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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원진지맥(금북·완)

원진지맥 제1구간 분기점에서 역치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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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남도 서천군과 부여군 원진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9년 02월 23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아침까지 약간 춥고 하루종일 미세먼지로 인해 조망이 없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하 08도에서 영하 01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신안버스정류장(대백제로 4차선 포장도로)-신안교차로-대덕2리-일유제-능선진입-73번 송전탑-금북정맥 월명산(278.8봉)-원진지맥

                분기점(272.8봉)-252.8 무명봉-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밤나무밭-원진산(269.5봉, 정상판과 삼각점)-벌목지대-밤나무밭-1차선

                포장도로-79번 송전탑-200.4봉-벌목 후 소나무식재 구간-196.8 무명봉-밤나무밭-82번 송전탑-167 무명봉-지독한 잡목구간-벌목지-

                157.1봉-밤나무밭-장구백이고개-비포장임도-611번 2차선 포장도로-비포장임도-지독한 잡목구간-진등고개(613번 2차선 포장도로)-여영님의

                응원판-177.6봉-138.9봉-노고산 갈림삼거리-3번 송전탑-180.5봉-노고산(228.6봉, 삼각점과 정상판)-노고산 갈림삼거리 복귀-밤나무밭-

                143.8 무명봉-송전탑-밤나무밭-마가산고개(팔충로 2차선 포장도로)-지독한 잡목구간-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벌목지대-지독한 잡목구간-

                148.2봉-밤나무밭-측백나무구간-151.2봉-잡목구간-밤나무밭과 비포장임도-벌목 후 밤나무조림지-벌목지-174봉-밤나무밭과 녹슨철조망-

                2차선 포장도로(희망로)-호두나무밭-밤나무밭-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밤나무밭-이정표(두리봉 0.27 Km, 덕림마을 2.38 Km)-

                이정표(덕림마을 덕림고개 2.95 Km, 덕림마을 석산 2.65 Km)-207.2 삼각점봉-송전탑-이정표(덕림마을 2.59 Km, 두리봉 0.36 Km)-

                비포장임도-이정표(덕림마을 2.34 Km, 덕림병사 0.5 Km, 두리봉 0.61 Km)-덕림고개(1차선 포장도로)-밤나무밭-이정표(덕림마을 2.16 Km,

                두리봉 덕림병사 0.79 Km)-145.2봉-무명안부-이정표(덕림마을 1.34 Km, 두리봉 덕림병사 1.61 Km)-통나무계단-사각탁자

                이정표(낙산 괴티고개 0.24 Km, 덕림마을 0.96 Km, 두리봉 덕림병사 1.99 Km)-성황당 안부-동굴-135.7봉-무명안부-무명안부1-밤나무밭-

                대나무밭-벌목지 밤나무-165.8 갈림삼거리-밤나무밭-밤나무 안부-27번 송전탑-152.8봉-193.3 삼각점봉-밤나무밭-132.8 묘지잡목봉-

                밤나무밭-안장고개(611 남성로 2차선 포장도로)-벌목 후 밤나무밭-154.8 무명봉-148 무명봉-잡목지대-117.9봉-역치(충절로 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4.76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접속구간 총 2.6 Km=신안버스정류장에서 분기점까지 2.2 Km 와 역치에서 안현버스정류장까지

                 0.4 Km 포함)

산행트랙 : 20190223 원진지맥 제1구간 분기점-역치.gpx

산행시간 : 때로는 고속도로처럼 또 때로는 지독한 잡목구간으로 온 몸에 생채기를 내며 09간 26분 (09시 00부터 18시 26분까)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05:30 승용차로 집 출발

                                   07:20 규암농협에 도착 후 주차

                                   07:30 규암농협 옆 새서울마포식당에서 백반으로 아침식사

                                   07:55 규암농협 버스정류장에서 109-1번 버스로 신안버스정류장까지 탑승

                                   08:56 신안버스정류장 도착

                                   09:00 원진지맥 산행 시작

                         올때 - 18:40 역치에서 부여가는 시내버스 탑승 후 규암농협버스정류장 근처에서 하차 후 도보로 승용차 회수

                                   19:00 부여읍내의 그린피아 찜질방 투숙(필요물품과 모포 포함 해 10,000)

                                   20:00 칼국수 식당에서 칼국수와 시원한 맥주 1병으로 하루 마무리 (11,000.-)

원진지맥이란 ???
원진지맥은 금북정맥 백월산(579봉)에서 남쪽으로 38.5 Km 떨어진 신산경표 호서정맥의 부시치 고개와 놋점이고개 사이의 표고 276미터봉에서 동쪽으로 가지를 쳐 원진산(270봉), 마가산고개, 덕림고개, 안장고개, 학산(168.5봉), 잣티고개, 함박산(90봉)을 지나 부여군 세도면 가회리에서 금강에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8.1 Km의 산줄기를 말한다.
표고 276미터의 분기점이 최고봉일 정도로 1에서 200미터대의 낮은  구릉지대로 수시로 도로와 임도를 건너며 찾는이가 적어 등산로도 제대로 없는 잡목지대로 독도에 특히 신경을 써야하는 지맥으로 대표적인 산인 원진산의  이름을 따 원진지맥이라 칭한다.




끊어질 듯 이어진 비산비야의 마루금을 따라 또 하나의 산줄기 잇기 산행에 나섰던 멋진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 주에는 오랫만에 산악회를 통해 산친구들과 어울려 대둔산에 올랐다 생각지도 못한 올 들어 처음보는 환상의 눈꽃으로 즐거움 가득 안고 올라왔지만 다음날에는 갑자기 생긴 업무로 인해 계획된 지맥 산행을 포기하고 나니 어딘지 모르게 운동이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주중을 지나면서 몸이 무거워지고 약간은 무기력증에 시달리면서 이번주 주말과 휴일에는 또 다시 길게 산행을 이어가며 불어난 몸무게를 줄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지난 수요일에 갑자기 터진 업무로 인해 외국 기술자가 방한을 하게 되었고 토요일 오후에 귀국하는 일정이 잡혀 이번주에도 토요일 산행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을 하였지만 다행스럽게도 금요일 밤에 모든 일정이 무탈하게 마무리되어 토요일 새벽에는 외국 기술자 스스로 택시를 이용해 인천에서 귀국하는 일정으로 변경이 되어 조금은 위안을 삼아 보는 시간이다.


