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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청룡지맥(비슬·완)

청룡지맥 마지막 제2구간 내당역에서 합수점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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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대구광역시의 청룡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9년 04월 28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흐리고 습도가 높았으나 점심때부터 맑고 화창한 햇살이 내리고 무더웠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07도에서 영상 19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내당역(대구 지하철 2호선)-통학로 2차선 포장도로-대구애락원-보성홍실타운과 황제맨션-갈림사거리-평리 4차선 포장도로-남평리네거리-

                팬더짬봉에서 아침식사-5번 서대구로 6차선 포장도로-서대구농협-신평리네거리-국채보상로 6차선 포장도로-서대구병원-중리 진달래아파트

                버스정류장-중리롯데캐슬-중리네거리-한국섬유개발연구원-서대구공단네거리-신도운수건너 버스정류장-새방지하차도(신천대로 통과)-새방로

                2차선 포장도로-계성중고등학교-와룡산 상리봉 전망대 안내도-비포장 임도-갈림삼거리 이정표(새방골, 법왕사, 대치골무학사)-126.9봉-

                와룡산 숲가꾸지 사무실 안부 이정표(해맞이동산 서구1봉 자락길 0.70 Km, 진달래 군락지 자락길 1.32 Km, 법왕사 0.55 Km)-편백나무 조림지-

                해발 134미터 이정표(해맞이공원 상리봉 0.54 Km, 새방골 0.63 Km, 팔각정자 0.01 Km)-공명이 쉼터-해발 212미터 갈림삼거리 이정표(해맞이

                공원 상리봉 0.16 Km와 용두봉 2.87 Km, 손자봉 0.28 Km와 할아버지봉 0.67 Km 및 용미봉 1.17 Km)-갈림삼거리 이정표(해맞이공원, 용두봉,

                손자봉)-와룡산 상리봉 전망대(255.3봉, 헬기장, 삼각점, 조감도, 서구제1봉 상리봉 설명판)-비포장 임도-이정표(달서구, 서구제1봉 0.41 Km와

                서구제2봉 0.75 Km 및 서구제3봉 1.30 Km그리고 서구제4봉-294.2 삼각점봉(헬기장, 와룡산 설명판) 이정표(불미골쉼터 1.1 Km, 화장실 0.1 Km,

                상리봉 0.6 Km, 선원공원 0.9 Km)-이동통신탑과 무인산불간시카메라-이정표(와룡산 0.2 Km, 헬기장 0.2 Km, 불미골쉼터 0.7 Km)-

                와룡산(299.7봉, 정상석)-이정표(용두봉 1.1 Km, 와룡산 정상 0.1 Km, 불미골쉼터 0.5 Km)-용두봉 갈림 이정표(불미골쉼터 0.1 Km,

                용두봉 1.6 Km, 이곡중학교 0.6 Km)-이정표(배실체력단련장 0.9 Km, 와룡산정상 0.8 Km, 서재리 1 Km)-184 철봉 무명봉-이정표(배실체력

                단련장 0.6 Km, 불미골쉼터 0.3 Km, 성서이곡운동장 0.6 Km)-이정표(배실체력단련장 0.5 Km, 불미골쉼터 0.4 Km, 서재리 1 Km)-

                190.6봉(사각정자와 운동기구들)-이정표(계명문화대학 1.0 Km, 불미골쉼터 0.9 Km, 서재리)와 배실마을(이곡) 설명판-31번과 4번 송전탑-

                147 벤취2개봉-갈림삼거리(개발제한지역말뚝)-신당고개(달서대로 6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15번과 27번 송전탑-128 무명봉-17번과 25번

                송전탑-궁산(250.9봉, 정상석)-217 무명봉-157 무명봉(벤취쉼터2)-운동기구 안부-노는바위 설명판-배꼽덤 설명판-이락서당강창교 하부-

                성서재와 강창 설명판-금호강고수부지까지 애마회수-합수점(낙동강과 금호강, 디아크문화관)-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16.18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청룡지맥 산행 - 14.25 Km 성지지맥 분기점에서 도덕고개까지

                                                                     접속구간 총 01.93 Km - 강창교와 다사읍 부근에서 애마로 접속구간 발생)

산행트랙 : 20190428 청룡지맥제2구간 내강역-합수점.gpx

산행시간 : 홀로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여 04간 34분 (07시 13부터 11시 47분까)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06:05 대구 홈스파월드에서 출발

                                   06:30 애마를 강창교 아래 고수부지에 주차

                                   06:35 대구 지하철 2호선 대실역에서 지하철 탑승

                                   07:05 대구 지하철 2호선 내강역에서 하차 후 산행 준비

                                   07:13 청룡지맥 마지막 제2구간 산행 시작

                         올때 - 11:29 강창교 아래 도착 해 실질적인 청룡지맥 산행 종료

                                   11:35 애마 회수하여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으로 이동

                                   11:47 실질적인 청룡지맥 합수점에서 산행 종료

                                   11:50 애마를 이용해 서울로 귀경하여 오후 3시 20분 귀가 완료

청룡지맥이란 ???

청룡지맥은 비슬지맥의 비슬산(1083봉) 동남쪽 어께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비슬산(1083봉), 청룡산(794봉), 산성산(653봉)을 지나 대구 시내를 가로 지르며 두류산(125봉)을 지나 와룡산(300봉), 궁산(251봉)을 지나  금호강을 건너는 강창교앞에서 팔공지맥의 기산에서 온 황학지맥의 끝봉인 죽곡산을 바라보며 끝나는 도상거리 34.7 Km의 산줄기로 금호강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강창교에서 1.7 Km정도 제방둑을 따라 내려가면  금호강이 낙동강에 합수되고 황학지맥이 끝나는 합수점 부근엔 4대강 사업의 대표적 상징물인 강정고령보와 디 아크가 있다.




