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맥과 중요 지맥 산행(완료)/진양기맥(대간·완)

진양기맥 제4구간 춘전치에서 떡갈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4. 2. 28.
728x90

산행지 : 경상남도 거창군과 산청군 그리고 합천군의 진양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4년 02월 28일 (금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흐리고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 제한된 시야였지만 기온은 올라 대체로 산행하기에 무리가 없었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02도에서 영상 12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춘전교-춘전치(12번 88올림픽고속도로와 1084번 2차선 포장도로)-식기봉(670봉)-잡목지대-폐헬기장-잡목지대-간벌지대-덕갈산(666.3봉)-도로 공사장-이정표(덕갈산 0.6 Km)-수영덩이(1034번 2차선 지방도로)-농업회사법인(주)원산종돈 축사-이정표(갈전산 2.1 Km)-나무다리-철조망지대-잡목지대-매봉산 갈림 이정표(수영덩이 1.4 Km, 갈전산 1.0 Km, 매봉산 0.4 Km)-매봉산(810봉)-매봉산 갈림 이정표 복귀-잡목지대-갈전산(764.3봉) 이정표(수영덩이 2.3 Km, 철마산 3.1 Km)-철조망 지대-입산금지 송이관리 경고판-갈밭재 이정표(갈전산 1.3 Km, 철마산 1.7 Km, 갈전 0.7 Km)-이정표(갈전산 1.4 Km, 철마산 1.7 Km)-공터봉-이정표(갈전산 1.7 Km, 철마산 1.4 Km)-이정표(갈전산 2.7 Km, 철마산 0.4 Km)-임도 갈림 안부 이정표(정상 0.2 Km, 임도 1.0 Km)-헬기장-바위지대-철마산(744봉) 이정표(갈전산 3.1 Km, 예동마을 1.7 Km)-성터지대-전망바위-바위너덜구간-이정표(철마산 0.4 Km, 예동마을 1.3 Km)-이정표(노은, 정상 0.3 Km)-706.1봉 삼각점-흰머리재 시멘트포장 임도-포장 임도 삼거리-밭지대-비포장 임도-억새밭-능선진입-인삼밭-비포장 임도-농자재 보관 창고-능선진입-삼면봉(620봉)-비포장 임도-인삼밭-능선진입-소나무 군락지대-비포장 임도-임도 따라 진행-능선진입 실패 후 시멘트 임도-진양기맥 종주 등산로 안내도(철마산-소룡산) 및 이정표(예동마을 0.6 Km, 바랑산 1.4 Km)-비포장 임도-능선진입-소나무 군락지대-잡목지대-바랑산(796.4봉) 이정표(신촌 2.6 Km, 소룡산 3.3 Km)-소나무 군락지-천지사. 왕촌 갈림 이정표-소봉(710봉)-소나무 군락지-천지사 갈림 이정표(바랑산 0.9 Km, 소룡산 2.4 Km, 천지사 0.5 Km)-폭포. 독촉주차장 갈림 이정표(바랑산 1.60 Km, 폭포. 독촉주차장 0.60 Km)-큰재 이정표(바랑산 1.7 Km, 소룡산 1.7 Km)-산림욕장 안내판-독촉주차장 0.8 Km 이정표-계단 되비알 오르막 등로-안전로프지대-세이덤 20m 이정표-세이덤 조망-세이덤 이정표 복귀-소룡산(760.9봉) 이정표(신원면 대현)-헬기장-바위지대-잣나무지대-철조망지대-임도 이정표(소룡산 0.9 Km, 강섭산 1.8 Km)-넓은공터-과수원 옆 비포장 임도-정수지맥 분기점 이정표(소룡산 0.7 Km, 강섭산 2.8 Km)-바위지대-벌목 개간지대-이정표(소룡산 1.6 Km)-비포장 임도-밀치(59번 2차선 포장도로)-시멘트 포장 임도-이정표(강섭산 1.1 Km)-밤나무지대-이정표(솔봉산 0.9 Km, 강섭산 0.9 Km)-소나무 간벌지대-강섭산 갈림 삼거리-강섭산(646봉)-강섭산 갈림 삼거리 복귀-시멘트와 비포장 임도-벌목지대-밤나무단지-이정표(강섭산 1.8 Km, 할미산 1.6 Km, 소야마을 4.0 Km)-소나무 군락지-잡목지대-바위너덜지대-황매산(할미산 또는 작은 황매산, 843봉) 이정표(강섭산 3.4 Km, 황매산, 소야마을 2.7 Km)-벙커바위-잡목지대-벌목된 초원지대-떡갈재 시멘트 임도(외부인 출입금지 경고판)-기맥 산행종료-시멘트 임도 따라 우측 장박리 방향 민가-황매터널-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4.00 Km (기맥 약 21.8 Km, 접속구간 약 2.2 Km-매봉산 왕복 약 0.8 Km와 떡갈재에서 장박리 황매터널까지 약 1.4 Km)

산행시간 : 때로는 빡쎄게 또 떼로는 여유있게 사진 담으며 09시간 40분 (07시 00분부터 16:40분까지)

교통편 : 애마와 택시 이용

 

진양기맥이란 ??? 아직 공식명칭은 아니지만 신 산경표의 저자인 박성태님이 그 이름을 붙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독립된 기맥으로 부르고 있는 가칭 진양기맥은 백두대간의 남덕유산에서 남동쪽으로 가지를 쳐 월봉산, 금원산, 기백산, 망설봉, 갈전산, 바랑산, 소룡산, 황매산, 철마산, 금곡산,성현산, 산성산, 한우산, 자굴산, 망룡산, 천황산, 집현산, 광제봉을 일으키고 남강 유역인 진양호의 남강댐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159.1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진양기맥 산줄기는 주로 남강과 황강을 가르는 분수령으로 진양기맥의 서쪽 내지 남쪽의 물은 남강으로 흐르고 산줄기 동쪽의 물은 황강 내지 낙동강 본류로 흐른다.

남강과 황강을 가르는 산줄기로만 따진다면 한우산에서 좌굴산,집현산,광제봉,남강댐으로 가지 말고 한우산에서 응봉산,우봉산,돌문재쪽으로 가야 할 것이나 남강댐쪽이 거리도 25km쯤 더 길고 산세도 더 수려하며 진양호에서 맥을 다한다는 이유로 대부분 종주자들이 남강댐쪽으로 이어가고있다.
진양기맥은  하동을 제외한 서부 경남의 전지역인 함양,거창, 합천, 산청, 의령, 진주등 6개시군을 지난다. 

 

 

미세먼지로 시야는 없었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담았던 산행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2년 전 다니던 네덜란드 회사가 10배쯤 더 큰 독일회사로 편입되면서 직원들 생활과 복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직원들 건강과 휴일 근무 그리고 연중 휴일 제도의 변화이다.

작년에도 20여일 넘게 유급 휴가가 있었지만 반 정도만 쉬고 다 쉬지를 못해 올 4월까지 작년에 소진하지 못한 휴가를 쓰기로 하였지만 쉽지 않아 사용하지 못하다 이번 주 금요일 하루를 빼 남녘으로 내려가 진행하던 진양기맥 3구간을 다녀 오기로 한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미세먼지와 토요일 오후부터 내린다는 겨울비 예보로 인해 금요일 하루만 산에 들기로 하였는데 그나마도 그 근처의 회사에서 연락이 와 함께 산행하며 일을 처리하다 보니 하루만 산행 후 올라오는 아쉬운 기회가 되어 버렸다.

다음에 내려가면 이번에 마친 떡갈재에서 아등재까지 30 여 Km가 넘는 거리를 하루에 오를 수 있을지 조금은 고민되는 산행 구간이 되어 버렸다. 

 

 

세이덤 오르는 등로는 북사면으로 얼었던 길이 녹으며 여간 미끄럽지 않은데다 그 오르막이 너무나 가파라 코가 등로에 닿을 정도다.

그 세이덤을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라 오르니 금새 바랑산정상인데 이 바랑산이란 이름은 금남정맥 산행을 하면서 대둔산 지나 논산에서 한번 만나 참으로 멋진 산 이름이라 기억하기에 오늘 만나 이곳 바랑산 이름에 잠시 옛날 생각에 젖어 본다.

진양기맥의 바랑산은 경남 산청군 오부면 왕촌리에 있는 산으로 바랑산(796.4봉)은 2만5천분의 1 지형도에는 바람산으로 기재 돼 있지만 이곳 주민들이나 산꾼들은 모두 바랑산으로 알고 있다.

바랑은 배낭이 변한 말로 스님들이 지고 다니는 볼록한 주머니란 뜻으로 산청 바랑산은 원래 마고할미의 주머니였다고 한다.

인근 소룡산의 새이덤은 마고할미가 바랑에 넣고 가다 흘린 돌무더기이고 옆에 있는 월여산은 딸이며 보록산은 아들이라고 한다.
마고할미 설화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바랑산이 뼈대가 있다는 의미로 오래된 동네의 명산에는 대부분 전해져 오는 전설이 있는데 소룡산(761봉)은 용의 보금자리라 한다.

 

 

새벽 2시 40여분에 일어나 어젯밤 챙겨 놓은 간단한 배낭과 토요일까지 2일간 진행 할 산행 준비를 한 가방 하나들 들고 새벽 3시에 집을 출발 해 춘전치로 향한다.

내려가다 지난 번 들렸던 안의면의 CU 편의점에 들려 컵라면 하나를 먹고 다른 컵라면 하나와 햇반 그리고 뜨거운 물을 담은 후 산행 들머리인 춘전교에 도착을 하니 새벽 6시 50분을 넘기고 있다.

