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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강화지맥(섬·완료)

강화지맥 마지막 제2구간 강화군농업기술센터에서 택리나루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4.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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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기도 강화군 강화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4년 05월 03일 (토요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맑고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불었지만 약간 무더위를 느낀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3도에서 영상 25도

산행인원 : 총3명, 칠갑산과 3450온누리산악회 산친구 2명 포함

산행코스 : 강화군농업기술센터(2번 2차선 포장도로)-일미향락정 시멘트 포장도로-시멘트임도 삼거리-한수농장-비포장 공사지역-능선 수레임도-

                   소나무 군락지-250봉 우회등로-바위암릉지대-전망바위-해병대 사격 훈련장 부대장 경고판-벌목된 방화선-덕정산(325봉, 진강산 갈림 삼거리)-

                   벌목된 방화선-헬기장-제2깃대봉 갈림 삼거리-불난지역-236.4봉 삼각점-이정표와 운동시설(학생교육원과 덕정산정상 및 불은면사무소)-

                   갈림삼거리-광산김공 묘지-비포장 임도-비포장 임도 갈림 삼거리-묘지지대-천주교 공동묘지-군부대 벽돌담장-강화나들길-농가와 논 밭 사이

                   통과-능선진입-1번 2차선 포장도로-이동통신탑-밭 통과-민가와 축사 통과-비포장 임도-포장도로-쪽빛구리 펜션 안내판-강화군수 공설(공원)

                   묘지지역 안내판-묘지지대-녹슨 철조망-71봉 삼각점-묘지지대-호수와정원펜션-묘지지대-비포장임도-포장도로-강화나들길 3코스 이정목-

                   시멘트포장임도-강화나들길3코스 안내판-갈림 삼거리-들꽃피는언덕 펜션 안내판-들꽃피는언덕 펜션-능선진입-소나무 군락지-무명봉(나무

                   군벙커)-민가와 시멘트 포장임도-17번 2차선 포장도로-세빛교회-강남중고등학교 버스정류장-강남영상미디어고등학교 교정-능선진입-

                   절개지 능선-묘지지대-여능고개(여우고개, 2차선 포장도로)-여능 비포장 갈림 임도-갈림 삼거리-능선진입-밤나무 과수원-급경사 된비알

                   오르막-정족산(전등산, 221봉과 삼각점)-산성등로-전등사 갈림 이정표-전등사-삼랑산성서문 복귀-성곽등로-삼랑산성 남문인 종해루-

                   성곽 통과-주택마당-보리고개(2차선 포장도로와 로얄유스호스텔)-로얄호텔 버스정류장-시멘트 포장임도-능선진입-길마재봉(152봉, 헬기장)-

                   온수리 0.5 Km 이정표-안전목책과 로프구간-224봉(산재된 암릉봉)-헬기장-전망바위-이정표(온수리 1.4 Km와 정상 0.7 Km)-바위 암릉지대-

                   헬기장-길상산(374봉, 전망데크, 정상 이정목과 돌탑 그리고 삼각점)-안전목책과 로프구간-이정표(정상 0.2 Km와 장흥리 2.6 Km)-전망바위-

                   약수터 갈림 삼거리-헬기장-갈림 삼거리-묘지지대-비포장 임도-갈림 삼거리 임도-갈림 삼거리-제1차 벌목 방화선 지대-제2차 벌목 방화선

                   지대-제3차 벌목 방화선 지대-아카시아 나무 지대-소나무 군락지-전망사각정자-벌목 방화선 지대-소나무 군락지-비닐하우스와 전원주택지대-

                   2차선 포장도로-택리버스정류장-강화나들길 8코스와 수준점-택리나루-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9.50 Km 

산행시간많은 사진 찍고 산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며 꾸준했지만 여유롭게 07시간 40분 (06시 00분부터 13시 40분까지)

교통편 : 갈때엔 애마 이용

               나올땐 택시 및 버스 60-5번과 60-3번 그리고 지하철 2호선 이용

강화지맥이란

강화도는 우리나라의 많은 섬 중에 제주도, 거제도, 진도 다음으로 네 번째 큰 섬으로서 행정구역상으로는 대한민국 인천광역시의 북서부 황해상에 위치하고 있는 섬이다.

강화도는 1개 읍과 13개 면으로 면적은 약 302.14 Km2이고 인구는 약 67,000명이며 세대수는 약 28,600 세대인데 이는 제주도(1,848.2 Km2), 거제도(378,795 Km2), 진도(319 Km2)이어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강화도가 역사적으로 변해 온 지명을 살펴보면 상고시대에는 갑비고차라 하였고 서기475년 고구려 장수왕 때에는 혈구군으로 서기844년 신라(문성왕)때에는 혈구진으로 서기1363년 고려(공민왕)때에는 강화부로 그리고 서기 1895년 조선(고종)때에는 강화군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최근 1995년에 경기도 강화군에서 인천광역시 강화군으로 바뀌었고 강화도는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한반도의 역사를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 하겠다.

선사시대의 유물과 유적으로 하점면 장정리와 화도면 사기리와 동막리 등지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신석기 유물도 강화도내의 여러곳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거석 유적인 지석묘(고인돌)가 하점면 부근리를 비롯한 도처에서 80기 이상 발견되고 있어서 이 지역에서 일찍부터 사람이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강화도는 원래 두곳의 섬인 즉 원래의 강화도와 마니산을 중심으로한 고가도나누어져 있었으나 고려시대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간척사업으로 인하여 하나의 섬이 되었다고 하며 이 때문에 강화도를 북에서 남으로 잇는 강화지맥의 마루금을 긋기가 애매모호하다.

강화지맥은 대간이나 정맥등에서 갈라져 가지친 지맥이 아닌 단순히 강화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지맥이다.

강화지맥은 강화도 최북단에 위치한 양사면 철산리 해안에서 시작하여 제적봉(115m), 별악봉(130m), 저담산(167.3m), 성덕산(215m), 봉천산(291.1m), 시루메산(250m), 고려산(436.3m), 혈구산(466m), 퇴모산(338.9m)을 거쳐서 덕정산(325m)에 이르러 여기서 남동쪽으로 뻗어가는 산줄기는 정족산(221m), 길상산(336m) 거쳐서 강화도 최남단 길상면 장흥리 택리마을앞 강화만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4.1 Km산줄기이고 덕정산에서 또 하나의 분맥 산줄기가 진강산(441.3m), 마니산(469m)을 거쳐서 분오리 마을앞 강화만에서 그 맥을 다한다.

원래의 강화도를 일주하는 정족산, 길상산 방향으로 택리마을까지 이어지는 약 40 여km의 강화지맥을 종주한 후 강화의 진산인 진강산과 마니산 줄기도 걸어 보기로 한다.

 

 

발걸음 맞는 산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남아 있는 강화지맥 나머지 구간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오랫만에 마음 맞고 발걸음을 맞출 수 있는 산친구 2명과 함께 강화지맥 남아 있는 마지막 제2구간을 오르게 되였다.

많은 산친구들을 만나고 헤어졌지만 오늘 만나 산행을 즐길 이 두친구만큼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산친구도 많지 않음을 느끼며 참으로 소중한 시간으로 남겨 본다.

무엇이 그리 좋아 새벽 어둠속을 헤치며 강화도로 달려가 흠뻑 땀방울 흘린 후 탁배기 한잔을 마시며 산이야기를 꽃피우며 행복할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이것이 인생은 아닐까 어렴풋이 느꼈던 시간이기도 하다.

 

온몸에 흠뻑 땀방울 흘리며 조금은 빡빡하게 오른 정족산 정상에서 잠시 불어오는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지나온 강화지맥 마루금을 뒤돌아 보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시간이였다.

