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전라북도 고창군과 전라남도 장성군 및 영광군의 영산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3년 03월 31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과 아침까지 짙은 안개와 강풍 그러나 점심시간 후부터 맑고 조금 더웠던 날씨
산행온도 : 영하 02도에서 영상 11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추암마을-축령산 자연휴양림-문수산(축령산, 621.6봉, 8각정, 통신탑, 산불감시초소)-암봉-안전목책과 로프-550봉 삼각점-서우치 임도-두루봉(441.5봉)-415봉-380봉-살우치 임도(살무치, 군초소)-소두랑봉(410봉)-잡목가시지대-513.4봉-편백나무숲-폐임도-암릉구간-구황산(500봉)-450 묘지봉-불개미재-바위암릉-340봉-범넝쿨봉(320봉)-앞치고개(893번 지방도로, 해발 210미터)-임도-벌목지대-고산 전위봉-고산(527봉)-해맞이기원제단-고산산성 안내판-촛대봉 이정표 (가랫재 0.9 Km와 고산오봉 0.4 Km)-안전목책과 로프-이정표(고산오봉 1.3 Km와 고인돌 소공원 1.0 Km)-가랫재-고인돌-편백나무숲-310봉-산북지대-340 암봉-헬기장 억새밭-고성산 깃대봉(546.3봉)-암릉구간-안전목책과 로프-임도 갈림길-임도-능선진입-깃재산장-깃재-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1.00 Km (진양기맥 약 18.80 Km와 접속구간 추암마을에서 문수산까지 약 02.20 Km)
산행시간 : 조금은 빡빡하게 또 조금은 사진 찍고 여유롭게 10시간 50분 (05시 30분부터 16:20분까지)
교통편 : - 애마 이용해 깃재 도착
- 깃재에서 추암마을까지 백양사택시로 이동(011-609-5334), 택시비 40,000.-
- 산행 후 애마를 이용해 서울 집으로 복귀
영산기맥은? (박종률님 자료를 인용)
영산기맥은 백두 대간이 덕유산을 넘어 지리산을 목전에 두고 백운산 앞의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을 분기하여 장안산, 팔공산, 성수산, 마이산을 지나 모래재위 조약봉에서(주줄산 또는 주화산) 한줄기는 북으로 금남정맥( 금강정맥)을 분기하고 또 한줄기는 서남진하는 호남정맥으로 만덕산, 내장산, 추월산, 무등산, 조계산, 백운산, 망덕산에서 끝이나는 섬진강의 서쪽 울타리가 된다.
영산기맥은 이 호남정맥의 내장산과 백암산 사이의 순창새재 바로 윗봉에서 분기하여(530미터) 입암산(655미터), 방장산(742.8미터), 문수산(620.5미터), 구황산(480미터), 고산(520미터), 고성산(546.3미터), 월랑산(440미터), 태청산(93.3미터), 장암산(481.5미터), 불갑산(515.9미터), 모악산(347.8미터), 군유산(403.2미터), 발봉산(180.8미터), 감방산(257.0미터), 병산(130.7미터), 남산(189.0미터), 마협봉(290.0미터), 승달산(317.7미터), 국사봉(283.0미터), 지적산(183.0미터), 대박산(155.6미터), 양을산(151.0미터)을 지나 목포시 유달산(228미터)에서 다순금에 이르는 도상거리 159.5 Km의 산줄기를 말한다.영산강의 북쪽 울타리를 이루는 산줄기이기에 영산북기맥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통상 영산기맥하면 이 영산북기맥을 말한다.
반면 영산강의 남쪽 울타리를 이루는 산줄기는 호남정맥이 무등산과 계당산, 국사봉을 지나 삼계봉에 이르기전 바람봉에서 분기하는 땅끝기맥을 따라 남진하여 월출산을 지난 벌뫼산에서 땅끝기맥은 남진하여 땅끝으로 가고 또 한가지가 분기하여 흑석지맥이라고 불리는 가학산, 두억봉, 흑석산, 선황산으로 해서 목포와 마주보는 소아와 대아산에 이른다.
즉 영산강의 남쪽 울타리는 이 호남정맥의 새재봉 분기점에서 바람봉 분기점까지 180.1 Km, 땅긑기맥의 바람봉 분기점에서 별뫼산까지 약 58.3 Km, 그리고 흑석지맥의 별뫼산에서 대아산까지 약 39.2 Km가 될것이다.
가시넝쿨이 우거지고 빨래판 같이 난해한 마루금을 타고 목표지점까지 어려웠지만 무탈하게 완주한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오랫만에 멋진 장거리 종주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사람을 만나 일까지 무사히 마치니 피로가 밀려오고 저녁 식사를 하면서 폭탄주 두어잔을 마셨더니 금새 꿈나라로 향한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그런지 새벽 2시 50여분에 눈이 떠지고 어제 저녁에 준비해 둔 라면과 햇반을 가지고 간단히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나니 약속했던 택시 기사님의 전화가 울린다.
샤워 후 배낭 메고 다시 애마를 끌고 깃재에 도착을 하니 새벽 4시 40여분이고 일찍 도착해 기다리는 택시로 갈아 타 멀고도 먼 축령산 자연휴양림 추암마을로 향한다.
어제 하루 종일 걸었던 것을 생각하면 오늘 아침까지는 몸의 상태가 견딜만 하고 큰 피로도 느끼지 못하기에 멋진 일출과 즐거운 산행을 생각해 보지만 추암마을에 내리고 나서부터 일출 보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에 불안스럽다.
50여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가 끼고 바람은 또 왜 그리 세게 불고 있던지, 그저 마음 비우고 완주를 목표로 천천히 홀로 축령산 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며 이틀째 종주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연이틀 산행을 하면서 후반부로 접어드니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가지만 그래도 목표한 지점이 저 멀리 보이는듯 하니 힘을 내 올라보는 고산이다.
오르는 등로는 벌목이 되어 벌목된 나무들이 너루러져 있어 초반부엔 어려움이 있었지만 조금 더 오르니 잘 정비되어 산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다만 초여름 날씨처럼 뜨거운 태양열이 내려 쬐며 많은 땀방울이 등로에 떨어지니 벌써 땀과의 전쟁을 치르는 기분으로 오른다.
그렇게 어렵게 올라 선 고산 정상에서의 조망과 풍경은 그동안 올라오며 힘들었던 시간을 보상이나 해 주듯 너무나 시원하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저 멀리 어제부터 걸어 온 영산기맥부터 앞으로 올라야 할 오늘 마지막 봉우리인 고성산까지 거침없이 펼쳐진 마루금을 바라보며 그래도 흐믓한 미소를 지을 수 있어 좋았던 순간이였지만 홀로 어렵게 담은 사진을 보니 얼굴엔 피곤함이 그대로 묻어 있다.
이제 3일째 이용하는 택시 기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급하지 않게 깃재에서 축령산 자연휴양림이 있는 추암마을로 가는 길엔 벌써 안개가 자욱히 밀려 와 있다.
