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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계명지맥(대간·완)

계명지맥 제1구간 분기점에서 신매고개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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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북도 충주시의 계명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9년 11월 02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흐리고 약간의 바람이 불었으나 산행 시에는 여전히 무더위를 느꼈던 조망이 좋았던 산행 날씨

산행온도 영상 08도에서 영상 20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사문리탐방센터(지릅재, 508번 2차선 포장도로)-마패봉등산로-이정표(마패봉 1.3 Km, 사문리탐방지원센터 1.0 Km)-백두대간 마루금(성터)-

                 동화원 갈림사거리 이정표(마패봉 0.7 Km, 동화원 1.3 Km)-성터 돌담-계명지맥 분기점-실질적 분기점이정표(부봉삼거리 2.9 Km와

                 하늘재 7.5 Km, 마패봉 1.1 Km)-준희 이정판-715 삼각점봉-697 무명봉-652.7봉-성터돌담-성황당 굿당-지릅재(540미터, 508번 2차선

                 포장도로)-사문리탐방지원센터 왕복-무명묘지-바위우회등로-묘지와 요물바위-박쥐봉(782.2 삼각점봉) 갈림삼거리-전망바위-772.7봉-

                 거대바위-714.5 무명봉-잡목묘 무명봉-뫼악재 비포장임도(녹색철망) 이정표(북바위산 1.1 Km, 뫼악동 0.8 Km)-나무계단-콘테이너 공터

                 이정표(북바위산 1.0 Km, 뫼악동 0.9 Km)-이정표(북바위산 0.5 Km, 뫼악동 1.4 Km)-인식불가 삼각점-철계단 바위구간-북바위산 갈림삼거리

                 이정표(북바위산 0.2 Km, 뫼악동 1.7 Km)-북바위산(772봉, 정상석, 전망데크) 이정표(물레방아 3.0 Km, 뫼악동 1.9 Km)-북바위산 갈림삼거리

                 복귀-바위지대 우회등로-714봉-713 무명봉-730 무명봉-석문봉(748봉)-739 무명봉-704.6봉-꼬부랑재-703.8 무명봉-망대봉(730미터,

                 삼각점)-686.1 무명봉-바위 우회등로(급경사)-무명안부-557.4 무명봉-528.4 무명봉-시어골재-480.6 무명봉-518.2봉-무명안부-전주이공묘-

                 477.3 웅덩이 무명봉-무명묘지-갑둥이재(비포장임도)-461.4 무명봉-471.4 무명봉-불난지역-지독한 잡목지대-667.5 삼각점봉(덕산25

                 삼각점)-687.3 무명봉-바위능선등로-대미산(680.8봉, 정상판2개)-669.5 무명봉-594.7 무명봉-552.5봉-526.6 바위공터 무명봉-448.7

                 분재형 소나무봉-418 통나무 안부-421 삼각점(덕산445 삼각점)-지독한 잡목지대-잣나무 군락지-멧돼지 목욕탕-무명안부-비포장임도-

                 묘지들-비포장임도-솔고개(용천고개, 36번 월악로 2차선 포장도로)-민가와 밭 경작지-잡목지대-전원주택단지-절개지-밭 경작지-(사과과수원)-

                 경주이공묘지-여주이공묘지-밤나무과수원-점말고개(안부)-과수원 철망-261.5봉-274.1 무명봉-255.7 삼각점봉-검정천막-273.4 잡목

                 무명봉-비포장임도-신매고개(531번 매남이길 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사문리탐방센터(월악산국립공원)에서 신매고개까지 빨래판 등로를 진행하여 약 23.26 Km (스마트 폰의 Oruxmaps와 트랭글 기준)

산행트랙 : 20191102 계명지맥제1구간 분기점-신매고개.gpx

산행시간 : 대체적으로 등로는 뚜렸하고 좋았으나 고도 차이로 인해 어렵게 진행하여 10시간 59분 (07시 03분에서 18시 03분까지)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03:50 애마로 집에서 출발

                                   05:40 충주시 충주교통 시내버스차고지 근처의 봉방동 도심공영주차장에 도착 해 주차

                                   05:55 시내버스차고지에 들려 6시 출발하는 미륵리 245번 운행여부 확인(학생이 없는 토 일요일은 첫차 운행하지 않음)

                                   06:25 시내버스차고지 근처의 순대국밥집에서 아침식사 후 애마로 사문리탐방센터로 이동

                                   07:03 사문리탐방센터 앞 작은 주차장에 애마 주차 후 빈손으로 계명지맥 분기점으로 산행 시작

                         올때 - 18:03 신매고개에서 산행 종료 후 카카오 택시를 불렀으나 받아주는 택시가 없어 기다렸단 충주 콜 택시 부름

                                   18:25 충주 콜택시로 신매고개 출발 해 사문리탐방센터까지 이동(31,500.-)

                                   19:35 충주시내의 죠이건강랜드 찜질방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식사 후 1박 (저녁식대 22,000.- 모포 포함된 숙박비 11,000.-)

계명지맥이란 ???

계명지맥은 백두대간 마패봉과 부봉 사이에 있는 745봉에서 가지를 쳐 북바위산(772.1봉), 석문봉(727봉), 망대봉(731.8봉), 대미산(681봉), 남산(636봉), 계명산(775봉), 광명산(148.5봉), 대문산(110봉)을 거쳐 충주시 칠금동의 탄금교에서 맥을 다 하는 약36.7 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대중교통의 미운행으로 인구 절벽을 느끼며 미세먼지로 조망이 없던 아쉬움을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으로 달래 보지만 빨래판 등로로 인해 고생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계명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충청북도 충주시와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와 다음의 백과사전 그리고 산림청과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오늘은 원래 부산 정족산에서 준희 선생님의 헌정산행이 계획되어 있어 그곳에 참석을 할 예정이었지만 저녁에 갑자기 일이 생기고 또 홀대모에 들어가 보니 참석인원도 150여명이 되어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금요일 저녁 늦게 잠자리에 드는데 아무래도 내일 그냥 집에 있으면 또 이번주가 아무 할일 없이 지나갈 것 같아 지난 천등지맥 산행 시 멀리에서 봤던 충주의 계명지맥을 찾아 나서보기로 한다.

새벽 6시에 충주교통차고지(충주시내버스차고지)에서 출발하는 미륵리 행 버스가 사문리탐방지원센터까지 운행되어 그 첫차를 타고 이동을 하면 편리할 것 같아 시간 맞춰 새벽 3시 30여분에 기상하고 준비된 배낭을 메고 집을 출발해 충주교통차고지 근처의 봉방동 도심공영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새벽 5시 40여분을 넘기고 있다.

주차 후 충주교통차고지로 천천히 걸어 가 5시 55분에 직원에게 문의하니 얼마 전부터 학생들이 타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 및 공휴일에는 첫차 운행이 중단되었다며 사문리탐바지원센터를 가려면 8시 20분 차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다는 소식에 난감해 하며 방법을 생각해 보지만 뾰족한 수단이 없어 일단 근처 순대국밥집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애마를 몰아 사문리탐방지원센터 앞 작은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7시를 넘기고 있다.

차량 운행 시간이 변경되었으면 내용도 정확하게 알려주면 좋을텐데 운행하는 버스회사와 기사들만 알고 있고 그 버스를 이용하려는 선의의 고객들만 피해를 보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그것이 아직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생각하니 참을만 하고 또한 서울을 벗어 난 충주같은 도시에서도 인구가 줄어들며 첫차까지 감소 운행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래도 이렇게 좋아하는 산을 찾아 고운 단풍을 구경하며 즐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오늘 하루를 열어 보는 시간은 늘 한결같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문리탐방지원센터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마역봉(마패봉)을 다녀오기 위해 빈몸으로 출발해 성터가 있는 백두대간 마루금에 접속하니 짙은 안개에 잠겨 있어 보이는 것 하나 없기에 마역봉 가는 것을 포기하고 계명지맥 분기점을 거쳐 지릅재로 하산하여 다시 사문리탐방지원센터에 들려 배낭 둘러메고 지릅재에서 본격적인 계명지맥 산행을 시작한다.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북바위산으로 오르니 바로 앞에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그곳으로 가 지나온 방향을 살펴보니 해가 뜨며 짙은 안개가 사라진 곳 저 멀리 들리지 못한 백두대간 상 마역봉과 그 좌측으로 계명지맥 분기점 그리고 762.3봉 지나 오래 전 고운 추억을 쌓았던 부봉과 주흘산 풍경들이 가슴속으로 파고들며 또 다른 추억을 남기고 있다.


옆지기와 오래 전 겁도 없이 올랐던 북바위산에 대한 추억을 생각하며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을 친구 삼아 무명봉 같은 석문봉을 지나니 세상은 온통 울긋불긋한 단풍이 펼쳐지며 마음 급한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기 시작하고 그렇게 자연속에 동화되어 천천히 여유롭게 거닐다 보니 어느새 삼각점이 반겨주는 망대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그 이후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이 수동 벗이 솟았다 내려 앉기를 반복하는 빨래판 등로에 넋다운 될 쯤 갑자기 불난지역으로 들어서며 지독한 잡목들을 헤치며 어렵게 오르다 뒤돌아 보니 고사목 사이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마역봉부터 이곳 대미산 전 불난지역으로 이어진 계명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와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잠시 망중한도 즐겨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바로 이런 조망과 풍경들이 그리워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또 이렇게 산상에 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무엇이 그리 좋아 새벽 잠도 설치고 일어 나 먼 충주까지 내려 가 어둠속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시내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충주교통시내버스차고지에 도착을 하니 아직 새벽 6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다.

