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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완료)/낙동정맥(완료)

낙동정맥 제18구간 주남고개에서 부산 지경고개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2.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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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남 양산시와 부산시의 낙동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2년 01월 13일과 14일 (무박 2일 토요 산행)

산행날씨 : 산행하기 좋은 기온과 날씨속에 조망이 좋았던 날씨

산행온도 : 영하 04도에서 영상 08도

산행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낙동정맥 종주대 14명과 함께

산행코스 : 주남고개-남양홍씨수목원 빗돌-이동통신중계탑-안적고개(영산대학교 갈림 삼거리)-811.5봉 삼각점-짚북재 갈림 삼거리-나무계단-천성산 제2봉(812봉, 천성산 비로봉)-미타암 갈림 삼거리-은수고개-화엄벌 억새지대-화엄늪 습지보호 지역-원형 철조망-원효암 갈림 이정표-임도-능선 진입 후 임도 복귀-원득봉(723봉)-용천지맥 분기봉-임도-부대 정문-원형 철조망-596.6봉-신기산성 갈림 삼거리-방화선-범고개-운봉산(군지산, 534.9봉)-조망바위-운봉재-갈림 사거리 통신탑-건강하세요 표지석-437봉 표지석-창기리 갈림 삼거리-73번 송전탑-74번 송전탑-299.4봉-임도-군지고개(유락농원 고개)-시멘트 임도-104번 송전탑-225봉-묘지-조경수-시멘트 임도-형제목장-남락고개(1077번 4차선 지방도로)-마루축산-시멘트 임도-50번 송전탑-탱자나무 울타리-능선 삼거리 갈림길-284봉-전망바위-대나무 밭-녹동육교-경부고속도로 통과-부산 지경고개-산행종료,  산행종료 후 양산시 밀양 돼지국밥식당에서 저녁 식사 후 귀경

산행거리 : 약 20.50 Km (접속구간 00.00 Km)

산행시간 : 사진 찍고 휴식 취하며 꾸준한 속도로 11시간 00분 (05시 40분부터 16시 40분까지)

            후미가 약 1시간 이상 알바로 산행 종료 시간 연장됨

 

낙동정맥이란 ???

낙동강의 동쪽을 따르는 산줄기로 동해바다를 가르는 한반도 동해안 지방의 담장이다.

백두산에서 남으로 힘차게 뻗어내려 금강산과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내려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천의봉(매봉산,1303봉)으로 솟아 오르기 전 1145봉 직전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하여 태백 백병산(1259봉), 통고산(1067봉), 울진 백암산(1004봉), 청송 주왕산(720봉), 경주 덕석산(829봉), 울산 가지산(1240봉), 신불산(1209봉), 부산 금정산(802봉)을 지나 백양산(642봉)을 넘어 낙동간 하구인 다대포 몰운대에서 끝나는 약 397 Km의 산줄기를 낙동정맥이라 한다.

낙동정맥 중에서 최고봉은 태백의 백병산으로 그 높이는 1259미터이다.

 

 

개발과 도롱뇽을 통해 자연보호란 대 명제를 생각하며 걸었던 낙동의 마루금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지난해 연말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갑자기 솟아지기 시작하는 폭설을 뚫고 서울을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고 깊은 잠에 빠졌다 일어나 보니 3시간 동안 안성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점점 더 눈이 쌓이고 고속도로 위에 있는 버스는 작은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미 낙동정맥 산행은 불가능해졌고 서울로 복귀하고 싶지만 함께하는 종주대들은 중부지방의 산이라도 올랐다 내려오자 부탁하여 잠시 고민하지만 역시 오늘 같은 날은 안전을 위해 서울로 복귀가 현명하다는 판단에 곧바로 사당으로 돌아 와 소위 사당지맥(?)을 아침까지 이슬이와 나누고 집으로 돌아 와 아쉬움을 달랬던 시간이였다.

 

그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3주 후 좋은 산행 조건과 함께 종주대와 다시 그 마루금을 걷기 위해 떠나는 시간은 한 해가 바뀌고 또 새로운 희망과 출발을 꿈꾸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번 구간 산행은 또 다른 세상과의 소통을 꿈꾸며 몇년전 온 나라를 시끄럽게 뒤흔들었던 개발과 도롱뇽이란 동물을 두고 자연보호란 대명제가 강렬하게 충돌했던 곳이기에 다시 한번 가슴에 남겨지는 많은 것들을 기대한 그런 산행이기도 하다.

 

올 임진년 한해에도 낙동정맥 종주대 개개인들과 가정 그리고 국민 모두가 희망찬 출발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 그런 멋진 한해가 되길 바라며 제18차 낙동정맥 산행 후기를 정리해 본다. 

 

 

2012년 새해는 이 산객에게도 좋은 일들이 많이 기대되는 희망찬 한 해의 출발이기에 먼 길 떠나는 발걸음도 가볍게 출발하지만 그 동안 하지 못한 산행으로 인해 마음의 부담도 함께 공존하는 시간이다.

그래도 무탈하게 시작한 산행은 천성산 제2봉을  넘어 임도에서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아침해를 만나면서 흥분의 하루를 시작해 본다.

하루가 아닌 2012년의 산뜻한 출발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막힘없이 가깝게 다가오는 강렬한 아침 햇살이 종주대 가슴마다 새로운 희망과 꿈을 담아 주길 바라며 각자의 소망을 빌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수많은 일출을 만났지만 오늘 아침처럼 새롭게 다가오며 강렬한 느낌을 준 아침해에 대한 별 기억이 없기에 평생의 추억으로 남겨지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종주대의 인원이 줄면서 대형 버스가 아닌 25인승 버스를 타고 먼 산행지를 가고 오다 보니 불편함이 많지만 그래도 이번 구간처럼 접속구간이 있는 곳에서는 그 접속구간을 미니 버스로 이동할 수 있어 많은 도움도 받고 있다.

영산대학교에서 낙동정맥 산행 출발지점인 주남고개까지는 약 2.5 Km의 시멘트 임도가 나 있고 산행시간은 약 30분에서 40여분 소요 된다는데 오늘 종주대는 편안하게 25인승 미니 버스를 타고 낙동정맥 들머리인 주남고개에 안전하게 도착해 산행 준비 후 출발하는 시간이 정확히 아침 5시 40여분이다.

약 3개월 전 영남알프스의 신불산에서 영축산 구간에 하얀 억새가 활짝 피어 있던 시절에 홀로 어렵게 올랐다 내려 온 주남고개는 이제 어둠속에 한겨울 삭풍만 휘몰아 치는 황량한 고갯마루로 남아 있고 다시 맥 잇기 산행을 위해 찾아 온 종주대를 쓸쓸히 맞이해 주고 있다.

 

왜 주남고개일까 생각하며 자료를 찾아 보니 정확한 의미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이곳 마을 이름이 주남리이기에 그 이름을 따 붙여진 고갯마루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주남리는 삼한시대에는 우시산국이였는데 신라시대에는 우풍현으로 고려시대에는 흥려부라고 하였다가 다시 울산군이라 개명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울산군 서면이던 것을 웅촌면으로 명명했다가 한말(1896년)에 와서 웅촌면을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분할할 때에 용당리와 더불어 그의 경계로 하면서 양산군 웅상면으로 편입되고 1917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안터, 사기점, 중마을, 당산, 담디(뒤)를 병합하여 주남리라 하였다.