바람이 강해 안개가 없을 것으로 예상을 하였는데 고도가 높아질수록 짙은 안개는 더욱 세상을 암흑 천지로 변화시키고 있다.
추암마을에 들어 서 조금 더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오르지만 어짜피 자연휴양림까지 올라 갈 수 없음을 알기에 휴양림 초입에서 내려 택시를 돌려 보내고 홀로 어둠속에 헤드렌턴 불빛의 도움을 받아 그 넓은 시멘트 도로를 타고 이틀째 산행을 시작한다.
조금 더 오르니 시멘트 임도가 우측으로 크게 휘어지는 좌측에 묘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서 있고 어둠속에 담아 보지만 흐릿하기만 하다.
그곳을 지나 계속 완만한 시멘트 임도를 따르니 드디어 차량 통행을 막는 바리게이트를 지나 임도 우측 나뭇가지 옆에 서 있는 안내센터까지 0.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다시 거센 바람속에 짙은 안개를 뚫고 계속 오르니 등로는 시멘트 임도에서 비포장으로 변하고 금새 안내센터 즉 치유센터 건물들이 들어 서 있는 축령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해 서 있는 몇개의 안내판과 이정표들을 똑딱이 카메라에 담는다.
어제 이곳으로 내려 와 좌측의 추암마을로 내려가야 하는 것을 우측 축령산 자연휴양림쪽으로 많이도 걸어 들어가 아름다운 편백나무숲은 원없이 바라보고 많은 사진에 담았지만 택시 기사님과 얼마나 마음 졸이며 숨박꼭질을 했는지 그저 실소만 나오는 시간이다.
더욱 짙어진 안개속에 어렵지 않게 산행 들머리를 찾아 천천히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축령산 가는 산행 들머리에 서 있는 앙증맞은 정상가는길과 편백나무숲 가는 길이란 이정표를 지나 오르니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열리고 그곳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휴양림에서 축령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객들의 편의와 안전을 대비하고 있다.
잠시 더 오르니 방한 자켓을 입은 몸에선 벌써 땀방울들이 흘러 내리고 바람이 거센 중에도 안개는 더욱 짙어져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산행이 시작되였다.
잠시 더 오르다 안전목책에 배낭을 걸어 놓고 방한복을 벗어 배낭에 넣고 다시 천천히 그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땀방울을 흘려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멋진 편백나무숲이 존재하지만 좁은 헤드렌턴 불빛과 짙은 안개로 인해 제대로 감상도 못한 채 계속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드디어 벤취 2개가 자리안 능선에 올라 긴 한숨부터 쉬어 보는 시간이다.
그곳 능선을 지나 오르니 다시 더욱 가파라진 오르막 등로엔 안전목책과 로프가 줄지어 설치되어 있고 조금 더 힘을 내 그 가파른 경사면을 치고 오르니 금새 축령산 정상의 넓은 공터에 정자와 통신탑 그리고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장소에 도착을 한다.
정자 옆 축령산 정상 이정목을 사진에 담고 정자에 올라 보지만 보이는 것이 없기에 어제 저녁 만났던 멋진 조망을 상상으로 그리며 다시 내려 와 이제 좌측 등로를 타고 이정표가 가리키는 추암마을 5.3 Km 방향으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조금 더 진행을 하니 하나 둘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곧이어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가 나타나는데 제법 가파른 내리막 경사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잠시 그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내려가니 연이어 바위들이 나타나는데 모두 우회할 수 있도록 우회 등로가 나 있어 진행하기에는 큰 위험이 없어 보인다.
제법 고도를 높혔음에도 불구하고 안개는 사라질 줄 모르고 더욱 짙어지며 바로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산행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더욱 정신을 차리고 정상 등로를 찾아 어렵게 전진하는 맥 산행이 되고 있다.
다시 이어지는 바위들을 우회하고 나타나는 안전목책과 로프를 따라 걸어가니 잠시 호젓한 등로와 이어지고 있다.
듬성 듬성 자라고 있는 키큰 나무들이 안개속에 서 있는 풍경이 어딘지 모르게 인상에 깊이 남겨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혹시나 하고 일출을 기대해 보지만 이미 포기한지 오래이고 그저 정상 등로를 타고 알바 없이 이 지독한 안개속을 지날 수 있기만을 바래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조금 더 전진하니 이제 산죽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아름다운 안갯속 평이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550봉 갈림길에 도착을 하는데 다 망가져 가는 삼각점 하나가 중앙에 박혀 있다.
선답자들이 길주의라 주의를 상기시킨 곳이기에 주위를 살펴보니 좌측의 직진 등로는 뚜렷한데 우측 급경사 면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영산기맥 등로는 잡목과 벌목된 나무들로 덮혀 등로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안개속에 선답자들이 걸어 놓은 띠지 몇기가 영산기맥 마루금임을 잘 알려주고 그 띠지를 따라 우측 가파른 내리막 경사 등로를 타고 없는 등로를 만들어 내려가 본다.
조금 더 내려가니 벌목된 나무들이 완전히 등로를 가로막고 버티고 서 있어 한참을 우회해 다시 어렵게 정상 등로로 복귀해 내려가니 키작은 산죽밭이 이어지고 이슬을 머금은 산죽을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안부로 내려섰다 부드러워진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잡목이 웃자란 지대를 지나 다시 벌목된 나무들이 너부러져 있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벌목으로 인해 띠지들도 모두 사라져 잠시 독도를 하면서 길 찾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도 직감적으로 좌측으로 이어진 능선 등로를 버리고 직진으로 조금 더 진행하니 저 멀리 선답자의 띠지 하나가 반겨주고 반가운 마음으로 정상 기맥 마루금을 찾아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이제 일출이 시작되고도 한참이 지난 시간이지만 햇살은 보이지도 않고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며 주위 사물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그 지독하게 짙었던 안개도 서서히 밝음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지고 있다.
진행하며 바라보니 등로 좌측으로는 능선 산줄기 하나가 뻗어 내려가고 그 우측으로 골짜기가 보이는데 그 골짜기 저 멀리에는 산판도로도 보인다.
호젓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잠시 산죽밭이 나타나더니 다시 잡목이 우거진 등로와 이어지고 그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서우치에 도착을 한다.
서우치 임도를 만나 그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계속 진행을 한다.
진행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답자들의 띠지를 살펴 보지만 잘 보이지 않아 두어번 쉬면서 독도를 해 보니 임도로 진행하는 방향이 맞게 나와 계속 전진한다.
진행하며 바라보니 등로 좌측의 능선이 보이는데 원래 영산기맥 마루금은 저 능선 등로처럼 보이는데 아마도 송전탑을 세우며 만들어진 이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한동안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계속 전진하니 저 멀리 띠지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임도가 좌측으로 휘어가는 우측 급경사 능선길에 선답자들의 띠지 몇개가 눈에 들어 오고 그곳 가파른 능선 등로로 오르며 두루봉으로 향한다.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의 기맥 마루금을 타고 오르니 서서히 잡목과 벌목된 나무들이 등로 위에 너부러져 진행에 어려움을 가중 시키고 힘들게 오르니 저 멀리 두루봉 정상부가 보인다.
