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충청남도 공주시와 부여군의 금남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0년 06월 16일 (수요일)
산행날씨 : 새벽에 짙은 안개 후 하루 종일 구름낀 흐린 날씨
산행온도 : 영상 10도에서 영상 23도
산행인원 : 총2명(칠갑산과 인연)
산행코스 : 진고개-215봉-감나무골 시멘트도로-262봉-가자티고개-됨봉(160봉)-155봉-파평윤씨묘-신앙고개-감투봉 팔각정 갈림 삼거리-송전탑-산성터-청마산 갈림삼거리-청마산 정상(233봉)--청마산 갈림 삼거리-LPG 2.3 Km 이정표-무인산불 감시탑-벌목지대-청마산성-청마고개-왕릉 1.0 Km 이정표-부여사비나성 장대비-석목리 갈림 삼거리-표고 버섯 단지-가나다 SK LPG 주유소-4번 지방도로-야외 표고버섯 단지-무인 삼불 감시탑-금성산(121봉) 통수대-금성산 삼림공원 종합 안내도-무노정-동물이동통로(계백문)-부여군민헌장-시비-국궁장-부여읍내-부여여고-영일루-군장지-부소산성 안내판-수혈주거지-반월루-사자루-낙화암 천년송-낙화암-백화정-낙화암 전망대-고란사-고란사 극락보전-고란약수-부소산성후문-고란사 유람선 매표소-고란사 유람선 승선-구드래나루터 도착-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3.00 Km
산행시간 : 여유있게 사진 찍으며 08시간 15분 (04시 50분부터 14시 05분까지)
백제의 숨결을 느끼며 구드래나루터에서 또 하나의 맥 잇기 산행인 금남정맥을 마무리하며
눈 덮힌 산하에 첫발을 내딛으며 진안의 주화산에서 시작한 금남정맥도 이제 그 줄기를 감추는 백마강 구드래나루터에 서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백제의 흥망성쇠를 간직한 부여땅에서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새로운 많은 인연들을 만들고 또 고운 추억을 남겼던 산줄기였기에 마감하는 시간이 즐거움보다는 아쉬운 마음으로 남겨지지만 언젠가는 또 웃으며 만날 수 있는 기대가 있기에 모든 것 털어버리고 그저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 들일 뿐이다.
금남정맥
백두대간 마루금의 영취산에서 서쪽으로 갈라진 금남호남정맥 산줄기가 주화산에서 그 줄기를 분개하여 남으로는 호남정맥을 이루고 다른 하나는 북으로 이어져 금남정맥이란 줄기를 만들었으니 그 산줄기는 주화산에서 왕사봉과 대둔산 그리고 계룡산을 지나 부여의 부소산에서 그 맥을 다하는 산줄기의 옛이름을 말한다.
산악회를 따라 진행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여의치 못하면 늘 하던대로 홀로 오르는 산행으로 마무리를 생각하며 올라본다.
구드래나루터 주차장의 어둠속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택시를 이용해 산행 들머리인 진고개로 이동하기전 잠시 둘러보지만 한치 앞도 분간 못하는 칠흙같은 어둠이 모든 것을 감추고 날이 밝으면 다시 오라 한다.
시작이 있으면 늘 마무리를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니 그것을 따르고 있을 뿐인데도 그 마무리가 되면 늘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오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오늘은 그 아쉬움 대신 그저 즐겁고 행복한 마무리만을 생각하며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출발한다.
오늘은 혼자가 아닌 또 다른 산친구인 인연 아우가 함께하는 마지막 구간이 되였다.
이 산객과는 생활이 다르고 하는 일도 전혀 다른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아우이지만 몇년전 산에서 만나 산친구가 되면서 조금은 가까워진 산친구가 되였다.
처음 시작도 함께 하였으니 마지막 구간도 함께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동안 많은 사연들이 스쳐 지나갔기에 이렇게 단둘이 오게된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해 본다.
