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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정수지맥(진양·완)

정수지맥 제1구간 소룡산 분기점에서 척지마을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20.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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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남도 산청군과 거창군의 정수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0년 2월 20일 (목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맑고 약간은 무더위를 느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2도에서 영상 9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장박마을입구 장박 버스정류장(59번 신차로 2차선 포장도로와 차황대병로 2차선 포장도로 갈림 삼거리)-59번 신차로 2차선

               포장도로-밀치(소룡 버스정류장, 진양기맥 종주 등산로 안내도)-능선진입-이정표(소룡산 1.6 Km)-전기줄 등로-615.6 바위

               무명봉-정수지맥 분기점(623.9봉) 이정표(소룡산 0.7 Km, 강섭산 2.8 Km)-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

               이정표(소룡산 0.9 Km, 강섭산 1.8 Km)-전기줄 등로-헬기장-소룡산(761봉, 정상석과 육각정) 이정표(바랑산과 세이덤,

               신원면 대현, 소룡산 주차장)-정수지맥 분기점 복귀-582.3 무명봉-560.8 무명봉-폐헬기장 공터-520 삼각점봉(거창468

               삼각점)-486.4 무명봉-길주의(갈림삼거리 좌측)-고제재(1026번 오동로 2차선 포장도로)-비포장임도-밤나무 과수원-567.5

               무명봉-소나무 등로-491.4 무명봉-523.6 무명봉-길주의 지점(고사목 좌측)-길주의 지점(소나무 우측)-513.6봉(이정판)-

               520.4 무명봉-길주의 지점(밑둥 좌측)-무명안부(약초재배단지 철조망)-벌목 잡목구간-송의산 갈림삼거리-

               628.9봉(이정판)-갈림삼거리 복귀-잡목지대-555.7 무명봉-탁고개-매봉(응봉, 599봉, 이정판)-철조망-505.2 무명봉-

               철조망 조우-501.7봉(거송, 벤취쉼터들)-송전탑-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송재(신목)-잡목지대-풍욕대(송개, 이정석과

               거목)-550.8 무명바위봉-바위 우회등로-구인산(584.1봉, 삼각점, 이정판)-길주의 지점(545.2봉, 좌측)-밀양박공 묘지-

               묘지지대-시멘트 포장도로-묘지지대-달임재(59번 친환경로 2차선 포장도로, 천왕봉 전망대, 사각정자)-폐축사-묘지지대-

               436.3 거목무명봉 부리 비포장임도-우회도로-시멘트 포장도로(물안실로631번길)-매곡마을과 경로당-물안실로 2차선

               포장도로-비득재(농막, I&C Farm 농장주 경고판)-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잡목지대-496.5 잔돌 무명봉-밤나무 과수원-

               비포장임도-593.6봉(이정판)-573.2 밑둥 무명봉-응원판-829.1 삼각점봉-831 띠지 무명봉(지도에는 실질적인

               정수산 정상)-829.8봉-묵은 헬기장 이정판(차황정상, 헬기장과 차황)-내수마을 갈림삼거리 이정판(차황정상, 내수마을)-

               잡목지대-이정표(정수산전망대)-정수산(829봉, 정상석) 이정표(척지마을과 율곡사, 내수나믈 4.75 Km, 지리산천왕봉 조망)-

               정수산(841.3봉, 정상석, 가재산?) 이정표(척지마을과 율곡사 경사등로, 척지마을 완만등로, 정수산)-잣나무 군락지-

               척지마을과 도성사 갈림사거리 안부 이정표(율곡사 2.5 Km, 정수산 1.0 Km, 척지마을, 도성사 2.3 Km)-폐축사-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 이정표(정수산 1.3 Km 경사등로, 정수산 1.4 Km 완만등로)-시멘트 포장도로-척지마을-60번 정곡척지로 2차선

               포장도로-척지 버스정류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23.21 Km (장박입구와 밀치에서 척지마을 척지 버스정류장까지)

               지맥산행 - 16.97 Km (정수지맥 분기점에서 척지지맥 갈림사거리 안부까지)

               접속구간 - 04.48 Km (장박입구와 밀치 지나 소룡산 왕복 후 정수지맥 분기점까지)

                               01.76 Km (척지마을 하산 갈림사거리에서 척지마을 척지 버스정류장까지)

산행트랙 :

20200220 정수지맥제1구간 소룡산 분기점-척지마을.gpx
0.47MB

산행시간 : 08시간 47분 (08시 05분부터 16시 52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03시 50분 서울 집에서 애마로 산청버스터미널를 향해 출발

                               07시 20분 산청읍 버스터미널 옆 공용주차장에 애마 주차

                               07시 50분 차황행 산청 군내 미니버스 탑승

                               08시 04분 장박리 장박마을 입구의 장박 버스정류장에서 하차 후 산행 시작

                       올때-16시 29분 척지마을 갈림사거리 안부에서 정수지맥 산행 종료

                               16시 52분 척지마을 60번 정곡척지로 2차선 포장도로 옆 척지 버스정류장에서 산행 종료

                               17시 30분 산청읍내의 여관에 여장 풀고 근처 식당에서 손님과 저녁식사 후 취침

정수지맥이란 ???

정수지맥진양기맥 상 소룡산(761봉) 남쪽 약 0.8 Km 지점이자 밀치(59번도로) 서쪽 0.6 Km 지점인 약 625미터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서쪽으로는 경호강과 남강을 동으로는 양천을 가르며 송의산(538.9봉, 0.9), 매봉(599봉) , 구인산(587봉), 비득재, 정수산(841봉), 둔철산(811.7봉), 마제봉(198.4봉), 적벽산(166봉)을 거처 양천이 남강에 합류하는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원지)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4.7 Km되는 산줄기로 양천의 좌측 분수령이 된다.

 

 

그리웠던 지리산과 웅석봉 및 황매산을 살펴보며 오랫만에 가슴을 뛰게 만든 조망에 즐기며 조만간 만날 것을 약속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또한 정수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상남도 산청군과 거창군 및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와 네이버의 지식백과 및 다음의 백과사전 그리고 산림청과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가능하면 호남지방의 나즈막한 산줄기를 따라 가시잡목이 우거지기 전 많이 걸어 보자고 계획을 세워 잘 진행되고 있지만 가끔은 그립던 조망과 풍경들이 그리웠는데 엊그제 갑자기 산청쪽에 있는 고객으로부터 연락이 와 어렵게 시간 조정을 하면서 주중에 이틀간 산청으로 내려가 산청을 관통하는 정수지맥 산행을 하게 되었다.

등로 우측으로는 지리산과 웅석봉 및 웅석지맥 그리고 연비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좌측으로는 황매산과 월여산 그리고 진양기맥 마루금을 살펴보며 이틀간 명품같은 등로를 따라 완주하고 올라오는 시간은 꿈을 꾸고 있는 듯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남았다.

올 한해가 가기 전 다시 내려가 걸어야 할 웅석지맥이 부르고 오랫만에 다시 들렸던 원지에서의 추억이 가슴을 두드리며 그리웠던 조망과 풍경에 대한 갈증을 풀었던 시간으로 남겨 본다.

 

 

새벽잠을 설치며 먼 거리를 달려 와 계획된 버스를 타고 산행 들머리로 가는 시간은 늘 설레임과 두려움이 공존하는데 이렇게 버스에서 내리면 공포는 사라지고 새로운 산길에 대한 기대감과 완주에 대한 전투력이 상승하며 마음의 평온을 찾게 되는 시간이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함을 느끼며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정수지맥 분기점으로 오르니 등줄기와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하고 잠시 배낭을 나뭇가지 아래 내려 놓고 곧바로 북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소룡산으로 오르니 정확히 6년 전인 2014년 2월 28일 올라 정상석 옆에서 셀카로 추억 한장 남겼던 소룡산 정상인데 기억도 가물거리며 잘 기억이 없어 찾아 보니 아마도 지금은 서 있는 팔각정자 때문에 그런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일망무제로 펼쳐진 황홀한 풍경과 조망에 취해 한동안 정신없이 많은 사진을 담고 잠시 남동쪽을 살펴보니 아주 가까운 곳에 6년 전 아이들과 진양기맥 산행을 하면서 저곳에서 고운 추억을 남겼던 황매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내일까지 저 황매산은 자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에 어떤 면에서는 이정표 역활을 하고 있어 다시 한번 더 자료를 정리해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걱정했던 등로보다도 훨씬 좋은 조건의 마루금을 타고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진행하다 보니 계획된 시간에 이 산줄기의 진산인 정수산 정상부로 오르다 보니 아들이 제주도 한라산으로 친구들과 등산을 간다며 이 산객의 신고 다니던 등산화를 가져 가 새로 산 새 등산화를 신고 갔더니 좌측 엄지 발가락 위 부분에 극심한 고통이 밀려 와 속도는 잊고 걸어가는 시간이다.

잠시 후 정수산 초입부인 829.1 삼각점봉으로 올라 북북동쪽으로 뒤돌아 보니 소룡산에서 가깝게 보였던 황매산이 이제 제법 먼 원근감으로 보이며 우측의 바위암릉이 아름다운 감악산까지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로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많은 추억을 남겨 본다.

 

 

 

 

지도 상 실질적인 정수산이라 되어 있는 봉우리를 넘고 829.8봉을 지나니 묵은 헬기장이 눈 앞으로 다가 온 곳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약간의 조망이 열리면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웅석봉과 지리산 천왕봉 및 중봉 그리고 우측으로 필봉산과 왕산이 한눈에 들어 오고 이곳에서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발걸음 멈춰 한동안 그리웠던 풍경들과 조망을 가슴속 깊이 담아 본다.

저 왕산과 필봉산은 아쉬움을 남겼던 곳이라 다시 한번 더 연계 산행으로 오르려고 하였지만 아직도 필봉산만 다냐오고 왕산은 오르지 못한 곳으로 남아 있어 조만간 가족여행을 겸해 동의보감촌에서 하룻밤 묵으며 다녀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고 제일 좌측의 웅석봉은 조만간 다시 올라 웅석지맥이란 이름으로 걸어야 할 산줄기이기에 그리움이 더 커지는 느낌이다.

오늘 산행 내내 보였던 풍경들이지만 서산으로 해가 기울어져 가며 풀렸던 그리움이 다시 커지고 있으니 얼마나 더 자주 올라야 이 그리움이 해소될 수 있을지 궁금도 해지는 시간이다.

