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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완료)/낙동정맥(완료)

낙동정맥 제20차 마지막 구간 개금고개에서 몰운대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2.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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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부산직할시의 낙동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2년 02월 10일과 11일 (무박 2일 토요 산행)

산행날씨 : 산행하기 좋은 기온과 날씨속에 약간의 박무가 있었던 날씨

산행온도 : 영하 05도에서 영상 09도

산행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낙동정맥 종주대 30명과 함께

산행코스 : 개금고개(개금역)-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고원아파트-엄광산 둘레길 이정표-팔각정-체육시설-암봉(503.9봉)-임도-

               너럭바위-헬기장-엄광산(504봉 사각정자)-1차선 포장도로-아침식사(할매집)-4차선 포장도로-구덕문화공원-콘크리트 임도-

               부산항공무선표시기-구덕산(565봉)-기상관측소-시약산 직전 임도-팔각 전망대-대티고개 1.5 Km 이정표-대티고개(2차선

               포장도로)-까치고개-공동묘지-우정탑-삼각점-극락암-부영벽산 아파트-성불사-괴정(감천)고개-옥천초등학교-해동고교-

               체육공원 이정표-군부대 후문-자유아파트-대동 중고교-장림고개-체육시설-2차선 포장도로-구평가구단지-구평산마트 입구-

               국제그린 아파트-다대고개 육교-서림사-아미산(234봉)-홍티고개-롯데캐슬 아파트-약천사-몰운대 그린비치 아파트-

               응봉초등학교-성원쌍떼빌 아파트-다대포해수욕장 버스 정류장-아리랑 식당-몰운대 빗돌-다대포객사-몰운대 군초소-

               몰운대 바닷가-산행종료

               산행 후 몰운대에서 생산회로 저녁 식사 후 귀경

산행거리 : 약 20.50 Km (접속구간 01.60 Km, 몰운대 빗돌에서 몰운대까지 왕복)

산행시간 : 여유롭게 진행하며 즐기며 약 10시간 00분 (04시 15분부터 14시 15분까지)

               몰운대에서 종산제 지내며 약 1시간 소요

 

낙동정맥이란 ???

낙동강의 동쪽을 따르는 산줄기로 동해바다를 가르는 한반도 동해안 지방의 담장이다.

백두산에서 남으로 힘차게 뻗어내려 금강산과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내려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천의봉(매봉산,1303봉)으로 솟아 오르기 전 1145봉 직전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하여 태백 백병산(1259봉), 통고산(1067봉), 울진 백암산(1004봉), 청송 주왕산(720봉), 경주 덕석산(829봉), 울산 가지산(1240봉), 신불산(1209봉), 부산 금정산(802봉)을 지나 백양산(642봉)을 넘어 낙동간 하구인 다대포 몰운대에서 끝나는 약 397 Km의 산줄기를 낙동정맥이라 한다.

낙동정맥 중에서 최고봉은 태백의 백병산으로 그 높이는 1259미터이다.

 

 

낙동 마루금의 마지막 몰운대에서 고통과 희열을 만끽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몰운대 빗돌을 지나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계속 전진하니 다대포객사가 나타나고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 소나무 숲을 타고 진행하니 길고도 멀었던 낙동정맥 마루금이 남해바다에 빠지는 몰운대 마지막 지점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바라보니 서산으로 지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잔물결을 타고 이 산객의 추억도 긴 주마등이 되어 그간의 고통과 희열이 교차하고 있다.

2011년 2월 12일 100년만에 내리는 폭설을 뚫고 태백의 백두대간 마루금인 매봉산 천의봉에서 제대로 된 시산제도 올리지 못하고 첫 발을 옮긴 후 꼭 1년이 지난 오늘 그 마지막 마루금이 바다에 빠지는 풍경을 가슴에 안고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생각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1년 동안 평생의 큰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해 즐거운 마음이였지만 어머님의 병환이 깊어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에서 가족의 사랑을 가슴속 깊이 새겼던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제 1대간 8정맥을 마무리 했으니 나머지 하나의 맥 잇기도 완주 후 가족들과 그곳 마지막 마무리 하는 자리에서 고운 추억 하나 만드는 것으로 올 한해의 산행에 대한 기대를 해 보는 시간이다.

이제 산행도 죽고 살기가 아닌 즐기며 자연속의 일부가 되어가는 시간이길 바라며 가족과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오늘 낙동정맥 마지막 산행 후기를 정리해 본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미산 봉수대에 오르니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 와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식히고 그곳에서 종주대들과 함께 영원한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그리고 그 울타리 아래 남쪽 저 멀리 내려다 보니 고층 아파트 사이를 타고 낙동정맥 마루금의 마지막 나즈막한 봉우리가 남해 바다에 빠지며 오늘 이 산객이 가슴에 품은 마음 그대로를 대변하고 있다.

더 오르고 싶어도 오를 수 없는 마루금의 끝자락, 그동안 수많은 마루금 잇기 산행을 했지만 오늘 이곳에서 느끼는 이 감정은 무엇이며 또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인지...

어렵고 고통속에 느끼는 감정이 조금 더 진실로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대자연과 가족 사랑에 조금 더 진심으로 다가 갈 수 있기를 바래보는 시간으로 남겨 본다.

 

                         

대형 버스에 몸을 실고 낙동정맥 마지막 산행을 위해 떠나는 마음이 편치 못하다.

갑자기 찾아 온 어머님의 병환이 위중해 1주일 내내 병실을 지키다 조금은 회복되는 모습에 맡은 책무를 저버릴 수 없어 다시 마지막 산행에 몸을 실지만 고통스런 어머님의 얼굴이 오버랩되며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그렇게 밤을 새워 달려간 부산의 지하철 역이 있는 개금역에 도착을 하니 새벽 4시를 넘기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니 생각보다 찬 밤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산행 준비 후 개금역 주위를 사진에 담은 후 마지막 구간 산행을 위해 출발하는 시간이다.

개금역사가 위치한 개금역은 개금동의 지명에서 유래하였는데 이 개금동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이 피란을 하던 중 푸른 산림과 아늑한 계곡이 있던 이 지역에서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고 오랜만에 마음을 놓고 거문고를 켰다고 해서 개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마을의 모양이 거문고 모양이므로 개금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는 곳이다.

개금은 자연마을 명칭으로만 있다가 일제 강점기 이후부터 행정구역명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지명 이름을 따 개금역이 탄생하게 된 곳이기도 하다.

 

개금역 7번 출구에서 시작해 5번 출구를 통해 완만한 오르막 도로를 타고 저 멀리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이란 이정표를 보고 그 방향으로 출발해 보는 시간이 새벽 4시 15분이다.

첫번째 사거리를 지나 계속 오르니 가운데에 화단이 있는 삼거리 갈림 도로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화단을 우측에 두고 좌측 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우측에 유림열쇠 가게 간판이 보이고 그 도로를 타고 계속 오르며 전진한다.

조금 더 오르니 태림 아파트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하성약국 간판도 보인다.

계속 오르니 도로 좌측에 고원아파트 정문에 큰 빗돌이 보이고 그곳을 통과하니 어린이 놀이터가 나타나는데 그 어린이 놀이터 뒤로는 철 계단도 보인다.

그 어린이 놀이터를 가로막는 쇠철망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돌아 어린이 놀이터 뒤로 돌아 오르니 넓은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 옆에는 엄광산 둘레길 제2코스와 3코스 를 알리는 이정목과 그 옆 나뭇가지에 많은 낙동정맥 마루금을 알리는 띠지들이 새벽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정상 등로를 어렵게 찾았다는 안도감이 가슴을 쓸어 내리는 시간이다.

