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경기도 용인시와 이천시 그리고 광주시의 앵자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4년 03월 23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맑고 화창한 기온에 약간의 박무가 있어 시야가 제한되었고 산행하기 약간 무더웠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04도에서 영상 14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중소기업 인력개발원 주차장-한남정맥 마루금-운동시설 및 문수봉 약수터-문수산 마애보살상-문수봉(403.2봉, 앵자지맥 분기점)-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산너울2길 안내판-송전탑-현위치 1.1 문수산 이정목과 사암리 갈림 이정표-곱든고개-동물이동통로-산너울2길 용인팔경 안내판-벤취봉-어두니고개(골배마을성지와 미리내성지 갈림 사거리 이정표)-칠봉산(400봉)-벤취쉼터-갈미봉(441봉)-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용실고개-양지파인리조트 스키장-철망-용실산(422봉)-독조지맥 갈림 삼거리 이정표(무수막과 청소년수련원)-327 무명봉-247.2봉 삼각점-양지파인리조트 진입 2차선 포장도로-양지파인리조트 정문-점심식사(신의주순대국)-배미실고개-제일리 갈림 사거리-양지사거리-마수고개-총신대학교 진입 포장도로-영동고속도로 지하통로-송전탑 53번(마루금 복귀)-삼각점봉-송전탑-송전탑 42번-송전탑 43번-420.6봉 삼각점-순교자 기념관 갈림 안부-안전목책과 로프 구간-벤취쉼터-송전탑 44번-나무계단-순교자기념관과 정수리 갈림 사거리 안부-군 벙커-안전목책과 로프 구간-금박산 갈림 삼거리-425봉 군초소-군 철조망 따라 진행-비포장 임도-벌목지대-방도리고개(2차선 포장도로)-비포장 임도-콘크리트 말뚝봉-승마체험장-자작나무 조림지-갈림 임도 삼거리-까치봉(264봉)-알바-자작나무 조림지(마루금 복귀)-시멘트 포장도로-밀양박공 묘지-묘지지대-공장 절개지-공장지대 포장도로-세인블루공장-사오정슬리팅-한국브이디-기성-2차선 포장도로-대한푸드텍-방도1리(되재마을)표지석-방도1리화승상사 버스 정류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2.00 Km (지맥 마루금 약 19.5 Km와 접속구간과 알바거리 약 2.5 Km 포함)
산행시간 : 사진 찍으며 꾸준한 속도로 08시간 10분 (06시 35분부터 14시 45분까지)
교통편 : 갈 때엔 옆지기 도움으로 애마 이용
귀가할 땐 방도1리화승상사 버스정류장에서 곤지암 택시로 곤지암 이동(8,000.- 원)
곤지암 버스정류장에서 광역버스 1113-1번으로 강변역
강변역에서 2호선 지하철로 귀가
한남앵자지맥이란 ???
한남앵자지맥이란 한남정맥상에 있는 문수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곱든고개, 칠봉산(447 미터), 갈미봉(447 미터), 용실산(422 미터), 배미실고개, 마수고개, 방도리고개, 성황당고개, 해룡산(367 미터), 국수봉(427 미터), 정개산(433 미터), 천덕봉(635 미터), 앵자봉(667 미터)을 거쳐 염치고개로 고도를 낮추다가 다시 솟구쳐 해협산(531 미터)과 정암산(403 미터)을 빚어놓고 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63.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두려움과 설레이는 마음으로 또 새로운 산줄기를 찾아 떠났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집안에 어려운 일도 있었고 또한 개인적으로도 바쁜일과 약간의 무릎 이상으로 몇개월 동안 쉬고 나니 다시 산행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르고 이렇게 미친듯 산행을 이어가 본다.
원래 어제 토요일과 오늘 일요일 동안 남아 있는 영산기맥이나 진양기맥을 마무리 하려고 하였으나 함께 산에 오르던 산친구들이 백두대간 마지막 졸업을 하는 산행이기에 동참 해 축하도 해 주고 탁배기 한잔 나누고 싶어 그곳을 떠났다 오니 일요일 하루가 걱정이 돼 이곳 앵자지맥에 들려 본다.
일이 생기거나 멀리 지방에 내려가기 어려운 조건이면 쉽게 달려 올 수 있는 지맥이 있으니 아직은 괜찮지만 가까운 지맥 산행이 끝나고 나면 그것도 문제가 될 듯한데 그것은 그때가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출발한다.
백두대간 완주 산행 후 종산제를 지내고 마신 탁배기가 채 깨기도 전에 사당에 도착해 다시 산 이야기를 안주 삼아 이슬이 친구를 하다 보니 밤 늦게 집으로 귀가를 한다.
옆지기에게 어렵게 부탁해 새벽 4시 15분에 일어 나 간단히 배낭 챙겨 옆지기와 함께 잡을 나서는 시간이 5시, 양지 IC로 빠져 나가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에 들려 콩나물 해장국 하나로 허기를 달랜 후 산행 들머리에 도착을 하니 아침 6시 30여분을 넘기고 있다.
벌써 더워지는 날씨에 등줄기와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을 흘리다 보니 어느새 한남정맥 상 앵자지맥 분기봉인 문수봉에 도착해 어렵게 셀카를 작동시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앵자지맥도 무탈하게 완주 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보면서...
오늘도 새벽 일찍 옆지기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이곳 산행 들머리까지 오게 되였다.
양지 IC를 빠져 나오면 많은 식당들이 24시간 문을 열고 영업을 하고 있기에 아침 식사도 함께 즐긴 후 들머리로 가는데 생각보다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조금은 걱정을 하였지만 이곳 근처에 용담저수지가 있어 지역적 특성 때문이란 걸 알기에 일출을 위해서는 조금은 늦은 시간이라고 직감을 한다.
차에서 내려 사진 몇장 찍다 보니 옆지기가 주차장까지 태워준다기에 다시 조금은 편안하게 산행 들머리까지 가게 된다.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중소기업인력개발원 방향으로 들어가니 금새 날이 밝아지며 오늘 올라야 할 한남정맥 상 앵자지맥 분기봉인 문수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애마를 몰아 들어가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은 삼성국제경영연구소이고 좌측이 가야 할 중소기업인력개발원 방향이다.
좌측 도로를 타고 조금 더 진행하니 본관 건물이 보이는 곳 우측으로 주차장 표시가 되어 있고 그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포장된 곳 우측 앞으로 산책로 안내판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 중소기업인력개발원 주차장에서 옆지기를 애마에 태워 돌려 보낸 후 잠시 산행 준비를 마치고 들머리로 들어가기 전 몇장의 사진을 남겨 본다.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면 최소 한두시간은 더 지체되였을 시간이 이제 막 6시 37분을 넘기기 시작하고 천천히 그 중소기업인력개발원 산책로 안내판을 사진에 담은 후 그 뒷쪽 능선으로 오르며 오늘 하루도 무탈한 산행을 빌어 본다.
능선으로 오르자마자 부드러운 등로가 열려 있고 낙엽 쌓인 등로가 푹신하게 전해주는 촉감이 나쁘지 않은 시간이다.