  

 

장박입구까지 가는 첫 버스가 산청 버스터미널에서 아침 7시에 있었는데 장박리로 들어가는 버스만 확인하다 보니 7시 40분 버스를 첫 버스로 잘 못 알게 되어 느긋하게 도착한 산청에서 버스터미널 옆 작은 공용주차장에 애마를 주차 시키고 7시 20여분에 터미널로 가 확인하니 7시 40분 버스가 맞다.

시간이 남아 잠시 편의점으로 가 마실 음료수를 준비하여 사무실로 가 다시 한번 확인하니 7시 35분 쯤 미니 버스가 들어 온다고 해 터미널 주변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산청읍은 경상남도 산청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읍으로 동쪽으로 차황면과 신등면, 서쪽으로 금서면과 삼장면, 남쪽으로 단성면과 신안면과 연접하고 북쪽으로는 생초면과 오부면이 근거리에 있다.

지리산을 서편으로 바라보고 정수산과 둔철산 및 웅석봉으로 둘러싸인 분지를 이루었으며 이 산들을 읍의 경계로 삼았으며 읍의 북서쪽과 남동쪽이 열려있어 남강이 서북쪽에서 와서 읍을 곡류하면서 동남쪽으로 흘러나간다.

1914년에 군내면과 월호면, 월동면, 차천면의 일부를 통합하여 군월면이 되고 지곡면과 수곡면 및 단성군 현내면 일부를 통합하여 지수면이 되었다.

1917년에 지수면과 합병하여 산청면이 되었다가 1979년에 산청읍으로 승격하였고 1988년에는 색동()을 산청리()로 옥동()을 옥산리()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관할 행정구역은 산청리와 옥산리 등 14개 법정리와 31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산행 후 척지마을 앞 척지 버스정류장에서 오후 5시 30분에 회차해 나오는 미니 버스로 다시 산청으로 무탈하게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시간이 되어 차황으로 가는 미니 버스에 탑승하면서 남쪽을 살펴보니 나즈막한 산청의 건물들 넘어 저 멀리 웅석봉과 그 주위 산줄기가 빤히 올려다 보여 눈을 의심하고 다시 몇번인가 확인을 해 보니 분명 웅석봉이 맞다.

오래 전부터 자료를 준비했던 웅석지맥을 올해엔 꼭 걸어 보고 싶어 마음의 다짐을 하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이곳 산청 버스터미널에서 가깝게 올려다 보니 저 웅석봉을 통해 이어지는 산줄기를 하루라도 빨리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깊어지는 시감이기도 하다.

오늘 정수지맥 산행을 하면서도 자주 만나게 될 웅석봉과 그 주변의 산줄기들이기에 그곳에서 바라보는 모습과는 어떻게 다를지 벌써 궁금하기도 하다.

 

 

홀로 미니 버스에 올라 차황방향으로 달리니 차황에서 아저씨 한분이 더 탑승하며 두명이 타게 되었다.

차량 탑승 후 약 23분 후 드디어 장박마을 입구 삼거리에 있는 장박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하고 우측 장박리 방향으로 올라가는 미니 버스를 확인하며 잠시 산행 준비를 하고 좌측 도로를 타고 밀치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니 하루 해가 떠오르며 늦은 첫 버스 시간이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오면서 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장박입구까지 오는 버스는 아침 7시 40분이 아닌 7시 정각에 출발하는 버스라는 소식에 후답자들 중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7시 버스를 이용하면 좋을 듯 싶다.

버스가 진행하는 우측 도로 방향으로 가면 장박리로서 장박리는 경상남도 산청군 차황면에 있는 리로서 옛날부터 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장박(長朴)이라는 이름을 마을 이름으로 사용했고 황매산에 위치하여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장박소류지가 있고 강씨의 소유였다고 하는 강숲산(강촌산)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갈전, 삼거동 등이 있는데 갈전은 삼거동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갈밭이 있다 하여 갈전이라 하고 삼거동은 장박의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세 갈래 길이 있다 하여 삼거리 또는 삼거동이라 하며 장배기 서북쪽에는 고려 때 경주 부윤 김주의 유허비인 김주비와 김주묘가 있다.

산청 버스터미널에서 7시 40분에 출발하는 차황 행 버스를 혼자 전세내어 장박마을 입구에서 하차하니 아침 8시가 막 넘어가고 잠시 산행 준비 후 사진을 남기고 우측의 장박리 가는 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거창으로 가는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밀치로 걸어 오르니 거창에서 산청 방향으로 들어 왔다 회차해 다시 거창으로 가는 버스가 올라 와 어느 방법을 선택해도 좋을 것 같다.

 

 

이제 우측으로 보이는 장박리를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장박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한번 더 배낭을 확인한 후 59번 신차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 신원과 거창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 앞 저 멀리 올라야 할 밀치 안부가 올려다 보이고 그 밀치 좌측으로 정수지맥 분기점과 소룡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을걷이가 끝나 텅 비어있는 논 경작지가 갑자기 어릴적 뛰어 놀던 시골이 생각 나 잠시 눈 시울이 붉어지는데 이제 고향이라고 해도 부모님도 안 계시니 타향과 별반 다르지 않는 고향이 되어 버렸다.

 

 

밀치로 걸어 오르며 진행 방향을 살펴보고 잠시 후 뒤돌아 보니 장박 버스정류장 우측 아래로 장박리 삼거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오랫만에 보는 하얀 연기가 어릴적 추억을 소환하며 동심을 자극한다.

삼거마을은 경상남도 산청군 차황면 장박리 서남쪽에 있는 마을인데 전하는 이야기로는 삼거마을에 살기위해 터를 닦다가 보니 애장이 나왔는데 그 위에 오두막집을 지었다고 하며 새집을 지었다.

지신을 달래는 의미에서 비손을 하였는데 뜻밖에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두개골하나를 물고 나와 아무리 출처를 찾아 보아도 알수가 없어 가져다가 한곳에 묻고 그 집에 살게 되었는 새 집에서 밤이되면 마당에서 말 달리는 소리가 나고 야단서른 소동이 벌어지더니 급기야는 귀신이 나타나서 집 주인을 웃 모래등까지 끌고 가서는 온갖 장난을 쳤다 한다.

견디다 못한 주인이 집을 뜯어 다른곳으로 옮기자 그 뒤에는 아무일이 없었다고 하며 그 뒤에 그터는 밭으로 변했다고 하는데 몇해전 산사태가 나서 밭이 파인곳을 보니 사금파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 삼거마을 뒤 저 멀리에는 잠시 후 걸어 내려가야 할 정수지맥 상 513.6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그 뒤로 보여야 할 539미터의 송의산은 정수지맥 산줄기에 막혀 숨어 버렸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니 생각보다 춥지 않아 등줄기와 이마에선 벌써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고 잠시 후 거창 방향에서 내려오는 버스가 오는데 아마도 선답자들이 말하는 이 버스가 장박쪽에서 회차 해 다시 밀치로 올라가는 8시 20분 버스쯤 되는 듯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올라 밀치가 저 위로 올려다 보이는 곳까지 걸어 오르니 내려 왔던 버스가 다시 뒤돌아 올라오고 지나가는 버스를 사진에 담고 그 버스를 따라 밀치로 빠르게 걸어 오른다.

 

 

버스를 먼저 보내고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드디어 가마솔농원과 신원면 표지석 및 진양기맥 종주 등산로 안내도 그리고 소룡 버스정류장이 보이는데 그 버스정류장 옆으로는 소룡산버섯연구소로 들어갈 수 있는 안내판도 서 있다.

밀치(503미터, 경남 거창군 신원면과 산청군 차황면 경계, 592차서 포장도로, 소룡 버스정류장, 등산 안내도)에 대한 자료는 찾지도 못해 이곳 소룡마을을 찾아보니 소룡마을은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더태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고 소룡산 밑에 세워진 마을이라는 뜻으로 소룡 마을로 불렸으며 임진왜란 당시 함안 지역에서 옮겨 온 밀양 박씨가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정확히 2014년 2월 28일 홀로 이곳을 진행하며 담았던 사진과 산행후기를 읽어 보니 소룡산에서 셀카로 추억 한장 남기고 정수지맥 분기점 이정판도 만나으며 이곳 밀치에서 산행을 중단하려다 일찍 도착해 조금 더 걸어 작은 황매산 넘어 떡갈재에 도착을 해 우측의 마을로 내려가 택시를 이용했던 기록들이 있는데 기억에는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몇번이나 더 확인을 해 본다.

 

 

조각난 기억들을 맞추며 잠시 더 밀치에서 시간을 보내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돠측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능선으로 오르니 소룡산까지 1.6 Km 거리라는 이정표가 서 있고 그곳을 지나 전기줄이 길 안내를 하는 등로를 따라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금적지맥에서 흐르는 전기줄에 혼줄이 났던 기억 때문에 확인해 보니 겨울철이라 그런지 전기는 흐르지 않아 그 전기줄을 넘어 편안한 안쪽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약간의 잡목지대를 지나 바위들이 보이는 615.6미터의 무명바위봉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무명안부 지나 우측에 과수원과 농막을 두고 빤히 올려다 보이는 분기점으로 향한다.

 

 

우측에 과수원과 농막을 살펴보며 걸어 오르니 그 과수원 지나 가까운 곳에 소룡산이 솟아 있고 그 정상 아래에는 거대한 소룡산버섯연구소 건물들이 아름답게 펼쳐 보이기 시작한다.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는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 있는 리로서 월여산 밑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고 마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신원천이 흐르며 비교적 낮은 지대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는 마을이다.

자연마을로 와룡, 소룡, 소야 마을이 있는데 와룡 마을은 소룡산 밑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소룡 마을은 더태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소야 마을은 소룡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잠시 후 올라 6년 전 만들었던 추억도 기억해 보고 또 새로운 추억을 남길 소룡산이기에 몇장의 사진으로 남겨본다.

 

 

그렇게 등로 우측으로 과수원과 농막 그리고 소룡산버섯연구소 건물 위로 솟아 있는 소룡산을 살펴보며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지나 온 방향으로 진양기맥 상 강섭산까지 2.8 Km 거리에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소룡산까지 0.7 Km 거리라는 이정표와 준희 선생님이 걸어 놓은 정수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이 보이는데 6년 전 만났던 이정판과 다른 듯 같은 이정판이다.

추억 남기며 사진에 담고 커다란 나무 뒤에 배낭을 숨기고 편안하게 소룡산으로 향하는데 새로 산 등산화를 처음 신고 와 좌측 엄지 발가락 위에 통증이 발생하여 이틀간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소룡산버섯연구소로 통하는 시멘트포장도로가 갈리는 안부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6년 전에는 보이지 않던 거대한 팔각정자가 서 있고 정상석은 동일한 것이 정상 한쪽으로 밀려 나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소룡산(761)은 셩상남도 산청군의 오부면 중촌리와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 일대에 걸쳐 있어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761미터이며 옛 명칭은 우봉산(牛峰山)이라고 했고 지역의 마을주민들은 우용산이라고도 불렀다.

