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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강화지맥(섬·완료)

강화지맥 제1구간 강화평화전망대에서 강화군농업기술센터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4.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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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기도 강화군 강화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4년 04월 19일 (토요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구름 끼고 흐렸으며 약간의 봄바람이 불었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09도에서 영상 20도

산행인원 :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에서 삼거1리마을까지 칠갑산 나 홀로

                   삼거1리부터 옆지기 동참 해 고려산 정상까지

                   고려산 정상에서 3450온누리산악회 회원 20명과 합류해 퇴모산까지

                   퇴모산 정상에서 강화군농업기술센터까지 다시 칠갑산 나 홀로 산행

산행코스 : 강화평화전망대 버스정류장-과수원-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 돌아보기-헬기장-원형철조망-교통호-군부대철망-콘크리트 포장임도-북성2리

                   갈림 삼거리 이정표-비포장임도-북성2리와 철산리(철곳) 갈림 사거리 안부-별악산 정상 갈림 이정표(별악산정상 20m)-별악산정상 암봉-

                   전망바위-철계단-안전철봉과 로프지대-묘지지대-묘지지대2-덕하2리와 북성2리 갈림 사거리 안부 이정표-묘지지대-저담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묘지지대-저담봉(167.3봉)-소나무군락지-식탁바위-금정골 갈림 이정표-안전철봉과 로프구간-성덕산(215봉)-장군바위 갈림 이정표-

                   덕고개삼거리 이정표-묘지와 철탁상지대-군부대철망-덕고개(2차선 포장도로와 해병대)-덕고개삼거리 버스정류장-교통호-무명묘지-진달래

                   군락지-무명묘지-별립산 갈림 삼거리-잡목지대-묘지2기-새말고개(17번 2차선 포장도로)-식재지-밤나무단지-무명묘지1기-간벌지대-소나무와

                   잡목지대-묘지2기-봉천산(291봉)-봉천대-안전철봉과 로프지대-갈림 삼거리-묘지지대-석조여래입상과 5층석탑 갈림 삼거리 이정표-

                   강화하점면 오층석탑과 봉은사지터-강화나들길-묘지지대-가족납골묘-장정마을1차선포장도로-하점천주교회와 믿음슈퍼-장정1리마을회관-

                   하점우체국 버스정류장(48번 2차선 포장도로)-늘푸른공인중계사와 싱싱마트-1차선 포장도로-부근2리새마을회관-도로공사지역-축사지대-

                   갈림삼거리-삼거1리 빗돌(7번 2차선 포장도로)-강화부근리점골지석묘-삼거마을 1차선포장도로-삼거1리 마을 통해금지 철대문-능선진입-

                   잡목지대-산불감시초소와 움막봉(172봉)-소나무군락지-불난지역-진달래잡목지대-교통호-시루메산 군부대벙커-비포장 임도-헬기장-1차선

                   포장도로-폐쇄된 군부대정문-백련사 갈림 이정표-고려산오련지-군부대정문-백련사와 청련사 갈림 이정표 공터 간이매점-간이매점2-

                   고려산정상 헬기장(436.3봉)-나무데크-고려산군락지 전망대-고려산정상 헬기장 복귀-군부대 간이초소-국화학생야영장과 오상리고인돌

                   갈림 사거리 안부 이정표-잣나무군락지-무인산불감시 카메라-이동통신탑과 건물-시멘트포장도로-고비고개(8번 2차선 포장도로)-안전목봉과

                   로프구간-혈구산 제1봉(고비고개기점 440미터)-진달래군락지-안전철봉과 로프지대-혈구산2봉(375봉)-소화기 안부-혈구산3바위봉-전망바위-

                   혈구산 진달래군락지-혈구산과 퇴모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혈구산(466봉)-혈구산과 퇴모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 복귀-안양대한 갈림 삼거리

                   이정표-무명봉(안양대학 갈림 삼거리 이정표)-삼각점-강화농업기술센터 이정표-멋진 소나무지대-전망대-강화군농업기술센타 갈림

                   이정표(혈구산 3.0 Km와 퇴모산 0.3 Km)-퇴모산(338봉)-강화군농업기술센터(강화아르미애월드) 방향 등로-안전로프지대-강화군농업기술

                   센터(강화아르미애월드) 이정표-넓은고터-등산로 이정표-묘지지대-넓은 운동장같은 공터-강화전통문화체험관-농경문화관-

                   약숙웰가(강화아르미애월드)-2차선 포장도로-농업기술센터(84번 2차선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2.00 Km 

산행시간많은 사진 찍고 산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며 천천히 10시간 40분 (05시 45분부터 16시 25분까지)

교통편 : 갈때엔 애마 이용

               나올땐 택시 및 9인승 승합차 이용

강화지맥이란

강화도는 우리나라의 많은 섬 중에 제주도, 거제도, 진도 다음으로 네 번째 큰 섬으로서 행정구역상으로는 대한민국 인천광역시의 북서부 황해상에 위치하고 있는 섬이다.

강화도는 1개 읍과 13개 면으로 면적은 약 302.14 Km2이고 인구는 약 67,000명이며 세대수는 약 28,600 세대인데 이는 제주도(1,848.2 Km2), 거제도(378,795 Km2), 진도(319 Km2)이어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강화도가 역사적으로 변해 온 지명을 살펴보면 상고시대에는 갑비고차라 하였고 서기475년 고구려 장수왕 때에는 혈구군으로 서기844년 신라(문성왕)때에는 혈구진으로 서기1363년 고려(공민왕)때에는 강화부로 그리고 서기 1895년 조선(고종)때에는 강화군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최근 1995년에 경기도 강화군에서 인천광역시 강화군으로 바뀌었고 강화도는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한반도의 역사를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 하겠다.

선사시대의 유물과 유적으로 하점면 장정리와 화도면 사기리와 동막리 등지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신석기 유물도 강화도내의 여러곳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거석 유적인 지석묘(고인돌)가 하점면 부근리를 비롯한 도처에서 80기 이상 발견되고 있어서 이 지역에서 일찍부터 사람이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강화도는 원래 두곳의 섬인 즉 원래의 강화도와 마니산을 중심으로한 고가도나누어져 있었으나 고려시대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간척사업으로 인하여 하나의 섬이 되었다고 하며 이 때문에 강화도를 북에서 남으로 잇는 강화지맥의 마루금을 긋기가 애매모호하다.

강화지맥은 대간이나 정맥등에서 갈라져 가지친 지맥이 아닌 단순히 강화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지맥이다.

강화지맥은 강화도 최북단에 위치한 양사면 철산리 해안에서 시작하여 제적봉(115m), 별악봉(130m), 저담산(167.3m), 성덕산(215m), 봉천산(291.1m), 시루메산(250m), 고려산(436.3m), 혈구산(466m), 퇴모산(338.9m)을 거쳐서 덕정산(325m)에 이르러 여기서 남동쪽으로 뻗어가는 산줄기는 정족산(221m), 길상산(336m) 거쳐서 강화도 최남단 길상면 장흥리 택리마을앞 강화만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4.1 Km산줄기이고 덕정산에서 또 하나의 분맥 산줄기가 진강산(441.3m), 마니산(469m)을 거쳐서 분오리 마을앞 강화만에서 그 맥을 다한다.

원래의 강화도를 일주하는 정족산, 길상산 방향으로 택리마을까지 이어지는 약 40 여km의 강화지맥을 종주한 후 강화의 진산인 진강산과 마니산 줄기도 걸어 보기로 한다.

 

 

외롭지 않게 산친구들과 즐기며 여유롭게 걸었던 강화지맥 첫구간에서의 멋진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이번주에 남아 있는 영산기맥 2구간을 마무리하고 올라 오려던 계획은 다음주 중국 출장이 잡히고 또한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된 세월호 때문에 다시 발목이 잡히고 잠시 어디를 오를까 고민하는데 옆지기가 고려산 진달래꽃이 보고 싶다고 졸라댄다.

마침 함께 산행을 하고 있는 온누리산악회에서 고려산 진달래 산행이 계획되어 있는데 옆지기는 그 코스 전부를 종주하기는 힘이 들것 같고 그렇다고 짧은 시간 다녀오기도 아쉬운 시간이라 고민하다 새벽 일찍 나서 이 산객만 강화지맥 종주를 하고 옆지기는 백련사 부근에서 만나 짧게 산행 후 옆지기를 보내고 고려산 정상부에서 온누리산악회 산우님들을 만나기로 하니 모든 문제가 한번에 해결되였다.

그렇게 시작한 산행계획이 세워지니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새벽 3시에 일어나 집을 나서는 시간이 새벽 3시 40여분이다.

 

간단히 점심 식사 준비를 하여 배낭에 넣고 과일과 쑥개떡까지 준비를 하니 먹거리는 해결되였고 혹시 몰라 방붕 자켓뿐만 아니라 패딩까지 챙기니 옷가지까지 완비가 되였다.

막히지 않는 뻥 뚫린 88도로와 강화도로 이어지는 신 도로를 타고 달리니 생각보다 싶게 김포로 들어가고 그곳 24시 해장국집에서 이른 아침식사로 허기를 달랜다.

다시 강화도로 들어가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 앞에 도착을 하니 생각보다 빠른 새벽 5시 30여분을 지나고 잠시 산행 준비 후 기다렸다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간인 5시 45분에 굳게 닫혀있는 제적봉평화전망대 정문 좌측의 녹색 철망 옆 식재지를 통해 올라 헬기장으로 진행한 후 잠시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로 들어 가 길고도 먼 강화지맥 첫구간을 시작해 본다.

 

     

어려워하는 옆지기를 이끌고 삼거1리 마을 진입 도로 옆에 애마를 주차시킨 후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헤치며 어렵게 172봉 산불감시초소로 오르니 남동쪽으로 고려산 진달래군락지가 보이기 시작하지만 역시 오랫동안 산행을 하지 못한 옆지기의 느린 발걸음으로 진행속도가 많이 느려진다.

그래도 고려산 정상에서 만나기로 한 온누리산악회의 산친구들도 조금 늦게 정상에 도착할 것 같다는 회신에 여유를 가지고 어렵게 시루메산을 지나 넓은 포장도로를 따라 고려산 정상으로 오른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정상에 도착해 어렵게 그 넓은 헬기장 한쪽에 자리잡고 점심식사를 즐긴 후 좌측 진달래군락지의 전망대로 내려가며 사진을 담아보니 올해 워낙 계절이 빨리 오다보니 진달래꽃이 만개를 했다 조금씩 지기 시작하지만 그래도 옆지기가 만족하기엔 충분한 풍경이 되였다.