이곳 주남리에는 주남리도요지로 유명한데 주남리 천성산 동쪽의 사기점 부락 뒤 쪽 산기슭에 위치한 조선시대 백자 및 분청사기의 도요지이다.

사기점이란 이름은 사기를 구워서 파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일찍부터 이곳에서 도자기를 구어 팔았던 것 같다.

현재는 대부분 논과 밭으로 되어 있어 흔적만 약간 남아 있지만 도자기 파편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시대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회청자 계통의 백자와 분청사기 등이 주로 출토 되었다.
수집된 유물에는 회백색 반투명유가 시유된 백자, 백토(귀얄)분청, 인화분청 등이 있다.

하지만 인화분청의 경우 이 요지의 생산품인지는 최근까지의 조사결과에 비추어 보면 불확실 하다.

기종에는 대접, 접시, 잔 등이 있다.

 

이렇게 맥 잇기 산행을 즐기면서도 그곳 지명과 그곳에서 나는 유명한 자료를 찾아 보는 것 역시 산행 못지 않은 재미로 남겨지는 시간이다.

 

 

넓은 임도로 이뤄진 등로를 타고 주남고개를 출발하니 등로 좌측으로 팔각정이 희미한 실루엣으로 남아 있고 잠시 진행하니 생각보다 춥지 않은 날씨에 벌써 등줄기에선 땀방울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영산대학교에서 올라 와 좌측 임도를 타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니 임도 좌측으로 편백나무를 심어 보호되고 있는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곧이어 남양홍씨수목원 빗돌이 보이지만 그 수목원 모습은 어둠속에 잠겨 전혀 볼 수가 없다.

밤하늘엔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이 내려다 보고 그 한쪽에 반달의 휘황찬란한 달빛이 종주대의 앞길을 인도하듯 밝혀주고 있다.

임도 좌측으로는 양산시 웅상읍의 야경이 참으로 아름답게 빛나던 시간, 잡목들로 인해 그 아름다운 야경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함이 안타까움으로 살아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이동통신중계탑이 희미하게 보이고 임도에는 차량통제 가로막이 보인다.

이곳에서 마루금은 우측 능선으로 들어 진행하도록 되어 있지만 어둠속에 나즈막한 능선을 따라 진행하다 다시 이 비포장 임도와 만나기에 오늘은 그냥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양산시에서 산이름을 개명하며 옛날에는 천성산 비로봉이라 하던 곳을 이제는 천성산 제2봉이란 이름으로 개명한 흔적이 이정표에 나타나고 그곳 정상까지의 거리는 약 3.6 Km 남아있으니 한시간 30여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계속되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임도 좌측 발 아래로는 계속되는 웅상읍 쪽 야경이 환상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상 마루금인 임도 우측을 올려다 보니 생각보다 높지 않은 나즈막한 야산에 자라고 있는 잡목 사이로 하늘이 언뜻 보이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하니 임도 우측에 띠지들이 나풀거리고 다가 가 살펴보니 능선으로 진행하던 마루금이 다시 이 임도와 만나는 경계 지점에 많은 띠지들이 걸려 나풀거리고 있는 모습이였다.

그곳을 통과해 전진하니 임도 좌측으로 영산대 하산 갈림길이 있는 이정표가 서 있고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안적고개이다. 

안적고개 역시 그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아쉬운 시간으로 남겨 본다.

 

 

안적고개 이정표를 살펴 보니 임도 우측으로는 노전암과 짚북재 가는 표시가 되어 있는데 짚북재는 화엄벌과 원효대사의 전설이 남아 있는 유서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그 안적고개 이정표를 막 지난 지점에서 마루금은 임도 우측으로 나 있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그 능선으로 들어 전진하니 잡목 가지들이 얼굴을 때리며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고 있다.

그렇게 40여분 제법 굵은 땀방울을 요구하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옆에 많은 가지들을 갖고 힘들게 삶을 이어가는 많은 잔가지의 소나무가 눈에 들어 온다.

사진 한장 남기며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보는 시간이다.

 

 

수많은 가지들이 함께하는 소나무를 지나 계속 진행하니 등로 옆에는 작은 이정목들이 보이고 살펴보니 현위치와 천성산까지의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목봉으로 일정한 거리마다 산객들에게 위치 표시 및 거리 표시를 해주는 듯 보인다.

그렇게 진행하던 산행을 이어가니 다시 나뭇가지에 매어 놓은 이정표가 보이고 살펴보니 짚북재 갈림 삼거리이다.

천성산 제2봉까지는 이제 400여미터 남은 지점이다.

짚북재는 원효대사가 89암자에 흩어져 있는 1천 제자들에게 화엄강론을 펼치려고 한 자리에 모이게 하기 위해 짚으로 만든 북을 쳤다고 전하는 곳이다. 

또한 짚북재는 사방팔방으로 길이 모두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많은 산객들이 천성산 산행을 하면서 점심식사를 하는 장소로 많이 이용되는 곳이기도 하다.짚북재를 기점으로 성불암까지 약 2.0 Km, 천성산제2봉까지 1.2 Km, 주남고개 및 노전암으로 이어지는 길목이기도 하고 천성산공룡능선의 끝과 시작의 기점이기도한 곳이 바로 짚북재이.

 

 

 

다시 등로 옆에 세워진 목봉 이정표를 따라 전진하니 잡목 사이 저 멀리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그 등로 좌측으로는 붉게 물들어 가는 동녘 하늘이 너무나 강령하고 아름답게 산객의 가슴으로 파고들며 오랫동안 추억으로 남겨진다.

그 나무 계단 옆에는 다시 짚북재 갈림 이정표가 서 있고 이제 천성산 비로봉인 천성산 제2봉까지는 100미터가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종주대에게 힘을 주고 있다.

한발 두발 나무 계단을 오르며 사진도 담고 동쪽 하늘을 물들이는 강렬한 여명도 담으며 천천히 자연과 하나되는 시간을 가져 본다.

 

 

나무 계단을 올라 뾰족하게 솟아 있는 수많은 작은 바위들로 이뤄진 칼바위 능선을 지나니 천성산 제2봉(비로봉, 855봉)이란 커다란 정상석이 제일 높은 자리에 서 있다.

도착하는 순서대로 그곳 천성산 제2봉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며 불어 오는 한겨울 찬바람에 얼어가는 손을 녹이며 바람이 잔잔해지는 바위 틈에 몸을 녹여 본다.

천성산(855봉)과 원효산(922.2봉)이란 지명을 양산시에서 천성산을 천성산 제2봉으로 원효산은 천성산으로 개칭해 부르고 있다

천성산은 금강산의 축소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고 특히 산정상부에 드넓은 초원과 산지습지가 발달하여 끈끈이주걱 등 희귀식물과 수서곤충이 서식하는 등 생태적 가치가 높은 산이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가을에는 능선의 억새가 장관을 이루며 계곡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내원사가 있는 산이기도 하다.