아침식사 시간이 애매해 빵과 음료수를 조금 더 구입해 배낭속에 넣고 미륵리행 6시 첫차를 타기 위해 차고지에 도착을 하니 연세 드신 할머니 한분도 어디를 가시는지 새벽같이 나와 있는데 그 할머니의 목적지로 향하는 첫 버스 역시 얼마전부터 운행이 중단되었다며 버스회사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미륵리행 6시 버스를 확인해 보니 그 차 역시 얼마전부터 학생들이 없는 날은 운행을 중단하기로 결정되어 오늘은 운행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에 약간 울화통이 터지지만 직원과 다퉈봐야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기에 조용히 물러 난다.

오래 고민해 봐야 답은 뻔하기에 일단 애마를 끌고 주위의 순대국밥집에서 든든하게 아침식사를 먹고 무조건 사문리탐방지원센터로 가 산행을 진행하고 날머리로 생각하는 신매고개에서는 산행 완료 후 다시 차량 회수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아쉬움이 남지만 충주 같은 도시에서도 인구 절벽을 느끼며 차량 운행까지 감축해야 되는 현실이 안타까운 시간으로 다가온다.


애마를 몰아 사문리탐방지원센터 앞 좁은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먼저 도착한 등산객이 있었는지 차량 한대가 더 주차되어 있고 차주는 보이지 않아 먼저 출발하였음을 느끼며 천천히 산행 준비를 하며 주위 풍경을 둘러보니 597번 미륵송계로 2차선 포장도로변에는 알록달록한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어 깊어가는 가을을 추억으로 담아 보는 시간이다.

굳게 잠겨 이쑈는 문 옆에 비취된 자료들을 살펴보고 비움의 즐거움을 느낀 후 지원센터 뒷편으로 보이는 탐방로를 타고 이틀간의 긴 여정을 시작한다.


이곳 사문리는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속하는 법정리로서 참으로 오랫만에 들리는 탐방지원센터인데 예전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는 보지 못했던 탐방지원센터이기도 하며 그때는 공단직원들 눈을 피해 참으로 어렵게 산행을 이어갔던 기억이 있는 지릅재이기도 하다.

사문리의 지명유래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대사리와 석문동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사문리라 하였으며 대사는 큰 절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한절의 한자 표기로 예전에 큰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석문은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왜군을 막으려고 이곳에 성을 쌓고 돌로 문을 만든 데서 유래한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남쪽으로 마역봉을 넘으면 그 유명한 조령제3관문이 나오고 북쪽으로는 북바위산과 박쥐봉의 산행 기점으로도 이용되는 이곳 사문리탐방지원센터에서 새롭게 걸어 보는 계명지맥 첫 발을 출발하는 시간은 늘 같은 마음처럼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탐방로로 들어가니 안전목책과 로프가 보이고 곧이어 작은 개울 건너 우측으로 나무계단이 이어져 아무 생각업시 오르니 등로는 마여봉 방향이 아닌 우측 방향으로 다시 내려가기에 계단을 내려 와 계곡을 타고 낙엽 산행을 하듯 걸어 본다.

아직 지지 못한 낙엽들이 화려한 생을 마감하며 마지막 선물을 선사하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다 계곡을 좌측에 두고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가파른 오르막 등로 위에 낙엽이 깊게 쌓여 여간 미끄럽지 않다.

그 무명봉을 넘어 다시 내려 가 계곡을 만나고 조금 더 전진하니 마패봉까지 1.3 Km 거리라는 이정표가 반겨준다.

이곳까지는 꼭 마역봉을 다녀오겠다는 집념이 강했지만 잠시 후 짙은 안개로 인해 그 꿈은 깨지고 몇 년 전 신선지맥 산행을 하면서 만났던 기억으로 대신해 보는 마역봉이다.


이정표를 지나 고민하다 일단 백두대간 마루금으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빠른 능선 등로를 타고 빠르게 오르니 생각보다 점점 안개가 짙어지며 조망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화사하게 남아 있는 붉은 단풍을 살펴보며 흐르는 땀방울을 닦다 보니 드디어 산성 돌담이 보이는 백두대간 마루금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 있을 마역봉 방향은 안개속에 묻혀 보이는 것이 없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아쉬움 마음만 남긴 채 좌측 계명지맥 분기점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몇번이가 지났던 백두대간 마루금이라서 그런지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조각난 기억들이 되살아 나며 그 조각난 추억들을 맞춰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고 백두대간 마루금을 타고 좌측으로 내려가니 이곳 역시 깊은 낙엽들이 쌓여 있어 미끄럼을 타듯 내려가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저 멀리 안부가 내려다 보이는데 그 한가운데엔 이정표가 서 있고 살펴보니 우측으로 동화원과 좌측으로 지릅재 하산 갈림 사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이다.

동화원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에 있는 자연마을로서 주흘산 서쪽마을이며 문경새재 도립공원이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동쪽에 해 뜨는 것이 보이고 산에 꽃이 피어 화려하다 하여 동애원으로 부르다가 개칭하게 된 이름이며 이곳도 이름이 원이라 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여행자의 숙식을 제공하던 원이 있었던 곳이 아닌가 추측되는 곳이다.

오래 전 산친구들과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지났던 희미한 추억을 더듬으며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굵은 땀방울을 흘려 본다.


갈림사거리 안부를 지나 오르니 등로 옆으로는 여전히 성벽 돌담이 따라오고 잠시 후 커다란 소나무와 내무부라는 콘크리트 말뚝이 보이고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계명지맥 분기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판은 물론 아무 표식도 보이지 않아 이곳도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하기 때문에 공단에서 모두 제거를 하였다고 생각하며 아쉬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분면 얼마 전까지 이곳에 계명지맥 분기점이라는 이정판이 걸려 있었던 선답자들의 산행 사진들을 봤는데 그 사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좌측으로 꺽어지는 정상 등로를 찾아 주의하며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다 혹시나 몰라 다시 한번 더 계명지맥 분기점으로 올라가 이정판을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해 다시 내려가니 몇 발자국 걸어 내려간 등로 한쪽에 또 다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고 그 옆 나뭇가지 위에 백두사랑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계명지맥분기점이란 커다란 이정판이 보여 다시 사진과 추억 한장씩 남기고 좌측 사면 등로를 타고 진행하듯 걸어 계명지맥 산행을 알린다.


잠시 사면치기를 하듯 걸어가다 등로 좌측 위를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계명지맥 분기점이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 옆으로는 생각지도 못한 바위들이 보여 왜 직등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좌측으로 우회하며 내려와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잠시 더 걸어 이제 등로가 우측 아래로 곤두박질하는 지점 앞에 드디어 찾던 준희 선생님의 계명지맥분기점 이정판을 발견하곤 잠시 발걸음 멈추고 다시 추억 한장 더 남겨 본다.

오늘 오후에는 준희선생님을 위한 헌장 산행이 부산 정족상에서 있을 예정인데 참석하고 싶었는데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무척 아쉬움이 남는 하루이다.

부디 오랫동안 건강하게 후배들을 이끌어 주실 것을 부탁 드리는 마음 간절하다.


분기점을 내려가니 더욱 깊은 낙엽이 발목까지 빠지고 낙엽을 모두 떨군 커다란 참나무들이 줄지어 도열해 이 산객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약간의 잡목들과 고사목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삼각점이 보여 사진에 담고 판독해 보니 덕산433처럼 보이는데 정확하지도 않고 지도를 보니 지도에도 표기가 되어 있지 않은 정체불명의 삼각점이다.

이 산객이 사용하고 있는 Oruxmaps에는 711.1미터봉으로 표기가 되는데 선답자들은 이곳을 715 삼각점봉이라 칭하였는데 정작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표기도 되어 있지 않은 삼각점과 봉우리 정상이다.

 

수탈의 상처가 깊은 소나무와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을 살펴보고 다시 평이한 능선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695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약간의 잡목들을 헤치고 그 무명봉을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른다.

잠시 후 다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도상 652.7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전진하니 나뭇가지 사이로 잠시 후 올라야 할 박주봉 가는 길에 봉긋하게 솟아 있는 772.7봉이 상당히 가파른 모습으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생각지도 못한 성터 돌담이 나타나 지도를 살펴보지만 아무 표시도 없는 산성터로서 아마도 삼국시대의 성터는 아니였을까 추측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짧은 구간만 남아 있는 성터 돌담을 지나 조금 더 걸어 가니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잎 사이로 진행 해야 할 방향으로 뾰족한 봉우리 하나가 올려다 보이고 살펴보니 이제부터 지릅재 지나 올라야 할 계명지맥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약간 비켜 서 있는 772.7봉으로서 그쪽 방향으로 진행하면 박쥐봉이 나오겠지만 오늘은 가야 할 등로가 아니기에 저곳까지만 올랐다 뒤돌아 내려 와 좌측 능선을 따라 진행해야 한다.


그렇게 진행 방향으로 조망을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생각지도 못한 굿당이 나타나는데 지금까지 산행을 하면서 가장 잘 보관되어 있는 굿당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최근까지도 사용된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가 말하는 굿당은 무당이 굿을 하는 곳으로 무당은 여러 곳에서 굿을 할 수 있는데 이 굿당은 가장 정식으로 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굿당은 보통 신령과 소통이 잘 되는 자리에 세웠는데 그래야 기도가 잘 되어 굿의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산객이 어렸을 적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굿을 하던 풍경들을 볼 수 있었는데 신령 아버지가 와 굿을 하고 가내 평온을 빌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잠시 옛 생각에 잠겼다 깨어나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굿당 주위에도 성터 돌담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오늘 산행 전 잠시 들렸던 지릅재 정상에 도착을 해 508번 미륵송계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 사문리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가 애마에 남아 있는 배낭을 메고 올라오기로 한다.

지릅재는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에서 미륵리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1891년에 편찬된 연풍현읍지에서는 마골산(640미터)의 마골점 봉수(일명 마골봉수)는 연풍현 북쪽 40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릅재 남쪽에 마골산 봉수가 있어 마골점이라고도 불렸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계립령의 별칭으로 지릅재라는 명칭이 등장하게 되었다.