여러번 왔던 고려산이지만 올해가 계절적으로 가장 빠르다는 느낌이다.

 

새벽 5시 30여분 드디어 강화지맥 산행 들머리인 강화제적봉평환전망대 앞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지만 제적봉평화전망대로 오르는 철대문은 너무 이른 시간이다 보니 굳게 닫혀 있다.

잠시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산행 준비 후 새벽 5시 45분 경 여명이 밝오는 사이 배낭 둘러메고 삼거리 좌측 도로 좌측의 녹색 철망 옆을 타고 벌목 후 어린 묘목을 식재한 식재지를 통해 제적봉 방향으로 오른다.

이곳 주인장과 많은 다툼이 있었음을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통해 봤기에 그런 불상사가 없기를 바라며 조금은 빠르게 오르니 녹색 철망 우측으로 제적봉평화전망대로 오르는 도로 중간에 매표소와 주차장도 보인다.

 

어린 묘목이 식재된 장소를 오르니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며 잡목지대로 들어간다.

잠시 잡목을 헤치고 능선을 오르니 지나야 할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 헬기장에서 우측의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로 들어가 잠시 구경도하고 사진도 담아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강화평화전망대는 강화군 양사면 북성리에 위치한 제적봉에 있으며 일명 758OP라고 불리는곳으로 강화군은 북한의 개풍군과 연백군에 손만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이다.

강화지역 최북단에 위치한 안보관광지 강화평화전망대는 왼쪽으로 예성강이 오른쪽에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되는 지점에서 남쪽에 위치한 민간인 통제구역에 있으며 북한과 최근 접거리는 1.8 Km에 불과해 육안으로도 북한사람들의 일상 생활 모습과 개성공단 탑 그리고 아름다운 송악산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최적의 안보관광지로 꼽히고 있다.

강화군은 평화전망대 조성을 위해 2006년 말부터 총 사업비 48억여 원을 투입해 양사면 철산리 민통선 북방지역 임야 9975 m2부지에 지하1층과 지상4층 규모로 평화전망대를 완공하고 국내외 모든 관광객에게 공개했다.

강화평화전망대 출입은 연중 무휴이며 관람시간은 여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겨울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출입 절차는 차량 내 대표자 1명의 신분증을 군 근무자에게 확인 후 임시 출입증을 받아 귀가 시 검문소에 반납하면 된다.

관람료는 어른 2,500원(단체 2,200원), 군인과 청소년 1,700원(단체 1,300원), 어린이 1,000원(단체 800원) 인데 오늘 이 산객은 이른 시간에 올라 와 거금 2500원을 절약하는 시간이 되였다.

 

 

강화평화전망대는 2011년 안보 고취를 내세운 해병2사단장의 건의로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로 개명하였으며 제적봉은 전망대 건물 좌측에 서 있다.

그 앞에는 다음과 같이 제적봉의 유래 및 의미가 적혀 있었다.

공정식 제 4대 해병대 사령관은 김포 애기봉을 제적봉으로 명명하려 하였으나 1966년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현 애기봉 방문시 애기의 전설을 듣고 제적봉 명칭대신 애기봉으로 명함에 따라 강화도의 현 고지를 제적봉으로 정하고 1966년 당시 민주공화당 김종필 의장 참석하에 그가 친필로 쓴 제적봉 비 건립과 명명식을 거행 했다.

제적봉은 공산당을 제압한다는 의미로 우리는 민족의 자유와 인류의 평화를 위해 공산 침략자들을 무찔러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있다라고 적혀 있다.

이제 세원도 많이 변해 국가관도 변하고 있지만 나라를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대명제는 변함없이 지켜져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가슴에 되새기는 시간이다.

 

제적봉과 연성대첩비를 구경한 다음 그 옆에 서 있는 탱크 2대를 지나 북쪽으로 가 보니 그곳에 그리운금강산노래비와 망배단이 서 있다.

그 조형물 뒷쪽으로는 서해바다 건너 이북땅이 지척으로 보인다.

송악산과 백마산이 지척으로 보인다고 안내도에는 되어 있는데 미세먼지 때문인지 아니면 박무 때문인지 정확하게 분간이 되지 않으니 아쉬운 시간이다.

북쪽에 고향을 두고 내려온 실향민들의 시름을 달래줄 수 있는 곳일 것 같지만 보이는 가까운 곳에 고향을 두고 가지 못하는 심정이야 오죽했을까 생각하니 이 산객의 가슴도 답답해져 오는 느낌이다.

 

그리운금강산

누구의 주제련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 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본지 그 몇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비로봉 그 봉오리 짓밟힌 자리                            
흰 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
발아애 산해만리 보이지 마라                             우이 다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
수수 만년 아음다운 산 못 가본지 그 몇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그곳 그리운금강산노래비와 망배단을 둘러보고 그 뒤로 돌아 북녘땅을 바라본다.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늘 잊고 지내는 북녘땅, 오늘처럼 이렇게 가까이 다가서서나 한번씩 그곳을 바라보며 하나의 조국으로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는 마음이 왠지 아프기만하다.

예성강하구와 연백평야가 보이고 당두포리 돌출부도 내려다 보이며 송악산과 개성탑도 보인다는데 오늘은 그저 가슴으로그 풍경을 담아 보는 시간이다.

백마산과 고군리 돌출부는 흐미하게 다가오고 있지만 황량한 사막보다 더 조용한 이북땅을 바라보는 마음이 아침부터 편하지를 못하다.

그렇게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다시 제적봉쪽으로 내려온다.

 

내려오며 살펴보니 해병소령 김혼중이 적은 파한 시비가 눈길을 잡는다.

그 글을 읽고 있으니 그저 가슴으로 부터 끓어 오르는 아품이 온몸을 휘감고 망향의 설음을 이곳에 와 달래고 있었을 수만은 사람들의 모습에 함께 슬퍼하는 시간이 되였다.

그렇게 잠시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를 입장료도 없이 잘 구경한 후 넓은 공터를 지나 방금 전 걸어 왔던 녹색 쪽문을 통해 오르니 금새 드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하고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 서서 전망대를 사진에 담아 본다.

 

헬기장을 지나 진행방향으로는 하얀 산벗이 활짝 폈다 꽃눈처럼 흩져 내리고 그곳 교통호를 지나 능선으로 들어가니 낙엽진 잡목구간을 완만하게 올라 녹슨 원형 철조망이 반겨준다.

그 원형철조망을 조심하며 통과해 다시 교통호 같은 등로를 따라 오르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비포장 임도를 만나 그 임도를 따라 걸어 본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군부대 철망이 앞을 가로막고 그 철망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걸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민간인 출입금지와 촬영금지란 군부대장이 걸어 놓은 경고판을 바라보고 계속 군부대 철망을 따라 내려가니 갑자기 군부대 후문이 나타나고 좌측에서 올라 오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이제부터 그 시멘트 포장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금새 도로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갈리는 갈림 삼거리 앞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살펴보니 비포장 임도 방향으로 별악산 방향 표시가 되어 있고 나머지 세방향을 모두 평화전망대로 향하는 표시인데 통행 불가란 글자가 보이지만 유독 한군데 직진의 북성2리(평화전망대) 방향만 통행이 가능한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이곳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 비포장 임도의 별악산 방향이 지맥 등로이다.

 

하얀 산벗이 만개했다 떨어지며 꽃비를 뿌리고 등로엔 하얀 꽃잎들이 아름다운 수를 놓아 걸음걸이가 경쾌하고 즐겁기만한 시간이다.

다만 기대했던 일출을 구름과 박무로 인해 볼 수 없음이 아쉬운 아침이다.

이제 초록으로 변해가는 산하를 바라보며 나즈막한 둔덕으로 올랐다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 묘지 하나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수렛길 같은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좌측으로 철산리(철곳)과 우측으로 북성2리로 내려 갈 수 있는 갈림 사거리 안부에 도착해 그곳에 서 있는 이정표를 바라본다.

철산리는 곶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어촌 마을로서 동쪽으로 바로 서해와 접해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자연마을은 산이포, 진말, 철궂 마을이 있다.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조선시대에 철곶보가 있던 철곶과 포구마을인 산이포(와 합하고 철곶에서 철자와 산이포에서 산자를 따서 철산리라 하였다.

 

다시 그 철산리와 북성리 갈림 사거리 이정표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는 둔덕을 넘으니 등로에는 키작은 진달래가 폈다 지면서 지나가는 봄을 아쉬운듯 보내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지나온 방향으로는 덕하2리란 방향 표시가 그리고 좌측으로는 2.9 Km란 글씨가 보이는데 종주대가 20 m 지점으로 바꿔 놓았다.

선답자들이 말했듯이 이정표를 세우려면 똑바로 고증을 거쳐 세워야지 그저 확인도 없이 엉터리 표시를 해두면 이정표가 없는 것보다 더 못하다는 생각이다.

그 좌측으로 몇발자국 걸어가니 바위봉으로 된 별악산 정상인데 이곳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어렵게 강화도 자료에서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별악산은 강화군 양사면에 위치한 산으로 특징이 없는 봉우리로서 동쪽에서 올라오면 악산인줄 모르지만 서쪽에서 올라오면 암봉을 올라와서 별악산이란걸 알수있다.

동쪽과 서쪽에 전망바위가 있으며 조망권이 대단히 좋은데 별악산 정상은 동서 방향 평화전망대 가운데는 둥그스런 모양새인데 서쪽 전망바위에는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지나온 방향을 바라보니 저 멀리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가 보일듯 말듯 나뭇가지속에 아련하고 좌측으로는 서해바다 건너 북녘땅의 개성쪽 송악산이 보일듯 말듯 하게 다가온다.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남동쪽을 바라보니 강화군 양사면 덕하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덕하리는 고려산 북쪽 기슭에 위치한 마을로서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 서해와 인접해 있고 자연마을은 가장말, 덕고개, 오촌말 마을이 있다.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북사면 덕현동에 군하동 일부를 합하고 덕현동에서 덕자와 군하동에서 하자를 취하여 덕하리라 하였다.

