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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맥과 중요 지맥 산행(완료)/영산기맥(호남·완)

영산기맥 제1구간 영산기맥 분기봉에서 장성갈재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3.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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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북도 정읍시와 전라남도 장성군의 영산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3년 03월 23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엔 추웠으나 일출 후부터 봄같이 따스했던 날씨

산행온도 : 영하 02도에서 영상 12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남창골 전남대학수련원-남창탐방지원센타-장성새재 옛길 이정표(2.1 Km)-백암 19.01 이정목-이정표(남창계곡 0.9 Km, 장성새재 1.4 Km)- 백암 19.02 이정목-이정표(남창계곡 1.6 Km, 장성새재 0.7 Km)-백암 19.03 이정목-백암 19.04 이정목-입암산 갈림 삼거리-장성새재(이정표-내장사 9.4 Km, 남창골 2.4 Km)-계곡 임도-내장 10.03 이정목-외딴민가-불바래기-내장 10.02 이정목-내장 10.01 이정목-순창새재(이정표-입암 4.2 Km, 까치봉 3.0 Km, 상황봉 2.3 Km)-내장 08.05 이정목-탐방로 아님 등로-새재봉(530봉, 영산기맥 분기봉)-산죽지대-암벽 우회-568봉 암봉-530봉(삼성산 갈림 삼거리)-536봉 갈림길-장성새재 복귀-능선진입-바위 전망대-입암산성 651봉-동문-입암산 상봉(655봉)-암반-이정표(갓바위 0.8 Km, 만화재 1.5 Km)-입암산성 북문(해발 540미터)-백암 18.09 이정목-백암 18.10 이정목-계단과 얼굴바위-갓바위 전위봉-이정표(갓산성 북문 0.8 Km, 주차장 5.4 Km, 갓바위)-갓바위(638봉)-갓바위 전망대-백암 18.11 이정목-바위 전망대-나무계단-바위 전망대-백암 18.12 이정목-이정목(갓바위 0.5 Km, 주차장 4.9 Km)-등천리 갈림 이정표(등천리 1.7 Km)-백암 18.13 이정목-주차장 갈림 삼거리(이정표 갓바위 1.0 Km, 주차장 4.4 Km)-산죽지대-바위 전망대-시루봉 어른봉(649봉)-암벽 우회-두꺼비 바위 우회-헬기장-폐헬기장-바위 안부-벙커봉(호남고속도로 터널 위)-헬기장-벙커 굴뚝봉-송전탑 34번-폐헬기장-통일공원-장성갈재(1번 지방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6.50 Km (진양기맥 약 10.00 Km와 접속구간 남창골에서 영산기맥 분기봉까지 약 06.50 Km)

산행시간 : 조금은 빡빡하게 또 조금은 여유롭게 07시간 50분 (06시 05분부터 13:55분까지)

교통편 : - 애마 이용해 집에서 장성갈재까지 이동

          - 장성갈재에서 북이택시 이용해 산행 들머리인 남창골로 이동(011-605-0083), 택시비 16,000.-

          - 애마를 이용해 장성갈재에서 집으로 복귀

 

영산기맥은? (박종률님 자료를 인용)
영산기맥은 백두 대간이 덕유산을 넘어 지리산을 목전에 두고  백운산 앞의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을 분기하여 장안산, 팔공산, 성수산, 마이산을 지나 모래재위 조약봉에서(주줄산 또는 주화산) 한줄기는 북으로 금남정맥( 금강정맥)을 분기하고 또 한줄기는 서남진하는 호남정맥으로  만덕산, 내장산, 추월산, 무등산, 조계산, 백운산, 망덕산에서 끝이나는 섬진강의 서쪽 울타리가 된다.

영산기맥은 이 호남정맥의 내장산과 백암산 사이의
순창새재 바로 윗봉에서 분기하여(530미터) 입암산(655미터), 방장산(742.8미터), 문수산(620.5미터), 구황산(480미터), 고산(520미터), 고성산(546.3미터), 월랑산(440미터), 태청산(93.3미터), 장암산(481.5미터), 불갑산(515.9미터), 모악산(347.8미터), 군유산(403.2미터), 발봉산(180.8미터), 감방산(257.0미터), 병산(130.7미터), 남산(189.0미터), 마협봉(290.0미터), 승달산(317.7미터), 국사봉(283.0미터), 지적산(183.0미터), 대박산(155.6미터), 양을산(151.0미터)을 지나 목포시 유달산(228미터)에서 다순금에 이르는 도상거리 159.5 Km의 산줄기를 말한다.영산강의 북쪽 울타리를 이루는 산줄기이기에 영산북기맥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통상 영산기맥하면 이 영산북기맥을 말한다.
반면 영산강의 남쪽 울타리를 이루는 산줄기는 호남정맥이 무등산과 계당산, 국사봉을 지나 삼계봉에 이르기전 바람봉에서 분기하는 땅끝기맥을  따라 남진하여 월출산을 지난 벌뫼산에서 땅끝기맥은 남진하여 땅끝으로 가고 또 한가지가 분기하여 흑석지맥이라고 불리는 가학산, 두억봉, 흑석산, 선황산으로 해서 목포와 마주보는 소아와 대아산에 이른다.
즉  영산강의 남쪽 울타리는 이 호남정맥의 새재봉 분기점에서 바람봉 분기점까지 180.1 Km, 땅긑기맥의 바람봉 분기점에서 별뫼산까지 약 58.3 Km, 그리고 
흑석지맥의 별뫼산에서 대아산까지 약 39.2 Km가 될것이다.

 

 

새로운 영산기맥 산줄기를 찾아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돌아 온 뜻깊은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이미 완주하고 편안하게 그 시절을 뒤돌아 봤어야 할 영산기맥을 처음 시작하는 날이다.

작년 한해동안 부모님 두분을 하늘나라로 보내 드리고 마음을 잡지 못해 한동안 방황하다 보니 좋아하던 산행도 조금씩 멀어지고 술로 세월을 보내는 날이 많아지며 몸에도 약간의 이상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있다.

다시 마음 독하게 먹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새롭게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강박관념이 생길쯤 생각해낸 산행이 바로 1대간 9정맥 산행 완주 후 진행하다 중단한 기맥산행이다.

지난 1월 남덕유산의 상고대가 그리워 진양기맥을 처음 올랐다 뜻하지 않게 진주에 사는 산꾼을 만나 함께 진행하기로 한 후 서로가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 그곳은 다음으로 미루고 새롭게 생각해 낸 산줄기가 바로 영산기맥이였다.

 

처음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조금은 빡세게 진행하려고 완벽한 준비를 하고 새벽 일찍 옆지기의 도움을 받아 집을 출발해 어제 하루는 무탈하게 진행을 하였지만 늘 해오던 산행과는 달리 오랫만에 올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몸의 상태가 정상이질 못하고 다음주 월요일 다시 중요한 일정이 잡혀 일요일 산행은 포기하고 토요일 영산기맥 첫구간을 무탈하게 마무리 한 것에 만족하고 약간은 아쉬움을 남긴채 복귀한 하루였다.

이제 시작을 하였으니 남아 있는 구간도 중단없이 조금은 일찍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될 것 같다. 

 

 

오랫만에 다시 오른 장거리 산행을 하면서 최대 고비라 생각했던 암봉과 암릉이 연이어 이어진 시루봉을 무탈하게 내려 와 벙커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남아 있는 사과 하나로 허기를 달랜 후 천천히 평지 등로를 따라 걷는데 바로 발 옆에 하얀 노루귀 몇송이가 피어 이 산객의 발걸음을 잡는다.

자주 오르지 못한 탓도 있지만 조금은 이른 계절이기에 별 기대를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예쁜 노루귀를 볼 수 있다니 그저 믿겨지지 않는 현실에 가던 발걸음 멈추고 어렵게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노루귀는 다음 백과 사전을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다.

노루귀는 미나리아재비과(Ranunculaceae)에 속하는 다년생초로서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꽃은 이른봄 나무들에 잎이 달리기 전인 3월에서 4월에 자주색으로 피나 때때로 하얀색 또는 분홍색을 띠기도 한다.

꽃에 꽃잎은 없고 6장의 꽃받침잎이 꽃잎처럼 보인다.

3갈래로 나누어진 잎은 토끼풀의 잎과 비슷하며 꽃이 진 다음에 뿌리에서 나오는데 털이 돋은 잎이 나오는 모습이 노루귀 같다고 해서 식물이름을 노루귀라고 부른다.

