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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청명지맥(한남·완)

청명지맥 마지막 제2구간 세마역에서 황구지천 합수점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20.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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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기도 오산시와 화성시 및 평택시의 청명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0년 01월 04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아침엔 흐렸다가 10시가 지나면서 맑았으나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3도에서 영상 08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세마역(1호선 지하철역 2번출구)-육교(지하철로 통과)-죽미공원-131 무명봉-세교지하차도(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봉담과동탄)-죽미마을8단지

               휴먼시아아파트-수목원로6차선 통과-죽미다목적체육관-세교터널(서부로 6차선 포장도로 통과)-능선진입-안전목책과 로프구간-여계산(158.6봉,

               정상판, 삼각점, 삼불감시초소)-애기바위와 사각정자-공동묘지구간-석산골 안부(북부도보여행코스와 이정표)-석산 갈림삼거리-석산(135.2봉,

               정상판, 삼각점)-석산 갈림삼거리 복귀-126.8 운동기구 무명봉-묘지 위 조망(오산가장제2일반산업단지)-동물이동통로(가장산업서북로 2차선

               포장도로 통과)-92.4봉(벤취쉼터3개와 e편한세상 아파트)-안전목책과 로프구간-노적봉 갈림삼거리-121.4봉-조망처(독산성과 세마대지 및 양산봉,

               노적봉)-무명안부-묘지 조망처(오산휴게소 마루금)-노적봉(160.3봉, 정상판, 삼각점, 운동기구)-노적봉 갈림삼거리 복귀-103.2 무명바위봉-무명

               안부-왕림고개(310번 가장로 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116.8봉(운동기구와 벤취쉼터)-112.5 무명봉-사거리 무명안부-풍양조씨 묘지 조망-

               122봉(운동기구와 벤취쉼터봉)-무명안부-73.3 삼각점봉-비포장임도 안부-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70.6봉-6벙 송전탑-시멘트 포장도로-정남

               일반산업단지 내 4차선 포장도로-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돼지네기사식당과 산장모텔-돌담시골밥상(314번 정남동로 2차선 포장도로)-황제

               짬봉(점심식사)-정림입구 버스정류장(82번 발안로 2차선 포장도로)-벌음삼거리(314번 남부대로 6차선 포장도로)-서부모터스(능선진입)-녹슨

               철조망과 지독한 잡목지대-56.8 무명묘지봉-62.3 무명봉-수월암4길 갈림사거리-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오산교통 차고지-두곡1교-화성유리-

               능선진입-53.2 소나무 무명봉-신설된 6차선 포장도로-평택수월암리 고인돌-경동나비엔 정문-수월암교차로-수월암길 2차선 포장도로-당고개-

               능선진입(백천조씨묘지)-47.2 소나무 무명봉-서탄2로 1차선 포장도로-갈림삼거리(수월암로 2차선 포장도로)-서탄2로 1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

               65.6봉-비포장임도-서탄매봉산 둘레길 갈림삼거리-밭 경작지-비포장임도-수월암길 2차선 포장도로-갈림사거리(명당리김치찌개)-신리 승진지관-

               창원황공묘지-비포장임도-37.7 삼각점봉-마두리공동묘지-밭 경작지-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광산김공묘지-비포장임도-밭 경작지-비포장임도-

               배 과수원-서탄1로 2차선 포장도로-탄탄전기와 대성정공-마두1길 시멘트 포장도로-마두리 마을-두리매운탕 철렵국-마두길 1차선 포장도로-

               갈림삼거리 한우목장-정문회화로 1차선 포장도로-지하통로(306 정문회화로 4차선 포장도로 통과)-둑방도로-진위천 교-황구지천과 진위천 합수점-

               지맥산행종료-마두1리 버스정류장까지 도보 복귀-산행종료

산행거리 : 총 23.73 Km (세마역에서 황구지천과 진위천이 만나는 합수점까지)

               지맥산행 - 약 20.10 Km (1호선 지하철 세마역 지난 청명지맥 마루금에서 황구지천과 진위천이 만나는 합수점까지)

               접속구간 - 약 00.30 Km (1호선 지하철 세마역에서 청명지맥 마루금 접속지점까지)

                               약 03.33 Km (황구지천과 진위천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마두1리 버스정류장까지) 

산행트랙 : 20200104 청명지맥 제2구간 세마역-합수점.gpx

                최근들어 전파 방해가 있는지 정상 트랙 이외에 직선으로 만들어진 튄 트랙이 발생하여 실제 산행한 트랙과 다르게 표기된 점 참고바람니다. 

산행시간 : 06간 14분 (07시 49분부터 14시 12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6시 00분 집에서 도보로 지하철2호선 봉천역에서 지하철 탑승하여 2번을 환승한 후 세마역에 도착

                                 07시 49분 세마역 2번 출구에서 본격적인 청명지맥 마지막 제2구간 산행 시작

                       올때 - 13시 33분 황구지천이 진위천과 만나는 합수점에서 청명지맥 산행종료

                                 14시 11분 마두1리 버스정류장에서 산행 종료 후 곧바로 도착한 88번 버스로 송탄역으로 이동

                                 15시 05분 지하철1호선 송탄역에서 지하철로 1회 환승한 후 귀가

청명지맥이란 ?

청명지맥은 한남정맥의  소실봉(186.1봉) 남쪽 1 Km지점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청명산(190.1봉), 삼성전자, 동탄신도시, 여게산(158.6봉), 석산을 지나 황구지천이 진위천에 합류하는 화성시 서탄면 마두리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30.6 Km의 산줄기인데 최고봉인 청명산이 190.1미터이고 대부분이 도시구간으로 도로와 공장지대를 지난다. 

이 산줄기는 신산경표 개정증보판에서도 길이 30 Km 이상이고 강유역면적이 200 Km2 이상되는 151개 지맥에서 빠져 있었는데  그후  측정과 기타 오류 수정으로  강기준이 200 Km2 이상으로 분류되고 산줄기 길이가 30 Km이상으로 분류돼 덤으로 지맥반열에 합류된 6개(분적, 철성, 봉화, 쇠치, 오토, 청명) 지맥중의 하나로 최신 산줄기 지도에는 올라있다.

 

 

사라진 마루금을 찾아 힘들게 걸어가며 산줄기를 찾아야 하는 의미를 생각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청명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기도 용인시와 수원시, 화성시 및 오산시 그리고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와 다음의 백과사전 그리고 산림청과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신년 연휴 기간이었던 지난 2일의 목요일에 홀로 빠르게 진행하여 세마역까지 이른 시간에 청명지맥 제1구간을 잘 마무리하고 귀가하여 어제 하루 쉬고 오늘 다시 남아 있는 마지막 제2구간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서는데 엊그제보다 날씨가 풀리면서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상당히 제한되고 있어 걱정으로 시작하는 산행이 되었다.

다만 산행 전 살펴 봤던 독산성과 세마대 및 양산봉을 들려 진행을 했으면 좋았을 것을 생각은 했으면서도 거리가 있어 산행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몰라 일찍 포기하고 진행하다 보니 황구지천이 진위천과 만나는 합수점까지 왕복을 했어도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산행을 마무리해 많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래도 가장 난해한 한남정맥 상 마지막 지맥 산줄기를 무탈하게 걸었다는 사실 하나로 만족했던 시간이다.

이제 본격적인 호남지방의 산줄기를 찾아 지독한 가시나무와 잡목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기 전에 가능하면 많은 지맥 산행을 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래본 하루이기도 하였다.

 

산행 거리는 조금 길고 또한 선답자들이 잘 다녀오지 않았던 황구지천과 진위천이 만나는 합수점까지 왕복으로 다녀오기로 하였기에 마음만 부산한데 그래도 마루금 가까이에 있는 노적봉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평이한 낙엽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노적봉으로 향하는데 등로 우측 뒤로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인 봉담과 동탄간 고속도로가 보이고 그 우측 끝자락으로 움푹 패인 곳으로 오산휴게소가 보이는데 그 좌우측으로 잘린 청명지맥 마루금도 희미하지만 확실하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강남순환고속화도로가 생기면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고속도로인데 그 고속도로와 오산휴게소가 바로 청명지맥 산줄기임을 알게 되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또한 기대하지 않았던 이런 환상의 풍경을 직접 두눈으로 확인할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잘리고 파헤쳐졌으며 등로가 아예 사라져 우회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산행 날머리가 가까워진 마두리로 향하는 밭 경작지로 들어서고 그곳에서 우측의 마두리 지나 황구지천이 진위천과 만나는 합수점이 있을 곳을 살펴보니 드넓은 들판 저 멀리 비닐하우스 지나 합수점이 보이는 착각속에 빠져 든다.

