망이 쳐진 문 우측 옆으로 올라 진행해야 하지만 후미이고 선두와의 거리도 많이 떨어져 있어 후미 산우님들을 모시고 좌측 시멘트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하기로 한다.

이곳 세류촌 임도는 영암군 금정면 세류마을에서 나주시 다도면 중장터와 화순군 도암면으로 가는 임도로 중장터 고개라고도 부른다고 알려져 있다.

 

 

시멘트 임도를 타고 내려가다 보니 도로 좌측으로 아름다운 산그리메가 부르고 있다.

바로 아래 세류촌 지나 저 멀리 미봉이 보여야 하는데 저 앞에 보이는 산이 미봉인지 모르겠다.

한낮에는 아직도 무더위가 느껴지는 날씨에 한동안 시멘트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그 도로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다.

 

 

한동안 시멘트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보이고 조금 더 올라가니 전주이씨와 부인 안동권씨 묘지 그리고 전주이씨 묘지들이 줄지어 있는 묘지지대를 지나 언덕배기를 오르니 금새 정상 땅끝기맥 마루금으로 복귀를 한다.

그곳 정상 마루금에서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짧은 휴식을 취하고 곧바로 좌측 등로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해 진행하니 나즈막한 봉우리를 넘어 덕룡임도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올라야 할 371.5봉과 400봉이 연달아 이어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새로운 도로 공사를 하는지 공사차량들이 보이고 몇명의 작업하는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 도로 공사장 절개지로 가 좌측 절개지를 타고 내려가 공사중인 임도를 건너 반대편 그늘에서 후미를 다시 기다려 본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함께 진행하던 후미가 반대편 절개지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보이는 절개지 우측으로 내려오라 알려주는데 보이지 않던 강릉과 동해에서 오신 두분이 함께 내려오고 있다.

모두 내려 와 확인해 보니 세류촌임도에서 정상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다 보니 후미와 뒤바뀐 채 이제 후미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곳 공사중인 도로는 지도상 820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덕룡 임도로 표기되어 있는데 오늘 보니 제법 넓은 도로로 확장을 하고 있으며 그 도로 위에 동물 이동 통로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덕룡 임도는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에서 나주시 봉황면 덕곡리로 이어지는 도로로서 그 역활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 보여 안타까움이 덜한 곳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덕룡임도를 건너 반대편 절개지 옆을 타고 정상적인 등로로 오르니 등로 좌측 철조망 사이로 폐축사 건물이 보이고 다시 절개지 정상부로 오르니 등로 좌측 즉 폐 축사 바로 뒷쪽에 묵밭이 보이는데 등로는 그 묵밭 뒤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렵게 정상 능선을 찾아 오르니 금새 편백나무 군락지를 만나 오르고 힘들게 된비알 타고 진행하니 371.5봉 직전에서 잠시 조망이 터져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오늘 이 종주대가 걸어 온 마루금이 아스라히 펼쳐져 있다.

 

 

뒤로 펼쳐진 조망을 즐긴 후 다시 후미 기다렸다 출발하니 산죽 등로를 지나 71.5봉을 넘고 산부추 열매를 사진에 담아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작은 봉우리와 나즈막한 안부를 셀수도 없이 오르락 내리락하며 걸어가니 어느새 400봉 지나 등로 좌측 저 멀리 ㅜㅇ성산이 보이고 그 좌측 아래로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크로 골프장의 풍경도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이제 등로 좌측으로는 궁성산과 아크로골프장의 풍경이 제법 잘 보이고 있다.

궁성산은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과 나주시 봉황면에 솟아 있는 산으로 금정면 세류리의 기동 마을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이 산 정상부에 산성이 있었다 하여 궁성산이라 이름 붙었다. 

현재는 대부분 파괴된 상태로 그 흔적만이 일부 남아 있는 이 궁성산성은 그 유래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어 정확한 축성연대와 용도 등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주민들은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군사와 말을 훈련시키고 화살을 쏘는 연습장으로 활용되어 활터라 불렀다고 전하는데 지형상으로는 장흥 유치나 금정 청룡리를 경유해 쳐들어오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산성으로 판단된다. 

또한 일부에서는 월출산과 활성산에서 전달된 신호를 전하는 봉화대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또한 역사적으로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아파했던 곳이기도 하다. 

등산로가 잘 닦여있지 않으며 가시덤불이 너무 많아 힘든 면이 있지만 겨울에는 나름대로의 묘미를 주기도 한다.

궁성산은 산의 높이가 484.2미터로 규모가 큰 것도 아니고 산세가 수려하지도 않으나 역사적으로 임진왜란이나 6.25동란을 거치며 전쟁의 소용돌이가 끊이지 않았던 곳으로 아픈 역사의 단면을 간직한 곳이다. 