민간에서는 식물 전체를 8월에서 9월에 채취하여 큰 종기를 치료하는 데 쓰며 봄에 어린잎을 따서 나물로 먹기도 한다.

다만 꽃잎이 6장이라 했는데 9장 정도 되는 것 같아 확실하게 노루귀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그래도 이렇게 봄의 전령인 야생화를 보고 나니 하루의 피곤함이 잠시나마 사라지는 기분이다.

 

 

제대로 된 잠도 자지 못하고 두어시간 달콤한 꿈속을 헤매이다 새벽 2시에 일어나 옆지기가 준비해 준 준비물들을 배낭과 별도의 큰 가방에 넣어 집을 출발하는 시간이 새벽 2시 30여분이다.

2일간 약 40여 Km ㅓㅁ게 걸어야 하기에 마음 단단히 먹고 출발하는 마음엔 각오가 새롭고 그렇게 급하지 않게 달려 정읍 휴게소에 도착하니 새벽 4시 30여분을 지나고 있다.

빨리 달린 것도 아닌데 도로 위에 차가 없으니 조금은 일찍 도착해 누룽지 탕 하나로 허기를 달래고 알고 있는 북이택시에 전화를 하니 졸린 목소리로 반갑게 맞이해 주고 장성갈재에서 만나 남창골에 도착하니 새벽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아직은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간이기에 어렵게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지만 보이지 않고 단지 전남대학수련원과 남경산 기도원 입간판만이 사진속에 반짝이고 있다.

남창골에 흐르는 청아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다리를 건너 힘차게 출발하는 시간이 새벽 6시 5분이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정면으로는 남경산기도원 정문이 있고 그 앞 좌측으로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살펴보니 남창마을에서 올라와 이곳을 통해 입암산성과 갓바위로 오르는 등산로로 이용되는 듯 하다.

장성새재나 순창새재로 통하는 글귀가 이정표에 없어 잠시 걱정도 되였지만 산행지도를 보니 제대로 잘 찾아 왔다는 확신에 그 좌측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멋진 산행을 출발한다.

장성군 자료를 찾아 보니 남창골을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남창골 즐 남창계곡은 광주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입암산 기슭에 위치하는데 산성골, 은선동, 반석동, 하곡동, 자하동, 내인골 등 여섯갈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길이가 십여리에 이른다.
계곡 곳곳마다 크고 작은 폭포와 기암괴석이 늘어서 있는 모습은 마치 선계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온갖 새소리가 그침이 없는 울창한 수목과 산천어의 작은 놀림까지 들여다 보이는 수정처럼 맑은 계곡물과 계곡을 따라 지루하지 않게 이어지는 오솔길은 남창계곡이 자랑하는 가장 빼어난 멋이다.
또 남창계곡이 시작되는 입구인 전남대학교 임업수련원에서 1시간 정도 올라가면 삼한시대때 축성한 입암산성을 둘러 볼 수 있다.

이곳에서 호국선영의 기개와 호국정신을 되새기는 것도 또 다른 관광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전남과 전북을 잇는 고속도로와 철도 그리고 국도가 모두 산 서쪽 갈재협곡을 통해 있는 교통의 요충지인 입암산 주위에 축성한 입암산성은 총연장 5천2백8미터의 석성이다.

남쪽을 제외한 3면이 급경사를 이룬 천혜의 요새지로 고려때는 송군비 장군이 몽고군을 격퇴하고 정유재란때는 윤진 장군이 왜장 소서행장과 맞서 싸우다 순절한 역사의 현장이다.
이 밖에 산성의 서쪽 정상에 있는 갓바위와 마당바위, 베틀바위, 상여바위, 족두리바위, 쥐똥바위 등의 기암괴석들이 즐비해 시간적 여유가 있는 여행객이라면 한번쯤 해발 6백8십여 미터의 정상에 올라 국립공원 백양사 지구로 지정된 빼어난 주변경관을 굽어볼 만 하다.

인근에는 대한팔경 중의 하나로 서기 632년(백제 무왕33년)에 여환선사가 창건한 백양사와 장성호, 장성호 관광지 등의 명소가 있어 하루 관광코스로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

오늘은 등산이 주목적이니 여행은 가족들 손잡고 무더운 여름에 다시 한번 들리기로 한다.

 

 

전남대학수련원을 좌측에 두고 다리를 건너 다시 남경산기도원을 정면에 두고 좌측으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그 임도 좌측에 청아하게 흐르는 남창골을 두고 잠시 걸어 들어가니 금새 많은 안내판들과 남창탐방지원센터가 자리한 곳에 도착을 한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몇장의 사진을 담은 후 탐방지원센타 창문에 달려있는 주 탐방안내도를 살펴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야 할 등로와 갓바위 그리고 입암산성으로 향하는 등로가 정확하게 각인되고 있다.

이제부터 이 칠갑산 홀로 어둠을 뚫고 외롭게 걸어가는 시간이겠지만 자연이 있고 바람이 있으며 나무들이 있으니 그 외로움도 쉽게 떨쳐 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남창탐방지원센타를 지나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천천히 발길을 옮기니 갑자기 지난날 미친듯 올랐던 종주산행에 대한 추억들이 떠오르며 두려움이 밀려온다.

어떻게 그렇게 겁도 없이 어둠을 뚫고 오르며 짧은 기간동안 그 많은 산줄기들을 올랐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시간이다.

계속해서 고요한 정적을 깨며 따라오는 남창골의 청아한 물소리가 귀전을 새롭게 들어 올쯤 저 멀리 이정표와 안내판이 보이고 이제 서서히 어둠이 밝음에 세상을 내주며 희미한 등로가 눈에 들어 온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제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꺽여 장서새재 옛길을 타고 걷도록 되어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서 자주 봤던 그림에 낮설지 않게 몇장의 사진을 담아 본다.

 

 

제법 단장된 듯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보이고 이제 계곡 물소리는 등로 우측으로 흐르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가니 저 멀리 키작은 산죽이 나타나고 그 앞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입었던 방풍 자켓을 벗어 배낭속에 넣고 진행한다.

더 걸어가다 이제 어둠이 완전히 사라진 틈을 타 잠시 등로 우측으로 흐르는 계곡물속 가까이 다가가 그 청아한 물소리응 사진에 담아 보려 노력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부딪혀 그저 상상속의 소리로만 남겨본다.

그래도 그 듣고 있는 물소리조차도 고요한 아침에 상쾌하게 파고드는 아침공기와 함께 살아 있음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시간이 되였다.

 

 

다시 등로로 올라 와 계속 이어지는 키작은 산죽 사이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점점 큰 바위들이 자주 나타나고 조심스럽게 타고 오른다.

새재갈림길에서 0.9 Km 올라왔고 장성새재까지 이제 1.2 Km 남아 있다는 이정목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등로 좌측에 남창계곡에서 0.9 Km 지나 왔고 장성새재까지 1.4 Km 남아 있다는 이상한 이정표를 만나 이정표와 이정목이 왜 이렇게 다르게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지 의아한 생각에 고개만 까웃거려 본다.

이제 새재갈림길에서 1.5 Km 올라왔고 장성새재까지 0.6 Km 남아 있다는 이정목을 지나 오르니 갑자기 지난 여름 이곳을 지났을 선답자들에게 마의 구간이라 불려도 좋을만큼 거대한 잡목밭을 이뤘던 지대가 나타난다.

지금이야 날씨가 추운 겨울이다 보니 그 기세 좋던 잡목들도 모두 고개를 떨구고 지나는 이 산객에게 인사를 하고 있지만 날씨가 더워지고 다시 잡목 세상이 오면 지날 후답자들에게 악명이 높은 잡목 지대가 될것 같다는 느낌으로 그곳을 통과한다.

 

 

고개숙인 회색빛 잡목지대를 지나니 새재갈림길에서 2.0 Km 지나 왔다는 이정목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이제 본격적인 능선 등로로 바뀌고 있다.

그곳을 지나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에 달도 숨은 고개를 아시나요란 안내판이 서 있고 그 뒤에는 탐방로 아님이란 글자판이 서 있다.

분기봉까지 갔다 내려오며 정상 기맥 산행을 할 때 다시 이곳으로 와 저 탐방로 아님이란 글자판 뒤로 진행하게 될 것이기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늘 느끼는 것이지만 탐방로 아님이란 그곳을 지나 진행해야 하는 것이 맥 잇기 산행이기에 늘 마음 한쪽이 아파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은월치라고도 불렸다는 그곳 설명판을 지나 진행하니 저 멀리 다시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 장성새재가 나타난다.

