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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앵자지맥(한남·완)

앵자지맥 제2구간 성황당고개에서 삼합리고개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4.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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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기도 용인시와 이천시 그리고 광주시의 앵자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4년 03월 29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오전엔 짙게 구름 낀 흐린 날씨에 점심부터 비가 줄기차게 내린 날씨

산행온도 : 영상 06도에서 영상 15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성황당고개(325번 2차선 포장도로, 방도1리 표지석과 화승상사 버스 정류장)-한국관광용품센타-토끼봉(285봉)-해룡산 갈림 삼거리-해룡산(366봉)-해룡산 갈림 삼거리-야생화안내판-비포장 임도-양각산 갈림 삼거리-회고개-387봉-시멘트 포장 임도와 창고-지하통로(중부고속도로)-제2지하통로(지방도로)-시멘트 포장 임도-특수작물재배지역 출입금지 철망-절개지-국수봉 갈림 삼거리 이정표(국수봉 0.25 Km, 천덕봉 14.45 Km, 해룡산 5.1 Km)-송전탑 65번-국수봉 정상(424봉) 이정표(진우리 저수지 1.5 Km, 사태봉산 3.04 Km, 천덕봉 14.7 Km)-국수봉 갈림 삼거리-송전탑 66번-송전탑 67번-수양1리 버스정류장 갈림 삼거리 이정표(수양1리 버스정류장 2.3 Km, 국수봉 1.75 Km, 천덕봉 12.95 Km)-벌목지대-319.3봉 삼각점-302봉 갈림 삼거리-돌무더기봉-풍목골산(275봉)-송전탑 69번-신촌리버스정류장 갈림 삼거리 안부 이정표(신촌리버스정류장 1.19 Km, 천덕봉 11.71 Km, 구구봉 3.51 Km, 인후리 실천신학대학원 0.69 Km)-자작나무 조림지대-이정표(천덕봉 11.36 Km, 국수봉 3.86 Km, 등산로아님)-인후리 갈림 삼거리 이정표(천덕봉 11.01 Km, 국수봉 4.21 Km, 인후리 0.98 Km)-284.1봉 삼각점과 이정표(신촌리버스정류장 1.3 Km, 천덕봉 10.44 Km, 국수봉 4.78 Km)-한국세라믹기술원 갈림 삼거리 이정판-이정표(천덕봉 9.93 Km, 적산 0.51 Km, 등산로 아님)-송전탑 임도-천황암 임도 이정표(천덕봉 9.61 Km, 적산 0.83 Km)-1차선 포장도로-넋고개 이정표(3번 4차선 포장도로, 천덕봉 9.28 Km, 적산 1.16 Km)-횡단보도-동원대학교 정문-버스정류장-운동장-새천년관-절개지-주능1봉 이정표(원적산 천덕봉 5.78 Km, 범바위약수터 290 m)-벤취2개 쉼터-8부 능선 공터 삼거리 이정표(원적산 천덕봉 5.28 Km, 주능1봉 500 m, 봉현리)-장개산 주능2봉 이정표(433.4봉, 천덕봉 5.18 Km, 주능1봉 600 m)와 삼각점-송전탑 25번-남정리갈림길 이정표(남정리 1.5 Km, 천덕봉 4.88 Km, 범바위약수터 1.19 Km)-활공장 안내판-송전탑-소당산 정상석(407봉)-정개산 소당산정상 이정표(천덕봉 4.42 Km, 주능2봉 760 m)-벤취1개 쉼터-봉현리갈림길 이정표(봉현리, 천덕봉 4.37 Km, 정개산 50 m)-통나무 계단-벤취1개 쉼터-지석리갈림길 이정표(지석리 1.3 Km, 봉현리, 천덕봉 4.17 Km, 정개산 250 m)-벤취1개 쉼터-골프장갈림길 이정표(광주, 천덕봉 3.67 Km, 정개산 750 m)-도암사거리 이정표(도암리 1.35 Km, 천덕봉 2.5 Km, 정개산 1.92 Km)-벤취 쉼터-수리산 주능3봉 이정표(천덕봉 2 Km, 정개산 2.42 Km)-장동리갈림길 이정표(장동리 1.35 Km, 천덕봉 1.6 Km, 정개산 2.82 Km)-천덕봉 1260 m 지점 이정표(천덕봉 1.26 Km, 정개산 3.16 Km)-묘지-이정표(천덕봉 0.76 Km, 정개산 3.66 Km)-군부대 사격장 경고판-벤취1개 쉼터-원형 철조망과 군부대 사격장 경고판-헬기장-깃대봉-바위 암릉지대-원적산 천덕봉(632.1봉, 정상석과 삼각점 그리고 헬기장)-검정색 햇빛 차단막-590봉 헬기장-564봉 헬기장 이정목(삼합리 2.0 Km, 천덕봉 0.7 Km)-이정목(삼합리 1.8 Km, 천덕봉 0.9 Km)-급경사 내리막 등로-천덕봉(정상) 1.0 Km 이정표-잣나무 지대-묘지지대-절개지-삼합리고개(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2.90 Km 

산행시간 : 사진 찍으며 꾸준한 속도로 07시간 50분 (06시 20분부터 14시 10분까지)

교통편 갈 때엔 옆지기 도움으로 애마 이용

           귀가할 땐 삼합리고개 버스정류장에서 광주시내 버스로 곤지암 버스 터미널까지 이동

                       곤지암 버스정류장에서 광역버스 1113-1번으로 강변역

                       강변역에서 2호선 지하철로 귀가

한남앵자지맥이란 ???

한남앵자지맥이란 한남정맥상에 있는 문수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곱든고개, 칠봉산(447 미터), 갈미봉(447 미터), 용실산(422 미터), 배미실고개, 마수고개, 방도리고개, 성황당고개, 해룡산(367 미터), 국수봉(427 미터), 정개산(433 미터), 천덕봉(635 미터), 앵자봉(667 미터)을 거쳐 염치고개로 고도를 낮추다가 다시 솟구쳐 해협산(531 미터)과 정암산(403 미터)을 빚어놓고 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63.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가랑비 속에 갑자기 오르게 된 산행에서 봄의 정취를 한가득 느끼고 온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없었으면 무안으로 내려가 남아 있는 영산기맥 2구간을 마무리하고 올라 올 계획이였지만 어제 금요일 저녁부터 그곳 전남 무안에는 제법 굵은 봄비가 내린다는 소식에 영산기맥 산행을 포기하고 비가 내려도 아주 조금 내린다는 이곳 중부지방의 앵자지맥 제2구간 산행을 위해 출발하는 시간이다.

오늘과 내일 이틀동안 오르면 이곳 앵자지맥 산행도 마무리가 될 것이니 이제부터는 집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산행지가 조금은 신경 쓰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오늘도 역시 동원대학교 건너편에 맛 좋기로 소문난 곰탕집이 있으니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고 점심 준비 없이 식수와 음료수 그리고 사과 2개를 배낭에 넣고 우비와 우산까지 챙겨 옆지기의 도움을 받아 성황당고개로 향한다.

하지만 양지 IC에서 지난 구간 먹었던 콩나물 해장국이 좋아 다시 들려 먹기로 하였는데 잠시 방심하는 사이 직진이 아닌 좌회전으로 돌아 애마가 달리고 U턴도 못한 채 성황당고개에 도착을 하니 새벽 5시 40여분을 지나고 있는데 아직 여명이 밝아 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듯 하여 곤지암 방면으로 진행하다 24시 편의점에 들려 아쉬운대로 컵라면 두개에 김치 하나 그리고 햇반 하나로 부실한 아침을 해결하고 산행들머리로 복귀해 옆지기를 보낸 후 산행을 시작한다. 