새로운 인연이 된 대구 도심을 가르며 또 하나의 산줄기 잇기 산행을 마무리 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오늘은 산행 후 서울로 복귀를 해야 되기 때문에 조금 일찍 마무리 하기 위해 어제 길게 산행을 하였고 걱정했던 몸에는 큰 이상이 없어 다행이란 생각으로 찜질방에서 하룻밤 머물었는데 더위에 잠을 설쳐 오늘 산행이 걱정이 되었던 하룻밤이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다시 새벽 3시를 넘겨 다시 정신이 맑아졌는데 잠시 고민하다 한시간만 더 자고 일어나 산행을 진행하려고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나 보니 새벽 5시 30여분이 지나고 있어 재빨리 자리털고 일어 나 샤워 후 찜질방을 나오는 시간이 아침 6시를 넘어가고 있다.

산행 후 등산복을 갈아 입지도 못하고 지하철을 이용해 이동하는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기에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오늘 산행 날머리인 강창교까지 애마로 이동해 금호강 옆 고수부지에 애마를 주차 시킨 후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실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해 내당역까지 이동한 후 곧바로 산행을 시작해 본다.

하지만 산행 날머리로 생각했던 강창교에 도착을 해 확인해 보니 금호강 옆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실질적인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까지 이동 가능하기에 산행 후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래도 무탈하게 합수점 앞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그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올라 올 수 있어 개운하게 잘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어제 저녁 늦은 시간까지 두류산을 다녀 왔기 때문에 오늘 아침 늦잠으로 인해 산행 시작 시간이 조금 늦었지만 큰 걱정없이 내당역에서 정상적으로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개발된 도심으로 변해 마루금을 찾아 걷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사라진 등로를 따라 어렵게 진행하여 드디어 와룡산으로 무탈하게 진입하여 통과하고 마지막 궁산까지 넘으니 이제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마지막 금호강이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합수점이 멀지 않은 등로에서 우측으로 날머리로 생각했던 강창교 아래로 금호강이 흐르는 풍경과 그 뒤 저 멀리 실질적인 낙동강 합수점을 바라보던 시간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고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제 시간을 보니 오전 11시를 막 넘긴 시간으로 실질적인 합수점까지 진행한다 해도 12시 이전에는 마무리가 될 것 같아 조금 더 힘을 내며 깨끗한 마무리를 기대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어제 처음으로 대구 지하철을 탑승하며 조금은 공부를 하다 보니 대구에는 총 3개 노선이 있으며 오늘은 지하철 2호선에 있는 역에서 역으로 이동을 해야 되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산행 들머리인 내당역에 무탈하게 도착을 하여 어제 나왔던 2번 출구로 나가지만 오늘 산행은 2번이 아닌 반대쪽 1번 출구이다.

처음에는 서울 지하철 4호선에 있는 내방역과 헷깔려 내당역을 잊기 바빴지만 이제는 입에 착착 감기는 이름으로 변했으니 이 또한 대구에서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2번 출구에서 시민들에게 내당보성 홍실아파트를 확인하여 다시 지하철 역사를 통해 1번 출구로 나가니 통학로 2차선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걸어가며 청룡지맥 마지막 제2구간 산행을 시작한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도로 좌측 건너편으로 내당제일교회 십자가가 올려다 보이고 도로 우측으로는 대구애락원이 보인다.

다시 더 진행하며 도로 양쪽으로 보이는 보성아파트를 올려다 보며 걸어가니 평리로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네거리에 도착을 해 좌측으로 돌아 진행을 이어가 본다.


계속 이어지는 평리로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내동1동 행정목지센터가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내당1동 사무소는 한참 떨어져 있다.

이제 도로 좌측으로 공사장 가리막을 두고 진행하니 금새 5번 서대구로 6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남평리네거리에 도착을 해 우측에 있는 팬더짬봉이란 식당에 들려 아침식사로 짬봉 하나 시켜 먹는데 작은 공기밥 하나를 덤으로 줘 고마운 마음으로 든든하게 주린 배를 채운다.

식사 후 도로표지판의 서구청 방향으로 걸어가며 이곳 지명인 내당동에 대해 살펴보니 1887년경 낙동강 수원지 동남쪽 산 아래에 소나무 3그루가 있었는데 그 안쪽에 있던 마을을 안땅골과 안당골 및 내당곡 그리고 내당리라고 한 데서 내당동이라는 동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 때문에 전국 대부분의 도시들은 거의 다 다녔던 기억이 있는데 유독 대구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어제와 오늘 개인적으로 참 의미있는 걸음걸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도로 양쪽으로 청구와 반도 아파트들을 살펴보며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서대구농협 건물도 지나는데 일요일이라 문은 굳게 닫혀 있고 거리도 한산하기만 하다.

진행하며 지도를 보니 저 멀리 보이는 신평리네거리에서 좌측 방향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야 하기에 도로를 건너니 다시 SK 주유소 건물도 나타난다.

그렇게 걸어 오르니 신평리네거리에 도착을 하고 좌측으로 보이는 KB국민은행 건물을 끼고 좌측 도로인 국채보상로 6차선 포장도로를 따른다.

이곳 평리동은 본래 대구시 서중면의 지역으로 들이 삼면에 있으므로 들말평야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등곡과 도장곡을 병합하여 평리동이라 해서 달성군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10월 1일 대구부에 편입되었다.

또한 평리동 북서쪽에 산나들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이곳은 대구에서 서울로 왕래하는 곳이었으므로 서울 나들이라 하던 것이 살나들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채보상로 6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서대구병원이 보이고 잠시 후 진달래아파트 버스정류장도 통과한다.

서대구신협과 MG새마을금고 건물도 도로 건너편으로 살펴보며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고층의 중리롯데캐슬아파트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자마자 중리네거리가 나타나고 그돗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직진 방향으로 계속 산행을 이어가 본다.

평리동과 상리동(가르뱅이)의 중간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중리동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1700년을 전후해 석씨가 처음 거주한 이래 밀양박씨와 나주정씨 및 경주최씨 그리고 수원백씨 등이 이주해 자연마을을 이루었다.


그 중리네거리를 지나 직진하니 도로 좌측으로 한국섬유개발연구소 건물이 보이고 그 앞에 서 있는 섬유와 패션의 도시 대구라는 설명판을 잠시 읽어 보며 이곳이 섬유산업의 메카 대구임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본다.