다시 인터넷에 들어가 진행해야 할 지맥을 살펴보다가 3주 전에 걸었던 노성지맥 산줄기에서 바라 본 대중교통 편이 썩 좋지 못한 원진지맥 산행을 생각하고 자료를 찾아보니 마침 작년에 육덕 이병구 선배님이 자가용과 대중교통인 버스를 이용해 다녀 온 산행후기가 있어 참고하여 부여와 서천의 경계에 있는 원진지맥 산행 들머리로 향하게 되었다.

상세한 내용으로 후기를 올려주신 육덕 선배님에게 감사한 마음 전하며 이틀간 나즈막한 산줄기를 걸으며 오래전 온 몸을 난도질 당했던 경험을 다시 하면서 살아 있음을 느꼈던 뜻깊은 시간으로 남겨 본다. 


새로운 산줄기를 찾는다는 것은 늘 설레임과 동시에 두려움이 있지만 이제는 혼자 오르는 기회가 많다보니 두려움보다는 설레임이 조금 더 큰 시간이다.

어둠속에 오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기다렸다 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오늘은 약간 일몰 후 산행을 마칠수도 있다는 걱정이 조금은 앞서지만 정상적으로 진행을 한다면 큰 무리없이 진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낮은 산줄기는 늘 잡목과 가시라는 복병들이 도사리고 있기에 안심은 금물이다.

그렇게 약간의 잡목들이 있었지만 순조롭게 진행하여 희망로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호두나무와 밤나무 밭을 지나 오르니 등 뒤로 잠시 시야가 터지고 그곳에서 지나온 원진지맥 산줄기를 돌아 보니 끊어질 듯 이어진 나즈막한 산줄기가 눈물겹도록 고맙게 펼쳐져 있어 미세먼지로 잘 보이지 않는 조망을 탓하며 한장의 사진에 남겨 본다.

평생 이곳을 다시는 오를 일이 없겠지만 이 사진 한장으로 이곳에 대한 추억은 가슴속 깊이 남아 평생 간직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규암농협 주차장에 자가용을 주차시키고 육교 옆에 보이는 새서울마포 식당에서 뜻밖의 맛있는 아침식사까지 끝낸 후 계백로 4차선 포장도로 위에 설치된 육교를 건너 규암농협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번호와 시간을 잘못 기재하여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대강 알아 볼 수 있었다.

부여에서 아침 7시 38분에 출발한 내산과 홍산 그리고 상기로 가는 109-1번 버스가 이곳 규암농협 앞 버스정류장에는 대강 7시 55분 쯤 도착을 해 승차한 후 홍산에서 기다렸다 시간에 맞춰 다시 출발해 신안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하니 8시 56분을 지나고 있어 정확히 한시간이 걸린 셈이다.

고향이 이곳 부여에서 멀지 않지만 규암이란 동네는 처음으로 와 본듯한 느낌으로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오랫만에 도로 옆에 조성된 모든 마을들을 들리고 들려 참으로 느긋하게 달리다 보니 승용차로는 10여분이면 닿을 곳을 한시간이나 걸려 어렵게 신안버스정류장에 내리니 마침 동네 할머니 두분이 앉아 다른 버스를 기다리며 배낭을 메고 온 이방인이 신기한 듯 말을 걸어 온다.

하지만 설명해야 어짜피 알 수 없을 것 같아 월명산에 등산하러 왔다고 하니 이곳에서는 옥녀봉 말고는 산이 없다며 왜 옥녀봉이 아닌 월명산에 가느냐며 다시 묻길래 오늘 미세먼지가 심해 옥녀가 외출을 하지 못한다고 해 옥녀봉이 아닌 월명산으로 바꿨다고 하니 배꼽을 잡으시고 웃으신다.

그렇게 짧은 인연을 만들고 대백제로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대덕리 마을을 지나 올려다 보이는 월명산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데 생각보다 춥지 않아 다행이지만 극성을 부리는 미세먼지로 인해 약간의 감기 기운이 있는 몸으로 조금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할머니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며 대덕리를 통해 올라야 할 월명산을 올려다 보니 생각보다 멀리 올려다 보여 접속구간도 길게 느껴진다.

다시 만나는 1차선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에는 신안교차로라는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그곳에서 우측 도로를 타고 대덕리로 들어가니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잠시 후 도로 우측으로 저수지 하나가 보이는데 어릴적 이 산객이 멱을 감던 저수지와 닮아 있다.

대덕리는 충청남도 부여군 옥산면에 있는 리로서 대부분 낮은 산지이며 서당골과 양지편골 등이 있다.

조선중기 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조선시대에는 홍산현 하서면의 지역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일유리, 대마동, 부덕리를 병합하여 대마와 부덕의 이름을 따서 대덕리라 하고 부여군 옥산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대마동과 부덕이 있는데 대마동은 지형의 형국이 말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붙여졌고 부덕은 처음에는 우만리라고 불렀으나 마을이 빈곤하여 부를 쌓고 덕을 베푸는 동네가 되라는 의미에서 고쳐부른 것이다.

시 더 오르니 민가를 지나 월명산과 금북정맥 마루금이 조금은 더 가깝게 다가온 느낌이다.


마지막 민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곳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등로가 보이고 그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73번 송전탑을 만난다.

하지만 그 송전탑을 지나니 등로는 좁고 희미한 등로로 변하고 약간의 잡목들이 저항하지만 진행에는 큰 어려움 없이 치고 올라 금새 금북정맥 상 278.8봉인 월명산에 도착을 하니 준희님의 산패가 반갑게 맞이해 주지만 이곳을 지난 기억이 사라져 잠시 지난 추억을 더듬으며 산행후기를 찾아 본다.