천성산은 가파른 연봉들 첩첩이요 깊고 깊은 골짜기 굴 같다는 산이다.

웅상쪽에서 보면 깎아지른 듯한 산세가 단순하고 웅장한 홑산인데 양산쪽으로는 힘찬 산줄기를 여럿 뻗어내리면서 그 위에 수많은 암봉을 올려놓았다.

능선들 사이 골짜기들은 암반계류 담소가 즐비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저 표현이 하나도 어긋남 없는 봉만미와 계류미가 다 같이 뛰어난 명산인 것이다.
예전 지도에 천성산이 붙어 있었던 북봉(약 830봉) 일대는 또 억새의 천국이다.

그 천국 여기저기 벌여있는 고층습원에는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꼬리치레도롱뇽과 끈끈이주걱 같은 희귀 동식물이 산다.

T자 모양으로 흐르는 특이지형 법수계곡 상류의 이색지대다.
이땅에서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이름나 있는 정상은 그런 만큼 조망이 뛰어나 영남알프스 아홉 준봉이 하나하나 또렷또렷 보이고 남으로 부산 금정산은 물론이려니와 멀리 김해 신어산, 마산 무학산까지 두루두루 가늠할 수 있다.
천성산이라고 불리게된 인연은 원효대사가 이 산으로 천 명의 중생을 입산시켜 모두 성인이 되게했다는 데서 비롯됐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밥상을 던져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잊지 못해 찾아온 당나라 승려들이라는 설도 있는데 당나라를 가지도 않은 원효대사를 가지고 너무 장난을 친 듯하다.

상봉은 최근까지 원효산이라고 했다.

 

 

바람도 없이 산행하기 좋았던 날씨는 천성산 제2봉에 오르자마자 강한 바람이 불며 얼굴을 얼리고 있다.

정상에서 후미 기다리며 붉게 물들어 오는 동녘 하늘을 바라보니 말로 표현하지 못할 환상의 일출 쇼가 벌어지려 하고 있다.

웅상읍 저 멀리 대운산 자라 옆으로 끝없이 이어진 수평선 위에 용의 모양을 한 구름이 떠 돌고 그 아래 타오르는 태양은 어둠을 서서히 몰아내며 세상을 밝히려 하고 있다.

빛이 모자라 빛의 예술인 사진에는 불빛이 모두 도깨비 불빛처럼 흔들리며 춤을 추고 있지만 그 모습조차 아름다움에 가려 그저 탄성만 지르는 시간이 되였다.

 

 

빛을 최대한 끌어 모아 앞으로 진행해야 할 부드러운 능선과 우측 저 멀리 원효산에서 지금은 천성산 제1봉으로 실질적인 천성산 정상으로 대접 받고 있는 정상을 담아 보지만 군부대로 인해 그 정상까지는 오르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 원효봉 좌측 저 멀리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의 고당봉이 아침을 열고 있는 여명의 빛을 받아 당당하게 그 존재감을 알려 온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우리의 산하이며 아침 일출 시간이다.

다만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이다 보니 천성산제2봉 북서쪽에 위치한 내원사를 담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는 시간이다.

언젠가 시간 내 꼭한번 돌아 보고 싶은 내원사 환종주를 떠올리며 그때에는 자세한 풍경까지 담아 보리라 다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천성산 제2봉에서 일출을 기다리려 했지만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하고 찬바람이 불어 체온이 떨어지며 한기를 느끼기에 천천히 등로를 타고 천성산 제1봉을 향해 출발한다.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잡목 사이를 걸어가다 보니 약간의 빛이 들어 오며 참으로 호젓한 산길이란 생각이다.

내려가다 앞을 보니 천성산 제1봉인 원효봉과 저 멀리 부산의 금정산 고당봉이 여전히 눈 앞에 나타나며 그리움을 부채질 하고 있다.

2주 후면 저곳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며 오늘을 추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진행하다 일출이 시작될 것 같은 마음에 조금은 빠르게 치고 내려가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등로 좌측으로는 넓은 비포장 임도가 지나고 있다.

등로는 우측 은수고개 방향을 타고 내려가야 하지만 오늘같은 날 일출을 보지 못하면 평생의 한이 될 것 같아 넓은 임도를 타고 우측 앞으로 뛰어 올라가 본다.

이제 막 일출이 시작되려는 듯 동녘 하늘은 더욱 붉게 타오르고 오늘 낙동정맥 산행에 참여한 모든 종주대는 자신이 가장 일출을 잘 볼 수 있는 장소를 한곳씩 차지하고 동녘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마음이 급해 넓은 임도를 타고 무작정 뛰어 본다.

원 정맥 마루금은 임도 삼거리에서 우측 내리막 등로인 은수고개로 향해야 하지만 일출이 시작되려는 시간이기에 잠시 맥 잇기 산행을 잊고 일출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를 찾아 각자 최고의 장소를 잡는다.

잠시 기다리니 동해바다인지 아니면 구름인지 수평선을 이루고 그 위로 불타오르듯 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에 몇조각의 구름이 덮어 환상의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모두 넋을 잃고 그 하늘만 응시하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시간이다.

 

 

드디어 구름을 뚫고 붉은 태양이 조금씩 머리를 내밀기 시작하고 그 둥근 해를 따라 종주대의 카메라와 손끝도 움직이고 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가슴으로 마음으로 통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그 무엇을 더 바라고 더 버릴 것인가 생각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 답을 얻을 수 있는 순간이다.

수많은 풍경과 일출을 카메라에 담으며 올 한해의 건강과 사업 번창 그리고 아름다운 산하를 마음껏 오를 수 있도록 산신령님에게 빌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주 만났던 일상의 해들중 하나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그런 느낌이다.

 

 

많은 시간 그렇게 그곳 임도에서 일출을 감상하며 사진으로 담은 후 다시 임도를 타고 은수고개 갈림 삼거리로 내려가며 앞을 바라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천성산제2봉 즉 천성산 비로봉이 우측 저 멀리 멀어져 있고 그 중간 중간에 아름다운 바위들이 자리하며 근육질 남성미를 자랑하고 있다.

막 떠오른 아침 햇살을 받아 찬기운은 사라지고 그저 따뜻한 느낌이 가슴으로 파고 드는 환상의 풍경이다.

 

 

지나 온 천성산제2봉과 마루금을 담은 후 은수고개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내려 와 이제는 등로 좌측의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니 잡목 사이로 난 등로가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고 멋지게 나 있다.

작은 계곡들도 건너고 고드름 빙판길도 넘으며 평이한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니 등로가 우측으로 꺽이며 내려가 넓은 공터가 있는 은수고개에 도착을 한다. 

왜 은수고개인지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아 있는 곳이다.

직진하면 미타암 가는 이정표를 보고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하자는 종주대를 모시고 천성산 원효봉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식사를 하기로 한다.

 

 

잠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우측으로는 빛바랜 억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평편한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우리들만의 상차림을 하고 아침식사를 즐겨 본다.

겨울애 총무님이 준비한 과메기로 이슬이 몇잔을 마시다 보니 준비한 아침식사는 하지도 못하고 아침식사를 마친다.