오랫만에 머리에 헤드렌턴을 착용하고 산행 들머리인 진고개 799번과 64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길목에서 증명 사진 한장 남겨본다.
가파른 절개지를 치고 오르니 완만한 등로가 열리고 공주의 대표적 과일인 밤나무 단지에서 밀려오는 짙은 밤나무꽃 향기가 어둠속에서도 산객의 코끝을 자극한다.
발밑에선 밤새 내린 이슬이 잡목과 잡풀에 내려 잠들었다가 잠을 깨우며 지나는 이방인인 산객의 온몸에 흩뿌리고 있다.
금새 온몸에 비가 내린듯 축축히 젖어오고 높은 습도로 인해 이마에선 벌써 굵은 땀방울이 샘솟듯 흘러 내리지만 기분만은 상쾌하게 또 다른 하루를 열어 보는 시간이다.
161봉에 올라 밤나무 단지 사이로 조금씩 엷어지는 어둠을 헤치고 앞으로 올라야 할 마루금을 어렵게 담아본다.
그리곤 너무나 강렬한 밤꽃 향기에 취해 진행하지 못하고 잠시 쉬면서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니 등로 우측으로는 축사 건물들이 희미한 불빛을 반짝이며 서 있다.
혼자가 아닌 둘이기에 쉬엄 쉬엄 이야기 나누며 진행하려 했지만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조금 더 속도를 내다 보니 생각보다 숨이 거칠어지고 옮기는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다시 엷은 안개로 보이지 않는 조망과 등산화를 적시는 이슬로 인해 더욱 무거워지는 발걸음을 느끼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이 숨가쁘게 진행하니 금새 몇개의 봉우리를 넘어 우측으로 감나무골이 있는 시멘트 도로에 도착한다.
산행 시작한 후 채 한시간도 못돼 이곳까지 왔으니 둘이 진행한다 해도 참으로 빠른 발걸음이다.
이렇게 진행하다간 점심때도 못돼 백마강에 도착을 할지 모른다는 괜한 불길한 예상(?)까지 드는 시간이다.
다시 가파른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완만한 등로 위에 아름답게 나 있는 마루금이 인상적이고 그 위에 살포시 내려 앉아 있는 안개가 또한 산행의 묘미를 더해준다.
그렇게 한동안 오르니 262봉 직전에 우측으로 나 있는 등로 위에 잘려진 나무토막 하나가 정상 등로는 좌측으로 꺽어 진행해야 한다며 잘 인도해 주고 있다.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 내려가며 다시 오르락 내리락 몇개의 봉우리를 넘으니 금새 정상에 관리가 되지 않은 묘지가 하나 있는 무명봉에 안착한다.
홍성산꾼들이 달아 놓은 아크릴 판만이 등로를 알려주고 있지만 아무 표식도 장소도 알려주지 않으니 그저 금남정맥 등로만 확인 할 뿐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다.
한동안 숲속을 거닐다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그 벌목지대와 잡목으로 남아 있는 등로 좌측 사이에 짙은 안개가 넘어 흐르며 환상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벌목지대를 한동안 타고 진행하다 181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를 지나지만 인식도 잘 하기 힘든 봉우리를 넘으니 다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가자티고개에 도착한다.
가자티고개 절개지 위에 도착해 아래를 살펴보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절개지 좌측 길건너에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 있으며 그 도로 좌측에는 전봇대가 우측으로는 모래적사함과 철조망 끝나는 지점이 보인다.
절개지에서 곧장 내려가지만 철망을 열 수 없어 자꾸만 좌측으로 진행하니 시멘트 도로 바로 맞은편에 문이 열리는 철망 하나가 나타난다.
살펴보니 절개지 위에서 좌측으로 편안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다 모래 적사함이 마주 보이는 지점에서 곧바로 내려오면 쉽게 이 철조망 문을 만날 수 있다.