 

엄광산 둘레길을 타고 진행하니 금새 민가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을 타고 오르도록 되어 있고 그 좁은 골목으로 진행하니 다시 등로는 나즈막한 능선으로 이어지며 본격적인 엄광산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나즈막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부산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산임을 알리듯 여러 갈래의 등로가 사방 팔방으로 나 있지만 곧장 직진의 방향으로 진행을 하면 큰 무리가 없을 듯한 그런 등로이다.

잠시 더 오르니 돌들로 성을 쌓았던 흔적처럼 돌담이 나타나고 그 돌담을 타고 오르니 잠시 가파랐던 등로가 완만하게 이어지며 등로 우측에 봉분이 없어진 묘지같은 봉우리 하나가 나타나고 그 우측으로 사각정이 어둠속에 묵묵히 서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체육시설을 지나 넓은 임도에 동의대학교와 고원아파트 그리고 개금배수지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 도착해 잠시 휴식 취하며 후미를 기다려 본다.

 

잠시 쉬고 있으니 흐르던 땀방울이 식으며 한기가 밀려오고 이제부터 코가 등로에 닿을듯 가파른 엄광산 오름 된비알을 타고 가쁜 숨들을 내뿜어 본다.

한동안 오르니 등줄기와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등로를 적시고 힘들게 한발 두발 옮기다 보니 등로 좌측에 돌탑 하나가 보이고 바로 위에는 바위 전망대가 있는 곳에 도착해 잠시 똑딱이를 바위 위에 어렵게 고정 시킨 후 발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부산 야경과 지난 구간 내려 온 저 멀리 깃봉과 삼각봉 능선을 담아 본다.

그 낙동정맥 마루금을 타고 내려 온 지점에 LG 아파트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 오고 지난 구간 어렵게 내려 와 힘들게 합류했던 추억을 생각하며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되였다.

어렵게 야경 하나 담은 후 오르니 바위 전망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다시 한번 뒤돌아 부산 야경을 눈에 담은 후 다시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힘든 엄광산 산행을 이어가고 있다.

 

다시 한동안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힘들게 오르니 찬바람이 더욱 강하게 귓전을 때리며 추위가 엄습하는 시간에 정상 직전의 바위봉에 도착해 한숨을 크게 내쉬어 본다.

오늘은 아침 도시락도 없이 엄광산 정상을 찍고 구덕꽃마을로 내려가면 매식을 하기로 했기에 빨리 내려간다 해도 의미가 없지만 추위 때문에 지체하지 못하고 계속 천천히 진행하는 시간이 되어 간다.

바위가 박혀 있는 전위봉을 지나니 이제 넓은 임도를 타고 진행하게 되어 있고 그 임도를 타고 잠시 진행하니 갑자기 넓은 정상 헬기장이 나타난다.

이 부근에 정상 0.1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어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하고 조금 더 진행하니 엄광산 정상석과 팔각정의 무심정이 있는 정상에 도착해 추억 한장씩 남겨 본다.

엄광산은 일제 강점기부터 산이 높아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뜻의 고원견산으로 불렀으나 1995년 4월 부산을 가꾸는 모임의 옛 이름 찾기 운동으로 엄광산이란 이름을 되찾았다.

금정산맥 말단부에 속하며 구덕산 및 구봉산과 이어져 있고 주로 안산암질의 암석으로 구성되었다.

엄광산은 주위에서 고도가 가장 높아 동구, 서구, 사하구, 북구, 해운대구 일부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 부산이 항구도시임을 실감하게 하는 504 미터의 높이를 가진 산이다.

하지만 오늘 이 시간은 어둠속에 서 있기에 그저 반짝이는 부산시의 야경으로 만족하는 시간이 되였다.

 

엄광산 정상에서 잠시 더 시간을 보낸 후 후미를 기다려 보지만 보이지 않아 천천히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등로 주위에 많은 편백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그 편백나무 사이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는 울타리가 이어져 있다.

그 철조망 지대를 지나니 이제 등로 주위에는 푸른 동백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계속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로 내려서게 된다.

이곳에서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저 멀리 구덕산이 보이고 그곳으로 향하는 도로가 나타나지만 오늘 아침은 직진으로 조금 더 진행 해 할매집에서 시락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으니 시간은 일러도 그곳으로 향한다.

 

종주대원 중 한명인 조박사님 고향이 바로 이곳 부산이고 고향에 내려 온 종주대를 위해 아침을 대접한다기에 들렸는데 오랫만에 참으로 맛난 시락국으로 든든한 아침을 해결한 기분 좋은 아침이 되였다.

특히나 할매집은 천기덕 레슬러의 친동생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알려져 더욱 뜻 깊은 아침식사 시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든든하게 아침 식사를 즐긴 후 다시 할매집을 나와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오르니 우측에 산마루 식당 간판이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구덕산 가는 도로가 나타나고 토담가마솥 시락국 식당과 대진슈퍼를 지나 나타나는 사거리를 횡단보도를 통해 건넌 후 도로를 타고 올라 부산조경개발 빗돌을 지나 구덕문화공원 안내판이 있는 돌계단을 통해 정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구덕문화공원으로 들어 가 안내소를 통해 오르고 조금 더 오르니 등로 좌측의 저 멀리 능선 위로 드디어 낙동정맥 마지막 구간의 찬란한 아침 일출이 시작되고 있다.

잡목 사이로 떠 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을 던진 후 오늘 하루도 무탈한 완주를 빌어 보는 시간이다.

오늘 낙동정맥 마지막 구간이 지난 후 다시 만나는 일출은 이 산객의 가슴에서 어떤 의미와 어떤 모습으로 남겨질지 궁금하기도 한 시간이다.

이제 구덕문화공원을 통해 갈지자 행보를 하며 한동안 가파른 등로를 타고 오르니 시멘트 임도를 만나고 잠시 그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오르니 정맥 마루금은 임도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이 산객은 계속 시멘트 임도를 타고 구덕산으로 향하기로 해 본다.

  

이제 모든 종주대들을 능선으로 보내고 홀로 넓은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오르니 임도 우측 저 멀리 사상구쪽 아파트 단지들과 민가들이 촘촘이 서 있는 모습 넘어 낙동정맥 마루금을 갈라 놓은 낙동강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그 위로 박무가 드리워져 더욱 애잔한 마음이 생기는 시간 그 낙동강 저 멀리 1대간 9정맥의 마지막 마루금으로 올라 그 마무리를 해야 할 낙남정맥 마지막 봉우리인 신어산이 김해공항 저 멀리 그리움을 더하고 있는 시간이다.

조만간 저곳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며 인생에서 중요한 턴닝 포인트가 될 9정맥을 마무리 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가슴에 묻으며 급하지 않게 진행을 하니 금새 산불감시초소와 간이 화장실이 있는 승학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이곳에서 잠시 마루금을 찾아 지도를 펴 놓고 독도를 해 보니 구덕산은 좌측 능선 위에 있는 듯 보인다.

좌측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이어진 시멘트 임도를 타고 계속 진행하니 다시 임도 우측으로 낙동강 하구와 을숙도가 바로 발 아래 내려다 보이고 을숙도대교가 먼 옛날 만들었던 추억 한조각을 꺼집어 내며 잠시 산객의 발걸음을 멈춘다.

일 때문에 참으로 많이도 내려왔던 부산과 을숙도, 이제 먼 추억으로만 남겨진 이름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바로 발 아래 내려다 보는 이 시간은 시간 여행을 하며 그때로 되돌아 가 젊은 청춘을 노래하는 시간이 되였다.