우봉산 산줄기의 내맥은 덕유산의 지맥이 동남쪽으로 금원산을 거쳐 망덕산에 이르고 망덕산을 기점으로 하여 남쪽으로 뻗는 맥이 망실봉, 덕갈산, 철마산을 거쳐 소룡산에 이른다.

소룡산을 분수계로 하여 동쪽의 신원천과 서쪽의 생초천이 나뉘고 소룡산의 기슭 주위로 여러 자연마을의 취락들이 형성되었다.

조선시대의 주요 관찬지리지와 군현지도에는 우봉산이 표기되지 않았지만 산청군지에는 우봉산이 현 북쪽 30리에 있고 덕유산에서 맥이 와서 오촌(梧村)의 주맥이 되었으며 오촌 홍성해(梧村 洪成海), 둔암 홍대해(遯菴洪大海), 우봉 홍기범(牛峯 洪箕範)의 유적지이다 라고 기록하였다.

중촌리에는 삼현(三賢)의 형제가 은거하면서 학문을 연마하던 자리에 세워진 용산서당(龍山書堂)이 있으며 홍성해(1578~1646)는 임진왜란 때 향병(鄕兵) 수백 명을 이끌고 고을을 지킨 의병장이다.

정상석에서 셀카로 사진과 추억을 남기며 주위 풍경과 조망을 살펴보니 생가보다 좋은 풍광에 한동안 소룡산 정상에 머물며 시간 가는줄 모르게 즐겨본다.

 

 

 

제일 먼저 남동쪽을 살펴보니 몇번인가 들려 고운 추억을 남겼고 아이들과도 철쭉 개화시기에 올라 멋진 추억을 만들어 줬던 황매산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와 있고 그 황매산 우측 아래쪽인 남쪽으로는 감악산 지나 오늘과 내일 이틀간 걸어야 할 정수지맥 마루금 상 정수산과 둔철산 줄기가 제법 높은 고도감을 자랑하며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올해 걸을 계획을 가지고 있는 웅석봉과 그 웅석봉 남쪽으로 이어지는 웅산지맥이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그 우측인 남서쪽 방향으로는 나뭇가지에 살짝 가려있는 지리산 중봉과 천왕봉이 쌍봉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데 약간의 박무가 있는지 희미하기만 해 아쉽기만 하다.

 

 

한동안 더 주위 풍경과 조망을 살펴보고 나무들을 피해 남쪽과 남남서쪽을 살펴보니 내일까지 걸어야 할 송의산과 구의산 지나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산그리메가 펼쳐져 있고 그 우측으로 필봉산과 왕산 지나 지리산 중봉과 천왕봉이 희미하지만 또렷한 모습으로 많은 그리움을 조금은 덜어 주고 있다.

많이도 올랐지만 앞으로 또 알마나 더 올라야 이 그리움이 떨쳐질 수 있는지 다음 등정이 기다려 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서야 저 지리산과 웅석봉에 오르게 되면 이곳 정수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을 것 같아 조금은 마음 편히 즐겨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눈을 북서쪽으로 돌리니 진양기맥 상 바랑산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가깝게 다가와 있고 저 바랑산에 관한 추억을 기억해 보니 6년 전 걸으며 저 바랑산에서 담은 사진을 대표 사진으로 남겼던 기억이 난다.

바랑산은 경상남도 산청군 오부면 중촌리에 있는 산으로 정상부의 높이는 796미터이며 산의 이름인 바랑은 배낭이 변한말이지만 원래는 둥지를 의미하며 바랑산의 모양새가 둥지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바랑산 좌측 뒤로는 매봉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잘린 부분에 철마산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북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월여산이 가깝게 다가와 있고 그 좌측 저 멀리 월현산과 망일산 줄기 지나 희미하게 수도지맥 상 가야산과 오도산자연휴양림에 속해 있는 오도산과 숙성산 및 미녀산이 하나의 봉우리처럼 솟아 있는데 정상부엔 이곳과는 달리 해발고도가 높아 하얀 눈이 뒤덮혀 있다.

월여산은 경상남도 거창군의 신원면 대현리와 합천군 대병면 대지리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863미터이며 무학대사가 금계포란형 명당이라고 하여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광여도(삼가)에 감악산 동쪽에 포천험액 북쪽의 산으로 월여산이 묘사되어 있고 산 동쪽에 부거사도 표기되어 있으며 조선지지자료(삼가)의 율원면(현 신원면)에는 양지리의 산으로 월여산이 기재되어 있다.

월여산 지명과 관련해 마고할미 박랑의 외동딸 월여가 살았다고 하여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산에는 월여와 옥황의 아들 일야의 사랑에 관한 전설이 전한다.

한편 옛날 이곳 주민들이 이 산에 올라 달맞이를 했다고 하여 월영산()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아직 올라보지 못한 미답봉이니 언젠가 꼭 내려 와 다시 저 월여산에 오를 수 있는 기회도 있으리라 생각도 해 본다.

 

 

월여산을 살펴본 후 바랑산과 월여산 사이로 살짝 보이는 능선에 바람개비가 보여 줌으로 당겨보니 감악산 정상부에 설치된 풍력발전 시설들도 보이는데 바람이 센지 제법 잘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감악산은 경상남도 거창군의 남성면 무촌리와 신원면 괴정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952미터이고 북서쪽에서 무촌천이 발원해 북류하며 동쪽의 밤티재와 사부랑이재로 산줄기가 이어지는데 거창의 안산으로 대덕산()이라고도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거창)에 감악()은 군의 남쪽 20리 지점에 있다 라고 수록되어 있고 여지도서(거창)에는 관아의 남쪽 20리에 있고 안음현 덕유산에서 뻗어나온다 라고 하였으며 연수사는 감악산에 있다 라는 기록도 있다.

이후 대부분의 지리지에 산이 수록되었으며 대동여지도(17첩 3면)에 삼가현과 거창현의 경계부에 감악산이 묘사된 것을 비롯해 광여도(거창), 조선지도(거창) 등의 고지도에도 감악산이 기재되어 있다.

산의 이름은 신라시대 감악대사()라는 스님의 이름을 따서 감악산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으며 한국의 산지에서는 산 이름은 거룩한 산, 신령스러운 산, 큰 산의 뜻이 되는 감뫼로 곧 여신을 상징한다고도 하였다.

한편 산이 크고 신원면 북쪽을 가르고 있어 큰 덕이 된다고 해서 대덕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설이 있고 산에 연수사가 있으며 절은 감악대사가 만든 감악사가 빈대 때문에 망하고 고려 공민왕 때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감악산 주위 대부분의 산들은 올랐는데 저 감악산과 월여산만 오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내려오게 되면 꼭 저 두 산을 함께 오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동안 소룡산 정상에서 오랫동안 잊지 못할 멋진 풍경과 조망을 살펴보며 그 이름들을 불러보는 시간은 정말 꿈결같은 시간이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지리산 중봉과 천왕봉, 웅석봉과 웅석지맥, 황매산과 감악산 및 진양기맥, 월여산과 감악산 및 바랑산으로 이어지는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환상의 조망에 다시 정상을 떠나지 못하고 조금 더 머물다 가야 할 거리가 멀기에 아쉬움을 남기고 올라갔던 등로를 타고 내려다가 뒤돌아 보니 빛바랜 억새들판 위로 새로 생긴 팔각정이 파란 하늘에 투영되며 아쉬운 이별의 노래를 불러주고 있는듯 느껴진다.

 

 

소룡산 정상에서 내려 와 좌측으로 꺽어 내려가니 안전철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잠시 후 좌측으로 소룡산버섯연구소 건물과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니 정수지맥 분기점에서 소룡산까지 0.7 Km 거리였다는 이정표는 이곳에서는 더 늘어 0.9 Km로 되어 있으니 믿을 수가 없다.

안부를 지나 비포장임도를 타고 좌측에 과수원과 농막을 살펴보며 오르니 등 뒤로 방금 전 다녀 온 소룡산 정상이 밝게 떠오른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드디어 배낭이 보이고 그 배낭을 메고 올라 정수지맥 분기점에서 마지막으로 사진 한장 더 남기고 빛바랜 억새가 등로 양쪽으로 한들거리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라 남쪽 방향으로 본격적인 정수지맥 산행을 시작해 본다.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한들거리는 억새지대를 통과하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582.3봉을 지나 약간의 잡목들과 잣나무가 보이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걸어 전진한다.

한동안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잣나무 등로를 따르니 큰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560.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넓은 공터에 나무들이 자라면서 관목으로 변한 잡목공터를 통과한다.

그곳을 지나 다시 잡목들과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거창468이란 삼각점이 박혀 있는 520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정상에도 역시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 있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그 520봉 정상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잠시 멋진 소나무와 참나무 등로가 아름답게 열려있고 내려가다 보니 등로 우측으로 송의산 줄기 넘어 저 멀리 정상부에 하얀 눈을 덮고 있는 그리운 지리산 중봉과 천왕봉 정상이 눈에 들어 와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사진에 담는다.

이제 등로 우측 옆으로는 대현리의 대현저수지가 가깝게 다가와 있고 그렇게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고사목이 보이는 486.4 무명봉도 통과하고 이제 조금 더 잡목들의 저항이 심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 앞으로 1026번 오동로 2차선 포장도로가 고제재로 올라오는 풍경이 그림처럼 내려다 보인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지독하게 우거졌던 잡풀들과 덩굴식물들이 말라 있는 한쪽으로 좁은 등로가 열려 있어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철망 사이로 내려갈 수 있는 작은 쪽문이 열려있고 그 아래에는 녹슨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편안하게 1026번 오동로 2차선 포장도로에 무사히 도착을 한다.

고제재(10262차선 포장도로)1026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로서 좌측으로 산청군 차황면 장박리와 우측의 오부면 대현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인데 지명유래에 관해서는 자료가 없어 찾아 보지 못하였다.

차량 통행이 많지는 않은 고제재인지 트럭 한대만 만났을 뿐으로 다시 도로 건너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 직접 오르지 못하고 좌측으로 약간 걸어 내려가니 우측으로 낡은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여 그 도로를 따라 능선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많이 망가진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능선 방향으로 오르니 곧바로 넓은 밤나무 과수원이 펼쳐지고 그 밤나무 과수원 좌측 능선으로 올라 우측 능선 등로를 타고 주능선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이어간다.

