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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도봉지맥(한북·완)

도봉지맥 제2구간 솔고개에서 문봉동재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2.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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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기도 양주시와 서울특별시 및 고양시 일대

산행날자 : 2012년 04월 29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아침에 구름과 박무로 시야가 제한되였고 무척 무더웠던 초여름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3도에서 영상 28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솔고개(3번 지방도로)-1905부대와 2327부대-시멘트 임도-민가-군부대 철조망-319봉 삼각점-청룡사 입구 안부 이정표(노고산 2 Km)-벙커봉-굴뚝봉-비포장 임도-청룡사 갈림 삼거리 이정표(노고산 정상 1 Km)-상수도 펌프장-적사함-시멘트 임도-2667부대 정문-타이어 교통호-노고산(496봉) 후문-헬기장 이정표(삼하리 2.4 Km)-삼하리 갈림 이정표(삼하리 2.0 Km)-헬기장-헬기장 이정표(금바위저수지 1.8 Km)-돌탑봉-삼각점-전망바위-송전탑 8번-금바위저수지 갈림 이정표(금바위저수지 1.3 Km)-3697부대장 경고문-깃대봉-송전탑 9번-사격장 갈림 이정표-182봉(공터 위 삼각점)-삼막골 갈림 삼거리 안부 이정표-굴뚝봉-벙커봉-옥녀봉(204.6봉)-56보병 철조망-비포장 임도-헬기장-콘크리트 수로-349번 4차선 지방도로-약사사 진입 임도-7617부대장 경고문-벤취 및 등산로 안내판-비포장 임도-운동시설-염불선원 안내판-지축역 갈림 이정표 및 사각정(지축역 400미터)-오송산(112봉) 헬기장-안전봉 및 로프-운동시설 및 사각정-지축역 갈림 이정표(지축역 400미터)-운동설비 및 사각 평상-2층 육각정-안정봉 및 로프-1차선 포장도로-민가 옆 포장도로-6.25 유해발굴현장-숫돌고개(1번 지방도로, 7163부대 정문)-포장이면도로-민가 포장도로-삼송사랑교회-밭 가장자리 비포장 임도-육회사 암자-철봉문 통과-밭 가장자리-비포장 임도-고양누리길-명나라 이여송과 숫돌고개 이야기 해설판-서삼릉누리길-농협대학 1.86 Km 이정표-깃대봉 및 삼각점-서삼릉누리길거북바위 이야기 해설판-지적보근점-돌탑봉-송전탑 13번-신설도로 동물이동통로-비포장 임도-운동시설-천일약수터-홍익교회 큰숲비젼센타 철조망-철조망 통과-우측에 뉴코리아 골프장-종마장과 홍익교회 철조망 사이 통과-홍익교회 정문-농협대한 0.27 Km 이정표-2차선 포장도로-농협대 정문-서울. 한양 컨트리 클럽 경고문-신세계농원과 법정사 그리고 좋은절 갈림 삼거리-허브나라 버스 정류장-서삼릉 갈림 삼거리-서심릉 이야기 설명판-허브랜드-서삼릉대천낚시터-풀꽃사랑-서삼릉 버섯농장-서삼릉보리밥-서삼한우마당-한국스카우트연맹 중앙훈련원-송전탑 31번-참숯장어명가-수역이마을 0.25 Km 이정표-가족묘지-개간 밭-(주)그린파워텍-젖소농장-수역교(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지하통로)-마포물류-신선알로에 농장-39번 지방도로-원당민속-철로-2차선 지방도로-제512탄약중대-배다리누리길-대궐약수터쉼터 이정표-제512탄약중대 정문-헬기장-가족묘지-비포장 임도-민가-비포장 임도-공동묘지 및 탄약대대 정문-군부대 철조망-제512탄약대대 후문-비포장 임도-닭농장-포장도로-2차선 지방도로-광목장 정문-비포장 임도-사격시 입산금지 경고판-비포장 임도-묘지 능선-헬기장-운동시설-무인산불감시카메라-견달산(현달산, 139봉, 3개의 삼각점)-무인산불감시카메라 복귀-벙커-철조망 지대-시멘트 포장도로-견달산 부대위 삼거리(문봉동재)-군부대-송호스틸-북부철재-상가지역-마을버스 및 97번 버스 정류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3.00 Km (접속구간 00.00 Km)

산행시간 : 조금은 빠르게 08시간 20분 (05시 30분 부터 13시 50분까지)

            견달산 부대위 삼거리(문봉동재)에서 097번 버스 정류장까지 20여분

교통편 : 갈때-애마이용해 솔고개까지 이동 후 옆지기가 애마 회수

          올때-식사동 버스 터미널까지 20여분 도로로 이동

                식사동에서 097번 버스로 원당역까지 이동

                원당역 근처 목욕탕에서 샤워 후

                원당역에서 3호선 지하철 탑승

                연신내역에서 6호선 환승

                합정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 후 집으로 복귀

 

한북정맥과 오두지맥 그리고 도봉지맥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산행을 준비하며

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은 남쪽으로 따라 내려오면서 여러 갈래의 산줄기로 나누어지면서 지리산으로 이어진다.

신경준의 산경표에서는 우리나라 한반도의 산줄기를 남북한 합쳐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분류하였는데 한북정맥이란 백두대간의 추가령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한강과 임진강에 가르는 산줄기를 말하는데 그 마루금을 살펴보면 추가령에서 남서로 갈라져 내려오면서 백암산(1110봉)을 지나 휴전선을 넘어 적근산과 대성산으로 이어지며 대성산(1175봉)에서 내려온 산줄기는 수피령에서 복주산(1152봉), 광덕산(1046봉), 백운산(904봉), 국망봉(1167봉), 강씨봉(830봉), 청계산(849봉), 운악산(945봉), 죽엽산(601봉), 불곡산 임꺽정봉(445봉), 도봉산(739봉), 북한산(836봉), 노고산, 현달산, 고봉산으로 이어지다가 임진강과 한강의 합류 지점인 교하의 장명산에서 그 맥을 다하는 산줄기를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다만 박종률의 신산경표에는 산경표와는 달리 신한북정맥(오두지맥)이란 신산경표에 따른 산줄기로 산경표의 원리대로 한다면 한북정맥이 도봉산으로 이어지지 않고 한강봉을 지나 첼봉에 닿기 전 무명봉에서 서진하는 산줄기를 따라 나아가다가 고령산, 월롱산을 넘어 통일전망대가 있는 오두산에서 끝이나야 맞다는 이론으로 분기봉에서 그 마루금이 다하는 지점까지의 도상거리로 약 41.3 km를 그동안 통칭하여 오던 오두지맥이 아닌 신한북정맥으로 표기하면서 많은 논란을 촉발한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산객은 몇년전 완주한 신한북정맥(오두지맥)과는 별도로 원한북정맥(도봉지맥)이라 불려지는 산줄기를 타고 걸어 봄으로서 차이나는 두 마루금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고자 이렇게 진행해 보기로 한다.

 

 

 

잘리고 찟긴 마루금을 걸으며 맥 잇기 산행의 의미를 더욱 깊게 각인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또한 마루금을 걸으며 다양한 의견들을 종합해 그 의견을 확실히 알아보고자 개인적으로 맥 잇기 산행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걸어 보고자 노력하며 산행기를 올려 드리니 산줄기에 대해 이 산객과 다른 의견에 대한 댓글은 사양함을 알려 드림니다.

 

가족 모두에게 참으로 힘들고 긴 시간이 흐르고 있었나 보다.

원래 어제 그러니까 토요일인 28일에 오르려고 생각했던 솔고개에서 문봉동재까지의 산행이 어머님 병원 문제로 하루 순연이 되였지만 마음 놓고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망설이고 있다 토요일 저녁 면회를 다녀온 후 조금은 회복되시는 어머님 병환을 보고 난 후 홀로 남아 있는 마루금을 찾아 떠나는 시간이 되였다.

 

이제 조금씩 회복되어 가고 있기는 하지만 너무나 고령인 연세에 몇개월간 제대로 드시지도 못하고 수액과 영양제에 의존해 계시니 회복에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다.

회복에 시간이 걸린다 해도 아프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생활만이라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멀리 떠나 가지도 못하고 서울 근교에 남아 있는 한북정맥 도봉지맥으로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다만 그 새벽에도 잠 못자고 일어나 배낭속에 들어 갈 먹거리 챙겨주고 애마 회수를 위해 동행했다 돌아 와 준 옆지기에게 미안한 마음 금할 길 없는 하루의 시작이 되고 말았다.

 

 

집에서 새벽 4시 30여분에 출발해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솔고개 아니 다리고개 또는 달현고개라 불려지는 3번 지방도로 위에 도착을 하니 새벽 5시 20여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 도로 위를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의 소음만이 아직도 어둠속 새벽 정적을 허물고 있다.