지릅재는 지름재, 제름재 등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지름재는 일설에 지른길이라고도 보고 있는데 이는 우리말로 질러서 가까운 거리로 간다는 뜻이다.

지릅재의 남쪽에는 마폐봉(922미터, 일명 막역봉)과 북쪽에는 북바위산(772미터)에서 사시리고개(772미터), 715고지, 773고지, 745고지, 박쥐봉(782미터, 일명 연내봉) 등으로 연결되는 고산지대가 있는데 지릅재는 남쪽의 마폐봉과 북쪽의 773고지의 안부에 위치하고 있다.


지릅재는 수안보면 사문리 뫼약동에서 미륵리 점말로 넘어가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미륵리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 지릅재가 있고 동쪽의 하늘재가 있다.

하늘재는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연결하는 요충지로서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연결하는 대로로 추정되고 있는데 조선 초기에 조령을 공로로 개발함에 따라 하늘재의 기능은 약화되었다.

지릅재 남쪽의 마골산의 산정과 안부 등에서는 토루와 석축 등의 일부가 남아 있고 북서쪽 봉우리 부분은 2차로 축조한 흔적이 보이면서 파상군 기와편이 발견되고 있으며 남서쪽의 석축은 잘 보전되어 곡면으로 이어져 튀어나와 있어 마치 성벽처럼 보인다고 한다.
지릅재 서쪽의 사문리 뫼악동은 북바위산이나 신선봉 등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고 신선봉 동북쪽의 계곡에는 신선폭포가 있으며 서쪽의 사문리 석문동에는 옛날 병참이 있었다는 병참터가 있다.

동쪽 미륵리의 충주 미륵대원지는 고려 초기에 조성된 약 4000여 평 규모의 대사찰로서 충주 미륵대원지는 주흘산(1093미터)을 진산으로 좌우는 신선봉과 포암산(962미터)을 끼고 멀리 월악산을 조산으로 하는 중심 혈에 위치하고 있다.
충주 미륵대원지는 미륵댕이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1977년 세 차례에 걸친 발굴 작업으로 약 14000평에 조성된 고려 초기의 대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곳에는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96),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보물 제95), 충주 미륵대원지 석등(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 충주 미륵대원지 삼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3), 미륵리 돌거북 등이 있어 앞으로 원형을 찾아 보존하고 관리한다면 한국 유일의 석굴사원지가 될 것이다.
미륵리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시월 초삼일에 산신제를 올리고 있고 1986년 중원군 특수시책으로 한옥마을을 조성하여 농협중앙회로부터 모범 민속촌으로 지정되었다.

지방도 597호선은 수안보면의 온천리에서 지릅재를 넘어 미륵리를 거쳐 제천시 한수면 복평리로 연결되고 있는데 미륵리 안말에서는 하늘재를 넘어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로 통하는 도로가 분기되고 있다.

사문리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가 배낭을 메고 다시 걸어 오르니 왕복 1 Km 전후로 약 20여분이 소요된 듯 보인다.

이제 도로 좌측의 철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는데 처음 백두대간을 진행하던 2006년에는 출입금지가 아니였다가 그 이후 이곳 철망이 생기면서 공단직원들이 상주하다시피 출입을 통제 해 도둑고양이처럼 숨어 들어가고 나왔던 기억이 생생한 지릅재이지만 오늘은 제지하는 사람 없이 가볍게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철망이 끝나는 지점 좌측으로 오르니 출입금지라는 이정판이 보이지만 너무 오래되었는지 색이 바래 글자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 옆으로 태양광 전기판이 설치되어 있는 인공 구조물이 보이는데 용도는 알 수 없어 한번 살펴보고 다시 오르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배낭 정리하고 비움을 즐거움을 느낀 후 우측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새로운 등로를 찾아 떠나 본다.


잠시 폭신한 솔잎 등로를 따르니 샛길 출입금지 안내판이 보이고 곧이어 봉분이 사라진 무명묘지가 등로 한가운데 보이는데 이제 연고지도 사라진 듯한 묘지의 모습이다.

그 묘지를 지나니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 우측으로 나 있는 우회 등로를 따르니 금새 다시 정상 마루금에 복귀를 하고 다시 등로 좌측 뒤로 방금 전 다녀 온 계명지맥 분기점과 마역봉 모습이 살짝 눈에 보였다 사라진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묘지가 보이는 곳 우측과 위쪽으로 해골바위를 닮아 이는 바위들이 보이고 신기한 모습에 사진으로 남기고 묘지 위 뒷쪽으로 이어지는 산행을 이어 가 본다.


그 묘지를 지나 오르니 계명지맥 등로는 좌측으로 꺽여 진행되지만 우측 가까운 곳에 772.7봉이 지도상에 보이기에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이 등로를 따라 계속 전진하면 박쥐봉에 갈 수 있는 등로로서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바위 전망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으로 지나 온 아름다운 풍경들과 조망이 펼쳐져 있는데 먼저 지나 온 등로 좌측으로 몇 년 전 그리워 무작정 내려 와 오르며 짙은 안개속에 조금은 아쉬움을 남겼던 주흘산과 부봉의 모습이 선명하게 가슴속으로 파고 드는 시간이다.

주흘산은 경북 문경시 문경읍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높이 1108.4미터이며 조령산과 포암산 및 월악산 등과 더불어 소백산맥의 중심을 이루며 산세가 아름답고 문경새재 등의 역사적 전설이 담겨 있다.

산의 북쪽과 동쪽은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경치가 매우 아름답고 또 동쪽과 서쪽에서 물줄기가 발원하여 신북천과 조령천으로 흘러드는데 이 물줄기들은 곳곳에 폭포를 형성한다.

그중 유명한 것이 발원높이 10미터의 여궁폭포와 파랑폭포이고 산기슭에는 혜국사가 있으며 주흘산과 조령산 가운데에 난 계곡을 따라서는 문경관문이 세워져 있다.

해발 520미터에 위치하는 혜국사는 신라 문성왕 8년(846) 보조국사 체징이 개창한 고찰인데 고려 말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공민왕이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진 절이다.

역사의 애환과 수많은 사연을 지닌 문경관문은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제1, 제2, 제3 관문 및 부속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1, 제2, 제3 관문은 양쪽 산의 골짜기에 위치하며 관문 좌우의 성벽은 능선을 따라 우회한다.

산 정상에 올라서면 운달산과 그 왼쪽으로 멀리 소백산 등이 이어지고 남쪽에 백화산, 서쪽에 조령산, 북쪽으로는 1108고지인 주봉이 보인다.

그 주흘산 옆으로는 부봉이 보이는데 부봉의 높이는 935미터이고 문경새재 제2관문인 조곡관 뒤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산으로 모두 6개봉으로 이루어졌고 제2봉이 제일 높다.

백두대간에 속한 산으로 하늘재를 지나 조령까지 이어진 주능선에서 가지를 뻗은 문경의 진산 주흘산(1106m)과 이어져 있고 조령산(1017m)에서 동쪽으로 보이며   주흘산의 북서쪽에 바위벽으로 솟아 있다.

이화령에서 하초리로 흐르는 조령천이 산 옆으로 지나가며 6개 암봉이 한 줄로 이어져 있어 험준한 암릉의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옛날 영남지역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인 제3관문을 비롯하여 제1, 2관문이 자리잡고 있는 일대는 물박달나무, 자란초, 미치광이풀, 냉초 등 희귀 동식물이 많아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었고 문경시는 1987년부터 10만 그루 이상의 묘목을 심어 박달나무 군락지로서의 명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언제 다시 좋은 날씨에 저 능선들을 타고 한번 더 걸어 볼 기회가 있을련지 모르겠다.


주흘산과 부봉을 살펴보고 눈을 우측으로 돌리니 오늘 이 산객이 올랐다 내려 온 계명지맥 분기점이 보이고 그 우측 위로 마역봉과 신선봉 자락들도 보일듯 말듯 위치해 있다.

마역봉은 신선지맥 분기점인 충청북도 괴산군의 연풍면과 충주시 수안보면 및 문경시 문경읍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940미터이고 마역봉 아래에 위치한 조령과 조령산 등과 함께 문경새재 도립공원에 속한다.

북동쪽으로는 신선봉이 있고 이 마역봉을 포함하여 조령산과 백화산, 희양산, 대야산 및 청화산 등으로 이어지는 소백산맥 줄기는 낙동강 수계와 한강 수계를 가르는 분수계가 된다.

조령삼관문을 안고 있는 이 산은 마패봉으로도 불리는데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곳을 넘다가 잠시 쉴 때 마패를 관문 위의 봉우리에 걸어 놓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고 구한말지형도에는 이 지명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조선지지자료에서는 괴산군 상모면과 연풍면 및 문경군 문경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마문봉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 위치상 마역봉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지형도에서는 마력봉이라고 표기하고 있고 한국지명총람에서는 이 지명이 말을 놓아먹였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적고 있으며 이와 같이 마역봉의 지명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괴산군이 꼽은 괴산 명산 35곳 중의 하나이다.

참으로 자주 올랐고 많이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모르겠는 것이 산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전망바위에서 멋진 조망과 풍경을 즐기고 잠시 후 다시 짧게 오르니 커다란 바위들과 소나무들이 보이는 772.7봉 정상에 도착을 하지만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만 몇개 보일 뿐 특이한 것이 없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 방향으로 박쥐봉 가는 등로만 살핀 후 올랐던 등로를 타고 빠르게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나간다.  

박쥐봉은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772미터이고 월악산국립공원에 있는 바위산이며 산세가 아름다우나 경사가 급하고 절벽 지대가 있으므로 등산할 때 주의해야 한다.

