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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안평지맥(금남·완)

안평지맥 마지막 제2구간 독짐재에서 유등천 합수점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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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남도 금산군 및 대전광역시의 안평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9년 10월 19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아침에 짙은 안개 후 하루 종일 맑고 화창했으며 산행하기 좋았던 가을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08도에서 영상 20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지량1리 원지량 정류장-635번 2차선 포장도로-지량리 뚝배기 한우식당-지량리 마을포장도로-독짐재 노선안내도와 이정표(해철이산 4.1 Km,

                안평산 3.3 Km, 산직2동경로당 1.5 Km)-48번 송전탑-나무계단과 안전목책 및 로프구간-이정표(장안봉 해철이산, 조중봉 안평산)-287봉

                이정표(명박산 1.5 Km, 조중봉 0.8 Km, 산직동)-안전목책과 로프구간-243 무명벤취2봉-256.8 무명참나무봉-무명안부-노선안내도와

                이정표(해철이산 3.0 Km, 안평산 4.4 Km, 봉천사 2.0 Km)-294.1 무명벤취2봉-무명안부-295.8 무명소나무봉-고사목 무명안부-

                이정표(해철이산, 안평산)-298.4 무명참나무봉-명막재-준희선생 응원판-명막산(332봉, 인식불가 삼각점, 노선안내도, 벤취쉼터1)-안전목책과

                로프구간-안부 이정표(해처리산 1.7 Km, 명막산 0.2 Km)-군부대 철망 시작점-무명안부-259.3 무명봉-안전목책과 로프구간-273 망루봉-

                안전목책과 로프구간-안부 이정표(해철이 0.25 Km, 흑석동과 정림동)-군부대 철망 끝지점-장수바위-해철이산(266봉, 사각정자, 구간안내도

                쟁기봉-안평산길, 정상판) 이정표(장안봉 1.86 Km, 샛고개 0.68 Km, 안평산, 구만리 1.40 Km)-269봉-261.9 무명벤2봉-계단과 안전목책 및

                로프구간-214.7 무명벤취2봉-183봉 이정표(쟁기봉 3.1 Km, 해철이산 0.8 Km)-181.7 무명벤취2봉-182.3 무명공터봉-비포장임도

                이정표2개(장안봉쟁기봉, 해철이산안평산, 아래선골) (갑천, 유등천)-중심봉(172.7봉, 벤취2봉, 돌탑)-무명안부-사각정자 이정표(장안봉 0.2 Km,

                해철이산 1.7 Km)-177 육각정자와 벤취쉼터봉-노선안내도-나무계단-안부 이정표(쟁기봉, 장안봉)-안영1터널 위-무명안부-돌탑안부

                이정표(쟁기봉 초록마을아파트, 장안봉,원정림 갑천)-대전둘레산길 11/12분기점 이정표(쟁기봉 0.7 Km, 효자봉 0.4 Km, 장안봉 1.1 Km)-

                돌탑안부 이정표(쟁기봉 0.6 Km, 장안봉 0.8 Km, 안영동 1.3 Km, 오리골약수터 0.6 Km)-이정표(쟁기봉 0.2 Km, 효자동 0.8 Km, 복수동과

                혜천대학교 0.5 Km)-안전목책과 로프구간-쟁기봉 갈림삼거리-이정표(쟁기봉 0.1 Km, 안영교 1.4 Km, 장안봉 1.2 Km)-쟁기봉(194봉, 복수정,

                육각정자, 운동시설, 벤취쉼터)-이정표(혜천대학교 0.4 Km, 쟁기봉 0.12 Km, 효자봉 1.0 Km)-안전목책과 로프구간-이정표(복수고등학교

                초록마을아파트, 쟁기봉 장안봉, 장안봉)-계단과 안전목책 및 로프구간-이정표(복수고등학교 초록마을아파트, 쟁기봉 장안봉, 유등천 복수동)-

                안부 참나무-이정표(복수고등학교 초록마을아파트, 쟁기봉)-오량산 안내도오와 송전탑 안부-비포장 임도-돌탑과 이정표(복수고등학교, 쟁기봉,

                초록마을아파트 복수동, 삼성자동차학원 정림동)-송전탑-운동시설-철망-철망과 나무계단-복수고등학교-혜천로 4차선 포장도로-복수서로 4차선

                포장도로-계룡아파트 버스승강장-목화아파트 버스승강장-대전서부경찰서-서부소방서-계백로 6차선 포장도로-도림3길 1차선 포장도로-

                띠울참숯석갈비-도림6길 1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 등로-밭 경작지-도림6길 1차선 포장도로-배재로 4차선 포장도로-

                공굴안 버스승강장 이정표(도솔봉 1.46 Km)-나무계단-운동시설-이정표(도솔봉 0.7 Km, 공굴안길 1.28 Km)-안부이정표(내원사약수터 1.0 Km와

                두루봉 약수터 0.4 Km, 명암암약수터 0.7 Km와 구선천 약수터 0.2 Km)-179.5 통나무사각 정자-월평공원 종합안내도-104번 송전탑-16번

                송전탑-이정표(내원사 0.65 Km와 월평정수장 3.8 Km, 공굴안길 1.93 Km)-도솔산(207.2봉, 정상석, 대전14 삼각점) 이정표(갑천 0.8 Km,

                싸이클경기장 2.2 Km, 명암마을 2.3 Km)-나무계단-산불소화시설 물탱크-나무계단-승적고개 안부 이정표(도솔정 0.48 Km, 도솔봉 0.65 Km,

                도솔산보루 0.65 Km, 내원사 0.15 Km)-돌탑-도솔정팔각정자 이정표(정수장과 월평산성)-167 묘지 위 벤취1무명봉-171봉-

                이정표(서대전여고 1.25 Km, 도솔정 0.2 Km)-이정표(도솔체육관 1.2 Km, 싸이클경기장 1.5 Km, 도솔봉 1.3 Km)-도솔산림공원 안내도와

                이정표(월평정수장 2 Km, 도솔봉 1.4 Km, 도솔다목적체육관 0.84 Km)-이정표(서대전여고 1.12 Km, 싸이클경기장 0.9 Km, 화암사 0.5 Km)-

                사각정자 이정표(리치빌 0.5 Km, 도솔봉 2.42 Km, 월평산성 2.7 Km)-철망-안전목책-신갈마로 2차선 포장도로-인터빌 아파트-갈마아파트-

                대전전파관리소-갈마로 4차선 포장도로-쌍용아파트와 충청투데이-한국전기기술인협회대전세종시회-32번 계룡로 10차선 포장도로 육교 통과-

                갈마역로 4차선 포장도로-둔산여고네거리-갈마공원네거리-한밭대로-둔지미공원-38민주의거기념탑-정부청사역네거리-대전둔산경찰서-

                대전무역회관-선사유적네거리-둔산선사유적지-국가기록원-숲의공원A-둔산대로-대전정부청사-대전예술의전당 버스승강장-한밭수목원-

                대전엑스포시민광장-수목원전망대-둔산대교 교각 밑-합수점(갑천과 유등천)-지맥산행 종료-유등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1.49 Km (스마트 폰의 트랭글 기준)

                지맥산행 : 약 20.79 Km (독짐재에서 갑천과 유등천이 만나는 합수점까지)

                접속구간 : 약 00.70 Km (지량1리 원지량 버스정류장에서 독짐재까지)

산행트랙 20191019 안평지맥 제2구간 독짐재-유등천 합수점.gpx (몇 지점에서 트랙이 이유없이 튀어 잘못 표기된 곳이 있으니 참고시 주의 필요)

산행시간 : 죽마고우들과 대전에서의 모임을 위해 고속도로 같은 등로를 따라 빠르게 진행하여 07시간 21분 (06시 24부터 13시 45분까)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03:50 애마로 집에서 출발 해 둔산대교 옆 유등로에 안전하게 주차

                                   05:40 택시로 서남부버스터미널 옆 34번 버스 종점까지 이동 (8,000.-)

                                   06:00 서남부버스터미널 옆 버스 종점에서 배티재 행 34번 버스 탑승 (1,250.-+400.- 시외요금)

                                   08:24 지량1리 원지량 버스정류장에서 하차 후 산행 시작

                         올때 - 13:45 갑천과 유등천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산행 종료

                                   13:50 유등로에서 주차된 애마를 회수 해 모임장소인 유성레전드 호텔로 이동 해 샤워 후 모임

안평지맥이란 ???
안평지맥은 부여 부소산으로 가는 금남정맥이 대둔산에 이르기 전  배티재(이치) 북쪽 0.7 Km 지점의 전북과 충남의 경계봉에서 북쪽으로 한가지를 쳐  충남과 대전경계를 따르다가 대전시를 동서로 가르며 대전의 만년동 둔산대교앞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1.3 Km 되는 산줄기를 말한다.
지맥 동쪽으로 흐른물은  유등천이 되고 서쪽으로 흐른물은  갑천이 되며 갑천물은 북쪽으로 12 Km쯤 흘러 금강에 든다.



고속도로 같은 뚜렷한 등로와 대전시내의 포장도로를 따라 가을을 느끼며 남아 있던 안평지맥 산행을 마무리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안평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전라북도 완주군과 충청남도 금산군, 논산시 및 대전광역시의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와 네이버의 지식백과  및 다음의 백과사전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 돌아 오니 덩달아 모임도 많고 가야될 곳도 늘어만 가니 몸이 두개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이번주에는 토요일 저녁에 대전에서 죽마고우들과 모임이 있고 일요일 아침은 장모님 생신이라 아침을 먹기로 하였기에 고민을 하다 지난 주 진행하다 중단한 안평지맥 나머지 구간을 마무리한 후 친구들 모임에 참석하기로 하니 새벽부터 바쁘기만 하다.

대전 서남부터미널 근처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하는 34번 첫차를 타기 위해 산행 날머리인 둔산대교 가까운 곳에 애마를 잘 주차시키고 택시를 이용해 어렵게 34번 첫차에 탑승해 20여분만에 산행 들머리인 지량1리 버스승강장에 도착을 하고 산행 준비 후 곧바로 산행을 시작해 조금 빠르게 진행하다 보니 예상 시간보다 훨씬 일찍 산행이 끝나 여유롭게 샤워 후 복장을 갈아 입은 후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아직도 시간이 남아 산행 사진을 정리하고 오랫만에 이슬이로 너무나 달리며 광란의 하룻밤을 보내고 힘들게 처갓집에 들려 아침식사하고 귀가하니 졸음만 쏱아지고 있다.

그래도 하룻만에 친구들도 만나고 사위로서 도리도 챙기며 바쁘게 정리하고 돌아 오니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편안하게 휴일 하루를 온전히 쉴 수 있게 되었다. 