잠시 산행 준비 후 24시간 불 밝힌 매점에서 혹시나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의해 두어병의 음료수를 더 사 배낭속에 넣은 뒤 새벽 5시 30여분을 넘겨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간, 옆지기를 먼저 보내고 솔고개 주위의 풍경을 사진에 담은 후 긴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 구간 내려오며 만났던 하구언 민물장어 식당 옆으로 난 시멘트 포장도로 위 저 멀리 올려다 보이는 상장능선의 암봉들과 앞으로 내려와 이제 그 흔적조차 사라진 방공호 소위 폐타이어봉을 올려다 보는 기분이 새삼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알다가도 모를 새벽이다.

 

 

3번 지방도로 위 솔고개 아니 다리고개 주변의 풍경을 많은 사진에 담은 후 도로를 건너 송추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도로 좌측에 1905부대 및 그 아래 제2327부대 입간판이 서 있는 부대 정문이 나타나고 그곳에는 초병 2명이 근무중인데 지금까지 이 새벽에 수많은 정맥 종주대들을 만나서 그런지 별 반응이 없다.

그 부대 정문을 지나자 마자 좌측으로 양주시 교현리 심요골 마을로 들어가는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타고 들어가며 본격적인 오늘 산행을 시작해 본다.

낮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벌써 무더위가 온 몸에 느껴지고 조금 걸어 올라가자 마자 온 몸엔 땀방울이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그곳 조금 더 올라간 포장도로 우측의 전봇대에는 이 산객이 주로 활동하고 있는 3450온누리산악회 띠지가 반갑게 걸려 있고 다가가 살펴보니 한돌 선배님이 붙여 놓은 띠지이기에 더욱 반가움이 큰 시간이다.

홀로 하는 산행도 많이 즐기시는 한돌 선배님의 족적을 만났기에 반가움과 함께하지 못한 그리움이 교차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도로 우측으로는 어둠속에서도 멋진 분재형 나무들이 보이는 것으로 봐 농장인지 수목원이 있는듯 하며 그곳을 지나 계속 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는 방금 전 만났던 군부대의 철조망이 이어지고 그 아래에는 콘크리트 수로가 나 있다.

그 도로 옆 공터에는 이제 만개했다 떨어지고 있는 벗꽃이 바람결에 흩날리고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다 뒤돌아 보니 비닐 하우스 밭 넘어 사패산 암봉과 우측으로 도봉산 주봉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와 있다.

그 멋진 풍경을 어스름한 여명속에 바라보며 다시 도로를 타고 오르니 사거리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정맥 등로는 직진의 방향이다.

그 넘어 저 멀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봄꽃들이 만발해 홀로 오르는 산객의 가슴속에 남겨지는 시간이다.

 

 

그곳 사거리를 지나 오르니 양주시 장흥면 심요골 마을의 민가들이 눈에 들어 오는데 이곳 교현리도 지금은 다른 이름으로 변해 인터넷에서 찾는다 해도 찾을 수 없는 마을이 된듯 하다.

지나온 도로 우측으로는 사패산과 도봉산이 올려다 보이고 중앙에는 상장능선의 암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는 저 멀리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와 인수봉이 박무속에 하늘 거리고 있다.

일주일 사이에 자연은 갈색에서 연두빛으로 변해 너무나 아름다운 생명의 빛으로 산객을 맞이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사거리 지나 도로 좌측에 녹색 철조망이 따라오고 전봇대 하나 서 있는 지점에서 띠지를 확인한 후 그 띠지가 나풀거리는 방향으로 올라가 보니 진행할 수가 없어 다시 내려 와 철조망과 떨어져 있는 좌측으로 나 있는 도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다시 좌측 철조망쪽으로 길이 이어진다.

그곳으로 가 오르니 민가 한채가 나타나고 그 민가 정원을 통해 좌측 능선을 찾아 보지만 등로가 보이질 않는다.

다시 전봇대 있는 곳으로 뒤돌아 내려가 주위를 살피며 올라오니 방금 전 진행한 동일한 코스로 걷게되고 지도를 확인해 보니 무조건 좌측 능선으로 올라야 될 것 같아 민가 좌측의 희미한 능선 위 발자국을 따라 진행하니 드디어 정상적인 등로를 만나 긴 한숨을 내쉰 후 걸어 본다.

다시 군부대 철조망을 만나 그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따라 오르니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이 나타나고 힘들게 많은 땀방울 흘리며 오르니 보라빛 붓꽃이 수줍게 인사를 하고 등로 우측 저 멀리에는 북한산의 백운대와 인수봉이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다.

주위 풍경을 감상하며 긴 호흡 한번 내쉰 후 오르니 금새 319봉 삼각점을 만나 사진에 담아 보는 시간이다.

 

 

319봉 정상에서 삼각점을 담은 후 주위를 살펴보니 등로 우측에서 직각으로 올라오는 등로가 보이고 살펴보니 심요골마을에서 민가있는 곳을 지나 우측 능선을 타고 오르는 등로가 더 있는듯 보였다.

계속해서 좌측에 철조망을 두고 우측의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앞으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저 멀리 나타나고 그 마루금 주위에는 수수하지만 너무나 아름답게 피어난 봄꽃들이 제각각 멋을 부리며 이 산객을 유혹하듯 화려하다.

잠시 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절개지가 나타나고 그 아래로 내려가니 시멘트 임도가 보이고 그 좌측에는 군부대로 통하는 철조망 문이 열려 있다.

그 철조망 앞에는 한북정맥(청룡사입구)란 이정표가 서 있는데 솔고개에서 1 Km 왔고 노고산까지 2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도 함께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이곳에서 청룡사는 시멘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는 방향에 방향 표시가 되어 있다.

 

 

닳아 희미해진 글씨의 청룡사 가는 안내판을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시멘트 도로를 건너 절개지로 올라가니 군부대 철조망이 좌측으로 따라오고 잠시 뒤 넓은 등로가 철조망과 헤어져 우측으로 멀어져 간다.

그곳으로 진행을 하니 역시 능선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꺽여 철조망과 다시 만나고 그 사이 등로에 피어난 현호색과 제비꽃을 사진에 담으며 조금은 계절이 변해가고 있음을 실감해 본다.

그렇게 진행하니 금새 철조망을 만나는 지점에 벙커봉이 나타나고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진행을 한다.

 

 

참으로 넓고 광활한 지역에 분포한 군부대 때문에 정상 마루금을 밟지 못하고 돌고 돌아 진행하는 마음이 아프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음에 체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천천히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진행을 하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 한쪽에는 굴뚝이 서 있다.

소위 말하는 굴뚝봉이라 명명한 봉우리 공터로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 보지만 어느곳에도 봉우리 이름이나 표식은 찾을 수 없다.

단지 그 굴뚝 옆에 닳아 분간 할 수 없는 삼각점 하나만 발견하곤 사진에 담아 본다.

 

 

그 굴뚝봉을 지나 다시 군부대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진행을 하니 제5750부대장의 경고문이 눈길을 붙잡는다.

그 경고문을 지나 그렇게 한동안 전진해 걸어가니 이제 군부대 철조망은 좌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고 등로는 직진의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참으로 오랫동안 함께 진행해 오던 군부대 철조망과 헤어지는 시간이다.

철조망과 헤어져 전진하니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북한산 백운대와 비봉능선이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오고 그렇게 걷다보니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올라 본다.

청룡사에서 1.2 Km 오라온 지점으로 이제 노고산 정상까지는 1 Km 가 남아 있다는 거리표시도 되어 있다.

이제 그 노고산 방향으로 이 넓은 임도를 타고 1 Km를 걸어 진행해야 하는 순간이다.

 

 

그 임도를 우측으로 타고 오르니 금새 임도 좌측 능선에는 유격장 훈련용 시설물이 보이고 조금 더 오르니 임도 좌측에 상수도 펌프장이 철조망으로 둘러쳐진채 돌아가고 있다.

그곳에서 나뭇가지가 사라진 사이로 남쪽을 바라보니 북한산 백운대와 상장능선의 봉우리들 그리고 우측으로 비봉능선의 암봉들이 우람한 근육질의 몸매를 과시하듯 당당하게 펼쳐져 있다.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지만 실증나지 않는 자연의 위대한 자산임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지루한 임도를 타고 좌측에 검정 파이프를 두고 오르니 짧은 구간 시멘트 포장 도가 나타나고 군부대에서 만든 등산로 안내도도 나타나지만 부실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안내판이다.

다시 시멘트 포장 임도가 끝이나고 비포장 임도로 변하면서 임도 좌측에는 적사함도 보인다.

오랫만에 젊은 시절 경험했던 군부대에 대한 추억을 꺼내보며 오르니 다시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도로 주위에는 연두빛 나뭇잎들이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에 얼굴을 알리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제2667부대에서 만들어 놓은 안내문에 직진의 제2667부대로 올라가는 포장도로 좌측으로 타이어 교통호가 보이고 그 방향으로 등산로 표시가 되어 있다.

 

 

타이어 교통호를 타고 진행을 하니 노고산 정상을 차지한 군부대가 등로 우측 능선 넘어 올려다 보이지만 올라갈 수 없음이 안타까운 시간이다.

그렇게 진행하다 등로 좌측을 보니 저 멀리 사패산에서 도봉산을 지나 가까이에 상장봉까지 이어진 지난 구간 산줄기가 위풍당당한 칼날 등로를 이루며 산객의 가슴을 때리고 있다.