한동안 큰 오르막도 없이 완만하게 중소기업인력개발원 건물을 좌측에 두고 가깝게 진행하니 약간의 바위너덜길이 나타나고 곧이어 파란 키작은 산죽길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오르는 산객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고 있다.
짧은 그 산죽 등로를 따라 오르니 금새 한남정맥 마루금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 서 있는 이정표엔 좌측으로 매봉재(두창리) 8.0 Km 방향과 우측으로 가야 할 문수봉 0.8 m란 거리와 방향 표시가 반갑기만 하다.
몇 년전 몇명의 산친구들과 무더위에 싸우며 어렵게 올랐던 기억을 떠 올리며 피식 웃어 보는 시간이다.
한남정맥 마루금을 만나 우측 문수봉 방향으로 오르니 좌측으로 약수터 갈림 이정표가 서 있고 그 뒷쪽에 벤취 2개와 큰 바위가 보인다.
한남정맥 산행 시에도 저 벤취에 배낭 내려 놓고 잠시 물 한모금 마시며 쉬어간 추억에 젖으며 우측 문수봉 방향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산죽 밭 가운데에 설치된 계단을 타고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오르니 등 뒤 저 멀리 짙은 안개를 뚫고 갑자기 둥근 아침해가 솟아 오르고 있다.
잠시 기다렸다 몇장의 사진에 일출 장면을 담은 후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벌써 등줄기와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일출 사진을 담은 후 다시 오르니 등로 옆에 약수터(매봉재) 30미터란 이정표가 나타나고 잠시 그 약수터 방향으로 들어가니 운동시설들이 보인다.
그 운동시설을 지나자마자 우측 바위 밑으로 약수가 떨어지는데 한모금 마셔보니 맛이 기가 막히다.
약수터 물 맛을 본 후 나오니 전망데크가 보이고 그곳으로 가 잠시 원삼쪽 산들과 마을을 둘러 본다.
다시 한남정맥 마루금으로 뒤돌아 나와 좌측 가파른 산죽 오르막 등로를 따라 땀방울을 흘린다.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마애보살상가는 이정표가 서 있고 그곳 마애보살상까지 20여미터 이기에 잠시 들려가기로 한다.
몇 년 전쯤 한남정맥 산행 시에도 잠시 들려 구경하고 그 유래를 읽었던 기억이 있지만 정확한 내용은 기억에 없다.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문촌리 문수산의 절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50미터 떨어진 바위면에 조각한 마애불로서 바위를 잘 다듬어서 양쪽으로 대칭되게 선 두 보살상을 새겼는데 돋을새김과 선으로 새기는 기법을 같이 사용했다.
연꽃무늬의 대좌 위에 선 두 보살상 중 정면을 향한 왼쪽 보살상은 얼굴을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었는데 마멸이 심하지만 머리에 보관을 썼고 풍만한 얼굴에 눈과 코 및 입이 선명함을 알 수 있다.
상체에는 옷을 걸치지 않고 아무런 장식이 없는데 잘록한 허리에는 속옷의 매듭이 표현되었고 오른손은 아래로 내렸으며 왼손은 가슴에서 구부려 엄지와 검지를 맞댄 모습인데 팔목에는 팔찌가 끼워져 있다.
오른쪽의 보살상은 웃는 표정이고 두 귀가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있으며 양 손은 왼쪽의 보살상과 반대로 처리되어 있고 나머지 부분은 왼쪽 보살상과 거의 같은 양식을 보인다.
이 두 보살상은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크고 어깨를 움추려 경직된 모습을 보이지만 대담하게 단순화시킨 모습과 얼굴, 손, 발 등의 세부 표현에서 고려 초기의 양식을 볼 수 있다.
이제 문수산 마애보살상까지 구경을 했으니 빨리 문수봉으로 향한다.
나무계단을 타고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드디어 팔각정자와 운동시설들 그리고 문수봉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는 문수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넓은 운동장 같은 공터의 좌우측으로 나 있는 등로가 한남정맥 마루금이고 오늘 이 산객이 걸어야 할 등로는 정북 방향의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며 진행을 해야 한다.
문수봉은 높이 403.2 m로 한남정맥 구간을 잇는 산으로서 한남정맥의 170 Km에 반정도의 82 Km가 용인을 지나가며 문수산 또한 지나가고 있다.
원삼면 문촌리 내동 뒷산 문수산은 예전 문수사로 인해 붙여진 이름인데 문수산에는 고려 초기에 제작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기도 지정 유형문화재 120호 문수산 마애보살상이 있으며 높이는 약 3.5 m정도의 두개의 바위를 평평하게 다듬어 보살입상 2구를 양쪽으로 대칭되게 새겼는데 얕은 부조와 선각을 함께 사용하였다.
다만 용인에는 두개의 문수산이 있는데 하나는 220여미터 해발고도인데도 문수산인 반면 이곳의 높이는 403미터인데도 문수봉이라는 사실이다.
문수봉에서 앵자지맥을 무사 완주하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난 후 정북 방향의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설치된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먼 발길을 시작해 본다.
잠시 낙엽진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옆 거목에 산너울2길이란 안내판이 걸려있어 눈에 담고 진행하다 보니 한동안 산행 내내 이 안내판을 볼 수 있었다.
나즈막한 안부와 봉우리를 넘어 진행하니 등로 우측에 송전탑 하나가 보이고 그곳 무명봉에서 뒤돌아 본 문수봉이 아름답게 작별인사를 건넨다.
등로 우측으로는 방금 전 떠오른 아침 햇살 아래 한남정맥 산줄기가 희미하게 드러나고 그 좌측 저 멀리에는 용인 팔경중 으뜸이라는 용담저수지가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다시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벤취와 이정목 그리고 이정표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쉬어 간다.
등로 우측으로는 사암리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데 사암리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사암리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속한 마을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사전리와 용암리를 합쳐서 한글자씩 따서 생긴 지명이름이다.
본래 죽산군 원일면에 속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용암리, 사전리, 천곡리 및 내동의 일부와 양지군 주서면 광곡리를 합쳐서 사암리라고 하였다.
마을의 서쪽으로 문수봉이 있고 곱등고개를 지나 독조봉으로 이어지는데 사암리는 위의 능선이 동남쪽으로 흘러내려 평야 지대와 만나는 기슭에 주로 위치하며 서북쪽은 호동과 해곡동 그리고 양지면과 경계를 이루는 산능선이고 동남쪽은 용담저수지와 경작지가 발달되어 있다.
자연 마을로는 광곡, 내동, 사전, 용암, 용담, 중리, 천곡 등이 있다.
이곳 사암리에는 대안학교인 헌산중학교가 있으며 새마을 운동의 효시가 된 복음학교와 농도원이 있던 곳으로 특히 내동마을은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금광이 개발되고 사금이 산출되었던 곳이다.
가까이 있는 곳이지만 오늘처럼 이런 맥 잇기 산행이 아니라면 들릴 수 없는 곳을 들리는 마음이 그저 기쁘기만 하다.