산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짙은 안개로 인해 조망과 풍경을 전혀 기대하지 못했는데 산으로 오르니 안개가 사라지며 생각보다 멋진 풍광들이 펼쳐져 꿈길을 걷듯 걸어 보는 시간이다.

생각했던 등로보다도 훨씬 좋은 마루금을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산행 시작 후 채 3시간도 되지 않아 194미터의 쟁기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 정상에서 남쪽을 살펴보니 바로 발 아래에 안영축구연습장과 그 좌측으로 유등천이 빤히 내려다 보이고 635번 포장도로 우측 저 멀리 오늘 걸어온 해철이산과 명박산 뒤로 안평산과 지맥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장태산 줄기가 시원하며 그 안평지맥 마루금 좌측으로는 천비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으로 이 산객의 가슴속으로 와 고운 추억으로 쌓이고 있다.

생각보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산 이름을 불러주며 다시는 오르지 못할지도 모를 쟁기봉에서의 추억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새벽 3시에 일어 나 어젯밤 준비한 배낭을 챙겨 출발하는 시간이 새벽 4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으로 한산한 도로를 타고 내려 가 휴게소에서 국밥으로 새벽 식사를 마치고 둔산대교 가까운 유등로 한쪽에 애마를 잘 주차시킨 후 택시를 찾아 보지만 보이지 않고 카카오 택시를 호출해도 잡는 택시가 거의 없는지 5분여를 소비하며 낙담하고 있는데 둔산대교 쪽에 빈택시가 와 탑승해 사정을 이야기하니 시간에 맞춰 34번 버스승차장에 도착을 시켜 주신다며 여유를 부리고 계신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서남버스터미널 근처의 34번 버스 종점에 도착을 해 첫차에 탑승하며 출발하니 새벽 6시 2분을 지나는데 버스 앞 안내판에 차량 안내를 하고 있어 사진에 담아 본다.

오늘 저멱에 대전에서 죽마고우들과 약속이 잡혀 있어 시간에 맞춰 오려고 이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는데 계획대로 첫 버스에 탑승을 하면서 순조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버스에 탑승 후 20여분이 지나 지량1리 원지량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니 아직 완전히 어둠이 물러나지 않은 시간에 안개가 자욱하게 드리워져 있어 오늘 풍경은 포기하고 산행에만 집중하며 조금은 빨리 진행을 하기로 해 본다.

지량리는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대를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남동쪽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그 주변에 들판이 조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구만과 대정 마을 등이 있는데 구만 마을은 지형이 거북이가 물에 잠겨있는 형국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대정 마을은 큰 우물이 있다 해서 한우물이라 불리다가 후에 대정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지난 주 어둠속에 내려 와 마을회관에서 샤워까지 하고 올라간 기억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대전 방향으로 도로를 타고 10여미터 걸어 내려간 후 도로 좌측의 식당이 보이는 곳에서 좌측으로 꺽어 진행하며 오늘 하루도 무사한 산행을 빌어 본다.


지량리교회라는 도로 표지판이 서 있고 그 앞에 지량리 뚝배가 한우라는 식당 건물이 보이는 곳 좌측의 포장도로를 타고 들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담쟁이 넝쿨이 감싸고 있는 아담한 지량리교회가 보이고 곧이어 시끄러운 견공들의 환영을 받으며 빠르게 걸어 오르니 포장도로를 지나 공사중인 수로를 건너 좁은 등로가 이어지는 능선으로 들어간다.

잠시 오르니 이미 등줄기와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해 입었던 방풍의를  벗어 배낭에 넣고 스틱을 편 후 빠르게 걸어 오르니 금새 노선안내도와 이정표가 서 있는 독짐재에 도착을 해 지난 주 만들었던 인연을 잠시 생각해 본다.

석밭골은 대전광역시 서구의 남단에 위치한 산직동의 한 마을로서 신직동의 동쪽은 금산군과 경계하였고 서쪽은 매노동과 남쪽은 장안동 및 북쪽은 흑석동과 경계하고 있다.
산직동은 옛날부터 연안 이씨네의 산직이 집이 있었으므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고 산직동 일대에 장군대좌와 옥토망월 및 금계포란 세 명당이 일렬로 늘어져 있어 전체로서 산(뫼산)자를 이루고 있으므로 산직동이 되었다고도 하는데 석밭골(석전동 마을)은 증각골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마을 주변에 돌밭이 많으므로 유래된 이름이다.

방금 전 걸어 올라 온 지량마을과 좌측의 대전시 산직동 석밭골이란 지명을 확인하고 사진 몇장 더 담은 후 진행 방향 우측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본격적인 지맥 산행을 시작해 본다.


독짐재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를 추억을만든 후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48번 송전탑을 만나 통과하고 그 뒤로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다 뒤 돌아 보니 송전탑 뒤로 지난 구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던 시간에 올랐던 조중봉이 화려한 가을 빛깔로 변색을 준비하고 있는 풍경이 보이고 그 좌측 밑으로 지량리에서 만났던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 앉아 있는 풍경이 전혀 새로운 세상에 온 듯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

오르기 전 걱정했던 안개는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사라지고 멋진 풍경이 펼쳐지고 있어 걱정은 등로에 뿌려놓고 기대감으로 걸어 본다.


송전탑이 있는 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며 지난 구간 올랐다 내려 온 조중봉을 살펴보고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빠르게 오르니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져 말라가고 있는 272.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장안봉과 해철이산 방향 표시만 되어 있는 이정표 안부를 통과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바로 앞 조중봉 뒤로 지난 주 걸었던 안평지맥의 산줄기들이 길게 이어지며 벌써 고운 추억이 되어가는 기억을 되살려 주고 있다.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하지만 그 구름 사이로 세상을 밝히려는 강렬한 햇살이 붉은 빛을 비추며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고 있기도 하다.


대둔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안평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다시 빠르게 걸어 오르니 도상 287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이 되지만 우측 방향인 동쪽에서 드디어 두꺼운 구름을 뚫고 찬란하게 빛나는 일출이 뒤늦게 시작되기에 잠시 들려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을 맞이해 본다.

늘 아침마다 만나는 일출이지만 오늘은 특별한 일출이 되어 줄 것을 빌어 보며 아무 사고 없이 무탈하게 유등천 합수점까지 진행하여 마무리한 후 오랫만에 만나는 죽마고우들과 또 다른 추억을 쌓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일출을 감상하고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오늘 새벽에 산행을 시작한 지량리 방향의 마을들과 그 위로 드리워진 안개를 살펴보려 했지만 잡목들이 우거져 보이지 않기에 다시 287봉으로 되돌아 가 정상부 풍경을사진에 담고 진행 방향의 등로도 확인을 해 본다.

진행 방향으로 산직동과 명박산 정상으로 가는 방향 표시와 함께 명박산 정상까지 이제 1.5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를 확인하지만 지맥 산행에서 자주 만났던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보이지 않아 조금은 실망스럽게 진행하려는데 정상 지난 좌측 참나무 가지에 이곳이 안평지맥 상 287미터 지점임을 알리는 산패가 걸려있어 목례 한번 드리고 출발한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설치되어 있는 안전목책과 로프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무명 안부를 지나 평이하게 등로는 이어지고 곧이어 등로 옆에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243.1미터 지점도 통과한다.

잠시 걷기 좋은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돋보이는 256.8 무명봉을 지나고 다시 무명안부로 내려 갔다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멋진 조망이 좁게 펼쳐지는데 살펴보니 금산군 복수면의 278봉 지나 저 멀리 대전의 보문산과 그 뒤로 식장산의 인공 구조물이 하얀 안개 위에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산객의 추억을 일깨우며 지난 시간을 기억하게 만든다.


잠시 보문산과 식장산을 살펴보며 철없던 시절 천방지축으로 대전을 돌아 다니던 추억과 근래 걸었던 식장지맥 산줄기 산행을 생각하며 이제 모두 지나간 고운 추억이 되어 버린 시간들을 되돌려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생각보다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봉천사로 갈 수 있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와 노선안내도를 확인하고 진행을 계속 이어가 본다.

이곳 봉천사는 대전광역시 서구 흑석동 위치한 사찰과 납골당이 함께하는 곳으로 법당 내 납골당이며 납골을 고온 처리하여 만든 영롱한 구슬 형태인 자화사리로 법당내 극락단에 봉안하게 되는데 자화사리로 안치하게 되면 해충과 부패를 막아 깨끗하고 품격 있게 모시게 된다고 한다.

또한 법당 내에 봉안하게 되므로 부처님의 품에 편안하게 안치하여 항상 스님과 불자들의 기도를 받게 된다는 소개글도 보이는 납골당으로 더 잘 알려진 법당으로 보인다.


노선안내도를 보니 이곳이 무슨 서울시내도 아니고 버스가 다니는 도로도 아닌데 왠 노선안내도일까 궁금하기만 한데 아마도 이런 사소한 것 역시 탁상 행정의 하나는 아닐까 생각하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다시 뚜렷하고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평이한 등로를 따라 빠르게 진행하니 벤취쉼터 2개가 나타나는데 오랫동안 사람들의 체온이 멀어졌었는지 먼지만 수북하게 쌓여 있다.

올랐으니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 무명안부를 지나고 커다란 소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으로 올랐다 내려가니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안부로 내려간다.

가야할 해철이산과 지나 온 안평산 방향 표기만 되어 있는 이정표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고 커다란 참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298.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시며 갈증을 풀고 진행한다.


다시 이어지는 평이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고도 차이가 거의 없는 평편한 수준의 등로가 계속 이어지고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하산할 수 있는 등로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순흥안공 묘지가 보이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그 안부 좌측으로ㅕㅇ박재란 지명이름이 보이는데 이곳 역시 그 명박재의 일원이라 생각되는 곳이다.

명박재에 관한 자료를 찾다 보니 명매기라는 철새가 있으며 명매기는 귀제비라고도 하는데 제비의 사촌쯤 된다.

여름 한철 개울가 바위 벼랑에 집을 짓고 사는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불길한 새로 여겨져 마을에 들어오면 집집마다 쫒아내기 일쑤였고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산 위의 절벽이나 바위에 집을 짓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명매기와 관련된 지명이 생기게 되었고 그 지명 이름이 바로 명박산이나 명박재가 되었다는 자료가 보이는데 진실인지는 또 다른 문제인 듯 느껴진다.

평이한 명막재 안부를 지나니 명박산이 지척으로 다가오고 그 정상으로 오르는 등로는 지금과는 달리 조금 더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명박재 안부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이 흐를쯤 어김없이 준희 선생님의 응원판이 힘이 되어 주고 사진에 담으며 고마운 마음을 목례로 대신하며 힘을 얻어 본다.