하지만 그 정상부로 오르기 직전 많은 가시나무들과 잡목들이 한여름에 마의 구간을 만들었다 죽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고 한여름 기맥 산행을 했을 선답자들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곳을 지나 오르니 평퍼짐한 두루봉 정상에 도착해 정상에 박혀있는 삼각점을 담은 후 걸려 있는 선답자들의 띠지를 구경해 본다.
특히 반가운 남양주의 금곡님 띠지엔 이곳이 두루봉 정상으로 해발고도는 441.5봉이라 적혀 있어 얼마나 반가웠던지 직접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눈듯한 착각에 잠시 빠져 본다.
그곳 두루봉에서 영산기맥 마루금은 좌측인 남쪽 방향으로 크게 틀어 진행되고 이곳 역시 벌목된 나무들이 등로를 가로막아 한동안 정상 등로를 찾는데 애를 먹어 보지만 금새 정상 등로를 찾아 룰루랄라 콧노래를 불러 보는 시간이다.
푹신한 낙엽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이어진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오늘 산행이 맥 잇기 산행인지 낙엽산행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호젓하며 혼자만 즐기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이다.
다시 한동안 걸어 내려가니 아무 표식도 없는 415봉을 넘는다.
아직도 안개가 많이 걷혔다고는 하지만 조망이 없는 시간이기에 호젓한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한다.
진행하다 등로 우측을 보니 희미한 안개속에 조산저수지가 내려다 보이지만 극히 제한된 풍경이기에 그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고 진행을 하는 시간이다.
무명봉을 넘어 등로 좌측을 보니 그곳엔 또 다른 저수지인 추암제가 내려다 보이는데 이곳 역시 희미한 안개속의 그저 윤곽만 보일 뿐이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바위군이 튀어 나온 380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영산기맥은 다시 우측으로 크게 휘어 내려가며 진행이 된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그 정상을 올랐다 다시 내려오지 않고 잠시 직진을 하면서 나즈막한 봉우리까지 알바 후 뒤돌아 와 이제 정상적인 서쪽 방향으로 방향을 돌려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짧은 구간 알바 후 뒤돌아 와 정상 등로를 타고 서쪽 방향으로 내려가니 잡목이 웃자라 여간 성가시지 않는다.
얼굴과 손등에 약간의 생채기를 만들며 조심하며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는 낙엽진 낙엽송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다시 푹신한 낙엽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직진 저 아래 초소가 보이기 시작하고 등로는 좌측으로 휘어 내려가며 이어지고 있다.
계속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드디어 군 초소와 경고문 그리고 철조망이 있는 살우치 임도에 도착 해 잠시 쉬어 간다.
잠시 초소 안에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군 철조망 옆으로 나 있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평이한 낙엽 등로가 이어지더니 금새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변하기 시작한다.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니 거대한 나무들이 쓰러져 등로를 가로막아 정상적으로 진행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우회하며 어렵게 진행하는 영산기맥 산행이 되고 있다.
그래도 오르는 도중 아름다운 하얀 제비꽃을 만나 사진에 담고 계속 오르니 바위들이 산재한 지대를 지나 잡목이 우거졌다 말라 죽어 있는 410봉인 소두랑봉에 도착을 한다.
소두랑봉은 능선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데 가 보지만 특이한 것은 없어 다시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나와 이제부터 잡목과의 한판 싸움을 시작해 본다.
선답자들이 이 구간을 왜 마의구간이라 불렀는지를 이제부터 몸으로 경험하며 그 지독한 산행을 이어가 본다.
조금 더 진행을 하니 가시덤불과 잡목들로 인해 조심하며 억새구간과 작은 동굴을 지나서는 더 이상 직진으로 진행을 못하고 좌측 아래로 크게 우회하며 진행을 한다.
하지만 그 우회 등로조차 잡목과 가시덤불이 발목을 잡아 참으로 난해한 구간이기도 하였다.
한여름 잡목과 가시덩쿨이 무성한 계절에 오른 선답자들이 어떻지 지났을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려오는 등로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진행하면서 고운 현호색을 만나 잠시 여유를 가져 보는 시간도 되였다.
우회 등로를 통해 지독한 가시와 잡목 지대를 통과를 하였지만 이어지는 등로 역시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잡목과 가시덤불 지대이다.
어렵게 조심하며 진행하니 그래도 등로 우측으로 전북 고창군 고수면의 두평리와 조산저수지 그리고 장성담양간 고속도로가 오랫만에 조망되기 시작한다.
바로 발 아래에는 고창축협목장이 있다고 지도에 표기가 되어 있는데 잘 확인을 하지는 못하였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고수면 두평리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두평리는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로서 마을에 긴 들이 있어 두평이라 하였으며 1730년대는 말치라고 불렸다고 한다.
1635년 경주최씨 최문회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본래 고창군 고사면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산동과 양생리, 구암리, 신암리, 용두리, 중두리 및 조산리 일부가 병합되어 두평리가 되었고 고수면에 편입되었다.
자연환경으로는 동쪽과 남쪽은 영산기맥의 줄기인 방장산과 연결된 산지가 있고 서쪽으로도 산들이 이어져 있다.
이 외에도 두평천이 북동쪽에 있는 조산저수지로 흘러들고 있다.
관개 시설로는 두평마을 북쪽에 두평제(혹은 양산제), 구암마을 남쪽에는 구암제와 외기제가 있다.
정동마을 남쪽에는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와우리 분매동으로 넘어가는 살우치고개가 있다.
그렇게 멋지게 터지기 시작하는 조망을 즐기며 진행하니 답답했던 마음도 조금은 풀어지는 느낌이다.
다시 지독한 잡목지대를 조심히 헤치며 진행을 하니 바위들이 산재한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이어지는 잡목을 앞에 두고 등로 우측 앞을 바라보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구황산이 하얀 반점들을 드러낸채 이상한 형상을 하고 있어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오르다 보니 그 하얀색의 이상한 물체는 모두 바위들이였다.
참으로 어렵고 힘들게 잡목지대를 통과하는 시간이 되였다.
잡목지대를 지나니 잠시 낙엽깔린 부드러운 등로가 이어지고 산죽등로가 나타난다.
짧은 산죽지대를 지나니 다시 잡목이 앞을 가로막고 산객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고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 좌측에 바위틈을 비집고 어렵게 삶을 이어가는 나무 한그루에서 인생의 모질고 끈질김을 발견한다.
무엇이 그리도 질긴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는지 참으로 위대한 자연의 일부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질긴 인연의 나무와 바위지대를 지나 전진하니 산재된 바위들이 보이고 곧이어 앞으로 진행하지 못할 정도의 잡목들이 다시 발목을 잡고 늘어 진다.