군하동은 예전에는 조수가 드나들던 머리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군두동이라 부르다가 뒤에 없어졌고 아랫마을이라 군하동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덕하리 마을들을 살펴보면 먼저 덕현동에서 교산리를 왕래하는 고개로 덕현동에서 덕자를 따서 덕고개라 부르는 마을이 있고 봉천산 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덕하리를 지나 산이포에서 바다로 흐르는 내라 덕하천이라 부르는 마을도 있다.
또한 덕현동은 고어로 가파른 고개가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백마산 아래에 있는 바위로 도둑이 숨어 있다가 지리고개를 왕래하는 행인을 괴롭혔다하여 도덕바위라고 부르는 바위도 있고 백마산은 덕하리와 양오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허리에 흰모래가 많아 멀리서보면 백마와 비슷하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로 앞에 보이는 양촌은 양달말에서 유래되었으며 큰 양달말을 대양촌, 작은 양달말을 소양촌이라 부르고 오촌말은 양달말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오씨가 많이 살았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또한 양촌 건너편에 보이는 음촌은 군하리의 응달쪽 마을이라 하여 응달말이라 부르며 음촌, 음짓말이라고도 하고 덕하리에 있는 바위로 두드리면 함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고하여 함바위라 부른다.
그리고 봉천산 북쪽골에 있는 마을로 크다는 뜻의 고어 한과 골의 합성어로 한골에서 항골 다시 황골로 변화한 것 같은 황골마을도 이곳 덕하리에 속한 마을로서 다양한 마을들이 존재하고 있다.

 

잡목으로 인해 바위봉우리인데도 별악봉에서의 조망은 별로이다.

아쉬움에 개성쪽 송악산을 다시 한번 찾아 보지만 희미한 영상만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고 다시 바위를 타고 나와 별악봉 이정표 앞으로 가 좌측 등로를 따르니 다시 좌측 추락주위란 이정표 우측으로 전망바위가 보인다.

그 전망바위 위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까치아래돈대와 구등곶돈대 그리고 그 안으로 복성리 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앞으로 진행해야 할 남서쪽 마루금을 살펴보니 가까운 우측으로 저담산이 보이고 그 넘어 성덕산 그리고 저 멀리 별립산의 인공 구조물이 보이고 정남 방향으로는 희미하게 고려산도 올려다 보인다.

참으로 아름다운 산하에 봄이 오는 빛깔과 노래를 들으며 한동안 그 전망바위에서 쉬어 간다.

 

한동안 그 전망바위에서 아름다운 산하와 마루금을 조망한 후 다시 뒤돌아 나와 우측의 철계단을 타고 진행하기 위해 그 앞에 선다.

철 계단 아래 저 멀리 우측의 강화지맥 좌측으로 덕고개와 새말고개로 이어지는 17번 지방도로를 따라 덕하리 마을이 조망되고 그 끝자락엔 봉천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봉천산 지나서는 우측으로 강화지맥을 보내고 좌측으로 또 하나의 산줄기를 보내는데 그 산줄기가 덕하리를 북쪽에 두고 남쪽에는 양오리를 가르는 산줄기이다.

이제 그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을 가슴에 담고 천천히 조심하며 길게 이어진 철계단을 타고 내려가 본다.

 

철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는 우측으로 이어지고 그 바로 좌측에 전망바위가 보이는데 잠시 올라가 보니 방금 전 철계단 위에서 봤던 조망 그대로 열려있다.

다시 등로로 내려 와 안전 철봉과 로프를 타고 진행하니 부드러운 등로가 열리더니 등로 우측으로 묘지지대가 나타난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 넓은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옆에 작은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더 진행하니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별악봉이란 안내판이 등로에 떨어져 나뒹굴고 그곳을 지나니 다시 등로 우측에 묘지가 나타나는데 좌측 나즈막한 봉우리 방향으로도 등로가 열려있다.

살펴보니 금새 다시 만나기에 넓은 등로를 타고 우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하니 우측으로 북성2리와 좌측으로 덕하2리 갈림 하산로가 있는 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해 이정표를 사진에 담아 본다.

 

찬우물이 있어 냉정동이라 부르다가 북정동으로 개칭하였는데 삼성동을 합하여 북성리라 부른다는 마을 갈림 사거리를 지나 넓은 등로 양쪽으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진행하니 등로 좌측에 최근 만들어진 묘지를 만난다.

그 묘지를 지나 다시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걸어가니 소나무 아래에는 키작은 진달래가 꽃을 피웠다 시들어 가고 있는데 그 풍경이 완연한 초록으로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그렇게 조금 더 진행하니 저 멀리 등로 우측으로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는 저담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는 우측 공동묘지를 지나 저담산이 멀지 않다고 알고 있기에 콘테이너 박스 반대편에 서 있는 이정표를 확인할 필요도 없이 우측 저담산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콘테이너 박스를 지나 우측 등로로 진행을 하니 많은 묘지들이 줄지어 서 있는 작은 공동묘지처럼 보이는 장소를 지나 다시 평이한 등로가 열려 있다.

그 등로를 따라 오르니 등로 주위에는 간벌된 나무가지들이 널려 있고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잠시 오르니 바위봉이 서 있는 저담산 정상에 도착해 잠시 주위 조망을 즐기며 쉬어 간다. 

저담산 역시 그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저담산 정상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니 방금 전 진행해 온 강화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저 멀리에는 바다 건너 북녘땅이 가깝게 다가와 있다.

좌측 소나무 가지 끝자락에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가 보일듯 말듯 서 있고 강화 마루금을 따라 내려오면 뾰족하게 솟아 있는 별악봉이 우뚝하다.

그 별악봉을 지나면 특별할 것 없는 강화지맥 마루금이 이곳 저담산으로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다.

그 마루금 우측 저 멀리에는 아침 햇살이 붉게 물들은 듯 잔잔한 서해바다가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이북의 산하가 그리운 풍경으로 이 산객의 가슴속에 남겨진다.

 

저담산 남쪽으로는 이제 다시 저담산 갈림 삼거리로 내려가 걸어 진행해야 할 강화지맥 마루금이 좌우측으로 길게 펼쳐져 있고 그 뒤쪽으로는 덕하리 지나 또 새로운 산줄기 하나가 길게 이어져 있다.

한강쪽 산이포에서 봉천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역시 이곳 강화지맥 마루금 못지 않게 아름답게 이어져 있는 산줄기이기에 시간이 되면 한번쯤 걸어 보고 싶은 산줄기로 남겨진다.

 

그렇게 한동안 저담산 정상에서 주위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내려 와 간벌된 구간을 지나니 다시 완만한 오르막을 넘어 작은 공동묘지지대로 뒤돌아 나온다.

이제 좌측에 콘테이너 박스를 두고 우측 강화지맥 마루금으로 복귀하니 그곳에 저담산 2 Km와 지나온 방향으로 별악산 방향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이곳의 거리 표시 역시 엉터리 수준이다.

저담산까지의 거리는 고작 200여 미터쯤 되는 거리를 2 Km라 적어 놨으니 10배나 차이가 날 정도라면 차라리 거리 표시를 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이제 그 저담산과 저담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는 소나무 군락지에는 간벌을 했는지 잘려진 나무들 더미도 보이는데 소나무들이 참으로 잘 자라고 있다는 느낌이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걱정을 했던 등로 찾기는 이정도라면 고속도로 수준이기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진행하다 보니 아직도 두어군데 어려운 구간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멋진 식탁바위가 보이는데 그 주위에는 두개의 간이 의자가 설치되어 있어 식사를 하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식탁바위를 지나자 마자 등로 옆에 이정표 하나가 보이는데 등로 좌측 50미터 아래에 금정골이 있다는 이정표이다.

이 금정골은 금정 골짜기란 의미인지 아니면 한북정맥의 고양시에 있는 금정굴과 같이 양민 학살이 자행되였다는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강화도의 금정골을 찾아 보니 찾을 수 없아 아쉽기만 하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가지치기를 한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안전철봉과 로프가 설치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진다.

그곳을 오르니 넓은 공터에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우측 한쪽에 군부대 삼각점 그리고 반대쪽에 이정표가 서 있는 해발 215미터의 성덕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하지만 이정표를 보니 지나온 방향으로 별악산방향과 우측으로 약수터 방향이 그리고 좌측으로는 성덕산 정상쉼터(76미터 지점)이란 방향푯가 되어 있어 헷깔린다.

 

다시 그 성덕산 정상에서 물 한모금 마신 후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전진하니 한동안 평이한 등로가 이어진다.

그러더니 갑자기 저 앞에 바위가 보이고 그 앞으로는 하늘이 열리면서 조망이 뛰어나다.

살펴보니 지나온 방향으로 장군바위 (600미터 지점) 란 이정표가 서 있는데 지금까지 진행해 오면서 장군바위는 본 적이 없기에 다시 헷깔린다.

아마도 이곳 바위가 장군바위는 아닐까 생각되는 장소이다.

또한 어느 장군을 기리는 바위인지 아니면 그저 전해오는 전설로 남아 있는 장군인지도 모르니 이곳 역시 답답하기는 매마찬가지이다.

 

그 장군바위 이정표 옆 바위에 오르니 앞으로 진행해야 할 별립산 갈림 봉우리와 그 끝자락에 우뚝 솟아 있는 별립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제 강화마루금에도 초록의 봄빛이 완연하고 조만간 더위에 식수를 찾는 횟수사 늘어나는 계절이 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별립산 우측으로는 인화돈대와 광암돈대가 아스라히 다가오지만 뚜렷하지는 않다.

저 별립산은 오르지 않는 산이기에 다음에 다시 와 꼭 한번 여유롭게 올라 사진 몇장 남기고 내려오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전망바위에서 가야 할 마루금과 별립산 그리고 등로 우측으로 양사면 강화만의 바닷가가 내려다 보이는 조망을 즐긴 후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는데 바로 그 앞에 군부대 삼각점이 보인다.

일반 삼각점이라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지만 군부대용 삼각점은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가 없으니 이렇게 사진에 다믐 것으로 만족하는 시간이다.

장군바위를 지나 내려가니 소나무 해송이 아름답게 펼쳐진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뚜렷한 직진 등로 좌측 방향으로 덕고개삼거리 방향 표시 이정표가 서 있다.

이곳에서 직진의 우측 뚜렷한 등로를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좌측의 덕고개삼거리 방향으로 희미한 등로를 따라야 하는지 헷깔려 잠시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정독을 한 끝에 결국 덕고개삼거리 방향의 희미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며 진행을 하는데 결국 그것이 올바른 방향이였다.

 

우측으로 뚜렷한 소나무 등로를 버리고 좌측 희미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에 엄폐된 군벙커가 나타나고 곧이어 등로가 더욱 희미해지기에 다시 덕고개삼거리 갈림 이정표로 뒤돌아가 살펴보지만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곳에서 잠시 더 고민하다 뚜렷한 등로를 타고 조금 내려가 보지만 아무래도 이곳 등로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엄폐된 군벙커가 있는 희미한 등로쪽으로 가 조금 더 내려가니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며 조금씩 뚜렷한 등로로 변하고 있다.

약간의 바위들이 산재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평이하지만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등로 우측에 묘지지대와 그 한쪽에 작은 철탁상이 보인다.