주능선으로 오르며 등로 우측을 보니 방금 전 올라 환상의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며 남겼던 소룡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 바랑산이 멀어지는 이 산객을 배웅하고 있는 듯 올려다 보인다.

 

 

 

밤나무 과수원이 끝나는 주능선에 올라 좌측으로 휘어져 진행하니 다시 커다란 소나무와 그 아래 잡목들이 제법 우거져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들어가는데 빛바랜 선답자의 산행 띠지 한장이 반갑게 길라잡이를 해 주고 있다.

작은 바위들이 솔갈비에 덮혀 있는 453.6 무명봉을 지나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또 다른 무명봉을 통과하니 갑자기 잡목이 사라진 명품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어 힐링하듯 걸어 본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진양기맥의 갈전산과 떡갈산 방향으로 부드러운 능선 등로가 보이고 곧이어 무명안부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는 작은 웅덩이와 장박리의 좁은 들판 넘어 저 멀리 황매산이 커다란 소나무 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명품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붉은 띠지가 걸려있는 487.9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봉우리 정상부에는 잘려진 소나무 고사목들이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는 모습도 펼쳐져 있다.

 

 

 

고사목들과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의 붉은 띠지가 걸려있는 487.9 무명봉을 지나 여전히 아름다운 리끼다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는 능선을 따르니 또 다시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491.4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휘어져 완만하게 내려가며 이어진다.

다시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지만 진행에는 전혀 방해를 받지 않아 빠르고 편안하게 전진하니 바위들과 고사목들이 보이는 501.9 무명봉을 지나 점점 더 거칠어지는 능선 등로를 따라 걸어간다.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멧돼지들의 체력단련장으로 이용되었던 소나무 한그루는 이제 그 껍질이 완전히 벗겨져 생사의 기로에서 힘들게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안쓰럽게 다가온다.

 

 

 

멧돼지들의 놀이터를 지나 걸리적거리는 잡목들이 조금씩 더 늘어나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금새 솔갈비가 푹신하게 깔려있는 523.6 잡목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여 제법 앞길을 가로막는 잡목들이 보이는 등로로 들어가 조심하며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소나무에 하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능선 봉우리에는 잘려진 소나무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데 오래되었는지 썩어가고 있는 모습으로 펼쳐져 있는 523.3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좌측으로 90도 이상 크게 꺽어 내려가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데 살펴보니 모두 잘 알고 있는 선답자들로서 난해한 지맥 산행을 하면서 늘 도움을 받고 있어 목례를 하고 통과한다.

잠시 후 잡목들과 널부러져 있는 고사목들이 쓰러져 있는 무명안부를 통과하여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거목의 소나무 몇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516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도 등로가 보이는 길주의 지점으로 약간의 우측으로 휘어지는 직진의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그곳을 지나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금새 513.6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정상에는 내리막 등로가 시작되는 초입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와 함께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어 추억 한장 남기고 산행을 이어간다.

 

 

 

약간 우측으로 휘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하니 잠시 내려갔다 다시 올라 소나무에 하얀 페인트 두줄이 칠해져 있는 무명공터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잡목들을 헤치며 천천히 진행하니 소나무 가지 사이로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소룡산이 보이고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다시 등로 우측으로 진양기맥 상 바랑산과 좌측으로 철마산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 사이로 잘록한 안부 저 멀리에는 매봉도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 앞으로는 대현리와 왕촌리 방향의 아름다운 마을이 조용히 내려 앉아 있는데 이 산객이 어릴적 살던 고향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느낌만큼은 같은 느낌으로 옛 추억을 더듬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좁은 조망을 살펴보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520.4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소나무로 둘러쌓여 있는 좁은 공터봉이다.

그 공터봉을 지나니 꼬불꼬불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듯 보이는 조선소나무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는 멋진 능선 등로가 이어지는데 금새 등로 좌측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 위에 도착을 해 좌측으로 펼쳐진 조망들을 살펴 본다.

처음에는 보이는 산들이 황매산쪽 산줄기라 생각했는데 고도와 모양이 너무 작아 다시 한번 더 지도를 확인해 보니 우측으로 가까운 곳에 구인산이 보이고 지도 중앙부 저 멀리 앞의 나즈막한 정수지맥에서 좌측으로 약간 벗어나 있는 산청의 남산과 그 뒤로 오늘 걸어 넘어야 할 정수산이 보이는데 그 정수산 뒤로 내일 아침에 통과해야 할 둔철산 줄기는 정수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듯 한동안 더 살펴보고 진행 방향을 올려다 보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628.9봉 직전의 584미터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있다.

 

 

 

 

묘지위에서 조망을 즐기고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500.3미터의 잘린 소나무 밑둥이 썩어가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는 그곳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90도 꺽어 벌목된 능선을 타고 가파르게 오르도록 되어 있다.

좌측으로 90도 이상 꺽어 내려가니 무명안부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견고하게 설치된 철망이 나타나고 그 철망에는 약초재배단지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벌목된 후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한동안 걸어 오르니 다시 등줄기와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쉴새없이 흘러 내리고 그 땀방울들을 닦으며 남아 있는 잔설들을 피해 어렵게 오르다 뒤돌아 보니 정중앙에 소룡산을 두고 좌측으로 바랑산이 우측에는 이곳으로 연결되는 정수지맥 분기점에서 시작되는 마루금이 펼쳐져 있고 소룡산 우측 뒤로는 월여산의 뾰족봉들이 얼굴을 내밀며 인사를 하고 있다.

 

 

소룡산 우측 아래로는 작은 황매산이라는 정상석이 박혀 있는 봉우리가 보이지만 그 우측으로 솟아 있을 황매산은 앞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한동안 지나 온 방향으로 조망을 즐기고 여전히 진행이 쉽지 않은 벌목 후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잔설이 남아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이제서야 제대로 된 황매산에서 작은황매산과 소룡산 지나 바랑산과 철마산으로 이어지는 진양기맥 산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데 황매산 정상부를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가리고 있어 옥에 티로 남는다.

그렇게 그 벌목된 잡목 등로를 따라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는데 이곳 정수지맥 마루금은 다른 지역의 산줄기와는 달리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는 키 작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어 진행이 편안하게 느껴지면서도 쉽지 않은 산행을 이어준다.

그래도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소나무와 잡목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608미터의 송의산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송의산 갈림삼거리인 608봉에 배낭을 벗어 놓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낙엽 등로를 걸어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들과 바위들이 혼재되어 있는 도상 628.9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 바위 위에 올라 서쪽을 살펴보니 나즈막한 산봉우리를 지나 저 멀리 오부면을 지나 좌측 뒤로 산행 때문에 두어번 들렸던 생초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좌측 끝자락으로 화장산과 법화산 등 조만간 걸어야 할 연비지맥 마루금도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앞으로 보여야 할 임천은 너무 먼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제 들리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담아 송의산을 살펴보니 생각보다 멀게 느껴지고 그 뒤 저 멀리 연비지맥 마지막 부근인 남강과 경호강이 만나는 합수점 뒤로 화장산과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삼봉산과 지맥에서 떨어져 있는 법화산 그리고 백두대간의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이 산객을 부르고 있지만 저 산줄기는 또 언제나 걸어 볼 수 있을지 궁그하기만 하다.

송의산은 경상남도 산청군의 오부면 일물리와 오전리 일대에 걸쳐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39미터이고 산의 북사면에서 발원하는 계류는 생초천에 합류하며 송의산의 북쪽 기슭과 생초천이 만나는 일대는 농경지가 형성되어 자연마을의 취락이 발달하였다.

조선시대 산청의 주요 관찬지리지와 군현지도에는 송의산에 관련된 기록은 없다.

송의산 자락의 한재마을에는 강처문이라는 효자의 전설이 전해지는데 강처문의 부모가 제사 음식을 즐기므로 밤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마을과 다른 동리를 돌며 제삿밥을 얻어 다가 봉양을 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제사 소문을 듣고 찾아가서 제삿밥을 얻어 집을 나섰는데 그믐밤에 구름까지 끼어서 산길을 헤매게 되었고 뜻밖에도 두 개의 불빛이 다가와 가까이 보니 범의 두 눈에서 나는 빛이었다.

범이 타라는 시늉을 하여 올라탔더니 쏜살같이 달려서 순식간에 집 앞에 내려놓아 부모를 온전하게 봉양할 수 있었다.

부모가 돌아가시게 되어 장사를 치르는데 상여를 메고 강을 건너야 하지만 비가 와서 도저히 건널 수 없게 되었고 이때 강 효자가 대성통곡을 하니 갑자기 강물이 멈춰서 상여를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소문이 알려져서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송하여 나라에서 정문(旌門)을 세워주었다고 전해진다.

아쉬운 마음으로 조금 더 머물다 가야할 거리가 멀고 새로 신고 온 등산화가 불편해 빨리 진행도 어렵기에 이제 그 628.9미터봉에서 뒤돌아 내려간다.

 

 

 

산청 버스터미널에서 장박으로 운행되는 아침 7시 첫 버스를 타고 진행을 했으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저 송의산을 다녀 왔으면 좋았겠지만 지금 시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에 아쉬운 마음을 남기고 뒤돌아 서서 바위를 내려오니 소나무 가지에 준희 선생님이 걸어 놓은 628.9미터봉이란 이정판이 보여 사진에 담고 내려 온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608미터 갈림삼거리봉으로 뒤돌아 나와 숨겨 놓은 배낭을 찾아 활엽수 낙엽이 깊게 깔려 있는 낙엽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리듬감 있게 귓전에 들리기 시작한다.

 

 

 

잠시 내려가니 바스락 거리는 활엽수 낙엽 소리가 정겹게 다가오는데 등로는 더욱 진행이 어려운 잡목들이 빼곡하게 등로를 막고 있어 한동안 힘들게 걸어 진행한다.

몇 번의 경험이 있기에 얼굴에 생채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손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손등이 상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힘들게 지독한 잡목지대를 빠져 나오니 여전히 등로에는 많은 잡목들이 보이지만 진행에는 한결 여유를 찾는다.

 

 

 

어렵게 잡목과 참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어려운 등로를 빠져 나오니 이제 잡목이 점점 사라지더니 키 작은 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뚜렷한 등로가 열린다.

잠시 편안한 등로를 타고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능선 등로를 걸어가니 커다란 참나무들과 썩어가는 고사목이 널부러진 555.7 무명봉을 통과한다.

그 널부러진 고사목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매봉이 뾰족하게 솟아있어 벌써 산객의 마음을 지치게 하는데 그래도 중단할 수 없어 진행을 이어가니 둔덕을 넘어 신수들과 나즈막한 돌무덤 그리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탁고개 안부에 도착을 한다.