인터넷에서 장성새재를 찾아보니 많은 자료들이 있고 그 중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되는 자료 하나를 소개해 본다.

아름다운 계곡물을 흐르는 영산기맥 등산로를 따라 진행해 만나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지명 하나가 바로 바로 장성새재라는 지명이다.

새재라하면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경계에 있는 고개 말하는 것으로 새도 넘다가 쉬어가는 고개라 하여 새재라 불리게 된 지명이다.

그러면 이곳 장성의 입암산에는 왜 새재라는 지명이 생겨났을까?

이곳 장성새재는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와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호남사람들이 한양으로 가던 소로 중의 하나였다.

특히 이곳 장성지역의 사람들은 한양가는 대로인 노령(갈재)보다는 자그마한 소로인 장성새재를 더 친근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장성새재의 새재는 새도 넘다가 쉬어가는 고개라는 의미보다는 사이 고개’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 장성새재 길은 군사독재와 산업화의 시대인 60년 한때 군사용 도로로 사용되기도 하여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기도 하였지만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다시금 생태계가 복원되어 현재의 아름다움을 되찾게 되었다.

고개라는 이름을 갖고 있어도 그렇게 부르기엔 밋밋한 장성새재는 옛날 사람들의 통행이 잦을 때는 주막도 있고 마을도 형성되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다만 몇몇 곳에 남아 있는 석축만이 이곳에 건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눈을 감고 옛날 모습들을 그려보면 시원한 바람결에 주막 주모의 구성진 목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정겨움을 준다.

 

이곳 장성새재는 옛 지도를 살펴보면 찾아볼 수 없다.

장성새재(장성조령) 이라는 명칭은 어떠한 지도에서도 보이지 않아 이곳을 언제부터 새재로 불렀는지는 알 수 없고 다만 이곳을 부르는 다른 명칭 하나를 찾을 수 있다.

대동여지도, 동여도, 여지도 등 많은 고지도에서 장성새재는 월은치라고 되어 있다.

월은치 즉 달이 숨은 고개이니 얼마나 낭만적인 이름인가?

옛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고개에 월은치라는 이름을 붙여 숨겨진 길이라는 비밀스러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 길은 한때 정말 달이 숨어들 만큼 수풀이 무성하여 하늘을 가린 그런 고개였을 것이다.

개발과 필요라는 이유로 우리는 이곳 아름다운 월은치를 잃어버렸고 지금은 다시금 그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장성새재는 또 내장산으로 넘어가는 순창새재로 가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달도 숨어든 고개 월은치, 이 길은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담고 곳곳에 격동의 시대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그런 길이었다.

장성새재 월은치는 이제 달이 숨어든 고개가 아니라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할 살아 숨쉬는 길이 아닐 수 없다.

의미를 알고나니 더욱 정감있고 다시 한번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추속에 남겨지는 길이 되였다.

 

 

영산기맥 분기봉에서 걸어 진행하면 다시 만나야 할 장성새재에서 고요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몇장의 사진을 담은 후 이제 우측의 계곡쪽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 본다.

다시 등로 우측으로 흐르는 아름다운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진행하니 그 계곡물이 산객을 부르고 이마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식히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춰 손을 담궈본다.

그렇게 걷다 보니 등로 우측으로 제법 넓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밭을 일궜던 흔적과 함께 파란 노끈망이 쳐져 있는데  한동안 농사를 짓지 않은듯 잡풀만 무성하게 자랐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곳을 지나니 저 앞으로 큰 감나무 한그루가 서 있고 그 좌측 저 멀리 희미하게 민가 한채가 보이는데 굴뚝에는 아침 준비를 하는지 하얀 연기가 피어 올라 이 산객이 어릴적 뛰어 놀던 시골 고향 향수에 자시 젖어 보기도 한다.

이곳이 바로 선답자들이 말하는 불바라기가 시작되는 지점인듯 하다.

특히 장성새재와 순창새재 사이는 불바래기라고 하는데 이곳은 옛날 이곳 위쪽에 암자가 있어 부처를 바라보는 곳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 매년 불이 나서 불바래기라고 부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지금도 이곳은 산불조심기간에는 통제되어 탐방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사실 이 불바래기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조선시대 말 박해를 피해 모여든 천주교 신자들의 공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공소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신앙공동체로 박해를 피해 모여든 호남지역 대표적 천주교 유지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곳에는 곳곳에 집터가 남아 있어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노부부가 단 둘이 살고 있다고 알고 있어 잠시 들려 볼까 생각도 해 봤지만 괜시리 아침 고요를 깨울 것 같아 먼 발치에서 사진만 몇장 남기고 곧바로 민가 우측 개울쪽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개울 건너 계속 걸어 본다.

 

 

그 민가를 지나 진짜 불바라기라 생각되는 평지를 지나 걸어가니 저 멀리 능선으로 등로가 이어지고 이제부터 제법 가파라지는 숲속 등로를 타고 제법 많은 땀방울을 흘려 본다.

새벽에 느꼈던 한기는 사라진지 오래고 이제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던 일출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여름으로 달려가는 계절을 몸으로 느끼며 굵은 땀방울을 솟아내는 시간이다.

그렇게 호젓한 숲길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멀지 않은 곳에 지난 3년전 걸었던 호남정맥 상 순창새재라 불려지는 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잠시 배낭 내려 물 한모금 마시며 옛날 생각에 잠겨 보기도 한다.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았던 곳에 다시 발길을 해 만난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느끼며 이제부터 본격적인 영산기맥 마루금을 향해 발길을 돌린다.

이것이 진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곳 순찬새재에서 직진과 우측은 ㅗ남정맥 마루금으로 우측으로 가면 백암산 상황봉으로 가는 길이고 직진을 하면 내장산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3년전 가지 말라는 팻말에 거꾸로 추감상굴재서 올라 백암산을 어둠속에 지나고 내장산 신선봉을 지나 추령으로 올랐던 추억에 밝은 날 다시 한번 올라 보자 마음먹어도 보는 시간이다.

이제 그곳 순창새재에서 이정표와 현위치 안내판 뒤로 나 있는 등산로아님이란 팻말 뒷쪽의 능선으로 조금은 빠르게 치고 오른다.

낙엽진 앙산한 나뭇가지들만이 이 산객의 친구가 되어 길을 밝혀주고 있다.

그렇게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어 계속 이어가니 드디어 영산기맥 분기봉인 새재봉에 도착을 하는데 준.희님이 걸어 놨던 영산기맥 분기봉이란 팻ㅁ발은 사라지고 산객 한분이 걸어 놓은 새재봉이란 코팅지만 황량한 그 정상을 지키고 있다.

배낭 내려 간단하게 마음속으로 영산기맥의 안전한 산행을 산신령에게 빌고 다시 차가워지는 등줄기에 배낭ㅇ을 둘러메고 이제 삼거리 좌측의 내리막 등로를 타고 멀고도 먼 영산기맥 산행의 출발을 알린다.

 

 

마음속으로 영산기맥의 안전산행을 빌고 다시 좌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키 작은 산죽이 등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 산죽을 헤치며 전진하니 점점 산죽의 키가 커지고 잠시 뒤 산객의 키를 덮을만큼 빼곡히 널려있다.

한동안 그 산죽을 타고 내려가니 주위 산그리메가 눈에 들어 오지만 앙산한 나뭇가지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오랫만에 오르는 종주 산행에서 아직까지는 몸의 상태가 괜찮은 편이라 하나의 위란을 삼아 진행을 해 본다.

 

 

그렇게 산죽밭을 타고 내려가다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저 멀리 박무속에 뾰족하게 솟아 오른 암봉 하나가 보이고 살펴보니 내장산의 까치봉에서 연지봉 그리고 망해봉이 차례로 눈에 들어 오고 그옛날 산친구들과 나눴던 우정을 잠시 생각해 본다.

몇번인가 올랐고 또 앞으로도 몇번인가 더 올라야 할 봉우리들이기에 가슴속에 눈으로 차곡차곡 담아 보는 시간이 참으로 멋지다는 생각이다.

다만 기온이 오르며 박무가 심해 그 선명한 자태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겨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산죽이 끝나고 평이한 등로가 나타나는데 지난 가을 아쉬움을 달래며 떨어져 쌓인 낙엽이 푹신한 양탄자를 연상시킨다.

잠시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니 다시 산죽이 나타나고 눈 앞에 거대한 암벽이 가로막고 좌측으로 돌아가라 눈짓을 한다.

