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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식장지맥(금남·완)

식장지맥 제2구간 수리넘어고개에서 세천공원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8.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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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남도 금산군과 대전광역시 및 충청북도 옥천군의 식장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8년 02월 03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부터 아침까지 함박눈이 내렸다가 오전부터 맑았으나 바람이 강하게 불어 추위를 느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하 07도에서 영상 02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마전리 501번 버스 종점-마전사거리-17번 2차선 포장도로-금산군음식특화거리-마전5리 버스정류장-수리넘어고개(17번 2차선 포장도로,

                 해주오씨행정공묘소입구 표지석)-행모재-해주오공 묘지지대-284 무명봉-288 무명봉-367 무명봉-달기봉(386.1봉, 헬기장)-꾀꼬리길1구간

                 이정판-비포장 임도(민족자주통일비)-만인산 갈림삼거리(462미터, 만인산5호)-돌탑-만인산(537.1미터, 삼각점, 정상표, 만인산 봉화대터)-

                 만인산 갈림삼거리 복귀-367 무명봉(현위치 번호 만인산 6호, 벤취쉼터1) 이정표(태실 0.5 Km와 정기봉 2.0 Km, 만인산 1.1 Km)-나무계단-

                 산악구급함(만인산2호, 현위치 번호 만인산 7호)-추부터널-출렁다리-태조대왕태실-351.2봉-군부대 유격훈련시설(대전둘레산길 3구간)-

                 이정표(정기봉 1.0 Km, 만인산 2.1 Km, 만인산푸른학습원 0.1 Km)-삼각점-이정표(정기봉, 추부와 마전)와 타고넘기 유격훈련시설-오소리동굴

                 유격훈련시설-현위치 번호 태봉산3호-이정표(정기봉 0.2 Km, 학습원 0.9 Km와 만인산 3.1 Km)-정기봉(573.3미터, 정기봉의 봉화대터, 벤취2)

                 이정표(식장산 18.5 Km, 식장산 50m 전방에서 우측으로, 제1주차장 1.1 Km, 학습원 1.1 Km와 태실 1.4 Km 및 만인산 3.1 Km)-

                 이정표(닭재 9.2 Km와 식장산 16.7 Km, 청소년수련관 2.0 Km, 신흥초등학교 2.0 Km, 태실 1.5 Km와 만인산 3.2 Km) 둘레산길

                 3구간 (식장산방향 가는길)-지봉산(502.1미터)-471 무명봉-해발 501미터 이정표(닭재 8.2 Km, 만인산 4.2 Km, 청소년수련관 1.8 Km)-483

                 무명봉-506 무명봉-502 무명봉-이정표(머들령 2.4 Km와 닭재 6.7 Km, 골냄이부락 2.0 Km, 장산저수지 1.55 Km, 만인산 5.5 Km)-바위우회

                 등로-508.2 묘지봉 조망-542 삼각점봉 이정표(상소동산림욕장 2.0 Km와 식장산 13.8 Km, 상소동산림욕장 1.8 Km와 만인산 6.7 Km, 상소동

                 산림욕장 1.0 Km)-499 무명봉(고속도로조망)-487 돌담봉-476 무명봉-432 무명봉-갈림삼거리 이정표(식장산 12.9 Km, 상소동

                 산림욕장 2.7 Km와 만인산 7.6 Km, 물놀이장과 팔각정자)-머들령 이정표(닭재 4.3 Km와 식장산 11.8 Km, 태실 6.4 Km와 만인산 8.1 Km,

                 추부면 4.0 Km, 삼괴교 2.5 Km)-370 참나무 무명봉-388.1봉(무너진 성터)-391 벤취2봉-389 무명봉-406.2봉-명지봉(404.2미터)-432

                 무명봉-506.2봉(돌탑봉, 벤취) 이정표(닭재 1.5 Km, 만인산 10.9 Km)-482 벤취2봉-385 무명봉-닭재 사각정자와 돌탑들 및

                 이정표(식장산 7.5 Km, 태실 10.7 Km와 만인산 12.4 Km, 덕산마을 1.2 Km)-육각정자-325 계현산성-314 무명봉-19번 송전탑-315 무명봉-

                 꼬부랑재 이정표(식장산 6.6 Km, 만인산 13.3 Km, 삼괴동 1.2 Km)-323 무명봉-336 잡목봉-342 참나무봉-망덕봉(439미터, 벤취쉼터1) 

                 이정표(식장산 5.6 Km, 만인산 14.3 Km)-415 무명봉-15번 송전탑-362 무명봉 이정표(식장산정상 5.1 Km, 닭재 2.3 Km와 만인산 14.8 Km,

                 상소동산림욕장 7.0 Km, 산내초등학교 3.0 Km)-379봉-곤룡재(곤룡티, 골링이, 골롱이) 이정표(식장산 4.6 Km, 닭재 2.9 Km와 만인산 15.3 Km,

                 산내초등학교 2.5 Km)-349 무명봉-411봉-443미터 사양리산성-431봉-414 무명봉-육각정자-426봉-벤취쉼터4와 이정표(식장산 3.0 Km, 

                 만인산 16.9 Km, 산내초등학교 5.0 Km)-14번 송전탑-424 고사목봉-428 무명봉-414 무명봉-404 벤취쉼터2-등오리재 이정표(식장산 2.1 Km,

                 만인산 17.8 Km, 산내주민센터 3.4 Km, 옥천군 군서면)-이정표(식장산 1.8 Km, 만인산 18.1 Km, 고산사지름길 2.8 Km)-맨발님 응원판-식장산

                 주능선 이정표(식장산정상 1.4 Km와 고산사 2.6 Km, 구절사 1.9 Km, 만인산 18.5 Km, 세천공원 4.0 Km)-통신탑 갈림삼거리(574봉은

                 통신탑으로 인해 우회)-이정표(식장산 0.9 Km, 만인산 19.0 Km, 세천공원 3.9 Km)-580.6 삼각점봉 이정표(행글라이더장 1.0 Km,

                 만인산 19.3 Km)-이정표(식장산정상 0.4 Km와 고산사 1.6 Km, 구절사 2.9 Km와 만인산 19.5 Km, 세천공원 4.1 Km)-556 벤취쉼터1과

                 전망바위-해돋이전망대 이정표(고산사 1.2 Km, 만인산 19.9 Km, 행글라이더장 0.4 Km와 세천공원 4.9 Km)-식장산 정상석(598미터)-철조망-

                 헬기장 이정표(세천공원 4.5 Km, 해돋이전망대 0.4 Km)-비포장 임도와 가건물-431 무명봉-사각정자와 시멘트포장도로-이정표(개심사 1.7 Km,

                 식장산정상 1.5 Km)와 옥천군 군서면 안내도-화장실과 비포장임도-능선진입-302봉-316 무명봉-비포장임도 안부-무명안부-228.5 삼각점봉-

                 포장도로-능선진입-208 무명봉-2차선 포장도로-세천공원 앞 버스정류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6.78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보만식계로 인해 고속도로 같은 등로를 따라 일몰시간에 맞춰 여유있게 진행하며 10시간 28 (07시 33부터 18시 02분까지)

산행트랙 : 2018-02-03 식장지맥제2구간 수리넘어고개-세천공원.gpx

교통편 : 갈때 - 05:31 광명역에서 출발하는 KTX에 탑승하여 06:21 분에 대전역 도착(폭설로 11분 연착, 21,200.-)

                       06:47 대전역 버스정류장에서 501번 버스에 탑승하여 07시 30분 쯤 마전리 버스종점 도착 (약 2,100.-)

             올때 - 18:38 세천공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611번 버스로 대전복합터미널 도착 (1,250.-)

             식대 : 새벽 대전역에서 김밥과 라면으로 아침 해결 5,500.-

                      산행 후 대전복합 터미널 뒤 병천순대식당에서 저녁식사 14,000.-

             숙박 및 음료 : 대전복합터미널 뒤 매직24사우나찜질방에서 음료수 마신 후 취침 15,000.-

             산행 첫날 총비용 : 59,050.- 원

식장지맥이란 ???

금남정맥의 대둔산 남동쪽 인대산(661.8봉)과 백령고개 사이에 있는 무명봉(약610봉)에서 북동쪽으로 분기하여 월봉산(543봉), 금성산(439봉), 만인산(537봉), 지봉산(464봉), 망덕봉(439봉), 식장산(598봉), 고봉산(335봉), 계족산(423봉)을 거처 대전 대덕구 문평동 갑천이 금강에 합류하는 지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56.1 Km의 산줄기로 금산과 대전지방을 지나며 최고봉인 식장산의 이름을 따 식장지맥이라 한다.
좌측으로 흐르는 물은 유등천과 갑천을 거쳐 금강에 들고 우측의 물은 봉황천과 추풍천이 되어 금강으로 흘러 든다. 

 

 

오랫만에 다시 오른 식장지맥 마루금에서 환상의 조망을 사진에 담고 여유롭게 진행하며 즐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오랫동안 공들여 접촉했던 업체와 최종적인 사업 파트너 계약을 맺고 바빠지기 시작하면 제대로 된 산행을 진행하기가 어려워질 것 같아 그동안 벌여놓고 마무리하지 못한 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나서는 시간이다.

대전 처갓집에 들리며 시간나는 대로 조금씩 진행을 하다 중단된 식장지맥 두구간부터 완주를 목표로 세워보지만 꺽일줄 모르는 동장군의 대단한 한파의 위력 앞에 약간의 고민도 있었던 시간이지만 대전이다 보니 교통편이 편리해 새벽 일찍 옆지기의 도움을 받아 무탈하게 마무리 하고 올라오니 기분은 좋았지만 생각보다 춥고 하루 종일 내렸던 눈으로 인해 아쉬움도 함께 남겨 본 시간들이었다.

다만 처갓집에서 하룻밤 머물며 진행을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홀로 산에 드는 것을 걱정하시고 새벽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해 주신다고 고생하실 장모님 생각에 처갓집도 들리지 못하고 찜질방에서 하룻밤 보낸 것이 못내 아쉬웠던 시간이었다. 

이제 식장지맥이 마무리되었으니 한구간씩 남겨 놓은 봉수지맥과 관암지맥을 마무리하고 만뢰지맥과 천등지맥을 완주하면 마음 편히 남도에 위치한 미지의 산줄기에 도전이 가능하겠지만 구정 연휴 이후부터 일이 바빠지기 시작하면 자리가 잡힐 때 까지는 정신없이 달려야 하기 때문에 산행에 대한 아쉬움도 많이 남을 것 같아 일이 바빠지기 전까지 열심히 올라보려고 노력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리는 폭설로 인해 KTX도 10여분 연착을 해 어렵게 대전역에 도착을 하고 이미 알아 본 501번 버스를 이용해 추부면 마전리 종점에 도착을 하니 아치 7시 30여분이 넘어가고 있다.

내리는 폭설을 맞으며 빠르게 걸어 2년하고도 4개월 전에 지났던 수리넘어고개에 도착을 하고 옛 추억을 더듬으며 산행을 시작해 오늘 일찍 마무리가 된다고 해도 할일이 없기에 너무 서두르지 않고 일몰시간에 맞춰 많은 사진을 찍으며 진행하니 그동안 두어번 올랐던 식장산 해돋이전망대 아래 숨어있던 세워져 있는 작은 앙증맞은 정상석에서 고운 추억을 남긴 후 지나온 방향의 남쪽을 살펴보니 환상의 산그리메가 펼쳐져 있고 그 펼쳐진 산줄기에 솟아 있는 이름들을 맞춰보며 또 하루가 짧게 기울어가는 시간을 아쉬워해 본다.