 

 

정개산을 지나니 참았던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아직은 굵은 빗줄기가 아니기에 비옷도 입지 않은 채 배낭 커버만 씌워 진행을 한다.

하지만 천덕봉 전 비행장에 도착을 하니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그곳부터는 옷가지가 적어들며 춤추는 안개들로 인해 조망도 사라진다.

약간의 추위가 엄습해 오기에 제대로 앉아 쉬지도 못하고 몸의 열기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오름짓을 하니 어느새 천덕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 정상에는 어린 학생들로 한가득이다.

이유를 물어 보니 학교 봉사활동을 시경계 산행으로 대체하기에 많은 학생들이 참여를 했다는 소식에 홀로 미소를 머금은 뒤 학생에게 부탁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비에 젖은 생쥐꼴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아침도 먹지 못하고 컵라면 하나와 햇반 반쪽으로 허기를 면한 후 다시 도착한 성황당고개에는 벌써 여명이 밝아 오며 주위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밤의 길이가 짧아지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는 시간이다.

오늘 하루 1-4 mm의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흐린 날씨에 다행히도 아직 비는 내리지 않아 즐거운 마음으로 성황당고개를 출발하는데 이곳 지명이 왜 성황당고개인지 궁금하기만 하지만 설명되어 있는 자료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다만  1917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방등리와 내도척을 합하여 현재 이곳 지명이 된 방도리라 하게 되었으며 또 다른 이름인 되재는 속설에 의하면 이곳에 도읍을 정하려던 은조왕이 땅을 되풀이해서 재었다고 해서 되재라고 하였다고 하나 이곳은 용인시과 접경지대라 산이 험준하여 넘나들이 된고개란 뜻의 된재가 변한 말인 듯하다고 전해진다.

성황당고개 들머리에서부터는 화승상사 K-SWISS 건물이 마루금을 차지하고 있어 부득이하게 우측 이천 방향으로 5미터쯤 내려 와 좌측으로 보이는 한국관광용품센터 들어가는 넓은 포장도로를 따라 산행이 시작된다.

 

 

넓은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금새 한국관광용품센타 정문이 나타나는데 그 우측에 펼쳐진 건물을 바라보니 생각보다 무척 넓게 보인다.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이곳 정문의 수위아저씨에게 말해 실랑이를 피하는 것이 상책임을 알고 있기에 노크 후 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을 하는 머리가 하얀 수위 아저씨 한분이 나오더니 많은 경험이 있는듯 수위실을 지나지 말고 뒷쪽 능선으로 올라가라고 인도까지 해 준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능선으로 치고 오르니 원등로와 만나는데 좌측 화승상사 K-SWISS 건물 방향에서 오는 등로가 너무나 뚜렷해 홀로 깜짝 놀라는 시간이다.

아마도 원 지맥 등로를 고집하며 길도 보이지 않는 그곳 등로를 타고 진행하는 산님들이 꽤 있을 것 같다는 예측만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면 등로를 타고 진행해 지맥 등로를 만난 후 우측 내리막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등로 좌ㅣ측 잡목 사이로 빨간 지붕을 한 큰 건물이 내려다 보인다.

잠시 낙엽진 뚜렷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완만하게 오르는 오르막 등로 양쪽에는 벌써 연분홍 진달래꽃이 만개해 이 산객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데 꽃피는 시기가 예년보다 많이 빠른듯 하여 의아하게 생각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능선을 올라 232봉이라 생각되는 곳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꺽어 내려가니 잡목 사이로 예상치도 못한 일출이 시작되고 그 떠오르는 태양을 ㅏ라보며 오늘만큼은 일기예보가 틀리게 해 달라고 소박한 소원을 빌어 보는 시간이다.

 

 

잠시 발걸음 멈추고 일출을 감상한 후 다시 무명봉에 오르니 이제는 등로가 좌측으로 휘어 내려가고 조금 더 진행하니 금새 등로 좌측으로 해룡산 갈림 삼거리가 나타난다.

지맥 등로는 이곳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 되지만 해룡산이 등로 좌측으로 그리 멀지 않기에 잠시 들려 사진 몇장 남기기로 하고 좌측 등로를 따라 해룡산으로 향해 본다.

해룡산 정상을 다녀 와 다시 이곳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내려와 이제는 우측의 올라 온 등로를 버리고 직진같은 좌측 등로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해야하기에 그것만 신경쓰면 될 것이다.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 등로를 타고 오르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갑자기 가파른 된비알이 시작되더니 금새 366봉인 해룡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철판에 붉은 페인트로 이곳이 해룡산임을 알리는 정상이정판 하나만 정상을 지키며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어 사진 몇장 남기고 주위를 살펴보니 올라온 방향에서 좌측으로 몇 발자국 더 간 지점에 낡은 삼각점이 박혀 있는데 글씨는 보이지도 않아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뒤돌아 내려 온다.

이곳 해룡산도 그 뜻이 있겠지만 그 어느곳에서도 찾을 수 없으니 아쉬운 시간이다.

 

 

해룡산 정상에서 올랐던 등로를 따라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내려 온 후 이제는 좌측의 직진같은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해 본다.

잠시 평이한 뚜렷한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선답자들이 이야기 했던 노란 바탕의 띠지가 나풀거리는데 한동안 이 시경계탐사란 띠지가 길라잡이를 해 준다.

등로 우측으로 간벌된 지대를 바라보며 별 무리없이 걸어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 지나 등로 좌우측으로 많은 야생화 이름을 적어 놓은 하얀 팻말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다 보니 등로 좌측의 벌노랑이란 팻말을 지나자 마자 지맥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는데 정면 앞으로는 양각산이 드높게 솟아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완만한 내리막 낙엽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잡목 사이로 이제부터 올라야 할 387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생각보다 높아 보인다.

다시 내려가니 수레국화라는 야생화 팻말이 다시 나타나고 그 팻말을 지나니 등로 우측 골짜기 사이로 물이 담겨있는 논 위로 양각산이 우뚝 솟아 있다.

자작나무 같은 식재림을 지나니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좌측 아래에는 민가와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전봇대가 보이는 곳에서 임도를 가로 질러 능선으로 들어가니 잣나무들이 반기고 곧이어 등로 우측으로 녹색 철망이 쳐져 있는 곳도 지난다.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최근에 벌목된 듯한 소나무들이 보이고 곧이어 낙엽진 활엽수 등로를 따라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가 본다.

 

 

완만하게 오르니 묘지 한기나 나타나고 묘지 뒤 능선으로 올라 우측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갈림 삼거리가 나타난다.

지도를 펴 놓고 확인해 보니 등로 우측으로는 양각산 가는 오르막 등로이고 좌측 등로는 앵자지맥 마루금으로서 완만하게 내려가는 등로이다.

여기에서 잠시 고민을 해 보는데 평소 같으면 무조건 양각산으로 올랐을 테지만 오늘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고 하늘마저 시꺼먼 구름이 끼어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아 양각산은 포기하고 387봉 쪽 좌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하지만 역시 지나고 나면 늘 양각산을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 있는 시간이다.

그 양각산 갈림 삼거리를 지나 약간 내려가니 당산나무와 돌무더기가 있는 회고개 안부에 도착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회고개는 찾지 못하고 노곡리에서 관리로 넘나들었던 회고개 대신 노곡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이 마을 뒷산이 노루처럼 생겼는데 이 마을은 그 목부분에 위치 하고 있다고 해서 노루목이라 했는데 행정구역 개편시에 노곡리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회고개를 지나 오르니 등로 양쪽으로는 분홍빛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산객의 친구가 되어 준다.

몇 년전 진달래가 그리워 무작정 올랐던 여수의 영취산과 대구 경산쪽 비슬산의 참꽃이 다시 생각나는 시간이다.

잠시 오르니 등로는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등로 우측 아래에는 커다란 암석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바위를 깬 흔적이 보인다.