 

다시 아름다운 낙동강 하구를 내려다 보며 천천히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오르니 아직도 능선으로 오른 종주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 종주대들을 기다리며 천천히 시멘트 임도를 따르니 임도 우측 저 멀리 구덕산기상레이더가 우뚝 솟아 있고 바로 눈 앞에는 부산항공무선표지소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구덕산 정상은 좌측 능선으로 올라 정상으로 오르면 그곳에 서 있다.

구덕산 정상에 올라 많은 사진 남기며 한동안 종주대들을 기다리니 종주대들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한 듯 조용하기만 하다.

다시 구덕산기상레이더 있는 곳이 아닌 부산항공무선표지소 건물을 둘러 싸고 있는 철조망을 타고 반대쪽 능선으로 올라오는 넓은 공터쪽으로 이동하니 후미쪽 종주대 몇명이 남아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만들고 있고 선두쪽 종주대는 능선을 타고 승학산 가는 삼거리 임도로 모두 내려간 상태이다.

구덕산은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과 사하구 당리동 및 북구 학장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565 미터이고 일명 사병산이라고도 불리는 산이다.

이 일대는 부산광역시의 척량산지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북쪽의 금정산(801봉), 백양산(642봉), 고원견산(504봉), 구덕산, 천마산으로 이어져 다대포의 몰운대에서 끝난다.

구덕산의 동쪽 사면에서 보수천이 흐르며 서대신동 계곡과 구덕고개에 이르는 산록은 경치가 좋고 각종 원예수와 꽃재배가 성하여 시민들의 산책로로도 이용된다.

구덕고개 밑으로는 구덕터널이 있는데 부산의 도심지에서 구포 방면과 서부 경상남도 지방에 이르는 도로와 연결되어 교통의 정체를 완화하고 있다.

구덕산의 서쪽과 남쪽에는 부산광역시의 신개발지인 하단동에 이르는 괴정동과 당리동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지역은 낙동강하구 둑의 완성과 함께 발전이 크게 기대되는 곳이다.

당리동에서 승학산과 구덕산에 이르는 제석계곡은 풍치가 아름다워 산책객들이 많다.

북쪽 사면에는 학장천이 흐르고 경사가 급하여 개발이 늦었으나 구덕터널의 개통으로 개발이 기대되는 곳이다.

구덕산 혹은 엄광산으로도 불리었으며 그 기슭에는 구덕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오기 힘든 곳에 올라 그곳의 역사와 지리를 공부하는 맛 역시 특별하기만 한 마루금 잇기 산행이다.

 

구덕산 정상석이 있는 곳에서 철조망을 타고 공터쪽으로 이동하다 저 멀리 북쪽을 바라보니 막 떠 오른 아침 햇살을 받아 박무현상이 보이지만 그래도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엄광산 지나 저 멀리 지난 구간 어렵게 걸어 온 금정산까지의 장쾌한 낙동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우측으로는 부산 시내가 막 아침 햇살을 받아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하고 그 아름다움에 취해 한동안 진행하지 못하고 머무르고 있다.

올라야 할 마루금은 큰 압박으로 다가오지만 지나온 마루금을 뒤돌아 보면 벌써 아련한 추억이 남겨진 아름다운 등로로서 남겨지는 산하가 가슴속에 남겨지는 시간이다.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가 철조망과 조금 멀리 떨어지더니 콘크리트 수로를 따라 다시 철조망으로 접근되어 있다.

그 철조망 근처로 오르니 다시 방금 전 지나 온 구덕령 꽃마을과 구덕문화원쪽 마을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그 꽃마을에 맛나게 아침을 먹었던 할매집도 보이고 그 위로 오르며 엄광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환상으로 다가온다.

그 뒤로 엄광산이 우뚝하고 다시 저 멀리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이 자꾸만 멀어지는 아련한 추억을 만들고 있다.

 

어렵게 철조망을 타고 걸어가니 능선에서 구덕산으로 오르며 처음 만나는 억새가 갈색으로 변해 버린 넓은 공터에 도착해 후미쪽 종주대와 오랫만에 조우를 한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조망 역시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서쪽으로 승학산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그 아래 저 멀리 낙동강 하류가 그리움을 한가득 담아 이 산객의 가슴에 남겨지는 시간이다.

저 낙동강 하류를 만나기 위해 1년동안 400 여 Km를 꼬박 걸어 오늘에서야 만나게 되니 그 감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순간이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지난날의 고통과 아름다운 마루금에서의 추억이 다시 피어 오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동안 구덕산 정상부에서 조망을 즐기며 선두쪽 종주대를 살펴보니 벌써 승학산 갈림 삼거리 임도로 내려가 버린 후였다.

어쩔 수 없이 그들 종주대를 따라 승학산 삼거리로 내려갔다 다시 시멘트 임도를 타고 좌측 부산항공무선표지소쪽으로 올라가 만나는 삼거리에서 좌측 구덕산 정상부가 아닌 우측의 시멘트 임도를 타고 계속 구덕산기상레이더쪽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종주대들에게 구덕산 정상부를 알려주니 몇명의 종주대는 구덕산 정상부를 담기 위해 다시 그곳으로 향하고 대부분의 종주대는 구덕산 정상부를 포기하고 정상 낙동정맥 마루금을 타고 계속 진행을 하고 있다.

저 앞 구덕산기상레이더를 넘어 조금 더 진행하면 시약산 정상이지만 오늘은 막혀 있기에 시약산 정상은 들리지 못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리는 시간이다.

 

시멘트 임도를 타고 조금 더 구덕산기상레이더쪽으로 진행하니 임도 좌측 저 멀리 팔각정 전망대가 보이고 그곳으로 통하는 소로가 나 있다.

그곳으로 가 팔각정에서 조망을 즐긴 후 진행해도 되는데 굳이 조금 더 진행해 언덕을 넘은 후 그곳 팔각정 조망대로 올라 잠시 주위 조망을 즐겨 본다.

사진 좌측으로 이기대공원과 용두산 공원이 내려다 보이고 사진 좌측으로 보이는 봉래산을 시작으로 남항대교가 아름답고 송도해수욕장을 지나 우측 저 멀리 오늘 마무리해야 할 몰운대가 아스라히 내려다 보인다.

참으로 가슴 설레이는 멋진 풍경이자 조망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봉래산을 가운데 두고 부산 남쪽 바다를 시원하게 내려다 본다.

바로 발 아래에 구덕운동장이 자리하고 그 앞으로 중앙공원이 보이고 충혼탑을 지나 바다가 이어지고 그 뒤로 이기대공원이 보인다.

이기대 공원과 봉래산 중앙에는 등대인지 아니면 다리 공사가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아침 햇살이 반짝이고 있다.

그 우측으로 봉래산이 보이고 그 앞으로 용두산 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저 멀리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바닷물에 얼비추며 또 하나의 태양을 만들어 내고 있다.

봉래산 우측으로는 남항대교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 위 하늘에는 무지개빛이 아름답게 수를 놓고 있다.

 

그렇게 종주대원들과 오랜시간 이곳 팔각정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다시 정상 정맥길로 복귀하기 전 지나 온 마루금을 뒤돌아 보니 그곳에 또 다른 멋진 풍경이 놓여 있다.

방금 전 만났던 부산항공무선표지소쪽 거대한 안테나가 구덕산 정상부를 가리고 그 우측 저 멀리 철조망 넘어 갈색의 억새밭이 하늘거리듯 다가온다.