동쪽으로 만수봉(983m)과 서쪽으로 북바위산(772m)이 있고 이외에도 월악산에 속한 많은 봉우리들이 주변에 많으며 옛날부터 정상 부근의 자연 동굴에 박쥐가 많아 박쥐봉이라고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산에 있는 박쥐바위에서 이름을 따왔다고도 한다.

산행은 지릅재에서 시작하는 코스와 팔랑소에서 시작하는 코스가 있는데 지릅재는 수안보온천에서 미륵리 쪽으로 10 Km쯤 되는 곳으로 제1봉과 2봉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남릉을 지나 만수휴게소로 하산 하며 정상에서 만수휴게소까지는 경사가 심하므로 조심해야 하고 3시간 정도 소요된다.

팔랑소에서 출발하는 코스는 전망대바위를 지나 정상에 오른 뒤 제2, 북릉, 뜀바위, 사시리계곡을 거쳐 팔랑소로 하산하며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주변에는 탄금대, 미륵사지, 봉황자연휴양림 등 유적지와 명소가 많고 미륵사지 부근, 팔랑소, 만수휴게소에 민박집이 있다.

언제 기회되면 저 박쥐봉도 한번 다녀올 수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 본 시간이었다.



이제 다시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나오니 바위들과 소나무들이 보이고 사진에 담고 이제 직진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가니 다시 등로 옆으로는 거대한 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거대 바위를 지나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소나무 장상에 도착을 하고 추억 한장 남긴 후 다시 출발하니 등로는 여전히 커다란 소나무들이 주종을 이루고 그 아래 커가는 키 작은 잡목들이 허전함을 채우고 있다.


잠시 더 평이하게 걸어 진행하니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묵은 묘지를 통과하고 진행 방향 나뭇가지 사이로 북바위산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처음 오르기 전 상상했던 것보다는 유순한 풍경으로 각인되어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활엽수 낙엽을 밟으며 내려가니 이제는 침엽수가 주종을 이루고 곧이어 비포장 임도에 녹색 철망이 설치되어 있는 뫼악재에 도착을 하는데 임도 좌측 아래가 바로 뫼악동으로 갈 수 있는 ㅂ포장임도였다.

뫼악동은 사문리에 있는 마을이며 사문리는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속하는 법정리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대사리와 석문동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사문리라 하였다.

대사는 큰 절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한절의 한자 표기로 예전에 큰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석문은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왜군을 막으려고 이곳에 성을 쌓고 돌로 문을 만든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연풍군 고사리면 대사리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석문동을 병합하여 사문리라 하고 괴산군 상모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원군 상모면 사문리가 되었고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충주시 상모면 사문리가 되었다 2005년 상모면이 수안보면으로 개칭되어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가 되었다.

신선봉 자락에 자리 잡은 대사리 서쪽은 곰지골에서 내려오는 도랑을 경계로 복계와 접하고 동남쪽은 괴산군 연풍면 안터와 동쪽은 석문동과 각각 접한다.

동북쪽은 꼬부랑재 너머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북쪽은 곰지골 너머 고운리와 서북쪽은 선곤마을과 각각 접한다.

마을 주위에 곰지골, 개매기, 아래어둠실, 고장자골, 귀골, 큰악골, 작은악골 등이 있고 석문천이 마을 앞을 흘러 곰지골에서 내려오는 작은 도랑을 만나 온천리로 흘러간다.

석문동은 북쪽으로 어둠실, 큰골, 띄밭길,뒤골, 쇠고지골이이 있고 동쪽으로는 떡갈봉이 있다.

고약골에서 꼬부랑재를 넘으면 송계리와 화천리 사시동과 이어지고 지릅재를 넘으면 미륵리이며 동남쪽에는 야문골이 있다.

매약동 운박골로 오르면 신선봉 새절골이 매약동 안쪽으로 약 1 Km 오르면 30미터 가량의 폭포가 있는데 석문천이 사문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흐른다.

이제는 옛 사문리 정취는 모두 사라지고 새롭게 단장한 모습들로 채워져 있는데 뫼악동 역시 같은 처지는 아닐까 생각도 깊어지는 시간이다.


우측으로 녹색 철망이 설치되어 있고 좌측으로는 뫼악동으로 내려갈 수 있는 비포장임도가 보이는 뫼악재를 출발 해 바로 눈 앞으로 보이는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가는 제법 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져 있고 그 우측으로는 콘테이너 박스와 비닐하우스에 검정 천막을 설치한 듯한 구조물들이 보이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공간이 나타나는데 이제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듯 정적만 흐르는 곳을 통과한다.

잠시 억새가 한들거리는 잡풀지대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잡풀지대 한가운데에 이제 북바ㅣ위산까지 1.0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번겨 준다.


잠시 더 가을바람에 한들거리는 억새를 타고 능선으로 들어가니 뚜렷한 오르막 등로에는 참나무 뿌리들이 튀아 나와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잠시 후 더욱 빼곡해지는 참나무 관목들로 인해 색다른 기분으로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낙엽이 져 앙상한 가지마다 혹독한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고 그 아래 떨어져 쌓여 있는 낙엽을 밟으며 오르는 시간은 마치 대문호의 시 한편이 생각나는 그런 시간의 흐름이다.

잠시 후 이제 북바위산까지는 0.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굵은 땀방울을 흘려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이정표를 지나 무상무심으로 걸어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삼각점이 나타나고 살펴보니 인식을 할 수 없는 무명의 삼각점으로서 지도에도 표기가 나타나지 않는 삼각점이었다.

삼각점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는 거대한 소나무가 일렬로 도열해 이 산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우측으로는 잡목들이 나뭇일을 떨구고 겨울을 준비하고 있지만 철없는 몇몇 식물들과 나무들은 아직도 현실 파악을 못하고 예쁜 꽃들을 피우고 있.

잠시 후 예전에 보이지 않던 철계단이 나타나고 바위암릉 구간을 그 철계단을 통해 오르니 등로는 여전히 바위 등로에 참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바위 참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바위는 사라지고 관목의 참나무들만 남아 있어 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잠시 등로 좌측으로 녹슨 철망이 보이고 그 철망에는 등산로 없음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는 곳에서 우측 북바위산까지 0.2 Km 남아 있다는 방향으로 틀어 북바위산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잠시 후 북바위산을 다녀 와 이곳으로 내려왔다 다시 능선으로 들어야 하기에 정신 집중하여 좌우측 등로를 잘 살피고 우측 북바위산 정상부로 향한다.


우측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바위암릉지대가 나타나고 조심하며 그 바위암릉을 넘어 오르니 커다란 정상석이 서 있는 북바위산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북바위산(772)은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충주시 수안보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본디 이름이 없었으나 근래 산 중턱에 북을 닮은 바위가 있어 북바위산 또는 고산(鼓山)이라 명명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북바위는 월악영봉의 호령을 천하에 알리는 천고라고 하며 계립령 북쪽에 있는 바위산이어서 북암산(北岩山)이라고도 한다.

백두대간에서 북쪽에 있는 북바위산은 높이 772.1미터로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하는데 북쪽으로 계립령서쪽으로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북동쪽으로 사시리 계곡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남쪽으로 백두대간의 마패봉과 신선봉이 있고 북동쪽으로 월악산 능선에 있는 월악영봉덕주봉문수봉이 있다.

북바위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와룡대 물레방아휴게소,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 뫼악동 사시리고개, 사문리 오정암, 한수면 송계리 골뫼, 수안보면 고운리와 한수면 송계리의 꼬부랑재 등에서 접근하는 길이 있으나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하여 등산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북바위산 주변에 송계팔경에 속하는 송계계곡 와룡대와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서린 팔랑소가 있다.

오래 전 산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산행이 무엇인지도 모를 시절에 옆지기와 올랐던 추억을 생각하며 홀로 피식 웃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정상석 앞에는 뫼악동에서 1.9 Km 올라 왔다는 이정표가 서 있어 사진에 담고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니 나무로 만들어 놓은 전망데크가 보여 잠시 그곳으로 가 지나온 방향인 남쪽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남동쪽 바로 앞으로 한번쯤 들리고 싶은 박주봉 줄기가 바짝 다가와 잇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톱날같은 탄항산과 부봉으로 이어지는 날카로운 마루금 뒤로 주흘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백두대간 산행을 위해 몇번인가 들렸고 또 그리움에 주흘산과 부봉을 찾았던 기억이 있는 곳들이기에 오랫만에 만났어도 그 기억이 뚜렷하기만 하다.

 

남서쪽으로는 오늘 올랐다 내려 온 계명지맥 분기점에서 우측으로 마역봉 지나 신성봉이 보이고 그 우측 저 멀리 신선지맥 상 연어봉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또한 몇 년 전 무더위에 홀로 오르며 힘들게 진행했던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앞으로 산줄기 이어가기 산행으로 다시 저곳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기에 조금은 더 그리움을 담아 마음속에 그 풍경들을 담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옆지기와 만들었던 고운 추억을 더듬은 후 천천히 북바위산을 내려오며 바위암릉길을 사진에 남기며 내려가니 이정표와 철망이 나타나고 그 철망 우측으로 돌아 직진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니 활엽수 낙엽이 떨어져 쌓여 발목을 덮으며 바스락 바스락 거리며 방단을 맞추고 있다.

맥 잇기 산행이 아닌 테마산행으로 낙엽 산행을 온 듯한 착각속에 여유를 부려 보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관목의 참나무 등로를 따른다.

다시 나타나는 거대한 바위암릉 구간을 우회하며 조심해 전진하니 커다란 소나무가 서 있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714봉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살펴보며 잠시 발걸음 멈추고 쉼을 한 후 산행을 이어간다.