오늘 오르지는 못하는 산이지만 그 아픈 역사를 알고나니 괜시리 마음이 짠해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등로 좌측으로 계속 보이는 궁성산과 골프장을 조망하며 진행하니 그 궁선산 아래로 작은 황금들녘과 기동저수지도 내려다 보인다.

다시 산죽밭과 잡목지대를 지나 진행하니 등로 옆으로 제법 큰 바위 하나를 지난다.

그 바위를 지나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갔다 잡목으로 정상 등로를 타지 못하고 우측으로 돌아 완만하게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바로 이곳이 확인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기동재이다.

 

기동재는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기동마을에서 나주시 봉황면 덕곡리를 넘는 고개로 그 흔적조차 사라지고 있는 곳으로 생각되는 안부이다.

드넓은 시멘트 포장길이 탐진강 발원지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 시멘트 포장임도는 잡목이 우거져 보이지 않는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멋진 바위도 보이고 이제 후미와 한 그룹이 되어 오르니 다시 키 작은 산죽밭이 이어진다.

몇개의 나즈막한 봉우리와 안부를 번갈아 타고 걸어가니 드디어 옛날 산성을 쌓았던 곳처럼 보이는 바위산성이 보이는데 언제 왜 만들어졌는지는 찾을 수 없어 아쉬운 시간이다.

그 354봉 넘어 계속 진행하니 갑자기 눈 앞에 지독한 칡넝쿨 구간이 펼쳐지는데 그 한가운데로 좁은 등로가 열려있다.

 

그 지독하게 얽혀있는 칡넝쿨 지대를 조심하며 걸어 통과하니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계천산 정상부에 도착을 한다.

하지만 그 정상에는 기대했던 정상석 하나 없이 어느 산꾼이 달아 놓은 작은 종이 코팅지가 전부에 그 옆으로 선답자들의 띠지몇장이 쓸쓸하게 지키고 있다.

산행 후 이 계천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하고 이곳 영암과 나주 지역의 지명 이름에 간간히 나타날 뿐이어서 아쉽기만 하다.

계천산 정상 주위에 있는 이름 모를 산성과 함께 잘 복원되어 산에 대한 역사와 유래등을 알 수 있도록 정비가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계천산 정상을 지나 내려가니 다시 거대한 습지 위에 제멋대로 자라난 칡과 억새 그리고 키 작은 관목과 잡풀들이 등로를 완전히 막고 시위하듯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래도 다행히 앞서 진행한 선두가 등로를 잘 내놨기에 그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진행을 해 본다.

잠시 그 어려운 구간을 지나 지나온 계천산 방향을 뒤돌아 보니 계천산은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다시 그 무지막지한 칡넝쿨 지대를 지나 무명봉을 넘으니 키 큰 산죽들이 종주대 한명이 지나기도 힘들만큼 좁은 등로를 열어 놓고 마지막 종주대의 체력을 시험하고 있다.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며 어렵게 그 키 큰 산죽밭을 빠져 나오니 드디어 조금 전 지났던 기동재와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 임도로 내려서며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홀로 진행한다면 벌써 끝났어냐 할 산행이 아직도 한시간 이상 남겨두고 진행하고 있음에 고민이 되지만 모두 다 함께 그 어려운 등로를 찾아 무탈하게 진행하고 있음에는감사한 마음이 교차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멘트 포장 임도로 내려서서 좌측으로 그 시멘트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힘들어 하면서도 즐기려는 산우님들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시간이다.

무엇이 그리 좋아 이토록 먼 남녘까지 내려 와 이 고생을 하는 것인지...

그래도 먼 훗날 좋은 추억을 꺼내 오늘 담았던 풍경과 조망들을 이야기 할 수 있기를 바래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 시멘트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앞에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난다.

그 옆에는 좌측 도로 방향으로 탐진강발원지란 이정표가 보이고 잠시 고민하다 그곳으로 내려가 본다.

처음에는 탐진강 발원지를 찾지 못해 해매다가 잡풀사이로 어렵게 찾아 들어가 간단히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정상 등로로 올라 와 힘들게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탐진강 발원지로 가니 그곳에는 샘터와 표지석 그리고 탐진강 발원지 궁성산 성터샘이란 안내판이 크게 서 있다.

그 내용을 읽어보니 이곳 성터샘은 궁성산의 성터에 있다고 하여 유래된 샘으로 탐진강의 발원지이다.

탐진강은 전라남도 3대 강의 하나로서 이곳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궁성산(482.2미터) 범바위골 터샘에서 발원하여 강진군 군동면 삼신리 삼각점까지 총 로 연장

약 57 Km에 이른다.

이곳 발원지에서 탐진강 직상류의 옴천천 합류지점까지 27.9 Km를 지방 2급 하천인 탐진천이라 하고 옴천천 합류지점부터 탐진강 하구인 강진

군 군동면 삼신리 삼각점까지 29.1 Km를 국가 하천인 탐진강이라고 한다.