홀대모 모임에서 몇 번 뵌적이 있는데 이제 세월의 흐름을 거스리지 못하고 자신도 자연에 조금씩 더 가깝게 다가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때면 많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부디 건강하게 오랫동안 계시면서 후배들의 자연 사랑에 조금이나마 더 큰 가르침을 주실 수 있기를 희망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준희 선생님의 응원판을 사진에 담고 가파르게 오르니 금새 잡목들이 보이는 332미터의 명박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정상판과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 하나 그리고 노선안내도와 벤취쉼터 1개 및 국가지점번호판이 정상을 어지럽게 지키고 있다.

명막산(330.5미터)은 충청남도 금산군의 복수면 지량리와 대전광역시 서구 흑석동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331미터이고 옛날 명매기가 많이 살았던 산이라 명매기산으로 불리다가 변하여 명막산이 되었다고 하며 산의 남북 쪽에 명막재와 선골고개가 있다.

이 명박산은 또한 괘등혈이 이 산에 있으며 산 형용이 막을 친 것 같다 하여 명막산이라 칭한다고도 한다.

정상판 옆으로 걸려있는 많은 산행 띠지들을 확인해 보니 역시나 대전충남 쪽 산꾼들과 산악회 띠지들이 많이 보여 이곳이 중부지방임을 다시 한번 더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곳에서 등로는 직진 등로를 버리고 다시 우측으로 크게 꺽여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한다.


 

생각보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설치되어 있는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등로 표면에 깔려 있는 왕사로 인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잠시 후 안전목책이 끝나고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안부 방향으로 걸어 전진하니 해철이산까지 1.7 Km 남아 있고 방금 전 내려 온 명박산에서는 벌써 200미터 내려 왔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그 이정표 지난 지점에는 철옹성 같은 철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마도 군부대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이곳 군부대는 또 어떻게 통과가 될련지 궁금하기도 한 시간이다.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를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견고한 철망이 나타나고 살펴보니 군부대 철망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지금까지 많은 군부대 철망 옆으로 산행을 진행하였지만 이곳처럼 잘 정리되고 진행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았던 곳이 거의 처음이기에 긴가민가 진행하면서도 조금은 믿기지 않는 시간이기도 하다.

약간의 바위들과 커다란 참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무명 안부도 통과하고 다시 한동안 철망을 타고 오르막 내리락 걷다 보니 갑자기 등로 옆으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259.3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여전히 철망을 타고 진행을 하는데 왜 유독 이곳에만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많이 걸려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지점이다.


그 무명봉을 지나 철망이 만들어 놓은 등로를타고 무심으로 걷다 보니 이제 대전시와 충남도 경계로 군부대 철망과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선골고개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자료를 찾아 보니 선골고개는 대전시의 남쪽 서구 괴곡동 선골마을과 충남 금산군 복수면 지량리를 연결하던 고개이며 선골이라는 동리 이름에서 지명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선골은 풍수상 마을이 자리한 지형이 배의 형국과 닮았다고 하여 예전에는 선곡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후에 선인들이 내려와 놀고 갈만큼 아름다운 계곡이라 하여 선곡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잠시 주위를 살펴보고 몇발자국 더 걸어가니 계절을 잃어 버린 철쭉나무 하나에 꽃망울이 터져 있어 시끄러운 세상만큼이나 철없는 꽃망울에 앞날이 걱정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 선골고개 안부와 철없는 철쭉 꽃을 살펴보고 잠시 더 철망을 타고 오르니 갑자기 등로 우측 철망 안에 망루가 보이는데 사병은 보이지 않는 빈망루이다.

그 망루가 보이는 곳 좌측으로는 관목의 참나무들과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도상 273미터봉이란 표기가 되어 있는 곳으로 사진 한장 남기고 살펴보니 철망과 헤어져 좌측으로 흐르는 등로도 희미하게 보이지만 안평지맥 마루금은 여전히 군부대 철망을 따라 이어지고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망루가 보이는 273 잡목봉을 지나 등로 좌측으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거목의 활엽수 지나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그 안부에는 좌측으로 흑석동과 정림동으로 내려갈 수 있는 이정표가 서 있다.

흑석동은 대전광역시 서구에 있는 동으로 동쪽으로 금산군과 서쪽으로 봉곡동과 남쪽으로는 매노동과 산직동 그리고 북쪽으로 괴곡동과 접하며 백제에는 진현현 신라시대에는 진령현 고려시대에는 기성부와 공주부, 조선 초기에는 진잠현, 1895년(고종 32)에는 진잠군 하남면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수리와 수내리를 합하여 흑석리라 하고 대전군에 속했다가 1935년 11월에 대덕군에 편입되었으며 1989년 1월 대전시가 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대전직할시 서구 흑석동이 되었고 1995년에는 대전광역시 서구 흑석동이 되었다.

행정동인 기성동의 관할을 받으며 옛날에는 옥녀탄금형 명당이 있다 해서 금평()이라 부르기도 했다.

거믄들과 노루벌, 대추벌, 둔골, 물안이, 사진개 등의 옛마을이 남아 있고 둔골에는 장군대좌형과 괘등형 명당이 있었다고 하며 사진개 마을은 깨끗한 모래와 우건지 숲이 있다고 하여 사수리라고도 부른다.

교육기관으로는 기성중학교가 있고 문화재로는 용천련고판목(대전유형문화재 22)과 상제집략판목(대전유형문화재 21), 유적으로는 둔골마을에 도요지가 전하며 석동 일원의 흑석지구 개발사업이 1998년에 시작되었다.


흑석동과 정림동으로 하산할 수 있는 안부 이정표를 지나 다시 철망 옆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군부대 철망은 이제 우측으로 꺽어 내려가고 등로는 직진의 완만한 오르막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어 온전한 마루금을 따르게 되었다.

지도를 보니 등로 바로 옆에 장수바위가 있다는데 어느 선답자가 한참을 내려가 봐도 바위는 구경도 못했다는 후기를 읽었던 기억이 있어 장수바위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하는대신 등로 옆에 보이는 바위들을 사진에 담는데 혹시 이 바위들이 장수바위는 아닐까 추측도 해 보는 시간이다.

아마도 장수바위가 있다면 군부대 철망 안쪽에 존재하여 이곳을 지나며 찾았던 선답자들이 찾지는 못한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바위 암릉지대를 지나니 등로에는 여전히 커다란 소나무 등로가 열리는데 그 바닥면에는 바위들이 박혀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더 편안하게 걸어 전진하니 또 다시 바위들이 나타나고 그 바위 사이를 타고 걸어가니 소나무 사이로 사각정자와 안내판들이 보이는 해철이산에 도착을 해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살피며 잠시 쉬어가는 시간도 가져 본다.

해철이산(266)은 대전광역시 서구 괴곡동에 있는 산으로 괴곡동의 동쪽은 안영동에 서쪽은 관저동에 남쪽은 흑석동에 북쪽은 가수원동에 접경한 마을이며 마을지형이 고리와 흡사함으로 고릿골이라 불렀고 오래 묵은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이기에 괴곡리라 부르게 되었다는 마을에 있다.

해철이산(동산)의 위치는 윗선골의 동산을 말하며 지명유래는 해 뜨는 산이라 하여 해철이 산으로 부른다고 전하며 특이사항으로는 현재 정림동 관할 지역이다.

진행하다 보니 이곳 안평지맥에 있는 산들은 모두가 흔하지 않은 산 이름들을 가지고 있어 조금은 신기하기도 하다.


해철이산 정상부에 세워져 있는 각종 안내판들과 육각정자를 사진에 담고 우측을 살펴보니 유일하게 풍경과 조망이 펼쳐진 방향인데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앞에 안개 넘어 참산 줄기가 펼쳐지고 그 뒤 좌측으로 보문산 지나 저 멀리 머리에 인공 구조물들을 쓰고 있는 식장산 줄기가 환상으로 다가오고 있다.

오랜 시간 걸려 걸었던 저 식장지맥의 주산인 식장산도 대전에 내려 와 몇 번인가 올랐던 기억이 있기에 오늘 이곳에서 바라보며 고왔던 추억을 소환하며 옛날 그 시절을 떠 올려 본다.

우측 아래로 보여야 할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은 나뭇가지들과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으며 아쉽기만 하다.


잠시 더 그 해철이산에 머물며 주위 산군들과 정상부를 사진에 담고 이어지는 뚜렷한 소나무 등로를 따라 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겨 본다.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 상 269봉을 지나 계속 빠르게 걸어가니 벤취쉼터 2개가 보이고 그 벤취쉼터를 지나자마자 좌측으로도 길이 잘 나 있어 살펴보니 우측 직진으로 올라야 할 마루금을 버리고 좌측 사면등로가 생기는 듯 하다.

직등으로 올라 무명봉을 넘어 좌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다시 길게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설치가 되어 있고 그 계단 끝까지 걸어 내려가니 다시 평이한 등로를 지나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올라 벤취쉼터 2개가 자리를 잡고 있는 곳 정상부에 도착을 해 잠시 사진 한장 남기며 쉬어간다.


국가지점번호가 보이는 벤취쉼터 2개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 다시 통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무명안부를 지나고 잠시 편안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올라 진행 방향으로 쟁기봉까지 3.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봉우리 같지 않은 183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뚜렷한 등로 좌우측으로는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고 그 사이로 나 있는 등로는 어느 시골의 오솔길 같은 느낌으로 열려있어 시골에서 자라면서 보낸 옛 추억을 떠 올려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정표가 보이는 183봉을 지나 내려갔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거대한 참나무 한그루와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181.7 무명봉을 지나 보도블록들이 보이는 좁은 공터의 182.3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그 무명봉을 통과한 후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내려가니 넓은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갈림삼거리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 안녕고개 즉 안영고개에 도착을 해 잠시 이곳 지명에 대한 공부도 해 보는 시간이다.

이곳 안영고개는 대전광역시의 남쪽 중구 안영동에서 서구 괴곡동의 선골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안영리라는 동리 이름에서 지명이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일설에는 조선 시대 여러 명문가가 괴곡동과 안영동에 정착하게 되었고 이 고개를 통해 서로 왕래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안영이라는 지명은 본래 바깥길이 아닌 안길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 하여 안길을 한자로 음차하여 안이 영이 되었다는 설과 또 양반들이 정착하여 평안하게 영세를 누렸다 하여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등로 좌우측으로 갑천과 유등천을 구분해 놓은 이정표가 보여 사진에 남기고 곧바로 그 비포장 안부를 출발한다.