사암리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 공터의 무명봉을 지나 전진하니 금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잠시 어느 방향이 맞는 지맥 등로인지 헷깔려 정독을 하면서 등로를 확인해 본다.
지도를 펴 놓고 정독을 하니 등로는 좌측으로 완만하게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야 하며 안부를 지나 다시 나타나는 계단을 타고 올라 본다.
무명봉에서 다시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곱든고개와 문수봉 방향이 남아 있는 이정목을 지나 안전목책과 로프가 달려 있는 구간을 통과한다.
그곳을 지나 우측으로 크게 꺾여 작은 골짜기 같은 등로를 타고 수북히 쌓여 있는 등로를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곱든고개의 2차선 포장도로와 간이 화장실이 내려다 보이는 곱든고개에 도착을 한다.
용인시내인 와우정사쪽에서 원삼면 사암리로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인 곱든고개는 하도 꼬불꼬불 길고 높아 굽은고개나 곱등고개 또는 곱든고개 등으로 불리워졌는데 지금은 공식적으로 곱든고개로 통일해 사용하고 있는 고개이다.
그리고 이 고개가 유명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소설인 임꺽정에 이 고갯길이 등장해서이기도 하는데 임꺽정은 홍명희씨가 쓴 소설이지만 홍명희씨는 월북하여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임 위원회 부의원장을 지내고 1968년 사망하였는데 김일성주석 다음가는 정도의 높은 지위까지 올랐던 인물이라 남한에서는 철저히 배제된 인물로 남아 있는 아픈 역사의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고개 반대편인 문수봉을 지나 임꺽정이 스승을 찾으러 안성의 칠장사로 가던 도중 이 고개에서 가짜 임꺽정을 만났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고갯마루로도 유명한 곳이다.
곱든고개를 지나니 용인시 해곡동과 사암리를 이어주는 2차선 포장도로 위 동물이동 통로를 건너게 된다.
등로 양쪽에는 잘 식재된 잣나무가 줄지어 있고 그 가운데를 통해 통과하니 처인구청장이 세워 둔 경작금지 경고판이 보인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올라 평온하게 진행을 하는 시간이다.
다시 나즈막한 안부와 무명봉을 따라 전진하니 큰 활엽수에 산너울2길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는 무명봉에 올라 긴호흡 한번하고 출발한다.
다시 큰 굴곡이 없는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저 앞으로 올라야 할 칠봉산이 잡목사이로 잠시 올려다 보인다.
활엽수 구간을 지나 잠시 몇그루의 소나무가 정상을 지키는 무명봉을 넘으니 저 멀리 가야 할 방향으로 칠봉산이 조금 더 뚜렷하게 다가오고 곧이어 바위지대를 넘는다.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등로를 타고 올라 무명봉을 넘으니 벤취2개와 등로 우측에 산너울2길의 용인팔경 중 제3경인 곱든고개에서 바라 본 용담저수지란 설명판이 세워져 있는 지도의 384봉이다.
용인팔경을 찾아 보니
제1경 석성산 일출
해맞이 해넘이로 연출한 자연 비경 석성산 높은봉을 다홍으로 물들이고 인간사 새 대지에 던지는 메세지는 누리에 넓게 펼치라 일깨워 주더라네
제 2경 아비 낙조
낙엽지면 겨울 오듯 또 세월 지나가고 청춘이 흐르고 나면 백발이 찾아오네 서산에 기우는 해 창연의 경치보니 깊은 삶 우리네 언덕도 저모습을 닮아라
죽어서 진수 성찬 살아 일배 못하고 눈 앞이 북망이니 큰 근심 접으소서 잠과 병 근심에 보낸 세월 뒤에 서서 덧 없다 말하고 나면 낙조가 눈앞이더라
제3경 곱든고개 용담 조망
서리서리 험한고개 곱든고개 마루에서 문수산 바라보며 계절을 산책하네 용오름 저수지에 물결이 투명하여 전설도 숨을 수 없어 그 흔적을 남겼네
안골마을 여기저기 꽃들이 만개할때 붉은 인동 하늘 나리 봄맞이 먼저하고 바위취 돌나물이 고개 살짝 내밀고 아낙의 봄 나들이를 손짓으로 부르네
용담골 모래실에 물마르지 않으니 넓실에 푸른 들이 바다처럼 펼쳐져 사암리 저수지에는 풍어로 소문 나서 팔도의 강태공 들이 모두모여 들더라
제4경 광교산 설경
장수촌 천년약수 이름마져 깊은산하 골지고 깊은 구릉 설산의 최고절경 광교주봉 시루봉에 진주빛 눈의 미소 용인의 제사경이라는 이름마져 무색타
제5경 선유대사계
선비와 신선들이 하늘과 땅 오고 가며 풍류와 시조로 세월을 낚던 사계 정자와 연못안에 배인듯한 풍류 가무 선유대 능선을 따라서 또 계절은 돌아오네
제6경 조비산
현 북쪽 귀퉁이에 우뚝솟응 봉우리 돌 이고 앉은모습 삼각산 찾아가나 전설 가득 역사의 산물 빼어난 천의 절경 가다가 머문 자리 그대로 제자리를 찾은걸
제7경 비파담 만풍
빼어난 피담마을 만풍에 넋을 잃고 정자를 지어놓고 비파를 연주하면 울창한 숲 연주에 바람이 부르는 노래 낙향한 남구만 선생이 살아온듯 하더라
제8경 가실벚꽃
봄은 벚꽃 더불어 오고 꽃은 바람속에 피어나고 눈발같이 휘날리는 꽃바람 길을따라 낙화의 운치따라서 마술관 가는 길에 흐드러지게 읇는다 벚꽃 한절 나 두절
그곳 384봉에서 등로 우측을 내려다 보니 용담저수지와 원삼면 들판이 강렬한 아침 햇살에 부서지며 희미하게 그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잡목 사이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오늘 걸어 온 마루금은 벌써 멀어지기 시작한다.
다시 무명봉을 넘어 우측으로 휘어지는 진행 방향의 마루금을 살피며 전진하니 벤취2개가 있는 무명봉을 넘어 형제봉과 학일체험마을 갈림 사거리인 어두니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작은 이정판에는 은이성지, 미리내성지 및 골배마실 겅지란 글자들이 보인다.
은이성지(골배마실)는 김대건 신부가 소년생활을 하던 곳으로 프랑스 모방신부로 부터 세례를 받은 곳(은이 공소)이고
김대건 신부가 최초로 사목활동을 하던 성지이다.
미리내 성지(안성시 양성면 미산리)는 한국 최초의 방인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묘소와 이윤일 요한 성인의 묘소 유지 그리고 16위 무명순교자의 묘역이 있는 거룩한 성지이다.
골배마실이라는 지명은 이곳이 옛날부터 첩첩산중인데다 뱀과 전갈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라서 뱀마을 즉 배마실이라고 부르던 동네에서 시작되는 산골짜기 안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골배마실 성지는 김대건의 소년시절의 향취가 남아있는 곳이요 성소의 꿈을 키우던 장소이다.