늘 느끼는 것은 인간의 두발로 걸어 지나온 마루금을 돌아보면 그 위대한 발걸음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지고 숙연해진다는 사실이다.

좌측 저 멀리 조만간 올라야 할 진강산이 우뚝하고 그 우측 나즈막한 봉우리가 오늘 이 산객이 발걸음을 시작한 덕정산으로서 그 우측 가운데 저 멀리에는 지난 구간 오르며 활짝 핀 진달래꽃에 취했던 혈구산이 확연하다.

한가운데에 드넓게 자리를 하고 있는 길정저수지 우측의 비산비야를 타고 걸어 와 이곳 정족산으로 이어지는 강화지맥 산줄기가 아련하고 그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자연의 빛깔과 내가 걸어 온 마루금이 멋진 조화를 이루며 가슴 속 깊이 오늘의 영상을 간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 새벽에도 어김없이 옆지기의 도움을 받아 산친구 두명을 무탈하게 Pick-up한 후 강화도의 작은 식당에서 청국장 비빔밥 한그릇으로 허기를 달랜 후 지난 구간 날머리로 이용했던 2번 4차선 포장도로 옆 강화군농업기술센터 간판 앞에 서는 시간이 새벽 5시 50여분을 가리키고 산행 준비를 하는 사이 아침 햇살은 벌써 저 멀리 세상 위로 올라 와 버렸다.

옆지기와 헤어져 주위 사진 몇장 남기고 그 2번 지방도로를 건너 우측 위로 올려다 보이는 덕정산을 바라보며 멋진 하루를 시작해 본다.

오늘은 마음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고 더욱이 발걸음까지 맞춰 걸어갈 산친구 두명이 함께하니 더욱 아름답고 멋진 산행이 되리란 기대로 시작하는 아침이다.

 

2번 4차선 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도로따라 조금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그 입구에는 식당과 민박 그리고 카센타와 같은 많은 입간판들이 보인다.

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들어가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는 FARM & STORY란 농장이 보이고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양쪽으로는 밭이 보이는데 이제 농사철이 시작되었는지 비닝이 쳐져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도로 좌측 저 멀리에는 거대한 축사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고 농촌의 특이한 거름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나 오늘은 스마트 폰의 트랙을 이용해 등로를 찾아가는 첫 시험을 하는 날이기에 조금은 신선하고 불편함이 공존하는 시간이지만 앞으로 알바를 줄일 수 있는 기회이기에 열심히 배워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계속 이어지는 전봇대를 따라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하니 도로 좌측 저 앞으로는 거대한 한수목장이 보이고 그 바로 뒷쪽으로 250봉과 덕정산이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하니 드디어 도로 좌측으로 한수농장을 두고 계속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최근에 공사를 하고 있는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2번 지방도로 지나 강화전통체험관과 농업기술센터 건물이 보이고 그 뒷편으로 지난 구간 어렵게 내려 온 퇴모산과 혈구산 줄기가 병풍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더 공사중인 비포장 임도를 따라 오르니 임도 우측에 비닐하우스 한동이 나타나고 곧이어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그 능선에도 넓은 수레길 같은 임도가 열려 있다.

잠시 더 오르니 등로는 임도 좌측 잡목 지대로 이어지지만 오늘은 그냥 편안하게 임도를 따라 올라 250봉은 우회하기로 하니 스마트 폰에 저장된 트랙이 정상 등로와 다르다며 자꾸만 많은 신호를 알려주고 있어 정상 작동되고 있음을 알려 준다.

잠시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주능선에 도착해 좌측으로 꺽여 진행되고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는 약간의 바위  너덜길로 변하고 있는데 산행에는 큰 자장이 없을 정도이다.

 

약간의 바위지대를 통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들어 온몸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식히며 주위 조망을 즐겨보는 시간이다.

등로 남서쪽으로는 조만간 타고 올라 저 멀리 마니산으로 걸어야 할 진강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몇년전 이곳 강화도로 일을 보러 왔다가 잠시 올랐다 내려간 추억이 있는 산이기에 더욱 반가운 마음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에 위치한 해발 443미터의 진강산은 강화도 중남부지역인 혈구산과 마리산(마니산) 사이에 있는 나즈막한 산으로 봄이면 진달래와 산벗 그리고 개나리꽃이 말발하여 온산을 꽃동산으로 만들어 놓는다.

진강산꼭대기에는 말발굽모양을한 구멍난 바위가 있는데 바위에 난 구멍이 말발굽자욱이라는 전설이 있다.

 

서쪽으로는 양도면 삼흥리 마을이 발 아래 펼쳐지고 그 넘어 서해바다를 건너면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했던 석모도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석모도를 두고 우측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국수산 자락 뒤로 숨어 있는 교동도의 아름다운 자취가 지난날 멋진 추억을 이야기하며 다시 한번의 조우를 약속하자고 한다.

삼흥리는 산기슭에 위치한 농촌 마을로서 마을 남쪽으로 산이 감싸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연마을은 달우물, 산문이, 존개이 마을등이 있다.
이 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삼문, 흥천, 존강 등 세 마을을 합하고 삼문과 흥천에서 한글자씩 취하여 삼흥리라 하였다.

산문마을은 뫼갈마을로 진강산 북편골에 자리잡은 마을에서 유래된 듯하며 속칭 산문이라고 부르는데 삼문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직전까지 일시 사용하였던 산문의 옛 지명이다.
수차골은 산문 남쪽에 있는 골로 물레방아가 있던 곳이라 하여 수차골이라 부르고 신선우물은 존강과 산문 중간에 있는 우물로 신선이 마셨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월정은 존강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이 마을 한가운데 우물이 있었는데 달이 뜨면 항상 이 우물에 비추었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달우물 또는 다릿말이라고도 하고 존강은 강 즉 시내가 있는 마을로 예전에 조수가 이 마을 앞까지 들락거린데서 유래되었으며 속칭 종개이라고 부른다.

또한 홍천은 삼흥리에서 제일 큰 마을로 예전에 이곳 계암산 중록에 흥천사가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지금까지 자주 들려 산행을 즐겼던 석모도는 강화도 외포항에서 서쪽으로 약 1.5 Km 떨어져 있는 섬으로서 최고봉은 섬의 남쪽에 솟은 해명산(309봉)이며 서쪽과 북쪽에 각각 솟은 상봉산(316봉)과 상주산(264봉) 사이에는 간척평야인 송개평야가 있다.

해안선은 대체로 단조로우며 북동쪽에 암석해안이 있을 뿐 대부분 간석지가 발달했고 특히 남쪽 어유정도 사이의 간석지는 농경지와 염전으로 간척되어 연결되었다.

 

북쪽으로는 방금 전 지마 온 바위 무명봉이 바로 지근거리에 있고 그 넘어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출발한 2번 도로를 건너 우뚝한 혈구산을 중심으로 그 좌측으로 퇴모산 줄기가 선명하다.

2주전 이곳 강화지맥 산줄기에 올랐을 때와 비교하면 자연의 빛이 완전히 초록으로 변해 이제 성하의 계절로 달려가고 있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에 한동안 그 전망바위에서 휴식을 취하며 많은 사진을 남긴 후 다시 천천히 덕정산을 향해 출발을 해 본다.

 

그렇게 전망바위에서 한동안 흐르는 땀방울 닦으며 쉬었다 출발해 잡목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따르니 금새 덕정산 정상이다.

하지만 그 어느곳에도 이곳 덕정산에 대한 자료가 없어 알 수가 없으니 아쉬운 시간이다.

이곳 덕정산은 강화지맥 남북구간을 가르는 아주 중요한 분기점으로서의 역활를 하는 봉우리이지만 그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해병대 사격장으로 인해 이렇게 지맥 산행을 즐기는 산객들이 아니면 오르는 등산객도 없는 민둥의 봉우리가 되어 안타깝기만 하다.