그 무명봉을 넘어 진행하자 이제 등로 우측으로 중부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그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소음으로 귀가 다 멍멍해질 정도이다.

고속도로 건너편에는 이제부터 올라야 할 305.7봉과 290봉 그리고 좌측 끝자락에 424봉의 국수봉 능선이 잡목 사이로 시원하게 보인다.

아무 표식도 없이 그저 떨어져 나뒹구는 낙엽이 전부인 387봉 정상에서 이제 우측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진행해 중부고속도로 방향으로 내려간다. 

 

 

387봉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도 완만하게 이어져 어렵지 않게 내려가고 간간히 봄바람에 나부끼는 선답자들의 빛바랜 띠지들이 길 안내는 잘 해 주고 있다.

이제 중부고속도로와 그 건너편의 국수봉을 올려다 보며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본 잡목 사이의 387봉도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진달래가 만발한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중부고속도로가 바로 발아래 보이는 곳에서 우측 305.7봉에서 좌측 국수봉까지의 마루금이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중부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이곳 능선도 이어져 그대로 걸어가면 되였겠지만 이제는 도로가 개설되면서 마루금도 잘려 절개지로 변했기에 그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좌측으로 내려가니 간벌된 지역을 지나 콘테이너 박스와 비닐하우스가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난다.

살펴보니 현재 사람이 살지 않은듯 보이는데 여름철 피서기에는 비닐하우스에 사람이 기거하며 음식을 팔고 있는 듯 가재도구들과 불 피운 흔적이 많이 눈에 띈다.

이제 그곳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면 중부고속도로를 건널 수 있는 지하통로가 보이는데 그곳에서 방금 전 내려온 등로를 담아 본다.

 

 

그렇게 비닐하우스와 콘테이너 박스 있는 곳에서 몇장의 사진을 담고 고속도로도 기웃거려 보며 쉬다가 다시 지하통로쪽으로 내려가니 녹색철망 문이 굳게 닫혀있어 처음에는 걱정을 하였지만 진행 방향의 좌측 끝자락에 통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쉽게 통과를 해 본다.

이제 우측으로 나 있는 지하통로를 통해 넓은 중부고속도로를 통과하니 포장도로 우측에 검정 차단막이 보이고 바로 앞에 또 다른 지하통로가 보이는데 이 지하통로는 그 위를 지나는 4차선 지방도로를 통과하기 위한 통로처럼 보인다.

 

 

2개의 지하통로를 통해 고속도로와 지방도로를 건넌 후 앞을 보니 삼거리 갈림길이 보이는데 직진 도로에는 녹슨 콘테이너 박스와 다시 녹색 철망이 쳐져 있다.

직진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국수봉이 올려다 보이고 우측으로는 고속도로가 보인다.

그렇게 걸어가니 도로가 끝나는 지점 좌측으로 녹색 철망과 문이 잠겨있고 그 앞에는 특수작물재배지역이니 무단출입금지 안내판이 보인다.

하지만 우측으로는 고속도로와 능선 절개지만 보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 녹색 철망 좌측 개울쪽으로 타고 넘어 드넓은 개간지안으로 들어간다.

 

 

특수작물재배지인 드넓은 개간지에서 우측에서 직진 방향으로 둘러보니 이 포장도로를 타고 직진으로 가도 지맥 마루금은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원 지맥 등로는 우측 절개지를 통해 올라 마루금을 만나고 그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한바퀴 돌아 국수봉으로 오르도록 되어 있기에 우측 절개지를 살펴보고 제일 오르기 쉬운 곳을 찾아 그곳을 통해 힘겹게 오른다.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우측 절개지 쪽에서 이어지는 뚜렷한 지맥 마루금을 만나 이제 좌측으로 그 마루금을 타고 진행해 본다.

 

 

제법 굵은 참나누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을 오르니 갑자기 등로 좌측의 낙엽속에서 고라니 한마리가 놀라 뛰어 오르며 저 위 능선으로 도망을 친다.

고라니도 놀라고 이 산객도 놀라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르는 시간이다.

잠시 더 진행하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났던 중부고속도로와 그 뒤로 387봉이 드높게 올려다 보인다.

가야 할 능선은 나즈막해도 오르는 것이 걱정이지만 지나 온 등로는 제아무리 높아도 그저 아름다운 산하로 느껴지는 것을 보며 인간의 간사함을 느껴본다.

 

 

다시 부드러운 오르막 등로 위에 가득 쌓인 낙엽을 밟으며 진행하는 맥 잇기 산행이 참으로 오붓하기만 하다.

처음 계획된 영산기맥 마무리를 못해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이렇게 호젓하게 홀로 멋진 등로를 타고 걸으며 많은 사색을 할 수 있음도 분명 복받은 산객일 것이다.

뚜렷한 등로를 타고 이마에 땀방울 흘리니 드디어 주능선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갈림 삼거리이다.

우측 등로를 버리고 좌측 국수봉 방향의 마루금을 따라 여유를 부려보는 시간이지만 마음만은 비가 내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꾸만 서두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래 전 간벌하였다 치우지 않은 고사목들이 이제 썩어 산행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멋진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다시 낙엽깔린 양타자 등로가 나타난다.

부드러운 양탄자를 밟듯 거닐며 진행하니 아름다운 진달래 한그루가 많은 분홍빛 꽃을 피운채 이 산객의 눈길을 기다린다.

사진 한장 남기고 이제 소나무들도 가끔 보이는 등로로 갈아 타 오르니 갑자기 기대하지 않았던 이정표 하나가 눈길을 잡는다.

살펴보니 국수봉 갈림 삼거리로서 지맥 등로는 우측이지만 250미터 남아 있는 좌측의 국수봉을 잠시 들렸다 내려 오기로 한다.

 

 

국수봉 갈림 이정표를 살펴보니 이 산객이 알지 못하는 산들이 너무나 많음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만 이렇게 멋진 이정표를 세우고 산 이름을 올려 놨으면 그 산상에도 역시 이름표 하나쯤 달아 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65번 송전탑이 서 있고 그 아래 펼쳐진 조망이 박무속에서도 멋진데 그 조망은 국수봉 정상을 다녀 내려오며 보기로 한다.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땀방울 흘리니 금새 국수봉 정상인데 이정표 하나와 정상 이정판이 전부이다.

도척면 진우리마을유래를 찾아보니 국사봉에 대한 자료가 나와 있어 옮겨 본다.

국사봉은 글자 그대로 나라를 생각하며 봉우리를 오르내리던 곳이라 하여 국사봉이라 칭하는데 일설에 의하면 산줄기가 박덩굴에 박이 주렁주렁 달린 듯 한 형세라고도 해 붙여진 이름이란다.

 

 

국사봉 정상은 조망이 없기에 셀카 놀이 후 내려오니 오르며 봤던 65번 송전탑 옆으로 앞으로 진행해야 할 멋진 앵자지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다.

올망졸망한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면 저 멀리 넋고개 뒤에 동원대학교가 존재하고 그 우측으로 정개산이 우뚝하며 그 뒤로 490봉과 천덕봉 줄기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그 마루금 좌측으로는 실촌읍쪽 마을들이 나즈막한 산줄기에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이어져 있다.

저 동원대학 앞에서 점심식사 후 진행 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왠일인지 오늘은 허기도 지지 않고 밥 맛도 별로인 것이 조금은 걱정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송전탑 옆에서 잠시 조망을 즐긴 후 다시 국수봉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나와 이제는 우측 올라온 등로는 버리고 좌측의 직진같은 등로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다시 송전탑 66번을 지나고 그곳에서 바라 본 앵자지맥은 수많은 송전탑과 함께하는 등로처럼 보인다.

380봉 넘어 진행하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는 좌측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한다.