그 아래로 이어지는 시멘트 임도를 타고 그 가장자리에 노란색 안전봉이 또 다른 추억을 만드는 이 시간이 참으로 빠르게 지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제 그 팔각정 전망대를 떠나 다시 시멘트 임도를 타고 굴곡진 마루금을 내려오니 등로는 다시 가파른 내리막 갈지자 능선으로 이어지고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짧은 갈지자 수십개를 걸어 내려오니 넓은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며 편안한 등로가 펼쳐진다.

잠시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꽃마을에서 3.4 Km 지나 왔고 구덕산기상레이더 뒷쪽에 있는 시약산 정상에서는 0.9 Km 지나 왔다는 이정표 옆에 진행해야 할 대티고개까지는 1.5 Km 남았다는 거리 표시가 발걸음을 가볍게도 만들고 무겁게도 만드는 시간이 되였다.

 

계속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편안하게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몇개의 바위들이 박혀있는 나즈막한 봉우리를 넘어 거대한 느티나무를 지나 전진한다.

그곳을 지나니 등로는 멋진 소나무들이 잘 정리되어 자라고 있는 좁은 소로로 이어지고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앞을 보니 저 멀리 고층의 아파트 숲을 지나 오늘 마지막 낙동정맥을 마무리 해야 할 다대포의 몰운대 앞바다도 시원하게 조망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계속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이제 대티고개까지 1.2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나고 나무 계단이 땅에 박혀 있는 소나무 군락지를 내려가니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그 옆에는 돌담으로 묘지 출입을 막고 있는 넓은 공터지역을 통과한다.

 

계속되는 넓은 임도같은 평탄한 등로를 타고 마지막 낙동정맥 마루금을 즐기며 진행하다 보니 등로 우측으로는 멋진 소나무들이 들어 차 있지만 좌측으로는 벌거벗은 벗꽃 나무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는 저 멀리 자갈치 시장이 있는 앞바다에 남항대교가 아름답게 다가와 있다.

잠시 넓은 공터에서 중간 종주대들이 과일을 나누며 쉬어가는 시간에 천천히 홀로 등로를 타고 오르니 나즈막한 둔덕을 넘어 가파른 내리막 등로가 열려 있고 소나무 군락지속으로 들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간다.

한동안 내려가니 가파른 내리막 등로가 완만해지며 산불감시초소가 나타나고 이제 수많은 등산객들이 다녔는지 반질거리는 등로로 변하며 대티고개가 가까워졌는지 차량들이 통행하는 소음도 간간히 들린다.

그 옆에는 이제 대티고개까지 0.3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반겨준다.

 

다시 등로를 타고 조금 더 내려가니 파란 그물망이 길을 가로막고 그 그물망을 타고 내려가니 대티고개쪽 마을들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그 건너편으로 올라야 할 마루금도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짧은 밭둑을 타고 내려가 민가 사이로 나 있는 소로의 시멘트 포장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안전 철봉을 타고 금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대티고개에 도착해 생각보다 차량 통행이 많은 도로를 조심하며 건너며 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는 대티고개란 지명을 담아 본다.

부산 괴정동과 대신동을 잇는 고개인 대티고개는 옛날에 이곳 괴정동의 신촌마을에는 집은 별로 없었고 밭이었는데 그들을 중맥들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대티고개를 넘으면 대신동인데 이 고갯길은 소나무가 많아서 솔티라고 불렀으며 길이 험하고 산짐승도 나왔으며 도적이 나오는 일도 있어서 하단재첩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괴정사거리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였다가 넘어 갔다고 해서 재첩고개가 대티고개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나 확인할 수는 없다.

대티고개에는 천하대장군과 천하여장군의 장승이 있었는데 6·25동란 때 없어져 버렸다.
지금은 서대신동으로 넘어 가는 길이지만 그 당시에는 괴정에서 아미동으로 넘어 가는 고개였다.

이 길은 하단과 독지(구평동) 및 구포 그리고 강 건너 김해지역에서 부산까지 왕래하는 보부상들과 일반 행인들이 다니던 길목이었다.

대티마을은 괴정2동 일대에 있던 마을로서 괴정동에서 서대신동으로 넘어가는 대치터널 위쪽에 있는 고개가 대티 또는 대치고개인데 이 고개 밑에 있는 마을을 대티마을이라고 한다.  

지금은 부산 지하철 1호선이 대티고개 아래를 지나면서 고개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으며 지하철 서대신동역과 괴정동역 사이의 역명이 바로 대치역이다.

이렇게 다시 낙동정맥 마루금을 걸으며 다시는 오지 못할지도 모를 지역 이름과 유래를 공부 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순간이다.

 

                         

대티마을에서 정상 낙동정맥 마루금을 찾아 진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또 열심히 찾아 올라 본다.

대티고개 위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강서할인마트를 우측에 두고 좁은 골목으로 올라도 되고 그 마트 우측으로 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 좌측 골목으로 오르면 조금 더 쉽게 정상 등로를 찾을 수 있을 듯 보였다.

마트를 우측에 두고 좁은 골목으로 오르니 좁은 시멘트 포장 도로가 계속 이어지는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닐듯한 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른다고 생각하며 오르면 큰 어려움은 없을 듯 하다.

오르다 보면 전신주에 낙동정맥 띠지들도 붙어 있으니 확인하며 오르면 마지막 민가에서 골목을 지나 능선쪽으로 수많은 띠지들이 나풀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골목으로 오르니 다시 밭 가장자리로 맥 잇기 산행이 이어지는데 좌측 앞에 커다란 피오니파크 아파트가 눈에 들어 온다.

그 아파트를 우측에 두고 좌측 뒷쪽 능선으로 너무나 뚜렷한 등로가 나 있어 알바하기 쉽지만 그 피오니파크 아파트를 좌측에 두고 우측 등로를 타고 진행하면 큰 무리는 없을 듯 하다.

계속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하니 도로 우측으로 공사중인 건물이 나타나더니 금새 다시 2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는데 도로 건너편에는 아미까치공영주차장 입간판이 붙어 있다.

도로를 건너 그 공용주차장 간판 앞에서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진행하면 도로 좌측으로 삼안그린빌라 건물이 보이고 그곳 골목으로 들어가며 진행하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온 구덕산기상레이더가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골목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아미까치 공용주차장이 골목 좌측에 위치하고 골목 우측으로는 민가들이 들어 서 있는 그런 풍경이다.

그렇게 그곳을 지나니 이제 골목 좌측으로 민가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우측으로는 밭이 조성되어 있어 그 아래로 민가 마을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이곳 민가가 끝나는 지점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구덕산에서 이곳 226봉 직전까지의 낙동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조망되기에 몇장의 사진을 남기며 쉬어 간다.

이제 가파른 된비알 오르막 능선으로 접어 들어 여전히 넓은 이도같은 등로를 타고 이마에 땀방울을 흘리며 올라 본다.

한동안 등줄기와 이마에 땀방울이 솟아날쯤 조그만 공동묘지가 나타나고 앞으로는 부산 앞바다가 그리고 뒤로는 방금 전 지나온 낙동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226봉에 오른다.

 

그렇게 작은 공동묘지에서 멋진 부산시내와 남해바다를 조망으로 즐긴 후   계속 전진하니 등로 바로 좌측으로 감천만이 바로 지척이다.

부산시 서구와 사하구를 경계짓는 감천만, 10여년 전만 해도 허허벌판의 일반 바닷가나 별반 다름없었던 이곳도 개발 바람이 불면서 이제 복잡한 도심의 일부로 변해 그 옛날의 정취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도심의 풍경이 되였다.

감천만은 부산광역시 사하구와 서구 경계권에 위치한 만으로서 감천동과 다대동 및 암남동 인근에 위치하며 암남동 동쪽으로는 그 유명한 송도해수욕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 때문에 오래전 참으로 자주 찾던 곳이였는데 세월 따라 일감도 변해 찾은지 오래된 곳중 한곳이 되어 버렸다.