이곳 춘전리란 마을 이름의 유래는 임진왜란때 엄능이라 하다가 뒤에 지금의 내춘을 중심으로 엄전이라 하여 음지이라고 부른다.

경남 거창군 안의현의 황곡리에 따랐었고 안의면에 속하게 되어서 밭이 많은 곳이라 춘전이라 했다하며 1973년에 남상면에 붙였다.

춘전레에는 남영, 내춘, 외춘, 교동 등 4개 마을이 있는데 이곳 춘전교가 있는 마을은 외춘마을로서 내춘보다 뒤에 생겼으므로 새터 또는 바깥음지이라고 하는 마을이다.

 

 

그곳 춘전교 한쪽에 애마를 잘 주차 시킨 후 외춘, 춘전이란 버스 정류장을 사진에 담고 춘전교를 건너자 마자 좌측으로 나 있는 콘크리트 임도를 따라 새로 확장중인 88고속도로 4차선을 지하통로를 통해 건넌 후 우측 공사장 한쪽 절개지 쪽으로 걸어 오르며 오늘 산행을 시작한다.

걸어 절개지가 양쪽으로 펼쳐진 공사장 안으로 들어가니 이곳도 88고속도로 옆으로 지방도로가 날 예정인가 본데 그 도로 위로 육교같은 임시 구조물이 가로 놓여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88고속도로는 12번 도로표시가 되어 있고 고속도로 건너편에 지난번 내려온 2차선 포장도로가 바로 1084번 지방도로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곳 반대쪽에 다시 새로운 도로가 생기면 그 도로 번호는 또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한 시간이다.

그곳을 지나 더 오르니 좌측 능선 위로 높은 송전탑을 지나 저 앞으로 작은 사각 콘테이너 박스가 눈에 들어 오는데 그곳에서 좌측 절개지 능선으로 오르면 될 듯 싶다.

새롭게 공사가 진행되며 들머리 찾기도 쉽지 않은 시간이지만 다행이도 어렵지 않게 들머리를 찾은듯 하여 즐겁게 진행하는 시간이 되였다.

 

 

작은 콘테이너 박스 좌측으로는 작은 개울물이 흐르는데 그 개울가에도 정비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중임을 알리고 있다.

콘테이너 박스 좌측 절개지를 타고 앞에 올려다 보이는 큰 소나무 한그루쪽으로 오르니 다시 도로 보수를 위한 콘크리트 임도가 도로 따라 길에 나 있고 그곳을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올라 방금 전 올라 온 등로와 공사장 그리고 콘테이너 박스를 내려다 보니 벌써 저 멀리 제법 멀어져 간고 있다.

진행중인 도로 공사가 완전히 마무리되면 산행 들머리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이는 그런 풍경으로 가슴에 남아있다.

 

 

이제 절개지를 올라 능선으로 들어가며 뒤돌아 보니 절개지와 88고속도로 그리고 그 고속도로 건너편의 2차선 지방도로 뒤 저 멀리 사별산이 고개만 내밀고 있고 그 우측에 보여야 할 기선봉은 산줄기에 막혀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능선으로 들어가니 희미한 족적에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보이더니 금새 뚜렷한 등로로 변하며 푹신한 낙엽길로 안내를 해 주고 있다.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논들이 보이는데 그곳에 검정 그늘막으로 만들어진 창고같은 건물도 내려다 보인다.

그곳을 지나니 묘지들이 연달아 나타나는데 제일 윗쪽 묘지를 보니 김해김씨 묘비가 서 있고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절개지에서 보이지 않더 사별산과 기선봉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조망을 즐긴 후 다시 능선을 타고 오르니 등로엔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나뒹굴며 흩어져 있지만 세월이 지난 후이어서 그런지 산행에는 큰 지장이 없다.

잠시 무명봉 지나 진행하니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지고 치톤피드를 마음껏 들이 마시며 잠시 삼해진 미세먼지도 잊어 보는 시간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박무와 미세먼지 그리고 구름으로 인해 일출을 보지 못함이 아쉬운 시간이다.

다시 잠시 이어지는 소나무 군락지 아래오 잡목들이 발목을 잡는 등로를 지나니 갑자기 함양군에서 세워 둔 해발 670미터의 멋진 식기봉 정상석이 서 있다.

살펴보니 정상 봉우리도 아니고 지도에도 없는 식기봉을 왜 이곳에 세워 놨을까 궁금해 함양군 자료를 찾아 보니 식기봉 함양군과 거창군 그리고 산청군 등 3개 군의 경계봉으로 산아래 마을이 신기마을이 있어 신기봉으로 불리다가 식기봉으로 변했다고 한다.

최근에 함양군에서는 함양군에 있는 모든 산의 봉우리마다 커다란 표석을 세웠는데 이 식기봉에도 이렇게 큰 정상석을 설치해 놓았다.

설치 뿐만 아니라 관리 및 그 유래라도 함께 알려 주면 산행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식기 정산석을 지나 오르니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그 능선에서 좌측 저 멀리 수많은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달려 있다.

그 능선 분기점을 지나 잡목지대를 통과하니 잠시 키 작은 소나무들만 자라고 있는 공터가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폐헬기장처럼 보이는 그런 공터이다.

이곳에서 조망을 살펴보지만 주위 소나무들과 잡목들로 인해 조망은 전혀 없는 곳이다.

 

 

다시 그 헬기장을 지나 진행하니 등로엔 키 큰 소나무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아래에는 간벌한 곳에서 키 작은 관목들이 자라면ㅅ서 잡목지대처럼 우거져 있다.

선답자들이 만들어 놓은 작은 소로의 등로를 따라 그 잡목지대를 빠져 나가니 다시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등로 위를 나뒹굴고 있지만 그 마저도 선답자들의 통행 시 치워 놨는지 산행에 큰 지장을 자지는 않는다.

그렇게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나즈막한 무명봉과 안부를 오르락 내리막 하니 등로는 여전히 멋진 소나무 군락지로 채워져 있어 미세먼지로 아쉬웠던 기분이 상쾌해 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곳 산은 사유지인지 참으로 잘 관리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소나무들만 잘 자라도록 가지치기가 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소나무들이 생장하는데 전혀 지장을 주지 못하는 키 작은 관목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더욱 굵고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잠시 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삼각점과 그 삼각점 뒤 저쪽 나뭇가지에 정상 이정표가 붙어 있는 덕갈산에 도착을 한다.

덕갈산에 대한 자료를 거창군 남상면에서 찾아 보니 이곳은 떡갈나무가 많은 산이라서 떡갈살이라 부르다가 지금은 덕갈산이라 부르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 등로는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크게 꺾여 내려가는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해야 한다.

 

 

내려가기 전 가야 할 마루금을 살펴보니 저 멀리 좌측으로 마루금에서 살짝 비켜 서 있는 매봉산과 그 우측으로 올라야 할 갈전산이 미세먼지속에서도 뚜렷한 모습으로 다가 온다.

그 매봉산 좌측 동쪽으로는 지난 구간부터 계속 눈길을 따라 오던 감악산이 또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인연을 만들자고 치근거리듯 다가온다.

잠시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평이한 능선이 이어지고 한동안 마음 편안하게 내려가니 갑자기 기계음이 크게 들리며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조심하며 그 공사장 한쪽으로 내려가니 포크레인 운전기사가 잠시 작업을 멈추고 등산복장을 하고 있는 이 산객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기에 설명하고 무슨 공사냐고 물어 보니 새로운 도로를 만들기 위한 공사라고 전해 준다.

이 공사가 끝나면 진양기맥 마루금은 또 어떻게 변하고 또 후답자들은 어떻게 이곳을 통과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기도 한 시간이다.

 

 

포크레인 기사님의 배려로 쉽게 그 공사장을 빠져 나와 좌측 2차선 포장도로 위로 올라 잠시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1034번 지방도로이다.

원래 마루금은 능선을 계속 타고 와 저 도로 좌측 절개지로 내려 와야 할 것 같지만 도로가 생기면서 절개지로 인해 등로 우측 사면 등로로 내려 왔는데 그곳마저 새로운 도로 공사로 막혀 버리니 점점 더 맥 잇기 산행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나 온 절개지 쪽으로 가 보니 그곳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 오는데 살펴보니 덕갈산 0.6 Km란 이정표와 거리 표시이다.

이제 그 1034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1034번 2차선 포장도로인 지방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표시판에는 청수로란 표시가 뚜렷하고 도로 옆 표시판에는 지나 온 방향으로 거창까지 16 Km 란 표시가 뚜렷하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저 앞에 건물이 보이는 도로 우측 옆으로 이정표 하나가 보이고 살펴보니 갈전산 2.1 Km란 방향과 거리 표시가 함께 되어 있다.

그곳에서 우측으로 90도 꺾어 진행해야 하지만 저 앞에 보이는 건물이 궁금해 살펴보니 농업회사법인(주)원산종돈으로 아마도 돼지 축사인듯 보이는데 등로로 오르며 살펴보니 생각보다 무척 큰 축사처럼 보였다.

이곳은 갈전재 또는 수영덩이라 불리는 고갯마루인데 경남 거창군 남상면과 신원면 그리고 산청군 생초면의 3개 면이 만나는 지점의 고갯마루로서 6.25 전쟁 당시 무고한 양민학살이 자행되였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고갯마루이기도 하다.