시멘트 도로 진입부 우측에 모래 적사함과 철조망이 끝나는 폴대를 두고 열려있고 등로를 타고 다시 우측으로 진행하며 절개지 가운데 부근으로 이동하니 좌측 능선으로 등로가 연결되어 있다.
다시 그늘속 등로를 타고 한동안 진행하니 됨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에 도착하지만 우측 직진 방향으로 진행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은 나뭇가지 하나를 제외하면 별 특징이 없어 다시 좌측으로 꺽어 계속 진행하니 가끔 선답자들의 산행기에서 언급되였던 파평윤씨 묘지 4개가 나란히 존재하는 곳에 도착해 정상 등로로 진행되고 있음을 인지한다.
파평윤씨 묘지를 지나 다시 아름다운 등로를 타고 진행하며 장난기가 발동해 어린아이처럼 산행을 즐겨 본다.
너무 빠르게 진행하였는지 고통스러웠던 몸도 많이 풀려 이제 조금씩 마지막 금남정맥 산행을 즐겨보는 것이다.
그러다 잠시 주춤거리는 안개속에 앞으로 올라야 할 마루금을 담아 본 후 조금 더 전진하니 참으로 환상적인 소나무 등로가 열려 있다.
말이 필요 없이 그저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이며 등로이다.
다시 한동안 그늘속으로 아름다운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나즈막한 봉우리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187봉 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하지만 안개가 온 세상을 막고 있으니 그것을 확인하기엔 역부족으로 이미 신앙고개를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안개로 인해 분간 못하는 사이 아직 신앙고개를 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이럴때 가끔 아주 가끔은 GPS의 필요성을 느껴보지만 지나고 보면 다시 내 자신을 믿는 믿음이 강하기에 금새 잊어 버리고 만다.
그렇게 지도와 나침판을 확인하면서 진행하니 우측으로 잠시 벌목 지대가 나타나는가 했는데 금새 신앙고개라 생각되는 임도와 만난다.
그 신앙고개를 넘어 다시 나즈막한 오르막을 타고 진행하니 좌측으로 감투봉 팔각정까지 2.01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오랫만에 만나고 다시 190봉을 넘어 그림같은 등로를 걸어 본다.
그리곤 다시 우측으로 벌목지대 지나 저 멀리 안개속에 몇동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농장지대가 나타난다.
상금리쪽이라 생각되는데 지도를 보니 어지러운 도로가 깔려 있는 마을로서 그곳이 잘 조망되는 정상부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앞쪽으로는 앞으로 올라야 할 송전탑과 184.9봉이 나란히 보이고 그 좌측으로 저 멀리 청마산도 희미하지만 그 모습이 드러난다.
아침 식사 후 다시 조금은 활력나는 그러나 무거워진 몸뚱아리 이끌고 완만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를 지나니 이제 감투봉 팔각정이 3.05 Km로 멀어졌다는 이정표를 다시 만난다.
제법 잘 정돈된 이정표들이 진행하는 등로를 밝혀주니 그래도 산행하는 길이 편안하다.
다시 넓은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으로 바뀐 등로를 타고 오르니 아침을 먹으며 190봉에서 봤던 송전탑이 나타난다.
그 아래를 통해 계속 완만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잠시 넓은 공터같은 장소가 나타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더 전진하니 그 옛날 이곳 역시 성이 아니였을까 하는 184.9봉 이라 생각되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많은 돌들이 정상부를 감싸며 무너져 내린채 그 옛날의 영광을 추억하는 듯 하다.
그렇게 웃으며 함께하는 인연 아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하니 드디어 LPG 이정표가 나타나고 청마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한다.
청마산은 정상 등로에서 좌측으로 조금 떨어져 있다는 선답자들의 후기글을 읽었기에 그곳으로 오르지만 그곳에는 아무 표식도 없이 그저 평이한 무명봉과 다름없다.