대구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공업도시 중 하나로 섬유공업이 대구경제의 기반을 이루어왔는데 근대적인 섬유공업이 발달한 것은 1906년 대구잠업전습소가 설립되면서부터이며 그뒤 1918년 일본자본에 의해 대공장이 설립되어 전국 제일의 생사견직공업도시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는 군수공업의 확대로 성장을 계속했고 1950년대에는 전국 섬유공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기에는 전국 경제의 규모가 확대되고 수출이 증대됨에 따라 더욱 성장했다.

이같이 대구가 섬유공업의 중심지로 발달하게 된 요인으로는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과 원료, 편리한 교통, 축적된 지방자본 및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등을 들 수 있으며 또한 6·25전쟁으로 경인공업지대의 섬유공장이 가동되지 못하여 전국의 섬유 수요를 독점할 수 있었던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와 섬유공업은 낙후된 기술과 수출부진 등으로 인하여 그 생산성이 저하됨에 따라 대구지역의 경제가 침체되기도 했는데 즉 섬유공업 위주의 공업구조는 지역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구조적인 취약성을 지녀왔던 것이다.

따라서 섬유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대규모의 성서공단을 조성하여 첨단산업기지와 연구단지를 만들었다.

현재 한국은 세계 8위의 섬유수출국이며 세계5위의 섬유기술 강국이라는데 시장이 좁아 세계적인 사업이 아니라면 지역 경제의 침체 원인이 될 수도 있는 산업구조이다.


대구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는데 섬유와 염색 공단에 대해 공부한 기억은 생각이 나 대구와 섬유에 대한 관계에 대한 기억을 떠 올려 보는 시간이다.

도로 건너편으로 아현소방서 건물도 보고 도로 좌측으로 자동차 공업사 관련 공장 건물들을 살펴보며 계속 이어지는 국채보상로를 따르니 서대구공단네거리에 도착을 한다.

서대구산단은 서구 중리동과 이현동 일원에 위치한 공업지역으로 70년대에 도심 내에 불법으로 산재한 공장들을 집단으로 유치하여 도시환경 개선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하여 조성되었으며 현재 1366개 업체가 입주하여 13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는 낙후된 공단지역이다.

서대구산단은 섬유와 가구 및 도금업 등 도시환경을 해치는 등 대구시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오래전부터 리모델링 사업이 절실한 지역으로 여겨져 왔으며 09년 노후산단 재생사업 시범지구로 선정된 이후 대구시에서 입주기업 등과의 협의를 거쳐 산단재생계획을 수립하여 13년 재생사업지구로 지정한 곳이다.

서대구산단 재생사업 활성화계획은 서대구산단 재생사업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하여 서구 이현동에 위치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 비축창고부지에 산단재생 리츠를 통한 핵심시설인 지식산업센터와 근로자 지원, 복지, 교육, 연구시설 등 산단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다.

서대구산단 재생사업 활성화계획 승인은 지난해 재생산단에 대한 활성화구역 제도를 도입한 후 첫 사례로서 앞으로 대구시에서 활성화구역을 지정하고 고시한 후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하게 되면 활성화구역 사업을 시작으로 서대구산단 전체에 대한 재생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대구공단네거리를 지나 계속 걸어 진행하니 도로 좌측 낡은 공장 건물 지붕 위로 어제 걸어 넘어 온 앞산 줄기가 시원하게 보이는데 어제 저녁과 오늘 오전까지 이곳 대구를 걸으며 가장 많이 만나고 봤던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앞산이기에 앞산이 대구시와 이렇게 관계가 깊고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눈 앞에 새방지하차도가 보이는데 그 지하차도 위로는 빠르게 달리는 차량들의 소음이 크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새방대교 위로는 신천대로이자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이 지나는 10차선 도로가 4개로 나눠 지나고 있다.


세방지하차도를 건너 우측으로 나 있는 2차선 상리지하차도와 계성중고교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금새 도로 좌측으로 계성중고등학교 정문이 보이는데 그 학교 건물 뒷편으로 보이는 와룡산으로 오르는 진입로가 궁금해 수위 아저씨에게 문의하니 조금만 더 가면 넓은 등산로가 잘 나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 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더 걸어 본다.

계성고등학교는 기독교계 학교로는 영남지방에서 최초로 설립된 신식 교육기관으로 1906년 10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안의와가 대구광역시 남성로에 있는 선교사 사택에서 계성학교를 창설하였다.

시골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을 뒤돌아 보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계성중고등학교 정문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와룡산 상리봉 전망대 안내도가 서 있고 녹슨 콘테이너 박스와 트럭이 보이는 곳 뒷쪽으로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 있고 그 임도를 타고 여유롭게 계성중고등학교 뒷쪽으로 이어지는 와룡산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올라가다 임도 좌측으로 학교 건물 뒤를 살펴보니 어제 걸었던 앞산과 두류산쪽 대구 시내가 조망되고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오르니 좌측 법왕사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만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 산객이 걸어 올라간 방향이 새방골이다.

새방골은 대구서 서구 상리1동의 자연부락으로 현재의 상리1동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달성군 신당리 금호강 하류에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갑자기 돌풍이 불어 집이 날아와 떨어져 살고 있는 곳이 지금의 새방골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처음 함안 조씨(1가구) 개척하고 살았으나 임진왜란 왜란을 피해 진주 강씨가 정착하게 되어 그로 인해 새로 집이 생겼다고 해서 새방골이라 한다.

일설에는 지금으로부터 400 임진왜란 당시 피난민으로 함안 조씨와 옥산 전씨  집이 최초로 마을에 입주하기 시작했는데 진주 강씨와 경주 이씨 및 경주 김씨 여러 성씨들이 모여들어 자연부락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을이 새로 생기고 길도 새로 생겼다고 하여 신골동이라 부르기도 하고방골이라 호칭하게 되었다고도 하며 새방골은 원래 달성군 달서면 상리1동에 속했으나 1930 대구시에 편입되었다.

그 갈림삼거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올라간다.


갈림삼거리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임도 우측으로 126.9봉이 보이는데 그곳에는 아카시아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조심스럽게 정상으로 오르니 산줄기 잇기 산행을 하면서 오지까지 다녀 가신 봉 따먹기의 대가이신 서울 광진문정남님의 빛바랜 하얀 산행 띠지가 반겨준다.