 

거창 양민 학살사건을 백과사전에서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1951년 당시 한국군 11사단은 지리산 일대의 빨지산 토벌에 동원되어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11사단장 최덕신이 토벌을 위해 휘하 부대에 보낸 방침은 견벽청야 즉 빨치산들이 머물 지역 자체를 없애버린다는 발상 자체는 정석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나 어처구니가 없어도 너무 없게도 이러한 견벽청야 방침에는 빨치산이 출몰하는 지역의 주민은 모조리 적국 국민으로 취급하고 더 나아가 제거 대상으로 본다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 공비 토벌을 명목으로 출동한 한동석이 이끄는 한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는 사단의 이러한 사단의 방침을 그대로 이행하여 민간인들을 안전 지역으로 피난시킨다는 명목으로 인근 초등학교 건물로 사람들을 전부 모은 후 군경 가족 등을 추려내고는 주민들을 전부 인근 박산으로 이끌었다. 국군이 지켜주는 피난길을 간다고 말 그대로 남부여대하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어간 이들에게 쏟아진 건 같은 나라 군대의 총탄으로 700명 가까운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죽인 11사단 병력은 시체에 휘발유 뿌려 불을 붙이고 매장하는 등 증거인멸에도 나섰다.
하지만 그런 지옥 속에서도 시체 더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고 사람들이 박산으로 이끌려 나가기 직전 선별 과정에서 살아남은 사람도 있었는데 울함을 참지 못한 살아남은 이들이 뜻을 모아 당시 거창 지역 국회의원이던 신중목에게 눈물로 호소를 했고 사실을 알게된 후 경악한 신중목이 국회에서 이 사건을 공개하면서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긴급히 국회에서 조사단이 꾸려져 거창 지역으로 파견되었고 당시 지역 계엄사령관인 김종원이 국회 조사단을 빨치산으로 위장한 한국군 병력으로 현재의 갈전재 즉 수영덩이 고개에서 방해하는 짓을 저지르고 한국군에선 죽은 자들은 전부 빨갱이라고 주장하였으나 결국에는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이 실제 벌어졌다는 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전원 군사재판에 넘겨져 최덕신은 직위 해제되고 연대장 오익경은 무기징역으로 대대장 한동석은 징역 10년 그리고 실제 학살을 집행한 소위 이종대는 명령에 따랐다는 이유로 무죄가 되였고 게릴라로 위장한 군 병력을 동원해 국회의 조사를 방해한 김종원은 징역 3년 등의 판결을 받았다.

김종원을 제외하면 저지른 죄에 비해 가볍기 그지없는 판결임에도 판결 얼마 후 관련자들은 전부 특사로 풀려나 현역에 복귀했지만 최덕신의 경우는 적성마을 토벌이 주민 소개 등으로도 해석 가능하여 학살로만 해석되지는 않는 점이 적용되어 부하 관리 소홀 혐의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라이 학살 당시에도 상부의 토벌 지시는 해석하기 애매하다는 점을 들어 문제삼지 않고 실행범인 켈리 소위만 처벌했다.

4.19 이후 이승만 정권이 물러난 2공화국 시기에 민간인학살사건의 생존자와 생존자 가족이 당시 학살에 협력했던 면장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이면서 사건은 다시 한번 세상의 이목을 이끌었고 거창의 생존자들은 명확한 진상 규명과 학살당한 이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이건 아니라는 주장이 있어 잘못 알려졌거나 이걸 이용해서 마녀사냥 하득 죽인 것이 잘못 와전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는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주장하는 이들을 전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아넣고 말았는데 아닌게 아니라 이 정권에서 2인자 중 하나인 정일권이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고 최덕신도 박정희 정권에서 권력 밖으로 쫓겨나기 전까지는 호의호식하였다. 물론 위에 언급한 것처럼 직접적인 학살 명령을 내린 증거가 없어서임은 물론으로 김종원도 권력은 잃었지만 조사 방해는 중죄가 아니고 학살가담자가 아니라며 더는 처벌하지 않았다. 한편 한동석과 오익경의 경우에는 1년도 안 돼 사면되어 현역으로 복직했다는 것이 1960년 뒤늦게 밝혀졌으나 그 이상으로 알려진 것이 현재로서는 없어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하.

 

 

가슴 아픈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담당했던 갈전재 즉 수영덩이에서 잠시 동족 비련의 아품을 생각해 보고 우측 개울 위에 놓여 있는 앙증맞은 나무 다리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지금보다 더 멋진 소나무 등로가 잠시 침울했던 산객의 마음을 진정시키며 즐겁게 바꿔 놓고 있다.

가파른 오르막 등로는 힘들게 하지만 그 등로 주위를 가득 채운 멋진 소나무들이 많은 치톤피드를 내뿜으며 이마와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산객을 응원하고 있다.

적당히 간벌된 소나무 숲이기에 더욱 산행에 기분 좋아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잠시 땀방울 흘리며 오르니 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진입하니 이제부터는 소나무 보다는 갈참나무 숲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감자기 등로 주위의 소나무와 갈참나무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살펴보니 오래전 설치되어 녹이 쓸어 버린 철조망이 등로와 함께하고 있다.

개인 사유지이며 이곳에 임산물을 가꾸고 있어 오래전부터 출입금지를 시킨 것은 아닐까 생각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다시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한동안 오르니 나즈막한 안부 지나 가파른 잡목지대가 펼쳐지더니 매봉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난다.

  

 

매봉산 갈림 삼거리에서 잠시 고민하지만 역시 언제 다시 이곳에 올지 모르기에 다시 땀흘리며 매봉산으로 향한다.

고도가 높고 약간은 북사면이기에 등로엔 약간의 잔설이 남아 있어 약간은 긴장을 하며 오른다.

오르니 잠시 구름속에 숨어 있던 햇살이 얼굴을 내밀고 정상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뒤돌아 내려 와 매봉산 갈림 삼거리로 복귀한다.

오늘 산행하는 구간 중 제일 높은 봉우리인데 자료를 찾아 봐도 제대로 된 자료는 찾지 못하고 단지 산의 형태가 매의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란 자료만 어렵게 찾아 본다.

 

 

매봉산에서 내려 와 이제는 좌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더 내려가니 낙엽진 앙상한 갈참나무 군락지 아래 성가실 정도로 자라고 있는 관목과 잡목들이 등로를 어지럽게 막고 있지만 다행히도 겨울이라 산행에는 큰 지장을 주지 않지만 여름철 산행에는 고생 좀 해야 될 구간으로 생각된다.

잠시 더 진행하는 무명봉 하나는 우측 우회 사면로로 통과하여 다시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른다.

 

 

사면 등로를 지나다 보니 남사면은 완전히 녹아 질처이지도 않지만 북사면은 이제서야 기온이 오르며 얼었던 등로와 잔설이 녹아 미끄러운 등로로 변하고 있다.

낙엽속에 얼어 있는 등로가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에 북사면을 지날 땐 더욱 조심하는 산행 시간이다.

잠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 지난 구간 넘었던 사별산과 오늘 걸었던 등로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지만 미세먼지로 인해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진행하니 삼각점과 정상 이정표가 있는 갈전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갈전산은 산청군 관내에서 제일 북쪽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칡이 많아 갈전산이라고 하며 등산로는 잘 나 있지 않지만 산청 북쪽의 산행지로 권하고 싶은 산이다.
갈전산 등산로는 산청읍에서 3번 국도를 타고 함양방면으로 가다가 생초면 소재지의 어서리 입구에서 1034번 지방도를 이용한다.

포장이 끝나는 향양리 6 Km 지점의 어원동 마을의 오른쪽 임도를 따라 1 Km를 가면 임도가 끝나고 본격 갈전산 등산로 초입이며 갈전산 정상은 왼쪽 높은 봉인데 여기부터는 글자 그대로 칡밭이다.

이 칡밭을 따라 1.5 Km를 가면 갈밭재 갈림길이 있는데 여기서 바른쪽은 거창군 신원면 청수리 넘어가는 길이고 왼쪽이 정상가는 길이다.

갈림길에서 정상까지는 600미터인데 정상에 서면 덕갈산, 매봉산, 보록산, 바랑산 등 산청 북쪽의 거창 지역 산들이 전부 조망된다.

갈전산은 거리가 짧아 아쉬운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 정상에서 매봉산을 거쳐 건너편의 덕갈산으로 가서 630봉과 645봉을 지나 내려서면 향양리의 어원동이니 두루 운행하는 것도 권하고 싶다.

그러나 산길이 희미하고 거리가 어원동에서 원점 회귀하면 12 Km이니 독도에 자신이 있어야 멋진 산행이 된다.

 

               

 

특별한 조망도 없기에 갈전산 정상에서 정상부만 사진에 담고 곧바로 출발을 한다.

낙엽이 푹신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등로 옆에 녹슨 철조망이 따라오고 살펴보니 등로 우측 철조망 넘어에는 입산금지 송이관리란 안내판이 붙어 있다.

아마도 송이 채취시에는 산행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될 것 같은 느낌이지만 무엇보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견물생심에 초연해야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다시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소나무에 출입금지 경고판이 붙어 있고 우측으로도 뚜렷한 등로가 열려 있어 잠시 지도 꺼내 정독을 한 후 그 경고판 아래의 직진 등로를 타고 계속 이어가 본다.

 

 

다시 소나무들과 낙엽진 활엽수들이 적당히 섞여 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건너고 묘지 하나를 통과한다.

묘지를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지나온 등로가 올려다 보이고 잠시 올려다 보며 살펴보니 방금 전 다녀 온 매봉산이 저 멀리 우뚝하다.