그렇게 다시 진행하다 나뭇가지가 사라진 곳에서 등로 좌측을 바라보니 상장봉의 요상한 기암괴석의 모습이 이 산객의 발길을 붙잡고 놔주질 않는다.

가까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상장봉의 진짜 모습에 홀로 웃음이 나오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모를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주위 풍경을 바라보고 진행을 하니 등로 옆에는 노랗고 하얀 제비꽃이 반겨주고 그 아름다움에 속도를 줄여 천천히 걸어 본다.

이 순간만큼은 이 세상 모든 시름 덜어 놓고 무심으로 자연과 대화하며 바라보는 행복한 시간일 것이다.

타이어 교통호가 끝이나고 곧이어 노고산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군부대 철조망을 만나 이제는 그 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좌측 등로를 따라 걸어 본다.

진행하다 보니 등로 좌측으로는 저 멀리 사패산에서 도봉산 그리고 북한산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오고 그 칼날 암봉에 산행 속도는 자꾸만 늦어지고 있다.

그렇게 진행을 하니 다시 넓은 임도와 만나 이제 노고산 정상을 차지한 군부대 후문을 우측에 두고 좌측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아쉬운 눈길 보내고 내려가니 금새 그곳에는 드넓은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조망과 풍경이 또한 일품이다.

 

 

지나온 한북정맥 도봉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저 멀리 사패산 직전부터 도봉산을 넘어 상장능선으로 이어진 풍경이 압권이다.

늘 남쪽에서 올라 남쪽으로 자주 내려갔기에 오늘처럼 이런 장엄한 조망은 별로 기억에 남아 있지 않기에 더욱 환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많은 시간 보내며 조망을 즐긴 후 이제 북한산의 최고봉인 백운대와 암벽의 교과서인 인수봉에서 상장능선과 비봉능선으로 이어진 마루금을 타고 내려가 보는 기분 또한 격정적이다.

북한산에서 가장 많이 오르고 내렸던 산줄기이기에 더욱 가슴속 깊이 남아 있는 풍경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바로 아래에는 서울 서북부에서 의정부로 통하는 지방도로가 골짜기를 타고 물 흐르듯 흘러가는 모습도 바로 발 아래 내려다 보인다.

 

 

노고산쪽 헬기장 위에서 내려다 보니 헬기장 지나 저 멀리 앞으로 이 산객이 타고 내려가야 할 나즈막한 한북정맥 도봉지맥의 산줄기들이 끊어질듯 이어지며 흐르고 그 넘어 일산과 고양시로 이어지는 길목마다 거대한 회색빛 아파트들이 거대한 군락을 이루며 세상의 복잡하고 단조로움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 하다.

넘실거리는 서해바다도 보여할 조망이지만 박무들로 인해 그저 상상으로만 만날 수 있는 서해바다이다.

그래도 이렇게 홀로 올라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자연과 거대 회색 도시를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바로 앞 남쪽으로는 다시 한번 그리운 지나온 한북정맥 도봉지맥을 담아 본다.

좌측 저 멀리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암봉을 하늘 높이 솟구쳐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사패산이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고 그 우측으로 흐르며 톱날같은 암봉을 드러낸 도봉산이 왜 이 산줄기를 도봉지맥이라 칭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 우측으로 지나오면 영봉이 솟아 있고 그 바로 우측 옆으로 북한산의 최고봉인 백운대와 인수봉 그리고 만경대가 삼각형을 이루며 삼각산이란 또 다른 이름을 갖게한 모습도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다.

백운대로 가는 길목에 이곳 노고산으로 이어온 산줄기가 상장능선을 넘어 솔고개로 떨어지는 모습도 바로 코 앞에서 멋진 장관을 이루며 이 산객의 가슴에 남겨지는 시간이다.

 

 

그렇게 처음 만난 노고산 헬기장에서 많은 시간 보내며 많은 사진을 남겼지만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많은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바로 코 앞에 그 정상을 두고 오르지 못하고 이렇게 먼 발치에서만 바라보고 내려가야 하는 심정이 쓰라리다 못해 고통스런 순간이기도 하다.

언제나 마음 놓고 오르고 싶은 정상에 올라 발 아래 펼쳐진 장엄한 산줄기와 골짜기를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을지...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렇게나마 올라 가슴 시원하도록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도 하는 시간으로 남겨 본다.

 

 

첫번째 헬기장을 떠나기 직전 그 바로 앞에 서워진 이정표를 보니 삼하리까지 2.4 Km 남았다는 거리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몇년전 강력한 바람을 동반한 곤파스란 태풍의 위력 때문인지 거대한 고목들이 등로에 쓰어져 황톳빛 뿌리를 하늘에 쳐든채 죽어간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 온다.

그래도 그 사이에서 피어난 진분홍 진달래와 철쭉이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안부 우측으로 삼하리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있는데 이제 삼하리까지는 2.0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도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등로는 직진 방향의 금바위저수지 2.7 Km 방향으로 이어지고 잠시 후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두번째 헬기장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아침 식사를 즐긴 후 혼자 셀카 놀이를 하면서 몇장의 사진을 남겨 본다.

 

 

아침밥도 먹고 셀카 놀이도 한 다음 다시 배낭 둘러메고 두번째 헬기장을 떠나려다 나뭇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민 서쪽을 내려다 보니 그곳에 이제부터 이 산객이 타고 내려가야 할 나즈막한 한북정맥 도봉지맥이 끊어질듯 이어져 간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다.

몇장의 사진으로 남기는 동안에도 수많은 생각들이 잠시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지만 이 멋지고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경속에 모두 녹아드는 그런 기분이다.

박무속 저 멀리 하늘을 향해 머리를 내밀고 올라와 있는 산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데 혹시 한남정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문수산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한동안 쉬고 놀았으니 이제 다시 긴 여정의 맥 잇기 산행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북쪽으로는 방금 전 아쉬운 마음을 내려 놓고 들리지도 못한채 먼 발치에서 올려다 봤던 노고산 정상부의 군부대가 올려다 보이는 그곳을 떠나 진행하니 갑자기 급경사 내리막 등로에 안정봉과 로프가 달린 짧은 구간을 통과한다.

그 한쪽에는 이제 조금씩 그 활용도가 사라지고 있는 개인용 참호가 자리하며 분단의 아품을 다시 한번 전해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아래로 내려가니 이제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 사이로 북한산의 전경이 다시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꽃몽우리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철쭉이 시기를 못맞춰 아쉽다며 다음을 기약하듯 인사를 건넨다.

그렇게 오르니 그 끝자락에 다시 또 하나의 헬기장이 기다리고 그 한쪽엔 이정표도 서 있다.

 

 

이제 노고산 정상에서 1.3 Km 내려왔고 금바위저수지까지 1.8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헬기장 정상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북한산 전경을 올려다 본다.

바로 발 아래에는 서울시 은평구 효자동쪽이 내려다 보이고 그 등 뒤로 거대한 병풍처럼 둘러쳐진 북한산 주봉과 그 우측으로 의상능선 및 비봉능선이 너무나 아름답게 그 모습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참으로 많이도 올랐고 또 수많은 사연과 추억을 남겼던 산줄기들이기에 잠시나마 그때 그 산친구들과 나눴던 우정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북한산 비봉능선의 끝자락인 남서쪽으로는 은평구 불광동쪽 거대한 아파트군들이 회색도시를 만들어 박무를 뒤집어 쓴 채 바쁜 하루를 열어가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이제 다시 그 헬기장을 내려가 평이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작은 돌탑이 보이는 무명돌탑을 지나고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북한산의 조망에 다시 발걸음은 느려지고 있다.

천천히 아름다운 북한산을 음미하며 전진하니 의미를 알 수 없는 삼각점 하나가 등로에 박혀있고 사진에 담은 후 내려가니 철쭉이 주위에 곱게 피어 있는 전망바위에 도착해 다시 몇장의 사진을 더 남겨 본다.

 

 

그 전망바위에서 북한산의 전경과 서울시 은평구쪽 거대 도시를 바라보며 많은 시잔을 남긴 후 내려가니 등로 옆에 8번 송전탑이 서 있고 곧이어 우측으로 금바위저수지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지금까지 길라잡이를 해줬던 금바위저수지 방향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빠지고 이제부터는 직진 방향의 삼막골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하는 삼거리 갈림길인 곳이다.

그 이정표를 지나 진행하니 제3697부대장이 세워둔 사격장 경고판이 보이고 곧이어 깃대와 군부대에서 만들어 준 노고산 그리고 사격장 방향 표시가 되어 있는 깃대봉에 도착을 한다.

 

 

그 깃대봉에서도 몇장의 사진을 남긴 후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 아래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넓은 공터가 내려다 보이고 처음에는 무슨 용도일까 생각을 했었는데 진행하며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이 바로 사격장이였다.

그곳 깃대봉을 지나 진행하는데 다시 등로 옆 나뭇가지에 매달려 흔들리는 띠지 하나가 눈길을 사로 잡으며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얼마 전 다녀간 같은 산악회의 한돌 선배가 매달아 놓은 띠지이기에 잠시 만져보며 함께 산행을 즐겼던 추억을 다시 꺼내보는 시간이다.