한시간 가까이 아침식사를 즐긴 후 다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화엄벌 억새지대가 나타나고 이제부터는 급할 것 없이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즐기는 시간이 되였다.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지만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외면 할 수 없어 즐기다 보니 시간은 자꾸만 지체되고 있다.

잠시 억새밭을 지나 오르니 잡목들이 뒤섞여 있고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전 지나온 천성산제2봉과 지난 구간 올랐던 정족산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 조망 위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하얀 구름 역시 한점의 풍경화가 따로 없다.

이곳 저곳에서 감탄하고 서로가 보이는 산 이름을 불러보며 웃음짓는 모습이 행복 그 자체이다.

 

 

등로 우측인 북서쪽으로는 지난 해 가을 지나 온 영축산과 서쪽으로 흐르는 시살등 그리고 염초봉 구간의 산줄기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그 동안 몇번인가 올랐던 곳이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모습이 천차만별로 나뉘는 모습에서 아직도 올라야 할 산들이 많음을 실감하는 시간이다.

그 거대한 산줄기를 병풍삼아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을 내려다 보고 그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송전탑들의 행진도 눈여겨 본다.

멋진 산줄기를 보고 있어 그런지 그와 관련된 모든 풍경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눈을 등로 좌측인 남쪽과 남동쪽을 살펴보니 방금전 떠오른 태양빛에 박무낀 날씨를 연상시키고 다시 끝없는 산그리메가 산객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다.

저 멀리 부산의 장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를 찾아 바라보고 그 좌측으로 돌아 올라가며 동해바를 감싸고 올라오는 산줄기가 멋지다.

아마도 일광산으로 이어진 삼줄기가 북으로 올라오며 더욱 기세를 높여 가까이에 용천산과 백운산 그리고 철마산을 올려 세운 듯 보인다.

강렬한 햇살로 인해 만족스런 사진은 아니지만 이렇게 그 아름다운 조망을 담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시간일 듯 하다.

 

 

다시 주위 조망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어 올라가니 드디어 부러진 콘크리트 말뚝이 서 있고 그곳에서 먼저 오르고 있는 종주대의 뒷모습을 담아 본다.

드넓게 펼쳐진 천성산 정상부 화엄벌은 원효대사와 관련이 있는 곳으로서 이 봉우리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내원사 또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암자 중 하나이다.

종주대들 불러 세워 사진도 담아주고 또 거침없이 펼쳐진 산하를 담아 보기도 하며 이렇게 즐기다 보니 다시 정상부로 올라가야 할 시간이다.

 

                         

 

 

정상부로 조금 더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양산시 웅상읍 장흥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평산리와 덕계리쪽 마을들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그 뒤 산줄기를 타고 우측 남쪽으로 내려가니 사진 한가운데 저 멀리 부산의 장산이 솟아 있고 우측 끝자락에는 다음 구간 올라야 할 금정산 고당봉이 제법 가파른 산세를 거느리고 봄으로도 당당하게 서 있다.

그 산 봉우리 사이로 박무인지 엷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어 마치 신선들이 놀다 갈 법한 그런 장소로 남겨져 있다.

 

 

그러다 다시 카메라 앵글을 북동쪽과 북쪽으로 향하니 영축산과 시살등 산줄기가 가깝고 그 아래 하북면 마을들이 길게 줄지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가까이에는 철 지난 억새 군락들과 잡목들이 올 가을을 기약하듯 그렇게 산들바람에도 흔들거린다.

날씨가 더워지며 약간의 박무 현상은 있지만 너무나 좋은 조망과 풍경에 그저 미소 짓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정상으로 향하는데 종주대 한명이 바위 위에 올라가고 그 모습이 마치 달력 사진에서나 나올법한 너무나 멋진 모습이기에 몇장 남겨 드린다.

참으로 아름다운 산하이다.

박무가 끼면서 깨끗한 조망은 아니지만 저수지와 민가들 그리고 그 뒤로 끝없이 이어진 산그리메가 자꾸만 산객의 발길을 붙잡고 놔 주질 않는다.

 

 

 

즐기며 이야기 나누며 천천히 오르니 저 멀리 화엄늪 습지보호지역 안내판이 서 있고 위쪽으로는 원형 철조망이 2중으로 쳐져 있다.

이곳에서 천성산 정상인 제1봉, 즉 옛날에는 원효산이라 불려졌고 아직도 천성산 원효봉이라 불려지는 정상은 공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오르지 못하고 이곳이 실질적인 천성산 정상으로 대접 받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정상 표시가 없어 아쉬운 시간이다.

이곳 화엄벌의 화엄늪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본다.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과 하북면의 경계에 걸처있는 천성산 남서쪽 능선부 북쪽에 형성된 습지를 말하는데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온 승려 1천여 명을 천성산에서 화엄경으로 교화시켜 성인을 만들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화엄늪의 습지부와 그 주변 지역의 식물상은 66과 164속 190종 40변종 5품종 등 235종이다.

특산 식물로 긴오이풀, 지리고들빼기, 외대으아리, 산미나리아재비, 꽃창포, 정영엉컹퀴, 금강분취, 미역줄나무 등 8종이 분포한다.

습지 식물은 57종으로 잠자리난, 흰제비난, 진퍼리새, 큰방울새난, 방울고랭이, 삿갓사초, 흰개수염, 꽃창포, 앵초, 동의나물, 물매화,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자주이삭귀개, 마주송이풀, 께묵, 동자꽃 등이 분포한다.
동물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참매와 황조롱이 등이 살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포유류상은 총 8과 9종이며, 다람쥐, 청설모, 두더지 외에도 고라니, 멧토끼, 너구리, 들고양이 그리고 환경부 멸종 위기 보호종인 삵이 발견된다.
조류는 총 3목 7과 7종이 존재하며, 천연기념물 제323호인 참매와 황조롱이가 관찰된다.

가장 많은 종은 멧비둘기이며 다음으로 까치, 박새, 노랑턱멧새의 순으로 나타난다.

양서 및 파충류로는 총 3목 6과 8종이 발견되며 쇠살모사와 유혈목이, 참개구리, 무당개구리, 산개구리, 무자치, 아무르장지뱀 등도 있다

화엄늪은 한반도 동남부의 낙동정맥으로 이어지는 해발 1000 미터 내외의 가지산 도립공원 내 천성산 남서쪽 능선부 북쪽에 있는 습지이다.

늪의 크기는 약 150 입방미터이고 습지부는 해발 789 미터에 형성되어 있다.

최근 천성산 동쪽에 철쭉제를 비롯한 행사들로 등산객이 점차 늘어나면서 훼손이 진행됨에 따라 2002년에 습지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화엄늪 보호 구역에 서서 지난 몇년 전 개발과 자연보호란 대 명제의 갈등으로 인해 많은 국력 낭비와 분란을 초래했던 도롱뇽 사건이 생각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천성산 터널하면 먼저 지율 스님이 생각나고 지율 스님하면 환경운동가로서 우리 사회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로 몰살 위기에 처한 도롱뇽을 살려 달라며 2003년부터 2005년까지 4차례에 걸쳐 241일의 단식농성을 벌이던 그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한데 동물을 원고로 한 도롱뇽 소송으로 더 유명세를 탔다.
당시 소장에서 그는 청정 계곡에 사는 꼬리치레 도롱뇽의 생존이 위협받는다고 주장했고 일부 불교계와 환경단체가 가세하면서 환경 파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증폭돼 천성산 공사가 3년간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우여곡절을 겪었던 과거를 우리는 기억한다.