탁고개(성황당터)는 좌측의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와 경상남도 산청군 오부면 일몰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성황당터가 자리하고 있는 곳을 말하는데 이곳 지명유래에 관한 자료는 찾지 못하였다.

성황당 또는 서낭당은 한국의 무속신앙에서 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중국의 성황묘(城隍廟)에서 유래하였으며 다른 이름으로는 선왕당(仙王堂)이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에는 성을 수호한다는 성지(城池) 신앙이 있었는데 이것이 남북조 시대 이래로 성황으로 변하여 일반화되었고 송나라 때에 크게 유행하였는데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성황신앙이 유입되고 문헌 기록에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사에 고려 문종 때에 선덕진에 쌓은 새로운 성 안에 성황사를 지어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인데 고려 때에는 국가에서 공적으로 제사를 올리던 사당으로서 고려 고종이 몽골의 침공을 막은 공을 서낭신에게 돌려 서낭신에게 신호(神號)를 더하기도 하였다.

서낭당은 주로 국가에서 설립하고 운영하였으나 지방의 유력한 호족들이 독자적으로 설치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호족 집안의 시조 및 그 땅에 연고가 있는 위인들이 서낭신(城隍神)으로 모셔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것을 보면 곡성성황신 신숭겸, 순천부성황신 김총, 의성부성황신 김홍술 등이 있고 또한 유금필을 가림성황신으로 모신 사례도 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산천이니 성황이니 풍운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던 단들을 하나의 성황당으로 통합하여 재배치하고 군현마다 사직단과 여단을 일괄적으로 설치하여 봄과 가을로 국가가 주도하여 정기적으로 수령이 제사를 지내게 하는 한편 국난이나 가뭄이 닥쳤을 때 임시로 서낭제를 지내기도 했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서낭당의 성격은 크게 변화하였는데 이는 지방 유력자들, 특히 성리학만을 정도로 받들며 그 외의 가르침을 사도로 몰았던 사림 세력이 장악하게 되면서 서낭당에 대해서도 음사로 보았기 때문이다.

조정에서 서낭당에서의 관 차원에서의 제사를 금지하게 되면서 서낭제의 성격도 관헌적인 것에서 민간적인 것으로 바뀌었음을 영가지임영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탁고개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608 송의산 갈림봉과 그 뒤로 628.9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렇게 지나 온 마루금을 확인하고 걸어 오르니 금새 599미터의 매봉 일명 응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준희 선생님과 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이정판이 붙어 있으며 그 옆으로는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나풀거린다.

이곳 산청의 매봉(응봉)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전혀 찾을 수 없어 아쉬운데 전국적으로 많은 매봉과 응봉은 대부분 산봉우리가 마치 매의 형상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던지 아니면 임금이 사냥할 때 이곳에서 매를 놓아 꿩을 잡았으므로 매봉 또는 한자명으로 응봉이라 했던 것이 대부분이기에 이곳 역시 이 둘 중 하나의 지명유래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보지만 정확한 내용은 아니기에 답답하기만 하다.

 

 

 

 

매봉 정상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내려가며 진행을 해야 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따라 진행하다 보니 소득도 없는 알바를 하고 뒤돌아 올라 와 정상 마루금을 찾아 내려가니 커다란 소나무 등로 아래 키 작은 자목들이 자라면서 다른 지맥 산줄기와는 확연히 다르게 진행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잠시 무명봉을 올라 내려가니 잠시 철조망을 다시 만났다 헤어지고 소나무가 빼곡한 잡목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523.9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무명봉을 지나 특이할 것 없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등로 찾기에 집중하며 진행하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505.2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며 지나온 방향을 살펴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608미터의 송의산 갈림봉과 그 뒤로 솟아 있는 628.9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지나 온 등로 상 봉우리를 볼 수 있는 505.2 무명봉을 지나 잠시 명품 소나무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힐링하듯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한동안 계속 잡목도 없는 멋진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진다.

이런 등로라면 오늘 산행도 일찍 마무리가 될 것 같아 꿈을 꾸듯 많은 희망을 가지고 걷다 보니 등로 우측으로 다시 헤어졌던 철조망이 나타나고 그 철조망은 우측으로 다시 헤어지는데 등로는 직진의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진다.

나즈막한 둔덕으로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자주 봤던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고 벤취쉼터들이 설치되어 있는 501.7봉에 도착을 해 잠시 배낭 내려 쉬며 준비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진행을 이어가기로 한다.

 

 

 

멋진 소나무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 천천히 출발하며 뒤돌아 보니 보고 또 봐도 아름답고 멋진 소나무가 아닐 수 없다.

소나무가 서 있는 501.7 공터봉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에는 빛바랜 억새가 하늘 거리고 그 등로 좌우측으로 멋진 소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어 잠시 힐링하며 무심으로 걸어 내려가는 시간이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번호를 볼 수 없는 송전탑을 지나 비포장임도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좌측으로 차황면 장위리와 우측의 오부면 방곡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다.

 

 

비포장임도 갈림사거리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둔덕을 넘자마자 커다란 신수 두그루가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이 바로 송재라는 고갯마루 안부인데 이곳에 관한 자료 역시 찾지 못하였지만 방금 전 지나 온 비포장임도 갈림사거리와 마찬가지로 이곳 송재(커다란 느티나무 3 그루) 역시 좌측의 차황면 장위리와 우측의 오부면 방곡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조선시대에는 차현면 장위동으로서 처음 마을이름을 장사리 장실, 상곡, 장게로 부르다가 1914년 3월 1일에 행정구역이 통폐합 됨에따라 궁소동을 병합하여 장위리라 해서 차황면에 편입 되었다.

고려때 개단부곡이 있었다고 하고 1572년에 용궁인 술고재 김보가 부모를 모시고 진주에 입향하여 용궁김씨 집성촌이 되었고 양촌, 음촌, 수신땀 등의 마을이 있으며 동네앞에 강계천이 흐르고 있다.

수신촌은 건네말이라고도하는데 수신네가에 있는 마을이고 용궁김씨의 선조로서 술고재란 분이 3년간 시묘살이를 하면서 매일 목욕을 한곳이라하여 수신천이라 불리어 온다.
그리고 수신마을 서쪽에 궁소마을이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차현면 궁소동이고 1914년에 차황면 장위리 궁소동으로 개칭하였다.

마을 뒷산의 금관산이 활모양으로 뻗어 내려오고 옆에는 대추정 오무정이 있는데 이정자에서 활을쏘는 형태라 하여 마을 이름을 궁소라고 불렀다 한다.
옛적에는 들판에 논구석마다 호가 천여개나 있어 궁호라고 불렀다는 말도 있다.

방곡리는 본래 산청군 오곡면 지역으로서 방실 또는 방곡이라 하였는데 방곡리의 원래 마을인 원방마을을 방실이라 부른데서 유래한 것으로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촌동, 금곡동, 외일물 등 일부와 차현면의 궁소동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방곡리라 하고 오부면에 편입되었다.

원방곡 동편에 큰 굴바위가 있는데 이 굴을 막으면 동네 처녀들이 미친다고 하고 막지 않으면 재화를 당한다는 전설이 있으며 지금은 그곳에 돌담을 쌓은 흔적이 있다.

금곡(金谷)은 조선 고종 때까지도 금을 파내었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고 하지만 일설에 의하면 골짜기에 철광석을 생산한 흔적이 남아 있어 쇠를 생산했다 하여 쇠실이 되었다고도 한다.

중촌동은 중말로 불리우다가 중방곡으로 개칭되었으며 이 마을에 천년된 당산나무가 울면 마을에 큰 재난이 일어난다는 전설이 있다.

 

 

큰 느티나무들이 서 있는 송재 안부를 지나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 등로 아래 지독하게 빼곡한 잡목들이 발목을 잡기 시작하고 힘겹게 그 잡목들을 헤치고 오르니 커다란 활엽수 한그루 좌측 옆으로 표지석이 보이는데 가서 확인해 보니 풍욕대란 글자가 보인다.

풍욕대는 말 그대로 바람으로 목욕을 하는 곳이란 뜻인데 조선 중기의 문신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의 유적지인 광명시의 충현박물관에 있는 정자가 가장 유명하다.

풍욕은 논어의 선진편에 나오는 일화에서 비롯된 말인데 공자가 제자 증점에게 원하는 것을 물으니 증점이 기수라는 강에서 목욕하고 기우제를 지내는 무우라는 곳에서 바람을 쐬고 싶다고 대답했다는 이야기에서 전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여름철이면 잠시 바지를 벗어 걸어 놓고 시원하게 불어 오는 바람에 풍욕이라도 즐길 수 있겠지만 오늘은 봄 같은 날씨라 해도 잠시 쉬면 한기를 느끼기에 사진만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풍욕대를 지나 관목의 참나무 아래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의 경사도가 약해지도 수종도 참나무에서 소나무와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바뀌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가니 바위들이 등로에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잡목과 고사목들을 지나 거대한 바위암릉이 눈 앞에 펼쳐져 있어 우측으로 우회하며 좌측 바위암릉을 올려다 보니 제법 긴 암릉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바위암릉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금새 해발고도 584.1미터의 구인산에 도착을 해 박혀 있는 삼각점과 준희 선생님이 걸어 놓은 이정판을 사진에 담으며 잠시 숨을 고르고 진행한다.

구인산(587, 잡풀속 삼각점)은 산청군 오부면 방곡리에 위치하는 산으로 높이는 583미터로서 산의 이름은 높이를 표시하는 글자인 인() 자를 사용하여 산이 높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구인산에는 금곡계곡이 있어 여름철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구인산을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587봉이 지도에 표기되어 있어 잠시 다녀오려고 살펴보니 잡목들이 우거져 있어 포기하고 전상적인 정수지맥 산행에 집중하기로 한다.

좌측으로 완만하게 휘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꿈결같은 명품 등로가 이어져 힐링하며 진행하니 등로는 여전히 소나무 등로가 아름답다.

잠시 후 장딴지 부근의 높이에서 잘려진 소나무 등걸이 보이는 545.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며 잠시 심호흡 한번 해 본다.

 

 

밑둥이 썩어가는 545.2 무명봉을 지나 여전히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밀양박공 묘지가 나타나고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등로를 따라 우측으로 휘어져 걸어가니 다시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넓은 묘지지대가 내려다 보이고 눈 앞으로 능선 지나 조망들이 살짝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 묘지지대 아래로 비포장임도가 보이고 그 임도 넘어 저 멀리 오르지 못하고 바라만 보며 진행해야 할 남산 우측 뒤 저 멀리 정수산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좌측으로는 황매산과 감악산 줄기가 조금 더 선명하게 멀어져 있다.