그제서야 정상적인 등로를 타고 잘 진행하고 있음을 직감하고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시간이기도 하다.

 

묘지지대와 철 탁상을 지나 진행을 하니 금새 군부대 철망이 앞을 가로막고 그 철망을 우측에 두고 좌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앞으로 올라야 할 무명봉 뒤 저 멀리 별립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등 뒤로는 묘지지대 넘어 저 위 성덕산이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내려가니 교통호가 나타나고 금새 9번 2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우측으로는 오늘 새벽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로 애마를 몰아 갈 때 검문을 했던 바로 그 군부대 앞 도로이다.

덕고개란 이름은 덕현동에서 교산리를 왕래하는 고개로 덕현동에서 덕자를 따서 덕고개라 부르게 되였다고 전해지는데 도로를 따라 우측의 군부대 정문 반대 방향인 좌측 고갯마루로 오르면 도로 좌측으로 민가 한채가 서 있고 삼거리 갈림길로 갈리는 덕고개삼거리가 나타난다.

그곳 덕고개 삼거리에서 도로를 건너 전봇대와 덕고개삼거리 버스정류 옆으로 나 있는 능선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이곳부터가 오늘 산행에서 가장 주의할 곳임을 알기에 능선으로 진입하면서 부터 온몸의 신경이 길찾기에 집중되어 있다.

잠시 능선으로 오르니 교통호가 나타나고 그 교통호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벌목된 나무들이 교통호와 등로를 가로막고 성가시게 굴고 있다.

교통호가 끝이나고 낙엽 깔린 진달래 군락지가 펼쳐지더니 등로 옆에는 아직 지지 못하고 붉게 물들어 있는 진달래꽃이 그 마지막 웃음을 전해주고 있다.

그렇게 진달래 군락지를 따르니 나즈막한 봉분을 하고 잡풀이 우거진 묘지 하나가 나타난다.

 

무명 묘지를 지나 오르니 이장된 듯한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다시 키 작은 진달래와 거목의 소나무가 어우러진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며 진행하니 오르막 등로가 평이하게 변하면서 등로 주위엔 바위들이 산재한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등로 좌측에 큰 바위 하나를 지나 오르니 둔덕이 나타나고 그 둔덕을 넘으니 소나무 등로가 열려 있다.

다시 붉게 피어난  진달래와 거목의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우측 아래로 묘지 한기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등로는 좌측 소나무 속으로 이어지는듯 하다가 그 묘지를 좌측으로 우회해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하고 있다.

이곳에서 조금 더 별립산 방향으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좌측 등로를 유심히 살피며 진행해도 너무 진행했다는 느낌에 다시 묘지가 있던 장소로 뒤돌아 내려 와 주위를 살펴 보니 진행방향에서 묘지를 우측에 두고 좌측의 소나무 사이 골짜기처럼 생긴 희미한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90도 꺽어 내려가야 정상 등로로 진행하는 것이다.

어렵게 그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내려갈수록 등로가 점점 더 희미해지더니 나중에는 등로 자체가 사라져 개척 산행을 하듯 내려가야 했다.

  

구불 구불 제마음대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개척하며 내려가니 간벌된 소나무들이 등로를 막고 더욱 거세게 저항을 하고 어렵게 그곳을 통과해 내려가니 드디어 묘지 2기가 있는 곳으로 나와 금새 17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새말고개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토해낸다.

하점면과 양사면을 이어주는 고갯마루인 새말고개는 왜 이런 이름을 얻게 되였는지 자세한 자료는 찾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새말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곳들을 살펴보면 이곳도 유사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새로 들어선 마을이라서 새말이란 마을 이름을 얻곤했는데 그 새말을 가는 고갯마루라 해서 새말고개라 불리는 것이 대부분이였다.

세말고개에는 도로 옆 나뭇가지에 빗물에 흐릿해진 종이 코팅지에 새말고개란 이정표 하나가 달려 있을 뿐이다.

 

새말고개의 17번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벌목된 후 과실수를 식재한 민둥의 능선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가 본다.

민둥의 작은 나무들이 식재된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밭나무 단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우뚝한 별립산이 가깝게 다가 와 있다.

그곳 정상부엔 인공구조물들이 고려산을 연상시킬만큼 다양하게 설치되어 있다.

다시 작은 공터를 지나 잡목을 헤치고 들어가니 잘 가꿔진 묘지 하나를 지나 그 묘지 뒤로 오른다.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흩어져 등로를 막고 있는 곳을 지나니 진달래 군락지를 통과하고 다시 소나무가 등로를 채우고 있는 곳도 지나 진행한다.

 

다시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진행하니 묘지 두기가 나타나고 그 묘지 뒤를 돌아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진행을 해야 한다.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한 후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다 등로 우측을 보니 그곳에 별립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는 석모도가 그리고 우측 저 멀리에는 교동도가 아스라히 옛추억을 이야기 해 준다.

별립산은 강화군 하점면과 양사면 사이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산으로 강도지에 강화부 서쪽 2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있으며 대동지지와 대동여지 및 조선지지자료에서 별립산이라는 지명이 확인된다.

강화도의 다른 산들과 산줄기가 연결되어 있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다고 해서 별립산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다고 전해지며 산 전체적으로 바위가 많고 호랑이가 앉아 있는 모양 이라고 해서 준호산이라는 별칭도 있다.

그렇게 별립산을 조망한 후 오르는 봉천산 오르막 등로가 산객의 의지를 제법 시험하듯 어렵게 다가온다.

 

봉천산 오르막 등로가 은근히 산객의 마음을 시험하듯 거칠게 다가온다.

두다리에 가해지는 긴장이 팽팽하게 당겨질 쯤 제법 높은 고도까지 올라 등로 우측 앞을 보니 이제 별립산과 그 뒤 교동도가 시원하게 조망되고 그 별립산 앞의 신봉리와 인화리 마을이 서해바다와 어우러져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힘들게 오르니 드넓은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팔각정 그리고 삼각점과 이정표가 정상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봉천산은 강화군의 하점면과 양사면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봉두산 또는 하음산 이라고도 부르는데 강도지에 봉두산은 곧 하음산인데 봉수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 하음산이라 표기되어 있고 정상부에 봉수 그리고 산남쪽에 하음현 치소가 잇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고려시대에 하음백으로 봉해졌던 하음 봉씨 봉천우라는 사람이 봉천대를 쌓았다고 전하는 산이다.

봉천우는 봉천대에서 자신의 조상을 도와준 하늘에 제사를지냈다고 하며 강화부지에 봉두산은 강화부 북쪽 이십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하음산이라고도 하며 산 위에 방대와 석축이 있으며 옛날 하음현이 그 아래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산의 정상부에는 봉수가 설치되었으며 봉수산 주변에는 옛 하음현 시대의 하음산성과 조선조 하음산 봉수와 보물로 지정된 고려시대 5층석탑 및 석조여래입상등 많은 문화재가 분포해 있다.

그곳 봉천산 정상에서 물한모금 마신 후 배낭 내려 놓고 주위 조망을 즐겨 본다.

 

먼저 서쪽으로는 별립산을 가운데 두고 좌우 양쪽으로 석모도와 교동도가 그 옛날 만났던 추억을 꺼내며 좀 더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다.

그 별립산 우측으로는 어렵게 지맥 등로를 찾아 내려 온 별립산 갈림 봉우리가 선명하고 그 우측으로는 잡목 가시 사이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강화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마루금 우측인 동쪽으로는 덕하리와 양오리를 가르는 산줄기가 한강으로 잠기는 모습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렇게 주위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정상으로 가 삼각점을 사진에 담은 후 살펴보니 나옹선사의 청산은 나를보고란 싯귀가 보여 한참을 머물러 본다. 

다시 그곳 봉천산 정상에서 바라보니 고려산 방향으로 봉천대가 보이고 그곳으로 진행하는 중간 나뭇가지에 봉천산이란 종이코팅지에 정상 표시가 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 봉천대에 들려 잠시 봉천대에 대한 공부를 해 보는 시간이다.

봉천대는 봉천산 꼭대기에 설치하여 하늘에 나라의 태평과 백성들의 평안을 빌었던 곳으로 돌을 쌓아올려 위로 갈수록 좁아드는 사다리꼴 형식을 하고 있다.

강도지에 의하면 고려 때에는 나라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을 거행하였던 곳이었으나 조선시대 중기에 와서는 봉화를 켜두는 봉화대로 사용하였다 한다.

 

봉천대를 구경한 후 사진에 담으니 바로 등뒤로 신봉리와 부근리 마을을 지나 시루메니산이 고려산 정상으로 이어주는 가교 역활을 하고 있는 강화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하지만 이곳 봉천산에서 저 부근리의 삼거리마을로 하산하는 등로가 까다롭다고 알고 있기에 정상 지맥 마루금을 찾아 신경을 곤두세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은 멀고 박무로 인해 사람과 분홍빛 진달래꽃이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갈수록 인산인해를 이뤄 산행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을 고려산일 것이다.

또 새로운 도로 공사가 진행중인지 신봉리와 부근리 마을을 관통하는 공사 현장이 봉천산 정상에서도 훤히 내려다 보이는데 그저 가장 최소화된 자연 파괴속에 인간의 편리함을 추구 할 수 있기만을 바래 볼 뿐이다.

 

그렇게 한동안 봉천산과 봉수대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 후 석조여래입상이란 이정표가 가리키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안전철봉과 로프가 설치된 내리막 등로 양쪽으로는 만개했다 시들어 가는 진달래 군락지가 보이고 그곳을 내려가 평이한 등로가 나타나더니 금새 갈림 삼거리길이다.

우측 봉천산 정상 밑을 우회하는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직진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하니 또 다시 묘지 한기 지나 조팝나무에 하얀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그곳을 지나 진행하니 다시 등로 우측으로 작은 공동묘지가 나타나고 그곳 묘지가 있는 곳에서 작은 공동묘지를 따라 우측으로 90도 꺽어 내려가며 지맥 마루금을 찾아 본다.

 

잠시 많은 묘지들이 보이는 작은 공동묘지를 따라 내려가니 묘지일제신고를 하라는 강화군수의 안내문이 보이고 그곳을 지내 진행을 하니 완만한 내리막 등로에는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이 산객을 반겨 준다.

잠시 그 소나무 군락지를 통해 내려가니 등로는 좌측 사면 등로로 바뀌고 곧이어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갈림길 한가운데에 이정표도 하나 서 있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오층석탑이 직진하는 등로를 따르면 석조여래입상이란 방향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이곳에서 잠시 지도를 꺼내 독도를 해 보니 어느곳으로 내려가도 될듯 싶은데 정상 지맥 마루금은 이 두곳의 가운데를 타고 전진하며 진행되고 있기에 이 산객은 우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오층석탑을 구경하기로 한다.