옛날부터 신자들에 의해 구전으로 김대건 신부의 집터가 있던 장소로 알려져 왔던 이곳은 1961년 양지 본당 5대 정원진 루가 신부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어 돌절구와 갖가지 생활도구, 즉 맷돌, 우물터, 구들장 등을 발견하면서 성지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
지난 몇 년전 한남정맥 산행을 하면서 김대건 신부에 대해 잠시 알아 본 기억이 있는데 이곳 성지들 역시 김대건 신부와 깊은 관련이 있는 성지들 이였다.
어두니고개에서 긴대건 신부에 대한 공부를 한 후 다시 출발하니 벤취2개가 있는 전위봉에 올랐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 옆 소나무를 타고 오르니 금새 칠봉산 정상이다.
이곳 역시 골배마실성지와 은이성지 방향 표시판과 이정표가 서 있는데 정상의 해발고도가 400미터라서 지도상 나와 있는 446.8봉과 너무나 많이 달라 잠시 헷깔려 본다.
삼각점도 보이는데 기존 봐왔던 삼각점이 아니라서 그것도 조금은 신기하기도 하다.
다만 이 칠봉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알 수 있는 글이 없어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칠봉산 정상에서 잠시 좌측을 보니 둥그런 원형의 인공 구조물을 머리에 이고 있는 앞쪽 봉우리가 눈에 들어 오고 잠시 들려볼까 고민도 해 보지만 오늘은 그냥 진행하기로 하는데 산행지도를 보니 은이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이다.
그 2개의 원형 인공구조물은 양지파인리조트로 내려갈 때까지 등로 좌측에서 좌표 역활을 하게 된다.
좌측 은이산과 형제봉 방향의 등로를 버리고 우측 갈미봉 방향의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한동안 부드러운 낙엽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CHECK POINT라는 종이 코팅지가 있는 안부를 지나 계속 평이하게 진행되는 맥 잇기 산행이다.
안부를 지나 다시 약간은 가파라지는 로프 오르막 구간을 오르니 벤취2개가 설치된 쉼터가 나타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올라 금새 갈미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정상에는 벤취와 철봉이 설치되어 있고 한쪽엔 이정표가 서 있다.
어렵게 셀카 놀이를 하면서 증명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갈미봉 정상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안부로 내려가니 등로 좌측 잡목가지 사이로 인공구조물들이 보이는데 처음에는 무슨 구조물들일까 궁금해하며 걸어 본다.
잠시 더 진행하니 용실고개란 이정판이 갈라져 땅에 나뒹굴고 그것들을 한데 모아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사진을 담고 좌측을 내려보니 이제사 이곳이 양지파인리조트의 스키장임을 알 수 있지만 이제 스키 시즌이 끝났기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곤돌라도 돌아가지 않는다.
다만 용실고개란 이름에 대한 자료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용실고개를 ㅣ나니 등로 좌측으로 조금 더 뚜렷한 양지파인리조트 스키장의 인공 구조물들이 내려다 보인다.
잡목 사이로 스키장을 내려다 보며 걸어가니 등로 우측에 경계라 적혀있는 안내석이 보이고 녹슨 작은 콘테이너 박스를 지나 무명봉을 넘는다.
무명봉을 넘자마자 곧이어 양지파인리조트 스키장 곤돌라 최상부의 인공구조물 옆으로 나가 스키장과 앞으로 진행해야 할 앵자지맥 마루금을 살펴 본다.
박무로 인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양지 IC쪽으로 내려가 총신대학교를 좌측으로 도아가는 지맥 마루금과 그 뒤 저 멀리 태화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오지만 사진상으로는 아주 희미하게 나타나 있다.
양지 리조트 스키장 상부에서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다시 지맥 등로를 타고 오르는데 그곳 정상부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과 얼음이 두껍게 남아 있다.
야간 램프를 지나 오르니 등로 좌측 스키장 방향으로 파란 철망이 쳐져 있고 그 철망을 따라 오르니 금새 다시 용실산 정상이다.
벤취에 카메라를 올려 놓고 어렵게 셀카 사진 한장 남기지만 어둡고 역광이기에 사진은 볼품없이 나왔다.
이제부터 진행하면서 양지파인리조트 입구 도로까지 길주의 구간이기에 신경을 쓰며 진행한다.
용실산에서 출발하려고 배낭을 둘러메고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은이산의 원형 공 2개가 환히 조망되고 그 좌측으로 방금 전 다녀 온 칠봉산이 우뚝하다.
그 두개의 산 사이에는 헬기장 같은 넓은 공터도 보이는데 생각보다 가깝게 느껴지기에 은이산 인공 구조물까지 다녀오지 않은 것이 후회될 정도이다.
다음에 저 능선을 타고 한번 걸어 볼 기회가 있기를 바래 본다.
바로 발 아래에는 양지파인리조트 스키장 슬로프가 내려다 보인다.
이제 용실산을 출발해 내려가며 앞을 보니 잡목 사이로 독조봉이 우뚝 솟아 보이는데 저 높은 봉우리는 오늘이 아닌 다음지맥 산행으로 올라야 할 독조지맥의 독조봉이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삼거리 갈림길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살펴 보니 이곳이 바로 독조지맥 갈림 삼거리이다.
조만간 다시 한번 올라 흔적을 남기고 내려가야 할 삼거리이기에 자세히 확인을 해 본다.
등로 우측 방향으로는 청소년수련원이란 방향 표시가 되어 있는데 그 방향으로 독조지맥이 시작되어 또 다른 산줄기를 이루고 있다.
오늘 이 산객이 진행해야 할 방향인 좌측으로는 무수막이란 이름의 방향 표시가 되어 있다.
독조지맥 갈림 삼거리에서 잠시 몇장의 사진을 담은 후 좌측 무수막 방향의 내리막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등로는 부드럽게 이어지고 있다.
간간이 보이는 선답자들의 띠지를 확인하며 완만하게 내려가니 점점 낙엽의 두께가 깊어지며 발목을 덮고 있다.
조심하며 내려가다 혹시나 하고 328.8봉을 살펴 보지만 그 봉우리는 찾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내려간다.
몇개의 나즈막한 봉우리를 지나 내려가니 등로가 좌측으로 갈리는 나즈막한 봉우리가 앞에 보이고 그 봉우리 정상으로 올라가니 247.22봉의 삼각점이 보인다.
이 중요한 삼각점을 두고 왜 좌측 사면 등로를 만들어 놨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마음으로 사진에 담고 내려가 본다.
다시 부드러운 낙엽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오래전 함께 산행을 즐겼던 고산마루의 다올님 띠지도 반갑게 만난다.
그곳을 내려가니 낙엽속에 갑자기 등로가 희미해지고 계속 낙엽속을 헤치고 내려가니 바로 앞에 넓은 운동장이 나타나기에 그 운동장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조심스럽게 돌아 내려가니 뚜렷한 등로가 보인다.
살펴보니 등로는 고사목이 뿌리를 드러낸 장소 직전에서 좌측 골짜기 같은 뚜렷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면 될 듯 싶다.