하지만 천성산 터널이 완공된 이후에도 수많은 도롱뇽이 천성산 습지에서 살고 있으며 공사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보고로 인해 이제 도롱뇽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태계에 큰 병화가 없다니 다행이지만 이 산객이 생각하는 것은 그 동롱뇽이 문제가 아닌 정상을 차지하고 몇 십년간 방치되다시피한 군부대가 더 큰 사회적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 그 공군 부대를 등로 우측 정상에 두고 원형 철조망이 2중으로 쳐져 있는 좌측 사면 등로를 타고 군부대 정문이 있는 시멘트 임도로 향하면서 수많은 경고판과 지뢰경고문을 만난다.

참으로 안타까운 시간이며 산행이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철조망을 타고 사면 등로를 진행하니 낙엽진 잡목 사이로 열려 있는 마루금이 생각보다 호젓해 금새 그 안타까움을 달래 본다.

한동안 진행하니 작은 나무다리가 나타나고 곧이어 넓은 임도와 만난다.

그 임도 우측으로는 군부대 통제지역이 그리고 좌측으로는 원효암 내려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플랭카드 펴 놓고 단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사진 한장 남기고 이제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내려가니 앞으로 올라야 할 멋진 낙동정맥 마루금이 환영 인사를 건네주듯 그렇게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596.6봉과 운봉산 그리고 지경고개 넘어 다음구간 올라야 할 부산의 금정산이 그 당당함을 드러내고 있다.

가깝게 보이는 마루금이지만 오늘 산행 날머리까지 걸어가기에는 아직도 몇시간이 더 걸려야 하는 거리이기에 시;간을 체념한 채 그저 한발 두발 여유를 가져보려 노력한다.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 철조망으로 둘러 쌓인 제2가압장 건물이 나타나고 그 옆에 전봇대 하나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 계속 내려가니 저 멀리 임도 우측으로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 한쪽에 간이 화장실도 보인다.

이제 마루금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 공터쪽으로 들어가 간이화장실 바로 직전의 능선으로 들어가 진행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눈 앞으로는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의 고당봉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으로 산객의 가슴으로 파고 들고 있다.

 

 

 

능선으로 들어 잠시 진행하니 다시 등로는 또 다른 임도를 만나 진행하게 되는데 조금 내려가다 보니 임도 좌측으로 많은 띠지들이 달려 있다.

무심코 진행하다 보면 그곳으로 알바하기 쉬운 곳인데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용천지맥 분기점이라 생각되는 곳이지만 어느곳은 원득봉이 용천지맥 분기봉이라 적혀있으니 어느곳이 진짜 용천지맥인지 궁금하다.

용천지맥이란 ???

낙동정맥이 천성산을 지나 금정산으로 남하하면서 원효산 남쪽 1.8km 지점에서 동쪽 원득봉(723봉)으로 분기하여 청송산(584.1봉), 용천산(545봉), 백운산(520봉), 망월산(549봉), 문래봉(511봉), 함박산(457봉), 아홉산(361봉), 산성산(368.9봉), 장산(634봉), 옥녀봉(370봉), 간비오산(148봉)를 거쳐 해운대 동백섬 앞 바다로 내려 앉는 41.5km의 산줄기를 산경표에서는 용천지맥이라 한다.언젠가 한번쯤 올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간이기도 하다.그 용천지맥을 지나 두번째 좌측 능선으로 올라 원득봉을 올며 뒤 돌아 보니 방금전 다녀 온 천성산 정상부와 종주대가 내려 온 마루금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멋진 조망이 터지는 등로를 타고 잡목들과 씨름을 하다 보니 어느새 봉우리 정상부로 오르고 막힘없이 펼쳐진 조망에 환호성이 절로 나는 시간이다.

뒤로 천성산 주봉과 그 우측으로 천성산제2봉 그리고 동쪽으로 대운산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등로 우측으로는 양산시 상북면 마을과 그 뒤로 둘러친 산줄기들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그렇게 오르다 보니 지도에는 없는 원득봉 723봉이란 이정판이 나타나 잠시 주위를 둘러 보지만 특이한 사항은 없다.

 

 

 

원득봉 지나 주위 풍경을 둘러보며 진행하니 높은 통신탑 처럼 보이는 철탑 하나가 서 있고 이곳에서 정맥 마루금은 우측으로 90도로 크게 꺽어 내려가야 한다.

직진 등로 역시 아주 잘 발달되어 있고 많은 띠지들이 붙어 있어 우측의 정맥 등로를 버리고 직진하기 쉬운 곳인데 이곳이 바로 용천지맥 분기봉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곳이였다.

또한 이곳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후미 5명의 종주대가 우측으로 꺽지 못하고 직진의 용천지맥 마루금을 타고 왕복 1시간 이산 대형 알바를 일으키고 그것이 결국 발목을 잡아 산행 후 양산시에서 허겁지겁 돼지 국밥 한그릇 먹고 올라오게 되였다.

그래도 다행으로 아무 탈없이 무탈하게 모두 완주하여 그나마 다행이였던 시간이였다.

우측으로 90도 꺽어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다 앞을 보니 저 멀리 금정산이 보이고 바로 발 아래에는 정맥길을 막고 들어서 있는 군부대 막사와 시설물들이 내려다 보인다.

 

 

 

계속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완만한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임도를 타고 진행한다.

잠시 더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 군부대 들어가는 정문이 나타나고 그 정문을 지나자 마자 반사경이 서 있는데 그 반사경 지나 곧바로 임도 좌측 능선으로 정맥 마루금이 열려 있다.

그곳에서 아무리 후미를 불러보고 전화를 해 보지만 연락은 두절되고 내려오지는 않는 난처한 시간이다.

무전기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어렵게 후미와 전화 통화를 한 후 신기산성 방향의 능선으로 들어가니 완만한 내리막 등로가 열리면서 등로 좌측으로는 원형 철조망이 다시 2중으로 쳐져 있다.

군부대의 출입을 금지하는 철조망처럼 생각되는 곳이다.

 

 

 

등로 좌측 능선이 원 정맥 마루금이지만 군부대가 그 정맥 마루금을 차지하여 군부대 우측으로 우회 등로를 만들어 놓은 형국이다.

2중 철조망을 타고 한동안 진행하니 원형 철조망 군데 군데 지뢰 위험지대 경고판과 안내판이 나타나며 위압감을 주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2중 원형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등로는 잘 발달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중간에 몇번의 갈림길이 있지만 주의를 기울여 찾아 보면 등로를 잃을 염려는 없을 듯 하다.

 

 

 

계속 철조망을 타고 전진하니 철조망이 등로 좌측으로 멀어지고 곧이어 등로 좌측으로 임도가 따라오는 모습이 잡목 사이로 보인다.