청마산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돌아 진행하니 금새 청마산 정상에 도착하지만 그 어떤 이정표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청마산은 백제의 도읍지였던 사비도성의 동쪽 높은 산에 산성을 지어 평원의 사비산성을 지키고자 했던 삼국시대의 도성제의 하나로 이해하면 좋을 듯 하다.
하지만 지방자치제에서 청마산 정상을 알리는 정상석이나 이정표를 세워줄 수 있다면 좀 더 많은 등산객들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청마산에서 사진 한장씩 남기고 돌아 내려와 삼거리 갈림길에서 이제 청마산성쪽으로 진행해 본다.
등로 좌측으로는 이제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LPG까지 2.7 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자 임도 같은 넓은 등로를 잠시 따르다 좌측으로 나무 계단을 타고 무명봉으로 오르니 최근에 만들어진 듯한 무인산불감시 초소가 서 있다.
잠시 흐르는 땀방울 닦은 후 다시 넓은 등로를 타고 진행한다.
무인산불감시초소를 지나자 다시 등로 좌측으로 약 20여미터 넓이로 방화선을 만든 것처럼 벌목이 된 지역이 나타난다.
그 벌목된 지역과 잡목 사이의 능선을 타고 완만한 능선으로 오르니 참으로 그 능선이 아름답다.
함께하는 산친구와 이제부터 쉬엄 쉬엄 쉬어가며 천천히 진행하기로 한다.
이제 벌목지대가 끝나는 무명봉에 오르니 잠시 안개가 벗어지기 시작하고 그 사이 지나온 등로를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바로 아래 무인감시초소의 높은 탑이 보이고 그 뒤로 청마산이 아담하게 존재하며 그 청마산 좌측으로 184.9봉도 보인다.
제대로 된 조망을 처음 바라보는 시간이다.
그곳 무명봉에서 잠시 전화를 받으며 쉬어가는 중에 좌측을 바라보니 부여 논산간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있고 두개의 터널도 보인다.
그 터널 뒤쪽으로 올망졸망한 부여의 산자락들도 보이고 작은 마을들과 들판들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제 그 아름다움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하는 시간이다.
떠나려는데 등로 좌측 남쪽으로는 금강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박무속에 희미하게나마 그 존재감을 알려 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야 되겠지...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 모양이다.
부여 논산간 고속도로가 길게 이어지는 그곳을 돌아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한동안 진행하니 그 뒤쪽으로 금강도 함께 따라오고 있다.
그 강줄기를 보고 그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드문 드문 서 있는 소나무 사이로 부여쪽 나즈막한 산줄기와 마을들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잠시 시야가 확보되는 전망대에서 가야 할 능선을 담아 본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야 할 시간이 꽤 남아 있는 나즈막한 금남정맥의 마지막 줄기들이 어서 오라 부르는 듯 하다.
저 봉우리만 넘으면 금새 옛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땅에 닿을 것이다.
한동안 진행하다 보니 등로 좌측 부여 논산간 고속도로 뒤쪽으로 고풍스런 건물들이 보인다.
체마소 우산마을은 아닐지...
돌아 와 자료를 찾아 보지만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아직도 잘 모르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청마산성이 얼마 남지 않은 등로 옆에서 올해 들어 처음으로 나리꽃을 보곤 너무나 반가워 한장 남겨본다.
산행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나리를 만났지만 오늘만큼 반갑고 정다웠던 기억이 별로 없다.
늘 보던 꽃과 달리 올해 들어 처음보는 꽃이고 또 오랫만에 만나서인지 반가움도 크게 다가온다.
드디어 청마산성에 도착해 잠시 물 한모금 마셔본다.
사적 제34호로서 지도상에도 없는 명월산에 있는 이 산성은 성주 약 3km의 흙과 돌을 섞어 만든 포곡식 산성이며 현재 서쪽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데 높이 약 4∼5m, 폭이 약 3∼4m 정도이며 동쪽 성벽도 이와 비슷한데 많이 무너졌다.