바로 앞으로 오늘 이 산객이 열심히 걸어 올라 온 식장지맥 마루금이 우측으로 돌아 길게 이어지고 그 산줄기 좌측 넘어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이 우뚝하며 그 서대산 좌우측으로는 조만간 다시 올라야 할 장령지맥 산줄기들이 다시 조우할 날을 기다리며 만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 산줄기 우측 저 멀리에는 식장지맥 분기점 우측으로 인대산이 뾰족하게 올라와 있고 사진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 인대산 우측 옆으로는 오대산과 대둔산이 칼등 능선을 하늘 높이 쳐들고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너무나 환상의 조망과 풍경들로 인해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가며 길게 그림자를 만들고 있지만 조금 더 식장산 정상에 머물며 남아 있던 그리움을 모두 털어내고 내려가는 시간이 되었다.


토요일 새벽 일찍 일어나 밖을 살펴보니 약간의 눈이 내려 쌓여 있어 옆지기에게 부탁한 광명역까지의 픽업이 불가능해 보이고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늦은 기차를 이용해 한구간 남아 있는 봉수지맥 산행이나 다녀오자고 마음 먹고 있는데 옆지기가 밖으로 나가 확인해 보더니 운전이 가능할 것 같다고 전해 와 간단히 배낭 꾸려 집을 나서는 시간이 예상보다 10여분 늦어 광명역에서 출발하는 5시 20분 발 첫 열차는 못타고 다음 두번째 열차를 이용해 무탈하게 대전역으로 출발해 본다.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와 온 몸이 얼어 붙을 것 같은 체감온도에 벌벌 떨며 역 광장 옆 작은 김밥집에 들려 김밥 한줄에 따뜻한 라면 한그릇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역 광장 앞 넓은 도로를 건너 대전역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기다리니 드디어 추부면 마전리로 가는 501번 버스 도착 알림표가 뜨기 시작하고 추위에 떨며 기다렸다 정확히 새벽 6시 46분에 도착한 버스에 탑승해 졸다보니 어느새 이 산객 홀로 마전 버스 종점에 도착을 한다.


일 때문에 자주 들렸던 추부이기에 낯설지 않은 이름들을 살펴보며 버스에서 내리니 앞이 분간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배낭 커버에 스패츠를 착용하고 택시를 이용하려다 일찍 산행이 끝난다 해도 오늘은 대전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까지 남아 있는 식장지맥 산행을 완주하고 귀경 예정이기에 천천히 함박눈을 맞으며 산행 들머리인 수리넘어 고개 방향으로 갈어가기로 한다.

마전 버스종점에서 걸어 나오 만나는 대학로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조금 걸어가면 마전사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좌측인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17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며 오늘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정확히 아침 7시 33분을 지나면서 벌써 여명이 밝아 와 헤드렌턴 불빛 없이도 진행이 가능할 정도로 낮의 길이가 길어지고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다.

마전리는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에 있는 리로서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북서쪽에 지봉산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동쪽으로 추봉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태봉, 홍문거리, 시장, 진도리 마을 등이 있는데 태봉 마을은 마전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태봉산 밑에 위치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이며   홍문거리 마을은 예전에 홍살문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명명되었다.

시장 마을은 4, 9일 마다 시장이 섰다 해서 시장 마을이라 불리며 진도리 마을은 땅이 너무 질퍽하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추부면은 일 때문에 참으로 많이도 들렸던 곳인데 이곳 마전리는 2년 전 식장지맥 산행을 위해 들렸던 것이 전부이기에 남아 있는 기억이 제한적이다.


17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수리넘어고개 방향인 남서쪽으로 계속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금산군 음식특화거리라는 이정판이 보이는데 이제는 그 명성이 끊어졌는지 한산해 보인다.

다시 계속 그 도로를 따르니 이제 운주와 전주로 가는 도로이정판이 보이고 마전5리 버스정류장도 통과를 하는데 눈은 점점 더 강하게 내려 도로가 하얀게 눈으로 덮혀 버렸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다 도로 우측을 보니 잠시 후 올라야 할 달기봉과 만인산이 내리는 눈속에 올려다 보이고 곧이어 무더위쉼터를 지나 해부오씨행정공묘소입구라는 커다란 이정석이 서 있는 수리넘어 고개에 도착을 한다.

이제 이곳 수리넘어고개에도 개발 붐이 돌았는지 예전에 없었던 커다란 공장 건물들이 많이도 들어 서 있어 변해가는 등로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수리넘어고개에서 해주오씨행정공묘소입구라는 커다란 이정석이 서 있는 우측 비포장 임도로 들어가니 곧바로 다시 우측으로 건물이 보이고 그 앞에 행모재라는 안내판이 서 있어 읽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해주오씨가 금산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오국헌과 오국량의 5대조인 오유종(1433-1500)부터였으며 오유종은 황해도관찰사를 지냈던 오맹동의 둘째아들로 호는 행정.

선생은 세조12(1466)에 생원에 합격하였고 점필재와 김종직을 비롯하여 사림의 천거로 전라도관찰사 겸 병마수군절도사를 지냈다.

성종실록에 의하면 성종16(1485) 가뭄이 들어 백성 가운데 사재를 가진 자를 모아 어려운 백성에게 구휼하도록 하였는데 당시 진천에 사는 상장군유종이 거만의 곡식을 가지고 나눠주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것을 보면 오유종 일가는 진산에 오기 전 진천에서 세거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기록에 의하면 평소 김종직과는 벗으로 같은 인연으로 살았음을 알 수 있고 1498년 무오사화 때 임금에게 상소한 것이 붕당죄에 연루되어 진산으로 귀양 오게 되었으며 진산의 동쪽 요광리에 있는 은행나무 아래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지금도 요광리에는 해주오씨 행정공파가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으며 해주오씨는 요광2리와 3리에 주로 세거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제 조상들을 모시는 마음과 정성도 예전만큼 못하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간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잠시 행모재를 구경하고 다시 등로로 나와 우측으로 걸어 오르니 등로 위에 하얀 눈이 수북하게 쌓여 많이 미끄럽기에 조심하며 천천히 걸어 오른다.

그 눈 아래에는 낙엽이 깔려 조금만 잘못 밟아도 미끄러워 두발 오르면 다시 한발 미끄러지기 일쑤인 마루금을 타고 오르니 벌써 등줄기와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고 그렇게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 온 17번 2차선 포장도로 넘어 오가닉올즙과 우측으로 동서위생 그리고 저 위 언덕 위에 코스모산전 건물들이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함박눈이 조금은 누그러지기 시작하고 싸락눈으로 변해있지만 여전히 내려 등로에 쌓이고 있어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많이 내릴 눈은 아닌듯 하여 지맥 산행에 집중하기로 한다.


다시 약간의 잡목과 관목이 자라고 있는 미끄러운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해주오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 뒤로 올라 산행을 이어가니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28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그 봉우리를 넘어 진행을 해 본다.

그 무명봉을 지나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함박눈이 내리며 앞을 가리고 그렇게 잡목을 헤치며 내려가다 앞을 살펴보니 저 멀리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마루금과 그 끝자락에 달기봉과 만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다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생각보다 잡목의 저항이 심해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역시나 보만식계로 이름난 제도권 등로를 만나면 등로 걱정은 사라질 것이기에 초반부 짧은 거리는 조심하며 천천히 진행하기로 한다.


다시 잡목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식재된 듯한 벗나무들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죽은 잡풀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안부를 통과한다.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부러진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고 한쪽으로는 검정천막이 쳐져 있는 288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있는 잡목지대를 지나 무명묘지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와 이어지고 있다.

그 무명묘지를 지나 잡목지대를 통과하니 등로는 조금 편안해지고 선답자들의 산행띠지가 걸려있는 367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내리는 눈속에 가쁜 숨을 몰아 쉰다.

그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금새 넓은 헬기장으로 이뤄진 386.1미터의 달기봉에 도착을 해 진행방향으로 만인산을 올려다 보니 제법 뾰족한 모습의 만인산이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다.

이곳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과 복수면 경계에 솟아 있는 달기봉에 관한 자료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달기봉은 대부분 산의 모양이 닭 또는 닭벼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기에 이곳 달기봉 역시 같은 의미로 붙여진 이름은 아닐까 추측을 해 본다.


헬기장으로 이뤄진 달기봉에서 잠시 남서쪽을 살펴보니 저 멀리 논산의 대둔산과 그 좌측으로 천등산 머리가 살짝 고개를 들어 존재감을 알리고 있고 그 좌측으로 이어지는 금남정맥 마루금을 따라 식장지맥 분기점 부근의 인대산도 보이기 시작하지만 아직은 눈발이 내리면서 선명한 모습은 아니다.

잠시 후 꾀꼬리길1구간이라는 안내판을 지나 내려가니 범민련남측본부에서 세운 민족자주통일비가 보이고 그 앞에는 비포장 임도가 개설되어 있는데 그 임도 건너편으로 절개지가 올려다 보인다.

그 절개지를 타고 조심스럽게 오르니 다시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졌다 말라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바위들이 보이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더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쯤 만인산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현위치 번호가 만인산5호로 되어 있는 신호등 같은 인공 구조물이 서 있다.

그곳에서 식장지맥 마루금은 우측이지만 좌측으로 멀지 않은 곳에 만인산이 있어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좌측 등로를 따르니 잠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돌탑봉이 나타난다.

그 돌탑을 지나 현위치번호가 만인산4호라는 인공구조물을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만인산1호라는 산악구급함도 보인다.

그 구급함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안전목책과 로프구간을 따라 오르고 금새 삼각점과 만인산봉화대터 및 대전둘레길 안내판이 보이는 만인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만인산(537.1)은 대전광역시의 남쪽 동구 하소동과 금산군 추부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37.1미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진산)에 군의 동쪽 20리에 있으며 성봉이 있는데 땅이 두텁고 물이 깊으며 봉우리가 기이하고 빼어나게 우뚝 솟아 모양이 마치 연꽃같이 생겼으며 우리 태조의 태를 묻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그만큼 산이 깊고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산으로 일설에는 수많은 골짜기가 모여 산을 이루어서 그렇게 불렸다고도 전해진다.
여지도서(진산)에는 태실산은 군 동쪽 30리에 있다고 하여 태조 이성계의 태실이 안치되어 있던 만인산을 태실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1872년지방지도(진산)에는 만인산 아래 태조대왕태실로 표기된 석실이 그려져 있으며 하소동에서 금산군 추부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태봉재라 한 것도 이에 연유한 것이다.

만인산은 고조선 때부터 정상에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태실이 있는 산이라고 해서 태실산 또는 태봉산으로도 부른다.

원래 태조의 태실은 함경도에 있었으나 무학대사가 만인산의 터가 명당이라 이곳으로 옮겨왔으며 태조 이성계의 태실은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어 만인산 동쪽 자락에 위치한다.

산봉우리의 모양이 만발한 연꽃 모양을 닮았으며 숲과 계곡이 아름다운 곳으로 등산로와 숲 속 자연 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만인산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동쪽 능선에 만인루가 있으며 주변 일대가 조망되고 남쪽 기슭에는 중부대학교가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에는 금산군 추부면이 위치하고 대전천이 만인산 계곡에서 발원한다.