 

작은 공동묘지 구역을 지나니 다시 등로는 소나무 군락지를 통해 그림같이 펼쳐져 있고 여유롭게 걸어 본다.

그렇게 오손도손 종주대들과 이야기 나누며 걷다 보니 등로 한가운데에 거대한 돌로 쌓은 돌탑이 하나 서 있고 반대편으로 돌아 가 올려다 보니 정상부에 우정탑이란 글귀가 보인다.

무슨 사연을 담고 있는 돌탑인지 궁금해 많은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유래를 찾지 못하고 지자체인 사하구청까지 연락해 보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쉽지만 그저 이렇게 추억 한장 남기고 돌아 왔다는 사실 하나로 만족해 보는 시간이지만 아쉬움도 남는 순간이다.

 

이제 우정탑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넓은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완만한 오르막을 오른다.

하지만 이곳에서 조금 더 오른 후 넓은 임도같은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크게 꺽어 극락암쪽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계속 진행해 함안조공 봉분이 있는 뒷쪽의 삼각점을 담은 후 그곳에서 넓은 임도를 타고 내려가며 잠시 알바를 한다.

스스로 잘 산행 안내를 정리했으면서도 너무나 뚜렷한 등로에서 이처럼 생각지도 못하는 알바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맥 잇기 산행이다.

그래도 그 넓은 임도를 타고 내려오며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감천항을 담아 보니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감천항을 구경하며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양쪽에는 벌거벗은 벗나무가 봄을 기다리며 화사한 벗꽃이 피었을 때 다시 만나자 약속하라는 듯 반긴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갑자기 체육공원 이정표가 보이고 다가 가 살펴보니 우측 승학골프장쪽으로 넓은 임도를 타고 한동안 더 진행해야 할 것 같은 지점이다.

이곳에서 잠시 더 우왕좌왕 정상 등로를 찾아 어려움을 느꼈지만 능선과 임도를 왔다갔다하면서 정상 등로를 잘 찾아 다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체육공원 이정표로 잘못 내려 왔다면 우측 승학골프장 1.0 Km 방향으로 무조건 넓은 임도를 타고 계속 진행하면 임도가 우측으로 크게 꺽이는 지점 좌측에 극락암 간판이 보이고 그곳에서 정상 등로를 타고 진행하면 큰 어려움은 없을 듯 하다.

   

어렵게 천마산 극락암이란 부식된 이정표 간판을 만나 잠시 다른 종주대를 기다리며 쉬어 가지만 강하게 불어 오는 바닷바람으로 오래지체를 하지도 못하고 다시 극락암을 좌측에 두고 우측 철조망을 타고 능선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가 본다.

나즈막한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감천항과 감천만이 바로 발 아래 놓인듯 내려다 보이고 그 아름다움에 취해 어려운 줄도 모르게 진행하고 있다.

잠시 더 오르니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벤취봉을 넘어 전진하니 앞으로 진행해야 할 방향으로 부영벽산 아파트 단지들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그 부영벽산 아파트 단지를 앞에 두고 다시 민가들이 서 있는 골목을 타고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성불사란 절이 있고 그 앞에는 산신각이란 글귀도 보이는데 겉에서 보면 일반 가정집과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작은 암자이다.

계속 내려가 처음 만나는 삼거리에서 좌측 도로를 타고 진행하니 저 멀리 LG 원룸 건물이 보이고 다시 넓은 4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횡단보도를 통해 건넌 후 계속 좌측 방향으로 전진해 간다.

자세히 보니 바로 전 능선에서 봤던 부영벽산 아파트 단지들이 정맥마루금을 가로막아 그 아파트 단지를 돌고 돌아 육교가 있는 괴정고개 즉 감천고개를 찾아 가는 과정이였던 것이다.

 

도로 번호도 나타나지 않은 4차선 포장도로를 어렵게 횡단보도를 통해 건넌 후 좌측으로 올라가니 저 멀리 괴정고개에 육교 하나가 보이고 그 바로 직전의 도로 우측에는 SK 주유소가 보인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읽다보면 이곳 통과 시 능선에서 내려 와 부영벽산아파트 단지를 좌측에 두고 우측 도로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아니고 부영벽산아파트 단지로 들어가 그 정문을 통해 이 육교를 건너 진행하는 종주대들도 꽤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확실한 등로인 도로를 타고 무탈하게 괴정고개 즉 감천고개에 도착을 한 것이다.

 

감천삼거리 버스 정류장을 지나고 SK 괴정주유소를 지나자 마자 우측 골목으로 들어 가 넓은 공터 있는 곳에서 좌측 골목을 통해 능선으로 오르며 진행하려 했지만 그 공터에는 새로운 집을 건축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라 등로를 완전히 폐쇄하여 진행 할 수가 없는 상태이다.

다시 SK 괴정주유소쪽으로 되돌아 나와 이제는 내려오는 방향 우측의 골목으로 들어 가 오르니 높은 콘크리트 담이 가로막고 있지만 다행이 그곳을 오를 수 있는 나무계단이 있어 어렵게 그 계단을 타고 밭으로 올라 해동고등학교가 우측으로 보이는 정상 등로를 탖아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가 본다.

해동고등학교를 등로 우측에 두고 조금 오르니 이제 예비군 훈련장이 나타나고 등로는 정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정상을 좌측에 두고 우측 사면 우회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하니 예비군 훈련장과 체육공원이 혼재되어 있는 곳에 도착을 하고 많은 시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는 체육공원 옆 시멘트 계단에서 배낭 내려 남은 간식을 먹으며 인원 파악을 해 본다.

 

한동안 그 체육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독주 한잔을 나누니 몸이 뜨거워지며 다시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열망이 솟아 난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약간은 지루한 마루금을 오르니 무명봉 지나 다시 넓은 임도와 이어지고 그 임도를 타고 잠시 더 진행하니 군부대 정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선답자의 산행 후기에서는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타고 오르며 철조망을 따라 진행했다고 되어 있는데 보기에도 좌측 내리막 등로가 편안할 것 같아 정문에서 우측이 아닌 좌측 등로를 타고 진행한다.

소나무 군락지가 아름답게 펼쳐진 등로를 타고 편안하게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감천항과 감천만이 이제 손에 잡힐듯 다가와 있다.

 

이렇게 마루금에 올라서나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감천항을 내려다 보며 잠시 감천을 생각 해 본다.

총 면적은 약 3 평방 킬로미터이며 인구는 약 4만여명 인 감천은 서쪽으로 신평동, 장림동과 다대동이 북쪽으로는 괴정동과 구평동 그리고 남쪽과 동쪽으로는 감천만과 접해 있는 마을이다.

감천의 옛 이름은 감내이며 감은 검에서 온 것이며 검은 신이라는 뜻이다.

은 내를 한자로 적은 것이니 다른 유래로는 물이 좋아서 감천이라 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동래군 사하면 지역이었고 1896년에 부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에 동래군 사하면 감천리로 바뀌었고 1942년에 부산부로 재편입되었다. 1957년에 서구 소속으로 되었다가 1983년에 사하구 관할로 되었으며 법정동인 감천동은 행정동인 감천1동과 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감천만은 대포만이라고도 하며 대한해협에 뻗어내린 송도반도와 두송반도 사이의 좁고 긴 만인데 감내포는 감천만 안쪽에 자리잡은 포구로서 감천만의 옛 지명이다.