그 매봉산을 지나 이어진 산줄기 하나도 제법 그럴듯한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그 산줄기도 제법 고도를 유지하며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는 오랫만에 다시 얼굴을 내민 햇살 아래 728봉과 전위봉이 쌍봉을 이루며 서 있다.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갑자기 잡목과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데 그 임도 한쪽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갈전마을 하산 등로가 열려 있는 곳으로 바로 갈밭재이다.

경남 거창군 신원면 청수리는 청용과 수동이란 마을의 앞자에서 한글자씩 따서 청수리라 했다는데 마을로는 청용, 수동 그리고 대안이란 3개 마을이 있다.

갈전이란 마을은 대안 위에 있는 마을로서 대안은 옛날 순흥안씨가 마을을 열었다하여 이름이 붙여졌고 6.25 동란 때 불탄 것을 1953년 다시 세웠다고 전해진다.

 

              

 

갈밭재 역시 여름철 산행 시에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그런 풍경으로 남겨진다.

그 갈전 갈림 이정표를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파란 물통이 보이고 우측 능선으로 오르려는데 그 입구에도 또 다른 이정표 하나가 서 있고 살펴보니 지나 온 갈전산까지의 거리 표시가 다르게 되어 있어 헷깔린다.

능선으로 오르며 지나온 등로를 올려다 보니 이제 매봉산과 갈전산 등로가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다시 능선으로 들어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무명봉 지나 소나무 군락지가 열려 있고 넓은 공터를 지나 갈전산에서 1.7 Km 지나왔고 철마산까지 1.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이정표를 지나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잠시 간벌된 나무들이 등로 주위에 흩어져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오지만 오래전 일인듯 산행에는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 이정표와 간벌된 구간을 지나니 이제 제법 굵은 소나무 몇개가 듬성 듬성 서 있고 그 아래에는 진달래 꽃 나무 군락지가 마치 잡목 구간을 연상시키듯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잠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에 잡목이 우거진 곳을 오르니 앞에 묘지가 보이는데 등 뒤로는 이제 잡목 사이로 지나온 갈전산과 그 우측으로 매벙산 줄기가 뚜렷히 올려다 보인다.

 

 

묘지를 지나 이어가니 묘지 우측으로는 제법 큰 바위가 서 있고 공터같은 정상부를 지나 넘으니 활엽수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무명봉을 넘는다.

다시 이어지는 잡목 구간을 조심하며 진행하니 봄이 와 진달래 꽃이  만개하면 참으로 곱고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이 밀려 온다.

그저 이름이 없어도 이렇듯 숨어 있는 좋은 등산로가 얼마나 많은지 오늘 같은 날 산행을 하면서 또 다시 배우는 시간이다.

 

 

다시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고 진행하니 이제 철마산이 0.4 Km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그곳에 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 옆에 나즈막한 높이의 하얀 이정판에 우측으로 임도 갈림 이정표가 또 하나 서 있고 이제 정상까지는 0.2 Km란 거리 표시가 눈에 거슬린다.

방금 전 0.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에서 채 5미터도 진행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정상까지 0.2 Km가 남아 있다니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지 한심스럽기만 하다. 

제작해 세워 두려면 제대로 하던지 하니면 차라리 세우지 않는편이 나을 듯 싶기도 하다.

 

 

그 안부를 넘으니 다시 묘지 하나가 보이고 그 묘지 넘어 철마산 정상부로 이어지는 가파른 등로도 눈에 들어 온다.

묘지와 안부 지나  미끄러운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억새풀이 말라있는 평이한 등로가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그 능선을 따라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는 산청군 생초면 향양리 마을이 미세먼지속에서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다시 헬기장을 만나고 큰 바위 2개가 서 있는 전망바위에 도착해 살펴보니 가야 할 마루금 우측 저 멀리 언젠가는 올라야 할 산청의 왕산과 필봉산이 박무속에 희미하게 그 존재감을 알리지만 그 이상의 조망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그렇게 주위 조망을 즐기며 천천히 능선을 따라 걸어가니 금새 산청군 생초면의 해발고도 744미터인 철마산에 도착을 해 증명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리고 이곳 거창과 산청 경계에 있는 철마산의 자료를 찾아 보지만 제대로 된 자료가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철마산이란 산 이름은 우리나라 전국의 산 이름에서 제법 많은 산 이름중 하나로서 이 산객이 알고 있는 철마산만 하더라도 약 5개나 되고 있으니 모르는 것까지 합치면 얼마나 많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곳 철마산은 해발고도 744미터로서 경남 산청군 생초면과 거창군 신원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그 의미는 정확하지 않지만 말발굽형태를 지닌 산이란 뜻도 있고 말을 탄 장군이 탄생한 곳이란 뜻도 있는데 어느 것이 맞는 뜻인지는 이 산객도 모르겠다.

다만 이곳 철마산 정상은 6.25때 지리산빨치산과 국군토벌부대인 107연대와 대치했던 곳으로 거창군 

신원면 대현리에는 빨치산을 근원적으로 차단한다는 미명아래 인근주민 700여명이 학살되었던 비극적인 장소이기에 그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이곳 철마산 정상에서의 조망이 특히 좋다고 알고 올랐지만 오늘은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제한된 시야이니 그저 마음속으로만 그 아름다운 조망을 바라 볼 뿐이다.

북쪽으로는 지나온 갈전산과 매봉산 넘어 저 멀리 희미하지만 함양 4개산인 기맥, 금원, 거망 황석산이 희미하게 다가 온다.

등로 우측 서쪽으로는 생초면 향양리 넘어 백두대간 백운산과 그 옆 장안산이 아주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온다.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희미한 실루엣으로 지리연봉이 다가오지만 분간조차 하기 힘들 정도이고 좌측 동쪽으로는 이제부터 올라야 할 마루금 넘어 저 멀리 황매산이 다가온다.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시간이지만 이것이 자연인 것을 다음에 다시 오를 수 있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약간의 남동쪽으로는 지나야 할 바랑산과 소룡산 넘어 저 멀리 소황매산(할미산)과 황매산이 흐릿한 박무속에서도 뚜렷히 각인된다.

미세먼지로 인해 더욱 멀리 보이지만 저 황매산 직전 떡갈재까지는 가야 하기에 조바심 없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걸어 보자 마음 먹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도 한발 두발 걷다 보면 목표로 했던 그곳까지 갈 수 있을 것이지만 내일 산행이 더욱 고민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조금 더 진행하다 등로 우측의 전망바위로 가니 더욱 뚜렷히 등로 우측의 조망이 펼쳐지지만 역시나 박무와 미세먼지로 아쉽기만 하다.

전망바위 바로 아래에 산청군 생초면 향양리와 구평리가 펼쳐져 있고 그 위쪽으로 화양저수지도 내려다 보인다.

연화산과 승화산 넘어 저 멀리 백두대간 마루금과 그 우측으로 함양의 4개산이 보이지만 분간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희미하니 더욱 애간장이 타들어가는 시간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조망을 마음속으로 찾으며 한참을 전망바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철마산 정상부로 올라 가 네려 놨던 배낭을 둘러메고 이곳 전망바위 좌측의 바위 너덜길이 아닌 좌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철마산 정상부에서 진행하며 내려가다  보니 돌로 쌓아 올린 산성터 같은 모습이 눈에 들어 와 인터넷과 그곳 지자체 자료를 모두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등로를 타고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조금 내려오니 그 등로는 자꾸만 우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결국은 전망바위 아래 바위 너덜길 아래로 이어지고 있다.

그냥 배낭 메고 전망바위로 올라 조망을 즐긴 후 이어지는 바위 너덜길을 타고 진행하면 무리가 없었을 것을 괜시리 내려갔다 오르기를 두어번 하고서야 정상 등로를 차장 이어가 본다.

 

 

바위 너덜길을 내려 와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 조망을 즐겼던 전망바위가 빤히 올려다 보인다.

내려가니 묘지 앞에 바위 하나가 서 있는 장소를 지나 잠시 잡목 사이를 걸어 본다.

그렇게 내려가니 이제 철마산에서 0.4 Km 내려왔고 좌측으로 예동마을까지 1.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반기는데 이제부터 저 예동마을을 좌측에 두고 한동안 진행을 해야 한다.

그 이정표 옆에는 또 다른 키작은 하얀 이정판에 노은과 정상 0.3 Km란 이정표가 서 있는데 어느것이 맞는지 헷깔리기만 하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그 이정표들을 지나자 곧이어 거창463이란 글이 적혀 있는 삼각점이 나타나는데 지도를 보니 705.1봉인데 이곳 삼각점 안내판에는 706.1봉으로 적혀 있다.

 

 

 

 

다시 소나무들과 잡목이 잘 어우러진 등로를 타고 평이하게 전진하니 다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다가 갑자기 콘크리트 포장 도로가 나타난다.

그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내려가니 그 포장 임도가 U자형으로 툭 튀어 나온 산마루를 돌아 흐르고 있는 모습이다.

내려 와 산행 들머리를 찾아 보지만 그 포장 임도를 가로 질러 급경사 내리막에 등로 같은 뚜렷한 길이 있지만 정황상 그곳이 정상 기맥길 같아 보이지는 않아 한참을 정상 등로 찾아 이리 저리 왔다리 갔다리 해 본다.

그래도 찾지 못해 결국 지도를 놓고 정독을 하면서 나침판으로 방향을 확인하니 그 콘크리트 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돌아 진행하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시멘트 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잠시 더 걸어가니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이 바로 흰머리재라 생각되는 곳이다.

이곳 삼거리에서 바라보니 직진 방향으로 예동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좌측으로는 오르막 밭을 따라 철마산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정상 등로는 우측 콘크리트 포장 임도를 타고 들어가 좌측에 밭을 두고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넓은 공터로 오른 후 능선으로 진입하는 방향으로 추측이 된다.