이리저리 정상등로를 찾아 헤매다 보니 이곳이 바로 513.4봉으로 직진의 507.5봉을 버리고 우측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북서쪽으로 진행하며 이제부터 구황산으로 향하도록 되어 있는 갈림 삼거리이다.
조심하며 독도를 해 우측 급경사 지대로 내려가니 다시 등로가 순해지며 강한 바람속에 따스한 햇살이 들어 오기 시작한다.
허기가 지기 시작해 이곳 양지바른 곳에 앉아 식사를 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길찾기 어려운 구간을 무탈하게 잘 지내왔다는 안도감이 밀려오며 잠시 피곤함이 밀려오지만 그것도 잠시 맛난 식사를 하다 보니 지독했던 잡목구간도 벌써 지나간 과거가 되어 버렸다.
다시 등로 우측 앞으로 두평리 마을을 조망하며 부드러워진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넓은 공터를 지나 여전히 호젓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잡목 사이로 보이는 높은 구황산이 산객의 가슴을 답답하게 억누르고 나즈막한 봉우리를 넘었다 오르기를 반복하니 저 멀리 구황산 오름길에 반짝이는 하얀 바위들이 그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구황산의 바위들을 조망하며 여전히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완만한 내리막 길을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짧은 편백나무숲이 나타나는데 기분조차 상쾌해지는 느낌이다.
지나며 살펴보니 다른곳과 달리 이곳은 참으로 편백나무숲이 많다는 느낌이다.
다른지역의 소나무 군락지를 보는 그런 느낌으로 말이다.
다시 노란 생강꽃의 호위를 받으며 내려가니 잡목이 우거져 사라져가는 골짜기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붙으며 본격적으로 구황산 오르막 등로로 들어간다.
잠시 능선으로 오르며 구황산쪽 위를 바라보니 아직까지는 바위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데 그곳엔 벌목된 지역으로 이제 막 작은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자라나며 또 다시 산객의 발길을 잡고 늘어지는 형국이다.
머리 위에선 이제 뜨거운 태양열이 더해지며 굵은 땀방울이 쉴새 없이 등로를 적시고 식사를 한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숨은 턱밑까지 차오르고 있다.
생각보다 악조건의 산행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등로 우측으로 드넓게 펼쳐진 두평리쪽 마을과 저수지 그리고 고속도로가 산객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바로 발 아래로는 벌목된 산자락을 타고 뱀처럼 흐르는 산판도로의 모습이 흉물스럽게 다가오기도 하는 시간이다.
아마도 유실수나 편백나무를 심기 위해 벌목된 곳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곳이기도 하다.
조망이 터지면서 산객의 발걸음도 많이 느려진듯한 느낌이다.
구황산 오르는 오르막 등로에서 잠시 쉬면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온 513.4봉에서 좌측 소두랑봉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잡목구간이 언제 그랬냐는듯 그저 무심하게 펼쳐져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산판도로가 흉물스럽게 다가 와 있고 그 저 멀리 고수면의 조산저수지와 마을들이 한가롭게 내려다 보인다.
그렇게 오르다 보니 어느새 하얀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기 시작하고 그 바위를 타기도 하고 우회하며 더욱 힘든 발걸음을 옮겨 본다.
새벽엔 그렇게 세차게 불어 오던 바람도 멈춰 등줄기와 이마에선 끊임없이 굵은 땀방울들이 흘러 내리고 있다.
오르다 보니 등로 우측 벌목지대엔 온통 하얀 바위들이 배곡히 산재해 있어 소두랑봉에서 잡목을 헤치며 걸었을 때 이상한 물체로 보였던 것 같다.
계속 이어지는 암릉을 타고 쉬엄쉬엄 오르다 뒤돌아 보니 뒷쪽 등로 우측인 남쪽으로 거대한 기와집 몇채가 보이는데 지도를 찾아 봐도 나오질 않는다.
그렇게 바위 암릉을 타고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 가까운 봉우리 암릉 위에 거북이를 닮았는지 무슨 동물을 닮은 바위 하나가 열심히 정상을 향애 오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와 사진으로 담아 본다.
그렇게 힘들게 가파른 암릉구간을 오르니 드디어 커다란 전망바위가 앞을 가로막는 구황산 정상에 올라 정상판에서 셀카로 사진 한장 남기고 그 전망바위로
올라 주위 조망과 풍경을 감상해 본다.
구황산을 다음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구황산은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두평리와 성송면 계당리 그리고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죽림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명칭류래는 이곳의 명당에 묘를 쓰면 9대에 걸쳐 아홉 명의 임금이 나온다는 풍수설에서 유래되었다. 구황산에 있는 구신봉에서 구황이 난다고 하여 구황산이라 부르는데 구암산이라고도 한다. 구황산 서쪽에 있는 삼태봉은 풍수지리상 삼국 시대에 세 명의 정승이 나왔다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고창에는 또다른 구황봉(해발고도 299미터)이 있어 혼동되기도 하는데 이는 선운산 도립공원 내에 있는 것이다. 호남정맥의 내장산 까치봉과 백암산 사이의 순창새재에서 서쪽으로 영산기맥이 분기하는데 그 기맥은 남서쪽으로 35.4 Km 내려와 입암산, 방장산, 문수산을 지나 구황산에 닿는다.구황산은 네 개의 산줄기를 나누는 요충지로서 북쪽은 2.4 Km 거리에 추산봉(274미터)과 11.3 Km의 거리에 있는 태봉(110.9미터)의 산줄기를 나눈다.
남쪽은 광주로 가는 수련산, 동구산, 용진산의 산줄기고 구황산을 조금 지나면 선운지맥을 나누어 놓고 영산기맥은 남서쪽의 전라남도 목포시 유달산까지 뻗어 간다. 물줄기는 북쪽의 조산저수지를 통해 주진천(인천강)에 합류하여 줄포만(곰소만)의 서해로 흘러가고 남쪽은 평림천을 통해 영산강에 합류하여 목포 앞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구황산의
높이는 500미터인데 암봉으로 이루어진 구황산 정상에서는 고창군 성송면, 대산면, 무장면, 아산면, 고창읍, 고수면 등 고창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의 암봉에는 5 - 6명이 들어 갈 수 있는 삼각굴이 있다.
서쪽의 영산기맥을 3 Km쯤 가면 전라남도 장성군과 고창군 성송면을 잇는 암치가 있다.
구황산 산행 코스는 고창남중학교-운선암-추산봉-미재-마채봉-임도-구황산-암치-지방도 893호선 구간으로 거리는 총 8.5 Km이며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영산기맥이 아니라면 알 수 없었던 구황산에 대해 다시 공부하고 나니 왜 영산기맥에 올라야 하는지에 대한 또 다른 답을 얻은 듯 하다.