산행 거리가 있기에 저 합수점을 다녀 올 시간이나 있을지 걱정과 고민을 하였지만 막상 산행을 하다보니 도로를 걷듯 시간은 얼마 걸리지도 않고 금새 날머리 근처의 마지막 마을에 도착을 해 또 하나의 산줄기 잇기 산행을 마무리하는 마음이 참으로 행복하기만 하다.

무엇이 좋아 이렇게 미친듯 산줄기 잇기 산행에 올인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아마도 복잡한 세상을 잠시 잊고 자연에 빠져 고민없이 자랐던 어린시절을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잠시 생각도 해 본 시간이다.

 

드디어 우측의 황구지천이 진위천과 만나는 합수점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담으며 또 다른 추억속으로 청명지맥 산행을 저장하는 이런 마지막 시간은 늘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이다.

주어진 두 다리만으로 그 긴 산줄기를 걸어 이렇게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강물에 빠지는 산줄기의 끝자락에 서서 느끼는 감정은 늘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동일한 것은 생각보다 큰 희열과 건강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하나의 매듭을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일 것이다.

이런 목적 산행이 아니라면 이곳에 와 이렇게 큰 희열을 느끼며 찾을 이유도 없었을 것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스스로에게 자축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나이들며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있음에 감사한 시간으로 남겨 본다.

 

지난 목요일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목표했던 세마역까지 무탈하게 청명지맥 첫 구간 산행을 마무리하고 올라갔기에 오늘은 아침 일찍 세마역으로 다시 오게 되었는데 신도림역에서 환승한 지하철이 동탄역이 종점이라 바로 앞 정거장인 병점에서 다음 지하철로 갈아 타 도착하니 아침 7시 45분을 넘기고 있다.

잠시 올마른 출구를 찾아 헤맸지만 큰 의미가 없기에 보이는 출구로 나가니 2번 출구이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보이는 좁은 도로를 타고 지난 구간 걸었던 등로 좌측 위 도로를 타고 마지막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정확히 7시 49분을 가리키고 있다.

세마역은 오산시 세마동 225번지에 있는 국철 역 이름으로서 2005년 12월 27일 국철 1호선 연장 개통으로 전철 역 이름이 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일본군을 물리친 세마대 유적이 근처에 있어 붙여진 이름처럼 보인다.

세마역 근처에는 독산성과 세마대가 있는데 오늘 산행이 이렇게 일찍 끝날 줄 알았다면 아침에 시작하면서 잠시 독산성과 세마대 그리고 양산봉을 다녀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이틀 전보다도 더 기온이 올랐는지 더 얇은 등산복을 입고 왔는데도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그런 날씨이지만 흐린 날씨에 미세먼지로 읺해 시야는 상당히 제한되고 있는 듯 보인다.

 

우측 아래에 지하철 철로를 두고 좁은 자전거 도로 같은 곳을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 앞으로 오산세교LH행복주택아파트가 보이고 사진에 담고 계속 전진하니 드디어 지하철 철로를 건널 수 있는 육교에 도착을 해 육교로 진입하기 전 세마역 방향을 사진에 담아 본다.

육교를 건너자마자 나타나는 힐링문화센터라는 입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 앞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가니 곧바로 그 도로 좌측으로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이정표 뒤로 돌아 능선으로 오르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지도에 죽미공원으로 표시된 곳을 통해 소나무 등로를 타고 오르니 운동기구와 사가겅자가 보이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아침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데 인사를 나누다 보니 106.5 무명 공터봉에 도착을 한다.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는 통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가고 잠시 후 등로 우측 진행방향으로 지붕이 덮혀 있는 수목원로와 그 도로 건너 잔다리마을아파트 빌딩숲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아파트 단지 뒤로 올라야 할 여계산이 빤히 보인다.

잠시 후 좌측으로 죽미공원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고 이어지는 통나무 계단을 내려가니 등로는 이정표의 8단지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은 지하에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인 봉담과 동탄간 고속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터널 위를 지난다.

죽미마을8단지휴먼시아아파트로 내려가기 전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아파트와 고속고도로 사이로 정원같은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죽미마을8단지 휴먼시아아파트 뒤로 조성된 정원으로 내려가니 주요산책로 안내판이 서 있는데 시간이 지나 사라진 부분들이 있어 제역활을 하지 못하고 있어 사진에만 담고 아파트 뒤 정원같은 곳을 통해 산행을 이어가니 고속도로 아래를 지나는 수목원로 4차로 포장도로가 앞을 가로막아 차량 통행이 뜸한 시간에 어렵게 통과해 죽미다목적 체육관 옆으로 진행한다.

잠시 후 세교지하차도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등로는 세교터널을 통해 오산휴게소 방향으로 가다 좌측으로 돌아 여계산으로 진행이 되는데 이 산객은 오산휴게소를 들리지 않고 직등으로 세교터널을 통과한 후 곧바로 여계산으로 진행을 하기로 한다.

바로 앞 도로가 끝나는 지점으로 오르면 세교터널를 통과해 여계산으로 직등할 수 있다.

 

많은 도로를 개설하며 정상적인 산행이 불가능하기에 세교터널을 통과한 후 오산휴게소로 내려가지 않고 좌측 여계산 방향으로 직등하여 오르니 서부로 6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봉담과 동탄간 고속도로도 덮개를 덮은 채 보인다.

그곳 터널을 올라 직등하니 좌측에서 오르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와 만나고 그 등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높은 산불감시초소와 삼각점 그리고 벤취쉼터가 보이는 158.6미터의 여계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여계산은 경기도 오산시 금암동과 지곶동 및 세교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59미터이며 산의 형세가 닭의 벼슬처럼 생겼다 하여 여계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기도 오산시의 많은 구릉성 산지 중 반월봉(118m)과 독산(208m) 등과 함께 동서 방향으로 뻗어있는 산으로 금암동과 지곶동 및 세교동에 걸쳐 있다.

조선 중기의 무신인 이괄(1587~1624)이 무술을 연마하던 장군터라는 장소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정상에는 비교적 넓은 공터가 조성되어 있다.

몇명의 동네 주민들이 운동하기 위해 올라 와 있기에 인사 드리고 사진 몇장 더 남긴 후 곧바로 그 여계산 정상을 출발한다.

 

여계산을 지나 잠시 내려가니 사각정자가 보이고 그 사각정자 앞에서 등로는 좌측 아래로 이어지는데 그 옆에는 애기바위에 얽힌 임진왜란 이야기란 설명판이 있어 읽어 본 후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전설이 깃들여 있다.

오산시사에 실려있는 이곳 애기바위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니 여계산 중턱에 있는 바위로 옛날 임진왜란 때 아기가 숨어 있는 바위를 톱으로 잘라 애기를 죽인 바위로 지금도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져 있는데 이 바위에는 애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 애기바위가 있는 금암동은 예전에 풍수지리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길지로 보였던 모양이다.

임진왜란 때에 왜군이 금암동에 들어와 약탈을 하였고 이때 왜장은 풍수에 밝은 사람이었는지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더니 큰 인물이 태어날 지형임을 알고 부하들을 시켜 어린 사내아기와 임산부를 모두 죽이라고 했으며 그 후 마을을 뒤져 마구잡이로 살생을 저질렀다.

그런 와중에 마을에 한 부인이 아기를 낳았는데 마침 아들이었으나 기뻐할 사이도 없이 아기를 살려야겠다는 일념뿐이었기에 부인은 아기를 감추고 자신이 희생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마음을 굳히고는 일부러 임산부처럼 배에 바가지를 넣고 마을을 활보하였다.

드디어 마을 입구에서 왜병들과 만나게 되었는데 왜장은 이 부인이 이미 어린애를 낳고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알고 부인에게 아기가 있는 곳을 물었으나 말하지 않자 부인의 배를 칼로 자르게 하였다.