우측으로 밭 가장자리를 타고 걸어가면 밭 가장자리에 녹색 그물망이 쳐져 있고 그 녹색 그물망을 바로 등로 좌측에 두고 비포장 임도를 따르면 될 것이다.

흰머리재는 산청 생초면 노은리에서 거창 신원면 중유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로서 등로 좌측으로는 신촌마을이 자리하고 있고 그 신촌마을 지나 큰 예동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밭을 좌측에 두고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이제 막 얼었던 임도가 녹으면서 여간 미끄럽지 않다.

더욱이 그 녹아 있는 표면 아래에는 아직 얼었던 얼음이 남아 등산화에 진흙이 달라 붙을뿐 아니라 미끄럽기까지 하니 체력 소모가 평소의 2배는 족히 되는듯 싶다.

그렇게 오르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 공터엔 억새가 사람 키보다 더 자랐다 말라 있어 진행에 여간 어렵지 않다.

그 억새지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선답자들의 띠지가 하나 둘 보이고 그 능선으로 진입하기 직전 뒤돌아 보니 철마산에서 705.1봉 지나 흰머리재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뚜렷하게 펼쳐져 있다.

 

 

 

능선으로 올라 잡목을 헤치며 전진하니 금새 검정 차단막이 둘러쳐져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휘어져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예동마을과 721.6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그 721.6봉 우측 저 멀리 한동안 함께 진행하던 월여산이 멀어져 가고 있다.

중유리를 찾아 보니 느릅나무가 많은 골짜기인 유곡의 중간에 자리하므로 중유리라 하며 이 중유리에는 하유, 중유, 상유, 예동, 신촌 및 유항 등 여섯마을이 있는데 예동마을에 대한 상세한 자료는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 올라 보지 못한 월여산이기에 조만간 꼭 한번 올라 오늘을 추억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월여산은 경남 거창군 남쪽 지맥에 우뚝 솟아 있는 산으로 인근 사람들은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다 해서 삼봉산으로도 부른다.

이 산은 산세가 좋아 무학대사가 금계포란형이라 지목하여 유명한 풍수가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거창의 지형으로 보아 거창지역의 모든 물줄기는 거창읍을 거쳐 남하면에서 합수하여 합천호에 이르지만 월여산이 위치한 신원천만은 그 아래쪽으로 독립되어 흐르고 산이 높아 골 또한 깊어 수량이 풍부하다.
그 물이 맑아 월여산을 찾는 이들을 반기는데 정상 서쪽면은 층암절벽이 관목과 어우러져 가을 단풍이 특히 아름답다.

 

 

 

이제 등로는 좌측으로 낙엽송이 줄지어 서 있고 그 뒤로는 예동마을과 월여산이 보이고 우측은 잡목이 우거진 형태로 진행이 된다.

다시 숲으로 들어가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희미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야 한다.

묵은 묘지 하나를 지나 내려가니 갑자기 드넓은 인삼밭이 펼쳐지는데 지난 여름 불어 온 강풍으로 인해 햇볕 가리막은 모두 사라지고 앙상한 나무목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잠시 좌측에 인삼밭을 두고 능선으로 진행하다 보니 등로가 사라지고 인삼밭 우측 가장자리로 이어진다.

인삼밭 지지목을 받쳐주는 끈들이 산행에 어려움을 가중시키지만 이렇게 정성을 들이는 농부에 비해서는 취미생활이라 생각하니 지날만 하다.

다시 인삼밭 가장자리에서 능선으로 들어 조금 더 진행하니 드넓은 본봉이 없는 묘지지대를 지나 비포장 임도를 만나는데 그 임도 우측에 농자재를 보관하는 작은 건물이 눈에 들어 온다.

 

 

 

그 농자재를  보관하는 작은 창고같은 건물을 지나자 마자 우측 절개지를 덮어 놓은 볏짚들이 보이는데 그 절개지 초입 우측 능선으로 어렵게 오르며 진행하니 잡목이 앞을 가려 잠시 다시 좌측 임도로 내려가 진행을 할까 고민하다 그냥 오른다.

생각보다 짭ㄹ은 잡목 구간을 뚫고 오르니 평이한 봉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삼면봉이란 종이 코팅지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아마도 거창군 신원면과 산청군 생초면 그리고 오부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가 아닐까 생각되는 봉우리이다.

이곳에서 등로는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좌측 벌목지대를 지나 앞으로 보이는 인삼밭으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

 

 

 

삼면봉에서 벌목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오니 다시 콘크리트 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앞으로는 햇빛 차단막이 모두 벗겨진 인삼밭이 펼쳐져 있다.

살펴보니 방금 전 농자재 보관 창고 뒤에서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계속 그 임도를 타고 오면 이곳으로 오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이곳에서 저 앞에 보이는 인삼밭을 가장자리의 끈을 피해 조심해서 오르니 다시 능선 입구에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보이고 이제서야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 본다.

능선으로 오르면서 방금 전 지나 온 삼면봉과 인삼밭을 담아 본다.

 

 

 

능선으로 들어가니 다시 소나무들이 줄지어 있고 등로엔 푹신한 솔잎이 쌓여 있는 좋은 등로와 이어진다.

잠시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를 넘으니 넓은 공터같은 장소가 나타나 잠시 두리번 거리고 직진의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와 이어진다.

한동안 그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논들이 내려다 보이면서 전봇대가 서 있는 비포장 임도로 내려 선다.

이제 이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임도 양쪽으로는 논과 밭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임도도 비포장에서 시멘트 포장 임도로 변하고 있다.

걸어가면서 앞을 보니 저 멀리 올라야 할 바랑산이 보이고 그 바랑산으로 이어지는 비산비야도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그 시멘트 포장 임도를 타고 앞으로 걸어가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걸어 지나온 삼면봉과 무명봉이 멀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임도 좌측에서 지나 온 등로를 확인해 보니 처음 시멘트 포장임도를 만났던 흰머리재 또는 인삼밭을 만나면서 부터 정상적인 등로를 찾아 진행하기 어려워 임도와 마을 수레길을 따라 예동마을 쪽으로 걸어 이곳 임도로 진행한 산행 후기를 많이 접했던 것 같은데 겨울철인 요즈음은 정상 등로만 잘 찾을 수 있다면 능선 마루금을 통해 진행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 하다.

다만 여름철 잡목이 심하게 우거지면 정상 등로를 찾아 진행하기에 어려움이 예상되어 많은 산객들이 이 임도를 따라 진행하는 듯 보인다.

 

 

 

시멘트 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다 보니 우측 논 사이로 마루금이라 생각되는 등로가 보이고 그곳으로 들어가 조금 걸어가니 바로 앞에 거대한 사과 과수원이 존재하는데 그 과수원 전체 둘레에 파란 그물망을 설치하고 있으며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선답자들이 자났을 것 같은 등로를 따라 걸어 보지만 사과 과수원 작업으로 인해 눈치도 보이고 진행에도 어려움이 있어 다시 시멘트 포장 임도를 타고 그 사과 과수원을 우측에 두고 빙 돌아가니 진양기맥 종주 등산로 안내도의 철마산에서 소룡산 구간과 이정표가 서 있는 예동마을 삼거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제 바랑산까지는 1.4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긴 한숨을 내몰아 쉬게 만들고 있다.

 

 

 

예동마을 삼거리에서 잠시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있으니 사과 과수원에서 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지만 개의치 않고 목 인사를 한 후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바랑산으로 걸어 본다.

잠시 진행하다 뒤돌아 보니 사과 과수원에 파란 그물망 작업을 하는 풍경과 우측 저 멀리 예동마을 그리고 그 뒤로 오늘 지나 온 철마산이 올려다 보인다.

약간의 박무와 미세먼지로 인해 깨끗한 시야가 없는 것이 못내 아쉬운 시간이다.

 

 

 

바랑산 가는 비포장 임도에도 얼었던 길이 녹으며 진흙창으로 변해 있어 진행에 여간 어렵지 않다.

조심하며 천천히 걸어 들어가니 임도 좌측으로는 나무들을 식재한 밭이 나타나고 그 식재된 나무 저 멀리 삼면봉과 705.1봉 그리고 우측 저 멀리 철마산이 손을 흔들어 이별의 아쉬움을 고한다.

다시 오지 못할 안타까움에 가슴속 깊이 이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이제 식재된 나무 밭이 끝나는 임도 우측 능선으로 진입하는 들머리에서 배낭 내려 놓고 준비한 간식과 사과 하나로 허기를 달래 본다.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랜 후 우측 능선으로 들어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오른다.

등줄기와 이마에선 다시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리고 그렇게 잠시 오르니 등로엔 키 작은 잡목들이 더 심해지기 시작한다.

더 거칠어지는 등로를 타고 조금은 완만해진 오르막을 걸어 오르니 벌써 이곳 남녘에는 봄이 오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듯 하다.

 

 

 

잡목과 억새풀을 헤치고 오르니 넓은 공터에 앙증맞은 바랑산 정상석과 삼각점이 보이고 이곳에서 다시 배낭 내려 놓고 사진 몇장 남기고 쉬어 간다.

이곳 바랑산은 금남정맥 산행을 하면서 만났던 논산 대둔산 지난 산에서 만났던 이름과 동일한데 그 이름이 너무나 아름다워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는 산이다.

이 바랑산을 산청군청 자료에서 찾아 보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소룡산과 함께 소개되어 있어 이 2개의 산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이는 산들이기도 하다.