이제부터 완만한 등로를 타고 활엽수 낙엽이 깊게 깔려있는 길을 걸어가니 생각지도 못한 호젓함에 즐거운 비명이 절로 나온다.

그렇게 진행하다 보니 등로 위에 콘크리트 구조물들과 지게가 보이고 의아한 생각에 살펴보니 송전탑을 세우기 위한 공사 준비를 하는 듯 보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등로이자 호젓한 맥 잇기 산행이다.

 

 

 

이제 후미를 기다리다 보니 선두는 꼬랑지도 보이지 않게 앞서 도망가 버렸고 후미는 자취도 보이지 않는 시간, 5명의 종주대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중간 그룹으로 진행을 한다.

그렇게 소그룹으로 진행하다 사진 찍는다고 잠시 멈춰서면 다른 종주대는 벌써 저 멀리 자취도 없이 사라지기 일쑤이다.

걷기 좋은 등로를 타고 한동안 진행하니 계속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묘지가 있고 콘크리트 말뚝이 하나 서 있는 596.6봉에 도착해 잠시 벤취에서 쉬어가려 했지만 다른 산객들이 쉬고 있어 목례만 하고 다시 마루금을 타고 전진해 본다.

이제부터 넓은 방화선이 등로를 대신하며 운봉산까지 이어진다.

 

 

 

넓은 방화선을 타고 여유롭게 걸어간다.

높지 않게 내려갔다 다시 오르기를 두어 번 이제 우측으로 신기산성 갈림 삼거리에 도착 해 벤취에 배낭 내려 놓고 시원한 음료수 한모금 마셔 본다.

정맥 마루금은 직진의 다람쥐 캠프 방향으로 진행하면 되는데 우측으로 90도 꺽어 나타나는 신기산성이 궁금해 자료 한번 찾아 본다.

양산 신기리 산성은 경상남도 양산시 신기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테뫼식 산성으로 축성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삼국사기 에는 463년(자비마립간 6)에 왜인이 삽량성에 침입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감에 왕이 그 연변에 두 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673년(문무왕 13)과 687년(신문왕 7)에 삽량주(현 양산)에 축성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처럼 신라는 낙동강 하구를 통하여 침입해 오는 왜인을 막기 위하여 삽량주에 여러 차례에 걸쳐 성을 축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형태는 성곽의 축조는 성황산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안산암 계통의 자연석을 다듬어 장방형으로 뉘어 쌓고 틈새는 작은 할석으로 메웠다.

체성의 축조는 정상부의 외곽을 따라 아래쪽은 편축하고 상단부는 협축하였으나 위쪽은 붕괴되어 성벽의 원래 높이는 알 수 없다.

현재 잔존 성벽의 최대 높이는 약 2미터 정도이다.

이렇게 산행을 하면서 그곳 지방의 역사를 함께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본격적인 방화선 타기의 시작이다.

생각보다 넓은 방화선을 타고 방화선 주위로는 낙엽진 앙산한 활엽수의 도열을 받으며 걸어가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잠시 후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어렵게 진행해야 할 마루금은 잊은채 그저 이 시간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것, 그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달콤하고 아름다운 시간인지 이제사 조금씩 알아가는 것 역시 산에 드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방화선을 타고 계속 진행하니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 넘어 범고개로 뚝 떨어졌다 운봉산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능선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하지만 생각보다 가파른 내리막 방화선이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고 늘어지며 잠시 망중한을 요구하기도 한다.

운봉산 넘어 우측 저 멀리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부산의 진산 금정산이 길게 능선을 이루며 낙동의 막바지를 알려 주고 있다.

참으로 어렵게 진행된 낙동정맥 산행도 이제 오늘이 마무리되면 2구간만 남기고 그 장도를 마칠 것이다.

 

 

 

붙잡을 것도 없이 아주 가파른 내리막 방화선을 타고 내려가는 시간은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런 시간이다.

그래도 내려가며 앞을 보면 운봉산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마루금이 반기니 다행이며 또한 거꾸로 그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는 등산객들이 있으니 내려가는 어려움을 소리 내 알리지도 못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드디어 범고개에 도착을 하고 상수도보호구역 경고판 및 등로 우측으로 부산의 노포동 터미널과 범어사 전철역 안내판이 서 있어 역시 부산임을 실감하는 시간이다.

 

 

 

다시 범고개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가파른 오르막 방화선을 타고 올라 본다.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발걸음이지만 견딜만 한 그런 산행 시간이다.

등로 우측으로 푸른 소나무 군락이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우측으로는 낙엽진 잡목들이 또 다른 겨울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한낮이 되면서 기온도 많이 올랐는지 오르막 방화선을 타고 오르는 등줄기에선 굵은 땀방울이 흐르고 있다.

그러다 어려운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뒤돌아 보니 아름다운 방화선을 따라 지나온 596.6봉으로 이어진 마루금이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방화선을 타고 한동안 오르니 등로 옆에 시멘트 말뚝이 보이고 살펴보니 부산시 경계석이다.

공식적으로 부산으로 진입함을 알리는 시경계석에 가슴이 설레이며 기나긴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흐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시 여유롭게 오르니 만든지 얼마 되지 않은듯 헬기장 하나가 반기고 다시 나즈막한 안부 지나 능선을 치고 올라 뒤돌아 보니 그곳에 풍경화 하나가 놓여 있다.

범고개로 잠시 내려섰던 마루금이 596.6봉으로 치솟아 오르고 저 멀리 천성산 원효봉의 억새밭을 지나 은수고개로 잠시 숨을 고른 후 천성산 제2봉으로 치고 올라간 기나긴 낙동의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 온다.

그저 이렇게 바라만 봐도 아름답고 멋진 우리의 강산이며 낙동정맥 마루금이다.

 

 

 

능선으로 올라 잡목들로 인해 시야가 막힌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금새 운봉산 정상에 도착해 잠시 남아 있는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해 본다.

잠시 낙동정맥 상에 위치한 운봉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본다.

태백에서 남쪽으로 줄곧 내닫던 낙동정맥은 영남알프스 산군을 거쳐 양산시를 동서로 가르며 천성산으로 이어간다.

천성산에서 다시 남쪽으로 뻗은 산릉에 운봉산이 있는데 이 산은 지형도에는 나오지 않지만 부산이나 양산 인근의 산꾼은 물론 낙동정맥을 종주한 사람은 알고 있다.

양산시 명곡동과 법기리의 경계에 자리한 운봉산은 부산의 운봉산악회에서 명명한 산으로서 운봉산악회의 모산인 셈이다.
운봉산은 산세나 산의 생김새는 별 특색이 없지만 지금은 현대중공업산악회에서 정상 표지목까지 세워 놓았다.

이 산과 연계된 동산(289봉)과 성황산(331봉) 역시 지형도에는 표기되지 않은 야산들로서 이 산들은 양산 시민들 외에는 아는 사람이 드물다.

이는 특별히 눈길을 끌 만한 풍광이나 매력을 느낄 만한 요소가 없다는 점도 있지만 주변에 유명한 산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날로 번창하는 양산 시가지를 가까운 곳에서 조망할 수 있고 더불어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보니 조용하고 호젓해서 좋다.