깨끗한 모래와 자갈이 깔려 있는 한적한 해안이었으나 1962년 부산화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옛 모습은 사라지고 현재는 부산항의 보조항으로서 현대적인 항만으로 되어 있는 곳으로 변모하였다.

그저 이런 역사를 배우고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어려운 맥 잇기 산행을 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군부대를 지나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체육시설이 있는 공터를 통과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자유라는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 서 있고 잠시 더 진행하니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진행을 한다.

나즈막한 언덕을 넘으니 대동중학교와 고등학교 정문을 지나고 좌측으로는 거대한 부산해사랑이란 냉동창고인듯한 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우측으로는 부일냉동 건물도 보이고 동양냉장 건물도 보인다.

계속 내리막 포장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남영자동차운전전문학원 건물과 정문이 나타나고 곧이어 사거리 교차로가 지나는 장림고개에 도착을 한다.

장림동과 장림고개를 백과사전에서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장림동의 면적은 약 5 평방 킬로미터쯤이고 인구는 약 4만 7천여명이며 동쪽은 감천동, 북쪽은 신평동, 남쪽은 다대동 그리고 서쪽은 낙동강 하구와 접해 있다.

장림동의 유래는 숲이 우거지고 지형적으로 길게 늘어선 동네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림고개는 사하경찰서에서 구평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신평1동, 장림2동 그리고 구평동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현재는 신평과 장림공단의 주 진입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고개 정상까지 주택과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고개로서의 모습은 없어지고 교통 요충지로 변하였다.

이곳 장림고개에서 횡단보도를 통해 도로를 건넌 후 우측에 SK다대로주유소를 두고 직진의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의 바위군락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의 능선으로 가파른 절개지를 타고 오르며 산행은 이어지고 있다.

 

 

공단을 만들기 위한 절개지인지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파란 철조망이 나타나고 그 철조망을 넘어 좌측 등로로 오르니 장림고개에서 다대로주유소를 통해 정상적으로 올라오는 정상 등로를 만나 좌측 봉우리를 향해 올라 가 본다.

등로 좌측으로는 감천만의 많은 철강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봉화산에서 감천만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초입은 공단지대를 조성하는지 산을 통째로 잘라내 넓은 공터를 만들어 놓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개발 논리가 있겠지만 그래도 자연보호란 대 명제를 염두에 두며 최소화된 개발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마루금을 타고 오르니 저 멀리 체육시설이 있는 나즈막한 봉우리에 도착을 한다.

체육시설이 있는 봉우리에서 직진 방향으로는 봉화산 정상인듯 보이는데 그 어디에도 표시가 없으니 그저 짐작으로만 확인 할 뿐이다.

정상 낙동정맥 마루금은 이곳 체육 시설이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어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며 이어지고 있다.

힘들어 하며 뒤따르는 종주대를 기다렸다 다시 한 소그룹으로 진행하는 시간이 되였다.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낡은 띠지 하나가 바닷바람에 팔락거리고 있다.

다가가 살펴보다 깜짝 놀라 그곳에서 멈칫해 본다.

오래된 온누리산악회 띠지가 그곳에 걸려 있고 바닷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에서 소속된 산악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래 전 그저 산이 좋아 산악회에 들었다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해 새롭게 탄생된 온누리 산악회에서 지낸지 벌써 5년이 넘어가고 그 빛바랜 띠지 하나에 그 5년 세월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이 작은 산객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고 있다.

어느 산우님이 달아 놓은 띠지일지 궁금한 시간이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한동안 완만한 내리막 마루금을 걸어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앞에는 낡은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그 1차선 포장도로 우측으로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제법 많은 차량들이 통행하는 소음이 들리기도 한다.

다시 그 1차선 도로를 가로 질러 건넌 후 나즈막한 봉우리를 향해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가 본다.

이제 기나긴 낙동정맥 산행도 막바지에 다달은 느낌이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무명봉을 넘으니 다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더니 곧바로 저 멀리 구평가구대단지가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묘지를 지나 밭의 가장자리를 타고 진행하니 임시 관광버스 주차장이 나타나고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산마루식당 앞에서 종주대를 만나 한그룹으로 진행한다.

이제부터 사라지고 잘려진 낙동정맥 마루금을 타고 어려운 산행을 이어가야 하는 곳이기에 조금 더 신경을 쓰며 천천히 이어가 본다.

 

산마루식당을 지나 다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진행하다 도로 우측 아래를 내려다 보니 저 멀리 사하쪽 공장지대와 아파트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곳 넘어 낙동강 하구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그곳을 지나니 저 멀리 김해가 눈에 들어 오고 마지막 남은 낙남정맥이 눈에 아른거리는 시간이다.

계속 도로를 타고 진행하니 조금씩 가구 공장과 플랭카드가 자주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하고 구평가구단지 입구에 도착을 한다.

이곳부터 정상적인 맥 산행은 무의미해지고 그저 마루금을 잇기 위한 길찾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구간이다.

 

구평가구단지 입구에서 입구로 들어가기 직전에 좌측 골목길로 진입해 들어가면 도로 좌측에 월드유리 및 대경정밀이란 공장이 있는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우측 도로를 타고 오른다.

도로 좌측에 천하지기 및 우측에 애기보살 간판이 보이고 우측에 가나안포장 입구를 지나면 광진산업과 동진포장 및 대흥사 간판이 있는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좌측 도로를 타고 진행한다.

도로 좌측에 연화식당과 동서식당을 지나면 GT 산업을 지나 삼거리에서 이제는 좌측 내리막 도로를 타고 내려간다.

도로 좌측에 성신포장과 창대산업 간판이 보이고 도로 우측에 유진씽크 간판이 보이는 옆 전봇대에 준.희님이 달아 놓은 낙동정맥 아미산 몰운대 화살표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빛나고 있다.

지면을 빌어 감사한 마음 전하는 시간이다.

 

골목길을 타고 잠시 더 내려가니 두송로 144번길 아래 95번이 나타나고 유진부엌가구공장을 지나면 도로 좌측에 공장지대를 두고 우측에는 콘크리트 옹벽을 타고 계속 내리막 도로를 내려간다.

도로 좌측으로 은광산업사가 보이고 조원공업사를 지나면 도로 저 아래 좌측으로 국제그린 아파트 단지들이 눈에 들어 온다.

다시 나뭇가지에 준.희님이 붙여 놓은 낙동정맥 아미산 몰운대 이정표가 반갑고 그곳을 지나니 다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내려가다 황단보도가 있는 곳에서 도로를 건너 계속 진행하던 방향으로 전진한다.

 

횡단보도 위에는 다송초등학교를 알리는 노란색 간판이 보이고 도로 우측에 초등학교로 진입하는 입구도로가 보인다.

계속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도로 좌측 저 아래로 신다래 아파트 단지가 나타나고 계속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나타나는 4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사거리에 육교가 보여 그곳을 통해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넌다.

4차선 도로를 육교를 통해 건넌 후 직진 방향의 2차선 도로를 타고 계속 오르니 저 멀리 도로 우측으로 서림사 간판이 서 있는 옆으로 돌 계단이 나타난다

그 계단을 타고 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이곳 사거리가 바로 다대고개로서 사하구 남쪽 다대포를 끼고 있으며 북쪽으로 장림동 및 감천동과 접해 있고 나머지는 해안으로 둘러싸여 있다.