내려가니 방금 전 스키장 정상부에서 만났던 양지파인리조트로 통하는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이곳에서 그 포장도로를 우측으로 타고 정문으로 내려가며 진행을 한다.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니 금새 도로 우측으로 방금 전 능선에서 내려 봤던 운동장이 보이고 잠시 그 안으로 들어가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운동장을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저 아래 양지파인리조트 정문이 보이고 그 앞에 삼거리 갈림 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그 리조트 정문 좌측에 작은 안내 박스가 보이는데 젊은 직원 한명이 들어 오는 차량마다 인사를 하는 모습에서 세상살아가는 어려움을 느껴 본다.
그 정문으로 내려가니 양지파인리조트란 커다란 안내판이 눈에 들어 오고 그곳 삼거리에서 시간은 이르지만 점심식사를 하고 진행하기로 한다.
정문에서 진행 방향은 다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좌측으로 조금 걸어가면 다시 도로 좌측에 신의주 순대국이란 식당이 보인다.
그 식당으로 들어가니 많은 선답자들이 지나가며 들렸다는듯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고 금새 순대국 한그릇을 내 온다.
생각보다 좋은 맛에 깨끗히 비우고 나와 이제 다시 도로를 타고 한동안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이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에 양지파인리조트를 두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 저 앞에 들밥이란 식당 간판이 보이는 좌측에 비포장 임도가 보이는 배미실고개에 도착을 한다.
저곳도 역시 원 지맥 등로는 아니지만 이곳 2차선 포장도로 보다는 지맥 길에 가깝게 진행 할 수 있기에 몇몇 선답자들은 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도 하였지만 등로는 나 있지 않아 고생을 하는듯 해 이 산객은 그냥 도로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니 가정식 흥부네 들밥 전문 식당이 보이고 양지 한우마을 식당 간판도 지난다.
덕석과 구들장이란 식당 간판이 보이는 곳 도로 위에는 17번 지방도로와 제일리 가는 방향의 사거리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계속 제일리로 가는 사거리 방향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주)삼우 F&G 건물이 보이고 도로 우측 옆에는 서울회관 버스 정류장도 보인다.
좌우로 지나는 17번 도로와 직진 방향의 제일리 가는 도로가 만나는 사거리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17번 도로를 타고 영동고속도로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17번 4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니 (주)삼우 F&G 건물 정문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대신 공인중계소 간판도 보인다.
이곳에서 17번 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진행을 해도 되는데 도로를 건너기가 만만치 않아 그대로 진행하다 보니 양지사거리까지 걸어가게 된다.
위로 고속도로가 지나는 교각 넘어 직진 방향으로는 양지 IC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42번 4차선 포장도로를 통해 수원과 용인방향으로 가는 방향이고 우측은 여주와 이천으로 가는 방향 표시가 되어 있다.
이곳 양지 사거리에서 갑자기 방향 감각을 잃고 도로 우측의 여주 이천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을 좌측인 수원 용인 방향으로 잠시 진행하다 이상한 직감에 지도를 펴 놓고 정독을 하니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음을 깨닭고 도로를 건너 반대 방향인 42번 도로를 타고 여주 이천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잠시 더 42번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양지 IC를 지나자마자 카센타가 나타나고 도로 좌측으로 예가낙지마을과 캠퍼스오피스텔 건물이 보인다.조금 더 진행하니 양지고가차도란 도로 표지판을 지나 앞 저 멀리 육교가 보이는 마수고개에 도착을 한다.그곳에서 원 지맥 마루금인 육교 우측 능선을 살펴보니 생각보다 양호해 파란문님의 추천대로 그쪽으로 진행하지 못함이 못내 아쉬운 시간이다.육교가 있는 곳이 원 지맥 마루금으로서 이곳이 마수고개인데 아무리 찾아 봐도 이 고갯마루에 대한 자료가 없었는데 파란문님의 올려주신 자료 하나가 공감이 되어 올려 놓는다.일반적으로 이런 고갯길은 말에게도 고개 넘기가 힘들기 때문에 사람이 말을 타지 않고 내려서 손으로 끌고 가는 고개라고 마수현에서 유래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도마치고개도 거의 비슷한 뜻으로 도마치로 쓰며 고개를 넘어가니 말이 힘들어 말에서 내려 걸어 간다는 의미이다. (파란문님 자료 인용)
우측에 육교가 있는 원지맥 등로를 두고 총신대학교와 신학대학원 방향의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영동고속도로 지하통로까지 걸어간다.
우측 원지맥 등로상에는 많은 공장 건물들이 들어 서 있어 지맥상으로 걷기가 거의 불가능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이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고 있다.
진행해야 할 포장도로 저 멀리에는 영동고속도로를 건너 53번 철탑에서 원 지맥 등로와 만날 수 있는 마루금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이제 도로 좌측으로는 바빠질 농부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밭들이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53번 송전탑 우측으로 숨어 있는 총신대학교를 두고 그 뒤 능선으로 이어지는 앵자미맥 마루금이 선명하다.
도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공장지매에 갇혀있는 원지맥 등로가 몸살을 앓고 있는 풍경도 간간히 눈에 들어 오는데 지금 살펴보니 공장지대 보다는 나즈막한 산줄기를 따라 진행해도 되겠지만 어짜피 영동고속도로를 건널 수 없으니 이곳 포장도로로 진행해야 하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해 오르니 담안빌라 버스 정류장을 지나 도로 우측으로 삼성마을 전원빌라 이정표도 만난다.
그 전원빌라 지대를 지나니 앞으로 통과해야 할 영동고속도로 지하통로가 보이고 그곳을 통해 어렵게 도로 산행을 마무리한다.
잘리고 상처난 지맥 마루금을 따라 걸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만 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 개발이 더 진행되면 그나마 남아 있던 이곳 마루금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걱정일 것이다.
영동고속도로를 지하통로처럼 생긴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통과한 후 첫번째 만나는 전봇대 위의 총신대학교와 신학대학원이란 도로간판을 지나 두번째 만나는 전봇대 좌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꺽어 들어가며 맥 잇기 산행은 이어진다.
도로 앞 저 멀리 사당처럼 생긴 건물이 보이길래 줌으로 당겨 보니 나주정씨세장비로서 그 세장비 가기 전 좌측 전봇대에서 비포장 임도를 타고 10여미터 올라가면 우측으로 묘지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을 따라 오르며 진행을 한다.
잘 가꿔진 묘지 위로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진행해온 이 산객의 발자취가 한눈에 들어 온다.
수없이 지나다닌 영동고속도로이지만 이곳이 이렇게 중요한 산줄기를 잘라먹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지나다닌 시간이 미안하기만 하다.
다음부터는 조금 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이곳을 통과하지 않을까 생각 해 보는 시간이다.
이제 묘지 상단으로 올라가 능선으로 들어 뚜렷한 등로를 타고 우측에 총신대학교 건물을 두고 오르면 될 것이다.
능선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평이한 등로가 열려있고 그렇게 급하지 않은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진다.
등로 우측으로는 총신대학교 건물과 예수상이 내려다 보이는데 이 총신대학교 건물을 우측에 두고 한동안 바라보며 걷게 된다.