앞에서 볼때엔 그저 몇개의 암봉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좌측으로 그 암봉을 우회하며 진행하니 끝도 없이 이어진 암릉이 펼쳐지며 많은 산님들이 지나지 않았는지 등로마저 희미해진다.

 

 

참으로 어렵게 희미한 등로를 찾아 암벽을 좌측으로 우회하니 다시 거대한 568봉 암봉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고나서야 드디어 평이한 능선 등로로 복귀할 수 있다.

능선 등로로 올라 뒤돌아 보니 처음 만났던 암봉은 어디로 사라지고 거대한 암릉이 연이어 펼쳐지며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형상이다.

다시 평이한 능선 등로를 따라 잠시 걸어가니 등로 좌측의 소나무 나뭇가지 사이로 방금 전 지나왔던 불바라기의 민가 한채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노부부가 살고 있다는 민가를 내려다 보니 지난해 하늘나라로 가신 부모님 생각에 잠시 눈시울이 붉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부디 건강하게 오랫동안 편안한 자연속에 살아가길 기원하며 그곳을 지나간다.

 

 

다시 올망졸망한 봉우리를 넘어 걸어가니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처음에는 우측 영산기맥 등로가 보이지 않고 좌측으로 나 있는 뚜렷한 등로가 눈에 들어 와 아무 생각없이 그 좌측의 뚜렷한 등로를 타고 걸어 본다.

잠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는데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느낌이 들지만 곧바로 나타나는 등로 좌측의 바위 전망대가 보이기에 그곳으로 올라 잠시 주위 풍경을 감상하기로 하고 그냥 내려간다.

위에 보이는 사진에서 우측으로 보이지 않는 등로를 찾아 진행하면 곧바로 몇개의 띠지가 나풀거리는데 무심코 진행하면 그 영산기맥 마루금을 잃고 좌측의 뚜렷한 등로를 타고 알바하기 쉬운 삼거리 갈림길이다.

 

 

 

무명봉에서 처음에는 알바인줄도 모르고 내려갔지만 금새 알아 차리고 나서도 미필적 고의로 그냥 알바를 해 바위 전망대에 서니 참으로 가슴 시원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방금 지나 온 영산기맥 분기봉부터 걸어 온 등로가 좌측으로 보이고 그 능선 저 멀리 내장산의 뾰족봉들이 그 옛날 이야기를 전해 주며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아 있다.

그 산줄기 사이마다에는 하얀 물안개가 피어 골짜기마다 은은하게 채우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다 말 하지 않을 수 없는 조망이며 풍경이다.

 

 

등로 남쪽으로는 백암산과 내장산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골짜기가 반겨주고 한동안 말없이 서서 그 풍경을 감상해 본다.

아침 고요를 깨며 이름모를 산새들도 봄이 오는 계절의 골목에 서서 멋진 노래를 불러주는 시간, 바로 이런 기분과 느낌이 좋아 밤에 잠도 자지 못하고 내려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랫만에 느껴보는 살아가는 삶의 향기에 취해 보는 값진 시간으로 남겨 본다.

 

 

그렇게 바위 전망대에서 한동안 주위 조망과 풍경을 감상한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 보지만 역시나 등로가 보이지 않아 다시 무명봉 삼거리로 뒤돌아 올라간다.

삼거리 무명봉에서 주위를 살펴보니 역시나 진행 방향에서 좌측의 뚜렷한 등로가 아닌 우측 직진 방향으로 희미하게 길이 나 있고 저 멀리 띠지 몇개가 보인다.

낙엽 깔린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산죽이 다시 반기고 530봉에 올라 우측의 삼성산을 가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몸이 자꾸만 기맥 마루금으로 이끌기에 아쉬움을 남기고 희미한 등로를 주의하며 찾아 다시 장성새재 방향으로 방향을 바꾼다.

잠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물기를 머금은 바위가 나타나고 그 옆에는 키 작은 산죽 옆으로 힘겹게 삶을 이어가는 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붙잡아 잠시 홀로 웃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곧바로 장성새재로 내려가질 못하고 우측 능선방향으로 내려가게 되고 작은 개울이 나타난다.

잘못되였음을 느끼지만 큰 차이가 없기에 그 작은 개울을 건너지 않고 좌측 능선 위 고갯마루로 올라가니 오늘 새벽에 만났던 장성새재 이정표가 반겨 준다.

많은 역사와 이야기를 남긴채 잊혀져 가고 있는 장성새재이지만 일부 산객들과 지방자치제에서 복원사업을 벌여 장성옛길이란 길을 만들었으니 고운 단풍이 피어나는 계절에 다시 한번 내려 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눈다.

 

 

달도 머물다간다는 월은치 설명판이 있는 곳까지 넓은 임도를 타고 진행하다 그곳에서 우측 등산로없음이란 입간판이 있는 방향이 기맥 마루금이지만 이곳 장성새재에서 넓은 임도를 좌측에 두고 곧바로 능선으로 들어가도 정상 기맥길과 만날 것 같아 능선으로 들어간다.

한동안 능선 등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다시 정상 마루금과 만나고 이제부터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려 보는 시간이다.

잠시 오르다 등줄기에 흐르는 땀방울로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고 주위 풍경을 살펴보니 곧바로 솟아 올라가고 있는 소나무가 정겹게 다가오는 등로이지만 그 경사도가 심해 제법 숨소리가 거칠어지기도 하는 시간이다.

 

 

멋진 소나무들이 도열해 이 산객을 맞이하던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광산김씨 묘지 4기가 누워있는 장소를 만난다.

잠시 따스한 햇빛을 쬐며 쉬었다 그 묘지 뒤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바위들이 듬성듬성 나타난다.

그 바위를 지나 오르니 등로는 좌측으로 비스듬히 이어지고 그곳에는 시멘트를 비볐다 잘라진 돌맹이처럼 보이는 작은 자갈들이 널려있는 곳을 통과한다.

다시 키 작은 산죽들이 자라는 지대를 넘으니 눈 앞에 큰 바위가 가로막고 그 바위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등로를 타고 마루금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그 바위지대를 넘으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 등로를 타고 능선을 따라 진행하니 다시 등로는 키 작은 산죽들이 뒤덮고 있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산죽을 헤치며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바위 전망대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들어가 잠시 망중한을 즐기며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을 감상해 본다.

북쪽으로 정읍시 입압면쪽 풍경이 펼쳐져 있고 깊은 골짜기 우측 저 멀리에는 오늘 들리고 싶어 잠시 안달을 했지만 결국 오르지 못한 삼성산이 빤히 보인다.

그 삼성산 지나 저 멀리 나즈막한 산그리메들을 넘어 안개속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전주의 진산인 모악산과 호남정맥 상 만덕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가 빼꼼히 올려다 보인다.

 

 

그곳 전망대에서 삼성산과 그 뒤로 펼쳐진 내장산을 가슴에 담고 다시 전망대를 나와 정상 등로를 타고 가파른 오르막 마루금을 따라 오른다.

잠시 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거대한 돌담으로 이뤄진 산성터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입암산성 성벽에 도착한 것이다.

그 성벽 위로 올라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지도상에 나타나 있는 651봉이다.

이곳 651봉에서 좌측 성곽을 버리고 우측 성벽 위를 타고 기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입암산성은 전라도를 방어하는데 중요한 곳으로 노령산맥에 이어져 전라북도 정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성이다.

높이 626m인 입암산의 계곡 능선을 따라 만든 포곡식 산성으로 약 3.2 Km정도 남아 있다.

만든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기록으로 보아 고려시대 이전부터 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시대 태종 9년(1409)에 고쳐 쌓고 훗날 이귀와 이귀형이 성의 폭을 넓히고 낮은 곳을 높이 쌓았다.

현재 남문과 북문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데 성벽은 수직에 가까우며 물을 막아 충분한 양의 물을 준비해 오랜 시간 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한 조선 후기 방어시설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입암산성 성곽 위를 따라 마루금 잇기 산행을 이어가니 등로 우측으로는 낙엽진 잡목가지들이 시야를 가리지만 그 사이로 아름다운 내장산의 연봉들이 박무속에 아쉽지만 그래도 가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우측으로는 오늘 지나온 영산기맥 마루금도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 저 멀리에는 백암산 자락도 보인다.

몇년전 호남정맥 산행을 하면서 어둠을 헤치고 오르며 보지 못한 조망을 아쉬워했던 기억을 생각해 내곤 다시 한번 피식 웃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서쪽으로는 이제부터 올라야 할 갓바위가 봉긋한 여인의 젓가슴 형상으로 이 산객을 부르고 그 뒤 저 멀리에는 몇년전 하얀 눈이 내리던 날 어렵게 완주했던 방장산 자락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아직 봄이 오는 소리를 직접 듣고 보지는 못하지만 보이는 풍경은 이제 새싹이 돋아나는 봄도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는듯 하다.