정상에는 두개의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깃대와 그 사이에 해병대 부대장의 사격훈련장 경고판이 서 있다.

이곳에서의 조망 역시 일망무제이기에 잠시 배낭 내려 놓고 휴식의 시간을 가져 본다.

 

먼저 북동쪽으로는 혈구산 우측으로 드넓은 선원면 마을과 비산비야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운데 그 뒤 저 멀리 이북 땅과 김포 쪽 산줄기도 강렬한 아침 햇살속에 아련하게 다가온다.

이곳 선원면은 고려 제 23대 고종 때 강화천도시 권신 최우가 경내에 제일 큰 고장을 세우고 오백불상을 모신 후 사찰명을 선원사라 하였고 병자호란 당시 우국공신이신 선원선생 김상용충신의 위패를 모신 충열사가 본면 선행리에 위치하고 있어 그분의 호를 따서 구한말 고종 7년(1870년) 선원면으로 호칭하였다.

선원면은 강화군 교통의 요충지로서 철종임금이 애용했다는 찬우물 약수터(강화읍에서 전등사 방향 2 Km)가 있으며 신정리 해안가 음식점(장어구이와 바다낚시 및 횟집)은 강화해안순환도로 개설과 함께 관광객 증가로 시민의 휴식처 및 자유공간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서쪽으로 보이는 진강산과 그 사이의 골짜기에 내려다 보이는 군부대 등 시원하게 펼쳐진 사통팔달의 전망과 조망을 즐긴 후 다시 배낭 메고 천천히 민둥의 벌목된 야생화 등로를 따라 출발을 해 본다.

연두빛에서 초록의 변해가는 아름다운 자연의 빛속을 따라 앞서 걸어가는 두명의 산친구의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오며 오랫만에 함께하는 산행의 묘미를 온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걸어가는 산친구들 앞으로 강렬하게 내려 쬐는 아침 햇살이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오늘 이 시간을 고운 추억으로 남겨 본다.

 

두명의 산친구를 앞서 보내고 뒤따라 가며 몇장의 사진을 담다보니 어느새 나즈막한 안부의 헬기장을 지나 또 다른 깃대봉을 향해 완만하게 올라 본다.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 주위 조망을 즐겼던 덕정산 정상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독립된 산으로서 두줄기 강화지맥의 분기봉으로서 중요한 역활도 버리고 그 아래 위치한 군부대 사격장으로 인해 버려진 봉우리가 되어버린 현실이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하다.

저 덕정산 봉우리도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더 올라야 그 마무리가 될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 온 여름의 빛깔에 놀라며 뜨거워지는 햇살을 피해 조금 더 빠르게 진행을 하니 새벽엔 차갑게 다가오던 산바람이 이제 시원한 친구가 되어 버린듯 가깝게 다가온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 진강산 넘어 저 멀리 강화도의 진산인 마니산이 그 봉우리를 내밀며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하는 사이 어느덧 제2깃대봉 정상에 도착을 하지만 깃발은 어디로 사라지고 앙상한 철깃대만 그 정상을 지키고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제2깃대봉을 출발해 본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진강산과 마니산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강화지맥의 산줄기를 조망하며 걸어가는 시간이다.

지나온 덕정산으로 이어진 민둥의 등로가 아름답게 다가오지만 벌써 그 아름다운 등로가 저 멀리 멀어져 간다.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민둥의 등로가 끝이나며 다시 잡목들이 우거진 멋진 초록의 등로가 이어지며 그 초록속으로 들어 가 본다.

나즈막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초록의 빛 속을 걷다보니 관목은 푸르지만 키 큰 거목들은 모두 죽은 형상을 하고 있는 좁은 불난지역을 통과해 본다.

진행하다 보니 넓은 지역은 아니지만 정상부의 짧은 구간에 제법 큰 나무들이 모두 죽어 있는 풍경 밑으로 초록의 관목이 자라는 모습이 새롭게 다가온다.

 

잠시 더 진행해 불난지역을 지나니 키 작은 소나무에는 어김없이 송화가 피어나기 시작하고 그 송화 저 멀리 진강산과 마니산 사이로 푸른 길정저수지가 빤히 내려다 보인다.

그렇게 예쁜 초록의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금새 236.4봉 삼각점을 만나 사진 한장 남기며 쉬어 간다.

제법 쉬는 시간이 있지만 발이 맞고 이야기가 재미있으니 산행 속도는 말도 못하게 무척 빠르다는 생각이다.

오랫만에 두다리에 전해져 오는 뻐근함이 약간은 긴장을 시키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236.4봉을 지나 나즈막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금새 운동시설이 갖춰져 있는 벤취 쉼터가 나타난다.

이곳에서도 잠시 배낭내려 물 한모금 마시며 쉬어가니 쉬어가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난다.

이제 저 멀리 가야 할 길상산쪽까지의 강화지맥 마루금이 두눈에 들어오니 너무 빨리 하산할 것 같은 기우에 의해 점점 발걸음이 느려지는듯한 기분이기도 하다.

그 벤취 숨터 옆에는 덕정산정상과 학생연수원 그리고 불은면사무소 하산 방향의 이정표가 서 있다.

 

벤취 쉼터를 지나 출발하니 등로 우측에 묘지들이 내려다 보이고 계속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따라 소나무 군락지를 걸어 내려가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스마트 폰에서 계속 알람이 울린다.

이제서야 등로가 잘못되였음을 인지하고 트랙을 확인해 보니 우측의 등로를 한참 벗어나 좌측의 등로를 따라 내려가고 있다.

스마트 폰의 위력을 실감하며 다시 뒤로 돌아 올라와 묘지를 좌측에 두고 우측의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내려가며 정상 등로로 복귀한다.

그 묘지 위에 올라 잠시 등로 우측의 마니산 전경을 담아보니 옛 추억이 떠오르며 많은 산우들의 얼굴을 기억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광산김공의 묘지를 좌측에 두고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 또 다른 임도가 갈리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해 아무 생각없이 좌측 비포장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내려가자 마자 곧바로 다시 스마트폰 알람이 울리고 뒤돌아 올라 와 직진의 좌측 임도를 따라 전진해 본다.

이제 넓은 임도 좌우측으로 제법 많은 묘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임도에서 우측 뒤를 올려다 보니 덕정산 정상부의 민둥 봉우리가 아름답게 다가온다.

다만 산허리를 잘라 포장된 도로를 만든 산판도로가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역사의 아품을 간직한 곳이기에 어쩔 수 없는 현실도 있을 것이란 이해로 돌려 본다.

 

그곳 임도에서 이제 임도를 버리고 좌측 묘지지대로 올라 묘지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 본다.

내려가다 보니 등로에는 길게 수많은 묘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미니 공동묘지를 연상케 한다.

그 묘지지대 지나 저 멀리 우측에 길정저수지를 두고 좌측의 비산비야를 따라 이어져 가는 강화지맥의 아름다운 마루금이 한눈에 보이고 그 우측 끝자락에 오늘 올라야 할 마지막 봉우리인 길상산도 높게 올려다 보인다.

 

이제 묘지지대를 등로 좌측에 두고 내려가니 금새 드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앞에는 군부대 콘크리트 벽 위에 원형 철조망이 올려진 군부대에 도착을 한다.

원 강화지맥 등로는 저 군부대 담벼락을 통과해 군부대 내부를 통해 진행해야 하지만 통과 할 수 없기에 군부대를 좌측에 두고 우측의 넓은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강화나들길 안내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려가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진행하니 다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며 등로는 논둑을 통해 이어지게 되어 있다.