 

키 작은 관목과 멋진 소나무가 잘 어우러진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작은 실개천도 넘어야 하는것 같아 다시 지도를 살펴보니 원지맥 등로는 오층석탑 갈림 삼거리 이정표에서 조금 더 진행해 좌측으로 보이는 능선 등로를 따라 진행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지만 오늘의 목적은 이 오층석탑을 만나는 것이였기에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듯 하다.

그렇게 내려가니 등로 우측에 오층석탑이 보이고 올라가 살펴보니 강화하점면오층석탑으로 봉은사지오층석탑으로도 불려진다는 설명판이 눈에 들어 온다.

강화 장정리 오층석탑은 고려시대에 세워진 5층 석탑으로 발견 당시 무너져 있었으나 1960년 수리하여 다시 세운 것이다.

석탑은 파손된 곳도 많고 없어진 부재도 많아서 3층 이상의 몸돌과 5층의 지붕돌 및 머리장식 부분 등이 모두 사라진 상태이다.

낮은 언덕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절터로 그 규모를 알 수가 없지만 석축 주변에서 선문 및 어골문 와편, 막새기와, 청자편, 백자편 등 고려시대 유물이 발견 수습되었다.

탑은 1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의 네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겼고 탑신부는 1층 몸돌만 두 장의 돌로 짜여있고 그 이상은 각각 하나의 돌이다.

1층 몸돌의 크기에 비해 2층 몸돌의 크기가 급격히 줄어들어 있는 형태로 지붕돌은 밑면에 1층은 4단 나머지 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추녀 밑은 반듯하다가 네 귀퉁이에서 약간 치켜 올려져 있다.

탑이 무너졌을 때 추녀마루가 깨어져 치켜 오른 정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점이 안타까운데 전체적으로 무거운 느낌을 주며 각 부분에 두는 장식이 많이 생략되었고 형식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많은 탑이다.

신라석탑의 양식을 이어받아 형태나 체감비율 등에서 변형된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된다.

오층탑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난 후 오층석탑 뒤로 돌아가니 봉은사지터였다는 설명과 함께 방형의 우물터가 보이기에 사진에 담은 후 출발한다. 

 

오층석탑을 구경한 후 내려가니 화장실과 봉천산 등산안내도 그리고 강화나들길 18코스 이정목이 반기는 시멘트 임도에 도착을 한다.

지도와 지형을 살펴보니 이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가도 각골과 안정골쪽 마을로 내려 갈 수 있을 것 같으나 잠시 등로를 이탈했기에 강화나들길 제18코스 방향으로 능선을 타고 빠르게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마루금으로 복귀하니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 앞으로 다시 강화나들길 제18코스 이정목이 서 있어 그 이정목 뒤 능선으로 들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진행한다.

 

능선으로 들어가 강화나들길 제18코스로 진행하니 부드러운 등로가 이어지고 다시 묘지들과 가족 납골묘가 보이는 곳에서 우측 민가쪽으로 내려가며 마루금이 이어지고 있다.

마을로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따라 하점천주교회 방향으로 내려가 본다.

잠시 더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하점천주교회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믿음슈퍼가 있는 갈림 삼거리 위 도로 표지판 옆에 이 산객이 내려온 방향으로는 강화하점면오층석탑 가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되어 있고 믿음슈퍼 우측 도로 위에는 강화하점면석조여래산 가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되어 있다.

이제 정상적인 마루금을 찾아 다시 잘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기에 기 한숨을 먼저 내쉬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갈림 삼거리를 지나 포장도로를 타고 계속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장정1리 마을회관이 나타나고 곧이어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갈리는 삼거리를 만나 우측 직진의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금새 도로 건너 우측에 늘푸른공인중계사 간판과 좌측에 싱싱마트 건물이 보이는 7번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도로 옆에는 하점우체국이란 버스정류장 표시가 있고 도로 건너편에는 정신 비를 피할 수 있는 버스 정류장에 두명의 주민이 차를 기다리고 있다.

그 7번 2차선포장도로를 건너 우측의 늘푸른공인중계사 건물과 좌측의 싱싱마트 건물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이곳 하점면은 1914년 한일 합방 이후 하음면과 간점면 그리고 외가면을 통합하여 하점면으로 편성하였는데 당시 하점면에 포함된 지역이 신봉, 장정, 양오, 부근, 삼거, 신삼, 망월, 창후, 이강리 등 모두 9개 리였고 1983년 1월 10일 대통령령 제11027호에 의해 양오리가 송해면에 편입되면서 8개 리로 확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장정리는 고려시대에 하음봉씨가 처음 살게 되었다는 마을로 그들이 먹고 살던 긴 우물이 있어 장정리라 부르게 되였다고 전해진다.

낡은 민가들이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부근리 방향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에 부근2리새마을회관 건물이 보이고 곧이어 다리공사를 하는 공사현장이 나타나는데 사펴보니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는 현장처럼 보였다.

 

도로 공사중인 공사장을 지나 진행하니 도로 양옆에는 밭이 나타나더니 도로 좌측으로는 금새 거대한 축사단지가 나타난다.

축사 단지를 지나니 도로가 좌측으로 갈리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보기에 좌측 도로를 버리고 우측 직진의 도로를 따라 걸어본다.

다시 거대한 축사단지가 나타나고 그 축사단지를 지나니 사거리 도로가 나타나는데 도로 우측에 삼거2리 마을표시석이 서 있다.

그곳에는 젊은 청년 2명이 차량을 통제하고 있어 이곳이 현재 고려산 진달래꽃 축제기간임을 알리고 어렵게 옆지기와 전화 통화를 하니 백련사에서 군부대 초병들에게 경고를 받아 애마를 몰고 백련사를 나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에 이곳 삼거1리로 와 함께 산행을 하자고 전한다.

잠시 옆지기 기다리는 사이 강화 부근리 점골 고인돌을 사진에 담고 안내판의 글씨를 읽으며 잠시 공부를 해 본다.

강화 부근리 점골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이 고인돌은 강화읍에서 48번 국도를 따라 인화리 방면으로 가다 송해면과 하점면 경계지점을 지나 부근리과 망월간 도로의 중간지점으로 고려산 북쪽에서 흘러내린 주능선의 끝자락에 있는 해발 15미터 정도의 낮은 지대의 밭에 위치해 있다.

고임돌이 기울어져 무너져 내린 것을 현재는 원형 그대로 복원되어 있으며 동서방향의 고인돌을 바로 세우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려 전형적인 탁자식 고인돌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북쪽 방향에는 마감돌이 유실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어 점골 고인돌은 물론 강화지역에 분포한 고인돌의 구조와 형태를 파악하는데 귀중한 고인돌 유적이다.

어렵게 옆지기를 만나 강화부곡리점골고인돌을 좌측에 두고 옆지기가 운전하는 애마 옆을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강화부근리점골고인돌를 지나 계속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삼거1리 마을 방향으로 걸어 들어간다.

뒤따르던 승요차 몇대를 앞으로 보내고 천천히 올라가니 저 멀리 앞쪽으로 고려산 진달래 군락지가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까운 곳 앞에는 시루메산 전 전위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가 보이는데 저 봉우리를 타고 넘어야 시루메산으로 통할 것 같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도로 좌측을 유심히 살펴 보지만 시멘트 도로가 갈리는 삼거리 이외에는 별 특이한 내용이 없어 차량이 들어 갈 수 있는 곳까지 들어 가 보기로 한다.

한동안 걸어 오르니 갑자기 거대한 청색 철대문이 나타나고 더 이상 차량진입을 금한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삼거1리 마을로 통하는 길목에 차량 출입을 금하는 철대문을 세운것은 너무나 많은 등산객과 상춘객들이 몰려 들면서 너무나 많은 쓰레기를 삼거저수지와 마을에 버리고 가기에 어쩔 수 없이 고육지책을 썼다는 동네 어르신들이 알려 준다.

그곳에 살고 있는 주만 뿐만 아니라 자연 보호를 위해서도 가져 온 쓰레기는 스스로 치우고 산에 올라 좋은 추억만 남긴채 내려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삼거1리로 통하는 길목의 거대한 철대문 옆 좁은 공터에 어렵게 애마를 주차시킨 후 우측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좌측 민가 옆 능선으로 오르며 다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다만 정상 등로가 나타날때까지 옆지기를 데리고 올라야 하기에 이곳 주능선으로 오르는 등로가 문제가 될듯 싶다.

온누리 산우님들과 전화 통화를 해 보니 고려산 정상까지 오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기에 옆지기와 함께 급하지 않게 진달래와 잡목 구간을 뚫고 천천히 능선으로 오르니 정상 바로 밑어 사눌감시초소와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그곳에서 내려다 본 산불감시초소 넘어 하점면 심삼리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넘어 물이 빠진 서해바다 저 멀리에는 석모도가 박무속에 아련히 보인다.

 

어려워하는 옆지기의 보조에 맞춰 천천히 그곳 172봉 정상에 올라 주위 조망을 담아보고 다시 실질적인 정상인 좌측 방향으로 오르니 그 정상에는 움막 하나가 보이는데 왜 이런 움막이 이곳에 서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상황이다.

그곳 움막을 둘러보고 이제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꺽여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좌측 내리막 등로를 따라 소나무 숲을 걸어 내려가 본다.

등로에는 이제 막 피어 오르기 시작한 각시붓꽃이 아름답게 웃으며 반겨 주지만 진달래꽃은 이제 만개 후 시들어 파란 잎새귀가 더 많이 피어 오르고 있는 중이였다.

 

그 가파른 내리막 소나무 군락지를 내려가니 등로엔 꽃이 시들기 시작한 진달래꽃과 파란 잎사귀들 그리고 키큰 소나무가 조화를 이루며 등로를 채우고 있다.

낙엽과 새생명의 빛인 푸른빛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등로를 따라 앞서 걸어가니 갑자기 멋진 소나무들이 도열해 산객을 맞이해 주고 그곳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옆지기가 따라 오기를 기다려 본다.