급할 것 없이 여유롭게 천천히 아름다운 주위 풍경을 즐기며 성곽 위를 걸어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드디어 입암산 정상에 도착해 그 앞에 펼쳐진 넓은 공터의 조망처에서 지나온 마루금과 시원하게 펼쳐진 주위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남동쪽으로는 방금 전 지나온 표식없던 입암산성 동문 넘어 651봉이 높게 올라와 있고 그 뒤로 백암산과 추월산도 가물 거린다.

우측 저 멀리에는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도 보일듯 말듯 안개속에 묻혀있는데 깨끗하지 못한 조망에 확인을 할 수 없어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동안 주위 조망에 취해 많은 사진을 담다 보니 갑자기 허기가 지기 시작하고 준비한 사과 하나를 꺼내 허기를 달래며 목마름도 함께 해결한다.

따뜻한 봄볕에 얼굴이 탔는지 약간은 따끔함을 느끼며 조금 더 쉬다가 어렵게 셀카를 준비해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지나온 651봉과 백암산 그리고 추월산이 보이고 몇년전 걸었던 호남정맥 마루금도 연이어 눈에 들어 온다.

 

 

많은 시간 입암산 정상 앞 공터에서 쉬며 사진을 찍고 다시 배낭을 메고 진행하니 곧바로 정상 코팅지가 달려있는 입암산 정상에 도착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

한국의 산천에서 입암산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내장산국립공원 하면 일반적으로 내장산과 백암산 두 개 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원 서쪽으로 입암산(687미터) 또한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입암산은 중부 이북의 등산인들에게는 낯설지만 호남 등산인들에게는 오래 전부터 명성이 자자한 산이다.

특히 가을철이면 내장산 못지않게 고운 단풍으로 인기를 끄는 산이다.
전북 정읍시 입암면과 전남 장성군 북하면에 위치한 입암산(626.1미터)은 정상의 바위가 사람이 갓을 쓴 것 같다는 말과 능선위에 바위가 우뚝 솟아 입암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인 이 산은 정읍시 입암면을 가로질러 해발 260미터의 노령을 넘다보면 좌측으로 보이는 산이 입암산(해발 626미터)이다.

정읍벌의 평야지대와 대조를 이루며 우뚝 솟아 있기에 그 모습은 더욱 인상적이고 또한 골짜기 깊숙한 곳이 분지를 이루고 있어 군사적 요충지로 지목되기도 했다.

특히 정상부에 위치한 입암산성은 조선 효종때 개축한 것으로 사적 384호이고 입암산은 옛부터 왜적의 침입을 막던 항쟁의 장소였다.

고려시대는 송고비장군이 몽고의 6차 침입을 맞아 이곳에서 몽고군을 물리쳤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는 윤진이 소서행장과 싸우다 전사하기도 했다.

 

 

입암산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완만한 산죽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옛날 사람들이 지내면서 생활했던 성터 흔적들이 보이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잡목이 사라지며 멋진 입암산 갓바위의 암봉이 가감없이 그대로 드러난다.

여인의 봉긋한 젓가슴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자태를 바라보며 잠시 발걸음 멈춰 몇장의 사진을 남겨 본다.

그 갓바위 뒷편으로는 다음구간 올라야 할 방장산 줄기가 머리를 내밀며 몇년전 하얀 눈속에 걸었던 추억을 이야기 해 주고 있다.

 

 

다시 완만한 평지같은 능선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돌맹이들이 너부러져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갓바위 방향으로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정면으로 올려다 보이는 갓바위를 조망하며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입암면쪽 평야와 호남고속도로 그리고 지방도로들과 철로가 한누에 내려다 보이지만 약간의 박무로 인해 시원한 풍경은 아니다.

입암면 들녘 넘어 저 멀리에는 내변산이 있고 곰소항이 있으며 선운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야 하지만 그 역시 박무속에 그저 상상으로만 보일 뿐이다.

운이 좋으면 서해 바다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는데 조금은 아쉬운 시간이다.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금 내려가니 앞이 시원하게 트이며 갓바위와 입암면쪽 풍경이 조금은 더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드넓은 바위가 비스듬히 누워있고 죔해 그 바위를 지나 내려가니 입암산성이 무너져 너부러져 가는 가슴 아픈 현장이 나타난다.

그곳을 지나 계속 걸어 내려가니 키 작은 산죽밭이 이어지고 곧이어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 우측으로 만화재 가는 갈림 삼거리이다.

그 이정표를 지나 살펴보니 입암산으로 통하는 등로는 등산로 아님이란 안내판이 서 있어 통행금지를 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화재 갈림 삼거리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다시 하나의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옆에는 안내판도 서 있는데 이 산객이 진행해야 할 등로는 직진이다.

내려가 살펴보니 이곳이 입암산성 북문으로 해발고도는 540미터로 되어 있다.

이제 갓바위까지 800미터 남아 있고 남문까지는 1.6 Km라 적혀 있는 이정목이 서 있어 잠시 남문까지 다녀올까 고민해 보지만 일찍 포기하고 곧바로 갓바위로 향한다.

그곳 갓바위 방향 역시 출입금지 구역이라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빠르게 올라가 보는데 왜 이런곳까지 출입금지를 시켰는지 이해는 되지 않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 뿐이다.

 

 

북문을 지나 잠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곧바로 돌들이 등로에 박혀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오르니 다시 산죽지대가 나타나고 곧이어 산죽이 사라지더니 완만한 흙으로 이뤄진 오르막 등로가 이어진다.

잠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가니 생각보다 몸의 상태는 좋은듯 하다.

그렇게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조금 꺽여 진행되는데 그 등로 좌측으로는 이제 곳 도착할 입암산 갓바위가 바로 눈 앞으로 다가와 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니 얼굴바위와 갓바위 전위봉 그리고 암봉으로 이뤄진 멋진 갓바위가 아름답게 다가온다.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사각형으로 돌을 쌓았던 흔적이 나타나는데 사람들이 살던 집터인지 아니면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였는지 알 수 없는 흔적들이다.

다시 천천히 조금 더 오르니 현위치번호 백암 18-10 갓바위까지 300미터 그리고 북문에서 400미터 올라 왔다는 이정목 하나가 앙증맞게 서 있다.

잠시 위를 바라보니 잡목 가지들 사이로 웅장한 갓바위가 그대로 나타나 있다.

 

 

잡목들이 나뭇임을 벗어 던지고 모진 한겨울 삭풍을 이겨낸 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도열해 있는 아름다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그 잡목 가지 위로 갓바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렇게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저 멀리 안전목책과 로프가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나무계단이 이어지고 있다.

길지 않은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그 계단 끝자락에 사람 얼굴을 닮아 있는 얼굴바위가 반겨 준다.

자연의 위대한 선물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얼굴 바위를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갓바위 전위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올려다 보는 갓바위의 위용이 멀리에서 보는 것보다 더욱 위압적이다.

마치 덕유산의 서봉을 오르는 철계단이 생각날 만큼 가파른 철계단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다만 그 길이가 짧아 다행이란 생각이다.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갓바위 정상에서 내려오고 그 등산객들이 다 내려오길 기다려 천천히 그 갓바위 정상부로 향한다.

 

 

갓바위 전위봉에서 짧은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안부를 지나니 그 안부 좌측으로 주차장이란 이정표엔 5.4 Km란 거리 표시가 보인다.

이제 입암산성 북문에서 800미터 올라 와 있고 갓바위는 철 계단을 타고 오르면 바로 그곳 정상일 것이다.

갓바위 정상을 다녀 와 다시 이곳 안부로 내려 좌측 주차장 방향으로 걸어가며 진행하면 맥 잇기 산행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드디어 철 계단을 타고 갓바위 정상에 도착해 서쪽을 바라보니 몇년전 하얀 눈이 내리던 날 홀로 오르며 많은 추억을 남겼던 방장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아래 들머리엔 장성갈재를 통하는 1번 지방도로도 뱀의 형상으로 지나는 모습이 보인다.

 

 

갓바위 정상에 서 있는 바위 우측에서 남쪽을 살펴보니 입암산성을 따라 626.1봉이 아름답게 놓여 있고 그 봉우리 저 멀리 언젠가는 올라야 할 병병지맥의 산줄기들이 손짓을 하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다시 한동안 정상에 머물며 시간 지나는줄 모르게 조망을 즐겨 본다.