이곳 상리동은 대구광역시 서구에 있는 법정동으로서 행정동인 상중이동 관할이고 대구광역시 서구의 서북단에 있으며 동쪽으로 이현동, 남쪽으로 달서구 이곡동, 서쪽으로 달성군 다사읍 방천리와 이웃하고 북쪽으로 금호강을 사이에 두고 북구 팔달동과 마주한다.

원래 대구부 달서면 지역이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루뱅이와 새방골을 병합하여 달성군 달서면 상리동이 되었다.

금호강 남쪽 유역의 도농복합지역으로,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이 교차하며 대구광역시달서천환경사업소와 자연마을 새방골 등이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그 126.9봉을 내려 와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상리봉 방향으로 조금은 빠르게 걸어 본다.


잠시 더 전진하니 임도 양쪽으로 쉴수 있는 벤취쉼터들이 설치되어 있고 다시 이어지는 내리막 임도를 따르니 콘테이너 박스에 와룡산 숲가꾸기 사무실이라는 안내판이 걸려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한쪽에는 좌측 법왕사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나는 갈림삼거리 이정표도 서 있다.

와룡산 등산로(자락길) 안내도가 서 이어 살펴보니 마루금 우측으로 서구2봉(손자봉), 서구3봉(할아버지봉), 서구4봉(용미봉)이 솟아 있어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산행 후 귀가하는 교통체증이 걱정되어 포기하고 청룡지맥 마루금만 고집을 해 본다.

다시 평이하게 걸어 진행하니 이제 임도 양쪽으로는 잘 조성된 편백나무 조림지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지자체에서 편백나무를 가꾸기 위해 심어 놓은 곳처럼 보이는 곳이다.


평이한 편백나무 임도를 타고 전진하니 임도는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후 좌측으로 세방골 하산 이정표도 서 있다.

다시 오르니 해발 134미터의 팔각정자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팔각정자를 사진에 담고 오르니 곰명이 쉼터가 나타나는데 이곳은 운동시설이 준비되어 있는 말그대로 쉼터인데 주민 한분이 쉬고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이제 가파르게 이어지는 오르막 편백나무 임도를 따르니 금새 해발 212미터인 용미봉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배낭 내려 물 한모금 마시며 목마름을 달래고 다시 넓은 임도를 타고 좌측 상리봉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가 본다.


우측으로 손자봉과 할아버지봉 그리고 용미봉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몸은 가지말라고 말리고 있어 좌측 상리봉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 본다.

계단을 타고 오르니 계단 우측으로 용두봉 가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그곳 용두봉도 들리고 싶었지만 용미봉과 마찬가지로 포기하고 상리봉으로 향한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오르고 싶었던 손자봉에서 용미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길게 이어지며 들리지 못하는 마음이 아파오는 순간이다.

이곳 대구의 와룡산은 도심과 가깝고 산세가 완만하여 찾는 이가 많은데 매년 4월 초순경이면 금호강 쪽으로 흘러내린 용미봉 일원에 아름다운 진달래가 장관을 이뤄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으며 이곳 진달래군락지는 대구경관자원 52선 중 하나로 선정되어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와룡산 용두봉에서 용미봉까지 종주 산행으로 걸어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계속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을 타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니 금새 와룡산 상리봉 전망대라는 안내판과 전망데크가 있는 255.3미터의 삼각점 정상에 도착을 한다.

와룡산에 읽힌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전해지고 있는데 아주 오랜 옛날에 산 아래에 옥연이 있어 용이 노닐다가 그 못에서 나와 막 승천하려고 하는데 지나던 아녀자가 이를 보고 놀라서 산이 움직인다 하고 소리치자 이 소리를 들은 용이 승천하지 못하고 떨어져서 산이 되었다고 하여 와룡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는 내용이 보인다.

상리봉 전망대는 2015년 12월에 준공된 상리봉 전망대는 대구 도심과 금호강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는데 정상에는 전망데크, 포토존, 조형벤치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헬기장과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잠시 좌측 하트 조형물이 있는 전망데크로 내려가 대구시내 방향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제일 먼저 북동쪽을 살펴보니 제일 먼저 금호강이 눈에 들어 오고 그 금호강 좌우측으로 경부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는 모습도 내려다 보인다.

그 우측으로는 신설 서대구역 예정지와 대구염색일반산업단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예전에는 섬유산업과 함께 대구의 산업을 이끌던 분야였지만 지금은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내리막 산업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되는 아쉬운 공단이기도 하다.

그 서대구 시내 지나 저 멀리에는 희미하지만 대구의 북쪽을 병풍처럼 치고 있는 팔공산 줄기가 길게 동서로 뻗어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동쪽으로는 바로 아래에 계성중고등학교 건물과 운동장 그리고 신천대로가 내려다 보이고 그곳 넘어 서대구산업단지와 이현공원 지나 서구청과 대구시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사진 우측 중간에는 어제 오후 늦게 올랐던 이제는 이월드로 변해버린 두류산의 83타워가 희미하지만 뚜렷하게 보이고 그 뒤 우측으로는 앞산으로 이어지는 청룡지맥 마루금이 길게 이어지는 풍경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남동쪽으로는 두류산의 83타워와 시내를 관통하는 사라진 마루금 지나 우측으로 앞산 줄기가 참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어제 걸었던 추억을 되새겨 보는 시간이다.

서구는 대구광역시의 서편에 위치한 구로서 낮은 구릉지로 달서천과 금호강 하류지역에 위치하며 9개의 법정동과 17개의 행정동으로 구성된다.

섬유산업과 염색단지 및 기계공업 등의 공업단지가 분포하고 있어 지역경제의 중심지이고 1938년 대구부 서부 출장소가 설립되었으며 1949년 대구시 서부출장소로 개칭되었고 1963년 서부출장소가 서구로 승격하였다.

1981년 대구시가 대구직할시로 승격하면서 달성군 성서읍 전역이 서구로 편입하였고 1988년 달서구가 신설되면서 성당동과 성서 전역 및 내당동 일부가 달서구로 넘어갔으며 1995년 대구광역시 서구로 승격하였다.

가 보지 못한 등로는 설레임과 약간의 두려움이 있지만 지나온 마루금을 뒤돌아 보는 시간은 경외로움과 아름다움만 남겨지니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얼마나 간사한지도 다시 한번 느껴 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 가는줄 모르게 와룡산 상리봉에서 조망과 풍경 그리고 대구 시내를 살펴보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니 바로 옆에 하트 모양의 조형물이 보이고 잠시 후 철쭉이 곱게 피어 난 언덕도 만난다.