비포장 임도 안부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통나무 계단을 타고 짧지만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 위로 또 다시 국가지점번호판과 벤취쉼터2개가 보여 잠시 그곳 172미터의 공터로 올라 배낭 내리고 준비한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며 쉬었다 가기로 하는데 과일을 먹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머리 위로 나무 표식이 보이고 다가가 살펴보니 한자로 이곳을 중심봉이라 해 놓은 이정판이 걸려 있어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는 시간이다.


허기를 달래고 그 중심봉이란 커다란 이정판이 붙어 있는 172봉을 내려 와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여전히 흙기로 뚜렷하게 나 있어 진행에는 아무 어려움도 없이 빠르게만 진행이 되고 있다.

소나무 등로를 타고 무명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이어지는 짧은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잘 지어진 사각정자가 나타나고 그곳 162.2무명봉에서 부터 제법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대전이 가깝고 산도 높지 않으며 등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 많은 주민들이 찾고 있는 듯 보였다.


등산객들이 쉬고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우측으로 휘어져 완만하게 내려가는 등로를 따르니 사각정자를 지나자마자 장안봉까지 0.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고 운동기구들이 설치된 곳을 지나 내려가다 보니 등로 좌측으로 갑천 위를 달리는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가수원동 야산과 마을을 지나 관암지맥을 이루고 있는 수통골쪽 빈계산과 금수봉 줄기가 보이고 등로 우측으로는 안영IC 지나 저 멀리 엷은 안개 위로 보문산과 오도산 줄기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 풍경이 자꾸만 이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등로 우측 아래로는 유등천이 내려다 보여 합수점으로 가기 전 좌우측으로 갑천과 유등천 모두를 만나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잠시 더 풍경들을 구경한 후 내려가니 이번에는 등로 좌측으로 막혀있던 나뭇가지들이 사라지며 멋진 풍경들이 살아나고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살펴보니 도시화고속도로 넘어 저 멀리 오래전 시작해 놓고 반석역에서 금강 합수점까지 마지막 구간을 남겨 놓은 수통골 위 관암산 줄기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원래 계획은 내일쯤 저 산줄기를 타고 반석역에서 한화화약공장을 우회하며 금강까지 걸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장모님 생신이니 아침을 먹고나면 진행이 어려울 것 같아 또 언제나 오를 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 산줄기가 되어 버렸다.

 

드렇게 등로 좌우측으로 흐르는 갑천과 유등천 그리고 산줄기들을 살펴보며 걸어 진행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육각정자가 나타나고 주위에는 많은 벤취쉼터들이 설치되어 있는 177봉에 도착을 하는데 노선안내도에는 방금 전 지나온 사각정자가 있었던 봉우리가 장안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이정표에는 이곳이 장안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어 헷깔리는 장소 표기이다.

일단 이곳을 장안봉이라 생각하고 진행하기로 하는데 이곳 역시 많은 동네 어르신들이 산책 나와 쉬고 있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있어 중무장을 한 상태에서 사진 찍기도 쉽지 않아 어렵게 육각정자만 사진으로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자료를 찾아 보지만 장안봉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 없고 장안봉(177m)이 있는 복수동을 찾아 보니 복수동은 대전광역시 서구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으로 서구의 남쪽에 있으며 대전 서남부권의 교통 요충지이다.

동쪽으로 유등천을 경계로 중구 산성동과 사정동, 서쪽으로 정림동, 남쪽으로 중구 안영동, 북쪽으로 도마동과 접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 노사지현, 통일신라 때는 유성현, 고려 때는 공주부에 속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공주군 유등천면에 속하다가 1895(고종 32) 회덕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도마리 일부를 병합해 복수리라 하여 대전군 유천면에 편입된 뒤 1963년 대전시 중구 복수동이 되었다.
1988
년 대전시 서구에 편입되어 이듬해 직할시 승격과 함께 정림동 일부를 편입하였다가 1995년 직할시가 광역시로 승격하면서 행정동이자 법정동인 지금의 서구 복수동이 되었다.

오량산과 쟁기봉 및 유등천 등 천혜의 자원이 있는 지역으로 서부 외곽도로가 준공되면서 대전 서남부권의 교통 요충지로 발전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공주)에 복수소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는 특수 촌락이었던 향소부곡의 하나였을 가능성이 있고 18세기에 발간된 여지도서(공주)에 복수리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그 호수는 170호로 기록되어 있다.

호구총수(공주)에 복수리라는 지명이 확인되고 1895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회덕군 유등천면에 편입되었다.

조선지지자료(회덕)에 복수라는 우리말 지명과 함께 복수리라는 지명이 보이고 1914년 도마리 일부를 병합하여 복수리가 되었다.

이제 완전한 제도권으로 진입을 하였으니 그동안 누렸던 호젓한 산행은 어려울 듯 보이지만 산행 시간은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가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으로 진행을 이어가 본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이곳 육각정자가 있는 장안봉을 내려가며 처음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계단을 다시 뒤돌아 올라 와 노선안내도와 운동기구들이 보이는 중간 능선으로 갔다 뒤돌아 오기를 반복하다 지도를 정치하여 확인하고 제일 아래에 있는 나무계단을 타고 어렵게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길게 이어지는 계단을 타고 소나무 등로를 내려가니 국가지점번호와 방향만 표기가 되어 있는 이정표와 벤취쉼터 1개가 설치되어 있는 등로 옆으로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보이고 곧이어 안부로 내려서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이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의 안영1터널 위 지점이다.


그 터널 위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약간의 조망들이 보이지만 나뭇가지에 가려 아쉬움을 남기고 우측 앞 저 멀리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쟁기봉 정상부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정상부가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진행 방향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드디어 등로 우측으로 나뭇가지들이 사라지며 약간의 조망터가 나타나고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살펴보니 유등천 지나 안영지구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보이는 살줄기 넘어 있어야 할 대전오월드는 산줄기에 가려 보이지 않고 그 뒤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보문산과 그 줄기만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아 있다.

그 우측으로 보여야 할 식장산 역시 나뭇가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으니 이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는 시간이다.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좁은 조망을 살펴보고 다시 출발하니 그림같은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마음 편안하게 새소리 들으며 교차하는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돌탑과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해 잠시 발걸음 멈추고 확인해 본다.

좌측으로 원정림 하산 등로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원안영이라는 마을이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데 이정표에는 보이지 않는다.

정림동은 대전광역시 서구의 남쪽에 위치한 행정동으로 촌락과 도시화 지역이 병존하며 원정림 마을에는 단군 사당이 소재한다.

마을 뒷산인 매봉산은 금계포란형 명당 터로 알려져 있으며 원래 조선 시대의 공주목 유등천면에 속하였다가 숲 아래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한글로 수밋들로 한자로 정림동()으로 표기하다가 후대에 정림동()으로 잘못 기록된 것이라 전한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회덕군 유등천면에 편입 되었고 1914년 순평리와 명암리를 병합하여 대전군 유천면 정림리로 편제되었다.

조선지지자료(회덕)에는 순평보라는 지명과 함께 정림하평에 설치되어 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순평리에 있었던 보였을 가능성이 크며 과거의 자연 마을로는 수밋들 외에 울바위, 장성백이, 강변들, 반지리 및 새뜸 등이 분포했다.

수밋들은 현재의 정림초등학교 동쪽, 강변들( 혹은 일명 강변촌)과 울바위는 갑천 가장자리, 장성백이는 옛날 에 장승이 있던 마을로서 강변들 서쪽에 있었던 마을이라 한다.

1963년 대전시 시역 확장에 따라 대전시 정림동이 되었다가 1992년 도마2동으로부터 행정동으로 독립하였고 정림동과 괴곡동 일부를 법정동으로 관할하게 되었으며 1995년 대전광역시 서구 정림동으로 편제되었다.

예전에 막내 동서가 살던 곳이기에 조금은 이름이 익숙하고 다만 그 근처에 있는 대전의 구봉산을 아직도 오르지 못한 미답지로 남겨 뒀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원정림 하산 등로가 있는 돌탑 안부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대전둘레산길 이정판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살펴보니 이 등로는 대전둘레길과 함께 가는 등로이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효자봉 가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니 쟁기봉까지 0.7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고 좌측의 효자봉 가는 등로를 버리고 우측 쟁기봉 방향으로 걸어 진행하니 우측으로 안영동 하산 등로가 보이는 이정표와 또 다른 돌탑이 쌓여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역시 많은 주민들이 왕래를 하고 있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안부를 지나 오르니 대전둘레길 안내판도 연이어 나타나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오르막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묘지한기가 보이는 곳에서 안전목책과 로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중간 지점에 올라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안평지맥 산줄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며 생각보다 꽤 멀리 걸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장안봉은 나뭇가지 뒤로 숨어 보이지 않고 저 멀리 해철이산과 명박산이 보이고 그 뒤로 이어지는 지난 주 걸었던 산줄기가 파란 하늘금에 맞닿아 춤을 추고 있는 풍경이 또한 가슴을 파고 들고 있다.


지나온 안평지맥 산줄기를 살펴보고 다시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오르니 쟁기봉 갈림삼거리 이정표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곧바로 우측의 뚜렷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오르니 금새 사각정자와 안내판들이 보이는 쟁기봉 정상인 194봉에 도착을 하는데 사각정자 우측 소나무 가지에 준희님의 이정판도 걸려 있다.

쟁기봉(192m)쟁기와 모습이 비슷하다 하여 쟁기봉이라 칭한다고 하는데 대전쪽 조망이 좋은 곳이지만 다른 방향을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으니 아쉽기만 하다.

사각정자 기둥에 이곳이 쟁기봉임을 알리는 작은 이정판이 걸려있고 사각정자 내부로 들어가니 현판에는 복수정이란 현판이 걸려있어 복수동이란 의미를 더 크게 부각한 듯 보인다.

주민들이 올라 와 휴식도 취하고 운동을 하고 있어 조심스럽게 사진 몇장 남기고 주위 풍경을 둘러본다.


해발고도 194미터의 쟁기봉 정사에서 남쪽 방향을 살펴보니 유등천과 안영축구연습장이 바로 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안영마을과 해철이산이 우뚝 솟아 있다.

그 해철이산 우측으로 명박산과 안평산이 보이고 그 뒤로 있어야 할 오대산과 대둔산은 안평지맥 산줄기에 가려 보이지 않고 그 좌측 옆으로는 안산 지나 천비산 줄기가 시원하게보이기 시작한다.

그 한가운데로 지나는 635 2차선 포장도로 방향으로는 엷은 안개가 아직도 드리워져 있어 약간은 몽환적인 분위기도 만들고 있어 잠시 더 그 쟁기봉 정상에 머물며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본다.