잠시 더 내려가니 민가와 밭 그리고 논들이 가로막아 진행이 쉽지 않고 그 지점을 우측 마을 도로를 따라 크게 우회하려다 다시 한번 첫번째 만나는 민가로 내려가 좌측 비닐하우스를 통해 좌측 능선쪽으로 붙어 진행하니 밭을 지나 능선 우측 아랫부분에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 있어 그 임도를 따라 지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어렵게 밭 고랑 사이를 타고 전진해 능선쪽으로 붙으니 능선 정상부쪽으로는 아직도 군부대 철망이 가로막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그 앞에 나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진행을 해 본다.

임도 우측으로는 밭과 논이 산재해 있고 좌측으로는 완만한 오르막 넘어 군부대 철망이 따라오는 형국이다.

등로는 아쉽지만 그 임도를 따라 걸어가는 시간만큼은 참으로 여유롭고 아름다운 초록의 세상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넓은 임도를 따라 한동안 내려가니 1번 2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좌측에는 높은 군부대 담벼락이 올려다 보이는데 자료를 보니 이곳이 강화군예비군훈련장 정문이 있는 담이다.

원래 이 산객이 준비한 자료에는 군부대를 우측에 두고 좌측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오늘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군부대를 좌측에 두고 우측 농로를 통해 진행을 한 것이다.

 

1번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나주막한 능선으로 들었다 금새 다시 밭 가장자리로 나오니 앞으로 보였던 이동통신사 철탑은 좌측 뒤로 멀어져 있다.

이제 난해한 밭 고랑을 타고 농작물을 조심하며 걸어 진행을 하니 민가 옆 임도로 떨어지는데 민가의 강아지 몇마리가 크게 울부짖고 있고 저 멀리 잘 정리된 밭에는 많은 주민들이 모여 고추와 고구마를 심고 있어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다.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좌측으로 고구마 심은 밭과 축사 건물들이 보이는데 앞에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 임도를 버리고 우측 임도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계속 이어가 본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임도 우측으로 길정저수지가 가깝게 자리하고 그 저수지로 통하는 갈림 임도들도 자주 나타난다.

넓은 임도를 따라 직진으로 계속 진행을 하니 좌측에서 올라 와 우측으로 휘어지며 진행되는 포장도로와 만나는 삼거리에서 우측 나즈막한 봉우리가 보이는 쪽으로 거어 진행을 한다.

포장도로 좌측으로는 비닐을 덮은 고구마 심은 밭이 펼쳐져 있고 그 생명의 밭을 바라보며 걸어 본다.

머리에 솟아지는 햇살이 아침인데도 벌써 뜨겁다는 생각으로 진행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갈림 삼거리에는 쪽빛구리라는 펜션 간판이 서 있어 이색적이란 느낌을 받았다.

잠시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포장도로는 비포장 도로로 바뀌고 고갯마루로 오르니 좌측 능선 방향으로 또 다른 비포장 임도가 나 있다.

그 좌측 능선 임도를 따라 진행하니 공설(공원)묘지 지역을 알리는 강화군수의 안내판이 보이고 몇기의 천주교 묘지들이 산재한 지역을 좌측에 두고 오른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갑자기 봉우리 한가운데에 소삼각점이 보이고 그 앞에 71봉이란 정상 이정표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잠시 쉬면서 물한모금 마신 후 출발을 한다.

 

다시 71봉을 지나 희미해진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최근에 새로 조성된듯한 묘지를 통과한다.

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우측에는 호수와정원이라는 펜션같은 건물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과수원이 보인다.

그 사이 비포장임도를 통해 다시 앞에 보이는 능선으로 들어 완만하게 오르니 정상을 지나 많은 묘지들이 나타난다.

이곳 정상부의 시원한 그늘 아래 작은 자리를 펴 준비한 탁배기 한잔으로 목마름을 달래고 잠시 담소를 나눠 본다.

 

혼자 오르며 맛보지 못했던 여유를 느끼며 탁배기 한병을 비운 후 흐르는 땀까지 식힌 후 다시 배낭 메고 묘지를 통해 넓은 임도를 따라 전진하니 포장도로와 만나는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마침 강화군내버스가 이곳 포장도로를 통해 달리고 있다.

포장도로를 만나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는 밀밭이 펼쳐져 있고 그 정상부쪽에 전원주택처럼 생긴 아름다운 민가들이 부러움을 자아낸다.

도로 우측으로는 길정저수지가 가깝게 보이는 조망을 즐기며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콘테이너를 이용해 만든 다양한 모양의 펜션건물들이 눈길을 잡는다.

 

그곳 펜션지대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는 황톳빛 밭이 잘 정리되어 있고 조만간 농부가 새로운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씨를 뿌릴 그림을 그려 본다.

그 황톳빛 밭 넘어 저 멀리 전원주택처럼 민가 하나가 보이고 그 민가 뒷쪽으로 나무로 만든 군벙커가 있는 무명봉이 나즈막하지만 당당하게 맥 봉우리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삼거리 우측의 길정저수지 방향으로는 강화나들길제3코스안내도와 펜션 홍보용 간판들이 세워져 있고 그 간판 뒤로는 길정저수지 지나 오늘 이 산객들이 걸어 진행해온 강화지맥 제2구간이 길게 펼쳐져 있다.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오는 풍경이다.

이제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좌측의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올라야 할 무명봉이 우뚝하고 조망을 즐기며 진행하다 보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는 우측 민가와 인삼밭이 보이는 방향의 우측 포장도로가 지맥길이다.

그 입구에는 들꽃피는언덕펜션이라는 간판이 서 있어 그곳에서 인삼밭과 민가 방향의 우측 도로를 따르면 된다.

인삼밭 방향으로 오르며 앞을 보니 민가와 인삼밭 사이로 능선을 올라 무명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가깝게 다가온다.

 

민가있는 방향으로 계속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농부 한분이 인삼밭에 들어가 물을 주는지 경운기를 이용해 일을 하고 있어 괜시리 미안한 마음으로 조용히 통과한다.

인삼밭과 민가 사이를 통해 능선방향으로 가니 썩어가는 나무 판자를 통해 능선으로 들고 잠시 오르니 애완견과의 슬픈 추억을 담은 안타까운 지역을 지나 녹슨 철조망을 좌측으로 우회해 통과한 후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통해 완만하게 무명봉으로 오른다.

무명봉에 오르니 아무 표식도 없는 정상에는 특이하게도 나무를 이용해 만들어진 군부대 벙커가 눈길을 끈다.

 

무명봉의 나무 벙커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군락지를 통해 내려가니 정족산 지나 길상산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강화지맥 마루금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잠시 더 내려가니 등로 주위엔 분홍빛 노끈들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매여져 있는데 사유지의 개인이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끈처럼 보이지만 너무나 허술해 그 효과가 전혀 없어 보인다.

 

계속 내려가니 집수리종합공사란 작은 간판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곳을 지나 연립주택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서 있는 포장도로로 내려가 그 정문을 통해 17번 2차선 포장도로쪽으로 내려가 본다.

붉은 철쭉이 건물 출입구 양쪽에 탐스럽게 피어 있고 잠시 사진 한장 남기고 내려가 만나는 17번 2차선 포장도로에서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한동안 오르며 고갯마루로 걸어가 본다.

도로 좌측 저 멀리 드높은 새빛교회 십자가가 멀리에서도 눈길을 잡는다.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 오르니 생각보다 많은 차량 통행에 놀라지만 역시 연휴가 시작되니 많은 수도권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강화도를 찾은것은 아닌지 생각을 해 보니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닌듯 싶다.