산행후기를 찾아보니 2012년 9월 23일 산행을 한 곳으로 그때는 금북기맥이란 이름으로 걸었으며 제3구간째로서 이곳 월명산 정상에는 월명산이란 산패는 보이지 않고 준희님이 붙여 놓은 금북산줄기 279 m 라는 산패만 달랑 붙어 있어 사진 한장 남겼던 기억이 피어 오른다.

정확히 6년 하고도 5개월이 지나 다시 그곳 금북기맥이란 이름으로 걸었던 279봉에 서 있는 기분이 묘하기만 하다.


잠시 추억 몇장 남기고 그 아련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월명산과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금북기맥 산줄기를 북쪽으로 보내고 이 산객은 이제부터 동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를 따라 원진지맥이란 이름으로 오늘과 내일 이틀간 머물게 될 것이다.

잠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에 쌓여 있는 활엽수 낙엽이 약간의 이슬을 머금고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온다.

다시 무명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드디어 272.8미터봉인 원진지맥 분기점에 도착을 해 준희님이 걸어 놓은 산패에 인사 드리고 머나먼 이틀간의 여정을 시작한다.

누가 시켜서 했다면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오를 수 없는 곳이지만 스스로 고생을 자처하면서도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는 시간이다.

 

원진지맥 분기점을 출발해 커다란 소나무가 줄지어 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려 하니 산줄기 잇기 산행을 하면서 자주 만났던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반갑게 인사를 해 주고 그 인사를 받으며 내려가니 낙엽깔린 안부 지나 작은 바위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잠시 후 넓은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등로를 만나 우측으로 가 살펴보니 남쪽 저 멀리 금북기맥 상 봉림산과 천방산 줄기가 그 옛날 잊혀진 추억을 들려주며 잠시 회상에 잠겨 본다.

 

비포장 임도에서 남쪽으로 금북기맥 산줄기를 살펴보고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 앞으로 이제부터 올라야 할 원진산이 올려다 보이고 아무 생각없이 직진으로 걸어 진행하다 짧은 알바 후 뒤돌아 오는 해프닝도 있었다.

다시 큰 불편없이 선답자들의 띠지를 친구 삼아 진행하니 금새 또 다른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내려서고 그 도로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진입하며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원진지맥 산행을 순조롭게 이어가 본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올라 잠시 더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갑자기 눈 앞에 거대한 밤나무 밭이 이어지고 등로는 좌측의 밤나무 밭 우측 가장자리로 이어지고 있다.

이곳 역시 공주와 가까워서 그런지 산행 내내 거대한 밤나무 밭을 만나 진행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다.

잠시 걸어 진행하다 등로 좌측을 보니 거대한 옥산저수지가 미세먼지속에서도 뚜렷히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 뒤로 비홍산이 올려다 보이며 좌측으로는 오늘 신안정류장에서 할머니들과 잠시 웃음을 나눴던 옥녀봉도 보이는데 미세먼지로 아쉬움이 남는다.


약간의 기침이 나오기는 하지만 견딜만 하고 지난 주 놀면서 한 대둔산 산행 이외에 다른 산행은 하지 못했기에 초반 몸이 무거워 고생을 하였지만 서서히 몸이 풀리면서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 다행이다.

잠시 후 약간의 바위들이 보이는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드디어 269.5봉의 원진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며 원진지맥 산행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원진지맥이라는 이름까지 얻은 정상이며 이 산줄기의 대표산이지만 그 어디에서도 자료 하나 찾기 힘들만큼 낮은 산이다 보니 아쉬움도 남는다.


원진산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안부를 통과한 후 다시 오르니 잡목이 우거진 무명봉을 넘는다.

올랐으니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눈 앞에 밤나무 밭이 펼쳐져 있고 등로 좌측으로 옥산저수지와 옥녀봉 그리고 비홍산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데 좌측 저 멀리 있어야 할 성주지맥 상 보령의 옥마산은 미세먼지의 방해로 인해 상상만으로 만나보는 시간이다.

잠시 내려가며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원진지맥 산줄기 저 멀리 노고산이 보이는데 노고산 역시 미세먼지로 인해 조금은 아쉬운 모습이다.


좌측에 밤나무 밭을 두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르니 이제 봄이 오려는지 벌써 등줄기와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흐르며 겨울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둔덕을 넘으니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 좌측으로는 옥산저수지가 있는 옥산면 안서리와 우측으로는 문산면 은곡리를 이어주는 도로인데 지나다니는 차량은 거의 없는 듯한 도로이다.


도로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79번 송전탑을 지나고 잠시 솔갈비가 푹신한 등로를 타고 룰루랄라 콧노래를 불러 본다.

생각보다 편안한 등로 조건에 오늘 산행이 너무 일찍 마무리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해 보는 시간이지만 결국 예상했던 시간에 내려갔으니 나머지 구간의 등로가 결코 편안하지 않아다는 증거일 것이다.

잠시 편안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지도상 200.4봉에 도착을 하는데 여영님은 이곳을 202m 봉이라는 산패를 걸어 놨다.


그 200.4봉을 넘어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비홍산이 우뚝 솟아 보이고 그렇게 미세먼지로 제한된 조망을 즐기며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벌목 후 소나무를 식재한 구간이 보인다.

눈 앞으로 진행 방향의 산줄기와 송전탑을 살펴보고 전진하니 등로 옆 수종이 잡목으로 변하고 있지만 누군가 등로를 정비했는지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고사목이 보이는 무명봉을 넘고 또 다시 나타나는 밤나무 밭을 옆에 두고 그 정상부 능선을 타고 여유롭게 걸어 본다.


생각보다 넓은 밤나무 밭 위 능선을 따라 한동안 걸어가니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하고도 한참을 더 밤나무 밭을 통해 진행된다.

잠시 후 등로 우측 아래 민가에서 강아지 한마리가 이방인의 출현을 알리고 그렇게 전진하니 금새 82번 송전탑도 만난다.