 

서쪽 방향으로는 장인어른이 잠들어 있는 구봉산 줄기가 살짝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는데 그 앞에 솟아 있는 산줄기에 막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렇게 잠시 더 쟁기봉 정상에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올라갔던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방금 전 만났던 이정표를 지나 이제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혜천대학교 방향으로 내려가니 미끄러운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중간에 벤취쉼터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구간을 내려가니 힘들게 올라 오는 어르신들이 보이고 인사 드리고 계속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장안봉 가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보인다.

다시 나타나는 나무계단을 타고 계속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복수동 유등천으로 갈리는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만나고 잠시 후 커다란 활엽수들이 보이는 안부에 도착해 잠시 여유를 부려 본다.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무명 둔덕을 넘고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는데 등로 우측으로 송전탑이 그리고 좌측으로는 오량산안내도가 서 있는 장소도 통과한다.

오량산이 어디인지 정확하지 않아 찾아 보지만 확실하지 않고 그곳부터 드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열리면서 일반 등로가 아닌 산책로처럼 느껴지는 마루금이 이어진다.

나즈막한 둔덕을 지나 정림동과 복수동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사거리 이정표와 돌탑이 보이는 안부도 통과한다.


돌탑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환상의 소나무 등로가 열려 있고 그 한가운데를 통해 어르신 한분이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고층 아파트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등로 좌측으로는 송전탑이 보이는 곳을 지나 둔덕을 넘어가니 운동시설들이 나타나고 어르신들이 운동을 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또 다시 철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운동시설들이 보이는 곳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도 철망이 나타나고 등로 양쪽으로 보이는 철망 사이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나무계단이 보이고 그 계단을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복수고등학교 교정과 건물들이 나타난다.

그 운동장 옆 벤취쉼터에서 스틱을 접고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랜 후 다시 출발하니 대전복수고등학교 정문 쪽 이정석이 나타나고 그 앞으로 혜천로 6차선 포장도로가 보이는데 이곳은 최근에 개발되었는지 새로 들어선 듯한 아파트 단지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횡단보도를 통해 혜천로 6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복수서로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자이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계룡아파트 단지들이 솟아 있다.

잠시 후 계룡아파트 버스승강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다 도로를 건너 계속 전진하니 목화아파트 버스승강장도 보인다.


그 목화아파트 버스승강장을 지나니 도로 좌측 앞으로 대전서부경찰서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복수북로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대전서부경찰서 정문 방향으로 걸어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정문을 지나며 사진 한장 담으니보초를 서던 경찰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제지는 하지 않아 곧바로 정문을 통과해 계속 이어지는 복수북로를 따라 걸어 간다.


대전서부경찰서 건물을 좌측에 두고 복수북로를 따라 계속 좌측으로 돌아가니 대전서부소방서 건물이 보이고 그 앞에 서 있는 버스승강장 옆 횡단보도를 통해 계백로 8차선 포장도로를 건넌다.

도로를 건너 우측에 띠울이라는 식당 건물을 두고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올라 첫번째 골목에서 다시 좌측으로 90도 꺽어 들어가며 어려운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보니 서서히 발바닥이 불나기 시작한다.


도림6길이라는 도로에서 우측으로 돌아가니 작은 텃밭이 나타나고 그 텃밭 가장자리를 타고 등로를 찾아 오르니 철조망과 고사목들로 막혀 있는 벽이 나타나 너무나 힘들게 그 고사목 벽을 넘으니 묵은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잡목들과 아카시아 가시나무들이 우거진나즈막한 능선으로 오르니 잠시 이어지던 등로 앞으로 견고한 철망이 쳐져 있어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올라갔던 등로를 따라 다시 내려 가 작은 텃밭에서 나갈곳을 찾아 보지만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너무나 어렵게 도림6길로 다시 나가 그 도로를 따라 진행을 이어간다.

진행하다 왜 이렇게 어렵게 진행이 되었나 확인하다 보니 방금 전 텃밭으로 들기 전 호산나그리스도의교회가 있었는데 그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지 못해 다른곳으로 진행하다 보니 이렇게 어려운 산행을 이어간 것은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었다.


도림6길로 나와 우측에 방금 전 올랐다 견고한 철망으로 힘들었던 나즈막한 야산을 두고 진행하니 드디어 그 야산이 끝이나며 민가있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잡목이 우거진 산행 들머리를 확인하고 다시 돌아서민가 옆으로 나 있는 소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능선으로 들지 않고 그냥 도림6길을 이용하여 진행하였다면 금새 이곳으로 왔을 것을 15분 이상 잡목과 가시나무 속에 갇혀 고생하다 힘들게 진행을 이어가는 도심 걷기가 되었다.


나즈막한 능선 들머리를 확인하고 다시 배재로 방향으로 좁은 소로를 따라 전진하니 도로 좌측으로 우리마트가 이고 그 앞으로 배재로 4차선 포장도로도 보이기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차량들이 통행하고 있어 횡단보도를 통해 그 배재로를 건넌다.

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가니 도솔산으로 이어지는 산행 들머리 옆으로 공굴안이란 버스승강장이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긴 후 도솔봉이란 이정표가 서 있는 계단을 통해 오르니 도솔봉까지는 1.46 Km라는 거리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도솔봉이란 이정표가 보이는 계단을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 등로를 타고 잠시 올랐다 길이 막혀 되돌아 내려 와 우측 등로를 따르니 쓰레기 투기금지라는 경고판이 보이고 그 뒤로 뚜렷한 오솔길 같은 등로가 완만하지만 길게 이어지고 있어 천천히 올라가 본다.

멋진 소나무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이곳도 역시 주민들이 많이 애용하고 있는 등로인지 어르신들이 보이고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니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니 또 다시 반듯한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진다.

한동안 다시 그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운동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는 곳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를 한번 돌아보고 다시 산행을 이어가 본다.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짧은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이제 도솔봉까지 0.7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니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던 원판의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표에는 모두 약수터 표기가 되어 있다.

나무계단이 앞뒤로 보이는 그 무명 안부를 지나 오르니 또 다시 뚜렷한 소나무 등로가 열리면서 국가지점번호판과 벤취쉼터 하나가 보인다.

 

그곳을 지나니 지붕까지 덮혀 있는 근사한 통나무 사각정자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많은 주민들이 쉬고 있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기고 주위를 둘러 본 후 곧바로 출발한다.

지도를 통해 통나무 사각정자가 있는 곳을 확인해 보니 179.5 무명봉으로 제대로 된 이름도 없는 무명봉이다.


그 통나무 사각정자를 지나 걸어가니 월평공원 종합안내도가 나타나고 잠시 뚜렷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104번 송전탑과 16번 송전탑을 지나 207.2미터의 도솔산 정상에 도착을 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주위 풍경과 조망을 살펴본 후 진행하기로 한다.

도솔산 보루는 삼국시대의 소규모 석축 보루로 백제의 산성 및 군사시설의 구체적인 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인근 월평산성과 연계하여 삼국시대 방어체계를 살필 수 있는 자료로 대전의 산성 연구에도 가치가 높으며 보루 둘레 길이는 44미터이다.

잠시 삼각점을 확인하고 사진에 담고 있는데 외국인 한명이 삼각점을 확인하고 있어 신기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독일인으로서 아내가 한국인이라 잠시 휴가를 나왔는데 자기가 하는 일이 지리와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이런 삼각점만 보면 확인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준다.

떠나기 아쉬워 사진 한장 남기고 e-mail 주소를 받아 오늘 사진을 보내 줬더니 곧바로 Mr. Stephane으로부터 고맙다는 소식을 받아 앞으로도 자주 연락하기로 한다.


이곳 도솔산은 이 산객에게 처음인 산이라 잠시 더 주위를 살펴보고 뚜렷한 모습을 가슴속에 담아 본다.

도솔산(207미터)도마 2동에 있는 두루봉(두류봉)이라고도 하는 산으로 소나무가 많고 가파르게 높거나 험하지 않아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호젓하게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인 산이다.

그래서인지 도마 2동은 인심 좋고 생활에 여유로움이 있는 동네로 잘 알려져 있으며 도솔산 골짜기에는 내원사가 있는데 내원사는 1928년 연덕화란 보살에 의해 처음 지어졌고 1965년에 중건되었다.

1978년 한국불교 태고종에 등록되었으며 대전에서 지정된 4개 전통 사찰 가운데 하나이고 좌측에는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기와 편들이 흩어져 있는데 옛 절 터라고 전해온다.

도솔산은 원래 지역 주민들에게 연자봉 또는 연자산으로 불리어 왔는데 60년대만 하여도 주민들이 사방공사를 하였던 민둥산으로 지붕의 모양을 하고 있어서 지붕산으로도 불려졌다.

풍수지리학상 산이 제비의 형국을 하고 있어 마을의 이름이 연자골(연자골) 또는 제비네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연자봉의 명칭에서 유래한 듯하다.

또한 習(-날개+)의 자원이 제비가 나는 연습을 할 때 배의 흰 색()이 드러난 형상이라고 한다.

연자봉 주변에는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많은 학교가 산재해 있으니 풍수를 하는 자들이 연소혈(제비둥지의 형국)이라고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도솔천은 산스크리트어 Tusita의 음역이며 욕계 6천 가운데 제4천으로 내원궁과 외원궁이 있는데 내원은 이상적인 불국세계 미륵 보살 정토를 뜻한다.

내원사는 도솔천 내원궁에서 유래한 말로 사찰 명칭에서 도솔산이라고 근래에 종교적으로 지어진 이름으로 1965년 내원사를 중건할 때 사찰의 이름을 지은 분이 도마 2동에 위치한 보광사 법륜종 종정 금암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좋은 인연을 만들고 잠시 더 머물며 좌우측으로 펼쳐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도솔산 정상에서 남서쪽 방향을 살펴보니 갑천 지나자마자 도안의 새로운 아파트 단지들이 눈에 들어 오고 그 뒤 저 멀리 계룡쪽 거대한 아파트 단지 뒤로 금남정맥의 향적봉 라인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으로 계룡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앞으로 관암지맥 마루금의 관암산 라인이 또한 뚜렷하게 펼쳐져 있다.

저 보이는 산줄기는 모두 걸었지만 반석역에서 금강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관암지맥 산줄기를 걷지 못했기에 내일 걸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다음 기회를 생각해야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 금남정맥과 관암지맥의 남쪽 산줄기를 살펴보고 눈을 계룡산 북쪽으로 돌리니 계룡산 정상부의 인공 구조물이 희미하게 보이고 그 우측 위로 장군봉과 관암지맥의 갑하산에서 우산봉으로 이어지는 멋진 산줄기가 환상으로 펼쳐져 있다.