 

 

이제 묘지지대를 내려가 비포장임도에서 능선으로 들기 전 우측으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이제 남산은 보이지 않고 저 멀리 오늘 올라야 힐 정수산 지나 우측으로 내일 넘어야 할 둔철산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조망을 살펴보고 나무 터널처럼 열려있는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 좌측 아래 태양광 발전시설들이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황매산과 감악산 지나 부암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암릉을 자랑하며 옛 추억을 소환하고 잠시 사진에 담고 다시 진행하니 연일김씨 묘지지대가 나타난다.

그 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59번 친환경로 2차선 포장도로 상 달음재에 도착을 한다.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걸어 오르니 천왕봉전망대란 사각정자가 보이고 그곳으로 올라 전망대에서 진행방향 우측 앞으로 살펴보니 남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웅석봉과 지리산 중봉 및 천왕봉 줄기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어 잠시 넋을 잃고 살펴본다.

 

 

 

많은 사진을 남기고 한동안 그 전망대에서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사각정자로 올라 보지만 전망대보다 조망이 좋지 않아 올랐다는 추억 하나 남긴 후 다시 59번 친환경로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 와 방금 전 머물렀던 사각정자 방향을 살펴보니 방금 전 내려 온 정수지맥의 구인산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달임재(시멘트 포장도로)는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송경리에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개로서 송경리는 남산자락 골짜기에 위치하여 대부분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송경사가 있으므로 송경이라 하였다고 하였으며 송경을 셍겡이라고도 불렀다.

오래전 이곳에는 수령이 천년가까이 되는 소나무가 있었고 울창한 송림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1914 3 1일 임촌리를 병합하여 송경리라고 이름 짓고 군월면에 속했다가 1979 5 1일 산청읍 송경리가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임촌이 있는데 임촌은 숲이 우거졌다 하여 임촌이라 하였고 송경 남쪽 어귀에는 강씨열녀문이 있다.

아쉬운 마음을 남기고 그 달음재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넓은 비포장임도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달음재를 출발한다.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대나무 밭이 나타나고 그 대나무 밭 좌측 능선 위로 허물어진 건물 하나가 방치되어 있는데 살펴보니 오래 전 가축을 기르던 축사처럼 보인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넓은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그 묘지를 지나 잡목을 피해 우측 사면 등로를 따르다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환상의 조망이 펼쳐져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산줄기를 살펴보며 이름을 불러 본다.

바로 아래 장위리의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방금 전 이 산객이 걸어 온 정수지맥 마루금이 길게 펼쳐져 있는데 정중앙에 뾰족한 매봉 좌측으로 거대한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던 501.7봉도 보이고 우측 뒤로는 소룡산이 여전히 멋진 자태로 얼굴을 내빌고 있다.

그 우측 뒤 저 멀리로는 작은황매산에서 월여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월여산이 솟아 있는 풍경이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지나 온 정수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눈을 북동쪽으로 돌리니 사진 좌측 끝자락의 월여산부터 작은황매산 지나 정중앙 뒷쪽으로 황매산이 아름답고 우측으로 담악산으로 이어지는 암릉들이 햇살에 반짝이며 빛나고 있다.

몇번인가 올라 많은 추억을 남겼고 진주의 좋은 산친구들도 만나 맛 있는 음식도 나눴던 추억이 있어 잠시 생각하며 미소짓는 시간이기도 하다.

철쭉이 곱게 피어나던 시기에 진양기맥 산행을 하면서 옆지기와 딸을 데리고 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추억을 만들어 준 황매산이기에 이렇게 풍경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시간이다.

 

 

한동안 그렇게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고 다시 이어지는 잡풀능선을 타고 천천히 걸어 오르니 거대한 활엽수 한그루와 잡목들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416.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긴다.

무명봉을 넘으니 잠시 후 진행을 해야 할 나즈막한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고 우측 저 멀리 정수산이 드높게 솟구쳐 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다시 접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있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과수원이 나타나는데 그 과수원 넘어 저 멀리 차황면 부리마을 지나 웅석봉에서 지리산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웅석지맥이 환상적으로 펼쳐져 있어 바쁜 시간중에도 잠시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에 담아 본다.

 

 

잠시 후 다시 등로 좌측을 보니 부리와 신기리 마을 지나 700미터 급의 산줄기 넘어 황매산과 감악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겹쳐 보이며 고운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신기리는 경상남도 산청군 차황면에 있는 리로서 황매산의 서남쪽 자락에 위치하여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새로 마을이 이룩되었으므로 새터 또는 신기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원신기, 창평, 황계 등이 있는데 원신기는 신기 동쪽에 있는 마을로 신기의 원마을이고 창평은 황산장터 북쪽에 있는 마을로 여시랑이라고도 불리며 평계는 신기 남쪽에 있는 마을로 상대적으로 평평하며 시내가 흐른다 하여 평계라 한다.

황계는 신기 복판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황새모양인 논인 황새배미가 있으며 창평의 남쪽에는 황산장의 터가 있다.

 

 

생각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며 진행하다 보니 생각보다 진행 속도가 늦어지는데 처음 신고 온 등산화로 인해 왼측 엄지 발가락의 통증이 심해져 빨리 걸을 수 없었기에 더욱 즐기며 걸었던 풍경과 조망이다.

등로 좌우측으로 한동안 아름다운 조망을 즐기며 걸어 내려가니 스테인레스 스틸 물통과 작은 건물이 보이는 비포장임도에 내려서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이 차황면 부리마을 위 고갯마루이다.

부리는 경상남도 산청군 차황면에 있는 리로서 정수산의 북쪽 자락인 남산에 위치하여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산소류지와 매골소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매곡, 상매곡, 하매곡, 서잿말 등이 있는데 매곡은 남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매화가 많이 피었다 하여 매곡이라 하고 매곡의 위쪽 마을을 상매곡, 아랫쪽 마을을 하매곡이라 하며 서잿말은 부리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양심재가 있엇다 하여 서잿말 또는 서원동이라고도 한다.

 

양심재유적비와 양심재터와 몽암정이 있으며 우계당(경남문화재자료 244)이 있다.

 

 

이곳에서 비포장 임도를 건너 밭 가장자리로 옆으로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능선 방향으로 걸어가다 지도를 보니 등로 바로 좌측 옆으로 시멘트 포장도로와 2차선 포장도로가 따라가고 주등로에는 특별한 봉우리나 삼각점도 보이지 않아 약간의 편법을 이용해 마루금 좌측의 물안실로 631번길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진행하다 도로 좌측 뒷쪽을 보니 차황마을 지나 감악산에서 황매산 지나 작은황매산과 월여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차황면은 본래 산청군 지역으로서 전동, 매곡, 신기, 장기, 판계, 우사, 묵계, 진기, 궁소, 장위 10개 동을 관할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에 행정구역이 통폐합됨에 따라 황산면의 법평, 상중, 실매, 점남, 삼거, 양곡, 지동, 창평, 황계, 장박의 10개 동과 삼가군, 신지면의 소야동 일부를 병합하여 차현과 황산의 이름을 따서 차황면이라 하여 장위, 양곡, 상중, 실매, 장박, 법평, 신기, 부리 ,우사의 9개 리로 개편 관할하다가 1973년 7월 1일 대통령 제6542호에 의하여 신등면의 상법리와 철수리를 병합하여 11개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차황면의 동쪽은 합천군 가회면과 대병면, 서쪽은 오부면, 산청읍, 북쪽은 거창군 신원면과 합천군 대병면과 인접하여 있다.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차황마을과 그 뒤로 펼쳐진 환상의 진양기맥 마루금을 살펴보며 진행하니 바로 눈 앞으로 부리마을이 다가와 있고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걸어 온 마루금이 물통과 작은 건물로 이어지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매봉과 소룡산이 솟아 있는 풍경이 오늘 걸어 온 거리가 제법 멀어져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등로 우측 위로 원 지맥 마루금이 지나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지나지만 그곳으로 진행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별로 없고 왼쪽 엄지 발가락의 통증만이 이곳 도로를 따라 진행하는데 변명거리를 제공하는 위안을 주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드디어 차황면 부리 매곡마을로 통하는 대나무 밭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매곡마을 지붕 위 저 멀리 오르지 못하고 눈으로만 보고 지나야 하는 아쉬움이 짙게 묻어나는 산청의 남산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남산은 경상남도 산청군 차황면 부리에 있는 산으로 부리는 정수산의 북쪽 자락인 남산에 위치하여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산소류지와 매골소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매곡, 상매곡, 하매곡, 서잿말 등이 있는데 매곡은 남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매화가 많이 피었다 하여 매곡이라 하고 매곡의 위쪽 마을을 상매곡이라하고 아랫쪽 마을을 하매곡이라 한다.

서잿말은 부리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양심재가 있엇다 하여 서잿말 또는 서원동이라고도 하고 양심재유적비와 양심재터와 몽암정이 있으며 우계당(경남문화재자료 244)이 있다.

다만 전국적으로 많은 남산이 있는데 이곳 산청의 남산에 대한 기록만 찾을 수 없어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잠시 후 매곡마을회관과 그 앞 작은 팔각정을 지나 매곡마을을 빠져 나가니 물안실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오르며 비득재로 향한다.

한동안 그 도로를 따라 좌측의 남산과 황매산쪽 조망을 즐기며 우측으로는 원지맥 마루금을 살짝 올려다 보며 걸어 고갯마루로 오르니 드디어 도로 건너 농막이 보이는 비득재 고갯마루에 도착을 해 도로 우측의 키작은 소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원 마루금을 살펴본다.

비득재는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내수리에 있는 고개로서 내수리는 가재산에 위치하여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흔한 골짜기라고 하여 물안실 또는 내수라 하였다.

달성 서씨가 이곳으로 이사를 와 농사를 지었는데 땅이 기름져 수확이 좋았다고 전해지자 차츰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연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풋가실이 있는데 풋가실 마을은 내수 북쪽에 있는 마을로 부락 근처에 풀이 많이 우거졌다 하여 풋가실 또는 초수라 하며 풋가실 앞에는 역시 풀이 많다 하는 풋가실들이 있다.

풋가실 동쪽 산에는 조선 명종 때 홍문관 전한과 덕계 오건이 공부하던 곳이라는 정수암터가 있으며 이 비득재에서 도로를 건너 농막 우측 뒤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돌아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농막 우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경고문과 산나물 채취체험장 안내판이 서 있지만 오래 전부터 사용되지 않은 듯 먼지만 두껍게 덮혀 있다.