 

 

다시 만나는 67번 송전탑을 통과하고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아름다운 마을이 눈에 들어 오는데 마치 이 산객이 살았던 어린시절의 마을과 유사하다는 생각이다.

잠시 발걸음 멈추고 수양리 마을을 내려다 본다.

수양리 마을은 조선조 말기 까지 구수동, 구양동, 복상동 등 3개 마을이었으나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구수동의 수와 구양동의 양을 따서 수양리로 부르게 되었고 수양리는 4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4개 행정리로 분할하여 1리에서 4리까지 있는 비교적 큰 마을이다.
마을 전체가 산악으로 되어 있어 농경지가 많지 않고 산업화되면서 이 지역에도 중소기업체가 많이 입주하여 있는데 예전에는 양잠을 하는 농가가 많았고 1970년에서 80년대 까지만 해도 인삼을 재배하는 농가가 많았는데 현재는 별로 없다.
눈 앞에 펼쳐진 마을은 수양리 중에서도 수양1리의 명신촌으로 이 마을은 양쪽으로 높은 산이 막혀 있어 이웃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를 오면 긴 봄날에도 해가 일찍 떨어져 금방 어두워진다고 하여 어둔골이라고 불렀는데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마을 이름이 좋지 않다고 하여 밝고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정진하여 잘 살아보자고 하는 뜻에서 마을 이름을 명신촌으로 바꾸었다고 전해지는 마을이다.

 

 

다시 동원대학교와 그 뒤로 이어진 앵자지맥 마루금을 조망한 후 산행을 재촉하니 잡목이 사라진 등로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국수봉에서 이곳으로 이어져 온 송전탑 등로가 빤히 올려다 보인다.

진행 방향으로는 낙엽진 호젓한 등로가 이어지고 그 등로 양쪽으로는 제법 굵은 활엽수가 낙엽을 떨군채 봄의 새싹을 기다리고 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옆에 이정표 한가 서 있는데 좌측으로 방금 전 내려 봤던 수양1리 버스정류장까지 2.3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와 함께 하산 등로가 표기된 이정표이다.

국수봉에서 1.75 Km 지나왔고 천덕봉까지 12.95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도 보인다.

다시 한번 등로 좌측의 수양리 마을을 내려다 보고 가던 길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는 벌목지대도 내려다 보인다.

그 이정표 바로 앞에는 319.3봉 삼각점이 박혀있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삼각점을 지나 뒤돌아 보니 바오 앞에 벌목지대 넘어 저 멀리 송전탑을 타고 국수봉이 멀어지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건넨다.

가야 할 등로에도 좌측으로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그 좌측 아래로는 수양리마을이 펼쳐져 있는데 직진의 앞으로 원적산 천덩봉 라인이 안개속에 아스라히 가물거린다.

그렇게 조금 더 진행하니 302봉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 직진의 302봉 등로를 버리고 우측 사면 등로를 따라 걸어간다.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쌓다 만 돌무더기가 나타나고 사진에 담은 후 계속 갈길을 걸어 간다.

 

 

다시 좌측에 벌목지대 및 수양리를 두고 진행하니 저 멀리 전방에 천덕봉 능선이 아름답게 다가오고 그렇게 진행을 하니 등로 바로 좌측 아래로 파란 지붕을 한 거대한 물류창고 건물들이 눈에 들어 온다.

다시 잡목사이로 들어가 걸어가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는 우측의 등로를 버리고 좌측 띠지가 걸려있는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한다.

삼거리를 지나자 마자 곧이어 해발 275미터의 풍목골산이란 한현우님의 띠지가 보이는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산이다. 

자료를 찾아 보지만 자료조차 없으니 맞게 이름을 걸어 놨기를 바랄 뿐이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풍목골산을 지나 진행하니 금새 또 다른 69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이제 등로 좌측으로는 그 파란 지붕의 물류창고가 바로 발 아래로 다가 와 있다.

그 물류창고를 바라보며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성황당 안부 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신촌리버스정류장 하산 등로가 갈리고 우측으로는 인후리 실천신학대학원 하산 등로가 보이며 국수봉에서 부터는 3.51 Km 지나왔고 천덕봉까지는 11.7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이 곤지암읍의 신촌리 마을은 산밑의 양지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새로 생긴 마을이라고 해서 신촌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물류 창고 아래쪽의 인배마을은 배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였는데 이 사람들의 마음씨가 매우 어질다고 해서 마을이름을 인배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성황당 사거리 안부를 넘어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자작나무 식재림이 보이고 등로 우측으로는 산사태 방지 보호막이 보인다.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국수봉에서 3.86 Km 지나왔고 천덕봉까지는 11.3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적산까지 0.92 Km남아 있다는데 어느 지도를 찾아 봐도 적산을 찾을 수 없으니 안타까운 시간이다.

다시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인후리 하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만난다.

인후리는 본래 이천군 둔면의 지역이였지만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인배와 후동을 병합하여 인후리라 하였으며 신둔면에 편입되었다.

 

 

인후리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니 등로는 분홍빛 진달래꽃과 푸른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아름다운 등로로 변해 있다.

등로 좌측으로 실촌읍 마을을 조망하며 걸어가니 또 다른 이정표가 저 멀리 보이고 그곳 지나자 마자 삼각점 안내판이 보인다.

국수봉에서 4.78 Km 지나왔고 천덕봉까지는 10.44 Km 남아 있으며 등로 좌측으로는 신촌리버스 정류장 하산 등로가 있는 갈림 삼거리이다.

그 이정표 지나자마자 등로에는 해발고도 284.1미터의 삼각점이 박혀있는데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적산이다. 

이제 넋고개와 동원대학교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는 이정표와 삼각점이다.

 

 

284.1봉 삼각점을 지나 전진하니 등로 옆에 피어난 진달래꽃이 더욱 선홍빛으로 빛나고 있어 발걸음 멈추고 사진 몇장 남겨 본다.

다시 낙엽이 폭신하게 깔려있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한국세라믹기술원 하산 종이 코팅지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특이할 것 없는 평이한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옆 갈참나무 두 그루 사이에 고사목을 걸어 나무 철봉처럼 만들어 놓은 장소도 지난다.

인근 마을 주민들이 올라 와 운동을 즐기기 위해 간이 철봉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지 생각되는 곳이다.

 

 

나무 철봉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낙엽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적산에서 0.51 Km 지나 왔고 좌측으로 넋고개까지 0.65 Km 그리고 천덕봉까지는 9.9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살펴보니 등로는 이곳에서 직진이 아닌 좌측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하여야 하는데 살펴보니 직진을 하면 3번 4차선 고속화도로로 내려가는 절개지를 내려갈 수 없고 더욱이 내려간다 해도 철망이 가로막아 진행이 불가능하므로 이렇게 좌측 등로를 따라 우회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좌측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낙엽 마루금을 지나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송전탑 건설을 위해 만들어진 비포장 임도처럼 보인다.

비포장 임도로 내려가니 벌목된 장소에 키 작은 소나무들이 식재되어 있고 등로 우측으로는 이제 동원대학교와 주능1봉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와 있다.

동원대학교 좌측의 신촌리와 수양리 쪽 산은 골재를 채취하기 위함인지 절개되어 사라지는 아픈 현장도 보인다.

동원대학교와 주능1봉 그리고 정개산을 올려다 보며 넋고개를 향해 조금은 빠르게 내려가 본다.

 

 

비포장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임도 좌측에 녹슨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고 그 우측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곧바로 민가들이 보이고 그 민가 앞쪽으로는 이동통신탑이 우뚝 솟아 있다.

조금 더 내려가니 민가처럼 보였던 건물은 민가가 아닌 천황암이란 절이였으며 그 천황암 내려가는 포장도로 옆에는 적산에서 0.83 Km 지나왔고 넋고개까지는 0.33 Km와 천덕봉까지 9.61  남아 있다는 이정표도 서 있다.