짐작대로 부인의 배에는 엎어 놓은 바가지가 나오자 부인을 살해한 후 마을을 샅샅이 뒤지게 했으나 아기는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애엄마가 살해된 지 이틀이 지나자 아기의 울음소리가 산에서 들렸고 왜병들은 산을 뒤지기 시작하니 아기의 울음소리는 큰 바위 밑에서 들려 왜병들이 바위를 치우려 했으나 바위는 움직이지 않았다.

왜장은 부하들을 시켜 바위를 톱으로 자르라고 지시하였고 톱으로 바위를 자르기 시작하자 아기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얼마 후 바위는 두 동강이 났고 그 안에서 선혈이 낭자한 아기의 시체가 나왔는데 결국 왜병들은 마을의 아기들과 임산부를 모두 살해하고 떠났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에서는 애기바위의 전설을 이야기하면서 왜군의 잔혹성을 말한다.

 

진행하다 보니 이곳은 또한 삼남길인 듯 보이는데 서울에서 땅끝까지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경기도 삼남길이란 이정표도 보인다.

잠시 내려가니 지곶동과 금암동의 경계를 타고 등로가 이어지는데 이곳 하산 등로에는 소규모 공동묘지 지대가 펼쳐져 있어 그 묘지를 타고 내려가니 우측으로 약간 우회하며 내려간다.

묘지지대를 타고 왔다리 갔다리 내려가니 북부도보여행코스라는 안내판과 간단한 이정표가 보이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안부이다.

이곳 무명안부 역시 좌측의 오산시 금암동과 우측의 지곶동을 이어주는 제법 깊은 안부인데 이름이 없음이 의아하게 생각되는 곳이다.

 

안부를 지나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오르막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북부 도보여행코스라는 안내판이 서 있고 석산 방향으로 정상까지 120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곳에서 좌측 등로를 타고 잠시 오르니 금새 봉 따먹기의 대가이신 서래야님이 종이코팅지를 걸어 놓고 백두사랑산악회에서 석산 135.2미터라는 정상판을 걸어 놓은 용인452이라는 삼각점이 박혀 있는 135.2미터의 석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경기도 오산시 가장동과 금암동 경계 지역에 있는 석산(135.2m)은 궐리천의 발원지이고 정상에는 백두사랑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정상판과 용인452라는 4등 삼각점이 박혀 있는 것이 전부이다.

나뭇가지에 가려 조망도 없기에 사진만 남기고 곧바로 다시 올랐던 등로를 타고 내려간다.

 

잠시 올랐던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방금 전 만났던 북부 도보여행코스라는 안내판과 이정표가 서 있는 석산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셔 본다.

이제 우측은 방금 전 걸어 진행했던 여계산 가는 방향이기에 조금 더 직진하여 좌측으로 휘어지는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이고 너무나 뚜렷하여 길잃을 염려는 전혀 없기에 조금은 빠르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특이할 것 없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오르니 또 다시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는 131.4 무 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도시화 되면서 이런 운동기구 하나 설치할 장소가 사라지니 자꾸만 산상으로 밀려나는 느낌인데 기대했던 만큼의 마을 주민들이 이곳까지 올라 와 운동을 즐기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니 물향기수목원정문과 궐리사로 갈 수 있는 방향과 가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를 만나 자료를 찾아보니 물향기 수목원은 오산시 수청동 332-4번지 일원에 조성된 경기도립수목원으로써 물과 나무와 인간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수청동 약 10만평 부지에 만들어진 곳이다.

지하철(오산대역) 및 편리한 버스 노선으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이곳은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모습으로 1,732종의 다양한 식물과 삼삼오오 가족끼리 편하게 쉴 수 있는 너른 쉼터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궐리사는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공서린의 사당으로 시도기념물이며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익공식 맞배지붕의 건물이며 경기도 기념물 제147호이다.

이 곳은 원래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 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낸 공서린이 서재를 세우고 후학들에게 강의를 하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당시 뜰안 은행나무에 북을 달아놓고 문하 제자들에게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깨우치며 교수하였는데 그가 죽은 뒤 그 나무가 자연 고사하였다고 하며 그 뒤 정조가 화산에서 남쪽 멀리 바라보니 많은 새들이 슬피 울며 모여들므로 괴이하게 여겨 그곳에 행차해 보니 죽었던 늙은 은행나무에 싹이 트고 있었다.

그리하여 1792년(정조 16) 이 곳에 사당을 짓게 하고 이곳의 지명을 궐리로 고치게 하였으며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게 하고 라는 사액을 내렸는데 궐리는 노나라의 곡부()에 공자가 살던 곳을 본떠 지은 이름이다.

현재 솟을삼문 주위로 사고석담(돌담)이 둘러 있고 사당이 있으며 입구에 하마비가 있다.

삼문에는 (성묘)라는 현판이 있고 이 곳에는 1904년에 제작된 궐리사성적도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호로 지정되어 보관되어 있으며 지방의 유림들이 해마다 봄·가을에 엄격한 제례로 제향을 드리고 있다.

이제 노적봉까지 2.4 Km거리에 세마대까지는 5.0 Km이라는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 넘어 오산가장제2일반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많은 공장들이 내려다 보이고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인지 중장비에서 나는 기계음이 크게 귓전을 때리고 있다.

 

그렇게 산업단지를 살펴보고 묘지지대를 내려가니 동네 산책로 같은 등로가 열리고 무심으로 힐링하듯 걸어가 본다.

잠시 후 우측 지곶동에서 좌측 가장동 오산가장제2일반산업단지로 이어지는 가장산업서북로를 통과할 수 있는 동물이동통로가 보이는데 그곳에는 공원처럼 꾸며 놔 시민들의 휴식처로 만들었다.

하지만 앞서 걸어가는 중년의 남자가 담배를 피워대 아침부터 숨이 막히고 기침을 하며 다가가니 미안했던지 담배를 숨기는데 냄새까지 숨기지는 못한다.

 

등로 좌측으로 다시 한번 더 가장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공장들을 살펴보고 그 동물이동통로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벤취쉼터들이 보이고 등로에는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데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인 듯 보이는 중년 남성 한분이 등로 위에 쌓여 있는 낙엽을 쓸고 있어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빠르게 통과해 오르니 다시 벤취쉼터 3개가 보이고 그 넘어로는 거대한 e-편한세상 아파트 단지가 펼쳐져 있는 92.4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진행한다.

 

최근에 건설된 듯한 e편한세상 오산세교아파트를 우측에 두고 한동안 길게 절개지 능선을 따라 진행하니 생각보다 큰 아파트 단지라서 자료를 찾아보니 2000세대가 넘는 거대한 단지이다.

등로 우측인 아파트 방향으로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혹시 모를 추락에 대비를 한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아파트 단지가 끝이나고 등로는 다시 능선으로 오르는데 능선으로 진입하며 잠시 뒤돌아 보니 거대한 아파트 단지 우측으로 나 있는 등로 저 멀리 석산과 여개산으로 이어지는 청명지맥 마루금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지나온 방향의 등로를 확인하고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잠시 후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지도를 보니 원 지맥 마루금은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야 하지만 우측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노적봉이 보여 잠시 노적봉을 다녀 오기로 한다.

갈림삼거리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우측으로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박달나무와 참나무들이 보이는 둔덕으로 오르고 지도를 보니 이곳이 바로 121.4봉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이어지는 뚜렷한 넓은 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 본다.

 

그 121.4봉을 지나 편안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에는 약간의 활엽수 낙엽들이 깔려 있고 나무나 뚜렷해 길잃을 염려는 전혀 없다.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조망이 펼쳐지고 다가 가 살펴보니 북쪽 방향으로 들리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독산성과 세마대가 있는 봉우리가 보이고 진행 방향인 북서 방향으로는 노적봉도 빤히 올려다 보인다.

독산성은 백제시대에 쌓았다고 전해지며 도성의 문호와 관련하여 전략상 중요한 요충지여서 독산성은 백제부터 통일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용되었다.

또한 독산성은 1593년 7월에 전라도관찰사 겸 순변사였던 권율 장군이 근왕병 2만 명을 이끌고 북상하다가 이 성에 주둔하면서 왜군을 물리친 곳으로도 유명하고 8월 11일부터 14일까지 군사와 백성이 협동하여 불과 4일 만에 수축하였다고 알려진다.