바랑산과 소룡산은 글자 지명으로 보면 바랑산의 바랑뜻이 둥지이고 소룡산의 소자도 둥지나 집으로 바랑산은 모든 새의 둥지며 소룡산은 용의 둥지산인데 아무튼 용과 새의 보금자리인 것은 분명하다.

산청군 오부면의 오지마을인 오휴마을과 거창군 신원면 경계지점에 있는 산으로 산청의 산 순례 코스이며 자연스러운 숲과 기암괴석이 잘 어울리는 산청 관내 북부지역 오지산으로 소박한 등산객을 기다리는 산이다.
전망대 바위에서 500미터를 가면 소룡산 정상인데 정상에 서면 천왕봉, 왕산, 웅석봉, 감악산, 월여산 그리고 코앞의 바랑산 등 산청의 명산과 거창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룡산 정상에서 오휴마을을 바라보면서 왼쪽의 급경사로 내려서는 길이 바랑산 가는 길인데 1 Km 가면 갈림길이 나오고 왼쪽은 오휴마을로 하산하는 길이며 오른쪽은 거창의 대현리 가는 길로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대암벽이 새이덤으로 이 암벽을 기어오르고 싶은 충동이 저절로 나온다.
갈림길에서 오르막 내리막을 하면서 2 Km를 가면 바랑산 정상인데 정상의 조망은 소룡산과 비슷하나 소박한 산아래 마을이 너무나 정겹고 또 다른 맛의 능선길도 즐길 수 있다.
바랑산 정상에서 하산은 왕촌마을과 신원면의 예동마을 길이 있으나 차편을 생각해야 하며 원점 회귀 길인 왼쪽 길을 택하여 왕촌마을로 하산한다.

들길을 1 Km 걸으면 오휴마을인데 산행거리는 오휴마을에서 바위전망대까지 1.8 Km이다.

전망대에서 소룡산 정상은 500미터이고 소룡산 정상에서 바랑산 정상까지는 3 Km이다.

바랑산 정상에서 왕촌마을을 거쳐 오휴마을 까지가 3.5 Km로서 전체산행거리는 8.8 Km로서 산행시간은 4에서 5시간이 소요된다.

시간을 보니 이제 12시 20여분을 지나고 있는데 조금 더 진행 해 소룡산 정상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바랑산 정상에서 물 한모금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배낭 메고 출발하면서 이정표를 보니 신촌에서 2.6 Km 올라 왔고 소룡산까지는 3.3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보인다.

소룡산까지는 약 1시간 30여분 소요되리라 예상됨으로 그곳 정상에서 식사를 하면 좋을 듯 싶다.

다시 여유롭게 뚜렷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소나무와 낙엽진 활엽수가 적당히 섞여 있는 운치있는 등로가 펼쳐진다.

잠시 소나무와 잡목이 뒤섞인 등로를 지나니 소나무가 더욱 아름다운 등로로 변하고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천지사와 왕촌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다.

자료를 찾아 보니 천지사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아 찾을 수 없었지만 왕촌리 마을에 대한 자료는 아래와 같이 나와 있다.

왕촌리는 본래 산청군 부곡면 지역으로서 왕씨가 살았다 하여 왕촌리라 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저전동과 중촌동 그리고 오휴동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왕촌리라 하고 오부면에 편입되었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은선암이란 절이 있었다는데 지금의 하동 쌍계사의 모사(어머니 절)로 전해지며 저전동은 예전에 딱나무 밭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천지사와 왕촌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한가롭게 거닐어 본다.

약간의 체력적인 어려움이 느껴지지만 아직은 큰 무리없이 진행하기에 적당하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완만한 오르막 올라 무명봉에 도착을 하니 갑자기 해발고도 710봉의 소봉이란 종이 코팅지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아무 자료와 지식도 없이 올랐기에 잠시 멈춰 지도를 모두 뒤져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일단 사진에 담고 귀가해 찾아 보지만 여전히 그 이름을 찾을 수 없어 궁금하기만 하다.

 

 

 

그 소봉이란 봉우리를 지나 다시 더욱 아름답게 펼쳐진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걸어 본다.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을 정도로 많은 소나무들이 온 산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듯 그런 착각에 빠질 정도이다.

다시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걸어가니 다시 등로 우측으로 천지사 갈림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우측으로 천지사까지 0.5 Km 거리이고 바랑산에서 0.9 Km 지나 왔으며 소룡산까지는 4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이정표이다.

 

 

 

그 천지사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통과한 이후에도 멋진 소나무 군락지는 계속 이어지고 조금 더 진행하니 이제 키 작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뒤섞여 있는 등로로 바뀌고 있다.

그곳을 지나 진행하니 다시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잡목 하나 없는 그곳에서 잠시 등산화 벗고 시원한 바람에 몸의 열기를 식힌 후 출발을 한다.

나즈막한 안부 지나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폭포와 독촉주차장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데 그곳까지의 거리가 0.6 Km란 거리 표시가 되어 있다.

독촉주차장이라는데 무슨 의미이며 폭포은 또 무슨 폭포를 말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더욱 궁금해 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폭포와 독촉주차장 갈림 이정표를 지나 솔잎이 수북히 깔려 있는 부드러운 소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기분조차 상쾌해진다.

나즈막한 둔덕인지 이장한 묘지지대인지를 넘으니 바랑산에서 1.7 Km 지나왔고 소룡산까지도 1.7 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큰재에 도착을 한다.

바랑산과 소룡산의 중간지점인 큰재는 거창군 신원면의 대현리와 산청군 오부면 중촌리를 잇는 고갯마루로서 처음에는 큰재인지도 모를뻔 하였으나 이정표 아랫부분에 작은 글씨로 붙여 놔 이곳이 큰재임을 알 수 있었다.

 

 

 

큰재 이정표를 지나면서도 계속되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콧노래를 부르는 시간이다.

실로 오랫만에 기맥 등로를 걸으며 콧노래를 불러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찌그러진 산림욕장이란 안내판이 보이는데 그 이름에 걸맞을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주 걷기 좋은 등로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시 소나무 사이를 걸어 이제 독촉주차장까지 0.8 Km 라는 이정표를 지나 약간의 잡목지대를 지나니 이제부터 코가 땅에 닿을듯한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이 시작되는데 알아보니 바로 앞에 세이덤 바위군이 있기 때문이다.

세이덤 오르막 등로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전 올랐다 내려온 바랑산과 철마산 그리고 우측 저 멀리 매봉산 자락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너무나 가파른 오르막 등로이고 날씨가 풀리면서 얼었던 등로가 녹아 여간 미끄럽지 않기에 몇번의 쉼을 한 후 어렵게 등로 좌측으로 세이덤이 보이는 능선부까지 올라온다. 

등로 좌측으로는 바위군들이 보이고 앞으로는 안전로프가 달려 있는 등로인데 바위군 좌측으로 깊은 낭떨어지가 보이고 그 낭떨어지 건너편에 멋진 세이덤 바위군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그 세이덤 좌측 아래에는 거창군 신원면 중유리 마을이 예쁘게 펼쳐져 있다.

느릅나무가 많은 골짜기인 유곡의 중간에 자리하므로 중유리라 하며 하유, 중유, 상유, 예동, 신촌 및 유항 여섯마을이 있다.

 

 

등로 좌측의 세이덤은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바위군이다.

큰 바위들이 굴곡을 이루며 그래도 많은 식물과 나무들의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으니 어찌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람이 재단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소룡산의 세이덤에 대한 자료를 찾지만 찾지를 못하고 유사한 내용이 있어 발췌를 해 본다.

경상도에서 바위를 덤이나 더미 또는 대미 등으로 발음을 하고 또한 상여를 세이라고 발음하여 상여바위를 세이덤이라고 하는 이곳이 산청 오부면과 거창 신원면의 경계에 있는 소룡산 세이덤인데 이 산에도 상여바위가 있다는데 정확한 바위는 찾지 못하였다.앞으로 오를 후답자들은 꼭 한번 상여바위를 찾아 보기를 권한다.

 

 

 

잠시 더 오르니 낙엽 깔린 등로가 녹으며 여간 미끄럽지 않는데 급경사 오르막이다 보니 더욱 긴장감이 감돈다.

이제 등로 옆으로 보이는 안전로프를 붙잡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세이덤까지 20미터란 이정표가 보이고 그 방향으로 들어가니 안부에 묘지 한기가 보인다.

그 묘지를 지나 세이덤 바위 위에 오르니 신원면 중유리와 6.25의 비극을 안고 있는 대현리 그리고 저 멀리 서쪽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넘어 왔던 진양기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북쪽으로는 소룡산에서 가지친 멋진 산줄기가 중유리로 빠지고 그 넘어 저 멀리 한번쯤은 꼭 올라보고 싶은 월여산이 박무속에서도 홀로 독야청정이다.

 

 

 

한동안 세이덤 바위 위에서 조망을 즐긴 후 다시 가파른 등로로 복귀해 땀 한번 더 흘리니 그곳에도 묘지가 나타나고 잠시 잡풀과 낙엽진 활엽수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앙증맞은 정상석이 서 있는 넓은 공터의 소룡산에 도착을 한다.

바랑산과 소룡산은 글자 지명으로 보면 바랑산의 바랑뜻이 둥지이고 소룡산의 소자도 둥지나 집으로 바랑산은 모든 새의 둥지며 소룡산은 용의 둥지산인데 아무튼 용과 새의 보금자리인 것은 분명하다.