늘 한번쯤 오르고 싶었던 만인산이었는데 이제서야 그 만남이 이뤄졌으니 10여년이 지나 듯 하다.

앞으로 한번쯤 더 보만식계를 따라 걸으며 들려볼 수 있기를 기대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 만인산에서의 조망 역시 멋지기에 잠시 배낭 내려 놓고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출발하기로 한다.

약간의 눈발도 가늘어져 시야도 조금 더 넓어지고 멀어져 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둘러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제일 먼저 진행 방향인 북동쪽을 살펴보니 정기봉이 우뚝 솟아 있고 처음에는 그 정기봉 방향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볼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생각되었지만 식장지맥 마루금은 우측으로 돌고 돌아 저 정기봉으로 이어지기에 잠시 정상 마루금도 함께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그 정기봉 우측으로는 마전리 지나 오늘 새벽에 버스를 타고 지나왔던 비례리 마을이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채 좁지만 긴 들판을 이루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중부대학교와 마전리 마을이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막 떠 오른 햇살이 구름에 가려져 있는 곳 아래로 조만간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장령지맥 마루금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모습도 한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 우측 뒤로 보여야 할 천태산과 서대산을 찾아 보지만 아직은 찾지 못하고 아쉬움만 남기는 시간이다.

중부대학교는 1983년 학교법인 중부학원이 설립인가를 받아 1984년 2월 중부신학교로 문을 열었다가 1984년 중부사회산업학교로 교명을 변경했으며 1992년 12월 중부대학의 설립인가를 받아 1993년 2월 기존의 중부사회산업학교를 폐교한 뒤 3월에 중부대학이 개교한 후 1995년 중부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2001년 일반대학원 및 원격대학원의 신설을 인가 받았으며 이후 특성화 교육에 역점을 두기 시작했고 2006년 산업자원부에 의해 3년 연속으로 지역특성화시범사업 대상학교로 선정되었으며 2009년 인문사회과학연구소를 비롯해 4개 연구소를 중부학술연구원으로 통합한 후 2013년 9월 중부대학교 고양캠퍼스 기공식을 열었다.
중부대학교는 2014년 현재 사회과학대학, 경찰경호대학, 관광보건대학, 공과대학, 예술체육대학 등 5개 단과대학과 59개 학과로 구성돼 있으며 특성화 학과로 경찰행정학과, 호텔경영학과, 호텔외식산업학과, 항공서비스학과 등이 있다.

대학원에는 일반대학원, 인문산업대학원, 교육대학원, 원격대학원이 있으며 38개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수여하고 8개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수여한다.
학생들이 졸업 후 별도의 교육을 받지 않고 바로 현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학과별로 다양한 실습실을 갖추고 있으며 산학협력단을 운영하고 부속기관으로 학술정보센터, 교목실, 교수학습지원센터, 학생생활관 등이 있으며 기숙사는 478실을 갖추고 1842명을 수용하고 있다.

학교기업으로 로하스생명과학연구소를 운영하고 부설교육기관으로 평생교육원과 원격교육연수원이 있다.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음악원, 베이징외국어대학교 등 해외 10개국 45개 대학과 자매 결연을 맺고 3+1유학 및 복위학위제, 교환학생, 해외전공연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수가 줄면서 대도시의 대학들도 학생수를 채우기 바쁜데 이런 시골에 있는 대학교로서 운영이나 잘 되고 있는지 걱정도 되고 궁금증도 생기는 시간이다.


한동안 그 만인산 정상에서 주위 조망과 풍경을 즐기고 추억을 남긴 후 올라갔던 등로를 타고 빠르게 내려가니 금새 만인산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방향으로 좌측 등로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갈림삼거리 안부를 지나 오르니 생각보다 눈이 많이 쌓여 조금은 걱정이 되는 마음으로 진행을 하고 곧이어 벤취 하나가 보이는 무명봉을 넘는다.

그 무명봉을 넘으니 굵은 로프가 길게 설치되어 있는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후 나무계단도 보이기 시작한다.

계단을 지나 평이한 등로를 만나고 잠시 빠르게 걸어가니 또 다른 벤취쉼터 하나와 이정판를 통과 해 공터에 이정표와 벤취쉼터 하나가 설치되어 있는 367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벌써 만인산에서 1.1 Km 진행해 왔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이정표이다.


그 무명봉을 지나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다시 평이한 드올로 이어지고 한동안 그림같은 등로를 타고 여유를 부려보는 시간이다.

다시 나즈막한 언덕을 넘어 만인산2호라는 산악구급함을 지나고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눈 앞에 군대 시절에나 사용했던 로프 흔들다리가 나타나고 오랫만에 그 로프 다리를 타고 조심하며 걸어 통과를 해 본다.

그 로프 흔들다리 옆에는 만인산푸른학습원장의 경고판이 서 있는데 살펴보니 연수생 교육용이라는데 어느 연수원생들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 로프 흔들다리를 옛 군대 시절을 생각하며 통과하니 등로 우측으로 태조대왕태실이 바로 아래 내려다 보이고 그 아래 저 멀리 중부대학교로 내려갈 수 있는 등로도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내려가 태조대왕태실을 둘러보고 그 옆으로 세워진 안내판도 읽어 본다.

태조대왕 태실은 조선조 제 1대 왕인 태조 이성계의 태를 봉안한 석실로서 조선 태조 5년에 건축 되었으며 태조 이성계의 태를 처음에는 함경도 본궁의 용연에 안치하였다가 무학대사의 지시로 금산군 추부면 만인산에 옮겨 안치하고 태실비를 세웠다.

1928년 조선 총독부에서 태 항아리를 창경원으로 옮겨간 후 석비와 석조물만이 남아 원형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손 및 산재되어 있었으나 1993년 현 위치인 추부면 마전리 산 1-66번지에 복원하였다.
태실은 팔각형으로 돌 난간을 두른 정역을 만들고 그안에 팔각원당형의 태실 구조로 되어 있고 그 앞에는 구부 위에 태실비가 있으며 전면에는 태조대왕 태실이라는 비문이 음각되어 있다.

태를 봉안한 후 만인산을 태봉산으로 부르게 되었고 현재는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13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금산군에서 역점을 두고 추진한 사업에 태실공원이 포함되어 2001년에 아름다운 주민의 쉼터로 조성되었으며 예쁘게 가꾸어 조성한 현 부지는 마전리 송영근씨가 금산군에 기탁한 임야로 자활근로사업과 공공근로사업으로 조성하였으며 1 5천만 원의 예산 절용 효과를 보았으며 지금은 매일 많은 주민들의 산책과 휴식처로 각광을 받으며 아름다운 자생식물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렇게 태조대왕태실을 둘러보고 안내판도 읽어 본 후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를 하면서 뒤돌아 보니 아침에 버스로 잠시 들렸다 갔던 중부대학교 전경이 내려다 보이고 마전리 마을들도 하얀 눈을 뒤집어 쓴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뒤 저 멀리 언젠가는 올라야 할 장령지맥 산줄기들이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멋진 풍경에 조금 더 그곳 태실에서 머물다 다시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하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아름다운 마전리와 중부대학교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장령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다시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해 우측으로 진행을 이어가니 조금씩 눈발이 가늘어지기 시작하고 이제 조금씩 조망과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웅덩이가 보이는 351.2봉을 지나 군사 훈련용 시설물이 서 있는 무명봉을 통과하고 살펴보니 이곳은 보만식계 뿐만 아니라 대전둘레산길 제3구간이기도 한 등로였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학습원 가는 이정표를 통과하고 좌측 아래를 살펴보니 몇동의 건물들이 보이는데 그 건물들이 모두 학습원인 듯 보인다.


그 학습원 갈림삼거리를 지나니 등로 옆으로 인식이 어려운 삼각점 하나가 박혀있고 다시 통나무 벤취 2개가 설치되어 있는 공터도 지나간다.

그 통나무 벤취를 지나니 평이한 멋진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이제는 우측으로 마전과 추부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도 만난다.

그곳을 지나 군사용 타고넘기와 오소리동굴 시설물들을 통과하니 묘지 하나가 나타나고 잠시 후 현위치 번호  태봉산3호라는 시설물도 보인다.

그 시설물을 지나니 통나무 계단이 길게 이어지고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꾸준하게 걸어 오르니 소나무와 로프구간을 지나 정기봉 200미터 전방이라는 이정표도 통과를 해 본다.

다시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구간을 타고 오르니 드디어 573.3미터인 정기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연세 드신 부부가 잠시 쉬고 있어 인사 드리고 어렵게 추억 한장 남긴 후 주위 풍경을 살펴 본다.

정기봉(580)에 관한 자료는 찾지 못하고 이곳 정기봉의 봉화대터에 관한 자료가 보여 확인해 보니 자연환경학습과 산림체험의 요람인 만인산푸른학습원 뒷편에 우뚝 솟은 이곳 정기봉(580)은 봉화대가 설치되었던 곳으로 대전시에서는 식장산(598)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이 봉화대는 절구통 양식의 봉화자리와 봉화대 주위를 둥글게 단을 쌓아 봉화가 인근 산으로 번지는 것을 막도록 조상한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 봉화대에서는 한성에서 보내오는 봉신을 받아 영남으로 보냈으며 이 정기봉 서쪽으로 2 Km 지점에 위치한 만인산(537) 봉화대에서는 호남으로 봉화를 보냈다.

그러므로 우리 만인산은 한성과 영호남의 삼각지점으로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매우 유서 깊은 곳이다.

우리 선조들의 문화유적인 이 봉화대를 복원하여 길이 보존하고자 하니 산을 이용하시는 모든 분들이 아끼고 보살펴 주기 바란다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제 눈은 거의 그쳐가지만 생각보다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실제 기온보다 체감온도는 훨씬 더 춥다고 느껴지기에 방풍 자켓을 꺼내 입은 후 주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진행 방향인 북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식장지맥 마루금만 눈길을 사로 잡으며 조망되지만 다른 방향으로는 그나무 막혀있어 보이는 것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다시 그 정기봉을 출발해 몇십미터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에는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더욱 조심스럽고 그렇게 진행을 하니 좌측으로 산흥초교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식장산까지 16.7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이 산객의 두 다리를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진행 방향의 마루금을 확인하고 급경사 내리막 등로에 설치된 로프를 따라 조심스럽게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잎이 넓은 활엽수 낙엽 위에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많이 미끄러워진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고 편안하게 걸어 전진하니 오늘 산행 내내 만나게 될 국가지점번호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과유불급이라고 너무나 많이 촘촘하게 박혀 있어 없는 것보다 더 불편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다시 잡목과 소나무 그리고 참나무가 보이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참나무와 잡목들이 보이는 아무 표식도 없는 502.1미터의 지봉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해 본다.

이 산객이 가지고 있는 지도에는 이곳을 지봉산이라 했는데 실제 지봉산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약300미터 정도 벗어난 464.7미터의 산으로서 대전광역시의 남서쪽 동구 하소동과 충남 금산군 추부면 비례리와 마전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03미터이다.

산의 생김새가 마치 자색의 봉황같이 빼어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 옛날 봉황새가 울어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는 전설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고도 한다.