그 626.1봉 우측으로는 은선골쪽 골짜기가 길게 이어지고 저 멀리 담양과 장성쪽 산그리메가 넘실거리는 풍경이 이 산객의 가슴에 와 안기는 시간이다.

 

 

이제 갓바위를 내려가 길게 이어진 등로를 타고 오늘 마지막 봉우리로 넘어야 할 시루봉이 저 멀리 멀게만 느껴지고 그 시루봉 우측으로 영산기맥은 중단없이 이어가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면 장성갈재를 지나는 1번 지방도로가 선명하고 그곳을 넘으면 다시 방장산이 기다리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들이지만 막상 오른다고 생각하니 벌써 약간은 꾀가 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는 거리에 마음이 바빠지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다시 서쪽을 내려다 보니 바로 아래 바위 위에는 두어명의 등산객이 앉아 쉬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게 다가오고 그 등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면 그 끝자락에 우뚝 솟아 있는 시루봉이 서 있다.

그 시루봉에서 우측 북쪽으로 등로를 따라 내려가면 장성갈재 지나 다시 방장산이 올려다 보이고 그 방장산 지나 영산기맥 산줄기가 이어지는 풍경도 한눈에 들어 온다.

그 아래쪽에는 호남터널과 입암터널이 보이고 시원하게 뚫려있는 도로도 눈에 들어 온다.

 

 

방장산 우측의 북서쪽으로는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제법 평편한 들녘이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에 입암면이 자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지만 지금은 너무 멀어서 인지 아니면 한가한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그 한가운데에 넓고 큰 입암저수지가 자리하고 입암 사람들의 젖줄이 되어 주는듯 내려다 보인다.

이렇게 산행이 아니라면 알지도 못했을 마을과 지명을 알고 나니 새로운 지식을 배운듯 뿌듯한 기분은 또 무엇인지 모르겠다.

 

 

북동쪽으로는 수많은 민가들이 들어서 있는 들판이 펼쳐져 있고 혹시나 하고 용산저수지를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

저 멀리 있어야 할 선운산의 모습은 박무속에 숨어 버렸고 더욱이 서해바다는 기억속에만 존재하는 바다인듯 멈춰 버렸다.

그래도 아기자기한 들녘들을 내려다 보니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강산임을 알 수 있다.

 

 

이제 갓바위 전망대에서 돌아 나와 방금 전 지나 온 갓바위 전위봉쪽을 바라보니 벌써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넓은 공터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무엇이 그리 좋아 호호하하 웃음이 끊이질 않는지 괜시리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철 계단과 626.1봉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산그리메가 따스한 햇살을 뚫고 이 산객의 가슴에 남겨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많은 시간 갓바위 정상에서 머물며 조망과 풍경을 구경한 후 이제 그 정상에 누워있는 바위를 사진에 담아 본다.

전북 정읍시 입암면과 전남 장성군 북하면에 위치한 입암산(626.1봉)은 정상의 바위가 사람이 갓을 쓴 것 같다는 말과 능선위에 바위가 우뚝 솟아 입암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인 이 산은 정읍시 입암면을 가로질러 해발 260미터의 노령을 넘다보면 좌측으로 보이는 산이 입암산(해발 626미터)이다.

정읍벌의 평야지대와 대조를 이루며 우뚝 솟아 있기에 그 모습은 더욱 인상적이다.

또한 골짜기 깊숙한 곳이 분지를 이루고 있어 군사적 요충지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제 다시 갓바위를 지나 영산기맥을 이어가야 하는 시간이기에 정상에서 내려온다.

 

 

갓바위 정상에서 철 계단을 타고 내려 와 주차장 이정표 있는 곳에서 우측 계단을 타고 영산기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가 본다.

잠시 그 갓바위를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니 산죽지대가 나타나고 그 산죽밭을 통과해 걸어 내려가니 현위치번호 18-11이란 이정목이 서 있고 그곳에는 갓바위에서 100미터 내려왔고 은선동삼거리까지 2.7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갓바위 정상에서 봤던 바위 위에 등산객들이 앉아 있던 그 전망바위에 도착을 해 보니 부부가 앉아 담소를 나누며 간식을 먹고 있다.

피해가 되지 않게 조심하며 그 전망바위에 올라 시루봉을 바라보니 생각보다 멀게만 느껴지는 거리가 두 다리에 힘을 빼 놓고 있다.

 

 

방장산쪽을 바라보니 바위 앞에 바로 터널이 내려다 보이고 그 위로 1번 지방도로가 보인다.

그 위로 우뚝 솟아 있는 방장산이 다음 구간에 다시 만나자며 손짓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에 다시 잠시 더 그 전망바위에 머물며 주위 풍경을 돌아 본 후 천천히 그 바위를 내려 온다.

 

 

전망바위를 내려 와 떠나기 전 방금 올랐던 그 바위를 사진에 담아 본다.

무슨 동물인지를 닮은듯 보이는 이 바위에서 정답게 이야기 나누는 연세든 중년 부부가 한없이 부러운 시간이기도 하였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을지 기약조차 없기에 한동안 더 바라본 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린다.

 

 

그 전망바위를 뒤로 하고 내려가니 다시 나무 계단이 나타나고 갈지자로 이어진 그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에 앙증맞은 바위가 나타나는데 조용하기에 올라 보니 점심 먹고 가기엔 충분한 장소인듯 해 소박하지만 정성이 듬뿍 담긴 옆지기의 도시락을 꺼내 맛난 식사를 즐긴다.

식사 후 잠시 주위 풍경을 둘러 보고 쉬고 있는데 몇명의 등산객들이 올라 오고 잠시 이야기 나눈 후 인사하고 뒤돌아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간다.

 

 

점심 먹은 작은 전망바위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입암저수지가 아름답게 놓여 있다.

그 주위로 많은 도로와 고속도로 그리고 철도가 지나는 모습이 보이고 이곳이 그 옛날 호남과 한양을 이어주던 교통의 길목임을 입증하는듯 하다.

그 저 멀리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서해바다를 찾아 보지만 두껍게 내려 앉은 구름인지 아니면 박무인지 모를 것에 가려 전혀 보이질 않는다.

 

 

전망바위에서 아점을 위한 식사를 하고 여유있게 내려오려던 계획은 등산객들의 출현으로 깨지고 그곳을 내려 와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낙엽진 황량한 나뭇가지 사이로 나 있는 등로가 어딘지 모르게 아름답게 다가오고 조금 더 내려가니 산죽밭이 기다린다.

그곳을 지나 계속 내려가니 현위치번호 백암 18-12 갓바위에서 400미터 내려왔고 은선동 삼거리까지 2.4 Km 남아 있다는 이정목이 서 있다.

계속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이제 갓바위에서 500미터 내려왔고 주차장까지는 4.9 Km가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되어 있다.

호젓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묵어가는 헬기장을 지나 안부에 도착을 해 큰 한숨을 내쉬고 잠시 발걸음을 멈춰 쉬어 간다.

 

 

안부로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등천리가는 이정표가 서 있고 거리는 1.7 Km란 표시가 되어 있다.

입암면 등천리는 1914년 당시 행정구역상 등천리, 장재리, 신령리, 신등리, 평암리 등으로 정읍군 남이면에 속해 있었는데 등천리는 갈재에서 시작되는 등천(속칭 등내)에서 비롯한 이름이며 군령리는 군령다리로 옛날 군영이 있었던 곳이다.
갈재에 산적이 들끓어 행인의 통행이 불편해지자 중종 때인1520년 위령군보를 설치했으며 이때의 군영이 있었던 동네라 하여 군령은 영의 관습 발음으로 오늘날까지 군령리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 마을에 다리가 놓이면서 군령다리라 부르기도 한다.

그 등천리 갈림 삼거리를 지나니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에 벤취 2개가 놓여 있다.

다시 조금 더 전진하니 현위치번호 백암 18-13 이란 이정목이 서 있는데 갓바위에서 1.0 Km 내려왔고 은선동삼거리까지 1.8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도 함께 되어 있다.

그 옆에는 커다란 나무 이정표가 똑같은 거리 표시를 하고 서 있는데 이제부터 진행해야 할 시루봉 방향은 등산로아님이란 팻말이 서 있다.

주위를 살피고 어쩔 수 없이 범법자가 되어 등산로아님이란 팻말 뒤로 이어지는 시루봉으로 향한다.