다른 성들과 같이 내부의 흙을 파서 축성한 관계로 내부는 자연적으로 호가 되었고 이 산성 역시 백제 수도의 동방방위를 목적으로 축조된 외곽산성이다.
청마산성을 돌아보고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는 길은 참으로 아름답고 운치있는 소나무 등로였다.
너무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소나무들이 잘 간벌된 산자락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아름답게 서 있다.
마치 도열해 산객을 응원하듯이 말이다.
그곳 청마산성에서 조금 빠르게 내려오니 드디어 청마고개이다.
우측으로 독쟁이 마을에 많은 가옥들이 보이고 이제 안개도 사라진 세상엔 뜨거운 햇살이 비추고 있다.
한여름 더위가 온몸으로 전해지는 시간이다.
청마고개에서 더위와 햇살을 피해 등로로 들어 능선으로 다가서니 다시 그림같은 등로가 열려 있다.
완만한 능선을 타고 바람부는 곳까지 진행하자 갑자기 등로가 좌측으로 급하게 꺽이며 왕궁가는 이정표가 서 있고 곧바로 장대지 이정표도 보인다.
그 앞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탁자와 의자가 구비되어 잠시 쉬어가며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 본다.
부여 사비나성은 서기 538년(성왕 16)에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겼는데 사비에는 왕성 바깥의 시가지를 둘러싼 나성을 쌓았으며 이것이 오늘날의 부여나성이라 부르는 것이다.
한동안 장대지 쉼터에서 쉰 후 다시 출발하니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쭉 이어지고 그 다음에는 넓은 임도같은 등로가 열려 있다.
그 등로를 타고 한동안 진행하니 간간히 우측 능선으로 진입하는 초입에 많은 띠지들이 나풀거려 들어가 보면 20 ~ 30여미터 진행 해 다시 넓은 임도와 연결되어 있다.
즉 넓은 임도를 타고 그냥 쭉 진행해도 무방하다는 이야기이다.
한동안 진행하니 차량 통행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등로 우측으로 검정 천을 씌운 표고버섯 재배 단지가 나타난다.
어릴적 고향에서 약간의 표고버섯을 재배한 경험이 있는 산객이기에 그 어려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한송이의 버섯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이 필요한지를 알기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여다 본다.
그 표고버섯 재배 단지를 빠져 나오니 등로 우측에 SK 가나다 LPG 주유소가 보이고 바로 앞으로는 4번 4차선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조심하며 횡단보도를 통해 도로를 건너 뒤돌아 보니 주유소가 보인다.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우측으로 조금 돌아 버스 정류장쪽으로 진행하니 석목정류장으로서 좌측으로는 논산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부여시내로 들어가는 곳이다.
그 버스 정류장 가기 직전 좌측 능선으로 등로가 연결되어 있다.
능선으로 오르니 잠시 시원한 그늘속 등로가 이어지더니 금새 등로 좌측으로 운동기구가 있는 쉼터도 마련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노천 표고버섯 재배단지가 나타나고 산객의 어린시절을 회상시키고 있다.
저렇게 세워놓고 있다가 비라도 내리면 산에 올라 모두 넘어뜨려 비를 흠씬 적시고 비가 그치면 다시 세우는 작업이 얼마나 귀찮고 싫었던지...
하지만 그 후 다시 산에 오르면 아름다운 표고버섯이 참나무 한가득 피어 오르는 모습에서 그 고생을 보상 받던 시절을 생각한다.
이제 나무계단을 타고 완만한 등로로 오르니 다시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열려 있고 한동안 그 등로를 타고 진행한다.
이제 가끔 동네 아주머니들이 운동하기 위해 오른 모습도 보이고 몇명이 모여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벤취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멋진 등로로 한참을 타고 진행한다.
그렇게 천천히 주위 풍경을 음미하며 진행하니 금성산 정상에 도착하고 그 정상에 서 있는 통수대에 올라 부여 시내를 돌아 본다.