각 지도와 트랙마다 각기 다른 장소와 높이를 표기하고 있어 헷깔리기만 한 지봉산 정상부이다.


지봉산을 지나 내려가다 앞을 보니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식장지맥 마루금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다시 좌측으로 이어지며 저 멀리 508.2봉으로 연결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내려가니 471 무명봉을 지나고 곧이어 해발 501미터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하는데 닭재까지 8.2 Km 남아 있는 장소이다.

그 이정표를 지나 환상의 소나무 등로 아래 하얀 눈이 깔려 있는 그림같은 마루금을 타고 자연을 즐겨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다시 진행을 이어가니 국가지점번호판이 서 있는 483 무명봉을 통과하고 약간의 공터로 이뤄진 494 무명봉도 넘는다.

식장산과 만인산 사이를 표기해 놓은 둘레길 제3구간 안내판도 살펴보고 계속 걸어 진행을 하니 완만하게 올라 511 무명봉도 통과를 하고 금새 간벌목들이 쌓여 있는 504 정상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해보고 다시 출발한다.

생각보다 등로 주변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로 인해 조망과 풍경이 별로 좋지 않아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는 산행 시간이었다.


다시 하얀 눈이 깔려 있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나뭇가지 사이로 올라야 할 마루금이 제법 뾰족하게 빨래판을 그리며 올려다 보이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뚜렷한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등로 양쪽으로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는 장산저수지 하산로가 좌측으로는 골냄이부락으로 내려갈 수 있는 표기가 되어 있는 갈림사거리 안부이다.

그 안부 이정표를 지나니 눈 앞에 거대한 바위암릉이 가로막아 좌측으로 돌아 우회하며 오르니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지나 묘지 한기가 보이는 508.2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살펴보니 이제서야 제대로 된 조망과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진행 방향인 북쪽을 살펴보니 542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 저 멀리 식장산으로 이어지는 식장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식장지맥 마루금 좌측으로 눈을 돌리니 저 멀리 식장산 정상부의 통신탑들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거대한 회색 빌딩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는 오늘 밤 하루 묵어야 할 대전시가 눈에 들어오고 그 좌측 앞으로는 보만식계의 산줄기를 이루는 시작점인 보문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이 그치며 기대하지 못했던 멋진 조망과 풍경에 한동안 더 머물며 많은 추억을 남기고 사진에 담아보는 시간이다.


이제 등로 좌측 뒤로는 간벌목들이 있던 504 무명봉이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 하소동이 내려다 보이는데 그 한가운데엔 하소친환경일반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공장 건물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하소동은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동으로서 동쪽에서 남쪽으로는 금산군 추부면과 복수면, 서쪽으로는 중구 산서동, 북쪽으로는 상소동과 접해 있으며 원래 공주군 산내면 지역으로 백제시대에는 우술군, 신라시대에는 비풍군, 고려 초기에는 회덕현과 공주부, 1895년(고종 32)부터는 회덕군에 속하였다.
1914년 대덕군 산내면에 편입되었으며 1989년 1월 대전시의 직할시 승격에 따라 대전직할시 동구 하소동이 되었다가 1995년부터 대전광역시 동구 하소동이 되었으며 행정동인 산내동 관할 아래 있다.

하소동이라는 이름은 지금의 상소동에 사는 권력자가 자기 마을을 상소전이라 부르고 이곳을 하소전이라 고쳐 부르라고 한 데서 연유하는데 원래는 지금의 상소동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다. 

가정이(일명 가목정), 갈골, 귀미실, 먹티, 북잿말, 새말, 시루봉, 절골 등의 옛마을이 있으며 기생기린이, 만인산(537미터), 서태목, 시루봉 등의 야산과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 2그루 및 만인산저수지·새말공원·하소동저수지 등이 있으며 가정이마을은 고목나무 줄기가 마치 정자 같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사찰로는 이근사가 있고 주요 시설로 만인산 자연휴양림과 사회복지시설인 성심보육원이 있으며 만인산 자연휴양림에는 1997년 8월에 개장한 만인산푸른학습원이 있다.

그 하소동과 상소동 뒤로는 다시 올라야 할 안평지맥의 산줄기들이 높지는 않지만 제법 옹골진 모습으로 다가 와 있다.


그렇게 한동안 그 508.2봉과 그 봉우리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며 주위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고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작은 돌탑과 좌측으로 상소동산림욕장으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 및 커다란 대전시 둘레산길잇기 안내도가 보이는 528봉에 도착을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잠시 후 낡은 삼각점이 박혀 있는 542봉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는 여전히 상소동산림욕장 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표시가 되어 있는 갈림삼거리이다.

어느 산행지도에는 이곳을 곡남산(541.4, 좌측 상소동 산림욕장 하산 갈림 삼거리)이라 하였는데 상소동산림욕장은 만인산과 식장산 자락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가는 길에는 버즘나무 가로수 터널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자연체험과 휴양을 할 수 있는 각종 시설이 조성되어 있고 특히 수많은 돌탑이 조성되어 있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가족이나 연인 등 각계각층에서 가족의 건강이나 여러 가지 염원을 담은 돌탑을 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뜻깊은 기회를 제공하여 주기도 하고 봄부터 가을까지 수많은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와 산책과 등산과 휴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삼각점봉에서 잠시 주위를 살펴보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 우측 앞으로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그 앞쪽으로 통영대전간고속도로와 그 옆으로 나란히 달리는 17번 국도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서대산 바로 우측으로 이어지는 장령지맥 마루금이 선명하고 그 바로 앞쪽으로는 이름없는 산줄기가 하얀 눈을 뒤집어 쓴채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서 있다.

다시 그림같은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국가지점번호가 있는 499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조금 더 선명한 통영대전간고속도로 건너 서대산과 장령지맥 마루금이 멋진 모습으로 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바로 앞 파란 소나무 잎에는 오늘 아침까지 내린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아름다운 눈꽃을 피웠고 그 뒤로 통영대전간 고속고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으며 그 뒤 저 멀리 서대산과 장령산 줄기가 또한 환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잠시 걸어 진행을 하니 정상에 제법 큰 돌담이 보이는 487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벤취쉼터2개와 국가지정번호판이 서 있는 476봉도 넘는다.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서대산과 장령지맥 산줄기가 선명하게 다가와 있어 가슴속에 그 아름다운 풍경을 담으며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갔다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무명봉을 지나 내려갔다 무명안부를 넘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물놀이장과 산림욕장 및 팔각정자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판을 만나 잠시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


그 이정판을 지나 참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가 붙어 있는 무명안부를 지난다.

안부를 지나 다시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무명봉을 넘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머들령 안무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겨보는 시간이다.

마달령(머들령, 대진고속도로)은 대전광역시의 남동쪽 동구 삼괴동과 충남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마달산에 있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머들령이라고도 불린다.

1949년 발행된 금산 출신의 시인 정훈의 시집 머들령이 있다.

이제 식장산까지 11.8 Km 남아 있다는 거리표시가 무척 반가웠던 시간이었다.


머들령을 지나 가파르게 오르니 다시 소나무 등로가 반겨주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370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무너진 성터같은 흔적이 있는 388.1봉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를 둘러 본다.

하지만 그 어떤 설명판이나 자료도 없어 아쉽기만 한데 이곳 대전 근방은 옛날 국경을 맞대고 있던 곳이라 많은 산성들이 있는데 이곳도 그런 산성 중 한곳이 아닐까 추측을 해 보지만 정확히는 알 수가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무너진 듯한 성터를 지나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벤취쉼터 2개와 국가지정번호판이 서 있는 391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다시 출발하니 진행 방향으로 명지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다시 낙엽 위에 하얀 눈이 소복하게 깔려 있는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또 다른 벤취쉼터2개가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을 지나 국가지정번호판이 서 있는 389봉에 도착을 한다.

올랐으니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 무명안부를 지나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두가지의 참나무가 자라고 있는 406.2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해 보고 진행을 이어가 본다.


참나무들이 보이는 눈 내린 등로를 타고 걸어 전진하니 쓰러진 고사목이 보이는 무명봉을 넘어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 본다.

낙엽 등로를 따르니 참나무 등로가 열리고 길게 이어지는 활엽수의 환영을 받으며 무명안부를 지나 무심으로 걸어가니 잠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금새 404.2미터의 명지봉에 도착을 해 잠시 한숨을 돌려 본다.

명지봉(412)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어 명지봉이 속해 있는 신평리를 찾아 보니 신평리는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에 있는 리로서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고 마을 북서쪽에 명지봉이 솟아 있으며 남동쪽으로 추부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노루골, 벌말, 신탑 마을 등이 있는데 노루골 마을은 벌말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노루가 많았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벌말 마을은 신평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벌판에 위치한다 해서 벌말 마을이라 불린다.

신탑 마을은 벌말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큰 절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명명되었다.

이곳 명지봉 정상은 예전에 집이 있었는지 제법 넓은 공터에 나무들이 자라나 이제는 공터의 흔적이 사라진 듯한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명지봉을 지나 다시 내려가니 등로는 여전히 참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잠시 동안 큰 고도차이도 없이 평이한 눈 쌓인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낙엽 위에 눈이 날리면서 색다른 등로를 만들고 있어 사진 몇장 더 남기며 여유롭게 걸어 본다.

잠시 후 완만하게 올라 국가지점번호판이 서 있는 432 무명봉을 넘고 푹신한 낙엽 등로를 따라 힐링하듯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서대산이 다시 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낙엽 등로를 타고 오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바위들도 간간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렇게 한동안 오르니 작은 돌탑이 있고 이정표가 서 있는 506.2봉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꺽어 내려가야 하는 길주의 지점이기도 하다.


그 돌탑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기 등로는 다시 낙엽 등로로 바뀌고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도 통과를 해 본다.

갈지자로 낙엽을 헤치며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소나무와 참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칼등능선이 나타나고 그렇게 한동안 진행을 하니 385 무명봉도 넘어간다.

오래 묵은 묘지 위에 굵은 소나무들이 자라는 곳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국가지점번호판과 대전둘레길 이정판이 서 있는 무명묘지지대에 도착을 한다.


그곳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눈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어느새 수레길처럼 넓은 비포장 임도로 바뀌어 있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강해 체감 온도를 자꾸만 떨어 뜨리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커다란 활엽수가 보이는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무명묘지를 지나 수레길 같은 등로를 따르니 금새 커다란 돌탑들과 사각정자 그리고 이정표가 서 있는 닭재에 도착을 해 잠시 배낭 내리고 쉬었다 가기로 한다.

닭재(계현)는 대전광역시의 동남쪽 동구 삼괴동과 충북 옥천군 군서면 사양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닭산에 있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닭산은 풍수상 산세가 닭의 모양처럼 생겼다 하여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옛날부터 마을에 경사가 있으면 닭재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흉사가 있으면 소나무가 울었다고 전한다.

고개 북쪽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계현산성이 있고 동여도에 계현으로 수록되어 있는 고개이다.

등로 좌측으로는 덕산마을 하산 등로가 나 있는 갈림삼거리 안부가 바로 닭재이다.


주위를 살펴보니 대전둘레산길이 이곳 닭재에서 제3구간과 4구간이 나눠지는 듯 보인다.