참으로 많은 추억과 사연을 남겼던 온누리산악회, 이제 어머님 병환으로 인해 제대로 된 산행 기회 한번 잡기가 쉽지 않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나 즐거운 웃음을 지으며 함께 산행길에 오를 날도 있을 것이다.

진행하는 백두대간 산행도 잘 마무리하고 또 새롭게 오르고 있는 지맥 산행도 늘 무탈하게 즐기는 시간이길 빌어 보는 시간이다

 

 

그 띠지를 지나자 마자 너무나 호젓한 소나무 군락의 등로를 따라 무심으로 걸어 보기도 하고 또한 등로 좌측으로 함께 따라오고 있는 녹쓴 철조망을 바라보며 분단의 아품을 온 몸으로 느껴 보기도하며 걷다보니 총성이 들릴때 절대 출입 금지라는 경고판도 다시 만난다.

사격장 옆 능선을 따라 이어진 마루금이다 보니 사격 연습시에는 무척 위험 할 것 같다는 느낌으로 진행하고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어 전진하니 9번 송전탑이 나타난다.

그곳을 지나니 등로에 군부대가 세워둔 182고지 갈림 이정표가 보이고 이곳에서 우측의 사격장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사격장 화살 표시를 따라 걷다보니 다시 넓은 공터의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 중앙에는 깨지고 닳아 희미해진 삼각점 하나가 박혀 있다.

등로 옆에는 이제 하얀 산철쭉이 막 피어나 싱그러움을 마음껏 자랑하고 그 은은한 아름다움에 발걸음 멈추고 사진에 담아 보기도 한다.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 옆에는 돌탑과 함께 우측으로 삼막골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제 등로는 그 안부를 가로 질러 넘으며 직진의 옥녀봉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삼막골 갈림 사거리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방 거대한 굴뚝이 솟아 있고 또 평이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다 보니 큰 입을 벌리고 있는 벙커도 만나 우회한다.

오르는 등로에서 숨이 막히면 잠시 서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노고산에서부터 이 산객이 걸어 온 마루금이 나뭇잎 사이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조금 더 오르니 저 앞에 군부대 철조망과 초소 그리고 그 초소 위에 무인 카메라가 보이는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 철조망 우측 앞 나뭇가지에는 옥녀봉이란 정상 표시지가 걸려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름 없는 204.6봉이란 봉우리인데 어느새 또 옥녀봉이란 이름을 부여 받았는지 의아한 봉우리 정상이다.

부대 안에는 초병 2명이 보초를 서고 있고 이제 곧 교대시간인지 또 다른 2명의 초병이 철조망을 타고 올라오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 204.6봉의 옥녀봉 정상에서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우측 내리막 등로로 내려가니 다시 나뭇가지에 한돌 선배가 매달아 놓은 온누리산악회 띠지가 나풀거리고 철조망에는 56보병 사단장이 걸어 놓은 경고문도 보인다.

안부로 내려가니 군부대 철조망은 좌측으로 크게 휘어져 내려가고 등로는 직진의 평이한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조금은 넓은 수레길 같은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조금은 넓어 보이는 공터도 지나고 등로 좌측의 아파트 단지들도 내려다 보며 전진하니 다시 헬기장이 나타난다.

그 헬기장에서 준비한 시원한 캔맥주 하나와 청포도로 목마름을 달랜 후 등로 우측 폐타이어 교통호 위에 서서 지나온 마루금을 살펴보니 저 멀리 노고산에서 이곳 헬기장으로 이어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노고산 정상 좌측으로는 또 다른 멋진 산줄기 하나가 눈에 들어 오는데 처음에는 어느 산인지 알지 못해 무척 궁금해 하던 산줄기였다.

집에 돌아 와 찾아 보니 파주쪽 계명산 줄기가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역시 확신은 없다.

그래도 그쪽 방향으로 저렇게 높은 봉우리를 가지고 있는 산은 계명산과 감악산쪽 뿐인듯 한데 감악산은 이곳에서 보일 수가 없는 산이기에 계명산이란 확신이다.

이렇게 또 알지 못하던 산에 대한 정보를 찾아 기억하고 저 산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며 오늘을 추억하면 이 풍경 역시 이 산객의 것이 되리란 확신이 드는 시간이다.

 

 

그곳 한쪽에 박혀 있는 잘려지고 닳라 흔적만 간신히 알아 볼 수 있는 삼각점도 사진에 담은 후 진행하니 도로가 보이며 그 도로 양쪽에는 황톳빛 속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공사 설비에서 내는 거대한 굉음이 끊임없이 흘러 나온다.

아마도 도로 확장 공사를 하고 있는 듯한 그런 소음을 들으며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잠시 조망이 터지고 살펴보니 공사중인 도로 우측으로 연두빛 사하로 바뀐 마루금이 멋지게 드러나 있다.

그저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아름다운 조망을 즐긴 후 내려가니 콘크리트 수로가 나타나고 그 수로를 타고 좌측으로 내려가니 349번 4차선 지방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등로 좌측에 잘 가꿔진 몇기의 가족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도로에 도착을 하고 도로 건너에는 청해종합건축과 울넘어집 식당 건물과 간판이 보인다.

내려 선 도로 우측에는 300미터 전방ㅇ의 사거리에서 직진 방향으로 의정부로 가는 도로 이정표가 반겨주고 좌측으로는 오금동 우측으로는 삼막골 갈림 이정표도 보인다.

차량 통행이 뜸한 시간에 그 도로를 무단 황단해 건넌 후 울넘어집 식당 우측에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그 우측에는 약사사 가는 안내판이 보이는데 그 안내판마저 넘어져 가고 있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제7617부대장의 경고판이 서 있고 조금 더 오르니 등로 우측에 벤취 2개와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다.

 

 

 

이곳 등로는 이제 넓은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제법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봐 동네 주민들에게 사랑 받는 산책로란 생각이 드는 곳이다.

저 앞에 연세든 여성 2명이 담소를 나누며 산책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겨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조금 더 걸어가니 완만한 오르막 임도 위에 운동 시설들이 보이고 남자 한명이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계속 그 넓은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하니 삼거리 갈림길도 보이는데 우측 갈림길에는 소나무 묘목을 식재한 장소가 나타난다.

 

 

 

다시 넓은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마루금이 우측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좌측에 염불선원 화살표가 있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곳을 넘어 다시 부드러운 임도를 타고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전진하니 한명 두명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과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저 멀리 사각정자와 운동시설이 나타난다.

그 사각정자를 지나니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고 임도 좌측으로 지축역 400미터란 방향 표시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등로는 우측의 삼송역방향 1880미터 방향이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갑자기 나뭇가지에 오송산 112미터 밑에 매봉산까지 5.5 Km란 코팅지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좌측의 임도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올라보니 그곳에 헬기장이 나타나고 등로 좌측인 남동쪽으로 북한산 전경이 다시 시원하게 조망되고 있다.

그곳 주위에는 예쁜 연분홍 철쭉이 화사하게 피어있고 몇장의 사진을 더 담은 후 우측 내리막 등로로 내려가니 방금 전 좌측으로 보냈던 임도와 다시 만난다.

 

 

임도를 만나 다시 우측으로 그 임도를 타고 진행을 하니 완만한 오르막 등로에 안전봉과 로프가 나타나고 그곳을 넘으니 연두빛 새순이 온 천하를 뒤덮은 참으로 고즈넉하면서도 아름다운 오솔길이 열려 있다.

그 길을 타고 무심으로 걸어가는 시간이 참으로 행복한 시간으로 남겨진다.

그렇게 다시 한동안 더 진행을 하니 사각정과 운동시설이 다시 나타나고 그곳에서 사진 몇장 남긴 후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그곳 옆에 서 있는 등산안내도를 보고 전진하니 다시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고 이제 좌측으로 지축역 방향 400미터 그리고 우측의 방향으로는 삼송역 방향 880미터란 이정표가 서 있다.

이곳에서 정상 등로는 지축역 방향을 버리고 우측의 삼송역 방향이다.

다시 부드러운 임도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둔덕 위에 운동시설이 보이고 그곳으로 올라 음료수 한모금 마신 후 셀카 놀이를 하며 쉬어 간다.

 

 

셀카 놀이를 하면서 잠시 운동시설 옆 사각 탁상에서 쉰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니 완만한 내리막 임도로 이어지고 있다.

참으로 호젓하고 고즈넉한 등로이다.

잠시 더 진행하며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에 눈을 돌리니 하얀 조팝나무가 아름답게 피어있다.

그 조팝나무 꽃을 지나니 저 멀리 2층 사각정자가 눈에 들어 와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서 봤던 모습을 떠 올리며 잠시 미소를 지어 본다.

 

그 2층 사각정자로 다가가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조망을 즐겨 본다.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의 넓은 개활지가 나타나고 그 뒤로 나즈막한 산줄기가 펼쳐져 있다.

삼송동은 고양시 중심에서 동쪽 방향에 있는 마을로 통일로에서 원당과 문산이 나뉘는 주변에 있으며 전철 삼송역이 있는 지역이다.