송전탑을 지나면서 함께 걸어 온 밤나무 밭도 끝이나고 등로는 다시 멋진 수레길 같은 등로로 이어지며 속도를 높혀 보지만 일찍 내려가도 할일이 없으니 다시 속도 조절을 해 본다.

잠시 후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을 지나 멋진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에 벌목 후 소나무를 식재한 구간이 나타나지만 잡목과 소나무들이 자라면서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온 몸에 약간의 상처를 남기며 그 잡목구간을 통과하니 등로 앞 우측 저 멀리 조만간 올라야 할 노고산이 높게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또 다시 선답자의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을 넘고 잡목을 조심하며 진행을 이어가니 또 다른 띠지들이 걸려있는 157.1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빼곡하게 자란 잡목들로 인해 조망은 전혀 없고 선답자들의 띠지가 없다면 봉우리인지도 모르게 통과 할 수 있는 그런 봉우리였다.


잡목봉인 157.1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다시 거대한 밤나무 밭이 이어지고 잠시 가을날 이곳 원진지맥 산행은 거의 불가능 할 것 같다는 느낌으로 걸어 본다.

다시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가며 진행하니 안부 한쪽 나뭇가지에 준희님의 산패가 걸려있는데 이곳을 장구백이고개라 적어 놨다.

이곳 장구백이고개는 서천군 문산면 은곡리에 속한 고개로서 지명유래를 모두 찾아 봐도 그 어디에도 장구백이라는 지명은 찾을 수 없는데 다음과 네이버 지도애ㅔ는 장구백이고개라는 지명이 표기되어 있어 조금은 당황스러운 이름이기도 하다.

장구처럼 생겨 붙은 이름은 아닌지 모르겠다.

 

잊혀지지 않을 정도의 나즈막한 안부인 장구백이고개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잎이 넓은 활엽수 군락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깊게 패인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고갯마루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봐도 아무 표기가 되어 있지 않은 무명임도이다.

임도를 지나 오르니 금곡님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611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서문로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우측의 서천군과 좌측의 부여군을 이어주는 이곳 역시 차량들의 통행이 별로 없는지 잠시 사진을 찍고 능선으로 오를 때까지 통행하는 차량 하나를 만나지 못한 오지의 고장처럼 느껴졌다.


한산모시를 선전하는 도로 표지판을 살펴보고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키 작은 밤나무들이 보이고 최근에 새로 조성된 묘지길을 따라 오르니 등로는 여전히 진행에 큰 어려움이 없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부여군 옥산면쪽 마을과 교각 그리고 드넓은 비닐하우스 단지가 눈길을 잡는데 산행 후 알아보니 대부분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조망을 즐기고 조금 더 전진하니 이제부터 잡목들의 저항이 거세지기 시작하고 고통에 신음하며 어렵게 통과하니 또 다른 613번 2차선 포장도로인 한마로가 지나는 진등고개에 도착을 한다.

진등고개는 충청남도 부여군 옥산면 가덕리에 있는 마을이름을 차용한 고개이름으로서 가덕리의 북쪽에는 금천이 흐르고 서쪽에는 낮은 산이 있으며 대부분 구릉지이고 세동소류지가 있다.

조선시대 홍산현 하서면 지역으로 노덕으로 불렸는데 1914년 군폐합 시 남면의 선서리 일부를 병합하여 가덕리라 하고 부여군 옥산면에 편입되었으며 자연마을로는 가덕리(갈때기, 노덕, 가덕), 진등(진동) 등이 있다.

가덕리는 갈대가 많이 있었다 하여 붙여졌고 진등은 오양골 서쪽 긴 등성이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즉 진등고개란 이름은 가덕리 진등마을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오양골 서쪽 긴 등성이에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진다.


부여와 서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진등고개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부드러운 솔갈비가 깔린 멋진 등로가 열리고 잠시 후 여영님의 응원판을 만나 힘을 얻어 걸어 오르니 생각보다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 애를 먹는다.

역시 산은 높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 먹기와 경사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껴 본 시간이기도 하였다.

어렵게 많은 땀을 흘리며 서천공주간고속도로가 지나는 가덕터널 위를 통과해 오르니 바위가 보이는 177.6봉에 도착을 하고 시원하게 불어 오는 바람에 흐른 땀을 식히며 잠시 준비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며 식수 한모금을 마시고 있으니 두분의 산객이 역시나 힘들게 올라오고 있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인사를 드리고 물어보니 역시나 맥을 타고 계시는 선배님들이셨다.

한분은 익히 이름을 들었던 대전의 고송부 선배님으로서 이제는 정년퇴임 후 금산으로 거쳐를 옮겨 남아 있는 마지막 지맥을 타고 계시면서 단맥까지 생각하고 계신 노익장이셨다.

잠시 이야기 나누며 쉬었다가 갈길이 멀어 인사 드리고 먼저 출발을 하는데 결국 노고산에서 다시 만나 추억의 사진 한장을 남기게 되었다.

고송부 선배님 만나 반가웠고 즐거웠으며 들려주신 고견들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그 177.6봉에서 땀이 마르니 약간의 한기가 돌지만 그리 춥지는 않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평지같은 138.9봉을 지나 등로 우측으로 노고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등로에서 우측으로 약간 떨어져 있는 노고산을 잠시 다녀오기로 하고 방향을 틀어 오르니 송전탑 3번을 지나 가파르게 올라 금새 노고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노고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있으니 방금 전 177.6봉에서 만났던 고송부 선배님과 동료 한분도 역시나 이곳 노고산으로 올라 어렵게 부탁드려 사진 한장 남기는데 셀카로 찍다 보니 조금은 발목이 잘려 버렸다.

한산 301이라는 3등 삼각점이 박혀있고 준희님이 걸어 놓은 노고산 229.3미터란 산패가 걸려있는데 지도상에는 228.6봉으로 표기된 노고산이다.