한동안 그 닭재에서 쉰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니 등로 좌측으로 덕산말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표도 만나고 잠시 후 식장산 특유의 모양을 하고 있는 육각정자도 만나 통과를 해 본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서대산이 보이고 그 서대산 앞쪽으로는 장령지맥에서 분기산 이름없는 산줄기가 좌우측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다시 잡풀들이 자랐다 말라죽은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성터흔적들이 보이고 그 한쪽에 이곳을 계현산성이라는 오석으로 된 이정석을 세워 놨다.

계현산성은 1991 7 10일 대전광역시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된 계현산성은 송촌마을에서 옥천군 군서면 금양리로 넘어가는 계현(닭재) 위의 북쪽 봉우리(325)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둘레 220미터에 면적은 60793입방미터이다.

성벽의 동남쪽은 무너지고 서북쪽이 일부 남아 있는데 자연석을 깨뜨려 높이 5.2미터로 쌓았으며 성의 네 모퉁이에 치성과 망대로 추정되는 높이 3.3미터와 너비 6미터의 돌출 부분이 있다.

남문과 동문 터가 남아 있으며 동문터에서 닭재로 통하는 길이 나 있다.
성벽은 서쪽 성벽으로 꺾여 해발 320미터의 능선 부분으로 올라가면서 쌓여 있고 북쪽 성벽은 계속 동벽으로 이어지나 중간 부분부터 다시 해발 315미터 지점에서 남벽과 만나고 있다.
축조방법은 밑에서 1.8미터까지는 약간씩 안쪽으로 오므리며 쌓다가 그 위 1.5미터 정도는 거의 수직으로 쌓아 성벽의 단면이 규형을 이루고 있다.

동북쪽 성벽 부분도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바깥 높이 4.2미터에 안쪽 높이 0.8미터 그리고 성벽 아랫부분의 폭이 4.5미터 정도이다.
성 안에는 남쪽 성벽 부분에 폭 6-8미터로 평탄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백제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토기와 기와 조각이 채집되었다.

비파산성(소호동 산성:대전광역시기념물 11)과 마주 보고 있고 금산군 추부면 추정리와 금성 산성과 서로 연락하면서 외적을 방어하도록 하였고 동으로 성재산성, 서쪽으로 소호동 산성에서 사정성, 보문산성으로 통하게 되어 있다.


계현산성에서 잠시 더 머물며 사진에 담은 후 그 산성을 출발하니 낙엽이 깔려 있는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가고 안부를 지나 다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천천히 걸어 올라가 본다.

잠시 후 31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평이하게 걸어 내려가니 19번 송전탑이 보인다.

그 송전탑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315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 무명봉을 넘어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 삼괴동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꼬부랑재에 도착을 한다.

삼괴동은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동으로 동쪽으로는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 서쪽으로는 소호동과 장척동, 남쪽으로는 상소동, 북쪽으로는 구도동과 접하며 원래 공주군 산내면 지역으로 백제시대에는 우술군, 신라시대에는 비풍군, 고려 초기에는 회덕현, 1018년(현종 9) 이후에는 공주부, 1895년(고종 32) 이후에는 회덕군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소룡리와 마달리 및 소호리 일부와 외남면 덕산리를 합하여 삼괴리라 하였으며 1935년 11월 대덕군에 편입되었다가 1989년 11월 대전시의 직할시 승격에 따라 대전직할시 동구 삼괴동이 되었고 1995년부터 대전광역시 동구 삼괴동이 되었으며 행정동은 산내동이다.

동 이름은 느티나무 3그루가 마치 정자처럼 서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집건말과 점말, 송촌말 등의 옛마을과 국사봉(509미터), 떡갈봉, 소룡산(368미터) 등의 야산,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 3그루가 있으며 머들령 입구와 골짜기에는 각각 정자와 성황당이 있다.

송촌말은 송씨들이 많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떡갈봉은 떡이 열리는 나무가 있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인데 나무가 있던 집의 아들은 아내 덕분에 큰 벼슬을 지냈다고 한다.
유물로는 김경여의 8대손인 김재만(1820~1868) 정문이 전하는데 측면 1칸의 팔작지붕으로 1890년에 세운 비석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계현산성(대전광역시기념물 24)이 있다.

다만 꼬부랑재에 관한 자료는 찾지 못해 삼괴동 자료로 대신해 본다.


꼬부랑재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323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 무명봉을 넘어 천천히 걸어 진행을 하다 등로 좌측 앞을 보니 통영대전간고속도로와 그 옆으로 17번 도로 그리고 대전천이 바로 아래 내려다 보이고 그 도로를 타고 저 멀리 대전광역시가 거대한 회색도시의 모습으로 다가 와 있다.

대전은 한밭이 한자화 되어 대전이 되었고 경부선과 호남선이 이곳에서 분기되면서 철도에 바탕을 둔 교통의 요지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교통 요지는 접근하기 쉬워야 하므로 회덕에 있던 군청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도시기반을 마련했으며 1931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32년 공주에 있던 도청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광역중심지로 부상했고 1935년에 부(오늘날의 시)로 승격되었으며 6.25전쟁 당시 한때 임시 수도였으며 1979년에 동구와 중구로 분할되었다.

이후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현재의 대전은 5개 구로 분할되었으며 인구 규모가 110만 명에 이르고 있다.
대전은 동쪽에 식장산, 서쪽에는 계룡산계의 구봉산, 북쪽에는 계족산이 에워싼 분지지형이고 분지 내를 북류하는 대전천, 유등천이 흘러 갑천을 이루고 이것은 곧 많은 밭이 존재하는 터전을 제공했다.

여기에 농업이 발달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면서 다른 한편으로 한밭고등학교와 같이 토지 조건과 관련된 땅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다.
교통의 요지는 원료와 제품의 수송에 알맞으므로 가공업도 발달하게 되었는데 1925년에 일본인에 의해서 제사공장이 세워진 이래 섬유와 제지 및 피혁 등이 주요 업종으로 발달했다.

최근 신탄진을 중심으로 담배와 고무 및 제지 등의 공업도 활발하고 한때 담배 이름에서 신탄진이 등장한 것도 담배 가공장이 이곳에 이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유성온천과 대덕연구단지이며 이곳에서 열린 엑스포는 태풍의 눈처럼 국민의 시선을 모았고 그 상징탑의 이름 역시 한밭에 어원을 가진 한빛으로 지역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산객에게 대전시는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이기에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고속도로와 대전시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 오르니 그동안 계속 만났던 제법 굵은 참나무들이 사라지고 관목들과 키 작은 소나무들이 등로에 자라고 있다.

그렇게 잠시 언덕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식장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앞으로 전진하니 민둥의 공터봉이 나타나고 진행 방향으로는 올라야 할 망덕봉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잠시 후 민둥의 336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 좌측을 살펴보니 올라야 할 망덕봉 좌측 저 멀리 식장산 정상부의 통신탑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망을 즐긴 후 등로 우측 뒤를 보니 저 멀리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이 이제는 상당히 멀어져 가고 있다.

다시 주위로 펼쳐진 멋진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며 걸어 진행을 하니 무명봉으로 오르고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오늘 걸어 온 식장지맥 마루금이 저 멀리 만인산으로 이어지는 모습도 한눈에 들어 와 발걸음 멈추고 추억 하나 남겨 본다.

지나 온 등로 좌측으로는 서대산이 그리고 우측으로는 통영대전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풍경도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렇게 주위 조망을 즐긴 후 지나온 방향과 그 좌측으로 높게 올려다 보이는 서대산 방향을 살펴보니 환상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다시 많은 사진으로 남겨 본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많은 잔가지들이 보이는 참나무가 서 있는 342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도 등로 좌측 앞을 살펴보니 저 멀리 대전시의 회색 건물들이 빼곡하게 내려다 보인다.

다시 등로 양쪽으로 관목들과 잡목들이 보이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한동안 등로는 잡목과 관목들로 이뤄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다시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고 사면 등로를 따르다 오르니 금새 벤취쉼터 하나와 이정표가 서 있는 439미터인 망덕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망덕봉에 관한 자료도 없고 잡목에 가려 조망도 전혀 없기에 정상부 풍경만 사진에 담은 후 곧바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내려가는 길목에 또 다른 벤취쉼터가 나타나고 잠시 후 통나무 계단이 이어지고 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 박혀 있는 바위들을 피해 오르니 415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국가지점번호판이 서 있다.

다시 나타나는 통나무 계단을 타고 걸어 내려가니 15번 송전탑 아래를 지나고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는 소나무 등로를 타고 잠시 편안하게 걸어 본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산내초등학교 하산 갈림이정표가 있는 갈림삼거리를 지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작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379미터봉이다.

이곳에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여전히 대전시의 회색 빌딩들이 빤히 내려다 보인다.


그 379봉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평이한 고도차이가 전혀 없는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있어 무심으로 걸어 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고 안부로 진행을 하니 곤룡재에 대한 설명판과 함께 산내초등학교 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곤룡재 안부에 도착을 한다.

곤룡재(곤룡터널, 12 2차선 포장도로, 곤룡티, 골링이, 골롱이)는 대전광역시의 동남쪽 동구 낭월동과 충북 옥천군 군서면 사양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곤룡터널이 있으며 곤룡재가 있는 산의 모양이 마치 용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골링이라고도 불리는데 마을 주민들은 한국전쟁 때 이곳에서 양민들을 대량 학살하여 죽은 사람의 뼈가 마치 산처럼 쌓이게 되어 뼈고개 즉 골령을 이루었기 때문에 골링이는 곧 골령의 예언적 지명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대전과 옥천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서 예전에는 민초들의 통행로로서 많은 이용이 되었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산행을 위해 찾거나 임산물 채취를 위해 찾는 사람들만 다니는 고갯마루가 되어 버린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곤룡재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서대산도 이제 저 멀리 멀어지며 이별인사를 건네고 있다.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작은 공터가 보이는 34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니 무명안부로 이어지고 있다.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다 뒤돌아 보니 멀어지는 서대산이 아름답고 다시 이어지는 평이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는 411봉에 도착을 한다.


그 411봉을 지나 넓은 수레길 같은 등로를 타고 평이하게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다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 오르막 등로에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국가지점번호판이 보이는 439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사양리산성이라는 오석 이정석이 서 있다.

사양리산성(곤룡산 보루) 즉 사양리산성지는 군서면 사양리 서성골 마을 서쪽 500미터 정도인 식장산 남쪽 줄기에 있으며 전체적인 지형은 남북으로 길며 동서로는 좁다.

옥천쪽인 동쪽 경사면은 매우 급경사로 거의 절벽에 가깝고 대전쪽인 서쪽 방향은 상대적으로 조금 완만하나 그래도 경사가 급하다.

성의 내부는 동쪽이 약간 낮게 형성되었는데 그 이유는 성의 내부 공간을 확보하며 북서쪽의 찬바람을 막기위하여 서쪽 성벽을 원래의 능선에서 약간 아래쪽에서부터 높게 쌓아 올렸기 때문이다.

남쪽과 북쪽의 능선과 닿은 부분은 석축을 튼튼히 하여 취약한 부분을 보강하였으며 남쪽과 북쪽의 성벽은 능선에서 3-5미터 정도 아래로 축성하였으며 성벽의 높이는 북쪽은 3-5미터 정도이며 남쪽 성벽은 2-3미터 정도이다.

성벽은 많이 무너지기는 하였으나 다른 산성지보다는 나은 편으로 군데군데 원래의 성벽이 잘 남아 있으며 성벽의 석축 형태는 독수리봉산성지와 노고성지등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계현산성과는 조금 다르다.