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좌측에 새빛교회와 요셉의집 간판이 보이고 계속 고갯마루로 오르니 도로 좌측에 중고유통상가 입간판과 건물들이 보이고 그 뒤로는 강남중학교 방향 안내 간판도 보인다.

고갯마루 정상으로 도로를 따라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강남중고등학교버스정류장이 보이고 그 옆에 돌계단을 통해 강남영상미디어고등학교로 올라 직진하면 우측에 꿈채움관 건물을 두고 진행해 건물 뒷쪽의 절개지를 통해 능선으로 오르며 이어가 본다.

 

능선으로 오르니 벌목된 장소가 나타나고 그 간벌로 벌목된 곳을 통해 오르다 뒤돌아 보니 강남영상미디어고등학교 건물이 내려다 보인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간벌된 등로를 따라 오르니 이제 정족산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시원하게 조망되는데 능선 장상부에서 갑자기 등로가 끝나며 절개지가 펼쳐져 있어 우측 능선을 통해 우회하며 통과해 본다.

절개지를 우회하며 올라야 할 정족산 방향을 다시 한번 올려다 본다.

 

절개지를 좌측에 두고 우측 숲으로 들어 진행을 하니 너무나 아름다운 숲과 등로 풍경에 마음의 평온함까지 느껴 본다.

이제 완연하게 성하를 향해 달려가는 초록의 숲이 도시 생활에 찌들어 버린 가슴을 매만지며 힐링을 시켜 주는듯 평온한 마음으로 걸어 본다.

그렇게 한동안 제일 후미에서 걷다 보니 앞서 진행하는 산친구들도 이 산객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걸으면서도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온 몸으로 느끼며 걷고 있는듯 보인다.

 

그렇게 환상적인 등로를 타고 나즈막한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에 묘지 몇기가 보이는데 가족들이 모여 산소를 손보고 있다.

더욱 조심하며 내려가 그 묘지 앞을 통해 조금 더 내려가니 곧바로 18번 2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도로를 따라 우측의 고갯마루로 오르는데 도로 옆 가로등에도 강화도의 지석묘 모양이 보여 잠시 웃음을 지어 본다.

도로 좌측으로는 이제 올라야 할 정족산이 아주 가깝게 두손안에 들어 와 있다.

 

 

고갯마루로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전봇대가 서 있는 곳 옆으로 비포장 임도가 보이고 그곳을 통해 들어가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난다.

이제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임도 우측으로는 벌목된 민둥의 산이 나타난다.

그런데 임도 좌측을 살펴보니 그곳은 여능이라는 농장으로 들어가는 임도처럼 보였다.

잠시 더 오르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등로는 좌측인데 우측에 키 큰 은행나무 한그루가 서 있어 그곳에서 잠시 쉬며 간식을 먹고 출발하기로 한다.

 

은행나무 앞에서 쉬고 있는데 등 뒤에는 거대한 철 물통이 자리하고 있다.

한동안 쉬며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다시 나와 이제 비닐을 덮은 밭을 우측에 두고 삼거리에서 우측 등로를 통해 정족산 방향으로 오른다.

원 등로는 밭 우측의 희미한 능선을 통해 올라야만 될 것 같은데 조금은 편안하게 넓은 임도를 따라 오르니 다시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시끄럽게 울리고 우측으로 이동해 묘지 2기가 있는곳에서 능선으로 치고 오르니 다시 정상적인 지맥 등로를 만나 진행하게 된다.

그 능선으로 오르기 직전 묘지 위에서 뒤돌아 보니 지나온 마루금이 펼쳐져 있고 저 멀리 덕정산과 진강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능선으로 오르니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한 밤나무 밭이 나타나고 그 밤나무 단지를 통해 오르니 점점 가파른 된비알 오르막 등로가 이어진다.

제법 가파른 등로를 따라 한동안 오르니 굵은 땀방울이 온몸을 타고 흐르고 주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좌측으로 진행되는데 제법 큰 암릉길이 열려 있다.

그렇게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답답해져 올쯤 드디어 정족산 정상에 도착해 긴 한숨을 토해내며 시원하게 펼쳐진 주위 조망을 즐겨본다.

정족산은 산의 생김새가 마치 세 발 달린 가마솥과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산으로 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강화도에서 가장 큰 사찰인 전등사와 정족산성 등 많은 유물이 남아 있다.

특히 정족산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터가 남아 있어 유적답사 및 가족산행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산행은 주로 전등사에서 시작된다.
전등사의 요사채 뒤로 난 길을 곧바로 올라가면 정상에 닿을 수 있는데 정상에서는 나무에 둘러싸인 전등사의 고풍스러운 모습과 마니산과 서해바다의 모습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다.

 

먼저 북쪽의 제법 넓은 성터 위 공터에서 바라 본 지나온 강화지맥 마루금이 시원하다.

저 멀리 좌측의 진강산을 필두로 우측에는 덕정산이 우뚝하고 그 덕정산에서 부터는 비산비야를 타고 길정저수지 우측 능선을 따라 걸어 왔다.

비산비야 지대를 지나면 황톳빛 밭이 아련하고 이제부터 제법 굵게 이어지는 산줄기를 타고 이곳 정족산까지의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 온다.

 

마루금 우측 북동쪽으로는 불은면과 선원면으로 이어진 나즈막한 마을들과 들판들이 평온하게 다가온다.

불은면은 고려시대 불교가 융성 고릉리에 자은사가 위치하고 있어 이 절의 이름에서 은자를 따서 부처님의 은혜라는 뜻의 불은면이라 칭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 인정면과 불은면을 병합하여 불은면이라 칭하고 면사무소를 고능리에 두었다가 1945년 11월 면사무소를 현재의 장소인 두운리 252번지로 이전하였다.

이곳 불은면에는 광성보와 덕진진이 있으며 몽골이 침입하였을 때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강화전성이 있다.

 

등로 우측인 서쪽으로는 강화도의 진산인 마이산이 우뚝하다.

마니산(현지에서는 마니산이라 하지 않고 마리산이라 부르는데 마리산은 원래 머리를 뜻하는 마리산의 한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산이다.

강화도는 한강하구에 위치하여 고려조는 물론 조선조에서도 국토의 핵심인 중부지역을 옹위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중요한 섬으로 지도를 보면 강화도의 위치는 강화도가 없었더라면 해외로부터의 한강하구에의 접근은 훨씬 쉬어져 그로 인한 역사변경의 가능성도 추론해볼 수 있는 위치임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눈을 끄는 것은 초지진 남쪽에서 북쪽끝의 서장곡돈대에 이르는 약 18킬로미터의 운하와 같은 해협인데 이 해협은 양요때 미국의 군함들이 치고 올라오며 통과했던 바로 그 해협이다.

이곳 강화도 해안을 따라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오두돈대, 용골돈대, 용진돈대, 더러미돈대, 갈곶돈대 당산돈대, 서장곡돈대등이 집중적으로 들어서 있는 것은 다 그 때문으로 장마철 뒤끝에는 한강물이 넘어와 황토물처럼 붉다.
그러나 1871년 미국함대가 저 수로를 따라 거슬러 올라왔을 때도 물빛은 보통빛이 아니었을 것인데 미군은 5척의 군함으로 해협으로 다가서며 남동쪽으로 보이는 저 좁은 수로를 측량하려고 광성보앞으로 척후대를 보냈다.

이때 광성보에서 일제사격을 가하는데 미국은 본대를 이끌고 응전하는 한편 초지진과 광성보 2킬로쯤 아래쪽에 있는 덕진진을 점령한다.