잠시 노고산 정상에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먼저 출발하게 되는데 제일 먼저 북쪽 방향을 살펴보니 이제 노고산 정상에서 내려가 걸어 진행을 해야 할 방향으로 마가산고개의 송전탑과 우측으로 빙돌아가는 원진지맥 마루금이 그래도 제대로 된 산줄기를 펼치며 길게 이어지고 있다.

마가산고개 뒷쪽으로는 마가산이 보이는데 높이가 128.5미터이다 보니 다른 지방에서는 둔덕처럼 보이는 산이겠지만 이곳은 평지에 솟아 있는 산이다 보니 제법 산세를 자랑하고 있는 듯 보인다.


북동쪽으로는 지석리 마을 지나 진행해야 할 원진지맥과 그 우측으로 벗어나 있는 나즈막한 주박산도 한눈에 들어 오지만 미세먼지로 인해 조망은 시원치 않다.

지석리는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이 언덕지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농촌마을이고 마을 앞으로 작은 내가 흐른다.

백제시대에는 대산현의 영향을 받았으나 차츰 임천권에 속해서 고려시대부터는 완전히 임천문화권으로 들어갔다가 조선시대에는 임천군 팔충면의 지역으로 마을에 고인돌이 있으므로 고인돌과 괸돌 또는 지석이라 하였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상지석리와 하지석리를 병합하여 지석리라 하고 부여군 충화면에 편입하였으며 행정구역으로는 지석 1, 2, 3리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갈마동, 범황골, 하지가 있는데 갈마동은 마가산 밑에 있다하여 생긴 이름이고 범황골은 전에 범황사가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하지는 지석리 아래쪽이 된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지석리 도로변에는 고인돌 3기가 있는데 청동시대의 지석묘로 추정된다.

이곳과 멀지 않은 이 산객의 고향과 닮은 듯 다른 풍경을 보이고 있는 조망에 잠시 옛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남동쪽으로는 꽤 멋진 산줄기 하나가 펼쳐져 있고 마치 그곳이 지맥 산줄기라 해도 좋을만큼 제법 산세를 자랑하고 있다.

그 우측으로 충화마을을 지나면 천등산이 솟아 있는데 오늘 산행 내내 저 천등산을 바라보며 방향 감각을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다.

전국적으로 천등산도 참으로 많다는 생각을 해 보는데 제천과 완주의 천등산은 다녀왔기에 저 부여의 천등산도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이곳 노고산 정상에서 시간을 보내고 고송부 선배님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먼저 출발한다.


다시 빠르게 걸어 노고산 갈림삼거리로 복귀하고 이제는 우측 방향으로 원진지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후 감나무가 보이는 묘지지대로 내려가고 다시 밤나무 밭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빛바랜 죽천 선배님의 띠지 한장이 길라잡이를 해 주고 있어 인사를 드리고 다시 출발한다.

교회건물과 마을이 보이는 등로를 지나 높은 송전탑을 통과하니 거대한 태양광 발전시설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다시 밤나무 밭이 보이면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팔충로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이곳을 마가산고개라 하였으나 어느 선답자들은 이곳을 오양골고개라고도 부르는 듯 보였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마가산고개인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묘지들이 보이고 그 묘지들을 지나 오르니 제대로 된 잡목들이 날을 세우고 이 산객을 기다리듯 보이는데 지맥 산행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려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곳 저곳 찔리고 얻어 맞으며 곡소리를 내고 어렵게 진행하니 드디어 지독한 잡목지대를 벗어 나 좌측으로 약간의 조망이 펼쳐지는데 미세먼지로 인해 잘 보이지 않기에 사진만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지독한 잡목지대를 통과하며 상처가 났는지 땀이 스며들며 따갑기 시작하고 가려움에 몸부림을 치며 걸어 내려가니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지나 오르니 최근에 벌목된 듯한 등로가 이어지고 날씨가 풀리면서 진흙이 등산화에 달라붙어 진행에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벌목지대 상부로 올라 진행하다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대선리마을이 예쁘게 펼쳐져 있다.

대선리는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대를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북쪽으로 금천이 흐르고 있으며 그 아래쪽에 배다리들이 펼쳐져 있다.

마을 동쪽에 남면평야가 있고 남쪽에 대드랭이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수로가 지나가는 곳에 전설이 전해지는 대선리 석탑이 있는데 구전에 따르면 백여년 전에 임천 옥고에 사는 이참봉이 선영의 석물에 사용하기 위하여 높이 3자 정도의 돌 위에 비가 서있던 것을 허물어 버렸다고 한다.

그러자 바야위 마을에 괴질이 돌고 화재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생겨 이에 다시 남아있는 석재를 모아 탑을 쌓았더니 마을이 편해졌다고 하며 지금도 마을에서는 위하는 탑이다.


날씨가 좋았다면 보령과 청양의 산들도 보인다는데 오늘은 미세먼지로 인해 조망은 커녕 이렇게 산행을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되는 하루이다.

다시 이어지는 지독한 잡목들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진행하니 묘지지대를 지나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솔갈비를 밟으며 비단길을 걸어 본다.

그렇게 한동안 고속도로 같은 비단등로를 따라 솔향기 맞으며 기분 좋게 걸어 진행하니 법광님이 띠지에 148.2봉이라 적어 놓은 봉우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산행을 하면서 법광님과 금곡님 그리고 무한도전클럽과 백두사랑산악회의 띠지가 가장 많이 보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지독한 잡목구간을 언제 지났는지 잊혀질 정도로 좋은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지지만 시야가 제한되어 조금은 아쉬움을 남긴다.

부여군의 신흥리와 내곡리 들판이 생각보다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중간에 생성된 마을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뒤로 보여야 할 산군들은 모두 미세먼지 속에 상상으로만 보이는 시간이다.

날씨만 좋다면 이 산객의 고향이자 영원한 명산인 칠갑산도 보일 것인데 오늘은 날이 아니라니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날씨이다.


먼 원경은 볼 수 없으니 가까운 부여쪽 마을들만 줌으로 당겼다 풀었다 하면서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키 큰 측백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금새 짧은 소나무 등로를 지나 밤나무 밭으로 등로가 이어진다.