잠시 물 한모금 마신 후 전망바위에 오르니 좌측으로 오늘 오른 방장산에서 부터 소두랑봉 그리고 잡목지대를 거쳐 513.4봉에서 이곳 구황산까지 이어지는 황홀한 영산기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다.
그 방장산 저 멀리에는 희미하지만 첫구간 올랐던 산그리메들과 호남정맥 마루금도 춤을 추듯 넘실거리지만 박무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어 있어 아쉽기만 하다.
연 이틀간 장거리 산행을 다시 시작하다 보니 조금은 힘에 부치는듯 하지만 이렇게 정상에 서서 둘러보는 조망이 있기에 금새 그 고통은 사라지고 만다.
남서쪽으로는 거북을 닮은 바위 저편으로 오늘 올라야 할 고산과 고성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이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다.
아직도 올라야 할 거리가 멀고 또 넘어야 할 봉우리도 많지만 스스로의 위대함을 믿기에 다시 한발두발 그 목표 지점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보기만 해도 참으로 아름답고 환상인 우리의 국토이자 산그리메들이다.
저 고성산을 넘으면 상사화로 유명한 영광의 불갑산도 보일 것이다.
븍동쪽으로는 또 하나의 짧은 산줄기가 뻗어 나가는데 그 산줄기를 가운데 두고 그 양쪽으로 좁은 평야지대와 민가들이 들어 차 있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 풍경으로 이 산객이 어릴적 살았던 시골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몇십년 동안 그 고향을 지키며 지내시다 작년 한해에 모두 돌아가진 부모님 생각에 갑자기 울컥 목이 메어 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시간은 또 무엇인지 모르겠다.
한동안 쉬면서 구황산 정상에서 주위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다시 배낭 메고 직진의 바위를 넘어 진행하니 낙엽진 철쭉나무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이 산객을 맞이해 주고 그 가운데 등로를 타고 여유를 부려 본다.
낮아진 봉분을 가지고 있는 묘지를 지나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타고 걷다보니 정상에 나즈막한 봉분이 솟아 있는 묘지 한기가 보이는 450봉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등로는 우측 전망바위쪽을 버리고 좌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해야 한다.
아무리 급해도 전망바위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묘지 옆을 돌아 전망바위에 오르니 고창군 고수면쪽 너른 들판과 민가들 그리고 저수지들과 나즈막한 산줄기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들판 좌측 한쪽에는 산 하나를 통째로 잘라내는 흉칙스러운 채석장 하나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참으로 흉물스럽기 그지 없다.
채석이 끝나면 그대로 방치되어 또 다른 아품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전망바위에서 고창군쪽 조망을 즐긴 후 뒤돌아 나와 독도를 주의하며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소나무와 잡목이 어우러진 등로가 나타난다.
그저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소나무가 사라지고 활엽수가 낙엽을 떨군채 황량하게 펼쳐져 있다.
나즈막한 봉우리를 넘어 계속 이어가니 다시 안부와 무명봉이 차례로 나타나는데 이제 고사목들이 등로를 막아 산행에 지장을 줄 정도이다.
한동안 그렇게 부드럽게 내려가다 뒤돌아 보니 저 멀리 구황산이 멀어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계속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금새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 무명봉에 오르고 그 바위를 넘으니 또 다른 바위가 등로를 막아 좌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한다.
그 바위를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조망처가 나타나는데 지나온 구황산쪽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열린다.
가운데 뾰족한 구황산 정상부를 가운데 두고 우측으로 바위봉과 좌측으로 전망바위봉이 호위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게 쉬엄 쉬엄 오르니 다시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조금 더 선명하게 지나 온 구황산이 올려다 보인다.
등로 우측으로는 이제 흉물스럽던 암치재 채석장이 산자락에 숨어 버리고 그 옆의 암치제만 조그만게 드러나 있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활짝 핀 진달래가 처음으로 반기고 잡목을 지나니 암치제와 채석장이 다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이제 앞쪽으로 올라야 할 고산과 그 고산 저 멀리 고성산이 보이기 시작하며 피곤한 몸에도 조금 더 힘을 내 본다.
앞쪽으로 올라야 할 영산기맥 마루금과 등로 우측으로 고창군 성송면쪽 도로와 들판을 바라보며 내려가니 몇기의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를 지나 호젓한 소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 본다.
그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이제 편백나무 군락지나 보이고 구 편백나무숲을 지나니 금새 암치고개인 암치치에 도착을 한다.
전남 장성군 삼계면 생촌리 성암과 전북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 암치마을을 잇는 2차선 지방도로인 893번 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이다.
도로 좌측의 생촌리는 고성산에 성이 있기 때문에 성마을이라 했는데 생말로 변해왔고 매년 당산제를 지내고 있는 마을이며 무생말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하고 성암은 마을이 배형국이라 해서 뱃골이라 하며 뱃골과 무금치로 이루어진 마을을 성암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도로 우측의
암치마을은 고려 중엽에 청주한씨가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었고 풍수설에 의하면 암치마을에 큰 부자가 난다는 말이 있었으며 전남 장성군 삼계면에 통하는 재가 있는 마을로서 바위가 많은 재라고 하여 암치라고 불렀다 한다. 도로에 내려서서 우측의 암치리쪽 고갯마루로 조금 걸어 올라가면 고산등산로입구란 안내판과 고산까지 1.4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비포장 임도 들머리가 산행 들머리이다.
암치치에서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고산으로 향한다.
머리 위에 떠 있는 태양 빛이 더욱 뜨겁게 다가오고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걷다 보니 고산 오르는 등로가 좌측으로 빙돌아 오르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임도 우측으로는 암치리 마을이 보이고 그 가운데에는 암치제가 보인다.
계속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헬기장 같은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고산을 올려다 보니 벌목된 모습 그대로 드러나 있고 그 고산 정상부엔 거대한 암봉으로 이뤄져 있음이 눈에 들어 온다.
넓은 공터를 지나 계속 임도를 따르니 등로가 점점 좁아지더니 일반 등로로 바뀐다.
뚜렷한 등로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곳에서 벌목한 후 정리가 되지 않은 직진의 능선으로 오르니 너부러져 있는 벌목된 나무들로 인해 진행에 많은 고통을 느낀다.
어렵게 그 벌목된 나무들이 너부러져 있는 구간을 지나니 다행히 벌목된 나무들이 정리되어 있고 금새 무명봉에 오른다.
이곳에서 독도를 잘못해 잠시 우측 계곡쪽으로 알바한 후 곧바로 봉우리로 다시 올라 와 직진의 정상 등로를 타고 고산으로 향한다.
벌목되어 잘 정리된 등로를 타고 한동안 오르니 다시 산죽지대가 나타나고 약간의 바위지대를 지나 전위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산죽밭을 지나 안부를 통과하니 안전로프가 보이고 힘들게 그 로프르르 타고 오르니 드넓은 공터같은 고산정상에 도착을 해 주위 조망과 풍경을 감상해 본다.