권율 장군은 명나라 군사들과 함께 서울을 수복하기 위해서 1593년 2만여 명의 군사들과 함께 이 성에 주둔하였으며 이 성은 전략적인 요충지이기는 하지만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큰 단점으로 대군을 장시간 주둔시키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곳까지 진격한 가토 기요마사는 독산성 일대가 벌거숭이산임을 보고 물이 부족한 지역임을 알아차렸고 그래서 부하로 하여금 물 한 지게를 산 위로 올려 보내어 성 안의 군사들을 조롱하도록 했으나 이에 맞선 권율 장군은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꾀를 내었다.

즉 성 안 서장대에 장막을 치고 잔치를 열고 군사들로 하여금 백마를 성 위로 데리고 올라가서 흰 쌀을 말에 끼얹어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도록 한 것이다.

잔치를 벌이는 모습에는 곡식과 물의 풍요함은 물론 물부족에 대한 염려 따위는 전혀 필요없는 것으로 보였으며 게다가 사람이 쓸 물도 부족한 판에 말의 등에 물 한 동이를 연거푸 퍼붓는 것이었다.
왜군이 보기에 이 성 안에는 물이 차고 넘치는 것과 다름 없었고 결국 이를 본 왜군은 잔치를 벌이고 산꼭대기에서 물로 말을 씻길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오해하고 장기간 싸우더라도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퇴각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독산성의 서장대를 세마대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권율 장군은 이곳에서의 승리로 서쪽으로 향하던 왜군의 진로를 막았다.

 

그렇게 독산성과 세마대 그리고 진행 방향으로 노적봉을 살펴 본 후 다시 조망처를 나와 평이하게 걸어가니 등로는 로프가 설치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이어지고 곧이어 나무 계단이 길게 이어진다.

계단을 내려가니 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를 지나 걸어가니 또 다른 안부가 보여 지도를 살펴보지만 역시나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 안부이다.

 

안부를 지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로 변하고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묘지가 나타나는데 그 묘지 위에서 등로 우측 뒤를 보니 저 멀리 오늘 산행을 시작한 세마역 근처의 오산휴게소가 보이고 그 옆으로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인 봉담과 동탄간 고속도로가 보인다.

다만 날씨가 흐리고 미세먼지가 심한지 뚜렷한 시야가 제한되어 정확한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저 오산휴게소를 지나는 고속도로는 참으로 자주 달리고 앞으로도 가장 자주 달려야 할 고속도로이기에 남다르게 다가오는 풍경이다.

 

그렇게 잠시 더 지나 온 마루금을 살펴보고 오르니 등로에 쓰러진 고사목들이 보이고 곧이어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고 글자가 인식되지 않는 삼각점 그리고 서래야님과 백두사랑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노적봉 160.3미터라는 정상판이 보여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노적봉은 경기도 오산시 서랑동과 화성시 정남면 고지리의 경계 지역에 있는 산이고 높이는 160.3미터이며 경기도 오산시에서 북서 방향으로 뻗어있는 산줄기의 주봉으로 화성시와의 경계 지역에 있다.

산의 형태가 노적가리(한곳에 수북이 쌓아 둔 곡식 더미)와 비슷하다 하여 노적봉()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여인이 단정히 앉은 모양이라 하여 옥녀봉이라고도 부르는데 북쪽 산기슭 아래에는 1955년 축조한 서랑저수지가 있다.

약간 허기를 느껴 준비한 곶감 몇개로 허기를 달래고 물 한모금 마신 후 곧바로 그 노적봉 정상을 출발해 갈림삼거리로 복귀한다.

 

지나 온 오산휴게소 방향을 다시 살펴보고 독산성과 세마대도 확인한 후 재빨리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갈림삼거리를 지나 e편한세상 아파트 직전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 오는 짧은 알바도 경험한다.

다시 올라 와 이제는 우측의 노적봉 가는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크게 꺽어 소나무 등로를 타고 약간 내려가니 이곳 등로도 역시 활엽수 낙엽이 깔려 있는 뚜렷한 등로가 열려 있다.

 

잠시 리끼다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수종은 아카시아로 변하고 곧이어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곳으로 오르니 솔갈비가 수북히 쌓여 있는 바위 하나가 참나무 옆에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트랙 상 103.2 무명봉으로서 그 봉우리를 지나니 간간히 차량들이 지나가는 소음이 들리면서 2차선 포장도로가 그리 멀지 않은 듯 다가온다.

 

바위가 있는 103.2 무명봉을 지나니 깊은 안부가 나타나 지도를 보니 무명 안부로서 그곳부터는 도로 개설로 인해 직진의 마루금을 타지 못하고 우측의 작은 골같은 우회 등로를 따라 진행하게 되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잡목들이 나타나고 그 잡목을 헤치며 진행하니 금새 310번 가장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다음지도에는 왕림고개라는 이름이 붙은 고갯마루이다.

왕림고개인데 왜 이런 이름유래가 탄생했는지에 대한 자료는 찾지 못하였기에 이곳 지명인 가장동을 찾아 보니 가장동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동이며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남촌동이 관할한다.

동쪽으로 궐동과 서쪽으로 화성시 정남면과 남쪽으로 서동 및 북쪽으로 지곶동과 접하며 북쪽에 석산(135.3m)이 솟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초평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수원군 성호면에 편입되었고 1941년 수원군 오산면 관할을 거쳐 1960년 화성군 오산읍 관할이 되었으며 1989년 오산읍이 시로 승격할 때 남촌동의 법정동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가장자리를 뜻하는 가장골 또는 마을이 길고 주위가 아름다워 가장()이라고 하였다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어떤 설이 정확한지는 확실하지 않다.

작은 내(개울)인 가장천이 흐르고 330번 지방도가 동서로 지나며 면적에 비해 상주 인구가 적고 주민 대부분이 근교농업에 종사하지만 최근에 가장산업단지가 들어서 있고 요양시설인 오산정신요양원이 있다.

나중에 어렵게 중부일보의 기사를 통해 일부나마 이 왕림고개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있었는데 내용을 보니 조선조 7대 세조대왕이 몸에난 종기를 치료차 온양으로 행차할 때 지났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유래하며 정남면 괘랑리의 왕재고개와 봉담면 왕림리도 같은 연유로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이며 가장동 공원묘지앞 고개의 지명으로 가장동과 정남면 수면리의 경계의 고개를 말한다는 내용이었다.

생각보다 통행하는 차량들이 있어 조심하며 그 가장로를 건너 시멘트 옹벽이 낮아진 곳으로 올라 좌측 주능선 방향으로 길게 우회함 오르게 된다.

 

 

그 310번 가장로 2차선 포장도로에서 능선으로 오르니 활엽수 낙엽이 깊게 쌓여 있어 여간 미끄럽지 않고 특히나 좌측으로 우회하듯 길게 사면치기로 오르니 체력은 두배로 힘든 것 같다.

그렇게 한동안 사라진 등로를 개척하며 오르니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뚜렷하게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약간 흐르는 땀방울들을 식히며 전진하니 운동기구와 벤취쉼터들 그리고 한쪽에 수면리와 하산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는 118.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심호흡 한번 하고 출발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달려있는 참나무를 살펴보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등로는 다시 평이한 낙엽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거대한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112.5 무명봉을 넘어 잘 구분되지 않는 사거리 안부를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 묘지가 나타나고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펼쳐지는데 살펴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었던 여개산과 석산 그리고 e편한세상 아파트와 바로 발 아래로는 오산가장제2일반산업단지의 많은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인다.

 

잠시 오늘 걸었던 발자취를 생각해 보고 다시 전진하니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 위로 이어지는데 그곳에는 수면리와 장수봉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풍양조씨 묘지를 우측에 두고 그 좌측 등로를 타고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니 다시 참나무 등로가 열리면서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곧이어 무명안부를 지나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운동기구들과 벤취쉼터들이 설치되어 있는 지도 상 122봉에 도착을 하는데 방금 전 만났던 이정표에서 봤던 장수봉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지만 막상 지도를 확인해 보니 쌍수봉이란 지명이름이 나타난다.