그 714봉을 지나 다시 평이하지만 평이하지 않은 등로를 따라 여유롭게 걸어가니 등로 좌우측으로 아직 지지 않은 알록달록한 단풍들이 마지막 고운 빛깔을 선보이며 홀로 외롭게 걷고 있는 산객의 친구를 자처하고 있다.

정리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자연스러운 그 자체가 아름답게 다가오는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진행 방향으로 약간의 조망들이 보이지만 우거진 나뭇가지들과 미세먼지로 인해 선명하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다시 붉은 빛깔에서 노란 색깔로 변해가는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다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708.3봉을 넘고 발목까지 빠지는 활엽수 낙엽을 밟으며 평이한 능선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바위들과 참나무들이 보이는 724.9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지맥 산행을 하면서 자주 만나는 산다ㅣㅂ자들의 산행 띠지가 몇장 걸려 있어 목례를 하고 사진에 남긴 후 출발한다.


그 724.9 무명봉을 넘으니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등로가 열리면서 가을이 최고조로 무르익어 가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가니 노란 단풍이 반겨주고 사진에 담고 조금 더 전진하니 이제는 노란빛이 붉은 빛깔로 변하면서 조금 더 화려한 색채로 변하고 있다.

단풍이 모두 졌으리란 생각에 기대도 하지 못했던 화려한 단풍들이 마지막 선물을 하는 등로를 따르니 길게 이어지는 단풍 터널 같은 등로가 한동안 이어지며 마음 바쁜 산객의 발길을 붙잡고 늘어진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단풍을 살펴보며 즐기다 보니 등로 우측으로 너무나 고운 단풍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발걸음도 덩달아 느려지며 등로를 벗어 나 왔다리 갔다리 하는 시간이다.

잠시 후 완만하게 올라 관목의 참나무 지대를 지나니 능선 끝자락에 약간의 참나무와 잡목들이 보이는 정상에 도착을 하니 트랭글에서 배지를 선물하는데 살펴보니 이곳이 석문봉이라는 곳으로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표기가 없는 무명봉이다.

석문봉은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과 살미면, 제천시 한수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동쪽 한수면 송계리 방면은 월악산국립공원 구역에 해당한다.

송계계곡을 둘러싼 서부 능선에는 북쪽부터 수리봉(761.3)석문봉북바위산(772.1)이 뻗어 있다. 석문봉은 경사가 매우 가파른 편으로 동쪽 비탈면에는 고생대 석회규산염이 분포하고 서쪽 비탈면은 대석회암통에 속하는 고운리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노송이 어우러진 원한봉 바위가 내려다보이고 동쪽으로 골미계곡 건너로 월악산 주능선을 이루는 봉우리들이 이어진다.

수안보면과 제천시 한수면을 이어주는 꼬부랑재가 바로 남쪽에 있다.

석문봉에 오르려면 대개 국도 3호선과 가까운 수안보면 사문리에서 시작하여 한수면 송계리 골미로 내려오거나 지릅재 방면으로 내려온다.

사문리를 기점으로 꼬부랑재를 거쳐 석문봉 정상에 오른 다음 석문이나 골미로 내려오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되며 약 6 Km 거리에 4시간 안팎 걸린다.

하지만 네이버 지식백과를 찾아 보니 제법 많은 정보들이 나와 있는 석문봉으로서 그 자료를 찾아 올려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을 확인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니 등로는 여전히 가을의 정취가 남아 있고 힐링하듯 자연을 가슴에 담으며 걸어가니 등로는 좌측으로 휘어져 진행하다 급격하게 우측으로 꺽여 진행되는데 좌측 끝자락에 봉우리가 보여 끝까지 올라 가 보니 몇개의 산답자들 산행 띠지만 달려 있는 734 무명봉 정상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우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는 정상 등로를 찾지 못해 잠시 해매이다 어렵게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방금 전 오르며 만났던 띠지가 저쪽에서 나풀거리고 있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낙엽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여전히 단풍잎이 반겨주고 눈맞춤을 하며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제법 웅장한 봉우리 하나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지도를 찾아 보니 옛날 지도에는 699미터의 첩푸산으로 나와 있지만 최신 네이버나 다음지도에는 적보산이라 표기된 산이다.

저 봉우리는 산행 내내 한동안 바라보며 진행이 되는데 특히 산불난 지역의 상단부에서 제법 뚜렷한 모습을 조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적보산을 살펴보며 단풍 등로를 따라 자연을 음미하며 걷다 보니 등로는 큰 어려움이 없는데 각 봉우리마다 뾰족하게 솟아 있어 오르고 내리는 고도 차이로 인해 체력적인 어려움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관목 이상으로 커가는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더니 갑자기 커다란 바위들이 보이면서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바뀌고 조심하며 오르니 약간의 잡목들과 커다란 참나무가 보이는 704.6봉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남양주 금곡님이 다녀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따끈한 노란 띠지 한장이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펄럭이고 있다.


물 한모금 마시고 인사 건넨 후 다시 704.6봉을 출발하니 등로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깊은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작은 바위 위에 아크릴판으로 이곳이 꼬부랑재임을 알리는 이정판이 붙어 있고 안부 건너편에는 중앙경찰학교에서 오래 전 세워 둔 산악훈련안내도가 보인다.

꼬부랑재는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와 한수면 덕곡리를 연결하는 고개로서 충주댐 수몰 전에 제천시 한수면 덕곡리 골안(곡내)에서 덕산면 신현리 일명 와룡산에 있는 고산사로 통하는 지름길이었다.

또한 골안과 쇠시리재의 분기점으로 행인들의 이동이 빈번했으나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 성천 변에 국도 36호선이 개설되면서 꼬부랑재는 방치되어 나무가 빽빽히 자리하게 되었으며 고갯마루에는 거목의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어 역사를 반추하고 있는데 고갯마루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진 능선에 금곡산성이 있다.

꼬부랑재의 명칭유래로는 1918년의 지형도에 반장치(半長峙)로 표기되어 있반장은 반장화의 준말로 고개 남서쪽이 반장화 형태의 산세를 이루고 있어 붙여진 듯하나 속단할 수 없다.

제천군지에는 고산사는 덕산면 신현리 와룡산 빈장재에 있으며 도선선사가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빈장재는 반장치에서 변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개를 중심으로 제천시 한수면 덕곡리 방면은 완만한 경사지로 길게 이어지고 있는 반면에 덕산면 신현리 방면은 급경사로 절벽과 같아서 빈장으로 부른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지명총람에 신현리 용바우 서쪽에서 한수면 덕곡리로 가는 고갯길이 꼬불꼬불하다고 하였는데 실제 고갯길은 절벽에 가까운 급경사에 지그재그로 비탈길이 형성되어 있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꼬부랑재라고 부르게 되었다.

꼬부랑재의 높이는 340미터이며 제천시 한수면 덕곡리 골안에서 보면 남동쪽에 꼬부랑재가 있꼬부랑재 남서쪽에는 군사적 요지인 쇠시리재가 있다.

꼬부랑재에서 서남서쪽으로 금곡산이 있남남동쪽으로 마주한 다랑산과의 사이에 있는 협곡에는 성천이 흘러서 광천과 합류하며 고갯마루에서 성천으로 향하는 길은 급경사로 꼬불꼬불하다.

충주댐 건설 후에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 성천 변에 있는 꼬부랑재 길은 국도 36호선이 개통되면서 행인의 발길이 완전히 끊겨 곧 꼬부랑재 산길은 다래 덩굴이 넘쳐나는 밀림 지역이 되었다.

천수답을 경작한 흔적이 발견되고 여기저기에 산전을 개간하면서 발생한 돌이 겹겹이 쌓여 있다.

또한 완만한 경사지에 낙엽송과 밤나무와 같은 큰 나무를 식재함으로써 낙엽이 무성하여 대낮이지만 어둠침침하다.

고갯마루에 있는 느티나무(흉고 둘레 5.1미터와 높이 약 15미터)에는 골안을 향한 작은 반석이 놓여 있다. 고갯마루에서 남쪽은 덕산면 신현리 성천 방면으로 이동이 편리하게 안부를 삭토하고 토축을 만들었다. 산길 주변에 작은 편석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데 이것은 산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인지 일부러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다.
꼬부랑길에는 급경사로 공격이 어려운 난공불락의 안부가 숨어 있으며 또한 고갯마루에서 남서쪽 능선을 따라 약 375미터 쯤 떨어진 지점에는 금곡산성(금현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꼬부랑재는 바로 금곡산성과 연관된 진격로로 이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는데 꼬부랑재 입구의 돌무더기에서 적색 와편, 삼국 시대 토기편, 조선 시대 백자편 등의 유물이 출토된 것을 보면 금현산성과 연계한 관방 영역임을 확인할 수 있다.

꼬부랑재의 입구 근처인 국도 36호선 접도 구역에 있는 밭은 공동묘지가 있었던 곳으로 6·25 전쟁 때 국군과 인민군이 치열하게 총격전을 벌인 장소이다.

많은 사연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갯마루이기에 잠시 더 머물며 예전에 치열하게 살아 갔을 민초들의 삶은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꼬부랑재에서 잠시 머물며 많은 추억 남기고 다시 올려다 보이는 바위암릉을 타고 오르니 예쁜 단풍이 다시 발목을 붙잡고 놔 주질 않아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

다양한 빛깔로 치장한 등로를 따라 앞으로 걸어가니 나뭇가지 저 멀리 봉우리가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한동안 다양한 빛깔의 단풍들과 놀이를 하다 보니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만 간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지대를 조심하며 넘으니 갑자기 정상부에 도착을 하고 중앙에 박혀 있는 삼각점을 확인해 보니 덕산443이라 생각되지만 인식이 확실하지 않은 삼각점이다.

정상 주변의 나뭇가지에는 두군데 다른 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730.6미터 망대봉이란 정상이정판이 걸려 있다.