고창군 대산면과 성송면에 걸쳐 있는 고산은 해발 527미터의 산으로 높지는 않지만 주변 평야에 솟아 있어서 1000미터 높이의 다른 산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이고 산 정상에선 주변 경치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으며 울창한 송림과 여러 기암괴석이 산행하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고산에는 용추굴, 각시봉, 깃대봉, 매바위, 용두암, 거북바위, 촛대봉, 치마바위 등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고 복분자 산딸기 평전과 늪지대 등 자연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고산에는 선사시대의 고인돌이 수백여기 있으며 후삼국시대에 쌓은 고산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고산산성의 길이는 약 5000미터 정도이고 높이는 5미터인데 지형에 따라 다르며 자연을 이용한 토석 혼축성이다.
축성 양식은 포곡형이고 석축의 공법은 내탁법을 써서 외면은 석축으로 쌓고 내면은 흙과 잡석으로 다져서 축성 하였고 외면은 자연석을 수직 혹은 물림 쌓기로 아랫돌에 비해 윗돌을 5 - 6센티미터씩 안으로 물려 쌓은 방식을 썼다.
성문은 남문과 북문의 형태가 남아 있으나 동문과 서문은 찾아볼 수 없다.
문헌에는 산성의 둘레가 8100척이고 내유3천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성내에는 용지와 서봉사, 수고암 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산성의 형태는 600미터 정도가 남아 있고 거의 도태된 상태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연려실기술 등에 의하면 고려 이전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지나 온 구황산과 문수산 그리고 그 뒤로 방장산과 호남정맥도 가물거리지만
박무로 인해 선명하지 못하니 아쉽기만 하다.
방금 전 오른 고산 전위봉쪽인 남동쪽을 바라본다.
그 전위봉 넘어로는 수련산과 동구산이 보이는데 그 넘어 저 멀리 보여야 할 무등산은 박무속에 숨어 버렸다.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시간이지만 어쩔 수 없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동안 주위 조망을 즐기고 있는데 몇명의 등산객들이 올라오며 인사 나눈 후 잠시 담소를 나눠 본다.
북쪽으로는 고창의 암치리와 암치제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아직도 박무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새벽 안개보다는 좋아진 편이다.
보고 또 보며 많은 사진을 담았는데도 무엇이 아쉬운지 발길이 떨어지질 않아 한동안 더 머물며 쉬었다 천천히 일어나 함께 올라 와 있는 등산객들에게 인사 나누고 고산 정상을 출발한다.
그렇게 고산 정상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올랐던 등로를 뒤집어 내려 와 이제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간다.
잠시 가파른 등로를 내려오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그 등로 우측으로는 해맞이기원제단이 보인다.
새해 일출을 보며 많은 소원을 빌어보는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은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그 해맞이기원제단을 통과해 내려가니 금새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고산산성터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 안내설명판이 서 있다.
이곳에서 좌측 촛대봉으로 올라야 하는데 우측 성곽을 타고 조금 진행하며 짧은 알바를 한다.
다시 고산산성터 안내판으로 뒤돌아 와 안내판을 읽어 본다.
고산산성은 축성양식이 포곡석성이며, 석축의 공법은 외면은 석축이며 내면은 흙과 잡석으로 다져진 성이다.
고산은 전남의 고성산과 형제격인 봉이다 고산이 527미터이고 고성산이 546미터로 산에 대한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의좋은 형제가 고산과 고성산에서 성 쌓기 내기를 하였는데 고성산의 형이 다 쌓은 다음에 고산의 동생을 찾아가 보니 미쳐 다 마무리 하지 못하여 형이 이겼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동네 노인들을 통하여 구전되어 내려오고 있다.
동생은 용추굴의 맑은 약수를 먹으며 성을 쌓았다고 하는데 고산은 석현마을에서 접근하다보면 가랫재 삼거리 까지는 서서히 오르는 길이 형성되어 있다.
그 고산산성을 지나 바로 나타나는 봉우리로 오르니 그곳이 바로 촛대봉이다.
촛대봉 정상에 서 있는 이정표를 보니 고산오봉에서 0.4 Km 왔고 우측으로 차동임도까지 2.0 Km 이며 좌측 가랫재까지는 0.9 Km란 이정표가 서 있는데 좌측 가랫재 방향이 영산기맥 마루금이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안전로프가 걸려있고 그곳을 통해 내려가니 잠시 평이한 등로가 열려 있다.
잠시 평이한 등로가 열리는가 싶더니 가파른 급경사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그 등로에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잠시 더 내려가니 봉분이 낮은 묘 한기를 지나고 다시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간다.
계속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좌측의 희미한 기맥 등로를 찾아 능선으로 가야 하지만 게으름과 안이함에 빠져 그 뚜렷한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끝까지 내려간다.
내려가니 좌측으로 고산촛대봉 0.8 Km와 고산오봉 1.3 Km 그리고 우측 임도쪽으로는 고인돌소공원 1.0 Km란 이정표가 서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사라져 가는 폐 임도를 타고 올라가며 가랫재로 향한다.
하지만 사라져 가는 임도엔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 진행이 어렵고 그 우측의 논둑을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군부대 경고판이 서 있고 철조망이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주위에는 많은 고인돌들이 산재해 있다.
다만 많은 고인돌들이 산재해 있는데 관리는 엉망진창이고 단지 그 고인돌 앞에 번호만 적혀 있는 철판 하나가 전부이다.
많이 아쉽고 안타까운 현실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이 산행의 의미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 고인돌 지대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능선으로 오른다.
오르니 군시설 콘크리트가 나타나고 곧이어 멋진 편백나무숲으로 등로는 이어지는데 그 편백나무숲을 가로 질러 진행하는 기분이 최고이다.
몸은 피곤하고 힘들지만 기대하지 못했던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는 마음만은 풍요로운 산객이 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편백나무숲을 거쳐 진행하는 순간은 종주 산행이 아닌 테마기획 같은 기분으로 즐기며 오른 시간이였다.
그 편백나무숲을 지나 오르니 이제부터 다시 벌목된 나무들이 등로에 제멋대로 너부러져 진행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등로는 왜 또 그렇게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는지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였다.
그래도 가끔 활짝 피어난 진달래꽃을 친구 삼아 한발 두발 어려운 발걸음을 옮기니 다시 편백나누가 아닌 소나무가 반기고 곧이어 다시 편백나무숲이 잠시 나타난다.
그곳을 지나 계속 오르니 다시 쓰러진 나무들이 앞을 가로막고 힘겹고 오르니 산죽지대를 지나 전망바위에 도착을 한다.
아마도 310봉쯤 되어 보이는 바위 위에서 뒤돌아 보니 방근 전 내려온 고산이 이제 저멀리 멀어져 있다.
그 바위가 있는 310봉을 지나 다시 가파르게 오르니 계속해 산죽이 빽빽한 등로가 나타나고 다시 어렵게 발걸음을 옮겨 이어가니 금새 암봉이 앞에 나타난다.