이곳은 오랫동안 작은 마을이었으나 6.25전쟁 이후 흩어졌던 사람들이 모여들어 인구가 늘어난 마을로서 마을 동쪽으로 창릉천이 흐르고 고양대로와 통일로가 지난다.

삼송리는 마을에 커다란 소나무가 세 그루 있어 세솔리(또는 세수리) 라고도 불리우다 한자 음으로 바뀌어 삼송동이 되었다고 한다.

소나무 세 그루의 유래는 인근에 서삼릉이 있어 그 능역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는데 소나무가 있던 곳은 현재의 세수리 마을 입구였으나 지금은 원당과 삼송동 간의 도로 확장 과정에서 없어졌다.

또 다른 유래로는 돈을 세 수레나 끌어들일 만큼 돈을 잘 버는 동네라 하여 세수레라 부르다 음이 변하였다는 설도 있다.

몇 번인가 일 때문에 들렸던 곳이지만 이렇게 산에 올라 내려다 보는 풍경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렇게 작은 2층 사각정자에서 주위 풍경 특히 삼송리 방면을 즐긴 후 다시 내려가니 등로 옆에는 안전봉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몇갈래의 작은 소로가 갈려있다.

계속 넓은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좌측의 가드레일이 끝나는 지점으로 내려가 도로로 올라서니 그곳에는 등산로 이정표가 서 있고 도로 우측의 저 위 고갯마루가 올려다 보인다.

그곳으로 걸어 올라가니 고갯마루 우측에 철조망이 쳐져 있는 배수장이 보이고 그 배수장 옆으로 소로 등로가 보이는데 그곳이 정상 등로처럼 보였다.

그곳 고갯마루로 올라가니 고개 좌측으로 등로가 선명하게 나 있다.

 

 

잠시 그 능선으로 들어 진행하니 예쁜 야생화가 아름답게 피어 있고 그 이름을 불러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현호색과 제비꽃 그리고 노란 민드라미 꽃이 산객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시간이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바로 밑에 민가 한채가 보이고 그 민가 좌측으로는 작은 마을이 보인다.

등로는 그 민가 우측 뒤로 나 있고 운동시설도 보인다.

 

 

그 민가를 지나 오솔길 같은 등로를 타고 새생명이 힘차게 솟아 나는 대자연을 만끽하니 세상살이에서 느꼈던 모든 시름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기분이다.

그렇게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어 진행하니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은 넓은 개간지가 나타나고 횡톳빛 대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아무 표식도 없는데 파헤쳐진 땅이나 그 주위를 둘러친 테이프를 보니 혹시 6.25희생자 유골 발굴 현장은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그곳을 가로 질러 건너편 능선으로 오르니 그곳에 다시 이어지는 마루금이 열려 있다.

 

 

그 파헤쳐진 장소를 지나 능선으로 들어가니등로 우측으로는 많은 아파트 단지들이 건설되고 있는 현장도 눈에 들어 오는데 그 넘어로는 시골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이 산객의 고향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능선을 따라 호젓하게 걸어 내려가니 다시 많은 차량 소음이 들리고 곧이어 넓은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1번 지방도로인 숫돌고개에 도착을 한다.

도로 건너에는 군부대 정문이 있고 그 앞에는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있는데 신호를 기다렸다 그 4차선 도로를 건너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숫돌고개는 임진왜란 당시인 1593년 1월 조선을 돕기 위해 출정한 명나라 대군과 왜군이 벽제관의 첫 전투를 벌이게 되였는데 명나라 총사령관인 이여송 장군이 왜군의 매복에 걸려 크게 패한 후 개성으로 후퇴하면서 훗날 복수를 다짐하며 큰 바위에서 칼을 갈았다고 하여 고개이름이 숫돌고개 즉 여석령이 되였다는 설이 전해지는 고갯마루이다.이 고개는 삼송동과 벽제를 이어주는 1번 지방도로 위 고갯마루로서 생각보다 차량 통행이 많은 고개였다.
 
 

 

 

 

횡단보도를 통해 도로를 건넌 후 부대 앞 정문을 지나 진행하니 우측으로 내리막 시멘트 임도길과 비포장 임도 갈림 삼거리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제일 좌측 시멘트 임도를 따라 우측에 군부대 담장을 두고 내려가면 양쪽에 민가가 들어 선 좁은 포장 골목링이 나타나고 그길을 타고 내려가면 직진 방향 앞에 삼송사랑교회 간판이 보이고 그 직전에는 우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 삼거리 갈림길이다.

우측으로 들어 가 오르니 넓은 공터를 지나 시멘트 계단을 따라 내려서고 나타나는 임도 좌측 저 아래 고양중학교 건물이 보이고 직진의 앞으로는 밭이 펼쳐져 있는데 그 한쪽에 낡은 민가도 보인다.

 

 

밭 가운데 길을 타고 진행하다 중학교 건물을 좌측에 두고 앞에 보이는 민가쪽으로 올라가니 민가 지나 다시 밭이 펼쳐져 있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

뒤돌아 내려오는데 아주머니 2명이 다가와 그곳에는 길이 없다며 내려가 만나는 삼거리에서 좌측 길을 타고 올라가라 알려 준다.

수많은 종주대들이 이곳에서 헤매이며 민가쪽으로 많이들 올라갔나 보다.

아주 당연한듯 알려 주시는 아주머니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내려와 밭 가운데로 나 있는 길을 타고 좌측으로 완만하게 올라가니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좌측에는 육회사란 절이 우측에는 파란 지붕을 한 민가가 보인다.

 

 

좌측에 육회사란 절을 두고 우측에는 파란 지붕을 한 민가 사이로 나 있는 길을 타고 오르니 녹색 안전봉이 쳐져 있고 좁은 통로가 열려 있다.

그 통로를 통해 오르니 우측으로 다시 밭이 펼쳐지고 좌측 가장자리를 타고 오르니 등 뒤로 방금 전 올라 온 난해한 마루금이 밭과 민가 사이로 펼쳐져 있고 저 멀리에는 고양의 덕양구 삼송리 마을이 거대한 소도시를 이루며 존재한다.

밭 가장자리를 타고 오르니 밭이 끝나는 지점 좌측 능선으로 등로가 열려 있고 그 능선을 타고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간다.

 

 

그 능선으로 올라 무명봉을 넘으니 다시 등로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그 아래 밭에서는 아주머니가 농사일을 준비하느라 바쁜 몸을 움직이고 있다.

인사하고 내려가니 비포장 넓은 임도와 만나고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니 그 임도가 포장도로로 바뀌며 좌측 저 아래로 고양중학교 건물이 보인다.

많은 선답자들이 저 고양중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 이곳 산책로로 오르며 진행하라고 적고 있지만 이제 이 산책로도 높은 철조망으로 가로막아 나오기가 쉽지 않을듯 하다.

오늘 이 산객이 지나온 밭 사이 길을 타고 육회사 건물로 진행해 이곳으로 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좋은 선택을 한 것을 자축하며 시원한 음료수 한모금 마시고 우측 하수도 철그물을 넘어 진행한다.

 

 

어렵고 난해한 등로를 잘 넘었다는 안도감이 밀려오고 약간은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능선상에 사거리 갈림길이 나타나지만 직진의 봉우리쪽으로 걸어 오르면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잠시 더 올라 능선상에 도착을 하니 고양시에서 나뭇가지에 달아 놓은 고양누리길이란 안내판이 걸려 있다.

그 누리길 안내판을 만나 좌측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갑자기 명나라 이여송과 숫돌고개 이야기란 안내해설판이 나타나 잠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왜 숫돌고개가 아닌 이곳에 숫돌고개 이야기 해설판을 박아 놨을까 하는 고민 말이다

그곳을 지나 진행하니 이제 나무목에 농협대학교까지 1.86 Km 남아 있다는 앙증맞은 이정목이 눈길을 잡는다.

 

 

이정목을 지나 계속 능선을 타고 전진하니 군 훈련시 사용할 입간판과 가설물들이 보이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철조망 울타리가 쳐진 곳에 쪽문이 열려 있다.

띠지도 없이 갈림 삼거리이기에 지도를 펴 놓고 독도를 해 보지만 정확하지 않아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철조망 쪽문이 아닌 우측의 직진으로 나 있는 넓은 임도같은 길이 정맥 등로처럼 다가온다.

등로 우측으로는 다시 벙커들이 보이고 조근 더 지나 높은 깃대가 서 있는 깃대봉을 지나니 깨진 삼각점과 굴뚝이 솟아 있는 넓은 공터에 도착해 정상 등로로 잘 진행하고 있음을 인지한다.

 

 

그 깃대봉을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 우측에 바위 하나가 보이고 그 앞에는 설명판 하나가 서 있는데 서삼릉누리길 거북바위(귀암) 해설판이란 안내판이다.

그 설명판을 읽어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북한산에서 서삼릉 방향으로 이어진 한북정맥 서삼릉누리길에 있는 바위 이름이다.

화강암계의 바위로 일부는 자연적인 현상에 따라 땅에 묻혀 있다.

거북은 서쪽에 몸이 있고 동쪽으로는 머리를 들어 오른쪽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오래전 북한산에 살다가 창릉천을 따라 내려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거북이라 알려져 있으며 묻혀진 다리가 땅 위로 드러나면 창릉천 개울이 마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설명이였다.