서구제1봉 상리봉에 대한 설명판도 다시 한번 읽어 보고 환상적인 산책길 같은 임도를 따라 힐링하며 진행하니 날씨가 흐린데도 생각보다 많은 대구 시민들이 건강을 위해 올라 걷고 있는 모습이 이곳 와룡산이 얼마나 대구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진행해 서구제1봉부터 4봉까지의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조망이 열리고 잠시 살펴보니 대구 달서구를 지나 좌측 뾰족한 앞산부터 대덕산과 청룡산을 넘고 우측 끝자락에 비슬산까지 청룡지맥 전 구간이 한눈에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본다.


너무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청룡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다시 돌리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잠시 후 넓은 헬기장으로 이뤄진 294.2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니 한쪽에 와룡산 설명판이 보이고 와룡산 힐링숲 안내판도 보인다.

삼각점 옆에 서 있는 이정표를 보니 좌측으로 선원공원 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는 삼거리 안내판이다.

선원공원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있는 공원으로서 소나무외 19종 2423본의 수목과 산정상부의 팔각정외 26종의 주민편익시설이 조성되어 있으며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어 공원을 찾는 주민들에게 휴식공간으로써 많이 이용되고 있는 곳이다.

몇 명의 등산객들이 쉬고 있어 사진 몇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헬기장을 지나니 곧바로 드높은 이동통신탑과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등로 양쪽으로 보이고 그곳을 통과하니 좌측으로 불미골쉼터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고 벤취쉼터도 보인다.

다시 그림같은 명품 등로를 따라 여유롭게 걸어가니 저 멀리 와룡산 정상이 보이고 정상석에 도착을 해 마침 지나는 등산객에게 부탁을 해 추억 몇장 남겨 본다.

와룡산(299.7미터)은 대구광역시의 서구, 달서구, 달성군 경계에 위치하는 산으로 해발고도300미터이며 대구시 방천동 쓰레기 매립지로 활용되고 있다.

가운데 움푹 패여 들어간 부분은 침식에 약한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능선은 단단한 변성암으로 구성되어 있어 말발굽 형의 와룡산(300미터)이 형성되었다.

와룡산은 과거 대구의 중심지에 위치했던 경상감영을 등진 채 금호강 쪽으로 향하고 있어 풍수에서는 대구를 거역하는 산, 이른바 역산이라고 해서 대구에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으레 와룡산의 풍수적 해석에 근거하여 설명하기도 하였다.

와룡산을 용으로 볼 때 용의 머리 부분은 금호강 왼편에 꼬리 부분은 오른편에 위치하고 금호강물에 의해 깎여 만들어진 강가 절벽으로 생김새가 누워 있는 용의 모습을 보인다.

대구읍지에 와룡산은 부의 서쪽 약 10리쯤에 위치하고 산 아래에 옥연이라는 연못이 있으며 용이 그 못에서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와룡산이라고 불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 의하면 와룡산 기슭에 있는 옥연이라는 못에 살던 용이 아녀자들이 놀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승천을 못해 그 자리에 누워서 머무르게 되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용두봉에서 용미봉까지 여유를 가지고 누워있는 용의 몸체를 따라 한번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와룡산 정상에서 잠시 더 시간을 보낸 후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넓은 비포장 임도를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직진 방향으로 와룡산 용두봉으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아쉽게도 직진의 용두봉은 다음으로 마루고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는 청룡지맥 마루금을 따라 조금 이른 시간에 산행을 마치기로 한다.

와룡산(299.7봉)이란 지명은 산의 형태가 마치 용이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한 데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몸을 남쪽으로 굽혀 북서쪽에 용의 머리인 용두봉(262.5봉)과 정상부에 용의 몸통인 와룡산 및 북동쪽에 꼬리인 용미봉(255봉)으로 나뉜다.

또한 용두봉에는 장군들이 물을 길러 먹던 장군정이 있었는데 장군들이 후퇴하면서 크고 넓은 암석으로 덮어 버려 지금은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다시 한번 직진의 용두봉 가는 등로를 눈에 담고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는 마루금을 타고 걸어 진행을 이어가 본다.


길게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가쁜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는 주민들이 생각보다 많아 놀라는 시간이기도 하다.

간단히 인사들을 나누며 내려가니 좌측으로 이곡중학교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만나고 곧이어 많은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고 많은 주민들이 올라 와 운동을 하고 있는 배실체력단련장 안부를 지난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좌측으로 서재리 하산 이정표를 지나 좌측에 철봉하나가 보이고 정상에는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184미터 무명봉에 도착을 해 깊은 숨을 내쉬어 본다.


무명봉을 지나니 소나무 숲 속에 벤취쉼터들이 설치되어 올라 온 주민들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들을 많이 만들어 놓은 듯 보인다.

다시 너무나 아름답고 푹신한 힐링 등로를 따라 무심으로 걸어가니 바로 앞으로 아저씨 한분이 빠르게 걷고 있는데 숨이 가쁘면서도 참고 빠르게 걸어가는 모습이 앞으로의 삶과 닮아 있는 듯 보여 꾸준한 운동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해 본다.

우측으로 성서이곡운동장 하산 갈림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서재리 하산 삼거리 이정표도 다시 만나고 그 이정표를 지나니 저 멀리 운동기구들과 사각정자가 보이는 190.6봉에 도착을 한다.


특별할 것이 없기에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그 190.6봉을 지나 좌측으로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우측으로는 여전히 운동기구들과 벤취쉼터들이 설치되어 있는 풍경들이 눈에 자주 들어 온다.

또 다시 서재리 하산 이정표를 만나 잠시 서재리를 찾아보니 서재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에 속하는 법정리로서 서재리라는 지명유래는 자연 마을 서재도촌에서 나온 명칭으로 이 마을이 금호강 변의 섬같이 생긴 지역에 있어 섬 도자를 써서 도촌이라고 하였는데 성주 도씨가 입향한 후 도촌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 마을 도여유라는 선비의 아호를 따서 서재라고 불렀다고도 하고 와룡산(299미터) 서쪽의 마을이라 서재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서재리는 동과 서 및 남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북쪽에는 금호강이 흐르고 있고 서쪽은 말발굽처럼 생긴 와룡산의 서부 능선이 둘러싸고 있으며 활처럼 생긴 궁산(251미터)에서 북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가로놓여 있다.