쌍수봉에 대한 자료는 당연히 찾지 못하였지만 쌍수봉이 있는 가장동을 확인해 보니

가장자리의 뜻으로 가술 또는 가숫골로 불리던 곳은 가술리나 가수동이 되어서 오산시 가수동에 행정 지명으로 붙어 있다.
정남면 수면리 및 음양리와 닿아있고 가장동과 가까이 있고 감투봉 아래 있는 마을로 가수초등학교와 오산초등학교가 있으며 1989년 오산시로 승격 되면서 가수동은 초평동과 남촌동으로 편입됐다.

 

그 122봉을 지나 다시 참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약간의 낙엽송들도 보이고 등로가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어지럽게 내려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를 지나 등로 좌측으로 묘지도 보인다.

묘지 옆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수면리와 가장동 그리고 정상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에는 아무 표식도 없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주민 한분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하다 보니 매일 산책을 나오시는 할아버지로서 세마역에서 왔고 황구지천이 진위천을 만나는 합수점까지 간다고 하니 믿을 수 없다며 대단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시면서 자신은 이렇게 산책하는 것도 힘들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먼저 가라며 인사를 건네신다.

그 할아버지를 지나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출입금지 노끈이 설치되어 있고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73.3 삼각점봉이 있어 찾아 보니 삼각점은 인식이 불가능하고 그 옆 참나무에는 백두사랑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73.3m라는 이정판이 보인다.

 

삼각점봉을 찾아 보고 다시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해 빠르게 걸어가니 방금 전 만났던 할아버지와 다시 조우하게 되고 인사 드리고 다시 추월해 빠르게 걸어가니 갑자기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 편안하게 걸어 간다.

잠시 그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금새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고 그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가며 산줄기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서 있는 입간판을 보니 오산목형과 하나로게이엠이라는 간판들이 서 있다.

직진의 도로를 따르다 좌측 위 민가가 보이는 곳 비포장 임도에서 민가 쪽으로 붙어 오르니 묵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그 임도를 타고 우측 능선 방향으로 진행하며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그림같은 전원 주탁들이 내려다 보인다.

지도를 보니 오산시 서동의 로뎀실버텔과 힐링포레스트란 지명들이 보이는 곳으로 서동은 오산시에 있는 동으로 동쪽으로 청학동과 가수동이 서쪽으로 화성시 정남면이 남쪽으로 벌음동이 북쪽으로 가장동과 접하는데 1789년(정조 13)에 발간된 수원부읍지에는 초평면 지역으로 나와 있다가 1831년(순조 31) 발간된 화성지부터는 초()초()로 바뀌어 등장한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성호면 관할이 되었다가 그 뒤 1941년 수원군 오산면 관할을 거쳐 1960년 화성군 오산읍 관할이 되었으며 1989년 오산읍이 시로 승격할 때 행정동인 초평동의 법정동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오산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서동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서1동과 서2동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동은 서녘말로 2동은 여들로 부른다.

초평면 시절에는 면사무소가 있을 만큼 큰 마을이었으며 신동아아파트 뒷산에 감투봉(90m)이 서2동 마을 뒷산에 매봉재(90m)가 솟아 있고 서동저수지가 있는 마을이다.

 

잠시 더 머물며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서동마을을 살펴본 후 능선으로 드니 이곳 역시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등로는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잠시 후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70.6봉에 도착을 하는데 얼마 전 신산경표 상 162 전 지맥을 완주한 독도는 우리땅이란 닉을 사용하는 이경일님의 띠지에 매직으로 이곳의 해발고도가 적혀 있어 인사 드리고 다시 출발한다.

 

그 참나무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진행하니 이제는 등로 우측 앞으로 다시 거대한 정남일반산업단지 내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는데 등로는 오산시에서 화성시로 바뀌고 있는 경계 지점이다.

잠시 더 낙엽 등로를 따르니 갈림삼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6번 송전탑을 지나 약간의 잡풀지대를 통과한 후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난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나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원 지맥 등로는 좌측으로 갈라지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야 하지만 새로 생긴 정남산업단지가 바로 눈 앞으로 보여 그 산업단지 쪽으로 걸어 나가니 4차선으로 신설된 도로 건너 이제 막 산업단지를 조성중인 정남일반산업단지가 눈 앞에 펼쳐진다.

이곳 산업단지가 들어 선 음양리는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에 있는 리로서 면의 남동부에 위치하며 마을 동쪽과 남쪽에 산이 있는 전형적인 산골마을이었으나 이제는 많은 부분이 개발되면서 마을의 모양도 점차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자연마을로는 음지말과 양지말이 있는데 마을의 남쪽을 막은 산이 음지를 이루어 그곳에 있는 마을을 음지말이라 불렀고 한편 동쪽을 막은 산은 양지가 된다고 하여 그곳에 있는 마을을 양지말이라 불렀으며 음지말과 양지말의 이름을 따서 음양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이 넓은 4차선으로 신설된 포장도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가다 좌측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올라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원마루금으로 올라 산행을 이어간다.

 

새로 신설된 정남일반산업단지 내 4차선 도로를 벗어나 좌측의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예상과는 달리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길게 포장되어 있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한동안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가니 잠시 후 보도블록을 덮어 놓은 듯한 등로로 변하는데 등로 양쪽으로는 거대한 활엽수들이 보이고 중간에는 벤취쉼터들도 설치되어 있어 여름철에는 쉬어가기 좋게 조성된 길처럼 보였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돼지네라는 식당 입간판과 산장모텔 입간판과 건물들이 보이고 다사ㅣ 1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돌담시골밥상이라는 식당도 보이면서 곧이어 314번 정남동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따라 한동안 걸어가게 된다.

 

흐렸던 날씨가 맑아지며 햇살이 비추지만 미세먼지가 심한지 흐릿하고 그렇게 314번 정남동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옆 인도가 좁아 위험하기에 조심하며 걸어간다.

잠시 후 북경반점이라는 식당이 보여 점심식사를 하고 갈까 고민하다 그냥 지나치니 도로 우측으로 식당과 사무실 건물들이 보이고 도로표지판에는 340미터 전방에 갈림삼거리가 나타는데 82번 도로로서 좌측으로 오산 우측으로는 조암과 발안으로 갈 수 있는 도로라는 표시가 보인다.

 

그렇게 도로 표지판도 살펴보며 계속 이어지는 314번 정남동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82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갈림삼거리 직전 좌측으로 황제짬뽕이라는 식당이 보여 잠시 그곳으로 들어 짬뽕 한그릇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하지만 생각했던 짬뽕과는 달리 맛도 별로이고 양도 많지 않아 실망했지만 허기가 지니 국물만 남기고 다 먹은 후 나와 다시 산행을 이어가 본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좌측으로 걸어가니 82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갈림삼거리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그곳으로 가 도로를 건너 좌측 벌음삼거리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이곳은 화성시 정남면 덕절리와 벌음리 및 수월암리가 만나는 경계 지점으로 등로는 이제 덕절리에서 벌음리로 진행하게 된다.

덕절리는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에 있는 리로서 본면의 남동부에 위치하며 덕절(덕사)이 있었으므로 덕절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새터말, 큰말, 황터 등이 있는데 새터말은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큰말은 큰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며 황터는 황씨가 살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횡단보도를 통해 82번 발안로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좌측으로 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삼거리 도로 위에는 벌음삼거리란 글자가 보인다.

벌음리는 이제 초평동으로 변한 지역으로 초평동은 오산천 서쪽의 평탄부에 자리잡고 있다.

낮은 구릉지와 농경지가 많고 동쪽은 공업지역의 서쪽은 농업지역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북동쪽은 아파트가 들어선 주거지역이다.

동 이름은 조선시대의 옛 지명을 되찾아 붙여졌는데 1831년 발간된 화성지에 의하면 현 남촌동에 있는 궐리사가 당시는 초평면에 속해 있었고 이로 미루어 1914년까지 초평면 지역이 현재의 신장동 일부까지 포함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산시의 다른 동과 마찬가지로 1989년 서리와 벌음리, 두곡리, 탑리, 누읍리, 가수리 등을 통합하여 초평동으로 개편되었다.

