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전라북도 무주군의 덕유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9년 08월 10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에 안개 후 아침부터 맑고 무더웠으며 폭염경보가 발령됐지만 가끔 시원한 바람이 불다 오후부터 늦게부터 찜통 더위가 있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26도에서 영상 33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안성생활체육공원 주차장-효자교(구량천 통과)-효자촌교량(사전천 통과)-사전리 효자촌마을-효자촌길 시멘트 포장도로-지하통로(통영대전 고속도로 통과)-어각재(덕유지맥 마루금 접속)-능선진입-지독한 잡목지대-598 무명봉-지독한 잡목지대-642 소나무 무명봉-763 소나무 무명봉-775.9봉(잡목)-참나무 등로-봉화산(885.6봉, 무주309 삼각점)-899.7 바위봉 우회-조망처(덕유산)-바위 암릉구간 우회-868 무명봉-바위 암릉 우회등로-856.7봉-848 무명봉-838 무명봉-848 묵묘봉-846.6봉-808 고사목봉-조망처(진행 방향조망)-661 바위봉-짧은 벌목지대-시멘트 포장도로-522.4봉-502 잡목무명봉-버드산(511.7봉, 무주433 삼각점)-512봉-무명안부-조금재터널(30번 4차선 포장도로)-486.8봉-488 자작나무봉-묵은 비포장임도-498.9봉-480 민등벌목봉-537 무명봉-528 무명봉-535 무명봉-536 무명봉-547 바위무명봉-561 무명봉-구리골산(567.9봉, 무주303 삼각점)-659.0봉-553.8봉-무명안부-601.1봉-조망처-595 고사목봉-592.8봉-544 바위무명봉-531.9봉-좌측 벌목지-491 절개지 조망봉-길동재(구리골로 2차선 포장도로)-비포장임도-능선진입-시루봉(498.6봉, 무주414 삼각점)-비포장임도-능선진입-580.5봉-바위암릉지대 우회-멀산(651.0봉, 바위와 묵은묘지봉)-좌측 벌목지대-이정표(마향산 2.2 Km, 등산로 아님, 난전생태마을 1.2 Km, 사직골 2.0 Km)-우측 병풍바위-이정표(마향산 50 m, 난전생태마을 2.4 Km, 오크랜드 2.2 Km)-성터 바위등로-마향산(728.5봉, 무주302 삼각점, 돌탑)-묘지1기-바위 우회등로-이정표(마향산 50 m, 사직골 2.4 Km, 오크랜드 2.3 Km)-636.3봉-말목산(543.4봉)-비포장임도-녹슨 철조망-묵은 밭경작지-인삼포-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임도-283.9 삼각점봉(무주413 삼각점)-좌측 벌목지대-조망처-지독한 잡목과 가시 나무지대-민가1채-37번 무금로 2차선 포장도로(다성GS칼텍스 주유소)-시멘트 포장도로-지하통로(대전통영고속도로 통과)-276 무명봉-279 무명봉-벌목지 잡목지대-258 무명봉-묘지들-시멘트 포장도로-과수원 통과-창년성씨 묘지지대-시멘트 포장도로(대차강변길)-합수점(남대천과 금강)-서면교(남대천 통과)-대차로-무주시외버스터미널-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7.80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안성생활체육공원에서 남대천 합수점 지나 무주버스터미널까지 진행)
지맥산행 - 총 약 19.71 Km, 어각재에서 남대천과 금강의 합수점까지 산행
접속구간 - 총 약 08.09 Km
안성생활체육공원에서 어각재까지 01.93 Km
시루봉까지 왕복 00.90 Km
남대천과 금강 합수점에서 무주 시외버스터미널까지 05.26 Km
산행트랙 :
산행시간 : 폭염 경보와 찜통 더위에 빨래판 등로를 따라 쉬면서 천천히 진행하여 12시간 58분 (05시 11분부터 18시 09분까지)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02:10 집에서 애마로 출발
04:55 안성생활체육공원 주차장 도착해 애마 주차
05:11 안성생활체육공원에서 덕유지맥 마지막 제2구간 산행 시작
올때 - 17:38 남대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산행 종료
17:55 무주읍 대차리 적천로에서 트럭 히치 하이킹(운전자는 무주에서 어복이라는 식당을 운영)
18:09 무주 시외버스터미널 도착 (안성면 가는 버스는 17:30 분 출발했고 다음 버스는 19:30분 버스)
18:15 고민하고 있는데 택시가 인성면으로 가면서 한사람당 10,000.-원에 안성면으로 운행
18:35 애마 회수 해 곧바로 귀경 및 귀가
덕유지맥이란 ???