남부는 궁산과 와룡산의 정상부를 연결하는 낮은 산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그 사이 신당 고개를 넘으면 계명 대학교 성서 캠퍼스 및 성서 지구로 진입한다.

잠시 후 배실마을(이곡)에 대한 설명판도 읽으며 진행을 이어가니 151봉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 출발한다.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 옆으로 31번과 4번이라는 두개의 번호가 붙어 있는 송전탑을 지나고 식재된 듯한 활엽수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또 다시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147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 정상에서는 우측으로 신당한화꿈에그린아파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아파트 뒷쪽으로는 금호강이 보이기 시작하고 많은 비닐하우스 지나 달성군의 마천산 줄기가 아스라히 조망된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도로 건너 궁산쪽 산줄기가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어 사진에 담으며 내려가 본다.


조망을 즐기며 내려가니 등로는 이제 완전히 성하의 계절을 향해 달려가는 계절의 변화를 몸과 눈으로 느끼게 만들고 잠시 후 갈림삼거리에서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나뭇가지에 걸려 펄럭이고 잠시 후 우측으로 한화아파트 단지 방향으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녹슨 철망을 만나 그 철망을 따르니 시멘트 수로를 만나고 그 수로를 따라 내려가니 금새 달서대로 6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신당고개에 도착을 한다.

신당고개는 서재리 남부에 있고 궁산과 와룡산의 정상부를 연결하는 낮은 산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그 사이 신당 고개를 넘으면 계명 대학교 성서 캠퍼스 및 성서 지구로 진입한다.

횡단보도를 통해 도로를 건넌 후 혹시 먹을 것이나 음료수를 판매하는 가게가 있는지 살펴보지만 찾을 수 없어 남아 있는 0.5리터 식수만 들고 다시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올라 밭을 일구고 있는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신당고개를 지나 도로 좌측을 타고 걸어 오르니 다시 좌측으로 좁은 밭 경작지가 올려다 보이고 그 옆으로 오르니 뚜렷한 등로가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걸어 오르니 15번과 27번 번호가 붙어 있는 송전탑을 지나고 다시 등로 우측으로 한화 꿈에그린 아파트를 조망하며 진행하니 금새 나즈막한 무명안부에 도착을 한다.

이곳 신당동은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있는 동으로서 1910년부터 당산제를 올렸는데 이때부터 이 마을을 신당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88년 대구직할시 서구 일부와 남구 일부로 달서구가 신설되면서 서구 호산동과 파호동, 호림동, 신당동이 달서구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대구직할시가 대구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편입되어 행정동인 신당동이 되었으며 행정동인 신당동은 법정동인 호산동, 파호동, 호림동, 신당동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그 무명안부를 지나니 소나무가 보이는 완만하게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그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아파트와 그 아파트 넘어 와룡산 줄기가 전체적으로 올려다 보인다.

좌측의 용미봉부터 우측의 용두봉까지 길게 이어지는 능선이 아름다운 와룡산이지만 전설처럼 용이 누워있는 형상은 아닌듯 하여 조금은 싱거운 웃음도 웃어 본다.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를 해 궁산을 향한 발걸음을 옮겨 본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한전 띠지가 걸려있는 12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 지난 바위에서 잠시 배낭 내려 간식과 식수를 마시며 불어 오는 산바람에 젖어 있는 등산복도 말려 본다.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하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17번과 25번의 두개의 번호가 달려있는 송전탑을 다시 통과하고 가파른 소나무 등로를 타고 힘들게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약간의 조망들이 터지지만 나뭇가지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는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타이어 벙커가 나타나고 그 우측으로 조망이 열리기에 살펴보니 세천아파트가 바로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그 바로 뒤에는 금호강이 도도히 흐르며 그 뒤로 마천산과 박산 줄기가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고 저 멀리 희미하게 팔공산 줄기도 여전히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눈을 조금 우측으로 돌리니 금호강을 가운데 두고 우측의 방천리와 지천역이 있는 칠곡의 용산리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잠시 더 조망을 즐긴 후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드디어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궁산에 도착을 해 등산객에게 부탁 해 추억 한장 남기고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본다.

궁산(250.9미터)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에 있는 산으로 명칭 유래를 보면 궁산은 강창교부터 서재까지의 산세가 활대 모양을 이루고 있고 정상에서 계명대까지의 산세가 화살 모양으로 마치 십자가 형태로 시위를 한껏 잡아당긴 활과 같다고 하여 붙은 지명이다.

궁산(250.9미터)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와 달서구 호산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와룡산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산줄기 끝에 위치하고 정상에는 정상석이 있다.

궁산도 와룡산과 같이 100미터 미만의 대구 서부 저기복면보다 높이 솟아 있는 잔구(기반암의 차이에 의해 오랜 침식을 견뎌 주변보다 높게 솟은 산)이다.

이러한 지형은 기반암이 연화산(180미터)과 같이 주변의 암층보다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큰 신라 역암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궁산에는 안내판과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편안하고 여유롭게 등산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금호강을 따라 산행을 할 수 있어 대구 유일의 호반 산행이 가능한 곳이다.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동안 산림이 우거진 숲길을 걸을 수 있고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곳이 없어 정상에 올라서면 달성군 다사읍은 물론 멀리 화원읍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산 아래에 이락 서당이 있다.

많은 등산객들이 쉬고 있는 궁산 정상이기에 추억과 사진을 남기고 곧바로 우측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설치되어 있는 계단을 어렵게 피하며 내려가니 다시 등로는 평이하게 이어지고 등로 좌우측으로는 파란 나무잎들이 이제 완연한 봄을 지나 여름으로 달려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나무벤취 2개가 설치되어 있는 217 무명봉에 도착을 해 북서쪽을 살펴보니 우측으로 성서제5차첨단 일반산업단지가 펼쳐져 있고 좌측으로 금호강 넘어 다사읍과 문양역 방향의 아파트들이 보이고 있다.