사양리산성지는 성의 남쪽에 있는 곤룡재와 성의 북쪽에 있는 동오리재를 경계하기 위하여 축성한 것으로 보이며 또한 계현성과 동오리산성지와 함께 식장산 남쪽 방향에 축성된 백제의 중요한 성으로 생각된다.

식장산의 남쪽줄기에 있는 주요 고개는 동오리재와 곤룡재 및 닭재(계현)인데 동오리재와 곤룡재는 고개의 동쪽이 매우 급경사라 많은 인원이 넘나들기에는 힘든 고개이나 닭재는 경사가 완만하다.

사양리산성지에서 토기 조각등 유물은 발견하지 못하였으며 이 곳에서의 전망은 서쪽으로는 대전의 시가지가 잘 보이며 동북쪽으로는 조금 멀리 용봉산성지및 동평산성과 마성산성이 잘 보이다.

동쪽으로는 성티산성이 있는 말동산이 보이나 성티산성의 내부는 보이지 않는다.

역시 대전 근처인 식장지맥 산줄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성벽들과 산성들이 존재하는데 옛날 국경지대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자료들이다.


그 사양리산성터를 둘러보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에는 여전히 눈이 남아 있고 한쪽에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오르니 무명묘지가 보이는 431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을 지나니 다시 벤취쉼터 2개가 보인다.

벤취쉼터를 지나니 41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평이한 소나무와 잡목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커다란 소나무가 보이는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어 참나무 낙엽이 떨어져 있는 등로를 따르니 다시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 육각정자가 나타난다.

그 육각정자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준비한 간식을 먹으며 뒤돌아 보니 지나온 마루금 좌측 저 멀리 서대산이 멀어지고 그 좌측으로 조만간 다시 올라야 할 장령지맥 마루금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잠시 더 그 육각정자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426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옥천군 군서면 마을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보여야 할 옥천읍 마을은 산줄기에 막혀 보이지 않고 그 뒤로 조만간 올라야 할 장령지맥 마루금만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군서면은 충청북도 옥천군의 면으로서 동쪽으로 옥천읍, 서쪽·남쪽으로 대전광역시 대덕구와 금산군, 북쪽으로 군북면과 접한다.
충청남도와의 경계에는 망경대(597미터)와 망덕봉(419미터) 및 국사봉(389미터)을 잇는 산맥이, 동쪽 면계에는 용봉(436미터)와 마성산 및 장룡산을 연결하는 산맥이 각각 뻗어 있고 그 두 산맥 중앙을 옥천천이 북류하여 하곡평야를 형성한다.

1908년 군서일소면이라 하여 9개리를 관할하다 다시 13개리를 관할한 뒤 1914년 군서면으로 바뀌면서 12개를 관할하였다가 1949년 성정리와 옥각리를 옥천읍에 넘겨 주면서 10개리를 관할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른다.
과수 재배가 성하고 쌀과 보리를 비롯한 주곡농업과 함께 특산물로 포도와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면의 북부에 서울과 부산을 잇는 고속도로와 국도가 지나고 보은과 금산간 국도가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관광지로는 여름철 피서지인 장룡산자연휴양림과 금천계곡이 유명하다.

주요 문화재로는 동평리 성지 및 선사유적, 마성산성지, 금산리 김씨효자정문, 사정리 요지, 김순구 순절비, 백제 성왕 사절지 등이 있다.

잠시 더 등로 우측으로 옥천과 서대산 그리고 장령지맥 마루금을 살펴본 후 다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참나무가 서 있는 426봉을 지나 이제 등로 좌측으로 대전시와 그 좌측 저 멀리 금남정맥 마루금을 살펴본 후 좌측 뒤를 확인해 보니 식장지맥 분기점과 대둔산 그리고 금남정맥 마루금이 강렬한 햇살 아래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한동안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천천히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 드넓은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 설치된 이정표를 살펴보니 좌측으로 여전히 산내초등학교로 하산하는 갈림삼거리 이정표이다.

잠시 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벤취쉼터 4개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가파른 오르막 능선으로 연결되고 있다.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14번 송전탑을 지나고 웅덩이와 고사목이 서 있는 424 무명봉에 도착을 해 일망무제로 펼쳐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지나 온 방향으로는 방금 전 지나 온 송전탑 넘어 서대산이 우뚝하고 그 서대산 우측으로는 지난 첫구간과 오늘 이어 걸어 온 식장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풍경들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다시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잘려진 나무 밑둥만 남아 있는 42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진행해야 할 방향인 북쪽을 살펴보니 이제서야 식장산의 통신탑 두곳이 시원하게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그곳으로 이어지는 거리도 상당히 좁혀진 느낌이다.


다시 등로 우측인 동쪽으로 옥천군 마을과 장령지맥 산줄기를 살펴보고 관목과 잡목이 자리하고 있는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다시 완만하게 올라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지나 온 방향의 마루금과 서대산이 환상으로 펼쳐져 있다.

생각보다 빨래판 능선이 제법 많은 굴곡을 만들고 그 뒤 저 멀리 서대산 정상이 벌써 멀어지며 이별의 손을 흔들고 있다.

보고 또 봐도 아름다운 산그리메와 조망에 발길을 옮기지 못하고 한동안 더 머물며 많은 사진들을 남겨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천천히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얼어버린 동오저수지가 바로 발 아래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옥천의 마을들과 장령지맥 산줄기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충북의 옥천은 북류하는 금강으로 심천과 송천 및 보청천 등이 유입되고 강 유역에 산지가 에워싼 분지를 이루고 하천은 뱀과 같이 꿈틀거리는 사행천을 이루므로 곳곳에 절벽이 많고 산세가 수려함을 자랑하는 곳이다.

남수문은 기문에서 산이 높고 물이 맑으며 땅이 기름지고 물산이 푸짐한 곳이다 라고 썼으며 또한 서거정은 높이 뜬 매인 양 천 겹 묏부리를 우러러보고 놀란 뱀 같은 형상인 몇 굽이의 시내를 굽어본다고 시를 읊었다.

이것은 바로 옥천이란 땅 이름이 물이 맑고 굽이치는 유역을 따라 기름진 땅이 많은 데서 기원한 것임을 알리고 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옥천계의 변성퇴적암이 분포함으로써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에서 부산 간의 고속도로와 철로를 따라 여행할 때 금강변에 솟아오른 절벽에서 주먹만한 크기의 자갈이 박힌 암석 형태가 눈에 띄는데 이것이 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옥천계 지층이며 고속도로의 금강휴게소도 바로 옥천계 지층의 범주 안에 해당하므로 관광과 교통 기능을 수행하는 데 큰 몫을 한다.

또한 옥천읍의 삼청리에 있는 쌍석탑과 마애불은 주요한 지방문화재이며 관광자원의 가치를 발휘함으로 관광객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산줄기 종주 산행을 하기 전에는 자주 들려 많은 산들을 올랐던 옥천이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산줄기 이어가는 산행으로만 찾는 도시가 되었으니 아쉬움이 남아 있는 고장이기도 하다.


그렇게 멋진 조망과 풍경들을 즐기며 다시 천천히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진행 방향으로 식장산의 통신탑들이 바로 눈 앞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등로 좌측으로 대전과 금남정맥 마루금을 찾아보며 걸어 전진하니 드디어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404 무명봉에 도착을 해 다시 일망무제로 펼쳐진 조망과 풍경들을 즐긴 후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좌측으로 산내주민센타와 우측으로 옥천군 군서면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사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동오리재에 도착을 한다.

동오리고개는 대전시 낭월동에서 군서면 상중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리고 동오리산성(상중리산성, 430미터) 즉 상중리산성지는 옥천군 군서면 상중리 동오리 마을에서 대전시 중구 낭월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동오리재에 있으며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식장산 줄기에서 다시 남서방향으로 뻗어 나간 능선에 있다.

독수리봉산성지와 사양리산성지의 중간지점에 있으며 성의 대부분은 옥천과 대전의 경계선에서 대전쪽에 치우쳐 있으며 성의 북쪽 성벽만이 경계선에 살짝 물려 있다.

성의 둘레는 100미터가 못 되는 망루형의 보루로 짐작되며 성벽은 석축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나 모두 허물어져 지금은 토석혼축성로 보인다.

성의 형태는 타원형으로 되어 있으며 북쪽에 망루가 있는 지점은 3-4미터 높이로 높게 성벽을 쌓은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 성벽은 윤곽만이 남아 있다.

상중리산성지는 상중리에서 대전의 낭월동으로 넘어가는 동오리재를 경계하기 위하여 축성한 것으로 보이며 독수리봉산성지와 사양리산성지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하여 축성된 망루 형태의 보루로 짐작된다.

이제 식장산 주능선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동오리재 안부를 지나 계속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좌측 사면증로로 이어지는데 우측 주능선을 살펴보니 잡목들과 가시나무들이 점령을 해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좌측 사면 등로를 이용하는 듯 보였다.

좌측으로 고산사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 가지에 맨발님이 응원판을 걸어 놔 잠시 인사를 드리고 통과한다.

고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서 신라 말 승려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그 후 수차례 중수와 중건 되었다.

가람의 구조 및 석탑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사원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으며 조선시대까지 6차례 중건되었어도 대웅전(대전광역시유형문화재 10)은 옛 형태 그대로 보존되었다.

이 대웅전 앞에 3층의 화강암 석탑이 있고 대웅전 좌측으로는 요사채 5칸이 있으며 대웅전 안에 안치된 중앙과 그 왼쪽의 불상은 토불로서 둘 다 좌대석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른쪽 것은 석불이고 입상으로 높이 1.83미터이며 또 그 좌우에 동자 석불이 있어 부조화감을 준다.

그 밖에 이 석불과 연대석도 문화재적 가치가 있으나 관리의 소홀로 사사 기록은 물론 기타 중요한 사료가 없어졌다.


맨발님의 응원판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현위치 번호 식장산 14호란 시설물이 나타나고 벤취수미터 하나를 지나 가파르게 오르니 드디어 식장산 주능선에 도착을 해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 본다.

이곳 식장산 주능선부터는 두어번 걸어 본 경험이 있기에 조금은 마음 편하게 걸어 볼 수 있으리란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우측으로 보이는 구절사도 잠시 들렸던 기억이 있고 고산사도 추억이 남아 있으며 세천공원 역시 오래 전 무더위를 피해 피서를 즐겼던 곳이기에 보이는 이정표 만으로도 옛 추억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식장산 주능선에 도착을 해 이정표와 산악구급함을 사진에 담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원형 벙커 모양을 한 552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진행을 하니 해주오씨묘지 한기가 보인다.

그 묘지를 지나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초소와 통신탑이 올려다 보이는데 그 앞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어 출입이 불가능함으로 이곳 갈림삼거리에서 아쉬운 마음으로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오르지 못하는 574봉을 대신해 본다.

두번이나 이곳을 지나며 철조망 근처로 붙어 진행을 하였지만 기대했던 성과는 없이 고생만 했던 기억이 나 오늘은 그저 편안하게 좌측으로 나 있는 뚜렷한 우회 등로를 타고 빠르게 진행을 해 본다.