 

약간의 잡목이 길을 막고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산죽밭이 나타나고 그 산죽들이 등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잠시 산죽밭을 지나니 낙엽진 잡목이 줄지어 서 있는 양호한 등로를 타고 잠시 더 오르고 군데군데 적은양의 산죽이 산재하는 길을 따라 진행을 하니 무명봉을 넘어 본격적인 산죽터널이 나타난다.

지나 온 안부는 벌써 저 멀리 잡목 사이로 숨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거칠은 산죽밭을 지나 오르니 지난 여름 강력한 태풍의 영향인지 등로 위엔 쓰러진 수많은 거대 소나무들이 등로를 막고 산객의 발걸음을 자꾸만 무겁게 만들고 있다.

한두개의 쓰러진 나무를 지나면 다시 나타나는 나무들로 인해 정상적인 등로로 진행을 하지 못하고 옆으로 크게 돌고돌아 오르는 시간이다.

어렵게 등로를 막고 누워있는 나무들을 헤치고 오르니 다시 소나무들과 잡목이 어우러진 고운 등로를 만나 잠시 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겨 본다.

 

 

다시 키 작은 잡목지대를 타고 잘 나 있는 등로를 걸어 오르니 다시 길을 막는 산죽밭과 만나고 그 산죽밭을 통해 어렵게 진행을 하니 갑자기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그 바위에서 잠시 쉬면서 주위 풍경을 둘러 본다.

등로 좌측으로 오늘 올랐던 남창계곡이 있고 그 넘어 저 멀리에는 백암산의 상황봉이 어둠속에 지났던 지난 호남정맥 산행의 추억을 이야기 해 주고 있다.

 

 

그 전망바위를 지나 오르니 다시 산죽이 이어지고 머리 위 저 앞에는 시루봉이 평범해 보이는 온화한 모습으로 이 산객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방장산과 장성갈재의 모습도 서서히 눈에 들어 온다.

다시 이어지는 산죽밭을 지나니 전망 좋은 바위가 나타나고 뒤돌아 보니 지나온 입암산 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쉬며 사진 찍고 오르니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 등뒤로 지나온 입암산과 갓바위로 이어지는 멋진 마루금이 눈 앞에 다가와 있고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없는 아쉬움에 발걸음은 자꾸만 느려지고 있다.

 

 

입암산 우측인 남쪽으로는 지난날 어렵게 올랐던 호남정맥 마루금이 저 멀리 하늘에 맞닿아 있는 풍경으로 다가오고 그 우측으로 더 고개를 돌려 남쪽을 바라보니 광주쪽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산그리메가 아름답다.

다시 바위와 산죽이 어우러져 있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시루봉에서 우측의 영산기맥 마루금이 아닌 직진의 장성쪽으로 이어진 능선이 아름답게 앞을 막고 있다.

 

 

등로 좌측의 북서쪽으로는 정읍과 장성의 경계를 지나는 수많은 도로들이 그 주위에 마을을 형성하며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 옛날 호남과 한양을 연결해 주던 고갯마루들이 이제는 모두 터널이 뚫리고 곧게 뻗은 도로가 생기면서 그 가는 길도 편안해졌지만 운치는 없어 보이는 것도 현실인듯 다가온다.

평야지대를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며 점점 더 높아지고 많아지는 산그리메에 호남 지형을 제대로 살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정읍과 장성의 산들과 평야 그리고 민가들을 내려다 보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이제 마루금은 남쪽에서 서쪽으로 크게 휘어 이어지고 그 마루금을 타고 조금 더 걸어가니 649미터의 입암산 시루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어느 산객이 시루봉(어른봉)이란 종이 코팅지를 매달아 놔 이곳이 시루봉 정상임을 알 수 있었는데 어른봉은 정말 그런 이름으로도 불려지는지 의문이 가는 표식이다.

시루봉 지나 다시 강렬해진 햇살을 받으며 산죽밭을 타고 전진한다.

 

 

다시 능선에 산재해 있는 바위들과 잡목을 피해 좌측 우회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계속 산죽밭이 이어지고 능선을 넘어 이제는 바위를 좌측에 두고 우측 등로를 따라 우회하는 시간이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다 뒤돌아 보니 잡목으로 가득한 정상과는 달리 그 사면에는 깍아지른듯 암벽이 그대로 드러난 시루봉의 두 다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제 앞을 가리는 잡목 지대를 지나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정면 앞으로는 시원하게 이어진 영산기맥 마루금이 방장산을 넘어 서해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바로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암봉이 힘이 빠지는 이 산객의 두다리에 더욱 어려움을 느끼게 만들지만 그 아래 펼쳐진 장성갈재로 이어지는 1번 지방도로와 그 넘어 우뚝한 방장산을 올려다 보니 다시 힘을 나게 만드는 풍경이 반복되고 있다.

 

 

등로 우측의 입암저수지와 입암면 민가 그리고 들판을 구경하고 좌측으로는 장성쪽 마을을 구경하며 천천히 내려가지만 이제부터 나타나는 거대한 암봉들로 인해 좌우로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참으로 힘든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거대한 암봉이 앞을 가로막아 그 암봉을 좌측에 두고 우측의 소로길인 산죽을 따라 내려가니 다시 눈 앞에 거대한 암봉이 앞을 가로막고 그 암봉 넘어 저 멀리에는 장성갈재와 방장산이 한눈에 들어 온다.

어렵게 내려가니 다시 나타나는 암봉으로 인해 이제 등로 우측 저 아래 밑으로 한없이 내려갔다 그 거대 암봉을 좌측에 두고 돌아 정상 등로로 복귀한다.

 

 

잡목과 산죽이 어우러져 있는 좁은 등로를 타고 암봉을 우회하며 내려가는 시간이 참으로 어렵고 더디게만 지나는 느낌이다.

다시 능선으로 올랐다 이제 암봉을 우측에 두고 좌측 소로 등로를 타고 외줄타기 하듯 진행을 하니 이제 안부 지나 잠시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전 우회하며 지났던 거대한 암봉의 실체가 그곳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생각보다 거대한 암봉에 고개가 절로 흔들어 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위에서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과 모습에 위대한 자연의 조각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암봉을 내려서기 전 좌우측으로 탁 트인 조망을 감상하며 지나는 재미는 우회하며 힘들어 했던 시간과는 대조적으로 산행의 묘미를 더욱 높게 만들고 있다.

다시 암봉을 넘어 능선에서 이제는 암봉을 우측에 두고 좌측 등로를 타고 어렵게 암봉을 우회하니 거대한 바위 사이로 좁은 등로가 열려 있고 그 등로를 조심하며 지나 잡목이 우거진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진다.

이제 위험하다 생각했던 암릉 구간을 거의다 내려왔다는 안도감에 갑자기 피로도가 급 상승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암릉 지대를 지나 가파른 잡목 경사지대를 미끄러지듯 내려가니 다시 아기자기한 암릉 구간이 나타나지만 지금까지 만났던 암봉들과 비교를 해보면 웃으면서 지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등로이다.

그 암봉을 지나 평이한 등로로 복귀해 진행을 하다보니 발 옆에 하얀 고운 봄꽃이 활짝 펴 이 산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살펴보니 산자고라 생각되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산자고는 백합과 속한 여러해살이 풀로서 양지바른 풀밭에서 자란다.

비늘줄기 난상 원형이고 길이 3~4 센티미터이며 비늘 조각 한쪽 갈색 털이 빽빽이 .

선형이고 4~5월에 30센티미터 정도 꽃줄기 달리 열매 세모지고 둥글다. 비늘줄기 소종이나 종양 치료제 사용한다.

우리나라 제주, 전남, 전북 일본, 중국 등지 분포하며 학명은 Tulipa Edulis이란다.

 

 

이제 암봉을 모두 내려왔다 생각을 했는데 봄의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은 후 다시 내려가니 눈 앞을 가로 막는 거대한 바위 암봉이 보이고 그곳도 우회하며 어렵게 내려간다.

어느 지도에는 두꺼비 바위라 명칭이 붙어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두꺼비처럼 생긴듯도 보이지만 잡목들로 인해 선명하지 못하니 그것도 그저 상상으로만 바라본다.

이제 정말 위험한 암봉은 끝이나고 그저 순탄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면 금새 장성갈재에 도착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암봉을 지나 가파른 잡목 구간을 내려가니 다시 산죽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산죽지대를 지나니 낙엽깔린 평이한 등로로 바뀌어 있다.