산청군 오부면의 오지마을인 오휴마을과 거창군 신원면 경계지점에 있는 산으로 산청의 산 순례 코스이며 자연스러운 숲과 기암괴석이 잘 어울리는 산청 관내 북부지역 오지산으로 소박한 등산객을 기다리는 산이다.
소룡산 입구 3번 국도의 왼쪽 넓은 들은 생림들이라고 하는데 생림은 옛날에 사금이 나서 생금이라 하였다가 생림이 되었다.

시장이 설 정도로 물산이 많고 신연과 월곡 등 큰 마을이 있어 하나의 행정 단위를 이루어 생림면이 되었던 곳으로 월곡리에 관지마을이 있는데 지금부터 200여 년 전에 안동 김씨가 터를 잡아 집을 지을 때 상량을 하고 나니 황새가 날아와서 그 위에 앉아 밤을 지내고 가므로 관지라고 마을 이름을 지었다한다.

바랑과 소룡산 등산로는 산청읍에서 3번 국도를 이용하면 되는데 오부면 양촌리의 양촌마을 오금교를 지나 1026번 지방도를 따라 가 오전초등학교가 있는 오전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간 후 다시 중촌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가면 막다른 마을이 오휴마을이다.
오휴마을 입구의 경로당 앞다리를 건너 우측마을 안길을 지나면 농로가 나오면 저수지 왼쪽 길이 등산로 초입이다.
저수지를 지나면 아늑한 숲길이 이어지다 곧 너덜지대가 나오고 산청과 거창의 경계산으로서 조망과 함께 소박한 산행지로 손색이 없어 다시 찾고 싶은 순수 그대로의 산임을 느낄 때면 시원한 전망대 바위에 도착한다.
전망대 바위에서 500미터를 가면 소룡산 정상인데 정상에 서면 천왕봉, 왕산, 웅석봉, 감악산, 월여산 그리고 코앞의 바랑산 등 산청의 명산과 거창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룡산 정상에서 오휴마을을 바라보면서 왼쪽의 급경사로 내려서는 길이 바랑산 가는 길인데 1 Km 가면 갈림길이 나오고 왼쪽은 오휴마을로 하산하는 길이며 오른쪽은 거창의 대현리 가는 길로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대암벽이 새이덤으로 이 암벽을 기어오르고 싶은 충동이 저절로 나온다.

이곳 소룡산 정상에서 때늦은 점심으로 허기를 달랜 후 잠시 더 휴식을 취하고 다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이곳 소룡산 정상에는 신원면 대현리 방향의 이정표가 하나 보이는데 이 대현리의 유래는 골짜기 전체를 한재골이라 해서 괘현이라고 쓰며 내탄, 외탄, 도토점, 진목평, 하대현, 대현, 중대현 및 상대현 등 여덟 개 마을이 있는데 이곳은 6.25 전쟁 당시 무고한 이곳 거창의 양민들이 정부군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 아픈 역사를 간직한 마을이기도 하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소룡산을 출발하니 넓은 헬기장이 보이고 부드럽던 등로에 바위 몇개들이 산재한 풍경이 눈에 들어 오는데 다른 등로에서는 평이했을 이런 바위들도 오늘은 신기하게 눈에 들어 오는 시간이다.

 

 

 

소나무들과 바위들이 적당히 섞여 멋진 등로를 만들고 그 위를 걸어가는 이 산객의 기분마져 좋아지는 시간이다.

그렇게 진행하니 제법 큰 바위 하나가 못생긴 표정으로 등로 옆에 서 있고 혹시나 해서 이리저리 둘러 보지만 이름을 붙여 주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 바위를 지나니 이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며 식재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아름다운 잣나무들이 잠시 등로를 채운다.

다시 나타나는 녹슨 철조망을 따라 걸어가니 갑자기 눈 앞에 넓은 공터가 보이고 등로 좌측으로는 민가 몇채도 보이는데 지금부터 가야 할 앞 능선에는 계단시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 공터쪽으로 내려오니 소룡산에서 0.9 Km 내려왔고 이제부터 강섭산까지 1.8 Km남아 있다는 이정표도 서 있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소룡고개이다.

 

 

공터로 이뤄진 소룡고개를 지나 좌측에 과수원을 두고 우측 가장자리의 비포장 임도를 따라 오르는데 이곳도 역시 등로가 녹으면서 여간 미끄럽지 않다.

녹은 흙들이 등산화에 달라붙어 연신 털며 진행하니 속도도 없고 두 다리에 느껴지는 무게만 가중되고 있다.

그렇게 잠시 오르니 과수원이 끝나면서 이정표와 정수지맥 갈림 안내판이 눈에 들어 오는데 이곳에서 경수지맥을 우측으로 보내고 기맥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꺾어 내려가며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정표의 거리가 이상한데 소룡산에서 0.7 Km 지나 왔고 강섭산까지는 2.8 Km 가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로 뒤죽박죽이 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 정수지맥을 신산경표의 저자인 박종률님 자료를 빌려오면 정수지맥은 진양기맥 소룡산(761봉) 남쪽 약 0.8 Km와 밀치(59번 포장지방도로) 서쪽 0.6 Km 지점인 약 625 미터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서쪽으로는 경호강과 동쪽으로는 양천을 가르며 송의산(538.9봉), 매봉(599봉) , 구인산(587봉), 비득재, 정수산(841봉), 둔철산(811.7봉), 마제봉(198.4봉)과 적벽산(166봉) 을 거처 양천이 경호강에 합류하는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원지)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4.7 Km되는 산줄기로 양천의 좌측 분수령이 된다고 되어 있다.

 

 

 

정수지맥 분기점에서 좌측으로 꺾어 내려가니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적당히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갑자기 벌목지대가 나타나며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축사와 소룡마을 그리고 저 앞으로 와룡리 마을도 내려다 보인다.

그 마을 넘어 저 멀리에는 미세먼지속에서도 존재감을 확실히 알리는 월여산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와룡리는 거창군 신원면의 가장 남쪽에 자리하며 소룡산 동쪽 기슭을 베고 누워있는 모양이므로 와룡리라 하며 비곡, 가대, 백계, 소야 및 소룡의 다섯 마을이 있는데 이곳 소룡이란 마을이름은 그 뒤에 소룡산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벌목된 잡목 사이를 뚫고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강섭산이 밀치 넘어 우뚝하고 그 뒤 저 멀리 황매산이 가깝게 다가와 있다.

다시 민둥의 벌목지대를 지나 잠시 소나무 숲으로 진행되던 등로는 묘지 지나 소룡산에서 1.6 Km 내려 왔다는 이정표를 만나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곧이어 5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밀치에 도착을 한다.

많은 선답자들이 이곳 밀치에서 산행을 중단하고 한구간으로 마무리하고 있지만 시간을 보니 너무 이른 시간이기에 다시 떡갈재까지 가기로 마음 먹고 대병면 택시를 알아보니 픽업 가능하다는 소식이다.

이곳은 밀치는 거창과 산청을 연결하는 59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지만 이 산객이 한동안 머물고 있는 동안 통행하는 차량은 한대도 보지 못할 정도로 한가한 도로이다.

도로 옆의 둔덕(차황방면)에는 2008년도에 설치한 밀치 수준점이 있는데 해발고도는 503미터라 적혀 있으며 이곳 주민들은 밀치보다는 밀짐재라고 더 잘 불려지는 고이라는 설도 있다.

 

 

 

 

밀치에서도 잠시 쉬며 물한모금 마시고 다시 도로 건너 보이는 시멘트 포장 임도를 따라 오른다.

오르기 전 북상 월봉산에서 신원 할미산까지 진양기맥 종주 등산로 안내도에서 강섭산에 대한 자료를 보고 들렸다 가기로 해 본다.

잠시 오르니 시멘트 임도 우측에 우측 능선 방향으로 강섭산 1.1 Km란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지시 방향으로 잡목을 뚫고 오르니 등로가 보인다.

 

 

 

등로는 좌측에 밤나무 밭을 두고 이어지고 있는데 그 밤나무 단지를 지나니 멋지게 하늘을 향해 솟아 오르고 있는 해송 사이로 등로가 나 있다.

잠시 더 오르니 솔봉산에서 0.9 Km 지나 왔고 강섭산까지도 0.9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는데 갑자기 나타난 솔봉산 때문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이곳 역시 소나무 군락지로 이뤄져 있는데 그 소나무 사이로 약간의 관목과 잡목들이 자라나며 지금까지 봐 왔던 등로보다는 어수선 하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조금 더 오르니 이제 다시 잡목과 관목이 제거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그 소나무 사이를 따라 나 있는 등로를 완만하게 걸어 올라 본다.

그러다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고 곧이어 잡목과 잡풀이 자라난 곳을 오르니 무며옹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통해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봉우리에 닿는다.

살펴보니 이곳이 강섭산 갈림 삼거리로서 강섭산은 등로에서 우측으로 100여미터 떨어져 있는듯 하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잠시 강섭산으로 향한다.

 

잠시 진행하는듯 싶더니 금새 강섭산 정상인데 정상같은 느낌도 없는 곳에 이정표 하나와 그 아래 작은 정상석 하나가 박혀 있는데 보기에도 초라하기 그지없다.해발고도 646미터인 강섭산은 경남 거창군 신원면과 산청군 차황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그 어디에도 강섭산에 대한 자료나 설명을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하찮은 미물도 그 이름을 붙여 주고 그 이름의 유래를 넣어 줄 때 비로서 진실된 생명이 붙어 있다고 한다는데 지도에도 나와 있는 강섭산에 대한 자료를 찾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아직도 갈길이 멀기에 사진 두어장 남기고 다시 강섭산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나오니 그곳에도 다시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불필요한 곳에는 수많은 이정표를 세워두고 정작 필요한 이곳에는 아무런 안내판이 없으니 많은 산꾼들이 이곳에 강섭산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지난 주 하지 못한 산행의 역효과가 나타나는지 두 다리에 느껴지는 중압감이 자꾸만 커지고 있다.