이들은 광성보를 본격공격하고 우리도 반격,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역사는 이틀간의 공방전 끝에 천하의 미국이 격퇴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그 당시의 우리군이 경험했던 환희는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하며 단지 그 환희는 오래 가지 못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제 다시 앞으로 돌아 와 이정표와 삼각점을 사진에 담은 후 앞으로 올라야 할 강화지맥 마지막 제2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길상산을 올려다 보니 참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바로 아래에 삼랑성 서문이 움푹 패인 안부에 보이고 그곳을 넘어 성곽따라 남문으로 오르ㅜ는 등로가 보이고 우측으로 내려갔다 솟구쳐 오르는 실상산이 우뚝 솟아 어서오라 손짓을 하고 있는듯 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조망과 전망을 구경한 후 다시 천천히 정족산을 출발해 본다.

 

성곽을 타고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높은 성곽이 나타나고 좌측으로는 우거진 녹음이 짙어지고 있다.

한동안 천천히 내려가 안부를 지나 등로 우측의 성곽 위에서 지나 온 정족산을 바라보니 바로 앞에는 벌목된 지역이 나타나고 그 뒤 위로 연두빛이 아름다운 정족산 자락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 모습과 빛이 너무나 아름다워 발길을 옮기지 못하고 잠시 더 머물며 봄의 빛을 음미해 본다.

 

다시 성곽을 따라 진행하니 급격하게 꺽인 성곽을 따라 안부로 내려가는데 등로 좌측으로 성문이 내려다 보인다.

그곳으로 내려가 보니 이정표가 두개 서 있는데 삼랑성 정상에서 남문으로 진행중인데 좌측으로는 그 유명한 전등사가 있다는 이정표이다.

등로 우측으로는 선두리 하산 방향 이정표가 서 있다.

삼랑성 또는 정족산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연대 미상의 둘레 약 1 Km 산성으로 사적 제130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성의 축조 연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다만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로 그 이름을 삼랑산성 혹은 정족산성이라고도 한다.

성곽의 축성 구조를 보면 잡석으로 축조되어 삼국시대 석성구조를 보여 주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보수 조선시대에 중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문은 네 곳에 있으며 문루는 남문에만 있어서 종해루라 하였고 조선왕조실록이 소장된 마니산의 사고가 옮겨와 보존되었다. 

성내에는 유명한 전등사가 있으며 동문쪽에는 병인양요 당시에 프랑스군에 승리한 기념비로서 양헌수 승전비가 서 있다.

이곳에서 잠시 시간을 내 좌측의 전등사를 구경하고 진행하기로 한다.

 

좌측 전등사 방향으로 내려가니 석가탄신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거대한 느티나무 한그루를 지나 정족산 가궐지 안내판을 읽은 후 전등사를 천천히 구경해 본다.

전등사의 나이는 약 천육백살로서 고구려 소수림왕때 세워진 것으로 여겨지는 고찰인데 불교 3대 본산의 하나로 꼽히며 강화도가 역사의 왜침이 심했던데 비해서 비교적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편이다.
대웅전과 역사전을 비롯해서 철제범종을 찾아볼 만한데 1621년에 건립한 대중전(보물 제178호)의 조각과 단청은 매우 아름다우며 특히 대웅보전 지붕 네 귀퉁이의 추녀를 떠받치고 있는 벌거벗은 여인상은 보는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그 벌거벗은 여인상은 이 대웅전을 지을때 참여했던 한 목수가 아래녘에 사는 주막의 주모와 정을 통했는데 공사가 거의 완공될 무렵에 주모는 그동안 목수가 맡겨놓은 돈을 몽땅 가지고 달아나 버려 분한 마음에 목수는 여자는 요물이니 한평생을 추녀를 떠받치고 살면서 불경 소리를 듣고 뉘우치라는 뜻에서 그 나체 여인상을 조각해 넣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밖에 절안에는 약사전(보물 제179호) 등의 조선중기 건물을 비롯해서 명부전, 삼성각, 정묵당, 향로전 대조루, 극락암 등과 함께 절 내부에 여기저기 걸려있는 많은 탱화를 볼 수 있다.
대웅전 맞은 편에 있는 범종(보물 제393호)은 높이가 164 Cm, 밑지름이 100 Cm의 중국 송나라종으로 우리나라 종은 용이 한 마리가 그려져 있지만 중국종은 두 마리가 그려져 있어 구분을 쉽게 할 수 있다.

종에 새겨진 글씨에 따르면 이 종은 북송 철종 소성4년(1097년)에 제작된 것으로 중국 하남성 백암산 숭명사의 종이었다고 하나 왜 이곳으로 옮겨져 왔는지는 알수 없다.
종 표면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무늬는 중국종의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하며 종소리도 맑고 아름운데 일제시대 금속류 강제수탈로 빼앗겼다가 해방 뒤 부평에 있는 군기창에서 다시 찾아온 기구한 운명을 간직하고 있다.

 

정족산 가궐지는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받아 강화로 도읍을 옮겼을 때인 1259년에 세워진 궁궐터이다.

당시 고려 조정에서는 부처님의 가피(부처나 보살이 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이롭게 함)로 왕실의 안녕을 꾀하고 나아가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임금의 임시 거주처를 마련하게 했다.

그래서 전등사 경내에 고려의 가궐을 세우고 한때는 임금이 머물기도 했다. 하지만 39년의 항쟁 끝에 고려 조정은 다시 개경으로 환도를 했고 강화도에 남았던 고려의 문화유산은 몽골군에게 마구 불태워지거나 훼손되고 말았다.

전등사 적묵당 옆 산기슭에 있던 가궐도 이때 폐허를 면치 못했다.

풍문으로만 남았던 고려 가궐지가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00년의 일이었다.

동양고고학연구소 소장이며 선문대학교 교수인 이형구 박사팀이 고려 가궐지를 발굴하여 건물지를 실측하고 수많은 문화재를 수습하여 학계에 보고한 결과 전등사 경내의 고려 가궐지가 공식 확인된 것이다.

울창한 숲 속에 터 잡은 널찍한 공터가 고려 시대의 풍상을 느끼게 한다.

 

수많은 전등들이 전등사 대웅전 앞에 달려있고 많은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올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풍경을 사진에 담고 다시 전등사를 빠져 나와 강화지맥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다시 강화지맥 마루금으로 복귀해 정족산성 일명 삼랑성 서역을 따라 된비알을 타고 남문으로 향한다.

정족산성 또는 삼랑성은 이 산객도 처음 알게된 성으로서 여러번 강화도에 들어 와 많은 유적지 및 전투지를 돌아 다녔는데 이곳 삼랑성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의아해질 정도인다.

잠시 이마에 굵은 땀방울 흘리며 남문으로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정족산 정상에서 이곳 남문으로 이어진 마루금과 그 정족산을 초록으로 감싸는듯한 봄 빛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온다.

 

정족산성 즉 삼랑성 남문으로 가는 길목 봉우리에 올라 주위 풍경을 살펴본다.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보이고 그곳으로 가 살펴보니 방금 전 다녀 온 전등사가 바위 우측 아래에 환히 내려다 보인다.

조용한 산사를 감싸고 초록으로 변해가는 봄빛이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아무 생각없이 남문 방향의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며 약간의 알바를 한 후 다시 정상 봉우리로 올라 와 이제 진행 방향의 우측 능선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최근에 삼랑성을 복원하며 쌓아 올린 성의 높이가 높아 한동안 시간을 지체하며 내려 갈 곳을 찾아 헤맨다.

 

아무 생각없이 남쪽의 남문 방향으로 급경사 내리막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담아 본 길상면 온수리와 장흥리 그리고 그 넘어 강화만과 김포쪽을 조망해 본다.

길상면의 면소재지는 온수리로서 서쪽에 정족산(220봉)과 길상산(336봉)이 솟아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구릉지이며 남동부 일대는 바다에 면하며 부속 도서로 동검도와 황산도가 있다.