이곳 궁성산은 성터샘 주변에 궁성산선의 흔적이 있는데 유래에 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축성 연대와 용도 등을 알 길이 없으나 주민들의 구전

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군사와 말을 훈련시키고 화살을 쏘는 연습장으로 활용되어 활터라 불렀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봉화대라는 주장도 있다.

탐진댐의 건설 계기로 발원지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한국수자원공사와 장흥환경운동연합이 공동으로 토지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

이곳 성터샘 자리에 탐진강 발원지를 복원하고 주변에 휴게 공간을 조성하였다.

 

 

다시 임도로 올라 와 삼거리에서 이제 좌측 임도를 타고 오르니 등로는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 대나무 밭을 지난다.

우거진 대나무 밭을 지나니 짧은 잡목과 칡넝쿨이 나타나지만 그런대로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그 칡넝쿨 지대를 지나며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나주쪽 황금평원과 그 뒤 저 멀리 영산기맥이라 생각되는 산줄기가 아스라히 보인다.

저곳도 조만간 다시 올라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언제나 마무리가 가능할지 고민도 되는 시간이다.

 

 

그렇게 그 칡넝쿨 지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잡목지대를 타고 오르는 후미 종주대의 모습이 보이고 그 뒤로 계천산 넘어 오늘 걸어 온 땅끝기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 가운데에는 저 멀리 나주의 아파트 촌들도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오늘 땅끝기맥 첫 구간도 마무리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다시 힘을 내 능선으로 오르며 마지막 체력을 솟아 붓는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마지막 나즈막한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야 할 등로를 놓치고 우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어딘지 모르게 등로는 확실하지만 기맥 등로는 아니기에 스마트 폰에 저장된 GPX 트랙을 확인하니 정상 등로를 벗어나 우측 능선을 타고 있다.

어렵게 사면 등로를 타고 정상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다시 평이한 내리막 등로와 이어지고 잠시 더 내려가니 등로는 좌측 시멘트 임도로 내려서며 그 임도 좌측에 서 있는 건물 한채와 그 아래 펼쳐진 아크로 골프장이 나타난다.

 

 

그곳 시멘트 임도로 내려서는데 앞서 완주한 선두 산우님이 다가 와 멋진 사진 한장 남겨 준다.

이제 저 골프장 입구에 타고 온 버스가 보이고 그 주위에는 먼저 내려온 선두 종주대들이 쉬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마지막 몇 발자국만 더 내려가면 오늘 산행도 마무리가 될 것이다.

 

 

그렇게 그 시멘트 포장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아크로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이고 그 옆에는 타고 서울로 올라 갈 버스가 보인다.

하지만 벌써 시간이 오후 4시를 넘어 산행 후 영암에서 실시하려던 샤워는 포기하고 먼저 내려온 선두는 이곳 골프장 옆 수돗가에서 아쉬운대로 땀방울을 씻어내고 후미는식당에서 간단히 씻은 후 서울로 복귀하기로 한다.

이렇게 첫 구간을 무사히 마쳤지만 앞으로 시정하고 수정해야 될 몇가지 아쉬운 점들도 발견이 되었기에 어떻게 순조로운 진행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는 시간이다.

 

이곳은 또한 땅끝기맥 산행 시 중요한 구간 나누기의 분기점으로 오두재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지명이다.오두재는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에서 용흥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오두재라는 이름은 고개의 형상이 까마귀 머리와 비슷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자료를 찾아보니 오두재는 옛 기록인 조선 지형도에 지금의 계천산이 궁성산으로 기록되어 있고 오두재라는 지명은 보이지 않는다.

한글 지명 총람에 처음 기록된 것으로 보아서는 1961년 이후에 비로소 고시 지명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오두재에는 현재 국도 23호선에서 계천산으로 연결되는 지방 도로가 지나고 있는 도로가 개설된 곳이기도 하다.
산행 후 이미 예약된 식당으로 가는데 이 산행대장이 확인을 하지 못해 산행이 끝날때까지도 몰랐는데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이 아닌 남쪽 장흥쪽으로 50여분이나 더 내려가 있는 식당으로서 앞으로는 조금 불편하고 힘이 들더라도 이 산행대장이 직접 서울로 올라오는 길목에 있는 지역을 선택해 식당과 목욕탕을 선정해야 된다는 대명제도 안게 되었다.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모두 무탈하게 산행을 마치고 어렵게 막히는 도로를 타고 서울 사당에 밤 11시 이전에 도착해 아쉬운 첫 구간을 마친다.함께 진행하며 힘이 되어 준 35명의 종주대에게 감사한 마음 전하며 제2구간부터는 조금 더 편안하고 안락한 산행에만 전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보자 다짐도 해 보는 시간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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