저 멀리 뒤따르는 옆지기의 모습을 보니 근래들어 처음으로 많이 힘들어 하고 있음을 직감하며 과연 고려산 정상까지 갈수나 있을련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늘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은 했지만 운동을 한지 너무 오래되다 보니 그전에 잘 오르던 산행도 많이 부실해졌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둘이 많은 이야기 나누며 웃으며 진행하니 처음과는 달리 걸을 수 있을 것 같다며 고려산 정상 옆 진달래 군락지까지는 가볼 생각이라 말해 온다.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다시 파란 잎사귀가 돋아난 진달래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헤치며 오르니 큰소나무 밑둥가리에 불탄 흔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살펴보니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시점에 이곳에 불이 났었고 키큰 소나무들은 살아났지만 관목들은 모두 사라져 다시 돋아난 잡목들이 이제 사람들 키 만큼 자라고 있는 중처럼 보였다.

더욱 짙어지는 초록의 산하를 감상하며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시루메산 전위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에 올라 뒤따르는 옆지기 저 멀리 별립산을 다시 한번 조망해 본다.

 

무명봉에 올라 잠시 흐르는 땀방울 닦아 내고 교통호 같은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옆에는 하얀 조팝나무꽃이 여심을 흔들고 옆지기를 세운 뒤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강화지맥 마루금 우측으로 송해면 금동산 방향으로 흘러가는 산줄기 하나가 비산비야를 이루며 눈에 들어 온다.

다시 몇발자국 옮긴 후 앞을 보니 이제 완연한 봄빛을 하고 있는 시루메산 능선 우측 저 멀리 고려산 진달래 군락지가 눈으로도 확인이 될 정도로 가깝게 다가와 있다.

옆지기에게 설명한 후 조금 더 힘을 내 보기로 한다.

 

그렇게 앞뒤로 조망을 즐기며 옆지기 보폭에 맞춰 진행을 하다 보니 속도는 없지만 그렇다고 많이 늦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조금 더 전진하니 깊은 교통호가 나타나고 이제부터 짧은 구간은 그 교통호를 따라 진행을 한다.

교통호를 지나자 다시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다른 교통호가 나타난다.

그 교통호를 따라 진행을 하니 갑자기 플랭카드 하나가 걸려있는데 진달래 군락지 가는길을 직진 방향이 아닌 우측 하산 방향으로 되어 있어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을 했는데 고려산 정상부로 가는 포장도로에서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우측 하산하는 진달래 군락지 가는 길이란 방향 표시를 무시하고 계속 교통호를 따라 직진으로 진행을 한다.

그 교통호가 끝나는 지점에 군벙커가 있고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시루메산 정상이다.

  

시루메산 정상은 이 산객 홀로 오르고 옆지기는 우측 사면 우회등로를 따라 먼저 넓은 임도로 진행을 시킨다.

정상의 군부대 벙커 위에서 주위 조망을 살펴보니 가야할 방향으로 고려산 정상부가 앞의 전위봉에 가려 얼굴만 내밀고 등로 좌측으로는 하도리와 강화읍 방향의 평야 지대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다시 조망을 즐긴 후 시루메산 정상을 내려 와 옆지기를 만나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고려산 방향으로 걸어가니 금새 더 넓은 공터에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 헬기장 가장자레부터는 좌측 군부대에서 올라오는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고려산 정상으로 올라가 본다.

 

이제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면 고려산 정상에 도달할 것이고 그곳에서 우측인 서쪽으로 내려가면 진달래 군락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옆지기와 헤어져 옆지기는 진달래 군락지 한가운데로 나 있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삼거저수지 방향으로 내려가면 오전에 주차시킨 애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등산객들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우리 부부 말고도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오르고 있어 의아한 생각을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다 도로 우측을 보니 그곳에 고려산 진달래 군락지에 수많은 인파들로 넘쳐나고 조금씩 지기 시작한 진달래꽃이지만 이렇게 멀리에서 보니 만개한듯 아름답게 다가와 사진 몇장 남겨 본다.

 

다시 옆지기와 이야기도 나누고 장난도 치면서 오르니 갑자기 도로 좌측으로 폐쇄된 군부대 정문을 지나고 곧이어 좌측 능선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올라오고 있는데 살펴보니 백련사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였다.

그 앞에는 젊은 알바학생들이 서서 시루메산 방향의 포장도로 쪽으로는 하산을 제지하며 막고 있는데 거꾸로 올라오는 이 산객을 어쩔 수 없이 통과를 시키고 있다.

아마도 군부대에서 민원이 들어가 진달래축제를 하는 주최측에서 알바생을 고용해 정리를 하고 있는듯 보였다.

처음에 옆지기가 오르려고 했던 백련사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본다.

백련사는 고구려 장수왕 4년 병진(서기416)에 고려산을 답사하던 천축조사가 이 산 상봉 오련지(다섯개의 연못)에 오색연화가 찬란히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오색 연화를 채취하여 공중에 날려 그 연화들이 낙하한 곳마다 가람을 세웠는데 바로 이곳이 그중 백련이 낙하한 곳이다.

조선 고종 광무9년(서기1905) 을사년 봄에 인암화상이 화주 박보월로 본가람을 중건케하고 서기1967년 정미년 봄에 비구니 한성탄이 극 락전과 삼성각을 중수 하였다.
조선 순조6년 병인년(1806년) 3월에 서산대사 제6세손 천봉후인 의해당 처월대사의 사리비와 부도탑이 건립되었고 서기1983년 비구니 한성탄이 도로 불사와 서기1986년에 범종을 조성 하였으며 철불아미타불 좌상이 보물994호로 서기1989년에 지정되었고 그해 12월 11일날 도난당했다.

기록에 의하면 팔만대장경이 본 가람에 한때 봉안되었다 한다.

 

백련사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 곳을 지나 계속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도로 우측에 고려산 오련지와 설명판 그리고 오련산과 오련사 및 고려산오정에 대한 빗돌과 설명판들이 보인다.

고려산 오련지에 대한 유래를 찾아보니 고구려 장수왕 4년에 인도의 천축조사가 가람터를 찾기 위해 고려산을 찾았는데 그는 정상에 피어있는 5가지색상의 연꽃을 발견하고 불심으로 이를 날려 꽃이 떨어진 장소마다 절을 세웠다.

하얀 연꽃이 떨어진 자리엔 백련사를 흑색 연 꽃이 떨어진 자리엔 흑련사를 붉은 연꽃이 떨어진 자리엔 적석사를 황색꽃이 떨어진 자리엔 황련사를 그리고 청색 꽃이 떨어진 자리엔 청련사를 각각 지었다.

그러나 청년사만은 조사가 원하는 장소에 떨어지질 못해 원통한 나머지 원통 암이라는 절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고려산 주변엔 3개의 사찰과 1개의 암자가 천오백년을 넘게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한때는 이곳에 자리한 연못을 오련지라고도 하였으며 산이름을 오련산으로 다 섯개개의 사찰을 하나로 묶어 오련사라고도 불렀으며 후에 오련산은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고려산으로 개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참으로 많이 올랐다고 생각한 고려산이였는데 이쪽 북쪽 방향으로는 처음이기에 이런 풍경들도 생소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오련지를 지나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군부대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전진하니 백련사와 청련사가 갈리는 공터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 넓은 공터는 먹거리 장터가 열러 의자로 가득차 있다.

그곳 먹거리 공터를 지나 계속 도로를 따라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고려산 진달래 군락지가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다.

우측으로 또 하나의 먹거리 공터를 지나 고려산 정상부인 헬기장으 오르는 도로 내내 도로 우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고려산 진달래꽃을 조망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게 올라 고려산 정상부인 헬기장에 도착을 하고 온누리산악회 산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니 진달래 군락지 못미친 곳에서 점심식사 후 올라 온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우리도 이곳 고려산 정상의 헬기장에 자리 만들어 점심식사를 즐겨 본다.

식사 후 헬기장 추그 끝자락에 위치한 고려산 정상 표시를 한 이정표에서 증명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고려산은 강화 6대산의 하나로 마니산(472.1봉), 혈구산(466봉), 진강산(443봉) 다음으로 높은 산으로 1696년 편찬된 강도지에 홍릉과 국정, 적석, 백련등의 세 절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강화부 서쪽 15리에 있으며 강화부의 진산이다라고 되어 있다.

고려산은 고려의 정기를 품고 있는 산으로 신성한 연못의 물고기가 중국 천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연못의 연꽃이 떨어진 다섯 곳에 오련사를 지었으며 고구려 장수 연개소문이 태어난 전설이 있는 곳으로 곳곳에 적석사, 백련사, 청련사 등 사찰과 고인돌군락지, 고구려 토성, 오련지, 홍릉 등 문화재가 분포하여 아침에 역사탐방 위주의 산행이 좋다.

서쪽 적석사를 가다보면 솔밭을 지나고 갈대밭을 지나 낙조봉을 만날 수 있는데 저녁에 서해 수평선 바닷물을 붉게 물들이며 해지는 광경은 강화8경중 하나이다.

또한 북쪽 산등성이로 매년 4월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져 보는 이의 마음도 붉게 물드는데 한낮에 보면 더욱 좋다.

고려산 정상에서 증명사진까지 남기고 천천히 옆지기 데리고 우측의 나무 계단을 타고 진달래 군락지로 이동을 한다.

 

진달래 군락지로 내려가는 등로가 비좁고 너무나 많은 등산객들이 교차 산행을 하다 보니 늘 정체되어 속도가 전혀 나질 않는다.

그래도 천천히 내려가니 안부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는 나무데크로 만든 새로운 등로가 열려 있다.

멋진 소나무도 만나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나무데크를 타고 진행하다 등로 좌측을 보니 이제 온누리산악회 산친구들을 만나 올라야 할 혈구산과 퇴모산으로 이어지는 지맥 마루금을 살펴 본다.

몇번인가 올랐던 종주 코스였는데 오늘이 가장 등산객들로 붐비는 하루로 기억될 듯 싶다.

 

고려산 진달래 군락지에 도착을 하지만 이곳 역시 인산인해를 이뤄 발걸음 하나 옮기기도쉽지 않다.

그래도 그토록 노래를 불렀던 고려산 진달래 군락지에 왔으니 옆지기 사진 몇장 멋지게 남겨 줘여 또 몇개월 조용히 넘어 갈 수 있을 것 같아 많은 사진을 남겨 본다.

이제 옆지기 홀로 내려가야 할 진달래 군락지에서 북쪽 등로의 삼거저수지 방향을 조망하면서 등로 설명에 바쁘기만 하다.

한동안 설명을 하고 있는데 산악회 신친구들이 전망대 근처에 왔다는 소식에 옆지기는 인사만 나눈채 곧바로 나무데크를 타고 삼거저수지 방향으로 내려가 버린다.

 

삼거저수지 방향으로 내려가는 옆지기를 안쓰럽게 바라본 후 헤어져 저녁에 집에서 만나기로 하니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다시 이제 고려산 정상의 군부대를 풍경삼아 진달래와 봄꽃 사진 몇장을 더 남겨 본다.