전체적으로 등로가 평이하고 탈출로가 많지만 낮은 산이라고 얕보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반복되는 오르내림은 체력과 지구력을 필요로 한다.

산행 들머리와 날머리에는 오래된 산성과 고분군이 있어 고대사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어 좋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 몇장 남기고 선두조와 함께 추억을 만들어 보는 시간이 또한 아름답다.

정상석 좌측 동쪽으로는 용천산과 백운산 자락이 멋지게 조망되고 그 아래로는 7번 지방도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다.

잠시 쉬면서 알바하고 뒤돌아 따라오고 있는 후미와 연락해 보니 한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것 같아 그곳 운봉산 정상에서 잠시 쉰다는 것이 코를 골아가며 30여분 너무나 달콤한 오수를 즐겨 본다.

1시간 40여분을 기다려 후미를 만나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내려가는 시간은 왜 우리가 이렇게 하나가 되어 산에 들고 오르는 지 많은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순간이였다.

 

 

 

운봉산에서의 많은 추억을 뒤로 하고 이제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많은 전망바위들이 등로를 가로막고 잠시 올라 보지만 조망은 없다.

그 전망바위를 우측으로 우회해 내려가니 저 멀리 비포장도로가 지나는 운봉재에 도착해 잠시 서성이며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운봉재는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와 양산읍 명곡동을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다. 

법기마을은 1860년(철종 11) 이전에는 본의곡이라 불려졌는데 이는 의를 본으로 하는 곳이다 라는 뜻인데 관련 문헌은 없으나 어느 때인지 의와 법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산간에 모여 살게 되면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1863년(철종 14) 이전까지는 본의곡이었으나 1872년(고종 9)에 본의리로 되었으며 그 후 본법으로 바뀌었는데 법기리는 1897년(고종 34)부터 본법과 창기마을이 합쳐져서 지금의 법기리로 불려왔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본법과 창기로 분리되었다.
본법마을의 최초 형성 시기는 법기리 본법 고분군을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데 출토된 토기 등이 5세기 경으로 추정되어 이 때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격적인 형성 시기는 임진왜란 때 단양우씨가 기장에서 난을 피해 이 곳 본의곡으로 이주하여 살게 되면서부터이다.
양산시 명곡동은 확실한 기록은 없으나 마을이 해뜨는 동쪽에 있고 마을 앞의 계곡이 아름답고 맑을 뿐 아니라 소재지에서 뒷골마을이라는 이름도 씻을 겸해서 밝을 명자 고을 곡자를 따서 지어진 명칭으로 추정된다.
본래 양산군 읍내면 지역으로 1831년부터 사인리로 불리워 왔는데 사인리는 조선씨족총보에 의하면 양산김씨 시조인 연이 고려 때 정4품인 통사사인이란 벼슬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이 연고로 사인리로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명곡동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병풍바위를 옛날에 사인암이라고 하였다는 기록도 확실한 사실로 인정되는데 그 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름을 명곡동으로 바꾸었다.
동쪽으로는 군자산(운봉산)이 있으며 그 곳에서 발원한 낙동강 상류의 지류가 마을을 통과해 북부천으로 흐른다.

동쪽으로는 병풍처럼 세워진 골짜기 지역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점차 평탄한 지형과 이어져 있어 시내로 나갈 수 있다.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마을들의 유래이다.

 

 

운봉재 지나 다시 능선으로 들어 전진하니 그곳에는 호젓한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고 참으로 고즈넉하다는 느낌으로 진행을 한다.

걷고 또 걸어도 질리지 않는 낙동의 마루금들, 이제 이 등로도 두번만 더 내려오면 마무리가 되면서 늘 그리움이 쌓여 있는 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등로 옆 잡목 가지를 헤치고 천천히 여유롭게 한발 두벌 음미하며 걸어 본다.

산길을 걸으며 인생을 생각하고 치열한 삶을 잠시 접어 두는 이런 시간이야 말로 인생 최고의 시간이란 느낌으로 걸어가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발 두발 급하지 않고 완만하게 이어진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작은 바위 위에 돌탑을 쌓고 그 위에 건강하세요란 글귀를 써 놓은 395.8봉에 도착을 한다.

감사한 마음 전하고 주위 풍경을 둘러 보지만 보이는 것이 없기에 잠시 묵념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이제 산행도 많이 진행되고 있다.

 

 

다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진행하니 무심으로 걸어가는 시간이다.

복잡하고 거칠게 살아 온 세상을 잊고 이렇게나마 자기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음에 위안을 삼아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다시 여유로운 발길을 이어가니 437.6봉 정상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도 역시 작은 돌탑 위에 437봉이란 작은 글귀가 눈에 들어 온다.

제대로 된 정상석은 없어도 이렇게나마 그 위치를 알려주려는 산객들이 있어 후답자들의 이정표 역활을 해주고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다.

 

 

이제 올라 왔으니 다시 내려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나 산길이나 닮아 있다는 생각이다.

낙엽으로 덮혀 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옆에 73번 송전탑이 보이고 그곳을 통과해 진행하니 능선 삼거리에 도착해 우측으로 90도 꺽어 진행된다.

다시 호젓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74번 송전탑을 지나 299.4봉 정상에 도착해 긴 한숨을 쉬어 본다.

 

 

계속 완만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넓은 공터를 지나 전신주가 눈에 들어 오고 임도를 만나 진행된다.

임도 우측으로는 철조망이 보이고 유락농원 주인이 붙여 놓은 경고문을 따라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진행하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군지고개, 즉 유락농원고개에 도착을 한다.

원 등로는 직진이나 도로 우측으로 고갯마루로 올라 좌측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철조망과 유락농원으로 막혀 있어 도로로 내려가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짧게 진행하면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에 전봇대가 서 있고 그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마루금이 열려 있다.

 

 

가파른 등로를 타고 능선으로 들어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는 유락농원이 자리하고 철조망이 쳐져 있는데 등로 주위 잡목들과 소나무 군락지는 잘 벌목이 되어 있어 산행하고 주위 풍경을 돌아 보는데 아주 유용하게 되어 있다.

잘 다듬어진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오후 햇살이 숲으로 들어 와 또 다른 멋진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다시 계속 아름다운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오래돼 녹슨 철조망이 따라오고 왜 이 녹슨 철조망이 이곳에 있을까 생각해 보니 아마도 농장을 위한 철조망이란 생각이다.

농장으로 들어가 크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 같은 곳인데 옛날에는 동물들의 침입으로 인해 피해를 입어 이렇게 철조망을 두른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진행하니 어느새 다시 시멘트 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짧게 진행하고 다시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임도를 가로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104번 송전탑이 보이고 잘 벌목된 등로를 타고 어려움 없이 진행을 한다.

그렇게 다시 오르락 내리락 완만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다시 시멘트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임도를 타고 내려가 본다.

잠시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임도가 좌측으로 급격히 꺽여 내려가는 지점에서 등로는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며 조금은 빡세게 올라가 본다.

 

 

작은 봉우리 하나를 힘들게 올라 넘으니 다시 등로는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저 아래 여락리 마을이 눈에 들어 온다.