그곳 천황암에서 강아지 두마리의 요란스런 환영인사를 받고는 재빨리 포장도로를 따라 그곳을 통과한다.

 

천황암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내려가니 밭이 펼쳐져 있고 그 밭 사이에는 대학교 근처라 그런지 원룸이 눈에 띈다.

등로 옆 밭에서는 아낙이 봄 나물을 캐기 바쁘고 잠시 인사 나누고 걸어가니 금새 3번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넋고개에 도착을 한다.

도로로 내려서는 바로 옆에는 현위치 넋고개에 적산에서 1.16 Km 지나왔고 천덕봉까지는 이제 9.28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갑기만 한 시간이다.

이곳에서 도로를 건너지 말고 우측으로 조금 올라가 나타나는 마당곰탕 식당에 들려 점심식사를 하고 진행을 하였으야 했는데 왠일인지 허기가 지지도 암ㅎ고 밥맛도 없어 식사를 포기하고 좌측으로 조금 내려가 보니 동원대앞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넋고개는 이천군 신둔면과 고아주군 실촌면의 경계를 이루고 이 고개는 기치미고개와 함께 우리나라 중앙부를 가르는 산업도로가 관통하고 있어서 옛날부터 교통의 요지이다.

넋고개와 기치미고개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오기에 적어 본다.
조선 선조때 이야기로서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물밀 듯이 서울을 향해 북상하여 오자 당시 조정에서는 도순변사 신립장군과 종사관 김여물을 보내 왜군을 막게하였는데 4월 26일 충주에 다다른 신립은 처음에는 문경 새제에서 적을 막으려 했으나 길이 너무 험해서 말달리고 활을 쏘기가 불편하다고 생각되어 달래강을 뒤에 두고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

마침내 왜군과 전투가 벌어지자 시중의 불량배들을 모아 서둘러서 편성한 겨우 수천명의 군사들로서는 조총을 앞세운 왜군에 당할 길이 없어 참패하고 신립과 김여물은 적병 수 십명을 죽이고는 탄금대 위에서 몸을 던져 물에 빠져 죽고 말았는데 부하들이 시체를 건져 서울로 오는 도중 장군님하고 부르면 관속에서 오냐하는 대답소리가 났다.

이천읍을 지나 기치미고개에 이르러 또다시 장군님하고 부르니까 대담 대신 에헴하는 기침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넋고개에 이르러 또다시 장군님하고 부르니까 그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이 신립장군의 넋이 기침을 한 고개라 하여 기치미고개와 장군의 넋이 아주 떠난 고개라하여 넋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넋고개의 한문표기는 여러 문헌에서 광현으로 나와 있어 넓고개가 옳은 명칭으로 여겨지는데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넋고개와 기치미고개의 전설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다.

 

 

넋고개 이정표 앞에 설치된 횡단보도를 통해 3번 4차선 지방도로를 건너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오르니 도로 옆에 버스 정류장이 보이고 곧이어 도로 좌측으로 동원대학교 정문이 보인다.

원 지맥 등로는 그 동원대학교 지나 3번 도로를 타고 고갯마루까지 올라 가 좌측 능선을 따라 진행해야 하지만 그곳은 막혀있기에 어쩔 수 없이 동원대학교 정문을 통해 교내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서울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내려 와 이곳에서 하차한 후 원적산을 산행하고 이천 산수유마을로 내려가 노란 산수유꽃을 구경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계절이기 때문에 배낭을 둘러멘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동원대학교 정문을 통해 교내로 들어가니 도로 좌측에 광역버스 정류장이 보이고 조금 더 오르니 도로 좌측에 축구장이 보인다.

그 축구장을 지나니 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지고 그 위에 학교 건물들이 보이는 지점 우측 조경석을 넘어 좌측 능선으로 진행하였다는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읽었기에 그곳을 기웃거려 보지만 좌측 능선이 너무나 가파른 된비알 오르막이고 새롭게 단장하여 오르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기에 다시 도로를 타고 조금 더 올라 보기로 한다.

도로를 따라 오르니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고 우측 도로를 따라 첫번째 건물쪽으로 오르니 그곳 건물이름이 새천년관이다.

그 새천년 건물 앞 도로를 타고 통과하여 우측 능선으로 가 보니 그곳으로도 많은 선답자들이 올랐는지 등로가 보이고 몇개의 띠지가 나풀거린다.

그곳으로 오르기 직전 새천년관 건물 앞 도로에서 우측을 보니 넋고개로 이어지는 원지맥 등로와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앵자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원 지맥 마루금과 그 우측의 3번 4차선 지방도로 그리고 그 주위로 형성된 수양리쪽 마을을 내려다 보고 절개지 우측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가파른 된비알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그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오르니 등로가 다시 좌측 동원대학교 방향의 절개지 옆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지나 온 마루금과 수양리 마을을 다시 한번 더 조망해 본다.

다시 낙엽 깔린 호젓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봉우리 넘어 곧바로 현위치 주능1봉이란 이정표에 우측으로 약수터 그리고 직진의 진행 방향으로 산수유 축제장 8.03 Km란 거리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으로 오르니 제법 등산객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우측으로 범바위약수터 하산 갈림길을 지나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오르막 등로로 오르니 금새 벤취2개가 있는 쉼터에 도착을 한다.

그 벤취 쉼터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나고 좌측으로는 봉현리 하산 갈림길이 그리고 우측으로는 이제부터 올라야 할 정개산 860미터와 원적산 천덕봉 5.28 Km가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 이정표이다.

그 이정표 우측 옆에는 현위치 2.3 8부능선(공터)란 이정목도 보이는데 이곳에서 등로는 우측 원적산 천덕봉 방향이다.

 

 

봉현리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꺽어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한 후 다시 오르니 금새 주능2봉 이정표가 보이는데 천덕봉까지 5.18 Km 남았고 지나온 주능1봉에서는 600 m 지나 왔다는 거리 표시가 되어 있다.

그 이정표 맞은편에는 해발고도 433.4봉이라는 삼각점이 있는데 이곳이 지도상에는 정개산이라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등로 상에 있는 이름과 옛 지도상에 있는 지명이름이 다르니 잠시 헷깔릴 뿐이다.

 

 

그 433.4봉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해 송전탑 25번을 밑으로 통과하니 소나무 등로가 나즈막하게 내리막 등로로 이어진다.

앞서 진행하는 두명의 산꾼이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며 진행하는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가니 현위치 남정리갈림길이란 이정표가 서 있는데 우측으로 남정리 하산 등로가 있는 갈림 삼거리이다.

범바위약수터에서 1.19 Km 지나왔고 천덕봉까지는 4.88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보인다.

남정리는 이천군 신면의 지역으로서 남정골 또는 남정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수하리 일부를 병합하여 남정리라 하였으며 신둔면에 편입된 마을이다.

 

 

남정리 갈림 안부에 있는 이정표를 추억으로 남기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제법 굵은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바위가 박혀있는 무며8ㅇ봉을 지난다.

잡목과 소나무가 잘 어우러진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금새 등로를 덮고 있는 녹색 그물망이 보이는데 등로 우측으로는 내용물이 빠져 버린 안내판 철구조물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지도를 보니 활공장이라는데 너무나 좁아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는듯 보인다.

 

 

그 활공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정개산 또는 소당산이라 불리우는 암봉 정상에 도착을 하고 그곳 정상에서 등로 우측을 내려다 보니 지석리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는데 이 지석리는 이천군 신면의 지역으로서 괸돌 또는 지석이라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지석리라 하였으며 신둔면에 편입되었다.