잠시 후 시멘트 포장도로 좌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능선 방향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웅석봉이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고 그 좌측으로 이어지는 웅석비맥이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웅석봉쪽 조망을 즐기며 오르니 진행 방향으로 벌목 후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등로가 올려다 보이고 곧이어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잡목 사이에 독야청정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곳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작은 돌들이 널부러져 있는 496.5미터의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하고 다시 출발한다.

 

 

잔돌들이 흩어져 있는 무명봉을 넘으니 억새풀이 한들거리는 등로가 나타나고 조심하며 그 등로를 타고 걸어가며 등로 좌측을 보니 부리와 우사리 사이의 경계선을 타고 나즈막한 산줄기가 저 멀리 남산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우사리는 경상남도 산청군 차황면에 있는 리로서 효염봉에 위치하여 산지와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묵계, 진기동 등이 있는데 묵계는 진기동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흙빛이 검고 시내가 흐른다 하여 묵계라 하며 메기땀이라고도 하였고 진기동은 우사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묵은터라고도 불렸다.

저 남산을 들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언젠가는 다시 한번 꼭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희망하며 이제부터 본격적인 정수산 정상부를 향한 발걸음을 시작해 본다.

 

 

남산을 살펴보고 걸어가니 밤나무 과수원이 나타나고 그 과수원을 지나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반겨주는데 그 띠지를 지나자마자 가파른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어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을 흘려보는 시간이다.

오랫만에 두 다리에 있는 근육세포가 하나하나 깨어나는 듯한 통증과 함께 왼쪽 발가락 통증이 심해지며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르다 쉬다를 반복하며 꾸준하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비포장임도에 오르고 그곳에서 잠시 배낭 내려 허기를 달래고 시원한 물한모금으로 목마름까지 달랜 후 다시 힘을 내 정수지맥의 주산인 정수산으로 향한다.

 

 

비포장임도를 건너 짧은 절개지를 타고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소나무 등로가 열리는데 이곳 경사도 역시 방금 전 올랐던 가파른 오르막 등로와 마찬가지로 벌써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등로를 적실 정도로 흘러 내리고 있다.

약간의 바위와 쓰러진 고사목들을 조심하며 가파르게 오르니 가지가 네개인 소나무 가지에 준희 선생님이 593.6봉이라는 이정판을 걸어 놔 추억 한장 남겨 본다.

힘들게 올라와서 그런지 표정이 좋지 못한데 그래도 아직까진 봐줄만 하다.

 

 

그 593.6봉에서 우측으로 90도 꺽어 진행하니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평이하게 진행하며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둔덕봉으로 올랐다 내려가니 무명묘지가 나타난다.

무명묘지를 지나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는데 작은 잡목 가지에는 페트병과 캔들이 거꾸로 걸려있어 자연보호가 절실한 등로처럼 보인다.

다시 한동안 힐링하듯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라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니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에는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잠시 더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썩어가는 밑둥들이 보이는 573.2미터의 잡목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니 여전히 등로는 멋진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편안하게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평이한 안부를 넘어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581.5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지만 뚜렷한 소나무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등로에는 자랐다 말라있는 잡풀들의 흔적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관목크기의 편백나무 몇그루가 보이는 곳을 지나 다시 코가 등로에 닿을듯한 가파른 오르막 마루금을 타고 힘들게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준희 선생님의 응원판이 걸려 있어 사진에 담으며 잠시 흐르는 땀방울을 닦은 후 진행을 이어간다.

 

 

이제 해발고도를 보니 700미터 중반까지 올라 왔으니 정수산 정상도 그리 멀지 않았음을 느끼며 응우 ㅓㄴ판을 지나니 커다란 활엽수가 서 있는 주능선에 도착을 해 드디어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마무리되는 지점이다.

우측으로 크게 꺽어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전진하니 밤나무들을 지나 다시 빛바랜 억새들이 한들거리는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 억새 등로로 오르니 드디어 등로 뒷쪽인 북쪽 방향으로 황매산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진양기맥과 구인산과 매봉 지나 송의산 갈림삼거리봉 및 소룡산까지 시원하게 펼쳐 보이기 시작한다.

많은 사진을 담으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아쉬움을 남긴 필봉산과 왕산이 사진 좌측 끝자락으로 빤히 보이고 우측으로는 봉화산이 보이는데 바로 앞으로는 엔당산과 와룡산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동서로 길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또한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한동안 우측인 서쪽을 살펴보고 이제 등뒤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북쪽을 살펴보니 아침부터 걸었던 멀고도 길었던 정수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펼쳐져 있고 그 우측으로 황매산을 중심으로 진양기맥 마루금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가슴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소나무 아래 가파르게 올라 온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오르지 못한 남산이 중앙부에 자리하고 그 좌측으로 흘러 내린 나즈막한 산줄기가 다시 구인산으로 솟구쳤다 내려가 다시 매봉을 일으키고 그 뒤 우측으로 송의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지나 제일 뒤쪽으로 소룡산과 정수지맥 분기점도 확실한 존재감을 알리며 이어져 있다.

구인산 뒤 저 멀리로는 함양의 용추계곡을 감싸고 있는 기금거황 줄기가 옛추억을 들려주며 희미하게 다가온다.

 

 

한동안 많은 사진으로 남기며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억새 능선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오르니 녹슨 철봉들이 나타나는데 옛날 군부대에서 사용했던 철봉은 아닐까 생각하면서 829.1삼각점봉 가까이 올라 등뒤를 보니 이제 북동쪽으로 차황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로 나즈막한 산줄기 지나 황매산을 중심으로 앞뒤로 이어지는 멋진 진양기맥 마루금도 펼쳐져 있는 풍경이 가슴을 설레이게 만든다.

우측의 바위암릉이 아름다운 감악산을 지나 황매산을 넘으면 작은 황매산과 월여산이 길게 이어지는데 이제 거리감 때문인지 월여산 방향의 희미하게 실루엣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일망무제로 펼쳐진 환상적인 조망과 풍경들로 인해 빠른 진행이 불가능하지만 척지 버스정류장에서 탑승해야 할 버스 시간 때문에 마음만 바쁜 시간이다.

등로 우측인 서쪽부터 북쪽 그리고 북동쪽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마루금을 살펴본 후 다시 억새 능선을 타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금새 관목의 소나무 가지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829.1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삼각점을 사진에 담아 보지만 인식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곳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이외에 다른 이정판도 걸려있지 않아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다시 출발한다.

 

 

삼가점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다 등로 우측 앞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웅석봉과 웅석지맥 그리고 그 우측으로 지리산 중봉과 천왕봉이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짧은 하루 햇살에 반짝이며 빛나고 있어 잠시 살펴본다.

줌으로 당겨보니 확실한 지리산 중봉과 천왕봉이 뚜렷하게 구분되고 그렇게 오늘 하루 산행을 즐기며 천천히 걸어가니 바위 구간을 지나 도상 정수산인 831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정상에도 역시나 아무 표식도 없이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만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추억을 담은 후 시간을 보니 이제 시간이 오후 3시 54분을 넘어가고 있는데 척지 버스정류장까지 5시 30분까지 내려가기엔 빠듯한 시간이기에 이제부터는 조금 빠르게 걸어 본다.

 

 

도상 정수산을 지나 이제 등로 좌측을 보니 율현리 율현저수지가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산등면 마을과 자굴산으로 이어지는 진양기맥 마루금이 희미한 실루엣으로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그곳을 지나 다시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금곡님과 독도는 우리땅이란 닉을 사용하는 선답자의 띠지에 829.8봉임을 알리는 띠지를 걸어 놨다.

이곳에서도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뚜렷한 능선 등로를 타고 정수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본다.

 

 

그 829.8봉을 지나 걸어가며 등로 우측을 보니 더욱 뚜렷하게 웅석봉과 지리산 천왕봉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으며 조금 더 걸어가니 낙엽진 싸리나무와 빛바랜 억새가 어우러진 등로가 나타나고 조심스럽게 그 등로를 통과한다.

그 억새 능선을 지나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829.8봉과 도상 정수산 그리고 829.1삼각점봉이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렇게 지나온 방향을 살펴보고 다시 몇발자국 전진한 후 우측을 보니 사진 우측 끝자락에 필봉산과 왕산이 보이고 중앙 한가운데 먼 곳으로 지리산 중봉과 천왕봉이 보이고 그 좌측 끝자락으로는 웅석봉이 솟아 있는 모습이 황홀감을 전해주고 있다.

저 지리산 천왕봉으로 올라 중봉을 타고 웅석봉을 넘어 이어지는 웅석지맥은 올 여름이 오기 전에 올라 다시 한번 고운 추억을 만들어야 할 곳이기에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며 그 능선을 가슴에 담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필봉산과 왕산 지나 저 멀리에는 법화산과 삼봉산 그리고 오봉산 및 연비산으로 이어지는 연비지맥 마루금이 부르고 있지만 저곳은 또 언제나 올라 이곳을 살펴보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 우측으로는 연비지맥 마지막 지점도 살짝 보일듯 말듯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에는 백두대간 상 봉화산과 백운산 방향의 산줄기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눈을 등로 좌측 앞 남동쪽으로 살펴보니 율현저수지와 산등면 마을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한우산과 자굴산으로 이어지는 진양기맥의 산줄기들도 희미하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알린다.

 

 

마음은 급한데 발길은 자꾸만 멈추기를 반복하다 보니 정수산 정상부로 오르면서 산행 속도가 현저히 저하되고 있다.

이제 잠시 눈을 등로에 고정시키고 빠르게 걸어가니 묵은 헬기장 같은 억새공터를 지나 차황정상이라는 이정표가 보이는 고세 도착을 하는데 진행 방향으로 헬기장과 차황 가는 방향 표시만 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소나무 사이로 이정표 하나가 더 보이는데 우측으로 내수마을 하산 방향이 표시되어 있고 진행방향으로는 정상 그리고 지나온 방향으로는 차황가는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내수리는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에 있는 리로서 가재산에 위치하여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산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흔한 골짜기라고 하여 물안실 또는 내수라 하였으며 달성 서씨가 이곳으로 이사를 와 농사를 지엇는데 땅이 기름져 수확이 좋았다고 전해지자 차츰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연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자연마을으로는 풋가실이 있는데 풋가실 마을은 내수 북쪽에 있는 마을로 부락 근처에 풀이 많이 우거졌다 하여 풋가실 또는 초수라 하며 풋가실 앞에는 역시 풀이 많다 하는 풋가실들이 있으며 풋가실 동쪽 산에는 조선 명종 때 홍문관 전한과 덕계 오건이 공부하던 곳이라는 정수암터가 있다.