행정동인 이 동은 법정동인 서동, 벌음동, 두곡동, 탑동, 누읍동, 가수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샘골과 잿말, 타마루, 돌마루, 밀여울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농업과 공업 및 주거 지역이 공존하는 지역적 특성을 가지며 오산천변에 누읍공업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지역이 미개발 상태로 있는 근교 농업지역이고 302번 지방도로가 가로지르고 있으나 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가수동에는 청해 이씨 사당인 청해백사가 있는데 이곳은 청해백 퉁두란 이지란을 받드는 사당으로 원래는 오산초등학교 부근에 있었는데 여러 번의 전화로 소실되어 이곳으로 옮겨 다시 건립한 것이다.

그 벌음삼거리에서는 직진의 82번 발안로를 보내고 우측의 314번 남부대로 6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며 샂행을 이어간다.

 

 

잠시 314번 남부대로 6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공인중계소와 서부모터스라는 중고차 매매건물이 보이고 그곳 건물 우측으로 돌아 보이는 능선으로 어렵게 오르니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들과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능선에 진입하고 이리저리 잡목들을 피해 어렵게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쓰러진 거목과 고사목들이 등로를 막아 우측으로 힘들게 우회하며 통과하니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56.8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봉우리 좌측인 진행 방향으로는 무명묘지 한기도 보인다.

 

사진 한장 남기고 좌측 묘지 옆으로 돌아 내려가니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등로는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데 솔갈비가 드ㅜ껍게 깔려 있어 진행에는 좋은 등로이지만 근처 공자에서 나는 화학약품 냄새로 인해 진행이 편하지만은 않다.

능선 우측으로 많은 공장건물들을 살펴보며 계속 능선을 타고 걸어가니 등로는 이제 우측의 건물 담벼락 옆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포장도로가 갈리믐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해 이제부터 한동안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본다.

이제 지역은 화성시를 지나 평택시 서탄면 지역으로 수월암리로 접어 들고 있다.

 

도로 우측에 수월암리 공장지대를 두고 걸어가니 잠시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는 도로로 걸어가고 곧이어 도로 좌측 아래로 오산시의 버스들이 머무는 차고지가 내려다 보이는 도로 위를 따라 걷게 되는데 그 오산교통 지나 저 멀리에는 오산시가지의 풍경이 한누에 들어 온다.

거대한 아파트 빌딩 숲 사이로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고 그 앞으로는 여전히 대단위 건설현장이 보이는 역동적인 오산시의 모습이다.

 

오산교통를 좌측 아래로 내려다 보며 계속 이어지는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전진하니 잠시 후 수월암길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우측으로 진행되고 곧이어 도로 좌측으로 4차선 도로가 지나는 위로 통과할 수 있는 두곡1교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대협이라는 입간판 지나 도로 좌우측으로 공장 건물들이 보이고 곧이어 철거전문과 중고기계를 주로 다루는 공장지대를 통해 산행을 어렵게 이어간다.

한동안 그런 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우측으로 대협특수공구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서 지금까지 걸어 온 1차선 포장도로를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 위로 보이는 공장 건물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그 건물은 이미 폐쇄된 건물이었다.

 

그 공장 건물 우측으로 보이는 진입로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 역시 활엽수 낙엽이 깊게 깔려 있고 약간의 고사목들과 엄나무가 보이는 곳을 지나 묵은 비포장 임도를 만난다.

오래되었는지 잡목들과 잡풀들이 보이는 그 묵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진행하니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53.2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등로 우측 앞을 보니 거대한 공장 건물과 드넓은 주차장 그리고 그 앞을 지나는 드넓은 신설 도로가 펼쳐져 있다.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등로를 타고 우측 아래 절개지를 조심하며 진행하니 드디어 보일러로 유명한 경동나비엔 공장 전경이 펼쳐지고 어렵게 좌측으로 우회하며 그 능선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아직 이름도 없는 신설된 6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방금 전 내려다 봤던 경동나비엔 공장 정문 방향으로 걸어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경동나비엔 홈페이지에 들어가 살펴보니 경동나비엔은 사회공헌을 기업의 실천적 가치로 삼아 첨단 친환경 기술을 통해 에너지 절감과 환경보전에 앞장서고 고객의 사랑에 보답하는 사회 속의 기업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으며 앞으로도 경동나비엔은 쾌적한 생활환경과 더불어 깨끗한 지구를 만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으로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글로벌 에너지솔루션 기업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는 기업이념과 활동 내역이 보인다.

경동나비엔은 아시아 최초로 고효율 친환경의 콘덴싱 기술을 선보이며 우리나라에 친환경 에너지 절감형 보일러 시대를 열었고, 지속적인 기술 혁신을 통해 국내 업계 1위는 물론 보일러 온수기 수출 1위의 압도적인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잠시 그 넓은 신설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경동나비엔 정문에 도착하기 직전 우측 둔덕에 고인돌 형상의 돌이 보이고 그 옆으로 설명판이 서 있어 올라가 보니 평택 수월암리 고인돌에 관한 내용들이 적혀 있다.

경기도 평택시 서탄면 수월암1리 인근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로서 지금은 경동 나비엔 공장이 들어서며 그 공장 둔덕에 남아 있다.

수월암2리에서 1리로 넘어가는 고개 정상부의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정상부에서 구덩식으로 추정되는 고인돌이 발견되었고 고인돌에는 흙이 둘러져 있으며 덮개돌은 크기 2×2.5m에 두께 약 60~70cm로 편평한 타원형이다.

하부 구조는 관찰되지 않았으며 출토된 유물 또한 없었다.

고인돌일 읽어 보고 다시 도로로 내려와 진행하니 금새 경동나비엔 정문을 통과혐 걸어간다.

 

경동나비엔 정문을 지나니 이름은 없지만 대중교통인 버스는 운행이 되는지 버스가 지나가고 잠시 후 수월암교차로 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직진 방향으로는 아직 공사가 진행중인지 출입통제를 하고 있어 지도를 살펴보니 서부우회도로로서 올해 년말에나 완공 예정이라는 소식이 보인다.

이곳 수월암리는 경기도 평택시 서탄면에 있는 리로서 오산천 가에 달처럼 생긴 작은 산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걸미와 거르미 또는 수원암이라 하였으며 또는 마을 논에 거머리가 많다 하여 거르미라고 하였다는 설도 있다.

서쪽으로는 오산천이 흐르고 자연마을로는 심교리, 깊은다리, 도도리(, 원수월암, 거리미 등이 있는데 도도리는 마을 전후좌우로 사통팔달의 길이 이어져 있어 유래된 이름이다.

 

 

수월암교차로 사거리에서 직진의 막혀있는 도로를 확인하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수월암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로 좌우측으로 작은 공장 건물들이 보이고 곧이어 고갯마루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당고개라는 이름이 보인다.

원 지맥 등로는 경동나비엔이 들어 서기 전에는 도로 우측의 능선을 타고 이곳으로 이어지는 듯 보였지만 이제는 이곳도 개발이 되면서 공장들이 들어 서 좌측의 도로를 타고 우회하며 진행하는 등로가 되어 버렸다.

이곳 수월암리에 있는 당고개에 대한 자료는 찾지 못하였는데 전국 대부분의 당고개는 예전에 성황당이나 당집이 있었던 곳을 이르는 고개로서 이곳 역시 도로와 공장들이 들어 서기전에는 제법 높은 고개로서 성황당이나 당집이 있었던 곳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그 당고개에서 등로는 도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능선으로 들자마자 백천조씨 묘지와 다른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 뒤로 오르니 등로가 사라지고 솔갈비가 수북히 쌓여 있다.

높지 않기에 이리저리 자라났다 말라 있는 잡풀들을 피해 푹신한 솔갈비를 밟으며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 사이로 무성하게 자라났다 말라 죽어 있는 잡풀들이 보이는 47.2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 본다.

 

소나무 등로에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말라 있는 완만하게 내려가는 등로를 따르니 금새 우측으로 공장지대로 들어가는 출입을 금지하는 녹색철망이 나타나고 그 철망을 타고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서탄2로라는 1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도로 양쪽으로 보이는 공장 건물들을 바라보며 서탄2로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이름과 번호가 없는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는 2차선 포장도로를 우측으로 보내고 여전히 이어지는 좌측의 서탄2길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을 이어간다.