진행 방향도 살펴보고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부여쪽 마을들과 들판을 내려다 보며 전진하니 다시 밤나무를 식재한 짧은 등로를 지나 측백나무들이 식재된 등로도 만난다.

그 측백나무 식재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썩어가는 나뭇더미 옆에 쇠철봉이 박혀있는 151.2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며 이어지고 있다.


그 봉우리에서 살펴보니 진행방향으로 다시 벌목지대가 나타나는데 아마도 밤나무 과수원을 조성하기 위한 벌목과 도로를 내는 현장처럼 보인다.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이 산객이 걸어야 할 등로가 이어지고 저 멀리 낮아지는 산세가 이곳이 정말 지맥 마루금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이지만 염연한 등로이자 이름까지 있는 원진지맥 산줄기임을 알기에 또 새로운 등로를 따라 이렇게 고운 추억도 만드는 시간이다.

약간의 잡목들의 저항이 있지만 진행에는 큰 어려움 없이 벌목지로 향한다.


약간의 측백나무들과 잡목지대를 헤치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금새 벌목지대가 나타나는데 벌목을 하면서 산판도로를 만드는지 많은 부분을 파헤쳐 놔 조금은 볼성 사납게 다가온다.

다시 이어지는 밤나무 밭 가장자리를 타고 조심스럽게 걸어 오르니 등로는 다시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너무나 환상적인 소나무 등로가 짧게 이어져 자연이 주는 행복감을 최대한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소나무 등로를 빠져 나가니 다시 벌목 후 나무를 식재한 조림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벌목된 경계면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다 등로 우측을 보니 벌목지 지나 저 멀리 충화면쪽 마을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충화면은 충청남도 부여군 중남부에 있는 면으로서 북쪽으로 남면과 장암면이 동쪽으로 임천면이 남동쪽으로 양화면이 남쪽으로 서천군과 서쪽으로는 옥산면과 서천군에 접하며 면의 거의 전역이 해발고도 200미터 내외의 구릉지로 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선조대왕 태실비(충남문화재자료 117)와 평해공주 아기씨 태실비 및 지석리 지석묘 등이 있다.


충화면 뒤 저 멀리에는 무제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들도 보이는데 그곳 역시 이곳과 마찬가지로 나즈막한 산줄기이지만 다른곳이 더 낮기 때문에 제법 그럴듯하게 다가오는 산줄기이다.

다시 벌목지대를 지나 능선으로 들어가니 멋진 소나무 등로에 솔갈비가 깔려있는 양탄자깥은 등로를 타고 신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는 멋진 소나무들이 우측으로는 벌목된 경계를 타고 한동안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그 정상부인 174봉에 도착을 해 지나온 방향과 우측으로 잠시 조망을 즐겨 본다.


지나온 방향 저 멀리 오늘 잠시 들려 멋진 풍경을 살펴보며 고송부 선배님과 좋은 추억을 남겼던 노고산이 제법 높은 모습으로 조금씩 멀어지고 그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다시 출발하니 금새 묘지를 지나 밤나무 밭으로 이어지고 있다.

발목까지 빠지는 밤나무 낙엽을 밟으며 조심해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는 녹슨 철조망이 보이는데 밤나무 밭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세월이 흘러 그 기능을 상실한 듯 보이는 철조망이다.

앞으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그곳 역시 벌목 후 밤나무인지 호두나무 과수원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사진에 담고 진행하니 거대한 밤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과수원 가운데를 통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희망로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도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제법 차량 통행이 많은 도로처럼 보인다.

이곳은 부여군 남면 회동리와 충화면 지석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밤나무와 호두나무 과수원이 드넓게 펼쳐진 가운데로 도로가 놓여 있다.


도로 옆으로는 1972년 세워진 도로석에 희망의 길이란 문자가 세겨져 있는데 아마도 그때 도로가 뚫리면서 세워진 도로석이 아닐까 생각하며 희망로라는 도로명도 그때 생긴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그 희망로를 건너 다시 오르니 이제는 드넓은 호두나무 밭이 이어지고 한동안 타고 걸어 오르니 호두나무가 밤나무로 변하면서 과수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통과하고 계속 이어지는 밤나무 밭을 따라 걸어 오르니 정상부로 오르기 직전 등로 뒷쪽으로 지금까지 걸어 온 원진지맥 마루금이 미세먼지속에서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추억을 다시 남겨 본다.

 

오늘 만났던 조망과 풍경중에 제일 멋진 모습이지만 역시나 미세먼지로 인해 아쉽기만 하다.

이제 그 밤나무 밭을 지나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약간의 잡목들이 발걸음을 붙잡ㄱ 잠시 후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불어 오는 바람에 흐르는 땀방울 닦으며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다시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갑자기 이정표가 보이고 방금 지나온 방향으로 두리봉이라 적혀 있는데 두리봉은 어느 봉우리를 말하는지 궁금하다.

아름다운 솔 등로를 따르니 또 다른 이정표가 나타나고 곧이어 207.2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잠시 휴식을 취하며 주위 풍경을 둘러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그 207.2 삼각점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해 수레길 같은 넓은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계속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로 이어지고 눈 앞에 거대한 송전탑 지나 진행 방향으로 나즈막한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 온다.

가야 할 산줄기를 가늠해 보고 그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송전탑을 지나 덕림마을과 두리봉이란 글자가 보이는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를 지나 계속 완만하게 내려간다.

등로 좌측으로 넓은 들판 지나 그 끝자락에 고층 아파트들이 보이는 듯 한데 지도를 살펴보니 구룡면과 부여읍 경계쯤 되어 보이는 곳이다.

잠시 후 덕림병사와 덕림마을 그리고 두리봉 방향이 보이는 이정표가 서 있고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덕림고개에 도착을 한다.

덕림병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점상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재실로서 1988년 8월 30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305호로 지정되었으며 풍양조씨 종중에서 소유하고 강신동이 관리한다.