그곳에서 뒤돌아 본 고산과 고산산성은 이미 과거속의 마루금이 되어 가고 있다.
그 아래 가미치쪽으로 이어지는 등로엔 파란 편백나무숲이 잠시 전 오르며 느꼈던 기분 좋은 느낌을 그대로 알려주고 있다.
전망바위에서 지나온 영산기맥 마루금을 뒤돌아 보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오르니 낙엽 깔린 앙상한 활엽수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전진하는 시간이다.
그 낙엽진 활엽수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오르니 이제 등로 우측으로 고창군 대산면 들녘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지만 역시나 약간의 박무로 인해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그 들녘이 시작되는 곳에는 크지 않은 대안제와 평금제가 놓여 있어 대산 들녘의 젖줄 역활을 하는듯 보이기도 한다.
이제 고성산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듯 오르막 등로도 많이 온순해진 느낌이다.
다시 그 대산면 들녘 우측 뒤로 펼쳐진 아름다운 영산기맥의 고산을 바라보며 천천히 발길을 돌려 오르막 등로를 타고 계속 전진한다.
그 고산 우측 저 멀리에는 오늘 아침 짙은 안개속에 어렵게 올랐던 축령산 정상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며 다음에 다시 보자 손을 흔들어 준다.
그렇게 조금 더 오르니 작은 바위지대를 넘어 깃대 하나가 쓰러진 능선에 도착을 한다.
살펴보니 철봉 하나가 높게 세워져 있었는데 그 묶여 있던 나무가 고사목이 되면서 철 깃대봉도 함께 쓰러진듯한 표정으로 누워있다.
그 철봉을 사진에 담고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쓰러진 깃대봉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다시 바위들이 산재한 무명봉에 오르고 금새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등로를 지키고 그 소나무 저 멀리 고성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 주능선에 안착을 해 어렵게 오른 두 다리에 힘을 빼고 긴 한숨을 쉬어 보는 시간이다.
이틀 연속 장거리 산행에서 오는 피로도가 더욱 온 몸을 압박하지만 생각보다 견딜만 하고 몸 상태도 좋은 느낌이다.
그곳에서 등로 좌측으로 즉 지나온 마루금 좌측으로 눈을 돌리니 생촌리와 덕산리쪽 들판이 내려다 보이고 그 들판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수련산과 동구산 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문득 저 수련산 줄기도 한번쯤 올라보고 싶어진다는 느낌으로 발길을 돌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수련산을 조망하며 조금 더 오르니 이 높은 곳에도 뮥군보병학교장이 세운 군부대 경고판이 서 있는데 폭발물과 불발탄이 있으니 조심하고 발견시 곧바로 신고를 하라는 경고판이다.
그곳을 지나 무명봉을 지나니 다시 등로는 그림처럼 예쁘게 펼쳐져 있고 그 동안 오르며 고생한 산객을 위안이라도 해주는듯 펼쳐져 있다.
그렇게 평이한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전진하니 거대한 바위군이 나타나고 그 가운데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바위를 올라 뒤돌아 보니 그 바위 저 뒷편으로 고산과 그 고산 우측으로 암치 지나 구황산과 저 멀리 문수산이 아스라히 멀어져 있다.
인간의 두발이 참으로 위대함을 다시 한번 몸으로 느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쉬엄 쉬엄 주위 조망과 지나온 영산기맥 마루금을 구경하며 앞으로 걸어가니 다시 바위들이 나타나고 그 바위를 우회하며 진행을 한다.
바위 지대를 지나 걷다보니 다시 키 작은 산죽들이 반겨주고 그 산죽과 잡목들이 어우러져 있는 등로를 타고 이제 가깝게 다가 온 고성산 정상을 향해 걸어 본다.
정상 가까이 오르니 저 멀리 고산에서 봤을 때 그 위풍당당하던 고성산의 정상도 그저 평범하게 이어지는 능선 봉우리로 변해 있다.
그렇게 주능선을 타고 고성산으로 향하는 등로는 좌우측이 시원하게 드러나 멋진 조망을 선사하고 있다.
등로 우측으로 넓은 대산면 평야지대가 나타나고 그 평야지대를 지나니 우측으로 지나온 고산에서 이곳 고성산까지 이어진 영산기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다가오고 그 암치치 뒷편으로 삼북제가 내려다 보인다.
그러고 보니 이 영산기맥 마루금 주위로 꽤 많은 저수지가 내려다 보였다는 생각이다.
이제 막바지 봉우리를 눈 앞에 둬서 그런지 마음만은 참으로 평온하게 이틀간의 산행을 마무리 하는 그런 느낌으로 진행하는 시간이다.
다시 주위 조망을 즐기며 한발 두발 걸음을 옮기니 잠시 잡목지대와 바위들을 지나 억새가 말라있는 등로를 통과한다.
저 앞에 보이는 바위를 바라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니 금새 고성산 깃대봉이란 정상목과 등산안내판이 서 있는 고성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고성산은 해발 546.3미터로 호남지역의 산으로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편이다
산맥의 방향에 따라 산세도 남북으로 주능선을 길게 늘어뜨리며 양옆으로는 자잘한 지능선이 흘러 내린다
이 산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고풍스런 산성이 산의 4부 능선쯤 남사면에 빙 둘러 축조되어 있는데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져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산성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 내려오지 않아 언제 축조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니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이곳 고성산 정상에서도 배낭을 벗어 놓고 잠시 카메라만 들고 주위 풍경을 둘러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제일 먼저 고성산을 지나 앞으로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영산기맥 마루금을 찾아 본다.
바로 앞에 월랑산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태청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그 태청산 넘어 봉우리만 내밀고 있는 상사화로 유명한 영광의 불갑산이 그 옛날 추억을 꺼내며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듯 하다.
이제 하루 햇살이 그 불갑산쪽으로 기울어 가며 더욱 아련하게 흑백의 풍경으로 다가오지만 그곳에 피어 난 너무나 아름다운 상사화를 알고 있기에 다시 한번 멋진 추억을 만들어 보자 약속을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바로 발 아래에는 삼계농공단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데 수많은 건물의 지붕들이 모두 파란색이기에 신기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다른 방향의 조망과 풍경들은 이미 고성산 오름길에 수없이 봤던 곳들이기에 사진으로만 담고 이곳에서는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 할 것 같아 생략 하기로 한다.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배낭 둘러 멘채 고성산 정상을 지나 마지막 깃재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하지만 내려가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바위들이 어우러진 아름길과 가파른 내리막 등로이기에 마음을 놓고 걸어 가야할 구간은 아닌듯 약간의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시간이기도 하다.
약간의 억새와 산죽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내려다 보는 삼계농공단지의 풍경이 삶의 활력이 되어 산객을 깨우고 있다.
참으로 이상한 농공단지란 생각이다.