 

이제 도로 우측으로는 둔덕을 두고 좌측으로는 평택시 서탄면 사리지역의 공장지대를 내려다 보며 한동안 걸어 진행하니 저 멀리 포장도로가 끝이나고 직진의 능선으로 오르는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이곳 사리는 경기도 평택시 서탄면에 있는 리로서 오산천이 남북으로 흐르고 있으며,동쪽에 평야가 넓게 발달해 있고 서탄면사무소 동쪽에 위치해 있다.

600여 년이 됐다는 이 마을은 순흥 안씨와 해주 오씨 등 8세대가 정착하여 시작되었고 자연마을로 절골이 있는데 절골은 사리의 우리말 이름으로 옛날에 절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절골 또는 사동으로 불리고 있다.

 

이제 옛 정취는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공장 건물들이 지어져 완전히 다른 마을로 변해 버린 풍경을 살펴보고 능선으로 오르는 발걸음이 마지막으로 향해서 그런지 조금은 가볍다.

 

능선으로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둔덕에 가려 보이지 않던 드넓은 공장 건물들이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여전히 수월암리쪽 공장지대로서 수월암리는 이제 완전히 다른 마을로 변해 버린 느낌이다.

잠시 후 거목들과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가 나타나고 조심하며 걸어 전진하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고 한쪽에는 아크릴 판에 65.6봉이라 적혀 있는 이정판이 서 있는 65.6봉에 도착을 한다.

그 이정판 뒷면을 보니 대전의 보만식계에서 산행을 하고 계신 분들이 만들어 부착한 이정표이다.

 

그 봉우리를 지나 평이하게 이어지는 낙엽 등로를 따르니 금새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그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진행하니 서탄 매봉산둘레길이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매봉산을 찾아 보니 일반지도에는 표기가 없는데 다음지도에는 서탄면 사리지역에 매봉산이란 표기가 보이는데 이곳에서 멀지 않아 아마도 그 둘레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시작되고 그 도로를 타고 짧게 진행하다 우측으로 보이는 밭 경작지로 들어가니 등로는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와 이어진다.

임도 좌측으로는 농구장과 축구장 같은 운동장들이 보이는 서탄체육공원을 두고 우측으로는 이제 금암리쪽 공장 건물들을 살펴보며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나즈막한 둔덕 넘어 서탄2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진행한다.

 

좌측으로 걸어가니 서탄로가 지나는 갈림사거리와 만나고 그 도로를 건너 계속 이어지는 서탄2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으로 승진지관이라는 입간판도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그 도로를 따르니 저 멀리 도로 우측으로 묘지가 보이고 그 묘지 위로 오르니 창원황공과 그 부인의 묘지로서 사진에 담고 넘어가니 묘지 좌측 아래로 비포장 임도가 열려 있다.

살펴보니 이곳 묘지를 지나 도로 우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들어 왔으면 조금 더 편안하게 진행이 되는 그런 임도이다.

 

이제 임도 우측으로 수월암리 농경지와 공장 건물들을 바라보며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제법 드넓은 들판이 펼쳐지며 마지막 마을인 마두리가 희미하게 보이는데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어 아쉽기만 하다.

잠시 후 임도 좌측으로 묘지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그 묘지들을 지나 걸어가니 나뭇가지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어 지도로 확인해 보니 이곳이 37.7 삼각점봉이다.

잠시 주위를 확인하며 삼각점을 찾으니 묘지 위 옆으로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 있지만 37.7봉임을 알리는 이정판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 산행 중 거의 마지막 봉우리라 생각되는 37.7 삼각점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다시 묘지들이 나타나고 등로는 그 묘지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는데 내려갈수록 더 많은 묘지들이 나타난다.

지도를 보니 마두리공동묘지라는 곳으로 그 묘지들을 지나 내려가니 밭 경작지를 지나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기온이 오르면서 얼었던 밭이 녹아 질척이기 시작한다.

지도를 보니 이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는 여전히 서탄2로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 서탄2로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잠시 올라 좌측으로 건너 오르니 광산김공 묘지를 넘어 다시 비포장 임도와 만나 그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길게 걸어 본다.

나무로 지은 창고 같은 건물들을 지나 황톳빛 밭 경작지를 통과하니 약간의 가시덤불들이 앞을 막지만 손쉽게 지나 만나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눈 앞에 커다란 소나무와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마두리 마을과 좌측 드넓은 논 경작지 끝자락쪽으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해야 할 황구지천과 전위천이 만나는 합수점 방향도 가늠이 되지만 미세먼지인지 박무로 인해 시야는 제한적이다.

 

이제 약간 질척이는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한동안 걸어 진행하니 임도 우측으로는 거대한 한우농장 뒤로 수많은 공장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곳 역시 마두리 지역이다.

커다란 비닐하우스도 통과하고 넓은 밭 경작지도 타고 전진하다 보니 이제 마두리 마을이 시야에 뚜렷하게 들어 오기 시작하고 그 마두리 마을 지나 좌측으로 이어지는 합수점 가는 논 경작지도 드넓게 펼쳐져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황톳빛 임도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드디어 마두리 민가들이 나타나고 그 민가를 지나니 임도 양쪽으로는 과수원이 펼쳐지는데 그 과수원에서는 농부가 가지치기를 하고 있어 이야기를 나누니 배 과수원이었다.

몇 일 전 두명이 지나갔던 사람이 아니냐고 물어 아니라고 설명하고 산줄기를 알려 드리지만 이해하기 어렵고 그렇게 처음이라며 고맙다고 인사 드리고 다시 출발하니 마두1길과 서탄1로 2차선 포장도로가 만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그 서탄1로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좌측에는 탄탄전기를 두고 우측으로는 대성정공 건물을 두고 그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들어가니 등로는 금새 비포장 임도로 변한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밭 경작지와 민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는 동네 마을길 같은 1차선 포장도로로 변한다.

그 마두1길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민가 사이로 진행하니 드디어 등로는 서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틀어 진행되고 곧이어 두리매운탕 철렵국 식당을 지나 이제부터 진행해야 할 합수점으로 이어지는 드넓은 논 경작지가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마두리는 경기도 평택시 서탄면에 있는 리로서 서쪽으로 황구지천이 남북으로 흐르며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말머리, 사업소, 나비들, 장춘동 등이 있는데 마두리는 지형이 말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말머리 또는 마두라 하였다.

서탄면은 마을 전체가 말의 형상으로 생겼는데 금암리는 말의 심장부, 사리는 꼬리, 회화리는 앞발에, 적봉리는 뒷발에, 마두리는 말머리에 해당한다.

나빗들은 말머리 동남쪽에 있는 나비의 형상같이 생긴 넓은 들인 나빗들 가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장춘동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 정착한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나비가 봄을 기다리는 것에 비유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많은 선답자들이 황구지천이 진위천과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지 않고 이곳 마두리에서 산행을 마무리한 후기들을 자주 접했는데 그렇게 진행하면 많은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 무조건 인공 수로를 지나 드넓은 논 경작지 한가운데로 나 있는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합수점으로 가 추억 한장 남겨 보려고 한다.

마을을 벗어나 내려가니 감람심거리를 만나 좌측으로 몇발자국 가니 수로 지나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는 우측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을 이어간다.

곧게 뻗어 있는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햇빛이 강한 여름철에는 걸어 진행하기 쉽지 안음을 느껴보는 시간이지만 오늘은 견딜만 하다.

 

한동안 도로 좌우측으로 드넓은 논 경작지만 바라보며 지루하게 걸어가다 잠시 뒤돌아 보니 합수점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뒤돌아 와야 할 마두리 마을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엊그제와 오늘 걸어 진행하며 만났던 청명지맥의 공장지대와는 완전히 다른 전형적인 시골 풍경에 마음마저 푸근해 지는 시간이지만 아직도 도를 타고 합수점까지 갔다 뒤돌아 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달갑지 않은 시간이기도 하다.

 

조금은 지루할 쯤 음악을 들으며 홀로 그 넓은 논 경작지 한가운데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늘 느끼는 것처럼 두 다리는 위대하다는 말을 실감하는 시간이다.

잠시 후 갈림삼거리를 만나고 우측으로 돌아 진행하니 우측 다리 건너로는 서탄승마클럽이라는 이정판이 서 있고 좌측으로는 거대한 젖소 목장이 보인다.