창건 연대는 잘 알 수 없으나 조선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며 성주산 자락에 자리한 이 지역은 예로부터 덕림동이라 불려 덕림고개란 이름이 붙은 듯 보인다.
덕림고개 아래 중턱에 있는 덕림병사는 예전에는 덕림사라는 사찰 건물이었으나 1920년 무렵 중수하여 조신의 재실로 사용되어 오늘에 이른다.
정면 6칸과 측면 3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된 비교적 규모가 큰 건물로 건물 정면에 덕림병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고려 공민왕 때 회양부사를 지낸 조신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부여 임천면에 은거하였는데 현재 부여 세도면 동사리의 동곡서원(충청남도문화재자료 92)에 그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19호로 지정되어 있는 그의 묘소는 사우 왼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조선 태종이 무학대사 자초에게 명하여 잡은 자리라고 전해진다.


덕림고개는 점상리에 있는 고개인데 점상리는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에 있는 리로서 서북쪽에는 마정천이 흐르며 대부분 낮은 구릉지 이고 발티소류지가 있다.

백제시대에는 가림군에 신라시대에는 다른 한자의 가림군에 고려시대에는 임천군에 속하였다가 조선시대에는 임천군 박곡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지경리와 구리곡리의 각 일부와 홍산군 남면의 마서리 일부를 병합하여 점상리라 하고 부여군 장암면에 편입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고이티(덕림,묘티), 양룡, 왁새말(학촌), 덕림 등이 있는데 고이티는 고이티 고개 밑에 있다 하여 붙여졌고 덕림사가 있었다.

양룡은 양지편과 용골을 합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왁새말은 왁새(왜가리)가 많이 깃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덕림마을에는 고려말 이방원(조선 태종)의 스승이었던 풍양조씨 회양도호부사 조신의 묘와 신도비가 있다.

덕림고개의 1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나타나는 통나무 계단을 타고 오르니 다시 밤나무 밭이 나타나고 잠시 더 걸어 오르니 풍양조공 묘지 위로 145.2봉이 보이는데 준희님은 이곳에 146봉이란 산패를 걸어 놨다.


그 봉우리를 지나 평이하게 걸어가니 무명안부를 건너고 다시 솔갈비가 푹신하게 깔려있는 등로를 따르니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길이다.

무념무상으로 잠시 걸어 진행을 하니 커다란 활엽수 한그루를 통과해 이정표를 지나고 한동안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등로는 통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가고 있다.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이정표와 벤취쉼터 그리고 사각탁자가 놓여있는 갈림삼거리 무명봉에 도착을 해 이정표를 살펴보고 우측의 낙산과 괴티고개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걸어 내려가니 무명묘지 한기가 보이고 곧이어 커다란 활엽수와 나즈막한 돌무덤이 보이는 성황당터라 생각되는 안부를 통과하는데 예전 어릴적 시골에서 봤던 굿하던 모습이 떠 올라 피식 웃어 본다.

다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에 제법 깊어 보이는 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주의하며 굴지대를 통과해 오르니 웅덩이가 보이는 135.7봉에 도착을 해 선답자의 띠지에 적혀 있는 해발고도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 135.7봉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고 연이어 나타나는 두번의 무명안부를 통과하니 다시 소나무 등로가 예쁘게 열려 있다.

그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나즈막한 산줄기에 막혀 한쪽만 보이기 시작한다.

지도를 살펴보니 복금저수지라 생각되는 저수지로서 복금리는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이 평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복금저수지가 있다.

백제시대에 임천권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임천군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상금리, 하금리, 복심리와 북박면의 소년동 일부를 병합하여 복심과 상금의 이름을 따서 복금리라 하고 충화면에 편입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대숲골, 매까실, 박전말, 어은골, 주막골 등이 있는데 대숲골은 마을에 대나무숲이 있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박전말은 토지가 박해서 생활이 곤란하였으므로 생긴 이름이며 어은골은 복금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매우 아늑하다하여 은골이라고도 부르고 주막골은 마을에 주막이 있었으므로 생긴 이름이고 유만갑 효자비와 유병하 효자비, 나주정씨 열녀각이 남아있다.

이제 오늘 산행 날머리도 그리 멀지 않았음을 온 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나타나는 거대한 밤나무 밭을 타고 걸어 진행하니 어느새 밤나무밭이 끝이나면서 생각지도 못한 대나무 밭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짧은 대나무 지대도 통과한다.

다시 좌측으로 거대한 밤나무밭이 좌측으로 빙돌아 이어지고 우측 능선을 타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임천면 점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여전히 미세먼지로 인해 조망이 제한되어 아쉽기만 하다.

점리는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에 있는 리로서 남쪽에는 수동천이 흐르고 대부분 낮은 구릉과 평지이며 안현소유지가 있다.

백제시대에는 가림군()에 신라시대에는 가림군()에 고려시대에는 임천군에 속하였다가 조선시대에는 임천군 박곡면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점리라하고 부여군 임천면에 편입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검지내(현계), 소나무모퉁이, 안장고개, 점리가 있는데 검지내는 검지내가에 있다 하여 붙여졌고 소나무모퉁이는 모롱이에 소나무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안장고개는 안장고개 밑에 있다 하여 붙여졌고 점리는 옹기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좌측으로 임천면쪽 마을과 그 뒤로 펼쳐진 희미한 산줄기를 찾으며 잠시 더 걸어가니 잡목구간이 나타나고 나뭇가지에는 페트병이 걸려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우측 등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다시 솔갈비가 푹신하게 깔려있는 소나무 등로와 이어지고 고사목이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다시 거대한 밤나무 밭이 펼쳐지고 우측 등로 경계에는 멋진 소나무가 길게 줄지어 서 있다.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이어지는 송전탑 옆으로 나즈막한 지맥 산줄기가 어서 오라 손짓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게 멋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며 밤나무밭 위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밤나무밭에 조성된 비포장 임도같은 길로 걸어 본다.

잠시 후 제법 그럴듯한 이름이 있을 것 같은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안부를 지나는데 지도를 살펴봐도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안부이다.