잠시 사진 몇장 담고 자세히 보니 마을 좌측 능선에는 무슨 도로 공사를 하는지 거대한 터널 2개가 뚫리고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주위 풍경을 조망한 후 다시 전진하니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 하나를 지나 지금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천덕봉과 원적산 주능선이 참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가야 할 지맥 능선이 아름답게 조망되는 정개산 정상에서 이제는 등로 우측 아래를 내려다 보니 신둔면의 드넓은 들판이 참으로 멋지게 펼쳐져 있다.

생각보다 넓게 펼쳐진 신둔면은 이천시의 2읍과 9면의 하나로서 원래는 둔지산과 신동이었다.
개화기 이후 읍과 면 제도의 확립과 함께 둔지산면과 신동면이 되었다가 1905년 신면과 둔면으로 개칭되었는데 둔지산면 또는 둔면은 수남, 고척, 마교, 용평, 용면, 후동, 인배, 소정, 수북, 광현등 10개동리를 관할하였는데 이 당시 개편하면서 용평과 용면을 병합하여 용면리로 인배와 후동을 병합하여 인후리로 개칭하였다.
신동 또는 신면은 수하, 도월암, 지석, 절음, 송정, 아리역의 6개 리였다가 1905년에 수하, 도월, 지석, 남정의 4개동리로 병합하였다.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신면의 4개리와 사면의 도봉, 장동의 2개동리를 병합하여 신동과 둔지산의 이름을 따서 신둔면이라 개칭하였다.
1938년 사음리와 송정리가 이천읍으로 분할 예속되어 지금에 이른다.

 

신둔 들판을 조망한 후 다시 진행하니 현위치 정개산(소당산정상)이란 이정표가 보이고 우측으로 바위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몇명의 등산객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그곳 바위봉으로 올라 주위 풍경을 둘러보고 정상석 한번 사진에 담기 위해 기다려 보지만 한참을 지나도 비켜줄 의사가 없을 것 같아 사진 한장 담고 싶다고 하니 그제서야 귀찮은듯 자리를 피해 준다.

소당산이라고도 불리는 정개산(407봉)의 정상은 바위봉우리로서 오늘 산행 중 제일 높은 원적산(천덕봉)과 원적산이 서남쪽으로 산줄기를 뻗어 내리면서 만들어 낸 정개산 모두 전형적인 육산(흙산)으로 되어있는데도 유독 정개산의 봉우리 부분만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정상표지석에는 한자정개산(鼎蓋山)이라 새겨 놓았고 바로 옆에는 소당산이라고 다른 한글 이름으로 표기해 놓았다.

정개산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소당산이라는데 정상에 서면 광주시와 이천시의 경계에 있는 산답게 좌측으로는 광주시가 우측으로는 이천시의 모습이 잘 조망된다.

소당산이란 산 이름은 옛날에 이곳 지석리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소 한 마리를 공양물로 바치고 제사를 지냈다 하여 우당산이라고 부르는데서 유래된 산 이름이라는데 이곳에서 천덕봉 정상까지는 약 4.5 Km가 남았다.

 

 

 

이제 날씨가 더욱 흐려지고 하늘에선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솟아질듯 흐릿하다.

정개산 즉 소당산을 출발 해 진행하니 등로 옆에 벤취 하나가 있는 쉼터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하니 금새 봉현리갈림 이정표가 나타난다.

정개산에서 50 m 지나왔고 천덕봉까지는 4.37 Km 남았다는 거리 표시가 적혀 있다.

등로 좌측으로 봉현리 하산 갈림 등로가 보이는데 이 마을은 조선조 말 대한제국시대까지는 3개 마을이었는데 즉 상조현동과 하조현동 그리고 설월리로 되어 있었으나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행정구역을 축소 조정하면서 3개 마을을 통합하여 봉현리로 만들었다.

조현의 새 조자를 새 봉자로 바꾸어 이름 지었다.
이 마을은 실촌면에서도 오지마을에 속하는데 3번 국도 신촌리의 되때기 마을에서 지방도를 따라 들어가면 봉현리의 새재 마을에 이르게 되고 3번국도 수양리 돌문이 마을에서 지방도를 따라 넘어가면 봉현리의 설월 마을에 이어지며 만선리에서 남촌 골프장 입구를 거쳐 들어 갈 수도 있다.
서쪽으로는 부항리와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신촌리 동쪽으로는 정개산과 원적산의 능선을 따라 이천시 신둔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봉현리 갈림 삼거리를 지나 다시 계단을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옆에 벤취 쉼터가 나타나고 곧이어 부드러운 등로가 잠시 이어진다.

낙엽 깔린 등로를 따라 느긋하게 걸어가니 안부가 나타나는데 그 안부 옆에는 우측으로 지석리 그리고 좌측으로는 봉현리 갈림 사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정개산에서 250 m 지나 왔고 천덕봉까지 4.17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아직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아 진행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안개같은 가랑비가 흩날리는 곧 비가 내릴 것이고 그러면 오늘 예상했던 남이고개까지 진행이 가능할련지 걱정이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석리갈림 사거리를 지나 다시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안전 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땀방울 흘리며 오르다 보니 등로 옆에 보라색 제비꽃이 피어 수줍게 이 산객을 반겨 준다.

어려운 산행이지만 잠시 앉아 눈을 마주대하고 사진 한장 어렵게 담아 본다.

다양한 종류가 있는 제비꽃은 근근채, 반지꽃, 병아리꽃, 씨름꽃, 오랑캐꽃, 외나물꽃, 자화지정, 장수꽃이라고도 하는데 원줄기는 없고 잎은 땅바닥에 모여달린다.

잎은 피침형으로 밑이 둥글거나 심장 모양이고 끝은 뭉뚝하며 잎가장자리가 밋밋하고 잎자루는 매우 길다.

짙은 자주색의 꽃은 4에서 5월에 긴 꽃대 끝에 피는데 5장의 꽃잎 중 아래쪽에 있는 꽃잎은 거를 형성하고 열매는 삭과로 7월에 익는다.

이 식물은 제비꽃속 식물 중 번식률이 가장 좋으며 번식은 포기나누기 또는 씨로 한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태독·유방염 등 부인병과 중풍, 이질, 설사, 진통, 인후염, 황달, 독사교상 등의 치료에 약재로 사용하며 발육촉진제, 간장기능촉진제로 쓰인다.

 

 

다시 주능선에 올라 밋밋한 등로를 따라 소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나즈막한 무명봉 지나 다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거대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벤취 쉼터가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현위치 골프장갈림길 이정표가 서 있는데 좌측이 광주로 하산하는 하산 등로로서 그 좌측 방향으로 내려가면 남촌골프장으로 내려 갈 수 있는 등로이다.

정개산에서 750미터 진행해 왔고 천덕봉까지는 3.67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를 보니 한시간 조금 넘으면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곳 골프장 갈림 이정표를 지나니 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내려가다 앞을 보니 잡목 사이로 올라야 할 주능3봉이 너무나 높게 우뚝 솟아있어 두다리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통나무 계단을 타고 로프에 의지한 채 조심하며 내려가니 저 앞에 안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안부를 지나 오르는 오르막 입구에 도암사거리 이정표 하나가 보인다.

우측으로 도암리 하산 등로가 나 있고 이어지는 등로는 급하지 않은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걸어 올라 본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이제부터 제법 많은 양의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잠시 비옷을 입을까 고민하다 배낭 커버만 씌운 채 그냥 진행하기로 한다.

늘 인적없는 지맥 등로는 홀로 오르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앞에 줄지어 오르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만 다가오는 풍경이다.

등로 좌측으로 차돌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장동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지만 짙은 안개로 인해 보이지 않으니 그냥 오르막 등로를 따른다.

그렇게 오르니 등로 좌측에 많은 벤취 쉼터가 보이고 곧이어 주능3봉에 도착을 한다.