 

좌측 우회 등로를 따르니 워낙 많은 등산객들이 지나다닌 등로이다 보니 반질거리고 일부는 눈이 녹아 질척거리기도 한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전진하니 우측에 통신탑을 두고 그 끝자락으로 오르고 그곳에 보이는 바위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세천공원 하산 갈림길이 보이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이곳에서 세천공원까지 3.9 Km의 거리이니 식장산 정상을 들렸다 조금 더 긴 등로를 따라 하산하게 되면 진행해야 할 거리가 약 6 Km 이상 7 Km 가까이 남아 있음을 알기에 평이한 등로에서는 조금 더 빠르게 걸어 진행을 이어가 보기로 한다.


그 세천공원 갈림삼거리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보이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통신탑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만들며 또 다른 추억을 약속해 본다.

통신탑을 살펴보고 그 우측인 남쪽으로 살펴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진행해 온 식장지맥 마루금이 저 멀리 만인산 넘어까지 시원하게 이어져 있는 모습으로 다가오고 그 마루금 넘어에는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으로 멀어지는 아쉬움을 들려주고 있다.

너무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과 조망에 갈길 바쁜 시간이지만 조금 더 머물며 많은 사진을 남겨 보는 시간이다.


다시 서대산을 좌측 끝자락에 두고 우측으로 돌아가는 식장지맥과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금남정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그곳 역시 환상의 풍경을 펼쳐 놓고 이 산객의 눈길을 끌어 당기기 시작한다.

정기봉과 만인산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식장지맥 분기점 옆자락의 금남정맥 상 인대산이 선명하다.

그 인대산 우측으로 대둔산과 천등산을 찾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기는 하는데 사진상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아 담지 못하고 식장산 정상부에서 다시 한번 찾아 보기로 하고 그 전망바위를 떠나 정상 루금으로 복귀를 한다.

 

전망바위를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드디어 행글라이더장이란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하고 다시 눈이 쌓여 있는 조금은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삼각점이 박혀 있는 580.6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는 맨발님이 이정판을 걸어 놨다.

두번이나 이곳을 지나며 언제나 식장지맥 마루금을 타고 걸어 볼 수 있을까 궁금해했었는데 오늘 드디어 그 궁금증을 풀어내며 산줄기 종주를 해 보는 시간이다.

진행 방향으로 식장산 정상부에도 몇기의 통신탑들이 점령을 하고 있어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삼각점봉을 지나 눈 덮힌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식장산4호라는 산악구급함이 보이고 그 옆 우측으로 세천공원 하산 등로가 보이는 갈림삼거리 이정표도 서 있다.

그 갈림삼거리 안부를 지나 통나무 계단을 타고 오르니 벤취쉼터와 통나무 벤취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 또 다시 멋진 전망바위가 보여 그곳으로 가 잠시 더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보고 출발하기로 한다.

제일 먼저 남동쪽으로 오늘 걸어 온 식장지맥과 그 뒤로 우뚝 솟아 있는 서대산을 살펴보고 그 우측인 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통영대전간 고속도로와 17번 도로가 지나는 통로를 따라 대전시 동구와 금산군 추부면 마을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를 식장지맥 마루금이 병풍처럼 돌아가며 울타리를 치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 우측으로 인대산을 시작으로 금남정맥 마루금도 보이고 우측 저 멀리 희미하게 대둔산과 천등산도 눈으로는 선명하게 분별이 될 정도로 다가왔었는데 사진으로 보니 확인이 어려울 정도로 박무가 심하다.


그래도 그 대둔산과 천등산 그리고 오대산 자락까지 확인을 하고 그 전망바위를 출발해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한 후 좌측 등로를 따르니 가파른 바위 오르막 등로에 안전목책과 로프구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지나온 식장지맥 마루금과 남쪽 우측으로 금남정맥 마루금이 강렬한 햇살아래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걸음걸이가 정상적으로 빠르게 진행이 불가능하다.

천등산과 대둔산 그리고 오대산까지 확실하게 확인한 다음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무조건 우측 능선 방향으로 타고 오르니 다시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고 우측으로 들어갈 수 없는 식장산 정상부에는 많은 통신탑들이 어지럽게 세워져 있어 아쉬운 마음을 담아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대신해 본다.


식장산 정상부를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뒤돌아 서서 평이하게 걸어가니 우측으로 세천공원과 행글라더장 가는 갈림삼거리인 식장산해돋이전망대라는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제 진행 방향으로는 식장산이란 글자 대신 고산사가 대신하고 있다.

그 전망대 지나 커다란 바위봉이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돌아 그 바위봉을 내려가니 드디어 앙증맞은 식장산 정상석이 숨어 있는 정상에 도착을 해 잠시 배낭 내려 음료수 한모금 마시며 주위 조망과 풍경을 살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식장산(598)은 대전광역시의 동쪽 동구와 충북 옥천군 군서면과 군북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92미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회덕)에 식장산은 현 남쪽 23리에 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하며 백제 때 신라로 통하는 군사적 요충지로 성을 쌓고 신라를 방어하기 위해 군량미를 저장하였다 하여 식장산이라 불렀다는 설과 옛날 이 산에서 스님이 기도를 하는데 어느 날 벽에서 쌀이 한 톨씩 나오자 쌀을 더 나오게 하려고 작대기로 그 구멍을 후볐더니 그마저 나오지 않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설 그리고 음식을 조금 담아 놓고 잠시 기다리면 음식이 몇 배로 불어나게 하는 식기가 묻혀 있어 식기산 또는 식장산이라 했다는 전설 등이 전해진다.

산경표에는 식장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식장산과 관련해 탄현, 숯고개, 숯재와 동일한 것으로 또는 탄현이 식장산에 있는 고개로 서술되어 있는 문헌들이 많은데 이는 한국지명총람의 내용이 이후에도 계속해서 반복된 결과가 아닌가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공주)에는 탄현은 주 남쪽 30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당시 거리와 방향의 기준점이 되는 주가 감영이 있던 공주 중심지였음을 전제할 때 탄현의 위치와 거리는 식장산과 거의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공주목의 속현이었던 유성현이 주 동쪽 54리에 있다고 하였고 대전천도 유성현 동쪽 25리에 있다고 하였음을 볼 때 식장산은 적어도 공주로부터 동쪽으로 80리 이상의 거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공주 남쪽 30리에 있다는 탄현을 식장산으로 또는 식장산에 있던 고개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현재 동구 삼정동에서 충북 옥천군 군북면 자모리로 넘어가는 자모실고개(장고개
)를 확인할 수 있으며 서쪽 골짜기에는 신라 시대 사찰로 추정되는 고산사가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회덕)에도 고산사는 식장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오래된 사찰이다.

그 외에도 식장사, 개심사 등의 사찰이 있고 산 정상부에는 통신시설이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으며 동북쪽에는 1934년 축조돼 대청댐 건설 이전까지 대전의 중요한 상수원이었던 세천 저수지가 있다.

두번 다 이곳에 올라 와 종교행사와 학생들 수련회로 인해 이곳 정상을 완전히 전세내듯 차지하고 있어 제대로 된 정상석도 사진에 담지 못하고 내려간 아쉬움을 달래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식장산 정상석 앞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잠시 그 앞으로 나가 벤취쉼터에서 남쪽으로 펼쳐진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좌측 서대산을 두고 남쪽을 살펴보니 금산군 추부면과 대전시 동구의 마을들이 보이고 그 뒤로 식장지맥 마루금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 정중앙부의 뾰족한 인대산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식장지맥 분기봉도 선명하고 좌측으로 돌아 오늘 넘어 온 만인산도 뚜렷하다.

그 인대산 우측으로는 금남정맥 마루금을 따라 천등산과 대둔산이 우뚝하고 그 대둔산 위로 강렬한 태양빛이 서산으로 기울어가며 박무 현상을 일으켜 조금은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그 식장지맥 분기점과 인대산 그리고 금남정맥과 대둔산을 확인한 후 눈을 남동쪽으로 돌리니 오늘 이 산객이 두발로 걸어 온 식장지맥 제2구간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오고 그 뒤 저 멀리 충남과 대전의 최고봉인 서대산이 우뚝하다.

서대산(904미터)은 충청남도에서 가장 높은 서대산은 충북 옥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서대산은 금산의 깊은 산중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것 같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초기 이전에 서대산에 3개의 서대사가 있어 꽤 알려졌던 모양이며 서대사의 서편 기슭에 있는 현재의 원흥사 터에 서대사가 있었으며 고려말의 고승 취운당의 부도 등 큼직한 청석부도가 많이 남아있고 국내의 여러 절에 옛날 서대사에서 출판한 화엄경이 많이 있음을 보아서도 서대사가 절도 크고 불사도 활발했었음을 알 수 있다.
산의 형태는 땅속에서 그대로 솟아 오른것처럼 보이고 비래산(산맥으로 이어지지 않고 따로 떨어져 독립된 산)에 가깝다.

북쪽으로는 잿말재, 남쪽으로는 비들목재, 남서쪽으로 민재를 지나 산줄기가 이어지지만 그 재들이 낮은데다가 서대산 자체가 워낙 우람하고 높이 솟아있어 주위의 모든 산들을 압도한다.
산세는 원추형 암산으로 곳곳에 기암괴봉과 깍아지른 낭떠러지 암반들이 많고 경관이 좋은데 용바위, 마당바위, 선바위, 남근바위, 구름다리, 사자굴, 살바위, 개덕사, 개덕폭포 등이 있고 주릉에는 석문, 견우장연대, 북두칠성 바위에 얽힌 전설이 있으며 서대산 정상에 서면 민주지산, 덕유산, 대둔산, 계룡산 및 대전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서대산의 산길은 모두 가파르지만 암릉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타고 넘고 돌아오르는 등 아기자기하고 재미있으며 산행 중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경관이 좋고 아름다워 산타는 멋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저 서대산도 두번 정도 올라 고운 추억을 남겼지만 서대산에서 천태산까지 이어지는 종주코스를 걸어 보고 싶었는데 아직 걷지 못해 아쉬움도 남아 있는 산이다.


그렇게 식장산 정상석에서 남쪽으로 펼쳐진 식장지맥과 금남지맥 마루금을 살펴본 후 다시 세천공원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곳으로 되돌아 내려가 이제 진행방향 좌측의 가파른 내리막 빙판길에 설치된 안전목책과 로프를 따라 조심하며 진행을 이어가 본다.

안부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를 따라 오르니 식장산 정상부로 오르는 등로를 막아 놓은 철조망을 만나 그 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진행하니 세천공원까지 4.5 Km거리라는 이정표를 만난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드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서쪽과 북서쪽 조망과 풍경이 환상적이다.

제일 먼저 눈을 서쪽으로 돌리니 드디어 대전광역시의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데 서산으로 가울어져 가는 하루해가 뚜렷한 조망을 방해하고 있어 안타까움이 묻어 나는 시간이다.

대전시 중구를 지나 보만식계의 출발점인 보문산이 우뚝하고 그 뒤 저 멀리 향적산이 보이는데 그 우측으로는 드디어 대전의 진산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계룡산의 전경이 제대로 드러나 있다.

계룡산 천황봉 우측으로는 관음봉과 삼불봉이 보이고 우측 끝자락으로 장군봉 등로도 선명하게 다가와 있다.