저 산줄기를 걸었던 시기가 벌써 몇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반석역에서 금강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등로를 걷지 못했으니 언제나 오를 수 있을지 안타까운 시간만 흐르고 있다.

 

그렇게 서쪽 방면을 확인하고 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그곳에도 멋진 풍경이 펼쳐져 있는데 서대전과 대전역을 관통해 저 멀리 2년전부터 올해까지 걸어 완주한 식장지맥의 주산인 식장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그 좌측인 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따라 계족산과 금강으로 이어지는 모습도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온다.

오늘 저녁에 저 서대전에서 죽마고우들과 만나 멋진 하룻밤 보내고 내일은 대전역 근처의 처갓집에서 아침 식사 후 서울로 복귀를 해야 하니 산행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오랫만에 친구들과 가족들을 만나 그동안 하지 못했던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시간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


아쉽지만 도솔산과 독일인 Mr. Stephane과 헤어져 출발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삼각점을 확인하니 대전14번으로 1등 삼각점이다.

삼각점을 확인하고 북쪽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평이하게 진행하니 금새 나무계단이 길게 이어지고 그 계단을 내려가니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산책로가 반겨준다.

산불소화시설인 물탱크가 보이고 다시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내원사 갈림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진행 방향으로는 도솔봉까지 0.48 Km리는 거리 표시가 반갑기만 하다.

지도를 보니 이곳을 승적고개라 하였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승적고개는 가둔이에서 대전시 도마동 산적골로 넘어가는 고개며 신라 중엽시대 사찰이 있어 중의 발자국만 남아 있다는 의미에서 승적고개라 칭한다고 한다고 되어 있어 정리를 해 본다.

우측 바로 아래에 내원사가 보이는데 이곳 내원사와도 관계가 있는지는 나와있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묘지를 가운데에 두고 좌우측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으로 커다란 돌탑이 보이고 그 돌탑을 지나 산책 나온 시민들과 함께 걷다 보니 금새 도솔정이라는 팔각정자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정자에도 많은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있어사진한장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조금씩 허기가 지기 시작하고 좋은 장소 찾아 남아 있는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싶은데 워낙 많은 시민들이 산책 나와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자리 잡고 편히 쉬기도 쉽지 않다.

 

도솔정을 지나자마자 월평산성이란 글자가 보이는 이정표가 나타나고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으로 벤취쉼터 하나가 보이는데 강렬한 햇살이 비추고 있어 편히 쉬지 못하고 다시 출발한다.

잠시 후 등로 한가운데에 소나무와 참나무가 서 있는 능선 상 봉우리인 171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이곳 역시 간간히 시민들이 빠르게 산책을 즐기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171봉을 지나 평이하게 이어지는 임도 같은 등로를 따르니 진행 방향으로 서대전여고라는 방향 표시가 있는 이정표가 보이고 잠시 후 싸이클경기장과 도솔체육관으로 갈리는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등로 우측으로 벤취쉼터 하나가보여 그곳으로 가 배낭 내리니 벤취쉼터 바로 아래에는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지대가 펼쳐져 있다.

그곳에서 간단히 남아 있던 빵과 사과로 허기를 달래고 시원한 물한모금으로 갈증까지 달랜 후 출발하기에 앞서 우측을 살펴보니 대전시내 지나 저 멀리 식장산과 계족산 사이로 흐르는 나즈막한 식장지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고 출발하니 도솔산림공원안내판 지나 월평공원 종합안내도가 서 있고 각기 다른 이정표 2개가 보이는 갈림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은 유난히 일반 시민들이 더욱 눈에 많이 들어 온다.


그 임도갈림 사거리를 지나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다시 조망이 펼쳐지고 잠시 발걸음 멈추고 확인해 보니 우측 가장자리로 나뭇가지 뒤에 숨어 있는 보문산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솟아 있는 식장산이 우뚝하며 그 좌측 뒤 저 멀리 재청ㄹ호 주변에 솟아 있는 환산 일명 고리산이 보인다.

참으로 아름답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풍경과 조망에 자주 발걸음을 멈추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이어지는 뚜렷한 산책로 같은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진행방향으로 리치빌이란 글자가 보이고 좌측 방향으로는 월평산성까지 2.7 Km거리라는 글자가 보이는 이정표가 서 있는 사각정자에 도착을 해 잠시 월평산성을 찾아 본다.

월평산성은 대전광역시 서구 월평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갑천 동안의 해발 138미터 구릉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전에서 유성으로 진입하는 길목으로 공주로 가는 옛길이 지나가는 곳이다.

산성에서는 서쪽으로는 유성 일대가 동쪽으로는 대전 시내 일대가 조망되는데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었으나 문지와 석축의 흔적은 지표상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문지는 모두 3개소로 추정되는데 동문터의 너비는 5미터이고 서문터는 너비 3.6미터이며 북문터는 너비 3미터이다.

북문터 부근에는 성에서 가장 낮고 평탄한 곳이 있는데 이곳에 저수나 집수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산성을 정밀측량한 도면이 없어 정확한 규모는 파악하기 어렵다. 대략적으로 전체 둘레는 약 745m(또는 710m, 680m) 정도로 파악된다. 성내부에서는 백제토기편이 수습되어 백제가 축조하였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2001년에 남벽 일부 구간과 고대지 일대가 발굴되었다.

월평동산성이 위치한 곳은 백제의 노사지현(奴斯只縣)이 있었던 곳이다. 그 때문에 월평동산성을 노사지현의 현성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또한 백제부흥군이 활동하였던 내사지성(內斯只城)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근에 있는 구성리산성을 노사지현성과 내사지성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

발굴조사된 월평동산성의 서벽은 기초부를 진흙과 석재를 섞어 다져서 조성하였다. 먼저 폭 14m 규모로 작은 돌과 진흙을 섞어 다지고 다시 그 위로 폭 15m 정도 다듬지 않은 큰 돌과 진흙을 섞어서 다져 올렸다. 기초부 위에 조성된 성벽은 토축부와 석축부로 구분되는데 토축부는 성벽 내부에 판축하여 조성하였으며 여기에 기대어 외벽쪽은 석축을 하였다. 외벽 축조에 사용된 면석은 대부분 화강암을 정방형에 가깝게 치석하였다.

고대지는 산성의 남서 모서리부분에 있다. 전투시 지휘소인 장대지를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축조한 것이다. 풍화암반 위에 마사토와 회갈색 사질토를 15㎝ 두께로 켭켭이 다져 올려서 조성하였다. 높이는 480, 하단 폭은 750, 상단 폭은 300㎝ 정도였다.

월평동산성은 아직 발굴조사가 일부 지역에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축조시기와 성격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을 근거로 축조시기를 대략 7세기 경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

월평동산성 남벽에서 남동쪽 약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해발 약 135m 구릉이 있다. 1994년 이곳에 정수장이 확장되면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백제시대에 축조하였던 목책, 방어호, 석축성 , 목곽저장고, 신라 석곽묘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67세기 백제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월평동유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방어와 저장을 위한 시설로 보아 방어시설이 분명하다. 아직 월평동산성과 월평동유적이 하나로 연결된 산성인지 아니면 각각 다른 시기에 사용된 산성인지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이것을 하나의 산성으로 보아 이 두 유적을 합쳐서 월평산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출토 유물로 보아 먼저 월평동유적이 만들어 지고 이 보다 좀 늦은 시기에 월평동산성이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월평동산성이 월평동유적에서 확대된 것인지 월평동유적에서 축소하여 산성을 다시 축조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월평동산성과 월평동유적에서는 백제 뿐만 아니라 고구려 토기도 출토되었다. 이는 고구려가 5세기 후반경 대전지역까지 진출하였던 사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주목된다. 안성 도기동산성, 청원 남성골산성 등 5세기 고구려의 남진 경로로 추정되는 곳에서도 고구려의 유물이 출토되어 월평동산성 일대까지 고구려가 진출하였던 사정도 점차 규명되고 있다.


그 사각정자를 지나니 등로 옆으로는 다시 견고한 철망이 나타나고 그 철망을 따르니 철망은 곧 안전목책으로 바뀌고 있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월평싸이클장과 양궁장이 보이는데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지 운동장을 완전히 뒤집어 놨다.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좌측으로 진행하다 짧은 알바 후 다시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해 산행을 이어가 보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이 마봉재란 고갯마루인데 이제는 운동장들이 생기면서 고갯마루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상실된 듯 보였다.

마봉재에는 마봉재 보루가 있는데 삼국시대의 소규모 석축 보루로서 백제의 산성 및 군사시설의 구체적인 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인근 월평산성과 연계하여 삼국시대 방어체계를 살필 수 있는 자료로 대전의 산성 연구에도 가치가 높고 또한 무문토기편도 확인되고 있어 선사시대 고지성 취락에 대한 연구에도 활용가치가 높으며 보루 둘레 길이는 63미터이다.

다시 정상적인 마루금을 타고 내려가니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곧이어 식당들과 아파트가 보이는 신갈마로 4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신갈마로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계속되는 2차선 포장도로인 신갈마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으로 KT인재개발원이 보이고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신갈마로86번길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이제 우측으로 90도 꺽어 진행이 되고 있다.

저 멀리 눈 앞으로 갈마아파트를 바라보며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대전전파관리소가 나타나는데 오래 전 백두대ㅔ간을 진행하면서 무선 HAM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한달동안 밤새 공부해 무선 HAM 자격증을 땄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시 나타나는 갈마로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아기자기한 골목길로 들어가니 아파트와 단독주택들이 혼재되어 있고 그 중간마다 작은 식당들도 보이는 평범한 도시 골목의 모습 그대로이다.

쌍용아파트를 지나 어지러운 골목길을 따라 직선의 도로를 따르니 도로는 다시 좌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고 잠시 후 도로 우측으로 충청투데이라는 언론사 건물도 보인다.


추청투데이라는 언론사 건물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1차선 골목길을 타고 한동안 걸어가니 우리들 소시민들이 살아가는 일반적인 도심의 변두리 골목으로서 사람 사는 정취가 풍기는 그런 모습들이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32번 총 8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계룡로에 도착을 하는데 가운데 4차선은 갈마지하차도로 이어지고 있다.

차량 통행이 워낙 많이 무단횡단은 꿈도 꾸지 못하고 좌측으로 보이는 육교로 가 그 육교를 통해 계룡로를 건너게 되는데 그 육교 정상에서 좌측 방향을 살펴보니 좌측 끝자락으로 계룡산의 장군봉 자락이 보이고 그 우측의 갑하산에서 우산봉으로 이어지는 관암지맥 능선이 옛 추억을 소환하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저 우산봉 능선을 걸은 것이 약 4년 전 쯤으로 기억되는데 아직도 반석역에서 금강까지 마무리를 못하고 있으니 조만간 내려 와 마무리를 해야 될 것 같다.