아주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올라가지만 한낮이 되면서 기온이 오르고 등줄기와 이마에서는 또 다시 굵은 땀방울이 연신 등로를 적시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니 송전탑 53번이 나타나고 곧이어 삼거리 갈림길인데 살펴보니 원지맥 등로가 좌측에서 올라오고 있는 삼거리이다.
한동안 그곳에 발걸음 멈추고 서서 지맥 등로를 바라 본 후 조망이 없음을 아쉬워한 후 다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삼각점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안성405라 생각되는 삼각점인데 용인땅에 왠 안성 삼각점이 보이는지 의아해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삼각점을 지나니 다시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꺽여 진행된다.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벌목된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잠시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걸어가니 이 산중에 버려진 2개의 간이화장실이 넘어져 있고 그 앞으로 높은 송전탑이 보이는 벌목지대가 다시 나타난다.
그 송전탑 번호가 42번이고 송전탑 좌측으로는 아시아나컨트리클럽으로 통하는 2차선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그 42번 송전탑에 올라 뒤돌아 보니 연이어 줄지어 늘어선 송전탑 뒤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앵자지맥 거의 모든 산군들이 보이는듯 한데 박무로 인해 선명하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지나온 마루금을 바라보며 그 추억을 남길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 42번 송전탑에서 지나온 마루금을 살펴보고 오르는데 등로 우측으로는 내려 갈 수 있는 갈림 등로가 몇개 보인다.
살펴 보니 아마도 총신대학교쪽으로 내려 갈 수 있는 갈림 등로처럼 보이는데 길주의 구간까지는 아니기에 그냥 직진의 등로를 따라 전진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짧은 절개지에 석축을 쌓아 올린 흔적이 보이고 그렇게 오르다 보니 또 다른 간이화장실 2개가 넘어져 있는 곳을 통과한다.
또 다시 우측 갈림 등로를 지나 오르니 등로 좌측 잡목 사이로 아시아나 CC가 내려다 보이고 금새 무명봉을 넘어 43번 송전탑을 만난다.
그 송전탑으로 오르니 드디어 잡목이 잠시 사라지며 등로 좌측으로 아시아나 CC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오래 전 일본에서 잠시 즐겼던 골프였는데 한국으로 돌아 와서는 여건도 맞지 않고 또 잠시 다시 시작했지만 땀흘리며 격렬한 운동이 아니기에 적성에 맞지 않는듯 해 포기했던 과거가 추억되는 시간이다.
골프를 즐겼던 친구들도 하나 둘 다시 산행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이 산행이 건강에는 더 좋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송전탑 43번에서 잠시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진행을 하니 420.1봉의 삼각점이 보인다.
그 삼각점에 올라 사진 한장 남기고 살펴보니 지도상에는 420.1봉인데 이곳 삼각점에는 420.6봉으로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삼각점보다 근접한 해발고도이기에 기분이 묘하다.
그 삼각점을 지나 다시 몇발자국 걸어가니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잠시 정상 등로를 찾아 망설이며 시간을 허비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정상 등로는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인데 우측 등로를 따라 조금 걸어가니 또 다른 갈림 삼거리가 나타난다.
갈림 삼거리에서 이번에는 우측 등로를 버리고 좌측 내리막 등로가 정상 등로이다.
잠시 내려가니 잡풀이 자랐다 말라있는 폐헬기장을 통과하고 그곳을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 순교자기념관으로 내려 갈 수 있는 안부 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기념관에 이르는 길의 양 옆에는 유족들이 세운 높이 50 Cm의 자연석으로 된 순교자기념비들이 서 있는데 여기에는 순교자들의 이름과 그 밑에 성구들이 적혀 있다-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디모데후서 1:8).
이들 중에는 한국 최초의 세례교인으로 혹세무민 죄로 2년 간의 옥고 끝에 1893년 순교한 백홍준 장로, 천황 숭배를 거부하다 7년간 옥고를 치루고 1944년 순교한 주기철 목사, 6·25 당시 교회당을 비우라는 공산당에 맞서다 총살당한 박영근 목사 등, 조선조 말엽인 1884년 이 땅에 기독교 씨앗이 처음 뿌려진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전도하다 숨진 순교자수는 2천 6백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곳 안부를 통과 후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오르막 등로를 따라 땀방울을 흘리니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등로는 곧바로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벤취 2개가 설치된 쉼터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벤취 쉼터를 지나 계속 진행을 하니 널판지 계단 등로가 이어지고 그 계단을 타고 오른다.
잠시 더 진행하다 등로 좌측에 서 있는 44번 송전탑을 바라보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 앞으로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지맥 마루금 저 멀리 태화산이 우뚝 솟아 있다.
다시 나타나는 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을 타고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순교자기념관과 벧엘교회 내려가는 등로와 좌측으로는 정수리 내려 가는 등로가 갈리는 십자 안부에 도착을 한다.
그 십자 안부를 통과 해 다시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군사용 벙커가 보이고 이제부터 등로엔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굵은 로프가 길을 안내하고 있다.
조금 더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다시 굵은 땀방울을 흘리니 발길이 무거워지고 잠시 심호흡하며 발길을 멈추고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420.1봉에서 이곳까지 이어져 온 마루금이 잡목사이로 환히 드러나 있다.
다시 더 힘을 내 오르니 땀방울은 얼굴을 완전히 적시고 등줄기에서도 간지럼이 일 정도로 날씨가 더워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렇게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금박산 가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에 오기전까지는 잠시 금박산에 다녀올 생각이였는데 이곳에 도착을 하고 나니 간사한 마음이 그냥 지맥 등로를 따라 진행하라고 유혹하고 있다.
다시 잠시 갈등하다 오늘 금박산은 포기하고 좌측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능선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 끝없는 산길따라님이 종이 코팅지에 금박산 418미터란 이정표를 붙여 놨는데 조금은 아쉽기만 하다.
실제 금박산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이곳은 해발고도 425미터의 군부대 초소봉이 맞을 듯 싶어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군 초소 직전 바위에서 잠시 쉬면서 물한모금 마시고 어렵게 그 군부대 초소쪽으로 진행을 한다.
선답자들 중 몇명이 이쪽 군부대 초소에서 진행을 제지 받아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바짝 긴장을 하면서 조심스러 걸어가 만나는 철망 위 원형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따라 내려가니 초소에서 사명이 빤히 내려다 보며 작게 한마디 하지만 크게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다.
재빨리 내려가며 이제부터는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사진조차 담지 않으려 노력하며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해 본다.
잠시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철조망 넘어 저 멀리 태화산이 우뚝 솟아 있다.
그렇게 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잘 정돈된 군부대를 따라 내려가니 벌써 기온이 많이 올라 뜨겁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다시 빠른 발걸음으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뒤돌아 보니 군부대 철조망 넘어 저 멀리 방금전 내려온 425봉 군부대 초소가 멀어지고 있다.
사진 한장 남기는 것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조심하며 숨어 찍듯 담아보는 사진이다.