설명판을 읽어 본 후 사진에 나와 있는 모습의 거북 형상을 찾아 봤지만 찾지 못하고 진행하는 아쉬운 시간이다.

 

 

거북바위를 지나 다시 호젓한 등로를 타고 연두빛 싱그러운 봄 향기에 취해 걸어가는 시간은 꿈결같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옆에 지적보근점이란 삼각점이 나타나고 사진에 담은 후 전진하니 공터 옆에 나즈막한 돌탑이 보이고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니 13번 송전탑이 등로 좌측에 높게 서 있다.

그 송전탑을 지나 계속 진행을 하니 갑자기 거대한 절개지가 나타나고 새로운 도로 공사를 하는지 등로 우측으로 근래에 만들어 놓은듯한 동물이동 다리가 보인다.

그 새로 난 동물이동 통로 우측으로는 새로운 아파트들이 거대한 회색 도시를 이루며 올라가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 에코 브리지가 내려다 보이는 절개지 상단에 앉아 남아 있는 시원한 캔맥주 하나와 청포도를 먹으며 목마름을 달래는 시간 역시 달콤한 시간이다.

날씨가 더워지며 이제부터는 무더위와의 싸움이 시작된 듯 식수와 음료수를 마시는 횟수와 양이 점차 많아짐을 몸으로 느껴본 시간이기도 하였다.

고양누리길 안내도를 살펴 본 후 에코 브릿지를 건너 다시 정상적인 등로를 찾아 진행하니 잠시 고양 누리길 안내판을 지나 측백나무들이 잘 식수된 임도로 내려서고 그 임도를 우측으로 타고 오르니 금새 운동시설 지나 천일약수터에 도착을 한다.

 

 

천일 약수터에는 연세가 드신 할머니 두분이 올라와 약수를 받고 있어 부탁해 시원한 약수 한사발 들이키니 다시 기운이 생기는듯 생기가 돈다.

잠시 할머니들과 이야기 나누고 약수 검사표를 보니 접합 판정이 나왔다는 검사 결과표가 그곳에 붙어 있다.

이제 그 천일약수터를 지나 오르니 할머니들이 그쪽으로 등로가 없는 것 같다며 조심해서 잘 가라 인사를 건네 주신다.

하지만 그 넓은 임도를 타고 오르니 홍익교회에서 만든 높은 철조망 앞에 큰숲비젼센터란 안내판이 붙어 있고 출입금지란 붉은 글씨가 보인다.

 

 

천일약수터를 지나 넓은 임도를 타고 오르면 만나는 홍익교회 큰숲비젼센터로 들어가는 길목에 높게 쳐진 철조망이 산객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곳을 뛰어 넘어보려 노력해 보지만 부질없는 일임을 알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

서로 공생하며 배려해 주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올랐던 넓은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임도 좌측 능선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그곳으로 올라 막혀있는 등로를 열어 보려 노력해 본다.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홍익교회 큰숲비젼센터에서 막아 놓은 철조망을 다시 만나고 그 철조망을 따라 우측으로 오르니 정상부에서는 다시 우측의 뉴코리아골프장에서 막아 놓은 녹슨 철조망이 쳐져 있어 대략 난감한 시간이였다.

 

 

그 철조망 한쪽에 조금 넓어진 개구멍이 보이고 그곳을 통해 어렵게 철조망을 넘어 들어가니 좌측 홍익교회와 우측 뉴코리아골프장 철조망 사이로 잣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고 그 한가운데로 등로가 나 있다.

그 등로를 타고 오르다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 철조망 우측의 그린을 올려다 보니 저 멀리 몇명의 골퍼들이 열심히 골프를 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완만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그곳 정상부에서 다시 참혹한 모습을 바라보며 탄식을 질러 보는 시간이다.

농협대학에서 만들어 놓은 원형 철조망이 쳐져 있고 그 넘어에는 다시 높은 철조망이 하나 더 세워져 있어 어떻게 뚫고 넘어 갈 방법이 없어 보인다.

몇번인가 넘으려고 시도를 하다 포기하고 그 철조망을 타고 좌측으로 계속 진행을 하니 돌고 돌아 이 지긋한 홍익교회와 농협대학 잣나무 숲을 벗어나는 등로가 보인다.

 

 

우측에 농협대학의 철조망을 두고 한동안 진행을 하니 도랑같은 안부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가을 단풍을 연상시키는 고운 단풍나무들이 자라고 사진에 담은 후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몇채의 민가인지 아니면 기숙사 같은 건물이 보인다.

그렇게 철조망을 타고 계속 더 내려가니 곧이어 나즈막한 봉우리를 넘어 홍익교회 정문으로 내려서고 그 앞에는 우측으로 농협대학으로 들어가는 2차선 포장도로가 보인다.

 

 

 

 

잠시 그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가 우측의 홍익교회 정문과 좌측의 농협대학 오르는 도로를 사진에 담아 본다.

그 가운데에는 제법 넓은 공터가 자리하고 그 공터 앞 도로가에는 홍익교회 큰숲비젼센터와 약수낚시터 간판과 플랭카드가 보인다.

이곳에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의 완만한 언덕쪽으로 오르며 한동안 포장도로 위를 걸어가야 하는 시간은 참으로 어렵고도 긴 시간이였다.

 

 

홍익교회 정문 앞에서 만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오르며 걸어가니 나즈막한 고갯마루를 지나 다시 내리막 도로로 이어지고 조금 더 내려가니 도로 좌측에 농협대 버스 정류장이 보이고 도로 우측으로는 농협대 정문이 보인다.

분면 선답자들이 걸었던 등로와는 차이가 있는 방향으로 이 산객이 걸어 내려 와 농협대학교를 통과하는 등로와 도로 역시 이 산객이 알고 있는 것과 차이가 커 농협대 정문으로가 허브랜드를 물어보니 2차선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계속 직진하면 된다는 소식에 조금은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농협대학은 농촌의 경제적 자립과 부흥을 도모하고 농업협동조합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이론과 기술 및 그 응용방법을 연마하여 신념과 용기와 봉사적 정신을 가진 농업, 농촌, 농협발전에 필요한 인재의 양성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는 대학교로서 농업과 지역사회 그리고 농업협동조합 발전에 이바지할 유능한 인재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농협학교는 학생들로 하여금 협동정신을 함양하고 이론교육 뿐만 아니라 현장실습, 영농현장체험 등을 통하여 농협의 사업현장 적응능력을 배양토록 하고있으며 소정의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한 학생들은 지역농협에 취업을 하게 된다.

어릴적 시골에서 자라며 농협대학에 들어가는 학생이 배출되는 시골에서는 큰 경사가 났다며 축하를 해주던 기억이 떠 올라 다시 한번 더 쳐다보고 출발한다.

 

농협대학교 정문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진행을 하니 도로 좌측으로는 서울한양골프장이 자리하고 우측으로는 농협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는데 그 농협대학교 들어가는 모든 장소는 높은 녹색 철조망이 가로막아 대학교가 아닌 교도소를 연상시키고 있다.

계속 그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와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 앞에는 좌측으로 신세계농원과 법정사 그리고 좋은절 들어가는 이정표가 붙어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삼송동허브랜드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도로 우측으로 허브랜드 농장이 들어 서 있다. 

그곳을 지나자마자 도로 우측으로 서삼릉 들어가는 넓은 임도가 보이고 잠시 서삼릉에 대한 공부를 해본다.

서삼릉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조선시대 정릉과 효릉 및 예릉을 합한 능호로서 사적 제200호이다.

서삼릉은 조선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인 희릉지로 택하여진 곳으로 한 때는 중종의 정릉이 이 능역에 있었으며 그의 아들인 인종과 그의 비 인성왕후 박씨의 효릉이 이 곳에 자리잡아 중종과 인종의 2대의 능지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 뒤 근처에 왕실묘지가 이루어져 명종과 숙종 이후 조선 말기까지 역대 후궁을 비롯하여 대군, 군, 공주 및 옹주 등의 많은 분묘가 조성되었으며 1864년(고종 1) 철종과 그의 비 철인왕후 김씨의 예릉이 들어서면서 서삼릉이라는 능칭을 얻게 된 곳으로 총면적은 6만5970평이다.

젊은 시절 주변의 식당에서 이슬이를 친구 삼아 시국에 대한 많은 토론을 하던 시절이 생각나 잠시 발걸음을 멈춰 본다.

 

 

서삼릉 입구를 지나 계속되는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발바닥이 불이 난듯 더워지고 조금은 불편함까지 느끼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조심하며 걸어본다.

서삼릉 입구 이정표와 해설판을 사진에 담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도로 우측에 허브랜드 건물과 농장이 보이고 제법 많은 차량들이 방문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곳을 지나 진행을 하니 도로가 좌측으로 꺽이는 도로 좌측에 좌측으로는 서울의 구파발과 삼송전철역 방향 화살표가 우측으로는 원당전철역과 일산 의정부 가는 화살표 도로 표시가 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 계속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서삼릉대천낚시터가 나타나고 도로 우측에 다시 풀꽃사랑과 서삼릉 청국장 입간판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 진행을 하니 도로 좌측 옆으로는 철조망이 잠시 허물어진 틈 사이로 서울한양골프장의 파란 그린이 올려다 보인다.