진행하는데는 큰 지장이 없지만 무거워진 두 다리는 천근만근 자꾸만 산행 속도를 저하시키고 있다.

그래도 멋지게 잘 가꿔 놓은 소나무 등로가 있기에 참으로 진행 할 수 있는가 보다.

그렇게 두어개의 무명봉을 넘고 이름 없는 안부를 지나 그 끝자락으로 가깝게 접근을 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멋진 소나무 등로에서 무심으로 걷다 보니 갑자기 눈 앞에 묘지 하나가 나타나고 잠시 등로 찾아 살펴보니 등로는 그 묘지를 우측에 두고 뒷쪽으로 이어져 능선으로 연결된다.

그 묘지를 지나 잠시 잡목을 헤치니 바위가 산재한 무명봉을 통과하고 등로 우측으로 민가와 큰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진행해 살펴보니 민가 아래에 큰 축사인지 모를 건물과 비닐하우스가 내려다 보이는데 그 풍경을 감상하며 내려가니 묘지를 지나 시멘트 포장과 비포장이 공존하는 임도에 도착을 한다.

지도에는 그냥 임도 안부라 적혀 있는 장소이다.

 

 

 

그 임도 안부에서 임도를 따라 민가가 있는 우측으로 걸어가면 좌측 능선으로 진입하는 들머리가 보이고 그 능선으로 오르며 진행한다.

능선으로 오르자마자 완전히 벌목한 벌목단지가 나타나고 그 벌목된 장소를 따라 오르니 등로는 우측으로 휘어지며 이어지고 있다.

이제 민가와 축사 그리고 비닐하우스가 우측 바로 아래에 보이고 있다.

다시 밤나무 밭을 보고 잠시 잣나무 지역을 통과하니 강섭산에서 1.8 Km 올라 온 소야마을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에서 등로는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진행해야 한다.

등로 좌측의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 소야마을은 산의 모양이 한자의 잇기야자 모양으로 생겨서 소야라 한다고 전해진다.

 

 

 

소야마을 갈림 삼거리 이정표에서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 역시 잘 간벌된 소나무 군락지가 반겨 준다.

하지만 고도를 높힐수록 소나무 밑에 자라는 잡목과 잡풀들도 많아지기 시작하고 묘지 한기를 지나자 사면 등로로 이어지더니 잡목들이 발목을 잡는다.

다시 잘 간벌된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오르니 이제 소나무가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잡풀과 잡목이 우거진 형태로 등로를 메우고 있다.

살펴보니 진달래꽃 나무들인듯 싶은데 진달래가 피는 계절에 오른다면 제대로 된 진달래 꽃 구경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우거진 진달래 잡목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뚫고 오르니 다시 멋진 소나무들이 일렬로 줄을 서 이 산객을 반기듯 보인다.

다시시작되는 진달래 잡목으로 인해 잠시 시간을 보내고 오르니 이제 잡목이 약간 사라지며 굵은 활엽수들이 등로를 도열하며 채우고 있다.

그곳을 지나 오르니 짧은 바위너덜길이 나타나고 곧이어 강섭산과 황매산 그리고 소야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와 앙증맞은 작은 정상석이 있는 할미산 즉 작은 황매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경남 거창군 신원면과 산청군 차황면 그리고 합천군 대병면이 맞닿는 3면 경계봉에 있는 할미봉은 소황매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황매산과 비교해 정상부가 생각보다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기야 정상석이 초라하면 어떻고 화려하면 또 어떻할 것인가 그것도 역시 인간들이 만들어 세워둔 것일뿐 이곳 할미산이 정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을...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시야가 상당히 짧고 좁아져 있지만 그래도 이곳 할미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멋지다.

서쪽으로 지나온 진양기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바로 아래 강섭산을 지나 밀치로 내려 앉았던 마루금은 소룡산과 바랑산을 지나 그 흔적을 박무속에 숨기고 있다.

역시 오늘도 지나온 산줄기를 바라보며 위대한 인간의 두 다리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남서쪽으로는 오늘 이 산객이 산행을 마치고 내려가야 할 산청군 차황면 장박리 마을과 그 마을을 둘러친 멋진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 온다.

살펴보니 저 산줄기는 방금 전 소룡산과 밀치 사이에서 만났던 정수지맥 분기점 안내판에서 시작하는 정수지맥 마루금이 이어져 내려 온 응봉과 구인산 자락이 아닐까 생각될 만큼 유사한 느낌이다.

조금만 더 좋은 시야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이것 역시 자연의 섭리이자 허락한 것이니 아쉬우면 다음에 다시 들리면 될 것이다.

 

 

 

동쪽으로는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철쭉으로 유명한 황매산과 삼봉 산줄기가 박무속에서도 확연히 빛나고 있다.

한동안 그 할미산 아니 소황매산에서 조망을 즐긴 후 다시 배낭 메고 진행하니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소나무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내려오니 경사가 약해지면서 잡목들도 함께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좌측으로 UFO를 닮은 바위를 지나 소나무와 진달래 잡목 구간을 통과하니 등로 우측으로 벌목되어 억새가 자랐던 추원지대가 나타나며 황매산 산줄기가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등로 앞으로는 다음 구간 올라야 할 황매산 산줄기를 두고 우측으로는 벌목된 초원지대 아래 민가를 내려다 보며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오늘 산행 날머리 목적지인 경남 합천군 대병면과 산청군 차황면을 이어주는 떡갈재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택시 기사님과 전화 통화 후 시멘트 임도 따라 우측 장박리쪽으로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고 이제부터 잠시 떡갈재 주위를 살펴 본다.

좌측으로 가면 삼거리 갈림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삼거리에서 우측을 보니 산행 들머리와 띠지들이 붙어 있는데 고갯마루에는 떡갈재란 안내판이 잘려진채 방치되어 있다.

다음 구간에 이곳으로 올라 마루금 잇기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이제 떡갈재에서 몇발자국 우측 장박리쪽으로 내려 와 걸어가야 할 콘크리트 임도와 생각지도 못한 민가를 담아 본다.

이곳은 사유지로서 아마도 저 집에 살고 있는 사람 소유인데 임산물을 재배하고 있기에 많은 경고판을 세워두고 있다.

민가 쪽으로 내려가니 갑자기 몇마리의 개들이 나타나 울부짖고 안주인인듯한 여자 한분이 따라오며 그 개들을 다독거리고 있다.

약간은 겁 먹은 표정으로 내려가니 아무 손짓도 하지 말고 뒤돌아 보지도 않은 채 내려가라고 충고를 해 준다.

고약한 개들을 뒤로 하고 그 민가를 빠르게 빠져 내려가며 다음 구간 산행 시 새벽에 이곳을 어떻게 통과할지 난감한 기분이 든다.

 

 

 

민가를 지나 계속 내려가니 저 멀리 택시가 올라오고 그 택시를 만나 공터에서 회차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쉬어 간다.

이 콘크리트 임도 좌측으로는 황매산터널이 뚫려있고 그곳 도로명은 1026번 2차선 포장지방도로이다.

 

본래 산청군 황산면 지역으로서 장배기, 장박, 장박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3월1일에 행정구역이 통페합 됨에 따라 삼거동과 정남동의 각 일부와 삼가군 신지면의 소야동 일부 지역을 편입하여 장박리라 해서 차황면에 편입 되었다. 

이 마을은 옛날 나무가 많고 무성하다고 하여 장박으로 마을 이름을 삼았다고 하는데 삼거동은 장박리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전하는 이야기로는 삼거마을에 살기 위해 터를 닦다가 보니 애장이 나왔는데 그 위에 오두막집을 지었다고 한다. 

새집을 지었다고 지신을 달래는 의미에서 비손을 하였는데 뜻밖에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두개골 하나를 물고 나와 아무리 출처를 찾아 보아도 알수가 없어 가져다가 한곳에 묻고 그 집에 살게 되었는데 새 집에서 밤이 되면 마당에서 말 달리는 소리가 나고 야단서른 소동이 벌어지더니 급기야는 귀신이 나타나서 집 주인을 웃 모래등까지 끌고 가서는 온갖 장난을 쳤다 한다. 

견디다 못한 주인이 집을 뜯어 다른곳으로 옮기자 그 뒤에는 아무일이 없었다고 하며 그 뒤에 그터는 밭으로 변했다고 하는데 몇해전 산사태가 나서 밭이 파인곳을 보니 사금파리가 나왔다고 한다.

택시 기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위 민가에서 살고 있는 아저씨가 트럭을 몰고 내려가다 택시기사와 인사를 나누는데 알고 보니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나중에 택시기사를 통해 들어보니 그 민가 주인이 수원에서 몇년 전 귀농하였는데 부동산에 관심도 많고 또 기술이 뛰어 나 많은 돈을 벌었고 이곳 땅도 귀농하면서 구입해 사용하고 있는데 전체 개인 사유지 면적이 30여만평에 이른다고 하니 이방인들의 출입이 그다지 반가울리는 없을 듯 하다.

 

내일 다시 한구간 더 마무리하고 올라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비가 내린다고 하니 오늘은 이곳에서 접고 함께 걸어 준 이곳 손님과 저녁 식사 후 서울로 복귀해 검단지맥 한구간 올랐으면 하는 바램으로 종료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