망대봉(까치봉) 정상에는 삼각점(덕산443/2003복구)이 있으나 까치봉이란 글자는 사라지고 망대봉이란 두개의 다른 정상이정판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이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꺽어 내려가는데 우측으로 내려가는 등로는 비지재를 지나 수리봉으로 가는 능선이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잠시 우측 능선을 타고 몇발자국 내려가니 비지재 방향표시가 되어 있는 철이정판이 서 있어 사진에 담고 다시 올라 와 정상적인 좌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 본다.


망대봉을 내려가니 등로 좌측 앞으로 적보산 정상부가 제법 드높게 다가오고 우측의 진행 방향으로도 연봉이 줄줄이 이어진 모습이 눈에 들어 오는데 미세먼지로 시야가 제한되고 우거진 나뭇가지에 막혀 제대로 된 이름을 맞추기는 어려워 보인다.

잠시 바위 위에 깔려 있는 활엽수 낙엽을 밟으며 조심해 참나무 등로를 지나니 다시 완만하게 올라 참나무 가지 세가닥이 보이는 686.1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을 지나니 등로에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고 등로는 그 바위 우측 급경사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곳으로 내려가기 전 잠시 앞을 보니 좌측으로는 적보산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뾰족한 유두를 닮은 봉우리와 연봉들이 보이는데 충주호로 달려가는 악어들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악어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닐까 생각되는 산줄기이다.


사진 몇장 남기고 바위를 좌측에 두고 우측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낙엽까지 수북하게 쌓여 미끄럽고 너무나 위험하기에 조심하며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 위로 방금 전 우회한 거대한 바위가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적보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고 담시 후 칡넝쿨이 우거진 안부를 지나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보이는 557.4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을 지나 계속 걸어 진행하니 커다란 참나무 등로가 열리고 곧이어 아직 완전히 낙엽이 지지 않는 등로에 커다란 참나무와 소나무가 양쪽에서 보초를 서듯 보이는 528.4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넘으니 등로는 이제 참나무에서 소나무 등로로 바뀌고 곧이어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안부 한쪽에는 멧돼지들의 목욕탕이라 생각되는 진흙탕이 보이는 시여골재에 도착을 한다.

시여골재는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고운리의 중산천 가장 위쪽에 있는 마을로서 윗말이라고도 불라는데 고운리는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있는 리로서 망대봉 아래에 자리잡은 중산간마을로 중산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된양지, 고운동, 숲안말, 큰말이 있는데 된양지는 마을이 양지바른 곳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고운동은 마을 뒷산인 적보산 중턱에 고운사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이곳에서는 당시 사찰의 기와장이 발견되기도 한다.

숲안말은 마을 앞에 큰 숲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큰말은 고운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특산물로는 석문사과, 월악산송이, 수안보배추 등이 있다.

진행하다 보니 이곳 계명지맥에도 제법 많은 멧선생들이 살고 있는 듯 보여 등골이 오싹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여골재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아름답게 열리고 그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소나무와 노란 단풍이 든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480.6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이제 특별할 것 없는 단풍 등로를 따라 즐기는 마음으로 걸어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힐링하듯 전진한다.

약간의 잡목들과 산초가시나무가 성가시게 만들지만 진행에는 지장이 없고 그렇게 잠시 더 빠르게 걸어가니 남양주 금곡님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518.2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그 518.2봉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잡목들이 보이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걸어 전주이공 묘지를 지나니 정상에 웅덩이가 보이는 477.3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봉분이 잘 보이지 않는 무명묘지를 통과해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바위 절개지가 나타나고 조심해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갑둥이재에 도착을 해 잠시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 

갑둥이재는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고운리와 살미면 공이리를 연결하는 고개로서 명칭의 유래가 분명하지 않지만 갑돌이와 갑순이 노랫말에서 나오는 갑돌이 총각이 연상되는 고개이일명 갑둥이고개, 갑동재, 갑티재 또는 갑돌이재, 갑돌리재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갑둥이재의 북쪽에는 대미산(688), 남서쪽에는 적보산(689, 일명 첩푸산), 남쪽에는 망대봉(519) 등이 있으며 갑둥이재는 대미산과 망대봉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대미산과 적보산 간의 심산계곡을 흐르는 고운천이 북서류 하여 중산천으로 유입되고 있다.

갑둥이재 서쪽의 대미산과 동쪽의 500고지가 이어지는 능선의 서쪽 심산유곡에서는 상공이곡에서 발원하는 개울이 동북류하여 공이리를 거쳐 한수면 상노리 부근에서 숫갈천으로 유입되어 충주호로 흘러든다.

갑둥이재 동쪽의 공이리의 고니골(일명 공이곡)마을에는 공잇굴(일명 공이굴)이라는 소규모의 석회동굴이 있다.

갑둥이재는 충주시의 수안보면 고운리에서 살미면 공이리를 넘어 제천시 한수면으로 가는 고개로서 심산유곡에서 올라가는 고개로서 가파르고 높으며 구비가 져 있는 상태이다.

수안보면 고운리에는 시어골, 큰말, 숲안말, 범수동 등의 자연마을이 있고 살미면 공이리에는 한여골, 평촌, 버드나무거리, 송정, 하리 등의 자연마을이 발달하였다.
공이리는 암소바위(일명 암수바우)와 계곡 등이 어울러져 풍광이 수려하여 일찍이 연안이씨 사형제가 사노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기도 하고 암소바위에 서려 있는 전설 또한 인근 지역에 널리 알려져 있다.

옛날에는 공이리 사람들이 갑동이재를 넘어 중산리와 세성리 등을 거쳐 충주로 나갔는데 신당리 쪽보다는 갑동이재를 통하여 다른 지역과 문물을 훨씬 많이 교류하였다고 한다.
충주댐 건설 이후 포장도로가 개설되어 시내버스가 왕래하는 곳으로 변화되었고 농촌인구의 감소로 공이리에 있던 공이초등학교도 세종초등학교 분교가 되었다.

중산저수지 상류 지점 부근의 고운리에서 한수면 공이리 평촌을 넘어가는 갑둥이재 주변에는 현재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과거의 고갯길을 대신하고 있다.

왜 이런 산중에 이곳만 이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들고 바위 절개지가 남아 있는지 궁금하기만 한 갑둥이재이다.


갑둥이재에서 좋은 추억을 남기고 다시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거대한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461.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노란 단풍잎을 헤치며 완만하게 걸어 올라 참나무 등로에 고사목들이 쓰러져 있는 등로를 지나 고사목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471.4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넘으니 안부 지나 다시 나뭇가지 사이로 올라야 할 봉우리가 나타나 사진에 담아 본다.

참나무가 쭉쭉빵빵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뻗어 있는 환상의 등로를 타고 낙엽을 미끄러지듯 걸어가니 안부 지나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낙엽송지대를 지나 오르니 바위지대를 지나 등로는 점점 더 가파라지기 시작하고 갑자기 잡목들이 나타나며 높은 하늘쪽으로는 불에 타 말라 죽은 거대한 고사목 군락지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독한 잡목지대를 헤치며 그 불이 난 지역을 힘들게 걸어 오르다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뒤돌아 보니 고운리 지나 좌측의 계명지맥 마루금과 우측의 적보산 사이에 파헤쳐진 산자락이 이곳 불이 난 지역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그 뒤 저 멀리에는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하늘에 껴 있는 먹구름 아래 아름답게 길게 펼쳐진 풍경들도 눈에 들어 온다. 

고운리는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속하는 법정리로서 마을에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중산리 상촌에 속하는 마을인 법수와 경계를 이루는 마을 뒷산 중턱에 고운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며 그 부근에는 지금도 옛날 기와 조각이 많이 나오고 있어 이 마을을 고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곳은 본래 연풍군 수회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고른과 사여골을 합하여 고운리라 하여 괴산군 상모면에 편입되었고 1963년 중원군에 편입되었다.

마을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연풍읍지 방리 수회면조에 현북거오십리고운리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720년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북쪽에는 살미면 공이리로 넘어가는 갑둥이재가 가로놓여 있고 동남쪽은 꼬부랑재를 넘어 한수면 송계리로 통해 있으며 남서쪽은 온천리 관동마을과 직마리재를 경계로 하고 있다.

서쪽은 소백산맥의 지맥이 적보산으로 내려가며 한 줄기가 뻗어내려 중산리 법수와 경계를 이루는 산간 분지형 마을이다.

이 마을이 바깥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은 고운천이 흘러나가는 장승배기로 방향을 같이하는 도로이다.


지나 온 등로 우측으로는 또 다른 적보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오래된 지도에는 첩푸산으로 표기가 되어 있어 이름부터 심상치 않아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보인다.

적보산은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 온천리, 고운리, 중산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명칭유래를 보면 일명 직포산과 적포산, 첩보산, 첩푸산 및 구봉산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산 중턱에 약 100미터 간격으로 아홉 개의 소봉이 등고선을 따라 솟아 있어 구봉산이라고도 하는데 구봉 아래에는 갈마음수형의 활만인지지의 명당이 있다고 하며 현재까지 찾지 못했다고 하는데 마당바위가 바로 갈마음수형의 말의 목 또는 머리에 해당된다고 한다.

구봉 아래의 무두리(일명 수회, 원수회 또는 무돌이)마을은 적보산의 가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이 늘 평온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여 적보산에 대한 자부심과 의존심이 크다.

적보산은 높이 699미터이며 소백산(1421m)의 낙맥으로 동북쪽 살미면 내사리와의 경계에는 대미산(688m)이 있고 동쪽에는 갑둥이재가 있으며 동남쪽에는 직마리재가 있는데 적보산의 북동사면과 북서사면은 비교적 완만한 지세를 이루고 있다.