군부대 내부는 관심조차 없지만 이렇게 산줄기를 따라 걸어가야 하는 산객에게는 그 산줄기 뿐만 아니라 장애물로 인해 걷지 못하는 산줄기까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한동안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이제부터는 등로가 크게 높낮이 없이 평이하게 진행을 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용화산 밑의 큰 터라는 뜻으로 한터 혹은 대대라 하였던 대대리 뒤로 태화산이 우뚝하다.
본래 양지군 주북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무장동과 사기동을 병합하여 대대리라 하고 용인군 내사면에 편입하였으며 1996년 3월 1일 내사면이 양지면으로 개칭되었고 2005년 10월 31일 용인시 처인구가 개청되면서 대대리는 처인구 양지면에 속하는 법정리가 되었다.
북쪽에는 태화산 산계에 포함되는 용화산(379.9봉)이 솟아 있어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북부와 동부는 해발 300미터 내외의 능선이 연이어 있어 안부에 고개가 발달되었다.
말치고개와 용화산에서 발원한 대대천이 남류하면서 천변에 국지적으로 충적지를 퇴적시켜 놓았고 농업용수를 위한 대대저수지가 축조되어 있다.
잠시 더 내려가니 이제 태화산은 등로 좌측으로 철조망의 반대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계속 철조망을 따라 걸어가니 우측에 군부대를 두고 좌측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걸어가야 할 마루금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군부대와 헤어져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방도리고개가 나타나고 그 넘어 저 멀리 공장지대 끝자락에 오늘 목적지인 성황당고개의 방도1리화승상사의 K-SWISS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이제 용인에서 광주시 도척면 유정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조금 더 걸어가니 군부대 철조망이 우측으로 꺽여 내려가고 등로는 좌측 능선으로 방향을 바꿔 군부대 철조망과 헤어져야 할 지점에 도착을 한다.
군부대 철조망 좌측에는 작은 콘크리트 건물이 보이고 그곳에서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군부대 철조망 넘어 저 멀리 금박산과 군부대초소봉인 425봉이 아스라히 올려다 보인다.
지나고 나면 들리지 못한 금박산이 아쉽기만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뒤돌아 보며 올려다 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철조망을 우측으로 급하게 꺽여 내려 보내고 콘크리트 건물을 좌측에 두고 초소봉을 넘으니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니 비포장 임도는 우측으로 빠지고 지맥 등로는 좌측 능선으로 이어진다.
낙엽이 푹신한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벌목된 잡목과 잡풀지대가 나타나고 그 등로 좌측으로 태화산과 유정리 마을이 빤히 조망된다.
태화산은 광주읍 남쪽 국수봉에서 시작된 능선이 쌍령리를 넘어 남하하면서 백마산을 솟게 하고 계속 남진하여 긴 능선을 형성하는데 크게 보면 이 능선상의 최고봉이 해발고도 644미터인 태화산이다.
이 능선은 말치고개를 넘어 용인시 양지면의 추계리로 이어지고 영동고속국도의 고개를 지나 나중에는 안성의 미리내성지 뒷산으로 이어지는 긴 능선인데 이 능선은 안성 칠장산에서 한남정맥과 만날 것이다.
등로 좌측으로 높게 솟아 있는 태화산을 조망하며 조금 더 잡목을 헤치고 걸어가니 이제 바로 눈 앞에 방도리고개를 지나는 2차선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고개 넘어 능선으로 오르며 통과해야 할 묘지지대도 보인다.
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가면 도척면 유정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유정리는 1910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에 유여동과 운정동을 합하여 유정리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마을로는 운정동(굴우물)과 미륵동 및 바위산골 마을등이 있다.
급경사 절개지를 타고 내려가니 드디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방도리 고개에 도착을 한다.
방도리는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소재지로부터 약 2 Km 지점에 산재한 마을이며 이천시 마장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용인시 양지면과도 접해있는 곳이다.
방도리라는 지명은 방등곡과 내도척을 합하여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행정구역을 축소 개편하면서 방자와 도자를 따서 이름 지어졌으며 내도척은 속칭 되재(방도 1리)라고 부르며 방등곡은 지금의 방도 2리를 말한다.
되재는 한자로 도재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되재라는 속칭을 한자표기 한 것이다.
이곳을 백제시조 온조왕이 도읍을 정하려고 이 일대를 재고 또 재고하였다 하여 되재로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중정남한지에도 이러한 설화가 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부러 지어낸 전설은 아닌 것 같다.
이 마을에는 여러 소지명이 있으며 산재된 5개 마을로 분산되어 있는 방도 1리와 방등골(방도 2리)를 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현재 도척이라는 면명이 내도척에서 내자를 뺀 도척으로 정했다고 한고 되재는 한때 인삼재배가 성하였고 지금도 방등곡 마을 일대에는 인삼 재배단지가 있다.
그 방도리에 있는 고갯마루이기에 방도리고개라 불린다.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가도 오늘 산행 종착지인 성황당고개로 갈 수 있지만 지맥 마루금을 타고 진행을 한다.
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약간 걸어가면 도로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열려 잇고 그 임도를 따라 오르면 많은 묘지지대가 나타난다.
그 묘지를 좌측에 두고 묘지 앞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전진하면 수렛길처럼 뚜렷한 넓은 낙엽 등로가 나타나고 한동안 길 걱정 없이 그 넓은 등로를 따른다.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가고 그렇게 진행하니 갑자기 나즈막한 봉우리 정상에 콘크리트 말뚝이 서 있는 봉우리를 지난다.
그 콘크리트 봉우리를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기계음이 들리면서 갑자기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데 그 임도 좌측 아래에는 승마 연습장이 눈에 들어 온다.
그 승마 연습장에서 울타리를 고치는지 기계톱으로 작업을 하고 포크레인까지 동원된 모습을 내려다 보지만 보고 싶은 말은 보이지 않는다.
그 승마연습장 넘어로는 물을 대기 시작하는 논을 지나 방도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삼거리 임도에서 좌측 임도를 버리고 우측 오르막 임도를 따라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벌목 후 자작나무를 식재한 조림지가 나타나고 등로는 그 자작나무 우측 끝자락을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올랐다 능선에서 좌측으로 자작나무 식재지 위 능선을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 자작나무 위 능선을 따라 한동안 걸어가며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방도리와 유정리를 바라본다.
이제 다음 구간 올라야 할 해룡산 아래 K-SWISS 건물도 내려다 보이고 그곳으로 통하는 지맥 마루금도 시원하게 ㅠㅕㄹ쳐져 있지만 이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알바를 하면서 굵은 땀방울을 흘려 본다.
보이는 등로와는 달리 아주 난해한 등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행하여 걸어가니 갈림 삼거리 임도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대부분의 선답자들이 좌측 임도를 따라 내려가라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이 정상 등로가 아닌듯 하여 우측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올라가 본다.
잠시 낙엽속을 더듬어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능선 위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 보니 일반 등로와 다를 바 없다.
그곳에서 좌측으로 잡목이 사라진 곳에서 잠시 망중한을 즐기며 조망을 즐겨 본다.
오늘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조망하며 걸어 왔던 태화산이 그곳에 우뚝 솟아 있고 아직까지도 방향타 구실을 하고 있다.