대부분 다른 색깔을 한 지붕들을 생각했지만 모두 같은 푸른 빛을 내는 지붕을 내려다 보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본 시간이기도 하다.
수많은 산업 역군들이 가족들을 부양하며 살아가는 곳임을 잘 알기에 조금 더 좋은 환경과 좋은 조건에서 즐겁게 일 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길 바라며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맥 잇기 산행에 전념을 해 본다.
이 산객과는 어떤 인연도 없었기에 잘 알지 못하는 농공단지이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 행복해 하는 하루가 되길 진심으로 바래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삼계농공단지와 삼계면쪽 풍경을 조망하며 천천히 진행을 하니 많은 바위들이 줄지어 서 있는 암릉지대를 안전목책과 로프를 의지해 통과한다.
등로 좌측 아래로는 멋지게 생긴 바위들도 보이지만 잠시 사진으로 담기 바쁘게 통과해 내려가니 잠시 평이한 산죽 등로가 나타난다.
그 산죽 지대를 지나 진행하니 바위들이 산재한 멋진 전망봉에 도착을 하지만 많이 봤던 풍경들이기에 곧바로 다시 갈 길을 따라 내려 간다.
전망봉을 지나 내려가니 내려가야 할 암릉들이 펼쳐져 있고 그 암릉 저 멀리에는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봉우리들이 더욱 위풍당당하게 펼쳐져 보인다.
다시 계속 나타나는 삼계농공단지를 내려다 보며 진행하니 임릉 구간에 설치된 안전목책과 로프를 지나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진다.
다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내려가기 전 암릉에서 방금 내려온 고성산 정상부를 올려다 보니 능선에 줄지어 늘어선 바위들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지나고 뒤돌아 보면 모두들 이렇게 예쁘게 다가오는데 오르기 전에는 왜 그리 험악하고 고통스럽게 다가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한동안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계속해서 바위 암릉이 이어지고 바위로 자연 계단이 만들어진 등로를 따라 진행된다.
생각보다 긴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보니 봉분이 낮아진 묘지 한기가 바위틈에 보이고 이런 곳에 묘지를 쓴 후손들이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드디어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고 이제 마음 편히 여유롭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뚜렷한 등로를 타고 잠시 더 내려가다 잡목이 사라진 틈을 이용해 뒤돌아 보니 다시 뾰족하게 위풍당당히 서 있는 고성산 정상이 하얀 암봉을 햇살에 노출하여 빛나며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다시 낙엽진 활엽수의 앙상한 등로를 타고 천천히 발길을 옮기니 지금까지 느꼈던 고통은 모두 사라지고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이 깊게 전해져 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어제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걸었던 등로를 생각하며 언제 다시 내려 올 수 있을지 기약없는 상상을 하며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영산기맥 마루금은 높지 않은 앞 봉우리쪽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별 의미가 없기에 좌측 비포장 임도로 내려가 이제부터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깃재로 내려가기로 한다.
약간의 찜찜함은 있지만 몸이 그곳으로 향하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영산기맥 마루금 좌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한동안 걸어 본다.
벌써 따가워진 하루 햇살이 얼굴 가득 비추며 검은 피부로 만들고 그 검어진 얼굴엔 굵은 땀방울이 쉴새 없이 흘러 내려 준비한 손수건 2장이 벌써 물에 적신듯 흥건히 젖어 있다.
그렇게 한동안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좌측 저 아래 장성군과 영광군을 이어주는 2차선 포장도로가 보이는 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접어 들어 조금 더 전진하니 새벽에 이 산객이 호로 남겨 두고 떠났던 애마가 내려다 보이고 우측으로 깃재산장이 보인다.
잠시 능선을 버리고 비포장임도를 타고 내려 왔지만 마지막 구간엔 다시 능선으로 접어 들어 내려가니 드디어 깃재에 도착을 하는데 깃재산장 들어가는 입구 언덕엔 계재란 이정석이 서 있고 해발 200미터란 글과 함께 영광군에서 세웠다는 표지석이 서 있다.
하지만 영광군에 들어가 아무리 깃재나 계재를 찾아 보지만 그 유래나 전설을 찾을 수 없어 조금은 아쉬운 시간이다.
이곳 깃재 또는 계재는 장성군 삼계면괴 영광군 대마면을 잇는 도로로서 그 좌측 아래에는 필암서원과 장성추모공원 팻말이 서 있다.
드디어 무탈하게 이틀간 영산기맥 제 2구간과 3구간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깃재 즉 이정석에 있는 이름으로 계재에 도착해 배낭을 정리하고 잠시 도로 따라 영광군쪽으로 내려가니 장성추모공원이란 큰 이정석이 서 있고 그 옆에는 필암서원이란 이정판이 서 있다
그 필암서원 우측에 나 있는 좁은 포장임도 우측으로 다음 구간인 제4구간 들머리를 확인하고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이틀간의 산행을 모두 마무리 한다.
잠시 장성군청에 실려있는 필암서원에 대해 공부를 해 본다.
필암서원은 선조 23년(1590)에 하서 김인후(1510∼1560)를 추모하기 위해서 황룡강변 산리에 세워졌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인조 24년(1624)에 다시 지었고 효종 10년(1659) 필암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직접 내려보내 주셨으며 167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공부하는 곳을 앞쪽에 그리고 제사 지내는 곳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의 형태로서 휴식처가 되는 확연루를 시작으로 수업을 받는 청절당과 그 뒤에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북쪽으로는 문과 담으로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사당을 두고 제사를 지냈다.
청절당의 처마밑에는 윤봉구가 쓴 필암서원 현판이 걸려있고 대청마루에는 동춘당 송준길이 쓴 현판이 달려있다.
또한 확연루의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으로 사당의 동쪽에는 경장각이 있는데 보물로 지정된 서책이나 문서 등이 보관되어 있다.
이들 자료는 주로 18세기∼20세기초부터 전래된 것으로서 당시 지방교육과 제도 및 사회·경제상 그리고 학자들의 생활상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중요 시설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우동사 : 필암서원의 사우로 북쪽에 하서 김인후 선생과 동쪽에 고암 양자징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편액은 주자의 글씨를 집자하였다.
- 청절당 : 중앙은 대청 그리고 좌우에 협실 및 옛진원현의 객사건물을 옮겼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이 쓴 신도비문 중 청풍대절이라는 글을 인용하였으며 편액은 동춘당 송준길의 글씨다.
- 경장각 : 인종이 하사하신 묵죽도의 판각을 보관하고 있다.
편액은 정조대왕의 어필이며 망이쳐져 있다.
- 확연루 : 필암서원 입구의 문루로 서원을 넘나드는 사람들에게 진리추구의 엄정함으로 압도 할 뿐만 아니라 네 귀퉁이에 조각된 귀공포는 엄숙하면서도 고졸한 맛을 풍긴다.
편액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다.
언제 한번 들려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조만간 다시 내려 와 이어지는 영산기맥을 타고 목포까지 걸어 볼 시간을 기다려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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