동북사면의 계곡수는 고운리 시어골마을에서 발원하는 고운천에 유입되어 적보산과 대미산 간의 계곡을 서북류하여 중산천으로 유입되고 있고 남서사면의 계곡수는 계립령에서 발원하여 송계계곡을 따라 사문리, 안보리, 온천리 등에서 석문천에 유입되고 있다.

적보산 동북쪽의 중산리에는 중산저수지가 있고 중산리 고운동에서 한수면 공이리로 통하는 곳에는 갑둥이재가 있다.

적보산의 북동사면과 북서사면의 석문천 유역에는 중산리, 수회리 등의 비교적 큰 촌락이 발달하고 있고 적보산 아홉 봉우리와 안빗들 사이에 있는 수회리에서는 예로부터 사람들이 적보산 산제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올리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운리 뒷산인 적보산 중턱에 고운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며 부근에는 지금도 옛날 기와조각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봤던 적보산의 진면목을 보는 순간이다.


다시 이어지는 불난지대의 지독한 잡목들을 헤치며 어렵게 걸어 오르니 오를수럭 잘려진 거목들이 등로 이곳저곳에 나뒹굴고 있어 진행에 더욱 어려움을 느낀다.

점점 키가 더 커지는 참나무 어린 잡목들을 헤치며 온 힘을 다 빼내듯 걸어 오르니 등줄기와 이마에선 다시 굵은 땀벙울이 쉴새없이 흘러 내려 잠시 발걸음 멈추고 땀을 닦으며 뒤돌아 보니 고은리 마을 뒤로 펼쳐진 계명지맥 마루금과 백두대간 마루금이 환상으로 다가온다.


계속 이어지는 멋진 조망과 풍경을 즐기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다 등로 좌측을 보니 불에 타 고사목이 된 나뭇가지 뒤 저 멀리 적보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 저 멀리 나즈막하지만 연봉으로 이어지는 주정산과 주월산 조망이 아름답지만 여전히 많아 보이는 미세먼지로 인해 아쉬움도 남는다.

그 뒤로 보여야 할 박달산과 신선지맥 마루금은 거리도 멀고 미세먼지로 인한 박무 현상으로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렇게 한구비 힘들게 걸어 오르니 오르막 경사도가 조금은 완만해지고 키 작은 활엽수의 잎들이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 온다.

하늘 높이 자랐다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타 고사목이 되어 버린 거목들 아래 이제 막 뿌리를 내리며 끈질긴 생명력으로 새로운 삶을 이어가는 키 작은 활엽수에서 다시 힘찬 삶의 활기를 느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정상부가 멀지 않게 다가오는데 그곳으로 이어지는 단풍이 마치 아름다운 칼라풀한 양탄자를 깔아 놓은듯 환상으로 다가온다.


불이 나 아쉬움은 있지만 그 빈자리를 채워가는 잡목들의 아름다운 단풍으로 마음을 달래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드디어 삼각점이 박혀 있는 667.5봉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삼각점은 덕산25라는 2등 삼각점이다.

이곳 667.5봉 주변에도 역시 키 작은 싸리나무와 활엽수의 잡목들로 가득 차 있어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출발해 본다.

이제 오늘 산행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느낌으로 기분좋게 출발하지만 등로의 상태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앞서는 시간이다.


그 삼각점이 박혀 있는 667.5봉을 지나니 참나무와 작은 바위들이 깔려 있는 칼등 등로로 이어지고 조심하며 걸어 진행하니 쌓여 있는 낙엽속에 바위들이 숨어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등로 좌우측으로는 제법 깊은 낭떨어지 같은 등로로 이어지기에 더욱 주의하며 걸어가니 고사목이 보이는 687.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 풍경을 살펴보고 출발한다.

잠시 후 거대한 참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니 다시 낙엽들이 쌓여 있어 묘지인지도 모를 무명묘지도 넘는데 이 높은 산중에 어느 후손이 찾아 와 인사라도 드릴 수 있을지 지나가는 객이 걱정되는 묘지이다.


푹신하게 쌓여 있는 활엽수 낙엽들을 밟으며 편안하게 걸어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참나무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더 걸어 가니 등로 좌측으로 중산리의 중산저수지가 생각보다 큰 모습으로 길게 드러누워 있어 잠시 사진 몇장 더 남기고 진행을 이어간다.

중산저수지는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중산리에 있는 저수지이다.

이곳 수안보면의 중앙부에는 적보산(일명 첩푸산, 689m)이 있고 동남쪽에 신선봉(967m)과 포암산(961m) 등이 솟아 있는 평균해발 고도 500미터 이상의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수안보면 고운리에서 발원한 고운천이 중산리에서 중산천이 되어 수회리에서 석문천으로 유입되고 있다.

충주시 수안보면 중산리와 수회리 및 문강리 일대를 포함한 석문천 중하류 지역은 대체로 건조하여 한해를 입는 경우가 많아서 이에 따라 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1976년부터 1979년까지 지질 조사와 몽리 구역을 설정하고 측량 및 설계를 실시한 후 1978년 11월 7일 착공하여 1982년 12월 20일 중산저수지를 준공하였으며 총 공사비는 45억 100만 원이 투입되었다.

중산저수지는 충주시 수안보면 중산리 상촌마을에서 고운리 부락 방향으로 막아서 축조한 큰 저수지로서 충주시 수안보면 중산리 법수골은 중산저수지의 축조로 수몰되어 1980년에 주민들이 이주하였다.

중산저수지의 축조로 수안보면 중산리 728㎡, 수회리 778㎡와 살미면 문강리 555㎡, 세성리 65㎡, 용천리 393㎡, 내사리 495㎡ 등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여 수리안전지대가 되었다.

1980년 상촌마을의 어족 양식계에서 잉어 2만 마리, 송어 1만 마리, 향어 5천 마리 등의 어묘를 방류하였고 상촌마을 출신 이복기가 잉어 치어 1만 2천 마리를 기증하여 방류하였으며 1986년에도 빙어알 100만립을 방류하였다.

1986년의 실측조사에서 중산저수지는 송어, 빙어 양식이 가능한 중급 저수지로 개발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2007년 말 중산저수지는 만수면적 20㏊, 총 저수량 240만 7천 톤, 유효 저수량 227만 톤, 수혜면적 344㏊, 유역면적 798㏊ 등으로 조사되었다.

중산저수지는 1종의 주수원 저수지로서 한국농어촌공사 충주·제천·단양지사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현재 유료 낚시터 1.0㏊을 조성하여 낚시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중산리와 중산저수지가 내려다 보인은 등로 좌측을 조망하며 조금 여유롭게 걸어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오를수록 더욱 빼곡하게 들어 차 있는 관목의 참나무들이 시야를 기리고 있다.

잠시 후 선답자의 산행 띠지를 만나고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니 등로는 다시 바위들이 박혀 있는 칼등 능선으로 이어져 조금 더 조심스럽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조심해 걸어 진행하니 드디어 대미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의 나무가지 사이로 충주호와 산줄기가 언듯 보이지만 나뭇가지에 가려 조금은 아쉬움을 남긴다.

대미산 정상에는 웅덩이 같이 패인 구멍인지 이장된 묘지가 있었던 자리 같은 약간의 공터가 있고 그 주위 나뭇가지에 두개의 정상 이정판이 보이는데 하나는 충주시에서 걸어 놓은 678미터의 대미산이란 정상목판이고 다른 하나는 백두사랑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계명지맥 상 680.8미터의 대미산이라는 정상판이다.

이곳 대미산에서 지맥은 좌측으로 이어지지만 충주호로 숨기 위해 들어가는 악어들을 만날 수 있는 악어봉은 우측 등로로 이어가야 하는 길주의 지점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이곳 근처의 산행을 마치고 잠시 악어봉으로 올라 많은 악어들을 만났던 기억을 되살리며 오늘은 조금의 아쉬움을 남기고 이 대비산을 출발한다.


대미산에서 추억을 남기고 아쉬운 마음을 담아 우측의 악어봉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한번 더 살펴본 후 좌측 지맥 마루금을 따르니 여전히 멋진 소나무와 참나무 칼등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잘린 밑둥이 보이는 참나무가 서 있는 594.7 무명봉도 넘는다.

다시 참나무가 보이는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약간의 잡목 지대를 지나 소나무가 보이는 552.5봉에 도착을 해 잠시 배낭 내리고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 본다.


그 552.5봉의 소나무 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는 낙엽 공터봉을 통과하고 다시 발목을 뒤덮는 낙엽이 깔려 있는 무명안부를 통과하니 참나무가 빼곡한 멋진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오르고 내렸던 고도 차이를 느꼈던 지금까지의 등로와는 달리 고도 차이를 많이 느끼지 못하는 낙엽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바위들이 보이고 주위에는 참나무들이 서 있는 좁은 공터의 526.6 무명공터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공터봉을 지나 거대한 소나무들과 약간의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정상 등로를 찾아 조심스럽게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뚜렷한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로 변하고 곧이어 분재형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448.7 무명봉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꺽어 잡목속으로 이어지고 있기에 길주의 지점이다.

어렵게 잡목을 헤치며 길 찾기에 성공한 후 잠시 더 진행하니 잡목 등로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생각보다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후답자에게 길라잡이를 해 주고 있기 때문에 주위 풍경만 잘 확인하고 띠지를 확인하면 길찾기에는 별 문제가 없을 듯 하다.

 

커다란 분재형 소나무 한그루가 있는 곳에서 우측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통나무 벤취 몇개가 놓여 있는 안부를 지나고 다시 진행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무조간 우측의 능선 등로를 타고 올라 가 본다.

잠시 오르니 잡목이 사라지고 굵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덕산445라는 삼각점이 박혀있는 421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삼각점을 지나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니 지독한 잡목지대가 펼져지고 등로도 사라져 방향만 잡고 너무나 힘들게 진행하는 시간이다.