 

 

 

내수마을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커다란 참나무 아래 부서진 나무벤취쉼터 2개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지독한 미역줄 나무가지가 등로를 완전히 막고 있어 어렵게 헤치며 통과한다.

잠시 후 정수산전망대 이정표를 지나 진행 방향과 지나온 방향을 살펴보니 둥그런 능선봉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곧이어 해발고도 829미터의 정수산 정상석이 서 있는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봉으로 되어 있다.

정수산(삼면경계봉, 국토지리원은 830, 영진지도는 818)은 경상남도 산청군의 산청읍 내수리와 차황면 철수리 일대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830미터이고 정산(淨山)이라고도 부른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지맥이 금원산과 황매산을 거치고 황매산의 일맥이 서남쪽으로 뻗어 정수산과 와룡산을 일으켰으며 정수산의 맥은 다시 남쪽으로 둔철산과 월명산으로 이어졌다.

정수산에서 북쪽으로 남산을 거쳐 평지로 잦아든 일대에는 차황면 소재지가 위치하였고 서사면의 지맥이 남강과 만나는 일대로는 산청읍 소재지가 입지하였다.

옛 명칭은 척지산(尺旨山)이라고 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산청)에 척지산은 현 동쪽 25리 지점에 있다 라고 하였으며 같은 책의 단성현에는 척지산에 철이 산출된다 라고 적었다.

여지도서(보유, 단성)에서도 산청의 경계이고 황매산에서 맥이 와서 척지촌(尺旨村)의 주맥이 되었다 라고 자세한 내맥을 기록하였다.

해동지도(산음), 지승(산음) 등에 척지산이 표기되었고 해동여지도(산청) 1872년지방지도(산청)에는 척지령(尺旨嶺)이 표기되었다.

정수산 자락에는 651(신라 진덕여왕 5)에 원효 대사가 창건한 율곡사(栗谷寺)가 있고 율곡사 아래로 암벽(새신바위)가 있는데 절터를 잡을 때 이 바위에 올라 터를 정했다고 한다.

율곡사에는 법당의 단청을 그리던 화공이 법당 안을 들여다보자 새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제 이 정수지맥을 탄생시킨 정수산 정상에 서서 잠시 오늘 걸었던 등로를 복습하고 내일 걸어 넘어야 할 마루금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정수산 정상을 지나 평이한 능선 등로를 따르니 금새 등로 우측의 공터에 또 다른 정수산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841.3봉에 도착을 하는데 어느 지도에는 이곳을 가재산이라 하였고 다음지도를 확인해 보니 가재산은 이곳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곳으로 표기가 되어 있어 조금 헷깔린다.

가재산(841, 도상 정수산, 정수산 정상석)은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척지리에 있는 산으로 척지리는 둔철산 위에 위치하여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산 위에 마을이 있으므로 자머리나 재머리 또는 척지(尺旨)라 하였다고 하며 척지마을은 예전부터 바람이 세차게 부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척지가 있는데 척지는 척지리의 원마을로 역시 자머리 또는 재머리로도 불리고 척지 서쪽에는 안동 권씨의 묘인 장군설이 있다.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시간을 보니 오후 4시 19분을 지나고 있어 척지마을까지 내려가기에 빠듯한 시간이라 아주 빠르게 진행을 해 본다.

 

 

정수산 정상석이 세워져 있던 841.3미터의 가재산 정상을 지나 이정표를 살펴보니 척지마을로 하산하는 두가지 다른 등로가 표기되어 있는데 정수지맥 마루금은 좌측의 율곡사 방향으로 되어 있는 경사 등로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하는데 잠시 후 안부에서 비포장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다 보니 갈림삼거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정표를 지나 참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잣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곳부터 등로는 경사가 심해지기 시작하며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변하고 있다.

새로운 등산화로 인해 왼쪽 엄지 발가락에 고통이 심하지만 견디며 빠르게 뛰다시피 내려가니 등로는 어느 순간 잣나무 군락지 가운데를 통해 걸어 내려가게 되었다.

 

 

 

계속 이어지는 잣나무 등로를 타고 급하게 뛰듯 내려가니 드디어 우측으로 척지마을 하산 갈림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시간을 보니 오후 4시 29분을 지나고 있어 정상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면 버스 시간에 맞춰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가져 보는데 왼쪽 엄지 발가락이 고민을 하게 만들고 내일 조금은 여유롭게 진행이 가능할 것 같아 정상 등로를 포기하고 우측으로 보이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척지마을로 느긋하게 걸어 내려가기로 결정을 한다.

내일 아침 척지마을에서 이곳으로 올라 719.7삼각점봉과 새신바위를 지나 척지마을까지 다시 내려가게 되면 최소한 1시간 이상 더 걸리겠지만 내일 산행은 내일 생각하자며 내려가는데 저녁 7시에 약속을 한 손님과의 저녁식사도 걱정이 되어 편안한 등로를 따르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다.

 

 

우측 비포장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 건물 하나가 보이는데 살펴보니 오래 전 축사인듯 보이는데 나무로 지은 건물로서 이제는 폐기된 건물이다.

그곳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부드러운 비포장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어느 순간 임도에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한쪽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를 보니 지나온 방향으로 경사가 있는 정수산 등산로 표시가 우측으로는 완만한 등로를 타고 정수산으로 오를 수 있다는 이정표 갈림삼거리이다.

 

 

 

그 갈림삼거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진행 방향으로 내일 아침에 올라야 할 둔철산이 아름답게 올려다 보이고 사진에 담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임도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는 지점 우측으로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사각탁자가 보인다.

그곳을 지나 계속 보이는 둔철산을 올려다 보며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민가 한채를 지나 척지마을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 도로 우측으로 논 경작지가 보이는 곳에서 도로 우측 앞을 보니 다시 웅석봉과 지리산 천왕봉 그리고 지리 주능선이 우측 끝자락으로 길게 이어지는 풍경이 바쁜 산객의 발길를 멈추고 한참을 머물게 만든다.

 

 

 

웅석봉과 지리산 주능선을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논 경작지 지나 내일 아침에 올라야 할 둔철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 풍경을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 앞으로 커다란 스테인레스 스틸 물통이 나타나고 자세히 보니 정상 마루금을 타고 내려오면 이곳으로 내려 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는 지점이다.

 

 

 

잠시 후 척지마을 민가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60번 정곡척지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좌측의 마루금을 살펴본 후 우측 바로 아래에 있는 척지 버스정류장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니 도로 건너 척지마을이라는 커다란 이정석도 보인다.

척지리는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에 있는 리로서 둔철산 위에 위치하여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산 위에 마을이 있으므로 자머리, 재머리 또는 척지()라 하였다고 하며 척지마을은 예전부터 바람이 세차게 부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척지가 있는데 척지는 척지리의 원마을로 역시 자머리 또는 재머리로도 불리며 척지 서쪽에는 안동 권씨의 묘인 장군설이 있다.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4시 52분으로 정상적인 마루금을 타고 진행을 하였어도 충분한 시간이었는데 많이 아쉽기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자위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곳 척지마을 앞 버스정류장에서 오후 7시 23분에 산청에서 들어왔다 회차해 나가는 미니 버스가 들어오고 잠시 후 5시 28분에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한 미니버스를 타고 산청읍으로 나가니 이제 5시 45분을 지나고 있어 애마를 회수한 후 가까운 목욕탕에서 샤워 후 환복하고 여관을 잡은 후 손님을 만나 식사를 하면서 잠시 일 이야기를 하고 헤어진다.

산청군은 경상남도의 중앙 서부에 위치한 군으로 동쪽은 합천군과 의령군, 서쪽은 함양군, 남쪽은 하동군과 진주시, 북쪽은 거창군과 접하고 있고 군 서쪽에 지리산의 천왕봉과 영신봉, 삼신봉이 있고 동쪽에는 황매산과 부암산이 있으며 동서 산지들 사이로 경호강과 덕천강이 북서쪽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남강과 합류한다.

산청의 옛 명칭은 지품천현 또는 산음현 등이었으며 삼국사기지리지산음현은 본래 지품천현()인데 경덕왕이 산음이라 고쳤다 라고 하였는데 산음현은 산양()이라고도 불렀음이 고려사지리지에 의해 확인된다.

산청이라는 이름은 1767년(영조 43)에 산음현에서 산청현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면서 비롯되었고 임진왜란 이후에 단성이 15년간 산음에 통합되기도 하였다.

여지도서(보유, 산청)에 선조 32년(1599)에 임진왜란의 병란으로 인해 단성이 일시적으로 산음현에 통합되었으며 15년 후(1613)에 다시 단성군이 설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895년에 23부제 실시에 따라 진주부 산청군이 되었다.

1906년에 삼장면()과 실천면() 및 금만면() 등 6개 면을 진주군으로부터 편입하였고 1914년에 군월면과 지수면 및 차황면 등과 단성군의 현내면과 오동면 및 원당면 등이 통합하여 13개 면이 되었다.

1979년에는 산청면이 읍으로 승격하였고 1983년에 하동군 옥종면 중태리()를 시천면에 편입하였으며 관할 행정구역은 1읍 13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수지맥 산행을 하기 위해 내려 오기 전 기대했던 조망과 풍경을 원없이 즐기며 계획된 산행을 잘 마무리하였지만 아들이 갑자기 제주도로 가면서 등산화를 가지고 내려 가 새로 산 등산화를 가지고 와 왼쪽 발가락의 고통으로 고생을 하며 마지막 719.7삼각점봉과 새신바위를 들리지 못하고 내려 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내일 한시간을 더 투자해 정상적으로 진행을 할 것인지 아니면 그 한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비포장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 온 산행으로 대신 할 것이지를 두고 고민을 하였지만 결론은 결국 운동하러 왔으니 마음 편히 한시간 더 투자해 개운하게 산행을 마무리하자는 결론이다.

샤워 후 손님을 만나 오랫만에 만나는 반가움을 표하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반주 한잔 하다 보니 피곤함이 밀려오고 손님과 헤어져 여관으로 돌아 가 남아 있는 일을 마무리하며 미스터트롯을 시청하다 보니 벌써 하루가 지나 새로운 새벽 0시 30분을 지나고 있다.

 

산행 준비 후 잠자리에 들어 세상 모르게 자고 알람소리에 눈을 뜨니 새벽 5시 30여분을 지나고 있어 다시 개운한 마음으로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며 정수지맥 마지막 제2구간 산행으로 산청에서의 시간을 마무리 한다.

 

내일 하루도 멋진 산행을 기대하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200220 정수지맥제1구간 소룡산 분기점-척지마을.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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