밭 가장자리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 저 멀리 철마산이 우뚝 솟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조금 더 진행하니 많은 묘지들이 너부러져 있는 작은 묘지공원을 지나 밭 둑을 지나니 다시 시멘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진행하며 우측으로 형제목장 올라가는 삼거리를 지나면 1077번 4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남락고개에 도착을 한다.

남락고개와 여락리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눈에 들어 온다.

여락리는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 있는 마을로서 행정구역을 나눌 때 구역별로 나누다 보니 영천, 남락 및 산지가 남았는데 딱히 붙일 이름이 없어 떨어져 남은 곳이란 의미로 낙자와 여를 합하여 여락리라 하여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 옛날 지명은 여락리였으며 또는 마을의 남단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남동쪽으로 떨어졌다는 뜻을 지닌 남락마을의 낙자를 따서 여락리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김녕김씨의 조상인 16대조의 묘를 비롯하여 경주이씨, 남평문씨 등 입향조의 기록으로 보아 남락마을의 성촌 시기는 1500년대로 추정되는데 이 지역은 삼한시대에는 동래에 속했으나 신라에 정복되면서 삽량주에 속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동래현에 속하였으며 1413년(태종 13) 행정구역 개편 시 경상남도 양산군에 편입되어 여락리로 불렸다.
1897년(고종 34)에 동래군에 잠시 편입된 것을 제외하고는 1906년까지 양산군 동면에 속하여 여락리로 있었는데 1907년 경 동면이 상동방과 하동방으로 분리되면서 상동방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면에 속하게 되었고 부산시 북면의 송정동 일부를 병합하였다.
대부분 평지와 남쪽과 북쪽의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송내천이 흐르는 영천마을은 은 남락마을 동쪽에 있는 마을로 수영천이 흐르는데 그 기운이 영묘하다 하여 영천이라 한다.

산지마을은 해발 300 미터 고지에 위치하고 있어 면내 타 지역보다 연중 기온이 4~5℃ 정도 낮아 여름에 시원하고 특히 밤에는 찬 기운이 감돌아 열대야가 없다.

겨울은 다소 춥고 봄은 1주일 쯤 늦게 오는 반면 가을은 1주일 쯤 빨리 온다.

 

낙람고개를 알게 되니 새로 뚫린 도로로 인해 황량했던 고개가 더욱 정감이 가는 지명으로 남아 있게 되였다.

하지만 중앙 분리대가 높게 쳐져 있어 그 락남고개를 통과하는데 애를 먹었던 시간이기도 하다.

 

 

어렵게 4차선 포장도로인 1077번을 높은 중앙 분리대 위로 넘어 건너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 있고 그 좌측에는 마루축산이 자리하고 있다.

잠시 시원한 물을 마시며 버스 기사와 통화 후 정확한 하산 지점을 알려 준 후 다시 그 시멘트 포장 임도를 타ㅣ고 앞에 보이는 높은 송전탑을 보고 올라가 본다.

이제 작은 봉우리 하나만 넘으면 마무리 되기에 발걸음이 가볍지만 그 마지막 봉우리를 오르며 고통을 수반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엔 고통이 살아나는 듯 하다.

 

 

시멘트 임도를 타고 오르니 보리밭이 나타나고 그 보리밭을 우측에 두고 좌측 가장자리로 통과하니 50번 송전탑이 보인다.

그곳에서 지나 온 마루금을 내려다 보니 방금전 어렵게 통과한 락남고개와 지나온 나즈막한 마루금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이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정원수를 키우는 농원을 지나 등로 우측에 탱자나무 울타리가 쳐진 마루금을 조심해 통과한다.

서서히 가파라지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거대한 느티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능선 삼거리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90도 꺽여 진행된다.

운전기사와 전화 통화를 하며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오르니 이마에 다시 굵은 땀방울이 흘러 내리고 녹슨 철조망 문이 있는 곳을 통과하니 바위 위 나뭇가지에 284봉 이정표 하나가 달려 있다.

하지만 잡목과 나무들로 인해 조망이 없기에 곧바로 284봉 정상을 내려 온다.

 

 

정상에서 내려 와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잠시 내려가니 다시 오르막 등로로 변하고 그곳을 힘들게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난다.

바로 발 밑으로 1077번 지방도로가 락남고개로 이어진 모습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나즈막한 마루금을 타고 방화선이 시작되는 596.6봉 넘어 천성산 원효봉과 천성산제2봉인 비로봉까지 거침없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서서히 서산으로 지는 저녁 햇살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마루금에 탄성이 절로 나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나 온 마루금을 살펴본 후 다시 눈을 돌려 북서쪽을 바라보니 곧게 뻗어 내린 경부고속도로가 시원하고 그 저 멀리에는 양산읍의 고층 아파트 단지들도 눈에 들어 온다.

지난 해 2월 폭설이 내리던 날 어렵게 시작한 낙동정맥 산행도 이제 막바지에 도착해 양산과 부산시 경계를 타고 진행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고통속에서도 그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 내려다 보는 이런 시간이 있기에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또 이렇게 걷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몸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정신 세계는 더욱 뚜렷하게 살아나는 기분이다. 

 

 

남서쪽으로는 하루해가 넘어가는 햇살을 받아 다음 구간 어렵게 올라야 할 금정산의 개명봉과 장군봉 그리고 고당봉이 올려다 보인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는 차량들도 무엇이 그리 바쁜지 빠르게들 달리고 있다.

한동안 말 없이 그저 무심으로 내려다 보고 올려다 보는 마음이 아련하다.

이렇게 보고 있으면 치열하게 타투던 세상도 모두 아름다운 것을 왜 그리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아귀다툼을 벌여야 하는지 안타까운 세상살이를 살펴 보기도 한다.

 

 

이제 전망바위를 떠나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저 멀리 아래에서 차량들이 통행하는 소음이 들리고 곧이어 대나무 밭이 앞을 가로 막는다

그 대나무 밭을 가운데를 통해 통과하니 바로 앞에 경부고속도로가 나타나고 그 고속도로를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사면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골프장이 보인다.

조금 더 내려가니 경부고속도로 위를 통과할 수 있는 녹동육교가 내려다 보이고 계속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골프장 정문으로 통하는 포장도로에 내려 선다. 

 

 

녹동육교를 통해 마지막 구간을 걸어가며 발 아래로 뚫려 있는 경부고속도로를 담아 본다.

녹동육교를 건너니 등로 우측에 팔각정이 있고 그곳에 모여 있던 종주대들과 함께 버스로 올라 멀고도 길었던 제18차 낙동정맥 산행을 마무리 한다.

후미의 생각지도 못한 알바로 인해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처음 생각했던 생선 회는 다음 구간에 먹기로 하고 양산시내로 들어가 돼지국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이슬이 몇잔 나누니 또 하루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이제 낙동정맥도 2구간만 더 내려오면 그 장도를 마칠 것이다.

조금 더 많은 산우님들이 참여를 해 40인승 큰 버스로 이동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민족 대명절인 설을 잘 보낸 후 2주 후에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개인적으로는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한 후 낙동정맥이 끝나면 마음 편히 휴가를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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