다대포는 지리적으로 좋은 조건을 가진 포구여서 예로부터 다대진이라고 불렀는데 다대포의 지명은 다대진에서 유래하며 한국 문헌보다 일본 역사책에 자주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이 한일통교상의 중요지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다대고개는 다대동에서 유래한 고갯마루임을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돌 계단을 올라 바위 옆에서 잠시 쉰 후 다시 시멘트 도로를 타고 오르니 바로 코 앞에 서림사가 자리하고 정맥 등로는 그 서림사 들어 가는 입구 직전에서 우측으로 우회하며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잠시 서림사에 들려 돌아 본 후 오르고 싶었지만 두 다리가 힘들다며 그냥 진행하자 속삭인다.

이제 한동안 나무가 박혀 있는 가파른 계단을 타고 등줄기와 이마에 땀방울을 흘려 본다.

그렇게 오르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잠시 흐르는 땀방울 닦으며 살펴보니 정상 등로는 우측 오르막 마루금이다.

다시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한참을 더 올라간 후에야 드디어 오늘 마지막 봉우리인 아미산 정상부에 도착을 한다.

 

중앙에 거대한 탑이 서 있고 가장자리 한쪽에 응봉봉수대 설명판이 서 있으며 남쪽 쇠봉에는 아미산 234미터란 정상 이정표가 붙어 있다.

응봉봉수대는 부산광역시 다대포 해수욕장의 뒷산인 아미산, 일명 두송산(해발 234미터)에 위치한 봉수대로서 동쪽은 구봉과 서쪽은 성화 예산 봉수대에 연락하였다고 전해진다.

1530년(중종 25년)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처음으로 사용된 시기는 알 수 없는데 이 곳은 당시의 다대포와 서평포진을 내려다보며 낙동강 하구일대와 몰운대 앞바다를 한 눈에 감시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 지금도 석축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성종 이후에 방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76년 봉수대 복원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석기류가 발견되었는데 출토 유물은 편평양인석부 2점과 편평편인석부 4점 및 석착 1점 그리고 숫돌 2점으로 신석기 시대 분묘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봉수대 복원으로 가로 15미터, 세로 6미터 규모의 축대가 마련되었으며 그 내부가 평탄화되었고 내부에 직경 1.5m 정도의 노지를 마련해 놓고 있다. 

다만 사하구의 아미산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이곳에서 종주대들과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낙동정맥의 마지막 산줄기가 남해 바다로 빠지는 모습을 한없이 내려다 보며 지난날의 추억을 생각해 본다.

 

아미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바로 아래 고층 아파트촌이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좌측에는 두송반도가 그 끝자락을 바다에 숨기고 있다.

가운데에는 다대포항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수많은 선박들과 건물들이 자리하고 그 끝자락에 작은 숲을 이룬 다대포항이 가슴을 적시고 있다.

그 우측 저 멀리에는 오늘 이 산객이 400여 킬로미터의 거리를 1년에 걸쳐 걸어 내려와 그 마무리를 해야 하는 다대포 몰운대가 아쉬운 마음을 담아 그 끝자락을 남해바다로 이어주고 있다.

더 걷고 싶어도 걸을 수 없는 그 마지막 마루금을 바라보는 작은 이 산객의 마음도 그 산줄기를 따라 바다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시간만 자꾸 흐르고 있다.

그래도 다시 일어 나 내려가야 하기에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을 접고 배낭을 둘러 멘채 다시 천천히 아미산 정상부를 내려가 본다.

 

 

아미산에서 내려오니 직진의 방향으로 아미산 전망대가 있지만 오늘은 마음도 몸도 모두 지치고 힘들기에 그냥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는 정상 마루금을 타고 천천히 내려가 본다.

멋진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그 등로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박혀 있는 그런 등로를 타고 한동안 내려가니 이제 몰운대가 바로 코 앞에 펼쳐지는가 싶더니 능선을 내려 와 고층의 아파트들이 즐비한 홍티고개에 도착을 한다.

홍티마을은 다대1동에 있던 자연마을로서 홍치마을 또는 무지개마을이라고도 부른다.

다대포에서 동쪽 능선을 무지개 고개라고 하며 홍티굴은 안장림과 다대동 사이에 있는 굴이다.

무지개고개(홍티 또는 홍치),홍티굴 주변에 있는 마을이라서 홍티(홍치)마을이라 불렀고 그 홍티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홍티고개라 불렸다.

홍티마을은 주로 이씨가 20가옥 전후로 살았으며 김양식을 위해서 다대포에서 이주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그 홍티마을의 비포장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그 임도를 타고 계속 진행을 한다. 

 

홍티고개 이정표에서는 우측의 대건아파트쪽이 아닌 좌측의 체육공원쪽으로 진행을 하면 임도 우측으로 거대한 롯데캐슬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고 처음에는 그곳으로 들어가 잠시 헤매였지만 금새 다시 뒤돌아 나와 넓은 시멘트 임도를 타고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한다.

롯데캐슬 아파트 단지쪽이 원 낙동정맥 마루금이지만 지금은 개발이 되어 들어가 진행하기가 어려워 아파트 단지 외곽을 돌고 돌아 원 정맥 마루금을 찾아가는 퍼즐찾기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조금 더 내려가니 도로 좌측에 약천사가 자리하고 그 약천사를 지나자 마자 우측의 밭이 있는 곳의 좁은 골목길을 타고 내려가니 조성아파트 뒷동산을 통해 아파트 뒷공간의 어린이 놀이터로 내려간다.

 

어린이 놀이터를 가로질러 그 끝자락에 있는 좁은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조성아파트 뒷공간의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전진하니 좌측으로는 조성아파트가 우측으로는 콘크리트 옹벽이 있는 사잇길로 진행을 하게 된다.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조성아파트 정문으로 나가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좌측 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그곳에 조성아파트 정문이 나타나고 옆에는 거대한 간판 하나가 서 있다.

그 조성아파트를 정문을 통해 나와 다시 나타나는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계속 진행하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조성아파트를 나와 우측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며 바라보니 도로 우측에는 조성아파트가 자리하고 좌측으로는 상가와 민가들이 줄지어 서 있는 형국이다.

계속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다시 거대한 몰운대 그린비치 아파트 단지들이 나타나고 한동안 그 몰운대 그린비치 아파트 내를 돌고 돌아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다 응봉초등학교로 오르는 도로를 타고 정문을 지나 사거리를 가로 질러 진행하니 다시 삼거리 갈림도로가 나타나고 좌측으로 내려갔다 만나는 사거리에서는 우측으로 돌아 그린비치 113동과 102동 사이의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한다.

 

다시 만나는 삼거리 갈림 도로에서 좌측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도로 우측으로 성원상떼빌 아파트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나는데 그 입구를 지나 계속 직진을 한다.

내려가니 왕복8차선이 지나는 넓은 포장도로를 만나 횡단보도를 통해 그 도로를 건넌 후 다시 우측으로 도로를 타고 계속 진행을 한다.

도로 좌측으로 다대포해수욕장 가는 이정표와 몰운대 이정표가 보이지만 그곳 좌측으로 빠지지 말고 계속 하단 및 신평과 장림산업단지쪽으로 직진의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한다.

 

계속 도로를 타고 직진의 방향으로 걸어가니 우측 도로 건너편에는 높게 치솟은 성원상떼빌 아파트가 서 있고 그 바로 아래 도로에는 공사가 한창이라 도로를 막고 있다.

걸어가는 도로 좌측으로는 거북낚시와 월드피싱 그리고 장어구이 간판들이 보이고 그곳을 통과해 계속 전진하니 다대포해수욕장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니 원모텔이 보이고 그 앞을 통과해 진행을 하니 가마솥추어탕을 지나 거대한 아리랑식당이 보인다.