초지리와 선두리 일대는 간척사업으로 농경지가 조성되었으며 장흥저수지가 관개용수원이며 주곡 외에 배추와 감이 생산되고 연안에서 뱀장어와 농어 및 숭어 등이 잡힌다.

정족산성·전등사 등의 유적이 있으며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온수, 선두, 동검, 초지, 장흥 및 길직리 등 6개 동리가 있다.

그 아름다운 풍경에 취했는지 저 아래 소나무 한그루 밑까지 내려갔다 헛힘만 쓰고 다시 어렵게 봉우리로 복귀한 것이다.

 

다시 봉우리 정상으로 올라 와 지도와 스마트 폰의 트랙을 확인하고 이제부터 내려갔다 올라야 할 오늘 강호ㅓ지맥 제2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길상산을 올려다 본다.

바로 아래 보릿고개엔 로얄유스호스텔이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 절개지엔 공사중인 마루금이 내려다 보인다.

그 뒤로 우뚝 솟아 있는 길상산이 어서오라 손짓하지만 그곳으로 오르기 전 이곳 삼랑성 봉우리에서 어떻게 성을 내려가 등로도 없는 산길을 찾아 저 보릿고개로 내려갈 수 있느냐가 관건인 시간이기도 하다.

 

남문으로 내려가다 스마트 폰의 트랙이 잘못 진행하고 있음을 알려 주기에 다시 봉우리로 뒤돌아 올라 와 이제 진행 방향의 우측 아래로 내려가는 등로를 찾아 보지만 최근에 삼랑성을 다시 복원하는지 너무나 잘 정비하고 다시 쌓았기에 내려가기가 만만치 않다.

다시 전등사 방향의 내리막으로 약간 내려간 좌측으로 조금 나즈막한 성곽을 따라 조심하며 내려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잘못 진행한다는 신호가 들리고 성곽으로 다시 올라 와 남문 방향으로 어렵게 걸어 가 두번째 정상 마루금을 타고 간벌된 희미한 등로를 따라 내려가며 진행을 해 본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등로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그저 정확한 방향만 잡고 좌측으로 비스듬하게 사면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정상 마루금을 만나 편안하게 내려간다.

조금 더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부터는 차량들이 통행하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이제 보릿고개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는 시간이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무명봉을 넘으니 등로가 희미해지고 우측 잡목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건물을 목표로 내려가니 멋진 가옥 하나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개인 민가는 아닌듯 싶지만 어떤 용도인지도 알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건물 마당으로 내려 와 정문을 통해 13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보릿고개에 도착을 하니 도로 건너편에 강화로얄유스호스텔 정문이 보이고 그 호텔 좌측으로 시골보리밥이란 식당도 보인다.

식사 준비를 안했으면 이곳에서 식사 후 출발해도 좋겠지만 오늘은 점심 대신 먹거리를 많이도 준비를 했기에 도로 건너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강화로얄유스호스텔 정문에서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조금 더 내려가니 로얄호텔이란 버스정류장 표시가 있고 그곳을 지나 내려가다 뒤돌아 보니 저 멀리 갈림 삼거리 도로 위 표시판에 좌측으로는 군청과 화도 및 전등사로 가는 방향이고 우측으로는 초지대교를 지나 김포와 서울로 향하는 방향 도로 표시판이 눈에 들어 온다.

내려가니 전봇대가 있는 곳 좌측으로 공사가 한창이고 조금만 지나면 이곳도 전혀 다른 마루금이 되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다.

공사중인 시멘트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올라가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어렵게 내려온 삼랑성 봉우리와 그 아래 천토흙삼제조창이란 주황색 건물이 인상적이다.

 

공사중인 시멘트 도로를 따라 위 능선 방향으로 올라 짧은 절개지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강렬한 햇살에서 느꼈던 더위가 사라지며 약간은 허기를 느낀다.

잠시 관목 터널의 그늘을 타고 오르막 오르니 바위 몇개가 산재해 있는 공터 쉼터가 나타나기에 그곳에 앉아 간단히 남아 있는 탁배기 한병에 준비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며 이야기 꽃을 피워 본다.

홀로 오르면서 맛보지 못하는 멋진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활엽수가 아름다운 오르막 등로를 따라 힘차게 올라 본다.

 

마음 맞고 발까지 맞는 친구들과 함께 호젓하게 즐기는 강화지맥 산행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이다.

온몸에 남아 있는 노폐물을 모두 제거하듯 쉼없이 꾸준한 발걸음으로 된비알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주능선에 오르고 그곳에서 좌측 등로를 따라 걸음을 재촉하니 첫번째 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하는데 이름도 생소한 해발 152미터의 길마재봉이란 정상 코팅지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붙여 놓은 산객이 정확한 자료를 보고 정상 이정표를 종이 코팅지로 남들어 걸어 놨겠지만 보다 정확한 고증은 반드시 거쳐야만 앞으로 야기될 다양한 형태의 혼선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길마재봉이란 넓은 헬기장을 지나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활엽수림이 우거진 그늘 터널을 통해 산행의 재미를 느끼는 시간이다.

조금 더 진행을 하니 갑자기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우측으로 온수리까지 0.6 Km 그리고 정상까지는 1.5 Km가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표시가 있는 이정표이다.

그 이후 몇개의 나즈막한 봉우리와 안부를 교대로 통과하며 전진하니 어느새 등로가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로 변하는데 그곳에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진행에 어려울 정도는 아니지만 좌측이 가파른 급경사지이기에 안전을 위해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듯 보였다.

 

어렵게 그 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을 오르니 바위봉이 나타나지만 나무들이 가려 조망은 전혀 없다.

바위와 그 옆에서 자라는 소나무 한그루를 사진에 담고 다시 진행을 하니 금새 두번째 헬기장 정상에 도착을 한다.

이곳 또한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 주위를 모두 둘러보지만 다른 특별한 종이 코팅지나 정상을 알리는 표식은 하나도 없다.

 

두번째 헬기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아무리 바빠도 잠시 들려 주위 조망을 즐긴 후 출발하기로 한다.

바위로 오르니 덕포리 들판을 넘어 강화의 진산인 마니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강화도 화도면 덕포리는 1706년(숙종 32) 선두포 뚝을 막기 전에는 배가 드나 들던 포구마을로 왕래자가 많아 손님들을 상대로 맛이 좋고 값도 싼 떡을 팔아 떡장사들이 부자가 되었다고 하며 떡장사가 많은 포구라 떡포리라 칭하다가 덕포리로 부른다고 한다.

마니산으로 오르는 우측 앞에는 초피산이 보이는데 이 산은 덕포리 뒤편에 있는 산으로 산 모양이 붓 끝과 같이 뾰죽하다고 하여 초피산이라 부르며 문필봉이라고도 한다.

저 마니산은 많이도 올랐고 또 자료에 대한 내용은 앞에 언급을 했기에 이곳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마니산을 조망한 후 내려가기 전 이제부터 올라야 할 길상산과 그곳으로 이어진 마루금을 담아 본다.

몇 주 사이에 완전히 뒤바뀐 산하의 빛깔에 이 산객도 적잖히 놀랬던 하루였다.

송화가 날리기 시작하고 온 산하를 뒤덮은 초록이 그 어느곳에서도 보지 못할 환상의 풍경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보이기에는 완만하게 보이지만 그곳까지 오르려면 또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려야 하는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전망바위를 내려 와 주 등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겨 본다.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걷다보니 바위들도 간간히 보이기 시작하고 이제 온수리까지 1.4 Km 남아 있고 정상까지는 0.7 Km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정표를 지나니 다시 바위 암릉이 짤게 펼쳐지고 등로 우측으로는 강화만과 영정도 그리고 장봉도와 신시모도가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다시 나무 그늘을 타고 평이하게 걸어가니 갑자기 세번째 잡풀이 무성했던 헬기장을 만나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세번째 헬기장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활엽수 그늘 터널이 형성되어 있어 마음 편안하게 즐기며 걸어 갈 수 있는 마루금이 열려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등로를 따라 무심으로 걷다보니 갑자기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더니 길상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정상목과 삼각점 그리고 그 옆에는 돌탑이 보이고 앞쪽 남쪽으로는 나무 전망데크도 설치되어 있다.