다시 한동안 더 그곳 무명봉에서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다시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내리막 나무계단 등로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어렵게 그 계단 등로를 내려가니 소나무 등로가 그림처럼 이어지고 또 다시 보이는 계단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명품 소나무 등로가 이 산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있다.

산책나온 할머니들과 잠시 이야기 나누고 다시 빠르게 전진하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또 다시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157봉에 도착을 해 남아 있는 식수로 목마름을 달래 본다.

 

그 벤취쉼터 2개가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우측으로 조망이 열리고 잠시 살펴보니 금호강이 등로 우측 발 밑으로 흐르고 그 좌우측으로 다사읍의 공단과 아파트 단지들이 그림처럼 펼쳐진 모습이 산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고 있다.

이제 청룡지맥 산행도 막바지에 도달했음을 느끼며 조금 더 여유롭게 주위 풍경을 즐기며 걸어가기로 한다.


이제 진행 방향으로는 금호강 위로 실질적인 청룡지맥 산행의 종료지점인 강창교가 바로 앞으로 보이고 그 금호강 넘어 우측으로 이 산객의 애마를 주차시킨 고수부지도 보이며 우측으로 대실역 주변에 솟아 있는 아파트 단지들도 보인다.

그 강창교 지나 저 멀리 살펴보니 이제 금호강 좌측으로 성서삼성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고 그곳 지난 저 멀리 우측의 금호강과 좌측의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도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보고 진행해야 할 등로를 가늠도 해 본다.


그렇게 그림같은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소나무 군락지 가운데로 설치되어 있는 나무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가니 많은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고 운동을 위해 올라 온 주민들이 많이 쉬고 있는 93미터의 무명안부도 통과한다.

안부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절벽 아래 금호강이 도도하게 흐르는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 오고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저 아래 노는바위 설명판이 보인다.

내용을 읽어보니 현 파호동 서편 금호강변 절벽 위에는 큰바위(파호동 산 2번지)가 있다.

이 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1500여년 전 하늘의 선녀들이 내려와 금호강물에 목욕하고 이 바위에서 쉬어가곤 했는데 범인들에게 발견되자 다시는 선년들이 내려오지 않았다고 하며 노는 바위라고 부른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전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에 알리고 싶은 것들이 많다는 사실일 것이다.


노는바위를 읽어 보고 다시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출입금지 금줄이 쳐져 있고 그 금줄을 따라 내려간다.

다시 등로 우측으로 절벽 아래 도도하게 흐르는 금호강을 살펴보고 계속 내려가니 이번에는 배꼽덤 설명판이 보여 잠시 읽어 보고 출발한다.

달서구 파호동 산4번지에 있는 배꼽덤은 700여년 전 홀로 사는 청순과부가 삶의 낙을 잃고 마을 서편 금호강변 강창덤에서 떨어져 자살하려다가           

덤에 있는 나무 가지에 배꼽이 걸려 그대로 죽어 갔다고 하며 이 덤을  배꼽덤이라고 한다는 내용이다.

나뭇가지에 걸렸으면 살았어야지 배꼽이 나뭇가지에 걸려 어짜피 죽었다니 운도 없는 청순과수의 삶이다.


배꼽덤을 지나 다시 초록빛이 만연한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걸어 내려가니 길게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이락서당이 보이고 바로 눈 앞으로 많은 선답자들이 산행을 마무리한 강창교도 보인다.

이락서당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당 겸 서원으로 조선 중기의 학자인 한강 정구와 낙재 서사원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정조 22(1798)에 건립한 강학소이다.

정조가 등극하면서 탕평책을 쓰고 학문을 숭상하는 기풍이 일어나자 당시 대구와 달성 칠곡 등지의 명문가 유생 30명이 뜻을 모아 세운 후 인재 양성과 예학 숭상을 위한 사숙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락서당 건립에 참여한 문중은 모두 아홉 문중으로 성주도씨, 광주이씨, 함안조씨, 밀양박씨, 전의이씨, 일직손씨, 순천박씨, 달성서씨, 광주이씨이며 이들을 통칭하여 9 11 30군자라 한다.

한강 정구는 창녕현감, 지평, 승지, 관찰사를 거쳐 대사헌에 이르렀고 증이조판서와 영의정으로 추증되었으며 경학, 산수, 의약, 풍수에 정통하였고 특히 예학에 밝았으며 대문장가로도 이름이 높았다.

낙재 서사원은 정구의 제자로 주자학 및 이황의 문집을 깊이 연구하고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임진왜란 때 대구 지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팔공산전투에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이락서원은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쳐지는 일명 강창이라는 곳에 있으며 방 2대청 2칸의 구조로 누각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건물 전면에는 이락서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경미재와 모한당이라 쓰인 현판도 있었으나 2006년 도난당했다고 한다.

이락이라는 이름은 강창 지역을 가리키는 말인 동시에 주자의 이락연원록에서 유래한 이름이기도 한데 유학의 중흥지 또는 성리학 그 자체를 의미하며 현재 이락서당보존회가 구성되어 보존과 관리한다.

어릴적 동네 훈장님에게 잠시 한자 공부를 배웠던 추억이 생각 나 잠시 둘러보고 싶었지만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들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락서당을 살펴보고 내려가니 드디어 강창교 아래에 도착을 하고 잠시 우측으로 흐르는 금호강을 살펴보지만 주말이라 많은 향락객들이 몰리면서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곧바로 그 강창교 하부를 통과해 다시 도로쪽으로 올라가니 도로 우측으로 강창과 성서제 이정석이 보여 잠시 읽어 본다.

강창은 강이나 하천 연변에 설치한 조창으로 세곡을 경창으로 운송할 때 수로운송의 기점이었다.

국가의 세곡과 진휼미 및 군량 등을 보관하던 창고로 지방 고을에서 관할하던 창고와 중앙정부가 관장하던 창고로 구분되었으며 각 고을에서 납부한 세곡은 내륙의 주요 하천이나 연해안 부근에 집적되어 경창으로 운송되었다.

그 과정에서 해안 또는 하천 연변에 창고를 마련하여 일정기간 세곡을 보관하였는데 해안의 창고를 해창이라 하고 하천 연변에 설치된 것을 강창이라 하였다.