예전에는 이렇게 정상으 군부대가 사진으로 나타나면 일일이 군부대에서 전화해 삭제하라고 했다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고난 이후부터는 멀리에서 이렇게 찍힌 사진은 가끔 올렸는데도 큰 이상은 없었던 듯 싶다.

 

그렇게 잠시 더 사진을 남기며 있으니 미꾸지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한 온누리산악회 산친구들이 전망대로 도착을 하면서 반가운 조우를 해 본다.

총 20여명이 함께 하였다니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함께하고 있는 산행임을 알 수 있다.

몇장의 사진도 담고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즐기다 보니 다시 20명 모두와 인사를 나누고 방금 전 옆지기와 이야기 하며 내려왔던 고려산 정상의 넓은 헬기장 방향으로 뒤돌아 올라가 본다.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그곳 고려산 정상에서 다시 몇명의 산우님들이 사진을 남기기 바쁘고 후미까지 다 도착함을 확인한 후 헬기장을 지나 군부대 우측의 출입금지 샛길을 따라 강화지맥 등로로 걸어 진행을 한다.

목책으로 막아 출입금지로 만들어 놨지만 수많은 등산객들이 자연스럽게 통행을 하고 있으니 차라리 출입금지를 해제해 정상적인 등로로 만들고 잘 관리하는 편이 훨씬 더 낳아 보이는 등로였다.

그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말라있는 등로에선 흰 먼지가 일어나고 그렇게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작은 초소들이 보이는 주능선에 도착을 한다.

  

이제 주등로의 공터를 만나 남쪽인 혈구산 방향으로 급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 본다.

하지만 이곳 고바고개로 하산하는 등로에도 말라있어 많은 등산객들이 발자국을 옮길떼마다 하얀 먼지가 일어나며 산행에 여간 큰 지장을 주고 있지 않다.

잠시 등로 좌측으로 조망처가 보이고 그곳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청련사가 있는 동쪽 방향으로 국화리의 국화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희미하게 강화읍 마을도 내려다 보이지만 벌써 박무로 인해 뚜렷하지는 않다.

산천이 아름다운 국정동천이 있어 국정동으로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국화리라 부르게 되였다는 마을유래만이 이 산객의 가슴속에 남겨지는 시간이다.

 

너무나 많이 날리는 하얀 흙먼지로 인해 아파람과 거리를 두고 내려가니 제법 급경사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예전에 몇번인가 이 등로를 따라 내려간 기억이 있지만 오늘처럼 가파른 급경사는 아니였다고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하지만 이곳 고려산도 계절의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었던지 등로 옆에 피어난 예쁜 봄꽃들과 야생화 그리고 초록으로 변해가는 산하가 그저 화려한 치장을 하지 않아도 너무나 아름다운 강산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먼지를 마시며 내려가니 우측으로 오상리고인돌 하산 등로가 그리고 좌측으로는 국화학생야영장 하산 등로가 있는 사거리 안부 이정표에 도착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사거리 안부 이정표를 지나 계속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멋진 잣나무 군락지가 짧게 펼쳐지더니 금새 무인산불감시 카메라를 통과한다.

다시 이동통신탑과 건물이 있는 곳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8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비고개에 도착해 잠시 후미를 기다려 본다.

고비고개는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와  강화읍 국화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8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데 고려산에서 혈구산으로 종주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이 반드시 넘는 고갯마루 중 한곳이다.

고비는 강화의 옛 행정관서가 있던 곳으로 고읍에서 유래된 지명인데 고려시대에 강화로 수도를 옮기고 39년 동안 몽골에 맞서 싸우다가 개경으로 돌아갈 때

강화의 궁궐과 성곽이 몽골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무렵 강화의 행정관서가 내가면 고천리로 옮겨와 심주라고도 불렸는데 이후 심도는 강화의 별칭이 되었다.

관아터, 향교터, 형옥터와 장터라 전해오는 곳이 있으며 조선 세종 때 행정관서가 현재의 읍내로 다시 돌아갈 때까지 강화의 행정중심이 되었다.

이곳 고비고개에서 예전에는 8번 도로를 따라 좌측 고갯마루를 넘어 잣나무 군락지를 따라 올랐다고 기억하는데 오늘보니 도로를 건너자 마자 곧바로 벌목된 민둥의 능선을 타고 주능선으로 오르게 되어 있다.

 

고비고개를 넘어 다시 민둥의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에는 예쁜 각시붓꽃이 무리를 지어 반기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조금 더 오르니 보라빛 제비꽃이 나도 있다며 얼굴을 내밀고 산객을 유혹하고 잠시 엎드려 사진 한장 더 남겨 본다.

이제 안전목책과 로프가 달려있는 급경사 오르막 등로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고비고개의 8번 지방도로가 잡목사이로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무인산불감시 카메라와 고려산 정상이 올려다 보인다.

이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넓은 공터에 벤취가 있고 우측 옆에는 119현위치 혈-1 등산로입구(고비고개) 기점 440M 기점이란 이정표가 서 있는 혈구산 제1봉에 도착해 후미를 기다리며 잠시 쉬어 간다.

 

혈구산 제1봉을 지나니 등로의 경사도가 약간은 누그러져 있고 등로 주위에는 많이 지기 시작한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며 산객들을 반겨 준다.

고도가 낮은 이곳은 고려산에서 만났던 진달래와 별반 차이없이 만개 후 지기 시작한 풍경이지만 그래도 좁은 등로 주위를 가득 채워 자라고 있는 풍경이기에 또 다른 멋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별 어려움 없이 진달래 군락지 사이를 통해 진행하다 보니 갑자기 등로가 갈리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직감적으로 좌측 등로는 혈구산 제2봉을 좌측으로 우회하는 사면 등로란 생각이다.

하지만 함께 오르는 대부분의 산우님들이 우측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혈구산 제2봉으로 오르기에 함께 오르니 벤취와 함께 큰 나뭇가지에 혈구산 제2봉 해발 375봉이란 종이 코팅지가 달려 있다.

이곳에서도 잠시 쉬어가며 물 한모금 마셔 본다.

 

혈구산 제2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진행을 하니 앞으로 우뚝 솟아 있는 제3봉 넘어 저 멀리 혈구산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혈구산 정상부근에는 참으로 화려하고 고운 진달래가 만개하여 산객들을 부르고 있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혈구-4 소화기란 스테인레스 통이 서 있고 그 넘어 붉게 불타는 혈구산 정상부가 올려다 보인다.

다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바위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혈구산 제3봉 바위전망대에 도착해 주위 풍경을 살펴 본다.

등로 우측으로 내가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석모도와 우측 저 멀리 교동도가 흐릿하게 다가온다.

바로 정상 위 직진 방향으로는 혈구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에 붉게 물든 진달래 군락지가 형성되어 이 산객의 발길을 부르고 있다.

 

등로 우측에 있는 내가저수지와 그 뒤 국수봉을 담아 본다.

그 국수봉 뒷쪽으로는 석모도가 옛 추억을 꺼내며 추억을 이야기하고 우측 저 멀리에는 바다속에 떠 있는 점처럼 교동도가 아련하다.

내가면 고천리에 있는 내가저수지(고려지)는 만수면적 28만평 규모의 큰 저수지로 고려산 및 혈구산으로 99계곡에서 흘러 내리는 물줄기를 담수로 한곳으로 주변 오염원이 없어 깨끗한 수질을 보존하고 있다.
또한 자체 바닥어종인 떡붕어, 토종붕어, 잉어, 메기등 다양한 어자원이 풍부하지만 토종붕어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토종붕어 치어방류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겨울철 빙질의 상태에 따라 얼음낚시를 즐길수 있으며 주차시설 및 수용인원이 넓어 단체 출조행사 및 대회로 사용가능하다.

퇴모산 지나 저곳 내가 저수지 방향으로도 몇번인가 내려갔던 기억이 있기에 새삼 다시 그 옛 추억을 떠올려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혈구산 제3봉에서 주위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천천히 혈구산 정상을 향해 출발을 해 본다.

조금 더 전진하니 다시 전망바위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올려다 보는 혈구산의 진달래 군락지가 상상외로 너무나 아름답게 피어 있다.

지나는 산우님들 불러 세우고 사진 한장씩 남겨 드린 후 잠시 혈구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진달래 군락지를 담아 본다.

만개 후 약간씩 지고 있기는 하지만 고려산 정상부의 진달래보다는 약간 느린감이 있어 더 화려하고 예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다시 조망바위를 내려 와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완전 진달래꽃 밭을 이루고 있다.

잠시 더 오르다 힘들면 등로 좌측의 진달래 꽃밭을 보며 사진 한장 남기기를 몇번 드디어 진달래 꽃밭에 여산우님들을 대기 시킨 후 몇장의 사진을 남겨 드리다 보니 어느새 퇴모산과 혈구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잠시 이정표를 넣어 퇴모산과 국수봉쪽 마루금을 담아 본다.

 

잠시 후 다시 내려 와 진행해야 할 퇴모산 방향의 지맥길을 사진에 담고 이제 좌측의 혈구산 정상으로 오르며 보니 벌써 많은 산우님들과 일반 등산객들이 혈구산 정상부에 도착해 주위 조망을 즐기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천천히 올라 많은 등산객들이 정상서에 모여 사진 촬영을 하고 있기에 잠시 여유롭게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북쪽 방향으로 지금까지 이 산객이 걸어 온 고려산에서 이곳 혈구산 정상까지의 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제 연두빛을 넘어 푸른빛으로 변해가는 산하에 울긋불긋 피어난 봄꽃들이 수를 놓으며 더욱 아름다운 강산을 만들고 있는 풍경에서 눈의 떼지 못하고 많은 사진을 남겨 본다.

 

혈구산 정상석 뒷편으로 동쪽에는 강화읍과 선원면의 마을과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태양빛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각인되고 있다.

바로 앞 봉우리 능선에는 황련사가 있으련만 그 봉우리에 가려 볼 수가 없다

다만 이곳 강화도에도 개발 바람이 불어 이곳 저곳 생채기를 내며 붉게 자연이 훼손되는 면적이 갈수록 늘어나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묻어 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몇해전에 올라 내려다 봤던 풍경과는 사뭇 달라진 풍경에 마음이 왜 이리 아프고 씁씁해지는 것이지 모르겠다.

 

많은 산우님들과 등산객들이 제법 빠지고 조금은 한가한 틈을 타 혈구산 정상석에서 증명 사진 한장 남겨 본다.