금성산을 중심으로 서쪽에 부산이, 동쪽에 오산이 2㎞씩 떨어져 일직선상에 놓여 있어 이를 삼산이라 부르는데 삼산의 정상부에는 봉화대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성지를 만들었던 흔적과 건물지가 남아 있다.
특히 일산이라 불리기도 한 금성산 정상에는 백제 전역의 각 산성에 송수신을 담당하는 통수대를 세워 외적의 침입이나 내란이 발생하였을 때 군사 행동의 지시와 통제 및 총괄하였다는 곳이다.
이처럼 일산을 중앙에 놓고 부산과 오산이 좌우에서 보좌하는 형태로 도성 내부의 상황을 잘 전망할 수 있고 멀리 가림산성과 익산 미륵산성까지 조망할 수 있어 위치상 매우 중요했던 것으로 보이는 곳에서 잠시 쉬면서 역사를 배워본다.
통수대에서 바라보니 부여읍 외곽들이 보이고 넓은 농경지도 내려다 보이지만 나무들이 자라 생각보다 조망이 좋지는 않다.
그래도 앞으로 올라야 할 능선 저 멀리 부소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주위를 말없이 흐르는 금강이 자리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도 참으로 수도로서 좋은 장소가 아니였나 생각되는 부여이다.
통수내에서 내려와 잘 정비된 등로를 타고 내려오니 금성산 산림공원 종합안내도가 서 있고 주위에는 운동 시설들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쳐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무노정이 보이고 잠시 들려 본다.
편액으로 걸려있는 시한수가 아름답다.
무노정에 오르니 백마강이 굽이치고 눈앞에 궁남지는 옛 백제무왕의 정이 그리네.
떠가는 저 구름은 백제의 한인가 지는 해에 산비둘기 옛 가지에 찾아드네
다시 그늘진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부여의 옛 가옥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금새 동물이동통로가 나타나고 그 아래 계백문이란 터널이 서 있다.
부여 가탑리와 쌍북리를 연결해 주는 4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동물이동 통로를 지나니 부여군민헌장비와 시비들이 등로 주위에 널려있고 이제 시멘트 도로를 타고 진행하니 금새 작은 언덕에 도착하지만 그곳 정상 등로에는 위험 표시판만 서 있다.
그곳을 지나 진행하니 다시 국궁장으로 이용되는 건물 한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국궁터가 그곳에 서 있다.
이제사 왜 그곳이 위험지역 이였는지 이해가 되는 시간이다.
국궁장 건물 뒤로 돌아 오르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다시 고개넘어 진행하니 좌우측으로 갈리는 삼거리가 나타난다.
부소산 위치를 보면 우측으로 진행하는 것이 맞을듯 싶지만 그곳으로 잠시 가 보니 등로가 어렵게 되어 있는듯 하여 좌측 시멘트 도로를 타고 부여 시내를 돌아 부여 도서관 앞으로 진행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살펴보니 아까 만났던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돌아 내려오는 길이 정상 등로였음을 깨달지만 어짜피 부여 도심을 돌아 내려오는 길이기에 그냥 진행한다.
부여 도서관에서 다시 조금 더 진행하니 부여여고 입간판이 보이고 좌측 골목으로 돌아가니 그곳에 부여여고 정문이 보인다.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 건물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돌아 오르니 교실 뒷쪽에 수도꼭지가 마련되어 있고 그곳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며 세수를 해 본다.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긴 후 은행나무 뒤쪽으로 돌아 올라 좁은 길을 타고 오르니 다시 숲속으로 등로가 나 있고 곧바로 부소산 오르는 넓은 임도와 연결되어 있다.
그 넓은 임도를 타고 한동안 진행하니 초등학생들의 재잘 거림이 들리고 물어 보니 해남동초등학교에서 수학여행을 온 꼬마들이다.