잠시 더 진행을 하니 옛날 사람이 살았던 흔적인지 아니면 성터의 흔적인지 모를 돌로 쌓은 벽들과 평평한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을 넘어 전진하니 억새가 자랐다 말라죽은 폐헬기장에 올라선다.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두꺼비 바위 위로 길게 뾰족한 탑처럼 생긴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암릉구간이 그대로 올려다 보인다.

갓바위쪽에서 봤을 땐 그저 평범해 보였던 시루봉인데 장성갈재쪽으로 내려가며 뒤돌아 본 모습은 무슨 뾰족한 철탑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폐헬기장을 지나 평이한 등로를 타고 장상갈재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다시 잡목이 줄지어 서 있는 뚜렷한 등로와 이어진다.

다시 폐헬기장이라 생각되는 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배수로인지 모를 고랑이 나타나고 그 고랑을 넘어 다시 완만한 능선으로 마루금이 이어진다.

지도를 살펴보지만 특별한 표식이 없기에 그저 이름없는 안부라 생각하고 진행을 한다.

 

 

옛날 이곳에 군부대가 있었는지 계속 전진하니 군 관련 시설물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교통호도 보인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듯 쓰러져 가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해도 너무나 많은 자연이 군 시설물들로 인해 파괴된 현장은 가슴 아픈 시긴일 수 밖에 없다.

조망이 트이기에 뒤돌아 보며 계속 지나온 시루봉 줄기를 올려다 보는 재미가 고달픈 몸을 상쇄해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루봉 좌측 저 멀리 갓바위에서 시루봉 능선도 아름답기만 하다.

그렇게 진행 해 군 벙커가 있는 봉우리에 올라 주위 풍경을 감상하며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남아 있는 사과 하나를 먹으며 잠시 쉬어 간다.

 

 

그 군 벙커봉에서 휴식을 취한뒤 다시 마루금을 타고 전진하니 금새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에서 바라 본 호남고속도로 터널이 멋지다.

바로 이 산객이 서 있는 지하로 고속도로가 지나는듯 한 그런 풍경이다.

다시 진행하기 앞서 아름다운 갓바위에서 시루봉까지의 능선을 올려다 본 후 천천히 발길을 돌린다.

 

 

다시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무명봉 한쪽에 벙커 굴뚝이 솟아 있고 지도를 살펴보지만 아무 표식도 없다.

벙커 굴뚝봉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그 무명봉을 내려와 얼마 남지 않은 장성갈재로 향한다.

진행하다 보니 등로 옆에 너무나 예쁜 노루귀 몇송이가 피어 있어 어려운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그러다 뒤돌아 보니 자꾸만 멀어지는 시루봉 마루금이 너무나 예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렇게 여유롭게 진행을 하니 34번 송전탑을 지나고 바위들이 너부러져 있는 곳을 지나 넓은 임도같은 등로를 따라 걸어 본다.

등로 주위엔 진분홍색 진달래는 시간이 더 필요한듯 보이지 않지만 샛노란 생강나무 꽃들이 활짝 펴 산객에게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진행하니 다시 폐헬기장이라 생각되는 공터를 지나 이제 장성갈재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차량 통행소리를 들으며 여유를 부려 보는 시간이지만 아직까지도 오늘 방장산을 넘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고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폐 헬기장을 지나 무명봉을 넘으니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등로 좌측으로 몇기의 묘지들도 보인다.

그 옆으로는 편백나무들이 보이고 저 멀리 희미하게 잡목 사이로 장성갈재의 모습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출입금지란 안내판이 서 있는 곳을 지나 걸어가니 곧이어 이 산객의 애마와 통일동산 그리고 1번 지방도로 위 모습이 나타난다.

 

 

드디어 통일공원에 도착을 하고 주위 풍경을 사진에 몇장 남긴 후 스틱을 접는다.

아마도 애마를 양고살재에 놓고 진행을 하였다면 오늘 그곳까지 가고 하룻밤 묵어 내일 다시 한구간을 더 오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이제 오후 2시도 안된 시간에 이곳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자니 차라리 서울로 복귀하자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

조국통일기원비와 통일동산 주위 풍경을 감상하며 스틱을 접고 배낭을 내려 애마에 실은 후 하루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생각보다 몸의 상태는 양호하기에 다음부터 조금 더 속도를 내 영산기맥을 마무리 하고자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서울에서부터 달려 내려온 1번 지방도로 위 장성갈재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채 오후 2시도 되지 않았다.

이곳 장성갈재에 대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어 정리를 해 본다.

솔재나 양고살재나 전남에서 전북으로 넘어가는 길목이고 장성갈재야 말로 한양에서 남도땅으로 가는 또는 남도에서 한양가는 길손들의 필수 코스여서 옛부터 도적이 많았다는 애기가 전해져 온다.

지금 문화관광부에서는 삼남대로길 해남에서 한양가는 길을 복원 하고 있으며 장성갈재길 장성 백양사 역에서 정읍까지 약 9.3 Km길이다.

장성갈재길은 희망을 안고 과거, 결혼, 취업, 봇짐장수, 소장수등이 넘던 길이며 애환을 안고 건너는길이자 귀양가는선비길이였으며 죽엄을 안고 건너는길이기도 했다.

한때 장성갈재(장성군 북이면 목란마을)에는 주막이 9개가 있을 정도로 번창 했으며 주막들은 민초들의 잠자리나 휴식 공간으로도 역활을 했으며 갈애의 전설 처럼 사랑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당시 홍길동도 장성갈재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세상을 향한 울분을 토로 했을 것이며 자신의 이상을 향한 몸부림도 했을 것으로 추측이 되며 첫활동 무대를 이곳에 정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조선시대 성종때 갈재길에 보방수를 두어 도적들을 감시하고 길손들을 보호 했다고 한다.

장성갈재의 역사적인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주변의 관광명소와 연계해서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현대인의 웰빙 욕구와 발마추어 장성의 대표 등산로와 연결하므로 해서 그 시너지 효과가 한층 업데이트 할것으로 생각하여 다음과 같이 연결해 보고자 한다.

필암서원 또는 홍길동 테마파크에서 백비를 지나 축령산 추암마을과 금곡영화마을 세심원을 지나 고창예향천리마실길과 솔재에서 얄고살재를 지나 방장산 휴양림길을 걸쳐 장성갈재와 입암산성길 그리고 장성새재를 걸쳐서 남창계곡을 잇는 길 루트를 홍길동길로 명명하고 앞으로 많은 등산객들의 산행코스로 이용 할수 있도록 해야 할것이다.

첫째로 장성갈재에서 임암산성을 경유해서 남창골까지는 총 8 Km이며 약 3시간이 소요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길을 등산 할때 꼭 지켜야 할것이 있다.

정확한 산행 정보를 입수한 후에 산행을 해야 고생을 하지 않는다.

이 길은 갈림길이 많고 정비가 미숙하고 국리공원 관리 공단에서 입산금지구역으로 지정 해 놓고 있다.

또한 불을 피워서는 절대 금지다.

그러니 담배는 가급적 사양 해야 할것이다.

둘째로 장성갈재에서 734봉을지나 용추폭포갈림길에서 산성헬기장을 지나 방장산에 도착한다.

그후 문넘이재를 넘어 방장사와 양고살재를 지나 창녕조공영조지묘를 걸채 솔재에 도착하는 총12 Km 6시간의 산행 시간이 소요되는 코스가 있다.

셋째로 솔재에서 축령산 세심원 앞으로 산행코스가 있는데 이 코스는 고창군에서 정비를 아주 잘해서 무리없이 산행을 할수 있을것이다.

총 길이는 5 Km이며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솔재에서 축령산 금곡마을 세심원 까지 등산로는 고창군에서는 많은 투자가 이루어 졌으며 고창예향천리마실 길이라 부르고 길마다  스토링텔링 안내판과 간이 쉼터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스토리테링판은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 져  산행을 하면서 고창군의 문화, 역사, 인물, 지명, 전설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구비되어 있어 지루함 없이 산행을 할수 있을것이다. 

넷째로 금곡마을에서  임종국 기념비를 지나 추암마을 그리고 백비를 지나 홍길동 테마파크와 필암서원으로 가는 코스도 있다.

특히 장성군은 문불여, 무불여장성으로 불리울 만큼 역사, 문화적으로 유서 깊은 고장입니다.

외지 관광객들이 길을 걸으며 장성의 역사를 자세히 알수 있도록 해보았으면 하는 바램도 있고 아울러 산행의 지루함도 경감되는 아름다운 산소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많은 역사와 이야기가 전해지는 장성갈재를 뒤에 두고 조만간 다시 만날 약속을 한 후 애마를 몰아 서울로 복귀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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