도로 좌으측으로 나 있는 인공수로를 타고 다시 지루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도로 옆 잡목속에서 몸을 숨기고 재잘거리던 참새들이 날개짓을 하면서 날아가는 모습에 어릴 적 시골에서 저 참새들을 잡아 구워먹던 추억도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으로는 드넓으 논 경작지 중간에 거대한 한우인지 젖소인지 모를 농장들이 보이고 거대한 비닐하우스들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후 이제 도로 우측으로 흐르는 인공수로 위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나 있는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곧게 뻗어 있는 도로를 따르니 도로 좌측으로 수문이 보이는 갈림삼거리를 만나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는 방향으로 마지막 산행을 이어간다.

좌측 도로를 따르니 거대한 농장 건물들이 보이고 그곳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90도 꺽어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인삼포도 보이는데 기온이 변하면서 금산이 주산지였던 인삼도 이제는 전국적인 재배지로 변하는 듯 보인다.

다시 한동안 걸어가니 객토를 하기 위해 흙더미들이 쌓여 있는 곳을 지난 갈림사거리에서 좌측 굴다리가 보이는 방향으로 꺽어 내려가니 저 멀리 306번 정문회화로 4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지하통로가 보인다.

 

이제 비포장 임도로 변해 버린 등로를 타고 굴다리를 통해 306번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질척이는 임도를 따르니 드디어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직진 방향의 합수점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내려가며 마지막 발걸음을 옮겨 본다.

잠시 내려가니 도로 양쪽으로 빛바랜 억새와 갈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도로 좌측으로는 드디어 진위천의 잔잔한 물결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진위천 위에 설치된 좁은 다리 위에 도착을 해 진위천과 우측에서 내려오는 황구지천이 만나는 합수점을 배경으로 셀카를 남겨 본다.

황구지천은 경기도 수원시의 권선구에 위치하는 하천으로 경기도 군포시 삼성산(456m)에서 발원하여 의왕의 왕송저수지를 거쳐 시의 권선구 당수동과 금곡동, 장지동, 대황교동을 거쳐 화성시 태안읍과 정남면 및 양감면으로 이어진다.

이후 평택시에서 진위천과 합류하면서 진위천으로 명칭이 바뀌는데 호매실천과 서호천, 수원천, 원천천 등 수원의 여러 소하천을 받아들이면서 남쪽으로 흘러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대천()으로 소개되고 옛 명칭으로 유천()이라고 불렀다는 주장도 있으며 팔도지도에 표시된 유천이 지금의 황구지천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수원지명총람황구지라는 이름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추정하고 있는데 원래 항곶천()으로도 불리었는데 항곶천은 바다와 만나던 곳의 옛 지명 항곶진(현재 평택시 서탄면 황구지리)에서 비롯되었으며 따라서 이 항곶천이 변하여 황구지천으로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세먼지 속에서도 햇살이 비췄는지 불게 탄 얼굴에 인상까지 쓰고 있으니 안쓰럽기만 하다.

 

진위천과 황구지천이 만나는 합수점 위 바리에서 한동안 더 시간을 보내고 진위천 건너 홀로 세월을 낚고 있는 낚시꾼과 잠시 이야기도 나눈 후 다시 아쉬운 발길을 돌려 되돌아 나와 이제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둑방 도로를 타고 걸어가며 도로 우측으로 보이는 진위천을 담아 본다. 

진위천은 용인시 이동면 송전저수지에서 흘러나와 아산만으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상류 쪽에서 용인시 이동면의 송전천을 비롯한 여러 지천들이 송전저수지로 유입되고 이 송전저수지부터 진위천이 시작한다.

아산만으로 유입되는 도중에 용인시 남사면에서 시작된 원장천과 신갈저수지에서 시작된 오산천 그리고 수원 광교산에서 시작되는 황구지천 등이 합류한다.

진위읍지에는 장호천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장호천은 물 근원이 둘인데 하나는 용인의 옛 속현인 처인 동쪽에서 나오고 하나는 양지현에서 나온다고 설명하였으며 처인 쪽에서 나온 물은 원장천을 지칭하며 양지현에서 나온 물은 송전천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1872년 지방지도에 장호천이 읍치 남쪽으로 횡단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고 장호천 하류 쪽 현재의 진위면 하북리와 견산리 일대의 넓은 들을 장호평으로 표기 하였다.

장호천 상류 쪽에 표시된 귀천은 현재의 동천리에서 무봉산 아래 진목리쪽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동안 둑방도로를 타고 걸어가다 도로 좌측으로 보이는 거대한 농장 건물들과 수문이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틀어 논 경작지 사이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지나니 농장에서 나는 시골냄새를 맡으며 드디어 수문에 도착을 하고 그 수문부터는 마두리에서 걸어 왔던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뒤돌아 가 본다.

잠시 걸어가다 젖소 농장이 있는 갈림삼거리에서 마을 주민을 만나 인사 드리고 음악을 들으며 마두리 마을로 들어가니 저 멀리 평택시내버스가 들어 와 잠시 뛰어가 마두1리 버스정류장에서 배낭도 정리하지 못하고 88번 버스에 탑승해 배낭을 정리하며 청명지맥 마지막 제2구간 산행을 마무리한다.

명절이나 연휴 때 차량을 이용하기 어려운 시기에 오르려고 남겨 좠던 청명지맥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한남정맥에 딸려 있는 지맥 산행은 이제 모두 마무리가 되었고 호남지방의 산줄기를 찾아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올 한해는 또 어떤 추억들을 쌓을 수 있을지 기대ㅔ가 되는 시간이다.

 

버스를 타고 이마을 저마을 돌고 돌아 드디어 송탄역에 도착을 하고 송탄역으로 이동해 사진 한장 남기고 지하철을 이용해 귀가하니 이제 오후 4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다.

송탄은 경기도 평택 지역에 있었던 지명이름으로 송장과 탄현이 합쳐져 생긴 행정지명이고 고구려 시대 진위현은 본래는 부산현(475∼551)이었으며,당은군의 영현이었다.

간달부곡 또는 금산현이라 하기도 하였으며 송촌활달이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서쪽 지역에는 용성현(또는 차물현 : 지금의 평택군 청북면 용성리 일대)과 광덕현(지금의 평택군 현덕면 신왕리 일대) 등이 있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757년(경덕왕 16)부산현을 진위현으로 개칭하였으므로 4세기 중반에는 백제에 속하였다가 5세기에는 고구려에 6세기 중반에는 신라에 속하게 되었다.

고려 건국 후 940년(태조 23)에 지방 제도를 개혁할 때 진위현을 수주에 소속시켰으며 1172년(명종 2)에는 수주에서 분리되어 작은 고을이지만 감무를 두기도 하였고 그 뒤 진위현과 송장현으로 나누어졌다.

뒷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장면과 탄현면을 합하여 송탄면이 되었으며 여기서 처음으로 송탄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되었다.

1963년 10월송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 7월 1월에는 시로 승격되었으며 1986년 11월 시 청사를 중앙동에서 시정동으로 이전하였고 1987년 1월 평택군 서탄면 적봉리 일부를 서정동에 편입하였다.

시청 소재지는 서정동이었고 송탄시는 1995년 5월 10일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당시 평택시와 평택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평택시가 되었다.

 

 

 

 

산줄기 이어가기 산행 중 가장 낮은 해발고도를 가지고 있으며 제대로 된 산 이름조차 없는 그리고 평지가 많다 보니 난개발로 해가 바뀔수록 완전히 변해가는 산줄기를 따라 어렵게 진행하며 왜 이런 산행을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다시 얻었던 시간으로 남겨 본다.

이제 수도권에서 가까운 산줄기들은 거의 다 올랐기에 지방으로 가야하는데 특히나 가시잡목들로 악명이 높은 호남지역의 산줄기들을 집중적으로 오르면서 여름철이 오기 전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 시간이기도 하였다.

다만 이렇게 이른 시간에 산행이 마무리될 줄 알았다면 세마역에서 독산성과 세마대 그리고 양산봉을 다녀 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으나 황구지천이 진위천과 만나는 합수점까지 다녀 온 것은 잘 했다는 자축으로 마감한 하루였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200104 청명지맥 제2구간 세마역-합수점.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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