다시 이어지는 밤나무밭으로 올라 우측 능성 경계를 타고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27번 송전탑 아래를 통과한다.

그 27번 송전탑을 지나면서 보이는 진행 방향의 마루금을 살펴보니 높지는 않지만 제법 굴곡진 등로가 파도처럼 넘실거리듯 다가온다.


다시 나타나는 잡목 구간의 무명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잘린 나무토막들이 널부러져 있는 152.8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그 봉우리를 넘어가니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이 길게 늘어지며 진행 방향의 산줄기를 황혼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나타나는 지독한 잡목들을 헤치며 힘들게 전진하니 드디어 193.3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며 고운 추억도 담아 보는 시간이다.


그 삼각점봉을 지나 솔갈비가 깔려있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낙엽으로 인해 등로가 사라지며 길찾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멋진 민가들과 거대한 축사 건물들이 보이는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지도를 보니 점상리쪽 마을이다.

다시 나타나는 밤나무밭을 지나 능선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태양광 발전설비가 내려다 보이고 금새 묘지들이 보이는 묘지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식수 한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묘지를 조성하며 만들어진 넓은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또 다시 거대한 밤나무밭이 펼쳐지고 가을날 산행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련지 상상을 하ㅕㄴ서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 밤나무밭을 따라 걸어 내려가니 도로 건너편으로 축사가 보이는 611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남성로인 안장고개에 도착을 한다.

안장고개는 부여군 임천면 점리에 있는 고개로서 안장고개라는 마을은 안장고개 밑에 있다 하여 붙여졌고 점리는 옹기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로로 내려서는데 동네 아주머니 한분이 물끄러미 처다보더니 높은 산도 없는데 이런곳까지 산행을 하는 별 미친 사람을 다 봤다는 표정으로 살펴보고 마을로 들어가시는데 괜시리 미안하기만 하다.


안장고개 도로를 건너 마을로 통하는 도로 위쪽으로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다시 거대한 벌목 현장이 나타나고 그 아래쪽으로 임천면 점리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한동안 그 벌목지 경계를 타고 오르니 무명봉에 오르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약간의 빛바랜 억새와 잡목들이 반겨주지만 즐겁지 않은 반가움이다.

잠시 후 무명봉에 올라 지도를 살펴보니 지도에는 대니산이라 표기된 장소로서 부여군 장암면 합곡리에 위치한 네이버 지도에는 표기가 되어 있는 산이지만 정상에는 아무 표식도 없다.

잠시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평이하게 진행하니 잡목이 보이는 14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오늘 산행 날머리인 역치까지 남은 거리를 계산해 보니 지척으로 다가와 있다.


그 무명봉을 지나 걸어가니 조망이 트이면서 앞으로 진행 방향의 내일 걸어야 할 마루금이 눈 앞으로 펼쳐져 있는데 오늘 걷지 않을 산줄기가 생각하니 아름답기 그지없는 광경이다.

잠시 후 잡목과 약간의 활엽수를 식재한 듯한 등로를 만나고 다시 잡목을 헤치며 어렵게 걸어 진행을 하니 이름없는 잡목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지독한 잡목구간을 만나 힘들게 헤치고 걸어가니 묘지들이 보이는 그 뒷쪽 잡목들이 무성한 117.9봉에 도착을 해 오늘 봉우리는 마지막으로 만나는 시간이다.

 

마지막 117.9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이곳 역시 잡목들이 성가시게 굴고 이제 서산으로 기울어져 간 햇살이 그 모습을 서서히 감추는 시간이라 어둠이 곧 밀려올 것 같은 그런 느낌으로 걸어 본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이제 오늘 날머리인 역치를 지나는 충절로 2차선 포장도로가 빤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묘지와 잡목 구간을 지나 넓은 수레길 같은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금새 역치에 내려서는데 도로 옆에는 쉼터와 콘테이너 박스가 보인다.

오늘 산행은 이곳 역치에서 마무리 하고 배낭 정리한 후 우측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가 버스를 타고 규암농협 앞에서 하차하기로 한다.


배낭 정리 후 우측으로 충절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약 400미터 아래에 안현버스정류장이 보이고 그곳에 도착을 해 다시 한번 더 배낭을 정리하고 방풍의를 입은 후 버스를 기다려 본다.

안현버스정류장은 합곡리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서 합곡리는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에 있는 리이다.

북쪽에는 금천이 흐르고 대부분 낮은 구릉과 평지이며 합하소류지가 있다.

백제시대에는 가림군()에 신라시대에는 가림군()에 고려시대에는 임천군에 속하였다가 조선시대에는 임천군 북변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합하리, 상곡리, 역리 일부와 홍산군 남면 미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합하와 상곡의 이름을 따서 합곡리라하고 부여군 장암면에 편입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내합, 유촌(역리, 역말)등이 있는데 내합은 안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유촌은 조선시대 때 이인도찰방에 딸린 영유역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백제시대에 마을이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는 합곡리고분군도 있다.

잠시 후 부여가는 버스가 도착을 해 버스를 타고 규암농협 앞 버스정류장 옆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주차장으로 가 자가용을 회수 해 부여 읍내로 향한다.





몇개의 사우나가 보이는데 선답자가 묵었던 그림피아로 가 하룻밤 묵기로 하고 들어가 보니 시설도 괜찮고 가격도 싸며 무엇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번잡하지 않아 좋다.

샤워 후 바으로 나와 저녁식사를 찾아 보지만 한시간 전만해도 많은 식당들이 문을 열었었는데 저녁 8시간 넘어가니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아 어쩔 수 없이 칼국수 식당으로 가 칼국수 한그릇에 시원한 맥주 한병으로 아쉬운 하루를 마감한다.

식사 후 다시 찜질방으로 가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드는데 그 넓은 찜방에 홀로 잠에 드는데 왜 그리 무더운지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생각보다 사람이 없어 편안하게 잘 자고 좋은 몸 상태를 만들어 다음날을 기약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90223 원진지맥 제1구간 분기점-역치.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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