혈구산은 높이가 466미터로 용혈의 근원이자 고려 정기를 품은 산으로 여신의 성격을 띠었으며   예로부터 용이 나고  국가의  재난을   알리는  곳   대운산이
하늘에 닿아 있다는 의미를 지닌 산으로 마니산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곳이라 전해 진다. 

혈구산이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정상에 올라 주위를 보면 가슴이 벅차고 힘이 저절로 솟구치는 살아 숨쉬는 산으로 정기가 산 정상으로 항상 넘쳐 흐르고 있다.

또한 강화 중앙부에 위치하여 강화 전경을 고루 볼 수 있는 산이다.

늘 홀로 올라 정상석만 남기고 내려가곤 하였는데 오늘은 산친구들이 있어 이런 멋진 사진 한장 건졌으니 이것만으로도 오른 보람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혈구산 정상에서 많은 시간 휴식을 취하며 주위 조망을 즐기며 단체 사진까지 남긴 후 다시 배낭 메고 퇴모산으로 진행을 해 본다.

방금 전 지났던 혈구산과 퇴모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해 사진 한장 남기고 우측 고려산 방향의 등로를 버리고 좌측 직진의 퇴모산 방향으로 내려가며 진행을 한다.

이제 등로 좌측으로는 조만간 다시 올라야 할 덕정산과 진강산 그리고 그 끝자락에 마니산도 가물거린다.

언제 다시 오를수 있을지 기약은 없지만 조만간 다시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예상을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계속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진행해 나즈막한 안부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민둥의 붉은 혈구산과 앞으로 올라야 할 삼각점 봉을 사진에 담다보니 이젠 완연한 봄빛으로 변한 산하이다.

 

나즈막한 봉우리에 올라 등로 좌측으로 안양대학교 하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다시 계속 전진하니 잡목과 키 근 진달래나무가 뒤섞여 또 다른 매력의 등로를 만들고 그곳을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다시 무명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잠시 뒤돌아 보니 벌써 혈구산이 저 멀리 멀어지고 뒤따르던 등산객들이 힘이 부치는지 힘들게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올라오고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군락지는 아니지만 간간히 피어 있는 진분홍빛 진달래가 어려운 산행의 피로를 풀어주며 방긋 웃음을 날려 준다.

 

다시 등로 좌측으로 안양대학교 하산 이정표를 만나는데 혈구산에서 700미터 내려왔고 이 산객의 날머리인 강화군농업기술센터까지는 1.3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갑기만 한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함께 산행을 즐기는 산우님들은 외포고개까지 내려가야 하느 아직도 꽤 많이 남아 있는 산행거리이다.

지나 온 혈구산이 저 멀리 멀어지고 다시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전진하니 표식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낡은 삼각점 하나가 박혀 있다.

등로 좌측으로 강화군농업기술센타(강화아르미애월드) 내려가는 방향의 이정표가 계속 나타나기에 이 산객이 길 잃을 염려는 없을듯 하다.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무명봉으로 오르니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시 다음 구간 진행해야 할 지맥 마루금을 조망하며 물 한모금 마셔 본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보는 강화지맥 제2구간의 덕정산이 가깝게 다가와 있고 그곳에서 갈리는 두줄기 마루금이 아스라히 멀어져 있다.

우측 저 멀리에는 한번 올랐던 진강산과 그 뒤쪽으로 많이도 올랐던 마니산이 아련하다.

다시 그 전망바위를 나와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퇴모산까지 3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반기고 곧이어 퇴모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예전에 만났던 정상 이정표와 풍경이 많이도 변했다는 느낌으로 그 정상석에서도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곳에서 다른 산친구들은 모두 외포리 방향의 직진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고 이 산객만 좌측 등로를 따라 강화군농업기술센터 방향으로 내려가 본다.

 

잠시 산친구들이 모두 떠나고 내려가기 아쉬워 다음 구간 내려가야 할 강화지맥 제2구간을 조망해 본다.

바로 아래 양도면 마을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뒷편으로 덕정산이 존재하며 그 덕정산이 두갈래 산줄기를 분기하여 좌측으로는 236.4봉을 우측으로는 진강산과 마니산을 올려 세우고 있다.

오늘 몸 상태가 좋아 산행 후 이슬이만 마시지 않는다면 내일이라도 다시 이곳에 와 남아 있는 구간을 완주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산친구들과 이슬이 한잔이 예약되어 있기에 언젠가는 멀지 않은 시기에 다시 올 수 있기를 바래 본다.

 

홀로 강화군농업기술센터로 내려가기에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니 초장부터 급경사에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속도가 나질 않는다.

조심하며 그 로프구간을 내려가니 봄빛을 알리는 등로가 키 큰 갈참나무와 관목이 적당히 어우러져 아름다운 등로를 열어 주고 이 산객이 지날 정도만큼의 폭으로 열려 있다.

참으로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빠르게 내려가니 계속해 등로 옆에는 깨진 아크릴판에 강화도농업기술센터(강화아르미애월드)란 이정표가 나타난다.

그렇게 빠르게 진행을 하니 등산로라는 이정표를 지나 조금은 넓은 공터를 만난다.

 

공터를 지나 다시 빠르게 평이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아주 아름다운 등로가 열리고 길게 뻗어 있는 활엽수 사이로 키 작은 관목이 길을 열어주며 멋진 등로를 만들고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발걸음 멈추고 잠시 그 아름다운 등로를 사진에 담고 다시 내려가니 또 다른 등산로란 안내판을 만나 정상 등로임을 확인해 본다.

그곳 등산로 아크릴판을 지나니 많은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곧이어 드넓은 운동장 같은 공터에 파헤친 붉은 흙들이 쌓여 있는 장소를 통과해 잠시 방금 전 내려온 퇴모산 방향의 마루금을 살핀 후 쪽문이 있는 철망을 통해 강화전통문화체험과 건물 뒷편을 통해 마을로 진입한다.

 

강화전통문화체험관을 돌아 나오니 연자매와 사각정자가 보이고 그 앞으로 진행하니 농경문화관도 보인다.

이제 포장도로를 타고 2번 4차선 포장도로 방향으로 진행하니 도로 우측에 약쑥웰가라는 강화아르미애월드 건물도 보인다.

강화군 농경문화관은 과거?현재?미래의 농경모습을 생동감있게 구현하여 방문객에게 차별화된 볼거리를 제공하며 특히 대도시 주민과 학생들의 농촌체험학습을 적극 연결하므로써 농업인들의 실질적 소득증대 효과를 거양하기 위해 건립하였으며 2003년 6월 12일 개관한 이후 해마다 방문객수가 늘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방문객 대상으로 시대를 넘나드는 농경과 농기자재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고 또한 자라나는 세대에게 농업의 공익적 기능 등 소중한 가치를 교육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또한 초중고생의 현장체험학습과 대도시 주부 등 소비문화를 선도하는 계층들의 관심사인 농촌체험 활동 즉, 감자캐기, 고추따기, 고구마캐기, 순무체험 등 사계절 가능한 프로그램을 농업인들의 자생조직인 각 품목별 연구회 등에 연결시킴으로써 농경문화관이 그 역할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곳 농경문화관은 수도권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맛있는 강화농산물에 대한 입체적인 홍보 등 신뢰할 수 있는 농산물 판촉장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향후 점증하는 직거래 수요에 적극 대응하며 농업인과 수도권 소비자간의 지속적인 도농교류를 실현하는 가교로의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2009년 3월 개장된 강화약쑥 테마공간 아르미애월드는 불은면 삼성리 농업기술센터 일대에 5만 2,976㎡ 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아르미애란 쑥의 학명인 Artemisia의 첫 자와 한자어 애를 조합한 특구의 대표브랜드로 여성에게 특히 좋기로 유명한 약쑥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한다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강화약쑥테마 체험공간인 아르미애월드를 찾아가면 랜드마크격인 약쑥웰가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모던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로 단장한 약쑥한우전문식당에서는 고품격 약쑥한우와 쑥냉면 등의 깊은 맛을 즐길 수 있으며 멀리 외포리 바닷가까지 보이는 야외 테라스를 포함하여 220석 대규모로 단체관광객들의 입맛과 발걸음을 사로잡고 있다.
1층에는 다양한 약쑥제품과 품질 좋은 강화농특산물을 판매하고 있고 쑥족욕, 쑥좌훈, 쑥산소찜질방 등 약쑥을 이용한 체험장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도자기 체험실도 있다.

약쑥웰가 건물옆에는 농업의 역사와 첨단농업기술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농경문화관과 주목 9000주를 미로 형태로 심어 놓은 온새미로공원이 있다.
농경문화관은 어린이들에게 농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농업전시관으로 미로공원의 이름인 온새미로란 더함도 덜함도 없이 처음 그대로라는 순우리말이며 미로의 끝을 찾으면 고증을 통해 설계된 조선시대의 온실이 건립되어 있어 옛 선조들의 과학적 영농의 산실을 볼 수 있다.

 

이제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강화아르미애월드 건물을 지나 2번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강화군농업기술센터 앞 도로에 무사히 도착을 한다.

도착 후 산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니 아직도 날머리에 도착을 못했다는 이야기에 택시를 부르기 전 다음구간 산행 들머리와 이곳 2번 4차선 포장도로 주위를 사진에 담아 본 후 택시를 불러 이곳에서 강화안보수련원 앞으로 이동을 하니 그제서야 외포리 방면으로 진행한 산친구들은 외포고개에 도착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 온다.

이곳에서 잠시 산행 장비 정리를 한 후 미꾸지고개에 주차했던 애마를 회수하는 산친구의 도움으로 함께 신두리 해변으로 이동을 한다.

 

산행 공지에 이곳 강화안보수련원에서 마나기로 했기에 기다려 보지만 나머지 산친구들은 이곳이 아닌 건물 뒷쪽 산쪽으로 한블록 덜 내려온 외포고개에서 산행을 마무리 했다는 소식이다.

폐교를 개조해 우리나라 안보 교육을 위해 펜션처럼 꾸민 강화안보수련원에서 그렇게 또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다.

 

 

승합차 3대에 나눠 탑승한 후 선두리로 이동해 예약된 식당에서 회와 이슬이로 뒷풀이를 즐기니 오늘 하루가 모두 우리들 세상이 되였다.

강화도로 들어오면 자주 이용하는 선두리선착장이다 보니 마치 노량진 수산시장에 온듯한 기분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그저 산이 있어 좋고 산친구와 산 이야기를 나누며 마시는 이슬이 한잔이 있어 더욱 좋은 시간, 그저 오늘처럼만 정겹고 즐거운 시간이길 바래보는 시간이다.

 

제2구간도 조만간 오를 수 있기를 바라며 산행후기를 갈무리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