백두대간 덕유산 백암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덕유산 향적봉(1614봉), 두문산(1051.2봉), 안성재, 어둔산(679봉), 봉화산(884.5봉), 버드산(512봉), 구리골산(658봉), 시루봉(500봉), 마향산(731봉)을 거처 무주 남대천과 금강합수점인 무주읍 대차리 서면나루에서 그 맥을 다하는 31.9 Km의 산줄기로 무주, 남대천의 우측 분수령을 덕유지맥이라 한다.
폭염경보와 찜통 더위에 스스로 강해진 체력을 확인하며 조금은 여유롭게 많은 휴식 취하며 또 새로운 지맥 산행을 마무리했던 즐거웠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한 여름 폭염이 아니였다면 지난 주 일요일까지 1박2일로 산행을 마무리하고 오늘은 다른 지맥에 들었어야 하는데 요즈음 워낙 무더운 여름철 날씨이다 보니 평소보다 같은 거리를 걷는데도 산행 시간은 훨씬 더 오래 걸리고 체력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어 무리하지 말고 하루만 산행하고 귀가하다 보니 오늘 다시 무주의 안성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살펴보니 오늘 걸어야 할 제2구간은 지난 주 걸었던 제1구간에 비해 등로는 좋지만 수없이 많은 봉우리와 안부가 반복되는 빨래판 등로이라는 판단으로 이 무더위에 무탈하게 완주나 가능할지 그것이 걱정되기도 하였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완주를 꿈꿔본다.
젊은 시절엔 7월 말에서 8월 초에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즐기는 여름 휴가철에 함께 즐겼는데 비싼 숙박비에 먹거리까지 부실하며 제대로 된 손님 대접도 받지 못하고 아이들도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여름 휴가 일정을 잡게 되었고 그렇게 몇 년 동안 휴가를 즐기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8월 말이나 9월 초에 휴가를 떠나게 되었기에 한여름 폭염이라도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오늘도 폭염 경보를 이기기 위해 또 이렇게 새벽잠을 설치고 달려 왔다.
조금이라도 시원한 시간에 진행을 더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 새벽 일찍 안성생활체육공원으로 내려오니 풀섶에는 안개가 내려 않아 물기가 만져지고 입추가 지나면서 낮의 길이도 많이 짧아졌는지 새벽 5시를 넘겼는데도 아직 어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초반 진행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을 듯 싶다.
산행 초반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들로 인해 너무나 힘들게 진행하면서 착용했던 안경까지 잃어버리고 나니 오늘 산행이 잘 진행이나 될련지 걱정과 고민이 시작되었지만 초반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니 등로는 다시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며 많은 걱정들이 사라져 버렸다.
등산복이 흥건히 젖어들고 안경을 잃어버려 선명하지 못한 초점으로 진행하여 어렵게 봉화산에 오르니 정상석 하나 없이 초라한 정상부가 아쉽게 느껴지고 약간의 바위 암릉을 지나 우측으로 지난 구간 어렵게 넘었던 덕유산과 어둔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살피며 여유롭게 걸어 846.6봉을 넘으니 등로 앞으로 멋진 풍경들이 조망되고 잠시 자리잡고 살펴보니 바롸 좌측 능선으로 낮아지며 이어지는 버드산과 조금재가 내려다 보이고 우측으로 돌아가며 구리골산이 높아지고 그 우측 뒤로 길동재 지나 멀산과 마향산이 솟아 있는 모습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덕유지맥 마루금 좌측으로는 구왕산과 큰변득이산을 지나 조항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산줄기 하나가 산행 내내 따라오고 있어 언젠가 한번 쯤 올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진행 방향의 거의 모든 산들과 봉우리들을 확인하고 평이하고 뚜렷한 등로를 따라 흐르는 땀과의 전쟁을 치루다 보니 삼각점과 정상판만 걸려있는 버드산을 통과하고 억새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고 주위는 벌목된 480 무명봉에서 잠시 덕유산을 조망한 후 계속 산행을 이어간다.