조망을 즐긴 후 진행 방향으로 조금 더 가니 나뭇가지에 264미터의 까치봉이란 종이 코팅지 정상 이정판이 걸려 있다.
아무리 지도를 살펴 봐도 까치봉이 없고 또한 264미터의 봉우리도 찾을 수 없어 헷깔리며 이제부터 약간의 방향 상실로 인해 알바를 경험하게 된다.
지도를 살펴 보니 이곳 까치봉 정상을 넘어 진행하다 좌측으로 약하게 휘어 진행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곳 까치봉 정상까지 올라 정상 코팅지를 담은 후 다시 임도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내려가 선답자들이 설명한대로 좌측 임도를 타고 내려가면 제일 편할 것 같다.
까치봉 정상에서 그 봉우리 넘어 진행을 하니 완만한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는데 깊은 낙엽이 쌓여 내려가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계속 내려가니 등로가 희미해지고 희미한 족적마저 사라져 버리는데 아무리 지도를 살펴봐도 어느 방향인지 분간이 어렵다.
내려가다 좌측으로 내려가니 실개천이 나타나고 약간의 물이 흐르기에 무엇인가 잘못 되였음을 느끼고 좌측으로 올라간다.
한동안 올라가니 드넓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무슨 공장을 세우기 위해 토목공사를 해 놓은듯 보이는 공터이다.
공터에서 살펴보니 우측으로는 민가 한채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묘지 한기 위로 까치봉 정상부로 향하는 비포장 임도가 보인다.
느낌으로는 우측 민가쪽으로 내려가 반대편 능선으로 오르는 것이 맞을듯 싶은데 그곳으로 진행한 선답자들이 없으니 조금은 힘이 들고 시간을 빼앗기더라도 다시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올라 갈림 삼거리 임도까지 올라 살펴보기로 한다.
그곳 갈림 삼거리 임도까지 올라가 이제 우측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살펴보니 자작나무 식재지쪽 임도를 타고 내려가는 등로이다.
그 등로를 살펴보니 민가는 이제 우측에 자리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이 등로도 정상 등로가 아니고 이 산객이 진행하는 등로 좌측 능선이 진짜 능선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도 반대편 능선에서 살펴보니 모두 틀린 능선처럼 느껴졌기에 어느 등로가 진짜 능선인지 아직도 헷깔리기만 하다.
그곳 자작나무 식재지를 타고 내려가니 많은 사람들이 식재된 자작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는데 그곳 사람들중 한분이 산행 복장을 한 이 산객에게 이것저것 많은 것을 물어 본다.
그렇게 한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 식재지 앞에 보이는 시멘트 도로로 나가 좌측으로 조금 걸어가니 작은 고갯마루가 나타나는데 그곳에 선답자의 띠지 하나가 보인다.
아마도 이곳 좌측 능선으로 내려 와 이 고갯마루에서 우측 공터를 통해 밀양박씨 묘지를 통해 진행하는 것이 맞을듯 하며 대부분의 선답자들도 그렇게 진행을 하였던듯 한다.
시멘트 도로를 살펴보니 좌측 되재와 공말쪽에서 우측 민가쪽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처럼 보인다.
우측 능선쪽으로 들어가니 드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 공터를 통과해 걸어가니 그곳에 밀양박씨 묘지가 보인다.
그 묘지 위로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전 올랐던 까치봉과 알바한 능선 그리고 선답자들이 진행해 온 마루금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제일 높은 봉우리가 까치봉이고 그 좌측 능선으로 내려가며 알바를 하였고 다시 그 까치봉 근처까지 올랐다 가운데 바로 좌측 임도를 타고 내려왔는데 선답자들은 그 임도 능선 우측의 능선을 통해 이곳으로 내려온듯 하다.
그 묘지를 지나 우측 능선으로 들어가니 잠시 지독한 잡목과 가시 등로가 앞을 가로막더니 그곳을 통과하니 미니 공동묘지 같은 묘지지대가 펼쳐져 있다.
그 묘지를 따라 걸어가니 좌측으로는 절개지 밑에 공장지대들이 들어서 있고 우측으로는 민가로 통하는 시멘트 포장도로 건너 까치봉 능선과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좌측 절개지 위 능선을 따라 좌측의 공장지대를 내려다 보며 진행을 한다.
절개지쪽으로 진행하니 더 이상 진행이 어려워 우측 능선쪽으로 붙어 전진하니 다시 묘지가 나타나는데 광주이씨와 그 배우자의 묘지이다.
그 묘지 꼭대기로 오르니 묘지쪽을 제외하고 절개지로서 그 아래에는 공장지대들이 들어서 있다.
묘지로 내려가 절개지를 우회해 비포장 임도로 내려서서 좌측 공장지대로 진행하며 방금 전 올랐던 묘지 위 절개지를 살펴보니 이 공장을 건설하면서 만들어 놓은 절개지처럼 보였다.
비포장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포장도로로 바뀌고 공장 건물 내부를 통해 내려가니 그 공장은 (주)세인블루 공장으로서 그곳 정문을 지나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난다.
그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도로는 좌측으로 크게 휘어져 내려가는 우측에 (주)한국브이디 공장이 보인다.
그곳에서 우측에 한국브이디를 두고 좌측으로 휘어지는 도로를 따라 내려가며 진행을 한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좌측에 거대한 기성이란 공장이 서 있고 우일통상이란 공장을 지나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해 공장지대를 빠져 나온다.
그곳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이제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면 저 멀리 오늘 산행 종착지인 성황당고개가 보인다.
계속 그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저 멀리 방도1리화승상사 건물이 보인다.
그 큰 건물 벽에는 K-SWISS란 로고가 선명하고 그 건물을 목표로 걸어가니 드디어 32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성황당고개에 도착을 한다.
우측에는 방도1리(되재마을)이란 표지석이 서 있고 좌측에는 방도1리 화승상사란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그 도로 건너편에는 방도1리입구란 버스정류장이 다시 서 있다.
다음구간 산행 들머리를 확인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없다는 소식을 알기에 곤지암 택시를 부르기 위해 번호를 찾아 보지만 어느곳에서도 택시 번호를 알 수가 없다.
나중에 알게 되였는데 이곳은 통합되어 다른 택시 이름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였다.
조금 더 기다리는데 마침 지나가는 택시에 합승해 무탈하게 곤지암 버스 터미널로 나오고 그곳에서 1113-1번 버스를 올라 탄다.
택시 요금은 8000원을 지불하였고 무탈하게 곤지암 버스 터미널에서 1113-1벙 강변역 가는 버스에 올라 편안하게 서울의 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 도착을 해 지하철을 이용해 집으로 복귀를 한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같은 산악회에서 산행을 즐기는 산행총대장에게 전화를 하니 마침 관악산에서 과천종합청사역으로 하산해 맥주 한잔 마시고 잇다는 연락이 오고 그곳에 합류해 생맥주 한잔 마시며 제5기 백두대간 산행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 온다.
이렇게 앵자지맥 제1구간도 무탈하게 완주했으니 제2구간도 조만간 오를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시간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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