계속 이어가니 도로가 우측으로 꺽이는 지점 정면쪽으로 서삼릉버섯농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 서삼릉 버섯농장을 지나 진행을 하니 서삼한우마당 식당 입간판에 식당까지 150미터 남았다는 거리표시가 눈에 들어오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도로 좌측에 서삼릉보리밥 식당이 성업중이다.

그곳을 지나 도로가 좌측으로 꺽이는 지점직전 좌측에 서삼한우마당 식당이 서 있지만 손님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곳을 지나 계속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한국스카우트연맹 중앙훈련원 들어가는 포장도로 갈림 이정석이 보인다.

 

 

이제 한낮이 되면서 제법 뜨거워진 포장도로를 걸어가는 시간이 고역이지만 조금만 더 참고 걷다보니 도로 우측에 31번 송전탑이 서 있고 곧이어 참나무골 참숯장어명가란 식당이보인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는 우리 이웃집식당이란 입간판과 식당이 있었다고 하는 지점인데 이제는 장어식당으로 변경된듯 하여 다시 한번 식당 간판만 믿고 산행을 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 천만한 일임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장어식당 앞에는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고 그 도로 옆에는 수역이마을 0.25 Km란 이정목이 서 있는데 그 수역이마을 들어가는 입구 우측 능선으로 맥 잇기 들머리가 열려 있다.

 

 

어렵지만 큰 불편없이 정상적인 등로를 찾아 능선으로 오르니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나즈막한 봉우리쪽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새롭게 조성중인 가족묘지를 만나는데 봉분을 만드는 방법이 조금은 특이해 잠시 구경하고 진행을 한다.

좁은 국토에서 거대한 묘지를 만드는 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오래전부터 유교 사상에 젖어 이렇게 조상을 모시는 것이 일반화되였기에 지금 와 생각을 해보면 많은 불편함이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게 그 나즈막한 능선을 통해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능선을 넘어가니 밭을 개간중인지 산을 허물어 황톳빛 공터를 만들고 군데 군데 두엄을 풀어 거름으로 이용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 좌측 가장자리를 타고 전진하니 주)그린파워텍이란 파지와 고철 압축장 건물과 입간판이 나타나고 그곳 앞 포장도로로 내려서서 우측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면 주)그린파워텍 정문이 있는 곳에서 좌측 포장도로를 타고 90도 꺽어 들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한동안 그 좁은 골목같은 포장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가면 저 멀리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건너는 지하통로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을 한다.

그 지하통로를 통해 고속도로를 건너는데 그 지하통로 입구 좌측에는 농장이 있고 통로 옆에는 수역교란 간판이 붙어 있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지하통로를 통해 건너니 도로 우측에는 수많은 콘테이너들이 야적되어 있고 마포물류란 입간판이 붙어 있다.

계속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도로 우측으로 비닐하우스들이 눈에 들어오고 살펴보니 신선알로에농장이다.

그 농장 입구를 빠져 나가니 39번 4차선 지방도로가 앞을 가로막고 중앙에는 높은 중앙분리대가 설치되어 있어 곧바로 건너지 못하고 도로 위에 세워진 서울과 고양시청 방향인 좌측으로 조금 걸어 올라가 중앙분리대가 사라진 곳으로 도로를 건너 다시 뒤돌아 나오는 방법으로 도로를 건넌다.

그 사이에 위로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어 이 39번 지방도로를 건너기 위해 좌측으로 가는 길이 마치 지하통로를 통해 건너는 것처럼 보인다.

 

 

39번 4차선 지방도로를 건너 다시 신선알로에농장 맞은편으로 되돌아 오니 그 우측 옆에는 원당민속이라는 공예품과 민속품을 사고파는 가계가 있고 그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 있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올라가니 금새 등로 좌우로 밭들이 펼쳐져 있고 그 밭 끝자락으로 올라가니 다시 등로는 능선으로 이어진다.

짧은 능선을 넘어 걸어가니 바로 발 아래로 녹슨 교외선 철길이 보이고 절개지를 타고 내려가 그 철길을 건너 다시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그곳에도 2차선 포장도로가 앞을 가로 막는다.

 

 

2차선 포장도로에 올라서니 생각보다 많은 차량들이 통행을 하고 있어 조심하며 그 도로를 건넌다.

도로를 건너니 바로 앞에 전봇대 하나가 서 있고 그 아래에는 제512탄약중대란 입간판과 함께 들어가는 화살표 방향 표시가 되어 있다.

이제부터 다시 약 1 Km 이상을 이 포장도로를 타고 올라 탄약부대 정문까지 걸어가야 하기에 발바닥이 불이 날 것 같다는 예감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큰 어려움 없이 정상 등로를 찾아 잘 진행하고 있음에 큰 한숨을 내쉬며 안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다시 지루한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는 시간이다.

날씨는 더욱 뜨거워져 얼굴도 타서 익어가듯 그런 느낌으로 걸어가니 마치 한여름 퇴약볕에 걸어가는 고역같은 느낌이다.

도로 옆 야생화도 담아보고 배다리누리길이란 이정표도 사진으로 찍으며 의미가 무엇인지 모를 1 Km 지점 및 1.5 Km 지점이란 이정표도 담아 본다.

그러다 만나는 전봇대의 정맥길 화살표를 만나 너무나 반가운 표시를 웃음으로 해보는 시간이다.

 

 

도로 옆 복사꽃도 담아보고 그렇게 천천히 걸어 들어가니 배다리누리길에서 대궐약수터쉼터 가는 양갈래 갈래길이 나타나는 지점에 도착을 해 잠시 헷깔려 보지만 어짜피 이 산객은 직진의 포장도로를 타고 계속 올라야 하기에 금새 그곳을 지나친다.

잠시 더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띠지들이 나풀거리고 직진의 포장도로쪽으로는 차량을 통제하는 바리게이트가 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원 등로는 탄약부대 정문까지 올라 그곳에서 우측 공터를 지나 진행하라고 되어 있는데 저곳 도로 우측에 많은 띠지들이 나풀거리기에 그곳으로 올라보지만 결국 탄약중대 정문 우측의 넓은 헬기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그헬기장을 가로질러 능선쪽으로 맥 잇기 등로가 열려 있다.

 

 

 

능선으로 접어 들어 잠시 더 내려가니 선답자들이 말했던 가족묘지가 나타나는데 그 가족묘지를 단장하는지 많은 후손들이 모여 봉분의 띠도 새로 입히고 주위 잡풀도 제거하며 정성스레 묘지를 가꾸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그 묘지를 지나 민가쪽으로 내려가려는데 그 가족 묘지 내려가기 직전 좌측으로 띠지들이 나풀거리고 그곳으로 가 보니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안전로프가 매어진 곳이 나타난다.

 

 

그 안전로프가 매어진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그 임도 좌측으로는 드넓은 밭 지나 저 멀리 군부대 진지도 보인다.

임도 우측으로는 민가와 나무를 식재한 농장인 듯한 장소도 지나 계속 비포장 임도를 따라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잠시 내려가니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고 우측으로 진행을 하니 농장 정문이 나타나고 다시 그곳 정문쪽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어 산의 능선쪽으로 나 있다.

이곳 능선 진입로 역시 넓은 비포장 임도로서 완만한 오르막 임도로 이어져 있다.

방금 올라온 임도 진입로 저 멀리에는 마을 민가들이 모여 지어진 모습들도 눈에 들어 온다.

 

 

능선으로 올라 잠시 더 진행을 하니 바로 앞에 제법 들어 선 묘지지대가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가장자리엔 가족들이 찾았다 잠시 쉬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 묘지 지대 저 멀리에는 다시 탄약중대 후문인지 아니면 벙커가 보이고 그 벙커의 철조망을 만나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돌아 제법 긴 시간 진행을 해야 하는 등로가 나타난다.

구름이 끼어 약간의 위안을 주지만 역시 뜨거워진 지면에서 올라오는 한낮의 지열 더위는 참기 힘든 고역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다.

 

 

그렇게 긴 시간 계속 군부대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우측을 따라 진행을 하니 그곳에는 2중 철조망이 세워져 있는데 바깥쪽 철조망은 이미 삭아 그 역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약간의 헷깔리는 등로가 몇군데 나타나지만 주위를 하며 진행하면 큰 어려움 없이 철조망을 타고 진행하는데 불편함은 없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을 하니 철조망 안쪽에 높은 초소가 있고 그곳에서 초병 2명이 보초를 서고 있는 언덕 위 우측 저 멀리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견달산 아니 현달산이 솟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에서 우측 벌꿀통이 있는 임도를 타고 진행하였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을 순간적인 착각을 일으켜 계속 철조망을 타고 진행하며 왕복 20여분의 알바를 경험하고 다시 이곳으로 뒤돌아 올라온다.

 

 

뒤돌아 올라 와 높은 초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초병에게 몇가지 물어 보니 신병이라며 아는 것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 온다.