서울 경북궁을 들렸다 용인 에버랜드로 간다며 들떠 있는 표정에서 다시 어린시절을 회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한동안 넓은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좌측으로 삼충사 이정표가 보이지만 귀찮아 포기하고 영일루로 진행한다.
백제 때 축조된 부여 부소산성의 동대에 유존하던 건물지에 홍산문루를 옮겨와 세웠는데 이곳에서는 청마산성이 멀리 바라다 보이며 남쪽으로는 백마강 건너 백제 때의 부여 성흥산성과 구룡평야가 조망되는 영일루는 백마강 기슭에 있는 부소산(106봉)의 동쪽 산봉우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공주 계룡산의 연천봉(739봉)이 아득히 바라다 보여 해맞이를 하던 곳이라는 영일루를 지나자 곧바로 군창지가 나타난다.
백제때 군수물자를 보관하던 장소라니 믿어지지 않지만 터만을 봤을 땐 그럴만한 곳이란 생각도 든다.
다시 잠시 넓은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부소산성 안내판과 빗돌이 서 있다.
부소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왕성으로 백제 시대에는 사비성으로 불렸고 부여군 부여읍의 서쪽에 금강을 낀 부소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둘레는 대략 2.2km, 면적은 약 74만㎡에 달하는 산성이다.
부소산성은 부소산 정상에 테뫼식 산성을 쌓은 후 주변을 포곡식으로 쌓은 복합 산성으로 부소산성 주변에는 다시 청산성과 청마산성 등의 보조 성이 있으며 남쪽에는 성흥산성의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과거의 군수품 창고 터 등이 남아 있으며 그 외에도 낙화암과 고란사 등이 있다.
부소산성 안내판을 지나자 수혈주거지가 나타난다.
수혈거주지는 원래 강물의 범람을 막기 위한 제방이 축조되어 있던 곳으로 제방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던 중에 발견된 건물지로서 조사 결과 사비시대 유물포함층과 우물지 1개소, 구상유구가 발견되었으며 제방 내부에서도 사비시대 건물지와 수전, 도로유구가 확인되었던 것을 발굴하면서 보존한 곳이다.
수혈거주지를 지나 다시 완만한 내리막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좌측으로 반월구가 나타난다.
부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반달 모양으로 부여를 감싸고 흘러 내리는 금강을 따라 서 있는 부소산 남쪽에 있는 루이다.
참으로 조망이 좋은 장소이다.
반월루에서 내려다 보니 부여읍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아마도 이런 풍경을 조망하기 위해 세웠는지 아니면 한자 뜻대로 반달을 보기 위해 세운 정자인지 모르겠지만 밤에 올라도 참으로 운치있는 부여 야경을 구경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이제 정맥 산행이 마지막이고 또 정상 등로를 걷는다는 것이 무의미 하기에 고도 백제의 수도였던 사비성과 부소산을 더듬으며 역사를 배워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금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사자루에 오른다.
부소산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달구경을 했다는 송월대가 있던 곳을 개산루를 옮겨 지으며 사자루라 하였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사자루에서 내려와 조금 더 진행하니 천녀송과 백화정이 보인다.
그 옛날 백제 마지막 왕이였던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패하자 3000궁녀와 함께 낙화암에서 백마강으로 몸을 던져 숨졌다는 낙화암에 이 백화정을 지어 원혼을 달래려 했다는 설명이 깃들여 진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금강도 4대간 사업으로 인해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남아 있고 고란사 유람선 선찾장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금강의 노란 황톳빛이 세월의 흐름을 말없이 바라보며 생채기가 난 아품을 말하는듯 하다.
그래도 도도히 흐르는 강물은 말없이 흐르고 그 가장자리에 여행객들을 태워 나르는 목선이 한폭의 그림으로 남아 있다.
목가적인 풍경이 한없이 이곳에 머물다 가라 하지만 떠나야 하는 산객이기에 아쉬운 마음만 내려 놓는다.