길상산은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에 위치한 산으로 강도지에 부의 남쪽 30리에 있고 둘레가 30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강화부 남쪽 30리에 있으며 주위가 13리이고 목장이 있다고 되어 있다.

강화부지에도 목장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여지도서와 대동지지 및 조선지지자료에 지명이 기입되어 있는데 예로부터 왕에게 진상했다고 하는 일명 사자족애라고 부르는 약쑥이 많이 났다고하여 유명한 곳으로 길상산 동사면 장흥리에는 지금도 쑥밭다리라 부르는 자연마을이 남아있다.

1706년(숙종32) 길상면 선두리와 화도면 사기리 사이의 갯골 약 1 Km를 막아서 선두포 둑을 쌓아 이 일대 농경지를 개간했다고 전한다.

정상에는 이곳이 고향의 아주머니 몇분과 남자 한명이 함께 올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길상산 정상에서 사진을 담으며 시간을 보낸 후 주위 조망을 살펴 본다.

먼저 남쪽으로 살펴보니 강화만 넘어 좌측과 뒷쪽으로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가 있고 우측으로 신도와 시도 그리고 모도가 가깝게 보이며 우측으로 길게 보이는 장봉도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산행 할 땐 장봉도가 저렇게 길게 보일 수 있음을 알지 못하였는데 산행 후 지도를 살펴 보니 우측 길게 보이는 섬이 분면 장봉도가 맞다.

 

그렇게 동네 주민들과 이야기 나누며 한동안 길상산 정상에서 쉰 후 이제 이정표에서 장흥리 2.8 Km 방향의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설치된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내려가 본다.

이곳 길상산 정상에서도 우측인 동쪽으로는 남동 방향과 북동 방향의 두 갈래 등로가 있는데 북동 방향의 안전목책을 따라 내려가야 할 길주의 장소이기도 하다.

잠시 더 내려가니 이제 정상에서 0.2 Km 내려왔고 장흥리까지 2.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는데 잠시 올라가 보니 강화도 길상면과 서해바다 그리고 그 넘어 김포시가 아스라히 내려다 보인다.

그늘로 덮혀있는 멋진 초록의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약수터가는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약수터 방향을 무시하고 직진으로 걸어 진행을 이어가 본다.

 

활엽수에서 소나무 군락지로 변하는 등로를 따라 걷다보니 소나무 아래에는 관목이 자라며 더욱 푸르른 성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 준다.

계속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잡풀이 무성했던 폐헬기장이라 생각되는 공터를 지나 소나무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는 무명봉을 넘는다.

지나 온 길상산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음을 사진에 담고 전진하니 묘지들이 있는 좌측 등로를 타고 진행되고 곧이어 넓은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하니 다시 임도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는 우측 임도를 따른다.

임도를 따라 계속 진행하니 묘지 하나가 나타나고 곧이어 나타나는 갈림 삼거리에서는 우측 임도가 지맥 등로이다.

다시 뚜렷한 임도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트랙에서 신호음이 들리고 살펴보니 등로는 이곳에서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 숲속의 희미한 등로를 찾아 내려가며 진행을 해야 할 길주의 구간이다.

 

우측 희미한 등로를 찾아 선답자들의 띠지를 확인한 후 내려가니 희미하지만 등로는 너무나 환상으로 펼쳐져 있다.

초록의 활엽수림과 소나무 군락지를 번갈아 타며 진행을 하니 갑자기 5미터쯤 되어 보이는 넓이의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그 벌목지대를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가길 두어번 더 한다.

그렇게 진행을 하니 가시넝쿨이 무성했을 가시와 아카시아 묘목 지대를 지나 다시 호젓한 산행을 즐겨 본다.

 

안부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관목의 아카시아 지대를 지나니 다시 활엽수림이 등로를 가득 채우고 기분 좋은 산행을 이어가고 있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올라 봉우리를 넘으니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 아름다운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 본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우측으로 사각정자가 나타나는데 전망과 조망이 전혀 없는 이곳에 왜 이런 설치물이 필요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잠시 사각정자에 올랐다 금방 내려 와 가던 지맥 등로를 따라 걸어 본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서해바다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와 있고 저 멀리 영종도도 더욱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다시 소나무 군락지를 따르니 등로는 넓은 벌목 임도를 만나 진행되고 그 소나무 군락지가 끝나니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등로 양쪽에 녹음이 짙어가는 활엽수림이 자라며 너무나 환상의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그 활엽수림을 통해 마음과 몸의 힐링을 시켜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무명봉을 넘자 다시 환상의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산친구들을 세워 놓고 몇장의 사진을 남겨 본다.

그곳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등로가 희미해지며 자기 멋대로 자라나고 있는 빽빽한 소나무를 따라 이리저리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강화지맥 마지막 민가를 향해 내려가 본다.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가파른 경사면을 내려오니 등로 좌측으로 비닐하우스와 전원주택처럼 예쁘게 지어 놓은 민가들이 눈에 들어 온다.

아래로 내려가니 민가 앞마당으로 내려가고 견공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그 민가 정문을 통해 동검도가 보이는 2차선 포장도로에 내려 선다.

이제 그 2차선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진행하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왔던 강화지맥 제2구간의 마지막 능선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도로를 따라 100여미터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택리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드디어 무탈핫게 강화지맥 제2구간도 마무리함으로서 공식적인 강화지맥도 끝이 나지만 이곳 강화의 진산인 마니산과 진강산을 올라보고 싶어 다시 한번 더 들릴 것 같다는 생각이다.

택리나루터를 바라보지만 나루터로 대접하기도 민망할 정도로서 그저 이곳 주민들이 가끔 이용할 정도의 수준인듯 하다.

 

잠시 배낭 정리한 후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택리 끝자락의 수준점을 담아 본다.

바로 서해바다 건너편에는 동검도가 보이는데 그 동검도로 건너가는 도로도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썰밀 시기이기에 물이 빠져 그대로 들어가도 무방할듯 보인다.

다시 뒤돌아 나와 버스를 기다리느니 온수리 택시를 불러 온수리에서 서울 가는 버스를 타기로 한다.

 

온수리 택시를 불러 3명이 택리버스 정류장에서 온수리 버스정류장까지 9000원이 나왔는데 택시기사가 10000원을 받고 거스름돈 1000원도 주지 않았다며 계산한 친구가 불평불만이 대단하다.

진작 알았으면 반드시 그 돈 1000원을 받아 내렸을 것을 왜 이렇게 몇몇 택시 기사로 인해 강화도 전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온수리에서 60-5번 버스를 이용해 대곶사거리까지 나온 후 그곳 한남정맥 마루금인 대곶사거리에서 60-3번 버스로 환승해 지하철 2호선인 당산역에 내리니 산행 후 이곳 서울 당산역까지 나오는데만 약 3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곳 당산역 근처 주막에 들려 탁배기 몇명을 산친구들과 마시며 이야기를 즐기다 보니 벌써 하루해가 기울어져 가고 앞으로 종종 만나 이런 뜻깊은 산행을 자주하자 약속도 해 본다.

 

즐겁게 마음 맞고 발맞는 산친구들과 기분 마음으로 무탈하게 완주한 강화지맥 산행 후기를 갈무리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