오래 전 산친구들과 오르며 수다를 떨었던 추억을 기억하며 아쉬움을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주능3봉에서 부터는 비가 제법 내리기에 DSRL 카메라를 배낭속에 잘 넣고 똑딱이 방수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담으며 진행을 한다.

진행하다 허기를 못참고 잠시 자리에 앉아 준비한 사과 하나와 양갱이로 허기를 달랜 후 출발이다.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내려가니 장동리 갈림 안부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우측으로 장동리 하산 등로가 열려있고 정개산에서 2.82 kM 지나왔고 천덕봉이 이제 1.6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에 힘을 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장동리는 본래 이천군 사면의 지역으로 신라 때 황무현이 있어 장골과 장곡 및 장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남촌을 병합하여 장동리라 하였으며 신둔면에 편입되었다.

 

 

장동리 갈림 이정표 안부를 통과해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제법 굵은 소나무들이 반긴다.

꾸불꾸불 삐둘삐둘 자라고 있는 거목의 소나무들을 바라보며 호젓하게 걸어가니 다시 무명봉을 넘어 낙엽 깔린 안부가 나타나는데 한쪽에는 돌무더기가 또 한쪽에는 이정표가 서 있다.

살펴보니 현위치 천덕봉 1260 m 지점으로 이제 정개산에서 3.16 Km 진행해 왔고 천덕봉까지는 1.26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되어 있다.

 

 

천덕봉 1260 m 남아 있다는 안부 이정표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멧돼지들이 만들어 놓은 드넓은 식흔을 만난다.

먹고 살기 어려운 한겨울을 그래도 잘 견디고 다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땅을 갈아 먹이를 찾았던 흔적이 있는 식흔을 보니 괜시리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도 든다.

식흔을 지나니 묘지 한기가 나타나고 좌측으로 우회해 통과하니 정개산에서 3.66 Km 지나왔고 천덕봉까지는 0.7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반갑다.

이정표를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오르니 다시 무명봉에 휘어진 나무가 죽어가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무명봉을 지나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설치된 로프를 따라 조심하며 내려가니 앞으로 올라야 할 천덕봉과 그 우측으로 아쉽지만 오르지 않고 지나쳐야 하는 원적산이 안개속에 얼굴을 숨긴채 내려다 보고 있다.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3901부대장의 사격훈련장 출입금지 안내판이 넘어져 있고 살펴보니 등로 우측으로는 군부대 사격장이라 폭발 위험이 있으니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이였다.

등로 우측으로는 골프장이 잡목사이로 보이고 지나온 등로도 뒤돌아 보는데 그 옆에는 버들강아지가 피어나 완연한 봄이 되였음을 알려준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벤취 쉼터와 고사목이 묘한 풍경을 만드는 곳에 도착해 긴 한숨을 내쉬며 잠시 쉬어 간다.

 

 

벤취 쉼터와 고사목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또 다른 군부대 안내판과 그 위로 원형 철조망이 나타난다.

이제 완전히 벌목되어 민둥이 된 천덕봉 오르는 등로가 한눈에 들어 오는데 생각보다 많이 내리는 안개비로 인해 조망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천덕봉 오르는 등로의 좌측은 마루금으로 인해 안개가 흩어지지 못하고 머물며 하얀 백색의 나라를 만들고 있지만 우측 군부대 사격장은 강한 바람으로 인해 안개가 머물지 못하고 흩어져 약간의 조망을 제공하고 있는 형상이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금새 헬기장에 도착해 몇장의 사진을 남겨 본다.

 

 

이제 그 헬기장을 통과해 민둥의 등로를 따라 젊은 학생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오르니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약간의 한기를 느끼지만 오르막 등로를 오르면 이마엔 금새 땀방울이 흐르는 그런 날씨이다.

잠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다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주능3봉에서 주능 2봉 그리고 정개산이 안개속에 가물거린다.

민둥의 등로를 따라 어렵게 산행을 이어오고 있는 젋은 중학생들의 모습도 사진에 담겨진다.

 

 

조금 더 오르니 이제 올라야 할 깃대봉과 천덕봉 방향으로 등로 위에 하얀 안개가 춤을 추고 있다.

하얀 안개가 머물다 강한 바람에 약간 흩어지고 흩어지다가는 다시 산줄기에 막혀 머물며 하얀 세상을 만들고 있다.

천덕봉 지나 우측으로 휘돌아 가는 원적산을 지나 이천 산수유마을로 내려가 노란 산수유꽃을 감상한 후 이천 시내로 나가 좋은 추억을 남겼던 많은 산친구들을 떠 올리며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올련지 안타까움만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뒤돌아 보고 다시 몇발작 오른 후 앞을 올려다 보기를 몇번 그렇게 급하지 않게 진행을 해 본다.

많은 사닞을 남기며 오르니 그 찰나의 순간에도 등로의 풍경은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남겨진다.

내리는 빗줄기 때문에 추적거려 산행에는 별로이지만 이렇게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을 선사하는 이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시간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오르다 보니 풍향계가 잘려져 나간 깃대봉에 도착을 하는데 강한 바람에 의해 다시 약간의 한기를 느낀다.

 

 

다시 깃대봉을 출발해 등줄기에 땀방울을 흘리니 이것이 땀방울인지 빗방울인지 모르게 온 몸이 젖어 든다.

알록달록 화려한 등산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이 뒤따라 올라오고 앞을 보면 드높은 천덕봉 줄기를 가운데 두고 좌우측으로 완전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힘들다가도 이런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또 그 어려움을 잊는가 보다.

짙은 안개가 등로를 뒤덮어 조금은 걱정을 했지만 오를수록 안개가 한쪽으로 몰리면서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그렇게 바위 암릉구간을 지나 천덕봉 정상 근처로 오른 후 뒤돌아 보니 춤을 추는 안개의 춤사위가 산객의 발길을 붙잡고 놔주질 않는다.

 

 

그렇게 약간의 한기를 느끼며 걸어 오르니 드디어 넓은 헬기장으로 이뤄진 원적산 천덕봉 정상이다.

많은 어린 학생들이 올라 와 땀범벅이가 되어 있지만 강하게 불어 오는 바람으로 인해 금새 다시 한기를 느낀다.

학생에게 부탁해 증명사진 한장 남기고 잠시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은 후 삼각점을 확인한다.

이천시 북쪽에 위치하여 인근 광주와 여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원적산은 해발 634미터의 주봉(천덕봉)과 406미터의 준봉을 거느리고 있는 이천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서 전체적인 능선이 부드럽고 완만해 보이지만 주산 천덕봉 안쪽으로 곳곳에 기암 바위가 씨를 뿌려 놓은 듯 널려 있어 특이함을 주고 특히 천덕봉 정상에 서면 이천, 여주, 광주 일대 평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마치 구름위에라도 올라선 듯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라 한 번 올라본 사람이라면 절대 그 시원함을 잊지 못한다.
산행기점인 경사리마을은 전국 제일의 산수유 산지로 500년 이상 수령의 산수유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봄이면 농가 울타리와 논밭두렁이 산수유의 노란 물결로 일렁이고 늦가을에서 초겨울쯤 되면 들판 곳곳에서 붉은 열매를 따는 농촌의 풍요로운 전경이 등반객들의 마음을 넉넉하게 채워준다.

몇년전 산수유 축제 때문에 들렸을 땐 원적산을 들렸다 경사리 산수유마을로 내려가 즐겼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은 앵자지맥 마루금을 통해 걸어야 하기에 동남쪽 방향의 등로를 버리고 북동쪽 방향의 등로를 통해 진행하여야 한다.

 

 

잠시 더 머물며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기에 앞서 진행 방향의 등로를 사진에 담아 본다.

564봉 헬기장이 높게 솟구쳐 있는데 안개가 춤을 추고 있어 또 다른 풍경으로 다가 온다.