그 아리랑 식당이 있는 곳에서 도로는 우측으로 꺽어 진행되고 정맥 마루금은 아리랑식당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나 있는 좁은 시멘트 도로를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곳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우리 종주대가 이용하고 있는 대형버스가 보이고 그곳에 배낭을 풀어 놓고 간식을 먹으며 종주대를 잠시 기다려 본다.

 

그곳 버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종산제를 지낼 용품들을 들고 진행하던 방향으로 계속 진행을 하니 도로 좌측으로 종산제 후 맛난 생선회로 식사를 할 버드나무집을 지나 진행하니 횟집들이 즐비한 바닷가를 통해 몰운대 이정석이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해 잠시 미어지는 가슴을 안고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몰운대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있는 경승지로서 부산광역시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16km 떨어진 다대곶 동편에 있다.

다대곶 일대는 해류의 영향으로 짙은 안개가 끼어 시야가 자주 가려지기 때문에 몰운대라 하였다고 한다.

16세기 이전 몰운대는 섬이었다가 점차 낙동강에서 밀려온 토사가 쌓여 육지와 연결된 것으로 추측한다.

이곳은 대마도와 가까워 일본과 교역하는 주요 해상로로 이용되었으며 왜구들이 자주 출몰하여 해상 노략질을 일삼던 곳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선봉장으로서 이곳 앞바다에서 전사한 녹도만호 충장공 정운이 이곳 지명을 듣고 구름운과 행운운이 같은 음인 것을 따라 내가 이 대에서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으며 정운의 순절을 기리는 유적비가 있다.

1983년 북한의 무장간첩선이 이곳으로 침투하다 괴멸되기도 하였는데 최근에도 몰운대 최남단은 군사보호지역으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다.

언덕 전체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지만 예전에는 동백나무가 울창했던 곳이다.

이곳부터는 차량 통행이 불가능 하기에 걸어 다대포객사를 지나 몰운대 끝자락까지 걸어 가기로 한다.

 

몰운대 빗돌을 지나 포장도로를 타고 완만한 오르막 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정상부쪽 화순대 오르는 이정표와 우측으로 관리사무소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곳에서 관리사무소쪽 우측 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 올라간다.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진 아름다운 도로를 타고 한동안 걸어 올라가니 도로 우측에 다대포객사란 빗돌과 객사가 보이고 잠시 사진 몇장 남기며 역사 공부를 해 본다.

부산유형문화재 제3호인 다대포객사는 정면 5칸과 측면 2칸의 팔작 홑처마지붕으로 언제 지어졌는지 제작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25년(순조 25)에 중수되어 지금에 이른다.

건물의 용도는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하여 망배를 드리는 데 사용하거나 사신들의 숙소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안두리기둥 위에 절단된 대들보를 놓은 5량집이며 벽이 없다.

본래 다대초등학교 교정에 있던 것을 1970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고 1980년에는 기둥과 마루를 보수하고 단청공사와 현판을 설치하였다.

이것은 이 지역에 남아 있는 유일한 객사 건축물이다.

다시 그 다대포객사를 지나 걷다보니 군부대와 자갈마당이란 이정표가 서 있는 넓은 공터를 통해 자갈마당쪽으로 더 걸어 들어간다.

 

그렇게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몰운대가 끝나는 마지막 지점에 도착을 하지만 군부대 초소가 흉물스럽게 서 있고 철조망이 감겨 있어 아쉬움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는 시간이다.

그래도 그 초라한 군부대 초소를 지나 끝자락에 도착을 하니 양식장과 등대 그리고 쥐섬이 이 산객의 가슴에 파고들며 그동안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눈가를 촉촉히 적시고 있다.

몰운대의 몰운섬을 이루고 있는 산으로 해발 78미터이다.

구릉에 가까운 산으로 산정부분이 둥그스레한 종순형으로 되어있고 사면 또한 완만하나 산기슭의 끝부분은 낭떨어지기의 단애를 이룬다.

산전체가 짙은 송림으로 덮혀있고 이 때문에 몰운산은 두송산 및 금티산과 함께 조선시대에는 경상좌수영 관할의 봉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또한 옛부터 경승지의 하나로서 이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앞바다는 절경중의 절경으로 이른바 다대 8경 중의 하나인 몰운관해는 바로 이곳 산에서 바라다 보이는 전경에 해당된다.

무엇이 그리 좋아 그 험하고 먼 길을 걷고 또 걸어 이곳에 왔는지...

말로는 표현을 할 수 없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뭉클함이 있으니 바로 그 뭉클함을 위한 긴 여정은 아니였는지...

 

몰운대 끝자락에서 시간을 보내며 많은 추억을 남기고 다시 뒤돌아 잠깐 내려오니 등로 좌측으로 해변가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이고 그곳을 통해 드디어 다대포 몰운대 바닷가에 서서 바닷물에 손을 닦아 보는 시간이다.

몰운대는 전형적인 육계도로 낙동강하구 최남단에 위치하여 16세기까지도 몰운도라는 섬이었으나 강 상류에서 운반된 토사의 퇴적으로 다대포와 연결되었다.

몰운대의 남단은 파도의 침식으로 해식애와 해식동이 발달하였고 배후의 수려한 사빈해안이 해수욕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몰운대는 예부터 우거진 숲과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 출렁이는 창파, 수려한 사빈으로 빼어난 경승지로 이름나 있다.

몰운대란 지명은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끼는 날에는 이 일대가 기류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데서 비롯하였다.

몰운대의 지형은 학이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멀리서 바라보는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노래한 시동래부지에 전하고 있다.

몰운대의 아름다운 자연절경은 해안변의 기암괴석과 수목으로 그 빛을 더해주고 있다.

몰운대는 임진왜란 당시 부산포 해전에서 왜선 500여척과 싸워 100여척을 격파하고 큰 승리를 거두었을 때 이순신장군 함대의 우부장으로 큰공을 세운 녹도만호 정운장군이 선봉에 나서서 끝까지 적선을 쳐부수다가 순절한 사적지로 유명하다.

모든 종주대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많은 추억을 남기며 마지막 종산제를 위한 준비를 해 본다.

종교나 믿음과는 관계없이 그동안 1년동안 고생한 낙동정맥 산행의 마침표를 찍는 의식을 치르는 자리로서 의미가 있는 시간이다.

 

이렇게 산신령에게 길고도 멀었던 낙동정맥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 할 수 있게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무거웠던 마음을 내려 놓는다.

때로는 폭설로 인해 또 때로는 차가운 가을비로 인해 그리고 또 1년을 돌아 솟아지는 폭설로 제대로된 산행을 이어가기 조차 힘들었던 시간이였지만 소수의 종주대들이 한마음 하뜻으로 뜨거운 열정 하나로 그 고단한 시간을 잘도 견디어 줬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힘들게 마무리하게 된 이 시간에 감사를 드리지만 갑자기 사경을 헤매고 계시는 어머님의 병환으로 인해 마음 놓고 그 즐거움을 만끽도 하지 못한채 목감기에 걸려 참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도 지난 주 일생 일대의 가장 중요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멋지게 마무리했기에 종주대 여러분들과 몰운대 바닷가 횟집에서 탁배기 한잔으로 그동안의 노고에 대해 회포를 풀어 보는 시간을 만들어 본다.

 

즐겁게 식사까지 즐긴 후 가거대교로 향하는 길목에 어려운 일을 당한 친구님 큰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고 그 사이 찬란했던 하루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가기에 그냥 서울로 복귀하며 대장정의 마무리를 해 본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길 바라며 그동안 함께 고생하며 즐겼던 모든 종주대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고마운 인사를 함께 드림니다.

 

모두 좋은 추억으로 남겨진 낙동정맥 산행이길 바라며 대단원의 산행 후기를 마무리 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