열심히 근무하라며 인사를 건네고 이제 좌측 임도의 벌꿀통이 있는 방향으로 내려가며 진행을 하다 허기가 지기에 나무 그늘에 앉아 남아 있는 김밥 한줄과 캔 맥주 한병으로 허기를 달래본다.

한동안 그늘에서 쉬었다 배낭 메고 진행을 하니 2차선 포장도로 직전 좌측에 농장이 보이고 곧이어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난다.

 

 

2차선 포장도로엔 고양 제일화물과 지게차 입간판이 서 있고 차량 통행량도 많지 않아 손쉽게 도로를 건널 수 있다.

도로를 건너 다시 이어지는 능선으로 들어가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시골 동네 뒷산을 오르듯 그런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우측 아래로 과수원이 보이고 그 과수원에는 수확기에 과일를 임시 보관할 수 있는 보관 창고도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는 시설재배와 민가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봄나물도 뜯고 농사일을 준비하기 위한 바쁜 몸놀림도 보인다.

 

 

그렇게 좌측 마을을 두고 돌아 진행하듯 이어가던 등로가 나즈막한 무명봉을 지나니 다시 임도로 내려서고 그 내려 선 임도 우측으로는 광목장 정문이 보인다.

이 삼거리 임도 갈림길에서 등로는 광목장 정문을 우측에 두고 직진 방향의 임도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광목장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빙돌아가는 넓은 임도를 타고 진행하며 우측 아래로 펼쳐진 광목장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느낌도 참으로 좋은 기분이다.

 

 

광목장을 지나자 마자 나무 목책으로 임도를 가로막고 사격시입산금지 안내판이 붙어 있는 가장자리를 타고 진행하니 광목장이 우측으로 계속 따라 오고 있다.

연두빛 봄 빛깔이 오랜 산행에 지쳐가는 이 산객의 마음을 치료해 주고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광목장의 경작지가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늘진 임도 등로를 타고 계속 진행하니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진행하니 최근에 만들어진 묘지인듯 직진방향으로 묘지가 보이는 곳에서 지금까지 타고온 임도는 우측으로 꺽여 빠지고 있다.

그곳에서 우측으로 흐르는 마루금을 버리고 직진의 묘지 뒤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된비알 오르막으로 올라 본다.

 

 

강릉김씨 묘지를 지나 그 뒤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소나무 지대를 지나 금새 폐헬기장처럼 보이는 공터에 도착을 한다.

역시나 마지막 봉우리를 오르는 길은 멀고도 힘든 여정이다.

가깝게 보였던 견달산 오름 등로가 온 몸의 체력을 고갈 시키고도 아직 더 올라야 하니 발바닥의 고통이 점점 심해져 온다.

그렇게 다시 헬기장을 지나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오르니 금새 운동시설과 무인산불감시 카메라가 있는 견달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해발 고도 139미터인 현달산은 이곳 주민들에게는 견달산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산이다.

현달산 정상에는 특이하게도 삼각점이 세개나 박혀있는데 이 산은 경기도 고양시의 일산동구 문봉동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139미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현달산은 군의 서쪽 10리 지점에 있으며 고려 공양왕릉이 자리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여지도서나 고양군지에는 군의 서쪽 20리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기록해 위치 정보가 서로 다르다.

해동지도와 광여도 및 여지도 등에는 현달산의 동쪽으로 공양왕릉이 표기되어 있으며 팔도군현지도에서는 벽제역의 서남쪽에 현달산을 표기하였다.

본달산과 견달산 또는 현달산 등 이 산의 다양한 이름은 견달산으로 쓰고 부르기는 현달산으로 하기로 고양시 지명위원회에서 정하였다.

이 산의 남쪽으로는 견달이라는 자연마을이 있으며 견달산로와 견달마을길 등의 지명이 사용되고 있다.

생각보다 조망은 없어 정상부근의 사진 몇장을 남기고 다시 올랐던 반대 방향으로 내려와 우측의 소나무 한그루가 누워있는 방향의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간다.

 

 

잠시 내려가니 등로 옆에 벙커가 숨어 있고 계속 내려가니 급경사 내리막 등로에는 막 새생명을 피워내는 연두빛 자연이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자연의 빛인 연두빛을 바라보며 급경의 내리막 등로임도 잊은채 천천히 내려가니 이제 종착역에 거의 도착을 하고 있음을 몸도 알고 있는지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생각보다 무더운 날씨에 이제 나무 그늘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되다보니 앞으로의 산행이 더욱 걱정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계속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앞 우측으로 문봉동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는 녹슨 철조망이 쳐져 있고 좌측으로는 멋진 소나무 몇그루가 서 있더니 다시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철조망과 함석판이 둘러쳐져 있고 우측으로는 활엽수가 잘 식재되어 커진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제 정말 마지막 내리막 까지 내려 와 오늘 산행도 마무리가 될 시간이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 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아마도 새로운 도로가 생기기전 사용했던 구도로라 생각되는 시멘트 포장 임도이다.

이곳에서 스틱을 접고 배낭 정리한 후 마지막 문봉동재로 나간다.

 

 

드디어 배낭 둘러메고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금새 큰 삼거리인 문봉동재에 도착해 공식적인 한북정맥 도봉지맥 제2구간을 마무리 한다.

보이는 사진 우측으로는 문봉동이 자리하고 다음 구간 마지막 산행 들머리는 직진의 골프장 방향이며 좌측으로 내려가면 식사동 버스 종점 방향이다.

문봉동은 지영동의 서남쪽 그리고 설문동의 남서쪽에 위치한 마을의 법정동 명칭으로 문봉의 유래에 대해서는 크게 세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는 이곳에 문봉서원이 있었기 때문에 생겼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옛부터 글을 숭상하고 받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는 것이다.

끝으로는 이 마을 앞쪽에있는 견달산의 봉우리 생긴 모양새가 마치 붓과 같아 큰 문장가가 많이 나올것 이라는 뜻에서 문봉이라 했다는 것이다.

식사동에는 공양왕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는데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이 태조 이성계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그의 칼을 피해 쫓겨다니던 때의 일이다.

공양왕은 개성을 빠져나와 고양땅으로 도망오게 되었는데 이곳에 바로 고려의 명장이며 충신인 최영 장군이 묻혀 있기 때문이었다.

파주를 지나 이곳 고양땅 식사동에 숨은 공양왕과 왕비 그리고 왕이 사랑한 삽살개는 며칠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헤매다가 어두침침한 저녁 무렵에 식사동의 한 절에 머물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 절에서는 왕을 숨겨 주었다가 후일 큰 화를 당할 것을 우려해 부근의 대궐고개에 왕의 일행을 숨겨 주었다.

그리고 매일 끼니때마다 밥을 날라다 주었는데 식사동이란 이름은 이렇게 하여 생겨난 것이다.

그 후 왕의 일행은 추격군의 말발굽을 피해 원당동 왕릉골로 숨어 들었는데 왕의 일행은 이곳에서 반나절을 보낸 뒤 은신처 앞에 있는 연못에 그만 스스로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말았다.

추격해온 이성계의 군사들은 연못을 향해 짖고 있는 삽살개가 수상하여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니 공양왕과 왕비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이곳엔 장사를 치러 주니 그때부터 이곳을 일명 반나절 릉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는 설이다.

또 이렇게 이 지역 유래를 공부하는 것으로 또 한구간 마무리를 자축해 본다.

 

 

문봉동재에서 택시를 잠시 기다리지만 보이지도 않기에 천천히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 내려가기로 한다.

마침 어머님 병환 때문에 전화를 해 보니 생각보다 좋은 상태란 설명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복귀하기로 한 것이다.

문봉동재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니 도로 우측에는 군부대 담장이 따라오고 좌측으로는 송호스틸 입간판이 크게 서 있다.

백마부대 정문을 지나 아웃도어 매점들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방금 전 내려온 견달산이 올려다 보이고 점점 더 포장도로가 달궈지며 열기가 후끈 달아 오른다.

SK 주유소를 지나 내려가니 저 아래 버스 한대가 올라오고 많은 손님들을 내려준 후 U턴하여 다시 원당역 방향으로 돌아 멈춘다.

 

 

097번 식사동에서 원당역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원당역으로 가 어렵게 주위에 있는 목욕탕에 들려 깨끗하게 샤워한 후 다시 원당역으로 복귀해 시원한 캔 맥주 하나와 음료수 하나를 사 목마름을 달래니 이세상 모두가 내것이 된듯 기분 좋은 시간이다.

3호선 지하철에 탑승해 연신내에서 6호선으로 갈아탄 후 다시 합정역에서 2호선 지하철로 환승해 집으로 복귀하니 아직도 저녁 면회 시간에 여유가 생길만큼 빠르게 진행한 산행이였다.

 

저녁에 어머님 병 문안을 하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울만큼 병세가 호전되어 다음주에는 일반병실로 옮길 수 있다고 하니 그동안의 고생이 모두 사라지는듯 하다.

 

언제 다시 마지막 구간에 오를 수 있을지 기약은 없지만 조만간 잘 마무리한 후 낙남정맥 첫 구간을 완주함으로서 1대간 9정맥을 마무리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 보는 시간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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