이제 가야 할 등로까지 확인을 하였으니 좌측 등로를 타고 빠르게 진행을 해 본다.

 

 

빗물에 적은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금새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 무명봉 좌측으로는 검정 그늘막이 계속 둘러쳐 있다.

잡목이 낙엽을 떨구고 쓸쓸하게 등로를 지키는 그곳 등로를 따라 빗소리를 듣는 시간도 나쁘지는 않다.

특히 많은 양의 빗방울이 아니기에 등산화에는 아직까지 큰 영행을 미치지 않기에 참을만한 산행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진행하니 비 내리는 등로 한쪽에 비를 막는 타프를 쳐 놓고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 등산객들을 만나 잠시 인사 나누고 빠르게 진행을 한다.

 

 

그렇게 빗물에 젖어 있는 낙엽 등로를 따라 여유롭게 걸어 진행하니 금새 또 다른 헬기장에 도착을 한다.

헬기장에서는 잡목 위로 방금 전 지나온 원적산 천덕봉이 안개속에 가물거린다.

오르기 위해 바라보는 산은 왜 그리 높고 멀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지나고 나면 왜 그리 가까우면서도 높지 않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이곳 헬기장에서도 하산 등로는 좌측 방향이다.

 

 

헬기장을 출발해 다시 빗물에 젖어 있는 푹신한 낙엽 등로를 내려가니 등로는 우측 사면길로 나 있듯 이어진다.

약간의 바위가 혼재된 아름다운 등로를 따라 무심으로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또 하나의 헬기장이 나타난다.

564봉의 헬기장으로서 헬기장 정상에는 천덕봉에서 0.7 Km 진행해 왔고 좌측으로는 주록리 2.7 Km 하산 등로 표시가 우측으로는 유사리 3.1 Km와 삼합리 2.0 Km 남아 있다는 방향 및 거리 표시가 있는 이정목이 서 있다.

이제부터 저 삼합리 방향으로 진행하면 될 것이다.

 

 

두번째 헬기장을 지나 삼합리 방향으로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낙엽 등로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금새 천덕봉에서 0.9 Km 지나왔고 삼합리까지 1.8 Km 남아 있다는 이정목이 보인다.

그 이정목을 지나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내려간다.

특히나 빗물에 젖은 낙엽이 미끄러지며 여간 어렵게 내려가는 시간이 아니다.

 

 

가파른 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을 한동안 조심하며 내려가니 약간 덜 가파른 낙엽 등로가 나타나고 다시 호젓한 기분으로 걸어 본다.

잠시 평이한 좋은 등로를 따라 내려가는가 싶던 등로는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다시 한동안 조심스럽게 그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 본다.

잠시 더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좌측이 벌목된 지대가 나타나더니 그 바로 앞에 천덕봉(정상) 까지 1.0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이정표를 지나 조금은 수월해진 낙엽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무명봉 지나 좌측으로 붉은색 지붕을 한 건물이 나타난다.

그 건물을 지나자 마자 멋진 잣나무 군락지가 펼쳐지는데 그 잣나무 군락지를 타고 걸어가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였다.

멋진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자 삐뚤빼뚤한 소나무들이 나타나더니 금새 묘지와 밭이 혼재된 등로가 나타난다.

 

 

첫번째 만난던 묘지에서 너무나 흥건한 물기 때문에 그곳 묘지 지대로 진행을 못하고 우측에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가 잠시 걸어 진행하니 아무래도 마음이 찜찜해 다시 묘지지대로 올라 선다.

묘지지대로 올라가니 옷가지만 젖었던 몸의 등산화까지 젖어오는 느낌이라 더욱 조심하며 걸어 본다.

처음에는 한두기의 묘지만 있는줄 알았는데 계속 진행하다 보니 소규모의 공동묘지라 해도 될 정도로 많은 묘지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다.

 

 

묘지를 따라 진행하다 보니 등로 좌측으로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살펴보니 삼합리마을이다.

오늘 예정된 구간은 남이고개까지인데 결국 저 앞에 있는 삼합리의 국정개 마을이 있는 삼합리고개에서 마무리를 하게 되였으니 아쉬움이 남아 있는 시간이다.

삼합리는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에 있는 마을로서 행정구역 당시에 국정포, 야포, 지음의 세 자연부락을 합하였다고 해서 삼합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는 마을이다.

국정포(국정개)는 오늘 산행의 마지막 삼합리고개이기에 그때 설명하기로 하고 지음(징골)과 야포(풀무개) 마을에 대한 자료만 찾아 올려 보기로 한다.
지음(징골)은 고려 말기에 이곳에 피신해온 공민왕이 매일 음주가무를 즐겨 징소리가 주위에 널리 퍼졌다고 하며 그리하여 징골이라 하게 되었다는데 이는 점골이 변한 말로 보이며 야포(풀무개)는 천덕봉으로 피신온 고려 군사들이 원나라와 싸울 때 이곳에서 풀무질을 하여 무기를 만들었다고 하여 이 마을을 풀무개라고 하였다고 한다.

마을을 조망하며 조금 더 걸어가니 묘지 마당에 고개 숙인 예쁜 할미꽃들이 많이 피어나 어렵게 사진에 담아 본다.

 

 

묘지를 지나니 소나무가 서 있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능선으로 조금 들어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절개지가 펼쳐지는데 그 아래에는 많은 철제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그 철제 제품들이 널려있는 공장인지 창고지대를 내려보며 걸어가니 그 넘어 저편에는 여전히 삼합리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좌측 절개지 위 등로에 키 작은 소나무들이 식재된 지역이 나타난다.

 

 

그 소나무들이 식재된 지역에서 절개지 앞을 내려다 보니 오늘 산행 날머리인 8번 2차선 지방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가면 삼합리의 국정개 마을이 보이고 삼합리고개도 내려다 보인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니 철가공 공장의 규모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부터 능선을 타고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려워 우측 시멘트 포장 임도를 따라 삼합리고개로 진행을 한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빗방울들이 온몸으로 번지며 등산화까지 적시기에 이렇게 도로를 따라 한참을 돌아 가지만 우회하는 것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드디어 오늘 산행 날머리인 8번 2차선 포장도로 위 삼합리고개에 도착을 한다.

원래 지맥 마루금은 저 포장 도로를 따라 내려 와야 하지만 이 산객은 좌측 8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이곳 삼합리고개로 도착을 한다.

삼합리 국정포(국정개)마을은 고려 말기 공민왕이 부하를 거느리고 이곳에 피신해 왔을 때 이 곳의 샘물로 식수를 삼았다고 해서 국정 또는 국정포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곳에서 잠시 고민을 하는데 남이고개까지 갈것인지 말것인지 하는 고민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 스마트폰도 놓고 왔고 비도 많이 내려 등로가 완전히 젖어 있기에 무리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마음을 비우고 오늘 산행은 이곳에서 마무리를 한다.

이곳에서 내일 산행 들머리를 확인하고 젖은 옷을 갈아 입은 후 앞에 있는 공장으로 들어 가 버스 시간표와 택시회사 전화번호를 확인한 후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는데 20여분이면 온다던 버스는 약 50여분이 지난 후에야 오는데 그 버스를 타고 곤지암읍으로 나가 그곳에서 다시 1113-2번 공용버스를 이용해 강변역까지 이동한 후 지하철 2호선으로 무탈하게 집으로 복귀한다.

스마트폰 없이 진행하기에 어려움이 있었고 또한 점심식사를 거르고 진행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무탈하게 제2구간도 마무리함을 자축해 보는 시간이다.

내일은 오늘 적게 걸었던 구간까지 걸어야 하기에 쉽지 않은 산행이 되겠지만 잘 준비하면 큰 무리없이 앵자지맥도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좋은 느낌으로 잠자리에 조금 일찍 든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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