다시 이어지는 수많은 봉우리들을 넘어 삼각점만 정상을 지키고 있는 구리골산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601.1봉에 도착을 하고 그 봉우리 지나 우측을 살펴보니 환상의 덕유산 주능선이 길게 펼쳐져 있어 살펴보니 좌측의 덕유산 향적봉에서 우측 끝자락의 서봉과 남덕유산까지의 덕유능선이 이제서야 한눈에 펼쳐져 있어 그동안 힘들게 걸었던 시간을 보상 받는 느낌으로 바라본다.
우측 바로 옆으로는 오늘 올랐다 내려 온 봉화산 줄기가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살펴보니 그 봉화산은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어 오늘 산행도 제법 길게 걸어 왔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번주에도 역시 오르고 싶은 산줄기는 많은데 폭염경보가 예상되어 확실하지 않은 새로운 산줄기는 조금 부담스러운 상황이기에 높이는 그리 높지 않지만 등로가 좋다고 알려진 덕유지맥 나머지 구간을 마무리하기 위해 산행 준비를 해 본다.
20여 Km의 거리에 등로까지 좋다고 하니 여유롭게 걸은 후 다음날인 일요일은 진행하다 중단된 천등지맥 한구간을 다녀올까 생각하며 이틀간 산행 준비를 하고 새벽 2시 10여분에 걱정하는 옆지기의 배웅을 받으며 안성생활체육공원에 도착을 하니 새벽 4시 55분을 지나고 있다.
간단히 산행 준비 후 축구장을 지나 구량천 옆으로 나 있는 구량천로를 따라 걸어가니 구량천 지나 효자촌마을과 그 뒤로 우뚝 솟아 있는 철탑 및 어둔산이 어스름한 새벽 빛속에 지난 주의 추억을 말해주고 있다.
지난 주 걸어 내려왔던 도로이기에 뚜렷한 기억을 되살려 효자교를 건너고 효자촌 마을을 지나 길게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통영대전 고속도로를 지하통로로 통과하여 오르니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도로 좌측 아래를 내려다 보니 방금 전 걸어 올라 온 효자촌 마을 뒤로 안성면이 안개속에 묻혀 있다.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효자촌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니 다음과 같은 마을유래가 있어 그 자료를 인용해 본다.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에서 효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소년과 효자촌은 가난한 집의 한 효자가 초겨울에 호랑이의 도움을 받아 두릅을 구해 어머니의 병을 낫게 했다는 효행담이자, 이러한 효자의 효행 때문에 마을의 이름도 효자촌이라고 불렸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지금의 무주군 안성면의 어느 마을에 효성이 지극한 소년이 늙고 병든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소년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면서 어머니를 정성을 다해 모셨지만 어머니의 병환은 점점 심해졌다.
소년은 어머니의 병에 좋다는 약은 다 구해다 드렸지만 효과가 없었다.
어느 날 소년은 병간호를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노인이 나타나 어머니의 병에 두릅이 특효약이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비록 꿈이었지만 소년은 어머니를 위해 두릅을 반드시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초겨울이어서 두릅을 구할 길이 막막했다.
소년은 두릅을 구하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마을과 달리 눈이 수북하게 쌓여서 두릅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친 소년은 주저앉아 약을 구할 수만 있다면 자기의 목숨도 바치겠다고 기도를 올렸다.
그때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나 소년 앞에 넙죽 엎드렸는데 소년은 집짐승처럼 친근한 생각이 들어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호랑이는 소년을 업고 산을 넘어 한참을 가서 어느 절 앞에 내려 주었다.
소년은 절 안으로 들어갔다.
절 안에서 한 노스님이 소년을 기다린 것처럼 소년에게 다가왔다.
소년은 노스님에게 절까지 오게 된 연유를 설명했다.
스님은 소년이 하늘이 내려준 효자라고 칭찬하며 두릅이 활짝 피어 있는 곳으로 소년을 데리고 가서 두릅 몇 가지를 꺾어 주었다.
소년이 두릅을 받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니 절 밖에서 호랑이가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호랑이의 등에 탄 소년은 다시 한 번 절을 돌아봤는데 절과 스님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큰 바위 하나가 서 있었다.
소년은 깜짝 놀라 산신령의 도움이라 생각하고 마을로 돌아와 어머니께 두릅을 달여 드렸다.
어머니의 병은 두릅을 먹고 씻은 듯이 나았고 소년은 결혼 후에도 어머니를 정성껏 섬기며 행복하게 살았다.
뒷날 사람들이 소년의 지극한 효심을 기리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효자촌이라 하고 마을 입구에 효자비를 세웠다.
효자비는 1917년에 큰 홍수로 떠내려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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