온몸과 얼굴에 약간의 생채기를 만들고 그렇게 지독한 잡목지대를 뚫고 내려가니 쭉쭉빵빵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멋진 잣나무 군락지를 만나 그 군락지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더 내려가니 등로는 이제 좌측의 잣나무 군락지와 헤어져 우측의 활엽수 낙엽이 깊게 깔려 있는 약간의 잡목 등로를 따르니 다시 잣나무와 잣나무 구간을 짤베 지난 후 멧돼지 목욕탕도 다시 통과한다.

제법 잘 발달된 무명안부를 지나 내려가니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고 등로 좌측으로는 줄을 맞춰 식재된 듯한 소나무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등로이다.

 

그 멋진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임도와 만나 편안하게 걸어가고 묘지들을 지나니 또 다른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난다.

그 비포장임도를 지나 밭 경작지를 넘으니 36번 월악로 2차선 포장도로인 솔고개 일명 용천고개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고 주위를 둘러 본 후 도로 건너 우측으로 돌아 다시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솔고개(용천고개)는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용천리에 있는 고개라서 붙은 이름처럼 보이는데 용천리는 언덕에 자리잡은 농촌마을로 한두골 소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가리내, 방아목이, 용당골, 웃가리내가 있는데 가리내는 용천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개울이 두 갈래로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용당골은 마을 뒷산 모양이 용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웃가리내는 가리내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재로는 최함월고가가 있고 특산물로는 대학찰옥수수, 고추, 사과, 담배 등이 있다.

마음속으로는 이곳에서 산행을 접어도 좋다고 유혹하고 있지만 내일 산행을 위해 원래 계획했던 신매고개까지 진행하기로 한다.



솔고개에 있는 시멘트 옹벽을 넘어 오르니 밭경작지가 나타나는데 우측 가까운 곳에는 민가 한채와 승용차들도 보인다.

들깨를 심었다 수확한 비닐이 깔려 있는 밭 경작지를 타고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나즈막한 둔덕을 넘어 다시 멋지게 지어 놓은 전원주택 단지 위로 나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전원주택 단지를 지나 절개지가 있는 둔덕을 넘어 길게 이어지는 밭 경작지와 사과과수원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길게 보이기 시작하며 오늘 산행 날머리도 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피해되지 않토록 조심하며 그 전원주택 단지를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가니 눈 앞에 주택단지와 도로를 만들면서 생긴 높은 바위 절개지가 나타나고 그 절개지를 좌측으로 돌아 오측 능선으로 오르니 동네 견공들이 이방인의 출현에 온 마을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둔덕 능선으로 올라 잠시 지나 온 방향을 뒤돌아 보니 방금 전 통과한 전원주택 단지 넘어 저 멀리 대미산 지나 오늘 걸어 온 계명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그렇게 멋진 지나온 마루금을 추억으로 남기고 소나무들이 보이는 나즈막한 둔덕을 넘어가니 드넓은 콩밭이 펼쳐지는데 마침 오늘 콩 수확을 하는지 많은 농부들이 콩대를 뽑고 있어 진행에는 큰 불편없이 편안하게 밭 고랑을 통해 빠르게 걸어간다.

그 밭 경작지 우측으로는 붉게 익어가는 사과과수원이 넓게 펼쳐져 있어 사과 익어가는 냄새가 달콤하게 코 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지나가다 농부와 잠시 이야기 나누고 다시 그 콩 밭 경작지를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건너 다시 밭 경작지 가장자리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콩 밭 경작지와 사과과수원 중간의 그물망 옆을 타고 완만하게 잡풀 지대를 통과해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콩밭에서 콩 수확을 하고 있는 농부들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붉게 익어가는 사과과수원이 내려다 보이는 그 뒤편 저 멀리 오늘 걸어 온 대미산과 망대봉으로 이어지는 계명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리 저리 많은 사진을 남기고 다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경주이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위로 여주이공 묘지들이 나타난다.

그 묘지지대 위로 올라 배낭 내려 남아 있는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시원한 물 한모금으로 갈즈아지 달랜 후 다시 비어 있는 배낭을 메고 출발한다.


배낭을 메고 출발하다 뒤돌아 보니 용천리 마을이 그림처럼 내려다 보이고 그 중간에 나즈막한 청룡머리산과 산제당산 줄기를 지나 저 멀리 커다란 산군을 이루고 있는 오늘 하루 종일 가장 자주 봤던 적보산이 생각보다 날카로운 톱날 능선을 자랑하며 길게 펼펴져 있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봤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있어 역시나 산은 보는 각도와 방향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산으로 보일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더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지나 온 방향을 살펴본 후 그물망 옆으로 나 있는 둔덕을 넘으니 수확이 끝난 밤나무 과수원이 이어지고 그 밤나무 과수원을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우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밤나무과수원 끝자락으로 오르니 생각보다 깊은 안부가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점말고개이다.

점말고개는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설운리에 있는 점말마을에 있는 고개로서 점말은 하설운에서 서남쪽으로 갓고개 넘어에 있는 마을로 새술막과 용천삼거리 중간 지점에서 왼쪽(북쪽)으로 큰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로 옛날에 사기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점말고개가 있는 설운리는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있는 리로서 산지 아래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중산간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느티나무배기, 아래설운, 위설운, 점말이 있는데 느티나무배기는 수백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아래설운은 설운리 아래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위설운은 설운리 위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점말은 옛날에 사기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특산물로는 대학찰옥수수, 고추, 사과, 담배 등이 있다.

추억 한장 남기고 그 점말고개를 지나니 눈 앞게 거대한 아카시아 군락지가 나타나며 막바지 고난의 등로를 열어주고 있다.

이리 찔리고 저리 찔리며 너무나 힘들게 그 아카시아 군락지를 통과하니 또 다른 아카시아 군락지가 나타나고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며 통과 해 올라 뒤돌아 보니 오늘 걸어 온 마루금이 그림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에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 좌측으로 철망이 나타나고 살펴보니 사과과수원과 복숭아과수원이 드넓게 펼쳐져 있어 그 우측 가장자리로 설치되어 있는 철망을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렇게 한동안 철망을 따라 걸어가니 드디어 과수원과 헤어져 소나무가 보이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둔덕을 넘어 안부를 통과한 후 다시 오르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261.5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남양주 금곡님이 산행 띠지에 고도를 표기해 놔 목례를 하고 통과한다.

   

그 261.5봉을 지나니 등로에는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시간을 보니 저녁 5시 30여분이 지나고 있다.

묘지를 지나 리끼다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오르니 봉분이 거의 사라진 무명묘지를 다시 만난다.

잠시 후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 있는 274.1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제부터 등로는 좌측으로 급격하게 꺽여 내려가고 등로에 내려 앉은 어둠도 그 깊이를 더해만 가며 불빛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진행을 한다.

그곳에서 잠시 더 걸어 평이하게 진행하니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 있는 255.7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어렵게 어둠속에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제 온세상은 완전한 어둠속으로 빠지고 조심스럽게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검정천막이 보이고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도 검정 천막이 설치되어 있는 그 중간으로 열려 있는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본다.

잠시 후 차돌들이 깔려 있는 등로를 지나 거대한 소나무들이 보이는 곳에서 더욱 짙어진 억둠으로 인해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손전등을 꺼내 불 밝히며 마지막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렇게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드디어 천막과도 헤어져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고 마지막 봉우리인 273.4 잡목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좌측으로 크게 꺽어 마지막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따라 내려가며 마지막 힘을 내 본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내려가 드디어 매남이길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니 도로 옆으로 신매고개라는 이정석이 서 있고 그곳에서 마지막 사진 한장 남기며 첫날 계명지맥 산행을 접는다.

신매고개는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신매리에 있는 고개로서 신매리는 충주호와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매내미, 뭉골, 선돌배기가 있는데 매내미는 신매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옛날에 매화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뭉골은 마을에 진씨들이 많이 살아서 묵은골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뭉골이라 불리며 선돌배기는 마을에 선돌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산물로는 대학찰옥수수, 고추, 사과, 담배 등이 있다.

이곳에서 카카오택시를 콜하지만 지방이라 그런지 잡히지 않아 10여분 후 충주 콜택시를 부르니 채 10분도 되지 않아 택시가 도착을 해 그 택시를 타고 산행 들머리인 사문리탐방지원센터로 돌아가 애마를 회수한 후 충주 시내로 돌아 간다.


충주시내에 있는 죠이랜드라는 찜질방으로 가 샤워 후 환복하고 밖으로 나와 가까운 삼겹살 식당으로 가 2인분에 시원한 맥주 한병 그리고 공기밥 한그릇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하고 다시 찜질방으로 돌아 가 사진 정리하고 충전하다 보니 눈꺼풀이 내려 앉고 밤 10시가 되기 전 깊은 잠에 빠져 하루를 마감한다.

늘 혼자 하는 산행에 식사까지 혼자이다 보니 조금은 아쉬움도 있지만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없이 마음 놓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편리함이 또 이렇게 홀로 지방을 떠 돌아 다니는 짚시를 만드는 것은 아닐지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부산으로 가 준희님 헌정 산행에 참여를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해 보지만 일이 생기고 많은 사눈들이 참석해 축하를 해 주고 있기에 마음 편히 잊고 현실에 집중하기로 한다.

다만 많은 자료를 찾아 대중교통 편을 확인하고 내려 온 충주에서 공지도 없이 버스회사와 기사만 알고 있는 첫차의 운행 중지 결정이 왠지 모르게 서운하기도 하고 한편 이해가 되면서도 남을 배려해 주는 마음이 아쉬웠던 하루였다.

다음부터는 꼭 버스회사에 다시 한번 더 유선으로 확인한 후 대중교통 편을 이용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남아 있는 마지막 구간 산행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내일은 조금 이른 시간에 귀가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꿈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91102 계명지맥제1구간 분기점-신매고개.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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