다시 낙화암 전망대로 내려오니 마침 구드래나루터에서 출발해 고란사 유람선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배 한척이 백마강 강물을 가르며 도도히 오르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워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가슴으로 느껴본다.
시닝이라면 이곳에 서서 어떤 단어로 이 아름다움을 표현했을지...
이제 마지막 이기에 함께한 인연 아우와 낙화암 전망대에서 증명 사진 한장 남긴다.
이제 금남정맥도 대단원의 막을 내려야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기쁠 것 같았던 마음이 이곳에 서서보니 마치 3000궁녀의 마음처럼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남는것은 무슨 이유인지...
낙화암에서의 아쉬운 발길을 돌려 돌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길은 서울 천호동에서 왔다는 초등학생들 수학여행으로 다시 등로가 붐비고 있다.
아이들 재잘거림을 들으며 진행하니 마지막 천년고찰인 고란사에 도착한다.
부소산 북쪽 백마강이 내려다 보이는 산기슭에 세워진 건립연대도 알려지지 않은 암자...
고란사와 고란초로 인해 더욱 유명해졌으며 고란약수의 전설로 인해 약수 한잔 마시려는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 사찰이기도 하다.
고란약수와 어린이가 된 할아버지 전설이 깃든 곳.
고란 약수에 들려 시원한 약수 한사발로 목마름을 달래고 사찰 주위를 둘러 본다.
그저 이곳에 머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고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다.
백마강에 떠있는 목선들이 고란사 유람선 선착장에 조용히 대기하고 있고 도도히 흐르는 금강 저편에서는 개발의 기치를 올리고 황톳빛 강가를 만드는 광경에서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놔 두웠을 때 가장 좋다는데 어쩔 수 없이 개발을 해야 한다면 최소화하여 오랫동안 아름다운 모습을 보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다시 돌아 올라 구드래나루터까지 갈 수 없어 그냥 이곳에서 유람선을 타고 마지막 구드래나루터로 이동하기로 한다.
평일인데도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목선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미국 그리고 영국등 많은 외국 젊은이들과 잠시 이야기 나누고 있는 사이 일본 TV에서는 역사 탐방이란 이름으로 촬영하기 바쁘다.
그들과도 잠시 이곳 고란사와 낙화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지막 종착지로 이동한다.
이 산객이 타고 나간 목선 백마강호.
젊은 외국 친구들이 사진 찍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어디에나 동일하다.
산행이 아닌 여행으로 들렸다면 또 어떤 감정과 기분일지...
목선을 타고 고란사를 떠나며 그리운 마음에 낙화암과 부소산을 담아 본다.
역사의 비극이 서려 있는 곳
그러나 절대 권력자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역사의 장소에서 또 하나의 맥 잇기 산행을 마무리한다는 것이 다른 정맥과는 달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픈 시간이기도 하다.
구드래나루터에서 목선에 몸을 실고 이곳으로 오고 있는 저 여행객들 마음에는 어떤 감정이 있을지...
저 멀리 많은 대형 관광버스와 구드래나루터 그리고 금강에 외롭게 떠 있는 목선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제 이곳을 떠나면 언제나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을지...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시간이다.
구드래는 금강 나루로서 백제시대에 도성인 사비성을 출입하는 항구와도 같은 큰 나루였으며 구드래라는 이름은 큰 나라라는 말이라는 설도 있으며 백제에서 왕이나 왕족을 칭하던 말인 어라하는 말에 큰 이라는 뜻인 구가 결합하여 만들어 졌다는 설도 있는 곳이다.
백제 사비성의 나루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하여 지난 겨울 시작한 금남정맥도 대단원의 막을 내려 본다.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인연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더 좋은 인연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이 산객의 방문으로 혹시 불편함이나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안겼다면 이 글을 빌어 미안한 마음 전하며 다시 다음 인연을 기다려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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