그렇게 육교에서 서쪽으로 펼쳐진 계룡산 동쪽 끝자락에서 관암지맥의 갑하산에서 우산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확인하고 이제 육교 우측을 살펴보니 대전역 쪽 탑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뒤로 보여야 할 식장지맥 산줄기들은 고층 빌딩에 막혀 어딘가에 숨어 있다.

이제 도로 중앙에 심어져 있는 가로수에도 가을이 찾아 오며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하고 그 풍경에 못이겨 사진 몇장 더 남기고 그 육교를 어렵게 통과하며 계룡로를 건너간다.


그 계룡로 위에 설치된 육교를 건너 먹자골목 같은 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도로 양쪽으로 높은 아파트들이 보이고 도롯가에는 많은 식당들이 영업을 시작하려고 준비중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넓은 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표지판에는 둔산여고네거리(병락정)이란 글자가 보여 찾아보니 이곳은 월평동으로서 대전광역시 서구의 북서쪽에 위치한 행정동이다.

원래 조선 시대의 공주목 천내면에 속하였는데 1895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회덕군 천내면에 편입되었으며 월평이라는 지명은 과거 유성현에서 이곳을 바라볼 때 이 일대의 평지가 반달 모양이었다는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과거에는 이 일대에 원월평, 입의, 성본, 새뜸, 섬말 등의 자연 마을이 있었다고 하는데 성본은 월평산성 아래에 있던 마을이며 입의는 입의 관직을 지낸 조상을 둔 단양 우씨 종족 마을이었고 새뜸은 성심병원 일대 섬말은 월평초등학교 부근의 마을이었다.

18세기에 간행된 여지도서와 호구총수(공주)에는 입의리라는 촌락명이 기록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회덕)에 월평리라는 지명을 비롯해 주변의 자연 마을로서 곡촌과 성밋(성본) 등의 지명이 확인된다.

1914년 성본리와 삼의리 및 곡촌을 병합하여 대전군 유천면 월평리로 편제되었고 1963년 대전시 월평동이 되었다가 1992년 이전까지 갈마동 관할 하의 법정동이었으며 1993년에 행정동으로 독립 하여 1995년 대전광역시 서구 월평1-3동이 되었다.


둔산여고네거리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대전둔산여자고등학교 정문이 나타나고 버스승강장을 지나 계속 직진으로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갈마공원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아름답게 자라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후 갈마역이라는 버스승강장을 지나니 갈마공원네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이제는 도로 우측의 횡단보도를 통해 갈마역로를 통과한다.

갈마동은 대전광역시 서구에 있는 동으로서 북쪽으로 월평동 및 둔산동과 인접해 있고 동쪽으로 둔산동 및 탄방동과 마주하며 남쪽에 벋어 있는 구릉성 야산의 능선을 경계로 괴정동 및 월평동과 접경을 이루고 서쪽으로 월평동에 인접한 서구의 북부 지역으로 서구의 행정 중심지이다.

동명의 유래는 풍수설에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명당이 있다고 하여 갈마울 또는 갈마리라 하였으며 갈마동이란 지명도 이것에서 유래하였는데 처음에는 목마를 갈()자를 썼을 것이나 후에 칡 갈()자로 변하였다.

공주군 천내면의 지역으로서 1895(고종 32)에 회덕군 천내면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복수리(수문들)와 화암리를 병합하여 갈마리라고 하여 대전군 유천면에 편입되었다.

1935년에 대전군이 폐지되면서 신설된 대덕군 유천면의 지역이 되었다가 1963년 대전시 구역 확장으로 대전시에 편입되어 리를 동으로 고쳐 갈마동이 되고 둔산동과 월평동을 통합하여 관할하게 되었다.

1971년에 출장소 설치로 서부출장소의 관할구역이 되었다가 1977년에 신설된 중구에 편입되었으며 1988년에 중구에서 분구된 서구에 편입되었다.

1993년에 둔산동은 삼천동에 편입되었다가 같은 해 11월에 삼천동에서 분리 독립하고 월평동도 분리 독립하였으며 1994년 일부 지역을 유성구 복명동에 1995년 만년동과 월평동 및 둔산동에 각각 편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정동인 갈마동은 행정동인 갈마1동과 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1970년대까지는 농경지가 있었으나 토지구획정리사업에 따라 직교형 가로망이 생기고 모두 도로나 주택지로 바뀌었으며 번화가는 서구청을 중심으로 중앙부의 사거리변에 집중되어 있다.

서구구청, 통계청 충남통계사무소, 대전도시개발공사, 갈마동파출소, 대전소방본부, 갈마동우체국, 대전상수도사업본부, 대전임업협동조합, 갈마도서관 등의 공공기관이 있다.

주요 간선도로는 북부를 가로지르는 대전과 공주 간 둔산로가 있다.


갈마공원네거리를 지나 우측인 동쪽으로 걸어가니 도로 옆 가로수가 예쁜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도로 우측의 둔지미공원에 심어진 단풍들이 너무나 곱게 변색되고 있어 잠시 그 둔지미공원길을 타고 걸어 본다.
둔지미공원은 근린공원으로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 953번지, 955번지, 956번지, 1375번지에 있는 면적 117,306.6 m2로서 주요시설로는 3.8 민주의거 기념탑, 마레트 골프장, 체력단련시설, 화장실 등이 있다.
공원 내에는 선사유적지 아랫마을 주민들이 건립한 둔지미 유래비가 있으며 내용을 펴보면 다음과 같다.

구전에 따르면 이 지역을 백제때는 노사지현이라 했고 신라 때는 유성현으로 고려 때는 공주부에 속했고 조선 초기에는 공주군 천내면의 지역인데 둔지산이 있어서 둔지미 또는 둔산미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조선말기 고종 32년(1895)회덕군 천내면 이었다가 1914년 정항리, 향정리, 신대리와 서면의 정적군에서 1963년 11월 대전시로 편입되면서 둔산동이라 하였다 라고 전한다

또한 둔지미라는 이름은 풍수지리상으로 보아 대둔산의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명당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 둔지미 뒷편으로는 여전히 고층 아파트들이 보이고 있어 이곳이 대도시임을 실감하게 만들고 있다.


둔지미공원이라는 커다란 이정석을 지나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을 즐기며 조금 더걸어 전진하니 높은 기념탑이 솟아 있어 잠시 가 보니 38민주의거기념탑이다.
3‧8민주의거는 1960년 3월 8일부터 10일까지 대전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맨손으로 독재정권에 항거한 선구적 학생운동이었으며 부정과 부패, 불의와 불법, 억압과 폭정으로 빼앗긴 민권을 되찾기 위해 무장의 철권에 맞서 목이 터져라 자유와 정의를 외친 이 운동은 곧 4‧19혁명으로 이어진 충청인의 시민 정신이요 깨어있는 민족혼의 발로였다.
자랑스런 이 정신을 길이 선양하고 전승하기 위한 간절한 뜻을 여기 고귀한 생명의 돌 하나에 새긴다.
순결한 학원을 밀치고 나와 거리에 용솟음치던 그 푸른 함성은 민족의 존엄을 찾는 생생한 넋이었고 민주제단의 거룩한 횃불이 되었음을 증언하노니 어찌 그 뜨거운 주권의 불길을 잊을 수 있으랴.
이제 우리의 의로운 역사는 숭고한 소망의 빛깔로 3월을 더 곱게 꽃피우고 더 찬란하게 가꾸어 갈 것이다.
다시는 이런 항쟁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빌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과 어울리지 않는 38민주의거기념탑을 돌아보고 그 둔지미공원을 빠져 나가니 대각선으로 대전둔산경찰서가 빤히 보이는 정부청사역네거리에 도착을 하고 이곳에서는 다시 좌측으로 90도 꺽어 한밭대로 6차선 포장도로를 건넌다.

이곳은 정부종합청사로서 많은 정부기관 건물들과 입간판들이 보이고 그 사이로 심어진 가로수에는 울긋불긋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이 완연한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 터널을 걸어가니 대전무역회관을 지나 선사유적네거리를 통과하고 곧이어 도로 좌측으로 커다란 둔산선사유적지라는 커다란 입간판을 만나 잠시 선사유적지를 살펴보고 진행을 이어간다.

둔산동 선사유적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한 곳에서 구석기와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발굴된 곳이다.

구석기시대의 유적은 약 2백평 정도의 면적에서 몸돌과 망치돌 등 50여점의 석기와 석기를 만들 때 떨어져 나온 작은 부스러기들이 나왔고 이들 유물 가운데 쌍날찍개, 긁개, 밀개 등은 유물의 형태와 떼어낸 수법으로 보아 후기구석기의 이른 시기이거나 중기구석기의 늦은시기 유물로 보인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직경 2-3m 내외에 깊이 0.8-1.3m 정도의 작은 집자리 유적 13기가 조사되었으며 빗살무늬토기 조각과 보습, 갈돌, 어망추 등이 나왔다.

이곳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신석기시대 후기에 속하며 문화계통으로는 서해안의 빗살무늬토기 문화 전통이 강하고 함경도 해안지역의 문화요소도 일부 보인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는 3기의 집자리 유적이 조사되었으며 팽이형 민무늬 토기 조각, 방추차, 돌도끼, 돌화살촉, 돌칼, 숫돌 등이 나왔다.

둔산지역의 선사유적은 이 지역에서 갑천 주변의 얕은 구릉에 넓은 농토와 풍부한 물을 배경으로 많은 주민이 살았던 사실을 알려주며 대전의 선사문화 갈래와 계통을 확인하는데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오늘 산행이 아니였더라면 알지 못했을 대전의 다양한 소식들을 접하며 걸어가는 시간이 전혀 지루할 틈이 없는 산줄기 이어가기 산행이 되었다.


계속 이어지는 대덕대로를 따라 걸어가니 월평북로를 만나는데 그곳에서 롯데시네마 빌딩의 나주곰탕이란 식당으로 들어가 곰탕 한그릇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한다.

맛난 식사를 끝내고 최근에 구설수에 올랐던 우측 국가기록원 방향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곱게 물들어 가는 가로수가 눈길을 잡으며 잠시 쉬어가라 손짓을 한다.

시간을 보니 너무 이른 시간에 마무리가 될 것 같아 단풍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며 남아 있는 과일을 먹으며 휴식 후 출발하기로 한다.


잠시 과일을 먹으며 휴식 후 다시 정부대전청사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니 생각보다 차량 통행도 많고 경비도 삼엄하게 서고 있어 좌측 물들어 가는 단풍나무와 곱게 깔려 있는 잔디밭 위로 이동해 조금 더 편안하게 걸어 가기로 한다.