강창은 고려시대 한강 연변에 설치한 충주의 덕흥창과 원주의 흥원창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들 강창에서는 남한강 유역 일대의 세곡을 운송하였다. 

조선시대에 조운제가 정비되면서 강창의 기능도 강화되었는데 경국대전에 따르면 그 기지로서 덕흥창의 옛터에 경원창을 설치하고 세조 때 가흥창으로 확장하여 경상도 지방과 충북 일대의 세곡을 수납하고 한강의 수로를 이용하여 경창에 운송하였으며 흥원창도 그 기능을 복구하여 강원도 남부지방의 세곡을 보관하였다.

또 춘천에 소양강창을 새로 설치하여 춘천 등지의 세곡을 수납하였고 예성강의 수로가 새로이 주목되어 강음에 조읍포창이 배천에 금곡포창이 설치되어 황해도 지방의 세곡을 수납하고 운송하였다.

조선 초기에 설치된 이들 5개의 강창은 창고시설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아서 가흥창의 경우 강변 언덕에 세곡을 그냥 쌓아두었다가 1521년(중종 16) 약 70칸짜리 창고를 지으면서 노적을 면하였다.

임진왜란 후 조창이 파괴되고 배와 조졸들이 흩어져 복구가 불가능하고 작목과 작포가 일반화되면서 조창에 속해 있던 각 고을은 세곡을 임운으로 상납하였다.

즉 흥원창에 소속되었던 원주와 영월 및 횡성 등 3읍은 남한강 물길을 통하여 소양강창 소속이었던 춘천과 홍천, 인제, 양구, 낭천 등 5읍은 북한강 수로를 통하여 각자 사선을 빌려 세곡을 경창으로 운송하였다.

이처럼 관선조운이 쇠퇴하여 세곡을 사선으로 운송하자 강창은 17세기 이후 가흥창을 제외하고는 모두 철폐되었다.

강창을 읽어 본 후 오르니 강변도로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시 고민하다 강창교 건너 주차시킨 애마를 몰고 와 실질적인 합수점을 잠시 둘러 보기로 한다.


강변도로를 지나 드디어 강창교 위로 올라 다리를 건너는데 동네 아저씨 한분이 다리 위에서 금호강 바닥을 살펴보고 있어 어렵게 부탁해 사진 한장 남기고 여쭤보니 금호강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를 살펴보고 있다는 답이 돌아 온다. 

금호강은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화원유원지 부근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경상북도 포항시 죽장면 상옥리의 가사령과 기북면 성법령에서 발원하여 영천경산 등지를 거쳐 흐른다.

금호강이 지리지 관련 고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경상도지리지로 금호이고 대구읍지에도 금호로 표기되다가 대동지지 이후부터 금호강으로 표기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구읍지에 금호는 대구부에서 서북쪽으로 약 10리쯤 거리에 있발원하는 곳이 두 곳인데 하나는 영천(신령) 보현산(1124미터)이고 다른 하나는 모자산에서 나오며 영천에 이르러 합쳐지므로 쌍계라고도 하고 서쪽으로 흘러 사문진(낙동강)으로 들어간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금호강의 금()은 금호강 주변의 갈대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는 소리가 마치 가야금을 뜯을 때 나는 소리와 같다는 의미이()는 금호강의 지세가 낮고 평평하여 이곳을 흐르는 금호강이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다는 의미에서 금호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드디어 강창교를 건너 대구12경이라는 강정보 이정석과 강정유원지의 먹거리골목 인공 구조물을 사진에 담고 애마를 회수한다.


애마를 몰라 우측에 금호강을 두고 남쪽으로 달려가니 드디어 공사중인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류되는 합수점에 도착을 해 청룡지맥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한다.

낙동강은 영남지방 전역을 유역권으로 하여 그 중앙 저지대를 남류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발원지에 관해서는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에 있는 황지연못을 비롯하여 태백시 함백산 천의봉 북동쪽 계곡의 너덜샘, 너덜샘 아래쪽의 용소, 태백산 장군봉 아래의 용정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태백시에서는 황지연못만을 발원지로 인정한다.

동국여지승람척주지대동지지 등의 옛 문헌에는 황지연못이 발원지라고 했으며 세종실록지리지(경상도) 편에 따르면 태백산 황지와 경상북도 문경의 초점순흥 소백산에서 나온 물이 합하여 상주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고 했다.

앞으로 몇번을 더 만나야 지맥 산행이 마무리될지 셀 수도 없지만 이렇게 하나 둘 완주 후 만나다 보면 그 끝자락도 보일 것이란 기대감으로 걸어 본다.


자전거 운동을 즐기는 분에게 어렵게 부탁 해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과 그 금호강 건너 보이는 디아크문화관을 배경으로 마지막 사진 한장 남긴 후 청룡지맥 산행을 총 마무리 하고 재빨리 정리한 다음 정오 쯤 출발해 서울로 향한다.

디아크문화관은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에 설치된 디아크는 이색적인 건축양식만으로도 대구의 명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자전거를 즐기는 레저 이용객에서부터 연인과 가족동반 관광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디아크는 저녁 무렵 더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해가 질 무렵 전망대에 올라 차한잔 마시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하루를 만들 수 있는 명물이 되었다.





비슬산 조화봉과 대견봉 그리고 참꽃군락지와 대견사를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과 오늘 와룡산의 용두봉과 용미봉 역시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은 남아 있지만 오랫동안 기다렸던 비슬산에서 앞산까지의 종주 산행을 겸한 청룡지맥 산행도 잘 마무리할 수 있어 즐겁게 귀경해 본다.

이번 주 금요일부터는 다시 독일로 장기 출장을 다녀와야 하기에 당분간 산행하기가 어렵겠지만 오랫만에 사업목적으로 가장 중요한 출장이기에 좋은 성과를 가지고 건강하게 돌아와 다시 진행하던 지맥 산행을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생각보다 막히지 않는 도로를 타고 오후 3시가 막 지난 시간에 무탈하게 귀가해 옆지기가 준비해준 맛난 음식으로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니 이 세상 모두가 이 산객의 마음속으로 들어 와 버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90428 청룡지맥제2구간 내강역-합수점.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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