개인적으로 참으로 많이도 올랐던 계룡산이기에 잠시 그동안 올랐던 추억을 떠 올리며 미소를 지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 보문산과 황적산 및 계룡산을 살펴보고 눈을 북서쪽으로 돌리니 드디어 대전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이 산객에게 제2의 고향으로 불려지는 대전이기에 수많은 사연과 추억 그리고 인연들을 만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대전은 우리말인 한밭이 한자화된 이름으로 본래는 한밭으로 부르던 이름이 조선 초기에 이르러 한자인 대전으로 쓰이게 된 것이나 한밭이란 이름도 함께 사용되고 있다.

한밭의 한은 크다는 뜻이어서 한의 대로 번역하고 밭은 한자로 전을 사용하여 대전이 되어서 한밭은 큰 밭 즉 넓은 들판이라는 뜻이다.

대전이란 이름이 현재까지 전해지는 국내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동국여지승람으로 공주의 자연을 설명하는 내용 중에 대전천은 유성 동쪽 25리 지점에 있다 라는 설명이 나오는데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대전이란 이름은 500여 년 전 조선 초기에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전이란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군·면을 합치면서 대전리가 대전면으로 1931년에는 대전읍으로 1935년에는 대전부로 되었다가 1949년에는 대한민국의 대전시로 1989년에는 대전직할시로 다시 1995년에는 대전광역시로 발전하였다.

오늘도 산행 후 저 대전으로 나가 하룻밤 머물고 남아 있는 식장지맥 제3구간을 마무리하고 귀경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복합버스터미널을 찾아 보지만 잘 분간하기 어려운 도심지역이다.


그 대전 도심지역을  살펴본 후 북쪽을 보니 그곳에 너무나도 환상적인 식장지맥 마루금이 길게 뻗어 있고 그 좌측으로는 광활한 대전광역시의 회색도시가 펼쳐져 있고 우측으로는 대전시민들의 식수원인 대청호가 파란 물을 가득 품은 채 너무나 아름답게 ㅍ ㅕㄹ쳐져 있다.

보고 또 보며 산행 날머리인 갑천과 금강을 찾아 보지만 역시나 너무나 먼지 그곳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산줄기로서의 날머리 부분은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다.

계족산과 우측으로 계족산성이 보이는데 저 계족산성은 잠시 들렸다 구경하고 뒤돌아 나와 계족산으로 이어지는 식장지맥 산줄기를 타고 완주를 할 수 있기를 기대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저곳으로 걸어 진행하며 올려다 보는 이곳 식장산의 모습은 또 어떻게 기억이 될지 궁금도 해 지는 시간이다.


내일 하루 더 걸어야 할 그 식장지맥 마루금을 눈이 시리도록 살펴본 후 우측을 보니 파란 물을 가득 품은 대청호가 드넓게 펼쳐져 있어 다시 한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조금 더 머물며 많은 사진으로 남기고 추억을 만드는 시간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 그 헬기장에서 보낸 후 좌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한 식장지맥 정상부의 통신탑들을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행글라이딩 강습소와 가건물들이 보이고 그 한쪽에 서 있는 식장산 해설판도 읽어 본다.

대전둘레산길도 살펴 본 후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이동통신탑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 식장지맥 마루금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건물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등로가 열려있고 그 위로 수북하게 쌓여 있는 낙엽이 운치를 더해 주는데 다만 그 낙엽 밑에는 제법 큰 바위들이 밟히고 낙엽 위에는 하얀 눈들이 남아 있어 걸어 내려가는 산행은 쉽지 않다.

한동안 바위 위에 쌓여 있는 낙엽을 밟으며 조금은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정상적인 산판도로와 만나 그 넓은 도로를 타고 편안하게 내려간다.

잠시 후 고사목 밑둥만 남아 있는 431 무명봉을 지나 여전히 수북히 쌓여 있는 낙엽 등로를 따른다.

 

낙엽이 봉분을 완전히 뒤덮고 있는 묘지2기를 지나고 약간의 잡목들이 등로 주위로 보이는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눈 앞에 사각정자와 제설모래함 그리고 그 옆으로 이동통신탑이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이제부터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이제 하루해가 도로 좌측 서산으로 걸려있고 그 해가 만들어 내는 긴 그림자가 도로 앞에 드리우는 모습을 살펴보며 걸어 내려가니 오늘 산행도 이제 서서히 마무리가 되어 간다는 느낌이다.


잠시 그 시맨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마루금은 시멘트 포장도로 좌측의 절개지 앞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잠시 후 곧바로 이 시멘트 포장도로와 다시 만나기에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계속 이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후 능선에서 내려오는 정상 마루금과 만나는 지점을 통과하고 하얀 눈이 깔려 있는 도로를 따라 조심하며 걸어 진행을 하니 도로 좌측으로 분기하는 도로가 하나 더 보이고 살펴보니 옥천군 군서면 안내도가 서 있고 그 옆으로 개심사까지 1.7 Km남아 있다는 이정표도 서 있다.

개심사는 서산에 있는 사찰로 유명한데 이곳에도 개심사가 있다고 하니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개심사 갈림삼거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도로를 따르니 이번에는 도로 우측으로 화장실이 보이고 그 화장실 앞으로 비포장 임도가 보인다.

그곳에서 좌측으로 흐르는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식장지맥 제2구간의 마지막 산행을 이어가 본다.

도로 좌측으로 흐르는 방향으로는 구절사 가는 커다란 이정판이 서 잇어 잠시 구절사를 살펴 본다.

구절사는 충북 옥천군 군서면 상중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서 1393(조선 태조 2) 무학 자초가 창건하였다.

영축봉 동쪽과 서쪽 봉우리 밑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창건 당시에는 영구암이라고 하였는데 창건설화에 따르면 자초가 산세를 보니 성현이 나올 만한 곳이라 절을 지었다 한다.

이후의 연혁은 전하는 바가 거의 없고 단지 이 절에서 정성을 다해 기도하면 아들 없는 사람은 아들을 얻고 수명이 짧은 사람은 장수하게 된다고 알려져 많은 이들이 찾았다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여지도서는 물론 일제강점기 때 반포된 사찰령에도 절 이름이 나오지 않아 절의 연혁을 알 수 없으나 1933년 청주에 사는 한병석 등의 신도들이 중건한 이후 부분적으로 불사를 진행하다가 1975년부터 성진이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칠성각, 산신각
, 요사채 등이 있으며 대웅전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주존 아미타블과 좌우 협시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다.

후불탱화로는 영산회상도를 비롯하여 성진이 1975년 중창할 때 모신 제석천룡도와 나한도가 있고 칠성각과 산신각 1979년에 지은 건물로 각각 칠성탱화와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다.

대웅전에 있는 동종은 1991년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나즈막한 아눕를 통과하는데 그 안부에서 비포장 임도를 좌측으 로 보내고 우측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미끄러운 낙엽 등로를 타고 어렵게 오르니 드디어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302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그 302봉을 넘어 걸어가니 묵은 묘지 하나 위에 작은 관목들이 자라며 사라지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다시 커다란 참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그 아래 깊은 낙엽이 쌓여 있는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에 많은 가지들이 보이는 31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진행하는 등로를 다시 한번 더 확인하며 걸어 내려가 본다.

다시 약간 얼어 있는 낙엽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등로가 사라지며 진행에 방해를 받지만 생각보다 심하지 않아 방향만 잡고 조심하며 내려가 본다.

잠시 후 많은 묘지들이 산재되어 있는 묘지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포장도로가 좌측 옆으로 지나가는 비포장 임도 안부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마지막 능선으로 오르며 힘을 내 본다.


그 비포장 임도 안부를 가로질러 다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 역시 참나무 등로가 열려있는데 오르막 등로에는 참나무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여간 미끄럽지 않아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어렵게 오르니 바위들이 살짝 보이고 다시 깊은 낙엽 등로가 이어지고 있어 조심하며 걸어 본다.

그렇개ㅔ 한동안 걸어 커다란 참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넘고 다시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바로 옆까지 다가와 있는 무명안부를 통과한 후 다시 낙엽 등로를 타고 가파르게 올라 본다.

한동안 오르니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선답자들의 띠지를 확인하며 걸어 가 또 다른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니 등로 옆으로 대전 474번이라는 표기가 있는 삼각점을 만나 사진에 담아 본다.

그 삼각점을 지나 약 5미터 전방에 안내판이 서 있어 사진에 담고 마지막 산행을 이어가는데 찬바람이 불며 더욱 추위를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 삼각점봉을 지나 다시 수북하게 쌓여 있는 낙엽을 헤치며 조심해 내려가니 헤어졌던 시멘트 포장도로가 바로 눈 앞에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 저 멀리 서산마루로 넘어가는 일몰이 이 산객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구름속에 보지 못했던 일출을 아쉬워했는데 산행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서사ㅣㄴ으로 기울어져 가는 일몰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다.

이제 어둠이 빨리 찾아 들 시간이기에 조금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본다.


일출을 바라본 후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와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한동안 걸어가니 좌측으로 휘어지는 도로 표지판이 서 있는 곳 우측으로 마루금이 열려있고 그 마루금을 타고 능선으로 올라가 본다.

잠시 빛바랜 억새가 하늘거리는 등로를 따르고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한 후 계속 이어지는 묘지들을 지나니 208미터의 바위봉이 나타난다.

한동안 바위들을 지나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마지막 시멘트 포장도로가 능선 아래 저 멀리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능선을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3층짜리 건물이 보이고 그 건물 앞을 지나 내려가다 도로 우측 아래를 살펴보니 드디어 세천공원으로 통하는 2차선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예전에 식장산을 오를때 이곳 근처에 주차를 해 놓고 저 도로를 따라 진행을 했던 기억이 있어 피식 웃으며 게속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주차장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방금 전 내려봤던 세천공원으로 통하는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난다.

그곳에서 사진 몇장 남기며 걸어 내려가니 저 멀리 오늘 산행을 마무리해야 할 세천공원입구 버스정류장 앞에 타고 나가야 할 611번 버스가 대기하고 있어 달려가 보지만 야속한 버스는 이 산객이 도착하기 직전 문을 닫고 쌩하니 가 버린다.

어쩔 수 없이 그곳 세천공원 버스정류장에서 배낭 정리하고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다 보니 15분쯤 지나 또 다른 611번 버스가 도착을 해 그 버스를 타고 대전역을 지나 대전복합버스정류장까지 이용을 해 본다.





그렇게 하루의 산행을 마무리하고 611번 버스를 이용해 대전복합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해 내리니 바람이 강하게 불며 한기가 밀려오고 재빨리 뛰다시피 그 대전복합버스터미널 뒷편으로 보이는 매직24시사우나찜질방으로 들어가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이니 이제서야 추위가 사라지며 하루를 마감해 보는 시간이다.

샤워를 마치고 사우나 근처의 병천순대국 식당에서 맥주 한병에 저녁을 근사하게 먹은 후 다시 사우나로 돌아 와 배낭 정리하고 식장지맥 마지막 제3구간 산행후기를 살펴보다 보니 저녁 10시가 넘어가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어 긴 겨울잠에 빠져 본다.


산행거리는 크게 길지 않았지만 오르고 내려가는 빨래판 등로로 이어져 조금은 부담이 되었으며 기온이 많이 내려간 상황에서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추위를 느꼈던 산행으로 기억된다.

내일 하루도 무탈하게 잘 마무리하고 서울로 복귀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제2구간 산행후기를 마무리 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8-02-03 식장지맥제2구간 수리넘어고개-세천공원.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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