지도상 숲의공원A라는 지역으로 잔디가 곱게 깔려 있는 곳에는 가족단위 산책객들이 많이 나와 운동도 하고 휴식도 즐기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숲의공원A라는 드넓은 잔디를 따라 여유롭게 걸어가니 잔디밭 위에는 사람ㅈ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비둘기들도 내려 앉아 먹이를 먹기 바쁜 모습이다.

이 산객이 가까이 다가가도 별 반응없이 먹이 활동을 하다 한마리가 날아 반대편으로 내려 앉자 모든 비둘기들이 그 한마리를 따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그 숲의공원A 지역을 빠져 나가니 한밭지하차도 옆 둔산대로가 보인다.


드넓은 둔산대로를 타고 우측인 동쪽 방향으로 걸어가니 토요일 주말을 맞아 많은 차량들이 뒤엉켜 있고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 시끌벅적한 소음이 귓전을 때린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정부대전청사 입구가 나타나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문들은 모두 굳게 닫혀 있다.

정부대전청사는 중앙행정기관의 지방이전으로 균등한 지역발전을 도모하고 국토 균형발전의 선도적 역할 수행을 위해 1997년 12월 건립되었으며 청사로서의 기능성과 상징성, 개방성, 문화예술성 등을 적절히 조화시키면서 행정의 효율성과 대민 서비스 향상을 위한 근무환경 조성에 주력하는 한편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초고속정보통신망을 구축한 최첨단 빌딩이다.

20층 높이의 4개동으로 건물 면적은 20만 m2로서 청 단위 11개 중앙행정기관들이 입주해 있으며 공무원 41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정부대전청사 입구를 지나 조금 더 진행한 곳 횡단보도에서 둔산대로를 건너니 대전시립미술관과 이응로미술관 및 대전연정시립국악원 등이 나타나고 바로 눈 앞으로는 넓은 대전엑스포시민광장이 펼쳐져 있는데 많은 청소년들이 롤러스케이트도 즐기고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

둔산대공원은 근린공원으로서 대전광역시 서구 만년동 396번지에 있으며 면적은 569,340.6 m2이고 주요시설로서는 대전예술의 전당, 평송청소년문화센터, 시립미술관, 이응노 미술관, 수목원 등이 있다.

둔산대공원은 1991년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었고 공원 내 다양한 볼거리들과 문화공간들이 위치하여 명실상부한 문화 예술의 메카이며 수목원과 어우러진 중부권 최대 도심 수목원이다.

이제 이곳은 대전한밭수목원 내 둔산대공원으로서 수많은 가족 단위의 주말을 파들로 복잡하기만 하다.


노랑게 물들어 가는 낙엽송을 지나 많은 안파를 뚫고 빠르게 걸어가니 한밭수목원이라는 커다란 입간판도 보이고 곧이어 장미들이 심어져 있는 곳 넓은 공터도 지난다.
한밭수목원은 정부대전청사와 엑스포과학공원의 중앙부분에 위치하고 있고 대전예술의전당, 평송청소년문화센터, 시립미술관, 이응노미술관 등이 있어 문화 예술의 메카이며 수목원과 어우러져 문화가 가장 잘 갖추어져 있는 곳이다.
도심 속의 한밭수목원은 정부대전청사와 과학공원의 녹지축을 연계한 전국 최대의 도심 속 인공 수목원으로 각종 식물 종의 유전자 보존과 청소년들에게 자연체험학습의 장 및 시민들에게는 도심속에서 푸르름을 만끽하며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서원(시립미술관 북측)과 남문광장, 목련원, 약용식물원, 암석원, 유실수원 등 19개의 테마별 정원으로 구성된 동원(평송수련원 북측), 열대식물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잠시 예쁜 장미들도 구경하고 터널을 지나가니 수많은 식물들이 예쁜 꽃을 피우고 올 한해를 마무리 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아름다운 산책길을 따르니 우측 앞으로 예쁘게 꾸며 놓은 정원에 작은 물레방아도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뒤 저 멀리 전망대도 보인다.

연인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산책로를 따르니 드디어 도로 우측으로 잘 꾸며진 정원 위 전망대가 보여 잠시 들렸다 내려가기로 한다.

오늘 산행도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밭수목원과 둔산대공원을 통해 산책로를 걷듯 구경며 천천히 진행하니 금새 둔산대교가 올려다 보이는 합수점에 도착을 해 그 합수점 가까이 내려가며 유등천과 갑천의 물줄기들도 살펴본다.

진행 방향 우측의 유등천은 충남 금산군 진산면, 금성면, 금산읍, 남이면을 경계짓는 월봉산 서쪽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며 진산면 내의 여러 작은 물길을 모으고 금산군 복수면에서 지방천을 합한 후 시의 남쪽 침산동의 놋점골(유등)을 지나 정생천과 구완천을 합류하면서 보다 큰 물길을 이루는 하천이다.

다시 북쪽으로 흐르며 안영동과 복수동, 산성동, 유천동, 도마동 및 용문동을 지나 서구 삼천동에서 대전천과 합류한 후 갑천에 유입되는 국가 하천으로 유등천은 대전천과 갑천 사이를 흐르며 중구와 서구를 구분 짓는 경계 역할을 하는 하천이다.

하천변에 버드나무가 즐비하여 버드내라고 불렸다 하는데 조선 시대에는 유포천, 유천 등으로도 불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공주)에 유포천은 유성현 동쪽 20리에 있는데 전라도 진산현 경계에서 발원한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하며 동국여지지에는 유천은 일명 유포라고도 하는데 유성폐현 동쪽 20리에 있고 진산군 경계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용두촌에 이르러 대전천에 유입된다고 하였다.

현재의 유등천이라는 명칭은 1872년지방지도(공주)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유등천이 갑천과 합수되는 물줄기를 확인하고 좌측으로 돌아 오르니 둔산대교 지나 갑천이 유유히 흘러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갑천에는 유람선이 운행하는지호객을 알리는 마이크 소리가 들리고 많은 사람들이 선착장으로 이동하는 모습들도 보인다.

좌측인 서쪽에서 흘러오는 갑천은 충남과 전북의 경계인 대둔산(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에서 발원하는 벌곡천(伐谷川)과 계룡산(암용추와 숫용추)에서 발원한 신도천을 합한 두 계천이 대전광역시 서구 용촌동 야실 마을에서 합류하여 갑천을 이루게 된다.

계속해서 북류하면서 구봉산 뒤편 흑석동과 괴곡동 일대를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통과하다 가수원동부터는 완만하게 흐르기 시작하고 다시 북쪽으로 흐르면서 진잠천, 유성천, 탄동천을 합하며 드넓은 갑천들을 펼쳐 놓고 서구와 유성구 및 대덕구가 맞닿는 둔산 북쪽에서 대전천과 합류한다.

이후 회덕 서쪽을 흐르는 갑천은 규모가 대전의 3대 하천 중 가장 크며 대전의 모든 물길을 갑천이란 이름으로 합하여 시의 북쪽 유성구 봉산동에서 금강에 유입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 신대들(새일들)이라는 대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회덕)에 갑천은 현 서쪽 5리에 있는데 전라도 진산군 신현에서 발원하여 현 서쪽 3리에 이르러 선암천이 되고 아래로 흘러 형각진과 합류한다 거나 신증동국여지승람(공주)에 성천은 유성현 동쪽 7리에 있는데 연산과 진산 두 현 경계에서 발원하여 합류하고 진잠현을 지나 유성현 동쪽에 이르러 성천이 되며 (중략) 이상 세 개의 하천(유포천과 성천 및 대전천)이 합류하여 회덕현의 갑천이 된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이후 동국여지지, 여지도서, 회덕읍지(18세기 중반), 공산지(1859), 대동지지, 호서읍지 등에서도 갑천이란 명칭을 계속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규모와 지명도 때문인지 구간별로 다른 이름이 주어져 있기까지 하였다.

가령 유성 동쪽을 지나는 갑천을 성천이라 하고 대전천을 합한 후 북류하는 회덕 부근의 물길을 갑천 또는 선암천이라 구분하고 있다.

해동지도(진잠)에는 대천, 1872년지방지도(진잠)에는 개수천이라는 낯선 이름이 확인되기도 한다.

여기서 갑천에 붙여진 갑()은 십간(十干)의 첫 번째 명칭으로 제일의 또는 첫 번째라는 의미를 갖는 말로서 이렇듯 붙여진 이름을 보더라도 갑천은 이 지역의 중심 하천으로 그 규모나 상징적 의미가 남다르다 하겠다.

조선 후기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들판에 자리 잡은 마을 중 당시 공주목에 속한 갑천이 제일의 살 만한 곳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갑천을 구경하고 다시 유등천과 갑천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 마지막으로 합수되는 풍경을 확인해 본다.




다시 돌아 온 우측의 유등천과 좌측의 갑천이 만나 직진 방향의 앞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인상적이다.

천변도시고속화도로를 지나 유등천 위에 놓여 있는 대화대교 좌측으로 흐르는 합수된 물줄기는 결국 흘러 흘러 서해바다로 내려갈 것이다.

이렇게 또 하나의 안평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온 등로를 타고 뒤돌아 올라 둔산대교 옆 유등로에 주차시켜 놓은 애마를 향해 뒤돌아 간다.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2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조금 더 여유를 부리며 애마를 회수 해 친구들과 첫번째 약속 장소인 유성의 레전드 호텔로 가니 오후 2시를 막 넘기고 사우나 시설에서 2시간 가까이 잠도 자고 휴식을 취하며 몸단장 하고 나오니 이제서야 친구들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유성 레전드 호텔에 애마들을 주차시키고 차량 2대에 나눠 타고 친구가 운영하는 주먹구이고기집으로 이동해 맛난 고기로 1차 모임을 갖고 옆 맥주집으로 이동해 2차를 마무리한 후 애마를 이용해 유성 레전드 호텔로 이동해 근처의 노래방에서 광란의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복귀하니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새벽 일찍 일어나 근처 콩나물 국밥집에서 해장하고 샤워한 후 대전역으로 이동해 옆지기를 만나 처갓집으로 가니 아침 8시를 넘기고 먹히지 않는 아침식사를 먹고 나와 집으로 복귀하니 오후를 알리고 있다.

잠시 삼성산이라도 다녀오자는 의지는 사라지고 잠에 취해 자다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또 일요일 하루가 그렇게 지나고 있다.


다음주에는 또 어디로 가야할지 교통편 때문에 고민이지만 일단 집을 나서면 자연과 동화되어 또 이렇게 하고 싶은 삶의 일부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91019 안평지맥 제2구간 독짐재-유등천 합수점.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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